지리의 쓸모

인문 2024. 7. 16. 06:48

- 2017년 미국 보스턴 교육 당국은 지난 500년 동안 세계지도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한 메르카토르 세계지도 대신 다른 지도를 교실에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메르카토르 세계지도 대신 학교에 걸린 세계지도는 1974년 독일의 지리학자 아르노 페터스Arno Peters 가 만든 세계지도다. 페터스는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만든 지도 에서 왜곡되는 면적을 정확하게 표현함으로써 세계지도에 반영 된 대항해시대의 제국주의적 인식을 허물고자 했다. 페터스가 만 든 세계지도를 보면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면적이 넓어지고, 유럽과 러시아와 북아메리카의 면적은 줄어든 느낌을 받는다. 면 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지도가 낯설게 느끼는 건 우리가 그만큼 기존 관념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 대동여지도 편찬을 주도한 김정호에 대해서 잘못 알려진 정보가 많다. 김정호가 혼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지도를 그렸 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직접 곳곳을 방문하여 그리는 지도를 실측도라 하는데, 아무리 철인이라도 조선 팔도를 혼자 답사하는 건 불가능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지리 정보 파악 의 중요성을 실감한 조선 조정이 지방 관아에 지도 제작을 지시 하고, 김정호가 이전의 작업을 이어받아 집대성한 결과물이 바로 대동여지도다. 대동여지도처럼 기존 지도와 자료를 엮어 만든 지 도를 편찬도라고 한다.

- 최근에는 어떤 투영법이 주목받고 있을까요?
방향, 각도, 거리, 면적 가운데 어느 것을 지도에 정확하게 나타내는지에 따라 투영법을 나누어요 경선과 위선의 각도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정각도법正角 贏法, 거리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정거도법正距蘆法, 면적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정적도법正積圃法 방향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방위도법方位圖法이라고 해요.
과거에는 나침반과 함께 사용할 항해용 지도가 필요해서 메르카토르 도 법 같은 정각도법 지도가 주목받았어요. 앞에서 소개한 페터스의 세계지도나 아프리카의 실제 면적을 가늠하게 하는 앞의 지도는 면적을 정확하게 표현한 정적도법으로 그린 지도예요. 오늘날에는 항공기를 많이 이용하면서 정확한 거리를 표현한 정거도법 지도의 효용이 커지고 있어요.
최근에는 방향·각도·거리·면적 어느 것도 정확하지 않지만, 네 가지 정 보를 적절히 왜곡하여 전체 왜곡을 줄인 절충도법折衷圜法을 세계지도 제작에 많이 활용해요.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2011년부터 로빈슨 도법 으로 세계지도를 제작하는데, 로빈슨 도법은 면적과 형태를 조금씩 왜곡하여 만든 절충도법이에요.

- 거제 고현만과 옥포만에 각각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진해만에 STX조선해양 조선소, 부산 가덕도 신항만에 대규모 컨 테이너 부두가 자리한 것은 모두 남해의 지리적 특징과 관련이 있다. 해안선이 복잡하면서 서해보다 수심이 깊고 조차가 작은 남 해는 항구 건설에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해안이 단조로워 파도를 막기 어려운 동해에는 항구를 건설하기조차 어려웠고, 조 차가 크면서 수심이 얕은 서해에 항구를 지으려면 뜬다리 부두나 수문식 독 같은 시설을 추가로 건설해야 했다.
- 우리나라의 산업 기반은 가공 무역이다. 해외에서 수입한 자원을 우리의 자본과 기술을 활용하여 제품을 만들고 이를 다시 해외로 수출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원료 수입과 제품 수출의 편리 성 및 비용 절감을 위해 공장은 항구와 가까운 자리에 지어야 했 다. 광양, 거제, 창원, 부산 등의 항구 도시 주변에 대규모 공업단 지가 들어선 이유다. 특히 경제개발 초기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들여왔기에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남해가 주목받았다. 바다 가까이에 공장들이 들어선 지역을 임해공업지대라고 부르는데, 포항-울산-부산-창원-거제-광양으로 이어지는 임해공업지대는 남동임해공업지대라고 한다.
남해안 서쪽은 서해안과 유사한 점이 많다. 남해안 역시 리아스식 해안으로 반도와 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해안은 복잡한 해 안선이 큰 파도를 막고 연중 난류가 흘러 양식업에 유리하다. 전 라남도 해안에서는 김, 전복, 미역, 다시마를 비롯한 해조류를 대 규모로 양식한다. 김 생산지로 유명한 전라남도 완도는 국내 전체 전복 생산량의 80퍼센트 이상, 국내 전체 해조류 생산량의 35퍼 센트가량을 차지한다.
경상남도 통영 앞바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인정 받은 청정바다로 우리나라 굴의 주산지다. 수산업관측센터에 따 르면 2019년 10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전국 굴 생산량의 85.63 퍼센트를 경상남도 남해안에서 생산했고, 나머지 10퍼센트 역시 남해안과 인접한 전라남도에서 생산했다.

- 대구처럼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들판을 분지盆地라고 한다.
국토 면적의 70퍼센트가 산인 우리나라에서 분지는 아주 중요한 생활공간이다. 서울, 대전, 광주, 전주, 충주, 청주, 안동, 영천, 경 주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도시들이 대개 분지에 자리해 있 다. 하지만 이러한 도시들이 전부 대구처럼 덥지는 않다. 같은 분 지에 자리한 도시면서도 유독 대구가 더 무더운 이유는 무엇일까. 한반도 지도를 보면 영남은 서쪽의 소백산맥과 동쪽의 태백 산맥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큰 분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상 도 전체를 포함하는 이 분지를 영남분지라 부른다. 거대한 영남 분지 안에 규모가 작은 분지들이 있고, 이들 작은 분지에 대구·영천·안동·상주·영주·밀양 같은 도시가 자리한다.
영남분지는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이 각각 서해와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 바다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바다는 강한 태양열을 받아도 쉽게 데워지지 않고, 태양열이 줄어도 쉽게 식지 않는다.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해안가는 여름철에 덥지 않고, 겨울철에 춥지 않은 해양성기후를 보인다. 반면에 육지는 강한 태 양열을 받으면 바다에 비해 쉽게 뜨거워지고, 태양열이 줄어들면 쉽게 식는다. 바다보다 육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은 여름에 무덥고, 겨울에는 바닷가보다 추운 대륙성기후를 보인다. 영남분지에서는 전형적인 대륙성기후가 나타난다.
대구의 무더위를 만드는 또 하나의 원인은 분지 안의 분지라 는 대구의 독특한 지형이다. 여름에 부는 남서풍은 소백산맥을 넘 으면서 기온이 오르고 건조한 바람이 되어 대구로 향한다. 앞에서 소개한 푄 현상이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대구에는 푄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심지어 푄 현상으로 생긴 더운 바람은 산에 막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대구 안에 갇히고, 대구를 후덥지근하게 만든다.

- 열섬 현상은 한낮에 뜨겁게 달궈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계속 열기를 내뿜으면서 발생한다. 낮 동안 뜨거워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서서히 열을 내뿜어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하 루 중 가장 낮은 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가 도시에서 더 자주 나타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도시 내부에서 발생하는 인공 열 역시 기온을 상승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자동차의 배기가 스, 각 가정과 공장의 냉방 장치에서 발생하는 인공열이 도시의 기온을 높인다.
한편, 도시의 규모가 클수록 많아지는 고층 아파트단지와 주상복합 아파트, 고층 빌딩 같은 높은 건물은 도시의 공기 흐름을 방해한다. 뜨거워진 도시 안의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도시 안에 갇히게 만드는 것이다. 공장과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매 연은 하늘에 매연층을 만드는데, 매연층 역시 도시에서 발생한 뜨 거운 공기를 도시 안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 인구 200만이 넘는 대도시 대구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열섬 현상이 강하게 발 생하고 있다. 분지라는 자연환경과 대도시의 인공환경이 결합하여 무더운 도시의 대명사인 대프리카를 만든 것이다.
- 최근 들어 경상북도 의성, 경상남도 밀양, 강원도 홍천 등지에서 일시적이지만 대구보다 여름철 한낮 최고기온이 높게 나타 났다. 대구보다 기온이 높은 지역이 나타나는 이유는 기온 측정 시설이 전국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기온 측정 시설 이 없어 기록이 되지 못했던 지역에서도 이제는 기온을 세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대구 이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강한 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2018년 8월 6일은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날 중 하 나다. 이날 대구의 최고기온은 37.5도였다. 그런데 같은 날 다른 도시의 최고기온을 살펴보면 서울 39.6도, 춘천 41.0도, 횡성 41.3 도 등으로 대구보다 높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모두 산으로 둘 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2018년에는 예년과 달리 북태평양 고기압 이 우리나라 동해까지 확장하면서 여름철에 남서풍이 아니라 동 풍이 불었다. 무더운 동풍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넘을 때푄 현상이 나타나 산맥 서쪽 지역의 기온이 크게 올라간 것이다.
대구는 1942년 8월 1일 낮 최고기온이 40.0도까지 오른 이후, 강원도 홍천의 한낮 최고기온이 41도까지 오른 2018년 8월 1일까지 76년 동안 가장 높은 한낮 최고기온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대구가 여름철 무더위의 대명사인 대프리카로 불리 게 된 계기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지이고, 분지에 자리한 도시가 많으므로, 북태평양 고기압에서 불어오는 여름 계 절풍의 방향과 산맥이 어떻게 결합되느냐에 따라 최고기온 기록 이 깨지는 일은 앞으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집중 호우와 폭염이 일상화되어 가는 여름철 기후 환경에서 어느 도시가 제2 의 대프리카가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 자연재해는 정말 나쁘기만 할까?
황사를 봄철 불청객이라 부르고 여름철 태풍을 자연재해 종 합세트라고 평가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두 자연 현상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이유는 인간 생활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사와 태풍이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재해이면서, 동시에 지구의 대기순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사하라사막의 모래먼지가 무역풍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아 마존 열대우림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는 소식은 황사를 다시 보게 끔 만든다. 황사는 마그네슘과 칼슘을 비롯한 다양한 무기질을 포 함하고 있어 산성화된 토양과 하천을 중화하며, 바다에 사는 플랑 크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또한 황사는 지구온난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대기 중 먼지 농도를 높여 지표면을 향해 내리쬐는 햇빛을 막아 일조량을 감소시키고, 햇빛을 지구 바깥으로 반사함으로써 지표면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태풍은 적도 주변 저위도에 과다하게 쌓인 열을 고위도로 이 동시킴으로써 해양오염을 줄인다. 하천에서 나온 오폐수로 오염 된 바닷물과 깨끗한 바다를 섞어 해양오염 농도를 줄여 적조 현 상을 억제하며, 수면 아래 무기질을 끌어올려 플랑크톤의 번식을 돕는다. 무엇보다 여름철 무더위를 몰아내고 가뭄으로 메마른 땅 에 단비를 내리는 태풍은 '효자 태풍'이라고까지 부른다.

- '지방 소멸 위험 지수'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방소멸 위험 지수'는 일본의 사회학자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가 쓴 책 『지방 소멸』의 내용에서 출발했어요. 마스다 히로야는 젊은 여성 인구가 수도권으로 이동함에 따라 지방이 소멸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소멸 위험 지수는 마스다 히로야의 연구를 참고하여 20~39세 여성 인구를 65 세 이상 고령 인구로 나눈 값을 말해요.
간단하게 말하면 20~39세 여성 인구가 65세 이상 고령 인구 수보다 적 으면 인구가 쇠퇴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고, 여성 인구가 고령 인 구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면 지역이 소멸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예요. 이 기준 에 따르면 서울에는 소멸 위험 지역이 하나도 없지만, 전라도·경상북도·강원 도·충청도의 경우 기초자치단체 절반 이상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어요.

-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선거 전략의 등장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정치 지형이 동서로 나뉜다. 이때부터 정치권이 지역갈등을 본격적으로 선거에 동원 하기 시작한다.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박정희 대통령은 신민 당 김대중 후보를 '용공분자'로 몰았다. 언론인과 체육인의 남북 교류와 4대국 안전 보장 같은 김대중 후보의 통일 정책이 북한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선거 한 달 전부터 간첩 사건이 잇달아 발표되면서 반공 감정이 고조되기도 했다.
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역갈등 전략에 입을 맞추었다. 민주공화당 출신 이효상 국회의장은 "쌀밥에 가 섞이듯 경상도에서 반대표가 나오면 안 된다. 경상도 사람 쳐놓고 박 대통령 안 찍는 자는 미친놈이다."《조선일보》 1971년 4월 18일라며 지 역갈등을 자극했고, 경상도 곳곳에 '전라도 사람들이여 단결하라' 는 내용의 선전물을 뿌려 경상도민의 반발심을 일으켰다. 김대중 후보 역시 지역갈등에 편승하는데, 박정희 정부의 영남 위주 경제 개발을 비판하며 '호남 소외론'을 들고나온 것이다.
- 이토록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역갈등에 기댄 선거 전략이 출현한 것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표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까 하는 정치공학적 계산의 결과다. 전라도 민심을 외면하더라 도 경상도 표심만 잡는다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1949년에서 1970년까지 전라도 인구가 509만 명에 서 632만 명으로 약 120만 명 증가하는 동안, 경상도 인구는 634 만 명에서 938만 명으로 약 304만 명 증가했다. 이후 격차는 더 벌어져 2020년 기준 두 지역의 인구는 510만 명대 1,291만 명으 로 2.5배 정도 차이가 난다.
- 앞으로의 지역갈등은 어떤 모습일까요?
앞으로의 지역갈등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여요. 우리나 라는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방면의 인프라가 수도권에 쏠려 있어요. 이에 비 수도권에서는 서로 경쟁하며 갈등하기보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공동의 이 익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사회간접자본SOC을 예로 들 수 있어요. 도로, 항만, 철도 등 비수도권에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려면 수도권에서 더 많이 걷힌 국가 세금을 지 역 균형발전을 위해 사용하기로 합의해야 해요. 이때 비수도권 지역구 국회 의원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국회 의석을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수도권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요.
광주와 대구를 잇는 달빛내륙철도는 비수도권이 공동전선을 펼치며 연 대하는 대표적인 사례예요. 경상도와 전라도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은 입을 모아 달빛내륙철도 건설을 주장하고 있어요.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커다 란 발전 격차를 해소하고 국토를 균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두 지역 사이의 내륙철도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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