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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전담

인문 2024. 6. 21. 06:54

- 『흥부전』의 시대적 배경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쯤 이다. 그 시대에 양반은 사실 이름만 양반이지 벼슬을 하 지 못하면 달리 돈을 벌 방법이 없어 궁핍하게 사는 경우 가 허다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다 써버리고 나 면 몰락에 몰락을 거듭하며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 가 많았다.
'양반이면 뭐해. 정신 차리고 뭐라도 해서 먹고살자!' 하 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어떻게든 일을 해 먹고살았다. 그런데 흥부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겨우 선택한 게 매품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었다. 양반으로서의 체면을 따지자면 매품을 파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훨씬 더 비참했을 텐데도 흥부는 매를 맞는 일을 선택했다. 대체 왜?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주는 머슴살이도 할 수 있었다. 종이 되는 게 아니라 고용인이 되어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말이다. 매품보다는 덜 수치스럽고 덜 괴롭고 덜 위험하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매품은 한 방이면 끝나지만 머슴 노릇은 받는 것에 비해 너무 길고 지루해서 그랬을까?
양반의 자식이니 글줄은 대충 알 것이고, 그러면 아이 들을 모아놓고 훈장 노릇을 해도 된다. 이래저래 이 지역 에서 선대부터 살았으니 안면도 있고 인연도 있다. 그러니 아이들이 들고 오는 월사금으로 근근이 살 수도 있고, 매 품보다는 훨씬 더 낫다. 하지만 흥부는 그러지 않았다. 혹 시 그러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러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어떻든 흥부의 현실은 매품에 몸을 맡겼다. 위험부담이 있지만 화끈한 한 방이 있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얼핏 그 의 속마음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 흥부는 욕심쟁이였다.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있어 보이고 싶고 멋져 보이고 싶고 괜찮아 보이고 싶었다. 모 양 빠지기 싫어서 늘 '척'하며 주제 파악도 못하고 남들을 돕는다는 미명 아래 호구 잡혀 살았다. 그러면서 그 모든 부담을 주변에 떠넘겼다. 부인, 자식, 그리고 형 놀부에게 로 흥부 욕심의 밑바탕에는 겁쟁이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고, 그것을 똑바로 보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퇴영적 움츠림이 있었다. 그것이 흥부를 망쳤고 그를 욕심쟁이로 만
들었다.
『흥부전』은 욕심에 대한 이야기다. 과도해서 자신을 망 각하고 남을 해코지하는 놀부의 욕심만이 아니라, 과도해 서 자신을 해치고 급기야 주변까지 망쳐놓는 흥부의 욕심 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이야기다. 비록 놀부의 욕심은 쉽게 눈에 띄고 흥부의 욕심은 판별하기 쉽지 않지만 똑같은 문 제다. 그 욕심의 본질은 같다. 양상만 반대일 뿐 서로 닮은 꼴이다. 마치 거울을 마주하는 것처럼 말이다.
- 시집살이가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을 늘 듣다 보니 그것이 우리의 오랜 풍습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조선시대 내내 결혼은 남귀여가혼인 처가살이가 기본이었다. 이 런 풍습은 고려시대부터 있어왔다. 결혼과 동시에 처가 로 몸만 쏙 들어가 살면 되니 남성 입장에서는 이 처가살 이가 아주 괜찮은 풍습이었다. 우리는 보통 조선시대에도 여성이 결혼하면 시집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19세기 즈음 시작된 풍습으로 이후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공고화되었을 뿐, 조선시대에는 처가살이가 기 본이었다.
처가에 들어가 살면 장인 장모가 사위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관직까지 다 알아서 해주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보다 장인이 자신을 더 여러 면으로 돌봐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사위의 첩까지 장인이 골라 주었다. 이런 제도가 가능했던 것은 남녀가 균등하게 상속 받았기 때문이다.
아들 입장에서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유 산을 받을 수 없지만 처가에 들어가 살면 우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다. 게다가 장인이 돌아가시면 딸이 처가 유 산을 상속받으니 독립해 살 수도 있다. 물론 자기 아버지 가 돌아가시면 역시 재산을 상속받게 되니 그때 분가해도 된다. 남성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결혼 도 쉽고 독립도 쉬운 시스템이었다.
조선시대 초부터 신진사대부를 비롯한 양반 기득권자들 이 어떻게든 시집살이를 정착시키려 애를 썼다. 남성의 가 치와 가부장의 권위를 강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 는 게 옳다고 생각한 신진사대부들은 조선시대가 막을 연 1392년부터 줄기차게 시집살이를 추진했다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 『흥부전이 탄생할 때쯤 비로소 장자 위주의 상속제로 바 뀌기 시작했다. 처가살이에서 시집살이로 바뀌는 시점은 학자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긴 한데, 시작은 대략 17세기 중후반부터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자료를 보면 17세기 후반쯤에 장자 위주로 재산을 상속했다는 몇몇 기 록을 볼 수 있다. 아직 전면적 확산은 아니고 이런저런 타 협적 양상이 산발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다가 19세기로 넘어오면서부터 차츰 확산되었다. 이때는 딸에게는 아예 상속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딸 이 밉거나 차별해서가 아니라 혼인한 뒤 시집살이하게 된 딸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것은 사돈집에 재산을 내주는 격이니 더 이상 딸들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게 된 것이다. 『흥부전은 바로 이렇게 조선시대의 사회경제적 구조가 바뀌던 시기를 그 배경으로 한다.
처가살이가 시집살이로 바뀌면서 늘어난 것은 사실 남 성들의 부담이다. 가장이란 허울은 좋지만 그 무게가 어깨 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여성이 자기 집에 들어와 살게 되 니 경제적으로 자신이 먼저 독립해야 했다. 먹고 살려면 마땅히 그래야 했다. 이런 시대인 만큼 흥부는 정신을 차 렸어야 했다. 아주 똑바로 말이다.

- 사실 춘향전』 이본 중 가장 주목해야 할 이본은 서울에 서 유통되던 『남원고사南原』, 『열녀춘향수절가』보다 적어도 30년가량 먼저 출현했고 분량도 두 배 이상 많고 풍성하다. 무엇보다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던 세책점의 세 책본이라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읽던 텍스트였다. 그 『남원고사』에 등장하는 춘향의 성이 '김'이다. 그러니 광복 이전까지 서울 사람 대부분은 춘향을 김춘향으로 알고 있 었다. 그때 『춘향전』의 성춘향 어쩌고 하면 아마 고개를 갸 우뚱했을 가능성이 크다. 광복 이후 영화, 드라마 등에서 춘향을 '성춘향'으로 고정시켜 만들면서 성춘향이 되어버 린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진짜 춘향의 성은 없다. 이른 시기의 대다수 『춘향전』 이본은 다 그렇다. 당연한 소리다. 낳아준 어머니는 확실하나 아버지를 모르기에 그렇고, 혹시 안다 해 도 성을 붙이기도 쉽지 않다. 기녀는 자신이 임신한 아이 의 아버지가 누구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그 남성이 가문에서 기녀를 첩으로 받아준다면 모를까, 그냥 버려지 는 상황인데 누구의 자식이네 뭐네 했다가는 경을 칠 일이 었다. 신분제 사회란 그런 것이다.
결국 춘향의 어머니는 월매가 분명하지만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른다는 게 『춘향전』 원전의 본질이다. '우리 춘향이'를 응원했던 당대 사람들은 어떻게든 춘향의 아버지를 고위 양반으로 만들어 그녀의 위상을 높이려 했지만 현실 은 냉혹하다. 물론 아버지가 돈을 많이 내고 기녀 신분에 서 벗어나게 해줄 수는 있지만 이 역시 희망 사항이다. 춘 향이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누군가 속 랑해준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속량했다면 제 집에 데 려와 살게 했을 것이고, 돈 많은 다른 누군가가 그녀를 기 녀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면 자기 첩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러나 춘향은 16세에 이몽룡을 만날 때까지 어머니 월매 와 함께 살았다. 속량된 적이 없는 것이다.
- 『춘향전』의 핵심 가치를 굳이 꼽자면 에로티시즘과 혁명 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은 항상 같이 다니는 긴밀한 관 계다. 에로틱한 감정의 원초적 흥분은 쉽게 파토스 pathos적 호소로 이어지고, 그런 감정은 성별, 계급, 신분, 나이, 지 역, 문화를 뛰어넘는 원동력이 된다.
가령 음담패설을 공유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음담패설이 구연되는 상황과 공간은 그 순간 평 등적 가치를 지닌 공간으로 변모하고, 그 상황에 같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동참한 공범 혹은 동지가 된다. 신분, 나이, 계급 등과 같은 문명적 가치를 떠나 '같은 무리'가 되는 것이다.
『춘향전』이 바로 그랬다. 제대로 읽지 않아서 그렇지, 이 텍스트는 그야말로 '19금'으로 도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판소리의 한 대목인 <사랑가>도 마찬가지다. 
- 조선시대에는 처를 두기 전에 첩을 먼저 두는 일도 있었 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남성의 나이가 차서 따로 집안을 다스려야 할 정도가 되었을 때다. 어머니가 연로하시거나 돌아가셔서 집안일을 할 사람이 없을 때라면 자식이 부인 을 두어야 했다. 이때 관료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어서 결 연이 쉽지 않아 양반 여성을 처로 두기 어려우면 첩을 우 선 두었다. 첩이란 혼례 없이 쉽게 몇 명이든 둘 수 있기에 급한 대로 첩을 두고 나중에 급제하거나 집안이 흥왕해진 후 적절한 양반가 여자를 처로 맞아들이면 되었다.
이러니 이몽룡이 첩을 두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16세로 아직 젊은 나이였고 어머니도 쌩쌩하게 생존해 있으니 첩 을 둔다는 것은 단지 성욕과 관계된 문제일 뿐이다. 그러 니 어린 나이에 첩을 두었다는 게 후일 결혼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당연히 부모는 반대할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춘향이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 이 둘이 만난 첫날 밤에 "후일 성공한 후에도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불망기를 적어달라고 했던 것이다. 춘향은 당장은 불가능하고 나중이나 되어야 비로소 자신이 첩으로 받 아들여질 것을 알았고, 그렇게 되기를 소망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그 나중'을 믿었을까? 이몽룡을 어디 까지 믿었을까? 정말 이몽룡이 성공해 돌아올 거라고 믿었 을까? 물론 그녀의 속마음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지만 명민 한 그녀가 현실을 몰랐을리 없다. 춘향은 이몽룡이 돌아 오기를 바랐지만 그게 무척이나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란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서울에 올라가자마자 급제하고 어사가 되어 후다닥 달려 내려오는 일련의 일이 벌어진다 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살펴보았듯이 변학도가 부임하 자마자 기생점고를 하고 춘향을 윽박지르고 감옥에 넣어 죽이려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말이다.
- 춘향은 이몽룡이 돌아올 것을 확신하지 않았지만 변학 도에게 항거했다. 물론 춘향의 항거에는 근거가 있다. 『사 기』 「전단전單의 충신은 두 명의 임금을 섬기지 않 고[忠不事二君]정녀는 두 명의 남편으로 바꾸지 않는다 不二"는 명분이다. 정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 녀烈인데, 아무튼 이런 열녀 이데올로기를 근거로 변학 도의 수청을 거절한 것이다. 하지만 춘향은 양반도 아니고 실제로 정혼한 사이도 아니므로 근본적으로 성립할 수 없 는 근거다. 게다가 엄밀히 말해 열녀불경이부烈女不二의 핵심은 본처의 경우일 뿐 첩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이런 모든 사실을 현명하고 똑똑한 그녀가 모를 리 없다. 자신이 지금 억지를 부리며 바락바락 악을 쓰고 있다 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했다. 이를 단지 이 몽룡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만 한다면 춘향의 저항을 너 무 얕잡아 보는 것이다. 그녀는 목숨 걸고 저항했다. 감히 그 누구도 대들 수 없는 권력자에게 보잘것없는 천한 여인 이 항거한 것이다. 이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춘향은 모두가 관습에 따르고 모두가 권력에 순응할 때, 오직 자신만이 당대 사회 윤리를 거스르며 수청 거부라는 몸부림을 통해 제 목소리를 냈다. 아무것도 아닌 자가 목 숨 걸고 저항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춘향전』의 진정한 혁명성이다. 
- 『춘향전』은 내 몸은 내 것이라고 자각하고, 내 몸은 내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내 몸은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며 당대 관념과 싸우고 사회와 투쟁해 나가는 과정 을 그린 소설이다.
그러니 이몽룡이 다시 춘향에게로 돌아오느냐 아니냐는 하나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가 오든 말든 춘향은 자 기 생각대로 자기 몸을 사용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몽 룡이 돌아와 춘향의 생각대로 사는 삶을 인정하고 격려함 으로써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해주었을 뿐, 그렇든 그렇지 않든 춘향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몸을 살게 했을 것이다.

- 택당 이식의 언급처럼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을 수 있지만 그것이 한문일 가능성이 높고, 허균이 창작했다는 작품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한글 소설 홍 길동전』의 원형이라 해도 그 이야기에 도술을 부리는 영웅 적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가장 타당성 이 높은 추정은 황일호의 『노혁전』처럼 허균이 한문으로 「홍길동전을 지었고, 그것이 후대인 18~19세기로 전해오 면서 한글로 번역되는 과정에 이런저런 내용이 추가되어 지금 우리가 읽는 한글 『홍길동전洪吉童傳』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추정일 따름이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 받 아들이면 '최초의 한글 소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최초 한글 소설' 타령이 있지도 않던 조선시대 내내 택당 이식의 기록을 읽은 사람들은 그 누구도 허균이 지었다는 『홍길동전이 한글인지 한문인지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 했다. 모두 다 그 문맥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한문 전을 떠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시대적 요청에 따라 갑작스레 택당 이식의 언급이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 정리하면, 1927년 다카하시 도루는 허균이 「홍길동전』 을 지었으나 한글이 아닌 한문 소설이고, 그 한문 원전은 언제 사라졌는지는 모르나 현재 보고 있는 한글 『홍길동 전』은 원전이 아니라고 했다. 이후 1930년, 그의 제자 김태 준은 《동아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허균이 한글로 『홍 길동전을 지었다"라고 말했는데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고, 그 칼럼을 엮어 펴낸 1933년 『조선소설사에서도 동일하게 주장했으나 역시 그 근거를 말하지 못했다.
- 무슨 근거로 김태준은 허균을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라고 했을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런 주장을 했을 까?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으로 짐작 은 되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근대적 학문 체계로 조 선 한문학사와 소설사를 정리할 정도로 우리 문학에 애정 이 깊던 김태준이다 보니, 한글 소설 『홍길동전』이라는 담 론을 만들어낸 그의 고심이 엿보이기는 한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김태준이 아니다. 김태준의 '한글 소설' 운운 언급을 지금까지 아무런 객관적 검증 없이 그 대로 답습해오고 있는 현재 상황이다. 그 바탕에는 최초의 한글 소설이 사라지면 안 된다는 강박과 불안에 떠는 고집 이 있다. 분명한 것은 조선시대 언젠가 이름 모를 어느 작가가 한글로 소설을 창작했다. 그 시초가 누구이고 그 작 품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 알면 좋지만 모른다고 우리 한글 소설의 수준이 격하되거나 한글 소설이 가치를 잃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한글 소설의 시초를 논리적인 판단과 정합적 타당성을 통해 판단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움켜쥐려고만 하는 것은 아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 집과 아집은 정치는 될지 몰라도 학문이 될 수는 없고, 다 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활발한 논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학문은 발전하기 힘들다.
- 한 가지 용어 문제를 정리하자면, 양반가 처에게서 태어 난 아들은 적자라 하고, 첩의 아들은 보통 서자로 통 칭한다. 그런데 차별이란, 차별받는 대상들 사이에서 더 구 별해야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보니 첩의 신분에 따라 용어 를 다르게 쓰기도 해서 천민첩의 아들은 얼자라고 구 별해 불렀다. 홍길동의 어머니는 몸종 출신이니 정확히 말 하면 홍길동은 얼자인 것이다.
- 뜬금없는 성욕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홍 판서의 '청 룡 꿈 타령'은 욕정을 감춘 핑계일 뿐이다. 부인이 홍 판서 의 손길을 뿌리치며 한 말에 그 의도가 분명하게 담겨 있 다. '시도 때도 없이 발정 난 것처럼 들이대는 경박한 나이 어린 자들이나 할 짓'이라는 지적은 명확하게 핵심을 찌르 고 있다. 벌건 대낮에 해괴망측한 짓이라는 뜻이다.
한번 곰곰이 따져보자. 일단 청룡 꿈이 상서로운 엄청난 꿈이 맞다 치고, 그 꿈 이야기를 발설하면 효험이 사라질 수 있으니 부인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나름 타당하다 치 자. 하지만 핵심은 당장 이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꼭 그 벌건 대낮에 동침해야만 꿈이 효험이 있는 것일까?
- 꿈의 효험에는 일정한 시효가 있는 것일까? 고작 몇 시간 만에 사라지는 효험이라면 그게 정말 상서로운 꿈일까? 본 질은 간단하다. 홍 판서가 정말 청룡 꿈을 대단한 태몽이 라고 생각했다면 그 꿈을 마음에 품고 그날 밤에 부인과 동침하면 되는 것이었다. 부인의 거부는 체통도 없이 벌건 대낮에 밑도 끝도 없이 들이닥쳐 강제로 범하려는 것 때문 이었지 근본적 동침 거부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결국 분출할 길 없는 성욕은 엉뚱한 곳을 향해 폭발했 고, 가장 만만한 약자인 여종이 그것을 고스란히 받고 말았다. 강제로 추행했다는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홍 판서가 이미 이런 행위를 통해 태어날 인물이 적자가 아닌 서 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홍 판서 스스로 적서 차별의 굴레를 만들어놓고도 '부인이 답 답해서 원...'이라며 남 탓을 했다. 비겁하고 찌질하기 이를 데 없다.
- 홍 판서가 정말 태몽의 계시처럼 훌륭한 아이를 낳고 싶 은 생각이 컸다면 부인에게 거절당하고 하는 수 없이 춘섬 과 관계를 맺고 난 뒤의 행동이 달랐어야 했다. 정말로 홍 판서가 훌륭한 인물로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가 컸다면 당장 춘섬을 첩으로 들어앉혀 살뜰히 살폈을 것이다. 하지 만 홍 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춘섬이 홍 판서와 관 계를 가진 후 스스로 몸을 조심하고 밖으로 나다니지 않으 며 사람들과도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몸을 조심하니 그제 야 홍 판서가 춘섬을 첩으로 삼았다고 쓰여 있다.
만약 일을 치른 후 춘섬이 여기저기 바깥출입을 하며 이런저런 남자 종들과 말을 섞고 다녔다면 홍 판서가 춘섬 을 첩으로 삼았을까? 당연히 아니다. 춘섬이 마치 임금님 의 성은을 입은 궁녀처럼 행동하기에 어쩔 수 없이 첩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너무나도 명백한 한 가지를 말해준다. 홍 판서는 그 일(?)을 치르려고 할 당시 용꿈 같은 것은 개 나 줘버렸다는 점이다. 용꿈은 태몽이고 상서로운 내용이 니 엄청난 아들이 태어날 게 분명하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면 어떻게 해서든 춘섬을 달래 조신하게 행동하라고 당부 했을 것이다. 하지만 홍 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모든 게 단지 성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는 핑계일 뿐이다. 홍 판서의 행동 은 정욕의 분출이었고 그 방식은 강간의 상황이었다. 길동 의 어머니 춘섬은 원치 않은 아이를 임신했던 것이다. 길 동은 '홍'길동이 아니라 어느 씨인지도 모를 사생아로 태 어날 신세였다.
사실 조선시대에 이런 일은 너무 흔했고 이런 경우 춘섬 같은 여종을 다른 남종과 결혼시켰다. 그것이 일반적이었 지만, 춘섬은 조신하게 지내는 방법으로 그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길동을 서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자 제 자식을 위한 혼신 의 몸부림이었다. 대감의 첩이 되어 편하게 살기 위해서만 이 아니라, 자신은 천해도 태어난 자식만은 신분의 굴레에 서 벗어나 양반이 되게 하려는 선택이었다. 비록 반쪽짜리 양반이긴 하지만 말이다.
- 홍길동의 욕망은 간단하고 분명했다. '나를 인정해 달라', '서자이지만 능력 있는 나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활빈당을 통해 분명하게 증명해 보였 다. 포도대장도 못 잡았고 군대가 달려들어도 이겨낸 홍길 동의 행동은 그야말로 묵직한 시위였다. 결국 그는 인정받 게 되고, 왕은 그에게 병조판서를 제수한다. 그러자 홍길동 은 약속대로 조선을 떠나고, 그렇게 걷잡을 수 없던 혼란 이 막을 내린다.
- 홍길동은 정치가이자 정복자였다
홍길동이 조선을 떠나 해외로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 론 병조판서를 받으면 떠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 만 이는 조금 슬프기도 하고 조금 안타깝기도 한 냉정한 진실을 담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조선에서 자신이 받아들 여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떠나기로 계획했다. 이렇게 훌륭한 인재가 조국에 받아들여지지 않아 해외로 떠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정말 아쉽고 딱하다.
그러나 동시에 홍길동은 처음부터 조선에 존재했던 내 적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병조판서를 요구한 게 아니란 사실이 분명해졌다. 실제로 병조판서가 되자 그는 나라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혹은 빈민들을 구제하는 데 힘쓰기보다 자신이 그런 위치에 올랐다는 것에 만족하고는 훌쩍 떠나버리니 말이다. 참 야박한 행동이다. 그 리고 그는 율도국을 정벌한다.
혹시 홍길동이 어쩔 수 없어서 율도국을 정벌한 것은 아 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율도국의 왕 이 잔인한 폭군이라거나 율도국이 내전처럼 힘든 상황이 라 어쩔 수 없이 도와주다가 떠밀려 왕이 되는 것처럼 말 이다. 하지만 모두 아니다. 상황은 정반대였다. 율도국은 태평성대를 누리던 나라였다. 오랫동안 갈등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보니 심지어 전쟁하는 법도 몰라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왕 역시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선한 왕이었다.
- 그가 왕과 조선 사회에 요구한 것은 '적서 차별의 철폐' 도 아니고, '탐관오리 근절을 위한 근본적 대책'도 아니며, '민생 안정을 위한 수습책도 아니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그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조선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능력을 발휘할 가능 성과 기회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홍길동은 그의 욕망을 따 라 조선을 넘어 외국으로 나갔고 결국 율도국을 정벌해 왕 이 된 것이다.
- 『홍길동전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정합성은 분명하다. 홍 길동이라는 주인공이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실현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본질적 욕망에 주목 하기보다는 욕망의 결과가 빚어낸 시대 비판과 체제 개혁 같은 주변적 가치에 초점을 맞췄기에 어긋나 보였던 것이 다. 『홍길동전』은 홍길동의 정치 실현과 정복 과정을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욕망의 이야기다.
- 『홍길동전』의 고전다움을 찾아내려면 홍길동과 작품을 둘 러싼 번잡한 것들을 걷어내야 한다. 그냥 주문처럼 외우 듯 하던 것들을 모두 던져버려야 한다. 허균이 지었든 말 든, 최초의 한글 소설이든 아니든, 실존 인물 이야기든 가 상 인물 이야기든 아무튼 『홍길동전은 어느 한 남자의 이 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비참하게 태어 나 왕이 된 홍길동이라는 어느 남자의 성공 이야기라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너무 당연하다. 바로 당대 사람들이 그랬기 때문이다. 작가가 누군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최 초의 한글 소설이어서 더 주목한 것도 아니고 연산군 때 실존 인물 이야기를 따온 것이라 열광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빠져들었고 그냥 열광했다. 이야기가 그려낸 홍길동 이 미치도록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 창작 이유가 '효자인 김만중이 어머니 윤 씨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풀이해보자면 '제가 높은 벼슬을 지내다가 지 금은 귀양살이를 하고 있듯이 인생의 부귀영화가 모두 꿈 같고 환상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님, 슬퍼하지 마세 요'라는 절절한 표현으로 어머니의 외롭고 슬픈 마음을 위 로한 것이다.
평소 윤 씨는 김만중이 관직에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첫째 아들이야 가문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둘째 아들만큼은 관직에 나가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어 머니의 만류에도 김만중은 관직에 나갔고, 아버지의 성품 을 닮아 할 말은 해야 하는 강직한 사람이다 보니 두루뭉 술하게 살기가 어려웠다. 여러 논쟁과 사건에 휘말려 결국 수차례 유배를 가게 되었고, 그런 아들로 인해 윤 씨는 괴 로운 날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김만중은 유배지에서 구운몽』을 썼다.
- 실제로 우리는 학교에서 『구운몽』 의 주제를 '인생무상'이라고 배운다. 한마디로 인생은 덧없 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구 운몽』을 쓴 이유가 '어머니의 근심 걱정을 풀어드리고자' 한 것인데 '부귀공명이 일장춘몽이다'라는 내용으로 과연 어머니의 근심을 풀어줄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보라. 효 자 아들이 귀양지에서 홀로 늙어가는 어머니를 위로한답 시고 하는 말이 "어머니, 부귀공명은 한바탕 꿈같은 거예 요. 인생은 덧없어요"라고 말했을까?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위로를 받았을까? 인생이 말짱 꽝이라는 이야기 를 듣고 오히려 근심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 사실 이재의 논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구운 몽이 석가모니의 우언이라는 지적이다. 이 말은 『구운몽』 이 곧 부처의 비유, 불교의 빗댄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이 논평을 『구운몽』의 내용과 함께 생각해보면, 불교의 공포 사상을 의미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실제로 이야 기 마지막에서 육관대사가 설법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공 사상을 담고 있는 『금강경金剛經』의 그 유명한 4구게이기도 하다.
- 불교의 공사상은 인생의 헛됨이나 무상을 말하는 게 아 니다. 인생이 헛되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까지 헛됨을 깨달 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생의 부귀영화가 헛되다는 게 아니라, 그 부귀영화가 헛되다는 생각과 관념까지도 헛되 다는 것을 말하는게 공사상이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기도 하고, 뭔가 알 듯 말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 이렇듯 심오한 철학 사상을 당대 최고의 지식인 김만중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자신도 모르 는 사이에 이해하고 깨닫도록 했는데, 그것이 바로 구운 몽』이다. 
- 기억하겠지만 성진은 육관대사의 허다한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자였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물길을 좌우로 가르는 신 통력을 부릴 정도의 엄청난 도승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속한 불가의 가치를 부인하고 다른 가치인 유가의 삶을 욕 망했다. 동일하게 부귀영화의 정점에 선 대승상 양소유가 자 신이 속한 유가의 가치를 부인하고 다른 가치인 불가의 길 을 욕망한다. 여기에 『구운몽』의 중요한 주제가 숨어 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어느 욕망을 끝없이 추구해 그 정점에 도달하면 완성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전혀 다른 욕망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라캉Jacques Lacan(1901~1981) 의 말처럼 욕망은 완전히 충족될 수 없어 여분의 욕망이 남아 인간은 늘 그것을 추구하러 달려간다는 것을 김만중은 17세기에 『구운몽』을 통해 이미 설파해놓았다.
어쨌든 우리가 일단 기억할 것은 대승상 양소유가 자신이 평생 추구했던 유가 욕망에 대해 덧없다고 느끼고 다른 것 을 추구하려는 순간에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 정리하면, 성진과 양소유는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처럼 끝없이 상대방을 욕망하는 순환 관계다. 성진은 양소유처 럼 되고 싶어 하고, 양소유는 성진처럼 되고 싶어 한다. 그 런데 그렇게 상대방이 되어 보면 그 욕망의 극한에서 허무 함을 느끼고 다시 반대쪽이 되고 싶어 한다. 끝없는 욕망 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욕망이 한도 끝도 없이 계속 뱅 뱅 이어질 상황이다. 열심히 열망하나 다람쥐 쳇바퀴처럼 뱅글뱅글 돌 뿐이다. 그렇다. 윤회처럼 꼭 그렇다.
그래서 육관대사는 성진에게 분명하게 지적한다. "네가 인간 세상에 윤회하는 꿈을 꾸었다고 하는 걸 보니 아직 꿈에서 덜 깼구나"라고 말이다. 분명 꿈을 깼는데 이게 무 슨 소린가 싶지만, 이어서 육관대사는 꿈에서 덜 깼다는 게 "너의 그 말은 인간 세상과 꿈이 다르다는 말이로구나" 라고 설명한다. 맞다. 육관대사는 모든 말을 다했다. 다만 제대로 못 알아들었을 뿐이다. 육관대사의 말은 결국 인 간 세상과 꿈이 다르지 않다는 뜻으로, 그것은 지금 인간 세상에 살고 있는 성진이나 꿈에 살고 있던 양소유나 모두 다 윤회의 쳇바퀴 속에 갇힌 욕망의 존재일 뿐이란 사실을 냉철하게 지적한 말이다.
- 다시 설명하면, 성진이 양소유고 양소유가 성진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성진은 현실(色)에 있고 양소 유는 꿈에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둘은 같은 존재다 卽是空] 지금 꿈에서 깬 성진은 자신이 진짜고 양소유가 가 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꿈속에 있는 동안 양소유가 스스 로 자신이 가짜라고 생각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양소유는 자신이 진짜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아니 그런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꿈속의 존재였다. 양소유는 없었 던[] 것이다. 양소유는 있지만 없는 존재 [色卽是空]'였다. 이것으로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
- 진정한 깨달음의 이야기
고전의 가치는 박제된 관념에 있는 게 아니고, 어딘가 담 겨 있을 주제를 확인하는 것도 아니다. 고전을 읽는 동안 그 안에 형상화된 가치를 이해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삶과 의미를 되돌아보는 데 있다.
소설이란 주제를 찾기 위해 어려운 길을 일부러 돌아가 는 것이 아니며, 복잡한 길에서 헤매기만 하고 끝나지 않 는 것도 역시 아니다. 소설의 가치는 명쾌하고 명징한 작 가의 주제 의식을 찾아가는 즐거움과 그 과정의 재미에 있 다. 『구운몽』은 이런 명쾌함과 즐거움, 과정의 재미를 잘 보여주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것이다.
『구운몽』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성찰 하는 '깨달음에 대한 텍스트'이며, 읽는 이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깨달음의 텍스트'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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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Quote of the day 2024. 6. 21.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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