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머니

경제 2022. 12. 18. 15:39

- 기술은 양면성을 지닌다. 기술은 우리의 힘을 강화하지만, 동시에 의존도를 높인다. 이제 인간활동을 지원하는 외적 도구들이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형성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처음에는 새로운 선택지였던 혁신적 도구들이 이제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필수 품이 됐다. 대도시 사람들은 스마트폰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 사용 여부'를 선택할 수는 없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 으면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주변의 사회경제적 네트워 크에서 쉽게 배제되고 말 것이다.
모순은 우리가 그 강력한 기술을 직접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 심화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구글맵은 사실상 내가 사용하 는 스마트폰에 설치된 것이 아니며, 일상어로는 '클라우드'라고 불 리는, 내가 보통 스마트폰을 통해 접속하는 디지털데이터센터에 존 재한다. 말하자면, 구글맵은 우리의 방향타를 저 멀리 떨어진 거대 한 외부 존재로부터 그때그때 빌려다 쓰는 방식의 서비스다.
- 머니패서들이 결제시스템에 깊이 자리한다면, 시장에서 일어나 는 모든 상호작용이 그들을 거치게 될 것이다. 구매자와 판매자를 중개하는 머니패서의 등장이 지난 몇 세기 동안 시장에서 발생한 가장 중대한 변화 중 하나이다. 결제중개력은 은행업계의 입지를 단단히 굳힐 뿐만 아니라 다음의 3가지도 가능하게 한다. 첫째, 거 래 감시다. 머니패서는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민감한 데이터를 수집 하기 위해서 개인의 금융거래를 모니터할 수 있다. 둘째, 거래 검열 이다. 머니패서는 자신이 원치 않는 거래를 차단할 수 있고, 개인이 직접 돈을 운용하지 않기 때문에 돈의 흐름을 동결하고 무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셋째, 대량 자동화가 기업 독점력의 강화로 이어진 다. 원격 디지털대기업은 원격 디지털화폐가 필요하다.
- 은행업계가 지탱하는 디지털화폐는 미국과 중국이 지배하는 감 시자본주의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중국 정부는 금융시장에 미국 정부보다 더 깊이 개입하지만, 미국 정부와 똑같이 자국의 대형 기술기업의 외연 확대 기회를 모색한다). 디지털결제업계는 금융 디지털화가 안고 있는 위험을 절대 강조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대면 상거래에 진입하기 위해서 산업을 지탱하는 복잡한 내부구조 로 사람들의 주목을 요청하는 대신에, 세련됨이나 편의성 등 디지털 결제의 '느낌'만 대충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
- 반면에 디지털결제가 널리 보급되면 은행에 이롭다. 주요 은행의 주된 수입원은 이자와 수수료다. 신용카드는 이자와 수수료를 발생 시키고, 현금카드는 수수료만 발생시킨다. 은행의 디지털결제 담당 부서는 수익을 발생시키는 이익 중심점이다. 연차보고서에서도 이 것이 확인됐다. 은행은 연차보고서에 디지털결제 담당부서를 강화 하고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영업지점과 ATM 운영을 줄일 계 획을 담는다. 은행은 영업지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디지털채널로 유도하면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디지털채널은 알고리즘과 고 객서비스 봇으로 원격 조정이 가능하다. 게다가 디지털결제는 고객 행동에 관한 데이터도 발생시킨다. 은행은 디지털채널을 통해 수집 한 데이터로 고객 프로파일을 작성할 수 있다. 고객 프로파일로 예 금주의 행동을 예측하고 상품을 교차 판매할 수도 있다.
- 현금 편에 서서 함께 싸워주는 기관은 거의 없다. 현금으로 수익 을 내는 벤처캐피탈은 없다. 그래서 많은 벤처캐피탈이 언론에 현 금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를 쏟아부을수록 회사 이익에는 도움이 되는 민간 결제회사에 투자한다. 중앙은행은 현금을 발행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편향됐다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줄까 두려워서 현금사용을 통일된 공식 메시지로 장려하길 주저하는 눈치다. 중앙 은행이 중립을 지키는 동안에, 은행 뒤에 버티고 있는 디지털결제 산업이 현금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
이 전쟁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참관인은 중앙은행의 공 식적인 중립 입장이 서서히 현금시스템을 없애기 위한 은밀한 계략 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뭔가 의도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당국은 은행의 ATM 폐쇄 조치 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적 영역이 아니라 사적 영역이 기에 자신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고 말한다. 많은 나라의 중앙은행 이 그저 뒷짐만 진채 상황을 관망하고, 디지털결제산업이 사나운 사냥개마냥 현금시스템을 공격하도록 내버려 둔다.
디지털결제회사와 금융회사는 십자군 원정에 임하듯 현금과 전 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에 대한 정부 지원은 위태롭기만 하다. 정부 도 디지털결제회사와 맺은 동맹관계에 갈수록 불안해하고 있다. 보 안 전문가들이 사이버공격 · 결제인프라실패, 심지어 한 나라의 경 제를 마비시킬 수 있는 디지털결제시스템에 대한 테러 등을 염려하 기 시작했다. 재정안정성의 문제도 있다. 현금 없는 사회에서 은행위기가 닥치면 어떻게 될까? ATM이 없다면, 사람들이 망한 뱅킹시스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수년 동안 현금이 자국에서 무참히 짓밟히도록 내버려 뒀던 스웨 덴과 네덜란드의 중앙은행이 이제 현금소멸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26 2018년 스웨덴 당국은 심지어 위기나 전쟁이 발생한다면' 이란 제목의 팸플릿을 제작해서 배포했다.27 팸플릿에는 러시아와 의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약간의 현금을 보유하라는 내 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솝우화에서처럼 우리는 현금과의 전쟁에서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는지 모른다. 현금과의 전쟁을 둘러싼 정치적 역학관계를 이해하려면, 통화시스템의 핵심부를 파고들어야 한다. 현금의 본질은 무엇이고, 현금과 디지털화폐는 어떻게 다를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물음, 돈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할까?
- 자신이 어떻게 거대한 인적망을 형성했는지 잊게 된다. 어린아이 는 처음에 돈을 신비한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주면, 자신이 원 하는 물건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돈을 요 구하는 것은 가게 주인이 손님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과 거의 유사 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인식의 오류다. 국가가 당신 의 돈을 갈구한다는 믿음은 심리적인 결함이다. 이것은 다람쥐가 떡 갈나무가 도토리를 갈구한다고 믿는 것과 다를 바 없다(다람쥐는 떡 갈나무가 도토리를 원하기에 나무에 도토리가 열린다고 믿는다). 국가는 그 저 당신이 자신의 돈을 가져가길 원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시장 통화량 을 팽팽하게 유지해야 할 기술적인 이유가 없다면, 국가는 당신에 게서 돈을 되돌려 받는 것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 태양이 떠오른다고 착각 하기 쉬운 것처럼 우리는 국가(정부)에 돈(세금)을 줘야 국가가 '돈을 쓸 수 있다'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국가는 '돈을 써서 돈을 만들고, 다른 곳에 돈을 재발행하기 위해서 또는 시 장에 유통되는 돈의 화폐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돈을 회수한다. 국가는 과도하게 화폐를 발행해서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망을 파괴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통화정책'의 흑마술은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이 망을 팽팽하게 당겨 긴장감을 유지하는 동시에 그것이 팽창하고 변형될 수 있도록 신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 처음 은행계좌를 개설하면 은행계좌에는 숫자 '0'이 찍힌 다. 이것은 '우리, 은행은 당신에게 디지털칩을 단 1개도 발행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의 친구, 로버트가 은행직원에게 현금으로 100파운드를 건네면, 은행이 로버트의 현금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 받는다. 이것은 은행의 국가화폐 보유량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그 러고 나면 은행은 로버트에게 100개의 디지털칩을 발급해줄 것이 고, 로버트의 은행계좌에 숫자 '100'이 찍힐 것이다. 여기서 디지털 칩은 국가화폐에 대한 약속이다. 로버트는 디지털칩을 자신이 소유 하는 자산으로 받아들이지만, 은행은 갚아야 할 빚으로 본다. 결과 적으로 로버트는 은행이 발행한 디지털칩을, 은행은 국가가 발행한 화폐를 갖게 됐다.
- ATM에 가는 것은 '카지노를 떠나는 것'이다. 은행은 로버트에게 디지털칩을 회수하고 국가화폐를 되돌려준다. 이로써 은행이 로버 트에게 했던 약속은 상쇄된다. 이것은 3장에서 살펴본 과정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은행은 인출을 예상하고 디지털지급준비금의 일정 량을 '실물화하여 현금으로 확보해둔다. 이는 국가화폐주기에서 음 영이 진 부분이다.
카지노에서 카지노가 발행한 칩과 로버트가 건네는 국가가 발행 한 화폐를 구분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은행에서 은행이 발행한 디지털칩과 국가가 발행한 화폐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일상적인 용어로 둘 다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용어로 둘은 명확히 구분된다. 국가화폐는 본원통화라고 한다(또는 협의통화·고성능통화·MO 라고도 불린다). 반면에 은행이 발행한 디지털칩인 뱅크칩은 은행통 화·장부통화·광의통화라고 불린다.
뱅크칩은 은행 예치금을 뜻한다. 이 단어 때문에 혼란이 생긴다. 은행 예치금은 영어로 'bank deposits'다. 'deposit'은 동사와 명사 로 모두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홍수는 강에 모래를 '퇴적시 키고(deposit)', 강에는 '모래 퇴적물(a sand deposit)'이 생긴다. 그런 데 'deposit'이 은행과 연관되면 우리는 혼란스럽다. 우리는 '무언가 를 쌓아두는 행위'를 나타낼 때 동사로서 'deposit을 사용한다(I deposited cash'는 '나는 은행에 현금을 예치했다'는 뜻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나는 은행에 현금을 쌓아뒀다'는 의미다). 그런데 'deposit'은 '쌓인 것'을 의미하는 명사로도 사용된다(I have cash deposits in the bank’는 ‘나 는 은행에 현금예금이 있다'는 뜻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나는 은행에 쌓아 둔 현금이 있다'는 뜻이다). 현실에서 은행 예치금은 은행에 쌓여 있는 돈 이 아니라, 은행이 예금주에게 하는 약속이다. 회계에 관한 지식이 있 는 사람은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를 분명히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객 예치금'은 부채로 대차대조표의 대변(은행 이 고객들에게 한 약속이 기록되는 변)에 기록된다. 간단하게 '은행 예금'은 은행이 고객에게 발행한 디지털칩인 뱅크칩이라고 기억해두면 된다.
- 결론을 말하자면,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은행은 대출 신청자에게 '국가화폐를 빌려주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외투 보관소 비유보다 좀 더 정확한 카지노 비유로 되돌아가자. 은행은 대출을 신청한 사 람들에게 국가화폐가 아닌 카지노의 칩 같은 뱅크칩을 발행해주고 그들로부터 대출약정서에 돈을 갚겠다는 서명을 받을 뿐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은행은 고객들이 단기로 맡긴 돈을 계속 예금으로 끌어모아서 보다 더 긴 만기의 장기 대출을 판매하는 과 정에서 예대마진을 가져오는 구조로 운영된다. 은행은 그 과정에서 대출해준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위험과 어느 날 갑자기 예금자들이 은행으로 몰려와 예금을 인출하는 환매 위험을 갖게 되는데, 이 두 가지 위험을 잘 관리하기만 하면 은행은 국가화폐를 계속 빨아들이 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적인 수익모델을 갖게 된다. 이로써 은 행은 주주들을 위한 수익을 낼 수 있다. '다른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 주라고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은 예금자인 당신의 역할이 아니다. 은행이 '뱅크칩'을 발행할 수 있도록 지급준비금을 높여주는 것이 바로 당신의 역할이다.'
이것이 바로 '은행화폐의 신용창조'다. 고객에게 대출을 해주기 위해서 뱅크칩을 발행하는 은행의 행위는 통화공급량을 확대한다. 영국에서 통화공급량의 90% 이상이 뱅크칩 형태이다. 전체 디지털 화폐시스템은 이런 뱅크칩을 개인들에게 나눠주거나 수거하는 식 으로 재할당. 재배치하면서 작동된다. 디지털화폐와 관련해서 삶을 감시하는 도구라든가 서민들을 배제하는 위험한 수단이라든가 하는 다양한 논란은 우리 삶에서 은행이 발행한 뱅크칩이 매우 중요해졌다는 사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온갖 금융기관이 우리의 일상적인 거래에 개입한다는 뜻이다. 
- 해외 송금을 위해서는, 그 과정에 개입하는 은행들이 서로 면밀 하게 소통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수천 개의 은행이 존재하기에 해 외 송금은 대단히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위 '전 세계에 안전 한 금융메시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스위프트가 설립됐다. '메 시징'이란 단어 때문에 스위프트를 왓츠앱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 관처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스위프트는 통신 허브지만, 영양가 없 는 잡담이나 주고받는 곳이 아니다. 디지털화폐시스템에서는 오직 결제메시지만이 움직인다. 각각의 스위프트 메시지는 계좌를 수정하라는 굉장히 진지한 합법적 명령이다. 은행은 스위프트의 데이터센터를 통해서 은행식별코드BIC를 사용하여 정해진 양식에 따라서 해외 송금을 진행한다.
물론 은행은 해외 송금에 관한 지급 명령을 스위프트가 아닌 다 른 메시징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1만 1,000개의 은행이 이미 스위프트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시스템을 사용하도록 그들을 일일이 설득하는 일은 어려울 것 이다(아마도 새로운 메시징플랫폼으로 동시에 갈아타도록 친구들을 설득하 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국제금융제재를 받은 (예를 들어 이란 은행과 같은) 은행들을 통해서 확인했듯이, 스위프트 네트워크에서 배제되면 해외 송금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스위프트가 지정학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으로 사용되는 이유이다.
- 현대의 신용카드는 작은 컴퓨터와 같다. 쉽게 말해서 지갑에 넣 고 다닐 수 있는 아주 얇은 랩톱이다. 신용카드는 포스단말기를 통 해서 결제요청을 금융기관에 전달한다. 존의 포스단말기로 옮겨진 나의 결제요청은 비자넷으로 보내진다. 비자넷은 비자가 보유한 거 대한 글로벌 결제시스템이다. 비자넷에는 1만 5,000개의 가맹은행 과 포스단말기가 연결되어 있고, 초당 5,000건의 결제요청이 동시 에 생성되어 전송된다. 나의 결제요청도 그중의 하나다. 비자넷은 초당 3만 건의 결제요청을 처리할 수 있다. 비자는 비자넷 데이터센 터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결코 밝히지 않는다. 그저 '동쪽 해안선' 어딘가에 있다고 말할 뿐이다. 비자넷 데이터센터는 전략적으로 대 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비자는 비자넷 데이터센터에 9일 동안 전기 를 공급할 수 있는 비상발전시설과 보안정책을 마련해두었다. <네 트워크 컴퓨팅> 매거진은 비자넷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지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유압식 차량 진입 방지용 말뚝이 설 치되어 있다. 그것들은 시속 80km/h로 주행하는 차량을 멈춰 세 울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반응한다(도로는 굴곡이 심해서 고속주행은 불가능하다). 방문자는 반드시 보안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보안팀을 통과해야 하고, 단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생체정보를 확인받아야 한다.
- 이 데이터 요새는 나의 결제요청을 내 거래은행으로 보낸다. 예 를 들면 '브렛은 접골사에게 돈을 지불하길 원한다. 그에게 뱅크칩 이 충분히 남아 있나?"라는 메시지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받은 나 의 거래은행은 내게 뱅크칩이 충분한지를 확인하고, 결제요청이 들 어온 같은 통로를 이용해서 지불승인을 해준다. 존의 포스단말기 가 삐 소리를 내고 '결제승인'이란 메시지가 나타난다. 나는 신용카 드를 챙겨서 자리를 떠나고, 나의 거래은행과 존의 거래은행이 결 제 과정을 개시한다.
디지털결제의 기본 원칙은 간단명료하다. 결제를 원하는 은행이 있고, 그들 사이를 연결하는 메시징플랫폼과 고객이 사용할 수 있는 메시징 장치가 있다. 여기서부터 대부분의 결제 '혁신'이 이해될 것이다. 기존 시스템 위에 또 다른 시스템을 쌓아 올리거나 카드 네 트워크를 우회하거나 늘리기 위해서 은행에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방법을 고안해낸다. 예를 들어서 애플페이와 구글페이는 기 존 금융시스템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냈을 뿐 이다. 그들은 그저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폰을 신용카드로 바꿔놓았 을 뿐이다(여기에는 구글에 나의 결제내역에 관한 데이터가 계속해서 쌓인 다는 부작용도 있다).
- 페이팔은 2016년 런던 지하철을 중심으로 '새로운 화폐' 캠페인을 시작했다. 페이팔은 런던 지하철의 광고판을 중산층 의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의 이미지로 도배했다. 페이팔은 사람들을 수령인이라고 불렀다. 고대하던 기술을 곧 수령하게 될 주체 말이 다. '새로운 화폐가 도착했다'는 페이팔의 슬로건은 주문한 물건을 배송하러 온 배달원이 하는 말처럼 들렸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는 이 기법을 호명이라 고 칭했다. 사람들이 이미 새로운 아이디어에 동의하고 있다고 가 정하고 사람들을 호명하여 아이디어를 주입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 어서 '사이버 먼데이'는 그저 전미소매협회가 매출 인상을 위해서 그 누구의 동의도 없이 새롭게 만들어낸 날이다.  전미소매협회는 '사이버 먼데이가 올해 최대 온라인쇼핑 시즌이 될 것'이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사이버 먼데이가 왔다'. '사 이버 먼데이를 맞이할 준비가 됐나?' 등과 같은 슬로건이 등장했다. 소비자들은 이런 슬로건을 보고 사이버 먼데이가 원래 있던 날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사이버 먼데이가 실제로 존재하는 날이라고 믿는 수백만 명이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 을 떠올린다. 페이팔과 같은 디지털결제회사들도 이와 유사한 기법 을 사용한다. 그들은 실제로 저명한 사람들이 '새로운 화폐'의 등장 을 학수고대하면서 그 흐름을 이끌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기업들이 만들어낸 거짓 메시지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기업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상업 적인 메시지는 거의 포화상태이다. 그래서 상업적인 메시지의 비판 자는 자신이 마치 재원이 풍부한 종교를 비판하는 불가지론자신과 같은 존재는 분명 있지만, 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종교적 인식을 가진 사람)가 된 것처럼 느낀다. '현금은 반드시 보호해야 할 공공재다'라 는 내용의 광고판은 없다. 왜냐하면 그 메시지를 널리 퍼트릴 현금 친화적인 기업이 현금에겐 없기 때문이다. 현금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로 공격당하고 있다.
-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현금은 '말이 끄는 수레'이니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믿게 된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현금을 마차보다 '자전거' 에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여전히 위와 같은 이야기에 불편함 을 느낀다. 자전거는 자동차처럼 아주 빠르지 않지만 잠깐 밖에 나 갔다 올 때 굉장히 용이한 이동수단이다. 그리고 관리하는 데 손이 훨씬 덜 가고, 따로 비용을 들일 일이 없으며, 다른 수송체계가 혼 잡할 때 유용하다. 현금 또한 그렇다. 디지털 은행계좌는 '금융시스 템'에 접속해야만 쓸 수 있고, 그 시스템을 잘 관리하고 유지해야 문 제없이 디지털은행거래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시스템을 신뢰할 준비가 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 솔직해지자. 현금은 뒷길에서 일가족이 경영하는 소규모 사업체로 구성된 자본주의가 뿌리내릴 기회를 제공한다. 대기업들은 경제 네트워크에서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전쟁을 벌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금이 이끄는 비공식 자본주의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힘을 합친다. 그들은 구멍가게들을 집어삼켜 하나로 통합하고 유명한 브랜드로 만들어 거대한 체인점을 탄생시키려고 한다. 또는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대형 슈퍼마켓으로 재래시장을 대 체하려고 든다. 현금은 이런 기업자본주의의 정신과 잠재적 행보에 동시에 저항하고 있는 듯하다.
- 빅브라더가 수집한 데이터는 2개의 새로운 전형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첫 번째는 빅바운서 Big Bouncer다. 빅바운서는 데이터 를 사용해서 무언가에 대한 접근 여부를 결정하는 기업이다. 예를 들어서 자동적으로 신용등급을 산출하고 신용사기를 감지하는 시 스템은 대상이 된 사람들을 특정 기업에 접근시킬지 말지를 결정한 다. 두 번째는 빅버틀러Big Butter다. 빅버틀러는 데이터를 사용해서 기업들이 접근하고자 하는 고객들의 신상을 파악하는 기업이다. 빅 버틀러는 스스로를 도움이 되는 하인이라고 칭한다. 그는 개인의 과거 금융거래이력을 내밀하게 분석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려주거나 개인의 관심사와 '무관한 정보를 걸러내도록 도움을 준 다. 빅버틀러는 사람들의 행동을 조정하거나 유도하는 데 전문가다. 빅바운서와 빅버틀러에 대해서 또 얘기하겠지만, 전 세계에 그들은 폭발적으로 등장하고 있고 주로 빅브라더와 협력한다. 미국의 벤처캐피탈들은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민주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빈말일 뿐이다. 그들은 수익 창출이라 는 미명하에 전 세계적으로 사생활 침해를 서슴지 않는 미국의 대 형 기술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각종 자원을 쏟아붓는다. 이와 동 시에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해외로 외연 확장을 도모하는 자국 기 술기업들에게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기술기업 중에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있다. 그들은 모바일결제 시스템을 담당하는 대형 조직을 두고 있는데, 각각 알리페이(앤트파 이낸셜)과 위챗페이다. 
- 술 소비를 금하는 신정국가나 금융활동에 제약을 가해서 정적을 벌하는 독재국가를 상상해보자. 혹자는 그런 국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 이미 시범 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예를 들어서 호주의 '현금 없는 복지카드'를 쓰는 복지수급권자는 허가받지 않는 상품을 허가받지 않는 상점에 서 구매할 수 없다. 이것은 디지털결제를 통해서 자행되는 사회 통 제의 완벽한 사례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민주주의 지수 에 따르면 전 세계 절반에 이르는 국가에 권위주의적 성향을 보이 면서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정권이 들어섰다. 호주의 시민권 운동가 들은 현금 없는 복지카드에 저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러한 비판조차 허용되지 않는 국가도 많다.
- 사람들은 경제가 끝없이 팽창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미 너무도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진부한 표 현에서 이 논리는 빤히 드러난다. 물론 이것은 정치인들과 CEO들 이 좋아하는 표현이다(“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반드시 ... 해 야 합니다."). 이 문장은 '앞장서거나', '계속 나아가거나', '적응하도록' 사람들을 자극할 때 사용된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러닝머신 을 뛰다가 힘들어서 속도를 살짝 줄였는데 바닥으로 꼬꾸라지고 마 는 그림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 사람들이 새로운 디지털결제시스템을 갈구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대체로 이러한 요점이 빠져있다. 경제 러닝머신 위에서 빨리 달리 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은 마지못해 속도를 내서 달려야만 한다. 개개인은 강력한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작은 마디에 불과하다. 시스템은 수많은 작은 마디 들을 초월한다. 사람들이 기업자본주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경제시스템은 시스템을 따르기 버거워하는 구성원을 위해 기존 궤 도를 바꾸는 관대함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반드시 팽창해야 하는 시스템에 속해있다. 우리는 항상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해야 한다. 이것은 느리거나 너무 현실적이거나 자동화되지 않거나 독립적인 것들은 모두 배제되어야 한다는 뜻이 다. 기업자본주의에 따르면 이는 낡은 허물을 벗는 것과 같다. 이런 맥락에서 현금은 현재의 경제시스템이 계속 팽창하고 빠르게 성장 도록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제약이다. 현금은 경제 러닝머신이 최고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제동을 건다. 산업 미래주의자들이 '소비자들 이 스스로 디지털결제를 선택한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상 사람들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힘에 의해 특정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다.
- 많은 경제학 논평가가 시장의 능동적 선택이라는 측면에 주목하지 만, 시장의 수동적 측면에 주목하는 편이 경제 네트워크를 이해하 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구부정한 자세가 이 모호성을 설명하는 데 좋은 비유가 될 수 있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면 능동적인 선택 이 요구된다. 반면에 구부정한 자세는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도 유 지할 수 있다. 그것은 중력이 몸을 장악해 끌어당기게 내버려두었기에 발생하는 수동적인 결과다. 스톡홀름과 같은 곳에서 디지털결제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받는 느낌은 전자보다 후자에 훨씬 더 가깝다.
우리를 끌어당기는 디지털결제의 '중력'은 빠르게 세지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금융기관으로 끌려들지 않으려는 의지를 잃어가고 있다. 상호의존적인 경제 네트워크의 보이지 않는 종속 사슬이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경제시스템을 뒤덮고 있다. 이 새로운 상황이 모든 시스템에서 기본값으로 자리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갑자기 현금으로 주차요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현금을 사용하려 는 시도는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는 것과 같은 아주 능동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현금사용자는 변화의 조류에 맞서야 한다. 그래서 자신 이 갈수록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현금을 사용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고, 현금을 포기하고 시대 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편이 훨씬 더 쉬워질 것이다. 이는 분명 수동 적인 과정이지만, 능동적인 소비자 선택으로 보도될 것이다.
- 여러 시대에 걸쳐서 은행원은 돈에 관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거래를 하면서 부를 축적해왔다. 이것은 오랫동안 도덕적 공황의 원천이었다. 1416년 피렌체 메디치 가문 사람이 은행원이 되고자 한다면 계약을 보증거하나 손실을 보상할 자본금 과 계약서를 작성할 깃털 펜만 있으면 됐다. 은행업무를 처리하는 데 그렇게 많은 체력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금융거래상의 가 능성을 고려해야 했기에 상당한 정신력이 필요했고, 위험을 감수하 는데 강한 감정적 강인함이 필요했다. 당시에 육체노동에 익숙한 사람에게 이러한 은행업무는 미스터리했고 심지어 사악하게까지 보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들이 얼마나 사악해 보이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초기 은행원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눈에 보이는 존재였다. 중세 교토의 대금업자들은 사케 양조장에 둥지를 틀었고, 런던의 스퀘어 마일Square Mile의 17세기 금융가들은 커피숍에 느긋하게 앉아서 일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지에서 활동하던 금융가들은 서로 힘을 합쳐서 더 큰 연합체를 만들었고, 다른 지역에 지점을 열어서 지점망을 형성했다.
예를 들어서 영국의 바클레이즈 은행은 퀘이커 교도들이 만든 17세기 파트너십에서 출발했고, 소규모 퀘이커 지역은행들을 합병 하면서 19세기에 빠르게 성장했다. 바클레이즈 은행은 근대 기업의 형태를 갖추었고 의사결정이 중앙(본사)에서 이뤄졌지만, 영업지점 들은 현지에서 분산화 양상을 그대로 유지했다. 1880년대 농촌에 들어선 바클레이즈 은행의 영업지점은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은행지점장이 관리했다. 그리고 은행지점장은 런던 본사에 보고해야 했다(런던 본사는 더 넓은 지점망을 관리하고, 위험을 통합하고 자금조달을 주도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은행 본사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고객의 신용을 평가해서 대출을 승인하고 계 약을 맺고 악수할 은행원은 진짜 사람이었다.
지금 금융가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과 악수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이제 우리가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것은 디지털금융 앱의 인터페이스가 전부다. 
- 세계적인 대형 은행들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고, 지점망을 폐쇄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 큰 에너지를 쏟을 수 는 없다. 경영진은 회의 시간에 다른 안건들도 의논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그들은 불확실한 환경 아래 수십억 달러의 주택담보대출을 관리하는 방법이나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가진 지정학적 위험을 해소하는 방법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들은 곡예하듯이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추진하고, 대를 잇는 고 객만 해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 그래서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을 천천히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느릿한 행보는 새로운 계급의 기업가들이 은행을 앞지를 시간을 줬다. 은행들이 수십 년 동안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동안, 2000년대에 '핀테크'라는 새로운 용어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곧 대 세가 됐다. 핀테크는 금융권이 대대로 해왔던 사업을 저해하지 않 고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인터페이스를 금융에 접목하려고 시도하 는 기업을 지칭한다. 핀테크 종사자들은 작지만 전문적이다. 그리 고 그들은 회의 시간에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개발하는 프로젝트 를 안건으로 다루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금융가가 아니기 때 문이다. 그들은 '디지털점포'를 설계하고 만드는 이들이었다.
- 핀테크시스템이 기본적으로 금융시스템에 대한 자동접속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이고, 금융시스템은 금융거래를 처리하고, 통화시스템은 은행 과점 에 기대서 작동한다면, 핀테크기업이 어떤 시스템을 개발하든지 이 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은행과 손을 잡아야 한다. 이것이 유럽의 몬 조·엔26 · 레볼루트 · 피도르 등 많은 디지털네오뱅크가 기존의 뱅킹 시스템 위에 내려앉은 인터페이스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 이유다. 때문에 네오뱅크는 은행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허가증을 발급받지 않는다. 전통적인 은행들은 처음부터 실제 은행업무를 처리하기 위 해서 설립됐고, 이후에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 인터페이스를 개발 했다. 하지만 네오뱅크는 처음부터 금융인터페이스였다.
- 사람들은 빅파이낸스와 빅테크가 만든 시스템에 계정을 개설하 면서 시스템에 묶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 계정들을 잇는 것이 두 세 계의 융합의 첫 단계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나의 아마존 계정과 은행계좌를 연결한다면, 이것은 내가 아마존과 나의 거래은 행이 서로 파트너십을 맺는 것을 허락한다는 뜻이 된다. 옛날에는 변두리 구멍가게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아도 지폐로 필 요한 물건을 샀다. 이제는 휴대폰 화면의 점포(온라인 쇼핑몰)에서 필 요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클릭 한 번으로 은행계좌에서 물건 대금을 점포로 이체한다. 여기서 아마존이 현금결제를 의무화하는 법안의 통과를 막기 위해서 치열한 로비활동을 벌였던 이유를 이해 할 수 있다. 현금은 기술과 금융의 융합을 막는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려면 '구매' 버튼을 클릭해야 하지만, 자동 결제를 도입한 기업들도 있다. 예를 들어서 우버 택시에서 하차하면 우버의 데이터센터는 비자나 마스터카드의 데이터센터를 통해 서 하차한 승객의 거래은행 데이터센터에 자동으로 접속하여 결제 를 진행시킨다. 이처럼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시스템이 통합되어 하 나의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원래 여러 업계에서 다단계로 진행되던 과정이 이 클러스터에서 클릭 한 번으로 일괄로 처리된다.
금융시스템과 기술시스템의 통합은 우리가 보지도 만지지도 못 할 아득한 곳에서 다방면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모든 주요 기술기 업은 공공연하게 금융산업에 진출할 계획을 밝혔다. 많은 기술기업 이 주요 클라우드머니업체들과의 파트너십을 채결하며 이를 도모 하고 있다. 누구의 시스템이 결제에 사용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 예를 들어서 우버는 우버 캐시를 선언했다. 우버 캐시는 대표적 인 선불카드회사인 그린닷과 손을 잡았다. 그린닷의 시스템은 뱅킹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다. 알렉사는 은행과 손을 잡은 아마존페이와 통합됐다. 애플은 골드만삭스와 손을 잡고 애플 카드를 출시했다. 구글은 시티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구글 캐시를 출시한다고 선언 했고, 페이스북은 다양한 결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페이스북 의 결제 프로젝트는 뒤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J. P. 모건은 에 어비앤비 ·아마존과 손을 잡았고, 두 기술기업이 뱅킹시스템에 접 근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를 제공한다. 인도의 페이티엠은 전자상 거래업체와 결제시스템을 통합했고, 중국의 위챗과 알리바바도 같 은 행보를 보였다.
- 은행들은 은행원을 디지털시스템으로 대체하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늘려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 · 처리하는 편이 수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앞다퉈서 조 직 내부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AI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캐나다 왕 립은행의 경우 이미 AI시스템을 연구할 박사 100명을 고용했다." 대형 투자은행들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핵심 인력을 알고리즘으 로 대체해왔다. 실제로 2019년 런던에서 열린 AI 컨퍼런스에서 골 드만삭스의 최고 기술 책임자를 봤을 때, 그녀는 "골드만삭스에는 1만 1,000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있다. 그중에서 4,000명 은 수십 년 동안 머신러닝을 연구해왔다. 내가 20년 전에 골드만 삭스에 입사했을 때, 나스닥에서 선물거래를 전담하는 트레이더는 2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우 3명뿐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진화다"라고 말했다."
- 기업조직과 손을 잡은 국가조직은 모두 개인과 개인이 형성하는 비공식적인 관계를 끊어내는 데 관심 있고, 그 목 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때때로 입법활동에도 관여한다. 예를 들어 서 현지 이슬람 상인들은 하왈라hawala 시스템을 통해서 국제 송금 업무를 처리한다. 그것은 구두로 형성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운 영되는 일종의 비공식적 국제 결제시스템이다. 영국 런던에 거주하 는 소말리아 사람들은 스트레텀의 하왈라 브로커에게 현금을 보내고, 돈을 받은 하왈라 중개인은 케냐 몸바사에 있는 제휴 사업자에 게 전화를 걸어 그곳의 수취인에게 실링으로 현금을 전달해달라고 요청한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송금방식은 사법체계가 아닌 명예법으로 관리됐다. 하지만 지금 하왈라시스템은 미국 애국자법과 같은 법률의 압박을 받고 있다. 하왈라시스템을 불법화하거나, 하왈라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공식적인 은행시스템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벌어진다.
대기업은 해외시장 진출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국가와 손을 잡지만 그들도 국가와의 연대를 상실할 수도 있다. 그래서 늙은 리바이 어던과 어린 '테크노 리바이어던' 사이에는 복잡한 긴장관계가 형 성된다. 막스 베버는 늙은 리바이어던을 대변하는 칙칙한 사무실 이 즐비한 낡은 정부 건물과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캐비닛이 배치 된 대기업을 넌지시 언급하며 관료제의 강철 우리'란 용어를 사용 했다. 하지만 21세기의 리바이어던은 강철 우리의 봉을 멋진 초국 가적 디지털망으로 바꾸길 바란다. 우리는 지금 소름 끼치는 자동 감시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러한 변화를 몸소 경험하고 있 다. 이러한 변화는 장소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도시 에서는 '스마트시티', 가정에서는 '스마트홈', 신체의 차원에서는 '자 가 측정, 개발도상국에서는 '디지털포용'이라 불린다.
- 무정부자본주의는 보수적인 자유지상주의의 극단적인 형태로, 주류 정치적 보수주의의 성질 급한 어린 남동생이라 할 수 있다. 그 것은 시끄럽고 구제불능이다. 그리고 더 극단적인 반국가적 자세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재산을 보호하는 최소한 의 국가권력이 존재하는 자유시장을 원한다. 골수 무정부자본주의 자들은 대규모 자본주의시장은 경찰과 법원과 같은 국가조직으로 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철학들에서 사이퍼 펑크 운동과 공통된 대의명분을 찾아볼 수 있다. 모두 사이버공간 에서 '자유의 땅'을 만들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 사이퍼펑크운동은 정치적 이념이 뒤섞여 있지만 기술적으로 선구적이다. 결국에 디지캐시와 같은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데이비드 차움과 같은 사람들이 개척해낸 다양한 요소기술들은 일 종의 퍼즐 조각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 퍼즐조각들을 제대로 맞 출 수만 있다면, 강력한 무언가가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누군가가 2008년에 등장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는 그들은 사이퍼펑크 메일링 리스트에 PDF파일 하나를 올렸다. 당시는 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가 수많은 대형 은행을 뿌리째 뒤 흔들던 시기였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올린 문서는 짧고 명료했다.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다 맞추고 나면 간단한 그림이 나오는 퍼즐처럼, 거기에는 수십 년의 기술적 혁신들이 하나의 방안에 따라서 결합되어 있었다. 그 문서의 제목은 <비트코인: P2P 전자화폐시 스템>이었다. 이후로 그 문서는 간단하게 비트코인 백서로 알려지게 된다. 그것은 블록체인 기술의 기본서가 됐다. 블록체인운동은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졌다. 기업에서는 블록체인시스템을 사용할 때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오픈 블록체인시스템의 다양한 특징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여러 특징이 사라진 블록체인시 스템은 '분산원장기술'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주류 핀테크 세계에서 유행어가 됐다. 우리는 앞에서 은행창구에서 고객을 상대 하는 직원들이 어떻게 디지털앱으로 대체됐는지를 살펴봤다. 그리 고 고객을 상대하지 않는 금융인들이 어떻게 AI로 대체되거나 보강 되는지도 살펴봤다.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는 분산원장 기술이 은행 간 시장의 거래직무를 자동화하는 데 사용된다. 금융 기관 입장에서 은행 간 시장 거래업무만 처리하는 직원은 이윤 없이 비용만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분산원장기술은 은행업계가 자동화를 확산하기 위해서 밟게 되는 다음 단계다. 이 단계에서 은행들은 은행 간 협업 프로세스를 자 동화하는 데 관심이 있다. 금융산업 내부자들은 금융증권화부터 신 디케이트론까지 은행 간 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블록체인' 솔 루션을 고안하려 한다(신디케이트론은 다수의 은행으로 구성된 차관단이 공통의 조건으로 일정 금액을 융자해주는 것이다)." 몇몇 은행들은 이러 한 인프라를 마련하기 위해서 R3라는 이니셔티브를 지지했다. 하지 만 대다수는 하이퍼레저와 같은 공동 프로젝트를 따랐다. J. P. 모 건 출신 트레이더인 블라이스 마스터스Blythe Masters가 하이퍼레저 프로젝트를 이끈다. 그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증폭시킨) 신용부도 스와프시장의 개척자로 악명이 높다. J. P. 모건은 이더리움 소스코드를 바탕으로 쿼럼이라는 독자적인 분산원장시스템을 개발했다.
-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의 보증을 받는다는 이미지를 지닌 암호화폐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로 쇄신될 수 있다. 많은 대기업들이 독자적으로 이미지를 개발하여 수많은 가상화폐를 출시했다. '시저스 팰리스 카지노'라는 카지노 칩은 달러의 지급보증을 받는 일종의 이미지를 쇄신한 암호 화폐다. 머지않아 당신이 미국 달러를 아마존 계좌로 송금하면, 그 대가로 아마존 코인을 받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마존 코인 은 디지털화폐 교환권처럼 아마존플랫폼에서 사용된다. 보다 진보 한 기술은 다수의 기저통화를 받고 디지털화폐로 교환권을 발행하 는 것이다. 아마존이 10개의 국가에서 10개의 아마존 은행계좌로 10개의 통화를 10명의 사람으로부터 송금받고, 이들에게 각자의 몫에 합당한 교환권을 디지털화폐로 발행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교환권은 10개의 통화로부터 지급보증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 통화의 지급보증을 받는 디지털화폐라고 설명하는 대신에 아마존은 그것을 '글로벌도미네이션코인'이라고 명명해서 독립된 통화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아마존이 아직 벌이지 않은 이 일을 페이스북은 시도했다. 2019년 페이스북은 DECODE 프로젝트에 공습을 개시했다. DE- CODE 프로젝트는 유럽연합이 자금을 조달하는 이니셔티브로 대 형 기술회사에 대한 대안으로 시민이 소유한 디지털플랫폼을 만들 고자 시작된 프로젝트였고, 나 역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심지 어 페이스북은 DECODE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기술팀 중 하나를 고용해서 '리브라Libra'를 설계했다. 리브라는 페이스북이 설계한 스테이블코인이다. 페이스북은 리브라를 세상을 구할 세계적인 암호화폐'로 선전했다.
리브라는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트렌드를 집대성한 암호화폐다. 페이스북은 노골적으로 현금과의 전쟁에 참전했다. 실제 세상에 통 용되는 명목화폐를 진보를 막는 시대에 뒤처진 악마적 유물로 그렸 고, 금용포용이라는 메시지를 적극 활용하면서 자신들이 내놓은 새 로운 시스템(리브라)이 전 세계적으로 은행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핀테크산업처럼 페이스북은 자 동화를 낭만적으로 묘사했지만, 동시에 리브라가 '암호화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암호화폐운동의 세련된 해적 미학에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페이스북의 리브라는 전 용분산원장기술시스템이었다. 그것은 스위스의 비영리 단체를 통 해서 운영됐다. 대기업들의 신디케이트가 통제하는 이 단체는 다양 한 통화가 예치된 다양한 은행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사람 들은 돈을 송금할 때 그에 상응하는 액수의 리브라를 대기업 회원 이 통제하는 전용 컨소시엄 블록체인에 기록할 수 있다. 리브라는 다양한 세계의 뱅크칩들이 지급보증을 하는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이었다.
- 현금이라 불리는 것은 국가가 발행하는 익명성이 보장된 물리적 인 법정통화다. 이것은 국가기관들이 현금의 디지털버전을 발행하 는 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3장에서 은행에 는 일종의 디지털국가통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은행들은 모여서 (미국 재무부와 같은) 국가기관들과 함께 그것을 중앙은행에서 사용한다. 이러한 국가통화의 디지털버전(지급준비금)은 회원제 전 용 클럽 안에서 사용되는 통화와 비슷하다. 클럽의 회원이 아닌 우 리는 공공에서 통용되는 현금을 사용한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회원제 전용 클럽을 개방한다면 어떤 일이 벌 어질까? 누구나 영국 중앙은행인 런던의 잉글랜드은행, 미국중앙 은행인 뉴욕의 준비제도위원회, 독일 중앙은행인 프랑크푸르트의 ECB 또는 중국 중앙은행인 베이징의 중국인민은행으로 걸어 들어 가서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중앙은행에 계좌를 개설한 뒤에 은행처럼 중앙은행의 인터넷뱅킹플랫폼과 모바일결제 앱을 설치했다고 상상해보자. 이런 상상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중앙은행들이 이것의 현실화 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원제 민간클럽과 유사하게 운영되는 디지털국가통화는 지급 준비금으로 불리지만, 공공클럽처럼 일반 대중에게 개방되면 중앙 은행이 일반 대중들에게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는 '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중앙은행 디지털화폐)'로 불리게 된다. 각국의 중앙은행 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배경에는 현금과의 전쟁이 있 다. 예를 들어서 스웨덴 정부는 지나치게 디지털화된 자국의 통화 시스템의 회복탄력성에 대해 우려했고, '전자 크로나e-Krona'란 이름 의 CBDC 발행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현금이 사라진다면 많 은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윤 추구를 중 요하게 생각하는 은행부문이 가난한 사회구성원들에게 적절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주장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비트코인의 현실과 그것을 둘러싼 산업의 마케팅 서사 사이에는 계속 충돌이 발생한다. 암호화폐산업은 비트코인을 기존 통화시스 템과 경쟁할 새로운 통화시스템으로 포장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 로는 비트코인이 달러로 얼마로 표시되는지에 집착한다. 인지부조 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암호화폐산업의 '치어리더'들은 비트코인값 이 미래 변곡점에서 정점에 이르고, 통화시스템이 완전히 뒤집히면 모든 것들의 가격이 비트코인으로 매겨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 만 이것은 일종의 범주 오류다. 그 누구도 땅값. 아마존 주식·희귀 우표, 심지어 금값이 오른다고 그것들로 다른 물건이나 서비스의 값을 책정하거나 지불하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무 언가의 값이 오르면 사람들은 오히려 미래 수익을 기대하여 그것을 꼭 쥐고 놓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돈 자체로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를 '돈'으로 광고하는 관행은 지금도 여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줘서 길을 잃게 만든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이런 헛된 희망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혜안을 제공하는 인류학적 연구가 있는데, 카니발에 대한 조사다. 인류학자들은 고대와 현대의 카니 발이 사람들을 일시적인 환상 속으로 초대하고 억눌렀던 울분의 감 정을 표출할 해방구를 제공하면서 어떻게 일시적인 사회 질서의 격 변을 만들어냈는지 연구해왔다. 그런데 비트코인 투기현상은 카니 발과 유사하다. 기업자본주의에 수반되는 존재론적 공허감은 가난 한 현실에서 탈출하여 빨리 부자가 되고픈 갈망과 기업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심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비트코인은 사람들을 이러한 갈 망에 따라서 행동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통해서 경제 질서를 뒤엎는 자신을 상상하는 동시에, 비트코인에 투자해서 막대 한 수익을 얻기를 바란다.
-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현금을 사용할 권리를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현금사용을 정치적인 행위로 정의 할 권리 역시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핀테크산업은 현금사용을 금 융 발전을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태도라 여긴다. 하지만 나는 그것 을 기업자본주의와는 함께 가지 않겠다는 고집스러운 거부라고 생 각한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가 구성원들에게 무관심한 시스 템의 팽창논리로 움직이는 아바타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현금을 보호해야 한다. 현금친화적인 운동은 잠식적인 중추 디지털금융시스템에 맞서 기존의 말초 현금시스템 을 유지하고자 하는 간단한 목적을 지닌다. 현금사용은 우리를 유토피아로 이끌진 않겠지만, 적어도 디스토피아와 같은 사회의 등장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현금을 보호하기 위해서 내가 펼쳤던 주장들은 실용적이고 정치 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나는 개인적인 것과 싸 우고 있었다. 바로 (현금처럼) 때론 더럽기도 한 실체를 가질 권리 말 이다. 우리는 AI 클라우드센터에 접속된 뇌를 지닌 초인적인 불멸 존재가 아니다. 이런 존재가 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엉망진창이고 모순덩어리다. 돈의 실제적인 화신인 현금이 이런 우리의 정신을 더 잘 보호한다.
현금은 대형 기관들이 탄생시킨 몸체가 있는 신용통화이고, 그 저 사람이 좋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친구처럼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현금은 자본주의의 팽창을 막는 동시에 자본주의적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현금은 혼합주의적인 존재다. 현금을 사용하려 는 사람은 그것의 더딤과 모순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 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양극화된 세계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명상에 잠기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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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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