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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2.25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저자
존 브록만 지음
출판사
동녘사이언스 | 2006-08-10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사상가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지적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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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논쟁을 벌임. 그리고 현실에서 그것을 검증함. 그들은 대표적인 인문학자들만큼이나 대단한 자존심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의 오만을 처리하는 방식은 전혀 다름. 그들은 현실에 기반한 세계, 경험적 사실들의 세계에서 일하기 때문에 논쟁을 통해 위치가 뒤바뀌기도 함. 바뀔 수 없는 고정된 위치란 없음. 그들으 자신들이 함께 만들어 나간느 모험의 창조자이면서 동시에 비판자들임.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그들이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비판하는 것 역시 그들임. 창의성과 비판과 논쟁을 통해 그들은 어떤 아이디어가 퇴출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아이디어가 새로운 발견을 이그는 합의의 일부가 될 것인지를 결정함.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단인문학자들과는 달리 과학자들은 우주에 대해 이야기함. 게다가 원자와 별과 은하계 등을 공부함으로써 물리세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우주론자들의 사고방식과, 단순한 시작에서 복잡한 시스템들의 훌현을 이해하거나 자연에서 패턴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진화생물학자들의 사고방식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음. 그들은 모두 관찰과 이론에 따른 모형구성, 컴퓨터 시뮬레이션 따위를 적절히 조합하는 훈련과정을 거침. 대부분의 과학분야가 다 마찬가지임. 과학의 세계는 수렵하는 세계임. 판단의 틀은 분야를 막론하고 공유됨
1. 왜 유럽과 아시아가 세계를 지배했는가?(제레드 다이아몬드)
- 어째서 유라시아 대륙이 가장 고약한 병균들을 진화시킬 수 있었는가. 놀랍게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구대륙에서 받은 수많은 파괴적 전염병들에 대한 앙갚음으로 유럽인들에게 안겨줄만한 전염병을 진화시키지 못했음. 이런 커다란 불균형에는 두가지 직접적 원인이 있음. 첫째, 우리가 잘 아는 전염병들은 대부분 마을이나 도시와 같이 인구가 미집된 지역에서만 생존할 수 있음. 이러한 마을과 도시는 신세계보다 구대륙에서 훨씬 먼저 생겼음. 둘째, 분자 생물학자들이 발표한 최근의 세균연구결과들에 따르면, 인류의 전염병은 대부분 구대륙의 가축밀집지역에서 발생한 가축전염병에서 생겨났음. 홍역과 결핵은 소 전염병에서 나왔고, 독감은 돼지 전염병에서 나왔음. 천연두는 낙타에게서 나온 것으로 추정됨. 남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가축이 거의 없었고, 따라서 인간이 이런 질병을 얻을 기회도 없었음.
- 유라시아의 길들여진 식물과 동물들은 유럽인들이 고약한 병균들을 발저니키도록 한 것 말고도 몇가지 다른 이유에서 중요함. 길들여진 식물과 동물은 야생종들보다 에이커당 훨씬 많은 칼로리를 공급해줌. 대부분의 야생종들은 인간이 먹을 수 없음. 그 결과 농사꾼과 가축사육꾼들의 인구밀도는 수렵채집민들의 인구밀도보다 보통 10배에서 100배까지 높음. 이 사실 하나만 보아도 어째서 농사꾼과 가축사육꾼들이 세계의 모든 곳에서 수렵채집민들을 몰아내고 농사와 사육에 적당한 땅을 차지했는지를 알 수 있음. 또한 길들여진 동물들은 육지운송에 혁명을 가져왔음. 이들은 농사뀬이 직접 경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땅을 경작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농업에 혁명을 일으켰음. 수렵채집민 사회는 일반적으로 평등을 토대로 한 사회였기 때문에 무리집단이나 부족의 수준을 넘어서는 정치조직을 갖지 않는 경향이 있음. 그에 반해 농업사회는 잉여식량을 비축할 수 있는 통치 엘리트를 낳았고, 정치적으로 중앙집권적이고 계층화된 사회의 발전을 가져왔음. 또 잉여식량은 자신이 먹을 식량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야금술과 문자, 칼, 총 따위를 발전시키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기술자들을 뒷받침해 줌으로써 기술의 발전을 가속화 시켰음.
2.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스티븐 핑커)
-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음이 유전적 특징에 의존한다는 생각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고 있음. 그들은 네가지를 두려워 함
(1) 불평등에 대한 두려움. 마음은 빈서판이다라는 주장에 강한 호소력을 부여하는 것은 '0=0'이라는 단순한 수학적 사실임. 모든 인간이 빈 서판으로 출발한다면 어떤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적힌 서판을 가질 수 없음. 반면에 만약 인간이 풍부한 마음의 능력들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런 능력들은 사람들마다 다르게 작동할 수 있음. 즉 어떤 마음의 능력은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보다 더 잘 작동할 수 있음. 이것이 차별과 억압, 우생학, 심지어 노예제도와 인종학살로 이어지는 문을 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음. 물론 이것은 전혀 불합리한 추론임
(2) 교정불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만약 인간이 이기심과 편견, 단견, 자기기만 같은 원죄나 흠결들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다면, 정치개혁은 시간낭비로 보일지도 모름.
(3) 결정론에 대한 두려움.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뇌나 유전자, 혹은 진화의 역사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진화론적 충동이나 살인유전자 따위를 변론의 무기로 삼는다면 더 이상 그는 사람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지 않겠느냐는 두려움이 있음.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이유로 어떤 행동을 하게끔 추동하는 뇌부위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한편에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법적/사회적 비용에 반응하는 뇌부위도 있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움으로써 우리는 뇌부위에 영향을 미치고, 그리하여 사람드링 그렇지 않았다면 저질러 버릴수도 있었을 행동을 스스로 억제하도록 유도함. 우리가 유혹의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조절장치, 즉 뇌의 억제시스템을 포이할 이유는 전혀 없음
(4) 허무주의에 대한 두려움. 인간의 모든 동기와 가치가 뇌생리학의 산물임이 밝혀진다면, 그리고 뇌는 다시 진화의 힘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면 동기와 가치 따위는 객관적인 실체가 없는 가짜에 불과한 것 아닌가? 생물학이 우리가 신성시해 온 모든 것들을 까발려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은 행동을 설명하는 전혀 다른 두가지 방법 사이의 혼란에서 생겨난 것임.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근인해명(proximate explanation)은 내가 가진 뇌를 전제로 해서 무엇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지를 언급함. 그에 반해 최종해명(ultimate explanation)은 그런 생각과 느낌들을 가질 수있는 능력을 가진 뇌를 나에게 부여한 진화의 과정을 언급함. 진화(인간의 마음에 대한 최종해명)는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과정임. 유전자는 자기복제품의 숫자를 극대화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선택됨. 하지만 이것이 곧 우리 인간이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임을 의미하지는 않음. 이기적이고 반도덕적인 자연선택과정에 의해 복잡한 도덕관념을 지니고 큰 뇌를 가진 사회적 생명체가 진화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 법안과 소시지를 평가하는 사람은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옛말이 있음. 인간의 가치도 그와 같음. 과정과 결과물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가치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지식이 오해를 낳을 수 있음. 이기적인 유전자가 꼭 이기적인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님.
- 해리스는 누군가가 또래집단에서 차지하는 지위(중재자, 말썽쟁이, 어릿광대, 살림꾼)는 부분적으로 우연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고 지적. 즉 함께 어울릴 단짝집단을 발견했을 때 마침 어떤 자리가 비어 있는지에 따라 그의 지위가 결정될 수 있다는 의미. 이러한 지적에는 일리가 있음. 사실 이것은 한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데에서 우연이 맡고 있는 엄청난 역할을 보여주는 한가지 특수한 사례임. 또래집단에서 어떤 자리가 비어 있느냐 하는 것 외에도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사건들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
- 자궁속에서, 그리고 태어나 처음 몇 해동안 뇌회로가 형성될 때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우연이 작용함. 우리는 하나의 뇌를 마지막 시냅스까지 꼼꼼하게 상술할 만틈 충분한 정보가 게놈안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 또한 입력되는 감각정보만으로 하나의 뇌가 완전히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음. 초파리와 회충같은 단순한 생명체들에 대한 발달연구를 토대로, 우리는 발달에서 상당한 부분이 우연의 몫임을 알게 되었음. 유전적으로 똑같은 회충을 똑같이 단조로운 실험실 조건에서 키워도 어떤 녀석은 다른 녀석들보다 세배나 더 오래 산다. 사실상 복제나 다름 없는 동일한 혈통에서 나온 두마리의 초파리도 신체적으로 다를 수 있음.
3. 인간의 본성이 권리를 얻다(헬레나 크로닌)
- 사람들은 마치 과학의 이데올로기적 함의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멋대로 과학을 부정해 버리고 자기 입맛에 적당히버무려 버려도 상관없다고 믿는 것 같음. 물론 이것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임. 과학은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가지고 있지 않음. 과학은 세계가 어떠해야 하는 지가 아니라 어떠한지에 대해 말해줄 뿐임. 그르므로 순수하게 과학적인 무대에서 갑자기 어떤 정당화나 도덕적 판단, 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식의 발언이 결론으로 튀어나올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러한 주장의 논리를 반박하는 것이지 그 무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결론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러한 결론의 오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체를 거부해 버리곤 함.
- 남녀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부분의 분포곡선 모양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보임. 그것은 진화생물학이 발견해낸 것인데, 다윈은 다른 종들 사이에서도 이 사실이 폭넓게 적용된다고 언급한 바 있음. 그것은 수컷이 암컷의 변이의 폭 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 수컷은 암컷에 비해 분포곡선의 꼭대기와 밑바닥에 훨씬 더 많이 분포함. 경쟁심이 있고, 위험을 무릅쓰고,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심이 강하고, 일에만 집중하고, 오직 그것밖에 모르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성향, 바로 이것이 성공을 만드는 차이이며, 이러한 성향은 평균적으로 남성이 가진 성질들임.
- 한 미국 코미디언이 혐오스러운 신다윈주의에 한방 먹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범죄유전자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내 생각에 녀석은 실업 유전자 바로 옆에 있을 것 같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올바른 말임. 하지만 실업이 남성과 여성에게 주는 충격의 차이라는 관점에서는 완전히 틀렸음. 여성에게 실업은 직업을 잃는 것임. 그러나 남성에게 그것은 지위를 잃는 것임. 이 차이는 다른 성차이들과 결합하여 실업남성과 실업여성을 전혀 다른 길로 이끔. 이를테면 지위가 낮은 남성은 지위가 낮은 신랑감임. 그는 짝을 얻기가 어려워짐. 혹은 짝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짐.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부부는 이혼할 가능성이 더 높음. 그는 또 자기자식들이 진짜 자기자식이 아닐 위험성도 더 높아짐.
4. 우리는 선천적인 사이보그다(엔디 클라크)
- 인간의 이성에서 무엇이 독특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학과 기술이 상호보완적으로 어떻게 기여하는 지를 밝히는 것은 물론 둘 사이에서 진행되는 인과적이고 공진화적인 영향의 긴밀한 반복패턴 까지 밝혀야 함. 우리 자신의 사이보그 특성, 즉 우리가 우리의 생물학적 조상들과는 현격하게 다른 설계영역을 점유하고 있는 인지적 잡종임을 보지 못하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보기 어려움.
5. 동물의 마음(마크 하우저)
6. 요리의 진화_인간은 여전히 길들임의 노정에 있다(리처드 랭검)
- 먹이를 익히는 일이 한번 일어나자 동물이 환경을 이용하는 방법이 완전히 바뀜. 먹이 구역에서 다른 먹이 구역으로 옮겨 다니면서 먹이를 먹는 대신 이제 처음으로 먹이를 모아 다른 장소로 옮기고 그것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게 됨. 그것은 20분이나 30분 또는 몇시간이 걸릴 수도 있음. 그 결과갑작스럽게 자연의 먹이 외에 훔칠 수 있는 먹이구역이 생겨남. 그리고 훔칠 수 있는 먹이 영역이 생기면 생명이 언제나 그렇듯이 누군가가 정말로 그것을 훔치려 함. 이것은 이제 생산자/약탈자 역할이 생겨났다는 것을 뜻하는데, 끔찍하게도 생산자는 암컷이었고 약탈자는 수컷이었음. 암컷들이 먹이를 모으고 그것을 익혀서 음식을 마련한다면, 그들은 도둑들, 즉 덩치가 큰 수컷들에게 음식을 빼앗길 위험에 노출된다는 뜻임. 그래서 암컷들은 도둑질 하는 수컷들에게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연합할 필요가 생겼으며, 이것이 인간수컷/암컷 관계의 기원이 됨. 요리의 진화는 그동안 거의 완전히 무시되었지만 중요한 주제임. 당신이 먹이를 익히는 것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든 간에 이것은 많은 생각을 요구하는 문제임.
- 우리는 지난 200만년 동안 인간의 뇌 크기가 계속해서 커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하지만 실제로는 지난 3만년 동안 뇌의 크기는 10~15퍼센트 정도 작아졌음. 이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우리의 체격이 호리호리해졌다는 것임. 즉 우리의 뼈가 가늘어지면서 체중이 덜 나가게 되었음. 이렇게 체격이 호리호리진 것은 늑대가 개로 진화한 것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동일한 패턴임. 또는 침팬지에서 보노보로, 야생여우에서 길들인 여우로 진화하는 것과 같은 모습임. 이 모든 경우에 뼈대가 가늘어진 것은 우연히 덧붙여진 효과임.
7. 연산에 의한 지각(대니얼 데닛)
8. 독일산 셰퍼드의 귀는 어떤 모습인가(스트븐 코슬린)
- 우리는 근육을 만들고 싶으면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운동을 함. 그것이 충분히 무거우면 그것은 당신의 근육에 손상을 입힘. 이런 손상이 화학반응을 만들어 내고, 화학분비물이 근육세포의 핵에 흘러들어가서 유전자에게 단백질을 만들고 근육섬유를 강화하록 명령함. 이런 유전자들은 오로지 환경의 도전에 대해서만 반응하도록 되어 있음.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더 무거운 무게를 들어올려야 하는 것임. 환경과의 상호작용은 다른 경우에는 작동하지 않았을 특정한 유전자를 활성화시킴. 실제로 이들은 특정한 도전이 나타나지 않으면 작동을 멈춤. 이것은 뇌에서도 역시 진실임. 새로운 등뼈 조각을 만들거나, 심지어는 신경전달물질을 만드는 것도 뇌에 반응하여 켜졌다 꺼졌다 하는 유전자들과 연결되어 있음. 그리고 이번에는 뇌가 다시 환경의 도전에 반응함.
9. 소프트웨어는 문화의 용매다(조던 폴락)
10. 두번째 파도_선언문(데이비드 겔런터)
- 은유는 연산에 심원한 영향을 미침. 데스크톱이라는 은유가 우리를 사로잡아서 우리로 하여금 정보를 깊이 있게 정리하는 대신 넓게 정리하게 만들었음. 이것은 컴퓨터 화면에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방식임. 책상면은 쉽게 넗힐 수가 있음.. 그러나 컴퓨터 화면은 그렇지 않음. 컴퓨터 화면은 당신이 타고 있는 자동차의 창이며, 당신이 쓰고있는 잠수모의 얼굴에 해당함. 데스크톱이라는 은유로 보면 화면이 바로 인터페이스, 즉 유리창 위에 1제곱 피트나 2제곱 피트짜리 색깔들이 반짝이고 있는 인터페이스임. 그러나 풍경이라는 은유에서 화면은 그냥 바라보는 창일 뿐임. 그 창을 통해 바라보면 당신은 그 너머에 있는 진짜 인터페이스를 보게됨. 현대의 컴퓨터는 컴퓨터와 파일 캐비닌 사이의 유사성에 토대를 두고 있음. 이것은 잘못된 것이며, 우리가 만들어내는 거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침. 컴퓨터는 그것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파일을 보관한는 캐비닛과는 근본적으로 다름. 컴퓨터는 기계이지 가구가 아님. 파일 캐비닛이라는 은유가 우리를 붙잡아서 정보과니를 적극적으로 하는 대신 소극적으로 하게 만듬.
- 삶의 흐름 시스템은 파일 캐비닛의 방식이 아니라 대략 마음의 방식으로 정보를 정리함. 삶의 흐름은 온갖 기록의 연속체임. 온갖 기록이란 곧 전자문서, 디지털 사진, 애플리케이션, 웹 북마크, 롤로덱스(롤로처럼 둥근 모양의 인덱스 카드), 이메일 메시지 그리고 당신의 삶 속에 던져진 그 밖의 모든 디지털 자료들을 말함. 이들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부터 가장 최근의 것까지 정리되어 있고, 새로운 기록이 도착할 때마다 꾸준히 켜지고, 열람과 검색이 쉽고, 당신의 화면에서 과거와 현재,미래가 나타나는 데 따라 색인카드의 행렬이 차츰 희미해짐. 기록들은 이름이 없고, 거기에는 디렉토리도 없음. 당신은 내용에 따라 그 요소들을 검색함. 5번가는 5번가를 다룬 모든 문서로 이루어진 하위흐름을 만들어냄. 하위흐름은 전통적인 디렉토리와 같지만, 다만 자동적으로 만들어진다는점이 다름. 이 하위흐름은 새로운 정보가 도착하면 그것을 붙잡음. 하나의 문서는 여러개의 하위흐름에 들어갈 수 있고, 하나의 하위흐름은 상위흐름과 같은구조를 가짐. 곧, 과거, 현재, 미래의 흐름으로 꾸준히 흘러들어감.
11. 생명체 같은 시스템 만들기(로드니 브룩스)
12. 마음 만들기(한스 모라벡)
- 우리 조상들이 미묘한 기회나 위협들을 알아내기 위해 복잡한 시각적, 촉각적, 사회적 장치들을 동원하여 일을 했다면, 사무원은 단조로운 분야에서 몇가지 단순한 상징체계를 조작하는 일을 함. 채집꾼 조상에게는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딸기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사무원의 일에서는 숫자하나만 빠져도 모든 계산이 무효가 될 수 있음. 우리 조상들이 살아남는데 필요했던 사방을 경계하는 태도는 사무원에게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임. 종이의 질감이나 잉크냄새, 상징들의 형태, 의자의 촉감, 주변의 소음, 소화가 될 때의 꾸르를 소리, 가족에 대한 걱정 따위에 정신이 팔렸다가는 계산을 망칠 수 있음. 사무원의 업무는 인간의 정신활동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보다는 그것을 억눌러야 하기 때문에 훨씬 힘든 작업이 됨.
13. 양자연산(데이비드 도이치)
14. 무엇이 마음을 대신할 것인가(마빈 민스키)
15. 특이점 이우 인간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레이 커즈윌)
16. 사이버네틱 디스토피아_절반의 선언문(제일너 러니어)
17. 최후의 컴퓨터는 얼마나 빠르고, 작고 , 강력한가(세스 로이드)
18. 우주론의 황금시대(앨런 구스)
19. 우주는 팽창과 수축을 영원히 반복한다(폴 슈타인하르트)
20. 우리는 브레인 속에 있는가(리자 랜들)
21. 고리양자중력(리 스몰린)
22. 모든 것의 이론_종합과 전망(마틴 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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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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