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1: 일상생활의구조(상)

저자
페르낭 브로델 지음
출판사
까치 | 1995-03-0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산업화 이전 시대인 15-18세기의 물질문명과 인간의 관계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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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체가 그이 생물학적 은신처에서 뛰쳐나와 그때까지 무사히 지내던, 따라서 아무런 방어수단이 없는 인구집단과 만나게 되면 이때는 질병이 재앙의 일대 폭발을 일으킴. 1346년에 유럽 전체를 굴복시킨 흑사병은 몽골의 팽창의 결과임. 즉 몽골의 팽창은 비단길을 재활성화시켰으며 이것이 또한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병원체의 이동을 쉽게 만듬. 마찬가지로 15세기 말 유럽인이 전세계를 포괄하는 교통의 단일성을 이룩했을 때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유럽에서 들어온 , 그들에게는 처음인 질병 때문에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갔음. 반대방향으로는 매독이 유럽을 강타. 이 병은 16세기 초에 중국에 까지 들어갔는데 이것은 기록적으로 짧은 시간대에 이루어진 것임. 우리 시대와 가까운 것으로는 1832년 인도에 기원을 둔 콜레라가 있음.

- 사실 인간이 먹는 음식의 운명을 대강 결정하고 원격조정한 것은 오래전에 일어난 두 혁명이었음. 구석기 시대 말기에 잡식동물인 인간은 큰 동물을 사냥하기 시작했고 이때 형성된 대육식주의 취향, 즉 고기와 피에 대한 요구, 질소에 대한 탐욕, 또는 달리 표현하면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탐욕은 사라지지 않았음. 기원전 7000년이나 6000년에 일어난 두번째 혁명은 신석기 시대의 농업혁명임. 이때 곡물재배가 시작. 사냥터나 조방적인 목축지역이 줄고 대신 논밭이 늘어남. 그후 수세기가 지나면서 점차 많은 수의 사람들이 식물성 음식만을 먹게 되었는데, 그것은 날것이든 조리를 한 것이든 무미건조했고, 또 발효한 것이든 아니든 단조로움을 면치 못함. 죽, 스프, 빵이 그것임. 이제부터 인류 역사에서는 두종류의 인간들이 대립. 한편으로는 고기를 먹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빵, 죽, 뿌리식물이나 줄기식물 같은 것을 먹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음.

- 18세기 초까지만 해도 시골인구의 절반 이상이 빵을 만들지 못하는 곡물과 호밀을 먹고 살았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곡물에는 밀기울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음. 밀빵, 흰빵 등은 오랫동안 사치품으로 남아 있었음

- 오랫동안 사람들이 먹고싶어 하던 귀한 음식이 마침내 일반대중에게 도달했을 때 갑자기 그 소비량이 폭증함.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억눌렸던 식욕이 폭발하는 것과 같음. 그러나 일단 대중화하고 나면 이 음식은 곧 매력을 잃게 됨. 그리고 일종의 포만한 상태에 이름. 그러므로 부자들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임. 부자들은 일반 대중의 조만간 빼앗아가게 될 기쁨을 시험해보고 있는 것.

- 음료수는 단지 음식만이 아니었음. 언제나 그것은 마약, 즉 도피의 기능을 했음. 때로 일부 인디언 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취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힘과의 교통수단이 되었음.

- 모든 문명은 사치스러운 음식과 일련의 흥분제를 필요로 함. 12~13세기에는 향신료와 후추에 대해 열광했고, 16세기에는 초기의 증류주에 대해서, 그 다음에는 차, 커피, 담배에 대해서 열광. 19~20세기에는 새로운 사치품으로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마약이 생겨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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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2: 일상생활의구조(하)

저자
페르낭 브로델 지음
출판사
까치 | 1995-03-0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물질문명의 토대가 되는 교환, 시장, 생산, 서유럽에서 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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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 물레방아가 들어서는 것은 두번째 발전단계로 볼 수 있음. 첫번째 단계는 물레방아가 설치된 곳은 물을 이용할 수 있는 조건에 맞는 마을 근처의 시골이었음. 바로 이곳에 수력 에너지가 뿌리를 내리고 수세기 동안이나 지속된 것. 다른 무엇보다도 곡물을 빻는 용도로 쓰였던 물레방아는 따라서 장원경제의 핵심적 도구가 됨. 영주가 이것을 설치할 생각을 하여 맷돌을 사고 목재와 석재를 대면 농민들이 품을 들였음. 장원경제는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일련의 기본단위들을 구성했음. 그러나 상품을 집중시키고 재분배하는 교환경제는 도시를 위해서 일했고 도시에 귀결되었음. 그리고 이 교환경제는 이전체계에다가 자신의 체계를 위로부터 부가했으며, 자신의 다양한 요구에 맞추어 물레방아들을 더욱 많이 만들어냄

- 산업혁명 이전에 이미 선행단계가 있었음. 가축의 힘을 보다 잘 이용하게 해주는 멍에의 발전, 나무를 태워 얻는 힘, 강이나 바람을 이용하는 초보적 모터, 게다가 더 많은 사람의 힘을 작업에 투여하는 것 등에 힘입어 15~17세기 중에 유럽은 어느정도 성장하게 되었음. 1730~40년대부터 점점 더 활발한 진보가 이루어진 것은 바로 이러한 앞시기의 팽창에 근거한 것. 그리하여 흔히 인식할 수 없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전산업혁명이 있었음. 다양한 기어, 기중기, 동력전달장치, 크랭크-핸들 시스템, 모든 움직임을 규칙적으로 만들어주는 플라이 휠, 압연기, 광산에서 쓰이는 점차 정교해지는 기계류 등이 그것이었음. 그밖에도 편물기, 리본 제조기, 화학공정 등 많은 혁신이 있었음. 선반, 드릴링 머신, 볼링 기계 등을 산업적 용도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를 처음 시도한 것이 18세기 후반이었으나, 이런 것들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던 도구들이었음. 그리고 영국 경제의 이륙에 결정적이었던 방적과 직조의 자동화가 시작된 것도 이 시기였음. 이러한 꿈의 기계들이나 혹은 이미 실현된 기계들이 완전히 이용되는 데에 아직 모자랐던 것은 잉여 에너지, 게다가 이동이 손쉬운, 말하자면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였음.

- 중국과 이슬람은 오늘날 우리가 식민지라고 부르는 것을 가지고 있었던 부유한 사회였음. 그 옆의 서구는 아직 프롤레타리아였음. 그러나 중요한 것은 13세기부터 장기적 긴장이 물질문명을 흥기시켰고 서구세계의 심리를 변형시키게 되었다는 것. 역사가들이 황금에 대한 갈망, 세계에 대한 갈망, 혹은 향신료에 대한 갈망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 실용적 적용에 대한 추구가 늘 함께 있었음. 그것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인간의 노력을 경감시키고 동시에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음. 실제적 발견들이나 세계를 장악하려는 의도적 욕구를 드러내는 발견들이 집적된 것, 그리고 에너지원이 되는 모든 것에 대해서 크게 흥미를 가진 것은 유럽이 본격적으로 성공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유럽의 참모습이었으며 우월성의 약속이었음.

- 화폐는 그 자체로서보다는 그것이 가져온 것 때문에 새로운 것임. 화폐가 가져온 것이란 가장 기본적인 필수품의 가격마저 급격하게 변화시켜 버리는 것, 인간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자기자신도, 관례도, 인간의 오래된 가치도 무시하게 되는) 이해할 수 없는 관계가 그것임.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 되고 인간 자신이 사물이 되는 것임.

- 화폐체제이는 두가지 불치병이 잠복. 그 하나는 귀금속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저축이나 조심스러운 퇴장으로 인하여 귀금속이 숨어버리는 것. 귀금속은 유럽내의 순환으로부터 빠져나와, 특히 인도와 중국방향으로 끊임없이 유출됨. 이것은 이미 로마제국 시대부터 일어난 일이었음. 극동의 비단, 향로, 후추, 약물, 진주 등을 얻기 위해서는 금과 은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런 물품을 서구로 들여오기 위해서는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음. 이 때문에 유럽의 수지는 중국에 대해서 1820년대 까지도 적자였음.

- 역사는 장기적 왕복운동, 여러가지 팽창들, 도시의 탄생과 재생들로 가득 차 있음. 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의 그리스, 아마도 로마가 그러했을 것이며, 9세기 이후의 이슬람 세계, 송나라 시대의 중국 등이 그런 사례임. 그러나 매번 이와 같은 재상승 기간동안 두 명의 주자가 있었으니, 국가와 도시가 그것임. 대개는 국가가 승리했고 그러면 도시는 이에 복종하고 몹시 강한 완력 밑에 눌리게 됨. 이에 비해 유럽의 첫 위대한 도시의 세기에 일어난 기적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 적어도 이탈리아, 플랑드르, 독일 등지에서는 그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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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교환의 세계(상)

저자
페르낭 브로델 지음
출판사
까치 | 1996-03-0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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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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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낭 브로델의 자본론으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하여 살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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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노동으로의 전환은 그 경제적 동기나 이득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일정한 사회적 타락을 동반했음. 18세기에는 수많은 파억이 일어났고, 노동자들이 눈에 띄게 초조해했다는 데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음. 장 자크 루소는 이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음. "만을 그들을 화나게 하면 그들은 곧 짐을 싼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고 가버린다." 이런 민감성, 이런 사회의식은 대산업의 전제조건이 성숙되고 나서야 비로소 탄생한 것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 행상이란 대단히 적응력 있는 체제임. 상품 배분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행상이 거듭 살아나곤 하는 것임. 밀수, 절도, 장물 취득과 같은 암거래 활동이 늘어나거나, 혹은 경쟁과 감시가 느슨해지고 일반적 상업형태가 취약해 질때면 행상이 살아나는 기회가 됨.

- 최근에도 40~45년 동안 굶주림에 시달리던 프랑스에서는 암시장과 함께 비정상적 행상들이 다시 폭증. 러시아에서도 힘들고 분쟁이 많고 소통이 불완전했던 1917~22년의 시기에는 이전 시기처럼 떠돌이 중간상인이 다시 등장했음

- 언제나 행상이란 성스러운 기존 시장질서를 우회함으로써 현재 탄탄히 자리잡고 있는 권위를 비웃는 것이기 때문.

-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상업활동의 중심지가 피아첸차 정기시였다가 그 다음에 곧 암스테르담 거래소가 새로운 중심지가 됨. 정기시에 대한 거래소의 대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거래소는 거대한 자본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상품의 움직임 또한 아주 높은 곳으로부터 지배했음.(아시아의 후추와 향신로, 발틱해 연안 지역의 곡물과 기타 산물 등) 정기시는 어느시대에나 존재했고, 18세기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상품이 집중하는 중심지로 남아 있었음. 상품은 그곳에서 저장됨.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이미 파국적 양태를 보이던 도시가 한층 더 커지고, 소비 수준이 서서히 개선되면서, 도매상업은 더 발전하게 되었고 그래서 정기시의 경로를 벗어나서 독자적 방식으로 조직되기에 이름. 이런 독자적 조직은 저장고, 곡물창고, 창고, 보세창고 등의 중개를 통해서 마치 상점과 유사한 규칙성을 가지게 됨으로써 점차 쇠퇴해가던 정기시의 활동을 대체

- 서양 발전의 핵심을 두가지 들라면 첫째, 상부에서 여러 교환도구가 발달한 것이고, 둘째 18세기에 여러 수단과 방법이 증가한 것.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어땠을까? 유럽과 가장 거리가 먼 경우는 중국으로서 이곳에서는 제국의 행정이 경제의 계서화를 가로막았음. 단지 효율성 있게 돌아가는 것은 하층의 읍 및 도시의 상점과 시장 뿐이었음.

- 상업순환을 완수하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며, 상품대 상품, 나아가서 상품대 금속화폐와 교환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님. 이 때문에 환어음을 쓸 수밖에 없고 또 실제로 그것이 정규적으로 쓰이게 되었음. 원래 환어음은 결제수단이었으나, 교회가 화폐 이자를 금지하는 기독교권에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신용수단이 되었음. 결과적으로 이렇게 해서 결제와 신용이 긴밀히 연결되었음.

- 가장 진보해 있고 가장 산업화되어 있는 직물 분야에서는 유행과 사치가 수요를 지배했음. 15세기 말에 부자들은 금과 은을 넣은 직물을 버리고 비단을 선택. 비단이 보급되어 어느 정도 대중화되자 사회적 상승을 나타내는 표시로 작용하게 됨. 그리고 나중에 유럽 전역에서 견직업이 발달하기 전에 100년 이상이나 이탈리아의 견직업이 크게 번성했음. 그후 17세기말 수십년간 영국식 직포가 유행하면서 다시 모든 것이 변화했음. 다음 세기에는 염색한 직물, 즉 나염 면직물이 폭발적 인기를 누림. 이것은 처음에는 인도로부터 수입하다가 유럽 스스로 모방해서 만들게 되었음.

- 오늘날 영국의 역사가들은 산업혁명의 시작을 1750년이나 심지어 그보다도 한세기 전까지 소급함.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시대의 시작을 16세기로 잡았음.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첫번째 희미한 윤곽은 일찍이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음. 탄생중인 어떤 체제는 그 체제가 앞으로 가지게 될 모든 특징들을 다 발전시키지는 못했다고 해도 그 안에 잠재적 발현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 체제의 이름은 이미 이때에도 합당한 것임.

- 15세기에 제노바의 사업가들이 시칠리아에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제조용 물레방아를 설치한 것도, 16세기 툴루즈 대상인들이 자기 고장에 파스텔 염료의 산업적 재배를 시작한 것도, 그 다음 세기에 보르도 지역이나 부르고뉴 지역에서 포도재배가 크게 신장되고 그 수익 중 큰 몫이 보르도나 디종의 고등법원 의장 및 자문위원들에게 돌아간 것 등이 모두 수익성 좋은 외부 시장의 수요를 겨냥한 것들임. 그 결과 업무와 역할의 분업이 이루어지고 자본주의적 경영망이 생기게 됨.

- 선대제의 망은 수공업 생산을 변형시키지는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그것을 지배하려고 하는 상업자본주의의 부인할 수 없는 첫번째 특징임. 상인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관심을 가졌던 것은 판매였음. 그렇게 파악해보면 선대제는 상인이 생산을 자기에게 예속시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영역에 확대될 수 있음. 이 시스템이 번성하는데에는 기술의 일반적 발전, 수송의 가속화, 전문업자에 의해서 조종되는 자본의 축적 그리고 마지막으로 1470년대 이후 독일 광업의 비약적 발전 등 모든 요소들이 유리하게 작용했음.

- 몇가지 예외는 있지만 자본가들 (다시 말해서 다양한 활동을 무차별적으로 행하던 대상인들) 은 생산에 전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님. 그들은 결코 대지에 두 발을 굳건히 박은 지주가 아니었음. 그들이 간혹 지대수취인인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진짜 이익을 얻고 신경을 쓰는 곳은 다른 곳임. 이들은 또 자기 일에 갇혀 있는 수공업 작업장의 주인이나 수송업 경영자 같은 사람이 아니었음. 이러한 사업가들 중에 누군가가 배를 한 척 소유하든가 혹은 배의 일부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또 선대제를 가까이에서 통제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참된 그의 모습과 관련을 가질 때에 한정되어서의 일임. 그의 참된 모습이란 시장, 거래소, 상업망 긴 효관의 연결망 등에서 찾을 수 있음. 다시 말해 분배야 말로 이익을 내는 참된 분야인 것임.

- 간단히 말해 자기 영역(교환의 영역) 이 아닌 곳에 자본주의가 침투한 것은 그 자체로는 정당화가 안됨. 단지 상업의 필요성이나 이익에 따라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생산에 손을 댔음. 자본주의가 생산영역에 침입하는 것은 기계 사용이 생산의 조건들을 변화시켜서 산업도 이윤의 확대가 가능해진 영역이 된 산업혁명기에 가서야 일어남. 이때 자본주의는 그런 것에 의해서 크게 변형되고 나아가서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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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2: 교환의 세계(하)

저자
페르낭 브로델 지음
출판사
까치 | 1996-03-0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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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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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의 토대가 되는 교환, 시장, 생산, 서유럽에서 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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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는 언제나 그 자신보다도 더 광대한 그리고 동시에 그 자신을 담지하고 밑에서 떠받쳐주는 전체 속에 위치하고 있음. 자본주의가 상업화된 사회의 최상층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법률적이든 실제적이든, 독점을 누리며 가격을 조작한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가장 중요한 사실임

- 18세기는 유럽 전체에 있어서 상인의 전성기였음. 상인들이 성장하게 된 것은 밑에서부터 경제자체가 발전한 덕분이며 상인들은 그 흐름을 타고 간 것임.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의 주도성이라는 것이 일부 진리를 포함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경우 혁신을 이룬 사람들은 밀물의 흐름을 타고 있었음.

- 지구전체 경제의 차원에서 자본주의는 성장하면서 상업으로부터 금융, 산업으로 단계별로 이행한다는 (그리고 산업자본주의라는 성숙한 단계가 유일한 진정한 자본주의라고 보는) 단순한 이미지는 피해야 함. 소위 상업자본주의단계에서나 산업자본주의 단계에서나 (이 두가지 용어는 대단히 다양한 형태들을 포함) 자본주의의 핵심적 특징은 심대한 위기가 닥쳤을 때나 혹은 이윤율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때에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거의 순간적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능력인 것임

- 서양에서는 11~12세기 중에 도시와 농촌 사이에 심층적 분업이 이루어진 결과, 가진 것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이 분업에서 배제되었고 그리하여 일거리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음. 그렇게 된 데에 대한 책임은 원죄와도 같은 불공평을 품고 있는 사회에 돌아가야 하겠지만, 그보다도 완전고용을 이루지 못하는 경제에 더 큰 책임이 돌아가야 할 것임. 이 무력한 사람들은 많은 경우, 여기저기에서 시간제 일거리를 찾고 임시숙소를 전전하면서 근근이 살아갔음. 그 외에 불구자들이나 늙은이들, 길거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활동적 사회생활에 거의 전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음. 이 지옥에도 등급이 있어서 당시에는 빈민, 걸인, 유랑인 순으로 꼬리표를 붙였음.

- 국가에게 질서라는 것은 누군가를 돕는 힘과 막는 힘 사이의 타협을 뜻함. 돕는 힘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회계서제의 보전을 말함. 너무나도 허약한 사회의 상층 사람들은 자기편을 들어주는 경찰이 없다면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반대로 어느 국가도 지배계급과의 공모 없이는 지탱하지 못함. 펠리페 2세가 대귀족층 없이 스페인과 거대한 스페인 제국을 유지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임. 한편 막는 힘이란 언제나 다수의 사람들을 진압하여 그들의 본분인 노동으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것을 뜻함.

- 종교개혁이 사업가들의 행동과 태도에 미친 영향 : 종교개혁은 북유럽 국가들의 통합성을 가져다 주었음. 그리고 이들 국가들을 단결시켜서 남유럽의 경쟁자들에게 대항하도록 부추겼음. 그리고 종교전쟁은 신앙공동체를 통해서 신교도 사업망의 단결을 가져왔으며 이것은 적어도 국가간의 투쟁이 다른 모든 고려사항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기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 카톨릭 유럽에서도 교회는 스스로를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과정에서 이전 사회를 융합하는 시멘트 역할을 했음. 교회의 여러 다양한 층들 그리고 사회적인 화폐 역할을 하는 교회의 여러 한직들은 전통적 구조물과 여타의 계서제들을 유지시켰음.

- 모든 자본주의의 전제조건들은 순환과 관련된 것임. 어쩌면 전적으로 이것에만 관련된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름. 그리고 이 순환이 넓은 공간에 걸쳐 있을수록 그 수익성이 큼. 이런 초보적 결정주의는 어느 곳에서나 작용했음. 에블린 사카키다 파우스키의 연구는 16세기 복건성, 18세기 호남성에서 바다를 이용하여 교역의 혜택을 누리는 해안지역이 인구가 많고 진보적이며 농민들도 더 유복해 보인다는 점을 밝혔음. 반면 폐쇄적인 내륙지역은 똑같은 논과 인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가난한 상태에 이었음.

- 유럽은 적어도 이중의 상층사회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은 역사의 변전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거듭했음. 그 과정에서 극복할 수 없는 정도의 어려움에 봉착하지 않았던 것은 이들 앞에 전체주의적 독재나 자의적 지배자의 독재와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 이렇게 해서 유럽은 끈기 있는 부의 축적에 유리해졌으며, 또 다양화된 사회 속에서 다중적인 세력과 위계들이 발전하고 이것들 사이에 다양한 방향으로 경쟁이 이루어지는 것이 용이해졌음.

- 자본주의의 과정은 전체적으로 보아서 오직 일정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이 갖추어져야만 발전할 수 있음.

(1) 첫번째로 들 수 있는 명백한 조건을 활력이 넘치고 진보하는 시장경제임. 여기에 지리적, 인구적, 농업적, 산업적, 상업적 여러 요소들이 더해짐.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 대해서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님. 다시 반복하거니와 중국은 활기에 넘치는 리듬을 가진 시장경제와 그에 따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본주의라는 상층구조가 발전하지 못한 완벽한 사례임.

(2) 또한 사회가 여기에 공모해야 함. 사회는 자신이 어떤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지, 또 어떤 과정에 대해서 자유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수세기전부터 그런 것을 옹호해주고 있는 것임. 자본주의의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요인이 되는 가문의 영속성과 연속적 축적이 확보될 수 있을만큼 계서화된 사회는 자본주의의 전단계를 밟아가는 것임. 유산이 상속되고 가산이 불어나며 가문 사이에 유리한 연결이 맺어진다는 것, 동시에 사회가 여러 집단으로 분화하고 그중 어떤 집단이 지배적이거나 잠재적으로 지배적이며 또 계단식이든 사다리식이든 사회적 상승이 어쨌든 가능하다는 것 등, 이 모든 것은 긴, 아주 긴 사전 준비를 의미.

(3) 그러나 마지막으로 세계시장이라는 특별한 해방세력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임. 원거리 무역이 모든 것은 아님. 그러나 그것은 고도의 이익을 누리는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가는 데 반드시 거쳐야할 단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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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저자
페르낭 브로델 지음
출판사
갈라파고스 | 2012-03-12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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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책소개
역사학의 거장 브로델이 보여 주는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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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까지는 인구가 거의 근접할 수 없는 원에 갇혀 있는 양상. 만약 인구가 늘어나 그원둘레에 닿기라도 하면, 인구는 거의 즉각적으로 성장을 멈추고 다시 줄어듬. 인구를 다시 균형점으로 돌려놓는 방식과 기회는 아주 많았음. 궁핍과 물자부족에 더하여 기근이 드는가 하면, 하루하루 먹고살기 어려운 마당에 전쟁이 터지기도 했음. 그리고 무엇보다 질병이 오래도록 만연. 질병은 오늘날에도 발생하지만 예전에는 묵시록적 참상과도 같았음. 즉 18세기까지 주기적으로 창궐하는 흑사병이 유럽을 떠나지 않았고, 겨울이면 찾아오는 발진티푸스는 러시아 깊숙이 진격한 나폴레옹 군대를 가로막음. 장티푸스와 천연두도 끊이지 않는 질병이었고, 촌락에서 먼저 나타났던 결핵은 19세기 들어 수많은 연인을 사별하게 하는 애달픈 질병으로 도시를 휩씀. 그리고 성병, 특히 아메리카 대륙발견 이후 다시 고개를 든 매독은 다양한 미생물과 결합하며 폭발적으로 창궐. 이 모든 악조건을 열악한 위생과 불결한 식수가 더욱 부추겼음.
- 밀을 경작하면 땅의 양분이 금세 고갈되어 정기적으로 땅을 쉬게 해주어야 함. 이 때문에 가축을 사육할 여유가 생기고 그와 같은 다른 일이 필요하기도 했음. 소와 말 같은 가축과 가축에 걸어쓰는 쟁기, 멍에, 수레가 없는 유럽의 역사는 상상할 수 없음. 쌀은 정원을 가꾸듯이 종사를 지어야 해서 집중적 노동이 필요. 따라서 쌀을 경작하는 문화에서는 인간이 가축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음. 아마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에는 옥수수가 가장 편리하고 수월한 곡물이었을 것임.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그만큼 여가를 활용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농부들이 부역에 동원되었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처럼 어마어마한 기념물을 건설하게 됐던 것.
- 15세기, 특히 1450년부터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추세를 보임. 이 시기에 농산물 가격은 정체되거나 내려가는 반면, 공산품 가격은 올라가는 덕분에 도시가 농촌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 이 시기 경제회복의 동력이 수공업 장인들의 상점, 좀더 적절히 표현하면 도시권 시장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음. 주도권을 행사하는 곳은 이들 도시권 시장이었음. 즉 경제생활의 밑바닥부터 경제가 회복되었음. 회복세에 돌입한 경제는 16세기 들어서면서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복잡해짐. 우선 예전의 상승속도를 회복한 것 자체가 문제였음. 흑사병 이전의 13~14세기는 경제가 속도를 더해가며 성장하던 시기였는데, 경제가 이때의 성장속도까지 올라섬. 여기에 더하여 대서양 경제가 확대되면서 경제 메커니즘이 복잡해짐.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은 국제 정기시 몇곳이 주도(안트베르펜, 네덜란드 베르헌옵좀, 프랑크푸르트, 스페인의 메디나델캄포, 리옹 등)
- 결론적으로 16세기의 활발한 상승세는 경제의 최상층인 상부구조가 번창한 덕분. 또한 때마침 아메리카에서 귀금속이 유입된 데다가 엄청난 규모의 어음과 신용을 빠르게 회전시키는 어음교환 및 재교환 시스템이 이 상부구조를 더욱 부풀림. 제노바 은행가들의 걸적인 이 금융시스템은 1620년대 수많은 요인들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붕괴됨.
- 17세기로 들어서면 경제생활의 활력이 지중해에서 광활한 대서양으로 이동. 모든 역사가들의 견해가 일치하는 점은 경제활동이 금융거래에서 다시 상품거래, 즉 기초적 교환으로 대거 복귀함으로써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 이러한 흐름에서 덕을 본 측은 네덜란드와 그 선단,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거래소였음. 동시에 정기시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거래소와 상거래 중심지의 영향력이 확대됨. 사실 17세기는 소매상점이 광범하게 번성했던 시기이기도 함. 이것 역시 지속적 흐름이 거둔 승리임. 유럽 곳곳에 생겨난 소매상점들이 촘촘한 유통망을 만들었음.
- 18세기는 경제전반이 가속적으로 팽창하던 세기였음. 그 무렵 암스테르담은 자금을 융자해주는 커다란 국제금융센터로 전문화해가고 있었는데, 런던이 이러한 암스테르담의 기능을 모장하고 따라잡으려고 나섬. 그리고 제노바와 제네바가 이 위험한 게임에 뛰어듬. 파리도 활기를 띠면서 이러한 추세를 따라감. 이러한 상거래 중심지들 사이에 화폐와 신용이 점점 자유롭게 흐르게 됨. 이러한 여건에서 정기시는 위축됨.
- 중국에는 상점과 행상들이 넘쳐날 정도로 많았는데, 시장 메커니즘의 상위에 있는 정기시나 거래소는 거의 없다시피 했음. 몇몇은 있었지만 부수적인 역할에 머물렀고, 몽골과 접한 변방이나 광둥에 위치. 이러한 위치선정은 외국상인들을 배려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들을 감독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음. 어쩌면 중국 정부가 이와 같은 교환의 상위 형태에 적대적이었을수도 있음. 아니면 모세혈관과도 같은 기초적 시장의 유통만으로도 중국경제가 돌아가기에 충분해서 동맥과 정맥이 필요없었으맂도 모름. 이 두가지 요인 중 어느 하나 때문이든 아니면 둘다 때문이든 중국의 시장 교환 메커니즘은 결국 꼭대기 층이 없고 바닥에 평평하게 퍼진 모양이었음. 이것이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됨
- 일상적인 물질생활의 거대한 바탕위에서 시장경제는 자신의 그물망을 펼쳐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유지했음.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러한 본연의 시장경제라는 바탕위에서 자본주의가 번성
- 시장이 발휘하는 경쟁의 효과를 인정하더라도 무엇보다 시장은 생산과 소비를 잇는 불완전한 연결장치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 적어도 시장이 부분적이라는 점에서 그러함. 시장경제가 장점도 있고 중요하지만, 시장경제가 모든 걸 좌우하지는 않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최근까지도 경제학자들의 논리는 시장경제의 도식과 교훈을 유일한 전제로 여기고 있음. 튀르고는 유통을 경제생활의 전부로 보았음. 한참뒤에 리카도 역시 시장경제라는 빠르게 흐르기는 해도 좁다란 물줄기만을 보았음.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경험의 가르침 덕분에 자유방임이 자동적으로 미덕을 행한다는 생각을 버린지 50년이 지났지만, 자유방임이라는 신화는 여론과 정치토론에서 여전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
- 구체제의 경제를 분석한 수치를 보면, 한해동안 노동해서 얻는 생산량과 투입된 자본재 스톡의 비율은 1대 3~4정도 수준. 이 비율은 케인즈가 20세기 사회에 대해 파악한 비율과 거의 같음. 그러니까 사회는 3~4년간 노동한 양에 해당하는 고정자산을 쌓아두고, 이것을 활용하여 생산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는 의미.
- 세계 모든 나라에서 규모가 큰 도매상 집단이 일반상인 집단과 확연히 구분되어 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님. 또 이 집단이 소수에 머무는 한편, 다른 활동도 많이 겸했지만, 언제나 원거리 무역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님. 이러한 현상은 14세기 독일과 13세기 파리에서 나타났고, 이탈리아 도시들의 경우 12세기 혹은 그보다 더 일찍부터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 서구에서 최초의 도매상들이 출현하기 이전부터 이슬람 세계에서는 수입과 수출을 병행하는 타이르라는 무역상이 존재했으며, 자기 집에서 대리인과 중개상을 지휘.
- 기능이 세분화되는 과정, 그렇게 진행된 근대화 과정은 애초부터 수직적 위계의 밑바닥에서만 나타났음. 각종 기능적 직업이나 소매상은 물론, 심지어 행상들까지도 전문화가 진행되었음. 하지만 수직적 위계의 꼭대기에는 전문화라는 것이 없었음. 왜냐하면 19세기까지 최상위 상인들은 어느하나의 활동에 국한된 적이 없었기 때문. 그들은 상인임과 동시에 상황에 따라서 선주이기도 했고, 보험업자이기도 했으며 돈을 빌려주는 대부업자, 돈을 빌리는 차입자, 여신자와 차입자를 중개하는 금융가, 은행가이기도 했음. 이에 더하여 산업활동에 뛰어드는 기업가이기도 했고, 농장의 경영주이기도 했음.
- 상인이 전문화하지 않은 이유
(1) 그가 손댈 수 있는 분야 중 어느하나도 그의 활동을 전부 소화해줄 만큼 푸짐하지 못했음
(2) 큰 이익이 나는 부문이 계속 변화
(3) 상인들이 이따금 상거래에서 전문화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분야는 금융거래였음. 그러나 금융거래에서 거둔 성공은 오래간적이 없음. 19세기에 들어서야 은행업계가 산업과 상거래 양쪽을 다 장악하게 되고, 경제전반이 금융이라는 구조물을 확실하게 떠받칠 수 있을 만큰 충분한 활력을 획득.
- 근대국가는 자본주의를 만들어낸 모태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물려받았을 뿐. 그래서 자본주의에 우호적일 때도 있었고, 적대적일 때도 있었음. 또 자본주의가 팽창하도록 버려두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했음. 자본주의는 국가와 한몸을 이룰때만, 즉 자본주의가 국가가 될 때에만 승리함.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등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자본주의가 처음으로 크게 성장할 때 권력을 쥔 사람들은 돈 많은 엘리트 층이었음. 잉글랜드도 1688년 명예혁명 후에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상인들의 권력진출이 부분적으로 일어남. 프랑스에서는 이보다 1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1830년 7월혁명에 이르러서야 상인 부르주아지가 정부안에 자리잡음.
-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성공하려면 일정한 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함. 사회적 조건이란 사회적 질서가 어느정도 안정적이어야 하고, 국가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어느정도 중립적이거나, 아니면 허약하거나 호의적이어야 함
-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는 밤의 손님임.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을 때 자본주의가 당도함. 수직적 위계라는 문제 자체는 자본주의 너머의 문제이고,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문제이며, 자본주의가 출현하기에 앞서 존재하며 자본주의를 통제했음.
- 1650년경의 유럽 경제계를 보면 여러 성격의 사회가 병존. 이미 자본주의 사회로 진화했던 네덜란드에서부터 맨 밑바닥으로 가면 농노제 혹은 노예제 사회에 이르기까지 이질적인 사회가 공존. 이런 공시성은 우리가 고려하는 모든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함. 사실 자본주의는 이러한 규칙적 위계형성에서 활력을 얻음. 외곽의 주변부가 중간지대를 먹여살리고, 무엇보다 중심부를 먹여살리면서 세계의 불평등을 만들어냄. 또한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국제경제차원의 공모가 필요하며, 자본주의는 매우 드넓은 공간을 권위주의적으로 조직하는 과정에서 탄생.
- 국민경제는 물질생활의 필요와 혁신을 반영하여 국가가 정치적으로 만들어낸 통일되고 응집된 경제공간임. 그래서 그 공간의 활동이 한꺼번에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됨. 영국만이 일찌감치 이런 위업을 달성. 농업혁명, 정치적 혁명, 금융혁명, 산업혁명 이외에도 국민시장을 만들어낸 혁명이 있었음.
- 자본주의는 언제나 독점적이었음. 그리고 상품과 자본은 늘 같이 돌아다녔고, 자본과 신용은 항상 외부시장을 공략하고 통제하는 가장 확실한 시장이었음. 20세기에 들어서기 오래전부터 자본수출은 일상적 현상이었음. 피렌체에서는 13세기부터, 아우크스부르크와 안트베르펜, 제노바에서는 16세기부터 자본수출이 횡행했으. 18세기에 자본은 유럽과 세계를 휘젓고 다님. 금융의 세계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 술수가 1900년이나 1914년에 이르러서야 출현한 것은 아님.
- 영국의 기술혁명과 최초의 대량생산이 그 옛날 18세기말과 19세기 초에 활발하게 펼쳐질 수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경이로움. 산업혁명의 동력이 어느 구석에서도 멈추어서지 않고, 어느 길목에서도 병목현상이 일어나지 않은채, 나라 전체가 환상적 성장을 연출함. 농촌에서 노동력이 빠져나갔지만, 농촌의 생산력은 그대로 유지되었음. 새로 등장한 산업가들은 노동력을 구했으며, 내수시장은 물가가 오르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 그 뒤를 좇아 기술이 발달하면서 필요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 해외시장이 꼬리를 물고 차례로 열림. 게다가 이익률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특히 면직물 산업의 이익률은 최초 호황에 뒤따라 큰 폭으로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가 유발되지 않음. 경제위기를 피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거대하게 축적된 자본이 영국 밖으로 나갈 곳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점도 있었고, 면직물에 이어 철도 산업이 새로 나타나 성장이 지속되었다는 점도 있음. 결국 산업혁명이 촉발되고 나서 등장하는 산업자본주의라는 것의 실체를 시장경제와 기초적 경제의 힘과 활력이 뒷받침해준 것.
- 최악의 오류는 자본주의를 경제시스템이라고만 여기고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하지만 자본주의는 사회질서를 이용해 생존하고, 애초부터 육중한 상대자였던 국가와 거의 대등한 지위에서 맞서기도 하고 공모하기도 하는 존재임. 또 사회구조를 지탱해주는 문화의 역할도 이용함. 왜냐하면 문화란 것이 서로 상충하는 조류로 나뉘고 불평등하게 분포하더라도, 종국적으로는 기존 질서를 떠받치는 것이 그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 자본주의는 또한 여러지배계급과도 결탁함. 지배계급은 자본주의를 방어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게 됨.
- 자본주의는 물질생활과 시장경제를 자신의 존재기반으로 깔고 앉아 독점으로 높은 이익을 추구하는 무언가의 활동. 그러기 위해 기존의 사회질서와 위계, 국가, 문화 등 온갖 영역에 침투하여 무언가의 사회적 구조물을 만들어 그와 결합해 존재하는 실체임. 지금까지 여러 가지 사회적 구조물 혹은 사회시스템을 아무리 살펴봐도 그 구조 자체를 정의해서는 자본주의란 괴물의 실체를 정의하기는 어려움. 더욱이 물질생활과 시장경제가 변해가는 추세에 맞추어 자본주의는 새로운 모습을 드러낼 것임. 또 자본주의가 만들어갈 사회적 구조물도 그에 따라 변할 것임. 그러니 자본주의는 그러한 구조물을 형성하고 지배하는 무언가 사회 최상층의 존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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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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