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쟁

경제 2014. 11. 11. 21:58

 


경제전쟁

저자
조군현 지음
출판사
지상사 | 2011-01-2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환율, 금리, 통상의 소리없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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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주도하에서 영미식 시장주의 체제를 도입하였지만, 실제 노사관계에서는 경쟁보다는 종신고용, 연공서열형 임금구조, 연공인사와 같은 다분히 사회주의적 요소를 유지. 이는 에도막부시대부터 국가나 사회의 권위나 세태흐름에 순응하면 목숨은 부지하면서 먹고는 살 수 있다는 종속의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데 기인한 것으로 보임. 장기간 불황을 거치면서 일본기업들이 연공서열의 파괴나 영미식 능력주의 도입으로 철저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까닭에 이제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주의적 안전판에 기댈 수 있는 환경이 변해버림. 이러한 개인이 의지할 수 있는 안전판적인 요소가 하나씩 사라지면서 국민들은 서서히 불안을 느끼기 시작. 그리고 현 지배층에 대한 지지를 처로히하고 새로운 국가지도체제를 원하고 있음.

-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절상으로 인해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되자 일본은행은 채산성 악화로 고통받는 기업들의 이자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시작. 90년대 총 5%였던 정책금리가 1년반만에 2.5%로 떨어짐. 가뜩이나 기업쪽으로 자금이 흘러가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까지 떨어지자 일본내에서 갈 곳을 잃은 부동자금은 주식, 부동산 등 실물자산으로 몰리며 버블이 시작됨. 일본정부는 해외에서 들어오는 달러 규모를 축소하여 엔화절상 압력을 줄이기 위해 해외 부동산, 금융 상품 등에 대한 대외투자를 적극 장려하기 시작. 기업들도 채산성 향상을 위해 생산기지를 개도국으로 이전하기 시작. 일본 기업들은 미국의 록펠러 센터를 비롯하여 해외 부동산을 마구잡이로 사들임. 일반인들의 해외여행도 크게 증가. 미국과 유럽에서는 깃발부대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늘어나기 시작. 이러한 경제전체의 급속하고 과도한 유동성 확대와 부동자금의 소비 및 투자확대로 누적된 버블이 마침내 붕괴되자 일본 경제는 장기 불황에 빠지게 됨.

- 70~80년대에는 당구에 의한 외환시장의 개입효과에 대해 부정적 견해가 주류였음. 시장에서 자국통화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고, 동일한 규모로 외하를 매수하는 불태화개입은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실제로 80년대 레이건 행정부 하에서는 미국은 환율시장에 거의 개입하지 않음. 83년 선진국의 금융당국이 공동으로 행한 연구에서도 개입효과는 거의 없고, 매우 단기적이라는 결론을 내림.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불태화 개입도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음. 시장개입용 자금을 조달할 모적으로 발행한 자국통화 채권과 시장개입 이후 매수한 외화채권간의 대체성이 불완전하거나 환율결정에 대한 기대가 비합리적인 경우 시장개입이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또한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이 장래 환율정책 변경에 대한 시그널로 작용하면서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음.

- 앤 캐리 트레이드 확대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엔화거래를 활성화시키는 역할도 하였으나, 캐리 거래의 청산과정에서는 일시적으로 국제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리는 부작용도 있음. 즉, 엔 캐리 트레이드로 주식 매수 포지션을 늘려왔던 헤지펀드가 엔캐리 청산을 위하여 주식을 매도하면 금융시장이 주가하락으로 동요할 수 있음. 엔 캐리 트레이드가 늘면 엔화매도가 늘어나므로 엔화가 약세를 보이지만, 반대로 엔 캐리 청산시에는 엔화가치를 절상시켜 엔고를 유발하기도 함.

- 2006~7년 당시에는 글로벌 헤지펀드와 와타나베 부인들이 엔 캐리 트레이드를 확대하면서 해외투자를 위해 대거 엔 매도에 나섬에 따라 자연스럽게 엔화약세가 지속됨. 일본 당국은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고도 미국과의 환율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음. 결국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도 해결할 수 없었던 환율절상 방어문제를 미국게 헤지펀드의 협조와 일본 개미투자가의 힘으로 해결한 것. 이러한 엔화약세 지속은 일본제품의 달러기준 수출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져 수출이 증가하고 기업의 경상이익도 늘었음. 결과적으로는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한 것이고, 일본은 역사상 가장 긴 경기회복기를 경험.

-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와 일본의 90년대 버블붕괴를 보면, 위기의 시작점은 부동산이었음. 부동산 버블은 저금리 등 금융완화 과정에서 생성되고, 버블붕괴는 버블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정책을 긴축정책으로 전환하면서 발생하며, 버블붕괴가 부실로 이어져 금융위기로 발전하는 공통점을 보임. 미일간 플라자 합의에 따라 엔화가치가 급격하게 절상되자 이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은행이 금리인하를 실시. 이를 계기로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서 버블이 발생했고, 이후 급속한 금융긴축을 실시하자 버블이 붕괴하면서 복합불황으로 이어짐. 서브프라임 위기도 IT 버블 붕괴 이후 미국 경기침체와 9/11사태에 대처하기 위하여 미 연준이 저금리 정책을 지속한 이후에 점진적 금융긴축으로 전환하면서 발생

- 평상시에는 국제금융시장을 헤집고 다니던 엔 캐리자금은 금융위기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캐리거래를 청산하면서 일본으로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금융위기마다 강세를 보이는 특성이 있음. 지난 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일 때도 엔화는 사태 이후 5개월동안 약 35% 절상되기도 하였음.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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