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전쟁2

경제 2014. 11. 9. 19:29

 


화폐전쟁. 2

저자
쑹훙빙 지음
출판사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05-06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글로벌 경제위기를 예견, 한중 수백만 독자를 열광시킨 화폐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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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 : 국제은행 가문들의 발원지

- 최근 200년의 역사를 가만히 살펴보면 로스차일드 가는 두가지 큰 사건에 관심을 기울였음. 그건 다름 아닌 전쟁과 혁명. 전쟁이든 혁명이든 교전에 임하는 쌍방 모두 규모가 상당하고 조직적인 폭력행동을 위해 필연적으로 대량의 자금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닐 퍼거슨)

- 게텐 블라이흐뢰더는 독일 제국의 초대 수상인 비스마르크의 개인 은행가이자 독일 공공은행가였음. 그는 익숙한 수완과 인내심으로 엄청난 이득을 올림. 로스차일드가는 그에게 본보기이자 비밀 동맹의 파트너였음. (프리츠 슈테른)

- 유럽 근대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비스마르크 이외에도 로스차일드가의 선택을 받아 정치적으로 뿌리를 내렸던 유명 인사들이 적지 않음. 훗날 영국 수상이 되는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무엇보다 대표적. 로스차일드가가 직접 선택한 로즈버리 백작도 있음. 훗날 로스차일드가는 영국의 저명한 정치가인 윈스턴 처칠을 키우기도 했음.

- 비스마르크는 일찍이 남북전쟁과 링컨의 암살에 대해 이렇게 논평. "미국이 실력이 비교적 약한 남북 두개 연방으로 분열된 것은 내전이 폭발하기 전에 이미 유럽 금융 실세들에 의해 결정이 난 것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링컨은 의회의 동의하에 국민에게 부채를 파는 방법을 통해 전비를 조달했다. 이렇게 해서 정부와 국가는 외국 금융가문의 올가미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국제은행가문이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링컨의 죽음도 멀지 않았던 것이다. 링컨의 죽음은 기독교 세계의 중대한 손실이다. 미국은 그처럼 위대한 족적을 남길 인물을 다시 얻을 수 없다. 반면에 국제은행가문은 부유한 사람들을 다시 장악할 것이다. 나는 외국은행 가문이 기묘하고도 잔혹한 수법으로 미국의 부를 장악하고, 그런 다음 이를 이용해 체계적으로 현대문명을 좀먹을까 정말 두렵다."

- 국제은행가문이 전쟁을 특히 좋하아는 이유는 정부가 부득이한 상황에 내몰릴 때 특별히 저렴한 가격으로 우량자산을 매입해야 떼돈을 벌 기회를 가지게 되기 때문. 국제은행가문들은 세력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한 다음 국가적 대립과 각 정부의 대규모 군비투자를 부추기고 이들의 잠재적 모순을 더욱 격화시킴. 이렇게 해서 전쟁이 유발되면 보란듯이 당당하게 나서서 전쟁배상금 문제를 처리함.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기만한다면 국제은행 가문은 거액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었음. 자금과 신용유동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투자은행 가문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었음.

- 국제은행 가문들은 두가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 이를 테면 이쪽에서는 문제나 분쟁의 해결사를 자처하고, 저쪽에서는 문제나 분쟁을 만들어내는 악역을 담당하는 식이었음. 다시 말해 전쟁을 벌이는 쌍방에게 군수 업체의 상장, 군수채권의 발행, 융자진행에서부터 전쟁채권발행. 전후 배상채권 인수, 배상 자금 이체, 국가 재건을 위한 융자 등의 사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일괄로 해결. 전쟁에 나서는 나라는 승리를 위해 그 어떤 대가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음. 이때가 바로 은행 가문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국유자산을 사들일 기회임. 대포 한방이 만냥이라는 중국 속담은 이런 사실을 잘 말해줌.

2. 영국 : 금권 고지의 선점

- 로스차일드와 유대계 은행가문들은 당시 정치적 입장에서는 보수당을 선택하면서, 더불어 자유당의 제국주의적 해외확장 정책을 적극 지지. 영국이 19세기 말에 해외에서 세력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유대 자본의 풍부한 금전적 지원에 힘입은 바가 컸음. 또 로스차일드 가를 핵심으로 하는 유대계 은행가문들은 영국의 식민지 확장정책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거액의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었음.

- 유럽 주요 국가들의 화폐 시스템 전환과정을 보면, 독일이 1871~1883년에 가장 앞서 금본위 제도를 도입. 이어 프랑스가 1878년, 이탈리아가 1881~1882년, 러시아가 1897년에 각각 도입. 이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주인공은 로스차일드였음. 로스차일드의 런던은행과 파리은행은 실질적으로 이들 국가의 두번째 중앙은행이나 다름없었음. 로스차일드 은행 네트워크는 국제금융시장에서 대량의 신용과 화폐를 수송하는 역할을 자임. 세계 각 나라들은 로스차일드가가 주도하는 금본위 시스템 하에서 환율이 급격히 변동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었음. 로스차일드가 역시 자신들의 주요사업인 공채교역에서 각 나라 화폐들간의 자유태환을 필요로 했으므로, 각국의 통일된 금본위 제도하에서 마음껏 사업을 펼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됨. 로스차일드가는 이처럼 황금시장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각국 중앙은행에 대한 통제력을 간접적으로 보유하게 됨. 로스차일드 은행이 19세기후반에 힘을 아끼지 않고 각국들이 금본위제도를 도입하도록 만든 전략적 의도는 바로 여기에 있었음.

3. 프랑스 : 금권의 할거

- 가장 무지하고 우매한 사람만이 진부하기 이를데 없는 눈으로 본 것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눈에 보이는 것은 바로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에인 랜드)

- 프랑스 은행의 세력확대와 주식제 은행의 출현은 양방향에서 전통적인 민영은행의 권력구도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음. 본능적으로 기득권을 지켜야 했던 로스차일드가는 금융혁신에 완강하게 반대하며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주식제 은행의 출현을 막음. 로스차일드가는 마침내 페레르가를 대표로 하는 금융혁신파를 물리친후, 분위기와 형세를 살펴 역사의 조류에 순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자신들 버전의 주식제 투자은행을 설립. 이 은행이 바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펴 프랑스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파리바 은행이었음.

- 1931년 로스차일드가가 통제하는 파리바 은행은 총 357개의 프랑스 상장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고, 로스차일드가의 일원이나 가문은행의 고위임원들은 이중 120개 회사의 180개 이사자리를 차지. 이런 식의 지배는 고도로 치밀한 금융자본주의 수법을 동원해 쟁취한 것. 이를테면 주권중 무 투표권과 복수투표권을 절묘하게 안배해, 기존의 이사가 투표를 통해 새 이사 자리를 늘리는 방식을 들 수 있음.

- 금융계의 황제들이 권력과 부를 움켜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계에 입문한 경우는 나폴레옹 3세 때 재무부 장관을 지낸 아실 풀드가 대표적인 사례임. 은행가문의 대리인이 정계에 진출한 케이스 역시 적지 않음. 대표적 인물로는 62년 드골 대통령 시절 총리로 임명됬던 퐁피두가 꼽힘. 그는 로스차일드 가 산하의 프랑스 은행 총재를 역임하다가 62년부터 68년까지 총리를 지냄. 69년부터 74년까지는 대통령직을 수행. 금권의 역량은 200여년을 거치면서 부단히 진화해 프랑스에선 도저히 흔들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뿌리를 내림

4. 미국 : 금권 커넥션의 내부 사람들

- 미국은 엄청나게 풍부한 천연자원, 심각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노동력 부족, 거의 제로상태인 자본의 세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유럽과 현저히 다른 금융환경이 조성됨. 이곳에는 또한 사람들을 질식시키는 봉건계급제도나 광란에 가까울 정도로 자행되던 종교박해도 존재하지 않음. 국제은행가문들에게는 그야말로 천혜의 옥토가 따로 없었음. 금권은 이 옥토에서 제멋대로 성장하고, 확장하며 하늘을 덮을 정도의 세력을 키워나감. 당시 금권에 대한 입장은 압제에서 통제로, 대항에서 묵인으로, 배척에서 연합으로, 협력에서 순종으로 바뀌어감. 사실 금권이란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강요하는 대신 유혹하는 방법을 더 많이 사용. 금권은 사람의 마음속 욕망을 이끌어낼 뿐, 절대 외부적 압력을 가하지 않음. 금권은 이익의 고른 분배를 강조할 뿐 절대 적과 아군으로 구분짓지 않음

5. 혼돈의 유럽

- 베르사유 조약이 패전국에 공평과 평화를 가져다 주리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전쟁의 연속을 위한 도구이자 수단일 뿐이다. 베르사유 조약은 실망과 후회, 그리고 더 절망적 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이 평화조약의 약관은 예사롭지 않은 잔혹함과 모욕성을 가지고 있다. (미 국무장관 로버트 랜싱). 영국과 미국의 주도하에 설립된 국제연맹은 탐욕스럽게 사냥감을 잡아먹는 존재나 다름없었음.

- 베르사유 조약은 경제적으로 독일을 무너뜨리려는 의도적 계획이었으며, 이 계획은 영국의 통치그룹이 세운 것.

- 독일은 제국은행 설립이후 골드마르크의 화폐가치는 대단히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 독일경제가 회복되는 데 중대한 추진력을 발휘. 독일이 패전한 1918년부터 1922년까지 독일의 마르크의 구매력은 여전히 견고했음. 인플레이션율 역시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의 전승국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음. 그러나 전승국들은 갖은 구실을 동원해 독일 정부가 가진 중앙은행 통제권을 완전히 발탈함. 1922년 5월 입법을 통해 독일 중앙은행의 민영화를 확정함에 따라 독일 정부는 중앙은행 통제권과 화폐 발행권을 모두 상실하고 말았음. 정부를 대신해 화폐 발행권을 장악한 세력은 개인은행 가문들이었음. 그 안에는 바르부르크를 비롯한 거물급 국제은행 가문이 포함.

- 도스안이 시행된 이후 거액의 미국 차관이 독일에 제공되었고, 뒤이어 외국의 신용자금이 들어오면서 국제은행가문들은 샤흐트를 크게 신뢰함. 샤흐트는 외국자본이 생산분야에만 사용되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사치품과 소비방면에 이용되는 것을 불허. 이러한 정책하에 1924년부터 29년까지 월스트리트 자본이 장악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선진적인 산업생산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음. 생산에 필요한 신용대출을 지원하고 외국 자본이 주식시장을 비롯해 부동산 시장, 사치품 소비시장에 흘러드는 것을 엄격히 제한한 샤흐트의 정책은 현저한 효과를 발휘했음. 독일의 산업능력은 빠른 회복속도를 보이며 점차 영국에 도전할 실력을 갖추기 시작. 국제은행가문들은 독일의 경제와 금융을 완전히 장악한후, 영국과 세계대전을 치를 능력을 갖춘 정치조직과 지도자를 물색. 이때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이 그들의 시선에 들어오게 됨.

6. 히틀러의 뉴딜정책

- 1차대전 발발이전부터 미국의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미국의 통치계급은 영국을 대체해 세계의 새로운 패자로 군림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 미국은 영국의 최대 장점이 오히려 최대 약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 영국의 생산품, 자원,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고루 퍼져 있었으나 오히려 영국 본토의 산업은 텅 빈 상태나 다름없었음. 그래서 영국이 최고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국제금융센터로의 위상이 실물경제의 든든한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전세계에서 분산된 이익공동체에 의지할 경우 일단 세상이 바뀌면 모래위의 누각처럼 붕괴될 가능성이 높았음. 그래서 미국은 대규모 전쟁을 바라마지 않음. 전쟁을 통해 이익을 챙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영국의 세계 패자의 지위가 약화돼 미국에게 이를 대체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 이는 미국 신흥 금융세력의 전략적 이익과 완전히 부합. 이때 유대계 금융세력은 영국의 식민지 시스템을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을 탈취해 이스라엘을 재건하고자 했음. 이를 위해 이들은 미국의 신흥 금융세력과 손을 잡음. 소련을 최대의 적으로 점찍은 영국, 영국을 대체해 세계 패권을 장악하려는 미국 신흥금융세력, 이스라엘 재건을 꿈꾸는 유대계 금융세력은 각기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새롭게 부상중인 나치 독일을 손에 넣을 필요성을 느꼈음.

- 히틀러의 경제정책으로 독일의 중산층과 빈곤층은 상당한 혜택을 봄. 그러나 외국은행가들은 강한 불만을 터뜨리며 이 정책에 비상한 관심을 보임. 독일 정부는 화폐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메포어음을 직접 발행함으로써 국제은행가문이 쳐놓은 통제의 사슬을 에둘러 갈 수 있었음. 일부 경제학자들은 2차대전이 발발한 금본원인을 독일 정부가 영국과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국 화폐를 발행한 데서 찾음. 정상적 경우라면 독일은 외화와 황금이 심각하게 부족해 영국과 미국의 국제은행가문으로부터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 그러면 채무자인 독일의 정치, 경제, 정책 등과 관련된 주요 이익은 모두 국제은행가문의 직간접 통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음. 그러나 히틀러는 이 수순을 밟지 않고 독자적으로 독일 경제의 기반을 이끌었음. 그가 집권 초기에 사회적 인정과 일반 민중의 지지를 획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국과 미국의 주류 경제학 이론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독일 경제를 재건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음.

7. 은행가와 정보 네트워크

8. 지배 엘리트 그룹과 배후의 금융과두

- 20세기 상반기 금융자본주의가 쇠퇴하고 독점자본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금융세력 그룹은 사회의 부를 직접 통제하던 방식에서 간접적으로 막후에서 조종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함.(재단 시스템) 새로운 기업구조의 핵심은 소유권과 지배권을 분리하고 사회 공공자본을 대량으로 모집하는 것이었음. 그 목적은 지렛대 효과를 이용해 최소한의 자기자본으로 방대한 규모의 사회자본을 통제하고, 사회 각 산업의 근간 핵심분야를 광범위하게 지배하면서도 독점자본주의 피라미드에 보이지 않는 계층을 형성하여 외부에는 진정한 지배자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 물론 겉으로는 전문 경영인이 기업을 운영하지만 이사회와 핵심지배권은 모두 극소수 금융가문그룹에 집중됨. 새로운 게임룰의 특징은 금융 가문들이 방대한 재단 시스템과 기타 투자그룹에 대해 직접적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 대신 명목상의 투자대행회사(대리인)를 내세움. 이 경우 형태는 변했으나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므로 이사회 및 기타 주주의 권리는 여전히 금융가문그룹이 행사. 금융가문들의 대표적 투자대행회사는 유명한 금융기관 및 자산관리회사임. 그들은 실제 지배자인 금융감누들이 대중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시선을 가려주는 방화벽 역할을 함. 부호들이 부를 은폐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초보적인 것은 바로 기부임. 기부의 이론적 토대응 소유권을 포기하고 지배권을 확대함으로써 재산을 합법적으로 은폐하는 것. 이 결과 부호들은 부호 랭킹 순위에 오르지 못하고 언론매체의 집중조명도 받지 못함. 그러나 배후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부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함.

9. 금융 쓰나미 이후

- 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님. 소수의 불특정인들에 의해 상당히 오래전부터 계획된, 세계 경제의 심각한 구조적 불균형으로 촉발된 것. 심각한 글로벌 불균형은 71년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에 두드러지 달러화의 무절제한 발행 때문이라고 봐야 함. 달러화 발행량이 해마다 증가하면서 세계 경제체제에 잠재되 있던 각종 위험요소들이 점차 수면위로 드러났을 뿐 아니라 장장 30년 동안이나 완만하게 악화되면서 세계 경제가 버텨내지 못하고 마침내 위기로 나타난 것. 미국은 71년 일방적으로 브레턴우즈 체제를 해체시킴. 이후 금을 지불보증으로 하지 않고 국제기구의 감독도 받지 않은 채 달러화를 멋대로 찍어냄. 결과적으로 미국은 달러화의 기축통화 및 결제수단으로서의 특권을 이용해 세계 각국으로부터 화폐주조차익을 거둬들여 막대한 이익을 챙김. 미국이 71년 브레턴우즈 체제를 일방적으로 해체한 것은 달러화의 중대한 계약위반행위였으며, 달러화의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음.

10. 미래로 돌아가다

- 위대한 투쟁을 거쳐야만 화폐 통제권을 소유할 수 있다. 화폐 발행과 분배를 장악하느 목적은 부와 자원, 전 인류를 지배하기 위해서이다. (잭 웨더포드)

- 오늘날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양대 세력은 로스차일드가를 대표로 하는 친환경 골드 화폐 지지파와 록펠러가를 필두로 하는 석유전쟁 지지파임. 이중 석유전쟁 지지파는 달러발행권을 장악한 기득권층임. 양대세력은 향후 세계 단일 화폐 출범에 대한 목표와 전략에서는 일치하나 이익과 화폐관념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임. 친환경 골드화폐 지지파는 화폐의 도덕적 속성 및 내재적 공평성과 합리성을 주장. 도덕적 측면에서 향후의 세계화폐는 화폐로서의 성실성과 탄력성을 가지기 위해 금과 친환경이라는 양대 기본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 이에 반해 석유전쟁 지지파는 화폐 배후의 폭력적 요소를 중시. 한마디로 중동의 석유공급을 장악하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음. 여기에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무력적 위협까지 더할 경우, 세계 어느 국가도 감히 달러화 체제를 반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 솔직히 기존 달러화 체제가 폐지되더라도 수중에 석유자원과 무력을 장악한 자들이 새로운 세계 화폐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점은 거의 확실함. 게다가 달러화 체제가 폐지되면 달러화 부채상환도 이행할 필요가 없어짐.

-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로 달러는 금본위제에서 벗어남. 이로써 인류사회는 처음으로 상품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순수한 신용화폐 시대에 접어듬. 신용화폐는 신용창조자(금융기관)가 반드시 신용을 지킨다는 전제하에 그 가치의 유효성을 인정받을 수 있음. 미국발 금융위기의 본질은 바로 이 채무자의 신용유지가 불가능하다는 데 있음. 신용불량 채무를 기반으로 파생된 달러가치가 폭락할 것은 자명한 사실. 한마디로 신용화폐의 고질적 병쳬는 채무불이행 위헙이 항상 존재한다는 데 있음. 따라서 이런 화폐는 저축수단의 기능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음. 역사적 교훈을 살펴보면 화폐는 저축수단, 유통수단, 지불수단, 가치척도의 네가지 기능을 동시에 발휘할 때 화폐 메커니즘이 안정되고 지속될 수 있었음. 그러나 순수한 신용화폐 제도는 가장 핵심적인 저축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결국 가치척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함. 달러화는 한때 화폐의 이 네가지 기능을 온전하게 수행했음. 그러나 금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뒤, 저축수단과 가치척도의 두가지 기능을 잃고 현재 위태로운 상황에 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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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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