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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 우리는 가장 가난한 하위 50%를 민중계급, 그 다음 40%를 중위계급, 나머지 가장 부유한 10%를 상위계급이라 지칭할 것이다. 균질하지 않은 상위계급 내에서도 (하위 9%에 해당하는) 부유한 계급과 (상위 1%에 해당하는 지배계급을 구분하기로 한다. 간단히 요약해 말하면, 민중계급은 적은 금액의 은행예금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다르게 중위계급의 자산은 주로 주택에 집중돼 있으며, 부유한 계급의 자산은 주택과 사업자산, 금융자산으로 나뉘어 있다. 반면 지배계급의 자산은 생산수단(사업자산, 주식, 유가증권 위주)에 집중됨. 계급분류에 사용한 이 용어들은 분명한 의미를 전달해 주지만 결코 고정되어 있거나 경직된 개념이 아님. 현실에서 계급적 정체성은 항상 유연하고 다원적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 계급적 정체성은 결코 화폐적 등급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계급은 생산수단과 주택의 소유, 그리고 이 소유의 규모뿐 아니라 소득과 학력, 직업, 활동분야, 나이, 젠더, 출신 지역과 국가, 더러는 종족/종교적 정체성에 의해 결정됨. 그리고 이것이 결정되는 방식은 사회역사적 맥락에 따라 유연하고 가변적임.
-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중간계급이 존재한다고 할 수 없었다. 하위 50%와 상위 10% 사이에 있는 40%가 하위 50% 못지않게 가난했기 때문. 그런데 20세기말과 21세기 초에 오면, 물론 개개인으로 보면 엄청나게 부자는 아니지만 궁핍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중위 자산계급이 만들어지고(이들은 성인 1인당 대략 10만-40만 유로의 자산을 보유), 이 집단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몫은 40%라는 상당 수준에 이르게 됨. 이는 상위 1%가 차지하는 몫(24%)의 거의 두배에 해당하는 규모인데, 1차대전 발발 직전 이들의 점유일(13%)이 상위 1%의 점유율(55%)의 1/4~1/3에 그쳤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이 변화를 다른 방식으로 말해보자. 집단 전체를 놓고 말할 때, 한 세기 전에 지배계급보다 3배 더 가난했던 중위계급이 오늘날은 2배 더 부유하다고 말할 수 있다. 소유의 집중은 시대를 막론하고 한 번도 극단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런 전반적 경향 속에서도 집중이 뚜렷하게 꺾이는 추세는 관찰된다. 이 두가지 진단은 상호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모두 사실이다. 이같은 세계의 복잡성이야말로 우리가 물려받은 역사적 유산의 일부이기도 함.
이런 불평등의 감소는 전쟁과 경제위기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내내 실행된 새로운 사회정책과 조세정책의 결과. 사회적 국가, 교육과 의료를 비롯한 기초적 재화의 접근에서 실현된 일정 정도의 평등, 그리고 상위소득과 자산에 대한 강력한 누진세 적용이 바로 그 내용이다. 강력한 사회적, 정치적 투쟁이 이끌어낸 이같은 근본적 변화들이 앞서 언급한 법제도 및 소유권에 일어난 커다란 변화들인 물론 평등의 확대 또한 이루어냈다. 이 여정을 앞으로 계속하는 게 바람직한가? 바람직하다면, 어떤 방법으로 해나가야 할까? 나는 이 평등을 향한 여정이 여러 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이 사회적, 경제적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얻어진 생산성 증대와 집단의 번영도 당연히 그 효과 중 하나일 것이다. 전체 소유에서 차지하는 몫이 대폭 줄었기 때문에 지배계급의 지출과 투자능력은 19세기이후 급격히 감소. 하지만 이 감소분은 부상한 중위 계급과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민중계급에 의해 상쇄되고도 남았다. 현재 불평등 수준에 만족해야 하며, 하위 50%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몫이 5%에 불과한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결코 견고한 역사적 경험에 기반한 생각이 아니다. 평등을 향한 여정은 앞으로 계속되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를 좀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 케네스 포메란츠는 2000년 출간한 유럽과 아시아의 대분기를 다룬 저작에서, 세계적 차원의 원자재 공급가 노동력 동원이 없었다면 서구의 산업발전은 단시간에 대규모 생태적 제약에 봉착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 그는 특히 18세기말부터 19세기까지 영국을 필두로 유럽국가들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 세계 다른 지역에서 행한 대규모 원료(특히 면화)와 에너지자원(특히 목재) 수탈에 기반했다는것, 그리고 이 과정이 식민지배를 통해 강제적이고 조직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포메란츠가 보기에 1750-18900년 무렵에는 중국과 일본의 가장 발전한 지역들이 서유럽의 비슷한 지역들과 발전 수준에 차이가 없었고, 사회-경제 구조도 상당히 유사했다. 양쪽 모두 지속적 인구성장과 (경작기술 향상과 개간/버목을 통한 농경지 면적의 증대덕에 가능해진) 농업발전이 진행중이었고, 직물산업을 중심으로 프로토산업화와 자본축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포메란츠의 분석에 따르면, 핵심적 두가지 이유 때문에 1750-1800년부터 양쪽이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된다. 첫째, 유럽에서 벌목으로 산업발전에 심각한 제약이 발생한 상황에서 잉글랜드에서 풍부한 석탄 매장지가 확인된 것. 그러자 목재가 아닌 다른 에너지원으로 빠르게 눈을 돌렸고, 관련 기술도 일찍 발전하기 시작. 둘째, 유럽국가들의 조세재정능력과 군사능력의 발전이 국제노동분업과 수익성 뛰어난 공급망 구축을 가능하게 함. 당시 유럽국가들이 지닌 조세재정능력과 군사력은 주로 오래전부터 벌인 경쟁의 산물이었는데, 여기에 국가간 경쟁에서 비롯된 기술혁신과 금융혁신까지 더해지며 강화됨.
- 벌목고 관련해 포메란츠는 유럽이 18세기 말에 탈출구 없는 생태적 제약에 봉착하기 직전이었다는 점을 강조. 영국과 프랑스, 덴마크와 프로이센, 이탈리아와 에스파냐 모두에서 몇 세기동안 숲이 급속도로 사라져, 1500년 무렵에는 전체 면적의 대략 30-40%를 차지하던 것이 1800년에는 10%에 불과. 초기에는 아직 숲이 울창한 동유럽이나 북유럽 지역들과의 교역을 통해 목재부족분을 부분적으로 메울 수 있었지만, 곧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해짐. 비슷한 시기인 1500-1800년 동안 중국에서도 벌목이 점차 늘어났지만 상황이 유럽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당시 중국의 발전한 지역들과 숲이 울창한 내륙지역들간에 좀더 강력한 정치적, 상업적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
- 유럽은 아메리카의 발견과 아프리카와의 삼각무역, 아시아와의 교역을 통해 그런 제약들을 타개해나가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북미와 앤틸리스 제도, 남미로 데려온 노동력이 생산한 원료(주로 목재, 면화, 설탕)는 식민지배자들의 이윤창출과 1750-1800년 무렵부터 급성장한 섬유산업에 쓰였다. 군사력을 이용해 장거리 해상운송로를 장악한 것도 원거리 지역과의 상호보완성 강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국은 플랜테이션에서 가져온 목재와 면화로 섬유제품과 공산품을 만들어 북미에 수출했고, 여기서 번 돈을 다시 앤틸리스 제도와 현재 미국 남부에서 일하던 노예들의 식량구입에 사용. 18세기에 노예들이 입던 옷을 만든 천의 1/3이 인도에서 온 것이었다. 또한 아시아에서 물건(직물, 비단, 차, 도자기 등)을 수입해 오는데 필요한 돈의 상당부분을 아메리카에 수출해서 번돈으로 충당. 포메란츠의 계산에 따르면 1830년 무렵 영국이 해외 플랜테이션에서 들여온 면화와 목재, 설탕의 양은 100만 헥타르 이상 경작지의 생산량에 해당했고, 영국 전체 경작지 생산량의 1.5-2.0배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렇게 식민지를 통해 생태적 제약을 극복할 수 없었다면 다른 곳에서 공급원을 찾아야 했을 것임. 물론 유럽이 자급자족으로 똑같은 산업발전을 이루었을 시나리오가 역사적, 기술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 가령 랭커셔 영국인 농부들이 관리하는 비옥한 면화 플랜테이션의 모습을, 맨체스터 인근의 하늘 위로 쭉쭉 뻗은 아무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세계의 이야기,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 세수관련 자료에 따르면 150-1800년 사이에 유럽국가들과 비유럽국가들 사이에 대분기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1600-1650년 동안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세수가 미미했다. 하지만 유럽국가들이 부강해지는 1700-1750년 무렵부터 뚜렷하 격차가 나타나기 시작. 18세기 말고 19세기 초, 중국과 오스만 제국의 세수는 여전히 도시 노동자 임금의 2-4일치(국민소득의 1-2%)에 해당했다. 같은 시기 주요 유럽국가들의 세수는 15-20일치 임금(국민소득의 6-8%)에 해당. 데이터가 얼마나 부정확한가와는 별개로 격차는 분명 존재하며, 이는 커다란 변화가 틀림없다. 국민소득의 1%만을 세금으로 걷는 국가는 사회를 동원할 수 있는 권력과 역량이 극히 제한적임. 달리 말하면, 이런 국가는 스스로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국가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 국민의 1%밖에 동원할 수 없다. 따라서 종종 자신의 영토 내에서 재화와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도 벅차 지역 엘리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음. 이와 달리 국민의 6-8%를 국가에 복무시킬 수 있는 국가는 특히 질서 유지와 대외적 군사적 야망 실현에 훨씬 더 막강한 능력을 갖게 됨.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똑같이 약한 국가였을 때는 어떤 의미에서 균형이 존재했다. 그런데 다수 유럽국가가 좀더 우월한 조세재정능력과 행정능력, 군사력을 갖게 되면서부터 새로운 역학이 작동하기 시작.
- 보호무역주의는 유럽의 부강에만 핵심적 역할을 했던 게 아니다. 역사 속 성공적 경제발전의 경험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보호무역주의가 작동한 것을 알 수 있음. 19세기말 이후 일본,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과 대만, 그리고 20세기 말과 21세기초 중국이 그 대표적인 경우. 이들 국가는 타깃화된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자국이 중점 육성하는 산업들에서 전문성과 노하우를 축적하는 동시에, 막 자리를 잡아가는 이 분야들에 외국 투자자들이 지배권을 가지게 될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 이 국가들은 특정 품목에서 절대적으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고 나면 그때부터 자유무역주의를 외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뒤처진 나라들은 종종 이들에게 장기적으로 종속되게 되었다. 세계 체제와 중심부-주변부 관계에 대한 월러스타인의 연구는 자본주의 긴 역사 속 다양한 예들을 통해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 그런데 18세기와 19세기 유럽의 약진에서는 한가지 특이한 점이 발견됨. 당시 유럽국가들은 안팎으로 대항세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일방적 무소불위의 군사력을 휘둘렀다는 사실. 최초의 유럽무역회사인 영국 동인도회사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사병을 동원해 인구전체를 폭압적으로 통제한 초국적 무장강도집단이나 다름 없었다. 아편전쟁의 역사는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둠. 18세기 초반에 들어 그때까지 중국, 인도와의 무역수지 균형을 맞춰주던 아메리카의 은이 고갈되자 유럽인들은 불안해지기 시작. 두 거대 아시아 국가에서 비단, 직물, 도자기, 향신료, 차를 수입해 오면서 대신 팔 만한 물건이 더는 없어진 것. 그러자 영국인들은 인도에서 아편재배를 늘려 중국에 수출하기 시작. 이렇게 해서 18세기에 아편거래 규모가 크게 증가했고, 영국동인도회사는 1773년 벵골에서 아편생산과 수출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함.
- 특권과 지위의 불평등은 사라졌는가?
계몽주의 시대와 대서양혁명들 이후 서구사회에서 법적 평등이 완전히 확립되었다는 동화같은 믿음이 꽤 널리 확산돼 있다. 이 믿음의 중심에 있는 결정적 사건이 바로 프랑스 혁명과 1789년 8월 4일밤에 이루어진 귀족계급의 특권폐지다. 하지만 현실은 당연히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미국과 프랑스 공화국은 1960년대까지도 엄연히 법적 차별이 존속한 노예제 공화국이고 식민공화국이었다. 영국과 네덜란드 같은 군주제 국가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세계도처의 기혼여성들은 60-70년대가 되어서야 배우자의 법적 후견에서 벗어나 형식적으로 평등한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18세기 말에 터져 나온 권리의 평등에 대한 요구는 사실상 백인남성들 간의 평등, 그중 특히 백인 남성 소유자들간의 평등에 대한 요구였음.
- 1789년 8월 4일 밤에 일어는 특권폐지는 결정적 사건임에는 틀림없으나, 우리는 이를 평등을 위한 아직 끝나지 않은 긴 투쟁의 관점에서 보아야 함. 7월 14일 바스티유가 함락되지 않았더라면, 아니 1789년 여름에 영주들과 그들의 성을 공격해 토지소유증서를 찾아내 불태운 농민반란이 없었더라면, 8월 4일 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 그해 여름 농민발안이 일어났기에 파리에서 소집된 의회가 저주의 대상이 된 봉건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신속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따져보면 그 여름의 반란 역시 분권된 통치세력이 갈수록 통제력을 상실해가는 상황에서 수십년간 일어났던 무수한 농민반란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788년 여름에는 토지와 공공재화를 점유하고 토지소유자들을 공격하는 등 봉기에 가까울만큼 분위기가 들끓자 마침내 삼부회 선출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짐.
한 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1789년 조세, 정치, 법률상의 특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나서도 프랑스 귀족들이 한참 더 소유자계급으로서의 특권과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는 사실. 파리 상속문서들에 등재된 성을 분석한 결과, 우리는 19세기 파리인구의 고작 1%를 차지했던 귀족들이 1830-40년대 상위 자산가의 40-45%를 차지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비중은 프랑스 혁명 직전과 비교해 아주 약간 낮아진 것에 불과. 1880-1910년대에 가서야 비로소 상위 자산가 중 귀족이 차지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 이토록 변화가 더딘 이유는 여러가지로 설명된다. 1789-1815년 동안 가까운 유럽 군주제 국가들로 망명했던 귀족들이 1815년 대거 귀국해 당시 프랑스 납세 유권자 군주정이 베푼 각종 혜택을 누렸기 때문. 그 대표적 예가 바로 이미자를 위한 10억 이라는 상징적 법이다. 이 법에 따라 프랑스 혁명 당시 상실한 토지와 임대료에 대한 보상명목으로 돌아온 귀족들에게 막대한 금액이 지급됨(국민소득 15% 해당) 왕정복고 직후부터 논의가 시작된 이 법은 샤를 10세 치하였던 1825년 빌렐 백작의 주도로 채택됨.
- 지난한 과정을 거쳐 사라진 강제노동과 반강제노동
결과적으로 프랑스 혁명은 귀족계급의 특권을 폐지하는 대신 소유자들의 권리를 강화해줌. 따라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반쪽의 성공이었다. 물론 영주들의 전횡에서 벗어났고, 모든 시민을 똑같이 대우하는 중앙집권화된 국가의 사법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은 실질적 진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위 1% 자산가들, 다시 말해 귀족과 부르주아들에게 소유가 집중되는 현상은 1780-1800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음. 오히려 1800-1910년 돋안 더 심화되기까지 했다. 결국 자산 하위 50%의 입장에서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 우리는 프랑스와 유럽 사회에서 노동의 지위가 변해가는 지난한 과정속에 프랑스 혁명을 놓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와 영국 농촌에서는 프랑스 혁명 발발 몇세기 전에 이미 농노제가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는 14세기 중반에 발생한 흑사병이 자주 언급됨. 흑사병 때문에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귀해지고 사회제도가 붕괴하자 농노들의 영지이탈과 해방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 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이 이 같은 설명은 지나치게 도식적이라고 지적. 결국 개별 지역의 권력관계와 사회정치적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 가령 유럽대륙 동쪽에서 14세기 이후 농노제가 강화돼 19세기까지 존속하다 뒤늦게 사라진 것이 그런 예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일부 낙관적인 중세학자들은 기독교 삼기능 이데올로기가 예속노동의 점진적 폐지에 끼친 긍정적 역할을 부각하기도 함. 유럽대륙 서쪽에서 예속 노동이 점차 끝나고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존재하는 하나의 노동자 계급올 통합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 삼기능 이데올로기 때문이며, 이런 과정은 이미 흑사병 이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물론 부분적으로 맞는 설명일 수도 있지만,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용자료만을 가지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확실한 것은 프랑스 혁명 때까지도 생클로드 수도원 같은 곳에는 농노제 경작토지가 존재했으며, 프랑스 혁명 이후에야 노동을 위한 이동에 가해지던 제약이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철폐되었다는 사실이다. 부역이란 용어는 1789년 프랑스 농촌에도 흔하게 존재했다. 당시 농민들은 전반적으로 이동의 자요가 있었지만 영주를 위해 며칠씩 무보수 노동을 해야 했다. 이런 형태의 부역은 프랑스 혁명기간에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놓였다. 프랑스 혁명기간 중 평등과 재분배가 가장 잘 구현된 1792-94년 동안 국민의회는 부역이라는 이름 자체가 농노제와 봉건제의 뿌리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를 8월 4일 밤 폐지가 결정된 귀족의 특권 중 하나로 간주해 보상 없이 폐지할 것을 요구. 이렇게 해서 일부 가난한 농민들은 자신들의 노동의 결과물과 자신이 경작하던 땅에 대한 완전하고 전적인 소유권을 갖게 됨. 하지만 1789-91년을 포함한 혁명기 대부분 동안, 그리고 다시 1795년에 납세 유권자 원칙이 부활하면서부터 좀더 보수적 인식이 자리 잡는다. 부역은 기본적으로 임대료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미래에는 마따잏 그렇게 불려야 하며, 다른 결정을 하면 결과적으로 소유 체계를 뒤흔들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렇게 해서 봉건제도의 부역은 자동적으로 자본주의식 임대료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주당 1일의 부역은 수확한 농산물의 1/5 혹은 1/6에 해당하는 임대료가 되었다.
- 1914-80년 동안 일어난 대규모 재분배는 손 안대고 코풀기가 아니었다. 디너파티는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그 가정은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들을 남겼다. 가장 큰 교훈은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가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는 점이다. 이 두제도가 대대적인 집단행동과 집단적 전유의 대상이 될 때만 평등을 향한 여정은 재개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이 두제도가 20세기 동안 이룬 성취의 한계와, 80년 이후 이것들이 약화된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 1914-80년 동안 제도적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사회적, 정치적 투쟁이었음. 앞으로도 강력한 사회적 투쟁과 집단행동 없이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없을 것임. 레이건-대처 혁명이 80년대 이래로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단순히 지배계급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고, 미디어와 싱크탱크, 정치자금을 통해 막강하고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분명히 역할을 하긴 했지만, 결정적 이유는 평등주의 연합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 평등주의 연합은 설득력 있는 대안적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를 중심으로 막강한 민중의 집단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그런 서사를 다시 만들어내고,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체제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제도들의 완결된 형태는 바로 민주적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분권화, 자주관리, 환경주의, 다문화에 기반한 민주적 사회주의는 지금의 세계보다 더 해방되고 평등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 완결된 형태의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는 권력과 소유의 항시적 순환에 기초해 새로운 형태의 민주적, 자주관리적, 분권적 사회주의의 기반을 닦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 제도는 20세기 서구 여러 국가에서 일어난 사회, 조세, 법률상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소비에트 연방이 실험한 국가적, 중앙집권적,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변화들을 물론 권력관계의 변화와 민중의 집단행동, 수차례의 갈등과 위기를 거쳐 힘겹게 쟁취한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한 민주적 사회주의는 하나의 밑그림에 불과하며, 여러 단점과 한계를 내포. 가령, 생산수단과 주택의 사적소유룰 제한한 형태로 계속 허용하게 되면, 앞서 언급한 변화들이 일시적인 것으로 끝나고 부의 격차를 엄격히 제한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일각에서 과세포를 수정하고 제한을 없애려는 막강한 시도가 있을 것이기 때문. 이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지만, 결코 도구화해서는 안됨. 바로 이런 두려움에 사로잡혀 20년대에 소비에트 정권이 모든 형태의 소유를 자본주의의 종양이라는 이름으로 범죄시했고, 결국 우리가 아는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파행을 맞지 않았던가. 해답은 민주주의 강화와 확대에 있다. 우리는 소유의 재분배를 해야 하며, 부자들에 의한 선거 민주주의 독식을 막기 위해 정치활동, 언론, 싱크탱크 등에 대한 평등주의적 재정조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앞서 우리는 소유의 재분배와 권력의 분유를 위해 실질적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더해 한가지 보호장치를 더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가령, 사회보장 분담금을 사회보장기금에서 관리하듯이, 누진 소유세와 누진 상속세 세수를 모두를 위한 상속기금에서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면 이렇게 행정조직을 강화하는 것이 결정을 번복하려는 정치인들의 시도를 어렵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정치인들이 더는 슬그머니 복지혜택을 없애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 평등을 위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따. 이 투쟁은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 실질적 평등, 차별철폐를 극대화하면서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계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식민주의 시대의 종언으로 평등을 위한 여정이 시작됐지만, 경제계는 여전히 극도로 위계적이고 불평등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자본이 사회적 환경적 목표를 갖지 않은 채 통제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현재의 경제체제는 부자들을 위한 신식민주의와 다름없다. 이런 발전모델은 정치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용납할 수 없다. 현 체제의 극복은 민족단위의 사회적 국가에서 개도국을 향해 열려 있는 연방단위의 사회적 국가로 전환할 때만, 현재 세계화를 좌지우지하는 각종 규정과 조약들에 대한 대대적 수술이 있을 때만, 가능해질 것이다.
- 공적자본의 평균비중 30%라는 수치 뒤에 감춰진 자산 범주별 차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주택용 부동산은 거의 대부분 사유화됨. 2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정부와 기업이 소유한 주택보유고는 5% 미만. 은행을 통한 저축 가능성이 제한적이고 공적 연금 시스템의 재정이 부족하다보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국 가정들에게 주택은 최고의 투자대상이 되었고, 이는 결국 부동산 가격폭등을 불어옴. 부동산과 달리 기업의 자본은 여전히 상당부분 정부가 소유. 중국정부는 현재 기업총자본의 55-60%를 소유. 05-06년 이후 이 비중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국가가 생산시스템을 밀착 통제하고 있다는 의미. 특히 대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통제가 더욱 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 기업의 자본 중 외국인 투자자의 보유비중이 현격히 감소하고, 이 감소분이 중국 가계의 보유분 증가로 상쇄되고 있다.
- 중국식 체제는 다른 강점들도 있다. 기후재난이 발생하면 중국은 거리낌없이 서양에 책임을 묻고 비난할 것임. 자신들이 노예제나 식민지배 없이도 산업화를 이루어냈음을, 오히려 자신들은 그것들의 피해자임을 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기시킨다. 틈만 나면 전세계에 정의와 민주주의를 가르치려 들지만 정작 체제 내부를 갉아먹는 불평등과 차별은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선진국들, 이익만 되면 언제라도 전제주의 통치자들과 올리가르히들과 손을 잡는 타협적인 선진국들, 그러면서도 늘 오만하기만 한 선진국들을 상대로 중국은 유리한 입장이 될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가 중국식 권위주의적 국가사회주의의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환경적이고 포스트신민주의적인 이 새로운 사회주의는 마침내 후진국들의 운명을 고민하고, 서구국가들의 불평등과 위선에 응답하게 될 것이다. 이런 중국의 변화는 동력을 상실한 신자유주의에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자유쥬의의 쇠퇴는 08년 금융위기와 20년 팬데믹 위기로 가속화되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규제완화를 통해 경기부양을 달성하겠다는 레이건주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 중간계급과 민중계급은 그동안의 달콤한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자 세계화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당연히 신자유주의가 다양한 형태의 신민족주의로 대체될 가능성이다. 가령 트펌프주의와 브렉시크, 튀르키에, 브라질, 인도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의 득세는 형태는 달라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가적 불행의 책임을 외국인과 국내의 다양한 소수집단들에게 들린다는 것. 트펌프주의의 실패는 정체성 충돌의 격화와, 부자들과 대규모 환경오염 유발자들을 위한 사회적 덤핑이나 조세덤핑을 초래할 그런 정치적 흐름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이런 신민족주의적 흐름들은 현재 세계가 부닥친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중국식 권위주의적 국가사회주의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듯 보인다. 중국식 모델 역시 민족주의를 자양분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최소한 당분간 강력한 공권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목표를 실현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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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그대로 베껴 쓰는 것을 필사라고 한다. 인쇄술이 발달되어 상용화되기 전까지 동일한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사를 통해 일일이 베껴 쓸 수밖에 없었다. 필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작업량도 많아서 책값이 상당히 비쌀 수밖에 없었다.
요즘같이 인쇄술과 각종 IT기기가 발달한 상황에서도 필사는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필사를 통해 더욱 깊은 독서를 경험할 수 있고 나아가 글쓰기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되었는데 글씨연습으로도, 공부방법의 일환으로도, 문장실력 향상으로도 활용되었다. 최근에는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힐링문화로서 주목받고 있다. 손을 움직임으로써 스트레스, 불안, 우울을 해소할 수 있으며 반복적인 동작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하며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도와준다. 시공간적 제약도 별로 없으며 저렴한 비용으로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좋은 글을 읽고 손으로 따라 적어보면서 위안과 마음의 안정을 얻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몰입하게 한다.
이 책은 인문학자 김태현 작가가 지은 책이다. 작가는 경험했던 많은 고민들, 그리고 그 고민을 해결할 통찰을 제시해준 책들,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800권을 선정하여 '백년의 기억, 베스트셀러 속 명언 800'을 출간한 바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100여개 문장을 선별하여 필사노트 형태의 이 책을 출간하였다. 단순히 문장을 옮겨 적는 행위를 넘어, 삶을 돌아보고 나를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받을 수 있다.
이 책에 담긴 문장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글귀가 아니다. 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준 문장이자,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킨 메시지다. 필사를 통해 한 문장 한 문장 손끝으로 느끼고, 질문에 답하며 깊이 생각하다 보면, 당신은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소개된 책들을 한권 한권 독파해 나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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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기술은 지난 200년 동안 일의 본성과 기술의 가치를 변화시켜 왔으며, 지금까지 그 과정에 세차례 주요 전환점이 있었다.
(1) 산업기술이 발달하면서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만드는 장인들의 기술이 사양길에 접어든 때. 권총을 만드는 사람은 나무를 깎아 개머리판을 만들고, 총열을 주조하고, 공이치기를 만들어 넣고, 줄로 방아쇠를 깎은 다음 모든 부속을 공들여 조립해야 했다. 그러나 코네티컷에 있는 엘리 휘트니 총기 제조공장에서는 수력발전으로 구동되는 기계를 활용해서 직원들이 각자 한 가지 공정이나 일부 과정만 맡아서 작업하며, 총기부속은 모두 동일한 규격이다. 그래서 숙련되 기술이 있는 수공업자들이 할 일은 줄어들고, 비숙련 노동자들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기계 다루는 법을 익히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으며 노동자와 기계는 보완재였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
(2) 20세기 초 전기가 보급되면서 공자들이 전보다 한층 정교해졌는데, 그에 따라 복잡한 기계를 다룰 줄 아는, 교육과 기술의 수준이 높은 노동자들의 수요가 많이 늘었다. 또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지식과 경험을 갖춘 관리자들도 필요했다. 이제는 지식과 기술이 없는 사람들은 외면받고 교육받은 노동자들이 환영받는 분위기였다. 그렇더라도 큰 문제는 없었다.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교육을 통해 기술을 갖출 수 있었기 대문. 그런 추세는 20세기 대부분을 보내는 동안 점차 심화됨. 기술발전에 따라 교육을 더 많이 받은 노동자들이 꾸준히 필요했으며, 미국인들은 전례없는 열정으로 배움에 열을 올리며 그런 시대적 부름에 응했다. 고교 졸업률은 1890년 4%에서 70년 77%로 수직상승.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대단한 국가적 지적 성장이 일었다. 노동자들이 갈수록 증대되는 과학기술 수요를 따라잡을 수만 있으면, 과학기술과 노동자는 보완재로 작용해 서로에게 득이 됐다. 그 결과 생활수준이 급속도로 향상되는 경제 기적이 일어났다.
(3) 80년대 정보기술이 발전하면서, 경리, 사무, 공장에서 필요한 반복적 업무 등 중간 수준의 기술이 필요한 일을 대신하게 됨. 그래서 그런 분야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계속해서 그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임금상승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기술숙련도 면에서 맨 위와 맨 아래에 해당하는 고도의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전문직과 기술이 그다지 필요없는 서비스직 쪽은 상황이 좋았다.이 두 계층의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늘어났으며, 임금도 높아졌다. 경제학자들이 노동시장 양극화라 불렀던 이런 현상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남. 정보기술이 아무리 발전했더라도, 최상위 노동시장에서 문제해결, 판단, 업무편성을 담당하는 경영자, 변호사, 컨설턴트, 재무전문가 같은 고숙련 노동자들을 대신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도리어 정보기술발전은 고위 전문직 노동자들에게 더 낮은 비용에 정보를 제공하면서, 이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함. 한편 컴퓨터들이 육체적 활동에는 재주가 없으므로, 간병인, 정원사, 요리사 등의 최하위 노동시장 역시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음.
그것이 바로 2000년대까지의 이야기였다. 인간의 숙련된 기술이 높게 평가되기도 하고 평가절하되기도 했던 경제사의 변천 속에서, 정보기술은 중간급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지만, 기술의 양극단에 있던 노동자들은 피해를 전혀 안입거나 오히려 번성했다. 이제 우리는 그 네번째 전환점에 서 있다. 정보기술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지금껏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노동기술 양쪽 끝 계층도 이제는 위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 배심원 재판처럼 중요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데이터가 아무리 방대하더라도 데이터만으로 결론짓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살아 움직이며 느끼고 판단할 줄 아는 인간을 원한다.
그와 같은 현실은 경제환경이 바뀌면서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높아질 것인지를 강력히 암시한다. 배심원들은 보고, 듣고, 만지고, 대답할 수 있는 인간을 높이 평가하며, 인간전문가가 인간적 판단을 내리는 모습을 직접 보고 듣는데 엄청난 가치를 부여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상호작용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큰 교훈을 얻는다. 인간적 소통은 우리가 깨닫는 것보다 훨씬 소중하며, 다양한 방시기으로 우리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 경제불황 이후 미국의 고용성장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극히 둔화됐다. 무엇때문이었을까? 그 원인 중에는 고학력 노동자들을 찾는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도 있다. 연구원들은 "수요가 역전됨에 따라 고학력 노동자들은 직업군의 단계에서 밑으로 내려와서 전형적으로 저학력 노동자들이 해오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라고 설명. 요즘 일자리를 찾는 젊은 구직자들이하나같이 뼈저리게 느끼듯 말이다. 그래서 대학졸업장이 있는 사람들이 서류를 정리하거나 안내 데스크에서 근무하는 등 단순직에 종사하는 사례가 부쩍 증가. 그렇게 되면서, "이번에는 저학력 노동자들이 더 낮은 계층의 직업군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고 연구에서 밝히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직관적으로도 이치에 맞을 뿐 아니라 미국의 전반적 고용률이 대단히 낮아졌으며 임금이 정체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된다.
-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서 가장 많이 얻고자하는 것을 제공하는 능력이 앞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며, 인간의 그런 바람은 한동안 변하지 않을 것임.
인간이 바라는 것들은 항상 합리적이지만은 않다는 특징이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출한 예측이 사람 의견과 똑같이 훌륭하거나 그보다 정확하더라도,우리는 오로지 데이터만으로 예측한 결과보다는 전문가인 사람이 판단한 바를 듣고 싶어함.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까지 합리적이지는 못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우리는 이성적으로 잘 판단할 수 있지만, 컴퓨터보다는 절대 더 이성적일 수 없다. 그러므로 욕구과 해결책을 대하는 우리의 본질적인 인간적 관점, 그리고 그런 욕구가 우리에게 어떤 동기를 불어일으키며 어떻게 대응하도록 만드는지가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고, 성공의 열쇠로 작용한다.
산업혁명이 태동하고 기계시대가 시작된 이후 인간의 성공은 인간의 기계같은 습성에서 유래한 경우가 많았다. 인간은 수십년 동안 공장에서의 육체노동과 사무실에서의 정신노동 같이 반복적이며 규칙적활동에 몸담았다. 그것이 그 당시 일의 특성이었다. 헨리 포드가 "양손이 필요하다고 했더니만 왜 매번 머리가 딸려 오는거야?"라고 불평했던 것도 바로 그런 맥락. 그런 업무는 사실 기계에 적합한 일이다. 그저 그 시대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계가 아직 없었을 뿐. 기계는 처음에는 서서히 발전하다가 정보기술의 발달과 맞물려 발전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음.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기계를 활용해서 제작하는 거의 모든 공정은 기계들이 해나간다.
그 결과 우수성의 의미가 바뀜. 과거에는 기계같은 기능을 하는 사람을 우수하다고 평가. 그러나 요즘에는 인간다운 면에서 뛰어나고, 철저히 인간다운 사람이 되어야 우수한 결과를 달성할 수 있음. 바꾸어 말하면, 뛰어난 사람이 되는 과정은 인간의 지식보다는 인간의 본성적 모습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다각도로 살펴봤다. 그런데 한가지를 더 생각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처럼 상호작용 능력이 창조적 가치의 핵심이 되어가는데, 그와 관련한 사람들의 능력은 오히려 갈수록 쇠퇴하고 있다.
- 인간 이외의 영장류에서도 감정적, 신체적 모방이 나타나지만,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인간이 날마나 행하는 것 같은 공감의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은 왜 이런 독특한 특징을 발달시켰을까? 여러 증거를 보면 이런 특징이 진화과정에서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
예전이든 지금이든 관계없이 공감으로 우리가 얻는 가장 큰 혜택은, 공감이 사회적 존재가 되도록 돕는다는 점. 제임스 해리스는 "한 종의 구성원 간 상호협력이 진화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힘은 개인적 적응이나 적자생존보다도 더 중요했다. 공감은 사람들이 하나로 뭉치고, 결과적으로 더 안전해지도록 도왔다. 대초원에서는 개개인이 따로 움직일 때보다 무리를 지어 생활할 때 생존가능성이 더 높았다. 또 인류의 조상이 나무위에서 땅으로 내려와서 수렵채집인이 되면서, 혼자 있을때보다 여럿이 결집했을때 사냥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기도 했다. 그리고 얼굴로 의사소통을 하면 손은 다른 수백만가지 유용한 일에 쓸 수 있기 때문에, 언어가 발달하기 한참전에, 수신호보다는 얼굴표정으로(공감의 신호)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먼저 터득했다고 추측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파악하는 능력은 특히 인간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역할도 했다. 가자니가는 "동료가 썩어가는 가젤 시체를 먹고 역겨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그걸 본 사람은 먹어볼 필요가 없다. 그렇게 되면 진화는 당연히 득이 된다." 고 설명. 보호하기 위한 작용임이 분명해 보인다. 역겨워하는 얼굴 표정을 보고, 그 감정을 지각하고, 실제로 자신도 역겨움을 느끼는 것은 모두 뇌의 동일한 특정 영역의 활동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기분좋은 향기를 맡은 걸 볼 때는 그와 같은 명확한 반응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좋은 냄새는 조심해서 살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 반면 고통은 역겨움과 마찬가지로 피해야 할 경험에 들기 때문에 우리 두뇌는 상대의 고통에도 반응한다. 다만 역겨움의 경우 당사자의 역겨운 느낌을 상대방도 똑같이 느끼지만, 다행스럽게도 고통은 보는 사람이 똑같이 느끼지는 않는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누군가가 다칠 때마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심신이 피폐해질 것이다.
따라서 여러 측면에서 공감의 능력을 키운 우리 먼 조상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생존하고 더 잘 살았다. 마이클 트림블은 과학용어를 사용해서 "진화적인 선택은 동종의 감정상태를 신속하게 평가하는 뇌의 체계에 유리한 쪽으로 진행돼야 했다." 고 결론짓는다. 다시 말해 본성적으로 다른 이들과 공감하도록 굳어졌다는 뜻. 우리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완전히 자리 잡은 지가 벌써 10만년은 되었으니, 한동안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 전통주의자들이 받아들이기 가장 힘들어했던 변화는 훈련 프로그램의 핵심인 사후강평이었다. 당연히 아주 가치 있어 보이는 이 간단명료한 발상을 군대훈련의 주류문화로 받아들이는 데 그렇게 엄청난 투쟁이 필요했다는 것이 의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교훈적이기도 함. 그리고 그 한가지 변화가 군 문화를 얼마나 깊고 넓게 변화시켰는지 생각하면 상당히 놀랍다. 웨스트포인트에서 리더십 교육 책임자로 있던 톰 골디츠 대령은 "말 그대로 육군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고 설명. 랠프 채텀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글에서 "군인들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경중에 상관없이 사후강평을 거치게 되어 있다. 오늘날의 육군은 모든 계급의 전 구성원의 자기 성찰이 일상화된 유일한 대규모 조직이다."라 언급.
모든 훈련과 실제 전투 이후에는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벌어졌던 일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그런 과정이 사후강평 절차인데, 사후강평절차가 있다고 무조건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비밀은 그 적용방식에 있다.
* 사후강평은 훈련이 끝난 직후에, 그리고 가능한 경우는 훈련이 진행되는 도중에 진행
* 규모가 아주 큰 훈련을 제외하고는 관련된 모든 사람이 참석. 만일 적에 댛항해 싸우는 훈련을 했다면, 훈련이 끝난 뒤에 적군의 지휘관 역할을 맡은 사람들까지도 사후강평에 참석할 수 있다.
* 토론 내용은 훈련 목표를 얼마나 잘 달성했는가의 쟁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계획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해냈는가?를 중심으로 이야기 나눔
* 토론에서는 병사, 지휘관, 부대의 세가지 관점에서 성과를 지속적으로 평가
* 사후강평은 집단의 성과를 점수로 평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점수로 평가하는 방식은 효용성이 거의 없다. 그보다는 강점과 약점을 확인해서 앞으로 의 훈련에 지침으로 삼기 위함.
* 토론은 잔인할 정도로 솔직해야 함. 이 조건은 위의 모든 조건을 합한 것보다 중요하다. 모든 이들에게 아무런 제약을 가해서는 안된다. 콜디츠는 이렇게 말한다. '이 과정의 진정한 열쇠는 바로 허심탄회한 의견나눔이다. 그건 사병이든 장교든 모두 마찬가지다. 이 시간에는 모든 이들이 모자를 벗고 참가하는데, 그 행동에는 깊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 토론실 안에서는 계급이 없으며, 직설적 이야기가 오간다. 그래서 부하가 상관이 잘못 내린 결정을 직접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 사회성 기술은 펜트렌드가 아닌 아이디어 흐름이라고 표현한 패턴을 활성화화기 때문에, 집단 유효성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인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최고의 팀이 뛰어난 성과를 내는 데는 다른 그 어떤 요인보다 상호작용에서의 이 세가지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실제로 이 세가지 사회성 기술은 개인의 지능, 기술적 능력, 구성원들의 성격, 그밖의 모든 요인들을 다 합한 것만큼이나 중요했다.
큰 성공을 거둔 창의적 개인과 조직을 오랫동안 연구한 펜트렌드로서는 그런 패턴이 아주 익숙했다. 성공적 개인과 조직은 늘 그와 동일한 패턴을 보였기 때문. 집단을 연구한 이 연구에서 펜트렌드는 "집단의 성과는 구성원들이 아이디어를 거둬들이고, 그에 대한 반응을 이끌어냄으로써 또 다른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과정에 얼마나 능숙한지에 달려 있었다."고 정리. 그는 또 "집단지성 연구에서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했던 역할은, 구성원들이 보다 많은 아이디어를 간략히 제시하고, 제시된 아이디어에 반응을 보이고, 공평히 참여하도록 이끌어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었으므로 사회성 기술이 가장 뛰어난 집단이 크게 성공하는 것이 당연했다." 고 설명. 이 연구로 사회성 기술의 운영상의 가치는 무엇이며, 사회성 기술이 집단을 어떻게 더 유능하게 만드는지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가장 유능한 팀을 만드는 구성원은 최고의 지식을 갖춘 사람일수도,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가장 뛰어난 관계노동자들인 것은 분명하다.
- 경제적 측면에서는 비논리적인 사회적 유대가 팀의 수행능력을 향상시키는 사례는 굳이 찾았던것이 아닌데도 의도치 않게 발견되기도 함. 9/11테러가 발생한 이후 정보과학위원회는 리처드 해크먼과 마이클 오코너에게 연구를 맡겨서, 정부의 정보분석팀 중에서 다른 팀들보다 유독 뛰어난 팀들의 비결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연구결과, 팀이 조직된 근본적인 기초가 인지적인디 아니면 사회적인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차이라는 사실이 발견됨. 연구원들은 "인지적 관점에서 출발한 팀은 개별 분석가를 중시한다. 그러나 사회적 관점을 기반으로 하는 팀은 동료들 간의 상호작용에 더 큰 무게를 둔다.: 고 설명. 그러므로 그 연구에서는 "그런 비교가 연구의 본래 목적은 아니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면서 그런 두 종류를 비교하는 데 연구 대부분을 할애한다.
다시 말해 애초에 팀을 이런 식으로 분류하려던 건 아니지만, 성과의 차이가 워낙 극명했기에 이렇게 구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회적 기반의 팀은 인지적 기반의 팀보다 30%나 높은 성과를 냈다. 그 이유 또한 마찬가지로 아주 명확했다. 바로 사회적 기반에서 굴러가는 팀의 불합리해 보이는 문화가 훨씬 넓고 깊은 상호작용을 야기하기 때문. 구성원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그에 따른 보상체계가 있는 것도 아님에도 서로 가르쳐 주고 도왔다. 연구원들은 예상치 못하게, 남을 돕는 행동이 이 연구에서 평가했던 그 어떤 요소들보다 팀의 유효성과 가장 관련이 깊었다고 보고한다. 즉 팀의 유효성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사회적 민감성이었다는 다른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이 연구를 진행했던 연구원들도 사회적 요인의 중요성을 발견했는데, 이번에는 그 중에서도 특히 남을 돕는 행동이 핵심으로 작용했다.
- 이그지비트A는 스티브 잡스 밑에서 일하던 애플의 정예팀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잡스의 천재성과 독재적 경영 덕분에 애플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지만, 잡스는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는 최고의 팀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는데, 성공한 회사에서 최고의 팀을 유지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회사가 성공가도를 달리면 보통 다른 회사들이 그 회사 임원들에게 더 높은 직책이나 연봉, 주요 역할을 제안하며 유혹하는데, 차마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 제안을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2011년 8월에 잡스가 CEO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잡스 밑에서 13년 동안 한 팀으로 일해 왔던 여섯 명의 핵심임원은 매주 모여 몇 시간씩 머리를 맞댔다. 그런 사례는 애플 정도의 규모와 성공을 거둔 회사들 중에서는 사실상 유례가 없다.
이 팀이 쌓아올린 사회적 자산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특히 잡스를 포함해 그 누구도, 이 팀의 존재가 애플이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회사가 된 주된 이유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팀이 사회적 자산을 쌓지 못했을 때 일을 얼마나 그르칠 수 있는지 확인하려면 항공사의 경미한 사고를 기록한 통계를 살펴보면 된다. 관련 기록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랍다.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는 데이터로 기록된 사고의 73%가 처음으로 같은 팀으로 편성된 승무원들이 첫 비행에 나섰던 경우였다."고 9/11 테러 이후 정보분석팀을 연구한 경력이 있으며 집단에 대한 연구로저명한 리처드 해크먼이 부고. 승무원들은 팀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배치하면 항공사로서는 훨씬 효율적이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승객들로서는비행기를 타기가 망설여질 것임.
- "인간의 정신은 어떤 주체를 찾아서 그 주체에 개인적 특성이나 의도를 부여할 준비가 되어 있거나 더 나아가 그런 경험을 고대하며, 자기가 목격한 주체의 행동을 개인적 성향의 표현으로 해석한다."
우리가 살펴보려는 관점에서 극히 중요한 논점은, 바로 그런 성향이 우리의 천성이라는 사실. 20세기에는 대체로 그런 주장에 반박하는 목소리가 컸다. 우리는 각자 성장한 문화 등의 영향에서 배운바를 토대로 동기를 발견하고 인과관계를 따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카너먼은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성향을 갖고 태어났다. 만 한 살도 안되는 유아들도 남을 괴롭히는 사람과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을 구별한다. ..."라고 설명. 우리는 선천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성향이 배어 있으며, 사람들은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이 세상을 그런 이야기가 모인 곳으로 보려고 한다.
- 창조는 본질적으로 특별하거나, 신비하거나,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기술이라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현재 창조력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창조력은 키울 수 있다. 기술이란 본질적으로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 그런데 그런 주장을 펼치다 보면 다른 그 어떤 기술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의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고, 결국에는 인간보다 더 창조적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므로 가치 높은 창조활동이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이유는 신비하고 설명하기 힘든 창조의 본질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함.
신비로움을 유일한 근거로 제시하는 주장에는 통상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창조를 신비로운 능력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창조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활동이며, 앞서 살펴본 여러 이유에서 창조는 인간의 내재적 본성이므로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 해 나가야 마땅하다고 설명하는 편이 옳다. 다른 방법으로는 창조를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는 가장 중요한 인간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 그러므로 타인과의 협력을 통해 혁신하는 인간의 능력은 기술이 우리 앞에서 포효하는 와중에서도 계속해서 높은 가치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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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점진적 혁신이 먹히지 않으면 근본적인 어떤 조치를 취하라는 이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결과로, 많은 기업들이 어떤 위협의 조짐을 보이기만 해도 "우리는 지금 당장 새롭고 크고 혁명적인 어떤 것을 수행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대응하게 됨. 그래서 주요 계획에 착수하고 직원들에게 상자밖에서 생각하라고 요구한다.이렇게 해서 크고 새로운 발상이 쏟아져 나오고, 그 뒤를 이어서 새로운 계획과 대규모 극비 프로젝트가 모색된다. 하지만 이렇게 해봐야 혁신의 성공률은 낮다. 과거에 자기 기어에 성공을 가져다주고, 이 성공을 유지하던 과정에서 견고하게 확립된 공정들, 제도들, 훈련과정 및 가치들이 근본적 변화를 맞아서 기업을 오히려 덜 성공적인 조직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음모를 꾸미게 되기 때문. 그러나 이런 기업은 만일 운이 좋다면 온갖 소동의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 시간과 돈을 낭비했음을 깨닫고 반성하겠지만, 운이 나쁘면 의도하지도 않았고 돌이킬수도 없는 극적인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멸의 길로 등을 떠밀리게 된다. 어떤 경우든간에 그 근본적인 혁신은 보다 커다란 새로운 발상을 추구하다가 제 손으로 자기 우물에 독을 뿌리는 꼴이다.
- 상식차원에서 말하자면, 어떤 제품을 성장시키려면 이 제품이 보다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제품에 변화를 주거나 품질을 개선해야 함. 그러나 게토레이에서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오하간 팀은 제품의 상표를 최신 감각으로 바꾸고, 비슷비슷하던 음료의 가짓수를 줄이고,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세분시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품 자체를 바꾸지는 않았다.
오하간 팀은 게토레이의 핵심제품인 음료 주변에 있는 것들을 혁신하는 작업을 했다. 보완적 성격의 혁신을 첨가했던 것. 보완적 혁신이라 하는 것은 그 혁신이 핵심제품을 바꾸는 게 아니라 보완했기 때문. 핵심제품이 주요고객층에게 보다 매력적으로 비치게 만들고, 그 결과 제품 매출이 늘어나도록 하는 그 혁신은 핵심제품과 나란히 진행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제3의 길이라고 하는 혁신의 첫번째 특징이다. 제3의 길을 추구하는 기업은 핵심제품 혹은 관건제품 주변을 대상으로 복수의 보완적 혁신, 즉 제품이 보다 매력적으로 보이고, 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혁신을 수행한다.
- 제3의 길의 보완적 혁신은 회사 밖에서 볼 때는 상대적으로 사소해 보인다. 이 혁신에 수반되는 전략적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 그러나 회사 안에서 볼때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투자자금 및 경영차원의 신뢰성은 엄청나게 큰 것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게토레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보완적 혁신이 실패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핵심제품이나 브랜드 혹은 회사의 존립 자체에 재앙이 초래될 위험성은 전략적 차원의 위험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바로 이것이 제3의 길의 핵심적 특징. 핵심제품을 주변을 대상으로 한 보완적 혁신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핵심제품은 여전히 다치지 않고 남는다.
어떤 이들은 이 게토레이 이야기를 듣고, 오하간 팀이 게토레이에서 한 일은 영리하며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으므로 진정한 혁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새로운 음료도 아니고, 에너지바나 단백질 셰이크도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 점진적 개선의 유일한 대안은 근본적 파괴뿐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혁신은 위험할 정도로 지나치게 단순하다
* 그렇지만 이미 입증이 되었으며 기존의 접근법과는 독특하게 다른 접근법이 있다. 기업의 핵심제품 주변에 일련의 보완적 혁신물들을 배치하고 이것을 중앙에서 관리하는 접근법. 우리가 제3의 길이라 부르는 이 접근법은 근본적 파괴접근법에 동반되는 높은 비용과 위험성 없이도 폭잘적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
* 제3의 길은 점진적 개선이나 파괴적 혁신을 단순히 대체하는 것이 아님. 모든 기업 지도자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하고 또 혁신이 필요한 시점에는 한번쯤 채택을 고려해봐야 하는 또 하나의 선택지.
- 아이팟, 아이튠즈,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스티브 잡스의 예외적인 리더십을 입증하는 업적으로 인정하면서 그가 애플에서 만들어냈던 것을 탁월하고도 획기적인 파괴적 혁신물로 바라보기 쉽다. 그리고 레고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은 이 회사가 디지털 놀이경험을 극대화하고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도입한 것을 완구업계에 혁신 리더십을 가져다 준 증거로 바라본다.
그러나 이 두회사가 바꾸어놓은 시장과 그들이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은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중요한 교훈을 놓치고 만다. 우리가 제기하는 핵심적 질문은 이것이다. "잡스와 크누스토르프는 회사를 어떻게 이끌었는가?" 이 두사람이 자기가 지휘봉을 잡은 회사를 살려낸 것은 그들이 위대한 파괴적 지도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제3의 길을 통달한 자였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이런 식의 평가를 내린다고 하더라도 그 두사람이 각 부문 시장에 미친 충격이나 그들이 성취한 업적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관점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애플이나 레고 모두 경쟁자들을 파괴하거나 시장을 혁명적으로 엎어놓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둘 다 자기의 핵심제품으로 돌아가서 그 주변에 이런저런 보완적 혁신물들을 적절하게 배치해서 핵심제품의 가치를 보다 더 높임으로써 기울어가던 사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을 때 비로소 두 회사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정적 힘과 그동안 구축했던 신뢰를 지렛대로 삼아서 매우 다양한 시장들로 확장해 나갔으며, 이 시장들은 진정으로 파괴적인 모습을 띠었다.
* 레고와 애플은 핵심제품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사세를 극적으로 반전시켰다. 두 회사 모두 새로운 제품군을 내세워서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하려다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새롭게 성장하기 위해서 두 회사 모두 핵심제품 주변에 일련의 저위험 보완적 혁신물들을 개발하거나 인수해서 재배치.
* 애플컴퓨터는 97년과 07년 사이에 성공을 거두는데, 이것은 애플의 핵심제품인 개인용 컴퓨터에서 고객들이 보다 많은 가치를 뽑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완적 혁신물들을 개발하는 데 발군의 솜씨를 발휘했기 때문. 애플이 나중에 아이폰과 아이패드 같은 혁명적 제품을 내놓아서 성공을 이어가는데, 이 제품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애플이 97년과 07년 사이에 개발했던 보환적 혁신물이라는 토대가 갖추어져 있었고, 이 토대를 기반으로 제품들이 발전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 애플과 레고에게 제3의 길은 거칠기 짝이 없는 경쟁이 펼쳐지던 시장에서 살아남아 번서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이었다.
- 혁신은 흔히 점진적이 아니면 근본적인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어떤 혁신 프로세스 구축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추천 내용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뉨. 어떤 사람들은 체계적이고 규일이 있는 방법론을 주장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반복적이고 실험적 방법론을 주장함. 규율이 있는 프로세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구조적인 여러 기법들, 정기적 검토와 구체적 제품(산출물)이나 서비스를 주장하는데, 이들은 복잡한 혁신사업들은 조심스런 지지와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반복적이고 실험적 접근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어떤 혁신사업이든 불확실성을 내포하므로 혁신과정에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 반복적이고 실험적 접근법은 짧은 빌드테스트 주기와 점진적 학습, 그리고 성공적 결과로 나아가는 꾸준한 진전에 초점을 맞춘다. 또 이 접근법에서는 구조화된 연구조사와 개발방법론들이 여전히 이 프로세스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각각의 국면에서 그 방법론들을 선택하고 결합하는 방식은 이전 국면의 결과에 따라서 좌우된다.
- 관련제품을 단출하게 줄여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고 명백함. 문제는 이 과정에 고통이 따른다는 점이다. 보완적 혁신물들을 개발할 때는 회사내 다양한 집단을 통틀어서 각각의 집단이 수행하는 제각기 다른 혁신노력들을 조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과정은 당신이 설정한 관건제품이 복잡하거나 혼란스러울 경우, 또는 제품의 표적 고객을 더는 분명하게 설정할 수 없거나 이해하지 못할 경우 한층 더 어려워짐. 또한 온갖 다양한 제품을 팔 때 발생할 수 있는 손해의 폭을 줄임으로써 당신은 보완적인 혁신물들을 개발하는 데 투자할 자원을 보다 쉽게 마련할 수 있다.
-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과연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아니오일 때가 만핟. 지금 필요한 것은 당신의 회사를 위대하게 만들어주었던 제품 혹은 제품들로 돌아가서 그 주변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 한 개 또는 여러개의 관건제품에 초점을 맞추는 데는 용기와 규율이 필요. 그리고 많은 기업이 그렇게 함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
* 제3의 길은 우선 당신이 일련의 보완적 혁신물을 만들어서 주변에 배치할 관건제품이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 다음에는 당신이 관건제품을 가지고서 다가서려고 하는 교두보, 즉 표적고객층을 파악하는 것으로 이어짐
* 관건제품은 안정적이어야 하며, 당신 회사에 전략적으로 중요해야 하며, 상당한 규모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함. 이 제품은 또한 당신 회사가 어제 생산했으며 오늘 생산하고 있고 내일도 계속 생산할 그런 제품이다.
* 관건제품을 선정한 뒤에 많은 기업이 실행하는 첫번째 단계는 그 제품을 단출하고 강력하게 만드는 것. 불필요한 제품변종들은 최대한 털어내고 보완적 혁신물들을 개발하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함
- 카맥스의 고객약속은 중고차 구매경험을 신뢰속에서 즐겁게 누리게 하겠다는 것이었음. 01년 애플의 고객약속은 사용자들이 자기의 디지털 삶을 관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게토레이의 고객약속은 절정의 기량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연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고, 레고의 고객약속은 조립용 블록완구를 사용하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고객약속은 또 다른 방식으로도 유용함. 이것은 제품의 가치를 조직 바깥의 고객에게 알리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회사가 어디에서 혁신을 꾀할지 결정할 때 전 직원을 하나의 방향으로 유도함으로써 회사 내부의 직원들이 소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 고객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얻으려면 우선 그저 듣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야 함. 그러려면 자기가 이해하고자 하는 영역을 보다 넓게 설정해야 함. 단 한 사람의 고객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고객이 당신의 제품을 필요로 하고, 발견하고, 구매하고, 사용하고, 마침내 폐기하는 전체 과정의 전반적 맥락을 이해하려고 해야 함
* 당신의 고객약속은 관건제품와 이것을 보완하는 제품들이 충족시킬 강렬한 소비자 요구와 소통한다. 좋은 고객약속은 구체적이며, 진실하고, 안정적이며, 차별성을 가지고 회사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 겹치기도 하지만 뚜렷하게 구분되는 고객 따라가기, 돈 따라가기, 제품 따라가기 등 세가지 유형의 분석을 통해서 고객의 조건을 적절히 이해할 수 있다. 세 가지 유형의 분석은 고객활동사슬, 소비사슬, 가치사슬을 각각 상세하게 밝혀줄 것이다.
* 세개의 사슬 분석은 충족되지 않은 고객요구를 발견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데 도움을 주므로, 당신은 고객약속을 최종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후보를 내놓을 수 있고 또한 이를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 프리토타입을 이용해서 '이것을 사겠는가?'라고 물어라.
어떤 혁신물의 성공여부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은 실제로 고객이 제품을 어떻게 구입하고 사용하는지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빠르고 저렴한 테스트를 작성하는 것임. 어떤 제품의 이런 초기 시험버전을 프리토타입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제품을 뜻하는 프로토타입이라는 단어에 더 익숙. 일반적으로 프로토타입은 최종 제품으 일회용 견본으로서 그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내려진 뒤에 개발단계의 맨 마지막에 만들어진다. 프로토타이의 목적은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에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제거하는 것. 이에 비해 프리토타입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장 핵심적 내용만으로 구성한 시제품으로써 개발 단계 초기에, 즉 해당상품을 출시하겠다는 최종결정이 나기 훨씬 이전에 제작된다. 그렇게 때문에 프리토타입은 조악하기는 해도 잠재 고객이 구매여부를 결정하는 데는무리가 없다.
- 페이크도어 테스트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지 알기 위해서 실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시함. 이 테스트 결과 충분히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일 경우에만 그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때로 경영자 교육고정에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때 어떤 회사나 학교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지금 소비재 마케팅에서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이 프로그램을 귀사에 제공하려고 합니다. 관련 내용을 읽어보시고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실제로 일정이 잡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제출된 내용에는 제공되는 콘텐츠와 자기 회사가 누릴 편익은 충분히 상세히 묘사됨. 만일 충분히 많은 사람이 프로그램에 등록하면 그 프로그램은 실제로 설계되고 제공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 프로그램에 등록하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계획이 무산되었다는 내용의 통지문이 전달된다. 이 접근버을 사용하는 사람은 문구작성에 조심해야 하며, 그 프로그램이 특정일에 실제로 일정에 따라서 추진될 것이라는 보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제품을 확실히 전달하겠다는 약속 대신 '이 제품이 완성되면 이 제품을 사시겠습니까?"라는 문구를 사용한다.
원나잇스탠드에서는 실제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지만, 한 장소에서 짧은 시간동안 단 한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한다. 구매자는 실제로 어떤 제품을 손에 넣는데, 이때 이 제품은 대개 수제품이거나 이 목적으로 변용된 것이다. 만일 이것이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이고 테스트결과가 부정적일 경우에는 이 서비스는 서비스를 구매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제공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규모로 생산하는 것은 매우 비경제적이지만, 이때 들어가는 비용이라고 해봐야 작은 것일수밖에 없다. 팝업매장은 비록 24시간 이상 지속되기도 하지만, 이 원나잇스탠드 테스트의 인기있는 변용인 셈이다.
- 이것 말고도 사기꾼, 프랑켄슈타인, 피노키오 등의 다양한 접근법들이 있고, 이런 접근법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모든 접극법은 신제품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나 제품 사용시의 고객행동에 대한 정보를 초기에 저렴하게 별다른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 수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이런 것들은 비록 작동방식은 제각기 다르지만 모두 어떤 가정을 실제 사실로 변환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로는 잠재 고객에게 "이것을 한번 사보시겠습니까?"가 아니라 "이것을 사겠는가?"라는 중요하고 결정적인 질문을 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 일련의 보완적 혁신물들의 후보목록을 마련한 뒤에는 이것이 과연 고객약속을 이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위험도는 얼마나 되는지 등을 기준으로 해서 각각의 후보를 평가하라. 이것을 평가하는 최고의 방법은 비록 조악한 것이라 하더라도 프리토타입을 빨리 만들어서 고객에게 "이것을 사겠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 보완적 혁신물 후보목록의 규모를 고객약속을 기준으로 해서 대폭 줄여라. 이 목록에 포함된 각각의 혁신물에 대해서 당신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회사 내부 및 외부의 협력자들을 선정하고, 이들과의 관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협약서를 마련하라
* 혁신과정을 지휘하는 관리자는 혁신 프로세스에 일정한 틀과 규율을 부여하는 여러 새로운 방법을 익혀야 한다. 고정되어 있어서 결코 유연해질 수 없는 단계-관문 프로세스는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며, 느슨하고 실험적인 겉핥기식의 프로세스도 마찬가지다. 관리자들은 빠른 속도로 되풀이되는 프로세스에 엄격함와 규율을 부과하는 방법과 테스트 결과에 따라서 예산을 비롯한 자원을 배분하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다.
- 기네스의 이런 눈부신 성장과정에 함께 했던 전직 고위간부인 도널 밸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당신이 당신 브랜드를 펄펄 살아나게 만들고 싶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그 브랜드 주변에 어떤 성지하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아일랜드 술집 컨셉이 기네스를 위해 한 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 제3의 길을 이보다 더 멋지게 묘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기네스는 관계된 모든 사람들 및 업체들이 이득을 보는 방식으로 어떤 새로운 사업체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이 접근법이 보장하는 저비용-저위험-고수익이라는 확실한 이득을 얻었다.
기네스와 아일랜드 술집 이야기는 의사결정-4가 내포하는 이득과 위험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기네스가 얻은 이득은 더 많은 고객과 더 높은 매출이었다. 그리고 이때 기네스가 부담해야 했던 위험은 상대적으로 덜 뚜렷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현실적인 것이었다. 그 위험은 제3읠 길을 실행하다 보면 자기가 잘 하는 것에서 너무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기네스가 극복해야 했던 과제는 자기가 선택한 보완적 혁신은 주로 회사조직 밖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일랜드 술집을 준비하고 열고 운영할 사람을 찾아야 했고, 이 술집을 전략적 의도에 맞게 시공해줄 설계시공업체를 확보해야 했고, 또 온갖 분야의 전문가 풀을 구성해야 했다. 기네스는 익숙하지 않은 그 일을 시작하고 관리하고자 했지만, 주류 회사로만 오랜 역사를 이어왔기에 그 일을 할 수 있는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맥주 최종 소비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건축, 대출, 인테리어 시공, 술집직원채용, 요식업 운영, 아일랜드 술집을 열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그 밖의 많은 기술들은 거의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 고프로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로는 것을 본 소니의 경영진은 일본에 있는 제품 관리자들에게 보다 나은 액션카메라를 생산하라는 과제를 주었다. 그리고 제품개발팀은 화소, 이미지 안정성, GPS기능, 3분의 1이나 싼 가격 등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경영진이 요구했던 더 나은 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소니는 더 나은 카메라를 만드는 전투에서는 고프로에게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패배. 고프로는 여전히 소니보다 더 많은 카메라를 팔았던 것. 이유가 뭘까? 소니는 보다 나은 카메라를 갖고 있었지만 좋은 거치대, 좋은 스마트폰앱, 개인용컴퓨터소프트웨어, 좋은 소셜미디어 사이트라는 측면에서 부족했다. 이것들은 모두 고객이 자기가 수행하는 모험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결정적 요소들이었던 것이다.
*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접근법인 제3의 길은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가 새로운 절차를 관리할 것을 요구. 제품관리자에게 협소한 규모의 책임성만 부여할 때 제3의 길 사업은 실패로 돌아갈 것임. 혁신사업팀을 이끄는 지도자는 반드시 회사의 전체부서를 종횡무진하면서 일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권한을 가진 해결책 통합자가 되어야 한다.
* 해결책 통합자가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업 중 하나는 고객약속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보완적 혁신물을 보여주는 혁신 매트릭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 해결책통합자가 전체 사업을 책임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업계획서는 그 사업의 모든 국면을 포괄해야 한다. 그 사업에 속한 각 부분들을 당연히 빡빡하게 규정하고 각각의 투자대상도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하지만, 수익은 부분이 아닌 전체 차원에서 공유하고 극대화해야 한다.
- 디즈니의 도표 한가운데 디즈니 극장용영화, 즉 애니메이션영화와 실사영화가 놓여 있고, 그 주변으로 보완적 혁신물이 배치되어 있다. 디즈니랜드(테마파크), 텔레비전프로그램, 상품, 음악, 만화, 출판물 등이 그런 혁신물들이고, 이는 모두 영화를 기반으로 함. 이 도표에서 연결성 및 영향의 방향성을 동시에 나타내는 화살표를 주의깊게 보아야 하는데, 영화는 모든 것으로 이어지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혁신적 보완물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점도 주의깊게 봐야 한다.
- 월트디즈니의 이 도표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제3의 길 체계를 가장 정확히 묘사.
제3의 길의 세가지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복수의 다양한 보완적 혁신물로 구성되는데, 이는 관건제품이나 서비스 주변에 배치되어서 관건제품을 (또한 동시에 서로를) 보다 매력적이고 경쟁력 있게 만들어준다.
(2) 보완적 혁신물들은 하나의 체계(시스템)로 기능하면서 단일한 전략 혹은 목적을 수행.
월트 디즈니의 경우를 보자면, 장편영화의 스토리와 캐릭터들에 대한 고객경험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줌.
(3) 이 일련의 혁신적 보완물들은 중앙에서 긴밀하게 관리된다.
디즈니는 자기 회사가 이 세가지 특징적 원칙을 기반으로 돌아가도록 설계했던 것이다.
- 월트 디즈니가 없이도 월트디즈니는 그가 설정했던 제3의 길 조직, 즉 영화 특히 애니메이션 영화를 창의적 중심에 두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모든 스토리와 캐릭터를 모든 사업들에 제공하게 하는 조직을 올바르게 이해한 지도자들 덕분에 성공. 지도자들이 회사를 제3의 길의 유기적 조직이 아니라 다각화된 거대 엔터테인먼트 조직으로 바라볼 때 회사는 휘청거리며 힘든 길을 걸었다. 실사 영화들이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월트 디즈니의 매력중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애초에 월트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제작소로 출발했고, 그 뒤로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애니메이션 부문 사업의 건전성이 전체 회사를 튼튼하게 지탱하며 먹여살린다.
몇 가지 점에서 볼 때 월트디즈니가 창조한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던 지도자들(70년대의 워커와 90년대말의 아이스너)을 무작적 비난하기는 어렵다. 제3의 길은 워낙 거대한 과제들을 제시하기 때문. 전체 시스템의 성공, 즉 회사 전체가 거두는 성공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각각의 보완적 혁신물(개별 사업단위)의 복잡성도 거기에 비례해서 커지며, 각 혁신물들 사이의 분리현상도 한층 더 심하게 나타나고, 개별 혁신물들을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 바라보는 능력도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 아이스너가 사장으로 재임하던 기간에 만연했던 사내 정치투쟁 역시 제각기 다른 사업 단위들 사이의 긴밀성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회사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로 맞물려 돌아가지 않고 집단 사이의 분파 투쟁 속에서 원자화되었으며, 회사 전체의 수익성도 저하. 보완적 혁신물들을 통합적 상태로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경계하고 또 신경을 써야 한다.
제3의 길 사업의 성공은 강력하고 활기찬 핵심을 계속 유지하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 설령 그 핵심이 회사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창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월트 디즈니가 고품질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꾸준히 생산함으로써 핵심에 지속적으로 영양을 공급할 때는 그 핵심과 주변의 모든 보완적 사업들이 번창했다. 하지만 핵심을 무시하고 과거 성공의 유산에만 의존하려 하자 그 핵심과 주변의 모든 보완적 사업들은 함께 비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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