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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2.28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2. 2025.02.28 성스러운 한끼
  3. 2025.02.28 세상을 바꾼 음식 이야기 1
  4. 2025.02.28 20250228
  5. 2025.02.27 맛있는 세계사
  6. 2025.02.27 20250227
  7. 2025.02.26 식탁과 화해하기 1
  8. 2025.02.26 20250226
  9. 2025.02.25 미각의 제국
  10. 2025.02.25 20250225

- 같은 고기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인식이 다를 수 있음. 예를 들어 쇠고기에 대한 힌두교도의 반응은 개고기에 대한 미국 기독교도들의 반응과 마찬가지. 인식에서의 이런 차이점들은 우리의 스키마 때문이다. 스키마란 우리의 신념과 생각, 인식, 경험을 구조화하는(그리고 역으로 그것들에 의해 형성되는) 심리적 틀. 스키마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자동적으로 정리하고 해석한다. 예컨대 간호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마도 흰 가운을 입고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을 떠올릴 것이다. 간호사 중에는 남자도 있고 흰 가운을 안입는 사람도 있으며 병원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환경에서 여러 유형의 간호사들을 자주 접하지 않는 한 우리의 스키마는 이런 일반화된 이미지를 고수한다. 일반화는 스키마가 자기 고유의 기능을 해낸 결과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드는 엄청나게 다양한 자극들을 점검하고 해석한 뒤 일반적 범주들에 나누어 넣는 일 말이다. 스키마는 요컨대 정신적 분류체계다.

- 현실을 왜곡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부정이다. 아무 문제도 없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현실을 부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비가시성은 육식주의 시스템의 보루다.
상징적 비가시성은 방어기제인 회피에 의해 가능해짐. 회피는 부정의 한 형태다. 문제의 시스템에 이름 붙이기를 피할 때 우리는 진실을 피할 수 있으며, 그러다 보면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게 된다. 

- 고통의 경험은 주관적이므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부정하기는 쉽다. 바꿔말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있을지는 추정밖에 할 수 없는데, 그들이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 우리한테 유리하다면 그게 사실이라고 아주 쉽게 믿어버림. 우리의 가정들은 우리의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도록 허용하는 그 신념체계는 자기보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그러므로 동물들에게 고통을 주는 육식주의의 관행을 놓고 우리가 잘못하는 건 아닌지 신중하게 고려하거나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게 하나도 놀랍지 않다.

- 우유생산을 최대화하기 위해 젖소에게 유전자 조작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히고 해마다 인공적으로 임신을 시킨다. 미국 대부분 낙농장에서 젖소들은 임신기간 9-10개월을 포함해 1년에 10개월 동안 기계로 젖을 짠다. 지속적 임신과 젖분비는 소의 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많은 소가 다리를 절게 되거나, 유선염에 걸려 유방이 크게 부풀어 오르기도 함. 소의 신체시스템이 이처럼 과로하다 보면 정상적 신진대사 과정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풀만 먹는 타고난 초식습관을 곡물과 고단백의 육식성 사료(동물에게서 나온 혈액제품, 젤라틴, 기름 따위로 만들어짐)로 보충해줌. 
젖소들이 견뎌야 하는 신체적 스트레스가 심각하기는 해도 아마 가장 큰 고통은 해마다 출산 후에 겪는 정서적 트라우마가 아닐까 한다. 새끼가 수놈이면 송아지 고기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고, 암놈이면 유제품 생산에 쓰임. 소들은 본디 길게는 1년가지 새끼에게 젖을 먹이면서 대단히 친밀하게 지낸다. 그러나 낙농공장에서는 송아지를 보통 생후 몇 시간 안에 어미에게서 떼어 놓는다. 젖을 인간의 몫으로 돌리기 위해서임. 송아지가 어미 소 앞에서 끌려갈 경우 어미는 흥분하여 큰 소리로 울어댄다. 그래서 어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다른 장소로 데리고 가 젖을 짜고, 그 사이에 송아지를 끌어가기도 함. 인간과 마찬가지로 어미 소도 새끼가 없어지면 격앙되고 안달을 한다. 여러 날 울부짖으며 미친듯이 송아지를 찾으며, 때로는 폭력적이 되어 몸부림치다 일꾼들을 발로 차기도 함. 심지어 새끼를 찾느라 우리를 탈출해 몇키로나 떨어진 다른 목장까지 가는 소들도 있음.
소들의 타고난 수명은 대략 20년이지만 낙농공장에서는 4년만 지나면 용도폐기가 되어 도축장으로 보내진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분쇄육 중 상당부분이 젖소고기다.

- 우리가 어느 수준에서는 불편한 진실을 의식하지만 동시에 다른 수준에서는 의식을 못하는 일이 가능할 뿐 아니라 불가피하도록 조직되어 있는 것이 바로 폭력적 이데올로기. 알지 못하면서 아는 이 같은 현상은 모든 폭력적 이데올로기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육식주의의 요체다.
나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다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무언의 계약이 이런 폭력적 이데올로기들에 내재한다. 물론 육식주의 업계도 자기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그 일이 쉬워지도록 우리 스스로가 돕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보지 말라고 하면 우리는 고개를 돌린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평화로운 농장의 야외에서 노닌다고 그들은 말하는데,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임에도 우리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처럼 행동하는 까닭은 우리 대부분이 의식의 어느 차원에서는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충분한 정보에 근거하여 의사결정하기를 원한다. 자유롭게 생각하고자 하며, 스스로 정보를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소비자가 되고자 한다. 우리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 한데, 애초에 우리가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이런 자유는 불가능해질 게 뻔하다.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신념과 행동을 이끌 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를 빼앗아 버리는 시스템의 희생자가 된다.
우리가 진짜 현실은 어떠한지를 알게 될 때, 그 시스템의 작동원리를 인식할 때, 오직 그때에만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해진다. 시스템에 육식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육식주의적 생산의 실상을 가려 온 신화를 깨뜨리는 일은 우리가 그 시스템을 꿰뚫어 보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 밀집사육시설 부근에 사는 주민들은 아황산염과 질산염을 포함한 공장폐기물에 중독돼 왔다. 이런 독소들은 공기와 식수를 오염하여 만성 천식과 눈병, 기관지염, 설사, 극심한 두통, 메스꺼움, 유산, 아기의 선천성 결함, 영아사망,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의한 질병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그리고 고기와 알, 유제품의 소비자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각종 오염물질을 먹어왔다. 우리가 먹는 육식주의 식품중엔 합성 호르몬이 들어가 있는 게 흔한데, 그런 호르몬의 일부는 각종 암의 유발과 연관이 있어서 유럽연합에서는 동물과 인간 모드에게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또 과다한 양의 항생제, 발암물질로 확인된 독성 살충제와 제초제 및 살진균제, 치명적일 수 있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석유, 독극물을 먹은 쥐의 시체, 흙, 털, 똥 따위 온갖 물질이 고기속에 들어가기도 한다.
패스트푸드의 제국에서 에릭 슐로서는 육식주의의 부수적 피해의 요체를 정확히 집어낸다. 고기에는 똥이 들어 있다. 슐로서는 구체적으로 분변을 지적했지만, 그 외에도 많은 것을 포함한다. 부패부터 질병까지 우리가 먹는 고기와 알, 유제품을 더럽히는 모든 요소, 병은 시스템이 낳는 쓰레기들 말이다.
우리가 먹는 고기에는 이런 요소들이 들어가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는 육식주의를 비롯한 폭력적 이데올로기들의 핵심적 특성 중 하나에 관한 이야기다. 그 특성이란 이런 시스템은 간접적 피해자들을 기반으로 하여 유지된다느 점이다. 간접적 피해자는 시스템이 낳는 부정적 결과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드는 데 참여함으로써 시스템을 돕는 사람이다. 시스템은 실상과는 다른 모습을 내보임으로써 우리가 위험에 처했는데도 안전하다고 착각하게 하고, 강제와 억압을 받으면서도 자유롭다고 느끼게 하면서 이런 피해자들을 만들어냄. 똥이 어떻게 고기에 들어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육식주의에 희생되는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 단백질 부족에 대한 두려움은 특히 남자들 사이에 흔하다. 동물단백질이 전통적으로 근육 및 힘을 키우는 것과 결부되어 왔기 때문. 고기는 힘과 능력, 생식력을 나타내면서 오랜 세월 사내다움의 한 상징노릇을 해왔다. 반대로 식물성 음식은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져 흔히 수동성과 나약함을 상징. 사내다움, 즉 남성성의 의미가 대체로 지배와 통제, 그리고 폭력을 축으로 구성되어 개인과 사회에 해를 끼치게 된 데에 관한 연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동물을 소비하는 게 남성의 주요 특징이 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육식주의의 다른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단백질 신화 역시 오래되고 널리 알려졌으며 실체적인 반대증거들을 무시하며 버티고 있다. 그것은 지속적인 육식주의적 소비를 정당화하고 육식주의 패러다임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신화일 따름이다.
1900년대 초에 미국인들은 하루에 100그램을 훨씬 넘는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고 들었다. 더 가깝게 50년대만 해도 건강을 생각한다면 단백질 섭취를 늘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은 필요량의 두 배나 되는 단백질을 섭취한다. 과다한 단백질 섭취는 골다공증, 신장질환, 요로결석, 그리고 일부 암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의 근육과 기타 체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만들어지고, 아미노산은 그들이 먹는 단백질에서 나온다. 콩, 렌즈콩, 곡류 및 채소를 골고루 먹으면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얻을 수 있다. 한때는 단백질의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여러 종류의 식물성 음식을 함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최신 연구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단백질을 충분하되 과다하지는 않게 섭취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육식주의 식품을 끊고 곡류, 채소, 콩류와 과일을 먹으면 된다. 다양한 식물성 음식을 체중유지에 필요한 만큼 먹는 한 단백질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 도축장 작업자들이 자기가 죽이려는 동물을 소니 돼지니 하는 산 동물의 이름으로 지칭하지 않고 그들을 가지고 만들 제품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생각해보라. 닭은 브로일러로, 돼지는 래셔 즉 얇게 저민 베이컨으로, 소는 비프로 부른다. 그런가 하면 농무부는 암소를 젖통으로 동물들을 단위로 지칭하고, 육식주의 업계에서는 대체용 수퇘지와 대체 송아지 같은 용어를 쓴다. 우리가 흔히 생물이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살아 있는 물건이라는 이야기니 형용모순이다. 게다가 그걸 깨닫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도 생각해 보라. 육식주의를 위해서는 우리가 이처럼 대상화하는 언어를 쓰는 게 필요하다. 가령 식당 유리창 안의 회전구이 통닭을 가리키며 무엇이냐 묻지 않고 누구냐고 묻고, 횟집 수조에서 헤엄치고 있는 문어를 그것 대신 그나 그녀라고 부른다고 생각해 보라.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 토론토대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연구자들은 실험참가자 20명의 얼굴에 안면 움직임의 변화를 기록할 전극을 연결하고는 그들을 세가지 다른 조건에 차례로 처하게 했다. 즉, 구역질 나는 맛의 액체를 마시라고 주었으며, 더러운 화장실이나 상처따위를 찍은 혐오감 주는 사진을 보게 했고, 실험용 게임에서 불공정하게 취급받도록 했다. 연구자들은 이 세가지 상황에서 피험자들 얼굴의 자동적 움직임이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 즉, 윗입술을 올리고 코를 찡그리는 근육인 상순거근이 수축했는데, 이는 혐오반응을 나타내는 것. 도덕적 혐오감을 상했거나 오염된 음식을 먹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는 원초적이며 태곳적부터 있어 온 혐오반응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 톨스토이 신드롬
심리학자들이 확증편향이라 이름붙인 현상은 톨스토이 신드롬이라 불리기도 함. 그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자신이 지닌 믿음 때문에 판단력을 잃는 인간성향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사람은 가장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이라도 그것이 ... 자기 삶의 피륙에 한올 한올 짜 넣은 결론들을 오류로 인정하게 만드는 것일 경우 ... 진실로 받아들이는 수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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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성스러운 한끼

인문 2025. 2. 28. 06:45

-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 몸에 들어가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뼈가 된다. 그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음식물이 지닌 업까지도 함께 먹어 그 사람의 체질과 성격을 형성. 이를테면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때 고기의 맛과 더불어 그 짐승의 업까지도 함께 먹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짐승의 버릇과 체질과 질병 그리고 그 짐승이 사육자들에 의해 비정학 다루어질 때의 억울함과 분노와 살해될 때의 고통과 원한까지도 함께 먹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 버터 금지령, 그리고 돈을 주고 버터 섭취권을 사는 행태는 많은 이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종교개혁에 나섰던 루터도 마찬가지. 루터는 95개조의견서를 발표한 지 3년뒤인 1520년 독일지역의 그리스도교인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
또 하나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은 복음서가 알려주듯이 금식은 누구에게든 자유롭게 적용되어야 하며 모든 종류의 음식물 역시 누구나 자유롭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에 있는 저들 자신은 금식을 조롱하면서 로마 밖에 있는 우리들에게 저들이 구두도 닦으려 하지 않는 기름을 먹게 하고, 또 그 후에는 우리에게 버터 및 각종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우리의 양심을 너무나 불안하고 소심하게 만들어 놓았기에 이 자유에 관해 설교하는 것조차 더 이상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럴 것이 일반백성은 속이고 저주하고 또는 음행을 저지르는 것보다 버터를 먹는 것을 더 큰 죄로 간주하고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버터를 주로 생산하고 먹던 북유럽 국가와 16세기 종교개혁기에 로마 카톨릭교회에서 이탈한 나라가 거의 일치한다는 점. 지금도 올리브오일을 많이 먹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부유럽은 카톨릭 교세가 강하고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 버터를 많이 먹는 지역은 개신교 세가 강하다.
버터문제가 독일의 종교개혁에 불길을 부채질했다면 스위스에서는 소시지가 발화점이 되었다. 일명 소시지 사건이 발생한 것. 소시지 사건은 152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성경을 출판한 인쇄업자 크리스토프 프로샤워가 사순절 기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시지를 먹은 데서 비롯된 일. 지금 생각하면 황당할 수 있지만, 당시 사순절 기간에는 육류섭취가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소시지를 먹는 것은 문제삼을 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여러 사람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소시지를 먹었으니 이는 교회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건으로 여겨짐. 당연히 교회는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더욱이 그 자리에는 사제도 있었다. 사순절에, 그것도 교회의 규칙을 위반하는 소시지 식사를 사제가 주관한 것이다. 그가 바로 츠빙글리다. 츠빙글리 역시 루터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유일한 토대는 성경이고, 교황과 공의회의 권력은 허상이라고 생각.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인의 자유를 설파하던 그는 사순절  육식금지는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 이후 67개 결의를 제시하며 로마카톨릭교회와 맞섰고, 스위스 종교개혁의 불꽃은 가열차게 타오름. 그는 1531년 신구교간 벌어진 카펠 전쟁에서 사망. 그의 죽음으로 주춤했던 스위스의 종교개혁은 이후 칼뱅을 통해 되살아나게 된다.

- 플레이크 형태의 시리얼은 그야말로 우연히 탄생했다. 통밀을 삶기 위해 냄비를 불 위에 올려놓고 오랫동안 방치한 결과물이었다. 건강증진센터 원장이었던 존 켈로그와 그의 동생 윌은 망쳐버린 통밀을 버리기 아까워 얇은 반죽이라도 만들어볼 작정으로 롤러에 통과시킴. 그런데 물렁하게 익은 통밀이 롤로를 지나면서 바싹 마른 조각이 되어 우수수 떨어졌고 이것이 센터 이용자들에게 환영받은 것.
형인 존 켈로그가 신도를 위한 엄격한 레시피를 고수했다면, 동생 윌의 생각은 달랐다. 신도가 아닌 일반대중도 즐겨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하는 쪽을 택함. 결국 형제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동생은 회사를 창업해 일반인의 입맛에 맞게 가공한 제품을 내놓음. 이때가 1906년이다. 회사는 급성장했고, 이곳에서 생산한 콘플레이크 제품은 시리얼의 대명사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시리얼 분야에서 켈로그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회사인 포스트의 창업사연도 재미있다. 찰스 포스트는 우울증 때문에 존 켈로그의 요양원에 입원했다고 환자식으로 나온 콘플레이크를 맛보고 사업 아이템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함.

- 다쿠앙이라는 이름은 일본의 유명한 스님이 이름에서 나옴. 일본 대선사 다쿠안 소호 스님이 선식으로 즐겨 먹었던 것을 스님의 법명을 따서 다쿠앙으로 불렀다고 한다. 요리법은 단순하다. 쌀겨와 소금으로 무를 절여서 버무린 뒤 항아리에 담아 익힌 것. 
다쿠안 스님은 일본에서도 명성이 꽤 높다. 불교 선종의 한 파인 일본 임제종의 대표적 고승. 검술, 다도, 조경, 수묵화, 글에 두루 능해 일본의 전통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일본의 전설적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의 정신적 스승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 달콤한 맛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나 대체로 좋아하는 맛이다. 그런데 왜 서아시아 사람들은 유독 이처럼 강한 단맛을 좋아하는 것일까? 
물론 날시가 더운 탓도 있다. 또 금식기간인 라마단을 지낸 후 기력을 회복하려면 단 음식이 도움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종교적 이유도 있다는 것. 탐식의 시대 저자인 레이철 로던은 달콤한 디저트의 연원을 종교에서 찾는다. 모슬렘은 맛있는 식사를 포함해 현세에서 즐기는 쾌락을 낙원에서 누리는 기쁨의 예시로 여겼다고 한다. 즉 화려하고 다양한 요리는 낙원의 기쁨이 크다는 것을 확인하는 증거였다. 그는 이 책에서 "디저트를 즐기는 것은 믿음의 증거라는 내용이 쿠란에 언급돼 있다"라고 썼다. 그 때문인지 10세기에 쓰인, 현재 전해지는 아랍의 가장 오래된 요리책 키타브 알타비크에 나오는 레시피의 3분의 1이 디저트다. 로쿰, 잘레비, 쿠나파 등도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캔디의 일종인 누가, 아이스크림의 유래가 된 셔벗 역시 모슬렘에 의해 서구세계에 전해졌다.

-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는 것은 종교적 이유뿐 아니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도 있었기 때문. 아랍권의 대표적 문학작품인 천일야화에는 산더미처럼 음식을 차려내 대접한 뒤 달콤한 과자를 건네며 소화를 돕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권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키타브 알타비크에도 달콤한 디저트 종류를 모두 식사 끝 순서에 두고 있다.
이 지역에서 특히 디저트 문화가 발달한 것은 페르시아의 영향이 컸다. 언어학자 댄 주래프스키 교수는 음식의 언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그다드는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예전에 페르시아에 속하던 지역에 건설됐고, 그곳에서 칼리프의 위대한 요리사들은 달콤한 아몬드 페이스트리 라우지나즈와 끈적끈적한 사탕 팔루다즈, 시크바즈처럼 시큼한 요리, 여러 달콤한 스튜 등 페르시아의 디저트를 빌려오고 더욱 풍부하게 하여 요리의 새물결을 일으켰다.

- 출소할 때 두부는 왜 먹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흰색의 두부를 먹고 순수하게 살라는 의미, 감옥에서 고생했으니 영양보충을 하라는 의미 등이다. 박완서는 산문집 두부에서 이렇게 말했다.
징역살이를 속된 말로 콩밥 먹는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출옥한 이에게 두부를 먹이는 까닭을 알 것도 같다. 두부는 콩으로부터 풀려난 상태이나 다시는 콩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두부는 다시는 옥살이하지 말란 당부나 염원쯤 되지 않을까.
두부는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다. 아마도 불교가 없었다면 현재까지 전해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도,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것도 불교의 역할이 컸다.
- 우리나라에 두부가 전래된 것은 중국과 불교문화 교류가 활발했던 통일신라시대 즈음인 것으로 추정됨. 처음부터 두부가 서민층의 음식이었던 것은 아님. 불교가 국교인 고려시대에 두부는 사찰에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 이유로 사찰에서 주로 두부를 만들었다. 당시 사찰은 많은 토지를 소유했고 부가 집중돼 있었기에 음식문화를 선도할 수 있었다. 자연히 두부제조법도 사찰을 중심으로 발전.
두부가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고려 성종 때 최승로가 쓴 시무28조로 알려져 있음. 이 문헌은 지금 해야 할 일 28가지라는 의미로 신하가 왕에게 올린 건의문이다. 이 문헌에서 최승로는 행인에게 미음, 술, 두붓국으로 보시하는 일은 체통이 서지 않는 일이니 삼가라고 왕에게 건의함. 작은 일에 왕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하는 큰 그림을 그리라는 뜻이었다.

- 성경에 부활절은 레저렉션데이라고 나오지만 영어로는 이스터. 이 말은 고대 북서유럽에 살던 튜턴족 여신 에아스트레에서 유래.
19세기 영국 목사 알렉산더 히슬롭은 부활절뿐 아니라 성탄절 등 기독교의 주요 축일이 성경의 근거에 기인하지 않는다고 주장. 바빌론 신비종교의 축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부활절 달걀의 기원 역시 고대의 신비종교와 연관이 깊다. 고대 켈트족의 성직자인 드루이드는 성직의 신성한 상징으로 달걀을 가지고 다녔고, 아테네에서 열리던 디오니소스 제전, 즉 신비종교 의식에서도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달걀을 사용했다. 서양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신성한 종교적 의미로 달걀을 사용. 달걀이 생명가 다산의 상징물로 여겨지게 된 것은 고대 바빌론 시대 유프라테스강에 떨어진 달걀에서 부화한 여신신화에서 시작되었다.

- 프레첼은 어떻게 사순절가 연관을 갖게 되었을까? 먼저 사순절을 알아야 한다. 사순절은 부활절 이전 40일간을 의미.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과정을 되새기며 금식과 특별기도 등 경건한 생활을 이어간다. 고대 로마이후 기독교 문화가 지배해 온 서구에서 사순절은 고행 또는 금욕과 같은 의미였다. 이 시기에는 단순히 종교적 의례를 잘 지키는 것만 요구되는 것은 아님. 식생활에도 큰 제약이 따랐고, 성관계도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로 여겨져 금기시되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극한의 스트레스를 계속 견디고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대대적인 고행에 들어가기 직전 사람들은 한바탕 먹고 즐기고 쾌락을 추구하는 난장을 벌인다.
그것이 바로 사육제, 즉 카니발이다. 이 축제의 시간은 욕망의 해방구이자 기존질서를 전복하는 기능으로 작용.
사육제 대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았다. 교회의 율법도, 신부의 설교도 이때만큼은 공염불이었다. 남녀노소 없이 세상을 번쩍 치켜들고 벌컥컬컥 마셔버릴 듯 기세등등하게 놀았다. 단 며칠 동안이었지만 아무하고나 뒤엉키고, 함부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술독에 머리를 빠뜨리고 드렁드렁 코를 골아도 말썽이 나지 않았다. 새빨간 거짓말을 해도 뒤탈이 없었다. 금식을 하면서 꾹꾹 눌러 참았던 것들을 죄다 풀어내고, 잠시나마 지상의 천국을 만끽했다.
- 40일에 이르는 사순절에 돌입하면 육류는 물론이고 유제품도 먹을 수 없다. 물과 밀가루, 소금만 넣은 간단한 빵 따위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데, 그 빵이 프레첼. 
프레첼을 사순절에 먹게 된 것은 400년경부터다. 고대 기독교인이 사순절 대금식 기간에 먹기위해 고안했는데, 금식기간에 먹는 빵이니 만큼 들어가는 재료도 소박해야 했고 빵 모양 역시 거룩하고 경건한 시기에 합당해야 했다. 프레첼의 모양을 보면 숫자8 혹은 하트를 찌그러뜨린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양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팔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흔히 기도하는 모습이라고 하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손바닥을 붙이거나 손깍지를 끼는 자세를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고대 기독교인은 양팔을 교차해 손을 반대편 어깨에 대호 기도했다. 비잔틴 예식을 따르는 기독교인은 오늘날에도 그런 식으로 기도한다고 한다. 그래서 라틴어로 작은 팔들이라는 뜻의 브라켈라이에서 독일어 브레첼이 나왔고, 이는 오늘날 프레첼로 이어짐. 즉 기도하는 팔이 빵 모양과 이름이 유래가 된 것임.

-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수원 봉녕사에서 발간한 화보집 봉녕사 사찰음식 대향연의 한구절이다.
* 아침 : 신선이 먹는 때로, 몸에 맑은 에너지를 채운다
* 점심 : 사람이 먹는 때로, 부처님도 하루에 한끼만 드셨다
* 저녁 : 짐승이 먹는 때이며, 해가 지고 먹는 것은 짐승의 마음을 닮아간다고 경계했다
* 밤 : 귀신이 먹는 때이고, 귀신은 달리 표현하면 몸에 나쁜 에너지다.
- 선재스님이 쓴 여러 책 중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에는 그동안 스님이 설파해온 사찰음식의 정의와 방향성이 잘 정리되어 있다.
예로부터 불가에서는 나와 가까운 자연의 것을 취해 약으로 사용해왔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들이 내 몸에 가장 좋다.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이용하거나 이동거리가 짧은 먹을거리를 먹자는 로컬푸드 운동 또한 이미 부처님 시대에 있었던 것이다.
욕망을 다스리려면 제일 먼저 음식에 대한 절제, 비움이 있어야 한다. 음식을 욕망이나 맛으로 먹지 안으며 몸을 살찌게 하기 위해 먹지 않는다. 다만 몸을 유지하기위해 먹으며 도를 닦는 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 먹는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오늘날 사찰음식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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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은 단백질 함량이많은데 비해 정작 쌀보다 필수 아미노산 함량이 적은 편이라 고기와 우유 등을 함께 섭취해 아미노산을 보충해 주어야 함. 지중해 해상 교역을 처음 시작했던 페니키아 지역(가나안과 레바논 지역)의 경우, 물이 있는 계곡에서 밀 농작은 가능했으나 나머지 땅은 사막성 기후의 광야라 풀이 부족해 목축업은 그리 발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은 밀과 고기를 서로 바꾸기 위해 길을 만들어 먼 거리 거래를 시작. 이렇게 거래가 시작되어 상업과 교역이 발달하게 되었음.

- 고대 그리스 지리학자이자 역사가였던 스트라본에 의하면, 기원전 2000년경 가나안 사람들은 소금을 갖고 멀리 영국 남부 콘웰까지 가서 주석과 바꾸어 온다.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 청동. 이로써 유럽대력에 대량의 주석이 보급되면서 청동시 시대가 만개함. 소금의 위력은 참 대단하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러한 원거리 해상교역을 위해 중간중간에 보급품을 조달받을 수 있도록 식민도시를 건설. 이 식민도시들이 나중에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주요 도시로 성장. 카르타고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또 가나안에는 주변에서 소금을 사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때 개발된 길이 해안길과 왕의 대로였다. 거래가 활발하고 시장이 발달한 곳에서는 경제가 더 빨리 발전. 역사적으로 소금이 생산되는 곳이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이유가 여기 있다. 고대 유럽에서 소금생산이 가능한 지중해 연안은 경제적 중심지의 역할을 했다. 당시 암염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이라서 소금생산이 가능한 곳은 지중해 해안 중에서도 일부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소금을 이용해 지중해 문명을 만든 최초의 사람들이 바로 가나안 사람들이었다. 그들 스스로는 가나안 사람이라고 했음에도 그리스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자주색 옷을 입고 다닌다 하여 그들을 페니키아, 곧 자주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라 불렀다. 이는 페티키아 사람들이 값비싼 자주색 염료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 이 페니키아란 이름은 기원전 1200년 경 가나안 사람들이 해상무역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부터 불린 것으로 추정됨.

- 몽골군에게는 보급부대를 끌고 다닐 필요가 없어 기동력 있는 작전이 가능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장병 스스로 먹을 것을 안장 밑에 깔고 다니며 식사를 해결했기 때문. 그 안장 밑 음식이 바로 육포. 
몽골군은 겨울에 소를 잡아 살코기 부분만을 두께 2-3센티, 폭 5-7센티로 찢은 뒤 줄에 매달아 바싹 말린다. 건조한 기후에서 고기의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면 무게와 부피가 크게 줄어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육포를 절구에 넣고 갈거나, 망치나 돌멩이로 두들겨 가루로 만들었다. 이를 보르츠라 불렀다. 몽골군은 보르츠를 깨끗이 씻은 소의 위나 오줌보 안에다 보관하여 이를 안장 밑에 깔고 다니며 물에 불려 먹었다.
- 육포 가루만 물에 타 먹어도 한끼 식사로 충분. 바짝 말라있던 육포가루가 배에서 서서히 부풀어 올라 공복을 채워주기 때문에 한 봉지의 육포만 있어도 일주일치 비상식량이 되었다.
특히 전쟁 중에 불을 피워 조리를 할 필요도 없으므로 부대가 적에게 쉽게 노출되지도 않음. 이게 바로 몽골군의 신출귀몰한 기습작전이 가능했던 이유.
보르츠는 간편하고 부피가 작고 가벼워 운반이 쉽고 2-3년 동안 실온에서 장기간 보관해도 변질되지 않음. 보르츠는 주로 쇠고기로 만들었지만 양고기, 말고기, 물고기 등으로도 만들 수 있었다.

- 후추무역 중심지, 베네치아
중세 사람들은 아시아와 교역할 때 바그다드를 지나 흑해의 남부해안을 경유해 콘스탄티노플에 이르는 경로를 이용. 향신료는 콘스탄티노플에서 항구도시 베네치아로 운반됨. 15세기 말이 될때까지 400년 동안 거의 모든 무역은 베네치아에서 이루어짐.
6세기부터 베네치아는 인근 개펄에서 생산한 소금을 갖고 동방무역을 시작. 당시 소금 역시 귀하고 비쌌다. 이후 베네치아는 수세기 동안 동방무역으로 번영을 누림. 베네치아 상인들은 11세기 후반에 시작해 근 200년간 진행된 십자군 원정 덕분에 세계 향료시장에서 제왕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동방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 게다가 베네치아 공화국은 서유럽에서 온 십자군에게 수송선, 전함, 무기, 자금을 공급해서 바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전 유럽의 무역업자들은 향신류 특히 후추를 사기 위해 베네치아로 몰려듬. 15세기 향료무역은 베네치아 상인들의 독점으로 다른 나라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으며 베네치아 상인들이 챙긴 이윤은 어마어마했다.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만행
포르투갈로부터 말루쿠 제도를 접수한 네덜란드인은 정향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 이 섬에서만 정향을 생산하도록 했다. 약간 매운듯 하면서 향기를 내는 정향은 늘 푸르고 키가 큰 나무로 분홍꽃이 피는데, 이 꽃이 정향의 원료. 꽃이 피기 바로 직전에 따서 햇볕이나 불을 지펴 말린다. 말린 꽃봉오리가 마치 못을 닮았다고 못의 모양을 본뜬 글자인 못 정자를 써서 정향이라고 하며, 영어리음 클로브 역시 클루(못)에서 유래. 정향은 고대부터 대표적 묘약의 하나였다. 게다가 향기가 좋을 뿐 아니라 우리가 쓰는 향료 가운데 부패방지와 살균력이 가장 뛰어남. 현재도 정향은 햄, 소스, 수프 등 서양요리에서 필수적 향신료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사람들은 이후에도 향신료 시장을 넓혀감. 그러나 대량공급은 정향의 가격을 떨어뜨림. 그러자 향신료에 다른 품종을 첨가하는 부정을 저지르기 시작. 그 결과 소비자의 불신을 초래하여 가격이 폭락함. 1760년 암스테르담에서는 향료가격을 인상할 욕심으로 산더미같은 향료재고를 불태워버리는 사건도 발생.
정향가격이 폭락하자 네덜란드인은 극히 일부지역을 제외한 모든 향료의 섬들에서 자라는 정향나무를 모두 뽑아버림. 그 뒤 향료를 불법적으로 재배하거나 거래하는 자들은 모조리 처형. 오랫동안 정향에 의존해 왔던 원주민은 이런 조치 때문에 수입이 줄어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1770년 모리셔스의 프랑스인 총독은 말라카로부터 어렵게 정향나무 씨앗을 훔쳐 동아프리카 농장에서 재배. 이후 광범위한 향료산지로부터 향료공급이 증가되자 향료독점권은 무너지고 가격이 하락하여 일반 서민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됨. 오늘날 동아프리카 탄자니아는 세계 정향의 90%를 공급함. 반면 정향나무 원산지였던 인도네시아는 오히려 정향의 최대 수입국이 됨. 
오늘날 인도네시아가 가장 많은 정향을 소비하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9세기 후반에 인도네시아인들은 담배와 정향을 혼합해 크레텍이라는 정향담배를 최초로 생산했는데, 현재 인도네이사에서는 7만명이 노동자가 정향담배 생산에 종사할 정도로 크레텍은 엄청난 인기를 끈다.

- 한국을 대표하는 김치는 고추맛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 하지만 김치가 원래부터 매웠던 것은 아니다. 국물이 많은 절인 채소라는 의미의 침채가 김치의 어원인데, 여기에 고추를 넣어 담그게 된 것은 1700년경부터. 그 전까지는 마늘이나 산초, 생강, 파 등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로 사용하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발효시켜 먹었다.
1614년 편찬된 지봉유설에서는 일본에서 전래되었다 해서 고추를 왜개자(일본에서 들여온 겨자)라 불렀으며,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왜초라고 일컬었다. 당시엔 고추를 일본인이 조선인을 독살할 목적으로 가져온 독초로 취급했다고 함. 그래서 멀리해 오다 향신료 가격이 오르면서 점차 고추로 눈을 돌리게 됨. 18세기 들어 김치나 젓갈의 맛이 변하는 것을 방지하고 냄새를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되면서 비로소 매운맛의 재료로 자리잡음. 그 뒤 고추를 고초라 불렀는데, 이는 후추같이 매운 맛을 내는 식물이라 하여 붙인 이름. 이런 과정을 거쳐 고추의 매운맛이 서민들 밥상에 정착하게된 것은 불과 19세기 초반이었다. 한국 요리가 맵다는 고정관념도 실제로는 2백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 커피와 와인은 인류 역사를 이끈 쌍두마차다. 기독교 문화가 뿌리를 내린 곳이라면 어디서나 포도농장을 볼 수 있었던 반면,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곳에서는 어디서나 커피향이 가득했다. 기독교에서는 와인을 하느님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멋진 선물로 여김. 심지어 와인은 예수이 피를 상징하기도 함.
반면 이슬람에서는 인간을 인사불성으로 만드는 와인을 혐오. 이성과 절제를 추구하는 이슬람들은 정신을 맑게 해 주는 커피를 애호했음. 커피는 이슬람에게 종교나 다름 없었다. 이는 가브리엘 대천사가 마호메트에게 전해준 음료였기 때문이다. 이슬람 사원에서만 마시던 커피는 11세기가 되자 일반대중에게가지 널리 퍼짐. 이렇게 커피가 음료로 발전한 곳이 아라비아 지역이다.

- 카페에서 제일 무난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은 단연 아메리카노다. 아메리카노는 1773년 발생한 보스턴 차사건과 관련이 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 시절 당시 미국인들은 차를 즐겨 마셨는데, 영국이 수입 차에 상당한 세금을 부과. 이에 반발한 미국인들은 수입차 불매운동을 하며, 대체음료로 커피를 선택하게 됨.
하지만 이들은 홍차를 마시던 버릇 때문에 커피도 홍차와 비슷하게 만들어 마심. 진한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묽게 만들면 색깔도 홍차와 비슷해지고 맛도 차와 가까워짐. 그렇게 해서 미국에서는 차 대신 연한 커피, 곧 아메리카노가 유행. 커피는 각성작용이 강해 사람을 일시적으로 활력있게 만든다. 특히 업무성과 향상에도 도움을 주는 특성 덕분에 미국에 어울리는 문화로 정착.

- 우리나라에는 감자가 1824년 만주에서 처음 전해졌다는 설과 1832년 영국 상선에 의해 들어왔다는 설이 있다. 우리의 가난한 시절을 함께 한 감자가 한국 땅에 발을 들인지는 불과 180년밖에 안 되었다.
감자는 우리나라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해낸 고마운 작물. 특히 강원도가 감자로 유명한데, 이는 1920년대초 강원도 회양군 난곡면에서 농업연구를 하던 독일인 매그린이 개발한 품종인 난곡1호-5호가 1930년대 강원도에서 대규모로 재배된 데에서 비롯됨.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강원도에는 화전민이 약 35만명 정도 살았는데 이는 도 인구의 약 25%였다. 강원도의 기후조건이 감자재배에 적합하고, 감자가 다른 작물에 비해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많았기 때문에 벼농사가 어려웠던 이 지역에서는 화전민을 중심으로 감자가 주식으로 재배되었음.

- 콩은 우리 한민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궁합작물로 오랫동안 한반도에 부족했던 단백질과 지방을 책임져 왔다. 오늘날 농학에서는 코의 한 종류인 대두의 원산지를 한반도와 만주남부로 보고 있으며, 약 5천년 전에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함. 고조선에서는 신석기 시대부터 밭농사를 지었는데, 북한의 회령 오동 고조선 유적지에서는 기원전 1300년경의 청동기 유물과 함께 콩, 팥, 기장이 나왔다. 실제로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임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조사가 있었다. 1920년대 미국은 세계 식량종자 확보를 위해 세계각지의 야생작물 채취에 나섬. 그들은 한반도에서 3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전 세계 야생콩 종자의 절반이 넘는 무려 3379종의 야생콩을 채취. 식물의 원산지는 변이종의 다양성을 기준으로 추정하는데,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콩의 변이종이 발견된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야생콩이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되어 한반도가 콩의 원산지임을 실증적으로 증명했다.

- 콩 유전자로 콩 종자 패권을 취한 미국
우리나라와 중국은 60년대만 해도 세계 콩 생산국 1,2위를 다투었지만 지금은 미국과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콩 생산국 세계 1,2,3위를 차지하고 우리나라와 중국은 대표적 콩수입국으로 전락.
현재 미국에서 생산하는 대두의 90%는 아시아에서 채집한 종자 35가지를 개량한 것이며, 이중 6가지 품종은 한반도에서 채집한 것. 미국은 1901년부터 1976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5496종의 재래종콩을 수집해갔으며 이 가운데 3200여종의 콩을 일리노이 대학에 보존. 이와 별도로 미국 농무부는 47년가지 1만개의 콩에 대한 유전자형을 우리나라에서 수집해갔는데,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수집한 콩 종자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수집한 콩이 74%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다.
강낭콩은 콩과 작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미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나머지 콩과식물은 아시아와 유럽이 원산지. 이 가운데 비둘기콩은 인도, 녹두는 인도중부, 렌즈콩과 완두콩, 향완두콩, 병아리콩은 남유럽과 서아시아, 캅사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프로폴리스는 신비의 영약이다. 프로폴리스는 꿀벌이 나무의 수액, 꽃의 암수술에서 채취한 화분과 벌 자신의 분비물을 이용하여 만든 천연의 항균, 항산화물질로 벌집의 무균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질. 프로폴리스는 그리스어로 앞을 뜻하는 프로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에서 유래.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높은 내부온도와 수만 마리의 벌들이 함께 모여사는 벌집이 외부오염으로부터 안전하게 유지되는 이유가 바로 프로폴리스의 뛰어난 항균능력 때문.
프로폴리스에는 항산화 작용과 노화방지, 면역력강화 작용을 하는 성분과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인체의 면역력을 키우고, 항바이러스, 항산화, 항균 기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로마병사들은 전쟁에 출정할 때 꼭 프로폴리스를 휴대하여 전투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 코란에는 시체해부와 소독에 프로폴리스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이집트 미라는 프로폴리스로 도포되어 있었다.

- 19세기 나폴리를 중심으로 피자가 발전한데는 당시 이 지역을 통치했던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페르디난도 1세와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의 역할이 컸다. 왕비는 입맛이 소박해 서민음식인 피자를 좋아했다. 궁궐에서 왕비가 피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귀족이나 일반 백성들에게도 인기가 높아졌다. 집에 피자오븐을 직접 들여놓는 귀족들이 생겨남.
그 뒤 피자가 이탈리아 국민음식이 되는 데는 한 상징적 사건이 있었다. 1889년 나폴리를 방문한 사부아 왕가의 움베르토 왕과 마르게리타 왕비는 이탈리아 요리를 맛보고 싶어했다. 그래스 이들에게 바칠 특별한 피자가 준비되었다. 토마토아 모차렐라, 바질을 얹어 초록, 하양, 빨강으로 된 이탈리아국기를 상징하는 피자를 만들었다. 그 뒤 왕비의 이름을 따서 이 피자를 마르게리타 피자라 부름. 이탈리아 통일기운이 높아지던 시대의 흐름과도 절묘하게 맞았던 이 피자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피자가 됨.

- 효모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끓는다는 뜻. 이는 발효중 이산화탄소가 생겨 거품이 생기는 것에서 비롯됨. 효모는 대부분 토양 속에 살지 않고 꽃의 꿀샘이나 과실표면과 같은 당 농도가 높은 곳에 살고 있으며 당을 발효시켜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를 생산하는 능력을 갖춘 것이 많음. 이 성질 덕에 맥주제조나 빵의 발표에 사용됨. 효소의 어머니라는 뜻에서 어미 모자를 써서 효모라고 하며 이 효모속에 효소가 들어 있다.
이에 비해 효소는 생물체 내의 촉매를 말한다. 생명체가 아니므로 효소는 효모와 같은 증식을 하지 않는 반면 화학반응을 일으켜 촉매작용을 한다. 우리 인체를 포함한 생물체의 몸속에서 생리활성을 촉진하는 생명의 촉매.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 효소의 기본작용은 몸속 음식물을 소화시켜 영양분으로 만들어 신진대사를 돕는다.
누룩은 술을 만드는 효소를 갖는 곰팡이(효모)를 곡류에 번식시킨 것. 우리 선조들은 보리 썩힌 것을 누룩이라고 하고 곡식의 싹을 틔운 것을 맥아, 싹을 좀 길게 키운 것을 엿기름이라고 했다.

- 과일즙의 당분이 발효, 분해되어 술이 만들어진다. 1키로그램의 당이 발효가 되면 약 0.55리터의 에탄올고 300리터의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짐. 곧 과일이 갖고 있는 당의 절반 정도가 알콜로 변하는 것. 결국은 과일즙의 당 농도를 변화시키면, 원하는 알콜 도수의 와인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알콜도수가 높은 아마로네 와인이나 아이스와인은 제조방법과 시기가 다름.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특산물인 아마로네 와인은 포도를 수확후 선반 등에 펼쳐 놓고 이듬해 1-2월까지 건조시킨다. 이렇게 건포도처럼 수분이 빠져나간 포도는 당도가 농축되며 무게도 수확직후에서 약 50%가 줄어든다.
반면 아이스와인은 늦게까지 수확을 미루어 이듬해 2월경 포도알갱이가 반 건조 동결되어 당분이 농축된 상태의 포도를 따서 언 상태로 압착해 포도주를 만든다. 아이스와인이 비싼 이유는 보통 와인 한 병을 만드는 데는 1.5송이의 포도가 필요하다면 아이스와인의 경우 자연동결괸 10송이의 포도가 필요하기 때문. 아이스와인은 도수가 높지 않은 대신 맛이 달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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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세계사

역사 2025. 2. 27. 06:56

- 원래 빵이란 말은 포르투갈어 파오에서 유래. 15세기 이후 포르투갈 상선이 동아시아에 자주 나타났다. 카톨릭 예수회 신부였던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는 1549년 포르투갈 상선을 타고 일본 규슈의 가고시마에 도착. 이후 일본열도에 카톨릭이 전해졌고, 미사때마다 포르투갈어 파오가 성찬과정에서 말해짐. 하지만 일본인들은 빵을 파오라 부르면서도 한자로는 증병, 혹은 맥병이라고 적음. 1912년이 되어서야 일본에서도 비로소 빵이란 말이 보통명사로 쓰였고, 한국에도 이 말이 들어오게 됨.

- 낙타를 이용하여 사막을 통과하면서 오아시스에 형성된 마을에 상품을 판매하던 서아시아 대상인들이 젖 대신에 치즈를 만들어서 이동식량으로 사용하면서 치즈는 전세계로 퍼져나감. 그러니 치즈는 서아시아에서 발명되어 그리스로 전해진 셈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책 동물의 역사에서 액체의 젖은 오로스라 부르며, 딱딱한 젖은 타이로스라 부른다고 적음. 이 타이로스가 바로 치즈다. 
고대 로마에서는 치즈를 카세우스라 불렀다. 남자라는 뜻도 갖고 있는 이 단어는 주로 남자들이 치즈를 만들었기 때문에 생겨난 말. 이것이 영어로 옮겨지며 카세로 변했고, 다시 치세와 치즈로 바뀜

- 수확한 밀은 쌀과 달리 밥을 지을 수 없다. 쌀에 비해 밀은 딱딱한 겉껍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속의 알갱이는 너무 부드러워 쌀알처럼 깎아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밀을 그 자체로 잘게 부순 다음 고운 채로 여러번 걸러서 껍질을 제거하고 밀가루를 얻는 방법을 써야 함. 예전에는 당연히 갈돌이나 절구 혹은 맷돌이 있어야 밀가루를 만들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이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었고, 서아시아인들과 유럽인들은 빵을 만들었다.

- 국수때문에 생겨난 빠른 젓가락
국수가 북송과 남송에서 대대적 인기를 누리면서 중국인들의 식사도구도 젓가락 하나로 변함. 고대중국인들은 오늘날 우리와 마찬가지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했음. 그런데 국수가 인기를 누리면서 젓가락 위주로 식사를 하게 됨. 중국어로 젓가락은 쿠아이쯔라고 부름. 원래 빨리라는 의미를 지닌 쿠아이에 대나무를 뜻하는 죽이 붙었다. 곧 대나무로 만든 젓가락인데 음식을 빨리 먹을 수 있는 도구라는 뜻이 쿠아이쯔에 담겨 있음. 북송과 남송의 도읍지에 있던 식당에서 국수가 일종의 패스트푸드로 판매되었기 때문. 가게에서는 손님이 가능한 빨리 먹도록 하기 위해서 값싼 대나무로 젓가락을 만들었고 지금도 중국인들은 쿠아이쯔로 국수 말고도 각종 음식을 먹는다.

- 소시지란 말은 고대 로마의 말은 라틴어의 살수스에서 유래. 그 뜻은 소금에 절인다는 의미, 이 말이 고대 북부 프랑스로 옮겨져서 소싯세가 되었고, 영어로 소시지가 됨. 그 어원이나 만드는 방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시지는 고기를 소금에 절여서 오랫동안 보관하는 방법에서 생겨난 음식임.
햄이나 베이컨도 소시지와 비슷. 햄은 원래 돼지의 넓적다리 살을 소금에 절인 후 연기에 훈제한 식품. 이에 비해 베이컨은 돼지의 옆구리 살로 햄을 만든 다음 그것을 말려서 얇게 썬 식품. 모두 육식을 했던 유목민이나 목축민이 개발한 것. 
비록 모양과 맛은 약간씩 다르지만, 세계 각 곳의 사람들은 소시지와 비슷한 음식을 오래전부터 먹어왔다. 우리나라 순대도 일종의 소시지. 다만 오늘날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아 전 세계에 퍼져나간 것은 서유럽 사람들이 즐겨 먹던 소시지다.

- 특별한 날에 많이 잡은 고기는 한꺼번에 먹기보다 오랫동안 저장하여 두고두고 먹는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고기를 소금에 절이든지, 연기로 굽든지, 겨울에 야외에 두고 말리든지 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특히 가축을 잡아도 제대로 살코기를 먹기 어려웠던 하층민들은 버려진 가축의 골, 혀, 귀, 염통, 콩팥, 코, 창자, 피 등의 부산물을 구해서 이것을 잘게 썰어 소금에 버무린 다음, 창자 속에 넣고 말리거나 훈제하는 방법을 개발. 소시지는 가난한 사람들이 동물성 단백질을 먹기 위해 발명한 음식. 이런 발명은 인류가 사회를 이루어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발달과정이다.

- 로마제국이 돗어로 갈라져 쇠락할 무렵, 이웃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강력한 이슬람 제국이 일어섰다. 마호네트라는 선지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지역뿐 아니라 지중해 남쪽과 에스파냐, 심지어 동로마 제국까지 쳐들어옴.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이슬람 제국에 붙잡혀 감옥에 갇히는 굴욕적 사건까지 일어남. 다급해진 교황 루르비누스 2세는 이슬람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을 되찾자고 호소하며 주변 왕국에 군대를 요청. 유럽의 여러 왕국들은 다같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군대를 모아서 이슬람 제국으로 쳐들어감.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전쟁은 예루살렘 탈환과는 전혀 관계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됨. 약 여덟번에 걸친 원정과정에서 서유럽 십자군은 수많은 민족을 학살하고 약탈을 일삼더니, 심지어 비잔티움 수도인 콘스탄티노플과 그리스도교를 공격하기에 이름. 애초에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국가들은 전쟁으로 얻게 될 새로운 영토와 경제적 이익이 목적이었기 때문.
결국 예루살렘 탈환에는 실패했지만, 이 전쟁으로 서유럽은 이슬람의 앞선 과학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었던 이탈리아는 무역이 발달하게 됨. 그 결과 이탈리아는 훗날 르네상스의 주역이 되었다.

- 인도에서 커리소스의 재료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향신료는 커리나무라고 불리는 쿠라야 코엔니지라는 나무의 잎이다. 인도가 원산지인 만큼 남인도와 스리랑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 때 이 잎을 곱게 간 가루를 반드시 넣는다. 커리 잎은 말리면 향기가 적어지기 때문에 보통 생잎 그대로 식용유에 살짝 볶아서 가루로 만듬. 생강과 비슷한 강황도 커리소스의 중요한 재료임. 이것들은 주로 남아시아나 동남아 같은 열대지역에서 자람. 인도에서는 이 재료를 말린 뒤 절구에 빻아 커리소스로 사용. 이외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고수라고 불리는 코리앤더의 열매를 말려서 가루낸 것, 후춧가루, 계피가루, 육두구, 미나리과에 속하는 식물인 커민과 딜의 씨를 가루낸 것 등이 모두 커리소스의 재료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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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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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과 화해하기

etc 2025. 2. 26. 07:07

- 후각이나 미각을 상실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단체 다섯번째 감각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후각상실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43%가 우울증을 경험했고, 92%는 음식과 술을 식별하는 능력이 감소. 후각상실증은 영양실조를 초래할 수 있으며, 체중감소나 증가의 위험성도 있다. 후각상실증 때문에 먹는 즐거움의 상당부분을 잃어버리고 나면, 먹는 일 자체에서 흥미를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하기 때문. 심각한 식중독의 위험도 있다. 후각상실증을 앓는 사람들은 상하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식별할 수 없기 때문.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능력은 심미적 이득뿐 아니라 생리적 필요이기도 함. 맛있는 냄새를 맡는 후각이 있을 때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먹어야 할 필요를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즐겁게 추구할 수 있다.

- 우리는 장바구니에 담긴 것들로 그 사람을 판단함. 구입한 음식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영수증은 일종의 열쇠구멍이다. 열쇠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사치스럽게 사는지, 어떤 성격인지 엿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내 장바구니를 채우기 시작했다. 내 장바구니가 병적 허영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스스로도 놀랐다. 우선 하리보 젤리와 탐폰을 재빨리 바구니 바닥에 두고, 그 위에 각종 허브와 신선한 생선, 값비싼 초콜릿을 놓는다. 나의 장바구니는 말한다. "나는 제구실을 다하는 어른입니다. 나는 음식을 잘하고, 따라서 인생도 잘 살고 있습니다." 나는 남들에게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 정상적인 식습관이란 배고플 때 식탁에 가서 만족할 때까지 먹는 것. 당신이 원하는 음식을 선택해서 정말 충분히 배가 부를 때까지 먹을 수 있으리라. 이제 그만 먹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만 먹는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식습관이라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음식을 선택하기 전에 잠깐 생각해 보는 것이지, 지나치게 경계하고 제한을 둬서 즐길 수 있는 음식을 놓치는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식습관이란 가끔은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지루하다는 이유만으로도, 혹은 그냥 기분이 좋다는 이유만으로도 음식을 먹는 것. 정상적인 식습관이라 대체로 하루에 세끼, 혹은 네끼, 혹은 다섯끼를 먹는 것이며, 혹은 끼니 중간에 계속 우적우적 먹는 것일 수도 있다. 정상적인 식습관이라 내 일 다시 먹을 수 있음을 알기에 접시 위에 있는 쿠키를 다 먹지 않고 몇 개 남겨두거나 너무 맛있기 때문에 지금 더 먹는 것이다. 정상적인 식습관이란 때때로 과식을 하는 것이며, 배가 불러서 거북함을 느끼는 것이다. 때때로 덜 먹으면서 더 먹었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는 것이 정상적인 식습관이다. 정상적인 식습관이란 먹는 데서 뭔가 실수를 저질렀어도 당신 몸이 그 실수를 만회하리라고 믿는 것이다. 정상적인 식습관이란 당신의 시간과 관심을 어느 정도 잡아먹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인생에서 하나뿐인 중요한 영역으로서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엘린 새터, 영양학자)

- 어떤 사람들은 기억과 음식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이유는 아마도 맛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과 기억이 만들어지는 영역, 즉 해막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으로 추측됨. 마찬가지로 냄새가 추억을 환기하는 이유도 후각신경의 위치가 해마, 편도체와 관계있어서일지 모른다. 후각신경, 해마, 편도체는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 즉 뇌를 다치면 후각까지 잃을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싼 사나운 세상을 고려할 때 뇌가 맛과 기억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생각에는 일리가 있다. 자연계는 위험으로 가득하고, 독이 있는 나뭇잎과 벌레 하나까지도 수렵과 채집으로 겨우 생존하던 선조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새로운 메뉴를 시도할 때 무릅써야 하는 위험이 너무나 크다면 음식을 기억하는 능력은 잠재적으로 생명을 보존하는 기술이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종류의 생존기술에 의지해서 삶을 유지하지 않지만, 음식을 기억하는 능력은 지금도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다. 

- 식단의 계층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진짜 음식에 대한 절대 기준은 일반 대중과 엘리트 계층을 가르던 시대까지 한참 거슬러 올라감.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힌빵은 부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 배가 부르고 건강한 갈색빵을 먹었다. 오늘날에는 갈색빵이 수준 높은 식생활을 암시하는 음식이 됨. 흰 빵은 값이 싸고 흔한탓에 평판이 곤두박질쳤다. 설탕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에서 값비싸고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귀한 사치품이었으며 지배계층의 경탄을 자아냈다. 그런데 이제는 설탕이 지나치게 들어간 가공음료, 사탕, 요리가 가난한 사람들의 나쁜 식습관으로 여겨지고, 부유한 사람들은 점점 더 설탕을 줄이거나 아예 넣지 않는 식단으로 향한다. 특히 눈에 띄는 경계선은 천연 설탕의 사용이다. 천연설탕은 초미량의 영양소를 추가하기 위해 값비산 천연꿀을 사용하는데, 이런 비용의 극히 일부만 투자하면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으로도 거의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천연설탕의 사용이 건강과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1824년 캐드베리가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가 아는 초콜릿은 세상에 없었다. 당시에 초콜릿이라고 하면 마시는 초콜릿을 의미했음. 물론 그 옛날 중미 초콜라틀과는 전혀 달랐다. 훗날 스페인 정복자들은 초콜라틀에서 영감을 받아 유럽에 초콜릿 맛을 소개했다. 실제로 초콜릿은 17세기, 무려 18세기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음식이어서 영국과 네덜란드 선원들은 스페인 선박에 실린 이 귀한 화물을 배밖으로 던져버린 적도 있었다. 그들은 카카오 콩을 양의 똥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별미는 곧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런던의 초콜릿 상점들은 본래 마야인들이 마시던 진하고 더 쓰고 향신료 곁들인 초콜릿 음료를 영국인 입맛에 맞게 설탕을 듬뿍 넣어 더 달콤하게 하고 우유를 넣어 영양가를 높은 다음 판매했다.
그러나 초기의 마시는 초콜릿이 가지는 문제점은 기름기였다. 카카오 열매를 통째로 갈아낸 걸쭉한 코코아 술로 초콜릿 음료를 만든 결과. 카카오를 으깬 반죽에는 초콜릿의 핵심성분인 검은색 카카오 알갱이뿐 아니라 고지방의 코코아 버터도 들었는데, 이것 때문에 음료에 기름기가 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조업자는 알갱이와 기름을 분리해 내어 코코아 가루를 얻는 방법을 찾음. 그리고 이 정제과정 덕에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딱딱한 초콜릿바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브리스톨의 J.S 프라이앤드선스라는 회사는 코코아 제조업자들이 걸러낸 코코아 버터를 더 많이 섞어서 초콜릿바를 완성. 코코아 알갱이가 함유된 코코아 버터에 설탕을 조금 넣고 실온에 둠으로써 딱딱한 초콜릿을 만들었다. 2년뒤 1848년에는 캐드버리가 J.S.프라이앤선스의 방식을 따라 새로운 초콜릿바를 만들었다.

- 마우스로 클릭 한번만 하거나 슈퍼마켓 진열대를 아주 건성으로 훑기만 해도 세계의 모든 음식을 구할 수 있게 된 오늘날의 우리는 미니멀리즘이 미덕이라는 의식을 키우고 있다. 윤리적인 음식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절제, 느림, 마음챙김, 그리고 거의 수도승 같은 금욕주의다. 적게 먹는 것이 좋은 것이며, 대량생산되 초콜릿은 이 도덕적 음식운동이 비난하는 모든 것을 상징하는, 지나치게 달콤하고 타락한 음식이다. 그러나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초콜릿은 아직 식도락가에게 두려운 대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영국에서 금주운동이 한창 무르익고, 많은 종교공동체들이 알콜의 비도덕적인 힘에 맞서 힘을 모으던 시기에 초콜릿은 일종의 구세주였다.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면 천벌을 받는다고 생각했고, 술보다는 차라리 자극성있는 홍차와 커피가 더 안전한 음식이라고 여기던 당시 초콜릿은 영양가 많고 실용적 음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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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제국

etc 2025. 2. 25. 06:43

- 천일염은 바닷물을 말려 얻는 소금이다. 천일염은 계절고, 소금이 결정되는 그날의 날씨, 소금의 결정시간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섭씨 25도 전후의 볕좋은 날에 바람이 살랑살랑 불 때를 맞추어 아침나절 함수를 염판에 넣고 그날 안에 거두는 천일염이 가장 맛있다. 한반도에서는 이런 조건의 날씨를 보이는 날이 한 해에 얼마 되지 않으며, 따라서 맛있는 천일염은 매우 귀하다.
이 최상의 천일염 이외의 소금에는 쓴맛의 염화마그네슘이 많이 들어있다. 염화마그네슘은 간수의 주요 성분이다. 그래서 한국의 천일염은 3년 또는 5년씩 저장을 하여 이 염화마그네슘을 제거해야만 음식에 쓸 수 있다. 프랑스 게랑드 천일염을 세계명품이라 하는 것은 그 지역의 갯벌이 좋아서라기보다 그 지역의 날씨가 좋은 천일염을 낼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
- 바닷물을 끓여 만든 자염은 천일염보다 미네랄이 많으면서도 쓴맛이 받지 않는다. 유리아미노산이 많기 때문. 바닷물을 개흙에서 농축하면서 그 개흙에 쌓여 있는 각종 생물의 시체들이 묻어 들어간 결과다. 유리아미노산은 구수한 맛을 내는데, 자염에서 유리아미노산이 염화마그네슘의 쓴맛을 줄이는 것과 맛소금에서 화학조미료가 소금의 튀는 맛을 잡는 것 같은 이치. 그러니까, 자염은 쓴맛이 없는 소금이 아니라 쓴맛이 느껴지지 않는 소금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소금이란 소금 그 자체의 맛이 좋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안됨, 그런 식의 맛있는 소금은 인공으로 얼마든 제조가능함. 소금의 노릇은, 음식재료에 숨어 있는 맛을 끌어내는 게 핵심이다. 잡다한 맛이 없으면서 짠맛이 부드러운 소금을 가장 좋은 소금이라 할 수 있다.

- 고추를 말리는 방법은 두가지. 햇볕에 말리는 것과 열풍건조기에 말리는 것이다. 앞의 방법으로 만들어진 고추를 태양초, 뒤의 방법으로 만든 고추를 화건초라고 함. 태양초에는 화건초에서 맡을 수 없는 발효향이 난다. 약간의 시큼한 향인데, 잘 말린 태양초에서는 고추의 달콤한 향내와 이 발효향이 적절히 어우러져 냄새만으로 입 안에 침이 고임.
태양초 식별법은 꼭지가 누렇게 바랜 것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열풍건조기에서 대충 찌다가 비닐하우스에서 말려도 꼭지가 누렇게 된다. 시중에 파는 태양초는 대부분 이렇게 만들어짐. 가짜 태양초다. 심지어 꼭지의 탈색을 위해 물을 뿌리기도 하는데, 이렇게 말린 고추는 발효가 과하게 일어나거나 잡균이 붙어 발효향이라 할 수 없는, 다소 역한 시큼한 냄새를 풍기기도 함.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금물을 쓰기도 하므로 고추에서 짠맛이 나는지 확인할 필요도 있다.
화건초도 여러 질이 있다. 건조기에서 급작스럽게 말린 것은 맛이 없다. 향이 다 달아나기 때문. 저온에서 오랜시간 은근히 말린 것이 좋다. 이런 고추의 꼭지는 녹색을 많이 띤다.
고추 말리는 방법이 또 하나 있는데, 그늘에서 말리는 것. 이렇게 말린 고추를 음건초라고 하는데 태양초보다 맛이 좋다. 붉은 색이 맑고 고추 특유의 향이 많이 남. 귀한 것이라 구하기 어려움. 햇볕에 내놓아도 희아리가 나 버리는 게 다반사인데 그늘에서 말린다는 것은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비닐하우스의 반그늘에서 환기를 잘 조절하며 말린다면 음건초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 좋은 건고추를 고르는 요령
첫째, 고추를 손아귀에 꽉 쥐었다 폈을 때 10초 안에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
둘째, 고추 안쪽이 오돌토돌한 것
셋째, 윤기가 나는것
넷째, 씨가 붙어 있는 심(태좌)을 씹었을 때 매운맛과 단맛이 적절히 조화된 것
다섯째, 심의 색깔이 선명한 노란색인 것
여섯째, 씨가 많지 않은 것

- 화학조미료가 건강에 얼마나 좋지 않은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일은 식약청에서 알아서 할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화학조미료를 금지하지 않으니 먹어서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화학조미료의 가장 큰 해악은 식재료의 질을 숨길 수 있다는 것. 최하질의 재료이든 최고급의 재료이든 이 화학조미료 한 방이면 맛을 다 비슷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비싼 중멸에 장다시마로 제대로 맛을 낸 육수와 싸구려 대멸에 화학조미료 한 숟가락으로 맛을 낸 육수를 소비자들은 구별하지 못한다. 식당에서 싸구려 식자재로 맛을 내도 버티는 것은 다 화학조미료 때문이다. 그러니 좋은 음식을 먹자면 화학조미료부터 없애야 한다.
- 화학조미료는 그 자체로 맛이 있는 것은 아님. 식재료들 제각각의 맛을 뭉그러뜨리는 역할을 하는데, 툭툭 튀어나오는 맛들의 중간에 서서 조절을 한다. 이것저것 양념을 넣었는데 맛의 밸런스가 맞지 않아 고민일 때 화학조미료 한 숙가락이면 모두 해결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따라서 짜고 매운 맛을 음식의 중심에 두고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내는 한국음식에 화학조미료는 맛의 조절자로서 항상 유용할 수 있다. 그러니, 한국음식에서 화학조미료를 버리자면 짜고 맵고 강한 양념에서 벗어나야 함. 심심하고 순하게 먹으면 화학조미료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 멸치젓국은 아시아권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어장의 일종. 남아시아에서는 이 어장을 거의 모든 음식에 양념으로 사용. 한국의 멸치젓국은 활용도에서 아니상 여느 어장에 비해 모자람이 있다. 때깔과 향 때문. 아시아의 어장은 대체로 투명하며 좋은 것은 황금색을 띠지만 한국의 멸치젓국은 칙칙한 검정색. 아지사의 어장은 감칠맛이 가볍게 다가오지만 한국의 멸치젓국은 거칠고 두툼하다. 심지어 기름전내가 난다.
한국의 멸치젓국이 색깔과 맛에서 부족함이 있는 것은 원료의 문제일 수도 있음. 남방의 생선들에 비해 우리 연근해 멸치가 지방함량이 높은 탓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멸치젓국의 생산지를 확인하면 꼭 원료 탓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플라스틱이나 양철로 만든 통에 멸치젓이 담겨 있는데, 한여름의 땡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예사임. 뚜껑을 열면 기름이 산패하여 역한 냄새가 풍긴다. 이건 숙성이라 할 수 없으며 부패라고 보는 것이 맛다. 현재 멸치젓국 생산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아시아 다른 나라의 어장을 쓰는 것이 낫다.

- 양념은 간장과 설탕이 기본이다. 여기에 참기름, 마늘, 양파, 파 배, 사과 등이 첨가된다. 돼지갈비를 구우면 간장과 설탕이 불에 타며 내는 향이 제일 강하고 참기름 등의 양념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간장과 설탕이 불에 타면서 내는 향은 들척지근하면서 찝찌름하다. 간장의 발효향을 극대화하고 여기에 달콤한 향을 더한 것. 음식에 장류를 쓰는 한국인에게 이 강렬한 향은 식욕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돼지갈비 굽는 향을 돋우기 위해 이미 불기운의 맛을 갖고 있는 캐러멜 시럽을 넣은 일이 흔하다. 캐러멜 시럽은 돼지고기의 희멀그레한 살색을 숨기는 역할도 함. 설탕에 물엿, 캐러멜 시럽까지 더하면 돼지갈비는 번질번질해지고 불판에 찐득한 잔여물을 남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는데, 이 정도이면 과도한 단맛과 밸런스를 이루기 위해 간이 세지고, 결국 돼지강정 수준의 돼지갈비를 먹게 된다.
과다하게 양념한 돼지갈비에서는 돼지고기 맛을 느낄 수 없다.
- 외식업체에서 과다한 양념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효과를 얻기 위함. 질 떨어지는 돼지고기일수록 양념은 강해지고 숙성시간은 길어진다. 신선하고 잡내 없는 돼지고긴는 흐릿한 간장에 조금의 설탕과 파, 마늘, 참기름, 과일즙 정도 양념을 하여 두어 시간 재워 구워도 맛있다.

- 한우고기의 등급은 근내 지방도에 따라 결정됨. 한우고기 중 최상급은 1등급 투뿔이다 이 투뿔 한우고기를 맛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순전히 근내 지방(마블링) 덕. 붉은 고기 사이에 촘촘히 박힌 지방은 불기운이 닿으면 순식간에 녹아 고리전체를 감싸 고소한 맛을 더하며, 녹지 않고 남은 지방은 고리를 씹을 때 부드러움을 더해줌. 부드럽고 고소하기로 한우 1등급 투뿔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 마블링 고기에 대한 강한 기호도는 일본인들의 식습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임. 그들은 음식을 이로 씹는 행위를 강하게 하지 않음. 그들이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 씹는다기보다 오물거린다는 표현이 맞다. 그에 반해 우리 민족은 치아 사이에 음식물을 두고 강하게 오래 씹는 버릇이 있다. 입에 살살녹는 고기가 맛있다는 생각은 일본인들의 쇠고기 기호를 무턱대고 쫓아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지방이 불기운에 녹아내리면서 내는 고소함이 1등급 투뿔의 매력이라고 하지만, 이 과다한 지방이 오히려 붉으니 고기의 감칠맛을 죽이고 있다. 지방 하나 없는 우둔살이나 사태를 생으로 씹을 때 맛볼 수 있는 쇠고기 특유의 감칠맛은 1등급 투뿔의 마블링 쇠고기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
붉은 고기의 감칠맛은 2주정도 숙성되었을 때 더 깊어짐. 그러나 마블링이 잘 되어 있는 부위는 숙성을 시키면 미끄덩거리면서 식감이 떨어지고 지방이 타면서 내는 고소함의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잘 숙성된 붉은 고기의 깊은 감칠맛을 맛보게 되면 오랜 육식문화를 유지해온 서구인들이 마블링에 연연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될 것.
마블링 쇠고기에 대한 잘못된 신화가 한우고기의 진정한 매력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 설렁탕은 입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에 구수함이 섞이고 뒤에는 개운함이 있어야 한다. 좋은 설렁탕은 단맛도 있다.
설렁탕의 맛은 어떤 소를 쓰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짐. 한우 설렁탕이 맛있다고 하는 것은 한우고기에 올레인산이 많기 때문. 올레인산은 감칠맛을 낸다. 풀 사료만 먹인 수입소의 고기와 뼈로는 맛있는 설렁탕을 얻을 수 없다. 곡물사료를 먹인 수입소의 경우 웬만큼 맛을 낸다. 곡물사료가 올레인산 함량을 늘리기 때문
재료 다음으로 끓여내는 기술이 중요하다. 설렁탕 제대로 한다는 식당들은 나름대로 노하우 하나씩은 갖고 있음. 뼈와 고기의 끓여내는 시간을 달리해 뼈국물을 나누고, 고기국물을 더하는 기술에 따라 맛 차이가 난다. 특히 뼈와 고기 외에 쇠기름이 중요한데, 마지막에 쇠기름을 넣어 고소한 맛을 더함. 쇠기름으로는 콩팥 옆의 두태를 쓴다. 한우를 썼는데도 맹탕의 국물맛이 나는 것은 고기양을 적게 썼기 때문이며, 뼈비린내가 풍기는 것은 국물을 진하게 보이려고 쇠뼈를 너무 곤 결과이다.
설렁탕에 나오는 국수는 없애야 한다. 국수의 밀가루냄새로 국물맛이 다치기 때문. 설렁탕에 국수가 들어가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흔해지면서부터. 못 먹고 살 때 양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지 맛을 더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꼭 국수를 말아 먹겠다면 주방에서부터 탕에 넣지 말고 따로 내는 것이 맞다.

- 고추장은 한식식재료 중 최강군이다. 고추장 한 숟가락이면 한 드럼의 육개장 맛도 변하게 할 정도임. 여리디여린 나물들을 조물조물 무쳐놓고 왜 이 강력한 향의 고추장으로 비벼 마무리를 하는가. 밥이 더해져 나물만으로는 간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나물이란 원래 밥과 함께 먹을 수 있게끔 조리되는 것이니 비빔을 해도 간에 부족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 정상.
옛날에는 가정집에서 이렇게 익힌 나물로 비빔밥을 해 먹을 때 고추장을 더하는 일이 없었다. 추측하건대, 비빔밥이 식당에서 팔리면서 고추장이 더해진 것으로 보임. 나물들 각각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니 고추장 맛으로 맛을 얼버무리기 위한 술책으로 밖에 안 보인다.
비빔밥의 나물들을 제대로 조리해 내자면 보통의 공력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 공력을 고추장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 2000년대 중반 외식업계에 국수바람이 크게 일었다. 식재료 원가가 낮아 싸게 팔아도 수지를 맞출 수 있다는 장점이 주목을 받은 결과. 그러다 식품공장에서 생산하는 혼합조미료나 저질의 멸치를 사다 국물을 내어 잔치국수 맛을 떨어쓰리는 노릇만 하고 있다. 혼합조미료로 낸 국물은 들척지근한 맛이 강하고 저질의 멸치로 낸 국물은 비리고 쓰다.
대멸을 쓰려면 멸치의 머리와 내장은 버려야 함. 중멸은 그냥 써도 된다. 오래되어 눅눅한 멸치는 팬에 덖으면 잡내가 달아나지만 좋은 멸치는 그럴 필요가 없다. 멸치는 강한 불에 오래 끓이면 쓴맛이 많아진다. 찬물에 하룻밤 우려냈다가 살짝 끓여 비린내만 날리면 고급스러운 국물이 만들어짐. 대멸을 불에 구워 끓이면 강하고 복잡한 맛의 국물이 만들어짐. 디포리를 섞어 쓰기도 하는데, 디포리가 쌀 대는 넉넉히 넣어 풍성한 맛을 낼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멸치와 값이 비슷하면 이득이 없다. 디포리는 멸치에 비해 맛이 약하기 때문.
기계소면이나 중면은 제조공장의 특징이 없이 다 비슷하다. 소금이나 전분을 첨가하여 쫄깃함을 더하기도 하는데, 소금이 많이 든 것은 삶은 후에도 짜며 전분이 든 것은 부드러운 식감을 해칠 뿐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우리 땅에 남기고 간 수연소면이 식감에서 가장 좋다. 국수는 제조한 후 묵힌 것이 좋다. 그래야 생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는다.
국수를 삶을 대는 물의 온도변화가 없어야 한다. 따라서 큰 냄비에 물을 넉넉히 끓여서 국수를 넣고 난 다음에도 물 온도가 유지되게 해야 함. 물이 끓으면서 그 힘으로 국수가 저절로 휘돌아치게 하는 것이 좋다. 헹구는 물은 얼음처럼 차가워야 한다.
싼 가격의 잔치국수라고 함부로 맛을 내는 경향이 있다. 맛있는 잔치국수는 제대로 된 국물과 국수를 만들어 내자면, 돈이 많이 드는 음식이다.

- 평양냉면은 메일면과 육수의 조화를 중시하는 음식이고, 함흥냉면은 감자면과 고춧가루 양념의 조화를 중심으로 함. 함흥냉면을 평양냉명과 한 부류에 넣자면 일본 냉라면, 중국냉면, 인천쫄면, 부산밀면 등등도 다 평양냉면과 같은 부류에 넣어야 할 것이다. 또 평양냉면과 가장 유사한 음식으로 막국수를 들 수 있는데, 평양냉면을 이야기할 때 함흥냉면은 꼭 끼워 넣으면서 이상하게 막국수는 제외한다. 이런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음식은 안보고 냉면이라는 이름에만 집착하기 때문.
이렇게 분류해야 맞다.
* 메밀국수 : 평양냉면, 막국수, 소바, 진주냉면
* 감자국수 : 함흥냉면
* 밀국수 : 부산밀면
매사에 분별력이 없으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음식의 분류를 엉터리로 하면 그 음식맛의 중심을 찾을 수 없다.

- 요즘 떡은 공장에서 가공된 쌀가루로 만듬. 쌀가루의 입도는 높고 분포도는 좁다. 아주 고운 입자임. 공장에서는 쌀의 전분이 변성되지 않게 습식으로 분쇄한다고 하지만, 고운입도의 쌀가루를 짧은 시간에 다량으로 생산하다 보니 온도가 올라가고 전분에 손상이 가기 마련. 또 보관과 이동 중에도 손상이 있다. 이렇게 전분이 변성된 고운 쌀가루로 떡을 만들면, 백설기와 시루떡은 퍽퍽하고, 가래떡과 절편은 단단하며, 찹쌀떡은 뻐득뻐득해짐.
물에 불린 쌀을 절구 같은 재래도구로 빻아 떡을 빚으면 떡에서 쌀알이 씹힌다. 아무리 곱게 빻아도 입자가 고르지 않고 거칠기 때문. 이 엉성한 떡조직이 오히려 떡을 부드럽게 함. 또 전분의 변성이 없어 질긴 느낌이 엇다. 가래떡을 예로 들자면, 공장 쌀가루떡은 질긴 쫀득함이고, 절구떡은 부드럽게 입에서 스스로 녹는 쫄깃함이다.

- 콩나물무침의 맛요소는 줄기의 아삭 씹히는 맛, 콩대가리의 고소한 맛, 짭짜름한 소금 간 뒤에 우러나오는 달콤한 맛이라 할 수 있다. 이 맛을 내기 위해서는 잘 데쳐야 한다. 데치기, 이게 콩나물 요리의 알파이며 오메가다. 콩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콩나물은 찬물에 넣고 불을 올린 후 뚜껑을 열지 말아야 한다고들 배웠으나, 해보면 팔팔 끓는 물에 소금 조금 넣고 뚜껑을 연 채로 데치는 것이 낫다. 비린내를 다 잡자면 데칠 때 마늘을 조금 넣으면 되는데, 이러면 단맛가지 더해짐.
그런데 온 정신을 집중해 콩나물을 데치고 몇 년 묵은 청장에 국산 참기름을 더해도, 맛에 예민한 사람들은 예저의 그 콩나물 맛이 나지 않는다고 타박한다. 콩은 예전 그 콩이라 해도 콩나물 생산방식이 바뀌어 맛이 달라진 것임.
옛날 집에서나 조그만 콩나물 공장에서는 콩나물시루 위로 물을 부으면 콩나물이 먹고 난 후 그 아래 물받이 통으로 내려온다. 이 물을 다시 콩나물에 부었다. 그런데 요즘 콩나물 공장에서는 콩나물 시루가 짝 깔려 있고 그 위로 안개 같은 물이 분사되는 자동기계가 왔다갔다 한다. 그러니까 새로운 물이 콩나물에 공급되는 것. 이런 물주기 방식에 따른 맛 차이는 의외로 크다. 콩나물이 자라면서 내놓는 물에 여러 영양과 맛 요소가 함유되어 있는 이유다.

- 배추김치의 맛의 핵심은 개운한 산미다. 배추의 조직이 반투명하게 살아 아삭하게 씹히면서 산뜻하게 신맛을 코로 올려야 제대로 된 배추김치다. 이런 배추김치를 만들기 위한 첫째 조건은 양념을 최소화하는 것. 조금의 젓갈, 조금의 고춧가루, 조금의 마늘, 조금의 무채, 조금의 ... 절임배추에 유산균이 잘 퍼져 맛있게 발효될 수 있을 정도의 양념이면 된다. 과다한 양념은 오히려 잡균들의 먹이로 작용해 쉬 멀러지고 잡내를 낼 뿐이다.
옛날 우리 배추김치들은 가벼운 양념에 물이 축축하게 있고 개운한 산미가 잘 살아 있었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니 양념을 충분히 넣지 못한 덕. 그러던 것이 80년대 후반을 넘기면서 양념범벅의 배추김치로 변해갔다. 살림이 나아지면서 김치에 양념을 잔뜩 넣어야 잘 사는 집 모양이 난다고 여긴 순진한 아낙네들의 마음이 투영된 결과로도 보이고, 궁중요리입네, 반가요리입테하고 텔레비전에 나와 갓 해서 먹어야 하는 보쌈김치 수준으로 온갖 양념을 범벅해 담그는 것을 자주 보여준 탓으로도 읽힌다.

- 고수의 약재명은 호유실, 빈대풀이다. 서양에서는 코리앤더라고함. 빈배를 뜻하는 그리스어 코리스와 좋은 향기아 나는 식물이름인 아니스를 합친 것. 약간의 비릿한 향이 있는데 이게 오히려 후각을 자극해 곁들이는 음식을 더 맛있게도 함. 중화권에서는 음식에 이 고수가 꼭 들어감. 한자로 향채라고 쓰고, 시앙차이라고 읽는다. 향기나는 풀이다.
한국인의 입맛은 보수적이다. 외래의 것이라고 하면 일단 거부감을 드러낸다. 5000년동안 한반도에 갇혀 살아오면서 고착화된 나쁜 습성이다. 또 고수가 애초 동남아 음식에 흔히 쓰는 채소로 잘못 알려지면서 그들 민족을 낮추어 보는 못된 눈이 이 채소에도 관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고수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고수가 외래에서 온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 고수는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서 재배하였던 푸성귀다. 특히 남도 시골을 다니다모변 이 고수를 겉절이로 내는 곳을 흔히 보게 된다. 한국이 산업화하면서 농촌에 있던 옛것들을 잊고 살다가 이제는 착각까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고수는 독특한 향을 내는 맛있는 푸성귀다. 고기 요리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한국음식에서 귀중한 맛 하나를 잃는 것이다.

- 국내 사과 품종은 거의 후지. 저장성이 좋기 때문. 후지는 알이 크고 단단하며 단맛이 강함. 최근에 나오는 새로운 품종들도 대부분 후지를 모체로 함. 특히 후지계열인 조생종 료카가 시장을 넓히고 있는데 다소 가벼운 후지의 맛을 낸다. 당분간 후지 계열의 사과를 이길 품종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과의 신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품종은 홍옥이다. 선명한 붉은 색과 짙은 향에서 어떤 품종도 따를 수 없다. 그러나 작고 신맛이 강하다는 이유로 인기가 시들해졌다.
요즘 사과는 싱겁다. 대부분 봉지를 씌워 재배하는 까닭. 봉지를 씌우면 옅은 붉은 색이 고루 번져 맛깔스럽게 보인다.이런 봉지사과는 신맛이 덜하고 당도가 높으며 조직감이 부드럽다. 봉지를 씌우지 않으면 조직은 단단해지고 향도 깊어진다. 그러나 붉은색이 너무 짙어 소비자들은 맛없다 여긴다. 봉지 씌우지 않은 사괴맛을 보고 나면 봉지사과는 싱겁다 할 것이다. 보기 좋은 것, 단맛 강한 것 좇다가 진정한 사과맛을 잊고 사는 것이다.

- 커피 맛의 중심은 쓴 맛. 강배전했을 때 쓴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쓴맛의 성분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신맛이 달아나기 때문. 단맛도 배전이 강할수록 강해지는데 이 역시 신맛이 줄어들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음. 그러니 배전을 강도를 높이면서 신맛까지 붙잡으면 신맛, 단맛, 쓴맛이 좀더 복잡하게 배합을 이룰 수 있음.
에스프레서는 커피가 갖고 있는 쓴맛을 극단에까지 이르게 함. 여기에 여러 부재료를 첨가하여 맛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커피 자체의 맛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핸드드립은 커피가 갖고 있는 맛을 가장 잘 배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분쇄된 커피의 성질에 따라 드립하는 방식을 달리하여야 하는데, 신맛을 잘 우려내어 단맛, 쓴맛과 어울리게 하는 것이 중요. 커피마다 똑같은 드립방식으로 내리면 안된다는 말이다.
커피가 뜨거울 때는 맛 성분의 활동이 심하여 신맛, 단맛, 쓴맛의 밸런스를 짐작하기 어려움. 커피가 식었을 때에야 그 커피의 맨얼굴을 대할 수 있다. 또 이때면 썩은 원두냄새, 커피의 탄내, 금속성의 속껍질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 프랜차이즈 업체의 커피가 강배전으로 쓴맛만 내는 것은 커피가 식었을 때에조차 그 잡내들을 숨기기 위한 것.
커피 맛이 다양하다고 해서 신비한 그 무엇이 있는 양 환상을 불어넣는 것은 장사꾼들의 술책이다. 커피에 대해 문화적 시각을 갖는 것은 좋으나 서구문화를 무조건 추종하는 식민지 근성이 가동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필 일이다.

- 요즘 춘장은 공장에서 만든다. 사자표가 가장 흔함. 본래 춘장은 2년 정도 발효해야 하나 요즘은 속성으로 낸다. 짧음 발효기간으로 색깔이 나지 않으니 캐러멜을 넣음. 맛을 더하기 위해 조미료를 첨가하기도 함. 기름도 바뀌었다. 동물성 기름이 몸에 나쁘다는 말이 번지면서 식물성 기름이 주로 쓰인다. 이런 사정들로 자장면의 맛은 흐리멍덩해지고 말았다.
춘장은 우리 된장과 큰 차이가 없는 음식. 춘장공장에서 쓰는 황국균을 된장공장에서도 쓴다. 우리 된장과 달리 콩 외에 밀이 들어가 단맛과 떫은 맛이 난다는 점이 차이인데, 이런 맛은 경상도와 강원도 지방의 막장과 비슷해서 우리 음식역사에서 전혀 색다른 것은 아니다. 중국음식의 자장면이 한국에서 크게 번창하여 한국화한 것이 전혀 엉뚱한 일이 아니다.
요즘 자장면은 너무 달다. 공장 춘장이 충분히 달게 나오는데도 주방에서 또 설탕을 첨가한다. 춘장의 큼큼한 발효향과 돼지기름의 고소한 맛을 단맛이 가리고 있는 것이다. 옛날 자장면은 없다.

- 인도 음식은 향신료 잔치다. 온갖 종류의 맛 요소들이 음식 안에서 요동친다. 대부분 음식 감상법은 이러한 여러 맛의 요소들을 하나씩 음미하고 그 맛 요소들이 얼마나 서로 잘 어울리는가를 따지는 것. 그러나 인도음식에는 이 맛요소들을 하나씩 음미하는 것이 의미가 엇다. 머스터드의 톡 쏘는 맛이 지나면 로즈마리의 화사한 향이 코끝을 감싸고 민트의 가벼움이 마무리를 하는 식의 감상법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갖가지의 맛과 향이 덩어리로 느껴질 뿐이다.
이는 김치 맛을 보면서 젓갈과 마늘, 고춧가루의 맛을 하나하나 따져 음미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재료로 들어간 젓갈, 마늘, 고춧가루 따위의 각각의 맛 요소들이 결합되어 김치라는 제3의 맛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유다. 인도 음식이 꼭 이렇다.

- 요즘 전통적 방식의 명란젓은 없다. 소금에 절이는 것이 아니라 청주와 다시마 달인 물 등을 섞은 침지액에 명란을 담갔다가 꺼낸다. 이런 명란젓은 입 안에 넣자 마자, 명란을 씹지 않아도, 감칠맛이 먼저 치고 올라온다. 겉에 바른 양념들의 맛이 너무 강한 탓이다. 명란의 본디 맛은 그 다음에 슬슬 기면서 올라오는데 그때에서야 비로소 입 안에 든 것이 명란젓임을 알 수 있다.
명란젓이 이렇게 바뀐 것은 일본의 영향이다. 애초에 명란젓은 한국의 음식이었으나 일본인들이 이를 좋아하여 자기식의 가공법을 만들어내고 이를 다시 한국에서 받아들인 것. 일본의 명란젓 가공공장에서 일했다는 것을 커다란 경력으로 내세우는 업체들이 있는데, 음식 사대주의로 읽혀 보기 좋지 않다.
현재 시판 명란젓의 가장 큰 문제는 때깔을 곱게 하기위해 아질산나트륨을 넣는다는 것. 햄, 소시지 등에 넣는 발색제의 일종. 이를 넣으면 숙성기간이 짧아지고 보존기가닝 늘어나 명란젓 가공업체 입장에서는 큰 이득이다. 그러나 명란젓의 본디 맛을 잃으면서 이럴 것인가는 고민해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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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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