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슬러에 따르면, 정부는 지출을 먼저 한 다음 과세 또는 차입을 한다. 대처의 금언과는 완전히 반대다. 기호를 재배열하면 S(TAB), 즉 지출후 과세 및 차입이다. 모슬러의 논리대로라면, 정부는 세금을 걷거나 돈을 빌려서 돈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지출함으로써 화폐를 창출함. 모슬러는 대다수 경제학자가 놓치고 있던 사실을 알아차렸다. 많은 경제학자에게 그의 생각은 완전히 새로운 주장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경제학자들만 새롭게 느꼈을 뿐, 대부분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알고보미 국부론과 화폐론 같은 고전에도 같은 주장이 실려 있었다. 인류학, 사회학, 철학 등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돈의 본성과 조세의 역할에 대해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경제학만 엄청나게 뒤처져 있었던 셈이다.
- 통화를 발행하는 정부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실물이다. 정부는 세금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을 원함. 정부는 우리를 유인해 나라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려고 세금을 비롯한 각종 지급의무를 발명. 경제학교과서 대부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설명이다. 교과서에는대개 물물교환의 비효율을 해소하기 위해 돈이 발명되었다는 피상적 설명이 실려 있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돈은 그저 거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연스레 생겨난, 편의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학생들이 배운 바에 따르면, 물물교환 경제는 한때 어디에나 존재했던, 일종의 자연상태다. 하지만 고대사학자들은 물물교환 경제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거의 찾지 못했다.
- MMT는 역사적으로 물물교환이 성행했다는 가설이 아닌, 폭넓은 학문적 증거를 가진 증표주의라는 학설에 기초를 두고 있음. 증표주의는 고대지도자와 초기민족국가가 자체 화폐를 도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세금을 만들었고, 나중에 가서야 화폐가 민간에서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통용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줌. 조세는 도입과 동시에 정부화폐를 벌기 위해 일을 찾아야 하는 사람(실업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정부(또는 다른 권력)는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지출을 통해 화폐를 창출. 정부가 돈을 공급하기 전에는 당연히 아무도 세금을 낼 수 없다. 모슬러는 단순한 논리로 거의 모든 사람이 순서를 잘못 알고 있음을 보였다. 납세자가 정부에 자금을 대는 게 아니라, 정부가 납세자에게 자금을 대는 것이다.
- 카드게임이나 야구경기의 점수가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보자. 점수는 아무데서도 오지 않는다. 그저 점수를 기록하는 사람에 의해 생겨날 뿐. 1루와 3루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타자가 홈런을 치면, 점수가 3점 오른다. 점수기록자가 자기점수에서 3점을 떼어내 점수를 올려준 것이아니다. 점수 기록자에게는 점수가 없다. 점수 기록자는 단순히 3점 홈런을 표시하기 위해 숫자를 바꾸었을 뿐이고, 그 결과 전광판에 더 큰 숫자가 떴을 뿐이다. 이제 이 홈런을 다시 판독한 심판이 파울을 선언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점수기록자는 더했던 점수를 다시 빼 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점수 기록자가 그 점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저 점수를 올리고 내릴 뿐이다. 연방정부가 지출과 과세를 통해 경제에 달러를 더하고 뺄 때도 마찬가지. 연방정부는 지출해도 달러를 잃지 않고 세금을 걷어도 달러를 얻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전임 연준의장 버냉키는 정부가 금융위기 때 납세자의 돈으로 은행을 구제했다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설명. "은행은 연준에 계좌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저 컴퓨터로 그 계좌의 잔액을 올려줬을 뿐입니다." 월가를 구한 것은 납세자가 아니라 점수기록자였다.
- 언뜻 봐서는 정부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납세자와 채권구매자로부터 달러를 받아 모으는 과정처럼 보일지도 모름. 이런 관점으로 보면, 과세와 채권발행이 정부가 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임. 대처가 우리에게 바란 관점이 이것이다. 대처는 우리가 일반가정의 관점에서 정부재정을 보길 바랐다. 반면, MMT는 통화발행자의 관점에서 이 과정을 바라본다. 정부에는 우리가 낸 돈이 필요없다. 정부가 자체 생산가능한 화폐를 공급하는 것이 과세의 목적은아니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돈을 빌리는) 이유도 자신이 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럼 정부는 왜 돈을 빌릴까? 사실 정부는 돈을 빌리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사람들에게 여러 종류의 정부화폐를 나누어주기로 결정하고 그중 이자를 받을 수 있는 화폐도 하나 만든 것뿐이다. 바꿔 말하면 미국국채는 그저 이자를 주는 달러인 셈. 정부로부터 이자를 주는 달러를 사려면, 먼저 수중에 정부가 발행한 달러가 있어야 함. 이제 이자를 주는 달러를 노란색달러, 그냥 달러를 녹색달러라 부르자. 정부가 세금으로 걷은 것보다 돈을 더 많이 썼을 때, 우리는 정부가 재정적자를 기록했다고 말한다. 재정적자는 녹색달러이 공급을 늘린다. 수백년 동안 정부는 적자지출한 만큼을 국채로 발행하는 선택을 했다. 그러니까, 정부가 5조달러를 썼는데 세금이 4조달러밖에 안 걷혔다면, 1조달러 규모의 미국국채를 발행한다는 의미. 우리가 정부차입이라고 부르는 행위는 사실 정부가 사람들에게 평범한 녹색달러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노란색달러로 바꿀 기회를 주는 것에 불과함.
MMT는 일반 가정의 관점에서 정부차입을 들여다보는 행동이 왜 틀렸는지 보여준다. 우리가 집이나 차를 사기 위해 대출받을 때, 은행직원에게 돈뭉치를 건넨 뒤, 그 돈을 다시 빌려달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돈을 빌리는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 하지만 일반가정과 달리, 정부는 먼저 돈을 지출함으로써 우리가 국채를 살 달러를 공급함. 정부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지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자율이 일정 수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 의회가 이렇게 제한을 잘 빠져나가는데, 이 모든 구속력 없는 원칙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왜 페이고나 버드 룰, 부채상한 같은 정부지출을 자체적으로 제한하는 원칙들을 폐지하지 않는 걸까? 왜 의회는 정부가 평범한 가정처럼 예산을 운용해야 한다는 거짓말을 그만두지 않는걸까? 진실을 말하자면, 많은 의원은 이런 자체 제약이 정치적으로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의원들은 유권자로부터 의료나 교육 같은 분야의 예산을 더 늘리라는 압박을 끊임없이 받는다. 이럴 때 예산제한은 그럴싸한 변명이 되어준다. 정치인들은 저소득층 학생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연방장학기금예산을 늘리는 일이 자신의 철학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대신, 정부부채 때문에 손발이 묶여 어쩔 수 없다며 유권자들의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다. 적자공포증이 없다면, 예산을 늘리지 않는 이유를 무엇으로 변명하겠는가? 협박수법이 하나 있으면 도움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의원들은 자체예산제한을 정치적 기회로 바꾸고자 노력한다.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만드는 것과 비슷. 이들은 싸워서 제한을 없애기보다는 지출목적에 다른 정치적 목적을 결부시킬 궁리를 한다. 가령, 진보적 민주당 의원은 페이고 원칙을 들어,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돕는 새로운 사업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리자고 주장할 수 있다. 대중은 로빈후드를 사랑하니까.
- 연준은 고용시장을 보면서 혹시 임금이 빠르게 오르고 있지는 않은지 관찰하고, 임금이 오르면 인플레이션의 전조로 해석. 중요한 건 인플레이션 괴물이 눈뜰 때까지 기다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일단 쏘고 질문은 나중에. 이런 조급증은 연준의 결정을 지나친 긴축쪽으로 치우치게 함. 너무 서둘러 이자율을 높이거나 잘못된 경고에 반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결정 때문에 현실에서는 수백만명이 불필요한 실업상태를 경험한다.
이중책무는 과도고용과 과소고용 사이 어딘가에 깨지기 쉬운 균형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근거로 함. 여기에는 연준에 경제를 균형점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가정도 깔려 있음. 이 균형점으로 가려면 일하고 싶어도 실업상태에 머무르는 사람이 적절히 존재해야 함.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거칠게 표현하면 연준은 실업상태에 있는 인간을 주무기로 인플레이션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야 쉽지만, 현실은 다르다.
- 연준은 정밀한 과학과는 거리가 먼, 믿음이라 불러야 맞을 만한 것을 핵심지침으로 삼고 있다. 자신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상당히 정확히 알고 있다는 믿음, 자신이 손에 쥔 도구가 인플레이션을 관리하기에 충분하다는 믿음, 아무리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지나친 실업보다는 지나친 인플레이션이 우리 모두의 삶에 더 위협적이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 사실 연준은 그저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모두 일할 수 있게 두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함. 그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성실한지는 중요치 않다. 어떻게 보면 연준은 항상 필요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도록 게임을 설계하는 일을 한다. 만일 연준이 생각하는 NAIRU가 5%라면, 안전을 위해 게임에 참가한 100명 가운데 95명이 앉을 자리만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 대다수 경제학자는 일자리 숫자를 결정하는 일을 시장에 맡기길 원함. 이들이 보기에 의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산을 책정해 실업자들에게 고용시장에서 더 매력적으로 보일만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 정도다. 이들은 실업자들을 가난에서 구제할 방법으로, 교육을 늘리고 더 질좋은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고용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해결책을 제시함. 하지만 MMT는 이런 반쪽자리방법으로, 만성적인 불완전 고용과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만성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해결책들은 기껏해야 사람들이 돌아가며 일자리를 잃어 교대로 실업을 경험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윌리엄 비크리가 말했듯, 전체 일자리 수가 부족할 때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구해주려고 노력하는 건, 관련 기관이 의자뺏기 게임 참가자 가운데 일부 고객에게만 자리에 빠르게 앉는 기술을 귀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미국은 구매한 물건의 대금을 미국달러로 지급했고, 이 돈은 연준에 있는 중국의 계좌에 입금됐다. 다른 미국달러 수요자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달러를 그냥 갖고 있을수도 있고 다른 것을 살 수도 있다. 연방정부는 연준의 입출금 계좌에 들어 있는 달러에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은 연준의 저축계좌에 해당하는 곳으로 자신이 가진 달러를 옮기기로 했다. 그러니까, 미국 국채를 구매한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차입했다는 말은 그저 연준이 중국의 지급준비계좌(입출금계좌) 잔액을 줄인 뒤, 해당액만큼 증권계좌(저축계좌) 잔액을 올리는 회계작업을 했다는 뜻. 중국은 여전히 미국 달러를 그냥 갖고 있지만, 이제 녹색 달러가 아닌 노란색달러를 갖고 있을 뿐이다. 중국에 돈을 갚으려면, 연준은 그냥 회계작업만 반대로 하면 된다. 증권계좌의 잔액을 줄이고 지급준비계좌의 잔액을 올리는 것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키보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바마는 달러의 원산지가 중국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했다. 달러는 미국에서 만든다. 미국은 사실 중국으로부터 달러를 빌려온 게 아니라, 중국에 달러를 공급한 뒤, 이 달러를 미국국채로 바꾸는 것을 허용했을 뿐이다. 정말이지 문제는 우리가 이 일을 언급할 때 쓰는 단어일 뿐이다. 국가가 쓰는 신용카드 같은 것은 없다. 차입이라는 단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미국국채라는 증권을 국가부채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채는 사실 진짜 채무가 아니다. 워런 모슬러가 즐겨 말한 대로, "우리가 중국에 진 빚은 잔액증명서밖에 없다." 사실 어찌보면 이는 중국이 밑지는 거래다. 어쨌든 중국이 자국 노동자들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만들어낸 실제 상품과 서비스를 자국민이 쓰게 두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중국은 흑자를 기록함으로써,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받은 물건가액을 기록하는 장부에 적힌 숫자와 자국이 생산한 물건을 교환한 것이다.
- 미국은 이미 국가부채를 없애 본 경험이 있다. 앤드루 잭슨 시절인 1835년의 일이다. 미국 역사상 유일한 부채가 없는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연준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이었으므로,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부채를 청산한 것은 아니었다. 청산은 재정적자를 줄이고 채권소지자들에게 돈을 갚는 옛날 방식으로 이루어짐. 그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따.
미 정부는 10년 넘는 기간에 걸쳐 부채를 다 갚았다. 1823년부터 1836년까지 정부가 예산을 흑자운영했기 때문에 생긴 일. 이 기간에 미국정부는 항상 지출하는 것보다 세금을 더 많이 걷었기 때문에 국채를 신규발행하지 않았다. 이전에 발행한 국채의 만기일이 돌아오면 정부는 그 돈을 다 갚았다. 1835년, 미국은 모든 부채를 벗어던짐. 그러고는 사상 초유의 경기불황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돌이켜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재정흑자는 경제 내의 돈을 빨아들임. 반대로 재정적자는 돈을 넣어준다. 지나치지 않은 재정적자는 소득, 판매, 이윤을 뒷받침해 경제를 건강하게 유지해준다.
- 국채시장을 없앨 게 아니라면, 우리는 국가부채와 평화롭게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함. 어쩌면 이름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국가부채는 가계부채와는 전혀 다름. 부채라는 같은 단어를 쓰는 것은 불필요한 불안과 혼란을 불러일으킴. 국가부채라는 말을 여러종류의 화폐 중 하나를 지칭하는 말로 바꾸어도 좋을 것임. 내가 지은 노란색달러라는단어가 국가부채라는 말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시도할 가치는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은 이렇게 말한다. "이름이 뭐가 중요해?" 줄리엣은 로미오가 몬터규라는 사실을 알고도 개의치 않았다. "장미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향기는 그대로인걸" 사랑은 맹목적이다. 하지만 정치무대에서 이름은 중요하다. 이제 이자지급형 달러에 새로운 이름을 붙일 때다.
- 요점은 모든 재정적자가 공동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재정적자는 좋은 의도로 쓸 수도 있고 나쁜 의도로 쓸 수도 있다. 수백만명을 뒤로한 채 극소수에게 혜택을 몰아주는 방향으로 재정적자를 사용한다면, 부자와 권력자의 배만 두둥실 떠오를 것이다. 또한, 재정적자를 사용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부당한 전쟁에 자금을 댈 수도 있다. 반대로 재정적자를 활용해 사람을 살리고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해 더 공정한 경제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재정적자가 우리의 총저축을 갉아먹을 일은 절대 없다.
- 달러를 모으고자 하는 미국기업과 가정의 욕망이 연방정부 적자로 이어진 것처럼, 미국의 무역적자도 달러를 모으고자 하는 미국 외 전 세계 국가의 욕망 때문에 생긴 것이다. 미국이 수십 년 동안 계속 무역적자를 기록한 주원인은 세계적 달러부족 현상 때문. 이런 면에서, 미국은 확실히 선하든 악하든 다른 나라보다 힘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달러가 가진 국제준비통화라는 특별한 지위 덕분에 미국 연방정부는 자신이 발행하는 화폐가 아닌 다른 화폐로 차입할 일이 전혀 없다. 심지어 차입 자체를 아예 할 필요가 없다. 미국에 이러한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국내정책을 자유롭게 펼 힘을 가진 나라가 미국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강한 화폐주권을 지닌 나라가 미국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강한 화폐주권을 가진 나라라면, 어디나 완전고용 경제유지를 목표로 국내정책을 펼 힘이 있다.
- 기초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 많은 개도국은 부유한 나라 화폐를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계속 개발중인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전 세계 기업들은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미명 아래 끊임없이 단기 이윤만을 좇아 희귀 천연자원을 캐내고 소중한 생태계를 오염시키며, 절박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해고할 것이다. 그대로 둔다면 이런 상황을 무대삼아 외국인을 비난하고 국제갈등을 심화시키는 트럼프 같은 선동가가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다.
개도국은 개도국간 무역협정을 맺고 국가간 금융거래를 규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브레턴우즈 체제동안 존재했던 전통적 형태의 자본통제를 도입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보다 자본을 규제할 방법은 분명 있다. 개도국은 외국인 투자자의 자산투자와 양도를 규제하고 이들이 외환시장에서 지나친 하방압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달러를 지나치게 많이 비축할 필요가 줄어들고 변동환율체제의 장점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임. 요는 짧은 시간 동안 임시로 국제자본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 규제를 통해 개도국이 화폐주권을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라는 한 행성을 공유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무역체제로는 국제빈곤과 실업이라는 사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전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 무역평화는 그저 달성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달성해야만 하는 목표다.
- MMT는 화폐발행 능력이 있는 정부가 뭐든 원하는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 그저 화폐보다는 실물적 한계에 주의를 집중해야 최선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할 뿐이다. 우리는 실물세상의 자원을 바탕으로 실물 세상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토론해야 함.
나는 복지를 축소하자는 제안을 비인간적이라고 느낀다. 여러분도 비슷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노인, 장애인, 가난한 사람에게도 품위 있는 삶과 재정적 안정을 누릴 권리가 있다. 신탁기금 따위에 이들을 보살필 돈이 들어 있어서가 아니라, 이들이 인간이기 때문. 복지정책과 그것이 대변하는 가치는 우리 사회의 일부여야만 한다. 여러분의 생각이 나와 다르더라도, 토론하려면 먼저 정부 재정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만 할 것이다.
미래 우리 사회의 수요를 충족할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면 '어떻게 돈을 마련할까?'라는 질문은 그만두고, '어떻게 자원을 마련할까?'라고 질문해야 함.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우리의 실물자원은 유한하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모두에게 의료보험을, 돈 걱정 없는 노후생활을, 빈곤으로부터의 보호를 제공하고자 할 때조차, 결국 일의 경중을 따져 선택해야만 하는 시간이 온다.
지금 준비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만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해야 한다. 자동화, 인프라 개선, 교육기회확대, 연구개발, 공공건강증진 등 목표달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모두 미래를 위한 현명한 투자다.
- 세계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점점 누진적 성격이 약해지는 과세시스템"은 미국의 소득불평등이 커지는 원인 중 하나. 과세는 천문학적 부의 축적을 막는 도구다. 지나친 부의축적을 막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부자가 돈을 써서 정치 절차에 미치는 힘과 영향력을 늘리기 때문. 이미 부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세법을 고쳤고 노동법, 무역협정, 특허보호규정 등 많은 법을 제정했다. 이들은 자신의 경제적 이득에 부합하도록 공공정책을 손봤다. 이것이 미국의 여러 기업이 주주와 경영진에게 막대한 돈을 건네고 학력이 높은 상류층에 그보다 적은 몫을 떼어준 뒤 다른 사람에게는 푼돈만 던져주는 이유다. 이것이 실리콘밸리가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고층빌딩을 자랑하는 동안, 미시간의 노동자 마을에서는 깨끗한 식수조차 구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의 복지 제도와 의료체계와 은퇴제도가 모두 흔들리고 있는 이유도 이것이며, 우리가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채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이유도 이것이다. 부유한 엘리트들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보다는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훨씬 더 큰 이익과 권력을 누린다.
- MMT는 포스트 브레턴우즈 통화 시스템의 현실을 설명하는 이론. 이제 금본위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정치담론이 금본위제 시절이 낡은 사고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음. 정치인에게 '돈은 어디서 구할 생각입니까?'라고 묻는 기자를 볼 때마다 이 사실은 명확해진다. 우리는 주권 명목화폐의 발행자라는 지위가 가지는 의미를 이미 한참 전에 깨달았어야 했다. 통화발행자에게 화폐는 실체를 가진 물건이 아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돈은 정부가 쓰기 전에 찾아나서야 하는 금처럼 희귀한 물질이 아니다. 돈은 연준이 재무부의 지출을 처리할 때마다 키보드만 누르면 생겨나는 것이다.
- 공짜 점심이 있다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ㄷ. MMT는 돈이 백지수표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MMT를 따른다고 해서 모든 정책에 자금을 무한정 쏟아부을 권한이 생기는 건 아니다. MMT는 정부의 규모를 키우려는 책략이 아니다. 재정여력이라 불리는, 경제에 아직 쓰이지 않은 채 남아 있느느 잠재력을 발견하게 해 주는 분석틀일 뿐이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수백만명 있고 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제품과 서비스를 더 생산할 준비가 돼 있다면, 충분한 재정여력이 있는 것이다. 이때 재정여력을 활용하면 유휴자원을 생산적 고용으로 바꿀 수 있다. 이 재정여력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는 정치적으로 결정할 문제임. 여기서 MMT는 보통 진보적이라 평가받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논리로 쓰일수도 있지만, 더 보수적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논리로 쓰일 수도 있음.
비유하자면, 우리가 경제를 운영하는 방식은 키 180센치인 남성이 층고 2.5ㅁ터 집에 살면서 허리를 똑바로 펴고 다니면 머리를 부딪칠 거라는 누군가의 말만 듣고 몸을 수그리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똑바로 설 수 있을 때도 몸을 웅크렸다. 미국, 일본, 영국 등지의 정책 결정자들은 정부부채와 재정적자를 비이성적으로 두려워한 나머지 금융위기 이후 수년동안 경기부양이 아닌 긴축을 택했다. 이 선택은 전 세계에서 수천만, 아니 수억명을 헤아릴 수 없는 고통에 빠뜨렸다. 이를 계기로 좌우 가리지 않고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득세. 연방예산을 더 많이 쓴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긴축으로 인해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가 악화된 것은 맞지만, 긴축이 불황과 불평등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노동계층이 경제적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독점권력을 깨뜨리고 세법, 노동법, 무역정책, 주택정책 등 수많은 정책을 개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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