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스 슐츠Charles Schultze와 환경 경제 학자 앨런 니스Allen Kneese는 기회비용의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 다. 이들은 독자들에게 너무 과도한 오염 방지 목표의 비용에 관해 다 음과 같이 생각해보라고 요청했다.
기회비용은 회계사나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 다. 기회비용은 오염을 통제하기 위해 자원을 투입하면서 사회의 다 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사용할 수 없게 된 자원의 가치를 나타낸 다. 장기적으로 기회비용의 중요한 원천은 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모 든 사람이 부담해야 할 더 비싼 가격과 더 많은 세금이다. 따라서 환 경 목표는 우리가 얼마나 깨끗한 공기와 물을 원하는지 또는 정부 가 특정 산업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한 결정 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이런 목표 설정은 최고 수준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우리가 깨끗한 환경과 생활 수준의 다른 요인들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하게 한다. 우리는 어느 하나를 더 많이 원하면 다른 것은 그만큼 적게 가질 수밖에 없다.

- 장기적으로 볼 때 기술의 발전이 없다면 오염 문제는 감당할 수 없 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려면 새로운 기술이 훨씬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의 지휘통제 제도 아래서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의 주인은 기본적으로 더 깨끗한 제조 공 정을 개발할 동기가 전혀 없다. 새로 공장을 지으면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즉, 예전의 기준은 훨씬 더 낮아서 예전에 건설된 낡은 공장은 더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할 수 있도록 허용된다.
이런 기준의 차이 때문에 공장 주인들은 새로운 공장을 짓는 대신 오래된 공장을 수리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때문 에 훨씬 더 발전된 기술을 도입하는 시기가 자꾸만 지연된다. 규정만 충족한다면, 공장의 주인들은 오염을 현재 기준보다 더 줄여야 할 동 기가 없다. 인센티브 제도에서는 기업이 세금을 내거나 배출 허가권 을 구매하는 한 오염 물질을 덜 배출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남아 있다. 다시 말해 오염 물질이 남아 있는 한 계속 비용 을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기준을 통한 규제 방식은 혁신을 방해한다.
- 예를 들어 두 종류의 오염 배출물에서 비용 감소와 극적인 배출량 감소를 가져오는 어떤 것이 세 번째 오염물의 배출량 증가를 가져온다면, 기업은 이를 개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센티브 제도는 기업이 이런 혁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다. 인센티브 제도는 단순하지 않다. 중요한 오염원에 대한 감시도 더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장소와 시간에 따라 세금이나 오염물질 배출 허용 수준에 약간의 변화를 허용하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유사한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감시 문제도 기준에 따른 접근 방식을 어렵게 한다. 따라서 기회비용을 고려한다면, 감시 기준 역시 지역과 계절적 차이를 과거보다 더 세밀하게 반영해야 할 것이다.
-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CAFE 규제 완화에 그렇게 비판적이지 않았고, 지난 몇 년 동안 휘발유 세금이 연료 사용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주장했다. 경제학자의 92%는 CAFE 기준을 올리는 것보 다 휘발유 세금 인상을 더 선호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CAFE 접근법에는 세 가지 중요한 허점이 있다고 주 장한다. 첫째 반동 효과rebound effect가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연 비가 두 배 좋은 차로 바꾸면 차를 10% 더 많이 타고 다닌다." 둘째, 연비를 높이는 기술이 자동차 가격을 올리고, 이는 사람들이 더 비싼 차의 구매를 늦추면서 기존 차를 더 오래 타게 한다. 경제학자들은 더 높은 CAFE 기준에 따른 15%의 오염 배출 감소 효과는 더 낡고 연비가 나쁜 차량의 도로 운행 시간을 증가시키는 현상으로 상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 전체 자동차 중 1년 이상 된 차가 94%를 차지 하는 상황에서는 모든 차에 적용되는 휘발유 세금이 신차에만 적용되 는 CAFE 기준보다 연료 소비 감소를 유도하는 훨씬 더 효율적인 방 법이 될 것이다. 셋째, CAFE 기준은 차를 구매한 이후 덜 이용하는 것에 관해 어떤 인센티브도 주지 않는다. 휘발유에 부과하는 세금은 차를 더 많이 이용하면 그만큼 개인의 비용 부담을 증가시킨다. 따라 서 차를 더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은 연비가 더 좋은 차를 구매해야 하 는 동기가 생긴다. 미국의 모든 차에 높은 연비를 적용하겠다는 생각 은 매우 훌륭한 것처럼 들리지만 이것은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의회는 결코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이 망하게 내버려 두 지 않을 것이다. 포드Ford 같은 자동차 회사들이 정부가 요구하는 연비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과 로즈 프리드먼Rose Friedman이 말한 것처럼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데 중요한 문제는 정보를 활용할 수 있 는 모든 사람이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하면서 정보가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는 과도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가격 체계(자유시장)가 이런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한다. 예를 들어 연필 제조 업체는 벌목꾼을 더 고용할지 아니면 더 강력하고 값비싼 톱을 사용해 나무 를 자를지에 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목재 생산자 는 유채씨기름의 일시적인 부족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가격을 조금 높 이고 지우개 크기를 이전처럼 유지할지, 아니면 가격은 그대로 두고 지우개 크기를 좀 줄일지 결정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목재 생산자는 자신의 목재에 대한 수요 증가가 연필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 소비자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에 입찰하고, 기업은 소비자를 대신해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자원에 입찰한다. 희소성을 고려할 때 모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싼 가격에 얻을 수는 없다. 시 장에서 자원은 소비자들이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상품과 서비스로 흘 러간다. 만약 소비자들이 연필을 더 많이 원하고 이쑤시개를 덜 원한 다면, 더 비싼 가격을 주고 연필을 사는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연필 제조 업체는 필요한 경우에 더 높은 가격을 주고 목재를 구매하면서도 일시적으로 조금 더 많은 이익을 얻거나 정상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러면 연필 제조 업체는 시설을 확장할 것이고, 이로써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다시 예전 수준으로 내 려가게 된다. 한편 이쑤시개 제조 업체들은 부족한 목재를 사용하려 면 더 비싼 기회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과거의 생산량을 유지하 는 데 필요한 이익을 더는 거둘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결국 문을 닫거 나 생산량을 줄인다. 이처럼 상품을 제공하는 비용은 생산에 필요한 요소에 대한 생산자들의 경쟁을 반영한다. 소비자들은 수요를 통해 경쟁적인 생산자들이 무엇을 제공할 것인지에 영향을 미치고, 시장은 소득 분배를 고려해 희소성이 허용하는 만큼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 시킨다.

-  오바마 대통령의 산업 정책은 청정 에너지에 큰 비중을 뒀다. 나는 청정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체계적인 비용편익 평가를 본 적이 없 다. 그러나 잘 알려진 실패 사례는 많다. 태양 에너지 기업인 솔린드라 Solyndra가 가장 철저하게 분석된 실패 사례다. 솔린드라는 2009년 5억 3,500만 달러의 첫 번째 보증대출을 받았고, 2011년에 파산했다. 회 사가 약간의 불운을 겪은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가장 경쟁이 치열한 기술의 핵심 재료인 폴리실리콘의 가격이 89% 정도 하락했다. 그러나 스파 시설까지 갖춘 7억 3,300만 달러짜리 공장은 사치였다." 그리고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감독관은 솔린드라가 매출 계약과 관련해 에너지부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고 결론 내렸다. 게다가 처음부터 정경유착 혐의가 있었다. 오바마의 핵심 선거자금 모금책이 었던 조지 카이저George Kaiser가 솔린드라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 회사의 최고 경영진 두 명은 대출 신청 심사를 받는 동안 백악관을 스 무 차례 방문했다. 그리고 나중에 하원 에너지및상업위원회House Energy and Commerce Committee의 질문에 대해 수정헌법 제5조를 들어 묵비권을 행사했다.
- 억만장자 기업가 피터 틸Peter Thiel은 2012년에만 40개의 태양광 회 사가 파산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공적인 기술 회사는 "가장 유사한 대체 기술보다 적어도 열 배 정도 더 뛰어난 독점 기술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솔린드라의 새로운 원통형 태양 전지는 평평한 태양 전지보 다 효율이 낮았다. " 틸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친환경 에너지의 일반적 개념이 모든 종류의 청정 기술 회사에 압 도적인 사업 기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 훌륭한 회 사에는 그들만의 비밀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구체적인 성공 의 이유가 있다. (...) 남들과 다른 어떤 것을 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 회에 이익이 되는 것이다. (...) 최고의 프로젝트들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간과될 가능성이 크다. 해결이 필요한 가장 좋은 문제는 종종 누구도 해결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문제인 경우가 많다."
솔린드라 외에도 에너지부의 청정 에너지에 대한 360억 달러 보 조금 대출 프로그램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중도좌파 성향의 <워싱턴 포스트> 사설은 청정 에너지 프로그램 전체를 '스캔들'이라고 부르 면서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비판했다. “이 프로그램을 정실 자본주의 crony capitalism 또는 벤처 사회주의venture socialism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 만 무엇이라고 부르든 에너지부의 대출 보증 프로그램은 이익을 사유 화하고 손실을 사회화하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2010년 OMB 의 내부 이메일을 인용해서 한 직원이 "정말로 걱정되는 것은 후속 프 로젝트들 가운데 몇 개를 살펴본 후에 오히려 이 프로젝트(솔린드라)가 더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심각한 문제들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썼다고 전했다."

- 컬럼비아대학교의 경제학자 리처드 넬슨Richard Nelson은 민간의 기술 혁신은 대체로 예측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유망할 것으로 보이는 상 당수의 혁신이 성공하지 못한다. 그 밖의 중요한 기술적 돌파구들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해당 분야에서 많은 전문가의 지지를 받지 못 했다.  넬슨은 화학이나 전자 같은 기술적으로 발전하는 산업 분야에 서 가능성이 없는 기술은 다른 사람이 더 좋은 해결책을 제시하면 빠 르게 사라지고, 좋은 새 아이디어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알려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넬슨은 기술 발전을 위한 국가 중심의 계획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술 발전은 "확실하게 계획할 수 있는 활 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야 올바른 방법이 분명하게 보인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여러 가지 혼란스러 운 선택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이거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넬슨은 기초 연구와 광범위한 관심사에 대한 응용 지식(대중이 독점 할 수 없는 공공재의 편익이 있는)을 지원하는 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가 상업적 혜택을 누리는 승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 특정 제품의 개발을 지원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넬 슨은 이런 정부 지원 프로젝트의 과거 성과가 부정적이라고 설명한 다." 넬슨의 연구에 따르면, 기술 발전을 계획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른 과학 분야의 발전을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이에 동 의한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수많은 사례를 살 펴보면 중대한 발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라고 주장했다." 위대한 발명가 가운데 일부는 자신들이 이룩한 업적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굴리엘모 마르코니 Guglielmo Marconi는 자신의 무선 전신 기술이 주로 증기선 운행 노선에서 사용될 것으로 생각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은 전화기에 대한 특 허를 낼 때 "전신 기술의 발전"이라고 설명했다. "이상한 전염성 단백 질"이 광우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노벨상 수상 과학자는 "수십 년 동안 동료들의 조롱을 견뎌야 했다." 궤양이 세균 때문에 발 생한다는 생각도 옳다는 것이 증명될 때까지 비웃음을 샀다." 아이작 아지모프Isaac Asimov는 예측 불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과 학에서 새로운 발견을 알리는 가장 흥미진진한 말은 '유레카!(내가 발 견했다!)'가 아니라 '그거 재미있군'이다.""

- 열세 가지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분석할 수 있는 가볍고 저렴한 건 강진단 키트를 개발해 260만 달러의 상금을 받은 수상자는 300개의 다른 출품작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그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자택 사무실에서 일하는 응급실 의사였다. 수상작 대부분은 대기업의 지원 을 받은 것이었는데 준우승은 50명의 의사 · 과학자 · 프로그래머로 구성된 연구팀에 돌아갔다. 이력서가 29쪽에 달하는 하버드 의대의 물 리학자가 이 팀을 이끌었다. 애초에 누가 응급실 의사가 우승하리라 고 생각이나 했을까? 
렌슬리어 폴리테크닉 인스티튜트의 한 학생은 어렸을 때 버섯을 수 확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균류로 단열재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 각했다." 그리고 졸업하기 전 수업에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에코바티브 디자인 Ecovative Design 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 는 포장과 운송에 널리 사용되는 비생분해성 탄소 집약적 재료인 스 티로폼보다 더 환경 친화적이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유기 단열재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현재 컴퓨터 대기업인 델 Dell 이 포장에 에코바티브의 재료를 사용하고 있고 이케아 IKEA 와 많은 다른 회사들도 사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물질을 개발하는 데는 연방 보조금도 필 요하지 않았고, 렌슬리어 폴리테크닉의 학생들에게 연방 보조금이 지 급된 적도 없다."

- 경제학자들은 영리 기업에 대한 규제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중요한 분야가 일할 자유, 즉 직업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다. 1970 년대에는 근로자들의 약 10%가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하지 만 2015년에는 그 비율이 30%에 달했다." 경제학자들은 특정 직업 으로의 진출을 제한하면 공급이 감소해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많은 사람은 미국에서 자격 증 요구가 증가하는 것은 규제 강화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단체 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치과의사들만 치아 미백제를 투여하게 해야 대중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대체 로 치과 의사들이 선출한 치과의사협회Board of Dentistry가 치위생사나 미 용사들이 치아 미백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했다. 협회는 이들이 치아 미백을 시술하지 못하게 하려고 연방무역위원회와 대법원에 소 송을 제기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관련 분야의 연구를 전체적으로 검토한 결과 간호사들이 제공한 의료 서비스의 품질에 관해 우려를 제기하는 어떤 연구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주에서 의사의 승인 없이는 간호사들이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특수 신발의 처방전을 발급할 수 없다. 캘리포니아 간호사들은 의사의 감독을 받아야 하지 만, 의사는 네 명 이상의 간호사를 관리할 수 없다. 캘리포니아의사협 회는 이 법의 개정에 반대하는 운동을 열심히 전개하고 있다."
변호사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미국변호사협회는 미국에서 변호사가 되는 것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예를 들면 이 협회는 대부분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3년 과정의 법무 박사 학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법률 서비스 비용은 더 비싸진 다. 실제로 월드 저스티스 프로젝트World Justice Project는 법률 서비스 접 근권과 법률 서비스의 가격 측면에서 미국을 113개국 가운데 96위로 평가했다. 의사와 변호사들은 미국의 소득 상위 1% 가운데 약 4분 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선진 국가에서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번다."
- 대다수 선량한 시민은 우리의 규제가 "이익을 추구하는 (선출직이 아 닌) 힘 있는 집단이나 조직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 다고 믿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제학자들은 이와 반대로 (선출직 이 아닌) 영향력 있는 단체들이 진입을 통제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 해 규제를 실행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면허가 있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고객에게 더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 할 가능성이 큰 경우에도 면허 요건이 고객에게 더 안전한 결과로 이 어지지 않을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경제학자들은 우리에게 인센 티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전기 기술자를 예로 들어보겠다. 초기 연구에 따르면 "전기 기술자에 대한 면허 규정이 가장 엄격한 주에서 우발적인 감전 사고가 열 배 더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편으로, 비싸진 서비스 가격 탓에 고객들이 전기 작 업을 직접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은 주에서 추가적인 감독이 없이도 소비자들이 서비스의 품질을 판단할 수 있는 저임금 직종에 대해서조차 불필요하고 시간 소모적이 며 비싼 면허 요건을 적용하고 있다. 꽃꽂이 전문가, 여행 가이드, 댄 스 강사, 머리 땋는 사람, 매니큐어리스트,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리고 소파 천갈이 기술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직종에 대한 면허 요 건을 완화하면 저소득과 중산층 근로자의 직업 기회가 확대되고 서비 스 가격이 하락할 것이다. 이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이롭다. 그 점을 경쟁력으로 내세울 수 있으니 말이다.
- 프랑스에서는 정규직을 해고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기업이 50 명 이상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사업이 어려 울 때 해고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기업들은 당연히 고용을 꺼린다.  한 경제학자는 프랑스에는 직원 수가 49명인 기업들이 유난히 많고 직원이 50명 이상인 기업이 비정상적으로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들은 부담스러운 해고 규정을 피하려고 49명 에서 더 이상 직원을 고용하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기업의 해고 능 력을 제한하거나 막대한 부가적 혜택을 요구하는 국가들은 장기 실업 률이 더 높은 경향이 있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일반적으로 10% 정도로 미국의 평상시 실업률보다 훨씬 높다. 더욱 심각한 것은 프랑스의 전체 실업률 대비 장기실업률(1998~2018년 평균 40%)이 미국(1987~2017년 평균 13%)보다 훨 씬 높다는 것이다. 단기 실업이 사회적 위기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프 랑스 실업자의 40%가 12개월 이상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장기 실업 자라는 사실은 특히 안타까운 일이다. 128 대부분 사람은 몇 달이 넘도 록 어떤 일자리도 찾지 못하는 예비 근로자들에게 특히 친절해야 한 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기업에 친절을 요구하는 것이 친절을 가 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중도좌파 경제학자들도 유럽 방식의 기업 규제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동참하고 있다. 예를 들어, 더 큰 정부와 부유층에 대한 더 높은 세금을 지지하는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이 나라에는 많은 의무 규제가 있는데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우려할 근거가 충분합니 다"라고 주장한다. 프랭크는 "민간의 노동 계약에 대한 유럽 국가들 의 복잡한 규정"을 비판하면서 이런 규정들이 유럽에서 두 자릿수 실업률이 지속되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유럽인들은 '우 리는 어떤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일자리를 만들었다면 훌륭한 일자리였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라며 프랭크의 주장에 동의한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재무부 장관이자 오 바마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이었던 래리 서머스도 2012년에 유럽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면 "경화증을 유발하는 엄격한 규제"를 개혁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러시아와 초기 소비에트 연방을 연구하는 내 동료 앨런 린치 Allen Lynch는 "1980년대에 미국을 방문한 소련 관료들은 사실상 거의 의무 적으로 K마트를 둘러봤습니다. 그들은 풍부한 일상 소비재를 보고 충 격을 받았죠. 소련 방문단원들(보통 엘리트들)과 이민자들은 전형적인 미국 슈퍼마켓에서 심리적 또는 정신적 충격을 경험했습니다"라고 말했다. 155
이와 유사하게 동유럽 방문단도 K마트를 방문한 후 자기들 나라에 서도 K마트와 같은 슈퍼마켓을 지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K마트는 2018년에 두 번째로 파산했기 때문에 한창때와 같은 위용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소련과 동유럽 방문객들은 미국의 풍부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자신들이 본 널찍한 상점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자본주의 경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팟캐스트 이콘토크의 진행자인 러스 로버츠는 자신이 러시아 방문 단과 함께 가게에 갔을 때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한 러시아 방문객 은 효모를 사고 싶었는데 진열대에 효모가 없었다. 로버츠는 식품점 주인에게 혹시 재고가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창고에 재고가 있었고 식품점 주인이 재고를 가지고 돌아와 로버츠에게 건네 주자, 그 러시아 방문객은 깜짝 놀랐다. 그는 이것이 일반 고객이 일상 적으로 받는 서비스가 아니라 로버츠가 권력이 있고 영향력 있는 사 람이기 때문에 특별한 서비스를 받은 것으로 생각했다. 

- 미국의 계층 이동성은 캐나다와 서유럽의 대부분 국가만큼 강하지 않다. 빈곤 상태에서 탈출할 확률은 덴마크가 미국보다 약 두 배 높다. 부의 분배에서 반대쪽에 있는 최상층의 경우 경제적 이동성이 상당히 크다. <포브스>가 선정한 400명의 미국 부자 명단을 보면, 1982년에 40%였던 기업가들의 수가 2011년에는 69%로 증가했다. <포브스> 400대 부자 명단 중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한 부자의 비율은 1982년 이후 30년 동안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래리 서머스와 같은 온건 중도좌파 경제학자들도 <포브스> 400대 부자 명단에 해마다 상당한 변화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 만 그를 비롯한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지난 한 세대 동안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데 동의한다. 
- 최근 경제학자들은 미국 내 지역별 계층 이동성의 격차를 보고 깜 짝 놀랐다. 전반적으로 유럽보다 뒤떨어졌지만, 일부 지역은 서유럽 에서 계층 이동이 가장 활발한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애틀랜타 와 시애틀의 평균 소득은 비슷한데, 애틀랜타의 이동성은 시애틀보다 훨씬 약하다. 보스턴·솔트레이크시티 · 피츠버그는 경제적 계층 이동 성이 높은 반면, 멤피스 · 인디애나폴리스·신시내티는 낮다.
계층 이동성이 높은 도시의 특징은 무엇일까? 도시에 있는 대학의 수가 이동성을 향상시키는 것도 아니고, 빈부 격차가 매우 커서 이동 성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소득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가난한 가정이 같이 살고, 학교의 교육수준이 더 높으며, 종교 와 지역 사회 단체의 회원 가입 등을 포함한 시민 참여가 더 많을 때 계층 이동성이 향상된다. 더 높은 계층 이동성과 가장 강하게 연관된 요인은 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의 비율이었다.

- 진보든 보수든 모든 경제학자는 높은 추가 세율이 노동력의 공급보다 부가적인 혜택 과 그 외 비과세 소득에 대한 수요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데 동의 한다. 경제학자 아서 오쿤Arthur Okun 이 주장한 바와 같이 "눈이 오면 썰 매를 타는 아이들이 나타나는 것처럼 높은 세율에는 세금을 피하려는 천재적인 사람들이 반드시 나타난다." 이런 결과 가운데 하나가 지 하 경제에서 물물교환이나 '현찰로 주고받는 거래가 증가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결과는 기업들이 유명 휴양지에서 직원 회의를 개최하며 돈을 펑펑 쓰거나 세금이 공제되는 값비싼 자동차를 임원들에게 제공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세금을 회피하도록 도와주는 변호사들도 많 은 돈을 번다.
- 진보주의 경제학자와 보수주의 경제학자 모두 서민들의 물질적 진보를 설명하는 데 노동조합이나 정치 개혁보다 경제 성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인 토머스 소얼Thomas Sowell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역사서를 읽고 사회문제에 대한 많은 논의를 듣다 보면 다양 한 특징을 지닌 고상한 개혁가들이 생활 수준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 한덕에 오늘날 사람들이 더는 남루한 옷을 입거나 배고프지 않게 됐 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이 다섯 배에서 여섯 배까지 증가한 것은 우연일 뿐이었다. 19세기의 가난한 사람들 은 누더기를 입었던 반면 20세기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진 짜 이유는 싱어singer라는 사람이 재봉틀을 만들어 역사상 처음으로 많은 사람이 공장에서 만든 옷을 입을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 자유주의자인 앨프리드 칸 역시 1981년에 쓴 글에서 이런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성장이 없었다면 자유주의는 결코 승리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1930년대 이후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야기한 '국민 3분의 1'의 물질 적 복지의 향상은 더 잘사는 3분의 2에서 나오는 약간의 소득 재분 배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누리는 물질적 발전, 즉 소득 증가 덕에 가능했다.
상위 1%에 속하는 사람은 평균적으로 소득의 4분의 1 이상을 연방세로 납부하며, 주세와 지방세를 포함하면 약 3분의 1을 세금으로 내고 있다. 이런 세금이 정부가 사회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데 충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화와 서비스의 구매가 아니라 이전소득으로 지급되는 정부 지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에서 차지하는 정부의 비중이 커진 것은 정부가 더 많고 더 좋은 도로, 더 많고 더 좋은 법률 기관, 더 많고 더 좋은 교육 시스템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 부는 피터한테 걷어 폴한테 주기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권력을 점 점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정부 서비스의 혜택에 대한 논의는 이런 근본적 진실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 맨큐는 부자들이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이 억만장자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의 발언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 이라고 생각한다. 버핏은 자신이 비서보다 낮은 세율로 세금을 낸다 면서 불합리하다고 밝혔는데, 맨큐는 이것이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라 고 이야기한다. 의회 예산국congressional Budget Office, CBO의 보고서에 따르 면51 2009년에 미국인 가운데 소득 하위 5분위는 수입의 1.0%만 연 방세로 납부했고, 소득의 중간 5분위는 11.1%, 그리고 상위 5분위는 23.2%를 세금으로 냈다. 그리고 가장 부유한 소득 상위 1%는 소득의 28.9%를 연방세로 납부했다.

-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임대료 규제 정책을 시행했 다.  경제학자들은 임대료 규제 정책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 정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뉴욕시는 수십 년 동안 임대료를 규제해왔다. 뉴욕시의 임대료 규제 정책을 적용받 는 아파트에 거주하거나 거주한 적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신디 로 퍼, 미아 패로, 알 파치노 등 유명 연예인도 포함돼 있다. 1990년대 초 에 패로의 아파트가 임대료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그와 동시에 아파트 임대료가 월 2,300달러에서 8,000달러로 상승했다.'
임대료 규제를 받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은 이득을 볼 수 있지만 주택을 사려는 저소득층은 손해를 본다. 1990년 한 여론조사 에 따르면 경제학자의 93%가 “임대료 상한제가 시장에 공급되는 주 택의 양과 질을 감소시킨다"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3 주택 공급이 부족할 경우 가장 가난한 시민들은 주택을 사지 못하거나 질 이 낮은 주택에 거주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임대료 규제는 집주인이 이 윤을 유지하려고 주택의 유지·관리를 소홀히 하게 한다. 부동산 가치 가 하락하고 걷히는 세금이 줄어들면 공적 서비스에 의존하는 빈곤층 이 특히 큰 타격을 받는다.
임대료 규제법 시행에 들어가는 관리 비용도 중요하다. 항상 경비 원이 있던 아파트 건물을 상상해보자. 임대료 규제가 시행될 경우 건 물 주인은 경비원을 없애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아파트를 임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규제 당국은 경비원을 해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건물 주인은 임금이 더 저렴한 경비원을 고용한다. 그는 지 각이나 결근이 잦고 가끔은 술에 취한 상태로 근무하기도 한다. 이번 에는 가구가 완비된 아파트를 생각해보자. 임대료 규제가 시행될 경 우 건물 주인은 임대료를 낮추기 위해 가구를 수리하지 않거나 새로 운 가구를 사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임대료 규제 정책을 성공적으로 시행하려면 많은 관리자가 필요하다. 임대인은 편법을 쓰고 싶은 마 음이 강해질 테고, 임대 부동산이 흔한 게 아니므로 세입자는 신고하 길 꺼리게 될 것이다.
임대료 규제는 또한 주거 차별을 심화시킨다. 임대료를 제한하면 일반적으로 아파트가 부족해지므로, 집주인이 주도권을 쥘 수 있다. 그래서 만약 집을 보러 온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주인은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기로 약속했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 다. 반대로, 임대료 규제가 없다면 몇 달 동안 세입자가 없는 빈 아파트들이 생길 것이다. 집주인은 편견에 따라 행동하면 공실이 날 위험 이 있기에 세입자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 다. 조금 더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저소득층의 주거 환경을 개선 해야 한다면 그 비용을 왜 집주인이 부담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 다. 부자인 집주인은 많지 않다. 실제로 집주인이 임대 부동산을 직접 유지·보수하는 경우가 많다
-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보 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에 소득을 제공할 더 좋은 방법들이 있다 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을 15달러로 급격하게 인상하려고 노력하는 몇 몇 도시의 정책에 다수의 경제학자가 반대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저 숙련 근로자의 고용 감소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논쟁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됐다. 모든 경제학자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득을 얻는 근로자가 손해를 보는 근로자보다 더 많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손해를 보 는 근로자는 모든 소득을 잃는 경우가 많다.

- 심리학자들이 수행한 행복에 관한 대부분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구, 배우자, 종교 기관, 자선단체, 친목단체와의 연결이다. 행복교수로 불리는 하버드대학교의 댄 길버트Dan Gilbert는 다음과 같이 이 야기한다.
우리는 인간의 행복을 가장 잘 예측하는 지표가 인간관계, 그리고 가족 및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은 돈 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건강보다 조금 더 중요하다. 데이터가 이런 사실을 보여준다.
- 또 다른 연구자들은 "사회적 유대관계가 좋고 건강에 좋지 않은 생 활 습관(예를 들면 흡연, 비만, 운동 부족 등)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 유대 는 약하지만 건강한 생활 습관을 지닌 사람들보다 실제로 더 오래 산 다는 것"을 발견했다." 강한 유대관계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드물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47%가 외로움을 느끼며, 외로움 을 느끼는 사람의 사망률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사람의 사 망률과 비슷하다."

- 경제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할 지도 모른다. "왜 노인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배달하는 것 같은 작은 일을 담당하는 별도의 관료 조직이 필요한가? 도대체 따뜻한 식사가 왜 특별한가? 이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예산을 노인들이 원하는 대로 쓸 수 있게 돈으로 주면 어떨까? 노인들이 따뜻한 식사를 원하면 그 돈으로 냉동 조리식품을 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고도 돈을 좀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이 분석은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노인들에게 선 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식사가 아니라 인간적인 접촉과 누 군가가 관심을 보여준다는 감정이다. 자원봉사자들은 관료보다 더 설 득력 있게 이 일을 해낼 수 있다. 조금 더 일반적으로, 자원봉사자가 많다는 것은 관료주의와 세금으로 인한 비효율적인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도 더 많은 공공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자신들도 즐거움을 얻는다 면 사회에도 분명한 이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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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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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오디세이

경제 2024. 3. 6. 07:25

- 돈의 가치를 지키는 데 있어서 이 세상에는 그리스가 아닌 로마의 후예가 훨씬 많았다. 화폐경제가 시작된 이래로 무수한 사람들이 돈을 위조하거나 함량을 속이려고 끊임없이 시도했는데, 이처럼 돈의 물리 적 가치를 낮추는 조작을 '디베이스먼트debasement'라고 한다.
오늘날까지 알려진 대표적인 디베이스먼트 기술은 클리핑 clipping 과 스웨팅sweating이다. 클리핑은 주화의 주변을 살살 깎아내는 방법 이고, 스웨팅은 주화를 가죽 부대에 넣고 마구 비벼대어 금화와 은화 가루를 얻어내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클리핑 여부를 눈으로 확인하 기 위해서 주화 테두리를 톱니 모양으로 만들었다. 스웨팅을 막기 위 해 이탈리아에서는 금전거래가 끝나면 금화를 곧장 주머니에 넣고 밀 봉한 다음, 주머니까지 통째로 주고받았다. 이탈리아어로 품질보증을 의미하는 '피오리노 디 수겔로ñorino di suggello'는 원래 '밀봉된 금화' 라는 뜻이다.
- 오스트리아학파를 대표하는 카를 멩거 Carl Menger는 화폐이론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화폐의 기원>에서 "화폐는 거래 편의를 위해 개인들이 고안해낸 것" 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대부 분의 교과서에서 유일한 정설처럼 전수되 고 있다. 화폐는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것이라는 일종의 진화론적 사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유시장을 옹호하고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오스트리아학파 의 대가들이 한마디로 말해서 상위 0.1 퍼 센트에 속할 정도의 부자였다는 점이다
- 멩거의 경우 유명한 변호사와 대부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부르주아였다.
오스트리아학파의 한 사람인 미제스도 마찬가지다. 나치를 피해 미 국으로 이주하기 전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도 손꼽히게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수제자인 하이에크 역시 남부럽지 않게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자기 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부호 가문의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과는 육촌관계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국가의 중요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오스트리 아학파의 철학은 그들의 출신 성분에서 유래된 자연스러운 결론이라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해체된 오스트 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최상위 0.1퍼센트로 살다 보면 '국가보다는 개 인, 정부보다는 시장'이라는 생각이 싹트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환경 속에서 극도의 무정부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지향하는 철학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한 축을 이루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사상은 결국, 남들이 누리지 못했던 당대 최고의 교육을 통해 터득한 지식으로 자신들의 우월적 존재 기반을 고상하게 방어하는 논 리에 불과할 것이다.
- 중국 사람들이 비단을 팔고 왜 금이 아닌 은을 받았는지는 여러 학 설이 있지만,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유럽보다 중국에서 은의 상대가 치가 더 높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유럽에서는 금과 은의 교환비 율이 1대 12~15 정도였지만, 중국에서는 1대 10이라는 관념적인 생 각이 지배했다. 중국이 은의 상대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래서 유럽 상인들은 중국 물건을 수입할 때 금 대신 은을 지급하고, 유럽 안에서는 중국 수입품을 금화로 거래했다. 환율 차이를 이용해서 이익을 남긴 것이다.
- 반짝거리지 않더라도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얼마든지 돈으로 쓰일 수 있다. 인류 최초의 법정화폐를 발행한 칭기 즈 칸은 그 사실을 알았지만, 종이돈을 혐오한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과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그것을 몰랐다(10장 참조).
앤드루 잭슨보다도 50년 뒤에 태어난 카를 마르크스는 미국 대통 령들의 오류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는 돈에 관해 설명하면서 "왕 이 왕인 이유를 왕에서 찾기보다는 백성과 신하의 눈에 왕으로 보이 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고 비유했다. 한 사회에서 돈이 존재하는 근 거를 왕과 마찬가지로 대상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사회구성 원 간의 관계(네트워크)에서 파악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 나라(경 제권)에서 돈이 존재할 수 있는 궁극적인 기반은 사회구성원 간의 관계를 지켜주는 국가의 주권이다(돈이 지닌 이런 측면을 강조한 것이 화폐국정설인데, 이에 대해서는 2장을 참조하라).
돈에 관하여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 결론에 이르게 되면 돈을 다루 는 대금업이나 은행업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 대금업자 나 은행가들이 비난받는 것은 순전히 오해의 산물이다. 시인 장 콕도 Jean Cocteau는 시인의 가장 큰 비극이 오해 때문에 칭송받는 것이라 고 했지만, 은행가의 가장 큰 비극은 오해 때문에 비난받는 것이다.
- 은행업의 원조는 비밀리에 운영되던 대금업이다. 처음에는 유대인들 이 독점했지만, 사업의 이윤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르네 상스 시대가 열리기 직전부터는 각국의 일반 시민들도 대금업에 뛰어 들었다. 길거리에서 테이블을 깔고 호객하던 메디치 가문이 그 예다(7 장 참조).
메디치 가문의 사업이 그 이전 유대인들이 담당했던 대금업과 다 른 것은 국제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처음에 표면적으로 내세웠던 사업은 무역과 유통업이었다. 방대한 사업망을 통해 무역을 주력 사 업으로 유지하면서 부수적인 사업으로서 은밀하고 교묘하게 여수신 업무를 실시했다.
은밀한 것은 재량예금의 수신이고, 교묘한 것은 외화표시 건식어음의 할인이었다. 재량예금의 창구는 오직 통치자, 귀족, 성직자 등 지 배계급에만 열려 있었다. 외화표시 건식어음은 어음을 할인받는 차입 자에게 받아내야 할 이자를 환율로 전가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그럼 으로써 표면적으로는 이자 없는 그림자금융을 당당하게 운영할 수 있 었다.
초기의 은행가들은 건식어음을 할인한 뒤 만기가 되면 해외지점이 나 해외 동업자를 통해 외국 화폐로 원금을 돌려받았다. 독립채산제 로 움직이는 본점과 지점은 일정 절차에 따라 나중에 어음 실물을 맞 춰보면서 서로의 채권과 채무를 정산했다. 이처럼 근대 은행업은 처 음부터 국제금융에서 출발했으며, 그 핵심은 본점과 지점 간 어음의 청산과 결제 즉 지급결제 업무(환업무)였다. 다시 말해 근대 은행업의 뿌리는 국제금융과 지급결제 업무에 있었다."
- 중앙은행이 없었던 시절에는 동업자끼리 서로 예금을 해 두고 그 돈(상대방에게 맞겨 놓은 금화)으로 결제했다. 지금도 국제적으로는 중 앙은행이 없기 때문에 해외송금 업무에서는 동업자은행끼리 코레스 (correspondent) 계약을 맺고 서로 지급을 대행하는 편의를 봐주는데, 이럴 때는 미리 예금을 맡겨놓거나 신용한도(credit line)를 정해둔다. 한편, 국내에서 동업자들끼리 서로 예금을 주고받는 것도 귀찮아지 자 은행의 집합장소인 어음교환소(clearing house)에 각자 지급준비금 을 맡겨 두었다. 그것이 나중에 중앙은행으로 옮겨가 지급준비제도로 진화했다. 오늘날 은행간 채무관계는 중앙은행에 맡겨놓은 지급준비금을 통해 정산된다. 은행들이 지급준비금을 이용하여 고객들을 위해 자금을 주고받는 일을 지급결제업무라고 한다. 과거에는 환(換)업무라 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은 지급결제 업무는 미리 맡겨놓은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급결제 수단의 하나인 수표(check)를 인출증(draft)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한편 중앙은행에 맡겨놓은 돈이 없는 보험사, 증권사, 저축은행, 금고, 신협 등은 지급결제 업무 면에서 일반 개인과 차이가 없다. 이들 제2금융권 금융기관들은 은행의 고객에 불과하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중앙은행에 예치한 정부예금을 근거로 국고 수표를 발행하고 전 국 각지로 재정 집행 자금을 뿌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정부의 재정자 금방출 활동은 개인의 송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한나라의 지급결제 시스템에서 정점은 정부가 아니라 중앙은 행이다. 중앙은행이 없었던 시절에는 어음교환소가 그 자리에 있었지 만, 지금은 중앙은행이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근대 은행시스템에서 지 급결제 업무, 지급준비금, 그리고 중앙은행은 삼위일체라는 사실이다.
- 19세기 말 일본은 유럽의 금융 시스템 속에 숨어있는 이런 사실 을 발견했다. 송나라 때부터 있었던 중국의 금융업자 전장이나 일 본의 금융업자 료가에는 단독 플레이어들이었다. 이에 비해 유럽 의 은행(bank)들은 매일 한자리에 모여 어음이나 수표를 집단적으로 결제(차액결제)했다. 이런 특징을 보고 일본인들은 'bank'라는 단어를 '은행'이라고 번역했다. 남북전쟁 중이던 1863년 링컨 대통령이 만든 '국가 은행법(National Bank Act)'을 읽고 1872년 메이지 정부가 '은행 조례'라는 법을 만들 때 탄생한 단어다.
은행이란 처음에 '은화 취급업자 일행 (association of silversmith)'이 라는 뜻이었다. 당시 일본은 은본위제도를 채택하고 있었으므로 은 행은 결국 '돈을 다루는 기관의 모임'이라는 집합명사다. 이 말 뒤에는 개별 기관보다는 집단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는 사물이 아닌 사실의 총합, 즉 세계는 사물 간의 관계로 이루어졌다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생각과 똑같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의 인식은 19세기 말 일본의 메이지 정부 수 준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 정부는 지급결제 업무에 관해서 은행 과 비은행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농업협동 조합법, 신용협동조합법, 산림조합법, 상호저축은행법, 새마을금고법 등 1970년대 제정된 여러 법률에는 지급결제 업무가 해당 기관의 고 유 업무인 것처럼 언급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중앙은행에 지급준비 금을 맡기지 않아서 지급결제 업무 자체가 불가능한데도 그렇게 법률 이 만들어져 있다. 일종의 입법 오류이며, 지급결제 업무에 대한 무지 의 반증이다.
- 2008년 소위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을 만들 때 증권사들까지 지급결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2020년부터는 카카오나 토스 등 IT 업체가 은행업 허가를 받지 않고 '종합지급결제사 업을 할 수 있도록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급결제는 중앙은행과 지급준비금이 전제되는 서비스라는 것을 전 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예로, 한마디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중국의 알리페이나 위쳇 등은 은행업 허가를 받고 지급결제 서비스를 제 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통법이나 전금법이 추구하는 것처럼 은행이 아닌 금융기관들이 지급결제제도에 참여하는 것은 위험하다. 1907년 미국의 금융공황이 그 예다. 은행과 신탁회사들이 대등한 자격으로 뒤섞여 지급결제 업무를 수행하다가 신탁회사들이 파산하여 발생한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였다. 사람들이 그토록 미워했던 J. P. 모건이 나서서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해서 가까스로 수습될 수 있었다(11장 참조).
지급준비금도 없이 지급결제 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닫고 1913년 세운 것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다. 과거의 쓰라린 경험 때문에 1970년대 미국의 저축은행들이 규제 완 화를 앞세우며 지급결제제도 참가를 요구했을 때 미 의회는 이를 수 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1980년 통화관리법을 통해서 저축은행에도 은행과 똑같이 지급준비의무를 부여했다.
어찌 되었든 지급결제 업무의 필요충분조건은 중앙은행과 거기에 맡겨둔 지급준비금이다. 금융의 역사나 생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 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우리나라 공무원은 모른다. 부끄러운 일이다.
- 소비임치계약이란 물건을 맡은 사람이 일단 소비하고 나중에 동종동량으로 갚는 계약을 말한다. 창고업 같은 통상적인 임치계약에서는 물건을 맡은 사람이 소비하는 것을 금지하지만, 소비임치는 소비가 허용된다.
'소비임치'라는 속성을 강조하면서 예금을 특수한 금융상품으로 보는 것은 역사의 산물이다. 대금업이 금지되던 시절, 메디치를 포 함한 개인 은행들이 재량예금이라는 말을 고안해 냈다(7장 참조). 정해 진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재량적으로 준다는 점을 표시하기 위해 '재량'이라는 말을 붙였고, 은행은 단순히 돈을 보관하는 것이라 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예치(라틴어로 depositum)'라는 단어를 고른것이다. 다만 예치된 물건은 은행이 소비할 수 있어야 하므로 '소비임치계약'이라는 속성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했다.
그런데 1515년 교황이 연 5퍼센트 이하의 이자 수취를 허용한 데 이어서 1545년 영국이 그 상한을 10퍼센트로 인상하면서 기독교 세 계에서 이자 수취가 합법화되었다. 그러면서 재량예금이라는 부자연 스러운 이름이 사라지고 고정금리를 지급하는 '예금'이라는 말로 대 체되었다. 예금이 소비임치계약임을 강조할 이유도 사라졌다.
- 1811년 영국의 판례를 시작으로 관습법을 따르는 나라에서는 예 금거래를 통해 고객이 맡긴 돈의 주인은 은행이라고 본다. 그런데 우 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예금은 소비임치계약'이라는 점을 유독 강조한 다. 이자 수취가 금지되던 시절 대금업자들의 선전술이 남긴 유산임 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금과 채권(은행채)의 차이를 유난스레 강조한다.
그렇다면 예금은 무엇인가? 금본위제도 시대에는 예금의 개념이 분명했다. 고객이 상업은행에, 상업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겨둔 금화 가 예금이었다. 화폐(금화)와 예금이라는 개념이 중앙은행보다 선행 했다.
그러나 불태환제도 시대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중앙은행이 있어야 화폐가 발행되므로 중앙은행이 화폐를 선행한다. 중앙은행은 지급준비율과 함께 지급준비의무의 적용대상(예금)을 정한다. 예금이 무엇인지는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행들이 취급하는 수많은 금융상품 중에서 어디까지를 예금으로 보고 지급준비의무를 적용하느냐를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그 판단을 중앙은행에 맡긴다. 지급결 제 업무는 통화정책 운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각국 중앙은 행들은 예금의 범위를 비교적 넓게 설정하고 낮은 수준의 지급준비율 을 적용한다. 예외를 적게 만들어야 빠져나갈 구멍이 줄어들기 때문 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정기예금과 채권(은행)을 구별하지 않고 동 일하게 지급준비의무를 부과한다.
-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은행이 예금의 범위를 정하는 것을 허 락하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예금의 범위를 넓히면 상업은행들의 지급 준비의무 부담이 커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극히 통화주의적 발상 이다. 통화주의적 관점에서는 지급준비제도를 규제 차원에서만 본다. 그래서 '지급준비세(reserve tax)'라는 말이 생겼다.
상업은행들은 지급준비금이 있으므로 지급결제 업무를 수행한다. 평소 중앙은행과 예금거래를 하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대출도 받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투자은행들이 스스로 상 업은행으로 전환한 뒤 지급준비의무를 흔쾌히 부담한 이유는 중앙은 행과의 예금거래가 투자은행(증권사)가 누릴 수 없는 특혜이자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급준비의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1년 지급준비의무 적용대상을 넓히기 위 해 한국은행법 개정 방안이 논의될 때 정부는 물론 은행 노조까지 나 서서 반대했다.
금융위원회는 지급준비의무를 무력화시키는 조치를 남발한다. 외 국이라면 예금에 해당하여 지급준비의무가 적용되는 공탁금, 주식청 약증거금, 신탁계정차, 콜머니, 환매조건부채권매매 등을 희한한 이 름으로 분류하여 지급준비의무를 배제한다. 결국 한국은행의 통화정 책이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애써 외면한다. 은행업의 기본인 예금에 대한 인식이 이러하니 한국은행 금융통화위 원회가 과연 은행업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 도 공무원보다 은행업을 잘 안다고 하기 어렵다.
- 네덜란드 경제학자 부이터Buiter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이제 중앙은행들이 최종대부자를 넘어서 '최종 시장조성자(last resort of market maker)'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은행만 살릴 것이 아니라 금융시 장 전체를 살리라는 주문이다. 정부도 감당할 수 없는 숙제를 중앙은 행에 맡기면서 은행들에만 특혜를 베풀지 말고 온 국민에게 혜택을 확대하라고 주문한다. 과연 옳은 말일까?
중앙은행이 지켜야 할 도덕률이 위기 때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에도 논란이 되기 충분하다. 이제 상당수 선진국 중앙은행들 이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지급한다. 그러다 보니 금융자산의 가격이 폭락하고 있는데도 은행들은 기업들을 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 히 앉아 중앙은행에 거액의 지급준비금을 묵혀 두면서 이자만 받는 다. 21세기 '3-6-3 룰'이라고나 할까?
- 그 결과 주요국에서는 돈이 잘 돌지 않는 가운데 초과유동성만 넘 쳐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실물경제는 엉망인데도 은행의 영업이익 은 엄청나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나서서 배당을 억제하고 은행원의 급여와 보너스 수준까지 통제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런 모습에서 시민들은 분노하지만 은행들은 태연하다. 그리고 금융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해서 공공연히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 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렇게 비양심적인 은행들 이 위기에 처했을 때 세제 혜택과 발권력을 동원해서 살려둔 것은 정 부와 중앙은행의 잘못일까?
- 경제학이 세속 철학인 이유
이렇게 케인스는 떠났지만, 케인스가 흔들어 놓은 경제학의 정체성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경제학 은 규범과학인가, 실증과학인가? 경제학은 법학, 수학, 철학과 같은 선험적·연역적 학문인가, 의학, 생물학과 같은 경험적·귀납적 학문인 가? 경제 제도와 원칙을 정해두고 그에 따라 정책을 운용해야 하는가, 달라진 현실에 맞추어 제도와 규범을 그때그때 바꿔야 하는가? 경제 학은 객관적 실체를 다루는 학문인가, 주관적 가치를 다루는 학문인가? 경제 체제의 위기 관리는 수리모형이 동반되는 과학인가, 직관이 동원되는 예술인가?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학문의 정체성을 넘어 경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정체성 문제로 이어진다. 다른 학자들에 비해서 경제학자들은 도대체 심지가 없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출범할 때 환율 안정의 중요성을 입 모아 칭송하던 경제학자들은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금태환 중단을 선언하자 "그것도 옳다"면서 일제히 변동환율제도의 장점과 가능성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온 갖 계량 분석을 통해 환율의 안정성은 포기하더라도 자유로운 자본 이동은 보장해야 한다는 결론을 수없이 내놓았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브라질식의 자본 통제나 토빈세Tobin's tax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도 속출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모습은 더욱 황당하다. 후진국들이 경제 위기를 맞았을 때는 절약과 긴축을 강조하던 IMF는 미국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선진국들의 재정 확대와 금리 인하를 바람직하 다고 두둔했다.
IMF의 수석이코노미스트로서 후진국들이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 절약과 긴축을 강조하던 학자(올리비에 블랑샤르)는 요즈음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충고한다. 얼마 전까지 세계 경제 가 구조적 장기침체를 맞았다고 비관론을 설파하던 학자(로렌스 서머 스)는 코로나19 위기 이후 돌변하여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하기 바쁘다. 이것이 미국식 주류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현주소다. 케 인스의 말대로 “사실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는 말로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울 정도로 경박해 보인다.
이렇게 엉성하고 천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경제학과 경제학자 들을 향해 더 가혹한 질문들이 쏟아진다. 경제학은 도대체 원칙과 영 혼이 존재하는 학문인가, 시류에 따라 지배자의 논리만 대변하는 시들의 궤변인가? 엄격한 법률가 존 애덤스가 살아 있다면,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을 변호하기 위해 학문의 법정에 설 것인가, 거부할 것인 가? "저는 사실이 달라지면, 생각을 바꿉니다. 선생님은 어떠십니까?"라는 케인스의 발 빠른 사상 전향은 학문의 법정에서 통할 수 있을까?
젊었을 때는 자유무역과 자유방임을 주장하다가 늙어서는 관세청장 에 올라 세금을 걷었던 '도덕철학 교수' 애덤 스미스의 이율배반성(경 제학에서는 이럴 때 '동태적 비일관성'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에둘러 말한다)은 진리의 법정에서 어떤 판결을 받을 것인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는 정부의 개입이 강조되는 케인스 시대로 다시 접어들었다. 하지만 2010년 유럽의 재정 위기와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같은 일을 고려하면, 정통 케인스주의가 통하 기도 어려워 보인다. 한마디로 케인스가 한바탕 체질을 바꿔놓은 제학은 지금 좌표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 오죽하면 정치인들이 현대 화폐이론(MMT)을, 컴퓨터 엔지니어들이 탈중앙화 금융(DeFi)을 시끄 럽게 떠드는데, 경제학자들은 이렇다 할 설명과 반론을 내놓지 못하 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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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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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로

경제 2024. 2. 19. 11:34

-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의 재산이 얼마인지 알고 있는가? 한때 그는 3,000억 달러(약 400조 원)의 재산을 가진 인물로 기록되었다. 연 간 130만대 (2022년 생산량)의 전기 자동차를 팔아서 얻은 대가라고 하 기에는 엄청난 돈이다. 만약 다른 자동차회사에서 만든 신차가 1년에 130만 대쯤 팔렸다면? 연구개발비와 제반 비용을 제하고 가까스로 손 익분기점을 넘긴 성적표라고 평가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론 머스 크가 남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시대흐름을 바꿔버렸고 산업흐 름을 선도한 것이다. 주식시장은 이를 반영했고, 그는 세계 1위 부자 가 되었다.
- 잠시 중국 MZ세대의 특징을 소개하자면, 최근 중국 젊은이를 지칭 하는 말 중 '탕핑주의'가 있다. 인터넷 뉴스나 유튜브에도 관련 영상이 있고,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 이 말은 '평평하게 눕다'라 는 뜻이지만, 한국말로 바꾸면 '일 안 할래! 배째!'라는 뉘앙스의 표현 이다. 비슷한 한국식 표현으로는 N포세대'가 있다. 중국의 '탕핑주의' 표현에도 '연애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 내 집 마련 포기, 최소 생계 비만 벌기'라는 N포세대와 공통의 뜻이 담겨 있다.
4포 세대: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포기
5포세대: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포기
6포세대: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취업 포기
7포 세대: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취업, 희망까지 포기
- 세상은 어리석은 도박꾼들로 가득 차 있으며 이들은 인내심 있는 투자자만큼 좋은 성과를 올리지 못할 것이다. (찰스 멍거)
- 워런, 좀 더 생각해보게. 자네는 똑똑하고 나는 옳으니까! (찰스 멍거)
- 돈의 목적은 교환이 아니라 기회다.
내가 가진 돈의 크기는 물질로 교환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환한 물질이 가져올 가능성에 목적이 있다. (김종봉, 제갈현열, 「돈 공부는 처음이라』)
- 나와 찰스는 사업 분석가다. 우리는 시장 분석가도, 거시경제 분석가도, 심지어 증권 분석가도 아니다.
사업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과 동시에 무섭게 확산하는 시장 심리에 휩쓸리지 않을 때 성공할 것이다. (워런 버핏)
- 그는 강으로부터 무엇보다도 경청하는 법, 그러니까 고요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영혼, 활짝 열린 영혼으로, 격정도, 소원도, 판단도, 견해도 없이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배웠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 기존 제조 산업의 하락 추세는 세계 성장엔진이 점차적으로 꺼져감 을 알 수 있다. 사실 과거 마오쩌둥 주석이 말한 것처럼 '동쪽이 밝지 않으면 서쪽이 밝다东方不亮西方亮,黑了南方有北方" 식으로 선진국의 경제가 주춤하면 이머징 경제 성장으로 세계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국가들의 성장세가 떨어지고 있다. 왜일까? 1492년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부터, 영국이 1차 산업 혁명을 계기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남극을 포함한 세계 거의 모든 대륙에서 식민지를 확장할 때부터, 그리고 이어지는 2차, 3차 산 업 혁명을 거치면서 세계경제는 그동안 끊임없는 기술혁신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사실 본질적으로 보면 생산요소 투입 형 경제로 성장해왔다. 여기서 생산요소는 기술, 자본, 토지, 노동을 말한다. 특히 2000년 이후 세계화가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서방의 선 진기술과 자본이 이머징 국가로 옮겨갔고, 저렴한 노동력 공급 확산에 힘입어 지속적인 생산요소 투입형 경제로 세계경제는 성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한강 기적'을, 중국은 G2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 나 생산요소 투입형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생산요소 한계 생산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필두로 한 대부분의 국가는 자본이라고 하는 생산요소를 무지막지하게 투입하면 서 사람이 진통제를 먹고 연명하듯이 기술의 특별한 혁신이 없이 주로 금융으로 경제를 연명해왔고, 결국 현재 대부분의 지역경제는 하락세 를 이어가고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 성장에 따른 소득 성장이 없는 상 황에서 금융으로 떠받친 경제는 실물경제와의 괴리로 결국 하락하게 되어 있다. 지금의 세계경제는 전통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거쳐 미래 산업의 주도적 성장을 이룩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 이는 대부분 국가 의 가장 시급한 과제다.

- 경기순환이론의 효시라 여겨지는 주글라파동은 1862년에 프랑스 경 제학자 클레멘트 주글라가 주창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10년마다 경 기순환이 반복된다는 중기 경기 사이클이다. 주글라는 1803~1882년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 경제 현상을 분석했다. 각 나라의 물가와 이자율, 은행 대출액 등의 데이터를 통해 호황 → 침체 → 파산'의 주기가 약 10년마다 반복됨을 알았다. 주글라파동의 의의는 달갑지 않은 '불황'이 경기가 순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 이라는 시각을 처음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10년 주기는 살면서 누구 나 몇 차례 경험할 수 있으며 그만큼 사람들에게 강력한 인상으로 남 는다. 그 결과 주글라파동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경기순환을 설명 하는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영국의 통계학자 조지프 키친은 3~4년마다 경기가 상승, 하락을 반복한다는 키친파동을 주창했다. 주글라파동이 10년 주기의 중기순환 이라면, 키친파동은 3~4년 주기의 단기순환이다. 키친은 1890~1922 년 영국과 미국의 어음 교환액, 도매 물가, 이자율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10년 주기의 주글라파동에 비해 짧은 주기(약 40개월)로 경기 가 순환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키친은 기업가들의 자산, 생산성 제고 에 따른 과잉 공급, 시간 지연 등의 이슈가 경기순환을 만든다고 생각 했다. 즉 기업들은 자신이 보유한 자산을 토대로 최대한의 생산성을 만들어내려 애를 쓴다. 그런데 많이 만들어진 상품이 생각처럼 팔리지 않으면, 과잉 생산이 되어 창고에 재고가 쌓이기 시작한다. 이제 기업 들은 생산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간 지연' 이 발생한다. 시간 지연이란 만들어진 물건이 팔리지 않아 재고로 남 는 상황을 기업이 인식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또한 생산을 줄이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재고가 소진되 면 이번에는 역으로 '시간 지연 현상이 나타난다. 물건이 다 팔려 생산 해야 하는 상황을 기업이 인식하기까지의 시간 지연 및 실제 물건을 만들기까지 공급이 부족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키친은 이러한 이 슈로 경제가 순환을 반복한다고 봤다.
미국에서는 주글라파동을 주순환이론으로 키친파동은 소순환이 론으로 수용, 활용했다. 사실 키친파동은 주글라파동의 반론이라기보 다는 보완하는 이론으로 탄생했다. 두 순환주기는 공통적으로 사이클 이 짧다는 점에서 누구나 쉽게 경기순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다고 하겠다.
- 쿠즈네츠파동
경기순환 이야기를 하나 더 첨언하자면, 쿠즈네츠파동이다. 미국에서 경제학자가 된 구소련 출신의 사이먼 쿠즈네츠는 인구와 건설업의 현 황이 경기순환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경기 가 순환하는 원인이 경제가 성장하는 단계에 따라 달라지는 소득 격차 에 있다고 봤다. 예컨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소득은 지방이나 농 촌 거주자의 소득보다 월등히 높다. 그리고 도시와 농촌간 소득 격차가 늘어난다. 농촌 거주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도시로 이주하게 되고, 도시에서는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건물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이는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소득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고,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 소득 격차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쿠즈네츠는 이와 같은 경기순환이 약 20년마다 반복된다고 봤다. 흥미로운 사실은 쿠즈네츠의 이론이 놀랍게도 중국에서 똑같이 실현 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은 2001년부터 성장가도를 달렸는데, 그 와중 에 부동산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중국인의 소득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리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갔는지 은행의 재무제 표를 보고 알 수 없다. 부동산으로 흘러간 대량의 돈은 모두 자산관리 금융상품으로 포장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정부가 부동산은 거주 용이지 투기용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자금을 부동산시장 에서 실물경제로 돌려오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중국 은행들의 자금은 점점 금융시장으로 흘러갔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금융자본이 실 물경제의 이익을 대체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림 4-7 에서 보면 미 국기업의 이익은 골고루 분포된 반면, 중국기업의 이익의 절반 이상은 부동산과 상업은행이 가져감을 알 수 있다.
- 사실 중국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에 10년 전 부터 경제구조조정 노력을 시도해왔으며 적극적으로 '3거 1강 1보(과잉 생산설비 해소, 부동산 재고 해소, 과대 레버리지 최소화, 기업의 원가 절감, 유효 공급 확대)'를 추진해왔다. 여기에서 가장 핵심은 '레버리지 축소'다.
즉 기업의 부채를 줄이는 것이다. 한편으로 중국정부는 레버리지 축소를 강조하면서 금리를 계속 인하시켜 이자부담을 덜어드려 이익을 제 조업에 양도해 자생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도 있다.
즉 중국정부는 부동산에 들어간 자금들을 고부가가치 제조업에 흘 러가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선 신재생 에너지와 배터리, 반도체 등 미래 산업에 있는 기업들에 대한 대출 금리를 최대 한낮춰서 주도 산업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대정책들을 적극적으 로 펼치고 있다. 또한 중국경제 경착륙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부동 산기업에 대한 금리 지원 정책도 펼쳐 제조업이 주도 산업으로 성장하 기 이전에 무난하게 경제가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 노력도 동시에 하고 있다. 한마디로 경제 성장과 경제안정을 동시에 실현해야 하는 시진핑 정부는 역사이래 가장 중요한 시점에 있다고 봐도 무난하다. 승패는 올해 하반기와 내년에 결정될 것이다. 주도 산업의 대표선수 교체가 잘 이뤄지면 중국경제는 새로운 성장가도를 달릴 것이고, 그 반대라면 잃어버린 일본의 과거를 보낼 수도 있다.

- 지난 10년간 국가 간 무역 장벽을 없앤 국제화의 결과로 확대된 세계 부가가치 금액은 약 18조 달러다. 그중 미국이 6조 달러로 벌어들였고 중국은 미국보다 더 많은 8조 달러를 벌어들였다. WTO 체제하의 국 제 무역의 가장 큰 혜택이 중국과 미국의 몫이었다. 두 나라의 몫이 14 조 달러나 된다. G2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도 혜택이 있지만 단 4조 달러의 부가가치만을 나눠 가져갔다. 한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이 4조 달러를 놓고 각축을 벌이는 격인데, 이 부분도 점점 줄어들고 있 다. 중국의 기술 경쟁력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 본 및 독일 등 선진국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난 20년 세계경제의 판도였다.
그러나 2018년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 전쟁은 미·중 간 기술 패권 전쟁으로 치달으면서 오랜 시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초강대국 미국 과 중국의 갈등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갈지 주목해야 한다. 두 나라의 관계 변화는 전 세계 국가들 간의 역학적 관계 변화를 가져 올 것이며, 이는 새로운 시대흐름을 만들어 우리 모두의 시대적 운명을 변화시킬 것이다. 국내외 언론과 학자들은 미·중 관계가 과거 40년의 협력 시대에서 '위대한 결별great decoupling 시대'로 완전히 전환되고 있 으며, 사실상 신냉전이 시작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과거 미국과 소련 이 2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다투던 관계가 냉전冷戰, cold war이었다면, 현 재미·중 G2 간의 갈등은 양전凉戰, cool war, 즉 겉은 차가워도 속은 차갑 지 않은 상황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이는 바이든정부의 '견제/경쟁+협 력'과 같은 의미라고 보면 된다. 겉으로 보이는 상황이 전부가 아니다.
- 그러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고 눈에 안 보이는 큰 흐름을 놓치는 우를 범한다. 필자가 자주 언급하듯 '파도만 보고 바람을 보지 않는 일'이라 하겠다.
현재 미·중 관계의 대립과 대결이 이데올로기, 정치 제도, 지정학적으 로 먼저 나타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공급망을 둘러싼 양국 간기술 패권 싸움에 이어 미국은 각국에 중국을 경제와 금융 등에서 분리하는 디커플링decoupling, 즉 탈동조화를 압박하고 있다. 이런 글로 벌 환경에서 중국은 어떻게 대응하려고 할까? 현 단계에서 중국정부는 쌍순환 전략, 다시 말해 방대한 국내시장에 기반한 내순환 경제 활성화 와 국제시장에서의 기술 수출 중심의 공급망 확대라는 외순환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는 대외적으로 개혁·개방과 수출경제를 유지하면서 내 수를 활성화해, 중국경제 성장의 두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미래 30년은 마치 후한 말기 삼국 시대에 들어선 것처럼 정치·경제·국 제 관계 모든 영역에서 불확실성이 더 큰 시대가 될 것이다. 한국정부 와 기업은 이에 대한 지혜로운 사고와 선제적 대응 전략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 '견제/경쟁+협력'의 대중 정책은 일방적으로 억제와 봉쇄만 하던 트럼 프정부의 정책과 궤를 달리한다. 트럼프정부 이전의 역대 미국정부는 '협력+견제'라는 정책이 기본흐름이었으며, 이중 '협력'이 핵심이고 '견 제'는 적당히 보완하는 관계였다. 미국은 일찍이 양국 경제 및 기타 방 면의 협력으로 중국을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시킬 수 있다고 생 각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 국민들이 잘 먹고 잘살게 되면 민 주주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변화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지난 40년간의 미·중 간 긴밀한 협력 정책이 결코 그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을뿐더러, 오히려 중국정부는 '중국식 현대화 발전 경로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협력만으로는 중국을 바꿀 수 없 다고 미국이 인지하게 된 배경이다. 즉 앞으로 대결과 대립으로 중국 을 봉쇄함으로써 변화시킬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 지금 미국 사회와 정부의 컨센서스다. 중국 정책과 관련해 바이든정부는 '경쟁'과 '억제' 가 중심이고 '협력'은 일부 영역에서 필요에 따라 보완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 만약 미국의 논리대로 중국이 대만을 전쟁해 수복할 생각이었다면, 그 시점은 2027년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어야 한다. 적어도 2024년이 어야 한다. 2027년이면 대만이 전쟁에 대비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 이다. 즉 그동안 미국은 최첨단 선진 군사 무기들을 대만에 파는 등 충 분히 전쟁에 대비시키며, 일본 열도 주변에 미국의 군사 역량을 충분히 배치하면 중국은 이길 승산이 작아진다. 특히 중국 동풍 미사일의 사 격 거리가 2,100km인데, 그 사이 미국 항공모함에서 이 미사일을 요 격할 만한 기술을 구사해내기라도 하면 해양에서도 승산이 없어진다. 2024년에 있을 미국 대선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공화당이 바이 든을 물리치고 집권한다면, '퍼스트 아메리카' 구호를 외치며 지지 기반의 바람대로 중국과 더욱 긴장된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필자는 대만 전쟁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미국 대선에서 비록 트럼프가 졌지만 '트럼프주의'가 만들어졌고 7,300만표가 그를 지지하고 있으며, 이들은 2024년 미국 대선을 기약하고 있다. 또한 미 국사회의 '트럼프화가 앞으로 미·중 간의 전략적 판도를 크게 바꿔놓 을 것이다. 중국은 힘겹게 이룩한 경제 성장이 전쟁으로 모두 허물어 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전쟁에 나설 것이다. 2022년 나토의 동진東進으로, 그리고 우크라이나 친미 정책으로 부득이하게 전쟁을 할 수밖에 없던 러시아처럼 말이다. 그래 서 중국은 이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하는 중이다. 최근 군비 비중을 계속 높여 군사력 강화와 물자 비축 등 여러 가지 준비를 늘려가고 있다. 한국은 이런 정세를 파악해야 한다.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것처럼 누군가에게 휘둘려 움직이는 바둑알이 되지 말아야 한다. 냉정하게 주 변 판세를 읽고 흐름을 분석해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첫째도 둘 째도 국익, 경제이익에 초점을 맞춰 행동해야 한다. 남의 전쟁에 휘말 릴 필요가 전혀 없다. 한국은 비록 크기가 작지만, 경제적 위상이 높은 국가다. 그 어려운 선진국 반열에 오르지 않았나! 앞으로도 발전 가능 성이 크고, 지켜야 할 것이 많은 나라인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흐 름을 모르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분위기에 휩쓸려 행동하면 안 된다. 대만 문제는 자칫 한국의 국운을 결정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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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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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미국의 기준금리인 Fed Fund Rate(연방기금금리)에 대해서 살 펴볼 필요가 있어. 사실 이 금리는 연준이 정한 요구지급준비율 Reserve Requirement(지준)에 맞도록 은행 간에 차입 가능한 1일물Overnight 금리를 의 미해. 중요한 것은 그다음인데.
그럼 연준이 이렇게 기준금리를 정하면 모든 게 끝나느냐? 아니지. 이 금리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게 돼. 이 조치를 시행하는 기관이 바로 뉴욕 연방준비위원회 New York Federal Reserve Bank (뉴욕 연은)야. 여 기서 이 기준금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공개시장에서 단기 국채의 공급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 이것이 바로 공개시장조작이라고 하지.
즉 기준금리를 4.75~5%으로 25bp를 올리게 되면, 뉴욕 연은은 25bp가 인상하는 정도로 채권의 공급을 늘려서 유동성을 흡수하는 기능을 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실제 은행 간 차입이 가능한 1일물 Fed Fund Rate를 '유효 연방기금금리Effective Fed Fund Rate'이라고 해."
- 기준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지준율과 역레포 금리가 동시에 올라가게 되고 안전하게 예치 하려는 수요가 늘어나게 됩니다. 단기 금리가 상승하니 자연스럽게 만 기가 점차 길어지는 금리들이 높아지고, 금리가 높아지고 돈이 흡수되 니 빚투(빚내서 투자)하는 개인이나 대출을 통한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등 경기 성장 둔화, 나아가서 침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돈도 못 버는데 사람이 뭐가 필요하냐면서 해고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게 되고, 그러면 대출 조건도 까다롭고 가계소득 도 줄어드니 소비가 줄어들게 됩니다. 결국 인플레이션이 억제되는 결 과를 낳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장기 금리 는 하락하게 되어 장·단기 채권 금리 간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요."
1) 채권시장: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면, 당연히 채권 및 돈의 공급과 수요라는 단일요인에 영향을 받는 단기(주로 3년 이내) 금리가 인플레이션, 경제 성장, 비체계 적 외생변수 등의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 장기 금리 상승 속도보다 빨리 올 라갑니다. 금리 인상 초기, 중기에는 채권 금리 상승으로 크레디트 채권 수요도 감소하며 크레디트 스프레드도 확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기준금리 인상 말기에는 침체 우려로 장기 금리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입 니다. 즉 장·단기 금리 역전 차가 최대가 되고, 이것이 향후 경기침체, 그리고 이 것을 막기 위한 금리 인하 기대감도 생기게 되어 장·단기 금리 차이는 다시 정 상화되는 과정으로 돌아갑니다.
2) 주식시장: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한 어느 정도의 기준금리 인상은 주식시장에 오 히려 이롭습니다. 그러나 과도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이어 나오는 급한 긴축정 책은 주식시장에 해롭습니다. 2022년에 주식시장 하락 전환(S&P 500 기준 약 -19% 하락)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기준금리 인상 후기, 그리고 장기간 유지는 경기침체를 불러일으켜 주식시장의 급락을 예고할 수도 있습니다.
3) 외환시장: 단기 금리가 상승하면 달러 가치가 같이 상승하게 됩니다. 사실 기준 금리 인상의 가장 큰 목적은 물가 안정 아니겠습니까? 미국은 대표적인 수입국 이어서 수입 물가도 상당히 중요한데요. 달러 가치가 상승하면 상대방 국가의 통화 기준으로 들어오는 수입품의 달러 기준 가격이 하락하는 효과를 갖게 됩 니다. 반면에 미국으로 수출하는 해외 기업들, 해외로 수출하는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은 하락하여 그들의 수익성에는 악영향을 미칩니다. 왜 기축통화인 달러 가치가 올라가면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는지는 이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지난 2007년 2월 일드커브를 토대로 예측한 2008년 2월 경기침체 확률이 41%였는데, 내년 2월은 54% 수준이네요. 그리고 지난주 에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했고요. 이번에도 이 지표가 대략 맞을 거 같 은데요?"
테드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을 합니다.
"부장님, 그러면 이럴 때는 어떤 금융상품을 준비해야 할까요?"
마이클이 현실적인 질문을 합니다.
"네, 어쨌든 현재 일드커브를 기준으로 예측할 때, 경기침체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상황입니다. 이럴 때에는 채권, 주식, 달러시장이 다음과 같이 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채권: 안전자산 선호현상 강화,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로 단기 금리 급락, 일드커브 스티프닝
*주식: 주가 급락 가능성 큼
*달러: 안전자산 선호로 강세. 그러나 연준의 완화정책 기대 반영 시 급락 가능성 상존
가장 확실한 것은 위험자산에 대한 비중을 줄여야 합니다. 
- "주식시장은 요즘 주가흐름 보면 알겠지만, 경기침체는 결국 주가 하 락을 동반하겠지. 지금도 주가가 내려가잖아. 온갖 지표가 안 좋으니까. 그런데 경기침체가 일어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지? 고용이 둔화하고 마이너스 경제 성장을 한다는 거잖아? 그러면 연준 설립 목적의 한 축 인 완전고용과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인플레이션 걱정 없는 성장이 무 너지는 거지. 그래서 참여자들은 페드 풋FEDPut'을 기대하고 오히려 주가 가 반등할 수 있는 거지.
- 예를 들어 지난 주에 미 재무부와 연준, 그리고 예금보험공사가 실 리콘밸리 은행SVB,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등 지역 은행 구제방안으로, BTFPBank Term Funding Program (은행 기간 펀딩 프로그램)이니 전액 예금보호 등 의 구제책으로 주가를 부양시키는 것 등은 일종의 페드 풋이라고 하겠지. 결론을 말하자면,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지면 초기에는 위험자산이 내 려가나, 페드 풋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 오히려 주가가 상승하는 경우 도 있어. 그러니까 중·장기적 관점에서 꼭 경기선행지수의 지속적인 마 이너스 성장이 주가에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
외환시장은 미국의 경기침체는 곧 전 세계의 경기침체니까 안전자산 선호현상 발동으로 달러 가치가 올라가다가, 페드 풋 기대감이 높아지 면 달러 가격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일 거야.
- 사실 우리나라의 침체 가능성이 커진다고 해봐. 그러면 외국인 투자 자들이 한국에 발을 빼고 돈을 유출할 거고, 그러면 원화 가치가 떨어질 거 아냐? 다만 달러라는 기축통화의 특성상, 경기침체가 안전자산 선호 현상을 불러일으켜 가치가 올라간다는 예외를 말하고 싶었어.
지금 상황을 빗대어 보면, 작년 3월부터 계속 기준금리를 올려왔잖아. 그래서 달러 가치도 엄청 상승하고 말이야.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지 만, 작년보다는 내려오는 상황이고. 이렇게 금융시장 혼란이 지속되면 결국 연준은 적어도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겠지? 그러면 달러 가치는 떨 어지는 거야. 그래서 경기침체가 일어나면 단기적으로 달러 가치는 상 승할 수 있지만, 결국은 하락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 "부장님께서 말씀 주신 내구재 신규주문 지표는 전형적인 성장지표입니다. 경기확장기에는 성장하고 침체기에는 수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따라서 내구재 신규주문이 잘 나올 경우에는,
1) 채권시장: 금리가 상승하고 크레디트 스프레드는 축소합니다. 특히 항공기 및 방산을 제외한 자본재의 추이를 같이 봐야 합니다. 경기침체가 올 경우에는 이 지표 중심으로 급속도로 하락하고, 이에 채권 금리 또한 하락합니다. 이는 경기 침체에 대한 안전자산 선호로 크레디트 채권의 스프레드는 확대될 것입니다. 이 후 연준이 통화정책을 변경, 완화정책으로 금리는 추가로 하락하고 스프레드는 축소 전환할 것입니다.
2) 주식시장: 내구재 주문이 잘 나오면 기업 실적 향상 기대감으로 주식시장은 긍 정적인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같이 통화정책을 긴축 모드로 가져 갈 경우에는 연준 당국자들이 '내가 이렇게 돈줄을 죄었는데도 주문이 잘 나와? 경기가 여전히 확장 국면이구나'라고 생각하여 기준금리 인상이나 양적 축소를 더 세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는 위험자산에 오히려 악영향을 줍니다. 마치 'Good News may be Bad News to investors(좋은 뉴스는 투자자에게 나쁜 뉴스일 수도 있다)'입니다.
3) 외환시장: 미국의 경기확장, 그리고 연준의 금리 인상을 동반하므로 달러 가치는 오르게 됩니다.

- 정리해보겠습니다. 매월 첫 번째 영업일에 발표하는 ISM 제조업 PMI, 그리고 제조업 발표 후 일반적으로 2영업일 후 발표하는, 미국 경제 규모의 70% 비중을 차지하는 서비스업 PMI는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발표 시기를 감안할 때, 지표의 적시성이 뛰어나다.
2) 건강검진처럼 미국 경제를 검진하는 종합 지표로서 세부 항목인 고용, 신규주문, 물가 등의 선행지표의 역할을 한다.
3) 서베이 항목이 직관적(3지선다) 이어서, 수치를 이해하기 쉽다. 즉 50을 기준으 로 그 이상이면 경기확장, 그 미만이면 경기수축을 의미한다.
4) 종합 지표 기준으로 상승 추이 및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면 경기에 대한 낙관론 이 커져서, 주가 상승, 채권 금리 상승 및 크레디트 스프레드 축소 현상을 보인 다. 지금 같은 둔화 국면에서는 반대 현상이 발생한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점에서 연준의 통화정책과 연계하여 생각한다면 'Bad News is Good News' 인식으로,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종료에 대한 기 대로 위험자산은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침체론이 우세한다면 4)의 현상처럼 위험자산 가격 하락, 채권금리 하락, 그리고 달러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 GDP가 예상치를 상회하면, 경기가 확장국면이기 때문에, 현재 인 플레이션이 상당기간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할 겁니다.
1) 채권시장: 따라서 연준은 긴축을 당분간 계속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금리는 상승할 것입니다. 크레디트 스프레드는 연준의 긴축이 심화되어 경기침체에 대 한 우려가 커질수록 확대될 것입니다. 다만, 긴축을 해도 경기지표가 당분간 이 렇게 견고하다고 판단되면 위험자산 수요는 증가할 수 있습니다.
2) 주식시장: 크레디트 스프레드 움직임과 유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경기침체 우려가 커질수록 연준이나 미 재무부에서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주식시장이 적어도 급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 음을 확산시킨 계기입니다. 사실 GDP 성장은 경제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GDP가 예상치를 상회한다면 주식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입 니다. 다만 긴축 우려가 얼마나 커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3) 외환시장: GDP 지표 호조는 달러 가치를 상승시킬 것입니다. 적어도 연준이 당분간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희박해지기 때문입니다.

- 1) 고물가 시대, 기대인플레이션은 향후 CPI, PCE 등 주요 지표의 중요한 선행지표로서 최근 발표 수치에 따라 금융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2) 인플레이션은 채권 금리 등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명목금리 = 실질금리 + (기 대)인플레이션)로서, 최근 기대인플레이션 하락은 금리 자체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3) 위험자산의 경우, 인플레이션 하락 요인에 따라 등락이 결정되는데 연준이 기 준금리를 더 이상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 상승하고, 경기침체에 따른 하락이라면 위험자산 하락 요인이 된다.
4) 경기침체는 안전자산으로 취급받는 달러로의 쏠림이 심화되어, 단기적으로 달 러 가치 상승을 불러온다. 그러나 연준이 기준금리 동결 또는 인하 등 이른바 통화정책의 피봇이 이뤄지면 달러 가치는 급락한다.
5) 기대인플레이션은 응답자의 주관적인 답변을 기초로 작성된 정성적 통계자료이므로, 실생활을 가장 잘 반영하는 수치로 연준에서 비공식적이지만, 관심 있 게 모니터링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 일단 2% 목표 문구는 2012년 1월 FOMC성명서에서부터 등장한 거야. 우선 고용과 물가라는 두 가지 지켜야 할 목표를 균형 있게 달성하 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 그리고 인플레이션을 대표하는 지표는 Core PCE야. 몇 번 설명한 적이 있지만, PCE는 CPI에 비해서 주택 비중이 훨씬 낮아서 지표 발표 기준 월 물가 상황을 보다 적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 주택 임대료는 장기 계약이라서 당장의 물가에는 반영 되지 않다는 특성을 감안해서 말이야.
그러면 이 물가안정목표제를 미국이 제일 먼저 실시했느냐? 그건 아 니고,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1990년에 최초로 물가 목표 2%를 중앙은행 목표로 설정하는 데서 시작한 거야. 그래서 주요 중앙은행들이 이 물가 안정목표제를 채택하고 있어.
그러면 2012년 당시 의장이던 버냉키가 왜 2%를 목표라고 명시했는 가? 그가 저술한 책'을 인용하자면, 인플레이션은 가격 안정성을 지속 할 수 있는 한 충분히 낮은 수준이자, 기준금리 하한(당시 0%) 이하로 떨 어지지 않고도 금리를 낮출 여지를 제공함으로써 완전고용을 추구할 수 있는 연준의 능력을 지킬 수 있을 만큼 높은 수준이라고 정의하고 있지.

- PPI는 1902년 처음 발표된 물가지표계의 단군 할아버지입니다. 미 노동부 노동통계국은 매월 약 1만 개 이상의 개별상품과 상품군의 PPI 를 발표합니다. 처음에는 PPI가 광산Mining, 제조업의 모든 산업에서 생 산하는 모든 제품을 포함하다가 서비스, 건설 산업의 생산가격을 포함 하여 지표 산출을 하였습니다. 2023년 1월 현재, 미 인구조사국 2017년 측정기준, 약 69%의 서비스 산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SET의 구분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최종재 중간재: 생산단계, 구매층, 제작 정도 등으로 구분
2) 원자재: 최종 사용 방법, 상품의 유사성 정도로 구분
3) 순산출분: 산업, 산업군의 순산출량 가격 지표 산출을 위해서, 다양한 산업군에서 샘플링

- Bad News is Good News'라는 말이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앙은행의 적극 적인 개입을 보았습니다. 즉 경기가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들이 개입할 것이기 때문에 원래는 침체 우려가 나올 만한 경기지표가 나오 더라도 주가는 상승하고, 도리어 채권 금리도 같이 올라가는 현상을 자 주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고용지표가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면, 과거에 는 경기침체 우려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심화되어 국채 금리는 하락하 고 주가 역시 하락하게 됩니다. 반면에 달러 가치는 상승하게 됩니다. 그 러나 이제는 연준이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막을 내리고 금리 인하로 피 봇pivot하게 될 것이므로 금리는 하락하지만, 주가가 오히려 올라가고 달 러 가치는 떨어지는 현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오늘 월스트리트에서는 금리 인하 소식이 주식시장을 상승시켰지만, 금리 인하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리라는 예상이 나와 시장은 다시 하락 했습니다. 그러나 금리 인하로 부진한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는 인식이 다시 시장을 상승시켰고, 이에 경제가 과열되어 금리를 더 높일 수도 있 다는 우려가 제기돼 시장은 결국 하락했습니다(BobMankoff.com).
그야말로 '한 지표 두 해석'의 시대입니다. 특정한 지표 하나에만 과도 하게 해석하여, 마치 공식에 대입하듯이 금융시장을 예측해서는 안 되 는 시기입니다. 지표로 인하여 통화정책은 어떻게 변할 수 있으며, 다른 경제 및 금융지표를 함께 고려하여 투자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이제 1 더하기 1은 2라는 단 하나의 답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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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경제전쟁의 흑역사

경제 2024. 2. 4. 17:44

- 실로 황당하지 않은가? 지도에 선 하나 그어 놓고 세상을 절반으로 나눈 뒤 자기들끼리 "왼쪽은 에스파냐 땅, 오른쪽은 포르투갈 땅"이라 고 선언했다. 이 희대의 기하학적인 영토 조약 이후 유럽 백인들은 지구의 절반을 에스파냐 땅, 절반을 포르투갈 땅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신의 명령(!)조차 무시하는 모양이다. 사실 교황의 명령은 매우 단순했다. 직선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는 아프리 카는 포르투갈이 차지하고, 왼쪽에 있는 아메리카는 에스파냐가 차지 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면적의 두 배나 되는 아 메리카를 모두 에스파냐에 넘겨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포르투갈이 교황에게 강력히 항의했고, 이 항의가 받아들여져 1494년에 두 나라는 새로운 기하학적인 영토 조약을 맺었다.
그것이 바로 기존 기준선을 서쪽으로 1,300킬로미터 더 이동하는 토르데시야스조약(Treaty of Tordesillas)이다. 기준선이 아메리카 대륙 안 쪽으로 더 들어오는 바람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동쪽으로 튀어나온 브 라질이 기준선 동쪽, 즉 포르투갈 땅으로 편입됐다. 남미 지역 대부분 의 국가들이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아 지금도 에스파냐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지만, 브라질만이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아 포르투갈어를 공용 어로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토르데시야스조약에는 맹점이 있었다. 대서양 한가운데 그 은선 하나만으로는 아시아에서 경계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부 지런히 식민지를 개척하다 아시아에서 딱 마주친 포르투갈와 에스파
나는 치열하게 무역 경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태평양에도 경계가 필요 하다며, 1529년 에스파냐의 사라고사에서 기하학적인 영토 조약을 다 시 맺었다. 마치 수박을 반쪽으로 쪼개는 것처럼 토르데시야스조약 때 그은 금의 반대편에 남북으로 선을 쭉 그은 다음 그 서쪽은 포르투갈 이, 동쪽은 에스파냐가 차지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사라고사조약(Trea- ty of Zaragoza)이라고 한다.
사라고사조약대로라면 조선과 일본도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된다. 16세기 중반 일본인에게 조총을 전해 준 사람은 포르투갈 상인들인데, 이들은 자기가 일본을 언제든지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 영란전쟁은 오로지 무역이라는 이슈만으로 벌어졌던 세계 최초의 전쟁으로 꼽힌다. 말하자면 이 전쟁이 무역 전쟁의 시발점인 셈이다. 여기에는 묘한 경제학적 아이러니 하나가 숨어 있다. 전쟁이 발발한 이 유인 크롬웰의 항해조례는 중상주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영국의 보호 무역 정책이다. 그런데 중개무역의 강자 네덜란드는 영국과 달리 자유무역의 지지자였다. 두 나라가 충돌한 근본적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네덜란드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바다의 지배자가 된 영국은 이후 열렬한 자유무역의 수호자가 된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살 펴보겠지만, 당시에는 그게 영국에 더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즉 영국은 때에 따라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을 자국의 이익에 맞게 제멋대로 사용 했다는 뜻이다. 이현령비현령(耳鈴鼻懸鈴), 그러니까 '귀에 걸면 귀걸 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경제학이 사용된 셈이다.
-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몰두해 왔기 때문에 영국의 이런 태세 전환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문 제는 자유무역의 수호자로 변신한 영국이 “자유무역은 우리만의 이익 을 위한 것이에요."라고 솔직히 말하는 대신 “자유무역은 선진국인 영 국과 후진국인 식민지 모두를 위한 것이에요."라고 뻥(!)을 치고 다녔 다는 데 있었다. 영국의 이중성, 나아가 영국에서 발전한 경제학의 위 선은 자유무역이라는 이름 아래 선진국들의 식민지 착취를 정당화하 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공업 강국의 길을 개척한 19세기,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 1세 Napoléon(프랑스 제1제국 초대 황제, 재위 1804~1814-1815) 라는 걸출한 군사 지휘관이 정권을 장악했다. 유럽 대륙의 지배자가 된 프랑스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해상무역의 강자 영국은 유럽 의 주도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 둘은 1805년 지브롤터 해협 북서쪽 트라팔가르곳 앞바다에서 운 명을 건 일전을 벌였다(트라팔가르해전). 프랑스는 바다에서 영국에 연 전연패 중이었지만, 한때 무적함대 '아르마다 인벤시블레'(Armada In- vencible)를 이끌던 에스파냐와 연합해 자신 있게 전투에 나섰다. 그러 나 이 싸움에서도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는 명장 허레이쇼 넬슨 Horatio Nelson 제독의 영국 함대에 참패하고 말았다.
- 분통이 터진 나폴레옹은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대륙봉쇄령 (Conti- nental System)을 들고나왔다. 1806년 나폴레옹이 베를린 점령 후 "유럽 대륙에서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모든 국가는 즉각 영국과 무역을 중지 해야 한다."라고 칙령을 내린 것이다. 이를 베를린칙령이라 하는데, 경 제적으로 영국을 고립시켜 트라팔가르해전에서 당한 패전의 치욕을 앙갚음하려는 의도였다.
경제학에서는 이처럼 상대국과 무역을 단절하는 사상을 보호무역 주의라고 부른다. 영국이 주도한 자유무역주의에 대항하는 보호무역 주의의 반격이 드디어 시작됐다!

- 보호무역주의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 독일의 경제학자가 있었다. '보호무역의 옹호자'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리스트 Friedrich List가 그 주인공이다. 리스트는 “자유무역을 받아들이면 프랑스와 에스 파냐, 포르투갈은 최고급 포도주를 생산해서 영국인들에게 내주고, 자 기들은 저질 포도주나 마시는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라는 말로 자유 무역을 저주했다.
리스트가 살던 시절,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농업 국가였다. 리스트는 후진국 독일이 공업이 발달한 영국과 자유무역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영국에서 수입되는 물품에 어마 어마한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물론 극단적인 보호무역을 펼치면 효율성이 낮아져서 국민들이 고 통을 겪는다. 내가 직접 양파도 재배하고, 토마토도 키우고, 소도 길러 서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 울 테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자유무역을 용인하면 후진국은 영원히 선 진국이 되지 못한다. 진정한 공업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어려움을 인내해야 한다. 리스트가 그의 저서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Das nationale System der politischen Ökonomie, 1841)에 남긴 말을 살펴보자.
보호관세를 실시하면 초기에는 저렴한 수입 제품을 사용할 수 없 어 그 제품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서 그 나라가 온전히 제조업 역량을 향상시킨다면 나중에는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더 싼 비용으로 국내에서 그 물건을 생산할 때가 올 것이다. 초창기 보호관세로 손실을 입긴 하지만 그 민족이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며 전쟁에 대비한 산업적 독립성을 키우는 것은 초창기 손해를 감당할 만한 충분한 보상이라는 이야기다. 게 다가 산업적 독립성을 갖추면 그 민족은 이를 기반으로 내부적 번 영을 이뤄 내고 문명을 증진하며, 국내 제도를 완성하고 세력을 대 외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2장 '생산 역량의 이론과 가치 이론' 중에서 (직접 번역)

- 많은 사람이 남북전쟁을 노예해방 전쟁으로 알고 있다. 노예제에 반대한 북부의 지도자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제를 수호하려 한 남부 를 물리쳐서 노예해방을 이뤘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링컨은 적극적인 노예해방론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남북전쟁의 원인 자체도 노예제가 아니었다. 물론 북부가 노예제에 반대했고 남부가 옹호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의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
전쟁의 원인은 관세, 즉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물품에 세금을 얼 마나 매길 것인가'에 관한 분쟁이었다. 그 당시 미국 북부와 남부의 경 제구조는 완전히 달랐다. 북부는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아 공업이 매우 발달한 지역이었다. 이런 공업 사회에서는 노예제가 매우 비효율적이 다. 북부가 남부보다 이른 시기에 노예제를 폐지한 이유가 여기에 있 다. 반면에 남부는 드넓은 대지를 활용한 면화 농업으로 먹고사는 지역 이었다. 여전히 중세 농업 사회가 유지됐기 때문에 노예제는 이 지역의 중요한 경제적 기반이었다.
- 이 시기 미국 사회에서는 '영국으로부터 물건을 수입할 때 세금을 얼마나 매길 것인가'에 관한 논쟁이 시작됐다. 공업 사회인 북부는 영 국 수입품에 막대한 관세를 물리자고 주장했다. 그래야 영국 공산품의 가격이 뛰어 미국 내에서 자기들이 만든 상품을 더 많이 팔 수 있기 때 문이다.
하지만 농업 사회인 남부는 영국에서 수입한 물건의 가격이 뛰면 치명타를 입는다. 남부에서는 공산품을 거의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주 민들이 대부분 영국 제품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관세를 높여 수입 제 품 가격이 올라가면 남부 주민들은 과거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생필품 을 사야 했다. 당연히 남부는 관세를 높이는 데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남부는 이런 식이면 우리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묶일 이유가 없다 며 독립을 요구했고, 북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북전쟁이 벌어 진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이 전쟁에서 노예제가 이슈로 떠오른 이유 는, 노예가 별 필요 없던 북부가 남부를 비난하기 위해 그 문제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노예해방이라는 명분까지 확보한 북부는 결국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남부의 패배로 그 지긋지긋한 노예제는 현대사 에서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노예제가 폐지된 이유는 백인들이 인권 에 눈을 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벌인 전쟁은 경제적 이권을 위한 것이었고 노예제 폐지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구호였을 뿐이다.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노예제는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이유는 노예제가 더 이상 돈을 잘 벌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 다. 그런데 이런 비인간적인 제도를 수 세기 동안 운영한 자들 가운데 피해자들에게 사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잡식동물인 인간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인간에게 낙관과 비관이라는 묘한 딜레마를 선사한 다. 우선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을 매우 진취적인 동물 로 만든다. 내가 살던 안정적인 거처를 떠나도 어디에서든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동을 하고 모험을 한다. 신대륙을 발견 하러 떠나기도 하고, 북극이나 남극도 탐험한다. 정 먹을 게 없으면 물 고기라도 잡아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잡식성이라는 사실은 인간에게 새로운 공포를 안겨 주기도 한다. 사자나 코알라는 늘 먹던 것만 먹기 때문에 '이걸 먹으면 탈이 나지 않을까?'라는 공포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예를 들어 산에 갔더 니 버섯이 있었다. 사자나 코알라는 거들떠보지도 않겠지만, 인간은 속 으로 '저것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리고 버섯을 실제로 먹어 본다. 그러다가 독버섯을 집어 먹어 탈이 난다. 이때부터 독버섯은 공포의 상징이 된다.
- 그래서 로진은 "잡식동물인 인간은 평생 두 가지 동기가 엇갈리는 삶을 산다."라고 표현한다. 첫 번째 동기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도전 이다. 이게 바로 인간의 낙관주의를 상징한다. “그까짓 것 한번 도전해 보자고!"라는 용기는 바로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어!"라는 낙관에 기 반을 둔 것이다.
반면 두 번째 동기는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혐오다. "저거 도전하면 죽을지도 몰라!"라는 공포가 도전에 대한 욕구와 변화를 막는다. 잡식 동물이 아니면 이런 공포가 생길 리 없는데, 인간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잡식동물이기에 "저건 먹으면 죽을지도 몰라."라는 공포를 품게 된 것이다.
- 미국 뉴욕대학 스턴경영대학원 교수이자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이 사실을 이렇게 해석한다. 이 두 가지 성향 중 새 로운 것에 대한 도전 욕구가 더 강한 사람은 진보적 성향을 갖고, 새로 움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보수적 성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즉 진보는 용감하고 보수는 조심스럽다는 이야기인데, 인류는 이 두 가 지속성을 모두 품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가 된 이유는 비관주의보 다 낙관주의가 강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내가 하는 일이 모두 잘 될 거라고 믿는 낙관주의가 없었다면 인류가 어떻게 농사를 지었겠는 가? 농사라는 게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곡물을 수확하는 것이다. 즉 결과물을 얻기 위해 무려 6~7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그 긴 기간 동안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 고 농사를 짓는단 말인가? 막말로 그동안 맹수한테 물려 죽을 수도 있고, 홍수나 가뭄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는 비관보다 낙관을 선호한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은 내다 버리고! "내가 뿌린 씨는 잘 자라 서 가을에 풍족한 곡식을 만들어 낼 거야."라고 낙관하는 것이다. 농사 기술이 발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냥 기술이 발전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수백 마리의 버펄로 떼가 초원을 질주한다. 사실 거기에는 사자도 함부로 뛰어들지 못한다. 그곳 에 뛰어 들어가면 십중팔구 성난 버펄로들의 뿔에 받혀 죽는다. 하지만 인간은 그 짓(!)을 한다. "우리가 저기 뛰어들면 반드시 사냥에 성공해 오늘 밤에는 맛난 소고기를 배 터지게 먹을 거야!"라는 낙관으로 무장 한채 말이다.

- 인지신경과학자 탈리 샤롯Tali Sharot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는 저서 『설계된 망각』 (The Optimism Bias, 2012)에서 "낙관주의가 없었다면 최초의 우주선은 뜨지 못했을 것이고, 중동의 평화도 결코 시도되지 못 했을 것이고, 재혼하는 사람도 전무할 것이고, 우리 조상들은 감히 부 족을 떠나 멀리까지 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 럿거스대학 인류학과 라이어널 타이거Lionel Tiger 교수도 낙관주의 의 문명사적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인간이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 는 낙관적인 환상 덕분이다."

- 운하가 국유화된 이후 3개월 만인 10월 29일, 영국과 프랑스는 이집트와 앙숙 관계였던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이집트를 침공했다. 제 2차 중동전쟁 (Second Arab-Israeli War, 1956), 혹은 수에즈전쟁(Suez War) 이라 불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아랍 국가들과 사이가 나빴던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운하를 국유화하며 자국 선박의 해상 운송로를 막자 지체 없이 이 전쟁 에 뛰어들었다.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를 침공하며 개전의 나팔을 울렸고, 일주일 뒤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즉각 수에즈운하로 진격했다.
제1차 중동전쟁(1948~1949) 때 혈혈단신으로(미국의 강력한 무기 지원 이 있기는 했다) 아랍의 여러 적대국들을 격파했던 이스라엘의 화력에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가세한 이 전쟁의 결과 는 너무나 뻔해 보였다. 이집트의 나세르는 운하를 통과하던 배를 침몰 시키고 운하를 봉쇄하는 등 격렬히 저항했지만 전황은 나아지지 않았 다. 이집트의 참패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 그런데 이때 뜻밖의 변수가 등장했다. 사회주의국가들의 맹주 소련이 전쟁에 개입한 것이다. 소련은 핵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태도로 영 국과 프랑스를 비난하며 이집트에서 철수할 것을 압박했다. 당시 이집 트가 친소(親) 경향을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집트를 보호하기 위 해 소련이 나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진짜 뜻밖의 일은 소련의 대척점에 있던 자유 진영의 맹주 미국의 태도였다. 미국은 불과 8년 전 벌어졌던 제1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나라였다. 영국 및 프랑스와도 자유 진영 의 동맹이었다. 당연히 미국이 이 전쟁에서 영국-프랑스-이스라엘 삼각동맹을 지원할 것이라고 예상되던 찰나, 미국은 되레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에 철군을 압박하고 나섰다.
- 미국은 왜 이런 태도를 보였을까? 일단 첫째로, 당시 미국 입장에서는 수에즈운하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유럽의 여러 나라와 달리 미국 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뱃길로 동양을 오갔기 때문이다.
둘째,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Dwight Eisenhower (미국 제34대 대통령, 재 임 1953~1961)는 고작 수에즈운하 따위(!)로 소련과 핵전쟁을 벌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고 싶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핵전쟁이라 는게 인류의 존망을 걸고 벌이는 전쟁인데, 미국 입장에서 별로 중요 하지도 않은 수에즈운하 때문에 핵전쟁을 한다? 아이젠하워가 바보가 아닌 한 미국은 이 전쟁을 감당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19세기까지 세계의 최강대국은 단연 영국이었다. 그리고 영국에 대항하는 강력한 대항마는 프랑스였다. 하지만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이들의 시대는 저물었다. 미국이 두 나라에 당장 이집트에서 철수 하라고 압박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거스를 힘도, 용기도 없었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의 강력한 협박에 못 이겨 이집트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전쟁은 고작 열흘(1956년 10월 29일~11월 7일) 동 안 진행됐는데, 영국-프랑스-이스라엘 3국 동맹군은 철수하기 직전 까지 260명가량의 사망자만을 남긴 반면, 이집트군의 사망자는 무려 1,650~3,000명으로 추정됐다. 한마디로 일방적인 전쟁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일방적인 전황에도 불구하고 영국-프랑스-이스라엘 3국 동맹군은 이 전쟁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전투에서는 밀렸지 만 수에즈운하를 봉쇄하면서까지 결사 항전의 의지를 다졌던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의 위상은 오히려 높아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의 한 마디에 찍소리도 못하는 쫄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무역로를 두고 벌어진 이 전쟁은 과거 의 강자 영국과 프랑스의 시대가 저물고,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명확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패권국의 지위를 상실했고,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양대 축 아래 새로운 국제 관계를 추구하게 되었다.

- 베르사유조약은 독일 경제를 아예 파탄 내 버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승전국인 연합국 측이 책정한 전쟁배상금은 무려 1,320억 마르크, 요즘으로 치면 우리 돈 300조원이 넘는 거액이었다. 이 거금을 갚을 기간으로 30년이 주어졌다.
1,320억 마르크를 30년 안에 갚으려면 독일 국민들은 그야말로 허 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1922년 독일의 국민소득이 350억 마르크였으 니 1,320억 마르크는 독일 국민들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3년 8개월 동안 일해야 겨우 모을 수 있는 큰돈이었다. 그런데 연합국은 독일에 허리띠를 졸라맬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당시 독일이 유일하게 외화를 벌 수 있는 방법은 철과 석탄을 수출하는 것이었는데, 연합국 측에서 독일이 무역할 수 있는 배를 전부 압류해 버렸기 때문이다. 독일은 연합국에 배상금을 꼬박꼬박 갚아나갈 형편이 도무지 되지 않았다. 그러자 연합국 측은 배상금을 석탄으로 갚으라고 강요했다. 배상금이 연체 되자 프랑스와 벨기에는 군대를 동원해 독일의 루르 지방을 점령했다. 그 지역에서 나는 지하자원이라도 퍼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유일한 돈 벌이 수단인 석탄마저 빼앗긴 독일 경제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독일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엉뚱한 방법을 동원했다. 배상금 물 어 줄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돈을 인쇄기로 왕창 찍어서 달러와 교환해 갚아 버리기로 한 것이다(당초 독일이 갚아야 할 1,320억 마르크는 금, 또는 외환으로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실물경제의 발전 없이 돈만 왕창 찍 으면 당연히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오른다. 이 때문에 당시 독일의 물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등했다.

- 평화의 경제적 결과
프랑스와 영국의 감정 배설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원수 독일의 경 제를 박살 내야 한다는 그들의 목표도 달성했다. 그런데 그 대립의 이 데올로기가 경제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게 중요한 포인트 다. 경제적으로 프랑스와 영국은 배설한 감정의 수백, 아니 수천 배에 이르는 곤경에 빠졌다.
독일 경제가 박살이 나면서 이웃한 프랑스와 유럽의 경제가 흔들 리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1929년 미국에서 촉발된 대공황이 유럽을 덮쳤다. 심지어 재기 불능의 경제적 파국을 맞은 독일은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를 새 지도자로 선출했다. 그리고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 으키는 방식으로 궁지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 제2차 세계대전은 제1차 세계대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프랑스와 영국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았다. 심지어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완전히 미국에 넘겨줬다. 영국과 프랑스 는 독일을 파멸시켰다는 감정의 배설에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계산할 수 없는 경제적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사태를 미리 예견한 경제학자가 있었다는 것이 다. 세계 대공황을 극복한 수요주의 경제학의 창시자 존 메이너드 케 인스John Maynard Keynes가 그 주인공이다.
케인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19년 열린 파리강화회의에 영국 대표단 일원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파리강화회의가 평화의 유지가 아니라 독일을 압살하는 보복적 방식으로 결론을 맺자, 실망한 채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달 만에 『평화의 경제적 결과』 (The Eco- 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 1919)라는 명저를 남겼다.
케인스는 이 책에서 “감정을 잠깐 접어 두고 냉정하게 경제적 현실 을 직시하자."라고 주장했다. 만약 독일을 거덜 내서 망하게 하면 독일 혼자 망하지 않는다는 게 케인스의 예측이었다. 당시에도 유럽은 지리 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공동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한 곳 이 망하면 반드시 경제적 여파가 이웃 나라로 번지게 된다는 것이 케 인스의 시각이었다.
케인스는 독일에 가혹한 배상금을 물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정치 논리를 앞세워 경제를 내다보지 못하 는 각국 정치인들의 행태에 강하게 분노했다. "불행하게도 정치적 고 려가 경제적 고려를 방해하고 있다. (...) 진실을 말하자면, 인간은 스스 로를 빈곤하게 만들고 서로를 빈곤하게 만들 방법을 고안해 낸다. 개 인적 행복보다 집단적 증오를 더 선호한다." 무엇이 국민들에게 더 경 제적으로 도움이 될지 냉정하게 판단하지 않고 “야, 이 원수들아!"라고 감정을 배설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빈곤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 미국은 언제 무기를 많이 팔 수 있을까? 그들에게 가장 좋은 상황은 1 전 세계가 팽팽한 긴장 상태라 너도나도 무기가 필요 할 때, 2 전쟁이 벌어져서 무기 수요가 급증할 때다. 그래서 미국 군수 자본은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평화는 무기 판매량을 줄이는 최대의 적이다.
미국 군수 자본은 인위적으로라도 긴장과 전쟁을 부추겨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최고의 방법은 미국 군부, 그리고 그 군부의 지지를 받는 강경파 정치인을 구워삶는 것이다. 혹여 정치인 가운데 평화를 지 향하는 자가 있다면 군수 자본은 군부와 강경파 정치인을 앞세워 "평 화는 무슨, 무력으로 제압해야지!"라는 여론을 조성한다. 군수 자본은 군부와 강경파 정치인에게 거금을 들여 로비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이익을 주고받으며 공생의 길을 걷는다. '군부-강경파 정치인-군수 자 본'의 삼각 공조를 일컫는 말이 바로 군산복합체다.
군산복합체가 끊임없이 전쟁과 긴장을 조장하는 상황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경고한 이는 역설적이게도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자 군인 출신으로 미국 제34대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다. 그는 1961년 대통령 퇴임식에서 다음과 같은 경고를 남겼다.
우리가 연간 군사 안보에 쓰는 돈은 미국 기업들의 순이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다. 방대한 군사 체계와 방대한 군수산업의 결합 이라는 것은 미국에 새로운 경험이다. (...) 우리는 그 안의 어두운 함의를 놓쳐서는 안 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군산복합체가 통제 불 가능한 영향력을 갖게 될 수도 있으므로 정부의 여러 협의회들은 그 영향력을 경계해야 한다.
- 아이젠하워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군산복합체라는 거대하고 음험한 세력으로부터 큰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군산복합체가 존재하는 한 미국은 늘 전쟁의 위협에 놓이게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미국 군산복합체는 전쟁을 만들어 낸 전력이 있다. 미국의 베트남 침공 이 그것이다. 1964년 미국 정부는 통킹만에서 북베트남 어뢰정이 미국 의 구축함에 포격을 가했다는 이유로 베트남을 침공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 1971년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이른바 '펜타곤 페이 퍼'(Pentagon Papers)로 불리는 미국 국방부의 기밀문서를 입수해 보도 한 바에 따르면 북베트남의 공격을 받아 전쟁에 가담하게 된 미국이, 사실은 베트남전쟁 (Vietnam War, 1960~1975)에 개입하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고 적혀 있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국방장관이던 로버 트 맥너마라Robert McNamara는 1995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베트남전쟁은 '미국의 자작극'이었음을 시인했다. 
- 국제 망신에서 벗어날 또 다른 전쟁이 필요했다
10년 넘게 진행된 베트남전쟁 동안 미국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엄 청난 양의 무기를 사들였다. 미국 군수 자본은 무기를 팔아 어마어마한 이익을 챙겼다. 문제는 그 전쟁이 미국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는 데 있 었다. 군산복합체는 이익은 챙겼지만, 명분을 잃었다. 세계 최강대국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참패한 이 전쟁은 군산복합체의 위신을 땅바닥으로 추락시켰다.
게다가 1990년대 들어서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국가의 몰락은 동서 냉전 시대의 종식과 평화 시대의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군산복합체는 결코 평화를 원하지 않았다.
군산복합체는 두 가지 이유로 전쟁을 원했다. 첫째, 베트남전쟁의 참패로 땅에 떨어진 위신을 회복해야 했다. 둘째, 동서 냉전이 종식되어 군사적 긴장이 완화된다면 무기를 대량으로 팔 방법은 전쟁밖에 없 었다.

- 군산복합체의 좋은 먹잇감이 등장했으니, 1990년 8월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 saddam Hussein (이라크 제5대 대통령, 재임 1979~2003) 이 이웃 나라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이다. 애초에 이 전쟁은 상대가 되 지 않는 싸움이었다. 이라크군은 무려 30만 명의 최정예 부대를 내보 냈지만, 쿠웨이트의 병력은 3만 명에 불과했다. 쿠웨이트는 삽시간에 무너졌다.
후세인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여러 가지다. 당시 이란과 8년간 의 긴 전쟁을 치른 직후였던 이라크는 석유를 팔아 나랏빚을 갚기 위 해 석유 가격이 오르기를 바랐지만, 쿠웨이트가 석유를 너무 많이 생산 하는 것이 큰 불만이었다. 유가를 하락시킴으로써 이라크를 경제 위기 에 빠뜨리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쿠웨이트와의 오랜 영토 분쟁 도 전쟁의 빌미가 되었는데, 특히 국경 지대에 걸쳐 있는 유전이 문제 였다. 그러니저러니 해도 분명한 점은 후세인이 쿠웨이트가 보유한 막대한 양의 석유를 탐냈다는 사실이다. 그는 당시 미국이 석유의 보고인 중동 지역에 감히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 듯했다. 게다가 100만 명이 넘는 정규군을 보유했던 후세인은 베트남에서 참패한 미 국을 얕잡아 보기까지 했다. 사막에서 소모전을 벌이면 자신들도 베트 남처럼 미국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후세인의 생각은 오판이었다. 미국 군산복합체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이유로 전쟁을 열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베트남전쟁 이 후 절치부심하여 놀라울 정도로 전력을 향상했다. 미국은 소련 등 국제 사회의 중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1991년 1월 '사막의 폭풍 작전'(Op- eration Desert Storm)이라고 불린 놀라운 작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걸프전쟁(Gulf War, 1990~1991)이 이때부터 본격화되었다.
- 물론 미국이 걸프전쟁을 벌인 원인은 단지 전 세계에 자신들의 무기를 홍보하고 군수 자본의 무기를 팔아 치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중동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받고 싶었다. 그를 위해 서는 친미 성향의 쿠웨이트 정부를 보호하고 반미 성향의 이라크를 제 압해야 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미국 제37대 대 통령, 재임 1969~1974)도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가 쿠웨이트의 민주주의를 위해 전쟁을 벌였다고 주장하는 것 은 위선이다. (...) 사담 후세인이 잔인한 지도자이기 때문에 전쟁 을 벌였다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 (...) 잔인한 지도자를 처벌하 는 게 우리 방침이라면, 우리는 시리아의 하페즈 알아사드 Hafez al- Assad 대통령과 동맹을 맺지 말았어야 했다. (...) 이 전쟁은 후세인이 우리의 석유 생명선을 쥐고 흔들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론 미국이 걸프전쟁을 벌인 까닭이 잘 설명되 지 않는다. 왜냐하면 압승을 거둔 이후에도 미국은 이라크의 독재자 사 담 후세인을 잠시 살려 뒀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전쟁은 독재자 후세인 제거가 목표라기보다, 베트남전쟁으 로 땅에 떨어진 미국 군수 자본의 재기전 성격이 강했다. 그리고 그 재 기전은 성공적이었다. 실제로 당시 합참의장이던 콜린 파월Colin Powell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미국은 마침내 베트남 증후군을 이라크 사막에 묻 었다."라며 기뻐했다.

- 금융 자본, 전쟁의 전면에 서다
이라크전쟁이 과거의 전쟁과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다. 미 국의 금융 자본이 전쟁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미국은 군 수 자본과 금융 자본, 그리고 IT(정보기술) 자본이 이끄는 나라라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미국은 제조업이 그다지 발달한 나라가 아니 다. 1970년대까지 미국은 철강이나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에 강했지만, 1980년대 이후 그 자리를 독일, 일본, 한국, 중국 등에 조금씩 넘겨줬다. 그런 미국 경제를 지탱해 온 삼각 축이 군수와 금융, IT다. 이 가운 데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미국의 금융 자본은 세계경제에 실로 막강 한 영향력을 미치는 세력이다. 그런 금융 자본이 전쟁 국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쟁이 아직 한창이던 2003년 4월,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CNN머니 (현재 CNN비즈니스)는 "월스트리트가 전쟁 종료를 선언했다."라고 보도했다. 실제 미국 금융 자본은 이때부터 "전쟁은 사실상 끝났으며, 우 리는 이라크 재건 사업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제통화기금은 그해 10월 "이라크 재 건 사업에 500억 달러(약 62조 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월스트리트의 금융자 본이 재건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투자를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바그다드 재건 사업에 참여한 대부분의 미국 금융 자본은 열 배에 가까운 투자 수익을 올렸다. 심지어 폭격이 끝난 뒤 건물에 붙은 불을 끄는 소방 업무도 미국 기업들이 차지했다. 그리고 이들은 그 대가를 석유로 받았다. 미국이 시작한 전쟁의 비용을 이라크가 석유로 물어 주는 구조였다.
게다가 미국은 이 전쟁에 반대했던 나라들이 이라크 재건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빗장마저 걸었다. 이라크와의 전쟁에 반대했던 프 랑스, 독일, 러시아, 캐나다 등이 이라크 재건 사업 참여로부터 배제된 것이다. 이건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 논란은 있지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1929년을 미국의 경제 대 공황이 시작된 해로 본다. 그런데 대공황 직후, 그러니까 경제가 악화 일로에 접어든 1930년, 미국 정부가 자국 산업을 지켜 경제를 살리겠 답시고 강력한 보호무역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바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이라는 것이었다.
대공황이 시작될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의 허버트 후버 Herbert Hoover (미국 제31대 대통령, 재임 1929~1933)였다. 후버는 대공황이 일 어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1928년 민 주당의 앨 스미스Al Smith 후보와 대선에서 맞붙었는데, 당시 미국 경제 가사상 최고의 호황을 계속 이어 갈 것이라 확신했다. 선거 때 후버가 유권자들에게 외친 구호는 "모든 미국인의 차고에 자동차를! 모든 미 국인의 식탁에 닭고기를!"이었다.
대선에서 승리한 후버는 1929년 3월 대통령에 취임했는데, 이때까 지도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후버는 취임식에서 자신 있게 말했다. "빈곤에 대한 최후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다."라고 말이 다. 하지만 역사는 그의 기대를 그야말로 박살 냈다. 그가 "빈곤에 대한 최후 승리"를 외친지 고작 7개월 뒤인 그해 10월 29일, '검은 목요일'로 불리는 주가 대폭락 사건이 벌어졌다. 대공황이 시작된 것이다.
이듬해인 1930년 후버는 해결책이랍시고 당시 미국이 수입하던 물 건에 관세를 대폭 올리는 전략을 들고나왔다. 관세를 높이면 당연히 수 입품의 가격이 오른다. 100원짜리 물건에 10원 관세를 물리면 시장에 서는 110원에 팔리는 것이다. 가격이 오를수록 물건이 잘 안 팔리는 것 은 당연지사다. 따라서 관세 인상은 외국 물건의 수입을 막고 싶을 때 그 나라 정부가 빼 들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후버의 생각은 이랬다. 당시 미국은 주로 영국 등 유럽에서 물품을 수입했는데, 이 수입품의 가격이 높아지면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미 국 국산 제품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안 돌아가던 공장이 돌아 갈 것이고,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살아날 것이다.
후버의 생각을 이어받아 공화당 소속 상원 의원 리드 스무트Reed Smoot와 역시 공화당 소속 하원 의원 윌리스 홀리Willis Hawley가 이를 법안 으로 만들었다. 그 법에는 2만여 개가 넘는 외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 을 인상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법안으로 관세 부과 품목의 평균 관세율이 1929년에는 40퍼센트였다가, 1932년에는 무려 59퍼센트까 지 올라갔다. 현대 경제사에서 가장 아둔한 보호무역 법안으로 불리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등장이었다.
- 사실 스무트와 홀리가 처음 법안을 만들 때만 해도 이게 이렇게 커 질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법의 초안은 미국 농가를 보호하기 위 해 수입 농산품에만 관세를 올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안 내 용이 알려지자 미국 기업들이 정부와 의회에 강력한 로비를 펼치기 시 작했다. "농업만 산업이냐! 우리도 보호해 달라."라고 징징거린 것이다. 여기에 후버 대통령이 적극 동조하면서 이 법은 온갖 민원을 다 구겨 넣어 무려 2만여 개에 달하는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내용으 로 탈바꿈했다.
이 법안이 가져온 후폭풍은 처참했다. 유럽에서 수입되던 물품의 가격이 15퍼센트 가까이 오르자 당연히 미국 국민들은 국산품을 쓰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에 격분한 유럽 국가들이 미국 수출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매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이던 북아메리카 대륙의 캐나다에 이어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열강마저 미국에 보복관세를 매기는 대열에 합류했다. 가격경쟁력을 잃은 미국 제품은 유럽에서 죽을 쑤기 시작했다. 1932년 미국의 대유럽 수출은 1929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나마 미국 국민들이 자국산 제품을 더 줄기차게 사 주면 상황은 좀 나았을 텐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미국 국민들의 호주머니는 당시 텅 비어 있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 통과 직후 반짝 살아나는 듯 보였 던 미국 국산품의 내수는 이후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망하니 기업들이 견딜 방법이 없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유발한 경제 악화는 보호무역이라는 최악의 무역정책이 더해지며 대공황을 가속화했다.
이후 사태는 잘 알려졌다시피 1933년 새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미국 제32대 대통령, 재임 1933~1945)가 취임하며 진정됐 다. 루스벨트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급 중심 경제(감세, 규제 완화 등의 조치로 기업을 돌봐 주는 정책)에서 수요 중심 경제(소비자들의 지갑을 먼저 두둑하게 만드는 정책)로 정책의 방향을 바꾸며 위기를 돌파했다. 유명한 공공사업 정책인 뉴딜 정책이 등장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루스벨트는 또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망쳐 놓은 보호무역의 비 효율도 해소했다. 루스벨트는 1934년 6월 12일 '호혜관세법'으로도 불 리는 「상호무역협정법」(Reciprocal Trade Agreement Act)을 통과시켜 「스 무트-홀리 관세법」을 폐지했다. 새로운 법에는 상대 국가가 미국에 대 한 관세를 낮춰 줄 경우 미국도 그 나라 물건에 대한 관세율을 최고 50퍼센트까지 낮추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미국이 다시 자유무역 시장으로 복귀한 것이다.
이후 미국은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무역 시장에서 자유무역의 전도사 역할을 했다. 대공황 당시 보호무역의 지 독한 비효율을 경험했던 데다가, 이후 미국이 자유 진영 최강대국의 지 위를 공고히 하면서 자유무역이 미국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 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되자 미국은 전 지구적인 자유무역 시스 템을 구축하는 데 골몰했다. 1947년 미국의 주도 아래 스위스 제네바 에서 23개 국가가 모여 GATT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즉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이라는 것을 체결하면서 인류는 전 지 구적인 자유무역의 시대를 맞았다. 중상주의 시대 이후 치열하게 전개 됐던 자유무역 대 보호무역의 경쟁이 마침내 자유무역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 바나나가 세계적(?) 과일이 된 때는 20세기 초반이었다. 미국은 19세기 중후반 벌어진 미국-멕 시코 전쟁 (1846~1848)과 미국-에스파냐 전쟁(1898)의 연이은 승리로 중남미 (중앙아메리카·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영향력을 크게 확대한 상태 였다.
그런데 이 시절 미국 사업가 마이너 키스Minor Keith 라는 자가 코스타 리카로 건너가 철도를 깔고 그 주변의 부지를 모조리 바나나 농장으로 바꿔 버렸다. 처음에는 철도 건설 인부들의 밥값을 아끼려고 철도 노 선을 따라 바나나를 키우던 것이, 어느새 커다란 수익을 안겨 주는 사업으로 발전했다. 키스가 설립한 과일 무역 회사 이름이 유나이티드프루트컴퍼니(UFC, United Fruit Company)였는데, 이 회사가 바로 바나나 4대 메이저 중 하나인 치키타브랜즈인터내셔널의 모태다. UFC는 코 스타리카에 이어 과테말라의 땅도 싹쓸이해 바나나 플랜테이션 농장 으로 만들었다.
알다시피 바나나는 무르기 쉬운 과일이다. 따라서 과일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운송을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UFC는 바나나 를 잘 운송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코스타리카와 과테말라의 철도 부설권까지 꽉 쥐고 있었다. 땅도 땅이지만, 철도 부설권은 그 나라의 젖줄이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뒤 제일 먼저 철도 부설권부터 챙긴 이유 도 그것이었다. 이 때문에 어떤 경우도 철도 부설권은 외국 기업에 함 부로 넘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코스타리카와 과테말라 정부는 이 중요 한 권리를 UFC에 덜컥 넘겼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첫째, UFC는 철도 부설권을 얻기 위해 이들 나라의 독재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둘째, 이게 더 중요한 이유인데,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개입을 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 반부터 중남미 지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미국은 UFC 같은 자 국 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중남미 독재자들과 손을 잡고 내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를테면 온두라스에서 바나나 무역 회사 쿠야멜프루트컴퍼니 (나중에 UFC에 인수된다)를 운영하던 미국의 사업가 새뮤얼 제머리 Samuel Zemurray라는 자는, 자신의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자 용병 을 고용해서 온두라스 대통령을 끌어내리기까지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미국은 자국의 바나나 기업을 보호한 다는 명목으로 쿠바, 푸에르토리코, 온두라스, 니카라과, 아이티 등에 거침없이 군사를 파견했다. 군대를 동원해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의 파 업을 진압하기도 했다. UFC뿐 아니라 하와이를 기반으로 출범했던 과 일 업체 돌(설립 당시 '하와이언파인애플컴퍼니)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 쳐 중남미 지역을 장악했다. 미국은 미국에스파냐 전쟁의 승리로 에 스파냐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차지했는데, 필리핀에서도 이 짓을 반 복했다. 1920년대부터 필리핀의 바나나 플랜테이션 농업을 주도한 회 사는 델몬트푸즈(설립 당시 '캘리포니아패킹코퍼레이션)였다. 1898년 미국-에스파냐전쟁이 끝나면서 시작되어 35년이 넘게 이어진 이른바 '바나나 전쟁'의 추악한 실체다.
미국의 비도덕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중남미 지역 바나나 전쟁은 1934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중남미 지역에 군사개입을 중단하고 선린 외교를 펼치겠다"고 발표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중 남미 땅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야욕은 멈추지 않았다. 냉전 이후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중남미 정치 에 개입해 민주 정부를 붕괴시켰고,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독재자를 지 원했다.
간혹 이들 나라에서 국민들의 열망으로 민주 정부가 수립되기라도 하면 미국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나라의 내정에 개입해 민주 정 부를 무너뜨렸다. 당시 중남미의 민주 정부들은 미국 기업들이 점유한 광활한 토지를 되찾기 위해 토지개혁을 추진했는데, 이때마다 미국은 전가의 보도인 "저들은 빨갱이다!"를 내세우며 쿠데타를 부추겨 민주 정부를 붕괴시켰다. 합법적인 선거로 출범한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 벤스Jacobo Árbenz(과테말라 제25대 대통령, 재임 1951~1954) 정부가 1954년 군 부 쿠데타로 무너진 것도 이 때문이다.

- 소련 붕괴 후 러시아 행정부에서 재무장관과 총리 대행을 지낸 예고르 가이다르regor Gaidar는 2006년 미국기업연구소를 대상으로 한 연설 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소련 붕괴의 시작점은 1985년 9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우 디아라비아가 석유 정책을 급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한 바로 그 날이다. (...) 그 후 6개월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생산량은 네 배 증가했고, 석유 가격도 실질 가격 기준으로 4분의 1로 폭락했다. 소련 으로서는 매년 200억 달러의 손실을 보게 된 것인데, 그 돈이 없으면 소련은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가이다르의 말처럼 소련은 당시 입은 내상을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붕괴됐다. 1922년 12월 30일에 건국된 소련은 건국 69주년을 4일 앞 둔 1991년 12월 26일 마침내 해체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유 전 발굴과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소련이, 바로 그 석유를 집중 공략한 미국의 전략에 대응하지 못하고 패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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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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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곡선을 설명하면서,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이치가 요즘 같은 때에는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물가가 비싸도 소비자들은 그냥 삽니다. 노동에 대한 수요가 워낙 강하니까. 그래서 앞으로 임금이 더 오를 거니까, 돈을 좀 헤프게 써도 문제가 없다고 보는 거지요.
- 고용주들은 고용주들대로 계획이 있습니다. 임금이 많이 올랐는데도 계속해서 사람을 뽑습니다. 인건비가 늘겠지만 판매가격을 인상하면 문제가 없다고 보는 거지요.
그래서 이렇게
'고임금→ 고물가→ 고임금'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임금-물가 상승 소용돌이'입니다.
지금 미국 경제의 상황입니다.
- '잠재 GDP'라는 것은 경제가 무리 없이 생산할 수 있는 최대치를 뜻합니다. 노동력의 양과 생산성에 의해서 이 잠재능력이 결정됩니다. 실제 생산이 이 잠재능력을 초과하면 과부하가 걸립니다. 임금이 뛰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합니다. 실제 생산이 이 제한속도보다 적으면 가동되지 않는 노동력이 생깁니다. 실업이지요. 실업이 많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가상승률이 너무 낮아지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 미국 '실제 GDP'와 '잠재 GDP' 그래프를 보겠습니다.
앞서 잠재 GDP는 노동력과 생산성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노동력이 팬데믹 이후 대폭 줄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잠재 GDP가 당초 추정했던 것보다 훨씬 낮아졌다고 판단을 수정했습니다.
즉, 그래프의 파란색 선이 아래로 쑥 내려갔다는 겁니다. 시속 100킬로미터이던 제한속도가 80킬로로 낮아진 셈입니다. 그렇다면 120킬로로 달리던 차는 속도를 얼마나 줄여야 할까요? '20' 만큼만 줄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40'을 줄여야 겨우 균형을 맞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실제 GDP가 그냥 좀 감소하는 게 아니라 대폭으로 수축하는 현상, 굉장히 심각한 수준의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인플레이션이 잡힌다는 것입니다.
- 지난 2020년 팬데믹 침체 직전에도 미국의 금리인상 행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팬데믹 리세션이 긴축 때문에 온 건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팬데믹 셧다운 때문에 경제가 침체에 빠졌던 것인데, 그건 좀 예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례는 논외로 해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 보겠습니다.
잊을 만하면 발생했던 미국의 리세션은 대개 인플레이션 때문이었습니다. 물가가 너무 오르지 않도록 연준이 금리인상으로 긴축의 고삐를 계속 조였더니 경제가 결국 침체에 빠지더라는 겁니다.
'침체를 감수하면서 연준이 인플레이션 파이팅에 나섰다!'
이렇게도 볼 수 있겠습니다.
- 지난 2000년대 초에 발생했던 미국의 리세션, 그리고 지난 2000년대 후반에 있었던 경기침체 사례는 좀 다른 특징이 있었습니다. 연준이 금리를 계속해서 인상한 끝에 침체가 발생하는 패턴은 예외 없이 반복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금리인상과 경기침체 사이에 다른 이벤트가 끼어 있었습니다. 자산시장의 붕괴입니다.
금리인상이 자산시장 거품을 붕괴시키고, 그 거품붕괴의 충격이 실물경제를 강타해서 리세션을 불러왔다는 것이지요.
즉, 팬데믹 리세션 이전에 미국 경제가 겪었던 두 번의 침체는 모두 자산시장 거품붕괴로 인해 촉발됐다는 특징을 공통점으로 갖고 있습니다.
- 거품이 형성되고 무너지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미국의 주식과 주택가격은 매우 높은 수위까지 올라왔습니다. 금융위기 직후에 중앙은행들이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장기간 제공했지요.
팬데믹 쇼크에 대응해서는 훨씬 더 강력한 재정, 통화 부양정책이 가동돼 돈이 시중에 그야말로 천문학적으로 풀렸습니다. 실물경제에서만 역대급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게 아니라, 자산시장에서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가격이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실물과 자산시장 모두에서 동시에 거대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이례적인 현상을 지난 몇 년 사이에 우리가 겪은 것입니다.
- 그렇다면, 과도한 달러화 강세가 미국 바깥에는 왜 문제인가? 이것부터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보다 먼저 환율을 읽고 쓰는 법, '환율 표기법부터 정리를 해두는 게 좋겠습니다. 환율을 표기할 때에는 기준이 되는 통화를 앞에 두는 게 원칙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환율은 '달러-원'이라고 표기합니다. 달러가 앞에 갑니다. 1달러에 1400원 이런 식이지요. 달러가 기준입니다. 그래서 달러 다음에 원, 이렇게 표기합니다. '원-달러'라고도 많이 표현하는데 잘못된 표기법입니다. 대부분의 환율은 이렇게 달러를 기준으로 삼아서 달러를 앞에다 놓고 표기를 합니다. 달러-엔, 달러-위안, 달러-프랑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몇몇 예외가 있습니다. 유로, 영국 파운드 그리고 호주의 달러, 뉴질랜드의 달러는 미국 달러보다 앞에 표기합니다. 이 때 기준통화는 달러가 아닙니다. 1유로에 0.99달러, 1파운드에 1.16달러 이런 식이 됩니다. 예외가 되는 이 통화들 말고는 모두 달러가 기준통화로 앞에 온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 환율이 짧은 기간 너무 급하게 많이 변동하면, 오르든 내리든 대개 좋지 않습니다.
환율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지극히 불확실해지면, 무역활동이 크게 위축되기 때문입니다. 수출을 하거나 수입을 하는 과정에서 환율 때문에 뜻하지 않게 큰 손실을 볼 수 있으니 몸을 사리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생산과 고용, 투자도 위축됩니다.
- 달러가 너무 강해질 때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제는 물가, 수입물가 입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파란색 선은 국제유가, 브렌트 원유 선물가격 입니다. 1년 전을 100이라고 치면, 2022년 10월 초는 112.5가 됐습니다. 국제유가가 1년 동안 12.5% 올랐습니다. 기름 값을 달러로 지불하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요. 그런데 이 그래프에서 빨간색 선은 숫자가 다릅니다. 1년 사이에 약 37% 뛰었습니다. 우리나라 원화로 환산을 하면, 국제유가는 훨씬 많이 올랐다는 겁니다. 국제유가는 달러로 표시됩니다. 달러의 가치가 오르면,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면, 국제유가가 가만히 있는다 해도 우리 입장에서는 수입원유 가격이 오르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수입원유 가격은 국제유가에 환율을 곱한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환율이 오르면, 달러로 거래되는 다른 모든 수입물가 역시 이런 식으로 일제히 급등하게 됩니다.
- 미국과 독일, 영국과 일본 국채시장은 제법 대체관계에 있기 때문에 한 쪽에서 크게 움직이면 다른 쪽으로도 파장이 쉽게 전달됩니다. 한쪽이 채권을 싸게 팔면(높은 이자를 주면), 다른 쪽도 싸게 팔아야 하는 경쟁관계이기도 합니다. 만약 일본 국채 금리의 닻이 풀릴 경우 전 세계 국채 금리는 어떻게 될까요?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영국과 일본 국채시장에 가해진 직접적인 또는 잠재적인 압박은 엔화, 파운드화에 가해진 달러의 압박과 연결돼 있다는 겁니다.
-달러화 가치가 갑자기 너무 강해지면 생기는 문제가 또 있습니다. 달러로 빌린 돈을 갚기가 너무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A기업이 1년 전 환율이 1170원일 때 100만달러를 빌렸다고 가정합시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1억7000만원입니다. 그런데 2022년 10월 말에 만기가 됐습니다. 원금 100만달러를 갚아야 합니다. 다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4억2000만원이나 됩니다. 환율이 22% 올랐으니까, 달러로 빌린 돈의 원금도 우리 원화로 계산하니 단 1년 사이에 22%나 늘었습니다. 1년 전에 아무리 낮은 금리로 달러를 빌렸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원금의 22%나 되는 비용이 마치 이자처럼 새롭게 붙어버렸습니다. 이처럼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은 금리 그 자체를 통해서, 그리고 또 환율을 통해서 추가적으로 미국 바깥의 금융환경을 급격하게 긴축합니다.
달러 빚이든, 자기나라 통화로 된 빚이든 부채를 많이 짊어지고 있는 경제주체는 지금 상당히 힘든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빨리 안정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 우리는 미국과 달리 에너지를 모두 수입해야 합니다. 에너지 가격이 대폭 오르면 수입물가도 크게 상승해 교역조건이 나빠집니다. 원가가 대폭 상승하기 때문에 무역을 통해서 버는 돈이 줄어듭니다.
-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우리 원화의 가치가 미국 달러에 대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무역환경입니다. 그렇게 해서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더욱 비싸집니다. 수입품 소비를 더 많이 줄이게 됩니다. 그러면 무역수지가 개선됩니다. 높은 환율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라'는 시장의 경고음이기도 합니다.
- 국제경제에는 '불가능한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트릴레마(trilemma)'라고도 하지요.
1 자유로운 자본이동. 2 안정된 환율, 3 통화정책의 주권,"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자본시장을 자유롭게 개방한 나라입니다. 자연히 요즘 같은 때에는 환율이 뜁니다. 낮고 안정된 환율을 유지하고 싶다면 낮은 금리를 포기해야 합니다. 금리를 미국보다 훨씬 많이 올려야 요즘 같은 때 낮고 안정된 환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비교적 낮은 금리를 유지하려면 안정된 환율을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환율과 금리를 적절히 나눠서 희생하는 전략입니다.
- 달러와 미 연준의 과거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앞날을 미리 가늠할 수 있습니다. 향후에 연준이 금리인하로 돌아서더라도, 달러가 당장 따라서 내리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참 묘한 특성을 가진 게 바로 달러의 환율입니다. 전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있어서 달러가 미국의 금리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 금리가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달러의 가치, 달러 환율입니다.
- 달러화 약세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전 세계 금융환경을 대대적으로 완화합니다. 달러가 약해지면, 미국의 자본은 미국 바깥으로 몰려갑니다. 미국 바깥 경제와 통화가 더 강하고, 투자수익률도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 바깥 통화는 더욱 강해지고 미국 달러는 더욱 약해집니다. 대표적인 시기가 지난 2000년대였습니다.
- 어쨌든 그 대대적인 달러화 약세 이전에는 아주 대대적인 달러화 강세 사이클이 있었습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금융시장 격언이 그래서 나옵니다. 이번에도 달러는 아주 대대적인 강세 사이클을 타고 있습니다.
나중에 때가 돼서 내리게 된다면, 그 하락 사이클 역시
굉장히 크고 길 거라고 예상합니다.앞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기회는 미국의 금리인하가 충분히 이뤄졌을 때 열릴 것이다! 그 기회를 여는 힘은 달러의 대대적 약세에서 나올 것이다!
- 일본은 이미 지난 1990년대에 일찌감치 국가부채 비율 100%선을 넘어섰습니다. 50%를 좀 웃돌던 게, 100%로 올라가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멀쩡해 보입니다. 여전히 많은 빚을 내서 돈을 쓰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파란색 선, 바닥에 딱 붙어 있는 국채 금리입니다. 국채를 발행해서 돈을 빌려도 정부가 물어야 하는 이자는 거의 0%입니다. 따라서 빚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빨간색 선, 국가부채 비율이 쉼 없이 증가했지만 파란색 선, 일본 국채금리는 계속해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국가부채 비율은 더욱 더 쉼 없이 계속 증가했겠지요. 그렇다면 일본의 이 초저금리는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을까요? 그 비결은, 바로 일본의 너무 낮은 인플레이션입니다.
- 인플레이션이 길어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제대로 긴축하지 않은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면 중앙은행은 왜
그런 실수를 하게 될까요? 아마도 '고용' 때문일 것입니다. 실업이 너무 많이 발생할까 두려워 긴축을 소홀히 하다가, 결국 인플레이션이 뿌리를 내리도록 방치할 위험이 있습니다. 지난 1970년대가 그랬습니다.
- 연준 통화정책 위원들은 이 실업률이 4.0% 정도 되는 게 정상이라고 봅니다. 지난 번 강의 때 개념을 소개했지요? 인플레이션을 부추기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실업률, 그 '자연실업률이 4.0%라고 보는 겁니다(152쪽).
그런데 이미 인플레이션이 발생해버렸습니다. 그걸 뿌리 뽑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자연실업률보다 더 높은 실업이 필요하다고 연준 정책위원들은 말합니다. 그래서 요구되는 실업률이 대략 4.6%라고 합니다.
- 그런데, 3.5%까지 내려갔던 실업률이 4.6%까지 올라간다면 경기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실업률이 1%포인트 넘게 오르고도 리세션을 모면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경제는 관성이 있습니다. 실업률이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상당한 수준까지 그 추세를 지속하다가 멈추게 됩니다. 비교적 완만했던 지난 2000년대 초의 리세션 때도 실업률은 6%대 초반으로 뛰었습니다. 지금 미국의 경제활동인구는 1억6500만명입니다. 실업률이 5%대로 지금보다 2%포인트만 높아져도 330만명의 실업자가 새롭게 발생합니다.
- 이 필립스곡선은 대체로 좌상향, 그리고 우하향하는 특성을 갖습니다. 좌상향, 실업이 낮으면 인플레이션이 높아집니다. 우하향, 실업이 높으면 인플레이션은 낮아집니다. 이론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아주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실업률을 높이는 게 불가피합니다. 물론 인플레이션을 좀 감수하면 실업을 크게 줄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그런 상황이지요.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냥 좀 참으면 안 될까? 실업이 늘어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물가가 좀 오르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오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게 많은 경제학자들이 오랜 연구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은 상태를 오래 방치하면 시간이 지나서 결국 고용도 나빠져 실업이 증가한다는 겁니다. 좌상향, 우하향하는 이 필립스곡선 이론은 단기적으로는 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난 1970년대에 인류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고 하는 아주 낯선 경제현상을 경험하면서 얻어낸 아주 값진 교훈입니다.
- 단일 통화를 쓰고 있는 유로존 19개 국가 모두가 스스로 그렇게 운명 공동체가 되기로 선택했습니다. 한 나라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단일 통화 시스템 전체가 무너집니다. 따라서 화폐제도가 붕괴되면 그 어떤 나라도 온전하게 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중앙은행은 자칫, 인플레이션 파이팅보다는 국채시장의 안정에 더 관심을 기울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아주 고삐가 풀리도록 내버려두지는 않겠지만, 긴축을 좀 느슨하게 전개해 나감으로써 이탈리아 국가부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높은 인플레이션은 장기화, 만성적 현상으로 지속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될 거라고 전망하기보다는 그런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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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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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자본의 탄생

경제 2024. 2. 4. 12:02

-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2001년 경 노르웨이 정유업체인 에소(ESSO)사의 부사장이었던 오이슈타인 다힐(Øystein Dahle)은 ESG 경영의 본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산주의는 시장가격이 경제적 진실을 은폐했기 때문에 붕괴했 다. 자본주의는 시장가격이 생태적 진실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 붕괴하게 될지 모른다."
여기서 '생태적 진실'이란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생명을 가진 모든 동·식물들이 생태계에서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SG적으로 표현하면, 환경도 살리고 이해관계자들과 공존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잘 유지되고 진화하도록 이른바 '거버넌스(Governance, 지 배구조)'를 제대로 구축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 ESG 개념의 혼선은 'E'를 어떤 품사로 사용할지에서부터 나타난다. 명 사(Environment)와 형용사(Environmental)가 혼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런데 E를 명사로 표기할지, 아니면 형용사로 표기할지에 따라 거버넌스 (Governance)의 판단기준 및 역할(의미)이 달라질 수 있다.
S(사회적 가치 창출)를 'Social(형용사)'로 표현하는 경우 S가 명사 인 G(거버넌스)를 수식하듯이, E도 G를 수식하는 구조로 보아 형용사 (Environmental)로 표현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이 경우 '친환 경적이고(E)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S) 거버넌스(G)'가 됨에 따라, G가 E와 S를 규정(컨트롤)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ESG 용어는 2004년 UNGC(UN Global Compact)에서 발간한 <Who Cares Wins>이라는 책자에서 처음으로 정확히 규정되었다. 보고서에서는 환경적(-al), 사회적(-al), 거버넌스적 이슈를 통합(integration, 명사)하는 게 'ESG 경영'이라고 명시함에 따라, Environmental(형용사)로 분명히 표기하 고 있다. 다시 말해 친환경적 경영, 사회적 가치 창출, 합리적 거버넌스 운영을 통합해서 평가 · 판단 · 투자하는 데 ESG의 핵심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G의 경우 영어식 표현의 발음대로 '거버넌스(Governance)'로 호칭 하는 경우와 아예 우리식으로 '지배구조'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흔치 않지만 '정부(Government)'로 이해하는 슬픈 사례도 있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G를 가리켜 '지배구조'로 부르는데, 이는 IMF 외환위기 당시 우리 기업의 이사회를 비롯한 지배구조가 후진적인 점을 강조한 번역의 영향으로 보 인다.
- 유엔개발계획은, "거버넌스란 한 국가의 여러 업무를 관리하기 위하여 정치, 경제 및 행정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 거버넌스는 또한 시 민들과 여러 집단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밝히고 권리 행사와 의무 이행 을 다하며, 서로 간의 견해 차이를 조정하는 기구나 제도로 구성된다”라 고 정의했다. 즉, 유엔이 밝힌 장문의 개념정의를 포괄하는 단어가 마땅 찮아서 통상 '거버넌스'로 부르게 된 것이다.
- E. S, G를 각각 독립된 이슈로 판단해서 평가할 경우, 평가항목도 독립 적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반면, 형용사 E와 S가 명사 G를 수식하는 것으 로 해석하면 평가항목의 배점이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거버넌스(정부, 기 업 등의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크게 바뀌고, 포괄하는 범위도 확연하게 넓 어진다.

- 우리나라의 자연조건을 고려하면 그나마 유의미하게 키울 수 있는 재 생에너지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다. 그런데 이 마저도 유럽 등지에 비 하면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 태양광 발전의 '정격용량 대 비 이용률'은 하루 3.6시간(15%)이다. 이탈리아는 무려 20.1%, 프랑스는 20%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풍속은 초당 6.2m인데 독일은 초당 7.6m이다. 유럽에 비해 자연 조건이 뒤처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재생에너지 를 생산하기에 부적합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규제로 인해 땅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재생에너지를 얻으려면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 발전소를 건설할 땅이 필요한데 '이격거리'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지자 체 조례에 따라 태양광·풍력 발전 설비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주민 생활시설과 일정거리를 둬야 한다. 2018년 보성군은 태양광 설치를 위해 주 택과 도로의 이격거리를 500m에서 200m로 완화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 하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실패한 바 있다. 그 해 주민들은 토사 유출, 자연 경관 훼손, 환경 파괴 등을 이유로 인근 야산에 들어설 10MW(메가와트)급 태양광 발전 시설의 설치를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다.
곳곳에서 태양광 발전 설비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고흥군은 태양광 설치를 위한 도로와 주택과의 이격거리를 100m에서 500m로 강화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규제나 주민 반대로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짓는 것조 차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발전소를 짓는 데 직접 참여 하는 주민참여형 사업도 일부 있지만 극히 드물어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지었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재생에너지 운영 시스템이 복잡해 민간사업자 입장에서는 수익 을 내기가, 기업과 같은 전기 소비자 입장에서는 경제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발전소를 포함한 대규모 발전사업자에게는 재생에너지 의무량 (RPS)이라는 게 있다. 이를 위해 대규모 발전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재생에 너지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민간이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사들인 다. 이를 '재생에너지인증서'(REC, 1REC=1MWh)라고 하는데(35쪽), 대규모 발전사업자들은 이 REC를 구입해 RPS를 맞춘다.
- 문제는 이 REC가격이 정부에 의해 왜곡돼 있다는 점이다. 2017년 12만 8585원이었던 REC가격은 정부 정책으로 민간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늘어나면서 2021년 11월 기준 3만8846원으로 70% 하락했다. 이에 기존 민간사업자들의 수익이 확 줄어들자, 문재인정부는 RPS 비율을 대폭 상 향해 가격을 급등시켰다.
당시 정부는 2021년 9%이던 RPS 비율을 2022년 12.5%로, 이후 매년 2.5%씩 올려 2026년 26%로 설정했다. 그 결과 2022년 2월 기준 재생에 너지 구입비용(수력 제외)은 4561억 원으로 원자력 (9048억 원)의 절반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 기간 재생에너지 구입량은 2243GWh로 원자력 (1만 3307GWh)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이를 KWh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재생에너지는 106.88원, 원자력은 56.28원이다. 가격이 올랐지만 민간 재 생에너지 사업자를 늘리지도 못했다. 민간사업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일 정해야 신규 투자나 재투자를 하는데, 가격이 정부에 의해 왜곡되면서 수 익성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또 대규모 발전사업자의 REC 비용 부담 증가로 이어져 전기요금 인상 압박도 커지게 되었다.
재생에너지 보급과 기업의 RE100을 위한 제도인 전력구매계약(PPA)도 되레 재생에너지 확대의 걸림돌이다. PPA는 재생에너지 사업자와 기업 전기 소비자와의 거래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인데(135쪽), 한국전력이 국 내 전력망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전기 소비자가 한전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구입할 때 한전은 전력망 사용료(KWh당 8~24원) 등을 포함한 부대비용을 받아간다. 이 때문에 전기 소비자가 한 전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구입하면 비용 부담이 일반 전기요금의 두 배 가 까이 된다. 그러다 보니 기업을 위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이 용하는 기업이 없는 것이다(2021년 11월 기준).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자연조건이 열악할수록 기술 개발과 시 장 운영시스템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운영되어온 RPS 및 PPA 제도처럼 현실을 무시한 재생에너지 정책은 탄소중립의 길을 요원하게 만든다. 특 히 RPS, PPA 모두 계약단가가 실시간 전력도매가격(SMP)에 각종 부대비 용이 추가됨에 따라 변동성이 심하고 실제 원가보다 비싸지는 것이다. 결 국 시장참여자들은 경쟁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 보다는 잿밥(제도 이용)에 주목하게 되고, 한전 독점 하에서 모든 비용을 보장해주는 '총괄원가주 의'는 두부(전기요금)값보다 싼 콩(원료)을 구할 동기 부여가 없게 된다.
- 2022년 한국전력은 약 32조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유인즉 국제 연료가 격(LNG) 상승으로 전력 도매가격(SMP)은 급등하는데 소비자가격은 동결되 어 그 갭을 고스란히 한전이 부담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SMP(System Marginal Price, 계통한계가격)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SMP는 한 국전력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사업자로부터 전력을 구입하는 가격으 로, '전력도매가격'이라고도 불린다. 단위는 kWh로 환산한다.
SMP는 전력산업 민영화를 전제로 2001년 도입한 제도이다. 한국전력 의 발전 부문을 6개 사로 분할하고 전력거래소를 개설했다. 전력거래 방 법은 발전원가를 고정비와 변동비로 나눈 다음, 고정비는 사전에 평가한 금액으로 지급하고, 변동비는 발전 하루 전 결정한 시간대별 발전계획에 따라 지급한다. 문제는 변동비가 가장 싼 발전기부터 가동을 하는데, 매시간대별 가장 늦게 가동한 발전기(변동비가 가장 비싼 발전기)의 변동비가 SMP가 된다는 점이다.
2000년 당시 발전연료별 변동비(원/kWh)는 원자력 4원, 석탄 13원, 유류 52원, ING 87원이었다. 어떤 시간에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LNG발전 기를 마지막으로 가동하면 그 전부터 발전한 모든 발전기에도 87원을 준 다. 그러면 원자력은 83원, 석탄은 74원, 유류는 35원의 '횡재(windfall)'를 얻게 된다. 2021년의 경우 가장 비싼 LNG 발전이 SMP의 90.2%를 결정했 다. 이는 횡재가 늘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다.
- 이러한 SMP 제도는 1990년 전력산업을 민영화한 영국에서 도입했는데, 당시 영국은 자국 내에서 원자력, 석탄, 석유, ING가 다 생산되므로 장 기적으로 시장에서 균형가격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SMP를 시행하면서 여러 제도적 결함이 속출하자 결 국 2001년 폐지했다. 그런데 우리는 2001년 이 제도를 도입해 지금까지 도 운영하고 있다. 문제가 많음에도 근본적인 개폐(改)를 못하고 계속 해서 수정·보완만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전 발전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과 석탄 발전사에 횡재 가 몰리다보니 2008년에 이들의 이익을 강제로 빼앗는 '정산조정계수'를 도입했다. 2022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ING가격이 급등하 자 SMP가 290원까지 올라가 발전사 이익을 환수하는 'SMP상한제'를 마 련하기도 했다. 포스코홀딩스의 삼척블루파워 투자와 삼성물산의 에코파 워 투자(강릉)도 이러한 '횡재(!) 시스템'을 보고 결정한 것이다.
- 문제는 또 있다. 발전 하루 전 SMP가 결정되는데, 다음날 실제 발전과 차질이 생겨 보상해준 돈이 2019년의 경우 무려 1조2500억 원이나 되었 다. 이러한 비용은 앞으로 이런저런 명분을 만들어 줄일 계획이다. 시장 을 만들어 놓고 반(反)시장 행위가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순수 토종 발전인 재생에너지가격도 SMP와 연동되어 있 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RPS(대규모 전력 생산 자의 재생에너지 의무 생산량)와 PPA(한전을 통한 재생에너지 거래 계약)인데, 두 제도 모두 가격이 SMP에 각종 부대비용을 부가하는 방식으로 결정되고 있다.
RPS 해당 발전사는 직접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전기를 REC(재생에너지 인증서)를 구입해서 충당한다. 1RPS가격은 'SMP+1REC'로 구성된다. 또한 기업은 RE100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PPA를 이용하게 되는데, PPA가격은 '계약단가+망이용료+ 전력산업기반 기금 + 제비용'이 된다. 이때 계약단가는 'SMP+REC'가 기준이 되고, 망 이용료는 한전의 기존 비용보다 2배 가까이 비싸게 부과된다. 이렇게 불 안정한 SMP에 연계되고 다양한 부대비용으로 재생에너지가격은 실제보 다 훨씬 비싸지게 되는 것이다.
- 그런데, 문제점이 속출하는 SMP 제도가 전력시장의 가격결정 원리로 지속되는 이유는 왜일까? 제도 도입의 전제인 발전 민영화에 대한 미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전기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위원회의 존재 목적은 전력산업 구조 개편과 공정한 경쟁질서 조성에 있다('전기사업법' 제56조). 시장감시자의 부재도 심각한 문제이다. 담당 공무원과 국회 상임위는 2년마다 교체되 니 굳이 나설 필요도 없다. 이런 가운데 복잡한 제도를 오히려 고수익 기 회로 이용하는 시장참가자들은 늘고 있다.
결국 시민단체가 철저하게 분석하고 불합리한 제도를 개혁하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구호'는 '제도'로 완성되어야 의미가 있다. 재생에너지는 반 드시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 국내 철강산업 경쟁력의 50%는 다양한 연료와 원료를 조합해 무쇠를 만드는 과정에서, 30%는 필요로 하는 철강소재의 성분을 만드는 제강에 서, 20%는 나머지 공정에서 나온다. 한국의 철강산업이 세계 최고의 경 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연료 및 원료의 투입부터 최종 제품까지 한 공장에 서 일관되게 생산하면서 공정별로 최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그린수소가 없어 해외에서 HBI를 수입해야 한다면 철강 경쟁력의 50%는 사라지게 된다. 특히 철광석을 그린수소로 환원해 생산하는 초기에 '수소 HBI' 생산기술을 해외에 의존한다면 경쟁력 대부 분을 상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문제는, 자원보유국은 물론이고 자금을 무기로 한 종합상사들이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철광석 산지 인근의 광활한 부지에 서 태양광 전기를 생산하고, 그린수소를 만들어 수소환원제철로 쇳물에 서 슬라브까지 생산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해수담수화 기술이 발 전해 수전해에 필요한 물 확보가 쉽다는 건 그들에게 있어서 더없이 유리 한 조건이다. 반대로 우리나라 철강산업 경쟁력의 80%는 날아가게 된다. 연쇄 작용으로 국내 제철소 종사자의 절반 이상은 일자리를 위협받 게 될 것이다. 후방산업의 위축에 이어 자동차·조선·기계 등 전방산업의 경쟁력 또한 급격히 상실될 것이 뻔하다. 보통 고객사는 철강사와 자 동차 강판의 경우 신차 기획 단계에서부터 조선은 수주를 할 때부터 소 요 철강재 개발을 협의하고 시생산과 테스트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EVI(Early Vendor Involvement) 과정을 통해 고객은 최고의 제품을 가장 저 렴하고 원하는 타이밍에 공급받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강점이 사라 지는 것이다. 국내 기간산업들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 재생에너지 원년이었던 2004년 이후 19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5.8% 수준에 그치고 있다. 태양광은 물론 풍력도 국내 제조 기반과 기술 경쟁력을 대 부분 상실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재생에너지를 판매할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없으니 경쟁이 없고, 경쟁이 없으니 노력 할 필요가 없다. 노력을 안 하니 쇠락할 수밖에 없다.
- 정부도 이를 모르는 건 아니다. 정부는 매번 전기 판매시장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PPA(전기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 제도) 등 일부 전기 판매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도 있긴 하다. 하지만 PPA마저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있고, 이 경우 한 전이 전기요금과는 별도로 전력망(grid) 이용료를 받고 있어 사실상 실적 이 없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판매시장을 활성화하려면 한전의 송·배전 전력망을 개방 하면 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한전의 민영화라고 주장하는데, 민영화 를 하라는 게 아니라 돈을 받고 민간에 빌려주라는 제안이다. 한전의 망 을 민간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 민간 발전사업자 사이에 판매 경쟁이 벌어질 것이고, 이 경쟁 속에 재생에 너지 발전량이나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ESS 관련 기술도 획기적으로 개 선될 것이다. 이를테면 전기차용 배터리만 해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 술 발전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더불어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의 질도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정부는 한전의 전력망 개방을 망 설이고 있다.

- 전기요금은 전기 '세가 아니다
전기요금은 1 기본요금, 2 전력량요금, 3 연료비조정요금, 4 기후환경 요금 등 4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1 기본요금은 전기공급 설비의 고정비 를 회수하기 위한 것으로, 전기를 사용하든 안 하든 내야하는 요금이다. 2 전력량요금은 사용하는 전력량만큼 내는 요금이다. 이는 다시 기준연 료비와 기타비용으로 나뉘는데, 전년도(2021년) 연간 연료비(석탄, 천연가 스, 유류) 증감에 따라 kwh당 5원까지 인상 또는 인하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2022년 3 연료비조정요금은 분기별 연료비 증감에 따라 kwh당 5원까지 인상 또는 인하해야 한다. 4 기후환경요금은 깨끗하고 안전한 전기 제공에 소요되는 비용으로 1년에 한번 조정된다. 2022년에는 kwh 당 7.3원을 부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의무구입비용(RPS), 배출권거래비용(ETS), 미세먼지가 심할 경우 석탄발전 중단 비용으로 이 뤄져 있다.
한편 소비자가 부담하는 전기요금은, 이러한 4가지 요금의 합계금액(A)에 부가가치세(A의 10%) 및 전력산업기반기금(A의 3.7%)을 더해서 책정 된다.
- 전기요금이 결정되는 과정도 중요하다. 한전 전기요금 조정안을 만들어 이사회 승인을 받아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전기위)에 신청을 한다. 이때 전기는 소비자보호전문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물가안정법' 에 의거해 기획재정부와 협의한다.
문제는 관례적으로 여당과도 협의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전기요 금이 이해집단의 요구를 감안하는 등 정치적으로 조정을 받는다. 전기요 금이 '정치요금' 혹은 '전기세(稅)'란 별칭을 갖게 된 이유다. 즉, 전기요 금은 용도에 따라 산업용, 빌딩.상가) 일반용, 교육용, 주택용, 농업용, 가 로등용, 심야요금 등 7가지가 있는데, 국회의원을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 계자들의 민원이 개입되어 한전의 요청대로 전기요금이 결정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다시 한전의 재정 악화를 초래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 용한다.
- 전기의 용도별 분류 방식(용도별 요금제)은 거의 모든 나라가 대동소이한 데,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부터 채택해 적용해오고 있다. 이처럼 전기요 금의 용도별 구분이 오랜 세월 이어져온 이유는 왜일까? 한마디로 전기 요금을 정책적 수단으로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전기요금은 가격 말고 차별화 요소가 없다보니, 정부 입 장에서는 가격으로 정책적 배려를 하게 된다. 즉, 저소득층이나 농.어민 보호 차원으로 주택용 요금과 농업용 요금을 싸게 해주고, 물가안정을 위 해 어느 순간 인상을 억제하기도 한다. 또 에너지소비 절약을 위해 피크 시간대에 누진제를 도입하게 된다.
- 정부는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산업용 요금에도 혜택을 주 었다가, 2003년부터 2013년 동안 지속적으로 인상한 바 있다. 그리고 지 금은 오히려 주택용이나 농업용에 교차보조를 해주고 있다. 좀 더 구체적 으로 살펴보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산업용 요금은 총 12회, 누계로 80.6%를 인상했다(같은 기간 주택용 요금은 6회 인상, 3회 인하 누계로 4.2% 인 하했다). 지난 2022년 10월 인상 때도 주택용은 kwh당 2.5원 올린 데 비해 산업용(고압)은 거의 5배인 11.7원을 올린 바 있다.
산업용 전기의 특징은 고압전기를 사용하므로 송·배전 원가가 저렴하 고 전기 수요(부하)가 24시간 일정해서 피크관리를 위한 발전소의 추가 건설을 줄일 수 있다. 반면 주택용은 저압으로 산업용보다 송전 손실이 많고 가가호호까지 전선을 연결해야 한다. 따라서 전봇대, 변압기, 계량기 설치비용과 유지보수비, 관리비, 검침 인건비 등이 추가로 발생하게 된다. 또한 주택용은 전기 수요가 계시별 변화가 심해서 피크에 대비한 예비 전 력발전소 건설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이들 특징을 각각 송·배전 원가에 반영하면, 산업용 원가가 주택용보 다 kwh당 10원 정도 더 낮다. 또한 산업용은 대량 수요(전체 전기사용량의 54.7%)로 인해 단위당 고정비가 주택용보다 역시 kwh당 10원 정도 저렴 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전기요금 원가가 안정 적이던 2018년 자료를 보면, kwh당 주택용은 공급원가 129.21원에 판매 단가 106.87원으로 원가회수율이 82.71%였고, 산업용은 공급원가 109.04 원에 판매단가 106.46원으로 원가회수율이 97.63%였다.
- 정부는 대체로 2010년 전까지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원가보다 싸게 공 급했다. 당시는 산업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정책적 배려로 가능했지만, 이제는 어렵게 되었다. 그럴 경우 보조금으로 간주되어 교역상대국으로 부터 상계관세(CVDs, Countervailing Duties) * 판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주택용 요금 판매단가가 산업용보다 비싸기 때문에 주택용 소비 자가 산업용에 교차보조해 준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는 산업용 전기의 공급원가가 주택용보다 kwh당 약 20원 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면적인 단가보다는 원가회수율을 봐야 한다. 농업용의 경우 원가회수율이 47.43%에 불과해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를테면 국 내 건고추 유통량 가운데 40% 이상이 중국산이다. 중국산이 20년 사이 40배 증가한 것이다. 가격은 국산의 절반을 좀 넘는 수준이다. 원래 건고 추는 국내로 수입되기 힘들다. 270% 고관세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런데 고관세를 피하는 방법이 있다. 고추를 냉동 상태로 들여와 해동시킨 후, 전기로 작동하는 고추건조기로 말려 건고추를 만드는 것이다. 냉동고 추관세는 27%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 요즘에는 암호화폐 채굴에도 농 업용 전기가 동원된다. 농민을 보호한다고 싸게 해준 전기요금 제도가 오 히려 농민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용도별 요금제는 지금까지 나름 제 역할을 해왔지만, 날로 부작용이 심 각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용도별 요금제를 폐지하고 원가가 제대로 반 영되는 '전압별 요금제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정책적 배려 가 필요한 부분은 전기요금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지원해주면 된다. 예 를 들어 저소득층에게는 에너지바우처 제도를 확대하고, 독일의 사례처 럼 자원재활용 산업에는 전기요금을 다 받되 그 절반 가까이를 별도로 보 조해주는 방식도 있다.

- 인류는 구리, 납(B.C. 6500), 은(B.C, 5000), 금(B.C. 4700), 주석(B.C. 3300), 철(B.C. 2100), 수은(B.C. 1500) 순으로 금속류를 사용해왔다. 이렇게 된 데 에는 원료 산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열을 높이는 기술이 결정 적으로 작용했다. 인류의 기술 진보가 열(熱)처리 기술의 과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다.
- 구리의 녹는점은 1084°C, 철은 1538°C다. 454°C를 높이는데 무려 740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열을 높이는데 석탄을 구운 코크스를 쓰 지만, 산업혁명 이전에는 나무를 가마 속에 넣어서 구워낸 목탄炭)을 사용했다.
한편, 광석에서 금속을 골라내는 야금술을 이용하는 모든 곳에 서는 어김없이 환경 파괴가 일어났다. 연료 소비는 삼림 벌채라는 심각한 문제를 유발했다. 제철소의 입지를 결정한 것은 철광석이 아니라 나무의 존재였는데, 그 이유는 먼 거리에 나무나 목탄을 운송하는 것보다 광석을 운송하는 것이 더 값쌌기 때문이었다.
- 산업혁명 이전 영국의 용광로 1기(당시 약 200m2. 현재는 5500m2 규모)가 1년 동안 소비하는 목재는 약 100만m2의 숲에 해당했다. 축구장 면적이 8,250m2이니, 1년 내내 용광로 1기를 달구는 데 축구장 121개 면적의 울 창한 숲이 훼손되었다. 결국 1574년경 51기였던 용광로가 1717년에는 14 기로 줄어들고 말았다. 계속된 삼림 벌채로 용광로에 사용할 목재를 충당 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은 서유럽, 스웨덴, 미국, 러시아에서 제련한 철을 수입하게 되었다.
금속제련으로 인한 심각한 산림 훼손은 영국 등 몇몇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8세기 중국 청나라의 왕태악(王太岳)이란 시인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노래했다.
"베어 쓸 나무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니, 죄수의 머리마냥 숲은 대머 리가 되었네. 벌거숭이가 되었네. 이제야 비로소 후회하네. 이젠 장작조차 구할길이 없어졌네."
세계적인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는 우리 시대의 고전 「총, 균, 쇠에서 숲으로 덮여 있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자멸하는 과정을 가리켜 '생태학적 자살'이라 표현했다.
"농업을 위해 개간하고, 건축을 위해 벌목을 하며, (고대의 시멘트라고 할 수 있는) 회반죽을 만들기 위해 태우는 바람에 그들 자원의 기반을 스스로 파괴하는 생태학적 자살을 저질렀다. 나무가 자라는 속도가 파괴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 코크스(C)는 구울 때 산소(O)를 얻어 일산화탄소(CO)가 되고 철과 산 소의 화합물인 철광석(Fe2O3)을 고로 내에서 녹이는 훌륭한 열원(源)인 동시에 철분(Fe)을 철광석에서 분리시키는 환원제(산소를 잃는 반응) 역할 을 한다. 즉, 코크스의 일산화탄소(CO)가 철광석(Fe2O3)의 산소(O3)를 가 져와 철(Fe)을 남기고 이산화탄소(CO2)를 발생시킨다. 이때 불안정 상태 의 일산화탄소가 안정된 이산화탄소로 전환되기 때문에 반응열이 매우 크고, 전체 산화철의 환원반응이 쉽게 일어나서 코크스가 훌륭한 열원 역 할을 하는 것이다.
목탄(C)도 공기 중에서 연소하면 이산화탄소(CO2)를 발생시킨다. 하지 만 나무는 공급이 제한적인 반면, 석탄(코크스)은 무궁무진한데다 목탄보 다 열을 더 오래 유지시켜 쇳물의 이용도를 높여준다.
다비의 성공은 쇳물 생산지를 삼림에서 석탄 지대로 이동시켜서 쇳물 생산을 획기적으로 용이하게 해주었는데, 유레카! 무엇보다도 코크스는 증기 사용을 보편화하는데 필요한 연료를 제공해주었다.
- 철강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용광로 공법의 원료이자 환원제인 코크스를 수소로 전환하는 '수소환 원제철 공법'이다(129쪽). 그러나 상용화까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당장 은 용광로에 고철 투입량을 늘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는 이미 용광로에 고철 투입 비중을 15%에서 20%까 지 올려 조업을 하고 있고, 2025년까지 30%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제철 또한 고철 사용량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용광로 공법 생산량 4900만 톤에는 고철이 735만 톤(15%) 포함되어 있 는데, 10%를 증가시키면 연 490만 톤의 고철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렇게 될 경우 철근과 형강을 생산하는 전기로에 필요한 고철은 또 어떻게 확보 할 것인가? 이래저래 고철가격이 급등할 것이 뻔하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20년 7월 말 기준 톤당 25만 원이던 고철가격은 2021 년 7월 말 기준 60만 원으로 140%나 폭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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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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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급측면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효율성이 극대화되면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더 싼 가격에 더 우수한 품질의 상품이 공급되었다. 수요는 위축되고 공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급 불균 형 혹은 공급과잉의 시대가 되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세계는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애써 감추려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부채를 늘려 부족한 소비 수요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된 후 22년간 세계 전체의 부채는 GDP 대비 191%에서 2022년 말 기준 248%로 늘었다. 부족한 수요를 빚을 내서 소비하다가 코로나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지난 20년간 나는 주로 공급과잉 측면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해 석해왔다. 그러나 사람을 능가하는 기계의 탄생으로 사람들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었다. AI 등 디지털 기술은 더 빠르게 수축사회를 강화시 킬 것이다. 이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철학과 교수인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이번 세기에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것은 자연재해 때문이 아니라 인 간 활동에 의한 것일 확률이 훨씬 크다면서 "인간이 AI에 대항하려 고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면 오히려 AI에게 추월당하는 속도가 빨라진 다는 딜레마가 있다. 우리가 똑똑해질수록 우리보다 더욱 똑똑한 AI 를 만들어내기가 쉬워진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인류가 인공지능 과의 대결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기술이 '특이점'(singularity)을 돌파하는 순간이 지금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대 응해야 할까?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했다.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 한 질문은 '그 모든 잉여 인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일 것이다. 의식 은 없어도 거의 모든 것을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고도로 지능적인 알고리즘이 생긴다면 의식을 지닌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인류와 미래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다.

- 여론조사 기관인 마크로밀 엠브레인은 <트렌드 모니터 2023》에서 젠더 갈등 문제에 대해 흥미있는 조사 결과를 보여줬다.
20대 남성: 
1) 목표에 집중하면서 능력주의 성향이 강하다.
2) 자신의 일은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20대 여성: 
1) 남성에 비해 어떤 사건의 배경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2) 목표 자체보다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3) 사회적 평판 등 나 이외 사회와의 관계를 깊게 생각한다.

- 수축사회에서의 사회적 대응은 과거형이다. 과거의 화려한 성장시절(팽창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집단 심리가 형성된다. 내가 본 시위 현장은 퇴진의 대상이라고 지칭되는 베이비부머가 주축이다. 70대 이 상의 산업화 세대 역시 그들이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틀릴 수 없고, 나의 성공스토리는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방식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켰으니 나와 내 방식을 존중해 달라는 '인정투쟁'은 시위 현장을 넘어 유튜브 등 SNS에서 중장년층 의 심리적 기반이 되고 있다.
- 수축사회의 해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를 떠나 리더 계층이 사회 변화를 얼마나 절실하게 느끼고 새로운 차원의 대안을 제시하는 가에 달려 있다. 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사람들이고 이를 해결하는 것 은 리더다. 리더가 과거형이면 해결은커녕 혼란만 가중된다. 리더 그룹 에서 고령자 비중이 높고, 경제 개발 60년의 성과를 간직한 리더계층 이 길을 잃으면서 계층 갈등과 세대 간의 갈등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세대와 나이 구분 없이 적응하기 정말 어려운 세상이다.
- 사이비 공습경보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것에 비해서 모르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그 차이를 뭔가가 채워줘야 한다. 바로 종교다. 종교는 현 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심리적 안전판이다. 또한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신(神)으로 칭하고 추앙한다.
역사적으로 사회변동이 극심할 때 다양한 종교가 등장했다. 기 독교의 경우 중세 암흑기에서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중국 청나라 말기 기독교 구세주 사상을 기반으로 했던 '태평천국의 난'의 지도자 홍수전은 자신을 구세주인 천왕(王)이라고 칭했다. 또 백련교도 중심의 '의화단의 난'은 수억 년 후에 탄생하는 미륵불에 사회 개조의 염원을 더한 미륵신앙이 바탕이 되었다. 전환기의 새로운 신앙은 기존의 기득권을 해체한다. 현대 경영학으로 설명하면 먼저 과거 질서를 파괴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일어나 는 것인데 이때 신흥종교가 큰 역할을 한다. 종교지도자 개인에 대한 추앙을 넘어 가스라이팅, 세뇌 등의 방식이 사이비 종교에 접목된다. 스스로 신이라 칭하면서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전광훈, JMS 정명석 또한 방법의 차이일 뿐 수축사회의 빈틈을 노리는 사이비들이다. 지금 세계는 사이비 종교의 공습경보가 울리고 있다.
대상만 다를 뿐이지 추앙과 추종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유사한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현대의 또다른 '교 주'로 군림하는 일부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 이들은 '당신은 선택된 사람'이라며 특별하고 인정받는 존재라고 느끼 게 만든다. '우리 대 저들이라는 이분법을 만들어 집단 바깥의 세상을 적으로 규정한다. 두려움이나 죄책감, 분노 등을 촉발하는 말로 행동 을 조종하기도 한다.
피라미드 사기를 일삼는 다단계 판매 조직도 비슷하다. 주로 중 산층 전업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단계 조직의 슬로건은 여성주의 를 가장하고 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아 '자기 자신의 보스'가 되어 '독립적인 사업을 시작해 '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풀타임 못지 않게 수익을 올려서 늘 갈망하던 '경제적 독립을 이룩하라'는 것을 지 속적으로 세뇌한다. 
- 파괴적 혁신 이후 새로운 세계로 전진하지 못하면 최근의 뉴트로 열풍 혹은 보수주의의 부상과 같은 복고(復古)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 10년 사이 한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에서 신자유주의 기반의 독재 체제가 재부상하는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수축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교는 더욱 필요하다. 현재 를 이해하기도 어렵고 미래는 더욱 캄캄하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기꺼이 신(神)을 소환해서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모두가 적 때문이야', '당신은 특별하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는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 을 겨냥한다.

- 리브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상위 20%의 가구 소득은 1979년에서 2013년 사이에 4조달러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하위 80%의 소득 은 3조달러가 약간 넘게 증가했다. 하위 20퍼센트~중위 20퍼센트 사이 의 격차는 거의 변동이 없었고, 하위 80%에 속하는 사람들 간의 불평 등도 큰 변화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불평등은 상위 20%를 경계로 벌어졌다. 사회학적 용어 중에 중하류층의 상향 이동을 가로막거나 여 성의 사회진출을 막는 다양한 장벽을 뜻하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 이라는 말이 있다. 이에 비해 리브스는 상위 20%가 중산층 혹은 하류 층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마련한 유리 바닥(The Glass Floor)이 있다 고 주장한다. 이 장치들은 기득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미국을 계급사회 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 리브스의 책에 인용된 미식축구 코치 배리 스위처의 말은 신랄하다. 그는 상류층의 계급 고착화를 야구에 비유했다. 상류층이 '3루에 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고 비꼬았다. 상류층 부 모가 자녀를 위해 하는 많은 활동(책을 읽어주고, 숙제를 도와주고, 영양가 있 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스포츠 등 학과 외 활동을 지원해주는 것 등)은 아이가 세 상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갖추게 해준다. 이는 아이 가 성인이 되어서도 상류층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불공정한 카르텔을 규제하는 반독점법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고성장기에는 수출이 증가할 때 수출 대기업의 성과보상으로 불평 등이 커졌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좋은 불평등'으로 부른다. 개발경제학 자들은 '좋은'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을 구별한다. 좋은 불평등은 사람 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개선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경제성장 을 촉진한다. 반면 나쁜 불평등은 특정 계급(지대 추구자)에게만 이득을 준다.54 좋은 불평등은 경제의 파이를 키우지만, 나쁜 불평등은 계급을 고착화시켜서 사회를 붕괴시킨다.
고령자 불평등은 나쁜 불평등이다. 국가는 이미 많은 복지 비용 을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고령자 불평등 문제는 앞으로 사 회갈등의 중심 의제로 떠오를 것이다. 고령자들은 지금 당장이 중요하 다. 그러나 국가는 지금 여기서 이들을 구제할 여유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 수축사회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다. 누군가 빨리 이 갈등을 종결해주기를 바란다.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해진 것이 다. 1930년대 초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독일이 히틀러를 불러 낸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21세기 미국의 첫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 시 대통령은 미국 일방주의를 바탕으로 9.11테러 이후 이라크 전쟁 등 에서 강력한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네오콘(neocon)을 대거 등용했다. 네오콘이란 네오 컨서버티브(신보수주의, neo-conservatives)의 줄임말이 다. 힘을 바탕으로 불량국가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해서 적극적으로 미국의 이해를 달성하자는 정치 세력이다. 핵심 인물은 딕 체니 부통 령,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부장관, 폴 울포위츠 등이다.
- 그러나 네오콘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국방과 외교에 있어 절 대적인 힘의 우위에 있었지만, 경제와 사회는 구조적인 문제가 부각되 는 시기였다. IT혁명으로 생산성은 증가했으나 실업률이 높아지고 인종 갈등, 사회적 불평등이 빠르게 증가했다. 미국의 부채 경제도 당시에 출 발했다. 또한 주로 남부 지역에 있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사회 각계 각층으로 파고들어 강성 기독교와 신보수주의가 결합되었다. 위기일수 록 사람들은 정치적 극단주의, 즉 일종의 전체주의를 선호한다. 무질서 를 한방에 그리고 과감하게 해결해줄 구원자가 필요해진다. 수축사회에 대한 정치적 대응은 종교와 독재임을 미국이 먼저 보여준 것이다.
오바마 시대 잠시 물러났던 네오콘은 트럼프 시대에 중국과의 패 권전쟁을 명분으로 다시 소환됐다. 이번에는 백인 소외계층을 대변하 는 우파 독재의 지원 세력으로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녀들을 백악관 중요 보직에 임명했지만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왜 그럴까? 우 파 백인들은 도덕적 지도자보다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강력한 독 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트럼프 개인의 일탈은 중요하지 않 았다.
자국 이익 중심으로 국제 정치가 흐르면서 1930년대 유럽의 민 족주의, 파시즘, 나치즘, 쇼비니즘(Chauvinism) 등과 같은 배타적인 정치 이념이 일반화되고 있다. 21세기 초반은 중국에서 민족주의 성향이 강 해지면서 동시에 미국에서도 애국주의가 부상하던 시기다. 이런 이념 들은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적 성향이 강하다.
- 스포츠에 있어서도 국가 대항전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국가 대항전에 관심이 없던 야구, 골프 등의 종목에서까지 국가 대 항전 인기가 높아진 것도 이 시기다. 축구는 전통적으로 월드컵이 열리 는 등 국가 대항전이 활성화된 스포츠였다. 국가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축구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스포츠는 분열하는 수축사회에서 국 민과 지역을 단결시키지만, 다른 국가와의 경쟁을 강화시키는 부작용 도 있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모든 사람들이 수축사회 전투에 참전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경제적 현상이지만 수축사회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각국에서 미국의 네오콘 모델을 응용한 다양 한 형태의 독재자가 출현하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 필리핀의 두테르테,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등 전체주의를 지향 하는 정치인이 대거 집권했다. 결론적으로 수축사회는 '배타적 애국주 의사이비 종교=포퓰리즘=독재자'의 공식이 통용된다. 이 결과 민주 주의는 엄청난 속도로 퇴행하고 있다.
- 신자유주의의 전도사 중 하나였던 토마스 프리드먼이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을 내며 세계화와 신자유주를 옹호하자, 이에 대한 반박으로 데이비드 스믹(David M. Smick)은 프리드만의 신자유주의 찬 양에 제동을 거는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 신자유주의와 미국식 민주주의가 세상의 모든 이념 대결 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의 《역사의 종말>도 결국 후쿠야마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을 정도 로 이미 신자유주의는 오래 전에 생명을 다했다.
지금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중도 우파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느 국가나 불평등이 확대되면 세금을 올려 복지 재원으로 활용한다. 영국의 토러스 총리는 대처 수상의 신자유주의를 언급하며 세금을 깎겠다고 나섰다가 강력한 사회적 저항으로 45일 만에 사퇴했다. 사적 재산권을 제한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 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행되고 있다. 독일은 에너지가격이 급등하자 2021년 9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GDP의 7% 이상을 에너지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국가가 거의 모든 영역에 적극 입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 개인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도와주고 있다. 실질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이미 사라졌 다. 다만 정치인들의 투쟁의 도구일 뿐이다. 수축사회의 이데올로기는 생존 이데올로기다.
재미있는(?) 것은 오직 한국만 수명을 다한 신자유주의를 숭배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부활시키겠다고 등장했던 MB 정부는 4대강 사업 등을 통해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했 다. 또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공기업의 임금을 깎기도 했 다. 박근혜 정부 역시 기본소득과 유사한 기초노령연금 지급을 확대했 다. 반면 복지를 핵심정책으로 걸었던 DJ와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와 FTA를 도입하는 등 역설적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2022년 출범한 보수 정부 역시 대외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가장 강하게 밀어 붙이고 있다. 감세, 규제해제, 공기업 민영화, 복지 축 소 등 현 보수 정부의 이념은 신자유주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정책이 다. 보수 정부는 이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퍼주기' '포퓰리즘' 등의 용어로 비난했지만, 정작 취임하자마자 무려 62조원의 긴급재난지원금 을 지급하는 추경을 편성했다. 21세기에 등장한 한국의 정권들은 각각 신자유주의와 복지라는 상충된 이념을 주장했지만, 공통적으로 국가 의 시장 개입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 우리는 자본 즉 금융과 실물경제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 금융의 본래 기능은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버드대 교수를 역 임했던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 폴 스위지(Paul Sweezy)는 "금융자본은 실물생산경제의 겸손한 조력자라는 원래 역할에서 벗어나는 순간, 필 연적으로 자기 확장에만 골몰하는 투기자본이 된다"고 주장했다." 금 융을 자본주의의 피, 즉 혈맥으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혈맥이 통제가 안 되면 인체는 작동이 불가능해진다.
엄밀한 의미에서 21세기의 선진국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에 가깝다. 장기간 고성장 과정에서 금융자본이 대규모로 축적되었다. 정 제위기 때마다 화폐를 찍어내서 살포했다. 얼마나 많은 돈을 풀었으면 프린트(Print) 머니, 종이 화폐라는 표현이 나왔을까. 2022년 초반 기준 양적완화(QE)를 통해 미국, 중국, 일본, EU가 풀어댄 돈만 30조달러를 넘었다. 전 세계 GDP가 100조달러이니 전 세계 GDP의 약 30%에 해 당한다. 금리까지 역사상 가장 최저 수준인 만큼 금융자본은 본래 속성대로 탐욕의 본성이 매우 강한 상태가 되었다. 실물경제보다 더 많은 금융자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금융의 본래의 기능인 실물경제의 지 원이 아니라 '금융의 금융에 의한 금융을 위한' 경제 구조로 바뀌게 되었다. 실물경제와의 연계성이 낮아지면서 금융시장은 수익률 게임의 법칙만 통용되는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금융자본의 과속 질주는 앞서 살펴본 신자유주의 제1 원칙과도 깊이 연결된다. 자본이 국경을 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어지게 되었 다. 자본 투자국인 선진국은 투자국의 실물경제(기업, 인프라)가 아니라 금융자산에 투자한다. 투자한 자본은 일정한 투자 수익을 달성하면 빠 르게 회수한다. 이 과정에서 투자 대상 국가는 단지 하나의 상품에 불 과하다. 특히 미국은 과다 축적된 자본으로 세계 각국에 투자하면서 투자 이익과 패권을 동시에 유지하고 있다. 
- 주주자본주의 확산은 단 한 개의 일자리도 증가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줄 인다. 자본주의 스스로 자본의 파괴를 통해 자본주의의 수명을 단축 시키는 것이 아닐까? 이런 현상에 대해 뉴욕대의 스콧 갤러웨이 교수 는 '주주가치라는 신흥종교'로 금융자본의 과속 질주를 경계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자사주 매입이 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금리는 오르고 있고 수축사회로 기업의 경영위기가 상시화되고 있다. 경제위기가 왔을 때 해당 기업이 과연 생존 가능할지 여부부터 따져봐야 한다. 주주가치 경영이 매우 부족한 한국이지만 미국의 사례를 참조해서 준비해야 한다.

- 미국은 독점시스템에 기반한 패권으로 유지되는 국가다. 패권을 상실하게 되면 미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대통령은 8년이나 머뭇거렸다. 상황이 더욱 나빠진 후 당선된 트럼프는 패권전쟁 참전을 공식화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만의 고립 을 택했다. 반면 바이든은 정교하게 전선을 만들면서 동맹과 함께 연 합군을 만들고 있다. 중국과의 패권전쟁이 일어난 핵심 원인이 미국 내 제조업과 첨단산업 생산 부족에 있다고 판단한 미국은 IRA 법안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원칙을 버리고 미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생존 이념에 몰입하고 있다. '근린궁핍화정책'은 환율 절하나 국가의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인근 경쟁국에서 부를 뺏어오는 정책이다. 그런데 미국은 인근(neighbor)이 아니라 세계 전체(global)를 대상으로 이 정책을 사용 중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세 가지다.
1)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의 힘으로 이기는 방법
2) 중국이 스스로 무너지는 방법
3) 미국인에게 가장 어렵지만 확실한 방법은 100여 년 이상 패권에 취한 상황에서 깨어나서 미국 독점시스템을 현실에 맞게 고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권과 주류사회는 미국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독점 패권을 고칠 만한 의지나 능력이 없다. 결국 동맹국을 압박해서 중국을 포위하고, 중국이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미국 혼자 할 능력이 없으니 동맹국과 연합해서 간접적이고 입체적인 방법으로 전 투에 나서는 것이다. 미국 스스로의 노력 없이 전투에 참여해서 이기 고자 한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 《극중지계II: 경제편》에서는 앞으로 중국이 4개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평가했다.
1) 누구나 알고 있는 중진국의 함정(middle income trap)
2) 국가가 강한 리더십을 갖추어도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면 어떤 정책도 먹히지 않는 타키투스의 함정(Tacitus Trap)
3) 하드파워가 강하더라도 소프트파워가 부족하면 여타 국가로부터 신뢰를 상실하는 킨들버거의 함정(Kindleberger Trap)
4)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 등이다. 이 4개의 함정은 서구 특히 미국이 바라는 중국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중국은 과연 4개의 함정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이런 서구의 시각과 달리 중국에 유학한 학자나 중국인들은 중국이 구축한 독자적인 시스템(이하 중국시스템)이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 로 보고 있다. 중국이 만든 이 시스템은 어떤 통치체제보다 견고하다고 신뢰한다. 중국시스템은 전혀 새로운 체제로 기존의 국가 시스템을 대체할 것으로 믿는다.
- 그런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속도를 늦추면 쓰러지는 자전거와 같이 성장률이 하락하면 가려졌던 중국의 모든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날 것이다. 사회의 건강성을 파악하는 지표는 경제성장 률과 일자리다. 최근 한국의 갈등구조 역시 경제성장률 하락과 일자리 감소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느 정도 성장해야 사회가 안정될 까? 중국에서 경제가 1% 성장하면 일자리가 200만 개 생긴다는 분석 이 있다. 중국의 한 해 대학 졸업자는 약 1천1백만명 이상이다. 그걸 기 준으로 삼으면 최소한 5% 이상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반면에 디지털 기술이 일자리를 빼앗아가면서 청년 실업률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면 사회의 불안정이 높아지는 것은 동서고 금 공통 현상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3년 6월 청년 실업 률은 무려 21.3%를 기록했다. 그런데 중국 위기에 대한 지적이 많아지 자 중국 국가통계국은 청년 실업률 발표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주당 10시간, 미국과 프랑스는 각각 주당 15시간, 20시간을 근무해야 고용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중국은 주 1시 간만 근무해도 고용으로 친다. 중국 기준은 국제 기준이나 서구 국가 들의 기준에 훨씬 못 미친다. 또한 중국의 고용 통계에서는 2억4천만 명으로 추산되는 농민공 관련 통계를 찾을 수 없다.
고학력 대졸 실업률이 일반 청년 실업률보다 훨씬 높은 것도 위 험하다. 실업문제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시진핑 주석이 대학생들에게 농촌에 들어가 '고생'을 경험하도록 독려하기까지 했다. 광둥성 정부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30만명의 젊은이를 농촌으로 보낼 것을 제안했다.
이는 마오쩌둥 때인 1950년대에 시작해 20년 이어진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을 연상시킨다. 21세기 세계 패권을 겨루는 나라에서 대학졸업생에게 농촌에 가서 고생을 하라는 지시가 실행 가능할까?
- 그러나 계급이 고착화되고 있는 중국에서 정권에 충성해온 상류층에게 부담을 줄 수 있을까? 중국 상류층은 부정부패를 통해 쉽게 자본을 축적한 비중이 높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단맛을 너무도 잘 알 고 있다. 중국 역시 다른 선진국과 같이 세금제도를 통해 불평등을 해 소해야 한다. 그런데 9천5백만, 실제로 1억명에 가까운 공산당원에게 세금을 높일 수 있을까? 소득세, 재산세를 높이면 일부는 해외로 탈출 하거나 사회적으로 불만이 높아질 것이다. 이런 상황이 제대로 통제되 지 못하면 중국은 공산당원과 일반 국민으로 분열될 수 있다. 견고한 지배체제에 균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위협을 감지한 중국은 재정 지출을 빠르게 늘리면서 사회 를 안정시키려고 한다. 2023년 들어서는 공동부유론에 대한 언급도 줄어들고 있다. '공동부유론'이라는 슬로건을 줄이고 각각의 정책을 개별적으로 추진하면서 홍보하고 있다. 또한 사회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위기는 고속 성장에서 중속 성장을 거쳐 저성장이 고착화될 때 표면화될 것이다. 공동부유가 아니라 불평등 사회가 고착화되었을 때 시진핑의 공산당은 최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동안 중국은 내부의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임금 상승에 따 른 소득 증가로 버텨왔다. 배금주의 성향이 강한 중국인의 입장에서 공산당은 중국 인민들에게 '돈'을 주고 민주주의를 제한해온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를 거치고 중진국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높은 상태에서 향후 임금 상승률은 과거와 같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도시지역 가처분 소득이 제로(0) 혹은 마이너스(-) 상황이 2~3년 정도 이어지면 중국의 위기는 현실이 될 수 있다.
- 도시에 비해 농촌 지역의 교육 문제는 더 심각하다. 스콧 로젤과 내털리 헬은 중국의 농촌 교육에 집중해서 중국의 미래를 예측했다. 이들의 연구를 요약하면 현대 디지털 시대의 기본적인 교육에 최소 12 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노동자는 디지털 기기의 생 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이기 때문에 고교 수준 이상의 교육이 필요하 다. 로젤과 헬은 고교 취학률이 50%를 넘지 못하면 어떤 국가도 고소 득 국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불편한 진실은 중국 노동력의 70%가 비숙련 상태이고 중학교 이하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30%, 대학 교육을 받은 12.5%는 문제없이 잘 살겠지만 중국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매우 허약해졌다.3"
계층 이동 사다리가 사라지면 범죄율이 올라간다. 중국은 남녀 성비 불균형이 한국만큼이나 심각하다. 2000년 기준 여아 100명당 남자 아이가 120명 정도 태어났는데, 이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오고 있 다. 가장 인구가 많은 농촌 지역의 경우 영양 결핍으로 인해 아이들의 지적 수준이 도시 아이에 비해 낮다고 한다. 교육 차별화에 따른 사회 의 이중 구조가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소황제'로 편안하게 성장한 아 이들도 있지만 과도한 경쟁에 지친 많은 중국 청년 세대는 '자포자기 족' 세대로 변하고 있다. 2021년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는 평평하게 드 러누워 살자라는 의미의 '탕평(平) 운동', 사회가 썩도록 내버려두겠 다라는 의미의 '바이란(擺爛)'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일본의 극장화 현상, 한국의 냉소적인 청년세대와도 유사하다.
- '잃어버린 20년째가 되는 2010년대부터는 아베가 등장하면서 군국주의화로 길로 들어선다. 일본 전문가 유민호는 《일본 내면 풍경》 에서 일본의 우경화 현상을 단순히 아베 총리 등 몇몇 정치인의 정치 구호가 아니라, 일본어로 '쿠키'(공기, 空氣)라 부르는 사회 분위기 자체 가 전체주의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등학교 야구팀 선수 중 빡빡 머리 학생 비율이 1998년 31%에서 2008년 69%로 늘었다고 한다. 초 등학교 운동회에 2인 3각 경기가 부활하는 등 일본 사회 저변이 개인 보다 전체를 우선하는 전체주의화를 강요했다.
버블이 붕괴된 1990년대에는 버블의 형성과 붕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일단 총리를 바꿔보고, 바뀐 총리는 추경 예산을 편성하는 등 몇 가지 경기 부양책을 내놓는 수준에 그쳤다. 일본은 사회의 근본 적인 전환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단지 돈을 풀기만 하면 경제와 사회 가 고성장기로 회귀할 것으로 생각했다. 30여 년간 일본사회는 선도 적인 혁신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역사에 끌려갔다. 버블 붕괴에 따른 부실 채권 정리가 무려 11년 이상 지난 2001~2006년에 완료된 것을 보면 얼마나 안일하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준다. IMF 위기 당시 한국의 부실채권 정리가 2~3년 만에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과 비교된다.
- 잃어버린 30년 동안 부동산과 주가는 폭락하고 월급도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기간 중 일본 사람들은 불행했을까? 꼭 그렇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물가가 거의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택 소유자 는 손실이 컸지만 신규로 집을 마련하는 사람은 오히려 값싸게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저축도 많았다. 풍부한 예금이 있었기 때문에 임금이 오르지 않더라도 소비만 약간 줄이면 된다. 흥분하거 나 실망하지 않고 최소한의 소비만 하면 표면적으로 안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국민 전체가 초식남(男) 혹은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일본인 의 삶의 패턴이 수축사회 형태로 바뀐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세계화의 피해를 국내 정치에 활용했다. 세계화로 미국에서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세계의 경찰 비용으로 너무 많은 국방 비를 쓰니, 세계화 대신 고립을 택하면 미국이 더 잘살 수 있다는 논리 다. 미국의 지정학 전략가인 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은 이런 트럼프의 정책에 논리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는 미국이 미국인만을 위하는 정책 으로 회귀하면 세계는 암흑세계가 되지만, 미국은 더 잘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6장에서 살펴본 미국 의 독점시스템에 도전할 국가가 나타난 것에 대한 두려움도 영향이 있 었을 것이다. 미국이 뿌린 세계화가 미국을 공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 된 것이다.
- 미국의 유일한 해결책은 미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뿐이다. 다행히 미국에서도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제조원가는 공장부지 매입 비용, 세금, 원자재 비용, 인건비, R&D 비용, 운송비 등 으로 구성된다.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해서 미국으로 들여 오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설비투자에 들어가는 기계장치는 선진국에 서 생산되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가격차는 없다. 세금, 공장부지 비용 등은 법률을 바꿔서 중국과 동일하게 하면 된다. 인건비 차이는 로봇 등 기계 사용을 늘리면 절감이 가능하다. 이런 종합적 정책을 리쇼어링(reshoring)이라고 한다. 각종 지원과 규제 완화 등을 동원해서 해외 에 나가 있는 자국 기업이나 해외 기업을 불러들이는 정책이다. 각국 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활발하게 리쇼어링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 미국과 중국 모두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가 필요해졌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은 바로 중국식 세계화를 의미한다. 중국이 중심 에 선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시도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화에서 탈퇴하면 세계화 현상이 자연적으로 붕괴할 것으로 판단 했다. 바이든은 세계화에 다소 제한을 가하는 중립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바이든은 미국만의 홀로서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동맹을 공고 히 하면서 중국을 배제한 세계화를 추구하고 있다.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과 중국은 2개의 세계로 갈라서고 있다. 서로 다른 2개의 세계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오랜 기간 자유민주진영과 헤어질 준비를 해왔다. 미국의 제재에 견디기 위한 준비를 해온 것이다. 중국은 러시 아에서의 원유수입 비중을 빠르게 높여왔다. 2010년경 중국의 원유 수입 중 러시아 비중은 7~8%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3년 상반기에는 18%대까지 상승했다. 전체 수입도 원자재와 식량을 중심으로 라틴아 메리카와 러시아 비중이 높아졌다. 반면 유럽과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은 줄어들었다. 특이한 점은 아세안 국가와의 교역 비중이 높아진 것인 데 향후 아세안이 중국 진영과 미국 진영의 각축장이 될 것임을 암시 한다.
- 에너지뿐 아니라 중국이 2차전지 등 미래 산업에 다양한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자, 미국은 2018년 7월 중국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대 해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의 IRA 법안에 앞서 중국이 먼저 선방 을 날렸고 이에 미국이 맞대응하면서 패권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중국이 독자적인 세계화를 추진하자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 과 사람들의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장기 거주하는 미국인은 2010년 7만1천명에서 2020년 5만5천명으로 23% 감소했다. 프랑스인 은 1만5천명에서 9천명으로 40%나 줄어들었다. 베이징 왕징(望京) 거 리의 한국인은 10년 전만해도 10만명이 거주했는데, 지금은 2만명도 채 안 될 정도라고 한다.' 2020년부터 중국 정부는 미국 반도체 기업 인 마이크론에 대한 구매를 급격히 줄였다. 

- 과거의 전쟁은 총포를 동원한 물리적 전쟁이었다. 여전히 국지전은 군사무기를 동원한 전쟁이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패권전쟁은 입체적인 전면전이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세계의 핵심 국가들이 전부 참여한다. 일찍이 2014년에 전략경제학자인 윌리엄 엥달 (William Engdahl)은 미-중 간의 전쟁은 군사 전쟁뿐 아니라 경제, 환경, 미디어, 통화, 석유, 식량, 보건 등 모든 영역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실은 엥달의 전망보 다 더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왜냐하면 이번 패권전쟁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전쟁이 기 때문이다. 어정쩡하게 타협이 되어도 전쟁은 새로운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계속 진 행될 것이다. 영토를 늘리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패권을 차지해야만 생존하고, 반대로 패 권을 빼앗기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같이 무조건 이겨야만 살아남는 전쟁이다.
패권 이행 이론(power transition theory)에 따르면 신흥국가가 기존 패권국을 추월하 려고 위협할 때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인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은 비슷한 논리로 이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설명한다. 3 중 국이 미국을 넘기 어렵다면 국력이 최고조인 바로 지금 공격해야 한다는 논리다. '지금 아 니면 기회가 없다'(now-or-never)는 사고방식이다.

- 굳이 핵전쟁을 벌이지 않아도 상대방을 제압할 많은 수단이 있다. 미국이나 중국의 국민들은 대규모 희생이 불가피한데 과연 전면전이나 핵전쟁을 용납할까? 독점시스템에 익숙해져 이기적이고, 개인주의 성 향이 강하면서, 국민소득 7만달러의 미국인들이 대규모 징집, 경기침체, 주가 폭락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주요 7개국(G7) 이 중국에 가할 경제 제재로 전 세계가 3조달러의 피해를 입을 것이라 는 예측도 있다.''6
중국의 입장도 비슷하다. 중국 인민들은 자본주의의 단맛을 알기 시작했다. 개인주의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만일 중국이 패배하거나 치 명적인 피해를 입게 되면 시진핑 주석과 공산당의 입지는 매우 약화될 것이다. 모든 정치 세력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가 가장 중요한 목표다. 패권전쟁으로 권력 유지가 어려워진다면 굳이 모험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 전쟁은 GDP, 즉 월급(flow)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산(stock)으로 싸우는 것이다. 쌓아놓은 자산이 부족한 중국은 지구전이나 소모전 이 발생하면 불리하다. 자산 관점의 전통적인 전쟁 논리로 보면 중국의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바로 이 논리가 미국이나 한국의 보수파 혹은 국 제정치학자들이 보는 미-중 패권전쟁에 대한 인식이다. 합리적인 예측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과거형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패권전쟁은 3차 세계대전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디지털 전쟁이다. 후방의 모든 국민까지 참여하는 총력전이다. 사람뿐 아니라 기계가 본격적으로 참
전하는 미래 전쟁이고, 적국이 아니라 자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적 전쟁이기도 하다.
- 과거 냉전 시절에는 피아 구분이 확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기술, 금융 등에서도 전선이 형성되면서 피아 구분이 모호해졌다. 중 간 지대의 많은 국가들은 자국의 입장이 알려지는 것보다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 한다. 그렇다면 미중 사이에 낀 국가 입장에서 가 장 좋은 처신은 '양다리 걸치기'가 아닐까? 미-중은 자신들의 진영을 확대하려 하지만 각 국가들의 속내는 국익에 우선해서 확실한 진영을 거부할 것이다. 한 베트남 고위 당국자는 "미국과 너무 가까워지면 공 산당을 잃고, 중국과 너무 가까워지면 나라를 잃는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중간 지대에 위치한 국가들의 고민은 모두 비슷할 것이다.
- 디커플링은 중국과 완전하게 공급망을 분리하는 정책이다. 반면 디리스킹은 반도체 등 국방과 관련된 안보 분 야를 제외하고 협력하는 정책이다. 이들의 발언이 있은 후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앞다투어 디리스킹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토니 블 링컨 국무장관도 직접 중국을 방문해서 시진핑 주석을 만나 디리스킹 을 얘기했다. 미국에서 기업인의 사회적 위치는 어느 국가보다 강하다. 정치권력도 함부로 하기 어렵다.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 기업인이 반 대하면 실질적 효과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고민이 깊어지는 까닭이다.

-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이미 1960년대에 소련과의 전쟁이 우주전쟁이 아닌 과학 경쟁이고, 본질적으로 교육 경쟁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케네디는 냉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기꺼이 희생하면 서 몰두할 수 있도록 한 가지 중요한 선택을 했다. 모스크바에 미사일 을 발사하는 대신 바로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었다. 35 돌이켜 생각해보면 세계적 차원의 대규모 전쟁은 과학기술 패 권을 둘러싼 경쟁이 핵심이었다. 과학기술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가지면 기술에서 파생하는 독점적 이익이 가능하고 전쟁에 수반되는 인적, 물적 희생이 필요 없게 되기 때문이다.

- 중국은 그동안 반도체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2022년 중국의 연간 반도체 기업 창업 수는 6만 개가 넘는다. 최근 5년간으로 기간을 늘리면 15만2천 개의 반도체 기업이 창업했고 1만3천 개 기업이 폐업했다. 폐업율이 8.6%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 반도체 생태계가 엄청나게 활성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중국의 반도체 실력은 메모리 분야 에서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추격 속도가 빠른 낸드메모리 기술 격차는 한국 대비 개발 기준으로는 1년, 대규모 양산에 있어서 차이는 2년에 불 과하다. 2022년 하반기부터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공급과잉으로 감 산을 하고 있고 자금 상황도 좋지 않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으로 자금 문제에서 자유롭다.
미국의 제재로 중국에서 장비와 소재 조달에 문제가 생긴다면 기 술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달에 우주선을 보낼 수 있 는 기술력이 있는 국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미국의 규제는 16 나노 이하 공정 로직 반도체, 18나노 이하 공정 DRAM, 128단 이상 NAND 정도에 적용되고 있다. 레거시(legacy) 제품이라고 하는 16나노 이하 제품에서 중국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산화하고 있다.
- 반도체는 첨단 제품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전이나 자동차 등에도 필요하다. TSMC는 저성능의 자동차용 반도체 기술로 2020년 공 급망 위기 시 큰 수익을 얻은 바 있다. 중국은 반도체 생태계의 하단을 받치면서 기능은 좀 떨어지지만 꼭 필요한 저성능의 반도체를 생산하 고 있다. 2022년 중국의 반도체 수출은 1,552억달러였다. 한국은 중국 에 첨단 반도체를 520억달러 수출했지만 수입도 265억달러나 된다. 우 리가 수입한 것은 범용 반도체다. 중국제 반도체 없이 한국이나 베트남 등 아세안의 생산 공장은 가동되기 어렵다. 레거시 반도체 분야는 제조 업 강국들을 상호의존적으로 엮어 놓고 있는데 그 중심에 중국이 있다.
- 2027년 무렵 반도체 산업에서는 7가지 중요한 변수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의 견해와 나의 판단을 결합해서 반도체 전쟁의 미래를 예상해보자.
1) 미국에 짓기 시작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공장은 대략 2025~2026 년 경에 완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설비가 완공되어도 생산 인력을 선 발하고, 소재 조달 공급망 구축, 제품 판매망 구축 등 반도체 생태계 가 제대로 가동되려면 2027~2028년 이후가 될 듯하다.
2) 그 사이 AI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첨단 반도체에 대한 수요 또한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극강의 기술로 평가되는 2나노 기술 제품이 나오면 상황은 다시 가속 변화할 것이다.
3) 파운더리에 대한 삼성의 추격 여부다. 삼성은 D램으로 대표되는 메 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최강이다. 그러나 미래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 점유율은 15%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15% 점 유율도 계열사 매출이 많기 때문이다. 인텔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만일 2027년경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삼성의 파운더리 생산 비 중이 급상승하게 되면 한국 중심의 새로운 반도체 전쟁이 예상된다. 
4) 미국과 한국, 대만 등 반도체 연합군이 중국에 대해 벌이는 첨단 반도체 고사작전이 향후 3~4년 지속될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미국의 전략이 성공할 경우 중국은 미래의 핵심 산업에서 크게 뒤처질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6개월 혹은 1년의 차이가 승패를 좌우 하기 때문에 3년 이상 개발과 투자가 뒤처지게 되면 경쟁력을 상실 하게 된다. 화웨이와 같은 세계적 통신회사의 기술적 우위도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중진국 수준의 범용 제조업 제품을 생산 하는 국가로 추락할 것이다. 특히 AI 분야는 지금부터 본격적인 경 쟁에 돌입하는데 최첨단 반도체가 필요한 이 분야에서 밀리게 되면 거의 모든 산업에서 뒤로 밀려나게 될 수 있다. 어쩌면 현재의 베트 남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국으로서는 받 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5) 반도체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결국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상품 은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하락하기 마련이다. 2027년경 미국의 반 도체 생산설비가 완성되고 뒤이어 한국의 용인·이천 반도체 설비, 또 TSMC의 설비가 완성되기 시작하면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 특히 한국 반도체 회사는 민간기업이기 때문에 늘 투자비용과 손익 을 고려해야 한다. 2023년 반도체 기업들이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자 생산량을 줄이면서 가격 조절에 나선 것을 참고해야 한다.
또한 미국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만일 2024 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반도체 지원을 계속할지 여부도 미지수다. 미국 인텔에 현재의 지원금이 상당 금액 지원된 이후인 2025년 무렵은 미국에서 반도체 공장이 한창 지어지고 있을 때 다. 이때 새로 출범한 정부의 태도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미국 의 새로운 행정부 출범과 반도체 가격 급락이 맞물릴 경우 미국 중 심 반도체 진영의 결속력이 약화될 수 있다.
6) 그 이전에 상황이 끝날 수도 있다. 2024년 1월 대만에서 총통 선거 가 있다. 이 선거에서 친미 반중 성향의 민진당 후보가 당선되면 반 도체 전쟁은 지금보다 더 격화될 수 있다. 반대로 대 중국 화해를 주장하는 국민당이 재집권하면 상황은 다시 복잡해진다. 중국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일 것이다. 무력 충돌 없이 점진적으로 대만과 반도 체를 접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대만의 반도체 설비를 초토화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감안 하지 않아도 된다.
7) 중국도 반격이 가능한 분야가 있다. 중국은 2023년 7월초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당시 중국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미국 진영을 위협했다. 이 발표는 미국 재무장 관인 옐런의 중국 방문을 3일 앞둔 시점이었다. EU의 핵심 원자재 (Critical Raw Materials)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희토류 15종을 포함한 핵심 원자재 51종 가운데 중국이 세계시장 1위 (2016~2020년 기준)인 광 물은 3분의 2에 가까운 33종에 달한다. 희토류 중에서 원자 번호가 높고 무거우며 비싼 중(重) 희토류인 테르븀·디스프로슘·에르븀·루테 튬 등 10종은 중국이 100% 장악하고 있다. 네오디뮴을 비롯해 란타 늄, 세륨 등 경(輕) 희토류 5종도 세계 시장의 85%가 중국 몫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 필요한 소재 공급을 제한하 면 새로운 소재 개발 국가를 찾을 때까지 사실상 대안이 없다. 40 중 국은 반도체의 독자 개발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미국 진영은 원 재료 공급망을 재구축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한계 때문에 미-중 반도체 전쟁은 암암리에 속도 조절 국면에 진입할 수도 있다.
- 미국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생태계 구성이 성공할 경우 배터리는 2025년경, 반도체는 2027년 이후 미국에서 생산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이 상대적 우위를 점유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배터리 분야에서는 중국이 압도적인 영향력과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서로 다른 무기를 가지고 상대를 겨누고 있는 형국이다. 그 무기는 양측이 모두 독점적으로 보유하기를 원한다. 중국은 반도체가 끊기면 성장이 불가능하다. 미국은 배터리 원재료 공급망을 중국 이외 최대 생산국인 한국과 함께 구축해야 한다.
새로운 공급망 구축에는 공해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 하다. 그러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 입장에서 배터리 원재료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려면 적어도 2030년은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 에 또 한 가지 변수가 있다. 배터리는 재활용이 가능하다. 전기차 보급 이 빨라져서 배터리 보급이 늘어나면 그만큼 재활용 비중이 높아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미국이 배터리 원재료 공급망 생태계를 구성 하는 시점에서 배터리의 재활용이 증가하면 새로운 국면도 예상된다. 다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국 반도체의 안정적인 미국 내 생산이 2027년, 배터리는 새로 운 원재료 공급망 구축까지 2030년 정도를 예상할 경우 그 사이 동안 미국과 중국은 계속 으르렁대겠지만 일정 부분 타협하거나 혹은 협상 을 통해 시간을 끌어갈 개연성이 충분하다. 바로 이런 상황이 디리스킹 (derisking)에 해당할 것이다.

- 2030년 최악의 시나리오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전쟁의 당사자다. 팽팽한 패권전쟁에서 중심 잡기가 만만치 않다. 미국은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가 필요하다. 2030년경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 미국이 세운 계획이 성공하 면 2030년경 미국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생태계가 구축된다. 최첨단 반 도체가 생산되고, 배터리 원재료 공급망도 구축했다고 가정할 때, 마찬 가지로 중국도 각고의 노력으로 한국, 대만, 미국에 근접한 기술을 확 보할 것이다.
- 미국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생산시설이 원활히 가동되고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생태계가 완성될 경우 한국의 가치는 일본을 방어하는 군사적 역할 정도로 위상이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중국으로 기울면 안보 문제가 발생하고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을 놓치게 된다. 중국 역시 한국의 반도체를 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웬만한 범용 제품은 자체 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다. 한국 반도체 없이도 중국의 독자 생존이 가능한 상황이 되면 한국은 지정학적 중요성만 남게 된다. 한국이 크게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 상황은 나쁘지만 서둘러 미국 진영에 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는 미중 양국에서 모두 필요하다. 2030년이 되 어도 미국의 전략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아직 없다. 실익을 얻으려 노력 도 해보기 전에 군사·안보적 차원에서만 결단을 내려선 안 된다. 대만 이 파운더리 반도체의 '고슴도치듯이 한국은 메모리와 차세대 반도 체 기술의 고슴도치를 지양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의 내부 사정을 깊게 이해한다면 현재와 같은 일방 적 대미 추종은 한국의 미래에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실익을 찾을 수 있다. 앞으로 경쟁은 생산보 다는 제품을 팔 수 있는 시장 확보가 중요하다. 한국 스스로 중국을 버 리려는 행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다. 중국 전문가 인 한국금융연구원의 지만수 박사는 지금 한국 기업들 앞에는 "미국 기업 없는 중국 시장, 중국 기업 없는 미국 시장이 펼쳐져 있다"면서 균 형적인 시각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 우크라이나 전쟁 중 국제 금융계가 크게 놀란 것은 국제지급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 망에서 러시아를 신속하게 축출한 것이다. 스위프트는 전 세계 200개국 1만 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매일 1,500만 개의 거래 메시지를 전송하는 글로벌 결제지원 시스템이다. 국가 간, 은행 간 거래에서 필수적이라서 스위프트에서 축출되면 해외와의 금융거래가 실 질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그런 이유로 스위프트는 이미 오래전부터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다. 2012년 미국은 이란을 스위프트에서 배제해서 이란의 원유 수 출 대금 결제를 차단한 바 있으며, 2017년에는 북한 은행도 축출시켰다. 
미국의 금융제재를 예상했던 러시아는 2014년부터 자체적인 지불결제시스템을 마련해 왔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서방이 이란을 제재한 지 1년 후 중국은 자체 국제결제시스템 (CIPS)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 달러 가치가 유지되는 비결
게임 이론의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을 달러 가치에 적용해보자. 내 쉬 균형은 한번 균형점에 도달하면 외부로부터 아주 큰 충격이 작용하 지 않는 한 계속 균형을 유지하려는 성향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 모든 국가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아 무역 등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특별한 상황변화가 없는 한 달러 이외 통화로 상거래를 하지 않는다. 달 러로 결제하는 것이 비용을 절감하고, 안전하고, 편리하기 때문에 현재 달러를 대체할 통화는 없다고 봐야 한다.
달러의 내쉬 균형에는 2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우선 재정적자가 작아야 한다. 미국 정부의 안정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품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무역적자를 막아야 한다. 재정적자로 대규모 국채가 발행되고, 또 무역적자를 메꾸기 위해 해외로 달러가 무제한 공 급되면 언젠가 달러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은 금태 환 정책을 포기한 1970년대 초반부터 재정적자가 계속되었고, 품질 좋 은 상품도 만들지 못했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 유럽과 일본 재무 담 당자들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달러는 우리 미국의 돈이지만, 당신 들의 문제입니다(The dollar is our currency, but your problem)." 무서운 얘 기다. 내쉬 균형이 붕괴되면 미국보다 미국 이외 국가가 더 어려워진다 는 위협이었다.
1970년대부터 일본과 독일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자의반 타의반 으로 달러 가치가 유지되도록 미국과 협력해왔다. G7이라는 경제 선진 국들의 정상회담, 1985년의 플라자합의 등은 달러 가치를 안정시켜 내쉬 균형을 유지하려는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달러 가치가 안정되면 미국 경제도 안정된다. 달러 패권의 진정한 의미는 달러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미국 경제를 보호한다는 점이다. 달 대안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달러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다. 미국 입장에서는 너무 편리한(?) 시스템이다.
환율은 상대가치로 평가된다. 자국 상황도 중요하지만 반대편의 상대국도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 이외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미국보다 나빴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안정된 측면이 있다. 달러 다음으 로 많이 거래되는 유로화는 출범 후 1유로당 1.4달러 수준까지 강세를 보이다가 최근에는 1유로당 1달러까지 하락했다. 유로화가 약화된 것은 미국 경제와 달러가 강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로화가 약해진 것일 까? 나는 후자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체질이 아주 강한 중국이 등장하고 있다.

- 새로운 지정학의 시대
러-우 전쟁에서 러시아의 실질적 패배를 가정할 경우 단기적으 로 미-중 패권전쟁에서 미국이 유리해진다.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천연 가스 수출이 재개되면서 유럽도 한숨 돌리게 된다. 미국의 파워를 재차 확인했기 때문에 중동 산유국이나 튀르키예 등은 당분간 친중국 행보 를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지 만 시간이 필요하다. 군사적으로 중국 서쪽 지역까지 NATO가 관할 권 확대를 추진할 것이다. 미-중 대결은 지정학적 전선이 아시아로 압 축되면서 중국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생 존을 위해서 중국에 더 밀착하거나 굴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우 크라이나 재건을 통해 흑해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려 할 것이다.
러우 전쟁이 2023년 하반기에 방향성을 결정해도 미국은 2024년 대선과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기는 어려울 듯하다. 현재와 같은 교착 상태가 당분간 이어지면서 지정학적 큰 변화를 향해 갈 것이다. 일본은 군사적으로 공격성이 증가할 것이다. 러시아에게 북 방영토 문제를 다시 제기하면서 동해에서 캄차카반도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긴장을 높이려 할 것이다. 이때 블라디보스톡을 통해 동해로 진 출한 중국과 일본은 지근거리에서 마주하게 된다. 북한도 중국 의존도 를 높일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새로운 재편의 바람이 불겠지만 여전히 핵심은 미-중 패권전쟁이다.
결국 지정학적으로 새로운 재편은 미-중 패권전쟁 추이와 연결되 어 이루어질 것이다. 미국에 반도체와 배터리 생태계가 완성되기 시작 하는 2027년~30년 사이에 러우 전쟁의 후폭풍이 동시에 발생할 가능 성이 높아 보인다.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확인되듯이 변화는 예기치 못 한 상황에서 긴박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러우 전쟁 이후가 더 위 험한 이유이기도 하다.
- 이 전쟁에서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이 모든 상황이 한국에는 난감하다. 한국은 지역적으로 미국과 중 국의 사이에 위치한다. 그러나 중국이 훨씬 가깝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 하고 있다. 이마저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보수 진영은 한국, 미국, 일 본의 3각 군사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전에 확실히 미국 진영에 편입하자는 전략이다. 너무 성급하고 위험한 생각 이다. 한국은 북한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있다. 대만에서 전쟁이 발발 하면 가장 난처한 국가가 한국이다. 주한미군의 대만 참전이 불가피할 텐데 한국 안보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 2023년 8월, 한·미·일 정상회담 을 앞두고 미국은 대만 유사시에 주한미군 여단급 부대(약 5천명)를 파견 하겠다고 우리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주한미군이 대만 전선에 투입되면 북한은 분명 중국 편에 서서 안보적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미묘한 '쓰리쿠션'의 상황이 돌발적으로 일어날지 모른다.
한국의 보수 정부는 시각이 너무 좁다. 특히 외교·안보 라인은 미 국이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완전하게 승리할 것으로 확신하는 듯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을 완전히 패배시키는 어렵다. 중국은 패 권전쟁의 승패와 무관하게 핵무장을 유지한 상태로 서해 혹은 동해를 통해 우리와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원자재의 상당 부분 은 중국 앞바다를 거쳐서 수입된다. 중국 정책 당국자들은 한국에 대해 늘 '이사 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강조한다. 중국의 운명과 한국의 운 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경고처럼 들리는 말이다. 설령 미국이 중국에 승리해서 중국이 무질서 상태에 빠지면 또 다른 위협이 될 수 있다. 중국내부의 혼란이 한국으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은 어떻게 행동할까? 이는 세계 여타 국가들과 다른 우리 한국만의 특 수한 위험요소다. 결론적으로 패권전쟁 이후에도 한반도 주변에는 늘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존재할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 내부의 정치적 안정성이 낮아질 때를 대비 해서라도 중국 인민과 직접 소통할 필요가 있다. 지금 중국 내 반한 정 서는 무려 80%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안미화중(和中), 안보는 미국 을 우선하되 중국과는 화목·화평하게 지내는 정책을 장기적으로 추진 해야 한다. 정권과 무관하게 중국 인민과 한국 국민이 서로 화목하게 지 내는 장기 전략이 절실하다.
- 선진국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풀어서(정부 부채를 늘려서) 코로나에 대응했다. 반면 한국은 가계와 기업,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 자가 부채를 늘리면서 코로나에 대응했다. 코로나 위기에서 한국은 세 계에서 유일하게 정부가 아닌 민간이 빚을 내 소비하면서 탈출했다. 민 간 중심의 부채 확대로 코로나 위기에서 탈출한 것은 향후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낮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 경제위기 때마다 한국은 가 장 먼저 위기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민간 부채가 많아지면서 지금부터 한국의 회복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려질 것이다. 신(新)코리아 디스카운 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큰 가치를 갖고 있다는 판단하에 형성된 투기 바람, 혹은 불가능한 목표를 위한 노력을 '검은 튤립'(black tulip) 이라고 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당시 큰돈을 벌 수 있는 수 단으로 튤립의 품종 개량이 성행하였고, 이는 자연에서는 불가능하다 고 여겨진 검은 튤립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검은색은 모든 가시광선의 파장을 흡수하기 때문에 자연에서는 검은 튤립이 존 재할 수 없다. 저금리와 부채를 기반으로 한 무제한의 자산 가격 상승은 검은 튤립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검은 튤립이 없다는 경고 였지만, 세계는 이를 무시하고 검은 튤립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 다. 탐욕의 노예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지난 20년을 빨리 잊어야 한다. 우리가 부채 돌려막기와 같은 폰지게임에 열광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검은 튤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 미래산업에 투자한다는 구호 뒤에는 검은 튤립을 갈망하는 거대한 탐욕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오스 카 와일드는 "속물이란 모든 것의 가격을 알되 그 가치는 모르는 사람" 이라고 했다. 자산이 가진 가치보다 가격에만 관심을 가진 세태를 풍자 한 말로 지금도 절실하게 유효하다. 이런 식으로 초저금리는 자원 배분 을 왜곡시켜서 통제 불능의 상황을 만들었다. 미국의 좌파 경제학자이 자 경제평론가인 폴 스위지는 "금융자본은 인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 한 실물생산경제의 겸손한 조력자라는 원래 역할에서 벗어나는 순간, 필연적으로 자기 확장에만 골몰하는 투기자본이 된다."고 경고한 바 있 다. 지금은 그 경고를 곱씹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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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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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물리학

경제 2024. 1. 25. 07:19

- 망델브로의 연구는 그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는 목수에게 망치는 있지만 아직 나사돌리개는 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못보다 나사가 더 튼튼 하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나사로 지은 집이 설령 더 튼튼하다 하더라도, 목수는 망치와 못으로 계속 집을 지으려 할 것이다 적어도 한동안은.
이런 이유 때문에 망델브로와 초기 전향자들이 프랙털과 자기 유사성 에 관한 망델브로의 연구 결과를 검토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이 사용 가능 한 더 단순한 도구를 가지고 계속 나아간 것은 어쩔 수 없는 합리적 선택이 었다. 그 당시 학계에서 암묵적으로 인정된 방법은 효과가 있는 가장 단순 한 이론으로 출발하여 최대한 멀리까지 나아간 다음 그 이론이 성립하지 않는 곳이 어디인지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 경우에는 주식 시장의 주가가 무 작위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면(최소한 어떤 의미에서는) 다음 단계는 가능 한 것 중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무작위적이라고, 즉 주가가 단순히 무작위 행보를 한다고 가정하는 것이었다. 바슐리에도 그렇게 했다. 그다음에 오즈 번은 그렇게 하면 주가가 음수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이론이 옳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시장의 수익률이 무작위 행보를 한다고 주장함으 로써 모형을 조금 더 복잡하게 수정했다. 그러고 나서 이 모형이 바슐리에 의 모형보다 데이터를 훨씬 잘 설명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다음에 망델브로가 나타나, 주가 데이터를 자세히 살펴보면 오즈번 이 발견했다고 생각한 패턴과 다른 패턴이 나타나기 때문에 오즈번의 주장 역시 완전히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주 다른 패턴은 아니었다. 망델 브로가 확인한 패턴은 주가가 무작위적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며, 오즈번이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무작위적이라고 말한다. 오즈번의 모형과 망델브로의 모형 사이의 차이점은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은 극단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만 중요한 의미를 지닐 뿐이다. 전형적 인 날에 극단적 사건이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두 이론 모두에 따르면, 대개는 두 모형의 차이를 거의 알아챌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어지는 몇 개의 장에서 보듯이 - 금융 시장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가 쿠트너의 책에 나오는 개념을 확대하려 시도했을 때, 즉 통계학을 이용해 주가의 무작위성을 다룸으로써 파생 상품 가격을 예측하거나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계산하려고 했을 때, 단순하지만 대개의 경우 훌륭한 결과를 내놓는 이론과 복잡하지만 어떤 극단적 사건을 훨씬 잘 설명하는 이론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이 경우, 먼저 단순한 이론으로 시작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살펴보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 다. 만약 훌륭한 가정을 한다면, 그렇게 해서 효과적으로 이상화한다면, 다 른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종종 풀 수 있다. 그리고 설사 일부 세부 내용이 틀리더라도, 정답에 가까운 답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그러는 동안 여 러분은 자신의 가정이 완전히 옳은 게 아님을 안다(시장은 완전히 효율적이지 않으며, 가격이 아니라 수익률이 단순한 무작위 행보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출발 점으로서는 나쁘지 않다.
- 목화 가격에 관한 논문을 처음 발표한 뒤 망델브로가 수십 년 동안 완 전히 무시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주장이다." 대부분의 경제학 자는 시장의 무작위성을 기반으로 관련 주제를 연구하려고 할 때 오즈번 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하지만 열정적인 수학자, 통계학자, 경제학자는 점 점 더 자세한 데이터와 점점 더 정교한 수학적 방법을 통해 망델브로의 제 안을 시험했다. 그러한 수학적 방법들은 대부분 만약 세계가 정말로 망델 브로의 주장처럼 거칠게 무작위적이라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연구는 정규 분포와 로그 정규 분포로는 시장의 통계적 성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망델브로의 기본 개념이 옳음을 확인해주었다. 수익률은 그 꼬리가 두껍다.
그렇긴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다. 망델브로는 1963년에 발 표한 논문들에서 매우 구체적인 주장을 했다. 즉, 시장이 레비-안정 분포를 나타낸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정규 분포를 제외하면 레비-안정 분포의 변동성은 무한대라고 했는데, 이것은 대부분의 표준적인 통계학적 도구들이 그러한 분포를 분석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만약 망델브로가 옳다면, 표준적인 통계학적 도구는 대부분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했던 쿠트너의 말도 바 로 이런 결과를 암시한 것이다). 오늘날 드러난 최선의 증거에 따르면,30 무한대 의 변동성과 표준적인 통계학적 도구들의 적용 불가능성에 관한 이 '구체 적인' 주장은 틀린 것으로 보인다. 50여 년에 걸친 연구 끝에 수익률은 꼬 리가 두껍지만 레비-안정 분포가 아니라는 데 의견 일치가 이루어졌다. 만 약 이 주제들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과 물리학자들 대다수가 믿는 것처럼 이게 사실이라면, 비록 정규 분포와 로그 정규 분포의 가장 단순한 가정들 은 적용할 수 없다 하더라도, 표준적인 통계학적 도구들은 적용할 수 있다 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망델브로의 주장을 평가하기는 무척 어려운데,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제안과 그것에 가장 가까운 대안 사이의 중요한 차이 가 오직 극단적인 경우, 즉 얻기 매우 힘든 데이터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우리가 가진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놓고 의견 이 엇갈린다."
- 시장의 통계학에 관심을 기울인 지 10년 뒤, 망델브로는 정규 분포를 레비-안정 분포로 대체하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그때쯤에는 무작위성과 무 질서에 대한 그의 개념이 우주론에서 기상학에 이르기까지 훨씬 광범위한 분야들에서 응용되기 시작했다. 이들 분야는 그가 출발한 응용수학과 수리 물리학에 가까웠다. 망델브로는 연구 활동을 하는 내내 IBM에 소속된 신 분으로 지냈다. 1974년에는 IBM의 특별 연구원에 임명되어 학계의 연구 자처럼 자신만의 독자적 연구 프로젝트를 선택하고 추진할 자유를 누렸다. 그의 개념이 많은 과학 분야로 퍼져나가면서 망델브로는 점차 자신의 연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프랙털'이란 용어를 더 넓은 세계에 소개한 책은 1975년부터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1982년에 《자연의 프랙털 기하학The Fractal Geometry of Nature》으로 출간되었다. 그것은 컬트와 같은 센 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망델브로를 거의 대중적 인물로 격상시켰다. 1990 년대 초반까지 망델브로는 1990년에 받은 레지옹도뇌르 훈장과 1993년에 받은 물리학 부문 울프상을 포함해 중요한 상을 많이 받았다. 1987년에는 예일 대학에서 파트타임으로 수학 강의를 시작했고, 1999년에는 75세의 나이로 종신 재직권을 보장받는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2010년 10월 14일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강연과 독창적 연구를 계속했다.
1990년대 초반에 망델브로는 금융으로 되돌아갈 순간이 왔다고 느꼈 고, 이번에는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전 30년 동안 그의 개념들이 많이 발 전하고 성숙했기 때문에 다른 분야들에 응용된 데 크게 힘입어) 경제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수학적 도구가 꽤 많았다. 한편 그동안 시장도 변해 월스트리트와 다른 곳에서 훨씬 많은 실무자들이 망델 브로의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꼬리가 두꺼운 분포에 대한 인식이 주류 금융계에 퍼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앞서나간 이야기이다. 바슐리에와 오즈번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망델브로 의 통찰을 이용할 수 있는 지점까지 금융과학을 발전시키는 데에는 블랙잭 의 전문가이자 딜레탕트 기질이 강한 물리학자가 필요했다.
- 바슐리에는 파리증권거래소에서 일했지만, 거기 서 자신의 개념을 시험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고, 큰돈을 번 적도 없다. 오즈 번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금융 부문으로 전향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구제 불능의 아수라장인 금융 시장에서 투기를 통해 이익을 얻을 방법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망델브로 역시 주식 거래는 피한 것으로 보인다.
바슐리에와 오즈번과 망델브로가 도입한 개념들은 분명히 경제학과들 사이에 전파되었고, 트레이더들이 금융시장을 생각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 쳤다. 예를 들면 프린스턴 대학의 경제학자 버턴 맬키엘Burton Malkiel이 1973년 에 출판한 <월스트리트의 무작위 행보A Random Walk Down Wall Street>는 온갖 종류의 투자자들 사이에서 고전이 되었다. 특히 이 책은 오즈번의 개념에 많이 의 존했지만, 그 영향력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 하지만 무작위 행보 가설을 도입하고 좀 더 정교하게 다듬은 것은 물리학자들이 현대 금융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다. 물리학자들은 금융 시장에서 실무자로 활동하는 역할에서도 그에 못지 않은 영향을 미쳤는데, 어쩌면 더 큰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른다. 에드워드 소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는 바슐리에와 오즈번이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냈다. 즉, 물리학과 수학을 이용해 금융 시장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 음을 보여준 것이다. 바슐리에와 오즈번의 연구 그리고 자신이 도박 시스 템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소프는 현대적인 헤지펀드를 발명했다-수 리물리학과 전기공학이 합쳐져 새로 탄생한 분야에서 나온 개념을 적용하 여. 정보 이론이라 불리는 그 분야는 1960년대의 라스베이거스 거리만큼이나 중요한 일부였다. 그리고 그것은 소프의 손을 통해 시장 가격의 통계학과 월스트리트의 승리 전략 사이를 잇는 잃어버린 고리임이 입증되었다.
- 사회적 영향이야 어떻든 간에, 공매도에는 실질적인 위험이 따른다. 주식을 살 때(공매도를 하는 사람들이 취하는 '쇼트' 포지션과 비교해 '롱' 포지션을 취 한다고 흔히 표현함) 나는 돈을 최대한 얼마까지 잃을 수 있는지 안다. 주주는 회사의 부채까지 책임지지 않으므로, AT&T 주식을 1000 달러어치 샀다면, AT&T 주가가 폭락한다 하더라도 1000달러 이상은 잃지 않는다. 하지만 주 가는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 따라서 공매도를 할 경우에는 돈을 얼마나 잃 을지 알 수 없다. 만약 내가 AT&T 주식 1000달러어치를 공매도했다면, 그 것을 빌린 사람에게 되갚기 위해 같은 수의 주식을 사야 할 때가 되었을 때, 공매도해서 받은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프는 자신이 요청한 거래를 하려는 브로커를 찾 을 수 있었다. 이것은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주었는데, 그 문제는 우선 켈 리의 결과를 적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령 소프가 공매도 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무시한다 하더라도, 무제한 손실 가능성이라는 위 험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여기서 소프는 매우 창조적인 통찰력을 발휘했다. 그는 워런트 가격 결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워런트 가격과 주가의 연관 관계를 알아내고 이 관계를 이용해 워런트를 공매도하는 동시에 기초 주식 을 일정 수만큼 매수하면, 워런트의 가치가 높아지는 위험에 대해 보호장 치를 마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워런트의 가치가 높아 지면, 소프의 계산에 따라 기초 주식의 가격 '역시' 상승하여 워런트 공매도 에서 입는 손실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소프는 워런트와 주식을 적절한 비 율로 선택할 경우, 주가가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항상 수익을 올릴 수 있 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오늘날 '델타 헤징delta hedging'이라 부르는 이 전략은 다른 '전환' 증권(옵 션처럼 다른 증권과 교환할 수 있는 증권, 예를 들면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특정 채 권이나 우선주 같은 것)들과 관련해 다른 전략들을 낳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소프는 연간 20%의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올릴 수 있 었다 - 약 45년 동안이나 그는 아직도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2008년은 그에게 최악의 해 중 하나였는데, 그래도 18%의 수익률을 올렸 다. 1967년에 그는 비슷한 개념을 연구한 캘리포니아 대학 어바인 캠퍼스 의 동료와 함께 《시장을 이겨라 Beat the Market》를 펴냈다.1"
- 두 사람의 성격은 극과 극이었다. 블랙은 조용한 편이고 심지어 수줍음이 많은 반면, 숄스는 외향적이고 자신감이 넘쳤다. 블랙은 응용 연구에 관심을 보였지만,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성향도 있었다. 숄스는 그 무렵 신 고전주의 경제학의 중심 원리로 부상한 효율적 시장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산더미 같은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실증적으로 쓴 논문을 막 끝낸 참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첫 대화가 어떻게 시작되었을지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은 통하는 게 있었다. 이후에 다시 만났고, 그러고 나서 또 만났으니까. 두 사람은 곧 평생 동안 지속될 우정과 지적 동반자 관계의 기 반을 다졌다. 숄스는 블랙에게 매주 MIT에서 열리는 금융 워크숍에 초대했 다. 그것은 블랙이 금융학계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놓는 첫 번째 기회가 되 었다. 얼마 후 웰스파고가 학계에서 수면 위로 막 떠오르고 있던 자본 자산 가격 결정 모형처럼 금융 분야의 새로운 개념들을 은행 실무에 적용하는 과 정을 돕는 컨설팅 계획을 들고 숄스를 찾아왔다. 숄스는 직접 그 일을 할 시 간이 없었지만, 그 일에 적격인 사람을 알고 있었다. 블랙은 이에 즉각 동의 했고, ADL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지 6개월쯤 지난 1969년 3월에 ADL에 사표를 내고 독립했다. 그는 웰스파고를 주 고객으로 삼아 어소시에이츠인 파이낸스라는 컨설팅 회사를 세웠다. 그리고 숄스와 함께 웰스파고가 새로 운 첨단 투자 전략을 만드는 일을 도왔다.
- 자본자산 가격 결정 모형을 다른 종류의 자산과 포트폴리오로 확대하는 방법을 블랙이 생각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예를 들면 블랙은 시간 경과 에 따라 투자를 어떻게 배분하느냐 하는 문제에 자본 자산 가격 결정 모형 을 적용했다. 일부의 주장처럼 나이가 듦에 따라 위험 노출도를 변화시켜 야 할까? 블랙은 그렇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사람들은 주어진 시간에 다양 한 주식에 투자를 분산시키길 원하는 것처럼, 불운이 잇따르는 특정 시기 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투자를 분산하려고 한다. 자 본 자산 가격 결정 모형을 이용해 옵션 가격을 결정하는 문제는 그 당시 블 랙이 해결하려고 애쓰던 많은 문제 중 하나였다. 그리고 1969년 여름에 블랙은 결국 블랙-숄스 방정식을 낳게 될 기본 관계를 도출함으로써 상당한진전을 이루었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은, 주어진 어느 순간에 특정 주식과 그 주식의 옵 션으로 위험이 전혀 없도록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 이다.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기 같다면, 이 개념이 소프의 델타 헤징 전략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소프 역시 옵션 가격과 기 초 자산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옵션과 주식을 결합해 위험을 제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이점이라면 소프의 델타 헤징 전략은 기 초 주식의 가격이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 조건에서 수익을 보장하는 데 초 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 방법은 위험을 제어는 하지만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실제로 만약 자본 자산 가격 결정 모형 방식의 추론이 옳다면, 위험을 제거하는 동시에 상당한 수익을 올리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 블랙의 접 근 방법은 위험이 전혀 없는 주식과 옵션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찾아내 는 것이었고, 자본 자산 가격 결정 모형 추론을 이용해 이 포트폴리오가 위 험은 전혀 없이 수익률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주 식과 옵션의 결합으로 무위험 자산을 만드는 블랙의 전략은 오늘날 동태적 헤징dynamic hedging이라 부른다!
블랙은 시장의 무작위성에 관한 쿠트너의 논문집을 읽었기 때문에, 무 작위 행보 가설에 관한 바슐리에와 오즈번의 연구를 잘 알고 있었다. 이것 은 그에게 기초 주식 가격이 시간 경과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모형을 만 드는 방법을 제공했고, 그것은 다시 그가 발견한 옵션 가격과 주식 가격의 관계를 바탕으로 옵션 가격이 시간 경과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이해하는 방법을 제공했다. 일단 어떤 주식의 주가와 그 주식의 옵션 가격과 무위험 수익률 사이의 기본적인 관계를 알아내자, 주식의 위험 프리미엄을 옵션의 위험 프리미엄과 연관 지음으로써 옵션의 가치를 계산하는 방정식을 도출 하는 것은 블랙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거기서 블랙은 발 이 묶였다. 그가 도출한 방정식은 복잡한 미분 방정식(옵션 가격의 순간 변화 율과 기초 주식 가격의 순간 변화율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방정식)이었는데, 블랙 은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풀 수학 실력은 없었다. 몇 달 동안 애쓰다가 결국 블랙은 포기했다. 그는 옵션 문제나 자신이 알아낸 부분적인 해결책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묻어두었는데, 1969년 후반에 숄스에게서 자신이 가르치는 MIT의 대학원생이 옵션 가격 결정에 관심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숄스가 자본 자산 가격 결정 모형을 이 용해 그 문제를 푸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하자, 블랙은 책상 서랍에서 미 분 방정식을 적어둔 종이를 꺼냈고, 그때부터 함께 그 문제를 푸는 데 매달 렸다. 두 사람은 1970년 여름에 그걸 풀었고, 옵션 가격을 결정하는 블랙- 숄스 방정식은 그해 7월에 숄스가 웰스파고의 후원을 받아 MIT에서 개최 한 회의에서 선을 보였다. 그사이 MIT에서 숄스의 새 동료인 로버트 머턴 (원래 공학을 전공했지만,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은 전혀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 해 똑같은 미분 방정식을 도출하고 똑같은 해(解)를 얻었다. 서로 다른 접근 방법으로 출발해 똑같은 답을 얻었기 때문에, 블랙과 숄스와 머턴은 자신들 이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했다고 확신했다.
- 블랙과 숄스와 머턴이 발견한 옵션 가격 결정 공식은 소프가 1965년 에 워런트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알아낸 방법과 동일한 것이었다 비록 소프는 블랙과 숄스와 머턴의 이름이 붙어 있는 분명한 방정식을 도출하기 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해 옵션 가격을 계산하긴 했지만. 하지만 그 기반을 이루는 논리는 서로 달랐다. 소프의 추론은 바슐리에의 추론을 따 랐다. 그는 옵션의 적정 가격은 그 옵션을 공정한 내기로 해석할 수 있는 가 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기서 소프는 주가가 오즈번이 기술한 로그 정규 분포를 만족시킨다고 가정한 다음에 옵션 가격이 얼마가 되어야 하는 지 계산했다. 소프는 옵션의 '진짜' 가격을 계산하는 방법을 일단 계산하고 나서, 거기서 더 나아가 델타 헤징 전략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주식과 옵션 의 비율을 알아냈다.
- 블랙과 숄스는 정반대 방향에서 접근했다. 두 사람은 주식과 옵션을 결합해 위험이 전혀 없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바탕 으로 한 헤징 전략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자본 자산 가격 결정 모형을 적용 해 이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이 얼마인지 - 즉, 위험이 전혀 없는 비율 - 알 아내고, 거기서 거꾸로 계산해 위험이 없는 수익을 실현하려면 옵션 가격이 주식 가격에 따라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알아냈다.
그 차이는 하찮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 두 주장은 비록 다른 길을 택하지만 결국에는 똑같은 옵션 가격 결정 모형에 이르니까." 하지만 현실 적으로는 매우 아주 중요하다. 그 이유는 블랙-숄스의 접근 방법의 기본 개념인 동태적 헤징이 투자 은행들에 옵션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 공하기 때문이다. 투자 은행이 고객들에게 옵션을 팔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은 고객들에게 어떤 주식을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사고팔 수 있는 권 리를 판매하는 것에 해당한다. 원칙적으로 은행은 위험한 승부를 걸려고 하 지 않는다. 어차피 투자 은행의 수익은 옵션 판매 수수료에서 나오는 것이 지, 투자 수익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것은 투자 은행이 옵션을 판매할 때, 기초 주식 가치가 오를 가능성을 상쇄할 방법을 찾으려 한다는 걸 의미한다. 즉, 옵션 가치가 오르지 않아도 손실을 보지 않는 방법을 찾길 원한다. 블랙과 숄스의 동태적 헤징 전략은 바로 그런 방법을 제공했다. 투 자은행들은 블랙-숄스의 접근 방법을 이용해 위험을 전혀 수반하지 않는 방식으로(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옵션을 팔면서 다른 자산을 사들일 수 있었다. 그러자 옵션은 투자은행들이 만들어 팔 수 있는 일종의 생산품이 되었다.
- 특히 동태적 헤징 전략의 기반을 이루는 수학적 모형은,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파생 상품 거래는 완벽한 게 아니다. 바슐리에와 오즈번, 망델브 로의 이야기는 왜 그럴 수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들 이 만든 모형과 그 뒤에 개발된 모형들은 실질적으로 틀릴 수가 없는 엄격 한 추론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최선의 수학적 모형도 종종 미묘하고 감 지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잘못 적용될 수 있다. 복잡한 금융 시장을 다루기 쉽게 만들기 위해 바슐리에와 오즈번, 소프, 블랙 그리고 심지어 망델브로 도 시장의 작용 방식에 대해 이상적인 조건을, 그리고 때로는 조금 무리한 가정을 도입했다. 오즈번이 특히 강조했듯이, 그 결과로 나온 모형의 우수 성은 도입한 가정에 달려 있다. 대개는 훌륭한 가정도 시장 조건이 변하면 이내 좋지 않은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코너 이야기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많은 이야기 가 1987년의 주가 대폭락이 전 세계의 금융계를 흔든 이유는 그것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임을(지배적인 시장 모형들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사한다. 변동성 스마일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모형이 한동 안은 성립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실패한다는 증거로 간주되는데, 이것은 시장 모형을 만드는 전체 산업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만약 오늘은 제대로 성립하는 모형이 아무런 경고나 설명도 없이 내일 실패할 수 있다면, 월스 트리트에서 물리학자를 신뢰할 이유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가 장 단순한 모형을 통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복잡한 모형 으로 만듦으로써 (본질적으로 두꺼운 꼬리를 감안함으로써) 오코너는 블랙-숄스 모형이 붕괴하는 조건을 예견하고, 1987년의 주가 대폭락 같은 사건에서도 살아남는 전략을 채택할 수 있었다.
- 바슐리에에서 시작해 블랙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는 금융 모형을 만드는 일이 수학자, 통계학자, 경제학자, 물리학자가 최선의 모형이 지닌 결함을 찾아내고 모형을 개선하는 방법을 발견하려고 노력하 면서 반복적인 형태로 나아가는 진화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금융 모형을 만드는 일은 일반적으로 공학이나 과학에서 수학적 모형을 만드는 일과 비슷하다. 모형은 언젠가 실패하게 마련이다. 때로는 그린바움과 스트 루브가 그런 것처럼 모형이 언제 실패할지 예견할 수 있다. 또 어떤 경우에 는 부서진 조각들을 맞춰보려고 노력할 때에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단순한 사실은 새로운 모형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할 때, 그리고 낡은 모형을 계속 적용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한 다. 그래도 우리가 지난 300년 동안 배운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과학적 발 전의 기본을 이루는 방법론적 원리가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이라는 점이다. 항상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포기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짓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금융 부문에서 수학적 모형을 만드는 일은 계속 진화하는 과정 이므로, 우리를 오늘날 여기까지 데려다 준 모형들에 포함된 문제를 해결 할 새로운 방법이 개발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 블랙박스 모형은 더 일반적으로는 '알고리듬 트레이딩'이라 부르는데, 2007~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계량금융에 대한 반발에 편승해 널리 퍼졌 다. 비판적인 언론의 주장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블랙박스 모형은 자 주 성립하지만, 그것이 '왜' 성립하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대거나 언제 실 패할지 완전히 예측하는 것은 정의상 불가능하다. 그것은 블랙박스 모형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모형에 포함시킨 가정들이 언제 무너질지 추측할 수 있는 사치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블랙박스 모형의 신뢰성은 이 런 종류의 이론적 뒷받침 대신에 처음 의도한 기능을 과연 어느 정도나 계 속 수행하는지 알기 위해 늘 통계적 방법을 통해 검증받아야 한다. 이 때문 에 블랙박스 모형은 위험해 보일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부적절하게 사용하면) 실제로 위험하다. 어떤 모형이 전에 효과가 있었다면, 그 모형을 일종의 마법 도구로 여겨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계속 효과가 있을 거 라고 믿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데이터가 이론을 압도한다. 즉, 어떤 모형(블랙박스 모 형이 아닌)을 뒷받침하는 이론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 유효성은 어디까 지나 실적을 바탕으로 평가해야 한다. 가장 투명한 모형조차 블랙박스 모 형을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것과 같은 종류의 통계적 방법을 사용해 끊임 없이 검증할 필요가 있다. 1987년 주식 시장 붕괴의 여파로 나타난 변동성 스마일을 설명하는 데 블랙-숄스 모형이 실패한 사례가 그 이유를 명백하 게 보여준다. 어떤 모형을 뒷받침하는 이론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이론은 한편으로는 모형의 한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실무자에게 길을 안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모형이 옳음을 입증하는 이론적 근거가 있 으므로 그 모형이 옳을 수밖에 없다는 그릇된 믿음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그 리고 후자의 관점에서 볼 때 블랙박스 모형은 이론적으로 더 투명한 다른 모형들에 비해 이점이 있는데, 어떤 모형이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오로지 실적을 바탕으로 모형의 유효성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블랙박스 모형에 대한 우려는 불투명성 외에 한 가지가 더 있다. 바슐 리에에서 블랙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내가 그 연구를 소개한 물리학자들 은 모두 시장은 예측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즉, 시장이 완전히 무작위적 이라는 것이다. 제기되는 쟁점은 무작위성의 성격에 관한 것과 그런 무작 위성이 정규 분포로 다룰 수 있을 만큼 온순한 태도를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 하는 것뿐이다. 시장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개념은 바슐리에와 오즈번이 처음 주장한 이래 효율적 시장 가설의 우산 아래 주류 금융 이론의 중심 교리로 격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딕션컴퍼니와 그 후에 블랙박스 트레이딩을 채택한 수십 개 집단은 단기간에 특별한 환경에서 시장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적어도 프리딕션컴퍼니는 파생 상품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사용한 모형들은 많은 경제학자(그리고 많은 투자자)가 도 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방법으로 시장이 직접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 려고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딕션컴퍼니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프리딕션컴퍼니의 성공에 의심을 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투자는 운에 좌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장이 무작위적이라는 사실은 경제학계에서는 일반 상식에 불과한 게 아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통계적 증거가 아주 많다. 그렇다면 시장이 효율적이기 (어떤 주식의 장래 기대 실적에 관한 모 든 정보를 감안해 시장 가격이 빨리 변한다는 의미에서) 때문에 무작위적이라는 개념은 프리딕션컴퍼니의 성공과 반드시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역 설처럼 들린다. 하지만 효율적 시장 가설의 기초를 생각해보라. 그 표준적 논리는 다음과 같다. 시장과 내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격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 자. 투자자들은 이내 그 정보를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만약 시장이 5월의 마지막 주에는 항상 높은 가격을 유지했거나 자이언츠 팀이 이긴 다음 주 월요일에는 항상 떨어진다면, 노련한 투자자들은 그 패턴을 눈치채자마자 5월 말에는 주식을 팔고, 자이언츠 팀이 이기면 살 것이다. 그 결과, 5월 말 에는 주가가 떨어지고, 자이언츠 팀이 이긴 다음 월요일에는 올라가 원래의 패턴이 사라질 것이다. 실제로 어떤 경제학자가 시장의 행동에서 이상 패턴 을 발견하여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추후 연구를 하려고 해도, 그전에 이미 시장은 스스로를 수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이런 종류의 추론을 받아들이면, 설사 시 장이 정상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인다 하더라도 금방 그것을 정상으로 되돌 리는 내부 과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물론 효율적 시장 가설에 심각한 결점이 있 다고 생각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투기 버블과 시장 붕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가 격에 고삐가 풀린 것처럼 보이는 이런 종류의 대규모 이상 현상을 예측할 수 있느냐 하 는 문제는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다. 여기서 나는 그런 경우가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완 전한 효율성에서 벗어나는 작은 규모의 일탈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내부 과정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특정 패턴을 금방 파악하고, 그런 패턴을 이용하도록 설계된 트레이딩 전략을 채택하는, 소위 정교한 전문 투자자들 의 행동이 포함된다. 이 전문 투자자들은 시장을 무작위적으로 '만드는' 존 재들이다. 적어도 표준적인 사고방식에 따르면 그렇다. 하지만 그들은 예측 패턴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런 패턴은 금방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런 패턴을 최초로 알아챈 사람이 라면, 자가 수정 시장 논리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설사 여러분이 효율적 시장 가설에 대한 표 준적인 사고방식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정교한 전문 투자자가 이익을 취 할 여지는 여전히 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가장' 정교한 전문 투자자가 되어야 한다. 즉, 시장의 패턴을 감지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패턴을 이 익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최선의 장비를 갖춘 투자자여야 한다. 다년간 카오스계에서 정보를 추출한 경험이 있고 또 방 안에 슈퍼컴퓨터가 가득 차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서 프리딕션컴퍼니는 가장 정교 한 전문 투자자가 최대한 자주 되는 방법을 알아냄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가설을 모두가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특 히 파머는 시장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개념을 자주 비판했다. 그는 시장을 예측하여 큰돈을 벌었으므로 그렇게 주장할 만한 근거가 충분히 있다. 마찬 가지로, 거친 무작위성은 그 뒤에 카오스가 숨어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 다. 이것은 직관과는 반대로 종종 유용한 예측을 하기에 충분한 구조가 존 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우리가 시장에서 무엇을 보건, 시장을 예 측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많은 투자자들이 파머와 패커드가 걸어간 길을 뒤따라간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핀 거 리 123번지 문 앞에 컴퓨터들이 처음 도착하고 나서 20년이 지난 뒤, 블랙 박스 모형은 월스트리트를 지배했다. 이 모형은 D. E. 쇼에서부터 시타델 에 이르기까지 퀀트 헤지펀드들의 주요 도구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예측 사업은 산업으로 성장했다.
- 임계 현상에는 물리학자들이 흔히 보편 성질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타 난다." 이것은 서로 아주 달라 보이는 두 물질 예를 들어 케블라 탱크와 지각판 - 이 미세 구조상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동일 한 대규모적 행동을 나타낸다는 걸 의미한다. 예를 들면 둘 다 지속적인 변 형의 결과로 파열한다. 파열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구조상의 차이는 사라지고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두 물질이 거의 똑같 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통계적 차원에서 적용되 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보편 법칙이 있는 게 분명하다. 이런 법칙은 부분들 이 무엇인지에는 상관없이 부분들 사이의 협동을 지배하는 법칙으로 생각 할 수 있다. 소르네트와 협력 연구자들의 개념을 널리 적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보편성이다. 세부 내용은 분야마다 다른 경우가 많 지만, 주요 기제는 그렇지 않다. 눈사태, 산불, 정치적 혁명, 심지어 간질 발 작에 이르기까지 모두 똑같은 현상에 영향을 받는다.
- 소르네트가 버블을 확인하고 시장 붕괴가 언제 일어날지 예측하는 데 사용한 방법은 그가 반버블anti-bubble이라고 부른 상황을 확인하는 데에도 사 용할 수 있다. 이것은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낮은 상황을 말한다. 예를 들면 1999년 1월 25일에 소르네트는 온라인 물리학 아카이브 사이트에 논문 하 나를 게시했는데, 거기서 그는 시장 데이터에서 로그 주기 패턴을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 닛케이 지수가 반버블 한가운데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 논문에는 꽤 정확한 예측이 포함돼 있었는데, 소르네트는 연말까지 닛케 이 지수가 50% 정도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예측이 특히 놀라운 이유는 일본 주식 시장이 14년째 줄곧 하락세 를 이어왔고, 1999년 1월 5일에 최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모든 지표가 시장이 계속 하락할 것임을 시사했고, 그 당시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견해도 같았다. 예를 들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은 1월 20일에 일본 경제가 비극처럼 보이기 시작했으 며, 회복에 필요한 수요가 충분치 않다고 썼다. 하지만 시간은 소르네트의 손을 들어주었다. 연말에 닛케이 지수는 회복되었는데, 그것도 정확하게 소 르네트가 예측한 대로 50%나 상승했다.
- 최근에 소르네트는 극단적 사건을 가리키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했다. 그는 그것을 블랙 스완 대신 '드래건 킹dragon king'이라 부른다. '킹king'이란 단어를 쓴 이유는 파레토 법칙(망델브로가 IBM에서 연구했던, 소득 불균형을 지배하 는 꼬리가 두꺼운 분포) 같은 것을 군주제 국가들에 맞추려고 하면, 왕들은 80 대 20 규칙에 들어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왕은 두꺼운 꼬리 의 기준에서 보아도 가져야 할 것보다 훨씬 많은 부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정상에서 크게 벗어난 이상치outlier이다. 그리고 이들 바로 아래에 있는 아주 큰 부자들이 아니라 바로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통제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반면에 '드래건 dragon'이란 단어는 이런 종류의 사건들이 정상적인 동물 우화 집에 집어넣을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했다. 이 사건들은 나머지 사건들과는 아주 다르다. 큰 지진은 많은 경우 작은 지진이 어떤 이 유로 인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이 지진들은 소르네트의 방법을 사용해 예 측할 수 없다. 하지만 드래건 킹 지진, 즉 임계 사건이 일어나려면 그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파열과 마찬가지로 이런 사건은 모든 종류의 일들 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질 때 일어난다. 드래건 킹의 좋은 예가 바로 파리이 다. 프랑스의 도시들은 놀라울 정도로 지프의 법칙을 잘 따른다. 가장 큰 도 시들은 그다음으로 큰 도시들보다 훨씬 크다는 점에서 프랑스 도시들의 분 포는 꼬리가 두껍다. 하지만 프랑스 도시들을 인구 순으로 그래프에 나타내 보면, 파리는 커도 너무 크기 때문에 틀에서 벗어난다.
- 한쪽에서는 프리딕션컴퍼니가, 다른 쪽에서는 소르네트가 현재의 표준적인 블랙-숄스 방식의 추론에 난 구멍을 메울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프리딕션컴퍼니의 방법은 국지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들의 전략 이 전 세계 시장들에서 매 순간 생겨나는 금융 데이터를 세세하게 조사해 일시적으로 예측 능력이 있는 패턴을 찾는 과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 패턴이 금방 사라지는 것이라 해도, 그들은 이러한 패턴을 이용해 모형 을 만들 수 있었고, 그 모형을 짧은 시간만 사용함으로써 수익을 올리는 거 래를 할 수 있었다. 이 방법들과 함께 그들은 자신들이 찾는 패턴의 유효성 을 평가하고, 그 패턴이 전성기를 지났는지 파악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개 발했다. 어떤 면에서 프리딕션컴퍼니의 접근 방법은 얌전하고 보수적이다. 시장을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부 요소 그것이 왜 효과가 있는지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소르네트는 더 세계적인 접근 방법을 택해 가장 큰 사건들, 즉 가장 큰 피해를 가져오는 재앙들과 관련 있는 규칙성을 찾았고, 그 러한 규칙성을 이용해 예측하려고 했다. 그는 망델브로가 발견한 사실, 즉 극단적 사건은 보통의 무작위 행보가 예측하는 것보다 더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소르네트는 파국적인 시장 붕괴가 망델브로가 제안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꼬리가 두꺼운 분 포를 받아들인 후에도 극단적 사건이 예외적으로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는 말이다. 소르네트의 통찰은 정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이런 예외적 사 건들을 보고 가장 큰 파국을 증폭시키는 어떤 기제가 틀림없이 있다는(적어 도 때로는) 사실을 깨달은 데 있다. 이것은 더 위험한 가설이지만 검증이 가 능하고, 지금까지는 검증을 통과한 것처럼 보인다.
- 만약 망델브로의 연구를 무작위적 시장에 대한 이전의 설명을 수정한 것으로(왜 그런 설명이 실패하고, 어떻게 실패하는지 지적하면서) 간주한다면, 소 르네트의 주장은 두 번째 수정인 셈이다. 이것은 비록 시장이 거칠게 무작 위적이고 극단적 사건이 항상 일어날 수 있다 하더라도, 무엇을 바라보아 야 하는지 알기만 한다면 최소한 '일부' 극단적 사건은 예측할 수 있다고 말 하는 것이나 같다. 이 드래건 킹들은 전체 세계 경제를 뒤집어엎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드래건 킹을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다. 드래건 킹은 신화의 소재이지, 미스터리의 소재가 아니다.

- 나는 이 책에서 소개한 역사가 금융 부문에서의 모형은 특정 목적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게 가장 좋으며, 또 이 도구는 모형을 개발하고, 모형 이 언제 왜 어떻게 실패하는지 추측하는(그래야 다음 세대의 모형은 낡은 모형 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반복적 과정의 맥락에서만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뒷 받침한다고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계물리학의 새로운 개념들을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들에 적용하려고 시도한 바슐리에는 최초의 공격을 감행한 인물이다. 그는 시장을 혁명적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의 기초를 놓았다. 하지만 그의 연구에는 문제점이 많았다. 새뮤얼슨과 오즈번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명백 한 문제점은, 바슐리에가 주가를 기술하는 데 사용한 정규 분포는 가격 변 동이 아주 적었던 그 당시 파리증권거래소의 특별한 상황에서만 성립한다 는 데 있었다. 이 문제를 바로잡은 것이 바로 가격이 아닌 수익률이 정규 분 포를 나타낸다는 오즈번의 가설이다. 망델브로는 정규 분포와 로그 정규 분 포로는 금융 시장의 거친 변동성을 완전히 나타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 있지만, 그의 이론 역시 자신과 여러 사람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금융이론의 기반에 일어나는 일부 위기를 제대로 기술하지 못했다 - 대신에 그 것은 오즈번이 만든 무작위 행보 가설 버전이 어떻게 실패할 수 있는지를 최초로 보여주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그리고 이 주제에 관심을 가 진 물리학자들)이 망델브로 역시 완전히 옳은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는 사실 은 전체 이야기에서 또 하나의 반복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소프와 블랙은 바슐리에와 오즈번, 망델브로가 개발한 도구들을 일상 거래에 사용하는 방법(물리학에서 빌려온 더 복잡한 개념들에 의지하여)을 투자 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두 과학자야말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첨단 이론을 실제로 투자에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한 집단의 모형들을 사용해 다른 집단의 모 형들을 만드는 데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밝혀냈기 때문이다. 소프와 블랙 과 숄스가 개발한 옵션 가격 결정 모형은 망델브로가 아니라 오즈번이 만든 무작위 행보 가설 버전을 바탕으로 했다. 이는 처음부터 옵션 가격 결정 모형을 적용 범위가 한정적인 도구로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물리학자나 공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오즈번의 모형으로 시작하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선택으로 보인다. 오즈번의 모형은 망델브로의 모형보다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소프와 블랙과 숄스는 시장의 수익률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더 단순한 근사를 채택함으로써 아주 어려운 문제를 다루기 쉬 운 문제로 만들었다.
하지만 망델브로의 연구를 감안할 때, 초기의 옵션 가격 결정 모형들 이 실패할 때가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 모형들은 극단적 사건이 일어날 경우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블랙은 어느 누구보다 자기 모형의 단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8년에 쓴 <블랙-숄스 모형의 구 멍>이라는 논문에서 블랙은 자신의 공식을 유도하는 데 도입된 비현실적 과정들을 분 명히 열거하고, 이 각각이 어떻게 오류를 낳을 수 있는지 기술했다). 오코너의 마이 클 그린바움과 클레이 스트루브처럼 신중한 투자자들은 블랙-숄스 모형이 언제 실패할지 예측하는 지식을 잘 활용한 덕분에 1987년의 주가 대폭락 때 큰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이 과정은 아직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프리딕션컴퍼니를 지탱하는 과학자들과 디디에 소르네트는 물리학의 새로운 발견을 사용해 블랙-숄스모형의 배경을 이루는 무작위 행보와 효율적 시장 가설의 틈을 메우는 방법 을 보여주었다. 프리딕션컴퍼니는 블랙박스 모형을 사용해 국지적 단기 비 효율성을 확인하고 그것을 최대한 빨리 활용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그것은 사실상 물리학을 이용해 시장에서 가장 정교한 투자자가 되려는 것과 다 름없었다. 한편 소르네트는 거칠게 무작위적인 시장에서는 시장의 붕괴 같 은 극단적 사건이 지배적 효과를 미친다고 한 망델브로의 주장을 받아들 여, 그러한 파국을 예측하는 일이 가능할까 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가 지진 학에서 가져와 변형시킨 도구들은 드래건 킹을 멀리서 볼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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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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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여주는 경제학

경제 2024. 1. 19. 06:52

- 경제학이 단순히 돈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 지정 경제학 교재인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의 시작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경제학의 통일된 연구 주제는 돈이 아니라, 선택이다."
경제학자는 모든 인류의 행동은 선택의 결과라고 본다. 인생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택을 만난다. 때로는 답이 분명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게 어떤 옵션이 주어졌는지 잘 알지 못하며, 내가 내린 선택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잘 예측하지 못한다.
경제학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수학처럼 '표준 답안'을 정확히 제시하진 못하지만, 사회와 심리 등 여러 요인을 분석해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경제 논리를 찾아 주어 당신이 가진 선택지를 좀 더 확실하게 볼 수 있게 한다. 모든 선택 사항의 장단점을 구분하여 당 신이 가장 알맞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사회의 총수요는 총공급과 늘 균형을 이룹니다. 따라 서 수요가 일정하고 공급에도 변화가 없는 한, 자산이 증가한다고 해 서 구매력이 늘어나진 않습니다. 다시 말해 돈이 많아진다고 해도 실 질적인 구매력에는 변화가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론은 그렇지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화폐 공급의 증가로 늘어난 돈은 결코 동일 하게 모든 사람에게 분배되지 않으니까요. 새롭게 발행된 화폐가 사 회로 서서히 흘러들면서 가장 먼저 그것을 손에 넣는 사람들, 즉 '선발 주자들이 먼저 이득을 얻고 자산 가격을 올립니다. '후발 주자들 도 잇따라 돈을 손에 넣긴 하지만 자산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이것 이 바로 화폐 공급이 늘어날 때 시차를 두고 차별적으로 인플레이 션이 발생하는 '캔틸런 효과 Cantillon Effect'입니다. 쉽게 말해 소위업 스트림 Upstream 의 '선발 주자들이 먼저 부를 차지하면서 다운스트림 Downstream의 '후발 주자가 가진 자산 가치는 상대적으로 줄어듭니다. 업스트림이 다운스트림을 약탈하며 그렇게 수입과 부의 재분배가 조용히 끝이 납니다.
- '미끼 효과 Decoy Effect'란 새로운 상품이 나타나면 구매를 고민하던 두 가지 상품 중에서 한 상품의 선호도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미끼'로 인해 선택을 받게 되는 상품을 '목표물 혹은 타깃'이라고 하 고 나머지 선택받지 못한 상품을 '경쟁자'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사물의 관계를 확정할 때 주변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데 여기서 흔히 비교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판매자 는 '미끼'를 집어넣어 조금 더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비교 관계를 설 정해 소비자가 빠르게 결정할 수 있게 이끄는 것이죠. 이때 소비자들 이 선택하는 상품은 보통 판매자가 사전에 설정해 놓은 '시나리오'일 때가 많습니다.
바꿔 말하면 '미끼'를 직접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인데, 이는 판매자가 애초에 '미끼'를 팔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추가된 옵션을 통해 소비자는 더욱 직관적으로 선택지를 비교하 고 결국 '목표물'을 선택하게 됩니다.

- 인간의 본능을 보여 주는 전망 이론 네 가지
손실을 회피하려는 행동경제학의 기초이론은 '전망 이론'의 네 가지 결론 중 하나를 기반으로 합니다. '전망 이론'에 따르면 모든 사람의 준거점이 다르기 때문에 위험 상 황에 대한 생각과 태도도 다릅니다. 따라서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 속 에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 사람들은 단순히 결과만 생각하는 것이 아 니라 당초의 전망(예측, 가설)과 향후 나타날 결과 사이의 간극과 차 이를 비교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마음속에 하나의 참고 기준 (준거점)을 세워 놓고 모든 결정이 가져올 결과와 해당 준거점을 비교 하는 것이죠. 전망 이론의 주된 네 가지 결론을 살펴볼게요.
*확실성 효과 Certainty Effect
확실한 상황 속에서 그럴 법한 것을 선택하는 심리적 효과. 이익이 확실한 상황에서는 대다수 사람이 위험을 피해 가고자 한다.
*반사 효과 Reflection Effect
비교 대상 시점(기준 시점)의 상황이 현재 상황과 너무 큰 차이를 보여 결과 가 왜곡되는 현상. 그 결과 손실이 나타나는 상황 속에서도 대다수 사람은 모험을 선택한다.
*손실 회피성 Loss Aversion
같은 금액이라면 손실을 이익보다 더 크게 느끼는 현상. 대다수 사람은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다.
* 준거점 의존성 Reference Dependence
개인의 의사결정과 선택이 준거에 의존하며 준거에 따라 바뀌는 것을 말한 다. 대다수 사람은 준거점을 기준으로 이익과 손실을 판단한다.
사람들은 이익 앞에서는 위험을 피하려고 하지만 손실 앞에서는 오히려 '모험가가 됩니다. 그런데 이익과 손실에 대한 판단은 준거점 을 기준으로 하므로 특정 사물에 대한 준거점이 바뀌면 위험에 대한 생각과 태도에도 변화가 일어나지요. 
- '심리적 회계'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리처드 탈러는 이것 이 사람의 자기통제와 관련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심리적으로 돈을 서로 다르게 관리하는 이유는 돈을 함부로 낭비하는 걸 막으려 는 자기 노력의 일환이라는 얘기입니다.
심리적 회계 이론에 기초해 탈러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소비자의 효 용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정리했습니다. 먼저 하나는 소비자가 물건 이나 서비스를 구매한 뒤 심리적으로 느끼는 만족감을 일컫는 심리 적 효용'이며, 나머지 하나는 거래 가격과 연관된 거래 효용'입니다. 이는 소비자가 물건의 실제 가격과 마음속 가격의 차이에 따라 느끼 는 효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소비자가 생각한 기준보다 물건의 가격 이 낮을수록 이 효용이 커집니다.
마케팅에서는 이러한 심리를 잘 활용해 소비자가 본래 비싼 가격 의 제품인데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기도 하지요.
대표적인 예가 명절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는 건강보조식품 나 오바이진'을 들 수 있습니다. 장폐색과 수면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이 제품은 '올해 설에는 선물을 받지 않습니다. 나오바이진만 받 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사실 평소에 사려면 만만치 않은 가격인데 특별히 명절 선물로 제격이라 는 이미지를 내세워 사람 마음속에 있는 '관계 유지' 계좌를 성공적으 로 연 것입니다. 사람들은 1년에 한 번 정도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을 위해 이 정도 선물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아이스크림 브랜드 하겐다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사 람이 있다면 함께하세요.'라는 카피 문구는 혼자 먹기에는 부담스러 운 가격이지만, 사랑하는 연인,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서 는 전혀 아깝지 않다는 이미지를 심어 주었습니다.
- 어떤 의미에서는 감정적 필요 때문에 귀인 편향이 나타나기도 합 니다. 성공이나 기분 좋은 행동은 즐거움, 행복, 만족감 등과 같은 긍 정적 정서와 연결되지만, 실패나 기분 나쁜 행동 등은 고통, 슬픔, 상 실 같은 부정적 정서와 연결됩니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은 정서적으 로 매우 깊은 암흑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조절이 필요하 지요. 이때 잘못의 원인을 상대에게 전가하면 그 암흑의 구렁텅이에 서 빠져나오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됩니다. 한편으로는 자기 보호의 개념도 있습니다. 남에게서 이유를 찾아야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남에게 '그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죠.
반면 자기중심적 귀인 편향과 달리 사랑이 끝나버린 이유를 오로 지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연인과의 관계에 서 감정적으로 다소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상대를 훨씬 더 많이 좋아했거나 정서적으로 크게 의존했거나 상대에게 존경심, 나 아가 경외심을 지닌 사람들인데요. 이별 직후 그들은 철저한 고통과 아픔, 상실감에 빠집니다. 그다음에는 자기 능력에 의구심을 품습니 다. 본인이 못나서, 본인이 모자라서 상대가 자신을 버렸다고 자책하 다가 심지어 전 연인에게 연락해 다시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거나 말 도 안 되는 양보와 희생을 하면서 상대를 곁에 두려고 합니다.
- 결론적으로 이 두 가지 편향은 모두 건강한 방식이 아닙니다. 물 론 감정적으로 귀인 편향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인지도 모 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귀인 편향의 영향을 받 을 수 있다는 걸 인지하면 그 이후에는 행위자의 각도에서 벗어나 관 찰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행동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도 모 르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지요.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자신의 감정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사건의 발생 원인을 좀 더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 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나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 보험회사들은 대형 재난이나 재해가 발생한 후 사람들의 보험 가입률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실제로 미국 캘 리포니아의 한 지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해당 지역은 역사적으로 지진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부동 산을 위해 지진 보험을 별도로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보기 드문 지 진이 한 차례 발생한 뒤, 1년 안에 보험 가입자 수가 현저히 증가했습 니다. 하지만 1년 정도가 지나자 사람들의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면 서 보험 가입자 수도 다시 예년 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회사에서 매년 실시하는 인사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팀의 리더는 직원들의 업무 평가를 시행할 때 최근 2~3개월 동안의 실적으로 1년 전체를 평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최근 두세 달의 기억은 또렷 하지만, 시간이 오래되면 될수록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인사 평가를 앞둔 대목에서 탁월한 실적을 올린 직원일수록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특별히 생생한 기억과 충격을 준 사례들을 사실 정확한 데이터와 이론을 근거로 다시 분석해 보면 과대평가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데도 우리는 일상에서 명확한 수치보다는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가용성' 정보를 활용하려고 합니다. 
- 불교에 '보살외인菩薩, 중생외과衆生畏'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결과를 두려워한다'는 뜻으로 보 살은 살면서 항상 선한 씨앗을 심으려 하지만 중생은 늘 결과에만 급 급하다는 의미입니다. 기회비용을 이해하면 인생에 펼쳐진 수많은 선택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겁니다.
- 직감은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런 영역에서 천재성 이 돋보이는 사람들을 여럿 보긴 했지만 찰나의 순간에 오로지 직감 에 근거해 결정을 내리면 완벽하지 못한 결과를 맞이하기 쉬워요. 사 실 우리는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고된 훈 련을 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운동선수들은 장기간의 훈련을 통해 근육이 기억하는 직감을 가졌고, 비즈니스인은 오랜 기간의 실전과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상업적인 직감을 키워 냈습니다. 모두 다 본질적 으로는 정보에 의거한 것으로 정보가 이끄는 무의식적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직감도 모든 일에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니에요. 진상 과 사실에 관한 경우, 정보의 수집과 분석, 추리가 없는 상황에서 직 감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건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공한 사람들 을 잘 관찰해 보면 운동선수든 비즈니스 리더든 결정을 내리는 과정 에서 정보가 핵심 역할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  '닻'은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수단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 물'이 되기도 하지요. 어떻게 하면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트릴 수 있을 까요?
프랑스의 한 사회심리학자는 "똑똑한 인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 면 그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 쇼핑, 일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열린 마음과 생각으로 바라보고 대할 때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이로써 하나의 정보에만 '닻을 내리는 실수를 피할 수 있습니다.
닻 내림 효과'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 보세요. 그래야 만 이 세상의 진정한 가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며 나 자신의 진짜 가치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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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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