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경제학이론의 한계를 살피는데 유용.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때가 많아서,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국가, 기업, 개인의 경제적 성공사례 중에는 어느 특정 경제학 이론 하나만으로 깔끔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허다함. 예를 들어 이코노미스트나 월스트리트저널만을 읽는 사람은 싱가폴이 자유무역정책을 시행하고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는 태도에 대해서만 들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싱가폴의 경제적 성공이야말로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결론짓는 것이 당연. 그러나 싱가폴 땅은 거의 정부소유고, 주택의 85%가 정부가 소유한 주택개발위원회를 통해 공급되며, 총생산량의 22%를 국영기업이 담당(국제평균 10%)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임. 그것이 신고전주의가 되었든 마르크스주의가 되었든 케인스주의가 되었든, 자유시장과 사회주의를 결합해서 이룬 싱가콜의 경제적 성공을 단독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존재하지 않음. 이런 사례들을 접하다보면 경제학 이론의 힘을 맹신하지 않게 되고, 하나의 이론에만 근거해서 정책을 세우는 데에도 좀 더 조심스러워지게 될 것임.

- 1820-1870: 산업혁명
터보엔진을 단 자본주의: 산업혁명의 시장
1820년경부터 자본주의는 비상을 시작. 서유럽 지역 전체의 경제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서유럽 파생사회라 할 수 있는 북미와 오세아니아 대륙 등이 뒤를 이음. 이 성장의 가속정도가 너무도 극적이어서 1820년 이후 반세기를 우리는 산업혁명시대라 부름.
이 50년동안 서유럽의 1인당 소득은 1% 성장을 보임.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기간동안 일본의 성장률이 1%였으니 요즘과 비교하면 좋은 성적이 아니지만 1500-1820사이 0.14%가 성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경제에 터보엔징을 달고 고속주행을 한 셈.

-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의 신화: 자본주의 성장사의 실체
19세기에 서유럽 국가들과 서유럽 파생사회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것은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의 확산 덕이라고 보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이 나라들의 정부가 국제무역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교역활동을 제한하지 않았고, 더 넓게는 시장의 활동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다는 것. 영국과 미국은 자유시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유무역을 채택했기에 다른 나라보다 앞설 수 있었다는 주장. 그러나 이보다 더 사실과 먼 주장도 찾아보기 힘들다. 다른 서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영국과 미국에서도 자본주의가 발달하던 초창기에는 정부가 선두에 서서 경제발달의 지휘자 역할을 했기 때문

- 오늘날 자유주의는 언론의 자유 등을 포함한 개인의 정치적 권리를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태도와 동일시됨. 그러나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 옹호자가 아니었다. 개인의 권리보다 전통과 사회적 위계질서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견해에는 그들도 반대했지만, 모든 사람에게 개인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여성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투표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 또 가난한 사람에게도 투표권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가난한 계층은 개인의 재산을 몰수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에게 투표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 애덤 스미스는 정부라는 것이 "사실은 빈민들로부터 부자들을, 또는 재산을 갖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가진 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 여기에 혼돈이 더 가중된 이유는 미국에서는 리버럴이라는 용어가 좌편향적 견해를 가리키기 때문. 테드 케네디나 폴 크루그먼 같은 미국의 리버럴들은 유럽에서는 사회민주주의자라 불렸을 것이다. 반면 유럽에서는 독일의 자유민주당을 지지하는 정도의 사람들을 가리킬 때 리버럴이라는 말을 사용. 그런 사람들은 미국에서는 극단적 자유주의자라는 의미의 리버테리언이라 부름. 자유주의자라 번역되는 리버럴이라는 단어가 유럽과 미국에서 상당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셈이다.
거기에 더해 네오-리버럴리즘, 즉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까지 나와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신자유주의는 80년대 이후 경제학의 주류로 자리잡은 견해를 가리키는데, 고전적 자유주의에 상당히 가깝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경제학적으로 이 견해는 약간의 수정을 거친 고전적 최소정부를 옹호한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신자유주의에서는 화폐발행권을 중앙은행이 독점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반해 고전적 자유주의에서는 화폐발행도 경쟁을 해야한다고 믿는다는 점. 정치적으로도 고전적 자유주의자들과 달리 신자유주의자들은 공개적으로 민주주의에 반대하지 않음. 그러나 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이 개인의 재산권과 자유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먼 민주주의를 희생할 용의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워싱턴 컨센서스 견해라 부르기도 함. 특히 개도국에서 많이 쓰는 이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말은 세게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조직이자 모두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세 개의 조직, 즉 미 재무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이 모두 강하게 이 이데올로기를 지지한다는 뜻에서 생김

- 1914-1945년 : 파란의 시기
자본주의, 발을 헛딛다. 1차대전, 그리고 자유주의적 황금기의 종말
14년 발발한 1차대전은 자본주의의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 1848년 유럽을 휩쓴 혁명, 1871년 파리코뮌 등 빈곤층이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끊임없는 위기감과 1872-96년 장기침체 같은 경제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전발발 전까지 자본주의는 상승과 팽창만을 거듭하는 듯했다.
1차대전은 여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자본주의의 물결을 타고 전세계적으로 상업적 상호관계의 그물이 점점 더 촘촘해지면서 나라들 간의 관계가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서 사람들은 1차대전 발발 직전까지도 전재이 터진다는 것은 극도로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고들 생각.
1차대전의 발발은 어떻게 보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님. 하이눈 시기의 세계화가 시장의 힘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힘으로 진행된 탓에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언제라도 무력을 동반한 갈등이 되어 터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기 때문. 일부에서는 한술 더 떠서 자본주의가 끊임없는 외적팽창 없이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단계까지 진행되었고, 더이상 팽창할 곳이 없어지면 조만간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 자본주의는 적절한 정부개입하에서 가장 잘 돌아간다.
자본주의 황금기 동안 정부개입은 부자나라들의 국제무역 부문만을 제외하고 모든 나라의 모든 부문에서 대단히 많이 늘었다. 이렇게 강도높은 정부개입에도 불구하고 부자나라들과 개도국모두가 이전보다 훨씬 높은 경제성장을 기록. 곧 이야기하겠지만 80년대에 정부개입이 상당히 줄어든 뒤로는 이 시기의 경제실적을 능가한 시기가 없다. 자본주의 황금기는 자본주의 잠재력이 정부정책에 의해 제대로 규제되고 자극될 때 극대화된다는 것을 증명한 것.

- 불확실성은 단순히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모른다는 뜻만은 아님.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확률들을 상당히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위험 또는 리스크라 부름. 사실 죽음, 화재, 자동차사고 등 사람들의 삶과 관계된 여러 리스크를 계산하는 능력은 보험산업의 토대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벌어질 확률은커녕 어떤 상황들이 가능한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놀랍게도 이 불확실성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은 럼즈펠드이다. 02년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브리핑하는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함. "알려진 기지수들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알려진 미지수들이 있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미지수들이 있다. 우리가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들 말이다." 이 알려지지 않은 미지수라는 표현이야말로 케인스의 불확실성 개념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 탈산업화 현상의 일부는 착시현상 때문이다
탈산업화의 정도 또한 통계자료가 취합되는 방식으로 인한 착시현상 때문에 더욱 과장되는 경향이 있음. 전에는 구내식당, 보안, 일부디자인 및 엔지니어링처럼 제조업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던 서비스의 많은 부분이 이제는 아웃소싱되어 독립된 기업들로부터 공급받음. 이 중 국외기업으로 아웃소싱하는 것을 오프쇼어링이라 부름. 이로 인해 서비스가 실제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됨. 아웃소싱된 서비스의 내용은 전과 같지만, 이제는 제조업 생산량이 아니라 서비스생산량의 일부로 계산되기 때문.
이와 더불어 일부 제조업체는 자사 생산량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하락하면 여전히 제조업무를 하면서도 서비스 업체로 재구분해달라고 요청함. 영국 정부의 한 보고서는 98년부터 06년 사이 자국에서 감소한 제조업 부문 고용의 10% 정도는 바로 이 재구분효과에 의한 것이라 추정.

- 현재 경제학의 주류인 신고전주의 경제학파에서는 생산부문을 심각하게 간과함. 대부분 경제학자에게 경제학은 공장 문 앞에서 끝나고 만다. 생산과정은 특정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자본과 노동의 양을 정확하게 명시한 생산함수에 의해 미리 결정된, 예측가능한 과정으로 여겨짐.
생산에 약간의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라도 대부분 경제 전체의 크기가 컺는 총체적 수준에서만 다룰 뿐. 이런 사고방식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캐치프레이즈가 "한 나라가 감자칩을 생산하느냐 마이크로칩을 생산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80년대 미국 경쟁력과 관한 논쟁중 나온 이 말에는 경제활동의 방식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이 빠져 있다. 즉 한나라가 단순히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느냐만이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는 것이 그 나라의 생산능력이 발전하는 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제조업 부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제조업이야말로 지난 2세기 동안 새로운 기술과 조직능력을 만들어낸 주된 근원이기 때문.
- 그러나 현대사회는 공장에서 만들어졌고, 새로운 사회 또한 공장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게다가 이른바 산업화 후 사회에서도 이른바 새로운 경제의 동력이라고 여겨지는 서비스 산업은 역동적 제조업 부문의 뒷받침 없이는 융성할 수 없음. 서비스 산업이 주도해 번영을 이룬 경제의 대명사라 생각하는 스위스와 싱가폴이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된 세 나라중 두나라라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 (나머지는 일본)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생산능력의 개발, 특히 제조업 부문의 생산능력 개발은 기후변화라는 우리 시대 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핵심적 역할을 한다. 부자나라들은 소비패턴을 바꾸는 것과 더불어 녹색기술 분야에서 생산능력을 더욱 발전시켜야 함.
개도국들은 기후변화의 악영향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기술 및 조직능력을 개발해야 함. 그리고 이런 능력의 많은 부분은 오직 산업화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음.

- 중요한 것은 아무리 교묘하게 상품을 묶고 구조화하고 파생상품을 디자인해도 결국은 플로리다에 사는 서브프라임 주택담보 대출자나 나고야의 중소기업, 자동차를 사려고 대출받은 낭토의 젊은이가 돈을 갚아야 한다는 전제가 이 모든 새로운 금융상품의 근저에 깔려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시스템 안의 서로 다른 부분을 긴밀하게 연결한 금융상품이 만들어지면서 최초로 돈을 빌린 사람이나 중소기업이 돈을 갚지 못한 데 따른 부작용이 시스템 전체로 훨씬 격렬하게 확산됨
- 현재의 금융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행동하는 규제기관은 물론, 이른바 경험많은 금융산업 종사다들도 마찬가지. 너무나 얽히고 설킨 금융상품이 확산되는 것을 제한해 단순화해야 함. 특히 상품을 만든 사람들이 그 상품의 폐해보다 혜택이 더 많다는 것을 명백하게 입증하지 못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 같은 원칙이 매우 극단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런 식의 원칙을 의학분야에 항상 적용해왔다. 인체의 복잡성과 새로운 약의 부작용 가능성을 고려해 제약업체에는 새 제품이 폐해보다 혜택이 많다는것을 사회에 입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사실 합법적 금융계약의 범위 자체가 정치적 결정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되어 오지 않았던가. 
금융시스템을 더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해서 금융이 경제의 중요한 부분임을 부인하는 것은 전혀 아님. 오히려 금융이 갖는 위력과 중요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다니거나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고작해야 말을 타고 달리는 게 가장 빨랐던 시대에는 교통신호도, ABS 브레이크도, 안전벨트도, 에어백도 없었다. 이제는 이런 것들이 존재하고, 규제 등을 통해 사용을 의무화하기 시작. 자동차들이 강력하고 빠르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잘못되면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임. 이와 동일한 논리가 금융에도 적용되지 않고서는 자동차 충돌사고, 뺑소니사고, 심지어 고속도로 다중 추돌사고에 해당하는 금융사고를 피할 수 없을 것임.

-  50년대와 60년대에 경제발전 초기단계였음에도 한국과 대만의 불평등도가 상승하지 않은 것 또한 정책으로 설명가능. 이 기간 동안 두 나라는 토지개혁을 통해 지지들이 당의 대부분을 시장가격 이하로 소작인들에게 팔도록 강제. 그런 다음 수입규제와 비료보조금, 관개시설 등을 지원해서 이 새로운 소농계층을 보호. 대규모 상점과의 경쟁에서 작은 가게가 살아남도록 하는 보호조치 또한 강하게 시행했다.
사실 쿠즈네츠 본인은 경제발전의 후기단계에 불평등도가 자동적으로 줄어든다고 믿지 않았다. 현대 경제발전의 성격상 역U자 곡선 모양으로 불평등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믿기는 했지만, 실제 불평등의 감소정도는 노조와 특히 복지국가의 강도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
불평등 정도를 결정하는 데에 복지국가가 중요하다는 것은 유럽과 미국을 비교하면 됨. 

- 부자나라들은 절대적 빈곤을 거의 완전히 척결했을지 모르지만, 국민 일부는 상대적 빈곤과 높은 수준의 불평등으로 고통받고 있음. 상대적 빈곤율과 지니계수가 나라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인다는 사실은, 미국처럼 불평등의 정도와 빈곤율이 높은 나라는 공적개입을 통해 불평등과 빈곤을 상당히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
누가 가난하게 살게 되는지 또한 공적개입에 많이 달려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가난을 떨쳐 버리는 것을 돕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공평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고용시장에 더 쉽게 접근하도록 하고,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시장을 조작하는 것을 막아야 함.
산업화 이전에는 한국에는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라는 속담이 있었다. 이 말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이제 세계는 절대적 빈곤을 완전히 없애기에 충분한 양을 생산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소득재분배를 하지 않더라도, 극도로 빈곤한 나라 몇 곳을 제외하고는 각 국가 자체적으로 그럴 역량이 충분하다. 불평등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정책을 채택하면 우리도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사람처럼 굉장히 평등한 사회에서 살 수 있다.

- 바나나공화국이라는 말은 요즘은 글로벌 의류회사 갭에서 만든 바나나리퍼블릭이라는 브랜드로 더 잘 알려짐. 그러나 사실 이 말은 어두운 출생배경이 있다. 20세기 초 온두라스, 과테말라, 콜롬비아 등 중남미 바나나 생산국들을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라는 기업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때 나온 말. 가장 끔찍한 비극은 28년 콜롬비아에 있는 UFC 바나나 농장에서 파업하던 노동자들이 대량학살된 일이다. 당시 미 해병대가 UFC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침공하겠다고 위협하자, 콜롬비아 정부는 자국군대를 파견해 수천명으로 추정되는 노동자를 죽였다. 이 사건은 콜롬비아이 위대한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명작 '백 년 동안의 고독'에 소설화되기도 했다. 미국의 초국적 기업들은 미국 군부우파 및 CIA와 손잡고 60년대와 70년대 중남미 좌파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적극 협조.
장기적으로 볼 때 외국인 직접투자의 부정적 영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대상국이 생산능력을 향상시키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 일단 초국적 기업들이 투자대상국 안에 자리를 잡은 후에는 자국기업들이 생존하기 어려워짐. 바로 이런 이유에서 현재의 부자 나라 중 많은 나라가 자국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능력을 갖출 때까지 외국인 직접투자를 엄격하게 제한했던 것임. 예를 들어 토요타의 첫 대미 자동차 수출시도가 큰 실패로 끝난 후, 많은 전문가가 충고한 대로 일본정부가 50년대말 자동차 산업에 외국인 직접투자를 허용했다면, 당시 일본 자동차 산업상황으로 볼 때 일본기어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초국적 기업들에게 전멸당했을 것. 55년 당시 GM의 한 회사에서 생산하는 자동차가 350만대에 달한 반면, 일본 자동차 산업 전체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를 다 합쳐도 7만대에 불과했다.

- 누가 이득을 보는가?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고, 앞으로도 과학이 될 수 없다. 경제학에는 정치적,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확립될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학적 논쟁을 대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오래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 로마의 정치인이자 웅변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말이다.
가끔은 어떤 경제학적주장에 정치적 색채가 드리워져 있는 것을 알아차리기 쉬울 때도 있다. 특정 그룹에게 노골적으로 유리한 미심쩍은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자명한 경우. 예를 들어 낙수효과 이론은 총생산량에서 더 큰 부분을 부자에게 주면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실현되지 않은 가정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어떤 때는 특정 경제학적 주장이 뜻하지 않게 일부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함. 예를 들어 사회 구성원 어느 누구도 손해는 보지 않으면서 누군가 이익을 보는 형태의 사회적 향상만을 변화로 규정해 단 한명의 구성원도 사회로부터 짓밟힘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파레토 기준은 어느 누구에게도 특별히 유리할 것 같지 않아 보임. 그러나 이 기준은 한 사람에게라도 피해를 주는 변화는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득권층에 유리하다.
- 겉으로 보기에 가지중립적인 결정, 예를 들어 시장의 경계를 규정하는 결정 등에도 정치적, 윤리적 판단은 항상 깃들어 있다. 시장에 어떤 것으르 포함시킬지를 결정하는 것은 상당히 강도높은 정치적 행위다. 무엇인가(물)를 시장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 1원 1표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게 되고, 부자들이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가 쉬워짐. 반대로 무엇인가(아동노동)를 시장의 영역에서 제외시키면 그 문제를 둘러싼 결정에 돈이 힘을 발휘하기가 불가능해진다.
물론 경제학이 정치적 논쟁이라 해서 어떤 주장이든 다 대등하다는 것은 아님. 상황에 따라 어떤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더 나을수도 있다. 그러나 가치판단을 배제한 과학적 분석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는 절대 믿어서는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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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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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모험

경제 2025. 1. 8. 07:13

- 교역이 번성하면서 금융도 따라 번창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에서 상인은 재산을 안전한 환전상 금고에 보관. 당시 상인은 환전상에게 이 계좌에서 저 계좌로 돈을 옮기도록 시켜서 빚을 갚았다. 그뿐 아니라 환전상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이리하여 환전상은 자연스레 최초의 은행가가 되었다. 동시에 악독한 고리대금업자도 되었다. 한편 값비싼 화물을 싣고 위험한 바다를 건너야 하는 위험에 대비해 또 다른 분야가 발전했다. 상인이 보험을 개발한 것. 누군가에게 일정한 돈을 지불하면 그 대가로, 가령 태풍으로 배가 바다에 침몰한다던지 하는 불운으로 인해 입은 손실을 보상했다.
북적이는 도시로 인해 봉건제가 흔들렸다. 농노가 땅을 떠나 도시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기 때문. 와글거리는 소리에 묻혀 전통적인 교회 가르침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밀라노의 수호성인 암브로시우스가 고리대금업자에게 죽음을 선고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밀라노 도시민이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통해 부유해지는 상황을 결코 막을 수 없었다. 경제활동이 점점 돈이나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전통은 더욱 뒷전으로 물러났다. 수도승조차 대금업이 경제활동에 꼭 필요하다고, 대금업자가 돈을 돌려받지 않는 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사실 아퀴나스도 빌려준 돈에 이자를 붙이는 일도 때때로 용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채권자가 돈을 빌려줄 때 포기해야만 했던 이익을 벌충하기위해서라면 이자를 물려도 괜찮았다. 점차 성직자도 고리, 즉 채무자를 망가트릴 만큼 높게 매긴 이자율과 은행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만큼 합리적으로 붙인 이자율 사이에는 차이가 있음을 인정.
11세기가 시작할 무려 교황은 상인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했ㄷ. 12세기가 끝날 즈음 교황은 호모보노라는 상인을 성인으로 추대했다. 신에게 가까이 가려면 가난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취를 감추었다. 예수는 제자에게 하느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아퀴나스가 살던 시대의 상인은 그럴 수 있따고 믿었다.
1253년 한 이탈리아 회사에서 손으로 쓰는 통장을 개설. 거기에는 '하느님과 영리의 이름으로'라고 쓰여 있었다. 하느님의 섭리가 상업이라는 신세계와 손을 맞잡고 있었다.

- 피구가 쓴 저서는 얼마간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책을 쓰던 시기인 20년대와 30년대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가운데 어느 경제체게가 최선인지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던 때였다. 그런데 피구는 더 협소한 문제를, 개개 시장이 작동하는 원리와 관련한 문제를 다루었따. 하지만 2차대전이 끝나고 적어도 경제학자에게 커다란 문제가 하나씩 거의 정리되자, 상당수 경제학자는 자본주의가 최선의 경제체제이긴 하지만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정부개입이라는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 피구는 예를 들어 페인트나 어류나 석유 등 특정 시장의 기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 몇가지를 글에서 제시. 오늘날에도 여러 경제학자가 피구의 이론을 이용해 정부가 세금이나 보조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연구하며 사회자원을 더욱 잘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 피구의 스승은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로 시장에 관한 기초이론을 세운 인물. 이 시장이론은 오늘날에도 여러 경제학자가 즐겨 애용. 마셜은 이 제자를 천재라 불렀다.
피구는 스승이 전개한 이론에서 한단계 더 나아감. 특히 시장이 항상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냄. 경제학자 대다수는, 심지어 자본주의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경제학자 조차 시장이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음. 즉 이따금 시장이 경제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실패한다고 해서 반드시 경제가 커다란 재앙에 맞닥뜨리고 위기에 빠진다는 의미는 아님. 이따금 어류나 휘발유 같은 특정 시장이 실패할 때도 경제 전반이 무너지지 않았다. 피구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짚어내며 후생경제학이라 알려진 경제학의 한 분야를 개척. 후생경제학은 사회에 골고루 돌아가는 이익을 살피는데, 이 이익은 사람들이 사고 팔고 일하는 행위에 대해 내리는 결정이나 기업이 생산과 고용에 대해 내리는 결정 등 모든 결정에서 비롯함. 이 내용이 규범경제학 일부를 이루며 경제학의 한 갈래가 되어 경제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장이 제 기능을 잘 해내는지 아니면 잘못해내는지 가려낼 수 있다.


- 똑같은 기업만 무수히 존재하는 완전경쟁체제처럼 극단적 상황에 맞은 이론이나, 오로지 한 기업만 존재하는 독점상황을 설명하는 이론이 세우기는 더 쉽다.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까다로움. 시장이 완전경쟁으로 내몰리거나 아니면 독점이 될 때 그 양상은 하나다.하지만 시장이 양극단 사이에 존재하면, 즉 불완전 경쟁 속에서 서로 각축을 벌이면 그 형태는 셀 수 없이 많음. 그래서 하나의 이론으로 온갖 가능성을 다 아우르기가 어렵다. 
오늘날 경제학자는 게임이론 분야를 이용하는데 이 방법으로 다양한 상황에 처한 기업행동을 면밀히 검토할 수 있다. 게임이론은 어떤 사람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특정 결과를 낳는 여러 상황을 연구한다. 이 이론은 소수 독점 행동을 연구하는데 특히 유용. 그래서 경제학자는 이 게임이론을 적용해 시장 장악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가리는 기업 사이에서 복잡하게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탐색한다.

- 신흥부자는 이익배당금으로 살았으며 별다른 수고없이 재산을 물려받음. 폴리네시아 추장처럼 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여가를 즐긴다거나 명품을 산다거나 하면서 사회적 인정을 받음. 대저택을 구입하고 모피코트를 사고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으로 여행을 떠나는 행위를 베블런은 과시소비라 부름. 이것저것 사면서 자랑하는 셈이다. 이렇게 특권을 누리는 소수에게 베블런은 유한계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한계급에 속한 남자는 연미복을 입고 실크 스카프를 맴으로써 자신은 땅을 일구거나 버스를 모는 생산직 노동에 종사하지 않음을 강조. 그리하여 이런 옷차림이 농부가 입는 수수한 마 셔츠보다 더 아름답다고 여기게 됨. 하지만 베블런은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왜 부자의 에나멜 가죽 구두에서 반짝이는 광택이 빈자의 닳을대로 닳은 겉옷 소맷부리에서 반질거리는 윤기보다 더 아름다워야 하는지를.
여자는 옷찰미이 특히 비실용적이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은 손에 물을 묻혀 감자를 씻거나 창문을 닦지 않는다고 드러낼 수 있따. "우리가 끈질기게 치마에 집착하는 이유는 실제로 다음과 같다. 일단 치마가 비싸고 몸을 돌릴 때마다 거치적거려 쓸모있는 노력을 온전히 기울이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자남편을 둔 아내는 남편재력을 과시해야 했다. 극단으로 흐를 경우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 탓에 실크 드레스 가격이 오를 때조차 수요가 떨어지기는 커녕 도리어 올라갔다. 가격이 높으면 더 소수의 사람만이 살 수 있고, 이때 드레스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수단이기 때문. 그래서 더 부유한 사람이 드레스를 사고 싶어한다.

- 자본주의가 지닌 활기에는 어둠의 씨앗이 숨어 있어 언제든 이 활기가 시들어버릴 수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슘페터는 경제학자로서 보기 드문 일을 했다.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학과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에 대한 논의를 전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미래가 왜 암울한지 경제학 용어로 설명. 자본가가 생산물 가운데 이윤으로 점점 더 챙겨가고 노동자 몫이 점점 더 줄어 체제가 송두리째 무너지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슘페터에게 자본주의 경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라면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태도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특히 기업이 점점 커지는 경우에 그 영향력도 비례해서 세어진다.

- 기업가가 성공하면 기업도 따라서 성장. 결국 거대기업이 출현한다. 이들은 한발 앞선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상품을 쏟아낸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종종 기업내 전문 연구부서에서 혁신을 이룰 수 있다. 예를 들어 애플에는 다양한 연구팀이 있다. 어떤 연구팀은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생산하고 어떤 연구팀은 더 빠르고 가벼운 아이폰을 개발한다. 천재의 번뜩이는 아이디어 속에나 있던 물건이 이제 기업가에 의해 확실한 검증을 거쳐 현실로 탄생. 경제발전은 기업정책과 위원회 회의를 통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일이 바람직하다. 새 상품 개발은 미리 구상안을 마련하여 예측이 가능하다. 문제는 너무 따분하다는 점. 회사가 거대 조직이 되어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으로 가득찬다. 슘페터가 그리던 기업가는 용감무쌍한 영웅으로 출발했더라도 도착할 즈음에는 학교를 싫어하고 숙제를 내팽개치는 싫증난 10대에 오히려 가까워짐. 넥타이를 매고 일터로 출근하고 지루한 회의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일상을 질색한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삶이 무료하고 삭막하게 변하는 모습을 혐오한다. 이제 대개 사업이나 돈벌이를 불신하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끝내 반자본주의 지식인이 되어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거나 자본주의 비판서를 펴낸다. 이들은 하나같이 정부가 사업가로부터 경제권을 넘겨받아야 하며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슘페터 생각에 이런 경향이 30년대와 40년대부터 보이기 시작하는데, 상당수 지식인이 자본주의에 반기를 들고 정부가 경제운용에 보다 중추적 역할을 맡기 시작한 시기였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고 예견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음. 자본주의는 정부개입을 상당히 허용하면서 오늘날까지 쇠멸에 이르지 않았다. 이를 소위 혼합경제라 한다. 그럼에도 슘페터 덕분에 우리는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 경제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여기서 슘페터는 마르크스를 되풀이한다. 그리고 마르크스처럼 사회주의는 피할 수 없다고 주장. 슘페터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좌절한 사회 상류층, 불만 많은 지식인 때문에 최후를 맞는다. 반면 마르크스가 보기에 사회를 전복하는 힘은 불우한 노동자에게서 나온다. 마르크스가 그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 실패하기 때문에 도래한다. 그런데 이런 마르크스와 달리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였으며 떠밀리다시피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추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 슘페터는 또한 케인스가 제시한 새로운 이론에 반대했다. 케인스는 30년대불어닥친 유례없는 불황과 같은 파도에 경제가 휩쓸리지 않도록 정부가 막아야 한다고 주장. 자본주의가 변화라면 종착점이란 없다. 이제 겨우 그 성과를 가늠하기 시작했을 뿐. 역사는 흐르기 마련이어서 말을 타고 소식을 전하던 전령은 어느덧 온데간데없고 대신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지 않은가. 정부에게 경제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할 때의 문제는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근시안으로 바라보고 조속히 해결하기를 바란다는 점. 하지만 슘페터 생각에 그런 해결책은 단지 기업가 정신을 옥죄고 자본주의에 생명유지장치를 달아 잠깐 목숨을 연장해 놓은 것뿐이지 결국 숨통을 끊어놓는 짓과 다름없었다.

- 죄수의 딜레마가 경제학에서는 늘 돌연히 일어난다.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터빈 발전기처럼 대형제품을 예로 들어보자. 60년대 미국 제조업을 진두지휘하던 두 회사, 제너럴일렉트릭과 웨스팅하우스는 발전기에 수지맞는 가격을 매기고 싶었다. 한 가지 방법으로는 서로 뭉쳐 발전기를 더 적게 판매하고 가격을 더 높게 부과하자고 합의하면 된다. 이때 문제는 가격이 높으면 두 회사 모두 상대회사를 속여 조금 더 낮은 가격에 발전기를 더 팔아보고자 하는 유혹을 느낀다는 점. 하지만 그리하면 가격이 곤두박질쳐서 양측 모두 이윤이 급격히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이들 회사 사이의 균형은 두 깡패가 자백하는 모양새와 같다. 똑같은 문제에 산유국도 부딪친다. 60년대 석유 판매량을 줄여 단가를 비싸게 매기자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가격이 오르면서 산유국은 석유를 더 많이 생산해 팔고 싶은 유혹을 다시 받았다. 
사업에서도 정치에서도 인생에서도 사람들은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한다. 게임이론은 그 얽히고 설킨 관계에 대한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언제 서로 힘을 합치고 언제 물고 뜯고 싸울까? 죄수의 딜레마에서 협력은 언제든 깨질 위험을 안고 있다.

- 어떤 게임에서는 유달리 복잡한 전략을 구사한다. 순서대로 결정을 내려야 할때, 즉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고나서 다음에 무엇을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특히 더 그렇다. 만약 상대바잉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한다면 응징을 가할 수 있겠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70년대 미국 양대 커피회사격인 맥스웰하우스와 폴저스는 미국시장 점유를 놓고 전쟁을 벌였다. 폴저스가 동부로 시장을 확대해서 사업체 인수를 꾀했는데, 이미 동부는 맥스웰하우스가 주 공급업체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ㄷ. 맥스웰하우스는 가격전쟁에 돌입했다. 가격을 대폭내려 폴저스를 시장에서 쫓아내려 했다. 일련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 시장에 들어오려 하면 가격을 대폭 내릴 작정을 한다. 이 때문에 상대가 아예 처음부터 시장진입을 미적미적 망설이길 바라면서. 문제는 이런 으름장이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이런 협박을 실천에 옮기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여길 수 있다. 가격을 낮추면 그만큼 수익도 줄어들테니까. 그런데 맥스웰하우스와 폴저스의 경우는 이런 위협이 통했다. 맥스웰하우스가 보기 좋게 성공을 거두어 폴저스는 뉴욕시로 시장을 넓히려던 애초의 의욕을 접고 말았다.

- 빅셀은 정부가 완전히 이타적이며 오로지 공공선을 실현할 수 있는 정책 시행에만 관심이 있다는 생각을 낱낱이 해체했다.
뷰캐넌은 빅셀의 이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학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음. 경제학자는 정부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가정. 그런데 정부는 실제로 무엇일까? 뷰캐넌의 주장에 따르면 정부는 관리나 고문이나 장관 등 사람이 모인 집단이다. 이전까지의 경제학이 지닌 문제는 이들 인격이 둘로 나뉘어 있다고 여겼다는 점이다. 품질 좋은 신발을 한 켤레 구하거나 자동차를 얼마에 팔지 계산할 때 정부관리는 합리적 경제인간처럼 행동. 즉 확고하게 자기 이익을 좇으며 득은 최대한으로 늘리고 실은 최소한으로 줄인다.
하지만 관공서로 들어서는 순간 오로지 머릿속은 국익만을 생각하고 사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기존의 경제학은 가정했다. 한 점 의혹 없이 올바르게 정책을 집행하고 책상에서 잠깐 눈 붙이는 일도 없으며 점심 한 끼 먹는데도 세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마치 이기심으로 똘똘 뭋인 경제적 인간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정치적 인간이 들어선다. 이 인간은 철저하게 이타적인 인간으로 사회에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따져 그대로 행동한다.
이는 모순이라고 뷰캐넌은 주장했음. 사업으로 돈을 벌려고 애쓸 때와 똑같은 태도로 정부활동을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정치인도 정부관리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익을 좇는 사람이다. 뷰캐넌이 새로 개척한 경제학 분야를 공공선택이라고 함. 그리고 이를 가리켜 뷰캐넌은 낭만없는 정치라고 표현. 정치인은 이타적 영웅이 아니었다. 뷰캐넌에게 이는 어리석고 감상적인 생각이었다. 실제로 정치인은 지위를 지키는 데 더 혈안이 되어 있고 경제학자가 생각한 이상으로 몹시 추잡하고 매우 이기적이며 못 믿을 족속이었다.
미정부는 60년 내내 흥청망청 써댔고 뷰캐넌은 이론을 통해 이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봄. 비대한 정무는시장이 더 원활하게 굴러가도록 도움을 주기는 커녕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정치인이나 관료와 더 관계가 깊다고 주장. 정부문제는 빅 빌 톰슨 시장이 저지른 황당하고 무분별한 행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회색양복을 차려입은 공무원이나 워싱턴의 존경받는 정치지도자도 못지 않게 썩었다.

- 지대추구는 소비자에게 해를 끼침. 자동차 시장이나 우산시장이 외국경쟁으로부터 보호받는다면 사람들이 자동차나 우산을 살 때 그만큼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 하지만 문제는 소비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도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이런 보호조치를 막기 위해 소비자단체를 조직하는 일에 시간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지 개개인은 결코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반면 생산자는 종종 규모가 크고 눈에 띄지 않는다. 힘이 있어 정부에 압력을 넣어 특혜를 얻는다. 하지만 기업가를 탓해서는 안 된다고 뷰캐넌이 말했다. 문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부, 이 힘을 이용해 경제에 개입해서 재선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돕는 정부에 있다.
뷰캐넌은 케인스 주의 경제학자에게도 맹공격을 퍼부었다. 이들은 경기가 침체한 시기에는 정부가 나서서 지출을 늘려 경제를 부양해야한다고 주장했음. 이 부양책을 시행하느라 정부예산이 적자로 기운다. 정부가 거두어들이는 세금보다 더 많기 때문. 하지만 케인스주의자에 따르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유는 부양정책을 실시해 경제가 다시 원만하게 돌아가면 지출을 삭감해서 적자를 없앨 수 있기 때문.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정부지출이 유권자의 환심을 산다는 점. 정치인은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 물불 안가리고 지출삭감을 피해서 유권자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지출은 늘고 또 늘어 정부적자 역시 계속 증가해 간다. 이것이바로 60년대에 일어난 일이다.

-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봤자 문제만 낳는다는 프리드먼의 기본적인 철학은 대처와 레이건 속에, 그 계승자들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케인스가 보기에 경제가 불안정하면 정부가 개입하여 통화량을 투입해 진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제 체제 내에서 지출이 충분한지, 다시 말해 수요가 충분한지 꼭 확인하라고 충고. 프리드먼은 경제를 그냥 내버려 두면 오히려 더 안정된다고 확신. 불안적, 즉 70년대 고삐풀린 물가상승과 30년대 불경기는 정부가 간섭한 결과. 시장을 그냥 숨쉬게 놔두자. 그러면 경제가 건강해지고 안정을 이룬다. 여기에 이르는 길은 경제가 수요가 아니라 공급을 제고하면 된다. 경제학자가 생각하기에 정부가 법인세를 없애고 시장규제를 풀면 기업이 자극받아 생산을 늘리고 노동자를 더 고용한다. 이런 이론을 공급중시 경제학이라 한다. 그리고 불만의 겨울에 뒤이어 수십년 동안 바로 이런 정책을 정부가 추진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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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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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문화권의 국가에서 사람들이 교육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것은 공자가 학식을 강조해서가 아니라, 2차대전후 토지개혁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통해 계층이동이 가능해지면서 교육이 계층상승 수단이 되었기 때문. 몇백 년에 걸쳐 유교가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였고, 또 다른 유교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45년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쟁추한 직후 한국의 문해율은 22%에 그쳤다. 비슷한 시기에 불교국가 태국의 문해율은 53%(47년), 기독교국가 필리핀은 52%(48년), 이슬람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말레이시아는 38%(47년)였다.
경제개발 초기, 60년대와 70년대 한국 젊은이들은 과학이나 공학분야 직종을 꺼렸다. 실용적인 일에 대한 편견을 가진 유교문화의 영향.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의도적으로 인문학고 사회과학 계통의 정원과 재정지원을 제한하고, 과학 및 공학분야 학위 소지자의 군복무기간을 대폭 줄이는 특혜를 실시. 물론 과학 및 공학분야 학위소지자가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 일자리가 없으면 고학력 실업자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고, 많은 개도국에서 그런 현상도 벌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인 공공정책을 통해 산업화를 도모. 그 결과 이 분야로 진학한 학생들이 학위를 딴 후 보수도 좋고 지적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일자리들을 만들어냈다.

- 문호가 사람들의 가치관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따라서 그 나라의 경제가 조직되고 발전하는 양상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어불성설. 그러나 문화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흔히 통용되는 단순한 고정관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 모든 문화는 복합적이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다양한 부면을 지니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개인의 경제적 행동과 국가의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 데서 문화는 정책에 비해 그 영향력이 약하다는 점. 그 점은 도토리를 먹는 한국인에게나 도토리를 먹여 키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도에게나 마찬가지.

-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은 무보수 노동만을 제공한데서 그치지 않았다. 노예는 매우 중요한 자본동원 수단이었다. 매슈 데스먼드는 이렇게 썼다. "노예가 된 인간들은 주택담보대출이 시작되기 몇 백년전부터 대출의 담보로 사용되었다. 땅값이 별로 나가지 않던 미국 독립전... 대부분의 대출은 인간이라는 자본을 담보로 이루어졌다." 데스먼드는 거기에 더해 노예 한명 한명을 담보로 한 대출들을 한데 묶어 만든 채권거래도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현대 금융계에서 수천건의 주택담보대출금과 학자금대출, 자동차대출 상품들을 묶어서 판매하는 자산유동화 증권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미국은 이 채권들을 영국과 유럽 금융업자들에게 판매해 국제규모의 자본을 동원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미국 금융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킬 기회를 얻었다. 노예들이 아니었다면 미국은 훨씬 더 오랫동안 초보적 금융부문을 가진 전근대적 경제국가에 머물렀을 것이다.

- 구아노로 인한 페루의 경제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호황이 시작된 지 30여년이 지나자 과다채취로인해 구아노 수출이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 그러나 1870년 대규모 칠레초석(질산나트륨) 매장지가 발견되며 구아노 수출의 쇠락으로 인한 영향이 한동안 상쇄되었다. 초석은 비료, 화약제조에 사용될 뿐 아니라 육류보존에도 쓰이는 질산염이 풍부한 광물질. 그러나 페루의 번영은 초석전쟁이라고도 부르는 남미 태평양전쟁과 함게 끝이 남. 이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는 볼리비아 해안지역 전무와 페루 남부 해안지역의 절반가량을 점령했음. 그 지역에는 대량의 초석이 매장되어 있고 구아노도 많아서 칠레는 엄청나게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1909년 독일 과학자 프리츠 하버가 공기중에서 질소를 분리하는 기술을 발명. 고압전류를 사용해 암모니아를 만들고 거기서 인공비료를 만드는 기술이었다. 말하자면 하버가 글자 그대로 허공에서 인공비료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개발한 것. 그 덕에 그는 191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 하지만 1차대전때 사용된 독가스를 개발한 일로 악명이 높아서 그에 게 노벨상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점잖은 자리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음

- 역사를 보면 높은 생활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방법은 오직 산업화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다시 말해 혁신과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는 주된 근원인 제조업 분야를 발달시켜야 한다는 의미
산업화를 통해 생산능력을 더 높이면 자연이 우리에게 가하는 제약을 마법처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해짐. 칠흑처럼 새까만 석탄에서 선명하기 그지없는 새빨간 염료를 뽑아내고, 허공에서 비료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다른 나라를 침공하지 않고도 땅을 몇배로 늘리는 것이 마법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거기에 더해 이런 능력을 갖추고 나면 긴 기간동안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음. 초석고 같은 재생불가능한 광물 천연자원, 또는 멸치를 먹고 사는 새들의 분비물로 만들어진 페루의 구아노처럼 재생가능하지만 과잉채취로 결국 늘 바닥이 나고야 마는 천연자원과 달리 한번 습득한 기술이나 능력은 고갈되지 않기 때문이다.

- 한국정부는 88년까지 외제차 수입을 전면 금지했고, 일본차는 98년까지 수입을 금지하는 정책을 운용해 현대를 비롯한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클 때까지 보호막이 되어줌. 수십년 동안 한국 소비자들이 품질이 떨어지는 국산차를 견뎌내야 했다는 의미지만, 이런 식으로 보호받지 못하면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성장은 커녕 살아남기조차 힘들었을 것임. 90년대 초까지도 정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현대차를 비롯한 하이테크 기업들, 특히 수출지향적 기업들이 특별 저리융자를 받을 수 있게 보장. 이는 생산적 기업에 대한 대출에 우선순위를 주도록 하는 엄격한 은행규제와 은행부문의 국유화를 통해 이루어짐.
정부정책이 항상 도와주는 성격만을 띤 것은 아니었음. 현대차가 고유모델을 만들겠다는 겻림을 한 것은 사실 정부가 자동차 부문을 국산화하는 프로그램에 착수했기 때문. 73년 정부는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업체들에 고유모델을 만들지 않으면 자동차 제조허가를 취소하겠다고 위협. 규제정책과 금융을 이용해 자동차 업체들에 국내생산부품 비율을 높이라는 노골적 압력과 암묵적 압력을 동시에 넣어서 국내 자동차 부품산업 발점을 꾀한 것임.

- 제지공장으로 시작했지만 성장을 거듭해 한때 세계 휴대폰 산업을 리드한 전력이 있고, 이제는 네트워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산의 주역이 된 노키아도 비슷한 성장역사를 거침. 60년 설립된 노키아의 전자부문이 이윤을 내기 시작한 것은 77년에 이르러서였고, 이미 안착해서 이윤을 내고 있던 노키아 그룹의 다른 기업들로부터 보조를 받는 한편 보호무역, 외국투자 규제, 공공조달 특혜 등의 도움을 받음
자국의 자유기업 체제에 대해 높은 긍지를 보이고 영웅적 기업가를 늘 칭송해 마지 않는 미국마저 현대경제에서 집단적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을 통해 발전한 나라다. 미국이야말로 유치산업론을 발명하고, 19세기부터 20세기초까지 자국 어린 기업들이 성장할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보호주의 장벽을 높게 둘러쳐서 우월한 외국제조업체, 특히 영국 제조업체로부터 자국기업을 보호한 나라다.
- 주목해야 할 부분은 2차대전 이후 미국 정부가 기초 테크로롤지 개발에 공공자금을 동원해서 기업들을 도운 사실이다. 미정부는 국리보건원을 통해 제약 및 생명공학 연구를 진행하고 자금을 댔다. 컴퓨터, 반도체, 인터넷, GPS, 터치스크린을 비롯한 정보화시대의 기초 기술이 미국 국방부와 군부의 국방연구를 통해 처음 개발됨. 이런 기술이 없었다면 IBM도, 인텔도, 애플도 없고 실리콘밸리도 없었을 것임.

- 개인의 비전으로 성공적 기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신화는 현대 경제학계의 담론을 장악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학의 근간이 되고 있음. 자본주의 초기에는 어느 정도 가능했을 수도 있는 시나리오다. 생산규모가 작고 기술이 단순한 시절이었기 때문. 그런 환경에서는 뛰어난 개인기업가가 큰 차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사실 그 시절에도 기업이 성공하려면 그냥 뛰어난 개인만으로는 부족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규모가 큰 생산, 복잡한 기술, 국제규모의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19세기 말 이후의 환경에서 기업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기업리더뿐 아니라 노동자, 엔지니어, 과학자, 전문경영인, 정부의 정책 입안자, 그리고 심지어 소비자의 노력까지 모두 포함됨.
한국과 이탈리아라는 국수에 집착하는 두 나라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살펴보면, 현대경제에서 기업은 더 이상 개인의 비전이나 노력만으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적 기업은 집단적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 맞물린 특허가 갑자기 새로운 문제로 등장한 것은 아님. 19세기 중반 재봉틀 산업의 기술적 진보를 마비시킨 것도 이 맞물린 특허문제였음. 당시 재봉틀 산업에서는 다들 특허권 침해로 서로를 고소하기 바빴다. 연관성이 매우 높은 기술들이 많아서였고, 이로 인해 기술발전이 가로막혀 있었음. 이 교착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1856년에 고안된 것이 특허풀이었다. 재봉틀 산업분야의 기업들이 핵심기술에 대한 특허를 모두 공유해서 새로운 기술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온 이 조치를 재봉틀 콤비네이션이라고 함. 연관성이 강한 산업분야에서 특허 풀을 운용한 예를 많다. DVD의 부호화와 압축방식의 국제적 표준인 엠펙2, 휴대전화 전파 식별태그인 RFID 등이 그 예이다.
- 어떨 때는 정부 특히 미국정부가 개입해서 특허풀을 만들기도 했다. 1917년 공중전이 강화된 1차대전 참전준비를 하면서 미정부는 당시 2개의 최대 항공기 제조업체인 라이트와 커티스를 포함한 항공산업부문에서 특허풀을 만들 것을 권장했다. 60년대에는 이미 반도체 초기 연구에 거의 전적으로 돈을 댄 미 해군이 TI와 페어차일드 사이의 특허풀을 명령했다.
황금쌀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맞물린 특허의 문제는 최근 더 많은 종류의 지식, 심지어 유전자 수준까지 파고들어가는 지식이 특허로 보호받게 되면서 더 심각해지고 있음. 이제는 과학자가 중요한 기술적 진보를 일구어 내려면 변호사 부대가 선봉대로 나서서 특허 덤불을 헤쳐 나가며 길을 터주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한때 기술혁신의 강력한 촉매가 되었던 특허제도가 이제는 큰 방해물이 되고 말았다. 

- 자유무역에서 자유라는 개념은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거래가 해당정부의 규제나 세금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자유무역 1기(19세기와 20세기초)에 자유무역은 거의 전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나라들, 다시 말해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 등으로 자국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박탈당한 나라들에서만 행해짐. 국가들 사이에 형식적 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인 현재의 자유무역 2기에서조차 자유무역은 모든 당사사에게 평등하게 혜택을 주지 못함. 국제무역 규칙이 강한 나라들에 의해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지고 시행되고 있기 때문. 
국제무역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이해하고, 자유라는 휘황찬란한 단어에 눈이 멀지 않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자유무역처럼 논란의 여지 없이 모든 이에게 좋은 거라고 여겨지는 것을 두고 왜 그토록 많은 논쟁과 갈등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임.

- 요즘 미국을 비롯한 부자나라 사람들은 바나나 리퍼블릭을 의류 브랜드 이름으로만 알고 있음. 하지만 이 표현은 원래 부자나라 거대기업이 가난한 개도국을 거의 완전히 장악했던 어두운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 이 의류 브랜드 이름은 무지에서 나온 것이지만, 굉장히 모욕적이고 불쾌하다. 커피 원두를 갈아주는 힙한 가게를 사탄의 공장이라 부르거나, 고급 선글라스 가게를 암흑의 대륙이라 부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사탄의 공장은 영국 산업혁명 초기에 노동자 착취가 심한 공장을 일컬은 말. 암흑의 대륙은 유럽인이 19세기이전 아프리카를 부르는 표현으로 유럽중심적 무지함이 배어 있다.)
- 결과적으로 다국적 기업이 진출한 나라에는 그 나라의 나머지 경제와 별도로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들이 이른바 스크루드라이버 오퍼레이션이라 부르는 조립작업만 하는 방식으로 섬처럼 존재하는 엔클레이브 현상이 벌어짐. 지역기업들에는 거의 하청을 주지 않고 대부분 수입된 부품을 완제품으로 조립하기 위해 그 지역의 값싼 노동력만을 이용하는 것. 이런 경우에도 얼마간의 혜책이 있을 수 있지만, 다국적 기업의 진출로 인해 거둘 수 있는 진짜 혜택(고급기술 이전, 선진적 경영관행, 더 나은 기술을 노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습득하고 훈련받을 기회 등)의 대부분은 현실화되지 않음
엔클레이브 경제의 가장 대표적 사례가 필리핀. 필리핀은 어찌 보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하이테크 경제를 가진 나라다. 세계은행 자료에 의하면 필리핀은 제조업 수출품목의 60%가 전자제품으로 이루어진 하이테크 제품으로 전 세계 최고수준. 이렇게 하이테크인데도 불구하고 필리핀 1인당 소득은 3500불에 불과해 미국 6만불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3만불에도 못미침. 이는 필리핀에서 수출되는 대부분의 전자제품이 엔클레이브에서 스크루드라이버 오퍼레이션을 하는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에서 생산되기 때문. 필리핀은 아마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되겠지만 개도국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들은 엔클레이브 안에서 스크루드라이버 오퍼레이션을 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다.

- 부자나라들에서조차 신자유주의 정책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부자나라들에서는 시장의 힘을 제어하고 규제하는 데 정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았던 혼합경제 시대보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기간에 성장률이 더 둔화하고 불평등이 더 늘어나는 한편 금융위기가 더 자주 발생했다. 
그러나 개도국들에서 운용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재앙에 가까웠다. 이 정책들이 그들의 필요에 특히 더 맞지 않았기 때문. 무엇보다 개도국들이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보호무역, 보조금, 외국인 투자규제 등을 주도하는 정부의 지원과 보호아래 자국 생산자들이 성장을 해서 생산성이 더 높은 산업부문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신자유주의 전통에서는 완전히 부인하기 때문.

- 좌파는 모든 사람에게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 생각. 그래서 개인마다 다른 필요와 역량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함. 반면 우파는 기회의 평등으로 충분하다고 생각. 그래서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개인간의 역량이 어느정도는 균등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함. 이것은 부모세대가 상당한 정도로 결과의 평등을 누려야 가능한데, 그렇게 되려면 소득을 재분배하고, 모든 사람에게 양질의 기초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장을 규제해야한다.
채식주의자에게 닭고기 기내식을 주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 생각하는 항공사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승객들의 여러가지 취향과 필요를 모두 맞추어 주는 다양한 기내식을 제공하지만 표가 너무 비싸서 극소수만 이용할 수 있는 항공사 또한 원치 않는다.

- 탈산업 사회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스위스는 사실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 정도가 높은 나라로, 1인당 제조업 생산량 세계 1위다. 메이드인스위스라 적힌 상품이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은 부분적으로 스위스가 작은 나라여서이기도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생산재라 부르는 기계, 정밀장비, 산업용 화학물질 등 우리 같은 일반 소비자가 접할 수 없는 물건들을 주로 생산하기 때문. 이른바 탈산업사회의 성공담으로 꼽히는 또 다른 나라인 싱가폴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산업화된 국가라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스위스 성공의 비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은행이나 고급관광상품이 아니라 세계 최강의 제조업 부문이다. 사실 초콜릿 분야에서 쌓은 높은 명성마자 제조업 부문의 혁신(분유발명, 밀크 초콜릿 탄생, 콘칭 기법 개발 등)에서 기인한 것이지 초콜릿바를 사는 데 은행이 복잡한 할부구매법을 제시하거나 광고회사가 멋진 광고를 하는 식의 서비스 산업 덕부닝 아니다.
스위스가 뜻하지 않게 롤 모델로 제시되는 탈산업사회 담론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고, 최악의 경우 실물경제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다. 그 주장을 믿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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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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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경제토픽

경제 2024. 12. 31. 07:28

- 일대일로 정책의 문제점
첫번째, 공급과잉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찾아온 세계경제 불황이 지속되었음에도, 지속적 투자를 통해 생산능력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중국경제 내에 만성적 디플레이션압력이 발생. 16년 출범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이유 중에 상당부분은 중국기업들의 저가공세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음. 미국 경제가 호황일 때는 중국산 저가제품이 인플레이션을 완화시키는 등 긍정적 측면이 있었음. 그러나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저성장 국면이 지속되자, 미국 사람들은 인플레이션 억제보다는 일자리 감소에 더 주목하기 시작. 트럼프 정부가 대중 관세를 부과할 때마다 지지율이 오르는 일은 이를 반증함.
두번째, 국가부채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정부 투자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 것.
가장 대표적 사례가 시주석이 17년부터 야심차게 추진한 슝안 신도시 프로젝트. 중국 정부는 슝안이 인류발전사의 모범도시로서 혼잡한 베이징을 대체할 것이라고 선언. 슝안 프로젝트에만 무려 835억불이 투입되었는데, 이는 세계 최대의 수력발전 용량을 자랑하는 중국 충칭의 싼샤댐 건설비용의 2배를 넘는 금액.
물론 슝안 프로젝트의 성패를 단언하기에는 이름. 홍콩 옆의 어촌마을 선전이 거대도시로 성장한 것처럼, 멋 훗날 슝안이 새로운 수도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현재까지는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슝안의 옥수수밭이 고속털도 기차역과 사무용 빌딩 그리고 주거단지 등으로 바뀌었지만 거리에 사는 사람은 보이지 않게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학이다. 22년까지 베이징에 위치한 4개 대학이 이전할 계획이었지만 슬그머니 제2캠퍼스 건설로 바뀐 모양새다.
- 4억 중국 베이비붐 세대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시절에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음. 교육의 부재는 정보화 시대에 경쟁력을 가질 수 없게 만들었는데요. 더불어 호구제도가 도농격차와 농촌 노인빈곤 문제를 심화시켰음. 부모세대의 가난을 지켜본 젊은 세대가 출산을 기피하게 되자 중국 내수경기는 끝없는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 우크라이나 경제가 15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만성적 정치적 혼란을 잘 이용하면 얼마든지 벨라루스 같은 위성국가로 만들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그럼에도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데에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반러감정이 높아진 것뿐만 아니라, 러시아 경제가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었던 것도 큰 영향을 미침. 러시아가 군사 강대국으로 주변 국가를 위협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이 높아지고 있었던 것
러시아 전쟁수행능력의 감소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신호는 인구감소. 러시아는 90년대 초 소련붕괴 이후, 총인구가 만성적 감소세를 보임. 유엔 인구전망에 따르면, 러시아 인구는 현재 1억 4500만명에서 2050년 1억 2000만명으로 줄어든다고함. 더 나앙가 러시아계  인구는 2010-2021년 540만명이 감소해, 러시아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8%에서 72%로 감소.
특히 러시아 인구를 크게 감소시킨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이었는데, 러이사 사망자수는 인도 다음으로 많은 수준인 것으로 추정됨.
- 문제는 젊은 남성의 사망과 해외이주가 신생아 출산 감소현상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것. 러시아 남성의 기대수명이 아이티 수준에 불과한데다, 출산율까지 급락하면 러시아 인구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간 내에 1억명을 하회할 수 있음. 그리고 지속적인 경제제재 속에 첨단산업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움
물론 전쟁 자체는 러시아의 승리로 끝날 수 있음. 24년 2월, 미국 상원이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부결시키는 등 아직도 서구세계는 전쟁은 남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에 승리한 들, 국경선을 이전보다 서쪽으로 조금 더 밀고 나갈 뿐 러시아의 미래는 바뀌기 어려울 것임.

- 독일 경제상황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교훈을 준다. 라이카와 자이스로 대표되는 세계 최고 광학기술의 나라가 ASML같은 거대 반도체 광학장비 회사를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90년 독일 통일 이후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느라, 너무 오랜 기간 동안 고금리 정책을 유지해 독일 기업들이 제때 투자할 수 없었던 것, 더 나아가 99년 유로화 시스템 출범 이후, 유럽경제통합의 혜택을 만끽하느라 방심했던 것, 11년부터 시작된 남유럽 재정위기로 독일정부가 엄청난 부담을 짊어진 것 등이 주요 원인

- 70년대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외국인 직접투자의 유입은 경제에 세가지 선순환을 일으킴. 가장 직접적인 효고는 고용증가로, 인도 성인 남성 실업률은 05년 8.6%에서 22년 4.9%로 떨어졌다.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각 가정의 소비가 촉진되는 것은 물론 자녀에 대한 교육도 늘어남. 외국인 직접투자가 유발하는 두번째 효과는 기술습득. 낮은 인건비와 저렴한 토지가격의 매력에 이끌려 투자를 결정한 기업들의 부딪히는 가장 근본적 문제는 숙련기술자의 부족문제. 이 때문에, 외국인 투자기업들은 현지에서 근로자를 채용할 때 신중을 기한다. 쉽게 직장을 옮기지 않을 것으로 보이면서도 상대적으로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을 채용.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술이전이 일어나게 됨. 물론 기술을 습득한 이들이 경쟁자로 변신할 위험이 있지만, 외국인 입장에서 신속하게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더 급하기에 이 문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음. 마지막 효과는 정부 재정능력 강화. 고용이 늘어나고 외국인 투자기업들이 이익을 내면,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금도 증가. 물론 전부가 늘어난 재원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벌어지기도 함.

- 14년 집권한 모디 내각은 강력한 인프라 투자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 칭찬밪을 만함. 인도를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연착이 일상화된 철도와 만성적 교통체증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선명함. 그러나 24년 완공된 델리-뭄바이 고속도로는 기존 12시간에서 6시간 내외로 수송시간을 단축시킬 것으로 기대됨. 특히 모디 정부는 향후 2년간 약 5217억불에 달하는 신규 인프라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11년 동안 인도에서 실시된 인프라 투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임

- 만성적 전쟁상태가 이어지고, 초정통파 유대교인들의 세력이 강화되는 상홍에서 혁신국가로서의 이스라엘 미래는 어두움. 48년 이후 이스라엘이 전쟁에 연전연승하고 지속적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 산업의 번영 때문. 74년 세계적 반도체회사 이텔이 하이파에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한 것이 결정적 계기.
도브 프로먼 인텔 부사장은 나치 독일의 초대 퓌러, 아돌프 히틀러에게 부모님을 잃은 경험이 있고, 73년 벌어진 중동전을 기점으로 이스라엘에서 여생을 마치기로 결정. 인텔은 프로먼 같은 인재를 놓칠 수 없다는 판단아래, 이스라엘에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하고 85년 반도체 공장을 건설. 특히 프로먼 부사장은 91년 걸프전 당시 이스라엘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중에도 본사의 철수권고를 물리치고 연구에 몰두했던 것으로 유명.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고조되는 반이스라엘 감정은 큰 문제임. 미국 유대인의 대부분이 도프 프로먼 같은 아슈케나즈계이기 때문. 중부 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을 아슈케나즈라 부르는데, 이들은 미국 유대인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 참고로 하레디의 주축은 남유럽과 중동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 분파인, 스파라드 및 미즈라흐계임. 혁신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만든 아슈케나즈계 유대인 입장에서 볼 때, 최근 이스라엘 정치 및 인구지형의 변화는 그리 달갑지 않다.

-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이어 리쇼어링 붐까지 겹치며, 미국 노동시장 여건이 크게 개선. 심지아 대만 TSMC는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결국 공장 가동을 연기하기도 했다. 물론 정보통신 분야의 일자리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음. 그러나 좋은 일자리가 생기면 주변에 연쇄적 고용붐이 발생. 애리조나 혹은 텍사스 같은 곳에 거대 반도체 공장을 짓게 되면 제일 먼저 물 문제가 부각됨. 깨끗한 물을 대량공급하는 문제 외에,, 사용된 물을 정화해 재사용할 수 있게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필수적임. 더 나아가 땅값이 싼 외진 곳에 주정부의 지원을 노리고 공장을 지었으므로, 새로운 도로와 공항 건설이 추가되어야 함. 대만과 한국에서 이주한 엔지니어들이 머물 숙소는 물론 자녀들이 다닐 학교도 지어야 하며, 만일의 사태를 위해 경찰서, 병원, 소방서 건설이 동시에 이뤄져야 함.
이 과정에서 주변이 많은 일자리가 생김. 미국 지리경제학자 엔리코 모레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도시 지역 320곳의 미국 근로자 110만명에 대한 분석에 기초한 연구결과, 대도시 지역 한 곳에서 첨단기술 일자리가 한 개 늘어날 때마다 장기적으로 다섯 개의 추가적인 일자리가 첨단기술 분야 밖에서 창출된다.

- 20년을 고비로 고용률이 급격히 높아진 이유
첫번째 요인은 경기회복. 코로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뿌린 것이 큰 영향을 미침. 한국은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뿌렸지만, 선진국 수요가 회복되며 수출이 살아났기에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음.
두번째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한국을 대표하는 거대 인구집단, 베이비붐 세대는 55-63년에 태어난 약 800만명으로 고도성장기의 과실을 고스란히 누린 이들. 특히 대기어이나 공공기관에 종사한 이들은 10년대 이뤄진 정년연장의 혜택까지 주렸기에, 어떤 세대보다 부유함. 그러나 아무리 정년을 연장한다 해도 60대에 접어듦에 따라 은퇴자들이 늘어나는 중. 
우리나라 고령자들이 예전보다 훨씬 건강한데다 고령층 내의 불평등이 심하기에, 한국의 고령자 고용률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36.2%에 이름. 그러나 고령자 대부분이 단순노무 및 농림어업에 편중. 즉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사무직 및 관리, 전문가 일자리의 문이 열린 것은 사실로 보임.
노동시장의 문이 활짝 열린 마지막 이유는 몇몇 산업에 파괴적 혁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데 있다. 
- 최근 베이비붐 세대가 경제활동을 중단하면서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급격히 내려가기 시작. 안 그래도 인공지능 혁명의 바람이 부는데, 기업들 입장에서 큰 행운이 시작된 셈. 따라서 기업들은 로봇을 비롯한 기계장비 투자를 세계최고 수준으로 늘리는 중. 물론 설비투자만큼 채용을 늘리지는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이는 정부정책 그리고 기술혁신의 방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 
이 대목에서 노동시장의 호황이 한국의 특수한 사정 때문이라면, 금방 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품은 독자들이 있을 수 있음. 그러나,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님. 주요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연령에 접어들고, 인공지능과 로봇 그리고 전기차를 비롯한 파괴적혁신의 출현에 대응해 글로벌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기 때문.

- 직관적으로 보기에 식료품 가격와 원유 가격 사이에 큰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음. 농산물은 기후변화 여건에 민감하며, 원유는 중동이나 미국, 러시아 같은 주요 산유국 상황이 더 중요할 것이기 때문. 그러나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이 도입한 바이오연료 보조금 제도 때문에, 농산물 가격이 원유가격을 추종하는 일이 벌어짐. 
휘발유를 대신해 사용되는 바이오에탄올은 주로 옥수수를 통해 만들어지며, 바이오디젤은 콩기름이나 유채기름 등의 식물성 기름을 원료로 만들어지며 경유를 대체.
그러나 휘발유 연비에 비해 바이오연료의 연비가 좋지 않기에, 국제유가가 쌀 때는 바이오연료를 최저레벨로 혼입하는 게 일반적. 반면 원유가격이 상승하는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바이오연료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 미국은 10%, 인도는 7.5%, 그리고 EU는 10% 상한까지 바이오 연료 혼입비율이 높아지며 자연스레 곡물 소비량도 증가. 이미 만들어놓았던 바이오연료 재고가 소진되고 곡물수요가 늘어나니, 당연히 곡물가격도 상승
자동차를 굴리는 데 들어가는 곡물의 양이 대체 얼마이기에 국제 곡물시장을 뒤흔드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다. 세계 최대 곡물생산국인 미국 옥수수 생산 중 약 35%이상, 그리고 콩 생산량 중 40% 이상이 바이오연료로 사용되고 있음. 그러나 이는 에너지 효율 면에서 매우 비효율적. 왜냐하면 콩이나 옥수수로 얻어진 바이오연료의 효율이 높지 않고, 또 이 작물의 생산에 투입되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 이를 학계에서는 에너지 수지비(EPR, energy profit ratio)가 낮다고 함. 
예를 들어 옥수수 생산에 투입된 에너지에 비해 바이오에탄올의 에너지 비율은 0.8. 제조에 투입된 에너지가 얻어지는 에너지보다 크다는 뜻이니 바이오연료 의무혼입제도는 에너지 낭비임. 그러나 각국 정치적 사정이 겹쳐 있는 탓에 이 제도가 폐지될 가능성은 낮음.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으로, 바이오연료 관련 보조금이 집중되는 곳은 일리노이, 인디애나, 아이오와, 캔자스, 켄터키, 미시간, 미네소타, 미주리, 노스캐롤라이나, 노스다코타 등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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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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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 인플레이션으로 침몰한 로마제국
로마제국에서도 황제가 주화발행권을 독점. 영어로 돈을 머니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여신 주노(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 아내 헤라)의 별칭인 모네타로부터 유래. 로마제국은 모네타 신전에서 독점적으로 주화를 제조.
지중해 주변국가를 정복한 뒤에도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군사비를 부담해야 했던 로마제국의 주요재원은 모든 거래에 일률적으로 1%씩 부과하던 물품세였다. 하지만 물품세만으로는 막대한 지출을 감당하지 못했고, 제국은 지속적으로 주화의 귀금속 함량을 낮추면서 재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최전성기였던 오현제시대(96-180)에도 재정 가운데 절반이 군사비로 지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도로건설 역시 실업병사를 구제하기 위한 대규모 사업이었음. 갈수록 은 함유량이 떨어지고 급기야 5%밖에 섞이지 않게 되어 실질적으로 은화가 동화로 바뀌었다고 하니, 재정난이 얼만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은 함유량이 적어지면 화폐의 가치가 하락. 이것을 현대적으로 바꾸어 말하면 지폐를 증쇄하는 것과 같으며 인플레를 초래하게 됨. 로마제국은 요즘 말로 장기 인플레이션으로 멸망한 것이다.

- 전략가였던 쿠빌라이는 페르시아만과 중국의 연안부로 이어지는 바다의 세계와 초원길로 이어지는 육지의 세계를 연결하는 유라시아 규모의 대상단을 갖추었고, 상단의 교역로를 자신이 건설한 정치, 경제도시인 대도(북격)까지 연결. 현재 중국 정부가 제창하는 일대일로 정책은 유라시아를 시야에 넣은 쿠빌라이의 상업전략을 모델로 한 것.
이 시대는 초원길과 바닷길을 연결하는, 유라시아의 육지와 바다의 간선이 서로 이어져 경제공간이 단숨에 확대된 경제의 약진기였다. 제노바,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상인은 육지와 바다를 통해 몽골 상업권에 진입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명의 마르코포롤가 유라시아 각지에서 교역을 하며 부를 축정. 이 부를 토대로 상인들이 지원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었다.

-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국지적인 몽골제곡은 영국 등 유럽세력에 의해 내부대립이 일어나 망하거나 또는 맞서 싸우다가 멸망했지만, 곳곳에 침투해 있던 유목제국의 틀은 잃어버리지 않음. 지금도 러시아, 중국, 서아시아에서는 군사우위 체제인 강권국가의 흐름이 이어짐. 18세기 초의 역사지도를 살펴보면 국지적 몽골제국이 병존했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음.
(1) 터키인이 지배하는 오스만 제국
(2) 무굴제곡
(3) 유목계 여진족(만주인)의 청제국
(4) 북쪽의 대삼림지대를 통합한 러시아제국
이 네개의 제국이 국지적 몽골제국에 해당.
청나라는 몽골인과 대립관계에 있던 만주의 유목민인 여진족이 세운 국지적 몽골제국이며, 러시아제국의 군대는 터키계의 카자크가 주력이었음. 따라서 폭넓게 보면 몽골인 대신 터키인과 여진족의 군대가 아시아 세계를 거의 이등분한 셈. 광활한 영역을 지배한 유목민의 노하우와 군사력이 계승된 것임.
영국 등 유럽세력이 각 제국을 정복한 뒤 지속적으로 쇠퇴해가던 러시아와 중국에는 사회주의가 유입되었으며, 이후 사회주의는 변질되어 힘을 잃어버렸고, 전통적인 강권체제가 부활. 2차대전 종전 후 민족간 대립과 사회주의 흐름이 거세지며 한때 유라시아 구세계가 일신된 듯 보였다. 하지만 리먼쇼크 이후 구미세력이 후퇴한 후 유라시아에서 전통사회가 급격하게 부활하고 있으며, 서아시아, 중국, 한반도 등에서 낡은 사회가 되살아나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 염격한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이 15세기 말 유대교도 추방령을 내리자, 추방된 유대인의 일부가 암스테르담으로 이주. 그들이 지중해 경제권에 확대되었던 이슬람의 어음제도를 정착시킨 것이 네덜란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됨. 해운에 필요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게 됨.
산란을 위해 찾아오던 청어가 오지 않게 되면서 어획량이 줄어 소금에 절인 청어를 유럽에 공급할 수 없게 된 한자동맹의 맹주 뤼베크를 대신하여 네덜란드는 북해에서 유망으로 잡은 청어를 소금에 절여 유럽 전지역에 판매. 이것으로 경제발전의 발판을 만들었고, 조선업, 해운업, 상업, 출판, 금융등을 통합하여 단숨에 경제를 성장시캄. 

- 상선을 대규모로 움직여 상업활동을 하자면 당연히 화폐가 대량으로 필요했는데, 유대인이 도입해온 어음거래와 암스테르담 외국환은행 덕에 부족한 화폐문제가 해결됨. 암스테르담 외국환은행이 계좌에 화폐를 기호화하여 상거래를 하면서 예금이 통화로 인정받게 된 것임. 세계 최초 예금통화의 출현이다.
네덜란드 조선업이 번성한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된 사순절의 단백질원으로 애용되던 청어에 이르게 됨. 14세기 경에는 산란하기 위해 발트해 입구 덴마크령의 좁은 해협으로 대대적으로 몰려들었다. 이것을 뤼베크 등 한자동맹의 상인들이 잡아 소금에 절인 뒤 나무통에 담아 유럽 각지에 판매하여 큰 이익을 올림. 그런데 그 청어가 덴마크령에 몰려오지 않게 되었고, 15세기 이후 청어 어장이 북해로 옮겨감. 1-3월 북해 서부 어장에서 수많은 네덜란드 어선이 유망으로 청어를 포획. 청어는 선상에서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이나 식초에 절이는 등 가공되어 유럽각지로 보내졌고, 네덜란드인은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 해상에너슨 대항해시대 이후, 영국의 왕이나 귀족은 뱃사람에게 특허장을 주고 사략선에 태워 대서양을 왕래하는 스페인의 은수송선을 습격하게 했고, 스페인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사략선 활동을 위해서는 대형선, 무기, 선원, 자금뿐 아니라 뱃사람이 포로가 되면 석방을 위해 힘써주는 후원자가 필요. 간단하고 빠르게 고수입을 올릴 수 있는 합법적 해적이었던 것이다. 사략선은 평균 3000-4000파운드의 수입을 올렸는데, 그중 5분의 1이 선장의 몫으로 돌아갔고 잔액은 후원자인 귀족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후원자에게는 그야말로 불로소득이나 마찬가지. 영국의 지배층은 모험성과 약탈성을 띠게 된다. 
1588년 해적행위를 되풀이하는 영국을 제압하기 위해 스페인은 배 130척 선원 1만명, 육상병력 19000명으로 구성된 그랜드 아르마다(무적함대)를 파견했지만, 도버해협에서 드레이크가 이끄는 영국 사략선과 해군에 거의 괴멸됨. 이것이 이른바 천하를 겨루는 결전이 된 아르마다 해전이다. 그 결과 해상패권이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넘어감.

-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의 자멸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패한 이유는
(1) 지휘관인 귀족이 해전을 지휘한 경험이 없었고,
(2) 주로 대형함선으로 구성되어 움직임이 둔했으며,
(3) 계속 폭풍이 부는 등 기후조건이 나빴다는 점을 들 수 있음. 여기에 스페인 재정이 악화되어 함선을 제대로 보강하지 못한 점도 패배를 초래한 중요 이유였음.
대항해시대 이후 스페인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 불렸으나
(1) 신대륙에서 들여온 방대한 은이 오스만제국과의 전쟁, 네덜란드 독립전쟁, 30년 전쟁 등의 군비를 충당하느라 국외로 유출되었고,
(2) 유대교도 추방령으로 경제능력이 높은 유대인을 국외로 추방했으며,
(3) 신대륙에서 대량의 은이 유입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국내산업이 쇠퇴했고,
(4) 거래를 할 때마다 세금을 징수하는 아르카바라 라는 소비세로 민중의 삶이 피폐해졌다.

- 국민이 보증하는 빚은 믿을 수 있다.
현재 정부와 정부기관이 발행하는 채무를 소버린 본드라고 총칭함. 국왕이 전쟁 등 긴급한 사태가 발생하면 금융업자나 상인에게 돈을 빌리고 툭하면 떼어먹다보니, 왕의 보증은 신용도가 낮았고 상인들은 핑계를 대며 빌려주기를 거부했다. 그런데 명예혁명으로 주권이 의회로 옮겨지자, 국왕의 빚이 국가의 채무로 바뀜. 국왕이 아니라 의회가 채무반환을 보증함으로써 주권자인 국민이 납부하는 조세로 확실하게 채무를 상환하는 구조가 된 것. 이로써 국채는 빚의 상환을 확약하는 증서로서 화폐처럼 취급받게 됨.
영국이 해군을 증강하고, 백년에 걸쳐 프랑스와 벌인 패권다툼(2차 백년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시에 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 매일 설탕을 넣어 마시는 커피와 홍차는 자본주의경제와 밀접하게 관련 있음. 가장 처음 설탕이 세상에 나왔고, 설탕 수요를 늘리기 위해 커피와 홍차 등 기호품 문화가 잇달아 육성되었음.
영국은 국제 경쟁력이 낮은 카리프해 설탕산업을 육성하기위해 국내에서 설탕판매를 보호하는 정책을 폈다. 1600년 국민 1인당 설탕 소비량은 연간 400-500그램이었는데, 17세기에는 약 2키로, 18세기에는 약 7키로로 격증. 하지만 설탕은 보호관세 등으로 높은 가격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조미료로서는 수요에 한도가 있었다.
설탕상인은 증산되는 설탕의 판로를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기호품 문화를 육성. 설탕 수요를 늘리기 위해 파트너로서 최초로 선택된 기호품은 커피로,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이며 이슬람 세계에서 즐겨마시던 것이었다. 커피판매는 네덜란드가 선도하고 있었으므로, 영국은 청나라의 홍차와 아메리카 대륙의 카카오 등도 기호품으로 유행시켰다.

- 홍차로 반격을 도모한 영국
커피는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이며 아라비아반도 예멘의 항구 모카에서 유럽으로 수출됨. 그 뒤 커피는 각지에 이식되었는데, 처음에는 이슬람 세계를 통해서만 수입할 수 있었음.
네덜란드는 1640년대에 모카와 암스테르담 간의 커피무역을 정기적으로 진행했다. 그 뒤 네덜란드와 영국간에 벌어진 커피무역 경쟁에서 네덜란드 상인이 이겨싿. 네덜란드 상인은 생 커피콩이 반출되던 남인도에서 커피 묘목을 몰래 가져와 식민지인 자바섬에 심고, 주민들에게 강제적으로 커피를 재배시킴. 18세기 초에는 세계 제일의 커피상이 되어 막대한 이익을 올림.
한편 경쟁에서 패한 영국은 청나라 홍차에 주목. 영국 동인도회사는 왕실에 홍차를 들여 모닝 티 등 귀족의 홍차문화를 만들어냈고, 이것을 젠트리, 서민, 식민지에 보급해 홍차산업을 대규모 비즈니스로 육성.
설탕은 지금도 우리 생활에 깊이 침투해 있으며, 청량음료, 과자, 가공식품에 첨가되어 있다.

- 미국 독립전쟁은 본국의 생활양식으로부터 자립하는 전쟁이기도 했다. 영국 상품과 생활양식을 거부하던 식민지 사람들은 홍차를 영국적 생활의 상징으로 여겨 마시지 않았다. 대신 홍차를 닮은, 연하게 추출한 커피를 마셨기 때문에 미국에서 대량으로 커피가 소비되었고 이것이 브라질 커피산업을 발달시킴.
에스프레소로 대표되듯, 유럽에서 커피란 어떻게 볶느냐가 중요한 향기좋은 음료였다. 하지만 갑자기 고안하여 홍차처럼 만든 미국커피는 그렇지 않았다. 이 점에 착안하여 미국에 커피 본래의 향기를 즐기는 문화를 보급하려 나선 기업이 스타벅스다. 독립전쟁으로 인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생겨난 아메리칸 커피를 몰아내고 스타벅스가 크게 번창한 것은 당연한 흐름. 스타벅스 회사명음 멜빌의 백경에 등장하는 냉정한 일등항해서 스타벅스의 이름을 따옴.

- 기술혁신과 콘드라티예프 파동
산업혁명기의 경제성장률은 높은 시기에 2%, 평균적으로는 1.3%에  불과했다. 산업혁명은 100년 이상에 걸쳐 농업을 대신하여 공업이 경제의 중심에 서고 기술혁신에 의해 (1) 생산성 향상, (2) 생산량 증가, (3) 생산분야 확대 등이 축적된 과정. 
초기 산업혁명을 출발점으로 삼아 약 50년 주기로 기술이 변화했다는 주장을 전개한 사람은 러시아 경제학자 콘드라티예프다. 이에 따라 약 50년마다의 변화를 장기파동이라 부름.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은 학자마다 차이가 있지만, 세계사의 관점에서 공업의 변화를 고찰할 때는 이렇게 크게 묶어 보는 것이 필요함.
(1) 제1파동(1780-1840) : 산업혁명
(2) 제2파동 (1840-90) : 증기기관과 철도
(3) 제3파동 (1890-1940) : 전력과 철망
(4) 제4파동 (1940-90) : 대량생산과 자동차
(5) 제5파동 (1990-) : 정보통신

- 산업사회를 궤도에 올린 철도
기계로 면포를 생산하게 된 것은 섬유산업 내의 사건에 불과. 하지만 소형화된 증기기관을 장착한 기관차가 발명되고, 새로운 교통기관인 철도가 보급된 것은 자본주의 경제를 성숙시키고 세계적 규모로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철도 건설은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고 다방면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이기 때문에 지구 규모로 대규모 경제성장이 일어남. 또한 속도가 빠르고 안정된 교통수단인 철도는 세계의 연결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음. 유럽을 중심으로 집중되는 체제가 완성되었고, 자본주의 경제가 지구화되었다. 철도건설은 세계를 지구규모로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팍스 브리태니카라는 영국의 경제패권을 초래

- 지정학은 유럽각국의 대립이 격화되던 19세기 후반에 생김. 러시아와 세력을 다투던 영국에서 역사와 지리를 통합하여 지리조건이 국가에 미치는 정치적, 군사적영향을 지구적 관점에서 고찰하는 지정학이 출현.
영국의 지정학자 매킨더는 세계를 (1) 해양국가 영국과 대항하는 육상제국 러시아의 세력권인 유라시아 가장 깊숙한 지역인 하트랜드(핵심지역), (2) 해상패권으르 지닌 영국과 육상패구너을 보유한 러시아가 접촉하는 중국, 동남아, 인도, 서아시아, 동유럽 등의 림랜드(주변지역), (3) 일본, 필리핀 등 해양국가에 물자를 보급해주는 힌터랜드(배후지역)로 분류하여 고찰하고, 하트랜드를 장악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보았다.

- 부를 불러들인 파운드 지폐
세계 토지와 인구의 4분의 1을 지배하는 패권국가 영국은 세계 경제를 지배하기 위한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영국은 유럽의 은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고가의 금을 본위화폐로 삼는 국제 금본위제를 확립하고, 언제라도 금과 교환된다는 원칙 아래 대량의 파운드 화폐를 발행. 이는 4000년 동안 이어져온 은화의 시대를 지폐의 시대로 전환한 금융사상의 중요한 혁신이다.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0-71) 뒤 유대계 은행이 경제를 지배하던 독일이 금본위제를 단행하면서 은본위제에서 금본위제로 전환하는 세계적 흐름이 생겼으며, 미국과 일본도 그 흐름에 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계에서 발굴된 금은 전부 모아도 올림픽 수영장 3개반에서 4개 정도 분량밖에 되지 않으므로, 파운드 지폐를 전부 금으로 교환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으며 그럴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닥치면 확실하게 대응하여 언제라도 지폐를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게 하면 사람들은 굳이 보관하기 힘든 금으로 교환할 생각을 하지 않는 법이다.

- 파운드가 세계를 움직이는 시대
영국의 통화단위 파운드는 정식으로는 파운드 스털링이다. 파운드는 본래 고대 로마의 무게단위이며 스털링 실버는 순은을 의미. 중세 영국에서 고대 로마가 은 1파운드로 240개의 은화를 만든 것을 본떠서 은화가 주조된 것이 유래다. 요컨대 파운드라는 명칭은 이전에 영국에서도 은화가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줌. 영국이 금본위제로 전환한 것은 명예혁명 뒤의 일이며 유럽대륙에서 은 가격이 폭등한 것이 그 배경. 영국의 은화가 녹인 지금의 형태로 유럽대륙으로 유출되는 상황속에서 조폐국 장관이 된 뉴턴은 금화중심의 통화제도를 발안.

-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 뒤인 1816년 화폐법을 제정해 금본위제를 확립하고, 1821년에는 금과 교환할 수 있다고 명기한 파운드 화폐를 발행했다. 당시에는 경제규모가 비약적으로 확대되어 은화를 제대로 공급할 수 없었기에 금으로 가치를 보증하는 화폐의 발행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필요한 일이었다. 영국의 파운드 발행은 이런 시대의 요청에 부응한 결과이기도 했다.
영국은행의 통화발행량은 보유하는 금에 1600만 파운드를 더한 금액으로 제한되었기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경제성장에 대응할 수 없게 됨. 당시 영국은행의 금보유고는 1000만 파운드 이하였다고 하니 어렵게 금본위제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영국에게 반세기 뒤처져서 1871년 독일, 1873년 미국, 1879년 일본이 금본위제로 이행. 1900년에는 세계 주요국 대부분이 금본위제로 바꾸었으며, 부족한 금 보유고는 갈수록 큰 문제가 되었다. 영국은 세계의 은행으로서 방대한 양의 금을 장기적으로 빌려주었으며 투자활동으로 전 세계에 파운드를 퍼뜨렸기 때문에 금이 부족한 상황은 상당히 중대한 문제였다.

- 미국서부에 급속하게 철도가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은 영국 자본의 투자 덕분이었다. 대불황으로 투자할 곳을 잃은 영국 자본이 신흥국 미국으로 몰렸던 것. 유럽 자본의 창구가 된 것은 유럽에 금융제국을 구축한 로스차일드의 미국 대리인을 맡은 JP모건이었다. 모건은 외국자본을 이용하여 미국 최대 재벌이 됨
또한 투자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영국의 투자가에게 철도 등 미국기업의 경영정보를 제공하는 회사가 필요해졌고, 1870년대에 미국 철도채의 신용평가를 시행하는 신용평가회사가 등장. 20세기가 되자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등 신평사가 성장. 미국에 유럽에는 없는 증권, 국채 등의 신용평가를 하는 대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미국경제의 대영종속의 흔적이며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 보통 지폐는 은행권이라 불리고 금과 교환되는 것이 원칙이나, 미국지폐는 연방준비권이다.
은행권과 준비권의 차이는 무얼까? 단지 말의 뉘앙스가 다른 듯한 느낌이지만 연방준비권은 (1) 금의 보증이 필요없고, (2) 국채구입에 충당된다는 특징을 지님. 지폐를 발행하는 연준에 정부는 출자를 하고 출자자는 모두 민간 금융기관이다. 통화발행에 대해 미국정부는 발언권을 갖고 있지 않고, 민간은행이 이자가 붙은 정부의 국채를 매입하는 형태로 준비권을 발행. 정부로부터 이자를 받고 있다는 점이 미국 통화인 달러의 특징이다.

- 전쟁의 국면이 연합국의 우위로 기울어진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개최된 연합국 45개국 재무, 금융담당자 회의에서 금 1온스가 35불로 정해지고, 금달러본위제(브레튼우즈체제)가 성립됨. 이로써 달러만이 금과 교환될 수 있는 유일한 통화가 됨. 달러에 의해 각국 통화가치가 결정되는 고정상장제를 채택. 엔은 1달러 360엔으로 고정되었다.
각국 통화는 금과 교환할 수 있는 유일한 통화인 달러와 교환함으로써 비로소 금과 바꿀 수 있게 됨. 파운드를 포함한 각국의 통화는 달러의 분신처럼 됨. 최대 금융국가였던 영국은 미국과의 통화전쟁에서 패배.
미국은 19세기 영국중심의 식민지 체제를 절대적인 힘을 지닌 자국의 경제에 유리한 단일 세계체제로 바꾸려는 계획을 세움. 기존의 식민지가 비즈니스에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 미국은 (1) 국민국가를 단위로 구성된 국제연합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의한 정치적 지배와 (2) 달러에 의한 세계 경제시스템의 일원적 지배로 패권을 차지했다.

- 유로달러로 영국금융이 부흥하다.
세계의 여러 통화 가운데 유일하게 금과 태환할 수 있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은 고정상장제는 불과 25년 밖에 지속되지 않음. 미국경제가 절대적 우위를 잃었기 때문. 달러와 금의 교환이 정지된 71년 이후 세계경제는 미국 경제가 허약해지면서 불안정한 상황에 놓임.
미국은 50년대 한국전쟁과 60년대 베트남전쟁을 치르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군사기지를 유지하며 재정적자가 확대됨. 67년에는 미국 채무가 금 준비금 1.5배까지 확대되었고,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짐.
한편 세계화가 진행되며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업들이 증가했는데, 이런 기업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런던 시장에서 이익을 운용했기에 미국에는 이익이 돌아가지 않음. 이런 자금이 유로달러다.
19세기 이래 국제금융을 움직여 온 런던은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피폐해진 것뿐이었다. 런던은 유로달러 시장으로서 끈질기게 금융력을 되찾았고 국제금융센터로서 뉴욕을 넘어서게 되었다.

- 제조부문을 중국으로 이전한 미국
85년 플라자합의 이후 큰 폭의 달러약세로 되살아난 미국은 90년대 후반 클린턴 정권하에서 금융제국 쪽으로 키를 틀더니 돌변하여 달러 강세정책을 취함. 월가는 변동상장제와 IT기술을 조합하면 금융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90년대에 금융을 급격하게 팽창시킴. 미국은 전 세계의 자금을 모으기 위해 대담하게 고금리 정책으로 전환.
IT혁명과 나스닥 혁명의 조합으로 인플레이션을 동반하지 않는 호황이 이어진다는 신경제이론이 제창되었고, 금융을 주도하여 미국경제를 재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짐. 그때까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던 민주당은 클린턴 정부 하에서 월가와 함께 화폐로 화폐를 증식시키는 카지노 자본주의의 길을 선택. 견실한 제조업에서 금융으로, 즉 일확천금을 버는 길로 미국경제를 바꾼 것.
미국에서는 금융제국화와 경제의 공동화가 앞뒤로 진행되었고, 자동차, 철강 등의 공장이 노동력이 저렴한 아시아로 대규모 이전. 21세기가 되자 IT산업까지 중국에 집중됨. 이런 경향은 80년대부터 가속화됨. 2000년이 되자 미국은 기업수익의 45%를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데 반해 제조부문은 불과 5%에 지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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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카고 경제학 및 프리드먼의 주장이 갖는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프리드먼은 불평등의 상당부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고 무시.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가를 즐기는 것을 선호한다. 어떤 사람들은 후손을 위해 저축하고 축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른 어떤 사람들은 당장 즐거움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종류의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유혹은 미덕에 불이익을 주고 악덕을 보상하는 것이라고 설명. 그는 기회의 평등을 믿었지만, 상속세에 대해 미덕에 과세하고 낭비적 지출을 조장하는 나쁜 세금이라며 강력히 반대. 17년 3명의 노벨상 수장자를 포함해 727명의 경제학자가 이 주장을 지지했으며, 프리드먼이 그전에 직접 쓴 서한에도 서명했다. 많은 경제학자가 같은 이유로 부유세가 악덕을 조장하고 미덕을 저해한다고 믿으며 반대하고 있다. 프리드먼은 국가간 조세감면 경쟁을 좋아했고, 조세피난처를 지지했다. 정부의 과세권한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리고 그는 결과의 불평등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자유를 억압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더 큰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반복해서 주장. 자유시장에 맡겨두면 자유와 평등이 모두 실현될 것이라는 견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제약사 퍼듀파마의 새클러 가문이 수십만명의 미국인을 죽인 오피오이드 유행을 조장하면서 140억불 이상을 스스로에게 지급하는 세상을 맞이했다. 밴드와 베이비파우더를 제조하는 존슨앤존슨은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헬만드 지방에서 탈레반의 헤로인 공급지를 폭격하는 동안 호주 태즈매니아에서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를 재배하여 오피오이드 유행에 기름을 부었다. 사모펀드 회사들은 구급차 서비스를 사들이고 병원 응급실에 자체 의사들을 배치해 환자의 의료보험에 포함된 병원에서조차 깜짝 요금을 청구함으로써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응급실 및 수술실의 깜짝 요금은 22년 1월부터 없어졌지만, 구급차 서비스에 대한깜짝 요금 청구는 계속되고 있다. 구급차가 필요한 경우 더 나은 조건의 서비스를 찾거나 가격을 흥정할 상황이 못된다. 대신 무력한 피해자가 되어 범죄자에게 꼼짝없는 희생양이 될 뿐니다.
- 사모펀드들은 실패한 기업을 계속해서 인수하고, 사법부의 허가(아마도 경제학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판사로부터)를 받아 근로자의 계약상 의료혜택과 연금을 박탈하고 남은 회사자산을 매각하고 있다. 물리적 회사자산은 효율성을 회복하는 반면, 근로자의 손실은 효율적인 시장이라는 더 큰 정의를 위해 희생된다. 부실기업을 인수하여 기업 수익성을 회복시키는 사모펀드의 정당한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합법적인 역할은 시장이 경쟁적일 때 작동하는 것이지, 사모펀드가 활개치는 병원, 구급차, 심지어 교도서 등에서는 아니다. 또한 사모펀드가 특정 지역의 매장을 대량으로 매입하여 지역 독점을 형성하는 때도 마찬가지로 효과적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 미국은 저학력자와 고학력자 사이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고, 물질적 차이가 관계적 불평등으로 번지고 있다. 앤 케이스와 나는 임금, 노동시장 참여, 결혼, 사회적 고립, 고통, 자살, 약물사망, 알콜 중독에서 그룹간 차이를 분석하고 논문으로 발표했다. 저학력자들에게 교육받은 엘리트를 위해 싸우라고 하는데 누구와 언제, 어디서 싸울지는 엘리트가 결정한다. 저학력 군 복무자들은 엘리트의 자녀들, 즉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군복무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대신 싸우고 있다. 우리는 이런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복무하던 시절의 사회적 연대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심을 잃어버렸다. 미국의 위대한 경제학자 중 한사람인 로버트 솔로는 41년 하버드 학부과정을 마치고 이등병으로 입대했다. 군에 가지 않았더라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다양한 미국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쌓은 경험이 어떻게 그의 인생에서 가장 훌륭하고 중요했는지 그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면서도 유익하다. 그의 경험은 오늘날 미국의 특징인 양극화와 상호이해 부족에 대한 해법을 제공한다. 

- 은행가나 기업 임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연봉을 받는 다른 사람에 대해 일자리 창출과 고액납세, 삶을 변화시키는 상품 및 서비스 제공 또는 놀라운 발명 등을 통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일시적으로 설득할 수도 있다. 이런 낙수효과 주장에는 표면적 타당성이 있지만 08년금융위기는 이것이 사기임을 보여줌. 금융위기가 발생한 뒤 은행가들은 엄청난 부를 가지고 떠나갔지만, 많은 보통사람들은 직장과 집을 잃었다. 나는 이제 낙수효과 논리가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22년 10월 리즈 트러스가 이끈 영국 과도정부는 확실히 낙수효과를 믿은 것으로 보였다.
소득 불평등이 극심한 사회에서는 종신재직권을 얻는 것, 파트너가 되는것, 최고병원에서 치료받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녀가 일류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비롯한 모든 것에서 심각한 이해관계가 걸린 일종의 시험을 거치게 됨. 불평등한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부정행위도 보상받을 수 있고, 더 불평등할수록 더 많은 보상으르 받는다. 모든 사람이 부정행위를 한다고 여길 때는 누구도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우리는 최근 대학에서의 입학부정 스캔들을 확인한 바 있다. 학부모들이 수만에서 수십만 달러의 돈을 주고 시험성적을 조작하거나 학생 선발권이 있는 운동 코치에게 뇌물을 주어 자녀들을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키려 한 것이다. 예일대에도 그런 사건과 관련된 곳 중 한 곳이며, USC도 운동코치 관련은 아니지만 연루되었다.

- 고통 혹은 위험이 없는 방식으로 연금기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는 힘들다. 사람들은 대개 근시안적이고, 특히 정치생명은 인간수명보다 짧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더 그렇다. 증권시장이 매혹적이기는 하지만 일반 사람들의 운명을 증권시장의 변화에 맡겨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세상에 마법의 해결사는 없기 때문. 개인이 경제성장의 덕을 일정부분 볼 수 있지만, 연금관리는 집단 체제하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사악하지만 정보가 더많은 정치인과 관리전문가들이 모든 위험을 은퇴 후 생활이 불안한 개인에게 전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 최근 증권보다 훨씬 위험한 비트코인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업계 부추김에 못 이겨 바이든 행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페어팩스카운티의 퇴직연금은 22녀 비트코인에 투자되었다.

- 경제학도 변화의 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다양성이 필요. 그러나 대다수가 소수의 대학에서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면 그런 다양성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임. 소수 상위권 대학의 교육과 상위 5대 학술지의 기준을 해외로 확산시키는 것은 구세계의 최악의 잘못을 방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제학을 획일화시키고 미래 경제학 발전의 밑거름이 ㅗ될 수 있는 다양한 접근법을 제한할 위험도 있음. 비정통 경제학은 그 자체로 위기에 처해 있다. 조지 스티글러는 좋은 경제학자는 보수적이라고 주장한 논문에서 노동가치설을 신봉하는 사람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그의 급진적 생각 때문이 아니라 채용 심사자들이 그 사람이 똑똑하면서 동시에 정직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미국의 채용위원회라면 그가 노동가치설을 연구해서 무엇인가 배운 것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경제학에 대한 그런 단선적 사고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독일 혹은 영국의 외부 평가위원들은 평가지표, 영향지수, 인용빈도 등을 근거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보통의 시절에도 교육수준과 상관없이 자살, 약물과다복용 및 알콜 중독으로 인한 사망은 늘 있었음. 사실 20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자살이 더 흔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매년 약 10만명에 이르는 절망사로 인한 사망의 증가는 대학 학위가 없는 사람들에 국한된 것임. 마치 학위가 없으면 열등한 지위를 나타내는 주홍색 배지를 착용하는 것과 같음. 자살도 이제는 학위가 없는 사람들, 즉 그 배지를 착용한 사람들 사이에서 더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죽음은 절망이라는 긴 여정의 종착점이다. 시작점은 4년제 대학학위를 자지지 않은 사람들을 좋은 일자리에서 점점 더 배제하는 노동시장이다. 4년제 대학 학위를 가지지 않은 비노령 성인의 고용률은 지난 반세기 동안 남성의 경우 계속 감소해 왔으며, 여성도 2000년 이후부터 감소. 노동시장 참여율은 호황기에 증가하고 침체기에 다시 감소하지만, 다음 호황기에서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이전 최고점에 도달하지 못함. 실질임금도 마찬가지. 추세적으로 하락하는 큰 움직임 속에서 부분적으로 상승하고 하락하고 있다. 교육수준이 낮은 남성의 임금의 일자리가 많았던 팬데믹 호황기에 상승하면서 크게 주목받았으나 그들의 구매력은 80년대으 어떤 시기보다 낮았다.
- 절망사가 증가한 가장 큰 부분은 마약성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것. 이에 대해서는 제약사들의 책임이 크다. 초기 마약성 진통제 사망은 이익을 추구하는 제약사들이 사람들을 중독시킴으로써 시작된 것. 제약사는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고 이는 그들의 삶이 더 무질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마약확산은 사회적 혼란과 붕괴가 일어난 장소화 시기에 발생했다. 제약사와 유통업체는 마약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지원과 비호를 받기도 했다. 미국 정치에 돈은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의 이익과 선거자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간혹 선거자금을 선택할 정도임.
지금 자살률은 과거 지구상 최악이었던 사회 수준으로 증가. 그런 사회의 자살률은 옛 소련과 그 위성국, 그리고 중국여성, 특히 중국 농촌지역의 여성 자살률을 말한다. 이들 국가에서도 이제 세계 전체와 마찬가지로 자살률은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인, 특히 교육수준이 낮은 미국인의 자살률은 부끄럽게도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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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에서 위기의 규모는 상당히 컸지만, 경기침체는 V자 모양으로 전개되었다. 99년부터는 2세대 외환위기이후로 유럽에서 그랬듯이, 그리고 유럽에서와 비슷한 이유로 급격한 침체가 지나고 경기가 빠르게 회복됨.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한 것이 수출경쟁력을 크게 강화해, 경상수지가 크게 개선되면서 경기회복을 뒷받침. 그러나 유럽과는 달리 아시아의 신흥국들 중 일부에는 구제금융을 지원할 필요가 있었다. 바로 이런 사실이 아시아 지역의 금융위기가 유럽보다 훨씬 파괴적이었다는 것을 말해줌.
역사 전반을 통틀어 외환위기의 충격이 한 나라에만 국한된 경우는 거의 없다. 라틴아메리카, 유럽, 아시아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주변국들이 비슷한 운명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가들이 때로는 무역을 통해 서로 통합된다는 사실로도 외환위기의 지역적 특성을 설명할 수 있음. 한 국가의 통화가치를 극심하고도 빠르게 떨어뜨리는 위기는 이웃한 국가의 경쟁력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침. 또한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가일수록 비슷한 재화와 용역을 수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들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관계에 있으며 동일한 세계 공급사슬에서 한 부분을 차지함. 따라서 어느 한 국가가 자국 통화에 대하여 대규모 평가절하를 단행하면, 다른 국가도 수출경쟁력을 유지하려고 평가절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이웃한 국가들이 비슷한 문화와 언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들이 비슷한 경제구조, 제도, 정책뿐만 아니라 비슷한 약점까지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아시아 금융위기는 아시아 전역에서은행부문에 대한 전반적 신뢰가 부족해 널리 확산되었을 수도 있다. 
3세대 외환위기가 주는 중요한 교훈은 어느 한 국가에서 발생한 충격이나 위기가 다른 국가로 확산하는 전염성을 띠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시아 금융위기는 남미 지역에서 대규모 자본유출을 불러왔다. 남미 지역경제가 아시아 지역경제와 구조족으로 다르고,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으며 단계적 통로역할을 하는 무역 혹은 금융 관련 연결고리가 거의 없었는데도 말이다.

- 3세대에 걸친 외환위기는 정책입안자에게 다양한 교훈을 남김. 먼저 1세대 모델은 과도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 80년대 라틴아메리카 국가처럼 경제의 기초조건이 취약할 때, 투기꾼들은 경제붕괴를 예상하고 그 나라의 통화를 대량으로 매도하려고 했다. 2세대 모델은 92년 유럽 환율 메커니즘 위기에서 알 수 있듯이 고정환율 유지와 고용유지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투기꾼들은 정책입안자의 의지를 시험하면서 외환위기를 일으킬 수 있었다. 따라서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국가들은 경제의 기초적 여건이 건실해 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교훈은 3세대 모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바로 전염성이다. 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가 널리 퍼진데서 알 수 있듯이 투자자들은 신흥시장에서 핫머니를 빠르게 유출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신흥국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취급할수도 있기 때문에, 정책 입안자들은 자국경제가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무분별한 매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차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 IMF 보고서에 따르면, 무너진 경제가 장기적으로 회복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에는 폭락이후로 10개월이 상당히 중요. 이 보고서는 정부가 느리게(4년 혹은 그 이상) 행동했을 때, 국민이 겪는 고통이 컸다고 전한다. 일본은 행동하는 데 8년이 걸렸다.
정부와 재무성이 신속하게 행동하지 않은 원인은 비공식적이고도 관계에 기초한 규제관행으로 상황의 진정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유령회사와 계열사로 부실대출을 넘기는 방식으로 장부를 꾸민 경우도 있었다. 은행이 부실채권을 장부에서 지울 때에도 담보물을 시장각격으로 평가하지 않고 구매가격에 회수한 것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재무성은 은행 사이를 떠돌아다니는 부실대출의 규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제가 회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헛된 희망 속에서 시간을 벌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로 그와 같은 행동을 공모했을 것이다.


- 80년대 후반, 주식시장 상승과 저금리 기조로 저리의 자금이 경제 전체를 휩쓸었다. 86년 말부터 91년 초 사이, 투자와 자본지출은 일본 경제성장에서 자그마치 3분의 2를 차지. 이런 규모를 가늠하자면, 일본경제는 매년 한국의 GDP가 더해지고 5녀만에 프랑스의 GDP가 더해지는 수준. 그리고 이런 시절이 끝날 무렵, 일본경제는 유럽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독일의 2배에 달했다. 
주식과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90년대에 잃어버린 수십년의 첫번째 10년이 도래했다. 주택을 소유한 수백만명이 자신의 자산이 마이너스가 된 것을 깨달았다. 도쿄 주택가격이 워낙 비싸서 교외로 밀려난 많은 사람이 이제는 팔리지도 않는 집에서 직장까지 2시간이 걸리는 출근을 해야했다. 또한 경제성장률이 4%에서 1%로 급격히 하락하면서 이제는 18년마다가 아닌, 70년마다 2배씩 증가하는 소득에 적응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들이 경험한 잃어버린 10년, 아니 30년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경험할 경제성장의 둔화가 평균소득에 미치는 극적인 영향력이었다.
일본 은행들은 자산가격의 변동성에 취약해 부실대출을 흡수할 만한 여력이 부족했다. 공적 자금투입이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었고 자민당이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를 좀 더 신속하게 해결하고 시장에 대한 불신을 거두며 자본 적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자본투입을 주저했다. 이는 시장과 경제가 회복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채 규제를 보류하고 뒤늦게 부실대출의 실제규모를 깨닫는 결과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부실대출이 증가했고, 이로써 일본 은행들의 대차대조표가 손상되고 일본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졌다.
- 성장을 회복하고 디플레이션을 퇴치하기 위한 분투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내 금융위기의 여파는 유난히도 고통스럽게 밀려왔다. 소비자들이 물가하락을 예상해 구매를 뒤로 미루며 수요를 위축시켰고 회복을 더디게 했다. 그리고 이는 오랫동안 고착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아베신조 총리는 두번째 재임기간이던 12년부터 20년까지 아베노믹스라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일련의 개혁을 시도, 개혁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지만, 일본경제는 체계적 금융위기의 오랜 충격이 어떠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줌.
일본 금융위기는 역사를 통틀어 다른 금융위기들과 공유하는 특성인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과열, 그리고 이에 따른 버블의 붕괴와 함께 촉발된 측면이 있다. 일본의 정책 입안자들은 대공황 당시에 저질렀던 오류들 중 상당수를 되풀이했다. 그들은 너무 느리고 소극적으로 대처해 디플레이션을 고착시켰고 폭락이 오랜 침체로 이어지게 했다. 특히 일본 경제는 30년에 걸쳐 성장이 둔화되고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회복이 더뎠다. 
동시에 일본의 폭락과 그 여파는 신뢰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특히 일본경제는 30년에 걸쳐 성장이 둔화되고 디플레가 지속되면서 회복이 더뎠다.
동시에 일본의 폭락과 그 여파는 신뢰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여주었다. 일본 정부는 금융 시스템에 내재한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하는데, 특히 은행 자본을 재조정하고 예금자를 위한 안전망을 강화하고 파산지경에 이른 은행을 관리하고 이들의 자산을 처분하는 임시기구를 설립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이용하는 데 지나칠 정도로 늦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임. 재무성의 늦장 대처는 위기를 악화시키고 신뢰를 손상시켰다. 일본 국민들은 재무성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납세자가 낸 돈을 사용하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일본경제를 멈추게 할 수도 있는 체계적인 은행위기에 직면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 IMF가 나서서 구제하기에는 일본경제의 규모가 너무 컸기 때문. 재무성이 신뢰를 잃은 것이 금융위기의 수습을 어렵게 만들었고, 그 고통이 오래가게 했다.

- 95년 빠른 주가상승은 연준의 관심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닷컴버블이 그해에 시작된 것으로 보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많은 이들이 95년 8월 9일 넷스케이프라 신규상장을 한 것을 닷컴붕괴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넷스케이프라 네비게이터 브라우저를 통해 수익을 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신규상장에서 주가가 2배 넘게 오르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넷스케이프의 기업가치는 그날 거래 마감시각에 27억불에 달했다.
모든 이들이 닷컴붐의 시작일이 95년 8월 9일이라는데 동의하는 것은 아님. 경제학자 브래드 드롱과 콘스탄틴 매긴은 98년까지는 의미있는 버블이 없었다고 주장. 그들은 나스닥에서는 99년에버블이 생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스닥에서는 주식가치의 의미있는 상승을 뒷받침할 수 있는 중요한 뉴스가 될만한 사건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가치총액이 2배넘게 증가. 또한 그들은 시장이 폭락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를 뒷받침할만한 중요한 뉴스가 없었다고 지적. 버블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왜 시작되었는지, 왜 터졌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다. 우선 버블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없다. 때로는 버블이 터지는 것에 대한 다양한 원인이 제기되는데, 이것이 정책 입안자들의 버블분석을 어렵게 한다. 심지어 그린스펀도 결국에는 비이성적 과열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그는 시장이 "수백만 투자자들의 판단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들 중 다수가 주요 주가지수를 구성하는 기업들의 전망에 정통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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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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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권력

경제 2024. 8. 28. 07:07

- 어떻게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치측정의 단위, 교환의 매개체, 가치저장이 수단으로서 동일한 것을 사용하도록 합의할 수 있을까? 정부가 화폐를 창출하고 규제하는 데 개입함으로써 협응 문제를 해결하고, 화폐의 네트워크 효과를 완전하게 누리도록 도울 수 있다. 법정화폐에서 법정이라는 핵심부분은 정부가 어떤 화폐를 세금으로 받아줄 것인지, 즉 개인이 정부에 진 부채를 갚는데 어떤 화폐를 쓸지 결정하는 능력이다.

- 화폐의 또 다른 핵심적인 측면으로서 부채로 간주되는 화폐가 있음. 20달러짜리 지폐를 보면, 지폐 위에 '이 지폐는 공적이고 사적인 모든 부채에 대한 법정화폐'라고 인쇄되어 있음. 이는 연준이 발행하는 지폐다. 모든 나라의 지폐에 이런 문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흑백으로 이렇게 쓰여 있다. 그 지폐를 가진 사람이 자기 부채를 갚는데 사용할 수 있는 자산이라는 의미. 이 지폐에는 또한 미합중국이라는 단어가 인쇄되어 있고, 미국 재무부 직인도 찍혀 있음. 그리고 미연방의 자산을 관리하는 책임자인 연방 재무관과 미 재무부를 이끌어가는 재무장관이라는 미국 정부 내 서로 다른 두 직책을 가진 관료들의 서명도 있음. 연준이 미국 정부기관인 만큼 연준지폐는 미국 정부부채의 한 형태다.

- 기술적으로 은행권은 중앙은행인 연준의 부채이며, 따라서 은행권은 연준 재무상태표의 부채항목에 표시됨. 여기서 은행권이 부채항목에 표시된다면, 정확하게 중앙은행은 무엇을 빚지고 있는 걸까? 현대 법정화폐 시스템에서는 은행권 그 자체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빚진게 없다. 연준 지폐와 같은 은행권은 부채일 수 있지만, 상환할 필요가 없는 특별한 종류의 부채다.
화폐를 발행한 쪽에 지폐를 제시하면 이를 뒷받침하는 금이나 은을 요구하고 받을 수 있었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갔다. 가정하건대, 당신이 연준에 가서 20달러짜리 지폐를 제시하고서 당신에게 빚진 부채를 갚으라고 요구한다면, 연준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20달러 지폐를 그대로 되돌려주거나 10달러 지폐 두장으로 바꿔주는 것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정부에 세금으로 내야 할 20달러를 빚지고 있다면, 당신은 은행계좌에 20달러를 입금한 뒤 이를 제시함으로써 빚을 갚을 수 있다. 은행권이라는 정부부채는 당신에게는 자산이며, 납세의무로 정부에 진 빚을 소멸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 화폐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화폐의 일부는 정부를 뜻하는 중앙은행의 부채이며, 사실 대부분 상업은행들의 부채다. 지폐와 동전, 또 상업예금 형태의 화폐는 액면가로, 즉 일대일로 교환할 수 있는데, 대개 이를 당연시하는 게 화폐 시스템의 특징이다. 만약 은행에 당신의 100달러가 입금되어 있다면 은행은 당신에게 100달러를 빚지고 있는 셈. 만약 은행에서 100달러를 인출한다면, 중앙은행이 대신 당신에게 100달러를 빚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100달러 지폐를 은행계좌에 입금하면, 자산이 정부부채에서 해당 은행의 부채로 바뀌게 됨. 이는 정부와 중앙은행, 상업은행이 화폐창출에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뜻이다. 또 일반적으로 서로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서로 구분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의 광범위한 관점과 주제가 잘 나타난다.

- 무엇인가에 의해 가치가 담보되는 화폐가 주권정부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신용 외에는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담보되지 않는 법정화폐로 발전하게 된 과정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법정화폐는 정부가 가치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가치를 가지는 것이지만, 그 법정화폐가 실제 가치를 가지는 것은 많은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 은행계좌에 있는 모든 달러는 다음의 세가지 방법 중 하나로 만들어짐. 
첫째, 은행이 대출을 해줄때,
둘째, 정부가 지출을 하고 나서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지출한 자금을 다시 빨아들이지 않는 적자예산을 편성했을 때,
셋째, 중앙은행이 민간이 보유한 국채나 기타 자산을 사들일 때다.
은행과 정부, 중앙은행은 상호간에 연결된 시스템의 일부로, 각자의 방식대로 화폐 창출에 관여. 어떤 경우든 돈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더 정확하게 말해 컴퓨터의 키보드를 누르는 것만으로 돈은 생겨난다. 이것이 바로 현대 화폐의 미스터리다. 

- 은행이 받은 예금을 대출한다면, 예금은 대출재원을 조달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부자금이라는 이론이 있을 정도로 이 같은 설명 방식은 우리에게 뿌리깊이 박혀 있다. 이 이론은 대중은 물론이고 학계의 상상력까지 지배하고 있지만, 실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예금이 은행의 대출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대출이 예금을 만들어낸다. 대출자의 예금계좌에 은행이 돈을 입금해 주므로 대출은 예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금이 대출에 자금을 제공한다는 건, 은행의 재무상태표 양쪽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관점에서만 의미가 있다.
-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한다는 뜻으로 주로 사용하는 펀드와 파이낸스라는 두 단어가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회사가 새로운 장비를 구입하거나 사업을 크게 확장하려 할 때, 현금이 충분치 않아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할 수 있다. 이때 기어이 은행대출을 받아 자금을 조달한다는 뜻으로 펀드나 파이낸스라고 하는 것은 타당하다. 대출이 없었다면 사업확장은 이뤄지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은행이 제공하는 신규대출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만들어내고 사업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은행은 예금을 유치한 뒤에 그 예금으로 대출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일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착시다.

- 정부부채와 적자예산에 대한 관점은 논리학자들이 범주오류라고 부르는 잘못된 사고에 기반. 여기서 범주오류란 정부를 마치 하나의 가계처럼 여기는 것인데, 실제 정부는 해당국가의 모든 가계를 다 합친 것에 더 가깝다. 정부가 항상 균형예산을 갖춰야할 이유는 없고, 일반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됨. 
정부부채와 미래 세대의 부담을 연관지어 생각할 때, 현재 또는미래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대내 문제와 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과 미래에 태어나 살아갈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대간 문제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함. 정부부채를 우리 손자들에게 지우는 부담이라고 하는 주장은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세대간 갈등에 해당. 이를 검토할 때 같은 시기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와 같은 세대내 문제와 혼동하는 함정을 피해야 함. 예를 들어 정부가 10년에 걸쳐 대형 댐을 건설한다면 오늘날 세대내 효과는 일부가 댐 건설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 자원을 제공해야 하도 더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자원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미래의 세대 내 효과는 거주지역에 따라 어떤 이들은 댐의 물을 사용해 많은 혜택을 얻지만 다른 이들은 훨씬 적은 혜택만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대간 효과는 한 세대가 희생이나 투자를 하고, 그 혜택은 다음 세대가 본다는 것이다.
정부부채에 대해 간과되는 측면 중 하나는 정부부채가 금융자산인 동시에 금융부채라는 것이다. 재무상태표에서 자산과 부채항목 양쪽에서 동일한 내역이 총액으로 상쇄되기 때문에 놀랍게도 미래세대가 순재무 측면에서 물려받는 것은 항상 순제로다. 순부채가 제로가 되면, 이를 물려받는 세대에게는 어떤 부담도 되지 않는다.
- 현세대는 자기 세대에게만 빌릴 수 있고, 미래 세대에게는 빌릴 수 없다. 미래 세대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았기에 현세대에게 빌려줄 것이 없다. 모든 세대는 이전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것보다 더 크고 좋은 자본을 물려준다. 자본스톡은 다리나 도로, 공항, 공장, 통신 네트워크 같으 물리적 생산자본만이 아니라 과학적 문화적, 기술적, 지적, 제도적 지식이나 사회적 자본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경제적, 기술적, 문명적 발전의 핵심이다. 각 세대는 이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이며, 문명화된 사회에서 이들은 지구와 사회를 물려받은 것보다 더 나은 상태로 넘겨줘야 할 도덕적 책임을 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늘어나는 정부부채가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되는지에 대한 질문과 무관하다. 이 세상에는 걱정해야 할 것이 많지만, 미래 세대에 너무 많은 정부부채를 남기는 건 그다지 걱정할 만한 일이 아니다. 만약 어느 시점인가에 정부부채가 너무 많아지면 통화정책과 긴축재정 같은 거시경제정책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 만기가 도래하면 해당 국채는 만기이월되거나 차환된다. 국채는 상환할 필요도 없고 실제로 상환되는 일도 없다. 물론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한가지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정부가 비정상적으로 흑자예산을 운영하면서 민간부문에 지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세금으로 걷는다고 해보자. 그러면 은행 시스템의 예금과 준비금은 흑자예산만큼 줄어들고, 중앙은행의 정부예금은 늘어난다. 정부가 재화와 서비스 지출과 사회복지 이전지출로 민간에 쓰는 돈보다 세금으로 가져가는 돈이 더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만기도래하는 국채를 차환하지 않고, 흑자예산으로 국채를 상환해 버리는 것이다. 이럴 때 정부재무상태표에 미치는 순효과는 흑자예산만큼의 정부발행 국채가 시스템에서 사라질 뿐 준비금과 정부예금, 은행예금 등 다른 모든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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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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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판을 쓰는 사람에게
컴퓨터를 설명하는 것보다
컴퓨터를 쓰는 사람에게
주판을 설명하기가 더 쉬운 법이다.

- 금의 특징이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연적 안정성이라면, 새로운 글로벌 통화 체제는 정부의 지배력을 특징으로 구축되었다. 그 래서 명칭도 그 특징 그대로다. 라틴어 'fiat'는 '무엇을 하게 하다'라는 뜻이며, 영어로 넘어와서는 공식적인 법령이나 관허, 규칙을 의미하게 되었다. 정부의 명령이 시장의 판단을 대체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인 만큼, 현재의 통화 체제를 딱 맞게 설명하는 단어다. 법화의 기본 가치 는 자유롭게 거래되는 실물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대신 정부가 발행, 공 급, 청산, 결제를 통제할 수 있고 심지어 필요하면 언제든 압수도 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 시장에서 평화롭게 교환되다가 사람들의 선택을 받으면 화폐의 가 치가 결정되던 기존의 통화 체제는 법화 체제로의 이행과 함께 힘을 잃 었다. 그 대신 시장에 참여하는 전체 거래자 중 절반이 나머지 절반에 게 지급하는 교환의 매개체를 선택하고 가치를 매기는 일이 세계대전 승전국의 패권과 격변하는 국제 지정학에 따라 결정되었다. 1915년 영 란은행의 발표를 비롯해 같은 취지를 지닌 당시 조치들은 제1차 세계 대전에 따른 재정난을 해결할 한시적 비상조치로 간주되었지만, 한 세 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영란은행은 지폐를 금으로 태환해 주겠다는 약속을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고 있다. 금태환을 잠정 제한하던 조치는 세기가 바뀌면서 등장한 법화 시스템이라는 금융 인프라로 영영 뿌리 를 내렸다. 결국 완벽한 금태환이 가능한 통화 체제가 세계를 지배할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 1930년대의 위기 동안 미국 정부는 금융 체계와 경제가 붕괴하지 않 도록 확장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정책들은 달러 시 세가 계속 금 대비 트로이온스당 20.67달러 선을 유지했다면 지속 불 가능했을 것이다. 193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민들이 갖고 있던 금을 회수하라고 명령하고 금을 35.00달러에 사들여 사실상 달러 를 43퍼센트 평가절하했다. 영국이 국민들의 손에서 경화를 가져가고 법화를 보급하며 법화 본위제를 시행한 지 20년도 안 되어, 미국도 그 뒤를 따른 것이다. 역사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하지 않지만, 두 사건 모두 국가의 채무 불이행이었다.
이렇게 해서 법화 본위제의 프로토콜이 설정되었으며, 이후 전 세계 가 따라 했다. 지속 불가능한 재정 적자를 늘리고, 금을 회수하거나 자 유로운 거래를 막으며 금태환 의무를 불이행하고, 화폐 발권량을 늘리 고, 가능한 한 다른 국가들도 자국 통화를 준비자산으로 보유하도록 했 다. 이 모든 일을 가장 열심히 실행한 대표 주자가 미국이었다.
금태환을 중단하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법화를 무한히 생성하자, 대 공황이 길어지는 동시에 인플레이션에 자꾸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 형적 관료제가 탄생했다. 유럽의 금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도 계속 미국으로 흘러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다른 국가와 비 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금보유고와 세계에서 으뜸가는 국제 결제망 을 갖추며 그들만의 통화 리그를 형성했다. 새로운 통화 체제는 브레턴우즈 협정이 체결된 후 1946년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초창기 구조로 계승되며 현실에 정착했다. 브레턴우즈 협정 이후 세계는 영국이 식민 지에 시행한 방식과 유사한 금본위제로 되돌아갔다. 영국이 남용했 다가 유동성 위기를 자초하면서 현재에 이르는 추악한 역사의 모든 발 단이 된 바로 그 제도로 말이다.
새로 구축된 글로벌 통화 체제는 미국 달러가 중심이었고, 달러는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만 금으로 태환할 수 있었다. 미국 연방 정부는 여전히 국민들이 금을 소유하지 못하게 했으며 다른 대부분 국가에서 도금의 개인적 소유나 거래를 제한했다. 미국 정부는 여분의 금을 보 유하고 달러를 다른 나라로 수출할 여력이 있어서 전후기 동안 지출 능력에 거의 제약이 없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고별 연설에서 경고한 바 있는 군산복합체는 수도꼭지를 틀듯 쉽게 발행할 수 있는 법화로 이익을 거둘 구실을 찾느라 한 번씩 꾸준히 세계 전쟁 을 터뜨렸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복지 프로그램은 1950년대에 확 대되더니 1960년대 린던 존슨 대통령의 소위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법 화로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영구적인 복지국가)' 정책으로 전이되었다. 세계 는 여전히 달러가 필요했기 때문에 달러를 사들였고, 미국인들은 유동 성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1914년에 영국에서도 그랬 듯, 1960년대 후반 나날이 가치가 떨어지는 미 달러화를 유럽 국가들 이 실물 금으로 태환하기 시작하자 미국은 금 부족 사태에 빠졌다.
- 법화 본위제는 엔지니어 한 명이 설계해서 나온 결과물이 아니다. 그보다 파산 위기에 직면한 중앙은행들이 내놓은 고육지책으로, 60년 간 정치와 화폐가 결합해 온 끝에 불가피하게 나타난 지정학적 결과였 다. 법화의 역사는 곧 정부가 채무 불이행에 대처해 온 역사이기도 하 다. 건전화폐를 공급하겠다거나 국제 결제를 용이하게 하고자 의도적 으로 설계된 기술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로써 전 세계의 중앙은행은 영국과 미국이 설정한 시범 운영 모 델을 그대로 따르며, 금태환 약속을 저버리고 법화 사용을 의무화하게 되었다. 1914년 처음으로 시작된 법화 본위제는 실질적으로 1971년에 이르러서야 자리를 잡았다. 처음 생긴 지 한 세기, 그리고 현재의 형태 로 정착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이야말로 법화 본위제를 평가하기에 적기다.
- 정부가 금태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해 탄생한 법화 본위제의 본질적 특징은 그 나라의 통화 체제와 결제망에서 가치의 표상인 토큰이 정부 의 명령으로 통용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네트워크에서 통용되는 화폐 가치를 법령으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자체적으로 신용화폐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부가 은행 시스템 전체를 뒷받침하는 만큼, 은행 에서 창출된 모든 신용은 사실상 정부 신용이자 통화량의 일부가 된다. 다시 말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돈을 찍을 수 있는 기관은 미국 의회 와 연준만이 아니다. 모든 대출 기관도 대출을 통해 통화량을 늘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처럼 현금과 신용의 경계가 모호하면 정확한 통화량을 측정하기 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이나 비트코인과 같은 결제 시스템에서는 현 재 가용성이 있는 화폐(즉, 일정 기간이 지나고 미래가 되어서야 완전한 유동 성 가치를 획득한다는 조건이 없는 화폐)만이 결제나 대출 용도로 쓰일 수 있 다. 반면에 법화 체제에서는 당장은 가용성이 없고 미래가 도래해야 사 용할 수 있는 화폐라도 대출업이 허가된 상업 금융기관이 보증하는 한 결제 수단으로 인정될 수 있다.
- 순수한 금본위제나 비트코인과 달리 법화는 공급량이 네트워크 구 성원 간에 거래되는 객관적인 단위 수로 정해져 있지 않다. 게다가 수 명이 짧으며, 끊임없이 생성되고 파괴된다. 또 그 돈을 사용하는 주체 가 규정하는 화폐의 불완전하고 주관적인 정의에 따라 공급량이 달라 진다. 그래서 비트코인과 달리 객관적이고 합의된 기준에 따라 화폐 공 급량을 평가하거나 감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고객이 집을 사려고 100만 달러를 대출받을 때 대출 은행 은 미리 구비해 둔 현금 준비금에서 100만 달러를 꺼내주지 않는다. 그 냥 대출을 승인하고 집주인에게 지불할 달러를 생성하면 그만이다. 이 100만 달러는 대출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돈이다. 그러다가 대출 고 객이 거래를 마무리하고 미래에 정기적으로 대출을 갚아나가기로 약 속하면서 생명력을 얻는다.
- 예를 들어 고객이 집을 사려고 100만 달러를 대출받을 때 대출 은행은 미리 구비해 둔 현금 준비금에서 100만 달러를 꺼내주지 않는다. 그 냥 대출을 승인하고 집주인에게 지불할 달러를 생성하면 그만이다. 이 100만 달러는 대출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돈이다. 그러다가 대출 고 객이 거래를 마무리하고 미래에 정기적으로 대출을 갚아나가기로 약 속하면서 생명력을 얻는다.
이처럼 집을 사는 과정에는 현물 거래가 필요하지 않다. 주택 구매 대출을 받은 차용인은 집주인에게 대금을 현금 지불하기 위해 은행에 보관된 남의 저축을 끌어올 필요가 없다. 집주인도 집이라는 현물을 차 용인에게 현장에서 인도할 필요가 없고, 차용인의 신용등급을 매기거 나 채무 불이행 위험을 부담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은행이 신용을 부여하고, 신용 위험은 은행, 대출, 화폐의 파수꾼인 중 앙은행이 최종적으로 부담한다. 만약 집주인이 신용을 부여하는 주체 라면 그들이 직접 상대방의 채무 불이행 위험을 감수하고 현물을 넘겨 주되, 다른 제삼자는 거래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화 본위 제 덕분에 집주인은 매매금 전액을 선불로 받고 구매자도 온전한 집 한채를 미리 받는다. 거래가 발생하기 전에는 집과 돈이라는 두 거래요 소중 집만 존재했다면, 거래가 완료된 후에는 거래 당사자 둘 다 집과 돈을 각각 현물로 받아 든 채 헤어진다. 이 거래를 성사하기 위해 새로 생성된 법화 토큰은 주택 구매자, 즉 차용인의 채무 불이행 위험을 모 든 화폐 보유자에게 부과한다.
집 거래에 관련된 세 당사자는 모두 만족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자 유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얼핏 보면 거래 대금의 전액을 선불로 지불하지 않고도 집을 살 수 있으니 구매자에게 유리해 보인다. 또한 더 많은 잠재 구매자에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집값도 올릴 수 있으 므로 판매자에게도 유리해 보인다. 은행은 신규 대출 건수가 생길 때마 다 거의 0의 한계비용으로 새로운 법화 토큰을 채굴할 수 있으니 은행에도 유리한 듯하다. 그러나 거래가 성립하려면 구매자, 판매자, 은행 을 채무 불이행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사회 전반에 분산 시키는 수밖에 없다. 결국 기존의 법화 보유자가 통화 공급 인플레이션 이라는 형태로 사실상 위험 프리미엄을 떠안는다. 이처럼 거래에서 현 물 개념을 제거하면 구매자와 판매자 양측의 구매력을 만족시키는 대 신 훗날 화폐가치가 절하된다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만약 법화 체제가 자유 시장에서 경화 체제와 공존한다면, 합리적 인 투자자는 신용 창출로 인한 가치 하락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경화 의 형태로 재산을 보유하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의 합리 적 이기심을 차치하더라도, 한 화폐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플레 이션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도가 더 높은 다른 화폐보다 떨어지게 된다.
- 법화 네트워크는 지불 청산을 위한 계층화된 결제 시스템을 기반으 로 한다. 각 은행은 자체 대차대조표 안에서 고객 간의 이체를 처리한 다. 또 각국의 중앙은행은 관할 지역의 은행 간 청산과 결제를 감독한 다. 중앙은행과 전 세계 수백 곳의 제휴 은행은 스위프트SWIFT 결제망에 서 국경을 넘나드는 결제 청산을 감독한다.
법화 네트워크는 거래와 잔액의 전체 기록을 확인하고 결정하는 데 필요한 풀노드full node*가 하나뿐이어서 매우 효율적인 중앙 집중식 장부 기술을 활용한다. 그 주체는 미국 정부의 영향과 감독하에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다. 법화의 열렬한 옹호자들이 알다시피, '준'은 법화 네트워크의 핵심이자 구심점 역할을 한다. 연준은 어떤 거래라도 무효화하고 다른 모든 법화 노드의 잔액을 강제로 거둬 갈 수 있는 유 일한 기관이다. 연준은 스위프트 결제망을 일방적으로 점유해 한 국가 전체를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해 다른 국가와 거래하지 못하게 막 을 수도 있다.
법화 네트워크의 기본 레이어는 미국 달러 표시 부채를 기본 토큰으로 사용해 작동한다. 법화 옹호자들은 이 법화 네트워크가 각기 다른 국가 또는 지역마다 다양한 토큰으로 운용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달 러를 제외한 모든 통화는 달러에서 파생한 세컨드레이어 토큰에 불과 한 것이 현실이다. 미국 달러를 제외한 타국 법화의 가치는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와 견주어 그 나라의 신용도에 상응하는 할인율을 적용한 가 치로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토큰은 오랫동안 다양한 역사적, 화 폐적, 재정적, 지정학적 이유로 미국 달러보다 고평가된 적이 없었다. 실질적인 의도와 목적이 무엇이 됐든, 각국의 통화를 관리하는 중앙은 행은 자국 환율을 달러에 맞춰 유지하거나 달러보다 빨리 평가절하하 기도 한다.
- 현금으로든 예금으로든 현재 법화 토큰의 보유자는 자신이 들고 있 는 토큰의 가치가 계속해서 감소하는 경험을 하기 쉽다. 대출 기관이 미래에 법화 토큰을 돌려받는다는 전제하에 대출을 승인해 현재에 새 로운 토큰을 생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차피 돈의 가치는 인 플레이션으로 절하될 것이므로 개인, 기업, 정부 등 누구든 양의 잔액 을 유지하는 대신 빚을 지는 편이 가장 합리적이다.
잔액이 마이너스인 사용자, 즉 채무자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고 치 명적인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 양의 유동자산을 안정적으 로 저축한다는 의미에서의 금융 안정성은 현재 체제에서는 더 이상 찾 아볼 수 없다. 인플레이션으로 재산 가치가 소실되는 것을 속수무책으 로 바라보거나, 대출을 받고 이자 납부를 몇 번 이행하지 못하면 담보 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 속에 살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법화는 재정 관리의 수단 중 하나인 저축을 사실상 파괴하면서 엄청나게 부정 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 법화 본위제에서 올바르고 성공적인 재무 전략을 짜려면 가능한 한 많은 부채를 지속적으로 떠안고, 원리금 전액을 착실하게 때맞춰 상환 하며, 빚을 내서 미래 수익을 창출하는 실물자산을 구입해야 한다. 이 렇게 하면 신용점수가 올라가고 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으 며, 법화처럼 쉽게 팽창하지 않는 상품의 형태로 자산을 보관할 수 있 다. 그러므로 법화 시스템은 저축하는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대출 받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셈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불안 정한 삶을 살고 적잖은 재정적 위험을 감수하도록 권장한다. 
- 법화 본위제에서 부채를 지지 않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남들이 생 성하는 부채 때문에 법화의 구매력이 떨어져서 부를 침범당하는 손해 를 본다. 반대로 부채를 지는 사람들은 시뇨리지seigniorage*의 혜택을 어 느 정도 누린다. 그러므로 부채를 지지 않으면 재정적으로 무모하고 무 책임한 태도를 취하는 셈이 된다. 18세기 아일랜드 경제학자 리처드 캔틸런은 인플레이션의 재분배 효과를 가리켜 새로 찍은 돈을 먼저 받 는 사람들이 수혜자이고 나중에 받는 사람들이 희생자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 법화 본위제에 적용하자면, 캔틸런 효과의 수혜자 는 차용인이고 피해자는 저축자다. 버는 것보다 적게 지출하고 부지런 히 저축하는 것은 더 이상 최적의 재무 전략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 사람들이 감당할 형편이 안 되는 값비싼 사치재다.
법화 본위제는 사용자들에게 가치를 꾸준히 상실하는 법화를 저축 하기보다 현금 소득을 창출하는 실물자산을 축적하도록 장려한다. 유 동적이고 국제적으로 태환 가능한 금융자산에 저축한 부는 종류가 무 엇이 됐든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가치가 절하된다. 역사 속의 경화인 금으로 저축하더라도 상당한 거래 비용이 들고 공간적 판매성에 제약 이 따른다.
- 일정량 이상의 금을 대서양 건너편으로 운송하는 비용을 대략 계산하면 금 가치의 0.05~0.5퍼센트 정도가 된다. 또 수송비는 둘째 치고, 실물 금은 분실 위험이 크기 때문에 국영 공항, 항만, 철도와 같이 중요하고 믿을 만한 인프라 시설로 운송해야 한다. 게다가 어지간한 양의 금을 국경 넘어로 반출하려면 세관의 허가가 필수다 보니, 장거리에 걸친 금 거래 비용은 특히 은행의 결제망 비용과 비교해 갈수록 비싸졌다. 금으로는 불가능 한 국가 간 장거리 거래를 오직 각국의 중앙은행만이 결제할 수 있었던 만큼, 중앙은행의 법화와 정부 공권력이 화폐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국가 간 금 거래 시스템을 중앙 집중화했고, 그 직 접적인 결과로 경제를 주무르는, 전례 없이 강한 권력을 얻었다.
- 법화의 공간적 판매성은 얼마일까
법화는 대부분 부채, 즉 대차대조표에 무형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 으므로 거래할 때 금과 같은 물리적 실체를 대량 선적할 필요가 없다. 지폐나 주화처럼 일부 물리적 형태의 법화가 시중에 돌아다니지만 이 들은 전체 통화량에서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대부분의 경우 법 화를 정산하려면 장부의 다양한 항목을 차변과 대변에 나눠 기입하면 된다.
개인이 법화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로 전신 송금을 하려는 경우 송금인의 은행 계좌는 벨기에에 기반을 두고 전 세계 회원 금융기관이 소유 하고 있는 협동조합인 스위프트 결제망에 지불 명령을 내린다. 스위프 트는 현금 이체 플랫폼이라기보다 메시징 플랫폼에 가깝다. 수취인은 행에 결제 메시지를 보내지만 실제로 돈을 보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서양을 가로질러 송금하는 수수료는 일반적으로 10~50달러이며 수취인이 돈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영업일 기준으로 2~5일이다. 그러나 두 은행 간의 정산은 관련된 다양한 은행 관계에 따라 결제 완 결성이 달라지므로 확정되기까지 훨씬 오래 걸리기 일쑤다. 두 은행이 서로 환거래 계좌를 두고 있다면 일, 주, 월 등 기간을 정해 모든 거래 를 일괄 처리해 결제하면 된다. 그러나 환거래 은행의 중개를 거쳐야 하는 경우라면 환거래 은행의 정기적인 정산 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처리된다. 송금 은행은 해당 환거래 은행의 계좌로 빠져나간 돈을 대차대조표 대변에 기입하고, 돈을 받은 환거래 은행은 최종 수취 은행 또 는 다음 중개 은행의 계좌로 빠져나간 돈을 다시 자기네 대변에 기입한 다. 이러한 환거래 은행들은 환전 수수료도 받는다. 수수료가 비쌀수 록 전신 송금 비용이 증가하며, 이 비용은 송금인과 수취인 양쪽이 부 담한다. 개별 사용자는 며칠 만에 대차대조표의 현금 계정에 표시된 입 금 내역을 확인하지만, 거래의 최종 결제는 송금 후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 몇 달 후에 완료된다. 신용카드를 이용한 법화 결제는 더 여러 군데의 중개 기관이 필요한데, 수수료는 결제 비용의 약 1~3퍼센트에 최초 결제는 몇 초 만에 처리되지만 결제 완결성이 확정되기까지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 법화 시스템에서는 결제 비용과 결제 완결성, 즉 최종 정산 비용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금 계좌를 보유하거나 금으로 국제 결 제를 맡길 은행이 없기 때문에 금과 법화를 나란히 비교할 수도 없고 더 이상 금 결제의 존재 의미도 없다. 실물 금 거래와 달리 법화로 결제 하는 소비는 결제 완결성이 없다. 결제 완결성 측면에서 보면 법화 결 제가 실물 금의 운송 속도보다 딱히 빠른 것도 아니지만, 전자 데이터 만 전송하면 되므로 비용은 훨씬 저렴하다.
금본위제 결제가 현금 결제가 아닌 신용 결제로 넘어감에 따라 시중 은행과 중앙은행의 결제 플랫폼이 금융 인프라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 할을 차지하게 되었다. 플랫폼의 운영자 격인 이들 은행이 실물 금의 역할이 축소되길 바란다는 것은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명백하고 불가 피해 보인다. 은행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는 금으로 신속하게 결제할 방법이 없으니 이 단계에서 신용 결제로 가는 추세는 더 이상 막을 수 없 었다. 이처럼 공간을 넘나들며 속전속결로 거래를 처리하려면, 파우스 트가 악마와 손잡았듯 미래를 위해 저축할 여력을 희생해야 했던 건 어 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중에 다시 논의하겠지만, 정부 와 은행이 법화에서 큰 혜택을 본 것은 법화의 기술 덕이다. 그러나 무 엇보다 법화를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법화의 공간적 판매성이 한몫했다.
공간적 판매성은 법화 본위제의 진화와 생존을 이해하는 열쇠이자 정부와 중앙은행을 위협할 비트코인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 한 기준이다. 비트코인은 거리에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 건의 거래를 결제할 수 있어 금보다 훨씬 우수한 공간적 판매성을 자랑한다.
게다가 법화의 정치적 강제력에 구애받지 않고 몇 시간 만에 국경을 넘어 결제를 완결할 수 있다.
- 바로 통화량이 증가해야 경제성장이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은행이 지급준비금을 초과해 대출할 수 있어야 더 많은 자본을 끌어들이고 더 많은 투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므로 실업이 줄어들고 경 제가 번영한다고 한다. 반대로 이러한 부분 지급 준비제가 없다면 경제 에 신용이 부족해 경제활동이 침체되고 생산이 위축되며 삶의 질이 떨 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분 지급준비제를 활용해 가용 신용을 저축 과 분리하면 사회 전체에 혜택을 준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케인스주의 자들은 그렇게 믿는다.
이 논리에는 모든 인플레이션 옹호론과 똑같은 문제점이 있다. 즉, 돈과 신용은 그 자체로 생산적 자산이 아니다. 단지 보유자가 생산적 자산을 구매할 수 있는 증서일 뿐이다. 축구 경기 티켓을 많이 발권할 수록 경기장 자체의 관객 수용력이 확대되는 것이 아니듯, 통화량이나 신용 공급이 증가한다고 생산에 투입되는 자산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티켓이 단지 경기장 내 좌석에 앉을 권리를 나타내는 대용물일 뿐이듯, 돈과 신용은 생산에 투입된 자본재나 최종재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에 불과하다. 구단이 티켓 판매량을 최대한 늘리고자 한다면 단순히 티켓 발권량을 늘릴 게 아니라, 토목 기사와 건설 노동자를 더 고용하고, 중 장비 설비 등을 더 동원해서 경기장의 규모를 확충해야 한다. 경기장의 수용인원을 초과해 티켓을 발권하면 좌석보다 더 많은 관중이 입장할 것이므로 자리싸움이 치열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이 이미 벌어진 후에는 아무리 머리를 써도 좌석 수를 늘릴 묘안이 없다.
화폐나 신용이 부족한 경우란 절대 있을 수 없다. 한 경제에 유통되는 통화량이 얼마든 간에 화폐 자체가 충분히 가분성이 있는 한, 언제 라도 경제에 필요한 양을 모두 충족할 만큼 공급할 수 있다. 화폐에 대 한 수요량이 항상 공급량을 초과하는 이유는 어떤 재화든 인간의 욕망 이 생산량을 능가하고 또 생산하기보다 욕망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 다. 법화 본위제에서 이러한 욕망은 돈이 많으면 충족될 수 있을 듯 보 이지만, 돈을 찍는다고 욕망의 대상이 되는 재화 생산량이 더 늘어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수요에 부응하고자 재화를 늘리려면 오직 희소한 자 원을 투입해 생산 활동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자유 시장에서 사람들 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생산 활동에 투입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재화의 수와 생산량이 늘어나고, 통화량이 증가할 필요 없이 화폐 가치가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것이다.
- 부분 지급 준비제는 자본, 노동, 자원을 더 많이 창출하는 마법이 아 니다. 생산과 저축 활동으로 열심히 경제활동을 한 사람들이 아닌 중앙 은행에 자본, 노동, 자원을 배분할 것을 맡기는 제도에 불과하다. 부분 지급 준비제는 사회 전체를 빈곤하게 하지만 은행과 정치적 기득권층 의 배는 불려주는 중앙 집중식 계획의 한 형태다. 부분 지급 준비제와 그것을 받쳐주는 법화가 없다면 자본과 노동은 자유 시장에서 가장 높 은 값을 매기는 경제주체에게 흘러갈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자본과 노 동을 언제나 가장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기업가의 손으로 들어갈 공산 이 크다. 그렇다면 자유 시장의 힘에 따라 가장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활동에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테니 사람들은 저축하려는 동기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법화 본위제에서는 은행의 신용 창출 때문에 자본이 점점 더 정치적이고 중앙 집중적으로 배분된다. 그리고 실패 한 자본가도 대출이 허락되는 한 계속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신 용이 저축에서 나오기보다 강한 정치적 동기로 창출될수록, 창조적 파 괴와 자원의 재배분이라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은 좀처럼 일어나 기 어려워진다.
- 은행의 부분 지급 준비제가 복잡해 보일지 몰라도, 그림자 금융 시 스템이 취급하는 모든 금융자산 및 상품에 적용된 부분 지급 준비제의 복잡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주식, 채권, 원자재, 그 외 온 갖 종류의 부채에 만기 불일치 대출 방식이 적용되었으며, 이는 사실 상 이들 자산에 대한 소유권이 자산 자체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 한다. 2008년 금융 위기는 단순히 주택 및 모기지 시장의 심각한 위기 가 도화선이 되어, 부분 지급 준비제를 등에 업은 그림자 금융 시스템 이 무너진 결과였다. 중앙은행은 최종 대부자로서 대부분 은행들에 직 접 구제금융뿐 아니라 저금리 대출도 제공함으로써 이들 은행이 금융 시장에서 만기 불일치 대출로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

- 초인플레이션 경제에서는 나무가 열매를 맺기도 전에 겨울 땔감용으로 베어내고, 지출을 조달하려 유망한 사업부를 매각하고, 미래의 수익원을 미리 소비해 버린다.
- 내가 쓴 교재 경제학 원론Principles of Economics』에서 더 자세히 논의했듯, 오스트리아학파에 따르면 시간선호는 금리를 움직이는 동인이자 결정 요인이다. 시드니 호머와 리처드 실라는 공저 금리의 역사』에서 전쟁, 전염병, 기근 등의 이유로 중간중간 금리가 상당히 올랐던 특이한 시기를 제외하면, 5000년간 전반적으로 금리가 하락 추세였다고 서술한다. 시간적, 공간적 판매성이 비교적 뛰어난 경화로 추세가 옮겨가면 사람들은 저축 기술을 더욱 개선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덜고, 그만큼 미래에 낮은 할인율을 적용함으로써 시간선호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19세기 후반 금본위제의 등장으로 세계 대부분 국가는 시간이 지나 도 가치를 잃지 않는 화폐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치를 이전하는 일도 점점 수월해졌다. 전 세계의 점점 더 많은 인구가 미래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저축에 의지했다. 누구든 경화를 저 축하기 시작하면 계속 근검절약하고 시간선호를 낮추며 미래에 보상 을 거두려는 동기가 강해진다. 그 이득은 물가가 하락하고 저축의 가치 가 증가하는 등 일상에서 체감된다. 미래의 만족이라는 측면에서 현재의 소비에는 커다란 기회비용이 따른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항상 적 용되는 경제적 진리다.
20세기에 들어 연화가 화폐 매체의 자리를 꿰차면서 수천 년 동안 시간선호가 점차 낮아지던 추세가 역전되었다. 그전에는 거의 모든 사 람이 가치의 저장 기능이 뛰어나고 통화량이 연간 약 2퍼센트만 증가 하는 화폐를 썼다면, 20세기는 정부가 화폐를 지긋지긋하게 찍어대서 공급량이 잘하면 6~7퍼센트씩, 통상 두 자릿수씩, 때로는 세 자릿수까 지 증가하는 뒤죽박죽 세상이 되었다.
과거에는 화폐가치가 오른다는 기대감이 있었고 따라서 미래에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든든한 저축 수단이 있었다면, 20세기의 법화는 미래에 화폐가치가 유지된다는 보장은커녕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훨씬 원시적인 시대로 되돌려 놓았다. 연화를 사용하는 사회는 미래가 더 까마득하게 느껴져 미래에 대비할 수 없으므로 불확실성이 크다. 불 확실성이 크면 미래에 적용하는 할인율의 폭이 커져 사람들의 시간선 호가 높아진다. 법화는 사실상 미래를 준비하는 행위에 세금을 부과해 미래 할인율을 높이고 개인의 기본 행동이 더욱 현재 지향적으로 변하 게 한다. 나중에 내 재산이 얼마가 될지 불확실한데, 뭐 하러 지금의 소 비를 미루겠는가?
- 금본위제 시절의 주택은 오래가도록 튼튼하게 지어졌다. 집주인은 어릴 때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해 대개 평생 그 집에서 살겠다는 생각으 로 집을 짓곤 했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장기적 수명보다 비용 절감을 고려해 집을 지었다. 20세기 건축물은 19세기 건축물보다 미관도 내구 성도 떨어진다. 이런 흉측한 현대식 건물이 더 경제적으로 지어졌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미래에 큰 할인율을 적용하 는 사람에게만 옳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현대식 모듈 주택을 지으면 단기적으로 비용은 더 저렴하겠지만, 유지 보수로 꼬박꼬박 나가는 비 용과 19세기 건물보다 훨씬 빨리 재건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대가가 더 크다.
- 오늘날 기술은 19세기 후반보다 훨씬 뛰어나게 발전했으니 건축비 가 줄어든 것은 당연하다. 아름다운 명소로 가득하던 보스턴에 성냥갑 처럼 흉측한 건물들이 들어서게 된 것은 물질적으로 부족해서가 아니 다. 그보다 사람들의 높아진 시간선호, 즉 미래의 수리 비용에 커다란 할인율을 적용하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빨리 지은 만큼 빨리 수명을 다 하는 현대의 건축물이 이를 방증한다. 수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적, 고전적 건축이 꼴사나운 모더니즘 건물로 대체된 이유는 후자가 더 저렴해서가 아니라 단지 20세기 이후 비용을 미래로 전가해 미래에 높 은 할인율을 적용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 인류는 젊은 시절을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보 내고 나면, 나중에 서로 돌봐줄 사랑하는 동반자가 곁에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아이를 갖고픈 욕구가 있고 자녀를 키우며 얻는 행복 때문에 아이를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노후를 대비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아이를 가지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요즘은 장기적인 안정, 만족, 성취감 대신 덧없는 쾌락만 좇 아 쓸데없는 짓에 젊음을 낭비하며 언제까지나 철부지처럼 구는 사람 들을 흔히 볼 수 있다.
- 법화 시대의 인류는 황금시대의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위험한 첨단 기술로 무장한 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갈수록 좁아지고, 단기적 해 결책들을 이리저리 바꿔 내놓고, 자본을 고갈시키고, 지금의 발전을 가 능하게 한 오랜 제도와 전통을 평가절하하기에 이르렀다. 법화 시대의 인간은 어느덧 아득히 먼 조상들의 야만적 시대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가치 절하에 끄떡없는 경화 중심의 통화 체제를 제공함으 로써 전 세계 사람들이 미래를 계획할 때 불확실성을 줄이고, 시간선호 를 낮춘다. 그렇다면 20세기 들어 시간선호가 높아지고 그에 따른 많 은 재앙이 발생했던 지난 흐름을 반전시킬 흥미로운 가능성이 우리 앞 에 펼쳐질 것이다.
- 식량 생산 보조금과 식습관 및 의료 지침을 결정하는 정부는 미제스 가 비판한 중앙 계획경제와 마찬가지로 모든 국민 개인의 건강을 생각 해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결국 공무원들은 직업상 정부로부터 법화로 급여를 받는 직원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내리는 과학적 결정에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현대 정부가 식습관 지침을 제정하게 만든 주된 동인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에 좋은 식량의 가격 상승을 숨기기 위해 값싸고 대량생산된 대체 식량을 홍보하려는 정부, 둘째는 종교적인 이유로 육류 소비를 대폭 줄였던 19 세기 움직임의 부활, 그리고 셋째는 고수익, 저영양의 쓰레기 가공식품 의 수요를 확대하려는 농업계의 이해관계다.
- 한 세기 전만 해도 인간이 소비하는 지방은 버터, 버터기름, 쇠기름, 돼지기름, 닭기름 등 몸에 좋은 동물성 지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소비되는 지방은 '식물성 기름'이라는 오해하기 쉬운 명칭이 붙 은, 가공으로 변성되고 몸에 해로운 산업용 화학물질의 형태가 대부분 이다. 여기에는 주로 대두, 유채, 해바라기, 옥수수뿐만 아니라, 최악으 로 마가린도 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건강을 가장 확실히 개선할 수 있는 식단으로 바꾸려면 이 끔찍한 산업용 화학물질을 건강한 동물성 지방으로 대체하면 된다.
- 1970년대에 정부는 옥수수의 대량생산을 추진하고 옥수수 가격을 현저히 낮추려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미국 옥수수 농가들은 수확 물이 엄청나게 남아돌았다. 이렇게 옥수수가 싸고 넘치다 보니 저렴한 가격의 혜택을 볼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옥수수를 소비하기 위한 온갖 창 의적인 방법이 개발되었다. 옥수수의 과잉생산이 워낙 감당이 안 된나 머지 이제는 훨씬 질 좋고, 건강에 이롭고, 효율적인 대체재가 존재하 는 시장에서조차 값싸고 열등한 가공 옥수수가 사용되는 실정이다. 예 를 들면 감미료, 휘발유, 젖소 사료 등 수많은 제품의 가공 공정에서도 정부의 풍족한 지원을 받는 옥수수가 훨씬 훌륭한 대체재들을 제치고 값이 싸다는 이유로 사용되고 있다.
- 옥수수의 가장 유해한 용도 중 하나는 미국에서 관세 때문에 매 우 비싼 설탕을 대신해 감미료로 쓰이는 고과당옥수수시럽HFCS이다. 1983년에 미국 식품의약국 FDA은 어이없게도 이 신물질을 '일반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인정됨으로 분류하고 판로를 열어주었다. 그 결과 미국 산 사탕, 가공식품, 청량음료의 대부분에는 일반 설탕보다 풍미가 떨 어짐은 물론 몸에도 훨씬 해로운 HFCS로 가득 차게 되었다. 미국 이외 의 지역에서 생산된 사탕과 청량음료가 왜 훨씬 더 맛이 좋은지 궁금했 다면 이제 그 이유를 알 것이다. 다른 국가들은 설탕을 사용한다. 하지 만 미국은 토양의 양분을 고갈시키고, 자동차 엔진 성능을 저하시키고, 비만, 인슐린 저항성, 당뇨병, 간 손상 등으로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 는 옥수수를 소비할 곳을 찾다가 소화기관과 자동차를 희생양으로 삼 았다. 
- 무지방, 저지방 식품은 풍미 좋은 동물성 지방이 없으니 모두 맛이 없다. 그러자 식품 생산 기업들은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 법이 설탕 첨가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식습관 지침을 따라 동물성 지방을 피하는 사람들은 전보다 배가 더 자주 고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하루 종일 설탕이 든 간식을 폭식하게 되며, 식용으로 부적합하고 명칭도 어려운 인공 화합물이 다량 포함된 정크푸드로 허 기를 달랜다. 동물성 지방의 소비가 감소함에 따라 감미료, 특히 HFCS 가 맛을 내기 위한 대체재로 사용되는 경우가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체재는 중독성이 강한 반면, 건강에 좋고 포만감을 주는 동물성 지방은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값싼 가공식품을 대체재로 찾는 사람들은 자 꾸 허기를 느끼고 과식하기 쉽다.
포화 지방을 타도하겠다는 전쟁이 낳은 가장 파괴적인 참극 중 하 나는 지방을 제거한 탈지유의 대중화였다. 20세기 초에 미국 농부들은 버터를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를 돼지를 살찌우는 데 사용했다. 특히 옥 수수와 섞어서 사용하면 가장 빨리 돼지를 살찌울 수 있다. 탈지유를 배합한 옥수수는 어용 과학의 마법을 거쳐 당국의 홍보와 지원 속에서 사람들의 아침 식단으로 권장되기에 이르러 이제는 사람들도 살찌우 는 결과를 낳았다. 
- 정제된 설탕과 밀가루는 음식이 아니라 마약이라 봐도 무방하다. 설 탕에는 필수영양소가 전혀 없으며 밀가루에는 필수 영양소가 극소량 만 포함되어 있다. 정제된 설탕과 밀가루를 섭취하고 느끼는 쾌락은 중독성 마약 주사를 한 대 맞을 때 얻는 쾌락과 비슷하다. 수전 톰슨은 저서 『완벽한 식사법』에서 설탕과 밀가루를 정제하는 과정이 코카인 과 헤로인을 중독성 강한 물질로 정제하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설명한 다. 51 코카 잎을 씹거나 양귀비를 먹어도 쾌감과 에너지가 생기지만 중 독성은 아주 약해서 정제된 코카인이나 헤로인에 전혀 비할 바가 아니 다. 많은 문화권에서 선행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들 식물을 섭취했으 나 정제되고 가공된 형태로 섭취하는 오늘날 후대만큼 심각한 부작용 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이 식물들은 강력한 마약 형태로 가공되기 시작한 현대에 들어 중독성이 한층 강해졌다. 이렇게 가공물 형태로 섭취하 면 식물의 나머지 부분을 먹을 필요 없이 순수한 알짜 부분을 고농축으 로 흡수할 수 있다. 그 결과 쾌감은 더 강력해지고 그에 따른 금단 현상 도 심해져 복용량을 늘리게 한다. 톰슨은 설탕이 코카인보다 여덟 배 더 중독성이 있다는 연구를 인용하면서, 이러한 약물의 가공과 설탕, 밀가루의 가공 원리가 매우 흡사하다는 놀라운 사례를 제시한다.
- 프라이스의 여행 목적 중 하나는 '육류나 동물성 식품을 포함하지 않 고 완전히 식물성 식품으로만 구성해서 온전하고 정상적인 발육에 필 요한 모든 영양소를 공급할 수 있는 현지인의 식단'을 찾는 것이었다. 53 그러나 전 세계를 샅샅이 뒤져도 프라이스는 식물성 식품에만 의존하 는 단일 문화권을 찾지 못했다. 건강을 유지하는 전통 공동체는 하나같 이 동물성 식품에 크게 의존했다. 프라이스가 발견한 가장 건강하고 정 력적인 인구 집단은 북극의 이누이트와 아프리카 목동들이었다. 이 두 집단의 환경과 관습은 동물성 식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어떤 면에서도 유사하지 않았다. 프라이스는 모든 사회에 서 동물성 지방을 중시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주민들이 동물성 지방을 획득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노력과 정성을 쏟는지 분석했다. 프라이 스는 식물에서는 추출할 수 없는 여러 영양소를 발견했고, 동물성 식품 을 섭취하지 않으면 건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한마디로 불가 능하다는 결론을 입증했다. 행여 주민들이 식물성 식품을 먹더라도 주 로 귀한 동물성 지방을 구하기 힘들 때 보충할 목적으로 섭취하는 수단 인 듯했다.
프라이스의 연구 이후, 그 누구도 동물성 식품을 배제한 식습관을 지닌 토착민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북극에서 열대지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륙의 모든 인간 사회는 역사를 통틀어 동물성 식품에 기반을 두고 자신들의 식단을 구성했다. 인터넷의 발달 로 올바른 식습관에 관한 지식이 어용 과학계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널 리 퍼지게 되었고, 그 결과 프라이스의 연구를 알게 된 사람들도 늘어 났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학자, 의사, 영양사, 운동 트레이너들도 과학계 기득권층의 교리에 기꺼이 맞서기 시작했다.
- 프라이스의 연구에서 또 다른 중요한 결론은 우리가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인 문명의 질병이 대체로 현대 가공식품, 특히 정제 곡물, 밀가 루, 설탕의 도입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요점을 설명하기 위해 앞서 소개한 프라이스의 연구 중 제21장에서 인용한 것 으로, 수많은 예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오늘날 가공식품이 충치를 일으키는 주범이었다는 점은 무역선들이 태평양 제도에 출 몰해 건조 야자를 요구하기 시작한 이후 현지의 성장기 아동 사이에서 충치가 급속하 게 확산한 사실로 뚜렷하게 입증된다. 당시는 건조 야자 가격이 몇 달 동안 한창 비싸 던 시기였는데, 무역선이 야자 가격으로 지불한 대가는 흰 밀가루와 정제 설탕이 90퍼 센트, 그 외 의류와 직물류가 10퍼센트 조금 안 되었다. 톤당 400달러이던 야자 가격 이 4달러로 떨어지자, 무역선의 왕래가 멈추고 섬 주민들은 원래의 식단으로 돌아갔으 며 아이들의 충치 진행도 주춤해졌다. 이와 같이 충치가 생겼다가도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사례를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 프라이스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대부분 곡물과 채소 등 식물성 식재 료를 더 맛 좋고 무해하게 만들기 위한 식전 준비 과정을 자세히 연구 해 광범위한 문서로 기록했다. 이들의 전통 관습은 식물성 식재료에 존 재하는 많은 자연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재료를 절이고, 싹을 틔우고, 발효시키는 등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영양소 흡수력을 높이는 것이 었다. 그러나 시간선호가 높은 법화 시대에는 아무도 이러한 전통 관습 을 따를 시간이 없다. 그 대신 대다수 사람들은 영양소를 포기하고 설 탕과 인공 향신료를 마구 쏟아부은 가공식품을 선호한다.

- 당연히 인문대학은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이론을 어설프게 배운 학계의 하수인들이 점령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정부 권력을 강화하 고, 생산적 계급의 생활을 통제하기 위한 기생충 같은 비생산적 계급을 양성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권력을 반대하고 억누르자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온갖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내뱉는 가운데서도, 마르크스의 전체 세계관은 정부가 신용과 화폐 창출의 기능을 장악하고 혁명적 선봉장으로서 사회 전반의 모든 경제적, 사회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기 억할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세계를 약탈하는 정부에 기생충처 럼 기대어 살아가는 세력이 전 세계에 막대한 인명 피해와 파괴를 일으 킨 사악한 이데올로기를 아직도 조장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온 갖 피해의식과 독선적인 불만으로 무장했더라도, 결국 마르크스주의 자들은 한낱 법화를 양산하기에 부려먹기 좋은 어수룩한 꼭두각시들 일 뿐이다.
- 법화 시대의 과학은 공포를 조장하기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세간의 우려를 불러일으킬 만한 연구 결과를 내놓을수록 더 많은 자금을 받고 대학이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금 제공자는 자금 지원에 따른 기 회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론을 가장한 끝없이 히스테리 적인 비관론이 사회에 초래하는 비용과 편익을 합리적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반면에 자유 시장에서라면 과학자들이 연구의 타당성과 가치를 입증해야, 자유의사를 지닌 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그들에게 경화 로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이다.
이러한 맥락이 아니고서는 전 세계의 수많은 고학력 지식인이 이 산화탄소가 지구를 파괴한다며 병적으로 염려하는 놀라운 현상을 설 명할 수 없다. 모든 생명체에 필수적인 이산화탄소는 지구 대기의 일부로 항상 극소량이나마 존재해 왔으며, 현재 대기 중 농도는 약 418ppm(0.0418퍼센트)이다. 산업화 이전에는 약 280ppm였다. 이처럼 농도 증가분이 미미한데도 현대 기후 과학은 자연환경이 마주한 모든 문제를 이산화탄소 탓으로 돌리며 기이하리만치 태양광을 숭배하고 있다.
- 이 히스테리의 대부분 기반이 되는 온실효과는 실험실 환경에서 잘 입증된 효과다. 그러나 어용 과학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검증 가능한 가설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사용해 이산화탄소의 증가가 실제 세계에 서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 입증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초기 히 스테리는 주로 지구 온도 상승에 초점이 맞춰져, 세계의 대부분 인구가 거주할 수 없을 만큼 기온이 상승하리라는 파멸적 예측이었다. 이러한 비관론이 수십 년간 이어졌음에도 지난 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측정 된 온도 기록은 상승세를 거의 나타내지 않았을뿐더러, 변동치가 얼마 가 됐든 산업화 이전에 지구가 경험한 정상적인 변동치 범위를 벗어나 지 않았다.
탄소 히스테리의 초기에는 산업화의 시작과 함께 지구 온도가 하키스틱 모양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에 대체로 합의가 모아졌다. 그리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급격한 온도 상승 으로 지구와 인류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공포가 조성 되었다. 명성 높은 어용 과학 연구 센터의 아주 유명한 과학 연구를 기 반으로 발표한 하키 스틱 모형은 전 세계의 상상력을 사로잡았고, 앨 고어 전 부통령 주연의 자극적 공포물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에도 등장했다. 특히 여기서 유명한 장면은 고어가 거대한 프레젠테이션 화 면 앞에서 리프트를 올라타고 지구온난화 기록을 추적하며 산업화가 지구를 돌이킬 수 없이 변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한 대목이다.
그러나 2010년 현대 어용 과학계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가 발생했다. 해커들이 이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들의 이메일을 폭로해 낸 것이다. 여기에는 과학자들이 20세기 후반에 목격된 기온의 '하강을 감 추기' 위해 데이터를 다양하게 조작하는 방법을 논의했다는 내용이 매 우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그들은 어용 과학자여서 이 노골적 인 사기에 연루되고도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여전히 전 세계에 히스테리를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기가 폭로되면 서 탄소 히스테리의 토템이자 부적인 '하키 스틱'은 다행히 자취를 감췄 다. 73 어용 과학자들의 착각과 달리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준이 지구의 온도 조절 장치라고 믿을 근거는 거의 없다.
해양 산성화도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증가해서 나타나는 영향 중 하나로 흔히 거론되고 있다. 이 영향을 다룬 수십 편의 학술 논문이 발표 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과학자들이 이 연구 결과들을 재현하는 실험 을 수행한 결과, 이들 논문이 특정 결론을 얻기 위해 극도로 자의적인 방법론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어용 과학자들이 물고기를 수조에 넣고 연구했을 때는 물고기가 잘 자라지 않았다. 그러 나 훗날 다른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비교적 높은 바닷물에서 테스트한 결과, 물고기가 이산화탄소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 을 알아냈다.

- IMF의 주요 역할은 전 세계의 최종 대부자로서 대출을 제공하는 것 이다. 개별 정부는 대외결제에 필요한 외화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현행 통화 체제는 연화로 작동하기 때문에, 이 체제가 계속 돌아 가도록 유지하려면 확장적 통화정책이 거의 불가피했다. 미국 연준의 자금조달 덕분에 IMF는 전 세계 중앙은행에 다량의 미국 달러 표시 채 권을 발행할 수 있었고 지난 70년 동안 이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다. 미국 달러가 글로벌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지 않으려면 IMF의 존 재가 필수적이다.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할 글로벌 대출기관이 없었다면 모든 제3세계 국가에서 달러화가 바닥났을 테고 중앙은행들은 파산했 을 것이다. 그러면 제3세계 국가의 은행과 개인들은 다른 국가의 통화나 금을 가지고 세계무역에 참여해야 한다. IMF가 회원국의 자국 통화 에 금본위제 적용을 엄격히 금지하는 것은 괜한 것이 아니다. 안 그러 면 19세기의 세계 금본위제가 그랬듯이, 국제 금융의 안정이라는 IMF 의 공식 목표를 모두 달성하더라도 미국 달러가 글로벌 기축통화 지위 를 계속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IMF가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면서 생기는 문제점은 독점적 중앙은 행에 내재하는 문제점과 같다. 개별 은행을 구제할 수 있는 중앙은행의 능력은 은행들이 구제금융의 가능성을 믿고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도 록 부추긴다는 점에서 집단적인 도덕적 해이를 일으킨다. 달러가 글로 벌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IMF는 모든 정부가 달러를 사 용하도록 장려하고 달러가 떨어지면 대출해 준다. 금본위제하에서 금이 고갈되고 파산한 국가는 사실상 채권국들에 국권이 넘어갔다. 왕이 파산하면 퇴위하고 국토 전체가 다른 나라에 점령되었다. 국가가 채무 불이행이나 파산에 이르면 매우 심각한 결과가 뒤따랐고, 책임 있는 재 정 및 통화정책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러나 IMF가 구제금융 을 제공하기 시작한 후로는 국가 지도자들이 IMF로부터 대출받아 후 대의 국민에게 파산 비용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무능과 실정 에도 별로 심각한 대가를 치르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세계은행으로 개칭되는 국제부흥개발은행의 초기 목적은 유 럽을 재건하고 극빈국들을 위해 개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었다. 그런 데 영국과 미국 대학에 만연한 끔찍한 케인스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에 영감을 받은 미국인들은 세계의 빈곤국들이 발전하려면 막대한 개발자금을 원조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당시 미국이나 영국의 관료와 학 자들의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소련은 경제적 성공의 본보기였다. 그 들은 소련의 중앙 계획 경제가 빈곤국들에 상당한 경제성장과 발전을 제공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다른 국가들이 소련과 손잡지 못하게 막 으려면 전 세계의 모든 개발 계획을 미국이 중앙 집권식으로 주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세계은행도 미국 연준의 신용 자금줄에서 재원을 조달해 1950년대 부터 제3세계 국가들의 개발 계획을 이끌어온 주역이었다. 그들이 주 력하는 사업 모델은 빈곤국에 개발 자금 대출을 제공하고 개발 계획을 지원하는 것이다. 지난 70년 동안 경제학의 한 분과로서 개발경제학은 이러한 대출을 위한 정교한 마케팅 자료 역할을 했다고 이해하면 가장 적절하다. 세계은행의 계획이 불가피하게 실패하고 부채가 상환되지 않으면 IMF가 개입해 낙후된 국가들을 갈취하고, 자원을 약탈하며, 정 치체제를 장악한다. 이 모든 비용을 대출의 형태로 지불해야 하는 빈곤 국을 희생시키면서 빈곤 산업 종사자를 위한 많은 일자리, 소득, 여행 기회를 창출하는 주체는 바로 공생 관계에 있는 IMF와 세계은행이다.
-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상당한 기간에 걸쳐 성공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한 미개발 국가의 사례는 보츠와나와 칠레 두 곳뿐인 데, 둘 다 각 대륙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에 정부가 막대한 차관을 들여와 중앙 집중식으로 경제를 계획하면 언 제나 경제적 재앙과 초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되었다.
빈곤 산업에서 '자리 하나 차지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개발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인도와 중국의 성공은 정부가 계획을 세우고 경제에 적극 적으로 개입해 훌륭한 성과를 이룩한 증거로 여겨진다. 그러나 빈곤산 업에서 급여를 받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경제성장의 진정한 동인은 정 부 개입을 대폭 축소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국가의 역할 과 빈곤 산업을 더욱 제한해야 더 빠른 성장과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도 확실하다. 중국과 인도의 관료와 정치인들이 시행한 정책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 것은 그 정책들이 좋아서가 아니라 워낙 국가통제주 의적 성격이 강했던 과거 정책보다 한결 덜 끔찍해졌기 때문이다.
경제 발전의 달성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다. 단지 평화, 건전화폐, 그리고 일하고 재산을 소유하고 자본을 축적하고 자유롭게 거래할 개 인의 자유가 있으면 된다. 진짜 불가사의한 것은 국제 금융 기구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받으면서 어떻게 중앙에서 경제 발전을 계획할 것이냐 다. 이것이 결국 개발경제학자들이 갈팡질팡하는 이유다. 그들의 임무 는 빈곤을 종식하거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경력을 쌓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의 법화 통화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 1915년 미국의 집값은 평균 3500달러였고, 2021년에는 26만 9039 달러였다. 107년 동안 복리 계산으로 연 4. 18퍼센트씩 상승한 셈이다. 법화 본위제가 1914년에 통화량을 고정하고 대신 물가가 매년 2퍼센 트씩 하락했다면 오늘날 미국의 평균 집값은 411달러가 되었을 것이 다. 달러 공급량이 훨씬 적었다면 물가는 현재 수준보다 훨씬 낮았을 테니 말이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 소득 가치도 훨씬 줄겠지만, 재화 가격이 하락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구매력이 좋아지므로 저축한 돈으 로 해마다 더 많은 재화를 구매할 수 있다. 1915년 당시 여러분 증조부 모 세대에게 411달러는 집값의 12퍼센트에 해당했다. 그러나 그 돈을 간직했다가 여러분에게 물려줬다면, 오늘날 여러분은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 여러분의 증조부모에게 목돈이 오늘날에는 여러분의 생계비로 충분할 것이다. 물가가 하락하는 세계에서는 이것이 사람들에게 미래 를 위해 저축해야 할 강력한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인류가 법화의 인 플레이션으로 고통받지 않았다면 지금쯤 생활수준이 얼마나 향상했을 지는 오직 상상에 맡기겠다.
세계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1965~2020년 주요 국가에서 통화 공급 에 따른 연평균 물가 상승률은 스위스가 6.67퍼센트, 미국이 7.44퍼센 트, 일본이 9.76퍼센트, 영국이 10.87퍼센트, 중국이 20.33퍼센트다.

- 군사적 충돌은 결국 가장 원시적인 권력 경쟁이다. 적을 해치우기 위해 더 많은 물자를 이동하고 더 많은 물리적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 는 자가 승리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법화를 탄생 시켰고,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세계 최강국이 되어 전후에 법화 시스템을 설계하고 인플레이션을 세계에 수출할 능력이 생겼다. 미국 의 통화 패권은 오늘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군사 기지 네트워크와, 단 시간에 지구 전역에 압도적인 군사력과 파괴력을 자랑하는 대형 항공 모함 등을 통해 뒷받침되고 있다. 이러한 패권의 과시와 함께 달러가 전 세계적으로 흘러들어 글로벌 통화 체제의 기본 레이어로 자리 잡았 다. 미국이 대외적으로 군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소모하는 국력과 전 세계에서 수행하는 끊임없는 전쟁의 소용돌이는 바꿔 말하면 미국 달 러와 통화 당국이 전 세계적인 자본의 이동을 촉진하는 글로벌 금융 시 스템의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소모하는 노력과 에너지이기도 하다.
- 자본재의 본질적 속성은 생산자의 한계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맨 손으로 고기 잡는 사람보다 낚싯대를 사용하는 사람이 시간당 생산성 이 높고, 또 낚시꾼보다 작은 배와 그물을 갖춘 어부가 생산성이 높으 며, 또 어부보다 현대식 저인망 어선이 생산성이 훨씬 높다. 자본축적 량이 증가하면 노동자의 한계 생산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자본축적량 이 많은 나라가 빈약한 나라보다 소득수준이 높다. 인간의 진보와 문명 화가 진행되는 과정은 인간이 투입하는 노력 단위당 더 많은 산출물을 생산할 수 있게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더 많은 자본이 축적될수록 노동생산성이 더 향상되고 생산물의 한계비용은 낮아진다.
이 분석을 비트코인의 전력 소비 문제에 적용하면 놀라운 의미를 발 견할 수 있다. 비트코인은 세계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값싼 에너지 생산을 증진하기 위해 전 세계 에너지 생산자에게 강력한 시장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비트코인은 시세보다 낮은 전기 비용으로 채굴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커다란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전 세계 어디서나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을 개발하는 자에게 매우 큰 가치를 보상한다. 이어서 이 금전적 보상이 저렴한 에너지원을 위한 자 본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촉진해 에너지 생산을 증가시키고 비용은 떨 어뜨린다. 이는 9장에서 논의했듯, 법화가 불안정하고 간헐적인 에너 지원의 사용을 의무화하고 장려함으로써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원 의 개발을 방해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특히 흥미롭다. 비트코인의 성장 은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계속 커다란 보상을 제공하기 때문에 법정 연료의 성장이 그동안 초래한 피해를 바로잡을 해결책이 된다. 정부가 이 믿음직한 에너지에 세금을 부과하 고 규제해 가격을 훨씬 높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거꾸로 정 부로부터 시뇨리지를 빼앗아 전 세계에 저렴한 에너지 생산 자금으로 사용함으로써 인과응보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비트코인의 성장은 전기로 생산된 디지털 재화의 화폐화이고, 비트 코인 수요가 증가하면 전력 수요도 증가할 것이다. 비트코인이 이 세계 를 얼마나 강력하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지 최대한도를 상상하고 싶 다면 첫째로 비트코인의 화폐화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중요한 경제재 인 전력 생산을 주도하리라는 점, 둘째로 부채와 법화의 화폐화로 국채 남발과 정부 권력의 확대를 초래한 법화 시스템이 권좌에서 밀려날 것 이라는 점을 깨달으면 확실한 답이 나온다. 비트코인은 정부, 관료, 대 출기관, 차용인, 호전적인 군대에 시뇨리지의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기적의 상품을 생산하도록 유도해 전 인류가 번영하고 암흑, 추위, 질 병, 자연재해를 극복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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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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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의 대전환

경제 2024. 7. 30. 06:52

- 우리는 경제사 속 일곱 번의 중대한 위기에서 일곱 가지 교훈을 얻 을 수 있다.
1. 산업화되고 상호 연결된 세계에서는 세계화의 전환점에서 서로 닮은 점을 찾을 수 없다. 위기의 순간마다 개인과 기업과 정부는 전례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에 직면하며 심상 지도mental map 를 다시 그리게 된다.
2. 이건 위기에서 얻은 교훈은 새로운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 을 모색하는 데 종종 방해될 수 있다.
3. 부정적인 공급 쇼크는 글로벌 공급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든다.
4. 부정적인 공급 쇼크가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는더러 인플레이션을 허용하는데, 인플레이션 덕분에 시민들이 더 많은 자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5. 부정적인 수요 쇼크는 국가가 자급자족을 추구하도록 밀어붙인다. 
6. 부정적인 수요 쇼크는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7. 인플레이션은 공급 충격의 즉각적인 결과에 대처하거나 조정하 기에 좋은 방법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지리적으로 먼 거리에서 신 뢰할 수 있는 안전한 자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근본적인 문제 를 해결해주지 않으며, 해결할 수도 없다.

- 자본주의는 금융위기를 몇 차례 겪은 후에도 유연성과 적응력을 보 인다. 힐퍼딩이 바이마르 공화국 재무장관으로서 1923년 및 1928~ 1930년에 발생한 두 차례 위기에서 자본주의를 구하려고 애쓴 점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특히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이 끝날 무렵에 안정 화가 이루어진 것도 그의 공이 매우 컸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봉착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마다 급진적인 붕괴 에 대한 열망이 계속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대규모 주식시장 붕괴 직 후인 1987년 가을에 있었던 우연한 만남을 기억한다. 당시에 1929년 월스트리트 붕괴와 거의 똑같은 단기적 내림세가 나타났으나 경제적 으로 장기적인 영향은 거의 없었다. 그때 나는 디킨슨 홀에 자리 잡은 프린스턴 역사학과 사무실의 바깥마당에 있었고, 저명한 선배이자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아르노 메이어Arno Mayer가 최근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났으며 지적으로나 실제 체격으로 보나 상당한 거 구인 폴 볼커Paul Volcker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메이어가 "이제 마침내 자본주의는 끝났다"라고 하자, 볼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흠...."이라고 말을 아꼈다.
힐퍼딩의 시대로부터 100년가량 지났으므로 금융위기와 자본주의 붕괴에 관한 오래된 논쟁을 다시 검토할 만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는 오랫동안 적대 관계였으나 이제 하나로 수렴하고 있다. 둘 다 원래 는 자발적인 필요와 원하는 바를 충족할 수 있는 분산형 할당 시스템 에서 정보를 제공할 기회를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 그런데 둘 다 권력의 집중화가 발생하자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 드러났다. 권력의 집중이란 원래 정부 시스템이 규제하고 통제해 야 하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억압만 더 심해졌다.
이러한 집중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분산형 상호작용 프레임워크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의 거대한 독점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를 찾는다는 은 정치적 힘을 남용하는 상황으로 빠지지 않으면서 생산성 이윤을 크 게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꿈꾸던 과거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자본론> 제1권에는 악명 높은 문구가 몇 가지 있다. 마르크스는 '외 피가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을 고대했으며 "자본주의 사유 재산의 종소 리가 들리고 수용자들이 수용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충돌 이론crash theory, Zusammenbruchstheorie'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되는 후기 정통주의의 기원이다.
- 현대 학자들은 이 구절이 "이 책의 나머지 부분과 거의 무관하다"라 고 해석한다. 이는 1840년대 혁명적 열망의 유물이자, 세계 대격변 속 에서 프랑스 혁명을 반복한 변혁의 순간을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다.” 독일 출신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는 1840년대의 환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에 나오는 방랑하 는 네덜란드인Flying Dutchman은 다음과 같이 외친다. "세상이 무너질 때 파괴를 알리는 나팔 소리는 언제 들려올까?"
종말론적 비전을 대체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자본주의는 위기를 생산적이거나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 전쟁의 재정 문제는 사회 배분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 "정부는 어느 정도까지 세금으로 전쟁 자금을 조달하고 어느 정도는 차입으로 해결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핵심 원칙은 경 제적 부의 수준이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쟁 비용을 합리적으로 배분 하는 정부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35
20세기에 와서 새로운 국내 정치 현실, 노동계급과 사회주의 정당의 등장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새로 고려할 점들이 생겨났으며, 여기에는 차입을 줄이는 것도 포함되었다. 차입은 부유한 투자자 계층에게만 유 리한 것이었다. 피구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전쟁은 격변을 일으키며 매우 예외적이다. 매우 부유한 사람과 일반 부자들은 평시보다 객관적으로 훨씬 더 큰 부담을 안아야 한다.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고소득자에게 빌린 돈 으로 전쟁 자금을 조달하는 비율은 지금보다 많이 줄여야 하며, 일종 의 누진세 형태로 그들에게 돈을 걷어 전쟁 자금을 조달하는 비율을 늘려야 한다.
-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은 독일 저축을 무너뜨렸고 바이마르의 불안 정한 민주주의 경제를 더 많은 쇼크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대중 심리와 정치 심리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독일 인플레이션의 패자를 보상하려고 일부 자산만 재평가하고 나머지 자산을 재평가하 지 않았는데, 그 결과로 서로 대립하는 집단이 생겨났고, 정치는 조직 화된 이익집단 간의 협상이 전부라는 불신이 생겨났다.
가격 변동이 계속 이어지고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투기로 막대한 돈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끊임없이 들려오자 평범한 독 일 시민들과 중부 유럽 사람들은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가격 의 광기로 인해 남녀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남자는 여자를 원래 계산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낭만적인 환상을 크게 경멸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여자도 남자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54
돈이 전부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유대인이 금융계를 쥐고 흔드는 것에 관해 오래되고 진부한 표현이 많이 있었기에, 인플레이션의 불확 실성은 반유대주의를 부추겼다. 나중에 과학자이자 작가인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를 비롯하여 몇 예리한 관찰자들은, 대인플레이션 때 문에 큰 숫자가 비현실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 되었고, 결국 홀로코스트도 가능하게 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55 관 료들은 결과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큰 액수를 적었다.
불안정한 물가는 파괴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살인적인 사회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정확한 메커니즘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안정된 시기에는 상업 거래의 양측 각 당사자는 가격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거래가 양측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주린 배를 달래줄 한 끼의 식사를 하고, 그 대가로 식당 주인은 자기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쓸 돈을 갖게 된다. 가격이 달라지면, 나는 비용을 더 많이 내야 하므로 화가 나고, 식당 주인은 내가 낸 돈으로 더 이상 많은 물건을 살 수 없기에 화를 낸다. 우리 둘 다 거래에서 실패했 다고 여기며, 어떤 사악한 힘이 자신을 조종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용한 것에 대해 죄책감도 느낀다. 상대방의 손에서 순식간에 돈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의 방식이 투기성을 띠거나 거 래를 마음대로 장악하려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화폐 혼란 속에서 비유대인 독일인은 유대 인의 행동과 연관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렇게 전통 규범을 위반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 그래서 금융이나 돈과 관련된 집단을 비 난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강한 감정을 외부로 표출했다. 이동성에 대 한 반발도 있었는데, 특히 독일의 새로운 동부 국경을 넘는 것에 매우 예민했다. 폴란드인과 유대인 상인들은 독일인을 이용하는 것처럼 묘 사되었다. 하지만 외화가 강세를 보이고 마르크가 하락함에 따라, 외국 관광객들(서유럽과 미국에서 온 관광객)이 베를린이나 그 밖의 환락가에서 적은 비용으로 수준 높은 생활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 또한 독일인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인플레이션은 윤리적 가치를 무너뜨렸으며 정치 구조를 부식시키고 약화하기도 했다. 

- 1920년대는 화려하고 시끄럽게 시작했으나, 후반기에 와서는 상황 이 나빠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재앙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 한 상황은 없었다. 분석가들은 1929년 10월 미 주식시장이 무너져내 린 정확한 이유를 찾으려고 오랫동안 애썼으나 시간만 낭비했다. 아무 리 찾아봐도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21 1929년 초에 제너럴모 터스 사장 알프레드 슬론Alfred Sloan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대체로 볼 때 사업은 잘되고 있으며 대다수 분야에서 더 나아질 것 이다. 제조업자, 도매업자, 소매업자는 신용 관리에서 지나치게 도를 넘은 상태가 아니다. 산업 부문이 과거에는 때때로 과잉 생산으로 문 제를 겪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징후가 없다. 올해는 앞길에 좋은 징조 만 보이는 것 같다.
- 1929년 2월이 되자 신문에는 불안이나 회피 심리를 드러내는 표현 이 쏟아져 나왔다. 내용 대부분이 브로커 대출을 제한하여 지나친 호황 을 억제하려는 연방준비제도의 행보와 관련이 있었다. 2월 11일에 <월 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시장과 함께Abreast of the Market'라는 칼럼은 이 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계속 비관적이다. 연방준비제도의 최근 경고 는 지난달보다 더 많은 관심을 얻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 결과, 부패 나 비효용성을 걷어내야 할 필요성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특히 처음 부터 노골적으로 낙관적이었던 외부인들 사이에서 그런 의견이 대두 된다. 보수적인 관찰자들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계속해서 이익을 얻는 것을 선호하는 쪽으로 계획한다. 시장이 좋은 매수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전에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주식을 재매입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1920년대의 열광을 주도한 것은 혁신과 심리학이었다. 미래에 대한 투기, 풋옵션, 콜옵션의 변형이 수없이 나타났다.
새로운 개념도 등장했다. 투자자이자 전문가인 벤저민 그레이엄 Benjamin Graham은 가치 투자라는 아이디어를 추진하여 권위자로 인정받 았다. 그런데 오해를 일으키거나 잘못된 행동을 유발하는 온갖 종류의 인센티브가 있었다. 훗날 그레이엄은 "대다수 고객이 대리업자에게 구 체적인 허락이나 주문을 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고팔 수 있 는 계정, 즉 매매에 관한 자유재량을 일임하는 계정을 사용했다"라고 언급했다. 그들은 수익이 발생하면 고객과 절반씩 나누어 가지면서도 손실은 조금도 떠안지 않았다." 그래서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고, 투자에서 발생하는 손해나 비용은 전부 다른 사람에 게 떠넘겨버렸다.

- 경제사학자 알렉스 필드Alex Field 는 1929년부터 1941년은 미 경제사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큰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라고 평가했다.131 대공황 중에도 기업은 실험실을 새로 짓고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전화, 자동차, 전기제품, 유틸리티, 통 신 등 여러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했고, 이들의 상호 작용 덕분에 사람 들의 생활이 크게 달라졌다.
1930년대 후반에는 미국 도심의 거의 모든 가정에 전기가 공급되었 다. 도심 가정의 94퍼센트는 수도관과 하수관이 연결되어 있었고 80퍼 센트는 실내에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었으며, 58퍼센트는 중앙 난방장 치, 56퍼센트는 냉장고를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각 가정에서는 세탁기 를 사들였다. 한편 시골 지역에서는 트랙터가 등장하여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 대공황의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 명했다. 사실 혁신은 1930년대 후반에 더욱 빨라졌다. 그리고 전쟁 때 문에 새로운 추진력이 생긴 것도 있었다.132 미시간주에 자리 잡은 헨리 포드의 윌로 런willow Run 공장은 B-24 폭격기를 제작한 곳이다. 이 공 장은 1941년 3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년도 되지 않아 완공되었으며, 1942년 5월에 첫 비행기를 생산했다.
원래 이 공장은 시간당 폭탄 1개라는 엄청난 속도로 폭탄을 생산하 려고 건립했으나, 목표 속도를 달성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오랜 기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연습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진 덕분에 생산 속도는 점차 빨라져서 1943년 2월에는 1달에 75개, 1943년 11월에 1달에 150개를 생산했고, 1944년 8월에는 1달에 432개라는 신기록을 세웠다.133 이렇게 전시 생산 모델에서 소비자 번영을 창출하는 데 적용 할 수 있는 새로운 템플릿이 만들어졌다.
- 국제 정세로 인해 생산성 엔진이 더욱 빠르게 가동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0년대 후반에 닥친 장기적인 경기침체의 위협에서 미국 경제를 구제해준 경제적 기적이었다는 주장을 증명할 가능성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노동자의 삶에 실질적인 개선을 가져다준 반세계화 deglobalization의 논리가 있다. 이제 노동자는 국제 이동에 대한 새로운 제한에서 보호받게 되었다. 1930년대에는 최근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일이 없어서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임금 인상을 추진하는 것이 비교적 쉬워졌다. 관세장벽이 높았기에 미 제조업체는 과거 수십 년간 의존하던 아웃소싱을 멈추고 국내 공장에 이용 가능한 모든 혁신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민자나 수입에서 비롯된 경쟁이 사라지자 소득 피라미드에서 가장 아래에 놓였던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했으며, 이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소득 분배를 놀라울 정도로 '크게 압축하는 데 이바지했다.
- 전쟁은 미국 정부의 놀라운 힘과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미 정 부의 잠재력은 사실 1930년대에 이미 다른 나라를 통해 확인되었다. 특히 소련과 나치 독일 정부는 포드주의야말로 국가 경제를 일으키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역사가 스테판 링크stefan Link의 최근 저서를 보면 소련과 독일의 엔지니어들이 미국의 기술에 깊이 매료되어 그와 비슷 한 변화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138 세계화를 나타내는 U모양 곡선과 미국 생산주의productivism를 가리키는 모양 곡선은 서로 밀접하게 얽 혀 있다. 미국은 이렇게 전 세계가 모방할 만한 모형 또는 템플릿이 되 었다.
정치적 우위가 미국의 비전을 널리 보급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긴 했 지만, 이러한 결과는 새로운 정치적 우위를 선점한 덕분만은 아니다. 1945년 이후 세계화는 무역, 사람, 자금의 거대한 흐름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아이디어의 거대한 흐름과 관련이 있었다. 미국 은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갖춘 경제 대국으로서 한 번도 해외무역에 크 게 의존한 적이 없었으므로, 이런 의미에서는 세계화가 많이 이루어 졌다고 할 수 없었다. 미국은 아메리칸드림이 대공황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20세기 중반에 전 세계의 발전에 크게 이바 지했다.
각국의 정부는 수요 하락으로부터 시작된 대공황으로 인해 재앙이 발생하면 경제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공공 부문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결과가 이어졌다.
- 공공 부문의 동원은 국가적 차원에서 가능한 일이며, 군사 동원이라 는 측면에서 분명히 큰 위험을 안고 있었다. 또 다른 지역에서 이를 모 방하다가 자칫 큰 문제로 이어질 확률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는 평화 로운 상황에서 이를 모방할 경우, 군사 동원을 민간 동원처럼 보이도록 변형한 것, 달리 말해서 모든 나라는 독자적인 계획, 미래에 대한 자체 적인 경제 목표, 독자적인 항공사 및 독자적인 자동차 생산업체가 필요 하다는 주장이 대두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아주 빠른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빠른 발전even fast development'이라는 용어는 1940년대에 흔히 사용되었다. 안타깝게 도 당시의 빠른 발전은 케인스가 지시한 것, 즉 '실질적인 세계화'가 이 루어지지 않은 발전이었다.

-  공화당 최종 후보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불안감'이라는 주제 를 자신에게 매우 유리하게 활용했다. 인플레이션은 카터를 공격하는 주요 무기가 되었다. 1980년대 초반에 인플레이션이 18퍼센트를 기록 했고, 카터와 레이건이 출연한 중요한 텔레비전 토론에서 레이건은 다 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과 OPEC을 두고 국민을 탓하고 있습니다. 연방 준비은행 시스템을 비난하고, 미 국민에게 생산성이 낮다고 비난합 니다. 그러더니 사람들이 너무 잘살고 있다며 부족함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부족함을 견디며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훈계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플레이션을 겪는 것은 사람들이 너무 잘 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부가 너 무 편하게 지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겁니다.24
정치인들은 쉽게 인플레이션을 비판하지만 사실 인플레이션에 어떻 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과정은 어려워 보이 고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기만 하는 데다 개선 정책은 전혀 없으니 이를 완화하려는 과정은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 2008년 금융 쇼크는 미국에서 발생한 것이며, 전 세계 수요와 국제 무 역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의 입지도 크게 흔들렸다. 미국이 전 세계 경제를 주도한다는 생각은 브레턴우즈는 물 론이고 1970년대 이후로 통화 문제에서 널리 사용된 (경제학자 존 윌리 엄슨이 만든 용어인 '무제도nonsystem'의 실질적인 기초였다. 대공황은 수 요 붕괴와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대공황을 통해 배운 점으로는 은행 구제를 위한 조처 및 조정, 유동성 공급을 위한 통화 정책의 사용, 재정 부양책, 공개 시장을 유지하는 일반적인 합의 등이 있다. 이러한 조처 가 초반에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으나 정치경제에는 예상치 못한 반격이 있었다. 은행을 구제하는 데 주력한다면, 이는 납 세자가 낸 돈으로 문제의 주범이자 악당을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이 사태는 '글로벌 금융위기' 또는 '대침체'라고 불리는데, 많은 정책 입안자가 세계화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일례로 영국 중앙은행 총재 머빈 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 인도, 구소련과 같은 국가들이 세 계 무역 체제에 진입한 결과를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위기의 근원이다. 한 마디로 세계화가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
공식적인 대응은 2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 번째는 '대형 바주카 포' 구제였고, 그 후에 재정적, 정치적 비용을 둘 다 계산하게 되었다. 2007~2008년에 발생한 갑작스러운 금융 쇼크의 즉각적인 여파로, 금 융 부문, 즉 구제안을 쥐고 있는 은행이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는 시장에 발언권을 주기 위해 문제가 있 는 자산을 사들이는 조처를 계획했다. 그러나 가치 평가 작업은 아주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렸기에 미 행정부는 영국에서 만들어진 훨씬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바로 정부 자금으 로 은행에 자본을 확충하여 은행이 최종 손실을 감수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 방법은 심장마비를 치료하는 것과 같았다. 혈액 순환을 회복하려면 심장(금융 서비스)을 마사 지해야 했다.
많은 선진국에서 이 방법이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당시에는 이 조 치가 장기적으로 금융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은행 자산가치가 회복되고 정부가 이 거래에서 이익을 거둘 가능성이 충분 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미국과 스위스에서는 이것이 현실로 나타났 으나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즉각적인 금융 구제는 정부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은행들은 주로 자신과 직원들이 이익을 취하는 잘못된 형태의 인센티 브를 통해서 주로 위기를 자초했는데, 인제 와서 손실을 사회화하자고 제안하고 있었다. 이런 은행들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처벌하는 것이 마땅해 보였다.

- 탈세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코로나19와 세계화의 연관성을 명확하 게 정립하려 했다.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자문이었던 피터 나바 로Peter Navarro는 세계화를 가리켜 팬데믹의 처벌을 받은 '원죄'라고 주 장했다. 세계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 각은 1993년 대중문화에서 이미 여러 번 드러났다. 애니메이션 시리즈 <심슨 가족>의 한 에피소드에는 호머 심슨이 우편으로 배송된 일본 제 품의 포장지 때문에 독감에 걸리고, 결국 오사카 독감의 슈퍼 전파자가 되는 내용이 나온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여파로 곳곳에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의약품, 보호 장비, 산소, 백신, 화장실용 휴지, 반도체 칩, 교통 시설, 연료, 운동 기구 등 봉쇄 기간에 모두가 필요로 하는 물품은 모두 부족했다. 곳곳 의 사람들이 취약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 너무나 명백했다. 수에즈 운 하에 컨테이너 선박이 갇혀버리거나 중국 항구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우연히 발생한 사고로 인해 공급망에 차질이 생겼고, 전 세계에 파급 효과가 미쳤다. 비슷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자 전 세계 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부각되었고, 이러한 세계화에 심각한 취약성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러 다가 2022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데,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유럽에서 가장 중대한 무력 충돌이었으며 공급망에 유례 없고 위협적인 문제를 초래했다.
- 모더나와 바이오엔텍은 각각 매우 투기성이 강한 기업처럼 보였 다. 바이오엔텍은 독일연방 교육연구부가 시행하는 자금지원 프로그 램GoBio과 독일의 대형 복제의약품 생산업체 창립자들에게 초기 투자 를 받아 설립되었다. 이후에 다수의 특허를 출원했으며 2019년에는 미 국 나스닥에 상장했으나 주요 의약품제조업체는 아니었다. 모더나는 2018년에 바이오테크 기업으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IPO를 시작했 으며 75억 달러의 가치를 기록했는데, 약품이나 백신에 대한 규제 승 인을 아직 한 차례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자본시장에서 이처럼 큰 자 금을 확보하자, 모더나는 지카 바이러스, 사이토메갈로 바이러스 등을 연구하여 2018년에 매사추세츠주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짓게 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자 모더나는 제조시설을 확장하기 위해 13억 달러를 모금했다. 이는 창의성의 승리이자 벤처캐피털의 놀라운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SV헬스 인베스터스SV Health Investors의 벤처자본가 케이트 빙엄Kate Bingham이 영 국 백신 태스크포스 의장으로 임명되어, 케이트는 백신 6종을 3억 5천 만명 분량으로 확보하기 위해 인프라와 테스트 사항을 관리했다. 이는 영국 정부가 내린 몇 안 되는 성공적인 결정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의학 발전과 백신 개발을 추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정부였을까?
2013년으로 돌아가보면, 미 정부는 핵심 연구개발조직인 다르파 (DARPA, 방위고등연구계획국)를 통해 희소 질환에 대한 의료적 해결책을 연구하도록 민간 기업에 보조금을 전달했다. 모더나는 열대지방에서 발생하는 모기 매개 질환 치쿠쿠니야 열chikungunya을 퇴치할 수 있는 mRNA 약품을 개발하도록 2천 50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팬데믹이 시 작된 이후에 미 정부는 2020년 5월 15일에 백신 생산과 개발을 가속 하기 위해 100억 달러를 투자하는 웝스피드 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시작했다. 모더나는 15억 3천만 달러를 받았고 아스트라제네카와 존 슨앤드존슨도 막대한 금액을 지원받았지만, 바이오엔텍과 협력한 화이 자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바이오엔텍은 3상 실험을 시작할 무렵에 백 신 생산량을 대폭 늘리기 위해 독일 정부에서 3억 7천500만 유로를 받 았지만, 웝스피드 작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였다. 그동안 미 정부가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문제는 고의로 무시하고, 잘못된 치료책 을 지원하거나 국수주의적인 태도를 고집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웹 스피드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너무 늦게 나와서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화이자는 선거가 끝난 지 2주 후인 2020년 11월 20일에 FDA에 백신 긴급 승인을 요청했고 모더나는 11월 30일에 승인을 요청했다.(두 회사는 각각 12월 11일과 12월 18일에 긴급 승인을 받아냈다.)
솔루션을 제공한 기본 기술은 전혀 새로운 기술이 아니었다. 나노기 술은 숙주 세포에 바이러스 단백질의 유전자 서열을 전달하는 데 사용 되는 과정인데, 아마 1959년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먼의 '바닥 에는 공간이 충분하다There'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라는 다소 엉뚱했 던 강의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다. 결정적인 도구인 스캐닝 터널링 미 세포자는 1981년에 개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와서 나노기술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20년에는 나노기술로 해결해야 할 백신 전달 이라는 확실한 문제가 있었다.
하루빨리 백신을 개발하고 백신을 미리 구매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지출한 금액은 아마 사회는 물론이고 정부를 위한 절감 측면에서도 지 금까지 측정된 정부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이었다. 백신이 수요가 증가하자 전략적인 부문에 부족 현상이 발생하여 다른 부문 으로 파급 효과가 미쳤다. 초반부터 가장 명백한 문제였고, 시간이 지 나도 해결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심각해진 문제는 '치파게돈'으로 알려 진 (반도체)칩 부족 현상이었다. 봉쇄 초반에 많은 직장인이 재택근무로 전환하면서 통신 장비를 업그레이드했다. 그러자 노트북, 라우터, 웹캠, 태블릿, 모니터와 같은 전자 제품 수요가 급증하여 칩이 부족해졌다.20 그러고 나서 봉쇄로 인해 서비스에 지출할 기회가 줄어들고 개인 상호 작용이 적어지면서 사람들이 상품 소비를 점점 늘려갔다. 칩 부족 현상 은 놀라울 정도로 오래되어 2022년까지 이어졌다. 바이러스의 공중보 건 통제에 필요한 기본적인 테스트 장비가 부족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 정책 시행에 따라 물품 부족은 더욱 심해지다가, 무역 전쟁이 일어 나자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기존의 무역 갈등은 미국이 몇몇 핵심 분 야에서 의료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보호 장비, CT 기계, 환자용 펄스 모니터를 포함하여)다수의 중국산의료물품을 금지 하는 보호무역주의 조처 때문에 품귀 현상까지 이어졌다."
2020년에도 무역 전쟁은 계속되었지만, 트럼프는 한 발도 물러나 지 않았다. 그러다가 1월 24일에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뉴스가 전해 지자 트럼프는 약 4억 5천만 달러 상당의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관세를 새로 부과했다. 아마도 이는 기존 관세 정책 때문에 어려움을 겪 는 분야의 숨통을 틔워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나, 중국은 물론이고 대만, 일본, 유럽연합과 같은 동맹국에서 들여오는 수입품에 큰 타격을 입혔 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갈 무렵, 트럼프는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 인 SMIC가 10나노미터 이하의 칩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미국 소재 부 품과 기술을 제공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미 상무부에 압력을 가했다. 이 러한 칩은 스마트폰과 다른 첨단기술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부 품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에 못지않게, 영국도 팬데믹 기간에 공급망을 더욱 확장했다.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이후 새로운 무역 체제 로 전환하자 여러 가지 관료주의적 합병증이 발생한 탓이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영국 정부도 위기의 순간에 중대한 공중보건 문제를 제대 로 처리하지 못한 것으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분산시켜야 했기에 무 역 난항을 내심 반겼을 것이다.
- 부품 부족 때문에 전자업계만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자동차에서도 칩이 매우 중요한 부품이었기에 자동차 업계도 생산에 큰 타격을 입었다.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생산 설비 가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포드사는 계획보다 생산량을 110만 대나 줄여야 했다. 모든 제조사 를 합치면,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생산량이 150만 대에서 500만 대나 줄었다. 23
얼마 가지 않아서 칩의 부족 현상이 전혀 예기치 못한 측면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일례로 치파게돈 때문에 개를 씻겨주는 전자 부스가 모두 문을 닫았다. 샴푸와 물을 배급하고 옵션에 따라 털을 말려주는 기능이 모두 칩과 연관이 있었다. 이러한 부스는 미군 기지는 물론이고 민간인들에게도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극심한 날씨로 인해 발생한 문제도 있었다. 태평양 북서부 지역의 심각한 폭염 때문에 2021년 연말 에 크리스마스트리 공급량이 급감했다.
컨테이너가 부족해지자 세계 무역도 곤경에 빠졌다.24 20피트짜 리 컨테이너 생산량이 2020년 9월에 30만 개로 증가했고 1월에 다시 44만 개로 늘어났지만, 꼭 필요한 장소의 컨테이너 수요를 충족시키 기에는 역부족이었다.25 컨테이너 생산뿐만 아니라 건설업계가 갑자기 바빠지면서 철강 자재도 부족해졌다. 처음에는 감염 위험이 크거나 폐 쇄된 대도시 중심지에서 많은 사람이 빠져나오는 바람에 건설 붐이 일었고, 나중에는 자산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질까 봐 걱정하는 분위기 때 문에 건설 수요가 높아졌다. 열연강판은 2021년 2월에 톤당 1천176달 러였는데, 이는 최소 13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한 것이었다. 다른 철강 제품의 가격도 크게 상승했다. 도표 7-1 참조)26 중국에서는 생산자 물가 지수가 급등했고, 2021년 4월 말에 정치국은 생활 유지 및 물가안정에 꼭 필요한 상품 공급을 보장하면서 주택 투기를 억제하려는 조처를 내 놓았다. 중국 인민은행은 물가안정을 목표로 주요 상품 공급을 늘리는 행보를 보였다.

- 빈곤국이 타격을 입었지만, 부의 불평등에 대한 통계를 보 면 부유한 사람들의 재산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모 건 스탠리의 루치르 샤르마Ruchir Sharma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억만장자의 재산 총액은 12개월 만에 8조 달러에서 13조 달러로 증가 했다. 같은 기간에 억만장자의 수는 700명이나 증가하여 총 2천700명 이 되었다. 소위 슈퍼리치가 중국에 234명, 미국에 100명이 새로 집계되었다. 슈퍼리치의 재산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러시아의 경우, 2020~2021년에 23퍼센트에서 34퍼센트로 증가했다. 인도에서는 10퍼센트에서 19퍼센트로, 미국에서는 13퍼센트에서 19퍼센트로, 중 국에서는 8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증가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 기간에 5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백만장자의 반열 에 합류했으며 팬데믹이 발생한 첫해에 전 세계 부가 28조 7천억 달러 가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추세는 밀레니엄 이후에 시작되었으 며 팬데믹 기간에 다소 극단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한 후에 통화 구조 메커니즘이 적용된 것이 아무 래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순자산이 100만 달러가 넘는 사람 들의 자산을 모두 합친 금액은 2000년부터 2020년까지 4배나 증가했 으며 전 세계의 부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도 35퍼센트에서 46퍼센 트로 증가했다
- 나라마다 효과적인 대처 역량에 큰 차이가 있었다. 부유한 나라는 폐쇄로 인한 경제적 비용 측면에서 충격이 크지 않았고, 봉쇄의 충격 에 대응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었다. 2021년 봄까지 미국은 추 가 지출 조치를 시행했는데, 이 금액과 손실된 세수입을 더하면 GDP 의 25.5퍼센트나 된다. 이는 영국의 16.2퍼센트나 독일의 11퍼센트보 다 매우 높은 비율이다. 신흥경제국은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었기에 지 출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었다. 중국의 경우, 새로운 재정팽창에 투자한 금액이 4.8퍼센트였고, 인도는 3.3퍼센트에 불과했다.(브라질만 이보다 좀 더 높았다.) 저소득 국가의 경우 제약이 더 심했는데, 이런 나라에서는 팬데믹 기간에 지출이 감소하여 인구가 더욱 취약한 상태가 되었다.

- 부족 현상 때문에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부족 현상 문제가 원래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에 맞닥뜨린 정부는 처 음에 인플레이션이 새로운 것의 쇼크를 흡수하고, 변화 과정에서 일시 적인 손해를 보는 사람들을 보호하거나 공급 병목현상을 극복하기 위 해 생산량이나 생산성을 늘리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정책 대응의 기반 이 되는 가설이나 가정 때문에 보상 메커니즘이 더 깊이 뿌리내려서 1970년대처럼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제1차 세계대 전 이후처럼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도 있다.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 승하면 균열을 살짝 가리고 당장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을 줄여 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적 붕괴가 발생하려면 상대적 가격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모든 가격이 오르면 그것도 더 쉬워진다.
세계화에 강한 충격을 가한 위기는 중요한 배움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인류는 그 기회를 다 활용하지 못했다. 변화는 안주하려는 성향에 대한 강한 자극으로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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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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