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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의 역습

경제 2023. 5. 24. 13:15

-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무 정부주의자 프루동의 혁명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각국 중앙은 행은 금리를 5000년 역사상 유례없는 최저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유 럽과 일본에서는 금리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그러나 결과는 프루 동의 예상과는 달랐다. 오히려 무상 대출에 대한 바스티아의 암울한 예측이 더 진실에 가까웠다.
중앙은행 총재들은 월가가 평온을 되찾았다며 자축했다. 디플레이 션이라는 하찮은 두려움은 무시해버려도 좋은 듯했다. 실업률은 급 격히 떨어졌다. 모두 제로금리의 '눈에 보이는 효과였다. 제로금리의 이차적 결과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도외시되었다. 그러나 정말 보 려고 했다면 충분히 볼 수도 있었다.
2012년 캐나다 경제학자 윌리엄 화이트William White는 <극단적인 이지 머니 정책과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Ultra Easy Monetary Policy and the Law of Unintended Consequences>이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화이트는 급속한 금리 인하로 소비가 증가하고 저축이 감소했다고 진단했다. 미래의 소비를 앞당겨서 하게 만드는 금리 인하의 단점은 이미 정해진 목표액을 달성하기 위해서 저축량을 늘려야 하는 데다, 저금리가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충분한 종잣돈을 모으는 데 시간도 훨씬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당국은 낮은 금리로 기업 투자가 촉진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화이 트는 기업들이 실제로는 투자를 줄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초저금리 대출로 인해 자본의 잘못된 분배misallocation of capital 가 일어났다. 창조적인 파괴는 좌절되었다. 화이트는 “이지 머니라는 조건은 자본을 덜 생산적인 자원에서 더 생산적인 자원으로 재분배 하는 과정을 촉진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과정을 가로막았다"라고 결 론 내렸다.
- 초저금리는 차입 비용을 낮춤으로써 투자자들이 과도한 리스크를 감수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동시에 보험 회사와 연금 제공자들은 저금리 체제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정부는 국가 부 채를 늘리는 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다. 결국 이지 머니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최후의 심판일을 계속 연기해주는 역할을 했다. 화이트 는 "경기 침체기에 적극적인 양적완화 정책은 '공짜 점심'이 아니다. 가장 좋은 경우라도 경제를 재조정할 시간을 벌어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정 기회조차 날려버렸다"라고 말했다. 월가에서는 이미 '깡 통찼다'라는 말이 나온지 오래였다.
- 무상 대출이 노동자들에게 재앙이 되리라던 바스티아의 예측은 터 무니없는 생각이 아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은행들은 신용도 낮은 개인과 소기업의 대출 금리를 인상했다. 반면, 월가의 사 모펀드 포식자와 그 외 연줄이 좋은 사람들은 쥐꼬리만 한 이자로도 대출이 가능했다. 위기 후 10년 동안 소득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지만, 저임금 일자리는 급증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야 했으므로 예금에 대한 실질 수익은 마이너스였다. 반면 부유한 투기꾼과 기업들은 저렴한 대출로 큰 수익을 창출했다.
- 선사시대 사람들은 아마도 옥수수와 가축을 빌려주며 이자를 부과 했을 것이다. 이자와 대출의 연관성은 고대 언어에 숨어 있다. 고대 세 계 전역에서 이자의 어원은 가축의 새끼와 관련 있다. 이자를 뜻하는 수메르어 낱말 mas는 원래 어린 염소(또는 양)를 뜻한다. 고대 이집트 의 이자라는 낱말 ms는 출산이라는 의미다.' 고대 그리스의 이자를 가리키는 낱말은 송아지라는 의미의 tokos다. 이자를 나타내는 히브 리어의 여러 단어 중에는 증가 및 증식을 의미하는 marbit와 tarbit가 있다. 라틴어로 이자를 뜻하는 foenus는 다산을 의미하고, 돈이라는 의미의 pecunia는 가축 떼를 뜻하는 pecus에서 유래했다. 영어 단어 capital은 소머리 caput에서 유래했다. 시드니 호머 Sydney Homer와 리처드 실라Richard Sylla는 이러한 어원을 통해 이자의 기원을 설명한다.
이자는 씨앗과 동물을 빌려주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생산적인 목적 을 위한 대출이었다. 씨앗은 더 많은 수확을 가져왔다. 수확기가 되면 씨앗은 이자와 함께 돌려받았다. 동물의 새끼 일부 혹은 전부도 동물과 함께 반환되었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현대적 의미의 이자 개념은 바 로 그러한 생산적 대출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 뵘바베르크는 한 나라의 금리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반영한다 고 말한 적이 있다. 고대 세계에서 금리는 위대한 문명의 진로를 뒤따 랐다.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에서 금리는 수세기에 걸쳐 U자형 패턴 을 따랐다. 문명이 번창할 때는 떨어졌고, 쇠락하거나 멸망할 때는 급 격히 상승했다." 폭풍전야의 고요일 때는 초저금리도 등장했다. 신바 빌로니아 시대(기원전 700~630년) 초기 은 대출 금리는 최저 8.33%까 지 떨어졌다. 기원전 5세기 초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 함락되자 금리는 40% 이상까지 치솟았다.5" 18세기 네덜란드 공화국이 혁명 이 후 프랑스에 공격당하기 직전에 금리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따라서 21세기 초반 초저금리는 위안이 될 만한 현상은 아니다.
- 금융사학자 괴츠만은 '대출을 장려하는 이자의 출현은 금융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신'이라고 했다." 중요한 지적이다. 금융은 사람들이 시간을 초월해 거래할 수 있게 해준다. 농부는 보리를 빌려 밭에 파종하지만, 빚을 갚기 위해서는 수확기를 기다려야 한다. 모든 산업공정에서는 원자재를 완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기까지 생산 시간이 필요하다. 기원전 제3000년기 메소포타미아의 한 문서에 따르면 옷 감 준비에만 1년이 넘게 걸렸다. 게다가 외국과의 무역에는 긴 시 간이 소요된다. 자본이 산업이나 무역에 묶여 있을 때, 이자는 생산에 사용된 시간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물론 사유재산이 보장되는 모든 문명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원을 빌려주도록 유도하기 위해 이자가 필요하 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자본을 축적하기만 할 것이다. 고대 바빌 로니아에서 여유 자금을 가진 사람은 땅을 사서 경작하거나 제삼자 가 농장을 얻도록 돈을 빌려주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 렇다면 이자율과 자본의 생산성, 즉 이자율과 농작물의 잉여 생산사 이에는 반드시 어떤 관계가 있어야 한다.
- 이자는 주택과 같은 장기지속 자산에 가치를 매기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고대 수메르와 그 이후 문명들은 최초의 대도시를 건설했다. 기원전 제3000년기부터 민간 주택 시장이 만들어졌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다음 임대할 수 있었으므로 주택담보대출은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에 보물을 쏟아부었을 때 금 리는 떨어지고 집값은 올랐다는 데 주목하라. 그때 이후로 바뀐 것은 거의 없다. 2000년이 지난 다음에도 부동산 시장은 통화 공급과 이자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 계약을 맺고 돈을 빌려준 경우, 돈을 이용하게 해준 보상으로 갚는 돈의 액수는 늘어난다. 이 증가분이 합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자라 부르고, 불법이 라고 생각하는사람들은 고리대금이라 부른다. (윌리엄 블랙스톤 William Blackstone 경, 《영국법 해설 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1765))
- 지나치게 낮은 금리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소비자물가 수준 변화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자산 가 격 거품이 커지고, 대출이 급증하고, 금융이 노력을 밀어내고, 저축이 붕괴하고, 자본이 대규모로 잘못 배분될 때, 시장 금리는 자연 금리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로크는 자연 수준 이하의 이자율이 낳을 수 있는 잠재적 피해를 상 세히 고려한 최초의 저술가였다. 그는 《금리 인하와 화폐 가치 인상 의 결과에 대한 몇 가지 고찰》에서 지나치게 낮은 이자율은 다음과 같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금융업자들은 '미망인과 고아들의 희생으로 이익을 얻을 것이다.
* 부는 저축자로부터 차입자에게 재분배될 것이다.
* 채권자들은 리스크에 대해 충분히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 은행가들은 돈을 빌려주느니 쌓아둘 것이다.
* 화폐 유통 속도가 감소함에 따라 물가는 떨어질 것이다(디플레이션).
* 너무 많은 차입이 일어날 것이다.
* 더 높은 수익을 찾아 해외로 돈이 유출될 것이다.
*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은 부자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 것이다.
* 금리 인하는 빈사 상태의 경제를 되살리지 못할 것이다.
- 현대 경제학자들은 로와 그의 체제에 놀라울 정도로 호의적이다. 심지어 1719년 거품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까지 있다. 이들은 로가 비유동적인 정부 부채를 거래 가능한 주식으로 전환했기에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 상승은 정당했다고 말한다. 그중 한 명은 이런저런 전문 가들의 주장을 인용해 "1720년 봄, 로의 체제가 무너지기 전까지 시 장은 효율적으로 흘러갔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720년 투기꾼 들이 미시시피 회사가 추구한 대서양 무역의 성장을 예상해 주식을 사들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 투기꾼들은 터 무니없이 낙관적이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미시시피 회사의 거래 수익은 매년 고작 0.5%씩 증가했으니 말이다.
- 로의 정책이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주식 시장 붕괴를 초래했음에도 아이비리그 학자들은 그의 금융 이론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있다. 브라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피터 가버 Peter Garber는 로의 신용이론 이 지난 두 세대에 걸쳐 등장한 대부분의 화폐론 및 거시경제학 교과서의 중심축이며, 불완전고용 문제를 우려하는 경제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만국공용어'라고 주장한다. 가버는 로의 체제가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했다고 믿는다." 예일대학교의 괴츠먼은 너무 적은 돈은 경제 활동에 제약이 된다는 로의 믿음을 '오늘날 미국 연방준비은행 의 결정에 기반이 되는 본질적인 원칙으로 인정한다."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의 붕괴는 루이 14세의 죽음 직후 프랑 스 경제와 흡사한 상황을 낳았다. 디플레이션, 높은 실업률, 치솟는 정부 부채가 한꺼번에 등장했다. 통화 정책 입안자들은 이러한 상황 에 대응해 로가 했던 대로 금리를 낮추고 돈을 인쇄해 국가부채를 상 당수 사들였다(로만큼은 아니었다). 또 다른 유사점도 있다. 2008년 이 후 연준은 의도적으로 할인율을 낮춰 자산 가치를 끌어올리는 정책 을 시행했다. 로가 미시시피 백만장자를 만들었다면, 그의 21세기 모 방자들은 수많은 억만장자를 만들어냈다.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중앙은행들은 소비자물가 상승 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파격적인 통화 정책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캉 티용의 지적대로 국립은행이 인쇄기를 돌려 정부 부채를 사들일 때, 새로 인쇄된 돈은 처음에는 금융 시스템에 갇혀 금융자산을 잔뜩 부 풀리고 이후 더 넓은 경제로 서서히 스며들며 소비자물가에도 영향 을 미친다. 로의 체제를 '공기와 그림자처럼 상상할 수 없는 종'이라 고 묘사했던 디포의 말은 2008년 이후 중앙은행들이 설계한 경제 회 생계획에도 똑같이 돌려줄 수 있다.
불굴의 투지를 가졌던 로는 자신의 체제에 내재한 결점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1729년 그가 사망하기 직전에 베네치아를 방문해 그 를 만난 프랑스 대사 드 제르지de Gergy는 "그의 저주받은 체제에 대 해 그보다 더 완고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로는 그 고집대로 처음부 터 자신의 프로젝트가 잘못될 리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 겼다." 돈을 찍어내는 데 골몰하고, 금리를 조작하고, 자산 가치 거 품을 부채질하는 중앙은행 총재들 역시 로와 비슷하다. 이들은 대규 모 통화 실험에는 긍정적이지만, 고통 없는 출구는 없다는 캉티용의 경고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로의 전기 작가 앙투안 머피 Antoin Murphy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 총재들이 지금 하는 일은 바로 로가 이미 권고했던 것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미시시피 체제는 실패했지만, 로는 벤 버냉키 Ben Bernanke, 재닛 옐런Janet Yellen, 마리오 드라기 Mario Draghi라는 후계자들을 남겼다"라고 썼다. 
- 1720년 영국의 남해 거품은 미시시피 거품의 조잡한 모조품이었다. 로와 마찬가지로 회사의 이사들은 주로 값비싼 연금에 충당되 는 정부 부채 비용을 낮추기 위해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했다. 처음부 터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로의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남해 거품 역시 이지머니의 시대에 발생했다. 25 장기 정부 부채 수익률은 1710년 8%에서 1720년대 초 약 4%까지 떨어졌다. 프랑스와 마찬가 지로 정부 채권자들은 금리가 하락하자 1720년 상반기 동안 10배 가 까이 급등한 남해 주식을 연금으로 교환하려 했다. 하지만 그해 말 주가는폭락했고, 거의 모든 버블 회사들이 이 물결에 휩쓸려 사라졌다.
- 1876년 2월, 배젓은 외국 대출 열풍에 대해 숙고해보았다.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국내 금리가 낮은 시기에는 외채의 높은 수 익률이라는 허황한 약속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인간은 15%를 좋아한다. 큰 약속과 큰 이익을 매우 친숙하게 느끼고, 감정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을 좋아한다. '금융 사기 제조업자들은 이를 알고 이용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에게 '15%는 위험하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길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필요하다. 새롭고 화려한 계획은 믿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대중은 그런 계획에 대해 본능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기 쉬우며, 건전한 정책보다 근사해 보이는 정책을 선 호하는 경향이 있다. 대중은 많은 것을 약속하지 않으면서 딱 그만큼만 지급하는 계획보다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아무것도 지급하지 않는 계획을 더 좋아한다- 미국의 낮은 금리는 기축통화라는 달러의 특수성 때문에 세계 경제 전반을 신용 호황으로 밀어넣었다. 위기 이전에 세 계 금리는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였고, 세계 경제성장률에 훨씬 못 미 쳤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나라들도 외국 자본 유입이 쇄도해 여 유가 없었다. 상황을 모면하는 데 급급한 해명 따윈 필요 없다. 간단 히 말하자. 이지 머니가 호황을 일으켰고, 그 결과 붕괴가 일어났다. 중앙은행가와 통화경제학자로 구성된 폐쇄적인 공동체는 위기의 원인을 금융으로 돌리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그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만들어낸 자신의 경제 모델을 버리기 아까워했다. 그들 의 표준 모델에 따르면 경제는 1973년 석유파동과 같은 무작위적인 외부 충격에 의해서만 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다. 그 모델에 돈과 신용의 자리는 없다. 금리는 주어지는 것이고, 통화 정책의 오류는 소비자 물가 불안이 아니라 자산가치로 나타난다. 투기 거품과 비합리적인 과열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의 모델에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행위 자들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델은 월가나 다른 주식 시 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조금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랜트가 '박사 기준PhD standard'이라고 부른 것이나 다루는 경제학자들이 실제 로 일어난 사건에 우왕좌왕하며 곤혹스러워했던 것도 놀랍지 않다. 이러한 인지부조화 상태에는 제도적 요인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다. 연준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금융 분야 박사들의 고용이 며, 통화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경제 저널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 고 있다. 2010년 설문 조사에서 대다수의 경제학자가 저금리를 주택 거품의 주 원인이라고 믿었을 때에도 통화 정책 전공 경제학자 대부분이 연준의 견해를 지지했던 것은 의미심장했다." 연준 총재 버냉 키가 위기는 '경제 과학의 실패가 아니라 경제 관리(규제)의 실패라 고 주장하면, 연준 연구팀도 위대하신 수장님의 생각을 그대로 따를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기존 신념은 강화하고 불 편한 질문은 무시되는 반향실反響 속에서 살고 있다.
역사학자 폴 미로우스키 Paul Mirowski는 "버냉키의 연준은 위기에서 보여준 지적 무능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라고 결론지었다. 버냉키는 공직에서 쫓겨나는 대신 또 한 번의 대공황에서 세계를 구 했다는 찬사를 받았고, 2009년 《타임> 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 다. 그의 거듭된 부인은 연준이 위기에서 배운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통화 정책 입안자들은 정말 희한한 경우의 조정 말고는, 이미 결함이 많은 모델을 바꿔야 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저금리가 위기의 원인이 아니므로 미래에 금리를 더 낮추더라도 당연히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 앞서 1920년대 연준의 물가 안정 추구가 어떻게 대출 호황과 투기 과잉을 낳았는지 살펴보았다. 같은 정책에 특정 목표를 묶으면 문제 는 악화된다. 고정된 양적 지표만으로는 기관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흔히 정량적 목표는 숫자로 나타내기 쉽 다는 이유로 선택된다. 그러나 이때 쉽게 측정되지 않는 요소들이 간 과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목표 설정은 단기주의, 관료주의로의 자 원 전환, 리스크 회피, 정당하지 못한 보상, 기관 문화의 훼손을 포함 한 다양한 부작용을 낳는다.
지표는 혁신과 창의성을 억압한다. 지표는 과학인 척하지만 사실 은 종교와 유사하다. 어떤 기관이 특정한 목표를 향해 가야 할 때, 비 판은 사라진다. 1970년대 미국사회과학자 도널드 캠벨 Donald Campbell 은 "사회의 의사결정에 정량적 사회 지표가 더 많이 사용될수록 더 많은 부패 압력을 받게 되고, 그것이 감시해야 하는 사회 과정을 왜곡하고 부패하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역사학자 제리 멀러Jerry Muller는 캠벨의 법칙에 결론을 보태 "측정되고 보상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게임처럼 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장 유명한 목표 법칙은 금융 경제학 분야에서 수십 년 전에 등장 했다. 1980년대 초, 대서양 양안의 중앙은행 총재들은 통화 공급 성 장을 목표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고 했다. 통화 공급은 모호한 개 이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다(경제학자들은 M0, M1, M2, M3 등이라 부른다). 런던 경제대학의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는 잉글랜드 은행이 특정한 수치의 통화 공급을 목표할 때마다 그 수치 와 인플레이션 사이에 이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관계가 깨진 다고 말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굿하트의 법칙은 통제를 위해 사용하 는 모든 수치는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 초저금리는 부채라는 숙취에 대한 좋은 해장법이 아니었다. 보리 오는 "문제의 근원이 과도한 부채라면, 어떻게 민간과 공공 부문 모 두에 대출을 유도하는 정책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겠는 가?"라고 반문했다." 일단 경제가 '부채 함정'에 빠지면 막대한 피해 없이 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워진다. 보리오는 "과거에 금리가 너무 낮 았던 것이 오늘날 저금리의 한 원인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물론 그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 부채의 상당 부분이 제대로 된 수익을 내 지 못했던 것도 문제였다. 보리오는 이를 가리켜 "문제는 신용의 총량이 아니라 그 질이다”라고 말했다." 신용 호황기에는 자본이 마구잡 이로 뿌려진다. BIS 연구원들에 따르면 부동산 시장이 뜨거울 때 자 원은 부동산 개발에 투입되지만, 건설은 생산성 성장이라는 측면에 서 창출하는 것이 거의 없다. 이는 부동산 거품이 경제성장을 위축시키는 부분적인 이유다.
- 슘페터는 이자가 창조적 파괴의 이익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 는 '이자의 진정한 기능은 경제 활동에 대한 브레이크 혹은 중앙은행 총재의 브레이크'라고 썼다.' 슘페터가 보기에 이는 '없어서는 안 될 브레이크'다. 이자는 시간을 생산 비용으로 바꾼다. 시간은 돈이다. 생산 시간을 절약해 상품을 가장 빨리 시장에 내놓는 기업가가 창조 적 파괴 게임의 승자가 된다. 이자는 자본을 배급한다. 이 관점에서 이자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효율성을 추진하는 힘이고, 투자 실행 여 부를 결정하는 장애물이다. 슘페터는 이자율은 '모든 경제적 숙고에 들어간다'라고 썼다.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투자자인 매튜 클레커Matthew Klecker는 이자 율을 프로농구의 샷 클록에 비유한다. 샷 클록의 목적은 경기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NBA 규정에 따르면 공격팀은 24초 이내에 공격을 마쳐야 한다. 그랜트는 "제로금리는 모든 일상적인 비즈니스와 투자 거래를 늦추게 만들며, 필요한 조정을 연기하는 결과를 낳는다"라고 썼다.' 그랜트는 이자율을 음악가들이 박자를 맞출 때 쓰는 기구인 메트로놈에 비유한다. 그는 “적절하게 조정한 금리는 건전한 성장 속도에 도움이 된다"라고 썼다. 금리가 낮아지면 경제 활동이 둔화된다. 아 다지오(...) 라르게토(...) 렌토(...) 라르고(...) 그레이브(...) 아다지시 모(・・・) 라르기시모로 진행된다. 마지막 템포는 '매우 매우 느리다'다. 제로금리에서 경제는 장송 행진곡의 엄숙한 속도로 진행된다.
- 19세기 프랑스 경제학자 클레망 쥐글라Clément Juglar는 "역설적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한 나라의 부는 그들이 경험하는 위기가 얼마 나 치명적인지를 보면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창조적 파괴를 염두 에 두면, 쥐글라의 말은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 경제학 자들은 경기 침체를 일종의 '피트스톱pit-stop(카레이싱에서 정비를 위해 정차하는 시간과 공간-옮긴이)'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중요 한 시기라고 본다." 경기 침체기에 급증하는 기업 도산은 시간이 지 나면서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전직 우 주 비행사이자 항공사 사장인 프랭크 보먼Frank Borman은 말했다. "파 산 없는 자본주의는 지옥이 없는 기독교와 같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통화 정책은 경기 침체의 정화 효과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즉, 금융 안정화가 불안정을 낳고 있을 때, (민스키가 주장했듯이) 지나친 경제 안 정은 경화증을 유발한다.
- 2010년 터진 유로존의 국채 위기는 흔히 경쟁력 차원에서 설명된 다. 2000년대에 EU 주변 국가들의 노동비용은 독일보다 훨씬 더 빠 르게 상승했다. 게다가 빚도 너무 많이 졌으니 어떻게 부채를 갚을 것인가? 하지만 이 책이 보기에 위기는 어긋난 금리 처방의 결과물이 다. 금리에만 초점을 좁혀 말하자면 유로존의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 의 처방을 모든 나라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1999년 단일 통화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유로존의 11개 창립 회원 국(그리스는 2001년 가입)에는 저마다의 금리가 있었다. 이 금리들은 유 럽 대륙 전체에 걸친 다양한 경제 상황과 신용리스크를 반영하고 있 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미래의 유로존 회원국들의 금리는 계속해서 독일 기준으로 수렴되었다. 아일랜드에서는 금리가 떨어지며 부동산 시장이 급성장했다. 21세기 초, 유럽중앙은행은 경제가 부 진했던 독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통화 정책을 시행했는데, 아일랜 드와 그리스에 호황을 일으키기에는 금리가 너무 낮았다. 이와 동시 에 리스크는 압축되어 유로존 전체로 퍼져나갔다. 대체로 은폐되긴 했지만, 그리스는 금리 하락을 이용하여 막대한 규모의 재정 적자를 냈다. 유로 지역 내 국경을 넘나드는 대출은 스페인의 엄청난 부동산 호황과 인프라 붐에 자금줄이 되었다.
파티가 끝나면서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유로화 창설 이후 금리 하락으로 인해 남 유럽 경제는 건설 쪽으로 기울었다. BIS의 경제학자들은 건설 호황이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버드학자이자 미래의 세계통화기금 수석 경제학자인 기타 고피나스Gita Gopinath 역시 건설업 전환이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 는 "유로화 채택은 금리를 낮추고 자본 유입을 장려함으로써 자본의 잘못된 배분과 (유럽) 남부에서 관찰된 낮은 생산성의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 초저금리가 원인이 된 어리석은 투자의 결과는 좀비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지 머니는 수익을 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프로젝트에 투자를 장려한다." 주택 자산은 장기 자산이고 저금리가 촉진하는 건설 호황은 가장 흔한 '어리석은 투자malinvestment (하이에크의 용어-옮 긴이)'다. 2006년 미국 부동산 거품이 내파 implode(외부 요인이 아니라 내부 요인으로 인한 터짐옮긴이)한 후, 주택 건설 시장은 몇 년간 침체를 겪었 다. 한편 금리가 그 어느 때보다 낮아지면서 투자자들은 다른 유형의 장기 투자를 찾아 나섰다. 실리콘밸리는 그 요구를 충족시키며 대단히 즐거워했다.
- 2013년 벤처 투자가 에일린 리Aileen Lee는 10억 달러 이상 가치가 있는 신생 기업을 가리켜 '유니콘'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런 용어를 쓴 이유에 대해 리는 "대단히 희귀하고 마법 같은 것을 의미하기 때 문이다"라고 말했다." 그 가치 평가는 마법처럼 대단했을 수 있지만, 유니콘은 생각보다 희귀하지 않았다. 2015년 이 정도 규모의 기업은 150개나 되었고, 이들의 총 시장 평가액은 약 5조 달러에 달했다." 그 랜트는 "사람들이 유니콘에 대해 잘 모르는 사실은 그들이 금리를 먹 고산다는 것이다. 그들은 저금리를 좋아한다. 낮을수록 좋다"라고 말 했다." 저금리는 투자자들에게 '성장'을 선택하도록 유도해 먼 미래 에나 이익이 발생할 회사들에 재산과 운을 걸게 만들었다. 저금리 덕분에 수년간의 손실 따윈 쉽게 견딜 수 있었다. 저금리가 유니콘의 황당한 가치 평가를 정당화한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기꺼이 모든 이지 머니를 빨아들였다. 금융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한 유니콘 기업 대표는 2015년 《이코노미스트》에 “고대 이집트 이래 역사상 돈을 모으기 가장 좋은 시기일 수 있다"라고 말 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이지 머니는 멍청한 돈이었다. 벤처 투자자들 은 스타트업 기업들의 말과 장부를 꼼꼼히 살피기보다는 '무차별 난 사 spray and pray '(전투에서 엄폐물 뒤에 숨어 아무나 맞기를 바라며 무작정 총질 하는 상황. 여기에서는 '일단 투자금을 뿌리고 잘되기를 기도한다'는 의미다옮 긴이) 방식으로 투자했다. 벤처 투자자들은 더 큰 자금을 대출받아 훨 씬 더 의심스러운 개념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IT 업계 내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연준은 돈을 찍어낸다. 그 많은 돈이 벤처 자금으로, 다 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타트업을 만드는 꼬맹이들의 주머니로 들어 가고 있다. 연준이 계속 돈을 찍어내고 주식 시장이 상승하는 한 파티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생산성 붕괴의 이면에 좀비가 있다는 연구들이 날이 갈수록 쏟아지고 있다. 빚을 상환할 수 없는 기업은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좀비가 다른 기업의 투자마저 막는다는 점이 다." 좀비는 새로운 기업의 탄생을 저지한다. 좀비가 돌아다닌다는 것은 생산과잉과 비참한 수익으로 고통받는다는 말이고, 기업가들로 서는 그런 분야에 진출할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좀비는 새로운 기술 과 기업 관행이 채택되는 것을 늦추기도 한다. 필 멀런Phil Mullan은《창조적 파괴 Creative Destruction》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너무도 많은 자원이 생산성이 낮은 영역과 좀비 기업-기본 운영에 투 자하기에는 너무도 취약하지만 다른곳으로부터 생존할 정도는 되는 수 익을 얻고 있는 기업에 갇혀 있을 때, 특정한 혁신적 기업 투자가 긍 정적 영향을 광범위하게 미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은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21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부채비용은 자본비용보다 낮게 유지되었다. 이러한 '펀딩 갭funding gap'이 자사주 재매입을 부추겼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펀딩 갭은 더욱 커졌다. 월가의 한 전략가는 "자본비용이 부채비용보다 여전히 높기에 기업들이 저금리 대출을 이용해 자사 주식을 되사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다"라고 말했다.3 통화 당국은 기업들이 저금리를 이용해 투자를 활성화하기를 바랐 다. 그러나 초저금리와 자본보다 부채를 선호하는 세금 구조는 '장기 투자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주가 연동 인센티브라는 부담을 진 상장기업 경영진은 미래 투자 를 통한 의심스러운 수익보다 현재의 이익 레버리징으로 확실하고 즉각적인 보상을 받길 원했다. 
- 리먼 파산 이후 바이백은 중단됐지만, 위기가 지나자 다시 사나운 기세로 되돌아왔다. 10년이 지난 후, S&P500 기업들이 주식 환매에 들이는 연간 지출은 위기 이전의 거의 절반 수준인 7200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지난 10년에 걸쳐 미국의 가장 큰 상장기업들은 총이익 의 절반 이상을 바이백에 지출했다. 그리고 주식 환매는 대부분 현 금 흐름을 이용하기보다는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다. 수조 달러 규 모의 환매는 '전체 (주식) 시장의 슬로모션 레버리지 환매'를 낳았다." 금융공학이라는 놀라운 기적 덕분에 S&P500 기업의 주당 이익은 보고된 이익이나 매출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했다." 이익이 줄어드는 기업마저도 주당 이익은 증가되었다." 엑손과 IBM을 포함한 몇몇 기업은 벌어들인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바이백과 배당금에 분배하는, 사실상 폰지 사기 Ponzi scheme (아무런 이윤 창출 없이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으 로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의 사기. 앞에서 언급된 폰지라는 사람에게서 유래한 용어-옮긴이)를 치고 있었다."
- 골치 아픈 거대 합병기업이 미국 경제를 지배하던 1980년대,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주장에는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구석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30년 이상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된 이후 주주 가치란 결 국 금융공학을 위한 빌미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이것은 월 가가 이익을 창출하는 과정으로 실제 세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의미다. JP모건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은행 대출 대부분은 생산적인 투자에 사용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존 담보물에 대해 제공된 것뿐 이었다. 얀 토포로브스키 Jan Toporowski의 그럴듯한 경구를 인용하자면 "금융의 시대에, 금융은 대부분 금융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in era of finance, finance mostly finances finance
- 하지만 골드만삭스에 좋다고 해서 미국에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 었다. '네덜란드 병'은 경제가 상품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었을 때 경제가 받는 피해를 말한다. '금융 자원의 저주' 역시 마찬가지로 경 제에 해를 끼친다." 미국과 영국처럼 값싼 외채를 이용해 경상수지 적자를 모면했던 국가들은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들의 경제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특히 은행업)으로 전환하며 생산성 증가가 둔화 되었다. 스페인은 몇 년간 금융의 저주에 시달리다 결국은 금융위기 를 맞았다. 수 세기 전 남아메리카 금이 대량 수입되면서 자국 무역이 부패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 GE의 흥망성쇠는 금융화 위험 사례의 연구감이다. 금융공학이 창 출한 이익과 그 이익에 적용되는 가치 평가는 허황할 정도로 엄청나 지만, 장기적으로 비용은 명확해진다. 주가 극대화만을 목표로 하는 회사 운영은 대체로 잘못된 결정으로 이어진다. 웰치조차도 은퇴하 며 주주 가치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아이디어'일 것이라고 인정했다."
- 비트코인 광풍에는 기술 발전만큼이나 금전적인 조건도 중요했다. 컴퓨터가 없었다면 블록체인이나 디지털 암호화도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암호화폐 열기가 들불처럼 번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디지털 금' 애호가들이 주장했듯이 중앙은행의 정책적 인 통화 가치 절하가 없었더라면 새로운 유형의 돈도 필요 없었다. 암 호화폐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이들이 기술을 잘 알 고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전통적 투자에서 낮은 예상 수익률로 인 한 파산 위기에 직면해 대체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금융 측면에서 비트코인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영구채 perpetual note (만기가 없는 채권 옮긴이)의 제로 쿠폰 zero coupon (이자가 없는 채 권-옮긴이) 같아 보인다. 초저금리 시대에 금, 빈티지 자동차, 현대미 술, 암호화폐 등 어떤 소득도 보장하지 않는 다양한 자산이 미친 듯이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할인율이 거의 없고 현금 흐름이 없어 합리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
- 생산적인 그리고 그리 생산적이지 않은) 자산의 가치를 부풀리는 가 장 간단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은 금리를 낮추는 것이었다. 2008년 이 후 연준이 선택했던 길이다. 버냉키 의장은 2010년 11월 <워싱턴 포 스트》 기고문에서 초저금리의 이론적 근거를 밝혔다. 그는 "회사채 금리가 낮아지면 투자가 촉진될 것이다. 그리고 주가 상승은 소비자 의 부를 증대하고 신뢰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결과적으 로 소비자 지출을 촉진할 수 있다. 지출 증가는 더 높은 소득과 이익 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러한 선순환이 경제 확장을 더욱 단단하게 뒷 받침할 것이다"라고 썼다." 사실상 연준은 통화 정책을 '새로운 부의 기계의 동력원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 미국 중앙은행이 이 경로를 채택한 최초의 통화 당국은 아니었다. 1980년대 후반에 일본은 이미 내수 진작을 위해 금리를 내린 바 있 다. 익명의 일본 은행 고위 관계자는 자신들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설 명했다.
우리는 (저금리로) 먼저 주식과 부동산시장 모두를 부양할 생각이었다. (...) 그리고 이 조치는 모든 경제 부문에 걸쳐 막대한 자산을 늘리리라 생각했다. 이 부의 효과는 개인 소비와 부동산 투자를 유도하고, 이어서 설비 투자도 증가하게 할 것이다. 결국 금융완화 정책이 실질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다.
-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정책 입안자 대부분은 '거품 경제'와 실물 경제는 별개로 존재하는 두 개의 실체이며, 후자에 전혀 손상을 입히 지 않고 전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1990년 닛케이 주가지 수가 하락하자 한 고위 관계자는 《워싱턴 포스트>에 "거품이 꺼질 때 가 됐다. (...) 실물 경제, 생산 경제는 진정한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 다. 땅과 사람은 사라지지 않고, 가짜 재산만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 다"라고 말했다." 망상이었다. 주식과 부동산에 레버리지 베팅을 하 며 재테크(금융공학)에 열심이었던 일본 기업들은 부동산 시장이 붕 괴하자 큰 손실을 입었다. 지나치게 많은 '실물 경제 활동이 버블 경 제가 만들어낸 '가짜부'에 의존하고 있었다.
- 금융위기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신용이 지나쳐 대출과 지출이 크게 늘어 금융위기가 닥치는데도 해결 방법 또한 신용과 대출과 지출 증가뿐이라는 점이다. (래리 서머스)
- 은행이 대출하지 않으면 돈도 만들지 못한다. 양적완화는 자산 가격을 키웠고 신용 스프레드를 수축시켜 돈을 만들어냈지만 이렇게 찍어낸 돈은 소비자나 기업으로 가지 않고 연준 은행에 쌓였다. 2008 년 연준이 초과지급준비금(중앙은행에 비축된 돈)에 이자를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은행은 대출할 이유가 더 없어져버렸다. 경제 전반에 걸 쳐 돈의 유통이 둔화되었다. 요컨대 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유지하 는 연준 정책은 물가 상승을 초래하지 않았지만 디플레이션을 연장 하는 결과를 낳았다. 초저금리가 경제의 공급 측면에 역효과를 낸다 는 사실은 이미 10장에서 살펴보았다. 11장에서는 저렴한 외상매입으로 인해 기업들이 더 긴 공급망을 만들고, 이것이 거래 물품 가격을 떨어뜨리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좀비기업 확산은 디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가중시켰다. 많은 기업이 만성적인 과잉설비 문제에 봉착했다. 2008년 이후 미국 내 기업 부채는 치솟았지만, 대출의 대부분은 (자사 주 매입이건 레버리지 매수건) 금융이 목적이었다(11장 참조). 저금리는 인 수합병 붐을 부채질했고, 결국 경쟁 압력이 줄어들어 독과점을 키우 는 결과를 낳았다. 좀비기업과 독점기업과 금융화를 거친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는 경향이 있기에, 결국 이들은 경제의 잠재적인 성장 역량을 낮췄다. 초저금리는 수요 측면에서도 경제 건전성을 잠식했다.
- 소비자 지출을 미래에서 현재로 끌고 오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장기 적으로 부채가 많고 저축이 불충분한 가구들은 미래에 쓸 돈이 줄어 들 수밖에 없다. 2008년 이후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 당시 미국과 영국의 가구들은 신용 팽창기 동안 체결했던 과잉부채 일부를 갚기 시작했다.** 가계 재정 악화는 치솟는 주식 시장과 다른 자산 가격 거 품으로 어느 정도 은폐된 면이 있다. 그러나 13장에서 논했듯, 저금리 체제는 은퇴채무 비용을 상승시켰고, 저축 의지를 꺾고, 연금 투자 수 익을 낮춤으로써 미래 소비를 위축시켰다.
- 2007년과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손실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더 정확히는 '거대한 규모의 캐리트레이드가 망한 결과'로 벌어진 사태였다. 리먼 파산 이후 미국 담보증권을 사려고 달러를 빌렸던 외국 은행들은 국제 통화 시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 연준은 유럽과 아시아 중앙은행에 대규모로 달러를 대출 해주며 이들을 구제했다. 당시 연준 의장 버냉키가 신속하게 대응해 1930년대 초와 같은 세계 통화 체제의 붕괴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세계 금융 체제 핵심부의 제로금리 조치와 결합돼 국제 캐리트레이드를 부활시켰다. BIS 경제고문 신현송은 '글로벌 유동성의 두 번째 국면'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2008년 이후 벌어 진 국제적 자본 흐름의 부활을 묘사했다. 글로벌 유동성의 두 국면 모 두 미국의 비정상적으로 낮은 금리, (16장에서 보았듯이) 낮은 수준의 시장 변동성, 그리고 광범위한 해외 대출이 특징이었다." 글로벌 유 동성의 첫 번째 국면에서 국제 자본 흐름은 유럽 주변부에서 대출 호 황과 부동산 거품에 자금을 조달했다. 두 번째 국면에서는 해외 자본 의 대부분이 신흥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첫 번째 국면에서는 유 럽 주변부 금융 체제가 리스크에 크게 노출되었다. 두 번째 국면에서 는 이것이 개발도상국에까지 확산되었다.
- 중국에서 금융 억압은 다음과 같이 실행되었다. 자본은 국내에 묶 인 저금을 통제한다. 가계로서는 저축한 돈을 대형 은행 중 한 곳에 예치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빅4' 은행은 대부분 국가 소유이며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었다. 중앙은행은 예금 금리를 중국 의 경제성장률보다 낮게, 심지어 물가상승률보다 낮게 책정했다. 은 행은 국영기업에 시장금리보다 낮은 이자로 대출을 제공했다. 예금 금 리는 훨씬 더 낮았기 때문에 은행은 막대한 이익을 보장받았다. 정부가 통제하는 기업은 투자를 위해 낮은 이율로 대출을 받았으며, 베이징 당 국경제 기획자들이 선정한 부문을 선호했다. 은행과 국영기업은 금융 억압의 주요 수혜자였고 가계 저축자들은 큰 피해자였다.
돈과 이자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국가가 특정 대상에게 낮은 이율로 대출을 제공하는 것은 중국의 유서 깊은 전통이다. 하지만 덩샤오핑 개혁 시대, 베이징 당국은 아시아 이웃 나라의 정책을 그대로 베끼기로 했다. 수출과 대규모 투자에 의지하는 아시아 경제개발 모델을 기반으로 낙후된 아시아 경제가 서구 경쟁국들을 따라잡은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박정희가 이끄는 한국 정부는 국가 소 유은행을 통해 수출 기업과 독재자 마음에 드는 산업 분야에 마이너 스 실질금리로 대출을 제공했다. 중국은 이를 따르기로 했다.
금융 억압은 1990년대 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초인 민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 중국의 통 화는 1994년 초 평가절하된 이후 미국 달러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된 수준으로 고정되었다. 중국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위안화 절상을 막기 위해 인민은행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위안화를 팔고 달러를 사 들였다. 이런 식으로 매입한 달러 증권은 국가의 외환고에 추가되었 다. 결국 중국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중국 수출품을 팔기 위해 자국 산 업에 간접 대출을 해주고 있는 꼴이었다. 중국의 미국 증권 대량 매입 은 미국의 장기금리에 하방 압력을 가했다.
중국의 달러 블록Dollar Bloc 합류는 베이징 당국의 중상주의적 성향과 잘 어울렸다. 2001년 12월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이하 WTO 회원국이 되었다. 중국의 WTO 가입은 그린스펀 이 금융완화 정책을 시작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인민은행은 달러 고 정환율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금리를 낮게 유지했다. 금융 억압은 '정 부의 환율 평가절하 유지 정책의 결과'로 등장했다." 수출과 수출주 도형 투자가 중국 경제 기적의 주역이었다. WTO 가입 후 6년 동안 수출은 연간 무려 30%씩 증가했다. 믿기 어려운 숫자였다. 2007년 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수출국이 되었다." 위안화 절상 기대감 으로 외국 자본이 중국에 쏟아져 들어왔다. 중국이 저금리 기조를 유 지한 의도에는 이러한 핫머니 hot money (국제금융 시장을 이동하는 단기성 자금-옮긴이) 유입 억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 중국 당국이 신용 문제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자본 통제로 중국의 국내 저축을 가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 억압은 이 저축이 더 나은 수익을 찾아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결과를 낳았다. 미 연준이 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유지하고 화폐를 계속 찍어내는 한, 중국 자본 계정에 대한 압박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리먼 도산 이후 5년 동안 연준이 긴축 통화 정책을 시행하려는 움직 임을 보이자 중국에서 막대한 자금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자본 통제를 피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마카오 카지노에서는 위안화를 받아 홍콩 달러로 결제하는 '세탁 서비스'를 제공했다. 돈 밀수꾼들은 중국 기업에 가짜 수입 송장을 작성하게 했다.' 관광업은 또 다른 통로였다. 부유한 중국인들은 친구를 고용해 국외로 돈을 빼돌렸다. 바로 '스머핑Smurfing'이라는 관행이었다. 2015년 당국은 자본 유출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수백 명에 달 하는 밀수업자를 체포했다.' 은행도 외환 거래 심사를 강화하도록 지시받았다. 그러면서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은 본국으로 수익을 송금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업상 해외 출장을 가는 사람들도 미국 달러를 확보하기 힘들었다.'2"
중국 기업의 해외 인수는 중국에서 자본을 빼내는 또 다른 수단이 었다. 2014년 10월 중국 보험회사 안방보험은 뉴욕의 월도프 애스토 리아를 20억 달러에 인수했다. 미국 호텔 매입가로는 기록적인 액수 였던 이 인수는 약 30년 전 유행하던 일본의 해외 자산 매입 행태와 유사했다. 안방보험은 전통적인 생명보험사라기보다는 그림자 은행 에 가까웠다. 베스트셀러 상품인 '안방인수온라 1호 보험'은 넉넉한 수익을 보장하면서 2년 뒤에는 투자자들의 자금을 돌려주겠다고 약 속했다. 안방보험은 이 상품 판매 수익을 해외의 호텔, 양로원, 보험 사, 기타사업체를 인수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자 베이징 당국이 외국 기업 인수를 막아섰다. 그림자 은행이었던 안방보험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안방보험은 외국 투자를 처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덩샤오핑의 손녀사위로 넓은 인맥을 자랑하 는 사업가였던 이 기업의 회장 우샤오후이小는 '경제범죄' 혐의 로 체포되어 18년형을 선고받았다. 회사 자산은 몰수되었다. 국경도 외국법도 자본도피를 막겠다는 베이징 당국의 손길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2017년 1월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된 중국계 캐나다인 재벌 샤 오젠화建華는 홍콩의 포시즌스 호텔 스위트룸에서 사복경찰에게 납치된 후 본토로 압송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22 '악어'(사업 을 무리하게 벌이는 경영자에게 붙이는 별명)는 말 그대로 멸종위기에 처한 종이 되어가고 있었다.
- <노예의 길>이 출간되고 30년 후 하이에크는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국립은행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지적 가식 The Pretence of Knowledge〉이라는 제목의 수상 연설에서 이 베테랑 경제학자는 인간 삶의 복잡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경제학자들의 무능을 질타했다. 하 이에크는 강연을 마치면서 아래와 같은 경고를 남겼다.
(경제학자가) 자신의 지식에 내재한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인식한다면, 사회연구자들에게 겸허함이라는 교훈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겸허히 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인간 사회를 통제하려는 치명적인 노력의 공모자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다잡아야 합니다. 사회 통제 노력에 공모 하는 학자는 자신과 같은 동포 위에 군림하는 폭군이 될 뿐 아니라 수백 만명의 자유로운 노력으로 발전한 문명의 파괴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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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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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예일대학교의 윌리엄 노드하우스 William Nordhaus는 기후 변화의 경제학을 전문 분야로 삼고 있다. 그런 인물이 노벨상을 수상했으니 기후 위기와 직면한 현대 사회 에 바람직한 일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부 환경운동 가들은 노드하우스의 수상을 강하게 비판했다. 왜 그랬을까?
비판하는 이들이 도마 위에 올린 것은 노드하우스가 1991년 발표한 논문이었다. 이 논문은 노드하우스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게 해준 일련의 연구에 발단이 되었다'
- 1991년은 냉전이 막 종결된 시기로, 세계화가 진행되어 이산 화탄소 배출량이 급격히 증가하기 직전이었다. 당시 노드하우스 는 누구보다 먼저 기후 변화 문제를 경제학에 끌어들였다. 그는 경제학자답게 탄소세 도입을 주창했고, 최적의 이산화탄소 삭감 률을 정하기 위한 모델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문제는 그가 이끌어낸 최적의 답이었다. 노드하우스는 말했 다. 너무 높은 삭감률을 목표로 정하면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만 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그런데 노드하우스가 설정한 '균형'이란 너무나 경제 성장 쪽으로 치우친 것이었다.
노드하우스에 따르면 우리는 기후 변화를 지나치게 걱정하기 보다 하던 대로 경제 성장을 계속하는 게 낫다. 경제가 성장하면 세상이 풍요로워지고 새로운 기술도 태어난다. 경제 성장을 계속 해야 미래 세대가 고도의 기술을 이용해서 기후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 경제 성장과 신기술 개발을 계속할 수 있으면 굳이 현재 와 같은 수준의 자연환경을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필요가 없다. 노드하우스는 이렇게 주장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노드하우스가 제창한 이산화탄소 삭감률을 준수하 면, 지구의 평균 기온은 2100년까지 무려 섭씨 3.5도(이후 섭씨 는 생략)나 올라가버린다. 이 말은 경제학이 도출한 최적의 답은 '기후 변화에 실질적으로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뜻 이다.
- 노벨상을 받은 만큼, 환경경제학에 미치는 노드하우스의 영향 력은 막대하다. 환경경제학이 강조하는 것은 자연의 한계이자 자 원의 희소성이다. 희소성과 한계를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분배를 계산하는 것이 경제학의 특기이다. 그래서 환경경제학이 도출해 낸 최적의 답은 자연과 사회에 '윈-윈'인 해결책이라고 여겨지곤 한다.
노드하우스의 해결책은 무척 받아들이기 쉽다. 어떤 경제학자 들은 그 해결책을 국제기관 등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 위한 전략으로 이용하여 효과를 보고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거의 아 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느슨한 기후 변화 대책이 정 당화되고 있다.
-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브란트Ulrich Brand와 마르쿠스 비센 Markus Wissen은 글로벌 사우스에서 자원과 에너지를 수탈함으로 써 성립되는 선진국의 라이프 스타일을 '제국적 생활양식imperiale Lebensweise'이라고 불렀다.
제국적 생활양식이란 간단히 말해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대 량 생산 · 대량 소비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제국적 생활양식은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실현해주기 때 문에 보통 바람직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이 면에는 글로벌 사우스의 사회집단과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탈, 나 아가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생활의 대가를 글로벌 사우스에 떠 넘기는 구조가 존재한다.
- 문제는 수탈과 대가의 전가 없이는 제국적 생활양식이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사우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악화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전제 조건이며, 남북 사이의 지배종속관계는 예외적 사태가 아니라 '평상시 상태'인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패스 트 패션의 옷을 만드는 이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방글라 데시 노동자들이다. 2013년, 5개의 봉제공장이 입주해 있던 방 글라데시의 빌딩 '라나 플라자'가 붕괴되어 1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생산되는 옷들의 원료인 목화를 재배하는 이들은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작업하는 인도의 가난한 농민들 이다. 패션 업계에서 목화 수요가 늘어나며 농장은 유전자 조작 을 한 목화를 대규모로 도입하고 있다. 그 결과 농가에서 자가 채 취하던 종자가 사라졌고, 농민은 매년 유전자 조작을 한 종자, 화 학비료, 제초제를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뭄과 무더위 탓 에 흉작이 들면 적지 않은 농민이 빚에 쫓겨 자살하기도 한다.
비극은 제국적 생활양식의 생산과 소비에 기대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 역시 글로벌 자본주의의 구조적 이유 때문에 '평상시 상 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앞서 설명했듯 브라질 사람들도 브루마지뉴의 광산 댐이 무너 질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비슷한 사고가 있었기 때문 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굴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다. 노동자들은 생활을 위해 채굴 현장에서 일하며 그 근처에 거주하기까지 했다.
방글라데시의 라나 플라자에 있던 봉제공장에서도 사고 전날 노동자들이 벽과 기둥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무시당했다. 인도의 농민들도 제초제가 인체와 자연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갈수록 시장이 확대되는 전 세계 패션 업계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을 계속할 수 밖에 없다.
희생이 늘어날수록 대기업의 수익 역시 늘어난다. 이것이 자본의 논리다.
- 월러스틴의 이론을 확장해보면, 중심부는 주변부의 자원을 약탈하는 동시에 경제 발전의 이면에 숨은 대가와 부담 등을 주변부 에 떠넘겨왔다고 정리할 수 있다.
우리 식생활에서 숨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팜유를 예로 들어보겠다. 팜유는 저렴할 뿐 아니라 쉽사리 산화되지 않기에 가 공식품, 과자, 패스트푸드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런 팜유의 주생산지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다. 팜유의 원료인 기름야자의 재배 면적은 21세기 들어 배 이상 넓어졌는 데, 열대우림을 난개발하면서 밀림이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다. 팜유 생산이 급증하며 미치는 영향은 열대우림의 생태계 파괴에 그치지 않는다. 대규모 개발은 열대우림의 자연에 의존해 생활하던 사람들에게도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열대우림을 기름야자 농장으로 개간한 결과 토양침식이 일어 났고 비료와 농약 등이 하천으로 흘러들어 물고기가 줄어들었다. 하천의 물고기로 단백질을 섭취하던 이 지역 사람들은 물고기가 줄어든 탓에 전보다 돈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돈을 목적으로 야 생동물, 그중에서도 오랑우탄과 호랑이 등 멸종위기종의 불법 거 래에 발을 들이기도 한다.
이처럼 중심부 사람들이 누리는 저렴하고 편리한 생활의 이면에 주변부에서 이뤄지는 노동력 착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부 자원의 약탈과 그에 따른 환경 부하의 전가 역시 빠뜨려서는 안 된다.
바로 그렇기에 환경 위기로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피해 를 입으며 괴로워한다고는 할 수 없다. 식량, 에너지, 원료의 생산 ·소비가 연결된 환경 부하는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다.
'외부화 사회'라는 개념으로 선진국을 규탄한 레세니히에 따르 면, '어딘가 먼 곳의 사람과 자연환경에 부담을 전가하고 그 진 정한 비용은 떼어먹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생활 의 전제 조건이다.
- 네덜란드 같은 선진국의 생활은 지구에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나라들의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은 비교적 심하지 않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대기오염, 수질오염, 쓰레기 처리 등 수많은 환경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람들이 검소한 생활을 하는데도 말이다.
얼핏 보면 모순되는 이런 상황이 어째서 벌어질까? 이러한 의 문에 대한 답으로 기술의 진보를 들기도 한다. 경제 성장이 일궈 낸 발전된 기술 덕에 공해를 일으키는 오염 물질을 제거하거나 아예 배출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환경오염을 줄이면서 경제 성장도 이루었다고 선진 국이 자축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오류'다. 선진국의 환경오염이 개선된 것은 단순히 기술 발전에 의한 결과가 아니며, 자원 채굴 과 쓰레기 처리 등 경제 발전에 따라오게 마련인 부정적 영향의 적지 않은 부분을 글로벌 사우스라는 외부로 떠넘긴 결과에 지나 지 않는다."
국제적인 전가를 무시한 채 선진국이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으 로 환경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는 것이 바로 '네덜란드의 오류'다.
- 마르크스는 토양의 양분이 고갈되어 피폐해지는 농업의 문제를 다룬 바 있다. 당시 마르크스는 동시대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의 '약탈 농업 비판'을 참조했다.
리비히에 따르면 토양의 양분, 그중에서도 칼륨과 인 같은 무기질은 암석이 풍화됨으로써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형태가 된다. 다만 풍화 속도는 무척 느려서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상태의 양분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곡물이 흡수한 만큼 무기질을 토양에 반드시 제대로 돌려주어야 한다.
리비히는 이를 '보충의 법칙 Gesetz des Ersatzes'이라고 불렀다. 간단히 말해 농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토양 양분이 순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도시와 농촌 사이에 분업이 진행되면서, 농촌에서 수확한 곡물이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판매되기 시작했 다. 그렇게 되자 도시에서 소비된 곡물에 흡수되었던 양분은 더 이상 원래의 토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도시 노동자들이 섭취 하고 소화한 다음에는 수세식 화장실을 통해 하천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이뤄지는 농업 경영에도 있었다. 단 기적인 목표만 바라보는 농장 경영자는 지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땅을 묵히기보다 돈벌이를 위해 매년 경작을 하길 원한다. 땅을 기름지게 하는 관개시설에도 최소한만 투자한다. 자본주의에서 는 단기적인 이윤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토양의 양분 순환에 '균열'이 생겨나고, 토양은 양분을 돌려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빼앗기며 피폐해진다.
이처럼 단기 이윤을 위해 지속 가능성을 포기하는 불합리한 농 업 경영을 리비히는 '약탈농업'이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유럽 문 명이 붕괴할 위기라며 경종을 울렸던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를 보면 리비히가 경고한 대로 토양 피폐에 의한 문명의 위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왜일까? 20세기 초반에 '하버· 보슈법'이라는 암모니아 합성법이 개발되면서 화학비료가 저렴 하게 대량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하버• 보슈법'이 개발되었다고 해서 순환의 '균열'이 회 복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전가되었을 뿐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 하버 · 보슈법으로 암모니아(NH3)를 제조하려면 대기 중 질소(N)뿐 아니라 화석연료(주로 천연가스)에서 유래한 수소(H)도 필요하다. 전 세계의 농지만큼 비료를 제조하려면 당연히 막대한 화석연료가 쓰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오늘날 암모니아 제조에 쓰이는 천연가스는 생산량의 3~5퍼센트나 차지한다. 다시 말해 현대 농업은 토양에 본래 있 었던 양분 대신 또 다른 한정된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물 론, 암모니아 제조 과정에서도 이산화탄소가 대량 발생한다. 이 것이 기술적 전가의 본질적인 모순이다.
- 예컨대, 남아메리카의 칠레에서는 유럽과 미국 사람들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서, 즉 제국적 생활양식을 위해서 수출용 아보카도를 재배해왔다. '숲의 버터'라 불리는 아보카도 재배에는 무척 많은 물이 필요하다. 또한 아보카도가 토양의 양분을 전부 빨아들이기 때문에 한번 아보카도를 기른 땅에서는 다른 작물을 재배하기가 어렵다. 칠레는 아보카도를 위해 자신들의 생활용수와 식량 생산을 희생해온 셈이다.
그런 칠레에 최근 몇 년간 최악의 가뭄이 일어나 심각한 물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이 가뭄 역시 기후 변화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앞서 살펴봤듯이 기후 변화는 전가의 결과다. 게다가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른 팬데믹도 연달아 칠레를 덮쳤다. 그런데 칠레에서는 가뭄 탓에 귀해진 물이 코로나 전염 방지를 위한 손 씻기가 아니라 수출용 아보카도 재배에 쓰인다고 한다. 상수도가 민영화되었기 때문이다. 20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팬데믹과 유럽과 미국의 소비주의적 생활방식이 일으킨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에 가장 먼 저 노출되는 것은 주변부다.
- '경제 성장의 함정'을 진지하게 고찰한 록스트룀이 앞서 언급한 논문에서 내린 결론은, 경제 성장을 포기하자는 것이었다. 이유 는 단순하다. 성장을 포기하고 경제 규모를 축소하면 그만큼 이 산화탄소 삭감 목표를 달성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록스트룀의 결론은 지구 환경의 파괴를 막아서 인류가 번영할 조건을 보전하기 위한 일종의 결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본 주의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결단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본주 의에는 또 다른 함정, '생산성의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경비 절감을 위해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키려 한다. 노동 생산성이 올라가면 더욱 적은 인원으로도 같은 양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경제 규모가 커지지 않으면 노동생산성이 올라가는 만큼 실업자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자본주 의사회에서 실업자는 생활할 방법이 없고 정치가도 높은 실업률을 싫어한다. 결국 채용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제 규모가 커지도록 강한 압력이 가해진다.
이처럼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만큼 경제 규모 역시 키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생산성의 함정'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성의 함정'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며, 경제 성 장 또한 포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경제 성장을 유지하면 기후변 화 대책을 실행해도 자원 소비량이 늘어나는 '경제 성장의 함정' 에 빠져버린다.
이런 함정들 앞에서 과학자들도 자본주의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
- 더욱 불편한 진실이 있다. 효율화는 디커플링의 필수 요소이지만, 역설적으로 효율화 때문에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가 더욱 어 려워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현재 전 세계에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 소비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의 대체재로 쓰이지 않기 때문 이다. 재생에너지는 경제 성장에 따라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는 식으로, 즉 기존 화석연료에 더해 추가적으로 쓰이고 있다.(표 참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사태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가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다. 19세기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William Stanley Jevons 는 1865년 발표한 「석탄 문제 The Coal Question』라는 소책자에서 이 역설을 제기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석탄을 전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술 진보가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석탄 사용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석탄이 저렴해지면서 전보다 많은 분야에서 석탄이 쓰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석탄 소비량도 증가했다. 즉, 효 율화 덕에 환경 부하가 줄어들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다르게 기술 진보가 환경 부하를 더 가중하고 말았다. 제번스는 일찍이 이런 현실을 지적했다.
오늘날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신기술이 개발되어 효율 성이 높아져도, 상품이 그만큼 저렴해지는 바람에 결국은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이를테면 텔레비전은 갈수 록 전력 소모가 적은 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사람들이 더 큰 텔 레비전을 구입하는 탓에 전체적인 전력 소비량은 외려 증가하고 있다. SUV 같은 대형차 판매가 늘어나서 자동차의 연비 향상이 무의미해지는 것도 같은 역설에 해당한다. 신기술 덕에 효율성이 올라가 '상대적 디커플링'이 일어나는 듯해도 소비량이 증가하여 효율화 효과가 상쇄되고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또한 효율화 덕에 어느 부문에서 '상대적 디커플링'이 일어나 도, 절약된 자본과 수입이 에너지와 자원을 더욱 많이 소비하는 상품의 생산과 판매에 쓰여서 절약이 의미 없어지기도 한다. 가 령 가정용 태양광 패널이 저렴해져서 아낀 돈으로 사람들은 비행 기를 타고 여행을 갈지도 모른다. 기업 역시 잉여금이 생기면 새 롭게 투자할 만한 곳을 찾을 것이다. 새로운 투자처가 친환경적 일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 실은 좋지 않은 일이 더 있다. 선진국에서 이뤄지는 친환경 정책의 효과조차 의심스러운 것이다. 애초에 한 가정이 자동차를 여 러 대 소유한 사회란, 설령 그 차가 전기자동차라고 해도 지속 가 능할 리가 없다. 테슬라와 포드 등은 SUV 전기자동차 판매 계획 을 세우고 있는데, 기존 소비문화를 강화하여 더욱 많은 자원을 낭비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야말로 그린 워시의 전형인 것 이다.
실제로 원료를 채굴하여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석유가 연료로 쓰이며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전기자동차 때문에 증대하는 전력 소비량을 감당하기 위해 더욱 많은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 설비가 필요해질 텐데, 그러기 위한 자원을 채굴하고 발전 장비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당연히 환경도 함께 파괴된다. '제번스의 역설'인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환경 위기가 악화될 것이다.
지금 말한 내용을 확증하는 데이터가 있다. IEA(국제에너지 기구)에 따르면 현재 200만 대인 전기자동차가 2040년에는 2억 8000만 대까지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 줄어드는 전 세 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불과 1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애초에 전기자동차로 바꾼다고 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는다. 전기자동차의 배터리가 커지면서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고찰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 녹색 기술이라 칭송받 는 것도 생산 공정까지 고려해보면 그다지 친환경적이지 않다." 생산의 실태를 보이지 않게 가린 것인데, 전처럼 한 가지 문제를 다른 문제로 전가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전기자동차와 태양광발 전으로 옮겨 가야 하지만, 미래를 기술 낙관론에 모두 맡기겠다 는 생각은 치명적인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기자동차와 재생에너지로 기존의 것을 100퍼센트 대체하겠다는 기후 케인스주의의 주장이 매력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왜 그럴까? 기후 케인스주의가 우리의 제국적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아도즉, 아무것도 안 해도 미래를 지속가능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기 때문이다. 록스트룀의 말을 빌리 면, 그야말로 '현실도피'다.
- 최근 들어 이뤄지는 마르크스 재해석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커 먼common', 혹은 '공'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커먼'이란 사회적으 로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부를 가리킨다. 20세 기의 마지막 해에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와 마이클 하트 Michael Hardt라는 두 마르크스주의자가 『제국이라는 책에서 제기 하여 단숨에 유명해진 개념이다.'
'커먼'은 미국형 신자유주의와 소련형 국유화 모두와 대치하는 '제3의 길'을 여는 데 중요한 열쇠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시장근본주의처럼 전부 상품화하는 것도 아니고, 소련형 사회주의처럼 전부 국유화하는 것도 아니다. '제3의 길'인 '커먼'은 수도, 전력, 주택, 의료, 교육 등을 공공재로 삼아서 사람들이 스스로 민주주의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한다.
비슷한 개념으로 도쿄대학교 명예교수인 우자와 히로후미 弘文가 1970년대 초에 제시한 '사회적 공통자본'이 있다. 우자와의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며 번영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물과 토양 같은 자연환경, 전력과 교 통기관 같은 사회적 인프라, 교육과 의료 같은 사회제도가 그 조건이다. 이것들을 사회 전체의 공통 재산으로 삼아 국가의 규칙 이나 시장의 기준에 맡기지 말고 사회적으로 관리·운영해가자' 우자와의 발상과 '커먼'은 비슷하다. 단, '사회적 공통자본'과 비교해 '커먼'은 전문가에게 모두 맡기지 않고 시민이 민주적·수 평적인 공동 관리에 참여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리고 '커먼'의 영 역을 점점 확장하여 결국에는 자본주의 극복을 목표한다는 점이 사회적 공통자본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물질대사에 '고칠 수 없는 균열'을 낼 것이라고 『자본』에서 경고했다. 다음은 마르크스가 리비히를 언급하면서 자본주의적 농업 경영의 바탕에 있는 대토지 소유에 대해 분석한 부분이다.
이렇게 대토지 소유는 사회적 물질대사와 토지의 자연 법칙들이 규정한 대로 이뤄지는 자연적 물질대사 사이에 고칠 수 없 는 균열이 생겨나는 조건들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지력이 낭 비되고, 그 낭비는 상업을 통해 자국의 국경을 넘어 멀리까지 퍼져 나간다. (유스투스 폰 리비히)
『자본』은 물질대사의 "교란"과 "균열"이라는 표현을 통해 지속 가능한 생산의 조건을 무너뜨리는 자본주의에 경종을 울렸다. 자 본주의는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가 지속 가능하도록 관리하는 걸 어렵게 하여 결국에는 사회 발전을 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 이다.
이처럼 『자본』에는 근대화에 따른 생산력 증대를 무비판적으 로 칭찬하는 구절이 전혀 없다. 오히려 무한한 자본의 이윤 추구 를 실현해주는 생산력과 기술의 발전이 "약탈하기 위한 기술의 진보에 불과하다고 분명하게 비판한다.
- 왜 자본 집필이 늦어졌는가
『자본』 2권과 3권 집필이 늦어졌다는 사실은 마르크스의 코뮤니 즘이 만년에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엥겔스가 그토록 『자본』의 완성을 고대했지만, 마르크스는 1권이 간행되고 16년 뒤에 『자본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앞서도 이야기했 듯이 그 사이에 마르크스가 매진했던 것은 생태학 연구와 공동체 연구였다. 왜 마르크스는 『자본』 집필을 뒤로 미루고 그 연구들 에 빠져 지냈을까. 표면만 본 이들은 이런저런 병을 앓던 마르크 스가 『자본』 속편 집필이라는 괴로운 작업에서 독서라는 취미로 '도피'한 것이라고 억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물질대사론'을 마르크스의 이론적 축으 로 삼아서 살펴보면 비로소 마르크스가 진보사관을 버리고 새로 운 역사관을 세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던 과정이 눈에 들어 온다. 새로운 비전을 세우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생 태학 연구와 자본주의 이전 비서유럽 사회의 공동체 연구였다.
생태학과 공동체라는 두 연구 주제는 얼핏 보면 동떨어진 것 같지만, 그 바탕을 꿰뚫는 문제의식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우선 만년의 마르크스가 왜 공동체 연구에 몰두했는지부터 이야기하겠다. 사실 마르크스가 공동체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1868년 초에 생태학 연구를 위해 읽은 카를 프라스의 저작이었 다. 다시 말해 생태학 연구와 공동체 연구는 시작부터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앞서 고대 문명 붕괴에 대한 프라스의 연구를 마르크스가 읽었 다고 했는데(164면 참조), 프라스는 붕괴하지 않고 살아남은 공 동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 특히 고대 게르만족의 공동체인 '마르크협동체Markgenossenschaft 에 대해서는 지속 가능한 농업을 운영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게 르만족을 '야만스럽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속 가능성이라 는 면에서 게르만족은 대단히 우수했다.
'마르크협동체'는 카이사르 시대부터 타키투스 시대까지 게르 만족 사회를 통틀어 가리키는 호칭으로 쓰였다. 마침 수렵 및 군 사 공동체 역할을 하던 부족 공동체가 정주하여 농경을 하는 공동체로 변화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게르만족은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했고, 생산 방법에 강한 규제를 두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닌 외부인에게 토지를 파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토지 매매뿐 아니라 목재, 돼지, 와인 등도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처럼 강한 공동체적 규제 덕에 토양 양분의 순환이 유지되 었고 지속 가능한 농업이 실현되었다. 그리고 더욱 장기적으로는 지력을 상승시키는 효과까지 일으켰다고 한다. 공동체적 규제가 약화되어 무너진 고대 문명과는 이 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토양 의 양분을 빨아들여 길러낸 곡물을 대도시에 판매하여 이윤을 거 두려 하는 자본주의적 농업 경영과도 매우 대조적이다.
마르크스는 프라스의 저작들에 몰두했다. 『자본』을 집필할 때 부터 생태학을 연구했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이전 사회 공동체 의 지속 가능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 게르만족은 토지를 공유물로 관리했다. 그들에게 토지는 누구 의 소유물도 아니었다. 그래서 자연의 은혜를 일부 사람들만 입 지 않도록 평등하게 토지를 배정했다. 부의 독점을 방지해서 구 성원 사이에 지배 · 종속 관계가 생겨나지 않도록 조심한 것이다.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었기 때문에 토지는 소유자의 무분별한 남용에서 지켜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토지의 지속 가능성도 유지되었던 것이다.
마르크협동체의 토지 공동 소유에서 보이듯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평등'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공동체가 자본주 의에 저항하여 코뮤니즘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이 밀접한 관계 속에 있지 않을까. 마르크스는 이 가능성을 점점 강하게 의식했다.
- 생태학 연구 덕에 진보사관과 결별한 마르크 스는 서유럽 자본주의가 뛰어나다 했던 기존의 주장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그 결과, 단순히 코뮤니즘으로 향하는 길이 여러 갈래로 늘어난 것에서 나아가 서유럽 자본주의가 목표해야 하는 코뮤니즘 그 자체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무슨 변화가 일어났다는 말일까. 지금부터 설명하겠다.
전통에 근거한 공동체의 생산 원리는 자본주의와 전혀 다르다. 마우러와 프라스가 말했듯이 공동체 내부에 강한 사회적 규제가 있어서 자본주의 체제와 같은 상품 생산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앞서 마르크협동체에서는 토지는커녕 생산물조차 외부로 판매할 수 없다고 했던 걸 떠올려보자.
공동체에서는 전통에 기초하여 비슷한 수준의 생산을 반복한다. 즉, 경제 성장을 하지 않는, 순환형 · 정상형 경제다.
공동체가 '미개하고 '무지'했기 때문에 생산력이 낮고 빈곤에 허덕였던 것이 아니다. 공동체는 더 오래 일하고 더 생산력을 올 릴 여지가 있어도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권력 관계가 생겨나 지배 · 종속 관계로 변화하는 것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생산력 지상주의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열린 기술'과 '닫힌 기술'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고르츠는 말한 다. '열린 기술'이란 '커뮤니케이션, 협업, 타자와 교류를 증진하 는' 기술이다. 그에 비해 '닫힌 기술은 사람들을 분단시키고 '이 용자를 노예화하며' '생산물 및 서비스 공급을 독점하는 기술을 가리킨다."
'닫힌 기술'의 대표적인 예는 원자력발전이다. 오랫동안 원자 력발전은 '깨끗한 에너지'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은 보안상의 이유로 일반 사람들과 격리되었고 그에 관한 정보도 비 밀리에 관리되었다. 그런 특성은 갈수록 불리한 사실을 은폐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중대한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원자력발전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기란 어렵다. '닫힌 기술'은 특성 탓에 민주주의적인 관리와 어울리지 않고, 중앙집권적인 하향식 정치를 필요로 한다. 이처럼 기술과 정치는 결코 무관하 지 않다. 특정한 기술은 특정한 정치 형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 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기후 변화 문제를 살펴보면 지구공학이나 역배출 기술 역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닫힌 기술'일 수밖에 없다.
- 일반적으로 '본원적 축적'이란 주로 16세기와 18세기에 영국에서 이뤄진 '인클로저enclosure'를 가리킨다. 인클로저란 영주와 대 지주 등 자본가들이 그때껏 공동 관리가 되던 농지를 사유지로 삼아 강제로 농민들을 쫓아낸 일을 가리킨다.
왜 자본은 인클로저를 했을까? 이윤 때문이다. 수익률이 높은 양의 방목에 쓰기 위해, 아니면 노퍽 농법Norfolk four-course system 처럼 더욱 자본집약도가 높은 대토지 소유 농업 경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인클로저를 실시한 것이다.
폭력적인 인클로저 탓에 거주지와 생산수단을 잃은 농민들은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흘러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인클로저가 자본주의의 이륙을 준비해준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흐름을 고려했기에 그간 마르크스의 '본원 적 축적론'은 종종 피로 얼룩진 자본주의 성립의 '전사'를 묘 사하는 것으로 이해되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해서는 마르 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의 근간이 되는 '본원적 축적론'의 의의를 찾아낼 수가 없다.
실은 인클로저 과정을 '풍요'와 '희소성'을 기준으로 재구성한 것이 마르크스의 '본원적 축적론'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본원적 축적'이란 자본이 '커먼'의 풍요로움을 해체하고 인공적인 희 소성을 늘리는 과정을 가리킨다. 즉, 자본주의는 그 발단부터 지 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생활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며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 커먼즈 해체가 자본주의를 이륙시켰다
제4장에서 게르만족과 러시아의 촌락공동체에 대해 살펴봤지만,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공동체는 공유지를 다 함께 관리하며 노동 하고 생활했다. 전쟁을 겪고 시장사회가 발전해 공동체가 해체된 다음에도 입회지나 개방경지처럼 공동으로 이용하는 토지가 한동안 남아 있었다.
토지는 근원적인 생산수단이었고, 개인이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는 사적 소유물이 아니었으며, 사회 전체가 함께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입회지 같은 공유지를 영국에서는 '커먼즈commons'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공유지에서 과실, 장작, 물고기, 들새, 버섯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을 적당량 채집했다. 삼림에서 구한 도토리로 가축을 키웠다고도 한다.
- 그렇지만 공유지는 자본주의와 함께 존재할 수 없었다. 모두가 생활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조달한다면 시장에서 상품이 전혀 팔 리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도 굳이 상품을 구입할 필요가 없는 것 이다. 그래서 인클로저로 커먼즈를 철저히 해체하고 배타적인 사 적 소유로 전환해야 했다.
결과는 비참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살았던 토지에서 쫓겨나 생활수단을 빼앗겼다. 그리고 결정타를 가하듯이 그때껏 했던 채집 활동은 불법 침입에 절도라는 범죄 행위가 되어버렸다. 공동관리가 없어진 결과 토지는 황폐해졌고, 농경과 목축 모두 쇠퇴했으며, 신선한 채소도 고기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생활수단을 잃은 사람들 대부분은 도시에 들어가 임금 노동자 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적은 임금 탓에 아이들을 학 교에 보낼 수 없었고, 가족 모두가 필사적으로 일해야 했다. 그렇 게 해도 값비싼 고기와 채소는 구할 수 없었다. 입수할 수 있는 식량의 종류가 전보다 줄어든 데다 질도 나빠졌다. 시간도 돈도 모자랐기에 전통적인 레시피는 쓸모없는 것이 되었고, 단순하게 감자를 삶거나 굽는 요리만 하게 되었다. 생활의 질이 명백하게 낮아진 것이다.
- 그렇지만 자본의 관점으로 보면 같은 상황이 전혀 다르게 읽힌다. 자본주의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자유롭게 시장에서 매매하는 사회를 가리킨다. 토지에서 쫓겨나 살아가기 위한 수단을 잃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화폐를 손에 넣고 시장에서 생 활수단을 구입해야 했는데, 그로 인해 상품경제는 단숨에 발전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이륙하기 위한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 본원적 축적 전후를 비교해보면 땅도 물도 '사용가치'(유용성)는 변하지 않았다. 커먼즈에서 사적 소유가 되며 변한 것은 희소 성이다. 희소성의 증대가 상품의 가치'를 키운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이용할 기회를 잃고 점점 곤궁해졌다. 화폐로 계측되는 '가치'는 늘어났지만, 사람들 은 오히려 가난해졌다. 아니, 그보다는 '가치'를 늘리기 위해서 생 활의 질을 의도적으로 희생시킨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파괴와 낭비 같은 행위조차도 희소성을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절호의 기회로 삼기 때문이다. 파괴와 낭비가 풍요로운 것을 점점 희소하게 만들면, 그와 동시에 자본이 가치를 증식할 기회가 생겨나는 것이다.
기후 변화가 비즈니스 찬스인 것도 그 때문이다. 기후 변화는 물, 경작지, 주거지 등에서 희소성을 만들어낸다. 희소성이 늘어 나면 그만큼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지는데, 그런 상황이 자본에는 막대한 이윤을 올릴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재난의 충격에 편승하여 이익을 취하는 '기후 변화 쇼 크 독트린shock doctrine (충격 요법 정치)'이다. 돈벌이만 생각한다 면, 사람들의 생활이 희생되어도 희소성을 유지하는 것이 합리 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역시 재난편승형 자본주의에 속하는 '코로나 쇼크 독트린'을 맞이하여 미국 초부유층의 자산이 2020년 봄에 5650억 달러(약 687조원)나 늘어났다는 사실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사용가치'를 희생시킨 희소성이 개인 재산을 늘린다. 이야말 로 자본주의의 불합리를 뜻하는 '가치와 사용가치의 대립'이다."
- 한때 인간은 하루 중 몇 시간만 일하고 필요한 것을 가지면 나 머지 시간은 느긋하게 보냈다. 낮잠을 자거나 놀거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지금은 화폐를 갖기 위해서 타인의 명령에 따 라 장시간 일해야 한다. 시간은 금이 되었다. 시간은 단 1분 1초 라도 허비해서는 안 되는 희소한 것이 되었다.
자본주의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해 마르크스는 종종 '노예제' 라는 표현을 썼다." 의지와 상관없이, 여유도 없이, 끝없이 일한 다는 점에서는 노동자나 노예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사실 현대 의 노동자가 노예보다 참혹한 경우도 있다.
고대의 노예에게는 생존이 보장되었다. 대체할 노예를 찾기 어려웠기에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에 비해 자본주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얼마든 대체할 수 있다. 해고된 노동자가 다음 일자리 를 찾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굶어 죽고 만다.
마르크스는 이런 불안정함을 '절대적 빈곤'이라고 불렀다."
- 핵심은 원자력이나 화력과 달리 태양광과 풍력은 배타적 소유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태양광과 풍력에는 근본적 풍 요가 있다. 실제로 둘 모두 무한하고 무상이다. 그렇기에 석유나 우라늄과 달리 태양광과 풍력은 누구나 어디서든 비교적 저가에 발전을 시작하고 관리할 수 있다. 제5장에서 소개한 앙드레 고르 츠의 분류에 따르면 재생에너지는 '열린 기술'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이 자본에는 치명적이다. 태양광처럼 에너 지원이 분산되어 독점할 수 없는 경우에는 희소성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화폐로 바꾸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이렇게 자본주의 입장에서 딜레마가 생겨난다. 희소성을 만들 어내기 어려운 것으로는 돈벌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가 시장경제에서 기업들이 늑장을 부리며 좀처럼 재생에너지 개발에 뛰어들지 않는 원인이 되고 있다. '자본의 희소성'과 '커먼 의 풍요'가 대립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보급에는 '시민영화'가 필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다는 특성을 역으로 이용하면, 소규모의 민주적 관리에 적합한 비영리 전력 네트워크 를 구축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시민영화'가 지금껏 덴마크와 독일에서 시도되었 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일본에서도 비영리적인 시민전 력회사가 확산되고 있다. 시민이 시의회에 손을 써서 사모채권이 나 녹색채권으로 자금을 모으고 방치된 경작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등 자급자족형 발전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 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해 지역에서 소비한다면, 그간 전기요금으로 나가던 돈이 그 지역으로 돌아간다. 애초에 영리가 목적이 아니기에 수익은 지역사회 활성화 등을 위해 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개선해주는 '커먼'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며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이와 같은 순환이 일어나면 지역의 환경 · 경제 · 사회가 상승 효과에 힘입어 함께 활성화된다. 바로 '커먼'에 의해 지속 가능한 경제로 이행하는 것이다.
- 궁핍한 생활을 참고 견디길 강요하는 긴축 시스템이란, 외려 인공적 희소성에 근거한 자본주의에 해당한다. 우리는 충분히 생산하지 못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희소성이 자본주의의 본질이기에 가난한 것이다. 앞서 설명한 '가치와 사용가치의 대립'을 떠올려보자.
그간 신자유주의에서 이뤄진 긴축 정책은 인공적 희소성을 늘 리고 강화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정확히 부합하는 정책이었다. 그에 반해 풍요를 추구하려면 경제 성장의 패러다임과 결별 해야 한다.
- '근본적 풍요'를 내세운 경제인류학자 제이슨 히켈 Jason Hickel도 다음처럼 말했다. “긴축은 성장을 일으키기 위해 희소성을 추구하지만, 탈성장은 성장을 필요 없게 하기 위해 풍요를 추구한 다. "
이제 신자유주의에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반 긴축'이다. 하지만 단순히 화폐를 흩뿌리기만 해서는 신자유주의 에 대항할 수 있을지언정 자본주의에 종지부를 찍을 수 없다.
자본주의의 인공적 희소성에 맞서기 위한 대항책이란, '커먼' 을 복권시켜 '근본적 풍요'를 재건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탈성장 코뮤니즘이 목표하는 '반'이다.
- 마르크스는 '가치'와 '사용가치'라는 상품의 속성을 구별했다. 제6장에서 살펴봤듯이 자본 축적과 경제 성장이 목적인 자본주 의에서는 상품의 '가치'가 중요하다. 자본주의의 첫 번째 목적인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팔리기만 하면 뭐든 상관없다. 즉, '사용가치'(유용성)와 상품의 질, 환경 부하 등은 어찌 되어도 상 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단 상품을 팔면 그걸 곧장 버려도 상관 하지 않는다.
폭넓게 바라보았을 때, 가치 증식만 목적하는 생산력 증대는 여러 모순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기계화를 해서 경비를 절감하면 수요가 자극되어 대량의 상품을 팔 수 있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는 극심한 환경 파괴도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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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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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게임

경제 2023. 4. 17. 11:57

- "과거로 돌아가서 시작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해 미래의 결과를 바꿀 수는 있다." (클라이브 루이스)
- 경제는 가계와 기업의 상호작용으로 순환하 며 성장한다. 가계는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소득을 얻 고 이를 소비해 삶을 유지하는 한편 일부는 저축을 통해 자산을 형성한다. 반면 기업은 자본과 노동력을 기반으로 제품과 서비스 를 생산하고, 벌어들인 이익 중 일부를 재투자해 기술 경쟁력을 얻는다.
여기에 경제가 원활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요건이 있다. 바로 적당한 인플레이션이 필수적으로 더해져야 한 다는 것이다. 만약 적절한 인플레이션이 이어진다면 현재 시점의 소비가 증가한다. 향후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상승할 것이란 기대감 때문에 가계와 기업은 소비를 앞당긴다. 물가상승과 함께 부동산 등 실물자산의 가격 상승이 동반되면 소비심리가 개선되 고 지출이 늘어 기업의 생산 증가로 이어진다. 생산 증가는 다시 고용과 투자로 이어지고 다시 가계구성원의 소득과 소비 증가로 이어져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이를 경제 성장의 선순환 구조라고 한다.
그럼 반대로 인플레이션이 아닌 디플레이션 상태일 때는 어 떨까? 물가하락 국면이 지속되면 향후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기대감에 소비를 늦춘다. 또한 가계와 기업이 보유한 실물자산의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기대감에 소비지출이 지연되며 기업의 매출이 악화되고 생산이 감소된다. 그 결과 고용과 투자 감소로 이어진다. 실업이 증가하고 가계소득이 감소하면 또다시 소비가 둔화되고 결국 물가가 다시 하락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다. 이 때문에 경제가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며 완만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물가상승, 즉 인플레이션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 현재는 미국의 경제 규모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는 중국과 유로존 등이 기축통화의 자리를 넘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시기 상조라고 본다. 기축통화국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 기준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존립을 위협받지 않을 정도로 군사 강대국이어야 하며, 내수 기반이 확고해 교역이 끊어져도 자국 내 에서 생산·분배·소비가 가능해야 하며, 1·2·3·4차 산업이 전반적 으로 균일하고 고도로 성장해 있어야 한다. 또한 초고도로 발전 된 금융자본 시장이 있어 전 세계 금융허브로 손색이 없어야 하 며, 글로벌 재화와 서비스, 금융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규 제 및 장벽이 낮아야 한다. 미국은 전 세계 국가 중 유일하게 해당 조건을 모두 충족한 나라로 국방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와 금음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국제 무역 거래에서 대금결제에 사용되는 통화의 비중을 보 면 기축통화인 달러가 압도적으로 많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호 주가 교역을 하더라도 원화나 호주화로 결제하는 것이 아니라 달러를 주고받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유로화 결제 비중도 미국에 못지않으나 사용 지역이 유로존에 집중된 점, 유로화를 사용하는 회원국 간의 경제적 불균형 문제와 정치·사회적 분리 등으로 기축통화의 일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 양적완화는 국채나 주택담보증권(MBS)을 매입하는 일반적인 공개시장운영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버전으로, 2008년 글로벌 금 융위기 때 처음 등장했다. 시중금리가 제로(0)에 가까워져서 더 이상 인하할 수 없을 때 시중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중앙 은행으로 귀속시켜 또다시 채권을 매입한다. 대상은 국공채나 주 택담보증권(MBS), 회사채 등으로 일반적인 공개시장운영보다 범 위가 넓다. 시중은행으로부터 회수된 현금이 모자라면 중앙은행 의 고유 권한인 '화폐 발행'을 통해 채권을 매입한다. 이렇게 초저 금리의 넘치는 유동성의 파도가 가계와 기업을 충분히 적실 때까지 자산 매입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유동성은 실물자산 시장에 먼저 유입되어 자산의 가격을 상승시키고, 이어서 가계와 기 업의 소비를 확대한 후 인플레이션을 야기한다.
양적완화는 제로금리 상태에서 성장을 멈춘 경제 상황(예를 들면 일본)에도 적용 가능하지만, 예상치 못한 경제 충격에는 더욱 빠르고 강력하게 시행된다. 미국은 1929년부터 10여 년간 자국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한 대공황의 트라우마가 뿌리 깊게 남아 있어 강한 외부 충격이 오면 초기에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19 사태처럼 강한 외부 충격이 오면 시장의 소비심리는 급격히 냉각되고, 기업은 생산을 줄이고, 실업은 늘어난다. 이에 가계소득이 줄어 다시 소비가 감소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연이어 부채의 반격이 시작되 는데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증가하고, 기업이 발행한 회 사채 가격은 부도위험 증가로 하락한다. 은행은 대출을 줄이거나 회수하고, 차주의 신용도 악화를 근거로 금리를 높이면서 경제는 더욱 위축된다. 이른바 '신용경색'이 시작되는 것이다.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처음 양적완화 카드를 사용한 벤 버냉키 의장 이후 연준의 다른 의장들도 현재까지 비슷한 행 보를 걷고 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연준을 이끈 재닛 옐런 은 2016년 경제 침체 당시 대규모 부양책으로 위축된 수요를 자 극해 경기 부양을 이끄는 '고압경제론'을 주장했는데, 이는 물가 상승을 다소 용인하더라도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면 경제가 선순 환 구조로 돌 수 있다는 기본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재닛 옐런은 임기 동안 금리 정상화를 최대한 늦추며 경기 회복을 유 도했다(재닛 옐런은 2021년 미국 재무부 장관에 취임해 여전히 영향력 을 발휘하고 있다). 2018년 이후 의장이 된 제롬 파월은 연준 이사 재직 시절 중도파로 구분되었지만,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욱 강력한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벤 버냉키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위기의 원인이 금융기관과 감독기관, 과도한 부채 사용자에게 있었다면 2020년에는 바이러스 가 원인일 뿐, 경제구성원의 책임은 없었다. 이 때문에 2008년에 는 주택 시장 붕괴와 실업률 증가에 따른 주택 구입자들의 대출 연체 및 가계 소비 위축 방어를 위한 유동성 지원, 그리고 MBS 기반의 복합 파생금융상품을 보유한 금융기관의 연쇄 파산을 막 기 위한 공적자금 투입으로 정책의 범위가 다소 제한적이었다.
반면 2020년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금융 기관이 받은 충격은 크게 없었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발 경제 활동 위축으로 상당수 가계와 기업의 수입이 감소하며 대규모 채 무 불이행 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다. 이 때문에 소상공인과 취약 계층의 기본 생활 유지를 위한 보조금 및 대출 프로그램, 취약 산 업군의 고용유지를 위한 급여보호 프로그램, 그리고 전 국민의 소비 위축을 막기 위한 재난지원금 등 재정·통화정책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광범위했다.

- 돈이 흐르고 확산되는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로는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가 있다. 일반적으로 통화승수와 통화유통 속도가 낮은 국가일수록 투입된 유동성 대비 결과값(경제성장률) 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경제 규모가 비슷한 A국가와 B 국가에 동일한 유동성을 투입할 경우 통화승수와 통화 유통속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더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인다는 뜻 이다.
통화승수는 한국은행이 발행한 지폐, 즉 본원통화가 시중은 행의 대출(신용창출)을 통해 몇 배의 통화로 만들어졌는가를 나타 내는 지표다. 통화승수가 높다면 본원통화 대비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의 양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값이 높으면 통상적 으로 생산, 소비, 투자 속도가 빠르고 그 나라 경제가 활력을 가졌다고 해석된다.
통화승수=M2/본원통화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우리나라의 통화승수는 26배였으나, 2021년 기준으로 14배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미국의 통화승수는 11배에서 4배로 줄었다. 이는 유동성 공급 측면에서 본원통화 공급에 따른 효과가 한국은 약 1/2, 미국은 약 1/3로 줄 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해 유동성을 공급 해도 과거보다 2배, 3배로 많은 돈을 투입해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통화유통속도는 공급된 유동성 대비 경제 성장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명목GDP를 시중 유동성(M2)으로 나눠 산출한다.
- 통화유통속도가 높다는 것은 적은 유동성으로도 높은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뜻이며 활력을 가진 경제라고 평가할 수 있다.
통화유통속도=GDP/M2
한편 2000년대 들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통화유통속 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시기 시중 유동성은 역대급으로 증가했지만 실물경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통화유통속도는 급감했고, 2022년에는 2000년대 초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유동성을 공급하면 실물경제로 유입되어 소비, 생산, 고용, 투자 확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경제가 성장(GDP 증가)해야 하지만, 글로벌 저성장 추이 속에 시장에 공급된 유동성은 기업 대신 실물자산으로 흘러 들어갔고 투입된 유동성 대비 GDP 증가는 더뎌졌다.
- 정부와 중앙은행은 유동성으로 소비가 확대되고, 고용과 임금이 늘어 소비자물가지수가 상승할 조짐이 보일 때쯤 유동성 공 급을 줄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성장과 물가가 관성을 가지고 적 정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유동성의 총량을 조정한다. 만약 경기가 과열 국면에 접어들었다면 유동성 회수는 정교하게 진행 되어야 한다. 너무 빠르면 경제가 다시 위축될 수 있고 너무 늦으면 물가가 빠른 속도로 상승할 수 있다. 물가는 상승할 때는 쉽게 상승하지만 다시 내려가기란 쉽지 않다. 원자재 가격은 다시 하락할지 몰라도 이미 올라간 인건비(시급), 상품, 서비스 등의 가격은 쉽게 제자리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가파른 물가를 잡는 방 법은 유동성 회수가 유일하다. 중앙은행은 자산 매입을 중단하고 금리를 인상해 시중 통화를 흡수한다.
- 코로나19 시기에 기축통화국 미국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고 전 세계가 이에 동참하며 유동성 파티를 열었다.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는 듯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유동성 조절 실패로 물가지수는 지난 4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중앙은행은 뒤늦게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2021년 6월 소비자물가지수가 5%를 돌파할 때까지만 해도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11월 소비자물가지수가 6%를 돌파하고 난 뒤에야 일시적이라는 입장을 철회했다.
- 고금리 시기는 부자들에게는 잠시 투자를 쉬어가는 국면일 뿐이지만 부채를 가진 서민들에게는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이다. 여기서 만약 자산 가격이 무너지면 더 큰 재앙이 찾아온다. 차입 자들의 소비는 더욱 위축되고 기업의 생산, 고용, 투자 또한 차례 대로 감소할 것이다. 이는 곧 장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실물자산 가격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한 또 다른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 만약 중앙은행이 테이퍼링을 발표하면 실물자산 가격이 하락할까? 질문의 답은 '그 시점의 경제 상황에 따라 다르다.'이다. 만약 경제가 침체 국면을 벗어나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소비와 생산, 고용, 투자 등 여러 지표가 완만한 경기 확장을 가리키고 있다면 시장에는 유동성 공급을 줄여도 될 만큼 경기가 충분히 좋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테이퍼링이 발표되더라도 실 물자산의 가격은 상승 흐름을 지속할 수 있다. 반대로 지표가 충분히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테이퍼링을 발표하면 실물자산 가격 하락의 신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경기가 후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소비가 더욱 위축되어 경기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 중앙은행은 보다 적극적으로 실물자산 가격 하락을 방어할 것이다. 이후 비용상승 물가상승 압력이 완화되고 경기 부양을 위한 유동성 공급이 재개되면서 자산 가격은 장기 우상향 추세를 이어갈 것이다.
-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이란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줄여 대차대조표를 축소하는 것을 말한다. 보다 적 극적인 방법의 자산 축소법으로, 테이퍼링 이후 금리 인상에도 시장이 과열되거나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될 경우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양적긴축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할 때 동반된다.
중앙은행이 자산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는 보유한 채권 중 만기가 도래한 채권의 원금을 상환받은 후 다른 채권을 재매입 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중앙은행이 상환받은 금액만큼 시중 채권을 재매입한다면 대차대조표상 자산이 그대로 유지되지만, 재매입하지 않고 회수된 채권 원금을 소각하면 자산과 함께 부채로 계상되었던 현금도 사라져 대차대조표가 축소된다. 이 방법 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양적완화를 종료한 2014년부터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만기가 도래한 채권 중 일부에 적용되었다. 당시 중앙은행의 자산은 아주 완만한 속도로 감소했는데, 만기가 도래한 채권의 원금을 회수해 상당수는 여타 국채를 재매입하고 일부만 소각했기 때문이다.

- 우리는 명목금리에 현혹되지 말고 실질금리 추이를 항상 주시해야 한다. 은행 금리가 높더라도 인플레이션이 명목금리를 상 회한다면 화폐의 실질가치가 하락함을 인식해야 한다. 반대로 은행차입을 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부채의 실질가치 또한 하락할 것이다. 그리고 양적완화가 존재하는 이상 디플레이션은 방어될 것이며, 마이너스 또는 제로에 가까운 실질금리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자산 증식의 기회를 만들어줄 것이다.
- 과거 경기순환사이클과 금리의 상관관계를 보면 양의 상관성을 보인다. 경기순환사이클을 '회복-확장-후퇴-침체' 4단계로 보 면 확장 단계에서는 과열 방지를 위해 금리를 올리고, 침체 단계 에서는 금리를 다시 내려 유동성을 공급한다. 또한 경기순환사이 클과 실물자산(주식, 부동산) 역시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금리 가 인하되고 유동성이 공급되어 경기가 회복, 확장 단계에 접어 들면 어렵지 않게 자산 가격도 함께 오른다는 걸 예상할 수 있다. 자산 가격은 인플레이션을 등에 업고 상승할 경우 좀 더 크게 오 르며, 하락할 때는 좀 더 낮게 하락한다. 지난 50년간 초장기 차 트를 보면 경기순환사이클이 등락함에도 불구하고 주식과 부동 산은 우상향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산 가격이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고 해서 금리가 높을 때 무리해서 차입할 필요는 없다. 금리가 높다는 것은 경기 순환사이클상 경기 과열이거나 물가상승 국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과도한 차입 비용은 본인에게 부담일 뿐만 아니라 타 인 모두에게 적용되어 그만큼 추가 상승 동력을 약화시킨다. 경 기순환사이클상 정점을 지난 시기에 무리하게 차입을 일으킨다 면 자산 가격 조정과 함께 인고의 세월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경 기와 금리의 순환주기를 냉정히 파악해 감내 가능한 적정 금리 선에서 차입해야 한다.

한편 경기가 둔화될 조짐이 보이고 중앙은행으로부터 유동성 공급 신호가 포착되면 차입을 준비해야 한다. 기준금리가 제로 또는 이전 최저 금리 수준을 향해 내려가고 있다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경제 침체 국면에서 빚으로 자산을 매수하기가 부담 스러울 수 있으나 앞으로 진행될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과 정부 지출 확대 이후까지 좀 더 길게 봐야 한다. 실물자산 투자는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에 씨를 뿌리고 가장 뜨거운 여름에 수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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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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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인사이트 2023

경제 2023. 4. 12. 16:30

- 장기적인 문제는 러시아가 세계 1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확보 하고 있는 국가라는 점이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미국의 3배이고 카타르보다 52% 많다. 글로벌 기준 매장량 비중이 20%에 달한다. 2위 매장국은 이란으로, 러시아와 이란 합산 기준 글로벌 비 중은 37%이다. 미국과의 핵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이란의 천 연가스가 수출되리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세계는 글로 벌 기준 37%의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와 이란을 완전 배제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러시아(또는 이란)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로 양분 될 가능성이 크다. 원유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 중심에는 중국과 인도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 에너지 기업의 생산 가능 연수는 당해 연도에 이미 확보된 Oil & Gas 리저브oil & Gas Reserve의 양을 당해 연도의 생산량으로 나눠 구할 수 있다. 엑손모빌의 생산 가능 연수는 2015년 16.6년에서 2021년 13.3년으로 줄었다. 셰브론chevron은 같은 기간 11.7년에서 10년, 셸 Shell은 10.9년에서 7.9년으로 줄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최상이 유지였고 대부분 감소했다. 셸의 생산 가능 연수가 2021년 말 기준 7.9년이라는 것은 지금부터 아무런 투자가 없다면 8년 후인 2029년부터 생산할 원유와 가스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 기업들은 Oil & Gas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할까?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해 보 인다. 생산 가능 연수가 가장 짧은 셸shell, 에퀴노르Equinor 등은 신재 생으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제한된 현금으로 언젠가는 좌초 자 산이 될 Oil & Gas에 투자하기보다는 성장성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신재생에 투자하고 그 자금원은 이미 확보된 Oil & Gas를 높 은 가격에 파는 것이 그나마 미래 생존 가능성을 높여 줄 수 있기 때 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인 Oil & Gas 투자를 기대할 수 없다. 이미 확보된 자원의 수익성 극대화 전략은 미국 기업들에서 좀 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 LNG 공급은 언제쯤 풀릴까?
2021년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1.2억 톤의 천연가스를 PNG로 도 입했다. 지금처럼 소비를 줄이고 터키스트림만 가동될 경우, 1억 톤 정도는 러시아가 아닌 지역에서 도입해야 한다. 현재 유럽은 노르웨 이와 알제리에서 공급받는 PNG가 있다. 그러나 천연가스 리저브 기 준 노르웨이의 생산 가능 연수는 12.8년, 알제리는 28년이다. 알제 리로부터의 공급량은 노르웨이 공급량의 30% 수준이고 10년간 알 제리의 연평균 천연가스 내수 소비 증가율이 5.5%이기 때문에 장기 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 노르웨이의 2022년 10월 중반까지 유럽향 PNG 공급량은 YoY 11% 증가했는데, 역사적 고점 수준의 가스를 유럽으로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유럽은 단기적으로 LNG 외 에 천연가스 공급량을 늘릴 대안이 없다.
글로벌 LNG 시장은 적어도 2025년까지 공급 부족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러시아가 유럽으로 팔지 못하는 양을 다른 나라에 팔면 되지 않느냐?'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 러시아의 LNG 수출 설비는 초기 계획된 생산량 이상으로 가동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더 늘릴 방법이 없다. 계획된 LNG 프로젝트는 유럽의 LNG 장비 수출 금지로 완공 시기를 확정지을 수 없다. 파이프라인을 통한 수출은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러시아는 중국행 Power of Siberia 1'을 가 동 중인데, 2022년 이를 통한 공급량은 약 1,250만 톤, 2025년에는 2,800만 톤 정도로 전망된다. 수출량이 증가하기는 하지만, 기존 유 럽행을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연간 3,675만 톤의 천연가스 공급 능력을 지닌 Power of Siberia 2 Pipeline도 계획 중인데, 이는 2030년에 가동될 예정이다. 현재로서는 러시아가 유럽행 천연가스 를 처리할 방법이 딱히 없다.
- 2025년까지 공급 부족 상황 지속을 전망하는 이유는 현재 건설 중인 LNG 프로젝트 기준 2022~2025년에 완공되는 설비 규모가 8,510만 톤으로, 유럽이 추가 조달해야 하는 1억 톤에 미치지 못하 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앞서 언 급한 것처럼 러시아의 LNG 프로젝트는 유럽의 LNG 기자재 수출 금지 영향으로 계획된 시기에 완공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러 시아 물량을 제외하고 보면 2025년까지 나올 수 있는 물량은 5,740 만 톤에 불과하다. 유럽의 러시아 PNG 대체 수요 1억 톤과 중국, 인도 등의 수요 증가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다. 위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LNG 수급은 2026년 하반기에나 해소될 전망이다.
- 장기적으로 공급 문제는 풀리겠지만, 시장은 양분될 전망
2026년 이후 FEEDFront & End Engineering & Design 단계 프로젝트 규 모는 2.93억 톤이다. 이중 미국 1.75억 톤, 캐나다 3110만 톤, 러시 아 2,340만톤, 멕시코 2,180만 톤으로, 북미의 비중이 77.8%에 달한 다. 현재 건설 중인 LNG 프로젝트에 있어 북미의 비중은 (러시아 물 량 포함) 33%이다. 프로포즈드 프로젝트proposed Project의 경우 최근까 지 2.98억 톤이 제안됐는데, 여기서 미국과 캐나다의 비중은 40%이 다. 큰 이변이 없다면 향후 LNG 시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가 압도적인 물량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상황이 불편할 것이다.
중국의 천연가스 자급률은 2010년 89%에서 2021년 55%로 수 입 의존률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중국 정부의 '2060 탄소중립' 목표와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감소시켜야 하는 석탄 소비량을 감 안하면 천연가스는 과도기에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부각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소비 증가 속도를 자체 생산량이 따라갈 수 없어 중국의 천연가스 수입이 증가하는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 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선택은 미국이 아닌 러시아일 수밖에 없 고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의 북극해 프로젝트에 대한 중국 참여는 더 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결국 천연가스 시장이 미국산을 수 입하는 국가와 러시아산을 수입하는 국가로의 양분 가능성을 의미 한다.
- 2018년 개장된 상해 원유 선물 시장의 2021년 거래량은 WTI 거래량의 42.5% 수준이고 브렌트 거래량의 63.3%에 달했다. 브렌트 거래량을 넘어서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물론 상해 원유 선물 시장의 참여자가 누구인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유동성 측면에서 브 렌트와 유사한 수준을 제공할 수 있다면 잠재적 성장 가능성은 분명 크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수요가 증가하는 가장 큰 시장이기 때문 이다. '페트로달러 PetroDollar냐, 페트로위안PetroYuan 이냐'의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되고 있고 힘의 역학 관계는 한층 더 복잡해지고 있다.
- 언젠가는 사라질 페트로달러
시간은 걸리겠지만, 신재생으로의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 과 정에서 화석 연료에 대한 비중이 낮아져 장기적으로는 지정학적 리 스크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전망을 한 바 있었다. 지금 까지의 분쟁들이 'Energy'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국가나 지역들도 신재생 발전을 통해 일정 부분 에너지 자급이 가능해지면 굳이 남의 것을 탐하는 의사결정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그런데 전쟁의 발발에 따른 원자재commodity 가격의 급등으로 세상이 이렇게 양분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유럽은 향후 수년간 힘들기는 하겠지만, 러시아 없는 에너지 수 급 구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린 당분간 화석 연료를 계속 써야 하고 러시아는 동진을 통해 판로를 확보하려 할 것이며 중국은 이 상황에서 최대 에너지 수입국으로서의 이점을 이용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이란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 원유를 지속적으로 수입해 왔기 때문에 중국에게 최적화된 시장 환경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중국 시장을 두고 러시아와 사우디 간 경쟁을 유발할 수도 있으므로 페트로달러의 지위가 확고부동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페트로 달러의 지 위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 나 어떤 식으로든 위안화의 글로벌 사용 확대를 추구하고 싶은 중국 은 약간의 틈새가 보이는 에너지 결제 시장을 적극 활용할 것이다. 리비아의 카다피, 이라크 사담 후세인 그리고 베네수엘라 차베 스의 공통점은 원유 대금 결제를 달러 이외의 화폐로 하고자 했다는 점이고 그 끝이 모두 좋지 않았다. 페트로달러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고는 하지만, 미국이 이를 쉽게 놓아줄 리 없다. 적어도 신재 생에서의 넘볼 수 없는 확실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중력은 (지구가 존재하는 한) 어디에나 존재하며 변화하지 않기 때 문에 일정하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것에 있어 높은 기술력이 필 요하지 않다. 저장한 후에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률Round Trip Efficiency도 크지 않다. 손실률이 가장 좋은 것은 배터리로, 90%까 지 가능하고 수력은 80% 수준까지 가능하다. 수소는 35% 수준으로 저장 설비 기준 가장 낮지만, 카본 중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운 반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 실현에 있어서 대체할 대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전력 에너지를 저장하는 가장 우선적인 방법은 배터리를 사용하 는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기는 하지만, 투자비가 많이 들고 신재생 전력의 대규모 에너지 저장용으로는 규모면에서 분명 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배터리 ESS에 대한 지속적으로 투자하면서 다른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에는 앞서 언급한 중력도 있고 수 소도 있다.
중·장기적으로 언급되는 대안은 잉여 전력을 활용해 수소를 생 산하고 이를 저장하는 방법인데, 인류는 이미 천연가스 저장 용도로 '소금 동굴salt Cavern'을 사용하고 있다. 수소의 저장은 쉽지 않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소금 동굴을 이용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소금동굴은 초기 건설 비용만 필요할 뿐, 운영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반 영구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소금 동굴을 건설하는 데는 5년 내외의 시간이 필요하고 현존하는 설비 중에는 크기가 100만m짜리도 존 재한다. 100만m2 규모의 소금 동굴에 10기압 압력으로 수소를 가스 상태로 저장하면 약 900톤 정도를 저장할 수 있는데, 이는 전력량기 준 30GWh에 해당하는 양이다.
에너지 볼트Energy Vault라는 기업은 중력을 이용한 에너지 저장 설비를 만드는 업체로, 이 업체가 보유한 설비의 손실률은 85% 수준 이라고 한다. 투자비는 배터리의 68% 수준으로 낮고 화재 및 폭발 의 위험이 전혀 없으며 상황에 따라 12시간 이상의 방전이 가능하고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에너지 볼트는 폐기물 등으로 만든 약 35톤의 블록 6,000~7,000개를 잉여 전기 발생 시 약 150m 내외의 높이로 6개의 크레인을 이용해 탑을 쌓고, 전력 필요 시 이를 땅으로 떨구며 전력을 발생시키는 방식이다. 21세기에 석기 시대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이 의외이긴 하지만, 이런 시도를 하는 업체들이 많다.

- 오로지 물가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끝장'을 봐도 되겠지만, 물가 안정 외에 연준의 또 다른 통화 정책 목표는 '최대 고용 달성'이다. 고용이 불안해지면 물가에만 신경 쓸 수 없다. 물가 안정만을 통화 정책 목표로 세워 두는 많은 중앙은행과 달리, 연준의 통화 정책 목 표는 물가 안정stable price, 최대 고용 달성maximum employment 그리고 안 정적인 장기 금리 유지moderate long-term interest rates 이다.
지금 연준이 물가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고용 시장이 매우 탄 탄하기 때문이다. 2022년 9월 기준 미국의 실업률은 3.5%로 자연 실업률인 4.4%를 하회한다.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에 들어서 있는 것이고 최대 고용 목표는 달성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 다른 통 화정책 목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물가 안정에 총 력을 쏟을 수 있는 것이다. 실업률이 4.6%를 상회하기 시작하면 연 준의 강경 일변도 긴축 정책이 막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예상한다.
이 수치는 1950년 이후 미국의 11번 경기 침체가 도래하기 직전 6개월 간 실업률의 평균치다. 실업률이 4.0% 중·후반대에 진입하면 연준의 시선은 물가와 고용으로 분산될 것이고 분산된 시선은 자연 스럽게 물가 억제 의지를 약화시킬 것이다. 물론 고용 지표는 대표적 인 경기 후행 지표로서 고용의 약화는 경기의 본격적인 둔화를 의미 하고 경기의 둔화는 물가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 부분도 연준 이 긴축 사이클을 종료시킬 수 있게 만드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 연준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열쇠는 '주택 시장'이다. 1950년 주거관련물가지수CPI Shelter와 기준 금리 간의 상관계수는 0.73으로, 일반소비자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 CPI(0.68)보다 높다. 더욱이 미 국 전체 CPI에서 주거 관련 품목의 가중치는 약 32%로, 가장 큰 품 목군 중 하나이다. 주택 시장이 냉각되면 물가의 둔화 속도가 빨라 질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미국도 한국처럼 주택 시장 둔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주거 CPI에 일반적으로 6개월 정도 선행한다는 질로 우zillow' 렌트 가격 지수, 전미주택건설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Home Builders, NAHB 주택 시장 지수 모두 가파르게 하락 중이다. 미국인들의 자가 주택 보유율도 65.8%로, 역사적 평균(65.6%)에 수렴하는 가운 데 7.0%대에 진입한 모기지 금리를 고려하면 추가 매입 여력도 크 지 않다는 판단이다. 수요의 추가 개선이 어려운 가운데 주택 공급 은 여전히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 한국 경기는 순환적 관점에서 이미 2022년 중반부터 둔화 국면 에 들어섰다. 앞으로의 상황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한국 경제의 주 성장 동력원은 '수출'과 '소비'인데 이 두 가지 모두 추가 개선을 기 대하기 힘들다. 2022년 초 소비의 빠른 개선은 방역 조치 완화로 사 람들의 바깥 활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다시 사회 생활을 정상적 으로 할 수 있으니 씀씀이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동안 사지 못 했던 것도 살 수 있고(이연 소비), 쓰지 못해 모아 놓은 돈으로 '플렉 스(보복 소비)'도 할 수 있다. 이런 일시적인 소비 개선 효과도 이제는 크게 줄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소비 형태를 보면 백화점과 같은 실물 점포 판매와 모바일, 인터넷 쇼핑과 같은 무점포 판매 증가율이 코로나19 방역 조치의 강화-완화 사이클과 맞물려 뚜렷한 역의 상 관관계를 보였다. 방역 조치가 완화되면 실물 점포 판매가 증가하는 대신 무점포 판매는 감소하거나 둔화됐고 이와 반대의 경우도 마찬 가지였다. 일시적인 효과는 끝났다. 계속 이연 소비, 보복 소비를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코로나19가 바꾼 세상에 소비자들은 적응했다. 수출은 글로벌 수요 둔화와 주변국 환율 약세로 설명할 수 있다. 이미 대부분 국가의 경기 반등은 끝났고 이제는 서서히 또는 빠르게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추가로 뭔가를 구매할 여력이 줄어들 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수출강국인 우리나라에는 좋은 소식이 아 니다. 내다 팔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율 문제는 앞에서 설명한 한국은행 통화 정책의 키워드인 '환율'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면 편하다. 우리나라의 수출 경쟁국은 다름 아닌 위안화를 쓰는 '중국'과 엔화를 쓰는 '일본'이다. 중국, 일 본의 통화 가치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하락했는데, 이는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한국 수출 품목의 가격 경쟁력을 상쇄시킨다. 우리만 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들도 싸게 팔 수 있게 된 것과 같은 개념이다.
-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장세는 어디였을까?
약세장은 보통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구조적 약 세장이다. 금융 기관이나 가계 또는 기업이 부실해지면서 국가 경제 시스템이 무너지는 경우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1) 1920년대의 미국 사회 전체의 버블이 기업의 부실을 야기했던 1929년의 대공황
2) 달러 금태환 중지와 오일 쇼크가 함께 맞물리면서 물가가 폭등한 1973년
3) 새로운 1,000년을 앞두고 정보 기술 기업의 과잉 투자와 연이은 분식 회계 그리고 테러가 야기한 2000~2002년
4) 금융 기관이 망해버린 2008년 구조적 약세장은 주가지수가 50%는 빠져야 끝난다.
- 두 번째는 경기 순환적 약세장이다. 경제 사이클의 변화에 맞춰 주가가 오르락 내리락 한다. 1928년 이후 S&P 500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경기 순환적 약세장은 1년에서 1년 반 사이에 한 번 나타날 정도로 자주 발생한다. 주가는 적게 빠질 때는 10%, 많이 빠질 때는 30%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세 번째는 특정 사건이 야기하는 약세장 Event-Driven 이다. 2020년 1분기에 봤던 코로나19에 따른 주가 급락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경기 순환적 약세장과 유사한 수준의 증시 움직 임이 나타나곤 했다.
2022년부터 이어진 미국 시장의 약세는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맞물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가 부담에 따른 긴축이 경기를 악화시 키는 와중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라는 사건이 터졌다. 2022년에는 구조적 약세장이 아닌 상황에서 하락할 수 있는 최대치 로 주가가 빠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구조적 약세장이라고 하기에는 미국의 가계와 금융 기관이 충분히 건전하다. 2022년의 약세장이 경 기 순환적이라고 하면 2020~2022년의 주식 시장이 어떤 장세였는지 파악해 보고 2023년이 어디에 있게 될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 2020년 바이오엔테크BioNTech는 지식 재산권은 유지한 가운데, 중국의 복성 제약과 임상 시험 및 백신 상용화 계약을 체결했다. 복 성제약은 파트너십하에 연간 10억 도스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지원했다. 한편 상하이 베이스의 에버레스트 메디슨Everest Medicines Group은 캐나다 바이오테크 기업인 프로비던스 테라퓨틱스providence Therapeutics와 기술 이전을 포함한 mRNA 백신 후보군 접근 계약을 체 결한 바 있다. 중국이 동태적 제로 코로나를 완화하지 않는 이유를 이번 이슈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 중국은 자체 개발한 불활성화 백신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 을 이미 인지하고 있음
2) 지금 동태적 제로 코로나를 풀면 대규모 확산은 불가피 (더 나 아가 중증, 사망까지 폭증하고 지금까지 진행된 중국의 백신 외 교와 과학적이라고 주장한 동태적 제로 코로나가 모두 거짓 이라는 것이 확인될 우려가 있음
3) 중국에 백신을 팔고자 하는 모더나의 의지를 극적으로 이용해 mRNA 기술을 확보하고 '유의미한 백신'을 제조하면서 명분유지
- 대규모 확산 가능성을 이유로 동태적 제로 코로나를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과학적이지 않다. 필자는 중국의 방역 조치가 2023년 3월 양회 이후 점진적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중 국 공산당 당위성을 보전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물가와 고용이 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고용은 곧 그 나라의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 경 제가 정체되거나 둔화되면 기업들의 고용 활동은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2022년부터 주요 기업이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거나 고 용 계획을 연기하는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소수의 엘리 트 집단이 14억 명의 인구를 통제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던 것은 중 국 공산당이 안정적으로 경제를 이끌어왔다는 인식을 명확하게 심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미 경제 성장률은 한자리 대로 낮아진 지 오래됐고 부동산 규제 및 동태적 제로 코로나까지 더해지면서 중국 경제의 활기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해졌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근본은 중국 공산당이다.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서열 1위이기는 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공산당이 될 수는 없다. 시진핑은 마오쩌둥이 아니며, 마오 쩌둥이 될 수 없다. 시작이 다르다. 마오쩌둥은 중국을 세운 인물이 다. 지금처럼 미국과 G2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중국의 시작인 것이다. 
시진핑은 장저민(상하이방)과 후진타오(공청단) 간 권력 싸움의 수혜자로 평가받는다. 시진핑 집권 초기 사실상 중국 서열 2위로 불 리는 왕치산을 필두로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명분하에 상하이방과 공청단의 핵심 인사를 처벌했다. 중샤오페이 중앙기율검사위원회 부주석은 2021년 개최된 중국 공산당 100주년 경축 기자회견에서 '시진핑 집권 기간 동안 부정부패 혐의로 409만 명을 적발, 374만 명 을 처벌했다'라고 발표했다. 그동안 중국의 부정부패 지수가 상승하 고 있었고 시진핑 주석 집권 이래 낮아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행보가 진정으로 중국 관료의 탐욕과 부패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평 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권력을 쉽게 얻었던 만큼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힘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부정부패 척결' 은 이러한 시간을 벌기 완벽한 슬로건이었다.
- 시진핑의 목표 자체가 태자당을 넘어 시자쥔을 새로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 다른 계파에 권력을 다시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심으로, 경제 등 다른 사안은 무시하고 오로지 집권 체제에만 몰두했다고 가정해 보자. 새롭게 출범한 20기 지도부는 전원 시자쥔 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미 본인을 둘러싼 모든 요직 인물이 자 신의 사람인데, 여기서 더 해야 할 것이 있을까? 모두가 같은 편에 있는 사람들인데, 시진핑이 경계를 계속 할 필요가 있을까? 최근 10 년이 스스로에게도 불확실한 위치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안정적으 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협력하려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이 미 네트워크가 구축된 타지에서 오랜 시간 생활한 사람들이 고향사 람들과 만나면 어떨까? 그동안의 긴장과 고민을 내려 두고 본인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언급한 바와 같이 코로나19 이전까지 중국의 경제 성과와 시진핑의 행보를 비난하기에 는 아까운 부분이 꽤 많다.
과격한 방식으로 주변을 정리하기도 했고 이 때문에 시장이 외 면하기도 했지만, 그런데도 투자자들의 기대는 아직 남아 있는 것으 로 보인다. 시진핑의 3연임 준비가 본격화된 2018년부터 2021년까 지후 · 선강퉁 채널을 통해 중국 주식 시장으로 유입된 외국인 자금 은 1.3조 위안(한화 약 256조원)에 달한다. 2022년 1~8월 중국에 대 한 외국인 직접 투자FDI는 2021년 대비 20.2% 증가했다. 모두가 시 진핑의 3연임을 확실시하는 동안에도 중국에 대한 매력이 크게 훼 손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 기업이 재생 에너지를 조달하는 방법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정부는 K-RE100을 통해 이행 수단을 녹색 프리미엄제, 신 재생 에너지 공급 인증서REC구매, 제3자 전력 구매 계약PPA, 지분 투 자, 자체 건설 등을 마련했다. 이 중 재생 에너지 이행 수단으로 PPA 가 주목받고 있지만, 이 또한 재생 에너지 가격에 망 사용료가 포함되면서 가격이 높게 형성되고 있다. PPA는 기업이 재생 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 회사와 전력 공급 계약을 맺는 것으로, RE100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RE100 기업은 2015년 3.3%에서 2019년 약 26%로 증가했다. 국내에서는 재생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녹록지 않은데도 기업들의 RE100 가입과 재생에너지 확보는 거스 를 수 없다. 또한 RE100은 개별 기업 혼자 달성한다고 끝이 아니라 원료에서부터 부품 하나까지 수많은 협력사와 함께 동참할 것을 요 구하고 있다. 그래서 RE100은 협력사까지 미칠 파장이 크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복잡하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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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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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시아와의 갈등을 불러오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시장에 은이 많이 풀리자 은의 희 소성이 떨어지면서 물건의 가격이 오른 것이었다. 아테네가 과 도하게 풀어버린 통화(은)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물 건의 가치가 커지면서 가격이 오른 것이다. 이는 아테네와 같 이 '드라크마'를 사용하던 그리스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커진 품목이 하나 더 있었다. 바 로 금이었다. 아테네는 은에 비해 금의 보유량이 현저히 적었 다. 희소성 때문에 금의 가격은 계속 올라갔다. 셈이 빨랐던 페 르시아 상인들은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 페르시아 가은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물건을 거래할 때는 금을 주로 썼 다. 페르시아는 그리스보다 사용하는 은의 양이 적었기 때문에 금이 은보다 비싸기는 했지만 그리스처럼 금과 은의 가격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반대로 그리스 전체가 가진 금의 양은 많지 않았다. 은의 사용량이 급증하다 보니 금의 가치가 은보 다 상대적으로 높아져 금과 은의 가격 차이가 많이 벌어져 있 었다. 페르시아보다 그리스에서 금과 은의 환율의 격차가 상대 적으로 더 커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은을 기준으로 봤을 때 금 은 페르시아보다 그리스에서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었다. 이에 페르시아 상인들은 금을 그리스로 가져가면 더 많은 은을 받 을 수 있다는(비싼 값에 처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들 은 다른 나라 상인들이 이런 상황을 알아채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페르시아 상인들은 금을 가지고 그리스로 가서 더 많은 은으로 교환했다. 더 큰 시세차익을 얻게 된 것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환차익을 노렸다 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리스 는 물건 가격을 정할 때 은을 기준으로 매기고 거래에 은을 사 용하는 은본위제를 유지했지만, 페르시아는 상거래 행위를 할 때 금을 기준으로 거래하는 금본위제 국가였기 때문이다.
상인 한두 명으로 시작된 환차익거래로 이익이 발생했 다고 소문나자 많은 상인이 큰돈을 벌기 위해 금을 가지고 그 리스로 몰려들었다. 그 결과 페르시아의 금이 대량으로 그리스에 유출되면서 금본위제 국가인 페르시아에 금이 부족해졌고 통화 시장이 왜곡되면서 상품이 거래되는 내수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그리스는 대량의 은 광산을 보유한 덕분에 유리한 고지에 있어서인지 이러한 상황을 조용히 즐겼다. 반대로 페르 시아로서는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심각한 상태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아나톨리아반도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페르시아가 군대를 보내면서 두 세력 간 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졌다. 결국 서기전 480년, 페르시아는 군대를 태운 함대를 그리스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테미스토클 레스의 예상대로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금의 급격한 유출은 페르시아 경제에 혼란을 가져왔고 살림살이가 힘들어진 페르 시아인들의 불만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기에, 결과적으로 페르시아는 전쟁이라는 선택을 어쩔 수 없이 강요받았다고 할 수 있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는 대군을 앞세 워 아티카를 점령하는 등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살라미 스해전에서 대패하면서 후퇴했다.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그 리스의 승리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동양 의 고대문명으로부터 문명 태동의 씨앗을 받았던 과거의 종속 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는 전환점을 맞게 되었 다. 페르시아를 물리친 뒤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 그리스는 지중해 일대에 식민지를 건설해 그리스만의 문화를 전파 했다. 향유된 문화는 그리스를 동경한 로마가 성장하는 데 기 초가 되었으며 중세로 이어져 독자적인 유럽 문화의 뿌리가 되 었다. 즉 오늘날 서구 문명의 원류는 그리스 문명이다.
은광으로 구축된 해군력이 없었더라면 그리스가 패했 을 가능성이 높다. 페르시아는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전쟁을 치르다 보니 경제적인 뒷받침이 부족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물자 보급 능력이 전쟁의 승리를 좌우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 하다면 두 세력 간의 전쟁에서 페르시아가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은광을 통한 안정적인 은 확보가 가능했을 뿐 아니 라 페르시아로부터 대량으로 유입된 금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 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물자 조달을 비롯한 전쟁 지속 능력이 훨씬 앞설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경제적 차이는 결국 전쟁의 승패를 넘어 국가와 세력의 흥망에도 영향을 주었다.
현대의 많은 나라가 이 같은 역사적 사례를 거울삼고 있다. 실제로 세계 초강대국이라고 불리는 미국마저도 군수물 자조달을 분산하지 않으려고 전선을 두 곳으로 나누지 않는다.

- 1848년에 스위스가 연방헌법을 제정하고 연방국가로 발돋움하면서 더 이상의 용병 수출은 금지하고 있다. 다만, 예 외인 데가 한 곳 있다. 바로 교황의 안전을 책임지는 바티칸 교 황청 근위대다. 바티칸시국에서 전 세계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이탈리아 군인이 아닌 스위스 용병이 다. 으레 용병이라고 하면 전투력은 강하지만 충성심은 기대할 수 없는 존재로 생각된다. 하지만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스위스용병은 달랐다. 이런 역사적 배경들로 로마교황청의 안전은 스위스 용병들에게만 맡긴다는 전통이 생겨났다.

- 돈을 모아 부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 중 하나가 메디치 가문일 것이다. 한때는 왕과 귀족이 터부시하던 돈을 관리한다는 이유로 천시를 받았지만 루이 11세Louis XI 같은 왕과 여러 유 력 가문의 귀족들과 관계를 맺고 높은 인품으로 신망을 얻으면 서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다스리는 귀족으로 편입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시대의 흐름이 변화 하면서 상공업도 조금씩 쇠퇴하게 되었고 메디치 가문의 재정 도 점차 어려워졌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대를 이어가 며 계속되었다.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 Anna Maria Luisa de Medici는 사망하기 직전에 가문이 소유한 모든 예술품을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 로 피렌체에 기증했다. 후대에 문화적 자산과 역량을 남김으로 써 피렌체에 대한 메디치 가문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예술 품들은 우피치미술관에 전시되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 메디치 가문이 남긴 예술의 숨결을 누리고 있다. 피렌체 사람들은 관광객들로부터 얻은 관광 수입 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메디치 가문의 부의 영향력이 지금 도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영향력은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이 남긴 예술품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1568년 중세 유럽에서 염장 생선은 중요한 식재료 중 하나였다. 중세 유럽 사회를 장악했던 종교의 영향 으로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종교적인 삶을 강요받았 는데, 이에 금식 기간 동안 취식이 금지되었던 붉은색 육류와는 다르 게 생선은 취식이 가능했기 때문에 육류를 대체하는 식재료로 주목 받았다.
- 청어는 크기에 따라 50~300그램의 무게가 나가는 반면, 대구는 일반적으로 5~15킬로그램까지 자라고 경우에 따 라서는 20킬로그램까지 나간다. 이러한 차이는 육질에 따른 식감의 차이뿐만 아니라 맛의 차이까지도 만들어낸다.
청어와 대구 모두 염장을 하지만 대구의 저장 기간이 좀 더 길었다. 청어가 최대 2년 정도라면 대구는 환경에 따라 5년 까지 가능하다고 알려졌다. 대구는 청어와 달리 기름기가 적어 염장을 하지 않고 말리기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 청어의 경제적 역할은 네덜란드를 통해 빛을 발했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대부분이 바다보다 낮은 지역을 간척해 만 든 곳이어서 농사를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일찍부터 어업이 발달했다. 그런데 연근해에 사는 물고기를 잡는 수준이었기 때 문에 주로 작은 배를 탔고 원양어업에는 맞지 않았다. 어느 날, 평상시처럼 배를 타고 조업을 나갔던 어부들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그것은 천운이었다. 그것도 길운이었다.
하늘이 정한 운명을 천운이라고 한다. 천운. 그것이 네 덜란드에 불쑥 찾아왔다. 수온 변화로 해류가 바뀌면서 발트해 에서 주로 서식하던 청어 떼가 터전을 바꾸었는데 그 장소가 바로 네덜란드 연안에서 가까웠던 것이다. 발트해와 스카니아 에서 유명하던 청어가 네덜란드 바다 연안에서 잡히자 어부들 도 처음에는 평소와 다른 어종이 잡힌 것에 신기해했다. 갑작 스러운 생선 떼의 출현으로 놀란 어부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이 내 정신을 차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계속해서 청어가 잡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시적으로 발생한 현상이 아님을 알게 되자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네덜란드 어부들 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청어를 잡으려고 열심히 노를 저어 바다에 나갔다.
조업을 나갈 때마다 청어가 끊임없이 잡히자 지리적으 로 유리한 곳에 위치해 있던 네덜란드 사람들은 더 많은 물고 기를 잡기 위해 큰 배를 만들기 시작했고 부족한 인력을 확보 하기 위해 주변에 청어와 관련한 소식을 널리 퍼뜨렸다. 많은 사람이 기회를 잡기 위해 소문을 듣고 바닷가로 모여들었다. 청어가 발트해에서 북해로 터전을 바꾸면서 시작된 변화는 어부들의 생활이 나아지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청어가 불러 온 잔잔한 나비효과는 어느새 거대한 파도에서 폭풍이 되어 세 상을 변화시켰다. 청어는 네덜란드를 독립시키는 것은 물론이 고 자본과 금융의 중심지로까지 성장시켰다. 힘을 비축한 네덜 란드가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을 넘어 아시아로 진출하 게 된다. 네덜란드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아시아와 유럽의 경 제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세계경제사에 또 다른 나비효과를 일으켰는데 파급력이 증폭되어 다양한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 대부분의 나라가 청어를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먹거리로 활용했지만 네덜란드는 달랐다. 청어의 장기저장이 가능해지면서 네덜란드인의 장사수완이 발휘되었다. 그들은 청어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구하러 올 정도로 귀한 특산품이라고 소문냈다. 그 덕분에 거래하러 오는 상인들이 늘어나면서 청어는 부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매김 했다. 네덜란드의 청어잡이는 단순한 어부의 밥벌이를 위한 손 놀림으로 끝나지 않았다. 국가적인 산업으로 자리를 잡았고 주 변 나라와는 차원이 다른 도약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몰려든 청어가 처음부터 돈이 된 것은 아니었다. 맛은 좋았지만 저장시설이 없던 당시에 생 선은 빨리 상하는 먹거리여서 오랜 보관이 어려웠다. 많은 시간을 들여 잡은 청어를 빨리 소비하지 못하면 모두 버려야 하 다 보니 많이 잡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던 중 1358년, 평범한 어민이었던 빌럼 뷰켈슨Willem Beukelszoon이 사용하기 시작한 작은 칼을 다른 어부들도 쓰면서 청어잡이는 활기를 띠게 되었다. 빌럼은 청어 머리와 내 장을 한칼에 베어낼 수 있는 작은 칼을 발명했는데, 이 때문에 청어를 잡은 뒤 배에서 바로 손질하고 소금물에 절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청어의 배를 갈라 내장에 소금을 치면 삼투압 이 일어나면서 내장이 쪼그라드는데 이때 내장에 들어 있던 수 분과 각종 효소가 밖으로 빠져나와 물고기에 스며들어 독특한 맛을 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청어를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청어는 한낱 물고기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곧 '돈'이 되었다. 갓 잡은 청어를 배에서 바로 손질하고 염장 처리하면서 이런 작업을 위한 공간과 보관 장소가 필요해졌다. 그 때문 에 청어잡이 어선은 점점 규모를 키우기 시작했다. 청어를 잡 기 위한 조업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어획량은 획기적으로 증가 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청어를 손질하다 보니 선원들의 손놀 림도 점점 빨라졌다. 이는 작업 속도를 늘리는 연쇄작용을 가 져와 염장 청어의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이 런 영향으로 여러 지역에서 소비되는 청어 물량이 엄청났음에 도 모두 감당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항해 시간이 길던 해군과 무 역 상선에게 판매되던 염장 청어는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여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며 전 유럽에 알려지게 된다.
- 한편 중세 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가톨릭에서는 사순절, 부활절을 포함해 1년에 3분의 1이 넘는 140여 일을 금식 기간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육류와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빵 같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당 시에 성욕을 부른다고 알려진 육류는 금식 기간 동안 더욱 금 기시되는 식재료였다. 사람들은 신앙심은 있었지만 신이 아니 었다. 허기를 견디기 어려워 배를 채워야 하는 사람이었다.
이때 예외적으로 허용된 먹거리가 맥주와 생선이었다. 금식 기간에 먹을 수 있는 생선을 보관하기 좋게 염장까지 해 놓았으니 주변 지역뿐만 아니라 먼 내륙에 있는 상인들은 청어를 구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몰려들었다. 그로 인해 숙박업도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네덜란드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향신료 무역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주식회사의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인도네시아 에 현지 상관을 개설해 현지 직원을 상주시켰다. 그 직원은 향 신료의 가격이 내려가면 이를 대량으로 사들여 창고에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상선이 오면 향신료와 다른 무역품을 실어 보 냈는데 이런 형태의 발 빠른 운영 덕분에 다른 나라보다 더 많 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한편 향신료 시장을 선점한 영국과 네덜란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아시아에서 결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네덜란드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최 종 승리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향신료에 눈이 먼 네덜란드가 반다제도와 수리남의 소유권을 인정받는 대신 영국에 뉴욕을 넘겨주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으니까 말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중해를 벗어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지 만 돈을 향한 사람들의 집념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이유로 시작된 '대항해'는 기존의 세계질서를 바꾸어놓았다. 한 알의 크기라고 해봤자 4~5밀리미터 정도인 후추가 세상을 바꾸는 방아쇠가 된 것이다. 향신료 무역은 정당한 값을 치르며 상거래를 했던 아라비아 상인을 서양 선원들이 대체하면서 식민지 건설을 통한 강탈과 탄압을 앞세운 약탈로 변했다. 상도의를 무시한 약탈은 열강의 식민지 쟁탈로까지 이어지며 오랜 시간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혼란에 빠뜨렸다.
- 시간이 지나면서 리무쟁숲에 심은 나무는 선박을 만드는 데 사용해도 될 정도로 자랐지만, 정작 선박에는 사용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오크나무의 쓰임새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원래 계획했던 용도로는 사용하지 못했지만 나무가 주는 특유 의 매력과 분위기 덕분에 근래에는 고급 요트 같은 선박 내부 의 가구나 시설을 꾸미는 데에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또 포도주나 증류주 같은 술을 담는 통을 만들 때도 사 용하면서 오크나무만의 또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오 크나무로 만든 오크통에 포도주를 숙성하면 그 과정에서 화학 적 작용이 일어나 과일 향이나 나무 향 같은 특유의 향이 만들 어지는데 나무통에 담겼던 포도주를 비워내도 나무의 결 사이 에 잔향이 남아 있다 보니 거기에 갓 증류한 브랜디나 위스키 를 넣어 향을 침출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는 삼투압을 활용한 특유의 침출 작용을 한다.
포도주가 들어 있었던 오크통의 나뭇결에 남아 있는 술의 과일 향과 성분, 또 나무 고유의 색깔과 함께 담겨 있던 리그닌 향을 뽑아낸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스카치위스키를 비롯한 증류주 를 생산하는 여러 회사가 포도주를 담았던 오크통을 서로 가져 가려고 눈독을 들인다. 오크통에 담긴 포도주가 비워지지 않았 지만 비싼 돈을 주고 선점하는 경우도 있다. 리무쟁숲에 처음 나무를 심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용도는 생각지도 못했 을 것이다.
게다가 포도주 못지않은 전통을 품고 있는 리무쟁숲의 역사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재탄생해 또 다른 부를 창출해내 고 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프랑스의 후손들은 선조들의 선견 지명 덕분에 오크나무의 또 다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 이 콩은 6~7세기경 에티오피아고원에서 양을 치던 어린 목동 칼디Kaldi가 최초로 발견한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후 525년 예멘을 무너뜨리고 지배했던 에티오피아 악숨왕국에 의해 예멘으로 전해졌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당시 홍해 제 해권을 가지고 있던 악숨왕국은 예멘에서 재배한 콩이 무역상 품으로 큰 인기를 끌자 다른 지역에서는 이 콩을 재배하지 못 하도록 콩의 종자를 볶아서 수출하는 꼼수를 부렸다. 이로 인해 독특한 풍미를 갖게 된 콩은 유럽에서 재배되기 전까지 400여 년간 예멘에 독점적인 부를 안겨주었다. 예멘에서 콩의 종자와 묘목을 관리하는 것은 후손들에게 부를 대물림하는 것으로 간 주될 정도였다.
- 특히 볶은 콩을 곱게 갈아 그 위에 물을 부어내려 마셨던 음료는 후에 '카흐와quhwa'와 '카흐베kahve'로 불리며 사 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네덜란드어로 '코피Koffie'라 불린 이 음료는 1582년 「모르겐란더의 쌀이라는 저서에서 '커피 coffee'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포도주가 로마의 세력 확장과 함께했듯이, 아라비아 지역에서 태동한 이슬람 세력이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를 비 롯해 발칸반도로까지 팽창하면서 커피도 그 길을 따라 남유럽까지 전해졌다. 십자군전쟁 중에 커피가 일부 유럽에 알려졌지만 동방무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베네치아를 거점으로 전 유럽에 퍼져나갔다.
여러 차례의 충돌로 감정의 골이 깊어져 이슬람에 대 해 감정이 좋지 않았던 가톨릭 신자들은 커피콩을 '악마의 콩' 이라고 부르며 저주했다. 심지어 유럽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교 황에게 공식적으로 금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도 한다. 1600년 경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는 커피를 맛본 뒤 이 음료를 이교도에게만 마시도록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며 반대를 무릅 쓰고 커피에 축복을 내렸다는 풍문이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이야기를 타고 커피는 유럽에 급속한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곧 돈이 되었다.
초기에는 유럽이 커피를 전량 수입에 의존했기 때문에 커피가 인기를 끌수록 원두를 생산해 수출하던 예멘은 돈을 쓸 어 담았다. 예멘의 커피는 모두 모카항을 통해 유럽으로 수출 되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커피와 모카가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유럽으로 커피를 실어 나르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중계무역만으로도 많은 돈을 벌었지만 예멘에 쌓여가는 부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거대함을 알았기에 야욕을 드러냈다. 예멘의 독점적인 지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 네덜란드 상인 피터르 판 덴 브뤼케Pieter van dan Broeck는 위험을 무릅쓰 고 일을 저질렀다. 1616년 모카에서 볶은 커피콩을 가지고 네 덜란드로 돌아오는 배편으로 예멘에서 수출이 금지되었던 종 자와 묘목도 숨겨 가져온 것이었다. 암스테르담식물원에서 기 후적응의 어려움으로 몇 번의 실패 끝에 유럽에 뿌리내린 커피 나무는 이후 새로운 유럽 커피 역사를 쓰게 된다. 네덜란드 커피는 유통비용이 줄어들면서 가격경쟁력이 생겼다. 네덜란드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예멘에서 수입되는 원두의 양은 줄어들었고 그 대신 네덜란드의 이익은 증가했다.

- 4차 십자군은 돈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 중의 하나다. 성지 탈환을 위해 이슬람의 전략적 요충지인 이집트를 공략하려고 했던 십자군은 사탄으로 돌변해 동 방무역의 이익을 노리는 베네치아와 손을 잡고 비잔틴제국의 수도로 쳐들어가 약탈을 자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성지 탈환이 라는 명분을 상실했고, 가톨릭 세계와 이슬람 세계 사이에서 완충지 대 역할을 해왔던 비잔틴이 힘을 잃음으로써 두 세계 간의 직접적인 충돌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이 원정에서 가장 이득을 본 베네 치아는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 4차 십자군의 만행은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십자군은 이제 이슬람 세력 못지않게 응징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비 잔틴제국 곳곳에 있던 육군 병력과 알렉시오스 3세를 지지하 던 비잔틴의 주요 인사들은 공적이 되어버린 십자군을 물 리치기 위해 대립 관계에 있던 불가리아군까지 끌어들여 연합 전력을 구축한 뒤 십자군을 사실상 궤멸시켰다.
최초의 십자군은 유럽의 방파제였던 비잔틴을 구하고 기독교의 이념을 지키고 따르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되 었지만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변질되었고 끝내 파문당한 뒤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혀 먼 이국땅에서 씁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4차 십자군전쟁에서 최대의 이익을 얻은 것은 베네치아 였다. 에게해 주변의 섬들을 차지하고 해상 교역권을 장악하며 막대한 이익을 쌓았다.
베네치아는 이후에도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항로 를 개척하면서 키프로스와의 교역도 많이 늘어나게 된다. 전쟁 으로 물자 수송이 활기를 띠자, 물자 확보를 위해 플랑드르를 비롯한 다양한 상업지와 농업 생산지를 연결하는 중계무역이 활발해졌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많을수록 해운업은 많은 이 윤을 남겼다. 항구를 중심으로 한 거래량이 많아지면서 이슬람 으로 가기 위한 사람과 물자가 베네치아로 모였듯이 유럽의 돈 도 베네치아로 모여들었다. 베네치아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마 진으로 새로운 항로와 무역 지대를 개척하는 비용으로 사용했 다. 또한 이슬람과의 무역을 통해 이슬람문화가 유입되었는데 이를 활용하면서 유럽의 과학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 과세 문제로 촉발된 두 차례의 혁명
영국을 절대왕정에서 의회주의로 만든 대표적인 사건이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이다. 이 사건이 종교와 정치적 이슈에 영향 을 미치기는 했지만 두 혁명이 일어난 절대적인 이유는 단 하 나였다. 바로 돈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조세 때문이었다. 즉 왕이 세금을 더 걷으려고 하자 주된 납세자들이 반발한 것이라 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세금 납부를 재산을 빼앗기는 것이라 고 생각한 귀족과 젠트리는 힘을 합쳐 의회를 점령한 뒤 왕을 쫓아냈다. 다시 말해 영국의 혁명은 겉으로는 권력을 두고 왕권 과 의회가 맞붙은 다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귀족과 젠트리의 조세불복의 몸부림이었던 셈이다.
- 두 사건에 대한 역사적 시각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다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를 원 했던 우리나라의 교육부는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이 영국의 민주주의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는 데 기여한 사건들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해서 가르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같은 교과서의 내용이 실제와는 굉장한 괴리감이 있다는 것을 염두 에 두었으면 좋겠다. 사건들의 명칭부터가 승자들의 정당성을 확보해주기 위해 계산된 틀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 돈을 벌기 위해 중독성 물질 아편을 자국민에게 방임했던 나라 영국. 아편의 폐해를 알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정부 주도 하에 다른 나라에 아편을 판매하며 가면 뒤에 비신사적인 모습 을 감추었던 나라 영국 부정한 이익을 침해당하자 부끄러워하 기보다 이를 유지하고자 다른 핑계를 끌어와 전쟁을 할 수 있 도록 승인한 의회를 보유한 영국.
아편 때문에 청나라와 전쟁을 벌였던 당시의 영국을 지금의 영국은 가장 치욕스러운 역사로 기억한다. 아편전쟁은 고삐 풀린 자유와 끝없는 이익을 추구한 영국의 천박한 자본주 의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청나라는 아편으로부터 백 성을 보호하기 위해 정당한 행동을 했음에도 열강의 힘의 논리에 무너지며 혹독한 뒷감당을 치러야 했다.
아편전쟁은 국제 관계에서 정의와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지금도 국 제사회에서는 힘의 논리가 우선시된다. 힘 있는 나라들은 정치 적 명분을 확보하고자 국제기구들을 만들어 정의가 실현되는 것처럼 꾸몄지만 세상은 여전히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국 제기구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강대국들이며 그 나라들의 목소리에 따라 약소국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한다. 아편 전쟁과 같이 직접적으로 무력을 사용한 전쟁은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경제력이나 외교력을 수단으로 해 약소국을 압박하는 식의 힘에 의한 지배 방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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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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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적으로 간단히 말하면 결제는 '채무를 이행하는 방법'이다. 채무 를 이행하기 위해서 고통을 감수하고 '1파운드의 살점'을 내놓을 수 도 있을 테고, 튤립 투기가 한창이었던 시기라면 튤립 구근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상황에서 채무를 이행하려면 돈 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법정 통화, 즉 현금 말이다. 물론 그렇 다고 해서 상인들이 무조건 100달러짜리 지폐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상인들도 얼마든지 현금을 거부할 수 있다. 단지 100달러짜리 지폐는 빚을 청산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법이라는 뜻 이다.
- 마크 트웨인 Mark Twain의 단편 소설 『백만 파운드 지폐The Million Pound Bank Note』에 등장하는 젊은 주인공 헨리 애덤스는, 세상에 단 하나뿐 이며 엄청난 고액이라 다른 현금으로 바꿀 수도 없는 100만 파운드 짜리 지폐를 가지고(하지만 실제로 그 돈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30일을 살아낸다. 현실에서는 내가 가진 현금을 누군가에게 주지 않고 결제 가 이뤄지는 상황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규모가 작고 단순한 경제라면, 개념적으로는 실제 현금을 전달하는 행위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대신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빚졌는지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기억해야 하며, 언젠가는 주고 받아야 할 채무들이 서로 상쇄될 것이라는 가정이 필요하다.
- 실제 현금의 이동 없이 모든 채무가 해소되는 가상의 사례를 상상해 보자. 어느 작은 섬에 있는 호텔을 찾은 관광객이 100달러짜리 지폐 로 호텔비를 선불로 결제한다. 호텔 주인은 관광객이 낸 100달러짜 리 지폐로 정육점 주인에게 진 빚을 갚고, 정육점 주인은 다시 그 돈 으로 농부에게 진 빚을 갚고, 농부는 정육점 주인에게서 받은 돈을 트랙터를 고쳐준 정비소 주인에게 주고, 정비소 주인은 지난달에 딸 의 결혼식 장소를 빌려준 호텔 주인에게 그 돈을 준다. 이 모든 과정 이 끝난 후 관광객이 호텔 프런트에 나타나 마음이 바뀌었다며 호텔 에 투숙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호텔 주인은 관광객에게 100달 러를 돌려주고 관광객은 떠난다. 관광객이 등장하기 전과 달라진 것 은 없다. 다만 섬에 존재했던 모든 빚이 청산됐다는 차이가 있을 뿐 이다.
위와는 반대로 빚을 갚지 않고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자. 정육점 주인이 농부에게 진 빚을 갚지 않으면 농부는 정비소 주인에게 돈을 갚을 수 없고, 이런 식의 문제가 연달아 발생한다. 머지 않아 섬 전체가 완전한 혼란 속에 빠지고 폭력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크건 작건 오늘날의 모든 경제는 다원적이고 복잡하며 서로 연결 돼 있다(물론 북한은 예외일 수 있겠지만). 방금 언급한 섬의 시스템은 너무 단순해서 우리 사회에 통용되긴 어려울 테지만 결제 방식 자체는 우리 사회에도 얼마든지 적용된다.
- 결제가 어떻게 진화할지 이해하기 위해 애초에 결제가 어떻게 생 겨났는지 살펴보자. 전통적인 경제 이론은 결제 수단인 통화가 구체 적인 형태에서 추상적인 형태로 진화해왔다고 주장한다. 과거 부족 사회에서는 모든 재화를 거래할 때 기준점으로 삼을 만한 하나의 진 귀하고 가치 있는 상품을 엄선해 물물교환의 방식을 단순화했다. 조개껍데기나 금과 같은 상품 화폐는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즉, 상품 화폐는 부채가 아니라는 뜻이다(바로 다음에서 설명하겠지만, 화폐를 부채의 일부로 간주하고 부채가 악의 근원이라 믿는 사람들은 상품 화폐의 장점을 옹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화폐의 기원에 대해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친 다.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 같은 인류학자들은 부채가 화폐보다 먼저 생겨났으며 대부분의 화폐는 거래 가능한 부채에서 시작했 다고 주장한다.' 상품 화폐에서 화폐가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경제 학자들의 이론이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지만, 계속해서 밝혀진 부족사회의 행동 양식 몇 가지는 인류학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하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조개껍데기를 거래하며 살지 않았다. 인간의 삶은 험악하고 야만적이었으며 짧았을 뿐 아니라 빚투성이 였다.
수명이 옛날보다 길어졌을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빚을 진 채 살아간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모든 돈은 '부채 화폐Debt money'다. 다시 말해서 돈은 곧 다른 누군가의 변제 의무를 상징한다. 예를 들어 씨티은행 Citibank에 예치해둔 나의 돈은 씨티은행이 내게 진 빚, 그 이 상도 이하도 아니다. 만약 내가 당신에게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기 위 해 씨티은행 계좌에 있던 내 돈을 당신의 HSBC 은행 계좌로 송금한 다면, 그건 결국 씨티은행이 내게 진 빚을 HSBC가 당신에게 진 빚으 로 바꾸는 것일 뿐이다.
- 화폐가 부채의 일종이라면 현금(중앙은행권)은 누구의 부채일까? 사실 우리 주머니에 든 현금(중앙은행권)은 발행 당사자인 중앙은행 의 부채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중앙은행에 중앙은행권을 갖다주 면서 그만큼의 빚을 갚으라고 하면 중앙은행은 무엇으로 그 빚을 갚 을까? 여기에는 조금 더 복잡한 문제가 있지만, 아무튼 지폐는 중앙 은행 대차대조표에 기록된 중앙은행의 부채일 뿐이다. 그리고 이 중 앙은행권은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부채로, 우리가 결제할 때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고 결제받을 때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것이기도 하다. 조개껍데기나 금 같은 상품 화폐와 달리 우리가 사용하는 부채 화 폐에는 채무 불이행(디폴트)'이라는 본질적인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어떤 (선진) 경제도 부채 화폐 없이 돌아갈 수는 없다. 10달러 지폐에 인 쇄된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 18세기 말 만연했던 주 정부 의 채무ou를 회수하기 위해 연방정부의 채권 발행을 주장한 것도 바 로 이런 이유에서다. 통화 부족이 초기 미국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던 모습을 지켜본 해밀턴은 유동성이 매우 높은 결제 수단인 부채 화폐를 만들어 상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이런 방안을 제안했다.
- 지불하기 위해, 즉 부채를 갚기 위해서 더 많은 부채가 필요하다는 말은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다. 부채 화폐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채 권자에게 빚을 갚는 행위는 결국 그들에게 진 부채를 또 다른 형태의 부채인 '화폐'로 대체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처럼 부채를 또 다 른 부채로 대체하는 이유는 안정성(신뢰성) 때문이다. 채권자들은 일 반 개인에 대한 채권보다는 부도 가능성이 없는 은행(혹은 중앙은행) 에 대한 채권(즉, 중앙은행권)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결제와 화폐는 모 두 신뢰에 기반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 현금의 상당 부분이 고액권 지폐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현금의 수수께기 중 하나다. 그중 몇몇은 거의 사용된 적이 없거나 일반 대중은 볼 수조차 없는 것도 있다. 심지어 500유로권 지폐는 '빈 라덴Bin Laden'이 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그 존재 사실을 알며 어 떻게 생겼는지도 알지만,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 현재 유통되는 총 1조 8천억 달러어치의 미국 달러 지폐에서 100달 러짜리는 무려 80%를 차지한다. 조지 워싱턴Geroge Washington (1달러 지 폐에 인쇄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1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인 벤자민 프 랭클린Benjamin Franklin에게 참패를 당한 셈이다. 미국의 성인 인구를 고려해 달러 유통 현황을 분석하면, 미국 성인 1인당 유통 중인 10달 러 지폐는 7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성인 1인당 유통 중인 100달러 지 폐는 무려 55장이다. 이처럼 고액권 지폐의 유통량이 훨씬 많다면 소매치기들의 수입이 매우 짭짤해야 하지만, 미국 소매치기의 평균 적인 경험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은 지갑에 평균 75달러의 현금만 가지고 다닐 뿐이다. ATM과 은행, 계산대에 든 현금을 고려하더라도 그 액수는 그리 크지 않 다. 그러니 이 모든 돈이 다 어디로 간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달러 대부분은 '휴가 중'이다. 전체 달러의 60%와 100달러 지 폐의 75%는 미국 밖에 있다. 미국 정부는 다른 나라의 요청이 있을 시' 달러화를 공급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현 지 은행과 환전소에서 달러를 사고 인출할 수 있도록 실물 달러(대 개 100달러 지폐)를 국외로 실어 나른다는 뜻이다. 1990년대에는 전 체 달러화에서 국외 유통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불과했으나 이후 그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구소련 국가 들에서 외환 위기가 발생한 탓에 국외 유통 달러가 대폭 늘어나기도 했다. 미국은 1993년부터 2013년까지 이들 국가에만 매년 200억 달 러어치의 현금을 실어 날랐다. 미국이 이라크 재건 비용을 대기 위 해약 120억 달러를 군용기에 실어 이라크로 수송한 사실도 잘 알 려져 있다(미국이 이라크로 실어 나른 금액은 최대 400억 달러에 달할 수 도 있다). 실제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도록 부연하자면, 100달러 지폐로 화물 운반용 파렛트 10개를 가득 채우면 10억 달러 가 된다.
- 국외 유통만으로는 막대한 현금의 행방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 마저도 미국 달러와 유로화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답이 될 뿐이며, 심지어 설문조사로 알 수 있는 것은 유통 통화 중 5~10%의 행방 정도다. 사실 지폐의 행방을 찾는 데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앙은행은 낡은 지폐를 일일이 검수하고 새 지폐로 교환하는 작업을 하 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지폐가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 알 수 있 다. 미국 통화 교육 프로그램us Currency Education Program은 1달러 지폐 의 수명이 5년을 살짝 웃도는 반면, 100달러 지폐의 수명은 15년 정 도로 추산한다. 고액권은 소액권보다 사용 빈도가 낮기 때문이다. 하 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고나 매트리스 아래에서 평생을 보내지도 않 는다. 그보다는 지하경제에서 사용되고, 그저 소액권 지폐보다 연준 으로 되돌아오는 빈도가 낮을 뿐이다.

-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그리고 뱅크오브아메리카와 경쟁 관계에 있었으며 이후 마스터카드Mastercard로 변신하게 되는 은행간 카드협회 Interbank Card Association는 세 가지 구조 변경을 통해 신용카드 를 결제 시장의 완전한 '대세'로 만들어 버렸다. 첫째, 뱅크오브아메 리카는 1950년대 말에 할부 결제가 허용되는 진정한 '신용' 카드를 도입했다(이 자체로도 하나의 주제가 되는 만큼 7장에서 관련 내용을 좀 더 자세 히 살펴볼 것이다). 이런 방식의 신용카드가 있으면 그달 말에 사용 금 액 전부를 상환할 돈이 없는 고객들도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가맹점들은 당연히 새로운 신용카드를 열렬히 환영했다.
둘째, 1960년대 말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캘리포니아주 외의 지역 에서의 카드 발급에 장애물이 되던 '주간 은행업무 금지Restrictions on interstate banking' 규제를 교묘히 피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법은 자사 시스템을 개방하고 다른 은행에 뱅크아메리카드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 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는 차후 4당사자 모델Four-corner model'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결제 모델이자 현대 결제 시스템의 토대가 된 모델 이다. 이로 인해 카드 산업을 설명하는 게 훨씬 복잡해졌지만 이러했다(이 자체로도 하나의 주제가 되는 만큼 7장에서 관련 내용을 좀 더 자세 히 살펴볼 것이다). 이런 방식의 신용카드가 있으면 그달 말에 사용 금 액 전부를 상환할 돈이 없는 고객들도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가맹점들은 당연히 새로운 신용카드를 열렬히 환영했다.
둘째, 1960년대 말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캘리포니아주 외의 지역 에서의 카드 발급에 장애물이 되던 '주간 은행업무 금지Restrictions on interstate banking' 규제를 교묘히 피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법은 자사 시스템을 개방하고 다른 은행에 뱅크아메리카드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 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는 차후 4당사자 모델Four-corner model'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결제 모델이자 현대 결제 시스템의 토대가 된 모델 이다. 
뱅크아메리카드의 세 번째 혁신은 정산 수수료nterchange fees 였다. 소 비자들은 결제를 하더라도 카드의 정산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는다. (이 는 오늘날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소비자는 별도의 카드수수료를 내 지 않는다. 감수자) 이 구조는 소비자들에게 카드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더 많은 소비자들을 유인하고, 카드 산업 전체가 원활 하게 성장하도록 만든다. 매입은행이 발행은행에 수수료를 지급하는 구조가 아니었다면 발행은행은 소비자 측에 카드 사용에 대한 수수 료를 부과했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 카드 소지자와 가맹점 둘 다 수 수료를 내야 하며, 결국 카드는 사용자들에게 훨씬 덜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밖에 없다.
대신, 가맹점측 은행(매입은행)이 카드 소지자 측 은행(발행은행)에 정산 수수료를 지불한다. 이 수수료는 카드회사The card networks (비자나 마스터카드 등)가 요율을 결정하며, 지역과 카드 유형(신용카드인가 직 불카드인가), 가맹점 유형(슈퍼마켓인가 호텔인가 등등)에 따라 달라진 다. 일반적으로 거래 가격의 1~3% 정도로 설정되며, 한 은행이 다른 은행에 지불하는 비용이지만 가맹점과 카드 소지자의 카드 거래 비 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 즉, 발행은행은 이 거래를 처리한 대가로 2%의 정산 수수료를 받 는다. 그런데 정확히 무슨 명목으로 이 돈을 받는 것일까? 가장 간단 한 답은 결제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함이다. 그 러나 이는 부분적인 답에 불과하다. 실제 결제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개 정산 수수료보다 훨씬 낮다. 사실 발행은행은 비용보다 많은 수수료를 수취하는 대신, 카드 고객에게 공항 라운지 이용이나 구매 금액에 상응하는 캐쉬백, 항공사 마일리지 같은 혜택을 제공함 으로써 고객을 유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소비자들은 결제 수수료 없이 공짜로 카드를 이용하는 것인 양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에 공짜 점심 같은 것은 없으며 결제 부문도 마찬가지다.
- 표면적으로 가맹점에게만 카드 수수료가 청구되는 방식은 카드 소 지자에게 카드 거래가 무료라는 느낌을 주고, 심지어 카드 거래를 할 수록 이익이라는 인상을 주는 동시에 가맹점들에게 모든 명시적 비 용을 떠안기는 것이다. 카드 수수료를 한쪽에만 부과하는 방식이 어 떻게 합리화될 수 있을까? 카드 거래는 어떤 결제 방안을 사용할지 결 정하는 것은 판매자가 아니라 구매자라는 사실을 기본 전제로 두고 있 다. 가맹점은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카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소비자는 그렇지 않다. 어떤 결제 방법을 사용할지 선택할 수 있는 카드 소지자에게는 보상이나 혜택을 제공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실 소비자도 비용을 내고 있다. 정산과 처리 수수료 같은 비용이 표면적으로는 카드 소지자가 아닌 가맹점에 부과될지 모르지만, 가맹점들은 대개 상품 가격을 높이는 방법으로 이런 비용을 고객 에게 전가한다.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 포인트, 캐쉬백 등 신용카드 가 제공하는 많은 혜택 때문에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이익이라는 생 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절대 공짜가 아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수수료 수준이 가맹점의 유형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가맹점의 규모와 영향력에 따라 달라질 뿐 아 니라 특정 가맹점의 위험도에 따라서도 수수료가 달라진다. 대형 슈 퍼마켓은 구멍가게보다 수수료를 적게 내며, 나이트클럽과 윤락업 소는 가장 높은 요율의 가맹점 수수료를 낸다. 나이트클럽과 윤락업 소에 가장 높은 요율이 부과되는 까닭은 카드업계가 점잔을 떨며 그 들을 못마땅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이런 가맹점에서 거래한 고객들 이 다음 날 아침 거래를 부인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페이팔은 소비자가 물건을 받을 때까지 결제 대금을 보관하는 '에스크로Escrow' 계좌 시스템을 도입해 카드 결제를 지원했다. 전문적 인 알고리즘과 점수 시스템을 토대로 사기성 거래 및 판매자를 적발 하는 사기 관리 Fraud management는 페이팔의 핵심 역량 중 하나가 되었 다. 한때 이베이에서 진행된 모든 결제 중 70% 이상이 페이팔을 통 해 이뤄지기도 했으며, 이후 이베이는 페이팔 덕에 온라인 판매 부문 에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누리게 됐다.
페이팔이 떠난 자리는 애플페이와 같은 모바일지갑(간편결제)이 차지했다. 이런 '지갑들은 카드를 대체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전자지갑의 등장으로 휴대전화에 카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게 되자, 플라스틱 카드를 들고 다닐 필요성 자체가 없어졌다. 휴대전 화를 단말기 옆에 갖다 대기만 하면 그걸로 끝이다. 휴대전화를 갖다 대기만 하면 결제가 이뤄지고 커피는 내 것이 된다. 이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구매할 때 휴대전화에서 카드 데이터를 손쉽게 꺼내 쓸 수 있게 됐고 그 덕에 온라인 구매가 한층 수월해졌다. 전자지갑은 게으 른 소비자들에게 편리함을 안겨주고 카드회사의 눈부신 발전에 이바 지했다. 비록 카드 발행기관들은 약간의 수수료를 지불하게 됐지만, 전자지갑 덕에 카드회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디지털 변신을 이뤄냈다.
- 이론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의 결제 방식은 편익에 따라 결정된다. 다 시 말해서 어떠한 결제 방식을 사용할지는 그 결제 방식으로 얻는 편 익에서 해당 방식의 단점이나 비용을 뺀 값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수표에도 장점이 있긴 하다. 수표가 처리되기까지는 대개 며칠이 걸리고, 수표 처리 기간에는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게다가 수표를 우편으로 보내거나 수표 수취인이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수표 를 현금화하면 좀 더 오랫동안 돈을 쥐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결제 지연이 발생하더라도 '수표가 처리 중'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수 취인이 얻는 혜택은 그보다 적을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돈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다(물론 수표가 최종적으로 부도 처리 되지 않으려면 수표를 쓴 사람의 계좌에 충분한 돈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수표가 지닌 또 다른 장점은 디지털 방식으로 결제할 때 금액이나 통화를 잘못 입력하는 '팻 핑거Fat finger' 오류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 1950년대에 카드가 등장한 방식과 50년이 흐른 후 페이스북과 페이팔이 인기를 얻은 방식은 매우 유사하다. 카드는 소수의 고객과 이 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몇몇 뉴욕 레스토랑 간의 합의에서 발전 한 것이었고, 페이스북은 하버드생들 사이에서 시작되었으며, 페이 팔은 미국 내 이베이 구매자와 판매자들 사이에서 출발했다. 그런 다 음 카드와 페이스북, 페이팔은 비슷한 방식으로 틈새 커뮤니티를 파 고들었다. 카드는 캘리포니아에서 레스토랑을 즐겨 찾는 사람들을, 페이스북은 스탠퍼드 학생들을, 페이팔은 미국 외의 국가에서 이베 이를 사용하는 고객들을 공략했다. 셋 모두 유사한 관심사를 가진 소 규모 커뮤니티에서 필요한 만큼의 회원을 확보한 다음, 수평적인 확장을 추진할 수 있는 분기점에 다다를 때까지 특정 유형의 활동에 집중했다.
네트워크는 커다란 가치를 지닌다.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현 대적인 거대 결제 기업 알리페이Alipay의 모기업인 앤트그룹Ant Group은 2017년에 국제적인 송금 서비스 기업인 머니그램MoneyGram을 12억 달러에 인수하려고 했다. 굳이 인수하지 않아도 전통적인 자금이체시장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을 만한 위력을 가진 앤트가 왜 그토록 많은 돈을 주고 머니그램을 인수하려고 했던 것일까? 머니그램은 대 부분 아날로그 방식으로 운영되는 데다 업계 1위 기업인 웨스턴유니 온Western Union 보다 한참 뒤처진 2위 기업에 불과했지만, 진정한 매력 은 머니그램이 보유한 네트워크와 머니그램을 이용하는 데 익숙한 고객층에 있었다.
네트워크는 일단 구축되면 매우 막강한 위력을 갖게 되고 몰아내기가 쉽지 않다. 네트워크 효과에 관한 그간의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사람 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직관적으로 옳다고 느끼는 것과 상반된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최상의 표준이 항상 최후의 승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는 '승자독식' 상황을 가능하게 만든다. 가장 큰 네트워크는 설사 기능적인 매력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어떤 네트워크보다 대다수 잠재적 사용자들에게 본질적으로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다음부터 무언가를 구매하고 지불할 때는, 우리가 내리는 하나하나의 결정으로 특정 결제 네트워 크의 영향력은 커지는 반면 다른 결제 네트워크의 위력은 약해진다 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 같은 현상 덕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네트워크는 기술 혁신조차 도 이겨낼 수 있다. 물론 기술 혁신이 시작될 초반에는 기존의 네트워 크들이 뒤처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들은 얼마든지 앞서 나갈 수 있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는 경쟁 기업들이 승승장구할 때 페이 스북이 시장에서 쫓겨나기는커녕 얼마나 자연스럽게 컴퓨터에서 모바일로 옮겨갔는지 기억하는가? 또 카드의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카드회사들은 수차례에 걸쳐 어떻게 성공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 였는가? 기존의 네트워크가 아무리 진부해 보일지라도, 대개 맨땅에 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는 기존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것이 훨 씬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 표준이 기술 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는 말의 엉덩이 너비 가 우주왕복선 설계에 영향을 미친 이야기일 것이다. 우주왕복선 추 진 로켓의 너비는 우주왕복선이 발사대로 오는 동안 통과해야 하는 터널의 너비보다 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터널의 크기는 철도 선로의 너비 혹은 궤에 따라 결정되었다. 스티븐슨이 맨체스터와 리 버풀을 잇는 세계 최초의 철도를 설계했을 때 그가 고안한 선로 너비 는 광산과 전차에서 사용되는 선로 너비에 따라 정해졌으며, 광산과 전차의 선로 너비는 마차를 끌던 말 두 필이 나란히 섰을 때의 엉덩 이 너비에 따라 결정됐다. 마차를 설계한 사람들은 아마도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경주용 마차의 표준 너비를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 로마인들이 우주왕복선 설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자들이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브루넬이 좀 더 일찍 철로를 건설했더라면 지금 우리가 이 용하는 철로의 너비가 좀 더 넓어지고, 영국의 기차 이용객들에게 좀 더 많은 좌석이 제공되고, 우주왕복선에 좀 더 커다란 추진 로켓이 설치됐을 수도 있다. 영어가 미국의 공식 언어가 된 것은 미국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이민자들이 영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독일인들 이 대거 미국에 도착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공식 언어가 바뀌 진 않았다. 독일인들이 미국에 먼저 도착했더라면 필자는 독일어로 이 글을 썼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왜 수표를 쓰는가?'라는 질문은 '영국에서는 왜 자동차들이 좌측으로 통행하는가?'라거나 '우리는 왜 비디오테이 프로 베타맥스Betamax가 아닌 VHS를 사용하는가?' 혹은 '왜 미국인들 은 (거의 유일무이하게도) 화씨로 온도를 측정하는가?"라는 질문과 다 를 바 없다. 그저 그렇게 해왔으며, 설사 그 방식을 바꾸길 원하더라도 지금 바꾸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 QR코드는 전통적인 카드 모델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카드를 사용 할 때 소비자는 오프라인 상태여도 상관이 없다. 카드를 제시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상인은 결제받기 위해 항상 전화선이나 인 터넷에 연결된 단말기(온라인 상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QR 코드 는 완전히 반대다. QR코드를 이용하면 소비자는 QR코드를 스마트 폰으로 찍어야 하므로 온라인 상태가 되지만(전화기를 통해), 상인은 QR코드만 보여주면 되므로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결제받 을 수 있다.
상인의 입장에서는 카드 결제보다는 알리페이나 텐페이를 통해 결 제받는 편이 훨씬 쉽다. 또한 그 편이 훨씬 싸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 다. 그러니 중국 상인들이 카드를 포기하고 전자지갑을 받아들이는 것 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중국에서는 카 드를 받는 상점과 카드 단말기의 수가 15%가량 감소했다. 중국에서 하락세를 보인 몇 안 되는 결제 관련 통계 수치 중 하나였다(다른 하나는 훨씬 완만한 1%의 하락률을 보인 ATM이었다).1
- 케냐와 중국은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맞닥뜨렸다. 확립된 시스템 이 없는 상태였기에 과거의 유산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을 뿐 아니라 결제를 처리해온 기존의 '경로'도 없었다. 대신 두 나라는 높은 휴대전 화 보급률을 활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른 결제 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왜 그럴까? 이는 두 나라 모 두 완전히 맨땅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케냐와 중국 모두 이미 존재하는 기반을 어느 정도 활용했고, 이전부터 존재해온 그 기 반이 결제 시스템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케냐의 엠페사는 문자 메시지만 보낼 수 있는 기본 기능의 휴대전 화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된 결제 서비스다. 그에 더해 엠페사는 대다수의 케냐인들이 선불식 전화요금을 이용하며 충전된 선불식 전화 요금을 손쉽게 환불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영리하게 활용했다. 중국 의 시스템은 나온 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 트폰을 보유하고 해당 기기가 제공하는 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 시점 이 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진정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출발하는 나라는 없으며 모든 나라가 똑같이 발전하지도 않는다. 영어라는 언어를 떠올려보자. 영 국인과 미국인이 공통의 언어를 쓰면서도 어떻게 서로 다른 두 개 의 국가가 됐는지를. 두 나라가 동시에 똑같은 기술을 갖게 되더라 도 결국 각국의 특성이 반영된 서로 다른 결제 방식을 갖게 될 가능 성이 크다. 경로의존성은 끊임없이 지속되지 않으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 어쩌면 이런 경로의존성이 중국과 케냐의 모바일지갑이 아직 다른 시장에서는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 이 될 수 있다. 결제는 규모가 큰 사업일 수 있으나, 그렇게까지 확장 성이 큰 사업은 아니다. 엠페사는 인도와 동유럽에 진출했다가 실패했 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고전 중이다. 그래도 탄자니아, 모잠 비크,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마도 경쟁이 덜하고 발전이 더딘 나라에 서는 좀 더 나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알리페이와 텐페이는 해외로 비즈니스를 확대해나가고 있지만, 주 로 중국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맹점을 모집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즉, 비즈니스 범위가 넓어지고 있지만 고객층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예 를 들어 현금 선호도가 높은 독일에서 일부 매장이 알리페이와 텐페이를 받는다(일본 관광객을 상대하는 많은 상점들이 JCB카드를 받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왜냐하면 중국에 있는 친척들과 돈을 주고받기 위해 중국계 독일 시민이 알리페이와 텐페이에 가입하기 때문이다.
알리페이와 텐페이가 독일 결제 시장을 좀 더 깊숙이 파고들 수 있을까? 독일 결제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먼저 현금을 선호하고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는 독일인의 성 향을 극복해야 할 뿐 아니라 기존 결제 수단들과 경쟁을 벌여야 한 다. 게다가 알리페이와 텐페이 모두 폐쇄형 시스템이기 때문에 충분 한 사용자Critical mass 확보가 관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작 은 편에 속한다. 일단 독일과 EU 당국의 허가를 받을 수 있는지부터가 문제다.
- 미국에는 돈을 내야만 게임이나 경기에 참여할 수 있음을 뜻하는 '참여하기 위한 결제Pay-to-play'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도움이나 투 자를 받고자 하는 기대를 품고 정치인에게 선물을 건네는 관행부터 편안한 대사 자리를 주겠다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법안을 통과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선거 자금을 기부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아우른다. 심지어 '기도하기 위한 결제Pay-to-pray'를 할 정도니, 결제에 대한 비용 지불이 일반적이라는 점은 전혀 놀랍지 않다. 결제 에 사용하는 수표책Check books을 얻기 위해서 결제를 해야 할 수도 있 다. 대부분의 미국 은행 계좌는 수표책을 무료로 제공하지만, 수표 를 현금으로 바꿀 때마다 5~10달러, 또는 현금으로 바꾸는 금액의 1~2%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부과한다. 미국의 규제 당국, 정치인 그 리고 대중은 결제도 하나의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타의 사업과 마찬가지로 걸맞은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인식을 역사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반면 유럽에서 결제란 약간의 비용만 받거나 별도의 비용 없이 제공돼야 하는 공공 서비스로 인식하는 편이다. EU 규제기관들은 경쟁을 장려하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여러 차례 개입해왔으며 같은 행보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유럽의 카드 정산 수수료는 미국보 다 훨씬 낮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카드 정산 수수료가 아예 없다. 또 한 EU는 모든 유로화 결제 건에 동일한 가격을 적용할 것을 의무화했다.
- 저축 계좌나 연금 계좌에 입금하는 게 아닌 이상, 우리가 돈을 지 출할 때는 그 소비로 인해 좀 더 가난해진다고 느끼는 것이 합리적인 지출 계획을 세우는 데 유익할 수 있다. 그리고 현금은 확실히 그런 효과가 있다. 현금을 사용하면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소비의 영향을 느끼게 된다. 그에 반해 현금 외 다른 수단을 이용하면 충격이 완화된 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현금을 쓰라고 조언하는 이유도 이 때 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현금 대신 다른 결제 수단을 이용할 때 소 비가 증가한다. 지불 수단이 대용 화폐처럼 물리적인 형태가 있더라 도 현금이 아니라면 소비가 느는 효과가 있다. 클럽메드ClubMed는 투숙객들에게 구슬을 꿴 줄을 화폐의 대용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 스를 제공했다. 해변이나 수영장에 현금을 들고 가기보다 구슬 끈을 차고 다니는 것이 분명 더 실용적이긴 하지만, 투숙객들은 구슬에 상 응한 현금을 갖고 다닐 때보다 구슬 화폐를 이용할 때 더 망설임 없 이 지출했다.
결제 행위와 돈을 지출한다는 자각에서 우리를 더욱 멀리 분리시키는 '마찰 없는 결제Frictionless payment'의 엄청난 성장은, 현대의 결제 방법 이 사람들이 너무 쉽게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논쟁을 가열시켰다.
- 만약 왜 아직도 매장 출입문이나 계산대에 카드사 로고나 다른 결 제 방식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은 곳이 많은지 궁금했다면, 이제 그 답을 알 것이다. 단순히 브랜딩이나 고객을 위한 정보 제공 차원에서 이런 로고를 붙여 놓은 것이 아니다. 신용카드 로고를 보여주는 것만 으로도 소비자가 상품의 장점에 대해 생각하고 좀 더 쉽게 결제하게 만드는 반면, 현금은 소비자로 하여금 비용을 더 생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여러분이 다음에 자동차 매장을 방문해서 영업사원에게 카드로 결제하겠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그것이 하나 마나 한 질문이 아니라 구매를 부추기기 위한 장치 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카드로 결제할 때 더 많이 지출하는 성향은, 판매자들이 왜 수수료를 감수하면서 기꺼이 카드를 받는지를 설명해준다. 문제 는 그 때문에 카드빚 또한 쉽게 쌓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카드 대금 에 비싼 이자가 더해져 사람들이 빚의 덫에 갇히는 악순환으로 이어 진다. 신용카드 지출과 대출의 위험성을 알리는 연구는 무수히 많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규제 방안도 많다.

- 오픈뱅킹의 개념은 영국의 경쟁시장국CAM, 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이 2015년에 진행한 조사에서 기인한다. 당시 경쟁시장국은 '정보 불균형' 때문에 기존 은행들이 부당하게 우위에 서고, 경쟁 상대들이 기회를 얻지 못하는 탓에 소비자가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발 견했다. 간단히 말해, 은행은 고객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예 를 들어 은행은 고객의 결제 내역을 보고 해당 고객이 보험이나 투자 상품을 구입할 가능성이 높은지 알아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은행은 특정 고객에게 대출해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더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외부 경쟁사들은 해당 고객의 수입과 지출을 확인할 수 없 으므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 없고, 결국 고객은 얼마가 됐 건 거래 은행이 제안하는 금리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은행의 데이터 독점을 완화하기 위해서 영국 은행업계는 오픈뱅킹 Open Banking을 받아들이게 됐다. 고객이 거래 은행이 아닌 다른 서비스 공급자에게 은행 데이터 접근 권한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말 그대로 다른 서비스 공급자들이 고객의 결제 대화Payment conversation에 참여할 수 있어서 오픈뱅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예를 들어 우리 가 거래 은행 외의 은행이나 핀테크 기업에 대출을 신청할 때 그들이 우리의 거래 은행에서 최근 결제 정보를 조회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

- 암호화폐 시장 총가치의 11%를 차지하는 이더리움Ethereum의 이더 Ether는 비트코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암호화폐로 대표적인 유틸 리티 코인이다.
이더리움은 '분산 컴퓨팅 플랫폼Distributed computing platform'으로 비 트코인과는 사뭇 다르다. 이더리움 플랫폼의 통화인 이더는 물건이 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사용되지 않는다. 대신 참가자들의 컴퓨팅 시 간을 구매할 때 사용된다. 이더를 받은 참가자들은 이더를 준 사람이 제공한 코드를 실행한다. 모두가 보고 점검할 수 있도록 코드를 공개 된 원장에 게시하는 방식(비트코인의 블록체인과 유사하다)으로 코드를 제출하게 된다.
이더리움의 가장 큰 특징은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스마트 계약이란 사전에 합의한 조건이 충족되면 어떤 대가가 자동으로 전송되는 자동 집행 계약이다. 암호화폐 세계의 상품 인도결제 방식 Cash on delivery 인 셈이다. 가령, 생일에 맞춰 결제되도록 일정을 조정해둘 수도 있고 강수량이나 온도가 미리 정해진 수준을 넘을 경우 농부에게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설정해둘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런 계약은 돌이킬 수 없다. 일단 결제 조건이 충족되면 한쪽 이 결제를 보류할 수 없다. 스마트 계약을 적용할 수 있을 만한 중요한 대상으로 증권 배송과 대금 지급을 꼽을 수 있다. 만약 돈과 증권 모두를 '토큰화'해서 양도할 수 있다면, 스마트 계약은 두 토큰 모두가 양도됐을 때만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보장할 수 있다.
- 이러한 계약 방식은 랜섬웨어에서 응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기 꾼들은 피해자의 파일을 암호화한 다음, 피해자가 파일값으로 비트 코인으로 내놓으면 암호를 해제한다. 돈을 보내면 암호를 풀어주겠 다는 해커들의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비트코인 결제와 파 일 암호 해제를 위해 필요한 개인 키 모두를 스마트 계약 속에 집어 넣어 동시에 교환되게 하는 방법은 제법 실현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 아직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더리 움 코드 전문가들이 이러한 비즈니스 기회를 붙잡기 위해 조용히 작 업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스마트 계약의 활용 사례는 아직 다양하지 않다. 암호화할 수 있는 자 산이 충분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스마트 계약을 필요로 하는 커뮤 니티가 너무 작거나 너무 이질적인 탓일 수도 있고, 스마트 계약이 풀고자 하는 문제가 그리 크지 않거나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랜섬웨어는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 테더의 THT는 가격 변동성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가장 중요한 '스테이블코인 Stablecoin' 중 하나다. 홍콩에 기반을 둔 테더는 THT를 발행한 회사이며, THT는 통화다. THT는 미국 달러에 일대일로 연동돼 있다. THT가 미국 달러에 일대일로 연동될 수 있는 것은 예치된 달 러 액수만큼 THT가 발행되고 액면 가격만큼의 달러를 THT로 교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더는 자사가 발행한 THT 금액만큼의 달러를 은행에 예치했다 고 설명한다(그러나 이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테더는 확실히 활성 화되어 있다. THT의 하루 거래량은 약 200~300억 달러로 비트코인 을 포함한 그 어떤 암호화폐보다 크다.
- 따라서 THT는 유동성이 크며, 이것이 테더가 지닌 장점이다. 왜 일까? THT는 다른 암호화폐와의 교환을 위해 사용된다. 말하자면 암호화폐 세상의 미국 달러다. 위안화 통화 조절을 피하려고 THT를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자산으로서 암호화폐 에 관심이 있거나 위안화 자산을 중국 본토 밖으로 반출하는 데 어려 움을 겪는 사람에게는 THT가 유용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THT 거 래가 고객용 계좌를 운영하는 몇몇 대형 거래소에서 '오프 더 체인 the chain' 장부 기입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은 암호화폐 사용자들 이 반길 만한 내용이 아니다. 일단 이런 방식은 비용이 들고 위험이 수반된다. 또한 이런 거래소들은 가격 정보가 완전히 투명하지 않은 '다크 트레이딩 Dark trading' 방식을 허용하는 거래 플랫폼을 이용한다.

- 카드의 승리는 각각의 카드회사뿐 아니라 카드 산업 전반에 걸친 엄 격한 표준화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기본적으로 카드 크기, 마그네틱선 과 칩 작동 방식, 데이터 포맷 방식 같은 평범한 부분이 표준화의 대 상이다. 하지만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알리페이나 텐페이와 달리 가 맹점들이 여러 업체와 계약하는 것도 용인했다. 가맹점에게 비자나 마스터 중 하나만 고를 것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가맹점 프로토콜과 메시지 포맷을 매우 유사하게 구축한 덕에 가맹점은 비자와 마스터 카드, 둘 모두를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가맹 점 확보 경쟁을 벌이는 대신, 좀 더 높은 정산 수수료를 제공하는 등 의 방식으로 더 많은 카드 발행업체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했다. 이런 방식은 카드 발행업체에게는 더 나은 선택지이며 모든 측면에서 사 용자에게도 좀 더 편리하다. 다만 소비자가 좀 더 높은 비용을 부담 해야 할 수도 있다(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 어떻게 한 국가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두 국가 간의 거래를 막을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찾다 보면, 결제가 단일화된 세계 시스템이라 는 피할 수 없는 사실로 되돌아간다. 금융 부문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증명해보이려던 미국의 열정은 이 같은 상호 연결성에 내재된 위험 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계 결제 질서를 통제하려는 미국의 이런 모습은 앞서 26장에서 언 급했던 중요한 부분, 즉 누가 결제 뒤에 존재하는 파이프를 소유하고 통 제하고 비용을 내는가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설사 그렇더라도, 왜 다른 나라 은행들은 미국 언저리에도 가지 않 는 결제를 처리하면서 미국의 제재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바로 미국 달러 자체가 가지는 남다른 위상과 세계 결제 시스템에서 미국 달러가 담당하는 특수한 역할 때문이다. 달러는 궁극적인 금수조치 수 단으로 사용할 만큼 막강하다. 다시 말해서 개인, 기업, 국가 등의 상 대가 미국 달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면 사실상 그 상대를 국제결제 시스템에서 배제할 수 있다. 미국이 제재를 가하면 제재 대상은 국제 무대에서는 그 어떤 경제 활동도 할 수 없게 된다.
대부분의 국제 무역이 미국 달러로 이뤄지는 것도 이러한 일을 가 능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스위프트는 자신들이 처리하는 지급 지시에 사용되는 통화의 비중을 측정하고, 각 통화의 상대적인 비중을 정기적으로 공개한다. 스위프트가 발표한 결과를 보면 언제나 달러가 전체 국제 결제 중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무역 금융 결제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달러로 처리되는 거래가 모든 거래의 무려 90%에 달한다. 어떤 면에서 달러는 영어처럼 세계 표준의 역할을 한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의 준거 틀이자 공통어인 것이다.
- 미국 달러에 턱없이 과도한 특권이 주어지게 된 배경 중 하나는, 어떤 나라의 은행이건 일정 규모 이상의 은행은 무조건 거액의 달러 대금 지 급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달러 유동성 및 달러 거액 결 제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런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곳은 뉴욕 인터뱅크 시장(은행 간 외환 시장)뿐이다. 은행이 국제 비즈니 스를 하려면 직접적으로 거액 달러 결제 시스템에 참여하는 미국 자 회사나 지사를 보유하거나, 이런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대리 은행과 제휴해야 한다. 씨티은행과 JP모건이 세계 최대 규모의 대리 은행이 된 것도 이런 상황에 기인한다. 두 은행은 홈어드밴티지를 누리는 것 이다.
어느 면에서 보건, 미국은 기축 통화라는 달러의 지위 덕에 결제 시 스템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실상 모든 수준에서 거래를 차단할 수 있게 됐다. 이 시스템은 맨 처음 시스템을 고안한 사람들이 예상했 던 것보다 더욱 효과적임이 드러났고, 무엇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 유는 결제에서 차지하는 달러의 역할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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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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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가 줄어드는 시장은 축소를 피할 길이 없기 때문에 기업 간 생존경쟁이 더욱 치열해진다. 수요가 줄어든 만큼 공급을 줄이지 않으 면 안 되는데, 당연히 어느 기업이든 자신들이 그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부동산 시장과 마찬가지 이유다.
시장이 축소되는 이상 현존하는 모든 기업이 생존할 수는 없다. 소비자의 수가 줄어들어 10개의 회사를 지탱하던 소비가 8개의 회사가 지탱하는 규모로 축소되는 경우 모든 회사들은 살아남을 8개 회사가 되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다.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가장 쉬운 생존 전략은 가격을 낮추어 다른 기업의 체력을 고갈시 킴으로써 도산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에 살아남은 기업은 경쟁 상대가 없기 때문에 큰 이익을 얻게 된다. 이것을 '라스트 맨 스탠딩 (Last man standing) 이익'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금까지 25년간 일본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면 그야말로 라스트 맨 스탠딩 이익을 노렸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강력한 디플레이션의 압력을 낳았으며 지금까지 주된 요인이기도 하다.
- 노동분배율 저하로 인한 디플레이션 압력
'라스트 맨 스탠딩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 기업은 우선 이익을 줄 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익이 줄어들면 직원에게 그 부담을 전 가할 수밖에 없다. 경영자가 인건비에 손을 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증가, 보너스의 삭감, 무급 야근의 증가 등 과거 수십 년에 걸쳐 일본에서 자행된 것들이다. 이로 인해 노동분배율(생산된 소득 가 운데 노동에 분배되는 임금이나 봉급의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노동분배율의 저하는 디플레이션의 큰 요인으로, <영국의 인플레이 션 역학과 노동분배율(Inflation Dynamics and the Labour share in the UK)>이라는 영국은행이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분배율이 낮아 지면 디플레이션 압력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 최저임금이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것도 디플레이션의 큰 원인이다. 일본의 많은 기업이 라스트 맨 스탠딩 전략을 위해 최대 비용인 직원 의 급여를 삭감해왔다. 물론 기업이 무제한으로 직원의 급여를 낮출 수 없고 최저임금까지만 내릴 수 있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이론적으로 계 산한 최저임금의 3분의 2정도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도표 1-5). 놀라 울 정도로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 때문에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노 동분배율을 더욱 낮출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의 생존을 위한 부담이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것이 일본 의 현실이다. 인구가 늘어나던 시대와는 달리 인구 감소로 인해 수요 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상품의 가격을 낮춰도 총수요는 늘어나지 않 는다. 여기서 다시 급여를 낮추는 것은 디플레이션 악순환의 고리가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낮은 최저임금이 디플레이션 압력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 라스트 맨 스탠딩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경영자들은 최저임금이 라는 벽에 부딪혔을 때 과연 어떻게 할까? 이론상으로는 노동력 부족 때문에 임금 인상이 불가피한데, 이를 기피하기 때문에 일본인 비정규 직 고용에 만족하지 못하고 저임금으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 을 확대한다.
저임금의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날 경우 일본에 사는 인구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총수요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라스트 맨 스탠 딩 이익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생산가능인구 가운데서 차지하는 최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이 증가하여 노동분배율은 더욱 낮아진다. 그렇 게 되면 디플레이션의 압력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결국 개발도상 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 나라는 개발도 상국'이 되어갈 것이다.
앞으로 일본은 최강의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인구 감소와 더 불어 다양한 디플레이션 압력이 복합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정책적인 공급 조정을 하지 않으면 기업은 시장원리에 기초한 생존 전략을 취할 것이므로 지금보다 더욱 큰 디플레이션 압력을 피할 길이 없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영자의 라스트 맨 스탠딩 전략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점이다. 경영자들이 나쁜 짓을 하 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 확실히 지금까지는 어느 나라든 인구가 계속해서 증가해왔기 때문에 그에 따라 수요도 기본적으로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공급이 사후에 수요를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수요가 단기적으로 부족한 경우 금리를 내려 수요를 자극할 수 있었다. 또한 통화의 유통량을 늘리는 방법에 의해서도 수요가 늘어났고, 단기적인 디플레이션을 인플 레이션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인구가 계속해서 늘어나면 수요자의 증가에 따라 잠재수요도 계속 해서 늘어난다. 은행은 새로운 수요자가 돈을 쓸 수 있도록 대출을 늘 리거나 금리를 인하하거나 하여 실제 수요를 늘린다. 본질적으로 물 가의 균형론은 거래되는 재화나 서비스의 균형론을 전제로 한다. 인 구가 늘어나기만 한다면 재화와 서비스의 균형론에 대해 이견을 제기 하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재화와 서비스의 수급은 균형을 이루 며,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은 금융정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금융정책에 의해서 조정할 수 있었다.
일본의 디플레이션도 2015년까지는 '금융정책의 실패'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의 아베노믹스가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가올 디플레이션 압력은 그 본질이 다르다. 금융정책 자체가 먹히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 결국 양적완화로 물가가 오른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수요가 일정하 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일본은행이 내세운 2퍼센트 인플레이션 목표 가 달성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구 감소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에서 공급을 조정하지 않는 경우 통화량을 늘리는 것 만으로는 인구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다른 나라들처럼 2퍼센트의 인 플레이션을 달성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를 가능하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모하다. 인구 감소 문제가 없는 다른 나라와 같은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2퍼센트의 인플레이션율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건 기적에 가 깝다. 재화와 서비스의 수급에 균형이 잡혀 있다면 양적완화를 통한 인플레이션이 가능하겠지만, 일본은 재화와 서비스의 수급에 균형이 잡혀 있지 않다.
- 양적완화 정책은 '부족한 수요는 늘릴 수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요가 늘어나고 경제도 계속해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물가도 오른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식으로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인구 증가라는 성장 요인이 불가결하다. 
- 미국은 지금도 인구가 증가하기 때문에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당연히 양적완화로 인해 주택 구입의 여건이 좋아지면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어서 빈집이 비율이 줄어들고 부동 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다.
이미 설명한 것과 같이 부동산 가격은 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 는 요인이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인플레이션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일본은 인구가 격감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처럼 되기 어렵다. 게다가 고령화도 진행되고 있다. 이미 주택을 소유한 사람이 많은가 운데 저출생으로 인해 장차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도 점점 더 줄어 든다. 그러나 주택의 수는 즉시 줄일 수 없기 때문에 빈집은 늘어나기 만 한다.
또한 금리를 내려도, 은행의 유동성을 높여도 새로 주택을 구입하 려는 사람의 수가 매년 줄기 때문에 자금을 빌리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는다. 수요자가 없기 때문에 이론처럼 수요를 자극하지 못한다. 그 러므로 빈집 비율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율 2퍼 센트를 달성하기 어렵다.
- 물론 통화량을 늘려서 디플레이션 압력을 일정 기간 완화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남은 부동산을 줄여서 공급을 조정하지 않는 한 균형 을 회복하기는 어렵다. 이는 금융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양적완화를 중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불가능하다. 양적완 화는 그 나름대로 경제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공급을 조정하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으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고차원 자본주의의 경우 노동자는 여러 종류의 업무(멀티태스킹)를 수행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다. 그 기술의 핵심은 '메 타 스킬'이다. 메타 스킬이란 특정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전문성이 높으면서도 다른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즉 어떤 기 술을 취득하기 위한 기술, 예를 들어 특정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잘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마케팅 능력이나 조사·분석 능력, 또는 문제 해결 능력이나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처럼 단순히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이 아니라 업무를 개선하고 조직을 바꾸는 능력을 말한다. 이처럼 '폭넓게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을 메타 스킬이라고 한다.
- 고차원 자본주의에서는 평생학습을 통해 끊임없이 기술을 향상시 킬 필요가 있다. 고차원 자본주의의 기업에서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등장할 때마다 상사에서 부하에 이르기까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재 연수·재교육이 이루어진다.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대처하 는 경우도 많아서 새로운 기술의 보급을 촉진할 경우 공공기관도 큰 역할을 한다.
고차원 자본주의 기업에서는 관리자 측과 노동자 측의 장벽이 낮 아 노동자에서 사장까지의 계급 수가 적다. 그래서 일반 직원의 급여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고차원 자본주의는 국가 전체의 부가 가치를 늘려 이를 분배하므로 노동자에게도 높은 비율로 분배된다. 쉽게 말하자면 '더 좋은 것을 더 비싸게 취급하는 것이다.
- 연구개발로 얻어진 결과를 얼마나 유효하게 활용하는지, 즉 보급률 을 살펴봐야 한다. 앞서 언급한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의 이야기 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미국은 고액의 비용을 들인 연구개발의 결과 가 거의 전부 경제성장으로 이어져 GDP를 크게 늘리고 있다는 이야 기가 된다. 그래서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이 낮게 보이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 GDP가 크게 확대 되지 않는다. 일부 기업이 연구개발에 공을 들여 훌륭한 성과나 실적 을 낸다고 해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개선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평소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인은 1등 이 되는 것을 이상하리만치 좋아하고 그 실적을 일본 전체로 일반화 하는 경향이 있다. 도요타자동차가 대단한 것을 마치 모든 일본 기업 의 기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나, 특정 장인의 기술이 대단한 것을 마치 일본인은 손재주가 뛰어난 민족이라고 안이하게 믿는 식이다. 이 와 비슷한 사례는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바람직한 모습을 마음에 그리는 것은 좋지만 특수한 사례를 쉽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재의 세계유산 등록과 특허 수 세계 1위, 일본의 인재나 기술의 세계적 권위의 상 수상 등 이른바 '보증서'를 받는 것도 굉장히 좋아한다. 분명 일본은 특허 수로는 단연 세계 1위지만, 생산 성은 세계 28위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아무리 연구를 열심히 해도 그 기술을 널리 보급하고 살려내지 못하면 성과나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일본에 훌륭한 연구자가 많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러나 그들이 개발한 기술이 보급되어 널리 쓰이지 않으면 경제적 합 리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일본 기업의 규모가 작은 것이 여기에도 악 영향을 미친다. 1인당 연구개발비가 세계 10위에 그치는 원인 중 하 나는 기업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1인당 연구개 발비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규모가 큰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 기업의 수가 증가하는 것이 좋다는 인구 증가 시대의 상식은 인구 감소 시대에는 오히려 경제성장 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본격적인 인구 감소 시대를 맞아 중소기업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패러다임 대변환의 골든타임이 다가오고 있다. 기업의 숫자보다는 체질의 강화가 중요한 것이다.
- 기업의 수가 감소하면 실업자가 늘어날까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기업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인구가 많은 나라는 생산가능인구의 증가율보다 기업의 증가율을 낮추면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이를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인구가 감소하는 나라에서 기업의 규모를 키우면 필연적으로 기업의 수가 줄어들게 된다.
- 요즘처럼 노동력이 부족할 때 기업의 통합이 직원의 인원 감축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오히려 두 개의 중소기업이 하나가 되면 직원들의 노동 환경이 개선될 여지가 더 많을 것이다. 통합으로 인해 줄어드는 것은 사장자리뿐이다. 중소기업을 지키겠다는 것은 직원의 일자리가 아닌 사장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이야기다.
왜 사장들만 행복을 추구하려는 걸까? 존속이 어려운 회사를 억지 로 존속시키기 위해 왜 국민과 국가가 계속 부담을 져야 할까? 이보 다 더 바보 같은 이야기는 없다.
생산가능인구가 반으로 줄어드는데 기업 수를 유지한다면 인구에 서 차지하는 사장의 비율은 지금의 두 배가 된다. 세계적으로 이 비율 이 줄어드는데 일본만 올라간다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과연 그런 여유를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
- 제도로서 최저임금을 영국보다 먼저 도입한 나라도 있다. 그러나 영국이 이 실험을 시작한 이후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하여 인상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나라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향후 큰 폭의 인구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경제 가 성장하는 것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에 높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생산성 향상에 관해 기업 보다 국가가 훨씬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기업에 맡겨두면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더뎌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국가가 최저임금을 올림으로써 기업이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다. 최저임금은 비상장사를 포함하여 모든 기업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으로 사용하기에 유용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기업은 직원에게 이전보다 높은 임금을 지불해 야 한다. 당연히 인건비가 오른다. 기업은 높아진 인건비를 어떤 형태 로든 메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한다. 이것이 생산성 향상의 동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정책은 반 이상 성공한 셈이 된다. 
- 2015년에 발표한 <최저임금이 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The impact of the National Minimum Wage on UK Businesses)>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의 도입에 따른 실업률에 대한 영향은 확인되지 않았 다고 한다. 또한 기업의 폐업이 늘어나는 등의 악영향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최저임금으로 직원을 고용하던 기업의 상당수는 이익 이 감소한 것에 대해 생산성 향상 활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는 정부가 의도한 대로의 결과다.
- 2004년에 발표한 보고서 "최저임금이 영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The Impact of the National Minimum Wage on British Firms)"에는 일본에 중요한 시사점이 몇 가지 나와 있다. 최저임금의 도입에 따라 임금 상승의 영향을 받은 기업은 제조업이 16퍼센트인 것에 비해 서비스업은 43퍼센트에 달했다. 또한 임금 상승의 영향을 많이 받은 기업의 생산 성은 영향이 별로 없는 기업의 생산성에 비해 45퍼센트나 밑도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최저임금의 도입은 제조업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서비스 업에서는 임금 상승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실업이 늘어나지 않았고 19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생산성이 11퍼센트나 개선됐다. 이는 일본이 가장 주목해야 할 자료 중 하나다.
- 한국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효과가 연구됐다. <최저임금 제도의 소개, 고용주 응답 및 기업의 노동생산성: 한국의 사례(Minimum Wage Introduction, Employer Response, and Labor Productivity of Firms: Evidence from South Korea)>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최저임금 인 상으로 인해 기업이 직원을 줄이는 대신 기계를 도입하는 경향이 확 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을 줄여 기계 등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계 등을 도입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 일본에서는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반드시 반론이 터져 나온다. 그 반론의 근거로 사용되는 것이 한국에서 2018년 1월 에 실시한 최저임금 16퍼센트 인상이다. 한국에서는 일부 실업자 증 가 등 급격한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일부 확인됐다. 하지만 이러한 부작용이 발생한 것은 최저임금의 인상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다. 최저임금을 한 번에 16퍼센트나 올린 것은 무리한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사례를 드는 사람들은 평소 일본의 경제력을 과시하면서 '한국 경제는 수출에 너무 의지한다거나 '한국의 기술력은 일본과 비 교가 되지 않는다'는 등 한국 경제를 평가절하하면서 최저임금 인상 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만 한국 사례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느낌이다.
- 일본의 인재 평가는 세계 4위, 한국은 32위다. 이 사실만 놓고 봐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도표 5-5). 한 국의 예가 시사하는 것은 앞서 소개한 논문처럼 그 나라의 경제 실정 을 바탕으로 적절한 인상 방식을 취하지 않으면 실업자가 늘어난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경우 최저임금을 16퍼센트 인 상하기 전의 수준도 결코 낮지는 않았다. 따라서 국제적인 인재 평가 에 비해 인상폭이 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영국에서는 최저임금을 도입한 이래 계속해 서 꾸준히 인상한 덕분에 고용에 악영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영국은지금까지 20여 차례, 평균 연간 4.17퍼센트를 인상해왔다. 가장 큰 인상률은 2001년에서 2002년의 10.81퍼센트였으며 이후에도 세 번이 나 7퍼센트의 큰 폭으로 인상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에 악영향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OECD는 최고대 나머지들: 글로벌 생산성 저하, 기업 간 분산 및 공공정책의 역할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매우 중요한 분석을 소개했 다. 2008년에 일어난 리먼 쇼크 이후 100년에 한 번 오는 불황'이라 불리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와 이 후 OECD 국가의 생산성 향상률이 크게 감소했다. 사실 생산성 향상 률은 2001년부터 낮아지기 시작했고 2010년에 바닥을 치고 점차 개 선되고 있었지만 1990년대 수준에 비하면 아직도 낮은 상태다. OECD는 주요 원인으로 '프런티어 기업(Frontier firms)'과 '래거드 기업(Laggard firms)'의 격차 확대를 꼽았다(도표 5-6). 프런티어 기업은 생산성이 가장 높은 상위 5퍼센트의 기업이고, 래거드 기업은 생산성이 가장 낮은 하위 5퍼센트의 기업을 말한다. 특히 서비스업에 있어서 격차 확대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이들 기업 간 격차 확대의 요인에는 노동생산성의 영향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전요소생산성'의 격차였다. 전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이란 기술혁신, 업무 효율화, 규제 완화, 브랜드 가치 등의 요인 즉 그야말로 모든 요소를 포함한 폭넓은 생산성을 의미한다. 2000년대 들어 프런티어 기업의 전요소생산성은 높은 증가세를 유 지하고 있지만, 래거드 기업은 그 증가율이 낮아 전체 평균을 낮추고 있다. 이러한 격차 확대의 움직임은 업종 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각 업종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도표 5-7).
- 전요소생산성 격차가 확대되는 이유는 기술혁신 보급률의 저하 때 문이다. 프런티어 기업은 기술혁신을 진행하며 그 이점을 누리는 데 반해, 나머지 기업들이 기술 진보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새 로운 테크놀로지나 기술을 잘 조합하여 활용하는 기술이나 암묵지 프런티어 기업에는 축적되어 있는데 래거드 기업에는 부족하다.
-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고용이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대전제는 노동력의 가격이 시장에서 차별 없이 효율적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 등에서 이미 그 전제가 뒤집혔다. 노동시장은 생각만큼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 지금의 정설이다. 어떤 학자는 노동시장에는 효율성이 없다'고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시장이 효율적이지 않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우선 업무나 고용에 관한 정보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 는 자신의 시장가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보다 높은 소득을 얻을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이는 시장의 효율성을 훼손한다.
다음으로 이직에 따른 비용이 효율성을 저해한다.
또한 노동자의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자신의 잠재력에 비해 급여가 낮은 일을 선택할 수도 있다. 여성의 대부분은 여기에 해당한다. 자녀 나 부모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 등으로 인해 보통의 조건에서 일하기 어려워 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급여가 잠재력보다 낮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사람은 노동시장에서의 입지가 약해지므로 본래 의 생산성에 비해 낮은 급여로 일하는 것이다.
- 많은 여성들이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일하기 때문에 시장의 효율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여성들의 존재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대전제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증거가 된다.
앞서 영국의 사례를 통해 최저임금을 올려도 상당수 기업이 일자리 를 줄이지 않았고 회사의 이익이 줄어도 폐업이 늘지 않았다는 사실 을 알았다. 이를 통해 애초에 최저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의 대부분 이 기업에 착취당해왔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 내가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면 '일본인의 급여가 낮은 것은 미덕'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반론이 나오곤 한다. 놀랍겠지만 일본식 자본주의를 추앙하는 사람 중에는 일본의 낮은 소득수준과 최저임 금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로 많다.
"일본인에게 중요한 것은 돈만이 아니다. 열심히 일해서 얻은 성과 를 다른 사람을 위해 최대한 싸게 제공할 줄 아는, 헌신적인 일본인은 아름답다."
확실히 듣기에 좋은 말이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이는 지나치게 호강 에 넘치는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이다. 인구가 크게 증가하던 시절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원래 받아야 하는 급여 를 받지 않아도 경제는 인구 증가 요인에 의해 성장했다. 그 당시라면 좀 전의 이야기를 미덕이라고 수긍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65세 이상 고령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더라도 생 산가능인구가 충분히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담을 견딜 수 있 었다. 죽기 살기로 이익을 추구하지 않아도 됐고, 또 그런 것이 사회공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는 일본식 자본주의의 특징이 아니 라 어느 나라든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일본식 자 본주의는 인구 증가 요인을 통해 이룩한 경제적 성취의 한 부산물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국가부채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증가하면 세수가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하고, 재정이 개선되면서 상대적으로 국가부채가 작아진다. 다 만, 인구 증가가 멈추고 줄어들기 시작하면 그 흐름이 바뀐다.
지금까지는 국가가 개개인의 돈벌이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을지 모 르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다르다.
- 앞서 일본형 자본주의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일본의 소 득수준이 낮은 것은 미덕'이라는 억지는 인구가 증가하는 동안에는 들 어줄 만했다. 그러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빈곤, 부채, 연금, 의 료 등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문제로 표면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서 더 이상 낮은 소득수준이 미덕이라는 허튼소리를 할 수 없게 됐 다. 여전히 미덕을 운운하는 이들은 하루 빨리 망상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이제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연금, 부채, 의료비, 자녀교육 비 등은 잠재력이 있다고 해서 지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특허가 가장 많다고 해서 안 팔리는 물건만 만들고 있으면 그건 그저 재능 낭비고 자기 만족일 뿐이다. 잘 갖춰진 사회 인프라나 교육도 잠 재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들 에 대한 투자를 과연 회수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재교육을 포함 해 국민들을 열심히 교육하지만 생산가능인구로서 사회에 환원하도 록 투입한 교육비를 회수하지 못한다면 냉정하게 말해 비용 대비 가 치를 따질 수밖에 없어진다.
앞으로는 생산가능인구가 얻은 소득의 일부를 노인들에게 분배할 필요가 있다. 소비세를 어떻게 할지의 차원이 아니다. 소득이 없으면 분배도 없는 것이다. 앞으로는 한사람, 한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야말로 사회 공헌이 될 것이다.
- 생산성 향상을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이민정책에 대한 접근도 달라질 것이다. 지금처럼 값싼 임금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늘리려는 안이한 정책은 생산성 향상을 방해하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충분히 일본인의 소득수준은 낮다. 임금이 더 낮은 노동력을 늘리면 가격경쟁이 더 격화되어 모두가 어려워지는 결과만 낳는다. 기업은 기업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소득과 이익을 만들기 어려워지고, 국 가는 사회보장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재정이 파탄날 것이고, 이 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 이 책에서는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생산성 향상에 사회적 합의를 이룸으로써 높은 생산성 및 고차원 자본주의를 실시해야 한다.
둘째, 그것이 가능하도록 기업의 규모 확대를 촉구하는 통합촉진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제도를 정비하는 것만으로는 모든 민간 기업이 국가의 뜻대로 움직일 리 없으니 최저임금의 지속적인 인상을 통해 기업을 이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논문 <최저임금이 생산성 향상에 미치는 영향: 덴마크, 뉴질랜드 및 아일랜드의 교훈(The Productivity-Enhancing Impacts of the Minimum Wage: Lessons from Denmark, New Zealand and Ireland)>에서는 제5장과 제6장에서 소개한 최저임금 인상만으 로는 고부가가치 ·고소득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없음을 몇 가지 사례 로 소개한다. 특히 뉴질랜드 노동 규제 완화의 역사는 일본에 많은 교 훈을 준다.
뉴질랜드 정부는 1991년 노동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에 따라 소 득수준이 떨어지고 노동자들의 불만도 높아졌다. 이에 정부는 최저임 금을 1999년 6.50달러에서 2007년까지 11.25달러로 무려 73퍼센트나 인상했다. 그 효과인지 2005년의 실업률은 2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뉴질랜드 정부가 목표로 하는 고부가가치·고 소득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생각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
케임브리지대학교는 그 원인을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경쟁이라고 지적했다. 뉴질랜드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작은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 자의 비율이 높다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최저 임금의 인상만으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없었던 뉴질랜드의 사례를 반 드시 참고해야 한다.
반면 고부가가치 ·고소득 자본주의의 성공 사례로 늘 거론되는 곳이 덴마크다. 덴마크는 노동 규제가 유연한 반면 사회보장이 충실하게 갖춰져 있다. 그래서 덴마크 사회는 'flexible(유연한)'과 'security(보장)'를 합쳐 만든 'flexicurity(유연한 보장)'라는 말로 대변 된다.
덴마크에는 전국 공통의 최저임금이 없다. 대신 노사 간 단체교섭을 기본으로 하여 결정되는 업종별 최저임금이 있다. 이 교섭에서는 인재 육성 훈련[OECD의 용어로는 VET(Vocational Education & Training, 직 업 교육 및 훈련)라고 부른대도 다룬다. 이것이 덴마크의 고생산성·고소득 경제의 비결로 분석된다.
- 덴마크는 기업 연수가 활발할 뿐만 아니라 정부 자체도 OECD 가 맹국 중에서 인재 육성 훈련(VET)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다. VET 의 내용을 노사 간에 협의하여 그 내용을 충실하게 업데이트하는 경 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VET에 대한 평가와 신뢰도가 높다.
뉴질랜드도 덴마크와 같은 정책을 도입했지만, 생산성 향상에 대한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분석에서는 그 원인을 VET의 질적 차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뿐만 아니라 덴마크는 뉴 질랜드나 일본과는 달리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 일하는 생산가능인구의 비율이 상당히 낮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 일본의 생산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향상되지 않았던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뉴욕 연방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미국에서는 노동자가 하던 기존의 업무를 기계화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의 효과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조직과 업무 방식을 기 술에 맞춰 근본적으로 바꿨다. 반면 일본에서는 기술은 도입해도 기 존의 업무 방식과 조직 등 기업의 기반을 바꾸지 않았다. 이것이 양국 의 생산성 증가율을 크게 벌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바로 전요소생 산성의 차이인 것이다.
-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으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은 어느 대 형 은행의 사례가 있다. 이 은행에서는 해외 출장을 갈 때 사전에 신 고를 해야 했다. 신청서류는 컴퓨터로 작성하여 메일에 첨부파일로 보 낸다. 이 첨부파일을 인쇄해서 결재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인감을 찍 은 실물 서류를 스캔하여 PDF로 만들어서 다음 사람에게 메일로 보 낸다. 그 메일을 받은 사람은 또다시 그것을 인쇄하고, 날인하고, 스캔 해서 메일로 보내는 것이다. 이런 식의 프로세스가 여러 사람 사이에 서 반복돼야 출장을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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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의 종말은 없다

경제 2023. 3. 16. 12:05

- 스윙프로듀서: 석유 공급 변화에 따라 석유 생산을 증가 혹은 감소시켜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산유국을 말한다. 1960년 출범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최대 산 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스윙프로듀서를 담당했다. OPEC은 1973년 자체 감산 및 금수조치를 단행하면서 1차 오일쇼크를 촉발하며 스윙프로듀서의 역할을 강 화했다. 하지만 저유가가 장기화되면서 그들의 위상이 악화되고 있다. 또한 미국 은 셰일오일 shale oil의 수요·공급을 조절하면서 세계 원유 시장에서 차지하는 영 향력을 넓히고 있다.- 초기의 석유 굴착업자들과 토지 소유자들은 주로 빠른 시추에 집중했다. 신속한 시추의 필요성은 '포획의 법칙'으로 알려진 지배적인 법적 원칙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누군가의 인근 지역 재산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지면을 소유한 자가 땅에서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소유한다고 주장하는 법이었다. 포획 규칙은 영국의 관습법에서 비롯되었으며, 종종 토지 소유자들이 사슴이나 다른 야생동물을 포획할 권리를 누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 천연자원을 수확, 추출 또는 '포획한 최초의 토지 소유자가 소유권을 얻었다." 포획의 법칙은 지하자원에도 적용되었다. 당시 석유 매장량에 대한 지질학적 이해도는 높지 않았고, 석유는 지하 웅덩이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후 석유가 암석과 퇴적물 속에 묻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석유를 합법적으로 소유하기 위해 굴착업자들은 다른 누군가보다 먼저 지하의 '연못을 배수해야 했다. 민간 굴착업자들 과 열성적인 땅 주인들은 모두 빠르게 굴착할 당위성을 얻었다. 한 전문가가 묘사한 것처럼, 지하 퇴적물을 빼내기 위한 쟁탈전은 두 명의 목마른 소년, 두 개의 빨대, 그리고 한 잔의 레모네이드를 닮 았다. "가장 덜 먹는 사람이 제일 바보가 되는 겁니다.” 결과는 서부 펜실베이니아 석유산업의 조잡한 시추와 과잉 생산이었다.' 지하 웅덩이에서 가장 많은 양의 석유를 채취하기 위해 작업자 들은 지하 석유가 다른 쪽으로 이동하기 전에 지하 석유를 차단하 고, 배수하기 위해 소유지의 가장자리에 여분의 또는 '벌충'용 우 물을 파냈다. (가끔씩 물이 유정에 침수되어 유정을 손상시키거나 파괴할 때 도 있었다. 정말 악랄한 사업가의 경우 인접한 소유지의 유정에 가까운 갱도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유정 갱도에 배관을 제거하여 함께 공유하는 유정을 손상시 키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 석유 수요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굴착업자, 운송업자, 정유업자 등 새로운 석유 사업에 관련된 모든 사람은 불안정한 원유 생산으로 인한 유가 변동성의 두려움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과잉 공급은 단지 조급한 부동산 소유주들과 포획 규칙 경쟁 하에서 운영되는 광적인 굴착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다. 석유 생산, 운송, 정제의 모 든 단계에서 투자자와 운영자들은 모든 것을 생산해야만 했다.
원유를 시추하고 운송한 다음 정제하기 위해 미리 투자했던 자본에 관한 수익을 창출하려면 먼저 굴착기를 구입하고, 파이프라인을 설치하고, 정유소를 건설하기까지 하면 운영비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높은 초기 자본 비용과 낮은 운영비의 조합은 생산자와 정유사가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석유를 계속 끌어올리고 정제하도록 유도했고, 최소한의 투자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현금 흐름을 창출하였다. 그 결과 생산 과잉이 지속되어 파멸적이고 장기화된 가격 침체로 이어졌고, 결국 크고 작은 생산자들을 전멸시키는 광범 위한 파산을 초래했다. 수요가 살아나면 공급이 부족하고 물가가 급격히 올라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을 반복하게 되었다."
- 1920년대 중반에 이르며, 석유는 인류에게 '조명'을 쓸 수 있는 수단에서 '운송'을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하 였다. 산업과 정부 모두 석유를 필수적이고 전략적인 상품으로 생 각했다. 2장에서 우리는 석유에 대한 워싱턴의 관심이 적었다는 것 을 살펴보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석유가 점점 중요한 역할을 차 지하면서, 석유산업 안팎에서 유가의 변동 또한 지대한 관심을 얻 게 되었다.
초기 수십 년 동안 유가 변동을 악화시켰던 몇몇 상황이 개선 되었다. 예를 들어 반출 기반 시설이 개선되었고, 파이프라인, 유조 선 및 기타 저장 방법의 수와 효율성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로 인하 여 새롭게 시추한 석유는 정유소나 마케팅 센터와 더 원활하게 연 길되었다. 다만 유가 변동성의 근본 원인은 여전했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것을 생산하겠다는 굴착업계의 동기부여가 거대하고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업계는 새로운 유정을 주요 파이프라인과 정유 시설을 점점 더 능숙하게 연결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유정의 발견은 여전히 저장하거나 반출하는 용량을 압도했 다. 업계 기반은 발전하고 있었지만 석유산업은 과잉 공급을 제대 로 통제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신규 공급이 계속되면서 가격은 폭락했다. 가격 불황을 겪으며 꾸준히 증가세 를 보였던 수요가 가용 공급을 초과하자, 유가는 다시 치솟았고, 정 부 관리자와 소비자인 국민 사이에서 인류의 중요한 자원인 석유 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공포 분위기가 감돌았다. 분명 석유산업과 시장 사이의 어떠한 연관관계가 유가 변동성의 구조적 패턴을 만든 것이다.
- 1920년대 후반, 미국과 세계적인 역학관계로 인해 유가가 하 락하였다.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에서는 새로운 유정이 발견되었고, 정제한 러시아 원유의 중요 시장인 인도에서는 등유 가격 전쟁이 벌어졌다. 로열더치셸과 모빌(Mobil Corporation, 미국의 모빌석유의 지주회 사)' 간의 경쟁으로 미국과 영국 시장의 주요 마케팅 회사들은 시 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을 억지로 인하해야만 했다. 이로 인한 가격 폭락으로 1930년대 초까지 볼 수 없었던 가장 공격적인 공급 규제와 카르텔 시스템을 초래하는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 후 40년 동안 전 세계에 유례없는 유가 안정의 시대가 왔다.
- 석유시장을 관리하던 텍사스 시대는 대략 1927년부터 1972년까지 지속되었고, 석유에 대한 세계적인 공급과 수요의 놀라운 성장이 동시에 일어났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유가가 하락하는 가운데 조명에 사용하는 등유의 성장을 만들었고, 교통수단으로써 가솔린의 전환을 끌어냈듯 말이다. 그리고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며 중동, 미국, 러시아의 저렴하고 거대한 새로운 공급품인 석유는 현대 문명을 바꿔 놓았고, 소비 붐을 이끌었다. 석 유시장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거나 촉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두 차례의 시대적 전환은 산업과 정부 또는 양쪽이 보여준 확실한 석유 공급 통제와 여기서 비롯된 상대적 시장 안정이라는 연관성을 보여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석유 소비의 붐은 새로운 용도와 오래된 용도에서 비롯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값싼 새로운 공급품이 나오면서, 석유는 난방과 전기 생산을 위해 석탄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는 '자동차의 대중화'가 수요를 이끌었다. 1950년부터 1973년까지 전 세계 자동차 및 기타 승용차의 수는 5300만 대에서 2억 5000만 대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유럽과 일본은 동력 수송을 위한 석유 사용이 크게 증가했다. 민간 항공의 급속한 확대와 플라스틱 산업의 탄생도 석유사용을 증가시켰다. 저명한 석유시장 학자 다니엘 예긴이 말한 '탄화 수소의 시대Hydrocarbon Man'가 도래한 것이다.
- 1870년대 석유시장은 록펠러에 의해 혼란에서 안정으로 바뀌 었다. 100년이 지난 1970년대 역시 변혁적이었지만, 방향은 안정 에서 혼란으로 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 1970년대 초, OPEC은 미국 대법원이 1911년 록펠러 시대를 끝낸 것처럼 구질서를 파괴 했다. 그 결과로 인하여 원유 가격은 텍사스 시대보다 훨씬 더 높고 불안정했다.
역사상 석유시장 첫 100년 동안 몇 가지 절정의 공포와 예외적 사건을 제외하고, 석유산업의 주요 문제는 '과잉 공급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가격 폭락으로 이어지는 과잉 공급을 막기 위해, 기관과 석유회사 카르텔은 채유를 억제하거나 '폐쇄'할 의무가 있었다. 그 러나 1960년대부터 세계 석유 수급의 추세는 반대 방향으로 바뀌 기 시작했다. 세계 석유 수요는 1960년대 후반에 급격히 증가하여 연평균 8%씩 상승했고 1969년에만 거의 9% 올랐다' 많은 분석 가는 석유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1971년 미국 석유 위원회는 공산주의 세계 밖의 수요가 1970년 하루 3700만 배럴에서 1985년에는 하루 9200만 배럴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새로운 석유 산유량이 소비량을 계속 앞지르는 동안 소비와 공급의 격차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외교 정책관들은 막대한 석유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대부분 OPEC 회원국인 중동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해 걱정했다.
- 1979년의 위기
1977년 모하마드 레자 샤 팔라비 Mohammad Reza Shah Pahlavi의 권위 주의적 군주제에 대한 이슬람교도와 비이슬람 이란인들의 불만 이 쌓이며 1978년 초, 정권을 향한 격렬한 시위로 분출되었다. 이듬해 석유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이란의 석유 수출은 하루 450만 배럴에서 100만 배럴 미만으로 감소했다. 팔라비의 군사 정부는 산유량을 회복했지만, 1978년 말에 이르러 폭력과 파업이 격화되었고, 해외 석유사의 노동자들은 대피를 시작하며 석유 수출이 완전히 중 단됐다. 1979년 시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완전한 혁명으로 발전 했다. 1979년 1월, 군주는 이란을 탈출했고 그해 돌아온 최고 지도 자루홀라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가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했다.
이란 혁명은 1973년 중동의 석유 금수조치보다 석유 공급에 훨 씬 더 심각한 차질을 야기했다. 이란은 당시 사우디에 이어 세계 2 위의 석유 수출국이었다. 사우디를 비롯한 OPEC 생산국들은 이란 의 손실을 부분적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1978년 세계 석유 산유량 은 실제로 증가했지만 이란의 급속한 감소는 시장을 놀라게 했다.
1979년 실제 세계 산유량은 증가했지만 당시 전년 공급량의 3%에 달하는 이란의 하루 200만 배럴 손실이 가격을 126%나 끌어올렸다." 재고와 비축량이 충분했음에도 수입업자들은 훨씬 더 많은 양 의 재고를 쌓으려 했기 때문이라는 게 하나의 분석이었다."
특히 일본은 갑작스러운 공급 손실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일본은 우선적으로 이란의 틈새시장을 노렸고 물량의 20%를 공급받았다. 20년간의 놀라운 성장 이후, 일본은 이란 혁명으로 인해 자국의 핵 심 취약점이었던 석유 자원 부재 문제에 직면했다. 갑작스러운 장 기계약 취소에 충격을 받은 일본 정유사들은 현물시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원유를 사들이며 위기를 겪었다." 성장세를 이어나가면 서도 균형적인 방식으로 이용되던 현물시장이었지만, 공급량이 부족할 때면 물류나 다른 방법으로 구매자들이 수급량을 확보할 수 있었고, 따라서 현물시장의 거래 역시 늘어나고 있었다. 따라서 점 점 더 유동적이 되어가는 현물시장에서 독립 석유사 외에 "월스트 리트 정유사, 국영 석유회사, 무역 회사, 석유 무역업자 등과 거래 하던 일본에 새로운 바이어들이 앞다투어 원유를 조달하고자 접촉 하였다." 구매자들은 즉시 이란에서 확보하지 못한 만큼의 원유를 찾기 위해 현물시장으로 몰려들었고 곧 대혼란이 이어졌다. OPEC 은 석유의 '실제' 시장가격을 나타내는 지표로 현물가격을 점점 더 자세히 감시하고 있었고, 실제 시장가격은 계속해서 상승세를 보 이고 있었다.
장기 계약하에 OPEC 생산자들은 관리가격에 근거하여 석유를 팔아야 했다. 그러나 1979년 2월까지 현물시장 가격은 관리가격보다 두 배나 높았다. 따라서 OPEC의 원유를 더 낮은 가격으로 구입하여 현물시장에서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무역상들이 큰 이익을 얻었다. 이들의 판매로 인하여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첫 째, 일부 OPEC 회원국이 더 높은 현물가격으로 제3자에게 더 많 은 양의 원유를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둘째, OPEC 회원국은 현 물가격을 인상하기 위해 관리가격을 올렸고, 이는 결국 현물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며 엄청난 공황과 사재기를 일으켰다. 가격 강화 사이클이 발동되었다.
- 이란 혁명과 석유 파동, 가격 상승으로 인해 미국과 사우디를 더 가깝게 만들었고, 그로 인하여 사우디와 이란은 민족적, 종교적, 지정학적 대립 관계가 심화되었고, 이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우리가 겪을 OPEC 석유 정책의 영구적 특징이 되었다. 사우디는 이 슬람 수니파의 중심이며 종교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메카와 메디 나의 본거지다. 그러나 이란 국민의 대다수는 이슬람 시아파를 믿 는다. 이라크와 바레인 역시 시아파지만, 전 세계 16억 이슬람교도 중 15% 정도 차지하고 있다." 더 나아가 테헤란과 리야드는 19세 기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적 연계와 외세의 개입, 경제적 부족과 지 리적 거리감을 이유로 직접적으로 경쟁을 벌이지는 않았다. 그러 나 1950년대 두 나라가 주요 석유 강대국이 되면서 두 나라 사이 의 중요한 이해관계가 촘촘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1979년까지는 두 나라 사이에 긴장감이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 으로 수니파, 특히 사우디 왕정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 란이 혁명 국가를 수립함에 따라, 간접적인 분쟁과 대리전쟁이 연 이어 발발하기 시작했다.
- 1973년 그리고 1979년부터 1980년의 충격적인 가격 폭등 은 비슷해 보이지만 맥락은 매우 달랐다. 1973년 산유국이었던 OPEC은 관리가격을 통제하며 의도적으로 유가를 올렸다. 폭력적 이면서 상당히 의도적인 조치였다. 당시엔 원유 공급도 원활하였 다. 원인은 석유 수입국가와의 관리가격 그리고 지분 협상 파행이 었다. 그러나 1979년 이란 혁명과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의 경우, 재고는 충분했으나 큰 공급 차질이 벌어졌다. 혼란과 공황으로 시장 가격이 상승했고, OPEC은 단순히 인상된 가격을 따랐다. 결과적으로 1981년까지 OPEC의 관리가격은 배럴당 34달러로 3년 만에 약 3배 상승 폭을 보였다.
- 1980년대 초 원유의 수요 감소와 시장 기반 현물 거래가 증가 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석유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1970년대 석유는 탐욕스러운 소비와 한정된 자원이라는 인식 때 문에 거침없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특별한 상품으로 여겨졌 다. 그런데, 1980년대 사람들은 석유를 더 이상 시장의 힘에 영향 을 받지 않는, 시장의 힘에 종속되는 또 다른 상품으로 간주하기 시 작했다. 치솟은 유가는 결국 수년간의 기다림 끝에 소비 성장을 깨는 데 도움이 되었고, 곧 대규모 신규 공급을 불러일으키며 빈곤에서 과잉으로 다시 뒤바뀌었다.
- 펜실베이니아 서부 유전 지역에서 100년 전 시도했던 증명처럼, 석유 카르텔은 특히 다른 회원의 부정행위를 제한할 수 없다 는 점 때문에 유독 붕괴될 위험이 컸다. OPEC도 마찬가지였다. OPEC은 지난 7대 석유사가 달성한 만큼의 지속적인 규제와 응집 력을 갖지 못했다. OPEC은 거래되는 석유의 양을 통제하지 않았고, 경제적이나 정치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는 회원국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서로 간의 와해는 당연했다. 당시 회원국이었던 이라크와 전쟁 중이었던 이란은 할당량을 준수하는 척조차 하지 않았고, 다른 회원국 대부분 현물시장에서 석유를 계속 팔았다.
한편, OPEC 외부의 경쟁 압력이 높아지면서 회원국들은 다시 협력하려고 모였다. 1983년 2월, 영국은 또다시 북해 산유량의 급 상승으로 인한 가격 인하를 발표했고, 대서양 유역 원유 가격에 더 많은 압력을 가했다. 1983년 3월, OPEC은 공식 판매 가격OSP을 배 럴당 29달러로 낮추기로 합의했고, 사우디가 스윙프로듀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리야드는 북해와 멕시코로부터 강력한 공급 증가에 직면하여 의무적으로 생산을 줄였다. 그러나 OPEC 회원국들은 계속해서 원유의 생산을 늘렸고, 가격은 자연히 폭락했다. 이러한 부정행위에도 불구하고 사우디는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생산량을 계속 줄였다. 1985년 8월까지 사우디 산유 량은 OPEC이 1982년 3월 집단 감축을 시작한 이후 하루 산유량 600만 배럴에서 72%를 감소한 하루 230만 배럴을 기록했다."
-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사우디가 스윙프로듀서로 나서면서 해당 기간 연말까지 가격은 배럴당 33달러에서 28달러로 서서히 하락하며 현물시장 가격 붕괴를 막았다. 유가는 월별 가격 변동 폭 을 기준으로 측정했을 때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였다. 1983년 4 월부터 1985년 11월까지의 월평균 유가 변동률은 4%로 OPEC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았다.
그러나 사우디는 OPEC 회원국 중 유일하게 공급을 중단해 다 른 모든 국가의 물가를 떠받치고 있었고, 당연히 막대한 비용을 감 수했다. 왕국은 재정 비축량을 사용하는 악수를 뒀고, 국제적 지위 를 잃었으며, 자국보다 다른 회원국의 이익을 지지하는 정책으로 자국 내 불만을 야기했다. 사우디 왕가는 산유량을 낮추며 계속해서 산유량을 조정하지 않으면 사우디도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거듭 경고했다. 자키 야마니 사우디 석유장관은 1985년 9월 연설 에서 사우디도 질릴 만큼 질렸다고 주의를 주었다.
OPEC 회원국 대부분은 사우디에 의존하고 있다. 이제 상황 이 바뀌었다. 사우디는 더 이상 그 무거운 부담과 의무를 기 꺼이 떠맡거나 감당할 수 없으며, 따라서 회원국도 사우디의 역할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는 OPEC 전체가 석유 가격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 1980년 9월부터 격렬하게 전개된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8 년 승자 없이 끝났다. 이라크는 사우디,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연 합국UAE에 1000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1986년 붕괴 이후 유 가 하락은 이라크 세입을 감소시켜 독재자 사담 후세인 saddam Hussein 의 불행과 절망을 심화시켰다. 사담 후세인의 분노에, 쿠웨이트와 UAE는 당시 할당량에 비해 엄청나게 과잉 생산을 하고 있었다. OPEC의 총산유량은 총 할당량 상한선보다 하루 약 200만 배럴 이상 높았고, 1990년 상반기 당시 이라크산 원유를 대부분 거래하 던 지중해의 원유 가격이 3분의 1로 떨어지며 사담 후세인이 절실 히 원했던 수입이 월 5억 달러 이상 증발했다. 사담 후세인은 또 한 쿠웨이트가 국경 아래에서 시추하고 이라크 유전을 호시탐탐 노린다는 보도에 격분했다." 이라크는 역사적, 지리적으로 쿠웨이 트를 항상 견제했다. 이라크 바그다드Baghdad는 쿠웨이트를 자국의 영토로 간주하고 주변 지역을 흡수하여 36마일(약 58km)이었던 해 안선을 거의 10배가량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던 걸프만의 수니파 강대국은 유가 폭락과 재정난에 빠진 이라크에 대해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1990년 7월 마지막 회의에서 쿠웨이트와 UAE는 감산을 약속했지만, 즉시 이를 어겼다. 결국 사담 후세인은 1990년 8 월 2일 쿠웨이트를 침공해 세계 최초의 석유 전쟁을 시작했다."
쿠웨이트 원유는 시장에서 사라졌고 이라크 석유는 즉시 거래가 금지되었다. 두 생산국 모두 시장에서 갑자기 사라지면서 9월 가격 은 애초 17달러에서 36달러로 두 배로 뛰었다. 대규모 지정학적 혼 란에 예비 용량의 유용함이 다시 한번 분명해졌다. 사우디는 생산 을 늘렸고, 산유량은 7월 하루 540만 배럴에서 9월에는 하루 800 만 배럴로 증가했고, 1년 이상 그 수준을 유지했다. 이라크와 쿠웨 이트의 석유 손실에도 불구하고, OPEC의 총공급량은 1990년 11 월까지 침략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OPEC의 추가 공급량과 재고량은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공급 부족을 메운 것이다."
- 1980년대는 1970년대만큼 석유시장과 유가에도 격동적이고 변혁적이었다. 이 10년은 페르시아만의 주요 분쟁으로 시작되었 고 끝이 났다. 이 시기 유가 불안정은 상당히 거센 편이었고, 이는 석유시장의 변화를 가속했다. 1970년대, 새롭게 얻은 권력을 어 설프게 휘두르던 OPEC 회원국과 다소 엉성하던 OPEC의 연합은 1980년대 들어서며 원유 수출 관리가격 설정을 통제하여 시장 가 격에 영향을 주는 불쾌한 공급 카르텔로 변화했다.
그러나 공급 규제 기관으로서의 TRC의 역할을 복제하여 초창기 성공을 거두었던 OPEC의 미래는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 1985년과 1986년, 사우디의 스윙프로듀서 역할에 의존하며 가격 붕괴를 촉발했고, OPEC은 외부의 공급 감소와 수요 증가라는 호재로 상대적 가격 안정의 시대를 누릴 수 있었다. 걸프전은 OPEC 내 사우디의 우위를 더욱 공고히 다졌다. 그러나 1980년대 OPEC 의 시대가 생산과 소비국이 염원하던 유가 안정의 목표를 달성 하기 위해서는 사우디의 리더십과 행운이 전부 필요하다는 사실만 부각시켰다.
- 자카르타의 유령
1996년과 1997년의 예상치 못한 유가의 상승은 베네수엘라와 다른 OPEC 회원국들 사이의 충돌을 무마시켰다. 그러나 1997년 말 아시아에 금융 위기가 강타하였고 그로 인하여 석유 수요는 갑 자기 타격을 입게 되어 OPEC과 다른 산유국들은 다시 위기 대응 에 나섰다. 아시아 금융 위기는 앞서 언급한 강력한 성장 때문으로, 부동산 거품으로 전환된 대규모 자본 유입을 끌어들였다. 1997년 7월 태국 통화(바트)가 붕괴되면서 다른 아시아 통화와 은행이 연쇄적으로 쓰러졌고, 연말까지 광범위한 경기 침체와 파산이 이어졌다." 그러나 OPEC이 1997년 11월, 자카르타에서 회의를 준비 하며 회원국들은 유가 급등보다 아시아의 위기에 집중하였다. 11 월 27일, OPEC 회원국 대표들은 원유의 수요량이 가격을 안정시 킬 만큼 충분하다고 확신하며 하루 산유량 250만 배럴 또는 생산 할당량 10% 인상을 승인했다." 그러고 나서 OPEC은 곧 당시의 결정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수요 둔화와 공급 증가의 불일치가 1998년 초, 소비국의 석유재고를 빠르게 증가시켰다. 몇 년 전 발표되었던 국제에너지기구 의 보고서 이후, 1998년 2/4분기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이 수요량을 비정상적으로 크게 웃돌 것이란 예상이 관측되며 유가는 폭락했 다. 1999년 초까지 일부 등급의 원유 가격은 배럴당 8달러까지 떨 어졌다. 1999년 3월 《이코노미스트》는 OPEC 회원국들이 자신들 의 실수를 재빨리 깨달았다고 보도하며, 가격을 안정시킬 만큼의 수요량을 충분히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했고, 할당량을 느슨하게 잡는 우를 범한 '자카르타의 유령'에 시달리게 되리라 자신했다.
- 1970년대를 살펴보면 유가는 공급량 고갈까지는 아니더라 도 석유시장에 긴축이 온다는 인식 때문에 급등한 측면이 있었다. 실제 혼란이 적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유독 이런 현상이 짙었 다. 이란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공급이 줄어들었을 때도 OPEC의 미사용 비축량이 상당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물리적 긴 축이 실제 유가 급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 러나 2005년 이후, 석유시장은 구조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었다는 게 분명했다. 빠른 상승세와 불안정함의 지속, 그리고 생산 위기와 위험이 발생할 때 유가는 급등한다.
- 세계적 관점으로 볼 때, 지구에 매장된 석유 자원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아직도 부족하다. 세계 매장량에 대한 정확하지 않은 데 이터로 인해 허버트는 2000년에 다다르면 지구의 최대 공급량은 하루 약 3,400만 배럴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오인했다. 그리고 실제 2014년, 석유 산유량은 허버트의 예상보다 두 배나 많았다."
옛날 사람들은 저장소에서 채유를 중단해야만 얼마나 많은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즉, 석유산업은 과거의 빈번했던 피크 예측에 번번이 반박하며 산유량을 늘리는 동시에 석유 매장량도 늘려왔다. 1980년에 세계 비축량은 28년치 산유량과 맞먹었다. 현재 확인된 매장량은 약 1조 7000억 배럴 로 추정되며, 이는 58년간의 산유량과 맞먹는다. 2014년 매장량은 향후 58년간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기술의 발전과 새 로운 유전 발견이 매장량 증가에 기여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만 한다." 국제에너지기구는 기술적으로 회복 가능한 자원(즉, 당장 채유를 하지는 않아도 존재하는 자원)이 현재 지구 지하에 6조 배럴 정 도 묻혀 있다고 추정한다." 기술적으로 회복 가능한 자원은 기존 의 기술로 지금 당장은 채유할 수 없으나 미래에 채유 가능한 자원 이란 의미로, 석유시장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변동하는 원유 의 가격과 기술의 변화, 석유 탐험가와 채굴업자의 집념을 절대 과 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질학자들과 석유 공급 전문가들은 땅속의 새로운 원유를 찾아서 개발할 가능성에 관하여 금세기 중반까지는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석유가 있다는 것에 일치 된 견해를 보였다.
- 새로운 시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세계 석유시장에서 유가 안정을 목표 로 생산을 기꺼이 규제할 수 있는 스윙프로듀서가 없다는 것이 분 명해지면서 엄청난 전환이 일어났다. 사우디는 2008년 가격 폭등 을 막지 못했고 2014년 가격 폭락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이 두 번 의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어떤 스윙프로듀서도 가격 안정을 위해 생산을 조정할 수 없고, 발 벗고 나설 수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깨달았다.
- 실제로 석유시장에는 1986년 이후 진정한 스윙프로듀서가 부재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눈에 띄지 않았다. OPEC은 일시 적인 비상사태와 가격 붕괴에 대응했으며 만성적인 공급 과잉은 발생하지 않았다. 사우디와 OPEC은 1998년부터 1999년까지의 가격 붕괴 이후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목표 내에서 가격을 안정시 키고 산유량을 조절함으로써 세계적인 원유 수요와 공급의 변화를 예상하고자 하였다. 1980년대 초반 사우디가 유가를 지탱하기 위 해 공급량을 대폭 줄인 것과 비교하면, 미미하지만 2008년 이전의 사소한 조치들로 미루어 OPEC, 즉 사우디가 석유시장을 책임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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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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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추락

경제 2023. 1. 16. 20:20

- 화폐가 발명된 이래 다른 무엇보다도 화폐가 '가치의 척도'라 는 사실을 너무 많은 지도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화폐가 기능을 다 하고 시장이 작동하려면, 화폐의 가치가 안정되어야 한다. 4,000년에 걸친 화폐의 역사는 대개 화폐에 변화를 주어 그 가치를 낮춤으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정부의 반 복된 패턴을 보여준다. 그런 조치의 영향이 심각했던 나머지 차 기 정부는 절대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만, 어떻게든 그들은 늘 반복한다.
위대한 물리학자 뉴턴은 안정적인 화폐를, 추앙받는 자신의 이론인 만유인력의 법칙만큼 근본적인 개념으로 이해한 사람 중 하나였다.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와의 인맥을 동원해 영국의 왕 립 조폐국 국장이 되었던 뉴턴은 1690년대에 조폐 시스템을 표준화하고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는 등 화폐 제도를 개혁했다. 이 후 1717년, 뉴턴은 영국 파운드화의 금 가치를 3파운드 17실링 10.5 펜스(또는 3.89파운드)로 결정했다. 이 비율은 200년이 넘도 록 유지되었다.
영국은 금 기반의 화폐를 고수한 덕에 국가의 부를 늘릴 기반 을 형성했으며 국제 금융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었다. 18세기 말 에 접어들어서는 산업 혁명의 발상지가 되었다. 신뢰할 만한 파 운드화 덕분에 작은 섬나라 영국은 2선 국가에서 세계 산업 패권국으로 부상했다.
뉴턴이 파운드를 금 가격에 고정하고 70년 이상이 지난 후,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 exander Hamilton이 영국의 사례를 모방해 달러를 금과 은에 고정함으로써 신생 미국의 금 융 시스템을 구축했다. 신생 공화국을 세계 경제 선도국의 반열 에 올려놓은 역사적 호황에서 안정된 달러가 핵심적인 요인이 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일본뿐만 아니라 여러 유럽 국가들이 영국과 미국을 따라 금 기반의 화폐를 채택했다. 고전적 금 본위 제의 시대에는 여러 측면에서 지금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고, 팔고, 혁신하는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반면에 지금의 정치권과 경제계는 약간의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통화 팽창monetary expansion'이 경제를 자극하기 위해 필요하 다는 개념을 고수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태도로 인해 통화 가치가 계속 하락했다. 역사가 (그리고 이 책이 주는 교훈은 분명 하다. 돈의 가치를 무너트려서 부를 일군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는 사실이다.
- 그런데 인플레이션의 가장 파괴적인 효과는 사회적 신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돈은 결국 상호 합의된 가치의 단위를 제공하여 낯선 사람들 간에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발명한 것이 다. 달리 말하면, 돈은 신뢰를 촉진하는 수단이다. 또한 시장은 곧 사람이다. 그래서 돈이 더는 신뢰할 수 있는 가치의 단위가 아 닐 때, 거래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도 결국에 끊어진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는 국가들은 결국 심각한 수준 의 범죄와 부패, 사회 불안을 겪게 된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지 켜봤듯이, 결말은 늘 권력자들과 독재자들에게 비극적인 상황으 로 돌아간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 서서히 침식하는 달러
브레턴우즈 금본위제가 막을 내린 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 진 것이 있다. 달러를 비롯한 모든 화폐가 불태환 화폐 flat money로 전환되어 변동환율제의 적용을 받는 국제 통화 질서가 구축된 일이다. 그래서 통화의 가치가 더는 고정되지 않으며 통화 거래자들의 갑작스러운 결정이나 중앙은행의 정책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이 혼돈의 시스템이 자리 잡은 지 50년 남짓 되었다. 그렇지 만 이 시스템은 문제시된 적이 거의 없으며 오늘날 일반적인 기 준으로 여겨진다. 너무 어렸던 나머지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통화 가치의 변동이 초래한 파괴적 결과들을 인식하지 못한다. 1970년대의 극심한 인플레이션, 이어서 1980년대 중반 시작된 점진적이고 낮았던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그 대표적인 사 례로 꼽을 수 있다. 공식적인 생계비 측정 지표인 소비자물가지 수Consumer Price Index, 이하 CPI를 바탕으로 미국 노동통계국이 전망 한 바에 따르면, 1970년부터 달러의 구매력이 86% 감소했다.
- 그런데도 비평가들은 특정한 비용(특히 건강 보험 비용)이 측 정되지 않은 지수를 지적하며 인플레이션의 영향력이 축소되었 다고 평가했다. 달러 가치의 하락세는 전통적인 통화 가치의 척 도인 금의 가격을 보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진다. 1970년에만 해 도금 1온스의 가격이 35달러였다. 하지만 지금은 1,800달러 정 도를 줘야 금 1온스를 살 수 있다(달러 가치가 98% 하락했다는 의 미다).
석유도 인플레이션 측정 지표 중 하나다. 1960년대에 석유가 격은 배럴당 3달러였으며, 석유회사들은 좋은 수익을 올렸다. 2021년 중반 석유 가격은 배럴당 75달러였으며, 석유회사들은 간신히 버텼다(2019년, 많은 석유회사가 채무불이행 위험에 놓였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1965년 당시 석유의 가치가 25배는 더 높았다는 것을 분명히 가리킨다. 적어도 최근 인플레 이션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자동차 생산업체들이 기름 잡아먹는 대형 고급 차량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로 석유 가격이 낮게 유지 되었다. 석유 가격의 상승은 달러의 가치가 60년간 하락한 사실 을 보여준다.
- 두 가지 지표가 더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코카콜라와 맥도날 드 빅맥이다. 1970년 당시 12온스짜리 코카콜라 1캔의 가격이 1센트였다. 빅맥 하나는 65센트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50년 후 햄버거의 가격은 80배 정도(약 4달러 95센트) 뛰었다. 자판기에서 1달러로 탄산음료를 살 수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분명한 사 실은 제품 자체의 변화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가격이 엄 청나게 올랐을까? 축소되는 달러에 그 이유가 있다.
- 화폐 착각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왜곡된 가격을 계속 축소되는 달러(인플레이션의 결과) 로 이해하지 않고 현실 세계의 가치가 반영된 것으로 잘못 해석 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에 따라 우리는 사실과 다른데도 화폐의 가치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화폐 착각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돈이 그 자체로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달러 는 통화 시장 currency marker에서 하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만 일상생활에서 1달러짜리 지폐는 여전히 4쿼터 quarter나 10다임 dime 또는 20 니켈 nickel의 가치가 있다
- 돈이 풀려도 수요가 충분하면 인플레이션은 없다
수요가 충분히 있을 때, 시중에 풀리는 화폐의 양이 대폭 증가 한다. 1775년에서 1900년까지 미국의 본원 통화는 약 163배나 증가했다. 그래도 달러의 가치(금에 대비한 가치)는 거의 변동하 지 않았다. 그렇다. 돈의 양이 163배나 증가했으나, 달러의 가치 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답은 거듭 말하지만 수요다. 1800년대에 미국은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겪었다. 호황을 누리던 경제에서는 돈에 대한 왕성한 욕구가 있었다. 미국의 초대 재무 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안정된 통화 기반의 금융 경제체제를 확립하여 신생 독립국인 미국을 위협한 전쟁 시기의 하이퍼인플 레이션을 소멸시켰다. 그렇게 한때 어려움을 겪었던 공화국은 투자 자본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곳으로 바뀌었다. 19세기 말 미국은 세계를 주도하는 산업 강국이 되었다.
오늘날 미국 달러는 주요한 국제 통화로 자리매김했다. 현존 하는 전체 미국 달러 지폐 중 절반 이상이 미국 밖에서 유통되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전 세계에서 달러가 자국 통화보다 더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달러에 대한 수요가 있는 것이다.
- 통화가 폭발적으로 공급되어도 그 가치가 유지될 수 있듯이, 통화 공급이 증가하지 않는데 그 가치가 하락하기도 한다. 1933년 미국에서 바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 당시에 화폐를 무분 별하게 찍어내지 않았는데도 달러의 가치가 41%나 감소했다. 왜 그랬을까? 프랭클린 루스벨트 Franklin Roosevelt가 대공황에 대한 타개책으로 달러의 가치를 평가절하했던 것이 그 배경이다.
유사한 사례로 1990년대 말 '돈 찍어내기'로 인해 태국 밧과 러시아 루블의 몰락이 촉진되지는 않았다. 태국과 러시아 정부 는 통화 가치를 떨어트리려 애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통화의 관리 부실('신뢰 상실' 또는 '자신감 상실'로 알려진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통화를 관리할 줄 아는 정부는 이미 현실로 다가온 재앙에서 신뢰가 흔들리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에 발생한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홍콩 달러가 다른 아시아 통화 들까지 끌어내리던 투기 세력의 압력에 굴복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홍콩 정부가 홍콩 달러에 대한 공격에 적절히 대처했기 때문이다. 홍콩 정부는 미국 달러에 연동된 안정된 통화를 계속 유지했다.
- 신뢰의 위기는 1970년대 대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리처드 닉슨은 임기 초기에 완만한 인플레이션에 직면 했다. 하지만 그가 1971년 8월 달러와 금의 연동을 끊어버리고 나서 달러의 가치가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만능의 달 러 almighty dollar는 긴 시간 미국과 세계 경제의 근간이었다. 하지만 닉슨 쇼크는 그러한 달러의 가치가 세계 통화 시장에서 표류하 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대통령이 TV에 출연해서 자신의 정책이 화폐를 늑대 떼 에게 던져주고 있는 꼴이라고 발표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신뢰 가 유지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신뢰의 상실은 금 가격이 급등 한 현상에 반영되었다. 1970년에서 1974년까지 금 1온스의 가치가 35달러에서 175달러까지 상승했다. 당시 경제전문가들이
이 현상에 충격을 받은 이유는 과도한 돈 찍어내기가 문제로 보 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본원 통화는 1971년 7%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10년 전인 1960년대에 달러 기준 통화 공급은 51%나 증가한 바 있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통화 공급은 수요에 반응하 여 확대되며, 1960년대는 경제가 호황을 누린 시기였다. 그래서 달러의 가치가 근본적으로 변동하지 않았다.
1970년대에 본원 통화의 공급이 더 늘어났지만, 그 증가세는 달러 가치의 붕괴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10년의 기간 동안 금 가격은 2,000% 이상 폭등했다. 게다가 구리, 밀, 석유 같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 다. 1973년에서 1974년까지 석유 가격이 4배나 폭등한 것이 욤 키푸르 Yom Kippur 전쟁 중에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에 대한 아랍 국가들의 보복이라고 했으나, 잘못 짚은 것이다. 현실은 아랍 석 유 생산자들이 석유 가격을 인상하여 달러 약세에 대응한 것이 다. 그렇게 대 인플레이션(10년간의 성장둔화와 물가 상승)이 시작 되었다.
- 12개 지역의 연방준비은행으로 구성된 연방준비제도는 미국 은행들의 현금이나 지급준비금을 보관하는 곳이다. 중앙은행 이 시중에 화폐를 공급하고자 할 때 '공개 시장 조작 open market operations'이라는 정책을 시행한다. 투자 은행 등의 금융기관으로 부터 유가증권, 주로 국채(재무부 채권)를 매입하는 정책도 공개 시장조작에 포함된다. 해당 기관들은 국채 매매를 허가받은 국 고채 전문 딜러들이다. 연방준비제도는 채권을 매입하기 위해 보통 디지털 방식으로 '허공에서 돈을 찍어낸다. 그 과정에서 근 본적으로 두 가지 효과가 발생한다. 먼저, 연방준비제도가 대출 이 가능한 은행들에 돈을 공급함으로써 통화 공급이 증가한다. 그동안에 엉클 샘(채권 발행자, 미 연방정부를 의인화한 별칭-옮긴 이)은 재원을 확보한다.
- 연방준비제도가 긴축하거나 통화 공급을 줄일 때는 채권을 은행에 매각하는 등 앞의 절차를 반대로 밟는다. 즉, 은행들이 채권을 매입한다. 그러면 그 돈이 연방준비제도로 되돌아간다(그리 고 사라진다).
오늘날의 중앙은행들은 표면상으로는 독립된 기관이다. 그들 은 더 큰 정부를 위해 재원을 확대하려는 정치인들의 정치적 압 박에서 자유로운 운영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저명한 경제학자 주디 셸턴 Judy Shelton이 <월스트 리트저널 Wall Street Journal>에서 이렇게 밝혔다. '국민들이 진 연방 부채의 25% 정도를 연방준비제도가 보유하고 있고 재무부가 이자를 지불해야 하니(또한 매주 재무부에 송금을 하는 연방준비제도 의 관행이 있으니)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이 융합된 게 분명하다.'
달리 말해, 워싱턴은 연방준비제도의 채권 매입과 화폐 발행 에서 금리가 제로인 '무이자 대출'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흐름에 의존한다. [게다가 사실상 채권에 대한 이자 지급액 전부(현재 연간 900억 달러가 넘는 금액)가 재무부로 다시 돌아간다.] 이렇게 연방준 비제도가 가능하게 만드는 대출로 극심한 인플레이션 사이클이 촉진되며, 이어서 정부의 규모가 확대되고 지출이 증가하고 부 채가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무이자 대출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더 많은 화폐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연방준비제 도에 대한 압박이 가중된다.
-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머지않아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약간만 올리면서 인위적으로 낮은 금리를 유지하려 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고, 이는 단지 미국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나라의 정 부들도 저렴한 대출을 찾고 있으며, 갈수록 중앙은행이 금리 인 상을 억제하고 낮출 것을 기대한다. 소위 독립적인 중앙은행들 이 그에 따르고 있다. 그들은 정부 자금을 효율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매입하고 있다. 즉, 과도하게 많은 화폐를 발행하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 인플레이션 없는 황금기
낮은 물가 상승률이 정말로 나쁘다면, 우리 역사에서 오늘날 대부분 잊힌 시기, 즉 19세기 고전적 금본위제 시대에 전례 없 는 경제 성장이 일어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이 남북전쟁 중에 금본위제를 중단한 일을 비롯한 개별적 예외 사 례에 더해 19세기 후반기에 미국은 물가가 실제로 하락하는 시 기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년의 호황을 누렸다.
알렉산더 해밀턴이 안정된 금 기반의 통화 체계를 수립한 사 실은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확실히 가치를 잃지 않는 화폐로 상 환받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 덕분에 대출과 투자가 촉진되었다. 미국은 해외 자금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곳이 되었고, 달러는 성장을 누리는 신생 벤처로 흘러들어 생산성과 혁신이 강화 되었으며, 그 결과 물가가 하락했다. 1870년에서 1890년까지 철 강 생산 비용이 6분의 1로 감소했다.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은 20배 높은 수치로 치솟았으며, 이렇게 저렴해진 철강이 성장하 는 도시에서 철도와 고층 건물의 자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1880년대에 미국은 연간 7,000마일(약 11,265km)에 이르는 철로 를 새로이 부설했다. 운송 비용은 급락했다.
더불어 철강은 850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1908년 출시된 포드 모델 T 같은 자동차의 재료로 대폭 투입되었다. 헨리 포드 Henry Ford가 조립 공정을 완성한 1925년 자동차 가격이 260달러 까지 떨어졌다. 1850년대에 주로 등불의 연료로 사용된 고래기름은 갤런당 약 1.75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다 1870년 대체 물질인 등유가 나오면서 고래기름의 가격은 갤런당 0.26달러로 떨어 졌다. 1911년에 등유 1갤런은 9.2센트에 이르렀다. 이런 유형의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미국은 1913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 라가 되었다.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따라 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그리고 결 국 일본까지 자국의 통화를 금에 고정했다. 이전의 모든 세기에 창출된 부를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가 1800년대에 창출되었다.
- 케인스의 주장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임금의 실제가치가 감소해 노동자 고용 비용이 줄어들어 고용이 촉진된다. 이 현상은 인플레이션 초기에 잠시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통화가 평가 절하되어 임금이 인상되는 듯 보여도 한편으로 생 계비도 증가한다. 그에 따라 노동자들은 형편이 나빠지고, 결국 경제가 어려움에 빠진다.
화폐 전문가인 스티브 한케는 이렇게 말했다. "평가 절하로 인 해 그만큼 성장이 일어났다면, 당신은 아프리카가 호황을 누리 고 남미가 세계를 주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원의원을 지냈 던론 폴Ron Paul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정말로 통 화를 늘려 부를 창출할 수 있다면, 왜 세계 어느 곳에나 가난이 존재하는가?"
- 인플레이션 불평등
인플레이션으로 슬며시 부과된 세금은 고정된 급여를 받는 직장인들, 예금자들, 연금을 받는 은퇴자들(법을 지키며 사는 사람 들)에게 형벌처럼 가해진다. 세금은 그들의 소득을 갉아먹을 뿐 아니라, 특히 그들에게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밀어올 린다. 스토니브룩 대학의 교수이자 사회과학자인 토드 피틴스키 Todd Pittinsky는 “물가는 대개 사치품보다는 기본 필수품과 관련해 서 더 상승하는데, 이는 경제학자들이 '인플레이션 불평등inflation inequality'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라고 지적했다. 
-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저소득층이 타격을 입는 한편, 전문지 식을 갖춘 개인들과 기업들, 특히 통화 가치가 변동되는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금융기업들이 뜻밖의 이익을 얻는다. 가난한 사 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유해지는 것이다. 저명한 경제 학자로 20여 권이 넘는 책을 펴낸 마크 스쿠젠Mark Skousen은 루트 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의 사상을 들어 가장 많은 혜택을 얻 는 사람들이 대개 연방준비제도가 창출한 돈을 가장 먼저 받는 다고 지적한다. 누가 이 범주에 속할까? 스쿠젠에 따르면, '대형 은행, 상업적 이해관계자들, 주식 투자자들, 월스트리트'가 그 수 혜자에 포함된다.
- 이 시대 최대 채무자는 미국 정부로, 2021년 초 전체 연방 부채가 약 29조 달러에 달했다. 인플레이션에 제로 금리의 무 이자 대출이 더해졌다는 것은 엉클 샘이 채권소유자들에게 지급 하는 수십억 달러를 절감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비용을 절감함 으로써 정부는 이미 비대해진 관료제 및 고삐 풀린 복지 정책 계 획에 투자를 늘릴 수 있게 된다.
정책을 확대한다는 것은 비용이 늘어나고 결국 대출이 늘어 나 화폐를 더 많이 발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악순환하는 인플레이션 사이클이다. 이와 관련하여 존스 홉킨스 대학의 정 치학자 조셉 조프Josef Joffe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혔다. "인플레 이션은 공공 부채를 서서히 녹이고 수문을 계속 열어두는 최상 의 방법이다. 불리한 점은 무엇일까? 평가 절하된 달러로 인해 대중이 더 가난해져서 정부에 더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 부족하지 않았던 '에너지 부족 현상'
1970년대 연료 위기는 화폐 착각의 파괴적 영향력을 보여주 는 교과서 같은 사례다. 닉슨 쇼크 이후 미국 달러가 평가절하되 었고, 그 때문에 전통적으로 통화의 평가 절하를 제일 먼저 인식 하는 원자재 시장의 품목들 가격이 일시에 올라갔다.
배럴당 3달러 정도를 오랫동안 유지했던 석유 가격은 1973년 부터 1975년까지 배럴당 12달러로 급등했다. 이로 인해 에너지 가 고갈되고 있다는 우려가 세계에 확산하였다. 공포감은 거의 공황에 가까웠다. <뉴스위크 NewsHeek>가 표지 기사로 '미국이 다 고갈되고 있다'라고 보도했을 정도다.
- 에너지 위기로 인해 사람들이 주유소 가스 펌프 앞에서 끝없 이 줄을 서게 된 것이 아랍의 석유 금수 조치 때문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그 현상은 화폐 착각에 불과했다. 경제학자 브라이언 도미트로빅은 가정된 부족 현상이 석유 위기가 아니라 통화의 위기였다고 설명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달러의 평가 절 하에 따른 직접적 결과였다.
도미트로빅은 미국이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나서 며칠 후 중 동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사무총장이 보내온 서신을 언급했 다. 외환 시장에서 유동적인 달러의 가치가 하락한다면 'OPEC 회원국들이 그에 맞춰 원유 공시가격을 조정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그는 경고했다. 도미트로빅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이 닉슨 쇼크 이후 건전하 고 안정적인 달러를 회복시켰다면 연료 위기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휘발유 1갤런의 가격이 50센트를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 정부 규제 확대는 곧 자유의 축소
인플레이션이 닥치면 머지않아 정부의 통제가 확대된다. 이는 지극히 일반적인 흐름인데, 먼저 중앙은행이 통화의 가치를 평 가 절하하면 물가가 치솟는다. 이어서 정부는 지출을 감소시켜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방법을 모색한다. 정부는 또한 물가 통제, 자본 통제, 세율 인상 등의 조치로 인플레이션에 대처한다. 시간 이 흐를수록 정부의 규모는 더 커지며 대개 통제를 강화한다. 사 람들은 자유를 잃고, 상황은 점점 심각해진다.
고대 로마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 황제는 절정에 달한 인플레이션을 막고자 900개의 상품과 130개 등급의 노동, 다수의 화물 운임까지 거의 모든 품목에 대한 가격 통제를 시행했다. 황제의 칙령을 어긴 사람들은 사형에 처해졌다.
1970년대 리처드 닉슨은 임금과 가격을 통제함으로써 인플레 이션에 대응했다. 지금의 미국은 과거의 인플레이션과 함께 그 처럼 통제되는 상황을 아직 겪지 못했다. 그럼에도 연방준비제 도의 통화 공급 확장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때, 어느 때 보다 사기업 및 시민들의 삶에 통제가 강화되는 것은 물론 정부 관료제의 규모가 더 커지고 비대해진다.
- 금융 위기의 여파로 연방준비제도가 실시한 대규모의 통화자극(양적 완화를 통한 통화 공급 확대)은 부자들과 경제 상위 1% 에 항의하는 '월가를 점거하라 Occupy Wall Street' 시위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다양한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고한 불가리아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독일의 통화 붕 괴에 뒤따른 사회적 불안감에 관해 글을 쓴 엘리아스 카네티 Elias Ganetti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특징적 반응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자신들의 부가 평가 절하되어 굴욕감에 빠진 군중은 타인을 평 가 절하하는 방법으로 앙갚음을 한다. 카네티는 이렇게 표현했 다. "돈의 가치가 인플레이션 기간 동안 점차 떨어졌듯이, 무언가 를 가치가 점점 떨어지도록 취급해야 한다."
-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사망하기 바로 직전 인터뷰에서 솔직 한 의견을 내놓았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폴 볼커 Paul Volcker 는 2%의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한 통화 정책의 위험을 경고했다. "일단 2%를 목표로 시작하면 사람들이 자, 어쩌면 3%까지 가게 해서 경제에 좀 더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글쎄, 그게 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4%까 지 가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인플레이션은 한번 시작 되면 스스로를 키운다."라고 말했다.
- 볼커의 예측은 2021년 말 적중했다. 인플레이션은 6%를 넘어 갔다. 미국은 바이마르 독일도 아니고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 와 사정이 같지도 않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낮은 수준의 인플레 이션이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달러의 구매력이 38%나 침식된 것은 물론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주택 거품이 세계 금융 위기로 붕괴했다. 게다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침체가 이어졌으며 수십 년간 보지 못했던 폭력적인 사회 불안 이야기되었다.
- 긴축 정책은 무엇이 문제일까?
다른 모든 정책으로 효과를 못 보듯이, 경기 침체를 유발하여 물가를 억제하는 취지의 긴축 정책은 핵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근본적으로 과도한 소비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IMF가 아시아와 러시아에 개 입한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엄격한 긴축 조치는 경기 침체를 유 발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보 통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며 대개 위기를 증폭시킨다. 세금이 오르면 경제 활동이 위축되며, 초고금리로는 투자자들을 끌어들 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자율이 아무리 높아도 신뢰할 수 없는 통화를 선호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기는커녕 무역이 침체된다. 돈에 대한 수요가 바닥을 치고 공급 과잉이 영구화된다. 인플레이션이 계속 맹위를 떨친다.
- 만약 연방준비제도가 어느 날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연방기 금금리 Fed funds rate를 25%로 올리겠다고 발표하면 무슨 일이 일어 날지 상상해 보자. 아무도 대출받을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투 자도 갑자기 멈춘다. 주식 시장에서는 순식간에 대참사가 벌어 진다. 거의 확실히 달러 가치가 하락할 것이다.
그렇다. 긴축 정책은 침체를 유발한다. 이 전략은 질병을 치료 하기 위해 피를 뽑아내던 옛날의 의료행위와 얼핏 비슷하다. 즉, 병은 '치유되지만, 환자는 죽는다.
- 어떻게 해야 인플레이션을 끝낼까? 다행인 점은 국가가 세금 을 인상하거나 초고금리를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긋지긋한 경기 침체를 유발할 필요도 없다(혹은 어업을 제한할 필 요도 없다). 인플레이션을 잡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통화의 가 치를 안정시키면 그만이다.
어떻게 이를 실현할까? 첫 단계로, 통화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할 때 정부가 통화 지원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 언해야 한다. 즉, 통화의 가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그렇게 하는 방법도 매우 간단한데, 본원 통화를 축소 하는 것이다(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잉될 때 통화가 가치를 잃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중앙은행이 위기에 대응한다는 사실을 사람 들이 인식할 때, 통화에 대한 수요와 그로 인한 통화의 가치가 즉 시 증가할 것이다. 투자자들은 건전한 돈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전망에 안도하게 되어 신뢰가 상승한다. 통화가 반등하고, 경제 가 회복된다. 중앙은행은 곧 통화 공급을 확대하여 급증하는 통 화 수요를 충족함으로써 통화 가치가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본원통화의 공급을 줄이는 2가지 기본적인 방법이 있다. 첫번째 방법은 정부가 외환 시장에서 자국 통화를 매수하는 식으로 개입하는 방법이다. 이런 전략이 대체로 실패한다고 앞서 말 하지 않았는가? 국가가 전략을 적절한 방법으로 수행하지 않는 게 실패의 이유다. 거래로 인해 통화 공급에 순감소가 일어난다 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전략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중앙은행 은 획득한 통화를 자국 내 경제에 재투자하는 너무도 흔한 실수, 불태화 과정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외환 거래에 사용되는 모 든 달러나 유로에 대해서는 동일한 양만큼 통화 공급이 줄어들 어야 한다. 두 번째 방법은 자산, 일반적으로 국채를 자국 통화와 교환하여 판매하는 것이다(다른 말로 공개 시장 조작이라고 한다). 그러면 통화를 지불받게 되고, 그에 따라 통화 공급이 줄어든다. 아래에서 확인하겠지만, 건전한 통화로 되돌아가는 마지막 방법은 시장 지향 정책 pro-market policies을 수립하는 것이다. 돈에 대 한 욕구와 함께 팽창하는 경제는 대개 통화 수요의 증가를 의미 한다. 이런 경향으로 통화 가치가 부양된다. 그렇게 되면 중앙은 행이 불안정한 경제를 '이지 머니'로 자극해야 한다는 압박이 줄어든다.
- 러시아: 예상 밖의 성공 신화
1990년대 말 러시아에 재앙을 부른 IMF의 프로그램은 푸틴 이 집권하는 계기가 되었다. 푸틴은 러시아를 물물교환 경제로 추락시킨 지독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끝내겠다는 약속과 함께 정권을 시작했다. 푸틴이 제시한 7% 성장률이라는 낙관적인 비 전은 지난 20년을 혼란으로 보낸 국가에서 쉽게 받아들여졌다. 푸틴은 1999년 8월 총리로 임명된 직후 거의 즉시 약속을 지 켰다. 많은 종류의 세금이 감면되거나 폐지되었다. 2000년에 그 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세율로 13%의 평소득세를 적용했다. 균일세는 인플레이션을 방어하는 수단으로서 추가적인 이점이 있었다. 당시에는 과세 등급이 없었기 때문에 브래킷 크리프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업들이 호황에 대비하면서 루블화에 대한 수요도 자연히 늘어났다. 그에 따라 루블화의 대 달러 환율이 달 러당 29 루블 정도로 안정되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러시아 경제는 2000년 10% 성장을 기록했다. 그 해는 1960년대 이후 처음으로 고성장을 한 해였다. 13%의 단일세율 과세 제도를 새로이 도입한 덕분에 소득세 수 입이 1년간 46%나 증가했다. 세금을 회피할 이유가 더는 존재하 지 않았다. 부과금이 줄어들고 통화가 안정되면서 1950년대 독 일의 경제 기적을 보듯 러시아가 부활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처럼 놀라운 경제적 확장도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중 단되었다. 그에 뒤따른 경기 침체로 세금이 급격히 증가했고 루블화가 폭락했다. 이에 러시아 중앙은행이 30%가 넘는 초고금 리 긴축 조치로 대응했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중 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가라앉히지 못한 것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네이선 루이스는 러시아의 온라인 신문 '프라우다'에 기 고한 글에서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줄이기 위해 '태화 외환시 장 개입으로 루블화를 안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처방은 2009년 2월에 수용되어 즉각적인 성공으로 이어졌다. 루블화의 가치는 급등했다. 금리는 몇 달 후 10% 미만으로 확 떨어졌다. 러시아의 위기는 끝을 맺었다.
- 인플레이션을 없애는 완벽한 방법
두말할 것도 없이 달러를 안정시키는 최고의 방법은 대부분 역사에서 효과가 있었던 체제, 미국 경제의 번영을 이끈 토대가 되었던 금본위제로 복귀하는 것이다.
금본위제 체제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면에서 오늘날에도 아직 재현되지 않은 역사적인 부의 창 출 시대, 19세기 후반 금본위제 시대에 인플레이션이 전혀 발생 하지 않았던 것을 보라.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없다고 반드시 물가 변동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가격은 공급과 수요, 생산성이 변화함에 따라 계속 되풀이하여 오르고 내린다. 그런데도 금에 고정된 달러로 인해 모든 수준의 인플레이션에서 발생하는 '가 격 왜곡'이 사라진다. 그로 인해 가격에 실제 시장 가치가 반영된 다. 달리 말해, 금으로 인해 화폐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가치 의 척도이자 거래 촉진 수단으로써 그 기능을 다하게 된 것이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실질적인 거래 도구를 가지게 되었 으며 상업이 번성했다.
- 금본위제 체제에서 인플레이션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71년 이래 명목 화폐 시대에 심각한 금융 위기의 발생 빈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런데 안정된 통화 가 원인이 되어 경제 위기가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건전한 통화와 경제 번영 사이의 연관성은 재차 확인됐다. 이 는 역사적인 부의 창출 시대인 19세기뿐만 아니라 근면했던 전 후 1950년대와 1960년대, 세계가 브레턴우즈 체제에 있었던 시 기가 대표적 사례다. 이와 관련하여 경제학자 주디 셸턴의 말에 서 다음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최대의 동반 성장을 했어 요.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존재 한 게 아니에요. 성장은 동반되었어요. 모든 사람이 올라가고 있 었어요. (...) 전 세계가 이런 환상적인 경제적 성과 지표를 가졌 어요. 환상적인 성장, 생산적인 성장, 동반 성장이 있었던 시대, 그리고 세계가 고정 환율 제도를 가졌던 시대, 이 두 시대가 완벽 히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모른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에요."
- 인플레이션은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시장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보통 일시적으로 발생한다. 다른 하나는 정부나 중앙은행이 통화를 변질 시킬 때 발생해서 훨씬 더 위험하다.
정부의 관리 부실(예를 들어,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중단)로 인 한 비화폐적 인플레이션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도 그 효과는 일반적으로 특정한 경제 부문에 한정된다. 예를 들어 공급망 문 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가격 변동성이 완화된다. 반면에 정부 와 중앙은행이 통화 가치를 변질시킬 때 화폐적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그 피해는 매우 광범위하게 퍼진다. 이 두 번째 유형의 인플레이션은 부를 잠식하고 시장을 왜곡하며 사회적 행동의 질을 저하시킨다. 2% 수준의 인플레이션이든 매우 높은 수준의 인 플레이션이든 마찬가지다. 화폐적 인플레이션은 로마의 몰락부 터 2006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붕괴까지 '인간이 초래한' 재앙으로 수세기 동안 경제와 사회가 파괴되는 결과로 이어졌 다. 경제전문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화폐 착각(자국의 통화가 안 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자연적 경향)으로 인해 두 유형의 인플레이션을 혼동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은 실질적 인 수요와 공급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 는 연방준비제도가 너무 많이 발행한 '이지 머니'로 인해 왜곡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착각이 원인이 되어 낮은 수준의 화폐적 인 플레이션이라도 부자연스러운 활동을 초래하고 인위적으로 시 장을 과열시킨다. 결국에 가서 소위 '거품'이 붕괴한다.
- 물가 상승은 화폐적 인플레이션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멕시코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상상해 보자. 마지막으로 멕시코를 방문했던 날 이후 가격이 급등한 기념품은 그 가치가 갑자기 높아진 게 아니다. 30년 전 1달러당 3페소였던 환율이 지금 1달 러당 20페소가 된 것이 그 이유다. 문제의 원인은 페소 가치의 하락이었다. 마찬가지로 내재가치가 변하지 않는 금에 비교해 달러의 가치가 하락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 대 책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는 이유는 화폐의 가치가 하락한 실제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물가를 통제하려는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 미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도 번영으로 가는 길을 부풀릴 수 없다.
돌아가는 길은 없다. 의도적으로 '약간의 인플레이션'을 유발 하는 중앙은행의 정책으로는 부를 창출할 수 없다. 폭발적인 활 동이 생길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결국 가라앉는다. 인플레이션으로 왜곡된 물가는 부를 파괴하고 시장을 변질시킨다. 투자는 성장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벤처가 아니라 부를 유지하고 세금을 회피하는 쪽으로 엉뚱하게 진행된다. 경기는 둔화한다. 장기적으로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부가 잠식된다. 달러가 금에 고정되었던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성장률을 재현한다면, 1인당 소득이 72% 높아질 것이다. 그에 따라 지급받는 달러의 소비력은 과거보다 더 높아질 것이다. 경제는 50% 이상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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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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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버블

경제 2023. 1. 10. 19:07

- 버블경제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유동화', '외부', '프런티어 개척'다. 이것이 유럽에서 탄생한 것은 1492년,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다.
다시 말해 순환 경제에 외부로부터 무언가가 주입되어야 한다. 그 러지 않고서는 순환 속에서의 인구 증가 말고는 경제성장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새로운 부가 유입되지 않고서는 인구 재생산 말고 는 전년보다 증가한 수요가 올해 생겨나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대항해시대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부의 유입이 시작되었다. 외부에 잉여 생산물을 팔고, 외부로부터 새로운 물건을 들여왔다. 이때 식민 지(그러한 지역)나 주민으로부터 수탈하고, 수탈한 부를 지출하면서 비로소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지출은 곧 왕과 귀족들의 낭비였다. 이는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가 《사치와 자본주의》에서 말 한 자본주의의 탄생 이론인데, 나는 다른 시대에도 일반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궁정에서 파티를 열고 여성들을 치장하게 하며, 선물을 보내 관심을 끌고자 하는 연애를 통한 낭비가 없었다면 자본주의의 시작은 없었을 것이다. 그때까지 쌓아온 부를 귀족들이 단숨에 낭비한 것이다. 이 현 상이 도시의 하층민들에게도 퍼지면서 경제성장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 배경에는 생산력의 상승,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분업의 발 전을 통한 생산력의 비약적인 상승이 있다. 그러나 생산력이 상승해도 돈을 쓸 사람이 없으면 수요는 커지지 않는다. 물건 가격이 내려가면 그만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데서 빠져나와 경제성장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시 스템 외부에서 새로운 수요가 유입되어야 한다. 그것이 외부의 '발견', 즉 신대륙의 등장이자 새로운 물건의 등장이자 그것을 사기 위한 축 적된 부의 방출이었다.
- 도시는 버블의 상징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버블이다. 도 시로 집중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를 위해서다. 도시 소비문화의 탄생. 똑같은 반복이 아닌 새로운 소비, 새로운 수요가 등장한 것이다. 일찍이 정통 경제학에서는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 애덤 스미스나 데 이비드 리카도 시대까지는 재화가 사치품과 필수품으로 나뉘어, 농민 은 필수품만 소비하고 지주 또는 귀족들이 필수품과 사치품을 소비한 다고 보았다. 그리고 중상주의와 자유무역의 의견이 대립할 때도 사치 품과 필수품의 구별은 중요했는데, 자유무역이 귀족과 지주에게만 이 익을 가져다줄 것인지 농민을 비롯한 국민 전체가 혜택을 받을 수 있 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 서브프라임모기지 버블은, 자금이 남아 운용난에 빠진 기관투자가 가 이율이 높은 투자처, 즉 리스크 있는 곳으로 몰린 결과, 리스자산 과 안전자산의 가격이 비슷해지는 리스크 테이크버블로 인해 생겨났 다. 이 리스크 테이크 버블이 붕괴한 것이 바로 리먼 사태다. 리먼 사 태라는 버블 붕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중앙은행이 힘으로 밀어 붙여 리스크자산을 사들이는 미봉책을 썼기 때문에 양적 완화 버블이 일어나 전 세계 국채에 버블이 생겼다. 이것이 국채 버블이다.
그러나 이 국채 버블도 한계에 다다라 2년 후에는 그리스에서 재정 위기가 일어났다. 버블이 생긴 이유는 재정 리스크가 있는 나라의 국 채와 재정이 건전하고 튼튼한 독일 같은 나라의 국채를 똑같이 취급하여 투자가들이 마구잡이로 사들이면서 이율 격차가 급격히 줄어들 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원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리스 같은 나라에서는 국채 인수자가 늘어나서, 금융위기 후에 따르는 힘겨운 재 정건전화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 으로는 경제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으므로 곧바로 재정과 경제가 함께 위기에 봉착했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가 위기에 빠질 차례라는 소문 이 돌았다. 이렇게 유럽 위기가 일어나며 EU의 존재 의의가 다시금 화 두에 올랐다. 결국 IMF, EBRD, ECB 유럽중앙은행가 협력하여 위기에 빠 진 국가의 재정과 은행을 지원함으로써 EU를 지켰다. 위기에 빠진 나 라의 국채를 사들여 그 나라의 재정과 은행을 지탱한 것이다. 요컨대 양적 완화를 확대하여 버블 붕괴의 위기를 '언 발에 오줌 누기'식으로 또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EU에서 탈퇴하려는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결국 영국이 EU를 탈퇴했다.
한편 미국은 실물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적극적으로 매입하여 가격 하락을 막고, 금융시장의 기능을 회복하여 금융기관을 구제한다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대규모 양적 완화를 단행 했다. 하지만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에 다시 버블이 생기는 결말에 이 르렀다. 유럽도 위기에 빠졌지만 결국 실질적인 처리를 미루고 ECB 가 리스크를 떠안는 형태로 위기를 모면하여 유럽의 부동산과 주식에 도 버블이 형성되었다.
그 결과, 미국 주식시장은 2009년부터 10년 이상 주식 상승이 이어 지면서, 장기에 걸친 주식 버블이 형성되었다. 부동산시장도 서브프라 임모기지로 버블이 만들어졌는데, 버블이 붕괴하면서 정신을 차리기 는커녕 도리어 더 큰 부동산 버블을 만들어냈다.
버블이 다시 생겨난 이유는 단순하다. 금리가 비정상적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 필연적으로 붕괴할 금융버블이 붕괴 직전에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시장 참여자가 붕괴를 미루기 바랐고, 그것을 실행할 자원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가들 가운데 버블 붕괴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정부가 경제·사회를 지키기 위해 금융시스템을 구제 한다는 프레임에 편승하여 자산시장의 연명을 꾀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시나리오였다.
정부는 눈앞의 위기를 구제할 것인지, 다음 버블을 만들지도 모를 리스크를 감수할 것인지의 트레이드오프 trade-off 상황에 직면했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가들은 눈앞의 위기 구제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블 투자가만 무너뜨리고 버블과 상관없는 국민을 구제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겠지만, 일체화되어 있는 경제 때문에 불가능했다. 따라서 리먼브라더스를 한 번 망하게 한 적이 있는 정부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중앙은행과 함께 온 힘을 다해 눈앞의 위기구제를 택했다. 그를 위해서는 금융버블을 다시 한번 만드는 것 말고 는 단기적으로 확실하게 회복할 방법이 없었다. 버블 붕괴 위기 이후 는 항상 이런 식이다.
이 패턴은 전혀 새로울 것 없이 적어도 18세기부터 반복되기 시작 했다. 남해 버블이나 미시시피 버블' 등, 역사상 버블 붕괴 구제 사례 는 셀 수 없을 정도다.
리먼 사태에서 회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버블은 언제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저 계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는 버블 생성 대책은 금융정책에 그치지 않았 다. 코로나 위기가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직접적으로 국민 생활에 도 다가간다는 데서 재정 투입의 필요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정 투입은 금융 이상으로 전대미문, 인류사상 최대였다. 그리고 유럽 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주요 선진국에서 이루어졌으므로, 국민 1 인당 생산보조를 위한 지출이 커지면서 총액이 크게 늘어났다. 그 결 과, 대규모 금융완화로 인해 자금이 리스크자산 시장에 넘쳐날 뿐만 아니라 재정 대책으로 인한 수요(그리고 현금)가 실물경제에 넘쳐나게 되었다. 자산시장이 버블이 됨과 동시에 실물경제도 버블이 된 것이다. 실물경제는 자산시장과는 독립적으로 버블을 이루었지만, 두 버블 은 동시에 생겨났다. 이것이 코로나 위기 버블의 가장 큰 특징이다. 금 융시장이 버블이 되고 이것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일반적인 단기 버블로, 지금까지의 21세기형 버블은 모두 이런 형태였다.
버블 붕괴를 구제하면서 생기는 버블버블 애프터 버블)은 대부분의 경 우, 금융시장에서만 일어난다. 단기 버블과 버블 붕괴가 금융시장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코로나 위기 구제 버블은 실물경제에 서도 동시에 독립적으로 일어났다. 왜냐하면 재정 투입 규모가 전대미 문, 인류사상 최대였기 때문이다.
코로나 감염 확대 방지책으로 개인의 외출을 금지하고 많은 사업자 에게 휴업을 강제함으로써 갑자기 수요가 증발했다. 수요가 급감한 정 도로 보면 분명 전대미문인 일이었기에 비명을 지르는 기업과 개인사 업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재정 투입으로 현금을 뿌릴 필요가 있었다. 왜 이것이 버블을 만든 걸까.
수요가 급감한 속도는 전대미문이었지만 수요 쇼크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전체적으로 보면 과거의 여러 불황에 비해 수요 감소량이 적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위기는 코로나가 진정되면 함께 진정될 것이고, 그러면 자연 스레 수요가 생겨날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 소비와 투자를 억제한 반 동으로 일시적으로 급증할 것이다. 그런데 인류사상 최대의 재정 투입 이 이루어졌다. 실물경제에서도 돈이 흘러넘치게 된 것이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수요가 소실된 이유는 소득이 줄어서가 아니라 감염 확대 방지를 위해 경제활동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소득이 줄지도 않았는데, 돈을 뿌려댄 것이다. 그래서 돈이 넘쳐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휴업 등으로 실직한 사람, 소득이 없어진 사람뿐만 아니 라 국민 모두에게 10만 엔(약 104만 원)을 뿌렸다. 게다가 심사도 제대 로 하지 않고 매출이 줄어든 기업, 개인 사업주에게도 돈을 뿌려댔다. 정말 어려운 곳에도, 휴면 상태에 가깝거나 혹은 활발하지 않았던 사 업자에게도 뿌렸다. 나아가 휴업이 거리 두기 권고 차원이었으므로 이 를 강제하기 위해 휴업 협력금을 뿌렸다.
그래서 돈이 넘쳐나게 된 것이다. 소득이 줄지 않은 직장인에게도,
연금이 줄어들지 않은 고령자에게도 현금이 나누어졌다.
- 그들의 소비는 분명 감소했다. 그러나 소득이 줄어서가 아니라 경제활동이 제한되어서다. 거리 두기와 코로나의 공포감으로 활동이 멈춘 고령자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주었다. 경제 효과가 있을 리 만무하다. 소비가 생겨날 리 없으니까.
물리적으로 소비할 수 없는 것이지 돈이 없어서 소비하지 않는 것 이 아니다. 소비하고 싶어도 하지 않는다. 불안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 다. 불안할 때는 일단 저금을 한다. 아무리 돈을 뿌려대도 수요 창출 효과는 없다. 그러니 추가적인 경기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쓸모없는 현금 뿌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남은 돈은 어디로 갈까. 은행이나 자산시장이다. 콕 집어 말하자면 주 식이다. 개인의 주식투자가 늘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상당히 유명해진 현상이다. 그리고 정크 주식을 복권처럼 사들이는, 경험 부족 한 개인투자가가 별안간 급증했다. 
- 리먼 사태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많은 금융기관, 투자가의 자 산이 휴지장이 되었다. 서브프라임론이라는 질 나쁜 대출 채권에 트리 플 A라는 자산 가격이 매겨져 버블에 투자했다. 버블로 자산을 잃었기 때문에 투자가들이 입은 손해는 되돌릴 수 없었다. 엄청난 금융자산을 잃은 것이다.
훗날 휴지장이 될 금융자산 가치가 있다고 보고 실물경제에서도 소비, 투자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수요 과잉 상태가 되어, 실물경제 경 기도 과열되고 말았다. 과열되었을 때 소비하고 투자한 것은 돌아오지 않고, 빚만 남는다. 버블적인 수요에 투자한 자산, 설비, 비즈니스 모델 은 남아 있지만, 이것들은 모두 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산, 비즈니스 모델 모두 0에서 다시 세워야 하기 때문에 시간 도 걸리고 전체적 손실도 엄청나다.
- 금융 스톡, 비즈니스 스톡을 잃은 것이다.
나아가 금융위기에서는 은행 자본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금융시스 템이 기능저하, 기능부전에 빠졌다. 그 결과, 버블이나 당초 위기와 직 접 관련이 없었던 곳까지 버블 붕괴의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어 리먼 사태로 미국 경제가 파괴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일 본 도요타자동차의 고급차 브랜드인 렉서스가 그야말로 한 대도 팔리 지 않게 되었을 때, 일본의 자동차 관련 기업이 타격을 입었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일본의 선술집 체인점을 보자. 자동차 관 련 기업에 많은 대출을 해준 신용금고가, 도요타자동차 관련 기업이 있는 아이치현에 있다면 더 이상 신규 대출을 해줄 수 없게 되고, 어쩌면 대출받은 모든 기업에 상환 독촉을 할 수도 있다. 1년짜리 대출로 롤오버 rollover', 즉 그동안 계속 연장해 왔는데 갑자기 연장이 불가능 하다며 1년 만기로 갚으라는 통보를 받으면, 아이치현에 있는 선술집 체인점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도산하게 될지 모른다.
1990년대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 후가 바로 이런 상황이었고, 게다 가 지극히 심했다. 부동산 버블과 아무 관련 없는 성실한 소규모 공장 이 잇따라 폐업으로 내몰린 것이다.
한편,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번 코로나 위기에서는 일단 금융기관 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 피해를 본다면 지금부터일 것이다. 공적 금융기관, 민간 금융기관 모두 중소기업 지원 대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가 리스크를 대부분 떠안기 때문에 민간 금융기관은 피해를 보지 않았다. 다만 조금 큰 기업, 민간 금융기관은 스스로 리스크를 부담하고 지원하는데, 이곳들이 차례차례 한계에 이르러 파 산하면 코로나 위기는 금융위기에 가까워질 것이다.
게다가 큰 기업, 백화점이나 의류 분야가 파산하면 금융위기의 고비 를 맞게 되고, 나아가 항공 관련 기업 등이 파산하면 일본 전체가 금융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리먼 사태를 넘어서는 위기가 될 것 이다.
즉, 전체적으로 볼 때 금융 부문이 직접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 서 코로나 위기로 인한 경제위기는 리먼 사태보다 임팩트가 작을 것이다.
- 원유는 아주 비싸다. 그리고 그 결과 돈이 된다. 생산 비용에 비해 가격이 아주 비싸므로 아주 많은 돈이 된다. 한 나라 경제가 원유만으로 돌아간다. 세계경제의 패권을 결정한다. 그 정도로 가격이 비싸다. 그러니 돈이 된다. 단지 그뿐이다.
왜 비쌀까. 중요한 필수품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물이 더욱 중요한 필수품이다. 원유는 천연가스가 대신할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석탄 도대체할 수 있다. 화학제품에는 꼭 필요하지만, 화학제품도 사실은 원재료 대체가 가능하다. 왜 비쌀까.
그냥 어쩌다가 비싸졌다. 우연히 석유파동 때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뿐이다.
어쩌다가 폭등한다. 그리고 그 가격을 어느 정도 계속 유지한다. 그 렇게 되고 나서 다시금 원유라는 물건을 생각해 보니 가격이 대단히 비싸고 중요한 필수품에 속하고 또 소비량도 많다. 그러자 합계 시장 규모가 막대해진다. 이 막대한 시장에서 일단 높은 가격이 일정 기간 성립하면 이를 전제로 세상이 돌아간다. 그 후 원유가 비싸졌다. 원유는 1배럴당 10달러든 40달러든 100달러든 상관없다. 가격이 결정되고 일정 기간 지속되면 그것을 전제로 세상이 움직인다. 이것이 전부다. 10달러, 40달러, 100달러는 그때그때 우연히 정해진 가격이 다. 이것이 일단 지속되면 그 후에는 지속시키는 힘이 작용하여 사는 쪽은 가격을 받아들이게 되고, 자력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 원유 가격은 이렇게 어쩌다가 정해진 수준으로 결정되었다. 가격 자체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리고 우연히 결정된 가격이 대단히 높은 수준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해관계가 고착화했다. 돈이 되는 이상 가격을 내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원유는 비싼 것이다.
물론 가격이 내려간 적도 있지만 공급자 측이 카르텔을 통해 하락 을 최소한으로 줄여 가격 붕괴를 막았다. 1990년대 초반에는 제자리 걸음하다가, 후반이 되자 가격이 무너지기 시작해 2001년 테러가 일 어났을 때 폭락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중국 수요라는 요소가 생겨났 다. 중국 수요는 실제로 존재하긴 했지만, 자금이 남는 투자가들이 대 거 뛰어들어 자원을 21세기 최대의 매력적인 금융상품으로 치켜세워 폭등시켰다.
- 원유 선물가격이 - 40달러가 된 이유는 원유가 금융상품으로서 투 기적 수요가 중심인 시장에서 유통되므로, 수급 균형이 무너지면 비정 상적인 가격이 붙는다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의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았기 때문이었다. 극단적으로 비쌌기 때문에 극단적인 마이너스 가격이 된 것이다. 실수 요와 관계가 없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가격이 무 너지니 실물로서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폭락했다.
이는 실수요 시장과 금융상품 시장이 분리되어 있어서 애초부터 재 정거래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지기 쉽다. 그게 사실이라면 극단적으로 가격이 폭락했을 때 헤지 펀드 등이 유조선을 빌려 재정거래를 시도하여 실수요 가격을 가지고 제동을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수요 원유 시장의 가격도 버블이었기 때문이다. 실물 가격도 버블이라 재정거래가 성립하지 않는다. 실물도 1배럴당 10달러든 40달러든 100달러든 상관없다. 근거가 없다. 일단 성립된 가격에 맞춰서 세상이 움직여 왔으므로 갑자기 요동치는 일은 없지만,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실물 시장의 원유 가격도 일종의 버블이라고 할 수 있다.
원유 가격에 맞춰서 세상이 움직여 왔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배럴당 80달러를 전제로 이라크의 국가 예산이 짜여 있고, 러시아 는 40달러를 넘지 않으면 재정파탄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셰일오 일 개발업도 40달러가 무너지면 지속성을 갖기 힘들어지므로 파산하는 중소 업체가 속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70달러라면 온갖 업자들이 뛰어들고자 할 것이고, 일정 기간 100달러가 이어지면 대다수의 중소 업체, 그리고 대기업에서 셰일오일을 생산할 것이다.
- 셰일오일 업계의 산업구조가 원유 가격 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유명하지만, 그것을 노리고 OPEC의 힘 있는 나라와 러시아는 미국의 셰일 업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낮은 가격으로도 생산을 멈추지 않는 전략을 취한다. 그러나 자신들도 손해 보는 가격으로 정해졌을 때 공급을 줄여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고 해도 간단하지 않다. 폭락했 을 때 생산량을 반으로 줄이면 일단 수입이 주는데, 당장 눈앞의 회사 경영과 국가 운영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신들끼리 모두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 내부에도 여러 의견이 있고 이해관계자가 있다. 가령 독재국가, 독점기업이라고 하더라도 내부를 간단하게 통합하기는 어렵다. 국제적인 과점체제도 높은 수준에서 가격이 붕괴된 경우에는 산유국 간에 일치단결을 이루 기 힘들다. 반대로 가격 폭등이 일어났을 때는 일치단결할 수 있다. 모든 관계자가 더욱 돈을 벌게 되고, 단결함으로써 모든 구성원이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폭락 때는 누구나 먼저 빠져나가려고 하므로 잘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수요가 사라지는, 코로나 위기 같은 돌발적인 사건이 일어 나면 원유 가격이 폭락한다. 그것도 원유 가격이 최근 10년간 하락세 이고, 생산자 측의 과점 구조가 계속 무너지고 있으며, 생산자 각각의 이해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수요의 급감을 계기로 실물 원유 가격의 버블도 붕괴하여 대폭락을 맞을 것이다.
이로 인해 앞으로 원유 가격 폭락은 몇 번이고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 한번 형성된 산업구조는 변화하기 힘들다. 그래서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해 큰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모든 재화, 서비스에 생산, 공급 과정이 있으니 모든 재화, 서비스의 배후에도 산업구조가 있지 않겠는가?', '산업구조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모든 재화, 서비스도 비정상적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의 문이 들 것이다.
바로 그렇다. 모든 재화, 서비스의 배후에는 산업이 있고, 산업구조가 고정화되어 존재한다. 그것이 모든 재화, 서비스를 비정상적으로 만든다.
-  테니스 붐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1시간에 10만 엔을 받는데도 예약이 가득 차면 어떻게 될까. 아오야마 전체의 주차장이 테니스코트 가 될 것이다. 빌딩도 허물어서 테니스코트로 만들지도 모른다. 인근 에 있는 오모테산도도 온통 테니스코트가 될 수도 있다. 배후에 산업 이 있다는 말은 이런 것이다.
골프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지바현 산림의 나무를 모두 베어서 골프장으로 바꿀 기세였다. 도쿄 도심에서 가까운 골프장 회원권 가격이 폭등했고, 그러자 조금 더 외진 곳에도 많은 골프장이 개발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명문 골프장조차 이용료가 내려갔다. 회원권은 폭락하다가 조금 회복했지만 최근에 다시 내려갔다. 2000년대에 많은 골프장이 파산했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운영되면서 가격 수준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공급 측 산업구조가 가장 단순한 경우다. 공급은 항상 만들 어지고, 나아가 그것은 한번 만들어지면 고정된다. 그러나 붕괴하면 골프장처럼 그때까지의 가격은 무의미해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 수준이다. 버블 때는 골프장의 회원권 가격이 왜 그렇게까지 올라갔을까. 단지 '버블이었으니까.' 하는 말로는 모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본질은 가격수준의 개념이 한번 자리 잡으면 산업이 그것을 전제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고가네이'에서 3억 엔을 받을 수 있다면 나라시노'에서는 2억 엔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라시노에서 2억 엔을 받을 수 있다면 이 치하라'에서는 1억 엔이면 될 것이다. 그렇게 되자 1억 엔으로 회원권 을 팔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산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가진 가격 이미지가 공급 측 기준점이 되고 그것을 전제로 산업구조가 형 성된 것이다.
하지만 1억 엔이라는 것은 단지 소비자 측에서 만들어진 고정관념 이다. 근거는 없다. 그래서 한번 파괴되면 타당한 가격 수준이라는 기 준점이 없기 때문에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만다.
- 의류도 그렇다. 정장 한 벌이 10만 엔으로 정해지면 그것을 전제로 유통 구조가 결정된다. 유통과정에 회사가 몇 개나 끼어 있는 것은 10 만 엔이라는 가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번 정해지면 유 니클로 같은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가 나올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 나온다 해도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도산한다.
일본 최후의 보루인 자동차도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는 제조 공정이 복잡하다는 전제하에 하청 구조가 있었고, 상당한 인건비가 투입됐다. 그러나 자동차의 최종 가격이 극적으로 바뀌는 상황, 즉 사용자가 타 지 않게 되면 자동차의 가치는 급격히 저하될 것이다. 그리고 패션으 로서의 자동차 이외의 차들은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게 되어 소멸할 것이다.
구조적으로 비싼 가격이 완성된 후에 소비자 측이 변덕을 부리거나 혹은 어떤 위기에 의해 가격 수준이 변하면 손쓸 새도 없이 붕괴하고 만다. 그러므로 버블이다.
- 정리해 보자. 거시적으로 수요 환기 대책은 불필요하다. 지속화 지원금도 불필요하다. 기업, 산업, 비즈니스 모델의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정책을 최우선으로 펼쳐야 한다. 무리하게 지원금을 주기보다 의욕있는, 스스로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는, 의욕 있는 경영자가 이끄는 기업을 철저하게 대출로 지원하는 정책에 자금을 집중해야 한다. 약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기업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을 구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아야 한다.
- 도박 중독자를 그만두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금을 완전히 끊어버리면 된다. 이자를 아무리 많이 내더라도 빌려주지 않는다. 돈을 일절 건네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는 도박을 폐지하는 것이다. 경마 가 열리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버블도 마찬가지다. 중앙은행이 긴축해도 버블의 정점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한몫 잡으려는 붐으로 인해 금리 수준은 관계가 없어진 다. 더욱 높은 리스크를 지고,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수익)을 좇아 버 블은 더욱 과격해진다. 이것이 버블의 마지막 단계다. 어떻게 멈추게 할까. 돈을 일절 회전시키지 않는 것이다. 일본에서 1990년까지 일어 난 부동산 버블을 멈춘 것은 부동산 대출에 대한 총량규제였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효과가 없었다. 총량 규제로 돈을 빌릴 수 없게 되자 단숨에 붕괴했다.
코로나에서는 거리 두기만으로는 안 된다. 휴업 규제, 휴업 명령을 내려 공급 쪽을 막아야 한다. 그러므로 도쿄도가 휴업 요청에 유흥주 점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은 타당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도박 중독자는 공식 경마 경기가 없어지면 어 떻게 할까. 다른 데로 간다. 경마가 없어지면 어떻게 할까. 경정으로, 자동차 경주로 간다. 카지노로 간다. 불법 도박으로 간다.
도쿄에서 휴업 요청이 내려지면 어떻게 될까. 일하는 사람 일부는 지방으로 일거리를 찾아 떠난다. 도쿄에서 영업을 계속하는 가게로 간 다. 지하로 숨어든다. 이러한 폐해가 있으므로 만만치 않다. 하지만 좋은 면도 있다. 일찍이 소비자금융 시장은 대출업법 개정으로 인해 큰 폭으로 축소 했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무허가 금융업으로 흘러 갔다는 소문은 거짓이었다.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빌리려는 사람들은 과불 청구소송으로 돈을 받아 다 갚고 시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빌리는 사람이 있겠지, 불법 사금융에 손을 대는 사람도 있겠지.' 할 것이다. 모두 단속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은 상당히 적다. 전멸시키지 않아도 된다. 90%만 억제해도 된다.
코로나도 그렇다. 그룹 C를 움직인다. 줄인다. 그리고 핵심인 그룹 A 의 대부분을 무너뜨린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남는다. 그래도 비중은 크게 준다. 그러고 나면 중증 리스크를 줄이는 것을 철저히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마구잡이로 80% 줄이는 것보다 우선순위가 높고 대책 으로는 더욱 중요한 데다가 효과도 크다.
- 보통 사회에서는 경제와 목숨은 별개로 생각하며, 비교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도 중요하고 목숨도 중요하다며, 오히려 비교하지 않음으 로써 균형이 잡힌다.
한편 일본에서는 목숨을 희생할 거냐며 비교하는 강경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과는 갑론을박해도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굳이 비교 하자면 일본에서는 당연히 목숨이 중요하고, 경제는 그다음이기 때문 이다. 그들은 영악하게 목숨과 경제를 비교함으로써, '숨'을 우선하 게 만들어서 경제와의 균형이라는 주제를 봉인하는 데 성공했다.
경제는 괜찮냐고 물으면 그들은 괜찮다고 한다. 경제가 엉망진창이 되어도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지'가 그들의 암묵적인 논리이자 많은 일본 사람이 가진 암묵적 인식이다.
- 그러나 한편으로 목숨을 하나라도 잃게 되면, 특히 유명인이 목숨을 잃게 되면 목숨은 대신할 수 없다는 논리가 대두하면서 모든 것이 허 용된다. 비합리적이어도, 모순이 있어도, 타당하지 않아도, 목숨을 구 하기 위해 역효과가 나더라도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일은 모두 허용된다.
이것이 본래 비교할 수 없는 경제와 목숨을 비교함으로써 생기는 '사고 정지' 상태다.
일본 사회 최대의 결함은 '사고 정지' 사회라는 점이다.
- 이 흐름 속에서 일본은 아마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시아에서 지적 선구자로 활약할 큰 기회임에도 불구하 고 옛날의 세계질서에 갇혀 아시아에서 가장 어렵고 수지가 안 맞는 상황에 스스로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패권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버리고 떠 나 이제는 아무것도 할 마음이 없는데 일본은 마지막까지 미국 질서 를 지키는 일원으로 남아 중국과 대립하는 입장을 취하려고 하기 때 문이다.
유럽은 독일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듯이, 표면적으로는 미국을 따르 면서 경제에서는 90% 중국 측에 붙어 그 혜택을 보며, 외교적으로도 양자와 잘 교류해 나갈 것이다. 아시아 나라들은 물론 중국 일변도로 갈 것이다. 이것은 4,000년 역사를 보면 20세기만이 예외였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일본을 군사적으로 지키는 일에도 관심을 잃었고, 미국 자신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아시아 거점인 일본 열도에 대한 패권 의사를 버렸고, 장기적으로는 군사적으로도 버릴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유지 할 가능성이 크지만, 실질적인 관심은 잃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군사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도 중국 경제권에 있는 다른 아시아 각국에 비해서도 뒤처져 실력에 비해 불우한 나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이것을 막으려고 하는 일본 국내 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 경제는 재미있다. 단기적, 부분적으로는 아주 파워풀한 원리로 사람 들을 효율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사회를 움직인다. 한편 장기적 전체 적으로는 꼭 옳은 방향으로 사람들과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여 기에 사회의 왜곡, 즉 경제 우선으로 사회를 망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를 두고 재미있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해외 비즈니스 출장이 라는 관습도 이 원리가 강력하게 들어맞는다.
단기적인 효율성에서 해외 출장은 대폭 감소할 것이며, 이 경향은 계속될 것이다. 한편 직접 만남으로 인해 생기는 가치는 장기적으로 비즈니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비즈니스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급감하고 재미있는 비즈니스가 생겨나기 어려워져, 획일적인 글로벌 모델밖에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편 개인 관광에 의한 국제 여객은 다른 논리로 급감할 것이다. 일 시적으로는 줄어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보복 소 비, 다시 말해 최근 몇 개월 자제할 수밖에 없었던 오락 수요, 스트레 스 발산 수요가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복 소비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격에 대단히 민감해서 싸면 몰려들고 비싸면 아무도 가지 않는다. 원화 강세로 한국 여행이 급감했듯이 최근 일본으로 오는 관광객이 급증한 것은 엔저가 되고, 또 물가도 계속 오르지 않아 여행비가 비교적 저렴했기 때문이다.
- 현재의 경제 시스템은 수수께끼다.
애덤 스미스 이후, 경제학이 300년에 걸쳐서 효율적이라고 해온 시장경제는 위기에 즉각 대응하지 못한다.
첫째, 자원배분을 적절히 하지 못한다. 마스크, 방호복의 예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마스크와 방호복만 제대로 갖췄더라면 의료기관, 요양시설 사망자 수는 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사망자의 40%가 요양시설 같은 곳에서 나왔다.
이것은 수요를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는 수요를 제대로 예 측하지 못한다. 불확실한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불 확실성은 사실 스스로 만들어낸 시장에서의 가격 변동, 사람들의 기호 변화에서 오는 것이다. 시장을 만듦으로써 불확실성이 생겨났다.
변화하지 않는 필수품은 무시하고 언제 변화할지 모르는 사치품, 오 락에서 파생된 기호품에 대부분의 자원을 써왔다. 필수품도 평범하게 만들어서는 돈이 되지 않으니 불필요하게(혹은 이익을 얻기 위해 영악하게) 기호적인 부분을 덧붙였다. 예를 들어 자동차 브랜드는 신뢰성 평가로 충분한데, 패션성과 지위 등의 가치가 태반을 차지한다.
둘째, 자원배분의 오류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수정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경제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재빨리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보다 압도적인 이점을 가진다고 경제학이 주장 해 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왜일까 사람들이 탐욕적이기 때문이다.
돈이 안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마스크 생산으로 급격히 키를 돌리 려고 해보지만 돈이 안 되므로 하지 않는다. 일시적인 데다 경쟁업체 가 매우 많다면 바로 생산과잉이 일어나 투자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 이 있다. 그러니 하면 바보다. 합리적이지 않다.
마스크, 방호복도 중국에서만 급격히 증산되었다.
그동안 중국의 강권 정치를 계속 공격해 왔지만, 마스크와 방호복의 생산과 배분에서 서쪽 진영은 전혀 적수가 되지 못했다. 강권 정치가 더 낫다는 말이 아니라 시장경제에서는 기본적인 자원배분조차 불가 능하다는 말로, 시장경제에 치명적 결함이 있음을 일컫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으로 적절한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 사회를 위해 무엇 을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가. 일본의 경우, 의료기관이 효율적으로 기 능하기 위해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할 것인지조차 의사결정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료기관 각각의 이해관계가 우선시되었기 때문 이다. 두 팔 걷고 나선 의료기관은 칭찬받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만 알려지고 금세 잊혔다. 정부가 그 의료기관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부가 한 일은 시장경제의 실패를 보완한 것이다. 이는 시장이 작동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작동하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넷째,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우리는 정보사회에 살고 있다. 가 장효율적으로 정보가 유포된다고 하는 시대다. 그러나 유포되는 정보 가 잘못된 정보투성이다. 적어도 넘치는 정보를 앞에 두고 사람들은 적절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오히려 TV 등의 미디어, SNS 등의 인터넷 미디어, 인터넷 후기를 찾아다니다가 패닉에 빠진다. 필요한 정보가 아니라 패닉을 확산하는 미디어이자 정보사회다.
- 성장이라는 말의 정의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이것이 우리가 요구하는 사회인가.
감염병이라는 기본적인 인류 위기에 대한 기본적인 도구, 마스크와 방호복을 만들 수 없는 사회가 고도로 성장한 이상적 경제사회인가. 코로나에 대처할 기술은 거의 없고 그저 집 안에 처박혀 외출 자제 만 하는 원시적인 대응이 고도로 성장한 현재 사회의 답인가. 그 원시 적인 방법을 스마트폰으로 전달하는 것이 고도로 발달한 미디어와 현 대 정부가 하는일인가.
이 위기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경제사회 시스템을 다시 보지 않고 집중치료실을 확대하고 평소에는 부유층밖에 사용하지 못할 시설을 늘리는 것이 인류 위기의 대응인가.
우리는 필수품 생산을 소홀히 하고 사치품 만드는 데만 매달려 왔 다. 그래서 성장이 가로막히면 더 큰 혁신적인 사치품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해 왔다. 도대체 무엇을 추구해 온 것인가.
분업에 의한 생산력 향상을 통한 풍요로운 사회의 실현, 시장경제에 의한 풍요의 실현은 좁은 지역에서의 자급자족을 조금씩 넓혀가면서 고도의 자급자족으로 하고, 이 땅 위에 발붙이고 경제생활 수준을 높 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것은 자급자족의 효율화를 조금씩 확 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나서 오락 등을 비롯한 플러스알파, 자급자족 플러스알파를 누리는 것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며, 살 고 싶은 사회가 아니겠는가.
건강하면서 약간의 즐거움도 있는 소소한 행복이야말로 훌륭한 인 생과 사회가 아니겠는가. 이를 실현하지 못하는 고도의 경제사회가 무 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우선 자급자족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로부터 조금씩 효율화, 고도화를 목표로 분업한다. 플러스알파를 얻는다. 조금씩 넓혀나간다. 이러한 경제사회의 소박한 이상으로 원점 회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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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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