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일본 정독

경제 2023. 9. 29. 08:13

- 근면 혁명은 일본 고유의 사건이 아니다
한때 높았던 가계 저축률이 일본인의 근면함과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일본인들의 노동 시간이 긴 것은 분명 하고, 또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직장에서 묵묵히 버티며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장인과 같은 일본 노 동자의 모습은 과연 언제부터 정착된 것일까? 도쿄대학 명예 교 수 다케다 하루히토武田晴는 그의 저서 《일본인의 경제관념日本人 》에서 공업화 사회에서 보이는 일본인의 근면함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획득한 노동의 에토스ethos라고 설명한다. 즉 '시 간'이라는 요소가 노동 속에서 큰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근 대에 들어서 '고용 노동'이 일반화된 이후의 일이라는 것이다. 다 케다 교수의 설명대로라면 '근면한 일본인 상'이라는 것은 겨우 80년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1882년 요코하마에서 발간된 영자신문에는 당시 서양인에 비친 일본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게으르고 향락을 즐기는 이 나라 사람들의 성정은 문명사회로 의 진보를 방해하는 요소이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 게으른 일 본인을 질타하는 서양인의 견문록적 성격의 글은 이 외에도 다수 존재한다. 일본인 스스로도 인정하는 '근면일본인의 DNA'라는 뿌리 깊은 믿음은 어쩌면 심각한 오해일지도 모른다.
한편, 일본인의 근면함을 전근대 시대의 극적인 변화에서 찾는 연구도 있다. 경제학자이자 세계적인 역사인구학자인 게이오대 학 명예 교수 하야미 아키라融는 에도 시대 농민의 근면함에 대해 산업 혁명을 본떠 '근면 혁명 Industrious Revolution'이라고 명명했 다. 17세기 일본은 인구가 늘면서 토지 생산성도 향상되었다. 이 는 산업 혁명 이전에 '맬서스의 함정'을 극복했다는 이야기가 된 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인구가 증가하면 더 많은 노동력이 농업 에 투입되지만 한계 생산이 체감되므로 생산성이 하락해 생활 수 준이 저하되고 결국 인구가 감소하게 된다. 14세기와 17세기 유 럽에서 벌어진 기근, 질병, 전쟁 등의 위기 상황은 이와 같은 맬 서스의 함정이 작동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일본이 이러한 맬서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하 야미 교수는 근면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에도 시대에는 늘어나는 인구를 농업에 투입하고, 그 대신 소와 말을 더 이상 농사에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소와 말이 쓰던 농기 구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작은 사이즈로 개량됐다. 이뿐만 아니라 수확량이 많은 품종을 개발하고 시비법을 개선하여 농업 생산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생활 수준도 개선되었다. 에도 시대 농민의 삶이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근근이 살아갈 수 있는 수준 은 유지되었다.
근면 혁명이 일본 고유의 역사적 사건이라면 이는 일본인의 근면함을 뒷받침하는 설명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하야미의 영향을 받은 얀 더프리스Jan de Vries는 17~18세기 유럽에서도 비슷한 유 의 근면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영국과 네덜란드 에서 도시는 주변 농촌 지역의 교역 거점으로서 역할을 했다. 이 시대에는 책, 거울, 자명종 같은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면서, 농촌 에서도 이러한 신제품의 소비를 위해 환금 작물의 생산에 더 많 은 노동력을 투입했다. 남성들은 시장에 판매하기 위한 환금 작 물 재배에 집중하고, 대신 아이들이나 여성들은 자가 소비를 위 한 작물을 재배하는 식의 분업이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사람들 은 이전보다 더 근면하게 일하게 되면서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 었고, 더 많은 신제품을 소비할 수도 있었다. 산업 혁명과 같은 극적인 기술 진보 없이도 인구가 증가하고 농업 생산력이 향상된 셈이다.
- 다시 근면한 일본인 얘기로 돌아가 보자. 얀 더프리스의 연구를 통해 근면 혁명이 딱히 일본의 고유한 경험이라고 말하기는 어렵 게 되었다. 또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소와 말이 감소한 이유는 하 야미의 주장대로 농업 경영상의 의도적인 선택이 아니라, 전염 병이나 소농 경영의 한계로 인해 가축 수가 줄어들었다는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또 17세기에 늘어나던 인구가 18세기에는 반대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맬서스의 함정에서 탈출했다는 설명과도 배치된다.
- 그뿐만 아니라 17~18세기에는 일본을 포함해 동아시아 사회 여기저기에서 소농 경영을 바탕으로 한 노동 집약적인 농업 생 산성의 향상이 관찰된다. 증가한 인구를 지탱하기 위해 더욱 근 면하게 일하고 농기구와 농법의 개량 등을 통해 생활 수준의 향 상을 꾀하는 것은 이미 우리 역사에서도 익숙한 스토리이다. 결 국 하야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근면함이 일본인의 덕목 으로 형성된 것은 불과 수백 년에 지나지 않는데, 이마저도 일본 인 고유의 경험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아직도 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근면=일본인의 DNA'라는 등식은 결국 어느 시점부터 확증 편향성을 갖게 된 허구가 아닐까?

- 돈가스와 단팥빵은 둘 다 원래는 서양에서 들여온 것이었으나 일본풍으로 개량된 음식이다. 메이지 시기의 일본인들은 이렇듯 서양의 음식을 들여와 일본적인 음식으로 재탄생시키는 하이브 리드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돈가스와 단팥빵만이 아니었다. 인도에서 영국을 거쳐 들어온 커리curry가 일본풍의 카레가 되었고, 프랑스의 크로켓croquette 이 고로케가 되었다. 개량 능력은 음식 이외의 분야에서 도 발휘되었다. philosophy를 철학으로, society를 사회찬술로, copyright를 판권版権으로, baseball을 야구로 번역한 것은 메이 지 시기의 지식인들이었다. 근대화 시기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 자어는 서양에서 만들어진 개념들을 당시에 일본인들이 자신들 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개량의 흔적들이다. 메이지 시기의 근대화 과정은 화혼양재和魂洋, 즉 서양의 문물을 재로 삼아 일본의 혼을 담아내는 정신이 강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양의 기술과 일본다움을 결합하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화혼양재의 개량 능력은 산업 혁명기에 접어든 일본 경제를 견인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 도쿄대학 명예 교수 와다 가즈오는 그의 저서 《모노즈쿠리의 우화503 <b>에서 “토요타 시스템은 미국의 포드 시스 템을 일본에 도입하고 이식하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된 금전적.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와다 교수가 타이틀에 '우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우리가 지금까 지 알고 있거나 믿고 있던 내용들이 사실은 '허구적인 이야기'라 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포드 시스템과 토요타 시스템이 전 혀 다른 생산 시스템이 아니라, 포드 시스템을 모방하는 과정에 서 토요타 시스템이 탄생한 것이라는 설명은 매우 흥미롭다.
사실 일본은 중일 전쟁 시기부터 항공기와 선박 생산에 포드 시 스템을 도입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포드 시스템은 다양한 전용 공작 기계들로 가공한 매우 정밀도가 높은 부품을 전제로 가동된다. 당시 일본에는 포드 시스템을 도입할 만한 자본도 기술력도 없었다. 결국 자동화된 컨베이어 벨트의 도입을 포기한 대신에, 일본은 다기능 작업자를 배치하고 부품을 공급하는 외부의 하청 업체까지도 포함해 전체 생산 프로세스를 하나의 조립 라인처럼 편성했다. 말하자면 수공업 생산과 결합한 가상의 컨베이어 벨트 가 탄생한 것이다. 다만 이러한 수공업적인 성격은 생산 비용이 높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토요타는 수십 년에 걸친 다양한 '가이젠 생산과 관련된 모든 활동에 대해 좀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일)'을 통해 생산 비용을 절감해 갔다. '낭비를 극한까지 줄이는 토요타 시스템'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근대화가 시작된 이래 100년 넘게 다양한 분야에서 관찰되던 화혼양재의 개량 능력은 1990년대 이후 좀처 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최근 10년간 삼성전자와 애플이 경쟁 하듯이 혁신적인 차세대 스마트폰을 선보이자, 처음에는 두 기업 을 모방만 하던 중국 기업들도 최근에는 꽤 가성비가 좋은 제품 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 중에는 세계 시장에서 팔릴 만한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발명보다 혁신이 장점인 일본인들에게 최근의 제품 개발 속도가 너무 빠를 수도 있다. 또 베타 버전을 출시하고 버그를 수정해 나가는 식의 최근의 제조업 트렌드가 완벽한 품질을 보장하려는 일본 스타일 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 하지만 일본 기업들이 외국 기업에서 뭔가 배우려는 노력을 예 전보다 덜 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작은 1980년대부터였 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국이 되자 일본인 누구나가 “이제 서양 을 캐치 업catch up 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고 다녔다. 사실이 그랬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는 당위론이 득 세하고, 지금의 한류처럼 일본 문화가 전 세계 젊은이들을 매료 시키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다들 알다시피 영광은 그리 오래가 지 않았다. 혹독한 겨울이 잃어버린 10년, 20년을 넘어 30년 이상 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일본이 대단한 잠재력을 지닌 나라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관건은 깊은 잠에 빠진 화혼양 재의 개량 능력을 다시 깨울 수 있을지의 여부이다.

- 반복되는 역사 속 데칼코마니 불황
머나먼 유럽에서 벌어진 제1차 세계 대전은 일본에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래 역사상 최고의 호황이 라는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전쟁 중인 유럽에서 물건이 수입되지 않자 국내 기업에 주문이 쇄도했고,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일 본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기업은 일손 부족을 호소 했고, 임금은 상승했지만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노동자 의 실질 임금이 하락한 탓에 전국에 쌀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 20세기 초만 해도 개발 도상국 수준의 경제력에 불과하던 일본은 제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중진국 수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 다. 그러나 이후 1920년 반동 공황, 1923년 관동 대지진, 1927년 금융 공황, 1930~1931년 쇼와 공황을 연달아 겪으면서 10년 동안 기나긴 장기 불황에 빠지게 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공교롭게도 일본은 70년 후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 명실공히 세계 제일의 선진 국으로 도약한 일본이었지만 1990년대 초에 버블이 붕괴되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 불황의 늪에 빠졌다.
이러한 데칼코마니 같은 상황에 흥미를 느낀 많은 경제학자들 은 다양한 비교 연구에 착수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장기 불황의 터널이 단지 10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신으 로 바뀌면서, 경제학자들의 문제의식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것은 바로 '1920년대의 일본은 어떻게 장기 불황을 극복할 수 있었는 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었다. 만약 위기를 극복한 비책이 있다면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현재의 일본에도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여러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대장성 대신 다카하시 고레키요였다.

- 1980년대까지 전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 전자제품 기 업들의 몰락을 설명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과잉 기술, 과잉 품질 문제이다. 소니가 그랬듯이 많은 일본 기업들은 목표 가 정해지면 궁극의 수준까지 연마하는, 일종의 장인 정신으로 물건을 만들어 왔다. 일본어로 모노즈쿠리0<)라고 하는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한 제조 문화'는 일본 기업들을 품질 제일주의의 세계적인 기업들로 키워냈지만, 반대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기 업들로 변질시키기도 하였다.
일본 기업들은 10년 동안 품질을 보증하는 반도체를 만들었지만 시장은 품질보다 값이 싼 반도체를 원했고, 100년이 가도 고장이 나지 않는 튼튼한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5년 지난 컴퓨터는 성능 문제로 쓸 수가 없었다. 장인 정신에 매몰되어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갔건만 정작 시장의 요구에는 둔감했던 것이다.

- 초강대국 미국의 지위를 위협한 것은 일본의 급성장이었다. 1960년대 초반 5배 이상 차이 나던 미일 간 GDP는 30년 뒤인 1991년에 2.5배 수준까지 좁혀졌다(<그림 2-2> 참조). 1990년대 초 반 인구는 미국(2억 5천만)이 일본(1억 2천만)의 두 배였으므로 1인 당 실질 GDP는 큰 차이가 없었고, 1인당 명목 GDP에서는 이미 일본이 미국을 앞서 있었다.
미국인 입장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대일본 무역 수지 적자의 확대였다. 미국의 대일본 무역 수지 적자는 1985년 기준 GDP 대비 1.2% 수준까지 늘어났다. GDP 대비 1.2%라는 숫자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미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같은 해 미국의 총 무역 수지 적자 비중이 GDP 대비 2.8%임을 감안하면 대 일본 무역 수지 적자 규모가 결코 작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미국인들이 일본인들에 대해 느꼈던 공포감은 할리 우드 영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 1982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블 레이드 러너>는 2019년의 LA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전광판에 는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등장하고, 주인공 릭 데커드는 젓가락 을 들고 일본풍의 노점에서 우동을 먹는다. 37년 뒤 LA에서는 일 본식 옷을 입고, 일본식 식사가 당연한 일상이 되어 있을 것이라 는 상상력이 엿보인다.
- 1988년 개봉한 영화 <다이 하드>에서는 주인공 존 매클레인이 일본계 기업 나가토미 코퍼레이션에서 테러범과 전투를 벌이는 데. 뉴욕의 마천루를 장악한 일본 자본에 대한 불편함이 은연중 에 드러난다. 1993년의 영화 <로보캅 3>에서 일본 기업이 악역으 로 설정되어 사무라이 로봇이 적으로 나온다든지 <데몰리션 맨>에 서 미국인들이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장면을 찾아볼 수 있는 등 이러한 흔적은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진다. 2020년 5월 넷플릭스 에서 공개된 드라마 <스페이스 포스>에서는 중국의 테러 위성이 미국 우주군이 발사한 군사 위성을 파괴하고,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에 꽂은 성조기를 중국의 월면차가 밀어 버리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지금 중국에 대해 미국인들이 느끼는 적대감 이상으로 당시 일본의 존재에 대한 미국인의 공포심은 상당했다.

- 종신 고용. 연공서열, 직장 내 교육 훈련 제도, 기업 특수 기능은 서로 맞물려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였다.
고용 시스템은 일본인의 생활 양식과 기업 문화에도 영향을 미 쳤다. 입사하면 30년 이상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생겼으니, 인생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능해졌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30년 장기 대출을 받아 집도 장만한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히 수입이 늘어날 것이 예상되고, 퇴직 이후에도 퇴직금과 연금이 있으니 큰 걱정 없이 나이에 맞게 소비 규모를 결정한다. 일본형 고용 시 스템은 팀워크로 일하는 방식에 유리한데. 그렇다 보니 직원들은 회사에 대한 귀속 의식이 강하다. 선배에게서 후배로 경험과 훈 련에 의해 몸에 쌓인 암묵적 지식이 전수되고, 회사 내 동료들과 의 관계는 물론 거래처와의 의사소통도 중요하다 보니 회식도 많 고 직원 행사도 많다. 많은 직원들이 회사와 운명 공동체라는 생 각을 하게 되고, 회사의 이익과 직원들의 이익이 일치하는 경향 이 강하다 보니 노사 관계 또한 안정적인 경우가 많다.

- 2000년대 이후 일본 경제는 상실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 다. 소설 《상실의 시대》와 달리 일본 경제에서 상실의 대상은 명 확하다. 두 번의 호황을 통해 확인했듯이, 2000년대 이후 일본 경 제는 '온기'를 상실했다. 그리고 이러한 저온호황이 이제는 일본 경제의 뉴 노멀이 되었다. 일시적인 변화가 아닌 새로운 균형이 기 때문에 앞으로 찾아올 수차례의 호황은 예전처럼 뜨거운 고온 호황이 될 가능성이 없다. 불운한 타이밍 때문에 아베노믹스 경 기가 끝내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올드 노멀(고온 호황)에 맞춰진 눈높이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 1957년 제프리 크라우더 Geoffrey Crowther가 제시한 국제 수지 발전 단계설은 경제의 발전 단계에 따 라 국제 수지가 어떤 특정한 패턴을 그리면서 변화하는지를 다룬 이론이다. <그림 3-10>을 보면 경제 발전 단계상 제1단계는 '미 성숙한 채무국'인데 경제 발전의 초기에는 국내 저축이 부족해 산 업 개발 자금을 외국으로부터 조달하고 각종 재화도 수입한다. 그 결과 무역 수지와 소득 수지가 모두 적자를 나타내게 된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되기 이전의 기간(1868~1880년)이 이에 해당한다.
제2단계인 '성숙한 채무국은 경제 발전과 함께 수출 산업이 성 장하여 무역 수지가 흑자로 전환되지만, 소득 수지는 여전히 적 자인 상태이다. 일본에서 제2단계는 두 번 관찰되는데 1881년부 터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 (1914년)하기까지의 기간과 전후 고도 성장기의 처음 10년(1955~1964년) 정도이다. 제3단계인 '채무 변제 국'에 진입하면 수출이 확대되어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소득 수 지 적자 규모를 넘어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된다. 일본의 경우, 제1차 세계 대전 활황기 (1914~1920년)와 1960년대 후반(1965~1969 년)이 이에 해당한다.
제4단계부터는 대외 순자산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된다. '미성숙한 채권국' 단계에서는 무역 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대외 자산 증가와 함께 소득 수지도 흑자로 전환된다. 일본의 경우, 안정 성장기 이후 2010년 정도까지 오랫동안 이러한 4단계에 머 문 것으로 생각된다. 제5단계인 '성숙한 채권국'에 접어들면, 생 산 비용 상승으로 자국 제품의 국제 경쟁력이 하락하여 무역 수 지는 적자로 전환되는 반면, 해외 투자의 증가로 소득 수지 흑자 폭이 커지면서 경상수지는 흑자를 보이게 된다. 2011년 이후 현 재일본은 제5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된다. 언젠가 일본이 제 6단계 '채권 붕괴국'이 되면 무역 수지 적자 규모가 더욱 확대되어 소득 수지 흑자 규모를 넘어서게 되고, 결과적으로 경상 수지가 적자로 전환될 수도 있다.
- 1980년대 일본의 젊은이들은 자동차, 해외여행, 명품을 경쟁적으로 소비했지만, 2020년 대 젊은이들은 저렴하고 적당한 품질에 만족하며 절약을 인내가 아닌 매력적인 소비 스타일로 평가한다.
앞으로 20년 뒤 이들이 가계 소비를 주도하는 중장년층의 소비 집단으로 성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비에 대한 효용은 집 단의 기억처럼 뇌리에 박힌다. 지금 나이가 지긋한 우리나라 어 르신들 중에는 형편이 그렇게 어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절약하 는 습관이 몸에 밴 분들이 많다. 일본의 젊은 혐소비 세대는 지금 보다 소득이 늘어난다고 해서 당장에 소비 행동이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하물며 앞으로 임금 상승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 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본의 소비가 앞으로도 지속적인 하락 을 할 가능성이 큰 이유이다.
- 쓰루, 마에다, 무라타는 '니게키레타逃切te' 고령층이라는 표 현을 사용했는데, 우리말로 옮겨보면 치고 빠지는 데 성공한 고 령층이라는 뜻이다. 현재 고령층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태어 나 청장년기에 고도성장과 버블 경기를 경험한 세대이다. 이들은 젊은 시절에 여유로운 소비를 경험했고, 경쟁적인 소비 지출을 통해 만족감을 느꼈으며, 충분한 저축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지금도 충분한 연금과 금융 자산으로 여유로운 소비를 즐기고 있 다. 일본 역사상 가장 축복받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현재 젊은 층은 과거 세대와 달리 비관적인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가 성비를 따져 가며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더 늘리고 싶지만, 임금 이 상승하지 않으니 뜻대로 저축이 늘지도 않는다.
고령층의 금융 자산을 자식 세대나 손자 세대로 이전시켜 소비활성화를 도모하려는 시도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상속 세나 증여세에 관한 제도 개선은 부의 세습이라는 비판에서 자유 롭지 못하기 때문에 진척이 더디다. 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부모 가 자식 세대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3세대 소비라고 해서 고령인 부모가 자식 세대나 손 자 세대와 근거리에 살면서 경제적 지원을 하는 가정이 많다. 노 무라연구소의 추계에 의하면 60세 이상 고령층은 소비 지출액의 5% 이상을 자식 세대를 위해 지출하고 있다.
- 생산자 중심의 과잉 기술이 일본 제조업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그 해결책은 아주 단순하지만 소비자 중심의 적정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소비자 중심의 적정 기술 개발에 아주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는 기업들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기업들이다. 2017~2018년 무렵에 중동과 인도 등에서 현지화에 성공한 한국 기업에 대한 특집 기사들이 자주 소개되었는데, 그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자물쇠 달린 냉장고 였다. 자물쇠 달린 냉장고라니, 생경한 디자인은 차치하고서라 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물쇠의 용도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1998년 대우전자가 개발한 자물쇠 달린 냉장고는 중동 지역에 서 인기를 끌었는데,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을 싫어하는 중동 사람들의 기질을 감안한 디자인이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인도 시장에 진출한 LG전자도 자물쇠 달린 냉장고를 출 시했는데 가사 도우미를 두는 일이 흔한 인도의 중산층 이상 가 정에서는 자물쇠 달린 냉장고는 가사 도우미가 음식을 마음대로 꺼내 먹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뛰어났다. 사실 냉장고에 자물 쇠 구멍을 뚫는 것은 특별한 기술도 아니고 탁월한 디자인이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한 적정 기술이었고, 이러한 눈높이 전략은 현지에서 제대로 먹혀들 었다.
한국 기업들의 적정 기술 전략은 자물쇠 달린 냉장고만이 아니 다. 2003년에 LG전자는 중동에서 메카폰이라는 것을 출시했는 데, 성지인 메카 방향을 자동으로 알려 주는 소프트웨어가 내장되어 있었다. 이 모델은 현지에서 매우 인기가 좋아서 나중에는
코란을 음성과 문자로 제공하는 기능, 기도 시간을 정시에 알려 주는 기능까지 추가되었다. LG전자의 눈높이 전략은 여기에 그 치지 않았다. 2004년에는 대추야자 냉장고를 출시해 인기를 끌었 다. 중동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인 대추야자를 최적 상태로 보 관해 주는 대추야자 냉장고는 우리의 김치냉장고를 응용한 가전 제품이었다. 현대자동차는 인도에 수출하는 자동차의 차체 바닥 을 높게 디자인했는데, 비포장도로가 많아 집중 호우로 침수가 잦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반면 중동에 수출하는 자동차는 천장을 높였다. 머리에 쓰는 터번 때문에 천장이 낮은 차를 불편 해하는 소비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 모든 제품을 모듈형과 통합형이라는 양극단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모듈형에 가까운 제품, 통합형에 가까운 제품은 존재한 다. 전자 제품은 모듈형 제품에 가깝고 자동차는 통합형 제품에 가깝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의 가전업체들은 노동 집약적 인 모듈형 제품 생산을 한국과 중국 기업에게 차례로 넘겨주면서 시장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그래도 통합형 제품의 성격이 강한 자동차 시장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지배적인 위치를 고수할 수 있 었다. 그런데 최근 자동차 산업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 다. 통합형 제품인 자동차에 엔진이 없어지고 배터리와 모터 그 리고 모듈적 성격이 강한 소프트웨어 및 각종 정보 시스템이 도 입되고 있다. 이제 자동차는 사람을 싣고 움직인다는 본질만 그 대로 둔 채 모바일 기기로 변하고 있다. 미래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모듈형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통합형 제품의 강자 일본 기업들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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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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