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없는 노동의 반복. 바로 그 낙담이 신들이 생각해 낸 인간에 대한 최대의 벌이었다. 만약 현재의 내 삶이 무기력의 연속이라면 내가 시시포스의 후예가 아닌지 의심해 봐야한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삶...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고 작년의 삶과 올해의 삶이 비슷하고, 내일의 삶이 설렘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그 자리에 멈추고 나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내가 바로 현대판 시시포스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 현대인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집요하게 행복에 집착함. 다만 그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의 모든 결정과 판단과 생각의 중심에는 행복이 있다. 그래서 나는 현대인들을 행복에 대한 지향자 혹은 중독자들이라 생각한다. 그렇다. 현대인들은 모두 늘 행복하고 싶어하는 행복지향자, 행복중독자들이다. 사실 당신의 고민도 사실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행복지향자들이기 때문에 늘 행복하고 싶어한다. 늘 행복하지 않으면 잘 못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할 때도 행복하고 돈을 벌 때도 행복하고 여행을 할 때도 행복하고 사람을 만날 때도 행복하고 그런 삶을 꿈꾼다. 그게 맞는 삶의 방향이라 여기면서.
문제가 뭔지 아는가? 그런 사람은 없다는 거다. 일단 늘 행복하면 내가 행복한 상태인지 모르는 게 논리적이지 않은가? 늘 행복한 상태라면 그냥 행복한 상태가 일상이 되니 정작 행복하다는 생각을 못한다. 그냥 당연한 거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신 주변에 늘 행복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 당연히 없지. 행복할 때도 있고 그저 그럴 때도 있고 불행할 때도 있고 이게 평범한 우리의 삶이지 않던가?
우리는 행복지향자들이기 때문에 직장에서도 행복을 꿈꾼다. 행복한 먹고사니즘을 지향한다. 이런 행복중독자들 같으니라고! 이건 좀 선을 넘는거다. 행복을 꿈꾸는 것은 당연하다. 잘못된 것은 당연히 아니다. 본능적인 것이니까. 하지만 늘 행복할 수는 없음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직장생활의 본질을 이해하고 내 삶의 방향을 정확히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의 지금까지 커다란 행복만 추구했다면 이제부터 좀 소소해지자. 내 일생을 큰 기쁨과 큰 행복만으로 다 채울 수 없으니까 소소한 거를 하나하나 찾아야 한다. 어떤 것이 나한테 기쁨이고 행복인가를 끊임없이 찾아서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늘려나가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정말 조그마한 불행도 현미경처럼 크게 본다는 말이 있다. 어떤 삶의 프레임을 갖느냐에 따라 삶은 다른거다. 내 인생은 왜 이렇지?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지루하지? 왜 이렇게 재미있는 게 없지? 이렇게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면 내가 살아야할 이유가 없어 난 불행한 것 같지만 어느 누구도 잘 찾아보면 자신이 맞춘 프레임 밖에 행복들이 많다.
- 겨울에 날씨가 엄청 추우면 수도를 틀어 놓아야 힌다. 우리가 살면서 소소하게 행복한 시간을 갖는 것은 겨울철에 수도를 틀어놓는 것과 같다. 내 삶을 흐르게 하는거다. 성취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려만 가고 있다면 한겨울의 수도를 잠가놓는 것과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이 얼어버리게 된다. 내 마음의 수도를 틀어 놓아야 한다. 그러면 내 인생의 직장생활도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행복해질 수 있다.
- 행복을 뒤로 미루고 있는 나에게,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선물처럼 행복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행복을 원한다면 행복을 뒤로 미루지 말고 현재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삶의 행복을 향유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행복한 거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찾지 않기 때문에 현재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은 거다.
- 현대직장인들의 불안의 원인으로 첫번째 이유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성취주의가 불안의 원인. 알랭 드 보통은 엄격했던 시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로 동정을 받았으나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실패한 사람들로 간주되어 비난받으므로 실패에 대한 불안이 더 높아진다고 설명.
두번째 이유는 우리가 그동안 너무 빠르게 달려왔기 때문. 한국인들이 불안한 이유는 한국의 압축성장이 가져온 폐해. 어마어마하게 빨리 발전했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어버리는 것이 있듯이 정신을 잃어버리는 거다. 경제가 발전하는 속도네 맞춰 바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짐.
남들은 달려가고 있는데 나도 가만 있으면 안되지, 라고 생각하며 항상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에게 뒤처질까 봐 불안해하는 거다. 내가 뒤처진다는 것은 내 체면이 깎이는 일이고 전 세계에서 유일한 유교국가인 한국에서 체면이 깎인다는 것은 안될 일이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고 남들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남들에게 잘 나가는 나를 과시하고 싶다는 심리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이다.
- 자존감이란 결국 나와 나의 관계의 문제이므로 타인이 나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없다. 자존감은 스스로 높여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나와 나의 관계복원이다. 좀 오글거리게 표현하면 오늘부터 나하고 친하게 지내는 거다. 나 자신의 좋은 면, 긍정적인 점, 잘하는 점을 찾아 스스로 인정해주는 거다. 자책과 자기혐오로 잔뜩 움츠려 있는 내 마음속의 '내가 좋아하는 나'의 비중을 높여보려는 노력을 해보는 거삳.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 다수의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거다. 그냥 내가 스스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게 바로 자존감이다.
- 대한민국 전체기업수익의 60%를 100대기업이 가져가고 나머지 40%를 갖고 그 외의 기업들이 나눠먹기 위해 혈투를 벌인다. 이 40%를 나눠먹기 위해서 달려드는 기업에는 대기업도 있고 중견기업도 있다. 중소기업은 여기서도 소외된다. 당신이 창업하면 먹이사슬 제일 아래단계다.
미국 100대 부자 중 78명이 창업자다. 한국은 100명중 84명이 상속부자다. 미국처럼 잔인한 시장경제에서도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를 가장 열심히 신봉한 미국에서도 새로운 창업자들이 계속 성공신화를 만드는데 한국은 그게 힘들다. 그러니까 금수저 흙수저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당대 부자, 자수성가한 살마을 키우지 못한 게 한국 사회의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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