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을 향한 하향곡선은 다양한 궤도를 그리지만, 개인이 느끼는 신체의 약화는 상대적으로 일정한 흐름을 따른다. 처음에는 매년 기력이 떨어지다가 그 주기가 매월에서 매주로 짧아지고, 삶의 마지막에 이르면 하루하루가 다르다. 이는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 이제 가족이 모여 아직 하지 못한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다.
때로는 마치 백조가 죽기 직전에 딱 한번 부른다는 스완송처럼 숨을 거두기 전에 갑자기 활력이 넘치는 사람도 있다. 그 원인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간혹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현상이 늘 축복인 것만은 아니다.

- 예상한 방식 그대로 찾아오는 임종은 대부분 차분하고 평온하게 진행되지만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 또한 곳곳에 존재.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할 때 보통 당사자는 의식을 잃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눈을 감지만, 그것을 목격한 사람은 견디기 힘든 기억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누군가와 사별한 사람은 설사 그것이 평화로운 죽음이었다 하더라도 그 경험을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기억으로 바꾸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그리고 환자들을 돌보는 우리도 때로는 힘든 경험을 털어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마음의 건강을 지키면서, 다시 힘을 내 병원으로 돌아가 다음번 충격을 감내할 수 있다.

- 임종 자리는 곧 끝을 맞이할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자리이자, 가만히 지켜보며 귀를 기울이는 자릳. 그리고 우리를 연결하는 것이 무엇이며, 다가오는 이별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영원히 바꾸어 놓을지 생각하는 시간이다.

- 사람들은 실제 질병보다 질병을 바라보는 태도에 의해 더 크게 제한됨. 질병은 신체적 도전을 야기하나, 많은 경우 감정적 도전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인간의 정신은 앞에 놓인 길이 너무 험하게 느껴질 때면 좌절하기도 하지만, 지지와 격려가 있으면 고비를 극복하고 창의적 해결책을 찾아낸다. 우리는 제각각 다른 개인이기에 한 사람의 계획이 겉보기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에게도 들어맞으리라는 법은 없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내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들의 존엄을 존중하는 길. 그들은 삶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일 뿐 개인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

- 오늘날 죽음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가 되었다. 이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현대인이 임종과정으로부터 점점 더 유리되면서 차츰 그것을 설명하는 어휘도 줄고 있다. 눈을 감았다, 우리 곁을 떠났다, 같은 완곡한 표현이 죽었다를 대체. 질병은 투쟁의 대상이 되었고, 병자와 치료, 그리고 그 결과를 이야기할 때는 전투의 비유가 사용됨. 아무리 잘 살았던 사람도, 아무리 인생에서 이룬 바에 만족하며 아쉬울 것 없이 편안히 눈을 감은 사람이라도 단순히 죽은 것이 아니라 싸움에서 진 것이 된다.

- 질병과 죽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 막연한 이야기대신 간단명료한 대화가 가능해짐. 죽음을 마치 입 밖에 내는 것만으로도 불행을 가져오는 저주인 양 취급하는 대신 서로 허심탄회하게 죽음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죽어가는 사람은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생각해보면서 뒤에 남은 가족을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임. 모든 인생의 끝에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당연한 순리의 영역으로 되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열린 대화는 미신과 공포를 잠재우고, 아닌 척과 선한 거짓말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솔직하게 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다.

- 보통 폐에 공기가 충분히 공급되지 못해ㅍ사망에 이르는 질병의 경우 호흡실패가 점진적으로 진행. 그 과정에서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의식과 사고력이 감소하고, 혈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어져 졸음이 오게 됨. 이 미세한 변화는 점진적 의식상실로 이어짐. 이때 공기기아 감각이나 두통이 유발되기도 하지만, 소량의 몰핀류 약물과 진정제를 투입하면 호흡과 생명이 자연히 약해지다 결국 멈출때까지 호흡곤란 증세를 거의 또는 전혀 느끼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가능.
인공호흡기를 끄는 것은 이와는 상당히 다른 문제다. 인공호흡기가 멈추는 즉시 질식하는 느낌이 들며 극심한 공포를 경험하게 됨. 

- 깊은 숨을 쉬면서 코고는 듯한 소리를 낸다. 한동안 깊고 빠른 호흡이 이어지다 점차 느리고 조용해진다. 체인스톡 호흡. 환자가 깊은 의식불명 상태임을 의미. 이렇게 빠르다가 느려지는 호흡이 한 주기가 끝날때마다 한참 동안 숨을 쉬지 않는 공백이 생긴다. 공황을 일으키거나 갑작스런 고통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며 어떤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호흡주기가 조용히 끝날 것이다.

- 현대 실험심리학에서 주요 종교들, 그리고 공자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의 무신론적 지혜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영원철학은 모두 사람이 일생에 걸쳐 지혜를 터득하면서 이루는 내면의 성장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인간의 삶은 두 단계로 구분된다. 첫번째 단계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성인의 역할을 해낼 수 있게 성장하는 단계. 이 단계는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며 모든 것이 나로 귀결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가치를 믿는가? 나는 어떤 재주와 재능, 강점가 능력을 가졌는가? 세상이 내 능력을 알아줄까? 때로 자신의 결점가 약점을 분별하는 자아성찰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 이유는 약점을 타인의 관심과 비판으로부터 감추기 위해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인생의 첫단계에서 정체성을 확립한다.
인생의 두번째 단계는 자아를 뛰어넘는 지혜를 습득하는 과정. 인간은 오랜 세월을 거쳐 이런 지혜를 터득한다. 하지만 남보다 일찍 이 단계에 도달하는 사람도 있으니, 대부분 개인적으로 소중한 누군가 또는 무엇을 잃거나 커다란 고통을 겪었기 때문. 자신이 치료불가능한 병에 걸렸음을 알게 되고, 다가오는 죽임이 익숙하고 소중한 모든 것의 종말을 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환자들도 여기에 해당. 영원철학은 이 변화과정을 나름의 방식으로 묘사하지만, 모두를 관통하는 골든룰은 타인을 향한 측은지심이다. 즉, 나에게 맞춰져 있던 모든 초점이 모두와 모든 것으로 이동. 여기에는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듯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용서하는 것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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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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