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5.03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2. 2014.11.29 다시발전을 요구한다
  3. 2014.11.29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저자
장하준 지음
출판사
부키 | 2010-11-0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교수의 3년 만의 신작 그가 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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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도 자유시장 정책은 금융위기 전부터 대부분의 나라에 성장이 둔화되고 불평등과 불안정이 심화되는 부작용을 가져오고 있었다. 부자나라들에서는 막대한 신용확대 조치로 이 문제를 덮어왔다. 70년대 이후 미국의 임금수준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노동시간은 늘어났다는 사실을 신용확대에 힘입은 소비붐으로 눈가림해 온 것. 부자나라들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개도국들이 당면한 문제는 한흥 더 심각함.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 국가들의 생활수준은 지난 30여년간 전혀 향상되지 않았고,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1인당 성장률은 3분의 2가 떨어졌다. 같은 기간 동안 중국과 인도처럼 비록 불평등은 심화되었짐나 급속한 성장을 이룬 나라들도 있음. 그러나 이 나라들은 부분적인 자유화만을 허용하면서 본격적인 자유시장 정책은 도입하기를 거부한 곳들이다.
1.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 자유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장에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종의 규칙과 한계가 있다. 시장이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단지 우리가 그 시장의 바탕에 깔려 있는 여러 규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규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 시장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규정할 수 있는 객관적 방법도 없음. 자유시장은 정치적으로 정의되는 것.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정부의 정치적 개입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님.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고, 자유시장론자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임. 객관적으로 규정된 자유시장이 존재한다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
- 자유무역대 공정무역을 둘러싼 요즘 논쟁의 이면에도 이런 가치관의 충돌이 깔려 있음. 많은 미국인들은 중국이 자유롭게 무역을 하는지는 몰라도 공정하게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함. 미국인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되는 저임금에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제품을 파는 중국은 공정하지 못한 경쟁을 하는 상대임. 반대로 중국인들은 선진국이 자유무역을 옹호한다고 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을 기반으로 생산된 제품들에 대한 수입제한 같은 방식으로 중국산 수출품에 인위적 장벽을 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처사라고 반박할 수 있음.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갖고 있는 가장 풍부한 단 하나의 자원인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는 데 제약을 받는 것은 부당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공정무역을 둘러싼 논쟁은 본질적으로 도덕적 가치판단이나 정치적 결정에 관한 문제이지 통상적 의미의 경제학적 논쟁은 아니다. 경제 문제에 관한 것이기는 하나 경제학자들이 하는 잣대로 재서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 시장의 경제가 모호하며 객관적으로 결정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화학같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음. 물론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경제학자들은 우리가 시장의 올바른 경계를 과학적으로 확정할 수 있다고 믿기를 바라겠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연구하는 대상의 경계를 과학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과학적 연구라고 할 수 없음. 지금까지 보았듯이 새로운 규제에 대한 반대는 일부에서 아무리 현 상태가 부당하다고 지적해도 그대로 고수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또 기존의 규제를 철폐하자는 주장은 시장영역을 확대하자는 말이나 다름없는데, 시장은 1달러당 1표 원칙에 따라 작동하는 만큼 돈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주자는 의미다. 따라서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를 들어 특정 규제의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그 규제를 통해 보호될 권리들을 부정한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 표명에 불과함. 물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논리는 순전히 정치적인 반면 자신들의 논리는 객관적인 경제학적 진실이라고 우기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이 반대하는 사람들만큼 정치적 의도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다. 시장은 객관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2.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된다
- 주주들이 법적으로는 기업의 주인일지 몰라도 그들은 기업의 이해당사자 중에서 가장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고, 따라서 기업의 장기전망에 가장 관심이 없는 집단이다. 보유주식을 다 팔 경우 해당 기업이 위기에 빠질 정도로 지분이 많은 대주주 외에는 주식을 팔고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 주주들, 특히 소액주주들이 장기투자를 줄여 이윤을 극대화하고 그 이윤에서 주주에 대한 배당을 극대화하는 단기수익 극대화 전략을 선호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 이렇게되면 재투자에 필요한 유보이윤이 줄어들게 되므로 해당 기업의 장기전망은 악화됨. 주주들을 위한 기업경영이 결국 기업의 장기적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킴.
- 16세기에 발명은 되었지만 19세기 중반까지는 유한책임 회사를 세우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음. 유한회사를 설립하려면 왕실이나 정부에서 특별허가를 받아야 했다. 또 회사를 100% 소유하지 않고 유하회사 형태로 운영하는 경영자는 리스크를 100% 자기가 부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도하게 위험한 사업을 하리라는 것이 당시의 지배적 의견이었다. 마찬가지로 유한회사의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투자자는 리스크의 한도가 각자의 투자액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고용한 전문경영인을 감시하는 데 소홀하리라는 것이 중론이었음. 경제학의 시조이자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수호성인인 애덤 스미스가 유한책임의 원칙에 반대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음. 그의 유명한 말처럼 "공동자본 회사의 이사진은 ..... 자기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을 관리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한책임을 전제로 하는 합명회사 파트너들이 자기 돈을 지키듯이 남의 돈을 관리하리라는 기대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국가들은 규모가 크고 리스크가 높으면서 국익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유한회사의 설립인가를 내주었음.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그 최대 라이벌인 영국 동인도 회사, 1721년 투기붐을 일으켜 유한책임제도의 인상을 오랫동안 망쳐 놓은 그 악명놓은 영국의 남해회사가 대표적 사례. 그러던 중 19세기 중반 철도나 철강, 화학공업 같은 대규모 산업이 등장하면서 유한책임의 필요성이 절실해짐. 제철공장이나 철도회사를 단독으로 설립할 수 있을만큼 막대한 재산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 이후 유한책임은 1844년 스웨덴과 1856년에 영국을 시작으로 하여 1860년대 및 1870년대를 거쳐 서유럽과 북미 국가들 대부분에서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유한책임에 대한 의구심은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서유럽의 기업가 활동에 관한 한 유명한 역사 연구서에 따르면, 유한책임이 일반화되고 몇십년이 지난 19세기 말 영국에서도 기업을 소유하고 직접 경영하는 중소기업인이 법인(유한회사)이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자기기업의 채무에 대해 완전히 책임지는 것을 피하려 하면 눈총을 받았다고 한다.
- 노동자를 비롯하여 다른 이해당사자들에게 돌아가던 소득 중 많은 부분이 이윤으로 재분배된 것도 문제였지만 80년대 이후 국민소득에서 이윤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음에도 그것이 투자확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 미국 국민총생산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80년대에는 20.5%였으나, 그 이후 90~09년 동안에는 증가하기는 커녕 오히려 18.7%로 떨어짐.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낮은 투자율을 상쇄하고 성장률을 놓였담녀 투자율 감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음. 하지만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연간 약 2.6% 증가하던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주주 자본주의 시대의 전성기라 할 90년부터 09년까지 연간 1.6% 증가하는 데 그침. 기업행태에서 미국과 유사한 변화를 보였던 영국도 1인당 국민소득이 영국병을 앓던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연간 약 2.4% 증가했으나, 정작 90년부터 09년까지는 1.7% 증가하는 데 머무름. 이렇듯 주주의 이익을 위해 기업을 경영하면 그에 따른 상류층으로의 소득재분배 문제를 무시한다 해도 경제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음

3.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 잘사는 나라과 못사는 나라의 임금격차는 개인의 생산성이 달라서가 아니라 각 정부의 이민정책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나라간의 이주가 자유롭다면 잘 사는 나라의 일자리는 대부분 못하는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이 차지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임금이라는 것은 정치적 결정의 산물. 이것을 뒤집어 보면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것은 가난한 계층의 국민즐 때문이 아니라 부유한 계층의 국민들 때문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사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잘사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지만,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은 부자나라의 부자들에 비해 경쟁력이 높지 않기 때문. 하지만 이는 부자나라의 부자들이 개인적으로 특별히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님. 이들의 높은 생산성은 단지 역사적으로 축적해 온 다양한 제도들 덕분일 확률이 높기 때문.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개인의 가치에 맞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잘못된 신화를 깨뜨려야 한다
- 자신들의 높은 생산성 덕에 자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부자나라의 부자들이 너무 의기양양할 것에 대비해 한가지 경고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부자나라의 어떤 개인이 비슷한 일을 하는 가난한 나라의 개인보다 실질적으로 생산성이 월등히 높은 분야에서조차, 그 격차는 개인의 능력차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의 차이에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 부자나라의 일부 개인이 가난한 나라의 동일 직종 종사자에 비해 생산성이 수백배나 높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머리가 더 좋다거나 교육을 더 잘 받았다는 것만으로 설명이 안됨. 그들은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조직, 더 나은 제도와 물리적 인프라를 가진 경제환경에서 살기에 그런 성과를 낼 수 있음.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수세대에 축적된 집단적 노력의 산물이다.

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 변화를 인식할 때 우리는 가장 최근의 것을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름. 예를 들어 최근 전자통신 기술상의 발전은 상대적 관점에서 볼 때 19세기 후반의 전보만큼 혁명적이라고 할 수 없음. 인터넷 혁명의 경제적, 사회적 영향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제품만큼 크지 않음. 가전제품은 집안일에 들이는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줌으로써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을 촉진했고, 가사 노동자와 같은 직업을 거의 사라지게 만듬. 과거를 돌아볼 때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보아서는 안된다. 옛것을 과소평가해서도 안되고 새것을 과대평가해서도 안됨. 그렇게 할 경우 국가의 경제정책이나 기업의 정책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의 직업과 관련해서도 여러가지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됨
- 사람들이 전신서비스나 세탁기보다 인터넷이 더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잘못 생각한다고 해서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사람들이 가장 최근에 일어난 변화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해서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런 왜곡된 시각이 단지 개개인의 견해에 그친다면 별 문제가 아님.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귀중한 자원이 잘못 쓰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일부 선진국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 기술혁명에 마음이 팔려 이제는 구닥다리 제조업은 필요없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했다. 그에 따라 많은 나라들이 탈산업화 사회의 시대가 왔다고 철석같이 믿고 제조업을 홀대하여 자국경제를 약화시켰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선진국 사람들이 인터넷에 매료되면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정보격차가 국제문제화되고, 이에 따라 많은 기업이나 자선단체, 개인들이 개도국에 컴퓨터와 인터넷 설비를 갖추라고 많은 돈을 기부한다는 사실. 그러나 과연 정보격차 해소가 개도국들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일까? 개도국 아이들에게 노트북 컴퓨터 한대씩 마련해주고, 시골마을마다 인터넷 센터를 세워주는 것이 도움은 될터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물을 파주고, 전기를 넣어주며, 세탁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비록 고리타분해 보일지는 모르나 실제 개도국 국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데에는 더 보탬이 되지 않을까? 우물이나 전기, 세탁기 같은 것이 반드시 컴퓨터나 인터넷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많은 기부자들이 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경우 거둘 수 있는 혜택을 장기적 관점에서 비용과 비교해 가며 면밀하게 평가해 보지도 않은 채 그저 그럴싸해 보이는 프로그램에 돈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 이기심은 대부분의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본성중 하나지만, 유일한 본성도 아니고 많은 경우 인간행동의 중요한 동기도 아님. 사실 세상이 경제학 교과서에서 묘사하는 이기심 가득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남을 속이고, 나를 속인 사람을 잡아내고, 잡은 사람을 벌주는 데 온 시간을 써야 할테니 말이다. 세상이 지금처럼 돌아가는 이유는 인간이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이 믿듯이 전적으로 이기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경제제도는 사람들이 이기심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은 하되 인간의 다른 본성들을 모두 활용하고 사람들이 최선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제도일 것. 결국 최악의 행동을 기대하면 최악의 행동밖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 도덕성을 착시현상이 아니다. 고객을 속이지 않는 상인,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쥐꼬리 월급에도 불구하고 뇌물을 받지 않은 공무원 등 사람들이 이기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은 대부분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 보이지 않는 보상과 제재장치도 중요. 그러나 그것으로는 우리가 하는 이기적이지 않은 행동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없다. 그 장치의 존재자체가 우리가 전적으로 이기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음에야 무슨 다른 설명이 필요하랴. "사회공동체라는 것은 없다. 오직 남자, 여자라는 개인, 그리고 가족단위만 존재할 뿐이다." 라는 대처의 주장과 달리 인간은 사회라는 울타리 없이 고립된 이기적 존재로 살아온적이 없다. 우리 모두는 도덕적 규범이 형성되어 있는 사회안에서 태어나 그 규범들을 내것으로 만드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한다.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인간의 행동동기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늘 자기이익을 쫓는다면 상거래에 속임수가 만연하고, 생산라인이 너무 느려지는 등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런 전제를 기반으로 경제구조를 설계하면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떨어진다는 점. 그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도덕적 주체로 신뢰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고, 결과적으로 도덕적 행동을 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을 감시, 판단, 제재하는 데 엄청난 자원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최악의 행동을 할 것이라 예상하면 결국 최악의 행동을 하게 된다.

6. 거시경제의 안정은 세계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 인플레이션을 길들였는지 모르지만 세계경제는 상당히 더 불안해졌다. 지난 30년 사이에 물가변동을 잡았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흥분해서 우리는 같은 기간동안 전 세계 여러 나라가 겪어온 극도로 불안정한 경제상황을 못본척 했다. 그 사이 수많은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과도한 개인채무, 파산, 실업 등으로 많은 사람의 삶을 파괴했던 08년 금융위기도 그 한 사례. 인플레이션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우리는 완전고용이나 경제성장같은 중요한 문제에 충분히 신경쓰지 못했다. 노동시장 유연성이라는 미명아래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불안해졌다. 물가안정이 성장의 전제조건이라고들 주장하지만, 9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에 고삐를 매었음에도 성장률은 미미했따. 바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들이 성장을 둔화시켰기 때문.
- 인플레이션을 2~3% 이하로 끌어내리기 위해 사용하는 정책들이 실제로는 투자를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음. 실질금리가 8~12%에 달하면 투자자들은 실물투자를 꺼림. 어디에 투자를 해도 7% 이상의 이윤을 내기 어렵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이윤을 많이 낼 수 있는 방법은 고위험, 고수익의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것 뿐이다. 금융투자는 얼마동안은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창출된 성장은 오래 지속되지 못함. 결국 실물부문에 대한 장기투자로 뒷받침되지 않는 금융투자는 08년 금융위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사상누각이기 때문
- 문제는 물가안정이 경제안정도를 측정하는 여러 지표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 사실 물가안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제안정의 지표도 아님. 사람들의 삶을 흔드는 가장 큰 사건은 일자리를 잃거나, 하는 일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 혹은 금융위기가 몰아닥쳐 집을 차압당하는 것들이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물가가 오르는 것은 위 사건들에 비해 아무것도 아님.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히 말해보자. 물가상승률이 2%일때와 4%일때의 차이를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길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반 인플레이션 투사들이 예고했던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물가안정과 잦은 금융위기, 고용불안 증대 등 물가로 표시되지 않는 경제불안 요소들이 공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님. 이 현상들은 모두 동일한 자유시장 정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 신자유주의 정책 패키지로도 알려진 자유시장 정책 패키지의 일련의 정책들은 낮은 인플레이션, 자유로운 자본이동, 그리고 (노동시장 유연성이라는 미사여구로 표현되는) 높은 고용불안정성 등을 중시함. 기본적으로 금융자산 보유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 정책들이 입안된 것.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금융자산의 수익은 대부분 명목상 고정되어 있어 물가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 금융자산은 물적, 인적 자산보다 더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잇는 성질 덕분에 다른 자산에 비해 더 높은 이윤을 낼 수 있음. 금융자산은 바로 이런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본 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편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금융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노동자들의 고용, 해고 절차를 쉽게 하면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더 쉬워져서 당장 보기좋은 대차대조표를 만들기가 용이해지므로 기업매매가 원활해져 높은 금융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

7.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 통상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정반대로 개도국들의 경제실적은 국가주도의 발전을 꾀하던 시절이 그 뒤를 이어 시장지향적 개혁을 추진할 때보다 훨씬 나았다. 국가가 개입해서 그야말로 엄청난 실패로 끝난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시장 지향적 개혁기간보다 이른바 어두운 과거 시절 훨씬 더 빠른 성장과 비교적 고른 분배를 이루었고 금융위기도 훨씬 적었음. 게다가 대부분의 부자나라들이 자유시장 정책 덕에 부자가 되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님. 진실은 오히려 그 반대편에 가까움.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이라는 논거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영국과 미국을 포함하여 현재 잘살고 있는 나라들은 모두 보호무역과 정부보조금을 통해 오늘의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보호무역주의, 정부 보조금 지원 등의 정책들이야말로 요즘 부자나라들이 개도국들에게 하면 안된다고 설파나는 것들인데도 말이다. 자유시장 정책을 써서 부자가 된 나라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다.
- 날마다 수천만 미국인들이 택시를 타고, 샌드위치를 사면서 해밀턴과 링컨으로 지불을 하고, 거스름돈으로 워싱턴을 받는다. 존경해 마지 않는 이 정치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좌파, 우파에 관계없이 미국의 모든 신문방송에서 공격해대는 그 못된 보호무역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기사를 읽으며 혀를 찰 뉴욕의 은행가들과 시카고 대학의 교수들도 그 기사를 실은 월스트리트 저널을 살 때 쓴 앤드류 잭슨이 차베스보다 훨씬 더 외국인 차별을 심하게 했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죽은 대통령들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노예노동에 의존했던 2류 농업국가를 세계 최강의 산업부국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자신들이 사용했던 정책들은 21세기 후손들이 신봉하는 정책과 정반대라는 것을 미국과 전 세계 시민에게 증언했을 것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무역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영국은 해밀턴이 주장한 것들과 비슷한 정책으로 부를 축적.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유치산업론을 이론으로 정리한 최초의 인물은 해밀턴이지만 그가 사용한 정책들 중 많은 부분은 1721년부터 42년 사이 영국을 다스렸던 이른바 최초의 대영제국 수상 로버트 월폴에게서 베께온 것들이다. 18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영국은 모직산업에 진출. 그때까지는 (지금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을 가리키는) 로우컨트리가 주도하는 하이테크 산업이었던 이 분야에 진출한 영국 모직 제조업자들은 월폴과 그 계승자들이 제공한 관세, 보조금 등의 정부지원을 받아 성장. 얼마 가지 않아 모직물은 영국의 주요 수출상품으로 자리잡았고,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은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산업혁명에 필요한 식량과 원자재를 사는 데 사용됨.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산업적 우위를 확보한 1860년대에 이르러서야 영국은 비로소 자유무역을 시작. 미국이 183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 경제도약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보호주의적 정책을 고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국 또한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즉 1720년대에서 1850년대 사이에는 가장 보호주의적인 나라 중 하나였음. 현대 선진국들 중 유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과 보조금 정책을 사용하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일본, 핀란드, 한국 등 많은 나라가 외국인 투자를 강력하게 규제. 193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핀란드는 외국인 지분이 20% 이상 되는 기업들을 공식적으로 위험기업으로 분류. 프랑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싱가포르, 타이완 등 여러 나라들이 주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국영기업을 세움. 자유무역 정책을 쓰고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기로 이름난 싱가포르는 국내총생산에서 국영기업의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평균 10%의 두배인 20%가 넘는다. 현재 부자가 된 나라들 중에 외국인의 지적소유권을 잘 보호해주었던 나라도 별로 없다. 외국인의 발명품을 내국인이 자기 이름으로 특허내는 것을 허용하는 나라도 많았다.

8. 자본에도 국적이 있다
- 점덤 더 많은 자본이 초국화되어 가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초국적 기업들은 국적이 없는 기업이 되기보다는 사실상 해외지사를 둔 단일국적기업으로 남아 있다. 핵심기술 개발이나 전략설정 등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대부분 본국에서 이루어지고 최고 경영진도 대개 본국 국적을 지닌 사람들로 채워짐. 공장문을 닫거나 일자리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오면 다양한 정치적 이유와 그보다 더 중요한 경제적 이유에서 대개 본국의 공장과 일자리를 가장 나중에 없앰. 이 말은 초국적 기업이 가진 혜택의 대부분이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의미. 기업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이 국적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의 국적을 무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외국인 투자가 많은 경우 새로운 생산시설을 설립하는 그린필드 투자가 아니라 기존기업을 인수하는 브라운필드 투자라는 사실. 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외국인 직접투자 중 브라운필드 투자가 절반 넘게 차지. 국제적 인수합병 붐이 최고조에 달했던 01년에는 이 수치가 80%까지 육박하기도 했음. 이 말은 외국인 직접투자의 많은 부분이 생산이나 고용을 새로 창출해낸 것이 아니라 기존 기업의 경영권 인수에 집중되었다는 의미. 물론 카를로스 곤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새로운 경영주가 피인수 기업에 보다 뛰어난 경영기술 역량을 투입하여 병들어 쓰러져가던 기업을 소생시키는 경우도 있음. 그러나 인수된 기업이 이미 지니고 있던 역량을 할용할 목적으로 이뤄지는 인수합병도 아주 흔하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외국기업이 자국기업을 인수했을 경우 인수기업의 자국편향적 특성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피인수 기업 직원들이 그 기업내에서 승진하는 데 한계가 생긴다. 그린필드 투자에서도 자국편향은 고려해야 할 요소. 그린필드 투자가 새로운 생산시설을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그 대안, 즉 투자가 새로운 생산시설을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그 대안, 즉 투자가 전혀 없는 상태보다는 이론적으로 더 나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투자를 받아들이기 전에 정책 입안자들이 고려해야 할 점은 앞으로 그 나라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이 투자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하는 것이다. 기업활동의 종류에 따라 기술혁신과 생산성 증가를 가져올 잠재력도 다르다. 오늘 무슨일을 하는가가 미래에 어떤 일을 하게될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거두게 될지를 결정한다. 미국 산업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 80년대 유행하던 말처럼, 만들어내는 내용물이 감자칩인지 나무칩인지 마이크로칩인지 상관없다는 듯이 행동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외국에서 들어온 기업이라면 마이크로칩보다는 감자칩이나 나무칩을 생산하고 싶어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 우리들 중 대다수가 이제는 공장에서 일하는 대신 상점이나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탈삽업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조업 부문이 덜 중요해졌다는 의미에서 탈산업화 시대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총생산에서 제조업 생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든 것은 대부분 제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의 가격이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지 제조업 생산량의 절대량이 줄어서가 아니다. 이렇게 제조업 생산품의 가격이 낮아진 것은 제조업 분야의 생산성이 서비스업 분야보다 더 빨리 증가하기 때문. 탈산업화 현상이라는 것이 서비스 부문과 제조업 부문이 서로 다른 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따라서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지만 경제전반에 걸친 생산성 향상과 국제수지 면에 끼치는 나쁜 영향을 무시하고 넘어가서는 안된다. 개도국들이 산업화 단계를 건너뛰고 탈산업화 단계에 곧바로 진입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허상에 불과. 서비스 산업은 생산성이 증가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기 힘들다. 또 서비스 상품은 교역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서비스 산업에 기초한 경제는 수출능력이 떨어짐. 수출에서 얻는 수입이 적으면 해외에서 선진기술을 사들일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고 결국 경제성장의 속도도 느려짐
- 부자나라들의 국민총생산에서 제조업 비중이 줄어든 주원인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조업 제품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 아님. 중국이나 다른 개도국 제조업 제품의 수입이 대거 늘어나서 그런 것도 아님. 이런 수입제품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는 것은 몇몇 부문에 국한되어 있다. 이른바 탈산업화 현상은 제조업 부문의 급속한 생산성 향상에 따라 제조업 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하락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 따라서 부자나라들의 국민들은 고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탈산업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직 탈산업사회를 공언할 정도로 줄어들지는 않았다.
- 가난한 나라가 서비스 산업을 기반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함. 서비스 부문은 본질적으로 제조업보다 생산성 증가속도가 느림. 물론 지식기반 서비스처럼 생산성이 향상될 잠재력이 큰 부문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식기반 서비스업은 주로 제조업체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는 이런 서비스업들을 발전시키기가 상당히 어려움. 결국 처음부터 서비스 산업에 기반을 두고 경제개발을 추진할 경우 제조업에 기반을 둔 경우에 비해 장기적 생산성 증가율이 훨씬 더 떨어질 수밖에 없음. 더구나 서비스 상품은 교역가능성이 떨어지느 만큼 서비스 생산에 특화된 나라는 제조업 생산에 특화된 나라보다 국제수지에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음. 국제수지에 문제가 생기면 장기적으로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떨어지게 되므로 선진국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개도국에게는 치명적인 것. 개도국은 경제개발을 위해 해외의 선진기술을 수입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개도국의 국제수지에 문제가 생기면 선진기술을 도입하여 경제성장을 이끌어낼 능력 자체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 스위스와 싱가포르의 실제 모습은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다름. 실제로 이들은 제조업 성공신화를 일군 나라임. 사람들은 흔히 스위스가 제3세계 독재자들이 은행에 예치해 놓은 비자금이나 관리해주면서, 혹은 일본이나 미국 관광객들에게 소 목에 매다는 방울이나 뻐꾸기 시계 따위나 팔아먹고 산다고 생각함. 그러나 스위스는 세계 최고수준의 공업경제를 이룩한 나라. 우리가 스위스산 제품을 흔히 볼 수 없는 것은 스위스가 인구 700만명의 작은 나라여서 제조업 제품 생산량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다 그마저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소비재가 아니라 기계류나 화학제품 같은 생산재가 대부분이기 때문. 그러나 스위스는 1인당 제조업 제품생산량이 세계 최고수준인 나라이다. 싱가폴 역시 세계에서 제조업이 강하기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이다. (1인당 제조업 부가가치 기준). 지금까지 나온 일본, 스위스, 싱가폴, 핀란드와 스웨덴을 더하면 제조업 부문의 세계 최강 5개국이 된다. 인구가 8만 5000명에 1인당 국민소득은 9000달러 정도인 세이셸처럼 매우 작고 관광자원이 풍부한 나라를 제외하면 지구상에서 서비스 산업에 의존하여 괜찮은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는 나라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10.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 평균소득으로 따져볼 때 미국인들은 룩셈부르크를 제외한 다른 선진국 국민들에 비해 재화와 서비스를 살 수 있는 구매력이 가장 높음. 그러나 소득분배가 극도로 불균등한 미국과 상대적으로 소득분배가 고른 다른 선진국을 이렇게 평균소득만 비교해서는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짐작하기가 어려움. 이 불균등한 소득분배 현상은 미국의 건강지표가 좋지 않고 범죄율이 높은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함. 게다가 미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물건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 이유는 이민이 많고 고용조건이 열악한 덕에 상대적으로 서비스가 싸기 때문. 이와 더불어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에 비해 일을 훨씬 더 오래한다. 같은시간 일하는 것으로 계산하면 미국인들보다 유럽인들의 구매력이 더 높아짐. 미국인들처럼 여가시간보다는 물건을 많이 갖는 쪽이 더 나은 삶이냐, 유럽인들처럼 물건을 더 살 돈보다는 여가시간을 확보하는 쪽이 더 나은 삶이냐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이 다른 부자나라들에 비해 생활수준이 더 높은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11.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 아프리카가 늘 정체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 있었고 경우에 따라 더 심했던 60년대와 70년대에 아프리카는 상당한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 그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발목을 잡는다고 간주되는 구조적 문제들 중 대부분은 오늘날 부자가 된 나라들도 가지고 있던 문제들이다. 나쁜 기후, 내륙국가, 풍부한 천연자원, 민족분쟁, 바람직하지 않은 문화 등 그야말로 빠진 것 없이 다 갖추고 있었다. 이런 구조적 문제가 아프리카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다만 이런 장애요인이 낳는 문제를 처리할 만한 기술적, 제도적, 조직적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 지난 30년 동안 아프리카의 정체를 불러온 진짜 요인은 이 지역 국가들이 추진하도록 강요받았던 자유시장 경제정책임. 역사나 지리적 요건과는 달리 정책은 변화시킬 수 있음.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 구조적 문제는 늘 있는 것이고, 그나마 시간이 흐르면서 그 영향력이 줄어들면 들었지 더 심화되지는 않았을 터이므로 1960년대와 70년대에 잘 성장하고 있던 아프리카 경제가 80년대와서 갑자기 성장을 멈춘 현상은 이 구조적 문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음. 이와 관련하여 가장 혐의가 짙은 것은 당시 진행되었던 정책방향의 극적인 변화였다. 79년 세네갈을 필두로 해서 70년대 말부터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 지역 국가들은 세계은행과 IMF 그리고 이 기관들을 조정하는 배후의 부자나라들이 제시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조건으로 따라 온 자유시장, 자유무역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 일반적인 통념과는 반대로 이 정책들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음. 이 정책들로 인해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제품들이 국제경쟁 무대에 갑자기 노출되었고, 그나마 60년대와 70년대에 가까스로 성장시켜 놓은 일부 제조업이 붕괴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다시 코코아, 커피, 동과 같은 1차 산품의 수출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아프리카 나라들은 이런 산품들을 특징짓는 극심한 국제가격변동과 정체된 생산기술에 계속 고통을 겪어야 했음. 여기에 더해 구조조정 프로그램에서 수출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자 아프리카 각국은 모두 비슷한 제품을 수출하기 시작. 보유한 기술로 생산할 수 있는 것들이 몇가지 밖에 없기 때문. 그것이 코코아, 커피같은 전통 생산물이 되었든 화훼류 수출이 되었든 갑자기 많은 나라가 동시에 같은 제품을 공급하면서, 늘어나는 공급량으로 인해 가격이 폭락하는 일이 잦아짐. 심지어 수출량은 늘어도 총수입은 주는 사태까지 생김. 예산적자를 줄이라는 압력을 받아 줄어든 정부지출의 영향은 금방 나타나지는 않지만 서서히 취약한 사회간접자본 등으로 그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의 지리적 약점이 더 부각되어 보였다.

12.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 정부는 유망주를 고를 능력이 있고 그렇게 한 선택이 놀라울 정도로 성공한 사례도 많음. 편견없이 둘러보면 전 세계에 정부가 유망주를 제대로 고른 사례들이 널려 있음. 기업활동에 영향을 주는 정부의 결정은 기업들이 직접 내리는 결정에 비해 열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근거없는 주장. 더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다 해서 항상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님. 사실 너무 많은 정보에 파묻혀 있으면 오히려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질 수도 있음. 그리고 정부는 필요하면 더 나은 정보를 획득하여 의사결정의 질을 높일수도 있음. 게다가 개별기업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국민경제 전체로 보면 바람직하지 못한 결정들도 있음. 따라서 정부가 시장의 움직임에 역행하는 유망주를 골랐다 하더라도 특히 그 결정이 민간부문과 긴밀한 협력하에 진행되었다면 국민경제를 향상시키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음.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 트리클다운 경제학으로 알려진 이 주장은 첫번째 장애물에서 넘어지고 만다. 일반적으로 성장을 촉진한느 부자들을 위한 정책, 그리고 성장감소를 부르는 빈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의미를 양분해서 말하는데, 실제로 부자들을 위한 정책은 지난 30년의 세월동안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실패했음. 따라서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조각을 주면 결국에는 전체 파이가 커진다는 트리클다운 이론의 첫번째 단계는 설득력이 없음. 또 두번째 단계, 즉 윗부분에서 창출된 보다 큰 부가 흘러내려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며든다는 이른바 트리클다운 현상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트리클다운 현상이 조금씩 일어날수는 있으나 그것을 시장에 맡겨두면 그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
-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신분이 정해지고, 평생 그 상태로 살아야 하는 봉건적 질서는 18세기 이래로 유럽전역에서 자유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은 출생신분이 아니라 성취한 것에 따라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음. 물론 이는 19세기에 살았던 자유주의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오늘날의 자유주의자들, 특히 유럽에 있다면 자유주의자라기보다 중도좌파라 불렸을 미국 자유주의자들이 질색할 생각들을 많이 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에 반대했음. 가난한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짓이라고 여겼음.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은 부를 축적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금욕을 꼽았다. 노동으로 돈을 벌면, 그것으로 즉각적인 욕망을 채우기보다 투자를 해야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금욕적인 생활을 해나가는 인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 이런 가난한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당장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그것을 소비해 버릴 것이다. 이렇게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잠시 재미를 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체 경제의 투자와 성장이 지체되어 더욱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반감을 가진 당시 자유주의자들의 정치논리는 고전파 경제학자들로부터 지적인 뒷받침을 받았다. 이런 고전파 경제학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 바로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임.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오늘날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 달리 자본주의 경제가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지 않았음. 그들은 자본주의 경제는 자본가, 노동자, 지주라는 세 계급으로 구성되며,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행동하는 방식도 다르다고 보았음. 자본가들은 벌어들인 소득의 거의 전부를 투자하는데, 노동자나 지주들은 소득을 거의 소비한다는 것. 지주계급에 대해서는 학파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리카도 같은 사람들은 지주를 소비만 하면서 자본축적을 방해하는 계급으로 간주. 그러나 맬서스 등은 지주계급의 소비가 자본가들이 생산한 상품에 추가수요를 발생시켜 자본가들을 돕는다고 여김. 하지만 노동자 계급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노동자들이 소득의 전부를 소비하기 때문에 국민소득에서 노동자들의 소득이 큰 부분을 차지할수록 투자와 경제성장은 위축될 것이라 보았음. 리카도같은 열렬한 자유시장론자와 프레오브라젠스키 같은 극좌파 공산주의자가 만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둘이 많이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은 모두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극대화하려면 투자가능한 잉여생산물을 투자자의 손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생각. 둘 사이에 다른 점은 이 투자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뿐이다. 잉여 생산물을 집중시켜야 하는 투자자는, 자유시장론자의 경우 자본가 계급이었고, 극좌파 공산주의자의 경우 계획경제 당국이었다. 오늘날 부를 재분배하기 전에 먼저 부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궁극적으로 잉여생산물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추진되기만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재분배가 경제성장까지 촉진한다고 믿을만한 근거가 많음. 예컨대 오늘날과 같은 불황기에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들을 위한 소득재분배이다. 소득이 적을수록 가용소득에서 더 많은 몫을 지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 저소득 가계에 복지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10억불을 추가지원할 때 얻을 수 있는 경기활성화효과는 같은 액수의 돈을 부자에게 감세해줄 때보다 더 크다. 더욱이 임금이 최저생계수준 혹은 그 이하가 아니라면 노동자들은 추가소득을 자신의 교육이나 건강에 더 투자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노동생산성과 경제성장이 촉진될 수 있음. 더욱이 소득분배가 보다 평등해지면 파업이나 범죄가 줄어들면서 사회적 평화가 이루어지고 이는 다시 투자를 촉진함. 사회적 평화가 이루어지면 재화를 생산하고 부를 생성하는 과정이 방해받을 위험이 줄어듬. 상당수의 학자들은 소득불평등의 수준이 낮으면서 빠른 경제성장이 일루어졌던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이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한 덕분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14.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 미국 경영자의 보수는 여러가지 면에서 너무 높다. 우선 전임자들에 비해서 너무 높다. 동시대 노동자들의 보수 평균과 비교해서 볼 때 오늘날 미국의 CEO들은 60년대 CEO들에 비해 10배를 더 받음. 상대적으로 60년대 CEO들의 경영 성적이 더 좋았음에도 말이다. 미국 경영자들의 보수는 다른 부자 나라 경영자들과 비교해도 너무 높다. 측정방법과 비교대상 국가가 어디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비슷한 규모와 실적을 올리는 다른 나라 회사 경영진들에 비해 미국 경영자들은 절대기준으로 많게는 20배나 더 받음. 이들은 또 보수만 지나치게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경영부진에 대해서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음. 게다가 실제로 미국 경영자들의 보수가 완전히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님. 미국의 경영자 계층이 지닌 경제적, 정치작, 이데올로기적 힘은 자신들의 보수를 결정하는 시장자체를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음.

15.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 가난한 나라에서는 그저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밖에 없음. 어영부영하며 정처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이 한명 있다면 구두닦는 아이는 두세명, 행상은 너덧명 된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개인들에게 기업가 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산을 할 수 있는 기술과 현대식 기업같은 발달된 사회조직이 없어서이다. 개인의 창업을 돕는다는 목표를 내걸고 개도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액의 돈을 빌려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 제도가 의도한 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는 것만 봐도 개인의 기업가 정신이 갖는 한계를 짐작할 수 있음. 20세기에는 특히 기업가 정신을 구현하려면 공동체 차원의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음. 따라서 집단적 조직력의 부족이 개인의 기업가 정신의 부족현상보다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더 큰 장애요인이다.
- 마이크로 파이낸스 산업 관계자들은 초기에 자리를 잡기 위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정부보조금이나 해외원조를 받지 않고도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들이 흑자를 낼 수 있다고 항상 자랑해 옴. 어떤 사람은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도 기회만 주어지면 시장을 잘 이용할 능력이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했음.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정부보조금이나 해외원조금을 받지 않으면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들도 돈을 빌려가는 사람들에게 이자를 물려야 하는데 그 이자율이 거의 고리대금업자 수준이었음. 그라민 은행은 초기에 적정 수준의 이자율을 적용했지만 이것은 오로지 아무도 모르게 방글라데시 정부와 해외원조 기관들에게서 보조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보조금을 받지 않은 회사들은 대개 40~50%에 달하는 대출이자를 부과해야 했으며, 멕시코 같은 나라에서는 심지어 80~100%까지도 부과한 것으로 밝혀짐. 90년대 말 보조금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받자 그라민 은행도 2001년 회사를 재정비하고 40~50%의 이자율을 부과하기 시작. 이자가 많게는 100%까지 붙는 상황에서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을 정돌 이윤을 낼 사업은 거의 없다. 따라서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으로부터 받은 대출금 대부분은 갑자기 궁해진 돈을 메우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딸의 결혼자금을 댄다던가, 직장에 다니는 가족이 앓아누워 일시적으로 돈을 벌지 못해 부족해진 생활비를 충당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다시 말해 마이크로크레디트 자금의 대부분은 원래 목표였던 가난한 사람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소비에 사용된 셈
-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그곳에 사는 개개인의 기업가적 에너지가 부족해서가 아님.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기업가적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들. 부자나라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기업가적 에너지를 집단적 기업가 정신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 에디슨이나 빌 게이츠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자본주의의 전설과 슘페터의 선구적 연구결과 등에 영향을 받은 우리는 기업가 정신을 너무 개인적 차원에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마치 기업가 정신이란 탁월한 비전과 굳을 결의를 지닌 영웅들에게만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누구나 열심히 노력만 하면 성공적 사업가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여기서 나온 발상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기업가 정신을 개인적 차원에서 보는 견해는 옳고 그름을 떠나 점점 구식이 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기업가 정신이란 것은 점점 더 공동체적으로 함께 이루어내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16.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늘 최선의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직접 관련된 일들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전문용어로는 제한적 합리성이라 함.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우리가 그런 세상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음. 따라서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문제들의 복잡성을 줄이려면 일부러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야 하고 실제로 많은 경우에 그렇게 하고 있다. 특히 극도로 복잡한 현대 금융시장과 같은 분야에서 정부의 규제가 효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정부가 보유한 지식이나 정보가 더 우월해서가 아니라 정부규제를 통해 선택의 범위를 제한하여 문제의 복잡성을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
- 금융경제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 은행장, 날고 긴다는 펀드 매니저, 명문대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유명인사까지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가정 위에서만 성립하는 경제학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우리 인간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도 될 만큼 똑똑하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런 결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도 괜찮을 만큼 우리가 똑똑하지 않은데, 시장에 대한 규제는 가능한 것일까? 대답은 그렇다 이다. 아니, 사실은 그 이상이다. 많은 경우 우리가 똑똑하지 않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
-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규제대상인 피규제자(예컨대 기업)보다 관련 상황을 더 잘 알수는 없다는, 언뜻 보기에는 합당한 근거로 정부규제에 반대함. 맞다. 정부가 기업이나 개인의 상황을 어떻게 당사자보다 더 잘 알 수 있겠는가. 이를 근거로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은 정부 관료들의 정책이 경제주체인 당사자의 결정보다 더 우월할수는 없다고 주장. 그러나 사이먼의 이론을 가지고 설명하면 현실에서 정부규제가 유용한 이유는, 정부가 피규제자보다 관련 상황을 더 잘 알고 있기 대문이 아니다. 오히려 규제의 효용성은 행위의 복잡성을 제한해서 피규제자들이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있다. 이는 08년 금융위기에서 선명하게 입증됨. 08년 위기 직전에 우리는 이른바 금융혁신을 통해 모든 것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었고, 그 때문에 우리의 의사결정 능력은 이런 복잡성에 압도당해 버렸다.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 복잡한 금융상품들은 해당상품의 전문가가 아니면 금융전문가들마저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 심지어 그 상품의 전문가마저 많은 경우 그 상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자기회사의 사업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진도 거의 없었다. 금융감독 당국 역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온전히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고는 이제야 핵심적 의사결정권자들의 입에서 이에 관한 고백들이 때로는 자발적으로 때로는 떠밀려서 나오고 있다. 앞으로 유사한 금융위기를 겪지 않으려면 금융시장에서는 행위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있음. 금융상품의 경우 우리가 해당 상품의 내용과 다른 금융 부문 및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면 발행할 수 없도록 해야 함. 그 복잡성으로 인해 심지어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마저 그 내용과 영향을 알지 못하는 파생금융상품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주장들이 너무 과격하게 들릴 수 있음. 그러나 이는 우리 사회가 약품이나 자동차, 전기/전자 제품 등 다른 상품에는 줄곧 적용해오던 조치이다. 일례로 어떤 회사가 새로운 약품을 개발했다고 해서 그것을 곧장 판매할 수는 없음. 약의 효능인 약품에 대한 인체의 반응은 매우복잡. 그래서 우리 사회는 엄격한 검증절차로 그 약이 부작용을 압도할만한 효능이 충분한지 확인한 뒤에야 출시를 허용. 따라서 금융상품도 판매하기 전에 안전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제안은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님. 일부러 제한적 규칙을 만들어 우리의 선택을 의도적으로 한정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환경을 단순화시키지 않는 한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으로는 세상의 복잡성에 대처해 나갈 수 없다. 우리에게 규제가 필요한 이유는, 정부가 당사자인 경제주체들보다 관련상황을 반드시 더 잘알기 때문이 아니다. 규제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제한된 정신적 능력에 대한 겸허한 인정인 것이다.

17.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 높은 교육수준이 국가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사실 놀라울 정도로 빈약함.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은 사람들이 더 만족스럽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생산성 향상과는 직접 관련이 없음. 또 지식경제 시대에 접어들면서 교육이 경제발전에 필수요소가 되었다는 주장도 옳지 않음. 우선 지식경제라는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다. 역사적으로 지식은 언제나 부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탈산업화와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선진국의 대다수 일자리에서 꼭 필요로 하는 지식요건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음. 지식경제에 더 중요하다는 고등교육도 그것이 경제성장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 나라의 번영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교육수준이 아니라 생산성 높은 산업활동에 개인들을 조직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사회전체의 능력이다.
-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자명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 상식에 반하는 증거들이 많음.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정평이 나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예부터 살펴보자. 60년 타이완의 문맹률은 46%나 되었고, 필리핀의 문맹률은 28%에 지나지 않았음. 그럼에도 타이완은 인류역사에 남을 기록적 성장을 보인반면 필리핀은 그다지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함. 60년 필리핀 1인당 국민소득은 200달러로 타이완의 122달러에 비해 거의 두배였다. 그러나 현재 타이완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필리핀의 거의 10배에 달함. 같은 시기 한국의 문맹률은 29%여서 필리핀과 비슷했지만 아르헨티나의 9%에는 훨씬 웃돌았다. 문맹률이 더 높았음에도 한국은 아르헨티나보다 훨씬 더 빨리 성장해서 60년에 아르헨티나의 5분의 1이던 국민소득이 이제는 세배가 되었다.
- 위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경우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사례를 봐도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고 해서 꼭 경제가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음. 80년에서 04년 사이에 이 지역 문맹률은 60%에서 39%가 되어 눈에 띄는 감소추세를 보였음에도,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소득은 매년 0.3%가 떨어짐.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교육이 경제발전에 그토록 중요하다면 이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교육이 경제성장에 별달리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증거는 여기서 예로 든 동아시아 국가들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극단적인 경우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더 일반적인 현상. 랜트 프릿쳇 교수가 "교육은 전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라는 제목으로 04년 발표한 논문에서느느 60년에서 87년 사이의 기간 동안 수십개의 선진국과 개도국에서 모은 자료를 토대로 교육이 경제성장에 긍정적 효과를 끼쳤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널리 인용되는 이 논문에서 프릿쳇 교수는 교육수준이 높아진다고 해서 경제성장이 촉진된다는 증거는 거의없다고 결론내림
- 스위스 패러독스 역시 교육의 생산성 효과가 낮다는 사실로 설명됨. 그러나 초중등 교육의 생산성 효고가 낮은 것은 이 시기의 교육이 자아실현, 모범시민 양성, 민족 정체성과 같은 것을 함양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라혐, 고등교육의 생산성 향상효과가 낮은 것은 고등교육의 기능 중 경제학에서 분류라 일컫는 기능이 강하기 때문. 물론 고등교육은 피교육자들에게 생산성과 관련된 지식을 상당 정도 전수해 주지만, 그것의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은 피교육자들이 얼마나 고용에 적합한지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많은 직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능력은 일을 하면서 배워갈 수 있는 전문지식 보다는 전반적인 지능, 의지, 조직적 사고력 등이다. 따라서 대학에서 역사나 화학을 전공하면서 배운 지식은 보험회사나 교통부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는 거의 쓸모가 없겠지만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의지가 강하며, 조직적 사고력이 있다는 신호가 됨. 대졸자를 모집하는 회사는 각 직원의 전문지식보다는 이런 일반적 능력을 보고 직원을 채용하는 것. 대학에서 얻은 전문지식은 대부분 직장에서 수행할 업무와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18.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 기업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국민경제에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 자신에게도 좋지 않을 수 있다. 모든 규제가 기업에 해로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천연자원이나 노동력과 같이 기업들 모두가 필요로 하는 공동의 자원이 파괴되지 않도록 개별기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기업 부문 전체에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기도 함. 또 각 개별 기업에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끼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기업부문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규제도 있을 수 있음. 노동자 교육규정 같은 것이 그런 사례.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기업규제의 내용이지 양이 아니다.

19. 우리는 여전히 계획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 자본주의 경제도 계획되는 부분이 많음. 공산주의 경제의 중앙계획보다 훨씬 더 제한적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의 정부 역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모든 자본주의 정부는 연구개발과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재원의 상당부분을 지원하고 있고, 또 대부분의 자본주의 정부가 국영기업의 사업방향을 정하는 방식으로 경제의 상당부분을 계획함. 부문별 산업정책을 통해 미래의 산업구조를 계획하는 경우도 많으며, 심지어 유도계획을 통해 국민경제의 미래모습까지도 설계하기도 함. 더 중요한 것은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국경을 넘나들정도로 큰 규모의 위계질서를 갖춘 대기업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기업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계획을 세우고 그것에 입각해 경제활동을 한다는 사실. 문제는 계획의 수립 여부가 아니라 적절한 수준에서 적절한 계획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20. 기회의 균등의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 기회의 균등은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음. 물론 훌륭한 성과를 올린 사람은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함.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가 배가 고파서 수업 시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면 선천적으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집에서는 생계비 지원을 받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무료급식을 통해 밥을 굶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기회의 균등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를 굶기지 않을 정도로는 돈을 벌 수 있어야, 그 아이도 같은 조건에서 다른 아이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지나치게 결과를 균등하게 하려는 것은 해롭지만, 이 지나치다는 것의 한계를 어디로 정해애 하는지는 논의글 거쳐야 함.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 최소한의 소득, 교육, 의료 혜택 등을 보장함으로써 최소한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100미터 달리기 시합에서 모두 똑같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려야 한다면 공정한 경기라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기회의 균등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진정으로 공정하고 효율적인 사회를 건설하기를 바란다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1.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 잘 설계된 복지정책이 있는 나라 국민들은 일자리와 관련된 위험을 감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개방적 태도를 취함. 이것은 미국보다 유럽에서 보호무역에 대한 요구가 덜한 이유중 하나이기도 함. 유럽사람들은 자기가 종사하는 산업이 외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문을 닫는다 해도 실업수당을 받아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고,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데 필요한 직업 재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에 반해 미국사람들은 한번 일자리를 잃으면 생활이 심하게 어려워질 뿐 아니라 다시 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함. 바로 이런 이유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복지정책이 가장 잘 갖추어진 나라들이 이른바 미국의 르네상스라 부르는 90년 이후에도 미국과 비슷한 성장을 하거나 심지어 더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 70년대 당시 영국 경제가 활력을 잃자 비대해진 복지제도와 노조활동이 도를 넘어선 게 그 원인이라는 설명이 널리 받아들여짐. 실제 상황은 더 복잡했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런 식으로 영국역사를 해석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노조들에게 주제파악을 하도록 했고, 복지제도를 대폭 약화시킨 마거릿 대처는 영국을 살린 구세주나 다름 없었음. 90년대 들어와서 과도한 복지정책을 추진하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미국경제가 겉보기에 더 빠르게 성장하자 복지정책에 대한 이런 시각은 위세가 더 커졌다. 다른 나라들도 복지예산을 줄일 때면 영국병을 고친 대처 전 총리와 활기차게 성장하는 미국경제를 운운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직업안정성이 높고 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으면 경제의 생산성과 활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과연 진실인가? 한국 사례에서 보았듯 고용 불안이 높아지면 젊은이들은 의사나 법률가처럼 안정된 직종을 선호하는 보수적 선택을 하는 경향이 강해짐. 이는 개인적으로는 좋은 선택일 수 있지만 사회전체로 볼 때는 재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떨어뜨림. 미국의 취약한 복지제도는 이 나라가 전반적으로 정부개입에 훨씬 더 긍정적인 유럽국가들에 비해 오히려 심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취하게 된 중요 원인 중 하나. 유럽에서는 (국가별 세세한 차이를 잠시 접고 이야기하자면) 몸담고 있던 산업이 쇠퇴해서 일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 큰 타격이자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날 정도의 일은 아님. 의료혜택은 변함없이 받을 수 있고, 국가임대주택 혹은 주거 보조금도 유지될 뿐 아니라 많게는 실직 전 월급의 80%까지 받으면서 정부의 지원으로 직업 재교육을 받고, 구직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 반면 미국에서는 정부에 보호무역을 도입해 달라는 요구를 해서라도 한번 잡은 일자리는 놓치지 않아야 함.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 실업보험의 자격요건이 까다로운 데다 그나마 유럽에 비해 지급기간도 짧다. 직업재교육과 재취업 과정에서도 정부의 도움은 거의 받을 수없음.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은 실직을 하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집마저 잃을 수 있다는 사실. 국가 임대주택이나 임대료 보조금이 거의 없기 때문. 따라서 감원을 포함한 산업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은 유럽보다 미국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음. 대부분의 미국 노동자들은 조직적 저항을 하기 어렵지만, 조직적 저항이 가능한 노조 소속의 노동자들이라면 현재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당연함. 위 사례들을 통해서 직업 안정성이 낮으면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할지는 몰라고 자기에게 맞지 않는 자리에서 열심이 일한다는 문제가 있음.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되면 대성할지 모를 유망한 청년들이 모두 해부학 교실에서 씨름하고 있다. 적절한 재교육을 받으면 생명공학과 같은 유망산업에서 일할 수 있는 미국 노동자들이 자동차 산업같은 사양산업에서 악착같이 일자리를 고수하고 있지만, 이는 단지 피할 수 없는 대세를 약간 지연시키는 것일 뿐이다.
- 노동자들에게 제2의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복지정책은 노동자를 위한 파산법이라고 할 수 있음. 파산법이 기업가들로 하여금 위험을 더 적극적으로 감수하게 해주는 것처럼, 복지정책은 노동자들이 변화에 더 개방적이고, 그에 따른 위험을 더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를 갖도록 해줌. 제2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첫번째 직업을 선택할 때 더 대담해질 수 있고, 후에 직업을 바꾸어야 할 때에도 더 개방적 자세를 취할 수 있음.
- 차를 빨리 몰 수 있는 것은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가 없다면 아무리 능숙한 운전자라도 심각한 사고를 낼까 두려워 시속 40~50킬로 이상 속도를 내지 못할 것임. 이와 마찬가지로 실업이 자기 인생을 망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음. 큰 정부가 사람들을 변화에 더 개방적으로 만들고, 그에 따라 경제도 더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22. 금융시장은 보다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
- 현대 금융시장의 문제는 그것이 너무 효율적이라는 데 있다. 최근의 금융혁신을 통해 만들어진 수없이 많은 새 금융상품들 덕에 금융부문은 금융자산 보유자들을 위한 단기이윤 창출데는 더 효율적으로 되었다. 그러나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보았듯이 이 새로운 금융자산들은 금융 시스템 뿐 아니라 경제전반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말았다. 게다가 금융자산의 유동성을 이용해 자산 보유자들은 작은 변화에도 빨리 반응하기 때문에 실물경제부문의 기업들은 장기적 발전에 필요한 기다려 줄 줄 하는 자본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음. 금융부문과 실물부문 사이에 존재하는 속도의 차이를 줄여야 함. 즉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의도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의미
- 한때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아이슬란드는 95년 무렵 룩셈부르크, 스위스, 일본,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미국, 오스트리아, 싱가포르, 프랑스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11번째로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이미 부유했던 아이슬란드의 경제는 90년대 후반 금융산업의 민영화, 자유화가 추진되면서 마치 터보엔진이라도 장착한 듯 급속히 성장. 아이슬란드 정부는 98년에서 03년에 이르기까지 국유은행들과 투자기금들을 민영화하고 은행에 대한 지급준비율제도마저 없애든 등 가장 기본적 금융규제까지 철폐. 이후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무서운 속도로 확장하여 해외고객을 유치하는 데까지 눈을 돌려 은행마다 인터넷 뱅킹 사업부를 두고 영국, 네덜란드, 독일 금융시장까지 잠식. 한편 아이슬란드 투자자들은 자국은행들의 공격적 대출정책 덕에 엄청난 자금을 융통해 기업쇼핑에 나섰는데, 그 대상은 특히 5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저 유명한 대구전쟁을 치른 과거의 적대국 영국이었다. 바이킹 침략자라 불린 아이슬란드 투자자들의 대표격으로는 젊은 재력가 욘 요하네손이 소유한 투자회사 바우거를 꼽을 수 있다. 2000년대 초 혜성처럼 등장한 바우거는 07년에 영국 소매 유통업의 핵심세력으로 자리잡음. 햄리스 데브넘스, 오아시스 및 아이슬란드 등 영국의 유력한 소매 대기업들의 대주주가 된 바우거는 3800개 소매점에서 6만 5000여 직원들을 고용하며 100억파운드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는 거대 비즈니스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음. 얼마동안은 이 같은 금융부문의 확장이 아이슬란드에 기적을 낳는 것처럼 보였다. 1985년에야 주식시장이 개설되었을 정도로 한때 지나친 규제로 악명 높았던 금융 후진국 아이슬란드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활기 넘치는 신생금융 중심지로 급면. 90년대 후반 이래 아이슬란드 경제는 보기 드문 속도로 성장하여 07년에는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스위스, 덴마크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부유한 나라가 됨. 이때만 해도 아이슬란드의 경제성장은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것처럼 보였음. 하지만 불행히도 08년 금융위기 이후 아이슬란드 경제는 완전히 붕괴. 그해 여름 아이슬란드 3대은행이 모두 파산하는 바람에 정부는 이 은행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인수해야 했음. 그러나 상황은 계속 악화되기만 했고, 급기야 09년 10월에는 세계화의 상징 맥도날드가 아이슬란드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세계화의 변방으로 밀려난 아이슬란드의 현실을 다시한번 확인. 2010년 초 현재 IMF는 아이슬란드 경제가 09년 8.5%에 달하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고 추정하는데, 이는 선진국 중 가장 빠른 추락이다. 요즘들어 아이슬란드가 90년대 후반 이후 추진한 금융주도 발전 정책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증거들이 점점 더 많이 나오고 있음. 07년 아이슬란드의 은행자산은 같은 해 국내총생산의 1000%에 달했는데 이는 은행부문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인 영국에 비해 두배나 높은 수치. 이에 더해 아이슬란드의 금융업 팽창은 외채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밝혀짐. 이 나라의 순외채는 07년에 국내총생산의 거의 2.5배에 달했음. 사실 이보다 훨씬 적게 외채를 쓰고도 망한 나라가 많다. 한 예로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직전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순외채가 각각 국내총생산의 25%와 35%였다. 아이슬란드의 경제기적 뒤에 감춰져 있던 금융거래의 어두운 면도 드러났다. 은행의 주요 대출자 중 상당수가 같은 은행의 핵심 주주였던 것이다.
-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어디든 재빨리 옮겨갈 수 있는 바로 이 효율성 때문에 금융이 경제의 다른 부문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음. 8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이 "지나치게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국제금융시장의 수레바퀴에 모래를 뿌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토빈은 금융이동의 속도를 줄이기 위한 금융 거래세, 이른바 토빈세의 도입을 제안. 토빈세는 이제까지 정치권에서 금기사항이었으나 최근 들어 고든 브라운 전 영국총리가 옹호하고 나선 바 있다. 그러나 토빈세만이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의 속도차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어렵게 만들어 투기적 주식투자로 얻는 이득을 줄일 수 있다. 주식을 빌려서 파는 공매도를 금지하거나 주식 증거금율을 인상하는 방법도 있음. 특히 개도국의 경우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에 대해 규제가 필요. 그렇다고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의 속도차이가 완전히 없어져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실물경제와 완전히 함께 움직이는 금융시스템은 무용지물이다. 금융의 존재가치는 실물 경제보다 빨리 움직이는 데에 있기 때문. 다만 지금까지 문제는 금융이 지나치게 빨리 움직여 실물경제에서 탈선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유동성을 유지하면서도 경제발전의 궁극적 원천인 물리적 자본가 인적자본, 조직혁신 등에 기업이 장기투자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으로 금융시스템이라는 회로의 배선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23. 좋은 경제정책을 세우는 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
- 역사적으로 경제를 가장 잘 운영한 경제관료들은 대부분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었다. 기적적 성장을 구가하는 동안 일본, 그리고 일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한국도 경제정책은 법대출신들이 맡았다. 타이완과 중국에서는 공대출신이 이 역할을 담당. 이는 경제가 성공하는 데 경제학, 특히 자유시장경향의 경제학 훈련을 받은 사람들을 꼭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증명함. 이 책 전체를 통해 살펴봤듯이 지난 30여년 동안 자유시장 경제학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제실적이 저조해졌다. 성장률 감소, 경제 불안정성과 불평등 악화, 그리고 급기야 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몰아온 주범이 바로 이 자유시장 경제학인 것이다. 정책 입안에 경제학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 경제학은 자유시장 경제학이 아닌 다른 종류의 경제학이어야 한다.

* 우리의 경제시스템을 재설계 한다고 할 때 명심해야 할 원칙
(1) 윈스턴 처칠이 민주주의에 대해 한 말을 빌려 자본주의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자면, 자본주의는 나쁜 경제시스템이다. 문제는 다른 모든 시스템이 더 나쁘다는 것이지만, 이책에서 문제삼는 것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지 모든 종류의 자본주의가 아니다. 이윤동기는 여전히 우리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연료이며, 우리는 이런 이윤동기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30여년 동안 엄청난 수업료를 치르면서 배웠듯이 이윤동기에 아무런 규제도 가하지 않는 것이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함. 마찬가지로 시장은 무수한 경제주체들이 수행하는 여러가지 복잡한 경제행위들을 상호조정하는 데에 특히 효율적 메커니즘임.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시장이 메커니즘 혹은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도 명심해야 함. 예를들어 시장은 다른 기계와 마찬가지로 세심한 규제와 조정을 필요로 함.
(2) 인간의 합리성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인식 위에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건설해야 함. 08년 경제위기는 우리가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복잡한 세상을 만들어 버린 탓에 일어난 것. 우리의 경제시스템이 붕괴한 것은 복잡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근본적으로 무한하다고 믿는 경제학자들의 조언에 따라 시스템이 재구성되었기 때문. 따라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면 우리의 객관적 사고능력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함. 흔히 투명성만 높이면 대규모 금융위기가 또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함. 그러나 이는 잘못된 주장. 근본적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의 부족이기 때문. 만약 문제가 정말 투명성이 결여되어 일어난 것이라면 투명성이 높기로 유명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90년대 초반 금융위기를 겪지 않았을 것임. 이른바 금융혁신이 계속 무제한적으로 허용된다면 우리의 규제능력은 끝까지 우리의 혁신 능력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3) 인간이 이기심이 없는 천사가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나쁜 면보다 좋은 면을 발휘하게 하는 시스템을 건설해야 함.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는 인간이 착한 일을 하게 하려면 금전적 보상을 하거나 벌칙으로 위협해야 한다고 믿음. 문제는 이런 믿음이 비대칭적으로 적용되어 부자는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이 약속되어야 더 열심히 일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될 것을 두려워해야 더 열심히 일한다는 이상한 주장으로 탈바꿈한다는 것.
(4) 사람들이 항상 받아 마땅한 만큼 보수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함.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개개인으로 따지면 부자나라 국민들보다 때로 더 생산적이거나 기업가 정신이 더 뛰어난 경우가 흔함. 정치적으로 용납되기 어렵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이민이 자유로워져서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 부자나라에 가서 그곳 국민들과 동등한 조건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면 부자나라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쫓겨날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은 개인적 자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자기나라의 경제 시스템과 선진국의 이민정책 때문. 많은 사람이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누리지 못해 가난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기회의 평등만 제대로 보장되면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 마땅하다는 말은 아니다. 어느정도 결과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특히 모든 아이가 최소한의 영양과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면 시장이 제공하는 기회의 평등 정도로는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수 없음. 이는 누구도 먼저 출발하지는 못하지만 일부 주자들은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매고 달리는 달리기 시합과 같다.
(5) 물건 만들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탈산업화 지식사회는 신화에 불과하고, 제조업은 지금도 경제에 필수적이다. 지식경제라는 개념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우리는 결국 물질적인 존재로 아이디어만 먹고 살 수는 없다. 더욱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항상 지식경제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어떤 나라가 잘사는지 못하는지를 궁극적으로 결정해온 것은 우월한 지식을 소유했는가이지 물리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가 아니었기 때문. 사실 대다수 나라들이 점점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옛날보다 물건을 덜 소비한다고 느끼는 것은 제조업체들의 생산성이 대단히 향상하여 서비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조업 제품이 싸졌기 때문.
(6)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이 더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대 경제가 생산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건강한 금융산업이 필수적. 금융부문이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투자를 하고 나서 그 투자가 결실을 맺을 때까지이 시차를 메워주는 것. 금융은 그 속성상 빨리 움직일 수 없는 실물자산에 유동성을 부여함으로써 자원을 신속학 재배분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지난 30여년 동안 금융은 배보다 더 큰 배꼽이 되어버렸다. 금융자유화로 돈의 이동이 쉬워졌고, 심지어 국경도 손쉽게 넘나들 수 있게 되면서 금융투자자들은 더 참을성이 없어져 즉각적인 이윤을 원하게 되었다. 그 결과 기업과 정부는 장기적인 전망이 어떻든 간에 빨리 수익을 낼 수 있는 정책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자들은 돈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와 기업에 대한 협상카드로 활용해 국민소득의 더 많은 부분을 금융소득으로 돌리는 데 성공.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또 금융을 더 불안정하게 하고 고용불안 또한 심화시킴. 금융부문은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빚을 갚지 못하면 감옥으로 가야하거나 자신의 저축만으로 작은 사업장 하나를 겨우겨우 운영해야 하던 주식회사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실물부문과 금융부문간 속도차를 크게 줄이지 못하면 장기투자의 확대나 실질적인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없다. 생산적 투자가 결실을 맺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7) 더 크고 더 적극적인 정부가 필요하다. 지난 30여년 동안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는 정부가 사회병폐의 해결사가 아니라 병폐의 일부라고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물론 정부 실패의 사례가 존재하고, 그중 일부는 엄청난 실패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장과 기업이라고 실패하지 않는 것은 어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정부가 눈부신 성공을 거둔 사례도 많다는 것. 정부의 역할은 철저히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8) 세계경제 시스템은 개도국들을 불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 대부분의 부자나라들에서는 민주주의의 제약 때문에 완전히 자유시장주의에 맞는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심지어 대처총리 조차도 영국의 국가의료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 이런 사정들로 인해 자유시장 정책이 실험된 곳은 주로 개도국이었음. 특히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많은 가난한 국가들은 자유시장을 맹신하는 국제기구나 부자나라들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유시장 정책을 채택해야 했음. 이런 나라들에서는 민주주의가 취약했기 때문에 자유시장 정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더라도 더욱 무자비하게 추진할 수 있었음. 결국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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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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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발전을 요구한다

경제 2014. 11. 29. 19:51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장하준의 경제정책 매뉴얼

저자
장하준, 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출판사
부키 | 2008-07-1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대안이 없다."며 밀어붙이는 신자유주의의 질주1980년대 영국...
가격비교

- 거의 모든 산업국가는 2차대전 이후부터 80년경까지 국제 자본이동을 강력하게 통제했음. 자본통제로 알려진 이런 정책은 경제개발을 촉진하고 자본의 갑작스런 이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안정에서 자국경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음. 다만 미국은 2차대전이후 자본통제에 실패한 유일한 국가였음. 미국에서 자본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이 나라의 독특한 지위, 즉 세계적 금융 초강대국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음. 산업국가의 정책입안자들이 비록 입으로는 자유시장의 미덕을 소리높여 찬양하지만, 실제로는 금융위기를 방지하고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시장에 개입하거나 재조정 한다는 사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최근에도 여러차례에 걸쳐 금융, 경제 리스크를 사회화한적이 있음. 그 예로 크라이슬러에 대한 구제(80년), 수십억 달러의 공적자금이 지원된 저축대부은행 사태(89년), LTCM사태(98년), 항공산업구제조치(89년) 등이 있음. 이 각각의 사례에서 미국 정부는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금융시장의 안정을 촉진하기 위해 기꺼이 자유로운 금융시장의 원칙을 포기했음.
- 신자유주의는 18~19세기 고전파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자유시장 교리를 현대적 맥락에서 차용한 개념. 최근에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신자유주의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강력히 옹호하고 있는 미국 연방정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등이 모두 워싱턴에 소재하고 있기 때문. 신 자유주의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요소로 구성됨. 첫째, 신자유주의는 경제부문의 지배구조와 (가격 지지나 가격상한제 폐지, 무역자유화, 시장에서의 환율결정 등을 통한) 재화와 자본의 흐름을 조정하는데 시장의 역할을 강화. 둘째, 신자유주의는 민간부문과 민영화와 규제철폐를 통해 사적 소유권의 범위를 확장하고 그 역할을 강조. 셋째, 신자유주의는 (균형예산, 노동시장의 유연성, 낮은 인플레 등) 특정 규범을 건전한 경제정책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장려함
- 신자유주의의 실패. 첫째, 신자유주의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기존의 문제를 악화시킴. 예를 들어, 은행과 환율시스템의 취약성을 악화시키고 금융위기를 상시화하며, 불평등과 빈곤이 확산되도록 함. 이런 문제들을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대다수 국민에게 고통을 줌. 둘째,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정부는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삶의 기반을 잃은 사람들에게 보상수단을 제공할 동기도 방법도 없음.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정부는 사회복지의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는 광범위한 사회복지 정책이 자유시장과 관련된 인센티브를 왜곡시키기 때문. 또 신자유주의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물가상승을 저지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도 정부는 되도록 사회적 지출을 억제해야 함. 더욱이 신자유주의로 삶의 권리를 박탈당한 소외집단은 정부로부터 보상을 얻어낼 정치력도 충분치 못함.
-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대형투자자와 부자들은 특정 국가가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전략을 추진할 때 그 나라로부터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려왔음.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는 국가정책의 자율성까지 효과적을 침해할 수 있게 됨.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금융위기는 국가 운영에 관한 국제통화기금의 영향력을 크게 강화시켰음. 국제통화기금이 특정 국가에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경우에는 엄격한 부대조건이 따라 붙음. 즉 국내의 중요한 결정이 미국과 국제금융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관에 의해 좌우됨.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개도국에서 다원주의와 정책 독립성을 약화시킴.
- 정책결정권이 국제기구나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독립된 기관으로 넘어가는 추세는 문제가 많음. 이 전략은 사실상 민주주의적 지배구조의 가치를 부인하고, 공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책결정 과정의 정당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임. 어떤 기관이 정치적으로 독립되었다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정치적으로 독립된 기관은 자신들과 밀접한 좁은 범위의 집단에게 봉사할 가능성이 높음. 예를들의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은 자신들의 의제를 결정하는 강대국 정부와 국제금융집단에 대해 책임을 지고, 독립된 중앙은행과 통화위원회는 금융집단의 이해를 위해 움직임. 강력하고 부유한 국가와 대기업들은 WTO에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
- 역사적 기록을 보면 산업국가들은 산업화 과정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특허권을 인정하거나 시행하지 않았음. 스위스는 기계 발명품을 보호하는 특허법을 1888년 설립했지만, 포괄적인 특허법은 1907년에야 도입했음. 네덜란드는 1817년 처음으로 특허법을 도입했지만, 특허가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을 중시하는 국가의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 방향으로 독점을 창출한다는 이유로 1869년에 특허법을 폐지. 특허법은 1912년이 돼서야 네덜란드에 다시 도입됨. 흥미롭게도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을 가장 옹호했던 19세기 경제학자들은 독점이라는 이유를 들어 특허를 거부했음.
- 자본이 자유롭게 들어온다는 것은 (예컨대 외국인 투자에 대한 배당금, 외국인 대출이자에 대한 이자지급, 주식 포트폴리오의 청산과 같은 식으로) 자본이 자유롭게 나갈 수 있다는 말. 급작스런 대규모 자본유출은 국내 통화를 절하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음. 자본이탈은 종종 추가적 자본이탈과 통화가치 하락, 부채상환압력, 그리고 주식 가치 하락을 불러옴. 이는 공황상태에 빠진 투자자들이 앞다퉈 보유자산을 팔아 예상되는 통화가치와 자산가치 하락에서 발생하는 자본손실을 줄이려고 하기 때문. 자본이탈은 이런 방식으로 기존 거시경제의 취약성과 금융불안을 야기하거나 악화시킴. 이런 상황은 금융위기때 최고조에 달해 경제실적과 특히 빈곤층의 생활수준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때때로 외국인이 국내정책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듬.
- 외국대출은행이 국내은행이 제공하는 자금보다 더 저렴하다는 신자유주의자의 주장은 옳음. 그러나 외국은행의 대출비용이 아무리 저렴하다고 해도 종종 그랬던 것처럼 비생산적인 영영에 투자된다며, 국민경제발전에서 해외대출의 긍정적 영향은 그리 크지 않게 됨. 또 외국은행 대출은 만기불일치나 지역불일치의 문제를 일으키거나 악화시킬 수 있음. 만기불일치는 장기투자자금을 단기대출로 조달하는 상황을 일컬음. 이런 상황에서 채무자들은 상환만기를 연장할 때마다 이자율과 상환연장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불리한 처지에 설 수 밖에 없음. 외국은행은 매우 싼 이자로 단기대출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자금조달이 어려운 개도국 채무자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것이 사실임. 그러나 일단 이런 돈을 빌린 개도국 채무자들은 상환을 연장할 때 혹독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됨. 만기연장 자체가 매우 어렵거나 연장에 성공해도 비싼 이자를 내야 하는 등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 한편 지역불일치는 자국 통화 이외의 통화로 해외부채를 상환하는 경우에 발생. 개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외채를 달러화, 엔화, 유로화 같은 경화로 상환해야 하는데, 지역불일치 현상에 따라 개도국은 자국통화가 평가절하되는 경우 채무상환액이 더욱 오르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게 됨.
- 포트폴리오 투자를 배분하는 국제자본시장이 빠른 가격조정 메커니즘의 특성이 있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옳음. 하지만 이런 메카니즘은 자산가격의 변동으로 인해 특정기업의 불안정을 증가시키고, 구조적 불안정과 금융위기가 발생할 취약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거의 이득이 없음. 많은 경우 자본 시장에서 가격조정은 투자전망에 대한 신중하고 과학적인 평가보다는 투자자의 변덕과 시장 심리에 좌우됨.
-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개도국의 정책자율성에 대해서는 혹독하고 직접적인 제한이 가해짐.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급작스런 정부지출 감소와 이자율 인상이 포트폴리오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그리고 투자자의 복귀를 유인하기 위해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함. 그래서 국제통화기금은 개도국이 위기에 빠졌을 때 지속적으로 긴축재정 정책과 통화정책을 펼치도록 압력을 넣는데, 역사적 사례를 보면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최근의 금융위기 이후 긴축정책을 펼쳤으나 부도율이 높아지고 경제전반에 걸처 위험요소들만 더욱 확대되었을 뿐 포트폴리오 투자자들을 되돌아오도록 설득하는데는 실패. 수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은 확장적 정책을 통해 경제회복을 촉진하고 사회의 취약계층을 보호해야 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투자자의 신뢰회복을 위해 긴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
- 개도국의 금융자유화는 몇가지 서로 상승작용을 하는 움직임들에 의해 가속화되었음. 우선 개도국으로 유립되는 국제민간자본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 또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전환이 이루어졌으며, 금융부문의 이해집단과 국제통화기금이 정부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음. 그러나 금융자유화의 성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음. 특히 민영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개도국의 일부 대기업만이 금융자유화로 창출되거나 확대된 자본시장을 통해 상당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음. 이런 대기업에 공급된 자금은 종종 은행대출을 통해 마련하는 것보다 저렴했음. 또 금융자유화는 개도국이 세계금융시장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촉진시킴. 그러나 이처럼 별로 대단하지 않은 성과도 문제를 안고 있었음. 이를테면 개도국에서 대기업의 성장은 비즈니스 집중도를 높이는 것임. 자본시장은 단지 대기업만이 낮은 비용으로 외부자금을 조달할 수 있던 기존의 이중적 상황을 강화시킴. 일부 대기업에게만 가능한 낮은 자본비용은 때로 과도한 투기를 부추기기도 함. 그리고 국제 금융시장의 통합은 시스템 리스크를 높이고, 금융불안과 취약성을 증대시키며, 개도국에서 금융위기 발생가능성을 높이는 등 부정적 측면을 낳고 있음.
- 투기주도 개발은 몇가지 이유에서 문제가 많음. 신자유주의적 관점과 달리 자유화에 뒤이어 나타나는 금융혁신과 유동성 증가는 금융시스템과 경제에 더 큰 불안과 위험을 낳음. 자본시장의 확대가 금융 시스템이 더 허약해지도록 부채질하게 되는 것임. 이런 위험은 종종 국가의 금융위기로 끝나게 되고, 이 위기는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정치적으로 힘이 없는 사회계층에 불공평한 부담을 안김. 투기주도 개발은 소득 불평등을 확대해 기존의 사회병폐를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소수 사람만이 자유화된 금융환경에서 투기 이득을 챙길 기회가 생기기 때문. 투기주도개발은 국내 금융시장보다 해외금융시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소수의 금융가 계층을 새롭게 만들어냄. 국내외 금융관련 집단이 정치, 경제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을 통해서임.
- 금융시스템이 적절한 형태로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 방밥은 바로 장기자금을 제공하는 것임. 이런 장기자금은 경제발전에 핵심적인 대부분의 투자 프로젝트에 필요함. 제임스 토빈은 미국 금융시스템을 연구한 자신의 논문에서, 장기투자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의 역량을 기능적 효율성이라고 불렀음. 기능적 효율성은 가격결정 메커니즘에 중점을 두는 기존의 효율성 개념과 대비됨. 특정 금융개혁의 타당성 여부는 이 같은 기능적 효율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함.
- 신자유주의자들은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고정환율제가 끝났다고 선언했음. 그러나 그들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정부가 자본통제를 포기하기 전까지 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고정환율제가 완벽하게 제 기능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간과했음. 고도성장기에 이들 국가에서 환율을 일정범위로 고정한 것은 수출주도 성장과 금융안정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 9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칠레는 자본유입에 엄격한 통제를 가하는 크롤링 페그제를 유지. 아시아의 몇개 국가에서도 그랬듯이 고정환율은 수출주도 성장을 지원하고 금융안정성을 높이는 전략이었음. 산업국가의 정책입안자들도 2차대전 직후 경제난국을 거치면서 자본통제로 뒤받침되는 통화페그제의 가치를 인정했음. 산업국가가 전후에 활요했던 고정환율제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1976년에 이르러서였음. 산업국가는 2차대던 이후 거의 30년동안 고정환율제에 의해 창출된 통화안정으로 혜택을 보았음. 그리고 이 제도가 해체된 후 유럽국가들은 고정환율제의 핵심요소를 유럽통화체제로 부활시켰음.
-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독립적 중앙은행은 일부집단의 이익에만 부합하고 다른 집단의 이해와는 상반된 방식으로 운영됨. 독립적인 중앙은행은 구조적으로 저금리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금융수익을 취할 수 있는 이해단체인 금융집단에 편향되어 있음. 물론 물가상승으로 손해를 입는 다른 계층되 있지만 물가상승으로 가장 직접적이고 심각한 경제적 손해를 보는 집단은 금융집단임. 따라서 금융집단이 중앙은행 독립을 강력히 옹호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님. 이른바 독립된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통해 금융집단의 이익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 산업집단과 수출상품 제조업체는 금융집단과 달리 제한적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상승을 막자는 주장에 집착하지 않음. 산업집단은 이자율 상승에 따른 대출비용 증가로 고통을 받기도 하기 때문. 게다가 수출상품 제조업체 역시 이자율 인상으로 인한 국내통화의 평가절상으로 고통받음. 따라서 독립적 중앙은행이 추구하는 통화정책의 분배효과는 중립성과는 거리가 멈.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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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경제 2014. 11. 29. 19:50

 


나쁜 사마리아인들

저자
장하준 지음
출판사
부키 | 2007-10-1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저자 장하준 교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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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 자유로운 무역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 그러나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에 묶여 있던 나라들이 올린 경제성과는 형편없었음. 1870년에서 1913년 사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연간 0.4%증가한 반면, 아프리카의 1인당 국민소득은 0.6% 증가. 같은 기간 서부유럽의 1인당 국민소득은 1.3%,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8% 증가했음. 대단히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 관세자율권을 되찾은 이래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높은 관세를 자랑하던 남미 국가들은 미국과 비슷한 속도로 성장했다는 사실.
- 45년 이후의 세계화에 대한 진실은 정사와는 완전히 상반됨. 50~70년대는 국가주의적 정책에 의해 뒷받침되는 통제된 세계화의 시기였음. 반면 지난 25년간은 급격하고 통제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기였음. 통제된 세계화의 시기의 세계경제는 최근에 비해 훨씬 빠르게 성장했고, 훨씬 안정적이었으며, 소득분배도 훨씬 균등했음. 이런 현상은 개도국에서 두드러졌음. 그러나 정사는 이 통제된 세계화의 시기를 개도국들의 국가주의적 경제정책이 끔찍한 재앙을 불러온 시기로 그리고 있는데, 이렇게 왜곡된 역사적 기록을 퍼뜨리는 의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를 감추고자 하는데 있음.
- 2차대전 이후 미국은 무역을 자유화하고 자유무역의 대의를 대내적으로 옹호하기 시작. 그러나 미국은 단한차례도 (1860~1932년사이) 자유무역주의 시기의 영국만큼 강력하게 자유무역을 실시한적이 없음. 미국은 영국처럼 무관세 정책을 펼쳤던 적이 없음. 게다기 미국은 필요하면 언제든 관세 외의 다른 보호주의 정책을 서슴없이 사용하였음. 그뿐인가 자유무역주의를 강화한 후에도 미국정부는 연구개발지원과 같은 여타의 수단으로 핵심산업을 장려했음. 50년대에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연방정부의 지원은 전체 연구개발비용의 50~70%를 차지했는데, 이는 일본과 한국 등 정부주도형 국가에서 볼 수 있는 20% 남짓 되는 수치를 크게 웃도는 것이었음. 이 같은 연방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이 없었더라면 미국은 컴퓨터, 반도체, 생명과학, 인터넷, 항공우주과학 등 핵심산업 분야에서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 대해 기술적 우위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임.
- 부자나라들은 개도국들에게 자유무역을 권장하면서, 자신들이 모두 완전한 자유무역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함. 그러나 이것은 마치 여섯살 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고, 성공한 어른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여섯살 먹은 아이를 일터로 보내라는 충고와 같음.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했기 때문에 자립한 것이지,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님.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어린시절에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아온 사람들임. 부자나라들은 자국의 생산자들이 준비를 갖추었을 때에만, 그것도 점진적으로 무역을 자유화했음.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자유화는 경제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발전의 결과임. 무역자유화는 결코 경제발전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님. 자유무역은 단적으로 말해 개도국들이 생산성 증대효과가 낮고, 따라서 생활수준 향상효과도 낮은 부문들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쉬운 정책임. 그렇기 때문에 자유무역을 통해서 성공을 거둔 나라들은 거의 드물고, 성공한 나라들이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결같이 유치산업 보호 정책을 사용해온 나라들임.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발전의 취약에서 비롯된 낮은 소득 때문에 자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 구사할 수 있는 자유를 크게 제약받음. 따라서 자유무역 정책은 역설적으로 그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개도국들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임.
- 특정 개도국의 경제전망이 밝으면 지나치게 많은 외국금융자본이 몰려와 자산가격은 일시적으로 실질가격 이상으로 높아지면서 자산버블을 형성. 반면 상황이 악화되면 자산버블이 터지고 외국자본이 한꺼번에 철수하게 되면서 경기침체가 악화됨. 이와 같은 쏠림 현상은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음. 장기적 경제전망이 밝았던 나라들에서마저도 외국 자본이 대규모로 이탈함.
- 우량한 미국 유가증권을 외국인이 한장도 소유하지 않고, 미국이 유럽의 은행가들과 대부업자들에게 착취당하는 신세에서 벗어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이 바로 우리에게는 행복한 날이 될 것이다. (1884, 뱅커스 매거진)
- 초국적 기업들은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특정국가의 기업에 지나지 않음. 따라서 자회사들이 수준높은 사업부문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음. 또한 초국적 기업 자회사들의 존재는 장기적으로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 국내기업의 출현을 방해할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은 투자유치국의 장기적 발전 잠재력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음. 또 외국인 직접투자의 장기적 혜택을 좌우하는 요인중 하나는 초국적 기업들이 창출하는 파급효과의 규모와 질인데, 이 파급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정책개입이 필수적임.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내 부품 조달요건 따위의 이런 개입에 필요한 주요 도구들이 이미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의해 금지된 상태임. 따라서 외국인 직접투자는 악마와의 거래일 수 있음. 외국인 직접투자는 단기적으로는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불리할 수 있기 때문. 이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핀란드의 성공이 놀라울 것이 없음. 핀란드는 외국인 투자가 지나치게 일찍 자유화되면 자국 기업이 독립적으로 기술적, 경영적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질 것이라는 인식에 기초하여 외국인 투자전략을 구사했음. 노티아는 전자산업 관련 자회사에서 이윤을 얻기 까지 17년의 세월을 들여야 했지만, 지금은 세계 최대의 이동전화회사로 손꼽히고 있음. 만일 핀란드가 일찌감치 외국인 투자를 개방했다면 노키아는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임. 아마도 외국 금융투자자들이 노키아를 사들였다가 아무런 희망도 없는 전자 산업 자회사에 대한 보조금 지원 중단을 본사에 요구하여 그 회사를 말려 죽였을 것.
- 낮은 물가상승율은 노동자들이 이미 벌어 놓은 것을 더 잘 지켜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데 필요한 정책은 노동자들이 미래에 벌 수 있는 기회를 감소시킬 수 있음. 왜 그럴까? 물가상승율을 낮은 수준, 그것도 대단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엄격한 금융, 재정 정책은 경제활동의 수준을 저하시킬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노동수요의 감축, 실업증대, 그리고 임금감소의 결과를 낳을 것임. 따라서 엄격한 물가 통제는 노동자에게는 양날의 칼임. 낮은 물가상승율은 노동자들이 이미 벌어놓은 수입은 더 잘 보호하지만, 반대로 노동자들의 미래 수입을 감소시킴. 물가상승율의 하락으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연금 수급자와 고정된 이율로 금융 자산에서 수입을 얻는 경제주체들에 한정됨. 이들은 노동시장의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에 물가 상승율을 낮추는 엄격한 거시경제 정책이 미래의 고용기회나 임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반면, 이미 가지고 있는 소득은 오히려 더 잘 보호됨.
- 지나치게 엄격한 통화정책은 투자를 줄임. 그리고 낮은 투자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감소시킴. 부자나라들은 높은 생활수준, 관대한 복지정책, 낮은 빈곤율을 달성한 상태이므로 이런 문제들이 심각하지 않을 수 있음. 하지만 절박할 정도로 더 높은 소득과 더 많은 일자리가 필요하고, 심각한 소득 불평등 문제를 대규모의 재분배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는 개도국의 입장에서는 엄격한 통화정책은 재앙에 가까운 일임. 통화정책을 엄격하게 유지하는 비용을 고려한다면, 중앙은행에 물가상승율 통제라는 유일한 목적으로 부과하고 독립성을 부여하는 것은 개도국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임.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개도국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통화주의자들의 거시경제정책을 제도화하는 것이기 때문. 더군다나 개도국의 경우 중앙은행의 독립성 강화가 고성장과 저실업 같은 다른 바람직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 물가상승율도 낮추지 못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함.
- 문화에 근거하여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견해는 60년대까지 널리 퍼져나갔음. 그러나 시민권 운동과 탈식민시대가 되자 사람들은 이런 설명에는 문화지상주의적 기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 이에 따라 이런 설명들은 비판을 받음. 그러나 지난 몇십년 사이에 우위를 차지하는 문화들이 다른 문화들에게 위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서 이런 설명들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음. 이런 설명은 또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구실이 되기도 함. 즉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까닭은 정책 자체에 본질적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정책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정책의 효과를 갉아먹는 좋지 않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함.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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