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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계완 지음
출판사
앨피 | 2014-12-1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인문학적 안목으로 직조한 수준 높은 정치경제학 교양서 근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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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롤스는 '정의론'(1971)에서 존 데이비드 마봇의 논의를 빌려 "계획을 짠다는 것은 시간표를 만드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은 논리적 숙고과정을 보임. "우리는 우리의 행위들은 시간상에 계열화함으로써 각 행위가 일정한 시간동안 수행되도록 조직하고자 한다. ... 행동에 대응하는 욕구의 강도에 따라서, 그리고 그것이 다른 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서 그 행동들에 대해 시간과 정력이라는 기본적 자원이 할당된다. 숙고를 하는 목적은 ... 우리의 목적과 관심들이 하나의 행위 체계로 효과적으로 결합될 수 있게 하는 계획을 발견하는 데 있다. 다른 목적들과 충돌하는 경향이 있거나 다른 행위의 가능성을 저해하는 욕구는 제거되며, 그 자체로서 바람직할 뿐 아니라 다른 목적까지도 지지해주는 것들은 장려된다. 그래서 계획은 하나의 계층체계로 적절하게 배열된 하위 계획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계획들은 서로 보완해주는 보다 항구적인 목적과 관심들을 고려한다."
-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를 쓴 그레고리 클라크는 경제학자들의 대량실직 사태를 은연중에 시사하고 있음. "경제학자들의 노력의 결과물이 인류의 물질생활 운명을 예측하는 데 그다지 큰 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에 대한 수요급증 등으로 경제학자들의 몸값이 한없이 치솟았다는 사실 또한 신이 인간에게 던져놓은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는 "신은 경제학자들을 골탕먹이고 이들의 노력을 비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 경제원리를 만들어 낸 것이 분명함. 과학과 같은 다른 학문영역에서는 지난 400여년 동안 관련 지식이 꾸준히 축적되어 왔음. 초창기에 수립된 이론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기도 했음. 그러나 오류가 있는 것으로 판명된 초기이론들마저 새로 대체된 이론 속에 포함되었고, 이론의 수립과 대체가 수없이 반복되면서 더 많은 지식이 축적되어 결국 더 광범위한 조건 아래에서도 결과를 예측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경제부문은 그렇지 못하다. 경제 세계를 기술하고 예측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1800년에 절정을 이루었을 뿐, 그 이후로는 한마디로 갈팡질팡, 무엇 하나 확실하게 규명하고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레고리 클라크는 "산업혁명 이후 국가 혹은 지역에 따라 소득격차가 더욱 심하게 벌어진 원인을 설명하고자 수립된 수많은 수리적 경제모형들은, 부와 소득의 차이를 예측하는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면서 "맬서스의 인구론 모형은 각 사회간 생활수준 차이의 근원을 깔끔하게 분석하는 데 성공"했으나, 경제학적 측면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은 아프리카 사하라 지역의 원시 수렵채집사회에서부터 1800년경까지 뿐이라고 말한다.
- 케인스는 우리의 적극적인 활동의 대부부은, 그것이 도덕적인 것이든 쾌락주의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엄밀한 수학적 기대치에 의존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생적인 낙관에 의존하며, 그러한 인간성의 특징에서 비롯되는 불안정성이 존재한다고 갈파. 우리에게는 수학적 기대치를 계산할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장래의 긴 세월에 걸쳐 완전한 결과가 나오는 어떤 적극적인 일을 행하고자 하는 우리 결의의 대부분은, 추측컨대 오직 야성적 혈기의 결과로 이루어질 뿐 수량적 이익에 수량적 확률을 곱하여 얻은 가중평균의 소산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그 설립취지서의 서술이 아무리 솔직하고 진지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동기를 부여받는 일은 없고 그저 그런척 할 뿐이다. 기업의 투자는 장래 이익의 정확한 계산을 기초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남극탐험과 별다르지 않다. ... 투자의 장래를 추정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투자가 그 자생적 활동에 크게 의존하는 사람들의 신경과민증이나 히스테리 또는 심지어 소화상태나 날씨에 대한 반응 같은 것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 일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 타고난 활동에 대한 충동이며, 우리의 합리적 자아는 가능한 경우에는 계산을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의 동기를 기분이나 감정 또는 요행에 맡기면서 여러가지 선택의 대상에서 최선의 것을 선택한다." (케인스) 이른바 동물적 충동이 경제를 이끌어 가는 힘이라는 유명한 말이 이 대목에 나옴.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근대적 전통인 이성적이고 엄밀한 논증의 세계보다는, 소설 작품에서 흔히 보게 되는 까닭모를, 근거없는 어떤 감정의 묘사와 흡사하다. 우리는 여기서 출발지점은 같은 데도 이상하게 다르게 들리는 메아리를 듣게 된다. 인간 이성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정부는 사회를 통제하는 계획과 경제정책을 펼 게 아니라 규제를 풀고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자의 음성이 그 하나이고, 인간 이성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정확한 계산의 수리적 기초가 우리에게는 없다. 야성적 충동에 따라야 한다는 케인스의 음성이 다른 하나이다.
-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레베카 블랭크는 여러 도전에도 불구하고 인간행동의 합리적 선택을 강조하는 주류 경제학 표준모형은 놀랄 정도로 지속되어 왔으며, 그럴만한 충분한 장점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 "첫째, 표준화되고 널리 수용되는 분석도구로서 주류 경제모형은 멋진 것이다. 둘째, 경제적 인센티브가 전적으로 행동을 결정한다고 믿을 필요는 없으나, 심지어 선택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최상의 안을 선택한다고 분석하는 것이 여전히 유용하며 강력한 예측능력을 갖는다. 경제적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것은, 일관성 있고 단순하면서도 상당히 신뢰성 있는 최상의 모형이다. 셋째, 너무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아한 수학으로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들에만 집착해온 까닭에, 흥미로운 경제학이 수학적 엄격함에 의해 제한되었지만 다루기 쉬운 수리적 형태로 직접 옮겨질 수 있다는 용이성 또한 있다." 그러나 블랭크는 표준적 경제모형의 문제점 역시 빼놓지 않고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경우 개인들이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선택으로 특징짓는다는 데 있다. 경제적 행동에 관한 전형적 이야기는 능력있는 개인을 묘사한다. 선택하고, 정보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더 나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의식적이고 합리적으로 계획하는 인간이다. 이러한 기본모형에는 어떤 개인도 지배받거나 억압받거나 수동적이거나 꼼짝 못하거나 아프거나 자기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혹은 대안을 깨닫지 못하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민주적이고 산업화된 서구 사회 중산층 백인으로 상정된 대표적 경제적 개인은 아마 상당히 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능력있고 통제된 서구화된 개인에서 멀어질수록 이 모형은 개인행동 패러다임으로서 매력을 잃게 된다. 지극히 가난한 도시빈민 사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학대받는 여성과 어린이들을 다루는 사회사업가들은, 이런 모형이 그들 고객의 행동패턴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고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런 모형이 가정하는 선택에 기초한 행동이 어떤 상황보다는 그와 또 다른 어떤 상황에서 더 지배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사실과 효용으로 대표되는 벤담의 공리주의는 개별 경제주체의 이익의 총합이 곧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구성된다고 주장. 그러나 여기엔 흔히 구성의 모순이 발생한다. 폴 새뮤얼슨은 경제학 첫장에서, 경제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원리가 구성의 모순이라고 말한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원칙이 구성이라며, 사회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넷 이외에 다른 숫자가 된다는 것이 모순이다.
- 14세기 아랍 지리학자 이븐 바투타는 지금의 러시아 볼가강 유역을 따라 이루어진 장거리 무역을 다음과 같이 묘사. "여행자들은 각자 가져온 물건을 내려놓고, ... 야영지로 되돌아간다. 다음날 그곳에서 자신이 전날 내려놓은 물건들 앞에 모피더미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만일 이들이 자신이 가져온 물건을 모피와 교환하는데 만족하면 물건은 그대로 두고 모피를 가져가면 되고, 교환조건에 만족하지 않으면 물건과 모피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둔다. 마을 주민이 여전히 교환을 원하면 그 물건 앞에 좀 더 많은 모피를 얹어 높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놓아 둔 모피를 거두어 간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상거래를 한다. 거래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상대방이 사람인지 유령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상대방을 한번도 보지 않은 채 거래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도 기원전 5세기 즈음 카르타고인과 리비아인 사이에 이뤄진 이와 유사한 방식의 교환을 묘사하면서 이를 고요한 거래라 불렀다.
- 그동안 국내의 경제민주화 논쟁 역시 시장교환 영역에서 자본 사이(대자본과 중소자본)의 민주화, 독점과 집중에서 더 많은 유효경쟁으로의 이행을 강조하는 공정한 시장질서 민주화, 소수 거대 자본가와 다수 소액주주 자본가들 사이의 분배민주화 차원에서 일어나고 이해되었다. 생산영역 민주화에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의 핵심은 생산이다. 기업(자본)의 생산관계와 생산과정의 민주화 및 통제가 경제민주화의 요체다. 이는 곧 노동 문제를 핵심으로 한다. 단지 분배 교환과정 측면에서의 시장질서와 공정성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한국의 생산영역에서 노동과 자본의 생산함수는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그 함수의 수식방정식은 어떤 모습인지, 생산함수 중 노동변수의 형태(정규/비정규)가 생산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작업장의 생산영역을 바꾸는 산업민주주의를 핵심기치로 내거는 경제민주화 논쟁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함. 사실 생산과정을 배제한 경제분석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을 유치원에서 또는 주연배우인 자본가가 없는 상황에서 관찰"하는 격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서 주류 경제학자 집단에 속하는 로널드 코스는 "경제학자들로부터 경제학을 구하자"고 외쳤다. 그의 나이 102세 때이다. "칠판 앞을 떠나 사회를 직시하라"는 늙은 거인이 경제학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였다. "20세기에 경제학은 비로소 하나의 분과 영역을 확고히 구축했다. 경제학자들은 '자신들만 읽는' 독점적인 논문과 글을 쓸 경제학 역량을 공유하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경제학의 패러다임은 점차 추상적, 이론적 접근에 기울고 현실경제의 실질적 문제는 포기하는 쪽으로 전환되었다. 오늘날 실제 상품의 생산과정은 경제학에서 주변화되었다. 패러다임 질문은 자원배분에서 정태적 분석에 그친다. 경제학자들이 비즈니스 기업분석에 사용하는 도구는 너무나 추상적이고 사변적이어서 기업가정신이나 경영자에게 새로운 생산물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싼 비용에 제공하려는 매일의 노력에 대해 어떤 지침을 주기 어렵다."
-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팡글로스 박사의 경제학, 곧 지금상태가 모두에게 최선이라는 낙관주의를 바탕으로 갈등과 대립이 없는 조화로운 경제세계를 주창함. 진보를 주창하는 세력이 사회경제의 원천적 대립과 갈등을 그 사유기반으로(더 정확히는 근본모순으로) 삼는다면, 보수적 사유에서는 갈등없이 조화롭고 모든 사람의 공공이익이 증진되는 공리주의의 평화와 조화가 강조됨. "유난히 조화와 화해를 강조하는 사람일수록 그 자신이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란 말이 있다. 자신이 취득한 기득권이 정당성과 거리가 있고, 타인의 고통과 희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일수록 유독, 어떤 때에는 필사적으로 조화와 화해를 부르짖고 강요한다는 이야기. 주류 경제학에서 주창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조화도 그러한 것은 아닐까?
- 부의 분배의 역사는 언제나 매우 정치적인 것이었으며, 순전히 경제적인 메커니즘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불평등의 역사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행위자들이 무엇이 정당하고 무엇이 부당한지에 대해 형성한 표상들, 이 행위자들 사이의 역학관계, 그리고 이로부터 도출되는 집합적 선택들에 의존한다. 불평등의 역사는 관련되는 모든 행위자가 함께 만든 합작품이다. 부의 분배의 동학이 수렴과 양극화가 번갈에 나타나도록 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을 가동시킨다는 것, 그리고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힘이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막는 자연적이고 자생적인 과정은 없다는 것이다. (피케티) 불평등을 약화시키고 평등으로 수렴하도록 만드는 시장의 자기조정 메카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미래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과거 어느때보다 더 극심한 불평등의 신세계일수도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런 극단적인 소득의 불평등이 지속가능하지 아닌지는 이를 억제하는 장치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뿐만 아니라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도 달려 있다. 아마도 후자가 주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령 불평등이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혹은 효율적으로 일하기로 한 선택의 결과인 것처럼 보인다거나, 혹은 부자들이 더 많이 벌지 못하도록 막으면 사회의 가장 궁핍한 구성원들에게 불가피하게 해를 끼칠수도 있다는 이유로 불평등이 정당화될 경우, 소득의 집중이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수도 있다."
- 하이에크는 자유사회를 유지시킬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원리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규칙의 집행을 제외한 모든 강제의 엄격한 금지라는 신념을 평생동안 고수. 이런 신념아래, 모든 법률아래서 자유의 원리에 반하여 노동조합이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된 강제는, 주로 동료 노동자들에 의한 강제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강조. 그는 노동조합이 고용주에게 행사할 수 있는 진정한 강제력은, 다른 노동자들을 강제할 수 있는 일차적 권력의 결과라며, 만약 노동조합이 원하지 않는 지지를 강요할 권력을 상실한다면, 고용주에 대한 강제력 행사는 그 힘을 상실할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여 집단행동을 지지하도록 강제함으로써만 소유자를 착취하고 기업의 거의 모든 수익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그러한 집단적 행동으로부터 나온 총이득이, 고용된 노동자든 아니든 간에 공평하게 분배되는 거의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이득이 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노동자들은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즉 노동의 일부를 배제시킴으로써만 자유시장의 임금수준 이상으로 실질임금을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높은 임금으로 고용될 수 있는 사람들의 이득은 결과적으로 저임금 직종에 고용된 사람들, 또는 실업자들의 이해와 항상 대립하게 된다. 하이에크는 노동조합이 장기적으로 모든 노동자들이 획득할 수 있는 실질임금수준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사실상 그것을 상승시키기보다는 하락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 그 주요 원인은, 지배적인 완전고용 교리가 명시적으로 실업에 대한 모든 책임을 노동조합에 떠넘기는 대신에, 완전고용을 유지시킬 의무를 화폐당국 및 재정당국에 부과하는 데 있다. 실업양산을 막기 위해 화폐당국 및 재정당국이 취할 유일한 방법은, 노동조합이 야기하는 실질임금의 초과상승에 대해 인플레이션으로 대응하는 것뿐이다.
- 밀턴 프리드먼이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은 통렬한 듯 하지만 뭔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가난한 농부를 도와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있다. 그것은 그가 농부이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그 정책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도록 고안되어야지 특정 직업에 속하기 때문이라든지, 특정 연령계층에 속하기 때문이라든지, 특정 임금수준 집단에 속하기 때문이라든지, 특정 노동조직에 속하기 때문이라든지, 특정 산업에 속하기 때문에 도와주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이 점이 바로 농산물 가격정책, 일반 노인정책, 최저임금법, 노동조합법, 관세제도 등 수많은 정책들이 갖는 결점이다." 프리드먼은 강력한 노조가 그 조합원들을 위해 확보하는 이익은, 기본적으로 다른 노동자들의 희생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 해당 조합원의 임금인상이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져 기업의 이윤을 줄이게 되고, 그에 따른 투자감소로 좀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실업 노동자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을 줄어들게 만든다는 논리다. '집단, 세력, 조직, 사회, 관계'에 대한 불신과 거부, 그리고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과 행동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옹호한 자유주의 사상의 거인들 목록은 얼마든지 더 작성할 수 있음. 미제스의 저자 머리 로스바드는 자유사회에서는 공갈조차도 불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공갈은 상대방에 대한 어떤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서비스의 대가로 돈을 받는 행위이며, 사람이나 그 재산에 대한 폭력이나 폭력의 위협이 개입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경제학의 주체는 오랫동안 윤리학의 한 분야로 여겨졌따. 아마르티아 센이 87년 쓴 책에 따르면 영국 켐브리지 대학에서는 꽤 최근까지도 경제학을 도덕철학 우등졸업시험의 한 분야로 가르쳤다고 함. 애덤 스미스는 애초에 글래스고 대학의 도덕철학자였고, 케인스는 38년 해로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리오넬 로빈스가 말하고 있는 것과 반대로 경제학은 본질적으로 윤리학이며, 자연과학이 아니다. 경제학은 내적 성찰과 가치판단을 요구한다."고 적었다.
- 우리가 오늘날 제3세계라고 부르는 지역을 삼켜버린 1876년과 1899년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초대형 한발과 기근사태를 세밀하게 추적한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에서 마이크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제는 가난한 농민 수천만명이 끔찍하게 죽었다는 게 아니라, 19세기 경제사에 대한 전통적 지식가 상당히 모순되는 이유와 방식으로 그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50년 동안 서유럽에서는 평화시 기근이 항구적으로 사라졌다. 그런데도 상당수 식민지에서는 기근이 충격적일정도로 증가했다. 증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운송수단과 근대적 곡물시장이 생명을 구해주는 좋은 일을 했다는 산뜻한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바로 그때 특히 영국령 인도에서 수백만명이 철로 옆과 곡물저장소 앞에서 죽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옴짝달싹 못하던 기근의 나라들을 살펴보는 게 아니다. 근대 세계체제의 외부가 아니라 바로 그 근대 세계의 경제와 정치구조에 강제로 통합당하는 과정에서 수백만명이 죽었다. 그들은 자유경쟁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에 죽었다. 앞으로 보겠지만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애덤스미스와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의 신성한 원리를 엄숙하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데이비스는 여기서 제국주의를 지목하고 있음. 데이비스에 따르면, 이 빅토리아 시대의 대기근 사태가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역사를 구성하는 필수요소(즉, 제국주의적 수탈)였음을 명확하게 인식한 20세기 경제사학자는 44년 거대한 전환을 펴낸 칼 폴라니뿐이었다. 폴라니는 그 마지막 50년 동안 기근이 발생한 실제 원인은 지역의 소득 붕괴와 결합한 곡물의 자유시장 제도였다고 썼다. "문제는 엄청나게 치솟아 버린 가격 때문에 사람들이 곡물을 살 수 없었다는 데 있었다. 자유롭지만 불완전하게 조직된 시장에서는 물량이 부족할 경우 가격이 치솟기 마련이다. 이전 시대에는 지역마다 있는 소규모 가게들이 흉작에 대처하는 방편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런 가게들은 이제 사라졌거나 대규모 시장으로 흡수되었다. 자유롭고 공정한 교환체계 아래서 인도인 수백만명이 죽었다."
- 전구를 갈아끼우는 데 몇 명의 경제학자가 필요할까요?
* 주류 경제학자 : 두명이 필요합니다. 한명은 사다리의 존재를 가정해야 하고, 다른 한명은 전구를 갈아야 하니까요
* 케인스 학파 : 몽땅 다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고용과 소비를 창출해야 하고 총수요곡선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켜야 하니까요.
* 통화주의자 : 아무도 필요없습니다. 필요하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 고장난 전구의 불균형 상태를 고치게 될 테니까요
* 마르크스 경제학자 : 아무도 필요없습니다. 전구는 그 내부에 혁명의 맹아를 품고 있으니까요
- 허시먼의 이른바 터널효과는 경제성장과 분배 불평등 문제를 2차선 일방통행의 터널에 비유해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다. 경제성장 초기에는 터널 속 두차선 중 한쪽 차선이 움직이면 다른 차선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본인의 차선이 곧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된다. 즉, 경제성장의 혜택을 남들이 얻더라도 그 혜택이 곧 본인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소득 불평등을 어느정도 수용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옆 차선만 움직이고 자기 차선은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좌절감으로 불만이 쌓이게 되고 터널안에서 차량 소통을 규제하는 교통공무원을 불신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터널 안에선 규칙에 대한 무시가 판치고 불안과 혼잡이 더해지며 정체는 더욱 심해진다. 허시먼의 터널 안에서 일어나는 소요는 경쟁과 평등의 문제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 미국인에게 평등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유럽인과 전적으로 다르다. 유럽인이 평등을 주장할 때에는, 모든 인간은 부 권력 내지 부러움의 수준에서 동일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미국인은 기회의 평등에 역점을 두고 있으므로 이상과 같은 읨로 평등을 인식하는 일은 없었다. 평등의 본질로서 무한한 자유의 위도를 강조하는 것은, 평등을 이론적 상황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서 자유의 강조를 포함하고 있었다. 각 개인의 기회균등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조는, 사실상 미국인으로 하여금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 상황에 대해 비교적 무감각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강조가 자국을 계급없는 사외호 여긴 미국인들이 정치적 및 그 이외의 수단을 통해 경제 체계내의 불평등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을 저해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 자본주의라는 개념에 포함된 가장 본질적 요소로서 타인의 노동력의 기업적 활용과 생산수단의 소유를 통해 노동시장을 지배하는 것, 즉 한마디로 노동을 일종의 봉사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든다면, 자본주의 시대는 14세기 및 15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페르낭 브로델은 자본주의는 장기지속적 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 자본주의는 더 이상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는 못되지만 하나의 발전을 마감하는 마지막 단계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을 통해서 나는 잠재적인 자본주의는 역사의 첫 새벽부터 윤곽이 잡혔으며 수세기 동안 발전하고 지속되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를 예고하는 표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찾아볼 수 있었다. 도시와 교환의 급증, 노동시장의 등장, 사회의 밀도, 화폐의 보급, 생산의 증대, 원거리 시장 혹은 달리 말하면 국제시장, ... 기원 후 1세기에 인도가 원격지의 말레이 군도를 지배 혹은 적어도 그곳으로 침투했을 때, 로마가 지중해 세계 전역을 힘으로 장악했을 때, 9세기에 중국이 지폐를 발명했을 때, 11~13세기 사이에 서유럽이 지중해를 회복했을 때, 16세기에 세계시장이 형성되었을 때, 자본의 전기는 그럭저걱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지속이란 반복적인 움직임의 연속을 말한다. 거기에는 많은 변형과 복귀, 쇠퇴와 정비, 정체 등이 동반된다. 오히려 변화를 통해 자신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자본주의의 자연스런 속성이 아니겠는가? 자본주의는 이런 변화들로부터 힘을 얻어내는 가운데,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어느 시대에서든지 경제적 가능성의 겨예를 짓는 일종의 포락선 수준으로 그 자신의 운명의 폭을 축소시키기도 하고 확대시키기도 한다.
- 조반니 아리기는 장기 20세기에서 장기지속되는 역사적 자본주의의 핵심특징은, 상이한 공간과 시간속에서 자본이 취한 구체적 형태의 차이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의 유연성과 절충주의라고 말했다. "이 점이 자본주의 전체사에서 핵심적인 성질이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시련이 있을 때마다 드러나는 유연성, 변환과 적응의 능력이 그것이다. 13세기 이탈리아로부터 오늘날의 서양세계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에 일정한 통일성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페르낭 브로델) 인류 역사의 사회경제사를 그 누구보다 탁월하게 분석, 묘사한 하우저는 자본주의의 시작이 15세기 르네상스기였음을 시사한다. "르네상스 겨제의 새로운 점은, 한층 더 목적에 부합하는 더 나은 생산방법이 알려지는 즉시 재래적인 생산방법을 포기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재래의 전통까지도 주저없이 희생시키는 그 철저함과 일체의 경제생활의 요인을 수적으로 계량화해서 장부에 기입하는 비정할 정도의 객관성에 있다. 이 비정한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은 노동자를 단순히 투자와 수익성, 이익가능성과 손실가능성, 그리고 차변과 대변이라는 복잡한 체계속의 일부분으로 생각한다.
- 사실 우리에게는 발전의 빠르고 늦음을 가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판단근거가 없다. 쿠즈네츠는 지구에서 경제성장은 세계 인구의 1%보다 약간 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에서 시작되었으며, 175년 동안 확대되어 세계인구의 20~25%의 인구를 차지하는 나라들의 경제를 변형시켰다면서 "그 파급속도는 과연 빠른 것일까 느린 것일까? 우리는 이 속도를 판단할 수 있는 아무런 수단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산업혁명 당시의 놀라운 사회적 급변에 대해 토크빌은 어리둥절해하며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이처럼 더러운 하수구로부터 인간근면의 가장 커다란 흐름이 흘러나와서 온 세상을 기름지게 한다. 이 더러운 하수구로부터 순금이 흘러나온다. 여기서 인류는 가장 완전하고 가장 야만적인 발전을 이룩하며, 문명은 기적을 행하고 문명인은 거의 야만인으로 변하게 된다."
- 여러 형태의 다양한 자본주의가 지구상에 공존하는 구조는 13세기, 17세기, 18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하는 경제사학자가 바로 페르낭 브로델이다. 그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상업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 식으로 단계별 발전 혹은 연속적 도약으로 파악하는 것은 오류하고 말함. 그에 따르면 상업, 산업, 은행업이 부채꼴처럼 펼쳐져 있는 모습, 즉 여러 형태의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모습은 13세기 피렌체, 17세기 암스테르담, 18세기 이전의 런던 등지에서 이미 볼 수 있었던 현상이다. 19세기 초가 되면 기계류의 사용으로 산업이 고수익 영역이 되었고 이 영역에 자본주의가 대규모로 집합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반드시 이 영역에만 한정되었던 것은 아니다. 선택의 자류를 갖고 있으며, 어느 순간에라도 방향을 선회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활력의 비밀이다. 물론 적응능력, 민활성, 반복적인 힘 등을 갖고 있더라도 자본주의가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커다란 위기가 닥치면 많은 자본가들이 몰락한다. 그러나 이때에도 다른 자본가들은 살아남고, 이를 이용해서 제자리를 잡는 자본가들도 있다. 모든 것이 바뀌지만 그러는 가운데 자본주의는 계속 이어진다. "위기는 자본주의 발전의 핵심이며 인플레이션, 실업 등은 자본주의의 중앙화 및 집중화를 강화한다. 이것은 발전의 새로운 단계의 시작이지 결코 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가 아니다." (마르크제가 60년대에 한 말)
- 법률가들은 거대기업의 부호들에게 생각할수 있는 한의 모든 보호색을 입혀서 본질적으로 무책임한 성격의 존재로 만들어 그들이 갖고 있는 권력을 위장시켜 줌. 또한 전문적 홍보 담당자는 대부호가 순진하고도 착한 행동을 하는 시골소년과 같은 존재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거나, 혹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수완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반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위대한 발명자이자 산업정치가라는 이미지를 일반인들에게 주입시켰다. 변한 것은 대부호들이 예전처럼 쉽게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폭로시대의 기록자들은 미국 사회의 최정점에 있는 자들의 실태를 널리 일반인에게 알려 주었따. 그러나 그 이후로는 그런 폭로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따. 체계있는 정보가 결여되어 있고 인간적인 흥미를 일으키는 말초적 사건에 우리의 관심이 너무 끌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 사이에서는 이미 대부호 같은 존재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거나 혹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밀스, 1979)  라이트 밀스는 대부호에 대해, 한편으로는 도둑, 다른 한편으로는 혁신자라는 두가지 대조적 이미지를 갖는 것이 반드시 모순된 것만은 아니며, 많은 점에서 두가지 모두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일깨운다. 관점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대기업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가 변화한 것을 더듬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대기업가의 사상이 출판물에 나타나기 시작하자 학술잡지나 서적의 논문도 저널리즘의 폭로기사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30년대에는 대기업가에게 도둑놈같은 남작이라는 불명예스런 명칭이 붙여졌으며 대기업체라는 것도 불명예의 비참한 길을 더듬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 대기업은 학자들에게 거액의 돈을 주어 자기 회사의 역사책을 편찬하도록 하고 있다. 각 기업체의 역사책에서는 무뢰한 같은 기업사상이 건설적인 경제계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그 영웅들의 위대한 사업으로 이 세상 만인이 이익을 얻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 대부호에 대한 이같은 조잡한 이미지는 가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한 이미지가 나타내는 것 자체가 틀려서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사물을 합법성 내지 도덕성 그리고 인격이라는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들처럼 많은 재산을 지닌 괴물들이 그 시대와 그 장소에서 어떠한 경제적 기능을 달성하느냐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따. 바로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재산이 많은 이 괴물들은 자본주의의 전성기를 통해서 소용돌이쳤던 부단한 혁신의 질풍노도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사람들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개인적 영민함과 남다른 노력으로 새로운 기술 내지 비용효율적 기술을 자기 속에 체현시켜 사기업을 만들어냈고, 마침내 거대한 연합체를 이룩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의 기술과 그 기술이 동반했던 사회형태야말로 자본주의 진보의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 앨프레드 챈들러가 경영자 혁명이라고 말한, 회사 고위간부 전문경영자들의 정신세계 풍경은 어떨까? 포춘지 54년 5월호에는 '경영자들은 왜 책을 읽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최고 간부들 대부분은 희곡이라든가 고전문학, 철학서, 시와 같은 것은 거의 읽지 않는다. 이러한 영역에 손을 내미는 사람들은 자연히 외경과 불신이 혼합된 동료들의 시선을 받게 되며, 경영자 무리의 웃음거리가 된다" 우리가 모르는 것, 빈껍데기 전문가, 헛똑똑이를 내세워 삶의 불확실성과 블랙스완을 주창한 나심 탈레브는 말한다. "내가 세계 역사상 최강 국가의 손꼽히는 비즈니스 스쿨에서 본 바에 따르면, 세계 최강기업의 경영진들이 그곳에 와서 자신들이 돈벌이한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데 그 사람들 역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할 가능성이 짙어 보였다. 그때 나는 회사의 경영자라는 사람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할 가능성이 짙어 보였다. 그때 나는 회사의 경영자라는 사람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자유시장 체제의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라이트 밀스는 파워엘리트에서 50년대 거대기업 경영자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 "회사 간부들의 교제범위를 보면 예술이라든가 문학을 애호하는 사람들과는 거의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 가운데는 한 페이지 이상쯤 되는 보고서나 편지같은 것도 손수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장에 대한 혐오는 특수한 예외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긴 연설은 대단히 싫어한다. 그들은 정말로 간소화된 시대, 요약본이나 두서너줄의 메모지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보고서 같은 것도 다른 사람에게 읽히고 자신은 요약된 것만 청취한다. 그들은 독자라던가 필자이기보다는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듣는 사람이다. 그들의 지식 대부분은 의회라든가 다른 분야의 친구들에게서 얻어듣는 것들이다."
- 보울스는 작업장에서 생산제품 한 단위당 노동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고용주들이 취하는 전략으로는 임금을 가능한한 적게 지불하고 관리자나 작업반장을 통해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어르고 달래는 단순통제, 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현장감독관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에 기계를 도입하고 기계의 속도를 변화시켜 노동력 지출강도를 높이는 기술적 통제가 있다고 말한다. 또 한가지 전략으로 관료적 통제가 있다. 관료적으로 조직된 기업에서 특정한 직책과 직무를 사다리 형태로 아래에서 위까지 서열화해 각 체계마다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당근을 주는 동시에, 정교하게 고안된 인센티브 구조위에서 세세한 작업규율과 절차를 명시하는 것이다. 관료적 통제에서 진정한 권력의 원천은 기업의 조직적 구조 속에 새겨져 있따. 따라서 권력관계는 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조직 시스템 내에 숨겨진 채 작동한다.
- 미국의 거대한 일자리 창출기계는 추세적으로 고임금 일자리는 줄이고 엄청나게 많은 저임금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79년부터 84년 사이에 새로 창출된 일자리의 58%가 연간 소득 7천불 미만의 저임금 일자리였다. 특히 79년 이후 기록적인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졌드나 새로 창출된 8백만개의 일자리 중에서 310만개 이상이, 기존의 노동시장 조건에서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저임금 일자리 외에 추가로 생겨난 저임금 노동이며, 당시 미국을 일자리 창출 기계라고 부른 예찬은 이러한 나쁜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 베넷 해리슨은 노동규율이 저임금 노동확산을 통해 이뤄지는 근원적 요인으로 기업조직 변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94년 펴낸 세계화 시대 대기업의 진화에서 유연성의 시대에 대규모 법인기업의 권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며, 소규모 기업의 장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해리슨은 네트워크 자회사를 통한 아웃소싱 전략으로 본체 회사의 몸집을 줄이고 있는 대규모 법인기업의 날렵하고 민첩한 전략이, 현대 다국적 대규모 법인조직의 장점이라고 지적. 저임금 유연화는 기업조직의 유연화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다. 쉬운 해고와 저임금으로 대표되는 시장 지향적 고용정책이 80년대 이후의 노동규율 방식이라면, 그 이전 고용체제에서의 노동규율은 이와 반대로 고임금과 안정적 고용이라는 내부노동시작의 관료적 형태를 띠었따. 미국 내부노동시장의 형성과정을 역사적으로 고찰한 샌포드 야코비의 '기업의 관료제 도입'에 따르면, 미국 내부노동시장은 점점 더 많은 기업에서 내부노동시장의 특징을 점차 갖춰 나가며 확대된 것이 아니다.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과정이 아니라, 1차대전과 이후 대공황으로 구체제의 고용관계가 갑작스런 위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고용체제로 채택된 것이다. 기존의 시장지향적이고 자의적이고 비장기적인 고용시스템에서 관료권위적이고 규칙이 지배하고 안정적인 고용체제로 대체됐다. 내부노동시장은 마치 한통의 버터밀크 속에 응고되어 있는 버터덩어리처럼 무의식적인 협력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잇는 의식적 권력의 섬들로 여겨진다.
- 경제학에서는 국내총생산의 규모, 고용량, 연간 노동시간 등 지표의 크기 그 자체보다는 그 방향성, 즉 추세와 변화율을 밝혀내는 것이 항상 더 중요. 숫자 자체보다는 우리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대응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말해주는 것이 탐구분석의 목적이기 때문. 동시대 우리의 노동시간은 어떤 추세와 변화속에 있는가? 장시간 노동처럼 실업률 증가도 기본적 경제구조에서 비롯됨. 자본주의 시스템은 본래 고용을 제공할 목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님.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명분 그 자체는 합리적이지만, 이 명분은 일반적인 자본주의 논리와 타협하기 매우 어렵다. 사용자들은 공장과 기계를 오랫동안 깨어있는 가동상태로 두는 데 강한 인센티브를 가짐. 이 인센티브는 노동시간을 끌어올리고 또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산파역할을 함. 돌아보면 사회개혁가들은 국민경제 내의 일자리 부족과 여가시간 부족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자본주의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이런 인센티브라는 강력한 장애물을 과소평가했다. 물론 반대로 노동자의 처지에서 보면, 장시간 노동은 실질임금 저하에 직면하여 이를 노동시간 연장에 따른 초과수당으로 상쇄하려는 시도이다. 나아가 역설적이게도 과로노동의 원인은 불완전 취업이다. 고용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현재의 과로노동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역설적인 이유는, 파트타임 불완전 취업 형태로 인해 주당 정규노동시간에 비해 더 적은 노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
- 일찍이 폴란드 경제학자 미할 칼렌츠키가 '완전고용의 정치적 측면'에서 갈파했듯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완전고용체제는 완전고용이 불가치하게 초래하는 이윤압박 때문에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없다. 완전고용 문제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라는 근본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 "노동자들은 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고, 자본가들은 그들을 훈육하고 싶어한다. 산업의 지휘관들과 경영자는 지속적 완전고용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물론 경제가 불황에 빠져 있을 때는 국가의 재정지출을 통해 탈출을 원하지만 완전고용 유지에는 반대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런 논리적이고 추론적인 정치적 경기순환은 실제로 현실 미국경제에서 역사적으로 있어 왔다." 케인스 주의적 호황의 지속은 산업예비군의 고갈과 이에 따른 노동규율의 이완을 초래하여 불가피하게 이윤압박을 낳게 되는데, 이는 거꾸로 불황 과정에서 산업예비군의 보충, 즉 실업률 증대방식을 통해서 해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논리 자체가 완전고용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 외에도 완전고용 달성을 가로막는 정치적 장애물도 있다. 이윤으로 대부분의 소득을 얻는 사람들은 대체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이들 대다수는 이윤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정책의 도입이나 실행에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칼레츠키는 완전고용을 향한 고용증가가 임금상승 압박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좀더 높은 수준의 상품 판매 및 공장설비가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단위비용을 절감시키고 수익성을 증가시키는 경향도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경제가 완전고용에 접근할수록 임금성장이 가속화될지라도 수익성 또한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날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 기존 수요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시장을 창출할 만큼 방대한 양을, 그것도 급속히 감소한 비용으로 생산하는 기계화된 공장제 창출이 가능하려면 두가지 조건이 필요. 첫째, 거기에 드는 비용이 그다지 크지 않고 단순한 기술혁신으로 산출량을 재빨리 증대시킬 수 있는, 제조업자에게 이미 특별한 보수를 가져다 준 산업의 존재. 둘째, 하나의 생산국가에 의해 광범위하게 독점되는 세계시장.  첫째의 산업이 영국의 면방직 산업이었음. 또 영국은 식민지 팽탕을 가능케 한, 경쟁국의 시장을 장악하기에 충분한 경제와 적극적인 국가를 갖고 있었다.
- 자본주의는 잉여를 기업의 소유주들에게 돌아가게 하고, 기업 소유주들은 사회에서 그들의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하고 생산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아짐. 자본주의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상품을 더 낮은 비용으로 만들어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지배층이 되는 역사상 최초의 경제체제임. 또한 자본주의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잃게 되므로 노동자들에게 열심히 그리고 더 잘 일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 사적 재산권은 보호되어야 하는 반면, 경제적 지위는 보호되지 않아야 한다. 경제적 지위가 보호되지 않는다는 말은, 경쟁에서 패배하면 정말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 따라서 잉여의 통제를 보장하는 재산권과, 시장경쟁으로 인한 지위의 불안정, 이 둘 모두가 혁신과 투자를 촉진한다.
- 슘페터는 '경제분석의 역사'에서 이데올로기 장을 쓰면서 그 옆에 '망상?'이라고 연필로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은 이데올로기이고, 우리만이 절대적 진리의 반석 위에 서있다고 말할 수 없다. 노동운동가의 이데올로기가 다른 누구의 이데올로기보다 더 나은것도 더 나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학의 역사는 이데올로기의 역사인가?라고 물은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합리화라고 불리는 사고습성이 우리 자신, 우리의 행위동기, 우리의 친구, 우리의 적, 우리의 조국에 대한 이미지를 제공하므로, 우리 자신게는 안락감을 주고 그것들이 실제상태보다 우리가 추측하는 모습에 훨씬 더 가까울 것이라고 여기게 한다. 우리들 자신보다 더 성공적인 경쟁자는 우리가 경멸해 마지 않는 속임수를 통해 성공을 거두는 경향이 있다. 추측하건대 우리 집단이 아닌 집단의 리더는 협잡꾼이다. 적국은 괴물들의 소굴이고, 우리의 조국은 완전히 존경받을 만한 영웅들의 고향이다. 이런 특성은 정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에 분명히 중요하다."
- 카네티는 '군중과 권력'에서 특유의 빼어난 묘사를 한껏 발휘하여 혁명적 상황과, 공황, 패닉을 불에 비유한 바 있다. 불은 길들여질 수 있고 꺼진다는 통찰이 인상적임. "파괴의 모든 수단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불이다. 불은 멀리서도 보이고 또 다른 모든 것들을 끌어들인다. 불에 의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후에는 그 이전에 있었던 것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불을 지르는 군중은 스스로 어쩔 수 없이 불을 지른다고 생각한다. 불길이 사방으로 퍼지는 동안 모든 것은 불길에 합세하게 된다. 그리고 일체의 것은 불길에 의해 깡그리 파괴된다. 불은 군중을 말해주는 가장 강력한 상징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난 후에는 불은 군중처럼 다시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 불은 번지며, 옮겨붙는 휘발성이 강하고 만족할 줄 모른다. ... 불은 파괴적이다. 그것은 정복될 수도 있고 길들여질 수도 있으며 그리고 꺼진다."
- "두터운 경제원론 교과서의 그 수식과 복잡한 그래프 뒤에 자유시장을 지키기 위한 피 흘리는 전투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미제스의 제자 머리 로스바드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제스가 일생동안 단 한번도 대학에서 월급을 받는 전임자리를 가져보지 못했다는 것은 미국 학계의 씻을 수 없고 용서받을 수 없는 오명이다. ... 그가 뉴욕대에 있던 시절 그를 만난 우리들은 한 번도 그의 입에서 원망이나 후회의 말이 나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온화함과 친절함을 잃지 않으면서 미제스는 학생들에게서 보이는 생산적인 그 어떤 불씨라도 강화해주고 용기를 주느라 열심이었다. 압도당하여 묵묵히 앉아만 있는 학생들에게 그 특유의 유머러스한 눈빛을 반짝이며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이 주제에 대해 당신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건 그것은 이미 어떤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한 말과 똑같을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하곤 했다. 로스바드는 미제스가 시대와 불화를 빚은 것은 아니지만 자유주의 경제학이 승리하려는 순간, 그 유명한 케인스 혁명이 끼어들어 비극이 되고 말았다고 술회했다. "일반이론은 혼란스럽고 미완성이었던 인플레이션과 정부 적자에 관한 새로운 해설로, 경제학계를 들판의 불처럼 덮쳤다. 이제 모호하고 불투명하고 준 수학적 용어로 무장한 케인스 덕분에, 경제학자들은 영향력과 권력을 확장하느라 안달이 난 정치인과 정부와의 대중적이고 돈이 생기는 제휴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다. 케인스 경제학은 엄청난 규모의 복지국가와 간섭주의를 지적으로 무장하여 아름답게 치장하였다. 미제스의 이론은 가볍게 잊혀졌으며, 케인스 혁명이란 좋은 이름의 돌격에 쓸려 나갔다." 이 거대한 망각의 비극은, 아마도 제일 똑똑한 미제스 추종자들의 이탈일 것. 하이에크의 영국인 제자들은 케인스주의로 몰려갔고, 그중 앨빈 핸슨은 곧바로 미국 케인지언의 주도자가 되었으며, 미제스를 따르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은 미국에서의 높은 학문적 지위를 수락하고는 급히 오스트리아를 떠나 케인스 경제학의 온건파를 형성하였다.
- 우리가 경제정책에 관해 기억해야 할 점은, 그 정책들이 선의로 가득 찬 임금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인간적 욕구를 가진 보통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 사람들은 어떤 때는 국가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일하지만, 어떤 때는 자신들의 정치적, 금전적 욕심에 따라 움직이기도 함. 현실의 경제정책이 경제학 교과서에 있는 이상적 정책과 다르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 (맨큐)
- 케인스 경제정책을 통해 30년대 대공황이 극복됐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부족하다. 30년대 대공황은 2차대전 개전까지도 극복되지 않았으며 전쟁을 겪으면서 극복됐다는 것이 경제사학계의 통설이다. 예컨대 미국에서 뉴딜정책 기간동안 정부지출은 29년 102억불에서 39년 175불로 증가했지만, 같은기간 GDP는 1044억불에서 911억불로 감소했으며 실업률은 3.2%에서 17.2%로 증가. 미국이 참전한 41년 12월에서야 비로소 미국경제는 대공황을 탈출. 정성진은 전후 황금시대는 적자재정을 통한 총수요 관리정책 같은 케인스의 경제정책의 성과가 아니며, 이 황금시대의 배경이 된 것은 영구전쟁경제였다고 주장. 황금시대는 전 세계적 규모의 대중투장 분쇄, 동서방 국가자본주의 대결구도 창출, 즉 냉전체제 성립 및 영구 전쟁경제작동을 통해서만 성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1900년 발표된 동화 오즈의 마법사는 사실 19세기 후반 미국 통화정책에 관한 우화. 1880년부터 1896년까지 미국 물가는 23% 하락. 이런 물가 하락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대폭적인 부의 재분배가 발생. 서부에 살던 대부분의 농민들은 동부의 은행들에게 빚을 진 상태였음. 물가가 하락하자 농민들이 진 부채의 실질가치는 증가했고, 은행들은 부자가 됨. 농민의 이해를 대변한 정당 정치인들은 은화의 자유발행을 허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 당시 미국은 금본위제도 아래 있었으므로 금이 양이 통화량과 물가를 결정했다. 은화 자유주조를 지지한 사람들은 은도 금처럼 화폐로 통용되도록 만들려고 했다. 이 주장이 채택되었다면 통화량이 증가해서 물가가 상승하고, 농부들이 진 부채의 실질부담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은화 자유주조를 둘러싼 논쟁은 점점 가열되어 1890년대 주요 정치 쟁점이 되었다. 1896년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제닝스 브라이언은 은화 자유주조를 지지한 대표적 인물. 브라이언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연설에서 "노동자들의 이마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지 마라. 인류를 황금의 십자가에 못 박지 말"고 설파. 미국 중서부 지역의 기자였떤 라이먼 프랭크 바움은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쓰면서 당시 중요한 정치논쟁의 주역들을 토대로 등장인물을 만듬. 경제사학자 휴 로코프는 90년 어느 경제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오즈의 마법사 등장인물을 다음과 같이 해석. "도로시는 미국의 전통적 가치, 허수아비는 농부들, 깡통 나무꾼은 산업근로자들, 오즈는 금의 무게단위, 노란 벽돌길은 금본위제도 등으로 묘사했다. 은화 주조론자들이 논쟁에서는 졌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바라던 통화공급 확대는 이루어졌고, 물가는 상승했다. 농부들은 빚을 갚기 수월해졌다."
- 피케티도 수리경제학과 수학의 확실성에 의구심을 표출한 바 있다. "경제학 분야는 아직도 역사적 연구 및 다른 사회과학과의 협력을 등한시 하면서 수학에 대한, 그리고 순전히 이론적이고 흔히 이념적인 고찰에 대한 유치한 열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너무나 자주 자기들만 관심을 갖는 사소한 수학적 문제들에 매달리고 있다. 이처럼 수학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던지는 훨씬 더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내놓을 필요가 없이 과학성의 겉치레를 손쉽게 입힐 수 있는 방법이다. ... 사실 경제학은 결코 다른 사회과학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오려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할 때에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분명히 실용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경제학자들뿐만 아니라 역사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들의 연구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 명석하고 합리적인 세계는 원리가 적용되는 수리의 세계에서만 통할 뿐, 현실경제의 작동양상은 전혀 다르다. 투자자는 자본이 낳을 장래수익이 아니라 눈앞의 이익에 신경을 쓴다. 즉 합리적인 계산보다는 케인스가 말했드 혈기, 신경과민, 히스테리와 같은 심리적 요인이 투자에 영향을 끼치는 사태가 벌어지는 일이다. 물론 국가가 조성하는 사회경제적 분위기도 투자와 소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닥터 둠이란 별명으로 잘 알려진 월가의 비관론자이자 투작인 마크 파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겨울철 동네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이 연못의 얼음이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정도는 스케이트를 타는 친구의 수가 많을수록 더 커진다. 연못 위에 사람수가 많아질수록 얼음이 깨질 위험은 더 커진다는 합리적 판단은 사라져버리고,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어리석은 믿음이 생겨난다. 신뢰가 감염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에 따라 연못의 얼음이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갈라지는 소리를 내면, 확신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뀐다." 케인스의 세계에서는 기업가는 단순히 시장 이자율에 따라서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며, 가계는 현재 소비와 저축에 따른 미래 소비의 가치를 현재가치 할인법으로 계산한 뒤 최적의 소비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 슘페터는 수사학의 측면에서 마르크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순수 경제적 분야에서 그의 업적의 본질을 적과 동지가 다 같이 오해했던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경제이론이라는 차가운 쇳덩이도 마르크스의 책 속에서는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닌 열기를 얻을 정도로 김이 물씬 나는 풍부한 글귀에 흠뻑 젖어 있다. 자신이 과학적 의미에서 분석가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요구에 글쎄 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누구든 간에 감종이 넘치는 언사라던가 착취와 궁핍화에 대한 열띤 고발만을 생각할 뿐 그것들의 근저에 있는 그의 사상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이것들 모두와 그의 악의에 찬 풍자 또는 오크니 부인에 대한 악의적 논평과 다른 것들은 확실히 연출의 중요한 부분이며, 마르크스 자신에게 중요했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신봉자, 불신자 모두에게도 중요하다.
- 앨프레드 마셜이 경제학에 끼친 영향은 영국 켐브리지 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경제학자를 길러낸 데서 찾을 수 있음. 케인스, 아서 세실 피구, 조앤 로빈슨, 데니스 로버트슨 등 기라성 같은 제자들이 영국의 경제학 인명사전을 채우고 있다. 그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형성된 켐브리지 학파는 상당기간 동안 세계 경제학계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마셜은 1885년 2월 켐브리지 대학 교수직 취임연설에서 "강한 인간의 위대한 어머니인 켐브리지가 세계로 배출하는 자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자기 주위의 고뇌와 싸우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최선의 힘 중 적어도 얼마 정도를 기꺼이 바치려고 하는 사람이다. 이들을 더 많이 길러내는 것이 내가 가슴속에 품은 포부이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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