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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안다는 것

심리 2024. 3. 31. 09:30

우리는 누구나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지식이나 사회경험이 많다면 현명해지기 쉬울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여는 일은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학교에서는 입시와 취업을 위한 기술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삶의 가장 중요한 활동을 수행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졌고, 깊은 우정의 결핍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서서히 비인간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사회적 기술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관계의 기술말이다. 우리가 일상의 미세한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를 얼마나 잘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이 크게 좌우된다. 이런 사회적 기술의 기본은 다른 사람이 지금 겪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을 온전한 못ㅂ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일종의 기량이고, 구체적인 기술의 총합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우리는 이것을 눈치라고 부르며, 독일사람은 헤르젠스빌둥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는 다른 사람의 온전한 인간성을 바라보도록 마음을 훈련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알기 위한 탐구를 시작했다면,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혹은 이 사람의 이력서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 그는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 그는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 그는 자기의 현실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이런 질문이야말로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을 때 알고 싶어하는 궁금한 것들이다.

어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일반적인 대화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대화를 정말 잘하기는 어렵다. 다음은 좋은 대화를 나누는 기술이다.
- 주의를 100% 기울여 집중해라
- 능동적으로 대꾸해라
- 친숙한 화제를 꺼내라
- 상대방을 관객이 아닌 작가로 만들어라
- 대화가 끊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상대의 말이 끝난 것을 충분히 기다린 후 대꾸하는 것이 좋다.)
- 루핑(상대가 한 말을 반복하면서 의미를 재확인)해라
- 조산사가 되라
- 보석진술(의견이 다른 두 사람이 공통으로 갖는 의견)로 돌아가라
- 드러나지 않은 차이를 찾아라
- 상대방의 말에 숟가락을 얹지 마라

사람들은 깊이 있는 대화가 사람을 고통스럽거나 취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럴까? 깊이 있는 질문은 사람들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 당신이 변화에 적응했던 시기는 언제인가?
- 당신이 인생에서 정말 잘 되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 가장 자신있는 것은 무엇인가?
- 오감 중에서 어느 감각이 가장 강력한가?
- 외롭게 지내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은 적이 있는가?
- 나이가 들면서 한층 분명해진 게 무엇인가?

자기와 인생경험이 다른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개개인마다 겪는 수많은 인생경험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개인에게는 신비로운 깊이가 있다. 서로 다른 문화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므로, 낯선 문화 앞에서는 존중하는 마음과 경외감을 품어야 한다. 그럼에도 타인을 바라보고 타인의 말을 듣는 능력을 높이는 기술을 연마하는 데 힘쓰면 타인의 관점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사람을안다는것 #데이비드브룩스 #인간관계 #인생책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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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스턴 처칠을 낳기 전의 제니 제롬Jennie Jerome 이야기도 유명하다. 젊은 시절의 제니는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글래드스턴 William Gladstone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가 영국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글래드스턴의 경쟁자인 벤저민 디즈레일 리Benjamin Disraeli와 저녁 식사를 한 뒤에 제니는 자기 자신이 영국에 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래드스턴 같은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디즈레일리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좋다는 이야기다.
-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망상 하나는 모든 사람을 특정한 유형 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친절한 사람, 사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열정이 넘치는 사람, 주변에 무관심한 사람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물론 어떤 사람을 두고 잔인하기보다는 친 절하다거나 어리석기보다는 현명하다거나 무관심하기보다는 열정 이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반대로도 말할 수 있고....... 그러나 어 떤 사람을 친절하거나 현명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 악하거나 어리석거나 둘 중 하나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 은 늘 인간을 이런 식으로 분류한다. 이는 잘못이다. 사람은 강과 같다. 물은 늘 똑같다. 그러나 모든 강은 어떤 데서는 폭이 좁고 물살이 빠르 다. 또 어떤 데서는 폭이 넓고 수면이 잔잔하다. 맑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고 진흙탕이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사람도 똑같다. 모든 사람 은 모든 성품으로 성장할 싹을 가지고 있다. 그런 싹을 언제는 하나만 드러내고 언제는 두 개 드러낸다. 어떤 사람이 어떤 때는 전혀 그 사람 같지 않을 때가 자주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동일한 사람이다.' (톨스토이)
- 뇌 과학을 간단하게 소개하면서 개인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축 과정이 얼마나 근본적인지 보여주겠다. 어떤 방을 둘러보는 것과 같은 아주 간단한 행동을 예로 들어보자. 이 행동은 자기가 무 언가를 창조한다는 느낌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듯 느낄 뿐이다. 자, 이번에는 눈을 뜬다. 빛의 파 도가 밀려온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본 것을 기록한다. 의자가 있고, 그림이 있고, 바닥에 먼지 뭉치 하나가 굴러다닌다. 마치 옛날식 카 메라 같다. 즉 카메라 셔터가 열리고 빛이 밀려 들어와서 필름에 영상이 기록된다.
그러나 이는 인지 과정이 실제로 진행되는 방식이 아니다. 인간의 뇌는 두개골이라는 뼈로 만들어진 어두운 금고 안에 갇혀 있다.
- 뇌가 하는 일은 망막과 시신경을 거쳐서 시각 피질의 통합층에 다 다른 매우 제한된 양의 정보를 가지고 세상을 최대한 이해하는 것 이다. 한 사람의 감각이 세상의 한 장면을 찍은 저해상도 스냅 사진 을 제공하고, 이 사람의 뇌는 그 허접한 사진 한 장으로 고화질의 장편영화를 만든다.
이를 위해서 시각계는 그 사람이 이미 아는 것을 그 앞에 놓인 장 면에 적용하는 식으로 세상을 구축한다. 즉 이 사람은 '이것이 무엇 과 비슷할까?'나 '지난번에 내가 이것과 똑같은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그다음에 내가 무엇을 보았지?'와 같은 질문을 쉬지 않고 던지고 또 자기가 바라보기를 기대하는 일련의 모델들을 투사한다. 그 런 다음에 눈은 마음이 기대한 바를 제대로 바라보는지 확인하고 그다음에 그 내용을 보고한다. 요컨대 사람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행동은 데이터를 받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예측하고 수정하는 능동적인 과정이라는 말이다.
신경 과학자인 아닐세스Anil Seth는, 인지는 "생성적이고 창의적인 행위"이며 "객관적인 외부 현실을 수동적으로 등록하는 것이 아 니라 행동 지향적으로 구축해나가는 것"이라고 썼다. 또 다른 신경 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이 언급했듯이 "과학적인 증거에 따르면,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는 것들은 대체로 세상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지 세상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소수의 신경 과학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그 모든 과정이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뇌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썼음직한 방대하고 복잡한 소설을 쓰는데, 우리는 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 아서 밸푸어 Arthur Balfour는 영국의 정치가로 밸푸어선언 Balfour Declaration으로 유명하다. 밸푸어의 친구 존버컨John Buchan은 밸푸어 를 두고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망설이지 않고 지목할 수 있 는사람"이라고 했다. 밸푸어의 특별한 화술은 멋진 문구나 경구를 줄줄이 읊는 게 아니다. 그는 “토론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타 인에게서 잠재력을 발견해 대화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칭찬은 계 속 이어진다.
밸푸어는 수줍은 사람이 머뭇거리며 뱉은 말에서도 예상치 못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파고들어서 자기가 인류의 지혜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느끼게 했다. 전쟁이 끝나던 해에 나는 가끔 미국인 방문객을 칼튼가든으로 데리고 가서 밸푸어가 주최하는 점심 식사에 함께했는데, 그즈음의 일을 지금도 감탄하며 기억한다. 그는 손님이 하는 말의 뜻 을 헤아리고, 손님이 우연히 뱉은 단어의 중요한 의미를 포착했으며, 손님이 최선으로 발언하게끔 격려했다. 그렇게 해서 손님의 발언은 주최자의 도움으로 무한하게 확장되었다. 그렇게 손님들은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은 신체적인 존재감을 제공할 수 있다. 컬럼 비아대학교의 의사이자 연구원인 마사 웰치 Martha Welch는 나와 대 화를 나누던 중에 '협력적 조절co-regulation'의 힘을 강조했다. 두 사 람이 신체적으로 가까이 있고 또 서로를 믿을 때, 그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가볍게 껴안았을 뿐인데도 서로의 몸과 몸 사이에 무언가가 전달된다. 몸속 내장기관들이 진정되고 심박수 가 조절되며, 웰치가 높은 수준의 미주신경 긴장도higher vagal tone '라 고 부르는 상태가 된다. 이는 내장이 안정적일 때 나타나는 자연스 러운 현상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높은 수준의 미주신경 긴장도를 즐기는 사람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구성하게 된다. 은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그렇다. 신경 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How Emotions Are Made』에 썼다.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는 것이 당신이 느끼는 것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 반대다. 당신이 느끼는 것이 보고 듣는 것을 바꾼다.'
똑같은 장면이라도 잔뜩 겁을 집어먹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 람은 장면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우리의 귀는, 인간의 목소리를 포 함하는 중간 범위의 진동수가 아니라, 진동이 높거나 낮은 음, 즉 날 카로운 비명이나 낮은 으르렁거림에 즉각적으로 초점을 맞추도록 조정돼 있다. 불안은 주의력을 특정한 영역으로 좁히고 시야의 폭 도 줄인다. 이와 다르게 행복한 감정은 시야를 넓혀준다. 그렇기에 타인을 신뢰하고 공감할 만한 존재로 보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세상을 한층 개방적이며 행복한 곳으로 바라본다."
효과적으로 공감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이 해와 신뢰를 얻었다. 극작가 손턴 와일더 Thornton Wilder는 이런 사람 이 세상에 드러내는 강렬한 존재감을 묘사한 바 있다.
예전에 받은 고통의 상처가 없다면 당신의 힘이 지금 어떻게 존재 하겠는가? 당신의 낮은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파고들어 진 심으로 떨리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당신이 느낀 회한이다. 아무리 많 은 천사라도 지상에서 비참하게 실수하는 아이들을 설득하는 데는 인 생의 시련으로 단련된 지상의 한 명 인간보다 못하다. 사랑의 봉사는 오직 부상당한 병사만이 할 수 있다.
- 작가 C.S. 루이스는 "슬픔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했다. 슬픔은 기나긴 계곡을 흐르는 강이며, 한 번씩 굽이칠 때마다 늘 새 로운 풍경을 드러내는데, 이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슬픔과 고통의 시기에는 우리가 알던 가설이 통하지 않는다. 자기가 누구이 며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설정한 가설들이 산산조각 나고 만다. 우리는 세상이 자비롭다고, 인생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또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므 로 좋은 일만 일어날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통과 상실 은 이 모든 믿음을 박살 낸다. 이와 관련해서 작가 스티븐 조지프 Stephen Joseph는 저서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 What Don't Kill Us』에서 말한다.
"트라우마는 우리의 의미 체계에 맞선다. 트라우마는 이 체계와 모순되는 삶에 대한 실존적 진실을 증거로 우리에게 맞선다. 우리가 설정한 가정적인 세계를 붙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 진실을 더욱더 부정하게 된다."
트라우마로 영구 손상을 입은 사람은 이미 일어난 일을 자기가 가진 심리 모델에 동화시키려고 한다. 반면 성장하는 사람은 새로 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이미 일어난 일을 수용하려고 한다.' 동화 시키는 사람은 뇌암을 이겨냈으니 앞으로도 건강하게 살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수용하는 사람은, 그 일이 자기를 바꾸어놓았다고, 즉 자기는 이제 암 생존자라는 새로운 지위를 얻었다고 말한다. 이 런 변화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식까지 바꾸어놓을 것이다. 자기가 가졌던 심리 모델을 재구성할 때는 아래의 질문들을 떠올려야 한다.
*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 안전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안전하지 않은가?
*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나는 누구인가?
* 세상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 내가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 어떤 신이 이런 일을 허락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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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는 우리에게 귀한 도구를 하나 마련해주었다. 바로 '위대한 건강'이라는 개념이다. 아무 문제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러한 '좋은 건강'이라는 이상은 많은 사람을 소외시킨다. 반면 '위대한 건강'은 상처, 상흔, 모순, 장애, 질병을 모두 끌어안는다. 위대한 건강은 경직되는 법 없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다. 심지어 우리 가 지닌 모순도 우리를 명징함에 가까워지는 길로 인도할 수 있 다. 우리의 약한 부분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우리는 한 걸음씩, 밀 리미터만큼 미미할지라도 조금씩 길을 나아갈 수 있다. 잘못 내디 딘 발걸음과 날마다 겪는 근심 걱정의 한가운데에서도 자신을 단 련할 수 있다.
-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혜에는 밀접하게 연결된 두 가지 측면, 즉 소피아 sophia 와 소프로시네 Sophrosyne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는 관조적이 고 이론적인 지혜이자 어떤 관점에서는 이지적인 탁월함을 의미 한다. 실천적 지혜인 소프로시네는 특히 감정을 절제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마음의 균형을 잡는 일은 매우 섬세한 작업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는 데는 즐거움이 따른다. 이것은 '지혜'라는 말의 라틴어 어원에 '풍미 Savour'의 뜻이 담긴 것을 보면 알 수 있 다. 사피엔티아 Sapientia, 즉 지혜를 함양하는 자는 거기에 몰두하면 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 거짓 행복과 현실 왜곡에 작별을 고하는 자유의 기쁨, 세상을 편향된 눈으로 보게 하여 결국 세상을 고통스럽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오해들로부터 해방되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다.

- 내가 철학에 매료된 이유는, 철학이 그 유명한 아타락시아Ataraxia, 즉 영혼이 아무런 문제도 겪지 않는 마음의 평정 상태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나를 돌아보니, 마음을 흔드는 수많은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는 행운은 내게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명상 덕분에 매일매일 일종의 기적이 일어 나고 있다. 번민이 몰려와도 그냥 웃어넘기고, 더는 두려움을 두 려워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지에 도달하는 데 꽤 도움 되는 훈련 비법이 하나 있다. 두려움, 번민, 슬픔 등을 경험하는 의식은 절대 동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면 된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고 무사한 상태로 남아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상처를 주 는 그 어떤 충격도 건드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부분, 의식이다. 의식은 커다란 곰솥에 비유할 수 있다. 곰솥 안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 있다. 기분을 좋게 해주는 당근, 상추, 병아리콩도 있고 눈물 을 쏙 빼게 하는 양파도 들어 있다. 불행에 빠지면 자아는 다른 맛 은 음미하지 않은 채 양파만 씹는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을 곰솥 과 같다고 생각하면, 분노와 아픔에 이르지 않고 감정을 그냥 홀 려보낼 수 있다. 이것들은 그저 많은 재료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 늘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떠나 이 세상의 규 칙을 따르지 않는 또 다른 세계에 산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이 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이 가상의 세계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그곳에서는 위험성이 1/10억에 불과할지 라도 이런 미미한 가능성에 사로잡힌다. 이는 불안을 모르는 사람 들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논리와 다르다.
따라서 불안을 극복하고 평정심을 되찾기 위한 최선책은 현실 로 돌아오는 것이다. 걷기, 자연 감상하기, 일하기, 외출하기, 움직이기, 친구와 수다 떨기 등 때로 터무니없어 보이는 방법을 동원 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는 것, 우리에게 맞서 싸울 자원이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것 안에서 다시 닻을 내리 고 정착하게 된다. 한밤에 찾아오는 번민이 가장 격렬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밤에 혼자 있는 데다 활동이나 취미로 기분 전 환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그 시련에서 잘 벗어난다. 하지만 어려움을 상상하고 예측하고 기다 리고 계획하느라 완전히 지쳐버린다. 왜냐하면 불안한 뇌는 많은 에너지를 써가면서 무척이나 근엄하게 가상을 현실처럼 취급하 기 때문이다.
이때 도움 되는 방법이 있다. 두려움이 제자리를 지키도록 기꺼 이 받아들이되, 두려움이 전부가 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마음 챙김 명상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두려움 외의 모든 것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명상이란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지는 게 아니 라 온몸을 동원하는 것이다. 명상하는 동안 우리는 자기 호흡에 주목하고, 자기 몸과 다시 연결하고, 자기 주변의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현실의 도움을 받아 극단적인 불안 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 친절은 콘크리트 포장길 사이를 비집고 나와 싹을 틔운 작은 풀과 같다. 우리가 보기에는 들어설 자리가 없는 듯하지만, 결국 이겨내 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바로 그것들이다.
친절과 자신의 가치판단을 분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인 간은 친절을 베푸는 대상이 될 자격이 있다. 친절은 보상이 아니라 그들의 인간미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친절해지자. 우리와 다른 사람들, 우리가 판단하기에 악한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친절은 그들에게 인간미와 죄의식을 일깨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날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 친절한 시선과 몸짓, 말을 아끼지 말자. 가능한 한 늘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되자. 나무가 산소를 만들 때, 인간이 친절을 만들어낼 때, 지구와 인류는 더 건강해진다.

- 행복은 지혜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다. 호기심, 뒤로 물러서기, 친절, 세상과 인간과 삶에 대한 사랑 등등. 이 모든 것이 행복해지는 데 도움 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이것은 잠이 그렇듯, 모든 감정이 그렇듯, 행복한 상태도 돌연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행 복은 소환할 수도, 선언할 수도 없다. 그저 촉진할 수 있을 뿐이다. 행복이 찾아오는 데 필요한 조건을 다 찾아 모으면 행복이 올 가능 성이 커진다. 그래도 찾아오지 않는다면? 뭐,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 다. 지혜는 행복의 직접적 원천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흥미롭기 때문 이다.

- 영적 삶에서 이루어야 하는 대업 중 하나는 우선 우리가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경우, 코헬렛이 큰 도움이 된다. 이 구약을 읽으면 평화를 발견 해야 하는 곳은 바로 희망 없는 혼란 속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유명한 후 렴구를 좋아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을 붙잡는 일이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 많은 환상에서 치유되고, 내가 내 인생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고 믿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난다. 언젠가는 모두 무너지게 마련이며 모든 것이 무상한 법이다.

- 나는 모든 것이 무너지기 쉽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마침내 기쁜 마음으로 안정과 확고부동함을 포기 하고 무상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영원히 정착할 육지를 찾으려 든다 면 가혹하지만 실망하게 될 것이다. 붓다의 가장 고귀한 진리의 가르침은 모든 것이 고통이요 무상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나 는 티베트 학자도 산스크리트 학자도 아니지만, 용게이 밍규르 린 포체 Yongry Mingyour Rinpotche가 《지혜의 행복》에서 지적하듯, 붓다 의 진단을 '모든 것이 삐걱거린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다. 또한 우리가 무엇을 하든, 아무리 우리가 내적으로 완벽한 상태에 있더라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은 늘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베 르나르 캄팡Bernard Campan이 말했듯, 유쾌히 삐걱거리게 놔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명상 수행은 이 세상을 빠져나오는 것이 아 니라, 이런 삐걱거림 속에서 평화를 이루며 공생하는 법을 터득하 는 것이다.

- 자기 몸을 돌본다는 말은 몸에, 몸의 외향과 탁월함에 집착한다는 뜻이 아니다. 휴식, 긴장 풀기, 쾌락, 양식, 운동 등 자기 몸에 필요한 것을 딱 필요한 만큼만 제공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돌보면서 몸에 평화가 오면 몸은 스스로 알아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다.

- 법리적 유죄가 아닌 심리학적 의미에서 죄책감이란 이런저런 식으로 행동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느낌, 따라서 잘 못을 저질렀다는 느낌을 말한다. 간혹 죄의식은 현실과 동떨어지 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사소한 일로도 아주 쉽 게 죄책감을 느끼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무슨 일이 되었건 죄책감 을 거의 느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심리적 죄책감과는 달리, 후회의 감정에는 잘못의 도덕적 측면 이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는 저지른 실수를 단순히 후회할 뿐 덜 감정적이고 더 이성적인 시선으로 자신이 한 일과 그 결과를 바라 본다. 그래서 "죄책감을 느낀다"라고 하지만 "후회감을 느낀다"라 고 하지는 않고 단순히 "후회가 든다"라고 한다. 이런 표현의 차이 를 통해 죄책감을 지배하는 측면을 잘 알 수 있다.
죄책감과 후회에는 심리적 기능이 있다.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평범한 일이 되게 만들지 않고, 우리에게 압박을 주어 실수를 깊 이 생각하고 기억 속에 새겨서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들게 한다. 따라서 죄책감은 유용한 것이다. 문제 되는 것은 죄책감이 지나치거나 잘못 어긋나는 경우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좋은 신호이기도 하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대개 공감력이 있고 타인에게 신경을 쓰며 올바르게 행동하려 마음 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실수와 잘못을 혼동하지 말라. 실수했다고 인식하면 후회하게 되는데, 이는 발전에 도움 된다. 반면 잘못했다고 느끼면 죄책감 때문에 심히 괴로워지는데, 이는 발전보다는 수치심 에 갇히게 된다.
죄책감에 직면하면? 받아들이도록 한다. 한때 '성찰'이라고 했던 작 업을 실행해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도록 한다앞으로는 어떻게 다르게 해 야 할까? 가능할 때마다 고치고 사과한다.

- 당신 내면을 황폐하게 만드는 문제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해요. 당신이 의기소침해지거나 절망감을 느낀다면, 그건 아마 상황이 정말로 의기소침할 만하거나 절망적이어서 당장은 간단한 해결 책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해결책이 있다면 분명히 나타날 테고, 없다면 다른 일들이 생길 거예요. 어떤 경우가 됐건, 눈앞의 문제 를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 마음속 한 귀퉁이에만 틀어박혀 있지도 마세요. 집 밖으로 나가고, 움직이고, 정리 정돈 을 하고, 달려보세요. 혼자만 있지 말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눠 보세요. 꼭 당신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을 좋 아하는 사람, 당신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 당신에게 조언과 위 로를 줄 수 있는 사람과 교류하세요.
그런 다음, 이렇게 의기소침하거나 절망적인 시기를 벗어나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되 돌아보고, 앉아서 글로 써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세요. 지금은 그 절망에서 벗어나 어디쯤 와 있는지도 잘 관찰해보 세요. 왜 지금은 절망이 없는지, 어떻게 해서 사라졌는지 그 이유 를 파악해보세요. 아마 절망이 슬픔으로 바뀌었을 뿐일 거예요. 이제 당신은 더는 절망적이라고 느끼지 않아도 돼요. 그렇다면 왜 전에는 절망의 구렁에 빠졌던 걸까요? 그때의 당신 상태는 어 땠나요?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단계들을 밟았나요? 결국 당신이 살아남은 그 '별일 아닌 일'로 말미암은 절망, 또는 거의 별일 아닌 일 때문에 생긴 절망의 순간들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절망의 '심미가'라고도 불리는 에밀 시오랑 Emil Cioran 의 말 '우리 는 모두 어릿광대다. 우리는 각자의 문제를 딛고 살아남는다'를 명심하세요."

- 우리 뇌에는 명상은커녕 주의를 분산하려는 습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평온함은 뇌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뇌는 판단하고, 비난하고, 비교하고, 근심하고, 과거로 도피하고, 앞질 러 생각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한마디로 허튼짓을 하고 망 상에 빠지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용게이밍규르 린포체가 설파한 독특한 수행법은 하루에 열 번 멈춰 서서 관찰하는 것이다. "아, 이런! 나는 철저히 명상을 안 하고 있군."
다시 말해 '난 완전히 주의가 분산되었어'라고 깨달으라는 뜻이 다. 자신의 주의가 분산되었음을 깨달을 때가 바로 마음속에 정신 이 현존하는 순간이다. 자, 그러면 자유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우 리 마음을 이루는 요소들은 밤낮으로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중 시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고요한 상태 가 되면 이 거대한 잡동사니 같은 감정과 경솔한 판단을 거의 비 웃는 듯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아, 이런! 내가 삶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네!'
'오늘 하루를 다 망쳐놓은 주인공이 바로 이놈의 엉뚱한 생각이었군.'
마음 수련이란 자기도취에 조금도 빠지지 않고 무한한 해석 능력을 지닌 우리 뇌를 자세히 살펴보려는 작업이다.

- 누구나 그렇듯, 나도 실패보다는 성공이 좋다. 성공이 더 기분 좋고 만족스러울뿐더러 가치 있기 때문이다. 그러 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실패했을 때 더 많이 성찰하고 다시 검토 하게 되어 결국 발전할 수 있었다. 요컨데 내게는 두 영역 모두 필 요했던 것 같다. 성공의 기쁨이 주는 에너지와 자신감, 그리고 실패의 불편함으로 얻게 된 신중함과 연습 말이다.

- 직업상 항상 쉬운 일만은 아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사들은 평균적으로 환자의 말을 20초나 30초만 듣고 끼어든다고 한다. 이들은 증상을 찾고, 환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신속히 찾고, 대 화의 주도권을 잡는 경향이 있다. 내 동료들 중 경험 많고 나이 지 긋한 몇몇 일반의의 말을 들어보면, 환자를 볼 때 저지르는 실수 는 모두 경청하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한다. 환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다 하게 하지 않았거나, 환자들에게 충분한 질문을 하지 않았거나, 의사로서 생각하는 방향으로 환자들을 너무 일찍 유도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단 후 처방하고 조언하는 것이 치료 라고 생각한다. 환자의 말을 경청하기보다 약을 제공하고 조언해 주는 것이 치료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경우도 이와 조금 비슷하다. 우리는 자녀에게 충고하고, 자녀를 교육하고, 위로하고, 회복시키려 한다. 그러면서 자녀의 말을 충분히 경청하지 않고, 자녀의 말이 중요한 순간에 그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 더욱 잘 경청하려면, 부분적으로 자기 마음속에서 비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두려움(무슨 말을 할지 모를 수 있다는 두려움, 대답해줄 말이 없을 수 있다는 두려움), 확신, 싫증이다.

- 정신의 잠재적 변화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수많은 대안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필요한 경우 유연하게 방향을 바꾸며, 실패 할 경우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평정심을 찾아라. 누구도 우리에 게서 내면의 평화를 누리는 자유를 앗아가지 못한다.

-  우리 마음에 독이 되는 모든 것의 일차적 근원이 바로 자아 의 굴레다. 미국에서는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에게 아침부터 밤까 지 '너는 특별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그런데 심리학자 로 이 바우마이스터 Roy Baumeister 교수가 상당히 많은 연구를 종합해 본 뒤 내린 결론은 뜻밖이다. 학교, 부모, 치료사가 아이들의 자존 감을 높이기 위해 투자한 모든 노력과 비용이 미미한 효용밖에 없 다는 것이다.
“이 많은 세월 동안 연구한 결과로 이런 권고를 하게 되어 유감 입니다만, 자존감은 그만 잊어버리고 자기통제에 집중하십시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대편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안 되지만, 자 아라는 작위적인 개체에 집착하는 것이 안정적인 자신감을 얻는 길은 아니다.

- '나'는 우리의 현재 상태를 경험하는 것과 관련된다. 인격이라는 개념은 우리 개인의 역사를 반영한다. 우리 삶 전체로 확장된 하 나의 연속체인 인격에는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측면이 모두 통 합되어 있다. 그 시간적 연속성 덕분에 우리는 과거에 속하는 우 리 자신의 표상과 미래와 관련된 표상을 연결할 수 있다. 이제 남 은 것은 자아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자아가 우리 존재의 핵심이 라고 여긴다. 유년기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를 특징하는 분리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아 는 '내 몸', '내 의식', '내 이름'의 주인이다. 본디 우리 의식은 항구 적으로 변화하는 역동적인 파도임에도, 우리는 강물의 흐름을 타 고 떠내려가는 배와 같은 별개의 개체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나'와 '인격'에 대한 인식이 자아라는 훨씬 더 강한 정체감안에서 명확해지면, 우리는 이 자아를 보호하고 만족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자아를 위협하는 것에는 반감을 드러내고, 자아를 즐 겁게 하고 위로하는 것에는 끌린다. 이런 두 가지 반응으로부터 충돌된 갖가지 감정 분노, 욕망, 선망, 질투 등이 탄생한다.
이런 자아를 조금만 살펴보면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 우리 자신 의 정신이 만들어낸 속임수에 불과한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자 아의 위치를 확인해보자. "네가 날 때렸어"라고 말하지, "네가 내 몸을 때렸지만 괜찮아. 그건 내가 아니니까"라고 하지는 않는다. 내 몸과 자아를 잘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내 의식은 타격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네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어"
- '내' 감정, '내' 의식, '내' 이름, '내' 몸이라고 할 때는 자아가 그 모든 것의 주인으로 부상한다. 우리는 고유한 존재를 부여받은 하나의 개체가 마치 어릿광대처럼 어떻게 상호 양립 불가능한 이 모든 정 체성을 지닐 수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자아는 어떤 역동적 과정에 붙이는 하나의 정신적 꼬리표이자 개념에 불과할 수 있다. 확실히 자아는 우리에게 유용하다. 변하는 상황 전체를 연결하고 우리의 감정과 생각, 환경에 대한 인식 등을 하나의 일 관된 총체로 통합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아는 결 국 우리 마음속에서 어떤 한 상상의 개체 생명을 유지해주는 연속 적인 정신 활동의 산물이다.
- 결론적으로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자아는 렌터 카처럼 필요악적인 존재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려면 운송 수단이 필요한 것처럼 삶을 헤쳐가려면 우리에게는 자아가 필요 하다. 수도원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는 일 이 더 간단하다고 생각하는 도사나 명상가가 아니라면 말이다. 삶 이라는 길 위에는 다른 차량보다 오염물질을 더 많이 배출하는 차 량이 있다.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 덩치 큰 4륜 구동차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싶어 하고 길을 양보받고 싶어 한다. 이와 반대편에 는 공기를 오염시키지도 않고 소음도 내지 않는 작은 자전거가 있 다. 나는 우리가 자아를 떼어내버리거나 창문 밖으로 던져버릴 수 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자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 염원이 되지 않고 우리에게는 너무 비싼 대가에너지, 관리, 보수 등의 측면 에서를 치르지 않게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지적할 사항은 무시하는 방법으로 자아를 떼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자존감 부족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의 경우, 해결책은 자신을 계속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흔히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 에게 화가 나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떼어내버리는 것과 집착을 갖지 않는 것의 차이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중요한 건 강박적인 방식으로 자아를 떼어내버리는 게 아니라, 자아에 집착하지 않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폴 발레리 Paul Valery가 남긴 유 명한 문구처럼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미워했고 나 자신을 좋아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늙어갔다.'

- 모든 감정을 사랑하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모두 우리의 욕구에 대한 신호다. 긍정적 감정은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었거나 충족되는 중이라는 것을 말한다. 부정적 감정은 충족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기본욕구가 균형을 유 지할 수 있도록 가장 적합하게 행동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 나는 고뇌로 가득한 삶의 여정을 가는 동안 마티유의 여사친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돌아와 한창 이사 하느라 분주할 때 내가 너무 걱정을 많이 하자, 그 여사친이 불쑥 던진 말이 있다.
"뭐, 완전 난장판이지만 문제 될 건 없어!"
그때부터 나는 이 말을 내 만트라로 삼고 있다. 혼란 속에서 난 기류를 헤쳐 나아갈 때면 나는 모든 게 진짜 난장판이지만 그렇다 고 꼭 비극은 아니라고 되된다. 거대한 걱정 제조기 같은 우리의 정신은 과장하게끔 되어 있다. 행복에 겨운 낙관주의에 빠지지 않 는다면, 고통에는 두 가지 유형 혹은 감히 말하자면 두 가지 계층 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존재의 비극질병, 지진, 장애, 죽음, 외로움 등 이며, 다른 하나는 자아에 의해 날조된 수많은 과장된 감정이다. 다행히 우리는 이런 내면의 괴물을 무찌르고 점진적으로 없애버 릴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재난 예언자 기질에 더는 완전히 속아 넘어가는 일이 없게 된다.

- 초감 트룽파가 《마음공부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은 핵심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백번 옳은 일이다.
'유머 감각은 한낱 익살스러운 농담이나 말장난을 하거나 일부러 재미있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다. 양극단을 나란히 놓고 근본적 인 아이러니를 간파해서 이런 극단적인 것들을 더는 근엄하게 받 아들일 수 없도록 만들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희망의 게 임에 근엄하게 임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유머 감각이다.'

- 누군가의 마음에 증오의 불이 붙었을 때, 그런 마음 앞에서 성난 미치광이를 대하는 의사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이 바로 연민이다. 먼저, 그 사람이 누구든 해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의사가 미친 환자의 머리를 망치로 박살 내지 않으면서 그의 정신을 갉아먹는 병을 치료하려 애쓰듯, 폭력이나 증오에 빠 지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해결할 모든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증오에 증오로 응수한다면 문제는 절대 끝나지 않는다.

- 현실을 온전히 인식하는 것이 실제로 그 무엇이 일어났을 때 충 격에 빠지지 않는 최선책이다.
어떤 개체가 다음 순간에도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생 긴다면, 이것은 그 개체가 무상을 초월했다는 뜻이 된다. 이런 경 우, 그 개체는 그 상태로 영원히 고정된다. 현실을 왜곡하면,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이나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 우리 소유물이 변함없 이 존속할 것이라는 생각, 이들이 정말로 '우리 것'이라는 생각에 집착하면 고통의 원인을 키우게 된다. 그러면 결국 우리가 우리 소유물과 우리 인생을 포기하지 않으려 해도, 우리 소유물과 우리 인생이 우리를 버리게 될 것이다!

- 인간의 뇌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다음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면 어떻게 인생을 계획할 수 있을까?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면 될까? 너무 소모적이다. 그렇다면 최선을 기 대해야 할까? 너무 태평스럽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기 위해 예측 하고 추정한 뒤, 우리가 세운 가설을 고수하고 이를 현실로 간주 한다. 환상을 품지 않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면, 지혜란 적어도 자 신이 환상을 품는다는 사실을 늘 인식하는 것이라 하겠다. 불확실 성이 주는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뇌가 먼저 예상하고 상상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예상과 상상을 거침없이 믿는 행동은 자제할 수 있다. 폴 발레리가 문학 계간지 <텔>에서 멋지게 표현하듯 말이다.
'새가 가지에서 가지로 날아가는 것처럼 마음도 어떤 어리석음 에서 다른 어리석음으로 옮겨 간다. 달리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 이다. 핵심은 스스로 그 무엇에 대해서도 확고부동하다고 조금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지혜란 스스로 이렇게 되뇌는 것이리라.
'나는 모른다. 그러니 내가 모르는 한 나는 환상을 품지 않는다.'
그러면 많은 불필요한 억울함과 걱정을 피할 수 있다.

- AI의 토대는 특출나게 고도화된 인간의 두뇌로도 저장할 수 없는 막대한 데이터빅데이터의 활용에 있다. 역설적이지만, 피라미드 건설이나 심장병에 관한 모든 정보를 즉각적으로 얻는다고 해서 우리가 더 지혜로워지거나, 더 친절해지거나, 더 균형 잡힌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도 '빅데이터'의 등장은 그 어느 때보다 정보와 지혜의 차이를 부각한다.

- 예수는 정확히 말해서 현자의 표본이 아니다. 간혹 선동적이기도 하고 역설적이거나 난해하기도 하며 까다롭거나 급진적이기도 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상이다. 예수는 현자 가 아니라 메시아였으며 예언자이자 구세주였기 때문이다. 우리 는 현자를 자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된다우리 가 현자를 인정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예언자를 자주 만나면 마음이 동요되고 충돌하고 뒤죽박죽이 된다. 예언자는 자신의 말 에 귀를 기울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고 따르라고 한 다. 예언자를 상대할 때는 잘못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결말이 좋지 않다. 사이비 예언자보다는 사이비 현자가 아 픔을 덜 주는 법이다.

- 그러자 처음으로 어떤 외침이 울려왔다. 스피노자는 슐러에게 보낸 유명한 서간문에서 이렇게 진단한다.
'틀림없이 이 돌멩이는 자신의 노력만 의식하고 초연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자신이 끈기 있게 낙하 운동을 지속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이 그것을 욕망하기 때 문이라고 믿을 것이다. 모든 인간이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인간의 자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인간의 자유는 인간이 자신의 욕망은 의 식하나 그 욕망을 결정하는 원인은 모른다는 데 있다.'

- 진정한 자유는 자신의 정신을 생각에 따라 표류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선택한 목적지를 향해 자유 롭게 항해하는 선원처럼 말이다. 그는 자신의 배를 암초에 좌초시 킬 수도 있는 바람과 해류에 따라 표류하게 두지 않고 통제한다. 달리 말해 자유롭다는 것은 조건화에 의해 단련된 습관적 성향과 자아의 독재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우리는 거의 모두가 방황과 조건화, 충동, 내적 갈등, 떠도는 생각, 동요를 일으키는 감정에 놀아난다. 이런 종속 상태는 많은 고 뇌의 근원이다. 때때로 우리를 무기력하고 체념하게 만드는 이런 메커니즘의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하기 어려운 주된 이유는 분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정 신적 요소의 정체를 파악하지도, 우리를 구속하는 생각들이 어떤 유형인지 간파하지도 못한다. 우리에게는 자유를 되찾게 해줄 지 혜와 통찰력,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너무 많다. 따라서 내면의 자 유를 획득하려면 우리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이해하고 행 복과 고통의 메커니즘을 밝혀내야 한다. 이런 분별력은 고통을 주 는 정신 상태를 여유 있고 현명하게 관리하도록 하는 마음의 훈련 과 병행되어야 한다.

- 의학에서는 치유를 뜻하는 표현으로 '병과 싸우다', '암과의 전쟁' 등을 자주 사용한다. 나는 이런 종류의 담론과
그 안에 내포된 시각이 항상 많이 불편하다. 내가 보기에 이런 표 현들은 우리를 상당 부분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 같다. 병 은 적도 아니고 상대편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불균형 상태, 우리 의 건강을 유지하는 섬세한 메커니즘이 변질한 것일 뿐이다 생명과 마찬가지로 건강은 작은 기적이다!. 내 눈에는 자기 자신을 보살피고, 두려 움이나 분노의 감정을 평화롭게 진정시키는 것, 간단히 말해 내면 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게 상상의 적과 맞서서 스트레스를 유발 하는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지 싶다.

- 지혜를 추구하려 노력하는 우리에게 명상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먼저, 분별력의 열쇠가 되는 주의력과 감정을 안정시킨다. 그다음, 의식을 확장한다. 명상이란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자발적으로 고요하게어쩔 수 없이 정신이 분산되는 경우와는 다른 방식이다 마음을 열고, 그들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우리를 연결하는 상호의 존성과 소속감을 깨닫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기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외부의 시선을 선택해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 에게서 벗어나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 이다.

- 불교적 자기성찰에는 두 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하나는 분석적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관조적 방법이다. 분석적 명상은 만물의 내면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만물은 늘 변함이 없는가, 아니면 무 상한가? 만물은 자립적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는가? 고통의 직접적이고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나 그러니까 자아는 고유한 존재를 지닌 단일한 개체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약정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하나의 편리한 신기루에 불과한가? 이런 분석적 명상을 통해 반박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면, 관조적 명상은 마음이 이 새로운 깨달음 안에서 차분히 쉴 수 있게 한다. 그래야 물이 땅에 스며들 듯 명상이 마음에 동화된다.
처음에는 우리 마음이 무척 동요하기 때문에, 분석적 명상을 성 공적으로 수행해서 연민을 기르고 의식의 본성을 관찰하는 것이 꽤 어렵다. 그저 생각의 소용돌이에 대적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처 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서 살펴보았듯, 어느 정도 고요한 상 태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먼저 밟아야 할 첫 번째 단계다. 몽둥이 로 때리듯 정신을 혼미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명확하 고 안정적인 정신 상태가 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명상 은 호흡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실용적이면서도 단순하고 섬세한 방법이다. 따라서 호흡은 주의력을 가다듬기 좋은 탁월한 대상이 다. 그러나 이 단순한 훈련법은 쉽지 않다. 처음 시작하면 '예전보 다 생각이 더 많아졌는걸, 나한테 명상이 맞지 않나봐' 하는 생각 이 들면서 심지어 낙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결과는 반드 시 생각이 더 많아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나 는지 깨닫기 시작하고 타격받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시작해서 그런 것이다. 폭포수가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급류가 되 고 다시 강이 되고 마침내 맑은 호수가 되듯, 시간이 지나면 마음 도 고요해진다.
그렇게 몇 주, 몇 달이 지나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제 더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마음을 지니게 된 나는 잘 훈련된 말처럼 마음을 지휘할 수 있다. 마음을 향해 "연민에 전념하도록 해" 하는 말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진행 단계는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 다. 몇 단계를 건너뛰는 것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마음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도 연민에 관해 명상하려 든다면, 연민 을 기르기는커녕 정신만 분산된다.
이러한 물음을 가질 수도 있다.
'최종적으로 명상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나인가, 의식인가?' 이제 나는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을 분석할 수 있다. 더 관조적이 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탐구를 심화할 수도 있다.
'이런 모든 생각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깨달음을 얻은 현존, 즉 모든 정신적 사건의 원천이 되는 벌거벗은 의식의 모습이 숨어 있 는 것 아닌가?'
이때부터 나는 모든 생각 뒤에 감춰져 있는 것, 먹구름 뒤에서 움직이지 않고 존재하는 하늘처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어렴풋 이 보기 시작한다. 그런 뒤에는 이렇게 깨달음을 얻은 현존 안에 서 정신을 쉬게 할 수 있다.

- 고대 그리스철학에는 메타노이아라는 매우 아름다운 개념이 있다. 내면의 전환을 위해 스스로 노력한다는 이 개념은 슬픈 열정과 반사적 행동, 이기심, 습관의 감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데 적합한 삶의 기술을 끌어안고자 자기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온 세상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며 정진하는 것, 마음을 무겁게 하는 그 무엇에서 벗어나고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도전이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유명한 문구 'Dilige et quod vis fac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를 통해 사랑과 자선이 중 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는 우리가 사랑 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한 선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유명한 서간문에서 그는 그 길을 밝혀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네게 이 짧은 교훈을 준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일을 하라. 조용히 한다면 사랑으로 조용히 하고, 말한다 면 사랑으로 말하며, 고친다면 사랑으로 고치고, 용서한다면 사랑 으로 용서하라. 마음속 깊은 곳에 사랑의 뿌리를 내려라. 사랑의 뿌리에서는 나쁜 것이 절대 나올 수 없다.'

-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 플라톤처럼 그리 스어로 표현하자면 멜레테 타나투Meletê Thanatou 이라고 했다. 그는 정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서 몸과 열정을 분리해내고, 자신을 노예 상 태로 묶어두고 감옥에 가두었던 곳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 다고 생각했다. 몸을 족쇄나 속박으로 여기는 것에서 단 한 걸음 만 옮기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리스어로 '소마soma, 몸'는 얄궂 게도 '세마séma, 무덤'와 유사하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유한성과 무상함을 명상하는 데는 슬픈 구석이 조금도 없다. 자신과 결별하 고 계속되는 우리 삶의 변화를 경험하려면, 바로 여기에서 지금을 사는 일에 전념하는 영원한 혁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 다. 그러면 정신이 온 힘을 다해 매달리며 얼굴을 찡그린 채 싫은 내색을 한다. 확고한 것을 손에 넣고 싶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일 시적이고 모든 게 지나가지만, 정신은 안전과 불변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한 무더기의 고통과 끊임없는 공포, 중단없는 불만족이 생겨나는 것이다.

- 용서란 무엇인가? 내가 상처나 공격을 받거나 누군가가 내게 해코지하는 경우라면, 용서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까? 우리는 용서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치 료에서 용서라고 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사면' 혹은 어떤 의미 에서는 '복종'이라고 이해한다. 용서치료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첫째, 용서는 어떤 형태의 속박에도 구속되지 않아야만 의미가 있 다용서는 상처받은 사람 쪽에서 자유로이 결정해야 한다. 둘째, 용서는 법적 전개 와는 철저히 분리된 내밀한 행위다. 환자가 용서하는 방향으로 가 기를 바라는 치료사는 용서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는 공식적인 화 해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설명해야 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자기 마 음속으로 용서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악행을 잊거나 부정하는 것 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용서는 이런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결정이다. 용서는 내가 고통당한 만큼 다른 사 람도 고통받기를 바라는 마음과 원한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해방하는 행위다.

-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가르침》을 쓴 고대 그리스의 전기작 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철학'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은 피타고라스라고 한다. 현자란 평화와 고요, 그 유명한 아 타락시아를 맛보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여정에 오른 현자의 옆에는 문자 그대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철학자가 있다. 그는 지혜를 갈망하며 온 힘을 다해 자신이 가는 방향으로 정진한다. 칸트의 《논리학》에서 발췌한 어느 유명한 글은 주요 화두를 이렇 게 요약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 가? 무엇을 기대해도 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스피노자가 말했듯, '철학함'이란 생각을 전환하고, 방향을 바꾸 고, 다시 돌아오고, 평생 현명하게 만들어진 삶의 기술을 통째로 이해하여 현명한 존재를 정립하는 것이다.
이런 모험에 뛰어든 나에게 철학자 진 허쉬Jeanne Hersch는 마치 구명튜브를 던져주듯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틀어 올린 머리를 한 이 스위스 출신 여성 철학자는 《철학적 놀라움》이라는 굉장한 책 에서 서양사상사를 되짚어본다. 이 책은 내가 플라톤 발췌서 다음 으로 접하게 된 첫 번째 철학책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 책은 나의 구원자였다. 며칠 동안 나는 이 황홀한 책을 탐독하느라 마 치사경을 헤맬 듯 앓았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여정을 함께할 새로운 동반자들을 만났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성 아우 구스티노, 스피노자, 키르케고르, 니체 등이 유쾌한 철학자 군단 은 삶의 비극성을 조금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삶을 그토록 아름 답고 가벼운 것으로 만든다. 삶의 여정을 한마디로 짧게 표현해야 한다면 나는 스피노자의 말을 빌리고 싶다.
'착하게 행동하고 기쁘게 지내라.'

- 치료 과정에서 우리 의사들은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 해보라고 조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환자가 깊이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반추하는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 당신이 이 문제에 관한 생각을 시작한 이후로 그 덕분에 해결 책을 발견하는 데 도움 된 적 있는가?
2. 해결책을 찾지 못했더라도 적어도 문제점이 조금은 분명해졌는가?
3. 해결책을 찾지도 못하고 문제점이 더 뚜렷해지지도 않았다 면, 그렇게 생각한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는가?
이 세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문제를 깊이 생 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 반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반추에서 벗어날 최선책은 정원 손질을 하거나 산책하거나 조깅하거나 타 인을 도와주는 등 다른 영역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아니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 그러면서 함께 반추하라는 말 이 아니라, 다른 일들을 떠올리라는 뜻이다!

- '붓다는 붓다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붓다라 부른다
《금강경》에 나오는 이 단순한 후렴구는 내게 순간순간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는 엄청난 도구가 되었다. 내가 거의 항상 하고 있 는 이 수행법은 삶의 부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 된다. 사 는 것이 힘겹게 느껴질 때면 나는 이 금강경을 꺼내 든다. 싸움에 필요한 무기를 끄집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삶의 도구를 얻기 위해서다.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장애라 부른다.'
이 후렴구는 아무것도 고수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무 엇이건 재앙도 되고 동시에 기회도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이는 이분법적 논리와 이원론의 감옥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다. 매 순간 나는 장애를 다르게 체험할 수 있다. 하루에도 수천 번씩 내 정신이 모든 것을 고정하고 사방에 꼬리표를 붙이려 들면, 나는 이렇게 되뇐다.
'알렉상드르는 알렉상드르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알렉상드르라 부른다.'
이 마법 같은 문구가 대단한 이유는 절대로 우리를 자신의 상처 안에 머물게도, 그렇다고 그 상처를 부인하게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가 현실에 숱한 선입견을 씌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그 다음에 이런 선입견들을 조금씩 걷어낼 수 있다. 그러면 나는 현 실이 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빡빡하다는 걸 알면서도 직설적 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모든 이기 적 고정관념을 버리고, 끊임없이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수련 해야 한다. 예컨대 "내 아내는 내 아내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 녀를 내 아내라 부른다"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금강경이라는 이 눈 부신 경전 덕분에 나는 사람들이 무한한 부자라는 사실을 매일 발 견한다. 그리고 더는 사람들을 전형적인 모습 안에 가두어버리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생각과 감정의 강물이 흐른다는 사실을 깨달 으면, 그것만으로도 내 머릿속을 스치는 모든 걸 너무 근엄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 나는 구약성서 중에서 불교와 멋지게 연결되는 측면이 있는 코헬렛에서 한 가지 수행법을 빌려 왔다. 코헬렛은 비관적인 분위기 아래에서 모든 것을 벗겨내고 우리의 환상을 하 나씩 뽑아버린다. 나는 이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유명한 후렴구를 좋아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깨 달으면 더 심오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데 도움 된다. 이 방법은 싼값으로 마음을 달래는 경향이 있었던 내 영혼을 치유해준다. 사 실, 내가 평화를 발견할 때는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게 마련이건만, 참으로 불행하게도 나는 그냥 흘려보낼 줄 모른다. 스스로 옭매이면서 몇 번이고 다시 고통스러워한다. 사실, 코헬렛은 치유한다는 생각 자체로부터 나를 치유해주었다. 그토록 품고 있던 환상과 잘못된 기대를 하나씩 잃어가면 어느 정 도 평온함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 그러면 싸움이 멈추고, 고된 전 투가 지나고, 평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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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힘

과학 2024. 3. 27. 06:59

- 헝가리 출신의 다재다능한 미국인 수학자 존 폰 노이만 John von Neumann 은 "나는 매개변수 4개로 코끼리를 만들 수 있고 5개로는 코끼리가 몸을 움찔 거리게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항이 많은 다항식 같은 모델들 의 집합이 충분히 많으면 거의 모든 행동을 나타내는 함수를 만들 수 있다 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곡선은 현실세계에 관한 유용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오컴의 면도날 Ockham's razor (어떤 사실이나 현상에 관한 설명들 가 운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옮긴이), 다시 말해 단순한 모델에 대한 보편적인 선호에 입각해 설명이 너무 복잡하고 정교하 다면 그것이 타당하다고 여길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의심해봐야 한다.

- 일단 쪼개어 생각하라
위대한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 Enrico Fermi의 이름을 딴 페르미 추정 Fermi estimation은 흥미로운 사고방식의 한 예로서, 실생활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페르미가 이 추론을 통해 거둔 가장 유명한 업적은 1945년 7월에 시행된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에서 폭발 위력을 추정한 일이다. 그는 몇 장의 종이 를 떨어뜨린 뒤 폭발 충격파로 인해 얼마나 멀리 날아가는지를 측정해 결과를 알아냈다. 종이가 날아간 거리와 종이를 떨어뜨린 대략적인 높이를 가늠해 원자폭탄의 충격파가 종이에 가한 압력을 추산했다. 이어서 자신이 폭발 지점과 떨어진 거리를 추정하고, 폭발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방 출돼야 해당 거리만큼 떨어진 종이에 자신이 추산한 압력이 가해지는지를 알아냈다. 놀랍게도 페르미는 이런 조잡한 방법으로도 오차범위가 최종 확 인값의 2배 이내에 있는 간단한 근삿값을 계산해냈다. 2020년 8월에 일어 난 베이루트 공항 폭발 사고에도 비슷한 방법이 적용됐다. 폭발 충격파로 인해 날아간 신부의 드레스가 담긴 영상을 바탕으로 폭발 규모를 추정해낸 것이다.
- 이 추론의 원리를 알아두면 좋다. 대표적인 사례가 "브리스틀에 피아노 조율사는 몇 명 있을까?"라는 오래된 면접 질문이다. 무작정 짐작해볼 수도 있지만 페르미 추정을 이용해 여러 단계로 나눠 생각해볼 수도 있다. 브리스틀에는 몇 명이 살까? 브리스틀 사람 중 몇 퍼센트에게 피아노가 있 을까? 피아노는 얼마나 자주 조율해야 할까? 피아노를 조율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사람들은 하루에 몇 시간, 1년에 며칠 일할까? 이 수치들을 하나씩 알아내면 최종 수치를 무작정 짐작한 것보다 더 합리적으로 추산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각각의 결과를 종합하면 질문에 적절한 답이 나온다. 예를 들어 브리스틀 인구가 대략 50만 명이라고 해보자. 그중 2퍼센 트에게 피아노가 있다고 하면 조율할 피아노는 약 1만 대다. 피아노는 1년 에 한 번 조율해야 하고 한 번 조율하는 데 1시간쯤 걸릴 것이다. 따라서 브 리스틀에 있는 모든 피아노의 조율 시간은 1년에 약 1만 시간이다. 보통 조율사는 하루에 8시간, 1년에 200일 일하므로 조율사 한 명이 1년에 약 1,600시간 일한다. 그렇다면 피아노 조율사가 브리스틀에 6명쯤 필요하지 않을까? 구글에 검색해보니 브리스틀에는 9~10명의 조율사가 있는 듯하 다. 정확히 맞히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면 완전히 빗나간 답은 아니다.
페르미 추정은 이런 각각의 근삿값을 절묘하게 종합해 전체 문제에 대 한 답을 낸다. 분명히 각각의 근삿값이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러 가지 근삿값을 올바르게 곱하면 대략적인 답을 얻을 수 있다. 합리적 으로 생각해보면 각각의 근삿값이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을 확률이 엇비슷하 기 때문에 오차가 서로 상쇄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도출한 최종값은 놀 라울 정도로 정확할 수 있다.

- 로그스케일을 사용하면 영국의 팬데믹 전개 양상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다음 그래프는 2020년 3월에서 2022년 6월까지의 일일 사망자 수 그래프이며 6가지 국면이 나타난다.
첫 번째 국면에서는 Ro가 3에 가까우며, 일일 사망자 수가 대략 지수적으로 증가하면서 가파르게 상승하는 직선을 그리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의 효과로 약간 평평해진다. 이어서 두 번째 국면에서는 2020년 9월 초까 지 지수적 증가보다 느린 지수적 붕괴가 나타난다(내려가는 직선). 봉쇄 가 시행되어 Ro가 1 밑으로 내려가면서 사망자 수는 감소했다. 세 번째 국 면은 2020년 9월부터 2021년 1월까지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전반 적으로 기울기는 덜 가파르지만 여전히 일정하게 지수적으로 증가하는 단계로서, Ro는 다시 1을 넘었다. 하지만 제2차 전국 봉쇄의 효과가 나타나면 서 켄트에서 발견된 알파 변종이 확산되기 전에 잠시 사망자 수 곡선이 평 평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1월 이후의 네 번째 국면에서는 백신 접종과 제3차 봉쇄의 효과가 이어지면서 지수적 붕괴가 일관되게 나타났 다. 다섯 번째 국면은 2021년 6월 초반부터로, 델타 변종의 확산과 전국적 인제한 조치 완화로 인해 사망자 수가 지수적으로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2021년 9월 이후 영국의 사망자 수는 유동적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새 변종이 출현하면서 지수적 증가와 백신 추가 접종으로 인한 지수적 붕괴가 비교적 짧은 주기 동안 교대로 나타났지만 추세에 전반적인 방향성은 나타 나지 않았다.
감염자 수는 앞에서 살펴본 박테리아 사례처럼 영원히 증가하지는 않는다. 4장에서 설명할 전염병 확산 모델에 따르면, 면역력이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증가하면서 로그스케일의 감염자 수 직선이 저절로 평평해지기 시 작한다. 인구 중 25퍼센트가 감염된 뒤 면역력을 갖게 되면, 이전에는 새로 감염됐을 접촉자 중 4분의 1이 더 이상 감염되지 않기 때문에 Ro가 낮아지 는 것이다.
실제로 충분히 높은 비율의 인구가 감염되고 나면 그 효과로 Ro는 1밑 으로 떨어지고 당연히 전염병의 확산 규모가 줄어든다. 이것이 바로 사람 들이 HIT를 논의할 때 언급하는 효과다. 하지만 전통적인 전염병 모델에 따 르면 집단면역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인구의 상당수가 감염돼야 한다.

- 골드만삭스 Goldman Sachs의 최고재무책임자는 2007년 9월 <파이낸셜타 임스 Financial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며칠 연속으로 25 표준 편차 변동이 발생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설명하겠다. 어떤 정규곡선에서 기댓값으로부터 2 표준편차(분포 정도를 나타내는 또 다른 값, 분산의 제 곱근)를 벗어난 결괏값이 나올 확률은 약 5퍼센트다. 정규곡선에서 기대값 보다 굉장히 큰 결괏값이 나올 확률은 급격하게 감소한다. 따라서 기댓값 으로부터 25 표준편차만큼 벗어난 결과값이 나올 확률은 약 10-136으로 어 마어마하게 작은 수다. 며칠 연속은 고사하고 우주가 존재하는 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저 말은 골드만삭스의 예측 모 델이 틀렸으며, 세계 경제에 재앙을 일으킬 극단적인 사건의 발생 확률을 과소평가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데이터세트를 볼 때는 중앙값과 양쪽 분포 뿐 아니라 극단값을 함께 파악해야 한다. 모델을 설계할 때 표준적이지만 틀린 가정을 하는 바람에, 세계 금융시장 붕괴라는 매우 심각한 사건이 발 생할 가능성을 안이하게 평가하고 말았다. 똑같은 일이 기후변화에서도 일 어날 수 있다.

- 무작위적인 대상을 0과 1의 수열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을 데이터압축 data compression 이라고 한다. 결과의 리던던시 redundancy (중복 성이라는 뜻과 더불어 데이터를 전송할 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추가하는 잉여 정보 를 가리킨다-옮긴이) 또는 예측 가능성을 찾아내 제거함으로써 비트를 더 적 게 사용해 표현하는 방법이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저장하는 데 수억 비트 가 필요한 사진을 찍을 때 이런 과정을 거친다. 데이터압축 덕분에 필요한 비트의 몇 퍼센트만 차지하는 jpg 파일을 만들 수 있다. 핵심은 이미지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란색 픽셀이 푸른 하늘이라는 큰 영역의 일부라면 그때 이웃한 픽셀들은 편향된 동전처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분자들이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실내의 모든 공기를 완전한 진공 상태로 압축할 수 없듯이, 섀넌은 데이터를 압축하는 데에 한 계 지점이 있다고 봤다. 이는 엔트로피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섀넌에 따르면 어떤 편향된 동전도 결코 한 번 던질 때 필요한 비트가 평균 0.5 비 트미만이 될 수 없다.

- 도프만은 미군에 입대하는 남성의 매독 검사에 참여했다. 당시의 매독 검사는 비용이 많이 들었고 매독 발병 자체도 드물었다. 검사 방법을 고민 하던 도프만은 한 번에 한 명씩 검사하는 대신에 여러 명의 검체를 합쳐 집 단별로 한꺼번에 검사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집단에서 아무도 매독에 걸리지 않았다면 해당 집단의 검체에는 매독균이 없으므로 검사 결 과는 음성일 것이다. 모든 병사가 매독에 걸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데 단 한 건의 비용만 들 뿐이다.
한편 집단에서 누군가가 매독에 걸렸다면 검체에는 매독균이 있을 것 이며 검사 결과는 양성일 것이다. 그러면 해당 집단의 어느 병사가 매독에 걸렸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조사해야 한다. 감염자를 찾으려면 해당 집단의 각 개인을 다시 검사하면 된다.
도프만은 질병의 유병률이 낮을 때 이 전략이 꽤 효과적임을 알아냈 다. 대부분의 집단에는 감염자가 없을 테니, 그 구성원 모두가 단 한 번의 검사로 비감염자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추가로 개인 검사를 할 수도 있겠 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이 방법으로 검사 횟수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도프만의 아이디어가 대규모로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이후 수학자와 생물학자의 관심을 끌었다. 도프만의 단순한 방법보다 더 나은 검사 전략 을 설계하고 집단에서 누가 감염됐는지를 확인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 려는 노력은 학계 차원에서 꾸준히 이뤄졌다. 이러한 집단검사는 생물학과 사이버보안, 통신 등에도 적용됐다.
집단검사에서 가능성의 한계를 이해하는 일은 지금도 활발하게 연구 되지만 섀넌의 연구를 통해 한 가지 핵심 고려 사항을 알 수 있다. 각각의 검사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면 양성 · 음성 진단 확률이 엇비슷해 야 한다. 그래야 검사당 1비트의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 가 비트들을 합산하기 위해 연속적으로 시행한 검사 결과들은 최대한 독립 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비슷한 사람이 모인 집단을 검사해 비용을 낭비하 지 말고 많이 겹치지 않는 사람들을 섞은 표본을 검사한다. 이런 검사 전략 은 결과가 독립적이며 발생 확률이 같아야 한다는 섀넌의 목표에 부합한 다. 이렇게 하면 편향된 동전 던지기보다 공정한 동전 던지기 결과와 더 가 까워진다.
- 또 다른 과제가 있다.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이 검사는 한 집단에 감염자가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양성으로, 없으면 결과가 음성으로 나올 것이 라는 점에서 완벽하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8장에서 살펴봤듯이 검사에서는 거짓음성과 거짓양성이라는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이 문제는 검체가 합쳐지면서 더 심각해진다. 한 양성 검체가 많 은 음성 검체에 휩쓸려 감염이 드러나지 않는 '희석dilution' 효과가 일어나 거짓음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소음의 문제는 집단검사 알고리즘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해결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이론이 계속 발표되고 있으며 정보이론의 개념들 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 모든 이론 연구를 바탕으로, 팬데믹 기간 동안 집단검사가 중국, 이스라엘, 르완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 대규모로 활용됐고, 코로나바이 러스 검사 효율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섀넌의 개념들이 이 분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생생한 증거다.

- 패턴은 생각보다 흔치 않고, 기적은 생각보다 흔하다
데이터를 추적하다 보면 인간이 놀라울 정도로 수치에 서사를 부여하고 싶 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선거 운동 기간에 한 정당이 성공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무작위 변동의 결과일 뿐일 수도 있는 여론조사 데이터에 패턴이나 추세가 있다고 확신한다.
금융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10장에서 봤듯이 주가에 관 한 자연스럽고 성공적인 모델은 브라운운동이다. 이는 독립적인 동전 던지 기의 연속적인 결과를 토대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랜덤워크와 비슷하게 앞 으로 주가가 올라갈지 내려갈지에 대한 가능성은 각각 같고 대칭적으로 변동한다. 주가가 정말로 브라운운동으로 모델링된다면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증시 분석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금융 데이터 의 궤적에서 특별한 패턴을 찾아내 앞으로 어떻게 변동할지 예측하려고 한 다. 이것이 훌륭한 전략일지는 확실치 않다.
인간이 무작위적인 수를 생성하는 데 능숙하지 않은 것처럼, 어떤 수가 진짜로 무작위적인지 판단하는 데도 능숙하지 않다. 동전을 200번 던진 결 과 앞면이 7번 연속 나왔다면, 동전이 공정하지 않다거나 결과가 독립적으 로 생성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정도 시 행 결과는 무작위적 우연으로 일어난다고 예상할 만한 범위다. 오히려 앞 면이 6~7번 연속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더 이상하다.
우연이 예상보다 훨씬 발생 가능성이 높은 또 다른 경우는 생일 문제다. 방에 23명이 있을 때 그중 2명의 생일이 같을 확률은 대략 50퍼센트다.
방에 40명이 있을 때는 확률이 90퍼센트로 높아지고 60명일 때는 99퍼센 트가 넘는다. 이처럼 우연히 생일이 같을 확률은 예상보다 훨씬 높다. 다시 말해 23명이 있을 때 생일이 같을 수 있는 사람들의 쌍은 253가지이므로, 우연히 생일이 같을 경우의 수가 253가지다. 60명이라면 1,740쌍이 있으 므로 생일이 같은 경우가 없기가 오히려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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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2024. 3. 25. 07:31

- 살아 있는 예쁜꼬마선충은 불과 302개의 신경세포만으로 다 양한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일반화해 새로운 상황에도 적절히 대응하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자율주 행 분야의 연구자들이 예쁜꼬마선충의 이러한 능력에 주목하고 있다. 2021년, IST 오스트리아의 마티아스 레치너 Mathias Lechner 교수 연구팀은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톰 구조를 활용해 자율주 행 시스템을 위한 인공지능을 구현했다고 발표했다. 레치너 교 수의 연구에 따르면,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톰 구조를 모방해서 만든, 고작 19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된 인공신경망이 돌발 상황 에도 잘 대처하는 훌륭한 자율주행 성능을 보이는데, 이 인공신 경망 구조는 기존에 주로 사용되던 합성곱 신경망convolution neural network, CNN 구조보다 무려 63배나 간단한 구조다. 오랜 시간 가 장 효율적인 형태로 진화해 온 생명체의 커넥톰이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을 압도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 버스바이스나 레치너의 연구는 인간의 커넥톰을 컴퓨터 안에서 구현했을 때 인간과 유사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공지능 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현재의 기술로는 302개의 신경세포와 7,000여 개의 시냅스를 가진 단 순한 선충조차 완벽하게 컴퓨터에 업로드할 수 없는 수준이니, 860억 개의 신경세포와 100조개에 달하는 시냅스로 구성된 인 간의 뇌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 인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인류가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과학사를 돌이켜 보면 단 1퍼센트의 가능성만을 바라보고 자신의 일생을 바친 수많은 과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1997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캠퍼스의 신경생물학과에 부임한 양 댄Yang Dan 교수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으 로 일하는 동안 포유류의 뇌에서 시각 정보가 처리되는 원리에 대해 연구했다. 그녀가 특히 주목한 뇌 부위는 측면슬상핵 lateral geniculate nucleus, LGN이라는, 포유류의 뇌 중앙에 위치한 작은 시각 중추로서, 망막 시신경이 뇌로 보내는 전기신호가 가장 먼저 도 달하는 뇌 부위로 알려져 있다.
댄 교수는 뇌의 시각 정보 처리 과정에서 관찰되는 시각위상 visuotopy (혹은 망막위상retinotopy)이라고 불리는 특성에 주목했는데, 이는 눈앞에 펼쳐진 어떤 장면이 작은 화소pixel들로 구성되어 있 다고 가정할 때 화소 하나하나가 측면상에 있는 신경세포 하나하나에 대응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녀는 곧 측면슬상 에 위치한 신경세포들의 활동 신호를 읽어내면 눈앞에 있는 장면을 그림의 형태로 복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댄 교수는 자신의 박사후 연구원이었던 개럿 스탠리 Garrett B. Stanley 박사와 함께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시작했다.
댄 교수는 고양이의 측면상에 바늘 모양의 전극 177개를 꽂아 넣고 177개의 신경세포가 고양이 망막의 어느 위치에 대응 되는지를 알아냈다. 이를 위해 그녀는 고양이 눈앞의 여러 위치 에서 밝은 빛을 보여준 다음 어떤 신경세포가 반응하는지 관찰 했다. 이 과정이 마무리되고 나자, 그녀는 고양이 눈앞에 흑백 동 영상을 여러 개 보여주고 고양이의 측면상에서 측정되는 신 경신호를 이용해 영상을 복원했다.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고양 이에게 보여준 영상과 비슷한 윤곽의 영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 댄 교수의 연구 결과는 많은 뇌과학자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밀어 넣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시각중추, 예를 들어 대뇌의 시각 피질visual cortex에 전극을 조밀하게 삽입하고 신경세포의 활동을 기록하면 꿈을 저장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뜻 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물을 볼 때뿐만 아니라 꿈을 꿀 때, 심 지어는 상상을 할 때도 대뇌 시각피질을 사용한다. 따라서 대뇌 시각피질의 활동을 정밀하게 읽어낼 수만 있다면, 아침에 일어 나 밤새 꾸었던 꿈을 재생해 보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 니다.
- 우리 뇌는 몸보다 더 빠르게 반응한다. 뇌파를 측정하 는 동안 팔을 움직이면, 우리 뇌에서는 실제 팔이 움직이기 수백 밀리초에서 1초 전에 '준비 전위readiness potential'라는 뇌파가 관 찰된다. 준비 전위는 그 이름처럼 우리의 뇌가 팔을 움직일 것이 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준비하는 과정이 뇌파에 반영되는 것이다. 만약 자동차 운전자의 뇌파를 계속해서 측정한다면, 준비 전 위로부터 핸들을 꺾어 방향을 바꾸거나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급정거하려는 의도도 미리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닛산의 시스 템은 이처럼 운전자의 뇌파로부터 급회전이나 급정거 의도를 미리 알아내, 보다 부드러운 주행을 가능하게 하거나 사고를 미 연에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제는 크고 복잡한 뇌파 측정 장치다. 닛산의 시스템은 아직 실험실 안의 차량 시뮬레이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운전자 의 머리에는 뇌파 측정을 위한 전극 캡(모자)이 쓰여 있고, 수많 은 뇌파 전극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하지만 실제 운전자가 탑승할 때마다 이런 뇌파 측정 시스템을 머리에 뒤집어쓸리는 없지 않겠는가.
- 물론 최근에는 간편하게 착용 가능한, 헤드밴드headband 형태 나 이어버드ear-bud 형태의 뇌파 측정기도 출시되고 있다. 하지 만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마저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 운전자가 어떤 형태든 머리에 무언가를 착용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이 자동차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이 기술을 꼭 써야만 하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먼저 개발되어야 하지 않을까?
- "수업 시간에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모두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중고등학교 강연을 다니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이다. 그렇다. 우리 인간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물론 잊는 것이 약이라는 말도 있듯이, 때로는 괴로운 기억은 잊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기억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공부가 아주 쉬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망각이라는 것을 할까? 우리 뇌에 860억 개에 달하는 신경세포가 있는데도 말이다.
인간이 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억을 만들 때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장기 기억을 뇌에 각인할 때 단백질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뇌가 쓸 수 있는 에너 지와 영양분은 제한되어 있기에,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기억하고 어떤 것을 망각할 것 인지는 대체 무엇이 결정하는 것일까?
- 우리는 종종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손이 입이나 코를 만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챈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손을 움직여 입이나 코를 만진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처럼 행동이나 생각을 우리가 인지하는 것을 '의식'이라고 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무의 식'이라고 한다. 의식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인 'consciousness'는 무언가를 안다는 뜻을 지닌 어원 'sci'에서 유래했고, 과학을 의 미하는 'Science' 역시 여기서 유래했다.
그런데 우리가 의식적이라고 믿는 행동들도 사실 우리 뇌의 무의식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은 인간의 식 연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 교수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뇌과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실험 으로 꼽히는 '리벳 실험'을 고안했다. 우리 뇌에서는 신체 일부 를 움직이기 전에 준비 전위라는 뇌파가 발생한다. 움직임을 준비하는 뇌파인 셈이다. 그런데 리벳 교수가 의아하게 여긴 부분은 이 준비 전위가 팔을 움직이기 무려 1초 전에 발생한다는 점 이었다. 여러분이 실제로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면, 의식적인 생각과 거의 동시에 팔이 움직인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리벳 실험에서는 실험 참여자들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손을 움직이겠다고 마음먹은 시점, 준비 전위가 발생한 시점, 실제로 손을 움직인 시점을 정확하게 측정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손 을 움직이겠다고 마음먹은 시점보다도 준비 전위가 더 빨리 발 생한다는 결과가 관찰되었다. 우리의 의지에 앞서 뇌가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리벳 실험의 결과에 수많은 뇌과학자들이 충격을 금하지 못했다. 리벳 교수의 연구 결과가 사실이라면 우리가 의식적으로 행한다고 믿은 많은 행동들이 실제로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 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 결과는 인간의 '자유의 지free will'를 부정하는 데 쓰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인간 이 저지르는 실수와 범죄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리벳 교수가 세상을 떠난 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존 딜 런 헤인즈John-Dylan Haynes 박사 등이 리벳 교수의 이론을 계승했다. 헤인즈 박사는 2007년에 사람이 의식적인 선택을 내리기 10초 전부터 이미 뇌가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다소 파격적인 연구 결 과를 발표해 뇌과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인간이 자유의지 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는 아직 결론나지 않았지만, 인간 행동의 많은 부분이 무의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 어 보인다. 우리 뇌의 주인은 사실 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 사람의 감정을 실시간적으로 가장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뇌파를 이용하는 것이다. 뇌파에는 사람의 긍정/부 정상태나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같은 감정 상태뿐만 아니라 집 중도나 지루함, 이해도 등과 같은 뇌의 다양한 상태 정보가 포함 되어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캐나다 뉴펀들랜드메모리얼대학 교의 마샤 바게리 Masha Bagheri 교수와 세라 파워Sarah Power 교수는 뇌파를 이용해 사용자의 인지 부하cognitive load *와 스트레스 정도 를 높은 정확도로 알아내는 기계학습 기술을 발표했다. 그녀들 은 피실험자 18명을 대상으로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도록 하면서 실시간으로 인지 부하와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했는데, 개인 의 주관적인 평가 결과와 80퍼센트 이상의 일치도를 보였다. 우 리 연구팀에서 같은 해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머리둘레를 따라 10여 곳에서 측정된 뇌파에 기계학습을 적용했을 때 긍정 또는 부정 감정을 90퍼센트 이상의 정확도로 분류해 낼 수 있었다. 이처럼 뇌파로부터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수동형 뇌-컴퓨 터 인터페이스 기술은 가상 비서 서비스와 결합되어 기존에 없 던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찜찜하게 남아 있는 문제가 있다. 뇌파를 측정하기 위해서 는 여전히 머리에 무언가를 뒤집어써야 한다는 것이다. 손목시 계조차도 거추장스럽다며 착용하지 않는 이들이 많은데, 과연 가상 비서에게 자신의 감정을 알려주기 위해 뇌파 측정 장치를 머리에 쓰고 다닐까? 이는 실용성과 관련된 어려운 문제다.
- 나를 비롯한 일부 뇌공학자들은 인공지능의 미래가 인공 감정artificial emotion에 있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교류하 고 함께 살아가려면 인간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 만 아직 인간의 뇌에서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뇌과학의 발전이 지속되어 인간의 감정에 대 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그에 따라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 하는 인공지능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심지어 우리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 도대체 왜 건강식과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작업기억 과제를 수행한 이후에 건강식을 선택하는 성향이 높아진 것일까? 우 리 연구팀은 이를 '점화 효과priming effect'로 설명했다. 점화 효과 란 심리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개념으로, 앞서 접한 정보가 이후 에 접하는 정보의 해석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어 '빵'이라는 단어보다 '의사'라는 단어를 먼저 접하면 이후에 등 장하는 '간호사'라는 단어를 인식하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인간의 뇌에서도 이에 대응되는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배외측전전두피질은 우리 뇌에서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할 때 활동하는 영역으로, 하전두회는 인간의 행동을 억제하는 일 종의 브레이크 시스템의 일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뇌 영역들이 작업기억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활발히 활동하게 되 자 작업기억 과제 이후에 진행된 건강식 선택 과제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말하자면, 뇌 영역에서의 점화 효과인 셈이다. 라 면을 끓이기 위해 물을 데우면 금방 식지 않는 것처럼, 우리 인 간의 뇌도 한번 활발하게 활동한 영역은 관성에 의해 그 활동성 이 금방 줄어들지 않는다. 작업기억 과제 도중 활발했던 배외측 전전두피질과 하전두회 부위가 건강식 선택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점화 효과에 의해) 활성화 상태를 유지하면서, 순간적인 쾌락은 억제하는 한편 이성적인 의사결정은 더 잘 내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실험 결과를 설명할 때마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 다이어트를 하고 싶으면 입으로 먹지 말고 뇌로 마음 의 양식을 드세요." 실제로 마음의 양식인 책을 많이 읽으면 배 외측전전두피질을 포함한 전전두엽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이런 활동에 의한 점화 효과는 점차 길어지며 결국 전전두엽의 전반 적인 활동성을 높일 수 있다. 평소 책을 읽고 깊이 사색하는 습 관을 들이면 치매가 예방될 뿐만 아니라 정크 푸드에 대한 욕구 도 줄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양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실제로 이런 뇌의 점화 효과를 이용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도 있다. 바로 '뉴로피드백'이라고 불리는 자가 뇌 조절 기술로, 뇌의 특정 영역의 활동을 억제하거나 강화하는 훈 련을 지속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뇌의 상태나 기능을 변화시키는 훈련 방법이다. (특정 뇌 영역의 활동을 잘 조절하고 있는지를 다양 한 피드백을 통해 알려주기에 '뉴로피드백'이라고 부른다.) 뉴로피드 백에서 사용되는 관찰 방법으로는 뇌파, 근적외선분광법, 기능 적 자기공명영상 등이 있는데, 이들은 이미 국내 대형병원의 정 신건강의학과나 재활의학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의료기기이 기도 하다.
- 신경가소성은 뇌 질환을 치료하는 데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 다. 예를 들어, '중풍'이라고도 불리는 뇌졸중이 오른팔의 움직 임을 담당하는 왼쪽 운동영역에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뇌졸 중으로 오른팔을 움직이기가 어려워진 환자에게는 마비된 오른 팔을 계속해 움직여 주는 것만으로도 오른팔의 기능을 회복하 는 데 도움이 되는데, 오른팔의 움직임에 의해 고유수용감각이 느껴지면 뇌에서는 손상된 왼쪽 운동영역을 계속 호출하기 때 문이다. 왼쪽 운동영역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유도하면, 왼쪽 운동영역의 기능이 다른 인접한 뇌 영역으로 옮겨 가 회복 가능성 을 높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재활 과정에서는 단순히 수동적 으로 로봇에게 팔을 맡기는 것을 넘어 오른팔을 움직이는 상상 을 함께 진행하면 재활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 오른팔을 움직 인다고 상상할 때도 왼쪽 운동영역을 호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활 훈련을 장기간 하다 보면, 집중력과 의지가 점차 낮아지며 로봇에게 다시 수동적으로 몸을 맡기게 될 수 있다. 하 지만 이때 왼쪽 운동영역에서 발생하는 뇌파나 근적외선분광 신호를 측정해 재활 훈련 중인 환자에게 막대그래프로 보여준다면? 환자는 막대그래프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왼쪽 운동영역의 활동을 높이기 위해 다시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와 비슷한 방식으로, 초기 치매 환자의 인지재활 훈련 과정에서 환자들이 인지재활 훈련에 얼마나 집중해 참여하고 있는지 모 니터링하고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에 는 감정과 관련된 정서 질환의 치료 과정에서 치료 대상의 감정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피드백을 제공하기 위해 뉴로피드백 기술 이 활용된다. 가까운 미래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웨어러블 뇌파 기술의 도움으로 뉴로피드백을 통한 뇌 질환 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 미니어처 뇌, 뇌 오가노이드
1920년대 초, 독일의 동물학자인 한스 슈페만Hans Spemann은 발 생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이자 그에게 노벨 생리의학 상을 안겨준 위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슈페만은 도롱뇽의 알이 분화하는 과정에서 원래 뇌가 되어야 하는 부분의 세포를 잘라 다른 부위에 붙여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세포를 붙인 부위 에 새로운 신경관이 만들어지더니, 머리가 둘 달린 '괴물 도롱 뇽'이 탄생했다. 중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이 유명한 실험은 세포의 발생 과정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도롱뇽 알의 경우와 비슷하게, 우리 인간의 수 정란에서 생겨나는 배아줄기세포도 주변 환경을 적절하게 조절 해 원하는 형태의 세포로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줄기세포로부터 특정 신체 기관을 유도하는 연구는 200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신체 기 관은 '유사 장기' 또는 '오가노이드organoid'라고 불린다. 2000년 대 후반, 생물학자들은 소장이나 신장의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인체에서 가장 복잡한 기관인 뇌 오가노이드는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래서 2010년대 초까지도 수많은 뇌과학 자들이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과 학의 역사에서 숱한 발견들이 그러했듯이, 뇌 오가노이드도 아 주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졌다.
2013년,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MBA에서 박사후연 구원으로 일하던 젊은 여성 뇌과학자 메들린 랭커스터 Madeline Lancaster 박사는 쥐의 줄기세포로부터 신경세포를 발생시키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실험 도중 자신이 관리하던 배양접시에 지름이 2밀리미터 정도인 희고 둥근 물체가 둥둥 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도 처음에는 그 물체가 무엇인지 전 혀 짐작하지 못했고, 배양접시가 오염된 것으로 여기고 접시째 버리려고 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물체를 한번 잘 라보았는데, 놀랍게도 그 물체 안에는 수많은 신경세포들이 뭉 쳐진 뇌 조직이 들어 있었다! 랭커스터 박사는 이 결과를 즉시 <네이처에 발표했고, 곧 뇌과학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뇌과학자가 되었다.
- 인간이 만들어 낸 이런 미니어처 뇌, 뇌 오가노이드는 생물학적 신경망과 인공지능을 결합하는 연구에도 쓰일 수 있 다. 그 가능성을 가장 먼저 보여준 연구는 2022년에 발표되었 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있는 뇌과학 스타트업, 코르티컬 랩스Cortical Labs의 공동창업자인 브렛 케이건Brett Kagan 박사는 영 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의 칼 프리스턴Karl Friston 교수 연구팀 과 함께 생물학적 신경망을 컴퓨터와 연결해 간단한 게임을 수 행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케이건 박사 연구팀은 먼저 신경세포의 활동을 정밀하게 읽어 들일 수 있는 2차원 고밀도 마이크로 전극 배열 위에 신경세포를 배양했다. 이때 신경세포 는 전극 배열 위에서 이웃한 신경세포와 새로운 시냅스 연결들을 만들어 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우 복잡한 생물학적 신경망 구조를 형성한다. 이런 배양법은 오가노이드 제작 기술이 발 표되기 전부터 생물학적 신경망을 관찰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 방식인데, 반도체 칩 위에 신경세포를 배양한다고 해서 '뉴런 온 어칩 neuron-on-a-chip'이라고도 불린다. 마이크로 전극 배열은 신 경망을 구성하는 개별 신경세포의 활동을 정밀하게 측정할 뿐 만 아니라 특정한 신경세포에 전기 자극을 가함으로써 활동을 유도할 수도 있다.
- 해마 칩처럼 머릿속에 삽입하는 브레인 칩을 구현할 때 가장 큰 이슈는 배터리다. 커넬은 사람의 두개골 자리에 배터리와 신 호 측정, 신호 변환, 전기 자극이 모두 가능한 전자회로를 삽입 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뉴럴링크가 만든 '링크'와 비슷한 방식 이다. 하지만 뉴럴링크가 개발 중인 신경 인터페이스와는 달리 커넬의 해마 칩은 깨어 있는 동안 연속적으로 전기 자극을 해야 하기에 배터리 소모량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대용량 배터리를 삽입하는 수술은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향후에는 브레인 칩에 자체적으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 기술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하는 연구자가 많다.
에너지 하베스팅이란 문자 그대로 에너지를 수확한다는 뜻이 다. 사람이 움직일 때의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거나, 두피 표면에 태양전지를 부착해 수집한 전기에너지를 배터 리에 전달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 로는 에너지를 상시로 수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항상 일정한 전기에너지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는 생체연료전지biofuel cell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인간의 뇌와 두개골 사이를 채우고 있는 액체인 뇌척수액에 는, 다시 인체로 재흡수되지 않고 배출되는 글루코스가 다량 존 재한다. 글루코스는 세포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아데노신 3인 ATP)를 생산하는 포도당을 의미한다. 글루코스는 화학반응을 통해 전기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는데, 체내의 글루코스로부터 전기를 생산하는 '글루코스 연료전지 기술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연구된 글루코스 연료전지는 해를 거 듭할수록 작은 크기와 높은 효율을 경신해 가고 있다. 2022년 미국 MIT와 독일의 뮌헨공과대학교의 공동 연구팀이 발표한 글루코스 연료전지는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 수준인 400나노미터의 두께로, 제곱센티미터당 43마이크로와트의 전 기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인체에 삽입되는 임 플란트가 소모하는 전력량이 수백 밀리와트 수준이므로, 연료 전지의 면적은 최소 100제곱센티미터는 되어야 한다. 정사각형 형태로 제작한다고 가정하면 한 변이 10센티미터는 되어야 한 다는 것인데, 이는 아직 뇌에 삽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 렇지만 현재 기술로도 충전식 배터리와 동시에 사용할 경우 배터리의 크기를 줄이거나 충전 시간을 단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연료전지의 효율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 기 때문에, 머지않아 외부에서 배터리를 충전할 필요 없이 인체 내에서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브레인 칩이 개발될지도 모른다.

- 우리 뇌에 질환이 생기면 대체로 수술이나 약물로 치료한다. 그런데 퇴행성 뇌 질환의 일종인 파킨슨병 환자들 중에는 약물 로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환자를 대상으로 '심부뇌자극deep brain stimulation, DBS'이라고 불리는 장치가 머릿속 에 이식되고 있다. 이 장치는 뇌의 깊은 곳에 가늘고 긴 바늘을 찔러 넣고 펄스 형태의 전류를 흘려보내 뇌 활동을 조절한다. 이 미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고 사람의 뇌에 이식되 기 시작한 지도 30년이 넘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의료 기기 다. 뇌 속에 전자 장치를 삽입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의외로 많은 환자들이 심부뇌자극 장치를 머릿속에 삽 입하는 수술을 받는다. 심부뇌자극 장치는 전 세계적으로 10만명이 넘는 이들의 머릿속에 이식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적지 않은 이식 수술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파킨슨병의 경우에 는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하는 동안 손의 떨림이 멈추고 걸음걸이 도 정상으로 돌아오는 극적인 효과가 관찰되기도 한다.
파킨슨병은 뇌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흑질substantia nigra 이라는 영역의 도파민 뉴런이 손상되어 도파민이 잘 분비되지 않는 장애와 관련 있다. 심부뇌자극 장치는 이 부위에 전기 자극 을 가해 인위적으로 도파민 생성을 유도한다. 그런데 이 긴 바늘 처럼 생긴 전극을 자극하고자 하는 뇌의 위치에 정확하게 집어 넣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전극을 몇 번이나 머릿속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데 신기하게도 우리 몸의 모든 감각 정보를 수용하는 뇌 자체에 는 정작 통각수용기가 없어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대부분의 뇌 수술이 국소마취만 한 상태에서도 진행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뇌 수술을 하는 도중 언어 영역이나 운동영역과 같은 중요 영역을 잘못 건드릴 수도 있는데, 이런 뇌 부위를 아주 조 심스럽게 자극하면서 언어 기능이나 운동 기능이 달라지는지를 관찰하기도 한다.
이렇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뇌 수술이 가능하기에, 긴 바늘 형태의 전극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여러 전기 자극을 가해보면 서 파킨슨 환자의 증상이 좋아지는 자극 깊이나 위치를 찾아낼 수도 있다. 초기 심부뇌자극 수술을 시행하던 신경외과 의사들 은 이 과정에서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는데, 흑질 부근의 특정한 뇌 영역을 자극했을 때 환자들이 갑작스레 이유 없이 행 복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어떤 환자는 심지어 소리 내어 웃음 을 터뜨리기도 했다. 자신의 머리를 열고 뇌 수술이 진행되는 동 안에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특정한 뇌 영역이 다름 아닌 보상중추의 핵심 부위인 측좌핵이었다.

- 2012년,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저명한 정신과학자 토머스 슐래 퍼Thomas Schlaepfer 박사는 우울증 환자들의 측좌핵에 심부뇌자극을 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영역을 자극할 때 자극 전류 의 강도를 점차 높여가면서 자극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에 서 시작한 만족감이 나중에는 행복감을 넘어 쾌락에 가까운 감 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뇌를 직접 자극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중독 대상에 노출되거나 중독 관련 행동을 할 때 측좌핵이 활동하고 많은 양의 도파민이 분비 되는데, 이는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쇼핑 중독 등 중독 대상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외부 자극 없이도 심부뇌자극을 통해 이 영역에 직접 전류를 흘려 뇌 를 자극해 주면 마치 중독 대상이 주어진 것처럼 도파민이 분비 되고 쾌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토머스 슐래퍼 박사 연구팀은 한 신경과학 학술지에 '얼마나 행복한 것이 아주 행복한 것인가? 행복감, 신경윤리, 그리고 측좌핵의 심부뇌자극How Happy Is Too Happy? Euphoria, Neuroethics, and Deep Brain Stimulation of the Nucleus Accumbens'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 다. 이 논문에서 저자들은 중요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행복 이라는 것이 버튼을 한번 누르는 것만으로도 쉽게 얻어진다면 이는 과연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또한 “행복감을 만들어 내는 심부뇌자극 기술이 정신질환 환자가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쓰인다면 예상치 못한 사회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저자들은 사람들이 그저 순수하게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이 기 술을 사용하는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고 예측했다. 그들은 뇌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행복감을 높이는 것이 비윤리적이지 는 않다고 주장했다. 다만 행복의 '적절한 수준'이 어느 정도인 지, 그리고 행복의 수준을 너무 높일 경우 어떤 위험이 따를지는 한번 따져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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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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