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당신이 큰 그림으로 삶을 이해하는 통찰을 회복하고 당신의 힘으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다. 전적 으로 매달리거나, 아니면 완전히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선택지도 있다. 바로 완벽주의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짜증스럽 게 굴 땐 거리를 두고, 삶을 풍요롭게 할 땐 즐겨라. 어느 한쪽으 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찾고 완벽주의가 삶에 어느 정도의 영 향력을 행사할지 결정해라. 이것은 긴 여정이다. 어쩌면 멀리 돌 아가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의미 있는 방 향으로 변화를 이루었다면, 그것은 분명한 발전이다.
- 오직 완벽만을 추구하는 전략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스트레스 : 스트레스는 근육 긴장, 두통, 불안, 짜증, 이상 식욕(끼니를 거르거나 폭식하는 것 등)으로 표출된다.
*걱정 : 걱정이 의식을 장악하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끊이질 않는다.
*불안 : 불안이 하루 종일, 잠자리에 들 때까지 쫓아와 한밤중에 깨어 있게 만든다.
- 지금까지 이 전략을 고수했다는 것은 게임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고통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은연중에 결론을 내린 것이다. 반면 완벽주의와 맞서 싸우다가 탈진한 나 머지 경기장에 드러누워 패배를 인정할 수도 있다. 대학에서 쉬 운 전공과목만 선택하고, 승진시험을 미루고, 여행가방의 짐을 풀어 정리하는 대신 똑같은 드라마를 세 번씩 보고, 시한이 닥칠 때까지 일을 미룬다. 완벽주의가 당신의 행동에 그 어떤 트집도 잡을 수 없도록 최소한의 노력을 하며 최소한의 행동만 취하는 것이다. 이제 당신의 전략은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한 것도 아니 니까" 혹은 "어차피 완벽할 수도 없는데 뭐 하러 힘을 빼?"가 된다.

- *1년 전보다 삶에 더 만족하는가?
*삶이 원하는 방식대로 흘러가는가?
*불안, 스트레스, 걱정에 지배되는 삶은 추구할 가치가 있는가?
*만약 이 게임이 삶을 통제하도록 방치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시간을 갖고 답변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 답변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완벽주의를 치료하고자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결코 두려움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둔다. 완벽주의 게임을 하면서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면 당연 히 하던 대로 계속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삶이 지금 이대로 좋은지 솔직해지기 바란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웃고 있는지를 묻는 게 아 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거나 시련에 부딪쳤을 때조차도 가슴이 뿌듯하고 영혼이 충만하다고 느끼는지를 묻는 것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삶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릴 생각인가? 또 지금까지 얼마나 오래 기 다렸는가?
우리가 상담했던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추측해 보면 그 게임이 지속될수록 오히려 일에 뒤처져서 아예 포기하 게 되거나, 어느 순간 삶을 되돌아보니 대체로 불행했음을 깨닫 거나, 항상 최적의 조건을 갖추려 늘 무언가를 계획하느라 막상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하거나, 동료들보다 몇 배 더 일하다 탈진 하게 되거나, 의미 있는 일보다는 그저 쉽고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선택하거나,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건설적인 인간관계마저 일부러 파괴하게 된다고 한다.

- 완벽이라는 것은 좋아야 한다고 주입된 하나의 신기루일 뿐이며, 당신은 자꾸만 그것에 속아 결코 이길 수 없는 게임에 휘말리고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 완벽주의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와 '부적응적' 완벽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자는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유형을 말한다. 그들 의 성취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행복, 삶의 만족, 성실성과 같은 긍 정적인 결과물과 연결되어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자들은 고도로 생산적이면서도 탈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삶의 방식을 좋 아하고, 이 방식은 그들에게 자연스럽다.
반면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자기비판,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에 대한 집요한 추구,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의 고통, 도 달했을 때의 불만족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부적응적 완벽주 의에 우울, 강박장애, 섭식장애, 불안장애 같은 심리상태가 수반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외에도 일상적 스트레스와 부 정적인 기분과도 연관성을 보인다. 이러한 연관성은 어느 문화 권에서나 나타나며 부적응적 완벽주의가 문화를 초월하여 나타 나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모순적이게도 달성하고자 하는 바로 그 목표를 훼손한다. 성공일 수도 있고, 행 복일 수도 있으며, 생산성일 수도 있는 목표 말이다.
- 완벽주의적 지연을 유발하는 또 다른 원칙은 일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알기 전에는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 역시 실제로 부딪쳐보지 않으면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방법 또한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답보 상태 로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무 엇이 제대로 된 선택인지 모르겠다는 혼란으로 눈앞의 상황들이 위압적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인지적, 정서적 걸림돌 때문에 시 한이 정해지지 않은 일을 몇 년씩 미루기도 한다. 벽지를 바르는 일일 수도 있고, 창고에 있는 고장 난 자전거를 수리하는 일일 수 도 있고, 새로 이사한 도시에서 새 주치의를 찾는 일일 수도 있다.

- 누군가에게 "걱정 그만해”라고 말하는 것은 "샤워를 너무 오래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건 거의 비를 멈추는 것에 가깝다. 걱정은 완전히 당신의 통제권 안에 있 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당신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생각이라는 것 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생각들은 제멋대로 왔다 가 제멋대로 사라진다. "난 문제가 있어"라든가 "난 절대 잘할 수 없을 거야" 같은 생각들 말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아무리 많은 칭찬을 들어도 부정적인 생각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온갖 여행 블로그를 뒤지고, 웹 페이지를 검색하고, 배우자와 열 띤 토론을 벌인 뒤에도 여전히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인지 몰라 다가오는 휴가 장소를 결정하지 못한다. 좀처럼 떼어낼 수 없는 이 끈적거리는 생각들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떼어내려 해봐 야 소용없는 일일뿐더러 오히려 더 들러붙는다. 그런데도 계속 떼어내려 애쓴다.
당신이 이처럼 반응하는 이유는 그 생각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대체로 생존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들이니 까. "빨간불이니 멈춰", "낭떠러지 가까이에 가지 마”, “채소를 좀 더 많이 먹어야지" 같은 생각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머릿 속의 생각들을 언제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원칙과 명령에 따라 삶을 설계하는 것에 익 숙해졌다면 그 생각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외식을 할 때마다 레스토랑 예절을 새로 배우 진 않는다. 그저 이미 알고 있는 레스토랑의 원칙을 따를 뿐이다. 물론 레스토랑 종업원들 앞에서 거들먹거리거나 팁을 박하게 줄 것을 요구하는 특이한 레스토랑에 갈 수도 있겠지만, 경험적으 로 터득한 것들을 활용하되 0.1퍼센트 확률로 틀리는 편이 매번 경험치가 틀릴 희박한 확률을 힘들여 분석하는 것보다 효율적이 기 때문이다.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대체로 도움이 되는 만 큼 역으로 완벽주의에 의해 그 점이 악용될 수도 있다.

- 인간은 본래 일관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논리로 원칙을 강화하는 방식이 통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이유 를 갖고 싶어 한다. 논리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싶어 하고 모순 없 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당신이 이야기의 공백을 메우려 할 때마 다(“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행동의 근거를 대려 할 때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뭐냐면..."), 혹은 당신이 따르는 원칙 들이 왜 합리적인지 설명할 때마다 "절대 실수를 해선 안 되는 이유 가 뭐냐면...”) 당신은 아이들이 하는 사이먼 가라사대 게임처럼 '완벽주의 가라사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명령을 내리 는 주체가 완벽주의인 것만 다르다. 완벽주의 가라사대 게임에 서 모든 것은 반드시 이치에 맞아야 하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원칙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건지 궁금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원칙들과 논리들이 정확히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에 대 한 대답은 명쾌하지 않다. 

- 논리의 한계
완벽주의 가라사대 게임의 실체가 드러나면 당신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원칙과 이유에 의존하고 있는지에 따라 삶에 일종의 진공상태가 발생한다. 갑자기 당신을 이끌어주던 동력이 사라진다. "성공하고 싶어서" 혹은 "일을 망치기 싫어서" 해왔던 일들을 중단한다면 이제 무엇에 의지해 다음 행동을 결정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주입했던 이야기들은 해체되고(어떤 실수도 용 납되지 않는다,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에야 안 하는 게 낫다, 성공이 아닌 것 은 다 실패다) 방향을 잃는다.
당연히 우리 마음은 절박한 심정으로 일관성을 복원하 려 한다. 근사하고 완벽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퍼즐 조각들을 재배열하려 애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납득할 수 있는 설 명을 좋아하고 또 갈구한다. 논리를 동원하기 좋아하고, 문제해 결 능력을 발휘하기 좋아한다. 터치스크린, 우주여행, 인공지능, 스마트 가전제품 같은 것들을 만들어낸 바로 그 능력으로 일관성 없는 이야기를 수정하고 싶어 한다. 넷플릭스의 '인트로 건너뛰기' 버튼을 만든 것이 인간의 논리적 능력이라면 논리로 해결 할 수 없는 일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논리에는 한계가 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처럼 보편적인 법칙이라고 해도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 있다. 중 력의 경우 양자영역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논리적인 문제해결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의 영역에서 적용되지 않는다.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분홍색 거북이'를 생각하지 마라. 절대로 분 홍색 거북이를 떠올리지 마라. 떠올리지 않았는가? 이번에는 끊 임없이 평가하는 것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해보아라. 어머니의 생일을 잊어도 속상해하지 말고,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자책하지도 마라. 만약 논리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추울 때 난방장치를 켜거나 배고플 때 음식을 먹는 것처럼 하나 도 힘들이지 않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 깝게도 당신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어도 생각과 느낌에서 벗어 날 방법은 없다.
- 논리 혹은 일관성의 대안은 바로 '기능'이다. 그 생각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집중하고 그 점을 바탕으로 생각에 귀를 기울일지 결정하는 것이다. 생각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그것이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라. 모든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실용성보다 정확성을 반사적으로 우선시하는 경향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도 움이 되는 생각은 야유하는 팬들이 아닌 치어리더와 비슷하다. 그들은 당신이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도록 돕는다. 프레젠테 이션을 하기 전에 "난 잘할 거야”라고 혼자 되된다면 그 말이 진 실인지는 몰라도 도움은 될 것이다. 진실이어도 도움이 되지 않 을 수도 있고("사람들이 내 셔츠의 땀자국을 다 보겠지"), 도움이 된다 고 해서 항상 진실인 것은 아니다("아무도 내 셔츠의 땀자국을 보고 있지 않아"). 아무 조건 없이 오직 당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생각들 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오직 옳은 것에만 관심 있는 생각들에 귀 를 기울이겠는가? 크게 보았을 때 옳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 이런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렵다면 생각들을 호의적인 낯선 사람이라고 상상해보아라. 당신이 중요한 약속에 늦었는데 열차가 고장이 나 멈춘 상황이다. 낯선 사람이 당신에게 "큰일 났네요. 지난 2주간 약속에 늦은 게 벌써 세 번째잖아요"라 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실이냐고? 아마 진실일 것이다. 도움이 되 냐고?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낯선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 들인다면 당신은 정지한 열차 안에서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하 지만 낯선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저런, 하필 이런 상황에서 사고가 나서 속상하시겠어요. 안 그래도 그동안 스트레 스 받는 일들이 많았는데 말이에요." 이 말이 더 도움이 될 것이 다. 우리의 이성이 항상 침착하고 안정을 주는 타당한 말만 한다 면 참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은 일이 틀어졌을 때 문제를 해결 해서 당신의 생명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 그것도 최대한 빨 리. 그것이 바로 생각들이 당신을 압박하고 독촉하는 것처럼 느 껴지는 이유이고, 본능적으로 그 생각들에 끌렸던 이유이다.

- 완벽주의적 생각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과 같다. 정신을 차려보면 아무 의미 없는 논쟁에 휘말려 있다. 그 논쟁에 당신의 에너 지를 쏟아붓는 게 맞는지부터 생각해보아라. 언어적 미끼를 물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는 있다. '기후변화', '과잉진압', '백신 반 대운동', '보편적 의료보장', '실패자', '완벽', 그리고 '성공'. 그 미끼 를 물지 마라. 미끼 너머 당신의 목표와 가치를 보아라. 주어진 시 간과 에너지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당신의 정신적, 감정적 자원 을 논쟁보다 더 좋은 곳에 쓰고 싶다면 다른 일을 하라.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방의 의견을 인정한 다음 대화에서 빠져나 와라. 당신의 생각들에게도 똑같이 하라. 인정해주고("아, 네가 소 리를 내고 있는 건 알겠어")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가치 있는 일에 쓰도록 주의를 돌려라.
- 생각들을 고려해보려면 먼저 생각들이 시키 는 대로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생각들은 당신의 삶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조언하려 드는 숙모와 같다. 숙모의 조 언은 대체로 도움이 되지만 당신이 처한 상황에는 딱히 맞지 않 을 수도 있다. 숙모의 조언을 무작정 따르는 것은 숙모가 원하는 길로 가는 것이지 당신이 원하는 길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들이 현재의 곤경을 헤쳐 나갈 지혜를 주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럴 땐 그 생각들에 귀를 기울이는 게 좋다.
- 완벽주의는 원칙과 논리를 이용하여 행동에 힘을 행사한다. 완벽주의는 무얼 해야만 하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 알 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실제로 당 신이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 수는 없다. 아무리 강력한 말이어도 아무리 소리가 커도. 따라서 B학점을 받거나 오랫동안 사귀던 사 람과 헤어지면 인생이 끝장날 거라고 완벽주의가 협박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마라.
대신 우리는 다음 세 가지를 권한다. 
첫째, 생각을 생각 으로 여겨라. 생각은 생각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둘째, 사고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라.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 건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셋째, 생각들이 하는 말을 고 려하되 도움이 되는 것은 취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라. 논리에 맞 고 진실처럼 보이는 것(일관성)보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 이 되는지(기능)에 집중하면 완벽주의의 덫을 피할 수 있다.
-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마음을 여는 연습을 하기에 앞서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불편한 느낌을 없애버리면 될 것 을 왜 굳이 그 느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할까? 첫 번째 이 유는 명백하다. 불편한 느낌을 없애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사항 이 아니고 당신은 경험을 통해 이미 그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 이다. 두 번째 이유는 불완전함을 밀어내는 것, 훌륭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고, 대수롭지 않은 실수에도 스스로 를 비난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은 피곤할 뿐 아니라 자기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 는 고통은 당신이 진정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거절당해 상처받았다면 그 고통은 당신이 관계를 소 중히 여기는 사람임을 말해준다. 구조적 불평등에 분노를 느꼈 다면 사회적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무관 심한 것들로부터 상처받을 순 없고, 관심을 끄지 않는 한 상처받 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달갑지 않은 느낌을 위해서 공간을 만드는 시도는 고통 을 느끼는 작업에 능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당신은 느 낌을 지니고 있는 것에 서툴 수도 있다. 늘 어떤 감정들로부터 도 망치려 했다면 회피하는 연습은 부단히 해온 반면, 느낌을 지니 고 있는 연습은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고통을 느끼는 것에 노 련해진 스스로를 상상해보라. 그것은 고통이 삶에 파고들 때 그것을 느끼되 휘둘리지 않고 있던 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수용acceptance'이다. 수용은 너무도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어온 데다 '체념'과도 비슷하게 쓰여서 다소 모 호한 용어가 되었다. 우리는 패배와 상실을 수용한다. 처벌을 수 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수용은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낯 선 이의 친절과 호의를 받아들인다. 사람들의 덕담과 선물을 받 아들인다. 마찬가지로 불안, 스트레스, 걱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메일로도 할 수 있는 얘기를 직접 하려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 처럼 달갑지 않은 생각과 느낌을 수용할 공간도 낼 수 있다. 수용을 연습하려면 먼저 받아들이는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무엇을 받아들일지 명확히 해라. 실패를, 혹은 비참한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들과는 달리 당신은 결과에 대한 통제권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스티븐 헤이 즈 박사는 그 점을 멋지게 표현했다. “당신의 상황이나 행동을 받 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과거와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받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과정중심치료의 한 형태로서 수용전념치료' 라는 제목의 2020년 워크샵에서 그가 한 말이다.) 다시 말해, 살아오면 서 축적한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놀랍 도록 다양한 감정들을 체험하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인간의 특별 한 능력을 받아들이고 또 경탄하라는 것이다. 비록 사소한 차이일지라도 당신이 쓸쓸한 기분과 비참한 기분을 구분할 줄 알고, 짜증 나는 것과 화가 나는 것을 구분할 줄 안다는 건 놀라운 일이 다. 당신에겐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고(물론 그 힘의 범 위는 당신이 처한 상황의 특수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른 행동을 선택 할 힘이 있다. 그러나 당신의 과거와 느낌들은 그저 그 자체로만 존재할 뿐이다.
- 다양한 받아들이기 기술을 시도하다 보면 낯선 곳에 도달하게 된다. 그 깨달음의 순간을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지만 어 느 순간 느낌과 싸우고 있지 않으며, 편안히 숨 쉴 수 있고, 느낌 을 아무 조건 없이 그대로 놓아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소 낯 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조금 홀가분한 기분이 들고, 그 상태에 잠시 머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수용의 기술을 습득해가고 있는 것이다.
운동이나 학문적 기술과 달리 수용의 기술은 무슨 일을 하고 있건 연습할 수 있다. 어떤 감정이든 느껴질 때, 연습해라. 유쾌한 감정으로 연습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그건 이미 잘할 것이다. 우리는 좋은 느낌에는 기꺼이 마음을 열면서도 '나쁜' 것 이라고 이름 붙인 느낌에는 그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신호등의 빨간불이 유독 길게 느껴질 때 연습해라. 세 번째로 시 한을 어긴 동료에게 화가 나는가? 연습해라. 6분 전에 받은 상사 의 메일에 아직 답장을 하지 못해서 조급한가? 연습해라. 주말에 끝내야 하는 집안일 때문에 스트레스받는가? 그 느낌을 위한 공 간을 만들고 목표에 부합되는 행동을 시작해라.
- 느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안달하는 대신 느낌이 존재할 공간을 주고 그동안 다른 중요한 일 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연습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고통 을 위한 고통은 좋아하지 않는다. 힘든 일을 하려면 목적이 있어 야 한다. 따라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만약 불편한 느 낌이 나타날지, 그 느낌이 얼마나 오래 갈지, 어떤 강도일지 더 이 상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은가?"
- 느낌은 삶의 한 부분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느낌이 그토록 집요한 이유는 인류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느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늘 우리에 게 이로웠다. 그러나 오늘날의 다양한 상황에서 동일한 가정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 따라서 느낌이 항상 유효하고 때로는 도움 이 된다고 해도 언제 느낌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언제 뒷마당에서 떼를 쓰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는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 이상의 관심을 주지 않고 호들갑을 떨도록 느낌을 내 버려두는 것, 그것이 바로 수용 연습이다.
수용의 대상은 느낌이지 행동이나 상황이 아니다. 수용 하려면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영화를 볼 때처럼 느낌을 바라봐 야 한다. 불쾌한 느낌이라면 더더욱 연습해야 한다. 불쾌한 느낌 을 위한 공간을 만들 때 교묘히 회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 견한다면 다시 관찰 단계로 돌아가라. 관찰이 지속 가능한 상태 에 접어들면 수용에 가까워진 것이다.
- 자기친절은 거창한 무언가일 필요가 없다. 아침식사를 먹는 것일 수도 있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일 수도 있고, 자정이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일 수도 있다. 자기친절은 간 헐적으로 실행할 때보다 꾸준히 규칙적으로 실행할 때 더 도움 이 된다. 자기친절의 장점은 걱정하느라 혹은 지나간 일을 곱씹 느라 허비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고(완벽주 의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생산성이겠지만), 진정성 있게 사람 들과 교류할 수 있다. 자기친절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 는 사람 대하듯 바라보라.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여부 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 당신이 야외활동에 가치를 두거나 모험 을 떠나는 것에 가치를 둘 수 있다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자기 친절에 가치를 둘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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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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