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마음속에는 타인의 행복을 질투하는 감정, 즉 '르상티망(ressentiment)'이 깔려 있다.(니체(Nietzsche))
- 인간이 인간을 과도한 이물질(異物質)로 인식하고 심리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는 증상. 나는 그것을 '인간 알레르기'라고 명명 한다.
사람들과 화합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더라도, 경제적으로나 정 서적으로나 완벽한 배우자와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 더라도, 인간 알레르기는 우리 삶을 고달프게 만드는 크나큰 저 해 요인이다. 그런데 의외로 지금까지는 인간 알레르기에 대해서 언급하는 학자도 없었으며, 체계적인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몸의 알레르기 반응에 관한 연구는 이미 활발히 진행되어 상 당 부분이 해명된 반면, 마음의 알레르기 반응에 대해서는 연구 의 양과 질 모든 면에서 매우 빈약하다.
- 어떤 사람이 싫어지는 것은 그 사람이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 는 시각이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인간 알레르기 이론을 중심으로 해석해보면 그 양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27년에 걸친 내 임상 경 험에 비춰보건대 어떤 한 사람에게 인간 알레르기를 일으키기 쉬운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즉 상대를 아무 리 바꿔도, 회사를 아무리 옮겨도 또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주변 사람을 바꿔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정말로 개선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이 품고 있는 인간 알레르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인간이 고뇌하는 이유는 대부분 인간 알레르기 때문이며, 그것과 싸우는 데 많은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고통이나 고독, 그리고 마음을 심란 하게 하는 부정적인 감정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인 간 알레르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위화감이나 고 통을 느끼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반드시 인간 알레르기를 이해해야 한다.
- 마음에도 면역 체계가 있다
인간의 마음에도 면역에 해당하는 시스템이 있다. 그리고 마음의 면역 반응에도 이물질을 공격, 제거하는 시스템과 함께 과거에 침입했던 이물질을 기억하는 시스템이 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 때문에 공포나 고통을 맛보았다면 그 사 람뿐 아니라 그 장면과 관계된 사실 또한 기억에 각인된다. 그리 고 그 사람과 맞닥뜨린 경우뿐 아니라 그 장면이 연상되는 상황 에 처하기만 해도 마음속에 경보음이 울려 회피나 전투 준비를 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강력하고도 철저하기 때문에 이성으로 제어하는 게 쉽지 않다. 인간 알레르기가 발현되면 그리 유해하 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런 마음의 면역 체계가 작동한다. 이전까 지는 두려워하고 거부할 필요가 없었던 존재일지라도 회피하거 나 공격, 제거하려 한다. 일단 인간 알레르기가 생기면 동료나 배 우자, 가족조차도 이물질로 인식하므로, 그들도 회피나 공격, 제 거 대상이 된다. 때로는 특정 인물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이물 질로 인식하여 제거 리스트에 올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되면 타인과 사이좋게 지내고, 원만한 관계를 맺고 싶다고 생각 해도 충돌이나 오해를 피할 수가 없다.

- 다양한 방어 메커니즘
마음의 면역 체계는 지금까지 '방어 반응'이나 '방어 메커니즘'이 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구조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폭넓고 다 양하다.
스트레스나 불쾌한 사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태에 직면해도 정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은 다양한 방어 반응을 일으 킨다. 이를테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잊어버리려 한다. 이것은 '억압(壓)'이라는 방어 메커니즘 이다.
- 수면과 꿈도 역시 마음의 정화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꿈속에서 우리가 누차 벌이는 일은 현실의 상황을 좀 더 받아들이기 쉬운 다른 상황으로 바꾸는 것인데, 이를 '치환)'이라고 한다. 자 신을 공격하는 존재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마음의 균형을 유지 하려는 경우도 있다. 학대당한 아이는 늘 그런 방어 메커니즘을 준비해둠으로써 부모를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반동형성(形 成)'에 의해 오히려 부모를 이상화화고 과도하리만치 효도를 하 기도 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더욱 차원 높은 것으로 바꿔서 받아 들이거나 극복하려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승화(昇華)'라고 부 른다. 학대당하며 자란 사람이 똑같은 처지의 아이를 도와주는 일에 종사하는 데에도 그런 마음의 메커니즘이 작용한 것이다.
욕구를 충동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화'는 마음의 방어 반 응이 실패한 결과로 볼 수 있는데, 실제로는 중요한 마음의 면역 반응이다. 공격을 받으면 반박하고 그 상대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기분을 풀려고 하는 것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 우 공격을 가한 당사자가 아닌 의존하는 대상이나 약한 대상에 게 공격의 화살을 겨눈다는 것이 문제다. 가정 폭력이나 집단 따 돌림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가 없다.
가눌 수 없을 만큼 힘든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완전히 망 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긴급히 작동하는 것이 해리(解離)이다. 의식이나 기억의 고리를 일단 차단하는 구조이다. 도마뱀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것과 같다. 또 이때 는 '격리' 반응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건이나 감정을 잘라냄으로 써 고통에서 도망치려는 방어 반응이다. 사건은 기억하되 감정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잘라낸 감정은 엉뚱한 것으로 모습을 바꾸어 전혀 상관없는 장면에 나타나기도 한다. 충동적인 살인이나 이해 하기 어려운 폭력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에 생긴 트라우마가 망령처럼 떠돌다 뜻밖의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인간 알레르기 상태에서 이물질로 인식한 존재에게는 더욱 심 하게 공격을 가하고 제거해버린다. '행동화'와 함께 앞 장에서 말한 '투영', '조적 방어', '자기애' 같은 더욱 자기방어적이고 자기변명적인 방어 메커니즘이 나타난다. 그와 동시에 자폐 성향을 보이며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친밀한 관계를 '회피'함으로써 자 신을 지키려는 경우도 많다.
-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다고 느끼면 고통은 반이 되고 기쁨은 배가 된다. 마음을 공유하게 된 존재를 애착 이론에서는 '안전 기지'라고 부른다. 그것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가족이며, 이물질과 는 정반대의 존재이다.
인간은 상대방이 안전 기지인지 아닌지를 자신도 모르게 가르 고 있다. 상대가 만약 안전 기지라면 기분 좋은 안도감에 휩싸여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놓게 된다. 이야기하는 동안 자연 스럽게 마음이 정리되어 어느샌가 답을 찾기도 하고 힘과 용기 가 솟기도 한다.
- 하지만 애당초 마음을 털어놓기에 가장 좋은 부모나 파트너라 해도 안전 기지가 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 았는데, 노력이 부족하다고 질책하거나 충고와 설교를 늘어놓는 경우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눈엣가시가 되 어거부 반응만 일어나게 한다.
'안전 기지'가 되지 못하는 전형적인 유형은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이야기를 제대로 듣 지도 않고 이래라저래라 쓸데없는 참견이나 충고를 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말해버린다. 상대방은 그런 걸 원한게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공유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 자녀에 대한 애정, 파트너에 대한 애정처럼 특정 존재에게 지속적인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옥시토신의 작용으로 애착이 생 겨났기 때문이다. 일단 애착이 생기면 상대방은 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녀에게, 커플이 서로에게 한창 열중할 때도 거기에는 생물학적인 구조를 뛰어넘은 고차원적인 정신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이 정신 작용이 두 사람 간의 애정 자체에 문제가 생겨도 관계를 유지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예의 바르고 의무감 이 강해서 누군가를 함부로 내치지 못하는 성격, 혹은 혼자서는 불안하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만 하는 성격이 있다고 치자. 전자는 강박성 인격 장애, 후자는 의존성 인격 장애 로 알려져 있는데 둘 다 악연을 유지하는 데 공헌하고 있다.
또 타인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큰 영향이 미치는 정신 작용 두 가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심리적 동일시'와 '자기애 전이'다.

-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신은 죽었다'고 갈파했으며, 아버지가 돌 아가신 후에는 강한 성격의 어머니에게 공부만을 강요당했던 신경 질적이고 진지한 우등생 타입의 니체. 한편 자신의 진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성장했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 았으며, 사람 좋은 왕을 속여 거금을 바치게 하고, 악단 지휘자의 아내와 간통하여 자식을 낳아놓고도 당당하기만 했던 자기애의 화 신 바그너. 두 사람은 삶의 가치관이 완전히 달랐다. 바그너의 세계 속에는 '천재 바그너와 나머지 사람들밖에 없었고, 나머지 사람들’ 은 자신을 예찬하고 봉사하면 그만이었다. 그에 비하면 니체의 세 계관은 기독교적인 도덕관의 범주 안에 들어 있었다. 자신의 착각 을 깨닫고 바그너에 대한 열광이 갑자기 식어버리자 일찍부터 니체 의 마음속에 있던 위화감이 강한 거부감과 증오로 변했다. 그때까 지 바그너에게 바쳤던 숭배조차도 감쪽같이 이용당했다는 생각에 그는 용서하기 힘든 분노에 시달렸다.

- 자기 자신에 대한 인간 알레르기
보통 신체 면역계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배제와 공격이 일어 나지 않도록 통제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라 해도 거기에 이물 질이 들러붙거나 이물질과 유사하면 착각을 일으켜 공격 대상으 로 여길 때가 있다. 자기 자신의 일부를 이물질(항원)로 인식하여 자가 항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관절이 굳고 아픈 만성 관절 류 머티즘이나 침과 눈물 분비가 감소하는 쇼그렌 증후군(Sjögren's syndrome, 코와 목이 마르고 침과 눈물이 잘 안 나오며 관절통까지 동반 되는 병- 옮긴이) 같은 자가면역질환은 면역관용의 시스템이 망가 져 자가항체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고 파괴함으로써 생긴다.
마음의 면역에서도 똑같은 상태가 나타난다. 자신이 가장 믿어 도 되는 존재를 더 이상 믿지 못하고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다. 가정 폭력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혐오 감을 느끼거나 고통을 주는 경우도 있다.

- [고독한 천재, 니체]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성장 과정이나 증상을 살펴본 결과 철 학자 니체는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장애(Asperger's syndrome) 였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세 살이 되어도 말 한 마디 못했는 데 네 살 때는 독서를 시작했다. 음성언어의 미발달과 문자 언어의 자연스러운 습득이라는 간극은 아스퍼거 장애의 특징 중 하나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철들기 시작할 무렵 그가 본 것은 목사였던 아버지가 망가지는 모습이었다. 신경 질환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경 련과 안면 마비 증상부터 의식을 잃는 발작과 실어증, 실명, 착란, 심한 격통까지 겪는다. 아마 아버지도 니체가 천형처럼 짊어지게 된 병, 신경매독이었을 것이다. 그 공포스러운 기억은 오랫동안 그 를 괴롭히며 마음의 안정을 위협했다. 그러지 않아도 니체는 신경과민에 불안이 강한 아이였다. 기숙학교의 기록에 따르면 끊임없는 두통과 위염 같은 심신 미약으로 종종 수업에 빠졌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환청을 듣고 악몽도 꿨다. 그는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인 형이나 주석 병정, 도자기로 만든 동물들로 이루어진 세계는 '다람 쥐 왕'이 질서 있게 통치했다. 니체는 아홉 살이 돼서도 인형 놀이 를 계속 반복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과민한 반면 성적은 아주 우수했다. 게다가 시나 음악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목사들은 그를 '천재'라 고 여겼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자유롭고 무질서한 학 교보다는 답답한 구석은 있지만 군대 같은 스파르타식 학교가 더 나은 면도 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니체에게 다행히도 어머니는 늘 그의 비호자가 되어주었다. 슬하에 딸이 있었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은 매우 각별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보고 아들만을 희망으로 삼으며 인생을 보냈다.
어머니는 아직 젊었기 때문에 친정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 지만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시어머니, 시누이와 함께 좁은 집에서 사는 길을 선택했다. 모자가 살았던 곳은 북향의 작은 방이었다. 그 곳에서 어머니는 거의 아들 옆에 붙어 공부를 가르쳤다고 한다. 늘 가혹하리만치 빽빽한 일과를 정해주고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엄격하게 질책했다. 이런 지나친 기대가 과민한 소년을 꽁꽁 얽어매어 더욱 괴로운 삶을 살게 한 측면도 있다.
니체는 고전어를 전공했는데, 곧바로 그 재능을 교수에게 인정받 았다. 하지만 이 '천재'의 내면에는 불안정과 위화감, 그리고 지나치 게 강한 자존심과 과민함이 동시에 존재하여 그의 사고와 행동 사 이에는 끊임없이 간극이 생겨났다. 스물다섯 살에 바젤 대학의 교 수라는 이례적인 출세를 이루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곧바로 '니체 교수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보통 사람과는 다른 구석이 있다'고 생 각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행동이 연극 같다거나 딱딱한 구석이 있다고도 평가했다. 또 어떤 여자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에 당황스러워했다. 니체가 만찬회 자리에서 자신이 두꺼비를 먹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거북스러워한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학생 시절에는 바이런에 열중했던 것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좀 더 자유분방하고 영웅적인 삶을 동경했다. 바그너의 오페라에도 감 동하여 한때 심취했다. 하지만 니체는 바이런이나 바그너처럼 살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열광했던 또 한 사람, 비관론자이자 철학자 인 쇼펜하우어와는 고독하다는 점과 인간관계에 서툴다는 점이 매 우 유사했다.
니체는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됐지만 서서히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마침내 대학을 그만두고 은둔 생활을 하며 집필에만 몰두한다. 그가 집필만으로 근근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대학에서 조금이나마 연금이 나왔기 때문이다.

- [어른이 되어 슬픈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야간비행』 같은 명작으로 유명한 생텍쥐페리 (Saint-Exupéry, 1900~1944)는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ADHD의 특성을 강하게 드러낸 인물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잠시 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녔기 때문에 누구도 통제하 기 힘든 난폭한 아이였다. 방을 잔뜩 어질러놓고 만지는 것마다 모 두 망가뜨리거나 더럽히는 악동이었다. 그는 다섯 형제 중 셋째에, 아버지를 세 살 때 여의어 어머니가 응석을 모두 받아주었던 만큼 통제가 힘든 아이로 자랐다.
규율이 엄격한 예수회 계통의 학교에 들어갔지만 주의가 산만하 고 정리 정돈을 못했다. 일처리가 서툰데다 차분하지도 않고, 성적도 뛰어나지 않았던 그는 급기야 문제아 취급을 받으며 더욱 반항 적인 아이가 되었다. 훗날 비행기를 몰게 되기는 했지만 평소 운동 신경이 둔하여 자전거조차 쉽게 타지 못했다.
학교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어떻게든 해보고픈 마음에 어머니는 스위스에 있는 자유로운 교풍의 학교로 전학을 보낸다. 생텍쥐페리는 그곳에서 살아났다. 성적도 올랐고, 문학에 눈을 뜨 더니 시와 데생에 재능을 보였다. 과목 중에서는 국어인 프랑스어 를 제일 잘했지만 그래도 훗날의 세계적 작가가 쓴 문장은 오자투 성이였다.
열두 살 때 그는 인생을 결정짓는 중대한 체험을 한다. 당시 주목받기 시작한 비행기에 매료되어 격납고를 드나들다가 실제로 탑 승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얼마 전으로, 당시 비행기는 시험 삼아 세대를 만들면 두 대는 머지않아 추락할 운명이어서 도저히 안전한 이동수단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 다. 하지만 그는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공군 학교에 지원했으 나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스물한 살 때 항공대에 지원하여 입 대했지만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은 당시에도 쉬운 일이 아니었 다. 그는 어머니에게 돈을 타내 고액의 훈련비를 내고 민간 항공회사에서 훈련을 받았다. 비행기 조종사 자격을 따자 그는 비행기를 몰고 싶다는 일념으로 기회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하지만 애당초 주의가 산만하고 조종에 서툴렀던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 고 이륙 직후 90미터 높이에서 추락했다. 그 당시 비행기는 산산이 부서지고 자신은 전신타박상을 입었지만 그 후에도 아랑곳없이 조 종사 일을 찾아 전 세계를 방황했다. 그가 주로 조종했던 것은 우편 비행기였다. 북아프리카의 사막이나 대서양, 남미 안데스 상공을 고독하게 비행하는 것이 파리의 사교계나 도시의 쾌적한 생활보다 훨씬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에서 딱 한 번 안타까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ADHD 유형의 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언제까지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욕심 많은 어른들의 세 계는 그리 살고 싶은 곳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생텍쥐페리는 이성 운이 없었다. 처음에 결혼을 약속한 루이즈 드 빌모랭에게는 파혼을 당했고, 아내가 된 콘수엘로는 낭비벽이 심하고 그리 성실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는 서서히 아내에게 무관 심해졌고, 사고의 후유증으로 생긴 목, 허리, 어깨 등 전신 통증에서 도망치기 위해 점점 알코올에 의존했다. 만년에는 조국을 위해 죽 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다시 한 번 비행기에 타는 것을 유일 한 희망으로 간직하며 살았다. 그는 어쩌면 인간 알레르기에서 도 망치려고 푸른 하늘을 동경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생텍쥐페리는 몇 번이나 목숨을 건질 정도로 운이 좋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에 지중해 상공에서 교신이 끊긴 채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 [어머니를 증오한 쇼펜하우어]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어머니를 평생 동안 증오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여류 작가로 활동했던 어머 니는 사교와 예술에는 관심이 있어도 양육에는 무관심하여 아들을 자주 방치했다. 쇼펜하우어가 어린 시절부터 늘 우울하고 신경질적 인 성격을 보였던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는 어머니를 바라는 마 음이 강했고, 청년이 되고 나서도 그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하 지만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자신보다 어머니 스스로의 즐거움을 우선하는 모습만 확인하곤 했다. 아들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애인과의 관계 때문에 우울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쇼펜하우 어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아버지가 자살한 건 모두 당신 때문이야!"
그걸로 모든 것은 끝났다. 어머니는 아들과 인연을 끊겠다며 자 신의 집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그 후 두 사람이 다시 만난 적은 없었다. 딱 한 번 어머니가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도와달라고 한 적 이 있었는데, 쇼펜하우어는 이때다 싶었는지 매몰차게 거절했다.

- 면역을 억제하는 장치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게 제어성 T 세포이다. 어린 시절 접촉한 이물질에 대해서는 제어성 T세포가 증가한다. 그런데 이 세포는 재미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평화 국가의 군대처럼 싸우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싸우 지 않음으로써 쓸데없는 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알레르기가 일어나기 쉬운 체질은 제어성 T세포가 감소한 상 태이다. 이렇게 제어성 세포가 부족한 경우에는 이물질이 아닌 자기 자신의 세포에 대해서도 공격을 퍼붓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가면역질환이다.
- 유소년기에 세균에 감염되는 일이 없으면 제어성 T세포가 충 분히 증가하지 못하므로 면역을 억제하는 장치도 발달하지 못한 다. 요컨대 너무나 위생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지나치게 보호받으 며 자라면 무해한 이물질에 대해서도 과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는 곧 스트레스가 너무 적은 과잉보호 환경에서 자라면 인간 알레르기가 쉽게 생긴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심리적인 무균 환경에서 자라면 대개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것 외에는 전혀 받 아들이지 못하는 결벽증 성향을 갖게 된다.
가족이 한 방에 모여 잠자는 게 당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과, 어려서부터 자기 방에 격리되어 다른 아이와 싸우거나 친해질 기회도 없이, 무엇이든 리모컨 하나로 조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타인을 이물질로 받아들이는 감도(感)가 다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 '마음속 깊은 곳까지 상대를 다 알고, 그래도 더 알기 위해 힘껏 다가가려 한다. 하지만 조금씩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무 리 열의를 담아 상대를 사랑하려고 해도, 아무리 친밀하게 상대와 관계하려 해도 어차피 상대는 낯선 타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게 된다. 가장 헌신적인 남편과 아내조차 서로를 알지 못한다. 그렇 기 때문에 자신의 껍데기 안에 틀어박혀 침묵한 채 누구에게도, 제 일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보여줄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게 된다.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 몸의 경우도 그렇지만 인간 알레르기를 안고 있는 사람은 하 나같이 연애에 서툴고, 그 결과 이성 운이 없다. 그 사람 내면의 편견이나 완고함이 균형감 있는 관계를 가로막기 때문에 어울리 는 사람과 만나 행복한 연애를 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몸처럼 깊은 상처를 간직한 채 타인을 믿지 못하는 사 람조차 누군가를 믿고 싶어 한다. 아직 젊어서 사람을 사랑하고, 갈망하려는 에너지로 가득할 때 인간은 한 줄기 가능성에 기대 어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걸 믿고 또 그것을 회복하려 한다. 그것 역시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 과민 반응을 막으려면?
1) 사실과 추측을 구별한다
인간이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까닭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 인 양 비약적으로 추측하기 때문이다. 인간 알레르기인 사람은 사소한 신호나 조짐을 모두 안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사실과는 동떨어진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낸다.
2) 확대해석을 멈춘다
잘못된 판단으로 확대해석을 하면 인간 알레르기는 더욱 기승 을 부린다. 전혀 관계가 없는 일도 제멋대로 연관 지어 악의적인 감정까지 덧붙이다 보면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까지 불태우는 사 태에 이르기도 하는데, 이런 사례는 매우 빈번하다.
이런 생각에 빠지다 보면 모두가 의도적으로 접근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으려 한다고 느낀다. 고작 한두 번밖에 일어나지 않은 일을 늘 일어나는 일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그러다가 자신 에게는 영원히 안 좋은 일이 계속될 것이라며 신세를 한탄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우연에 불과한 일을 확대해석하게 되면 이렇듯 큰 불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3) 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타인을 이물질로 인식하는 요인 중 하나는 '신경과민'이다. 많 은 사람들에게 별로 불쾌하지 않은 자극도 고통스럽게 받아들이 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쉽게 상처를 받고 타인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나 피로의 원인이 되므로 어느샌가 그것을 고통 으로 느껴 인간 알레르기에 이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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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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