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착각

심리 2024. 1. 4. 11:59

- 진정한 질문은 더 밝은 미래가 언제나 정말 그토록 멀리만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정반대로 그 미래는 이미 여기에 오래전에 와 있었는데, 우리가 나약한 채 눈뜨지 못하고 있어서 우리 주변과 우리의 안 에 있는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있자면, 그래서 그 미래로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츨라프 하벨)
- 집단 착각 이란 한 마디로 사회적 거짓말이다. 어떤 집단의 구성원 중 다수 가 특정한 의견을 거부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런 판단을 내리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하고 있을 것이라고(부정확하게) 넘겨짚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가 바로 집단 착각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다들 원한다고 착각하는 답을 따르기만 할 경우, 결국 모든 이가 아무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향할 수도 있다. 집단 착 각이 만들어내는 흑마술인 셈이다.
- '편견 Stereotype'은 집단 착각에 의해 엄청나게 부풀려지는 경향 이 있는데, 이 또한 나쁜 소식이다. 그런 이유로 중국인들은 다 른 중국인들이 일본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지녔다고 여기는데, 이는 물론 그들이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감정보다 훨씬 부정적 인 것이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중국인들은 반일 감정을 더욱 공 격적으로 드러낸다. 일본의 경우, 대부분의 남자들이 출산 휴가 를 쓰고 싶어 하지만, 사회적으로 대부분의 일본 남자들이 출산 휴가 사용을 원치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실제로 훨씬 적은 숫 자만이 출산 휴가를 이용한다. 10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지지자들이 서로 상대방이 실제보다 훨씬 극단적 인 입장을 지니고 있다고 단정 지으면서, 정치를 양극화하며 갈 등을 더욱 키워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대부분의 미국 학 생운동선수들은 높은 성적을 받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학생 선수들은 성적에 개의치 않고 운동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공부를 등한시하고 성적을 망친다. 이런 식으로 집단 착각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 사회학자 윌리엄 아이작 토머스 William Isaac Thomas와 그의 부인인 도로시가 1928년 제시한 이른바 '토머스 정리 Thomas Theorem'는 다음과 같다. "만약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현실로 정의한다면, 결과적으로 현실이 된다."21 다시 말해, 주근 깨가 났고 한쪽 발로 콩콩거리며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우리가 마녀라고 믿는다면, 혹은 코로나19로 인해 화장실 휴지가 남아 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우리가 믿는다면, 그러한 믿음에 실질적 인 근거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그러한 믿음에 따른 결과만큼은 현실화될 수 있다.
- 일단 순응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남들처럼 하고 나면, 모든 섬세한 신경과 영혼의 요소들이 무기력에 잠식당한다. 그녀는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만 남은 채 내면은 텅비고 마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
- 생수는 한때 우물물 오염 문제의 해법으 로 동원된 한시적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엄청난 사업으 로 급성장해 2026년이면 총 4천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이룰 것 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과연 생수가 정말로 더 깨끗하고 안전한 물이 맞긴 한 걸까? 물론 그렇다. 만약 독자 여러분이 미시건 주 플린트에, 2015년 수돗물 오염 파동을 겪었던 그곳에 살고 있다면. 하지만 플린트처럼 극히 예외적인 곳을 제외하고 나면 수돗물은 양호 하다. 미국의 경우 99퍼센트의 수돗물은 음용 가능할 뿐 아니라, 사실 많은 사람들이 생수라고 생각하며 마시는 물은 수돗물이다.  병입되어 판매되는 물 중 절반 이상이 약간의 처리 과정을 거친 수돗물이며, 양대 생수 브랜드인 아쿠아피나Aguafina와 다사 니Dasani는 (참고로 이들은 펩시와 코카콜라의 상품인데), 그저 디트로이 트시가 제공하는 물을 한번 걸러서 플라스틱 병에 담아 넓은 시 장에 판매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병에 들어 있는 물을 생수 라고 마실 때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기극에 속는 동시에 거 들고 있는 셈이다.
-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2019년, 미국인들은 1,900억 리터의 생수를 마셨는데, 이는 탄산음료의 전체 소비량을 능가하는 것이다.  주유소에 딸린 슈퍼마켓이 나 상점에서 생수를 구입하면 4.5리터짜리 한 병에 평균적으로 1.5달러를 내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같은 양의 수돗물을 사용할 때 내는 돈의 2천배에 육박한다. 가장 저렴하게 구입할 때가 그렇고, 생수의 가격은 그 후로 더 올라갈 뿐이다. 화산 활동으 로 만들어진 현무암 지반으로 걸러졌다는 둥, 구름까지 뚫고 올 라가는 일본의 명산에서 채취했다는 둥, 숫제 천사의 눈물을 받 아왔다는 둥, 온갖 이유를 붙인 고급 생수들은 고작 세 컵 분량 에 5달러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캐나다의 아쿠아 데코 생수는 한병에 12달러다. 하와이안 코나 니가리 생수의 신선한 맛을 보 고자 한다면 402달러를 내야 한다. 진짜 물맛을 아는 사람이라 면 순금병에 담긴 아쿠아 디 크리탈로 트리부토 아 모디기리아 니 생수를 마시기 위해 6만 달러를 지불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우리는 명예를 잃거나 얻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권위에 굴 복하는데, 그럴 때 우리는 한쪽의 이야기를 충직하게 따르면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전문가의 권위 로 인한 연쇄작용은 되돌리기 어렵게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가 동참하고 있는 이야기가 참인지 거짓인지 여부 따위는 전혀 중 요하지 않다. 이렇게 함께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잘못될 리 없다 는 생각에 다들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견고해 보이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연쇄 작용은 한쪽 구석이 허술해진 젠가 블록 무더기처럼 운 좋게 버티고 있 을 뿐이다. 만약 중요한 블록 하나가 빠지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허물어져 버린다.
-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우리의 뇌에서는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가족으로부터 출발하는 수많은 공동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증폭시켜주는 호르몬이다. 또한 옥시토신은 나 자신보다 공동체와 구성원들의 이익을 앞세우도록 해줄 뿐 아니라, 만약 필요하다면 다른 이들로부터 우리 집단을 보호하 도록 이끌어준다. 2015년 수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옥시토신을 투여한 실험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소속 집단 구 성원의 실수를 너그럽게 용납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 다. 연구 수행자들은 옥시토신 투여의 효과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옥시토신은 귀속집단을 향한 편애주의 Favoritism, 같 은 편을 위한 거짓말, 귀속집단의 복리를 위한 값비싼 헌신과 기 여, 귀속집단의 선호를 향한 순응, 외부자가 가하는 위협에 대한 공격적 보호 기제 등을 촉진한다. "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옥시토신은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선 호하지 않는 입장에 순응할 가능성을 높이거나 적어도 일시적으 로 따르게끔 한다. 옥시토신이라는 행복 호르몬을 보상으로 얻 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관계에 도움이 되는 행동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설령 근거가 매우 희박하거나 사소하 다 해도 공감대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혹은 우리가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그 따스한 기분 때문만으로도 우리는 공동체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마는 것이다.
- 인지부조화가 불러온 잘못된 선택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 상응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균형을 잃은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 거 Leon Festinger는 이러한 현상을 '인지 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라 불렀다. 인지부조화는 불쾌한 상황이기에 믿음과 행동을 일치 시키고자 하는 동기가 생긴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바꾸 거나 정당화할 수 있는데, 대체로는 후자의 길을 택한다.
페스팅거의 연구에 나오는 한 사례를 들어보자.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거짓말시키는 경우다. 피험자는 길고 지루한 실험이 끝난 후 대학원생으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다. 이 실험이 얼마나 짜릿하게 재미있는지 거짓말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 대가로 주 어지는 돈은 1달러부터 20달러까지 다양했다. 실험이 끝난 후 피험자들의 생각에 대해 개별적인 인터뷰를 해보니 놀라운 현상 이 발견되었다. 피험자들뿐 아니라 거짓말을 했던 통제 집단에서 20달러를 받은 사람들은 그 실험이 지겨웠다고 생각하는 반면, 1달러를 받은 이들은 그 실험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기억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페스팅거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달러를 받은 이들은 자기가 돈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었다. 반면 같은 거짓말을 하고 1달러만 받은 이들 은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거가 더 필 요했다. 그렇게 인지 부조화 상태에 놓인 이들은 부족한 정당화를 채워 넣기 위해 본인의 개인적 의견을 바꾸게 된 것이다. 내 가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한 것이지 그 외에 무슨 이유가 또 있단 말인가? 그래서 실은 그 실험이 지루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피험자들은 자신들이 내뱉어놓은 거짓말에 현실을 끼워 맞췄다. 
우리의 개인적 믿음에 대해 거짓말을 할 때 발생하는 첫 번째 위험이 바로 이것이다.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의 거짓말을 믿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 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 다른 이들이 그걸 알아챌지 모 른다는 찝찝한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이 내 가 거짓말을 한다는 걸 몰라도 우리는 그런 기분을 느낀다.  이러한 현상의 연구에 있어서 선구자 격인 코넬 대학의 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 Thomas Gilovich는 이것을 '투명성의 환상 Illusion Of Transparence'이라 부른다.  이런 환상으로 인해 우리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를 끔찍하게 거짓말을 못하는 거 짓말쟁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선물 준 사람이 속상할까봐 선물이 마음에 드는 척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친절한 말을 들으면 친절 한 말을 돌려주는 것은 사회적 상식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사고 방식 때문에 우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많은 거짓말을 하게 되며, 그런 거짓말이 드러나지는 않을지 걱정에 사로잡히고 만 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 이렇듯 사회적 정체성의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것은 우리 가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정체성 복잡도를 높이는 것은 우리가 속한 집단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마치 다양 한 미생물과 접촉함으로써 면역력을 높이듯, 우리가 속하는 집 단 역시 변화를 받아들일 때에만 생존하고 번창할 수 있다. 이해 의 지평을 넓히고 생각의 다양성을 늘리는 것은 우리 모두를 튼 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 오늘날 소셜 네트워크에서 벌어지는 의사소통 가운데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사람 대 봇에서 오가는 것의 비중이 얼마나 될까? 19퍼센트다. 그리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 않은 소름 끼치는 현실 이다. 소셜 미디어의 통계적 모델링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전 체계정 중 5~10퍼센트 정도의 봇을 확보하고 있기만 하면 자 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다수 의견을 형성하고 주무를 수 있다. 그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입장을 지배적인 것으로 만들어, 결국 모 든 참여자들 중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엘름 홀로우의 솔트 여사처럼, 실은 다수의 의견이 아니지만 다수 의견을 대변하는 것처럼 주장하며 권력을 행사하 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수의 무지에 힘입어, 혹은 어느 방 향이 대세가 될지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이 들을 적절히 길들인다. 사회적인 에너지를 왜곡된 방향으로 순 식간에 강화하고 고착시키는 것이다. 실제로는 소수의 지지를 받고 있을 뿐이지만 마치 다수가 된 것처럼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런 의견은 집단 착각으로 이어진다. 결국 우리는 입에 재갈을 문 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침묵의 나선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 침묵을 깨고 입을 여는 전환의 시점이 언제인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게 어느 때가 됐든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발언 하는 대신 입을 다물어 버리겠노라 마음먹는 순간 우리는 침묵 의 나선으로 다른 이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침묵의 나선은 천천히 만들어진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끌어당기다가 점점 더 많 은 이들이 말끝을 흐리며 핑계를 대도록 만든다. 비윤리적인 행 동이나 명백한 억압, 불공정한 관행과 규칙 따위에 보이지 않는 찬성표를 던지고 마는 것이다. 침묵의 나선은 이렇게 커진다. 이 렇듯 구조화된 현실 부정은 결국 너무도 일반화된 나머지 사회 의 규범이 되어버리고 만다. 불의가 용납되는 세상이 되는 것 이다. 그러니 침묵하는 우리는 모두 적극적 공범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는 수천 개의 끈으로 이어져 있으며, 그 공감의 선을 따라 원인이 되는 우리의 행동이 나가고 결과가 되는 무엇이 되돌아온다. (허먼 멜빌)
- 우리는 순응으로 인해 반쯤 망가지지만, 순응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망가지고 만다. (찰스 더들리 워너)
- 먼 훗날인 2005년 에모리 대학의 심리상담사 겸 신경과학자 인 그레고리 번스Gregory Berns는 애쉬의 실험을 재현했다. 번스에 게는 애쉬가 활동하던 시절까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던 새로운 도구가 쥐어져 있었다. fMRI라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번스는 피험자가 결정을 내릴 때 그들의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 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번스는 피험자들이 집단에 순응할 때마 다 확신과 보상에 관련된 뇌의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 했다. 반면 피험자들이 집단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면, 불쾌한 감정과 연관되어 있는 뇌의 영역인 소뇌 편도가 피험자에게 '오류 신호를 보냈고 그로 인해 피험자들은 불편함을 느끼게 되 었다. 더 흥미로운 점도 있었다. 집단의 의견에 순응한 사람들의 뇌의 시각 시스템에 실제로 물리적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 는 그 사람들이 실제로 보고 있는 내용 자체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니 집단에 순응한 사람들 중 일부는 그들 눈에 보 이는 그대로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던 셈이다. 일부 전문가들 이 통제된 환각Controlled Hallucination'이라 부르는 그런 착시를 경 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쉬와 번스가 모두 확인했다시피, 우리 인간은 집단과 달라붙어 있도록 생물학적 차원에서 결정된 존재다. 우리가 순응의 함정에 빠져드는 이유도 바로 그렇게 설명된다. 우리가 아는 한, 우리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 가장 사회적인 동물이다. 이 독 특한 사회적 성향 덕분에 우리 인류는 다른 그 어떤 종과도 비교 불가한 수준의 협력을 해내며 번창할 수 있었다. 우리는 외톨이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증거마저 믿지 않을 정도로 사회적인 동물인 것이다. 우리는 심지어 스스로 원치 않더라도 자신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그들처럼 행동하 도록 생물학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 다. 우리가 집단 착각에 극히 취약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러므로 순 응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자 않다면, 순응의 함정의 바닥에 깔린 사회적 본능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 거울뉴런은 모방에만 관여 하는 신경 회로가 아니다. 다른 이들의 경험을 이해하고 공감할 때에도 거울 뉴런이 관여한다.  즉 거울뉴런은 본래 우리가 보 고 들은 것을 흉내 내는 것을 본래 기능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는 우리가 관찰한 것을 수용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어떤 동작을 관찰하면 우리의 두뇌는 자동적으로 근육을 움직여 방금 본 것을 모방하고자 한다. 이렇게 우리는 다른 이들을 통해 빠른 속도로 배워나가게 되는데, 이 모든 과정은 전적으로 무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모방 충동은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는 역할도 한다. 누군가를 따라한다는 건 결국 그에게 찬사를 보내 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선택한 브랜드에 돈을 쓸 때 마다 우리 뇌의 보상 체계는 작지만 즐거운 함성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런 값비싼 운동화를 신으면 마치 우리도 마이클 조던이 된 것처럼 좀 더 빨리 달 리고 좀 더 높이 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지라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목격하면, 심지 어 실은 자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을 때조차 다른 사람과 같은 것 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뇌는 자동적 으로 상상의 경쟁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서 그 상상의 경쟁자는 점점 현실이 되어 간다.
- 모방 욕망이 낳을 수 있는 결과는 두 가지, 하나는 좋은 것이 고 하나는 나쁜 것이다. 집단 구성원끼리 보다 나은 연결감을 얻 을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다. 목적물이 공유 가능하여 경 쟁하지 않고도 두 사람이 같은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면, 그들이 가진 공통의 욕망은 확산 가능하다.20 특히 종교적 신앙심 같은 특정 사례는 바로 이런 공유된 욕망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 위에 서 공통의 이해와 안정감이 나온다.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노래 를 즐거운 마음으로 부르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옥시토신이 분 비되고, 사랑과 공감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과 욕 망에 주목하게 된다. 다양한 관점을 지닌 이들에게도 같은 공감 을 느껴서 그들의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을 것 이다. 
- 하지만 모방 욕망은 훨씬 어두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공 유할 수 없는 것을 사람들이 함께 원하면 경쟁은 치열해지고 대 립 구도가 형성되며 폭력이 분출되기도 한다. 모세가 받아온 십 계명에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써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서구 문명은 출발부터 이러한 욕망을 금기시해 왔 다. 다른 사례도 마찬가지다. 두 아기가 장난감 하나를 두고 싸 우고 있다거나, 이혼한 부부가 자녀의 양육권 혹은 개를 누가 기 를지 여부를 두고 싸운다거나, 이웃끼리 땅을 놓고 분쟁을 벌이거나, 누가 집권할지를 두고 두 정당이 서로를 악마화하는 경우 등을 떠올려 보자. 두 나라가 제한된 자원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경우도 가능하다. 즉 우리는 원하는 것의 공급이 충분치 않을 때 면 서로를 바라보고 대립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욕망의 대상이 희소하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경쟁 본능이 더욱 치열해지는 경우도 있다. 가령 미국인들은 일자리와 재화가 한정되어 있으 며 제로섬 게임 (Zero-sum Game, 참가자가 선택하는 행동이 무엇이든지 이 득과 손실의 총합이 제로가 되는 게임)의 경쟁을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난 민과 이주민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곤 하는 것이다
- 지라르는 인류의 역사 전체를 놓고 이러한 경쟁 본능을 고찰 했다. 그가 볼 때 경쟁을 향한 본능은 그저 다른 사람이 무언가 를 원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촉발되는 것이었다. 태어날 때 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사회적 본능으로 인해 다른 이를 모방 하고 유대감을 느끼며 다른 이들과 스스로를 비교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믿음이나 생각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맞춰 스스로를 교정해나가는 스 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비교 본능은 특히 보상과 처벌의 신호에 민감하게 만든다. 바 로 그 점이 우리를 퍽 위험하고어두운 곳으로 인도하곤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상대적으로 잘 한다고 느낄 때, 우리 뇌의 보상 과 관련된 부분에 불이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의 뇌에는 도파민 과 옥시토신이 쏟아지는 것이다. 가령 페이스북의 '좋아요' 기능 이나 다른 소셜 미디어들은 이런 보상 기제를 활용한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좋아요' 숫자를 헤아리며 따 봉을 받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 는 모두 도파민 중독자인 셈이다.
반면 우리가 상대적으로 열등하다고 느낄 때 우리의 두뇌는 우리를 물리적 고통으로부터 보호할 때와 똑같은 성분의 마약성 화학 물질을 분비한다.  여기서 우리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만 한다. 자칫하면 어둠에 잡아먹힐 수도 있는 이야기가 시작되 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상대적으로 나은 기분을 느끼고자 다른 이들을 끌어내리거나 심지어 상처 입히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자아상이 공격받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가 열등하다고 여 기는 존재들보다 스스로를 더 우위에 놓고자 하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이는 단지 우월감만을 충족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 고, 같은 신경 보상 시스템으로 인해 우리는 마치 도박에서 돈을 따거나 경기에서 이긴 것과 같은 흥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사회적 공감에 대한 생물학적 편향을 지니고 있다. 그 런데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그 편향에는 큰 비극이 내포되 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남보다 나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타인에게 해가 될 수도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사회적 본능은 그런 최악의 이기적 성향에 군불을 지핀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남부 출신으로 특히 인종차별 문제와 관련해서 이 사악한 잠재 력을 잘 알고 그 작용 방식까지도 꿰고 있었다. 1963년, 당시 존 슨 밑에서 일하던 젊은 직원이었던 빌 마이어스의 회고를 살펴 보자.
우리는 테네시에 있었다. 모터케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존슨은 흉 측한 인종차별 문구가 도로 표지판에 못으로 걸려 있는 것을 발견 했다. 지역의 고관대작들이 모여 버번 위스키와 물을 섞어 마셔가 며 마지막 병을 비우고 털고 일어나려던 늦은 밤, 존슨은 그 표지 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인종차별의 바닥에 깔린 게 뭔 지 알고 싶나? 내가 말해 주지. 밑바닥에 있는 백인들한테 단지 본 인이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훌륭한 흑인보다 나은 사람이라 고 느끼게 만들어준다면, 그 백인들은 정치인들이 아무리 호주머 니를 털어가도 알아채지 못한다네. 빌어먹을, 알겠나? 사람들한테 얕잡아볼 수 있는 만만한 대상을 제공하면, 사람들은 알아서 있는것 없는 것 다 갖다 바친단 말이야."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우리 각각의 모습을 다 른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를 추상적인 집단과 견준다. 집단 착각이 우리를 쉽게도 꿀꺽 삼 켜버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식사 예절들을 살펴보자. 우리는 거기 에 어떤 목적이 있다고 가정하고 의례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 다. 하지만 식탁 예절은 개인적인 차원의 위생, 음식의 조리나 서빙, 맛과 풍미를 돋우기 위한 행위 등과 전혀 상관이 없다. 복 잡한 식탁 예절이 존재하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런 예절을 지키는 상류 사회 계급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뿐이다.
에밀리포스트닷컴 Emily Post. Com에 실린 한 편의 글이 이런 맥락 을 잘 보여준다.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잠재적 실수와 망신의 지뢰밭을 뚫고 가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나 직장 동료, 상사, 혹은 고객과 같이 식사를 할 계획이라면 식탁 예절을 완전히 장착하고 가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업무의 연장인 저녁식사나 미팅을 겸한 점심식사는 수많은 중요 결정이 내려지는 자리이며, 사람들은 그런 사회적인 식사 자리에서 관 계를 다진다.” 한마디로 '글러먹은' 자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정중한 식사 예법은 왕정 시대만큼이나 오늘날까지도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이며 특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핵심적 요소로 남아 있는 것이다."
-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검증하거나 질문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잘못된 말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
- 생각의 함정
우리의 뇌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가령 우리의 뇌 로 들어오는 시각 정보는 1초당 11메가바이트에 달할 정도지만, 우리가 정말 '보는' 것은 고작 1초당 60비트 정도에 지나지 않으 며, 오직 그 정도의 분량만이 우리의 뇌로 '업로드된다. 이것은 마치 프랑스 파리의 모든 사람들을 다 살펴보면서 그중 고작 여 덟 명만을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뇌는 두 가지 역할을 수 행한다. 
첫째, 어떤 정보를 업로드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면 뇌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 뭐 새로운 게 있나? 뭔가 바뀌었나? 만약 바뀐 게 있다면, 중요한 건가? 그렇지 않다 면 나는 에너지 절약 모드로 들어갈 거야. 이미 알고 있고 이해 하고 있는 규범과 패턴에 의존할 거라는 거지."
둘째, 뇌는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예측을 한다. 기존의 지식과 경험에 기반을 두고 빠진 정보를 채워 넣는데, 그러한 과정은 우 리의 의식적 사고 행위보다 더 빨리 수행된다. 우리의 뇌는 정보 가 부족한 자리에 무엇이 올지 신속하게 해석하고 개입하는 그 런 일을 썩 잘 해내는 편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객관적 컴퓨터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100퍼센트 정확하게 이 해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시도는 실로 인지적 에너지의 낭비로 이 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뇌는 입력된 정보 가운데 중요하지 않 은 디테일은 재빨리 넘겨버리고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에 집착한다. 이렇게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 하며, 변화를 감지하고, 할 수 있는 대응을 하는 것이다.
- 가장 나쁜 건 인터넷 봇과 트롤들이 지속적인 감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 설령 여론이 봇과 트롤에 의해 만들어진 것 임이 밝혀지고 소셜 미디어 계정이 차단되거나 삭제된다 해도, 사람들이 갖게 된 감정은 그대로 남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험이라고 워런은 주장했다. 인터넷 조작의 영향이 마치 병에 걸린 것처럼 남기 때문이다. “인터넷 여론 조작은 소셜 미디어 생태계를 타고 퍼진다. 병에 나은 다음에도 후유증이 지속되듯, 조작 행위를 제거하고 난 후에도 그 영향은 남는다." 그리하여 병에 걸리는 것은 단지 트위터 사용자만이 아니다. 미국 사회와 민주주의가 모두 병에 걸리고 말았다. 미국 상원 정보 특별위원 회가 지적했듯, 러시아 트롤의 목적은 '분노를 자극하고, 저항과 시위를 촉발하며, 미국인들을 서로 멀어지게 만들고, 공적 제도 에 대한 불신을 퍼뜨리는 것'이었다.
-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와 우리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 면 그렇다. 사실 '성공'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따르는 것과 전 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매우 깊숙한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다. 우리의 연구는 5천명 이상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개인적 성공의 의미에 대해 두 사람 이상이 같은 답을 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 었다.  실제로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 는 요소는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지문처럼 개별적이고 고유한 속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완성된 성취감을 얻는 실질적이고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이, 본인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일을 잘 해나가는 것, 말하자면 조화로 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더욱 조화로운 존재가 되는 것은 우리를 성공으 로 인도하는 검증된 방식이지만, 그 외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 더욱 믿음직한 사람이 되고,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더 큰 삶의 만족도를 누리게 함으로써 조화로운 삶은 우리가 더욱 행복해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도움을 준다.  정원 가꾸기, 반려동물과 시간 보내기, 노래를 만들거나 연주하기, 자식이나 손주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다른 사람들이 선호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대신 내가 좋아하는 초코 아이스크림 먹기 등 뭐가 됐든 개인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일에 20퍼센트 이상의 시간 을 더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포퓰레이스의 연구 결과, 마치 수입이 50퍼센트 늘어난 것처럼 인생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잠깐 책 읽기를 멈추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자.
- 진실성을 이상적인 가치로 바라보는 관점은 곧 빛을 잃고 말았다. 비아냥과 조롱, 아이러니 같은 훨씬 자극적인 취향 에 밀려나고 만 것이다. 문화평론가 로라 키프니스Laura Kipnis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표현을 빌자면, 진실성은 '그 왕관 이 진흙탕으로 떨어지기 전부터 정점에서 밀려났고 들판으로 쫓겨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진실성 대신 도덕적인 느낌이 덜한 '진정성'이라 는 표현을 사용한다. 거짓과 반대되는 의미로 진짜라는 의미를 지니는 단어다. 진정성은 좋은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속에 는 윤리적 실천의 요구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비즈니 스 업계에서 칭송받는 진정성 있는 리더란 성실하고, 자기 절제력을 갖추고 있으며, 자기 인식이 있고,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런데 진정성은 미덕과 상관이 없다. 진정 성 있는 사람은 진정성 있게 선한 인물일 수도 악한 인물일 수도 있으며, 좋은 가치를 추구할 수 있지만 나쁜 가치를 추구할 수도 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의 주인공 스크루 지 영감에게 세 망령이 찾아왔을 때, 스크루지는 스스로를 ‘두 주 먹을 꽉 쥐고 숫돌에 벼려진 부싯돌처럼 단단하고 예리한 사람' 이라고 묘사하고 있었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찰스 디 킨스가 잘 보여주고 있다시피, 스크루지가 지니고 있던 돈에 대 한 이 불굴의 집착 역시도 진정성 있는 것이었다. 스크루지의 현 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진정성이 스크루지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진실함이 이토록 허무하게 져버리고 진정성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 테일러는 주장했다. 테일러 본인이 남긴 표현에서 우리는 노동 자를 그가 얼마나 경멸어린 투로 평가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 다. "주철 작업을 주업으로 삼는 것에 적합한 이가 가져야 할 최 우선 자질은 대단히 멍청하고 우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정 신세계는 다른 그 어떤 동물보다 황소를 연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너무도 멍청하기에 '퍼센트' 같은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자는, 그래서 그보다 더 지적인 사람에게 과학 법칙에 입 각하여 지속적인 직업 훈련을 받아야 하며 그래야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다."
- 동물과 다를 바 없는 공장 노동자들은 본질적으로 무가치한 존재이며, 그들은 엄격하게 통제될 때에만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고 믿었던 테일러는 노동자들을 가능한 한 기계처럼 조직화할 수 있는 체계를 고안해냈다. 노동자들의 모든 동작을 '과학적' 계 산에 입각해 제한한 것이다. 공장 관리자들은 최대한의 생산을 위해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전략적으로 조절했다. 노동자들이 가장 일하기 좋거나 노동자들의 몸에 적합한지 여부 등은 고려 의 대상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측정 대상이었고 모든 행위의 시간을 시시콜콜하게 측정했다.
- 하향식 테일러주의는 너무 광범위하게 퍼진 탓에, 마치 물고 기가 물을 알아채지 못하듯 우리는 그 존재를 인식하지도 못할 지경이다. 100년 하고 조금 더 옛날, 찰스 테일러라는 사람이 우 리의 일터와 생활뿐 아니라 우리가 다른 이들을 대하는 관점에 '과학적' 접근법을 도입한 후, 그러한 사고방식은 마치 중력의 법 칙처럼 의심받지 않는 자명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조지메이슨대학교의 경제학 교수 알렉스 타바로크 Alex Tabarrok 는 테일러주의의 부정적 후폭풍에 대해 연구했다. 테일러리즘은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적 불신도 낳았다. 가부장 주의는 보다 더 부패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 다. 게다가 가부장주의는 사람들을 잘못된 제로섬 게임의 사고방식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다(가령 이런 식이다. “파이는 단 하나뿐. 내가 더 갖는다면 네 몫은 줄어든다"). 이렇게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이기적 이며 남들과 공유하기 어려운 분야에 투자를 하는 경향을 보이 게 된다. 사람들은 부의 재분배에 있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앞 세우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인구 대다수에게서 신뢰를 떨어 뜨리고 경제 전반에 피해를 끼친다. 15 타바로크는 이러한 현상을 '불신의 덫 Distrust Trap'이라 이름 지었는데, 하버드대학교의 연구 자들에 따르면 이 덫에 빠진 공무원과 사업가들이 사람들을 험 하게 대하면서 문제가 점점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테일러의 영향을 받은 조직의 수장들은 우리에게 '나는 당신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는 그 영향을 받아 스스로를 믿지 못할 존재로 여기게 된다. 이런 가부장적인 거 짓말에 굴종하면서 불신과 편견은 눈덩이처럼 커져 간다. 우리 가 스스로를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되면서 우리는 다른 사 람들을 바라볼 때에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그들을 믿지 않으려 든다. 그들이 신뢰할만한 이들로 보이려 하는지부터 의 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상대방 역시 같은 식으로 우 리를 불신한다는 말과 같다. 이렇게 상호간에 신경을 곤두세우 면서 우리 사회에는 자기 파괴적이고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어버 린 불신이 마치 독처럼 퍼져나간다.
개인적 차원으로 내려와 보면, 이러한 불신 편향은 자아의 분열을 가속화한다. 타인을 향한 의심으로 가득한 우리는 모방, 소속, 침묵의 함정에 보다 쉽게 빠져들게 된다. 우리는 집단 압력과 음모론적 사고에 더욱 취약해지며 조화를 이루는 일은 극히 어려워진다. 불신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망가지며 불안과 스트레 스가 높아진다. 명료하게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워진 우리는 보 다 긴장하고 뻣뻣한 상태로 분노를 쉽게 느끼게 된다." 사회 전 체에 불신이 가득한 가운데 개인의 내면마저 불신에 사로잡히면 그 결과는 실로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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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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