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자기 self'에서 출발한다. 이 개념을 과학으로 정의하여 설명하기란 매우 어렵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사용하는 이 개념은 사 실 의문투성이다. 나는 어떻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나로 인식 할까? 나는 어떻게 나를 다른 대상이나 사람과 구분할까? 이런 간단 한 질문조차 아직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자기를 인식 한다는 것은 결국 나와 내가 아닌 다른 것을 구분한다는 의미여서, 자기의 형성은 타인과 나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첫 번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자기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 핵심이 되고, 타인이라는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며 변한다. '자기'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내가 속한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며 타 인과 견실한 관계를 맺고 삶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이 사회에 미친 여파와 메타버스의 출현 등으로 나 와 타인, 관계, 공동체를 인식하는 틀이 격변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 에 '자기'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려는 행위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 하고 삶의 좌표를 찾아가는 데 중대한 통찰력을 심어줄 것이다.
내가 생존하기 위해 환경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기감 sense of self '이라고 한다. 이 문장을 '환경' 대신 사회적 환경, 즉 '타인'으로 바꿔 읽으면 그게 바로 '자존감'의 개념이다. 내가 자기감을 높이기 위해 환경을 바꾸려 하거나 세상에 거는 기대를 조정하듯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타인을 바꾸려 하거나 타인에 거는 기대 를 조정한다. 조정이 적정하여 적절한 결과를 얻는다면 자존감은 안 정, 즉 균형 상태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조정이 미흡하거나 과도하 면 자존감은 불균형 상태에 빠질 것이다. 자존감에 불균형이 오면 내 가 타인을 무리하게 바꾸려는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내 가 타인의 기대를 너무 부정적으로 추정하여 스스로 우울증이나 불 안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자존감이 형성되고 발달하는 과정, 또 불균형에 빠지 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뇌의 알로스테시스allostasis 기능을 소개한다. 알로스테시스는 항상성 homeostasis 의 불균형을 더 효율적으로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 환경을 활용하는 생체 기 능이다. 신체 기관의 불균형이 감지되면 비로소 그 원인을 확인해 복 구하는 수동적 메커니즘의 항상성과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개념이 아 주 다르다. 지극히 미래 지향적인 알로스테시스는 유기체 전체의 궁 극적 목표인 생존을 존속하기 위해 항상성 유지에 필요한 생물학적 자원을 분배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끊임없이 효율성을 추구한다. 알로스테시스는 내적 항상성을 유지해야만 하는 거의 모든 생명 체가 보유한 기능이지만, 그 정교함이나 복잡함의 수준은 종마다 차 이가 크다. 특히 '인간'이라는 종에서 정점을 찍는대도 과언이 아니 다. 효율성을 우선하면 다양성을 희생하게 마련인데, 알로스테시스 역시 과도하게 작동하면 도리어 항상성을 방해하는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 대표적으로 우울증이나 분노 조절 장애 같은 자존감 불균형은 그 원리를 알로스테시스 과부하로 설명할 수 있다.

-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인간 고유의 능력 같지만 그렇지 않다. 유인원, 돌고래, 코끼리 같은 일부 포유류도 자기를 인식한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속속 입증되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동물의 자기 인식 능력은 어떻게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바로 거울자기인 식 mirror self-recognition 과제다.
'거울검사'라고도 하는 이 검사는 동물의 얼굴이나 신체 일부에 특 정 표시를 한 후 동물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의 변화를 알아채고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것이다(그림 1). 실제로 오랑우탄은 이마에 노 란색 가루로 점을 찍은 후 거울을 보이면 자기 얼굴에 없던 게 생긴 그 점을 만져본다. 코끼리도 같은 처치를 하면 코로 자기 얼굴에 새 로 생긴 점을 만진다. 이처럼 동물이 거울에 비친 점 찍힌 모습을 알아보고 반응하는 모습을 자기 인식의 증거로 본다.
지금까지 많은 동물에게 거울검사를 해봤는데 고등 영장류, 돌고 래, 코끼리, 까치 등 소수의 종만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교 적 지능이 높다고 알려진 원숭이나 개는 의외로 거울검사를 통과하 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원숭이나 개도 거울에 반응할 수는 있다. 거 울에 비친 물체나 사람의 형상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 수는 있지만 자신의 형상을 자기로 인식하는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흥미롭게도 청출청소놀래기 Labroides dimidiatus 라는 어류가 거울검사 에 성공했다' 수많은 포유류도 통과하지 못한 시험을 작은 물고기가 해냈다. 다른 어류를 대상으로 거울검사를 해본 결과, 대부분은 거울 에 비친 형상을 다른 개체로 인식하여 공격행동을 보였다. 청출청소 놀래기도 처음엔 그와 유사했지만 3일쯤 지나자 공격행동이 급감하 면서 오히려 거울 앞에 머무르는 특이한 행동을 보였다. 그때 청청 소놀래기의 턱 밑에 흡사 기생충처럼 보이도록 갈색 점을 찍었다. 평 소 같으면 거울 속에서 기생충 모양을 알아보고 잡아먹으려는 행동 을 보였을 청출청소놀래기가 돌 위에 자기 턱을 문질러 제거하려는 행동을 보였다. 바로 거울검사를 통과한 것이다.
- 청줄청소놀래기 말고는 어류에서 거울검사에 성공한 종이 없었 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놀라운 결과이다. 이 작은 물고기는 어떻게 그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을까? 과학자들은 특별한 생존 전 략에 주목했다. 청출청소놀래기는 주로 대형 어류 옆에 붙어서 죽은 피부 조직이나 기생충을 잡아먹으며 살아간다. 이런 습성 때문에 자 신을 먹여 살려주는 고객 같은 대형 어류를 만족시키기 위한 생존 전략을 고도화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종을 자기와 구분하여 인식하 며 그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능력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포유류에서도 흔치 않은 탁월한 자기 인식 능력을 획득했다 고 볼 수 있다.
- 이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청출청소놀래기는 자 신의 고객을 만족시키고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더 먹음직스러운 고객의 피부 점막 대신 기생충을 먹는데, 가끔씩 참지 못하고 피부 점 막을 뜯어먹는 일종의 배신 행동으로 고객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 런데 다른 물고기가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고객의 피부 점막을 뜯어먹는 행동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이는 잠재 고객 앞에서 자신의 평판을 훼손하지 않고 좋은 이미지 를 주려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다른 개체 에게서 자신과 유사한 특성을 탐지할 능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종들은 이러한 능력 덕분에 자신과 유사한 다 른 개체와 무리를 지어 비교적 큰 사회적 집단을 이룰 수 있다. 

- 고무손 착시의 심리학적 · 뇌과학적 기전을 규명하기 위해 현재까지 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연구들이 자기 인식에 필요한 가 장 기본적 조건인 신체소유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 해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 자료들을 토대로 발전한 자 기 인식에 관한 최신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자기'를 인식하 는 과정은 다양한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과정과 밀접히 관련된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기서 말하는 '감각'을 엄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감각이란 외부 감각exteroception, 내부 감각interoception, 고 유수용성 감각 proprioception 등 세 유형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외부 감 각이란 신체 외부의 환경에서 오는 감각 정보를 말하며, 내부 감각이란 심장이나 다른 장기처럼 신체 내부의 기관에서 오는 감각 정보 를 말한다. 내부 감각은 외부 감각과 달리 인식하기가 쉽지 않은데, 외부 감각보다 변화가 크지 않고 대체로 우리가 예측한 상태를 항상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예외의 경우가 있다. 돌진하는 차량에 치일 뻔한다든지, 남몰래 좋아하는 이성이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든 지하여 심장 박동이 거세게 요동칠 때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고유수용성 감각이란 주로 근육이나 관절의 수용기로부터 뇌로 전달되는 감각 정보를 말하는데, 몸의 움직임 또는 신체의 공간적 위치나 상태 등을 알려준다 고유수용성 감각 덕분에 우 리는 눈을 감고도 팔을 움직일 때 이 팔이 머리 위로 갔는지 옆구리 로 갔는지 바로바로 그 행방을 알아챌 수 있다. 고유수용성 감각은 우리가 손의 위치를 매번 포착하며 살아가지 않듯이 내부 감각과 마 찬가지로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내부 감각의 한 종류로 포함 하기도 한다. 어쨌든 내부 감각은 외부 감각보다 의식으로부터 상당 히 멀어져 있는데, 우리 의식 자체가 애초부터 내부 감각보다는 외부 감각에 민감하도록 발달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앞서 언급한 최신 심리학 이론 중 하나에 따르면, 우리가 외부 세 계와 구별되는 자신의 신체를 인지할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감각 정 보의 지각적 경험들 간의 상관관계를 인식하고 이 감각 정보들을 통 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과 관련된다' 고무 착시 실험에서 고무손 의 검지를 붓으로 문지르면 이 시각 정보가 뇌로 들어가 경험이 이루 어지는데, 이와 동시에 실제의 검지도 그에 상응하는 촉각 정보가 뇌 로 들어가 경험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시각 정보와 촉각 정보를 각각 동시에 받은 우리 뇌는 '동조synchronization 현상'이라는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두 지각적 경험을 통합하여 하나의 경험으로 해석한다.
동조현상은 고무손이라는 객체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 중 요한 조건이다. 고무손과 실제 손을 문지르는 타이밍, 즉 시각 경험 과 촉각 경험이 조금이라도 어긋나 일치하지 않으면 고무손 착시는 발생하지 않는다. 고무손 착시는 서로 다른 감각 정보의 지각적 경험사이의 상관관계를 인식하고 지각적 경험들을 하나로 통합할 때 비로소 신체소유감이 생겨난다는 사실, 그리고 이 상관관계를 일시적 으로 간단히 조작하기만 해도 신체소유감이 언제든 쉽게 바뀐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실험이다.
우리 뇌는 매 순간 다양한 감각 정보를 수집해서 이 정보들이 하 나의 통합된 경험을 만들어내는지 여부를 끊임없이 검사하는 것으 로 보인다. 예를 들어, 내가 눈앞에 놓인 커피잔으로 손을 뻗어 내손 가락이 커피잔 손잡이에 닿는 시각 경험을 하면, 손가락에서 커피잔 손잡이의 표면이 주는 촉각 정보가 감지되어 시각 정보와 동시에 뇌 로 전달되고 하나로 통합된 지각적 경험이 이루어진다. 이런 경험은 내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나의 신체와 환경 간의 관계를 잘 이해하며 통제한다고 느끼게 하며, 바로 자기감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 '나'의 경계선을 확장하는 뇌 부위가 있다
고무손 착시를 경험하는 순간 뇌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 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우리 뇌가 신체소유 감을 만들어내는 신비한 현상에 다가갈 수 있다.
그 해답을 찾아 나선 뇌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뇌 부위가 하나 있었다. 바로 측두-두정 접합부temporo-parietal junction, TP] 다. 뇌과학 자들은 왜 하필 이 부위에 주목했을까? 그 이유는 TPJ 혹은 그 주변 의 뇌 부위가 손상된 환자들의 경우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정상적으로 인식하는 못하는 장애가 발생한 사례가 의학계에 일찍이 여럿 보고 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어떤 환자는 뇌 손상 후 자신의 한쪽 팔이 제 몸이 아닌 자기 조카의 팔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정 뇌 부위의 물리적인 연결 구조는 그 기능을 이해하는 데 매 우 중요하다. 따라서 어떤 뇌 부위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부 학적 위치부터 정확히 파악하여 그 의미를 추론해보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두-두정 접합부"라는 특이한 명명에서 먼저 힌트를 찾아보자. TPJ는 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측두엽 temporal lobe, 촉각 정보를 처 리하는 두정엽 parietal lobe,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 occipital lobe 이 만나는 경계선에 자리한다(그림 5). 그 위치로 봐서 TPJ는 외부 환경 에서 오는 시각·청각·촉각 정보가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영역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또 이 정보들을 통합하는 영역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그럼 TPJ의 기능이 신체소유감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오래전 부터 학계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TPJ는 행위주체감 -sense of agency 을 만 들어내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행위주체감이란 '나'의 행동을 만 들어내는 주체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인식이나 느낌을 말한다. 예 를 들어, 내가 허공에 삼각형을 그리려고 하는데 생각으로는 삼각형 을 그린다면서 정작 손가락으로는 동그라미를 그리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실제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 기이할 텐데, 한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에게 컴퓨터 모니터로 조작된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이와 같은 상황을 연출해보았다. 이 경우 실제 손가락을 움직일 때 손가락 근육에 위치한 수용기로부터 전달된 근육의 수축이나 팽창을 알리는 신호인 고유수용성 감각 신호가 눈을 통해 전달되는 손가락의 움직 임을 보는 시각 정보와 일치하지 않게 된다. 고유수용성 감각 신호 와 시각 정보가 불일치하는 조건의 이 실험에서 뇌의 오른쪽, 즉 우 반구에 위치한 TPJ가 활성화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 이와 유사한 실험을 가상현실 장비로도 해보았다. 참가자가 실제 로 손을 움직이는 방향과 다르게 손이 움직이는 영상을 보여주었는 데, 실제의 동작과 영상의 동작 사이에 방향 차이가 커질수록, 즉 불 일치 정도가 증가할수록 TPJ의 활성화 수준도 함께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움직이는 방향은 같되 시간차가 발생하는 조건에서도 그 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다른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손을 오므 렸다 펴는 동작을 시키며, 그 동작을 눈으로 보는 시간을 조금씩 지 연했다. 그 결과 손을 움직이는 행위에 이어지는 시각적 피드백이 지 연될수록 TPJ의 활성화 수준도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결과는 TPJ가 행위주체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감각 정보들의 일치 정도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 고유수용성 감각 정보가 만드는 것
TPJ가 외부 감각 정보들을 통합하여 신체소유감을 수정하는 데 중 요한 역할을 한다는 가설이 맞다면, TPJ의 기능이 정지할 경우 고유 수용성 감각 정보가 만드는 신체소유감은 우세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고무손 착시 경험은 발생하지 않거나 매우 약하게 나타날 것이다.
-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뇌 손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이 있다. 신경외과 환자의 TPJ에 직접 전기 자극을 주면 체외경험 of body experience, 즉 자신의 몸을 외부로 이탈하여 바라보는 듯한 경험 이나 팔다리가 공간적으로 변형되는 착각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뇌 손상 환자 대상의 연구 결과를 정상인에게 그대로 적용 하여 일반적으로 해석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한 연구가 경두 개자기자극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TMS 이라는 뇌자극 기법을 활용 한 실험이다. TMS는 대뇌피질의 표면에 강력한 자기장을 유발하여 목표 지점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기법이며, 뇌와 행동 간 의 기능적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연구에서 자주 사용한다(그림 6).
- 최근 한 연구에서 TMS를 사용해 TPJ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정지 시킨 뒤 눈금자로 고무손 착시 경험의 정도를 검사해보았다!" 그 결 과 TPJ의 기능이 정지된 참가자는 그렇지 않은 참가자보다 착시를 더 약하게 경험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결과로, 신체소유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시각이나 촉각 같은 다양한 외부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TPJ의 기능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아울러 이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외부 환경에서 오는 감각 정보들 을 통합하는 기능에 방해 요인을 가했더니 오히려 왜곡 없이 정상적 으로 손의 위치를 지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고유 수 용성 감각 정보가 만드는 신체소유감이 외부 감각 정보가 새롭게 수 정한 신체소유감의 훼방을 받지 않는다면 손의 정확한 위치를 무리 없이 감지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외부 감각 정보는 정확한 신체소유감을 방해하기만 할까? 신체소유감을 만들어내는 데 외부 감각 정보가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은 뭘까? 이 질문에 답하 기 위해서는 신체소유감을 결정하는 데 내부 감각 정보와 외부 감각 정보가 담당하는 역할을 좀 더 엄밀히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내부 감각 정보의 사령탑, 뇌섬엽
앞서 외부 감각 정보가 불일치할 때 정보를 통합하는 기능을 담당하 는 TPJ가 작동하여 신체소유감을 수정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외부 감각 정보가 아닌 내부 감각 정보는 어떤 신경학적 회로를 통해 신체 소유감을 형성할까? 매 순간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뇌는 끊임없 이 신체 내부에서 전달되는 신호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심장으로, 우리 뇌는 매 순간 심장 박동을 모니터링한다. 심 장박동이 너무 빠르면 늦추고 너무 느리면 재촉하면서 적절한 범위 에서 박동수를 유지하도록 조절한다. 이를 위해서는 박동수의 정보 를 수집하여 예상 속도, 즉 기준점과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처럼 심장 박동을 모니터링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고 잘 알 려진 뇌 부위는 바로 뇌섬엽이다(그림 7).
앞서 통증에 반응하는 뇌 부위로 언급한 바 있는 뇌섬엽은 대뇌피질의 일부인데, 뇌 속 깊숙이 숨어 있어서 전두엽과 측두엽 사이의 주름을 위아래로 벌려야만 관찰할 수 있다. 뇌섬엽은 내부 감각 정보 를 통합한다고도 알려져서 내장감각피질 viscerosensory cortex 이라는 별명 으로도 불린다. 우리가 심장 박동수를 스스로 가늠해보려고 주의를 기울일 때 활동이 증가하는 부위가 바로 뇌섬엽이라고 밝혀졌다. 실 제로 자신의 심장 박동수를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 은 뇌섬엽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부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뇌섬엽은 신체소유감 형성 에도 관여할까? 사실 의학계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신체소유감 결정 에 뇌섬엽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데 주목해왔다. 뇌 손상 환자 들의 행동 변화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뇌섬엽 역할의 중요성을 입증 하는 대부분의 근거가 나왔다. 뇌섬엽이 손상된 환자들은 자기 신체를 인식하는 데 두 가지 특이한 양상을 보였다. 하나는 자기 신체의 장애를 지각하지 못했다. 한쪽 팔이 마비되었거나 절단되었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제 몸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환자들의 상당수가 뇌섬엽이 손상된 상태였다. 또 하나는 자기 신체를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신체로 오인했다. 한 75세 여성 환자는 수면 중 낯선 누군가 가 자기 몸을 만지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험에 시달리다가 내원했는데, 자신의 왼쪽 팔이 다른 사람의 팔인 줄 아는 증세를 보 여서 검사해본 결과 오른쪽 뇌섬엽이 손상된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고무손 착시의 객관적 증거를 살펴보면서, 고무손 착시를 강 하게 경험한 사람들의 경우 고무손을 바늘로 찌르는 시점에 뇌섬엽 의 활동이 급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결과는 고무손을 자신의 실 제 손으로 완전하게 지각함에 따라 뇌섬엽의 기능도 왜곡된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뇌섬엽이 만들어내는 신체소유감은 TPJ가 만들어내 는 신체소유감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 감각 정보 와 외부 감각 정보가 만들어내는 신체소유감이 일치하는 평상시에 서 벗어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차이를 경험하기 어려울 것 이다. 엄밀히 말해 뇌섬엽은 자신의 실제 몸에 속한 기관들이 보내는 정보로 정확한 신체소유감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 다. 한편으로 TPJ는 고무손 착시 실험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평상시 와 달리 외부 감각 정보가 신체 변화를 왜곡해서 알리는 조건일 때, 외부 감각 정보를 토대로 수정된 신체소유감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 하는 것으로 보인다.
- 내부 감각 정보와 외부 감각 정보는 각각 뇌섬엽과 TP]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신경 회로를 사용한다. 두 회로는 평상시에 긴밀하게 상호 작용하며 신체소유감 형성 과정에 협력하지만, 고무손 착시 실 험처럼 신체 내부 신호와 외부 환경 신호가 불일치하는 특수한 상황 이 발생하면 각자가 담당한 기능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경쟁하는 양상을 띤다.
이는 마치 신체소유감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얻기 위한 보수와 진보 간 세력 다툼처럼 보이기도 한다. 뇌섬엽은 나의 신체라는 경계를 제한하고 그 범위에서만 신체소유감을 규정하려는 보수적 세력이다. 반면에 TPJ는 신체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외부 환경으로 자신 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진보적 세력이다. 전자는 안정성을 추구하고 후자는 유연성을 추구한다. 나의 생존에 필요한 신체소유감을 안정 적으로 유지하되 환경 변화에 따라 수정하고 확장해가려면 두 신경 회로가 긴밀하면서도 조화롭게 협력해야 할 것이다. 이들 간의 상호 견제와 협력을 통해 '나'라는 범위의 한계는 축소와 확장을 반복하며 역동성을 띤다. 그리고 이 역동성은 생존을 위해 지켜야 할 '나'의 경 계선을 나의 신체, 가족, 집단, 국가, 인류 중 어느 범위까지 확장할지 결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 결국 데이비드는 검사 결과 진단을 받았는데, 바로 카그라스증후 군이었다. 이는 매우 희귀하다고 판명된 환각적 증후군으로, 1923년 프랑스 정신과의사인 카그라스가 처음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하였다. 공식 의학 명칭도, 진단 체계도 엄연히 있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 려운 정신 질환이다. 주변 사람들 눈에는 환자가 그저 멀쩡한데 헛소 리하는 모습으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어쩌다 카그라스증 후군을 앓게 되었을까?
데이비드가 보인 증세를 관찰하고 연구한 미국의 라마찬드란 박 사Vilayanur S. Ramachandran 는 하나의 가설을 제시했다. 다른 사람의 얼굴 을 인식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존재하며, 카그라스증후군은 이 부위로 감정 반응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학적 경로가 끊어져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상인은 일반적으로 오래도록 친숙한 어머니의 얼굴을 대하면 적절한 감정적 반응을 기대하고, 실제로 그 기대에 부 응하는 신호를 받으면 비로소 자신의 판단이 맞았음을 확인한다. 이 모든 과정에 관한 진술은 원리를 설명하는 내용이고, 실상은 그런 과 정이 의식할 새 없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나서 단지 '나의 어머니나' 하고 저절로 알아볼 뿐이다.
이와 같이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는 과정, 나아가 데이비드 같은 카 그라스증후군 환자가 보이는 증세를 생물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능동 적 추론 이론을 사용한다. 이 이론을 토대로 어머니의 얼굴을 알아보 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어머니의 얼굴'이라는 시각 정보가 뇌로 들어오면 그에 따라 발생할 만한 감정적 반응을 뇌가 예측한다. 그런데 감정적 반응을 전 달하는 신경학적 경로가 손상되어서 예상한 반응이 감지되지 않으면 예측 오류가 발생한다. 그러면 먼저 뇌는 혹시 잘못 인식했을까 싶어 다른 행동을 통해 시각 정보를 수정해보는 시도를 한다. 눈을 크게 떠서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주의 깊게 본다거나, 다양한 각도에서 어 머니를 관찰하는 등 여러 행동을 한다. 그러다가 이러한 모든 시도가 동일한 결과, 즉 나의 어머니임에 틀림없음을 알리는 결론에 도달하 면 이번엔 다른 조치로 나아간다. 즉, 어머니와 흡사한 이 여성이 적 절한 감정적 반응을 유발하지 않는 것을 보니 나의 예측 모형이 틀렸을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이 예측 모형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깨 닫는다. 그 결과로 수정한 예측 모형은 이 여성이 나의 어머니와 겉 모습은 완전히 동일하지만 실제로는 로봇이나 외계인처럼 어머니를 그대로 흉내 내는 다른 존재라고 믿게 한다. 데이비드는 실제로 부모 는 물론 자기 자신도 자기와 흡사하게 생긴 다른 존재라고 믿었는데, 이러한 카그라스증후군 증세의 원리 또한 능동적 추론 이론으로 동 일하게 이해할 수 있다.

- 혈압이 높아지면 뇌는 수용체를 통해 혈관 내 부피와 혈관벽 상태 를 감지하여 항상성 반사 회로를 활성화한다. 수용체에 자극이 유입 되어 발화가 증가하면 이 신호가 심혈관 통합 중심부로 전달되어 혈 관과 심장에 대한 교감 조절이 감소하고 부교감 조절이 증가한다. 이 러한 반응이 혈관을 확장하고 심장 박동을 늦추어 혈압을 낮춘다. 이 처럼 신체의 각 기관은 저마다 발생한 항상성 불균형을 알리는 신호 를 뇌로 끊임없이 보낸다. 그리고 뇌는 이 신호들을 수집해 각각의 요구에 알맞도록 조치하여, 각 기관이 항상성을 회복하도록 한다.
- 하지만 자동적·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신체 항상성 조절 과정은 한 계가 있다. 이미 불균형이 발생한 뒤에 항상성을 회복하기란 매우 어 렵고 심지어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대책은 예방이 라고 하듯이, 신체 항상성이 깨지기 전에 미리 짐작하고 방지하는 능 동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처럼 신체 항상성 불균형이 발생하기 전에 이를 예측하고 능동적으로 외부 환경을 활용하여 예방하려는, 유기 체 전체의 전략적인 신체 항상성 유지 방식을 알로스테시스라고 한 다(그림 8).' 알로스테시스는 생리적 또는 행동적 변화를 통해 안정성 이나 항상성을 달성하는 생물학적 과정으로, 유기체가 단지 미리 정 해진 설정값에 따라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항상성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 우선순위 분배부터 예측과 예방까지
알로스테시스는 다양한 항상성 조절 메커니즘을 조율하면서 유기체 전체의 생존 유지를 위한 '총체적 관점 holistic view'을 취한다는 점에서 좁은 의미의 항상성과는 차이가 있다.
앞서 소개한 자동적·수동적 신체 항상성 유지 방식과는 다른 알로 스테시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우선순위 분배다. 즉, 개 체의 생존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체의 특정 기관에 서 발생한 불균형을 일시적으로 무시하거나 유보한다. 아무리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으로 예상되더라도 현시점에서 비교적 덜 중요하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어떤 조건에서 음식물 공급 이 안 되어 개체 생존이 위급해지면 생존에 당장 필요한 영양을 긴급 히 조달하려고 근육 손실과 혈액 산성도 감소가 발생하는 현상이 바 로 그 예이다.
이와 같은 알로스테시스의 특징은 생리적 반응 말고도 외부 환경 과의 상호 작용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극심한 배고픔에 오래 시달린 사람은 불이익이나 사법적 처벌이 예측되더라도 배를 채울 일념으로 수치스럽거나 위법한 행위를 감행하기도 한다. 극단적 허 기로 불균형해진 신체 항상성을 회복하기 위한 목표가 공중도덕, 사 회 규범 등 외부 환경이 요구하는 모든 목표를 압도할 만큼 최우선으 로 긴급하기 때문이다.
- 알로스테시스의 두 번째 특징은 예측과 예방으로, 향후 닥칠 신체 항상성의 위기를 미리 가늠하고 방지하는 기능이다. 이를테면, 사막 한복판에 들어가야 하는데 갈증이 심각해져 체수분 부족으로 인한 인명 사고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미리 식수와 수분 보충원을 충 분히 준비하고 사막 현장 인근의 식수 공급처를 물색해 확보하는 일 련의 사전 대응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알로스테시스의 예측과 예방 기능은 생존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 이 러한 알로스테시스 기능을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뇌는 과거의 유 사한 경험들을 기억하여 예측과 예방의 근거로 활용한다. 아울러 외부 환경에서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알로스테시스는 수많은 항상성 조절 반사 신경 회로를 통 합해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유기체 전반에 걸친 신체 항상성 조절 과 정이다. 매 순간 변화하는 신체 상태에 따라 이들 간의 우선순위를 알맞게 배정하고, 앞으로 다가올 항상성의 불균형을 예측· 예방하기 위해 외부 환경을 활용한다. 일생 뇌가 하는 일이란 이렇게 신체 항 상성의 불균형을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해 환경을 활용하여 최선의 방법을 끊임없이 고안해내는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알로스테시스는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최대한 일찍 예측하고 최소한 노력하여 예방하려는 방식인데, 항상성 불균형의 해소와 직 접적 관련이 없어 보이는 새로운 보상을 찾아 학습하게 만들기도 한 다. 즉, 배고픔이나 통증 등을 해소해주는 일차적 보상이 아닌 돈과 같은 이차적 보상을 학습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이차적 보상의 중요한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는 예측성이 다. 이차적 보상은 지금 당장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장차 발생할 신 체 항상성 불균형에 대비하는 기능을 한다. 미래에 겪을 배고픔에 대 응하기 위해 지금 돈이라는 보상을 미리 획득하는 것이 그런 예이다. 둘째는 효율성이다. 이차적 보상은 다양한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 신호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 없이 이들을 한꺼번에 해결해준다. 돈은 살 아가는 데 필수인 의식주를 모두 얻게 해주는 만능 보상이라는 점에 서 여러 보상을 개별적으로 얻는 수고를 줄여준다. 셋째는 영속성이 다. 신체의 요구 신호가 사라지더라도 이차적 보상을 얻고자 하는 노 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포만감이 들면 가치가 사라지는 음식에 비하 여, 돈과 같은 이차적 보상은 훨씬 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동기를 만들어낸다.
이차적 보상의 매력은 이러한 특성에서 기인한다. 뇌가 추구하는 알로스테시스 과정, 즉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이 발생하기 전에 예측하고 유기체의 생존 유지를 위해 우선순위를 분배하며 자원을 효율적 으로 관리해야 하는 과정의 목표에 아주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따라 서 이차적 보상은 처음에 학습하긴 어려워도 일단 학습하면 그 어떤 일차적 보상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각인되어 우리 행동을 지배한다.

- 행복 호르몬의 역설
도파민 Dopamine의 작동 원리야말로 끊임없이 새로운 이차적 보상을 발굴하고 학습해가는 뇌의 알로스테시스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생물학 적 증거이다. '행복 호르몬'으로 익히 알려진 도파민은 중뇌 Midbrain 에 서 생성되어 측핵 Nucleus accumbens 을 비롯한 여러 뇌 부위로 광범위하 게 전달된다.
사실 도파민의 기능을 단순히 쾌감과 연결해 설명하는 것은 온당 하지 않다. 원래 도파민은 보상 자체에 반응한다기보다, 엄밀히 말하 자면 기대한 보상과 실제로 주어진 보상 간의 차이, 즉 '보상 예측 오 류 reward prediction error'에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9는 이러한 도파민의 기능을 잘 보여준다. 전혀 예측하지 못 한 상황에서 갑자기 음식이라는 보상을 받으면 도파민 세포가 강하 게 반응한다(그림 9A). 그리고 보상이 주어지기 몇 초 전에 소리를 들 려준 후 곧이어 음식을 제공하기를 반복하면 소리가 들릴 때 도파민 세포가 반응한다(그림 9B). 여기서 나타난 흥미로운 결과는 막상 음식이 제시되는 시점에는 도파민 세포가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기대했던 보상이므로 놀라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소리를 제시하고 음식을 주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그러면 도파민 세포는 소리에 반응은 하지만 음식이 제시될 시점에 누락된 구간에 서 기준점보다 약하게 반응한다(그림 C). 이렇게 도파민 세포가 탐 지한 보상 예측 오류는 뇌에 저장된 보상 기대치를 변화시킨다.
세상 모든 담배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 맨 처음 피우는 첫 모금이다. 커피 역시 마찬가지다. 잠시 강렬하게 느낀 이 행복감은 그 후 빠른 속도로 사라져버린다. 이 행복감을 다시 경험하 기 위해서는 하루라는 시간을 다시 견뎌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린 알 고 있다. 이 하루 첫 커피의 첫 모금이 주는 행복감도 매일이라는 시간이 겹쳐 지나가는 동안 서서히 조금씩 줄고 있다는 것을. 행복감은 오랜 절제 끝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선물하는 찰나의 경험이다. 따라 서 행복은 그 찰나의 경험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라 절제의 시간을 오 래도록 쌓는 노력일 수밖에 없다. 행복은 그 경험을 향해 다가갈수록 도리어 더 멀어질 수밖에 없고, 단념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어깨를 잡 아채며 느닷없이 선물처럼 안긴다.

- 타고난 본성은 발달 과정을 거치며 끊임없이 외부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그 본질과 다르게 변화하고 왜곡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일까? 타인의 기대를 기대하거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얼굴이 예쁘길 바라는 욕망이 생 겨나는 것도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예쁜 얼굴을 선호한다는 것을 무 의식적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순전히 자기만족으로 예뻐지고 싶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바라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자신 이 일생 동안 학습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중독과 착시는 비슷하다?
옥시토신의 기능을 두고 신체와 뇌 간의 소통을 촉진한다는 흥미로 운 주장을 펼친 연구가 있다. 옥시토신이 신체에서 오는 신호가 뇌로 전달되는 문을 더 활짝 열어줌으로써 뇌가 신체 신호에 더욱 민감해지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신체 신호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갈증현상을 예로 들면, 모유 수유를 하는 산모는 유난히 갈증을 심하게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갈증이 나는 이유는 나트륨과 물이 혈관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압력, 즉 혈장 삼투압이 이미 주어진 설정 값보다 높아짐에 따라 예측 오류를 알리는 신호가 발생하고 이 신호 를 뇌의 시상하부가 감지하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은 이 설정값을 변 경함으로써 갈증을 느끼는 정도를 조절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즉, 설 정값이 낮아지면 예측 오류 신호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서 시상하부 가 이 신호를 좀 더 쉽게 감지하도록 도와준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체내 수분이 부족해져서 혈액의 삼투압이 올라갈 때 옥시토신은 신 체 상태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갈증을 느끼게 하며, 유즙 분비 촉진을 위해 옥시토신 분비가 증가한 산모들은 바로 그런 이유로 이전보다 갈증을 더 심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신체 신호에 대한 민감도의 저하는 다양한 신체적 혹은 심리적 장애 와 관련될 수 있다. 그리고 옥시토신을 처치하면 이들의 신체 신호 민 감도를 다시 높여줄 수 있고, 그 결과 장애 치료의 효과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알코올이나 약물에 중독된 사람은 정상인에 비해 자신 의 신체에서 오는 신호들에 대한 민감성이 저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 다. 사실 중독 현상은 고무손 착시와 유사한 점이 많다. 고무손 착 시는 자신의 실제 손이 아닌데도 간단한 외부 신호 조작에 따라 실제 근육에서 전달되는 내부 감각 신호를 무시하며 고무손을 진짜 손으 로 착각하는 현상이다. 약물 중독도 이와 마찬가지다. 외부에서 유입된 화학적 신호가 뇌 속의 보상 회로를 활성화하면 신체 항상성 유지라는 보상의 근본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그 화학적 신호를 보 상으로 착각하는 현상이다. 내수용 감각 민감도가 낮은 사람이 고무 손 착시를 경험할 확률이 높았듯, 알코올· 니코틴 · 약물 중독자들도 정상인보다 내수용 감각 민감도가 현저하게 낮다는 사실 또한 이 두 현상 간의 유사성을 지지하는 중요한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환자들에게 신체 신호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주는 옥시토신을 투여할 경우 어떤 효과가 나타날까? 흥미롭게도, 알코올 이나 약물에 과다 노출된 사람들에게 옥시토신을 처방하면 신체 신 호에 대한 민감성이 증가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아직은 옥시토 신의 치료 효과에 대해서 섣불리 크게 기대하거나 맹신하는 것은 위 험할 수 있다. 특히, 기본적으로 옥시토신 수준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은 달리 처치해야 하며 개인마다 적정 수준을 찾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는데, 옥시토신을 처치하면 나와 타인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해 인식한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옥시토신이 내수용 감각을 증폭하는 기능과도 관련될 수 있다. 앞서 고무손 착시 실험에서도 내수용 감각 민감도가 높은 사람이 오히려 고무손 착시 조작이 주는 이질감을 쉽게 배제하고 착시를 경험할 확률이 낮다는 것을 확인했다. 옥시토신 처치가 신체 신호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준 다면 자기감 또한 높여줄 테고, 그 결과로 자신과 타인 간의 경계가 오히려 명확해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옥시토신을 투여할 때 타인과의 유대감이 증진되는 것은 나와 타인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자 기감을 충족하고 확장하려는 욕구가 과도하게 증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타인을 자신의 사회적 욕구 충족을 위한 대상으 로 인식하고 나의 경계를 넓히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경향성 을 옥시토신이 높여준 것은 아닐까?
- 신체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내 주변의 물리적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내적 모형을 자기감이라고 한다면, 물리적 환경 대신 내 주변 사람들이라는 사회적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내적 모형은 자 존감 또는 자기효능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기감은 사회적 관 계에서 형성되는 자존감과 같은 개념을 아우르는 더 포괄적인 개념 으로 볼 수 있다.
자기감이라는 내적 모형이 예측한 물리적 환경이 기대와 다를 때 예측 오류가 발생하는 것처럼, 자존감이라는 내적 모형을 토대로 예 측한 사회적 환경이 기대와 다를 때 우리는 예측 오류를 경험한다. 그리고 이 예측 오류를 줄이기 위해 나의 자존감이라는 내적 모형이 수정될 수도 있고, 혹은 나의 자존감의 예측에 부합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환경을 바꾸고자 시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이성에게 호감을 느껴 고백했을 때 상대방이 단호히 거절한다면 나는 그 순간 강한 예측 오류를 경험할 것이다. 이 예측 오류가 부끄러움이나 수치감이라는 감정을 유발한다면 나 는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자존감이라는 내적 모형을 수정할 필요를 느낄 것이다. 한편으로 이 예측 오류가 분노감이라는 감정을 유발한 다면, 나는 내적 모형을 수정하는 대신 기존의 내적 모형이 예측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그 이성에게서 내가 원하는 반응을 강압 적으로 끌어내고자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 나의 내적 모형이 나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에 잘 맞춰져 있으면 자 기감을 느끼는 것처럼, 내적 모형이 물리적 환경 대신 사회적 환경에 잘 맞춰져 있으면 자존감을 느낀다. 사실 뇌의 입장에서는 내적 모형 이 통제하는 환경이 물리적이든 사회적이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두 환경 간의 뚜렷한 경계선을 찾는 일도 녹록하지 않다. 우리가 물리 적인 환경보다 사회적인 환경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특별하게 생각하 는 이유는 어쩌면 후자가 나의 생존에 더 중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른 다. 능동적 추론 이론을 적용해서 설명해보자면, 이미 뇌 속에 형성된 내적 모형이 예측 오류를 크게 내지 않거나 충분히 수정될 수 있을 만 큼 비교적 안정적이라면, 이는 곧 높은 자존감 혹은 자존심이 세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 예를 들면, 주변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시도한 나의 행동이 예 상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거나 성공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때 나는 안정된 신체 상태 유지라는 목적을 위해 내 주변의 사회적 환경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도록 형성한 내적 모형이 적절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결론짓고 더 이상 수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적 모형이 실제로 적절한지 부적절한 지 구분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객관적 기준도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평균 이상으로 적절한 내적 모형을 갖고 있으면서 항상 예측 오류를 경험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평균 이하로 부적절한 내적 모형을 갖고 있지만 예측 오류를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전자 는 늘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예민하고 불안해하는 유형이고, 후자는 소위 분위기 파악은 제대로 하지 못해도 항상 자신에 대한 긍정적 태 도를 견지하는 유형이다.
- 문내측 전전두피질이 자기와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데 관여한 다면, 이 부위의 활동은 나와 유사한 사람과 유사하지 않은 사람 간 에는 어떤 차이를 보일까? 자기 참조 영역으로 알려진 문내측 전전 두피질이 자신뿐 아니라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유사한 타인을 평가 하는 상황에서도 활성화가 증가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이처럼 자 신과 유사한 사람과 유사하지 않은 사람의 정보를 처리하는 데 각기 다른 신경학적 회로가 사용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어쩌면 우리 뇌는 이미 생물학적 수준에서 자신과 유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 람의 정보를 자연스럽게 구별해서 처리하도록 설계된 걸까? 자신과 의 유사성 정도에 따라 다른 뇌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집단 갈등의 원 인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과 유사한 내집단과 이와 대립하는 외집단을 구별하고, 외집단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형성하며 집단 간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에 관하여 신 경과학적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

- 아기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신체의 신호에 이미 익숙하다. 심장과 각종 내장 기관들에서 오는 내부 감각 신호에 어떻게 대응할지 이미 숙지한 상태로 세상에 나온다. 하지만 나오는 순간부터는 세상이라 는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오는 외부 감각 정보에 노출되고 신체 항상 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환경을 활용하는 방법들을 하나씩 배워 나가 야 한다. 이 때문에 내부 감각 신호에 주로 반응하는 복내측 전전두 피질은 외부 환경 신호에 주로 반응하는 배내측 전전두피질의 도움 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배내측 전전두피질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 서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신체 항상성 유지를 위해 환경을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기 때는 체온이 떨어지면 근육 긴장도를 높여 몸을 떠는 행동을 유발함으로써 체온을 높이는 수동 적 방법을 사용했다면, 자라서는 옷을 찾아 입는 행동을 취해 추위를 경험하기 전에 미리 방지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복내측 전전두피질과 배내측 전전두피질 간의 이러한 긴 밀한 상호 협력 과정이 바로 알로스테시스의 가장 핵심적 기능이다. 이러한 위계 구조를 고려할 때, 복내측 전전두피질과 배내측 전전 두피질의 중간에 있는 문내측 전전두피질의 기능은 좀 더 특별하다. 해부학적 위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이 부위는 내부 신호와 외부 신호를 모두 통합하여 이들 간 균형을 찾아가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 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부위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가치를 수정해 서 선택하는 순간 그 활동이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위가 자기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영역으로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유추 해 볼 때, 신체가 만들어내는 생명 유지의 욕구가 환경이라는 제약과 충돌할 때 이 두 힘 사이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기능을 담당하 고 이 과정에서 바로 '자기'라는 개념이 비로소 만들어진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강력한 내적 동기를 지니며, 이는 나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실패한 타인이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일 상황을 피하려는 동기에서 비롯한다는 주장이었다." 타 인의 기대를 깨는 행동은 내가 기대하지 않은 타인의 행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로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사회적 환경 때문에 나는 신체 에너지를 추가로 소비해야 할 테고 이를 감지한 뇌는 불안감이라는 감정을 만 들어낼 것이다. 신체 에너지라는 유한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된 우리 뇌는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연스럽 게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는 것이다.
이 새로운 이론은 인간이 도덕적 직관 moral intuition 을 형성하고 사회적 압력에 따라 행동하는 현상을 생물학적 수준에서 설명하는 데 매 우 유용한 토대를 제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앞서 소개한 내측 전전두 피질의 위계 모형과도 일치한다. 예를 들어 나와 누군가의 의견이 일 치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주로 반응하는 뇌 부위는 복내측 전 전두피질로 알려져 있다." 반면 나와 상대방의 의견이 불일치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주로 반응하는 뇌 부위는 배내측 전전두피질 로 밝혀졌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주로 오랜 경험을 통해 안정적으로 유지되 는 가치들이 저장된 곳이다. 반대로 배내측 전전두피질은 복내측 전 전두피질에서 예측 오류를 전달받아 활성화되며, 외부 환경으로부터 추가 정보들을 수집하여 새로운 가치를 찾아 복내측 전전두피질 에 저장된 가치를 수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나와 타인의 기대가 일 치하면 추가 에너지 사용이 불필요한 상황이지만, 둘 간의 기대가 불 일치하면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미처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추가 에너지 사용이 불가피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게 우리 뇌는 불안감이 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을 회피하도록 설계된 우 리 뇌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의견을 따라가는 동조 행동을 보인다. 동 조 행동은 불필요한 신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생존 가능성을 극 대화하기 위한 뇌의 전략적인 대응 방법이다.

- 주변 사람의 기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행동을 나의 통제 아래 둘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다면 그 정보를 토대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을 행동하 도록 만들고 그들에 대한 내 영향력을 높일 수 있을 터이다. 이처럼 주변의 물리적 환경을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추정치가 '자기감'이라면, 주변 타인들이라는 사회적 환경을 내가 원 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주관적 추정치를 '자존감'이 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정의는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자존감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전통적으로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자존감이라는 용어는 개인이 외부 평가와는 상관없이 자기에 대해 갖는 가치 판단 을 가리킨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자신이 얼마나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 는지 등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을 의미한다. 그래서 자존감은 내가 나 를 어떻게 보는지를 의미하므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와 는 무관하다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나를 보는 시 각이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시각과 완전히 무관할 수 있을까?
- 자존감 낮은 사람이 특히 에너지를 쏟는 것
우리는 일상에서 자존감이 높거나 낮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리 고 사회적 상황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낮 은 사람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차이는 어 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회적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그 결과를 예상하 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 과정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이 루어진다. 예를 들어, 새로 이사 온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 난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행동이 그 사람의 반가운 인사와 호감을 이 끌어낸다면, 그 결과 나에게 긍정적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반대로 같은 행동에 무반응이나 싸늘한 눈초리만 돌아온다면, 나는 괜한 행 동을 했다는 생각에 부정적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아 무리 사소할지라도 어떤 사회적 행동의 결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그 선택의 결과가 우리에게 줄 이익과 비용을 모두 고려하게 된다. 주목할 점은, 이익과 비용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사람마다 각각의 가중치가 다를 수 있고 그 차이는 자신이 경험해온 과거 선택의 결과 들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사 회적 행동의 결과를 계산할 때 이익에 더 많은 가중치를 부여한다. 이는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가 지니는 가치를 더 강하게 느낀다는 의 미다. 그 결과 이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 시도할 때 이 행동의 결과가 초래할 비용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마도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계량기는 일시적인 사 회적 실패에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 충분한 완충제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 결과 사회적 실패에 덜 영향을 받거나 그로 인해 초래되는 비용도 간과할 가능성이 높다. 즉,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 신의 인사에 상대방이 보인 퉁명스러운 반응은 다음번에 다른 낯선 사람이 자신에게 보일 반응에 대한 예측치를 수정할 만큼 놀라운 사 건이 아닐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이전에 수많은 유사한 경험 속에서 상대방에게 받아온 긍정적 반응들 덕분일 수 있다. 이 경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예측치를 수정하기보다는 방금 전 엘리베이터에 서 만난 그 사람이 특이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 동일한 상황에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선택 과정은 매우 다를 수 있다. 이들은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리라는 믿음이 낮으며, 자신이 두 려워하는 상대방의 거절은 특히 고통스럽게 느낀다. 따라서 상대방 의 거절이 초래할 비용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여 사회적 행동의 결과를 평가하곤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상대방이 보낸 퉁명스러운 반응을 무시하기보다는 자신의 부정적 예측치를 더 공고히 하거나 오히려 더 낮추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앞으로도 동일한 상황에서 낯선 이에게 인사를 건네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 fMRI 실험이 종료된 후, 이번에는 참가자들이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상대방에게서 얼마나 많은 비율의 긍정적 ('예') 피드백을 받았 는지 물어보았다. 그 결과 자존감 높은 사람들이 보고한 긍정적 피드백의 추정치 비율이 낮은 사람들의 것보다 훨씬 컸다. 흥미로운 점 은, 자존감이 낮은 참가자들의 추정치가 실제 비율인 50%와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자존감 높은 사람들은 긍정적 피드백의 비율을 과대평가하거나 낙관적인 편향을 보인 반면, 자존감 낮은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사회적 피드백을 더 정확하게 추정해냈음을 시사한다. 이런 두 집단 간 행동의 차이는 앞서 소개한 뇌 반응의 차이와도 잘 부합한다. 이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정 보가 긍정적인지 혹은 부정적인지를 더 명확히 구분하면서 이 정보 들을 추적하고 모니터링하는 데 더 많은 주의나 기억 자원을 할당한 다는 증거일 수 있다. 즉, 사회적 보상을 탐색하고 그것을 얻을 기회 를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는 의미다.
- 자존감 불균형은 과도하거나 오랜 기간 지속된 부정적인 사회적 평가 때문에 발생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사회적 평가에 의해서도 얼 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갑자기 높은 인기를 얻은 연예인이 경험하는 공황장애가 지나치게 많은 긍정적 평가 때문에 발생하는 자존감 불 균형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들이 과연 자존감이 낮아서 이런 문제를 보이는 것일까? 자존감 을 절대적으로 낮거나 높다고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산이 높아졌건 골이 깊어졌건 경사가 발생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자존감 불균형이란 이처럼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과도한 사회적 평 가로 인하여 마음속에 경사가 생기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로 인한 자 존감의 불균형은 다시 균형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뇌의 적응적인 반 응을 촉발한다. 바로 '자기방어 행동self-defensive behavior'이다.
 
- 사회성이 '너무' 높은 사람의 비애
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잘 파악하고 이에 적절한 반응을 잘 선택하는 사람을 일컬어 사회성이 높다고 평한다. 뛰어난 사회성은 복잡한 현 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개성으로 손꼽히곤 한다.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은 분위기 파악을 잘하지 못하고 상황에 부적절한 행동을 저질 러 주변 사람의 부정적 평가를 초래하곤 한다. 지적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회성이 부족하면 공동체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자신의 욕구나 감정은 최대한 숨기고 타인의 욕 구와 감정을 섬세하게 헤아려 그들의 기대에 잘 부합해 행동해고자 노력하곤 한다.
이런 노력은 생존 가능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알로스테시스 과 정으로부터 비롯되었으나, 문제는 과도한 수준에 이르면 오히려 생 존에 필수적인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살피는 데 소홀할 수가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항상 자신의 긍정적인 모 습을 보여주고 좋은 인상만을 심어주기 위해 과도한 에너지와 자원 을 소모하는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 후속 연 구에 따르면 타인의 부정적 평가를 모니터링해서 부정적 평가가 누 적되면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누적 피드백 편향 효과가 우 울증 지표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일상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항상 자존감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곧 불균형을 다시 해소하 기 위해 지속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타 인이 나에게 보낸 부정적 피드백들을 기억하기 위해 더 많은 인지적 자원을 사용하고, 이들에게 더 긍정적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더 복잡 하고 전략적인 선택을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러한 상태를 일컬어 '자기의식 self-consciousness 적 과정'이라 하는데, 이러 한 과정은 죄책감, 수치심, 당혹감 등과 같은 다양한 자기의식적 감 정을 수반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자기의식적 감정은 생존을 위 해 필요한 적응적인 감정이지만 지나칠 경우 오히려 불균형을 악화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 알로스테시스 과정은 신체 내부 신호에 의존하던 선택을 점점 외부 신호에 더 의존하는 방식으로 바꿔 나간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체 내 영양분이 부족하면 뇌로 신호를 보내 영양 섭취를 할 수 있는 음 식을 먹었지만, 점차 냄새·색깔·맛에 끌려서도 먹고 하루의 일과로 때가 되면 먹고 지인들과의 친목이나 사회적 용무로도 먹는 등 음식 을 먹는 행동이 변화한 과정을 떠올려보자. 이와 같이 신체 내부 신 호를 기준으로 해결해오던 신체 항상성 문제를 점차 외부 환경의 신 호들에 기반하여 해결하도록 변화하는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런 이 유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신체 내부에서 오는 신호들에 대한 민감도 가 빠르게 감소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신체 항상성 유지를 위해 외부 환경의 활용도를 높이는 일 은 전반적으로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뇌의 에너지 소모도 줄일 수 있 는 효율적인 문제 해결법이 된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도파민의 예처럼 지나치게 외부 신호에만 의존하면 신체 항상성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와는 오히려 멀어지는 잘못된 선택을 반복할 수 있다. 신체 내부 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 환경의 신호를 활용하는 알로스테시 스 과정을 통해 뇌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궁극적 목적과는 다소 동떨 어져 보이는 복잡하고 추상적인 형태의 다양한 이차적 보상들을 새 롭게 찾아서 학습해 나간다. 하지만 이러한 이차적 보상이 더 이상 신체 항상성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사태를 제대로 인 식하지 못한 채 이차적 보상에만 계속해서 과몰입할 경우, 역설적이 게도 생존에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 알로스테시스는 개체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뇌가 최대한 일찍 이 최대한 많은 보상을 예측하는 신호를 찾아 보상을 얻어내게 하며, 이런 식으로 위협 요인도 사전에 회피하게 한다. 예를 들어, 고통을 느낀 뒤에야 피하기보다는 고통을 예측하여 미리 피하는 것, 배가 고 프기 전에 미리 먹을거리를 찾아나서는 것 등이 위협 요인들을 회피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러한 알로스테시스의 지칠 줄 모르는 예측 기능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초래하는 문제가 있다. 이미 충분히 배 가 부른데도 미래에 겪게 될 배고픔을 피하기 위해 신체 영양분 공급 이 필요한 수준으로 미리 정해진 설정값을 무리하게 조정하여 계속 음식을 먹는 상황, 혹은 이미 사라졌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포식자를 벌써 예상해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도망칠 방법을 모색하며 신체를 늘 비상 태세로 유지하는 상황 등이 이에 해당한다.
- 도파민의 작동 기제에 대한 정교한 이해는 행복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기대하지 않은 보상이 유발한 순간적인 행복감은 보상에 대한 기대 수준을 수정함으로써 새로운 균형점을 설정하게 하고, 이렇게 높아진 기대 수준은 오히려 불행의 범위를 확장하여 불행에 빠질 확률을 높인다. 다시 말해, 행복을 얻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불행의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행복을 경험하는 순간 이미 한번 떠난 지금보다 불행했던 이전의 상태로 다 시 돌아갈 수 없다.
바닥 타일에서 발을 떼는 순간 타일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나가는 방에 있다고 해보자. 안전한 지대로 옮아가려고 한발 한발 내 디딜 때마다 이미 디딘 타일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새로 디딜 타일들 은 개수가 점점 줄기만 한다. 이런 비유로 보면, 불안전을 떠나 안전 을 얻었다는 것은 이제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선택지 중 안전한 것보 다 불안전한 것이 더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행복을 경험한다는 것은 이전의 상태보다 나은 상태를 찾았다는 뜻이며 그 만큼 나는 불행한 상태로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보상을 받는 상황도 불균형을 증가시키는 사건이고, 이 불균형을 되돌리지 못한다면 알로스테시스 과부하 상태로 빠지게 될 것이다.
불행에 빠질 확률이 증가하면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알로 스테시스 기능이 다시 작동한다. 우연히 시험 성적이 올라 행복을 경 험하면 나와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내 성적의 상승 가능 폭은 더 좁아지고, 이전 성적보다 상향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 안감이 점점 더 커져서 이 불안감을 피하기 위해 나는 더 노력할 수 밖에 없다. 항상성의 불균형을 최대한 일찍 예측하고 예방하려는 알 로스테시스 기능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벼랑 끝까지 쉬지 않고 계속 나아가도록 채찍질한다. 어쩌면 불행이 증가하는 주된 원인은 바로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 그 자체인 것은 아닐까?
-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방식은 앞서 든 트램펄린 예시에서 주변의 작은 공들 까지 끌어모아 웅덩이를 점점 더 키워가는 것이다. 이런 식의 대처 를 자기 의식 self-consciousness 이라 한다. 두 번째 방식은 트램펄린 예시 에서 무거운 쇠공을 어떻게든 빼내듯이 처음엔 힘겹더라도 다시 균 형점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대처를 자기 인식 self-awareness 이라 한다. 자기 인식은 많은 노력을 요구하지만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소해주는 근본적 해결책을 제공해줄 수 있다. 반면에 자기 의식은 불균형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 다른 대상으로 원인을 돌려 스트레스와 불균형을 오히려 점점 더 키워가는 대처 방식이다. 이 과정이 장기적으로 반복되면 더 이상 불균형 해소가 어려운 상태로 빠질 수 있다.
- 자기 의식이란 언젠가는 파도가 몰려와 힘없이 허물어버릴 모래 성을 간신히 버티면서 아슬아슬하게 쌓아가는, 마치 묘기를 시연하 는 것처럼 불안해하면서 하루하루 근근이 자존감 불균형을 해소해가 는 방식이다. 반면 자기 인식이란 자신이 처한 상황의 불안정성을 명 확히 알아차리고 좀 더 단단한 기반에서 더 내구성 좋은 재료들을 하 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튼튼한 성을 만들어가는 자존감 불균형 해소 방식이다. 지금까지 만든 모래성이 아까운 마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겠지만, 이 성을 차마 허물지 못하고 새롭게 출발하지 못한다 면 나중에 파도가 몰려올 때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충격을 경험 할 것이다. 자기 인식이 주는 순간의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과거의 나를 정리하고 새로운 나를 찾아간다면, 느리지만 훨씬 오래 먼 여정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 어쩌면 우리가 어떤 얼굴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유는 우월 유전 자가설이 제시하는 것처럼 그 얼굴 소유자의 유전적 우월성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보다는 외부 정보를 최대한 효율적이고 유창하게 처리하며 저장하기 위해 우리 뇌가 발달시킨 정보 처리 메커니즘이 낳은 부산물일지도 모른다. 이 메커니즘은 모든 개별 예시를 저장하 는 대신에 이 예시들을 가장 잘 대표하는 원형만 추출하여 저장함으 로써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양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발달해왔 을 것이다. 개별 예시들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원형을 더 유창하 게 처리함에 따라 유창하게 처리한 자극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이 주장을 잘 뒷받침한다.
우리는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원형에 매력을 느끼고 좋아하지만, 그것이 어떤 얼굴이 다른 얼굴보다 더 매력적인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연구 결과는 사람들이 원형을 좋아하는 이유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정보 처리의 유창성 fluene과 긍정적 감정을 연결하는 일반적인 메커니즘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 나보다 계급이 높은 타인을 향해 나의 모든 자원을 집중하 면, 자연스럽게 이와 반대되는 타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줄어들 수밖 에 없고 심지어 혐오감마저 느낄 수 있다. 특히 생존에 위협을 느끼 는 상황에서 우리 뇌는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권력의 구심점에 가까워지려는 경향성이 강해진다. 권력을 가진 강자 혹은 다수 집단 에 다가가려 하고 그 반대인 약자 혹은 소수 집단으로부터는 멀어지 려 하는 것이다. 이처럼 집단에 위기가 오면 너무나 쉽게 차별과 혐 오가 증가하는 현상에 뇌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그렇다면 권력을 향한 과도한 집착과 함께 나타나는 차별과 혐오는 뇌의 범주화 능력 으로 인한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으로 보아야 할까?
- 익숙함과 새로움 간의 딜레마는 어쩌면 우리 뇌의 작동 방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뇌에는 상반된 기능으로 경쟁하는 두 가 지 신경 회로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안정성이나 익숙함 을 추구하는 신경 회로, 또 하나는 가소성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신 경 회로다. 최고의 여행 경험은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의 신중한 균형 에서 비롯하듯이 일상의 만족도 역시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의 신중 한 균형이 필요하다. 둘 사이의 최적의 균형은 건강한 두뇌를 유지하 는 전략으로도 중요하다.
일생 동안 끊임없이 익숙함과 새로움 간의 균형을 추구하며 가치 를 학습해온 우리 뇌는 자연스럽게 신체와 환경의 변화에 크게 영향 받지 않는, 생존을 위한 핵심적 가치들을 점차 터득하게 된다. 바로 직관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 신체 항상성 유지라는 목표를 위해 뇌가 일생 동안 학습해온 타인 의 기대들, 즉 도덕적 가치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거의 모든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 행동을 제약하고 감정을 유발한다. 이 과정 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자기는 우리가 태어난 시점에 가지고 있던 '원초적 자기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존감 불균형 을 발생시키고, 이 불균형을 해결해나가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남은 생애 동안 끊임없이 고민하는 문제가 아닐까?
- 험담의 동기에는 다양하고 폭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사실 누군가가 정말 싫다면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도 효과적인 행동은 단 순히 그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 대신에 그 사람을 험담하 기로 선택했다면 이 행동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보상이 따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 즉, 험담하는 행동의 기저에 다른 동기가 추가되었다 는 말인데, 그 동기로 가장 흔하며 강력한 것이 바로 인정욕구다. 이 런 관점에서 보면, 타인 혹은 특정 집단에 대해 혐오감을 표출하는 행 동은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 불균형의 원인을 정 확히 파악하여 해소하는 데 많은 자원과 에너지가 들기에 더 간편하 고 빠른 방식을 채택한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 바로 차별과 혐오의 언어다. 노인을 비하하는 신조어 "틀딱충은 노인 때문에 자신의 이익이 줄어들거나 권리가 침해된다고 여기는 일부 사람들이 언어를 통해서 가장 쉽고 충동적으로 감정을 해소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된장녀" 같은 여성 혐오적 표현은 여성에 대한 성적 충 동이나 위축감 등을 해소하려는 동기에서 비롯한 일종의 감정 조절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행동은 자존감의 불균형 상태와 불균형의 근본적 원인을 해소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 상태 그대로 남는다. 자 신의 근거 없는 험담이나 공격에 죄책감이 들어 억누르고자 그 행동 을 정당화할 논리적 근거를 끊임없이 찾는다면, 오히려 자존감 불균 형은 점점 더 악화할 것이다.
- 자기불구화란 자존감 저하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노력하 지 않거나 목적과 반대로 선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시험 성적이 조할 것이라 예상하는 경우, 시험 전날 일부러 공부를 하지 않음으로 써 성적이 자신의 무능력 때문이 아닌 게으름 때문이라는 변명을 스 스로에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하려는 행동을 자기불구화로 볼 수 있다. 자신에게 점점 더 불리한 상황으로 일부러 자신을 내거나 상 황을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만들어가는 일은 왜 벌어질까? 상황이나 운이 나빠서 나의 진정한 능력을 보여줄 수 없었다는 변명 이 때로는 능력 없어도 운이 좋아 일이 잘 풀렸다는 말을 듣는 것보 다 더 나은 경우도 있다. 나의 자존감 불균형을 미리 방지할 수 있다 면 일부러 상황을 악화시키는 선택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 뇌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도록 설계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과거를 회상할 때 활성화하는 부위와 미래를 상상할 때 활성화하는 부위가 거의 동일한 것으로 밝혀진 연 구 결과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러한 증거는 기억이 주로 미래 를 예측하는 기능을 한다는 주장과 상당히 일치하며, 미래에 대한 예 측은 결국 과거의 기억이라는 재료를 재구성한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주장과도 상통한다. 궁극적으로 생존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유기체에 서 과거를 기억하는 능력과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은 한 뿌리에서 자 라난 두 줄기 심리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외부 환경을 관찰하고 분석하거나 타인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들을 통제함으로써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궁 극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최적화되었다. 따라서 뇌는 생겨나는 시점 부터 신체에서 외부 환경으로 관심을 돌려 끊임없이 외부 환경의 변 화를 예측하도록 설계되었다. 이처럼 뇌의 관심 범위는 신체로부터 외부로 확장하지만, 신체의 항상성 유지를 목표로 한다는 것에는 변 함이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대상은 나와 별 개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나의 뇌가 신체의 항상성 유지에 필 요한 정보만 선택한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듣고 기억하고 느 끼는 모든 경험이 심장 박동과 관련된다는 최근 연구 결과들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다'
- 이처럼 관심 범위를 신체에서 외부 환경으로 끊임없이 확장하도록 설계된 뇌의 작동 방식은 상대적으로 관심 범위를 외부에서 내부 로 옮겨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분석하여 원인을 찾기 위한 목적에 는 맞지 않는 편이다. 즉, 뇌의 관심을 외부 환경에서 내부로 옮겨 자 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뇌가 설계된 방식을 역행하는 작동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런 뇌의 설계 방식 때문에 우리는 항상 괴로움 이나 불안의 원인을 나 자신이 아닌 타인 혹은 주변 상황에서 찾을 운명인 것은 아닐까?
- 사실 뇌는 인간이라는 유기체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관인데, 이런 뇌가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기능은 바로 신호 전 달이다. 특히 신호 전달에 필수적인 휴지기 동안 신경세포막 안팎의 전위차를 되돌리고 유지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할애한다.' 다시 말 해서 어떤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로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 활동 전위를 만들어내면 세포막 전위의 균형 상태가 깨지게 되는데, 이를 다시 균형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에너지의 상당량을 소모한다는 뜻 이다. 이처럼 휴지기 동안 전위를 일정한 상태로 되돌리는 일은 다음 에 전달받을 신호를 정확히 감지하고 새로운 활동전위를 만들기 위 해 필수적이다. 이러한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잔잔한 수면에 먼 지만 떨어져도 파문이 일듯이 모든 감각을 극도의 민감 상태로 유지 하기 위해 우리 뇌가 취하는 중요 전략이다. 이렇게 균형점을 찾은 상태는 특정한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되 그 자극에 지나치게 몰입하지는 않도록 해준다.
- 뇌섬엽이 수집하는 항상성 불균형 알림 신호가 감정을 구성하는 중 요한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 했다.20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 뇌는 뇌섬엽과 신체의 긴밀한 소통 을 통해 내부 감각 신호를 매 순간 받아들임으로써 신체 상태가 예측 범위에서 벗어났는지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며, 이를 통해 신체 항상 성 유지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신체 항상성이 깨지면 이 로 인한 신체 변화를 알리는 신호가 뇌섬엽으로 전달되고, 신호를 받은 뇌섬엽은 이 상태를 감정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서 볼 때, 감정이란 신체의 항상성이 깨졌음을 감지한 뇌의 반응, 또 는 신체의 항상성 회복을 위해 특정 행동을 촉발하는 뇌의 신호나 다 름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비난에 괴로움의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이러한 비난이 장차 초래할 신체 항상성 불균형(사회 격리로 인한 생존 의 위협)을 사전에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한 행동(타인의 신뢰와 호감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행동)을 뇌가 촉구하기 때문이다.
- 신체 상태는 끊임없이 변하고, 신체의 기관이 각자의 항상성 조절을 위해 뇌로 보내는 신호가 만들어낼 수 있는 조합의 가짓수는 거의 무 한대다. 일단 위장·신장·심장 세 기관만 놓고 보면, 항상성 불균형 신호가 각자 온 과 오프로 두 가지만 있다 쳐도 이미 2의 세제곱 으로 총 8개의 신호 조합이 나온다. 신체 기관의 개수가 늘고 각각 의 기관이 보내는 신호의 크기도 다양해지면 신호 조합은 어마어마 하다. 더욱이 신체 내부 감각 신호뿐 아니라 외부 환경에서 오는 신 호도 고려해야 한다. 특정 상태의 신체 항상성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외부 환경 또한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이를 종 합해 추론해보면, 엄밀히 말해 우리는 정확하게 동일한 '감정'을 두 번 이상 겪는 일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뇌는 매 순간 신체 신호와 외부 환경이라는 제약 조건을 모두 고려하여 최적의 반응을 선택하는 복잡한 정보 처리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제한된 용량 때문에 수없이 많은 신체 신호에 모두 부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뇌는 새 로운 방식을 고안해냈다. 바로 신체 상태와 외부 환경의 조합들을 비 슷한 것끼리 하나로 묶어 일정한 개수의 범주로 분류해 처리하는 것 이다. 이러한 범주화를 통해 우리가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분노 혹은 행복감 같은 감정이 생겨난다. 감정의 범주화는 정보 처리의 효율성 을 획기적으로 높여주기는 하지만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신체 상 태의 미묘한 차이를 제한된 범주로 분류해내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 감정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불균형이 발생했음을 알려주 고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여 적절한 해소법을 찾도록 알려주는 신 호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불균형 해소는 좋은 방식과 나 쁜 방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불균형의 원인을 파악하기 전에 정확 하지 않지만 익숙한 대응으로 불균형을 일단 해소하는 방식이 있고, 시간이 걸려도 일단 원인부터 파악한 후 그에 따라 불균형을 해소하 는 방식이 있다. 앞에서 예로 든 자기계발서의 주장을 뇌과학적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다. 다만 나쁜 감정 해소 방식이 있을 뿐이다.
- 상처 입은 나는 피해자고 상처 입힌 타인은 가해자라는 단순한 이 분법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가리고 상황을 악화할 수 있다. 상대 방은 기본적으로 악하고 나는 지나치게 착하다는 생각은 대부분 착 각이거나 일종의 방어 기제로 볼 수 있다. 내가 괴로운 이유는 '착한 나' 때문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한 상대방 때문이라는 생각 은 즉각적으로 위안과 편안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메시지를 건네는 자기계발서나 공감형 힐링 에세이가 인 기를 끄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착하기 때문에 쉽게 상처 받으므로 나에게 상처 주는 자기중심적이며 무례한 사람을 잘 찾아내 미리 피하거나 제대로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가장 심각한 자기방어 행동일지도 모른다. 이런 대처는 나 자신은 전혀 바뀌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외부의 적만 만드는 일종의 자기 의식적 감정 해소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혀 다치거나 변하지 않고 수동적 으로 인간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깨알팁'만 손쉽게 얻으려는 것은 장 기적으로 무익하고 해롭기까지 할 소지가 다분하다. 나도 모르게 나의 정신과 신체를 지배하는 무의식적 방어 기제를 찾아내어 직시하는 것 은 대단히 힘겨운 전쟁이다. 이 전쟁을 외면하고 쉬운 길을 찾기에 급급한 태도는 결국 내 삶을 바꾸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일상에 '사이코패스'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으면서 자기중심 적인 사람을 혐오하며 가리키는 말로도 종종 쓴다. 하지만 모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사이코패스일 리는 없다.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인 다는 것은 대상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대상을 향한 나의 반응을 획일 화하고 정형화한다. 다시 말해, 누군가를 사이코패스로 분류하고 그 렇게 이름 붙이는 순간 그 사람과 나의 관계는 단절되어 회복할 가능 성이 희박해진다. 내가 "사이코패스"로 호명해버린 사람과는 어떠한 대화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바로 혐오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인정 욕구를 버리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조언하지만, 사실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나 한평생 키운 인 정 욕구는 결코 쉽게 무시할 수도, 억누를 수도 없다. 억누르려 들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튀어나오는 인정 욕구에 실망하고, 자신을 혐 오하거나 원인과 분노의 화살을 타인에게 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인정 욕구를 감추고 억누르기보다는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 다. 인정 욕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요인이 자극했는지 파악해보 려는 태도가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타인에게 인색한 누군가를 너무나 싫어하는 나의 모습 을 알아채면 내가 타인에게 이기적인 사람으로 인식될까 봐 몹시 불 안해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또 내가 잘난 척하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불편해하는 모습을 스스로 알아채면 과거에 그와 유사한 행동을 했던 자신에게 실망하고 혐오감을 느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런 경우 그 당시 내가 왜 잘난 척하고 싶었는지 찬찬히 떠올려 깊이 이해해보면 지금 잘난 척하는 상대방을 향한 부정적 감정이 누 그러지기도 한다. 내가 과거에 감정을 어떻게 해소했느냐에 따라 지 금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는 방식 또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인을 향하는 나의 강한 감정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있다. 누군가를 유난히 싫어하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그 감정의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가장 두려 워하는 대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감정을 알아차리는 과정에 서 그동안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나의 불균형을 키웠던 감정의 원인을 찾아 해소하고 타인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나의 감정이 반응하는 상황과 대상을 유심히 살피다 보면 나의 가 치관과도 조우한다. 내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 을 추구하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나보다 부유한 사람을 볼 때와 나보다 이지적인 사람을 볼 때 누가 더 부러운지 비교해보자. 이지적 인 사람을 더 부러워한다면 나는 지성을 갖추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 이라고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재력을 중요한 가치로 여 기는 삶을 산다면 이지적인 사람을 볼 때마다 부러움이라는 감정의 버튼이 쉴 새 없이 눌리는 경험을 할 것이다. 행복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 버튼이 눌리는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

- 자기 감정 인식의 어려움에 관하여
감정은 신체가 보내는 일종의 도움 요청 신호이며 이 신호에 답을 가 장 잘하는 방법은 바로 그 감정을 유발한 정확한 원인을 찾아 제거하 는 것이다. 말이야 간단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뇌는 감 정을 경험할 때 원인을 내부에서 찾아 해소하는 것보다는 외부 환경 을 변화시켜 해소하는 방식에 훨씬 더 익숙하며 그렇게 진화하고 발 달해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감정 인식은 뇌가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발달하는 방향과는 다른, 어쩌면 그 반대 방향으로 맞춰진 심리 과정이기 때문이다.
- 나의 신체가 항상성 유지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과정에서 뇌가 발명해낸 인정 욕구는 나의 생존이라는 목 적을 위해 삶의 의지를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의 응집체이자, 내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 나은 상태를 향해 나아가도록 나를 재촉하는 온갖 부정적인 상상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인정 욕구는 나를 둘러싼 타인이 나를 더 좋아하도록 만듦으로 써 생존이라는 나의 목적을 달성할 방법을 고안하고 학습하는 데 내 가 가진 모든 자원을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기 감정 인식이란 이처럼 거침없이 직진 본능만을 따르는 인정 욕구가 다른 욕구와 충 돌할 때, 충돌 현장에서 한 단계 위로 올라가 더 넓은 시야로 조망하게 해준다.
이런 새로운 관점은 그 충돌의 정확한 원인을 찾아 해소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자기 감정 인식은 어쩌면 본능을 거스르는 뇌의 특별 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이 능력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능력일 수 있으 며 이들조차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을 통해서만 얻는, 얻은 뒤에도 잠 시만 소홀히 하면 이내 잃어버리는 매우 값진 능력일 것이다. 현대 과학은 이런 자기 감정 인식 능력을 향상할 보편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 기억은 영원불멸한 것이 아니라 매우 불안정하다. 많은 심리학 연구 를 통해 기억의 불안정성과 왜곡 가능성이 밝혀졌다. 흥미롭게도, 기 억이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은 바로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릴 때다. 우 리가 뭔가를 기억해내는 순간 그 기억은 가장 불안정해지고 왜곡이 나 삭제가 일어나기 쉬운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한 번 떠올린 기억 은 다시 저장해야 하고, 이처럼 활성화한 기억을 재저장하는 데 단백 질 합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실험쥐가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단백질 합성을 방해하는 억제제를 주입했더니 기억 재저장에 실패하여 기억 이 삭제된 것이다.
- 기억 재강화는 기억 문제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획기적인 치료 법을 마련해준다. 예를 들어, 마약이나 니코틴 등 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중독 행동을 유발하는 대상에 대한 기억만 선택적으로 제거해줄 수 있다. 또 대형 참사의 생존자나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가 호소하는 극도의 공포심 또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줄여주는 데도 크 게 기여할 수 있다.
이런 희망적인 기대에도 불구하고 기억 재강화 현상을 실제 임상 적 치료 방법으로 이어가려는 연구들은 아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실험쥐에게 투약한 약물이 인간에게는 치명적 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안전한 약물을 사용한 대안적 연구 들은 아직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 기억 재강화 관련 연구는 자존감 불균형을 방지하기 위한 뇌과학 적 방법을 고민하는 데도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자존감 불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반응은 대부분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이처럼 저절로 촉발하는 자기방어 행동은 자존감 불균형을 회복시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불균형을 회복시켜주지 않는 자기방어 행동을 수정하지 않고 계속 반복하면 나중에는 수정이 거의 불가 능한 상태로 굳어질 수 있고, 이런 상태를 곧 알로스테시스 과부하 로 볼 수 있다. 삭제하기는커녕 새로운 정보들까지 추가하여 이전보 다 더 자주, 더 강하게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고, 더 극단적인 기억으 로 왜곡하여 괴로운 감정을 배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 때 나의 농담에 '썩소'를 날린 직장 동료의 얼굴이 잠자리에서도 계 속 떠올라, 동료가 지금까지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기억에서 모조 리 끄집어내 결국 그를 나를 파멸시키고 싶어하는 악마로 둔갑시킬 수 있다.
기억 재강화 현상은 자존감 불균형이 발생한 바로 그 시점이야말로 잘못된 자기방어 행동을 수정할 절호의 기회임을 보여준다. 모든 상황이 종료한 후 지나간 상황을 다시 머릿속에서 상상해보는 것도 효과적일 테지만 그 효과는 아무래도 제한적이다. 아무리 생생하게 그 상황을 상상해내더라도, 실제 그 순간 외부 자극이 반응을 촉발하 는 과정에서 활성화된 전체 신경세포 네트워크 내의 연결을 전부 똑 같이 재활성화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존감 불균형 이 발생하면 그 즉시 감지하여 잘못된 연결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연 결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 자존감의 불균형을 견뎌내는 삶이란 지속하기가 녹록지 않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바로 자존감의 불균형이 자아가 위축해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아가 비대해 져서 발생한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 들을 보며 안도하거나 자부하는 것도,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보며 너무 기죽거나 질투하는 것도 모두 거대하게 팽창한 자아 때문이라 고 볼 수 있다. 개체가 갖는 '자기'는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고 생존에 필수적이다. 자기라는 개념은 너무나 강력하게 뇌 속에 각인되어서 자기가 사라지는 건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 LSD는 '나'와 '내가 아닌 것' 간의 경계를 희미하게 하는 특수한 효 과가 있다. 인간이 태어나 평생 동안 거치는 발달 과정은 나의 경계 를 이전보다 더 뚜렷하게 인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외모, 나의 능력, 나의 사회적 위치를 여러 범주 중 하나로 분류하고 끊임 없이 타인과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그 범주를 공고히 다진다. 나를 명확히 규정하는 일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등을 빨리 결정할 수 있게 해 준다. LSD는 이렇게 우리가 평생에 걸쳐 축조한 '나'라는 개념이 순 식간에 붕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일단 LSD는 뇌의 세로토닌 시스템을 조절함으로써 우울증 완화 효과를 가져오는 약리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울증은 세로토닌 저하와 관련이 깊은데, LSD 같은 약물이 세로토닌 재흡수를 억제 함으로써 세로토닌이 사라지는 현상을 막는 작용을 하여 신경전달 경로에 세로토닌 양을 증가시키고 결과적으로 우울증을 완화한다. 세로토닌은 소화, 체온, 호흡, 배뇨 등 다양한 신체 항상성 조절 과정 과 깊이 연관된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로토닌 활동을 증가시키는 약물인 시탈로프람Citalopram 을 투여하면 자신의 심박수를 감지하는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세로토닌의 기능을 단적으로 말하긴 어려운데, 아마도 신체 신호에 대한 민감도 를 증가시키고 신체 항상성 조절 기능을 향상시켜 타인을 비롯한 외 부 감각 정보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을 희석함으로써 우울증 같은 정 신 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할 수 있다.
- 자아의 과도한 팽창에 관하여 LSD가 시사해주는 점은 자기의 경 계를 방어하고 확장하기 위해 비대해진 자아가 기능을 잠시 멈추면 뜻하지 않게 타인과의 마찰이나 갈등이 줄어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자기감의 작동을 훼손하는 LSD는 역설적이게도 자기감의 상실이 일시적인 해방감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실 제로 LSD의 환각 효과를 체험한 사람이 인터뷰에서 자신이 온 우주 와 하나가 된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이는 자기감을 상실하여 자아 라는 프레임이 사라질 때 그 프레임이 주는 불안감에서 벗어났기 때 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문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해방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LSD의 효과는 개인차가 크고, 사용자가 약을 투 여하는 시점에 심리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증거가 있다."

- 최근 사회심리학에서는 '경외감awe'이라는 감정에 주목하고 있다. 경외감이란 우리가 가진 세상에 대한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방대 한 어떤 존재를 향해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그랜드 캐니언처럼 막 대한 규모의 자연환경을 포함해 종교적 체험, 카리스마 리더십의 소 유자 등을 마주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 경외감에 해당한다. 얼마 전 우주여행을 다녀온 억만장자들이 광막하고 무심한 우주를 목격하고 일관되게 밝힌 소감이야말로 경외감이다.
- 그럼 왜 사회심리학에서는 경외감에 관심을 기울일까? 최근 연구 에 따르면 경외감이 들 때 '자기'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지거나 축소 된다고 하며" 겸손해지거나 겸허해지고 나아가 타인에 대한 친사 회적 경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경외감의 놀라운 점은 자기에 대 한 개념의 변화가 타인을 포함한 외부 환경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이나 태도, 관계의 양상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경외감 관련 신경과학적 연구는 그리 많지 않은데, 그중 가장 눈 에 띄는 뇌 영상 연구에서는 다양한 감정을 유발하는 여러 동영상을 감상하는 동안 뇌 반응을 측정했다. 동영상 중 하나는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결과 경외감을 유발하는 동영상 을 감상할 때 자기 참조 영역,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 해당하는 문내측 전전두피질의 활성화 수준이 감소했다. 그 이유를 아직 명확 히 알 수는 없지만, 경외감이 자기를 축소시키고 희미하게 한다는 이 전의 연구 결과나 이론과 일맥상통하는 결과로 보인다.
- 그동안 실제라고 여긴 현실이 결국 내가 만들어놓고 스스로 갇혀 버린 프레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의 감정이 바로 경외감 일 것이다. 감정이란 곧 뇌와 신체 간의 소통 장애를 말하므로 경외 감이라는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 자기를 축소시키고 희미하게 함으 로써 기존의 프레임을 확장해주는 경외감, 이 감정을 통해 그동안의 뇌와 신체 간 소통 장애를 감지하여 신체 신호를 더 섬세하게 읽을 기회로 삼는다면 뇌와 신체 간 소통 방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 자아정체성의 뇌과학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타인의 기대에 아랑곳하지 않 으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 꿋꿋이 걸어가는 삶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삶을 가리켜 자아를 실현하는 삶, 곧 자아정체 성을 찾아가는 삶이라고 부른다. 매슬로의 욕구 위계 이론에서는 자 아실현을 인간의 욕구 중에서 최상위 단계에 위치한 가장 높은 수준 으로 간주한다. 자아정체성은 과연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인정 욕구는 너무나 강력하고 무의식 깊숙이 뿌리 박혀 있어서 자아정체성을 추구하는 욕구에도 스며들 수 있다. 즉, 타인의 시선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삶이 남들 눈에 근사해 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나의 무의식에 각인되어 내 행동을 이끌때, 이를 자아실현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아정체성을 추구 하려는 동기의 기저에도 인정 욕구가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자아실현은 오히려 현실 도피를 위한 일종의 방어적 행동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정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한 자아정체성을 찾아가 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정 욕구는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에서 행동 을 지배하는 강력한 동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욕구의 최상위 단계가 될 수는 없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위 단계의 욕구는 나 자신 을 온전한 형태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일 텐데 이는 자기감과 더 관련 될 것이다. 즉,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목표는 나와 세상과의 관 계를 온전하게 확립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나의 욕구가 세상의 흐름 과 어긋나지 않는 상태, 이 둘이 서로 거스르지 않고 물 흐르듯 어우 러져가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 도달하는 데 가장 현실 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야말로 다름 아닌 '자기 감정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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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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