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마David Marr는 우리의 행동과 마음, 뇌를 이해할 때 과학자들이 3가지 수준에서 설명과 이론을 설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가리켜 마의 3가지 분석 수준Levels of Analysis 이라고 한다(Marr, 1982). 앞서 식기세척기 비유를 통해 언급했던 추상적인 분석 수준인 연산 적 수준(Computational Level), 과정의 실제 단계들을 찾아내는 알고리즘적 수준 (Algorithmic Level), 마지막으로 어떻게 그 단계들이 실행되는지 상세히 살피 고 통찰을 얻는 실행 수준(Implementation Level)이 그것이다.
마음과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환경과 상호작용해서 행동을 발생시키는지 알면, 더 나은 결정을 하고 살면서 맞닥뜨리는 수많 은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왜 어떤 일은 기억하기 쉽고 어 떤 일은 기억하기 어려운지,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행 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과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인지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의 기본 원리들이 도움을 줄 것이다.
- 이처럼 우리의 사고가 타고난 선천적 능력의 결과라고 보는 관점과 후천적 습득의 결과라고 보는 관점 사이의 긴장을 가리켜 종종 '본성 대양육nature-nature vs nurture'의 구분이라고 한다. 이 구분에 따르면, 우리의 심리는 천부적으로 얻은 결과(데카르트적 생득주의의 산물)이거나 아니면 마음이 양육을 받은 결과(경험주의의 산물) 둘 중 하나다.
- 생득주의 대 경험주의 또는 본성 대 양육이라는 구분이 존재하 지만, 어느 누구도 이것 아니면 저것의 문제라고 보진 않는다. 둘 다 우리 의 정신적 발달, 발상과 개념의 형성, 그리고 심리적 과정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인정하듯이, 유전자 및 생물학적 제약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심리적 과정과 능력이 있는 반면에, 경험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심리 적 과정과 능력도 있다. 이것이 마음에 관한 현대의 지배적인 견해다. 마 음은 일종의 신경생물학적인 빈 서판인데, 이는 생물학에서 나온 원리들 에 지배를 받으면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규칙과 제약, 편향, 원리를 지닌 빈 서판인 셈이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이 서판의 작동을 관장 하는 이러한 규칙과 제약, 편향, 원리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 마음에 대한 비유는 시대의 산물이자 과학 연구 방식 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데카르트는 신과 신성의 영향력을 알았다. 그가 보기에 마음은 몸에 전적으로 속한 것이 아니라 신 성의 일부이기도 했다. 따라서 마음이란 신이 설계한 것이라는 비유에서 생득주의가 출현했다. 마음은 계몽시대 동안에는 빈 서판으로, 다윈 시대 엔 정신 기능을 맡는 인체 구조로, 산업혁명 기간에는 자극-반응 엔진으 로 여겨졌다. 신의 설계, 빈 서판 그리고 기계... 이런 비유들이 과학 탐 구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그런데 이러한 비유의 한계로 인해 과학적 사고 의 변화가 촉진되었다. 컴퓨터 비유는 인지심리학을 견인한 비유다. 그리 고 신경 수준에 이르기까지 뇌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되자 이 비유가 더욱 들어맞는 듯하다. 어쩌면 이 비유는 훨씬 더 심오한 패러다임 전환일지 모 른다.
- 생물학의 영향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힘은 알고리즘이다. 즉, 정보를 처리하고 예측 을 하는 연산 엔진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 학습 알고리즘은 여러 정보를 받아들여, 연관 짓기를 배우고, 그런 연관 짓기를 통해 예측을 하고, 새로 운 상황에 변화하고 적응해나간다. 이를 가리켜 기계학습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기계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배운다는 점이다.
가령, 많은 인공신경망의 바탕이 되는 알고리즘(헤비안 학습 Hebbian Learning 알고리즘)은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맥길대학교의 도널드 헵Donald Hebb이 발견했다. 1949년에 출간된 협의 저서 『행동의 조직 Organization of Behaviour은 이 분야의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로서, 뉴런이 어떻게 연관 짓기를 배우는지 설명했다. 이 개념은 마빈 민스키 Marvin Minsky, 데이비드 럼멜하트David Rumelhart, 제임스 매클렐런드James McClelland, 제프리 힌턴 Geoffrey Hinton 등 여러 인지과학자에 의해 수학적으로 정교하게 가다듬어졌다. 현 재 기계학습과 심층학습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발전은 인지과학자의 노력 이 가져온 간접적인 결과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들이 신경생물학에서 이 미 나왔던 알고리즘에 들어맞도록 컴퓨터 알고리즘을 수정해가면서 작성 하는 방법을 알아낸 덕분이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점이다. 즉, 컴퓨터가 배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컴퓨터 시스템의 학습과 적응 능력이 신경과학의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는 학제간 접근법의 이점이기도 하다.
사례를 또 하나 들자면, AI 혁명의 이론적 토대는 앨런 뉴얼 Allen Newell (컴 퓨터과학자)과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경제학자)이 마련했다. 인간의 의사 결정과 문제 해결 및 그 과정을 수학적으로 모형화하는 법을 알아내기 위 해 둘은 1950~1970년대까지 연구를 수행했다. 덕분에 인간 행동을 이해 하는 데 바탕이 된 연산적 접근법이 나왔다. 이 역시 인지과학이 제공한 학제간 접근법의 이점이다.
- 알고리즘의 영향
인지과학의 영향력을 가장 두드러지게 직접적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우리가 온라인으로 사용하는 많은 제품을 작동시키는 알고리즘을 통하면 된다. 여러 기능이 있지만 구글의 핵심은 검색 알고리즘이다. 사용자한테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세상의 지식을 정리해주는 것이다. 구글이 지 식을 범주화하는 데 바탕이 되는 지식 표현의 기본 개념들은 1970~1980년 대에 엘리노어 로쉬Eleanor Rosch와 존 앤더슨John Anderson 같은 인지과학자들 에 의해 일찍이 탐구되었다. 이 연구는 8장에서 다시 다룬다.)
페이스북을 살펴보자. 이 회사는 사용자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배우는 정교한 알고리즘을 실행시켜서, 사용자가 관심을 많이 두는 내용 을 제시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 알고리즘이 예상하기로 사용자가 페이스 북 네트워크를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줄 내용을 제시한다. 결국, 어떻게 해야 사용자가 페이스북을 더 많이 쓸지 예측하는 셈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경우 모두 알고리즘은 사용자, 즉 여러분한테서 얻 은 정보를 시스템 내의 기존 지식과 연결해 해당 사용자에게 유용하고 적절한 예측을 한다. 그러면 사용자는 더 많은 정보를 시스템에 제공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은 알고리즘을 개선해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한다.
- 뇌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정보를 찾는 행동에 나서도록 함으로써, 예측하고 적응하는 자신의 능력 을 개선한다. 이러한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은 사회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뉴런 네트워크가 인체에 하는 것과 똑같은 역할을 사회에 하 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이러한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기술회사 CEO들과 정치인들이 AI의 위험을 걱정하곤 하는데, 내가 보 기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그들의 두려움의 중심에 놓여 있다. 즉, 뇌가 우리의 행동을 자신의 마음과 몸에 복종하게끔 변화시키듯이 우리가 점점 더 의사 결정을 맡기는 알고리즘이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켜 결국 우리가 알고리즘에 종속될 거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많은 이에게 불안감을 일 으키지만 멈출 순 없어 보인다. 뿌리가 깊고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긴 하 지만, 다른 모든 새로운 시대 내지 패러다임 전환과 마찬가지로 과학적이 고 휴머니즘적인 방향에서 이를 접근하고 이해해나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지과학이 남겨준 유산이며, 정말로 19세기 이후로 줄 곧 진행된 실험심리학의 발전이 남긴 유산이다. 20세기와 21세기에 이룬 성과들은 생물학에서 학습 알고리즘을 탐구해, 고성능의 컴퓨터에서 속적으로 구현하고, 아울러 그 둘의 관계를 인간의 행동에 적용한 결과다. 컴퓨터와 신경과학 분야의 기술 발전 덕분에 그런 개념들이 현대 세계를 주도하는 힘이 되었다. 인간이 아닌 알고리즘과 인공지능한테 지배를 당 할 거라는 두려움이 때때로 필연적으로 뒤따르긴 하지만, 인지과학을 이 해하는 일은 생존과 적응에 필수적이다.
- 항간에 떠도는 말을 여러분도 들었을지 모르지만, 보통 사람이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말은 틀렸다. 여러분은 항상 뇌의 전부를 사용한다. 이 런 신경신화neuromyth2 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슬쩍 봐도 터무니없는 소리다. 이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자. 인간의 대뇌피질은 포유 류의 생리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고도로 진화된 구조에 속한다. 이 토록 복잡한 뇌의 90%가 본래부터 작동 불능이라는 생각은 우습기 그지 없다. 우리는 '당신은 간의 약 10%만 사용한다'거나 '평균적인 사람은 특 정 시간에 피부의 약 15%만 사용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뇌 에 관한 그런 주장을 믿을까? 게다가 뇌 부위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처럼 정말로 뇌의 100% 미만을 사용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종종 그 효과는 분 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작정 뇌의 10%를 사용한다 고 여전히 주장한다.
- 우리가 뇌의 전체 활동의 작은 일부만 의식적으로 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인지적 한계일 뿐 생리적 한계는 아니다. 이 한계는 어쩌면 우리에게 적응상의 이로움을 주려고 진화되었다. 발생하는 모든 뇌 과정을 명시적으로 알아차리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아들이는 감각 정보는 시시때때로 바뀌지만, 그 자세한 내 용 대부분은 우리의 행동이나 생각과 무관하다. 또한 우리는 호흡하기, 서 있기, 지각하기, 일상생활 하기에 필요한 지속적인 뇌 활동을 대체로 알아 차리지 못한다. 당연히 우리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따라서 어 디에 주의를 많이 기울이고 적게 기울여야 할지, 그리고 무슨 일을 무의식 적이고 자동적으로 행할지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이 내용은 4장 에서 훨씬 더 자세히 다루겠다. 요점만 말하자면, 우리는 항상 뇌의 전부 를 사용하긴 하지만, 인지 체계가 진화해온 방식 때문에 그 활동의 작은 부분만 인식한다. 이 한계 내지 병목이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을 지배하는 가장 근본적인 측면 중 하나다.
- 해마의 역할 및 해마가 기억에 하는 역할을 발견한 이야기는 인지심리 학의 위대한 업적에 속한다. 하지만 내가 다루고 싶은 다른 피질 하부 구 조인 편도체(amygdala)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 해마와 더불어 편도체는 때 로는 변연계limbic system라고 알려진, 피질 하부 구조의 한 집합체의 일부다. 변연계에는 척추동물 뇌에 흔하고 많은 포유류에 걸쳐 꽤 비슷한 여러 구 조가 포함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변연계에는 해마와 편도체뿐만 아니라 시상thalamus, 시상하부hypothalamus, 유두체 mammillary body 등이 들어 있다. 이 계를 구성하는 구조들에 관한 일치된 합의는 없다.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이 용어를 사용하길 꺼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구조들은 전부 협력해 학 습, 기억의 목표를 달성하며 편도체의 경우에는 두려움과 감정 조절을 맡는다.
- 가장 특이한 신경심리학 사례 중 하나가 카그라스 망상capgras delusion이다. '사기꾼 망상'이라고도 하는 카그라스 망상 은 매우 드문 증후군으로서, 이 망상 환자는 배우자나 부모 등의 친한 사 람을 알아보긴 하지만 그들이 진짜라고 여기지 않는다. 즉, 환자는 자기가 아는 사람이 똑같은 모습임을 인정하고 어렵지 않게 알아본다. 시각적 장 애도 없고 뇌의 시각 영역에 전혀 손상이 없다. 다만 자기 눈을 믿지 못한 다. 그 결과 망상에 빠져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다른 누군가가 차 지해서 그 사람인 척한다고 확신한다.
- 대다수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볼 때와 낯선 사람의 사진을 볼 때 와의 상대적 차이가 GSR을 통해 드러난다. 라마찬드란 박사가 데이비드 한테서 알고 싶은 바는 그의 뇌와 몸이 (비록 그가 반대 주장을 하긴 하지만) 그 가 자기 부모를 부모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를 내놓는지 여부였다.
데이비드한테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낯선 사람과 낯익은 사람 간에 GSR이 별로 차이 나지 않았다. 즉, 뇌가 낯익은 얼굴에 대해 적절한 감정 반응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데이비드의 뇌는 어머니나 어머 니 사진을 사실적이고 지적인 수준에서는 진짜 모습이라고 인식할 수 있 지만, 적절한 감정 반응을 나타내지는 않는 듯했다. 시각피질에서 얼굴을 인식하는 데 특화된 영역(이른바 방추형얼굴영역 fusiform face area, FFA)에서 측두엽 까지 이어진 경로가 손상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데이비드는 부모를 알 아볼 수 있었고, 부모가 누구인지 대체로 알았다. 하지만 얼굴인식 영역을 편도체 내의 감정 중추와 연결해주는 경로(그림 3.2)가 손상되었기에, 감정 적 연결이 끊어졌고 낯선 얼굴과 낯익은 얼굴 사이의 감정 반응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달리 말해서, 그의 뇌는 어머니를 알아차리긴 했지만 그 인 식을 올바른 감정과 연결하지 못했다. 다음 말에 드러나듯이, 데이비드는 불편한 현실에 대처해야 했다. “어머니처럼 보이긴 하지만, 내 어머니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런 끊김 때문에 데이비드의 인지 시스템은 이 갈등 을 해소하려고 망상을 만들어냈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또한 단지 목소리 만으로도 검사를 했다. 이번에는 부모의 목소리를 듣자 데이비드의 뇌가 올바르게 반응했기에, 적절한 감정 반응이 나타났다. 여기서 갈등이 없었 던 까닭은 청각피질과 연결된 경로가 손상되지 않아서였다.
- 뇌의 혈액 흐름을 측정하기
연구 방법으로서 EEG/ERP의 단점을 하나 들자면, 위치 면에서 별로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ERP는 두피상의 영역들에서 측정을 할 수 있지 만, 뇌의 구조에 관한 정보나 뇌 속의 활동에 관한 정보를 많이 제공하지 는 못한다. EEG/ERP는 시간 해상도temporal resolution는 매우 좋지만 공간 해 상도spatial resolution는 보통이다. 하지만 뇌의 혈액 흐름을 측정하는 기법은 훨씬 더 정확할 수 있다. 가장 흔한 방법은 기능적functional 자기공명영상 촬영술MRI인 fMRI다.
뉴런은 에너지를 저장해두지 않으므로, 발화할 때 포도당과 산소를 재 충전해야 한다. 이를 일정하게 공급하는 일이 순환계의 임무다. 산소가 풍 부한 피가 들어오고 산소가 빠진 혈액이 나간다. 1990년대 초 오가와 이지라는 과학자는 산소가 들어간 피와 산소가 빠진 피는 자기적 성질이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Ogawa, Lee, Kay&Tank, 1990). 이 차이는 강력한 전자석으로 측정할 수 있다. 이 측정치를 가리켜 BOLD Blood Oxygen Level Dependent(혈액산소수준의존) 신호라고 한다. 어떤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비교적 더 활동적이어서 산소가 더 많이 필요한 뇌 영역은 비교적 덜 활동적인 다른 영역과는 BOLD 신호가 다르다. fMRI 연구의 피실험자는 큰 전자석 안에 누워 있으면서, 제시된 영상을 보거나 어떤 과제를 수행한 다. 이때 전자석이 여러 영역에서의 BOLD 신호를 측정하고, 나중에 이 신 호들을 분석해 뇌의 어느 영역이 해당 과제 수행 동안 가장 크게 활성화되 었는지 알아낸다.
앞서 말했듯이 뇌 전체는 언제나 활동하고 있는데, fMRI 연구 동안에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인지 과제를 수행 중일 때, 여러분은 그 과제를 생각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온갖 생각도 함께 하고 있다. 이 체험이 언제 끝나지? 이 자석 아주 크네! 이게 정말로 안전할까? 내 휴대전화 어디 뒀더라? 여기 누워 있으니 등이 아프네' 등등. 이렇게 온갖 활동이 일어나는 데, 어떻게 연구자는 해당 과제에 대한 BOLD 신호를 구분해낼까?
가장 흔한 방법은 '빼기 기법'이다. 이때 참가자는 기본적으로 두 번 뇌 영상을 촬영한다. 가령 첫 번째에는 뇌 촬영 도중에 특별히 무언가를 생각 하라는 지시를 받지 않지만, 두 번째에는 뇌 촬영 도중에 테니스 라켓을 흔드는 모습을 상상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두 경우 모두 한 가지 조건 외 에는 거의 동일하다. 즉, 한 번은 그런 상상을 하고 또 한 번은 상상을 하 지 않는다. 테니스 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유일한 차이다. 그다음 단 계는 고성능의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테니스 치는 모습을 상상한 결 과에서 테니스 치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은 결과를 뺀다. 이렇게 해서 나온 영상에는 피실험자가 테니스를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 영역이 비교적 더 활성화되었는지가 드러난다. 그런데 이 영역은 두정엽과 전두엽의 감각운동 영역 내의 부위로서, 피실험자가 실제로 테니스를 친다면 활성화될 영역과 동일하다.
fMRI를 이용한 연구는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얼굴이나 음악을 처리하 거나 운동 행동을 계획하고 복잡한 결정을 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에 관한 통찰을 제공한다. 뇌의 기능적 구조(가령, 어느 영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해 현재 알려진 많은 지식은 fMRI에 의해 발견되거나 입증되었다.
- 착각에 관한 연구
보이는 대로가 늘 사실은 아님을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감각적 및 지 각적 착각을 살펴보는 것이다. '착각illusion'이란 단어는 라틴어에서 비롯해 중세 영어로 이어졌는데, 그 어원은 '속이다'라는 뜻이다. 우리는 대체로 착각을 속임수나 기만이라고 여긴다. 마술사illusionist는 관중을 속여서 실제 로 관중 앞에 있는 것과 다른 무언가를 본다고 여기게끔 만드는 공연자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종종 감각적 착각이란 감각계가 우리를 속이려는 시도 라고 여긴다. 더 적절한 설명을 하자면, 착각이란 감각 입력을 활성화시키 는 부분과 뇌의 나머지 부분이 감각 입력을 해석하는 방식 사이의 의사소 통 단절 때문에 생기는 속임수 현상이다. 감각과 지식 사이의 충돌을 해소 하는 과정에서 지식의 편을 들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따라서 착각은 실제로는 기만이 아니라, 이전의 증거를 선호해서 종종 자기도 모르게 내리는 무의식적인 의사결정의 결과다. 착각을 통해 엿볼 수 있듯이, 우리 뇌와 마음은 우리가 보는 것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예측 을 하려고 애쓴다. 대체로 이 예측은 우리 앞에 있는 감각 정보와 일치하는데, 이때 우리는 그런 과정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일치하지 않을 때 착각을 경험한다.
착각은 여러 가지 상이한 양상으로 생긴다. 청각적 착각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무언가를 듣는다고 지각할 수 있다. 가령, 여러분의 뇌는 누락된 말소리를 채워서 완전한 문장을 구성한다. 이는 실 제로 없었던 것을 지각한다는 의미에서 착각이긴 하지만, 유용한 예측이 기도 해서 실제로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을 때 잘못 알아듣지 않도록 해 준다. 촉각적 착각도 있는데, 이때 여러분은 실제로는 없는 무언가와 닿는 다고 지각할 수 있다. 가령, 여러분의 휴대전화에서 '유령 진동이 발생할 지 모르는데, 이는 알림을 받는 상황을 상상할 때 휴대전화에서 진동을 느 끼는 현상이다. 이런 것들이 전부 착각의 예지만, 착각의 발생 과정은 저 마다 다르다. 어떤 착각은 무시하기 쉬운 반면에 어떤 착각은 무시하기 어 렵다. 우선 아주 단순한 시각적 착각(착시)부터 살펴보자. 착시는 분명 여 러분이 감각하는 것과 지각하는 것 사이의 충돌 사례로서, 무시하기가 매 우 어렵다.
- 아마도 우리는 사물을 2가지 방식으로 인식한다. 첫째로 사물을 이름과 정체성으로 인식한다. 무언가를 볼 때 그것의 이름을 댈 수 있다. 달리 말 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또한 우리는 사물에 반응함으로써 그리고 그 사물에 맞게 행동함으로써 사물을 인식하기도 한다. 밝혀지기로, 사물을 인식하는 이 2가지 방법에 대응하는 2가지 시각 경로가 존재한다. 이 두 시각 처리 흐름은 일차시각 영역에서 동일한 시각 입력을 수집한 다음에, 나란한 두 방향으로 나누어진다. 한쪽 흐름을 가리켜 등쪽dorsal 흐름 또는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 흐름이라고 하며, 이는 시각피질에서 운동피질까 지의 영역들을 활성화시키는 경로다. 이 등쪽 흐름 덕분에 여러분은 시각 적 환경에 반응해 적절한 운동 행위를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빠르게, 또한 무의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무언가 를 던지면, 여러분은 그 사물의 이름을 대지 않고서도 손을 뻗어서 막을 수 있다. 여러분이 커피잔을 잡을 때, 등쪽 흐름이 여러분의 손을 안내해 적절한 방식으로 잡도록 해준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무거운 머그잔이나 부서지기 쉬운 페이스트리를 잡는 힘을 조절할 수 있다. 사물이 달라지면, 사물을 쥐는 힘도 달라진다.
다른 시각적 흐름을 가리켜 배쪽ventral 흐름, 또는 '무엇 시스템'이라 고 한다. 이 배쪽 흐름은 일차시각피질에서 활성화된 정보를 피질의 측두 엽 영역으로 보낸다. 이곳은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이다. 여러분이 어떤 단 어를 대하면 그것을 개념과 연결시킨다. 이 두 흐름은 대체로 함께 작동 한다. 사물 인식은 거의 언제나 시각적 입력을 운동 행위 및 개념적 지식 과 조화시키면서 일어난다. 이 두 흐름은 서로 의사소통도 한다. 여러분이 '테니스'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뇌의 언어 영역에서 일어난 활성화가 등쪽 흐름에까지 퍼져서 일부 운동 영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반대 방향으 로도 마찬가지다.
신경과학자들이 입증하기로, 이 두 흐름은 또한 독자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가령 어떤 이가 뇌졸중으로 인해 등쪽 경로에 손상을 입으면, 어떤 사물의 이름을 댈 수는 있더라도 그걸 적절하게 손에 쥐기는 어려울 것이 다. 이 경로는 배쪽 경로와는 분리될 수 있다. 만약 어떤 이가 배쪽 경로를 따라 손상을 입으면, 시각적으로 제시된 사물의 이름을 댈 수는 없어도 대 체로 그 사물을 올바르게 쥘 수 있다. 이 상태를 가리켜 시각인식불능visual object agnosia이라고 한다. 어떤 사물을 보고서도 이름을 댈 수 없지만 그 사 물에 대해 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일단 사물을 만지고 나면 이름을 댈 수 있게 된다. 시각인식불능에 걸린 사람은 커피잔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커피잔이라고 이름을 댈 수 없다. 하지만 그 속에 커피가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알고 있으며, 어떻게 손을 뻗을지도 안 다. 일단 그걸 잡고 나면, 사물의 감촉으로 인한 피드백의 결과로 커피잔 이라는 이름도 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시각계는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환경과 상호작 용을 할 수 있도록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되었다. 아주 복잡한 시스템인 까 닭에 뇌졸중과 같은 꽤 심각한 충격이 가해져도, 전체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고 시스템의 일부만 손상된다. 뇌졸중으로 인한 부분적 손상은 위에서 설명한 종류의 일반적인 시각 장애를 일으키지만, 기본 시스템에 대한 다 른 종류의 손상과 변화는 훨씬 더 흥미진진한 변화를 일으킨다. 일부 사례 들은 매우 구체적인데, 그 각각은 시각계의 전체적인 인지 구조를 이해해 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심지어 이 구조는 시각계로부터 유입된 주요 입력 없이도 종종 작동한다.
- 우리의 감각을 믿어야 하는 이유
지금껏 살펴본 여러 사례에서처럼, 감각 입력은 뇌에 불완전하거나 심지 어 부정확한 외부 세계의 요약 정보를 제공한다. 서두에서 논의했던 착시 의 경우, 우리는 무언가에 속은 느낌이 들지 모른다. 보이는 것이 거기에 실제로 있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맹시나 반향정위처럼 처리할 충분 한 시각적 정보가 없다면 뇌는 우회로를 개발한다. 우리 뇌가 실제로 경험 하는 일은 추상이고 재현이다. 객관적 경험과 주관적 경험의 혼합이다.
우리는 단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실제 모습과 뇌가 보아 야 할 모습의 혼합으로서 세계를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감각을 믿 어야 할까? 지각을 믿어야 할까? 물론이다. 분명 가끔 지각 및 인식 오류 가 생기기는 한다. 하지만 자주 생기지는 않으며, 대체로 치러야 할 대가 가 작다. 우리의 뇌가 그런 실수를 하는 까닭은 지각이 가정과 예측, 세계 에 대해 교육받은 추측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교육받은 추측이야말로 지각 시스템이 고안된 쓸모다. 이 추측 덕분에 우리는 빠르게 생각하고 행 동할 수 있으며, 세계를 우리의 필요대로 지각할 수 있다. 지각은 우리의 행동과 목표, 욕구에 이바지한다. 지각은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지각을 믿는다. 지각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다.
- 이미지와 반응이 동일한 주의 풀에서 나올 때 사람들은 상이한 주의 풀에서 나올 때보다 더 느렸고 실수를 더 많이 저질렀다. 시 각화와 개념화는 동일한 뉴런 반응을 놓고서 서로 경쟁하는 듯하다. 동일 한 풀일 경우 그 풀을 더 빠르게 소모시킬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여러분은 걸으면서 말하거나, 대화를 하면서 운전을 하거 나, 비디오를 보면서 저녁 식사를 요리할 수 있다. 각 경우에 2가지 행동의 지각적 및 주의적 요구 사항이 서로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그 런 까닭에 여러분은 2가지 대화에 주의를 잘 기울이기 어렵고, 글을 쓰려 고 하면서 가사가 있는 음악을 듣는 데 주의를 기울이기 어렵다.
어느 시점까지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지만, 주의 자원을 공유해야 할 수록 멀티태스킹을 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 멀티태스킹이란 개념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우리 모두는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다고 여 기는데, 그럴 수 있는 까닭은 우리의 인지 시스템이 진화해온 방식 덕분이 다. 하지만 브룩스의 연구에서 드러났듯이, 멀티태스킹에는 비용이 뒤따 르며 그 비용은 여러분이 멀티태스킹을 하려는 일들이 서로 비슷할수록 커진다.
- 여러분은 휴대전화를 각별히 생각한다기보다 그저 가끔씩 습관적으로 다른 것보다 더 자주 눈길을 주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습관만으로도 주의 대상을 바 꾸며, 주의 전환에는 늘 비용이 든다. 휴대전화를 슬쩍 쳐다보는 것만으로 도 마음이 과제에서 벗어난다. 기억해야 할 일련의 문자 중에서 하나를 잊 어버린다. 레이븐 지능 검사에서 중요한 정보 하나를 잊게 하거나 지속 주의 검사에서 몇 초를 허비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훨씬 더 심각하다. 운전 중에 애써 문자를 보내지 않고 이메일과 SNS 사용을 철저히 피하더라도, 여전히 휴대전화를 계기 반 위에 놓아둘 수 있다. 어쩌면 운전 중에 휴대전화를 이용해 스트리밍으로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들을 수도 있다.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슬쩍 쳐 다보기만 해도 잠시 동안 도로에서 눈길을 거두게 되는데, 이때 마찬가지 로 보행자가 휴대전화를 슬쩍 쳐다보느라 교차로에 들어온다면...
이처럼 내재적인 위험이 있는데도, 도대체 스마트폰이 스마트한 발상 인지 의문이 든다. 물론 나는 그렇다고 본다. 위 연구의 의미는 단지 휴대 전화도 다른 주의 방해물처럼 비용이 든다는 것뿐이다. 이 비용이 생기는 원인은 딱히 휴대전화라기보다, 그저 우리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의 결과 일 뿐이다. 우리가 논의했던 다른 많은 주제와 마찬가지로 마음은 적응에 능하며, 마음 덕분에 우리는 창조하고 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며 사고한 다. 이런 일을 잘하게 해주는 인지구조가 때로는 우리를 이기고 실수를 저 지르게 한다. 그 실수가 바로 인지 활동의 비용인 셈이다. 종종 우리는 특 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실수를 계속 저지르고 만다. 많은 사람이 휴대 전화로 그렇게 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그런 실수를 멈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장치의 많은 활용 사례에도 나는 여전히 스마트폰이 정말로 얼마나 유용한지 의문이 든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글을 쓰거나 일을 할 때 종종
- 휴대전화는 많은 사람과 애증의 관계다. 내가 오래전 모델인 아이폰 4S 를 아직 갖고 있는 이유를 한두 개 들자면, 느리고 이메일이나 SNS 앱이 깔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캠핑이나 하이킹을 갈 때 그걸 들고 가는데, 그 러면 날씨와 지도, 통화와 문자만 이용하고 다른 건 쓰지 않는다. 주의가 좀 덜 산만해진다. '진짜' 휴대전화 때문에 산만해지지 않도록 두 번째 휴 대전화가 필요하다니, 이상하긴 하다. 우리 중 다수는 한 달에 수백 시간 을 스마트폰을 통한 데이터 사용에 쓰면서 동시에 그 장치 사용을 피하기 위한 전략도 개발해야 한다. 돈을 들여가며 무언가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피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사실이야말로 현대 생활의 이상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 지각에서의 결함처럼 멀티태스킹도 그런 속성상 정보를 얼마간 잃게 된다. 달리 말해서, 우리의 지각 및 주의 시스템은 줄곧 꾸준히 쏟아져 들어오는 세상의 정보를 일부 놓침으로써, 오히려 그것을 효율적이고 유용하게 다루는 전략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이처럼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보 를 잃는다는 사실에는 장점도 있다. 재구성된 세계에서 삶으로써 우리는 유익한 교환trade-off을 제공받는다. 가령, 어떤 시각적 장면을 볼 때 기존의 지식을 이용해 그 장면의 세부 사항을 채울 수 있다. 기존 지식을 떠올려 서 사용할 때, 기본적으로 우리는 예측과 의사결정에 가장 쓸모 있을 정보 만을 지각하고 새로 처리한다. 우리가 지각하는 내용과 기존의 기억 사이 의 관련성을 강화해 둘 사이의 연결을 굳건하게 만든다. 그러면 정보의 일 부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어떤 것을 알아차리는 데 실패한다는 뜻일까? 물 론 그렇긴 하지만, 그런 일시적 실패는 우리가 진화시킨 효율성의 대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보게 되리라고 예상했던 세부 사항의 일부를 놓치기' 와 '새롭고 참신하고 가치 있을지 모르는 것들을 처리하고 주의를 기울이 기' 사이의 교환을 진화시켰고 이에 적응해왔다.
- 이 주장에 깃든 역설을 여러분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우리가 세부 사항을 채우기 위해 지식을 사용한다면, 그 지식과 정보는 어디에서 왔단 말인 가? 물론 그건 기억의 일부다. 우리는 기존의 지식과 기억을 이용해, 지각 을 통해 얻은(하지만 어떤 장면을 보거나 무슨 소리를 들을 때 완전히 처리하지는 못할 수 있는) 많은 세부 사항을 채운다. 이는 우리 뇌와 마음 그리고 인지 과정 전반에 효과적이고 이롭다. 익숙한 장면 속의 모든 것을 항상 지각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즉, 우리는 눈앞에 있는 것과 기억 속에 있는 것이 혼합된 무언가를 보는 셈이다. 여러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보거나 듣는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 문제가 생긴다. 세부 사항을 채우려고 기억을 이용할 때 여러분은 거기에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내용을 추론하는데, 그렇게 채워지 는 내용은 대체로 실제 있는 내용이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이는 확률적 과정이다. 여러분의 뇌는 여러분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추측 한다. 대체로 제대로 작동하지만,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때로는 잘못된 추 측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여러분은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좋은 추측 과 나쁜 추측(오류)이 똑같은 장소에서 나온다. 둘 다 기억이 당면 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부 사항을 채우려다가 벌어지는 일이다.
- 우리는 기억이란 과거의 기록이라고, 즉 대체로 과거를 향한 것이라고 여 긴다. 하지만 기억의 가장 놀라운 점을 말하자면, 기억은 실제로 과거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기억은 미래에 관한 것이다. 기억은 현재 우리가 무 엇을 하는지, 그리고 미래에 무엇을 할지 알기 위해 우리가 이용하는 과거 의 일이다. 기억은 과거의 겉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기능도 있다. 기능적으로 볼 때, 과거를 있는 그대로 재생시키기만 하는 기억 시스템은 별로 쓸모가 없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까닭은 현재 를 이해하고 미래의 결과와 사건을 예측하기 위해서다.
- 기억이란 서류 보관함 내지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와 비슷하다. 어떤 경 험이 있으면, 그 경험을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기억에 저장 해둔다. 하지만 그건 결코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 는 모든 것은 기억을 통해서 경험된다. 이는 심지어 직접적인 관찰에도 해 당된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지각하자마자 여러분 앞에 있는 그 무언가는 이미 달라졌기 때문이다. 빛 에너지가 여러분의 눈에서 일차시각피질을 거 쳐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측두엽까지 전달되는 데는 몇 밀리초가 걸린다. 어느 시점에서 시각적으로 지각하는 것은 여러분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물 이 아니라 몇 밀리초 전에 여러분 앞에 있었던 사물에 대한 재구성된 기억 이다. 듣기도 마찬가지다. 소리가 누군가의 입술을 떠나 여러분의 귀에 도 달할 때 그 소리는 이미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소리에 대한 여러분의 기억뿐이다. 그리고 앞서 논의했듯이 여러분이 지 각하는 내용은 실제로 세상에 있는 것과 (여러분의 기억과 지식을 바탕으로) 여 러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의 혼합이다. 지각과 기억의 신경학적 과정들은 겹친다. 기억은 재구성된 지각의 한 형태다. 그리고 지각은 기억에 의해 향상되기 때문에, 지각 또한 재구성된 지각이라고 볼 수 있다.
객관적 현실을 의심하기라는 암초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기 전에, 우 선 기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자. 기억이란 현재 발생하는 뉴런 활성화 패 턴이 이전에 발생했던 패턴과 비슷함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인식이 공연 하거나 명시적이지 않아도 되며,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사실, 그리고 여러분의 뇌가 현재 활성화 패턴과 이전의 활성 화 패턴 사이의 대응을 비슷한 현상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게 바로 기억이다.
- 기억과 사고
어느 정도까지는 사고 과정 자체도 기억을 이용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 다. 무언가를 배울 때 우리는 과거에 일어났던 상황이나 사건과 현재 일어 나고 있는 상황이나 사건 사이의 유사성을 더 잘 인식한다. 배움은 여러분 이 아는 것(기억)과 모르는 것 사이의 관련성을 강화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전의 증거를 이용해 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에 관해 판단 한다. 우리는 아는 것과 안다고 여기는 것에 따라 행동한다. 사고는 결정 하고 계획하고 판단하기 위해 우리의 기억을 이용하는 일이다.
사고를 위해 우리가 기억을 이용하는 중요한 방법 한 가지는 새로운 상 황의 위험성 판단이다. 그런 위험성 판단을 통해서 우리는 행동을 계획한 다. 우리는 늘 위험한 상황과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위험 성의 본질적 측면 중 하나는 불확실성이다. 만약 우리가 한 상황과 처지에 익숙하다면, 그건 우리가 이전의 비슷한 상황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 기억과 익숙한 느낌을 이용해 새로운 상황과 관련된 불 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이전에 겪었기 때문에 그 위 험성과 생길 수 있는 결과를 알아차릴 수 있다. 위험성이나 상황 또는 결 과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데도 관련된 기억이 전혀 없어서 위험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다면, 부적절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면 결 국 위험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불확실성을 줄이려고 하다가 그릇된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가끔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 처할 때 과 거에 겪었던 비슷한 상황을 기억하지만, 그 기억은 행동의 바탕으로 삼기 에 옳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럴 경우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과거를 이 용하려는 시도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가용성 휴리스틱처럼 대표성 휴리스틱도 양날의 검이다. 대표성 휴리스 틱은 빠르고 유용한 판단을 내리는 데, 그리고 결론에 도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평가와 판단은 우리의 기억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 기억은 우 리 자신의 경험의 한 기능이다. 우리가 모든 정보를 확신하지 못할 때, 기억 과 경험에 기대는 것보다 더 나은 판단이나 의사결정 방법이 있을까?
대체로 기억에서 비롯된 이 빠른 판단과 결정은 옳다. 적어도 우리가 살아가기엔 충분히 옳다. 하지만 양날의 검의 반대편 날을 규정할 문제가 최소한 2가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에서 밝혀 지기로, 우리는 올바른 확률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와 상충할 때조차 자신 의 기억에 기댄다. 우리는 사실 대신에 직감을 믿는 편이다. 두 번째 문제 는 훨씬 더 골칫거리다. 기억은 종종 틀리고 부정확하고 왜곡되어 있고 불 완전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외부의 객관적인 정보보다 자신의 기억을 믿 을 뿐만 아니라, 매우 신뢰하기 어려운 출처를 믿는다.
- 오귀인은 어떤 이가 사실을 옳게 기억하긴 하지만, 올바른 출처를 기억 할 수 없을 때 생기는 오류다. 가령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준다면, 설령 사실이 아니라도 여러분은 나중에 이야기 내용을 쉽게 떠 올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다. 정치와 언론 보도에서 늘 접하는 사례다. 한 정치 지도자가 인터뷰에서 허위(거짓말)를 말했다고 하자. 걸핏하면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면 언론 매체가 정치 지도자가 거짓말로 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 이야기는 다시 퍼지고 뉴스에서 수없이 공유된다. 그 결과 거 짓말이 반복된다. 반복된 거짓말은 오귀인의 비옥한 토양이다. 왜일까? 어 쩌면 반복적으로 노출된 사실은 더 잘 이용된다. 여러분이 거짓말에 관한 어떤 내용을 기억하고 원 출처(가령, 그 내용이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를 기억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거짓말의 내용을 자세히 기억하면서도 출처는 잘못 알게 된다. 그러면 결국 자신의 기억을 신뢰해 거짓말을 사실이라고 믿고 만다.
많은 정치인과 지도자는 거짓말을 내놓고 언론이 다루게 함으로써 이야 기를 조작해내고 거짓 정보를 퍼뜨릴 수 있다. 터무니없는 내용일수록 더 좋은데, 많은 언론에서 다룰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전직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분야의 고수다. 그는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틀린 주장을 많이 해서 널리 퍼뜨리게 하는 재주가 있다.
- 7가지 죄 중에서 그다음 번째인 피암시성은 오귀인과 기억 속의 정보 를 떠올리긴 하지만 틀리게 떠올리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기억이 피암시성을 갖는다는 말은 과거 사건에 대한 기억을 현재의 설명을 바탕 으로 종종 갱신한다는 뜻이다. 여러분이 한 사건을 기억한다고 치자. 가령 앞에서 나왔던 내 이야기, 즉 부모의 차 유리창을 깼던 사건을 기억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여러분이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도중에 누군가가 새로운 내용을 암시해준다. 이렇게 암시된 새로운 내용이 이제 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암시는 꼭 남이 해주지 않아도 된다.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새로 운 해석을 암시해줄 수 있고 그 내용이 또한 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다. 포 드 브롱코의 백미러를 부수는 내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나는 원래 기억에 부호화된 모든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너무 빠르게 끝나버린 사건이었 기 때문이다. 그 사건을 타당하게 만들려고 시도하면서 나는 몇 가지 있을 법한 해석을 내놓았고, 그 내용이 기억의 일부가 되었다. 기억은 변하기 쉽 고 조정되기 쉽고 이리저리 바뀌기 쉽다. 스스로를 속이기는 어렵지 않다.
- 기본적인 기억 기능들
기억의 기본적 기능은 여러 가지지만, 일차적인 기능은 여러분 바로 앞에 있는 것에 단지 반응하기를 넘어서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기억은 여러분이 무언가를 배우고 과거 경험으로부터 일반화하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정확히 그렇게 할까? 기억이 수행하는 3가지 기본 기능인 부호화encoding와 저장storage, 인출retrieval을 정의해보자. 부호화는 무 언가를 기억 속에 넣는 과정이다. 부호화는 뇌가 여러분이 지각하는 것의 형태를 변경해서 다른 부호 속에 집어넣는다는 뜻이다. 이 부호화 과정은 지각의 재구성이다. 이 과정의 속성상 기억은 지각과 강한 연관성이 있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부호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원래 의 지각 경험을 최대한 다시 활성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 는 그것이야말로 뇌가 하는 일이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지각하면, 그게 여 러분의 뇌를 특정한 방식으로 활성화시킨다. 부호화를 통해 여러분은 그 활성화를 나중에 사용하기 위해 저장하고 인출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유지 하려고 한다.
두 번째 기본적인 기능 또는 작용은 저장이다. 우리는 기억을 사용해, 위에서처럼 지각되고 부호화된 정보를 저장한다. 기억은 각각의 기억별 로 물리적인 장소가 존재하지 않기에, 기억의 저장 시스템은 옷장이나 컴 퓨터의 파일 시스템과는 다르다. 오히려 기억은 뉴런들 사이의 연결 형태로 저장되며 정보는 뇌의 상이한 여러 영역에 걸쳐서 분산된다. 우리는 상이한 시간별로 무언가를 저장해야 한다. 어떤 정보는 몇 초(또는 심지어 그 미만) 동안만 저장되지만, 또 어떤 경우 우리는 동일한 기억을 수년이나 수 십 년 동안 저장하고 재활성화시키기도 한다.
세 번째 기능은 인출이다. 인출은 기억을 이용한다. 기억은 명시적인 떠 올리기의 형태('나는 이 사실을 기억한다거나 이전의 경험이 장래의 행동 방 식에 영향을 미치는 묵시적 형태로 인출될 수 있다. 인출은 지각하는 장면 의 세부 사항을 채우는 형태로 일어날 수 있다(5장에서 논의한 내용). 또는 정 신적인 시간 여행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우리는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가령 첫 직장 구하기, 첫 데이트, 자녀의 출생 또는 심지어 지난번에 가게에 갔던 일과 같은 평범한 사건 등 이 그런 예다.
- 부호화, 저장, 인출이 기억이 하는 일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이 기능들에 영향을 미치는 상이한 상황이 많다. 그 결과 우리는 상이 한 기억 시스템을 갖게 되는 듯한데, 그중 일부는 부호화에 긴밀히 관련되 어 있고 또 다른 일부는 기억이 저장되고 인출되는 방식에 더 긴밀히 관련 되어 있다. 우리의 모든 기억이 한 장소(뇌) 안에 있긴 하지만, 기억에는 여 러 종류가 있고 기억 시스템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 해마는 측두엽 피질 하부 영역에 위치해 있다. 해마는 감각기관에서 오는 지각 입력들을 주의 및 기억과 연결하는 시스템의 일부 다. 해마는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고 기억을 이용해 세계와 상호작용하도 록 돕는다. 그러기 위해 뇌에서 무엇이 처리되고 어느 부위에서 처리되는 지에 관한 정보를 취합한다. 그러면 나중에 활성화시킬 수 있게끔 그 정보 를 기록할 수 있다.
해마가 정확히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는 분명 아직도 과학적 논쟁거리 지만, 조엘 보스Joel Voss와 닐 코언 Neal Cohen이 내놓은 이론에 따르면(Voss, Bridge, Cohen & Walker, 2017) 해마는 위치를 부호화하는 뇌 영역들 및 편도 체에 연결되고 아울러 거기서 나오는 뉴런 연결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이 조사해보니, 여러 연구에서 눈 운동과 해마의 활동 사이에는 매우 강한 관 련성이 드러났다. 해마는 운동 제어의 수준에서 눈의 움직임을 조정하는 데 직접 관여하진 않지만 대신에 우리가 무엇을, 그리고 어디를 보는지 알 기 위해 기억을 사용하는 방식에 관여하는 듯하다. 해마는 지식을 지각과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도 잇는 뇌 속의 뉴런 연결을 활성화 및 재활성화시킬 수 있는 듯 보인다. 특히 우리가 보는 대상에 맞게 조정된다. 이 연구에 따 르면, 우리는 세계를 지각할 때 해마를 통해 지속적으로 기억을 사용하는 듯하다.
- 작업기억은 그렇게 하려고 진화된 듯하다. 작업기억은 지각과 긴밀히 관련된 정보를 단기간 붙들어두는 영역으로서 의식적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지각과 지식 간의 중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업기억 덕분에 많은 인지 및 사고 과정이 이루어진다.
작업기억은 모든 종류의 능동적 기억을 다룬다. 몇 가지 예를 더 살펴 보자. 이 책의 이 구절을 읽는 데 필요한 정신 활동을 살펴보자. 각 단어와 문구를 읽을 때, 여러분이 읽고 있는 내용의 의미를 추출하고 내용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모형을 세우는 정신적 표상이 활성화된다. 이렇게 하는 데 작업기억이 사용된다. 작업기억은 여러분이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기도 전에 먼저 정보를 저장해놓는데, 그래야지 정신적 모형을 세우는 데 필요 한 개념들을 재빠르게 활성화시키고 그것들에 접근할 수 있다. 독서는 시 각적 과정이므로 듣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겪지 않는다. 듣자마자 사라 지는 입말(구어)과 달리 적힌 단어들은 페이지에 그대로 있다. 그런데 독서 는 우리 대다수에게 시각적 과정임에도, 여전히 입말에 대해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들을 활성화시킨다. 여러분이 글을 읽을 때도 여전히 단어들은 작업기억 시스템을 통과한다. 속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 개념들을 활성화 시키기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신호(시각적 입력 또는 소리)를 충분히 오래 붙들 어두는 데 도움이 된다.
작업기억은 단지 언어에만 사용되지 않는다. 동영상이나 사진 또는 여 러분 앞에 있는 장면을 볼 때 여러분이 지각하는 이미지들은 다른 개념들 과 연결되어 한 개념을 형성하기 전까지 작업기억에서 활발하게 유지될 수 있다. 수학이나 물리와 같은 문제를 풀 때, 여러분은 다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즉, 여러 개념을 한꺼번에 불러내고서 그것들을 한데 합쳐야 전 체 문제가 풀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러분은 속으로 말할 수도 있고, 삼 차원 물체를 상상할 수도 있고, 그게 어떻게 움직일지 또는 여러 상이한 각도에서 어떻게 보일지 상상할 수도 있다. 상상 속에서 루빅스 큐브 Rubik's cube를 풀 수 있는가? 그게 작업기억이 하는 일이다. 모두를 항상 목록에 적어 기록하지 않고서도 여러 축구선수가 축구장에서 서는 위치를 계속 추적할 수 있는가? 역시 작업기억이 하는 일이다.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시각적 대상들을 지각하고 식별할 수 있는가? 이 역시 작업기억이 하는 일이다.
분명히 작업기억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지각하고 이해하기 위해 경험을 재구성하는 데 큰 역 할을 한다.
- 전환 및 억제와 같은 집행 기능이 고차원 사고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 로 보여서인지, 많은 연구자가 집행 기능은 작업기억의 으뜸가는 지적 구 성 요소라고 제안했다(Kane et al., 2004). 집행 기능은 범용 작업기억 시스템 으로서 활약하며 심지어 지능 일반의 으뜸가는 결정 요소인 듯 보인다. 달 리 말해서, 음운루프와 시공간 잡기장과 같은 낮은 수준의 구성 요소들은 집행 기능만큼 고차원 사고에 기여하지는 못할 것이다. 집행 기능의 가용 성과 용량이 사고 및 추론 능력의 핵심 결정 요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개 인차의 관점에서 볼 때, 뛰어난 집행 기능 가용성을 지닌 사람은 학교 성 적과 사고력 검사처럼 지적 능력과 연관된 재능과 검사에서 더 나은 성적 을 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뛰어난 집행 기능 능력은 성과 달성과 연관 이 있다.
- 기억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적어도 다음 2가지다. 바로 지속시간(단기기억, 중기기억, 장기기억)과 내용물(사건, 사실, 운동 행위, 말, 영상)이다. 기억의 짧은 측면인 감각계와 작업기억 시스템은 우리 사고의 내용물을 반영하며 지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시스템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정보를 저장하며, 우리는 그 정보를 되뇌기 및 지각 재활성화를 통해 유지한다. 하지만 이런 표상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 연결되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작업기억 시스 템은 바깥에 있는 세계, 감각 및 지각의 세계, 우리 마음속 세계와 장기기 억, 개념 및 지식의 세계 사이의 매개자다.
- 일찍이 6장에서 새모이통의 새를 알아보는 데 관여하는 기억의 역할을 논하면서 나는 사실 기반으로 구성되는 기억과 사건 기반으로 구성되는 기억을 구분했다. 사실 기반 기억은 대체로 의미기억이라고 부르는데, 가 장 중요해 보이는 의미적 및 개념적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건 기반 기억은 대체로 일화기억이라고 부른다. 이는 구체적인 일화에 대한 기억으로, 여 러분에게 일어났거나 앞으로 일어날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내용이다. 두 시스템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알 고 기억하는 능력과 특정한 것을 떠올리고 회상하는 능력에는 기능적 차 이가 있어 보인다. 기능적 필요가 다르기에 이 두 시스템은 상이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바지한다. 하지만 둘이 별개는 아니다. 상호작용하고 겹치 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 점을 사례를 통해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이 경우 구체적인 사건이 결국 새로운 개념을 낳을 수 있다.
- 기억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 알기란 어렵지 않다. 이 왜곡은 더 일반적인 지식의 유용한 어렴풋함과 동일한 원천에서 비롯된 다. 기억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어렴풋하다. 배경 내용을 채우기처럼 이 어렴풋함이 도움이 될 때 우리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일어난 일의 정확한 반영이길 기대하고 믿는 일화기억에서 세부 내용을 보태거나 뺄 때처럼 어렴풋함이 해가 될 때에도,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의 기억이 정확 하지 않다고 알려주기 전까지는 어렴풋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떻게 여러분은 때로는 어렴풋함을 유리하게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또 어떨 때는 오류를 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한 해법으로, 핵심 내용 을 보존하고 싶다면 이야기를 다듬지 않도록 해보라. 하지만 이 해법은 그 다지 실용적이지 않다. 우리 대다수는 이야기를 할 때 다듬기를 좋아한다. 그래야 이야기가 재미있어지고 더 재미있어진다. 그것이야말로 많은 이야기의 목적이다. 즐겁게 해주기가 목표지, 정확하고 사실적인 기억을 만들 어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다듬지 않도록 해보라'는 말 이야 쉽지 실제로 하기는 어렵다. 쉽지 않은 까닭은 어렴풋함과 다듬기가 기억의 작동 방식의 본질적인 측면이기 때문이다. 피하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통해서 실수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여러분은 기억의 속성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여러분 이 기억하는 것은 이야기인가 사실인가? 해당 기억의 목적은 무엇인가? 새로운 내용을 보태고 있는가? 이전에 나왔듯이, 심리학자들은 이를 가리 켜 메타기억이라고 한다. 메타기억은 자신의 기억에 관한 지식이다. 만약 여러분의 메타기억을 향상시키고 싶다면, 기억이 근본적인 수준에서 어떻 게 작동하는지 더 많이 아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 툴빙이 제안하기로, 정신적 시간 여행을 하는 능력인 일화기억은 인간 에게 고유하다. 그것은 마음속으로 말하면서 사물을 기술하는 능력 그리 고 자신을 끊임없는 정보의 흐름 속에 두는 발달된 자아의식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또한 이 기억은 의미기억에 의존하면서도 그것과는 차이가 있 다. 그는 2002년에 이렇게 적었다(Tulving, 2002).
일화기억은 최근에 진화되어 늦게 개발되었고 일찍 악화되는 과거지향 기억 시스템으 로서, 다른 기억 시스템들보다 신경의 기능장애에 취약하며 아마도 인간에게 고유하다. 이것은 주관적인 시간을 통해 현재에서 과거로의 정신적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기에, 우리로 하여금 자기인식 의식(autonoetic awareness)을 통해 자신의 이전 경험을 재경험 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억의 작동에는 의미기억 시스템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과 별도 로 작용한다.
- 사고하기 즉, 문제 해결하기, 결론 내리기 및 결정하기는 잘 구성된 정신 적 표상을 이용해 진행된다. 이러한 정신적 표상, 즉 개념 덕분에 우리는 예측하고, 빠진 특징을 추정하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가 기존의 개념이나 범주에 들어맞는 무언가를 지각하면, 우리는 개념 덕분에 그 사물들에 대 해 아는 중요한 대부분의 정보에 접근한다. 일단 사물이 한 범주의 구성원 으로 분류되고 나면, 그 사물은 동일한 범주 내의 다른 많은 사물과 연관 되어 있는 속성들을 물려받거나 지닐 수 있게 된다. 개념은 잘 구성된 기 억의 결과이기에, 개념 덕분에 기억은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개념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지식과 기억이 적응적 사고에 최적화되는지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개념 덕분에 기억과 지식은 다 른 종류의 사고를 수행하는 데 효과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 인지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는 이 발상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는 개념을 낳았다. 자아 고갈의 개념은 로 이 바우마이스터 Roy Baumeister와 동료 연구자들한테서 나왔다(Baumeister, Bratslavsky, Muraven & Tice, 1998). 이 이론에 따르면 자기조절self-regulation 한정적 자원이다. 물리적 자원을 다 써버리듯이 다 써버릴 수 있다. 바우 마이스터의 주장에 따르면, 인지 자원과 자기조절은 신체적 체력에 비견 된다. 힘든 운동을 하거나 오래 걷고 난 후에 여러분의 근육은 지친다. 자 아 고갈 이론에 따르면, 여러분의 자기조절 자원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작 동한다. 즉, 이런 자원들은 고갈된다. 그리고 이 자원들이 고갈되면 여러분 의 자기조절 과정이 힘겨워진다.
- 자아 고갈에 관한 초기 연구에서 바우마이스터가 알아내기로, 피실험자에게 어려운 자기조절 과제를 하도록 시키면 후속 집행기능executive function 과제 수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 두 유형 의 과제가 자원을 공유한다. 가령, 피실험자한테 초콜릿 대신에 무를 먹으 라고 강요하면, 먹기에 대한 자기통제를 행하지 않았던 피실험자에 비해 서 후속 퍼즐 풀기 과제에 대한 지속력이 줄어들었다. 다른 과제들에서는 피실험자들에게 일반적으로 강한 감정 반응을 유발하는 영화를 보게 했 다. 자아 고갈 조작을 통해 이 피실험자들은 감정 반응이나 괴로움을 억압 당했다. 이들은 철자 바꾸기anagram 과제를 푸는 능력이 저하되었다.
더욱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인지 조절 자원을 고갈시키는(가령, 감정을 조 절하고 주의를 통제하거나 작업기억 검사를 수행하는 과제에 참여한 피실험자들은 작업기억 지속 기간과 억제 조절에 관한 후속 검사에서 성적이 나쁘게 나왔다. 이는 자아 고갈과 시스템 2 사고와의 대응성을 암시하는데, 이 두 집행기능 모두 시스템 2 주제에 속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아 고갈은 의사결 정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아가 고갈된 피실험자들은 의사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고, 결정 대안들을 고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잘 다루 지 못한다. 자아가 고갈된 사람들은 휴리스틱에 더 과하게 의존하는 편이 며, 종종 모든 대안을 주의 깊게 저울질하지 못한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으로, 자아 고갈 현상은 일반적인 피로와는 다르다. 달리 말해서, 자아 고갈은 자신의 자기조절 자원이 고갈 상태에 있는 상황 에 해당한다. 이것은 인지 통제에 국한된 피로다. 일반적인 지침 내지 피 로와 동일하지 않다. 이 구분은 자아 고갈과 비교 수단으로서 수면 박탈을 이용하는 어느 영리한 과제에서 드러났다. 만약 자아 고갈이 일반적인 피 로와 동일하다면, 자아 고갈 피실험자는 수면 박탈 피실험자와 동일한 과제 수행 성과를 보여야 마땅하다(Vohs, Glass, Maddox & Markman, 2011). 하 지만 연구 결과는 이 결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수면 박탈 피실험자들은 피 로 때문에 고생했지만 자아 고갈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위 실험의 연구자 들의 주장에 따르면, 일반적인 피로와 달리 자아 고갈은 원치 않는 반응 을 조절하는 내부 에너지의 소진' 현상이다.
- 우리는 어떤 결론이 우리가 이미 믿는 내용과 일치하면 타당하다고 가 정하고, 일치하지 않으면 타당하지 않다고 가정하는 경향 내지 편향을 가 지고 있다. 비록 우리는 꾸준히 추론하고 결론을 도출하고 무언가에 대해 예측을 하고 있지만, 연역 논리는 종종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바와 일치하 지 않으면 반직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실제로는 아닌데도 한 결론 에 종종 동의하고 그것이 타당하다고 여긴다. 대신에 타당한 결론을 거부 할 수 있다. 이는 편향인데, 타당성은 논리적 과제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 지 믿을 만한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수긍할 만은 한데, 우리 에게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개념과 기억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다. 즉, 우리는 10장에서 논의했던 빠른 시스템인 시스템 1을 바탕으로 결 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 빠른 시스템은 결정과 연역을 빠르게 수행하므로 유용하지만, 또한 이와 같은 편향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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