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5'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5.01.05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1
  2. 2025.01.05 군주론 인생공부 1
  3. 2025.01.05 20250105

- 유교문화권의 국가에서 사람들이 교육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것은 공자가 학식을 강조해서가 아니라, 2차대전후 토지개혁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통해 계층이동이 가능해지면서 교육이 계층상승 수단이 되었기 때문. 몇백 년에 걸쳐 유교가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였고, 또 다른 유교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45년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쟁추한 직후 한국의 문해율은 22%에 그쳤다. 비슷한 시기에 불교국가 태국의 문해율은 53%(47년), 기독교국가 필리핀은 52%(48년), 이슬람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말레이시아는 38%(47년)였다.
경제개발 초기, 60년대와 70년대 한국 젊은이들은 과학이나 공학분야 직종을 꺼렸다. 실용적인 일에 대한 편견을 가진 유교문화의 영향.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의도적으로 인문학고 사회과학 계통의 정원과 재정지원을 제한하고, 과학 및 공학분야 학위 소지자의 군복무기간을 대폭 줄이는 특혜를 실시. 물론 과학 및 공학분야 학위소지자가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 일자리가 없으면 고학력 실업자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고, 많은 개도국에서 그런 현상도 벌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인 공공정책을 통해 산업화를 도모. 그 결과 이 분야로 진학한 학생들이 학위를 딴 후 보수도 좋고 지적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일자리들을 만들어냈다.

- 문호가 사람들의 가치관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따라서 그 나라의 경제가 조직되고 발전하는 양상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어불성설. 그러나 문화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흔히 통용되는 단순한 고정관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 모든 문화는 복합적이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다양한 부면을 지니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개인의 경제적 행동과 국가의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 데서 문화는 정책에 비해 그 영향력이 약하다는 점. 그 점은 도토리를 먹는 한국인에게나 도토리를 먹여 키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도에게나 마찬가지.

-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은 무보수 노동만을 제공한데서 그치지 않았다. 노예는 매우 중요한 자본동원 수단이었다. 매슈 데스먼드는 이렇게 썼다. "노예가 된 인간들은 주택담보대출이 시작되기 몇 백년전부터 대출의 담보로 사용되었다. 땅값이 별로 나가지 않던 미국 독립전... 대부분의 대출은 인간이라는 자본을 담보로 이루어졌다." 데스먼드는 거기에 더해 노예 한명 한명을 담보로 한 대출들을 한데 묶어 만든 채권거래도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현대 금융계에서 수천건의 주택담보대출금과 학자금대출, 자동차대출 상품들을 묶어서 판매하는 자산유동화 증권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미국은 이 채권들을 영국과 유럽 금융업자들에게 판매해 국제규모의 자본을 동원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미국 금융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킬 기회를 얻었다. 노예들이 아니었다면 미국은 훨씬 더 오랫동안 초보적 금융부문을 가진 전근대적 경제국가에 머물렀을 것이다.

- 구아노로 인한 페루의 경제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호황이 시작된 지 30여년이 지나자 과다채취로인해 구아노 수출이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 그러나 1870년 대규모 칠레초석(질산나트륨) 매장지가 발견되며 구아노 수출의 쇠락으로 인한 영향이 한동안 상쇄되었다. 초석은 비료, 화약제조에 사용될 뿐 아니라 육류보존에도 쓰이는 질산염이 풍부한 광물질. 그러나 페루의 번영은 초석전쟁이라고도 부르는 남미 태평양전쟁과 함게 끝이 남. 이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는 볼리비아 해안지역 전무와 페루 남부 해안지역의 절반가량을 점령했음. 그 지역에는 대량의 초석이 매장되어 있고 구아노도 많아서 칠레는 엄청나게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1909년 독일 과학자 프리츠 하버가 공기중에서 질소를 분리하는 기술을 발명. 고압전류를 사용해 암모니아를 만들고 거기서 인공비료를 만드는 기술이었다. 말하자면 하버가 글자 그대로 허공에서 인공비료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개발한 것. 그 덕에 그는 191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 하지만 1차대전때 사용된 독가스를 개발한 일로 악명이 높아서 그에 게 노벨상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점잖은 자리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음

- 역사를 보면 높은 생활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방법은 오직 산업화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다시 말해 혁신과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는 주된 근원인 제조업 분야를 발달시켜야 한다는 의미
산업화를 통해 생산능력을 더 높이면 자연이 우리에게 가하는 제약을 마법처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해짐. 칠흑처럼 새까만 석탄에서 선명하기 그지없는 새빨간 염료를 뽑아내고, 허공에서 비료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다른 나라를 침공하지 않고도 땅을 몇배로 늘리는 것이 마법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거기에 더해 이런 능력을 갖추고 나면 긴 기간동안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음. 초석고 같은 재생불가능한 광물 천연자원, 또는 멸치를 먹고 사는 새들의 분비물로 만들어진 페루의 구아노처럼 재생가능하지만 과잉채취로 결국 늘 바닥이 나고야 마는 천연자원과 달리 한번 습득한 기술이나 능력은 고갈되지 않기 때문이다.

- 한국정부는 88년까지 외제차 수입을 전면 금지했고, 일본차는 98년까지 수입을 금지하는 정책을 운용해 현대를 비롯한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클 때까지 보호막이 되어줌. 수십년 동안 한국 소비자들이 품질이 떨어지는 국산차를 견뎌내야 했다는 의미지만, 이런 식으로 보호받지 못하면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성장은 커녕 살아남기조차 힘들었을 것임. 90년대 초까지도 정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현대차를 비롯한 하이테크 기업들, 특히 수출지향적 기업들이 특별 저리융자를 받을 수 있게 보장. 이는 생산적 기업에 대한 대출에 우선순위를 주도록 하는 엄격한 은행규제와 은행부문의 국유화를 통해 이루어짐.
정부정책이 항상 도와주는 성격만을 띤 것은 아니었음. 현대차가 고유모델을 만들겠다는 겻림을 한 것은 사실 정부가 자동차 부문을 국산화하는 프로그램에 착수했기 때문. 73년 정부는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업체들에 고유모델을 만들지 않으면 자동차 제조허가를 취소하겠다고 위협. 규제정책과 금융을 이용해 자동차 업체들에 국내생산부품 비율을 높이라는 노골적 압력과 암묵적 압력을 동시에 넣어서 국내 자동차 부품산업 발점을 꾀한 것임.

- 제지공장으로 시작했지만 성장을 거듭해 한때 세계 휴대폰 산업을 리드한 전력이 있고, 이제는 네트워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산의 주역이 된 노키아도 비슷한 성장역사를 거침. 60년 설립된 노키아의 전자부문이 이윤을 내기 시작한 것은 77년에 이르러서였고, 이미 안착해서 이윤을 내고 있던 노키아 그룹의 다른 기업들로부터 보조를 받는 한편 보호무역, 외국투자 규제, 공공조달 특혜 등의 도움을 받음
자국의 자유기업 체제에 대해 높은 긍지를 보이고 영웅적 기업가를 늘 칭송해 마지 않는 미국마저 현대경제에서 집단적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을 통해 발전한 나라다. 미국이야말로 유치산업론을 발명하고, 19세기부터 20세기초까지 자국 어린 기업들이 성장할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보호주의 장벽을 높게 둘러쳐서 우월한 외국제조업체, 특히 영국 제조업체로부터 자국기업을 보호한 나라다.
- 주목해야 할 부분은 2차대전 이후 미국 정부가 기초 테크로롤지 개발에 공공자금을 동원해서 기업들을 도운 사실이다. 미정부는 국리보건원을 통해 제약 및 생명공학 연구를 진행하고 자금을 댔다. 컴퓨터, 반도체, 인터넷, GPS, 터치스크린을 비롯한 정보화시대의 기초 기술이 미국 국방부와 군부의 국방연구를 통해 처음 개발됨. 이런 기술이 없었다면 IBM도, 인텔도, 애플도 없고 실리콘밸리도 없었을 것임.

- 개인의 비전으로 성공적 기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신화는 현대 경제학계의 담론을 장악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학의 근간이 되고 있음. 자본주의 초기에는 어느 정도 가능했을 수도 있는 시나리오다. 생산규모가 작고 기술이 단순한 시절이었기 때문. 그런 환경에서는 뛰어난 개인기업가가 큰 차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사실 그 시절에도 기업이 성공하려면 그냥 뛰어난 개인만으로는 부족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규모가 큰 생산, 복잡한 기술, 국제규모의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19세기 말 이후의 환경에서 기업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기업리더뿐 아니라 노동자, 엔지니어, 과학자, 전문경영인, 정부의 정책 입안자, 그리고 심지어 소비자의 노력까지 모두 포함됨.
한국과 이탈리아라는 국수에 집착하는 두 나라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살펴보면, 현대경제에서 기업은 더 이상 개인의 비전이나 노력만으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적 기업은 집단적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 맞물린 특허가 갑자기 새로운 문제로 등장한 것은 아님. 19세기 중반 재봉틀 산업의 기술적 진보를 마비시킨 것도 이 맞물린 특허문제였음. 당시 재봉틀 산업에서는 다들 특허권 침해로 서로를 고소하기 바빴다. 연관성이 매우 높은 기술들이 많아서였고, 이로 인해 기술발전이 가로막혀 있었음. 이 교착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1856년에 고안된 것이 특허풀이었다. 재봉틀 산업분야의 기업들이 핵심기술에 대한 특허를 모두 공유해서 새로운 기술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온 이 조치를 재봉틀 콤비네이션이라고 함. 연관성이 강한 산업분야에서 특허 풀을 운용한 예를 많다. DVD의 부호화와 압축방식의 국제적 표준인 엠펙2, 휴대전화 전파 식별태그인 RFID 등이 그 예이다.
- 어떨 때는 정부 특히 미국정부가 개입해서 특허풀을 만들기도 했다. 1917년 공중전이 강화된 1차대전 참전준비를 하면서 미정부는 당시 2개의 최대 항공기 제조업체인 라이트와 커티스를 포함한 항공산업부문에서 특허풀을 만들 것을 권장했다. 60년대에는 이미 반도체 초기 연구에 거의 전적으로 돈을 댄 미 해군이 TI와 페어차일드 사이의 특허풀을 명령했다.
황금쌀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맞물린 특허의 문제는 최근 더 많은 종류의 지식, 심지어 유전자 수준까지 파고들어가는 지식이 특허로 보호받게 되면서 더 심각해지고 있음. 이제는 과학자가 중요한 기술적 진보를 일구어 내려면 변호사 부대가 선봉대로 나서서 특허 덤불을 헤쳐 나가며 길을 터주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한때 기술혁신의 강력한 촉매가 되었던 특허제도가 이제는 큰 방해물이 되고 말았다. 

- 자유무역에서 자유라는 개념은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거래가 해당정부의 규제나 세금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자유무역 1기(19세기와 20세기초)에 자유무역은 거의 전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나라들, 다시 말해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 등으로 자국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박탈당한 나라들에서만 행해짐. 국가들 사이에 형식적 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인 현재의 자유무역 2기에서조차 자유무역은 모든 당사사에게 평등하게 혜택을 주지 못함. 국제무역 규칙이 강한 나라들에 의해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지고 시행되고 있기 때문. 
국제무역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이해하고, 자유라는 휘황찬란한 단어에 눈이 멀지 않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자유무역처럼 논란의 여지 없이 모든 이에게 좋은 거라고 여겨지는 것을 두고 왜 그토록 많은 논쟁과 갈등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임.

- 요즘 미국을 비롯한 부자나라 사람들은 바나나 리퍼블릭을 의류 브랜드 이름으로만 알고 있음. 하지만 이 표현은 원래 부자나라 거대기업이 가난한 개도국을 거의 완전히 장악했던 어두운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 이 의류 브랜드 이름은 무지에서 나온 것이지만, 굉장히 모욕적이고 불쾌하다. 커피 원두를 갈아주는 힙한 가게를 사탄의 공장이라 부르거나, 고급 선글라스 가게를 암흑의 대륙이라 부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사탄의 공장은 영국 산업혁명 초기에 노동자 착취가 심한 공장을 일컬은 말. 암흑의 대륙은 유럽인이 19세기이전 아프리카를 부르는 표현으로 유럽중심적 무지함이 배어 있다.)
- 결과적으로 다국적 기업이 진출한 나라에는 그 나라의 나머지 경제와 별도로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들이 이른바 스크루드라이버 오퍼레이션이라 부르는 조립작업만 하는 방식으로 섬처럼 존재하는 엔클레이브 현상이 벌어짐. 지역기업들에는 거의 하청을 주지 않고 대부분 수입된 부품을 완제품으로 조립하기 위해 그 지역의 값싼 노동력만을 이용하는 것. 이런 경우에도 얼마간의 혜책이 있을 수 있지만, 다국적 기업의 진출로 인해 거둘 수 있는 진짜 혜택(고급기술 이전, 선진적 경영관행, 더 나은 기술을 노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습득하고 훈련받을 기회 등)의 대부분은 현실화되지 않음
엔클레이브 경제의 가장 대표적 사례가 필리핀. 필리핀은 어찌 보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하이테크 경제를 가진 나라다. 세계은행 자료에 의하면 필리핀은 제조업 수출품목의 60%가 전자제품으로 이루어진 하이테크 제품으로 전 세계 최고수준. 이렇게 하이테크인데도 불구하고 필리핀 1인당 소득은 3500불에 불과해 미국 6만불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3만불에도 못미침. 이는 필리핀에서 수출되는 대부분의 전자제품이 엔클레이브에서 스크루드라이버 오퍼레이션을 하는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에서 생산되기 때문. 필리핀은 아마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되겠지만 개도국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들은 엔클레이브 안에서 스크루드라이버 오퍼레이션을 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다.

- 부자나라들에서조차 신자유주의 정책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부자나라들에서는 시장의 힘을 제어하고 규제하는 데 정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았던 혼합경제 시대보다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기간에 성장률이 더 둔화하고 불평등이 더 늘어나는 한편 금융위기가 더 자주 발생했다. 
그러나 개도국들에서 운용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재앙에 가까웠다. 이 정책들이 그들의 필요에 특히 더 맞지 않았기 때문. 무엇보다 개도국들이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보호무역, 보조금, 외국인 투자규제 등을 주도하는 정부의 지원과 보호아래 자국 생산자들이 성장을 해서 생산성이 더 높은 산업부문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신자유주의 전통에서는 완전히 부인하기 때문.

- 좌파는 모든 사람에게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 생각. 그래서 개인마다 다른 필요와 역량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함. 반면 우파는 기회의 평등으로 충분하다고 생각. 그래서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개인간의 역량이 어느정도는 균등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함. 이것은 부모세대가 상당한 정도로 결과의 평등을 누려야 가능한데, 그렇게 되려면 소득을 재분배하고, 모든 사람에게 양질의 기초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장을 규제해야한다.
채식주의자에게 닭고기 기내식을 주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 생각하는 항공사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승객들의 여러가지 취향과 필요를 모두 맞추어 주는 다양한 기내식을 제공하지만 표가 너무 비싸서 극소수만 이용할 수 있는 항공사 또한 원치 않는다.

- 탈산업 사회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스위스는 사실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 정도가 높은 나라로, 1인당 제조업 생산량 세계 1위다. 메이드인스위스라 적힌 상품이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은 부분적으로 스위스가 작은 나라여서이기도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생산재라 부르는 기계, 정밀장비, 산업용 화학물질 등 우리 같은 일반 소비자가 접할 수 없는 물건들을 주로 생산하기 때문. 이른바 탈산업사회의 성공담으로 꼽히는 또 다른 나라인 싱가폴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산업화된 국가라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스위스 성공의 비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은행이나 고급관광상품이 아니라 세계 최강의 제조업 부문이다. 사실 초콜릿 분야에서 쌓은 높은 명성마자 제조업 부문의 혁신(분유발명, 밀크 초콜릿 탄생, 콘칭 기법 개발 등)에서 기인한 것이지 초콜릿바를 사는 데 은행이 복잡한 할부구매법을 제시하거나 광고회사가 멋진 광고를 하는 식의 서비스 산업 덕부닝 아니다.
스위스가 뜻하지 않게 롤 모델로 제시되는 탈산업사회 담론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고, 최악의 경우 실물경제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다. 그 주장을 믿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소한의 경제토픽  (2) 2024.12.31
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공부  (1) 2024.12.10
좋은 경제학 나쁜 경제학  (4) 2024.11.20
그렇게 붕괴가 시작되었다  (5) 2024.11.15
돈의 권력  (2) 2024.08.28
Posted by dalai
,

군주론 인생공부

인문 2025. 1. 5. 16:33

이 책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담긴 지혜를 현대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책이다. 군주론은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로, 수세기 동안 정치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이 책에서는 군주론을 대표하는 42개 명제를 선정하여, 이를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하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베르나르도 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494년에 메디치 가문이 몰락할 무렵 공직에 입신하여 피렌체의 공화국 10인 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었으며, 외교 사절로서 신성 로마 제국 등 여러 외국 군주에게 사절로 파견되면서 독자적인 정치적 견해를 구축하였다. 그는 1498년부터 1512년까지 피렌체 공화국 제2서기국의 서기장을 역임했다.

외교와 군사 방면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나, 1512년 스페인의 침공으로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지배권을 회복하면서 공직에서 추방되어 독서와 글을 쓰며 지냈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군주에게 바치는 〈군주론〉을 저술한 것으로 여겨진다. 1513년 발표한 이 <군주론>에서 위대한 군주와 강한 군대, 풍부한 재정이 국가를 번영하게 하는 것이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군주는 어떠한 수단을 취하더라도 허용되어야 하며, 국가의 행동에는 종교 및 도덕의 요소를 첨가할 것이 아니라는 마키아벨리즘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그의 정치사상은 일찍부터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은 하나의 명제를 중심으로 사례를 먼저 제시한 후, 마키아벨리의 명제를 오늘날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준다. 명제의 실제적 의미를 체감하게 한 후, 이어서 그 명제에 대한 심층적 해석을 제공한다. 해석 부분에서는 마키아벨리의 철학적 배경과 함께, 해당 명제가 군주론에서 어떤 맥락을 가지며, 그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설명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명제의 깊은 의미를 더 잘 이해하고, 이를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을 통해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현재만이 나의 유일한 진실이다  (0) 2024.12.28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1) 2024.12.26
질문에 관한 질문들  (1) 2024.12.24
생각의 기술  (5) 2024.12.22
신화의 힘  (1) 2024.12.21
Posted by dalai
,

20250105

Quote of the day 2025. 1. 5. 08:30

'Quote of the d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107  (0) 2025.01.07
20250106  (0) 2025.01.06
20250104  (0) 2025.01.04
20250103  (0) 2025.01.03
20250102  (0) 2025.01.02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