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자신의 출발점인 무와 자신을 완전히 에워싼 무한을 모두 보지 못한다. (파스칼)
- 우리는 이상한 종류의 신문 독자라서 헤드라인을 읽으면서 마치 자신이 그 생각을 처음 해낸 것처럼 공치사를 한ㄷ. "방금 좋은 생각이 났어" 기쁨에 차서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이 천재적인 발상이 뇌리에 떠오르기 전에 뇌가 이미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해놓았다. 막후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올려보낸다는 것은, 신경회로가 몇 시간, 며칠, 몇 년 동안 정보를 통합하고 새로운 조합을 시험하는 작업을 해왔다는 뜻. 그런데도 우리는 막후에 숨어서 움직이는 이 광대한 기계에 별로 감탄하지 않고 그 공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이런 우리를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뇌는 비밀리에 활동하면서 엄청난 마법처럼 아이디어를 만든다. 그 거대한 운영시스템을 의식이 인지하고 조사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뇌는 자신을 숨긴채 작전을 지휘한다.
그렇다면 훌륭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공은 정확히 누구의 것인가? 스코틀랜드의 수학자 맥스웰은 1862년 전기와 자기를 통합한 중요한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임종을 앞둔 어느 날 기묘한 고백을 했다. 자신이 아니라 자신 안의 어떤 것이 그 유명한 방정식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디어가 자신을 찾아오는 과정을 전혀 모른다고 시인했다. 아이디어가 그냥 떠오를 뿐이었다. 윌리엄 블레이크도 긴 이야기 시인 밀턴과 관련해서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나는 미리 생각해둔 것이 없어서 즉석에서 구술하듯이 한 번에 12행쯤, 때로는 무려 20행까지 쓰는 방식으로 이 시를 썼다. 심지어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시가 써질 때도 있었다.' 괴테도 중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쓸 때 자신의 의식이 기여한 것은 사실상 없었다고 주장했다. 마치 손에 쥔 펜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영국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사례도 생각해보자. 그는 1796년부터 아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원래 치통가 안면 신경통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곧 돌이킬 수 없이 중독돼서 매주 아편제 2쿼트(약 2.3리터)를 꿀꺽꿀꺽 마셔댔다. 이국적이고 몽롱한 이미지로 이루어진 시 쿠빌라이 칸을 쓸 때 그는 아편에 취한 상태였는데, 일종의 환상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에게는 아편이 잠재의식 속 신경회로에 접근하는 통로가 된 것이다. 우리가 쿠빌라이 칸의 아름다운 시어들을 콜리지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그의 뇌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정신이 멀쩡할 때는 그런 단어들을 잡아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 시의 저자는 정확히 누구인가?
칼 융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
핑크 플로이드는 이렇게 말했다. "내 머릿속에는 누가 있는데, 내가 아니야."
- 등에서 오는 신경신호가 시각을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보인다면, 시각을 전달하는 수많은 신경신호의 경로가 등의 신경신호 경로와 다를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뇌는 두개골 안에서 절대적 어둠 속에 갇혀 있다. 뇌 자체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자신에게 전달되는 작은 신호를 알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의 모든 색채와 빛과 어둠을 인식할 수 있다. 뇌는 어둠 속에 있어도, 우리 정신은 빛을 구축한다.
뇌에게는 신호가 어디서 오는지 중요하지 않다. 눈에서 오든, 귀에서 오든, 완전히 다른 곳에서 오든 상관없다. 우리 움직임, 즉 밀거나 쿵 하고 때리거나 발로 차는 움직임과 그 신호의 상관관계가 일관되게 유지되기만 한다면, 뇌는 우리가 시각이라 부르는 그 직접적 지각을 구축할 수 있다.
- 뇌의 기능에 관한 초창기 가설들은 컴퓨터를 비유대상으로 삼았다. 뇌는 정보가 입출력되는 장치이고, 이 장치가 다양한 단계를 거쳐 감각기관의 정보를 처리해서 종착점에 이른다는 것.
그러나 뇌 회로가 단순히 A-B-C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런 조립라인 모델에 의심의 눈길이 쏠리기 시작. 뇌 회로에는 C에서 B로, C에서 A로, B에서 A로 연결된 피드백고리가 있다. 뇌 전역에 정보를 앞으로 보내는 회로만큼이나 많은 피드백 회로가 있는데,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순환이라고 하고 구어로는 그냥 고리가 많다고 한다. 시스템 전체의 모양은 조립라인보다 시장과 아주 많이 닮았다. 주의 깊은 관찰자라면, 신경회로의 이런 특징을 보고 시각지각은 눈에서 시작되어 뇌 뒤편 어느 신비로운 종착점에서 끝나는 고속 정보처리과정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즉시 떠올릴 것이다.
- 도널드 매카이는 56년 시각피질이 근본적으로 세상의 모델을 만들어내는 기계와 같다는 의견을 내놓음. 1차 시각피질이 내부모델을 구축하며, 그 덕분에 망막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데이터를 미리 기대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 피질은 자신의 예측을 시상으로 보내고, 시상은 눈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와 예측 사이의 차이를 보고한다. 그리고 그 차이게 관한 정보만 피질로 회신한ㄷ. 즉, 예측되지 않는 정보만 보낸다는 뜻이다. 내부 모델은 이 정보로 수정돼서 미래에 발생할 차이를 줄인다. 뇌는 이렇게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외부세계 모델을 다듬는다. 매카이는 1차 시각피질에서 시상으로 향하는 섬유조직이 반대방향의 조직보다 열 배나 된다는 해부학적 사실에 이 모델이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
이 모든 설명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내부 예측과 감각기관 정보를 적극적으로 비교한 결과가 지각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 이 덕분에 우리는 더 커다란 개념, 즉 감각기관의 정보가 예측과 어긋났을 때에만 주의에 대한 의식이 발생한다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뇌가 외부세계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예측한다면, 뇌가 일을 아주 잘 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우리가 의식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는 의식적으로 몹시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흘로 감각-운동예측이 완벽하게 다듬어지면, 자전거 타기는 무의식적 활동이 됨. 물론 자신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님. 핸들을 잡는 법, 페달에 가하는 압력, 몸통의 균형잡기를 일일이 의식하지 않게 된다는 뜻.
광범위한 경험 덕분에 뇌는 앞으로 무엇을 예측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강한 바람이나 타이어 펑크 등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자신의 움직임도 감각도 의식하지 못한다.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평소의 예측이 어긋나게 되므로, 의식이 활동을 개시해서 내부모델을 조정한다.
- 우리 감각에 대한 첫번째 교훈은 감각을 믿지 말라는 것. 우리가 어떤 것을 사실로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이라고 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전투기 조종사에게 가장 중요한 격언은 계기판을 믿어라다. 우리 감각이 가장 망신스러운 거짓말을 하기 때문. 조종실 계기판 대신 그 감각을 믿었다가는 추락할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누가 '거짓말을 하는 네 눈과 내 말중 무엇을 믿을래?'라고 물으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바깥세상을 아주 조금만 인식할 뿐이다. 뇌는 시간과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미리 여러 짐작과 가정을 하고, 꼭 필요한 만큼만 세상을 보려고 한다.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기 전에는 그것들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자기발굴 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뇌의 여러 부위에서 바깥세상에 대한 지각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다.
- 암묵적 자기중심주의는 우리가 직업을 결정할 때도 영향을 미침. 펠럼의 연구팀은 여러 직업의 관련단체 주소록을 분석한결과 이름이 데니즈 혹은 데니스인 사람 중에는 치과의사가 유난히 많고, 이름이 로라 또는 로런스인 사람 중에는 법률가가 많고, 이름이 조지나 조지나인 사람 중에는 지질학자가 유난히 많다는 사실을 발견. 또한 지붕수리 회사의 소유주 중에는 이름 첫글자가 H인 사람보다 R인 사람이 더 많았으며, 철물점 주인 중에는 이름 첫글자가 R인 사람보다 H인 사람이 더 많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무료로 접속가능한 온라인 직업DB를 조사한 결과, 의사의 성에 doc, dok, med가 유난히 많이 포함된 반면, 법률가의 성에는 law, lau, att가 유난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짐.
정신나간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 모든 연구결과는 통계적 의미라는 기준을 통과했다. 이름 철자의 영향이 크지는 않아도, 분명히 확인할 정도는 된다.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충동, 위의 연구들에서처럼 통계적으로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결코 믿지 않았을 충동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신체 상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 나쁜 일이 일어나면 뇌는 온몸(심박, 내장수축, 근육약화 등)을 지렛대 삼아 그때의 느낌을 기록한다. 그래서 그 느낌이 그 사건가 함께 연상되게 된다. 나중에 그 사건을 생각할 때, 뇌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을 돌려 그때의 신체적 느낌을 다시 경험한다. 그렇게 해서 그 느낌은 차후 의사결정에 지침(아니면 반대로 편견)역할을 한다. 어떤 사건을 겪을 때의 느낌이 나빴다면, 우리는 그때의 행동을 주저하게 된다. 반면 좋은 느낌은 같은 행동을 격려하는 역할을 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신체상태는 행동의 방향을 조종할 수 있는 육감을 제공한다. 이런 육감은 단순히 우연으로 보기 힘들만큼 정확할 때가 많다. 우리 무의식이 먼저 상황을 알아차리고, 의식이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 대체로 우리는 자신의 머리가 가장 잘하는 일을 가장 인식하지 못하낟. (마빈 민스키, 마음의 사회)
- 숨어서 활동하는 신경 프로그램이 감지하는 것은 번식능력만이 아니다. 가임기 여성이 모두 똑같이 건강한 것은 아니므로, 그들의 매력도 똑같지 않다. 라마찬드란은 남자가 금발여성을 더 좋아한다는 말이 생물학적 진실의 씨앗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피부가 하얀 여성이 병에 걸리면 쉽게 병색이 드러나는 반면, 피부가 가무잡잡한 여성은 결점을 비교적 쉽게 위장할 수 있다. 건강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선택에 도움이 되므로, 하얀 피부가 선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 스치든 지나간 사람을 실제보다 아름답게 판단했을 때는 되돌아가서 그 사람을 다시 보기만 하면 실수를 바로 잡을 수 있다. 별로 힘든 일이 아니다. 반면 매력적인 상대를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잘못 판단했을 때는 어쩌면 장밋빛이 될 수도 있었던 유전자의 미래에 안녕을 고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지각 시스템은 언뜻 스치듯 지나간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허풍을 떨 필요가 있다. 다른 사례와 마찬가지로 의식적인 뇌가 아는 것은 믿을 수 없을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방금 반대편 차선에서 차를 타고 스쳐갔다는 사실 뿐이다. 이런 믿음을 만들어낸 신경기계나 진화의 압력에는 의식이 접근할 길이 없다.
- 여성은 월경주기 중 임신가능성이 가장 높을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월경을 시작하기 약 열흘 전이다. 미모를 평가하는 사람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녀가 무슨 행동을 하든 결과는 같다. 심지어 사진으로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즉 미모가 임신가능성을 널리 알리는 셈이다. 비비의 엉덩이색 보다는 더 섬세한 신호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남성들의 뇌에서 이 일만을 전담하는 무의식 조직을 자극할 수만 있으면 된다. 남성들의 신경회로에 그 신호가 닿으면 임무완수다. 그런데 이 신호가 다른 여성들의 신경회로에도 닿는다. 여성들이 다른 여성의 월경주기가 일으키는 변화에 상당히 민감한 것은 아마도 짝을 놓고 다툴 때 경쟁상대를 평가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임신가능성을 알려주는 신호가 정확히 무엇이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피부상태(배란기에 피부색이 더 밝아짐), 배란 직전 며칠 동안 여성의 귀와 젖가슴의 좌우대칭이 평소보다 더 강화되는 것이 그런 신호인지도 모른다. 단서가 무엇이든 뇌는 그것을 설명하기 어렵고 전능한 욕망의 힘을 감지한다.
배란과 미모효과는 실험실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측정 가능. 뉴멕시코주 학자들은 인근 스트립클럽의 댄서들이 받는 팁을 조사해서 월경주기와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었다. 임신가능성이 가장 높을 때 그들은 시간당 평균 68불을 받았다. 월경 중일 때 받는 돈은 고작 35불이었다.
이 여성들은 한 달 내내 최고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을 텐데도, 그들의 임신가능성 변화가 체취, 피부상태, 허리-엉덩이 비율 등의 변화를 통해 고객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그들 자신의 자신감 또한 시기에 따라 변했을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것은 피임약을 복용하는 스트리퍼의 실적에서 뚜렷하게 치솟는 기간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 그들의 월평균 수입은 시간당 37불에 불과했다.(피임약을 사용하지 않는 스트리퍼의 평균수입은 시간당 53불) 그들의 수입이 적은 것은 피임약이 호르몬 변화를 일으켜 임신초기와 비슷한 상태가 되기 때문인 것 같다.
- 사람이 트롤리 문제를 생각할 때 뇌를 촬영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육교 시나리오에서는 운동계획과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이 활성화되는 반면, 선로 스위치 시나리오에서는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측면 영역만이 활성화된다. 누군가를 직접 밀어야 할 때는 감정이 작동하고, 단순히 스위치를 움직이기만 하면 될 때는 뇌가 스타트렉 시리스에서 오로지 합리적 이성만으로 움직이는 미스터 스폭처럼 행동한다.
- 고결한 사람이란 유혹받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싸움의 추가 즉각적인 만족을 향해 기울어지지 않게 하는 사람. 우리가 이런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충동에 굴복하기는 쉽지만 충동을 무시하기는 터무니없이 어렵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열정과 욕망 앞에서 지성이나 도덕의 주장은 힘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절제를 권유하는 캠페인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종교가 끈질기게 힘을 발휘하는 것도 이성과 감정의 이런 불균형 때문일 수 있겠다는 의견도 있다. 세계적 종교들은 감정 네트워크를 파고드는 데 최적화되어 있으며, 이런 자석같은 힘 앞에서 이성의 위대한 주장은 거의 힘을 내지 못한다. 소련도 종교를 말살하려고 했으나 부분적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다. 소련 정부가 무너지자마자 종교적 의식이 곧장 풍부하게 되살아났다.
- 사람들이 단기적 욕망과 장기적 욕망의 갈등을 관찰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대 유대교 문헌은 몸이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몸은 항상 지금 당장 만족을 얻으려 하고, 영혼은 장기적 관점을 갖고 있다. 독일 사람들도 만족을 뒤로 미루려 하는 사람을 기발하게 표현한다. 그 사람이 반드시 innerer Schweinehund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번역하면 내면의 멧돼지 사냥개라는 당혹스러운 표현이 된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뇌 안에서 벌어지는 전투의 최종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더 재미있어진다. 뇌 안의 여러 정당이 상호작용에 대해 학습할 수 있기 때문. 따라서 상황은 단기적 욕망과 장기적 욕망 사이의 간단한 팔씨름 수준을 금방 넘어서서,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협상의 영역에 들어선다.
- 라이벌들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가설이 뇌에 관한 전통적 가르침과는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뇌에서 사람얼굴, 집, 색깔, 몸, 도구사용법, 종교적 열정 등을 담당하는 영역을 깔끔하게 구분해서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19세기 초 골상학도 이런 희망을 품었다. 골상학자들은 두개골에 튀어나온 부분이 있으면, 그 안의 뇌 영역의 크기가 그만큼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뇌 지도에서 각각의 지점에 이름표를 붙일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생물학적 현상이 그런 식으로 전개되는 경우는 아예 없거나 거의 없다. 라이벌들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가설은 같은 자극을 다양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뇌 모델을 제시한다. 뇌의 각 부분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던 과거의 희망에 종말을 고하는 모델이다.
- 뇌 영상 촬영으로 뇌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과거 골상학의 충동적 생각이 슬금슬금 되살아났다. 과학자와 일반인 모두 뇌의 구체적 위치에 각각 기능을 하나씩 부여하고 싶다는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단순하고 효과적인 표현을 찾아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언론의 꾸준한 보도로 이러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뇌의 특정 영역이 방금 발견되었다는 식의 잘못된 인상이 만들어졌다. 이런 보도는 쉽게 뇌 영역을 구분하고 싶은 대중의 기대와 희망을 부채질하지만,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 신경회로망이 저마다 독자적으로 발견한 다양한 전략을 이용해서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뇌는 복잡한 세상을 잘 헤쳐 나가지만, 명확한 지도를 그리는 솜씨는 형편없다.
- 비밀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보라. 비밀에 대해 알려진 사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밀을 지키는 것이 뇌에는 건강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점. 심리학자 제임스 펜베이커의 연구팀은 강간과 근친관계 피해자들이 수치심과 죄책감 때문에 그 일을 비밀에 부치고자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연구. 몇 년에 걸친 연구끝에 펜베이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다른 사람과 그 일을 의논하지 않거나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행동이 그 일 자체를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의 연구팀은 피험자가 깊숙이 간직한 비밀을 고백하거나 글로 썼을 때, 그들의 건강이 나빠져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발견.
- 라이벌들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가설 안에서는 비밀이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비밀은 뇌에서 정당들이 서로 경쟁하며 투쟁한 결과. 뇌의 한 부분은 어떤 사실을 밝히고 싶어 하지만, 다른 부분은 밝히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엇갈리는 투표 결과가 나온 것이 바로 비밀이다. 어느 정당도 굳이 밝힐 생각이 없는 사실은 그저 재미없는 사실일 뿐이다. 양당이 모두 밝히고 싶어하는 사실은 좋은 이야기다. 라이벌 관계라는 틀이 없다면, 우리는 비밀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 비밀은 라이벌관계의 결과물이라서 의식에 감지된다. 늘 하던 일이 아니므로, CEO를 불러와 처리하게 하는 것이다.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장기적 결과에 대한 걱정이다. 비밀누설로 인해 친구가 나를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고, 연인이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동네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걱정을 한다는 증거는 바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는 비밀을 털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런 대가 없이 뉴런들 사이의 갈등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만난 낯선 사람이 자신의 가정불화에 대해 시시콜콜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하고, 세계 최고의 종교 중 하나인 카톨릭에서 고해소가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기도의 매력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 가능. 특히 신자의 말에 전적으로 귀를 기울이며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는, 몹시 친밀한 신들을 지닌 종교에서 기도의 매력이 크다.
낯선 사람에게 비밀을 말하고 싶다는 이 오랜 욕구의 변형은 온라인 익명게시판의 형태를 띠고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익명으로 속내를 털어놓는다.
- 인공지능 연구가 왜 발목을 잡혔을까? 답은 분명하다. 지능 그 자체가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 자연은 수십억 년 동안 몇 조번이나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반면 인간이 이 문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지는 겨우 수십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대부분의 기간동안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지능을 만들어내는 연구만 하다가, 최근에야 연구의 방향이 바뀌었다. 생각하는 로봇을 만드는 연구에서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려면, 자연이 찾아낸 비결들을 해독해낼 필요가 있음을 이제는 우리도 분명히 안다.
나는 라이벌드로 이루어진 팀일는 가설이 인공지능 연구의 발목을 풀어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과거의 연구는 분업이라는 유용한 걸음을 내디뎠지만, 그 결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은 의견 차이가 없어서 무능하다. 생각할 줄 아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면, 단순히 각각의 문제를 영리학 해결하는 하위 에이전트를 고안할 것이 아니라, 서로 겹치는 해결책을 지닌 하위 에이전트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서 서로 경쟁시켜야 한다. 각 파벌이 서로 겹치는 기능을 갖고 있으면, 뜻밖의 시각으로 문제를 영리하게 풀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퇴화도 방지할 수 있다.
인간 프로그래머는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문제에 접근함. 또는 로봇이 문제를 해결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기도 함. 그러나 우리가 생물학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서로 조금씩 겹치기는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공략하는 한 팀으로 길러내는 방법이 더 낫다는 점읻. 라이벌로 구성된 한 팀이라는 가설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영리한 방법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버리고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들이 다수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택하는 것이 최선임을 암시한다.
팀을 길러내는 최선의 방법은 십중팔구, 진화를 흉내낸 접근법일 것이다. 작은 프로그램들을 무작위적으로 만들어서, 그들이 작은 변이를 가진 자손들을 만들어내게 하는 것이다. 이 전략을 사용하면, 아무것도 없는 고에서 완벽한 해결책 하나를 생각해내려고 애쓰기보다 끊임없이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것이 가능해진다.
- 진화가 사람보다 똑똑하다. 만약 내가 생물학의 법칙을 만든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해결책들을 진화시켜라. 해결책을 발견하더라도 멈추지 마라."
기술은 지금까지 민주적인 구조, 즉 라이벌들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가설을 이용하지 않았다. 컴퓨터는 전문화된 부품 수천 개로 만들어졌지만, 그 부품들이 협동하거나 언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나는 갈등을 기반으로 한 민주적 조직이 생물학에서 영감을 얻은 기계의 풍요로운 새시재를 열 것이라고 생각한다.
- 금기에서 벗어난 행동은 전측두엽 치매환자에게서 흔히 나타남. 전측두엽 치매는 전두엽과 측두엽이 퇴화하는 비극적 질병. 이 부위의 뇌조직이 사라진 환자는 숨은 충동을 통제하는 능력을 잃는다. 그들이 사회적 규정을 어기는 온갖 방법을 한없이 생각해내기 때문에,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좌절을 느낀다. 환자들은 가게 주인 앞에서 물건을 훔치고,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고, 정지 신호에 뛰어가고, 아무때나 노래하고, 쓰레기통에서 주운 음식을 먹고, 물리적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성추행을 저지른다. 그래서 법정에 설 때가 많은데, 그들의 변호사와 의사, 그리고 당혹스러워하는 성인자녀들은 그 범죄가 정확히 말해서 환자의 잘못이 아님을 판사에게 설명해야 함. 뇌의 대부분이 퇴화해버린 그들의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아주는 약은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 정신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의 긴 목록에는 화학물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신경세포의 세부사항도 포함됨. 간질을 예로 들어보자. 간질발작이 측두엽의 특정한 지점에 집중되어 있다면, 운동발작보다는 잘 눈에 띄지 않는 증상이 나타날 것임. 일종의 인지발작인데, 성격변화, 과종교증, 하이프그라피아(종교에 관한 주제에 관해 길게 글을 쓰는 것), 외적인 존재가 없는데도 있다고 느끼는 것, 신의 목소리로 여겨지는 목소리를 듣는 것 등이 특징적 증상. 역사속 예언가, 순교자, 지도자 중 일부는 측두엽 간질환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백년전쟁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16세 소녀 잔다르크를 보자. 그녀는 대천사 미카엘,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 성 마거릿, 성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자신에게 들린다고 믿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열 세살 때 나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도와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처음에 나는 겁에 질렸다. 목소리가 나를 찾아온 때는 정오경이었다. 여름이었고, 나는 아버지의 정원에 있었다." 나중에는 이런 말도 했다. "하느님이 내게 가라고 명령하셨으니 나는 반드시 가야 한다. 하느님이 명령하셨으니, 내게 100명의 아버지와 100명의 어머니가 있었어도, 내가 왕의 딸이었어도, 나는 갔을 것이다." 이제 와서 확실한 진단은 불가능하지만, 그녀의 전형적인 묘사, 신앙심의 증가,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확실히 측두염 간질증상과 일치. 뇌의 특정한 지점이 활성화되면 사람들은 목소리를 듣는다. 의사가 간질약을 처방해주면 발작도 사라지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 현실은 생물학적 현상에 달려 있다.
인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에는 인간이 아닌 아주 작은 생물도 포함됨.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이 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전투를 치르며, 지극히 구체적인 방식으로 우리 행동을 쥐고 흔든다. 미생물이 거대한 기계의 행동을 장악하는 사례로 내가 즐겨 인용하는 것은 광견병 바이러스다. 한 포유류가 다른 포유류를 물면, 작은 탄환 모양의 이 바이러스가 신경을 타고 측두엽으로 올라간다. 거기서 인근 뉴런으로 파고들어가 국지적 활동패턴을 바꿔서, 숙주가 공격성과 분노, 상대를 물려고 하는 경향을 드러내게 만든다. 이 바이러스는 또한 침샘으로 들어가서 숙주가 어떤 대상을 물때 그쪽으로 넘어가 새로운 숙주로 삼는다. 동물의 행동을 조종해서 다른 숙주로 퍼져나갈 길을 확보하는 것. 생각해보라. 지름이 고작 750억분의 1미터에 불과한 이 바이러스가 자기보다 2500만배나 큰 동물의 몸을 조종해서 살아남는다니. 이것은 사람이 키가 4만 4800미터나 되는 생물을 찾아내서 아주 영리한 방법을 동원해 멋대로 휘두르는 것과 같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변화가 뇌에서 일어나면 행동이 크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은 뇌의 작디작은 부분들과 불가분의 관계로 묶여 있다.
우리가 생물학적 현상에 휘둘린다느 마지막 사례로, 유전자 하나의 아주 작은 변이가 행동을 바꿔놓는다는 점. 헌팅턴병을 생각해보자. 전두피질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손상 때문에 성격이 변해서 공격성, 성욕과다, 충동적 행동, 사회적 규범 무시 등이 나타나는 병이다. 이런 일이 몇년 동안 진행되다가, 팔다리가 경련하듯 눈에 띄게 움직이는 증상이 나타남.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전자 하나의 변이가 헌팅턴병의 원인이라는 사실. 로버트 새폴스키는 이렇게 요약했다. "수 만개의 유전자 중 하나만 바뀌어도, 사람이 인생을 약 절반쯤 살았을 때 성격이 급격하게 바뀐다." 이런 사례들 앞에서, 우리의 본질이 세세한 생물학적 현상에 달려 있다는 결론 외에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헌팅턴병을 앓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발휘해서 그 이상한 행동을 그만두라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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