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의 10대.20대 세대들은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오직 스 펙쌓으며 생존경합에만 연연해하는 극보수 정치세력으로 낙인 찍혀 왔다. 이러한 괴이한 현상의 배후에는 "진보"를 표방한 세력 이 사회악의 제거에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이 있다. 정치라는 것은 윤리이론의 강론이 아니다. 악에 대한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정의로운 주장을 관철시킴으로써 국민의 마음(민심R나)을 얻는 행위이다. 절호의 기회를 얻은 진보세력이 그 기회를 사회. 역사방향이 지선포홈으로 전환케 되는 카이로스의 계기로 활용 하지 않았다는 것, 혼신의 힘을 쏟지도 않았고, 진냥 싸우다가 얻어터져 케이오 당한 것도 아니고, 그냥 시시하게, 안일하게 물러나 앉았다는 그 무기력한 모습에 이 땅의 젊은이들은 깊은 실망을 느낀 것이다. 그 진보의 무기력함에 자본주의의 시스템적 구속은 점점 강하게 젊은이들의 미래와 희망을 박탈하였다는 것이다.
- 맹자가 전국시대의 패왕찌표인 양혜왕에게 그의 실정을 지적 하여하는 말에 이런 기맥힌 언사가 있다:
흉년이 들어 사람이 죽어 나가고, 길거리에 굶어 죽은 시체가 나뒹 굴고 있는데도 진율곡식창을 열 생각을 아니하고, 사람이 죽으면 말하기를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세월의 운세 탓이 야!,라고만 말한다면, 이것은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고 나서,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칼이 잘못한 것이야!"라 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세월에게 죄를 묻지 아니하시고 근원적인 도덕의 정치개혁을 당장에라도 행하신다면 천 하의 백성이 몰려들게 될 것이외다
맹자는 양혜왕이 구율창고를 열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이렇게 혹독한 비판을 했지만 윤석열은 구율창고를 열지 않은 것보다 몇천 배 도수 높은 죄악을 저질러왔다는 것은 국민들이라면 누 구든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처가가 소유한 땅의 값을 올리기 위 해 고속도로의 위치를 마구 변경한다든가 하는 사건으로부터 시 작하여 명품백사건, 주가조작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이르기까 지 수없는 부정사태에 관하여 국민이 입다물고 있는 이유는, 너 무도 엄청난 죄악들이 계속해서 터지기 때문에, 경악이 경악을 삼키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 문명의 전환 모든 사람이 계급이나 교양여하를 불문하고 갑자기 일주일 동 안에 배운 문자로 자기의 말을 적어 의사를 소통한다는 것, 그 표음의 단순한 매카니즘이 천년만년 축적해온 모든 교양과 문화 의 덕성을 일순간에 흩날려 버릴 수도 있다는 것, 인간이 고전의 의미체계(뜻)를 빌리지 않고 다이렉트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이 것은 문명의 붕괴요, 인간의 붕괴요, 역사의 붕괴였다. 최만리 주 변의 사람들에게 이것 이상의 공포는 있을 수는 없었다. 최만리 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부정과 타협을 모르는 깨끗한 관원 이었고 자기신념에 따른 진퇴가 확실한 인물이었다. 상소를 올린 다음 해에 세상을 떴다
요즈음의 왜라이트나 친일친미성향의 극우행동파들과는 비 교할 수 없는 인물이다. 북한을 적대적으로 설정해놓고 일본과 미국과의 군사적 제휴가 없이는 한국이 설 땅이 없다는 논리, 일 본과의 적대적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양보하여 더큰화해.화합 을 이룩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국의 외교관계 를 친일파 일색으로 장식하는 김태효쇼#* 국가안보실 제1차장 의 행태는 여기 최만리의 망언에조차 비교할 수 없다. 김태효의 근원적인 오류는 동북아 국제질서를 대한민국을 주체ㆍ중심축 으로 놓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중심으로 놓고 한국을 종 속적 위치에 놓는다는 것이다. 굴종 속에서 얻어낼 수 있는 프린지 베니피트(fringe benefit를 노리려 하는 것이다.
- 초성.중성.종성이라는 것은 훈민정음의 매우 독창적인 발 상이다. 중국은 그토록 기나긴 운서의 전통을 지니고 있으면서 도 발음체계를 성모와 운모의 2분법적 체계만을 고수했다. 그런 데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성삼문과 신숙주)은 중국의 성운학을 마스타하기 위해, 만주의 요동에 귀양와 있던 명나라의 한림학 사 황찬#, 1402~1447(강서성 길안사람. 선덕효행 8년 진사. 중국에서는 성운학자로서 별로 알려진 인물이 아닌데 매우 강직한 양심적 지식인이었다)을 만나기 위해 13번이나 요동과 조선을 왕래하였다. 황찬은 대학 자로서 음운과 인간의 발음, 언어일반에 관하여 매우 상세하고도 정확한 지식을 전해주었다.
티베트사람들이 티베트문자를 만들 때 그 의도는 산스크리트 불경을 번역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세종은 한국 사람들의 말을 기록한다는 민족적 이상을 초월하여, 인간의 발 음기관은 제한이 있고, 보편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의사소통 을 위한 수단으로 발음체계를 만들어 낼 때는 일정한 법칙이 있 다는 보편주의적 사유 속에서 이 지구상의 인간들이 말하는 언어 그 전부를 기록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낸다는 신념을 가지고 발음과 인간 보편적인 발성구조를 심각히 연구하였다
-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그대의 선조들은 금강산의 수려한 자태 보다 더 수려한 문화를 창조해왔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문자사의 대가 피셔Steven Roger Fischer의 r문자의 역사A History or WiingJ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당시 한국인들은 한국말을 음성 나는 대로 쓸 수 있는 한국인 자신의 문자를 가지고 싶어 했다. 세종은 중 국문자에 의존하는 한문을 대치할 수 있는 한국의 유니크한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된 한국의 유니크한 한글 은 결과적으로 인류의 문자사에서 고안된 가장 효율 적인 소리글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Koreans are in great need of their own letters with which they can write the Korean language. Seycong's proposed replacement of Chinese-based writing, Korea's unique Hankul, eventually came to represent the most efficient system ever devised in the history of writing. (p.187). ("Seycong"은 오식이 아니라 서양인의 옛표기 방식이다).
- 조선왕조가 깨끗이 끝나고 완전히 새로운 식민지 시대가 시작 되었다면 역사의 기술은 간결하게 채프터를 넘길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9세기~ 20세기 조선역사의 흐름은 전체적으 로 조감하면 복잡한 양상을 민다. 조선왕조는 세도정치에 물들 었고, 세도정치는 권문세가의 지속적인 전형을 초래했고, 민중 의 삶은 외면되었다. 삼정의 문란이 일어나고 이 문란을 광정하 기 위하여 동학이 혁명세력으로서의 전투력과 이론체계를 강추 었다. 이를 버겁게 느낀 조선왕조 조정은 일본에게 동학의 처분 을 맡긴다. 일본이 동학을 처단한다는 것은 조선왕조의 생명, 조 선왕조의 정화인 그 꽃을 꺾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왕 조는 동학민중항쟁을 매개로 하여 정당한 조약도 없이 사라진 다. 조선의 국민들은 조선이리는 왕조가 사라졌다는 것도 인식 할 틈도 가지지 못했다. 그만큼 왕조말기의 민중의 일상적 삶은 처참했고 민생의 밑바닥을 혜매었기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것도 인식할 만한 의식의 분절이 없었다.
이때 중요한 사실은 왕가의 정통성이 사라지고 일본천황폐하와 조선총독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세도정치의 맥을 이은 권문세가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지키는 몇몇의 유림 종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조선왕조를 섬기는 그 의식대로 천황 과 총독을 섬기었다. 물론 안동김씨가문이나 풍양조씨라는 19세 기 전반의 세력이 그대로 권세를 이은 것은 아니라 해도 대부분 의 조선왕조 이스태블리쉬먼트는 일본식민지에서 일본지배에 협조한다는 충성맹약과 더불어 새로운 작위를 받았고 은사금을 받았다. 그것은 일본이 조선을 다스리는 효율적인 방편이었다
그러니까 일제 36년 동안에도 다양화된 친일분자의 세도정치 가 날개를 쪘다. 19세기 후반의 빈부의 격차는 일제강점기 때도 계속되었고, 양반-쌍놈의 차별은 소시알 모빌리티social mobility 의 제고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양반-쌍놈의 격차를 무의미하게 만 드는데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6.25전쟁이다).
- 미군정의 비극, 4∙19혁명까지
해방 이후 미군정기에도(% 미군정은 조선총독부와 다를 바 없는 외세 지배기구였다) 권문세가의 세도정치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미군정 의 지배자들은 우선 코리아라는 나라에 무지했다. 역사도 몰랐 고, 인문지리적 지식도 없었고, 언어도 몰랐고, 그 특유한 풍속 과 모랄에 무지했다. 이렇게 미지의 세계를 다스리는 유일의 효 율적인 방편은 일제시대 때 일본지배정치 매카니즘을 장악하고 있던 친일과 관료 하이어라키를 그대로 옮겨오는 방법밖에 없었 다. 그들은 교육수준이 높았고, 돈이 많았고, 영어를 잘했고, 또 기독교신앙 속에서 개화의 특권을 누리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반공주의자였다. 미군정은 이러한 세도정치가 들의 집단과 손잡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세도정치가문집단 외곽에서 일제에 타협하지 않은 양 심가들은 대부분 교육수준의 고하에 관계없이 콤뮤니스트, 즉 좌익으로 낙인찍힌다. 우리나라 해방 후의 역사에서 이 좌익. 우익이라는 말은 서양정치사의 개념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 만 우리나라 역사 고유의 특이한 성품과 전승을 부여받는다. 우 이은 세도가문이었고, 공부를 많이 했고(근대 서구식 교육을 많이 받 았다), 영어를 잘했고, 일요일이면 교회를 나가는 교양인이었다 교양인"은 조선왕조의 권문세가의 덕성을 물려받았다.
- 이승만정권의 정치주조보는 바로 이 교양인들을 보호하고 육성하여 이씨왕가 왕손의 체통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사회평등 이나 정의에 대한 관념이 희박했다. 미국의 빽업을 받는 막강한 이승만정권이 4.19혁명에 의하여 타도되는 사건은 삼정의 문란 을 디디고 그 위에서 버티고 있던 조선왕조가 동학혁명에 의하 여 케멸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사건이다. 이 두사건이 장을 달 리하는 먼 시대의 멀리 떨어진 사건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연대Ctrl
적으로 단지 66년밖에 격하고 있질 않다. 알고 보면 동시대성의 사건contemporary events인 것이다
- 번지가 공자님 수레를 모는 중에 뒤돌아보며 문득 여쭈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인( 이라는 게 과연 뭘까요?" 공자께서 말씀하시 었다: "사람을 아끼는 것이니라." 번지가 이어 여쭈 었다: "이왕 애기가 나온 김에 한 말씀 더 여줍겠 습니다. '안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공자께 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공자께서 말씀을 해놓고 보니, 번지란 놈이 원 깨 달아 먹은 것 같지를 않았다. 그래서 한마디를 더 첨가하시었다: "반듯한 재목을 굽은 재목 위에 쌓아 놓으면 굽은 재목이 펴지나니라. 이와 같이 곧은 사람을 들어 굽은 사람 위에 놓으면 모든 굽은 사람 들도 곧게 될 수 있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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