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우리가 게이 섹스라고 이해하는 행위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 존재해왔으며, 역사의 대부분 시간 동안 낙인이 찍혀왔다. 헨 리 8세 왕은 1533년 남성 간의 섹스를 범죄로 규정했다. 남성 간 섹스에 대한 처벌로서 존재했던 사형이 1861년 폐지된 이후로도 게이 섹스는 여전히 금기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동성애가 주로 (특허 남성 간 의) 애널섹스와 오럴섹스를 의미했던 소도미와 동의어로 여 겨졌던 것이, 완전히 독립적인 하나의 정체성으로 이해되기 시작 했다. 그저 '게이 섹스'로 존재하던 개념이 이제는 '게이'라는 사 람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동성애에 대한 '과학적' 담론 이 등장했기 때문인데, 이 담론에서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 하나 의 질병으로 재정의된다. 역사학자 테오도어 젤딘은 이렇게 썼다
동성애자(homosexual)라는 단어는 박해를 피하려는 바람에서, 비엔나의 작가 벤케르트에 의해 1861년이 되어서야 발명되었다. 동성애자들은 본인들의 의지에 따라 '제3의 성'을 독립적으로 만들어 내어 동성애가 악덕이나 범죄로 기소받지 않도록 했다. 그 이후 동 성애라는 용어는 의학적인 분류가 아닌 우스운 농담으로 사용되었 다. 3
20세기로 접어들어 또 다른 비엔나의 지성인 (또한 '너희 엄마' 농담의 선구자인)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남성 아동이 '여성 적인' 양육의 결과로 동성애자로 전환된다는 내용의 논문 세편을 발표해 반향을 일으킨다.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프 로이트는 동성애를 병리화하고 동성애에 더욱 깊은 낙인을 찍는 데 기여했다. 이제 남자들은 동성 간에는 성적 매력과 혼동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낭만적 우정이라고 정의되는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친밀감은 서서히 과거의 것이 되어갔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인터뷰에서 "사회적 제도로서의 우 정이 사라지는 것과 동성애가 하나의 사회/정치/의학적 문제로 선언되는 것은 같은 과정이었다"라고 말했다.
-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정신적 부담'을 꺼리는 남성 들의 태도가 남성 외로움 통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 이견이 없 다. 다른 측면에서의 분석도 있다. 남성의 고립이 여성에게 더 많 은 감정노동을 야기한다는 주장이다. 그 이유는 여성들이 남친이 나 남편과 동거하며 그들을 돌보는 심리치료사 같은 역할을 겸해 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자들에게는 함께 사는 여자 외에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충족시켜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 멜라니 햄릿Meanic Hamle은 잡지 하퍼스 바자에 기고한 글에서 이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남자는 친구가 없고 여자가 그 부담을 진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9 이 글은 여성이 어떻게 남성에게 무보수, 무조건으로 고민 을 들어주며, 지속적인 조언을 제공하고, 쉬지 않고 관심을 기울 이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남자분들, 고민이 있으세요? 여자에게 가세요. 그럼 위로를 받을 수 있어요. 물론 그 여자도 즐거워할 거 예요. 왜냐하면 여자들은 원래 그런 좆같은 역할을 사랑하거든요! 햄 릿은 '여성 구세주'라는 널리 퍼진 문화적 수사가 여성에게 이런 역할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즉, 남성을 올바르게 '인도'하거나 '어미 닭'이 되는 게 여성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 "100년 전만 해도 부부 간의 애정과 핵가족 유대감을, 확대가 족과 시민의 의무, 종교에 대한 헌신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대부 분의 사회에서 위험한 반사회적 행동으로, 심지어 병적인 자기애 로 인식되었다"라고 쿤츠는 설명한다.12 예를 들어, 중세 시대에 결혼은 권력을 확대하거나 평화를 획 득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군사동맹을 위해 스스로 결혼하거나 자 식을 결혼시켰다. 권력 획득과 함께 경제적 필요 또한 결혼의 목 적이었다. 농경사회에서 배우자는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를 함께 생산하며 고군분투하는 동업자였다. 이후 산업화를 거치며 부# 가 증대한다. 그 결과 결혼을 통하지 않고도 물질적 필요를 충족 할 수 있게 된 1850년경이 되어서야, 사람들은 사랑을 목적으로 결혼하기 시작했다. 학계에서 '동반자적 결혼'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이 현대적 이상화가 우리의 우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60년대에 이미 C.S. 루이스는 이런 새로운 균형에 대해 비탄했다. 우리가 남자에게는 아내 말 고도 친구가 몇몇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우정은 '누 렇게 말라빠진 채소 같은 것으로, 유기농으로 잘 가꾸어진 사랑 의 임시 대체품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우정은 멀리 놓 인 주변적인 것, 인생이라는 연회에서 메인 코스가 아닌 지 우리 시간의 갈라진 틈새를 메우는 기분전환용 무언가다."13 어쩌면 우리는 빅터 ]. 사이들러의 지적대로 '다소 역설적이게 도 우정을 삶과 관계에서 공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법'14을 배우 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남자는 자신의 사적인 삶에서 살 코기는 모두 아내와 여친을 위해 아껴두는 법을 배운다. '진정한 나를 알 수 있는 특권은 '오직 그대'('하나뿐인'으로 자주 수식되 는)만을 위해 아껴둔다
- 역사적으로 교육과 육아는 성별에 따라 다르게 제공되었다.여자아이들은 조력적 행동과 가정적 돌봄 능력을 개발하도록 독 려받았고, 남자아이들은 관계를 위한 노력에 자신의 에너지를 덜 투자하도록 독려받았다." "또한 노동의 성별 분화를 통해 가정관리 책임과 우정을 위한 노력을 대부분 여성에게 할당해버렸고 남성들은 직업을 위한 핵심 관계들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도록 했 다." 클라이넨버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클라이넨버그의 분석을 읽으면서 멜라니 햄릿의 글에서 읽은 내용을 떠올렸다. "나를 빼면 내 남편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 은 직장동료들뿐이다." 어떤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성이 퇴직하면 사교를 파트너의 인맥에 의존하게 되는 모습 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이것은 문제가 된다. 다양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에 대한 연구에서 한가지 확 실한 결과가 있다. 사별이나 이혼을 경험할 때 여성은 신체적, 정 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남성보다 적다. 여성이 휠씬 더 넓고 친밀한 사교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남성은 자신의 사교 네트워크를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다.
- 던바는 "우정은 압시적인 사교적 계약, 즉 미래의 지원을 약속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지적으로 까다로운 활동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우정을 유지하려면 그 우정이 상호적이고 균형 잡 헌 관계인지 확인해야 한다. 받을 빛과 갚을 빛이 기록된 정신적 장부를 관리하는 데에는 엄청난 두뇌 업무가 필요하다. 물론 우정이란, 식당에서 먹은 저녁 식사 영수중을 돋보기로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나는 셔벗 디저트를 안 먹었으니 내 통장으로 8펜스(약 150원- 옮긴이)씩 이체해달라고 친구들에게 요구하는 종류의 관계가 아니다. 우정을 유지한디는 것은 사람들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하는 종류의 사람이 되는 것이 다. 이 또한 역시 머리를 굴려야 하는 일이다. 우선, 장기적으로 친구관계를 유지하려면 자신만을 챙기는 본 능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그 본능이란 대놓고 이기적인 행동(말 도 없이 다른 사람 물건을 가져가는 것)에서부터 사회적으로 서 투른 행동(예를 들어, 아제 개그 또는 '한달 동안 너네 집에서 먹고 자고 하려는데, 괜찮을까?'처럼 과도한 부탁하기)까지 다양하 다. 과학자들이 '정신화 '라고 부르는 인지 메커니즘이 있 는데, 이 메커니즘이 없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던바의 설명은 이렇다. "한 사람이 가진 친구 수와 정신화 능력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증거가 많습니다.
- 남자들이 우정에서 구하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익명성이다. 큰 집단 안에 들어가 스스로를 지우는 것이다. 자전거 동호회가 동네마다 빠짐없이 있는 것을 보면 완벽하게 맞는 말 같다. 우리 동 네에도 이런 남자들이 많다. 토요일 아침에 내가 조깅을 한답시 고 나가서 병든 여우처럼 발을 끌며 걸을 때면, 자전거 동호회 부 류의 남자들이 떼를 지어 내 옆을 쓱 지나쳐 간다. 이들은 공력최 적화 헬멧과 랩어라운드 곡면 선글라스를 장착하고, 1파운드 숍 에서 산 듯한 파워레인저 원색 쫄바지 차림으로 자전거에 구부정 하게 상체를 오그리고 앉아 줄지어 이동한다. 이들은 '한계 출력 파워 출력' '페달링 회전수' 등에 대해 너무나도 심각한 표정으 로 의견을 나눈다. 그들의 즉흥적인 떼 안무에서는 친밀감이 느 꺼진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단절되어 있으며, 얼굴만 한 선글 라스 뒤에 본인을 감춘다. 이들에겐 독립성과 상호의존성이 공존 한다 함께 모여 있는 가운데 어딘가 분리되어 있다.
- "여성은 육아 문제로 친구에게 의존했어요. 남자들의 우정은 동맹을 구축하는 것, 즉 자신을 위협하는 다른 남자들과 싸우거 나 성적 파트너를 찾는 데 도움이 되도록 서열에서 자신의 지위 를 유지하고 지지세력을 모으는 데 전적인 목적이 있었죠." 마친 은부연했다. 여성과 남성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이 달랐기 때문에 사교 적 특성도 다른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여성은 소수의 매우 친밀 하고 안정적인 일대일 유대를 형성하기 위한 능력이 필요했다 (내 소중한 아이는 내가 진정 잘 알고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맡길 수 있기 때문에 이 접은 명확하다.) 반대로 남성은 지위 다툼이 수반되는 변동적 상황에서 동맹집단을 만들어야 했다. 물론 이 것은 여러 주장 중 하나다. 아직 하나의 '주장'일 뿐이지만, 마친을 비롯한 학자들은 그럴 듯한 근거가 충분하다고 말한다. 우선 다른 비인간 영장류의 사회 역학관계에서도 비슷한 차이점을 볼 수 있다. 발달심리학자들은 인간의 경우 이런 행동의 차이가 5~6세 정도 어린 나이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관찰했다.' 사교능력에서의 성별 차이점도 확인 되었고, 이는 진화논리에 부합한다.
- C.S. 루이스의 탁월한 통찰은 우정은 무엇인가 '공유'하는 것 이 있어야 하며, 그것은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 알츠하이머 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신체는 존재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부 재한 사람과 살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경험한다고 한다. 심리학 자들은 이런 느낌을 '모호한 상실'ambiguous los이라는 용어로 설명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우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겉으로는 반지르르하지만 내면은 일종의 슬픔으로 얼룩져 있는.
-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y odmbu는 저서 제3의 장소에서 '제3의 공간'이라는 용어를 고안했고, 이 용어를 통해 우리가 집이나 직장이 아닌 술집, 카페. 공원, 이발소, 도서관, 체육관, 커뮤니티 센터 등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다양한 이유를 설명한다. 올든버그는 과거에는 우리가 사 는 동네에 이런 제3의 공간이 여럿 있었지만, 지금은 그 종류, 수 의미 등이 현저하게 쇠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5 올든버그는 전후 있었던 교외로의 인구 이동을 지적한다. 우리 는 일하는 곳 근처에 살았고, 거주지에서 주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서 사교활동을 했다. 도시 공간이 확장되면서 우리 삶의 러 부분들이 분리되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통근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을 위해 멀리 이동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가 되 었다." 올든버그는 '제3의 공간'이 사라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쉬는 시간 없는 학교'에 비유한다. 슬픈 비유다. 학교에 서 수업만 듣고 피곤에 쩔어 곧장 집으로 돌아온다면 학교 친구 들을 사귈 수 있을까? 사람들을 만날 장소가 필요하다고요! 이 외에 다른 것도 필요하다. 시간과 열린 마음, 사람들을 만나러 가고자 하는 욕구가 필요 하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가 이런 요소들이 현대인에게 점점 부 족해진다고 지적한다. 사회사학자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의 말 을 빌리자면, 우리는 이제 '개인적 삶을 살기 위해 수행하는 집단 적 노력'의 수령에 빠저 허우적댄다
- 제3의 공간이 전혀 없는 세상. 한때 공동체가 있던 자리는 이제 팅 빈 커다란 틈으로 남았고, 직장 내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삶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우리의 '직장 친구'가 우리 관계의 부족 분을 벌충할 거라는 희망이 샘솟지만, 정말 그럴까? 글쎄. 여기에 는 몇가지 어려움이 있다. 우선, 우리는 예전보다 휠씬 더 자주 직 장을 옮긴다. 그리고 자영업과 각 경제(기업들이 필요시에만 임시로 노 동자를 고용하는 경영 형태- 옮긴이)가 부상하고 있다. 퍼트넘은 "자의 든 타의든 이동하는 새들은 둥지를 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팬데믹으로 인해 원격근무가 일반화되기도 전의 지 적이다. 이후 팬데믹으로 이런 현상은 가속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