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의 짧은 역사

사회 2025. 3. 30. 16:46

- 이 책에서 우리는 가장 가난한 하위 50%를 민중계급, 그 다음 40%를 중위계급, 나머지 가장 부유한 10%를 상위계급이라 지칭할 것이다. 균질하지 않은 상위계급 내에서도 (하위 9%에 해당하는) 부유한 계급과 (상위 1%에 해당하는 지배계급을 구분하기로 한다. 간단히 요약해 말하면, 민중계급은 적은 금액의 은행예금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다르게 중위계급의 자산은 주로 주택에 집중돼 있으며, 부유한 계급의 자산은 주택과 사업자산, 금융자산으로 나뉘어 있다. 반면 지배계급의 자산은 생산수단(사업자산, 주식, 유가증권 위주)에 집중됨. 계급분류에 사용한 이 용어들은 분명한 의미를 전달해 주지만 결코 고정되어 있거나 경직된 개념이 아님. 현실에서 계급적 정체성은 항상 유연하고 다원적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 계급적 정체성은 결코 화폐적 등급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계급은 생산수단과 주택의 소유, 그리고 이 소유의 규모뿐 아니라 소득과 학력, 직업, 활동분야, 나이, 젠더, 출신 지역과 국가, 더러는 종족/종교적 정체성에 의해 결정됨. 그리고 이것이 결정되는 방식은 사회역사적 맥락에 따라 유연하고 가변적임.

-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중간계급이 존재한다고 할 수 없었다.  하위 50%와 상위 10% 사이에 있는 40%가 하위 50% 못지않게 가난했기 때문. 그런데 20세기말과 21세기 초에 오면, 물론 개개인으로 보면 엄청나게 부자는 아니지만 궁핍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중위 자산계급이 만들어지고(이들은 성인 1인당 대략 10만-40만 유로의 자산을 보유), 이 집단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몫은 40%라는 상당 수준에 이르게 됨. 이는 상위 1%가 차지하는 몫(24%)의 거의 두배에 해당하는 규모인데, 1차대전 발발 직전 이들의 점유일(13%)이 상위 1%의 점유율(55%)의 1/4~1/3에 그쳤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이 변화를 다른 방식으로 말해보자. 집단 전체를 놓고 말할 때, 한 세기 전에 지배계급보다 3배 더 가난했던 중위계급이 오늘날은 2배 더 부유하다고 말할 수 있다. 소유의 집중은 시대를 막론하고 한 번도 극단적이지 않았던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런 전반적 경향 속에서도 집중이 뚜렷하게 꺾이는 추세는 관찰된다. 이 두가지 진단은 상호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모두 사실이다. 이같은 세계의 복잡성이야말로 우리가 물려받은 역사적 유산의 일부이기도 함.
이런 불평등의 감소는 전쟁과 경제위기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내내 실행된 새로운 사회정책과 조세정책의 결과. 사회적 국가, 교육과 의료를 비롯한 기초적 재화의 접근에서 실현된 일정 정도의 평등, 그리고 상위소득과 자산에 대한 강력한 누진세 적용이 바로 그 내용이다. 강력한 사회적, 정치적 투쟁이 이끌어낸 이같은 근본적 변화들이 앞서 언급한 법제도 및 소유권에 일어난 커다란 변화들인 물론 평등의 확대 또한 이루어냈다. 이 여정을 앞으로 계속하는 게 바람직한가? 바람직하다면, 어떤 방법으로 해나가야 할까? 나는 이 평등을 향한 여정이 여러 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이 사회적, 경제적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얻어진 생산성 증대와 집단의 번영도 당연히 그 효과 중 하나일 것이다. 전체 소유에서 차지하는 몫이 대폭 줄었기 때문에 지배계급의 지출과 투자능력은 19세기이후 급격히 감소. 하지만 이 감소분은 부상한 중위 계급과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민중계급에 의해 상쇄되고도 남았다. 현재 불평등 수준에 만족해야 하며, 하위 50%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몫이 5%에 불과한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결코 견고한 역사적 경험에 기반한 생각이 아니다. 평등을 향한 여정은 앞으로 계속되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를 좀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 케네스 포메란츠는 2000년 출간한 유럽과 아시아의 대분기를 다룬 저작에서, 세계적 차원의 원자재 공급가 노동력 동원이 없었다면 서구의 산업발전은 단시간에 대규모 생태적 제약에 봉착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 그는 특히 18세기말부터 19세기까지 영국을 필두로 유럽국가들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 세계 다른 지역에서 행한 대규모 원료(특히 면화)와 에너지자원(특히 목재) 수탈에 기반했다는것, 그리고 이 과정이 식민지배를 통해 강제적이고 조직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포메란츠가 보기에 1750-18900년 무렵에는 중국과 일본의 가장 발전한 지역들이 서유럽의 비슷한 지역들과 발전 수준에 차이가 없었고, 사회-경제 구조도 상당히 유사했다. 양쪽 모두 지속적 인구성장과 (경작기술 향상과 개간/버목을 통한 농경지 면적의 증대덕에 가능해진) 농업발전이 진행중이었고, 직물산업을 중심으로 프로토산업화와 자본축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포메란츠의 분석에 따르면, 핵심적 두가지 이유 때문에 1750-1800년부터 양쪽이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된다. 첫째, 유럽에서 벌목으로 산업발전에 심각한 제약이 발생한 상황에서 잉글랜드에서 풍부한 석탄 매장지가 확인된 것. 그러자 목재가 아닌 다른 에너지원으로 빠르게 눈을 돌렸고, 관련 기술도 일찍 발전하기 시작. 둘째, 유럽국가들의 조세재정능력과 군사능력의 발전이 국제노동분업과 수익성 뛰어난 공급망 구축을 가능하게 함. 당시 유럽국가들이 지닌 조세재정능력과 군사력은 주로 오래전부터 벌인 경쟁의 산물이었는데, 여기에 국가간 경쟁에서 비롯된 기술혁신과 금융혁신까지 더해지며 강화됨.

- 벌목고 관련해 포메란츠는 유럽이 18세기 말에 탈출구 없는 생태적 제약에 봉착하기 직전이었다는 점을 강조. 영국과 프랑스, 덴마크와 프로이센, 이탈리아와 에스파냐 모두에서 몇 세기동안 숲이 급속도로 사라져, 1500년 무렵에는 전체 면적의 대략 30-40%를 차지하던 것이 1800년에는 10%에 불과. 초기에는 아직 숲이 울창한 동유럽이나 북유럽 지역들과의 교역을 통해 목재부족분을 부분적으로 메울 수 있었지만, 곧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해짐. 비슷한 시기인 1500-1800년 동안 중국에서도 벌목이 점차 늘어났지만 상황이 유럽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당시 중국의 발전한 지역들과 숲이 울창한 내륙지역들간에 좀더 강력한 정치적, 상업적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

- 유럽은 아메리카의 발견과 아프리카와의 삼각무역, 아시아와의 교역을 통해 그런 제약들을 타개해나가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북미와 앤틸리스 제도, 남미로 데려온 노동력이 생산한 원료(주로 목재, 면화, 설탕)는 식민지배자들의 이윤창출과 1750-1800년 무렵부터 급성장한 섬유산업에 쓰였다. 군사력을 이용해 장거리 해상운송로를 장악한 것도 원거리 지역과의 상호보완성 강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국은 플랜테이션에서 가져온 목재와 면화로 섬유제품과 공산품을 만들어 북미에 수출했고, 여기서 번 돈을 다시 앤틸리스 제도와 현재 미국 남부에서 일하던 노예들의 식량구입에 사용. 18세기에 노예들이 입던 옷을 만든 천의 1/3이 인도에서 온 것이었다. 또한 아시아에서 물건(직물, 비단, 차, 도자기 등)을 수입해 오는데 필요한 돈의 상당부분을 아메리카에 수출해서 번돈으로 충당. 포메란츠의 계산에 따르면 1830년 무렵 영국이 해외 플랜테이션에서 들여온 면화와 목재, 설탕의 양은 100만 헥타르 이상 경작지의 생산량에 해당했고, 영국 전체 경작지 생산량의 1.5-2.0배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렇게 식민지를 통해 생태적 제약을 극복할 수 없었다면 다른 곳에서 공급원을 찾아야 했을 것임. 물론 유럽이 자급자족으로 똑같은 산업발전을 이루었을 시나리오가 역사적, 기술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 가령 랭커셔 영국인 농부들이 관리하는 비옥한 면화 플랜테이션의 모습을, 맨체스터 인근의 하늘 위로 쭉쭉 뻗은 아무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세계의 이야기,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 세수관련 자료에 따르면 150-1800년 사이에 유럽국가들과 비유럽국가들 사이에 대분기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1600-1650년 동안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세수가 미미했다. 하지만 유럽국가들이 부강해지는 1700-1750년 무렵부터 뚜렷하 격차가 나타나기 시작. 18세기 말고 19세기 초, 중국과 오스만 제국의 세수는 여전히 도시 노동자 임금의 2-4일치(국민소득의 1-2%)에 해당했다. 같은 시기 주요 유럽국가들의 세수는 15-20일치 임금(국민소득의 6-8%)에 해당. 데이터가 얼마나 부정확한가와는 별개로 격차는 분명 존재하며, 이는 커다란 변화가 틀림없다. 국민소득의 1%만을 세금으로 걷는 국가는 사회를 동원할 수 있는 권력과 역량이 극히 제한적임. 달리 말하면, 이런 국가는 스스로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국가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 국민의 1%밖에 동원할 수 없다. 따라서 종종 자신의 영토 내에서 재화와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도 벅차 지역 엘리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음. 이와 달리 국민의 6-8%를 국가에 복무시킬 수 있는 국가는 특히 질서 유지와 대외적 군사적 야망 실현에 훨씬 더 막강한 능력을 갖게 됨.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똑같이 약한 국가였을 때는 어떤 의미에서 균형이 존재했다. 그런데 다수 유럽국가가 좀더 우월한 조세재정능력과 행정능력, 군사력을 갖게 되면서부터 새로운 역학이 작동하기 시작.

- 보호무역주의는 유럽의 부강에만 핵심적 역할을 했던 게 아니다. 역사 속 성공적 경제발전의 경험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보호무역주의가 작동한 것을 알 수 있음. 19세기말 이후 일본,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과 대만, 그리고 20세기 말과 21세기초 중국이 그 대표적인 경우. 이들 국가는 타깃화된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자국이 중점 육성하는 산업들에서 전문성과 노하우를 축적하는 동시에, 막 자리를 잡아가는 이 분야들에 외국 투자자들이 지배권을 가지게 될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 이 국가들은 특정 품목에서 절대적으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고 나면 그때부터 자유무역주의를 외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뒤처진 나라들은 종종 이들에게 장기적으로 종속되게 되었다. 세계 체제와 중심부-주변부 관계에 대한 월러스타인의 연구는 자본주의 긴 역사 속 다양한 예들을 통해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 그런데 18세기와 19세기 유럽의 약진에서는 한가지 특이한 점이 발견됨. 당시 유럽국가들은 안팎으로 대항세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일방적 무소불위의 군사력을 휘둘렀다는 사실. 최초의 유럽무역회사인 영국 동인도회사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사병을 동원해 인구전체를 폭압적으로 통제한 초국적 무장강도집단이나 다름 없었다. 아편전쟁의 역사는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둠. 18세기 초반에 들어 그때까지 중국, 인도와의 무역수지 균형을 맞춰주던 아메리카의 은이 고갈되자 유럽인들은 불안해지기 시작. 두 거대 아시아 국가에서 비단, 직물, 도자기, 향신료, 차를 수입해 오면서 대신 팔 만한 물건이 더는 없어진 것. 그러자 영국인들은 인도에서 아편재배를 늘려 중국에 수출하기 시작. 이렇게 해서 18세기에 아편거래 규모가 크게 증가했고, 영국동인도회사는 1773년 벵골에서 아편생산과 수출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함.

- 특권과 지위의 불평등은 사라졌는가?
계몽주의 시대와 대서양혁명들 이후 서구사회에서 법적 평등이 완전히 확립되었다는 동화같은 믿음이 꽤 널리 확산돼 있다. 이 믿음의 중심에 있는 결정적 사건이 바로 프랑스 혁명과 1789년 8월 4일밤에 이루어진 귀족계급의 특권폐지다. 하지만 현실은 당연히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미국과 프랑스 공화국은 1960년대까지도 엄연히 법적 차별이 존속한 노예제 공화국이고 식민공화국이었다. 영국과 네덜란드 같은 군주제 국가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세계도처의 기혼여성들은 60-70년대가 되어서야 배우자의 법적 후견에서 벗어나 형식적으로 평등한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18세기 말에 터져 나온 권리의 평등에 대한 요구는 사실상 백인남성들 간의 평등, 그중 특히 백인 남성 소유자들간의 평등에 대한 요구였음.

- 1789년 8월 4일 밤에 일어는 특권폐지는 결정적 사건임에는 틀림없으나, 우리는 이를 평등을 위한 아직 끝나지 않은 긴 투쟁의 관점에서 보아야 함. 7월 14일 바스티유가 함락되지 않았더라면, 아니 1789년 여름에 영주들과 그들의 성을 공격해 토지소유증서를 찾아내 불태운 농민반란이 없었더라면, 8월 4일 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 그해 여름 농민발안이 일어났기에 파리에서 소집된 의회가 저주의 대상이 된 봉건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신속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따져보면 그 여름의 반란 역시 분권된 통치세력이 갈수록 통제력을 상실해가는 상황에서 수십년간 일어났던 무수한 농민반란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788년 여름에는 토지와 공공재화를 점유하고 토지소유자들을 공격하는 등 봉기에 가까울만큼 분위기가 들끓자 마침내 삼부회 선출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짐.
한 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1789년 조세, 정치, 법률상의 특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나서도 프랑스 귀족들이 한참 더 소유자계급으로서의 특권과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는 사실. 파리 상속문서들에 등재된 성을 분석한 결과, 우리는 19세기 파리인구의 고작 1%를 차지했던 귀족들이 1830-40년대 상위 자산가의 40-45%를 차지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비중은 프랑스 혁명 직전과 비교해 아주 약간 낮아진 것에 불과. 1880-1910년대에 가서야 비로소 상위 자산가 중 귀족이 차지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 이토록 변화가 더딘 이유는 여러가지로 설명된다. 1789-1815년 동안 가까운 유럽 군주제 국가들로 망명했던 귀족들이 1815년 대거 귀국해 당시 프랑스 납세 유권자 군주정이 베푼 각종 혜택을 누렸기 때문. 그 대표적 예가 바로 이미자를 위한 10억 이라는 상징적 법이다. 이 법에 따라 프랑스 혁명 당시 상실한 토지와 임대료에 대한 보상명목으로 돌아온 귀족들에게 막대한 금액이 지급됨(국민소득 15% 해당) 왕정복고 직후부터 논의가 시작된 이 법은 샤를 10세 치하였던 1825년 빌렐 백작의 주도로 채택됨.

- 지난한 과정을 거쳐 사라진 강제노동과 반강제노동
결과적으로 프랑스 혁명은 귀족계급의 특권을 폐지하는 대신 소유자들의 권리를 강화해줌. 따라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반쪽의 성공이었다. 물론 영주들의 전횡에서 벗어났고, 모든 시민을 똑같이 대우하는 중앙집권화된 국가의 사법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은 실질적 진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위 1% 자산가들, 다시 말해 귀족과 부르주아들에게 소유가 집중되는 현상은 1780-1800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음. 오히려 1800-1910년 돋안 더 심화되기까지 했다. 결국 자산 하위 50%의 입장에서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 우리는 프랑스와 유럽 사회에서 노동의 지위가 변해가는 지난한 과정속에 프랑스 혁명을 놓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와 영국 농촌에서는 프랑스 혁명 발발 몇세기 전에 이미 농노제가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는 14세기 중반에 발생한 흑사병이 자주 언급됨. 흑사병 때문에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귀해지고 사회제도가 붕괴하자 농노들의 영지이탈과 해방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 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이 이 같은 설명은 지나치게 도식적이라고 지적. 결국 개별 지역의 권력관계와 사회정치적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 가령 유럽대륙 동쪽에서 14세기 이후 농노제가 강화돼 19세기까지 존속하다 뒤늦게 사라진 것이 그런 예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일부 낙관적인 중세학자들은 기독교 삼기능 이데올로기가 예속노동의 점진적 폐지에 끼친 긍정적 역할을 부각하기도 함. 유럽대륙 서쪽에서 예속 노동이 점차 끝나고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존재하는 하나의 노동자 계급올 통합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 삼기능 이데올로기 때문이며, 이런 과정은 이미 흑사병 이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물론 부분적으로 맞는 설명일 수도 있지만,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용자료만을 가지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확실한 것은 프랑스 혁명 때까지도 생클로드 수도원 같은 곳에는 농노제 경작토지가 존재했으며, 프랑스 혁명 이후에야 노동을 위한 이동에 가해지던 제약이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철폐되었다는 사실이다. 부역이란 용어는 1789년 프랑스 농촌에도 흔하게 존재했다. 당시 농민들은 전반적으로 이동의 자요가 있었지만 영주를 위해 며칠씩 무보수 노동을 해야 했다. 이런 형태의 부역은 프랑스 혁명기간에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놓였다. 프랑스 혁명기간 중 평등과 재분배가 가장 잘 구현된 1792-94년 동안 국민의회는 부역이라는 이름 자체가 농노제와 봉건제의 뿌리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를 8월 4일 밤 폐지가 결정된 귀족의 특권 중 하나로 간주해 보상 없이 폐지할 것을 요구. 이렇게 해서 일부 가난한 농민들은 자신들의 노동의 결과물과 자신이 경작하던 땅에 대한 완전하고 전적인 소유권을 갖게 됨. 하지만 1789-91년을 포함한 혁명기 대부분 동안, 그리고 다시 1795년에 납세 유권자 원칙이 부활하면서부터 좀더 보수적 인식이 자리 잡는다. 부역은 기본적으로 임대료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미래에는 마따잏 그렇게 불려야 하며, 다른 결정을 하면 결과적으로 소유 체계를 뒤흔들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렇게 해서 봉건제도의 부역은 자동적으로 자본주의식 임대료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주당 1일의 부역은 수확한 농산물의 1/5 혹은 1/6에 해당하는 임대료가 되었다.

- 1914-80년 동안 일어난 대규모 재분배는 손 안대고 코풀기가 아니었다. 디너파티는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그 가정은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들을 남겼다. 가장 큰 교훈은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가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는 점이다. 이 두제도가 대대적인 집단행동과 집단적 전유의 대상이 될 때만 평등을 향한 여정은 재개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이 두제도가 20세기 동안 이룬 성취의 한계와, 80년 이후 이것들이 약화된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 1914-80년 동안 제도적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사회적, 정치적 투쟁이었음. 앞으로도 강력한 사회적 투쟁과 집단행동 없이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없을 것임. 레이건-대처 혁명이 80년대 이래로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단순히 지배계급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고, 미디어와 싱크탱크, 정치자금을 통해 막강하고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분명히 역할을 하긴 했지만, 결정적 이유는 평등주의 연합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 평등주의 연합은 설득력 있는 대안적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를 중심으로 막강한 민중의 집단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그런 서사를 다시 만들어내고,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체제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제도들의 완결된 형태는 바로 민주적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분권화, 자주관리, 환경주의, 다문화에 기반한 민주적 사회주의는 지금의 세계보다 더 해방되고 평등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 완결된 형태의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는 권력과 소유의 항시적 순환에 기초해 새로운 형태의 민주적, 자주관리적, 분권적 사회주의의 기반을 닦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 제도는 20세기 서구 여러 국가에서 일어난 사회, 조세, 법률상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소비에트 연방이 실험한 국가적, 중앙집권적,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변화들을 물론 권력관계의 변화와 민중의 집단행동, 수차례의 갈등과 위기를 거쳐 힘겹게 쟁취한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한 민주적 사회주의는 하나의 밑그림에 불과하며, 여러 단점과 한계를 내포. 가령, 생산수단과 주택의 사적소유룰 제한한 형태로 계속 허용하게 되면, 앞서 언급한 변화들이 일시적인 것으로 끝나고 부의 격차를 엄격히 제한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일각에서 과세포를 수정하고 제한을 없애려는 막강한 시도가 있을 것이기 때문. 이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지만, 결코 도구화해서는 안됨. 바로 이런 두려움에 사로잡혀 20년대에 소비에트 정권이 모든 형태의 소유를 자본주의의 종양이라는 이름으로 범죄시했고, 결국 우리가 아는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파행을 맞지 않았던가. 해답은 민주주의 강화와 확대에 있다. 우리는 소유의 재분배를 해야 하며, 부자들에 의한 선거 민주주의 독식을 막기 위해 정치활동, 언론, 싱크탱크 등에 대한 평등주의적 재정조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앞서 우리는 소유의 재분배와 권력의 분유를 위해 실질적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더해 한가지 보호장치를 더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가령, 사회보장 분담금을 사회보장기금에서 관리하듯이, 누진 소유세와 누진 상속세 세수를 모두를 위한 상속기금에서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살펴보면 이렇게 행정조직을 강화하는 것이 결정을 번복하려는 정치인들의 시도를 어렵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정치인들이 더는 슬그머니 복지혜택을 없애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 평등을 위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따. 이 투쟁은 사회적 국가와 누진세, 실질적 평등, 차별철폐를 극대화하면서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계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식민주의 시대의 종언으로 평등을 위한 여정이 시작됐지만, 경제계는 여전히 극도로 위계적이고 불평등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자본이 사회적 환경적 목표를 갖지 않은 채 통제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현재의 경제체제는 부자들을 위한 신식민주의와 다름없다. 이런 발전모델은 정치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용납할 수 없다. 현 체제의 극복은 민족단위의 사회적 국가에서 개도국을 향해 열려 있는 연방단위의 사회적 국가로 전환할 때만, 현재 세계화를 좌지우지하는 각종 규정과 조약들에 대한 대대적 수술이 있을 때만, 가능해질 것이다.

- 공적자본의 평균비중 30%라는 수치 뒤에 감춰진 자산 범주별 차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주택용 부동산은 거의 대부분 사유화됨. 2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정부와 기업이 소유한 주택보유고는 5% 미만. 은행을 통한 저축 가능성이 제한적이고 공적 연금 시스템의 재정이 부족하다보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국 가정들에게 주택은 최고의 투자대상이 되었고, 이는 결국 부동산 가격폭등을 불어옴. 부동산과 달리 기업의 자본은 여전히 상당부분 정부가 소유. 중국정부는 현재 기업총자본의 55-60%를 소유. 05-06년 이후 이 비중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국가가 생산시스템을 밀착 통제하고 있다는 의미. 특히 대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통제가 더욱 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 기업의 자본 중 외국인 투자자의 보유비중이 현격히 감소하고, 이 감소분이 중국 가계의 보유분 증가로 상쇄되고 있다. 

- 중국식 체제는 다른 강점들도 있다. 기후재난이 발생하면 중국은 거리낌없이 서양에 책임을 묻고 비난할 것임. 자신들이 노예제나 식민지배 없이도 산업화를 이루어냈음을, 오히려 자신들은 그것들의 피해자임을 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기시킨다. 틈만 나면 전세계에 정의와 민주주의를 가르치려 들지만 정작 체제 내부를 갉아먹는 불평등과 차별은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선진국들, 이익만 되면 언제라도 전제주의 통치자들과 올리가르히들과 손을 잡는 타협적인 선진국들, 그러면서도 늘 오만하기만 한 선진국들을 상대로 중국은 유리한 입장이 될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가 중국식 권위주의적 국가사회주의의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환경적이고 포스트신민주의적인 이 새로운 사회주의는 마침내 후진국들의 운명을 고민하고, 서구국가들의 불평등과 위선에 응답하게 될 것이다. 이런 중국의 변화는 동력을 상실한 신자유주의에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자유쥬의의 쇠퇴는 08년 금융위기와 20년 팬데믹 위기로 가속화되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규제완화를 통해 경기부양을 달성하겠다는 레이건주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 중간계급과 민중계급은 그동안의 달콤한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자 세계화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당연히 신자유주의가 다양한 형태의 신민족주의로 대체될 가능성이다. 가령 트펌프주의와 브렉시크, 튀르키에, 브라질, 인도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의 득세는 형태는 달라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가적 불행의 책임을 외국인과 국내의 다양한 소수집단들에게 들린다는 것. 트펌프주의의 실패는 정체성 충돌의 격화와, 부자들과 대규모 환경오염 유발자들을 위한 사회적 덤핑이나 조세덤핑을 초래할 그런 정치적 흐름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이런 신민족주의적 흐름들은 현재 세계가 부닥친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중국식 권위주의적 국가사회주의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듯 보인다. 중국식 모델 역시 민족주의를 자양분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최소한 당분간 강력한 공권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목표를 실현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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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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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푸코는 팬옵틱이라는 전면적 감시를 감시와 처벌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다. 오늘날 타인의 시각에 노출되느냐 마느냐가 범죄예방의 핵심이라고 평가하는 범죄예방 전문가들도 이런 감시에 큰 의미를 둔다. 애덤 스미스는 당대의 도덕적 타락의 원인 중 하나가 도시화가 낳은 익명성이라고 지적. 한 노동자가 자기 마을에 있을 때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으며 스스로 그것을 의무로 여김. 그러한 규범을 어길 경우 마을에서 평판이 나빠지기 때문. 하지만 대도시로 나오면서부터 그는 어둠과 그늘에 파묻힌다. 아무도 그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는 변덕스러운 악과 방종에 놀아나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

- 사람들의 평판은 사회적교류에서 만들어짐. 작은 집단 내에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거론되면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은 두번째로 나오는 발언으로 결정된다고 함. 다시 말해 처음에 그 사람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누가 그 이야기에 맞장구를 친다면 집단 전체는 그 사람을 나쁘게 볼 것임. 반면에 두번째로 말하는 사람이 그에 대해 긍정적 이야기를 하면 맨 처음 이야기한 사람의 부정적 언급은 상당부분 힘을 잃어버림.

- 기원전 5000-3000년전부터 인간집단은 대개 1000명에서 만명 상당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졌다. 기원전 3000-1000년부터 일부 집단은 만명에서 10만명 규모에 이르렀고, 그 후에는 100만명 규모도 훌쩍 넘어버림. 물론 현대사회에서 인간활동의 구조는 사회생활의 탈공간화와 그로 인한 실질적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데 할애하는 시간은 아직도 상당함. 인간들의 교류에서 60%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 차지한다고 한다. 사이버 시대에도 사회적 평판은 여전히 시사성 있는 개념이다.

- 당혹감은 수치심이나 죄의식과는 다른 감정. 당혹감은 주로 관습적 규칙(예의범절, 에티켓)을 위반할 때 발생함. 한창 회의중인데 배에서 꼬르를 소리가 남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났다고 상상해보라. 혹은 궁정에서 신년회를 거행하던 중에 뒤늦게 바지 앞섶이 열려 있음을 깨달았던 덴마크 헨리 왕자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해 보라. 당혹감은 우리의 사회적 이미지가 어긋날 때 비롯되며 일시적으로 자존감을 떨어뜨림. 당혹감은 시선을 피한다든다, 말을 더듬는다든가, 맹한 미소를 짓는다든가, 자꾸 자기 얼굴을 만지고 얼굴을 붉힌다든가 하는 모습으로 드러남.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당혹감이 죄의식이나 수치심보다 더 괴롭다.

- 당혹감도 여타의 도덕적 감정들의 그렇듯 사회적 편입의 표식이다. 교수들은 질문에 곧바로 대답을 못하고 당황해하는 학생을 덜 공격적으로 본다. 당혹감을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은 그 사람이 어떤 사회적 규범을 어겼는지 의식하고 있음을 타인의 시선을 신경쓴다는 것을 보여줌. 자기가 방금 저지른 일에 당황해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일을 목격한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사과를 한다. 당혹감은 주위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처벌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아이가 뭔가 잘못을 하고 당황해하면 부모도 심한 벌을 내리지 않는다. 옆 사람의 바지에 와인을 쏟거나 새치기를 한 사람이 얼굴이 빨개지면 좀더 호감과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당혹감의 진정효과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죄의식의 표시로 해석되어 더욱 가혹한 판단을 끌어내기도 한다.
당혹감을 드러낸다는 것은 사회범을 어겼다는 의식이 있음을 의미. 

- 표정의 자동모방은 모방된 표정이 가진 감정을 불러오기 쉽다. 19세기 말 윌리럼 제임스는 그저 어떤 활동을 보고, 생각하고, 상상하기만 해도 그 활동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관념운동성의 원리를 주창.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 숟가락으로 먹을 것을 떠먹이면서 아이가 입을 벌리면 우리도 따라서 입을 벌리곤 한다. 마찬가지로 성난 표정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도 비슷한 감정을 느낌. 인위적으로 표정을 막아버리면 표정의 피드백 현상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음. 예를 들어 보톡스 주사를 눈썹 부위에 놓아서 분노의 표정에 이용되는 근육을 마비시키면, 분노에 관여하는 뇌 영역에서 실제로 그 영향이 나타남.

- 이미 2500년전에 투키디데스도 페스트라는 치명적 병이 사회규범을 어떻게 와해하는지 상세히 기술. 그는 이렇게 썼다.
"병은 도덕적 혼란의 원인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전에는 숨어서 몰래 하던 일에도 과감해졌다. 순식간에 팔자가 변하는 일이 너무 많앗다. 부자들이 갑자기 죽고, 어제까지 빈털털이였던 사람이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다. 사람들은 즉각적인 만족만을 원했고 쾌락을 좇았다. 그들에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 신에 대한 두려움, 법에 대한 두려움은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죽기는 마찬가지니 경건하게 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재판을 받고 벌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무서운 위협속에 있었으니까. 모두들 어차피 죽을 텐테 살아 있을 때 재미좀 보려는 것은 당연하다 여겼다."
런던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에도 한 관찰자는 "이 전염병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더 잔인하게 군다. 짐승도 서로에게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마르세유에 페스트가 돌자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거리로 내쫓았다. 아이들은 물 한 항아리와 사발만 가진채 가혹하게 버려졌다." 연구자들 역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위험한 성관게를 더 많이 고려하게 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반대로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규범을 더 잘 지키려는 역설적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실험참가자들에게 죽음에 대한 연상을 유도했더니 오히려 규범체계가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실제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면 자선단체에 더 많은 돈을 기부하고, 집단의 규범을 잘 지키는 사람을 칭찬하며, 규범을 위반한 사람을 더욱 가혹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 공정한 세상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개발된 설문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실험상황에서 피해자를 업신여기는 것으로 확인됨. 연구자들은 설문을 통해 공정한 세상을 믿는 자들의 프로필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얻었고 그런 믿음이 연령, 성별, 사회계급과 약간은 관련이 있지만 단순히 어떤 보수이데올로기나 종교적 세계관으로 싸잡아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공정한 세계관에 대한 믿음은 에이즈 환자, 극빈층, 강간피해자와 노숙자, 실업자, 장애인, 노인에 대한 경멸과도 관련이 있다. 이런 설문측정의 흥미로운 변화중 하나는 개인적 적용과 일반적 적용을 구분하게 되었다는 것. 다시말해, 세상이 나에게 공정하다고 믿는가와 세상이 남들에게 공정하다고 맏느냐는 별개다.

- 사회복지사, 의료인, 간병인이나 상담사 등이 그 직업에 오래 종사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냉혹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음. 감정이입능력이 뛰어난 의료계종사다들이 제일 먼저 자기 일에 염증을 느끼고 말기 환자들을 회피한다는 보고도 있다. 고통을 치료하는 데 익숙한 의사들은 괴로워하는 환자의 동영상을 보아도 임상경험이 없는 의사들만큼 고통과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게다가 의사들은 환자가 당하는 고통을 그렇게까지 힘든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바로 여기에 감정이입의 패러독스가 있다. 피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할수록 그를 도와줄 확률은 높다. 일례로 타인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심박이 빨라질수록 신속하게 도움을 제공하려 한다. 하지만 어느 선을 넘어버리면 관찰자는 괴로운 상황을 회피하고 피해자와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미 도움을 주기로 약속한 상황이거나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이라면, 관찰자의 감정이입이 고조될수록 피해자를 도와야겠다는 의욕의 수준도 높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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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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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무리

사회 2025. 2. 18. 06:54

- 농업이 인간을 묶어놓기전에 수렵채집인들은 퍼져나갈 수 있는 선택권을 갖고 있었음. 다른 종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런 분열-융합은 인간사회 내부의 경쟁을 완화하고 같은 땅에 발붙이고 사는인구수를 늘려주었다. 동시에 그 덕분에 각각의 개인은 특별한 타인들과 어떻게, 또 얼마나 상호교류할지 가려낼 수 있었다. 침팬지는 분열-융합에서 융합의 측면을 충분히 활용해 멀리 떨어져 있는 구성원과 단결하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인간은 먼 거리에서도 서로의 소식을 계속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초기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은 소리를 질러 소식을 알리기에는 보통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연기를 피우거나 북소리로 신호를 보내거나 하기 위해 기발한 장치가 필수적이었다. 모스 부호가 뉴스를 실시간으로 전송하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장거리 통신방식에는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 이처럼 선사시대에 사용된 여러 신호도 문자로 '안녕'정도의 정보만 전달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초기기록들을 보면 수렵채집인들이 소통을 아주 잘했다는 단서들이 가득함. 특히 비상시에 그랬다. 순회를 돌던 전령이 어쩌면 당시의 조랑말 속달우편에 해당했는지도 모른다. 달리기가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사람의 몸은 지구력이 뛰어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을 이용해 목마른 주민들은 마지막 물웅덩이로 모여들었고, 누구든 사냥감이나 적을 우연히 만나면 다른 구성원들을 끌어들여 함께 만찬을 즐기거나 맞서 싸웠다. 유럽인들이 호주 원주민들과 처음 접촉했을 때, 1623년 4월 18일에 네덜란드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이 남자 하나를 납치했다. 다음 날 그들은 200명의 호주원주민들이 휘두르는 창을 맛보아야 했다. 소문이 대단히 빨리 퍼진 모양이다.

- 노예개미가 노예만들기 개미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별것 아니다. 개미 뇌의 진짜 적응력은 지금부터다. 사회붕괴를 피하려면 각각의 노예와 노예만들기 개미가 둥지에 있는 다른 노예개미들까지 모두 환영해야 한다. 노예만들기 개미들이 아무리 다양한 군집을 털어서 노예를 납치해 왔다 하더라도 말이다. 각각의 개체가 만들어내는 냄새가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쩐 일인지 노예만들기 개미나 노예개미 모두 다른 개체들을 자기 사회의 구성원으로 알아보는 데 전혀 문제를 겪지 않음. 이런 적응성의 밑바탕에는 개체와 유대감을 키우는 역할을 하지만, 전문가들의 추측에 따르면 개미에서의 몸 손질은 둥지 동료들의 냄새를 뒤섞어 모두의 몸에 표준적 냄새가 배게 만듦으로써 사회수준의 애착관계를 굳혀주는 역할을 한다. 즉 노예만들기 개미의 냄새 일부가 어린 노예개미들에게 묻어 그들을 군집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만들고, 노예개미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개체의 냄새를 조금씩 바꾸어놓는 것이다. 이렇게 냄새가 혼합되는 것은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노예개미가 실수로 자신의 진짜 동료와 자매가 살고 있는 고향군집에 발을 들여놓으면, 적으로 간주되어 공격을 받는 것이다. 

- 개미둥지에 개미가 추가되는 것처럼 한 국가에 국민이 더 늘어나도 뇌에 추가적으로 부담이 가해지지는 않는다. 익명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정체성 표지를 사용함으로써 낯선 이도 우리 구성원 중 한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다. 대륙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함을 자랑하기도 하는 현대인간사회의 밑바탕에는 이런 상상력의 힘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소규모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그들은 실제로도 당신이나 나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때의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

- 밴드는 노골적으로 허세를 부리거나 타인을 지휘하려는 시도가 있으면 역전된 지배위계라는 것을 통해 진압했다. 자기중심주의자, 권력에 굶주린 자, 괴사라는 자를 멈추게 하기 위해 대다수가 결탁한 것이다. 아무리 엄격한 영장류의 위계질서를 물려받았다 해도, 우리 선조들은 밴드 안의 그런 시도를 다나합된 행동으로 물리쳤다. 침팬지나 점박이 하이에나가 기분나쁜 개체를 집단공격하는 경우를 보면, 그와 비슷한 전략이 아주 원초적 형태로 드러남. 지배의 역전이 성공이 보장된 일은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성공적인 독재자들도 결탁을 한다는 사실으르 비싼 경험을 통해 알게 됨. 거친 아이들끼리 서로 편을 먹고 학교 운동장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파워게임을 통한 성공은 한계가 있다.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집인들이 발로 투표했다고 표현한다. 한 밴드에서 시련을 겪으면 다른 밴드로 넘어가버렸기 때문이다. 모든 밴드를 정치적으로 통제할 방법은 없었기 때문에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안전하게 피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집단을 지배하지 못하고, 집단은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길 거부했기에 밴드 전체에 평등이 확립됨. 동물 중에서도 평등주의를 실현한 선례가 있다. 프레리도그, 큰돌고래, 사자의 경우 지도자가 없고, 지배도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침팬지는 우두머리 수컷이 아무리 배려심이 많아도 그 밑에서의 삶은 아주 힘들 수 있다. 지위가 낮은 수컷 침팬지들이 권력을 위해 경쟁하기 때문.

- 수렵채집인의 평등주의도 완전한 동등함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특히 가족 안에서 평등주의가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고, 일부 아버지는 가족 안에서 항상 철권을 휘둘렀다. 그리고 물질적 부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었지만 외교적 수완이나 다른 기술에서의 노련함의 차이 때문에 불평등이 생겨났다. 이런 면에서는 사자가 떠오른다. 사자는 지배위게가 없는 평등주의 종이지만 사냥감을 두고는 다툰다.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지 결과의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에서 이것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절대 없다. 사회인류학자 도널드투진은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미국인들에게 평등주의는 온화한 제퍼슨식 민주주의를 연상시키는 말이다. 사슴가죽 옷을 걸친 투박하면서도 예의바른 개척자들이 모두의 이이을 위해 조화롭게 함께 일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보통 평등주의는 다소 야만적인 독크린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평등한 상태를 유지하력 분투하는 와중에 끊임없는 경계와 음모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남에 대해 험담하는거이 인간의 아주 원초적 재능으로 간주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평등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육아, 요리, 사냥 등의 영역에서 성별과 나이에 따라 요구되는 것이 계속 변하기 때문. 하지만 부시먼족의 경우 대부분 각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특히나 성적으로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보다 더 평등했다. 밴드사회에서는 쟁점이 발생하면 합의에 의해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관련된 모든 사람이 목소리를 냈다. TV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분명 이것이 유흥의 주요원천이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영국 수상 클레멘트 애틀리가 말한 "논의에 의한 통치"의 원본이라 할거이다.
불화를 없애는 것이 일차적 관심사였다. 밴드구성원들은 행동을 규제할 공식적 방법이 거의 없었지만 사람에게 허용된 행동이 무엇인가에 대한 공통의 믿음을 갖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행동을 권리로 생각함. 어떤면에서 보면 이런 규칙에 동질감을 느껴 올바른 행동을 하고 집단의 중요한 문제에 참여하는 것이 시민의 자질을 보여주는 척도였다. "우리의 법이 진짜 법입니다" 한 왈비리족 사람들이 한 말에서 법은 자기들의 도덕률을 의미한다.

- 사실 인간이 밴드사회의 평등주의적 생활방식을 확대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옥신각신 다투는 일이 많기 때문. 록 콘서트가 사회적 엔트로피로 이어질 수 있듯이, 대규모 회합은 결국 난동으로 막을 내릴 수 있다. 이런 시기에는 살인사건 발생이 정점을 찍는다. 밴드들은  원래 이었던 곳으로 물러나고, 다른 곳에서 살던 친구들이 밴드에 새로 합류하면서 일종의 의자뺏기 놀이가 일어남.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로운 사회는 움지이는 사회다. 그리고 움직임에는 마찰이 따른다. 방랑생활을 하던 수렵채집인으도 마찬가지였다.

- 수렵채집인 정착지에는 조직화된 정부의 지도자 같은 사람은 없었어도 영향력 있는 사람은 있었다. 예를 들어 에클레스산 주변 어부 민족 우두머리를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았고, 전쟁을 선포하고 약탈품 중 가장 좋은 것을 차지할 수 있었다. 신세계에서 왕에 제일 가까운 통치자는 칼루사족 추장이었다. 그는 한 건물 안에서 의자에 앉아 치안을 유지했다. 그 의자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소박한 것이었지만 그 건물은 한 역사가에 따르면 2000면이 들어와도 붐비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추마시족과 태평양 연안 북서부 집단의 추장들은 대단히 호사스럽기는 했지만 자신의 권력을 그리 강하게 내세우지는 않았다. 이들은 군대를 등에 업은 큰 농업사회이 우두머리들에 비해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의무를 다하도록 북돋기 위해 강압하기보다는 잔치를 벌이는 등 설득과 보상에 더 크게 의지. 리더들은 정치적 공작이나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를 지키는일에는 언제나 달인이었다. 하지만 추장들은 사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보여야 할 겸손, 도덕성, 확고한 신념 등을 몸소 실천하면서 모범을 보이는 경우도 많았음. 이런 것들은 오늘날에도 존경받는 리더의 자질이며, 평등주의 시대가 남긴 유산인지도 모른다. 추장들은 사람들에게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평등주의적 마음가짐이 유지되도록 했다. 하지만 이때도 그들의 영향력은 제한되어 있었다. 리더와 추종자 사이의 끝없는 밀고 당기기 속에서 작은정착지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어느 정도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추장을 지지했다. 태평양 연안 북서부 추장들은 마을 생활의 평범한 측면에 대해 발언권이 있는 비공식 자문위원회의 지지를 구했다. 이것은 위원회를 통한 리더십이었다. 유랑사회에서 밴드 전체가 감당했던 역할을 위원회가 맡은 것이다.

- 각 사회를 구분해주는 미술과 장식, 언어와 활동의 멋진 불협화음은 점점 더 정교해졌다. 이 모든 다양성의 기원은 우리 종의 시작과 함께 발생한 익명사회로의 근본적 전환시기, 혹은 그보다 이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감. 인간사회가 이용한 표지들은 오늘날의 침팬지와 보노보에서 여전히 보이는 것가 비슷한 행동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제일 먼저 암호가 있었을 것이다. 그 뒤로 몸 전체를 하나의 캔버스 삼아 소속성을 표현한 표지들이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고학적 자료에 그것들이 흔적은 거의 엇다. 수만 년 전 인구가 증가하고 상호교류가 충분히 이루어지면서 집단기억과 집단생산이 가능해졌고, 그와 동시에 매우 정교한 사회적 특성이 만들어짐에 따라 사회는 더욱 복잡해졌다.

- 다른 영장류의 개체 알아보기 사회로부터 온갖 문화적 화려함을 갖춘 인간의 완전한 익명사회로 나아가는 길은 기나긴 여정이었다. 단순한 표지와 미리 정해진 사회적 삶을 사는 개미세계에서는 이런 문화적 화려함을 찾아볼 수 없다. 익명사회로의 진화는 대뇌겉질에서 하위의 뇌간으로 확장되는 거대한 뇌 회로 재배열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필수 신경회로의 상당부분은 표지와 그것을 공유하는 집단의 자극과 그 반응의 초보적 상호작용 상태를 벗어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우리의 개조된 뇌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우리의 표상을 우리의 행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감정 및 의미와 연관시키게 되었다. 진화론자들은 대체로 이런 상호작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지만, 심리학을 통해 그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 정착지의 규모가 커지자 사회 내부에서 대추 교환하던 태도도 약해짐. 상대가 낯선 사람이거나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인 경우, 또한 그들이 아주 다른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그것에 구체적인 가치를 매겨야 했다. 그 결과 사회내부의 상호작용도 사회간 교역과 비슷해짐. 캘리포니아 추마시족의 정착지에서는 구슬을 일종의 통화로 사용해서 재화에 현대적 의미의 가치를 부여했다.
근래의 수렵채집 밴드 사회들 사이에 폭넓게 연결이 이루어진 것은 교역을 통해 불이 붙은 전달연쇄로 설명 가능. 약초, 숫돌, 오커 같은 물품들이 호주 원주민 집단간을 넘나들었고, 때로는 대륙 전체를 가로지르기도 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재화와 마찬가지로 이것들의 가치도 그 재화의 이동거리가 멀어질수록 높아졌다. 진주조개 껍질이 장신구 용도로 내륙에 도착했을 때는 마치 마법의 물건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물품은 원래의 용도대로 사용되지 않았다. 호주 북부에서는 몇 세기 전부터 부메랑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미사일 같은 도구를 무기가 아니라 타악기로 사용하는 유행이 북부지역을 휩쓸자 계속해서 부메랑을 만들던 남부 사람들이 부메랑을 다른 재화와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밴드 사회들은 원재료와 생산품 외에 온갖 아이디어도 거래. 유행어부터 향상된 도구제작법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이 먼 거리까지 복제될 수 있었다. 호주 원주민 사내아이들의 통과의례 때 수행되었던 포경수술은 아마도 1700년대에 인도네시아 교역자들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이 수술은 호주 전역으로 넓게 퍼져나갔고, 일부 지역에서는 남성 성기 전체의 표피를 벗겨내는 극단적 형태로 발전하기도 했음. 호주원주민들은 또한 서로의 노래와 춤을 따라했다.

- 1897년에 처음 보고된 사례가 문서로 잘 기록되어 있는데, 워카이아족의 몰롱가 의식이다. 핵심등장인물들이 정교하게 만든 복장을 하고 며칠 밤 동안 환상적 공연을 펼팀. 그 후로 25년 동안 몰롱가는 호주 중심부에서 1500키로에 걸쳐 퍼져나감. 워카이아 말은 그 부족 사람밖에 이해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서로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들이 사회들이 문제없이 상호작용하게 해주는 동력이 되었다. 수렵채집인들은 동맹을 맺기 위해 사회간 결혼을 주관하는 일이 많았다. 배우자들은 고향을 방문할 수 있었기에 일종의 이중국적에 해당하는 자격을 갖고 있는데, 이는 다른 동물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 집단 간 상호작용의 역사 덕분에 많은 수렵채집인이 이웃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호주 원주민과 대초원 인디언 모두에 사용되는 수화를 널리 공유했다. 일부 수화동작은 아주 멀리서도 볼 수 있었기에 협상가들은 서로의 창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도 소통할 수 있었다. 이 수화동작은 추가적 기능도 갖고 있었다. 급습에 나선 전사들이 소리를 내지 않고도 서로 신호를 교환하며 조직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어느 사회를 봐도 사회의 파탄은 결혼생활의 파탄과 똑 닮아 있다. 분열이 불가피해진 상홍이 닥치면,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억눌러왔던 의견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런 의견들은 하루는 아닐지라도 한 달 전까지 주장했던 내용과 정반대되는 것일수도 있다. 사회규범에 순응해야 한다는 압박이 감소하거나 아예 사라지면, 그동안 사회에서 선호되지 않거나 이단이라 여겨졌던 상호작용 방식을 탐험해 볼 자유를 양쪽 진영 모두 얻게 된다. 그렇게 기존에는 용인되지 않았던 행동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각각의 집단이 이제는 서로가 외부자로 보일 정도로 낯설어지게 된다.

- 매직넘버
수십만년 동안 인간 정체성의 변덕스러움이 작은 규모의 사회분할을 만들어 낸 것은 확실하다. 사실 그 규모가 너무도 예측가능해서 일부 인류학자는 500을 매직넘버라 선언. 지구 어디서나 대략적인 평균으로 작용한 이 수치는 한 밴드사회에 사는 사람의 숫자였다. 120이 침팬지 커뮤니티가 불안정해지는 한계수치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사시대 호모사피엔스가 안정된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인구수의 대략적 상한치는 500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
한 사회가 적더도500명 정도의 사람을 포함해야 하는 실용적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어떤 계산에 따르면 이 정도 규모의 인구면 가까운 친척이 아닌 배우자를 선택할 기회가 생긴다고 함. 수십 마리 규모의 사회를 이루어 사는 많은 포유류는 위험을 무릅쓰고 쉬지 않고 외부사회에 합류하려는 욕구를 보이는 반면, 인간은 그런 일이 드문 이유를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고를 수 있는 짝이 풍부한 덕분에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사회에서 평생 머물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더 큰 규모가 아니라 하필 이 규모에서 사회분할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규모가 더 커지면 짝을 고를 수 있는 선택지도 훨씬 넓어지고 사회방어에도 이점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 수치는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의 견제와 균형을 반영하지 않은 듯 보인다. 수렵채집인이 살았더너 정글과 툰드라 지역은 포식자와 가용한 식량 등이 생태적 요소가 천지차이이기 때문이다. 수렵채집인이 차지했던 영역은 속한 생태계에 따라 총면적에서 차이가 나서 북극 지역 사람들의 영역이 더 넓었지만 사회의 인구는 어딜 가든 대략 비슷했다.
밴드 사회의 인구수 상한선이 낮았던 것은 인간의 개성표현을 관장하는 심리학의 함수였는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균형유지가 필수적이었다. 구성원들은 같은 공동체라는 느낌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닮았다고 느끼는 한편, 자신을 독특한 존재라고 여길 만큼 충분히 달라야 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몇몇 밴드에 속해서 살아갈 때는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려는 동기가 거의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수렵채집인들 사이에서 파벌이 잘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자 이들도 더 협소한 집단과의 연줄을 통해 생기는 차별성을 욕망했다. 이렇듯 정체성 다변화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지 분파의 등장이 촉진되고 결국에는 밴드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 관계단절로 이어졌을 것임. 한곳에 정착해서 결국 인구가 대규모로 늘어난 사회였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임. 밴드 사람들과 달리 정착지 사람들은 대부분 다양한 사회적 집단과 이어질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집단은 분파가 아니라 사회가 기능하는 데 필요한, 다소 폭넓게 용인되는 집단이었다. 직종모임, 전문가 단체, 사교클럽, 그리고 사회위계나 확대친족 사이에 존재하는 모임이 이런 사회적 집단에 해당.

- 부족이 간신히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한다 해도, 인구증가만으로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문명을 만들지 못함. 넉넉한 식량과 공간, 능력있는 리더십, 풍부한 사회적 분화 등으로 출생률이 높아진 가장 이상적 조건 아래서도 마찬가지. 이런 특성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은 거대한 인간사회가 동질한 사람의 후손이 아니라 다양한 유산과 정체성을 가진 인구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로 입증됨. 이런 면에서 보면 수렵채집인 사회와 부족사회가 다양화된 표지적응에 실패한 것은 국가가 거둔 대성공과 극명하게 대조됨. 사실 문명의 탄생을 이해하려면 문명이 어쩌다가 다양하게 혼합된 시민으로 구성되어 오늘날 인종과 민족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는지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 인간은 외부자와 파트너 관계를 맺을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들이 동맹의 결과로 완저히 합병되는 경우는 절대 없다. 심리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다르면 서로에게 크게 의존하는 사회들이 오히려 다른 사회와의 구별을 더 확실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로쿼이 연맹은 공동의 적(처음에는 다른 인디언이었다가 나중에는 유럽인)과 싸우는 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 이 연맹의 부족들은 합쳐진 영토의 서로 다른 경계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이 여섯부족이 서로 독립적이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 이런 식의 연합은 자부심의 원천일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원래 사회의 중요성이 감소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 점은 확신할 수 있다. 수렵채집인 연합밴드에서 거대한 제국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회가 더 거대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자주권을 거리낌없이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는 것. 서로 다른 사회들이 하나로 합쳐진 것은 자발적 합병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공격을 통해 다른 사회의 사람과 땅을 취득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임.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전쟁이야말로 만물의 아버지라고 한 말은 참으로 옳았다. 중동에서 일본, 그리고 중국에서 페루에 이르기까지 한 사회가 문명을 창조하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이나 힘의 우세를 통해 인구수 폭발을 영토확장과 결합하는 것이었다.

- 5500년 전에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유프라테스강 동쪽에서 서로 연결된 몇 개의 소도시로 구성되어 있던 우르크는 인구가 늘며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소도시는 수천 명을 거느리고 있었고,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가 그들 삶을 뒷받침해주었다. 그곳에는 거리, 사원, 작업장이 존재했다. 그 지역에서 출토된, 설형문자가 새겨진 수많은 평판을 보면 삶의 많은 측면이 꼼꼼하게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루크는 족장사회로 시작했다가 새로운 조직방법을 취하면서 극명한 변화를 겪게 된, 학자들이 말하는 최초의 국가사회의 한 예다. 최초의 국가 중에는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작은 마을에 불과한 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가 충성을 맹세하는 그런 종류의 사회였다. 
국가들은 처음 등장한 순간부터 몇 가지 중요한 속성을 공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사회의 리더는 기존에 족장들에게 부담을 주던 수많은 거추장스러운 것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 족장은 세력기반에 한계가 있어서 비교적 쉽게 타도될 수 있었음. 족장 사회의 치명적 결함은 족장에게 권한을 위임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 족장사회의 규모가 커지자 거기에 예속된 마을의 전직 족장들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최고족장은 그들 각각을 직접 감독해야 했다. 합병된 영토 종단에 하루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시작하자, 대체로 리더의 지배력이나 설득력에 의존하던 조잡한 감독방식은 실용성이 떨어지게 됨.
그러다 국가의 등장과 함께 모든 것이 변화. 국가의 수장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주장했을 뿐 아니라 공식적 기반시설을 바탕으로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었음. 국가에서는 분업과 통제의 계층구조가 통치와 관련된 제도로까지 연장됐다. 그리하여 자랑스러운 관료제의 탄생과 함께 사회가 응집력을 끌어올리고 광범위한 영토를 다스릴 수 있게 된 것.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정복하면 기존 국가의 영토는 보통 지방으로 편입되고 그 수도는 행정 중심지로 개조됨. 각자가 특정 업무의 대가인 정부요원들은 필요에 따라 할당되었다. 이러한 감독시스템으로 인해 사회는 전보다 더욱 강압적으로 통치될 수 있었다. 초기국가에서는 수도와 외곽지역의 소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지연이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했지만 말이다. 사실 기반시설이 충분하면 리더나 정권이 최악의 충격 속에 전복되더라도 국가는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국가는 다른 몇몇 세부사항에서도 족장사회와 차이가 있다. 우선, 진짜 법이 제정되었다. 권력이 약한 리더를 둔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사적으로 범죄에 대한 처벌을 시행했었지만 국가에서는 권위를 가진 자가 처벌을 부과. 다음으로 상위 계층이 찾는 사치품을 비롯한 사유재산의 개념이 온전히 달성됨. 사실 족장 사회에서도 일부가 세력을 얻으면서 사회계층의 차이가 나타났지만, 국가에서는 그런 불평등이 극에 달했다. 권력과 자원에 대한 차별적 접근 권한은 노력을 통해 획득하거나 물려받을 수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국가는 족장사회보다 더 공식적인 방법으로 조공, 세금, 노동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구성원들이 그 어느때보다 사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기반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 돌아가면서 리더를 맡든, 위원회를 통해서든, 한 사람이 단독으로 이끌든 리더십의 형태와 상관없이 리더는 사회구조를 다듬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그의 임무 중에는 국민정체성 강화도 있었다. 때로는 영향력 있는 리더가 사회에서 용인할 수 있는 행동을 무엇으로 할지 결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기벽을 유행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선택한 행동을 강요하여 언어에서 옷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표준을 정할 수도 있었다. 부족사회와 족장사회의 리더들은 그 지위가 취약했기에 민중의 목소리 역할이 가장 우선적이고 무해하며 중요한 덕목이었다. 유능한 리더는 확실한 본보기를 설정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정체성과 운명을 공유한다는 느낌을 부여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경우에도 유대감을 강력하게 유지시킴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안전하게 다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인구집단이 확실하게 리더의 지배 아래 들어가면 그의 권위가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왕은 포틀래치에서 촌장들이 그랬듯이 후한 인심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경우가 드물었다. 역사적 사건들을 보면 리더의 영향력은 도로, 인쇄기 등 정보소통수단에 대한 확실한 통제력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에서 국가조직이 발현할 즈음 종교의 역할이 사람들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변화. 수렵채집인은 치유능력과 영적 능력이 깃든 사람들을 존경했지만, 그들의 물활론적 철학은 추종자들에게 거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부족과 족장사회는 이런 면에서 별 차이가 없었지만 국가는 인구가 많아서 구성원들을 더 엄격하게 감독할 필요가 있었다. 전능한 신이라는 개념은 신이 내리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타인의 이목이 없는 곳에서 하는 행동에도 영향을 주는 메커니즘을 제공했다.
통치가 지나치게 독재적이지만 않으면 국가가 제공하는 혜택은 엄청날 수 있었다. 국가 안에서 벌집같은 수준으로 이루어진 상호작용은 집단적 정체성을 강화해주었을 뿐 아니라, 흩어져 있어 연결성이 약화된 인구집단이 자기 선조들의 혁신을 잊어버리는 태즈메니아 효과와 정반대의 효과를 일으켰다. 일단 다수의 사람이 상호작용을 시작하면 신선한 관점이 그냥 유행을 타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사회변화의 수레바퀴에 올라타게 된다. 5만년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문화 라체팅이 계속 가속화되어 이제는 자기가 태어났던 사회와 별로 달라진 것 없는 사회에서 늙는 사람이 없는 지경까지 왔다. 이런 발전속도 때문에 사회적 정체성이 예전보다 훨씬 더 유동적인 표적이 되고 말았ㄷ. 더군다나 국가에서 확산되는 집단적 연결에는 집단적 무지가 함께 따라왔다. 밴드에 살았던 수렵채집인은 거의 모든 문화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반면, 국가에서는 리더라 하더라도 사회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일부밖에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결정할 때도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적 경향을 뒤쫓아야 할 때가 많다.

- 한 사회가 족장사회에서 규모가 큰 국가로 올라가려면 우월한 전투력만으로는 충분치 않음. 소수의 거대문명은 일반적으로 사회들이 좁은 공간 안에 꽉 들어차 있는 환경에서 등장. 인류학자 로버트 카르네이로가 제한된이라고 표현한 이런 조건하에서 정복이 훌륭한 성과를 거둠. 이에 대해 인류학자 로버트 켈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쟁은 이동성이 옵션이 아닐 때 등장한다." 사람이 살기 힘든 지역으로 둘러싸인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짓던 부족들은 딱 하나이 세력만 부각되는 싸움에 스스로를 가두는 꼴이 되었다. 사막 사이에 끼어 있던 나일 계곡이나 대양 위의 점에 불과했던 하와이나 폴리네시아의 섬들을 생각해보라. 나일 계곡은 결국 고대 이집트가 장악했고, 하와이나 폴리네시아의 섬들은 10만명정도를 거느린 거대족장사회의 영토가 되어버렸다.
제한된 환경이라고 해서 문명의 등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곳보다는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제한이 없는 곳에서는 족장사회나 국가가 보통의 규모에 도달한 다음에는 더 이상 확장을 추구할 수 없었다. 주변 사회들이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옮겨다니기 때문. 뉴기니도 그런 상황이어서 엥가족 같은 부족 전체가 진퇴양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동했다. 규모가 작은 개미군집이 충돌을 피하기 위해 도피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새로운 장소에 정착하려면 이웃들과의 동맹을 통해 이동을 협상해야 했을 것임. 사람들은 영토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기에, 이런 이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극단적 압박을 받았음을 암시.

- 중국대륙의 정복활동은 이른 식에 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고, 결국 현재 중국인구의 90%에 달하는, 지금 우리가 한족이라 간주하는 가상의 통일성을 만들어냄. 이런 규모의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은 초기 왕조가 자신의 문화, 문자, 그리고 때로는 언어로 개종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받아들인 정책 덕분. 이런 전통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공자가 나온다. 그는 한족의 생활양식에 충실하기만 하면 한족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을 고취했다.
고대 문헌을 비롯해서 건축, 칠기제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표현된 정체성 변화의 증거를 바탕으로 고고학자들은 진나라와 한나라가 결국 오늘날 중국이 될 인구집단의 상당부분을 어떻게 통합했는지 밝혀냈다. 수도시설, 조명, 기타 다양하게 개선한 필수적인 것들을 제공한 로마와 달리, 중국왕조는 외곽의 인구집단에게 삶의 질과 관련된 이득은 거의 제공하지 않고 반복되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에 더 의존. 진나라와 한나라가 이용한 전략 중 일부는 전 세계 영토확장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임. 양쪽 왕조 모두 원래의 한족이 탄생한 곳으로 추정되는, 제국의 중심부와 제일 가까운 북쪽지역 통합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족 문화의 지배력을 확실히 하기 위해 신임하는 백성들을 그 지역에 많이 가서 살게 했다. 가장 부유한 지방에서는 자녀들에게 한족의 풍습을 가르치는 바람직한 상황이 처음 현실화되었을 것임. 수 세기에 걸쳐 이런 교육이 사회계층을 타고 전해져, 14세기 명 왕조가 생겨났을 즈음에는 한족의 정체성이 폭넓게 확산되어 있었다. 중국 왕조들이 가장 외곽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반복해서 상실했던 이유는, 관심의 초점을 주로 접근 가능한 영토에만 맞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국경 안에는 왕조가 주류로 편입하는 데 실패한 토착 사회들이 존재했다. 이런 집단들이 사는 곳은 경작에 적합하지 않은 산악지역이라 진압해봤자 얻을 것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민족, 그 중에서도 서쪽의 티벳족과 위그르족 및 버마 국경의 와족 등은 결국 왕조의 통제 아래 들어가기는 했지만, 당국은 아이누족을 개로 생각했던 초기 일본인들처럼 그들을 수준이하의 사람으로 보고 거리를 두었다. 기록으로 남지 않은 정책 하나는 그런 야만인들이 언어와 풍습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16세기에 명왕조는 마치 식민국처럼, 적대적인 먀오적의 산악 근거지를 성벽으로 에워싸 그들을 포함한 다른 거주자들을 억압하기도 했다. 사회적 이탈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함으로써 내륙지역 지방들이 잉카제국에서 했던 역할, 그리고 노예들이 체로키 인디언 사회에서 했던 역할을 완수했다. 그리스 시문학의 거장 콘스탄티노스 가바피스가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옳았다. "이제 야만인들이 없어지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들은 일종의 해결책이었다." 야만인들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무엇이 적절하고 옳은지를 밝히는 역할을 했다.

- 사람들은 세상은 근본적으로 공정하다는 관점을 가짐. 민족과 집단의 문제가 이런 식으로 정당화됨. 한 선도적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특권층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약자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대신, 엘리트층을 지지하고 그들의 높은 사회적 지위는 예외없이 그들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 추론한다." 다른 저자 집단에 따르면 그 결과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으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그러한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여 거부하거나 변화시킬 가능성이 제일 낮다."
이런 신념의 힘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노예들도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인도의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지위가 낮은 불가촉천민은 오늘날까지 그러하다.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이런 묵인은 최초의 족장사회와 국가사회시절부터 사회의 성공에서 분명 핵심적 역할을 했을 것임. 수렵채집인들이 경계심, 혐오감, 역겨움 등을 표현하던 대상이 외부자에서 사회내부계층으로 바뀌면서 그 효고가 사회전반에 스며들다 보니, 탄압받는 자들조차 자신을 하찮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 결과 민족들이 사회적 낙인을 견디며 공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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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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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빌리프

사회 2025. 1. 10. 07:18

- 사람은 대부분(조금 똑똑하다는 사람뿐 아니라 엄청나게 똑똑해서 아무리 어려운 과학적, 수학적, 철학적 문제라도 금방 이해라 수 있는 사람 조차도). 자기가 그동안 무척이나 힘들게 쌓아온 결론이 (자기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가르쳤으며 또 자기 삶 전체를 지탱하는 그 결론이) 알고보니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조건 아래서는, 가장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조차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 (톨스토이)

- 안정애탁은 어린시절에 형성됨. 뭔가 나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때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주고 도와주리라는 것을 알아야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안정애착이라는 개념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기본적 요소다. 누군가가 나를 잘 지켜보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시도 때도 없이 둘러볼 필요가 없다. 만일 높은 수준의 안정애착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일종의 이상적 보험에 가입한 것이나 마찬가지. 이 보험만 있으면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걸어가고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법처럼 놀라운 느낌이다. 무엇이든 못할게 없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예를 들어, 설령 일이 잘 안풀린다 해도 누군가가 나서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또 도움을 주리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사업이든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넘볼 수 없는 낯선 사람과도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며 낭만적 모험을 시도할 것이다. 자기가 끝내 잘하게 될지 어떨지 확신할 수 없는 분야를 두려움 없이 파고들어 공부할 것이다. 기꺼이 새로운 도시로 이사하거나 새로운 직장을 찾을 것이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요컨대, 안정애착은 우리가 모든 일의 긍정적인 면에 더 집중하게 하고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덜 걱정하게 만든다.

- 증오에는 증오의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겁에 질린 사람은 공포라는 불행에 대한 보상으로 증오심을 키우기도 한다. 더 많이 두려워할수록 더 많이 증오하게 된다. (C.S 루이스)

- 우리에게 나쁜 일이 일어났고 또 그 일이 누군가이 의도에 따라서 일어났다고 생각할 때, 고통은 한층 커짐. 개인적으로 나는 핸런의 면도날이라는 원리를 약간 변형한 버전을 주장한다. 본래 핸런의 면도날은 "어리석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악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어리석음이라는 단어는 포괄적 용어이며, 나는 핸런의 면도날의 본래 의도는 사실 어리석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비합리성 및 인간본성의 오류에 관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원래의 버전을 약간 수정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인간본성의 오류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악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이는 자기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 그 일에 내재된 근본적인 이유를 한층 더 깊이 살펴보고 누군가의 의도나 악의가 아니라 실수, 세심함 부족, 충동, 격렬한 감정, 또는 그 밖의 모든 인간적인 특성에서 그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 세개의 면도날
악당이 등장하는 복잡한 이야기의 매력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인지상태를 수시로 점검하기 위한 개인용 구급상자에 세 개의 면도날을 넣어두는 게 좋다. 면도날이라는 용어는 불필요한 정보와 복잡성을 신속하게 잘라내서 진실에 더 빨리 도달하도록 돕는 특정한 경험적 또는 인지적 지름길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 핸런의 면도날 변형판 : 인간본성의 오류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악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 오컴의 면도날 : 부적절하다고 입증되지 않는 한 사람들은 가장 간단한 설명을 선호한다
* 히친스의 면도날 : 아무런 증거없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런 증거없이 기각할 수도 있다. 이는 문학평론가이자 언론인이며 역발상주의자이기도 했던 확고한 무신론자 크리스토퍼 히친스에서 따왔다. 
이 세개의 면도날을 함께 사용하면 잘못된 믿음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는다. 이 세가지 면도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도록 유도한다.
* 어리석음이나 인간적 실수나 우연을 무시하면서까지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고 가정하는 태도는 과연 합리적인가?
* 나쁜 의도라는 복잡한 그물망을 제안하는 태도는 과연 합리적인가?
* 그런 예외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나는 가지고 있는가?
만일 설명하고자 하는것이 이 세가지 면도날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이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그 설명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해야 한다는 신호다. 

- 믿음은 힘이 세다. 일단 어떤 믿음이 생기면 그에 의문을 제기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나이 간헐적 단식습관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는 힘든 노력을 회피하고 오히려 기존의 믿음을 더욱 강화하려고 든다. 다큐영화 제작자 애덤 커티스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은 힘이나 법을 통해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그 권력은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규정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오늘날의 현대적 개인주의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 현대적인 개인주의 및 디지털 정보흐름의 시대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고 말하겠다.

- 오랜 관찰 끝에 마침내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어떤 사람들은 터무니 없는 추론을 하면서 먼저 마음속에 어떤 결론을 내리는데, 이 결론은 자기가 내린 것이거나 혹은 자신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누군가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기에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 확고하게 붙잡고 있는 생각이든 다른 사람이 제시한 생각이든 간에 이를 뒷받침하는 주장은 아무리 단순하고 어리석을지라도 즉각적으로 수용되고 박수를 받는다. 반면, 그 생각에 반대되는 주장은 그것이 아무리 기발하고 결정적이라 해도 경멸과 노여움으로 내쳐진다. 설령 그 주장이 자기를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고 해도 그렇다. 열정적인 몇몇은 이성을 잃고는 올바른 주장을 하는 사람을 적으로 여기고 그들을 제압해서 입을 다물게 하는 일에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두가지 주요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

- 방어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정찰병이 되어라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특히 어려운 대화를 할 때는 자기것을 지키려는 사고방식으로 일관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면 훨씬 생산적으로 대화할 수 있다. 상대방 또한 그렇게 변화하도록 격려하는 것도 유용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을 바꾸기란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합리적 사고 전문가인 줄리아 갈렙은 자기것을 지키려고 하는 태도를 전투병 사고방식이라고 말한다. 갈렙에 따르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전투병 사고방식을 채택한다는 것은 추론과정을 방어전투의 한 형태로 바라본다는 뜻이며, 이 전투에서 자기의 가치관이 공격을 받아서 위험해지면 방어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대신 정찰병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 자기진영의 영토방어가 임무인 전투병과 달리 정찰병은 적진을 탐색하고 조사하는 역할을 함. 그러자면 개방적이고 호기심이 넘치는 마음이 필요. 즉 전투병은 눈앞의 위협을 물리치는 데 과도하게 집중해야 하지만 정찰병은 무엇이 진실인지 그리고 세상에 무엇이 있는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말. 그러므로 잘못된 믿음에 빠지지 않으려면 전투병이 아니라 정찰병이 되어야 한다.

- 수면마비. 꿈을 꿀 때 사람의 뇌는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다음과 같은 다양한 행동을 하도록 신체에 명령을 보냄. 앞으로 걸어라. 허리를 굽혀 꽃을 꺾어라. 칼을 뽑아들어라. 차 위로 올라가라. 하늘을 날아라. 그렇다면 왜 사람은 렘수면 중에는 뇌의 명령을 받고도 그 명령을 실제로 실행하지 않을까? 왜 침실을 뛰어다니지도 않고 창밖으로 뛰어내리지도 않을까? 왜냐하면 다행히도 인체는 그런 위험한 상황을 예방하는 방향으로 적응해왔기 때문. 렘수면 중에는 기본적으로 뇌와 신체 사이의 연결성이 끊김. 이때는 신체가 뇌의 신호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의미.
- 그러나 때로는 모든 게 계획대로 작동하지 않기도 해서, 신제를 마비시키는 메커니즘이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뇌가 렘수면에서 깨어나기도 함. 이런 경우, 아주 짧은 시간동안 그 사람은 잠에서 어느정도 깨어 있긴 하지만 신체를 움직일 수 없다. 이때 사람들은 외계인 피랍자가 경험한다는 바로 그 느낌(따끔거리는 전기적 자극,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 윙윙거리는 소음. 번쩍거리는 불빛, 그리고 침대 근처를 맴도는 외계인이 모습등)을 경험함.

- 인간은 패턴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이론이 아예 없는 것을 참지 못해서, 차라리 나쁜 이론이나 음모론이라도 찾는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 잘못된 믿음의 깔때기 안으로 떠밀려 내려가는 여정에서 사회적 요소는 강력한 역할을 한다.
따돌림 당한다는 느낌은 잘못된 믿음을 추동하는 강력한 힘이다.
사회적 매력은 최기 몇개 단계에서 밀어주고 당겨주는 역학의 결과로 일어난다. 그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친구와 가족에거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느낌에 이끌린다.
사회적 유지는 오신자가 그 깔때기의 한층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간 다음에 일어나며, 이때 오신자는 새로운 사회적 집단에서 자리를 잡는다.
사회적 가속화는 오신자가 잘못된 믿음의 깔때기 깊은 곳에 있을 때 일어나며, 다른 오신자에게 느끼는 사회적 유대감은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그 집단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 해결책은 거의 언제나 당신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방향에서 나오죠. 그러니까 그 방향을 들여다보려고 애써봐야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래봐야 거기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더글러스 애덤스, 의심의 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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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정신병을 팝니다

사회 2025. 1. 10. 07:17

- 약물개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장기적으로는 이득보다 해악이 더 많다는 것을 데이터가 보여준ㄷ면 DSM같은 진단매뉴얼에 의해 광범위하게 촉진되는 과잉의료화 또한 그 자체로 나쁜 정신건강결과에 기여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가 진단을 받음으로써 인정받는 기분을 느꼈다고 보고하며, 그 진단을 중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기도 하지만, 연구는 우리의 정신적 고통을 정신적 질환, 질병, 혹은 기능장애로 재구성하는 것이 회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 이런 문제를 의학적 문제나 정신질환을로 부르는 관점이 부추기듯,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가 생물학적 이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믿게 되었을 때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자신의 문제가 화학적 불균형에 의해 초래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런 가설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비해 회복에 대해 더 비관적 시각을 보이며, 더 강한 자기낙인가 자기비난을 경험하고, 더 나쁜 기대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치료가 끝난 이후에 더 많은 우울증상을 경험한다. 자신의 고통에 대한 생물유전학적 설명을 수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유사한 결과가 발견되었는데, 이런 설명은 많은 경우에 환자들과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낙인화하는 태도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태가 만성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절망감을 가중시킨다.
우리의 고통을 의료화하는 것이 이처럼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이유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정신적으로 아픈 것으로 정체화하게 되면, 스스로를 정상적인 삶에 건강하게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 믿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이들은 이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되며, 이는 그를 다른과 구별하게 되고 정신의학 권위에 장기적으로 의존하게 함. 결과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전망과 야망을 다시 생각하거나 심지어 하향조정하고, 주체성의 일부분을 포기하라는 미묘한 암시를 받게 됨. 

- 마르크스가 종교에 대한 분석을 통해 발견한 것은 고통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데 책임을 지는 사회제도들이 경제의 목적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 이런 제도들은 고통의 진정한 원인을 보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진정시킴으로써 정치적으로 위험한 감정들을 완화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이런 이해가 마르크스 주의로부터 떨어져 나와 주류 사회과학의 일부가 되자, 이런 이해는 정신건강 분야에도 적용되기 시작했고, 80년대부터 여러 새로운 통찰이 등장. 이런 통찰은 우리의 고통이 명백한 경제적 목적을 위해 잘못 해석되고, 부당하게 이용되며, 탈정치화되는 특정 방식들을 드러냈다. 그러한 방식들에 대한 대략적인 목록을 만들어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 현재의 경제를 비판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고통을 개념화한다. 다시 말해, 고통의 원인을 사회적인 것보다는 개인적인 것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문제가 바뀌어야 하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체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 믿게 한다
* 경제의 목적과 부합하는 방식으로 개인의 웰빙을 재정의함. 웰빙은 개인이나 공동체에 실제로 좋은지 여부와 관계없이, 경제성장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감정, 가치, 행동을 포함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져야 한다.
*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과 감정을 더 많은 의학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증거로 만든다. 기존의 질서를 뒤흔들고 교란하는 감정이나 행동은 강력한 금융기관과 엘리트들이 경제적 이득을 좌절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의료화되고 치료되어야 한다
* 고통을 더 많은 소비를 위한 활발한 시장기회로 삼는다. 대기업이 소위 해결책들을 제조하고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고통은 대기업에게 매우 수익성 있는 시장이 될 것이다. 이 해결책들이란 수익을 늘리고 이윤과 더 높은 주식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들이다.

- 촘스키가 보기에 부채는 학생들을 경제순응주의자로 만들고, 그들이 진입하고 있는 체제의 경제현실에 반대하기보다는 이를 수용하도록 강제한다. 다시 말해, 부채는 신자유주의로 편입시키는 사회화의 강력한 형태로, 젊은이들이 일찍부터 현재의 경제상태에 복종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부채가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바꿀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견해가 위와 같은 비판을 뒷받침한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선택권을 축소시킴으로써, 우리가 직접 원하지 않았더 미래의 의무와 활동에 우리를 가둔다. 

- 미래의 나를 담보로 돈을 빌린다는 표현은 나의 미래 자유를 담보로 돈을 빌린다는 의미. 내가 오늘 빌린 돈은 오늘의 나를 해방하겠지만, 내일의 나를 옭아맨다. 그에 비해 부채를 지는 것은 너무 쉽게 느껴진다. 종속이 다른 날로 미뤄지면, 단기적으로는 장점만이 느껴진다. 합리적 투자를 위한 부채를 넘어선 부채는 투자와 전혀 관련이 없고, 다만 소비주의 경제에서 합리적으로 기능하거나 생계를 유지하거나 또는 어떤 경우에는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관련된다.

- 08년 경기침체 이후 사회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을 아우르는 부채의 영향은 광범위하게 보도되어 왔다. 그러나 부채는 경제의 더 뿌리깊은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 반창고 붙이기 식의 해결책으로 관리되어 왔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수많은 예시 중 하나. 80년대 이래로 다른 경제적 반창고들이 출현하게 되었고, 이는 단지 임금, 세금, 부채, 소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우리는 머지 않아 교육, 지방정부, 국민보건서비스, 그리고 물론 정신건강분야를 포함하는 우리의 공공서비스 전반에 걸쳐 경제적 반창고가 활용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임. 여기서 소비자부채의 활용과 상응하는 또 다른 반창고 붙이기가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유용한 치료를 보편화한다는 명분하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급속히 확산하게 되었다. 그리고 짐작하다시피 바로 여기서 항우울제 이야기가 등장한다.

-80년대 이후로 부채와 약물이 사회적으로 작동해온 방식에는 무언가 기이한 유사성이 있음. 70년대에는 부채의 사용과 약물의 사용 모두가 그리 대단치 않은 수준이었으나, 80년대 이래 수십년동안 부채와 약물의 사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부채와 약물의 사용은 폭발적으로 증가. 그리고 부채와 약물 모두에 합리적 사용처가 있다 할지라도, 가계부채와 약물소비는 대부분 장기적으로 유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부채와 약물소비 모두가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것, 최소한 깊이 있고 지속가능한 의미에서 삶을 개선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려이 없음. 오히려 그것은 부채와 약물이 감추려고 해온, 우리 사회의 깊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반응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채와 약물 모두는 우리 시대의 완벽한 진정제로 거듭났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
하지만 둘 간의 유사성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거대기업들이 수중에 어마어마한 부를 쏟아 넣는 것 외에도, 부채와 약물은 이념적으로도 작용하여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내적 장애로 재분류. 부채를 통한 개입은 우리의 병든 재정건강의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경제적 무능함을 표적으로 삼고, 정신의학적 개입은 우리의 병든 정신건강의 저변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생물학적 이상을 표적으로 삼음. 부채를 통한 개입과 약물을 통한 개입은 제각기 소위 개인적 결함을 치료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새로운 자본주의의 사상, 제도, 정책의 모든인과적 책임을 교묘히 면제한다.

- 대부분 가족에게는 자신이 겪는 고통의 사회적원인을 변화시키기는커녕 그에 대해 고심해볼 만한 시간과 자원조차 부족.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일상적 의무를 처리하느라 바쁘고, 이런 추가적 문제는 전문가가 해결하도록 놔두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20세기중반의 위대한 사회학자 피터버거가 말했듯이, 현대적 삶의 복잡성과 부산함은 사회적 삶에 대한 몰이해를 자아에 대한 몰이해로 번안하는 것을 매력적인 선택지로 만든다. 특히 일종의 자기이해, 자기숙달과 안심을 제공하는, 간단하고 믿을 만한 것처럼 보이는 해결책이 제공되고 있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고, 당황스러우며, 심오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역학의 힘에 대한 인식을 고양하는 대신, 정신건강 증진도구와 회복탄력성 훈련, 조기개입전략을 택한다.

- 결과적으로 고통의 사회적 원인을 모호하게 만드는 정신건강개입의 힘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함. 어떤 치료법에서건, 우리를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더 큰 힘에 대해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필수적인 부분임. 우리는 많은 아이에게 있어 가장 진실되고 효과적인 치료법은 약물이나 상담실, 혹은 교실에서의 개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지각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더 가혹한 사회적 힘의 영향을 완화하고자 노력하는 의미있고 애정어린 관계속에  있다.

- 80년대 이래 이루어진 제약업계에 대한 점진적 탈규제화는 정신과 약물이라는 분야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제의 주된 원인이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로 이루어진 과잉처방문제의 주된 원인이 되어왔다. 탈규제화는 80년대 이래 영국의 정신과 약물 소비가 400%나 증가해 오늘날 영국 성인의 25%가 매년정신과 약물을 처방받게 된 배경이기도 함. 이런 성공신화는 효과적 신약의 개발이나 정신약학의 발전 때문이 아니라, 제약업계가 업계의 이익에 맞는 방식으로 규제제도와 의학계의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준 이데올로기의 부상 때문이었다. 

- 팀 카서와 에리히 프롬이보기에 물질주의가 우리가 겪는 고통의 주요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물질주의는 인간욕구의 결핍과 방치를 보상하기 위한 시도다. 물질주의가 이런 요구를 충족해주기보다는 착취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물질주의가 심리적으로 매우 치명적 효과를 초래한다고 보았다. 삶으리 만족스럽고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가치, 활동 및 지지형태와 상충되기에, 물질주의는 우리를 도와준다는 명목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해악을 끼친다. 수익성 높은 소비자본주의의 지속적 확산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감정적, 관계적 건강에 반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함. 그리고 이는 물질만능주의가 부상하는 국가에서 불안과 우울 또한 증가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요인일지도 모른다.

- 70년대에 새로운 자본주의가 얼마나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게 될지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새로운 자본주의는 웨스트민스터, 워싱턴, 베를린, 파리같은 서구 자본주의의 강력한 중심에서 얼마 안되는 정치적 지지자를 보유했다. 새로운 자본주의가 이처럼 지지를 받지 못한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2차대전 이후 서구를 지배해온 좀더 사회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와 비교해보면, 새로운 자본주의에는 유권자들의 열정과 영감을 지필만한 매력적인 도덕적, 윤리적 비전이 부재한 것처럼 보였다. 전후의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몇십년에 걸쳐 실행되고 검증되었다. 강한 국가는 특히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 사회 전체적으로 자원의 더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는 이상에 실제 현실이 부합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말이다. 국가는 공공기관을 강화하고 장기간에 걸친 공공투자를 진행하며, 동등 임금과 낮은 실업률을 지향하고, 강한 규제를 통해 시장의 탐욕을 억제해야 했다. 강한 국가는 모든 시민의 이익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극단적 부와 가난을 억제하여 더 공평한 중간지대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기에 새로운 자본주의는 사회전반에 깊이 동의하는, 이미 존재하는 경제적 이상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했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부자에 대한 세금을 감축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약화하고, 국가를 축소하고, 사회서비스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 새로운 자본주의는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의 지배를, 사람들이 성공의 부산물을 갖기 위해 다퉈야 하며 경쟁과 사업이 지배하는 세상을 추구했다. 
70년대 중반에 이 비전을 가장 열렬히 지지한 사람들은 이러한 비전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볼 사람들, 즉 권력을 갖고 있고, 기업가적이며, 풍부한 자원과 인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전체 유권자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었기에, 새로운 자본주의는 투표에서 패배를 거둘 수밖에 없는 것만 같았다. 이런 이유로, 70년대에 새로운 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유권자들을 설득하여 새로운 자본주의가 단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모두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유지해줄 것이라고 믿게 만들 최적의 방법을 찾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 이들은 모든 사회집단이 열정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 설득력 넘치는 윤리적 비전, 소수의 철학을 다수의 철학으로 만들 수 있는 비전을 찾아야 했다. "이 새로운 비전은 대체 무엇일까?"가 이들의 질문이었다.
- 밀턴 프리드먼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70년대에 썼던 여러 저술에서 맹렬히 주장했듯, 새로운 자본주의는 서구문화의 중심을 지탱하는 기둥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었다. 진정으로 자유를 수호하는 유일한 경제적 비전은 새로운 자본주의뿐이라고 주장. 공산주의국가 소련의 발흥으로 인한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를 이용해 프리드먼은 "자유를 위한 투쟁"을 새로운 자본주의가 전하는 경제적 메시지의 핵심에 놓음. 프리드먼은 새로운 자본주의가 서구적 자유의 마지막 보루이며, 우리의 국경을 위협하는 공산주의를 방어해준다고 주장. 공산주의적 권위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유일한 버전이라는 것. 대중은 바로 이 주장을 이해해야만 했다.
이러한 서사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프리즈먼은 2차대전 이래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가 채택해온 자유의 관점을 비판. 그러한 자유의 관졈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국가는 우리 모두가 누리는 자유의 진정한 수호자다. 국가는 사회보장을 제공함으로써 가난의 굴레로부터 우리를 해방하고, 무상의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질병의 우환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고, 부를 재분배함으로써 불평등으로 인한 형평성의 부재로부터 우리를 해방하며, 공교육을 제공함으로써 무지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여, 좋은 삶을 가로막는 요인들로부터 우리를 해방한다. 우리가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사회악을 척결함으로써 국가는 우리가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방한다.
- 하지만 프리드먼을 비롯해 경제적 우파에 속한 사람들에 의하면 이와 같은 자유에 대한 국가중심적 비전은 사람들을 호도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 차원에서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기까지 한다. 하이에크가 썼던 저술을 들먹이며, 프리드먼은 모든 국가에는 점점 더 많은 권력을 집적하여 그 과정에서 점점 더 확대되고 군림하려 드는 내재적 경향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 이런 일이 일어나면 국가는 점점 더 중앙집권화하고 전체주의적으로 변화해 결과적으로는 민주주의적 자유를 완전히 없애버리게 된다는 것. 이런 바탕에서 프리드먼은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내버렫두면 사회주의, 나아가 공산주의로 진화할 수밖에 엇다고 주장. 이처럼 공산주의로 가는 흐름을 저지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은,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를 자유시장 버전의 자본주의로 교체해 국가의 야심을 꺾어 버리는 것이다. 프리드먼의 주장이 가진 문제가 무엇이었건 간에 큰 국가를 소련의 공산주의와 연관짓고, 작은 국가를 서구적 자유와 연관짓는 그의 주장은 당대에 만연한 반공주의 정서와 딱 들어맞음. 그의 주장은 작은 국가의 시장근본주의에는 없었던 도덕적 비전을 부여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제는 이 최신 유행의 비전을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널리 퍼뜨리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 새로운 자본주의에 필요한 것은 국민에게 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 집단이었다.

- 수년간 나는 직업적 상황에서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PHQ-9과 GAD-7같은 검사지를 작성한 경험이 있는 수많은 이들을 만나왔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이들 중 자신이 거대한 경제 서사시에 조연배우로 출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이런 진단도구가 주로 신자유주의의 현재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그들의 고통을 재구성하고 민영화하기 위한 수단이라 보지 않았다. 이런 문서가 약탈적 제약기업의 야망 및 과잉처방과 직결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이들은 이러한 도구들이 고통을 개인적 결함으로 표현함으로써 고통을 이윤을 축적하기 위한 상품으로 탈바꿈시키고, 감정적 고통을 낳는 뿌리깊은 구조적 원인에 대해 정부가 손을 놓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 불평등과 정신적 고통 사이에 이처럼 밀접한 관련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윌킨슨에게 이 질문을 던지자, 그는 진화이론을 바탕으로 대답. "우리는 진화 역사에서 대부분 기간을 조그만 수렵채집사회에서 보냈습니다. 이 사회에서 우리는 오래도록 지위가 균등하게 배분되는 평등주의적 삶의 방식에 맞추어 진화해 왔습니다. 예전엔 집단 전체의 협력이 모든 사람의 생존에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러니 협력적인 사람이야말로 곁에 두면 유용한 사람이었죠."
여성은 덜 이기적이라고 생각되는 파트너를 선호했고, 공동체는 집단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의 가치를 높게 샀다. 실제로도 우리는 이기적이고 나밖에 모르면 외면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일찍이 인류가 처한 환경은 관계지향성이나 협조성 같은 친사회적 특징을 선택하게 되었죠.
인류가 생명체로서의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을 보다 평등하고 협력적인 환경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듣고서, 나는 윌킨슨에게 심각한 경제적, 물질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즉 격차와 분리로 가득한 사회조직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를 물어보았다. "우리는 경쟁과 분열이 급격히 심화되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체계 속에서 우리의 위치, 다시 말해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우리 자신의 위치와 우리가 어떻게 판단되는지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상당히 가중시킵니다."
- 윌킨슨은 우리의 경제형태가 정신건강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았을까? 그의 답변은 더 결단력 있었다. 정치에서 혹은 미디어에서 정신질환, 스트레스와 자해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때면, 이에 대한 반응은 거의 언제나 서비스를 늘리라는 겁니다.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의 수를 늘리라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왜 전례없이 높은 수준의 육체적 편안함을 누리는 사회가 이처럼 끔찍한 정신적, 감정적 고통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질문하지 않습니다. 진실은 이에 대한 구조적 설명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야말로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이 책에서 나는 정신의료 서비스에서 이런 구조적 설명이 대체로 무시당하고 있으며, 이는 정신의료 서비스의 이데올로기가 사회경제적 현 상태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자 했다. 우리가 노동자가 가진 불만의 의료화를 보건, 일터로 돌아가기 위한 심리치료이 증가를 보건, 물질주의적 가치와 치료의 조응을 보건, 실업상태의 병리화를 보건, 경제적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측정되는 회복을 보건, 업계의 이해관계를 가장 우선시하는 의약품 규제를 보건, 진단명이 학교예산 감축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것을 보건, 널리 퍼진 고통의 상품화와 탈정치화에 대해 보건, 우리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이념적 욕구와 필요에 부응하는 시녀가 되어버린 체제를 보게 된다. 이런 굴종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왜 실패하고 있는 우리의 정신건강 시스템이 실패에도 불구하고 확장을 거듭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코로나가 모든 것을 바꾼 셈이다. 코로나는 새로운 경제생산 체제의 생존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을 변화시켰음. 코로나는 우리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무엇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지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켰다. 코로나는 우리가 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 무엇이 우리를 괴롭게 하고 무엇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부분적으로나마 변화시켰다. 근래에 생각되었던 것보다 체계적인 경제적 개혁이 더 가까울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 모든 변화가 새로운 정신건강 패러다임이 오래지 않아 승산을 갖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결국 어떤 경제적 패러다임도 영원히 가지는 못했기 때문. 그리고 현재의 패러다임도 그런 역사적 경향을 따를 수밖에 없다. 변화는 도래할 것이며, 변화가 도래했을 때 정신건강 분야에 존재하는 대안적 생각들은 시행될 준비가 완료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노력을 계속하기만 한다면, 즉 우리가 계속해서 신자유주의의 압력과 유혹에 저항하기위해 노력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신자유주의 교리가 강제하는 율법이 아닌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개입들을 개발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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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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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경제 선언

사회 2025. 1. 3. 07:31

- 우리가 아무런 이득도 안되는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인류가 현재처럼 화폐를 사용해 물건을 교환하기 전에는 주고 받는것, 다시말해 증여를 통해 필요한 물건을 조달해왔기 때문.
부족사회에서도 사람들은 먹을 것부터 재산, 토지가지 부족간, 씨족간에 주고 받았다. 이런 경제를 증여경제라 함. 물론 증여뿐 아니라 매매나 자급, 재분배도 오래전부터 이루어졌지만 증여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 증여는 단순히 물건을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개 답례의 의무가 있다. 이렇게 선물하고 답례하기를 반복함으로써 사람들은 유대를 돈독히 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조달.
이 증여정신은 지금도 우리 안에 존재함. 이것은 자본주의보다 훨씬 뿌리 깊고 보편적인 인간세계의 기반임
증여는 물건이나 돈을 주는 것을 가리키지만 편지 주고받기, 품앗이, 초대, 보살핌같이 증여로 간주하지 않는 행위도 같은 구조임. 이런 상호작용 전반을 호혜라고 함. 물건이나 돈의 증여와 답례는 이 호혜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다.

- 증여경제라고 하면 모든 사람이 타인을 배려하는 꿈같은 사회를 떠올리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오늘날의 증여도 뇌물의 의미로 주거나 자기 과시를 위해 주는 등, 자기자을 위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 증여 그 자체만으로는 이타적 선행이라 단정할 수 없음.
인디언들의 포틀래치라는 연회는 그것을 여실히 보여줌. 부족의 수장이 손님을 초대해 개최하는 이 연회는, 상대가 보답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의 선물을 해서 상대의 체면을 짓밟는 장대한 허세싸움. 이를 위해 때로는 귀중한 재산을 눈앞에서 불태우거나 부수고, 노예를 죽이기도 했다. 증여는 지금도 그런 측면을 갖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성선설 따위를 무턱대고 강조하면 본질을 흐린다. 다만 아무리 부정적 측면이 있다해도 선물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물건이나 돈을 내놓는 행위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선물은 오지랖이 넓은 것이 아니라 마음이 넓은 것이다. 세상의 기본이 되는 원리로서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이득이 되지 않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하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매력적.

- 서양에서는 버려진 음식물을 일반인이 수거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져 있다. 수확하고 남은 농작물이나 과일을 가난한 사람으로 하여금 농장에 가져가도록 하는 유럽의 이삭줍기 전통고 그중 하나. 이삭줍기라고는 해도 떨어진 이삭만 줍는 것은 아님. 유럽에서는 중세부터 근세까지 수확이 끝난 농지나 과수원을 마을의 노인, 과부, 고아, 병자들에게 개방해 남겨진 농작물을 자유롭게 가져가도록 했다. 밀레의 이삭줍기에 그려진 것은 그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지역 가난한 사람들이다.
구약성서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너희 땅의 수확을 거두어들일 때, 밭에서 모조리 거두어들이지 마라. 거두고 남은 이삭을 줍지 마라. 너희 포도를 속속들이 뒤져 따지 말고, 남은 과일을 거두지 말며 가난한 자와 몸 붙여 사는 외국인이 따먹도록 남겨놓아라."

- 화폐가 생겨났다고 반드시 금전제일주의 사회로 곧장 향하는 것은 아님. 일보에서는 와도카이친이 만들어졌지만 그후 점점 화폐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쌀이나 비단에 의한 교환이 주를 이룸. 또 도시지역에서 돈을 활발하게 사용해도 사회 전체가 그것을 따르지는 않았다. 에도 시대 농촌지역에 관해서는 화폐가 침투해 특산품 같은 상품생산이 활발해졌다는 것만이 강조되지만, 그래도 주료는 자급자족과 현물경제였다. 물론 조세도 현물로 납부하는 것이 기본. 다시 말해 돈은 훗날 나타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수적 존재지만, 돈의 등장이 자본주의 사회를 만든 것은 아님.

- 시장 또는 화폐의 발생이 반드시 원시사회의 경제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19세기의 신화, 즉 화폐의 출현이 시장을 창출하고 분업화의 속도를 급격히 끌어올려 인간이 본디 갖고 있는 거래, 교역, 교환 성향을 개방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사회를 전환시켰다는 주장을 완전히 뒤집는다. (칼 폴라니)

- 이익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경제활동이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라고 함.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물질만능주의는 먼 예살부터 곳곳에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물건은 상품이라고 하는데, 상품경제와 화폐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이익제일주의는 더 멀리 퍼져나감.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이익을 우선하지 않는 것을 예외로 취급하게 된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간주됨. 산업혁명은 18세기유럽에서 시작된 이후 전세계로 퍼져나갔으므로 이 견해에 따르면 자본주의도 이 시기 이후에 세계로 번졌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가 시작된 19세기 후반부터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다. 현물경제와 자급자족이 생활의 기본이었던 농촌에서도 메이지 시대에 접어들어 돈으로 조세를 납부하게 되면서 돈의 중요성이 훨씬 커짐. 물론 지금도 자급자족적으로 생활하는 농가는 존재하지만, 지극히 예외적 현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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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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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사회

사회 2025. 1. 1. 06:38

- 승자와 패자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님. 알프레드 마셜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소득이 올라가기 때문에 아무리 교육을 잘 받아도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보통 수준의 유화가 이렇게 싸게 팔렸던 적도, 일류 화가의 그림이 이렇게 비싸게 팔린 적도 없었다"고 했다.
오늘날에는 이런 현상이 널리 퍼져 최고 실력자들이 받는 보상이 엄청난 금액이 됨. 이로 인해 현대산업경제는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아마도 이런 왜국 현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신호가 직업선택에 미치는 영향일 것이다.

- 부정확한 정보에 기반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당연. 그런데 자신의 성공가능성을 정확하게 평가할 때조차도 많은 사람이 무리하게 이 시장에 뛰어든다. 이런 현상은 과도한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원인과 비슷. 예를 들어 에어컨을 살지 말지를 결정할 때 사람들은 에어컨을 사서 얻는 편익을 에어컨 운용 비용과 비교한다. 개별 소비자의 입장에서 에어컨 운용비용은 전기요금이다. 그러나 에어컨을 가동시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가비용을 부담시키게 됨. 에어컨을 많이 사용할수록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대기는 더욱 오염됨. 정부의 규제가 없다면 개인은 추가비용을 무시할 수 있으며 대부분 그렇게 한다. 즉, 사람들이 경제적 동기로만 움직인다면 우리는 점차 오염된 공기를 흡입하게 될 것임.

- 작가들이 홍보여행에 나서고 운동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동기는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군비경쟁에 돌입하는 동기와 비슷. 만일 경쟁국은 가만히 있는데 어느 한 나라가 무기를 구입하면 두 나라 모두에게 안 좋은 결과를 초래. 무기의 가격이 비싸므로 두 국가 모두 무기를 사들이면 사지 않았을 때보다 경제적 상황이 더 안 좋아짐. 승자독식 시장은 위치적 군비경쟁을 낳기 마련이며 이는 참가자의 과잉유입에서 생겨나는 손실을 더욱 크게 만듬.

- 옷에 대한 지출 증가가 낭비처럼 보이자만 성형수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 성형수술은 비용도 많이 들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작용의 위험까지있음. 그런데도 성형수술을 받는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일부지역에서는 이미 일반화됨. 캘리포니아 남주 지역의 장의사들은 턱과 가슴 그리고 엉덩이 확대수술에 사용된 불연성 실리콘팩 때문에 화장이 잘 안된다고 불평.
수술로 외모를 바꿈으로써 개인의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도 효용이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일단 성형수술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외모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이 상승할 뿐이다. 한때는 체중이 조금 더 나가거나 머리숲이 다소 적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지방흡십술이나 모발이식술을 받아야 하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퍼지고 있다.

- 누구라도 가장 뛰어난 변호사를 고용하려면 그만큼의 보수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 변호사라는 직업에 뛰어들어 다른 직업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게 놀랄 일도 아니다. 만일 일종의 지적인 군축협정을 맺어 아이큐 100이상인 사람은 법률관련 직업에 종사할 수 없다는 합의를 이루어 내더라도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가장 뛰어난 변홋를 고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가지 있는 지적자원은 많이 절약될 것이다. (케네스 볼딩)
볼딩은 언젠가 우리 사회가 소송천국이 되리라는 걸 예감하고 이런 허무맹랑한 제안을 하지 않았을까?

- 오늘날 대부분의 젊은 경제학자들은 대공황 초기에 선배 경제학자들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화폐공급을 줄일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ㄷ. 물론 지금은 그 처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수십년 동안 연준에서는 경제가 조금만 침체될 기미가 보이면 통화공급량을 확대해 왔다. 그리고 이런 정책이 경제안정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몇십 년 후 경제학자들이 20세기 후반의 경제,사회정책의 기본방향을 알게 되면 우리만큼이나 놀랄 것이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니라 불평등의 심화, 재정적자의 확대, 성장의 둔화 등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중요한 정책처방인 중상위 소득계층의 조세감면 등으로는 대공황기의 통화감축 정책이 실패한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조세감면을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감세정책이 소득불평등과 재정적자를 더욱 악화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부정적 영향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같은 낙수효과이론은 이미 승자독식이 장악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적용되지 않음.

- 애덤 스미스는 분업과 전문화가 시장의 규모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장이 크면 고도의 전문화가 가능하지만 소규모 시장은 그렇지 못하다.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처럼 황량한 지방에 인가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지역에서는 농부가 가족을 위해 직접 가축도 잡고 빵도 굽고 술도 빚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점진적인 도시화로 인해 노동은 더욱 세분화되었고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는 기계가 발달. 최근 기술변화는 이 과정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덕분에 시장도 확대되었으며 승자독식시장도 더욱 커지고 심화됨.

- 미국기업이 외부인사를 CEO로 고용한다는 것은 CEO를 회사에 붙들어 두었던 보류조항이 사실상 붕괴되었다는 의미. 아직도 새로 임명되는 CEO의 절반 이상은 내부승진을 통해 발탁되기는 하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바뀜. 미국에서는 업무실적이 좋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점차 일반화됨. 유능한 중역을 잡아두기 위해 이사회는 충분한 연봉을 지불해야 함. 프로야구에서 보류조항이 삭제되면서 일류선수들의 연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듯 뛰어난 중역에게는 직장을 옮기는 것이 그와 비슷한 기폭제 역할을 했다.
개방적 경쟁체제가 CEO의 연봉에 미치는 영향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더욱 심화됨. 수백만불의 보수를 지급해 본 적이 없는 환경이라면 CEO가 그 정도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어도 이사회에서 함부로 많은 연봉을 결정하지 못할 것임. 그러나 다른 회사가 그 경영자를 더 많은 연봉을 주고 데려가면 회사는 연봉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자신들의 CEO를 잃기보다는 수백만불의 연봉을 지불하고자 한다. 이렇게 한번 선례가 생기면 이후 수백만불의 연봉을 정당화하기는 쉽다.

-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던 시대는 사회적,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대부분에게 경제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음. 2차대전이 끝난 뒤 시작된 생산성과 임금의 지속적 성장이 이 시기에 하나의 트렌드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전반적으로 소득수준이 상승해 많은 사람이 교외의 단독주택, 자동차 2대, 자녀들의 대학교육을 상징되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함정에 빠져들었다.
74년 이슬람 국가들이 석유수출을 제한하면서 이 모든 것이 끝났다. 그 이후 봉급은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지 못했고, 이런 경향은 중간정도의 교육과 기술을 갖고 있는 남성 노동자들의 경우 더 심해짐. 우리 대부분은 생활수준이 조금씩 올라가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임금수준이 절정을 이루었던 20년 전 수준을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뒤로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면서 남성 노동자들의 손실을 만회해 왔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구당 평균수입은 70년대 초와 비교해서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반면 중산층이 소득수준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동안에도 부자는 점점 더 부유해졌다. 가구당 소득의 양극화는 중산층의 소득정체 만큼이나 골치아픈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77년부터 89년 사이 발생한 개인소득 증가분의 70%가 소득 상위 1%의 부유층 가구에 돌아갔다고 주장. 레이건 행정부 말기에 이 엘리트 집단의 평균소득은 중산층 가정보다 20배나 더 많았다.

- 어떤 경제든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재능이 가장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근로자들을 배치하는 것이다. 단지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이상적인 인력배치란 재화와 용역의 총가치가 극대화되도록 하는 것. 또한 이런 인력배치는 모든 취업자가 벌어들이는 총소득을 극대화한다. 따라서 승자독식시장이 너무 많은 경쟁자를 끌어들인다는 주장은 사람들이 이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고 다른 직업을 선택한다면 사회의 총소득이 증가할 것이라는 뜻.
이런 주장에 오해를 없애기 위해 우리는 승자독식시장이 완전히 해로운 경제적 재난이거나 부정적 요소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우선 강조하고자 한다. 결국 매우 중요한 일을 맡겨야 할 때 처음에 누가 가장 잘할지 모르겠으면 그런 사람을 찾아내는 장치가 필요한데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그 역할을 승자독식 시장이 하고 있다. 승자독식시장 또는 이와 유사한 기능의 시장이 없었다면 자본주의 경제는 지난 200년간 엄청난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읻. 우리가 승자독식시장이 지나치게 많은 경쟁자를 끌어들인다고 주장하는 것은 별로 뛰어나지 못한 재능을 가진 지망생들이 다른 직업을 택하면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
그런데 이런 제한적 주장조차 결코 명백하게 입증된 것이 아님. 90% 이상의 배우들이 자신의 재능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배우 지망생이 지나치게 많다는 주장을 입증하지는 않기 때문. 배우가 되려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들의 공연을 즐길 기회가 많아짐. 배우 지망생이 아주 적은 사회가 있다면 그곳에는 딱 배역에 필요한 만큼의 배우 지망생만 있으므로 우리는 형편없는 연기에 만족해야 할 것임.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조금 더 돈을 내더라도 더 나은 오락물을 찾을 것임.

- 경제학에서 자주 연구대상이 되는 직원들의 업무기피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전통적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일하기를 싫어하므로 그들을 감시하거나 물질적 보상을 주어야만 열심히 일한다고 함. 그러므로 감시비용이 부담돼 제대로 감시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이 경우 승자독식적인 보수체계는 개개인의 노력을 부추겨 효율성이 증가할 것임.
실제로 기업에서는 순전히 승자독식적인 보수체계가 지니는 이런 장점 때문에 의도적으로 토너먼트식 보상체계를 구성하기도 함. 분기마다 판매실적이 가장 뛰어난 대리점에만 보너스를 지급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그러나 우리는 시장경제에서 이런 토너먼트식 급여체계가 개개인의 노력을 부추기는 인위적 장치가 아니라 자연스런 장치라고 생각함. 이 경우 가장 우수한 노동자의 보수가 극단적으로 높다해도 업무기피현상은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음.

- 올림픽 체조선수 크리스티 필립스가 손목이 부러진채로 연습을 하기 위해 진통제를 삼키게 만든 것과 같은 승자독식체계가 건재하다면 이런 사례는 계속 나타날 가능성이 높음. 과도한 보상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다만 세계경제의 관점에서는 과잉투자지만 개별국가로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예컨대 식량과 건강관리에 더 많은 돈을 쓰고 HDTV의 화질개선에는 적은 돈을 쓴다면 전 세계 인류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지만 HDTV기술을 개발한 국가의 시민에게는 상황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텔레비전 기술로 세계시장을 장악하면 거기에 들인 연구개발비를 뽑고도 남기 때문. 경쟁에서 이길 확률이 높은 개별 국가는 군비축소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 대학 서열화로 인해 학문적 잠재력이 대학에 들어간 후에야 드러나는 대기만성형 학생은 기회를 잃게 된다. 앨런 그레그는 이렇게 지적했다
성장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자연은 인간에게 그 기간동안 많은 것을 배울 기회를 준다. 그런데 대다수 학생이 여섯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열일곱살 6개월부터 열아홉살 사이에 대학에 들어가도록 제도를 만들어놓고 조숙함에 따라 보상을 줌으로써 이런 자연의 혜택을 던져버린다면 어떤 이득이 있을까? 일단 학생들의 연령대가 같으면 학문적 보상은... 나이에 비해 유난히 똑똑한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다시 말해 조숙함을 포상해주는 셈인데 이 조숙함이 커서 재능을 보일 전조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므로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으뜸가는 교육적 자본인, 성장하면서 성숙할 시간을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 70년대에는 상업적 성공을 포기하고 예술적 작품을 만드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는 70년대 초와 오늘날의 창작 분위기를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71년에 마지막 영화관으로 명성을 얻었짐나 최근 리버 피닉스 주연의 콜잇러브가 극장 개봉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자 바로 비디오 시장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피터 보그다노빛가 오늘날처럼 냉혹하고 수익지향적 분위기에서 영화를 시작할 수 있었을지 자문한다면 그 답은 아마도 아니다, 일 것이다.

- 승자독식의 원리가 언론과 문화에 미친 영향보다 심각한 영향은 우리 사회의 폭력수준이 상승했다는 점. 이는 언론과 문화 시장에서도 처음부터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능력을 최우선으로 삼은 탓이다. 폭력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 왔지만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한 가지 변함이 없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끄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텔레비전 시청자, 영화관객, 독자를 끌어오는 데 오직 섹스만이 경쟁상대가 될 수 있다. 채널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살인장면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채널을 고정하게 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에게는 시청률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폭력적인 프로그램이 시청자를 끌어들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신문과 잡지도 폭력적인 내용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 더 많은 부수가 판매된다. 또한 주인공이 악의 세력으로부터 무자비한 도발을 당한 후 마침내 폭력으로 복수하는 영화에는 항상 관객이 많다.

- 변화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지만 현재 등장하고 있는 승자독식시장의 영향을 분명히 파악한다면 그에 맞서는 조치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임. 전통적 통념에 다르면 세상은 하나를 얻으면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하나를 잃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비관적 결론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의 최대승자에게 더 큰 세금부담을 지우는 것은 우리 금융시스템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재능 있는 시민이 더 생산적인 일에 종사하도록 유도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 만약 조세부담이 누진세 형태를 띤다면 절실히 필요한 저축과 투자도 촉진될 것임. 그러므로 승자독식사회의 결점을 보완하는 정책들은 형평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경제성장도 촉진한다. 이는 공짜점심은 아니지만 저렴한 점심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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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중에 속한 개인은 생활환경과 직업, 지적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독립된 개인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느기고 생각하고 행동함. 따라서 군중은 구성원 개개인의 평균값이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이질적 요소들이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유기체와 같음. 군중 속에서 개인이 상실되는 현상은 의식적 행위나 의지가 아니라 무의식에서 비롯됨

- 살아온 환경이나 교육의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지적수준이 다를 수는 있으나 인격적인 면에서는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음. 또한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그들이 지적으로 열등한 사람들보다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것도 아님.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편적 성질을 공유하고 있으며, 인재들이 모였을 때 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특출함이 아니라 누구나 가진 평범함이기 때문. 그런데도 군중을 이루었을 때 새로운 특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수적 우세와 익명성으로 인해 도덕수준이 낮아지고, 무리 속에서는 어떤 메시지에 쉽게 동화될 뿐 아니라 그것이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증폭하기 때문.

- 독립된 개인으로서는 교양인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군중에 속하는 순간 저급한 단계로 떨어져서 충동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며 타인의 생각에 쉽게 동화하는 모습을 보임. 또 한편으로는 개인으로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도덕을 실천하기도 함. 충동에 사로잡히고 영광과 명예를 중시하는 이런 군중의 속성은 어쩌면 인류문명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름. 인류 역사의 업적 가운데 많은 것이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무의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 한가지 사실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의 공통된 증언이 과연 진실을 판가름하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군중의 증언은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된 오류가 암시와 전파를 통해 힘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이 목격한 사건일수록 가장 의심스러운 법이다.

- 군중의 감정은 쉽게 극단으로 치닫기 때문에 어떤 의혹을 접하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군중이 이처럼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감정을 마음껏 발산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익명성에서 비롯됨. 한편으로는 군중의 이러한 감정과잉은 수준높은 도덕적 행위를 유도하기도 함.

- 극단적 감정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군중은 편협하다. 그리고 수적 우위에 따른 힘을 믿기에 권위적이다. 때문에 군중은 자신들이 추종하는 신념에 대해 어떠한 반론도 허용하지 않음. 편협하고 권위적인 군중은 자시들과 유사한 모습을 지닌 지도자를 선호. 그래서 군중은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폭군을 섬길지언정 어진 지도자에 충성하지 않는다.

- 군중에게 스며드는 사상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우연한 사건과 인물의 영향으로 형성되는 일시적 사상과 오래전부터 이어져왔거나 사회 여건의 변화로 인해 형성된 근본적 사상이다. 오늘날 민족정신의 토대가 되는 근본사상은 흔들리고 있고, 일시적 사상이 명멸하며 짧은 시간 동안 사회를 뒤흔든다.

- 어떤 사상이 군중에게 수용되기 위해서는 개념을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대체로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 형태를 취함. 사상의 개념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그 사상에 담긴 고차원적인 내용이 삭제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군중 사이에 통용되는 사상ㅇ들을 두고 비교우위를 따지는 것은 헛된 일이다.

- 비판능력을 상실한 군중에게 논리적 근거는 무의미하다
군중은 어떤 근그를 통해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은 강요된 판단을 받아들인다. 서로 유사해보이는 사례를 결합하고 특수한 상황을 일반화한다. 군중을 사로잡고 싶은 연설자라면 어떤 사안에 담긴 복잡하고 미세한 부분을 일일이 들먹여서는 안된다. 단 몇 마디의 경구와 구호로 이미지를 환기시켜야 한다.

- 군중이 만들어낸 영웅의 실체
군중은 어떤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경구와 구호에 쉽게 매료됨. 이렇게 형성된 이미지는 군중의 상상력을 부추기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군중은 어떤 메시지나 인물에 대한 평가가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거기에 신화의 후광을 입힌다. 그래서 역사속 위대한 군주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니라 군중의 상상 속에 군림하는 영웅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노력했다.

- 군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어야 함. 우리는 거의 매일 비극적인 사건과 사고를 겪으면서도 그 일들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는 비상할 정도로 집중하며 갖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지도자가 군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고자 할 때도 같은 방식을 취해야 함. 응축된 이미지를 통해 사건 전체를 일시에 제시해서 군중이 스스로 이미지를 재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 군중은 자신들이 따르는 신념과 지도자에게 맹목적인 순종을 바치고, 자신들의 믿음에 동조하지 않는 이를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임. 군중의 이러한 행위는 종교적 감성에서 비롯되기에 그들이 따르는 지도자는 신의 권위를 부여받는다

- 중대한 역사적 사건의 배후에는 항상 종교적 감정에 들뜬 군주으이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군주와 지도자의 결정으로 보이는 그 모든 사건을 실제로 움직인 이들은 군중이었고, 종교적 열망이 아니고는 군중의 그 과격한 행위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 제도와 법령을 개선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혁명조차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제도와 체제가 시대와 정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정신이 제도와 체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각 민족은 민족 고유의 기질에 어울리는 제도와 체제를 이미 누리고 있다. 때문에 급격한 체질개선을 통해 일시적변화를 이룰 수는 있지만, 곧 그 변화는 제자리로 돌아기기 마련. 결과에 변화를 준다고 원인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 명칭만 바꾸어도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슬로건을 내세우는 것은 어떤 단어와 경구에는 특정한 이미지를 불러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단어와 경구가 가진 실제적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권위를 획득한 단어와 경구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군중은 스스로 이미지를 불러내고 상상력을 자극해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다.

- 군중은 언제나 진실보다 욕망을 중시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과학과 자연의 힘을 드러내 보이며 군중의 케케묵은 환상을 깨뜨리려 하지만, 군중은 진실보다는 거짓과 오류로 점철된 환상을 좇는다. 환상속에서만이 꿈꿀 수 있고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군중을 각성시키려는 자는 실패하고 군중을 현혹하려는 자는 성공을 거두는 법이다.

- 문명을 일으킨 것은 이성이 아니라 공상이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신전을 짓게 하고 제국을 건설하며 신의 권능을 지닌 위대한 지도자를 탄생케 한 것은 감정과 공상이었다. 만약 군중이 하나하나 이성적으로 따졌다면, 역사속의 그 모든 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갈릴리의 한 무지한 목수가 2000년 동안이나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가장 위대한 문명을 이끌었다는 사실도, 몇몇 아랍 부족이 사막을 벗어나 고대 그리스-로마의 영토 대부분을 정복한 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대제국보다 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는 것도, 또 무명의 한 포병대 중위가 수많은 민족과 군주들 위헤 군림했다는 사실도 모두 있을 법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성은 철학자들에게 맡기고, 사람들을 다스리는 데 그 이성이 지나치게 개입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 명예와 희생, 신앙과 야망, 공명심과 조국애 같은 감정들, 그러니까 지금껏 모든 문명의 커다란 원동력이었던 그 감정들은 이성과 함께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에 반해 생겨난 것이었다.

- 군중은 항상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군중은 항상 지도자를 원한다. 하지만 군중을 등에 업은 지도자는 대개 온전한 정신상태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그런 지도자에 군중이 환호하는 이유는 지도자가 가진 이상과 의지, 신념, 실천력에 매료되기 때문. 조직된 군중은 막강한 영향력을 갖지만, 지도자가 사라지는 순간 오합지졸이 된다.

- 지도자는 크게 두부류로 나뉜다. 일시적 열정을 내뿜지만 강력한 의지를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는 지도자가 있고, 지속적으로 의지를 유지하는 지도자가 있다. 첫번째는 강렬한 업적을 이루지만, 오래지 않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두번째는 그다지 화려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집요하게 일을 완성한다.

- 누구나 따를 수밖에 없을 만큼 위엄을 가진 지도자가 있다. 이런 지도자는 군중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군중으로 하여금 그 상황을 타개할 행동을 하도록 이끌 수 있다. 하지만 군중에게 어떤 신념과 사상을 심으려는 지도자는 확언과 반복, 전파라는 3가지 방식을 취해야 함. 확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간결한 메시지로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확언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군중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반복이다. 메시지가 반복되면 여론이 형성되고, 이후에는 군중 사이에 빠르게 전파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의 주장을 반복하는 매체에 길들여지고 나면 다른 매체의 다른 주장에 대해서는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 대개의 사상은 국가의 상위 지식인층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이 확산되는 지점은 평민계층이다. 선술집을 떠돌던 사상은 군중 사이에서 왜곡되고 편집된 뒤 다시 국가의 상위층에 영향을 미침. 그러면 지도자는 그 사상을 다시 왜곡해 파벌을 형성하고, 파벌은 다시 사상을 군중에 퍼뜨린다. 이런 순환구조 속에서 사상은 간결하고도 확고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 지도자의 가장 강력한 요건은 매력이다.
위신은 상대로 하여금 경이와 존경같은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모든 비판능력을 상실하게 만듬. 위신에는 후천적인 획득된 위신과 선천적인 타고난 위신이 있음. 획득된 위신은 어떤 존재가 가진 사회적 지위, 재산, 직함 등에 나도 모르게 짓눌리게 되는 그런 것. 위신은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의견이나 작품에도 주어지는데, 위신을 가진 의견이나 작품은 다만 경탄의 대상이 될 뿐이지 옳고 그름의 판단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 일단 논란의 대상이 된 위신은 더 이상 위신이 아니다. 오랫동안 위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신과 인간이 결코 논쟁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 따라서 군중이 우러러보는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과 거리를 두어야 함.

- 과거에는 일반적 신념이라는 굳건한 토대가 있었기에 군중의 견해가 크게 요동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과거의 신념이 힘을 잃어가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군중의 사상이 점점 자유로워지며, 상반된 견해를 실은 언론매체가 확산되면서 군중의 견해가 그 어느때보다 유동적임. 여론을 주도할 힘을 상실한 정부와 언론은 대중의 생각을 따라가기에 급급한데, 이유는 대중의 생각에 동조하는 태도를 취해야 그나마 생존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 게다가 오늘날 군중 사이에는 무신념이라는 신념이 확산하고 있어서 뿌리 내리지 갖가지 생각들이 바람에 흩날리듯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닌다.

- 어느 국가에서건 군중투표는 대개 민종의 무의식에 잠재된 열망과 욕구를 발산하며 모두 유사하게 시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당선자의 평균은 곧 각국 민족정신의 평균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평균값은 세대가 바뀌어도 거의 변함이 없다.

- 많은 지식인들이 배심원 제도의 오류를 지적. 실제로 배심원단이 평결을 내림에 있어 오류를 저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폐쇄집단의 일원인 사법관들이 저지르는 오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 폐쇄집단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근거로 사안을 판단하지만, 실제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어떤 전문성의 영역에서 벗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군중이 가진 힘이 막강하다 하지만, 폐쇄집단이 가진 힘이야 말로 정말 두려운 것이다.

- 선거 후보자가 갖추어야 할 첫번째 조건은 위신이다. 타고난 위신이 없다면 재력으로 보완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이 같은 노동자 출신의 후보자에게 투표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후보자에게 위신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 후보자는 확언과 반복, 전파를 통해 군중을 끌어들여야 함. 유권자 군중은 후보자를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기에 후보자는 과도할만큼 공약을 남발해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군중은 이성적 추론능력이 없기에 상대의 비방에 대해 논리로 맞서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행위다.

- 민족은 하나의 이상으로 뭉친 결합체이며, 문명은 그 이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들이 이룬 결과물. 하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면 문명은 성장을 멈추고 노쇠기에 접어듬. 이와 함께 민족도 분열. 각자의 이해와 열망에 따라 분열한 개개인들은 곧 사소한 행위조자 지도해 줄 어떤 존재를 기다리게 되고 이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가 등장. 하지만 이상이 힘을 잃는 순간 민족도 문명도 더는 존재하지 않음. 꿈을 좇아 야만에서 문명에 이르렀다가 그 꿈을 상실하면서 다시 야만으로 돌아가는 것이 민족과 문명의 흥망성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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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지는 모호함을 뜻하는 영어로, 스탠퍼드대에서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을, 실리콘밸리에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며 인간적 맥락의 기술을 다루는 이들을 일컬음. 퍼지형 인재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느끼고 세상과 깊이를 교감한다.

- 다양한 창의성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창의성은 경이감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음. 경이감은 생각, 느낌, 감각, 상상력을 포함하는 온몸의 경험으로 이는 인간의 깊은 통찰과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감정임. 경이감은 자연의 아름다움, 예술작품, 인간관계 등 다양한 요소에서 느낄 수 있음. 이 감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더 큰 존재와 연결되었음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심리적 성장과 변화를 촉진함.
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의 저자 카트린 레퀴예는 어린이들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고,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고, 상상에 빠지기도 하면서 세상을 알아가는 데 지루할 틈 없이 흥미를 느낀다. 레퀴예는 그것이 바로 교육의 본질이라고 주장함.

- 최근 인공지능 시대에 호모 프롬프트라는 용어가 키워드로 부상. 인간이 인공지능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면서 마치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명령어를 입력하듯, 필요한 정보를 얻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호모 프롬프트는 인공지능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능력을 확장하고, 지식과 정보의 접근성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인간을 지칭하는 개념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제공함으로써 인간의 지적 능력을 확장함. 데이터분석과 예측 모델링을 통해 복잡한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을 지원. 이는 호모 프롬프트 시대를 대표하는 특징임. 과거에는 검색을 통해 지식을 얻고 이를 통해 유의미한 정보를 조합하는 역량이 주요했지만, 이제는 검색하지 않아도 지식을 엮어 의미를 만드는 작업을 챗GPT가 해준다. 따라서 이런 시대에는 인공지능에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최종 결과물의 질이 달라짐.

-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가
저는 여러 다른 모델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 모델을 사용하는 이유는 현실의 세계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나의 학문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곳이 아닙니다. (찰리 멍거)

-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만드는 이야기
지금은 의미를 찾고, 의미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의미가 담긴 스토리를 만들어 그 세계를 실제로 그려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 지금부터는 그런 사람이 진정한 인재입니다. (야마구치 슈, 경영컨설턴트)

- 현대사회에서는 전통적 사회구조가 약해지면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함. 현대인은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구성해야 하고 나아가 지속적으로 재구성해야 함. 이를 자기반성적 프로젝트라 부르며 개인이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행동을 평가하며,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재조정하는 과정을 의미.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구성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더 큰 불확실성과 혼란또한 뒤따른다.

- 서사적 통찰력은 단순히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술을 넘어서 삶의 다양한 경험과 사건들을 통합하여 일관된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능력을 말함. 인간은 본래 이야기하는 존재.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해석하며, 미래를 예측함.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삶의 의미를 찾음. 서사적 통찰력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볼 수 있게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함.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퍼지들은 이 지혜를 잘 알고 있음. 좋은 이야기는 청중의 감정을 자극하고,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며, 복잡한 제품의 기능을 쉽게 이해하도록 도움. 나아가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심리적 당위성을 제공.

- 차이를 만드는 인간다움
우리가 직면한 여러 막중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면 코딩뿐만 아니라 인간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스콧 하틀리)

- 러셀은 현대 인류가 과거보다 훨씬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지루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지루함을 현대생활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보았으며, 나아가 현대인들의 가장 큰 과제가 지루함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주장. 러셀에 다르면 지루함은 우리가 커다란 동기와 열정이 없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지 못했을때 생기는 감정적 상태다.
쇼펜하우어에게도 권태는 중요한 탐구대상. 그는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라고 말함. 인간은 원하는 것을 추구할 때는 고통을 느끼고,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는 권태를 느낀다고 주장. 그는 이 두 상태를 피할 수 없는 삶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보았음. 쇼펜하우어는 권태를 '목표가 없고, 아무런 자극도 없는 상태에서 느끼는 내적 공허함'으로 정의. 그는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했을 때나 모든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권태를 느끼기 쉽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많은 사람이 기술발전으로 인해 권태와 지루함에 빠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야 함. 이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진정한 만족과 성취를 얻을 수 있는 활동을 찾아야 함을 의미. 

- 하이데거는 지루함을 정교하게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
지루함은 세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안 느끼는 지루함. 이는 버스나 지하털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 또 다른 지루함은 특정활동이 우리에게 흥미르르 주지 못할 때 느끼는 지루함. 재미없는 강의나 ,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할 때 느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의미를 느끼며 권태에 빠짐. 마지막으로 하이데거가 가장 중요하게 본 근본적 지루함임. 이는 인간이 일상적인 시간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상태임. 이는 철학적 시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을 돌아보녀 성찰과 내적 성장을 촉진하는 시간이다. 근본적 지루함은 자신의 진정한 목표와 욕구를 재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근본적 지루함은 인간이 비본래적 존재에서 본래적 존재로 나아가게 함
지루함과 권태에 관한 연구로 잘 알려진 피터 투이는 지루함이 인간경험에서 보편적이며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주장함. 지루함은 모든 시대와 문화에서 존재해 왔으며, 이는 인간의 본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 따라서 이를 이해하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투이는 지루함을, 자극과 흥미의 결여로 인해 발생하는 불쾌한 감정상태로 정의. 그는 지루함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상태임을 강조하며, 이를 단순히 부정적 감정이 아닌 중요한 심리적 경험으로 봄. 그에 따르면 지루함과 권태는 무기력과 우울증, 불안 등을 초래할 수 있지만 동시에 단순히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창의성과 자기성찰을 촉진할 수 있는 중요한 상태이기도 함. 지루함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음. 투이는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지루함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함. 창의적 활동, 취미,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 등이 지루함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

- 혼란스런 환경에서는 다양한 도구와 방법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이런 능력은 인간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인간의 사고는 비선형적이며, 그 덕분에 무질서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음. 이러한 사고방식은 창의적 문제해결에 특히 중요하며 새로운 전략을 개발하고 적용할 수 있는 인지적 유연성을 기반으로 함
이와 관련하여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활용한 스푸마토 기법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받아들여 창의성과 통찰력을 키우는 방법을 보여줌. 스푸마토는 이탈리아어로 연기처럼을 뜻하며, 그림에서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하여 더욱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다 빈치는 이 기법으로 작품에 깊이와 현실감을 부여했으며, 대표작인 모나리자와 성 안나와 성 모자에서 그 효과를 극대화했다.
리더십컨설턴트 마이클 겔브는 스푸마토의 개념을 예술적 기법에만 국한하지않고, 삶과 사고의 철학으로 확장. 이는 불확실한 상황을 피하기보다 받아들이며, 명확하지 않은 문제나 상황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태도를 의미. 스푸마토는 한 가지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시각에서 문제를 분석하며, 논리와 이성뿐만 아니라 감정과 직관을 활용하여 더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을 얻는 데 도움을 준다.

- 21세기 르네상스
중세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에 새로운 가치관을 마련해야 했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정치인도 경제인도 모두 창작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오노 나나미)

- 인공지능 시대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와 유사. 르네상스 시기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가진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듯이, 현재도 마찬가지로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고 자신의 길을 창조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기술혁신이 새로운 차원의 능력을 요구하며, 이는 오히려 인간 고유의 능력을 훈련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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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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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속가능 여행 실천법
1. 이동할 때 비행기는 되도록 타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
2. 여행객이 많이 찾는 곳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을 찾는다
3.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며 느긋한 여행을 즐긴다
4. 여행짐을 쌀 때는 일회용품 대신 재사용 가능한 물건들을 챙기고, 개인식기와 물통을 챙겨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
5.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고, 전기차, 자전거 등 친환경 이동수단을 이용
6.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등 친환경 정책에 따라 운영되는 숙소를 선택
7. 환경보호와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와 지역공동체에 관심을 가지면 여행객으로서 어떤 도움을 보탤 수 있는지 고민해본다

- 누구나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한다. 덕분에 상쇄 산업은 인기를 끌고 있다. 탄소상쇄는 탄소배출량을 계산해 그에 맞는 탄소 크레딧을 구매하고, 배출한 탄소량에서 크레딧만큼을빼 전체 탄소배출량을 줄인다는 의미. 이론적으로 이 크레딧이 재생기술 또는 보존활동 같은 사업에 투자되어 대기중 탄소를 흡수한다. 말레이시아 가정에 친환경 가스렌지를 제공해 탄소를 상쇄하거나, 스코틀랜드에 나무를 심고 케냐의 숲을 재건해 코끼리 보호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탄소를 상쇄할 수도 있다. 
이 방법은 직접 행동할 필요가 없어 배출된 탄소를 처리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여겨진다. 탄소상쇄 산업이 1년에 거두는 수입은 5억불에 달함. 이론을 그럴듯하지만 우려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님. 우선, 이 산업은 제대로 규제가 되고 있지 않다. 17년 유럽연합 집행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상쇄 사업을 맡은 업체의 85%가 제대로 계획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탄소배출량 계산법과 해결책도 마찬가지.
두번째로 탄소상쇄는 사람들이 습관을 바꾸지 못하도록 만듬. 근본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죄책감만 덜어준다.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탄소상쇄에 의지하는 습관이 걱정되는 정도이지만 기업차원에서 보면 문제는 훨씬 더 커짐. 예를 들어 런던 히스로 공항 같은 곳이 26만 50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세번째 활주로를 건설하면서 대외적으로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할 계획이라고 광고할 수 있게 된다.

- 09년 알랭 드 보통은 '집에서 즐기는 휴가키트'를 개발. 이 키트 안에는 일등석으로 비행하세요. 벽에서 50센티 떨어진 자리에 안락의자를 가져다 놓으세요. 텔레비전을 가까이에 놓으세요. 그 자리가 5천파운드짜리 자리라고 상상하세요. 라는 안내문구가 들어있다. 정곡을 찌르는 풍자다. 생각해보면 휴가 동안 아침 6시에 일어나거나 공항검색대를 통과하거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무거워진 짐을 이고 다니며 관광지에서 돈을 얼마나 쓰게 될지 부담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떠나기 전에 멋진 풍경을 잔뜩 기대하지만, 막상 가보면 기대에 못미칠 때도 많다.
반면 스테이케이션은 즉흥적으로 여행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마음도 더 편않다. 추천 여행지를 빠짐없이 들러야만 할 것 같은 부담없이 매 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 날씨가 맑든 비가 오든, 순탄한 여행이든 고생만 하는 여행이든, 어떤 경험을 하게 되더라도 가까운 지역을 여행하는 쪽이 언제나 훨씬 지속가능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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