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세계대전망

사회 2024. 2. 21. 07:13

- 트럼프의 출마 자체가 미국 민주주의가 훼손되었다는 증거다. 공화당이 지난 대선 결과에 불복한 인물을 후보로 지명한다는 사실은 미국 민주주의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는 심각 한 지정학적 위험이 닥친 시기에 미국을 어디로 튈지 모를 고립주의 국가로 변모시킬 것이다. 특히 푸틴을 좋아하는 트럼프가 러시아-우 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안에 끝내겠다고 자랑한다면, 한마디로 사 실상 우크라이나가 희생양이 되리라는 얘기다.
트럼프는 후보에 못 오를지도 모르고, 후보가 된다 해도 패해야 마 땅하다. 그러나 트럼프가 두 번째 임기를 맞이할 확률은 놀라울 정도 로 높다. 그 결과는 민주주의와 전 세계에 재앙이 될 것이다.

- 유가와 곡물가 상승, 서구의 전쟁 사상자 발생 같은 지정학적 위험 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로운 위험은 불안정성이다. 1990년 대에 많은 국가들은 자유, 시장 경제, 규칙 기반 세계화의 자기 강화 적 순환을 갈망했다. 그러나 이제는 포퓰리즘, 경제 개입, 거래적 세 계화가 예측할 수 없이 순환하고 있다. 그 결과 2024년에는 세 가지 위협이 예상된다.
첫째, 강대국이나 국제 기관이 처벌받지 않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 고 있다. 그 거리는 홍해에서 출발해 지난 3년간 쿠데타가 벌어진 아프리카 6개국을 거쳐 대서양까지 6,000킬로미터에 달한다. 아제르바이잔은 인종 청소를 포함해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을 개시했다. 이란의 무장 단체들은 중동 전역의 취약한 국가에서 활개 치고 있다. 2024년에는 이 불처벌 영역이 아프리카와 러시아로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둘째, 중국, 이란, 러시아가 3대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이 3개 국은 서구 동맹국들보다 공통점이 훨씬 적은 데다가, 중국은 다른 두 국가보다 훨씬 크고 세계 경제에 깊이 통합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맞물린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 고 실질적 잠재적 제재를 피하려 한다. 중국은 러시아와 이란산 석유를 구매한다. 이들 중 하마스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는 나라 는 없다. 그들의 협력은 기술 분야로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은 서방 금융을 우회하는 방법을 개척하는 중이다. 이제 중국 무역의 절반이 위안화로 이뤄지고 있다. 이란은 러시아에 드론을 수출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핵 공격 경고 시스템과 태평양 지역의 정찰에 협력 하고 있다. 이 신생 동맹이 얼마나 확대될지는 2024년 답이 나올 것 이다.
마지막 위협은 서구 국가의 단결력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우크라 이나 침공에 서구가 대응한 방식은 희망적이었다. 미국과 유럽이 힘 을 합쳤고, 여론도 긍정적이었으며, 비서구 국가가 다수 동참하지 않 았음에도 1945년의 질서가 수호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군사적으로 손발이 맞지 않아 균열 조짐이 보인다. 미국은 공화당 내에서도 우크 라이나에 대한 자금 지원 문제로 편이 갈렸다. 

- 미국 경제가 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여기엔 단서가 붙는다. 바로 엄 청난 양의 국채 발행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이 작성되는 현재 기준으로, 미 연방 정부의 적자 규모는 연간 GDP의 7%를 넘 어섰다. 미국이 '고금리 장기화' 체제에 진입했는지에 대해서도 논 쟁이 뜨겁다. 답은 고삐 풀린 국채 발행이 앞으로도 계속될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아마도 계속될 것 같다. 의회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분명 국채 발행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차기 대통령의 첫 번째 임무는 2018년 트럼프 정부가 시행한 감세 정책의 부활이 될 듯하다. 트럼프의 감세책은 대부분 2025년 만료될 예정이지만, 전면 폐지는 민주당 대통령조차도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 전기화의 영향도 미묘하게 다를 것이다. 탈탄소화 목표를 서둘러 달성하려다 보면 청정에너지 발전소, 전력망, 전기차의 핵심 원자재 인구리, 코발트, 리튬, 니켈 등에 막대한 수요가 쏠릴 것이다. 2024년 에는 이러한 기대 심리가 시장의 단기적 불안 심리를 능가하면서, 금 속 시세가 다시 상승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청정 기술의 수급은 계 속 가변적이어서, 가격이 오르면 이에 반응해 수요량은 줄고 공급량 은 대폭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금속은 시장의 급격한 호황과 불황을 오갈 것이며, 결국 수출국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런 수출국 중 상당수는 채굴 산업에 비교적 새로이 진입해서 변동 성 관리에 필수인 탄탄한 국가 재원, 위험 헤지 메커니즘, 재정 건전 성이 부족한 편이다. 광산 가동 및 중단의 어려움과 비용, 그리고 광산이 분산된 지리상의 제약으로 인해 금속 분야에서 제2의 OPEC이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가장 영리한 소수의 국가만이 청정 자원을 팔아 부유해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호황은 영원하지 않다. 일단 풍력 발전과 전기차가 충분히 대중화되고 나면 친환경 금속 수요는 더 낮은 수준에서 안정될 것이 다. 강한 태양광, 풍력, 수력을 활용해 자국 수요량 이상의 풍부한 청 정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국가는 더욱 안정적인 소득원을 확보할 것이다. 자연적 조건의 불균형 때문에 국가 간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 도 있다. 바람이 강한 북해와 햇볕이 잘 드는 지중해 연안은 유리하 지만, 흐린 날씨가 잦은 유럽 대륙은 불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다양한 유형의 자원을 결합해 재생 가능 에너지를 꾸준하고 확실히 공급할 수 있는 국가가 가장 유리할 것이다. 인구가 적어 생산된 에너지가 남아도는 국가들은 철강이나 데이터 저장과 같이 에너지 소 비가 많은 산업 분야를 자국으로 유치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 연료의 잉여분을 전자나 액체 형태로 수출하려는 국가들도 있을 것이다.
결국 전환기에는 비판을 무릅쓰고 화석 연료도 수출하고, 금속도 채굴하고, 재생 에너지까지 최대한 활용하는 등 모든 영역에 손을 뻗 치는 국가가 에너지 초강대국이 될 것이다. 아직 이 정도로 만능의 경지에 오른 나라는 없다. 걸프 지역 국가들은 태양광과 수소 에너지 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고 있으나 아직 본격적으로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칠레는 막대한 양의 구리와 리튬을 생산하지만 6,500킬로미 터에 달하는 해안선, 남부의 강한 바람, 햇볕이 잘 드는 사막을 활용 한 전력 생산은 아직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셰일 오일과 천연가스, 그리고 그보다 더 넉넉한 재생 가능 에너지가 있지만, 자기네 지역에서 친환경 금속 채굴에 관해서는 주민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전환에 따른 가장 큰 보상을 얻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 2024년에는 스텔스플레이션(stealthflation)의 열병이 마침내 사 라질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럴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진정세에 이르 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윤을 남기려는 관행이 한풀 꺾일지도 모 른다. 정부가 규제 의지를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잡다한 수수료(junk fee)'를 단속하고자 한다. 소비자들의 반발도 만 만치 않다. 미국인들은 '팁에 의한 피로감을 호소한다. BMW는 최 근 소비자들의 분노에 못 이겨 열선시트 사용료를 폐지했다. 에어비 앤비는 플랫폼을 개편해 추가 수수료를 더 눈에 띄게 표시했다. 분명 기업들은 마음만 먹으면 '숨은 추가 요금' 없이 단순하고 투명하게 가격을 책정할 방법이 있다.
그러나 가격을 올리는 수많은 편법을 발견한 기업은 앞으로도 계 속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항공사들은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에게 제 공하는 서비스들을 쪼개어 일일이 가격을 매기는 실험을 하고 있다.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는 다른 곳에 '추가 수수료'를 붙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팁 요구는 이제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다. 실제로 미국 의 한 항공사는 이제 승객들이 객실 승무원에게 팁을 주도록 허용하 고 있다. 분명 스텔스플레이션 수법을 교차 수분할 영역은 아직 여기 저기서 발굴할 수 있다. 2024년에 소비자들은 분통 터질 일이 더 많 아지지 않을까 싶다.

- 2023년 8월 29일 화웨이의 메이트 60 프로 스마트폰이 출시 되자마자 기업들은 잽싸게 이 제품을 분해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 중국의 통신 장비 제조 업체는 많은 사람들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새로운 5G 스마트폰을 만드 는 데 결국 성공했다. 2020년 미국의 제재로 인해 화웨이는 첨단 반 도체나 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를 구매할 수 없게 되어 스마트 폰을 만들 수 없었다. 한때 전 세계적으로 애플의 아이폰을 앞질렀던 화웨이 스마트폰의 판매는 무너졌다. 그러나 엔지니어들이 메이트 60 프로의 내부를 조사해보니 미국의 제재가 자체 혁신으로 극복되 었음을 보여주는 중국산 칩이 나왔다.
기린 9000S라는 이 칩은 중국의 SMIC에서 제조했으며 그 등장은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중국의 미국과의 기술 전쟁은 2019년 트 럼프 행정부가 화웨이에 고사양 반도체칩의 판매를 금지하면서 본격 적으로 시작되었고, 2022년 바이든 대통령은 이러한 제재의 틀을 기반으로 중국의 모든 기업에 대해 첨단 반도체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얼마 후에 베이징의 지도자들은 안보상의 이유로 중국 내에서 미국 회사인 마이크론이 만든 칩의 판매를 금지하는 보복 조치를 감행했 다. 또한 중국은 최첨단 칩을 만드는 데 필요한 두 가지 희귀 금속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중국은 화웨이의 새로운 스마트폰과 이에 들어가는 칩을 패러다임의 전환을 알리는 계기로 간주한다. 9월 12일 정부 기관지 인 <인민일보>의 사설은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기술 발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현지 소셜 미디어의 사 진은 선전시의 화웨이 광고 앞에서 절을 하는 아이들을 보여줬다. 미 국에서 메이트 60 프로는 중국에 대한 제재가 실패했으며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과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 모두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화웨이와 다른 중국 기업들이 2024년 이후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를 보여준다.
메이트 60 프로의 성능은 세계 최대의 대만 TSMC에서 제조한 칩 을 내장하고 2020년에 출시된 삼성전자의 갤럭시 S20과 동등하다. 3년 뒤처지는 게 별것 아닌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SMIC DUV 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한 세대 이전의 기계를 사용해 칩을 식 각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기린 9000S가 DUV 기술의 한계를 나 타낸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TSMC의 첨단 칩은 보다 진보된 EUV 기 술을 사용해 제조된다. 이 EUV 기계는 네덜란드 회사인 ASML에서 만 제조하고 미국의 수출 제재 대상이기 때문에 SMIC 및 기타 중국 회사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 중국의 약진이 눈부시기는 하지만 기린 9000S는 중국이 EUV 기 술 없이 달성할 수 있는 한계를 보여준다. 이를 개발하려면 수년이 걸릴 가능성이 높은데 TSMC는 그동안 계속해서 앞서 나갈 것이다. 메이트 60 프로는 기술 전쟁에서 결정적인 게임 체인저는 아니었지 만 내부의 구성 요소는 2024년에 기술 전쟁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휴대폰에는 한국의 SK하이닉스에서 만든 메모리칩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SK하이닉스는 화웨이와 최근 몇 년 동안 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은 암시장을 통 해 칩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영리한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이러한 이 유로 미국은 글로벌 제재의 수준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행 정부는 이미 일본, 네덜란드, 한국과 같은 동맹국들을 그 나라 기업 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에 끌어들였다. 2024년에는 중국 기업이 칩을 구매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 중동 같은 지역에서 이 동맹을 확장할 수 있다.

- 가장 일반적인 용어는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이지만, 미국정부는 디리스킹(derisking, 탈위험)을 더 선호하며 몇 가지 첨단 제조 업 분야에만 한정시켜 적용한다. 그러나 무엇이라 부르든 무리 없는 디커플링이 어렵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어떤 면에서 디커플링은 이미 진행 중이다. 컨설팅 업체인 로디움 그룹(Rhodium Group)은 2019년부터 2022년 사이에 미국에 대한 중국 기업의 신규 투자 규모가 10억 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는 노르웨이와 스페인의 투자 금액보다 규모가 적다. 2023년에는 멕시코가 중국을 제치고 과거의 위치를 되찾아 미국의 최대 무역 파 트너가 되었다.
미국은 일부 반도체 생산을 국내로 가져오려고 기업의 투자를 지 원하고 있다. 또한 보다 우호적인 아시아 국가로 공급망을 옮기려 하 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태양 전지판 생산을 보자. 미국이 중국의 태양 전지판 제조 업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구매자들은 동남아시아 제품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미국으로 수출되는 태양 전지판의 부품은 여전히 중국산인 경우가 많다. 8월 미국 상무부는 5개의 대형 중국 회사가 동남아시아로 생산지를 돌려 관세를 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 대규모 저마진 위탁 생산 업체의 재편도 디커플링의 어려움을 보 여준다. 애플, 델 및 HP와 같은 고객을 보유하고 중국에 공장을 둔 대만의 거대 업체인 폭스콘(Foxconn)은 원래 인도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7월 인도 구자라트에 약속했던 200억 달러 규모 의 반도체 제조 합작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폭스콘은 베트남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2023년에는 허난성에서 추가 생산을 위한 토지를 취 득하고 다른 2개 부지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중국에 공장이 있는 또 다른 대만 제조 업체인 위스트론(Wistron)은 15년 만에 인도에서 자 체 사업을 종료하고 인도 대기업인 타타 (Tata)에 사업을 매각했다. 위스트론은 공 장 설비 이전 사유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인도 언론은 인건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은 데 원인이 있다고 보도했다.
여러 서방 기업들은 자신들을 대신해 디커플링 정책을 펴는 이런 위탁 생산 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이 공급망을 재정비 하는 능력에 따라 성공적인 디리스킹이냐, 아니면 지저분한 반쪽 분 리가 될 것이냐가 결정될 것이다.
베트남과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이익을 얻을 것이다. 이들은 중국과의 무역 및 투자 흐름을 제한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중국과 미 국 모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무역 전쟁에서 당사자는 모두 패배 하고 제삼자가 큰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

-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2024년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고편이 될 수 있다. 세 가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첫 번째는 스토리텔 링이 보다 개인화되고 양방향으로 이뤄짐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스 토리텔링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영화는 변화 할 것이며, 이용자가 영화 관객보다 더 쉽게 자신의 모험을 선택할 수 있는 게임 산업도 변화할 것이다.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양 또한 확 늘어날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에 게시된 사용자 제작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듯이, 생성 AI로 인해 온라인에서 수많은 동영상과 다양한 자료가 빠르게 퍼질 것이다. 2025년 무렵에는 온라인 콘텐츠의 무려 90%가 AI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 다. 큐레이션과 쓸 만한 검색 도구가 꼭 필요할 것이며, AI가 만든 콘 텐츠에 라벨을 붙일지, 또 붙인다면 어떤 라벨을 붙일지를 두고 논쟁 이 벌어질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본질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지만 바뀌는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사학자 데이비드 톰슨(David Thomson) 은 생성 AI를 음향의 출현에 비유한다. 영화에 음향이 입혀지자 플 롯이 그려지는 방식과 관객들이 캐릭터에 느끼는 친밀도가 바뀌 었다. 창작 분야에 AI 기반 소프트웨어 도구를 제공하는 회사 런 웨이엠엘(RunwayML)을 운영하는 크리스토발 발렌수엘라(Cristóbal Valenzuela)는 AI가 '새로운 유형의 카메라'와 같으며 '스토리란 무엇 인지 재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둘 다 맞 는 말이다.
- 할리우드 작가들의 파업으로 'AI가 대본을 쓸 수 있을까'라는 물 음에 관심이 모아졌다. 일단 제작사들은 양보하기로 합의했으며 첫 GPT를 이용하기 위해 작가실을 빙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오롯이 AI만으로 장편 블록버스터를 제작하기까지는 몇 년 더 걸릴 것이다.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큰 발전은 시간을 줄이는 도구로 AI를 활 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생성 AI는 더빙, 영상 편집, 특수효과, 배경 디 자인 같은 복잡한 작업을 자동화하고 단순화할 것이다. 2023년 아카 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 면 그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에는 런웨이엠엘이 제공한 '로토 스코핑 (rotoscoping)' 도구를 이용해 배경의 녹색 스크린을 지우고, 말하는 바위를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한 장면이 등장한다. 이 도구를 이용하면 며칠이 걸리는 영상 편집 작업을 몇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
세 번째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창작자(저작권자)와 AI 플랫폼 운영자의 극적인 충돌이다. 2024년에는 작가, 음악 가, 배우, 예술가들이 자신의 말, 음악, 이미지가 동의나 대가 없이 AI 시스템을 학습시키는 데 사용됐다는 이유로 줄소송을 제기할 가능 성이 있다. 아마도 AI 관련 기업들이 자사의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 저작권자에게 콘텐츠 비용을 지불하는 일종의 라이선스 계약을 맺 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에 앞서 격렬한 법적 다툼을 치러야 할 것이다. AI는 스토리의 미래와 집단적 스토리텔링의 본질에 더 큰 질 문을 던진다. 예컨대 생성 AI는 단순히 이전 히트작을 모방하기만 할 까? 그래서 독창적인 스토리와 예술 형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모방 블 록버스터 영화와 팝송에 대한 깊이 없는 해석만 쏟아낼까? 또 엔터 테인먼트가 갈수록 개인화하는 시대에 인류의 집단의식에 스며들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스토리가 여전 히 존재할까?
창작자들이 AI의 진보와 씨름할 때 기술에 대한 불안감이 작품에 투영될 것이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더 많은 '터미네이터'식 충돌을 경 계해야 할 수도 있다. 삶은 예술을 모방하고 예술은 삶을 모방한다.

- '정책통'과는 거리가 먼 트럼프는 공화당원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전략을 쓸 것이다. 그의 선거 유세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남부 국경을 지키는 데 실패했고, 범죄나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을 줄이지 못했으며, 미국을 임신중절 지지자, 범죄자, 다양성 평등포용의 요식 체계, 트랜스젠더 등의 불경한 피난처로 만들려는 민주당 좌파 진영에 굴복함으로써 나라를 파괴할 위기에 처해 있다 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첫 취임 연설에서 언급했던 '미국인 대학살' 을 거듭 강조할 것이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 패배를 인정하기보다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대다수의 지지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대 통령 집무실에 복귀하지 못하면 감옥에 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2024년 그가 내뱉는 말들은 한층 더 극단적이고 민주주의를 갉아먹 을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정책에는 실질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는 대체 로 많은 미국 유권자들이 도외시하는 분야에 존재한다. 두 사람은 미 국의 외교 정책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확고한 보호주의자이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와 같은 고립주의 자는 아니다. 미국 우선주의 운동에 빠져 있는 공화당은 러시아에 맞 선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대한 자금 지원을 포기할 심산인 것 같다.
- 양당 모두 중국에 대한 강경책에서는 서로 앞지르려고 하지만, 트럼프가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미군을 투입할지는 불분명하다. 유럽의 동맹국들은 나토에서 미국의 중추적 역할이 영구적으로 약화할까봐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의 맹공격에 맞서 싸우려면 기력이 좋아야 하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기력이 부쳐 보인다. 선거가 끝날 무렵에는 아마도 더 힘이 부칠 것이다. 바이든 지지자들의 희망은 트럼프가 형사재판이 걸린 1월 6일 사건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낙태 등의 이슈에 대한 공화당 의 비호감 입장을 고수하며 자멸하는 것이다. 미국은 선거의 표차가 크지 않은 편이므로 양당 구성원들이 느끼는 실존적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1년 뒤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피로감과 분노 를 느끼는 국민의 비율이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 전략가들은 중국의 군사력이 점점 강해지고, 새로운 군사 장비에 대한 미국의 투자가 2030년대까지 온전히 결실을 맺지 못함에 따라 202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취약성의 창'이 열 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런 시간차에 대한 우려는 2027년이 다가 올수록 더욱 커질 것이다. 중국 지도자 시진핑이 자신의 명령에 따 라 인민해방군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길 바라는 해이 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 발발 여부는 단순히 군사적 균형에만 달 려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부분이 정치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게다가 2024년에 미국과 대만 모두 선거를 치르므로 곧 위험한 시기가 시작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쇠퇴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에도 시장 환율 기준으로 여전히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의 39% 를 차지하는 군사 대국이다. 하 지만 2023년 4월 발표된 호주 의 국방 전략 검토서는 '미국이 더 이상 인도-태평양 지역의 단일 리더가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균형의 변화는 미국의 유례없는 동맹 네트워크에 프 리미엄을 부여한다. 바이든 대 통령은 전임자 트럼프가 훼손 한 이 네트워크를 복구하는 공을 들였다.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연합하고 확장하고 결집했다.
- 아시아 동맹국들도 보탬이 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는 나토 가 없지만 일본이 국방비 지출을 대폭 늘리고 있으며 미국은 호주에 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특별 파트너십도 맺고 있다. 여기에는 호 주에 핵추진 잠수함을 공급하고 영국과 기타 무기를 공동 개발하기 위해 맺은 오커스(AUKUS) 협정, 제트 엔진 생산을 위해 인도와 맺은 방위 산업 협정, 여러 기지에 대한 미국의 접근을 허용하기로 한 필 리핀 협정이 포함된다. 2024년에 미국은 이런 협약을 더 추가하리라 예상된다.
미국의 신뢰성과 군사적 역량에 대한 인식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 신뢰성 측면에서 살펴보면,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미 국이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허둥지둥 철수한 것이 적들에게 미국의 약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 나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것이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군사적 역량 측면에서 살펴 보면, 미 국방부는 자국 군대가 두 개의 대규모 지역 전쟁에서 동시 에 싸울 수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포기한지 오래다. 그 대신 주요 적 국에 대해 '충돌을 억제하고 필요한 경우 분쟁에서 승리하는 동시에 '그 외 지역에서의 기회주의적 공격을 억제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유럽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 파견 없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했 고 나토에 대한 공격을 막기 위해 유럽에 더 많은 부대를 배치했다. 중동에서는 이란과 그 대리 단체들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항공모 함 타격단을 파견했고 다른 병력도 강화했다.
- 표면적으로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전쟁에 직접 개입 하는 것보다 우방국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힘을 보존하는 더 경제 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미국 방위 산업체들은 고갈된 미국 재고를 보 충하면서 동맹국에 공급하기 위한 무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전쟁 시뮬레이션으로는 미국이 대만을 두고 중국과 전쟁을 벌이면 수일 내에 장거리 대함 미사일이 바닥날 것으로 보 인다.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코 리셰이크(Kori Schake)는 '미국은 하나의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군대와 2주간 버틸 수 있는 산업 기반이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을 유지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아마도 국 내 정치의 기능 장애일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공화당은 정상적인 예산 편성을 방해했고,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자금 지원 에 강력히 반대했다. 2024년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데 성공한다면 전 세계 동맹국들이 몸서리를 칠 것이다. 만일 그들의 대변자인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 두려움은 두 배로 커질 것이다.

- 오랫동안 중국은 미국의 힘을 조금씩 깎아내고 있 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충격 요법으로 미국이 앞으로 마주할 도전을 예고하기 위해 중국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능가했다고 말하고 대만 해 협을 중국 영해라고 부르면서 보다 직접적인 접근 법을 취했다.
중국은 통신 인프라, 항만 시설, 군사 기지(또는 기지 건설권)로 이뤄진 놀라운 글로벌 네트워크를 의존국 에 구축해왔다. 중국의 영향력은 순수 중상주의에 서 시작해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욕구에 이르기까 지 꾸준히 성장해왔다. 미국은 느긋하게 대응했다. 중국의 투자를 방해하려고 다른 나라들을 꼬드기 는 방편에 의존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대안도 거의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의 외국 투자 전략에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차관 제공을 통한 소유권 인수(loan-to-own)' 방식, 현지 노동자가 아닌 중국인에 의존하는 사업 방식, 인프라 구축 실패 등이 공분을 사고 있다.
냉전 시대와 그 이후의 마셜 플랜, 평화 봉사단, 미국이 지원한 인도 농업의 '녹색 혁명', 에이즈 퇴치를 위한 대통령 비상 계획(PEPEAR) 이니셔티브 등은 미국이 나 라 밖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오늘날의 문제는 이전 과 똑같은 전략으로 중국의 실책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이 몸담고 있는 후버연구소는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냉전 연 구에 기여했다. 후버연구소의 기록물들은 그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자료다. 우리는 그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이 남긴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다섯 가지 가르침이 눈에 띈다.
첫째, 동맹이 중요하다. 중국은 어떤 식으로든 자국에 신세 진 의존국들이 있다. 가 장 중요한 러시아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골칫거리가 됐다. 반면 미국은 러시아의 침략에 단호히 대응하면서 굳건해진 유럽 동맹, 강력해진 나토, 아시아 와의 긴밀한 동맹이라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
둘째, 억지력에는 수사에 걸맞은 군사력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에 서의 전쟁 시뮬레이션을 통해 서방 군사력의 약점이 드러난 시점에 중국은 모든 측면에서 군사력을 향상시켰다. 서방은 보다 선진화한 무기를 조달하고 핵심 소재 및 부품의 안전한 공급망을 개척하고 방위 산업 기반을 재건하는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힘에 의한 평화는 실제로 효과가 있다.
셋째, 우발적인 전쟁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미군과 소련군 사이 의 우발적인 전쟁을 막기 위한 (냉전 시대에 수립된) 친교의 혜택을 오늘날까지 누리 고 있다.
넷째, 1946년 소련 내부의 모순이 결국 소련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한 '긴 전 문(long telegram)'을 작성한 모스크바 주재 미국 외교관 조지 케넌(George Kennan) 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소련보다 강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높은 청년 실업률, 재앙적인 인구 구조 등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제1차 냉전이 주는 마지막 가르침은 불가피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스스로의 결함과 모순, 특히 온라인 에코 챔버(echo chamber)에서 증폭된 사회 분열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유를 수호하는 제도의 정당성을 지키 지 못했기에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쳤다.
이전에 독재자들은 자유에서 흘러나오는 불협화음을 결점으로 착각하고 자국 사 회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것이 힘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민주주의를 배 척했다. 최고의 냉전 지도자들은 독재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이해했다. 현 세대 지 도자들이 이와 유사한 다짐을 보여줄 수 있다면 (제2의 냉전이든 새로운 경쟁이든) 새 로운 초강대국 경쟁의 결과는 자유세계의 또 다른 승리가 될 것이다.

- 전쟁은 중국에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2024년 중국 관리 들은 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의 지도자들과의 회의에서 높은 식량 및 에너지 가격을 서방의 제재 탓으로 돌릴 것이다. 그들은 미국의 무기 그리고 에너지 수출업자들이 유럽인들의 희생으로 이익을 얻고 있다 고 비난할 것이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중립을 계속 주장할 것이다(중동에서도 그렇게 하듯). 그리고 골치 아프지만 중요한 파트너로 여겨지는 푸틴 러시아 정권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중국은 고립된 러시아가 유럽 시장을 외면하고 동쪽으로 눈을 돌 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 중국은 석유, 가스, 광물, 무 기 구매를 늘릴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대금을 자국의 불태환 통화인 위안화로 내고자 한다. 중국 지도자들은 푸틴 대통령을 모욕하거 나 구소련에 해당하는 영역에 대한 안보 제공자로서의 러시아의 위 치에 도전하지는 않겠지만, 이제 러시아의 거부권을 두려워하지 않 고 중앙아시아나 북극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2024년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회담이 열리면 중국은 평화 중재자 역할을 할 기회를 잡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가능한 모든 합의의 보증인으로서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주장에 도움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회담에서 중국의 입장은 냉정하고 감정적이지 않은 현실주의가 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우크라이나 전체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 주장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영토 보전의 원칙을 중시하기 때문에 러 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한 적이 없다. 대신 중국은 러 시아의 '정당한 안보 우려'를 고려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우크라이나 재건을 돕겠다고 제안할 것이다.
한편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은 딜레마다. 미국의 고장 난 정치는 서방이 쇠퇴하고 있으며 자유 민주주의 가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 랐다는 중국의 주장을 강화한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대선 후보들의 고립주의적 수사에 짜릿함을 느끼게 될 터인데, 그것이 강 대국들이 각자의 세력권 내에서 면책 특권을 누리는, 중국이 선호하 는 일종의 19세기 세계 질서로 돌아간다는 신호가 될 때 그렇다. 하 지만 미국의 거친 선거 운동은 후보들이 중국을 두고 경쟁하듯 더 강 경한 태도를 내보이는 가운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은 2024년 대선에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끔 찍하게 보이지만 중국이 머리기사를 장악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의 선전 책임자들과 '늑대 전사 외교관들의 자제가 필 요할 것이다.
- 2024년에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으로부터 친기업적인 양보를 몇 가지 더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경영진이 출국 금지 조치를 당해도 놀라지 말길. 중국의 코로나 시기는 중국 통치자들이 외부 세 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그들은 외부인의 시선을 덜 신경 쓰며 성장보다 안보를 중시하는 태도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뉴 노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망의 혁명  (5) 2024.03.14
노력의 배신  (1) 2024.03.04
인공지능은 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가  (1) 2024.02.12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4  (1) 2024.02.04
통계로 미리보는 핵심키워드 7  (0) 2024.01.31
Posted by dalai
,

- 우리가 항상 감시당하고 있거나 감시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이나 다 름 없다. 다시 말해 간섭의 위험이 있다는 사실로, 즉 소극적 자 유가 박탈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행동을 규율하기에 충분하다. 같은 상황이 교도소와 수용소 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직원들의 업무 수행을 관찰하기 위해 작 업 상황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대다수의 경우 감시는 은밀히 진 행된다. 알고리즘과 데이터, 그리고 이런 데이터를 이용하는 사 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블룸(Bloom 2019)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측면 때문에 '가상 권력virtual power'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다 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 권력은 실제로 존재한다.
- 특히 인공지능과 관련된 경우가 많고 평등 및 정의와 관련하여 야기하는 한 가지 문제는 편향이다. 다른 모든 기술과 마찬가 지로 인공지능은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중 하나는 인공지능이 기계학습의 형태로 편향을 가져와 계속 악화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인종이나 젠더 관점에서 정의 된 특정 개인이나 집단한테 불이익을 주고 차별하는 행위가 그에 해당할 것이다. 편향은 다양한 방식으로 발생할 수 있다. 학습 데 이터, 알고리즘, 알고리즘이 적용되는 데이터, 기술을 기획하는 팀 속에 편향이 있을 수 있다.
잘 알려진 사례로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보호 관찰에 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이용되는 위험 평가 알고리즘인 콤파스 (COMPAS) 알고리즘 사건이다. 이 컴퓨터 프로그램은 재범 위험 (재범 경향)을 예측한다. 한 연구(라슨 외Larson et al, 2016)는 콤파스가 흑인 피고인의 경우 실제 사례보다 재범 위험이 더 높다고 본 반 면, 백인 피고인은 실제 사례보다 재범 위험이 더 낮다고 예측한 사실을 확인했다. 아마 그 알고리즘은 이미 결정이 난 사건 데이터로 학습한 결과, 과거에 행해졌던 인간의 편향을 재생산하고 심지어 강화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나아가 유뱅크스(2018)는 인 공지능 같은 정보 기술과 "새로운 데이터 체제"가 종종 빈곤층과 노동계층에게 혜택이나 권한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상황을 더 어 렵게 하는 까닭에 경제적 평등과 정의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주 장한다.(8~9) 이를테면, 신기술은 혜택을 받을 자격과 그 결과에 대한 자동화된 의사 결정 방식으로 가난한 소외 계층을 조종하 면서 감시하고 처벌하여 "디지털 구빈원digital poorhouse" (구빈원은 과 거 서구에서 스스로를 부양할 수 없는 자들을 수용하여 거처와 일자리를 제공 한 공적·사적 시설 - 옮긴이)으로 내쫓는 데 이용된다.(12) 자동화된 의사 결정과 데이터 예측 분석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관리되고 교화되며 처벌받기까지 하는 것이다. "디지털 구빈원은 가난 한 사람들이 공공자원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그들의 노동과 지 출, 성생활 및 양육을 감시한다. 또 그들의 미래 행동을 예측하 려고 애쓰며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고 범죄자로 만 든다." (16) 유뱅크스는 이런 행위가 자유를 훼손시키는 동시에 불 평등을 계속해서 야기하고 사라지지 않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일 부 사람들(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치가 적은 것으로 간주된다. 이 같은 문제는 전반적으로 온라인 정보의 불 평등한 이용 및 접근성 (이른바 디지털 격차)에 더해져서 일어난다. 접근성이 떨어질수록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회가 줄어드는 것"(세게브segev 2010, 8)도 편향의 문제로 볼 수 있는 한 예이다. 유 뱅크스(2018)의 분석은 또한 디지털 기술 사용이 특정 문화와 관 련되어 있음을 나타내는데, 여기서의 사례는 "가난에 대한 징벌 적, 도덕주의적 관점”(16)을 가진 미국문화를 말한다. 정부가 인 공지능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일들 은 편향을 영속화하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인공지능 및 데이터 과학에 관련된 불평등과 불공정 의 문제는 사법제도, 치안유지, 사회복지관리 등 국가제도 밖에 서도 발생한다. 대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은행의 경우가 있다고 해보자. 이 결정을 알고리즘이 하도록 외부 업체에 일감을 주는 아웃소싱으로 자동화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알고리즘은 대출 신청자의 재정 상태 및 고용 기록 외에 그 사람의 우편번호와 이 전 신청자들의 통계 정보를 바탕으로 재무적 위험까지도 계산할 것이다. 만약 어떤 대출자가 살았던 특정 우편번호와 대출 미상 환 간에 통계적으로 상관관계가 있다면, 해당 지역 거주자는 그 사람 개인의 위험 평가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찾아낸 패턴에 기반 해 대출이 거부될 수도 있다. 그 사람의 개인 위험도가 낮을 경우, 이런 결과는 부당하게 보일 것이다. 더욱이 알고리즘은 유색인종 에 대한 편견의 경우처럼, 예전에 결정자였던 은행 관리자의 무 의식적인 편향을 재생산할 수도 있다. 자동 신용점수 평가의 경 우에 대해 벤저민 (Benjamin 20196, 182)은 "어떤 식으로든 점수가 매겨지는 것은 불평등을 일부분 고안해내는 '점수사회'라고 경 고한다." 점수가 낮은 사람은 처벌받기 때문이다. 혹은, 성별 영 역에서 볼 수 있는 (비표준)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성별 과사고 accidents 간의 상관관계를 기반으로 젊은 남성 운전자의 자 동차사고 위험이 통계적으로 더 높은 것으로 나온다면, 모든 젊 은 남성 운전자가 한 개인으로서의 위험도는 낮은 데도 단순히 남성이라는 이유로 자동차 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 한다고 알고리 즘이 결정하는 것은 과연 공정한 일일까? 가끔은 데이터가 불완 건할 때도 있다. 예컨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특히 유색인종 여 성과 장애 여성, 노동계급 여성에 관한 불충분한 데이터로 학습 된다면, 크리아도 페레스(2019)가 주장한 것처럼 편견과 성 불평 등의 형편없는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더 많은 문제들, 조종과 대체와 책임 그리고 권력
인공지능은 사람을 조종할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결정을 내 리는 데 영향을 미치는 넛지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1장 참조) 인공지능은 다른 디지털 기술과 마찬가지로 인 간의 경험과 생각을 형성하는 데도 이용될 수 있다. 라니어(Lanier 2010)는 과학 기술자들을 대신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인지적 경험을, 간접 방식이 아닌 직접 조작으로 논쟁 을 하는 철학을 어설프게 만든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전체 인간 의 미래 경험을 형성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내는 데는 아주 작 은 엔지니어 집단만 있으면 된다." (7) 인공지능과 또 다른 디지털 기술은 대의 민주주의의 투표 절차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개인화 된 광고 등을 통해 유권자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지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야조프(2019)는 이것이 소수(부동층 유권자들)의 횡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잘 알려진 사례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건(1장 참조)은 사람들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 과 관련이 있다. 당시 이 기업은 수많은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개 인 데이터를 동의 없이 수집한 다음,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 선 캠페인 같은 정치 과정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이용했다. 조 작에 인공지능을 이용한다면 벨(Bell 2016)의 정치 리더십 기준으 로 볼 때 지성과 사회적 기교와 미덕을 갖춘 리더라고는 볼 수 없 을 것이다. 따라서 벨은 인공지능이 정치적 리더십을 넘겨받는 경우, 과연 요구되는 지적 능력과 사회적 기교, 미덕을 갖출 수 있 을지는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 전체주의의 기원과 악의 평범성에 관한 아렌트의 연구
1951년에 처음으로 출간되고 나치 독일과 소련의 전체주의를 배경으로 쓴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2017)에서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구체적인 형태를 설명한다. 동시에 그녀는 사회를 전체주의로 이끄는 조건에 대한 조사 내용을 제시한다. 그녀는 "일관된 거짓말로 허구의 세계를 설정하고 지켜내는 탁 월한 능력" (499) 과 "현실 세계의 전반적인 구조를 경멸하는" (xi) 움직임이 전체주의 사회로 탈바꿈하고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미 그런 사회에 필요한 조건을 근대 사회가 잘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스스로 만든 그런 세계에서 근대인은 이전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살아가지도, 그런 세계를 이해하지 도 못한다고 그녀는 지적한다. (i) 무엇보다도 그녀는 어떻게 고 독이, 즉 "고립되어 평범한 사회적 관계가 결핍된" 사람들을 폭 력적인 국가주의에 취약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이것을 히틀러와 같은 전체주의적 지도자들이 어떻게 이용하는지 강조한다.(415) "공포는 서로 대립하면서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만 완전히 지배 할 수 있다"는 것이 보다 일반적인 말일 수 있다. (623) 개인의 삶 이 "끔찍하고 야만적이고 부족할 때만이, 고립되고 서로 다툴 때만이, 권위주의적인 검sword의 통치를 리바이어던이 확립할 수 있다는 홉스의 추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문제는 권위주의와 전체주의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연대와 집단행동이 부재하고 종국에는 정치영역 자체를 파괴하여 더 깊은 상처를 안게 된다는 점이다. 아렌트가 말했듯이, "고립은 사람들이 공동 관심사를 추 구하기 위해 함께 행동할 때, 그들 삶의 정치적 영역이 파괴될 때 몰리게 되는 그런 막다른 골목이다." (623) 이것은 신뢰가 없는 세 상, "아무도 신뢰할 수 없고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세상을 의 미한다.(628)
오늘날 자기 자신과 추종자를 “사실에 따른factuality 영향으로 부터 "(아렌트 2017,549) 방어하는 움직임은 트럼프를 추종하는 행 위Trumpism와 가짜 뉴스와 (비정부) 테러리즘을 감안할 때 꽤 익숙 한 현상이다.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고독을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교육이 부족하거나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 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은 중산층이다. (렌 쉬Rensch 2019) 또 이들 모두는 혼자이거나 친구가 없다는 의미에서 외롭다거나 외로웠다는 것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이 들에게는 연대하고 신뢰하는 세상이 없다는 아렌트의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외롭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고립과 신뢰가 사라진 세상은 한편으로는 편향과 착취, 신식민지주의 (2장 및 4장 참조) 같은 문제들과 관련 있고, 포플리스 트와 우익의 선전 및 이데올로기가 역할을 했으며, 다른 한편으 로는 권위주의의 부상을 위한 이상적인 토양을 형성하는 데 도 움을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렌트의 말이 옳다면, 권위주의와 전체주의는 파괴된 사회구조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이미 파괴된 구조 위에서 성장한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전체주의는 엄밀히 말 해 정치적 움직임이 아니라 정치영역을 파괴하는 활동이다. 권위주의적이라는 점에서 반민주적인 동시에 "조직적인 고독organized loneliness" (아렌트 2017, 628) 이고, 서로에 대한 신뢰의 파괴이며, 진실 및 사실에 대한 믿음의 약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술에 관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반드시 다시 물어야 한다. 인공지능 같은 현대사회의 기술이 전체주의의 조건의 원인이 되고, 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가? 원인이 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 가?

- 어떤 데이터 세트를 연구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사람들이 결정한다. 주관적인 결정이고 정치적인 결정이다. 일단 데이터 세 트에 입력된 각 개인은 그것들 간에 그리고 그것들을 데이터 세 트에 집어넣고 그 데이터 세트를 이용해 알고리즘을 훈련하고, 궁극적으로 그것들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보이지 않는 힘 간의 새로운 거래의 일부가 된다. 이는 권력의 비대칭을 나타내며, (선택과 권력의 결과인) 이러한 비대칭은 데이터 정치학과 궁극적 으로 데이터 경제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데이터 경제는 모든 수 준에서 정치적이다. 그 이유는 대체로 일부 조직이 누가 데이터 세트에 들어가고 누가 제외되는지 결정함으로써 다른 조직에 대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결정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르톨레티 2020, 38)

- 한병철은 금지와 명령이 현대사회에서는 “프 로젝트, 주도권, 동기부여로 대체된다고 주장한다.(9) 규율 사회 는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 데 반해, "성과 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9)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 신이 되는 것에 힘들어한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일을 수행하고 완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착취한다. 이들은 기계가 된 다. 하지만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같으므로, 여기서 저항하는 일 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즉 "과도한 업무와 성과는 자동 착취 로 확대된다." (11) 우울증은 "성과 주체chievement-subject가 할 수 있 는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생긴다.”(“nicht mehr konnen kann" 10; 한병철의 독일어본 강조) 마르크스주의 분석과 연관 짓는다면, 자본주의 체제는 이러한 자기 착취를 요구한다. 자본가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일의 성과를 충분히 올리지 못하고 스스로가 만족할 만 큼 향상되지 못할 때, 자신만을 탓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멋 진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우리는 사적 영역에서조차 끊 임없이 자기 향상을 위해 분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과 관련 기술은 업무 성과를 높이는 데 사용되지만 스스로를 향상시 키는 데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때까지 활용한다. 심지어 자기 자 신을 구성하는 일조차 더 이상 성과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지칠 때까지 모니터링하고 분석하여, 끌어 올리는 기술에 의해 부추겨지 는 성취 문제가 되었다. 자기 향상을 위해 적절한 앱을 활용하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책임이 오로지 자 기 자신한테 있는 듯하기 때문에, 그러한 권력과 통치성 시스템 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우울증에 빠지거나 지친다면 자신의 잘못이며 성취에도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력의 배신  (1) 2024.03.04
2024 세계대전망  (0) 2024.02.21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4  (1) 2024.02.04
통계로 미리보는 핵심키워드 7  (0) 2024.01.31
글로벌 그린 뉴딜  (1) 2024.01.11
Posted by dalai
,

- 요즘 입맛이 된 어른 입맛
요즘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디저트 문화 트렌드 중 하나는 할매니얼이다. 할매니얼은 실버 세대의 감성을 즐기는 젊은 층의 문화를 의미 한다. 아직 20~30대에 불과하지만 스스로를 할머니 입맛, 할머니 취향 이라고 말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젊은 층과 거리가 멀어 보였던 흑 임자, 쑥, 인절미 등을 활용한 디저트를 즐긴다.
- 영국의 복식학자인 제임스 레이버(James Laver)는 유행과 관련해 '레이버의 법칙'을 주장했다. 유행이 1년, 10년, 20년씩 지나갔을 때는 한 물간 유행처럼 느껴지거나 끔찍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유행이 30년이 지나면 흥미롭게 느껴지고 그보다 더 지나면 고풍스럽 고 매력적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100년이 지나면 낭만적으 로, 150년이 지나면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했다. 유행이 일정 시점이 지 나고, 더 오래되고, 나와의 접점이 없어질수록 더 미화된다는 것이다. 제임스 레이버는 복식학자지만, 그의 이론이 패션에만 국한되는 것 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레이버의 법칙'에 따라 과거의 문화가 주목받 는 이유를 해석해보면 새로움과 호기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의 젊은 세대는 과거 문화를 어렴풋이 기억하거나 경험해보지 못하였 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문화라고 해서 무조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 하지 않고, 내 취향에 맞는다면 신선하다고 생각하며 호기심을 느낀다.
- 디지털 아카이빙의 발전으로 우리는 과거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하여, 경험 해보지 못한 과거와도 친숙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는 더이상 고루한 것만은 아니다. 일상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과거 문화라면 언제든 계승할 수 있는 헤리티지가 될 수 있다.
헤리티지가 젊은 세대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새롭되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 가야 한다. 젊은 세대가 과거 문화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공감대 를 형성할 수 있는 친숙한 형태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재밌 게 즐기고 체험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헤리티지는 역사가 있는 브랜드라면 활 용하고 싶은 매력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오랜 시간 역사와 함께 브랜드가 버텨왔다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잘 대응해왔고 존재 이유를 잘 지켜왔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하고 브랜드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헤 리티지는 유용한 도구다.
과거에 브랜드가 헤리티지에 접근한 방식은 브랜드의 역사를 나열하는 박물 관과 같았다. 이런 방식은 브랜드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운 역사가 되겠지만, 소 비자 입장에서는 브랜드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소비자 들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혹은 경험했더라도 새롭게 느껴지는 전통과 과거 에 흥미와 호기심을 느낀다. 브랜드 역시 이 지점을 고민하여 소비자에게 다가 가야 할 것이다.

- 댄스 챌린지는 게이미피케이션* 전략이 잘 적용된 콘텐츠로 2 세대의 흥미를 유발한다. 게이미피케이션 전략은 재미, 즉각적인 미션 과 피드백을 필요조건으로 하는데 댄스 챌린지는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었다. 댄스 챌린지라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친구들과 춤을 연습하고 즐겁게 촬영한 후 플랫폼에 업로드하면 '좋아요'나 댓글 등 의 피드백을 바로바로 받을 수 있다. 또한 원본 콘텐츠를 자기만의 방 식으로 변형할 수도 있고 플랫폼의 다양한 특수효과를 활용하여 자신 의 취향대로 꾸밀 수 있는 재미 요소도 있다. 한 가지 예로 블랙핑크 지수의 <꽃>챌린지의 안무를 활용하여 자신의 반려동물과 함께 댄스 챌린지를 찍는 '꽃개 챌린지'가 있다. 누군가 <꽃> 챌린지를 변형하여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찍은 챌린지 영상을 공유했고, 이 영상이 사람 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원본 챌린지만큼의 바이럴을 만들었다. 이처럼 댄스 챌린지는 게이미피케이션 전략이 적용되면서 2세대가 더욱 즐기 게 되었다.
- 마케팅 수단으로서 댄스 챌린지의 강점은 기존의 광고 방식과 달리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댄스 챌린지에 참여함으로써 홍보 효과가 발 생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적은 비용으로 엄청난 바이럴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많은 기업이 댄스 챌린지를 홍보 수단 으로 고려한다. 지금까지 성공한 댄스 챌린지를 살펴보면 기업 이미지 안에서 재미를 추구하고 빠른 모방이 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효과 적인 댄스 챌린지 마케팅을 위해서는 무작정 댄스 챌린지 트렌드를 따 르기보다는 지금까지의 마케팅 맥락과 기업 이미지의 방향성을 고려한 기획이 필요하다.

- 축구 유니폼을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하여 캐주얼한 일상복 으로 착용하는 스타일을 '블록코어룩'이라고 한다. 블록코어룩은 해 외 패션업계도 주목하는 트렌드로, 최근 발렌시아가, 구찌, 슈프림 등 하이엔드 브랜드에서도 유니폼을 모티브로 한 컬렉션을 연이어 선보 이고 있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블록코어룩이 패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축구 유니폼을 구매하는 여성들이 모두 축구에 관심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블록코어룩이 단순한 패션 아이템 중 하나일 뿐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분명한 사실은 2022 카타르 월드 컵이나 2022 잉글랜드 여자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보듯이 여성들 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으며, 이 같은 관심은 단순히 축구 장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축구장 밖 일상의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 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더라도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하버드 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 다니엘 리버만(Daniel E. Lieberman) 박사의 최근 저서 『왜 건강한 행동은 하기 싫은가Exercised: Why Something We Never Evolved to Do is Healthy and Rewarding, 면, 인류의 신체 활동은 '필요'와 '즐거움'에 반응하도록 진화해왔다고 한다. 생존을 위한 활동이나 즐거운 놀이를 제외한다면, 여분의 에너지 를 낭비하는 운동과 같은 신체 활동은 진화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운동을 하기 위한 강력한 동기는 운동이 정말 필요하거나 즐겁다고 느껴야 한다는 뜻이 기도 하다.
- 매년 새해 계획으로 운동을 결심하는 것만 봐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 기 위해 운동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렇다고 운동이 누구에게나 즐거운 행위는 아닐 것이다. 다니엘 리버 만은 운동이 즐겁지 않다는 심리적 거부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적 요인'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여럿이 함께 모여 운동을 하는 것이 강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뜻이다. 다수의 사람이 모여 소통하며 관계를 쌓고 소속감을 느끼게 되면 운동은 더욱 즐거운 행위가 될 수 있다. 최근 건강을 위해 러닝을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는데, 이들이 러닝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한 방법으로 러닝 크루를 결성해 함께 달리는 이유도 여럿이 함께할 때 더욱 즐겁기 때문이다.
풋살을 즐기는 여성들이 증가하는 이유도 이러한 사회적 요인의 맥 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개인 스포츠와 달리 풋살은 다수의 인원이 팀 을 이뤄 경기를 치르는 팀 스포츠다. 좋은 플레이에 팀원들의 환호를 받거나, 실수하더라도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경험은 개인 스포츠를 통 해서는 느끼기 어려운 매력이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함께 패스를 통해 기회를 만들고, 골을 넣었을 때의 짜릿함은 한번 느끼면 쉽사리 끊기 어렵다.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운동이라는 느낌이 강 한 개인 스포츠와 달리 놀이에 가까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팀 스포츠인 풋살에 빠지는 이유다.

- 호텔은 이제 숙소만 제공해서는 그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 최근 스테이케이션이 트렌드로 부상함에 따라 여행객들은 호텔에서 머무 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최근 엔데믹 으로 인해 대부분 사무실로 복귀하며 이전 대비 시간이 부족해진 현대 인들은 근교에서 짧고 굵은 경험이 가능한 가심비 높은 여행을 추구하 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숙소 관점에서 과거에는 피곤한 투숙객들의 질 좋은 숙면을 위해 매트리스, 이불, 베개, 침대 등 숙박에 신경을 많 이 썼지만, 이제 안락한 쉼을 제공하는 요소는 필수가 되었다. 다양하 고 새로운 경험을 가치 있다고 여기는 소비자들은 편안한 숙면 외에 이국적 느낌을 얻고, 취미를 즐기며, 해보지 못했던 라이프스타일을 즐 기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호텔 자체가 여행지가 된 것이다.
과거에는 조식 뷔페를 즐기고, 풀장에서 수영을 하며, 피트니스 센 터에 가서 체력을 다지거나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힐링을 하는 등 부대시설을 이용하면서 여행의 만족도를 높이는 '호캉스'가 주류였다. 하지만 점차 개념이 확장되어 '워케이션이나 숙박 없이 반나절 동안 호텔에서 제공하는 이벤트를 즐기는 '반캉스', 호텔에서 스포츠를 즐 긴다는 의미의 '스포츠케이션(스포츠+베케이션)' 등의 신조어가 등장 했다. 이처럼 호텔은 다양한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부대시설과 이벤트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예를 들 면, 이제 고객들은 호텔의 테니스 코트에서 파트너와 가볍게 랠리를 하고, 맑은 공기를 즐기기 위해 호텔에 마련된 숲에서 트래킹을 하며, 객실에서 넷플릭스를 보고, 수영장에서 플로팅 요가를 배운다. 굳이 호 텔에서 숙박하지 않더라도 객실과 시설만을 빌려 개인에게 필요한 취 미활동을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호텔은 취미생활의 장(Field)으로 거듭난 것이다.
호텔에서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는 이유는 고객들의 생 활 방식과 취향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는 호텔마다 차별적으로 구비된 다양한 시설을 통해 충족 된다. 예를 들어 해비치, 워커힐, 하얏트, 롯데 등의 호텔에는 테니스장 이 구비되어 있어 테니스 관련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다. 

- 소셜미디어의 일상화로 인해 관심사와 취향으로 연결된 느슨한 연대가 익숙 해진 시대다. 사람들에게 오픈채팅방은 단순히 모르는 사람들과 특정 관심사 를 주제로 채팅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주제 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관계가 형성되는 커뮤니티의 세계가 된 것이다.
오픈채팅의 세계에서는 모든 관심사가 곧 하나하나의 커뮤니티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쉽고 빠르게 내가 원하는 커뮤니티를 찾거나 직접 만들 수 있고, 관 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픈채팅에 매력을 느낀다. 오픈채팅 커뮤니티로 만들어진 집단지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 하고, 커뮤니티 구성원으로부터 공감과 위로를 받거나 서로의 유머와 위트를 공유하며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오픈채팅 커뮤니티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진화할 것이 다. 기본적인 수준의 챗봇이 아닌 보다 다양한 능력을 지닌 AI가 커뮤니티 구 성원으로서 함께 어울리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카카오와 네이버와 같은 빅테크 기업만이 아닌 다양한 영역의 브랜드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오픈채팅 플랫폼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앞으로 소비자들은 보다 전문화되 고 특색 있는 오픈채팅을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0'이라는 숫자가 주는 힘은 강력하다. 아무리 더해도 합이 늘어나 지 않는 이 마법의 숫자는 배달시키거나, 메뉴를 하나 더 추가할 때도 '음료는 제로 칼로리니까 괜찮다'는 위안을 주었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은 날, 후식으로 '마지막 양심' 아메리카노를 챙겨 마음의 평안을 찾 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제로 슈거, 제로 칼로리는 스스로에게 주는 면 죄부로서 사람들이 탄산음료를 마시고 싶다는 욕구를 억제하던 길티 센스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자연스럽게 제로 제품 소비량이 급 등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코카콜라 제로의 "이 순간, 자유로운 짜릿 함"이라는 캠페인 슬로건은 제로 슈거 제품을 통해 소비자가 느끼는 해방감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건강과 맛은 반비례한다'는 공식이 깨지면서 소비자 들은 거리낌 없이 건강과 맛의 즐거움 둘 다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 제로 트렌드는 초기에는 탄산음료의 성분에 기반한 저칼로리 제품 선호 현상을 의미했지만, 점차 헬시 플레저에 기반한 식품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낸다'는 가치 소비 트렌드의 상징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설탕이나 칼로리를 줄인 제로 칼로리 탄산음료와 알코올을 제거한 무알코올 주류는 맛만이 아닌 소비자들의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으며, 무라벨 제품은 불필요한 포장재를 최소화하 거나 재활용 가능한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업계의 노력을 투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로 트렌드의 확산은 단순한 식음료 선택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우 리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연스럽 게 조금이라도 더 건강과 환경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선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업을 포함한 시장마저 변화하고 있다.
- 술에서는 알코올, 커피에서는 카페인, 음식에서는 열량, 포장에서는 라 벨이 빠지고 있다. 기존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팥 빠진 붕어빵'이 저 절로 떠오를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붕어빵을 팥이 아니라 겨울 정취를 즐기기 위해 먹는다면, 붕어빵에 슈크림이나 누텔라가 들어가도 괜찮 다. 식음료의 목적에 대한 규정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면서 소 비자가 식음료를 섭취하는 목적이 변하고, 그에 따라 배제할 수 있는 요소 또한 변화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모임에서의 대화, 즐거운 분위기, 좋아하는 맛, 먹는다는 느낌 그 자 체를 새로운 식음료의 목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다음 날의 숙취가 부 담되지 않는 술, 많이 마셔도 쉽게 잠들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커피, 일상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패키징으로서 제로는 소비자에 게 가치를 더해주는 근거가 된다. 겉으로는 제로가 설탕, 알코올, 카페 인과 같은 물성적 요소의 배제를 의미하지만, 실질적으로 제로라는 단 어가 빼는 것은 소비자의 마음속 불편함이다. 얼핏 봐서는 달라 보이는 제로 식음료와 가치 소비가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것은 그런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일상 속 머뭇거림이나 고민 이다. 그 속에서 나타나는 불편함의 정체에 대해 명확히 규명할 수 있 다면, 넥스트 제로 트렌드의 실마리까지도 찾아낼지 모를 일이다.
- 무알코올 맥주는 미국의 금주법으로 처음 생겼고, 제로 웨이스트 운동은 21세 기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앞서 언급되었듯 국내 첫 제로 탄산음료인 코카콜 라 제로는 2006년에 출시되었다. 서로 다른 시기에 나왔던 다양한 제품과 사 회적 운동이 팬데믹을 통해 제로 트렌드라는 하나의 흐름을 낳았고, 이러한 트 렌드는 우리 일상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제로 트렌드는 좋은 제품이나 아이디어도 대중의 니즈와 만날 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할 뿐 아니라, 소비자의 니즈를 온전히 이해할 때 제품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닌 빼는 방식으로도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 고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제로 칼로리를 통해 건강과 즐거움 중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듯 한 번에 여러 가지 욕구를 동시에 추구하고,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서는 더 많은 비 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는 오늘의 소비자들. 넥스트 제로 트렌드를 주 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소비 방식을 오롯이 이해하고 그들이 말하지 않는 불 편함을 발견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 기성세대와는 달리 MZ세대에게 평생 직장과 사회 주류라는 개념은 거의 사라졌다.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 이직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면 장기적인 휴식기를 가지는 것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인정하는 MZ 세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번아웃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갭 이어나 갭먼스를 가지면서 본인의 일이나 삶에 대한 가치관을 들여다 보고,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아 삶의 방향성을 재정비하고자 하는 청년 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갭이어 프로그램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휴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고 있는 것 으로 보인다. 바쁘게 열심히 살면서도 잘 놀고 잘 쉬는 일상의 균형을 통해 자신을 돌보고 나다움을 유지하려는 MZ세대에게서 Post-갓생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가 휴식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 최근 해외에서는 번아웃을 호소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퇴사한 후에도 새 로운 일자리를 찾지 않고 아예 일하지 않는 '안티 워크(Anti-work)'나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3년 통 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하지 않고 쉬는 20~30대가 66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경제 불황으로 인한 취업 시장의 위축과 번아웃을 겪은 MZ세대의 증가로 인해 그냥 '쉬는 청년'의 규모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곁을 지나간 욜로도 플렉스도, 현재 진행중인 갓생도 모두 개인의 행복을 위한 몸부림이었고, 시대 상황에 따라 그 방향성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 다. 최근 휴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결국 지속가능한 갓생을 위한 MZ 세대의 새로운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바쁜 일상과 경쟁 상황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외면하다가 번아웃으로 인해 영구 정지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 일상에 서 적극적으로 휴식을 취하여 회복탄력성을 유지하려는 것이 갓생을 지속가 능케 하려는 MZ세대의 노력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이들을 응원하는 휴식과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가 향후 몇 년간 마케팅 시장의 핵심이 될 것 으로 전망된다.

- 소셜미디어 콘텐츠의 변화
완벽한 모습이 아닌 자연스러운 포스팅을 추구하는 '캐주얼 포스팅'이 트렌드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필터링과 편집 없 는 사진처럼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콘텐츠를 업로드하 던 인스타그램의 초창기를 지향하는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미적 완성도를 중심으로 꾸며진 것과는 반대인 캐주얼 포스팅은 인플 루언서들의 큐레이션된, 완벽하게 포즈를 취하고 본질적으로 비현실 적인 하이라이트 신을 거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궁극적으로 캐주얼 포스팅을 통해 필터링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진짜 정체성과 성격을 나누고자 한다.
- '포토 덤프' 트렌드는 캐주얼 인스타그램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문 화다. 인스타그램에 #Photodump 해시태그를 사용한 게시글이 2023년 10월 기준 359만 개나 업로드되었을 정도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에 서는 '짤털'로 번역되는 이 트렌드는 사진 여러 장을 한 게시글에 업 로드하는 일을 뜻한다. 2세대는 사진첩의 여러 사진 중 남들이 보기에 잘 나온 A컷 한 장을 성심성의껏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보기에 는 독특해 보이고 이상해 보일지라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고,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여러 장을 모아서 업로드한다. 보통 캡션은 매우 짧으며, 필터나 편집 없이 일상을 담은 사진들의 모음을 올린다. 꾸미지 않는 모습을 추구하고, 주위 풍경이나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의 사진들이 모인 포토 덤프가 더 매력적이라고 여긴다.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기에 하나의 완벽한 사진을 업 로드해야 한다는 부담 또한 줄일 수 있다.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으로, 흔들리거나 번 진 사진을 업로드하는 행위도 대중화되고 있다. 흐릿한 사진은 삶의 솔직한 순간들을 포착한 것처럼 보이며, 움직여서 흐릿한 사진은 각 잡고 포즈를 취하는 것과 반대되는 느낌을 준다. 현재의 순간을 즐기 고 있음과 포즈를 취하려고 멈추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흐릿함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사진이 뿌옇게 나올 수 있도록 일부러 카메라에 핸드크림 또는 아이섀도를 발라 비슷한 감성을 연출하는 촬영 법이 인기를 끌고 있다.

- 빠르게 변하는 시장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이제 미디어를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로 한정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자체의 영향력과 의미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일찍 이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1964년 『미디 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에서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 했다. 유명한 이 문구는 미디어가 정보 를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역할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이 있으며, 인간 의 생각과 문화, 세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 다. 매클루언의 이론은 크리에이티브 생태계인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 도 적용될 수 있다.

- K-브랜드에 닥친 악재
K-컬처는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적인 히트를 기록하고 있지만 수출 경 제는 녹록지 않았다. 2022년 472억 달러의 역대급 무역 적자를 기록하 며 'K'의 승승장구에 적색 불이 켜졌다. 수출 적자에는 여러 요인이 복 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특히 주요 시장인 중국 기업의 제품력 상 승과 중국 소비자들의 애국 소비 성향 증가, 미중 무역 갈등으로 인한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등이 한국 브랜드 부진의 직격탄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삼성 갤럭시가 아닌 화웨이와 샤오미로, 가전제품은 세계 1위를 다투는 LG와 삼성보다 하이얼, 메이디, 샤오티엔어 등의 가성 비 좋은 자국 브랜드나 프리미엄 가전이라는 인식이 강한 독일의 지멘 스로 양분화되고 있다. 뷰티 시장 역시 유럽, 미국, 일본 브랜드 중심의 프리미엄 브랜드와 자국 브랜드 및 동남아 브랜드 등 가성비 브랜드로 소비 심리가 양극화되어 국내 브랜드의 입지가 사라졌다. 아모레퍼시 픽은 이니스프리, 에뛰드 등의 로드숍 매장을 철수하며 비용을 절감하 고 온라인으로 사업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 'K' 색채 없이 승승장구하는 K-브랜드들
중국 시장의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킨 브랜드가 있으니 바로 '젠틀몬스 터'다. 2013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젠틀몬스터가 본격적으로 중국에 진출하기 전부터 이미 '천송 이 선글라스'로 중국에서 유명해져 젠틀몬스터에게는 자연스럽게 'K' 라벨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17년 사드 사태 이후, 한한령으 로 소비자 사이에 반한 정서가 확산되면서 위기를 맞았고, 이후 젠틀 몬스터는 브랜딩 활동에서 철저히 한국 색채를 빼기 시작했다. 한국 셀럽 등 한국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모든 브랜드발 콘텐츠를 중단하고, 젠틀몬스터가 가장 잘하는 파격과 혁신을 중심으로 중국 시장에 새로 운 승부수를 띄웠다. 한국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과감한 매장 공간을 선 보이면서 가장 유명한 럭셔리 상권과 최고급 쇼핑몰에만 입점하였고, 의도적으로 럭셔리 브랜드 옆에만 매장을 오픈하며 중국 소비자들에 게 자연스럽게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라는 인상을 남겼다. 2021년에는 젠틀몬스터가 지향하는 퓨처 리테일의 모습을 담는 '하우스(HAUS)' 프로젝트의 두번째 공간을 상하이에 오픈했다. 서울의 하우스 도산보다 더 웅장한 '하우스 상하이'는 4개층 약 1,000평 (3,270m2) 규모의 공간 으로 구성되었는데, 주일룡, 오양나나 등 중국의 셀럽들이 방문하며 이 슈를 끌었다. 2022년에는 베이징 쇼핑가인 산리툰에 3개층에 약 400평 (1,340m2) 규모의 젠틀몬스터 단일 브랜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오프라 인 매장을 오픈했다. 그 밖에도 화웨이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스마트 안경 출시 등 다양한 혁신으로 인해 중국 시장에서 젠틀몬스터를 한국 브랜드가 아닌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인식하는 중국 소비자가 늘었 고, 중국의 궈차오* 열풍을 뛰어넘는 브랜드가 되었다. 젠틀몬스터 제 품은 중국에서 한국 대비 30~40%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중 국 사업이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중국은 젠틀몬스터에게 주요한 시장이 되었다. 'K'의 위기를 계기로 삼아 더욱 젠틀몬스터다운 브랜딩을 전개하게 되었고, 국가 정체성을 넘어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 세계인의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잡은 또다른 브랜드는 '헬리녹스'다. 요즘 특정 카테고리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잡은 신생 브랜드에 'OO계의 에르메스'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헬리녹스는 '캠핑계의 에 르메스'라는 타이틀을 얻은 한국 브랜드다. 헬리녹스의 대표 제품 '체 어원'은 개당 가격이 10만 원대, 텐트는 200만 원대이지만 품절 사태 가 끊이지 않는다. 헬리녹스의 성공 이유로는 가장 먼저 혁신적인 제 품력을 들 수 있다. 체어원은 접으면 30cm가량의 크기에 1kg도 안 되 는 무게로 145kg을 지탱할 수 있다. 이러한 제품력은 전 세계 텐트폴 시장의 90% 점유율과 180여 건의 특허를 보유한 모기업 동아알루미 늄(DAC)의 기술력으로 가능했다. 

-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늘 소비자에게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하지만, 지 금까지는 대부분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어떻게 하면 잘 알릴 수 있을까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브랜드가 강점이나 가치를 직접적으로 알리려 는 의도가 보이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다. 브 랜드 체험이지만 브랜드 자체가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콘텐츠들 속에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어우러져 있을 때 소비자들도 마음 을 열고 경험을 즐길 수 있다. 어느 때보다 경험의 가치가 중요해진 시대인 만 큼, 소비자의 일상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그 속에 자연스럽게 침투할 수 있는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 코카콜라는 오픈AI, 베인앤컴퍼니와 함께 생성형 AI를 활용한 공동 창작 실험, '크리에이트 리얼 매직(Create Real Magic)' 캠페인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며 AI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점했다. 오픈AI의 텍스트 기반 GPT-4와 이미지를 생성하는 달리를 최초로 결합한 플랫 폼을 통해 코카콜라 이미지 아카이브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샌드 박스를 배포한 것이다. 사용자가 AI를 이용하여 코카콜라 창작물을 자 유자재로 만들면서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콘텐츠 제작 자체를 넘어 AI가 창의성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지, 인공지능의 무한한 가 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크리에이티브 실험이기도 했다. 코카콜라의 유리병, 로고, 산타클로스, 북극곰 등 독특한 브랜드 요소들을 활용한 12만 개의 사용자 생성 콘텐츠가 만들어졌다.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몇몇 우수한 콘텐츠를 선정하여 뉴욕 타임스스퀘어와 런던 피커딜리 서커스의 디지털 빌보드에 전시하기도 했다.

- 하인즈(Heinz)는 달리를 활용해 '케첩 AI'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는 하인즈와 케첩의 강력한 연관성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 차원이었다. 케 첩 관련 수많은 키워드를 프롬프트로 입력하여 어떤 이미지가 만들어 지는지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중 대다수가 하인즈 케첩을 연상시키 는 이미지들이었다. 여기에 재미 요소를 더하여 '르네상스 케첩병', '케 첩 타로카드', '우주에 있는 케첩' 등 신박한 케첩 키워드를 입력해도 역시 AI는 하인즈와 비슷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인공지능도 '케 하면 하인즈'라는 것을 이미지 결과물로 입증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 어진 다수의 케첩 이미지들은 캠페인에 활용되어 인쇄물, 옥외, 소셜미 디어 등에 게재되었다.

- 4년간 쿨함에 대해서 알아본 결과를 종합해보면, 사람들은 쿨한 브랜드를 기 본기에 충실하면서도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본업 존잘'인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즘 많이 쓰는 '핫한' 브랜드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들의 눈길을 한눈에 끌 수 있는 트렌디하고 힙한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기본기를 잘 다져서 매력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쿨한' 이미지 또한 소비자들의 브랜드 인식 및 구매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요소임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현재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세대, 향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세대의 쿨 브랜드 인식을 확인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보는 것은 여전히 필요한 일이며, 앞으로도 이노션은 쿨함을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시대 변화에 맞는 쿨함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 세계대전망  (0) 2024.02.21
인공지능은 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가  (1) 2024.02.12
통계로 미리보는 핵심키워드 7  (0) 2024.01.31
글로벌 그린 뉴딜  (1) 2024.01.11
텀블러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  (1) 2023.12.24
Posted by dalai
,

이 책은 민영뉴스통신사 뉴시스의 경제부 기자들이 통계로 세상을 바로보고 현상을 분석하며, 다가올 미래를 예측해보고자 매주 연재했던 기사들을 7개의 키워드로 정리한 책이다. 이들이 알려주는 7가지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 전쟁발 에너지 대란
* 고래싸움에 무역적자
* 차세대 먹거리 산업의 현주소
* 고물가 텅장시대
* 일자리 세대전쟁
* 나 홀로 월세, 집값 꿈틀
* 더 글로리, 그리고 학교 참상

제목에는 통계로 미리본다고 적혀 있지만, 이 책은 통계와 관련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속에 가짜뉴스가 여과없이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허위/과장된 정보가 SNS를 통해 삽시간에 세상에 퍼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가 점점 흐릿해 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쏟아지는 데잍터 안에 담긴 숫자를 오롯이 들여다복, 이를 통해 거짓이나 꾸밈없이 세상을 볼 수 있는 방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통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기초적인 지식만으로도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고, 트렌드를 이해하고, 나름의 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 쓰임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통계가 매우 많다. 경제 현안이나 사회적 관심사, 국제정세, 평범한 이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통계로 세상을 바로보고 현상을 분석하며, 각 아티클의 말미에는 다가올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형태(2024년에는 어떻게 달라질까)로 구성되어 있어서 올 한해 우리의 경제생활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공지능은 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가  (1) 2024.02.12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4  (1) 2024.02.04
글로벌 그린 뉴딜  (1) 2024.01.11
텀블러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  (1) 2023.12.24
육두구의 저주  (1) 2023.12.24
Posted by dalai
,

글로벌 그린 뉴딜

사회 2024. 1. 11. 11:56

- 기후변화가 그토 록 무서운 것은 그로 인해 지구의 수권(水圈)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수권 은 지구상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지구는 물이 많은 행성이 다. 우리의 생태계는 구름을 통해 지구를 도는 물의 순환 주기에 맞춰 영 겁에 걸쳐 진화해 왔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지구온난화 에 의해 지구의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공기의 수분 보유 용량은 약 7퍼센트 증가해 구름에 보다 많은 물이 집중되고 보다 극단적인 강수사 건이 발생한다. 겨울의 극심한 한파와 초대형 폭설, 봄의 파괴적인 홍 수, 여름의 장기적인 가뭄과 끔찍한 산불, 치명적인 3·4·5등급의 허리 케인 등이 모두 물과 관련된 사건이며, 실로 막대한 인명 및 재산 손실과 생태계 파괴가 그런 사건의 결과이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이후로 1만 1700년 동안 상당히 예측 가능한 물의 순환 주기와 보조를 맞추며 발전해온 지구의 생물군계는 오늘날 물 순환을 교란하는 고삐 풀린 지수 곡선을 따라잡지 못한 채 실시간으로 붕괴되고 있다.
- 인류 역사에서 주요한 경제적 변혁은 모두 공통분모를 가진다. 경제 적 변혁이 발생하려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 그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상호작용해 경제 시스템이 하나의 완전체로서 돌아가 도록 만든다.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와 동력원, 그리고 운송 메커니즘이 바로 그 세 가지 요소다. 커뮤니케이션이 없으면 경제활동과 사회생활 을 관리할 수 없다. 에너지가 없으면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에 동력을 제 공할 수 없다. 운송과 물류가 없으면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을 가동할 수 없다. 이 세 가지 운영 체계는 함께 경제학자들이 범용 기술 플랫폼(사회 전반적 인프라)이라고 칭하는 것을 구성한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과 에너 지와 운송 인프라는 또한 사회의 시간적 및 공간적 방향과 비즈니스 모 델, 통치 유형, 건조 환경 (built environment), 거주지, 내러티브 정체성 등을 변화시킨다.
- 19세기에는 증기력을 이용한 인쇄와 전신, 풍부한 석탄, 전국 철도망 이 서로 맞물리며 사회를 관리하고 사회에 동력과 이동성을 제공하는 범용 기술 플랫폼을 형성함으로써 1차 산업혁명이 발생했다. 20세기에 는 중앙 제어식 전력과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저렴한 석유, 그리고 전 국의 도로망을 달리는 내연기관 차량이 상호작용하며 2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창출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3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디지털화한 커뮤 니케이션 인터넷과 태양열 및 풍력 전기를 동력원으로 삼는 디지털화한 재생에너지 인터넷, 그리고 녹색 에너지로 구동되는 전기 및 연료전지 자율 주행 차량으로 구성된 디지털화한 운송 및 물류 인터넷이 상호작 용하며 수렴하고 있다. 이들의 상호작용 및 수렴은 상업용, 주거용, 산업용 건축물 및 시설에 설치되는 사물 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플랫폼 을 기반으로 삼으며 21세기의 사회와 경제에 변혁을 알리고 있다.
센서들이 모든 장치와 기기, 기계, 도구 등에 부착되며 글로벌 경제 전 반으로 확장되는 디지털 신경망을 통해 모든 '사물'을 모든 인간과 연결 하고 있다. 이미 수십억 개의 센서가 자원 흐름과 창고, 도로망, 공장의 생 산 라인, 전기 송전망, 사무실, 주택, 상점, 차량 등에 부착되어 지속적으 로 제반 상태와 성능을 모니터링하고 커뮤니케이션 인터넷과 재생에너 지 인터넷, 운송 및 물류 인터넷에 빅 데이터를 공급하고 있다. 2030년이 면 전 세계에 분포된 지능망(intelligent network)에서 수조 개에 달하는 센 서가 인간과 자연환경을 연결하게 될 전망이다.'
- IoT를 통해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연결하면 엄청난 경제적 이점이 따른다. 확장된 디지털 경제에서 개인과 가정, 기업은 집이나 직장에서 IoT에 연결해 월드와이드웹(www)을 통해 흐르는 빅 데이터, 즉 그들 의 공급망과 생산 및 서비스,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빅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게 된다. 그런 후 그들은 자체 분석을 통해 빅데 이터를 채굴하고 자체의 알고리즘과 앱을 만들어 총체적인 효율성과 생 산성을 높이며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재화와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한계비용과 폐품을 재활용하는 한계비용 을 낮추며 새로운 탄소 이후 글로벌 경제에서 가정과 사업체를 보다 친 환경적이고 보다 효율적이게 만들 수 있게 된다.
- 완전한 디지털 경제와 3차 산업혁명으로의 전환은 20세기에 2차 산 업혁명으로 얻은 이득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총체적인 효율성 도약을 안겨 줄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00년에서 1980년 사이에 총에너지 효율 은 국가 인프라의 발전과 더불어 2.48퍼센트에서 12.3퍼센트로 꾸준히 증가했다. 여기서 에너지 효율이란 에너지와 물질에서 얻어 낼 수 있는, 잠재적인 물리적 작업에 대한 유용성 비율을 말한다. 총에너지 효율은 1990년대 후반 약 13퍼센트 수준에서 맴돌다가 2010년 무렵 2차 산업혁 명 인프라가 완성되면서 14퍼센트로 정점을 찍었다. 미국에 비할 데 없 는 생산성과 성장을 안겨 준 총체적 효율성의 상당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2차 산업혁명에 사용된 에너지의 86퍼센트가 전송 및 전달 과정에서 낭비된 셈이다. 다른 산업화 국가들도 그와 비슷한 효율성 곡선을 경험했다.
탄소 기반의 2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설령 업그레이드한다 하더라도 총효율성과 생산성에 어떤 영향이든 미칠 가능성이 별로 없다. 화석연 료 에너지는 이미 충분히 발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연기관 및 중앙 제어식 전력 그리드처럼 화석연료 에너지로 작동하도록 설계되고 운영 되는 기술은 더 이상 이용할 잠재력이 거의 남지 않았을 정도로 생산성 이 소진된 상태다.
그렇지만 새로운 연구들에 따르면, IoT 플랫폼과 3차 산업혁명으로 전환하면 향후 20년 동안 총에너지 효율을 60퍼센트까지 올려 생산성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는 일이 가능해진다. 아울러 에너지 효율이 거의 100퍼 센트에 달하는 탄소 이후 재생에너지 사회와 고도로 탄력성 있는 순환 경제로의 전환도 그려 볼 수 있게 된다.
- 역사는 국가의 활력이 국민의 생산성과 건강, 전반적인 복지를 향상 시키는 공공 인프라와 서비스를 확보하기 위해 소득과 부의 일부를 희생하려는 국민의 기꺼운 의향에 의해 측정된다고 말한다. 그러한 헌신이 시들해지는 것은 국가의 쇠퇴와 몰락의 명백한 신호가 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수사적 슬로건은 인구의 상 당수가 현재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필요를 예상하고 국가 인프라 의 재건과 변혁을 지원함으로써 미국의 미래에 헌신할 의사가 더 이상 없는 시점에서는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인프라의 중요성에 대한 전반적인 무시는 "푼돈을 아끼느라 큰돈을 잃는" 어리석은 작태일 따름이다. 단기적으로 이것은 열악한 도로와 위 험한 교량, 신뢰할 수 없는 대중교통, 느린 휴대전화 정도를 의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3차 산업혁명 인프라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미국인뿐 아 니라 전 지구에 보다 존재론적인 위협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 국가 인프라의 민영화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속도를 높여 왔지만 지금은 미국이 2차 산업혁명에서 3차 산업혁명으로 옮겨 감에 따라 폭발 직전의 상황에 처했다. 많은 기업들이 미국의 와해되는 인프라에 대한 현재의 논쟁을 이용하여 향후 수십 년에 걸쳐 많은 부분을 일거에 민영화 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길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의존하는 모든 공공인 프라를 민영화한다는 망상은 상황을 오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 로도 현명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모든 시민의 일상생활을 대중이 거 의 또는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업적 이해관계자들의 손에 맡 기고 모든 사람의 일상을 유지하는 서비스에 접근하고 지휘할 능력을 줄이는 것은 민주적 거버넌스와 관리 감독의 무조건 포기나 다름없다.
- 더욱 불길한 것은 3차 산업혁명을 구성하는 전체 스마트 디지털 인프 라를 민영화할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인류를 글로벌 신 경망에 연결하여 모든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다양한 비유적 가 족의 일원으로서 원할 경우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다른 모든 사 람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특히 지구를 그들의 확장된 집과 경기장으로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욱 그러 하다. 하지만 스마트 디지털 3차 산업혁명 인프라가 지역사회에 대한 책 임 의식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글로벌 기업들의 사적인 손에 독점적 으로 들어가고 그들에게 모든 시민의 삶을 감시하고 그들이 수집한 데 이터를 제3자에게 마케팅이나 광고에 활용하도록 판매할 수 있는 라이 선스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 그런 기업들이 그런 데이터를 정당이나 로비스트들에게 그들 나름의 어젠다를 추진하는 데 쓰도록 넘 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 화석연료 좌초 자산이 100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언급은 전 세계 비즈니스 공동체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좌초 자 산은 예상 수명 주기가 정상적으로 종료되기 전에, 즉 때 이른 시점에 감 가상각되는 자산을 말한다. 좌초 자산은 일상적인 시장 운영에서 필연 적으로 발생하는 일부이다. 그러나 때로는 자산 전체가 예기치 않게 갑 자기 좌초될 수도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혁신적인 새로운 부류의 기 술과 그에 수반되는 인프라 플랫폼이 갑자기 시장에 들어와 조지프 슘 페터(Joseph Schumpeter)가 "창조적 파괴"라고 일컬은 바를 유발하며 기존 자산의 가치를 빠르게 감가상각하거나 제거하는 동시에 그것을 대차대 조표의 차변에서 대변으로 옮겨 놓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러한 유형의 파괴는 대개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에너지원, 운송 방식, 거주 유형에서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예컨대 우편 통신에서 전화로, 또는 말과 마차에서 자동차로의 전환 등)을 특징으로 한다.
좌초 자산은 일반적으로 회계사들만 관심을 갖는 문제이다. 하지만 최근 이 용어가 적어도 금융계나 기업 중역실에서는 갑자기 공론의 대 상으로 불거지고 있다. 20세기 화석연료 문명의 죽어 가는 에너지와 기 술, 인프라가 21세기 스마트 3차 산업혁명의 녹색 에너지 및 디지털 기 술과 서사적인 전투를 벌이는 가운데 막대한 좌초 자산의 발생이 목도 되고 있기 때문이다.
- 번스타인 리서치는 거대 석유 기업들이 재생에너지와 전기 자동차 채 택의 급격한 증가를 인식하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전 세계 석유 수요 가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하는 모든 연구 결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힌다. 일부 기업은 이미 석유 비축량의 보충에 대한 10년 이후 의 계획은 철회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석유를 탐사하고 채굴했는데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면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좌 초자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얘기다. 번스타인 리서치의 보고서 를 더 들여다보자. 투자자들 역시 벌써 사용되지도 않을 석유의 보충에 돈을 쓰는 대신 주주들에게 현금을 배당하라고 석유 기업들에 요구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조만간 공급 부족이 야기될 가능성이 크 며 그에 따라 2008년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배럴당 147달러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유가가 치솟을 가능성 또한 크다.'
- EU에서 우리는 기존 건축물의 전반적 개조에서 규모를 확대하는 것 이 그린 뉴딜로의 이행에서 가장 어려운 측면 중 하나이며, 따라서 일과 삶의 일상적 패턴을 파괴하는 과정에 따르는 사회학적 및 심리학적 비 타협성을 극복하기 위한 확고한 결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이러한 저항 심리는 저임금이나 중하위 소득자들이 거주하는 공공 지원 주택과 공영 주택에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극복된다. 거주자들이 월간 공과금(일반적으로 임대료를 제외한 가장 큰 주거 비용)의 급감으로 더 많은 가처 분소득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건축물 개조는 미국 및 세계경제를 탈탄소화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 하므로 그린 뉴딜로의 전환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문제이다. 이 과업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으면 전 세계의 건축물 부문 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좌초 자산이 실로 엄청난 규모에 이를 것 이다. IRENA의 "정책 조치 지연" 시나리오에서는 전 세계 건축물의 좌 초자산이 10조 8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는 조기 전환 가속화의 내용을 담은 "리맵" 시나리오에서 발생하는 손실의 두 배에 해 당한다.
- 유엔 식량농업기구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그렇다." 가축 (주로 소)은 지구의 얼음이 없는 땅 가운데 26 퍼센트에서 방목된다.5" 현 재 지구에는 약 14억 마리의 소가 있으며, 이산화탄소(CO2)보다 25배나 더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온실가스인 메탄의 주요 배출원이다.55 젖소의 대변에서는 또한 아산화질소가 방출된다. 아산화질소는 이산화 탄소보다 296배나 더 큰 지구온난화 잠재력을 보유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다. 미국 환경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대량생산되는 작물의 절반 이상은 동물의 사료로 사 용된다. 일반적인 식물 기반 단백질 공급원의 생산과 비교할 때 "쇠고 기 및 기타 반추동물 고기는・・・・・・ 단백질 소비 단위당 두류(즉 콩과 식물)보 다 20배 이상의 토지를 필요로 하고 20배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결국 소나 반추동물에 의한 집약적인 농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효 율적인 셈이다." 그리고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산림 파괴의 주요 원인 이 가축 방목을 위해 목초지를 마련하는 것인데, 이는 지구온난화 가스 를 흡수하는 나무가 훨씬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태양광 및 풍력 에너지가 가변적이라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향후 수십 년 동안 기존의 화석연료 전력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개념은 가스 업계가 퍼뜨린 일종의 현대판 도시 신화라 할 수 있다. 전혀 사실이 아니 다. 빠르게 비용이 감소하고 있는 배터리 저장 장치 및 수소 연료전지 저 장장치 덕분에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예비 전력은 수월하게 확보될 수 있다. 또한 전력 수요의 연중 시기별 변동과 각 에너 지의 계절별 변동성을 고려하여 태양광과 풍력을 적절히 혼합하면 얼마 든지 신뢰할 수 있는 전력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 수요 측면의 관리를 개선하고 그리드 코드를 업그레이드하고 서보 기계식에서 디지털 그리 드로의 전환을 촉진하고 기본 부하 및 최대 부하 시간 사이의 전력 통합 을 보다 스마트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 역시 전력 수요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취해야 하고 또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이다. 
- 미국의 GDP가 계속 증가하지 않고 (2018년 수준인) 연간 200조 달러 정 도에 머문다고 가정하더라도 총투자 금액은 현재 20세기의 낡은 인프라 를 유지하고 수리하는 데 투입되고 있는 연간 GDP의 2.3퍼센트에 다시 연간 약 2.3퍼센트를 추가하면 조달할 수 있다. 연간 GDP의 4.6퍼센트 를 투자하면 21세기의 복원력 있는 경제를 위한 최첨단 스마트 탄소 제 로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연간 GDP의 2.3퍼센트 에 그치는 현재 수준의 인프라 비용을 그 두 배인 4.6퍼센트로 늘리는 방 안에 관계 당국이 난색을 표할지도 모르는 터라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2010년부터 2015년 사이에 중국 정부가 지출한 연평균 인프라 비용은 GDP의 8.3퍼센트였다.
이와 같은 숫자들은 인프라에 대한 연간 투자가 중국에 비해 훨씬 낮 은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앞으로 다가올 반세기 동안 미국이 맞닥뜨릴 현실이 어떤 것일지 그리고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어디에 위치할 것인지를 말해 준다. 요약건대, 미국이 미래에도 세계를 이끌어 가는 선도적 국가로 남기를 원한다면 연간 인프라 비용을 반드시 적어도 두 배로 늘려 야 한다. 20년이라는 기간 내에 스마트 탄소 제로 3차 산업혁명 경제로 전환하는 것은 모든 요건이 제대로 갖추어질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다 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숫자는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도출한 추산액 일 뿐이며, 우리가 이 역사적인 인프라의 전환기를 거치는 동안 지속적 으로 수정 및 갱신될 가능성이 높다.
- 글로벌 기업이 민간 투자의 형식으로 전형적인 비즈니스 관행을 적용 하여 새로운 그린 인프라 구축 및 관리 사업을 단독으로 수행하고 인프 라는 물론 그에 수반되는 서비스에 대한 영향력과 통제권을 모두 넘겨 받는 구식의 신자유주의 모델은 오늘날 외면당하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새로운 성과 계약 모델은 인프라의 건립과 관리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재원 확보의 책임은 민간 ESCO 에 부담시키며 새로운 인프라에 대한 통제권과 소유권은 모두 지방자치체나 카운티, 주 정부가 지역사회의 일반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공유 자산'으로서 보유 하는 하이브리드 사업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판매자/구매자 시장의 '구 매자 위험 부담 원칙'이 공급자가 "선행을 통해 성장하는 공급자/사용 자 네트워크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바로 '사회적 자본주의'의 본질이며 단기간 내에 탄소 제로 시 대로 전환할 수 있는 실용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대표하는 것이다. 판매 자/구매자 시장이 화석연료 문명과 '진보의 시대'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 델이었다면, 성과 계약에 의해 운영되는 ESCO 공급자/사용자 네트워 크는 새롭게 부상하는 '복원의 시대'에 지속 가능한 녹색 문명을 구축하 고 관리할 수 있는 시그니처 비즈니스 모델인 것이다.
- 인류의 역사에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시간적·공간적 지향성, 경제모델, 거버넌스의 형태, 인지 방식, 그 리고 인류의 세계관을 바꾸는 인프라 혁명이다. 경제와 사회를 관리하 고 동력을 부여하며 작동시키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 새로운 에너지원, 새로운 이동 및 물류 방식으로의 전환이 우리를 둘러싼 주변 세상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20만 년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약탈 · 사냥 기반의 원시적 인 프라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내러티브를 보유했으며, 인류학자들이 말 하는 "신화적 의식과 부족 단위의 거버넌스를 보여 주었다. 1만 년 전 농경 사회의 도래로 중동의 수메르와 인도의 인더스 계곡, 중국의 양자 강 유역 등에서 부상한 수력학적 농경 인프라는 "신학적 의식”과 중앙 집 권적 제국을 탄생시켰다. 19세기에는 1차 산업혁명 인프라로 인해 "이념 적 의식과 국내시장 및 국민국가 거버넌스가 촉발되었고, 20세기의 2차 산업혁명 글로벌 인프라는 "정신적 의식과 글로벌 시장 및 글로벌 거버 넌스의 태동을 야기했다. 21세기에 부상하고 있는 3차 산업혁명 글로컬 인프라는 "생물권 의식과 피어 어셈블리(peer assembly: 동배 협의체) 거버넌 스의 태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기권과 대륙, 대양을 아우르는 생물 권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삶을 영위하고 상호작용을 하며 번성하는 곳이다.
- 이들 패러다임의 대전환은 그때마다 인류가 가진 보다 큰 집단성과 세계관에 대한 감정적 진화를 동반했다. 약탈·사냥 기반의 사회에서 공 감 능력이 확장될 수 있는 한계는 혈족과 친족 등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공통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집단까지였다. 수력학적 농경 문명에서는 그 것이 공통의 종교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확장되었다. 이 시대에 형성된 종교 집단은 신앙적 결속에 기초한 비혈연관계의 "비유적 가족을 만들 어 냈다. 예컨대 모든 유대교 개종자들은 같은 유대교도 모두가 자신의 확장된 비유적 가족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힌두교, 불교, 기독교, 이 슬람교의 신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19세기의 1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모국 혹은 조국을 향한 집단적 애국심에 기초한 비유적 가족으로까지 공감 능력이 확장되었다. 시민들은 국가의 정체성을 토대로 상호 간의 감정적 연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20세기의 2차 산업혁명 시대는 전 세 계적으로 국가 간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생각과 뜻을 같이하는 코 즈모폴리턴(세계시민)과 전문성에 기초한 유대 관계로 공감 능력이 확장 되었다. 부상하고 있는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게 될 디지털 문화에 능숙한 신세대들은 글로벌 교실에서 스카이프(Skype)로 수업을 듣고 페 이스북(Facebook)과 인스타그램(Instagram)으로 상호작용하며 가상공간에 서 게임을 즐긴다. 현실 세상을 여행하며 즐기는 일에 몰두하기도 하는 그들은 또한 스스로를 공동의 생물권에서 거주하는 행성계 집단의 일원 으로 간주하고 있다. 아울러 포괄적인 방식으로 공감 능력을 확장하여 스스로를 위협받고 있는 생물종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불안정한 지구에 서 겪는 공통의 역경에 마음으로부터 공감하기도 한다. 한 걸음 더 나아 가 진화의 유산을 공유하는 다른 모든 생명체에까지 공감 능력을 확장 하기 시작하는 신세대의 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4  (1) 2024.02.04
통계로 미리보는 핵심키워드 7  (0) 2024.01.31
텀블러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  (1) 2023.12.24
육두구의 저주  (1) 2023.12.24
최소한의 중동수업  (2) 2023.12.16
Posted by dalai
,

- 기후 활동가들은 자제하자고 외친다. 소비를 조금 줄이거나 '바이오' 표시가 붙은 제품을 구매하자는 뜻이다. 결국 지금과 똑같이 살자는 소리가 아닌가? 우리는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 하고 전국 곳곳에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전혀 다른 형태의 '모빌리티'에 투자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필요한 자원은 어떤 식으로 채굴해야 하는지 (또 충 분한 양의 자원이 얼마나 오래 공급되고 어디서 전기를 공급받아야 할지를)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채 말이다. 효과적인 기후정책을 세울 때 중요한 조건은 항공 여행에 더 많은 세금을 물리되 가족 여행을 막을 정도로 비싸면 안 된다는 것이다. 휘발유 가격을 올리지만 차를 세워둘 정도로 높으면 곤란하다. 우리는 지금처럼 일상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다. 단지 조금 더 녹색으로, 더 비싸게, 또 양심의 가책을 조금 더 느낄 뿐이다.
이로써 대답을 대신할수 있을까?
- 독일인들은 전통적으로 자연과 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중에서도 나무와의 관계는 각별하다. 우리가 어느 정도) 기독 교화되기 전만 해도 게르마니아 땅에서는 거대한 나무가 신성 한 존재로 숭배되었다. 조상들에게는 '위그드라실', 즉 우주수(우 주를 떠받치고 있다는 거대한 물푸레나무-옮긴이)가 세상의 중심이었 다. '라타토스크'라는 이름의 다람쥐 한 마리가 위아래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메시지 전달자 역할을 했다. 물론 크리스마스트리도 빠질 수 없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우리 모두 나무 앞에 경건한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놀랍지 않은가? 각종 동화와 신화도 떠올 려보자. 비록 야생의 존재가 사는 곳이지만 거기서도 숲은 문명 의 도피처로, 동경의 장소로 찬양받는다.
- 자연은 어머니가 아니다. 암 역시 자연이고, 가장 유독한 물질도 자연물질이다. 자연은 혼자 힘으로 살아남고자 경 쟁자를 죽이고 배척하는, 도덕과는 무관한 영역이다. 우리의 친 구인 숲조차 냉혹하기는 마찬가지다. 빛과 생활 터전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무자비한 싸움이 일상다반사다. 엉켜 있는 이웃 나무들에게 가는 햇빛을 가리고 치명타를 입힌다. 자연은 작고 힘없고 여린 것들은 죄다 쓰러뜨려 버린다. 어린 노루들은 숲에 오면 가장 싱싱한 나뭇잎부터 갉아먹는데, 새로 자라는 어린나 무들이 첫 희생양이 된다.
자연은 냉혹하다. 흔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산다고 부러 움을 사는 이들이 정작 누구보다 그런 면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위대한 작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 Joseph de Maistre (19세기 초 프랑스의 사상가옮긴이)는 자연이 어떤지 알고 싶다면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실제로 자연이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라 고, 이른바 자연인을 보라고 말한다.
자연인은 먹고살려고 죽이고, 몸에 걸칠 것을 구하려고 죽인다.
- 하프에서 마법 같은 소리가 나게 하려고 양의 배 속에서 창자를 끄집어내고, 아이들 장난감을 만들려고 코끼리의 상아를 잘라낸다. 자연인의 식탁은 온통 시체투성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미화하기 좋아하던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 맨들이 들판에 불을 지르고, 사냥하거나 가축 떼를 방목할 터전 을 마련하고자 지역 전체를 불사르는 등 예로부터 무자비한 짓 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산업혁명과 함께 비로소 동식물 서식지가 파괴되기 시작했다는 것도 착각이다. 자연 친화적이었다는 우리 조상들은 명백한 환경파괴자였다. 태곳적부 터 인류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급속도로 종의 멸종이 이루어졌 다. 그리고 일찍이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인들도 단일작물 재배의 폐해를 잘 알고 있었다.
인류가 언제부터 광기 어린 파괴를 일삼기 시작했는지는 불 분명하다. 안타깝지만 아주 오래전, 대략 1만 2,000년 전부터로 추정되는데, 인류가 수렵채집꾼으로서의 삶을 청산하기로 결심 하고 정착하게 된 시점이다. 이 같은 농업혁명은 인류사의 위대 하고도 불가역적인 전환점으로서 인류의 생활을 완전히 새롭게 규정했다. 이때부터 인류는 자연과 더불어 살지 않고 자연에 맞 서 생활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자연을 수탈하고 길들이고 지배 하기 시작했다.
- 오늘날 호사스러운 삶은 '로하스LOHAs', 즉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건강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삶의 방 식)'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사회 정책적으로 비주류 단체들의 독 차지였던 생태학이란 주제가 어느덧 도시 엘리트를 구별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물론 쾌락주의의 뒷맛이 거기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바른 양심을 곁들여 - 내 행복만이 최우선이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종종 욕을 얻어 먹곤하는 고상한 환경주의자들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할리우드의 골칫거리들이 도요타의 프리우스를 타고 에너지 절 약 램프를 사용하고 탄소상쇄기금에 기부하는 행위를 통해 클라 우디아 로트Claudia Roth (독일 녹색당 정치인-옮긴이) 같은 정치인들 이 수십 년간 행한 연설보다 친환경적 실천에 대한 새로운 이해 에 훨씬 더 이바지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두려움을 느끼라는 잔 소리를 끊임없이 듣기보다는 녹색 삶을 살면서도 삶을 즐길 수 있음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편이 훨씬 좋아 보인다. 일론 머스크는 그 점을 이해한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에코 라이프스타일은 매 력적이어야 하고, 이제는 포르쉐보다는 테슬라를 모는 것이 더 쿨하게 보이는 세상이 되었다.
따라서 기후 논쟁이 불러일으킨 환경문제에 대한 각성은, 때 로 도를 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역사적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버튼만 누르면 모든 게 제공되 는 무한 리필식의 광기 어린 소비와 차별화되는 생활 방식을 실 현할 적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양심을 달래주는 미봉책에 안주하지 않고 삶 전반에 걸쳐 진정한 사고의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내가 방문한-F. X. 마이어의 이론을 따르는 요양소에서도 장청소(글라우버염과 비슷한 물질이 들어 있는 끔찍한 아침 음료의 도움을 받아)를 주요 원칙으로 삼아 하루 일과를 진행했다. 그럼 확실히 하루 이틀만 지나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 마이어와 부힝거 에 따르면 소화관이 비는 순간 우리 몸은 저장된 지방을 갉아먹 는다. 더 이상 먹을 게 없음을 깨닫는 순간 제 몸에 있는 영양분 을 섭취하는 것이다. 여러 날을 차와 물만 마시며 음식을 완전히 끊는 극단적 단식을 하면 얼마 뒤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 다. 뇌에서 어서 당분을 달라고 하는데, 체내에서 쉽사리 에너지 를 구할 수 없게 된 우리 몸은 까다로운 뇌를 위해 지방을 케톤체 로 바꾸기 시작한다. 그 결과 정신적 각성 상태와 쾌감을 느끼며 단식의 황홀경에 빠진다. 그럴 때는 몸속에서 왠지 모를 힘이 솟 는 기분이 든다. 이 단계에서 나는 산으로 모험을 떠나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고 나중엔 더 이상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 상태로 해지 기 전에 겨우 하산할 수 있었다.
- 요시노리 오스미는 매일 16시간 동안 음 식을 섭취하지 않을 때('간헐적 단식') 몸에서 어떤 놀라운 일이 일 어나는지를 밝혀낸 공적으로 201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 세포가 깨끗이 청소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데, 구글 검색을 통해 이를 지칭하는 '자가포식autophagy'이라는 전문용어를 만날 수 있다. 영양분 공급이 지체되면 우리 몸은 세 포 내에서 오래전 밖으로 내보내고자 했던, 결함 있는 단백질을 우선 사용한다. 이런 식으로 발암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와 활성산소로 손상된 단백질이 배출된다. 단식이 시작되고 2시간에서 14시간이 지나면 이미 이런 정화 작용이 시작된다고 한다.
- SUV는 고상한 기원을 갖고 있다. 원래는 영국 귀족을 위해 만들어진 차였다. 도시 외출용 차량을 따로 두고 싶지 않았던 귀족들은 사냥한 꿩 같은 짐승이나 사냥개를 싣는 용도로 주중에 사용하던 차량을 몰고서 도시 나들이에 나섰다. 1980년 대 런던에서는 진흙과 오물이 묻은 채로 첼시와 벨그레이비어 지역에 주차된 레인지로버가 특별한 신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런 차량은 그 소유자가 도시에 제2의 주택을 소유한 귀족 지주 임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그러자 이웃의 신흥 부자들이 곧 이들 을 흉내 냈다.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새로운 레인지로버 소 유자들은 귀족 지주인 이웃과 보조를 맞추고자 고용인을 시켜 자신의 차량에 진흙을 바르게 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는 너도 나도 이런 차량을 몰기 시작하면서 오래된 신분 상징들에서 흔히 보듯-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그러므로 지 금 우리는 '교통수단의 전환' 같은 사업에 나서기보다 먼저 SUV 차량부터 도시에서 몰아낼 필요가 있다. 비싼 이용료를 부과하는 조건에서만 개별적으로 예외가 허용되어야 한다. 또 다른 조건도 필요하다. 안전 삼각대와 안전조끼를 의무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트렁크에 죽은 꿩을 한 마리씩 싣고 다니도록 하는 것이다.
- 어쨌거나 '모빌리티'를 반드시 차량 소유와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 물론 개인에게 판매되는 자동차는 계속해서 생산될 것 이다. 하지만 그것은 럭셔리카 같은 틈새시장 상품이거나 대중 용일지라도 지금까지 알던 차와는 다른 아주 미니멀하고 무난 한, 순전히 실용성과 효율성에 중점을 둔 일종의 운전용 컴퓨터 기기의 성격을 띨 것이다. 전기자동차 시장의 주요 기업인 지리 자동차가 다임러 벤츠와 조인트벤처를 맺어 2022년부터 중국에 서 양산할 차세대 '스마트' 차량도 이런 경우다.
재미있는 점은 스마트 차가 신모델을 통해 자신의 원래 뿌리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스위스의 천재적 선구자 니콜라스 하이에크 Nicolas Hayek가 발명한 원조 스마트 차는 자동차에 대한 기존 관념을 혁명적으로 뒤바꿀 의도로 만들어졌다. 1990년대에 새로운 형태의 자동차를 구상할 무렵, 하이에크는 연료 절약형 친환경 초소형 차만 염두에 둔 게 아니었다. 일찍이 그는 자동차 대기업이 철판과 알루미늄 대신 서비스나 수리를 포함해 운행 한 킬로미터 수만큼 돈을 내는 '모빌리티'를 고객에게 판매해야 한다는 비전을 품었다. 그리고 하드웨어는 회사 소유로 남아 차 량 수명이 다하면 재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그 당시에 하이에크는 이미 부품을 회수해 완전 재사용하는 가능성을 논했다. 따라서 애초 '스마트' 모델의 각 부품을 용접하지 않은 채 접착해 만들 계획이었다. 그런 다음 5년 정도 사용한 후 - 농담이 아니다- 효소에 푹 담가 접착제가 용해되면 부품들을 새로운 차량 제작에 쓰려고 했다.
사람들은 그런 하이에크를 미치광이 취급했다. 차량이 아닌 모빌리티를 판매한다는 그의 비전은 30년 전만 해도 허황된 꿈 으로 비웃음을 샀지만, 이제는 어엿한 현실이 되었다. 예전에는 자가용차를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각자 취향껏 '리틀트리' 방향제나 코바늘 장식물로 차를 꾸미곤 했다. 하지만 이젠 '공유 모빌리티'가 당연시되는 시대가 되었다. 혁신에는 종종 오랜 시 간이 걸리지만 일단 혁신에 성공하면 누구도 이전의 상황을 기 억하지 못한다.
- 항공 로비를 펼치는 쪽에서는 비행 금지 조치나 정당한 세금을 피하고자 '오프셋 offset'이라고도 하는 마법의 단어 '탄소 상 쇄'를 들먹이곤 한다. 그 취지는 비행마다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1톤당 추가 요금을 매겨 이 돈을 아트모스페어Atmosfair (항공 여행 등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에 대한 탄소 상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독일의 비영리단체-옮긴이)나 마이클라이밋Myclimate(기후보호 프로젝트를 지 원하는 스위스 기반의 비영리단체 - 옮긴이) 같은 비영리단체에 전달 해 제3세계 기후 보호 프로젝트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일일이 확인이 어려운 데다 이 같은 프로젝트의 대다수가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특히 열대우림의 벌 목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들이 비판을 받는데, 장소만 바꿔 벌목을 계속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예약할 때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자발적으로 지불하는, 비행기 티켓 값을 상승시키는 그 기부금은 인증서 거래라는 번창하는 신흥 사업 분야에 자금을 대주고 있다. 이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우리 덕분에 일부 약삭 빠른 장사꾼들이 삽시간에 갑부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탄소 상쇄라는 도덕적으로 수상한 면죄부를 사는 꼴이다. 그 목적은 높은 구매력을 가진 인간의 양심을 달래는 데에 있다. 이 제 사람들은 전처럼 끊임없이 세계 곳곳을 제트기로 돌아다닐 수 있다. 면죄부를 산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서둘러 카리브 해로 떠나는 다음 비행편을 예약한다. 아트모스페어 같은 단체 들은 문명적 전환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부유층의 잦은 제트기 여 행에 사회적 면죄부를 발행한다. 이런 논리라면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처럼 헬리콥터나 호화 요트만으로 이동해도 아무 문제 가 없을 것이다. 우림 한 조각을 사들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 답은 간단하다, 적게 구매하라
그런 패션업계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디퓨저 스틱 향이 코를 찌르 는 공정무역 가게에서만 옷을 사 입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는 사안을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가령 H&M은 자사 제 품에서 건강과 환경에 해로운 화학물질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 라벨이 붙은 바지를 자주 입는다 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방글라데시에서 오랫동안 독일 대사 로 지낸 지인이 최근 설득력 있는 이유를 들려주었다. 서구권 국 가의 의류공장들이 수십 년 동안 선의로 이루어진 원조 정책보다 훨씬 긍정적인 영향을 방글라데시에 끼쳤다. 서구의 노동자 보호 정책과 노동권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권리를 몰랐던 나라들에 수출한 것이다. 특히 여성들이 소득 증가 혜택을 톡톡히 누렸는데, 합리적 가계 관리에 능한 여성들이 아동, 교육, 건강관리 등에 지출을 늘린 덕에 지역 전체가 큰 변화를 맞이했다.
따라서 패션업계 전체를 싸잡아 환경범죄자로 몰아가는 것 은 불공평하다. 저임금 국가에서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의류업계 를 비난하는 것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실상은 훨씬 복잡하면 서도 동시에 아주 간단하다. 팔리는 만큼 제품도 생산하는 법이 다. 인디텍스 같은 대기업은 필요한 물량만큼만 생산하도록 하 청업체를 직접 통제할 수 있다. 사실상 온디맨드on-Demand, 즉 수요 중심으로 의류를 생산하는 자라와 H&M은 각 라인의 수요에 맞춰 생산을 조정한다. 그러니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가 적게 구매할수록 생산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 스마트폰으로 10분 정도 동영상을 보면 2,000와트짜리 전기오븐을 5분간 최대출력으로 가열하는 만큼의 전기가 소비된다는 사 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었는가? 또 스마트폰 한 대를 생산할 때 60킬로그램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는 사 실은? 구글 검색 한 번에 0.2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2019년 통계에 따르면 1분당 380만 건의 검색이 이루어지면서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구글 검색이 1분당 760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방출한다는 사실은? 가전제품 중에서도 빨래건조기와 식기세척기가(냉장고와 세탁기가 그 뒤를 잇는다) 가정 내 에너지 낭 비의 주범인 만큼 손과 솔로 설거지를 했던 미풍양속을 되살리 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빨래를 말릴 때도 건조기 사용을 피한 다면 전기 소비를 확 줄여 행복한 북극곰이 재주를 넘을지도 모 른다는 사실은?
당신이 TV를 살 때는 4,000가지 화학약품이 들어 있는 상자를 사려는 것이 아니다. TV를 시청하고자 할 뿐이다. 따라서 1만 시 간 동안 시청할 권리를 구매하고 이후에는 생산자에게 반환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다. 부품 재사용이 가능해 경비 절감이 가능 하다면 생산자는 제품 회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물론 생산자에게는 보관과 재활용에 따른 큰 책임이 생긴다. 바로 그 효과를 의도한 게 아닐까? 브라운가르트는 “이런 시스템 이 완전히 정착되면 위험한 폐기물이 배출될 일도 없고, 기업은 자원을 적게 소비하고 제조비를 엄청나게 절약할 것"이라고 말 한다.
- '요람에서 요람으로 원칙은 산업생산 전반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브라운가르트가 정신병원으로 가 거나 10년 뒤 노벨상 수상자가 되면서 모든 제품이 C2C 원칙에 따라 생산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활용가 능한 재료로만 만들어진 핸드폰, 즉 먹어도 아무 문제 없는 핸드폰을 생산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브라운가르트는 단 언한다.
- 플라스틱의 최대 장점은 썩지 않고 오래간다는 것인데, 이는 가장 심각한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플라스틱의 분해 기간은 두께와 밀도에 따라 다르지만 500년부터 2,000년에 걸쳐 있다. 1909년 2월 5일 뉴욕 화학자클럽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 현재까 지 83억 톤가량의 플라스틱이 생산되었다. 이 중 63억 톤 정도는 아직도 남아 있는데(대부분 바닷속에 있다) 서서히 분해되는 과정 에서 독성물질과 가스를 내뿜으며 인간의 먹이사슬에 유입되고 있다.
해양 쓰레기 청소에 앞장서는 비영리단체 오션 클린업 Ocean Cleanup의 프로젝트 같은 것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 다. 무수한 쓰레기가 끝없이 밀려드는 현실은 마치 부엌이 물에 잠기는 상황에서 수도를 잠그는 대신 걸레로 바닥부터 닦는 것 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 200년 전까지는 쓰레기란 말조차 낯설었다. 늘 모든 것을 재활용했던 시골에서는 어차피 쓰레기란 게 있을 수 없었다.
독일에서 도시인들은 무조건 내다 버려야 하는 것을 '운라 트Unrat(독일어로 '쓰레기, 오물'이라는 뜻옮긴이)'라고 불렀는데, 이 를 처리할 때는 지극히 속된 방식을 동원했다. 즉 창밖으로 쏟아 버리거나, 좀 더 체계적인 방법을 쓴다면 분뇨구덩이에 버리는 식이었다. 뮌헨에는 수백 년에 걸친 아주 특별한 쓰레기 처리법 이 있었다. 이른바 '달리는 돼지'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도시 전 역에 돼지들을 풀어 쓰레기를 먹어 치우게 한 것이다. 돼지들이 뮌헨 시민들의 쓰레기를 먹어 치우고 나면 시민들은 나중에 그 돼지를 구워 먹거나 소시지로 만들어 먹었다. 가히 순환 경제의 모범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19세기 들어 도시가 커지고 조밀해지면서 뒤뜰에 있던 퇴비더미와 분뇨구덩이도 사라지고, 쓰레기 처리 문제를 두고 고민도 깊어졌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쓰레기는 주로 분뇨를 뜻했고, 그 뒤처리는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19세기 중반부터 독일 대도시에 하수도 망이 갖춰졌고,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분뇨 비 료 공장이 생기면서 인간의 배설물을 가루로 만들어 농사에 거 름으로 썼다. 합성수지가 발명되기 전만 해도 가정 쓰레기는 오 늘날 유기 폐기물이라 불리는 먹다 남은 고기와 채소, 재로 이루 어진 미세 폐기물 등이 대부분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 말 전 국민을 위한 번영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폐기물을 둘러싼 상황도 돌변했다. 급증하는 쓰레기는 도시계획가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합성수지의 대중화 는 처음으로 포장재 쓰레기라는 현상을 초래했다. 이에 도시 당국은 대형 쓰레기차를 투입하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정용 쓰레 기통을 늘리고 쓰레기 소각을 통해 폐기물을 발전소와 공장 원 료로 사용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다시 말해 지하수로 스며든 유해물질이 유독가스를 발생시킬 수 있어 오래된 광산 등지에 폐기물을 쏟아버리면 위험함을 이미 깨달은 것이다. 플라스틱 덕분에 쓰레기는 여기저기서 탐내는 재화가 되었다. 지난날 가연 물, 분뇨, 재, 깨진 조각, 헌 옷 등에 국한되었던 쓰레기가 이제는 인기 좋은 연료가 된 것이다. 현재까지의 상황은 그렇다.
- 집에서 요구르트 용기를 깨끗이 세척하고(폐기물 수거 규정에 따라 "잔여물을 없애고",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내용물을 완전히 비우 고), 플라스틱병을 노란 비닐봉투에 담아 배출할 때 우리는 그렇 게 버린 플라스틱 컵에서 수많은 작은 플라스틱 컵이 새로 태어 나리라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플라스틱의 경우-유리를 재생 하는 오래된 방법을 일컫는 '재료 리사이클링'이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드는 데다 연료로서의 수요도 높은 편이다. 현재 사용되는 포장재는 재료 리사이클링이 어려운데 (이 자리를 빌려 테트라팩을 발명한 라우싱 씨에게 인사드린다) 다양한 재료가 섞여 있고 이렇게 혼합 성분이 많을수록 재분리 작업도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플라스틱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근대의 발명품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벗어날 길은 없을까?
- 기후변화에 맞서서 개개인이 취할 수 있는 단연 효과적인 조치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에 따르면, 식단의 변화다. 고기를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예전 식습 관으로 돌아가 고기 섭취량을 줄이되, 고기를 먹을 때는 되도록 야생동물을 먹자고 약속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크랜베리 와 붉은 양배추를 듬뿍 곁들여서 일요일 하루만 먹는 것이다. 적 어도 야생동물들은 인간에게 잡아먹히기 전까지는 삶이란 것을 느껴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닭과 칠면조, 소, 송아지, 돼지는 대 부분 그런 행운조차 누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 미세먼지가 이토록 위험한 까닭은 무엇일까? 독일 울름 폐질환센터의 저명한 호흡기내과 의사 미하엘 바르초크Michael Barczok는 이렇게 설명한다.
미세먼지 입자는 워낙 작아서 코와 기도 등에서 유해물질을 막 아주는 일반적인 필터를 쉽게 통과한다. 폐포의 벽도 미세먼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얇은 막을 쉽게 뚫은 미세먼지 입자는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뒤쪽 혈관으로 들어간 다. 혈액에 스며든 입자는 무임승차자처럼 몸속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혈관 벽에 달라붙는다. 거기서 서서히 염증을 유발하고, 염 증 부위 주변으로 콜레스테롤 결정체가 쌓이면서 혈관이 서서히 좁아진다.
- 바르초크에 따르면 몇 년 전만 해도 이 같은 원리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대도시에서 스모그가 심해지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사망자 수가 급증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들 어리둥절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연구를 통해 심장 및 혈액순환 관련 질병과 미세먼지 사이의 연관성이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 미세먼지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름 0.1μm 미만인 초미세먼지 다. 바르초크는 검댕처럼 잘 알려진 유해물질이 공기 중에 떠 있 을 때 미세먼지가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을 언급한다. 이는 미세 먼지가 더 큰 입자들과 결합해 덩어리를 이루기 때문이다. 바르 초크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코와 기관지에 있는 필터 시스템은 이런 큼직한 유해물질에 대처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예전에 채석장이나 광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저녁에 집에 오면 크게 기침을 하고 코를 풀 어 새카만 콧물이 빠져나오게 했다. 우리 몸에는 그런 유해물질 을 막아주고 재배출하는 놀라운 시스템이 있다. 다만 초미세먼지 는 너무 작은 탓에 이런 필터마저 모조리 통과하는데, 일시에 쏟 아지는 운석처럼 폐포까지 돌진해 장기 내부에 쌓이면서 비로소 그 움직임을 멈춘다.
- 초미세먼지는 앞서 말한 심장 및 혈관 질환을 비롯해 암과 치매,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및 폐암 같은 중증 폐 질환 등 우리 가 겪는 문명병의 주범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우리 몸이 비소, 납, 카드뮴 같은 물질의 지속적인 침투에 대항할 때 이것이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연구가 이 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미세먼지에 노출되면서 우리가 체내의 비상사태, 즉 신체가 침입자에 저항하며 일으키는 자잘한 염증들과 싸워나가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해결책이 있을까?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미세먼지 노출은 '완전히 피하기 힘든 환경위험'으로 분류된다. 이는 명명백백한 사실로, 나처럼 차량 통행이 잦은 도로변에 사는 사람들은 나쁜 공기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히 국가와 도시 지자체 에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정말이지 이제부터 제대로 기후 보호 정책을 펼치고자 한다 면 경제와 사회 전반은 물론 우리 일상의 혁명적 변화가 필수적 이다. 생태학적 의제들이 갑자기 유권자들에게 큰 비용을 청구 한다면, 그 무수한 변화를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낼 수 있을까? 세계의 구원이라는 더 큰 선을 위해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얼마 나 포기할 수 있을까? '비상' 얼마나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훼 손해야 할까? 또 비상 상황이 언제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일 까? 1960년대 독일 대학생들은 비상사태에 반대하며 길거리 로 나섰는데, 지금이야말로 비상사태가 필요한 때이다. 여기서 고려할 점은 두 가지다. 첫째, 비상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개인의 자유권 침해도 커진다. 둘째, "비상시에는 법이 따로 없다”는 명 언대로 시민의 인권을 박탈하고자 일부러 비상사태를 선포한 독 재 정부도 있었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싸우는 자들은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으며, 공포가 퍼지면 누구나 쉽게 밟혀 죽는 법이다. 팔렌다 철학신학대학의 교수인 내 친구 프란치스쿠스 폰 헤레만Franziskus von Heeremann은 최근 이런 말을 들려줬다.
위기의 시대에는 전문가의 독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일단 외형상 민주주의가 완성되면 우 월한 위치를 차지한 전문가 집단에서는 시종일관 위기를 찾아내 려 할 것이고 이에 맞선 저항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네.
- 대도시의 고소득 부르주아지들이 교육 수준이 낮고 일상에서 기후 보호에 소극적인 서민층을 업신여기는 현상은 이미 진 행 중인 사회적 냉담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고소득 대졸자들은 녹색 양심에 더욱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폐 기물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만 보고도 그 집 사람들의 소득 수준을 알아맞힌다고 한 다. 부자들은 주로 신선 식품을 구매하는 반면 빈곤층이 내다 버 리는 쓰레기는 포장재투성이라는 것이다.
- 그런데 녹색당을 찍는 도시 엘리트층은 도덕적 이중잣대에 빠져 심리학에서 '셀프 라이선싱self-licensing'이라 하는 '도덕적 자기합리화'에 나선다. 녹색당에 표를 주고 유기농 마켓에서 공 정무역 제품만 구매함으로써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스키 휴가 를 떠나는 자기 행동을 정당화한다. 녹색당 지지자들이 비행기 를 가장 많이 탄다는 통계에는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왜냐하 면 평균 이상의 교육을 받은 이들은 고연봉을 받으며 직업상 비 행기를 탈 일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속에는 앨 고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 셀프 라이선싱 현상을 두고서 여러 흥미로운 연구가 이루어 졌다. 이를테면 녹색당이나 좌파 정당에 표를 주는 유권자 중에 자선 목적으로 기부하는 비율이 낮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투표 시 옳은 선택을 했으니 이미 사회에 좋은 일을 했다고 믿기 때문 이다. 비행기를 자주 타는 녹색당 지지자가 '나는 녹색당을 찍으 니까 그래도 괜찮아'라고 변명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또 《실 험사회심리학 저널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에 실린 논 문에 따르면 도덕적 자기합리화에 빠진 사람은 일상에서 자기 도 모르게 자신의 가치관을 무력화시킨다. 예를 들어 백인 실 험 대상자들은 자신이 흑인 대통령에 투표한 것을 직장 내에서 흑인 차별을 묵인하는 허가증으로 여기는 무의식적 경향을 보였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계로 미리보는 핵심키워드 7  (0) 2024.01.31
글로벌 그린 뉴딜  (1) 2024.01.11
육두구의 저주  (1) 2023.12.24
최소한의 중동수업  (2) 2023.12.16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3) 2023.11.21
Posted by dalai
,

육두구의 저주

사회 2023. 12. 24. 09:20

- 반다 대학살이 자행될 무렵, 그리고 피쿼 트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출간한 책 《성전에 관한 광고(An Advertisement Touching an Holy War)>에서 베이컨은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에 의한 특정 집단의 존재 말살이 왜 합법적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소상히 늘어 놓았다. "일부 국가에서 민법에 의해 불법화되고 금지된 특정인이 존재하 듯 자연의 법 및 여러 국가의 법에 의해, 또는 하나님의 계명에 의해 불법 화되거나 금지된 국가들도 있게 마련이다." 베이컨의 주장에 따르면, 이 런 방탕한 국가는 기실 국가도 아니요, 그저 자연법칙에 비추어볼 때 완 전히 뒤떨어진 "불온한 사람들의 떼거리" 일 따름이다. 그런 연유로 “시민 정신이 투철하고 치안이 잘 갖춰진 국가가 ............ 그들을 이 지구상에서 제 거하는 것은 합법적일뿐더러 신의 뜻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16 이 교리는 18세기 말엽 국제법을 성문화한 스위스 법학자 에메르 드 바텔 (Emer de Vattel: 1714~1767)에 의해 공식화되었다. 그는 "그와 같은 야만적인 민족을 처벌하고, 심지어 말살하는 목적을 함께하는 데에서 각국은 정당하다" 고 판결했다.
이 주장은 사실상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에게 그들 눈에 잘못되었거나 괴물처럼 보이는 민족을 공격하고 말살할 수 있는 천부적 권리를 부여했 다.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와 마커스 레디커(Marcus Rediker)는 이렇게 주장했다. "제노사이드와 신성이 교차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결정적 생 각'에 힘입은 결과였다. 따라서 성전(聖戰)에 대한 베이컨의 광고는 여러 유형의 제노사이드를 촉구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성경>과 고대의 고 전적 풍습에서 승인을 구하는 제노사이드 말이다."
베이컨의 추론은 고풍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오늘날까지도 줄곧 제국의 작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근본적으로 그는 잘 통치되는 국가(즉 "시민정신이 투철하고 치안이 잘 갖춰진 국가)는 “뒤떨어지고" "자연의 법 및 여러 국가의 법을 위반하는 국가들을 침략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 를 가진다고 주장한 셈이다. 물론 이것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al interventionism)'의 근본 교리로서, 최근 수십 년간 서구 열강이 일으킨 '선 택에 의한 전쟁(war of choice)'을 정당화하기 위해 누차 언급되곤 했다.
- 이름 바꾸기(renaming)는 식민지 개척자들이 제가 정복한 풍경의 옛 의 미를 지우는 중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였다.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들 은 피쿼트족을 말살한 직후, 존 메이슨의 말마따나 “그들을 떠오르게 하 는 것을 지상에서 차단하는 작업에 전념했다. 이를 위해 코네티컷주 총 회(General Assembly of Connecticut)는 생존자들이 스스로를 피쿼트라고 부르는 행위를 불허하기로, 피쿼트강을 템스강(Thames)으로 바꿔 부르기로, 그리고 피쿼트라고 알려진 마을을 뉴런던(New London)으로 개칭하기로 결정했다. 뉴런던으로의 개칭과 관련해 입법가들은 "친애하는 우리 고국 의 주요 도시를 추억하기 위해서"라고 선언했다.
이 같은 이름 바꾸기 행위에서 형용사 '뉴(new)'는 이례적일 정도의 의 미론적·상징적 폭력과 함께 쓰이기에 이른다. 이것은 과거를 지움으로써 백지상태(tabula rasa)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모종의 장소("친애 하는 우리 고국")에서 가져온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다.
- 지구가 1세기 반 동안 냉각을 겪어왔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익히 알려 진 사실이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중반까지 절정을 이룬 이 시기는 흔 히 '소빙기(Little Ice Age)'라고 불린다. 그 시기에 대기 중 탄소 농도가 급 격하게 하락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 현상 (anomalies)은 일반적으로 태양 활동이나 지진 활동의 변동 같은 '자연적 요인 탓으로 간주되었다. 그 이상 현상은 유럽이 북·남미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단단히 죄고 있을 때 일어났는데, 이 사실은 오랫동안 그저 우연 의 결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또 다른 가능성을 암시한 다. 즉, 유럽의 살육으로 시작된 북·남미의 재앙에 가까운 인구 감소가 소빙기의 전 지구적 평균 기온 하락에 얼마간 기여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말이다.  16세기와 17세기에 너무나 많은 아메리카 인디언-추 정치는 두 대륙 인구의 약 70~95퍼센트까지 조금씩 차이가 난다-이 숨 져서 한때 식량 재배 용도로 쓰이던 방대한 경작지가 숲으로 되돌아갔다. [이것이 바로 남미와 중미의 정글에서 아직까지도 도시와 사원 단지(temple complexes) 가 발굴되는 이유다.) 15 북·남미 대륙에서 갑작스럽게 푸른 나무가 늘어나자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격리되고, 그에 따라 전 지구 차원의 평균 기온 하락에 기여한 역온실가스 효과가 생겨났다는 가설이 있다.
이 가설은 결코 입증된 적이 없다. 16 하지만 만약 소빙기가 부분적으로나마 인간 활동에 의해 야기된 게 사실이라면, 이는 인류가 기후 변화를 유발한 우리 시대와 17세기 간의 또 한 가지 연관성을 규명하는 것일 수 도 있다.
-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펜 (Elizabeth Fenn)은 상(1999년 루이스 펠저 기념상 (Louis Pelzer Memorial Award)-옮긴이)을 받은 논문 <18세기 북미의 생물전 (Biological Warfare in Eighteenth-Century North America)>에서 애머스트와 부 켓 간의 서신 교환은 이례적인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다른 전쟁터들에서 나온 증거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천연두가 18세기 말의 전쟁에서 비록 불규칙적이긴 하나 확고한 위상을 차지한다고 믿었다." 펜은 전쟁 무기로서 천연두의 전파는 또 다른 이점, 즉 "가해자의 신원과 의도를 분명 하게 밝힐 수 있는 강간, 약탈, 기타 잔혹 행위와 달리, 관련 사실을 부인 할 수 있는 이점”을 지녔다고 덧붙였다. 영국인이 질병을 이용한 대상에 는 아메리카 원주민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들은 독립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백인 미국인을 상대로도 이 같은 형태의 전쟁 방식을 써먹었다.43 19세기에 백인 정착민은 때로 천연두와 우두 유리병(그들은 이것을 예방접 종을 위해 지니고 다녔다)을 그야말로 무기로 활용하곤 했다. 1805년 이후, 그 와 관련한 사례가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대(Lewis and Clark expedition)'에 대해 출판한 글에 등장한다. "수족(Sioux)은 봄에 우릴 죽일 계획을 세웠지만, 우리는 천연두를 퍼뜨리겠다고 위협하며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강조함으로써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때로 질병은 다른 방식 으로 확산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토착민을 야영지에 몰아넣으면 그곳에 서 치명률이 치솟았다. 그게 아니면 정착민 공동체가 이웃 원주민의 치료 를 보류하고 '자연'이 제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이것은 북·남미 에서 수 세기 동안 이어진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정부 기관들이 토착민에게 제공하곤 하는 표준 이하의 의료와 불충분한 영양은 그 자체로 '보류'의 한 형태다. 이는 직접적인 행동(action)을 통해 생명을 위협하 는게 아니라 무행동(inaction)을 통해 생명을 위태롭게 만든다.
- 테라포밍 프로젝트는 반다제도의 정복자들이 그곳을 바라본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세계를 규정한다. 그것은 세계를 자원으로 바라보는 틀 짓기로 써, 그 틀 속에서 풍경(또는 행성)은 공장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며,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자 싸구려로 여겨진다!
원칙적으로는 어떤 특정 영토를 자원으로 삼는다고 해서 그것이 그의 미나 생산성 면에서 고갈로 이어질 이유는 딱히 없다. 어쨌거나 수단과 목적을 일치시키면서 영토를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세계를 자원으로 바라보는 시각 에는 그 세계를 마구 집어삼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불안정성이 내포되 어 있는 듯하다. 이것이 정확히 말루쿠에서 일어난 사태다. 네덜란드 동 인도회사의 관리들은 그 지역에서 야심을 충족하고 난 뒤에조차 자신들 의 향신료 독점에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 여기에는 모종의 불가피성이 존재했다. 일단 육두구 · 메이스 그리고 정향의 공급이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해지자, 가치의 역설(paradox of value: 물은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재화이지만 가격이 매우 싼 데 반해 다이아몬드는 없어도 무방 하지만 가격이 매우 비싼 경우에서 보듯이, 가격과 효용의 괴리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옮긴이)로 인해 그것을 정당한 권리인 양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향신료가 더 이상 희귀하지 않게 되면서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일단 향신 료가 멀리 떨어진 마법적인 지역에서 비롯되는 매혹이 아니라 '열등한 종 족'이 살아가는 식민지와 연결되자, 향신료의 유래 역시 그 이미지에 이 롭게 작용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들의 취향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성생활에 대 한 우려는 몸을 지나치게 자극하고 '혼자의 악덕(solitary vice: 자위행위-옮 긴이)'에 기울게 만드는 것으로 여겨지는 식이 품목을 멀리하도록 이끌었다. 시인 셸리는 향신료 무역뿐 아니라 향신료 자체도 인체와 국가의 도덕성에 해롭다"고 맹비난했다. 한때 향신료 식품을 즐기던 상류층 유럽 인이 이제 자극적이지 않은 요리법에 자부심을 느끼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향신료의 가치 하락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크나큰 근심의 원천이었 던지라 그들은 여러 가지 조치로 그 상황에 대처했다. 그중 하나가 절멸 운동이었는데, 이번에는 사람이 아니라 나무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 들을 말루쿠로오도록 이끈 바로 그 나무 말이다. 세계 시장의 향신료 공 급을 제한하기 위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법령을 통해서 육두구나무는 오로지 반다제도에서만, 정향나무는 오직 암본섬에서만 키우도록 명령했 다. 다른 모든 섬 - 말루쿠에는 1000개가 넘는 섬이 있었다에서 자라 는 정향나무와 육두구나무는 제거될 처지였다. 이렇게 해서 절멸, 즉 제거(엑스터패티(exterpatie)] 정책이 시행되었다. 그에 따라 수세기 동안 정향 무역의 중심지이던 테르나테섬의 술탄(Sultan: 왕-옮긴이)은 1652년 조약에 강제 서명하고 그 섬에 있는 모든 정향나무를 잘라내겠다고 약조했다. 육두구와 마찬가지로 정향도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의 담지체가 되 었다. 자원의 저주는 이후 수세기 동안 지구의 상당 지역을 휩쓰는 고통 의 원천으로 떠올랐다.
- 상품들 가운데 '자원'으로 간주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으로는 우리가 '화 석 연료'라고 부르는 원시림의 압축적 잔존물을 따를 만한 게 없다. 이 는 상당 부분 화석 연료가 양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그것이 에너지를 생산 하기 때문에 이례적이리만치 목록화(enumeration)하기 쉽다는 특징 덕분 이다. 특정 양의 석탄·석유·천연가스로 정확히 얼마만큼의 전력을 생산 할 것인지는 더없이 정밀하게 결정할 수 있다. 그만큼을 생산할 때 정확 히 얼마만큼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될지도 그와 마찬가지의 정밀도로 계산 해낼 수 있다. 더군다나 비슷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도 동일한 전력량만큼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려져 있다. 과학이 온실가스가 의심할 나위 없이 인간에게 끔찍한 위협을 제기한다는 사실을 입증했으 므로, (나에게, 그리고 이 위협에 대해 우려하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 가능한 한 가장 긴박하게 화석 연료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원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은 달성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 같은 전환으로 가는 수많은 경로가 잘 정리되어 있으며, 오늘날 재생 가능 원 천에서 얻는 에너지는 전 지구적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당폭 줄이고자 하 는 세계의 필요를 충족하고도 남는다는 사실 역시 더없이 명확하다. 그러 한 전환은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할 뿐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 창출 같은 다른 많은 이점을 안겨줄 수 있다. 그것이 지구 친화적인 새로운 산업혁 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같은 전환을 향한 진보가 고통스러우리만치 더 디고 일정하지 않다는 현실이 남아 있다. 실제로 새 천년의 처음 20년 동 안 화석 연료의 소비는 기후 위기가 요청하는 방향과 달리 감소하는 게 아니라 되레 (이따금 일시적으로 하락할 뿐) 꾸준히 증가해왔다. 큰 폭의 감소 가 이루어진 것은 2020년에 이르러서였는데, 이러한 하락도 정책이나 경 제적 고려 때문이 아니라 무한한 가이아 내에 자리한 외딴 요새의 숲가 장자리에서 발원한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 분명 세계는 화석 연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좀더 환경친화적인 (greener)' 경제로 전환하고자 하는 숱한 동기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그 길로 나아가는 일은 왜 그토록 더디고 지난할까?
수많은 중요한 사상가들은 세계의 미래에 더없이 중요한 이 질문을 본 격적으로 상세히 다루어왔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답변은 경제 제도, 특히 자본주의와 이윤 동기를 가리키는 경향이 있다. 즉, 화석 연료로부터 막 대한 이득을 거머쥐는 소수의 기업과 개인이 비록 세계의 파괴를 수반한 다 할지라도 자신들이 계속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덜 탄소 집약적인 경제 로의 전환을 가로막기로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나오미 오레스케스(Naomi Oreskes), 에릭 콘웨이(Erik Conway), 마이클 C. 만(Michael C. Mann)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에너지 기업들이 기후 변화에 관한 과학 연구를 약화하기 위해 막강한 재정적·정치적 힘을 휘둘러왔음을 보여주었다. 너새니얼 리치(Nathaniel Rich)도 그와 유사하게, 미국의 환경 운동이 점차 강력해지 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석유 기업들은 정치적 힘을 이용해 미국 정 부가 화석 연료 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정책을 채택하지 못하도록 막았음을 밝혀냈다.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제는 특 히 신자유주의로 구체화한 세계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 그 녀를 비롯한 많은 이가 자유 시장은 그 자체에 맡겨놓으면 결코 재생 가 능 에너지의 채택을 합심해서 추진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 즉, 화석 연료의 이익은 거대 석유 기업(Big Oil)과 거대 석탄 기업 (Big Coal)이 그러한 변화에 저항하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를 만들어낼 만 큼 너무나 막대하다.
-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으며 근거도 충분하다. 자본주의와 신자유 주의가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막강한 걸림돌이라는 사실이 내 마음속 에서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내게는 오로지 경제에만 주목 하면 쉽게 목록화할 수도 수량화할 수도 없는지라 확인하기 어려운 또 한 가지 분명한 에너지 전환의 장애물을 간과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분명 하다. 이러한 장애물을 인식하려면 화석 연료를 원칙적으로 에너지를 생 산하는 다른 자원들과 유사한 자원으로 간주하는 틀에서 빠져나와야 한 다. 다시 말해, 화석 연료가 생산하는 1킬로와트를 태양전지판이나 풍차 가 생성하는 동일한 양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속성에 대해 따져볼 필요 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화석 연료가 오늘날 삶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것은 비단 화석 연료가 에너지를 생산해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화석 연료로 생산한 에너지가 그에 특유한 방식으로 권력 구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그들의 불가사의한 생명력이 놓여 있다.
- 19세기에 화석 연료가 다른 에너지원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까닭은 정확 히 그것이 권력 구조를 강화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역 사가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의 연구를 살펴보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산업혁명에 관한 표준적인 내러티브-1776년 제임스 와트 (James Watt)가 석탄 화력으로 삼는 증기 기관차를 발명함으로써 영국에 서 탄소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했다가 전혀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었 다. 산업혁명의 상당 기간 동안, 물은 여전히 영국과 미국에서 주요 에너 지원으로 남아 있었다.
- 19세기 초엽 석탄화력 제분소가 물로 움직이는 그 경쟁자들을 서서히 몰아내기 시작한 이유는 석탄이 더 저렴하고 한층 효율적이어서가 아니 었다. 물을 동력으로 삼는 제분소는 석탄화력 제분소만큼이나 생산적이 었고, 운영 비용은 그보다 훨씬 더 낮았다. 증기로 움직이는 기계들이 득 세한 까닭은 기술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 사회적인 이유에서였다. 이를테 면 석탄화력 제분소는 그 소유주들에게 인구 밀도가 높고 값싼 노동력 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에 그들의 공장을 세울 수 있도록 해주었 다. 말름은 이렇게 말했다. "증기 기관은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잉여의 부 를 추출할 수 있는 빼어난 도구였다. 물레바퀴와 달리 거의 어디에든 설 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석유의 물질적 특징은 그것이 권력 구조를 강화하는 능력에서 석탄을 한층 능가하도록 만들어준다. 지배 계급이 보기에 석탄은 한 가지 중대한 결점을 지니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석탄은 다수의 광부가 추출해야 하 는데, 이는 그들이 급진화하기 십상인 조건에서 작업한다는 의미다. 이 게 바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광부들이 세계 노동 운동의 선봉에 섰 던 이유다. 티머시 미첼(Timothy Mitchell)이 보여주었다시피, 이것이 영국 계 미국인 엘리트들이 석탄 대신 석유를 세계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기로 작정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석탄과 달리 석유의 추출과 운송은 많 은 수의 인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석유는 자본이 지역에 얽매이지 않은 채 세계를 마음껏 떠돌아다니도록 허락해주었다.
- 이러한 장점은 19세기 초에조차 분명했다. 1824년 선견지명 있는 수력 공학자 로버트 톰(Robert Thom)은 스코틀랜드의 도시 그리너(Greenock)을 위한 수력 생산을 다음과 같이 지지했다. "이렇게 되면 연기를 토해내고 주변 몇 킬로미터 반경 내의 공기와 대지를 오염시키는 증기 기관이 사라 질 것이다. 그와 반대로 깨끗한 '산 개울은 쉴 새 없이 풍부하게 흘러가 면서 신선함과 건강과 활력을 가져다줄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환경론자에게 그렇듯이 톰에게도 그린(green) 에너지는 유토피아적 꿈의 대상이었는데, 결국 정확히 그게 문제였음이 드러났다. 안드레아스 말름의 연구는 증기 기관이 물을 동력으로 삼는 기계를 상대 로 승리를 거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수리권(water rights)이 공유재이므로 공장주들이 그 권리를 획득하려면 복잡한 협상에 돌입해야 했기 때문임 을 보여준다. 이러한 거래는 "증기력 사용자들에게는 전혀 필요치 않은 감정 에너지를 요구했다. 그와 달리 "엔진과 보일러를 갖춘 공장주는 사실상 아무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공장 소유주들에게 수력을 이용한 기계를 능가하는 증기 기관 의 중요한 이점 하나는, 물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그들의 에너지원-석 탄을 획득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강과 바람은 풍 경 전반에서 영구히 순환하고 있기에 그것을 일부 취해서 운반하고 사유 재산으로 저장할 수 없다. 
한마디로 증기, 그리고 그에 따라 석탄이 물을 제압한 것은 정확히 그 것이 지배 계급에 권능을 부여한 데다 그들이 선호하는 재산 체제에 한층 부합했기 때문이다.
- 또한 재생 가능 에너지의 해방적 잠재력은 더없이 중요한 국제적 차원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만약 충분한 정도로 채택된다면 오늘날의 전 세계 적 질서를 사실상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각국은 더 이상 예측 불 가능한 석유 국가들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석유 가격을 지불하기 위해 연간 예산 가운데 상당액을 따로 떼어놓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더는 멀 리 떨어진 국가들에서 일어난 혁명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이 끊길까 봐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으로, 각국은 유 조선이 통과해야 하는 해수로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 초강대국에 의존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세계가 이 같은 전망을 수용하길 그토록 꺼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러한 전개를 달가워하지 않을 법한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 사우디아라비아나 브루나이 같은 석유 국가들은 필시 전 지구적인 화 석 연료 경제의 지속에 분명한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자국 경 제가 그에 묶여 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석유는 석탄과 마찬가 지로 본래의 속성상 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국제적 권력 위계와 뒤 엉킴으로써 경제적이지도 목록화할 수도 없는 기득권을 만들어냈다. 이 는 석유가 지닌 물질성의 또 다른 측면 때문에 불거졌다. 그것이 배나 송 유관을 통해 추출 지점에서 다른 장소로 운송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 말이다. 이로부터 정향과 육두구를 둘러싸고 펼쳐진 분쟁들로 곧바로 돌 아가는 지정학적 역학이 생겨난다.
- 간단히 말해, 20세기 전반에 걸쳐 석유에 대한 접근은 세계 지정학 전략의 중요한 핵심으로 떠올랐다. 강대국에 석유의 흐름을 보장하거나 가 로막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적국의 급소를 가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20세기 상반기에 석유의 흐름을 보증한 국가는 영국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그 바통은 여러 개의 영국 해군 기지와 더불어 미국으로 넘어 갔다. 세계 에너지 흐름의 보증 수표로서 역할은 지금도 여전히 미국의 전략적 지배와 세계 패권국이라는 지위에 결정적이다.
엘리자베스 들러리(Elizabeth DeLoughrey)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점차 군사화하기에 이르렀는데, 지구상에서 최대 규모인 미 해군이 그것을 단단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역사학자 마이클 클레어(Michael Klare)의 말에 따르면, 2003년 이라크 전쟁은 미군이 "송유관, 정유소, 그리고 중동 및 기타 지역의 적재 시설을 보호하는 세계적인 석유 보호 서비스'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석유 흐름의 통제가 지니는 전략적 가치가 미국의 에너지 요구와는 별 다른 관련이 없다는 데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미군이 "세계적인 석유 보호 서비스"로 거듭난 시기는 미국이 수입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 으로 나아가던 때였다. 오늘날 미국이 화석 연료를 자급자족하고 있다는 사실은 권력 투사(projection, 投射) 도구로서 석유의 전략적 중요성을 결코 약화시키지 않았다.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니라 경쟁국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 원래 병참이라는 군사적 개념으로 쓰이던 물류(logistics)는 이제 무 역과 전쟁 간의 융합을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올려놓을 만큼 사업의 핵심 으로 떠올랐다. 물류 혁명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미국이 일구어낸 군 사적 혁신인 선적 컨테이너의 발명 덕에 시작되었다. 1950년대에 상업적 용도로 전환한 컨테이너는 이어지는 몇십 년 동안 해상 횡단 무역이 믿기 지 않을 규모로 확산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73년에 선박들은 표 준화한 컨테이너 400만 개를 운송했다. 반면 2010년에는 그 수치가 5억 6000만개로 껑충 불어났다. 오늘날 총 세계 무역의 90퍼센트, 그리고 미 국행 화물의 95퍼센트가 선박에 의존한다.
이처럼 극적인 상황 전개는 그와 마찬가지로 극적인 생산 공정의 변화 를 수반했다. 오늘날 공장들은 더 이상 한 장소를 고집하지 않으며, 지구 전역에 걸쳐 뻗어 있는 공급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에 따라 수요 변동 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물류를 분 단위로 조정한다. 선도적인 택배 회사가 “물류는 현대 경제를 가능케 하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자랑 스럽게 내세우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긴 공급망은 오늘날 경제를 붕괴에 훨씬 취약하도록 내몰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두바이(Dubai)가 개척한 모델에 뒤이은 이른바 '물류도시'를 중심으로 보안상의 필요성을 야기했다.
전형적으로 '물류 도시'는 노동력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고도로 보안이 잘된 유통 중심지다. 따라서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직후 문을 연 두바이 물류 도시(Dubai Logistics City)는 온통 보안이라는 미명 아 래 기업에는 군사화한 안전 보호막을 제공해주는 반면, 노동자에게는 최 소한의 기본권마저 보장하지 않고 있다.
- 오늘날 미 국방부는 단일 기관으로 미국에서 그리고 아마도 세계에서-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이다. 미 군부는 방대한 규모의 차 량·군함 ·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상당수는 엄청난 양의 화석 연 료를 소비한다. 비핵 항공모함은 시간당 5621갤런의 연료를 해치운다. 다 시 말해, 단 하루 동안 작은 중서부 도시의 연간 사용량에 맞먹는 연료를 써서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F-16 항공기 한 대는 단 1시간의 통상적 가 동에도 항공모함의 3분의 1, 즉 약 1700갤런의 연료를 소비한다. 만약 애 프터버너(afterburner 제트 엔진 재연소장치-옮긴이)를 쓰고 있다면 그 항공기는 시간당 항공모함보다 2.5배나 많은 대략 1만4400갤런의 연료를 사용 할 것이다. 미 공군은 F-16을 약 1000대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공군 병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전투용 탱크, 장갑차, 군용 지프 등도 다량의 연료를 필요로 한다. 이들 차량은 평화 시에도 놀고 있 지 않는다. 그중 상당수는 상시적으로 활용된다. 훈련과 유지를 위해서이 기도 하고, 900개에 이르는 미국 내 군사 시설을 타국에 있는 약 1000개 의 군사 기지 네트워크와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0년대에는 미군의 3개 부문(미군은 육군·해군·공군·해안경비대 · 해병대· 우주군 등 6개 부문으로 편제되어 있다-옮긴이)이 연간 대략 2500만 톤의 연료를 소비했다. 이 수치는 미국 총 연료 소비량의 20퍼센트를 넘고 "전 세계 국가 약 3분의 2의 상업용 에너지 소비량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이라 크 전쟁 기간에 미군은 중동의 군사 작전 하나를 위해서만 연간 13억 갤런가량의 석유를 사용했다. 이것은 인구 1억 8000만 명의 방글라데시가 연간 소비하는 양을 뛰어넘는 수치다. 이러한 활동은 다른 환경적 비용 을 낳기도 한다. 군사 장비를 가동하기 위해 희석제 · 용제 · 살충제 등 다 양한 종류의 유독성 화학 물질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방부는 "미국의 상위 5대 화학사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연간 50만 톤의 독성 폐기물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세계 주요 강대국들의 군대는 세계 에서 가장 많은 양의 유해 폐기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무기류 · 전함 · 전투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오염 물 질의 배출과 폐기물 생성은 포함하지도 않았다. 또한 군부와 관련한 또 한 가지 분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방위 산업 체의 급속한 팽창도 고려하지 않았다.
- 흔히 "군사회는 단일 요소로서 생태계를 가장 크게 파괴하는 인간 활동으로 지목되어왔다. 하지만 그 주제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그 분야의 선도적인 학자 3명이 "군국주의가 환경에 미 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사회과학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해당 분야의 연구에 몸담은 학자들 가운데 몇은 이른바 '파괴의 트레드밀(treadmill of destruction: 군사적 활동과 지출 및 사회-환경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현저한 환경 파괴를 초래하는 전 세계적 현상-옮긴이)' 사회학파에 속해 있다.  그 학파가 내놓은 일관된 연구 결과 중 하나는 “군산복합체는 물론 경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긴 하나, 그 자체의 책무를 만들어내고 그 자체의 논리를 따르는지라 결코 경제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은 그 자체로 경제의 주요 원동력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잘 굴러가도록 도와주는 보호막 구실을 한다. 이미 1992년에 참여과학자모임(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UCS)은 인 류가 전쟁 및 폭력에 자원을 소비하는 것과 파괴적인 환경 피해를 막는 데 자원을 소비하는 것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냉혹한 상황에 직 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그 보고서에는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 다수를 포함해 1700명의 과학자가 서명했다. 2017년 그 경고가 재등장했고, 이 번에는 자그마치 1만 5000명의 과학자가 서명했다. 이 보고서는 세계의 상태가 전보다 훨씬 더 악화했다고 결론 내렸다.
처음에 나온 참여과학자모임의 보고서는 상당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두 번째 보고서는 거의 묻히다시피 했다.
- 만약 코로나19 팬데믹이 어떤 분명한 메시지를 드러낸다면, 그것은 바 로 부유하든 가난하든 세계의 어느 지역도 그 지구 위기를 모면할 수 없 으리라는 점이다. 정확히 그것이 전 지구적인 데다 국경을 인식하지 못하 기 때문이다. 위기의 본질이 그러하기에 세계는 그 문제를 다루려면 숲처 럼 생각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숲처럼 생각한다(thinking like a forest)'는 시스 템적 사고(systems thinking)를 의미한다. 세계를 하나의 '복잡한 시스템(복잡계)'으로서, 즉 얽히고설킨 상호 관련 있는 생명의 그물망으로서 바라보는 사고다-옮긴이) 가장 큰 위험에 빠지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하는 데 실패하는 이들이다. 그 어떤 나 라도 자국민 모두를 구조할 만큼 구명정을 넉넉하게 보유하고 있지는 못 하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에서 안전한 피난처로 추정되는 장소는 벽으로 둘러싸인 사유지,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공동체, 그리고 초부유층만 이 소유할 수 있는 슈퍼요트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다. 정말이지 이런 피난처에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하딘의 구명 정윤리에서 최대 아이러니는 하딘 자신도 슈퍼리치들의 배에 승선할 가 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세계의 상황이 악화하기 시작하면 본인은 구명 정에 느긋하게 앉아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겠지만 말이다. 그 자신의 주 장은 필시 그를 배제하는 데 쓰일 것이다.
- 인류 대다수에 대한 유럽 식민지 지배자의 침묵시키기는 그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자연'에 대한 침묵시키기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과정이다. 따라서 식민지화는 그저 인간에 대한 지배를 확립하는 과정에 그치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한때는 행위 주체성, 의사소통 능력, 그리고 의미를 창출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던 온갖 존재-동물, 나무, 화산, 육 두구를 정복하고 그들을 침묵하도록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같은 침묵시키기는 경제 추출 과정에 더없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철학자 아킬 빌그라미(Akeel Bilgrami: 1950~. 인도 출신의 언어·정신 철학자-옮긴이)가 말한 바와 같이, 뭔가를 그저 자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기려면 “우리는 먼 저 그것을 야수로, 즉 우리에게 실제적이고 도덕적인 관심을 기울이라는 규범적 요구를 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 필요가 있다". 
- 식민지 지배자들은 노예 · 하인 상품으로 써먹기 위해 그들을 '자원'에 불과한 존재로 바꿔놓았는데, 그 작업은 다름 아니라 방대한 인간 및 비 인간 존재의 연속체를 '야수'라고 표현함으로써 가능했다. 인간뿐 아니라 이 연속체 전체는 특정 종을 멸종이나 말살로 내모는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나는 린드크비스트가 “모든 야수를 말살하라"는 문장을 제노사이드에 대한 촉구로 해석하면서 결정적 뉘앙스를 놓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커츠가 말살의 대상으로 떠올린 야수는 인간만이 아니다. 그의 주변에는 인간 말고도 동물, 정글, 그리고 풍경 그 자체 등 다른 수많은 야수가 있다.
- 누가 야수이고 누가 완전한 인간인가, 누가 의미를 만들고 누가 의미를 만들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지구 위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인류를 전 지구적 대재앙 직전까지 몰고 간 궤적을 돌아보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스스로가 처한 곤경이 실제로는 소수인 특정 부류의 인간이 다른 부류의 다수 인간을 지상에서의 존재가 그저 물질적 피조물에 그치는) 야수 라고 표현함으로써 그들을 적극적으로 침묵시킨 데 따른 결과임을 깨닫 는다. 바로 이런 가정 탓에 인류 대부분이 지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산업 화할 능력이 없다는 게 당연시되었다. 그런 착각 자체가 오늘날 전 지구 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대재앙의 중요한 일부다.
서구 국가는 만약 (그들 자체가 수많은 비서구적 관례와 기술을 채택했듯이) 세계 의 나머지 국가 역시 부국의 산업화를 가능케 한 관례를 채택할 날이 오리라고 상상했다면, 과연 그렇듯 무모한 자원 사용에 착수할 수 있었을 까? 만약 그들이 그러한 가능성을 100년 전에 인식했더라면, 아마도 그 로 인한 결과를 따져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와 20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세계를 지배한 이들 사이에서는 비서구인 대부분이 그야말로 워낙 어리석고 야만적이어서 대규모 산업 문명으로 이행할 수 없으리라는 암 묵적 가정이 퍼져 있었다. 추상적 관념에 가려진 이러한 가정은 개발학, 일부 경제학 및 사회학 분과 같은 광범위한 학문 분야를 든든히 받쳐주었 다. 그런 학문 분야에서는 빈곤을 (흔히 낡은 인종 차별적 사고로 얼룩져 있던 용어 인) '문화' 탓으로 돌렸다. 이러한 가정은 삭제할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이들 학문 분야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서구 국가들이 과거에는 가능하다고 생각지 못한 어떤 사실을 깨달은 것은 고작 20~30년밖에 되지 않은 일이다. 즉, 비서구 국가들도 얼마든지 자원 착취적, 탄소 집약적 경제를, 그리고 그에 걸맞은 모든 것, 이를 테면 과학적·기술적 연구와 특정 장르의 예술과 문학을 채택할 수 있다 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이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기본적으로 모방적 생명체이며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완벽한 능력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좀더 일찍 받아들였더라면, 아마 지속 가능성은 훨씬 더 이른 시기에 시 급한 사안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야수들이 자신은 결코 야수가 아 님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까지, 오랫동안 견지된 엘리트 가정은 그 같은 가능성을 한사코 배제해왔다.
비서구 중산층이 야수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유럽의 식민지 정복으로 시작된 야수화 과정의 반복 및 심화 때문이라는 사실이 야말로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도에서는 지난 30년 동안 숲 거주 부족들의 믿음, 관례, 그리고 생계 수단이 전에 없이 공격을 당했다.
- 정착형 식민주의자들이 토착민을 대하던 상황과 흉측하리만치 닮은꼴로서, 점점 더 많은 삼림 지역이 광산업과 여행업에 자리를 내주었다. 더러 이런 일은 생태 보호라는 미명 아래 삼림 거주자의 제거를 옹호하는 배타 적 보존주의자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자행되기도 했다. 숲 거주 부족들이 신성시하던 산은 훼손되었고, 그들의 땅은 댐 건설로 수몰되었으며, 그들 의 믿음과 의식은 '원시적 미신'바로 과거 식민지 시대의 행정가 · 과학 자·선교사들이 사용하던 용어-이라며 공격받았다. 식민지 관행의 되풀 이는 심지어 부족 아이들을 기숙학교로 옮기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그 와 비슷한 과정이 위구르족(Uighur)과 관련해 중국에서도, 그리고 파푸아인(Papuan)과 관련해 인도네시아에서도 전개 중이다.
- 여기에서 차이점은 그 같은 식민지적 야수화 과정의 모방이 수 세기에 걸쳐서가 아니라 1990년에 이은 단 몇십 년 동안 집중적으로 펼쳐졌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대기 중에 있는 온실가스의 절반이 지난 30년 동안 배 출된 것이다. 인류가 벼랑 끝으로 내몰린 까닭은 바로 전 세계가 식민지 적 추출과 소비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엄청난 가속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비인간도 과거와 달리 더는 침묵하지 않음을 명확히 해준 것이 바로 이 같은 기간의 압축이다. 다른 존재와 힘들-박테리아, 바이러스, 빙하, 숲, 제트 기류 역시 이제 침묵을 깨고 더없이 다급하게 우리 주목을 끌고 있는지라,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을 비활성 지구 요소로 취급하거나 묵살하 기 어렵게 되었다.
- 캐럴린 머천트는 그녀의 중요한 책 <자연의 죽음(The Death of Nature)》 (1980)에서 마녀에 대한 고문은, 자연을 기본적으로 여성적 무질서 영역으 로서 그 비밀을 끌어내기 위해 정복하고 예속하고 고문해야 하는 대상으 로 간주하는 과학철학의 부상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은유였다고 주장했 다.25 따라서 그녀는 많은 이들이 과학철학의 창시자로 믿고 있는 프랜시 스 베이컨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가 자신의 새로운 과학적 목적과 방법 론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한 이미지 대부분은 법정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리고 그것은 자연을 기계적 발명품에 의해 고문당해야 하는 여성으로 간 주하는지라, 마녀 고문에 쓰인 기계 장치와 마녀 재판의 심문을 강력하 게 시사한다.”26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마녀의 몸에 대한 고문(즉 '괴롭힘 (vexing)')이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개념의 출현에 결정적 은유를 제공했다 는 것이다." 이는 다시 “천연자원의 수탈을 정당화했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로벌 그린 뉴딜  (1) 2024.01.11
텀블러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  (1) 2023.12.24
최소한의 중동수업  (2) 2023.12.16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3) 2023.11.21
왜요 기후가 어떤데요?  (0) 2023.11.07
Posted by dalai
,

최소한의 중동수업

사회 2023. 12. 16. 18:33

- 중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불편한 시선
중동의 민주주의를 둘러싼 통념은 대체로 부정확할 뿐 아니라 논란 의 중심에 있다. 아랍 국가는 역사적으로 권위주의의 경향을 보였다', '이슬람은 중동 민주주의의 핵심 걸림돌이다', '여성 인권의 증진은 중 동 민주화에 필수다', '아랍의 친서구 자유주의자는 민주화의 핵심 세 력이다', '중동 민주주의는 이슬람 테러리즘의 치료제다', '미국은 중동 민주주의를 원한다', '이라크 전쟁은 중동 민주주의의 대의를 발전시켰 다' 등이 그것이다.10 무엇보다 이런 명제는 흑백논리로 설명할 수 없 다. 논리적 접근법의 출발이자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써 이들 명제의 진의를 백분율로 나타내보는 연습이 유용하다. 이 책 곳곳에서 이 통념들을 다룬다. 물론 콕 집어 백분율 숫자를 제공하지 는 않지만 독자가 사실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 하고자 한다.
- 미리 짧은 힌트를 주자면 첫째,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다수의 나라가 역사적으로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해왔다. 미국도 1964년이 돼 서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민권법을 통과시켰 다. 하지만 여전히 인종차별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며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 전 미국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배치하는 차별 발 언을 억눌린 시민의 마음이라며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둘째, 이슬람주 의 운동의 원조인 '무슬림형제단'은 부패하고 무능한 자국의 독재 타도 를 핵심 목표로 삼았고, 결성 초기에는 시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슬람주의 운동은 많은 시민에게 변혁의 희망을 안겨줬으나 냉전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 진영의 '빌런villain'에게 뿌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셋째, 중동의 여성 인권 단체 대다수가 미국과 유럽 국가의 지원을 받 는다는 이유로 토착 시민단체는 이들과 연대하는 것을 꺼린다. 권위주 의 정권은 반정부 조직 대신 이들 여성 인권 단체에 소극적인 유화책 을 제시하며 서구의 압박 앞에 체면치레하는 동시에 시민사회의 분열 을 조장한다. 넷째, 아랍의 친서구 자유주의자 세력은 대체로 강한 엘 리트주의 성향을 띠며 대중과 함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조직한 경 험이 매우 적다. 다섯째,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테러가 줄지는 않으며 테러가 빈번하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은 더욱 아니다. 민주화 이행 시기에 사회가 개방되면서 오히려 일정 기간 테러가 더 기승을 부릴 수 있다. 권위주의 체제의 통제 시스템이 테러를 막는 데 더 효과적 일 수 있다지만 집권 세력은 테러 방지라는 공익보다는 정적 감시라는 사익 추구에 전력을 쏟는다. 여섯째, 미국의 대중동 정책은 국내 권 력 지형의 산물이며 국가는 한목소리를 내는 단일 행위자가 아니다. 미국의 대외 정책은 정당과 의회를 둘러싼 정치 다이내믹의 결과물이 며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의 핵심 기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일곱째 이자 마지막으로, 2003년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정권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며 민주주의와 선거제도를 이식했다. 그러 나 전후 국가 안정화와 재건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종파주의를 동원함 으로써 일반 시민의 반미 감정을 확산시켰고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 직인 ISIS 출현에 계기를 제공했다.

- 헌팅턴의 문명충돌론과 이슬람 문명
문명충돌론에서 문명권은 중국, 일본, 힌두, 이슬람, 정교, 서구,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로 나뉜다. 이 가운데 이슬람 문명권이 서구 문명이 발전시킨 보편 가치에 가장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이슬람 문명권이 고 유 가치를 버리고 서구 보편주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제로다. 폭력을 미화하는 문화에 기반해 거대한 단일 이슬람 공동체 건설마저 추구한 다. 이슬람 문명권 내의 인구는 폭증하는데 중심을 잡을 핵심 국가가 없으니 갈등과 전쟁이 '기본값으로 따라온다. 헌팅턴은 중국 문명권 역시 서구식 보편주의를 거부하고 막강해진 경제력을 앞세워 중화주의로 뭉칠 것이라고 진단한다. 최악의 상황은 이슬람과 중국 문명권이 힘을 모아 서구 문명권이 이끄는 세계 질서에 대항함으로써 지구 평화 가 흔들릴 때라고도 했다. 헌팅턴은 서구의 오만, 이슬람의 편협, 중국 의 독단이 만나 문명이 충돌하는 최악의 조합을 매우 걱정했다. 《문명의 충돌》은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초대형 베스 트셀러다. 이 책에서 헌팅턴은 무슨 말을 가장 하고 싶었을까? 그에 따 르면 1990년대 미국의 민주당 정부가 국내외 정치에서 다양성을 장려 하며 문제를 일으켰다. 문명충돌론에서 다양성의 수용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헌팅턴은 이 책에서 당시 빌 클린턴William Jefferson Bill Clinton 정부의 대외 정책 실패를 예로 들며 보스니아 전쟁에서 순진한 이상 주의와 도덕주의, 발칸반도에 대한 무지 때문에 이슬람 문명권인 보스니아에 우호적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한다. 인류의 대재앙이었던 보스 니아 전쟁에서 서로 싸운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는 각각 이슬 람, 서구, 정교 문명권에 해당하며, 그중 보스니아 무슬림 민간인의 학 살 피해가 가장 컸다. 서구 문명권에 속하는 국가는 크로아티아를 지 원하면서 세르비아를 질책했고 보스니아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은 문명적 패턴을 따르지 않은 채 보스니아를 향해 말뿐이 긴 해도 연일 지지를 보냈다. 정작 물리적 지원은 많이 하지 않았다. 전 쟁이 깊어가던 무렵에 독일은 크로아티아에게, 러시아는 세르비아에게 평화 협상에 참여하라고 압박할 수 있었으나 미국은 보스니아와 문화 적 공통점이 부족해 특별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헌팅턴은 이 대목에 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 서구 문명이 다른 문명과 충돌하는 것은 세계 평화와 국제 질서 유지에 가장 큰 위협이 되며, 한 문명을 대표하는 핵심 국가는 다른 문명이 연루된 갈등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책의 결론 부분은 다문화 이민 사회에 사는 미국 독자에게 주는 메 시지로 가득하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는 다문화 국가가 지닌 다양성 을 내부 안정과 협력을 해치는 문제점으로 봤다. 문명충돌론은 나라의 태생적인 취약점을 극복하려면 서구 문명의 보편 가치와 규범을 확고 한국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명의 충돌은 국제 질서의 안정 은 물론 나라 안의 원활한 통치에도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문명에 기반한 국제 질서는 세계 전쟁을 막는 가장 확실한 보호 장치다. 때문 에 미국 내 질서 안정 역시 서구 문명에 기반해서 얻을 수 있다. 동화주의 이민정책인 '멜팅 팟melting pot'이 다문화주의에 기반한 '샐러드 볼 Salad bowl' 정책보다 갈등을 피해 통합 사회를 이뤄가는 데 더 효과적이다. 지역사회에 '리틀 아라비아'나 '차이나타운'이 생겨나는 건 좋은 징 조가 아니다. '프티 프랑스', '리틀 이탈리아면 몰라도.
9·11 테러 발발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른 미국이 최근 중국을 견제하려고 미중 경쟁을 주도하자 문명충돌 론의 선견지명에 무릎을 치는 사람이 늘어났다. 중동에서 분다는 친 중 바람 소식에 여기저기서 헌팅턴의 혜안이 재소환되기도 한다.

- 서구는 왜 오리엔트를 타자화하는가
《오리엔탈리즘》에 따르면 서구는 오리엔트를 단순하게 열등한 것으 로 규정하지 않는다. 서구가 오리엔트의 이미지를 묘사하면서 사용한 언어는 남성이 독점하는 땅, 잔혹함, 적대감, 증오, 기이함, 신비로움, 지 칠 줄 모르는 관능, 무한한 욕망, 하렘harem, 베일veil, 노예, 춤추는 소년 에 이른다. 《오리엔탈리즘》의 초판 표지인 장 레옹 제롬Jean Leon Gerome 의 그림에도 눈이 풀린 병사 무리 앞에서 뱀을 조련하는 알몸의 미소 년이 서 있다.
서구는 왜 오리엔트에 허구 이미지를 씌워 비하했을까? 이 책에서 서 구는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정신을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고자 오리엔트라는 야만의 세계를 타자화했다. 오리엔 트로 옥시덴트Occident의 부활을 꾀한 것이다. 유럽이 중세 암흑기에 갇혔을 때 오리엔트는 학문, 예술, 군사적으로 강력한 경쟁자였기에 두려운 상대이기도 했다. 따라서 서구 권력자가 오리엔트를 향해 집착에 가 까운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했다.
또 하나의 의문점, 왜 일반 독자는 전문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일까? 사이드에 따르면 일반인은 권위에 약하다. 오리엔탈리즘은 작 품과 작가를 인용하는 체계적 시스템인데, 사람은 낯선 대상 앞에서 방향을 잃는 것보다 이미 지적 권위를 인정받은 텍스트에 안심한다. 이 과정에서 친숙한 공간을 '우리', 낯선 공간을 '그들의 것'으로 지정하는 임의적이지만 보편적 방식을 선호한다. 오리엔탈리즘의 힘과 권력은 매 우 강렬해 과학적 일반론을 강조한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마저 오리엔트를 전제정치의 상징으로 보고 오리엔트 사람을 스스로 대표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비하했다.
-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힘의 배분 구조를 중동 분석의 핵심에 두었다는 점에서 문화의 우열을 따지는 이론보다는 더 과학적이다. 하 지만 제국주의의 폐해를 폭로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사실'보다는 념 선전과 진영 논리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한다. 나름 독창성과 설득력 을 갖추고 있음에도 감성과 당위에 치우친 구호를 앞세운다면 '진실'은 찾을 수 없다.
사이드를 추종하던 몇몇 학자는 조금 더 과학적인 분석에 집중하고 이념적 도그마의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각 나라 내부 권력의 불평등과 모순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과거의 불평등한 권력 배분 구조가 현재의 격차와 갈등으로 오롯이 이어졌다며 거대한 역사적 구조의 덫을 지나치게 강조한 채 인간의 의지와 결단을 간과했다.
인간은 이해관계와 손익 계산에 따라 주판알을 튕기며 그에 맞는 선택을 취한다. 그 배경이 중동 이슬람 세계든 서구든, 중세든 현대든 간에 상관없다. 국내외 정치 현상은 손익계산서 관점으로 바라봐야 가 장 정확하고 명쾌하게 보인다. 단 인간의 인식이 항상 완벽한 것은 아 니므로 비합리적인 행동이 종종 나타난다. 중동의 변혁과 격변을 이해 하는 데 핵심은 인간이 합리성을 바탕으로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비합리성을 자주 드러낸다는 것이다.

- 아랍에미리트의 획기적 개혁 양상
아랍에미리트는 2016년 정부 규모 축소와 젊은 여성 인재 영입을 핵 심으로 한 연합정부 개편안을 발표했는데, 알막툼 총리가 이 역시 트위 터로 알렸다. 신임 장관급 8명 가운데 22세의 청년부 장관, 29세의 과 학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해 5명이 젊은 여성이었다. 또한 아부다비 경 제부의 국장 40여 명을 젊은 인재로 교체했다. 나아가 2019년에는 연 방 평의회 의석 절반을 여성에게 할당했다. 2020년 11월에는 형법, 형 사소송법, 기업법, 가족법, 민법 등에서의 이슬람법 적용 완화 및 개인 의 자유 확대를 명시한 연방법 개정안을 발표해 사법 체계의 현대화를 꾀했다. 명예 살인과 여성 대상 범죄의 강력 처벌, 미혼 남녀의 동거 허용, 주류 면허 없이도 술 구매 허용 등의 내용이 들어갔다. 또 항공우주, 재생에너지 등 13개 산업, 122개 분야에서 외국 기업이 아랍에미리트 내에 법인 설립 시 현지 파트너 없이 지분 100%를 보유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과거에는 지분 보유 상한선이 49%였다. 이러한 변 화 결과 아랍에미리트는 국가별 혁신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인 '2020년 글로벌 혁신 지수'에서 131개국 중 34위에 랭크됐다.
아랍에미리트는 걸프협력회의 6개국 가운데 군사, 외교 안보, 경제, 사회 분야 개혁을 가장 먼저 독보적인 속도로 추진한 나라다. 2022년 대통령이 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통치자는 아랍에 미리트의 실질적 지도자로 2000년대 중반부터 능동적인 군사 안보, 투 명 외교, 산업 다각화, 개방 사회 달성을 목표로 한 국가 체질 개선에 힘써왔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는 202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총리가 된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Mohammed bin Salman Al Saud 왕세자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 2011년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민주화 시위를 유 혈 진압하자 아랍에미리트는 카다피를 응징하려는 나토(NATO, 북대서 양조약기구)의 '오디세이 새벽 작전'에 적극 참여해 미군과 나토 장성으 로부터 '작은 스파르타', '미국의 오른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행히 수니파 대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달리 대외적 위상을 고려해야 하 는 제약이 덜한 나라다. 아랍에미리트의 이러한 역량과 지위는 친미 수 니파 아랍 쿼텟Arab Quartet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이집트로 구성) 내에서도 독보적인 면모이자 이스라엘과의 협력을 추진하는 원동 력으로 작용한다. 2020년 아랍에미리트는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 을 맺고 국교를 수립해 기념비적인 '아랍-이스라엘 데탕트'를 이뤘다.

-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 '비전 2030'
아랍에미리트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빠르게 변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광폭 변화는 2016년 당시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선포한 개혁 프로젝트 '비전 2030'과 함께 시작했다. 2017년 25년 만에 대중 콘서트가 열리고 2018년에는 35년 만에 영화 상영이 재개되어 남녀가 나란히 앉아 함께 즐기는 풍경을 연출했다. 그 뿐 아니라 여성의 축구장 입장과 여성 운전도 허용됐으며, 일상 속에 서 시민의 이슬람법 준수를 감독하는 종교 경찰도 거리에서 사라졌다.
- 2019년에는 수도 리야드Riyadh에서 BTS 콘서트가 개최돼 주변국 젊은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공립 초등학교에서 여자 선생님이 3학년 남 학생을 가르치고 남자 코치가 10학년 여학생 농구팀을 지도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비전 2030이 시작되기 전에는 외국인 대상의 최첨단 초호화 호텔에 서도 꽉 막힌 보수 이슬람 문화가 만연했다. 과거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 주최의 국제 콘퍼런스가 열리는 유명 체인 호텔에 가봐도 남녀 공용 헬스클럽은 물론, 여성전용 피트니스 센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으 리으리한 남성용 헬스장과 선명하게 비교됐다. 호텔 서비스 담당은 여 성 인권과 국제 규범까지 들먹이며 항의하는 외국인 여성 학자에게 러 닝머신을 호텔 방으로 직접 배달해줬다. 괴상하고 요란한 해결책이었 다. 많은 외국인 여성이 방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객실 한가운데에 놓 인 러닝머신에서 열심히 뛰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기업이자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 코Aramco의 주식 상장이 최초로 이뤄졌다. 개혁 프로젝트의 재원 마련 을 위해서였다. 정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관광 비자 시스템을 도입했으 며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첫 여성 대사가 임명됐다. 2021년 여성의 경 제활동 참가율이 32.4%를 기록하며 4년 전보다 두 배 증가했다. 항구도시 제다Jedda에서는 홍해 국제영화제가 열렸고 최첨단 친환경 미래 도시 '네옴Ncom' 프로젝트에 탄소 제로 지역의 건설 계획이 추가됐 다. 네옴 프로젝트는 홍해 지역에 친환경 에너지로만 운영하는 도시를 짓는 계획인데 그 면적이 서울 면적의 44배로 이웃 나라인 쿠웨이트 나 이스라엘보다도 크다. 네옴 안에는 주거용 메가 단지인 '더 라인The Line', 해상 첨단산업단지인 '옥사곤0xagon', 산악 관광단지인 '트로제나 Trojena', 휴양지인 '신달라Sindalah'가 들어서며 하늘을 나는 에어 택시 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는 국 제우주정거장에서 우주 비행 임무를 수행할 첫 여성 우주인을 임명 했다.

- 재정 위기와 청년 세대 변화에 따른 선택
두 나라의 이례적인 개혁 행보의 배경에는 2010년대 중반부터 이어 진 저유가 시대가 촉발한 재정 위기가 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은 최 첨단 공법을 이용해 셰일shale에서 원유를 생산하는 '셰일 혁명'을 일으 켰다. 재정의 80% 이상을 석유와 가스 자원 수출로 충당해온 걸프 산 유국에 천연자원 시장의 지각 변동은 치명타였다. 미국발 셰일 혁명은 외부 충격에 속수무책으로 취약한 자원 부국의 저주를 불러냈다. 14 단 기적인 수익성에 치중한 단일 산업에 주력함으로써 외부 의존도가 높 은 경제구조를 지닌 불로소득 국가는 유가 변동과 국제금융시장의 위 기와 같은 대외 충격에 취약하다.
- 비오펙(OPEC, 석유수출국기구) 국가가 오펙 회원국의 원유 생산량 을 앞지르자 회원국 중 최대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증산으로 원 유 시장의 주도권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난립하던 셰일 업체는 치열 한 시장 논리에 맞춰 오히려 경쟁력을 키웠고 저유가 기조는 계속됐다. 2018년에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에 올랐고 2019년에는 원유 수출국이 됐다. 결국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를 비롯한 오펙 회원국은 적자의 긴 터널로 들어갔고 재정수지와 실질 성장률의 하락을 쓰라리게 경험했다. 무상 의료, 무상교육, 저가 주택 공급, 보조금 지급 등 대규모 복지 정책으로 유지하던 통치 권위가 흔 들렸다. '납세 없이 투표권 없다'의 통치 기반마저 전례 없는 재정 위기 앞에 재고해야 했다.
게다가 갑자기 덮친 코로나19 팬데믹 앞에서 걸프 산유국은 석유 의존 경제의 취약성을 다시금 절감했다. 이들 나라는 미국의 셰일 에너지자원 개발 이전부터 석유 자원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탈석 유 시대를 대비했으나 외부의 변화가 더 빨랐다. 코로나19 시기 동안 걸프 산유국은 초유의 저유가 사태로 이중고를 겪었다. 전 세계가 국경 폐쇄와 통행 제한을 시행하고 공장 문을 닫았다. 원유와 천연가스 수 요 절벽으로 유가가 급락했고 추락을 거듭하던 유가는 마이너스를 기 록하기도 했다. 자원 의존율이 낮은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듯했으나 물류와 관광허브화에 '올인' 한 두바이 역시 직 격탄을 맞았다. 이러한 충격은 이웃한 비산유국으로 이어졌다. 걸프 산 유국에서 일하는 이집트, 레바논, 요르단, 모로코 출신 노동자들이 월 급을 자국으로 제때 송금하지 못하면서다. 산유국발 송금은 이들 비산 유국 경제에 큰 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러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 나를 침공하자 유가가 고공 행진했다. 고유가로 국고는 두둑해졌으나 산유국은 자원 의존 경제의 불안정을 다시 한번 각인했다.
- 이웃 국가의 독재 정권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민주화 혁명에 위협을 느낀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산유 왕정은 청년층의 여론을 정책에 반영해 화답의 제스처를 보이고자 했다. 정치적 롤러코스터를 지켜본 중동의 위정자는 정권 생존의 위기를 미리 방지하고자 젊은 세 대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는 등 심적 압박에 시달린다. 이들 걸프 산유 왕정의 과감한 개혁이 아랍의 봄 혁명의 성공이라는 평가도 있다. 무 함마드 빈 자이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통치자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공식 연설에서 자국 청년을 향한 찬사를 빼 놓지 않는다.
산업화 단계를 거친 사회에서 전통적 권위는 힘을 잃고 자기표현의 자유를 향한 합리적 욕구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 디아라비아의 국가 체질 개선 프로젝트는 되돌릴 수 없는 티핑 포인트 를 넘어섰다. 바로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청년 세대의 변화 때 문이다. 개혁의 속도가 빠르다는 우려가 있으나 이미 맹렬한 기세로 진 입한 경로에서 빠져나오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 무엇보다 아랍에미리 트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처한 여러 위기를 타개할 옵션이 빠른 개혁 외 에는 없다. 그리고 이들 국가의 개혁 질주는 젊은 세대의 전폭적인 지 지를 받고 있다. 청년층이 납세와 보조금 삭감까지 감수하면서 개혁을 지지한다니 기대해볼 만하다.

-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추진
1985년생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살아 있는 '절대 권력'이 된 무함 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중동에서 개혁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왕 세자의 주도로 석유 의존 경제의 위기 도래와 청년 세대의 인식 변화 에 맞춰 산업의 다각화와 개방 사회를 목표로 과감한 개혁이 숨 가쁘 게 진행되고 있다. 왕세자는 시민의 이슬람법 준수를 단속한다며 무소 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5천여 명에 달하는 종교 경찰을 거리에서 사라지게 했다. 여성의 운전과 축구장 입장, 남녀 혼석, 영화 상영과 콘서 트 개최를 허용하고 태형을 금지했으며 사형제 폐지를 논의했다. 새로 운 국영방송에서는 동성애 주제를 다루고 데이트 앱에 대한 금지도 풀 었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세금을 걷었고 보조금 제도를 없앴다. 왕세 자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네옴 프로젝트 발주에 전 세계가 앞다퉈 경 쟁에 나섰다.
해외 유학파가 다수인 왕실 유력층과 달리 베두인 부족 출신 엄마 를 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자국에서 이슬람법을 전공했다. 이 런 배경 덕분에 왕세자는 개혁과 열린사회에 반발하는 강경 이슬람주 의의 와하비Wahhabi 세력을 대거 숙청하고 이슬람 정책을 밀어붙 일 수 있었다. 왕세자는 와하비즘Wahhabism의 이슬람 해석이 크게 왜곡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도 무관하다고 선언했다. 와하비 세력은 건국 초기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과 연합해 왕실을 향한 순응이 이슬람 의 실천이라는 지배 담론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점차 비대해진 와하비 세력은 급진화되더니 알카에다를 조직해 9.11 테러를 일으켰다. 이 테 러를 벌인 알카에다 대원 19명 중 15명이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었다. 물론 왕세자의 출신 배경 외에 그의 젊은 나이도 획기적인 개혁 추진 을 가능케 한 요소였다. 왕세자는 자신을 포함해 전체 인구의 70%에 이르는 청년층이 보수 이슬람 체제에 지쳤다며 자신을 향한 비판은 청 년의 미래를 막는 것이라고 공포했다. 지난 40여 년간 왕세제는 70대였 고 가장 젊은 왕세자라 해봐야 50대였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 실세의 개혁과 관련해 유독 국내 사회·경제 부문만 집중 조명을 받았다. 사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대외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도 천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팽창주의와 미국의 역내 역할 축소 선언으로 안보 위기를 맞았 다. 러시아의 영향력 부상, 미중 경쟁의 심화도 지정학적 불안정을 선 명하게 만들었다. 대외 정책 환경의 변화 속도가 저유가에 따른 재정 압박보다 훨씬 빨랐다. 왕세자는 투명하고 다양한 외교 안보 처방을 선 언했다. 친미 밀실 외교를 고집해온 사우디아라비아로선 파격적 일탈 이다.
-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를 '무슬림 혼인'에 비유하는 것을 즐긴다. 미국과 이혼하지 않고도 다른 세 명과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다는 말이다.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오펙 산유국인 러시아와 함께 '오펙플러스OPEC+' 구성을 결정했다. 셰일 혁명에 성공한 후 세계 원유 시장에서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른 미국을 겨냥한 결정이었다. 물론 오펙 플러스 내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와 러시아는 종종 충돌했으나 오펙 플러스의 출범은 단연 사우디아라 비아 외교의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2017년에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Salman bin Abdulaziz Al Saud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왕국 수립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해 지대공미사일 시스템인 'S-400' 구매를 약속했다. 그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계산이었는데, 이때 구입하기로 한 러시아 무기는 미국의 사드 옆에 배치된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국제사회는 이를 규탄했고 많은 나 라가 미국 주도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는 미국이 요청한 제재 참여와 원유 증산을 거절했다.
무슬림 혼인에 빗댄 외교정책의 다변화는 아시아 지향 정책인 '룩이 스트Look East' 정책으로도 나타난다. 왕세자는 2015년 미국의 오바마 정부 주도로 타결된 이란 핵 합의에 항의하며 중국을 핵 기술 협력 파트너로 고려한다고 했다. 혁신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 열하게 불붙는 시기에 중국을 디지털 기술 협력 파트너로 여긴다고도 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려고 중동을 떠난다지만 중국은 일대일로 一帶一路 전략을 펼치려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스라엘, 튀 르키예, 이란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했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정보 통 신 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의 통신회사와 함께 5G 네트워크를 구축하 고 중국의 인공지능 첨단 기술과 보안 감시 시스템이 사회 안으로 파고 들었다.
- 외교 안보 다변화를 선언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반정부 언론인인 자말 카슈 끄지 살해 사건으로 젊고 자유로운 왕세자의 개혁 개방의 이미지가 바 닥으로 곤두박질쳤다. 2018년 일단의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국 요원이 이스탄불 주재자국 총영사관에서 카슈지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이 사우디아라비아 왕실로 향했고 무 함마드 빈 살만 체제의 정당성은 크게 흔들렸다. 권력의 정점에서 과도 한 자신감에 취해 있던 왕세자는 개혁 개방의 가치와는 한참 동떨어진 비상식적 사건에 연루됐다.
-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연대와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는 반미 연대의 대결 구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치열한 탐색전을 벌여 왔다. 2022년 여름에 바이든 대통령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려고 리야드를 찾았다. 공식 회동으로는 처음이었다. 과거 카슈끄지 살 해 사건을 두고 바이든 대통령은 인권의 기본도 모르는 수준 이하의 애송이와는 절대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 유가 폭등으로 미국 내에 40년 만에 최악이라는 인플레이션이 엄습했다. 바이든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문 제에 눈감기로 했다. 왕세자를 찾아가 달래며 원유 증산을 부탁하고 에너지 안보 위기를 해결해야 했다. 이참에 중동을 떠난다던 정책도 뒤집고 중동 안보에 끝까지 헌신하겠다고 깜짝 발표까지 했다.
그러나 젊은 왕세자는 미국의 180도 변신을 냉대했다. 증산 가능성 에는 단호하고 싸늘하게 선을 그었다. 왕세자와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인사의 눈에 미국은 믿음이 안 가는 우방국이며 따라서 양국 간 신뢰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이든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는 만나지 않았어야 좋았을까? 그렇지 않다. 최악의 양국 관계가 개선 의 계기를 갖게 된 것만으로 좋다. 오랜 우방인 두 나라는 서로가 필요 하다. 불확실성의 시기인 지금은 더 그렇다.
- 걸프 산유국의 축구 투자가 권위주의 정권의 우민화 정책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시민의 관심을 축구로 돌려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의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축구는 공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즐길 수 있는 만큼 문턱이 낮은 종목이므로 우민화 수단으로 제 격이기는 하다. 하지만 축구에 열광하는 중동 시민은 경기에 적용되는 엄격한 규칙과 공정한 경쟁에 대해 환호한다. 권위주의의 억압 아래서 사는 이들은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법치 대신 경기 속 정의를 만끽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누구든 룰을 어기면 예외 없이 벌칙을 받 는 모습에 중동 시민은 세상의 부당함을 잠시 잊고 살아 있는 정의에 안도하는 것이다.

- 아브라함 협정과 놀라운 아랍-이스라엘 데탕트가 가능했던 배경에 는 바로 요동치는 중동 지정학이 있다.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의 전 략적 연대는 무엇보다 미국의 '중동 떠나기'를 대비한 자구책이다. 걸 프 산유국의 리더는 미국만 믿고 안보를 맡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배신감과는 별개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위기 섞인 목소리가 앞다퉈 나왔다. 게다가 이란의 패권 추구 행보가 더욱 거세졌다.

- 반복되는 무력 충돌과 끝나지 않는 참극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은 맹렬한 기세로 거의 매년 익 숙한 스토리를 따라 일어난다. 서안 지역과 가자 지구에 거주하는 팔 레스타인 주민 또는 이스라엘 내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과 동예루살렘 의 팔레스타인 거주권자가 이스라엘 군경과 충돌한다. 이를 빌미로 가자 지구의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을 발사한다. 이스 라엘은 로켓 대부분을 요격한 후 가자 지구를 향해 대대적인 공습을 벌인다. 결국 가자 지구 내 민간인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고 국제사회 는 이스라엘을 비난한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미국과 유럽, 중동 국가 가 중재에 나서 양측은 휴전에 합의하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 승리 를 선언한다.
- 바이든 시대의 중동 정책에 최대 난관은 무엇보다 실타래처럼 얽히 고설킨 역내외 관계에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무슬림 형제단을 반대하지만 이란은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한다. 이란은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알아사드 정권은 무슬림형제단에 반대한다. 튀르키예는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지만 알아사드 정권에는 반대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알아사드 정권에 반대한다. 하마스 는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나 반미고,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 나 친미다. 여기에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고 중국이 새롭게 떠오르며 시리아·예멘 ·리비아 내전의 대리전 양상이 굳어졌다. 바이든의 중동 정 책이 성공하려면 큰 운이 따라야 할 듯하다.

- 혁명이 일어나 독재를 무너뜨리는 일은 엄청나게 충격적 사건임에도 예측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가진다. 1979년 이란에서 일어난 혁명과 독 재의 몰락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미국 CIA는 이란혁명이 일어나기 6개월 전의 보고서에서 '샤의 권력이 한층 공고화됐기 때문에 1980년 대에도 이란 내 정치 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샤가 이란을 빠져나가기 나흘 전에 작성된 보고서 역시 '샤의 반대 세력은 서로 경쟁하느라 함께 저항을 조직할 수 없다. 최근 일련의 반샤 시위 가 혁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28 도망치듯 이집트로 떠난 샤의 탈출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왜일까? 독재는 별다른 기미 없이 극적으로 무너진다. 체제 특성 때 문이다. 억압, 감시, 통제 체제 아래서는 정확한 여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폭발을 미리 감지하는 게 매우 어렵다. 따라서 사회 내부 불만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든 한계를 향해 치달아도 독재자, 엘리트, 시민 모두 그 징후를 느끼지 못한다. 정권 엘리트는 거짓 충성 경쟁에 바쁘고 일반 시민은 공포정치 아래서 폭발 직전의 불만을 철저히 숨길 수밖에 없다. 한쪽으로의 갑작스러운 쏠림을 일으키는 티핑 포인트에 이르기 직전까지 폭발의 압력은 쌓이기만 할 뿐 표면적인 정치 상황은 그대로다.29 불안하게나마 유지되는 협력과 안정 속에서 독재자와 측 근 엘리트, 시위 선도 그룹, 일반 시위대, 미국 정보국 누구도 장기 독 재자가 비무장 시위대 앞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주저앉으리라고는 예 상치 못했다. 체제를 유지하려고 만든 억압 기제 때문에 체제 몰락의 예고를 눈치챌 수 없다는 것이 독재의 아이러니다.
- 혁명은 원래 그렇다. 매우 사소한 계기로 촉발돼 오래된 절대 권력을 갑작스럽게 몰락시킨다. 1789년 프랑스혁명, 1917년 러시아혁명, 1949년 중국 공산혁명 모두 전조 없이 일어나 전근대 체제를 순식간에 무너뜨 렸다. 근대 이후에 일어난 1979년 이란혁명, 1989년 동유럽 혁명, 2011년 아랍 혁명과 이에 따른 독재의 몰락 역시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매우 안정적으로 보이던 장기 독재는 예고 없이 발발한 혁명 앞에서 극적으 로 무너졌다. 독재를 무너뜨린 혁명은 극적인 출현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지만 이미 체제 내에서 혁명 발발의 조건은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 다 만 체제 속성 탓에 독재자와 엘리트, 시민 모두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을 뿐이다.
- 혁명은 어느 시점에 일어날까? 독재자가 겉으로 보이는 안정과 실제 의 취약함을 구분하지 못할 때 정권은 무너진다. 폭압 정치, 부패, 빈곤 은 독재 정권의 약점이지만 몰락의 결정적 원인은 아니다. 독재 정권이 매우 우발적인 사건으로 여론 장악력을 잃는 순간 정권을 향한 불만 이 폭발하고 위기는 시작된다. 일반 시민은 가족이나 아주 친하고 가 까운 사이에서만 억누른 불만을 매우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털어놓 았다. 억압 체제에서 노골적인 비난 대신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30 그 러나 주변 사람 대다수 역시 폭발 직전의 불만을 오랫동안 숨겨왔다는 걸 알게 되면서 반정부 시위라는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장기 독재 체제에서 침묵하던 시민은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서 면 시위에 나선다. 혁명은 일단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숨 가쁘게 진행된다.
겉으로 보이는 평온함에 안심하던 독재자는 우연한 기회로 폭발한 시민의 거센 분노를 접하고 당황한다. 장기 독재의 여론 통제와 감시로 독재자는 자신의 지지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 한다. 냉혹하던 독재자가 우왕좌왕하며 단호한 태도를 누그러뜨리면 엘리트는 정권의 미래를 의심하고 시위대는 혁명의 성공 가능성을 보게 된다. 강력한 철퇴 대신 유화책 카드를 꺼낸 독재자의 변화에 측 근 엘리트와 시위대 모두 흔들리고 만다. 독재자가 긴박한 상황에서 강 경 엘리트를 처벌하고 내각 총사퇴를 단행하며 대국민 연설로 우물쭈 물 개혁을 약속하면 측근 엘리트는 더욱 불안해하고 시민은 저항 수위 를 높인다. 오랜 폭압 정치가 잠시 주춤한 순간 불안한 균형이 빠르게 들썩인다.
- 독재자의 단호한 정권 수호 의지를 기대했던 엘리트는 이에 딴마음을 먹는다. 독재자의 새로운 메시지는 엘리트가 기대했던 결연한 의지와는 거리가 멀다. 숙청이 난무한 가운데 눈치 보기로 유지된 엘리트의 과잉 충성과 집단행동은 쉽게 변한다. 독재자의 마음을 잘못 예상하면 바로 숙청되는 체제에서 엘리트는 동료의 눈치를 치열하게 살피며 다음 행보 를 결정해왔다. 엘리트 몇 명이 정권의 생존을 불안해하자마자 독재자 를 향한 변심이 빠르게 확산하고 엘리트 전체의 결속을 깨뜨린다. 엘리 트의 이탈이 이어지며 결국 군의 중립 선언이 뒤따른다.
일반 시민은 더욱 과감하게 퇴진을 요구한다. 일반 시민이 시위 참여 를 두려워할 때 신념에 찬 소수 전위 그룹이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를 선도하며 주위의 참여를 독려한다. 시위대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폭압이 잠시나마 약해지는 유화 국면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봇물 터지 듯 나오며 혁명 성공에 대한 기대가 가파르게 상승한다. 상황이 일관 되게 나쁘면 체념하지만, 뜻밖의 유화책이 선언되면서 기대 수준 역시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재자의 약속은 빠르게 높아진 기대 수준 에 미치지 못하게 마련이고 시위대는 더욱 분노한다. 현실과 기대 사이 의 틈이 커질수록 시민은 상실감을 더 크게 느끼고 더욱더 거세게 저 항을 조직한다. 상황은 나아졌지만 저항은 거세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 생한 것이다. 엘리트의 집단적 이탈과 시위대의 거센 저항에 이어 독재 몰락의 희망적 여론이 분기점을 향해 신속히 확산한다.

- 몰락하는 샤 체제와 호메이니의 복귀
1953년 이란의 팔레비는 미국 CIA가 지원한 쿠데타 덕분에 왕정 체 제를 굳건히 다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첫 민주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총리가 된 모함마드 모사데크Mohammad Mosaddeq가 쫓겨나면서 이름뿐인 샤는 절대군주로 군림했다. 석유 국유화 운동을 이끌던 모 사데크는 1949년 민족 전선을 조직해 좌파는 물론 이슬람주의 세력과 도 손잡고 넓은 지지층을 확보했다. 민족 전선이 공산주의 투데Tudeh당 과도 협력하자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 정부 는 소련의 영향력이 이란에 미칠 것을 두려워해 이란 내정에 개입했다.
- 1953년 쿠데타는 샤에게 대미 종속의 족쇄, 이란 국민에게는 반미 감정 의 뿌리가 됐다. 팔레비왕조의 2대 샤는 혁명으로 물러날 때까지 25년 간 미국에 의존해 미군 주둔과 방위 동맹, 미국산 무기 구매, 미국 주요 석유회사의 이권 보호에 힘썼다.
샤는 직속 정보국 사바크Sâzemân-e Ettelâ'ât va Amniat-e Kešvar에 기대어 폭압 정치를 일삼았다. 사바크는 샤 체제에 대한 어떠한 비판이나 저 항을 용납하지 않았고 국제사면위원회는 1970년대 내내 이란을 최악 의 인권 탄압국으로 선정하며 비난했다. 사바크 국장은 부총리급이었 고 정규 요원 1만 5천 명과 비밀 정보원 수천 명을 거느렸다. 샤는 사 바크 내부에 또 다른 정보국을 두고 사바크 자체에 대한 감시도 소홀 히 하지 않았다. 쿠데타가 발발할 수 있다는 편집증적 공포에 시달렸 던 샤는 강권기구에 집착했다.
- 프랑스에서 이슬람 혁명론을 공부한 후 반샤 운동을 이끌던 알리 샤리아티Ali Shariati가 1977년 6월에 의문사한 데 이어 샤 정권이 추방 한 호메이니와 함께 이라크 나자프Najaf에 머물던 장남 모스타파 호메 이니Mostafa Khomeini가 10월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자 사바크의 소 행이라는 여론이 빠르게 퍼졌다. 1978년에 들어와 대학생 시위의 규모 가 점차 커지자 샤는 당황했다. 당시 암에 걸려 몸과 마음이 황폐했던 샤는 유약한 태도를 보이며 정권 수호에 사력을 다하지 않는 듯했다. 샤는 6월 사바크의 국장을 교체했고, 8월에는 총리마저 종교계와 친분 이 있는 온건한 인물로 바꿨다. 종교계를 달래고자 카지노를 폐쇄하고 기년법을 이슬람력으로 되돌렸으며 투옥된 성직자 일부를 석방했다. 이어 국가화해위원회를 급조하더니 다당제 시행을 선언했다. 전례 없는 유화책이었다.
그러나 9월 군이 평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한 '검은 금요일' 사건이 일어나자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10월부터 석유 회 사를 포함한 국영기업과 의료계, 교육계, 언론계의 전국 총파업이 뒤따 랐고, 사바크 해체와 정치범 석방 요구가 거세졌다. 이에 샤는 왕실부 장관을 해임하고, 총리 교체 석 달 만에 또 총리를 바꿨다. 1965년부 터 1977년까지 12년간 샤 정권의 총리는 아미르 아바스 호베이다Amir Abbas Hoveyda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1978년부터 샤 체제의 붕괴 직전 까지 18개월 동안 총리가 네 번이나 잇따라 교체됐다. 잇단 유화책에 도 파업과 시위로 국정이 마비되자 11월 샤는 대국민 담화에서 민주 화 시위대와 함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고위급 관료와 강경 엘리트 60여 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체포해 국면 타개를 노렸다. 이들 중에는 샤의 어릴 적 친구이자 사바크 3대 국장인 네마톨라 나시리Nematollah Nassiri도 포함됐다. 나시리는 대표적인 강경파로 호메이니가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됐을 때 즉각적인 사형 집행을 주장했고, 1978년 봄 시위가 확산될 때 단호한 진압을 역설했다. 결국 샤가 떠나 고 왕실 근위대와 몇몇 장군이 최후의 저항을 벌일 때 나시리는 감옥 에 갇혀 있었다.
단호함을 잊고 당황하는 샤의 유약한 태도는 엘리트에게 결정적인 신호였다. 샤의 엘리트는 충격에 빠졌다. 샤가 허둥거리며 강경책을 수 정하고 시위대에 사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상류층 엘리트는 바로 재 산을 챙겨 이란을 떠날 준비에 들어갔다. 샤가 이란을 떠난 직후 '테헤 란의 도살자'로 불렸던 보안군 사령관은 프랑스로, 직전에 해임됐던 세 총리는 미국으로 떠났다.
군부는 정권의 미래가 불확실해지자 재빨리 독자 행보를 결정했다. 육군 참모총장과 장성 25여 명이 모여 군의 중립화를 선언하자 장교 대부분이 혁명 세력에 투항했다. 최정예 엘리트 집단인 공군 장교 사이 에서도 내부 반란이 일어났고 많은 수가 투항했다. 군의 투항은 지배 엘리트의 분열과 시위의 폭발적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제로 고위급 장교 모두가 샤의 충복은 아니었다. 쿠데타의 두려움에 시달리 던 샤가 군부 전체를 사바크 감시 아래에 두자 군의 불만이 높아졌다. 또한 대령급 이상의 군 수뇌부는 샤의 사적 후원 속에서 호화 생활을 누렸으나 중간급 이하 지휘단의 처우는 열악했다. 상급 지도부가 호화 스러운 서구식 생활을 누렸던 것에 비해 일반 사병은 여전히 전통 가 치를 중시했고 문맹률 또한 50%에 달했다.
- 측근 엘리트가 살길을 찾아 해외로 도주하는 동안 시위대는 호메이 니의 대형 사진을 앞세우고 샤의 즉각적인 퇴진을 더욱더 거세게 요구 했다. 샤의 유약한 태도는 민심을 달래지도 못했다. 게다가 1977년 새 로 취임한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공화당 정부가 묵인했던 이란의 인권 상황을 비난하자 샤의 권력 약화설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특히 이슬 람 성직자가 죽음을 무릅쓰고 시위를 이끌었으나 시위에 참여한 많은 사람이 사바크 요원에게 붙잡혀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위험하기 짝 이 없는 시위를 초기에 조직하는 데는 남다른 사명감으로 무장한 소 수의 전위 그룹이 필요하다. 이슬람 법학자인 울라마 몇몇은 순교를 마 다하지 않고 군과 비밀경찰의 물리적 폭압에 맞섰으며 이들의 영웅적 행위는 저항 확산의 촉매제가 됐다. 전통 시장인 바자르bazaar처럼 폐쇄적이고 촘촘한 네트워크 역시 보안이 중요한 초기 시위의 조직화에 효과적이었다.
급진 울라마 그룹은 시위를 선도하며 광범위한 반체제 연합을 이끌 었다. 부패한 독재자의 퇴진이라는 구호 아래 성직자와 신학교 학생, 바자르 상인과 수공업자, 공산주의 투데당을 포함한 좌파 연합, 대학생 과 중간 관료층이 중심이 된 세속 자유주의 그룹이 함께 모였다. 당시 이란의 시민운동은 모사데크가 결성한 다양한 정파의 연합체인 민족 전선에 뿌리를 뒀다. 혁명이 확산하는 과정에서 성직자 전위 그룹은 전 통 가치와 이슬람에 친화적인 사회경제적 중하층 시민을 동원했다. 바 자르, 모스크, 이슬람 법원, 복지 재단 등 일상에서 접하는 기관이 거점이었다. 반면 서구식 정치 시스템에 기반해 권력 분산을 강조하는 좌파와 세속 자유주의 세력은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혁명의 성공 가능성을 향한 시민의 기대가 상승했고, 시위 참여자의 수도 점 차 증가했다.
결국 샤는 1979년 1월 치료를 핑계로 이란을 떠났다. 건강이 나빠졌 다며 조금도 버텨보지 않은 채 이집트로 피했다. 민족 전선 출신의 중 립적 인사에게 총리직을 맡긴 지 열흘만이었다. 샤는 국내 권력 자원 이 크게 약화되기도 전에 쉽게 포기해버렸다. 샤가 떠나고 호메이니가 15년의 망명 생활 끝에 돌아왔다. 군의 중립화 선언 이후 정치인과 관 료가 줄이어 호메이니의 임시정부에 충성을 선언하면서 샤 체제는 막을 내렸다.
- 혁명 이전의 상황은 독재 체제가 폭발 직전의 압박을 겨우 버티는 단계다. 공안 정치, 인권유린, 부정부패, 무능과 비효율성, 불평등과 빈 부격차, 생활고와 실업 등 독재에서 흔히 나타나는 여러 문제점은 혁 명이 일어나게 할 충분한 조건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체제의 약 점일 수 있으나 정권 몰락의 핵심 요인은 아니다. 정권 생존의 가장 큰 위협은 독재자와 측근 엘리트가 체제의 인위적인 안정성과 현실의 취 약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 독재 정권을 흔드는 우발적이고 우연한 계기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일단 충격이 더해지고 균열이 일어나면 그 파급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며 체제 붕괴라는 극적 변화로 이어진다. 1979년 이란혁명이 그 랬다. 인류사의 모든 혁명처럼.
- 1979년 이란혁명과 마찬가지로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전 이란혁명 글에서 살펴봤듯이 혁명은 원래 그렇다. 아랍의 독재는 프랑스 절대왕정, 제정 러시아, 이란 팔레비 왕정, 동유 럽 공산주의 체제처럼 갑자기 몰락했다. 독재 정권 대부분은 특별한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붕괴한다. 공포정치 아래서는 정확한 여론이 존 재하기 어렵기에 독재자, 엘리트, 시민 모두가 서로의 속마음을 몰랐고 정권의 빈약한 토대를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의 안정은 소수 정권 엘리트의 억압과 통제로 쉽게 유지될 수 있다. 독재 정권에 가장 큰 위협은 겉으로 보이는 평온함을 진짜라고 믿어버리는 데 있다.
-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다피, 예멘의 살 레는 격렬한 반정부 시위에 우왕좌왕하며 강경책을 철회했고 이는 정 권 붕괴의 촉매제가 됐다. 특히 아랍의 봄 혁명 발발 당시 위압적 권위 주의 국가군으로 같이 분류되던 튀니지와 이집트의 정권은 매우 비슷 한 시기에 유사하게 극적으로 몰락했다. 두 나라 독재자의 강경책 철회 에 군부는 재빨리 군의 중립화를 선언했다. 독재자가 체제 수호에 자신 없어 하는 순간 엘리트 간의 협력은 바로 사라진다. 독재자가 민심을 달래려고 자유화를 공약하자 반독재 여론은 더욱 빠르게 퍼졌고 독재 자 퇴진에 대한 희망도 높아졌다.
- 혁명 발발과 독재 몰락의 원인을 다르게 보는 해석도 있다. 혁명 전 후 독재자, 엘리트, 시위대 간의 촌음을 다투는 손익계산이 아닌, 장기 간에 걸친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를 중요한 변수로 보는 설명이다. 이 분석은 혁명 발발의 우발성이 아닌 필연적인 인과성에 초점을 맞춰 혁 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원인을 사후에 추적해 나열한 다. 혁명의 원인으로 특정 사회 세력의 영향력 변화와 이에 따라 서서히 진행된 권력 구조의 불균형을 제시한다.
구조적 설명은 2011년 아랍 혁명의 원인을 경제 저성장, 청년 실업,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를 향한 젊은 세대의 불만 고조로 본다. 분노한 아랍 시민은 SNS의 활성화 덕분에 시위를 더욱 효과적으로 조직해 혁 명으로 이끌 수 있었다고도 분석했다.
그러나 사후 인과관계를 거꾸로 추적하는 분석은 왜 20~30여 년 간 지속된 아랍 권위주의 정권이 하필 2011년에 갑작스럽게 몰락했는 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장기 집권을 하던 철권 독재자가 왜 본격 적인 시위가 일어난 지 한 달도 안 돼 부와 권력을 순순히 포기했는지, 왜 아무도 장기 독재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예측하지 못했는지도 만족스럽게 분석하지 못한다.
- 게다가 아랍 국가의 저성장과 부정부패는 제3세계 전반에서 나타나 는 공통적 문제점이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신생 엘리트는 제국주의 가 만들어놓은 강권기구를 복원하면서 정치적 경쟁자를 견제하고 시 민을 배제했다. 이는 탈식민국가의 공통된 특징이다. 토착 부르주아 계 급과 다원주의의 부재 속에 국가의 우위는 지속되고, 근대화의 거대한 목표 아래 국가의 권력은 더욱 커졌다. 소수 엘리트가 장악한 국가는 석유나 외부 원조와 같은 불로소득에 의존했고, 국가의 행정 역량과 정권의 정당성, 은행과 재정 기관의 신용도는 바닥을 밑돌았다. 따라서 개발도상국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가 왜 유독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 예멘에서만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설명해야 한 다. 게다가 혁명의 발생지인 튀니지가 아랍 세계에서도 부유한 나라인 반면, 혁명이 비껴간 알제리는 경제난과 실업난이 극심했다.
- 미국에 이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도 탈레반의 재집권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는 중국이 보기에 탈 레반 정권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维吾爾自治區의 위 구르 분리 독립 세력을 자극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정권을 차지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하루빨리 안정적으로 통제하기를 바 란다. 미국의 부재와 힘의 공백으로 생긴 탈레반의 독주가 내심 당혹 스럽기도 하다. 미국의 전례를 지켜본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장기 전의 늪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탈레반의 이인자인 바라다르를 톈진으로 초대해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독립운동 단체인 '동투르키스탄이 슬람운동'과의 단절을 촉구하면서 일대일로 전략에 따른 아프가니스 탄 재건 사업과 경제 지원을 당근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슬람 급진주 의의 확산이 존재 이유인 탈레반은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서 자행되는 중국 정부의 무슬림 탄압에 침묵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도부 내 초강경파와 이들과 연계된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인 IS-K는 중국에 커 다란 안보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 중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급진주의 및 극단주의 조직 간에 갈 등이 생길 경우, 미군이 철군하면서 남긴 수많은 무기가 여차하면 중 국을 겨냥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비수가 될 수도 있다. 아프가 니스탄은 캅카스 Kavkaz, 베트남과 더불어 '제국의 무덤'으로 불린다. 대 영제국은 아프가니스탄을 보호국으로 만들었지만 엄청난 희생을 치렀 고, 미국에 앞서 소련은 냉전이 한창이던 1979년 아프가니스탄의 사회 주의 세력을 지원하고자 전쟁을 일으켰다. 미군 철수와 탈레반의 귀환 은 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거대한 체스판 위의 민감한 화약고에 새로 운 충돌의 불씨를 심었다.
- 이슬람주의 운동의 부상과 변형은 아랍 민족주의의 쇠퇴와도 맞물 렸다. 1950~1960년대 아랍 국가는 비동맹 사회주의 공화국과 친서구 보수 왕정으로 양분됐다. 공화국과 왕정의 대립은 1978년 이집트의 캠 프데이비드협정 체결 이후 대이스라엘 강경국과 온건국 간의 대결로 변했다. 아랍 민족주의의 상징인 이집트의 변심으로 실망과 회의가 확 산하면서 민족이 아닌 무슬림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슬람주의가 떠 올랐다. 1980년대 내내 이어진 이란과 이라크 간 전쟁을 둘러싸고 반 미 이슬람주의가 선동의 핵심 구호로 자리를 잡으면서 아랍 민족주의 는 더욱 설득력을 잃어갔다. 아랍 국가인 이라크와 이란이슬람공화국의 전쟁을 둘러싸고 대이스라엘 강경국인 시리아, 리비아, 예멘, 알제리 는 미국 공화당 정부의 지원을 받던 아랍 형제국 이라크에 반대하며 이란을 지지했다. 1990년에 발발한 걸프 전쟁을 기점으로 1990년대에 는 아랍 내부의 갈등이 더 깊어졌다. 이라크가 아랍 형제국인 쿠웨이 트를 침공하자 요르단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이라크를 두둔했지만 아랍 민족주의는 아무도 믿지 않는 공허한 구호가 됐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숨어 있던 알카에다 의 우두머리 오사마 빈라덴의 신병을 원했으나 탈레반 정권은 이를 거절했다. 미국은 바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해 탈레반을 몰아냈다. 2011년 미국 특수부대는 파키스탄에 숨어 지내던 빈라덴을 사살했으며, 알카에다의 나머지 핵심 멤버는 미국 교도소에 갇혀 있다.
- ISIS의 프랜차이즈화 현상이 ISIS 자체가 아닌 각 나라 고유의 사 회경제적 취약점과 연동된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세기말적인 ISIS 모 방 테러는 각 나라의 특정한 국내 문제와 맞물리며 더욱 확산했다. 시 리아와 이라크에 근거지를 둔 ISIS 수뇌부가 사라져도 각 나라의 부정 부패, 치안 부재, 이민자 통합, 총기 허가 등 특정 취약 고리와 사회 불 만이 만나 자생적 극단주의의 프랜차이즈화가 나타난 것이다. 2016년 튀르키예 이스탄불 국제공항 테러 역시 에르도안 대통령의 부정부패 와 권위주의 정치가 결정적인 촉발 요소로 작용했다. 물론 튀르키예가 반ISIS 국제 연합 전선에 참여하고 시리아와 긴 국경선을 접하는 데다 가 과거 '이웃 국가와 문제없이 지내기zero problems with neighbors' 정책으 로 이슬람 극단주의 격퇴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것도 배경이다. 그러나 당시 유독 튀르키예에서 ISIS 테러가 집중적으로 일어난 까닭은 에 르도안 대통령이 유능한 테러 전담 인력을 정적과 시민단체를 관리하 는 공안 부서로 대거 이동 배치해 생겨난 안보 공백에 있었다. 미국에 서 연속적으로 일어난 ISIS 연계 테러는 총기 규제의 허술함이 방아쇠 역할을 했다. 9·11 테러 이후 보안 검색이 강화됐으나 미국의 고질적인 총기 규제 실패가 온라인 극단화를 거친 외로운 늑대에게 빌미를 제공 했다.
ISIS는 국제사회의 이목을 모으고 건재를 과시하려고 민주주의국가 를 상대로 테러를 시도할 것이다. 이들의 후속 테러 가능성은 늘 존재 한다. 하지만 ISIS는 낮은 응집력 문제로 점차 약화할 것이며 간헐적인 서구 테러로 명맥만을 유지할 것이다. 그래도 ISIS 테러 문제는 그 조직 자체보다는 각 나라에 누적된 국내 고유의 정치, 사회, 경제 문제와 깊 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근본적인 해결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텀블러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  (1) 2023.12.24
육두구의 저주  (1) 2023.12.24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3) 2023.11.21
왜요 기후가 어떤데요?  (0) 2023.11.07
안녕하세요 비인간동물님들  (3) 2023.11.07
Posted by dalai
,

- 저자들이 2020년대를 위험 구간으로 보는 논거는 미중 대결의 전개 과정과 작금의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데 신선하고도 설득력 있 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동안 미중 관계를 다룬 저작들은 패권국인 미국에 떠오르는 신흥 강국인 중국이 도전하면서 대립이 격화되고 결국은 패권 이행이 이루어진다는 이른바 '투키디데스 함정'의 개념을 주 로 차용했다. 시진핑 스스로도 이에 근거해서 중국의 패권 야욕을 드 러낸 바 있다. 이에 반해 저자들은 강대국 간의 무력 충돌은 도전하는 신흥 강국이 정점을 지나 쇠락기에 접어들었을 때 제국주의적 팽창의 유혹을 느끼고 무모한 전쟁을 일으킬 위험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국력 상승에서 나온 자신감이 아니라 암울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패권도 전국을 폭력적인 도발에 나서게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1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제국이 그랬고, 진주만 폭격으로 태평양전쟁을 일 으킨 일본제국이 그랬다. 중국이 바로 이런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 저자들의 판단이다. 즉 중국은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미국을 추월해 세계 패권국으로 올라설 가망이 없다고 여길 때, 가용할 수 있는 수단 (군사력)을 총동원해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저자들이 제시한 정점에 이른 강대국의 함정'(본문에서는 '레닌 함정'으로 표현했다)이라는 개념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의 상황에도 꼭 들어맞는다. 푸틴은 러시아의 국력이 상승해서가 아니 라 국내 경제의 부진과 독재 정치의 불안 등으로 궁지에 몰린 끝에 이 를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 제국주의적 영토 확장이란 무모한 도박에 나섰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미국이 미중 경쟁의 위험 구간을 무사히 건너가기 위 해서는 긴급하고도 치밀한 대화중국 봉쇄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주 장한다. 그 전략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추진된다. 단기적으로 중국의 군사 도발을 예방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배제하고 고립시키자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미소 간의 냉전기에 그랬던 것처럼 단기적인 무력 충돌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동시 에 장기적으로 중국의 경제력을 무력화할 봉쇄 수단을 다각적으로 강 구해 그들의 패권 야욕 자체를 무산시키자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전 략에서 저자들이 꼽는 가장 핵심적인 수단의 하나가 미국을 중심으로 우호세력을 결집시키는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과 협력적인 동반 국가 들을 다층적이고 신축적인 다수의 연합체로 끌어들여 국제적인 반反 중국 연합전선을 펼치자는 것이다.

- 중국은 통치 체제를 실존적으로 위협하는 심각한 경기 둔화를 10년 이상 숨기고 있었다.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진행되는 인구 재 앙은 몇 년 안에 혹독한 경제적, 정치적 부담을 초래할 것이다. 중국 의 공격적인 전랑戰狼, wolf warrior 외교와 히말라야에서부터 남중국해 에 이르는 분쟁 지역에서의 도발적인 행동으로 인해 중국은 스스로 에게 전략적 덫을 놓았다. 즉 유라시아 대륙 전역의 잠재적 경쟁국 들을 위협함으로써 이들이 단합하도록 만든 것이다. 특히 중국공산 당은 지난 세기 동안 확립된 국제정치의 첫 번째 규범을 어겼다. 바 로 '미국을 적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상승하는 중국의 시대가 아니라 이미 정점에 도달한 중국'의 시대에 살고 있다. 중국은 세계를 재편하고자 하는 현상 변경 강대국revisionist power 이지만 그럴 수 있는 시간은 이미 끝나기 시작했다.
- 역사적으로 볼 때 이처럼 기회와 불안감이 뒤섞이면 치명적인 혼합물을 만들어 낸다.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때 떠오르 던 신흥 강국들은 자신의 행운이 다하고 주변의 적들은 크게 늘어 나고 있으며, 지금 영광스러운 미래를 향해 손을 뻗지 않으면 영원 히 그런 순간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점에 가장 공격적 으로 바뀌는 경우가 잦았다.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가 긴 경기 침체 에 빠지면 발작적인 팽창 정책으로 대응했다. 경쟁국들에게 포위될 것을 우려하는 나라는 절박하게 그 포위의 고리를 깨려고 시도한 다.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 가운데 몇몇은 자신감이 넘치는 상승기의 강대국이 아니라, 1914년의 독일과 1941년의 일본처럼 이 미 정점에 도달한 뒤 하락하기 시작한 나라에 의해 시작되었다. 블 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이 구소련 지역에서 벌이는 최근의 전쟁 은 이 분석틀에 딱 들어맞는다. 시진핑 정권은 국제 문제에서 우려 스럽지만 익숙한 궤적을 따르고 있다. 짜릿한 상승에 이어 급전직 하로 추락하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모양새다.
- 기존 학설에 따르면 체제를 뒤흔드는 대규모 전쟁은 상승하는 도전국이 기력이 다한 패권국을 추월하는 '패권 이행기'에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런 발상 의 기원은 투키디데스Thucydides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펠로폰 네소스전쟁이 일어난 원인이 스파르타를 무너뜨린 아테네의 발흥 이라고 썼다. 이런 발상은 터보엔진을 장착한 중국이 4기통 엔진을 가진 미국을 압도함에 따라 갈등이 빚어질 확률이 크게 높아질 것 이라고 경고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저작물에서 두드러지게 나 타나는 특징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의 많은 부분이 실상을 호도하거나 사실과 어긋난다.
- 국가는 상승하면서 동시에 하락할 수 있다. 국가는 경제가 허덕이거나 넘어지더라도 영토를 빼앗거나 급속히 무력을 증강할 수 있다. 상승하는 국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아니라, 상대적인 하락 세로 인해 촉발된 불안감이 야심 찬 강대국을 탈선시키고 폭력적으 로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종말론적 전쟁은 패권 이행이 없더라 도 일어날 수 있다. 한때 상승하던 도전국은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 히 따라잡지 못할 경쟁국에게 무리하게 도발했다고 깨달은 순간 싸 움에서 지고 패망했다. 과거 사례로부터 이러한 치명적인 패턴(이를 '정점에 이른 강대국의 함정'이라고 부르자)을 이해하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펼쳐질 암울한 미래에 대비하는 데 결정적으 로 중요하다.
- 여기에 걸린 위험은 학문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다.
더글러스 맥아더 Douglas MacArthur 장군은 1940년 "전쟁에서 패배한 역사는 거의 대부분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너무 늦었 다 too late'는 말이다. 잠재적인 적의 치명적 의도를 이해하는 데 너무 늦었고, 대비 태세를 갖추는 데 너무 늦었으며, 저항을 위해 가능한 모든 세력을 규합하는 데 너무 늦었고, 우방국과 공동 보조를 취하 는 데 너무 늦었다"라고 설명했다. 맥아더는 "만일 미국이 '결정적 으로 중요한 순간'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면 역사상 가장 큰 전략 적 실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맥아더의 말은 스스로에게 예언적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그의 필리핀 주둔 부대들과 태평양 전역의 미군은 일본과의 전쟁 첫 단계에서 참패했다. 따라서 2021년 미군 인도-태평양 지역 정보 총 책임자가 똑같은 말을 사용해서 중국으로부터의 새로운 전체주의 적 위협을 묘사한 것은 언급해 둘 만하다. 그는 “그들은 이미 진군 중이다. 전쟁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정말로 시간이 문제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전쟁의 위험이 최고조에 달했고, 지 금 하거나 혹은 하지 않은 결정이 앞으로 수십 년간 국제정치의 틀 을 형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미국은 또다시 너무 늦기 전에 반드시 대비해야만 한다.
- 중국 지도자들이 '미국은 다른 나라를 무너뜨리겠다는 결의로 가득 찬 위험하고 적대적인 국가'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많 은 미국인이 놀랄지도 모른다. 2010년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힐러 리 클린턴 Hillary Clinton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 골몰한다"라는 발상에 코웃음을 치며 "중국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안에서 경이적인 성장과 발전을 경험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국이 아무리 팩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내에서 여러 해 동안 번영을 누려 왔다고 해도 중국 지도자들은 오랫동안 중국공산당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미국이 위협한다고 우려해 왔다.47
이와 관련해 역사는 한 가지 인상적인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 국이 많은 중소中小 경쟁국은 물론 당대의 가장 강력한 세계적 도전 자들(독일제국과 일본제국, 나치 독일, 소련 등)을 모두 무너뜨린 혁혁한 전적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중국의 정책 결정자들의 관심을 끌 수밖 에 없다. 한 중국 고위 관료는 2014년 "국제정치의 영안실에는 사 회주의 국가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라고 지적했다. 중국 관리들은 미국이 중국공산당이 추진하는 모든 사안을 방해할 태세 를 갖추고 있다는 점 또한 잊지 않는다.
- 미국이 의도적으로 독재자들을 약화시킬 생각이 없을 때조차 미국은 독재자들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존재 자체가 반체제 인사들에게 희망의 등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원들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식 권위주의 통치 방식을 적 용하는 데 저항하는 홍콩의 시위자들이 미국 국기를 내걸었다는 사 실에 주목했다. 이는 30년 전 천안문광장 시위대가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 복제품을 세운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의 언론 매체가 중국에서 벌어지는 관료들의 범죄와 부패를 다룬 상세 한폭로기사를 보도하면 분노에 치를 떤다. 예컨대 인권이나 정부 책임에 초점을 맞춘 비정부기구의 활동처럼 미국인들이 아무렇지 도 않게 생각하는 일이 자신들의 권력은 무제한이라고 여기는 중국 공산당에게는 체제를 전복하려고 노리는 위협으로 비치는 것이다.
- 중국은 왜 미국과의 위험한 경쟁을 불사하는가
그 답은 지정학, 역사, 이념에 있다. 어떤 면에서 중국의 패권 도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의 새로운 장이다. 새로 발흥하는 국가는 전형적으로 영향력, 존중, 세력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어떤 나라가 일단 강해지기 시작하면 그 나라가 약했을 때는 감내할 수 있었던 굴욕을 더는 참을 수 없게 된다. 또 이전의 영향권을 넘어선 곳에서 사활적인 국가 이익을 찾는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새롭게 부상한 독일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남북전쟁 이 후 경제적으로 상승세를 탄 미국은 서반구에서 경쟁국들을 밀어냈 고 자신의 영향력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시작했다. 위대한 현실 주의 학자인 니컬러스 스파이크먼Nicholas Spykman은 “역동적으로 성 장하는 국가가 확장을 멈추거나 ... 겸허하게 자신이 목표로 삼는 영향력에 한계를 둔 사례는 사실 매우 드물다"라고 썼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단 한 가지 중국에 특이한 점은 놀라운 역동성이다. 현대 시대에 중국만큼 그토록 오랫동안 빠르게 성장한 나라는 없었다. 현대 시대에 중국만큼 세계를 바꿀 만한 역량이 극 적으로 확대되는 것을 보여 준 나라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이 미국 주도의 세계에 순순히 안주할 리가 없다. 중국이 미국 주 도의 세계 질서에 안주하려 했다면, 미국이 대만을 보호하는 상황 과 미국의 군사 동맹국들이 중국 영해 주변을 따라 배치된 것과 같 은 현재의 구조를 수용해야 했을 것이다. 이런 구조는 어떤 강대국 도 영구히 감내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글로벌 초강대국으로 부 상할 때 그랬던 것처럼 중국이 주변 지역을 제압하려 하는 것은 불 가피하다. 중국은 주변 지역을 넘어 더 먼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산 하려 들 것이고, 세계가 중국의 열망에 순응하도록 만들 것이다. 위 대한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는 "급상승하는 중국은 당연히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것"이라며, "중국이 아시아에서 일등 국가가 되고 결국은 세계 최강국이 되려고 열망하지 않을 리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국이 냉철한 지정학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역사적 운명으로서 국가의 영광을 이루려고 노력한 다. 중국 지도자들은 스스로를 기록된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을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전통적인 중국 국가chinese state의 계승자라 고 여긴다. 일련의 중국 제국들은 천하天下, All under Heaven가 자신들 손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제국의 변방에 있는 작은 나라들에 게 복종을 요구했다. 아시아 전문가 마이클 슈먼Michael Schuman은 “이 러한 역사는 중국인과 중국 국가가 현재는 물론이고 먼 미래까지 영원히 세계에서 수행할 역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중국인들 속에 심었다"라고 썼다.
- 중국 지도자들은 국제 규범과 국제기구를 반자유주의적 통치 방 식에 좀 더 친화적으로 바꾸려는 충동을 느낀다. 그들은 위험한 자 유주의의 영향을 중국 국경 밖으로 몰아내려 한다. 권위주의를 파 멸로 이끈 오랜 역사를 가진 민주적 초강대국에게서 국제적 권위를 박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강성해짐에 따라 중국의 영향력과 중국식 통치 방식을 확대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해 외에서 반자유주의 세력의 강화를 고려하게 된다.
중국의 이러한 행태가 특이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세계적 강국이 되었을 때 미국도 민주적 가치에 우호적인 세계 질서를 세웠다. 소련이 동유럽을 지배했을 때 소련 역시 공산주의 정권을 받아 들이도록 만들었다. 고대로부터 강대국 간의 경쟁에서 이념적 균열 은 지정학적 분열을 격화시켰다. 정부가 자국 국민을 바라보는 관 점의 차이는 세계를 보는 시각에도 근본적 차이를 낳는다.
중국은 현상 변경 국가revisionist state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염원해 온 국제적 지위를 되찾으려는 제국이 자, 다른 한편으로는 끝없는 불안에서 자기주장을 찾는 전제 국가 인 것이다. 그것은 강력하면서도 불안한 조합이다.
- 일찍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자신 들의 중국 부흥 계획이 결국은 미국의 우월한 국제적 지위와 충돌 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중국이 평온한 국 제 환경과 글로벌 경제에 접근하는 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상황 에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과 소원해지는 것이 자멸까지는 아 니더라도 어리석은 일임을 알아차렸다. 덩샤오핑은 "우리는 어떠한 문호도 폐쇄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과거의 경험에서 배운 가 장 큰 교훈은 스스로를 세계로부터 고립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점” 이라고 언급했다." 이 말이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등소평 지침의 기원이다. 풀이하자면 중국은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이 드러내 놓고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을 만 큼 충분히 강해질 때까지는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교묘하게 미국의 힘을 약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중국이 일단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면 중국의 힘과 국제무대에서의 역할은 사뭇 달라질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1990년대에 중국은 결코 팽창이나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함으로써 미국을 안심시키는 정책을 폈다. 중국은 자국의 발전을 촉진하고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기 힘들게 만드는 방편으 로 미국과 무역 및 금융 면에서 깊은 유대 관계를 쌓아 나갔다. 또 한 미국이 다시 결속시키려 시도할지 모르는 어떤 식의 연합체로부 터 아시아 주변 국가를 떼어 놓기 위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외 교적 공세를 추구했다." 동시에 중국 인민해방군은 미국의 첨단 군 사력을 저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함으로써 만일의 분쟁에 대비하 기 시작했다. 심지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같은 지역 국 제기구와의 유대도 강화했다. 이들 국제기구가 내부로부터 공동화 하고 이들이 반중 목표로 돌아설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국의 학자 옌쉐은 "이런 활동의 포괄적인 목표는 중국이 글로벌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는 데 미국이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처럼 중국은 눈에 띄지 않게 은밀히 부상하려 했다.
- 중국의 국정 운영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이전의 세심한 접근방식에서 벗어났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이 중동에서 벌인 일련의 전쟁은 미국이 태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분쟁에 휘말리게 됨으로써 중국 지도자들이 이른바 "전략적 기회의 시기"라고 부르는 상황을 조성했다. 2008년부터 2009년 사이의 글로벌 금융 위기는 (한 미국 관리가 언급했듯이) 많은 중국 분석가로 하여금 “미국이 쇠락의 길로 들어섰거나 주의가 산만해졌거나 혹은 그 두 가지 모두 해당하는 상태"라고 여기게 했다." 남중국해에 대한 통제권 요구와 아시아에서 중국의 우위를 인정하는 것을 포함해 "새로운 강대국 관계 모델" 을 미국이 수용하라고 요청한 일 등이 모두 이 기간에 일어났다. 여 기에 더해 중국은 시진핑의 시책인 '적극적으로 성취한다'는 '유소 작위를 내세우려고 기존의 '도광양회' 전략을 폐기했다. 옌 쉐퉁은 "과거에는 다른 나라가 강한 반면에 우리는 약했기 때문에 저자세를 유지해야 했지만, 이제는 ... 인접 국가에게 우리는 강하 고 당신들은 약하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변화는 2016년 이후 다시 빨라졌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대통령 당선과 2016년 영국의 탈퇴 결정 이후의 유럽연합 위기, 그 밖의 여러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기존 국제 질서는 대혼돈 의 상태에 빠졌다. 중국 관리들은 공개적으로 미국의 리더십에서 벗어나는 역사적 전환의 가능성을 말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국제기 구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일대일로 구상 및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을 진척시켰다. 또 미국과 동맹국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고 중국의 심 기를 건드리는 국가를 응징하는 등의 공세를 취했다. 중국은 점차 미국을 제치고 나아가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발표를 내놓기 시작했다. 2019년 시진핑은 "어떤 강대국도 우리의 위대한 모국의 지위를 흔들 수 없으며, 어떤 세력도 중국 인민과 중국 국가 의 전진을 멈출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COVID-19) 사태의 전주곡이었다. 초기에 이 글로벌 팬데믹 위기로 미국이 큰 타격을 받은 반면에 중국은 상 대적으로 빠르게 정상을 회복했다. 중국은 이를 기회 삼아 여러 방면에서 공세를 취했다. 대만에 군사적 압력을 증가시켰고, 마지막 남은 홍콩의 정치적 자치권마저 박탈했으며, 접경 국가들과의 분 쟁을 동시에 (때로는 폭력적으로) 확대했다. 또 중국의 행동에 문제 를 제기하는 국가에게는 초강경 외교 공세인 이른바 '전랑戰狼, Wolf warrior 외교'를 펼쳤다." 그리고 2020년 말과 2021년 초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둘러싼 논란과 폭도들의 의회 의사당 공격 등 으로 무질서한 상황이 심화하자 눈에 거슬리는 중국의 도발적인 정 책이 거의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2021년 3월 미국과 중국의 관리 들이 회동한 자리에서 양제츠는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강자의 입장 position of strength'에서 발언한다는 발상을 대놓고 조롱했다.” 미국의 정보 당국자는 중국 지도자들이 '획기적인 지정학적 전환'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확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최고위층은 확실히 이러한 인식을 분명히 드러냈다. 시 진핑은 2021년 1월 “동양은 떠오르고 있고 서양은 쇠락하고 있다" 라고 선언했다. 미국 패권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고 중국 주도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 중국은 몇 년 동안 급격한 경제 둔화를 겪고 있으나 이를 숨겨왔다. 또 정치적으로 점증하는 병리 현상과 악화되는 자원 부족 사 태, 엄청난 인구 재앙에 맞닥뜨리고 있다. 특히 중국공산당은 중국 의 상승을 도왔던 개방적이고 호의적인 세계를 활용할 기회를 잃고 있다. 중국은 1970년대 이래 중국 현대사에서 유례가 없는 축복을 누렸기 때문에 줄곧 매우 빠르고 높은 성장을 구가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축복이 사라지고 있으며, 중국은 침체와 경기 후퇴라 는 힘겨운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바야흐로 중국의 절정기가 지나 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현상을 타파하려는 신흥 강국의 유형 중 에서 가장 위협적인 형태로 급속하게 변모하고 있다. 그것은 기회 의 창이 열리기 시작했지만 열린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 유형 이다.
- 중국의 부상은 너무나 경이적이고 오래 지속되어서 관찰자들 중 많 은 수가 중국의 상승세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세계 인구 의 절반 이상은 1980년 이후에 태어났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에 관해 이들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이 나라가 줄기차게 성장하고 있 었다는 것뿐이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 미리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중국공산당 간부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중국은 1970년대 초부터 뜻하지 않게 얻은 다섯 가지 요소가 결합하면서 큰 혜택을 누렸다. 그것은 전에 없이 호의적인 지정학적 환경과 경제 개혁에 열성적인 지도부, 1인 통치를 희석시키고 전문 관료의 권한을 강화 한 제도 변화, 사상 최대의 인구배당효과demographic dividend, 풍부한 천연자원 등이다. 중국의 부상을 가능하게 한 요인을 이해하면 중 국의 미래가 왜 험난해질 것인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 수렁에 빠진 중국 경제
중국의 놀라운 경제적 성과는 결코 영원히 계속되지 못할 것 이다. 어떤 나라든 일단 경제 발전의 손쉬운 과실을 다 얻은 후에는 성장이 둔화되기 마련이다. 어떤 나라가 저임금과 거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의 슈퍼스타가 되는 과정에 적용되는 경제 원리가 성숙한 정보화 시대의 경제로 이행할 때 적용되는 경제 원리와 똑같지 않다. 그러나 성숙 단계에 들어선 경제에서는 항상 역풍이 불가피하다고 해도, 막상 그 역풍이 얼마나 격렬한지 알게 되면 놀 랄지도 모르겠다. 중국은 그동안 누적된 여러 문제 때문에 마오쩌 둥 사후에 가장 지속적인 경기 둔화 국면에 들어섰다. 그 끝이 어딘 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를 잘 보여 주는 통계가 있다. 중국의 공식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07년 15퍼센트에서 2019년 6퍼센트로 떨어졌다. 이는 30년 안에 가장 낮은 성장률이었다. 이어서 코로나 팬데믹이 중국 경제를 적자 상태에 빠뜨렸다.
- 6퍼센트의 성장률이 사실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여전히 놀라운 성과다. 전력 사용량과 건축 건수, 조세 수입, 철도화물 수송량 등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데이터에 근거한 엄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국의 실제 성장률은 대략 공식 발표 수치의 절반 정도이 고, 중국의 경제 규모는 보도된 것보다 20퍼센트 작은 것으로 나타 났다." 전직 중국 국가통계국장과 현 중국 총리를 포함한 고위 관 리들은 중국 정부가 경제 통계를 조작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 이래 중국의 사실상 모든 GDP 성장은 중국 정부의 대규모 자본 투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경제학자 는 정부의 경기부양 지출을 제외하면 중국 경제는 전혀 성장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부의 창출에 필수 요소인 총요소생 산성 total factor productivity은 2008년부터 2019년 사이 연평균 1.3퍼센트씩 하락했다. 이 수치는 중국이 해마다 더 많은 지출을 하고도 더 적게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 장기간 비생산적인 성장을 한다는 징후는 쉽게 포착 할 수 있다. 중국은 텅 빈 사무실과 아파트, 쇼핑몰, 공항 등으로 이 루어진 유령 거대도시를 50개 이상 건설했다. 전국적으로 주택의 20퍼센트 이상이 비어 있고, 이러한 공실 부동산의 규모는 독일 전 체 인구보다 많은 약 9000만 명 이상이 사용하기에 충분한 물량이 다." 유휴 공장과 창고에서 썩어 가는 상품 등 주요 산업의 과잉 생산 능력은 30퍼센트에 달한다. 중국의 사회간접자본 프로젝트의 3분의 2는 예상되는 경제적 수익보다 건설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이 모든 낭비로 인한 총 손실을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 국 정부는 '비효율적 투자'로 2009년부터 2014년 사이에만 적어도 6조 달러의 손실을 봤을 것으로 추산한다.
-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다. 과잉 투자에 따른 거품이 꺼지면 결국 장기간의 경제 침체로 이어지기 마 련이다. 중국과 유사하게 생산성을 초과한 성장 모델을 추구했던 많은 나라의 경우에서 드러났듯이,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할수록 수익은 줄어든다. 일본에서는 거의 제로성장에 가까운 '잃어버린 30년'을 초래했다. 미국에서는 과잉 대출이 '대공 황Great Recession'을 불러왔다. 과중한 부채에 짓눌렸던 인도네시아 경 제는 1997~1998년간의 아시아 금융 위기 와중에 무너지고 말았 다. 중국의 거품 붕괴는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중 국의 부채는 규모 면에서 인도네시아를 훨씬 능가하는 데다, 소련 이후 어떤 나라보다도 오랫동안 무조건적 개발 확대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2021년 말 중국의 거대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EV- ergrande을 강타한 일련의 금융 위기는 앞으로 다가올 사태의 예고편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처럼 점증하는 경제적 폭풍의 조짐은 중국공산당에게 실존 적인 위협을 가한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잠재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부채 중독을 떨쳐 버리기 어려워하는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 다. 1970년대 이래 중국공산당의 정통성을 유지해 온 주된 요인은 임금 인상과 생활수준 향상을 가져다준 것이다. 눈부신 경제적 성 과를 바탕으로 중국공산당은 국민과 단순하면서도 엄격한 사회적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바로 '당은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인민은 더 많은 부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걸로 족했다. 선거도 없고, 독립 적인 언론 매체도 없으며, 허가 받지 않은 항의 시위도 없고, 조직된 정치적 반대 세력은 전혀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기본적인 합의는 중국의 정치 시스템을 강력하지만 극도로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이 러한 정치 체제는 경제의 엔진이 계속 잘 돌아가야만 작동하기 때 문이다.
경제적 성과가 없다면 중국공산당은 1970년 이전과 같은 정 통성 부재의 상태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바로 공격적인 국수주의 와 저항 세력에 맞서 강경한 탄압 및 투옥과 처형 등이 빈번하게 일 어나는 상태 말이다. 그러한 체제는 과거 중국을 만성적인 빈곤과 갈등, 분란에 빠뜨렸다. 따라서 중국 지도자들이 급속한 성장의 불 씨를 다시 살리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조지 오웰 식의 전체주의적 경찰국가 체제를 건설하는 것은 활력 있는 경제 초강대국임을 보증하는 증명서가 전혀 아니다. 정 치적 경쟁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인물을 투옥하거나 처형 하거나 혹은 실종시키는 것이 시진핑 집권 이후 최우선 과제였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2012년 말 이래 중국 공안당국은 거의 300 만 명에 이르는 관리들을 조사해, 이 가운데 10여 명의 정치국원급 고위 지도자와 20여 명의 군장성을 포함해 150만 명 이상을 처벌했다. 이는 중국공산당 고위층의 한 세대를 완전히 숙청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달리 말하면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깨닫 게 된 정권의 편집증적 행태라고 할 수 있다.
- 오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우리는 중국 경제가 붕괴하기 직전이라나 자금이 부족하다거나, 혹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할 역량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중국의 상승세를 두고 그간 의 일반적인 통념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다른 이 들이 급속한 중국의 성장을 보는 곳에서, 우리는 막대한 부채와 소 련 수준의 비효율성을 본다. 다른 사람들이 중국의 엄청난 수출 물 량을 보는 곳에서, 우리는 취약한 공급망과 국내의 소비 부족 현상 을 본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경제적 우위를 이루려고 종합계획을 바탕으로 이를 자신 있게 추진하는 계몽적인 중국 지도부를 보는 곳에서, 우리는 오늘날 중국의 실상을 우리와 거의 비슷하게 인식하고 있는 부패한 엘리트층을 본다. 그들이 국내에서 사상 유례가 없는 최첨단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는 이유도 현재의 중국 상황을 우리와 유사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장에서 강조한 중국의 여러 가지 문제 (급증하는 부 채, 떨어지는 생산성, 외국의 보호무역주의, 환경 악화 등) 가운데 어느 하 나만으로도 중국 경제는 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보 면 중국이 지속적으로 심각한 경기 둔화를 겪으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리고 경제 부진은 중국의 국가 체제를 내부로부터 속 속들이 뒤흔들 것이다. 여기에 때맞춰 '전략적 포위strategic encircle- ment'라는 또 다른 위협이 시작되고 있다.
-  미국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던 시기에는 중국을 적극적으로 봉쇄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당시의 중국은 여 전히 상대적으로 빈곤했고 기술적으로 낙후되었다는 점을 감안하 면 중국의 성장을 굳이 억누를 필요도 없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 계 경제가 중국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은 당연히 미국 주도의 체제를 지지할 가치가 있다고 보게 될 것이었다. 또 많은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 면서 무너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히 중국도 결국에는 마찬가지 경로를 밟게 될 것으로 여겼다.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뒤 흔들 기회를 잡기 훨씬 전에, 미국이 중국을 '책임 있는 이해 당사 자' 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변모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 9.11 테러 공격은 10년간 미국의 관심을 완전히 바꿔 놓았고,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중국의 지지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당시 '아시아로의 선회' 정책의 기반을 재구축하 려 했으나, 중동에서 수년간 계속된 전쟁과 이슬람국가(ISIS)의 확산 에 대응하느라 이중고를 겪었을 뿐이었다. 중국 문제는 미래의 과 제, 어쩌면 한 세대 후의 문제로 밀려났다. 당장 눈앞의 문제에 대처 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정보 담당 관리는 이 런 상황을 일컬어 "중국은 언젠가는 읽겠다고 늘 생각하는 두꺼운 책과 같았다"면서 "그러나 언제나 다음 여름을 기약하면서 읽지 못 하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 나라 사이에서도 믿을 만한 나라를 신뢰해야 하는 법이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이 정책 전환을 미루고 꾸물거리도록 분위기를 만 들어 왔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 정책은 중국이 얼마나 위협적인 상대인지 우려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또 중화인민공 화국은 민주주의 국가를 교묘하게 이간질했다. 예를 들어 미국이 너무 강하게 나오면 미국의 보잉사 대신에 유럽의 에어버스사로부터 항공기를 구매하겠다고 위협하는 식이다. 중국이 점차 공세적으 로 바뀌면서 중국공산당은 심지어 미국의 경쟁 지향적 조치가 핵 확산이나 기후 변화 문제에서 양국 간 협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경 고하기까지 했다. 시진핑 정부의 외교관들은 이를 조롱하듯이 "냉 전식 사고는 상생 win-win 협력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전략은 놀라울 정도로 잘 먹혔고 중국공산당은 20년의 유예기간을 철저히 이용했다. 중국은 서방의 기술과 자본을 빨아 들였고, 자국 시장은 서방에 비해 폐쇄적으로 유지하면서 해외 시 장에 자국 물품을 마구 쏟아 냈다. 또 중국 관리를 각종 국제기구의 요직에 앉히는가 하면, 한편으론 군사력을 증강하면서 다른 한편으 로는 평화적 의도를 내세웠다. 중국은 국제정치에 죽기 살기win-lose 식으로 접근하는 자신들의 무자비한 외교 방식을 감추기 위해 '상 생 외교'라는 환상을 이용하는 데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그러 나 그런 수법이 영원히 통할 수는 없다.
- 잠재적인 경쟁자를 고립시키는 대신 통합시키는 쪽을 택한 미국의 정책은 중국의 성공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러한 정책은 냉전 이후 미국이 확실한 우위에 서 있다는 자신이 있 고, 포용 정책이 중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것이란 확신을 가졌 을 때만 지속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더욱 커진 중 국의 영향력은 포용 정책을 지탱해 온 첫 번째 기둥을 흔들고 있으 며, 중국의 강압적이고 전제적인 통치 행태는 두 번째 기둥마저 내부에서 허물어 뜨리고 있다. 중국이 그동안 잠복되어 있던 온갖 지정학적 불안 요소를 일제히 표면에 드러내기 시작하자, 미국의 대 중국 정책의 추는 이제 반대쪽으로 움직여 갈 태세를 갖췄다.
- 2015년 중국 문제 전문가이자 때때로 정부의 자문역을 맡아 온 마이클 필스베리Michael Pillsbury는 새로운 기류를 감지했다. 그의 베스트셀러 저서인 《백년의 마라톤The Hundred Year Marathon》에서 필스 베리는 미국이 세계 지배를 추구하고 나선 중국공산당 강경파에게 속아 왔다고 주장했다.28 머지않아 미국은 '누가 중국을 놓쳤는지' 를 두고 본격적인 논쟁에 들어갈 것이고, 비평가들은 포용 정책을 역사적 패착이라고 조롱하게 될 것이다.
포용정책이 중국공산당을 순화시키거나 변화시키는 데 실패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중국 역시 '파멸적인 성공'을 기록함으로써 실 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결국 애초에 중국이 상승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우호적인 국제 환경을 무너뜨 리고 말았다. 세계 각국은 중국의 오랜 호시절에 종지부를 찍기 시 작했다. 그 길에 앞장선 나라가 바로 한때의 협력자였던 미국이다.
- 정치학자들 사이에 통용되는 상식에 따르면, 강대국들은 상승하거나 아니면 쇠락하는 상태에 있다. 즉 새롭게 떠오르는 강 대국은 앞으로 전진하고 쇠락하는 강대국은 뒤로 후퇴하는 것이 다. 그리고 가장 큰 긴장과 가장 참혹한 전쟁은 떠오르는 도전자가 기존의 초강대국을 추월할 때, 다시 말해 정치학자들이 '권력 이행 power transition'이라고 부르는 시기에 발생한다. 현실은 더 복잡하다. 어떤 나라는 상승과 하락을 동시에 겪을 수 있다. 우리가 과거 에 신흥 강대국으로 보았던 국가들은 흔히 경제 침체와 적대적인 주변국들에 둘러싸인 전략적 포위를 함께 겪었다. 위험하고 적대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원인은 계속된 상승세로 생겨난 낙관주의가 아니라, 그 결과로 나타나는 하락에 대한 두려움이다. 성장이 둔화하 면 대개 불안감에서 비롯된 팽창 정책이 뒤따른다. 어떤 나라가 적 국으로 둘러싸이면 닫히는 고리를 깨기 위해 무리수를 시도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패권 이행 hegemonic transition'이 진행되지 않은 경우에도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 한때는 떠 오르는 도전자였던 나라가 적대국을 추월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깨 닫게 되면 진짜 덫에 빠질지 모른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신흥 강대국에게 기회의 창이 닫히기 시작하고, 그 지도자들이 이전에 약속한 영광스러운 미래를 이룰 수 없다는 불안감에 휩싸이면, 아 무리 승리할 가망이 없는 무모한 돌격일지라도 치욕적인 추락보다 는 나은 선택으로 보일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그동안 중국이 걸어온 행적이 우려스러운 이유 는 그들이 거침없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 아니다.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쟁은 자신의 미래가 더는 밝아 보이지 않 는 도전적인 신흥 강대국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 상대적인 부와 국력이 신장하고 국제 적으로 지위가 상승하는 국가는 당연히 지정학의 지평을 넓히려 할 것이다. 그러면서 섣불리 기존 패권국의 분노를 사지 않도록 결정 적인 대결은 늦추고 싶을 것이다. 그런 나라는 아마도 중국이 냉전 이후 20년간 그랬듯이 자신의 역량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 식으 로 처신할 것이다.
이제 대안이 될 수 있는 다른 시나리오를 상정해 보자.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어떤 나라가 힘을 축적하면서 자신의 야망을 차근 차근 키워 왔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극단적인 국수주의를 부추 겨 왔다. 그들은 국민에게 과거의 굴욕을 되갚아 줄 것이며, 국민의 위대한 희생은 보상 받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이 둔화되었기 때문에 혹은 이 나라의 상승을 방해하기로 작정한 경쟁 국들의 연합체와 충돌하는 바람에, 이 나라는 이윽고 절정기를 지나 게 된다. 기회의 창은 닫히기 시작하고 취약성의 창이 열릴 조짐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현상을 타파하려는 강대국은 더 공격적이고 심지어 예측 불가하게 행동할지 모른다. 너무 늦기 전에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는 충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중국에 대해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골치 아픈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과거에 여러 번 일어났다.
- 제정 러시아를 생각해 보자. 이 나라는 1880년 말부터 세기 말 에 이르기까지 경제 호황을 누렸다. 산업 산출은 두 배로 늘었고 철 강, 원유, 석탄 생산량은 세 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1900년에는 이 미 깊은 불황이 진행되고 있었다. 농노는 지주의 장원을 약탈했고 노동자는 철도와 공장을 파괴했으며 수십 명의 관리가 암살당했다. 러시아의 통치자는 기술적 후진성으로 인해 러시아가 선진국들에 게 예속된 '산업의 포로'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겁에 질린 전제주의 정부는 가혹한 탄압에 나섰다. 1905년까 지 제국의 70퍼센트가 계엄령 하에 들어갔고 1만 명 이상이 처형되 었다. 러시아의 군사력은 성장했다. 1901년부터 1905년 사이 러시 아의 해군 예산과 함대 규모는 거의 40퍼센트 가까이 늘어났다.
- 정부가 통제하는 은행과 산업체는 경제적 팽창의 도구가 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정부는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정 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조선에서는 식민주의적 이권을 추구했고 만주에는 17만 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역 효과를 냈다. 일본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20세기 최초 의 강대국 사이의 전쟁인 러일전쟁을 유발했고, 러시아는 이 전쟁 에서 패했다. 
한 세기가 지난 후 블라디미르 푸틴이 통치하는 러시아는 유사한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와 석유 가격 폭락으로 인해 탄화수소 연료로 추진되는 성장 방식이 종말을 고한 이후, 푸틴은 러시아의 국제적 지위를 강화하고, 자원에 의존하는 경제를 지탱하며, 자신의 통치에 도전하는 세력을 막기 위 한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그는 반체제 인사를 범죄자로 규정했 고 정적을 살해했으며 러시아를 더 깊은 권위주의 체제로 끌어들였 다. 푸틴은 국수주의와 해외의 적들에 대한 외국인 혐오증을 소환 했다. 24 또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경제 블록의 창설을 추 진했다. (그의 지지자는 이를 '새로운 제국주의적 공동체'라고 일컬었다.) 그는 거대 석유기업 로스네프트Rosneft와 같은 국영기업과 정부가 지원하는 용병을 국가적인 영향력 확대의 수단으로 해외 지역에 파 견했다. 특히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던 인접한 두 나라(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일부 강점하는 한편, 시리아 내 전에 개입하고 있다. 1904년 러시아의 한 장관은 (어리석게도) "우리는 승리를 거두는 작은 전쟁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21세기 차르는 이런 전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 1차 세계대전에는 다른 모든 전쟁과 마찬가지로 많은 원인이 있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독일제국 정부가 스스로 쳐놓은 함정에 서 탈출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시작된 독일의 예방적 전쟁이었다. 독일은 스스로 만든 후폭풍으로 인해 성장에 해를 입 은 현상 변경을 노리는 강대국이었다. 따라서 독일은 몰트케가 제 대로 예측했듯이, “거의 전 유럽의 문명을 수십 년 동안 말살하게 될 최후의 결전"에 모든 것을 걸고 싸워서 결국 모든 것을 잃었다.
- 이러한 올인 전략을 더 매력적인 선택지로 만든 이유는 1940년 말부터 1941년까지 일본이 가졌던 군사적 기회의 창이 좁았기 때문이다. 서유럽에서 독일의 전격적인 기습공격은 프랑스를 무너 뜨리고, 영국을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 면서, 동남아시아에 '한 세기 만의 기회가 생겼다. 루스벨트는 대 서양의 지배권을 두고 히틀러 Adolf Hitler와 벌이고 있던 선전포고도 없는 전투로 인해 주의가 분산되었다. 1941년 4월 일본이 소련과 맺은 불가침조약이 그해 6월 독일의 러시아 침공으로 이어지면서, 일시적으로 북쪽으로부터의 위협이 상쇄되었다. 특히 일본은 이른 재무장 덕분에 여전히 군사적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본은 10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한 반면에 태평양 전역에서 영국과 미국이 보유한 항공모함은 3척에 불과했다. 문제는 그 기회의 창을 얼마 나 오래 열어 둘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해답은 1941년 하반기에 나왔다. 일본군이 인도차이나 남부로 진격해 들어가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면적인 석유 수출 금지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일본의 함선과 항공기는 연료가 거의 바 닥날 위기에 처했다. 일본 지도자들은 "일본은 물이 점점 고갈되어 가는 연못 속 물고기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라고 믿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B17 폭격기와 P40 전투기 등으로 방어력을 키우고 있 었다. 영국 및 네덜란드와의 군사 참모회의와 공동 경제 제재 조치 로 인해 일본인은 자신들을 향한 포위망이 거의 완성되었다고 우려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미국의 재무장이 가속화됨에 따라 미 해 군은 1942년부터 1943년까지 각각 일본의 네 배 규모에 이르는 함 선과 해상 공군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시점이 되면 일본은 아시아에서 주도권을 가질 희망이 사라질 판이었다. 그러 면 일본 지도자들은 완전히 신뢰를 잃게 되고, 일본이 그동안 흘린 모든 피와 힘겹게 견뎌 왔던 모든 고난은 부질없는 일이 될 터였다.
일본 지도자들은 "미국이 더욱더 많은 양보를 요구할 것이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제국은 미국의 발 아래 엎드리게 될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1941년 가을 일본 정부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와 필리핀,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중앙태평양에 이르는 다른 식민지를 장악하 기로 결정했다. 설사 이것이 영국 및 미국과의 전쟁을 의미하더라 도 말이다. 일본이 총력전에서 이길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일본 관 리는 거의 없었다. 야마모토는 "우리는 6개월에서 1년 동안은 광란 의 쇼를 벌일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이 2년, 3년을 끌게 되면 결과를 확신할 수 없다"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전쟁을 벌이지 않을 경우 일본이 적들 앞에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는 급격한 몰락 외에는 다 른 대안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일련 의 전격적인 공격을 가함으로써 미국의 사기를 꺾어 미국이 전쟁을 계속하기보다는 평화를 요청하도록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전쟁은 잘해야 끔찍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국가의 파멸 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일본을 전쟁으로 이끌었던 내 각총리대신 도조 히데키는 "어떤 경우엔 눈을 감고 뛰어내릴 정도 로 용기를 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진주만 기습 공격의 발단이었다.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미국의 태평양함대를 초토화시킴으로써 일시적으로 더 많은 군사 적 이득을 (그리고 새로운 점령지를 일본이 소화하는 데 필요한 더 많은 시 간을) 왜 얻지 않겠는가? 아이러니한 것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미국인 눈에는 너무나 위험하게 보인 나머지, 어 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필코 일본을 파멸시키도록 미국을 일깨운 것이었다. 한 하원의원은 "일본인은 완전히 미쳐서 제정신이 아니 었다"면서 "그들은 정당한 이유 없는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군사적, 국가적으로 자살했다"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2차 세계대전은 일본에게는 거의 자살행위였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 원인은 일본이 미쳤기 때문이 아니라, 현상을 타파하려 는 꿈이 산산이 부서질 지경에 이른 나라의 절박함 때문이었다. 일 본은 10년 동안 계속 활력이 넘쳤다. 그런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가장 위험해진 것이다.
- 역사가들은 흔히 1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과 2차 세계대전 이전 의 일본을 신흥강국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1868년 이후 수십 년 에 걸쳐 약소국에서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일본제국은 특히 1930 년대에 급속히 성장했다. 1914년에 독일은 1871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강력한 경쟁자였다. 두 나라는 이미 기존의 세계 질서에 근본적으로 도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그 절정의 순간에 독일제국과 일본제국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다. 침체나 포 위, 혹은 이 두 가지의 어떤 조합에 의해 그 절정의 순간이 지나가 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미래를 불안해하기 시작한 현상 변경의 신 흥 강국은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고 여기는 나라보다 더 충동적으로 행동할 공산이 크다.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함정이다. 야심 찬 초강대국이 절정기에 도달한 다음 하락의 고 통스러운 결과를 참지 못하고 거부하는 함정 말이다.
오늘날 중국의 지도자들이 중국공산당을 일본제국은 물론이 고 독일제국과 비교하는 것을 들으면 격노할 것이다. 공정하게 말 하자면 중국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앞서 10년 동안 감행했던 군 사적 공격과 유사한 그 어떤 행동에도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독일제국은 1871년 이후 40년 동안 단 한 번도 대규모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1914 년에 세계를 거의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재앙으로 밀어 넣은 전쟁을 일으켰다.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는 "1차 세계대전은 노아의 대홍수 같은 ... 자연의 대격변 혹은 유럽의 생활기반 자체를 뒤흔든 대지진이었다고 말했다. 현상을 타파하려는 신흥 강국들이 임박한 재앙의 조짐을 보게 되면 사태는 급속히 악 화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여기에 우려할 만한 다른 이유가 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중 국도 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있다. 중국은 탈출하기가 극히 어려운 장기간의 경기 둔화에 대처하고 있으며, 비록 점진적이지만 중국의 진출을 방해하려는 일단의 경쟁자들에 직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은 중상주의적 팽창 정책을 더욱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권위 주의 체제와 경제 모델을 갖고 있다. 중국의 무역 전망은 극히 부정 적으로 바뀌고 있다. 사실 중국은 이미 군사력 증강과 영향권 확대, 중 요 기술과 자원을 통제하려는 노력 등) 중국과 같은 처지에 놓인 나라에 서 예상되는 행동을 실행하고 있다. 그동안 놀랍게 성장했으나 이 제는 침체와 포위에 대처하느라 악전고투하는 어떤 나라를 공세에 나서도록 만드는 비법이 있다면, 중국은 그 비법에 포함되는 모든 핵심 구성 요소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 '공산주의' 중국이 빠진 레닌 함정
중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주된 도전은 투키디데스 함정이 아니다. 바로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이 '제국주의imperialism'라고 불렀던 것으로, 제국주의는 그가 경제 파탄과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견했던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국 경제가 과잉 생산 설비로 포화 상태가 된 자본주의 국가가 해외에서 새로 운 시장과 자원을 확보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했다." 레닌의 이론에 따르면 그 나라가 새로운 시장을 찾지 못하면 경제 침체를 겪게 된 다. 성장이 멈추고 일자리가 사라지며 국내 불안이 고조되는 것이 다. 이런 운명을 피하려면 해외에서 배타적인 경제 구역(일명 제국) 을 개척해야 한다. 기업은 그곳에서 소비자와 값싼 원자재에 손쉽 게 접근하게 된다. 19세기 말 유럽 열강이 불과 30년 만에 아프리 카 대륙의 90퍼센트를 식민지화했던 이른바 '아프리카 분할scramble for Africa'이 레닌의 이론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증거였다.
운명의 장난인지 '공산주의' 중국은 이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로 나아갈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인다. 중국 경제는 수십 년 동안의 부실 대출로 만들어 낸 과잉 설비가 남아돌아 가고 있다. 북미, 유 럽, 일본 등 그동안 중국이 생산품을 떠넘겼던 주요 시장은 홍수처 럼 끝없이 밀려드는 중국산 제품을 점점 떠안지 않으려 한다. 2008 년 이래 중국은 이러한 추세에 2단계 계획으로 대처해 왔다. 첫째 는 수조 달러 이상을 외국인에게 빌려줘서 중국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만들어 중국 경제를 계속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13 둘째 는 그동안의 수익을 활용해 연구개발(R&D) 투자를 크게 늘리고, 외 국의 기술을 사거나 훔치며, 보조금과 무역 장벽을 이용해 중국 기 업을 해외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식으로 중국 스스로 기술 강국 이 되는 것이다. 중국은 그 결과로 일어난 대대적인 혁신이 중국 경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중국의 국력을 끌어올리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레닌이 예견했듯이 국내에서는 보호무역주의를 실행 하면서 해외에서는 팽창 정책을 추구하면 외국의 반발을 부르기 십 상이다. 어떤 강대국이라도 자국의 생산품을 해외에 떠넘기고 국내 시장은 상대적으로 폐쇄한 채 운영하면 교역 상대국의 반감을 사게 마련이다. 그 결과 시장과 자원, 국제적 지위를 두고 격렬한 경쟁이 벌어지고 때로는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더군다나 한 제 국주의적 강대국이 개발도상국에게 빚을 지게 해서 자국 상품을 구 매하도록 강요하면, 여기에 저항하는 국민적 반대운동이 일어난다.
- 오늘날 중국은 이러한 역학이 작동하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경제 부국들이 중국과의 경제 교류를 재고하는 가운데, 빈국들은 일 대일로 구상의 계약조건을 개선하도록 요구하거나 아예 계약을 완 전히 중단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함정에 빠졌다. 자신들의 정치 체제를 지탱하는 정실 자본주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고서는, 결코 경제 제국주의를 폐기하거나 진정으로 경제를 개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만일 영향권 확대 전략을 포기한다면 경쟁국들 앞에 전략적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제국을 건설하려는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 중국공산당이 국내외에서 위협이 증가한다고 느끼게 되면 중국은 디지털 권위주의를 더 멀리, 더 널리 수출할 것이라고 예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많은 나라가 이미 중국의 디지털 권위주의를 원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를 원치 않는 나라들에게 강요할 강력한 수단을 갖고 있다.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고? 그러면 화웨이가 당신 나라 5G 통신망의 핵심 부품을 설치하도록 해라. 중국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싶다고? 그러면 중국의 감시 기술을 당신 나라 수도에 받아들여라.
더 많은 나라가 중국과 협력 관계를 맺게 되면 중국의 전 세계 에 걸친 감시 국가 범위는 더 커질 것이다." 현존하는 독재 국가 는 더욱 전체주의적 성향을 띠게 될 것이고, 몇몇 민주 국가는 권 위주의 진영으로 이동할 것이다. 결국은 민주주의가 전 세계에 확 산될 것이라는 (1990년대에 널리 퍼졌던) 자유주의적 믿음은 뒤집힐 것이다.
인류가 대규모 잔학 행위를 하던 시대를 넘어 진화하리라는 안일한 신화 역시 마찬가지다. 디지털 권위주의는 강제 수용소와 집단 학살의 대체물이 아니다. 얼핏 보면 도와주는 것 같지만 실제 로는 일을 망치는 조력자다. 정치학자들은 독재 국가가 디지털 탄압을 강화할 때 고문과 살인을 더 많이 자행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기계가 일상의 기록과 감시 업무를 모두 처리하게 되면, 그런 업무를 담당하던 인력은 자유롭게 인종 청 소와 반체제 인사를 대상으로 고문과 같은 권위주의 통치의 물리적 측면에 집중하게 된다.
스마트시티가 집단 수용소 옆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신장 자치구를 한번 보라. 중국의 공안 관리들은 집단 수용소를 운영하며 '재교육'과 강제 불임시술 같은 업무를 처리하는 반면에 카메라와 생체 인식기, 의무적으로 설치된 휴대전화 앱이 컴퓨터에 데이터를 전송해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시하도록 한다. 그러면 알고리즘이 카메라가 전송한 화상 정보를 사진과 혈액 표본, 경찰이 '건강검진'에서 채취한 유전자(DNA) 검체 등과 대조한다. 위구르 인이 거주 지역의 경계에 다다르면 휴대전화가 자동적으로 당국에 경보를 울린다. 위구르인이 주유를 하면 감시 시스템이 실제 자동 차 소유자인지 여부를 확인한다. 이들이 소재지에서 도주하려고 시 도하면 경찰이 가족과 친구들 집으로 급파된다. 만일 이들이 어떻 게든 외국으로 나간다 해도 확실한 탈출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권위주의 동맹국들은 이집트처럼 무슬림이 대다수인 국가 들조차 중국의 감시 기술을 이용해 위구르인을 색출한 다음 중국의 손아귀로 송환하기 시작했다.
- 미국과 다른 선진 민주 국가가 이러한 이념 공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해도, 더 권위주의적으로 바뀐 세상에서 이들 의 영향력과 안보는 위축될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에워싸려고 애 쓰는 전략적 사슬에서 가장 강력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가 모두 민주 국가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이 가장 친밀한 우 방국 중에서도 러시아와 이란과 같은 독재 국가를 중시하는 것 역 시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세계의 민주 국가를 분열시키고 끌어내 리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노력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모 든 민주주의 국가는 자신들의 자유주의 제도를 보전하기에 좋은 국 제 환경을 필요로 한다. 모든 권위주의 국가는 체제를 전복하려는 자유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세계를 필요로 한다.
- 서로 다른 형태의 국내 질서는 국제 질서에서도 서로 다른 기대를 낳는다. 만일 중국이 더 많은 나라를 권위주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면, 전략적 균형점이 이동할 것이고 중국에 대항하 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연합 세력은 약화될 것이다.
독재 국가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악마로 묘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독재자들은 국민이 민주적 제도를 동경하거나 자 유를 요구하기를 원치 않는다. 전제 정권을 중심으로 국민을 결집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를 향한 증오심을 불 어넣는 것이다. 그러자면 꾸준히 계속해서 이념 충돌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시진핑, 푸틴, 하메네이Khamenei, 김정은, 아사드Assad, 에 르도간Erdogan, 오르반orbán, 루카셴코Lukashenko 등 세계에서 가장 악 명 높은 독재자들이 자신들을 타락한 서구 민주국가에 맞서 전통 과 위계, 질서를 지키는 수호자로 묘사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중국이 권위주의 국가의 범위를 확대할수록 미국과 그 동맹국이 설 자리는 더욱 초라해질 것이다." 국제적 분쟁은 단 지 이념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군사 영역에서도 확산될 것이다. '인종과 영토blood-and-soil'에 근거한 국수주의가 폭력적인 보복과 함 께 분출할 것이다. 걱정스럽게도 그런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 중국도 그들이 걸어간 발자국을 뒤따를 것임을 시사한다. 중화인민 공화국이 언제 그리고 왜 무력을 사용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수많 은 연구와 분석이 이루어졌다. 이들이 도달한 한결같은 결론은 이 렇다. 중국은 상승할 때가 아니라 안보 상황이 악화되고 협상력이 떨어질 때 싸움에 나선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중국공산당은 일 반적으로 기회의 창이 닫히는 시기를 최대한 이용하거나, 취약성 의 창이 열리는 것을 회피하려고 무력을 사용한다는 말이다. 중국 은 경쟁자들에 의해 궁지에 몰리면 공격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 다. 대신 전략적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전술적 이점을 살리려고 선제공격을 감행한다. 사실 중국은 대규모 전면전에서 이길 가망 이 거의 없는데도 더 우월한 적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곤 한다. 선 제공격의 목표는 초반에 치열하게 싸워 막대한 사상자를 낼 용의가 있음을 보여 주어서 적이 물러서도록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메시지는 대개 중국과 링 위에서 맞붙고 있는 적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는 다른 적을 향해 보내는 것이다.
- 문제의 핵심은 중국이 1914년의 독일이나 1941년의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유리하지만 매우 협소한 군사적 기회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대만 정부 스스로가 평가했듯이 중국은 대만의 방 어를 무력화할 수 있다." 우리가 3장에서 자세히 살펴본 것처럼 대 만과 미국은 그러한 위협에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고, 해결해야 하는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식별했으며, 이제 그에 따라 양국 군대를 재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부터 미국과 대만의 국방 개혁이 실 질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2030년대 초까지는 중국에게 기회가 있다. 실제로 대만해협 양안의 군사 균형은 2020년대 중반에 일시적으로 중국에 유리한 쪽으로 더 이동할 것이다. 이 무렵 미국의 순 양함, 유도미사일 탑재 잠수함, 장거리 폭격기의 많은 수가 퇴역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미군은 여전히 로널드 레이건 행 정부 시절에 구축한 전력에 머물러 있고, 특히 미국의 해군 및 공 군 현대화 계획은 수십 년간 연기되어 왔다. 지금 이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 미 국방부의 주력 함정과 전투 항공기 가운데 많은 수 가 문자 그대로 부서져 나가거나 폭발해 화염에 휩싸이고 있다. 노 후한 함선의 선체와 항공기 동체는 중국의 새로운 전력과 경쟁하기 위해 필요한 현대적 엔진, 감시 장치, 군수 장비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능 개선 작업 자체를 감당할 수 없다. 이러한 미군 의 전력은 퇴역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미군은 동아시아에서 현대 해군 화력의 필수 요소인 수직 미사일 발사관을 중국보다 수백 개 적게 보유하는 셈이다. 한편, 중국은 수백 기의 대함미사일과 지상 공격미사일, 수십 대의 장거리 폭격기와 수십 척의 수륙양용 함정, 중국 본토에서 대만 전역 또는 대부분을 타격할 수 있는 로켓발사 시스템 등을 가동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지정학적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2020년대 중반에 중국은 적을 물리치고 자신의 현상 변경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갖게 될 터이다. 전직 미 국방부 관리가 말 했듯이, "미국이 대만 전쟁에서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킬 위험을 감 수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
- 과감성은 정신이상 상태가 아니다. 중국의 국력이 정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중국이 온 사방으로 미친 듯이 폭력적인 행동에 나 설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특히 지금 위험을 감수하는 것 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상황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역에서, 중국이 보다 강압적이고 공격적으로 바뀔 것이란 의미다. 중국이 대만을 장악하면 제1열도선이 무너지고 중국의 전략적 위치는 크 게 개선된다. 중국이 첨단기술 제국을 건설하면 경제 침체와 외세 의 포위를 모면할 수도 있다. 중국공산당이 민주주의를 패퇴시킨다 면 중국 정권을 굳건히 지키면서 국제적 고립에서도 어느 정도 벗 어날 수 있다. 어쩌면 중국 지도자들은 약간의 대담한 시도가 자신 들을 암울한 운명으로부터 구해 줄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지 모른다.
- 트루먼 독트린은 그리스 와 터키를 지원하고, 미국이 위험에 처한 세계를 지탱하겠다고 약 속하는 결정을 담고 있었다. 여기서 더 주목할 만한 대목은 트루먼 의 참모들이 불과 며칠 만에 계획의 초기 윤곽을 그렸고, 그다음 3 주에 걸쳐 분주하게 세부 계획을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영국 관리 들이 금요일 오후에 파산 상태의 영국 정부가 그리스와 터키를 각 자의 운명에 맡기겠다는 폭탄선언을 미 국무부에 던진 이후에 일어 난 일이었다. 한 영국 외교관이 썼듯이 미국은 "영국의 얼어붙은 손 에서 세계 주도권의 횃불을 넘겨받느라 허비할 시간이 없다"라는 사실을 즉시 이해했다.
- 미국 관리들이 일의 진행 순서에 따라 계획을 차근차근 추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토와 같은 중요한 구상은 대부분 눈앞 의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즉흥적 해법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미 국은 불안정한 상황이 완전히 악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수단을 모두 활용했다. 또 비상한 상황에 동원된 다양한 인력 에 의존했다. 미국은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긴박하면서도 신축적 으로 움직였다. 만일 트루먼의 재임 기간이 오늘날 정책 혁신의 황 금시대로 기억된다면, 당시 미국이 생각은 신중하게 하면서 행동은 신속하게 했기 때문이다.
- 미국은 당분간 중국을 공정하고 개방적인 경제 질서의 규칙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들겠다는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 관세로 위협하 든 아니면 새로운 무역 협정으로 유도하든 어차피 중국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미국의 정책적 공세는 중국의 상대적 인 기술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도록 더 예리해야 하고 대상 범위가 좁아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에 권위주의적 제국을 저지하는 길이 다. 20세기에 미국이 한 무리의 전제적 제국을 저지했듯이 말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중국을 배제시켜 경쟁에서 밀 려나게 하는 비공식 경제 동맹을 맺는 것이다. 그런 협력의 황금률 이 냉전 시기에 나타났다. 미국이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 한 나라를 모아 사교클럽 형식의 배타적인 무역 및 투자 네트워크 를 구축한 것이다. 회원국은 기술을 공유하고 연구개발 기금을 조 성하며 공급망을 통합해서 각 회원국이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에 특 화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소련이 전략 물품과 첨단기술 제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려고 수출 통제 조치를 조율했다. 이러한
- 협력적 노력의 총합은 미국이 단독으로 이룰 수 있었던 것을 훨씬 능가했으며, 서구 연합은 소련을 압도했다. 정치학자 스티븐 브룩 스Stephen Brooks와 윌리엄 울포스William Wohlforth는 "냉전 시기에 세계 화는 세계적이지 않았고 편이 갈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언급했다." 오늘날 미국은 자유세계 연합을 다시 설립할 필요가 있다. 다 만 이번에는 중국을 겨냥한 연합이다. 이는 전면적인 '탈세계화 de-globalization'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세계 연합의 회원국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여전히 중국과 교역을 계속하고, 중국산 재화에 관세를 낮춰 줄 수 있다. 이 연합은 또 트럼프 행정부가 종종 시행 했던 일종의 경제적 일방주의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미국 과 동맹국의 통합을 심화하는 '재세계화re-globalization'를 통해 중국 의 경제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면서 중요한 기술과 자원에 전략적인 다자간 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 가장 대담한 대책을 쓴다면 중국처럼 언론 자유와 개인의 권 리를 존중하지 않는 나라들을 배제한 가운데, 미국과 동맹국이 데 이터와 상품이 자유로이 유통되는 디지털 연합을 창설함으로써 인 터넷을 선제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현재 두 세계의 이점을 다 누리고 있다. 중국은 자국민이 외국의 웹사이트에 접속 하지 못하게 막고, 외국 기업은 중국의 디지털 시장에 진입하지 못 하게 제한하는 폐쇄적인 국내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면 서 글로벌 인터넷망에는 선별적으로 접근해서 지적 재산을 탈취하 고, 민주적 선거를 방해하며, 자국의 선전물을 퍼뜨리고, 핵심 인프 라를 해킹한다. 이런 방식은 소련의 악명 높은 브레즈네프 독트린 Brezhnev Doctrine을 디지털 시대에 맞춰 변형한 것이다. 바로 '내 것은 내 것이고, 남의 것은 잡는 자가 임자'라는 심보다.
- 이러한 약탈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리처드 클라크Richard Clarke와 롭 네이크Rob Knake는 '인터넷 자유 리그Internet Freedom League'의 창 설을 제안했다. 33 이 시스템 하에서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터넷의 비전을 믿고 따르는 나라들은 상호 연결 상태를 유지하는 반면에 이런 비전에 반대하는 나라들은 접속이 제한되거나 쫓겨날 것이다. 이 리그는 본질적으로 디지털 세계의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 이 될 것이다. 솅겐조약은 유럽연합 내에서 사람, 재화, 서비스의 자유 로운 이동을 보장한다. 이 리그는 모든 비회원국의 인터넷 통신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디지털 권위주의와 사이버 범죄를 방조하는 기업과 단체만을 차단한다. 물론 중국공산당도 그런 악역의 하나 이므로 차단될 것이다. 딘 애치슨은 냉전 기간 동안 미국과 그 동맹 국은 '절반의 세계, 자유로운 반쪽 세계'를 만드는 것에 만족했다고 말했다. 그러지 않고 택할 수 있는 대안은 권위주의의 위협이 온 세 계를 휩쓰는 것을 지켜보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34 미국은 현재 진 행되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의 디지털 투쟁에서도 이와 유사한 접근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 산업혁명과 대규모 군대가 출현한 이래 강대국 간의 전쟁은 짧게 끝나기보다는 길어진 경우가 자주 있었다. 나폴레옹전쟁과 미국의 남북전쟁,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등이 모두 단기간에 한쪽이 전멸하기보다는 끈질긴 소모전을 하고 나서야 승패가 났다. 중국 은 대만 침공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더라도 전쟁을 계속해야 할 강력 한 이유가 여럿 있다. 시진핑이 대만의 반란 세력과 미 제국주의자 들에게 당한 패배를 인정하면,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곤경에 빠지고 중국공산당의 정통성이 위험에 처해 결국은 자신의 권력이 전복될 것임을 우려할 게 확실하다. 시진핑은 패배하기 일보 직전에서 승 리를 낚아채거나, 아니면 그저 체면을 지킬 수 있다는 희망 속에 전 쟁을 계속할지도 모른다.
- 핵무기로 무장한 적과 의 전쟁이 미국의 완전한 승리나 중국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날 가 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이 이 전쟁에서 더 잘 싸울수록 겁에 질린 중국공산당은 더 예측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 있다. 중국이 전쟁을 멈추도록 만들려면 상당한 규모의 지속적인 압박과 파괴가 필요할 것이다. 체면을 세워 주려는 외교적 노력 또한 필요하다. 예컨대 대 만이 정치적 독립을 추구하지 않고 미국 역시 대만의 독립을 지지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는 조건으로 중국이 공격을 중단할 용의가 있 다고 할 경우, 미국은 현명하게 그런 협상 조건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접근 방식의 이면에는 교전이 길게 계속될수록 미국의 전쟁 목적이 확 대되어 어쩌면 대만의 공식적인 독립까지 포함하게 될 것이라는 조용한 경고 가 담겨 있다.)
그러면 미국은 대만을 중국의 팽창을 막는 장벽으로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시진핑 역시 대만에 교훈을 가르쳐 줬다고 주장할 수 있다. 전쟁을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내기는 어렵 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이 빠져나갈 길은 남겨두되 중국이 계속 공 격하지 못하도록 압박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중국의 역사는 원활한 권력 이양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거의 아무런 위안을 주지 못한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완전히 공식적이고 질서 있게 지도자 승계가 이루어진 경우는 역사상 단 한 번 있었 다. 바로 2012년 시진핑이 집권했을 때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이 전의 시기도 별로 위안거리가 못 된다. 49개 왕조에서 즉위한 282 명의 중국 황제 가운데 절반이 살해되거나 황제 자리를 빼앗기거 나 강제로 퇴위하거나 강요에 따라 자살했다. 이들 가운데 후계자 를 선택한 황제는 절반에 미치지 못했고, 그 대부분은 재위 마지막 해에 승계가 이루어졌으며, 그들의 후계자도 대개 정치적 경쟁자 의 손에 살해되었다. 요약하면 중국에서 권력의 승계 과정은 폭력 적이며 혼란스러운 것이 일반적이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 장기전의 여정이 참으로 길어질 수 있다. 케넌은 1940년대 말에 냉전이 10년에서 15년까지 지속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내할 것을 설파했다. 냉전이 실제로 종식되기까지는 40년이 넘 게 걸렸다. 그 기간 동안 위험 수준은 점차 완화되었지만 불편한 짐 을 지고 전쟁과 평화 사이의 어두운 곳을 헤쳐 나가야 할 필요는 늘 있었다. 봉쇄 정책은 놀라운 성공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러한 승리를 거두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이번 10년간 미국의 과제는 정점에 도달한 중국이 자신의 의 지를 전 세계에 관철시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그러나 전략적 긴급성에는 반드시 전략적 인내가 뒤따라야 한다. 위험 구간 통과 에 대해 미국이 받는 보상은 한 세대 또는 그 이상의 기간에 걸쳐 미국의 우위를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기나긴 싸움에 들어서는 입장 권에 불과할 수 있다. 이는 빠르고 결정적인 해법을 좋아하는 나라 에게는 미흡하기 짝이 없는 보상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날 미국과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의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받 을 만한 보상이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두구의 저주  (1) 2023.12.24
최소한의 중동수업  (2) 2023.12.16
왜요 기후가 어떤데요?  (0) 2023.11.07
안녕하세요 비인간동물님들  (3) 2023.11.07
네옴시티  (1) 2023.10.27
Posted by dalai
,

- 이메일을 자주 확인하는 편이니? 혹시 스팸 메일이 가득 쌓 여 있다면 지구를 뜨겁게 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거야. 전 세계 이메일 이용자는 대략 23억 명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 이 필요 없는 이메일을 각자 50개씩만 지워도 862만 5000 기가바이트의 데이터 공간을 절약할 수 있대. 이 공간이 줄어 들면 2조 7600만 킬로와트시의 전기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고 1시간 동안 27억 개의 전구를 끄는 정도의 효과가 있어. 읽지 않는 이메일을 쌓아 둔 채 에너지를 소비하고 그로 인 해 지구가 뜨거워진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어? 몇 번의 클릭 으로 굉장한 결과가 일어나잖아. 이메일함부터 정리해 보면 어떨까? 톡방에 올린 불필요한 사진이나 링크도 얼른얼른 정리하고 말이지.

- 일본은 무척 까다로운 분리배출 제도를 실시하고 있어. 분리배출한 재활용품이 깨끗하게 세척된 상태가 아니면 수거하지 않거든. 또 일본은 대부분의 페트병이 투명해. 1990년대부 터 재활용에 관심을 갖고 이렇게 엄격하게 재활용을 하고 있지. 우리나라에는 페트병에 색이 입혀진 게 많은데 이 경우 투명 페트병에 비해 재활용이 쉽지 않아. 이제 우리나라도 투명 페트병만 따로 모으기 시작했어.
또 다른 사례도 살펴볼까? 네덜란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친 환경 에너지 기술력을 갖춘 나라야. 네덜란드의 생활 폐기물 가운데 64퍼센트는 재활용되고 34퍼센트가 소각되며 나머지 2퍼센트를 매립한다고 해. 네덜란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1994년 '싱크의 사다리'라는 정책을 발표했고 꾸준한 노력 끝에 이런 결과를 가져왔어. 쓰레기를 가능한 줄 이고 재활용을 통해 자원을 보존하자는 거야. 그래도 발생하 는 쓰레기는 태워서 전기를 생산하는 데 쓰고 최종적으로 남 는 것만 매립한다는 내용이지.

- 우리 사회는 점점 누가 어떤 브랜드의 가방을 들고 어떤 메 이커 옷을 입고 무슨 신발을 신었는지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 가하는 것 같아. 자동차를 고르는 기준도 비슷해. 안전하고 승 차감 좋은 차를 사려던 기준이 차에서 내릴 때 사람들이 와, 하며 부러운 눈길로 쳐다볼 수 있는 비싼 고급 자동차로 바뀌 었대. 그걸 '하차감'이라고 비틀어 얘기한다고 해. 한마디로 '웃픈' 현실이지.

- 비는 나무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땅속으로 스며들어 가. 우 드와이드웹이 잘 이루어진 땅이라면 빗물은 마치 스펀지가 물 을 빨아들이듯 토양층으로 쑥쑥 잘 스며들 거야. 촘촘하게 뻗 어간 뿌리 주변의 흙은 물 저장 탱크와 같은 역할을 하거든. 이렇게 스며든 물 가운데 일부는 다시 나무가 빨아올려 갈증 을 해소할 것이고, 남은 물은 그대로 지하로 서서히 스며들며 지하수가 되는 거야.
오래된 나무는 줄기에 이끼가 많아. 이끼는 대략 자기 몸의 다섯 배나 되는 물을 저장할 수 있어. 숲이 이렇게 물을 조절 해주니 홍수를 방지하고 물을 저장하는 녹색 댐이라 할 만하 지?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더우면 나무도 물을 많이 소비해 폭 염이 한 달 이상 계속된다면 나무는 수분 부족에 시달리게 되 고 땅속에 저장해 둔 물도 바닥이 날 수 있어. 우드와이드웹은 나무들에게 물을 아껴 쓰라고 주의를 줄 거야. 이제 나무는 물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잎을 누렇게 만들어 떨궈. 가뭄을 견디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지. 폭염이 끝나도 나무는 다음 해 봄까지 잎을 새로 낼 수가 없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공장이 줄어들게 된 거야.
2021년 《네이처》에 실린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 과학자들 의 연구에 따르면 숲 벌채와 점점 따뜻하고 건조한 기후로 아 마존의 20퍼센트에 해당하는 남동쪽 숲이 탄소 흡수원에서 탄소 배출원으로 역전되었어. 대기 중 탄소 농도가 올라가서 폭염은 더 길어지고 나무도 폭염으로 힘들어지니까, 한마디로 악순환인 거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숲의 약 절반만이 아직은 “상대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상태"라고 추정하고 있어. 2019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숲 파 괴와 관련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 중 29~39퍼센트가 국제무 역 때문이라고 해. 숲이 사라지는 곳은 대부분 저개발 국가들 이지만 숲을 없애면서 생산한 상품들을 소비하는 곳은 대개 부자 나라들이거든.

- 지난 50년 동안 고기를 얻으려 사육하는 가축의 수가 소는 두 배, 돼지는 네 배, 닭은 열 배나 늘었어. 50년이라는 시간을 가늠하면 별것 아니라 여길 수도 있을까? 증가한 인구수를 감 안해서 1인당 연간 육류 섭취량을 비교해 보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져, 캐나다 식량학자 토니 웨이스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 인구가 30억 남짓이던 1961년에 1인당 연평균 고기 섭취는 23킬로그램, 달걀은 5킬로그램이었어. 그런데 세계 인구가 70억이던 2011년에는 연평균 고기 43킬로그램, 달걀 10킬로 그램을 먹어치웠다. 한 사람당 고기 소비가 두 배 가까이 증가 했는데 전체 인구도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건 대체 얼마나 많 은 가축을 기르고 먹었다는 걸까? 50년 동안 전 세계에서 도 살된 동물은 80억 마리에서 640억 마리로 여덟 배가 늘었어.
마트에 가면 랩으로 포장해 놓은 삼겹살을 보기만 해도 군 침이 도니? 그런데 그 고기가 불과 얼마 전에는 따뜻한 피가 흐르던 생명체라는 사실을 생각해 봐. 그 고기를 얻으려고 지 구의 허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면? 그 고기를 얻으려고 누군 가는 배가 고프다면? 그리고 그 고기를 얻느라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면? 그럼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딱 하루, 고기 없이 살아 보지 않을래? 고기를 먹는 건 어쩌면 우리 미래를 먹어치우는 일인지도 몰라.

-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카카오가 주로 생산되지만 사실 초콜릿으로 가장 유명한 나라는 벨기에와 스위스야. 19세기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인 콩고 를 점령해서 사유지로 삼았어. 그런 다음에 카카오 농장을 만 들고 지역 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카카오나무를 대량으로 재배했지. 초콜릿의 원료가 대량으로 재배되니까 벨기에에서 초콜릿 제조 기술이 발달하지 않을 수 있었겠니? 유명 초콜릿 상표가 벨기에인 까닭이 여기에 있어. 벨기에는 그러는 동안 콩고의 환경을 보존할 생각이나 했을까?
- 카카오를 생산하는 나라의 아동 노동에 대해 들어봤니? 초 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면서도 초콜릿 맛을 모르 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 세계 카카오의 60퍼센트 이상을 생산하면서도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는 너무나 가난한 나라야. 그런데 카카오로 초콜릿을 만드는 기업들은 엄청난 이윤을 남 기고 있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동화 알지?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아마 많이들 봤을 거라 생각해. 거기 보면 윙카 씨 의 초콜릿 공장에 움파룸파족이 나와. 룸파랜드에 살고 있는 이들은 카카오를 배불리 먹어 보는 게 소원인데, 윙카 씨가 이들에게 카카오를 마음껏 먹게 해 주겠다며 초콜릿 공장으로 데리고 오거든. 그렇지만 움파룸파족은 초콜릿 공장에서 온종 일 초콜릿 만드는 일만 해야 했어. 윙카 씨는 엄청나게 돈을 벌었지만 말이야.
이 동화는 오늘날 카카오를 생산하는 나라와 초콜릿을 파 는 기업을 빗댄 이야기 같아. 카카오를 재배하는 일은 너무나 고된 노동인데 그런 노동에 비해 카카오 값은 터무니없이 싸거든. 초콜릿 판매 수익 가운데 카카오를 재배한 농민에게 돌 아가는 이익은 6.6퍼센트 반면 초콜릿을 만드는 기업과 무역 업자가 가져가는 이익은 80퍼센트가 넘어. 왜 이런 불공정한 일이 일어나는 걸까?
초콜릿을 생산하는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이 카카오 생산국 들이 초콜릿 생산국이 될 수 없도록 무역 장벽을 만들었기 때 문이야. 차별적인 관세 정책을 편 것이지. 관세란 상품이 국경 을 통과할 때 부과하는 세금이야. 카카오 열매 같은 원료에는 관세를 붙이지 않아서 자국의 초콜릿 산업이 큰 이익을 보게 하는 반면에, 원료를 이용해서 만든 가공품인 초콜릿에는 엄청난 관세를 붙였어. 코트디부아르나 가나와 같은 카카오 산 지에서는 초콜릿을 생산할 수 없게 만들었지. 코트디부아르산 코코아, 가나산 코코아는 있어도 코트디부아르산 초콜릿이나 카나산 초콜릿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
이런 거대 국가들의 횡포를 알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드니? 카카오 가격 또한 터무니없이 싸다 보니 사람 손을 많이 필요 로 하는 농장에서 사람을 고용할 수가 없어. 뼈 빠지게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야. 그래서 인신매매로 팔려 오는 어린이들을 농장에서 일꾼으로 쓰게 된단다. 이걸 농장 주인의 잘못으로만 몰아갈 수 있을까?

- 지난 50년간 전 세계 맹그로브 숲의 30~50퍼센트 가량이 새우 양식장 등을 만들면서 사라졌어. 아마존 열대우림이 사 라지는 속도보다 무려 4배나 빠르다고 해. 인구는 점점 늘어 날 테고, 이런 속도라면 나머지 맹그로브 숲이 다 사라지는 데 50년도 채 걸리지 않을지도 몰라. 맹그로브 숲을 없애면 나무 안에 저장돼 있던 탄소가 배출될 뿐만 아니라 탄소를 흡수할 곳 자체가 사라지는 거지. 맹그로브 숲이 있는 해안가에서 필 요한 만큼 물고기를 잡으며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지역 주민들은 맹그로브 숲이 사라지면서 생계가 막막해졌어. 또, 해일 등이 밀려왔을 때 완충 역할을 할 곳도 없어 지역 주민들 이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되었지.
2013년 필리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어. 슈퍼 태풍 하이옌으 로 7800여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거든. 무엇보다 맹그로브 숲이 어떻게 분포하는지에 따라 피해가 달랐어. 태풍 에 이은 해일로부터 보호막이 돼 줄 맹그로브 숲이 없었던 타 클로반의 피해가 가장 컸다. 반면 타클로반에서 북쪽으로 160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사마르 지역은 맹그로브 숲을 복원하고 있던 중이어서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해.
지구 온난화로 태풍이 더 자주 그리고 더 큰 규모로 발생하 고 있어. 그런데 해안가에 맹그로브 숲이 사라지면 그 지역은 태풍의 피해를 더 많이 입지 않을까? 인도네시아 아체주의 해 일 피해 이후 맹그로브 숲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 졌어. 과학 전문잡지인 <사이언스>에 100제곱미터당 맹그로 브 나무 30그루를 심으면 해일을 90퍼센트 가까이 줄일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면서 여기저기서 맹그로브 숲을 복원하 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어.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소한의 중동수업  (2) 2023.12.16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3) 2023.11.21
안녕하세요 비인간동물님들  (3) 2023.11.07
네옴시티  (1) 2023.10.27
2050 에너지 레볼루션  (1) 2023.10.27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