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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렵시대에서 사육시대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역사를 구분하자면 수렵시대, 사육시대, 그리고 후기 사육시대 등 세 시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수렵시대는 앞서 말했듯 인간이 동물을 사냥하던 시대입니다. 인 간과 동물이 숲에서 동등하게 경쟁하던 시대이지요. 수렵시대가 끝나 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혁명인 신석기 혁명이 일어나면서 사육시대 (domesticity)가 개막합니다. 인류는 개에 이어 차례로 양과 염소, 소와 돼지, 그리고 말과 당나귀, 낙타를 가축으로 만듭니다. 살아 있는 동 물이 이때 처음 인간의 소유물이 됩니다. 경제·사회 구조도 변하지요. 많은 가축을 소유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잉여 자원이 많아 지면서 사유재산이 생기고, 이를 둘러싼 싸움과 전쟁도 잦아지지요. 신석기시대가 열리고 청동기, 철기시대로 이어지면서 생산의 효율성 은 높아지고 부가 축적됩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동물을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었어요. 동물은 농가에서 밭을 갈거나 수레를 끌거나 계란을 낳았지요. 인간과 동 물의 관계는 긴밀하고 지속적이었습니다. 돌보는 가축 무리의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인간은 동물을 하나하나의 개체로서 대했습니 다. 한지붕 아래 살면서 동물을 때론 가족으로, 노동의 동료로 여겼고, 동물의 이름을 지어 부르기도 했지요. 언젠가 식탁 위에 올리거나 고 기로 팔지언정 말이에요. 이러한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20세기 소비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지속됩니다.
- 우리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다가 가끔씩 먼 산과 지평선을 바라보곤 합니다. 미국 예일대학교의 사회생태학자 스티븐 켈러트Stephen Kellert는 이런 행동이 과거에 사냥을 위해 먼 곳을 조망하던 습관의 유산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떨어져 산지는 불과 100~200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긴 1만 년을 신석기인으로 살았고(사육 시대), 그보다 훨씬 긴 250만 년을 구석기 수렵채집인으로 살았지요(수 렵시대), 동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우리 몸에 새겨진 유전자의 각인에 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동물 위령제를 여는 우리의 정성은 인간이 느껴 왔던 죄책감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역사학자 리처드 불리엣Richard W. Bulliet은 인간과 가축이 맺은 관계의 역사 를 통괄하면서 '사육시대'와 '후기 사육시대'로 나눕니다. 둘 사이에 가로 놓인 것은 최근 100년 사이 사회·경제 체제의 격변을 이끈 일들이에요. 바로 자본주의 상품 경제의 본격화와 도시화, 그리고 공장식 축산의 등장 이지요.
사육시대에서 후기 사육시대로 넘어가면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우선 사육시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때는 인간이 가축 과 날마다 접촉하면서 그들과 사회적·경제적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계 란을 낳는 닭, 밭을 가는 소, 양털을 내주는 양, 음식물 쓰레기를 청소하는 돼지 등 가축은 가구의 경제 엔진이자 협력자 역할을 했어요.
- 고기의 성격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사육시대에 고기는 대개 사육 과정에 서 부산물로 이용됐고, 사육 그 자체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동물 의 지속 가능한 자원(노동력이나 계란, 털 등)을 주요 산물로 이용하고, 최후 의 수단으로 고기를 써 왔을 뿐입니다. 지금처럼 육종 기술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고기와 알 등을 대량생산하는 산업의 혁신이 이뤄지기 이전이어 서 동물이 귀했거든요. 인간은 동물의 성장, 교미, 죽음까지 전 일생을 가 까이에서 지켜보며 심리적으로 동류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 조선 시대에는 소 도살을 금하는 '우금령'(牛禁令)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양반 사대부들이 소고기 맛에 빠져들어 도살이 자주 행해지자, 농사짓는 소가 부족해질 것을 우려해 조정이 직접 나선 것입니다. 소의 개체 수 감 소는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릴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를 우려한 일종의 경 제 정책이었던 셈이지요.
후기 사육시대가 개막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접촉은 차단됩니다. 도시 바 깥의 폐쇄적인 공장식축산 농장에서 가축이 사육되기 때문에 인간은 동 물의 일상을 볼 일도 없고, 그들과 감정적으로 얽힐 일도 없었지요. 슈퍼 마켓에서 랩으로 싸인 상품을 소비하는 게 동물과 만나는 가장 일상적인 접점입니다.
역설적으로 이 시대에는 소, 돼지 등 농장동물과 비슷한 위치에 있던 개와 고양이 등이 반려동물로 대우받음으로써 특권화됩니다. 고급 사료와 행 동 교정 센터, 도그TV와 같은 문화적 충족물 등 이들을 위한 산업이 성장 하지요. 인간은 반려동물에게 감정적 교감과 위로를 얻고 있고요. 한편으 로는 맛있는 고기를 즐겨 먹고 가죽 제품을 사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는 '가족'이 된 개, 고양이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상황이 모순적이지요? 이 모순이 후기 사육시대의 복잡한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 '가축이 된다'는 것과 '동물을 길들인다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가 축은 수십 수백 세대의 인위적인 선택과 교배를 통해 유전자 변화를 수반하는 것임에 반해, 길들임은 현재 상태에서 그저 교감하여 특정 행동을 끌어내는 것뿐이니까요. 수족관에서 돌고래쇼를 하는 돌고래 가 가축은 아니지요. 길들인 것입니다. 관광지에서 사람을 태우고 다 니는 코끼리 또한 가축이 아닙니다. 먹이와 채찍을 통해 길들인 것이 지요.
반면에 개는 가축입니다. 인간과 함께 사는 것이 편하도록 유전자 안에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지요. 돌고래와 코끼리는 설사 수족관과 서커스장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이런 공간과 맞지 않는 본성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가축은 어느 순간 갑자기 탄생한 게 아니에요. 인간이 자기 필요에 맞는 온순한 개체를 고르고, 다시 그 개체가 비슷한 특성을 보이는 온 순한 개체와 교미해 번식하는 수많은 과정을 통해 새로운 '종'으로 거 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인간에게 새로운 가축 종을 만 들겠다는 치밀한 계획과 지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단순히 생활 의 필요에 따라 비슷한 동물을 구해서 교배했을 뿐이지요. 인간이 미 처 의식하지 못하는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이 새로운 가축 종을 확립한 거예요.
- 가축은 양치기를 돕기도 하고 쟁기질하거나 수레를 끌기도 하고 침입자의 접근을 경계하는 등 인간 옆에서 일하며 젖과 털, 고기를 인 간에게 제공했어요. 지금과 다른 면이 있다면, 인간이 가축에게 가장 기대한 것은 고기가 아니라 노동력과 부산물이었다는 점이에요. 가축 은 귀한 존재였습니다. 우유나 털 같은 부산물 그리고 노동력은 가축 이 살아 있는 내내 계속 얻을 수 있었지만, 한번 도살하여 고기를 먹 어 버리면 끝이었으니까요. 따라서 과거 사람들은 양, 소, 말, 당나귀 등에게서 실리적 이득을 취한 뒤, 실용적 가치가 없어지는 적절한 시 점에 도살함으로써 고기를 얻었어요. 돼지의 경우도 고기가 되기 전 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청소해 주는 역할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지요. 가축은 인간과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축산'을 영어로 하면 '애니 멀 허즈번드리'(animal husbandry)인데, 이는 '집에 연결된'(bonded to house) '동물'(animal)이라는 뜻입니다. 즉 인간이 동물을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게 아니라, 한 식구로서 책임을 지고 보살핀다는 의미도 갖지요. 신석기 혁명 이후 자본주의 출현 전까지, 이른바 사육시대에 가축은 가족단위에 배속되어 사는 모습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인간은 동물에게 먹 을거리와 살 곳을 제공하고 가축을 맹수로부터 보호했어요. 그 대신 가축은 인간에게 부산물과 노동력을 제공했으니, 상호 이익 관계라고 도 할 수 있겠지요.
둘 사이의 관계도 점차 친밀해졌습니다. 과거 수렵시대에 인간은 사냥을 할 때나 숲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 등 찰나에 동물을 만났지만, 신석기시대가 되자 인간과 가축은 같은 공간에서 지속적인 유대를 쌓 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미운정 고운 정'을 쌓아 간 거지요.
-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 Henry George는 이렇게 꼬집었지요. "매와 인간은 똑같이 닭을 먹는다. 그러나 매가 늘어날수록 닭의 숫자는 줄어들지만, 인간이 많아지면 닭의 개체 수도 증가한다.  이것이 인류 세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입니다.
오늘날 사육용 닭의 원종(기원이 된 종)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일 대에 사는 야생 닭인 '적색계'(붉은야생닭)입니다. 적색야계의 학명은 '갈루스 갈루스'(Gallus gallus)이고, 사육용 닭의 학명은 '갈루스 갈루스 도메스티쿠스'(Gallus gallus domesticus)예요. 닭은 원래 열대우림에서 살던 날지 못하는 새였습니다. 지금의 야생 꿩과 비슷한 생태적 위치를 차지했겠죠.
아직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사육용 닭은 신석기시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열대우림에서 살던 야생 닭이 인도나 중국 으로 들어가 가축으로 길들여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뒤 중동과 유 럽, 동아시아 등으로 퍼지며 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기르는 '새' 가 됐습니다.
하지만 가축이 되었다고 해서 야생동물의 유전자가 쉽게 사라지 지는 않아요. 살짝 날아서 횃대에 오르고, 외진 곳을 찾아 알을 낳고, 모래 목욕을 즐기는 행동 등 야생 닭의 습성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옛날에 사람들은 여러 마리의 닭을 마당에서 길렀어요. 마당은 유전자에 새겨진 닭의 본능이 발현될 수 있는 공간이었지요. 닭은 하루 이틀에 하나씩 마당의 후미진 곳에 알을 낳습니다. 새벽에는 '꼬끼오' 하고 울며, 사람이 나오면 줄지어 쫓아왔습니다. 나이가 들어 알 낳는 능력이 떨어질 쯤에야 사람들은 닭을 고기로 잡아먹었죠. 이렇듯 달걀 과 닭고기는 대량으로 만들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고급 식재료 로 통했습니다. 불과 60~70년 전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그런데 닭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공장식 축산이 시작된 것입니다.
- 사육용 닭은 배터리 케이지 한 칸에 두세 마리 이상이 들어가 평생을 삽니다. 닭 한 마리당 A4 용지 한 장 정도 되는 넓이입니다. 생산 량 증대를 위해서 밤에는 인공조명을 비춥니다. 알 낳는 빈도가 떨어 진 닭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기도 해요. 인위적으로 스트레스를 줘서 털갈이시킨 다음, 다시 알을 낳게 하는 거지요. 털갈이 뒤에는 알도 커 지고, 산란율도 높아지거든요. 그런 방식을 '강제 환우(換, 털갈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을 거친 닭은 그 뒤 1년 가까이 더 알을 낳고 도계(닭 을 잡아서 죽임)됩니다. 이렇게 닭은 2년 남짓한 짧은 생을 케이지 안에서 살다 갑니다. 열대우림의 적색계로 태어났다면 10~15년을 살았을 텐데 말이에요.
- 팜유 농장으로 만들어 기름야자를 재배하는 데에도 적잖은 환경비용이 듭니다. 우선 많은 물이 필요해요. 자연 상태의 열대우림은 건 기와 우기에 맞춰 스스로 조절하며 물을 빨아들이지만, 팜유 농장의 기름야자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물이 부족한 건기에도 수로를 만들어 일정량의 물을 대야 하죠. 기름야자 한 그루가 하루에 소비하는 물은 91L에 이릅니다.
열대우림은 지구 최대의 탄소 저장고예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1차림(원시림), 과거에 천재와 인재 등을 겪고 자연 상태로 보존된 숲인 2차림, 그리고 수백만 년 동안 식물이 분해되어 다량의 탄소가 함유된 이탄 지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죠. 숲이 불타면 1차림과 2차림 이 사라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 허파가 사라지게 됩 니다. 또한 이탄 지대에 불이 붙으면, 그동안 땅속에 붙들려 있던 탄소 가 검은 연기와 함께 대기로 배출돼요. 즉 불을 놓아 열대우림을 없애 는 행위는 지구에 치명적이라는 거죠. 열대우림의 개간 과정에서 나 오는 탄소는 지구 온실가스 방출량의 10%에 이를 정도라고 합니다. '이산화탄소 폭탄이 터진다'고 볼 수밖에 없는 열대우림의 훼손에 의 해 기후변화는 가속화합니다.
- 도도새 이야기를 들려줄까 합니다. 모리셔스섬에 살던 이 새는 16세기 초 포르투갈 선원들에게 발견된 후 200년도 안 되어 멸종합니다. 먹을거리가 없던 선원들은 날지 못하는 도도새를 방망이 로 때려잡아 먹었고(과도한 이용), 함께 상륙한 쥐와 개, 돼지 등은 도도 새의 알을 먹어 치웠습니다(외래종 침입). 도도새는 가장 극적인 멸종 사 례로 자주 인용되지요.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도도새가 멸종한 뒤, 이상하게도 모리셔스 자생종인 칼바리아(Calvaria) 혹은 탐발라코크 (Tambalacoque)라고 하는 나무 역시 그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미국의 조 류생태학자 스탠리 템플Stanley Temple은 모리셔스섬에 이 나무가 단 13그 루 남았다며, 급격한 개체 수 감소의 원인이 도도새의 멸종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 연구를 하기 시작하죠. 칼바리아 나무 열 매는 도도새의 먹이였거든요.
- 스탠리 템플은 도도새 대신 칠면조를 데려와 실험을 시작했는데, 칠면조에게 칼바리아 열매를 먹이고 배설물을 관찰했습니다. 배설물 을 통해 나온 씨앗은 한층 부드러워졌고, 그전보다 훨씬 잘 싹을 틔웠 습니다. 그는 이를 근거로 칼바리아 나무가 도도새로 인해 더 싹을 잘 틔울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도도새가 사라져 버렸으니,
칼바리아 나무도 연쇄적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거죠. 그의 주장은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실렸고, 칼바리아 나무는 '도도나무'로 유명해집니다.
스탠리 템플의 주장에 대해 여러 반론이 제기됐습니다. 그중 하나는 땅거북의 감소와 연관성을 찾는 가설입니다. 땅거북이 도도나무 씨앗을 먹고 이동하여 배설함으로써 이 나무를 널리 퍼뜨렸는데, 땅 거북의 개체 수가 줄어들어 이 기능이 정지됐다는 겁니다. 그리고 알 려진 것과 달리 칼바리아 나무가 단 13그루 남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 많은 수백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지적됐어요. 단지 과학 자들이 어린 나무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라고요. 과학자들은 칼바리 아 나무의 멸종 위기를 도도새의 멸종에서만 찾는 것은 협소한 시각 이라고 봤어요.
도도새에서 시작해 칼바리아 나무, 그리고 땅거북까지 꼬리를 물 고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생태계의 구성원은 복잡하게 서로 연결되 어 있다는 것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줍니다. 또한 멸종은 하나의 원인으 로 소급되지 않고, 저마다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생태계 구성원의 행위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결과라는 것도 깨닫게 해주죠. 우리는 이 러한 복잡성에 항상 유의해야 해요. 생태계를 잘 알고 있다고 과신해 서도 안 됩니다.
- 고릴라를 보지 못한 이유
앞서 살펴본 무주의 맹시 실험에서 상당수 피실험자가 고릴라를 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두뇌가 시각 정보를 죄다 받아 들이지 않고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눈은 응시하고 있었 지만, 뇌는 보지 않은 것이죠.
우리 눈의 망막은 영상이 비쳐지는 일종의 '스크린'입니다. 빛이 눈의 동공을 통과해 눈 안쪽까지 들어오면 물체의 상이 망막에 맺히 지요. 망막에 있는 시각세포는 물체의 상을 전기적 신호로 변환시켜 시신경을 통해 먼 곳으로 보냅니다. 바로 눈의 반대편, 뒤통수 쪽에 위 치한 뇌의 시각피질이 최종 목적지이지요. 이 과정이 완료되어야 우리가 비로소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도착한 모든 신호를 뇌가 처리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렇다면 뇌는 어떤 신호를 선택할까요? 뇌는 익숙한 패턴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익숙한 패턴과 관련 있는 정보는 잡아 내는 반면, 나머지는 버리는 경향을 보이죠. 무주의 맹시 실험을 예로 들자면, 뇌가 집중하는 것은 선수들이 공을 주고받는 활동(패턴)입니 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흰색 유니폼 팀의 패스 횟수를 세야 하 니 흰색 팀의 패턴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따라서 '고릴라'라는 시각 정보가 망막에 비쳤다고 하더라도, 뇌는 그것을 배제해 버립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패턴화 사고 경향이 인간 두뇌 활동의 특징이라고 말해요.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받아 해석하지 않고, 미리 주어진 가설과 관련된 것들만 선별해 두뇌가 처리하는 거죠. '미 리 주어진 가설'이라는 것이 바로 '패턴'입니다.
- 캐럴 애덤스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신경학자인 조지 비어드 George M. Beard의 연구를 소개하며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유럽 문 화권의 식단에는 다른 문화권에 견줘 고기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영 국인과 미국인은 '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죠. 심지어 인간이 고등동물로 진화한 데에는 고기의 영향이 컸다며, 채식은 인 류의 진화 정도를 낮추므로 고기 섭취량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요. 육식주의와 인종주의, 우생학적인 시선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 었죠. 비어드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인도인과 중국인, 그리고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아일랜드 농민은 여전히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영국에 종속되어 있다"고까지 했답니다.
- 인간의 사고는 은유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의 개념을 다른 개념과의 유사성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인지 기제가 있거든요. 캐럴 애덤스가 지적했듯, 여성을 고기로 은유하는 행위는 그래서 위험합니다. 혐오의 방식은 서로 배워 나가며 확산하고 강화 되기 때문입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습니다. 잔인함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확대되고요.
우리 사회는 여성을 비롯해 성 소수자, 장애인, 이주 노동자 등에 대해 그동안 눈감았던 차별을 성찰하고 폭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수백 년간 끔찍한 차별을 감내한 흑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 습니다. '백인들이 말하는 정의는 그들만의 정의'라는 것이죠. 동물도 약자예요. 동물도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요? "인간들이 말하는 정의는 인간들을 위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온게 '종차별주의' 비판입니다. 종차별주의는 인간이 비인간동물보다 더 큰 권리를 가졌다는 생각입니다. 현대인 대다수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관점이죠. 그런데 상식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구처럼, 동시대의 너무나도 당연한 생 각을 '종차별주의'라고 호명함으로써 비로소 지배적인 세계관을 돌이 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975년에 『동물 해방』을 쓴 피터 싱어 Peter Singer는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종의 이익을 옹호하면서 다른 종의 이 익을 배척하는 편견 또는 왜곡된 태도" 83 로 종차별주의를 정의하면 서, 차별을 논하는 대상의 범위를 인간에서 비인간동물로 넓혔습니 다. 20세기 초반까지 백인이 흑인이나 아시아인을 대하는 자세, 남성 이 여성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사고와 윤리의 범위가 지금과는 확연 히 차이가 날 정도로 백인 남성 중심의 틀에 갇혀 있던 것을 볼 수 있 을 거예요. 역사는 기본권이 확장된 역사였습니다. 
- 미국의 사회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유럽 서부전선(프랑스-벨기에)에서 벌어진 '크리스마스 정전( 戰)'을 이야기하며 『공감의 시대』 서두를 엽니다.'' 독일군과 영국-프 랑스 연합군이 참호를 파고 평행 대치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되자, 양쪽의 병사들이 참호 밖으로 나와 음식과 선물 을 주고받고 축구공까지 차면서 놀았다는 이야기죠. 지휘부의 명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평화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공감 모터는 개인의 마음속에 내재한,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잎새일 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모터가 되기도 합니다.
- 미국은 소수의 정육 가공업체가 대규모 도축장을 운영합니 다. 각지에 분포된 소, 돼지, 닭 등이 미시간주 등지에 있는 소수의 도 축장으로 옮겨져 도살·가공된 뒤 다시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 식이에 요. 코로나19 사태로 도축장도 부분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도축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코로나19 바이러 스가 퍼졌어요. 결국 도축장이 대부분 폐쇄되며 소, 돼지, 닭이 농장에 서 출하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졌죠. 좀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고 요? 아닙니다. 별일 아닌 듯 보이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 돼지를 예로 들어 볼까요?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돼지는 종돈장 에서 태어난 뒤 3주째에 젖을 떼고 어미와 떨어져, 다른 곳에 있는 비 육농장으로 옮겨져요. 비육 농장에서 살을 찌워 6개월째에는 도축장 으로 보내지고요(우리가 먹는 돼지는 사실 새끼 돼지에 가깝습니다. 자연 상태라면 돼지 는 10~15년을 살아야 하거든요). 이때 돼지는 종돈장에서 비육 농장으로, 그 리고 도축장으로 컨베이어 벨트를 타듯 멈추지 않고 움직여 줘야 하 죠.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도축장에서 물량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 니, 돼지들이 비육 농장에서 적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농장주로선 돼지를 팔지도 못하는데, 사료값과 분뇨 처리 비용을 써야 하는 상황에 놓였죠. 게다가 돼지를 8개월, 10개월째 출하하면 6개월령으로 최적화된 '고기 맛'이라는 품질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농장주는 결국 돼지를 그냥 살처분하는 게 경제적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차라리 농장을 비우고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뒤 동물을 다 시 키우는 게 낫다는 것이죠. 미국에서는 그런 이유로 돼지와 닭이 대 량 살처분되고 말았어요. 이 동물들은 코로나19 에 걸린 적도 없는데 말이에요. 미국의 전국돈육생산협회(NPCC)는 2020년 봄, 그해 9월까 지 살처분해야 할 돼지가 약 1,000만 마리가 될 것이라는 추정치를 내 놓기도 했죠.
돼지와 닭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 동물들이 물건처럼 취급되는 공장식 축산의 생산 시스템이야말로,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에 취약했을 뿐이지요. 돼지와 닭은 그 때문에 억울한 죽임을 당했던 셈이고요. 바이러스는 동물(박쥐)에서 중 간숙주(천산갑)를 거쳐 사람을 타고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마비시켰고, 이 결과가 다시 동물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도축장 운영이 중단되자 시장에선 고기 가격이 오르는 등 품귀 현상이 발생했다고 해요. 정작 고기가 될 동물은 살처분되는 와 중에 사람들은 비싸서 고기를 사 먹지 못하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 게 보아야 할까요? 코로나19 사태는 공장식 축산 체제의 병리적 현상 을 폭로했습니다.
- 온실가스 배출량을 볼까요? 축산 부문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를 차지합니다. 이는 인류가 운송 수단을 사용하는 데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과 맞먹어요. 세상 모든 사람이 하루 동안 고기를 먹지 않 는다면, 세상 모든 탈것이 하루 동안 정지하는 경우와 비슷한 수준으 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겠죠.
그렇게 많은 온실가스가 축산 부문에서 배출되는 원인은 우리가 먹는 고기의 양이 근대 이후 갑자기 늘어서예요. 특히 소를 사육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발생합니다. 축산 부문에서 배출되는 온실 가스 가운데 3분의 2 정도가 소를 기르고 우유를 짜는 작업에서 생겨 나거든요. 소 같은 반추동물은 되새김질을 하잖아요? 한번 삼킨 먹이를 게워 내 다시 씹죠. 되새김질을 통해 위에서 생긴 메테인(메탄)은 소가 숨 쉬거나 트림할 때 몸 밖으로 나와요. 소에게서 나오는 메테인이 전 세계 메테인 배출량의 37%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메테인은 열을 잡아 두는 능력이 이산화탄소보다 21배나 높아요. 같은 양이라도 더 큰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셈이죠. 하지만 메 테인은 대기 중 수명이 이산화탄소보다 짧습니다. 따라서 메테인 배 출량을 줄이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볼 수 있 겠죠? 고기를 줄이는 식습관이, 우리 각자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최 선의 실천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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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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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옴시티

사회 2023. 10. 27. 11:38

- 우선 사우디 정부, 특히 최고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위해 거대한 숫자와 미래지향적인 조감도를 내세워 속내를 숨기고 있다. 빈 살만은 세계 최대 PR 컨설팅 회사인 에델 만의 자문을 받아 집권 초기부터 스스로의 이미지를 구축해 가고 있으며, 네옴시티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네옴시티의 성공 가능 성에 대한 논쟁 자체도 빈 살만이 의도한 부분일 확률이 높다. '무 플보다는 악플이 차라리 낫다'라는 말처럼, 무관심보다는 비판 여 론이라도 들끓는 편이 네옴시티, 더 나아가 빈 살만이 구상하는 새 로운 사우디아라비아의 홍보와 인지도 제고에 도움되기 때문이다.
- 일견 경제적인 프로젝트로 이 해되는 네옴시티 프로젝트는 사실 지극히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프 로젝트다. 사우디 정부가 구상하는 네오(NEO)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와 맞닿아 있으며, 이는 사우디 정부가 2016년 발표한 향후 15년간의 국정 기조, 사우디 비전 2030'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 야 한다.
- 네옴시티를 포함해 중동 관련 프로젝트를 해석할 때 유의할 또 다른 점은 과도한 낭만주의와 편견이다. 사우디가 한국과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먼 국가라는 점은 객관적이고 냉정한 이해를 어렵 게 하고 있다. 특히 '제2의 중동붐'이라는 표현은 50대 이상 한국 인들에게 고도성장기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면서 대책 없는 낙관론 을 퍼뜨리고 있다.
그동안 '제2의 중동붐'으로 불리던 수많은 중동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1차 중동붐과 리비아 대수로 공사 정도 이외에 한국 기업에 큰 성과를 가져다 준 프로젝트가 몇 개나 있었는가? 1973년부터 1982년까지 지속된 1차 중동붐은 여러 가지 호재와 겹쳐 한국의 고속성장을 이끌었다. 1 고유가로 팽창한 사우디의 국부, 2 건설/ 토목 역량이 떨어지는 현지 건설사, 3 친미적인 양국의 외교 기조, 저렴하지만 질 좋은 한국의 건설 인력, 5 높은 한국의 실업률, 권위주의 정치체제(한국)와 관료제로 인한 빠른 의사결정 등이 그 성공 요인이다. 하지만 이 중 현재의 사우디-한국 관계와 오버 랩 되는 부분을 찾기가 어렵다. 1990년대 이후 제2차 중동붐을 외 치며 중동 건설시장에 뛰어들었던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적지 않 은 손실을 보고 사업 철수를 선언한 상황이다.
- 이런 굵직한 글로벌 이벤트들은 각국 왕가가 절대 놓칠 수 없는 꽃놀이패다. 카타르의 국왕인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는 2013년 왕위 계승 이후로 한동안 공적이 없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아버지인 전대 카타르 국왕 셰이크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가 급 속한 경제성장과 의회제 도입 등의 업적으로 역사상 최대 명군으 로 꼽히는 것에 비해, 아들인 현 국왕에게는 큰 업적이 없었던 탓 이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으로 카타르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성공하며 국왕에 대한 국내외 지지율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두바이 또한 엑스포의 유치부터 조직, 개최까지 왕족들이 리더십 을 보여주며 국민의 지지율을 이끌어 내고 있다. 엑스포 후보지 선 정 과정에서 최종 PT는 림 알 하쉬미 공주가 직접 리드하며 심사위원단의 주목을 받았다. 두바이의 왕세자인 셰이크 함단은 엑스포 후 보지 선정 직후인 2013년 두바이를 상징하는 마천루, 장장 828 미 터에 달하는 부르즈 할리파에 올라가 자기 손으로 국기를 꽂는 퍼 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직까지 별다른 글로벌 이벤트가 없는 와중에 네옴시티는 사우 디 왕가, 특히 빈 살만 왕세자의 리더십을 대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전망이다. IR을 비롯한 네옴시티 관련 주요 행사를 빈 살만 왕세자가 직접 주관하고 연사로 나서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단순히 경제적 투자수익률(ROI)만으로 네옴시티 의 성사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지극히 부족하다.
- 특히 빈 살만 정권에서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려가는 분야는 스 타트업과 주요 IT 사업, 이른바 하이테크 분야다. 기본적으로 현재 사우디의 투자 방식은 현재를 팔아 미래 가치를 사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꾸준한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는 현금창출원, 예 를 들면 아람코와 같은 기업의 지분을 매각해 미래의 핵심이 될 만 한 기업을 사들여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계 일본인인 손정의가 경영하는 테크 전문 투자 회사, 비전 펀드(Visioin Fund)와 빈 살만 왕세자의 끈끈한 관계는 글로벌 투자 동향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소식이 되었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6년과 2018년에 각각 450억 달러씩 두 차례, 비전펀드에 막대한 투자를 집행했다.
또한 테슬라의 유력한 대항마로 꼽히는 전기차 회사 루시드 (Lucid)에도 2018년부터 꾸준히 투자를 진행해 과반 주주가 됐으 며, 미국 상장 기업에만 41조 원가량을 투자하고 있는데 주로 페이 팔과 같은 IT 기업의 비중이 높다. 이 밖에도 닌텐도, EA, 액티비전 블리자드 등 유명 IP를 보유한 게임 회사의 지분을 꾸준히 사 모으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했던 빈 살만 왕세자의 취향이 상당히 반영되었다고도 한다.

- 두바이는 18세기까지 사실상 무인 지대에 가까운 소규모 어촌에 불과했다. 1920년대에 들어서 무역과 진주 채취로 인구가 서서히 증가했고, 이후 석유 시추가 이루어지며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하 긴 했지만 주변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하면 석유 산출량은 소규모에 그쳤다. 그러다 걸프전 및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두바이에게 큰 기회가 됐다. 전쟁이 터진 쿠웨이트와 여타 주변국에서 철수한 자본들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던 두바이로 몰려든 것이다.
두바이는 2000년대 이르러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하며 빠른 성 장을 이루어 낸다. 적극적으로 해외 자본을 유치해 그동안 없던 혁 신적인 시도(특히 부동산 분야에서)를 거듭한 덕이다. 그 대표적 사례 가 바로 팜 주메이라다. 2001년에 조성하기 시작해 2009년 완공 된 이 인공 섬은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마치 거대한 야자수처럼 보이는 전경이 특징이다.
- 한국 언론들의 국제 뉴스에서는 전제군주정을 택하고 있는 이슬 람 국가의 체제를 일괄해서 왕정으로, 그리고 수반을 왕으로 지칭 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국가 수반들이 국가 내에서 왕과 같은 절대적인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틀린 번역 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말로는 '왕국'으로 번역되는 말들의 아랍어 원문과 영어를 살펴보면 이들 국가들의 체제 사이에는 미묘하게 차이가 존재한다.
그중 사우디아라비아는 서방에서 의미하는 전형적인 왕국(King-dom)의 형태다. 국가 수반은 왕을 뜻하는 단어인 말리크(Qo)라고 불리며, 헌법에 해당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기본법에 따라 입법, 사 법 및 행정의 전 분야에 걸친 절대적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국왕은 이슬람법인 샤리아와 이슬람의 기본 경전인 쿠란을 준수할 의무를 가지는 만큼 일종의 종교지도자적 성격을 가지며, 이에 따 라 공식 명칭에 '두 개의 성지(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라는 칭호가 함께 붙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GCC 국가인 바레인도 왕국을 자 칭하고 있다.
사우디의 바로 옆에 붙은 오만도 절대왕정을 선언했지만, 특이 하게도 군주를 왕이 아닌 술탄(juble), 자신들의 정체를 술탄정 (Sultanate)이라 부르고 있다. 술탄이라는 칭호는 아랍어로 '힘'을 의미하며, 후에 서술할 '아미르'라는 단어보다 한 격조 높은 칭호로 분류된다. 이 칭호는 제정일치 사회였던 초기 이슬람 제국에서 종 교적 권위자와 세속적 지도자의 역할이 나뉘어지면서 후자를 부르 는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의 지도자도 한때는 자신을 술탄으로 자청하기도 했다.
덩치는 작지만 부유한 카타르와 같은 도시국가형 GCC 부국들 은 자신들의 국가원수를 아미르(i)라고 부른다. 이는 서양의 대공 (Prince) 정도에 대응되는 작위로, 우리말로는 토후라고 종종 번역 되기도 한다. 초기에는 지방 총독이나 장군을 부르는 명칭이었지 만, 이들이 점차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작은 왕으로 발전하 면서 사실상 소왕과 같은 의미를 띠게 됐다.
- 더 나아가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 United Arab Emirates)의 ‘에 미리트'는 아미르에서 유래한 말로, UAE라는 국명에는 아미르국의 연합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UAE는 독립적인 7개 국가(아부다비, 아지만, 두바이, 푸라이자, 라스 알 카이마, 샤르자, 움 알 쿠와인)의 연합국 으로, 독립주들의 연합으로 출발했던 초기 미국의 역사와 유사하 다. 군사와 외교 정도를 제외하고 UAE를 구성하는 각각의 아미르 국들은 높은 자유도를 지닌다. UAE의 국가원수로는 가장 영향력 이 강한 아부다비의 아미르가 대통령을, 그리고 두바이의 아미르가 부통령을 자동으로 역임하게 된다.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할리파(aingdb)라는 칭호도 있다. 무 함마드 이후의 초기 이슬람 제국에서 종교와 정치적 권위를 모두 보유한 제정일치 절대군주를 부르는 명칭으로, 실권을 보유한 할리 파는 8세기까지만 유지가 됐다. 이후 할리파는 오늘날 로마 가톨릭의 교황처럼 실권을 잃은 이슬람의 종교지도자로 남게 됐으며, 일 부 지역의 패권국들이 할리파를 자칭하기는 했지만 경쟁국들은 이 를 인정하지 않는다. 16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도자가 술탄과 할리파를 겸하기도 했으나, 오스만 제국의 멸망과 함께 할리파는 역사 속으로 사실상 사라져 버렸다.
전 세계적인 군벌 조직이었던 IS(이슬람국가)의 지도자 아부 바크 르 알바그다디는 뒤늦게 21세기에 이르러서 할리파를 자칭하기도 했었으나, 현재 그들의 세력이 몰락하면서 사실상 해당 칭호를 사 용하는 제대로 된 정치 세력은 없다.

- 실용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인 '독재자'?
빈 살만은 실용주의자이자 자유주의적 개혁을 이끌고 있는 인물 이지만 동시에 피의 독재자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자유주의와 독재라는 단어는 마치 불과 얼음 같아서 두 개념이 어떻게 병 존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이는 이슬람 문 화권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개혁 성향을 가진 독재자, 또는 절대 군주가 사회 전반에 만연한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분위기를 일신하 기 위해 정책을 밀어붙이는 사례는 튀르키예 건국의 아버지인 케 말 아타튀르크나 카타르의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등에서도 확 인할 수 있다. 언급된 국가들이나 사우디의 경우 워낙 오랜 기간 사회가 경직되고 종교적으로 경도된 탓에 일반적으로 개혁 개방의 핵심이 되는 성숙한 시민사회와 의식 있는 중산층이 형성되어 있 지 않다. 결국 국가 지도자의 주도에 의해서만 본질적 변혁이 가능 하다는 것이 빈 살만 옹호자들이 내놓는 목소리다.
- 이와 유사한 경우는 더 이전의 세계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17~19세기 동안 유럽에서는 계몽주의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 군주 들이 다수 등장했다. 서유럽의 계몽 군주들은 시민사회의 추대와 지지를 받아 다소 온건한 개혁을 추진한 반면 동유럽의 계몽 군주, 가령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 등은 반대파들에 대한 무자비함과 타협 없는 독선적 정책으로 악 명을 산 경우가 많다. 국민의 대다수가 중세 농노이거나 완고한 보 수파 귀족이었던 만큼 개혁에 찬성표를 던지고 옹호세력이 될 만 한 세력이 국내에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빈 살만의 경우 이 온도차가 유독 크다는 평이다. 그가 추 구하는 이상적인 국가상과 이를 위한 무자비함의 차이가 말이다.

- 선형 도시 자체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폴란드의 술로조바 (Suloszowa)시는 9킬로미터에 걸친 단일 도로의 좌우로 길쭉하게 도시가 자연적으로 형성돼 있으며, 스페인의 유명 건축가 아르투로 소리아 이 마타(Arturo Soria y mata)는 이미 1882년 마드리드 도시 개발 계획에 선형 도시 콘셉트를 제안한 바 있다. 다만 무려 170킬 로미터라는 거리의 선형 도시는 일찍이 구상해 본 적도 없는 수준 이다. 이런 선형 도시를 인공적으로 설계하고 구축해 나가기 위해 서는 이에 비례한 고민과 정교한 구상이 필요하다.
더 라인은 역사상 유례없는 위아래로 끝없이 깊고 좌우로는 길 쭉하지만 폭은 좁은 도시다. <저지 드레드> 등의 SF 영화에서 나오 는 벌집과 같은 인구 초고밀도 도시 형태, 하이브 시티(Hive City)와도 유사해 보인다. 이런 독특한 도시 설계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시 내의 수직적 이동 수단(가령 엘리베이터)과 수평적 이동 수단, 그리고 대안적 혁신 모빌리티의 결합이 도시계 획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유동인구의 이동 수요를 빠르게 충족시키면서도, 교통의 공백지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
더 라인의 끝과 끝을 연결해 해안가와 공항을 잇는 초고속 철도 더 스파인(The spine)이 역내 장거리 이동의 주된 수단이다.

- 앞서 설명했지만 건국 이래의 사우디 외교를 요약하자면 '친미, 수니파 이슬람의 수장'이라는 두 가지 테마에 맞추어 자신들의 막 대한 오일머니와 메카 및 메디나의 수호자라는 종교적 권위를 적 극 활용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융통성이 떨어지고 구시대 적이라는 평을 들어 왔다.
반면 빈 살만은 친미 노선을 벗어나 적극적인 다자외교를 추구 하고, 오랜 적국이던 이란, 이스라엘과도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 는 등 파격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 다양한 국제 분쟁과 복잡한 외 교 전선에 적극 개입, 조정자로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위상을 끌어올 리며 중동의 능동적인 패권국가로 포지션을 전환(Pivot)하고 있다 는 의미다. 바로 이런 역할이 돋보이려면 수백 개의 국가들과 정상 이 모이는 국제 행사와 스포츠 행사가 제격이다.
더 나아가 빈 살만의 주된 지지층인 사우디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도 크다.
다만 빈 살만 스타일의 스포츠 워싱이 언제까지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여담이지만, 네옴시티의 성공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함 께 언급되는 사례가 인접국 UAE 아부다비에서 추진한 마스다르시 티이다. 마스다르시티는 무려 지난 2008년부터 건설이 시작된 제 로 탄소 기반 스마트 신도시로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 다. 석유 부국이 국가 단위에서 추진하는 제로 탄소 스마트시티라 는 점이 네옴시티와 빼닮았지만, 그 규모는 네옴시티와 비교하면 많이 검소한(?) 수준이다.
마스다르시티는 200억 달러를 투자해 총 면적 6제곱킬로미터의 도시를 구축, 5만 명 정도의 인구, 1500개의 기업을 수용한다는 지 극히 현실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판교 신도시가 약 8제곱킬로미터 에 9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판교의 3분의 2정도 규모다. 마스다르시티 내에서는 다양한 R&D 센터와 국제재생에너지기구(IEA) 본부, 지멘스 본사 등이 유치될 계획이다.
첫 삽을 뜬 지 15년이 지났지만, 영미권 외신 중에는 마스다르시 티를 사실상 실패한 프로젝트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다. 2023년 현 재까지도 1단계 건설만 간신히 마친 데다가, 실제 수용 인구도 아 직 2000여 명에 불과하고, 일각에서는 공기가 2030년을 넘길 가 능성도 나오고 있다. 6제곱킬로미터의 신도시조차 이렇게 오랜 시 간이 걸려도 지지부진하기에, 이보다 수백 배 규모의 사업인 네옴 시티가 성공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 GCC 국가들 사이에서는 카팔라(Kafala) 시스템이 노동권 유린과 만성적인 산업재해의 원인으로 꾸준히 지목되어 왔다. 카팔라 시스템이란 중동 지역 고유의 계약 체계로 해외 고용주들과 이주 노동 자가 일종의 후원 계약을 체결, 이후 고용주가 노동자 통제 및 관 리권을 행사하게 되는 형태다. 비자 후원과 보증을 고용주가 전적 으로 담당하는 만큼 노동자는 노동삼권은 고사하고 임금체불이나 노동착취에도 제대로 항의하기가 어렵다. 여차하면 한 푼도 받지 못 하고 국외로 추방당할 수도 있는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다. 사우디는 지난 2020년 G20 의장국으로 선정되며 공식적으로 카팔라 시스템을 폐기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관습과 제도적 미비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며 열 악하고 위험한 노동 환경에 내몰려 있는 실정이다. 네옴시티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 네옴시티가 중국의 전철을 밟아 역대 최대, 최고 수준의 기술로 구현된 판옵티콘이 되리라는 걱정에는 나름의 합당한 근거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통되는 CCTV 중 40%가 중국산이며, 중국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 또한 중국-사우디 간의 밀월에 힘입어 사우 디로의 중동 본사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현재 인터넷 검열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술적인 제휴가 이루 어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로이터 통신은 2022년 한 기사에서 이와 같은 악몽이 어 떻게 구체화될 수 있는지를 조망한 바 있다. 더 라인의 경우 1000만 명에 달하는 거주자의 각종 데이터를 수집·활용해 맞춤형 생활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데이터가 구체적으로 어떤 익 명화 및 보호 절차를 거칠지는 아직 하나도 공개되지 않았다. 오히 려 개인을 감시하거나, 수집 목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악용될 가 능성도 있는 것이다.
사우디 정부는 건국 이래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정보의 감시와 통제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반왕실 · 반정부 성향의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사우디 국적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를 암살해 국제사회에 큰 논란을 일으켰으며, 2023년에는 위키피디아 중동 지역 관리자 2명에게 각각 32년, 8년의 실형을 선 고했다. 이 밖에도 종교 및 정치적 콘텐츠, 그리고 성인물 등에 대 한 인터넷 검열을 만성적으로 시행 중이다.
이와 같은 우려는 거주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네옴시티의 성공 가능성을 낮추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네옴시티는 글로벌 디지털 허브를 지향하고 있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국적의 해외 전문가들을 영입해야 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의 상당수는 자유 및 인권 지수가 높은 북미·유럽 선진국 출신이 많 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과연 도시 미관이 아름답고, 집값이 싸며 연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이 정보 통제가 심한 사막의 신도시로 이민을 결심할 수 있을까?

- 외교 정책 분야에서 현재 빈 살만이 취하고 있는 기조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에 가깝다. 천 년 가까이 아옹다옹 해온 이란에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미는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 건국 이래 외교 기조의 큰 틀을 이뤘던 절대적 친미 정책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이후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를 단순히 반미 친중 외교 로 이해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오히려 그동안 당연하다 여겨졌던 사우디의 외교 정책에 근본적 변화를 줌으로써, 사우디가 타국에 외교의 '상수'가 아닌 '변수'가 되도록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라고 이 해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사우디가 보이는 정책에는 언제든지 적과 우군을 바꿀 수 있는 능동 외교를 통해 주변국과 G2에 받을 건 최대한 받아내는 실리적이고 복잡한 셈법이 담겨 있다는 해석 이 현재로서는 가장 정답에 가깝다.
- 사우디가 그동안 불편한 관계를 맺었던 주변국들과 서둘러 국교 정상화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빈 살만 왕세자가 네옴시 티를 필두로 자신이 주도하는 뉴 사우디아라비아에 특별한 지정학 적 변수가 도출되는 걸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했듯 네 옴시티가 위치할 타북은 사우디의 변방으로, 이스라엘, 시리아 등 그동안 적대적 관계를 맺어온 주변국과 매우 가깝다. 네옴시티 건 설을 앞두고 외국의 막대한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리 아, 이란 등 주변국과 트러블을 겪는다면, 외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 을 수 있다. 큰 시험을 앞두고는 낙엽도 조심해서 밟는다는 말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실제로 사우디의 이런 우려는 예멘 내전과 관련해 어느 정도 현실화되고 있다.
2014년에 시작된 내전은 10년째 지루하게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다. 예멘 정부가 사실상 붕괴한 상황에서 구 예멘 정부군 및 수니 파 연합군은 사실상 사우디군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월남전이 표면상으로는 월남군과 월맹군의 전쟁이었지만 실제로는 미군과 월맹군의 전쟁이었던 것처럼, 예멘 내전도 후티와 사우디의 양파전 으로 점차 굳어져 가고 있다. 2016년부터 국방 보좌관 자격으로 예멘 전선을 주도해 온 빈 살만은 예멘 내전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후티 반군은 더 나아가 수니파 연합군 내부에서 반전의 목소리를 이끌어 내기 위해 게릴라성 드론 및 로켓 포격을 아라비아반도에 퍼붓고 있다. 실제로 2018년 7월과 2022년 1월에는 UAE에 후티 반군이 발사한 로켓이 떨어지면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만일 네옴시티 인근에 단 한발이라도 미사일이 떨어진다면 다수의 외국인 투자자들은 투자에 등을 돌릴 것이다.
- 그럼, 사우디의 지역 패권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누구일까? 바로 이란이다. 두 국가는 국경이 직접 인접하지 않아 육로로는 이 라크와 쿠웨이트를 사이에 끼고 있고, 해로로는 페르시아만을 가로 질러 마주보고 있다. 양국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단교 와 국교 재개를 거듭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접 국의 내전에도 개입해 가뜩이나 복잡한 중동의 현대사를 더욱 꼬 아 놓는 중이다.
양대 지역 패권국이 대립각을 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종교 때문 이다. 사우디는 이슬람, 특히 전 세계 수니파 이슬람의 종주국인 반면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의 고향 같은 곳이다. 그래도 1979년 이 란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는 사우디의 사우드 왕국과 이란의 팔라 비 왕조 모두 친미 성향이었던 만큼 별다른 갈등이 드러나지 않았 지만, 이란이 시아파 신정일치 국가임을 선언한 이슬람 혁명 이후 갈등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란-이라크의 8년간의 치열한 전쟁(1980~1988)에서도 사우디 는 이라크의 손을 들어주며 이란과의 갈등을 본격화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턱밑에 원리주의 시아파 신정국가가 탄생하는 것을 경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가 중동에서 드문 친미 국가이고 반대 로 이란은 대표적인 반미 국가였기에 미국은 노골적으로 사우디의 중동 패권을 편들어 이란을 견제해 왔다.
2008년 아랍의 봄 이후 중동 각국에서는 정권이 붕괴하고 종교 적 분파들이 득세하며 춘추전국시대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내전이 발생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이때를 기점으로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 의 종주국을 자처하며 중동 전역에서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대표 적으로 예멘의 정부군(수니파) 대 후티 반군시아파), 시리아 아사드 정권시아파) 대 수니파 반군, 이라크 내전 등이 그 일례다.
- 사우디와 이란의 대립은 현대에 와서는 종교적, 정치적인 양상을 띠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인종적이고 역사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사우디 국민의 주류는 아랍인, 이란 국민의 대다수 는 백인계 아리아인이다. 두 민족은 이슬람 발흥 이래로 1400년 동안 이슬람 국가의 종주권을 두고 다뤄왔다.
다만 이와 같은 긴 분쟁도 최근 봉합될 여지를 보이고 있다. 사 우디와 이란은 2023년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며 데탕트 분위기에 접어드는 중이다. 이 배경에는 사우디가 최근 친미 일변도의 외교 에서 벗어나 다자간 외교를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있다. 사우디가 미국의 중동 지역 대리인을 벗어나 다양한 외교 카드와 협상력을 가져야 하는 만큼, 시아파의 수장인 이란과도 대립각을 세울 이유 가 하나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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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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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에너지 레볼루션

사회 2023. 10. 27. 11:36

- 기후변화와 인류문명
지구는 지금으로부터 약 45억 년 전에 생성되었으며, 생명은 35 억 년 전쯤 최초로 출현한 이래 진화를 거듭하여 약 20만 년 전에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기에 이르렀다. 인류는 마지 막 빙하기 무렵 북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에까지 퍼져나갔고, 빙 하기가 끝나는 기원전 1만 2천 년경에는 빙하가 덮지 않은 지구상 의 모든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1만 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자 지 구는 현재의 따뜻한 간빙기인 홀로세(Holocene)에 진입하였고, 기 후가 온난해지면서 인류는 7천 년 전쯤 정착생활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정착하여 살게 되면서 드디어 문명시대의 마중물이라 할 수 있는 신석기 농업혁명을 이루었다.
물론 홀로세 동안에도 혹독한 기후변동이 있었지만, 그 변동폭 은 수백 년 단위의 규모에서 최대 약 1°C 정도 기온이 변하는 수준 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의 기온변동에도 인류 는 힘겹게 적응해야만 했다.
앞의 그래프를 보자. 홀로세에서도 기원전 6천 년에서 4천 년 과 3천 년에서 2천 년 사이는 가장 온난했던 시기로 '기후 최적기' 라 부른다. 이 시기에 나일강,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강, 황허강 유역 등에서 고대 문명이 탄생하였다. 신석기 농업이 시작 된 이후 인류가 기후 때문에 가장 극심하게 고통받았던 시기로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 그리고 14세기에서 19세기 까지 두 번의 '소빙하기'를 꼽는다. 이 두 차례의 소빙하기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인 동시에 문명을 도약시킨 시 기이기도 했다.
- 기원전 2천 년부터 거대한 화산 폭발이 심해지고 기후는 점차 한랭 건조해졌다. 그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지자 인간 사회에는 정 치, 경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었고, 결국 고대 문명이 무너졌다. 이후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는 그 전보다 혹독한 재 해성 기후로 농업 생산량이 크게 떨어졌다. 또한 식량 부족으로 동 서양에 걸쳐 민족의 이동이 심해져 민족 간 충돌이 많아졌으며, 이 는 정치·경제·사회뿐만 아니라 인류의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미쳤 다. 민족들이 뒤섞이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만나게 되고, 이로부터 새로운 사상이 싹틀 환경이 조성되면서 종교와 철학이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이후 유럽 지역의 중세 온난기였던 9세기에서 13세기까지는 기 후 조건이 좋아졌다. 이때 영국 잉글랜드에서는 포도가, 노르웨이 에서는 보리, 밀 등의 곡물이 재배되었다. 이 시기에는 사상적으로 나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가 없었으며 13세기 말에는 지구상의 인 구가 4억 명으로 증가할 정도로 번영하였다. 그러나 이후 14세기 에서 18세기까지 400여 년에 걸쳐 북반구의 평균 기온이 0.6°C 낮 아진 소빙하기를 다시 겪게 되었다. 그런데 두 번째의 소빙하기를 맞은 인류는 기상이변, 흉작과 전염병의 원인을 이전과 같이 신의 섭리에서 찾지 않고 사회 체제의 문제로 보았다. 그에 따라 유럽에서는 영국의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프랑스의 프랑스혁명 등 종교적·정치적 위기가 심화되었으며, 이는 다시 새로운 계몽주의 시 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러한 혼란의 시기에 유럽인들은 세계 각지로 새로운 기 회를 찾기 위해 나서기 시작했고, 이는 세계적 규모의 무역이 이 루어지는 대항해시대로 이어졌다. 과학자들도 이전에 진리로 여 겨졌던 명제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새로운 과학적 진실을 찾 기 위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천동설이 무너지고 지동설이 확립되었고, 근대과학을 기반으로 18세기 중 반에는 영국을 시작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기후변화에 의한 재난과 재앙을 합리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학은 물론 농업을 비롯한 각종 산업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또 정치·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상이 출현하여 정의, 자유, 평등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근대사회로 이행 하게 되었다.
- 과거의 기후변화와 사회변화 역사를 되돌아볼 때 두 번의 소빙 하기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기였지만, 현대 문명을 싹틔운 기회의 시기이기도 했다. 기후 조건이 좋았던 고대 문명 시 기와 중세 유럽의 온난기를 거치며 쌓여가던 문제점들이 기후 조 건이 좋지 않았던 시기에 폭발했지만, 인류는 이러한 기후위기를 극복했다. 그리고 이후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를 활용한 산업혁명 기를 거쳐 오늘의 번영을 이루었다.
문제는 현재 인류가 누리고 있는 번영의 이면에 막대한 화석연 료의 사용과 도시화, 토지개발 등에 따른 산림파괴가 자리 잡고 있 으며, 그로 인해 다시금 지구온난화라는 기후위기가 진행되고 있 다는 것이다.

-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전 세계의 석유 수요는 도로수송(42.2%)이 1위를 차 지했다. 이어 석유화학(18.3%), 빌딩 및 발전(12.3%), 항공 및 선박 (12%), 기타(12%) 순이다. 이 중 석유의 가장 큰 수요처인 도로수송 은 내연기관 차량이 빠르게 전기차로 대체되면서 수요의 감소 또 는 정체가 불가피하다. 석유의 주요 수요처 중 하나인 화학산업 또 한 리사이클링 등 친환경 소비 확산으로 예전에 비해 위축된 상황 이며 발전 부문도 태양광,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가 점차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이었던 야마니가 석 유산업의 미래에 대해 했던 예언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과학적으로 증명된 지구온난화 현상
기후변화 현상, 화석연료의 탄소기반 에너지의 탄소기반 에너 지 체계의 위험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1824년 프랑스의 수학자이 자물리학자인 조제프 푸리에(Joseph Fourier)가 처음 시작했다. 그 가 처음으로 설명한 대기 에너지 전도의 비대칭성은 오늘날의 온 실효과(Green House Effect)에 해당한다. 이러한 기온상승 효과는 1850년대에 미국의 과학자 유니스 푸트(Eunice Newton Foote)가 실 험을 통해 이산화탄소 온실효과를 입증함으로써 최초로 과학적인 증명이 이루어졌고, 아일랜드의 존 틴달(John Tyndall)이 이산화탄 소에 의한 온실효과를 이론적으로 정립했다.
이어서 1895년에 스웨덴의 물리학자인 스반테 아레니우스 (Svante Arrhenius)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와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명확하게 제시하며 화석연료 사용이 기후변화 영향, 즉 온실효 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인간의 활동이 기후변화에 영향 을 미쳤을지도 모른다고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영국의 공학자인 캘런더(Guy Stewart Callendar)이다. 그는 1938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화석연료를 태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기후변화에 대해 아직도 일부 회의론자들은 반박하기도 하지 만, 이렇게 출발한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류의 활동이 지 구온난화를 초래했다는 것이 이제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 사실로 인식되고 있다. 1958년 미국의 화학자 찰스 킬링 (Charles David Keeling) 이하와이 마우나로아(Mauna Loa) 해발 4,000m 정상 근처 관측소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했는데, 당시 315ppm이던 이산화탄소 농도는 2021년 4월 8일 421.4ppm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 수치는 최근 20만 년 중 가장 높은 기록이라 고 한다.

- 배출권 거래제
배출권 거래제는 환경 오염재를 거래하는 일명 탄소시장을 조 성하여 시장의 수급에 의해 탄소가격을 결정한다. 먼저 정부가 허 용 가능한 오염물질의 연간 총배출량을 결정하고 배출권을 발행 한다. 배출권은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권리로서, 배출권을 보 유한 기업만이 할당된 양만큼의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하 는 제도이다.
배출권의 발행은 경매방식으로 하며 기업의 배출권 수요가 공 급된 총량과 같아지는 가격에서 배출권을 판매한다. 기업은 배출 권의 가격이 오염물질 배출의 한계비용이므로, 이것이 오염물질 배출의 한계 편익과 같아질 때까지 배출권을 수요하게 될 것이다. 이는 시장 메커니즘에 기반하고 있어 기업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이러한 유연함이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유도하는 것 이 장점이다. 또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인센티브를 부여하므로 기업이 자발적으로 감축 노력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인할 수 있다. 반면에 단점으로는 경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탄소가격에 변동 성이 있고,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부문은 배출량 조절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배출권 시장은 다시 '할당 베이스' 시장과 '프로젝트 베이스' 시장으로 나뉜다. 할당 베이스 시장은 기업별로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이 할당되면 할당량 대비 잉여분 및 부족분을 거래하는 개념이 다. 반면 프로젝트 베이스 시장은 배출량 감축 프로젝트를 실시하 여 거둔 성과에 따라 획득한 크레디트를 배출권 거래 형태로 거래 하는 개념이다. 즉 청정개발체제 (CDM, Clean Development Mechanism) 프로젝트를 통해 획득한 크레디트는 CER(Certified Emission Reduction)라고 하며, 공동이행(JI, Joint Implementation) 프로젝트를 통해 획득한 크레디트는 ERU(Emission Reduction Unit)라고 한다. 2002년 영국에서 최초로 자발적인 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된 이 후 2005년부터 EU 차원에서 의무할당 방식의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되면서 온실가스 거래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 체계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의 기반을 제공하며,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에 따라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권에 대한 소유권이 설정되고, 수급에 따라 배출권 가격이 형성된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한 도시 · 국가는 총 25개국으로 EU, 미 국 북동부의 9개 주가 참여하는 지역 온실가스 감축협약(RGGI, Regional Greenhouse Gas Initiative), 중국, 뉴질랜드, 카자흐스탄, 한국 등이 있다. EU의 경우 시행 초기에는 과다 할당과 횡재 이윤의 문 제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명확한 분류체계와 기준을 바 탕으로 할당 체계를 수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하여 현재는 가장 큰 탄소시장으로 배출권 거래제를 선도하고 있다. 배출권의 규모도 총배출량의 약 40%를 차지하며, 2017년 기준 총배출량은 43억 2,300만톤 COzeq로 에너지 부문(78%)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 다. 1990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중장기 목표를 수립해 2030년에는 1990년 대비 40% 감축,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계 획이다.
-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부터 약 600개 기업을 대상으로 배출권 거래를 실시하고 있다. 배출권 거래시장은 현재 EU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이지만, 아직은 잉여 배출권 이월과 시장기능 미흡 등으 로 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국내 배출 권은 KAU(Korea Allocation Unit), KCU(Korea Credit Unit), KOC(Korea Offset Unit)의 세가지 유형이 있다. 2015년 1월 12일 개장부터 2020년 9월까지의 총 거래량은 1억 6,400만 톤이고 거래금액 기 준으로는 4조 420억 원에 해당한다. 연도별 배출권 거래량은 2015년 570만 톤, 2016년 1,190만 톤, 2017년 2,630만 톤, 2018 년 4,750만 톤, 2019년 3,810만 톤, 2020년 9월까지 3,450만 톤이었다. 이 중 KAU가 1억 3,700만 톤으로 83%를 차지하고, KCU가 340만 톤으로 2%, KOC가 2,370만 톤으로 15%를 차지하였다. 2015년 1월 12일 개장 첫날 톤당 8,640원이던 배출권 가격은 2016년 평균 1만 7,179원으로 올랐고 2020년에는 평균 2만 9,126 원 수준에 거래됐으며 2021년에는 톤당 2~3만 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정부는 배출 허용량 중 유상으로 할당하는 업종과 비율을 점 차 늘리고 있다. 1차 계획기간(2015~2017년)에는 대상 기업에 100% 배출권을 무상 할당했지만 2차 계획기간(2018~2020년)에는 3%를 유상 할당했고, 2021년부터 2025년까지인 3차 계획기간에는 이 비율을 10%로 높인다. 유상할당 대상 기업은 이 비율만큼 배출량을 줄이거나 시장에서 사들여야 한다.
2050년 탄소중립 선언에 따라 탄소감축 필요성이 커지면서 추 후 유상할당 비율은 더 늘어날 예정이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 시 멘트, 정유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은 배출권 구매 부담에 더하여 탄 소감축 설비 투자까지 병행해야 하므로, 시설투자에 대한 부담과 함께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따른 사업재편의 부담도 있다.

- 국내 철강산업에서도 저탄소/탈탄소 공정으로 나아가려는 준 비를 하고 있다. 철기시대 이래로 지금까지 뜨거운 용광로(고로)에 서 철광석과 석탄 종류인 코크스를 환원제로 섞어 쇳물을 녹여내 왔지만 이제는 코크스 대신 수소를 활용하는 수소환원 제철공법 등을 통하여 획기적으로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려는 것이다. 이 를 위해 철강업계가 수소 환원 방식의 전기로로 전환하려면 기존 고로에서 쇳물을 뽑아내는 공정 전체를 바꿔야 하는데, 이에 따른 투자와 매몰 비용은 1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정유산업은 친환경 모빌리티 보급 증가로 제품 수요가 줄어들 것에 대비해 석유제품 대신 화학 원료 생산을 늘리는 COTC(Crude Oil To Chemical) 전략을 수립하여 2030년까지 바이오경유 혼합비중도 5%로 확대할 계획이다. 나머지 탄소는 CCUS 기술개발을 통해 제거한다는 계획이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최대한 플라스틱 재활용 비중을 높이고 기 초 원료인 나프타는 물성이 비슷한 바이오 원료나 수소와 이산화 탄소를 합성하는 방식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 예를 들면, LG화학은 세계 최대 바이오디젤 생산업체인 핀란드 네스테 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올해 하반기에 바이오디젤을 기반으로 하는 친환경 합성수지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 자연 상태의 철광석은 철 성분이 산소와 결합된 적철광(Fe2O), 자철광(Fe,O) 등산화철 상태로 존재한다.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 내고 순수한 철 성분만 얻는 작업이 제철공정이다. 흔히 용광로라 불리는 고로에서는 철광석이 철로 환원되는데, 철강산업에서 발 생하는 온실가스 대부분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철광석에 붙어 있는 산소를 제거하기 위해 환원제로 어떤 것을 이용하느냐에 따 라 탄소 배출량이 결정되는 셈이다.
현재 사용하는 탄소환원제철법은 고로에 철광석과 코크스를 넣 고 녹여 액체 상태의 철을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제철용 석탄 등 탄소계 환원제가 투입된다. 산소와 친화적인 물질 중 하나가 탄소 이기 때문이다. 환원작업이 진행되면서 산소가 탄소로 옮겨가면 순수한 철만 남게 되지만, 이산화탄소가 대량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반면 수소환원제철법은 환원제로 탄소가 아닌 수소를 사용 한다.

- 분산에너지(Distributed Energy)는 수용가 내부 또는 수요지 인근 에 위치한 분산형 전원과 전력계통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는 자원 이다. 전기사업법에 의하면 '분산형 전원'이란 수요 지역 인근에 설치하여 송전선로 건설을 최소화할 수 있는 40MW 이하의 모든 발전설비, 500MW 이하의 집단에너지·구역전기 · 자가용 발전설 비를 말한다. 분산에너지는 분산형 전원에 더하여 ESS, DR 등의 분산자원과 열, 수소 등의 비전력까지 포함한다. 화력발전, 원자력 발전 등 대형 중앙집중형 발전 중심에서 소비 지역 인근의 중소 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원 연결이 증가하면서 분산에너지 관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분산형 발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대규모 송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용량 발전소를 짓고 다량의 전기를 여러 곳으로 보내야 하는 중앙집중 방식은 송전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나 분산 발전은 태양광 패널과 같은 소규모 발전설비를 이용해 특정 지역, 산업단지 그리고 내가 사는 집에서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 사용, 저장하는 형태이다. 따라서 규모를 크게 만들 필요도 없고 부지 등 비용 부담이 적으므로 비교적 쉽게 설치할 수 있다. 또 장거리 송 전으로 인한 비용이나 전력손실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또한 주로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친환경 발전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미세먼지 및 온실가스 감소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 가상발전소(VPP)란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와 ESS를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로 통합한 뒤 하나의 발전소 처럼 관리하는 발전소이다. 인공지능 기술 등을 활용해 전력망에 존재하는 다양한 전원들을 효율적으로 통합 관리하고, 분산된 전 력 소비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 뒤 그때그때 필요한 전력만 생산 하는 맞춤형 발전사업이다. 수백 개의 발전소가 매 순간 서로 짝을 바꿔 지으며 각 지역을 담당하는 수십 개의 가상발전소를 구성하 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상황에 맞춰 발전량 조절이 쉽고, 발 전 효율성도 크게 높아진다.
특히 태양광·풍력 발전은 계절이나 날씨, 시간에 따라 발전량 이 들쭉날쭉한 간헐성이 특징이라 정확하게 수급을 예측하는 것 이 중요하다. 태양광의 경우 개인이나 기업이 소규모 설비를 설치 해 전력을 생산한 뒤 남은 전력을 ESS에 저장했다가 시장에 사고 팔 수도 있게 된다. 가정의 태양광발전 패널과 전기차 배터리도 가 상발전소에 참여할 수 있다.
맑은 날 대낮에 가정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집 안에서 모두 쓰이 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의 스마트 그리드 장치를 통해 이 전 기를 지역의 가상발전소에 제공하고, 근처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쓰도록 한다. 또 전기차를 주차하면서 충전 장치를 통해 스마트 그리드에 연결하면, 출퇴근할 때 필요한 만큼의 전기만 남기고 나머 지는 가상발전소에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전력망이 불안정해 진다는 것이며, 전력망이 개인과 지역 중심으로 분산되면 이전처 럼 한눈에 전체 전력 수요를 파악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한 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상발전소 도입이 확대될 것이 며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글로벌 석유기업 쉘은 2021년 2월 유럽 가상발전소 운영사 넥 스트크라프트베르케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유럽 8개 국에 분산되어 있는 1만여 개의 태양광, 수력, 바이오에너지 발전 설비에서 발생하는 전력 수요를 통합·관리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2030년에는 지금의 2배 규모인 560TWh의 전력을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전기차 회사 테슬라도 2022년까지 호주에 세계 최대 규 모의 가상발전소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테슬라는 남호주 의 주택 5만여 채에 250MW급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하고, 전력 생 산과 판매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전 세계 가상발전소 시장 규모는 연평균 27%씩 성장하고 있어, 2019년 8억 7천만 달러에서 2027 년엔 28억 5천만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남동발전 등 발전공기업, KT, 한화큐셀 등 주요 기업에서 가상발전소의 가능성을 보고 사업 진출을 준비 하고 있다. 한화큐셀은 2020년 5월 가상발전소에 특화된 호주에 너지 소프트웨어 업체인 스위치딘에 투자를 결정했으며 2020년 9 월 미국 에너지업체 그로윙에너지랩스를 인수하며 분산형 에너지 솔루션 시장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했다.
SK E&S도 미국 가상발전소 시장 진출을 목표로 2019년 5월스 위스 에너지회사 수시와 합작회사를 세웠고 2020년 6월에는 미국 에너지솔루션업체 스템(STEM)과 AI 기반 가상발전소 운영계약을 체결했다. 서울시, 울산광역시 등의 지자체들도 가상발전소 사업 에 적극 나서고 있다.

-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 중에서 가장 강력한 자원은 '기회'라고 한다.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에 있는 제우스의 아들이 자 기회의 신인 카이로스 동상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내가 벌거벗은 이유는 쉽게 눈에 띄기 위함이고, 나의 앞머리가 무 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함 이며, 나의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불 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며, 나의 발에 날개가 달려 있는 이유는 순식간에 사라지기 위함이다. 나의 이름은 바로 '기회'이다."
카이로스 동상은 기회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과 함께 그가 들고 있는 저울과 칼을 통해서 기회를 포착하는 방법도 설명하고 있다. 왼손에 저울이 있는 것은 일의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하라는 것 이며, 오른손에 칼이 주어진 것은 칼날로 자르듯이 빠른 결단을 내 리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글로벌 메가트렌드, 패러다 임의 변화 속에서 스스로 적극적으로 기회를 찾고, 빠른 판단으로 그것을 찾아가 얻어내는 것이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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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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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크퍼트가 주장한바 거짓말을 하려면 어떤 형태의 절대적 진실이나 거짓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점점 진실이나 거짓 어느 쪽으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판을 장 악해가고 있다. 이들이 신경 쓰는 것은 담론이다.
프랭크퍼트는 "사실을 전하거나 숨기려는 사람은 어느 정 도 확실하고 인식 가능한 사실이 실제로 있다고 가정한다. 진실 이나 거짓을 말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은 상황을 잘못된 쪽 으로 이끄는 것과 바로잡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고, 적어도 때 에 따라서는 그 차이를 분간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라고 주장 했다. 반면 이런 견해를 부인하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어떤 것도 사실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거나 그냥 개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냥 자기주장을 말할 뿐 진실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프랭크퍼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이를테면 같은 게 임에서 맞서 싸운다고 해보자. 각자는 어떤 사실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대로 반응한다. 물론 한쪽은 진실의 권위에 따라 반응하고, 다른 쪽은 그 권위를 거부하고 권위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개소리꾼은 이런 요구 자체를 완전히 무시한다. 그는 거짓말쟁 이와 달리 진실의 권위를 거부하지도, 이에 맞서지도 않는다.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진실의 더 큰 적은 거 짓말보다 개소리다.
다시 말해 개소리꾼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유리한 발언을 할 뿐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개의치 않는다. 
- 정치인들이 갑자기, 또 전반적으로 거짓말을 더 많이 하게된 것은 아니다. 언론의 거짓말도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니다. 이견은 있지만, 대중이 전보다 더 멍청해졌거나 더 혼란에 빠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교육 수준이 높다. 그렇다 면 지금 왜 이렇게 개소리가 기승을 부리는 걸까?
개소리가 승리한 체계적이고 중대한 이유는 상당 부분 미 디어 측면에 있다. 즉 전통 매체의 변화와 인터넷이 낳은 새로 운 경제적 조건에서 비롯한다. 대개 우리가 오늘날의 미디어 환 경을 논할 때 신기술과 플랫폼 그리고 이들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른 극심한 변화를 놓친다. 바로 경제적 환경이다.
- '진지한 매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끊임없이 압박받는다. 특히 인쇄 매체가 심각하다. 발행 부수가 계속 줄면서 판매 수 익은 물론이고 광고 수익도 동시에 줄었다. 구독자가 줄면서 기 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인 도달률도 크게 떨어졌다. 기업들이 인쇄 매체에서 디지털 매체로 광고를 옮기면서 광고 수익은 더욱 줄어들었다. 신문을 팔 아 얻는 수입도 매해 15퍼센트씩 감소하고 있다. 수입이 줄었다 는 말은 기자가 줄었다는 뜻으로, 이제 기자들은 적은 예산으로 어느 때보다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이 한 말을 그대로 옮겨 쓰는 것이 발언의 내용을 파헤치는 것보다 비용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여기서 연쇄작용이 일어난다. 일부 매체는 점점 그 수가 줄 어들고 고령화하는 독자층에 맞추어 보도 방식을 바꾸고, 젊은 구독자를 확보하는 일은 깨끗이 포기해버린다. 대다수 언론사 는 줄어든 수입을 만회하기 위해 온라인 보도에 치중하면서 개 소리 문제를 더욱 키운다. 반면 규모와 전문성에서 으뜸가는 매체인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곳은 온라인 유료구독자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서 자사의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유사한 형태를 유지한다.
다른 대부분의 매체는 구독자보다는 도달률에 관심을 둔 다. 방문자가 기사를 읽을 때마다 함께 뜨는 각종 광고로 아주 적은 돈을 버는데, 이것만으로는 기사 작성에 드는 비용을 마련 하기 힘들다. 이런 푼돈으로 이윤을 내려면 하루에 수백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방문객을 확보하고 기사를 가급적 적은 비 용으로 써야 한다.
이는 개소리를 막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 오히려 개소리를 전 세계로 널리 퍼뜨리는 모델이다. 기자 한 명이 오랜 시간을 들여 주장을 검토한 후 사실을 토대로 신중히 기사를 작 성하면 비용은 더 들고 클릭 수는 줄어든다. 이보다 더 쉽게 수 익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원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서둘러 기사로 내보내서 그 주장에 대한 분노와 반박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내는 것이다. 폭로 기사는 다른 언론사가 쓴 기사를 그냥 베끼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관련 기사가 예닐곱 개 나오는데 그중에는 서로 모순되는 내용도 있을뿐더러 직접 취재한 기사는 하나도 없다.
이러한 모델 역시 뉴미디어와 가짜뉴스가 차용한다. 의견 이 팽팽하게 맞서는 진지한 기사들의 홍수 속에서 방문자를 따 라서 광고 수익을) 최대한 확보하려면 어떤 논란이든 과장 보도로 당파적인 독자들을 대거 끌어모아야 한다.
- 이 특별한 비즈니스 모델은 결국 가짜뉴스 사이트를 낳는다. 어차피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거나 과장해서 쓸 것이라면 아예 지어내서 비용을 절감하지 않을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초대박이 난 가짜뉴스는 광고 수익으로 돈벌이가 되기도 하고, 카지노 가입이나 벼락부자 사이트 방문, 수상한 건강 제품 판매 등을 목적으로 하는 제휴 마케팅에 이용되기도 한다. 낚시 기사 로 이런 제품을 구매하거나 서비스에 가입하는 사람이 생길 때 마다 광고 노출보다 훨씬 넉넉한 수입이 생기므로 사기꾼들에 게는 또 하나의 수지맞는 장사가 생기는 셈이다.
여기에 반전이 하나 있다. 거의 모든 주요 뉴스 사이트들이 가짜뉴스 사이트와 어떻게 싸울지 고심하고 이들의 위험성 을 경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들 덕분에 이윤을 얻는다는 점 이다. 거의 모든 주요 사이트의 기사 하단이나 옆에 있는 '스폰 서 링크'는 방문자가 클릭할 때마다 해당 언론사에 소소한 수익 을 안겨주는데, 대부분의 링크가 가짜뉴스나 낚시 기사로 이어 진다. 전통적인 미디어들은 가짜뉴스와 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뉴스를 띄워 이익을 얻는 것이다.
- 오늘날 소셜 미디어는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다. 정치 캠페인은 페이스북 광고를 영리하고 정교하게 이용한다. 주류 미디 어와 당파적 미디어도 구독자를 늘리려고 소셜 네트워크를 이 용한다. 가짜뉴스는 소셜 미디어의 공유 기능에 의존한다. 페이 스북과 트위터가 자신들은 미디어 기업이 아닌 기술 기업이라 고 주장한들 이들은 미디어 생태계에서 필수적인 존재다. 그리 고 개소리를 유포하는 데 큰 몫을 한다.
- 뉴스를 검색하는 시대는 갔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2015년 무렵 페이스북을 통해 뉴스 사이트로 들어온 트래픽이 구글을 통해 들어온 트래픽을 앞질렀다는 확실한 근거가 나왔다고 한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이 사이트를 선별하는 방식 못지않게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공유하는 내용이 트래픽 유입을 결정 짓는 주요 변수라는 뜻이다?
- 사이트에서는 콘텐츠가 쉽게 노출되도록 쉽고 명쾌한 기사 를 작성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다른 전략을 사용한다. 딱딱한 글보다 공감을 일으키는 구어체로 글을 쓰는 것이다. 앞서 여러 번 말했듯이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정치색이 뚜렷한 제목 을 써서 공유를 유도하는 방법도 있다. 연구에 따르면, 페이스 북을 통해 가짜뉴스 사이트와 정치색이 뚜렷한 사이트에 유입 된 트래픽이, 페이스북을 통해 진짜뉴스 사이트에 유입된 트래 픽보다 세 배 정도 많았다. 소셜 미디어의 공유 기능은 가짜뉴 스사이트와 당파적 사이트가 생존하는 데 필수다.
-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모델은 뉴스 사이트의 모델과 닮은 면이 있다. 페이스북은 이용자의 관심을 최대한 오래 끌어 맞춤 광고를 보도록 유인하기 때문이다. 뉴스 콘텐츠가 이용자를 오래 붙드는 데 도움이 되면, 페이스북은 이용자에게 뉴스를 보여 줄 것이다. 오락 정보가 더욱 효과적이면 오락 정보를 보여줄 테고, 개인 콘텐츠가 효과적이면 페이스북은 여기에 중점을 둘 것이다. 이 말은 곧 페이스북이 퍼블리셔와 광고를 놓고 경쟁한다는 뜻이다. 2016년에 페이스북이 거둔 디지털 광고 수익은 전년 대비 43퍼센트 오른 반면, 다른 미디어 기업들은 같은 기 간에 광고 수익이 사실상 떨어졌다. 퍼블리셔가 간절하게 바라 는 온라인 광고 시장의 신규 수익을 페이스북과 구글이 모두 가 져갔다는 뜻이다.14 광고에 한해서는 페이스북은 오히려 뉴스 사이트들과 직접 경쟁하는 존재로, 가뜩이나 어려운 뉴스 편집 실의 재정난을 더욱 부채질한다. 가짜뉴스와 과장된 기사, 개소 리 문제에서 페이스북은 그동안 기껏해야 땜질식 처방을 했다.
-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같은 레거시 미디어는 정보 검색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주축을 이루는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분투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영향력이 가장 높고, 또 가장 많은 수익을 얻는 매체다.
레거시 미디어는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 고, 주류 미디어에 회의적이거나 이를 조소하는 사람들의 세계 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종종 헤드라인을 선별하는 레거시 미 디어의 수문장 역할이 무력해졌다는 탈중개화 현상이 거론되지 만, 다수의 대안 미디어는 레거시 미디어가 맨 먼저 발표한 정 보를 재생산하거나 이에 반박하는 내용을 만들어내어 유지된 다. 어떤 정치인이든 레거시 미디어를 무시하면 상당수의 유권자를 놓치게 된다.
한마디로 개소리는 주요 미디어 없이는 뜨기 어렵다. 매체 는 개소리를 막으려고 애쓰면서도 이를 전파한다. 객관성을 중 시하는 매체들은 진실에 얽매이지 않는 정치인과 캠페인을 다 루거나 요즘 대중에게 친숙한 소통 방식을 택할 때 어려움을 겪 기도 한다. 어떤 매체들은 그들이 선정한 정치적 의제나 그들이 처한 재정 상태 때문에 스스로도 미심쩍은 기사와 담론을 적극 적으로 퍼뜨린다. 하나같이 장기적 과제지만 이와 더불어 매체 들이 대비해야 할 새로운 현상이 있다. 바로 선거 후보와 캠페 인이 미디어를 정보 전달자나 비당파적 기관이 아닌, 또 하나의 정적으로 취급하는 현상이다. 결국 미디어는 재정 위기, 미디어 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 하락, 새로운 유형의 경쟁 세력, 매우 질적인 정치적 풍토 사이에서 곡예를 해야 한다.
- 뉴스 사이트들이 기사를 마구 쏟아내고 때로 어리석은 기사를 올리는 것은 그냥 재미로 하는 행동이 아니다. 이들은 인 터넷의 기이한 인센티브 구조에 따라 움직인다. 구글뉴스 상위 권에 오르면, 그러지 못한 기사보다 트래픽이 늘고 더 많은 관 심을 받는다. 검색엔진의 알고리즘은 전통적으로 맨 먼저 기사 를 올린 사이트를 선호한다. 페이스북 알고리즘도 당파적이거 나 믿기 힘든 기사를 철저한 보도 기사보다 선호하는데, 단지 사람들이 그 기사를 더 많이 공유하기 때문이다. 트래픽이 높아 진다는 것은 당연히 해당 사이트의 수익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제목은 나중에 바꾸더라도 일단 기사부터 올리면 트래픽이 올 라가지만 시간을 들여 사실을 확인한 후 아무 기사도 올리지 않 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런 관행은 독자의 신뢰를 대가로 치러야 한다. 신문사가 시간과 자원을 들여 쓴 기사와 달랑 트윗 하나만 믿고 쓴 기사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독자가 한 기사를 다른 기사보다 더 신 뢰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 기사가 수시로 교체되는 상황에서, 뉴스 사이트가 기사 제목을 바꾸거나 내용을 완전히 교체했다 는 표시를 안 해주면, 독자는 어느 부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길이 없다. 터무니없는 기사를 제대로 된 기사와 나란히 배 치하고, 두 기사를 전혀 구분하지 않으며, 큰 실수를 해놓고도 공지 없이 넘어가면서 매체들은 개소리 문화를 퍼뜨린다.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면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 냉소주의가 오래 이어지면 결국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키 워 투표율이 낮아지고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율이 떨어진다. 악 순환이 시작된다. 정치인은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과 부동층에 게 호소하기보다,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는 쪽으로 선거 유세 를 한다. 지지층을 향해 상대 후보가 우리의 핵심 이슈를 위협 한다고, 이를테면 '당신의 기를 빼앗아가고, '여성의 결정권 을 없앤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선거가 우리의 권리를 지킬 마지막 기회라고 호소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경험자보다는 아웃사이더가 과거의 업적보다는 미래의 공약이 더 유리하다. 그 결과 예상 밖의 후보가 갑자기 부상한다. 32년간 평범한 변 두리 좌파 하원의원이었다가 영국 노동당 당수로 수직 상승한 제러미 코빈이나, 조롱받던 후보에서 대통령으로 우뚝 올라선 트럼프가 바로 그런 경우다. '할 말은 하는 정직한 정치'라는 제 러미 코빈의 외침이나 '오물을 빼겠다'라는 트럼프의 공약처럼, 아웃사이더 정치인이 신선함을 무기로 정치 시스템을 바꾸겠다 고 유세하면, 논쟁의 초점이 경험이나 주요 이슈에서 이들이 지 닌 강점으로 옮겨간다.
이러한 게임판에서 트럼프와 그 측근만큼 뛰어난 능력을 보인 정치인은 없었다. 운이든 타고난 재능이든 아니면 자신의 호텔 및 부동산 사업을 키우려고 다년간 가십거리 위주인 각종 뉴욕 미디어에 출연한 경험 덕분이든, 트럼프의 능력은 독보적이다. 
- '많이 달라 보여도 본질은 똑같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미디어가 그렇다. 매카시 시절이나 지금이나 미디어는 취약한 환경에 놓였고, 또 그때처럼 교묘하게 이용당하고 있다. 그렇지 만 매카시와 트럼프의 유사성은 단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두 사람에게는 여러 조언자와 측근이라는 연결고리도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트럼프는 전부터 알고 지낸 악명 높은 뉴욕의 변호사이자 해결사인 로이 콘Roy Cohn에게 자신의 법률 소송을 맡겼다. 콘은 적색공포 시대에 매카시의 대표 자문을 맡 아 소위 빨갱이 동조자를 잡는 일을 도왔고, 본인도 동성애자면서 게이 공무원을 탄압하는 연방정부 캠페인에 앞장섰다. 비윤리적인 행실로 죽기 직전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던 콘은 트럼 프의 멘토이기도 했다.
- 트럼프의 호전성과 개소리, 미디어 폭격은 흔히 미디어가 곧장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현상으로, 대처법을 알아두어야 할 매우 새로운 현상으로 언급된다. 24시간 뉴스채널과 소셜 미 디어, 극당파적 사이트의 확산 등 일부 현상은 분명 새로운 난 제다. 그렇지만 트럼프가 이용하는 방식 중 상당수는 그가 1990 년대에 뉴욕에서 썼던 전술이며 1950년대에 매카시가 펼친 전 술과도 겹친다. 정치적 극단론자의 흔한 전술을 단지 중앙 무대 로 끌고 온 측면도 있다. 이 중에는 트럼프의 정적들과 미디어 가 예상한 수법도 많다.
- 그렇지만 영국인은 이주 문제의 실상을 정확히 모른다. 평균적으로 영국인은 인구의 31퍼센트가 이민자라고 추산한다. 실제로는 1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또 영국 인구의 30퍼센 트가 흑인이거나 아시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11퍼센트에 불과하다. 현실과 가장 동떨어진 인식을 보이는 것은 다음 항목 이다. 영국인은 영국 인구의 24퍼센트가 무슬림이라고 보지만 실제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5퍼센트로 추정치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반대로 영국 사람들은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 의 34퍼센트까지 크게 떨어졌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59퍼센트 정도까지 하락하는 데 그쳤다.
- 이러한 인식은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이주 규모를 실제보다 두 배 이상 크게 보고, 영국에 사는 이슬람교도가 실제보다 훨씬 많다고 여기며, 영국 사회가 실제로 변화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느낀다면, 이주율이 높든 낮든 이는 사람 들의 견해에 영향을 끼치기 쉽다. 이주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틀 렸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기존 관념이 정책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장애로 작용하는 것은 분 명하다.
- 우리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정보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뿐 아니라, 확고히 믿는 정보는 어떤 식으로든 논리적인 평가를 건너뛰려고 한다. 『비합리성의 심리학』은 이 러한 인지적 편향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을 낳을 수 있는지 한 가지 사례를 든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기 전, 미 태평양 함 대 총사령관 허즈번드 킴멜Husband Kimmel이 보여준 행동이다. 키멀은 태평양 함대 기지 근처에 일본 잠수함이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진주만 상륙을 금지하거나 해군의 경계 태세를 높이지 않았다.
서덜랜드는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렸다.3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을 살폈다. 하나는 자신의 신념과 다른 증거를 찾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증거가 내 주의를 끌더라도 이를 믿거나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키멀은 두 가지 잘못 을 저질렀다. 그는 모호한 메시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워싱턴에 확인하지 않았고, 진주만 외곽에 잠입한 잠수함이 일본 잠수함 이라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은 전함 4대, 항공기 188대를 잃었고 2403명이 사망했다. 키멀은 2주 만에 지휘권을 박탈당 했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퇴역했다.
- 확증 편향 하나만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이보다 훨씬 강력한 심리적 편향이 있다고 한다. 내가 굳게 믿는 신념에 반하는 증거를 알게 될 때, 신념을 바꾸기보다 오히려 더욱 굳히는 현상이다. 다트머스대학교의 정치학 교수 브렌던 나이한Brendan Nyhan과 제이슨 라이플러Jason Reifler가 실험에서 발견한 이 현상을 역화 효과라고 부른다. 
- 데이비드 맥레이니David McRaney는 역화 효과를 다룬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확증 편향이 적극적인 정보 탐색을 가로막듯이, 역화 효과도 내게 들어오는 정보를, 나를 기습적으 로 공격하는 정보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뭐가 뭔지 혼란스러 울 때 우리는 신념을 의심하기보다 고수하는 쪽을 택한다."
우리는 역화 효과를 다룬 연구를 통해 당신이 온라인 논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는 이유를 확인했다. 당신이 각종 사실과 수치, 링크, 인용을 꺼내 들기 시작하면 상대방은 자기 생각을 훨씬 강하게 고수하게 된다. 반대로 상대방이 열정적으로 근거를 쏟 아내면, 당신의 두개골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역화 효 과로 두 사람 모두 원래 지녔던 신념이 더욱 확고해진다.
이처럼 다양한 근거로 내 생각을 확고히 할 수는 있어도, 근거를 제시하는 논쟁으로 상대를 설득하기는 매우 어렵다.
- 우리는 테러를 그 위험성에 비해 지나치게 두려워한다. 위스콘신대학교의 명예교수인 마이클 로스차일드Michael Rothschild는 테러 위험을 설명하기 위 해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했다. 그는 테러리스트가 미국에 서 매달 비행기 한 대를 성공적으로 납치해 폭파하는 세상이 있 다고 상상했다. 이 세상 그 어떤 나라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현실 적인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끔찍한 경우다. 이런 세상에서 매 달 네 번씩 항공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그 어느 해든 죽을 확률 이 54만 분의 1이다. 1년에 한 번 비행기를 타는 사람은 사망할 확률이 600만 분의 1이다. 반면 어느 해든 자동차 사고로 죽을 확률은 7000분의 1이고, 암은 600분의 1, 심장질환은 400분의 1이다. 테러 공격이 실제보다 상상 이상으로 심각해져도, 일 상생활 속에 숨어 있는 위험보다는 훨씬 낮다. 그런데도 막연한 두려움과 근거만 제시해도 안심하지 못하는 기질 때문에 우리 는 개소리에 쉽게 휘둘린다.
- 동조성은 정중하게 행동하거나 함께 어울리려는 욕망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자체로 위험한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헤퍼 넌은 많은 사람이 기후변화가 사실이라고 믿으면서도 행동에 변화가 없는 이유를 동조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소비 습관도 같다 보니 기후변화의 비용을 보지 못한다. (...) 우리는 고분고분한 소비자여서 누가 행동을 바꾸자고 하면 바꿀 수도 있겠지만 혼자서 는 바뀌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방관자처럼 주변에 보이는 소비 패턴을 따라 하면서, 누군가가 개입해주길 바란다. 그렇지만 정 부와 기업은 너무 복잡해서 소통하거나 바꾸기 힘들므로, 우리는 자신도 원치 않는 위치에 그냥 머물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소속 집단에 구성원임을 보여주는 행동을 하는데, 이런 행동이 소셜 미디어에서 실제로 어떻게 드 러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집 단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얻고 싶을 때, 우리는 어떤 기사를 이 들과 공유하려고 할까? 예를 들어 우리가 트럼프 지지자인데 두 가지 기사를 읽었다고 해보자. 하나는 트럼프 진영이 주요 무슬림 국가 출신자들의 입국을 가로막는 반이민 행정명령을 집행한 것이 최선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한 기사이고, 다른 하나 는 트럼프 행정부의 활동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고 언론을 질타한 기사일 때, 우리는 소속 집단에서 좋은 반응을 일으킬 두 번째 기사를 공유할 것이다.
- 우리는 내가 속한 집단에 순응하고, 그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신호를 보내며, 집단을 통해 성향이 양극화한다. 소속 집단 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정확하고 검증 가능한 정보보다, 정체성 을 한층 더 견고하게 하는 개소리 정보를 더 반기는 이유다. 정 체성이 한층 단단해지는 또 다른 상황은 바로 다른 집단과 대립 을 할 때다. 이를 일컬어 내집단, 외집단 행동, 또는 현실 갈등 이론이라고 한다. 우리는 집단에 대한 진짜 소속감을 다른 집단에 대한 경쟁의식, 심지어 적대감을 통해 느끼기도 한다.
- 주류 언론에서 개소리 비즈니스 모델은 주로 광고와 PR이며, 일부 비주류 매체도 마찬가지로 광고와 PR에 집중한다. 특 히 음모론이나 당파적 영상을 제작하는 매체들이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택하는데, 상당수는 구글이 소유한) 유튜브에서 많은 자금을 지원받는다. 조지프 번스타인Joseph Bernstein이 《버즈피드 뉴스》에서 지적했듯이 페이스북은 대중의 이목을 끌어 개소리 를 퍼뜨린다면, 유튜브는 개소리에 자금을 댄다. 앞서 언급한 피자게이트 음모론을 퍼뜨린 자들이 만든 영상을 수백만 명이 봤고, 우버 Uber와 퀘이커오츠Quaker Oats가 여기에 광고를 실었다. 이 광고들은 유튜브의 광고 네트워크를 통해 맺어졌다. '전 세계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사명인 인터넷 최대 광고 네트워크 구글과 대형 브랜드 기업들이 음모론과 허위 정 보가 수익을 내도록 돕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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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국에서는 공정성이 뜨거운 이슈다. '공정'이라는 필터 로 세상을 들여다보니 "불이익을 봤다", "공정하지 않다", "부당 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경쟁에 내몰린 사람 들이 많다 보니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자기 입장에서 따져보면 손해를 본 것이고, 불공정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이 사회에 'No pain, no gains(고통받지 않았다면 어떤 이익도 누릴 자격이 없다)' 라는 말이 강박적으로 통용되는 건 필연적인 결과같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스펙을 쌓느라 책상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취준생 들은 몇 년 전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되었을 때 청와대 청원 게시판까지 찾아가 불만을 토해냈다. 당연하게도, 영혼을 끌어모아 내 집 마련을 한 사람들은 올림픽에 서 메달을 딴 국가대표 선수들이 국민주택의 특별공급 대상자가 된다는 제도에 항의했다. 나처럼 공부해서 시험을 통과한 것이 아 니라면 정규직으로 채용될 자격이 없고, 나처럼 집을 마련하기 위 해 애쓰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도 집을 얻을 자격이 없다고 여긴다.
- 이들에게 공정은 딱 자신을 위한 장치이다. 자신만의 공정을 외치는 사회에서 타인의 행운이나 행복은 불공정한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오래된 속담이 있 긴 하지만 요즘은 그런 분위기가 더 강해진 것 같다. 공정은 중요 하게 다뤄야 할 주제지만 그 범위가 개인 혹은 특정 집단에게만 국한된다면 그 사회는 결코 진정한 공정에 도달할 수 없다.
공정성에 대한 외침은 질투에서 기인한다. 사회에서 고용의 안정성은 중요한 문제이고 비정규직 철폐는 여전히 유효한 목소 리지만, 내가 아닌 남에게 돌아가는 일은 다른 문제인 것이다. 같 은 상황에서 입장이 뒤바뀐다면 "누군가의 공정을 해치는 일이 니 나는 거절하고 비정규직으로 남겠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외침이 나에게 불공정할 바에야 모두가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 워라밸이란 단어에는 분명 '일'과 '삶' 모두 중요한 의미가 있 다는 강조가 담겨 있는데, 직장인들의 태도를 보면 일하는 시간 은 가급적 빨리 벗어나야 하고, 그 시간 뒤에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일은 그저 돈을 버는 수단일 뿐 이라는 인식이 담긴 듯하다. 잠깐만 생각해 봐도 우리는 인생의 절반 그 이상을 일하면서 산다. 그 절반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시간일 뿐이라면 우리는 인생의 반 이상을 버리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워라밸이라는 규칙이 아니라 어떤 마음과 태도로 일하고 사느냐는 것이 아닐까?
- 사람들은 늘 미래를 준비한다. 오지 않은 미래를 지금 끌어다 가 행동의 심판을 세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좋은 직장 을 얻기 위해, 내 집 마련을 위해,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늘 준비중'인 인생을 사는 것 같다. 불교에서는 현재, 이 순간을 살라고 가르친다. 인생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순간순간이 있을 뿐이니,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나중의 행복도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행복을 위해 열심히 놀아야 한다.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일 따위는 아이들의 행복 과 무관하다. 함께 어울리면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두뇌를 깨 우고, 규칙을 준수하며 사회성을 기르고, 놀이를 잘 못하는 친구 를 배려하며 인성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금, 현재의 행복에 충실하자는 나의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행 복하다는 느낌을 느꼈기 때문이다.
- 그렇다고 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1년 내내 행복한 것은 아니 다. 마음이 내려앉을 때도 있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세상과 인생이 선사하는 불행과 우울 역시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다. 그 럼에도 살아온 여정을 넓게 보면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는 감정 이 가장 먼저 느껴진다. 특별하고 대단한 업적은 남기지 못했지 만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움직였고, 그 방향의 나침반이 된 것은 바로 행복이었다.
- 시험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은 레스토랑에 가서 접시만 구경 하고 음식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음식이야말로 콘텐츠(목적)이 고 접시는 콘텐츠를 편리하게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인 데, 도구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레스토랑에 가는 이유는 사실 화려하고 예쁜 접시가 아니라 음식 때문이 아닌가? 접시도 물론 식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이고, 나도 미각을 일깨우는 예쁘고 특색 있는 접시를 좋아한다. 그러나 접시는 어디까지나 도구이다. 시험 또한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는, 학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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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23

사회 2023. 9. 29. 18:17

- 전통매체인 TV 플랫폼에서도 타깃 기반 광고가 등장했다. 원래 TV에서는 같은 시간, 같은 채널을 보고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똑같 은 광고를 송출한다. 반면 2022년 새롭게 등장한 '어드레서블address- able TV'는 마치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이 개인별로 다른 광고를 노출 하듯, 사람들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는 서비스 다. 동일한 채널을 보더라도 골프를 좋아하는 시청자에게는 골프 제 품 광고가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금융 상품 광고가 방영되는 형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IPTV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 덕분이다. LG U+ SKB.KT 등 IPTV 회사가 셋톱박스를 통해 소비자가 어떤 채널을 즐겨 보는지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KBS N ·SBS 미디어넷. MBC와 같은 채널에 개인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는 것이다.
- 한편 사용자에게 최적화한 개인화 알고리즘 기술이 부상하자, 이 에 반발하는 소비자의 움직임도 나타났다. 기술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알고리즘 추천을 역으로 활용해 개인화 기술로부터 벗어나 고자 하는 것이다. 예컨대 유튜브 · 넷플릭스 등을 시청하고 나서 수 시로 검색 기록과 시청 기록을 삭제한다. 로그아웃 상태로만 유튜브 를 시청하거나 아예 학습용. 게임용 · 음악용 등으로 계정을 분리해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피하고자 하는 단어를 “ᄋᄋ 싫다"라 는 검색 키워드로 입력해서 알고리즘을 학습시키기도 한다.

- 일반 개인이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다른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C2C Consumer to Consumer 모델이 빠르게 성장했다. 개인 브랜드 론칭도 쉬워졌다. 대표적인 영역이 바로 뷰티 시장이다. 예컨대 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를 통하면 토너 에멀션.크림의 경우 약 100개 정도로 소량생산이 가능하다. ODM 업체에 생산을 위탁하 고 본인은 판매만 담당하는 '화장품책임판매업자' 역시 2022년 약 5,333건이 추가로 등록됐는데, 전년 동기간 신규 등록한 2,632건과 비교해 약 2배에 달하는 규모다. 코스맥스와 한국콜마는 누구나 쉽게 화장품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자체 플랫폼 '코스맥스 플러 스'와 '플래닛147'을 각각 선보이기도 했다.
생산에 대한 부담이 적은 일부 업종에서는 POD Print On Demand (주문제작인쇄) 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POD 란 창의적인 디자 인 도안만 있으면 상품 판매를 위한 복잡한 머천다이징 절차 없이 온 라인에서 상품을 만들어 판매가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플 랫폼이다. '마플샵'은 나만의 디자인으로 브랜드를 손쉽게 론칭할 수 있도록 상품 제작 · 판매 · 배송 등을 대신해주는 POD 커머스다. 오리 지널 굿즈를 판매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 이미 자신만의 콘텐츠와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좋아 하는 크리에이터의 굿즈를 갖고 싶어하는 팬들이 크리에이터에게 마 플샵을 소개하며 굿즈 제작을 요청하기도 한다."
제조사가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 Direct to Consumer 모델도 한층 성장했다. 면도기와 리필용 면도날을 판 매하는 생활용품 스타트업 '와이즐리'는 D2C 모델을 활용해 면도기 를 일반 가격의 5분의 1 수준에 공급해, 2021년 기준 한국 면도기 시 장에서 약 9.3% 점유율을 차지했다. 오프라인 체험관과 소셜미디어 를 통해 매트리스를 판매하는 스타트업 '삼분의일'은 유통. 배송 거품을 뺀 '반값 매트리스'로 창업 1년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대기업의 경우에도 D2C가 시장 확대를 위한 돌파구가 되 고 있다. 주로 대리점을 통해 침대를 판매했던 시몬스는 2022년 4월, "D2C 리테일 체제로 전환한 후, 2년 만에 총매출이 1,016억 원 증가 했다"고 발표했다. 
소비자의 니즈를 모아 신속하게 생산해내는 C2MCustomer to Manu- facturer 모델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온디맨드' 비즈니스는 생 산자와 제조사를 연결하는 C2M 모델의 대표적인 사례다. 온디맨드 란 공장에서 제품을 미리 만들어놓지 않고, 소비자의 주문이 들어오 면 즉각 제품을 만드는 생산 방식을 뜻한다. 판매하기 최소 1년 전 해외 공장에 대량생산 주문을 넣어야 하는 패션 시장에 이런 온디맨드 생산 방식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레 베카 밍코프Rebecca Minkoff는 온디맨드 제조 업체인 레저넌스 컴퍼니 Resonance Company와 협력해 일부 라인을 온디맨드 방식으로 생산한다. 소비자가 옷을 주문하면, 도미니카 공화국에 위치한 '레지던스 공 장'에 클라우드로 디자인이 전송된다. 공장에서는 원단을 디지털 방 식으로 인쇄한 뒤 로봇을 이용해 패턴에 맞게 자른다. 재단된 원단은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미국 내 공장으로 보내져 바느질 해 옷으로 완성된다. 소비자가 주문한 옷을 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약 1~2주에 불과해 생산혁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가족 단위의 미세화, 가족 구조의 다양화와 함께, '외로움'과 '사회 적 고립'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기도 했다. 사회적 고립도는 인적. 경제적·정신적 도움을 구할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데, 2022년 1월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적 고립도는 34.1%로 2년 전 조사보다 6.4%p 증가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국민 3명 중 1명은 고립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몸이 아플 때 집안 일을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응답은 27.2%를, 우울할 때 이야기할 상 대가 없다는 응답도 20.4%를 기록하며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09년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18 가족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개인의 가 치를 최우선시하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인간의 근원적 감정인 외로 움에 근간한 '고독사회'의 등장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 혼자가 더 편한 나노사회에서 반드시 조직을 운영해야 하는 기업 들의 고민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향후 기업은 나노사회 구성원 이 서로를 배려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한다. 글로벌 IT 기업 '시스코'는 친절함을 베푼 직원을 시상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 다. 안내데스크 직원에서부터 시니어급 관리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든 친절직원으로 뽑힐 수 있으며, 선정된 직원에게는 약 100~1만 달러의 보상이 제공된다. 시스코의 이직률은 산업 평균의 절반 수준인데, 전문가들은 기업이 직원에게 "당신의 친절. 도움 . 협력의 가치를 인 정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직원의 조직 충성도를 높 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특임교수 는 최근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외로움의 경제 Loneliness economy' 개 념을 소개한 바 있다. 외로움의 경제는 사람들에게 타인 및 공동체와 의 연결을 제공하는 서비스. 제품을 기반으로 한 경제를 뜻한다. '외 로움'이 곧 시장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오는 동력이 된다는 사실은 우 리 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의 슬픈 단면을 보여준다. 외로움 경제의 출현은 나노사회가 낳은 필수불가결한 현상이겠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가 이를 발판 삼아 서로를 포용하는 배려사회로 진일보하기를 기대해본다.

- '배달 음식 끊기, 물 마시기, 침구 정리하기, 반려견과 산책하기, 멍 때리기' 익숙하고 사소한 일들이지만, 이들은 모두 코로나19 확산 이후 등장한 '갓생신을 의미하는 'God'과 인생을 뜻하는 '생'의 합성어로 부지런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뜻하는 신조어)'라이프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 요건으로 주목받은 것들이다. 이런 일들의 공통점을 찾 아보면, 기본적인 자기계발의 면모와 함께 불확실한 세상에서 자신 을 지켜내고자 하는 '자기 돌봄'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코 로나19 의 주기적 유행이 지속되면서 혼자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상황들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불안해진 소비자들은 스스로 작 은 규칙과 반복된 습관을 만들며 자신을 방어해나갔다. 엔데믹 시대의 소비자는 크고 어려운 성공을 추구하기보다 작은 미션들을 하나씩 달성하며 슬기롭게 일상을 지켜냈다.

- 최근 식품 업계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식품군은 '화이트 미트White Meat'다. 닭·오리 · 칠면조 등의 가금류 고기와 광어나 대구 같은 흰살 생선 등을 지칭한다. 열량이 낮고 단백질이 풍부해 맛있으면서도 몸 에 좋은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슈퍼푸드로 알려진 칠면조 햄이 들 어간 터키 샌드위치부터 어묵바, 오리 바비큐에 이르기까지 종류 또 한 다채롭다. 즐기면서 건강관리를 하고 싶은 소비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제품들이다. 이처럼 플러스 요소를 갖춘 풍부한 식품으로 식단을 짜는 것도 헬시플레저를 추구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식단에 플러스할 수 있는 대장주 격 영양소인 단백질의 활용법이 달라졌다. 헬스 마니아들이 빠르게 운동 효과 를 보기 위해 섭취하는 분말 형태의 단백질 보충제가 음료 형태로 바 뀌면서 이를 아침 식사 대용이나 간식으로 먹는 소비자들이 늘어났 다. 운동 전용 식품으로 여겨지던 단백질 관련 제품이 일상 속 가벼 운 먹거리로 진화한 것이다. 단백질 제품은 1세대 분말 형태에서 2세 대시리얼 바, 과자를 거쳐 3세대 즉석 음료로 진화해 꾸준히 성장 중이다.

- 많은 조직에서도 루틴이의 성실한 하루를 지원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도입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인사·조직 관리에서도 루틴이들의 업무 자율성을 보장하는 한편, 이들이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독려하는 피드백 기반의 상시적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핵심 은 빠른 피드백과 구체적인 칭찬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원대한 목 표보다는 일상에서 성취하는 소소한 목표 달성에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여 장기적이고 거대한 피드백 대신 오늘 한 일에 대해 분명하게 알아봐주고, 정확하게 현황을 언급하는 노력 이 중요하다.

- 2022년은 팬데믹과 위기 속에서 산업 전체가 길을 잃은 한 해였지 만, 그 결과 한국 사회는 경쟁과 개발을 쫓던 성장 논리 대신 '쉼'과 '돌아보기'의 가치를 재조명하게 됐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오아시스를 찾아 스스로를 위로했다. 팍팍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과 정이 그동안 당연했던 삶의 기준을 다시 돌아보게 한 계기가 된 것 이다. 가치의 변화는 사회의 모습을 바꾸고, 나아가 시장의 지형도를 바꾼다. 2023년은 팬데믹에서는 벗어나 회복 국면에 진입하겠지만, 동시에 경기 침체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우리 시장의 트렌드가 또 어떻게 바뀌고 그것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한층 더 촉각을 세워야 할 때다.

-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온라인 세계, 이를 현실과 잇는 방식, 그리 고 스토리와 서사로 무장한 세계관을 통해 구축된 내러티브는 모두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로 기능한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현대인의 욕망이자 결핍이기도 한 존재감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존재감을 갖추려면 그럴듯한 세계에 내가 존재 한다는 주관적 인지가 가장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야 한다. 그 장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안하고 팬덤을 만들며 내 삶의 이상향을 꿈꾸게 하는 '새로운 현 실'이다. 이곳에서 소비자는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통해 브랜드를 향 한 친밀함과 열정, 신뢰라는 로맨스의 완성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평균 실종 트렌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엄중하다. 평균으로 표현될 수 있는 무난한 상품, 평범한 삶, 보통의 의견, 정상의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 정규분포로 상징 되는 기존의 대중mass 시장이 흔들리며, 대체 불가능한 탁월함 · 차별화·다양성이 필 요한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 일 것이다. 양극단의 방향성에서 한쪽으로 색깔을 확실히 하는 '양자택일' 전략, 소수 집단(때로는 단 한 명)에게 최적화된 효용을 제공하는 '초다극화' 전략, 마지막으로 경쟁 자들이 모방할 수 없는 생태계(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승자독식' 전략이다. 평범하면 죽 는다. 특별해야 한다. 평균을 뛰어넘는 남다른 치열함으로 새롭게 무장할 때 불황으로 침체된 시장에서 토끼처럼 뛰어오를 수 있을 것이다.
- 한국 사회 역시 정치적 양극화 현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행정 연구원에 따르면 국민 전체의 이념적인 양극화가 심화되지는 않았으 나, 양당에 대한 정서적인 양극화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커진 것으 로 보고됐다. 특히 20대 집단의 경우 전 영역에 걸쳐 성별에 따른 이 념 성향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어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우 려도 존재한다. 이는 단 한 표라도 더 득표한 후보자가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소선구제 선거제도 아래에서 거대 양당이 지지표를 결 집하기 위해 갈등을 부추기며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무 관하지 않다. 여기에 소셜미디어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뉴스 와 의견만을 청취하게 만드는 '반향실(에코체임버)' 효과를 강화시키 면서 정치·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 평균적 사고는 세 가지 오류로 이어지기 쉽다. 첫째, 평균 점수 하 나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차원적 사고방식'에 빠질 수 있다. 개인이 지닌 수많은 특성은 서로 독립적이다. 예를 들어 사람의 키와 손의 크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러 측면을 고려해가며 입체적으 로 이해해야 한다. 둘째, 정규분포를 기반으로 개인을 유형화 혹은 등급화하여 모든 것을 설명해내려는 '본질주의 사고'를 범할 수 있 다. 이는 MBTI 유형만으로 한 사람의 모든 행동을 설명하려는 것에 빗댈 수 있는데, 사실 모든 사람은 맥락에 따라 달리 행동한다. 한여 성이 식당을 찾았을 때의 행동을 파악하는 데는 그가 20대 직장인 이라는 분류보다 그가 가족과 방문했는지, 아니면 혼자 방문했는지 를 살펴보는 맥락적 사고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셋째, 평균대로 살아 야 한다는 '규범적 사고'에 얽매일 수 있다. 평균은 상태를 기술할 뿐 그 과정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 사실 복지 확충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다. 오피스 빅뱅을 체감하는 기업들은 인사팀과 별도로 직원들의 업무 환경과 복리후생 컨설팅을 담당하는 '피플팀'을 발 빠르게 신설하고 있다. 20년 전 구글이 하던 '일 문화'에 대한 고민이 국내 스타트업 및 대기업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대표적으로 배 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는 '배민다운' 일이란 무엇인지 연구하고 조직 내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는 팀만 3~4개에 달한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직원들을 다시 오피스로 불러들이기 위한 사무 공간 리노베이션 노력도 다양하다. 2022년 2월 잠실 롯데타워에 마련된 우아한형제들의 새로운 사무실 '더 큰집'은 '구성원들의 협업을 강화하는 동시에 재택근무도 잘할 수 있는 공간' 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다. 구성원들이 비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 '우물가'와 서울에서 벗어나 워크숍을 즐기는 듯 한 느낌을 낼 수 있는 룸인 '청평 같은 방'을 조성해 협업을 독려하고 있다. 나아가 화상회의 때 얼굴이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회의실에 직접조명을 없애고 테이블로 반사판 효과를 주도록 만드는 등의 세심한 디테일도 돋보인다. 
한편, 미국에서는 '레지머셜resimercial'이라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레지머셜은 주거 공간을 뜻하는 '레지던스residence'와 상업 공 간을 뜻하는 '커머셜 commercial'을 합친 신조어로, 말 그대로 사무실을 마치 집처럼 꾸미는 경향을 뜻한다. 재택근무 기간 동안 집에서 누린 편리한 업무 환경을 사무실에 재현해주겠다는 기업들의 새로운 사무 공간 전략이다.
문제는 최적의 업무 환경을 지원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택 과 사무실 근무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원하는 직원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 근무 형태의 변화는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 '출퇴근'을 문화 인류학적 관점에서 다룬 책 『출퇴근의 역사』의 저자 이언 게이틀리 lan Gatley는 1854~1866년 런던에서 콜레라가 대유행하면서 많은 노 동자들이 가족과 함께할 깨끗한 주거 환경을 찾아 '탈도시'에 나섰 고, 마침 철도의 발전이 시작되면서 도시에서 30~4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교외에 집을 얻고 도시를 오가며 통근하는 현대적 의미의 출 퇴근이 탄생했다고 분석한다. 더불어 이때부터 근대적 의미의 '시간’ 개념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중세에는 아침을 배불리 먹고 오 후 3~4시쯤 디너 dinner를 즐겼는데 출퇴근을 시작하면서 런치 Lunch라 는 개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또한 출퇴근길에 읽기 적당한 분량으 로 소설의 장이 나뉘어지는 등, 새로운 풍속도가 탄생했다. 36
콜레라가 현대적 의미의 출퇴근을 탄생시킨 것처럼 팬데믹 또한 노동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 철도로 통근을 하게 되면서 시간의 개념 이 바뀌고 각종 산업에 영향을 주었듯, 오피스 빅뱅은 일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일하는 방식에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 와 조직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관련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더 큰 연쇄적 빅뱅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혁명적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뿐만 아니라 정책과 사회적 측면에서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 전화나 문자 메시지로 지인과 연락하던 시절은 가고,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특 정 다수와 소통하는 시대가 왔다. 수단이 본질을 바꾼다. 소통의 매체가 진화하면서 관계 맺기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 소수의 친구들과 진한 우정을 쌓아가는 것이 예전의 '관계 맺기'라면, 요즘의 관계 맺기는 목적 기반으로 형성된 수많은 인간관계에 각종 색인 index을 뗐다 붙였다 하며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관계 관리'에 가깝다. 이제 현대인 의 인간관계는 "친하다/안 친하다"의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는다. 선망하는 '인친'-함 께 덕질하는 '트친'-최신 뉴스를 알려주는 '페친'-동네에서 만나는 '실친'에 이르기까 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다. 이렇듯 요즘 인간관계는 여러 인덱스를 붙여 관리 되는 형태를 띤다는 점에 착안해 '인덱스 관계Index Relationship'라고 이름 붙이고자 한다. 인덱스 관계는 1 만들기, 2 분류하기, 3 관리하기의 3단계로 나뉜다. 먼저 관계만들기는 과거처럼 학연·지연 같은 인연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혹은 완전히 우연에 기대는 '랜덤' 방식으로 형성된다. 둘째, 이렇게 관계를 만들고 나면 그 친분을 분류한다. 서로 소통 할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한 만큼 그 관계의 친소疏도 매우 복잡하다. 다시 말해 관계 의 중요도가 다차원적으로 구성되면서 관계의 '밀도'보다 '스펙트럼'이 중요해졌다. 마 지막은 관계를 관리하는 단계다. 분류된 관계에 붙여진 인덱스를 뗐다 붙였다 하기를 반복하며 관리해나간다.
개인주의화되는 '나노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사회생활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 꿔놓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는 가운데 관계 맺기의 양상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다.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인간관계'가 새로운 변화의 국면 을 맞고 있다. 이제 문제는 다양한 인덱스 관계가 사람들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사회에 서 우리가 어떻게 더 행복한 인간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느냐다.

- 적재적소의 미디어 전략이 필요한 시점
TV·라디오·신문·잡지로 표현되던 4대 미디어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 셀 수 없이 많은 미디어가 공존하는 시대가 다가왔다. 이 다양 한 미디어들을 그 특성에 맞게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매체 전략 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K-컬처 신드롬을 이끌 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자사의 세계관을 계속 확장해, K- 팝 팬들이 스스로 문화를 만드는 프로슈머가 될 수 있는 무한한 '콘 텐츠 유니버스CU, Contents Universe'의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SM엔터테 인먼트의 CU에서 처음 선보인 혼합 영상을 '카우만CAWMAN'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카툰Cartoon . 애니메이션Animation. 웹툰Web-toon • 모션 그래픽 Motion graphic · 아바타Avatar. 노블Novel의 영문 첫 글자를 조합한 단어다. 다시 말해서 장르를 가로지르는 '트랜스미디어' 콘텐츠를 생산 및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디깅러의 몰입도를 높이고 싶다면 이처럼 다양한 미디어를 넘나 들며 끊임없이 즐길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2022년 8월, 카카오는 2021년 데뷔해 큰 인기를 끌었던 카카오의 대표 캐릭터 라이언과 그 의 친구 춘식이로 구성된 '라춘듀오'의 컴백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이들의 활동을 기다린 팬들에게 컴백 소식과 관련된 내용을 틱톡 • 유 튜브 · 인스타그램 · 트위터 등에 모두 공개했고, 각 플랫폼에 특화된 콘텐츠를 차례로 게시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극대화시켰다.  더불어 라춘듀오의 컴백 기념 행사는 MZ들의 최애 백화점인 더현대서울에 서 진행하고 인천공항을 배경으로 'K-팝 댄스 인천공항 편'을 제작 하기로 하는 등,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트랜스미디어 전략을 보여 주었다

-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ques Lacan은 "일상이란 죽음으 로 가는 지루한 통로"라고 표현하며 지루함을 돌파할 수 있는 것은 비일상성으로, 일상에서 볼 수 없는 환상감을 제공해야 한다고 역설 한 바 있다. 소매의 종말이 예견되는 가운데 팬데믹 이후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간력에 주목해야 한다. 공간력은 하나의 테마와 컨셉을 통해 공간 이미지를 창출함으로써 고객의 환상을 현실공간에 구현하는 데에서 나온다.  공간의 죽음이 운위되는 가상의 시대, 공간이 공간만의 힘을 갖추려면 그 출발점이자 궁극적인 지향점은 결국 고객이어야 한다.

-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성장을 의미했다. 세 월의 더께가 앉으며 외모에는 연륜이 쌓이고, 조직에서는 직급이 올 라가며, 인간관계와 취향은 성숙해졌다. 말하자면, 자기 나이에 맞 는 '나이값'이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생각이 흔들리고 있 다. 성숙이든, 성장이든, 연륜이든 "변하는 것은 싫다"고 말하는 사 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외모만 해도 그렇다. 연륜 있는 외모보다는 젊은 외모가 더 가치 있다. 연예인이나 외모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 들 사이에서는 예전부터 어려 보이는 것이 중요하긴 했지만, 전문가 들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을 선호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곧 오 랜 경험을 상징하며, 그것은 그 사람의 권위와 실력으로 간주됐기 때 문이었다. 하지만 30대에 대기업 임원에 발탁되는 경우가 많아지면 서 더 이상 나이로 전문성이나 업무 실력을 판단할 수 없게 됐다. 이 제 젊은 외모는 자기 관리의 척도로 여겨진다. “도무지 나이를 가늠 할 수 없다"라는 감탄은 그만큼 자기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 며, 어리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 되고 있다.

- 미국에서 유행하는 밈 중에 'adulting is hard'라는 것이 있다. 의 역하자면 '어른 해 먹기 힘들다' 정도인데 스스로 빨래를 해보지 않 은 청년들이 세탁기 사용에 서툴러 고장을 낸다거나 용돈을 받아 써 온 탓에 매달 날아오는 고지서 처리가 얼마나 힘든지를 직접 납부해 보고서야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빠르게 자립하여 가족을 부양하면서 도 힘든 내색 한 번 않는 것이 당연했던 세대에겐 이러한 모습이 철 부지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른이란 이러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기성세대만의 것일 수 있다.
고대부터 있었을 것 같은 '청춘'의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에 서서히 형성됐고, 20 '중년' 역시 20세기 후반에야 탄생한 개념이 다. 전형적이라 생각했던 중년의 모습은 겨우 한두 세대가 겪었을 뿐인, 이 시대와 세대가 만나 빚어낸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과 한 책임감과 쓸데없는 체면 차리기 대신, '하루만 어른 안 할래' 같 은 밈을 공유하며 어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솔직하게 고충을 나누는 것도 '요즘어른'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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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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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쥐

사회 2023. 9. 29. 14:55

-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만의 미망이 있다.욕심과 충동과 모방의 힘에 미혹되어 특정 사고와 행동과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찰스 맥케이, 《대중의 미망과 광기》)

-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에 기술 업계도 변했다. 2001년 닷컴 붕 괴 후 몇 년 만에 시작된 두 번째 인터넷 호황기에 실리콘밸리는 새 로운 종류의 사람들을 유인했다. 괴짜 같은 엔지니어 대신 이전 세 대라면 월스트리트로 진출해 채권 중개인이 됐을 법한, 빨리 부자 가 되고 싶어 하는 사기꾼 같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다. 이전에 기 술 분야의 제왕은 HP의 휴렛과 패커드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 이츠, 애플의 잡스와 워즈니악처럼 새로운 제품을 발명하고 회 사를 세우는 마법사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앤드리슨호로위츠 (Andreessen Horowitz)의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이나 클래리 엄캐피털(Clarium Capital)과 파운더스펀드(Founders Fund)의 피터 틸 (Peter Thiel), 그레이록벤처스(Greylock Ventures)의 리드 호프먼(Reid Hoffman) 같은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실세다.
- 이들은 기술 회사를 운영하지 않으며, 단지 투자자일 뿐이다. 그 렇지만 이들의 직업은 화려하게 그려지고 실리콘밸리의 거물급 유 명인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기술 전문 매체 <와이어드>가 앤드리슨 을 표지 인물로 싣고 '미래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적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서부로 이동하는 젊은이들은 더는 차세대 스 티브 잡스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차세대 마크 앤드리슨이 되길 희망한다.
실리콘밸리는 벤처캐피털리스트와 엔젤투자자들이 잭을 터트리길 바라며 모든 슬롯머신에 무턱대고 돈을 쏟아붓는 카지노가 됐 다. 차이점이라면 슬롯머신에서 운이 좋았던 도박꾼은 그곳을 걸어 나오며 자신을 천재라고 확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기술 분야 의 블로거들은 기술 대신 벤처 거래에 관한 글을 쓴다. 어떤 기업이 가치평가에서 얼마만큼의 투자금을 모았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실 리콘밸리는 돈에 집착하게 됐고, 실제로 많은 돈이 모여들고 있다. 2017년 미국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스타트업에 84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미국 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1995년도 투자 금액의 10배다.
- 2017년 애플· 페이스북·구글의 시장가치를 합치면 거의 2조 달 러에 이르고, 이들 기업이 보유한 현금은 4,000억 달러에 가깝다. 구 글과 페이스북 창업자들이 가진 개인 재산을 합치면 1,750억 달러 에 달한다. 금융학 교수 출신으로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인 노아 스 미스(Noah Smith)는 1년에 100억 달러면 미국 전체에서 노숙자를 없 앨 수 있다고 추정했다. 기술 업계의 올리가르히 몇 명만 힘을 모아 도 이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 기업들은 정반대의 일을 해왔다. 수년간 그들은 셸 컴퍼니 (shell company: 자산이나 사업 활동이 없는 명의뿐인 회사-옮긴이)에 수익을 이전하거나 해외 계좌에 수천억 달러를 예치하는 방법으로 미 국 안에서 세금을 회피해왔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선출된 후 법인세가 감소하자, 그제야 애플 같은 기업들은 미국 내로 돈을 가 져오기로 했다. 애플이 세금을 낸 것은 확실하지만 그 금액은 이전 보다 수백억 달러가 줄었다. 실리콘밸리의 올리가르히들은 대부분 공식적으로는 트럼프를 경멸하는 듯하지만, 사실 세금 감면에 고마 워하고 있다. 수십억 달러를 들여 지은 번쩍이는 우주선 모양의 애 플 본사나 구글 본사 주위에는 지금도 여전히 캠핑카가 몰려들고 사 람들은 고가도로와 다리 아래에서 잠이 든다.
- 일론 머스크는 전자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페이팔의 공동창업 자로 큰돈을 벌었다.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로 알려진 이곳 출 신들은 이후 다른 기술 회사들을 설립하여 크게 성공한 뒤 벤처캐피 털리스트가 됐다. 이들 중 다수가 1990년대 스탠퍼드대학교 출신으 로 재학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 현재 그들은 각자 자리에서 실 리콘밸리의 기업 문화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문제는 그들 가운데 일부는 좋은 사람이 아닌 듯하다는 것이다.
신흥 억만장자이자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활동하는 페이팔 출신 키스 라보이스(Keith Rabois)는 극단적인 형태의 일 중독을 수용하 는 조건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라보이스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 업 창업자들은 결코 휴가를 갈 수 없다. 라보이스는 자신이 쉬지 않 고 18년을 줄곧 일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에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라보이 스는 동성애 혐오 발언"이 게이 새끼! 에이즈에 걸려 죽어라! 언제 죽을래, 이 호모 자식!")으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기도 하다.
라보이스와 스탠퍼드를 같이 다니고 페이팔에서 함께 일했으며, 역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영향력 있는 기술 신흥 재벌 피터 틸과 데이비드 삭스(David Sacks)는 1995년 공동으로 출간한 책 《다양성 신 화(The Diversity Myth)》에서 라보이스를 두둔했다. 틸과 삭스는 '정치 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과 대학 내 다문화주의의 부상을 비난 했다. 그들은 강간당했다고 주장한 여성들이 사실은 '뒤늦게 후회'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인종 간의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라 고 조바심치면서 그 이유를 다문화주의자들이 '제도적 인종차별주 의'나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주의'처럼 사라지거나 형태도 없는 인종 차별을 들어 백인들에게 죄를 묻기 때문이라고 했다(2016년에 틸은 강 간에 대해 쓴 글을 사과했으며, 삭스도 사과하며 이전의 견해를 후회한다고 말했다). 다양성에 반대하는 선동가 틸은 2014년에 《제로 투 원>을 출간했 다. 나는 털이 만들려는 미래에서 다양성에 대한 관심은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추측은 2016년 틸이 도널드 트럼프 를 위해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뒷받침한다. 《다양성 신화>를 쓴 틸과 삭스 같은 인물들은 지난 20년간 실리콘밸리에서 영향력을 확장해 왔다. 이곳에서 기술 산업은 다양성 문제, 성희롱과 적대적인 직장 환경에 항의하는 여성 문제, 거의 완벽하게 차단당하고 있다고 불만 을 표출하는 유색인종 등 끔찍한 문제들을 키워왔다. 나는 이런 일 이 우연히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리드호프먼은 자신을 '사회 참여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창업 전문 잡지 <안트러프러너>는 그를 '기업가들의 철인왕(philosopher king)'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머스크와 틸, 삭스, 라보이스처럼 호프 먼도 페이팔에서 경력을 시작했고 그 후로도 계속 많은 돈을 벌었 다. 2002년 그는 링크드인을 창업하고 2006년까지 최고경영자로 있 었다. 이후 회장으로 물러난 다음,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새로운 경력 을 시작했다. 현재 30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호프먼은 기업과 직 원 사이의 '새로운 협약'이라는 것을 설계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새로운 협약은 기본적으로 기업이 노동자에게 어떤 충성심도 요 구하지 않고 노동자도 기업에 고용 안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다. 이 협약은 노동자들이 자신을 독립 사업자로 생각하고, 일로 서로 경쟁하기를 권장한다. 호프먼이 자신의 첫 번째 책 《연결하는 인간》에서 밝혔듯이 각 개인은 스타트업이다. 호프먼은 이어 두 번 째 책 《얼라이언스》에서 이 새로운 협약을 설명했는데, 직업은 단지 거래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요컨대 한곳에서 1~2년 일하고 다음 일을 찾아 계속 나아가라는 것이다. 나는 내 방식대로 이 '새로운 협 약'을 풀어 쓴 '새로운 직장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을 이 책 첫머리에 실었다.
호프먼이 인재관리 방법을 조언할 때, 문제는 사실 그가 인재를 관리한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페이팔에서 4년을 있었고 링크드인의 최고경영자로 또 4년을 지냈지만, 당시 이 회사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 호프먼의 새로운 협약은 노동자에게는 끔찍하지 만 투자자에게는 훌륭하다. 최근 호프먼의 주요 관심이 벤처 투자 인 것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벤처캐피털리 스트가 기업이 직원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에 관한 책을 쓴다는 건, 희대의 연쇄 살인마가 젊은 여성에게 데이트 조언을 하는 것과 같다는 문제가 있다. 안타깝게도 최근 이 새로운 협약은 기술 산업, 특히 스타트업의 규범이 됐다.
이 협상은 너무나 가혹하고 착취적이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기술 자유론자의 영웅인 에인 랜드(Ayn Rand: 집단주의를 혐오하고 개인주의를 신봉한 미국의 소설가옮긴이)조차 잠깐 말을 잇지 못하고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러고도 정말 무사할까?"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복무 기간 정신을 허브스팟에서 처 음 경험했다. 그 회사는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팀'이라는 표어를 내 걸고, 엄청나게 높은 이직률을 축하했다. 이 표어는 스포츠팀에서 그렇게 하듯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천재들의 대참사》 를 쓸 때 나는 직원을 이런 식으로 처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술 산업이 잠깐 정신줄을 놓았던 기간'에스 타트업 내부에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라고 썼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나는 그 광기가 일시적이지 않고 오래갈 뿐 아니라, 기술 산업 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걱정하고 있다. 이 질병은 실험실을 빠져나와 온 세상을 감염시키고 있는 것 같다.
- 2017년에 나는 2011년 이후 기업공개를 한 60개 기술 회사의 목 록을 작성했다. 그중 무려 50개나 되는 회사가 이익을 낸 적이 없었 다. 몇몇 신생 회사는 믿을 수 없는 규모의 손실을 기록했다. 2017년 에 음악 스트리밍 기업 스포티파이는 15억 달러, 모바일 메신저 스 냅챗은 30억 달러, 우버는 45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8년 현재 스포티파이의 창업자 대니얼 에크(Daniel Ek)와 스냅챗 의 창업자 에번 스피걸(Evan Spiegel)은 각각 25억 달러의 재산이 있 다. 우버의 창업자 캘러닉은 자신이 구성한 이사회에서 쫓겨나는 추 문을 일으켰지만, 그럼에도 50억 달러 가까운 순자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내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자신은 억만장자가 되는 사람이 지구상 어디에 또 있을까?
적자를 내는 비즈니스 모델은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새로운 협 약을 만들어낸 이유와 직원들을 형편없이 대우하는 근거를 설명하 는 데 도움이 된다. 벤처캐피털리스트와 창업자들은 지속 가능한 회 사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직원들에게 안정적이고 오래 다닐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노동자에게 부를 분배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노동자는 매출 성장을 일으키는 연료 일 뿐이다. 온종일 전화기와 씨름할 젊은 텔레마케터 군단을 고용하 여, 그들에게 불가능한 할당량을 주고 탈진할 때까지 기계처럼 일하 도록 혹사한다. 직원들은 적은 임금을 받고 과도하게 일한 다음 번 아웃되면 폐기된다. 마침내 기업공개가 이루어지면 가장 높은 자리 에 있는 몇 사람만 엄청난 부자가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의 아무 것도 갖지 못한다.
내가 두려운 것은 실리콘밸리의 기술 회사를 모방하려는 욕망이 다. 즉 다른 산업의 회사들이 노동관계의 새로운 협약과 높은 스트레스, 반노동자 철학을 포함한 실리콘밸리의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 이다. 2017년에 노동자 친화적이고 훌륭한 기업 문화로 20년간 명 성을 누린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이 아마존에 인수됐다. 홀 푸드의 문화는 하루아침에 파괴되고 말았다. 아마존이 무자비한 숫자 중심 경영 스타일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일어날 일은 더 위험할 수 있다. 노동자 친화적인 기업 문화로 유명한 또 다른 슈 퍼마켓 체인 웨그먼스(Wegmans)는 앞으로 사업을 지키기 위해 아마 존처럼 잔인해져야 할까?

-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불편한 결론에 도달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자고 외치는 그 사람들이 사실은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들고 있었다. 대개는 탐욕과 관련된 이유들 때문이며, 적어도 노동자의 삶의 질에 관한 한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오히려 이 기술 천재들이 아스퍼거 증후군(행동이나 관심 분야가 제 한적이고 같은 양상을 반복하는 전반적 발달 장애-옮긴이)를 앓거나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하는 데 필요한 사회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 긴다고 믿을 수 있다면 그나마 낫겠다. 동료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의도는 좋은 괴짜들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그런 경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 반대다. 창업자들과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은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특히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직원들에게만이 아니라 고객들을 조종하기 위해 심리적 속임수를 쓰는 데 전문가가 됐다. 심지어 행동심리학자 들을 고용하기도 한다.
직원들을 형편없이 대우하는 일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의도 적으로 실행된다. 벤처캐피털리스트와 도덕 관념이 없는 창업자 계 급은 회사의 유일한 의무가 투자자에게 최대한의 수익을 돌려주는 것이라는 주주 자본주의 개념을 신봉하면서 직원들을 고통의 극한 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들이 가려는 곳은 전혀 좋은 곳이 아니다. 계속 커지는 소득 불균형은 사회 조직을 분열시킬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소름 끼치는 부분은 실리콘밸리의 신흥 재벌들도 이것을 알고 있 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어떻게 진보는 이처럼 어두운 면 도 함께 가져왔을까? 사실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것 중 일부는 이 미 100년 전부터 시작됐다.
- 알고 보니 테일러는 엉터리이거나 사기꾼이었다. 선철 노동자 실험 결과는 이뤄진 적이 없었고, 적어도 그가 설명한 방식으로는 아 니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그가 할당량을 크게 늘렸고 노동자들이 일을 그만뒀다는 것이다. 베들레헴철강은 테일러를 해고했는데, 일 부 추정에 따르면 그에게 지급된 비용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얻은 절감액보다 훨씬 많았다. 테일러의 방법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결함 이 있었다. 그는 수치를 조작했고 거짓말을 했다. 2009년 질 레포레 (Jill Lepore)가 <뉴요커>에 쓴 것처럼, 그는 좋게 말하면 잘못된 판단을 했고 나쁘게 말하면 '파렴치한 사기꾼'이었다. 테일러는 1915년 한 병원의 침대에서 사망했다. 아마 여전히 스톱워치를 움켜쥐고 있었을 것이다.
이 같은 폭로에도 테일러리즘(Taylorism)은 거의 종교가 됐으며, 그 추종자들은 테일러라이트(Taylorite)라고 불렸다. 테일러는 때를 잘 타고난 운 좋은 사람이었다. 그가 사는 동안 스탠더드오일(Standard Oil), 카네기스틸(Carnegie Steel), US스틸(U.S. Steel), 시어스로벅(Sears Roebuck),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 GE) 같은 거대 글로벌 기업 이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지만 이 기업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20세기 초 큰 대학들은 경영대학원을 설립하기 시 작했고, 뭔가 교육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테일러리즘을 가르쳤다.
- 테일러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프레더릭 테일러, 과학적 관리법>은 1911년에 출간됐고, 20세기 전반에 가장 많이 팔린 경영서가 됐다.
테일러의 이론으로 무장하고 이제 막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작은 테일러들로 구성된 부대가 기업의 세계로 진군했다. 한 세기가 지난 후 경영학 석사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위가 됐고, 해마 다 대학에서는 18만 5,000명씩 쏟아낸다. 경영대학원은 새로운 직 업을 낳았다. 바로 경영 컨설턴트다. 지금 기업 세계는 컨설턴트들 로 북적인다. 미국에서만 60만 명이 넘는다. 테일러처럼 이런 사람 들은 머릿속이 대부분 쓸데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를 때도 극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로 지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만큼은 타고났다. 전직 경영 컨설턴트 매튜 스튜어트(Matthew Stewart)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위험한 경영학》에서 첫 취업 면접에서 허튼소리를 늘어놓는 능력을 시험받았던 일을 들려주었다.
이 시험의 목적은 내가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주제에 대해 전적으로 허구에 가까운 것을 바탕으로 얼마나 능숙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지를 보는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것은 경영 컨설팅의 훌 륭한 입문 과정이었다.
- 테일러처럼 경영 컨설턴트들은 보수를 많이 받지만 사실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래된 농담도 있듯이, 경영 컨설턴트는 당신에 게 시계를 빌려 시간을 알려준 다음 그 시계를 가져가는 사람이다. 지난 세기에 테일러라이트들은 조직에서 도입하면 모든 기계의 성능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마법의 프로그램과 방 법론을 만들어냈다. 우리 노동자들이 실험실의 쥐라면 커튼 뒤에 서 있는 미친 과학자들은 경영 구루로서 칭송받는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 다음 효과가 있는지 우리에게 실험해본다.
- 식스시그마, 린 생산 방식, 토요타 생산방식 같은 20세기 테일러라 이트들의 방법론은 자동차, 항공기, 각종 기기 등 물리적인 제품 생 산을 위해 개발됐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고 대부분 사람이 손이 아니라 두뇌를 사용해 일한다. 당연하게도, 인 터넷이 부상하자 영리한 경영 컨설턴트들은 지식노동자의 생산성을 최적화하고 소프트웨어 코딩 같은 업무에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 개발 에 필요한 과학적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면 기업 운영의 모든 측면 에 적용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두 가지 새로운 형태의 테일러리즘이 이 일을 시도했다. 먼저 애 자일이 기업 세계를 휩쓸었다. 이것은 하나의 운동으로 변신했지만 오히려 널리 퍼진 정신질환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경영 기법이다. 다 른 하나는 린 스타트업으로, 광적인 추종자들이 있었지만 인기는 덜 했다. 이 두 가지 방법론은 조직 행동 분야의 거대한 글로벌 실험을 대표한다. 수백만 명의 가련한 직장인이 자기도 모르게 실험실의 쥐 가 됐고 때로는 끔찍한 결과를 겪었다. 테일러가 그랬듯이, 애자일 과 린 스타트업의 지지자들은 거의 종교적 열정으로 자신들이 조직 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테일러가 그랬듯 이, 그들도 의도는 좋았겠지만 완전히 틀렸음이 확실하다.
- 애자일이 변모하고 진화하며 기업 세계의 모든 틈새로 스며드는 동 안 경쟁 방법론 또한 실리콘밸리에서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2000 년대 중반 에릭 리스(Eric Ries)라는 젊은 기업가가 조직 행동에 관한 과감한 실험에 착수했고, 이것을 린 스타트업이라는 방법론으로 발 전시켰다.
리스는 예일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2000년에 졸업했 다. 그는 대학 시절에 스타트업을 창업했지만 실패했다. 졸업 후 그는 온라인 가상현실을 개발하는 실리콘밸리 회사에서 일했다. 2004년 그와 네 명의 동료가 따로 나와 사람들이 아바타를 만들어 어울 리고 게임도 할 수 있는 가상세계를 구축했다. 회사 이름을 IMVU라 고 지었고, 리스가 이 회사의 최고기술책임자가 됐다.
리스는 4년 동안 IMVU에 있으면서 토요타 생산 방식과 린 생산 방식에 마음을 빼앗기게 됐다. 그는 토요타가 코롤라 자동차를 조립 할 때 사용하는 원칙들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심지어 회사를 설립하는 과정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이론을 정리했다. 그가 세운 스 타트업 IMVU는 그 이론을 시험하는 현실의 실험실이 됐다. 2008년 IMVU를 떠난 리스는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블로그를 만들고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2011년에 출판되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 책 <린 스타트업의 근간이 됐다. 웹 2.0으로도 알 려진 두 번째 인터넷 붐이 시작되자 갑자기 여기저기서 스타트업이 세워졌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회사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었 고, 일부는 직장을 다녀본 적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 고 있는지도 몰랐다. 리스는 그들에게 로드맵을 제공했다.
린 스타트업에도 애자일처럼 나름의 용어와 약어가 있다. 이를테 면, '최소 기능 제품(minimum viable product, MVP)'이나 '믿음의 도약 가설(leap of faith assumptions, LOFA)', '생산(Build)-측정(Measure)-학습 (Learn) 절차' 등이다. 애자일이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에서 대부분 분 야에 적용할 수 있는 마법의 방법론으로 진화한 것처럼, 린 스타트 업도 이 방법론을 거의 초자연적인 힘으로 맹신하는 제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린 스타트업은 애자일처럼 세계적인 현상이 됐고 그 자 체가 산업이 됐다.
리스는 컨설팅 회사인 린스타트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컨설팅 서비스를 판매하고, 콘퍼런스를 운영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 다. 다른 자문 회사들도 린 스타트업 실행 방법을 구축했다. 린 스타 트업은 이름과 달리 스타트업 기업만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리스는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조직이 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기업에 있는 사람들도 창업자처럼 행동할 수 있다. 리스는 그들을 '사내 기업가(intrapreneur)'라고 부른다.
- GE는 디지털 시대에 대기업을 어떻게 재창조할 것인가에 대한 빛나는 사례가 되는 대신, '해서는 안 될 일을 알려주는 사례가 됐 다. 물론 린 스타트업이 GE의 문제를 일으킨 원인은 아니다. 하지만 린 스타트업으로 회사를 구할 수도 없었다. 문제는 GE가 잘못된 방 법론을 선택했다거나 린 스타트업 대신 애자일을 도입했어야 한다 는 것이 아니다. GE가 린 스타트업을 올바르게 실행하지 못했다는 것도 아니다.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세상에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 결하는 실버불렛(silver bullet)이 없는 것처럼, 30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조직을 스타트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적적인 방법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공모함을 제트스키로 변신시킬 수는 없다.
- '경영학'을 팔아 생활하는 일부 사람들조차도 이런 것은 엉터리라고 말한다. 매튜 스튜어트는 테일러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경영 구루들의 업적을 파헤친 책 《위험한 경영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 경영학은 충분히 위험할 정도로 잘못됐고 우리를 심각하게 나쁜 길로 인도했다. 우리가 비과학적인 질문에 과학적인 답을 찾 는 잘못된 탐구를 하게 했다. 근본적으로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문 제에 과학적인 척하는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 대기업들이 두려워할 만한 이유는 충분하지만, 불안은 그들을 미 치게 할 뿐이다.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스키니진을 입고 카우보이 부 츠를 신는 나이 든 남자나 젊은 피를 수혈하려고 한 달에 한 번씩 암 브로시아를 찾는 아흔 살 노인처럼, 대기업들은 부산스럽고 어리석 은 행동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잊었다.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 두려움에 찬 쥐는 오직 한 가지, 이 상자에서 벗어나 충격을 받지 않을 방법만 생각한다.
번스의 MRI 실험은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이상한 일을 벌이 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자신의 회사가 업계에서 퇴출당할 위기 에 있거나 몰락에 대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 두려운 최고경영자들은 해커톤을 개최하거나, 큰 규모의 기업인수 프로젝트를 추진하거나, 직원이 30만 명인 회사가 '스타트업'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상상하 거나, 애자일이 실제 효과가 있다는 실증적 증거가 없음에도 직원들 에게 애자일을 배우게 한다.
두려움에 찬 기업들은 나쁜 결정을 내린다. 최고경영자들은 어떻 게든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고 위협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두려움에 찬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두려움 속에 사는 사람들은 최 선을 다할 수 없다. 번스의 실험에서 얻은 가장 뚜렷한 교훈은 만약 기업이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놀라운 아이디어를 낳는 창의적 인 사고방식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싶다면, 먼저 사람들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트레이닝에 더 많이 투자하라. 조금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라. 건강보험 혜택과 고용 안정성을 제공하라. 언제든지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제거하라.
앞으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기업이 정확히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 넷플릭스 컬처 데크의 영향력은 상당히 과대평가되어 있다. 처음 게시된 2009년 이후 이 문서는 약 1,800 만 번 조회됐다.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는 "이제까지 실리콘 밸리에서 나온 문서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최대 IT 매체 테크크런치(TechCrunch)에 따르면, 넷플릭스 컬처 데크는 “인터넷 경제 중심점을 위한 문화 성명서이자 현대 직장생활의 미래를 볼수 있는 수정구슬"이 됐다.
하지만 '가족이 아닌 팀'이라는 개념과 관련된 모든 것은 분명히 어리석고, 심지어 형편없는 기업 정책을 뭔가 바람직한 것으로 포장 하려고 만들어낸 명백한 거짓말이다. '노동자를 홀대하는 잔인한 청이'라는 정체성을 가리기 위해서 말이다. 넷플릭스는 조직 안에 '높은 성과를 추구하는 문화'가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기 준은 많은 사람이 쉽게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야 한다. 컬처 데 크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모든 포지션에 스타 선수를 배치해야 하는 '프로 스포츠팀'과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넷플릭스는 많은 직원을 해고하면서 '올림픽 팀에서 탈락한 것이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라 고 말해왔다.
- 컬처 코드는 뭔가 대단한 것이 됐지만, 사실 불쾌하고 어리석고 무의미한 것이다. 톰 피터스가 말한 것처럼 "글로 써서 벽에 붙이는 순간 망한다. 그것은 문화가 아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이자 《자존감은 어떻게 시작되는가》의 저자 에이미 커디(Amy Cuddy)는 '인스타 컬처(insta-culture)'에 대해 꼬집었다. 회사가 코드를 만들고 탁구대를 사 온 다음 "자, 우리도 문화가 생겼다"라고 말한다는 것 이다. 진정한 문화가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온라인에서 기업 컬처 데크를 검색하면 수십 개는 찾아 읽을 수 있다. 이것을 꼼꼼히 읽다 보면 아마도 진절머리가 날 것이다. 경건 한 척하는 신경제 기업의 끈적거리는 말을 바가지로 뒤집어쓴 기분 일 테니 말이다. 그들은 별반 다르지 않은 말들을 경쟁적으로 늘어 놓는다. 그들은 팀이고 관리자는 코치다. 그들은 윤리와 정직, 공감 과 투명성을 좋아한다. 그들은 남다르게 뛰어나고 적응력이 높고 열 정적이며 호기심이 많고 두려움을 모른다. 그들은 최고 중의 최고지 만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겸손하다. 그들은 성공을 축하하고 실패를 통해 배운다. 그들은 자유를 좋아하고 규칙을 싫어한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특별하다. 이처럼 진지하지만 아무 뜻도 없는 마케팅 허언을 가리켜 의미심장한 의미 없음 (meaningfullessnes)'이라고 한다. 컬처 코드를 작성하는 사람들은 것에 통달했다.
'가족이 아닌 팀'이 가진 문제는 회사가 이런 개념을 받아들이는 순간 직원을 해고하면서 비뚤어진 자부심을 갖기 시작한다는 것이 다. 누군가를 해고하는 일은 이전에는(물론 지금도 그래야 하지만) 드물 고 유감스러운 일이었으며, 고용주나 고용인 모두 최대한 피해야 하 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 일부 회사에서는 사람을 해고하 는 일이 명예 훈장이나 심지어 자랑거리가 됐다.
- 지난 10년 동안 고용 불안정에 관해 연구해온 벨기에 루벤대학교 의 조직심리학자 틴 반데르 엘스트(Tinne Vander Elst)의 연구에 따르 면, 고용 불안정이 창의력 감소와 업무 성과 및 생산성의 전반적인 저하, 높은 수준의 직장 내 괴롭힘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 났다. 고용 불안정을 경험한 노동자는 건강 악화와 높은 수준의 감 정 고갈, 수년간 지속될 수 있는 우울증을 보였고, 사고와 부상을 더 많이 당하고 윤리적 판단 실수를 더 많이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노력은 적게 하는 반면 회사 험담을 하고, 다른 직장을 알 아보며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과학자들은 만성적이고 낮은 수준의 스트레스가 강렬하지 만 오래가지 않는 스트레스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우리 뇌는 포식자에게서 도망치거나 불타는 건물에서 탈출하는 것처럼, 강렬 하지만 짧은 스트레스에 대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경미하지만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방법은 입력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가족이 아닌 팀'이라는 직장에서 얻는 것은 이런 스트레스다. 5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연구자들이 쥐에게 사용하는 '예측할 수 없는 가벼운 만성 스트레스를 만드는 실험 방 법'을 인간에게 적용한 것이다.
장기간에 걸쳐 높아진 공포 반응을 감수하고 살 때 우리 뇌에는 아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두려움이 기억력을 떨어뜨리고 뇌 일 부를 손상시킬 수 있다. 메이오클리닉(Mayo Clinic)에서 실시한 두 개 의 뇌 스캔은 건강한 뇌와 스트레스 및 우울을 겪는 뇌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건강한 뇌는 노란색과 주황색 부분이 넓게 나타나면서 활 발히 빛나지만, 스트레스를 받은 뇌는 짙은 푸른색이나 검은색 부분 이 넓게 나타나고 노란색 점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어 마치 가동을 중지한 것처럼 보인다.
- 나는 20세기에 최고경영자들이 출간한 책들을 살펴보았다. 경영 과 채용에 관한 그들의 시각은 오늘날 거의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 다. 리아이아코카(Lee lacocca)는 1984년에 낸 자서전에서 포드자동 차의 최고 자리에서 해고됐을 때 수치와 분노를 느꼈지만, 이후 크 라이슬러의 최고경영자로서 회사를 파산에서 지키고자 수천 명의 노동자를 해고해야 했을 때 더 큰 고통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이 결정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크나큰 개인적 비용을 치른 것이었다 고 언급했다.
헨리 포드는 1928년에 낸 자서전 《나의 삶과 일》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잘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 이 자신이 회사를 세우는 핵심이라고 밝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돈도, 심지어 자동차도 아니었다. 바로 사람이었다. 포드는 아이들이 수습 과정을 거쳐 졸업 후 포드에 취업할 수 있는 직업학교를 세웠고, 노동자 계층에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병원을 운영했다.
한번은 경영진에게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작업 목록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였다. 시각 장애 인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한쪽 팔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나의 야망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 산업 시스템의 혜택을 확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과 가정을 세우길 바란다.
- IBM의 최고경영자였던 토머스 왓슨 주니어(Thomas J. Watson Jr.)는 기업의 최우선 순위를 '직업 안정' 정책이라고 생각했고, “24년 동안 정리해고 때문에 단 1시간도 낭비하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1963년에 쓴 회고록 <거인의 신념》에서는 만약 직원이 한 가지 일 을 망친다면 IBM은 다른 일을 찾아줄 거라고 밝혔다.
우리는 직원 개인의 능력을 계발하고, 업무 요건이 바뀌면 재교육 하며, 맡은 업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다른 기회를 주기 위해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빌 휴렛과 데이브 패커드는 매년 HP 직원 가족 야유회에서 직접 음 식을 서빙했다. 그들은 HP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자랑스러워했다.
- 직원과 가족의 여가를 위해 회사 근처 땅을 매입하기도 했다. 패커 드는 1995년에 출간한 책 《HP 웨이(The HP Way)》에서 캘리포니아에 는 캠핑 장소로 딱 좋은 숲을, 스코틀랜드에는 좋은 낚시터가 있는 호수를, 독일에는 스키를 즐기기에 적합한 장소를 마련했다고 회고 했다. 이 책에는 1960년에 패커드가 관리자들에게 했던 연설도 실 려 있다. 직장에 대한 그의 관점을 알 수 있기에 일부를 여기 소개한 다(진하게 표시한 부분은 내가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직원에게 책임이 있다. 그들이 우리의 일을 계획하므로 우리는 직업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쉽게 채용하 고 쉽게 해고하는 작전을 쓸 의도가 없다. 때로는 필요한 사람들 을 고용한 다음, 가능한 한 많은 일을 시키고, 그 일이 끝나면 집으 로 보내는(해고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것처럼 보인다. 설 령 이것이 가장 효율적일지라도 우리는 결코 이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지 않았다. 우리는 능력이 닿는 한 기회와 고용 안정을 제 공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 결과를 살펴보라. 절정기에 있을 때 헨리 포드와 데이브 패커드, 토머스 왓슨은 오늘날 넷플릭스나 링크드인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 한 기업을 경영했다. 포드나 패커드, 왓슨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지금까지도 그들이 세운 기업은 지속 성장하고 있고, 사실 넷플릭스 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20세기의 경영자들은 무엇인가를 깨달았던 이들이다. 오래가 는 회사를 세우려 한다면 당신이 귀 기울여야 할 사람은 바로 이 사 람들일 것이다. 당신은 노동자에게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팀'이라 고 말하는 대신, 팀'이면서 가족이 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 30년 동안 연구자들은 업무 현장의 변화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전투에 참여하거나 자연재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만큼 가혹 한 정신적 외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기업가들에게 경고해왔다.
과거 20년 동안 일어난 기술 변화만큼 거대하고 심지어 더 큰 전 환이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형태로 우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을 이끄는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우리가 '제4차 산업혁 명'에 진입했으며, 변화의 속도는 더욱더 빨라질 거라고 말했다. 인터넷 시대의 처음 25년은 이미 많은 사람이 한계점을 넘어 '환멸과 두려움'을 느끼고 불만과 불공정이 만연해졌다고 슈밥은 말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생활하고 일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바꿀 기술 혁명 직전에 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더 큰 규모와 범위와 복잡성을 지닌 변화가 올 것이다. 지금부터 20년 후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우 리는 얼마나 환멸과 두려움을 느끼게 될까? 미래가 기적처럼 경이롭 다고 해도 우리의 뇌는 그 미래에 알맞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 이미 60년 전에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건전한 사회》에서 자본주의와 자동화가 결합하면 깊은 정신적 손상을 일으키고, 이것이 소외와 우울, 일종의 문화적 광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으로 50년에서 100년 후에 (...) 자동화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기계를 생산하고 기계처럼 행동하는 인간을 만들어낼 것이다. 과거의 위험은 인간이 노예가 되는 것이었지만, 미래의 위험은 인간이 로봇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PC 출시를 거쳐 인터넷 초창기에 이르는 동안 많은 사람은 늘어나 는 기술 이용이 노동자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다. 기술은 우리 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더 많은 자율성과 자유를 줄 것 같았다. 직장 을 민주적으로 만들고, 평범한 노동자들이 회사 경영에 더 큰 목소 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새로운 노동 방식을 개발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한편에서 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뱁슨 칼리지의 경영학 교수 토머스 데이븐포트(Thomas Davenport)는 1990년대에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BPR: 업무 프로세스 재 설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는 일에 참여했다. 컴퓨터 기술을 활용 하여 조직을 구조조정하는 전략이다. '리엔지니어링'은 좋은 의도로 만들어졌지만, 기업은 이 개념을 받아들여 많은 사람을 해고하는 구 실로 사용했다. 리엔지니어링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이븐포트는 소 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대규모 해고를 "회사 내부 직원들을 단지 수 많은 비트나 바이트처럼 취급하는" 관리자들이 자행한 "이유 없는 유혈 사태"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것을 "인간성을 상실한 행위"라고 표현했고 이 일에 참여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2005년 뱁슨 칼리지의 또 다른 교수 제임스 후프스(James Hoopes)는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할 뿐 아니라 통제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라고 경고하면서 관리자들이 기술에 의존할수록 직원들은 더 비인간화된다고 우려했다. 2018년 나는 후프 스에게 지금 상황은 어떤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장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직원의 비인간화를 넘어 고객의 비인간화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보스턴 외곽 뱁슨 칼리지 연구실에서 후프스를 만났을 때 그는 기업이 정보기술을 사용하여 고객 서비스를 자동화하고 고객을 컴 퓨터 시스템과 상호 작용하게 한 것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기업은 고객이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추적하고 정보를 수집하 는 데에도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가장 큰 실망은 기술이 직원을 등 지는 방식에서 기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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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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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환경주의

사회 2023. 9. 29. 09:02

- 선동을 잘하려면 다음과 같은 점이 중요하다. 즉 아무도 거절하지 못하고 모두가 동의할 만한 슬 로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슬로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실 이런 슬로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슬로건의 가치는 중요한 질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데 있다. 우리의 정치는 이런 선동을 지원하고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선동에 대해 언급해서는 안 된다. (놈 촘스키(Noam Chomsky))
- "만일 누군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해서 월급을 받는다면, 이런 사람에게 뭔가를 이해시키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업턴 싱클레어(Upton Sinclair))
- 스위스의 NGO 솔리다르 스위스(Solidar Swiss)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는 공정하게 거래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네스프레소는 그와 같은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른바 “지속 가능한 커피"라는 프로그램을 고안 해냈다. 미국 단체 열대우림연맹(Rainforest Alliance)과 함께 '네스프레소 AAA 지속 가능 품질'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열대 우림연맹은 치키타(Chiquita), 돌(Dole), 리들(Lidl)과 맥도날드처럼 문제가 많은 기업에서 생산하는 바나나, 커피, 차(tea), 종려유와 소고기에 안전인증을 내주었다. 네스프레소가 개발한 지속 가능 운운하는 프로그램도 친환경적으로 재배하고 공정한 무역으로 거래하는 커피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마치 친환경적으로 재배하고 공정하게 거래하는 것처 럼 들린다. 뭔가 좋아 보인다. 어쨌든 네스프레소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 을 보면 커피 농사를 짓는 농부와 그들의 가족이 과장되게 웃고 있다.
만약 네스프레소를 처음부터 시장에 출시하지 않았다면, 생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정당하지 않았을까? 그렇다. 물론 당연하다. 하지만 이렇듯 지속적으로 발전한 소비 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질문을 아예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요컨대 그와 같은 우려를 반박하려 한다. 그리하여 엄 청난 쓰레기를 배출하고, 지나치게 비싼 커피 시스템이 자원을 낭비하고 소농을 착취하는 것이다. 이런 커피 시스템은 생태적 고려를 외면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후에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행동 한다.
- 가짜 녹색 뉴스
방대한 산업이 이와 같은 녹색 거짓말을 이용해 잘 먹고산다. 즉 광고 회 사, 마케팅 에이전시, 리스크 관리자, 기업체 고문, 인증서를 제공하는 회 사, 검사 단체, 회의 및 이벤트 그리고 박람회 개최자, 트렌드 연구자, 라 이프스타일 및 경제 잡지, '윤리적 소비를 위한 앱 개발자, 지속가능한 소비'를 위한 블로그 따위가 그것이다. 이 모든 회사-17개국에서 기업 의 명성을 위해 활약하고 있는 글로벌 평가 회사 RI(Reputation Institute)는 물론는 대기업의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 거대 대기업들은 당혹스러운 방식으로 환경 운동이라는 그림과 개념을 장악했다. 이들은 스스로 불러일으킨 파괴임에도, 자신들이야말로 그러 한 파괴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며 환경 운동을 이용하고 있다. 심지 어 이들은 NGO를 앞세우고 정치인을 지속 가능이라는 이름 아래 자기 이익을 관리해주는 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시민들은 자신의 경제적 역 할을 '소비자'에서 찾은 것 같다. 즉 정치적으로 참여하는 대신 '윤리적 소비'로 자신의 역할을 대체하며 여전히 명랑하게 소비 생활을 하고 있 다. 심지어 이론에서든, 언론이 전개하는 논쟁에서든 이러한 소비와 대기 업에 대한 부정적 비판은 소비자를 위한 잡지와 경쟁을 펼치게 된다. 소 비하는 분위기를 망치기보다 구매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잡지 말이 다. 따라서 이제는 기업이 자신들의 파괴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그런 기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만일 내가 당신에게 '하늘은 녹색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때 나의 목 표는 당신이 내 주장을 즉시 믿도록 하는 게 아닙니다. 내 목표는 오히려 당신의 이의를 뒷받침하는 모든 근거가 고갈되어 마침내 당신이 '그것은 당신 의견이지요. 나는 하늘이 파란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 색깔을 객 관적으로 확정지을 가능성은 없는 것 같군요'라고 말할 때까지 하늘은 녹 색이라고 계속 주장하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틀린 것을 맞다고 정당화시킵니다." 심리학자이자 독일 해적당(Piratenpartei) 당수를 역임한 마리나 바이스반트(Marina Weisband)는 <차이트(Zei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대화법을 이렇게 묘사했다. “공 공연한 거짓말이 추구하는 목표는 진리의 무력함을 증명하는 데 있습니 다. 대화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갑자기 모든 것을 의문스럽게 만들죠." 대기업도 트럼프 대통령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환경 관련 가짜 뉴스를 갖고 존재하지도 않는 두 번째 현실을 만들어내며, 이것으로 진실을 의문 에 빠뜨린다. 이런 방식으로 대기업은 사회와 정치의 최종 희망처럼 보이 는 것, 다시 말해 세계의 구원이라는 희망을 자신들이 '착한 기업'으로 돌 변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성공했다.
- 그린워싱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때는 미 국에서 환경 운동과 반핵운동을 펼치던 시기였다. 산업은 이러한 운동 에 반응해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사진으로 광고를 하고, 환경 보호에 적 극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환경 재난이 끔찍하면 할수록 가령 1976년 7월 19일 이탈리아 도시 세베소(Seveso)에서 독성이 매우 강한 디 옥신 TCDD가 방출된 사건, 1984년 12월 3일 인도 보팔(Bhopal)에 있는 유니언 카바이드(다우케미컬의 자회사) 공장에서 일어난 화학사고,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핵발전소에서 일어난 사고, 1989년 3월 24일 기름을 싣고 가던 엑손 발데즈호가 알래스카에서 침몰해 기름이 유출된 사건-그리고 1970년대와 1980년대 환경 운동이 사람들에게 산업 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더 많이 심어주면 줄수록 산업계는 더 강력하게 녹색 광고로 대응했다. 한때 이와 같은 캠페인 광고 제작 전문가였으나 이후 환경 활동가로 변신한 제리 맨더(Jerry Mander)는 에코포르노그래피 (Ecopornography)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동일한 제목으로 1972년 에세이 를 출간한 그는 이미 당시에 석유, 화학, 자동차 대기업이 산업 협회 및 에너지 공급자들과 함께 매년 수십억 달러를 그린워싱에 투자했을 것으 로 예상한다. '생태학'이라는 말과 이 단어에 대한 이해를 돕는 모든 표현 을 파괴할 목적으로 말이다.

- BP의 캠페인은 가히 그린워싱의 혁명이었다. 요컨대 BP는 자신을 친 환경적 석유 사업자로 묘사하며 녹색 석유를 판매한다고 홍보하는 데 그 치지 않았다. 아니, 당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컸던 이 석유 대기업은 재 생 에너지의 선구자로 변신했다. 오길비 앤드 매더 광고 대행사는 당연히 그와 같은 광고를 해주고 보수를 받았으며, 대기업은 이런 캠페인과 비슷 한 형태를 띤 청사진을 확보했다. BP는 정치계로부터 압박을 받지 않고 서도 생태적으로 지극히 위험한 석유 산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필이면 그린워싱의 어머니인 BP가 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어마어마한 석유 유출 사건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코 모순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대기업이 책임과 지속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그 배후에 숨기고 있던 진 실은 일찍이 2005년에 표면으로 드러났다. 끔찍한 안전 결함으로 말미암 아 텍사스시티에서 BP의 가장 큰 정유 공장이 폭발한 것이다. 이로 인해 15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80명이 부상을 당했다. 1년 후에는 알래스카의 프루도만(Prudhoe Bay)에 있는 유전에서 고장 난 BP의 파이프라인으로 인해 100만 리터의 원유가 태평양으로 흘러들었다.
딥워터 호라이즌의 재난 역시 BP가 주장하듯 '비극'이 아니라, 이 석유 대기업에서 범한 소름끼치는 더러운 행위로부터 당연히 예측 가능한 사 건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해양 굴착 회사 트랜스오션(Transocean), 구멍을 메우기 위한 시멘트를 조합하는 데 실패한 회사 핼리버턴(Halliburton), 이 모든 것을 눈감아준 관청들로 인해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던 사건이었 다. 처음에 BP는 책임을 전가하려 애썼다. 하지만 매일 100만 리터의 석 유가 바다로 흘러들면서, BP가 과학적으로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증 거들이 점차 공공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 코렉시트 혹은 대재난 이후의 대재난
딥워터 호라이즌이 폭발하고 이틀 후 멕시코만에서는 연이어 환경 재난 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콧 포터 같은 과학자, 의학자, 환경 단체, 어부 와 주민들은 그것이 심지어 원유 유출보다 더 심각하다고 믿고 있다. 해 상 플랜트가 바다로 가라앉던 날, 그러니까 4월 22일, BP는 유출된 원유 를 코렉시트로 희석하기 시작했다. 기름 분해제인 코렉시트는 미국 환경 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이 허가를 내준 화학 제품이 다. 수질오염방지법과 유류오염방지법에 따라 코렉시트는 물 표면에 있 는 기름을 제거하는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은 엑손 발데즈호가 알래스카에서 기름을 유출한 사건이 일어난 뒤 제정되었다. 당시에는 석 유 대기업 엑손이 개발한 유화제를 최초로 투입했었다. 그렇지만 알래스 카에서는 2만 800리터의 코렉시트를 살포한 반면, 멕시코만에서는 무려 700만 리터를 뿌렸다. 그러나 이 화학 제품을 장기간 사용할 경우 어떤 일이 초래될지에 관한 충분한 연구는 없었다. 이런 독성 물질을 사용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에 관한 조사는 한 건도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코 렉시트의 변종 EC9527A를 딥워터 호라이즌의 시추공에 넣었다. 독물학 자와 해양생물학자들은 그와 같은 엄청나고 치명적인 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터였다. 그중엔 유엔에서 원유 유출 재난에 대한 컨설팅을 하는 릭 스타이너(Rick Steiner), NOAA 소속 해양생물학자이자 컨설턴트 리처드 차터(Richard Charter), 캘리포니아 대학의 환경독극물학연구소 소장 론 테르더마(Ron Tjeerdema) 교수가 있었다. 그들은 독성 물질이 바다의 생태계에 지속적으로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울러 많은 사람이 이를 '바다 밑의 체르노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매년 전 세계에서 1000억 장의 의류를 생산한다. 그중 절반은 면으 로 된 옷이다. 이를 위해 해마다 전 세계 경작지의 2.4퍼센트에서 2600만 톤의 원료(목화)가 생산된다. 그런데 목화 생산량 가운데 겨우 1퍼센트만 을 생태적으로 재배하고, 70퍼센트는 유전자 조작을 하고 8000종의 다양 한 농약을 살포해 재배한다. 투입하는 모든 살충제의 25퍼센트와 모든 농 약 및 제초제의 11퍼센트는 목화를 심을 때 사용하며, 그중엔 맹독성 제 초제 파라콰트(Paraquat)도 있다. 잡초를 퇴치하는 화학 제품은 토양의 질 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물에 독성을 띠게 하고 생물의 다양성을 파괴한 다. 이런 화학 제품은 목화 재배지에 사는 지역 주민을 병들게 하고 심지어 치명적인 중독을 일으킨다. 목화 재배만으로 1년에 20만 건 넘는 농약중독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2만 명이 사망한다.
티셔츠 한 장을 생산하는 데 2700리터의 물이 들어가고, 청바지 한 장 을 생산하는 데는 심지어 80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목화 농장의 절반은 인공적으로 물을 댄다. 그 결과가 어떤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 로 중앙아시아의 아랄해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독일 바이에른주만 한 면적이던 아랄해는 70퍼센트까지 물이 말라버렸다. 아랄해로 흘러드는 강들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사막에 있는 목 화 농장에 물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에서 네 번째로 컸던 내해 (海)가 고갈된 이런 현상은 인간이 초래한 가장 엄청난 환경 재해 중 하 나로 알려졌다. 요컨대 섬유 산업에 희생당한 것이다. 무엇보다 섬유 산 업은 환경 파괴의 세 번째 주범으로 간주되고 있다.
- 뭔가를 정말 자주 반복하면, 이것이 결국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예전부터 거짓말도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작동했다. 패션 산업이 바다를 구한다는 이야기도 녹색 거짓말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바다에서 건져낸 플라스틱 으로 만드는 운동화는 아디다스가 매년 생산하는 제품(3억 개 이상) 중에서 0.5퍼센트를 차지할 뿐이다. H&M의 경우에는 재활용으로 만든 제품의 수가 더욱 적다. 다른 한편으로, 모두가 알고 있듯 진실은 매우 간단하다. 다시 말해 옷과 플라스틱을 적게 생산하고, 적게 소비하고, 덜 버리면 바 다를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현상과 섬유 산업이 생태계와 사회적 불평등 에 미치는 폐해를 멈출 수 있다. 아니, 적어도 아주 많이 줄일 수는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와 패션 사이에는 단 한 가지 분명한 관계가 있다. 요 컨대 패션은 순간적이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는 그렇지 않다. 플라스틱은 500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컬렉션 사이사이에 출시하는 모든 신제품은 미래에 바다의 쓰레기가 된다.
- 그린피스는 패스트 패션으로 인한 '소비 붕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는 세계 시민이 입을 수 있는 양보다 많은 옷이 유통되고 있다는 얘기 다. 우리 독일 사람들만 하더라도 매년 평균 60종의 옷을 구입하고, 그렇 게 구입한 옷을 15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 기간 동안만 입는다. 독일 가정집에 걸려 있는 52억 장의 옷 가운데 40퍼센트는 드물게 입거나 절 대 입지 않는다. 독일 사람들은 매년 130만 톤의 옷을 버린다. 그중 4분의 3이 섬유를 활용하는 곳으로 보내져 대략 절반은 걸레 또는 담이나 벽에 넣는 온열 재료로 가공된다. 버려진 싸구려 옷들은 더 이상 유용하게 쓰 이지 않는다.
- 430만 톤의 오래된 옷을 전 세계에서 거래하고 있다. 오래된 옷을 가 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는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 고 중국과 프랑스다. 하지만 중고 시장은 옷장과 마찬가지로 가득 차 있 다. 그 때문에 못사는 국가들은 옷 쓰레기를 수입하지 않으려 한다. 요컨 대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남아메리카에 있는 42개국이 오래된 옷을 제한적으로 수입하거나 또는 완전히 금지하고 있다. 자국의 섬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 우리가 이렇게 낭비할 수 있는 것은 패션업계가 바다를 구한다며 재 활용하는 바로 그 재료, 곧 플라스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생산하는 모 든 옷의 3분의 2가 폴리에스테르를 포함하고 있다. 이 인조섬유는 값싸 고 언제든 대량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매년 6000만 톤의 화학 섬유를 석유 로부터 추출하는데, 그중 80퍼센트가 폴리에스테르다. 2000~2016년 섬 유로 사용한 폴리에스테르가 전 세계적으로 157퍼센트 늘어났다. 양으 로 치면 800만 톤에서 2100만 톤으로 증가한 수치다. 2000~2014년에만 섬유 생산이 거의 2배로 늘었고, 이와 동시에 패션 산업의 총매출도 1조 8000억 달러로 성장했다.
- 실제로 교육을 가장 잘 받고, 소득도 많고, 환 경 의식도 투철한 부류가 자원을 가장 많이 소비한다. 이렇듯 녹색 지향 적인 쾌락주의자는 실용적이고 시장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기술로 세계 를 구한다는 아이디어에 열광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기꺼이 그 와 같은 기술의 선두 주자가 되겠다는 망상에 빠져 있다. 또한 이들은 서 구의 복지가 자원을 낭비하고 있음에도 '지속 가능하다'는 말을 듣는 것 을 제일 좋아한다. 모든 문제는 그걸 해결할 기술이 있다고 믿는 동안에 는, 창의적인 사람 또는 대기업이나 과학자가 어느 날 등장해 지구는 평 평하지 않다는 인식을 해결하듯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리라 믿는 동안에 는 구조적으로 아무것도 변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지금처럼 진행되어 도 괜찮으며, 우리는 다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을 조금만 더 노력해서 갖추면 그만이라고 믿는다. '인류'가 스스로 불러일으킨 문 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상 좋은 아이디어를 고안해냈다는 것은 효과적이지만 녹색 자본주의가 들려주는 불가능한 이야기, 즉 동화에 불과하다.
- "나의 바다를 위해 너는 무엇을 하고 있어?" 이는 G스타의 컬렉션 '바 다를 위한 원자재'에서 생산한 바다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다. 이 문구 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러하다. 즉 너는 파괴자이고, 나는 구원 자다! 바다 패션의 아름다운 스토리는 그걸 입은 사람들을 고상하게 만 들어준다. 요컨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제품 가운데 진짜를 구분하고자 신을 고상하게 만들 줄 아는, 이른바 작은 차이를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 로 이용된다. 하지만 이는 결국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 매자는 티셔츠를 입을 때마다 스스로 바다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인 것처 럼 연출하는 반면, 티셔츠 한 장을 구입함으로써 바다를 오염시켜도 되는 권리를 구매한 셈이다. 
- 거짓 세계 경제 체계에서 올바른 구매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자체의 무기로 때려눕힐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편입시킨다. 심지어 저항과 비판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을 소비가능한 제품으로 만들어버리고, 이로써 자신은 더욱 강해진다. '혁 명의 주주'는 오로지 하나의 제품만 선택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 이 고안해내고 완성해 제공한다. 이는 자주적이 아니라 수동적인 행동이 다. 아니, 행동도 아니다. 단지 하나의 반응일 뿐이다. 재수 없을 정도로 외로운 문제인 것이다.
"이는 녹색 소비 운동이 지닌 가장 사악하고 피해를 많이 주는 부분입 니다. 즉 사람은 단지 혼자일 뿐이라는 생각을 강화하는 거죠." 라즈 파텔 (Raj Patel: 영국의 진보적 생태주의자옮긴이)의 말이다. 영화를 위해 베르너 부 테와 나는 소비를 비판하는 책의 저자이자 텍사스 대학의 연구 교수이고, 반(反)글로벌화 운동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라즈 파텔을 텍사스주 오스틴 에서 만났다. "많은 사람이 오늘날 이렇게 말하죠. 나는 다만 혼자일 뿐인 데,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 이 말은 그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신의 힘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죠."
- 팩트는 이러하다. 요컨대 노동자와 농부가 그렇듯 인정사정없이 착취 당하지 않는다면, 종려유는 세상에서 가장 싸지도 않고 갈망의 대상이 되 지도 않을 것이다. '세상을 위한 빵에 따르면, 오늘날 이런 농장에서 일 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식민지 시대보다 낮다고 한다." 이렇듯 극단적 으로 낮은 임금은 회사를 신속하게 팽창하게 하고, 투자자에게는 짧은 시 간 안에 정상을 벗어난 수익을 안겨준다. 종려유가 인간에게 복지와 일자 리를 제공하고 가난도 물리친다는 말은 이렇듯 지저분한 산업이 하는 최 고로 엄청난 거짓말이다. 종려유 산업은 가난을 유발할 뿐 아니라, 가난 으로부터 먹고산다. 이 산업에는 가난이 가장 중요하고 지속적인 원자재 인 것이다.
- 헤르윈과 내가 농장 밖에 있는 개인 집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종려나무 열매 수확하는 일을 하고 한 달에 약 100유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쥐꼬리만한 임금도 확실하게 보장된 것은 아니다. 기업은 노동자에 게 매일 수확할 양을 할당한다. 만일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임금도 줄어든다고 했다. 가령 하루에 60개를 수확해야 하는데, 이런 목표치는 그 누구도 혼자서 달성할 수 없다. 종려나무 열매는 50킬로그램에 달하는 경우도 있어 하루에 달성해야 할 목표를 모두 계산하면 무려 3톤에 이른 다. 그 때문에 노동자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당연히 이들 은 전혀 돈을 받지 못한다. 이처럼 강제 노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비 열한 시스템이 종려유 농장에서는 비일비재하다. 그렇다. 서류상으로 '자발적' 미성년 노동은 없다. 그러나 시스템이 미성년 노동을 할 수밖에 없 도록 만든다는 사실은 2016년 11월 국제사면위원회 (Amnesty International) 의 연구에서도 확인되었다. 인도네시아 종려유 농장에서의 착취, 인권 침 해, 아동 노동 및 강제 노동에 관한 연구가 그것이다. 이는 특히 원탁회의 회원사인 월마 인터내셔널을 조사한 결과였다.
- 어떤 산업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말로는 지속 가능을 외치며 이루어지는 종려유 생산에는 녹색 거짓말이 시스템 안에 근거를 두고 있 다. 유럽의 기후 보호도 여기에 책임이 있다. 2003년 유럽의회는 2009년 부터 재생 에너지 표준은 바이오 연료로 나아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표준은 2020년까지 연료 소비의 10분의 1을 재생에너지에서 가져올 것 을 정했다. 바이오 연료를 사용함으로써 교토 의정서에 따른 이산화탄 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2006년 바이오 연료 5퍼 센트를 혼합한 연료를 사용할 것을 의무 조항으로 정했다. 이로써 유럽 연합은 많은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유럽의 농업을 활성화하고자 했다. 하 지만 연료를 자국 경작지에서 생산하려던 계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 다. 즉 5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유럽에는 연료로 사용할 옥수수, 유채, 순 무를 심을 땅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남반구로부터 수입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로써 유럽연합은 종려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세 번째 고객 이 되었다. 20 독일 자연보호협회(NABU)와 NGO '무역과 환경'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유럽연합에서 종려유를 혼합해 만든 바이오 연료를 사용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종려유 소비가 7배 늘어났다고 한다. 즉 45만6000톤에서 320만 톤으로 증가했다.
식물성 연료가 연소할 때는 이산화탄소를 식물이 공기로 내뿜는 만큼 만 방출할 것이라고 참으로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생각은 주먹구구식 계산에 불과하다. 숲과 이탄으 로 이루어진 땅이 파괴됨으로써 종려유 농장이 있는 나라의 기후 훼손 을 고려하면-식물성 기름 80퍼센트로부터 뽑아낸 바이오 디젤 연료는 화석 연료보다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종려유를 기본으로 하는 연 료는 심지어 기후를 3배나 많이 훼손한다. 유럽연합이 2013년 연구 조사 를 의뢰한 글로비옴(Globiom)이 내놓은 결과다. 하지만 정작 이 결과를 유 럽연합이 공식적으로 발표하기까지는 몇 달이 걸렸다.
- 이런 방식으로 종려유 그린워싱은 유럽연합의 치명적 바이오 연료 정책과 나란히 진행되었고, 이 정책은 자동차 운전자들의 개별적 참여가 늘 어남으로써 또 다른 그린워싱이 되었다.
숲과 이탄토를 파괴함으로써 인도네시아는 이미 과거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22 2015년 가을의 산불로 17억 톤의 이 산화탄소가 발생했다. 이는 독일이 매년 배출하는 양의 2배에 해당한다. 심지어 이 섬나라가 매일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미국과 비교해 한 달에 26일이나 많았다. 만일 이탄이 많은 숲과 땅에 불이 붙으면, 식물이 불에 타는 경우에 비해 50배나 많은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이처럼 엄청난 양 의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메탄도 배출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5배나 더 기후를 훼손한다.
- 종려유는 엄밀히 따져서 사람들에게 반드 시 필요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 즉 바이오 디젤을 만드 는 데 사용하며, 이 바이오 연료는 기후를 전혀 보호하지 않는다. 대량 사육하는 가축의 사료로도 사용하는데, 이 또한 어마어마한 고통과 환경 훼손을 유발한다. 화장품을 만들 때도 사용한다. 그리고 먹으면 살이 찌고 병들게 하는, 공장에서 만들어 플라스틱으로 출시하는 제품을 만들 때도 사용한다. 가장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심지어 가공식품에 들어간 종려유 는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WWF의 조사-무엇보다 이에 대한 발표는 종려유를 "사소 한 해악으로 여겼다. 심지어 다른 식물에 비해 환경에 좀더 친화적인 대 안이라며 지속 가능한 종려유를 위한 원탁회의가 해결책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산업계는 이런 종려유 없이는 안 돼'라는 메시지를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유니레버가 그렇다. 이 대기업은 WWF의 조사 이 후 종려유의 대량 사용을 합리화했고, 이로써 지속 가능성을 위한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는 광고를 하고 있다. 
- 기후 훼손, 미세먼지 방출,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면서 늘어나는 개 인승용차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독일 정부는 2030년까지 000만 대의 전기차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세금 감면 정책도 실행 하고 전기차를 구매하면 4000유로를 지원하기 위해 2016년부터 총 12억 유로에 달하는 지원금도 마련해두고 있다.
기후, 환경, 건강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독일 정부는 남반구에 있는 나라에서 그 어떤 국가보다 인권 침해를 많이 저지르고 있으면서 이를 합 변화하고 심지어 재정 지원까지 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외향화 사회가 가진 본질적 요소에 해당한다.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독일의 하늘이 오염 되지 않도록 하고 겉으로 보기에 환경과 기후를 보호하는 것 같은 기술 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은 모조리 남반구로 전가한다.
- 거대한 가축 사육장을 일컬어 피드로트라고 한다. 소들은 짧은 생을 대부 분 초원에서 보낸 다음 도축되기 전 마지막 100일을 비육장, 이른바 피 드로트에서 보낸다. 수천 마리씩 우리 속에 갇힌 채 호르몬, 항생제, 대 두 그리고 살을 찌게 해주는 사료를 잔뜩 먹는다. 이는 수년 전부터 미 국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육 모델이다. 아주 많은 소를 가두어놓 고 키우는 이런 방식을 '밀집 가축사육시설(Concentrated Animal Feeding Opration, CAFO)'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1000만 마리 넘는 소가 이런 곳에서 풀을 뜯어 먹는다. 그러나 갇힌 동물만 고통을 당하는 게 아니다. 요컨대 소한테 주입한 호르몬은 사람의 건강을 해친다. 여러 가지 병원균 을 이기기 위해 소한테 주는 어마어마한 양의 항생제도 마찬가지다. 엄청 난 양의 오줌과 똥은 어떤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분뇨가 대부분 괴어 있는 물로 흘러 들어가 토양, 물 그리고 공기를 박테리아, 바이러스, 유황가스와 암모니아로 오염시킨다.
- 물론 사실은 이러하다. 요컨대 지구상의 농지 가운데 4분의 3을 육류 생 산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목초지와 사료 재배를 위한 땅으로 말이다. 이 른바 '대두 벨트', 다시 말해 아르헨티나부터 볼리비아, 브라질과 파라과 이를 거쳐 우루과이까지 펼쳐진 이 벨트는 독일,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모두 합친 땅보다 더 넓다. 이곳에서는 오로지 단작만 한다. 대부분의 대 두는 유전자 기술로 조작한 것이고, 따라서 아주 많은 양의 살충제가 필 요하다. 이런 농지에 뿌리는 대기업 몬산토의 종자를 라운드업레디 대두 (Round-Up-Ready Soybean)라고 한다. 여기서 자라난 대두는 다른 모든 잡 초를 죽이는 제초제 글리포세이트에 면역력을 갖고 있다. 아르헨티나에 서는 이와 같은 라운드업레디 종자가 경작지의 절반을 차지하고, 브라질 에서는 적어도 단작의 70퍼센트가 바로 그런 종자다. 아르헨티나만 하더 라도 농장에 최소 2억 리터의 글리포세이트와 3억 리터 이상의 살충제를 뿌려댄다. 그중엔 독성이 매우 강한 엔도술판(Endosulfan)과 D-2.4 같은 제초제도 있다. 왜냐하면 이미 글리포세이트에 내성을 가진 잡초가 아르 헨티나에는 7종, 브라질에는 5종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점점 많은 독성 물질을 뿌려야 한다면, 화학 제품과 농업 관련 대기업의 주머니는 두둑 해질 것이다. 그러나 재배 지역 사람들에게 독성은 고통과 죽음을 의미한 다. 독성 안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암 발병률은 다른 지역에 비 해 4배나 높다. 또한 유산과 사산율이 늘어나고, 아이들은 뇌 손상 또는 조직의 손상을 입은 채로 태어난다. 호흡기 질환과 피부 질환도 널리 퍼져있다.
- 토지 약탈을 수입하는 자들
그 어떤 대륙도 유럽만큼 남반구 국가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소비하지 는 않는다. 유럽연합은 기본 식량과 다른 농업 소비재를 위해 다른 나라 의 땅 640만 제곱킬로미터가 필요한데, 이는 유럽연합 28개국의 총면적 을 합친 것보다 1.5배나 넓다.27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종려유, 육류, 생 선, 해양 동물을 수입하고 과일, 채소, 사료용 대두, 사탕무, 바이오 연료 를 위한 원자재 수입한다. 유럽연합 시민 한 명당 방글라데시 주민보다 평균 6배나 넓은 땅을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땅 발자국 흔적'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지속 가능한 유럽 연구소(SERI)'에서 계산한 것이다. 어쩌면 이보다 훨씬 더 넓을지도 모 른다. 목화, 광물, 금속 같은 수입 제품의 생산에 필요한 면적을 계산할 때 데이터 부족으로 일부 땅을 빠뜨렸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 합은 국경의 담을 점점 더 높이고 가난과 기아와 전쟁을 피해 탈출한 사 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애쓰는 반면, 국경 너머에 있는 다른 나라의 땅과 삶의 토대를 당연한 듯 편입시키고 있다. 그것도 정부가 그 국민에 게 기본 양식은 물론 생필품도 제공하지 못하는 나라의 땅인 경우가 드물 지 않다. 유엔환경계획이 경작지를 전 세계에 공평하게 분할할 때 우리가 어느 정도 이용할 수 있는지 계산해보니 1인당 연간 0.2헥타르였다. 이는 모든 유럽인이 현재 소비하고 있는 땅의 6분의 1보다 적은 면적이다."
- 국제에너지기구(생태적으로 활동하는지 의심을 사고 있는 기구)는 만일 우리가 지구의 온도를 추가로 섭씨 2도 더 높이지 않으려면, 땅에 묻힌 화석 연 료를 그대로 둬야 한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마침내 이와 같은 정글 아이 디어는 모든 세계로 퍼져나가 모방하는 자들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야수니 계획으로부터 석유와 그 밖의 다른 화석 연료를 채굴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투쟁하는 운동이 전 세계에서 일어났다. "심지어 야수니처럼 하 자는 의미의 '야수닝'이라는 개념도 생겨났습니다. 어디에서냐고요? 예 를 들면 서아프리카에 있는 니제르공화국의 삼각주, 노르웨이 서북방의 로포텐(Lofoten)제도, 콜롬비아의 산안드레스이프로비덴시아(San Andrés y Providencia)주 또는 카나리아제도의 란사로테 (Lanzarote)섬 등입니다. 도처 에서 땅에 묻힌 석유를 그대로 내버려두었죠. 석유 시추 기술인 수압파쇄 법을 미국, 멕시코,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다른 곳 에서 막으려는 노력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생물물리 학적 한계를 무시할 수 없는 화석 연료와 결별할 방법을 준비하는 것입니 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 아주 많은 야수니를 만듭시다!" 아코스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 세상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지만 공범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광 기의 세상을 감지 못하는 무능함으로부터 많은 사람을 해방시켜야 한다. 우리는 환경을 언급하면서 경제를 성장시키고, 복지를 이루고, 세계를 구 하겠다는 약속 따위의 녹색 거짓말을 힘을 합쳐 물리쳐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 이와 같은 녹색 거짓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데서 출발해야 한 다. 그런 거짓말을 유포하는 것은 사악한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녹색 거 짓말은 시스템이다. 녹색 거짓말은 파괴적인 기업을 선한 기업으로 둔갑 시키는 희망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기업은 어떤 인식을 얻고 윤리적 원칙 에 따라 행동하는 양심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다. 기업은 권력이 집중적으로 뭉쳐 있는 곳이다. 오로지 우리만이 이와 같은 권력을 깨버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좋은 삶'이라는 유토피아를 개발해야만 하는데, 이 런 유토피아는 특권을 가진 자들도 정치적으로 넘어뜨리기 힘들다. 정당 하고 공정한 변화는 결코 권력자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항상 사회 의 밑바닥에서,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그리고 남반부 같은 못사는 나라의 주변인들로부터 나온다.
"만일 지구상에 있는 모든 존재가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면, 그 리고 모든 존재가 조화롭게 균형을 맞춰야 한다면 우리는 진지하게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아스코타의 말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자본 주의 내부에서 해방된 대안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독립적이고 해 방된 대안을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기초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 실 이런 대안은 이미 오래전에 있었다. 유엔 자문위원이자 사회학자로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이기도 장 지글러(Jean Ziegler)가 명명했듯 그와 같은 '지구적 시민 사회'는 경제 성장, 자본 축적 그리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착취 저 너머에서 개발된 긍정적 세계화를 위한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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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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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불황

사회 2023. 9. 15. 07:17

- 지역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11세기에서 12세 기에 기준온도(1960~1990년 평균 섭씨 16.5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다 른 시기에 비해 약간 따뜻한 것을 볼 수 있다. 예전보다 온도가 0.5도 가량 올랐을 뿐인데 유럽에서는 먹을 것이 풍족해지면서 경제가 부흥하고 도시가 발달했으며 예술과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일부 학 자들은 이 시기를 르네상스의 태동기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0.5도가 가져온 풍요의 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4 세기 중반부터 지구의 온도는 다시 내려가기 시작해 19세기 초반까 지 기준 온도보다 낮아졌다. 온도가 최대 1도 낮았던 소빙기라고 불 리던 17세기에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약속이나 한 듯 세계 곳곳에서 식량 부족으로 인한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 현상에서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왕 조실록을 살펴보면 1670~1671년(현종12~13년)에 경신대기근이 있 었으며 1695~1696년(숙종 21~22년)에 다시 을병대기근이 발생했다. 경신대기근 때 조선팔도 흉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 당시 조 선 인구의 5분의 1인 약 100만 명이 아사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20여 년 뒤 발생한 을병대기근 때도 100만 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조 선이 치른 가장 혹독한 전쟁인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최대 100만 명이 사망한 것을 감안하면 두 번의 대기근으로 인한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조선의 평균기온은 이전보다 약 1.3도 낮았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애꿎은 여성들이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었다. 사람들은 겨울이 유난히 추웠다거나 여름이 유난히 습해 흉작이 되면 그것을 마녀의 저주라고 생각했고 마녀로 의심되는 여자들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화형시켰다. 같은 시기에 중국의 장시성 지역은 수세기 동안 경작하던 오렌지 재배를 포기했으며, 멕시코 지역에서 융성했던 마야와 아스텍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같은 기간에 기온이 낮아지고 가뭄이 들었다.

- 이상기후와 마녀사냥
유럽 지역에 번영을 가져왔던 중세 온난기와 마녀사냥이 유행하던 소빙기의 평균 온도 차이는 고작 섭씨 1도 정도 였다. 수백 년 사이에 평균 온도 1도가 변했을 뿐인데 가뭄, 홍수, 냉해가 발생하면서 유럽은 풍요와 혼돈을 오갔고 중국의 장시성 사람들은 수세기 동안 즐겨먹던 오렌지를 포기해야 했다. 마야인들은 가뭄으로 인해 고산지대에 구축해놓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평야로 내려와야 했다.
몇 백 년 전에 일어났던 이런 기후변화의 발생 메커니즘을 설명하 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 유력한 설이 있다.
우선 13세기 소빙하기의 시작을 만든 중요한 사건으로 인도네시아 에서 두 번째로 높은 린자니Rinjani 화산의 대폭발을 들 수 있다. 이 화 산이 폭발하면서 많은 양의 황산미세먼지가 성층권까지 퍼져나갔고 이로 인해 지구로 도달하는 햇빛이 차단돼 지구의 대기 온도가 낮아 졌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벌어진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 또한 흑사병으로 갑작스레 인구가 줄어든 것도 지구 대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347년에 유럽을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흑사병 이 창궐하며 유럽 인구의 최소 30퍼센트에서 최대 60퍼센트가 사망 했다. 이 여파로 당시 4억 5,000만에 달하던 세계 인구는 수십 년 만 에 3억 5,000만 수준으로 떨어져 농업활동을 축소시켰다. 급격한 농 업 인구의 감소로 숲이 다시 울창해지자 광합성이 활발해졌고 이 과 정에서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이산화탄소가 흡수돼 지구 온도가 낮 아졌다는 것이다.
끔찍한 사건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난 2,000년 사이 에 지구의 온도는 1도 정도를 오르내리는 선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 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인류는 살아남아 번영을 구가했고 전 세계 인구는 70억까지 늘어났다.
- '지구 살리기'에 필요한 처방을 담은 책을 두 차례나 내놓은 러브 록 박사는 2006년에는 《우리는 아직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책으로 행동을 촉구했다. 하지만 3년 후에 이 노학자는 다섯 번째 가 이아 책 《사라지는 가이아의 얼굴》에서 '마지막 경고: 남은 시간이나 즐겨라A Final Warning: Enjoy It While You Can' 라는 섬뜩한 부제를 달았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도 지구 평균 온도는 지금보다 섭씨 5~6도 더 오를 것이고 전 세계 인구는 현재 70억 수준에서 10억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이 런 세상이 되면 우리는 그나마도 생존이 가능한 극지방에서 근근이 살아남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종말론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2008년 인터뷰에서 "2040년이 되면 사하라 사막이 중부 유럽까지 확장되어 파리, 베를린도 사막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가 하면, 2010년에는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사회도 전시에는 민주주 의를 잠시 내려놔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내 생각에는 기후변화는 전 쟁과 같은 수준의 심각한 이슈다. 어쩌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민주 주의를 잠시 내려놔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다만 2012년에 본인이 지나치게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 같다며 기존 의 주장에서 한 발 물러서서 "기후변화로 인한 심각한 사태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좀 더 천천히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 2010년에는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사회도 전시에는 민주주의를 잠시 내려놔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내 생각에는 기후변화는 전 쟁과 같은 수준의 심각한 이슈다. 어쩌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민주 주의를 잠시 내려놔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다만 2012년에 본인이 지나치게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 같다며 기존 의 주장에서 한 발 물러서서 "기후변화로 인한 심각한 사태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좀 더 천천히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 450ppm에서 멈추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판에 350ppm으로 돌 려야 한다는 핸슨 박사의 업데이트된 결론은 기후변화 해결을 주장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너무 과격해서 정 치·사회적으로 해결책을 도출하기 불가능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 러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350ppm이 되도록 줄여야 한다는 과학적 결론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두 제임스는 과학자이지 정치인도 언론인도 아니다. 그러나 우수 한 과학자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이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관해 '과격한' 주장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한동안 '왕따'를 당했다. 다행히 빌 게이츠를 비롯한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 두 과학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등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러브록 박사와 핸슨 박사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여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을 주장하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걱정스러운 사실은 이 두 제임스만큼 지구온난화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왔고 기후문제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구를 지금 같이 많은 사람이 지금처럼 살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건 이미 글러먹었다'는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실질 적인 증거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 《기후대전>을 발표한 이래로 귄 다이어 박사는 기후변화와 관련 한 글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는데 2013년 9월, 사람들이 북극해 대량 메탄 방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가속화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점 을 지적하는 <바보야, 문제는 피드백 효과야 It's the feedbacks, stupid>를 발표했다. 인간들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도를 1~2도 정 도만 올려도 6도 상승의 방아쇠가 당겨진다는 사실을 좀 더 널리 알 려야 한다는 의도가 담긴 글이다. 이 글은 예전보다는 좀 더 비관적 인 느낌이 든다. 1943년생인 귄 다이어 박사가 앞으로 기후변화에 대 한 본인의 '희망적인' 전망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산불 때문에 소방관이 죽고 집이 불타는 것은 얼핏 개인의 피해나 지역의 피해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대형 화재의 빈번한 발생은 국 가재정에 큰 부담을 준다. 실제로 미 연방정부는 1990년대 화재진압 에 평균 10억 달러(1조 원)를 사용했으나 2002년 이후부터는 그 액수 가 연간 30억 달러(3조 원)를 넘어섰다.
산불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산 속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한다. 예컨대, 미국 국립공원에서 1킬로미터 이내에 지어진 집이 1940년대에는 50만 가구 정도였으나 2012년에는 180만 가구로 크게 증가했다. 게다가 국립공원과 1킬로 미터 이상 떨어져 있지만 국유림 경계지역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약 120만 가구의 집이 이미 지어졌다. 이런 변화로 소방관들은 산불 진 압은 뒤로 미루고 우선 사람을 구하고 집이 불타는 것을 막기 위해 예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조사에 따르면 화재 진압 비용의 최소 50퍼센트에서 최대 95퍼센트를 건물을 보호하는 데 쓰 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야말로 산불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데 불길 자체를 잡는 데 들어가는 자원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연방정부가 국유럽도 관리 하고 화재를 진압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지불하다보니 아이러니하 게도 국유림 주변의 개발에 대한 허가권을 갖는 지방정부는 계속 산 불 위험지역에 개발 허가를 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점점 더 많 은 재산과 인명이 위험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 서부의 토지 개발과 관리 개선을 목적으로 설립된 헤드워터 이코노믹스연구소Headwater Economics 소장인 레이 레이커 박사는 이 런 현상이 심해지면서 미국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경고 했다.
- "아직은 국유림 주변의 84퍼센트가 미개발되어 있다. 현재 화재진 압에 지출되고 있는 비용이 높다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더 깜짝 놀랄 일이 많아질 것이다. 산불은 예전보다 그 규모가 두 배 더 크고 그만큼 더 오래 탄다. 앞으로 관련 비용도 같은 비율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2012년 12월에미 삼림청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2050년 에는 미국에서 매년 화재로 피해를 보는 숲의 면적이 현재 두 배로 늘 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산 좋고 물 좋은 국유림 주변에 집을 짓는 사람 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레이 레이커 소장의 경고처럼 화재진압 비용이 점점 더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굶주려가는 세계
1869년 미국 서부와 동부를 잇는 첫 번째 대륙횡단철로가 건설되자 미국 정부는 대평원 지대에 정착을 원하는 사람 들에게 160에이커의 땅을 무상으로 할당하기 시작했다. 네브라스카 주의 경우 정착민 1인당 640에이커를 지원했고 다른 지역도 320에이 커를 무상으로 나눠줬다. 당시는 마침 미국 대평원 지역에 강수량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부동산 업자들은 "쟁기 가는 곳에 비 따른다Rain follows the plow"라는 문구로 광고를 하면서 가뭄 걱정하지 말고 정착 해 살 것을 권유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대평원에 정착해 소를 방 목하고 밀을 심었다.
- 하지만 1930년대에 4년간에 걸쳐 장기간의 가뭄이 들면서 강수량 이 뚝 떨어졌다. 잦은 경작으로 척박해진 토양은 모래처럼 변하게 되 었다. 거기다 강한 태풍까지 자주 발생해 거대한 모래폭풍을 일으켜 미국 전역을 덮치는 '미국판 황사'가 빈발했다. 마침 미국은 대공황 이 닥쳐 경기가 나빴는데 대평원의 몇몇 주에 살던 약 250만 명의 주 민은 모래폭풍으로 집이 부서지고 농기계가 모래 속에 파묻히는 피 해를 입자 고향인 대평원을 떠나 캘리포니아 등 서부로 이주했다. 이 숫자는 1849년에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대규모의 이주가 있었던 골드러시 Gold Rush 당시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다.
- 미국 전체가 흙먼지에 휩싸인 것 같다는 의미로 더스트볼Dust Bowel 이라고 명명된 이 현상은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자연재해로 알려 져 있는데 실제로는 과도한 경작으로 발생한 인재이기도 하다. 이때 경작에 필수요소인 비옥한 겉흙의 75퍼센트가 손실되었다. 당시 토양 유실의 영향으로 발전된 농업기법이 보급된 지금도 대평원 지역의 농 업생산성은 초창기에 비해 여전히 75퍼센트에 그치는 수준이다.
더스트볼 사태로 망가지기는 했지만 미국 대평원에서 식량이 생산 되기 시작하면서 인류의 총 식량 생산량은 급격히 늘어났다.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으로 세계 각지의 식량 생산도 동시에 늘어났다. 우 리나라가 배고픔에서 벗어나던 1980년대부터는 전 세계 곡물재고 율이 연간소비량 대비 25퍼센트 이상을 유지했다. 이는 전 세계 인구가 3개월을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비축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에 최대 32퍼센트까지 상승했던 주요 수출국의 곡물재고율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해 다시 20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졌다.
물량 기준으로 당시 동향을 살펴보면 수요는 꾸준히 증가한 반면 이상기후로 인해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2005, 2006, 2010, 2012년에 연달아 나타났다. 2012년 기준 주요 수출국의 식량재고량은 역대 최저 수준인 1억 톤 이하로, 재고율은 17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전 세계가 두 달을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 미국의 옥수수 농사가 망하면 한국의 달걀 가격이 오른다
우리나라는 식량의 70퍼센트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특히 가축 사료는 거의 전적으로 미국산 옥수수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 대평원에 가뭄이 들면 축산품의 가격이 요동친다. 2013년 1월 다 국적 기업인 카길퓨리나가 소사료 가격을 1킬로그램당 13.5원 올렸 다. 소사료 원료가격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옥수수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의 횡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우리나라 농협 관계 자들은 곡물가격 상승을 반영했을 때 20~30퍼센트 이상 가격을 인 상해야 수지가 맞다며 조만간 추가인상이 있을 거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2013년 봄에는 닭 사육 농가들이 지난해에 비해 10퍼센트나 오른 사료값을 감당하지 못해 500만 마리의 닭을 햄이나 고기용으로 팔았다. 이는 계란 공급을 축소시켜 특란의 고시가격이 한 달 만에 50 퍼센트 급등했다. 이상기후로 미국이 옥수수 농사를 망치면 우리나라의 달걀가격이 뛰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 기후변화가 심화될 경우 국내 쌀 수확량이 줄어들 수 있다. 날씨가 더워지자 우리나라에서 쌀을 이모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기대하 고 있지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로 바뀌 어 일부 지역에서 이모작이 가능해지더라도 병충해가 심해져 실제로 생산량은 더 줄어들 수 있다.
게다가 주요 쌀 수출국인 태국, 베트남 지역의 쌀 생산량도 기온이 상승하면 꾸준히 줄어들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벼는 더운 곳에 서 잘 자라지만 여느 식물과 마찬가지로 가장 잘 자라는 적정 온도가 정해져 있다. 사람도 임신했을 때 훨씬 민감해지듯이 벼도 열매를 맺을 때 가장 민감해진다. 벼는 자가수분으로 열매를 맺는데 그 시기 에 39도가 넘는 폭염이 3~4일만 계속돼도 제대로 수분이 이루어지 지 않는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경우 이미 기후여건상 쌀농사가 가능 한 지역에서 최대한 경작을 하고 있는 상태인데 이 지역의 생산성이 떨어지면 벼를 주식으로 소비하는 국가들은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 중국 탄광의 95퍼센트는 지하탄광인데 1톤의 석탄을 캐내는 과정 에서 약 2.3톤의 물이 사용된다. 과열된 장비를 식히고 먼지를 가라앉 히기 위해 사용되는 물이 1톤가량 된다. 게다가 광산 근처에 지하수 가 있으면 광산으로 유입될 위험이 있어 펌프로 전부 퍼내버린다. 이 렇게 퍼내어 버려지는 지하수의 양만 해도 석탄 1톤당 1.03톤에 달한 다. 이렇게 막대한 양의 지하수를 소비하다 보니 지하수를 이용해 농 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지역주민과 석탄광산업자 사이에 갈등 이 커지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중국에서 석탄을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발전에 사용되는 물의 양은 석탄 채취에 들어가는 양(65억 톤)의 12배가 넘는 786억 톤에 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농사짓고 마실 물이 먼저냐 석 탄채굴이 먼저냐를 둘러싼 갈등이 점점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 인류는 땅속 깊이 숨겨져 있던 자원을 끄집어내 사용하는 행동이 어떻게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인 위기를 초래했는지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발전을 했 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이성적으로 이해하 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정도로는 진화하지 못했다.
- 주류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여러 이론은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특정 한 상황에서 쓸모가 있다. 높은 할인율의 적용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단기적인 투자를 결정할 때는 유용하다. 하지만 높은 할인율이라는 장치로 인해 미래에 기후변화가 가져올 피해, 즉 우리 세대는 물론이 고 우리의 손자 세대가 입게 될 피해는 편익 분석에서 너무 낮게 평가 되고 있다.
- 쿠즈네츠 박사는 1934년 GDP라는 지수를 처음으로 제안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자세한 경고문구를 넣었다.
"국가총수입을 가늠하는 지표로 GDP를 사용할 때 여러 조건을 감 안해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한다. 이 지표를 국가경제의 건전성welfare 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이를 깊이 파고들고자 하는 사람 들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 주의해야 한다. 우선 국가 수입이 각 개인에 게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지를 알기 전에는 국가경제의 건전성을 제 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수입 측정에 있어 수입을 얻기 위해 투입된 노 력이 얼마나 강한 노동을 요구했고 불쾌함을 감수했는지에 대한 조 사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따라서 본 보고서가 제안한 GDP는 국가의 부와 건전성을 보여주는 지수로서는 대단히 부적절하다."
하지만 이런 경고에도 GDP가 명실공히 국가의 경제성장을 가늠하 는 유일한 지수로 자리 잡게 되자 쿠즈네츠 박사는 다시 한 번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차이, 비용과 편익, 단기적 성장과 장기적 성장의 차이는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경제성장은 어떤 부분의 성장을 무엇을 위해 하는지를 확실하게 한 상태에서 추진되어야 한다"는 말 로 아무 구분 없이 모든 경제활동을 뭉뚱그려놓은 GDP라는 지수가 모든 다른 지수를 능가하는 경제지표가 되는 것에 우려를 표시했다.
- 오스트리아 경제학자인 프랑크 쇼스탁Frank Shostak은 GDP는 실제 경제생활과 연관성이 없는 추상적 인 경제분석 지표라고 비난했다. 그는 GDP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GDP라는 틀은 특정 기간에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가 실제적인 부 의 증가로 나타난 것인지, 단순히 자본을 소비해 만들어진 것인지 구 분해주지 않는다. 예컨대, 정부가 국민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드는 공사를 시작한다면 GDP는 상승하게 된다. 하지만 국가가 피라미드 건설에 투입한 돈은 더 생산적인 다른 일에 투입될 수 있었던 돈이며 따라서 피라미드 건설은 실제로는 국가경제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 기업들은 항상 주장한다. 규제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환경도 보호 하고 사회에 공헌도 하겠다고. 하지만 기업은 생리적으로 법적 책임 이상을 지려 하지 않는다. 비용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의 자발적 선언 을 믿고 규제 도입을 늦춘 경우 백이면 백 목표달성에 실패했다. 꼭 기업이 나빠서라기보다 회사의 생리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런 생리 를 가진 조직이 기후변화라는 장기적인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다. 기업은 물건과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해 좋은 이미지를 선전하지만 실제로는 제도의 틀 안에 서 움직이는 이익단체다. 엄격한 규제로 제어하거나 강력한 인센티브로 유도하지 않는 한 기후변화를 대하는 기업의 태도는 달라질 수 없다.

- 콜레라 사태가 진정된 후 런던 시는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에 다시 핸들을 달아 사용할 수 있게 했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스노 박사에 의해 발견된 콜 레라 전염 경로에 따르면 인간의 배설 물은 물을 통해 다시 입으로 들어간다. 런던 시는 이 사실이 알려지면 시민들 이 런던의 상하수도 시설을 개선하라 는 집단 항의를 할지도 모른다고 판단 했다. 결국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보다는 마치 그런 사실이 없었던 것처럼 펌프에 밸브를 달아서 시민들을 다시 생명의 위협에 노출시켰다. 21세기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이 나타내는 반응도 19세 기 런던 시 관계자가 보였던 것과 비슷하다.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 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낙농업이 이런 문제를 유발한다는 '진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대부분 의 사람들은 이 문제가 대단치 않은 것처럼 생각하며 이전에 하던 대 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살고 있다. 콜레라 전염이 다소 진 정될때까지 브로드 스트리트의 펌프를 폐쇄했듯이 최소한 사태가 진 정될 때까지만이라도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화 석연료를 전과 다름없이 사용하고 있다.

- 석탄화력발소라는 도박
이렇게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한 값싼 전기를 사용해 국가와 기업 이 얻은 경제성은 과연 얼마나 탄탄한가? 제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가진 사회이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 경제성은 얼마나 탄탄할까? 태양광발전 시설은 일단 설치하고 나면 경제성에 큰 변화가 없다. 변수는 구름이 대폭 늘어나 햇빛이 들 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전기요금이 급격하게 내려가 상대적으로 태양광 패널로 만든 전기의 가치가 떨어지는 정도다.
하지만 앞으로 인류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 는 온실가스 배출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 마당에 앞으로 30~40년을 높은 가동률로 운영해야 투자비를 뽑을 수 있는 석탄화 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도박이다.
그것이 도박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선 앞으로 석탄 가격이 요동 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전이 적자를 보고 있는 이유도 석탄, 천연가스의 가격은 상승했는데 상대적으로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하 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 한국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 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면서 탄소 배출량에 따른 패널티 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석탄화력발전소는 천연가 스발전, 태양광발전 등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지게 된다.
또 다른 이유는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생 산한 전기를 사용하는 기업의 제품에 탄소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 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 에 없다. 게다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석탄화력을 이용한 전기로 공장을 돌려 만든 제품은 태양광, 풍력 등을 높은 비율로 사용하는 독일 같은 나라에서 생산한 제품에 비해 좋은 이미 지를 가질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전기를 단순히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 해산업을 지원한다는 지금의 논리는 그 타당성을 의심받게 된다. 국제사회의 이런 변화에 부딪혀 나중에 부랴부랴 재생에너지 시설 을 짓는다고 해도 그땐 이미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재생에너지 시설 을 충분히 가동하려면 30년 이상을 내다보고 지은 기존 화석연료 발 전소의 사용한도 출력을 낮춰야 하는데 이는 곧 막대한 손실로 이어 지기 때문이다.
- 자동차 엔진도 가장 최적의 연비를 내는 구간이 있듯이 발전소도 거의 최대로 발전했을 때 효율이 가장 좋고 그렇게 지 속적으로 가동해야 경제성이 있다. 하지만 태양광, 풍력발전소가 늘 어나면 어쩔 수 없이 기존 발전소는 가동률을 낮춰야 하고 높은 가동 률을 생각하고 투자한 시설은 결국 손해를 보는 시설이 되어버린다. 원자력 시설도 잘 관리되어 연간 90퍼센트 이상 가동되면 많은 이익 이 발생하지만 사고나 점검으로 연간 70~80퍼센트로 가동률이 떨어 지면 본전이거나 손해가 나기도 한다. 발전소의 가동률은 그만큼 중요하다. 아무리 첨단시설이라도 놀고 있는 시설은 돈 까먹는 애물단 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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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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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사회

사회 2023. 9. 5. 12:18

- 본업을 두고 부업을 하는 것이 언제부터 당연한 일이었을까? 'N잡러'가 능력의 상징이자 자랑거리로 받아들여지기도 하 지만, 실상 이는 고용의 질이 떨어졌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 어들었다는 증거다. 취미 이상의 부업을 모색하는 이유는 대부 분의 경우 본업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거나, 먹고살 만하더라 도 향후 더 나은 삶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서 성공을 도모하는 대신 모두가 '부캐'를 탐색해야 하고, 동시 에 부동산과 주식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 정상은 아닐 테 다. 현 세태는 돈이면 다 된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돈 많으면 장땡이다, 이런 분위기라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지난 3년여 시 간 동안 한국 사회가 병치레한 것은 코로나19만이 아니었던 셈 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 기저에는 신뢰의 부재가 있다. 돈이 외에는 믿을 수 있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애초에 국가가 버팀 목이 되어주지 못했던 사회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도움을 주는 한편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주변 집 단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이어주며 삶의 지지대 역할을 하던 공동체의 흔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나의 생존 따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공간에는 의지할 곳 없는 개 인들이 파편화되어 점처럼 존재하고, 전반적인 신뢰 수준이 떨 어진 자리에서 각자의 불안은 점점 심화된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나와 우리 가족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엄밀히 꼭 돈에 국한된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돈으로 환산 가능한 자산, 혹은 미래에 돈을 벌어들일 만한 유무형의 자산이 어야 한다. 자신의 직업이나 소속, 학벌, 부모님의 직업과 재산, 살고 있는 아파트의 평수와 입지 및 브랜드, 몰고 다니는 차종 등 한국은 돈으로 환산 가능한 자산의 가치를 나타내는 '숫자'가 전부인 사회가 되었다. 심지어 중노년층 사이에서 서열을 가리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자녀의 대학 간판이라고 하니, 은퇴하고 나 서도 평생 이러한 비교에서 자유로워지기란 매우 어렵다. 사회적 신뢰가 사라지고 숫자로 표현되는 물질적 · 외형적 가치만 남은
현실에서는 오직 경제적 자유만이 나와 내 가족을 살리는 확실한 수단이 된다.

- 요즘에는 예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지만 여전히 야근을 당연시하는 조직이 많은데, 어차피 주어진 일을 빨 리 끝내봤자 칼퇴근은 꿈도 못 꾸고 야근을 해야 한다면 남들보 다 먼저 끝낼 동기가 전혀 없지 않나. 이런 점이 우리나라가 항상 장시간 근무에 시달리면서도 노동 효율성은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는 근본적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경향이 최근의 일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품앗 이라는 전통을 지닌 우리네 농촌에서도 예부터 마을 주민들이 모여 모내기를 할 때 해당 논의 주인이 잠깐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을 멈춘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만약 일을 빠르게 해내는 데 대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사 현장에는 야리끼리라는 은어가 있 는데 이는 '근무시간에 관계없이 주어진 분량의 일을 마치면 집 에 가도 좋다'는 의미다. 이 '야끼리'가 주어지면 인부들의 일 집중도는 높아지고, 심지어 종일 걸릴 일을 오전 중에 다 마치 기도 한다. 그리고 일을 끝내기 무섭게 공짜 점심도 마다하고 집으로 가버린다. 한국의 노동 효율성 통계 수치가 낮은 이유를 단순히 노동자들이 게으르거나 비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서, 다시 말해 그들 대부분이 '일을 못해서'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는 뜻이다.

- 재미있는 것은 한국인들의 이중성이다. 중간과 평균을 다른 말로 하면 평범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평범을 선망하면서도 싫어한다. 조금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사회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소위 '튀지 않는 선에서 다른 사 람들과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남들과 다른 점을 발견하고 개성을 추구하며 존재감을 인 정받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욕구이자 보편적 욕망이라 고 한다면, 아무 특색 없는 '다수 중 하나'로 남기보다 자신만의 무언가를 부각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우리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점은 튀는 것을 싫어하고 지양하는 성향이다.
'남들과 같은 거 싫어하면서도 튀는 것 역시 싫어하는 이 중성이 한국인만의 특징은 아닐지라도 거의 모든 한국인이 이 러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우리 대다수는 이러한 역설적인 특성을 지 닌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를 나대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나댄다'의 폭은 상당히 넓어서 단순히 분위기 파악 못하고 설치는 사람만 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튀다'와 '나대다'는 각각의 뜻을 가진 다 른 어휘이지만 좋은 쪽으로든 좋지 않은 쪽으로든 튀는 사람들 은 주변인으로부터 나대는 인간으로 찍히기 쉬우며, 많은 경우 두 단어는 거의 동의어에 가깝게 쓰인다.
질문을 하면 나댄다고 여겨지는 것이 그 대표적 예다. 학창 시절부터 그렇지 않나. 질문이나 발표를 지나치게 많이 하면 눈총을 받는다. 그렇게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훈련된 한국인은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 '부심'은 본디 자부심에서 왔지만,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 된 것에 대해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 음이라는 원래의 긍정적인 의미와는 달리 지나친 자부심을 조 롱할 때 사용되는 부정적인 은어다. 좋은 차를 자랑하는 차부심 부터 소소하게는 냉부심(냉면 맛을 제대로 아는 자부심, 특히 슴슴한 평양냉면), 맵부심(매운 음식을 잘 먹는다는 자부심), '술부심'(술을 잘 마신다는, 즉 술이 세다는 자부심) 등 '그래도 이건 내가 평균 이상이지' 싶은 것이 있다면 크든 작든 '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부심'의 침투력은 실로 어마어마한데, 이러한 마음의 본질 은 남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차별화를 통한 존재감 확인과 인정 욕구의 충족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자신이 가진 무엇 하나 (특히 물질적 가치를 지닌)라도 내세워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열등 감이 숨어 있다. 그마저 없다면 남들보다 나은 점을 찾기 어려 운 까닭이다.

- 획일화된 가치를 바탕으로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별해 온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손쉬운 방안은 소비를 통한 차별화와 과시 뿐이다. "남들이 갖지 못하는 제품을 사라, 그것이 너를 특별하 게 만들어줄 테니. 동시에 남들 다 사는 제품 역시 기본적으로 갖춰라." 모두가 원하고 소유하는 상품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곧 중간이라고 명명된 사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이는 양보할 수 없는 사회적 생존의 문제가 된다. 다른 사람에 게 뒤처질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이 빚어내는 결과는 '소비 행 태'마저 따라 하는 모방 소비, 그리고 능력을 벗어나는 무리한 구매를 하면서도 그러한 소비가 자신을 특정 계층에 속하도록 해준다는 착각이다. 이러한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이 옅어진 공 간에는 그게 뭐 어떠냐는 인식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

- 영화 <기생충>의 개봉 이후 주인공 가족 아들이 친구와 과외 이야기를 나누던 아현동 슈퍼와 그 가족이 폭우 속에서 반 지하 집으로 돌아갈 때 내려간 계단 등 영화 촬영지는 관광지 가 되었다. 몇 해 전에는 모 지자체가 쪽방촌 체험 기획을 시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백지화한 일도 있었다. 이런 일들에 나쁜 의도가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곳을 삶의 터 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 없이 내가 그들과 '같지 않다'는 인식을 품고 있기에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기 본적으로 소비의 대상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나는 저런 삶을 살 리 없다는 의식을 전제로 한다. 힙플레이스에는 가난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는 물론 지난한 삶과 일상의 무게가 거세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새롭고 특별한 이벤트로 소모되고 소비될 수 있다

- 모든 것을 소비하는 한국 사회는 이제 시간과 공간, 분위기마저 그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사람들은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방문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신선한 활동을 원한다. 동시 에 남들보다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유행에 뒤 처지고 싶지 않아서 소비한다. 삶의 필요need와 자신의 욕구want 를 넘어 단지 대세를 따르기 위한 소비가 이루어지고, 구매하는 물질적 가치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한다. 모든 행동에는 '돈'이 들고, 시간과 공간을 사고 난 흔적은 인스타그램에 사진 몇 장으로 남는다. 과시를 위한 온라인 게시물은 오프라인 공간 과 상호 작용하며 이러한 추세를 부채질한다.

- 먹고사는 것이 전부였던 조선 백성들이 개인의 고유성과 가치, 자신만의 삶을 추구한다는 생각을 평생 몇 번이나 해봤 을까? 남들과 다른 나만의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해 봤을까?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비교가 일어나는 좁은 집단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남들보다 많은 수확물을 거둘지 여부가 중요했을 것이다. 이웃보다 더 많은 수확물과 토지를 갖 고 최소한 마을 공동체 평균에 뒤처지지 않았다면 인생에서 특 별히 크게 괴로울 일이 없는 것이다.
만약 농민의 자식이 그림을 잘 그린다거나, 별자리를 잘 기 억한다거나, 음감이 좋다거나 하면 어떨까? 농사에 도움이 될 만한 재능이라면 충분히 인정받고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농사일과 그다지 관계없는 능력이라면 애초에 개인의 고유성이 드러나기도 힘들지만 드러난다고 해도 주목받거나 발 전시키기 쉽지 않을 확률이 높다. 사회적, 경제적, 계급적 인정 은 고사하고 공동체에서 배척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남들에게 없는 독특한 자질을 살리기보다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재능이 있건 없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마을'에 이스'에게 농업기술이나 전수받는 것이 최선일 테다.
비교와 차별화 욕구 자체는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요점은 비교 대상이나 차별화 수단의 다양성에 있다. 과거라는 시험에 합격해 신분 상승을 이루면 최고의 차별화일 테지만, 이러한 수 단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대 다수는 무엇으로 차별화할 것인가? 토지와 수확량, 돈이 되는 작물, 농기구와 농업기술 등 여러 방법이 있겠으나, 그게 무엇이든 마을 공동체 내부의 상상력을 벗어나는 방식은 사용할 수 없다.
서로의 사정을 꿰고 있는 이웃들로 연결된, 대안적 삶의 경 험이 부재한 공동체 안에서만 존재했던 조상들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다른' 꿈을 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조상들 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양상과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 '과거 급제-토지 확보-수확량 증대'라는 조선 시대의 성공기제는 현재 한국 사회의 성공 공식으로 여겨지는 '고시 · 정규 직 합격(시험을 매개로 한 간판)-아파트(자산) 보유-소득(돈) 증 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과거 급제가 단순히 벼슬이나 순수한 명예만을 의미하지 않고 높은 계급으로서의 권세는 물론 막대 한 부를 축적하고 세습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는 점과 20세기 의 고시 합격이 고위 공직자나 소수 전문직으로서의 사회적 신 분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제적 이득과 잠재적 이권 접근권까지 보장했다는 점도 퍽 닮았다.
더 일반적인 성공으로 가는 길에는 과거 급제가 아닌 토지와 수확량에, 고시 합격이 아닌 자산 취득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는 점과, 시간이 갈수록 고시와 정규직 합격이 경제적 부를 보장하지 않게 되면서 매력이 감소하고 돈과 아파트로 대표되 는 자산이 사회적 신분 상승의 주된 발판이 되었다는 점까지도 역사의 흐름에서 크게 비껴가지 않는다.

- 역사적으로 국가가 개인과 개별 가구를 지켜주지 못했고, 사회 안전망에 대한 구성원 간 합의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 역할은 일차적으로 가족에게 주어졌다. 직계가족과 가까운 친척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던 부분을 메워주던 마을 공동체가 소멸하다시피한 현재 상황에서 가족은 가장 원초적이자 최후의 복지 수단이다. 결혼과 육아를 해야 할 때 가족은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손주를 봐주며, 실업과 질병 등 경제적 위기 시에는 무이자 구제금융기구 역할까지 도맡는다. 그러나 국민 절반 가까이가 혼자 사는 세상에서 가족에 의지하 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이러한 사적 복지 역시 충분한 여유가 있는 상위 계층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 개인의 욕망을 건강하게 추구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다수가 공유하는 목표를 잃어버린다면, 각자의 내 면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욕망들이 그 압력만큼 강하게 분출하 게 된다. 더 많은 소득과 자산을 향한 갈망, 외적 가치에 기반한 비교와 질시, 중간과 평균에 대한 강박, 과시를 통한 존재감 확인, 뒤처지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 서로 뒤섞이며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가 강하지 않았던 사람마 저 사회 전체를 물들이는 욕망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휩쓸리게 된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자신의 욕망을 무한대로 추구하며 공 존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한 우리의 선택은 상대에 대한 진정한 배려나 존중, 신뢰가 아니라 평판 관리와 비난을 피하기 위한 눈치 보기였다.
모두가 개인주의자로 살고자 하지만 무엇이 건강한 개인주의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 적 합한 개인주의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 모든 사람은 결국 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끝내 섬으로 남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섬들이 붙어 거대한 대륙 이 되기까지는 엄청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고, 현대사회를 살 아가는 우리에게 그 정도의 정신적 여유는 없다. 사람들은 '우 리'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참 쉽게도 사용하지만, 정작 '우리'라 는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된다. 살아남기 위해 잔뜩 움츠린 동안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경계는 갈수록 선명해진다. 그렇게 서로를 잇는 선은 사라지고 서로를 가르는 선만 남는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삶일까?
-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한 이후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해왔던 생활 양식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음을 발견한 이들에게 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향유했던 평범한 삶을 어떻게든 다시 손에 넣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곧 '사회적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연결되며, 게임의 승리 요건은 남들에게 뒤처지 지 않을 정도의 물질적 가치와 사회적 인정 획득이다.
현재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어릴 때부터 누렸던 '삶의 기본 값'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있다. 결혼과 육아 기피 역시 이 러한 불안과 두려움의 연장 선상에 놓여 있다. 결혼하고서도 내 가 원하는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러한 삶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지 않 는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집값 안정은 물론 각종 육아 수당 제공, 육아휴직 활성화, 경력 단절 대책 등 여러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나 이 모든 것에 앞서 기저에 깔린 심리를 읽어내야 한 다. 부동산 대책은 물론 출산율 제고 역시 이러한 인식 변화를 정면에서 마주하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풀어야 할 것이다.
- 국가나 사회의 공적 안전망을 대신하던 공동체의 해체는 사람들이 마음 깊이 감추고 있는 연대의 욕구가 가족의 울타리 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막는 동시에 타인에 대한 경계 수준을 높 이는 결과를 불러왔다. 사람들은 차가운 사회 어딘가에서 따뜻 한 손길을 찾아 헤매다 가끔씩 나타나는 미담에 그래도 아직 세 상은 살 만하다며 위안과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불러오는 불안 속에서, 연대와 소속감을 바라면서도 남 들을 믿을 수 없기에 그 누구도 먼저 나설 용기를 내지 못한다.

-  우리는 한국인 대다수의 소득 수준이 1장에서 설정했던 '소득-행복 비례 상한선 아래 위치할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수의 근로자들이 몰려 있는 구간이 한국 사회의 평균 연봉보다도 밑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 다수는 전반적 만족 혹은 일상의 행복감은커녕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빡빡 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삶의 기본적인 필요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마당에 돈과 자산에 대한 욕망을 줄이기란 매우 까다로운 과제다.
- 심지어 SKY로 대표되는 학벌이나 안정적인 정규직 등 사회적 '간판'의 획득보다 돈이나 돈으로 환산 가능한 가치로 초 점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더 직관 적인 '재력'으로 쏠리는 현상도 여러 사례를 통해 알아보았 다. 2020년대 한국 사회에서 자산 소유 정도는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결정짓는 사실상 첫 번째 요소가 되었다. 이전에도 '돈' 은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직을 선택하는 데 주요 고려 사항이 었다. 하지만 그러한 자격 혹은 간판이 모든 직역에 걸쳐 급격 하게 떨어지고 있는 '안정성'을 그나마 높은 확률로 보장한다는 점이 여전히 많은 이들로 하여금 이러한 직종을 선망하도록 만든다
- 사람들의 욕망을 완화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은 돈과 자산을 기준으로 나와 남을 가르고 그들과 비교해 더 많은 외적 가치를 확보하는 데서만 만족을 얻는 '만족 메커니즘'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결핍 혹은 인정욕구를 채울 수 있는 다른 방도를 확립해 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면 끝 없는 경쟁의 치열함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고, 과시적 소 비를 통한 우월감 획득 레이스를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 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상(理想)이다. 우리가 가진 '중산층'에 대 한 인식과 기준이 바뀔 수 있을까? 중간은 가야 하고 평균은 넘 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한 쟁투를 멈출 수 있을까?
개인 단위에서는 마음 편하게 욕망을 다스리며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행복에 이르는 여러 방안을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 며 타인에 대한 신의와 선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자산 축적과 모든 종류를 망라한 소비의 이면에 감추어 진 과시욕을 다스리려는 노력은 분명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삶의 질을 올리는 데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구조 적 해법으로 논할 만한 방안이라 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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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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