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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트렌드 2023

사회 2023. 2. 24. 17:34

- 지금까지는 소비와 플렉스가 욕망의 대상이자 과시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경제위기와 인플레이션, 소비의 양극화 등으로 관심도가 변화하고 있다. 이제 비소비와 무지출 트렌드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새로운 소비 취향이자 과시 수단이 되고 있다.
- 소비가 과시의 가장 좋은 도구였다면, 이제 비소비도 새로운 도구 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소비를 하든 소비를 멈추든 소비의 형태를 바 꾸든 모든 것에서 과시 욕망이 더 커졌다. 타인과의 공유, 공감보다 자 신에 대한 만족이 커진 것은 당연하고, 타인과의 단절도 확대된 데다 설령 타인과의 관계를 맺더라도 더 느슨한 연대가 된다. 모두가 다 주 인공이고, 모두의 자아가 다 강하다. 적어도 지금 시대의 2030세대는 과거 어느 시대의 2030세대보다 자기중심적, 자기 주도적이다. 그덕 분에 그들의 과시 수단이 소비뿐 아니라 비소비라는 손바닥 뒤집기도 가능해진 것이다. 자기중심적이고 영리해진 소비자는 더 이상 베블런 효과, 스놉 효과, 파노플리 효과의 힘에 속수무책 따라가기만 하지 않는다.
- 욜로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비싼 물건을 사든, 직장 생활로 돈을 모은 뒤 직장을 관두고 해외여행을 떠나든 기본적으로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번 돈을 써 버려도 다시 벌 수 있다고 여겨졌기에 욜로적 소비가 가능했다. 그런데 2022년 미국은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세계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위기를 이야기하며, 한국 경제는 IMF 금융 위기 때와 비교하고 있다. 빅 테크를 비롯해 잘나가던 글로벌 기업들의 구조 조 정이 본격화되었고, 심지어 팬데믹 동안 가장 큰돈을 벌고 주가도 크게 올랐던 화이자 같은 기업마저도 구조 조정을 했다. 경기 침체에 대한 기업의 대응이 이미 2022년 2분기부터 시작되다 보니, 한국의 기업들 도 2022년 하반기 채용은 줄이고 구조 조정은 확대한다. 2023년에도 이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번 돈을 욜로하며 써 버리면, 다시 그 돈을 채우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여기는 2030세대로서는 욜로를 버리 고무지출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 극심한 가뭄을 겪는 미국에서는 지자체가 주택의 잔디에 물 주는 횟수와 시간까지 통제했고, 심지어 천연 잔디를 없애고 인조 잔디를 깔 아서 물 낭비를 막겠다는 사람도 늘어났다. 단독 주택과 넓은 잔디밭으 로 그려지는 아메리칸드림의 주거 이미지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도 커졌다. 이유는 잔디가 많은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쓸 물도 부족한 상황에서 잔디를 계속 유지해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 제기인 것이다. 물을 엄청 줘서 잔디를 잘 자라게 하고서는 또 열심히 깎아 낸 다. 그리고 또 자라게 하고 또 깎는다. 푸르른 잔디가 미관상으로는 좋 지만 감당해야 할 물과 비용은 아주 큰 낭비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천연 잔디를 없애고 인조 잔디를 까는 이가 늘어났다. 풍요의 시대는 끝났 다. 이것은 금전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환경과 자원도 더 이상 낭비해 서는 안 된다. 이제 절제의 시대다. 오히려 절제를 적극 드러내는것이 멋진, 절제를 과시하는 시대다.
- 명품 패션에 대한 욕망이자 소비 열풍이 최근 수년간 처음 불었던 건 아니다. 2000년대에도 불었고 2010년대에도 불었다. 20년 전 열풍 의 주도자였던 당시 2030세대는 지금 4050세대가 되었다. 이들이 가 진 제품과 차별화시키려고 명품 패션 브랜드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 하기 위해 브랜드만 빼고 다 바꿨다고 할 정도로 변신한 곳도 있다. 그 렇게 해서 현재의 2030세대에게 애정을 받았지만 이제 그 기세가 꺾이 고 있다. 사실 2000년대에도 명품 열풍이 불며 루이비통 백이 '5초 백' 이라 불릴 정도로 누구나 가진 흔한 물건이 되었고, 당시 전통적인 명 품을 떠나 신규 디자이너 브랜드로 넘어간 이도 꽤 있었다. 그때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이후 새로운 명품 브랜드가 되기도 했다. 마치 이미 뜬 유명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보다 이제 갓 데뷔한 아이돌을 좋아하며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대 구분이 된다. 이전 세대가 좋아하던 브랜드 를 다음 세대가 그대로 이어 가지 않고, 자기들이 좋아할 새로운 브랜 드를 선택해 이전 세대와 차이를 두는 것이다. 전통적인 명품 브랜드 중 이런 과정에서 쇠퇴한 곳도 있었고, 다음 세대에게 외면받지 않으려 고 변신을 해서 살아남은 곳도 있었다. 요즘은 샤넬 백을 5초 백이라 부 를 정도다. 물론 샤넬 클래식 백은 1000만 원대 제품이라 비싼 가격에 엄두를 못 내서 포기하고 욕망을 접는 이들도 있지만, 아무리 가격이 비싸도 흔해지는 순간가치는 떨어진다. 흔해져서 차별화도 안 되는데 가격도 비싸고 수시로 가격 인상까지 하면 호감은 반감으로 바뀐다.
2021년 국내외에서 명품에 대한 소비가 급증한 것은 명품업계가 잘해서가 아니라 부동산과 주식, 코인 등 자산 시장의 성장에 따른 투 자 수익을 거둔 이들의 소비, 그리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여행 시장이 중단되며 그전까지 썼던 여행 관련 비용이 보복 소비로 전환되며 명품 소비가 늘어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반대로 주식 시장 급락과 코 인 시장 폭락, 부동산 시장 하락 등 자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기를 겪 으면 명품 소비도 타격을 받는다. 그리고 해외여행이 점점 늘어나면 보복 소비가 줄어들어 명품 소유 대신 경험을 소비하는 욕망이 커질 것이다.
- 욕망은 실용적이지 않다. 비싸다고 무조건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 지만, 호감이 줄어들면 사그라든다. 아무리 좋은 것도 흔해지면 가치가 떨어지는 게 소비에서 드러나는 보편적 상황이다. 이럴 때는 새로운 대 체자가 등장하기에 적기다. 과시적 비소비는 아예 안 사는 것을 의미하 는 게 아니라 소비의 방향 전환이다. 누구나 알 만한 명품 패션 브랜드 를 줄 서서 사던 것에서, 아는 사람만 알 만한 디자이너 브랜드를 사는 것으로의 변화도 여기에 해당된다. 명품으로 플렉스하고 명품 오픈 런 에 적극적이었던 지금의 2030세대들이, 명품 패션 브랜드 대신 상대적 으로 가격도 싸고 개성도 드러낼 수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로 넘어가고 있다. 한번 넘어간사람들에게는 비싸고 흔한 명품 패션 브랜드의 제품 들이 시시해 보일 수 있다. 그들로서는 2030세대가 과시적 비소비를 주류 욕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명품 시장 에 가장 쉽게 진입할 영역이 명품 패션이라면 미술품, 가구, 와인, 파인 다이닝 등도 2021년에는 성장세가 높았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 줄 서야 할 맛집은 계속 등장한다. 오픈 런 할 정 도의 맛집이 계속 등장하는 것은 놀라운 천상의 맛이 계속 등장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의 희소성을 원하는 이가 많다는 의미다. 특히 2030세대에게는 새로운 경험, 새로운 소비를 과시하려는 욕망이 비싼 물건을 자랑하는 욕망에 견줄 만큼 크다. 물건 소유에 플렉스를 했던 것에서 경험과 취향에 플렉스하는 것, 돈이 아니라 개성과 차별화 를 드러내는 것이 곧 새로운 플렉스다. 과시적 소비에서의 플렉스는 누 가 돈이 더 많은가 하는 측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금수저가 무조건 유리 했다면, 과시적 비소비에서는 누가 더 트렌드에 민감한가, 누가 더 유 니크한 경험과 취향을 드러내는가가 중요하기에 금수저가 아니어도 과시에서 얼마든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 비소비와 무지출 트렌드가 소비와 플렉스가 보여 줄 수 없는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면, 빈티지 트렌드는 희소성과 특별함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그 바탕에는 신제품이 가질 수 없는 히스토리와 스토리텔링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앤티크, 리페어 등과 연결되면서 지속 가능성이 강화된다.

- 개성, 취향, 특별함, 차별화에 대한 욕망은 소비를 넘어 체험에서도 계속된다. 2030세대 여성을 중심으로 대세는 골프에서 테니스로 이동하고 있다. 골프만큼 패셔너블하고 귀족 스포츠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테니스는 골프보다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 2030세대에게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리고 운동에는 패션 스타 일이 중요하다. 활동성 때문에 주름진 스커트를 입는 것은 골프나 테니스가 같고 이를 패션 아이템으로 여기는 태도도 비슷하다. 테니스스커 트는 흰색의 주름진 짧은 치마로 활동성 높은 옷이다. 여성용 골프 스커트는 주름진 치마인 플리츠스커트인데 테니스 스커트와 마찬가지로 활동성이 좋아 운동할 때 입어도 효과적이다. 골프를 치지 않지만 골프 웨어에 관심을 가지는 여성도 많고, 테니스를 치지 않지만 테니스 웨어 에 관심을 갖는 여성도 많은 것은 '운동 자체가 아니라 '스타일' 때문 이다. 활동성을 위해 바지가 아닌 주름진 미니스커트를 선택한다는 것 은 활동성도 좋으면서 여성성도 표현하기 위해서다. 활동성 좋은 레깅 스 유행도 계속 확산되겠지만 주름진 미니스커트의 유행은 오래갈 가 능성이 크다.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성성을 드러내는 데 골프 패션, 테 니스 패션이 선택되고 있으며 이는 패션업계로서는 계속되는 기회다.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된 원격/재택근무. 기업과 근로자들은 집에서도 일만 잘하고 얼마든지 성과가 나온다 는 것을 확인하자 한발 더 나아가기 시작했다. 휴가지에서 근무 하는 워케이션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워케이션은 지방자 치단체의 가세로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 워케이션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IT 기술의 발달과 인터넷 인프라의 확산으로 21세기에 들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디지털 노마드를 자처하는 이들이 늘어 갔다. 원래 노마드는 중앙아시아, 몽골 등에서 목축을 하며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는 유목민을 지 칭한다. 생존을 위한 목축업 종사자의 유랑은 뭐 그리 대단한 게 아니 다. 하지만 이들 유목민을 뜻하는 라틴어 '노마드'를 철학적 개념으로 만들자 말이 가지는 힘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차이와 반복》 (1968)이라는 책에 서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철학적 개념으로 '노마디 nomadism'을 사용했다. 그 후로 사람들에게 노마드는 유랑하는 목축 업자가 아니라 한곳에 안주하지 않고 자아를 찾아 이동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1970년대 캐나다의 미디어 학자 마셜 매 클루언 Marshall Mcluhan도 미래의 사람들이 첨단 전자 기기를 이용해 여 러 나라를 옮겨 가며 일할 것이라 예측했을 때도 '노마드'라는 말을 썼 다. 이후 노마드가 대중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다. 모든 사람이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로 일하고, 인터넷 비즈니스를 비 롯해 IT 서비스가 일상화되며, 모든 산업이 IT화되는 시대에 잡 노마 드, 디지털 노마드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에게 해당되 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미래학자 군둘라 엥리슈 Gundula Englisch가《잡노마드 사회》 (2001)라는 책을 통해 잡 노마드를 정의했고, 프랑 스의 사회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2003)이라는 책을 통해 21세기를 노마드의 시대로 규정했다. 유럽은 수많은 국가가 서로 연결되어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고, 언어의 장 벽도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국가를 옮겨 가며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수월하다. 그래서 노마드를 '유로 노마드'라고도 하고, '비즈니스 집시'라고도 한다. 사실 노마드는 디지털 노마드이자 잡 노마드를 포함 하는 말이다. 이후 스마트폰이 촉발한 모바일 혁명과 첨단의 기술적 진 화, IT'가 모든 산업을 주도하면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산업 4.0 혹 은 4차 산업 혁명 같은 말들이 일상용어처럼 사용되었고, 우리는 더더 욱 노마드 라이프를 주목하게 되었다. 노마드 라이프의 한 요소가 바로 워케이션이다.

- 우리나라에서 2004년 7월부터 시행된 주 5일 근무제. 당시 이 를 두고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현재 치열 하게 논의되는 주 4일 근무제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 만 중요한 것은 휴일을 늘려 하루 더 놀자는 것이 아니다. 전 세 계는 생산성과 복지를 모두 충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 했다.
- 주 5일제가 자리 잡은 데에는 포드자동차가 역할을 했다. 1926년 포드 자동차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는 것을 표준화시켰다. 당시 일 요일만 쉬고 주 6일 근무제가 보편적이었는데 하루 10시간씩 일했다. 이것을 주 60시간에서 40시간으로 파격적으로 단축시켰다. 왜 헨리 포드는 6일이 아닌 5일만 근무하게 만들었을까? 노동자를 배려해서 더 쉬라고 그랬던 것일까? 아니다. 생산 라인이 기술적, 과학적으로 진화 하고 노동자의 생산성까지 높아지면 근무 시간을 줄여도 오히려 생산 은 더 늘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동일 임금으로 6일 대신 5일을 일하면 노동자들은 줄어든 시간만큼 더 열심히 일해서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이론을 믿었고, 실제로도 생산성이 높아졌다. 이를 계기로 주 5일 근무 제를 선택하는 기업이 늘어 갔다.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의 이해관계 가 반영된 것이 근무 시간 단축이다. 

- 이제 우린 도시냐 농어촌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는 시대를 맞았다. 기술의 발달, 산업의 변화, 교통의 발달은 우리 가 머물 공간을 확장시켜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 낸다. 세컨드 하우스는 모두의 욕망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 불안한 세상에서 걱정을 달고 사는 것도 당연하고, 그런 상황에서 점점 자기만 챙기는 이기심이 발동하는 것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 이럴 순 없다.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쓸데없는 과잉 근심 대신 좀 더 생산적인 것에 집중할 필요도 크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것이다. 극단적 이기심이다.
-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 된다는 아주 못된 단어다. 손실, 고통이라는 뜻의 독일어 'Schaden'에 기쁨, 환희 라는 뜻의 독일어 'Freude'를 합친 말이다. 독일어를 합쳐서 만든 말 인 만큼 독일에서 유래된 말인데, 영어권에서도 이 단어 그대로 쓴다.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덴마크어 등에서도 이 말 을 쓴다. 이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전 세계에서 이 단어의 의미를 담은 말을 쓰고 있다. 사실 우리말에도 있다. '잘코사니'는 국립국어원 표준 국어대사전에도 나오는 말로, 미운 사람의 불행을 고소하게 여길 때 내 는 감탄사다. 요즘 만들어 낸 신조어가 아니다. 홍명희의 《임꺽정》, 채 만식의 《탁류》 같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문학 작품에도 쓰였다. 《임꺽 정》이 16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 걸 감안하면 잘코사니라는 말도 꽤 오래된 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시대 문헌 중에는 잘코사 니의 옛말인 '잘코셔니'로 쓰인 것도 있고, 제주도 방언으로 '잘콰니'가 있을 정도다. 즉 아주 오래전부터, 전국적으로 다 썼단 얘기다. 우리에겐 '쌤통'이란 말도 있다. '쌤통'은 남이 낭패 본 것을 고소하게 여긴다 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 또한 표준국어대사전에 있는, 오래전부터 보 편적으로 쓰는 말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같은 말도 비슷 한 감정인데, 샤덴프로이데의 우회적 표현이다. 샤덴프로이데라는 말 자체를 전혀 몰랐을 때에도 우리가 그 비슷한 말을 써 왔다는 건, 이러한 감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 욕망에 부합하는 셈이다.
-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1788~1860)는 "To feel envy is human, to savor schadenfreude is devilish(시기를 하는 건 인간적이지만, 샤덴프로이데는 악마적이다)"라는 말로, 샤덴프로이데를 아주 강력하게 경계했다. 사실 시기와 질투는 남의 행복 때문에 내가 느 끼는 고통이다. 샤덴프로이데는 남의 불행 때문에 내가 느끼는 기쁨이 니 쇼펜하우어의 말이 맞기도 하다. 하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 픈 건 내가 사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친구가 잘나가면 질투하는 것 도 내가 못난 친구라서 그런 게 아니다. 질투가 인간의 본성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치열한 경쟁과 승자 독식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보 편적인 감정이다.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씁쓸한 문제다. 우리가 그 만큼 여유가 없고 불안해서는 아닐까? 이런 불안감이자 위기의식이 정 부와 지자체로선 해결할 정책 과제가 되고, 기업으로선 풀어야 할 소비 자 욕망이 된다. 위기가 증폭될수록 불안과 위안을 위한 산업은 커질 수밖에 없다.

- 지속 가능성, 친환경성 관련 기술 분야는 가장 전망 좋은 미래 비즈니스 분야다. 전 세계의 돈과 인재가 모이고 있는데, 이건 단지 지구를 구하자는 명분 때문만이 아니라, 강력한 비즈니스 기회 때문이다. 클린 테크는 모든 산업으로 전방위적인 확장을 하고 있다. IT가 모든 산업을 주도하며 세계의 돈을 빨아들였던 것처럼, 클린 테크도 강력한 주도자가 될 것이다.
- 클린 테크놀로지 Clean Technology, 즉 클린 테크clean tech는 에너지 및 자 원의 소비와 오염 물질 발생을 줄이고, 탄소 감축과 제거 등을 하는 환 경기술이다.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 에너지 기술을 비롯, 저전력 기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 탄소 배출 측정 기술, 탄소 포집과 제거 기술, 폐기물 처리, 배터리 기술, 전기차, 전기 비행기 등도 클린 테크 에 해당된다. 클린 테크와 IT 기술과도 밀접한 관계다. 전 세계의 모든 산업 구조가 저탄소로 전환되고, 모든 비즈니스가 지속가능 경영으로 재편되고 있는 시대, 투자 자본들도 클린 테크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2021년 클린 테크 스타트업으로 600억 달러 이상이 유입되었고,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50% 증가한 수치로, 거래 규모 가 대폭 증가했다. LG그룹은 바이오 소재, 폐배터리 · 폐플라스틱 재활 용, 탄소 저감 기술 등 클린 테크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향후 5년 간 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실 국내외 글로벌 기업 들과 글로벌 투자 기관들도 클린 테크를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다. 

- 이미 우린 사람이 아니어도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이건 사람이 싫어서 생긴 변화가 아니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대화시켜야 하는 시대여서 그렇다.
- 빅 테크 기업들은 직원 수는 적으면서도 막대한 매출을 거둔다. 반면 제조 기업들은 규모의 경제를 위해선 막대한 투자와 대규모의 인력 이 필수였다. 하지만 이제 제조 기업들도 공장 자동화를 통해 생산성 극대화를 지향한다. 테슬라는 자동차만 혁신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자 동차 생산 공장을 혁신적으로 만들었다. 기존 자동차 생산 방식이 수 많은 부품과 금속 패널들을 용접해서 연결하는 것이었다면, 테슬라는 거대한 하나의 금속판을 주물 틀에 넣고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찍어 내 하나로 만드는 초대형 다이 캐스팅die casting 공법이다. 이를 위해선 6000~8000톤급 초대형 캐스팅 설비가 필요하다. 테슬라에선 이런 제 조 공장을 기가 팩토리라고 부르고 테슬라의 생산 방식을 기가 캐스팅 (기가 프레스)이라고 부른다. 테슬라의 방식은 기존 자동차 생산 공정에 투입되는 사람을 대폭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투입되는 로봇도 3분의 2 정도, 컨베이어 시스템 면적도 20%, 생산 단가도 40% 줄인다. 당연 히 생산 시간도 줄인다. 마치 붕어빵 찍어내듯 기가 캐스팅으로 차를 빨리 찍어 낸다고 생각해 보라. 테슬라가 다른 자동차 회사보다 영업 이익이 훨씬 높은데, 향후 공장 자동화와 기가 캐스팅 설비가 더 확대 되면 영업 이익률은 더 높아질 것이다. 2021년 영업이익률은 12.1% 를 기록했던 테슬라는, 2022년 1분기엔 19.2%, 2분기엔 14.6%의 영업 이익률을 기록했다. 자동차업계로선 상상도 못 할 영업 이익률이다. 참고로 현대자동차의 2021년 영업이익률은 5.7%다.
- 기가 캐스팅은 다른 자동차 제조사는 쉽게 따라 하기 어렵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기가 캐스팅을 위해 관련 기술도 직접 개발해 특허도 확보했고, 금속 물성의 균일성 유지를 위해 특수 알루미늄 합금도 개발했다. 특히 합금 개발은 스페이스X의 우주 항공 재료공학에서 확보된 기술력이 적용되었다. 그리고 초대형 캐스팅 설 비를 만들 수 있는 업체도 세계에 2곳(이탈리아 IDRA, 중국의 임프레스플러 스)밖에 없는 데다, 이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각기 연간 9대 정도 다. 초대형 다이 캐스팅 방식을 통한 공장 생산성 혁신의 우위를 테슬 라가 한동안 유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볼보는 2025년을 목 표로 테슬라의 방식과 같은 초대형 캐스팅으로 자동차를 생산하려고 하고, 다른 글로벌 자동차에서도 생산 라인을 혁신하지 않을 수 없다.
- 테슬라의 2021년 생산 대수는 93만422대였는데 미국 프리몬트와 중국 상하이에 있는 공장 2곳에서 만든 것이다. 공장 1곳당 47만 대를 만 든 것인데, 기가 캐스팅 설비는 프리몬트에 2개, 상하이에 3개가 있다. 2022년 3월에 독일 베를린 공장, 4월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을 각기 오픈했다. 베를린에 8개, 오스틴에 3개의 기가 캐스팅 설비가 가 동된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중국 공장이 폐쇄되는 악재를 겪었음에 도 2022년 연간 출하량은 150만 대 정도로 예상되고, 2022년 연말에 테슬라의 생산능력은 연간 190만 대 규모가 될 것이다. 테슬라의 목표 는 2030년에 연간 2000만 대 생산이다. 이 목표대로 된다면 전기차 분 야에 국한된 1위가 아니라 생산 대수에서 전 세계 자동차 회사 중 압도 적 1위가 된다. 현재 1위인 토요타가 1000만 대 수준이다. 제조 경쟁력 이 높은 독일, 일본, 한국, 미국 모두 자동차 강국이기도 하다. 한국은 IT 분야에서도 서비스가 아닌 제조에서 경쟁력을 가진다. 한국의 대표 적인 수출 분야인 철강, 선박, 석유 화학 등도 제조다. 결국 제조 경쟁력 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장 자동화이자 스마트 팩토리를 통한 제 조 혁신으로 가야만 한다.

- 축소 지향과 극단적 효율성도 과시적 비소비와 연결되는 트렌 드다. 관성적 소비를 과감히 버리고, 줄이는 욕망이 일상으로 확 대된다. 우린 극단적 효율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디까지 버리고 줄일 수 있을까? 막연한 풍요의 시대는 끝났다. 절제의 시대다.
- 자발적 고립 실험의 대명사 격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란 책에는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 한 것이고, 두 번째 의자는 우정을 위한 것이고, 세 번째 의자는 사교를 위한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자발적 고립을 위해 호숫가 숲속 오두 막집으로 갔지만, 찾아올 친구나 연인을 위한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늘 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 올지도 모를, 아주 가끔 올 사람을 위 한 의자를 한정된 공간 안에 처음부터 준비해 뒀다는 것은 사회적 관계 이자 교류를 버린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자발적 고립을 위한 과감한 실험을 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지만, 그의 외로움 예찬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도 느슨한 연대가 병행되어야 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린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사회와 연결되어 살아간다. 이런 연결이 주는 이득도 손해도 있다. 일방적 연결과 관계에 수동적으로만 대응했던 사람들이 점점 자기 주도권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이다. 그러니 과거의 관성 을 이어 갈 이유는 계속 줄어든다.
- 우린 의식주에서도 과잉 소비를 했다. 과거로부터 이어 온 관성도 소비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새로운 소비도 한다. 한 손엔 아날로그, 다 른 손엔 디지털을 쥐고 이중으로 소비하기도 한다. 축소 지향과 극단적 효율성도 과시적 비소비와 연결되는 트렌드다. 관성적 소비를 과감히 버리고 줄이는 욕망이 일상으로 확대된다. 우린 극단적 효율성의 시대 를 살아가고 있다. 어디까지 버리고 줄일 수 있을까? 막연한 풍요의 시대는 끝났다. 절제의 시대다.

-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디테일 에 강해졌기 때문이다. 음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완성도가 높고, 트렌디하다. 이는 한국의 대중문화소비자들의 경험과 취향 이 상향 평준화되고, 대중문화 생산자들도 상향 평준화될 정도 로 역량을 성장하고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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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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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폭식사회

사회 2023. 1. 24. 15:23

- 사이버공간과 메타버스는 실제 무엇이 다른 것일까? 우선 인터넷 기술에 대한 강조의 차이가 보인다. 사이버공간은 가상 인공물 재현의 실감 효과보다는 인터넷 초기 특성인 상호 연결된 컴퓨터 네트워크처럼 인간들의 자유로운 소통과 평평한 관계를 강조한다. 달리 말해 자유로운 의식들의 범지구적 소통 공간으로서 관계성이 우선한 다. 반면 메타버스에서는 흔히 강조되듯 물리적으로 방대 한 데이터 저장, 실시간 처리 기술, 3차원 그래픽 기술과 혼합 현실 기술이 언급된다. 전통적인 익명의 평등한 연결 과 관계보다는 현실 같은 가상의 실재감에 더 무게가 쏠린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아 보이는 '디지털 휴먼을 개발하려고 하는 것처럼, 실재하는 현실과 인공 축조된 가상의 감각 차이를 무너뜨리는 기술 특성을 강조한다.
- 디지털 감각의 차이도 존재한다. 사이버공간의 은유가 흥행하던 시절에는 물질계 논리가 디지털계로 확장하 려는 힘이 강했다. 중심축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 논리다. 자연스레 현실 사회의 특징과 권력 관계가 인터넷 공간에 주로 모사되거나 복제되었다. 반면 메타버스 시대에 오면, 물질과 디지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놓이거나 때로는 한데 뒤섞인다. 메타버스에서는 종종 신생의 디지 털 논리가 현실에 영향력을 미친다.
가령,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각자 아바타를 만들어 가상 사무실에 출근하고 일하고 회의하고 강의하고 업무 를 처리하는 일이 흔하다. 아바타 활동은 더는 우리가 알던 단순 게임이나 놀이로 그치지 않는다. 가상의 놀이와 활동은 그 자체 현실의 일을 대신하거나 일의 방식이나 속성을 바꾸는 등 실제적인 구속력을 갖는다. 즉, 사이버공간은 현실에 미치는 디지털의 반작용이 미미했던 반면, 메타버스에서는 우리의 가상 활동이 우리 현실의 효과로 직접 연결 되고 혼합된다.
- 크립토 창작 노동자는 특히 NFT'라는 가상화폐가 지닌 불안정한 금융시장으로 인해, 자신의 창작 보상을 현 금이 아닌 가상화폐로 받기에 가상 자산의 등락 그래프에 의존하는 위태로운 생존 조건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더리 움 등 가상화폐 시장의 등락에 노동 대가의 실질가치가 달 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개별 창작의 가치는 갈수록 글로벌 가상 금융시장의 코인과 토큰 시세 변동에 의존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기술 문제일 뿐만 아니라 자산 증식과 투자(투기) 논리가 자신의 창작 작업 변수로 함께 들러붙는다는 것 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창작물의 가치는 더 불안정해지고 휘발성 또한 극도로 높아질 것이다.
- 클럽하우스는 처음부터 이미 개방형 설계의 소셜미디어로서는 자격 미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클럽 하우스의 격자로 쪼개진 방 설계 방식은 소통의 한계로 작 용했다. 처음부터 작은 주제의 방들로 쪼개진 클럽하우스 구조는 완전히 열려 있는 개방적 네트워크 구조의 트위터 와도 쉽게 대별된다. 분화된 방 구조는 말의 깊이와 다양 성을 얻는 대신 말의 활력과 밖으로 열린 연결에 제약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클럽하우스에서는 말이 바이러스처 럼 무한히 복제되어 빠르게 전파되는 트위터류의 '바이럴 viral' 파장과 외부 확장이 일어나기 어렵다. 즉, 누군가의 말이 방 안에서는 울림을 가질 수 있으나 그 방을 빠져나오는 순간 세력을 잃고 단절되어 끊기는 단속이 크다.
오히려 클럽하우스는 공통의 정치·사회적 의제 확 산보다는 특정 취향과 세부 주제에 따라 대화방들로 나뉘 어 밀도 있게 정주행하는 대화형 모델에 적합하다. 공통의 사회 의제와 감각 확장에 취약해서, 외부로 나가려는 들끓 는 이용자들의 '떼' 정서가 존재하더라도 이를 좁은 방 안에 가둘 공산이 크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말의 파괴력과 외부 확장성을 무기로 삼아 평평하고 개방적이었던 초기 트위터의 소셜미디어 모델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클럽하우스는 상대적으로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면모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 래서일까? 클럽하우스 이용자들은 방 구조 안에서 권위를 가진 방장 중심의 위계적 설계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방 안에서 평등한 듯 보이는 대화 형식과 비교하면 현실 세계에서 권위를 가진 이들이 가상 대화방의 방장이 되면서, 그들의 위력이 아주 쉽게 각 대화방에 복제되는 경향이 감지되었다. 관객이자 이용자는 방장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를 교체하거나 내쫓기 어려웠다. 방이 싫으면 나갈 권리를 누리는 것 외에 대부분 듣는 위치에 있었다.
- 클럽하우스는 실패한 사례로 남았지만, 향후 소셜미디어 플랫폼 사업자들이 이용자들의 '목소리 채굴 경제'를 개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경종을 울린다. 대중이 매 번 글을 올리고 사진을 올리고 영상을 편집해 올리는 행위 가 이제까지 소셜미디어 플랫폼 비즈니스를 떠받쳐왔다는 것쯤은 상식에 속한다. 당연히 클럽하우스 대화방에서 와글거리는 음성과 대화는 그 자체로 닷컴 공장을 위한 신생의 땔감이자 유용한 데이터 자원이 된다. 글· 이미지 · 영상에 이어, 인간 음성과 대화가 자본주의의 부를 불리는 신흥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판했던 실리콘밸리 혁신가들은 명민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클럽하우스와 유사한 음성 서비스를 개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큰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목소리 채굴의 수익성이나 대중성이 그리 무르익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은 수면 아래 가라앉은 듯 보이지만, 목소리 채굴은 언제든 재가동될 인간 생체에서 뽑아낼 자본주의의 마지막 데이터 자원일지도 모른다. 소셜미디어 업계 빅테크들이 앞으로 음성과 대화를 갖고 어떤 수익 모델을 구상하고 이를 위해 어떤 종류의 인플루언서를 양성해 적소에 배치할지 주의 깊게 살펴볼 일이다.
- 보통 화석 원료에 의존하는 내연기관 엔진은 자동차 기술의 꽃이라 불렸다. 그래서 완성차 공장에 엔진 공장이 함께할 정도로, 엔진과 변속기로 이루어진 내연기관 구동 계는 꽤 복잡해 조립 공정이 중요하게 취급된다. 현대·기 아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일감은 주로 이들 공정에 집중해 왔다. 이제 전기차를 생산하게 되면 부품 구성이 단순해져 조립 공정이 매우 축소된다. '엔진' 대신 배터리팩과 모터, 변속기 대신 감속기로 이루어진 '파워트레인powertrain (전 기차 구동계)'이 하나의 모듈로 묶여 제작된다. 여기서 '모 듈'은 각 부품을 레고 블록 조립하듯 묶어 조립한 부품 덩 어리로 보면 된다.
보통 3만여 개로 구성된 내연기관의 부품들이 전기차에서는 30퍼센트 이상 줄어든다. 모듈화로 조립 과정 자 동화가 용이해 공정이 많이 축소되어 노동 인력은 절반 이 상 불필요하다. 전기차 파워트레인 모듈은 굳이 엔진 공장 시절처럼 완성차 공장 곁에 두고 제작될 필요도 없다. 현 대차는 진즉에 현대모비스를 완성차 공장입지와 상관없는 곳에 두고, 전기차 핵심 모듈 부품사로 키워왔다. 그리고 이들 전기차 부품 모듈 제조 공정은 주로 비정규직 하도급 노동자들의 일이 되었다.
- 전기차 도입을 단순히 자동차 산업 체질 개선 정도로 봐서는 곤란하다. 전기차는 노동시장만의 문제가 아니 라 우리 사회의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 노동자들의 생존과 급격한 사회 변화를 준비하는 화급한 국가 의제로 취급하고 다루어야 한다. 노동에 미칠 파장과 사회적 대가가 과연 어찌 될 것인지에 대한 예측과 대안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전기차로 인한 기술 실업과 고용 촉진 효과 예측, 울산 등 지역 경제 파장 분석, 주요 내연기관 부품업체 등 일자리 파급 효과와 대비책 마련, 노조 대표들 의 국가 산업 정책 개입과 참여 조건 마련, 노동 인력의 재 훈련과 전환 배치, 장기 실업과 이직 상태에 대비하는 전환 고용유지지원금과 고용보험 등 여러 '정의로운' 전환 정 책 수단이 다각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 전 기차 전면 도입의 후폭풍을, 아니 더 나아가 사회 결속의 붕괴로 번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기차 전환 문제는 우리 사회 공동의 의제가 되어야 한다.
- '닷컴 시장 교란종'이던 카카오를 현재의 국가 기간 통신망처럼 보이도록 부채질했던 과오는 어찌 보면 각종 공적 서비스를 카카오톡 알림 등에 쉽게 연동해왔던 중앙 정부와 지자체의 무신경증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빵에 배합된 소금처럼 이미 한 번 기술적으로 굳어져 사회적으로 특정의 기술 디자인이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 그 관행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규제의 공백 지대에서 마구 헤엄치던 시장 포식자를 그저 방관해왔던 시절에다 카카오 플랫폼 에 각종 공적 서비스를 얹혀 연동해오던 관행이 익숙해지 면서, 어느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대한 플랫폼 공룡을 국가가 나서서 키운 꼴이 되었다.
- 플랫폼의 문제는 시장의 무차별 폭식과 자본 축적을 넘어 그것이 인간 의식과 일상에 파고들며 중독과 의존을 유발하는 데 있다. 즉, 시장 독점에 더해 플랫폼은 일종의 '의식 독점'을 꾀한다. 매출액 규모에 의존한 시장 지배력 으로만 플랫폼 독점을 판단하기는 어려운 정황인 셈이다.
규제의 틀로 플랫폼 기업의 매출액 규모는 물론이고, 이용자와 입점 업체수, 이용 빈도와 연계 서비스 연결 정 도, 시가총액, 알고리즘 등에 의한 시장 교란과 우월적 지위 남용 등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을 판단할 새로운 잣대가 필요하다. 플랫폼 독과점 양상을 비가시적인 의식 독점과 연계해 측정하기 위한 다양한 규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 사태로 인해 카카오 플랫폼의 전면 국유화 주장 도 간혹 제기된다. 설사 그것이 실제 가능하더라도 이는 다 소 위험한 발상으로 볼 수 있다. 카카오의 일상 시민 데이 터가 국가 관리의 데이터 체제에 병합된다면, '플랫폼 국 가' 빅브러더에 의한 초유의 사회 통제 모델이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 스마트 시티 계획이 내재하고 있는 시민들의 데이터 권리 침해 문제가 실제 사업 취소로 이어진 극적인 사례 가 있다. 구체적 내용은 이렇다. 구글은 2015년부터 전 세 계적으로 살기 좋기로 손꼽히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공들 였던 스마트 시티 계획을 2020년 5월 전면 백지화하는 철 수 결정을 내렸다. 구글은 공식 석상에서 철수 이유에 대해 코로나19 국면 속 미래 경제 상황이 불투명해서라고 언급 했지만, 그 속사정은 달랐다. 구글은 스마트 시티 계획 추 진 중에 개인 데이터 수집·활용과 관련해 지역 시민단체 들의 불신을 계속 초래했고, 이로 인해 스마트 시티 설계를 밴쿠버 거주자들에게 설득하는 데 실패했던 까닭이다.
- 겉으로만 보면 구글과 같은 빅테크의 글로벌 기술력과 거대 민간 투자를 통해 밴쿠버를 첨단 도시재생 사례로 만드는 일은 누가 보더라도 매력적인 구상이다.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시당국은 물론이고 주정부와 총리까지도 열 광했다. 도심 해변 부지에 첨단 미래형 기술을 갖춘 아파트 와 콘도·공원·학교·사무실 등이 축조되고, 자율주행차가 운행되고, 드론을 이용한 배달과 배송이 이루어지고, 언제 어디서든 연결이 가능한 유비쿼터스 인프라 기반이 마련 되고, 환경친화적 생태 기술이 도입되는 등 스마트 시티 청사진은 화려했다. 물론 이 스마트 시티의 주된 상상력의 출처는 밴쿠버 지역민이 아닌 미국 구글 회장 에릭 슈밋Eric Schmidt의 머릿속이었다.
구글의 도시재생 계획을 담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 열사 '사이드워크 랩sidewalk Labs' 이 주축이 되어 진행된 이 야심 찬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는 시 공무원들에게 환영 을 받았지만, 정작 밴쿠버 거주 시민들에게 외면당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글의 스마트 시티 구상에서 기술 인프라에 각종 감시 기술을 깊게 내장하거나, 위치 정보 등 시민동의 없는 개인 데이터의 사적 활용을 용인하거나, 비식별 조처를 한 '가명정보' 처리보다 제3자에게 데이터 양도를 쉽게 하도록 하거나, 해킹과 비인가 접속에 대한 관리 감독이나 제한이 취약한 문제 등이 속속 드러났다. 이로 인 해 '스마트 시티 전략 자문 패널'에 참여했던 시민사회 구 성원들이 차례로 사임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설상가상으 로 스마트 시티 사업 프라이버시 자문관마저 비슷한 연유 로 사퇴하고, 시 당국은 구글과의 데이터 활용에 대한 불투 명한 합의 과정으로 인해 감사 지적까지 받게 되었다. 결국 밴쿠버 스마트 시티 계획은 좌초되었다.
- 기술이 우리 사회에 성장과 함께 편리와 효율을 선사해왔던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은 기술의 쓰임새에도 다르지 않다. 언제부터인지 기술이 만능처럼 군림하기 시작하면서 그로 인한 사회문제가 크게 불거지고 있다. 기술은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도 하지만 쉽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임시방편이 되거나, 아 예 문제의 본질이나 사태를 읽지 못하게 막는 면피용 알리 바이 같은 노릇을 자주 한다. 기술이 우리 사회에 쉽게 뿌 리내리는 방식에 대해 갈수록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 오늘날 '주목 경제' 아래 "조회수 자체가 돈이요 영향력이 되면, 사회적 관계가 심하게 뒤틀리기 시작한다. 즉,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서 뭐든 하는 새로운 '소셜' 어그 로 인간형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가령, 음모론자, 사이 버렉카(남의 사건·사고로 시선을 끄는 자), 프로보커터(타인을 도발해 주목을 얻으려는 자), 어그로꾼, 트롤(악의적 훼방꾼) 등 으로 지칭되는 이들이 백가쟁명식 주목 경쟁을 벌인다. 이 들은 이미 '조회수' 알고리즘 논리에 통달해 있다. 아이러 니하게도 이 '소셜' 인간들에게 훈장처럼 쌓인 구독과 조 회수는 퇴행의 정치문화를 상징한다.
- 이 순간에도 세계는 코로나19 신종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과 그것의 하위 변이 BA2.75, BA4, BA5의 또 다른 연쇄 바이러스 출현으로 인해 깊은 딜레마에 빠졌 다. 터널의 끝이 보일까 싶었는데 어두운 긴 터널이 이어진 다. 아프리카에서는 백신 부족으로 변이를 거듭했던 코로 나19 바이러스가 이제 백신 이기주의로 뭉친 선진국에 상 륙하면서 부메랑이 되는 형국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할수록 사안의 본질은 점점 '자본주의'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코로나19 충격은 처음부 터 '인수공통감염병'의 문제였다. 그것의 근원에 자본주의 의 '저렴한 자연'의 수탈 체제와 각자도생의 인간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주었다. 코로나19 방역 에서도 지구 불평등 문제는 그대로 이어졌다. 적어도 백신 보급 부족으로 인해 악화한 생존 조건은 최근 그 어느 곳 보다 빈곤국과 생태 약자를 먼저 삼키고 있다. 진정 우리는 코로나19의 문명사적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일까?
불행히도 대부분 우리는 동시대 위기 상황을 생태전환의 계기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듯싶다. 적어도 지금의 위기 상황을 성찰하는 데 우리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기술의 위상을 심각히 따져보는 데 불철저했다. 다시 말해 오늘의 기술은 성장 숭배의 대상이 되거나 그 어 떤 사회적 책임에서도 면책된 중립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인류를 이롭게 한다는 기술이 갈수록 인간의 심신을 크게 다치게 하거나 반환경적이 되어가는데도 우리는 이에 쉽게 면죄부를 주었다. 특히 대기업의 신기술이 사회 혁신으로 등치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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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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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가 바꿀 미래

사회 2023. 1. 24. 08:25

- 서양과 아시아의 세계관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서양의 평론가들은 현재의 지정학적 환경을 '세계적 무질서global disorder'라고 설 명하면서 서양의 영향력이 감소한 원인으로 자신들의 잘못된 정책을 지 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미국과 유럽이 다시 함께 행동에 나서면 서 양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와 반대로 아시아인들 은 자신들이 역사를 좌우하는 조종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미국이나 유 럽의 정책과 아무 관련이 없는 타고난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무 질서 대신 세계 인구의 절대 다수를 포함한 아시아가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
-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기 위해 조심 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국가들과 더 많은 양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이런 방식을 통해 더욱 폭넓은 외교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시아 체제는 유럽처럼 공식적인 규정이 없고 앞으로 그럴 것이 다. 아시아에는 초국가적인 아시아 의회나 중앙은행 또는 군대가 없다. 즉 아시아에는 케빈 러드 Kevin Rudd 호주 전 총리가 과감하게 제안했던 '아 시아 연합Asian Union'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통합에 대한 아 시아적 접근 방식은 상호 보완성을 키우고 위험한 쟁점들을 뒤로 미루는 방법을 포함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아시아인들은 정복이 아니라 존중을 추구한다. 서로의 이익을 어느 정도 존중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안정적인 체제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가운데 한 가지를 보여준다. 정치 지도자, 기업, 학교, 싱크탱크, 언론인, 스포츠클럽, 청년 단체, 다른 공동체들 사이 의 사회화 socialization다. 오랫동안 많은 아시아인들은 이웃 국가들에게 역 사적 반감이 있었다. 아직까지 의심과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강하게 남아 있지만(특히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아시아인들 은 외교, 비즈니스, 관광, 학생 교류, 지역의 언론을 통해 서로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있다. 아시아의 청년들은 알 자지라부터 중국중앙텔 레비전 CCTV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다른 국가의 젊은 세대 에 관해 점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아시아적 정체성 Asian-ness에 편안함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될 것이다. 정책들도 변하고 협력 관계도 깊어질 것이다. 더 많은 아시아인들이 서로 교류할수록 자신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데 더 큰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 아시아에 관한 분석에서 또 다른 중요한 실수는 아시아를 미국의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시아가(솔직히 말하면 다른 지역들도 마 찬가지로) 전략적으로 무기력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시아는 미국의 지도자들이 무엇을 하라 고 지시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의 관점에서 볼 때 지난 20년은 조지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의 무능력, 버 락 오바마 Barack Obama 대통령의 무성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성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ISIS, 이란, 북한과 중국 등 미국을 위협하는 국가들의 목록에는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미국은 이들에 대응하는 포괄적 전략을 개발하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중국의 일 대일로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인도-태평양 해양 전략 추진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아시아의 육지와 해양 지역이 현실적으로 명 확하게 구별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국가들은 그들이 공유하는 지리geography가 미국의 믿을 수 없 는 약속보다 훨씬 더 영구적인 현실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미국은 아시아 해양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태평양의 강대국이지 아시아의 강대국은 아닌 것이다.
- 따라서 앞으로 더 먼 미래의 아시아는 (역사의 많은 시기 그랬던 것처럼) 자부심이 강한 문명들이 서양의 정책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발전하지 만 건설적으로 공존하는 다극적인 지역처럼 보일 것이다. 서양 사회의 자신감과 활기 회복은 환영할 일이지만 그것이 아시아의 부활을 약화시 키지는 못할 것이다. 아시아의 번영은 구조적인 것이지 주기적인 것이 아니다. 런던과 워싱턴에는 중국의 경제가 침체되거나 민족주의자들의 대립으로 내부적으로 붕괴하면 아시아가 다시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믿 는 오만한 집단적 무지가 존재한다. 아시아에 대한 이런 생각은 타당성 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상대방의 성공을 모방하면서 점점 증가하는 부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영향 력을 확대하고 있다. 아시아의 아시아화Asianization는 단지 세계의 아시아 화를 향한 첫 발걸음일 뿐이다.
-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아 시아, 동남아시아의 역사는 아시아가 교역, 분쟁, 문화를 통해 지속적으 로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투르크, 아랍, 페르시아 문명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한국의 문명도 거의 3000 년 동안 끊임없이 지식을 축 적하고 공유해왔다. 언어가 가장 대표적이다.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는 태국, 티베트, 다른 지역의 문자 언어의 본보기가 되었다. 반면 동아시 아에서는 한자가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전파됐다. 아랍의 문자는 문자 언어로 구체화되면서 페르시아어, 쿠르드어, 파슈토어, 우르두어 등 많 은 구전 언어의 토대가 되었다. 투르크, 페르시아, 인도의 연계는 투르크 어, 페르시아어, 힌디어 가운데 동일 어원을 가진 수천 개의 언어를 만들 어냈다. 언어의 영향력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중국어가 아니라 페르시아어가 실크로드의 국제 공용어가 되었다. 당나라는 서역 국가의 상인들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페르시아어 학교를 세우고 중개인 과 무역상을 교육시켰다. 동아시아 국가들도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다 양한 사상들, 특히 불교를 기꺼이 수용했다.
- 아시아 역사의 다양성에 더해 식민주의 지배 이전에 아시아의 연결성에 관해서도 배울 것이 많다. 아시아의 상업 도시와 세계적인 도시들은 다 양한 인종과 언어로 구성된 수많은 제국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형성 했다. 10세기에 당나라 왕립 도서관의 장서는 8만 권에 달한 반면 북유 럽에서 가장 큰 도서관인 스위스의 장크트갈렌 St. Gall 수도원의 장서는 800권에 불과했다. 유럽의 탐험가들도 인도와 중국의 도시들이 런던과 파리보다 얼마나 더 큰지에 관해 직접 이야기했다. 지난 수백 년에 걸쳐 바그다드에서 델리, 장안에 이르는 많은 도시들은 세계 곳곳에서 획득한 지식을 나누고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과학과 기술 같은 중요한 분야에서 (관개와 교량 건축, 시계와 총기 제작, 종이 제작과 항해) 아시아는 발명가였고 유럽은 이런 지식을 간접적으로 전수받았다. 종이는 751년에 아랍이 당과 전쟁에서 이긴 후에 이슬람 세계에 전해졌다. 전쟁이 끝난 후에 포로로 잡혔던 중국의 기술자들이 바그다드와 다마스쿠스의 이슬람 장인들에게 종이 제작 기법을 전수했고 이후 이집트와 모로코,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전파됐다.
아시아 역사의 모든 단계에서 영토와 교역로를 확보하기 위한 지정학 적 경쟁은 전체 아시아 체제의 범위를 확대시켰다. 아랍 국가들과 몽골 제국의 충돌은 서로를 정복하거나 피하기 위한 새로운 동맹이나 중요한 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새 교역로를 개척하도록 만들었다. 이미 13세기에 몽골제국은 당시에 알려진 세계의 상당 부분을 연결시켰다. 외부와의 교 역은 송과 동남아시아의 수많은 항구도시들의 지역 경제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촐라, 스리위자야, 명은 유럽의 상인들보다 훨씬 오 래전에 인도양 교역로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 종교적 갈등이나 충돌이 체제 형성의 결정적 요인이었던 서양과 달리 아시아 국가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서로의 종교를 용인하면서 민족과 종교적 측면에서 공존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독일의 군사전략가인 안 드레아스 헤르베르크로테Andreas Herberg-Rothe에 따르면 아시아는 '다름과 의 조화 harmony with difference'를 유지해왔다. 오늘날 종교적인 차이에도 불 구하고 인도와 아랍 국가, 이란, 인도네시아의 유대 관계는 군사적이고 경제적인 협력을 통해 해가 갈수록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아시아 대륙 의 반대편 끝에 위치하고 있는 유교와 이슬람 국가들은 서로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정학적 중심축을 만드는 것이 아니 라 실크로드라는 경제의 중심축을 복원하고 있다.
비슷한 논리를 지리적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다. 유럽의 역사는 단 하 나의 패권 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두려워해왔다. 반면 지리적 측면에서 아시아는 기본적으로 다극 체제다. 자연적 장애물들이 갈등을 줄여주고 있다. 즉 먼 거리, 높은 산맥, 강 같은 다양한 자연적 경계가 아시아 국가들이 서로를 과도하게 침범하는 것을 방지해준다. 지리, 인종, 문화가 공 동으로 작용하면서 최근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분쟁은 중국과 인도, 중국과 베트남, 인도와 파키스탄) 싸움을 더 크게 벌이는 대신 교착 상태를 유지하 고 있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경쟁 국가들 사이에 힘이 한곳으로 집중될 때 전쟁이 일어난 반면 아시아에서는 적대국 사이에 상당한 힘의 우위가 있다는 인식이 있을 때 전쟁이 일어났다. 따라서 중국의 이웃 국가인 인 도, 일본, 러시아가 점점 강해질수록 이들 국가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 날 확률을 그만큼 적어질 것이다.
- 중국은 거대한 제국처럼 아시아 전체를 지배하는 불멸의 초강대국이었던 적이 없었다. 실제로 중국은 18세기에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했고 13세기에는 몽골에 항복했 다. 그리고 19세기에는 유럽의 국가들에 일부 영토를 식민지로 내주었고 20세기에는 일본에 침략당했다. 이 모든 것들이 중국이 천하무적이 아 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서양의 이론은 한 강대국의 패권주의와 나머지 국가들 사이의 무정부주의적 혼란이라는 두 가지 모형 사이에 잘 못된 선택을 강요한다. 하지만 아시아의 역사를 보면 다문명과 다극체 제가 훨씬 더 현실적이고 일반화되어 있다.
- 아시아의 지정학적 역사에서 얻은 중요한 교훈은 내부적으로 또는 이 웃 국가로부터 영구적 패권에 대한 희망을 좌절시키는 거센 저항에 부딪 치면서 어떤 국가도 아시아를 아주 오랜 동안 지배하지 못했다는 점이 다. 몽골, 명, 일본제국 등 어떤 시대에도 아시아의 이질적 국가들은 너무 흩어져 있고 다른 문화의 침투가 어려워 다른 국가들에 의해 완전히 흡 수될 수 없었다. 지난 1000년 동안 투르크, 페르시아, 아랍, 인도, 러시아 제국은 핵심 강대국을 자처하며 아시아에서 서열 체제를 구축하려고 노 력해왔다. 하지만 아시아는 언제나 다른 문명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독자 적 문명들이 존재하는 지역이 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 인도, 이란을 포함 한 상당수의 국가(문명)들은 세계 역사에서 자신들이 중심적이고 탁월한 역할을 했다는 뿌리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아시아에서는 한강대국이 다른 국가들을 아주 오랫동안 지배할 수 없었고 기껏해야 다극 체제에서 작은 지역의 중심 국가가 될 뿐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나리오다.
- 많은 러시아 사람들, 특히 유럽의 중심부 가까이에 거주하는 대부분 의 슬라브 민족들은 여전히 서양을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중심축으로 생 각하고 있다. 러시아의 지배층은 자신들의 돈을 유럽 은행에 보관하고 유럽 등 서양의 학교에서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그리고 사이프러스 와 몰타 같은 국가의 시민권을 획득해 유럽연합의 여권을 발급받고 리비 에라와 알프스에서 휴가를 보낸다. 유럽에 대한 무비자 여행이 허용되지 않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유럽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러시아 사람들을 유럽인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러시아 사람 들은 점점 더 아시아화되는 국가에 거주하는 유럽 인종이다. 수천 명의 러시아 사람들이 서양 국가의 비자 지연이나 거부에 진저리를 내고 있 다. 대신 비자가 필요 없고 날씨가 따뜻한 태국이 자녀 교육과 자금 회피 에 더 적합한 곳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도의 고아에서도 러시아 마 피아들의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 경제적인 변화는 걸프 지역의 전략적 변화에 대한 전망을 반영하는 것이다. 걸프 협력 기구의 모든 국가에서 미국과 교역은 감소하는 반면 아시아와 교역은 증가하고 있다. 동아시아가 수출하는 상품의 3분의 2, 동아시아가 수입하는 석유의 80퍼센트가 말라카해협이나 수에즈운하 또는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 100퍼센트에 가까운 인도의 상품 교역 이 수에즈운하를 거치거나 말라카해협을 통해 이뤄진다. 아세안 국가들 의 에너지 소비는 2015년에서 2030년 사이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 되는데 에너지 소비 증가의 상당 부분을 걸프 국가들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디 아람코와 아랍에미리트의 아 부다비 국영 석유 회사는 아시아 최대의 석유와 가스 수출국이 되려고 이란, 이라크, 나이지리아, 다른 산유국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 결과 산유국들이 아시아 국가들과 장기 계약 확보에 나서면서 1970~ 1980년대 같은 석유 수출국기구의 협력 체제는 붕괴됐다. 따라서 남아 시아와 동아시아 국가들은 정치적 불안과 상관없이 아랍 국가들로부터 안정적으로 석유를 수입할 수 있게 되었다.
-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한 세대에 걸쳐 소비에트연방의 주변국에서 중국 이 자금을 지원하는 새로운 실크로드에 참여하는 국가로 변신을 추진해 왔다. 이런 변화는 1990년대에 카스피해에서 카자흐스탄을 가로질러 중 국으로 가는 첫 번째 파이프라인과 상하이 협력 기구의 창설을 기점으로 시작됐다. 2005년에 중국과 카자흐스탄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 다. 10년이 흐른 후에 많은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 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이 중앙아시아에서 새로운 실크로드인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중국의 패권이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교차로가 될 것이다. 중국의 기반 시설 프로 젝트가 새로운 식민주의적 침략이라는 미국의 시각과 반대로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크로드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한다. 중국과 카자흐스탄 국경에 위치한 물류 중심지인 훠얼궈 쓰khorgas는 지역의 현대화에 참여하는 이주 노동자들과 기업인들을 위 한 무비자 환승 지역이 되었다. 고대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란인, 터키인, 남아시아인, 중국인들이 중앙아시아 국가의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 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중국의 국경지대 근처에 있는 카자흐스탄의 상업 중심지 알마티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상인이 서로 어울려 사는 거대한 용광로가 되었다. 많은 국가들은 아시아 전역에서 추진되는 중국의 기반시설 건설을 통해 중국이 아니라 자국의 경제적 목적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의 진출을 환영하고 있다.
중국이 과거 소비에트연방의 공화국들을 위해 현대화 프로젝트를 시 작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이들 국가는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 정 체 상태에 빠진 후진국들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카자흐스 탄의 철도와 파이프라인, 우즈베키스탄의 에너지와 수송 기반 시설, 투 르크메니스탄의 가스전, 키르기스스탄의 광업, 타지키스탄의 수력발전 분야에서 가장 큰 투자국이다. 이들 국가에 투자된 중국 자금은 정부를 부패시키는 원천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잔혹한 권위주의 정부들이 일정 수준의 규정을 지키고 국가 발전에 자금을 투자하도록 만 드는 역할을 했다. 현재 대부분의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소비에트연방 시 절의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은 사망했기 때문에 이들 취약 국가들은 의미 있는 미래를 건설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중국이 내륙 국가인 우즈 베키스탄의 국경지대 기반 시설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우즈베키스탄의 새로운 정부는 지역 통합을 통해 GDP를 두 배로 증대시키겠다는 목표를 선언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세계에서 해마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들 가운데 한 곳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 중국 경제의 성장 속도가 점진적으로 둔화되는 것이 아시아의 성장 열기 가 식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중국의 성장 속도는 느려지고 있지만 다 른 국가들의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 후 일본과 한국이 시작했고 그 다음은 중국(대만과 홍콩에 이어 중국의 본토), 현재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이끄는 아시아의 세 번째 성장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각각의 성장 시대는 경제적 생산 능력에 최적화된 인구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에 의해 주도됐다. 1960~1970년대에 일본과 한국의 인구는 1억 5000만 명에 조금 못 미쳤다. 1990년대에 중국의 인 구는 10억 명을 조금 넘었다. 현재 파키스탄에서 인도네시아까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들의 인구는 25억 명이고 터키-사우디아 라비아-이란의 삼각지대에 걸쳐 있는 서아시아 성장 지역의 인구는 약 3 억 명에 달한다. 50억 명의 아시아인들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보다 훨 씬 더 오랫동안, 훨씬 더 큰 성장을 누리게 될 것이다.
- 서양과 아시아, 각 지역 내에서 기술 인재의 이동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라고 불리 는 파벨 두로프Pavel Durof는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을 러시아가 아니라 두 바이와 싱가포르에서 운영하고 있다. 카네기 멜런 대학 졸업생인 싱가포 르의 잉란 탄vinglan Tan은 최근까지 세쿼이아 벤처 캐피털의 동남아시아 와인도 지역 파트너였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인시그니아 벤처 파트너스 라는 첨단 기술 투자 펀드를 만들어 몇 주만에 1억 달러가 넘는 투자 약 속을 받았다. 잉란은 "현재 가장 완벽한 범아시아적 기술 기업은 본사가 싱가포르에 위치하고 대만 출신의 엔지니어와 베트남의 사용자 경험UX 디자이너를 고용하며 인도네시아를 목표 시장으로 하는 기업이다. 그리 고 홍콩 증시에 상장하는 회사다"라고 말했다.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을 해오면서 그는 미국과 중국이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기술적으로 종속된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현지의 합작 투자 기업들은 빅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상품과 서비 스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자카르타에 본사를 두고 있는 전자 상거래 기업인 세일스톡 인도네시아는 알고리즘이 고장 날 가능성 이 높다고 지적하는 디자인을 사전에 골라내는 방식으로 잘 팔리지 않는 상품에 대한 비용 절감 방법을 모색하는 데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 로봇이 점점 더 많은 노동력을 대체하더라도 아시아는 세계 제조업의 공급망을 보유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현재 산업로봇 분야는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제조업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비율은 한국 이 500대로 일본과 독일의 300대보다 훨씬 높다. 중국의 노동자 1만명 당 로봇 비율은 36대에 불과하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또 보다 적은 힘으 로 더 오랫동안 힘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력형 외골격을 착 용하고 일할 수 있다. 고령화로 인해 중국의 노동 가능 인구는 2015년에 10억 명에서 2030년에는 9억 명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중국은 기계 설비 와 이를 만드는 외국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노동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산업 자동화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17년에 중국 가전 회 사인 메이디Midea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로봇 생산 기업인 독일의 쿠쿠 로보틱스 Kuku Robotics의 지분 85퍼센트를 60억 달러에 인수했다. 폭스콘 의 자회사이자 공장 자동화 기업인 폭스콘 인더스트리얼 인터넷의 기업 가치는 소니보다 높다. 자동화는 중국이 노동 비용을 절감하는 데 도움 이 될 뿐만 아니라 생산성을 높여주고 자동화를 선도하는 선진국에 대한 경쟁력도 강화시켜주고 있다.
-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지분 참여는 유럽이 아시아로 방향을 전환하는 속도가 점점 더 빨 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례다. 유럽 국가들의 이런 움직임은 중국이 유럽연합의 최대 교역 상대라는 점에서 매우 당연한 것이다.' 유럽 중앙은행이 위안화 보유고를 늘리고 유럽 전역에 위안화 결제 센터를 허용하는 가운데 중국과 유럽의 유동성 확대는 훨씬 더 강 력한 경제적 통합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럽 국가들은 성장성이 높은 아시아 시장에 대한 수출을 확대하는 독일의 사례를 따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일대일로 계획이 자신들의 수출에 도움 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몫을 확실히 보장하라는 메시지를 중국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 그리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부터 카자흐스탄에 있는 게르만 소수민족까지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유럽 혈통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거의 6000년에 걸친 인도-아리안족의 이주를 통해 인더 스문명은 북부와 서부 유라시아 민족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오늘날 까지 리투아니아어의 상당수는 고대 산스크리트어의 어원을 가지고 있 다. 하지만 아시아에 거주하는 유럽인들은 유럽으로 유입되는 아시아인 들과 비교하면 그 규모가 보잘 것 없다. 지난 몇 세대 만에 아시아인들은 유럽에서 대규모 지역사회를 만들면서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식민지 시 대 이후 상당수의 남아시아인들이 영국으로 이주했다. 오늘날 영국에만 200만 명의 인도인과 200만 명의 파키스탄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는 전 체 영국 인구의 5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2015년을 기준으로 모하메드Mohamed라는 이름이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어린이 이름인 올리 oliver보다 많아졌다. 1950년대 이후 터키의 이주 노동자들은 유럽의 게 르만족 국가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현재 약 400만 명으로 추정되는 터키인들은 독일 전체 인구 8200만 명의 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 시민법이 완화되면서 많은 터키인들이 독일 국적을 갖 게 됐다. 프랑스의 터키인은 약 100만 명에 달하고 네덜란드에는 6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 이후 아랍과 아프리카 사람들은 오랫 동안 프랑스에 거주해왔다. 1990년대에는 독일에서도 아랍인들이 증가 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는 중국, 베트남, 인도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 중국 충칭의 우호 협력 도시인 뒤셀도르프에는 서유럽에서 중국인과 일 본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 통일된 베를린은 세계 곳곳에서 이주민 들을 받아들이면서 문화의 중심지이자 유럽에서 가장 유라시아적인 도 시로 변하고 있다. 유행에 앞서가는 많은 지역에서 터키의 도너 케밥 doner kebab, 아랍의 팔라펠, 인도의 라시, 중국의 국수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지난 세기 아시아에 대한 유럽의 식민지 지배의 흔적이 점점 더 희미해질 수록 유럽은 인구학적으로 더욱 아시아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반 전이 아닐 수 없다.
- 유럽은 노동력 부족을 매우기 위해 더 많은 아시아인들이 필요 하다. 유럽 전역에서 호텔과 여러 시설들은 인력이 모자라 서비스를 줄 이고 있다. (하지만 자동화에는 반대하고 있다.) 독일의 많은 산업 지대에서도 노동 인력이 부족해 남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수천 명의 인력을 충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독일은 2020년까지 전국적으로 약 20만 명의 간호 사들이 필요하고 노인 인구를 돌보기 위해 필리핀 간호사들을 적극적으 로 채용하고 있다. 동시에 유럽의 기업들은 인도의 기술 인력을 절실하 게 필요로 하고 있다. 다이슨은 더 많은 영국인 기술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교육기관을 설립했지만 여전히 영국의 주요 생산 시설에는 최소 3000명의 인력이 더 필요하다. 아시아인들은 유럽 국가들의 인재 유치 경쟁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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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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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서는 쓸 만한 정보가 거의 새어나오지 않기 때문에 북한에 관한 정 보는 거의 무시하게 되지만, 앞으로 당분간 북한은 한국에게 지금보다 덜 중 요한 문제가 된다. 김정은은 30대 치고는 대단히 건강이 좋지 않고, 앞으로 20년은 더 살아야 자기 자식에게 왕조 권력을 물려줄 수 있다.
한편 김일성을 보좌했던 1세대는 거의 세상을 떠났고 중간에 낀 김정일 세 대에서 독재자가 될 만한 이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고 김정은의 지령을 받은 암살자들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다. 김정은 이후에 북한은 지도력의 공백상태에 빠질 게 분명하고, 그러면 북한은 붕괴되고 해체될 가능성이 매 우 높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게 골치 아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겠지만, 북한과 전쟁까지 가지 않는 한 어떤 문제도 최악의 시나리오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를 한국의 완전한 승리로 본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필연적으로 한국의 수출주도 경제 모델이 작동하지 않 게 된다는 점이다. 제조업 상품을 넓은 세상으로 수출하려면 다국적 공급사 슬에 참여해야 하고, 수입상품을 소비할 세계 인구에 접근해야 하며, 저렴하 고 안전한 해상운송을 가능케 하는 국제안보 환경에 참여해야 한다. 이 “모 두'가 사라지게 되는데, 그것도 2020년대에 사라진다. 거대한 중국 시장도 한국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 경제가 세계화의 종말 이후에도 살아 남을 수 있다고 해도, 중국의 정치적 전략적 구조는 협력이 아니라 중상주의 를 지향하게 된다.
한국이 이러한 난관에 적응하려면 "단지" 산업구조만 뜯어고치는 데 그치 지 않고 사회적 정치적 구조 전체를 바꿔야 한다. 일본은 1990년대 경제 붕 괴를 겪고 나서 이러한 변화를 어느 정도 그럭저럭 겪었지만, 아직 정답을 찾 지는 못했다. 한국도 이제 똑같은 난관에 직면해 있지만 일본보다 낮은 경제 수준을 기반으로 일본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불안정한 상태에서 일본이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 안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한국이 지향하는 새로운 모델이 어떤 모습일지는 불분명하지만 이에 대 해 한국은 아직까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내수를 원동력으로 삼는 경제 체제는 분명히 아니다. 한국의 인구 구조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 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솔직히 개선될 가망이 전혀 없다. 한국의 자유민주 화는 출생률 붕괴와 동시에 일어났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앞으로 닥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상당한 비율의 인구가 은퇴연령에 가까워지면 경제를 지속 가능하게 운영할 방법이 뭔가?
여기서 한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난관이 등장한다. 인구 구조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고령화에 대처할 모델을 제공해주는 "유일한 나라는 한국이 구조적인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고, 해외 시장에 한국이 계속 접근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상종도 하기 싫어하는 "유일한 나라다. 그 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일본의 경제는 20년 전 수출주도 성장 구조에서 탈피했고 막강 한 해상력을 보유한 일본은 앞으로 다가올 수십 년 동안 공해상에서 동북아 시아 지역의 만사(萬事)를 중재하게 된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경제성장 모델의 수명이 다하든, 인구 구조가 붕괴하 든, 지정학적 여건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든, 어느 한 가지 여건만 변해도 장기적으로 볼 때 나라의 결속을 유지할 그 어떤 희망도 무산된다. 그러나 한 국 사람들의 근성은 다르다 그들이 처한 지리적 여건이 어쩔 수 없이 그들 을 그렇게 만들었다. 북한, 중국, 일본 세 나라는 군사적으로는 한국보다 월 등하다. 지리적으로 세 나라는 한국을 아주 작은 공간으로 몰아넣고 에워싸 고 있다. 한국의 선택지는 제한되어 있고 실수할 여지가 거의 없다.
- 그러나 한국은 이 세 나라에 짓눌려 멸절하기는커녕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산업국가로 성장했다. 한국인들은 꺼져가는 불빛에 조바심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난관을 극복할 근성이 있다. 한국의 눈부신 성공은 두말할 필요가 없 거니와 한국의 존재 자체가 경제 이론과 지정학을 모두 거스른다. 그런 점에 서 한국은 독특하다.
앞으로 닥칠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한국은 그 독특함을 절대로 잃지 말아야 한다.

-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은 주요 강대국들이 서로 협력하기보다 경쟁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책이다. 세계질서가 와 해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세계 지도자들이 그 질서를 적극적으로 허물어야 자국에 훨씬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책이다. 우 리는 트럼프와 트럼프 같은 지도자들의 부상을 목도하고 있다. 중동지역을 두고 패권을 다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광물을 제조업에 공급하고, 석유를 유 조선에 실어 나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 상황을 극도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는 미국은 복잡한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매듭을 고르디우스 왕의 매듭처럼 단칼에 끊었다. 당장 직면한 상황을 십분 활용하기로 한 미국 대통령-다름 아닌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은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있는 브레튼우즈(Bretton Woods)로 동맹국들을 전원 소 집해 매수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과업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동 맹에 합류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든 철저하게 안보를 보장해주기로 했다. 탱 크, 군대, 함선, 당시에는 아직 개발 중이던 핵우산까지 제공하기로 했다. 미 국은 바다를 완전히 장악한 막강한 해상력을 동원해 화물의 종류와 출발지와 목적지와 국적을 불문하고 어떤 선박이든 보호해주었다. 그리고 이는 시작 불과했다:
해적과 마주치면? 걱정 마라. 미국 해군이 처리한다. 다른 나라들의 상업을약탈하는 제국주의적인 행태는 더 이상 없다.
소련이 당신 나라 정부를 축출하려고 한다면? 걱정 마라. 미국 의회가 재건에 필요한 기금 법안을 통과시켜 도와주겠다. 마셜 플랜(Marshall Plan)이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걱정 마라. 미국이 세계 어디서든 석탄과 석유를 수입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 미국은 군사력으로 페르시아만을 순찰한다.
경제의 불씨를 살리려는데 불이 붙지 않는다? 걱정 마라. 미국 시장-제2차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거대 시장이 문을 활짝 열고 당신의 수출 품을 사들인다. 그리하여 미국은 무역 적자가 쌓이게 되었다.
미국의 안보 보장을 신뢰할 수 없다고? 걱정 마라. 미국은 소련과의 전투- 소련이 시간과 장소를 선택한 전투라고 해도 상관없다에 동참해서 신뢰 할 만한 나라임을 입증하겠다. 그리하여 미국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 유로의 부상으로 유럽과 미국의 관계는 복잡해졌다. 특히 유럽인들이 유럽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의 워싱턴 정가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이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유로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 정도로 심각한 위기가 초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브레튼우즈 체제에 합류한 다른 수많은 "동맹국들도 동맹 체제의 꿀만 빨아왔다.
아르헨티나는 자생적인 위기에 봉착하자 조신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고 들 어와 워싱턴에 구제를 요청했고, 동시에 미국 국민들에게 진 부채 상환을 거부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G20 를 이용해 세계 경영에 숟가락을 얹으려 했다. 
엄청난 해외 지원금이 아니었다면 경제개발이 불가능했을 브라질은, 미국이 주도하는 기구들에서 탈피해 세계 금융 체제를 다변화하는 전 세계적인 노력에 앞장섰다.
인도는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브레튼우즈 체제를 개조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사사건건 찬물을 끼얹었다.
중국은 제1세계질서의 최대 수혜자인 두 나라에 손꼽히는데도 불구하고 미 국에 맞서 아시아의 만성적인 골칫거리인 북한을 두둔하는 한편, 또 다른 최대 수혜자인 브라질은 베네수엘라와 쿠바에게 경제적, 외교적으로 툭하 면 보호막을 쳐주었다.
제1세계질서 내의 동맹국들이 새롭게 얻은 전략적 보호막과 경제적 안정을 이용해 같은 세계질서에 소속된 또 다른 동맹국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 미 국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짜증을 느꼈다. 중국은 대만과, 그리스는 터키와, 한국은 일본과 치고받았다.
말레이시아는 공개적으로 미국 주도 경제 체제를 비난하면서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라는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이스라엘, 한국도 툭하면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산업 스파이 활동을 해서 기술부터 사업 계획, 협상 지침에 이르기까지 닥 치는 대로 훔쳐갔다.
2004년 테러공격이 발생한 후 스페인은 이슬람권뿐만 아니라 NATO 내에 서도 미국과의 협력을 중단하기로 했다.
NATO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동맹 회원국들의 방위비 분담비율은 냉전 시대 동안 미약했다. 냉전이 종식된 후 회원국들의 국방비 지출은 더할 나 위 없이 추락해 프랑스는 관광객용 나룻배를 대여하지 않고는 군대를 이동 시키지도 못했고, 독일의 잠수함, 선박, 탱크, 전투기들은 대부분 배치가 불 가능했다.
캐나다는 그저 죽어라고 못되게 굴었다. 주야장천사사건건.
- 제1세계질서가 무너지게 된 이유는 어느 한 나라의 잘못이 아니다. 미국이 든 다른 어느 나라든 한 나라의 단 한 사람의 품성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미 국은 오래전에 세계 경찰, 안보 보장, 심판, 금융지원, 일차적 수단이자 최후 의 수단으로서의 시장 역할을 수행하는 데 흥미를 잃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 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이제 거의 다 세상을 떠났고 소련의 핵이 위협이 되던 시대 후에 태어난 이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세대는 이미 세 차례 대통령 선 거에 참여했다. 제1세계질서는 그 질서의 구축이 필요했던 상황이 발생한 시 대를 몸소 겪으면서 그 질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 세대가 더 이상 생존해 있지 않게 되면 정당화하기가 어려워진다.
제1세계질서-미국이 안보를 우선시하기 위해 경제적 역동성을 포기한다 는 개념—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벌써 30년 전부터 작동하지 않았 다. 동맹 체제 전체가 한눈팔지 않고 정신을 집중해 경계해야 할 전략적 적이 없이는 그 동맹을 지탱해주는 힘은 타성밖에는 없다. 따라서 세계 체제 초의 명실상부한 세계 체제는 차츰차츰 허물어져 왔다.
- 바뀌지 않을 것들을 예단하기란 어렵다. 제1세계질서의 안보와 구조로부 터 가장 큰 혜택을 얻은 지역들은 세계적으로 교역되는 원유를 가장 많이 생 산하거나 소비하는 지역이다. 구소련과 페르시아만은 생산자이고, 유럽과 동 북아시아는 소비자이다. 제1세계질서 이후의 시대에 세계는 퍼펙트 스톰 (perfect storm)에 직면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에너지 부족 사태와 서로 맞물 린 일련의 정세 불안이 오늘날 세계가 가장 의존하고 있는 지역들에서 발생 한다.
두 번째로 우려되는 게 식량이다. 역사를 통틀어 식량공급이 가장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임이 되풀이해서 증명되어왔다. 정부가 국민을 먹여 살리지 못 하면 기아가 발생해 결국 나라의 존속을 파괴한다. 제1세계질서가 보장한 안보와 개방성 덕분에 그러한 대대적인 농업 투자와 확장이 가능했고 제국의 중심부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아가 퇴치되었다. 세계 인구는 세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2020년 현재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식량의 5분의 4 는 식량 생산지와 다른 대륙에서 비롯되는 연료와 비료와 투입재에 의존한다. 제1세계질서 없이는 건강과 영양소 공급과 열량 섭취를 가능케 하는 세계 곡물 생산량 대부분이 사라지게 된다.
- 오토너머스 리서치(Autonomous Research)의 샬린 추(Charlene Chu)에 따르면, 중 국이 안고 있는 상환불능 부채는 85조 달러에 달하며, 보다 광범위한 금융체 제가 전반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선진국 과 비교해보자면, 2007-2009년 미국의 금융위기 당시 채무자의 채무불이행 으로 압류된 서브프라임 대출의 총 가치는 대략 6천억 달러에 달했다. 게다 가 중국 부채의 대부분은 단기 부채이므로 2000년대 말 미국이 겪은 금융위 기는 말할 필요도 없고, 1990년대 말 인도네시아가 겪은 위기보다도 급속도 로 경착륙하게 된다.
중국공산당은 이따금 재정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 융자를 자제하려고 했 지만, 중국을 지켜보는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 경제를 동력을 잃고 경착륙하 기 위해 하강하는 비행기로 보는 이유가 있다. 재정 균형을 달성하려면 정치 적, 경제적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므로 고통을 촉발할 만한 그 어떤 개 혁을 시도해도 예전의 관행이 배가 되는 사태가 즉각 뒤따른다.
어떤 결말이 나올까? 시시콜콜하게 따지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만취한 채 나뭇조각으로 쌓은 탑의 아랫조각을 뽑아서 위에 끼워 넣는 젱가(Jenga) 놀이를 하는 격이다. 탑을 무너뜨리지 않고 나무 한 조각을 뽑을 때마다, 또는 참 가자가 신기를 발휘할 때마다 감탄을 자아낼지 모르지만, 결국 탑은 무너진 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큰 소음을 내면서 말이다. 중국이 여느 나라와는 달리 진정으로 독특한 사례인 까닭은 단순히 융자 모델의 규모와 집중도 때문만이 아니라, 중국의 융자는 부문을 막론하고 경제 전반에 퍼져 있고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 헐값의 융자를 통해 중국은 세계시장에 접근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세계적인 산업 공동화, 특히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발생한 미국 제조업의 공동화는 대부분 엄 청난 보조금을 지원하는 중국의 경제 모델이 야기했다고 보면 된다. 이보다 훨씬 심각한 공동화 현상은 미국처럼 사회간접자본, 교육, 기술, 정부 체제를 잘 갖추지 못한 지역들에서 일어났다. 멕시코, 인도네시아, 브라질, 인도, 남 아프리카공화국, 루마니아, 그리고 특히 구소련은그리고 사실상 중국의 도 움으로 근대화하려고 시도한 그 어떤 나라든큰 피해를 입었다.
중국은 자국의 국내 시장을 그 누구에게도 개방하지 않는다. 자국의 체제 를 작동시키기 위해서 세계의 다른 모든 시장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제 전선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중국의 (원대한) 계획을 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 보면 이는 단순히 기업의 확장이 아니라 고용의 최대화가 목적이다. 중국 지도부는 국민이 일자리가 있는 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든 대대적인 부정부패가 발생하든, 교화소를 유지하는 저항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융자를 해 경제가 돌아가게 만들면 사람들은 일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고 당은 권력을 유지한다. 중국이 원자재 생산과 소비재 제조와 판매의 모든 측면들을 독식하는 방법 말고 다른 길을 시도하는 데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을 들이붓는 경제 모델과 현재의 세 계질서를 통해 상품들을 바깥으로 배출하기가 불가능해지면 중국의 사회적 결속력은 해체된다.
- 미국 말고 다른 나라가 나서면 더 잘할까 하면 그것도 아니다. 스쿠터 타고, SUV 몰고, 체형보정 속옷과 크록스(Crocs) 신발을 즐기며, 툭하면 처방 약품을 입에 털어 넣고, <해리포터>에 광분하는 미국인들을 흉볼 이유는 수 없이 많지만, 그래도 이 모든 소비행위 덕분에 미국이 단연 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 지위를 유지한다. 이와 같이 억누르기 불가능한 광적인 소비가 현재의 세계질서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절반의 축인 경제를 지탱한다. 일본의 소비시장은 최종 소비의 측면에서 보면 미국 시장의 5분의 1에 못 미친다. 러시아는 20분의 1이다. 유럽의 경제 규모를 모두 합하면 미국과 대등한 반열에 오르지만, 경제성장에 있어서 30년 동안 미국을 따라잡지 못한 끝에 유럽연합은 제1세계질서에 의존하는 수출 지역으로 퇴화했다.
미국 없는 세계는 중상주의 수출은 극대화, 수입은 최소화한다는 개념-가 지배하게 된다. 전 세계가 공급하는 상품들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들 이켤 수 있는 미국 시장이 사라지면, 그 어떤 나라가 세계 연결망을 구축해 놓아도 그 연결망에 합류하려는 욕구는 갑자기 시들해지게 된다. 중국이 구 축할 "질서"는 중국이 세계 원자재를 있는 대로 집어삼키고 토해낸 상품들을 세계의 목구멍에 최대한 많이 쑤셔 넣는 체제를 기반으로 하게 된다.
이런 방식은 받아들이는 나라 입장에서 보면 뇌물로 느껴지지 않는다.

- 미국은 안보를 보장하고 세계 어디든 화물운송을 가능케 하고 세계 시장을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기축통화 역할을 함으로써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해상력으로 세계를 순찰하는 책무와 마찬가지로 기축통화를 유지하는 일도 아무나 못한다. 다음과 같이 매우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1. 엄청난 통화량이 필요하다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나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수조 달러에 달하는 경제활동이 윤활하게 이루어지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거래와 경기순환이 화폐의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그 양이 어마어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나라 들이 불안해서 기축통화로 쓰지 않게 된다.
2. 게다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나라는 경제 규모와 비교해볼 때, 대외무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미미해서 화폐가치의 통상적인 등락이 국내 경제를 지나 치게 교란시키지 않아야 한다.
3. 기축통화국은 자국 화폐의 가치 등락에 지극히 초연해서 화폐시장에 개입 해 평가절상이나 절하하려는 시도를 자주 하지 않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과 잉으로 환율을 조작하려는 낌새만 풍겨도 다른 나라들은 자산이 위험에 처 하고 기축통화에 대한 신뢰를 잃어,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4. 패권국이 되려면 자국의 통화가 다른 나라들 마음대로 국내시장을 드나들 도록 기꺼이 내버려두어야 한다. 필요할 때 언제든 확보할 수 있을 만큼 화 폐 통화량을 충분한 수준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애초에 그 화폐를 기축통화 로 삼을 이유가 없다.

- 온화한 기후의 영국해협은 가장 협소한 지점이 겨우 25마일로서 세계 역 사를 말 그대로 좌지우지해온 독특한 지리적인 특징으로 손꼽힌다. 영국해협 은 군대의 침공을 막는 데는 알프스산맥에 버금가는 장애물이 되어주었지만, 항해에 통달한 영국인들이 바깥으로 진출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 다. 유럽의 다른 모든 나라들과는 달리 영국은 따분함을 견디지 못한 다른 나 라의 군대가 재미삼아 지나갈까봐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었고, 따라서 육군 을 배치해야 하는 부담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이와 같이 육군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군사비를 절감하고 전략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이점 덕분에 영 국은 세계 역사상 유래가 드물게 1,000년 이상 국체(國體)가 중단 없이 지속 되었고, 자본주의와 정치권력의 배분과 같은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여유가 생 겼으며, 그 결과 민주주의가 부상하게 되었다.
영국해협은 또한 대브리튼섬을 장악하는 그 어떤 정부든 다른 나라에 간섭 해 그들의 지속성을 훼손할 역량을 부여한다. 군대의 이동을 예측하고 감시 하기가 쉽다. 육군은 도로를 따라 행군하고 다리를 건너고 늪을 피해야 한다. 해군은 그렇지 않다. 해군은 은밀히 신속하게 이동 가능하고 때와 장소를 가 리지 않고 상대방이 가장 취약할 때 불시에 나타날 수 있으며, 빛의 속도로 해병대나 대포를 배치해 속전속결로 임무를 완수하고 장비를 회수해 사라질 수 있다. 대영제국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조차도 유럽 대륙의 인구는 대브리 튼섬의 인구를 7대 1로 앞섰다. 그러나 치고 빠지는 역량, 약탈하고 교역하고 상대를 초토화시키고 후원할 상대를 선택하는 역량 덕분에 영국은 유럽 대륙의 최강국으로 등극했다.
대브리튼섬과 접한 근해는 지도에서 보기보다 실제로 훨씬 강력한 장애물 역할을 하므로 또 한 겹의 전략적 깊이를 더해준다. 해협을 건너 대브리튼섬 을 침투하려는 유럽 국가의 시도는 대부분 영국 해군이 개입하기도 전에 처 참하게 무산되었다. 역사학자들은 그 유명한 스페인 무적함대를 바다에 수장 시킨 영국함대와 대포의 규모와 숫자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갑론을박하지만, 이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스페인 무적함대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적어도 절 반의 공을 세운 주인공은 북해에 휘몰아치는 폭풍이다.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독일의 히틀러는 적어도 한 차례 이상 바다 건너 영국을 노려보기만 했고, 침 략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감히 해협을 건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들은 영국 해군이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 나 그들은 또한 북해와 같은 거친 바다의 여건을 익히 알고 있었고 당장 이웃 국가의 군대들의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국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조차 도 수륙양동 작전을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 중국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각각의 나라들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굵직한 지상전을 치른 전형적인 대륙 국가이다. 영국의 해상력 구축을 가능케 한 집 중적인 재원 투자는 감당할 역량이 없다. 기술적으로 보면 중국 해군은 인민 해방군 해군으로 알려져 있는데, 명칭만 봐도 위상과 정치력과 보유한 기술 측면에서 해군의 서열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중국은 영국이 갖춘 것으로 알려진 그러한 폭넓고 통합적인 해양 지식과 기술을 조금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함대 운영의 실전 경험이 거의 전 무하다. 중국의 사령관들 가운데 연습 훈련 말고는 실전 상황에서 대포 한 발 이라도 쏴본 경험이 있는 사령관이 거의 없다. 산업화된 중국은 격분해서 해 군 대포를 발사해본 적이 없다.

- 영국 기업가들은 해상 무역에서 얻은 수익을 이용해 일련의 최신 기술들을 복합적으로 적용했다. 석탄, 원유, 조립공정, 상호 교체 가능한 부품들, 그리 고 마침내 철강과 전기 등을 이용해 새로운 생산 체계를 개발했다. 영국의 산 업혁명은 섬유업에서 시작되었지만 곧 도구와 가구와 철도로 확산되었다. 반 세기만에 산업화된 영국은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들을 대량생산하게 되었고, 이 덕분에 그 어떤 상품을 생산하더라도 산업화 이전의 기술력 있는 장인들 이 오랜 시간 공들여 상품을 만드는 생산방식을 압도하게 되었다.
영국은 제국을 거느리고 소규모 국가와 유사한 기업체들을 동원해 세계 인 구의 4분의 1에 직접 접근했다.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을 볼모로 둔 셈 이었다. 그러나 순전히 경제적인 관점을 넘어 다른 사항들을 고려하는 방향 으로 시야를 확장해보면 아주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음을 알게 된다. 싸고 품질 좋은 상품들을 적대적인 시장에 우격다짐으로 팔아치우는 방식대영제 국의 세계를 지배하는 영민하고 세상만사에 닳고 닳은 해군력 덕분에 가능했 던 방법 때문에 흥미진진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미국에서는 산업화 중이던 북부와 농업 중심인 남부 간의 반목이 깊어졌다. 북부는 영국에서 수입된 상품들을 위협으로 간주했고, 남부는 싼 기기들을 수 입하는 대신 기꺼이 목화를 수출할 의향이 있었다. 이 같은 남북 간의 단절로 1812년 전쟁과 남북전쟁 동안 나라가 거의 두 동강 날 뻔했다. 이와 비슷하 게 프로이센에서는 영국 상품이 경제의 중추인 역내 길드(guild) 체제를 산산 조각 내면서 19세기 중반에 독일인들끼리 전쟁을 벌였고 대대적인 이주민이 발생했다. 프랑스와 러시아에서는 영국 상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달콤한 삶 을 맛본 농부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두 나라를 모두 대규모 폭동에 빠뜨렸다. 스페인은 산업이 붕괴되면서 한때 세계를 제패한 제국이 보잘것없 는 변방으로 쪼그라들었고 20세기 말에 가서야 정상국가로 회복되었다.
- 게다가 영국의 산업화는 일반 소비자 상품 생산에서 그치지 않았다. 새로 운 기술은 군사력에도 쉽게 응용되었다. 구식 소총은 신형 소총으로 대체되 었고 돛단배는 증기선으로 대체되었으며, 대포는 기관포에 자리를 양보했다. 영국 해군은 이미 세계 최강이었지만, 산업화로 면모를 일신하면서 천하무적 이 되었다. 신상품과 신형 군장비에 이미 전 세계에 확장된 지배력이 더해져 서 영국은 유럽의 경쟁국들을 압도하고 유럽 바깥에서도 마주치는 나라마다 족족 지배하게 되었다. 거의 한 세기 동안 영국은 세계에 군림했다. 흔히 쓰 는 표현 그대로 칼싸움에 총을 들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 중국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어마어마한 물량을 투입해 세계 전역의 재계와 군사계의 경각심을 높였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실제 로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협소한 인공지능은, 때로는 응용 인공지능(Applied Al)이라고도 일컫는데, 말 그대로다. 인공적인 체계를 특정한 한 가지 업무를 수행하도록 집중적으 로 훈련시켜 컴퓨터 시스템이 인간의 노동집약적인 시스템의 격무를 약간 덜 어주는 기술이다. 응용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훨씬 업무를 잘 해낼 수 있지만, 엄격한 규칙의 제약을 받는 한도 내에서 가능할 뿐이고, 그것도 모든 게 계획 한 대로 진행될 경우에 한한다. 조립 공정이나 스프레드시트 작성 같은 업무를 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대부분의 실제 상황에 투입될 만한 수준은 전혀 아니다. 중국은 대규모 코드작성 인력이 본질적으로 인간의 노동력 필요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체스를 두도록 훈련받은 인 공지능을 바둑판 앞에 앉혀놓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우리에게 없는 것은 바로 일반 인공지능(General AI)이다. 아직 아무도 보 유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 인공지능이라야 비로소 인공지능이 색다른 업무에 "도입" 가능하고, 색다른 상황에서 평범한 요소를 보고-예컨대, 멈춤 표지 판이 낙서로 도배된 식당 벽에 그려져 있는 경우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이 게 바로 배경지식과 맥락과 직관과 합리적 사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탄생하 는 마법, 우리가 일컫는 인간의 기본적인 지능이다.
- 대부분의 미국 기술기업들은 응용 인공지능에 대해 시큰둥하다. 부가가치 가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대신 일반 인공지능이라는 꿈 을 실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반 인공지능은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실 현된다면.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2030년도 불가능하다. 아니, 아마 2050년 에도 실현되지 않을지 모른다. 일반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적 돌파구는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미래라기보다는 아주 머나먼 미래에나 가능할 일이다.
응용 인공지능은 농업, 금융, 운송, 제조업, 보안, 군사 관련 업무 등 다양 한 산업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지만 이는 인간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 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원양 항해 기법이나 산업화 같은 기술적 돌파구는 아니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중국이 그 누구보다도 먼저 응용인 공지능을 개발하고 어찌어찌 우위를 유지한다고 해도 중국이 전략적으로 포 위된 처지에서 벗어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중국이 외부로 시선을 향할 해군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동시에 방어를 전담 할 대규모 해군과 대규모 공군과 대규모 국내 안보 유지군과 대규모 육군과 대규모 정보수집 체계와 대규모 특수군 체계와 세계에 군을 배치할 역량을 동시에 구축하고 유지할 역량이 없다는 게 문제다.
중국의 이러한 처지를 미국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과 비 교해보라. 외부로 시선을 향하는 대규모 해군은 미국이 세계에 그 힘을 투사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지만, 미국은 전략적으로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에게 그 외의 다른 사항들은 오로지 동맹국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할 뿐이다.
미국은 앞으로 훨씬 순탄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가 무질 서에 빠지고 미국이 세계 안보를 위해 전략적으로 헌신하겠다는 의지가 시들해지면, 미국의 전략적 도구 묶음은 훨씬 간소화된다. 미국의 본토를 방어하 는 일은 상당히 단순하다 상당한 규모의 해군력만 바다에 띄우고 국내에 전 략적으로 배치한 공군자산으로 해군을 지원해주기만 하면 된다. 해외 사태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높은 그런 종류의 교전은 정보요원 조직과 특수군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힘을 투사하는 데 사용하는 이러한 도구들은 공짜는 아 니지만 자국과는 동떨어진 지구 반대편에 지상군을 배치하고 지원하는 방법 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
중국의 전략적, 지리적 여건을 보면 미국과 같이 전략적 도구를 간소화하 기가 불가능하다. 중국이 차기 세계 패권국이 될지 여부가 관건이 아니다. 될 수가 없다. 진짜 관건은 중국이 통일된 국가로서 존재할 수조차 있을지 여부다.

- 쓸모 있는 평원으로 치자면 미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 동부 연안의 피드몬트 고원, 컬럼비아 계곡, 캘리포니아의 센트럴벨리가 모두 세계 최상위권 에 들어간다. 게다가 이러한 지역들은 모두 전면에 배가 다닐 수 있는 강이 흐른다.
그러나 미국의 중서부는 차원이 다른 지역이다. 미시시피 광대역 체제는 운항 가능하고 서로 연결된 천혜의 수로가 13,000마일 이상 이어지고ᅳ미국 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의 국내 운하 체계를 모두 합한 길이보다도 길다이 수로를 중심으로 펼쳐진 경작 가능하고 온대성 기후 지대이며 단일한 정치적 관할권 하에 놓인 세계 최대 크기의 평원과 이 수로가 거의 완벽하게 중첩된 다. 이렇게 평원과 수로가 겹치면서 미국 농부들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이 자국 내에서 곡물을 운송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도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부피가 큰 생산품들을 세계 시장에 수출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 내부 수로체계를 통해 쉽게 이동 가능하기 때문에 인류 역사상 거의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고 쉽게 문화적 통일을 달성했다.
반면, 미국 체제를 둘러싼 바깥 껍질은 세계 최고로 두텁다. 수백 마일에 달하는 사막과 산악지대가 미국을 인구밀도가 높은 멕시코로부터 분리하고 있고, 수십 마일에 달하는 호수와 삼림과 산악지대가 캐나다와 적정한 거리 를 유지시켜준다. 서쪽과 동쪽으로는 거의 장애물이 없는, 수천 마일에 달하는 망망대해가 미국을 아시아와 유럽 대륙들과 갈라놓고 있다. 그러한 해양 한가운데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섬들(하와이, 괌, 미드웨이, 알류샨 열도, 푸에르 토리코)은 미국령이거나 동맹국(영국, 아조레스 제도, 버뮤다, 바하마 제도)이 장 악하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영토와 가장 안전한 영토를 겸비하고 있다.
이러한 마법의 조합은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 한국의 인구 구조 역전 현상은 국가 기능의 모든 측면에서 깊은 의미를 지 닌다.
우선, 자녀를 두지 않으므로 발생하는 명백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 육아, 기저귀 유아식, 초등학교에 썼던 돈을 자동차, 콘도, 주전부리, 고등 교육에 쓸 수 있다. 소비, 효율성, 생산이 폭증한다. 자녀가 없는 20대 청년들은 전문 직 경험을 축적해 50대에 진입하면 생산성이 폭증한다. 산출물 수출이 가능 한한 생활수준이 급속히 향상된다. 정부는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세수를 거 둬들이게 된다 이러한 자금은 주로 중견 경력사원 직업훈련과 기술적 사회 간접자본을 향상하는 데 쓰인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인터넷 연결망과 휴대 전화 체계를 자랑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호시절은 다 끝나가고 있다. 2020년대에 한국의 장년층 근 로자들이 대거 은퇴하고 나면 이들을 대체해서 직장에서 승진할 세대가 없 다. 장년층 근로자는 은퇴 시점부터 자본을 대대적으로 공급하던 주체에서 연금을 수령하고 의료비 지출이 늘어 국가의 지출을 늘리는 대대적인 소비자 로 바뀐다. 정치적으로 보면, 노년층 인구는 괴팍하고 경제적, 사회적 규범의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말고도 더 있다. 이러한 인구 구조는 거의 모든 선진국들에서 나타나 고, 특히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일본(지금까지 고령화 가 가장 많이 진행된 나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지역들을 비롯해 많은 지역에서, 2030년 이전에 인구 구조 붕괴가 필연적이고 임박했다. 그러 나 인구가 비교적 젊은 나라들에서 고령화는 훨씬 빨리 진행되어왔다. 브라 질, 이란, 태국도 크게 뒤처져 있지 않다. 이 모든 나라들은 장년층 근로자가 동나기 직전이지만, 40-50년 전에는 청년층 근로자가 동났었고, 그보다 10- 20년 전에는 아동 노동력이 동났었다. 장년층 근로자가 없으면 자본이 축적 되지 않는다. 청년층 근로자가 없으면 소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녀를 두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이러한 암울한 전망조차도 이러한 나라들이 장년층이 대거 은퇴할 때까지 존속한다는 가정을 할 때 가능하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그 정도로 오래 지속 되지도 않는다. 장년층 근로자가 청년층 소비자에 비해 많은 나라들은 자국 의 생산물을 자체적으로 다 소화하지 못한다. 현재의 세계질서가 존재하는 한 아무 문제 없다. 그러나 이 질서가 사라지면, 이 질서가 보장하는 경제 체 제 전체가 와해된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 체제가 와해되기 시작한 바로 그 시 점에 모든 나라들이 그 체제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 중국에서 친환경 기술 투자 소식이 들려온다고? 중국이 세계에서 친환경 기술을 선도한다는 주장으로 시끌벅적하다고? 중국이 설치하는 태양광 패널 과 풍력터빈은 대부분 오로지 중국 경제 체제 전체를 가능케 한, 비용에 개의 치 않고 확대하는, 투기성 높은 과잉투자 모델 덕분이다. 파산한 거대 에너지 기업, 흉물스러운 엔론(Enron)이 국가 차원으로 구현된 형태가 중국이다. 친 환경 기술은 중국의 에너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리고 중국이 안 고 있는 문제는 확실히 에너지 문제다.
셰일 혁명으로 미국의 에너지 생산량이 늘고 효율성이 지속적으로 개선되 면서 미국 에너지 수요는 줄어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최대의 원유 수입국이 아 니다. 2014년 이후로 그 자리는 내주었다. 그 자리는 중국이 차지했다. 중국 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폴란드, 네덜란드, 터키가 수입하 는 원유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원유를 수입한다. 중국이 미국의 뒤를 이어 셰일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가 한때 있긴 했지만, 경제성이 있는 유일한 셰일 매장지가 쓰촨 지역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나마 기대도 사라졌다. 분리 독립하려는 정서가 강한 쓰촨 지역에 힘을 실어줄 일 을 중국 당국이 절대로 할 리가 없다.
- 중국의 성적표
국경: 서쪽으로는 광활한 벌판, 남쪽으로는 밀림, 북쪽과 남서쪽으로는 핵보유 국가들, 동쪽으로는 막강한 해상력을 지닌 국가들이 있다. 중국은 국 경의 안보를 확보하기보다 그저 근근이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원자재: 중국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산업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 기 때문에 자국이 보유한 자원으로 수요를 충당했다. 과거에는 별 무리가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중국은 뭐든 동나기 직전이다.
인구: 어이쿠, 급속한 도시화에 마오쩌둥 식의 인구 억제가 복합적으로 작 용해 수십 년 동안 중국의 출생률을 거덜 냈다. 중국의 인구 구조에서 단 하나 위안이 되는 사실은 세계 최악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까지는.
군사력: 중국은 덩치가 어마무시하고 군사력은 빠르게 현대화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직면한 난관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앞으로도.
경제: 중국 경제 체제는 부채 비율이 엄청나게 높고 자국이 구축하거나 유 지할 역량이 없는 세계 추세에 크게 의존한다.
전망: 이웃나라들과의 관계가 중국보다 나쁜 나라는 러시아밖에 없다. 현재 의 세계질서가 종언을 고하면, 중국의 성공을 가능케 한 여건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아무도 중국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한마디로 과대평가되었다.

- 미국의 성적표
국경: 호수, 산악지대, 삼림, 사막, 망망대해 등과 같은 요새가 지구상에서 가장 비옥하고 가장 긴 물길이 굽이치는 토지를 에워싸고 있다. 지구상에 서 위협으로부터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비옥한 영토로 균형을 이 룬 땅은 어디에도 없다. 미국은 영토를 방어하느라 애쓸 필요가 거의 없으 므로 자국 군대는 자유롭게 밖으로 힘을 투사할 수 있다.
자원: 거의 2세기 동안 산업화를 하면서 풍부한 부존자원을 많이 소진했지 만, 새로운 기술적 돌파구가 계속 열리고 있다. 가장 최근에 깜짝 등장한 셰일 혁명으로 미국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순수출국이 되었다.
인구: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세대가 대거 은퇴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고 따라서 고통스러운 재정적 압박이 야기된다. 그러 나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자녀를 두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미국의 밀레 니얼 세대는 버르장머리 없고 성가실지 몰라도 머릿수가 많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구제해줄지 모른다. 천만다행이다. 안도의 한숨 소리.
군사력: 세계 역사상 외부로 투사할 힘을 기반으로 한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질서가 종언을 고하면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경제: 미국 경제는 세계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가장 다변화된 경제 체제 다. 경제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바깥세상에 의존해야 하는 정도가 가 장 낮다. 세계는 살아남으려면 미국 경제가 필요하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 지 않는다.
전망: 미국은 나라 안에서 티격태격하느라 기회를 놓치는 데 도가 텄지만, 2050년 이전에 군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미국의 본토를 위협할 만한 게 전혀 남아있지 않게 된다.
한마디로 초연하다.

- 일본의 성적표
국경: 일본은 섬이라는 지형이므로 역내 주요 대륙 국가인 중국으로부터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열도라는 속성으로 인해 내부를 서로 연결하기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자원: 세계 주요 국가들 가운데 가장 부존자원이 빈곤한 일본은 몇 가지 주요 공급선의 가장 끝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의 수입은 거의 에너지가 대부 분이다. 역량 있는 해군이 없었다면 근대화된 일본도 없었다.
인구: 일본의 황실만 세계에서 최고령인 게 아니다. 일본의 인구도 고령화 되고 있고 65세가 넘는 인구가 28퍼센트다.
군사력 서류상으로는 일본은 군사력이 없다. 실제로는 미군과 긴밀하게 연 합훈련을 하고 아시아에서 최고, 세계에서 두 번째 기량을 지닌 해군을 보 유하고 있다.
경제: 일본은 세계 시장에 가장 노출도가 높은 산업경제 체제로 손꼽히지 만, 역경을 정면으로 직면할 자본을 보유한 아주 드문 입장에 놓였다. 일본 은 줄어드는 노동력을 상쇄하기 위해 자동화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왔고, 공 급사슬을 대부분 해외로 이전했다.
전망: 역내 그 어떤 나라보다도 일본은 아시아에서 손을 떼는 미국을 대신 해 힘의 공백을 메울 자본, 해군, 기술력을 잘 갖추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도 떨어져 있다. 일본은 그리 하지 않을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다.
한마디로 아시아의 우두머리다.

- 러시아의 성적표
국경: 러시아 국경은 길고 방어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러시아는 상당한 지리적인 장애물을 만나거나 군사적 저항에 직면할 때까지 끊임없이 밖으 로 팽창하는 경향이 있다.
지원: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를 대량 생산하는 손꼽히는 생산국이고, 광 활한 영토는 대대적인 채굴과 대량 곡물 생산이 가능하다. 이러한 활동은 대부분 특정 계절에 한해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러시아 영토는 계절에 따 라 동토와 늪을 오간다.
인구: 구소련이 남긴 후유증과 소련 이후 거의 붕괴된 출생률에 알코올 중독, 심장병, 폭력, 결핵, HIV로 폭등한 사망률까지 겹쳤다. 러시아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제동이 불가능한 철저한 인구 붕괴에 직면하고 있다.
군사력: 러시아는 여전히 국방에 대대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지만 군 장비가 낡은 티가 난다. 30년 이상 된 잠수함과 항공모함은 툭하면 화재가 나지만, 탱크와 전투기와 세계 최대의 핵무기는 무시 못 할 군사장비다. 러시아의 군 장비는 낡았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당한 위력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 서방의 경제 제제와 원자재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인 러시아는 소련이 붕괴된 이후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지리적 여 건은 성공적인 산업화 경제 체제를 뒷받침한 적이 결코 없다.
전망: 러시아는 고령화하고 있고, 자신감을 상실한 예전의 강대국으로서 그 나마 남은 역량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판 승부를 걸겠다는 결의에 차 있다. 마침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손을 떼게 되는 호기가 왔지만, 하필 이 때 러시아의 전통적인 적국들이 재무장에 나서고 있다.
한마디로 공황 상태다.

- 독일의 성적표
국경: 독일과 독일의 서쪽, 동쪽, 북쪽 이웃나라들 사이에 이렇다 할 완충지 대는 거의 없다.
자원: 부를 창출하는, 운항 가능한 물길의 밀도가 세계 최고이고,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제조업과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고숙련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물리적인 자원은 쥐뿔도 없다.
인구: 늙어도 너무 늙었다.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되었고, 가장 빨리 고령화 하고 있는 인구로 손꼽히는 독일 인구는 너무 나이가 많아서 국내 산업이 생산하는 상품들을 다 소비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출에 의존한다.
군사력: 독일은 탁월한 탱크, 디젤 잠수함, 전자 감시 장비를 만든다. (독일에 게는) 불행히도 (그러나 폴란드나 벨기에나 그 밖에 그 어떤 나라에게도 다행스 럽게도) 수십 년 동안 NATO에 의존하고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손발 이 묶여 있었기 때문에 종이 장갑차가 되었다.
경제: 독일 경제는 제조업 분야가 고품질 상품을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판매 하는 데 의존하고 있다. 세계질서가 무너진 후에는 이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
전망: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독일만큼 의존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독일의 차선책유럽연합은 이미 붕괴되고 있다. 독일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아니면, 옛날 방법으로 돌아가든가.
한마디로 한물갔다.

- 프랑스의 성적표
국경: 프랑스는 북유럽 평원에서 의미 있는 지리적 경계를 지닌 유일한 나라다. 피레네산맥, 알프스산맥, 북해와 지중해, 벨기에 틈새가 그 경계들이다.
자원: 프랑스는 독일 못지않게 강을 따라 운송망이 잘 구축되어 있지만, 프 랑스가 진정으로 독보적으로 빛나는 부문은 농업이다. 다양한 미세 기후 덕분에 프랑스는 세계적인 농업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인구: 프랑스는 산업화된 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건전한 인구 구조를 자 랑하지만,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과 아랍에서 프랑스로 이주해 프 랑스 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이들의 수가 곧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점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군사력: 프랑스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통해 아무도 믿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프랑스는 NATO와는 별도로 독자적 군대를 유지하고 있고, 경제 체제는 유럽연합과 분리되어 있으며, 자체적인 핵 억지력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 프랑스는 상당히 비중 있는 농산품과 공산품 생산국으로서 아마 유럽 연합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무역협상 상대국이다. 독일과 견줄 만한 산업 생산국은 아니지만(어느 나란들 독일과 견주겠는가?), 자국 내에서 필요한 것은 거의 무엇이든 만들거나 재배할 수 있다.
전망 프랑스는 넘버원인 부문은 거의 없지만 거의 대부분의 부문에서 상위 5위 안에 든다. 프랑스의 이웃나라들이 고군분투하게 되면-지금 그렇 다프랑스의 힘은 자연히 부상한다.
한마디로 마침내 1등할 때가 왔다.

- 이란의 성적표
국경: 이란은 건조한 산악국가로서 사막과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이란을 침략하기란 대단히 어렵지만 이란을 보호해주는 바로 이 지리적 여 건이 이란의 팽창을 방해하기도 한다.
자원: 이란의 산맥은 광물이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한 세기 넘게 그저 죽어라 석유에만 의존해왔다.
인구: 이란의 인구는 페르시아만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1979년 혁명 이후 출생률이 급락하면서 이란의 인구는 같은 페르시아만 아랍 국가 인구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군사력: 이란은 육군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있다. 둘 다 국가 통치 엘리트 계층에게 충성을 다하며, 주로 개조한 구소련 군수물자로 무장하고 있고, 외국 군대뿐만 아니라 국내 선동세력에게도 기꺼이 발포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 석유 수출이 이란의 수출 기반을 형성하고 전체 수출에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며 그 뒤를 값싼 강철, 대추, 피스타치오, 카펫 같은 저급한 산업생산품이나 농산물이 따른다. 이 모든 수출품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 대상이다. 경제적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망: 40년 동안 말썽을 부려온 이란은 최근 자국의 적을 교란시키는 데 엄 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이란은 지역 맹주 지위를 거의 확보한 셈인데, 확보한 것을 지킬 대비를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과연 승자가 될까?

-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적표
국경: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사막, 볼품없는 나무 몇 그루가 듬성듬성 서 있는 산악지대, 그리고 얕은 영해. 그러나 거의 대부분 그냥 모래밭이다. 탱크나 군인이나 병참물자를 아라비아반도에 들여오고 내가는 일은 한마 디로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자원: 석유, 지하드, 모래, 그것도 세 가지 다 너무나도 풍부하다.
인구: 페르시아만 지역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20세기 하반기에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소득이 폭증하면서 국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보조금 지원이 가능 해졌고 국민들 대신 일할 외국인 근로자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왔으며, 사 우디 국민들은 냉방이 잘 된 실내에서 마음껏 번식행위를 하고 순풍순풍 출산만 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경제가 침체되었고 출생률도 덩달아 정체되었다.
군사력: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군사장비를 가장 많이 구매하지만, 이 런 장비는 대부분 파키스탄과 이집트 등에서 모집한, 퇴역한 외국 군인들 이 작동시킨다.
경제: 석유 의존도가 매우 높다. 석유판매 수익이 국가 수익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
전망.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랜 세월 동안 미국이 (잘못) 관리해온 지역에서 이란에 대한 합법적인 대항마로서의 입지를 다질 자금력과 군사장비와 의 지를 갖춘, 흔치 않은 입장에 놓여 있다.
한마디로: 방화범.

- 터키의 성적표
국경: 터키 자체는 경관이 수려한 동네에 있는 흉가(凶) 같은 험준한 반도 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고 지중해와 중동을 연결하고 러시아와 서방 진영을 연결한다.
자원: 저질 석탄이 나고 중동에서 가장 비옥한 농경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지중해와 흑해 간의 해상 무역, 유럽과 서남아시아 간의 해상 무역을 장악하는 역량이 있다.
인구: 터키의 인구는 안정적이고 비교적 젊다. 소비주도 성장과 향후 자본 과 무역주도로 가치사슬을 상향이동할 잠재력이 크다. 정치적 시위를 활발 하게 할 연령대 인구가 많다.
군사력: 터키는 유럽과 중동에서 가장 역량이 뛰어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 민간 정부가 들어서면서 군의 정치력이 약화되긴 했지만, 인접한 어떤 이웃나라도 상대할 태세를 갖추었다.
경제: 최근 몇 년 사이 국가 경제 체제에 비전문가의 정치적 개입이 만연하 면서 터키 경제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터키의 입지와 인구 구조를 보면 이 지역에서 전망이 밝은 나라일 뿐만 아니라 제조업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다.
전망: 터키는 앞으로 항상 모든 것의 한 가운데 위치하게 된다. 외부 세력들 과의 관계는 부침이 있겠지만, 역내에서는 항상 경제적, 군사적으로 중량 감 있는 나라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한마디로 부활했다

- 브라질의 성적표
국경 밀림과 산악지대가 브라질을 이웃나라로부터 격리해주고, 이렇다 할 군사적 위협이 되는 이웃나라도 거의 없다. 브라질이 직면한 진짜 장애물 은 내륙과 해안 지역의 해발 고도 차이다. 이 때문에 브라질의 생산지와 주 요 인구밀집지역과 항구가 분리된다.
자원: 광물, 석탄, 해상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충분한 투자가 가능하다면 방대한 농지도 확보 가능하다.
인구: 브라질의 인구 규모는 서반구에서 두 번째지만, 미국, 유럽, 심지어 동아시아보다도 몇 배 빠르게 고령화하고 있다.
군사력: 브라질은 자체적으로 중간급 정도의 전투기를 제작하지만 브라질
육군은 전쟁 경험보다는 마약조직의 은신처를 급습하고 지방경찰을 관리 하는 경험을 더 많이 쌓았다.
경제: 서반구에서 두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브라질은 주요 농산물 수출국 이면서도 비행기, 자동차, 섬유, 강철, 부가가치가 저급에서 중급에 이르는 각종 상품들을 생산하기도 한다.
전망: 오늘날 브라질이 존재하는 이유는 세계화와 세계질서 덕분이다. 브라 질의 사회간접자본과 농업 부문에 유입되는 해외자본이 없으면, 브라질의 소고기와 대두를 지구 반대편에 사는 고객에게 안전하게 운송할 방법이 없 으면, 브라질은 자체적으로 경제 체제를 유지하느라 고군분투하게 된다.
한마디로 골때린다.

- 아르헨티나의 성적표
국경: 아르헨티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안보가 튼튼한 천혜의 지리적 여건을 누린다. 서쪽으로는 안데스 산맥, 동쪽으로는 대서양이다. 아르헨티나를 위협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르헨티나 자신이다.
자원: 아르헨티나는 거의 현기증이 날 정도로 광물과 농산물이 풍부하다. 소고기, 곡물, 대두, 은, 구리, 포도주, 석유, 천연가스 부문에서 앞서가는 수출국이다.
인구: 이웃 나라 브라질과는 달리 아르헨티나는 인구가 비교적 젊고 인구구조가 건강하다(대대적인 보조금 지급으로 아이를 많이 낳았다).
군사력: 별 볼일 없다. 쿠데타와 관리 소홀, 의도적인 탈군사화로 아르헨티 나 군사력은 조롱거리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국경이 안전하고 역내 경쟁 자가 없어서 군사력은 불필요하다.
경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말 그대로 정치적 오판 때문에 거의 완벽한 지리적 이점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교과서적인 사례다. 민족주의,사회주의-전체주의 정책들이 뒤섞인 자생적인 독특한 정책으로 대대적 인 물가상승, 자본유출, 국가채무불이행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아르헨티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전망 보다 정상적인 정치 이념이 뿌리를 내리면, 아르헨티나는 역내 맹주 가 되는 데 필요한 만반의 여건을 갖추게 된다.
한마디로 골프로 치면 멀리건(Mulligan)이다. 최초의 티샷을 잘못 쳤을 때 벌타 없이 주어지는 세컨드 샷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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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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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력 시대

사회 2023. 1. 5. 19:22

- 효율성에서 적응성으로의 이행은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성 장에서 번영으로, 소유권에서 접근권으로, 판매자-구매자 시장에서 공 급자사용자 네트워크로, 선형 프로세스에서 인공두뇌 프로세스로, 수 직통합형 규모의 경제에서 수평 통합형 규모의 경제로, 중앙 집중형 가 치사슬에서 분산형 가치사슬로, 거대 복합기업에서 유동적인 공유로 블록체인을 형성하고 민첩한 첨단기술 중소기업으로, 지식재산권에서 오 픈소스 지식 공유로, 제로섬게임에서 네트워크 효과로, 세계화에서 세방 화(glocalization: 세계화와 지방화의 장점을 같이 발전시키는 것이다. -옮긴이)로, 소 비자주권주의에서 환경책임주의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삶의 질 지수 (QLI)로, 부정적인 외부 효과에서 순환성으로, 지정학에서 생명권 정치 학으로의 전환을 포함한 경제 및 사회의 전면적 변화와 함께 일어난다.
- 효율성이 일시적 가치라면 회복력은 특정한 조건이다. 효율성을 높이 면 종종 회복력이 약화되는 것이 사실인데, 이를 해소할 수단이 되는 시 간적 가치는 효율성이 아니라 적응성이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지 구가 자기조직화 시스템 같은 구실을 하며 그 안에서 모든 유형의 생명 체가 매 순간 행성의 에너지 흐름 및 변화와 각 권역의 진화에 지속적으 로 적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응성은 자연에서 '조화를 이룬다'는 개념, 즉 동양의 신학 및 철학의 특성과 상당히 비슷하다.
효율성의 핵심은 마찰, 즉 경제활동의 속도와 최적화를 늦출 수 있는 중복과 반복을 제거하는 데 있다. 하지만 회복력의 핵심은 적어도 본질 적으로는 중복성과 다양성이다. 예컨대 특정 작물 품종의 단일재배가 완숙까지 성장 속도 면에서는 더 효율적이겠지만, 병충해를 입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 생물학적 시스템은 매우 다르게 운영된다. 효율성보다는 적응성이 생 물학적 시스템의 시간적 특징이며 생산성보다는 재생성이 성능의 척도 다. 생태계에서 적응성과 재생성은 모든 생물학적 유기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생물학에서 다루는 세포의 자가포식 과정을 생각해 보자. 1945년생인 오스미 요시노리(大隅良典)는 일본의 세포생물학자로 평생을 자가포식 연구에 바쳤다. 자가포식을 뜻하는 영어 오토퍼지 (autophagy)는 '자신을 먹는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왔다. 자가포식은 세 포의 폐기물 처리 방식으로, '세포 쓰레기가 자가포식소체라는 자루 모 양의 막에 포착되고 봉인되어 리소좀이라는 또 다른 구조로 운반되는' 과정이 핵심이다. 생물학자들은 오랫동안 리소좀을 단순히 '세포 쓰레 기통'으로 여겨 인간 사회가 쓰레기 폐기장이나 매립지에 대해 생각하 는 것처럼 별 의미가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스미가 마침내 자가포식 이 유기체의 재활용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다시 말해, 세포 조각의 구성 요소를 모으고 여전히 유용한 부분을 분리해서 에너지나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낸다. 오스미는 이 현상을 밝혀낸 공로로 2016년 노벨 생 리의학상을 받았다!"
- 우리가 경제생활에 대한 이해를 재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가포식은, 살아 있는 유기체에 깊숙이 박혀 있는 과정 또는 양식의 많은 예 중 하나일 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추출에서 생산, 저장, 유통, 소비에 이 르는 경제 과정의 모든 단계에 경제 용어로 재활용을 의미하는 '순환성' 의 과정을 포함해서 생물학적 시스템의 재생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 경 제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유행이 되었다. 폐기물을 최소화하거나 재생 을 통해 계속 다시 쓰는 선순환 체계를 확보해서 현재와 미래 세대의 환경비용을 가능한 한 줄이려는 노력이다.
- 우리 종이 규모와 범위 면에서 거의 전례 없는 위기에 마지막으로 직 면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7세기 전인 중세 후기 유럽에서다. 그 위기는 1348년에 시작된 뒤 수백 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 계속 재발하며 약 7500만 명에서 2억 명의 목숨을 앗아 간 것으로 추정되는 흑사병이다."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파장은 가톨릭교회의 통 치 및 세계관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불러일으켰다. 교회의 내러티브는 그전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신자들에게 위안을 주며 서구 문명이 갈 길을 제시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구원과 영생에 대한 약속은 서구에 널리 퍼진 강력한 서사였는데, 결국 맨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페 스트균에 대적할 수 없는 나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혼란 속에서 새롭고 포괄적인 세계관과 그에 따른 내러티브가 새로운 유형의 거버넌스와 경제 및 사회생활을 조직하는 방식과 더불어 등장했다. 문명의 이 새로운 질서는 유럽과 미국과 나머지 세계를 진보의 시대 라고 느슨하게 정의된 주제 아래 현시대로 이끌었다.
진보의 시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민주적 거버넌스의 부상과 개인의 자 유 확대, 수명 연장, 인권 신장 등을 포함해 많은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 새로운 내러티브의 핵심은 결국 시장에 기초한 자본주의 경제에 과 학과 기술을 활용해서 인류의 물질적 안녕을 향상하는 것이다.
중세에서 현대를 향한 패러다임 전환의 중심에는 인간 조건의 완성이라는 약속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실현에 대한 책임이 과학의 경이와 수학의 정확성, 생활의 편리를 돕는 새로운 실용 기술, 사회의 경제적 안녕을 증진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유혹 등에 달렸다. 이 세 가지 지표 위에 진보의 시대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결합 요소는 모든 개인과 공동체, 경제, 사회 전반의 시간적, 공간적 지향을 특히 현대적으로 구성하는 방법이다. 그 말이 토의나 질문도 없이 널리 쓰였는데도 지상낙원 건설 이라는 희망 속에 시간을 아끼고 공간을 차지하는 티켓으로서 어디에서 나 지지받았다.
효율성이 그렇게 현대성의 시간적 동력이 되었다. 효율성은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의 이용을 재정립했다. 그 이용에는 효율성이 시간을 절약 하고, 축적하고, 구매하고, 연장하며 이렇게 연장된 시간을 개인은 물론 이고 사회에까지 임대한다는 전제가 함축적으로 담겼다. 사람들은 개인 이나 기관 또는 공동체가 효율적일수록 미래의 지평을 확장해 '어느 정 도' 불멸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현대 과학과 어느 때 보다 더 정교해진 기술, 시장 자본주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대체할 새롭고 강력한 삼위일체로 부상했다. 결국 효율성은 오랫동안 보편적 인 원동력이던 하느님을 대신해 진보의 시대에 새로운 신성(神性)이 되 었다.
- 《랜싯》은 이렇게 주장했다. "비만과 영양 결핍과 기후변화가 결합해 서 신데믹, 즉 전염병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이것들이 같은 시간대 에 같은 장소에서 발생해 상호작용하며 복잡한 후유증을 일으키고 근 원적인 사회적 원인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반세기 전에는 거의 알려 지지도 않은 미미한 문제였던 비만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적어도 코로 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이 었다. 2015년, 세계의 20억 인구가 비만으로 분류되었다. 이 질병으로 매 년 400만 명이 사망하고, 1억 2000만 년에 해당하는 질병 보정 수명(건강 수명)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놀라운 사실은 비만 관련 비 용이 전 세계 GDP의 2.8퍼센트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만에 따른 심혈관 질환과 폐 질환, 당뇨병 등을 더하면 그 비용이 상상을 초월 할 것이다.
- 에너지 밀도가 높고 영양소가 부족한 고가공식품은 비교적 저렴해서, 주로 비만인 부모 때문에 종종 체질상 비만이 되기 쉬운 자녀가 있는 저소득·중산층 가정에서 구매하고 소비한다.
서식스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피터 돌턴(Peter Dolton) 박사가 학술지 《경제학과 인간생물학(Economics and Human Biology)》에 발표한 연구 보고서 는 이렇게 진단했다. “세대 간 전파는 생물학적 과정으로서............ 환경적 과정도 공유한다. ...... 우리는 가족과 그것에 관련된 유전자 구성의 결 합 결과가 아동의 예상 체질량지수(BMI) 가운데 35~40퍼센트 정도를 설명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만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유전소질 이 식품 가공 산업에는 마케팅의 꿈과 같다. 그들의 제품에 강력한 소비자기반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 코로나19와 관련해 의료 기관을 가장 긴장시키는 것은 폐 질환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앤서니 파우치(Anthony Fauci) 박사에 따르면, 1918~1920년 스페인 독감 팬데믹 때도 대부분의 사인은 바이러스 자 체가 아니라 2차 세균성 폐렴 감염이었다." 여기서 우려할 사항은 코로 나19 감염병이 일으킨 폐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항생제 사용이 급증하 고 있으며 이것이 내성균의 돌연변이를 가속화해 기존 항생제 무기고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에게 재앙 같은 결과가 벌어질 지도 모른다.
비용편익을 분석할 때 인과관계를 제한적으로 보는 우리의 지나치게 단순한 개념상 겉보기에는 해로울 게 없는 듯해도 장기적으로 상호작용 하며 서로 연결되는 부정적 외부 효과의 폭풍을 촉발할 수 있다.
- 미술 분야에서 일어난 원근법 도입의 가장 변혁적인 측면은 아마도 그것이 인간 의식의 전환에 이르는 방식을 주도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후대 사람들은 관찰자의 '보는 눈'으로 세상을 생각하는 준비 를 했다. 시선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평가와 크기 조정, 포획, 수용, 사유 화의 잠재적 '대상'이 되었다.
초연한 관찰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주변의 소란에서 벗어나 관 조자 구실을 맡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걸작이 창밖 너머에 존 재하는 것을 내다보는 외로운 관찰자를 묘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 율적 자아라는 바로 그 개념이 이탈리아와 훗날 북유럽의 르네상스에서 날개를 펼쳤다.
- 조용한 의사소통: 사회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
예술에서 일정과 시계로 포획된 시간과 관점이 공간에 대한 인클로저 (근세 초 유럽에서 영주나 지주가 목축업이나 농업을 대규모로 하기 위해 공유지에 울타 리를 치고 소유권을 주장하기까지 하면서 사유지를 확장한 현상이다. 옮긴이) 과정 을 재촉했다면, 인쇄술의 발명은 19세기 후반 전화의 발명과 20세기 후 반 인터넷의 발명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공간을 모두 가두는 데서 변혁 적인 힘을 발휘했다. 인쇄기는 유럽을 필두로 전 세계에서 대중의 문해 력을 향상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 덕에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글을 통해 조용히 소통하게 되었다.
- 읽기를 통한 학습은 구전 문화에 비해 고독한 이지적 경험이다. 독서는 기본적으로 혼자 한다. 말로 하는 의사소통은 순간적이지만 인쇄된 글은 영구적이라서 우리가 단어와 생각을 잡아 저장했다가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다. 기억에 의존하는 구전 문화에서 의사소통은 회상 능력의 한 계라는 문제가 있다. 이것이 구전 문화가 기억 저장을 암기법과 라임에 의존한 이유다.
인쇄물은 특히 성찰을 통한 인성 함양과 관련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을 활용하게 했다. 독자는 정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거나 읽던 장 으로 돌아가 되새길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상상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을 전개할 수도 있었다.
- 크리스퍼(CRISPR)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새로운 유전자 접합 기술의 출현만큼 효율성의 기치가 노골적으로 휘날린 경우는 없다. 크리스퍼는 "분자생물학 역사상 가장 쓰임이 다양한 유전체 공학 도구"로 선전되었다. 2020년 노벨 화학상은 이를 개발한 두 발명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병원체 과학부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Emmanuelle Charpentier)와 미 국 UC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에게 수여되었다. 두 과 학자는 크리스퍼라는 박테리아 면역 메커니즘을 "밀에서 모기,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물의 유전체를 간단하고 저렴하게 편집할 수 있는 도구”로 변형했다. '유전자 가위'로 작용하는 이 값싸고 놀랍도록 효율적인 도구는 의약과 농산물, 병충해 방제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새로운 생명공학산업의 탄생을 알렸다.
- 차머스공과대학교의 화학생물학자인 페르닐라 위퉁스태프세드 (Pernilla Wittung-Stafshede)는 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효율적인 도구의 장래성을 보장하면서 "원하는 부위에서 DNA를 자를 수 있는 능력이 생명과학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진 화하고 적응해 온 각 생물 종의 복잡하고 미묘한 유전적 관계를 거의 이 해하지 못한 채, 이른바 해로운 형질을 제거하기 위해 식물과 동물과 인 간의 생식계열에서 유전자를 절단해 내는 효율성의 급격한 증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정적인 외부 효과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부정적 외부 효과는 제약, 농업, 의료, 생명과학 산업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그 어떤 단기적 효율성의 향상보다 더 대단할 가능성이 크다.
- 친구 부부가 우리 집에서 차로 25분 거리에 살았는데도 우리 머릿속 에는 친구 집에 가는 길의 지도가 없었다. 우리는 불현듯 웨이즈가 여행 을 훨씬 효율적으로 만든 대신 물리적 환경을 인식하고 그려 내는 능력 에서 우리의 주체성은 잃어버리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마 치 유아처럼 발달 초기로 돌아가 있었다. 공간 속 움직임에 대한 감각 이 웨이즈와 GPS 공간 및 시간 안내의 보호와 관리하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 바로 '발달상의 지형적 방향 상실 (DTD)'이다. 이것은 개인이 "주변 공간에 대한 정신적 표상을 형성하지 못하는" 드문 장애다. 이 장애가 있는 사람은 정상적인 회상 능력이 있 으면서도 "주변의 배치와 그 안에서 참고할 수 있는 개체(즉 랜드마크)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런 개체 간 공간적 관계에 대한 정보를 포함 하는 환경에 대한 공간적 표상"을 창출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방향을 읽고 길을 찾는 기술이 아예 없는 사람이다. 현재까지 이 장애에 대한 치 료법은 없다. 분명히 말해서, 이런 사람은 침실에서 주방으로 가는 길을 언제든 못 찾을 수도 있다.
아주 약한 '후천적' DTD 일 뿐인 우리의 경험은 분명히 꽤나 일반적 이다. 인지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은 이동 방향뿐만 아니라 여타 일반적인 공간을 인식하고 그려 내는 활동에 대해 GPS 두뇌와 신경계에 의존 하는 정도가 높아지는 문제를 숙고하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우리 뇌 에서 공간 탐색을 맡은 부분이 더는 쓰이지 않아서 위축되고 있다고 믿 는다. 다시 강조하지만, 삶의 다른 많은 길과 마찬가지로 점점 더 기술적 으로 매개되고 디지털로 연결되고 GPS 안내가 우리를 편하게 하고 더 효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돕는 세상에서, 우리는 인지능력이 위축 되는 위험을 무릅쓴다.
이런 주체성 상실을 심각한 영향은 없는 단순한 이야깃거리로 여기지 않도록, 'GPS에 따른 사망'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생각해 보라. GPS를 이용하는 운전자가 장치에 너무 의존하고 실제로 창밖을 보면서 교차점 검하기를 등한시하다 때로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강이나 호수로 들어가 거나 벽을 들이받는다. 모든 감각의 주체성을 GPS에 맡겨 버린 탓이다.
- 가상 세계에 장시간 몰입하는 것이 인간의 인지뿐만 아니라 뇌의 배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첫 번째 암시는 화면 접속에 집착하는 젊은 디지털 세대의 어휘력와 문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기록에 있다.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그림 하나에 1000 단어의 가치가 있다”는 시 각적 매체라서 디지털 세대는 희귀어를 접할 기회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물론 인터넷상에 모든 주요 언어의 거의 모든 단어가 있지만, 검색 과 멀티태스킹과 다른 게시물로 빠른 링크 등을 통한 효율성을 강조하 는 탓에 단어와 전체 단락에 대한 꼼꼼한 확인보다 훑어보기를 우선시 하고 결과적으로 텍스트에 대한 주의력을 떨어트린다.
문자메시지와 이메일 그리고 최근에는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때문에 희귀어 사용과 의사소통은 더욱 줄어들고 약어와 이모티콘에 대한 의존 도는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모든 가상의 의사소통은 사용자의 짧은 주의 집중 시간에 부응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텍스트가 짧아지고 단순한 단어를 선택함에 따라, 특히 시각 자료가 함께 제공되는 경우에 사용자는 훨씬 더 축약된 어휘에 노출된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효과적 으로 의사소통하고 복잡한 사고를 표현하는 능력에서 주체성이 없어져 '길을 잃는다'. 웨이즈 사용자가 도로에서 방향감각을 잃는 상황과 다르 지 않은 셈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역사상 다른 모든 의사소통 혁명은 어 휘의 범위와 용법을 확장하고 저장고를 늘려 인간이 더 미묘한 의사소 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 41개 연구에 대한 또 다른 메타분석은 멀티태스킹이 "전반적인 인지 능력의 현저한 저하와 관련 있음을 발견했다. 인터넷 대백과사전 정 보 검색에 관한 연구에서는 “인터넷 검색 정보가 백과사전에서 습득한 정보에 비해 기억에 남는 시간이 짧고, 이는 온라인에서 정보를 수집하 는 동안 진행되는 (뇌) 측두엽의 활성도 감소와 관계있다는 것이 자기공 명영상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온라인 정보 수집이 속도는 빠르지만, 정 보를 장기 저장하는 데 필요한 뇌의 영역을 충분히 동원하지 못한다”고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인지능력이 뛰어난 고기능 분석 사상가들을 대상 으로 한 다른 연구는, 그들이 인터넷 정보의 저장과 검색보다는 정보에 대한 자신의 기억에 더 많이 의존한다고 밝혔다. "- 미시건대학교의 디지털 연구학 교수인 존 체니-리폴드(John Cheney-Lippold)는 대중의 주체성을 지휘하고 관리하고 강탈하려는 목적의 예측 분석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인공두뇌의 분류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등을 알려 준다. ...............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전과 는 사뭇 다르게 자유에 대해 생각하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온라인 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데 사실상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범주의 의미에 대한 소유권을 상실하고 있다.
2017년에 퓨리서치 센터가 한 설문 조사에서 사회 전반의 전문가들 에게 연락해 '알고리즘의 장단점'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그들은 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자기 삶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잘 이해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알고리즘을 생성하는 데 이점이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하나같이 거기 따를 수 있는 문제를 우려했는데, 대표적 으로 중요한 사항을 추리면 세 가지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알고리즘이 프로그래머와 데이터 세트의 편향을 반영한다. 둘 째, 알고리즘 범주화가 분열을 심화한다. 셋째, 알고리즘은 기업의 자료 수집가가 형성하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 인터넷 정보 제공자가 이용자에게 맞 춤형 정보만 제공해서 생길 수 있는 한계나 편향성을 가리킨다. 옮긴이)과 사일로를 생성한다. 이는 사람들이 더 폭넓은 아이디어와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노출되는 것을 제한하고 우연성을 제거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전문가들의 의견에서 효율성과 이익, 주체성의 상실이 언급된 횟수다. 퓨리서치는 "알고리즘이 데이터 모델링 및 분석으로 생길 수 있는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주 로 효율성과 수익성을 최적화하기 위해 생성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폭 넓은 동의를 확인했다. 응답자 중 상당수는 "알고리즘 생성 과정에서 인간이 '입력'으로 고려될 뿐, 생각하고 느끼고 변화하는 실제적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 응답자는 "알고리즘은 정확성이나 공 정성보다 효율성을 중시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면서도 처음에 그것을 발전시킨 우선순위를 고수할 것"이라며 문제의 깊숙한 부분까지 고찰했다."
- 교외의 꿈이 그리 길지 않게 펼쳐지는 동안, 집에 가져오는 급여가 증가했어도 구매 중독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금융계는 신용카드와 리 볼빙 신용 도입이라는 해결책을 가까스로 찾았다. 리볼빙 신용 시스템 은 사실 백화점이 처음 도입했다. 고객이 구매 대금 중 미지불 잔액에 대 해 이자를 내고 그 상환을 연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대형 백화점은 사 실상 은행이 되었고, 종종 고객의 리볼빙 신용 계좌에 부과하는 이자로 판매 수익만큼 많은 이윤이 생겼다."
1960년대에 접어들 무렵 은행과 대형 금융회사는 백화점들이 이용하 던 리볼빙 신용 시스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신용카드 발급에 대한 이 들의 10년 전 실험은 대체로 성공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지만, 거대 한 신용 시장의 가능성을 감지한 은행들이 두 번째 단계를 고려하고 있 었다. 잠재적인 위험이 있지만, 그들은 교외 중산층 가정이 새로운 생활 방식에 자금을 대기 위해 부채에 기대면서도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원금을 갚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추론했다.
- 1958년에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뱅크아메리카 카드로 새로운 단계 에 처음 뛰어들었다. 10년 뒤 이 카드는 비자로 이름을 바꿨다. 1966년 에는 캘리포니아은행컨소시엄이 마스터카드를 도입했다. 신용카드는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확산했다. 신용카드가 많은 상품과 서비스에 적용되면서 현금과 수표를 빠르게 대체했다. 백화점과 달리 은행과 금융 기관은 소비자 신용에 대규모 자금을 댈 만큼 넉넉한 주머니가 있었다. 신용카드가 이렇게 부채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한도 없는 리볼빙 신용은 (은행이 아닌) 소비자가 대출 한도를 결정하게 함으로써 대출자와 차용인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소비자가 리볼 빙 신용한도를 높일수록 신용카드 회사에 더 많은 수익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은 은행은 기꺼이 이런 방식에 합의했다. 주로 중산층인 잠재적 카드 사용자가 자격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은행에서 배경 조사를 엄격히 하면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로 이 시기에 금융계가 도박에 나섰다. 그 전에는 대출이나 신용카드를 받을 자격이 없던 미국인 수백만 명에게 소비자 대출을 확 대한 것이다. 이 새로운 일탈이 '서브프라임 대출'이라고 불렸다. 수익성 을 높이기 위해 은행과 신용카드 회사들이 가난하거나 제대로 고용되지 않았거나 빈곤 지역 출신이거나 위험 요소를 판단할 신용 기록이 거의 또는 전혀 없어서 배제되던 미국인들 중 26퍼센트에게 신용카드를 공했다. 이런 식으로 신용카드를 갖게 된 사람들은 '금융 정보 부족(thin file)' 고객으로 분류되었다. 서브프라임 신용카드 대출에 위험이 내재했 는데도 미국의 금융계와 산업계는 점점 더 많은 소비자 지출을 촉진하기로 결정했다.
- 전통적인 테일러주의와 게임화의 연결 고리는 둘 다 노동력을 훈련하 는데 합리화한 과정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다만 전통적인 테일러주의 에서는 노동자들이 경계하고 저항하거나 적어도 최소한의 노력만 기울 이면서 그럭저럭 빠져나갈 수 있지만, 게임화는 합리화한 조작을 은폐 하기 때문에 참여자가 게임을 그리고 나중에는 작업 과정을 완전히 익히기 위해 자신의 주체성을 동원했다고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 직원의 재직 기간 동안 게임화를 통해 수집되는 데이터는 직원들을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맞춰 조정하고 적응시키기 위해 캐고 분석할 수 있는 정보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또한 데이터는 작업자의 성과를 평가 하는 수단이 되어 지속적인 감시를 게임화 경험에서 필수적인 부분으로 만든다.
앞으로 기업의 게임화가 광범위하게 확산하면 여가 영역은 거의 확실 히 축소될 것이다. 아마도 게임화의 가장 교활한 측면은, 놀이를 포획한 상업적 세력이 효율성과 투자 수익 증대를 위해 수백만 명이 끊임없이 노동하는 삶을 받아들이도록 조정하는 부분일 것이다.
- 인체 내부에 사는 이 모든 종을 합해 보면 인체 세포의 수는 전체의 43퍼센트밖에 안 된다. 나머지 57퍼센트는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인 셈 이다. 더 세분해 유전자 수준에서 인간의 구성을 살펴보면, 한 사람의 생 리학적 구성을 설명하는 유전자는 2만 개에 그치는 반면에 그 몸에 사는 미생물 전체를 구성하는 유전자는 200만~2000만개에 이른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의 미생물학자 사키스 마즈마니안(Sarkis Mazmanian)이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한 사실을 알려 준다. 생물학적으로
"우리에게 단 한 가지 유전체만 있지는 않다.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의 유전자는 본질적으로 우리의 활동을 증강하는 제2의 유전체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인간은 그 자신의 DNA와 장내 미생물의 DNA의 조합 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중 실제로 인 간인 부분은 우리 몸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 좋은 키메라 로 봐야 하지 않나? 어떤 의미에서는 그래야 마땅하다. 이런 생각이 인 간은 생물분류 체계상 종을 아우르는 과에서 아주 특별한 표본이라는 오랜 믿음을 뒤흔들 수 있겠지만 과학적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 다.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NHGRI)의 프라바나 강굴리 (Prabarna Ganguly) 박사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해 새롭고 모범적인 설명을 한다.
우리 몸에는 강력하지만 보이지 않는 미생물 왕국이 있다. 작지만 놀라울 정도로 막강한 이 수천 생물 종과 수조 거주자들은 우리 몸의 모든 부분에 살 고 있으며 다양한 인간 미생물체를 구성한다. 이 미생물체가 우리 몸의 건강 을 지원하고 유지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교란이 생기면 암이나 자가면역질 환·심혈관 질환 등 수백 가지 질병과 관련되기도 한다. ... 미생물 공동체 의 변화가 질병으로 이어지는지, 질병의 진행에 대한 반응으로 미생물 공동 체가 변하는지 과학자들조차 아직 알지 못한다
-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모든 유기체의 모든 세포에는 사전 설계된 특 수한 생체시계가 있다. 계절 변화를 예측하고 적절한 대응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 종을 번성하게 할 생체시계다. 각 생물 종이 계절 변화에 적응 할 수 있게 해 주는 또 다른 리듬은 광주기성이라고 불리며 일조 시간의 길이를 측정해 이를 이동과 수렵 채집, 번식, 수면, 각성 등의 최적기를 정하거나 계절 변화에 대비하는 신호로 삼는다.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는 동물은 포식자의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서식지에 너무 일찍 또는 너무 늦게 도착하면 수렵 채집 의 기회나 번식, 이주, 동면 등의 최적기를 놓쳐서 종 전체의 생존 기회 가 줄어들 수도 있다. 이 모든 활동이 알맞은 때가 있다. 이를 놓치면 지 방 비축에 이은 동면이나 철새의 털갈이에 이은 장거리 이동 등과 같이 순차적으로 따르는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 당혹스럽게도 기후변화의 한가운데서 급격히 야생화되는 지구의 권역들이 계절 변화에 맞춰진 모든 생물 종의 내재적 생체 리듬의 단절을 강요하고 있다.
SCN이 하루 주기성을 조절해 유기체가 24시간 각성 또는 수면 주기 의 단서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처럼, 광주기의 신경 신호를 만들어서 유기체가 계절 변화에 대기하는 것도 조절한다. 광주기 신호는 겨울에 길어지고 여름에 짧아지는 야간의 멜라토닌 분비 시간에 전달되고, 멜 라토닌 신호에 반응하는 부위는 신호의 지속 시간이 나타내는 계절에 발생하도록 미리 설정된 행동과 생리 기능의 변화를 유도한다.
계절 변화에 따라 생리 기능과 기분 변화, 예컨대 일조량이 적은 겨울철에 나타나는 슬픔이나 우울감이나 피로감 같은 정서장애를 겪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생리학적 원인에서 비롯한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명예 연구원이자 정신과 의사인 토머스 웨어 (Thomas A. Wehr)가 이렇게 말했다. "원숭이를 비롯한 포유류들이 보이는 광주기적 계절 반응의 해부학적 및 분자적 기질의 거의 모든 요소가 인간에게서도 발견된다." 이 분야의 연구원들은 우리 인간 종이 산업 시대를 거치는 동안 더 인공적인 환경으로 물러나게 되면서 계절 변 화에 대한 반응이 약해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 2007년 겨울, 레빈의 연구팀은 “척추동물 유기체 내부의 특정 위치에 서 생성되는 새로운 기관의 유형을 직접 지정하기 위해 세포 간에 일어 나는 자연적 생체전기 통신을 최초로 변경했다"고 발표했다. 터프츠의 박사 후 선임 연구원이자 「손톱개구리의 배아 안구 패턴화를 제어하는 막 간 전압 전위차(Transmembrane Voltage Potential Controls Embryonic Eye Patterning in Xenopus laevis)」라는 논문의 제1저자인 바이브하브 파이 (Vaibhav Pai)는 그 과 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연구팀은 올챙이의 등과 꼬리에 있는 세포의 전압 증감률을 눈 세포 가 정상적으로 발달하는 위치의 전압 증감률과 일치하도록 변경했다. 그 결과, "눈에 특정된 증감률이 정상적일 경우 다른 기관으로 발달했을 등과 꼬리의 세포를 눈으로 발현되도록 유도했다."
- 파이 박사의 '가설'은 신체의 모든 구조에는 기관의 형성을 유도하는 특정한 막 전압의 범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눈이 생길 수 없다고 생각 한 영역에서 특정 막 전압을 이용해 정상적인 눈을 만들 수 있었다. 이는 신체 어느 부위의 세포든 눈을 만들도록 유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il 레빈의 연구팀이 성급하게 선천적 기형의 복구와 다양한 재생 치료 에 각 기관과 조직·사지로 발달하도록 유도하는 특정 막 전압 범위를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의학적 혜택을 중시하기는 했지만, 레빈이 더 큰 그림에 무관심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 실험이 "생체전기 암호 해독 의 첫걸음"이라고 결론지었다."
- 경제학 분야가 살아남으려면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자연계와 관계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일반균형이론과 비용편익분석, 좁 은 의미에서 외부 효과의 정의, 생산성과 GDP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 키는 개념 등을 포함해 오랫동안 학계에서 정설로 신봉된 것에 대한 부 분적인 재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변혁의 근간에는 효율성을 최 우선으로 생각하는 경제 전문가들의 집착을 줄이고 심지어 그것에 맞설 필요성 그리고 경제학을 적응성과 긴밀히 연계할 도구와 비즈니스 모델 을 개발할 필요성이 자리할 것이다. 무엇보다 재계 전체가 자연계를 '자 원'으로 보고 맺은 관계와 그런 이해 전반을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우 리 인간은 '생명력'인 자연의 일부로서 지구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종 중 하나일 뿐이다.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선구적으로 적응성을 사업 가치의 새로 운 정의로 외쳤다. 「적응성: 새로운 경쟁 우위(Adaptability: The New Competitive Advantage)」라는 도발적 기사를 함께 쓴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마틴 리브스 (Martin Reeves)와 마이크 다임러(Mike Deimler)가 가장 성공적인 기업은 “본질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에 의존하는 이점의 원천인 규모와 효율성을 중 심으로” 사업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이 설명한 바와 같이, 예측할 수 없는 위험과 불안정성이 점점 더 증가하는 세상에서는 그렇 게 유효성이 증명된 가치가 오히려 장애가 되고 적응성이 기업의 생존 을 위한 본질적 가치로 부상한다. 적응성은 단기 수익이 희생돼도 기꺼 이 실험하고 실패를 수용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조직을 재편 하고 사업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적응성은 또한 수직적으로 통합된 규모의 경제와 중앙 집중화한 관료 체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선호한다. 잇따른 위기에 맞닥뜨려야 하는 세 상에서 생존하기에는 너무 경직되고 취약한 체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분권화되고 유연하며 경쟁적인 조직 구조를 만드는 것"을 지지하면서 그런 접근 방식이 경직된 지배층의 큰 이점을 없애 버린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포괄적인 대체 비즈니스 플랫폼의 도입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기업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고 고위험 환경에서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민첩성을 보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새로운 화석을 발견하면 인간 속의 기원에 관한 이론이 수정되었다.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새로운 환경 데이터 세트 는 인간 속이 기본적인 건조 기후 추세에 중첩된 장기간에 걸친 서식지 의 예측 불가능성을 배경으로 진화했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는 "인간 속 의 성공과 확장을 가능하게 한 핵심 요소가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체 득한 음식 섭취의 유연성이고, 이것이 협력적인 육아 및 발육의 유연성 과 더불어 다양성의 확장과 사망 위험의 감소로 이어졌음"을 밝혔다. 23 과거 기후의 상세한 모델을 마련해 사람 화석의 기록과 비교하는 방법 으로 결론에 도달한 연구자들은 과거의 생각과 달리 인류가 고요하고 서늘하며 안정적인 기후가 이어지던 기간에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아냈다.
-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 중 한 명이자 스미소니언협회 '인간의 기원' 프로그램 책임자인 리처드 포츠(Richard Potts)는 연구를 통해 알게 된 것을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 조상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유연성 진화 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불안정한 기후 조건이다. 그는 "인간 속의 기 원은 적응성의 형태로 특징지어진다"고 덧붙였다." '불안정한 기후’라 는 표현은 지구의 최근 230만 년을 포괄하는 기간, 다시 말해 분류학상 인간의 조상으로 분류되는 호미닌이 진화해 호모 사피엔스가 되고 끝난 시대가 얼마나 불안정했는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일종의 폄훼나 다름없다.
- 문명의 여명 이후 인류가 자연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 일어난 큰 변화는 모두 역사상 획기적인 인프라 혁명으로 기록할 수 있다. 대부분 의 역사가는 인프라를 단순히 집단생활에서 많은 사람을 결속하는 발판 정도로 생각했지만, 인프라는 사실 훨씬 더 근본적인 구실을 한다. 모든 인프라 패러다임의 변혁은 사회집단의 존립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세 가지 구성 요소의 결합을 수반한다. 그 세 가지는 바로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 에너지와 동력의 새로운 원천, 새로운 운송·물류 방식이다. 이 세 가지 기술적 발전이 매끄러운 역학 관계 속에 결합할 때 일상적인 경제 및 사회, 정치 생활과 관련해 사람들이 '소통하고, 작동하고, 움직이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 19세기에는 증기 동력 인쇄와 전신, 풍부한 석탄, 국유 철도 기관차가 의사소통, 동력 공급, 이동성을 위한 공동 인프라에 들어맞으면서 1차 산업혁명과 도시 거주지의 부상, 자본주의 경제, 민족국가 정부 감독 체 제의 국내시장을 이끌어 냈다. 20세기에는 중앙 집중형 전력과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값싼 석유 그리고 국도와 내륙 수로, 해양 및 항공 항로의 내연 운송 수단이 수렴하면서 2차 산업혁명과 교외 거주지, 세계화, 글로벌 거버넌스 기관들의 부상을 낳았다.
오늘날 우리는 3차 산업혁명이 한창인 시대를 살고 있다. 디지털화한 광대역 커뮤니케이션 인터넷은 태양광 및 풍력 전기로 구동되는 디지털 화한 대륙별 전력 인터넷과 수렴되고 있다. 수백만 명의 주택 소유자와 지역 및 국가의 기업, 지방의 단체, 농부와 목장주, 시민사회단체, 정부 기관 등이 거주지와 일터에서 태양광이나 풍력 전기를 생산해 자체의 운 영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잉여 녹색 전기는 현재 우리가 커뮤니케이 션 인터넷에서 뉴스·지식 · 엔터테인먼트를 공유하는 것처럼 재생 가능 전력을 공유하기 위해 빅데이터·분석·알고리즘을 이용하는, 점점 더 통 합되고 원활하게 디지털화하는 대륙별 전력 인터넷으로 되팔리고 있다. 이제 이 두 가지 디지털화 인터넷은 전력 인터넷을 통해 태양광 및 풍력발전으로 동력을 공급받는 전기 및 연료전지 차량으로 구성된 디지털화한 이동성 및 물류 인터넷과 수렴되고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이런 차 량은 도로와 철도, 수로와 항로에서 점점 더 자율주행으로 움직이며 전 력 인터넷과 커뮤니케이션 인터넷처럼 빅데이터와 분석, 알고리즘으로 관리될 것이다.
이 세 가지 인터넷은 갈수록 더 데이터와 분석의 지속적인 흐름을 공 유하며 지역과 대륙, 글로벌 시간대를 가로지르는 무공해(제로 배출) 자율 차량의 움직임과 녹색 전기의 생성과 저장 및 분배, 커뮤니케이션을 동 기화하는 유려한 알고리즘을 생성할 것이다. 또한 세 가지 인터넷 모두 생태계와 농경 지대, 창고, 도로 시스템, 공장의 생산 라인, 주거용 상업 용 건물 등 사회 전역에 걸쳐 설치되어 모든 활동과 움직임을 실시간으 로 추적 관찰하는 센서로부터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제공받을 것이고 그 럼으로써 인류가 가정과 일터에서 더 적응력 있게 일상적인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을 관리하고 동력을 공급하고 가동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렇게 구성되어 돌아가는 체계가 바로 사물인터넷(IoT)이다.
다가오는 시대에 건물은 에너지 절약과 기후 회복력을 위해 개조되고 사물인터넷 인프라가 내장될 것이다. 또한 자체의 데이터 센터가 설치 되어 대중이 직접 데이터의 수집과 이용, 공유 방법을 제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스마트 빌딩은 분산형 제로 배출 사회에서 친환경 초소형 발전소와 에너지 저장소, 전기 및 연료전지 차량을 위한 운송 및 물류 허브의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의 건물은 벽으로 둘러싸인 수동적이고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생산과 에너지 절약, 에너지 저장, 전력 이동, 여타 광범위한 경제적·사회적 활동을 거주자의 재량에 따라 공유하며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노드 개체가 될 것이다. 이런 성격의 자립형 스마트 빌 딩은 새롭게 부상하는 회복력 사회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될 것이다.
당연히 지구의 이런 디지털 인프라를, 새로운 엘리트의 손에 권력을 집중하려는 어둠의 세력만 점유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경계하는 사람들 이 있다. 그들이 지구를 약탈하기 위해 인류의 다수에게서 선택의지를 앗아 갈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더 설득력 있는 길이 있다. 그 배경이 되는 이야기는 2차 산업혁명이 정점에 이르렀다가 서서히 쇠퇴하던 무렵 3차 산업혁명을 구성하게 될 많은 혁신적 요소들이 표면화하면서 시작되었다.
- ICT 업계 리더들은 또한 로컬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원거리의 거대 데이터 센터로 보내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로컬에서 전개되는 이벤트에 실시간으로 반응하기에는 너무 느리다는 점, 즉 '지연 시간 요소'를 이 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가 충돌하려는 순간에 클라우드 에 최신 데이터를 보내고 지상에서 다시 지시를 받는 경우 그 응답 시간 이 너무 느려서 적시에 충돌을 피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ICT 사전에 새로운 단어가 등장했다. 바로 '포그 컴퓨팅 (fog computing)' 이다.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가정과 사무실, 지역 기업, 이웃, 지역사회, 환 경에 저렴한 에지 데이터 센터 수백만 개가 설치돼 현장에서 데이터의 수집과 저장을 수평화하고 사람들이 지역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에서 분석과 알고리즘 거버넌스를 실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할 것이다. 1세 대 디지털 기업의 특징이던 수직 통합. 중앙 집중형 ICT 네트워크를 이런 식으로 점점 더 우회하는 것이다.
- 회복력 시대는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의 집중 매장지에 대한 통제권 에 집착하는 군사력 중심의 지정학에서 우리 인류를 해방해 대륙과 바 다. 시간대를 가로지르는 디지털 판게아에서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의 공유를 장려하는 '생물권 정치'의 새로운 시대로 안내한다. 오늘날 초강 대국 중 한두 나라가 글로컬 에너지 인터넷을 장악하고 인류 전체를 좌 지우지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회복력 시대에는 모든 대륙에서 문자 그대로 수십억 가정 과 수백만 기업, 크고 작은 수십만 지역사회가 일하고 거주하는 곳에서 태양광과 풍력을 붙잡아 만든 새로운 에너지를 마이크로그리드에 저장 하고 글로컬 에너지 인터넷을 통해 공유할 것이다.
몇몇 지역에서만 풍부하게 발견되는 화석연료와 달리 태양과 바람은 분산된 에너지로서 모든 곳에 존재한다. 하지만 간헐적이기 때문에 지 구의 자전과 공전, 날씨의 변화에 따라 전력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 단일 국가 또는 국가 연합이 게이트키퍼 구실을 하려는 시도는 실패 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현장이든 순식간에 글로컬 에너지 인터넷에서 이탈해 (곧 모든 대륙을 포괄할) 지역사회나 지역별 마이크로그리드에 다시 결합해 전력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도로 분산된 글로컬 에너지 인터넷의 특성 때문에 어떤 국가든 모든 대륙에 퍼져 있는 수백만 개의 현지 마이크로그리드를 제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3차 산업혁명 스마트 디지털 인프라로 전환하면서 일어나는 경제적 변화를 종합해 보면, 발생하고 있는 일들의 막대한 규모 자체가 우리가 경제생활을 이해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시사한다. 소유권에서 접근권으로, 판매자 구매자 시장에서 공급자 사용자 네트워크로, 아날로그 관료제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제로섬 게임에서 네트워크 효과로, 성장에서 번영으로, 금융자본에서 자연 자본으로, 생산성에서 재생성으 로, 선형 프로세스에서 인공두뇌적 프로세스로, 부정적인 외부 효과에서 순환성으로, 수직 통합형 규모의 경제에서 수평 통합형 규모의 경제로, 중앙 집중형 가치사슬에서 분산형 가치사슬로, GDP에서 QLI로, 세계 화에서 세방화로, 글로벌 대기업에서 유동적인 글로컬 네트워크에 블록 체인으로 결합된 민첩한 첨단기술 중소기업으로, 지정학에서 생물권 정 치로 등이 그 변화의 예다. 3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과도기적 경제 패러 다임이다. 부분적으로는 여전히 기존 산업 경제 모델에 묶여 있는 한편 부상하는 회복력 혁명의 본질을 규정하는 많은 특징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 미국의 무너져 가는 2차 산업혁명 인프라만큼 단기 효율성 대비 장기 회복력의 유리함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없다. 미국은 지하에 케이블을 설 치하는 비용을 줄기기 위해 지상에 통신 및 전력 그리드 인프라를 구축 했다. 그래서 이제 전화와 전기 전송선이 다운되지 않고 넘어가는 계절 이 거의 없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홍수와 가뭄 · 산불 · 허리케인 때문에 대규모 통신 중단이나 정전 사태가 잦아 미국 경제와 사회에 수십억 달 러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주거용 상업용, 산업용 건물도 단기 이익을 빨리 확보하기 위 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지어진 탓에 끊임없이 증가하는 무자비한 기후 재해에 취약하고 회복력이 떨어지며 결과적으로 인명과 주택, 사업체, 재산의 손실이 생기고 있다. 게다가 지역의 전력 유틸리티와 대 부분 오래된 전력 그리드를 마치 조각조각 모아 놓은 것처럼 구성된 북 미 대륙의 전력 그리드는 국가 전력 그리드 중 일부를 차단해 지역과 공 동체에 대혼란을 일으키려는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의 공략 대상이 되고 있다.
더욱이 지난 40년에 걸쳐 진행된 도로와 상수도 체계 · 교도소 · 학교 등과 같은 공공 인프라의 대규모 민영화로 비용이 절감돼 단기적인 효 율성과 이익은 커졌지만, 대중이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을 위해 소통하 고 동력을 공급하고 움직이는 데 필요한 핵심 인프라의 회복력은 약해 졌다.
- 생태 지역 거버넌스의 도래
과학계에서는 지구의 절반을 야생으로 복원한다는 사명하에 생태 지 역 거버넌스의 맥락과 일정을 수립했다. 하버드대학교의 저명한 생물 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은 2016년에 펴낸 책 『절반의 지구 (Half-Earth)』에서 우려를 토로했다. 그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막으려면 앞 으로 수십 년 동안 지구 표면의 절반을 기존의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한 자연보호구역으로 재지정하기 위해 대대적 동원이 필요하다고 주장 했다.
-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는 코로나 사태로 봉쇄된 기간 동안 자신 이 작곡한 노래를 담은 앨범 「포클로어(Folklore)」와 「에버모어(Evermore)」를 발표하며 자신을 비롯한 세대 전체의 내부에서 차오르는 새로운 굶주림 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녀의 노래들은 어린 시절 자연과 나눈 깊은 교감 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생명애 의식이 코로나 사태에 따 른 위기의 한가운데서 다시 깨어난 것이다. 「포클로어는 2021년 그래 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연의 여유를 처음으로 발견하거 나 재발견한 젊은 세대를 대변했다는 점이다. 이런 것이 바로 가상 세계 의 빈약함에 대한 환멸과 자연계에 대한 각성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에 속한다."
자연을 예찬한 스위프트의 앨범은 느닷없이 등장한 것으로 보였다. 2017년 《심리학회지(Journal of the Association of Psychological Sciences)》에 실린 한 논문은 1950년대 이후 책과 영화 대본, 특히 노래에서 자연에 대한 언급이 거의 사라졌다고 기록한다. 각 세대가 처음에는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그 뒤에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가상 환경을 접하며 성장하는 비율이 점 점 늘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1950년 이후에 나온) 6000여 곡의 가사를 살펴본 결과 자연을 주제로 삼은 표현의 사용 빈도가 63퍼센트 감소했 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각 세대가 실내로 들어가 가상 현실 속 상호작 용을 점점 더 증가시키면서 자연은 일상적 경험에서 멀어지거나 사라지 게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스위프트는 등 뒤에서 부는 바람을 느끼고 자연의 생명력에 참여하는 선택의 달콤함을 경험하라고 자신과 같은 세대에게 조용히 외치는 것으 로 응수했다. 그녀의 노래들은 자신과 같은 세대가 살아 숨 쉬는 지구를 깊이 품을 수 있는 길을 찾기를 바라며 바치는 온화한 시와 다름없다.
- 20세기 영국의 철학자 오언 바필드(Owen Barfield)는 인류가 써 온 무용 담의 본질과 극적 성질을 포착해 결정적인 세 단계로 구분했다. 각 단계 는 새로운 세계관의 채택과 함께 인간 의식의 근본적 변화를 특징으로 한다.
우리의 수렵 채집 조상들은 동료 생물 종과의 차별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지구의 리듬과 계절, 주기의 직접성에 지속적으로 적응 하며 자연계에 깊이 참여하는 삶을 영위했다. 위계가 아닌 집단으로 사 회생활을 조직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고 정령숭배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 라보고 자신들과 별로 다를 바 없고 깊이 뒤얽히기까지 한 영체로서 동 료 생명체를 경험했다. 연간 주기, 계절 주기의 영원한 회귀에 만족하던 정령숭배 의식은 다음 세대가 '역사'라고 본 것에서는 설 자리가 허용되 지 않았다.
하는 일의 차이가 거의 없고 공동생활이 공유되었으며 구별과 위계를 일으킬 만한 잉여물이 없었기에 자아도 크게 발달하지 않은 상태로 있 었다. 그들은 개별적 자아의 집단이라기보다 공동체적인 ‘우리’로, 오늘 날의 심리학자들이 "분화되지 않은 거대한 일체감"이라 부르는 것 안에 서 살았다. 그들의 의식은 자연에 대한 깊은 참여와 걸맞게 생명애와 자 연공포증의 이중성 안에서 구체화되고 표출되었다.
그 이후 여정은 우리 인간 종을 원시 농경 및 목축의 신석기시대로, 다 음에는 거대한 수자원 기반 농업 문명으로 데려갔고, 최근에는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게 했다. 산업화 시대에 인간 종은 자연을 인간의 손에 들 어와 유용한 물건이 되기 전까지는 거의 무가치한 자원의 수동적 저장고로 생각하게 되면서 궁극적으로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오늘날 우리 인간 종은 그 어느 때보다 세분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나 머지 세계와 갈수록 격리되어 밀집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수십억 명의 인류에게 이바지하는, 광범위한 인프라에 내재된 더 차별적인 기술과 분업으로 이루어진 세분화 사회다. 현대의 평균적인 미국인은 (인간 종이 지구상에 존재해 온 시간의 95퍼센트 이상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우리의 조상들이 수렵 채집을 하며 집이라 부르던 자연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하루의 90퍼센트를 인공적으로 냉난방을 조절하고 전기 조명을 밝히는 실내에 서 보낸다. 49
인공적으로 고안된 환경 속 생활이 주는 안정감은 언제나 환상에 지 나지 않았고, 이제 가상 세계와 메타버스의 생활도 별반 다를 게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조상들의 거주지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며 자 율적 존재를 확보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고, 결국 이제 그 어리석음의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지구온난화 배출물의 엔트로피 청구서와 지구 역사상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는 대가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얻을 교훈은 있다.
기후변화와 점점 증가하는 글로벌 팬데믹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 는 모든 행동이 다른 모든 것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인간 도 혼자만의 섬이 될 수 없고 완벽한 자율적 행위자도 될 수 없으며, 어 떤 식으로든 다른 모든 생명체와 지구 권역의 역학에 의존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이 현실은 생명 애 의식, 즉 생명에 대한 심오한 공감적 공명의 느낌을 촉진하는 원동력 이 되었으며 우리의 미래가 걸린 지금은 더더욱 그렇게 되고 있다.
바필드는 우리 인간 종이 인간 의식의 세 번째 단계, 즉 자연계와의 친족 관계를 재확인하는 전환점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이번에는 행성의 나머지 생명체와 보편적 친밀감을 경험하기 위해 전적으로 거리낌 없이 그들에게 '재관여하는 자각적 선택의 방편으로 생명애 의식의 도약을 이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맹목적인 미신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 라 생명을 향한 우리의 변치 않는 애착에 대한 공감적이고 사려 깊으며 인지적인 깊은 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 놓여 있는 거대 한 투쟁에 새로운 자세로 나서기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장도에 올 라야 한다. 생명의 숨결을 되살리기 위한 전투태세를 제대로 갖춰야 한 다. 지구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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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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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트렌드 2023

사회 2022. 12. 25. 14:11

- 소비자의 선택에 대세가 없을 뿐 그와 별개로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는 존재합니다. '복세편살'이란 단어를 기억하십니까?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줄임말로 6~7년 전 유행했던 신조어입니다. 신조어는 시대 를 풍미합니다. 복세편살이 유행했던 2010년대 중후반은 욜로 YOLO, You Only Live Once와 힐링의 감성이 메인 스트림이었습니다.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 '매사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 지가 대중의 공감을 샀던 시기입니다.
2020년대를 맞이해 메인 스트림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일상 속 소비자의 무수한 행위와 선택의 기저에는 이제 '갓생''이라는 가치가 깔려 있습니다. 2023년 마이크로트렌드 중 상당 부분도 이 갓생의 맥락에 있습니다.
- 노션의 장점은 메모, 자료 저장, 프로젝트 관리, 간단한 엑셀 작업 등을 앱 하나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본질적 인 인기요인은 다른 생산성 앱에 비해 커스터마이징이 쉽고 그 범 위가 넓다는 것이다.
노션을 실행하면 처음에는 하얀 도화지와 같은 화면이 펼쳐진 다. 여기에 어떤 기능을 활용해, 템플릿과 아이콘을 어떻게 조합하 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결과물이 나온다. 스크랩북, 가계부, 캘린 더, 업무 관리표는 물론 나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매거진, 홈페이지 도 만들 수 있다. 앱이 제공하는 기능에 내 사용 범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목적에 맞춰 앱의 용도를 새롭게 설계하는 것이다. 코딩 을 하지 않고도 프로그래밍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노션의 매력이다.
- 아이폰 단축어 기능과 노션 활용법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 은 자신이 직접 제작한 단축어나 템플릿을 온라인에 배포해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2세대는 타인이 공유한 콘텐츠를 다운로드해 활용하고 그것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각색해 발전시킬 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을 재배포하기도 한다. 플랫폼이 제공하는 최소한의 틀과 도구를 활용해 스스로 다양한 선택지들을 재생산하며 소통하는 것이다.
2세대를 공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면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 좋다. 물론 과거에도 커스터마이징 옵션을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존재했다. 다만 그때 소비자는 생산자가 제시하는 선택지 안에서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제는 여러 선택지를 보여주는 것보다 소비자가 선택지 자체를 직접 만들게 한다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고객이 각자의 라이프 스타 일, 취향, 필요에 맞춰 스스로 소스와 정보를 조작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 2세대의 직업관을 단순히 N잡러나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세대에게는 한 사람의 직업이 와인 모임을 운영하며 와인에 관한 책을 쓴 와인 덕후인 동시에 취미를 소재로 책을 출판하는 노하우를 전수하는 유튜버자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로 마카롱을 파는 마카롱가게 사장일 수 있다.
'융덕'이란 유튜버가 좋은 예다. 융덕은 Z세대가 애용하는 쇼핑 몰인 에이블리에 입점한 '오리상점'의 운영자다. 동시에 융덕이라 는 계정을 운영하는 일상 브이로그 유튜버 '마라덕'이라는 별도 의 계정을 함께 운영하는 마라탕 먹방 유튜버다. 마라탕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최근 '홍주방'이라는 마라탕 프랜차이즈 가게를 열었다. 융덕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비디오 크리에이터, 마라덕 베스트 프렌드, 홍주방 김포구래점 사장, 오리상점이 모두 기재돼 있다. 그중 무엇이 본업이고 무엇이 부업이라고 딱 잘라 구분할 수 없 다. 융덕은 2022년에 4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처럼 Z세대의 일은 하나로 설명할 수 없고 계속 업데이트된다.
따라서 '직업을 갖는다'보다는 '커리어를 쌓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2세대에게는 성장의 의미도 다르다. 대부분이 한 직장 또는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던 시대에 성장이란 위쪽으로의 이동을 의 미했다. 한 직장에서 승진을 거듭해 임원이 되는 것이나 한 분야에 서 최고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 성장이고 목표였다. 반면 2세대 에게 성장은 옆으로, 입체적으로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내가 좋아 하는 분야를 열심히 파고들고 나의 재능을 이용해 여러 가지 프로 젝트에 도전하면서 경험을 넓히는 것이 성장의 의미자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다.
- “앞으로의 세상은 커리어 패스career path 대신 커리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에이프릴 린네April Rinne)
- 저연차 직원에게 역할과 권한을 더 많이 위임하는 쪽으로 변화 를 시도하는 기업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신상품의 성과를 빠 르게 확인할 수 있는 유통업계에서 2세대 독립 조직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추세다. GS25는 제품 기획부터 개발, 마케팅, 출시까지 모든 과정을 전담하는 '갓생기획'이라는 조직을 구성했다. 인기도 넛 브랜드와 협업한 '노티드우유', 팝잇과 사탕이 함께 들어 있는 '팝잇진주캔디', 기존 김치찌개라면에 틈새라면의 매운맛을 덧붙 인 '틈새 오모리 김치찌개라면' 등 Z세대 트렌드를 상품에 빠르게 접목해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갓생기획은 팀원을 6개월마다 바꿔 시즌제로 운영된다. 정체되지 않고 늘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 롯데홈쇼핑은 'MZ PB(자체 브랜드) 개발팀'을 구성해 홈쇼핑이 아닌 라이브 커머스를 보는 소비자를 공략했다. 자기 관리에 관심이 많은 Z세대를 겨냥해 SNS에 올리기 좋은 콘셉트와 디자인으로 단백질바 '우주프로틴'을 출시했는데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 즈에서 목표 펀딩액의 40배를 달성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외 에도 친환경 보디 패키지, 숙취 해소제 등 MZ세대 소비자의 라이 프 스타일을 반영한 제품을 계속 내놓을 예정이다.
KT에는 20대 전용 브랜드 'Y'를 담당하는 '세그마케팅 3팀'이 있다. 신진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이들과 협업해 수제 맥주, 화장품,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등 20대가 좋아하는 아이템을 출시하는 'Y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인스 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를 팀의 주 메신저로 이용한다. 대학생 서포터즈 100여 명과 직접 소통하며 SNS에서 반응이 좋은 콘텐츠 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 위함이다. 이 외에도 롯데마트의 '관심급구 프로젝트'나 '보틀벙커팀', 현대백화점의 '피어 전담팀' 등 여러 기업이 앞다퉈 Z세대 독립 조직을 만들고 있다.
- 최근 몇 년간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면서 살자며 소비를 부추긴 욜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욜로를 추구하 는 경향은 2017년 대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20대는 2017년 75.6퍼센트에서 2021년 55.2퍼센트로 비율이 감소했고, 30대 역 시 66.4퍼센트에서 59.6퍼센트로 줄었다. 주목할 점은 20대에서 그 비율이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데 그 어떤 세대보다 적극적이었던 2세대가 이제는 욜로 라이프가 아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갓생을 꿈꾸고 있다.
- 욜로의 시대: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만족을 좇다
밀레니얼세대가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2010년대는 장기 불황의 시대였다. 이들은 높은 스펙을 갖췄지만 취업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천정부지로 솟는 집값에 내 집 마련 또한 요원했다. 열심히 스펙을 쌓고 돈을 모으면 직업도 집도 가질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오늘의 노력이 미래의 안녕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밀레니얼세대는 행복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기 시 작했다. 큰 부를 쌓거나 명성을 얻는 등 거창한 성공을 좇기보다 다 른 사람들과 비슷하고 평범하며 무탈한 일상을 보내기를 꿈꿨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미루지 않았고 취미나 여행에 적극적 으로 지갑을 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소소하 지만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는 행복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사는 인생 후회 없이 즐기며 살자는 욜로의 메시지는 이런 변 화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오늘의 만족을 우선시하는 삶의 태도가 본격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욜로의 시대에는 일시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현상이 돋보였 다. 퇴근길 인형 뽑기 방에 들러 소소한 성취감과 '탕진잼''을 즐겼 고'홧김소비'처럼 예상치 못한 지출로 그때그때 스트레스를 해 소했다. 쓸모는 없지만 기분 전환을 위해 구매한 예쁜 물건, 오늘 하루 고생한 나를 위해 지르는 택시비는 기분을 빠르게 달래주기에 충분히 타당한 소비였다.
이는 곧 2020년대 초반 플렉스flex로 이어졌다. 플렉스는 원래 미국 힙합 문화에서 부를 과시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었는데 소비 를 통해 얻는 일시적인 만족감을 표출하는 용어로 확장됐다. 명품을 구매하는 것처럼 큰 소비가 아니더라도 다이소나 편의점에서 물건을 잔뜩 사며 '플렉스해버렸다'고 이야기했다. 작은 낭비에서 오는 찰나의 만족감을 과장해 표현한 것이다.
탕진잼과 플렉스 같은 소비문화는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소소 한 행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값비싸지 않아도, 구매와 동시에 물 건의 효용 가치가 사라져도 괜찮다. 일시적인 만족일지라도 구매 하는 순간 즐거움을 느꼈다면 충분한 것이다. 이 시기 합리적인 소 비의 기준은 바로 '즉각적인 자기만족'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예 쁜 쓰레기나 무의미한 물건에 돈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이더라도 내가 현재 만족한다면 합리적이고 가치 있는 소비로 여겼다. 그렇게 MZ세대는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으로 일상을 채워나갔다.
- 갓생의 시대: 지속되고 채워지는 소비를 추구하다
2020년 코로나19로 일상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친구를 만나 맛집 을 탐방하거나 주말에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이 어려워졌다. 불안 한 미래 대신 추구해온 현재의 작고 소소한 행복조차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밀레니얼세대와 2세대는 또다시 일상을 즐기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과거와의 차이점은 일시적이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 는 것이 아닌 무탈한 하루를 유지할 힘을 기르는 데 집중했다는 것 이다. 하루하루 나를 위한 작고 좋은 습관을 쌓고 '적어도 오늘은 잘 보냈다'는 성취감을 좇으며 무너진 일상을 다시 세웠다.
오늘을 지탱하기 위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갓생 문 화를 향한 움직임은 특히 2세대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 하루에 2리터 이상 물 마시기 등 자기만의 소소한 목표 를 실천하며 성취와 활력을 얻었다. 오늘 하루를 좀 더 괜찮은 상태 로 유지하고자 노력하다 보면 결국 매일을 좋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갓생을 추구하는 궁극적인 이유다.
과거의 욜로나 지금의 갓생 모두 나와 현재를 중요하게 여긴다 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욜로를 지향하는 삶에서 현재가 후회 없이 즐겨야 하는 순간'이라면 갓생의 현재는 좋은 습관을 쌓아가는 과정으로, 둘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달라진 삶의 태도는 소비문화도 변화시켰다. 예전에는 소비를 통해 즉각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지금은 소비의 가치를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체감하는 것을 중요하 게 생각한다. 무엇이 내 삶을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주는 지, 그것이 얼마나 오래가는지에 따라 만족감이 달라진다. 한마디 로 현생을 더 잘 살기 위해 지속가능한 관점에서 자신에게 투자하 는 소비가 바로 요즘 세대의 소비 트렌드다.
-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2021년에도 소비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대안을 찾아 즐기는 이들을 '세컨슈머'라 정의했다. 여기서 지속가능한 삶은 괜찮은 일상을 미래에도 유지할 수 있는 삶이다. 세컨슈머는 어떤 효용이 내 삶을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는지, 구매 결과 체감할 수 있는 가치가 얼마나 지속되는지에 따라 만족감을 다르게 느낀다. 좁게 는 먹고살수단부터 넓게는 사회와 환경의 지속가능성까지 생각하 며 소비한다. 리셀이나 재테크를 통해 다양한 소득원을 확보하고 중고 거래나 로컬 상점 방문을 통해 지역사회와 상생과 환경보호 를 실천하는 등 대안적인 소비 수단을 찾는 것에 초점이 맞췄다. 그러나 2022년에 말하는 지속가능함은 다른 개념이다. 이는 '내 효용 가치의 지속가능성'을 뜻한다. 현상 유지나 대안 탐색을 넘어 소비를 통해 일상에서 꾸준히 만족감을 느끼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Z세대는 소비의 효용 이 계속되기를, 소비를 통해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를 쌓아가기를 원한다. 탕진하고 비우는 소비가 아닌 이어지고 채워지는 소비를 지향한다.
- 와인, 위스키 같은 술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제품마다 얽힌 스토리도 다양하다. 무언가 파고들기를 좋아하는 2세대는 탄생 배 경, 음용법, 제조 방법, 문화 등을 깊이 탐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프 리미엄 주류를 즐긴다. 크림 파스타에는 산도가 높은 화이트 와인 을, 튀긴 음식에는 청량감을 주는 하이볼을 곁들이는 등 술과 음식의 조화를 고민한다. 지금 마시는 술과 관련해 몇 년도 어디에서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를 먼저 탐색한다. 이들에게 술은 그저 술잔에 따라 마시는 음료에 그치지 않는다. 프리미엄 주류를 제대로 알고 즐기는 행위는 곧 지식과 견문을 넓히고 자기 가치를 높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각종 원데이 클래스를 수 강하는 이들이 많았다. 디깅 소비는 넓고 얕은 체험으로 끝나지 않 고 시간과 비용을 꾸준히 투자해 진짜 내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원데이 클래스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Z세대에게 고급문화를 공 부하고 경험하는 행위는 좋은 소비다. 배움이야말로 자기 안에 축 적되는 가치 있는 행위로 여기기 때문이다.
- Z세대에게 편의점이란 공간은 먹거리와 생필품을 파는 유통 채널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브랜드의 매력을 미리 보여주고 온. 오프라인을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놀이터다. 편의점은 앞으로도 계속 Z세대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고 Z세대는 편의점에서의 놀이를 이어갈 것이다. 따라서 2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라면 편의점이라는 놀이터에 뛰어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그것이 Z세대와 가까워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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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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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떴을까

사회 2022. 11. 30. 20:55

- <오징어 게임>은 '황동혁 월드'의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작품이다. 그동안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선보인 황 감독의 실력과 장기를 한눈 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황 감독은 영화 <도가니>, <남한산성>처럼 실화와 역사적 사실을 토 대로 한 묵직한 작품들도 만들었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휴먼 코미디 영화 <수상한 그녀>의 연출을, 범죄 코믹극 <도굴>의 각색과 제작을 맡기도 했다.
그는 사회 고발 장르부터 휴먼 코미디, 경쾌한 케이퍼 무비 caper movie 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면서 '황동혁 월드'를 완성했다. 그의 특기 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달한다 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사회 문화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킨 것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명 확하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 황 감독의 철칙 중 하나는 '한번 한 장르는 다음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 있는 것에 안주하기보다는 모험을 즐기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동기부여를 받는 스타일에 가깝다. 그는 각종 인터뷰에 서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고 한다. 리스크risk가 느껴지더라도 안전 하지 않고 겁이 나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할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한 것이 그 가 스스로를 성장시켜온 방법인 셈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뚜렷한 주제 의식과 그것을 짜임새 있게 풀어가 는 연출력이 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양한 장르와 방 식으로 풀어냈고, 대부분의 각본을 직접 쓰면서 군더더기가 없고, 핵심을 꿰뚫는 '촌철살인' 대사로 몰입도를 높였다.
영화계에서 '엘리트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황 감독은 서울대학교신문학과(현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영화 제작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 우리는 누가 이토록 치열한 경쟁 사회를 설계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경기장의 말처럼 열심히 앞으로만 내달린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시스템이 잘못됐다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감독은 "우리는 경기장의 말처럼 살아가지만, 이런 시스템을 만든 이가 누구이며 이를 고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제 제기 를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기훈의 마지막 대사는 이 드라마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난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그래서 너희가 누군지 궁금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 K-좀비물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속도감이다. 한국형 좀비들은 서 구형 좀비에 비해 역동적이고 민첩하게 움직인다. <부산행>에서 주인 공들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오는 좀비 떼는 시각적인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서구형 좀비들이 '살아있는 시체처럼 느릿하거나 비틀거 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해외에서 좀비들이 종종 CG로 표현되는 것 과 달리 K-좀비들은 전문적인 안무가들이 직접 좀비를 연기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생생하다.
목을 뒤로 젖히고 사지를 꺾고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좀비들의 기 괴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동작들은 안무가들이 직접 만들었다. 물론 작품의 성격에 따라 좀비들의 움직임은 조금씩 달라진다. K-팝의 다 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널리 알려진 화려하고 정교한 안무가 좀비 연 기에도 적용된 셈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에서도 바이 러스에 감염되는 과정, 감염 이후의 움직임 등이 안무에 가까운 역동적인 동작으로 표현됐다.
K-좀비물의 또 다른 특징은 제한적이고 익숙한 공간에서 펼쳐진다
는 점이다. <부산행>의 달리는 KTX 객실이나 <#살아있다>의 고립된 아파트, <킹덤>의 조선시대 궁궐, <지우학>의 교내 여러 공간 등이 대 표적이다. 해외 좀비물이 주로 거대한 광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것 과 달리 K-좀비물은 한정된 공간을 활용해 치밀하게 계산된다. 좀비 들의 추격을 피해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야 하는 이들의 사투는 공포 감과 함께 몰입감을 높일 수밖에 없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장르물에 휴먼 드라마를 적절히 접목했다 는 점이다. 서양 좀비물이 재난 영화를 기반으로 공포와 스릴러물에 방점이 찍혔다면, K-좀비물은 인물들의 캐릭터와 서사가 강조된 휴 먼 드라마를 표방한다. 서양 좀비와 달리 한국의 좀비는 인간적인 감정이 투영된다.

- 역사는 결과론적으로 후세에 조합된다. K-팝도 마찬가지다. H.O.T. 데뷔해인 1996년(공교롭게도 한국 대중음악사를 자신들의 출현 전 과 후로 가른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한 해이기도 하다.)을 K-팝 태동의 원 년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시발점의 획정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지금의 '아이돌 그 룹' 형태로 본다면 K-팝 1호 아이돌 그룹의 칭호는 H.O.T.에게 붙여 지는 게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K-팝의 원류이자 원형은 서태지 와 아이들이 만들었다고 보는 게 적확할 것 같다. 물론 '아이돌 시스 템'으로 들어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현재의 아 이돌 시스템, 더 정확히는 연습생 시스템, 아이돌 트레이닝 시스템 혹 은 아이돌 그룹 제작 프로세스를 확립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K-팝의 원류이자 원형이 된 것은 이들이 지금 아이돌 그룹의 콘텐츠가 되는 음악 장르와 멤버 구성에 결정적 영향 을 미쳤기 때문이다. 먼저 메인보컬·래퍼 ·댄서로 이루어진 그룹의 구성이다. 물론 이들의 경우는 리더 서태지에게 집중된 팀이었지만 만일 서태지가 '아이들' 없이 애초 계획대로 솔로로 데뷔했다면 아마 이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백댄서 이 상의 역할을 담당했던 '아이들' 이주노와 양현석의 역할은 결코 적지 않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들고 나와 한반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희대의 데뷔곡 <난 알아요>가 바로 랩을 기반으로 한 댄스곡으로 지 금 아이돌 그룹이 구현하는 주된 음악 장르이기 때문이다.
인트로에 맞춰 칼군무가 등장하고 메인보컬의 첫 소절이 시작된다. 이어 서브보컬들이 차례로 한두 소절씩 춤추며 노래한다. 다 같이 부 르는 후렴구(음악계 은어로는 '싸비'라고 한다.)가 끝난 후 메인-서브래퍼 의 랩타임이 이어진다. 다시 2절이 시작되고 비슷한 과정 후에 그룹 센터가 무대 전면에 나서며 곡이 끝난다.
물론 적절한 변형은 늘 존재한다. 그러나 '인트로, 메인-서브보컬, 떼창, 메인-서브래핑, 아우트로'의 구성은 순서가 약간 다를 뿐 큰 틀 은 놀라우리만치 그대로다.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지는 이 같은 구 성은 K-팝 트랙의 전형을 이룬다.
또 하나, 서태지와 아이들이 K-팝의 원형이 된 것은 충성도 높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팬덤'의 형성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키워드는 '충성도'와 '적극적 행동'이다. 이 둘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적 극적 행동은 충성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에도 '오빠부대'라는 이름의 팬덤은 존재했다. 그런데 서태지와 아이들 팬덤이 이전과 차별화되었던 것은 이들 팬덤의 중심이 10대였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10대는 팬덤의 중심에 선 적이 거의 없었다. 특히 대중음악인들의 팬덤은 20대 이상이 주류 였다. 그러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으로 10대들이 처음으로 대중 문화계의 주류 소비자로 떠올랐으며 이는 이후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 팬덤에 있어서 더욱 공고화된 특징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팬덤이 이전 '오빠부대'와 달랐던 점은 세상을 향 해 처음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냈다는 것이 다. 이는 '내 가수 지키기'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대중음악계 의 부조리, 더 나아가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둘러싼 불합리한 시스템 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집단적 행동을 불사하는 중 요한 대중문화 주체로 떠올랐다.
- 연습생 시스템, K-팝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다. 이 시스템은 일본의 대표적인 연예 기획사 쟈니스 프로덕션의 스타 양성 시스템인 '쟈니스 주니어'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는 '될성부른 떡잎'을 일찌감치 발굴해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통해 스타로 키워내는 것이다. 오디션이나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연습생을 발굴하고 노래와 춤, 연기 등을 집중적으로 훈련하고 정기적 테스트를 통해 훈련 상황을 점검하며 최종 데뷔까지 시키는 프로세스는 이미 일본의 기획사들이 오랜 기간 시행 해온 방식이다. 다만 '쟈니스 주니어'는 '연습생'이라기보다는 준 연 예인에 가깝다는 특징이 있다. 정식으로 데뷔를 하지 않았을 뿐 방송, 잡지 등 미디어에 노출되고 연기자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 K-팝의 연습생 시스템은 이 같은 일본 시스템의 영향을 받았지만 차별화된 특징으로 K-팝, 아이돌 그룹의 산실 역할을 확고히 수행해 왔다. 김완선의 사례 등 1990년대 이전에도 유사한 스타 양성의 방식 은 존재했지만 '시스템'이라고 할 만큼 체계화된 틀을 갖춘 것은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HOT의 발굴과 데뷔를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캐스팅에서부터 고된 트레이닝과 피를 말리는 정기 평가, 데뷔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까지 꼭 거쳐야 하는 독하다 독한 통과의 레인 연습생 시스템은 K-팝 만의 특장점을 만들어낸 '양날의 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존재다.
아이돌에 뜻이 전혀 없다가 눈에 띄는 비주얼 때문에 길거리 캐스팅된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 연습생들은 어릴 때부터 춤과 노래에 흥미와 재능을 보이다 스스로 기획사 오디션에 참여한 경우가 많다. 일찍이 춤과 노래, 랩 등에 본인의 적성과 재능을 발견한 사례들부터 생각지 못한 길거리 캐스팅으로 갑작스럽게 합류한 경우까지 여러 아이 돌 지망생들이 뒤섞여 실력을 쌓고 생존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 숙소 생활과 트레이닝이다. 이 속에서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과 평가를 통 해 소위 '데뷔조'가 선발된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라 는 말처럼 데뷔할 때까지 데뷔한 게 아니다. 이들은 최소 1년 이상 '피 땀 눈물'이 가득한 연습에 연습을 거치고 숱한 준비작업 끝에 드디어 '데뷔'라는 것을 하게 된다. 딱 딱 각이 잡힌 칼군무도 이때 완성되는 것이다.
- 송 캠프가 열리면 보통 한 공간(작업실)에 2~3명의 창작자들이 배정되어 '따로 또 같이' 작업을 하게 된다. 이들은 한 팀이 되어 유기적 소통과 협업 속에 곡을 만든다. 우연히 혹은 쥐어짜듯 떠오른 영감을 붙들고 치열하게 몰입하는 처절하리만치 고독한 작업은 점점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단 한 마디, 한 음절이라도 수정을 허용치 않는 예술 가의 고집도 옛말이다. K-팝의 작법은 이처럼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혹은 모이지 않고 따로 작업하더라도 서로 작업 파일을 공유하며 끊 임없는 첨삭과 수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A&R Artists and repertoire 부서의 평가와 의견, 더 나아가 회사 수뇌부의 최종 컨펌 confirm과정까지, 처음 만들어진 곡은 '원곡'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질 만큼 겹겹의 작업과정을 통해 아예 다른 곡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이 같은 작업과정은 송 캠프 도입 초기에 국내 대중음악 관계자들 과 팬들에게 낯설게 다가왔다. 국내에 소개된 초기 송 캠프의 모습은 보통 2~3일간 2~3명의 작업자들이 한 팀이 되어 한 공간에서 집중 작업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형식이었다. 이제는 너무도 일반화 된 작법들이 당시엔 생경하게 인식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문화가 확대되면서 상 상력에 기반한 '부캐'는 자연스럽게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특히 IT 기술과의 결합으로 메타버스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키워드로 전면 에 떠올랐다. 인터넷 속도와 보급률에서 세계 최상위권인 한국에서 코로나19는 가상현실 세계를 5년 이상 앞당겼다.
부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세계관'이다. MZ세대들은 본체 가 누구인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캐가 만든 세계관에 서 함께 즐기기를 원한다. 세계관은 상당히 섬세하고 촘촘하게 짜여 있고 현실을 비틀어 B급 정서로 웃음을 준다.
부캐는 코로나 장기화에 지친 사람들이 함께 웃고 즐기는 'B급 놀 이터'였다. 누구도 그 놀이터가 없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알 면서도 속아준다. 때문에 누구나 본캐 부캐를 별개의 존재로 인식 하며, 부캐가 세계관 속에서 만들어가는 스토리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 전 세계에서 각광받은 K-장르물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킹덤>, <지옥>, <스위트홈>,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은 현대사회의 암울하고 희망 없는 비 관적 서사를 바탕으로 한다.
불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인간의 밑바닥이 더 잘 드러나는 것처럼 한국 장르물에서 그린 'K-디스토피아'는 비극적 상황에서 사회의 구 조적 모순과 인간성 말살이라는 사회의 민낯을 더 명확하게 보여준 다. K-디스토피아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한국형 리얼리즘 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가족애, 희생과 헌신 등을 기반으로 한 'K-신 파'가 버무려져 완성됐다.
- 'K-로맨스'는 화려한 영상미와 감성적인 OST, 세련된 스타일이 총 집합된 종합 예술에 가깝다. 입체적이고 몰입감 있게 이야기를 엮어 내는 작가의 필력과 이를 화려하게 담는 감독의 연출력, 매력적인 외 모의 배우들의 연기력은 K-로맨스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초기 한국 로맨스 드라마는 지상파 방송사 중심으로 제작됐는데, '드라마 왕국'으로 불렸던 MBC, 한류 붐을 일으켰던 KBS, 후발주자 였지만 트렌디 드라마에서 강세를 보인 SBS 등 방송 3사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때문에 방송사 소속 공채 PD들과 공채 탤런트들이 한류 드라마를 이끌었다.
- 1세대 한류 드라마는 KBS <겨울연가>(2002)에서 시작됐다. 윤석 호 감독은 <가을동화>(2000), <여름향기>(2003), <봄의 왈츠>(2006) 등 KBS를 통해 일명 '계절 시리즈'를 내놓았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감 성적인 사랑 이야기는 1세대 K-로맨스의 전형을 만들었고, <겨울연 가>의 배용준과 최지우, <가을동화>의 송승헌과 송혜교, <여름향기> 의 손예진 등 청춘 스타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는 '순수한 사랑'은 K-로맨스를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주제지만, 1세대 로맨스 드라마는 비장미가 느껴질 정도로 순수한사랑이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 시청률 40%를 돌파했 던 권상우, 최지우 주연의 드라마 <천국의 계단>(2003)이 대표적이다.
- 1세대 K-로맨스가 아시아와 중동 문화권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 던 것은 유교 문화를 반영한 한국 드라마가 다소 보수적인 문화를 견 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애이불비' 정서에 근거한 은근한 로맨스는 K-로맨스의 특징인데 이는 로맨스 사극에서 특히 잘 드러 난다.
한류 1세대를 이끈 MBC <대장금>(2003)을 비롯해 <공주의 남자> (2011), <해를 품은 달>(2012) 등의 로맨스 사극은 남녀 간의 사랑을 자 극적이지 않고 잔잔하게 감정의 진폭을 강화하는데 더 초점이 맞춰졌 다. 이는 보수적이지만 애틋한 로맨스 KBS <구르미 그린 달빛>(2016), <연모> (2021), <옷소매 붉은 끝동> (2021) 등으로 계보가 이어졌고, 국 내외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 해외 팬들은 서구의 로맨틱 코미디가 갑작스러운 전개가 이뤄지는 것과 달리 K-로맨스의 가장 큰 차별점이자 강점으로 인물들의 감정 이 서서히 점층적으로 쌓이다가 폭발하는 것을 꼽는다. 현재의 K-로 맨스가 등장인물의 관계성을 촘촘하게 그리고 서사를 층층이 쌓아가 다가 몰입도를 높이는 전개 방식을 띠는 것은 1세대 한국형 로맨스에 서 계승 발전된 부분이다.
- 초기의 'K-로맨스'가 다소 무거운 스타일이 많았다면, 2000년대부터는 발랄한 청춘들의 성장을 그린 로맨스물이 다수를 차 지했다.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연출 기법으로 변주된 젊은 감각의 트렌디 드라마가 늘어나면서 여주인공의 화장과 패션이 주목받았고 드라마의 PPL Product Placement, 간접 광고 사업도 부흥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지금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었던 당시에 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청순가련형 외모 를 갖췄지만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여주인공이 백마 탄 왕자를 만나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신데렐라가 된다는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을 TV 앞으로 끌어당겼다. 2000년대 초에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벤처 기업 붐이 불면서 외모와 재력을 갖춘 기업의 회사 대표나 재벌 2세가 유독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명랑소녀 성공기>(2002), <발리에서 생긴 일>(2004), <파리의 연인>(2004)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남성 캐릭터들은 주로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으로 그 려졌는데, 대부분 내면의 아픔을 가진 까칠하고 도도한 재벌 2세가 한 여성을 통해 변화되어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한국 드라마의 대표적인 클리셰도 이즈음 만들어졌다.
하지만 2000년대 대표적인 한류 드라마인 <풀하우스>(2004)를 기 점으로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캐릭터를 거부 하고 발랄하고 능동적인 캐릭터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전 작품에서 비련의 여주인공 혹은 억척스러운 캔디형 여주인공을 맡았던 송혜교 는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교본이라고 볼 수 있는 <풀하우스>에서 상 큼 발랄한 이미지로 '드라마 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그녀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일과 자기주장이 확실한 전문직 여성의 로맨스를 그렸고,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K-로맨스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동명의 일본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한 <꽃보다 남자>를 비롯해 <풀 하우스>, <궁> 등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들이 늘면서 K-로맨스물 은 명랑만화같이 아기자기하고 발랄한 특징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유 행에 민감하고 톡톡 튀는 상큼 발랄한 'K-로맨스'의 전형이 형성된 것이다.
- 2010년대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K-로맨스' 드라마 속에서 성 역할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더 이상 자 신의 결핍을 채워 줄 '백마 탄 왕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캐릭터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수동적인 여성보다는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사랑에서도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각광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경제·사회적인 지위는 낮지만 가부장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순수함으로 승부하는 남성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보호 본능을 자극하고 사랑에 순수한 마음을 지닌 남성에 대한 동경이 생긴 것이다.
이는 고소득, 고학력 골드미스가 급증하는 등 달라진 사회상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도 내가 좋아한다면 그런 결핍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동시대 여성들의 변화된 가치관을 반영 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순수한 사랑에 대한 여성들의 판타지는 K-드라마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주제지만, 수동적인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통한 대리 만족이 아닌, 보다 주체적으로 사랑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등 보 다 다채로운 서사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 부여된 성 역할과 캐릭터에 변화가 생기면서 연상연하 커플이 많이 등장하기도 했다. 누나들의 마음을 훔친 배우들은 '국민 연하남'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스타덤에 올랐다.
JTBC 드라마 <밀회>(2014)의 유아인이 대표적이다. 유아인은 이 드 라마에서 퀵서비스 배달 일을 하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워 온 20대 선재 역을 연기했다. <밀회>에서 사회적 위치가 불안하지만 순수함을 지닌 선재와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40대 커리어우먼 혜원(김 희애)의 사랑은 극명한 대비를 이뤄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 판타지 로맨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다. K-로맨스시장의 양대 산맥인 김은숙, 박지은 작가는 2016년 tvN 금토 드라마 <도깨비>와 SBS 수목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등을 각각 내놓으 며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폈다. 모두 전생과 현생을 오가는 운명적인 사랑을 소재로 한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들이었다.
판타지 로맨스가 각광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신선한 소재다. 드라마 소재가 고갈된 상태에서 판타지 로맨스는 소재가 풍성하고 예측 불허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한다. 또한 현실 에서 이루지 못한 답답한 꿈을 판타지를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심리가 숨어 있다. 정통 사극은 PPL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과거를 오가는 판타지 로맨스는 PPL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도깨비>의 경우 설화 속에 등장하는 도깨비와 저승사자를 주인공 으로 내세워 신과 인간의 세계를 신비로우면서 친근하게 그렸다. 고 려 상장군이었던 김신(공유)이 가슴에 칼이 꽂힌 채 900년이 넘는 세 월 동안 불멸의 삶을 살아왔고, 도깨비 신부만이 그 칼을 뽑아 무無로 돌아가게 한다는 줄거리는 언뜻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주인공들의 전 생과 현생의 이야기가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면서 극에 개연성을 불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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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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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프루프

사회 2022. 11. 26. 13:36

-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장차 인류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든 해롭다고 생각하든 이미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기계가 인간 노동자를 대체할지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기업 임원들 이 결정한다. 안면 인식 시스템과 디지털 타기팅 광고 같은 기술이 등장하면 어떤 제한을 둘지도 로봇이 아닌 정책 입안자들이 정한다. 새로운 형태의 인공지능을 만드는 엔지니어들은 이 도구들을 어떻 게 설계할지 정하고 사용자들은 이 도구들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지를 판단한다.
이것이 인공지능 혁명에 관한 진실이다. 무시무시한 기계가 장악할 일도, 악랄한 로봇 군대가 봉기를 꾀해 우리를 노예 삼을 일도 없다.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지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 역사를 되짚어보면 기술 변화의 시기에 엘리트 계층과 자본가들의 생활 조건은 향상되었지만, 노동자들은 즉각적 혜택을 누리지 못할 때도 많았다. 예를 들어 1760 년대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영국의 국내 총생산 GDP 과 기업 이익은 거의 즉시 치솟았지만 영국 노동자의 실질 임금이 오르기까지는 50년이 넘게 걸린 것으로 추산된다《영 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논한 이 격차는 경제학자들 사 이에서 엥겔스의 휴지기 Engels's Pause로 알려져 있다). 산업혁명의 주인공인 노동자 대다수가 생산성 향상의 결실을 맛볼 즈음에는 이미 은퇴 했거나 유명을 달리했다는 뜻이다.
- 일부 경제학자들은 오늘날 임금 수준은 정체된 반면 기업의 이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을 보면서 또 다른 엥겔스의 휴지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자동화가 일자리를 파괴하기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주장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연구들도 나오고 있다.
특히 MIT 대런 애쓰모글루와 보스턴 대학 파스쿠알 레스트레포 는 지난 수십 년간 자동화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속도보다 파괴하 는 속도가 더 빨랐음을 밝혀냈다. 이 두 경제학자는 1947년부터 1987년까지는 자동화에 대한 낙관론자들의 견해가 전반적으로 옳았다고 한다. 자동화를 택한 업계에서는 일자리 파괴와 창출(애쓰모글루와 레스트레포 이를 '변위'와 '복귀'라고 부른다)이 거의 같은 비율 로 일어났다. 하지만 1987년부터 2017년까지는 업계의 일자리 변위 속도가 복귀 속도보다 압도적으로 빨랐고, 그사이에 창출된 새 일자리들은 대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탓에 이를 차지할 노동 자가 많지 않았다. 달리 말해 과거 일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새 일자리를 기대하며 위안을 얻었지만, 오늘날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 라져가는 일자리 다수는 다시 돌아올 가망이 없다.
- 역사학자 데이비드 나이에 따르면 1930년대 처음으로 대거 등장 한 공장 곳곳에 전기가 설치되자 많은 노동자는 일상 업무가 전보다 개선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전등이 들어온 뒤로 그들의 일상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소통 창구가 사라진 것이었다. 한때 힘을 모 아 역동적으로 처리하던 일은 전기 기계의 등장과 함께 버튼만 누르 면 되는 틀에 박힌 일이 되고 말았다.
데이비드 나이는 이렇게 논했다. "더는 공장 안에서 소문과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 부대끼며 동료애를 다지기가 어려워졌다. 작업이 멈 출 때마다 수시로 쉽게 어울리곤 했는데, 관리자들이 끊임없이 기계 의 성능을 높이며 작업 속도에 박차를 가하자 그럴 수가 없어졌다."
- 이러한 변화는 화이트칼라 직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한때는 능률이 떨어지는 시간이 있어 노동자들이 한숨 돌리며 대화할 틈이 있 었지만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등장하면서 기업이 이 시간마저도 남 김없이 쥐어짜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지루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서구에서는 이런 업무가 눈에 띄지 않는다. 메리 그레이와 시다스 수리는 '유령 노동ghost work'의 증가에 관한 책을 썼다." 유령 노동이란 최종 사용자에게는 철저히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스템이 원활히 기능하게끔 하 는 인간 노동을 말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의 소셜미디 어는 온종일 유해 콘텐츠를 걸러내 남겨둘 게시물과 삭제할 게시물 을 결정하는 수많은 저임금 계약직 노동자에 의존한다. 알렉사와 같 은 인공지능 비서는 '데이터 주석자의 도움을 받는다. 데이터 주석자들은 사용자의 대화 녹음을 들은 뒤 데이터에 라벨을 붙이고 실수를 바로잡으며 다양한 억양과 이례적 요청을 이해하도록 인공지능을 훈련하여 나날이 시스템이 개선되게 돕는다. 중국에서는 인공지 능 작동을 위해 이를테면 이미지에 라벨을 붙이고 음성 파일에 태그 를 붙이는 등 종일 틀에 박힌 사무를 담당할 막대한 수의 노동자를 공급하는 '데이터 라벨링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노동자들은 시간당 10위안 정도를 버는데 이를 달러로 환산하면 겨우 1.47 달러 정도다.
-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물결 가운데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부 분은 위험 지대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자동화는 블루 칼라가 종사하는 제조업 중심의 반복적이고 수동적인 작업에 대부 분 집중되었다. 화이트칼라 지식 노동자들은 대체로 자신이 안전하 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공지능과 기계 학습은 회계, 법률, 재 무, 의학과 같이 기획, 예측, 프로세스 최적화 등의 작업이 필요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알고 보면 이러한 작업이야말로 인공지능의 전공 분야다.
사실 화이트칼라 노동자는 블루칼라 노동자보다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클 수도 있다. 2019년 브루킹스 연구 소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마이클 웹의 작업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25 웹 등은 인공지능과 관련된 특허 내용과 노동부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직무기술서 내용 중 겹치는 부분을 조사해 '품질 예측'과 '권고 사항 제시' 등과 같이 양쪽에 모두 등장 하는 문구를 찾아보았다. 그 결과 이 연구에 포함된 769개 직무 범 주 중 전부에 가까운 740개가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자동화될 위험 이 있었다. 학사나 대학원 학위를 취득한 노동자는 고졸 노동자보다 인공지능의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거의 4배나 높았다. 그리고 자동 화에 취약한 대다수 직무는 산호세, 시애틀, 솔트레이크시티 등 주 요 대도시의 고임금 직종에 속했다.
- 코닥을 무너뜨린 것은 해외 경쟁이나 디지털카메라가 아 니었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였다. 수백만 명이 고화질 카메라 가 장착된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기기를 휴대하게 되면서, 이제 사람 들은 사진을 특수 장비가 필요한 유료 서비스가 아니라 일종의 DIY 취미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술 기업들이 코닥을 죽이겠다고 나 선 것이 아니다. 사진을 인화하던 방식에서 웹사이트에 올리는 방 식으로 소비자 행동이 근본적으로 바뀌자 기업의 운이 사실상 막혀 버린 것이다. 결국 코닥은 2012년 파산 신고를 했고 현재 직원은 약 5,000명 정도다.
코닥에서 일하던 나머지 14만 명의 일자리가 자동화로 날아가버 렸다 말하면 어폐가 있다. 코닥에서는 자동화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말이 다. 자동화는 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사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에서 진행되었다. 이들 기업에서 사용자들이 필름 없이 온라인에서 사진을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하자 그 결과가 로체스터 주민의 실직으로 나타났다.
- 자동화가 우리의 삶과 일터를 변화시키는 미묘하고 간접적인 방식은 어느 한 가지 위협 요소로 짚어내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처음에는 순수하고 유용해 보이던 기술이 결국 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했음을 종종 깨닫는다.
1984년 등장한 터보택스도 처음에는 일자리를 앗아가는 로봇처 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컴퓨터들이 세금을 내는 데 활용하는 소 프트웨어로만 보였다. 하지만 결국 이 소프트웨어 때문에 수많은 세무사가 새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엑셀을 출시했을 때 이를 일자리를 위협하는 로봇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일종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등장한 결과 수동으로 자료를 입력하는 사무원으로 가득했던 부서 전체가 불필요해졌다.
2006년 페이스북이 추가한 '뉴스 피드 역시 일자리를 잡아먹는 로봇이 아니라 대학 때 반했던 사람이 다시 싱글이 되었다는 소식 정도를 알려주는 기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기능은 수십억 명에 게 정보를 배포하는 제품으로 변모해 온라인 광고 시장을 장악하고 신문과 잡지 수요를 떨어뜨렸다.
- 현재 우리 삶에 존재하는 기술 일부도 결국 인간의 일자리를 없 앨 것이다. 이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단순한 교훈은 기계는 예 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삶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로봇 군단 스카이넷은 걱정해도 스프레 드시트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막상 변화를 마주하면 깜짝 놀라곤 한다.
- "숨이 막힐 듯 너무 갑갑했다. 더는 내 뇌가 필요 없었다. 하는 일이라곤 바보처럼 앉아 그 빌어먹을 것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한때는 스스로 계획을 세우며 상황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모든 의사 결정을 내려주는 것 같다. 내 가치가 떨어진 느낌이다." (1970년 갓 자동화된 제너럴 일렉트릭 공장 노동자)
- 르 클레어는 RPA 회사들이 딱히 대단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님 을 알아냈다. RPA 회사들은 대부분 '누군가 뒤에서 하던 업무를 대 신 실행할 스크립트를 짜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기업 임원들은 이 봇들을 매우 좋아한다. 자사의 기술 인프라 전체를 재설계하려면 몇 년간 수십억 달러를 들여야 하는데, 이 봇들이 기존 소프트웨어 프 로그램에 접속해 손쉽게 업무를 자동화해주기 때문이다.
르 클레어는 이렇게 말했다. "콘퍼런스 현장 한쪽 구석으로 최고 재무 책임자를 불러다 RPA로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십 시오. 잘 들어보면 다들 인력을 줄이고 있습니다. 연간 1만 달러가 드는 봇을 구축하면 직원을 2명에서 4명까지 줄일 수 있으니까요."
르 클레어는 RPA 때문에 실업에 직면하는 백 오피스의 실제 직 원수는 기업 임원들이 인정하는 수보다 훨씬 많아 수백만 명도 더 될 것이라고 본다. 그는 이 봇들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 이 아니라 개선해준다는 뻔한 주장을 믿지 않는다. 업무가 자동화되 면 노동자들을 다른 부서로 보내고 몇 주 혹은 몇 달 있다가 조용히 이들을 해고할 것이라고 공표하는 예도 목격했다고 한다. 르 클레어 와 동료들은 몇몇 수치를 계산해본 뒤, 2030년경에는 RPA를 비롯 한 각종 자동화로 미국에서 2,000만여 개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 고 추산했다.
-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가 이룬 자동화 대다수는 더 큰 능 률을 안겨주지 못했다. MIT 대런 애쓰모글루와 보스턴 대학 파스쿠 알 레스트레포는 2019년 논문에서 '그저 그런 기술so-so technologies' 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저 그런 기술'이란 인간 노동자를 대 체하기에는 충분하나 새 일자리를 창출하기에는 부족한 기술 유형을 가리킨다. 두 학자는 그저 그런 유형의 자동화를 크게 두려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자동화는 사업주가 인간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하게 할 뿐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만큼의 유의미한 생산성을 안겨주지 않는다. 애쓰모글루와 파스쿠알은 이렇 게 썼다. "고용과 임금을 위협하는 것은 '뛰어난' 자동화 기술이 아 니라 단지 소소한 생산성 향상만 가져오는 '그저 그런 기술이다." 그저 그런 자동화의 한 예는 마트의 셀프 계산대다. 모든 사용자 가 동의하겠지만 이 기계들은 그야말로 그저 그렇다. 고장도 빈번한 데다 상품의 정보와 무게를 잘못 인식할 때도 많아 수시로 점원을 호출해 수동 결제 상태에서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이 기계들은 마 트의 생산성을 대대적으로 높여주지도 않고 구매를 대폭 늘려주지 도 않는다. 그저 직원의 노동을 고객이 하게 해 업주가 고용하는 시 간제 근로자 수만 약간 줄 뿐이다.
- 고객 상담원을 자동 응답 프로그램 으로 교체한다고 해서 영업 이익이 급격히 치솟는 것도 아니고 제품의 품질이 향상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회사가 적은 인원수로 같은 양의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비용 발생 부서'를 축소해 문제 해 결의 짐을 고객에게 지게 할 뿐이다.
그저 그런 자동화의 급증은 최근 자동화와 로봇 공학 분야의 진전에도 미국 경제 생산성이 크게 오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비합리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로봇 때문에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 큰 걱정이라면, 능력이 부족한 로봇보다 우수한 능력을 지닌 로봇을 갖추는 편이 옳을 듯하다.
- "아무리 좋은 기계도 기획력까지 갖출 수는 없다. 최고의 스팀롤러라도 꽃을 심지는 않을 것이다." (월터 리프먼)
-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도로 자동화된 경제에서는 기계와 구별되는 노동자의 기술과 능력이 가장 값지다. 우리는 스스로를 버그를 제거 해 최적화해야 할 생물학적 하드웨어로 대하기보다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어느 정도 이치에 맞았고 내가 수행한 다른 조사와도 일맥상통했다. 이 분야를 취재하면서 역사적으로 기술 변화의 시기에 성공한 사람들이 늘 첨단 기술을 다루는 공학자는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때로 그들은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로테크Low-tech, 하이 터치 high-touch'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18세기와 19세기 산업혁명 기간에는 공장 노동이라는 거대한 붐 이 일자 교사, 성직자, 토목 기사 그리고 과밀해진 도시 인구를 지원 할 전문가들에 대한 수요도 크게 높아졌다. 제조업 자동화 붐이 일 었던 20세기 중반에는 더 저렴한 가격에 더 효율적으로 물품을 생 산하게 되자 경제 활동의 더 많은 부문이 교육과 건강 관리 쪽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분야에서 업무를 담당할 로봇이나 훌륭한 기계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 기술 기업들이 경 제를 장악하는 동안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일부 직종(마사지 치료사, 언어 치료사, 사육사)은 명백히 아날로그적인 성격을 띤다.
- 과거 추천 시스템은 시간 절약을 목적으로 설계되었으나 오늘날 많은 추천 시스템은 우리의 시간을 앗아갈 목적으로 설계된다. 페이스북을 비롯해 인스타그램, 유튜브,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심지어 <뉴욕 타임스>까지도 추천 엔진을 통 해 맞춤 피드를 제공함으로써 (기계가 보기에) 사용자를 최대한 오래 붙잡아둘 만한 콘텐츠를 보여준다.
알고리즘은 충격적일 만큼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전체 유튜 브 시청 시간의 70%가 추천 알고리즘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전 체 아마존 검색의 30%가 추천에 따른 결과로 추산되는데, 이는 연 간 100억 달러의 수익으로 이어질 만한 수치다." 스포티파이가 알고리즘을 사용해 생성한 '디스커버 위클리 Discover Weekly'라는 재생 목록은 자력으로 음악업계의 히트 제조기가 되었다. 현재 월별 스트리밍의 절반 이상을 이 맞춤형 재생 목록에 의존하고 있는 음악가가 8,000여 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전체 넷플릭스 영화 시청 수의 80%가 추천에 따른 결과로 밝혀졌으며, 추천 기능 덕분에 매년 10억 달러를 절약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기계로 인한 표류에 저항하기 위해 나는 일상에 마찰을 조금 더하 기 시작했다. 아마존에서 전동 드릴을 사는 대신 차를 끌고 동네 철물점에 찾아간다. 모닝커피를 마실 때는 찬 우유를 커피에 넣기보다 2분 정도 우유를 따뜻하게 데우는 데 시간을 들인다. 주말에는 트위 터에 올라온 머리기사를 훑어보지 않고 신문을 펼쳐 찬찬히 읽는다. 사무실로 출근할 때는 15분 정도 시간을 더 들여서 주변 경관을 좀 더 볼 수 있는 길로 돌아간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러한 불편함은 매우 사소한 축에 속하며 나는 아주 운 좋게도 시간과 여유가 있기에 기꺼이 그런 불편을 감수할 수 있다. 나보다 훨씬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훨씬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사람은 최대한 편의를 추구하는 것이 맞다. 기술 엔지니어와 설계자들에게 바라건대 이미 충분히 편의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불편을 없애주기보다는 소외된 취약 계층이 겪는 마찰을 줄 일 방법을 찾아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자신의 생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라면 약간의 마찰과 자율성을 더한 생활 방식이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결국 행복한 순간과 자부심 넘치는 성취는 알고리즘 에 결정을 내맡겨 얻기 힘들다. 산 정상에 오르고 마라톤을 완주하고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우는 것은 모두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겠다고 스스로 결정한 결과로 얻어진다. 보람찬 일은 힘들 때가 많으며 힘든 일은 기계의 적이다.
- 한 연구에 의하면 많은 사람은 가만히 생각하기를 너무 불편해하는 나머지 조용히 홀로 있기보다 오히려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편을 대체로 선호한다. 34 버지니아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빈방에 홀로 앉혀놓고 10분에서 20분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이때 그들 몸에 전극을 연결해놓고 원한다면 버튼을 눌러 스스로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을 가해도 좋다고 했다. 전기 충격은 의무 사항이 아니었 다. 의무 사항이었다 해도 실험이 더 빨리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 기 충격은 순전히 그들이 지루함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자유롭게 선 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연구 결과를 보니 남성 참가자의 71%와 여성 참가자의 26%가 1회 이상 스스로 충격을 가했다. 참가자 대다수는 가만히 앉아 있기 와 전기 충격을 가하기 사이에서 후자를 택했다.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아무런 지침을 받지 못한 정신은 가만히 홀로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앱에도 실질적인 유익이 있으나 이는 기 본적으로 우리의 인지적 약점을 노려 더 많은 게시물을 확인하게 하 고 더 많은 동영상을 훑어보게 하며 더 많은 타깃 광고를 시청하게 해서 우리의 에너지를 뽑아내는 도구다. 이러한 기기들을 돕는 것이 인공지능다. 인공지능은 더 정확히 선호도를 예측하고 주의를 조종 한다. 그리고 번쩍이고 자극적인 보상을 통해 뇌의 쾌락중추를 활 성화한다. 이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자극에 젖어 있는 까닭에 지루함 을 느끼고 정신을 딴 곳에 팔 여유가 없다. 갖가지 생각을 연결 지으 며 상상 속에서 길을 잃을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런 경험들이야말 로 인간다움의 핵심인데 말이다. 그런 경험들이 없다면 우리는 로봇 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 물론 열심히 일해서 차별화를 꾀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 몇 년간 이른바 '허슬 문화 hustle culture' (일을 중심으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생활 방식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옮긴이)라는 이름의 전략이 날로 큰 인기 를 더하고 있다. 인플루언서와 비즈니스 전문가들은 쉬지 않고 꾸준 히 기울이는 노력과 생산성의 가치를 소셜 미디어 곳곳에서 설파하 고 있다. 이들은 트위터, 링크트인, 인스타그램에 "일어나 일하라", "월요일이라 감사합니다" 같은 문구가 적힌 '허슬 포르노' 밈을 게 시한다. 라이프해킹 요령을 주고받고, 불필요한 인지적 부담을 피하 려고 매일 같은 옷을 입거나 끼니마다 같은 것을 먹는다
허슬 문화에는 꽤 오랜 역사가 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철강 노동자로 일했던 프레데릭 윈슬로 테일러는 '과학적 관리법'을 만들어내 미국 재계를 사로잡았다. 40 테일러는 대다수 직종을 측정 가능한 표준화된 업무로 쪼갤 수 있다고 보았다. 비능률적인 부분을 해결하고 낭비되는 자투리 시간을 모두 없애면 이런 업무가 완벽해 진다고 믿었다. 궁극적으로 테일러는 생산성 강화가 모두에게 이롭 다고 믿었다. 회사는 생산량이 늘어서 좋고 노동자들은 최고의 성과 를 내서 성취감을 얻게 될 터였다.
-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심리학 교수 쿠르트 그레이는 두 그룹의 참가자들에게 같은 사탕 봉지를 나눠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안에 든 사탕은 전부 임의로 선택되었지만, 한 그룹에만은 그들을 생각해 다 른 사람이 개인적으로 사탕을 골라 담았다고 말해주었다. 이 그룹에 속한 참가자들은 사탕을 임의로 골랐다고 말해준 그룹보다 자신의 사탕이 더 맛있다고 평가했다. 그레이는 또 다른 실험을 통해 전자 안마 의자에서 마사지를 받은 참가자들은 인간이 버튼을 눌러 의자 를 작동시켰다는 얘기를 들으면 더 큰 만족감을 느꼈다고 보고했다. 노력 휴리스틱은 전통 양조업, 직접 재배한 식재료를 쓰는 식당, 공예가의 작품을 판매하는 사이트인 엣시 Etsy와 비슷한 상점들이 부 상하는 이유에 관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 와 전자책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도 여전히 레코드판과 종이책이 인기 있고, 사무실과 가정에 더없이 좋은 커피를 내려주는 기계가 있 어도 여전히 최고급 카페에서 바리스타가 만들어준 카푸치노가 비 싸게 팔리는 것 역시 노력 휴리스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와 정반대 상황, 즉 무언가에 투여된 인간의 노력을 숨기거나 제거하면 그 가치를 낮게 보는 현상도 노력 휴리스틱이 설명해준다. 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가 페이스북의 생일 축하 메시지다. 페이 스북 초창기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는 일은 정말 특별한 이벤트였 다. 50 친구들이 내 생일을 생각하고 있다가 생일 알림이 뜨면 내 프로필에 들어와 페이스북 담벼락에 뭔가 따뜻한 말을 적어줄 만큼 신경을 써줬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 후 페이스북은 더 수월하게 생일 축하 인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사용자들의 참여를 높이려 했다. 친구들의 생일을 캘린더 앱으로 내보낼 수 있게 하고 이를 뉴스 피드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했다. 게다가 클릭 한 번 으로 자동 완성형 생일 축하 메시지를 게시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페이스북의 생일 축하 메시지는 특별하고 친밀한 느낌을 잃었을뿐더러 친밀함과 정반대되는 느낌을 주고 말았다. 내 페이스 북 프로필에 "생일 축하해!"라고 쓴 모든 사람은 그저 앱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며, 더 친밀한 메시지를 보낼 만큼 신경을 쓰지는 않았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누군가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는 데 드는 노력을 줄여 친밀한 표현을 가벼운 모욕으로 바꿔놓았다.
- 일론 머스크처럼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도 자 동화 시스템에 지나친 권한을 부여한 데 따른 위험을 경험했다. 2018년 테슬라는 세단 모델 3의 생산 목표를 맞추는 데 애를 먹었 다. 자동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에 의존하는 공장 기계 장치가 계속 오작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생산 중단 사태가 계속되면서 좌절감을 느낀 머스크는 자동 컨베 이어 벨트를 멈추고 인간 노동자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생산에 속 도가 붙었고 테슬라는 목표량을 맞출 수 있었다. 기억해야 할 점은 머스크가 인공지능의 초지능이 결국 인간 문명을 위협하리라 믿었 다는 것이다. 그는 너무 많은 권한을 기계의 손에 맡긴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시인했다. 머스크는 트위터에 "테슬라의 과도한 자동 화는 실수였다. 인간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라고 썼다.
- "수만 명에게 이 재앙이 일어났지만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기술적으로 진보하지도 않았고 사회적으로 개화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말하는 해법이란, (진보라는 허울 아래 누군가에게는 파괴를 가져온 생활 수준을 회복시켜줄 진정하고 실속 있는 대안을 가리킵니다." (마틴 루터 킹, 1961년 미국운송노동조합 앞에서 한 자동화 관련 연설 중에서)
- 역사적으로 볼 때 넓은 그물망은 사회가 기술 변화에 더 수월하게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한 예로 일본은 수많은 공장에 로봇이 도입되던 1980년대에 '출'이라는 고용 제도로 굵직굵직한 해고의 충격을 완화했다. 해고 명단에 오른 노동자들은 해고되는 대신 출향제도에 따라 최대 수년간 다른 회사에 '임대되어 근무하면서 원고 용주가 그들을 위한 새 일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스웨덴의 경우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는 '일자리 보장 협 의회'라는 단체들에서 지원을 받았다." 이 협의회는 민간단체로서 수만 개의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돕는다. 이들은 고용주들이 낸 비용을 활용해 해고 노동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한다. 협의회에 소속된 직업 상담사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채용 중인 일자리를 주선 하고 다른 일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직업적, 정서적 지지를 제공한다. 오늘날 미국의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가장 빈번히 제안하는 넓은 그물망은 보편적 기본 소득 universal basic income, UBI이다. UBI 계획에 따르면 모든 시민 중 성인은 고용 상태나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매월 무상으로 현금을 지원받는다. 이미 미국 내 몇몇 지역 사회가 소규모로 UBI 프로그램을 시도해 긍정적인 초기 결과를 얻었다.
- 소로는 1854년에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메인주에서 텍사스주를 잇는 전신을 가설하려고 무척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메인과 텍사스는 서로 통신할 만큼 중요한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 마치 전신의 주요한 목적이 빠른 속도로 이야기하자는 것이지 조리 있게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다."
소로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1845년 7월 4일(공교 롭게도 이날은 소로가 월든 호숫가로 거처를 옮긴 날이기도 하다) 사라 배글 리 Sarah Bagley라는 노동 운동가가 했던 연설이 소로가 쓴 어떤 글보 다도 훨씬 직접적으로 기술 진보의 경로를 바꿔놓았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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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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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팩트

사회 2022. 11. 19. 06:53

- 실로 진정한 문제는... 어떤 것이 오류임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진실한 대상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일로 이뤄진다.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 1954년은 통계학에 관한 두 가지 관점이 동시에 부상한 상징적인 해였다. 우선 대럴 허프의 《새빨간 거짓말, 통계》를 읽은 많은 독자는 통계란 사기꾼과 협잡꾼이 가득한 하나의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저들은 통계를 다루는 악당들의 농간을 밝히는 일을 즐거워했다. 반대로 오스틴 브래드포드 힐과 리처드 돌에게 통계는 웃음거리가 아니었다. 힐과 돌의 게임에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대가가 걸려 있었다. 그래서 정직하게 잘 플레이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 우리가 대개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수집한 통계치를 얼마나 당연시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이번 팬데믹보다 탁월한 것은 없다. 코로나 바이 러스 이전에 발생한 폭넓은 주요 사안에 대한 통계는 부지런한 통계학 자들에 의해 오랫동안 힘들게 취합되었으며 종종 세계 어디서든 무료 로 내려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저 통계를 가리켜 “거짓말 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res, damned ties, and statistics”라고 헐뜯으면서 도 실제로는 통계를 활용한 호사(격리·치료·재정 지원 등)를 마음껏 누렸 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번 코로나 팬데믹은 통계가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해질 수 있는지 방증한다.
- 대럴 허프는 통계를 마술사의 속임수처럼, 즉 절대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는 유흥거리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기 훨씬 전부터 나는 이런 태도가 지금의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을 알기에 염려스러웠다. 우리는 통계가 세상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에 대한 감을 잃었다. 이는 우리가 모든 통계를 거짓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진실을 가려내는 데 무력감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든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법칙2에서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허프가 보인 반응대로 거칠게 웃거나, 어깨를 으쓱하거나, 둘 다 한다.
통계에 대한 이런 냉소적 태도는 단지 안타까운 수준이 아니라 차라 리 비극적이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인지 파악하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여 굴복하면 아주 중요한 도구를 버리게 된다. 이 도구는 담배가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 도구, 즉 통계는 코로 나 팬데믹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방법, 더 폭넓게는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 알고 보니 의심은 실로 만들어내기 쉬운 상품이었다. 20여 년 후 심리학자인 캐리 에드워즈 Kari Edward-와 에드워드 스미스 Edward Smith 는 미국인 들에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주장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하는 실험을 했다. 그 주제는 낙태권, 아동 체벌, 동성 부부 의 입양, 소수인종 고용 할당, 16세 미만에 대한 사형 등이었다. 예상 한 대로 에드워즈와 스미스는 사람들이 편견을 지녔음을 발견했다. 특히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주장을 잘 제시하지 못했다. 더욱 인상적인 사실이 하나 있으니 바로 이런 편견들이 찬성보다 반대 주장에서 훨씬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불신은 신념 보다 유창하게 제시되었다. 실험 대상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을 옹 호하는 일보다 싫어하는 입장을 반대하는 일을 훨씬 수월하게 해냈다. 의심에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 의심은 또한 홍보하기도 쉽다. 과학적 탐구와 논쟁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학교에서 증거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배운다 (또는 배워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학회 중 하나인 왕립학회 Royal Society의 모토는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는 뜻의 "눌리우스 인 베르바 nullius in verba"이다. 통계적 증거를 부정하려는 로비 집단은 언제나 현 재과학 분야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측면을 가리키며 해당 문제가 실 로 복잡하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과학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현명하게 들리지만, 실은 누구도 어떤 것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잘못된 결론에 다다르게 만든다. 이는 분명히 위험한 일이다.
- 허프는 담배 회사의 로비를 받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했다. 즉, 재치 있는 사례들과 약간의 통계적 지식 그리고 일정한 냉소를 한데 엮 어서 담배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의심의 그늘을 드리웠다. 그는 심지어 출판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쓴 명저의 후속편까지 집필했다. 그 후속편 의 제목은 《흡연 통계로 거짓말하는 법 How To Lie With Smoking Statistics》이었다. 의심은 강력한 무기이고 통계는 취약한 표적이다. 그 표적에는 방 패가 필요하다. 통계로 거짓말하기가 쉬운 것은 맞다. 그러나 통계 없이 거짓말하기는 더 쉽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통계가 없으면 진실을 말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즉, 애당초 통계가 부재하다면 리처드 돌과 오스틴 브래드포드 힐처럼 세상을 이해하여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할 수가 없다. 저 선한 이들이 한 일에는 통찰과 의지가 필요했다. 반면에 천재성이나 전문적인 수학 기법은 필요 없었다. 돌과 힐은 흡연자, 비흡연자, 폐암 발병 건수, 심장질환 발병 건수 같은 중요한 수치를 집계했다. 그들은 인내심을 갖고 체계적으로 이 수치들을 집계했으며 이러한 증거를 토대로 신중하게 '담배는 암을 유발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의 연 구 결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수천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거기에는 자신 들의 생명도 포함되었다. 힐은 파이프 담배를 끊고 돌처럼 비흡연자가 되었으며 두 사람은 90대까지 살았다.

1. 경험에 지배당하지 말고 지배하라
- 루크 스카이워커: “아니야…아니야…그럴 리가 없어!”
다스베이더: 네 감각을 느껴보거라. 이것이 진실이란 것을 너도 느끼고 있지 않으냐!" (스타워즈 에피소드 V: 제국의 역습(1980))
- 굳이 수치적 정보를 아무런 감정 없이 처리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다만 감정을 인식하고 감안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더 좋은 판단을 할 만한 상황이 많다. 우리의 감정에 대한 초인적인 통제력을 요구하기보다 그저 좋은 습관을 기르면 된다. 이렇게 자문하라. “이 정보는 어떤 감정을 불어일으키는가? 내 생각이 옳았다는 확신이 들거나 우쭐해지는가? 불안이나 분노 또는 두려움이 생기는가? 인정하기를 거부하면서 무시해도 될 이유를 서둘러 찾는가?"
- 내가 기후변화에 대한 주장을 뉴스 헤드라인이나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할 그래프에 넣는다면 관심과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맞거나 틀리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 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말이 의심스럽다면 2015년에 갤럽 조사에서 밝혀진 사실을 생각 해보라. 이 조사에서 미국 민주당 당원과 공화당 당원이 기후변화를 우 려하는 정도에 존재하는 거대한 간극이 드러났다. 거기에 어떤 합리적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과학적 증거는 과학적 증거다. 기후변화를 둘러 싼 우리의 신념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칠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치우친다.
이 간극은 학력 수준이 높을수록 더욱 넓어졌다.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민주당 당원의 45퍼센트와 공화당원의 22퍼센트가 기후변화를 크게 걱정했다. 반면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 그 수치가 민주당원의 50퍼센트, 공화당원의 8퍼센트였다. 과학적 지식을 기준으로 삼아도 비슷한 패턴이 유지된다. 즉, 과학적 지식을 가진 공화당원과 민주당원 사이의 간극은 과학적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보다 넓다.
- 수십만 년에 걸친 진화는 우리가 주위 사람들과 동화되는 것을 크게 중시하도록 만들었다. 이 사실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 실제로는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 동기화 추론에 빠질 위험이 더 크다는 테이버와 라지의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친구들이 이미 믿고 있는 것을 설득력 있게 주장할수록 친구들 에게 더 많이 인정받는다.
HIV 부정론은 우리가 생사의 문제에서도 비극적일 만큼 틀릴 수 있 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틀린 생각에 따른 사회적 영향은 심각하더라도 실질적인 영향은 미미하거나 없을 때 잘못된 방향으로 엇나가기가 훨씬 쉽다. 이 사실이 당파성을 가르는 수많은 논쟁에 해당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희망회로가 형편없는 위작을 페르메이르의 작품으로 또는 하찮은 나치를 국민 영웅으로 바꿀 수 있다면, 의심스러운 통계를 확고한 증거로 확고한 증거를 가짜 뉴스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되라는 법은 없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는 곧 발견의 여정에 나서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숫자가 세상을 말해주는 양상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그 첫 번째 단계는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잠시 멈추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을 살피고, 우리가 특정한 결론에 억지로 도달하려 하는지 인식하는 것이다.
- 우리는 세계에 대한 통계적 주장을 접한 후 소셜미디어에 올려서 공 유하거나 분노의 반론을 펼치기 전에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이것이 내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의무로서 이 일을 해 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 압력이 우리의 믿음과 사고방식에 얼마나 강력 한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했다. 반응 속도를 늦추고, 당파적 소속을 드러 내고 싶은 감정과 욕구를 다스리며, 차분하게 팩트를 따지는 데 집중하면 우리 스스로 더욱 명료하게 사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게 만드는 모범이 된다. 또한 정치적 종족의 일원이 아니라 공정한 태도로 성찰하고 추론할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서 우뚝 설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례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그러기를 바란다.
판 메이헤런은 우리의 감정이 생각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다. 물론 전문성과 기술적 지식은 중요하다. 숫자를 다루는 기술적 측면은 뒤에서 살필 것이다. 다만 의심하라고 말하는 것이든, 믿으라고 말하는 것이든 우리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면 스스로를 속일 위험에 처하게 된다.

2. 개인적 경험을 의심하라
- 새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을 조망하게 됩니다.반면 벌레의 눈으로 보면 그런 우위를 누릴 수 없습니다. 대신 눈앞에 있는 것만 보게 됩니다. (무하마드 유누스)
- 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이토록 잘못되었을까? 확신하기는 어 렵지만 타당한 첫 번째 추정은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명성 있는 신문이나 방송이 실제로 우리에게 틀린 데이터를 제 공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사례가 알려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뉴 스가 복권 당첨과 동화 같은 로맨스, 테러리스트들의 잔학한 행위나 섬 뜩한 묻지 마 폭력 그리고 대중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은 최신 추세에 관 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일상적인 삶을 반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에 강하게 남으며 우리의 거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에 따라 우리는 '인상'을 형성한다.
뛰어난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어려운 질문을 접하면 대개 바꿔치기를 인식하지 못 한 채 더 쉬운 질문으로 바꿔서 답한다.”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나를 죽일 가능성이 있을까?”라고 묻는 대신 “근래에 테러에 대한 뉴스를 봤던가?”라고 묻는다. 또한 “내가 아는 모든 십 대 소녀 중에서 이미 엄마인 소녀가 몇 명이지?”라고 묻는 대신 “십 대 임신에 대한 뉴스가 근래에 나왔던가?”라고 묻는다.
이런 뉴스는 어떤 의미에서 데이터다. 단지 '사실을 대변하는 데이터’ 가 아닐 뿐이다. 그래도 세계에 대한 시각에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 카너먼의 용어를 빌리자면 그들은 빠른 통계다. 다시 말해서 즉각적이고, 직관적이고, 본능적이며, 강력하다. 신중하게 수집한 편향되지 않은 정보에 기반한 '느린 통계'는 우리 머릿속에 잘 박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 사회과학자들은 통계 지표가 '세계를 이해하기보다 통제하는 데 활용 될 때 제일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경제학자들은 저명한 통계학자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가 1975년에 남 긴 다음 발언을 매우 자주 인용하곤 한다. 관찰된 모든 '통계적 정규성’ 은 통제의 목적으로 압력이 가해지는 순간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을 더욱 간결하게 표현하면 “지표가 목표가 되면 좋은 지표가 되지 못 한다”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심리학자들은 도널드 캠벨 Donald T. Campbel의 말을 빌린다. 도널드 는 찰스 굿하트가 명언을 남긴 때와 유사한 시기에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적 의사결정을 위해 정량적 사회 지표를 많이 활용할수록 부패의 압력에 더 많이 노출되며 감시하고자 의도한 사회적 절차를 왜곡하고 부패시키기 쉽다.
굿하트와 캠벨 두 사람은 통계에 대해 근본적이고도 동일한 문제를 다뤘다. 그것은 통계 지표가 실로 중요한 사안에 대한 훌륭한 대리물이 될 수 있지만, 거의 언제나 실제가 아닌 대리물에 머무른다는 사실이다. 이 대리물로서 통계를 가지고 사회를 개선하려는 목표로 삼거나 혹은 멀리서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지표로 삼을 경우에는 '데이터'가 왜곡되거나, 위조되거나, 악용된다. 결과적으로 지표의 가치는 증발한다.
- 새의 관점과 벌레의 관점을 정리해보겠다. 숫자에서 얻는 폭넓고 엄격하지만 건조한 통찰과 경험에서 얻는 풍부하되 한정적인 교훈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손쉬운 답은 없다. 그저 우리가 배우는 것과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계속 상기하는 수밖에 없다. 통계학에서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논리와 개인적 인상은 서로 강화하고 수정할 때 최선의 효과를 낸다. 그래서 둘의 장점을 통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이상적이다.
- 숫자도 무척 중요하다. 내가 달러 스트리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느린 통계와 빠른 통계, 벌레의 관점과 새의 관점을 성공적으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달러 스트리트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일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전 세계 사람들과 공감한다. 다만 명확한 통계적 맥락 안에서 공감한다. 이 맥락은 한 달에 27달러나 500달러 또는 1만 달러를 버는 삶을 보여주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각각의 상황에서 살아가는지 명확하게 드러낸다. 통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크게 오해할 소지가 있다. 우리가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온전한 진실이라고 확신하기가 너무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좋은 통계가 있어도 인과성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좋은 통계 없이는 아예 가망이 없다.
- 한편으로 통계는 세계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도표 를 통해 분석할 수 있는 세계뿐 아니라 오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세계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나의 두 번째 조언은 새의 관점뿐 아니라 벌레의 관점까지 갖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대개 이 두 관점은 다른 것을 보여줄 것이다. 또 한 때로는 “어떻게 두 관점이 다 옳을 수 있을까?”라는 수수께끼를 제시할 것이다. 이 의문이 탐구의 시작이어야 한다. 통계가 우리를 오도할 때도 있 고, 우리의 두 눈이 우리를 속일 때도 있다. 또한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면 피상적인 모순이 해소되는 때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개 두어 가지 현명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3. 말과 숫자부터 정확히 정의하라
- 진정한 질문이 무엇인지 알면 답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딥 소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하는 슈퍼컴퓨터)
- 진실은 미묘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파악하기 쉽다는 사실을 독자들 이 알아차리기를 간절히 원한다. 대부분 혼란을 초래한 책임은 숫자보 다 말에 있다. 예를 들어, 간호사의 급여가 인상되었는지 파악하려면 먼 저 '간호사'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 자해가 만연하다고 한탄하기 전에 '자해'의 의미를 잠시 살펴야 한다. 한편으로 는 불평등이 심화했다고 결론짓기 전에 '무엇'의 '불평등'인지 자문해봐 야 한다.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놓고는 답을 짧 고 명확하게 하라고 요구하는 일은 불공정할 뿐 아니라 믿기 힘들 정도 로 호기심이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깊은 통찰에 이르고 싶다면 호 기심을 갖고,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4. 데이터의 맥락과 바탕에 집중하라
- 당신은 뉴스에 중독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더 빨리 나아가기보다 더 깊고 넓게 나아갈 것을 권한다. 놀라운 뉴스가 뜰 때, 속도보다 깊이를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분명 좋은 습관이 될 것이다. 물론 교통 상황이나 심각한 날씨 경보처럼 즉각 주의를 기울여야 할 뉴스도 존재 하지만, 사실 이는 매우 드물다. 뉴스는 대부분 한 시간 뒤에 혹은 일주 일 후에 접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이렇게 자문할지도 모른다. “상시 뉴스의 노이즈에 묻 히겠지만 주간지나 주간 팟캐스트가 다룰 만한 것은 무엇일까?"

5. 행운과 우연에 속지 말라
- 생존 편향 때문에 수십억 달러가 오용되고, 수십 만 명이 생명을 잃는다. 문을 닫은 투자 펀드, '차고에서 만든 잡동사니'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실리콘밸리의 창업자, 출간되지 않은 연구 결과, 실종된 임상시험 등 전체 이야기를 보지 못하고 결정을 내리면 우리 자산과 생명에 치명적인 일이 벌어진다.

6. 삭제된 사람들과 의도를 추적하라
-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을 권력'은 정부가 가진 가장 중대하면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권력의 원천 중 하나다. 의사결정자들은 애초에 지식 모으기를 거부함으로써 우리에게 권력을 행사한다. (애나 파월-스미스 ANNA POWELL-SMITH, 미싱넘버스닷오그 MissingNumbers.org)
- 갤럽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했다. 바로 데이터에 있어서는 규모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갤럽 여론조사는 투표 인구의 표본을 토대로 삼는다. 그래서 표본 오류와 표본 편향 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대처했다.
표본 오류는 무작위로 선정한 표본이 순전한 우연으로 전체 인구의 진정한 시각을 반영하지 않는 위험을 나타낸다. 여론조사에서 밝히는 '오차범위'가 바로 이 위험을 반영한다. 표본이 클수록 오차범위가 작아 진다. 1,000명의 면접 대상자는 많은 목적을 위한 충분히 큰 표본이다. 1936년 대선에서 갤럽은 3,00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실행한 것으 로 알려졌다.
하지만 3,000명의 면접 대상자가 충분한 수준이라면 240만 명을 조 사한 결과는 그보다 훨씬 나았어야 하지 않을까? 그 답은 표본 오류에 게 훨씬 위험한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표본 편향이다. 표본 오류는 무작위로 선택한 표본이 순전한 우연으로 이면의 인구를 반영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표본 편향은 표본이 아예 무작위로 선택되지 않는 것이다. 조지 갤럽은 편향되지 않은 표본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것이 대규모 표 본을 찾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더 큰 데이터세트를 확보하려다가 편향된 표본이라는 문제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그들은 자동차 등록대장과 전 화번호부에서 명단을 추출한 다음 여론조사 양식을 발송했다. 이 표본은 적어도 1936년에는 부유층을 과도하게 포함하고 있었다. 차나 전화 기를 보유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대체로 부유했다. 게다 가 랜던 지지자들이 루즈벨트 지지자들보다 답신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는 사실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이 두 편향의 조합은 《리터러리 다이제스 트》의 여론조사를 망치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조지 갤럽의 여론조사원 들이 면접조사를 한 사람들보다 800배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답신을 받 았다. 그러나 그들이 고생한 대가로 얻은 것이라고는 아주 정확하게 추 정한 오답'뿐이었다. 결국 그들은 누락된 사람(조사 대상이 아닌 사람)과 누락된 응답을 모두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대가로 통계사에서 가장 유 명한 여론조사의 재난을 일으키고 말았다.
- 표본 편향과 다크 데이터 문제는 악명 높은 2016년 대선에서 미국 여 론조사기관들에게 다시 한 번 타격을 입혔다. 당시 여론조사 상으로는 승패를 좌우할 경합 지역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를 앞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막판에 트럼프로 표가 쏠렸다. 결 국 2015년 영국 총선 여론조사를 망친 것과 같은 '비응답 편향'이 드러났다. 알고 보니 여론조사원들이 트럼프 지지자들보다 클린턴 지지자들 을 찾기가 더 쉬웠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 여론조사 오류가 아주 심한 수 준은 아니었다. 단지 트럼프가 너무나 특이한 후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크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래도 여론조사가 틀린 부분적인 이유는 그대로 남는다. 즉, 여론조사기관이 유권자를 대표하는 집단을 찾으려 했을 때 트럼프 지지자들이 너무 많이 누락되었다.
- 대규모로 발견된 데이터세트는 포괄적이고, 엄청나게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N=전체'는 매혹적인 착각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요한 모든 것을 확보했다는 부적절한 가정을 하기 쉽다. 언제나 누가, 무엇이 빠졌 는지 따져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빅데이터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빅데이터는 통계를 수집하는 방식에서 이뤄진 거대하면서도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변화를 대표한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다음 여정은 바로 이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그리고 인공지능으로 이어진다.

7. 인공지능에게 결정권을 주지 말라
- 구글 독감 트렌드는 여러 해 겨울에 걸쳐 신속하고 정확한 독감 발생 현황을 안정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론에 의존하지 않고 풍부한 데 이터를 활용하는 이 모델은 이번에 독감이 어디로 전파되는지 감지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구글 모델은 심각한 독감 발생 경보를 알렸다. 그러 나 질병통제예방센터의 느리고 꾸준한 데이터는 독감 전파에 대한 구글의 추정이 과장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실제 수치보다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때도 있었다. 결국 구글 독감 트렌드 프로젝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폐기되었다.
- 구글 독감 트렌드는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 알고리즘의 문제 중 일 부는 '과학적 모형도 쓸모없다'는 세 번째 주장 때문에 발생했다. 구글은 어떤 검색어를 독감 전파와 연계시켰는지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구글 엔지니어들은 무엇이 무엇을 초래했는지 파악하려 들지 않았다. 그 들은 단지 데이터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패턴만을 찾았다. 그것은 알 고리즘이 하는 일이었다. 사실 구글 연구팀은 패턴을 들여다본 후 알고 리즘에게 무시하라고 지시해도 무방한 명백히 잘못된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가령 독감 발병 사례는 '고등학교 농구 리그'라는 검색어와 연계되 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이유는 명백했다. 독감과 고등학교 농구는 모두 11월 중순에 주로 진행되었다. 이는 독감 트렌드가 독감을 감지하는 동시에 겨울도 감지한다는 것을 뜻했다. 이 점은 2009년에 여름 독감이 발생했을 때 문제가 되었다. 겨울의 징후를 열심히 살피던 구글 독감 트 렌드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비시즌 발병을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 실제 발병 사례가 추정치보다 네 배나 높게 나왔다.
위와 같은 '겨울 감지기' 문제는 빅데이터 분석에서 흔하다. 컴퓨터공학자인 사미르 싱sameer Singh은 패턴 인식 알고리즘에게 야생 늑대의 사 진과 허스키 반려견의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었을 때 발견했던 일화를 제시했다. 이 알고리즘은 비슷한 두 동물을 정말로 잘 구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냥 눈이 있는 모든 사진의 동물에 늑대라는 라벨을 붙인 것일 뿐이었다. 저넬 셰인Janelle Shane 은 《좀 이상하지만 재미 있는 녀석들 You Look Like a Thing and I Love You>에서 더욱 심각한 함의를 지닌 사 례를 소개한다. 이 경우에는 알고리즘에게 건강한 피부와 피부암의 사진 이 제시되었다. 해당 알고리즘은 패턴을 파악했다. 바로 사진에 자ruler가 있으면 암이라는 것이었다.' 알고리즘이 '어떤 일을 하는 이유'를 모르면 우리는 '자감지기'에 목숨을 맡기게 된다.
- 내 책장의 명당에는 두 권의 좋은 책이 꽂혀 있다. 불과 몇 년의 간격을 두고 출간된 두 책은 빅데이터에 대한 인간의 관점이 어떻게 바뀌었는 지 잘 반영한다. 한 권은 2013년에 켄 쿠키어 Kenn Cukier와 빅토르 메이어 쇤베르거가 펴낸 <빅데이터》다. 이 책은 저렴한 센서, 방대한 데이터세 트, 패턴 인식 알고리즘이 책의 부제처럼 "우리가 생활하고, 일하고, 생 각하는 양상을 바꾼" 수많은 사례를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들이 이야기 를 시작하기 위해 선택한 대표적인 사례가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바로 구글 독감 트렌드다. 구글 독감 트렌드의 몰락이 확실해진 때, 공교롭게 도 이 책은 인쇄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16년에 캐시 오닐 Cathy O'Neil의 《대량살상 수학무기 Weapons of Math Destruction》가 나왔다. 이 책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대로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에 훨씬 비관적인 관점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부제에서 빅데이터가 "불평등을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라고 말한다.
두 책의 부분적인 차이는 관점에 있다. 쿠키어와 메이어 쇤베르거는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을 통해 '일하는 사람의 관점'을 취하는 경향이 있 다. 반면 오닐은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망치는 목수에게 유용한 도구로 보인다. 반면 못은 망치에 완전히 다른 인상을 지닌다.
그러나 이 어조의 변화는 2013년과 2016년 사이에 일어난 시대정신 의 변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2013년에 빅데이터에 관심을 가진 비교적 소수의 사람은 자신을 '목수'로 상상했다. 반면 2016년에는 많은 사람이자신은 한낱 '못'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혁신의 동력으로 보였던 빅데이터는 불길하게 보이는 대상이 되었다. 환호성은 종말론과 흥분되고 과장된 헤드라인에 밀려났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CNN의 '수학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헤드라인이다). 이 사태는 정치컨설팅기업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cambridge Analytica가 페이스북의 느슨한 데이터 정 책을 악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들은 5,000만 명에 대한 정보를 당사자 모르게 또는 적절한 동의도 없이 가로챈 후 맞 춤형 광고를 노출했다. 이 사건에 경악한 논평가들은 한때 해당 광고가 너무나 효과적이어서 근본적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에 이바지했을지 모른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더욱 차분한 분석을 통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정신까지 조종하지는 못한다'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우리는 각자 데이터를 흘리고 다닌다. 이 데이터는 걸레에 닦여서 정보 의 바다 위에 쫙쫙 짜여서 뿌려진다. 알고리즘과 대규모 데이터세트는 짝 을 찾는 일부터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을 재판 전에 수감할 것인지 아니 면 보석을 허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까지 모든 방면에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이런 데이터가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빅데이터에 흥분해야 할까, 공포심을 가져야 할까? 목수를 북돋아야 할까 아니면 모르는 사이에 못이 되지 않을지 걱정해야 할까? 그 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 앞서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연금술이 몰락하고 현대 과학이 부상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 이유가 있다. 빅데이터 와 알고리즘은 과거 연금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연금술은 대규모 데이터세트를 수집하고 패턴 인식 알고리즘을 개 발하는 것과 다르다. 일단 연금술은 불가능하지만 빅데이터로부터 통찰 을 끌어내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래도 둘 사이의 유사성 역시 명백하다. 구글과 타깃 같은 기업들은 뉴턴이 자신의 연금술 실험 결과를 공유하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자사 의 데이터세트와 알고리즘을 공유하지 않으려 한다. 때로는 법률적 또는 윤리적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다. 당신이 임신 사실을 비밀로 하고 싶다면 타깃이 당신의 엽산 구매 명세를 공개하는 일은 원치 않을 것이다.
- 알고리즘 신뢰성 점검 목록
첫째, 정보에 접근 가능해야 한다. 즉, 비밀스러운 데이터 금고에 깊이 숨겨져 있어서는 안 된다.
둘째, 결정이 이해 가능해야 한다. 즉,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정보가 활용 가능해야 한다. 간단하게는 표준 디지털 형식으로 데이터가 제공되어야 한다.
넷째, 결정이 평가 가능해야 한다. 시간과 전문성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원한다면 모든 주장이나 결정을 엄격하게 검증하는 데 필요한 세부 내용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 '빅데이터'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혁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컴퓨터가 내린 여러 결정은 우리에게 소외감을 준 다. 나는 우리가 이런 문제를 걱정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데이 터 분석 기술은 기적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빅데이터는 스몰 데이터보다 신뢰성이 덜한 경우가 많다. 대개 스몰데이터는 자세히 조 사할 수 있다. 반면 빅데이터는 실리콘밸리의 금고에 숨겨져 있다. 또한 소규모 데이터세트를 분석하는 데 활용된 간단한 통계적 도구는 대체로 확인하기 쉽다. 반면 패턴 인식 알고리즘은 수수께끼 같고 상업적으로 민감한 블랙박스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지금까지 나는 환호와 히스테리를 모두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우려할 이유가 있는 모든 경우에 사례별로 까다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 이면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가?
* 알고리즘의 성과를 엄격하게 평가했는가?
* 가령 무작위 시험을 통해 사람들이 알고리즘의 조언 없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지 확인했는가?
* 외부 전문가에게 알고리즘을 평가할 기회가 주어졌는가?
* 그들은 어떤 결론을 내렸는가?
알고리즘이 인간보다 나을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알고리즘은 결함이 있고, 인간은 결함이 없을 것이라고 가정해서도 안 된다.

8. 숫자를 믿지 말라고 종용하는 자가 범인이다
- 우리는 시민으로서 통계의 기반을 살펴야 한다. 결정에 참고하기 위해 서든, 정부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든, 국가의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자세히 파악하고 싶다면 각국의 국립통계청이나 유로스타트, 캐나다 통계청, 노동통계청, 의회예산처 같은 조직이 제시한 통계와 분석을 확인 하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강인하고 독립적인 성향을 지닌 통계기관은 우리 모두를 더 똑똑하게 만든다. 그러니 안드레아스 게오르기우와 그라시엘라 베바쿠아 그리고 앨리스 리블린과 같은 용기 있는 통계 전문가에게 감사하자. 그에 더해 패니 팍스를 위해 잔을 들자.

9. 아름다운 도표일수록 오류와 기만이 숨어있다
- 우리는 지금까지 줄곧 저질러 왔던 통계적 실수를 다시금 반복할 위험에 처해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요즘 실수들은 더 세련된 쓰레기 같다는 것이다. (마이클 블래스틀랜드, BBC 라디오4 <모어 오어 레스〉 공동 기획자)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 있었다. 그러나 눈에는 그래픽을 오용한 많은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아름답게 시각화된 데 이터를 접하는 우리에게는 지금까지 이 책에서 배운 모든 교훈이 적용 된다.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교훈은 시각이 너무나 본능적인 감각이기 때문에 감정적 반응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멈춰서 도표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인식하라. 승리감을 안기는가, 방어적으로 만드 는가, 화가 나는가, 흡족한 기분이 드는가? 그 감정을 살펴라.
두 번째 교훈은 도표의 이면에 있는 바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표의 축들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측정 내지 집계 하는지 이해하는가? 도표에 이해를 돕는 맥락이 있는가 아니면 그냥 몇 개의 데이터 포인트만 보여주는가? 도표가 복잡한 분석이나 실험 결과를 반영한다면 그 내용을 이해하는가? 개인적으로 도표를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다면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을 신뢰하는가?(또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했는가?)
데이터 시각화를 접할 때 제작자가 당신에게 뭔가를 설득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훨씬 도움이 된다. 교묘한 설득력이 있는 도 표는 교묘한 설득력 있는 말처럼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설득당 해서 마음을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10. 전략전환에 두려움이 없어야 성공한다
- 확신을 가진 사람은 바꾸기 어렵다.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들은 고개를 돌린다. 팩트나 수치를 보여주면 출처에 의문을 제기한다. 논리적으로 호소해도 요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레온 페스팅거 LEON FESTINGER, 헨리 리켄 HENRY RIECKEN, 스탠리 샥터STANLEY SCHACHTER, 《예언이 끝났을 때when Prophecy Fails>)

- 슈퍼 팩트 십계명
첫째, 어떤 주장이 안기는 감정 때문에 그것을 수용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잠시 멈춰서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살펴야 한다.
둘째, '새의 눈'에 해당하는 통계적 관점과 벌레의 눈'에 해당하는 개인적 경험 을 통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셋째, 주어진 데이터에 붙은 설명을 유심히 읽고 그 실질적인 내용을 깊이 이해한다.
넷째, 비교와 맥락을 통해 주장을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
다섯째, 통계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면을 살피는 동시에 다른 어떤 데이터가 망각 속으로 사라졌는지 살펴야 한다.
여섯째, 데이터에서 누가 제외되었는지, 그리고 만일 그들이 포함되었다면 우리 의 결론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따져야 한다.
일곱째, 지성적인 개방성이 없으면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알고리 즘과 그것을 추동하는 대규모 데이터세트에 까다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여덟째, 공식 통계와 그 기반을 보호하는 영웅적인 통계학자들에게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홉째, 모든 아름다운 그래프나 차트의 오류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마지막 열째, 열린 자세를 유지하면서 자신도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새로 알게 된 팩트에 따라 전략을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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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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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사회 2022. 10. 27. 20:36

- 사망률 감소는 출생률 감소보다 항상 먼저 나타났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망률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한시적으로 출생률이 올라간다. 그리고 생존 확률이 높아지면 원하는 수의 아이를 낳기 위해 필요한 가임률 이 감소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의 양적 성장의 측면과 질적 성장의 측면의 반전(더 적은 아이에 대해 인당 투자 금액을 높이는 일)으로 출생률 감소를 설명하는 편이 설득력이 높다. 그리고 어떤 나라에서는(특히 중국과 인도) 전체적인 인구의 소득이 높아지기도 전에 현대적인 피임 방식을 활용해 서 출생률을 떨어뜨린다. 코넬리conley와 동료들은 지속적으로 높은 아동 사망률이 아프리카의 높은 출산율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Conley et al, 2007), 농업 생산성은 두 번째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여성의 교육 수준, 총소득은 원인으로 보기에 크게 중요 하진 않았다. 이에 대해 코넬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구통계학적 전환이론이 시작된다. 아이를 구하면 가족은 출생하는 아이의 숫자를 줄인다. (Conley et al. 2007, 31) 라고 밝혔다. 이 이론은 다른 지역에서 아이의 생 존율을 단기간에 높일 수 있음을 시사하기에, 가임률 전환이 상대적으로 빨리 일어날 가능성도 보여 준다.
또 다른 가설에 따르면, 가임률 감소 시기와 생존한 아이의 수는 유사한 사회적 문화적 조건을 가진 국가들에서 1인당 소득과 반비례한다는 것이 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럽에서는 그 시기와 수가 모두 일치 하지 않는다. 더 자세한 연구를 통해 국가 간에도 현저한 차이가 있으며, 동일 지역에서도 구역에 따라 격차가 나타났다.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에서 는 지방에서 가장 느린 인구 전환이 일어났는데, 부유한 가정이 먼저 의도 적으로 결혼 가임률을 조절하기 시작했다(Breschi et al. 2014). 오데드 갈로르oded Galor는 가임률 감소가 인적 자본에 대한 점진적 수요 증가와 관련된다고 보았다(Galor 2011b), 이런 변화는 산업화의 두 번 째 국면인 19세기 후반에 벌어졌고, 인적 자본을 창출하는 자녀들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만들면서 계속되는 가임률 저하를 이끌었다. 소득 이 늘어나면서 자원이 풍부해졌고, 더 많은 아이들이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기술적인 진보로 인하여 인적 자본으로 들어가 는 투자가 늘어났다. 이로 인해 더 나은 교육이 평균적으로 제공되고, 출 생률이 감소하면서 인구 성장이 둔화되었다. 이는 자기 강화의 과정이었다. 더 나은 교육을 받은 인구의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기술 및 조직의 발전이 가속화되었고, 더 나은 교육을 받은 노동자에 대한 추가 수요가 창출되며 훨씬 더 높은 교육적 기대로 이어졌다.
- 인간 수명은 최대치는 고정되어 있는 듯하지만 이는 유전적 영향만으로 결정되기보다는 만성질환, 생체역학, 자연적 제한 등의 복합적인 결과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Robert et al, 2008; Olsthansky 2010), 여성 기대 수명 의 국가 최대 평균은 항후 두 세대에 걸쳐 90년 혹은 그 이상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21세기 후반까지도 남녀 모두의 평균 수명이 100세에 근접하게 나 많은 사람들이 115~120세를 넘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를 확인하는 또 다른 증거가 올림픽 선수나 우수한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나왔는데, 이 표본 집단에서는 일반 인구보다 6~7년 더 오래 살며 최대치는 100 세로 나타났다(Antero-Jacquemin et al, 2014), 하지만 이 증가량은 포화 상태를 나타내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한계에 다가가고 있으며, 한계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고소득 국가 16개국의 기대 수명을 청소년, 성 인, 노년 그룹으로 분류해서 각각의 기대 수명을 살펴보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에 따르면 노년기의 기대 수명이 매년 0.15년(55일)씩 증가한다는 점을 발견했는데, 이러한 증가는 향후 몇십 년 동안 계속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최근 일본 여성의 기대 수명이 예상한 최대치를 넘어서기도 했다. 외펜oeppen과 보펠aupel은 기대 수명이 상당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Oeppen and Vaupel 2002).
그리고 필자는 텔로미어를 연장하거나 제한된 에너지 섭취를 통해 인간의 세포를 다시 재생하거나 인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 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까지 인간에게 그런 효과가 나타난 적은 없다(Jaskelioff et al. 2011; Mattison et al. 2012)고 짚어 주고 싶다.
- 대전환이 다양하게 맞물리면서 나타난 현상이 도시화이다. 시골에서 도시로의 대규모 이동은 농촌의 잉여 노동력을 도시로 옮겨 가게 만드는 농업의 전환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도시는 농업과 에너지 전환 없이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없는데, 그것은 충분한 식량 조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철도가 생겨났고, 이후에는 곡물과 육류 그 리고 연료와 전력을 제공해 주는 시장이 형성되었다(1870년 후반에 도입된 냉장 수송도 빼먹을 수 없다.). 그 결과 도시에서 소비되는 식량과 에너지양 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도시 주도로 경제 전환이 일어 나면서 제조와 서비스 분야에서 대규모의 구직 기회가 발생하였는데, 이는 다시 지방에서 도시로 인구가 유입되는 요인이 되었다. 제조와 서비스 분야의 융성으로 인해 온갖 기계, 장치, 프로세스 등에 새로이 자원이 투 입되면서 농경 전환과 에너지 전환에서 선순환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전환이 확장되었다.
도시의 확장은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원자재에 대한 수요로 인해 해당 지역과 인접 지역들은 물론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도시 지 역은 지역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었다. 전근대 사회의 소도시와 도시의 환 경 문제(목재 연소에서 비롯된 연기, 하수도 부재, 오염된 상수도, 녹지 부족 등) 는 현대화된 도시에서 새롭게 변화하게 된다. 그것은 도시는 물론 도시 주변부 지역까지 상당한 규모의 새로운 환경 부담을 만들었다.
- 사회는 부를 향한 개인의 끝없는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비롯해 모두가 적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도시가 주는 혜택이 사회에 분배되는 방식은 불공평하다. 도시 내의 과도한 불평등 은 높은 범죄율과 맞물린다. 불평등은 도시의 크기가 아닌 여러 역사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현실을 반영한다. 도쿄에서 나타나는 불균형들 은 명백하지만, 혐오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홍콩은 사회 안전망이 견고하 지만, 불평등의 정도가 매우 높다.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도시들도 빈 부 격차가 격심하다. 요하네스버그는 0.75라는 예외적으로 매우 높은 지니 계수를 보인다. 다른 불평등한 도시로는 에티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지니계수 약 0.6), 콜롬비아의 보고타, 케냐의 나이로비, 멕 시코의 멕시코시티, 가나의 아크라 등이 있다(Hugo 2015). 20세기 동안 도시 생활의 질이 크게 개선되기는 했지만, 1백만 명 이상 이 거주하는 도시는 거주자 모두에게 꽤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높은 주택 가격, 항상 붐비는 출근길, 교통 체증도 자주 발생하는 문제다. 다른 문제의 범주나 강도는 도시마다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도쿄의 범죄율은 낮으며 지하철 시스템이 훌륭하지만, 주택의 질은 미국보다 열악하다. 베 이징의 오염 수준은 이례적일 만큼 심각하며, 깊은 대수층에서 지하수를 과도하게 뽑아 쓴 대가로 도시 전체가 가라앉고 있다. 고형 폐기물 처리 문 제도 심각해지고 있는데,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도시는 없다. 이 모든 것들은 메가시티에서 나타나는 가장 고질적인 문제이다.
- 놀랍게도 도시화 찬성론자는 이런 추세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도시가 커지면서 더 건강해지고, 녹색으로 가득 차게 될 뿐 아니라 거주자들이 더 부유해지고, 똑똑해지며 행복해진다고 주장한다(Batty 2013; Glaeser 2011). 그런 주장은 실제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증거에 기반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대도시야말로 세계에 서 가장 복잡하고, 가장 낭비가 심각한 구조를 갖고 있고, 엄청난 양의 식 량, 물건, 에너지를 잡아먹으며, 전 세계의 엄청난 자원을 끌어들이는 곳이다(Bristow and Kennedy 2015). 이뿐만 아니라 도시화는 늘 광범위한 도시 기반 시설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사용되는 에너지와 1인당 소비 되는 식량과 물, 원자재 및 에너지도 증가시킨다.
- 전통적인 마을에서 현대적인 메가시티로 이주하면 1인당 지구 자원 소비량이 두 배에서 세 배 늘어난다.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훨씬 더 많아지는 주된 이유는 전력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마을에는 방에 조명이 하나씩 있고, 마을에 작은 텔레비전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하 지만, 현대의 거주용 고층 건물에는 조명도 여러 개를 갖추고 있으며, 냉 장고, 요리 기구, 대형 TV, 에어컨 등이 있다. 그리고 평균적으로 수세식 변기를 한 번 내릴 때 사용되는 물은 전통적인 마을에 살면서 하루에 먹고 요리하는 데 쓰는 물의 양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Smil 2014). 또 다 른 예시로 인도 도시의 1인당 전력 사용량은 지방 사용량의 두 배에 가 깝고(Yu et al. 2015) 중국의 수돗물 사용량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 준다. (Woodbridge et al. 2016).
메가시티는 극단적인 도시 확장과 강력한 열섬 현상33을 만들기도 한 다. 자연의 서식지를 난도질하고 식물이 만들어 내는 보호막을 파괴함으 로써 생물 다양성이 감소되고 농지는 축소된다. 또한 물이 잘 흡수가 안 되는 땅(콘크리트 등)이 늘어나고 물줄기가 콘크리트 골을 따라 흘러가 버 리는 바람에 수자원이 고갈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더욱이 사무실, 주거, 산업, 교통에서 많은 에너지 사용으로 열이 방출된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열섬 현상을 만들어 내고, 도시는 주변 지역보다 최대 8°C까지 온도가 올라간다.
- 1800년 뉴잉글랜드에서 농부는 두 마리의 황소, 나무 쟁기, 써레 등을 이용해 일했다. 손으로 씨를 뿌리고, 낫으로 농작물을 베고, 도리깨를 이용해 탈곡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밀 1kg(작은 통밀빵 두 덩어리를 만들 때 필요한 양)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농부의 노동력이 7분씩 사용된다. 1900년 대초원 그레이트플레인스의 농부는 쇠로 만든 쟁기를 몰기 위해 거구의 말을 이용하고, 쇠로 만들어진 써레를 사용했다. 씨를 뿌리는 데에는 파종기가 사용되며, 말이 모는 콤바인을 사용해서 곡식을 베고 탈곡하는 방식이 처음 도입되었다. 이러한 발전으로 1kg의 밀을 생산하는 시간이 약 25초로 단축됐는데, 이는 1800년에 비해 95%의 시간이 단축되고 생산성은 18배 향상된 것이다. 2000년에는 대형 트랙터(500마력), 용적이 큰 콤바인 등의 기계를 사용하여 밀 생산에 필요한 인간의 노동력을 6초 미만으로 줄였으며, 이는 20세기 일반적인 노동생산성의 4배 이상이었다. 20세기 후반에는 미국 농작 생산성의 평균 성장률이 제조 생산성의 성장률을 넘어섰다(Dimitri et al. 2005).
- 다음은 현대 농작에서 에너지 보조가 얼마나 크고 광범위하게 일어나는지 실감하기 위한 비교다. 미국산 밀을 농작하기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 투입량은 3.1~4.9GJ/t으로 평균 3.9GJ/t이다. 통밀빵 한 덩어리를 굽는 데 필요한 700g 정도의 밀가루를 생산하기 위해, 캔자스주의 한 농부는 약 2.8MJ의 연료와 전기를 써야 한다. 비교 편의를 위해 이 모든 투입 에 너지를 디젤 연료라고 단순화한다면, 에너지의 총투입량은 80mL이다.
이는 미국 주방에서 사용하는 계량컵의 3분의 1 정도이고 디젤 에너지의 에너지 밀도는 37MJ/L가 될 것이다. 집에서 일주일에 한 덩어리의 빵을 만들어 먹기 위해 필요한 밀을 재배하는 데는 매년 4L 이상의 디젤 연료 가 필요하고, 가게에서 빵을 사 먹을 경우(제분, 제빵, 유통에 들어가는 에너 지 비용을 포함)에는 필요한 양이 갑절로 늘어날 것이다.
농업 에너지의 전환을 국가 (혹은 지역) 단위로 연구한 결과가 있다. (Gingrich et al. 2018). 농업의 생태계에 따라, 외부 에너지 보조량은 19 세기 중반 이후 1GJ/ha 미만에서 20세기 말 10~100GJ/ha로 두 자릿수 나 증가했다. 프랑스 북부에서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의 투입량은 1860 년 0에 가까웠던 것에서 2010년 거의 13GJ/ha로 성장했고(Kim et al. 2018), 퀘백(Parcerisas and Dupras 2018)에서는 1871~2011년 사이에 60배가 증가했으며, 스페인에서는 1900~2008년 사이 20배가 증가했다.
- 현대 육류 생산에 드는 에너지 비용은 동물 사료에 드는 비용에 따라 달라진다. 179g의 닭가슴살을 생산하는 데는 대략 8.7MJ이 소요되는 600g의 사료가 필요했다. 부피로 환산하면 거의 디젤 연료 한 컵과 같은 양이다. 거기에서 고기를 만드는 총에너지 비용은 10~30%까지 늘어나 게 되는데, 그것은 축사를 따뜻하게 하고, 공기 상태와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전기와 액체 및 가스 연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매를 위해 식량과 사료를 옮기는 일에도 추가로 에너지가 들어간다. 오늘날에는 세계화가 이루어지며 이 무역의 범위가 확장되었는데, 아시아의 돼지 와 가금류를 먹이는 데 필요한 미국산 대두와 옥수수의 대량 수송부터, 신선 식품과 냉동 해산물을 비롯해 치즈와 초콜릿 같은 고부가가치 식품 및 음료수의 수출에까지 이른다.
씨앗류나 냉장 또는 냉동이 필요한 가공식품을 위한 컨테이너 운송은 대규모로 이루어진다. 선박과 항만 시설 건설에 필요한 간접 에너지 투입 을 모두 제외하더라도 운송에 드는 비용은 상당하다. 예를 들어 브라질 의 서부 및 남부 중심의 대두 재배에 각각 4.8GJ/t과 3.9GJ/t의 에너지가 들지만, 운송 비용은 같거나 한층 높아질 수 있는데, 내륙에서 해안까지 트럭을 이용할 경우 3GJ/t, 로테르담까지 운송하려면 1.5GJ/t이 소비된다.
- 1840년 유스투스 폰 리비히 iscusson lidio가 영양소 제한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덕분에 우리는 광합성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 가지 핵심 요소(질소, 인, 칼륨)가 적절한 비율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Liebig 1840), 인과 칼륨 비료의 생산은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것보다 에너 지 집약도15가 훨씬 낮다. 초기에 암모니아를 생산할 때는 수소와 결합한 석탄을 기본으로 사용했으며 암모니아 생산에 드는 에너지가 50GJ/t은 족히 필요했으나, 최신 암모니아 공장은 30GJ/t보다 적은 양 의 에너지로도 충분하다(Smil 2014). 질소의 사용 범위는 다양하고 넓다.
- 미국에서 옥수수를 기르는 데는 적어도 질소 100kg/ha가 필요했는데 이 는 3~5GJ/ha에 해당한다. 인phosphorus은 대부분 과인산염uperphosphare에서 얻어지는데, 과인산염은 인산 광석의 채굴을 통해 생산되며 그것들을 산으로 처리하는 데는 18~33GJ/t이 든다. 칼륨Potassium은 대부분 탄산칼륨 potash에서 얻는다. 탄산칼륨을 채굴하고 부수는 데는 2GJ/t보다 약간 못 미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중국, 모로코, 미국은 인산염의 최대 생산국이며, 캐나다, 러시아 그리고 중국은 탄산칼륨의 최대 생산국이다.
비료 덕분에 생산량이 높아지면 해충에게도 더 많은 먹이를 제공하며, 흙 속에 영양분이 늘어나면 잡초에도 더 많은 영양분이 전달된다. 이 때 문에 살충제, 살진균제, 제초제 등이 근대 농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40년대 중반 미국에서였다.
- 농약은 상대적으로 에너지 소비 집약도가 높았으며(대부분 100~200MJ/ Kg), 제조와 포장, 배포까지 마쳤을 때 최종적으로 300MJ/kg이 들었다. (Unger 1996), 하지만 이런 농약들은 적은 비율로 사용됐고(보통 1~2kg/ ha 정도), 상대적인 에너지 에너지(1GJ/ha 정도)는 적게 들었다.
노동용 가축에서 더 강력한 무생물 에너지 전환기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며, 작물 생산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미국에서 말과 노새에게 먹이는 귀리, 옥수수, 건초 등과 같은 사 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국가 경작지의 4분의 1 정도가 필요했으며(Smil 1994) 식량 작물이나 육류 및 유제품을 생산하는 동물의 사료보다 우선 했다(Smil 1994), 1910년 미국은 작은 트랙터가 1,000대 정도 있었는데, 1918년 역축의 수가 대략 2,700만 마리로 정점을 씨었을 때 트랙터의 수는 8만 5,000대까지 늘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 이의 몇 년 동안 동력은 다양한 장비들과 대형 고무 타이어, 효율적인 디 젤엔진 등과 함께 향상되었고, 이는 1950년 이후 엄청난 성장을 예고했 으며, 결국 1960년 미국 농무부는 역축의 수를 집계하는 것을 중단했다.
1900년에 힘이 센 말 한 마리는 장정 6~7명과 맞먹었으며, 초기 휘발 유를 사용한 트랙터는 말 15~20마리 정도가 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1950년 이후 기계는 100마력 이상을 냈으며 가장 강력한 북아메리카의 트랙터는 600마력을 내며 12m 넓이의 장비들을 끌 수 있었고, 가장 강 력한 옥수수 수확기는 23열의 옥수수를 벨 수 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유럽 지역에서는 역축에 의한 농업이 미국보다 몇십 년 더 지속됐으며 아시아와 아프리카 들판에서는 여전히 농업에 역축을 활용하고 있다
- 사료를 먹이는 기간이 단축되는 양상은 전형적으로 돼지와 닭의 사료소비 기간을 비교해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Smil 2013b). 전통적인 돼지 사육은 12~15달이 지나고 무게가 49~60kg이 됐을 때 도축되었는데, 현대에는 젖을 떼고 대규모의 공장식 사육 시설에서 단 6개월이 지나면 90kg의 무게로 시장에 나오게 된다. 자연 방목형 닭은 3~4개월이 지나 1kg 정도가 되었을 때 도축했지만, 현재 미국의 구이용 닭은 단 6주 동안 사료를 먹고 평균 2.5kg의 무게가 된다.
- 빠른 성장 속도, 짧은 생존 주기 그리고 감금된 상태의 사육은 닭고기 생산의 효율을 눈에 띄게 향상시켰다. 일련의 사육 효율성이 나타나기 시 작한 것은 1930년대부터였는데, 그 당시에는 닭의 생체중 단위당 5 사료 단위가 필요했고, 1960년대 중반에는 그 비율이 3 사료 단위 밑으로 떨 어졌으며 2008년부터 생체중 1kg당 1.6~1.8kg 사이의 사료가 필요해졌 다. 이러한 결과는 닭고기 가격을 안정시키며 소비자들의 소비를 증가하 게 만들었다. 반면에 달갈과 우유 생산의 장기적 효율의 향상은 미미했으 며, 양고기의 사육 효율성 향상은 거의 없었다. 예상대로, 양식 어종의 관련 자료들은 대부분 생체중 단위당 1~2 사료 단위로 생체중 단위 대 사료의 전환 차이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Fry et al. 2018).
- 육류 생산에서 있어서 에너지 비용을 더욱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전체 무게가 아닌 실제 식용이 가능한 무게로 바꿀 필요가 있다. 닭고기 생 산에는 먹을 수 있는 부위의 무게당 약 3 사료 단위가 들고, 돼지고기에는 9배가 들어가며, 소고기를 위해서는 적어도 25배의 단위가 필요하다(Smil 2013b), 양식 어종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조정할 경우 평균 약 3단위 전후26 인데, 대부분 바다 양식의 경우도 사료 집약도가 닭고기보다 덜하지 않다.
- 콩과 작물의 세계적인 감소세를 설명하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고기가 저렴해지면서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 게 우수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마른 콩과 작물은 제분 된 곡물과 달리 조리가 쉽지 않은 데다가 올리고당 때문에 소화도 쉽게 되지 않는다.  이처럼 고기와 유제품, 감미료, 식이 지방 소비는 주요 곡물 소비를 쇠퇴시키는 것 이상의 결과를 낳았다.
- 광활한 방목지와 풍부한 동물 사료는 미국을 18세기 동안 세계 최고의 육식 국가로 만들었는데, 이러한 지위는 19세기의 서부 개척과 함께 강화 되었다. 미국의 영양학자 윌버 애트워터 wibut Atwater가 1888년 미국인은 '에너지 수요를 초과해서 고기를 엄청나게 먹는데, 특히 지방 부위를 즐겨먹는다(Atwater 1888, 259).'라고 기록한 내용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 다. 현재는 기름기가 적은 돼지고기와 가금류를 훨씬 더 많이 먹지만, 전 체 식이 에너지의 52%는 지방에서 얻는다(McDonald's 2019), 1910년 미 국의 공급량은 내장을 제외하고 1인당 평균 약 75kg이었는데, 대공황으 로 일시적인 침체가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배급량조차 1인당 59kg 으로 유지되었고(Bentley 1998), 붉은 고기의 경우 육군 배급량은 106kg 이었으며, 해군은 165kg이었다. 전쟁 이후 공급량은 1971년에 도체 무게 90kg로 정점을 찍었다. 2015년까지 줄어든 30%는 그 이상의 가금류 소비 증가로 채워졌다.
- 세련된 르네상스 요리에서는 설탕을 그 달콤함으로 우리에게 본능적인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주는... 모든 음식에 어울리는 완벽한 조미 료(Felici 1572, 136)'로 여기며 사용했다. 일단 식민 세력이 브라질과 카리브해 지역에 사탕수수 농장을 세우고 난 뒤 수입이 증가했고, 18세기 후반에는 설탕 소비가 서유럽에서 더 보편화됐으며, 1811년 이후 사탕무에서 설탕을 정제할 수 있는 공정의 보급화를 통해 유럽 대륙에서 자체적으로 설탕을 공급하기 시작했다(Mintz 1986), 영국은 연간 공급량이 1700년 2kg 미만에서 한 세기 후에는 8kg으로 증가했으며, 1900년에는 인도와 아프리카산 설탕의 수입으로 1인당 설탕 소비량이 40kg을 육박하며, 유럽을 선도했다. 한 세기가 지난 뒤에도 영국의 연간 설탕 공급량은 36kg정도를 유지했다(FAO 2019).
미국의 설탕 공급은 1875~1900년 사이 거의 3분의 2만큼 오르면서 1 인당 30kg이 됐다. 2000년에는 미국 감미료의 전체 공급량이 2배 이상 으로 뛰어 1인당 69kg이 됐고, 2015년에는 15% 줄며 58kg 정도가 되었 다. 미국 농무부가 '열량이 있는 감미료라고 부르는 혼합물에서 고과당 콘 시럽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늘면서 정제 설탕이 차지하는 비중은 1900년 90%에서 현재 54%로 떨어지고 콘 시럽이 들어간 감미료는 전체 의 45%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동아시아에 있는 어떤 국가도 과도하게 당을 섭취하는 국가로 바뀌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 모두 차를 달게 마신 적이 없으며, 두 나라 모두 요리를 할 때 설탕은 전통 과자 등에 제한적으 로 사용했다. 일본의 연간 설탕 섭취율은 1900년 1인당 1kg이었으며 대 만에서의 수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 16kg까지 올랐다. 이후 1950년 5kg이었던 것이 1973년 30kg 가까이 늘어나지만, 이어지는 수요의 감소 로 2015년의 평균은 17kg 이하로 내려가면서 일본은 여전히 어떤 고소 득 국가보다 설탕에서 얻는 식량 에너지가 적다(FAO 2019), 1950년까지 중국의 1인당 설탕 공급량은 1900년 일본의 공급량보다 높지 않았지만, 1980년 이후 식생활의 향상으로 모든 범주의 식품 섭취는 증가했다. 그러나 설탕 공급량은 여전히 1인당 7kg이 못 된다.
- 미국 국립 과학아카데미가 설정한 허용 가능한 다량영양소 배분율은 성인의 경우 탄수화물은 전체 에너지 섭취의 45~65% 사이, 지방은 20~35% 사이다 (Institute of Medicine 2005), 최적의 탄수화물 범위는 탄수화물과 사망률에서 비롯된 에너지 비율 사이의 U자형 연관성을 발견한 연구에 의해 확인됐는데, 연구에 따르면 탄수화물에서 50~55% 사이의 에너지를 얻은 경우가 가장 사망 위험률이 낮으며(40% 미만), 높은(70% 이상) 탄수화물 섭취는 사망 위험률을 높인다(Seidelmann et al. 2018)는 것이다. 식이 지방의 범위는 각각 1~3세 사이의 아동은 30~40%, 18세까지는 25~35%이다. 단백질의 경우 3세까지는 5~20%, 나 이가 더 있는 아이들은 10~35%이며 성인도 마찬가지로 10~35%이다.
- 1959~1961년 사이 중국에서 발생한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기근은 자연재해 때문이 아닌 마오주의에서 비롯된 정신 나간 정책들 때문이었다. (Dikötter 2010; Yang 2012). 이후 수천만 명이 죽은 뒤 즉각적인 농업의 전환은 피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그것은 필자가 (닉슨의 1972년 베 이징 방문을 시작으로) 중국이 서양에 문호를 개방한 가장 그럴듯한 원인 을 암모니아 합성의 가장 진보된 공정을 통해 비료 사용을 늘리고 기근의 위협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는 이유다(Smil 2004). 닉슨의 방문 후 첫 번째 상업적 거래는 텍사스의 M. W. 켈로그사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크고 최신의 암모니아 및 요소 생산 복합 설비 13개 동의 건설을 발주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는 곧 또 다른 기근에 직면할 상황이었지 만 중국이 질소 장벽을 돌파할 수단을 얻었기에 중국 인구는 그 긴 역사 중에서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있다(Smil 2004, 116). 실제로 현재 중국의 1 인당 평균 식품 공급량은 일본보다 높다.
-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의 한 연구는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연간 손실이 1인당 약 100kg의 분량을 차지한다고 결론 내렸다(Gustavsson et al. 2011). 2018년 유럽연합과 미국, 캐나다의 8억 6천만 명의 인구를 합칠 경우 그 양은 거의 연간 90Mt 가까이 된다. 주요 식품군에 대한 구체적 인 식량 낭비의 비율은 고기에서 10%가 넘고, 채소의 경우 20~30%, 곡식은 25%다. 게다가 앞선 설명을 통해 밝혔듯이 버려진 닭고기나 돼지고 기에는 적어도 3~5단위의 식물성 사료가 추가로 낭비된다. 그리고 폐기 된 음식물 때문에 생기는 질산염 침출, 과도한 토양 침식, 항생제 내성으 로 인한 환경적 피해는 물론 종이, 금속, 유리 및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과 섞여 있어서 쉽게 재활용될 수 없는 많은 양의 물질을 처리해야 하는 일과 더불어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반면, 저소득 국가의 식량 폐기물의 대부분은 여전히 보관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발생한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공급률이 낮고 고기와 유제품의 섭취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저소득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식량 손실은 부유한 국가와 같은 규모다. 전체 푸드 시스템의 규모와 복 잡함을 생각하면, 식품 손실이 낮은 한 자릿수의 비율로 줄어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꽤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20%나 25%를 초과하는 손실을 그냥 두고 봐야 하는 정당한 근거 역시 없다.
- 에너지 전환은 네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첫 번째 변화는 세계의 시스템을 식물성 피토매스에 대한 의존에서 화석연료로 대체시킨 것이다. 두 번째 변화는 동력 밀도가 낮은 연료에서 동력 밀도가 높은 연료로 대체된 것이다. 세 번째 변화는 보관이 어려운 연료가 편리하고 저렴하게 보관 이 가능한 연료로 대체된 것이다. 건조하고 안전한 장소에 쌓인 1m3의 건조된 나무토막(수분 함유량 15%)들은 300~450kg의 무게 안에 8GJ 이하 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반면, 같은 부피의 역청탄과 원유는 각각 2.5배(20GJ)와 거의 5배(38G)의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휴대성 을 높여 교통수단에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목재 연료로도 기관차를 움직일 수 있겠지만, 증기기관의 경우 빈번하게 연료를 재보급해야 했다. 또한 자 동차 역시 목재 연료를 한 번만 충전해서는 500km를 주행할 수 없으며, 대륙 간 비행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네 번째 변화는 지구 표면 단위당 측정된 동력 밀도의 증가이다(Smil 2015b; 그림 4.7). 모든 피토매스 연료는 내재적으로 동력 밀도가 낮아서 대부분 1W/m 이하의 연간 생산량을 내고, 목재가 숯으로 바뀌면 상당히 감소한다(단, 숯은 건조 목재에 비해 동력 밀도는 거의 두 배), 결과적으로 피토매스로 현대의 고에너지 문명을 운영하려면 엄청나게 넓은 지역의 나무들이 희생될 것이다.
- 차에 시동을 거는 일은 전기가 없던 시기에 겪었던 불편함을 가장 잘 보 여 준다(Smil 2005). 초기의 모든 휘발유 차량은 핸드 크랭크hand crank 로 시 동을 걸어야 했는데, 이런 방식은 인간 근육의 폭발적인 힘을 필요로 했으 며, 다칠 위험까지 있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개선되었는데, 1911년에 찰 스 케터링 Charles Kettering이 만든 전기 시동기가 등장하고 나서야 문제는 해 결됐다. 1927년 포드의 마지막 모델 T가 등장했을 때 모든 신차에는 전기 시동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자동차 분야와 마찬가지로 비행기도 처음에는 수동으로 프로펠러를 돌려서 시동을 걸었지만, 1930년에는 전기 시동기 로 대체됐다. 제트엔진(가스터빈)은 이제 보조 동력 장치에 의한 압축가스 를 사용해 작동을 시작하지만, 엔진 자체는 배터리로 시동을 건다.
시동을 거는 일은 전기가 없는 세상에서 화석연료를 다루는 일의 어려 움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다. 비행기를 예로 들면 조금 더 피부에 와닿게 느낄 수 있다. 통신 및 항법 장치, 날씨 레이더, 선실 조명등, 객실 내 온도 조절뿐만 아니라 비행기 내의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개별 스크린은 말할 것도 없고, 식사와 음료의 준비 등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라. 더욱이 자동차는 압축가스로 전면 와이퍼와 경적을 작동할 수 있지만, 야간 주행과 신호를 위한 전기등이 없다면 상당히 난감할 것이다. 자동으로 열 고 닫을 수 있는 창문과 사이드미러 조절, 잠금장치도 마찬가지다. 다시 수동으로 창문과 잠금장치를 조작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 지만 신호등, 지하철, 고속열차, 공항, 병원, 냉장고, 에어컨과 같이 세상 곳곳에서 전기 공급에 의존하는 온갖 시스템을 포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 인구, 식량, 에너지의 전환이 완료되거나 막바지에 이르면 다음과 같은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한 사회가 인구통계학적 전환을 완료하면 가임률 은 대체 수준 출산율 밑으로 떨어진 채 그 흐름을 수십 년 동안 유지하게 된다. 식량을 통해 모든 영양학적 요소가 충족되면 식생활의 전환이 이 루어지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낭비가 발생했다. 또한 기존의 피토매스 연료를 소비하지 않고, 1인당 높은 비율로 소비되는 화석연료와 1차 전력의 조합에 의존하면 에너지 전환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 반면에 경제적 전환은 완료되었다는 표식으로서, 인구당 경제 생산이나 가처분소득을 확실히 보여 주는 지표는 없다. 1인당 생산이나, 소득 유지 정도를 목표로 하는 국가 경제 정책은 없다. 그런 안정적인 성장을 요구하 는 건 대부분 생태경제학 지지자들 밖에 없다.
- 산업혁명을 증기기관의 발명과 향상의 결과로 보는 지나치게 단순한 결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관념은 오랫동안 의문의 대상이 되어 왔다. 산업화와 근대식 공장의 등장은 동의어로 쓰이지만, 무손Musson은 19세 기 중반 영국의 전형적인 노동자는 공장에서 기계를 작동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전통적인 수공업자나 육체노동자 또는 가사를 돌보는 하인이었다.'라고 언급하였다(Musson 1978, 141). 이런 의견은 설리번sulivan의 영국 경제는 1760년 이후 90년 동안 대체로 전통적인 경 제였다.'라는 결론을 통해서 지지된다 (Sullivan 1990, 360), 심지어 캐머런 Cameron은 산업혁명이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명명이라는 급진적인 주장 (Cameron 1982)을 폈으며 포어스Fores는 영국의 산업혁명 개념 자체가 하나의 미신이라고 생각했다(Fores 1981).
니콜라스 폰 툰젤만Nicholas von Tunzelmann은 증기기관의 영향력이 이 후에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보다 더 작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von Tunzelmann 1978; Bruland and Smith 2013.) 증기기관의 도입이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다룬 최근의 훌륭한 연구는 경제성장에 미치는 기여도가 1830년 이전에는 미미했고, 고압 디자인(증기기관)의 확산이 널리 이루어진 것은 1850년 이후였음을 보여 준다. 결과적으로 증기기관이 생산성 성장에 미친 커다란 영향력은 산업혁명 기간이 아닌 19세기 하반기 에 드러났다. 그리고 '19세기 영국의 경제성장을 주로 증기기관이 가진 함의에서 찾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인식이다. 그것이 충분히 지배적인 영향 력을 가진 시기는 없다(Crafts 2014, 349~350).'
또한 석탄 사용의 증가 역시 그 자체만으로 영국의 성장을 가속화할 수는 없었다. 석탄은 증기기관에 동력을 제공하기 훨씬 전부터 널리 사용 됐다. 17세기에 석탄은 가정 내 난방과 요리에 사용됐으며 대장장이, 양조업자, 직물 염색업자, 석회와 비누 제작자도 사용했고, 열반사를 이용 한 반사로의 발명 덕분에 유리와 세라믹 제조에도 쓰였다. 1750년 이후 용광로에서 철광석을 녹이기 위한 코크스를 만드는 데도 점차 사용이 늘 었고 와트의 엔진이 대량으로 팔리기 시작하기 전부터 영국 열에너지의 80% 이상을 공급했다.
- 1949년 프랑스의 경제학자 장 푸르아스티에는 20세기에 관한 큰 희망 을 담은 책을 한 권 출간했는데, 저서에서 그는 문명화의 세 국면 동안에 벌어진 전형적인 노동력 분산을 수량화해서 보여 주었다. 그리고 3차 산업 부문은 필연적으로 규모가 무한하기 때문에 3차 산업 부문이 실업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Fourastik 1949). 푸르아스티에에 따르면 전통 사회(중세 유럽이나 혹은 그가 글을 썼던 시기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미 개발 국가는 1차 산업 부문의 고용이 노동력의 70%를, 2차 산업 부문은 20%, 3차 산업 부문은 단 10%를 차지하고 있고 밝혔다.
전환기에 1차 부문은 총노동력의 20%로 감소하며 2차 산업 부문(더 높은 에너지 사용과 기계화의 확대가 동력이 된)은 50%를 차지하고, 3차 산업 부문은 30%로 상승한다. 최종적으로 3차 산업 문명(현대 부유한 사회들)에서는 1차 산업 부문의 고용은 총노동력의 10%를 넘지 않으며, 2차 산업 부문은 20%, 3차 산업 부문은 70%를 점유한다. 그리고 3차 산업 부문의 규모와 다양성은 계속 늘어나서 두 개의 부문, 즉 모든 정보를 관 리하는 4차 산업 부문과 모든 지식 기반 활동을 포함하는 5차 산업 부문 이라는 두 개의 범주가 추가되기에 이른다.
- 1850년 이후 제조업의 성장은 명백히 현대의 고소득 국가들을 만들 고 그것을 공고히 하는 핵심 요인이었으며, 많은 연구는 제조업 분야가 가 져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혜택들을 보여 준다(Duesterberg and Preeg 2003; Smil 2013c; Cantore et al. 2017).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체 연구 개발의 약 3분의 2가 제조업에서 발생하면서 현대 사회의 혁신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제조업 활동은 전통적인 직업(관리 및 회계)뿐만 아니 라 새로운 고용(온라인 판매, 글로벌 마케팅) 기회를 만들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과 훈련(숙련된 노동력을 제공하는 데 특 히 중요한 수습 프로그램)을 이어지는 혁신과 운송 및 판매와 통합하는 등 전 방과 후방의 연결 고리를 창출한다. 이 모든 것들은 제조업이 경제 전반에 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서비스업을 능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겪은 국가는 불평등의 변화도 가장 빠르게 겪었다. 마오쩌둥 사상이 지배했던 중국은 다 같이 비참한 상태였기 때문에 불평등의 정도는 낮았으며 1985년 지니계수는 0.24로 경제 현 대화의 첫 해 동안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가난이 빠 르게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불평등도 매우 빠르게 상승했다. 2010년 중 국의 지니계수는 0.53에서 0.55 사이에 도달했으며 미국의 0.45에 비교 해서 상당히 높은 편으로, 특히 동등하거나 더 높은 생활수준을 가진 나 라들과 비교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불평등 순위를 보였다(Xie and Zhou 2014). '세계소득불평등 데이터베이스swID24'에 따르면 중국의 지 니계수는 2013년 0.5였다(Solt 2018). 중국은 특정 금융 서비스와 실업 보험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기회의 불평등과 지역 간 격차 역시 상당한 수준이며 지방과 도시의 격차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과거의 구조적 변화를 평가할 때 사용된 분류를 가지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경우 오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제조업은 정부와 산업, 재단에서 자금을 조 달하는 대학과 연구소에서 수행된 기초 및 응용 연구의 직접적인 결과물 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연구자들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까? 그들은 제조업 분야의 한 요소로 봐야 할까? 아니면 교육이나 정부 서비 스 부문의 일부로 간주해야 할까? 컴퓨터 작업을 기초로 하는 3D 모형 프린팅은 많은 산업 디자이너가 사실상 제조업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일부 특별한 디자인(인공 기관 제작이나 예술품 복제 등)은 실제 판매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산업 조립 현장에서 (자동화된 작업의 복잡한 과정을 움직이는) 프 로그램의 업그레이드는 이러한 형태의 제조가 소프트웨어의 개발 없이 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처럼 경제적 범주의 경계 가 허물어진 사례들은 그것이 하이브리드 또는 유전자 변형 씨앗에 의해 가능해지고 원격 감지와 위성 기반 매핑 및 GPS 유도 비료 살포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고수확 작물 재배든, 또 복잡한 컴퓨터 모형에 의해 서 보조되고 드릴링을 하는 동안 지속적인 전자 로깅을 이용해 높은 데 이터 처리를 하는 능력 없이는 불가능한 탄화수소의 탐사 및 추출이든, 모두 1차 경제 활동으로 쉽게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분명 이런 서비스 부문의 요소들 없이 기록적인 수확량이나 석유와 천 연가스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이전 에는 1차, 2차, 3차 산업으로 단순하게 분류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 이 다르다. 분리할 수 없는 새로운 시너지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의 경제 생산을 보여 주는 현실은 구조적인 전환 끝 무렵에 나타날 수 있는 완벽한 사례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맡게 될 역할에 관한 오늘날의 주장들 중 일부는 다소 과장되었지만, 높은 수준의 소프트웨어를 채택하는 일이 점점 더 일반화됨에 따라 더 많은 경제 활동이 이 융합된 구조의 새로운 범주로 들어올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밤중에 빛에 노출되면 인간의 멜라토닌 생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멜라토닌은 일주기 리듬에 의해 지배되며 수면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면역 시스템을 향상시키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모든 내분 비선에 영향을 미친다 (Wright and Lack 2001). 이 문제는 저녁이나 늦은 밤에 전자 기기 화면 또는 빛의 스펙트럼이 블루 라이트45에 맞춰진 다. 른 광원에 노출됨으로써 훨씬 악화될 수 있다(Oh et al. 2015). 빛에 대한 과도한 노출과 암, 당뇨, 심혈관계 질환의 발생률 사이의 관련성이 제기 되고 있기도 하다. 실험 연구 역시 밤 시간의 빛이 식품의 섭취 시간을 바꿈으로써 체질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Fonkenaet al. 2010).
이런 경향은 LED로 대규모 전환이 전개되며 더 심각해질 것이다. LED는 다른 빛보다 더 효율적이지만, LED 빛의 스펙트럼에서는 밤에 멜라토닌을 가장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파장(470nm의 블루 라이트)이 매우 선명하게 나타난다(Wright and Lack 2001; Oh et al. 2015; Kraus 2016). 이런 걱정은 최근 수면 지속 시간의 감소에 대한 일반적인 가정 이 제대로 된 분석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더불어 균형 있 게 다뤄져야 한다. 호요스(Hoyo와 동료들은 12개국에서 나타나고 있 는 수면 감소 경향에 대해 증거가 거의 없다고 결론을 내렸으며(Hoyos et al. 2015), 영스테드youngsted와 동료들 역시 1960~1989년 사이의 자료와 1990~2013년 사이의 자료를 비교한 뒤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 항생제 저항 균주의 확산은 여러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의사와 수의사가 항생제를 과잉 처방하는 관행과 처방전 없이 국가나 인터 넷에서 항생제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는 과다한 약물에 노출될 수 있다(Mainous et al. 2009), 그리고 병원의 열악한 위생 시설과 예방적 차 원에서 이루어지는 육류, 계란, 우유 생산 과정에서의 대규모 항생제 사 용도 있다. 일반적인 항생제에 대한 내성은 현재 일부 야생 동물에서도 나타나며 항생제 내성 유전자는 북극뿐만 아니라 열대 및 온대의 토양에 서도 발견됐다(Clare et al. 2019), 사망률의 증가, 입원의 장기화 그리고 의료 비용의 상승은 항생제 효능의 상실에 비하면 경미한 문제다. 이런 항 생제의 세상에서 매년 발생하는 독감 전염병은 박테리아 폐렴과의 합병 증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은 사망자를 낳을 것이고, 결핵과 장티푸스는 다시 한번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는 무서운 질병이 될 것이다.
- 많은 박테리아 균주는 흔히 사용되는 모든 항균제에 대해 내성을 지니게 되었다. 내성을 가진 균주 중에는 위장염과 요로 감염을 일으키는 대장 균escherichia coli, 폐렴과 수막염 등을 일으키는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균 Haemophius influenzae, 결핵을 일으키는 미코박테리아 Mycobacterium, 장티푸스균salmonella typh, 심한 설사를 유발하는 지하적리균shigella dusenterise. 콜레라Artscholers, 처럼 흔한 병원균도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폐렴, 결핵, 임질, 살모넬라 등을 포함해서 흔한 감염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치료를 위해 사용된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항생제가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항생제의 약 80%가 가축 생산 과정53에 쓰이기 때문에 잔여물이 가 금류의 배설물이나 소와 돼지의 분뇨에서 흔히 발견된다. 따라서 이러 한 폐기물을 저장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항생제 내성이 촉진된다(Van Boeckel et al. 2015; CDDEP 2015). 이런 물질들이 환경에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란 어렵다. 반 엡스 an Epp와 블레인Blane은 퇴비 더미를 적극적 으로 관리한다고 해서 항생제 분해가 촉진되지 않았으며 혐기성 소화 처 리 54가 일부 항생제 잔류물을 중화시키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Van Epps and Blane 2016).
- 한스 로슬링은 그의 책 《팩트풀니스ractfulness)에서, 아는 것이 많은 사람조차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이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라고 이해하고 있으며, 이것은 엄청난 오해로, 상황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 다 좋다.'라고 주장했다(Hans Rosling 2018). 스티븐 핑커는 우리가 헤드라인이 아니라 트렌드 라인(추세)을 봐야 한다고 훈계하며, 장수나 빈곤 감소에서부터 민주적 통치의 확산에 이르는 수많은 삶의 질적 향상을 읊 었다(Steven Pinker 2018, 77). 필자 역시 과거 발전의 범위와 속도에 주목함으로써 훨씬 더 다루기 힘든 문제에만 빠져 있는 세계의 일방적인 시각을 바르게 조정할 수 있다는 로슬링과 핑커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어째서 필자는 아직 로슬링이나 핑커의 전망에 온전히 동의하지는 못 하는가? 왜 필자는 감탄스러운 기록의 존재가 미래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전망을 보여 주는 불가피한 근거라고 믿지 않을까?
필자는(핑커의 몇몇 경멸적인 표현을 선택하자면) 쇠퇴론자가 아니며, '진보 공포증progressophobia'을 가진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대혼란 장사치 entrepreneur of mayhem'도 확실히 아니지만, 보편적이고 끊이지 않는 발전 메 시지에 관해 적어도 세 가지는 매우 우려하고 있다. 그중 가장 우려하는 것은 선별적 사실 무관심'이다. 로슬링과 핑커는 모두 그들의 주장에 맞 지 않는 현실은 무시하기로 했는데, 그들이 긍정적인 진보를 묘사하기 위 해 선택한 범주 내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인다. 베르그렌Berggren은 로슬링의 편향된 변수 선택에 대한 실질적인 문제를 비판했다(Berggren 2018).
- 과연 생물권에 대한 인간의 간섭이 위험한 수준에 다가가지 않으면서 (심지어 몇몇 경우는 이미 위험한 수준을 넘었다!), 또 지구온난화를 늦추지는 못해도 가속하지는 않으면서 이런 요구 사항들을 충족할 수 있을까? 대 부분 풍력터빈과 태양전지를 통해 이루어진 재생 가능한 전력 발전 분야 의 진보, 몇몇 나라에서의 상대적으로 빠른 전기 자동차의 도입 그리고 화석연료로부터 빨리 벗어나기 위한 대담한 국가 계획의 발표 등은 미래의 탈탄소 속도에 대해 많은 비현실적인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비슷하게, 최근 발전하고 있는 게놈학과 유전공학은 인공적으로 설계 된 유기체인 합성종의 초기 개발에 대해 희망을 보여 주었는데, 이는 상업화될 경우 영양에서부터 물질 생산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어려 움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인공지능의 발전과 4차 산업혁명의 출현에 대해 이어지는 주장들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계가 사람들을 쓸모없게 만들 미래가 임박했다고 믿게 만든다. 그런 기대는 필자가 무어의 저주라고 부르는 법칙에 영향을 받아 왔다. 무어의 법칙은 마이크로칩에서 나타나는 기하급수적 발전(1956년에 시작하여 여전히 계속되는)이 다른 영역의 기술혁신으로 매우 빠르게 옮겨 가서 완전히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돌아가고, 새롭게 설계된 합성종으로 식량을 해결하며, 신과 같은 기계에 의해 완벽하게 관리되는 세상이 금세 올 것이라는 심각한 오해를 빚었다. 불행하게도 이는 전형적인 오 해로, 부품 밀도가 빠르게 두 배가 되는 시간은 일반적인 인간의 진보속도를 보여 준다기보다는 주목할 만한 예외적 현상이다. 모든 선례와 마찬가지로 현재 문명은 에너지와 물질의 끊임없는 흐름에 의존하며, 근 본적인 투입을 전달하는 프로세스와 전환의 성능은 2년마다 두 배가 될 수 없다.
- 투입에 있어서 향상은 무어의 법칙에 따른 증가율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대부분 1.5~3% 범위 내에 있다. 다음은 이런 안정적이고 장기적 으로 낮은 향상률을 보이는 몇 가지 중요한 사례들이다. 단모종 밀과 벼 의 재배가 도입된 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전 세계 밀과 쌀의 연간 생산량은 각각 약 3.2%에서 2.6%씩 증가했고, 미국의 교배종 옥수수 생산 량은 1950년 이후 매년 2%씩 증가하고 있다(FAO 2019), 20세기 중 전 세계 대부분의 전기를 생산하는 증기 터보 발전기의 평균 효율은 매년 1.5%씩 향상하고 있다. 조명의 효율은 에디슨의 첫 번째 전구가 등장한 이래로 매년 약 2.6%씩 향상하고 있다. 현대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금속 인 강철을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 비용은 1950년 이래로 매년 2% 미만씩 감소하고 있다(Smil 2016a), 그리고 1958년 제트 여객기의 정기 운항이 시작된 이래로 항공기의 운항 속도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기기의 성능이나 새로운 제품의 연간 설치의 빠른 증가율은 종종 새 로운 시대의 진보를 특징짓는 새로운 현실의 증거로 언급되곤 하지만, 그런 상대적인 속도는 로지스틱 궤적이 갓 시작할 때 나타나는 상승 국 면인 성장의 초기에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점진적인 감소가 뒤따르는 최대 성장률에 도달하기 전에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 글로벌 시스템의 규모, 복잡성, 공간 범위와 동등하게 신뢰할 수 있고 저 렴한 비용의 대안을 복합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를 완전히 대체하는 일은 오랜 세대에 걸친 과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성공 여부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지속적인 감소에 달렸다. 이런 변화는 세계적인 노력이 필 요하다. 1950년 국가적인 노력은 물과 공기를 정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 이었지만,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주요 경제 국가들이 하룻밤 사이에 탄소 배출을 없앤다고 해도 화석연료에 기반한 세계 경제성장으로 단 일 년 안에 그만큼의 배출량이 채워질 것이다. 2010~2018년 사이 전 세계 화석연료와 시멘트에서 배출한 연간 이산화탄소의 평균 증가량은 약 340Mt에 이른다. 참고로 프랑스의 배출량은 331Mt, 영국의 배출량은 368Mt이다. (GCP 2019).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1.5°C 온난화 대책을 위한 기후변화 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pcc의 보고서(IPCC 2018)나 렌튼Lenton과 동료들의 긴급 조치에 대한 요약(Lenton et al. 2019)에 나온 것처럼 이산화탄소 배 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제거하는 갑작스러운 역전은 희망 사항일 뿐이다(그림 7.3).
우리는 여전히 비탄소로 전환하는 과정의 초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재 생 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에서 나오는 전기와 수소, 바이오 연료가 궁극 적으로 어떤 기여를 하게 될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합리적인 비용, 쉬운 전환(에너지의 최종 사용 형태가 효율적이고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 것), 편리한 운반, 투자 대비 높은 에너지 수익,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의 최소화, 높 은 수준의 안전성과 신뢰성, 공공의 높은 수용도(Tsao et al. 2018; Smill 2017a; Hall et al. 2014) 등과 같은 원칙의 특성은 안다. 그래도 21세기의 마지막 10년을 전기가 지배할지, 수소 기반의 경제체제가 성립될지 말하 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 경제학자들은 노동 투입, 자본, 교육, 향상된 자원의 배분, 규모의 경제, 지식의 성장과 같은 경제성장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의 목록을 만들어 왔 다. 여기에 에너지와 환경은 어디에 있는가? 에너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 다. 환경은 종종 등장하긴 해도 스쳐 지나갈 뿐이다. 예를 들어 로버트 솔 로 Robert solow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지만, 측정 결과에는 나타나지 않는 환경 개선을 위한 투자'를 경제적 생산량의 성장을 줄여온 한 요인으로 인 지했다(Solow 1987).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한 에너지적이고 물질적인 제약에 관해 알고 있는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필자는 이런 무지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환경이 점점 무시될 수 있다는 주장들에 대해 그리고 현재 유행하고 있는 에너지와 미래 경제성장의 분리 및 미래 경제의 비물질화에 대한 논의에서 표현된 개념들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우리가 에너지와 물질의 중심적 역할과 인간 복지의 측면에서 수많은 환경 제약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는 한 그리고 이런 불가피한 제약을 장기적인 경제발전과 조화시키기 위해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을 생각해 내지 않는 한 앞 으로 경제와 환경의 성공적인 전환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활발한 경제성장이 이전과 달리 아주 적은 양의 에너지 물질을 통해 진 행될 수 있다는 믿음은 심각한 착각이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물리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했듯, 주류 경제적 사고는 에너지는 보편적인 것이며 모든 물질은 에너지의 한 형태라는 것 그리고 경제의 본질은 에너지를 추출하고 가공해서 제품과 서비스에 포함시키는 것이라는 핵심적 진리를 광범위하게 무시해 왔다(Ayres 2017, 40). 애초에 왜 등한 시하게 됐는지는 명확하다. 에너지를 경제 생산의 부산물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에너지 변환의 역사는 성능(에너지/거리)의 차원이든 구현된 투입(에너 지/최종 산물의 질량)량의 차원이든, 상대적인 에너지 집약도의 성공적이고 점진적인 감소의 역사이기도 하다. 비슷하게 기술적 진보의 역사는 그것 이 구현된 투입 물질(구체적인 물질의 질량/최종 제품의 단위)로서는 전체 비 용(질량/최종 제품의 가격)의 측면이든, 요구량의 상대적인 감소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환영받는 현실은 세 가지의 당연한 결과로 이어 진다. 상대적 감소는 전 세계적 차원에서 절대 감소로 치환될 수 없다. 그리고 국가적 성취는 세계 경제에서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감소의 궤적은 자연적 한계를 가진다.
- 우리는 단순화하는 맥시멀리스트가 되기보다 복잡하게 만드는 미니멀리 스트로서 행동해야 하고, 단호하지만 유연하고 절충적이지만 분별력 있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복잡하게 만드는 미니멀리스트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완벽하다고 알려진 단일 해결책에 의존하지 않고, 다수의 접근 방식 을 선호하며, 달성 가능한 가장 높은 서비스와 양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투 입을 옹호하는 걸 말한다. 단호하지만 유연하고 절충적이지만 분별력 있는 태도란 특정 해결책을 용납하지 않는 선험적, 이데올로기적 순결함을 용납해선 안 되며, 특정 요소를 범주적으로 배제하지 말아야 하고... 최선을 고려할 때 융통성 없는 주장을 하지 않는 걸 의미한다(Smil 2003,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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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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