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Z세대'라는 용어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MZ세대란 기성세대가 편의상 청년세대를 묶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라며, 정작 MZ세대 로 묶이는 이들은 해당 구분과 용어를 기꺼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MZ세대란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 에 출생한 이들을 가리키는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와 그 이후 2000 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까지 가리키는 2세대를 모두 엮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밀레니얼세대는 1981년부터 1995년까지, 2세대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다. 이 정의에 따르자면 MZ세대에는 마흔 언 저리부터 10대까지 모두 묶인다.
그러나 MZ세대를 밀레니얼세대와 2세대를 단순히 합한 것으로 보는 정의는 오류에 가깝다. MZ세대라는 단어가 만약 두 세대의 단순 한 합이라면 서로 다른 세대를 한데 묶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MZ 세대는 밀레니얼과 Z세대의 합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특정 연령대를 가리킨다.
따라서 MZ 세대는 2022년 기준 20~30대를 가리킨다. 1980년대 초중반부터 2000년생까지다. 그런 점에서 MZ세대는 완전히 새로운 게 아니다. 그간 20~30대를 일반적으로 청년세대라고 정의해왔기 때문이다. 88만원세대도, N포 세대도 모두 200~30대를 가리켰다. 그런데도 이들을 MZ세대로 새롭게 호명하는 건 청년세대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 MZ 세대는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은 한국에서 성인이 되어 사회생 활을 시작했다. 대략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사람들이다. 이들 M 에게는 이전 세대와 달리 국가의 정치·경제 체제와 관련해 투쟁해본 경험이 없다. 이들에게 신자유주의 국가는 더 논쟁할 필요 없을 정도로 정착된 체제다. 애초에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을 때까지 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저항이 일어난 적이 없다. 신자유주의적 체 제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논리가 강력하게 작동되었기 때문이다.1) | 그러면서 신자유주의적 논리, 경쟁과 효율성은 MZ 세대의 삶에 깊 이 자리 잡았다. 88만원세대나 N포 세대는 MZ 세대의 경제적인 삶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88만 원/N포 세대는 신자유주의로 촉발 된 불평등을 수용하며 만성적인 우울과 무기력에 시달리는 청년의 모 습을 반영한다. 반면 어떤 MZ 세대는 좋은 삶을 좇는 환상을 절박하 게 유지하며 고단한 현재의 삶을 이어 나간다. 안정된 직업, 계층 상승 같은 것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버리기 어려운 희망이라 주식과 코인,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재테크에 매달리는 MZ세대도 등장했다.
- 교육적으로도 MZ 세대는 윗세대와 구분된다. 2000년부터 학년별 로 순차적으로 적용된 7차 교육과정은 선택 과목제를 도입하여 학생 마다 서로 다른 교과목을 공부하고 시험 치게 되었다. 입시에서 수시 제도는 점점 강화됐고 이전과 같이 수학능력시험 한 번으로 대학 입학 이 결정되던 시기는 지났다. 개정에 개정을 거듭하면서 복잡해지는 교 육과정과 입시 제도는, 이전 세대와 MZ세대를 포함한 이후 세대를 가 르는 분기점이 됐다. 무엇을 배우느냐 만큼, 어떻게 배우는지도 중요하다. MZ 세대가 교 육 현장에서 배우는 것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그들 이전 세대만 하더라도 교육 환경에서 변수가 있다면 수능 혹은 학력고사의 난이도 정도였다. 그러나 MZ 세대부터 학생들은 예측이 어려운 입시제도와 복잡 한 교육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교육에서 습득한 각자도생 정신은 MZ 세대를 생존주의 세대로 명명했다. 선배 청년들은 산업화는 민주화든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되어 기성세대의 고루함을 깨는 역할을 했다. MZ 서대는 거항, 자유, 도전 같은 단어와 거리가 먼 대신 각자 노력한다. 학창 시걸을 넘어 취업 과정에서, 직장 생활에서도 알아서 노력하지 않 으면 경갱에서 도태되는 게 MZ세대의 숙명 같다. 그렇게 노력해서 대단 한 성취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단지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 생존주의자로서 MZ세대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소망한다. 그리고 그게 어렵다는 걸 안다.
-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현상이 한 국에서는 유독 여행과 결부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빅데이터를 활용 한 욜로 현상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욜로에 관심을 가진 미국, 유럽 등 지에서는 욜로가 힙스터(Hipster) 현상이나 힙합 문화 등과 연관됐지 만, 한국에서는 소비와 여행이 결부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 생은 한 번뿐이니 즐기며 살자는 욜로 현상이 유행한 게 2010년대 중반부터니 MZ세대의 여행 경험 증가는 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이다. 이때부터 늘어난 MZ세대의 여행은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짚어볼 수 있다.
MZ세대의 여행이 자유로움과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한 가지 의 문점이 해결된다. 바로 해외여행 경험은 높아지는데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낮아지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3년에 한 번 실시하는 '다문화 수용성 조사'를 보자. 2021년에 '어느 국가든 다양한 인종·종교·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더 좋다'는 문장에 동의하는 MZ세대는 2015년에 비해 줄었다. 2018년에만 해도 20대 51.6%, 30대 45.4%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6년 후인 2021년에는 그 수가 각각 8.7%, 3.3% 줄었다. 다른 연령대에서는 늘어난 것과 대조된다. 왜 여행을 많이 다니는 MZ 세대는 다문화에서 멀어지게 된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MZ 세대의 여행과 다문화 감수성은 크게 관 계없기 때문이다. MZ 세대가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다른 문화를 경험 하고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매년 700만 명 넘 게 다녀온 일본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했어야 한다. 일본정부관광국 (JNTO)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일본을 찾은 해외여행객 수는 3,119 만 명인데, 이 중 24%에 달하는 754만 명이 한국인이었다.
다른 국가로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한국 여행자 사이에서 는 스페인과 대만을 방문하는 게 유행처럼 번진 적 있다. 스페인을 방 문한 한국 관광객 수가 5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었다. 그러나 여행자의 증가가 스페인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여 전히 한국에서 스페인 문화는 낯선 편이다. MZ 세대에게 여행과 다문화는 별개의 문제지만, 먹을거리 같은 야에는 영향을 주기도 했다. 2010년대 이후 MZ 세대의 해외여행 경험이 늘면서 가장 눈에 띄게 변화한 부분은 음식 문화다. 일식과 중식이 대부분이던 한국에서 외국 음식이 다양해진 것이다. 크림소스를 잔뜩 버무린 한국식 카르보나라만 유행하던 2000년대 이탈리아 음식점들과 달리, 2010년대 이탈리아 음식점은 달걀 노른자를 이용한 정통 카르보나라부터 면을 살짝 덜 익혀 심지가 씹히는 알 덴테(Al dente) 파스타까지 이탈리아 현지 맛을 재현하는 데 집중한다. 인도, 터키 음식 점은 꽤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고, 해외 여행자가 늘수록 다양한 나라 의 음식점이 늘고 있다. | 이는 여행을 통한 다문화가 일시적 다문화주의에 그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일시적 다문화주의'는 완전히 뿌리내린 다문화주의와는 달리 문화적 이해 없이도 일상에서 한 번 즐기고 마는 다문화를 의미 하는데, 한국에서의 음식 문화가 그렇다. MZ 세대에게 외국 음식을 맛보는 건 여행을 재현하는 것과 같다. 매번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 대신 외국 음식을 먹으면서 여행을 회고한다. 음식을 먹는 게 여행 체험인 셈이다. 일시적 다문화주의가 일상적 다문화주의에 이를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MZ 세대에게 여행은 자기만족이자 일탈이기 때문이다.
- 무한도전이 만들어낸 현실은, 안전하고 즐거운 것이다. 고통스럽 고 불안하지 않다. 〈무한도전〉에는 평균에 못 미치는 사람들은 있지만, 취업에 실패하고 꿈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이들이 사는 현 실은 노력하면 감동적인 결말을 얻는 곳이다. 늘 새롭게 끈끈한 가족 애를 느끼며 다툼마저도 유머로 승화된다. 충분히 즐길 만한 현실이다.
그래서 무한도전의 현실은 미래가 아닌 현재를 바라보게 한다. 출연자들은 다음 주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심지어 당일 저녁에 어느 곳에 있게 될 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현재 주어진 일만을 처리하고, 닥 친 감정에 몰입할 뿐이다. <무한도전>의 세계관을 만들어 그 안에 몰입 해 있는 한, 우리 현실에 팽배한 허무감이나 불안감, 초조함을 모두 넘어서게 만든다.
- 일반적으로 세계관을 지닌 콘텐츠는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방탄 소년단 팬덤은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에 몰입한 동안은 방탄소년단이 외치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따르며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 신을 아껴주고, 격려해주고, 가장 즐겁게 해주는 일”이라는 걸 믿고 “다시 드넓게 펼쳐지는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즐긴다. 세계관이 있는 콘텐츠가 어떻게 MZ 세대에게 어필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콘텐츠가 만들어낸 세계관을 아껴주고 격려하며 응원 하는 관계가 대부분이다. 간혹 다툼이 있더라도 현실 세계의 생존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그 안에서 MZ 세대는 힘든 현실을 잊을 수 있다.
- 자기 결정성 이론은 외적 동기나 외부에서 주어진 압력에 의한 행동보다 내적 동기 및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진 행 동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에게 는 세 가지 중요한 심리적 욕구가 있는데 자율성(Autonomy), 유능감 (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이다. 자율성은 말 그대로 타인에 의한 압박 없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행동을 결정하려는 욕구다. 유능감이란 과정을 즐기고 성취감을 느끼려는 욕구다. 관계성은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다. 이 욕구가 충족되면 삶은 만족스럽다. 행복하다는 감정은 세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 나온다.
- 힙스터'는 대중과는 다른 자기만의 취향을 좇는 비주류 집단을 말한다. 역사적 근원을 따져 보면 힙스터를 이해하기 더 쉽다. 1940년대부터 힙스터라는 말은 존재했다. 이 당시 힙스터는 흑 인 재즈 뮤지션을 추종하는 백인 청년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일정한 직업이나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재즈만을 즐기던 이 청년들을 두고 1950년대에는 '비트닉(Beatnik)'이라고도 했다. 비트닉의 주된 정서는 주류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었다. 동시에 비트닉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비롯된 패배 의식과 허무주의, 비관주의 같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이 정서들은 1960년대 히피(Hippie)'부터 펑크와 레게, 록, 힙합으로 이어 기는 하위문화(Subculture)의 근원이다. 하위문화는 반문화(Counterculture)로서, 기저에 기성세대의 안정적인 삶과 주류사회의 보수적인 관념에 거항하는 방탕하고 반항적인 인식을 깔고 있다.
그러나 기금의 힙스터는 역사적 힙스터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패배 의식과 허무주의 같은 정서는 거의 보이지 않고 체제에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저항하는 힙스터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힙스터는 선택한다. 저항의 의미를 지닌 소품을 선택하고, 삶의 양식을 선택한다. 그 선택은 대개 소비로 실천된다.
- MZ 세대가 미식을 즐기고 인증샷을 찍어 공유하는 이유를 있어빌 리티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제기되곤 한다. 그러나 이런 과시욕구, 허세 같은 것으로만 MZ 세대의 미식을 설명하면 놓칠 만한 부분이 많다. 미식 경험 중 인증샷은 거의 필수적으로 찍지만, MZ세대가 인증샷을 반드시 공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수에게 노출할 목적이 없는 경우도 많다. 친한 친구끼리만 공유하는 식이다.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더라도 팔로워는 소규모일 수 있다. 공유하지 않는 인증샷을 찍는 MZ 세대는 그렇다면 왜 미식 경험을 즐기는 걸까. 이는 자기과시 혹은 자기 인정과 관련 있다. 김수아 서울 대 기초교육원 교수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서는 반응편향(Response Bias)'이 일어난다. 반응편향이란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인데, 소셜미디어에서 보이는 모습이 순간을 포착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기본 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건 반드시 타인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소셜미디어 속 자기 모습이 원래 모습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인증샷에는 맛집을 찾아보면서 기대하던 마음, 음식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으며 즐기던 기분, 맛집 분위기, 새로운 음식에 대한 즐거움, 미식 경험을 함께하는 사람과의 친근함 같은 게 모두 담긴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에 이를 공유하면서 스스로 경험을 덧씌운다.
- 86세대는 노동시장, 정치권, 학계 가릴 것 없이 사회 전 분야에서 과실을 분배받았다. 권력을 장악한 86세대는 소득 불평등에서 자산 불평등으로 불평등 구조를 악화시켰고 아랫세대를 약화시켰다. 노동 시장을 예로 들자면, 86세대는 늘 리더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에, 아랫세대는 '리더십'을 경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86세대의 아랫세대, X세대와 MZ 세대는 주도적으로 나선 경험이 없다.
MZ 세대는 더욱 위축되어 있다.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에 비해 적은 권력을 가지는 게 일반적이라지만, 특히 한국에서 MZ세대의 권력은 아주 적은 편이다. 현역 의원 20명 이상이 모인 원내 교섭단체 대표로 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30대가 대표 자리에 오른 게 2021년의 일이다. 그나마 X세대는 문화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나섰지만, MZ 세대가 두드 러진 곳은 많지 않다. 여전히 기성세대의 뒤를 쫓는 중이다.
- 리더십을 박탈당한 MZ세대는 기성세대를 탓하고 원망하지만 저 항하지 못한다. 이들은 소극적으로 블라인드 애플리케이션에 불만을 토로하는 글을 남기지만 단체 행동을 보이지는 않는다.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순응하는 듯 보인다. 그런 점에서 기성세대는 MZ 세대를 좀 더 면밀히 관찰할 필요 있 다. MZ 세대는 표현하는 세대가 아니다. 내심으로는 강력한 거리 두기 를 하더라도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시작하는 맥락 없는 소 통, 표면적인 이해 같은 것은 MZ세대가 기성세대에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 MZ세대는 기성세대에 깊은 거리감을 지니고 있다.
- 이해찬은 특기 하나만 있어도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선언하며 교육 현장부터 대학 입시 제도까지 교육 전반을 바꾸어 놓았다. 수학능력시험(수능)으로만 말하자면 이해찬 세대의 수 능 성적표에는 원점수 대신 영역별 표준 점수가 도입되고 등급이 표기 되었다. 의도는 수능을 자격시험화하자는 것이었는데, 자격시험이 될 수 없는 큰 규모의 수능 시험과 수시 제도가 뒤섞여 대입 현장은 혼란 에 휩싸였다.
혼란은 매년 가중됐다. 아예 수능 성적표에 점수 대신 등급만 표기 되었다가 다음 해에 폐지되기도 하고, 면접과 논술 전형이 강화되었다. 가 축소되었다가,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었다가 축소되고, 학생부종합전형이 등장했다가 비판받고, 선택형 수능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일관성 없는 대학 입시 정책은 단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들에게 혼란만을 가져온 게 아니었다. 혼란한 학창 시절은 MZ세대의 삶 전반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 MZ 세대가 자주 느낀 건 불안감과 무력감이었을 것이다. 이 감정들 은 불확실성에서 오는데, MZ세대는 해마다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며 살아왔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노력이 확실히 결실을 맺는 경험을 했다면 MZ 세대의 감정은 조금 더 긍정적인 것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MZ세대는 입시가 다가올수록 결과를 확실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노력이 아닌 주변의 '도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연구원의 보고서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2018)'를 보면 한 개인이 평생 노력할 때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 고 응답한 MZ 세대는 57%를 웃돌았다. 최소한 둘 중의 한 명은 성공 하기 위해서 개인의 노력이 크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 MZ 세대가 염세적이라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삶을 노력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맞추 지 않을 뿐이다. 노력해도 별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노력은 잠 시의 위안으로만 존재한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지속 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스타벅스 텀블러를 반복해서 사는 MZ세대의 소비 행동을 이 지점 에서 이해할 수 있다. 텀블러를 사용함으로써 친환경이라는 목표에 참 여하고는 싶지만, 단 하나의 텀블러를 가지고 소박하게 사는 게 과연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지 장담하기 어렵다면, 그럴 바에는 그때그때 친 환경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텀블러를 반복해 구입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까 MZ 세대는 종종 소비 활동같이 실제 노력을 대체할 수 있는 행동으로 가치를 실현하려고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후원하는 업체의 물품을 구입하거나 독립운동가 가족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펀딩에 참여하는 식이다. 그건 실제 삶에 영향을 줘 좌절감 같은 걸 느 끼게 할 위험이 없다.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에 줄곧 신경 써야 할 필요 도 없다. 염세주의자에게 꼭 맞는 실천 방법이다.
- 말하자면 MZ 세대는 비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 성하는 세대고, 그게 MZ세대의 인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MZ 세대 가 누구보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MZ 세대는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자기 지위에 민 감하다. 실제로 영국 스털링대학 한 연구팀의 연구 결과, 어떤 사람의 정신적 괴로움을 따지는 데는 절대적 기준에서 소득이 많은지 적은지 는 중요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주변 지인들이 얼마나 벌고, 그에 비해 내가 얼마만큼의 소득을 올리는지가 중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비교 대상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갑자기 오르면 자조가 이 떨어진다. 벼락 거지'는 이런 심리를 표현하는 단어다. 벼락 거지란 부동산과 주식 같은 자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 갑자기 상대적으로 빈곤해 진 사람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것이다. 벼락 거지가 되고 싶지 않은 MZ 세대는 자기가 갑자기 끌어내려지는 것도, 남이 부당하거나 손쉬운 이 득을 얻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이 문제는 공정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2020년 6월 인천국 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직원 2,100여 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당시 반대 목소리를 크게 내던 이들이 MZ 세대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사태도 그렇다. MZ 세대는 불공정한 사건 그 자체에 화가 나는 게 아니다. 그로 인한 결과, 누 군가의 기회나 자산이 박탈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러니 '박탈되기 전에 행동을 취하는 일은 중요하다. MZ 세대의 재테크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는 대처 방안 이다. 몇 차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만한 사건을 겪고 난 후,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근로소득을 상회하는 이익을 거둔 주변 사람의 이야기까 지 듣고 나면 재테크를 하지 않는 일은 마치 저항하지 않는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 MZ 세대의 공(公)과 사(私)'는 분명히 분리된다. 사적인 공간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열정적으로 쓰는 MZ세대는 반대로 공적인 영역에 서는 평범해지려 애쓴다. 굳이 자기 취향을 드러내거나 공과 사 모두 에 열정적으로 임하지 않는다.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걸 알기 때 문이다. 기성세대가 보기에 MZ 세대가 마냥 무난하고 평범하다면, 그 MZ 세대가 기성세대와 함께 있는 영역에 열정을 쏟고 있지 않다는 의 미다. 해당 영역이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열정을 쏟아야 할 이유를 찾 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MZ세대의 느슨한 패션'이 그저 평범하고 무 난한 것을 추구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을 비로소 알게 된다. MZ세대는 하나의 강조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느슨한 패션을 추구한다. 강조 점은 신발이 될 수도, 가방이 될 수도 있다.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외모 자체가 강조점이 되거나, 아예 취향이나 성격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무 엇인가이기도 하다. 느슨한 스타일의 MZ 세대와 좀 더 가까워져야 비로소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떤 부분에서 MZ 세대의 느슨한 패션은 MZ세대 개인을 더 잘 알아주길 바라는 어필이라고 봐도 된다. 느슨한 패션에 숨겨진 취향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그의 스타일을 좀 더 눈여겨봐야 하기 때문이다. 알 고 보면 뚜렷한 취향을 지닌 무심한 MZ 세대처럼, 느슨한 패션은 평범함 속에 가려진 열정을 상징한다.
- 미루어보자면 MZ세대에게 더 이상 일은 삶을 바칠 만한 것이 아 니다. 기성세대 중에는 그런 사람이 꽤 많았다. 일이 곧 삶이고 직업이 자신을 대표하는 모든 것이었다. 기성세대에게 일은 자아를 실현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일에서 얻는 만족감이 삶의 만족을 좌우하고 회사의 성취가 나의 성취가 되는 삶이었다.
MZ세대는 그렇지 않다. MZ세대는 기성세대를 보면서 일과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일하지 않는 나를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우선한다. MZ 세대의 부모가 퇴근 후 혹은 퇴직 후에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를 목격하면서 MZ 세대는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 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주변의 지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 MZ세대가 빈약한 소통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 다. 바로 보는 읽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문해력이란 단지 문자를 읽고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능력에만 그키는 것이 아니다. 문해력, 특히 디지 털 문해력이란 텍스트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다른 사람의 이 야기를 듣는 능력을 포함한다.
MZ세대는 디지털 텍스트의 특성을 파악할 시간을 충분히 얻지 못한 채로 디지털 텍스트에 노출된 첫 세대로, 자연히 디지털 문해력 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텍스트와 텍스트를 읽는 방식은 단순히 습관의 문제가 아 니라 몸의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텍스트를 어떻게 읽느냐는 뇌의 어 느 부분이 활성화되느냐와 관련이 있다.24) 문해력이란 짧은 기간 동안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으로만 길러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텍스 트를 주로 접하는 공간, 그 텍스트의 특성, 개인이 텍스트를 사용하는 방식 같은 게 모두 고려돼야 한다.
- MZ세대의 디지털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를 교정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단지 대학 신입생을 상대로 한두 달의 쓰기 수업,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단기 연수하는 것 등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MZ 세대 스스로 그 필요성을 깨닫고 문해력 향상에 나서야 하는 시점일지도 모른다.
- 비교는 MZ 세대를 대표하는 행위 중 하나다. 자아를 중요하게 생각 할 것으로 여겨지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MZ 세대는 비교하는 일에 익숙하고, 비교를 체화하며 살아간다. 소셜미디어 탓이 크다. 소셜미디 어에서는 실시간으로 타인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비교하는 일이 중임없이 일어난다.
애초에 한국 사회는 비교 성향이 높은 사회다. 그 이유로 한국인이 통등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것을 꼽는 학자도 있다. 여기서 말하 는 평등에 대한 욕구는 두루 나누어 다 함께 살아가는 게 아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좇아가 같은 대열에 서려는 욕구다.
- MZ 세대가 겪어온 교육 현장은 이 같은 욕구를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다. 얼핏 동질한 교육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집안 환경과 사교육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물을 목격한 세대다. MZ 세대는 이 같은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따라잡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왔다. 자기 상황과 다른 사람의 것을 계속해서 비교하고 맞추려는 태도를 체화한 것이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태도를 MZ 세대 생활 전반에 걸쳐 확장하도록 도왔다. 단지 교육을 받고 스펙을 쌓는 데만 남과 비교할 게 아니라 노는 것, 먹는 것, 입는 것까지 비교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MZ 세대가 우열을 가리기 좋아하고 점수를 매기는 데 익숙한 까닭이다.
- MZ 세대에게 갑자기 서열 의식이 생기고, MZ세대가 갑자기 권위적으로 돌변한 것이 아니다. 젊은 꼰대가 생기는 원인을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MZ 세대의 점수화된 문화다. 점수는 비교와 우열 가리기에서 온다. 주관적인 기준만으로 일반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전 에 없던 권위를 부여해주기도 한다. 점수를 매기고 점수가 매겨지는 일에 익숙하다는 것은 곧 이런 경향성이 있다는 의미다.
MZ 세대는 어릴 때부터 점수화된 문화에 익숙했다. 특히 최근 들 어 누구나 별점을 매길 수 있게 되면서, 점수 매기기가 갖는 성향을 내 재하기 시작했다. 젊은 꼰대는 그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남과 비교하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것, 내 경험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 나의 말이 권위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 등은 모두 무엇인가 에 점수를 줄 때의 부정적인 모습이다.
점수화가 특정 분야에서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잊어 서는 안 된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 직군에서 점수화는 이미 보 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 점수가 직원의 고용 안정에 긴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누군가 멋대로 '10점 만점에 1점' 점수를 내린다면 인사고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MZ세대의 점수화는 간편하고 발랄한 문화적 현상으로만 볼 수 없다. 점수화된 사회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가 서서히 지적되는 만큼, MZ세대 스스로 점수화를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 MZ 세대의 갓생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 다. 다른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활용되는 때가 많은데, N잡러들 역시 마찬가지다. 잡코리아의 앞선 조사에서 보면 N잡을 가지는 이유로 대 다수 사람들이 꼽은 것은 추가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영어공부를 하거나 미라클 모닝을 달성하는 것 역시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갓생에는 한계가 있다. 갓생을 살고자 하는 MZ 세대는 목적 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독촉할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갓생은 반 성의 언어와 함께 많이 사용된다. 갓생을 살지 못해 자책하는 언어 역 시 종종 발견된다. 이는 MZ세대를 또 다른 초조함으로 밀어 넣을 가능성이 있다. 칼럼니스트 앤 헬렌 피터슨은 갓생과 같은 방식의 삶은 번 아웃의 다른 말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피터슨은 정신분석가 조시 코언의 말을 인 용하여 “전진해야 한다는 초조한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번 아웃 을 느낀다”고 말했다. 번 아웃을 경험하는 사람은 완전히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압박을 느끼면서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갓생은 MZ세대 번 아웃의 증상일 수 있다. 활기차게 의지를 다잡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볼 수만은 없다. 갓생이 유행하는 와중에도 MZ 세대의 우울이 깊어지는 현상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갓생을 외치는 MZ 세대는 기력을 소진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 MZ 세대는 설득되지 않는다. MZ 세대를 설득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인데, 자기 의견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생각을 드러낸 경우에는 확고한 의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MZ세대 여성과 남성이, 또는 기성세대 남성과 MZ세 대 남성이 의견을 나누고 합치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립적인 언어만 오갈 가능성이 높다.
설득되지 않는 세대로 MZ 세대를 이해하려면 이들이 어떻게 소통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T. 홀에 따르면 문화권을 고 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고맥락 문화에서 커 뮤니케이션은 숨겨진 의미를 지니고 진행된다. 저맥락 문화에서 직설 적으로 말하는 것과 다르다. 고맥락 문화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언제 한번 밥 먹자'는 말을 예로 들자면 저맥락 문화에서는 말 그대로 식사 약속을 잡자'는 것이지만 고맥락 문화에서는 헤어질 때 하는 예의 있는 표현이다. 저맥락 문화에서 말 의 의도는 명확하고 이유는 명쾌하게 설명된다.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고 상대의 말에 자주 끼어들고 입씨름을 벌인다.
온라인 공간은 저맥락 환경이다. 이언 레슬리는 저맥락 커뮤니케이 션을 수행하는 온라인에서는 두 가지 행태가 나타난다고 짚었다. 싸우 거나 도망치는 것,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무의미할 정도로 논쟁에 매 달리거나 아예 침묵하는 것이다. 즉 어떤 갈등 양상은 온라인에서 조금 더 극화(劇化)되어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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