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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사용설명서

사회 2022. 10. 22. 10:13

- 'MZ세대'라는 용어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MZ세대란 기성세대가 편의상 청년세대를 묶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라며, 정작 MZ세대 로 묶이는 이들은 해당 구분과 용어를 기꺼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MZ세대란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 에 출생한 이들을 가리키는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와 그 이후 2000 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까지 가리키는 2세대를 모두 엮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밀레니얼세대는 1981년부터 1995년까지, 2세대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다. 이 정의에 따르자면 MZ세대에는 마흔 언 저리부터 10대까지 모두 묶인다.
그러나 MZ세대를 밀레니얼세대와 2세대를 단순히 합한 것으로 보는 정의는 오류에 가깝다. MZ세대라는 단어가 만약 두 세대의 단순 한 합이라면 서로 다른 세대를 한데 묶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MZ 세대는 밀레니얼과 Z세대의 합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특정 연령대를 가리킨다.
따라서 MZ 세대는 2022년 기준 20~30대를 가리킨다. 1980년대 초중반부터 2000년생까지다. 그런 점에서 MZ세대는 완전히 새로운 게 아니다. 그간 20~30대를 일반적으로 청년세대라고 정의해왔기 때문이다. 88만원세대도, N포 세대도 모두 200~30대를 가리켰다. 그런데도 이들을 MZ세대로 새롭게 호명하는 건 청년세대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 MZ 세대는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은 한국에서 성인이 되어 사회생 활을 시작했다. 대략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사람들이다. 이들 M 에게는 이전 세대와 달리 국가의 정치·경제 체제와 관련해 투쟁해본 경험이 없다. 이들에게 신자유주의 국가는 더 논쟁할 필요 없을 정도로 정착된 체제다. 애초에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을 때까지 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저항이 일어난 적이 없다. 신자유주의적 체 제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논리가 강력하게 작동되었기 때문이다.1) | 그러면서 신자유주의적 논리, 경쟁과 효율성은 MZ 세대의 삶에 깊 이 자리 잡았다. 88만원세대나 N포 세대는 MZ 세대의 경제적인 삶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88만 원/N포 세대는 신자유주의로 촉발 된 불평등을 수용하며 만성적인 우울과 무기력에 시달리는 청년의 모 습을 반영한다. 반면 어떤 MZ 세대는 좋은 삶을 좇는 환상을 절박하 게 유지하며 고단한 현재의 삶을 이어 나간다. 안정된 직업, 계층 상승 같은 것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버리기 어려운 희망이라 주식과 코인,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재테크에 매달리는 MZ세대도 등장했다.
- 교육적으로도 MZ 세대는 윗세대와 구분된다. 2000년부터 학년별 로 순차적으로 적용된 7차 교육과정은 선택 과목제를 도입하여 학생 마다 서로 다른 교과목을 공부하고 시험 치게 되었다. 입시에서 수시 제도는 점점 강화됐고 이전과 같이 수학능력시험 한 번으로 대학 입학 이 결정되던 시기는 지났다. 개정에 개정을 거듭하면서 복잡해지는 교 육과정과 입시 제도는, 이전 세대와 MZ세대를 포함한 이후 세대를 가 르는 분기점이 됐다. 무엇을 배우느냐 만큼, 어떻게 배우는지도 중요하다. MZ 세대가 교 육 현장에서 배우는 것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그들 이전 세대만 하더라도 교육 환경에서 변수가 있다면 수능 혹은 학력고사의 난이도 정도였다. 그러나 MZ 세대부터 학생들은 예측이 어려운 입시제도와 복잡 한 교육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교육에서 습득한 각자도생 정신은 MZ 세대를 생존주의 세대로 명명했다. 선배 청년들은 산업화는 민주화든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되어 기성세대의 고루함을 깨는 역할을 했다. MZ 서대는 거항, 자유, 도전 같은 단어와 거리가 먼 대신 각자 노력한다. 학창 시걸을 넘어 취업 과정에서, 직장 생활에서도 알아서 노력하지 않 으면 경갱에서 도태되는 게 MZ세대의 숙명 같다. 그렇게 노력해서 대단 한 성취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단지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 생존주의자로서 MZ세대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소망한다. 그리고 그게 어렵다는 걸 안다.
-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현상이 한 국에서는 유독 여행과 결부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빅데이터를 활용 한 욜로 현상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욜로에 관심을 가진 미국, 유럽 등 지에서는 욜로가 힙스터(Hipster) 현상이나 힙합 문화 등과 연관됐지 만, 한국에서는 소비와 여행이 결부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 생은 한 번뿐이니 즐기며 살자는 욜로 현상이 유행한 게 2010년대 중반부터니 MZ세대의 여행 경험 증가는 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이다. 이때부터 늘어난 MZ세대의 여행은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라고 짚어볼 수 있다.
MZ세대의 여행이 자유로움과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한 가지 의 문점이 해결된다. 바로 해외여행 경험은 높아지는데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낮아지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3년에 한 번 실시하는 '다문화 수용성 조사'를 보자. 2021년에 '어느 국가든 다양한 인종·종교·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더 좋다'는 문장에 동의하는 MZ세대는 2015년에 비해 줄었다. 2018년에만 해도 20대 51.6%, 30대 45.4%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6년 후인 2021년에는 그 수가 각각 8.7%, 3.3% 줄었다. 다른 연령대에서는 늘어난 것과 대조된다. 왜 여행을 많이 다니는 MZ 세대는 다문화에서 멀어지게 된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MZ 세대의 여행과 다문화 감수성은 크게 관 계없기 때문이다. MZ 세대가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다른 문화를 경험 하고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매년 700만 명 넘 게 다녀온 일본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했어야 한다. 일본정부관광국 (JNTO)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일본을 찾은 해외여행객 수는 3,119 만 명인데, 이 중 24%에 달하는 754만 명이 한국인이었다.
다른 국가로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한국 여행자 사이에서 는 스페인과 대만을 방문하는 게 유행처럼 번진 적 있다. 스페인을 방 문한 한국 관광객 수가 5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었다. 그러나 여행자의 증가가 스페인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여 전히 한국에서 스페인 문화는 낯선 편이다.  MZ 세대에게 여행과 다문화는 별개의 문제지만, 먹을거리 같은  야에는 영향을 주기도 했다. 2010년대 이후 MZ 세대의 해외여행 경험이 늘면서 가장 눈에 띄게 변화한 부분은 음식 문화다. 일식과 중식이 대부분이던 한국에서 외국 음식이 다양해진 것이다. 크림소스를 잔뜩 버무린 한국식 카르보나라만 유행하던 2000년대 이탈리아 음식점들과 달리, 2010년대 이탈리아 음식점은 달걀 노른자를 이용한 정통 카르보나라부터 면을 살짝 덜 익혀 심지가 씹히는 알 덴테(Al dente) 파스타까지 이탈리아 현지 맛을 재현하는 데 집중한다. 인도, 터키 음식 점은 꽤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고, 해외 여행자가 늘수록 다양한 나라 의 음식점이 늘고 있다. | 이는 여행을 통한 다문화가 일시적 다문화주의에 그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일시적 다문화주의'는 완전히 뿌리내린 다문화주의와는 달리 문화적 이해 없이도 일상에서 한 번 즐기고 마는 다문화를 의미 하는데, 한국에서의 음식 문화가 그렇다. MZ 세대에게 외국 음식을 맛보는 건 여행을 재현하는 것과 같다. 매번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 대신 외국 음식을 먹으면서 여행을 회고한다. 음식을 먹는 게 여행 체험인 셈이다. 일시적 다문화주의가 일상적 다문화주의에 이를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MZ 세대에게 여행은 자기만족이자 일탈이기 때문이다.
- 무한도전이 만들어낸 현실은, 안전하고 즐거운 것이다. 고통스럽 고 불안하지 않다. 〈무한도전〉에는 평균에 못 미치는 사람들은 있지만, 취업에 실패하고 꿈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이들이 사는 현 실은 노력하면 감동적인 결말을 얻는 곳이다. 늘 새롭게 끈끈한 가족 애를 느끼며 다툼마저도 유머로 승화된다. 충분히 즐길 만한 현실이다.
그래서 무한도전의 현실은 미래가 아닌 현재를 바라보게 한다. 출연자들은 다음 주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심지어 당일 저녁에 어느 곳에 있게 될 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현재 주어진 일만을 처리하고, 닥 친 감정에 몰입할 뿐이다. <무한도전>의 세계관을 만들어 그 안에 몰입 해 있는 한, 우리 현실에 팽배한 허무감이나 불안감, 초조함을 모두 넘어서게 만든다.
- 일반적으로 세계관을 지닌 콘텐츠는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방탄 소년단 팬덤은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에 몰입한 동안은 방탄소년단이 외치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따르며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 신을 아껴주고, 격려해주고, 가장 즐겁게 해주는 일”이라는 걸 믿고 “다시 드넓게 펼쳐지는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즐긴다. 세계관이 있는 콘텐츠가 어떻게 MZ 세대에게 어필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콘텐츠가 만들어낸 세계관을 아껴주고 격려하며 응원 하는 관계가 대부분이다. 간혹 다툼이 있더라도 현실 세계의 생존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그 안에서 MZ 세대는 힘든 현실을 잊을 수 있다.
- 자기 결정성 이론은 외적 동기나 외부에서 주어진 압력에 의한 행동보다 내적 동기 및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진 행 동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에게 는 세 가지 중요한 심리적 욕구가 있는데 자율성(Autonomy), 유능감 (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이다. 자율성은 말 그대로 타인에 의한 압박 없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행동을 결정하려는 욕구다. 유능감이란 과정을 즐기고 성취감을 느끼려는 욕구다. 관계성은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다. 이 욕구가 충족되면 삶은 만족스럽다. 행복하다는 감정은 세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 나온다. 
- 힙스터'는 대중과는 다른 자기만의 취향을 좇는 비주류 집단을 말한다. 역사적 근원을 따져 보면 힙스터를 이해하기 더 쉽다. 1940년대부터 힙스터라는 말은 존재했다. 이 당시 힙스터는 흑 인 재즈 뮤지션을 추종하는 백인 청년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일정한 직업이나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재즈만을 즐기던 이 청년들을 두고 1950년대에는 '비트닉(Beatnik)'이라고도 했다. 비트닉의 주된 정서는 주류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었다. 동시에 비트닉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비롯된 패배 의식과 허무주의, 비관주의 같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이 정서들은 1960년대 히피(Hippie)'부터 펑크와 레게, 록, 힙합으로 이어 기는 하위문화(Subculture)의 근원이다. 하위문화는 반문화(Counterculture)로서, 기저에 기성세대의 안정적인 삶과 주류사회의 보수적인 관념에 거항하는 방탕하고 반항적인 인식을 깔고 있다.
그러나 기금의 힙스터는 역사적 힙스터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패배 의식과 허무주의 같은 정서는 거의 보이지 않고 체제에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저항하는 힙스터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힙스터는 선택한다. 저항의 의미를 지닌 소품을 선택하고, 삶의 양식을 선택한다. 그 선택은 대개 소비로 실천된다.
- MZ 세대가 미식을 즐기고 인증샷을 찍어 공유하는 이유를 있어빌 리티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제기되곤 한다. 그러나 이런 과시욕구, 허세 같은 것으로만 MZ 세대의 미식을 설명하면 놓칠 만한 부분이 많다. 미식 경험 중 인증샷은 거의 필수적으로 찍지만, MZ세대가 인증샷을 반드시 공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수에게 노출할 목적이 없는 경우도 많다. 친한 친구끼리만 공유하는 식이다.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더라도 팔로워는 소규모일 수 있다. 공유하지 않는 인증샷을 찍는 MZ 세대는 그렇다면 왜 미식 경험을 즐기는 걸까. 이는 자기과시 혹은 자기 인정과 관련 있다. 김수아 서울 대 기초교육원 교수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서는 반응편향(Response Bias)'이 일어난다. 반응편향이란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인데, 소셜미디어에서 보이는 모습이 순간을 포착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기본 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건 반드시 타인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소셜미디어 속 자기 모습이 원래 모습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인증샷에는 맛집을 찾아보면서 기대하던 마음, 음식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으며 즐기던 기분, 맛집 분위기, 새로운 음식에 대한 즐거움, 미식 경험을 함께하는 사람과의 친근함 같은 게 모두 담긴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에 이를 공유하면서 스스로 경험을 덧씌운다.
- 86세대는 노동시장, 정치권, 학계 가릴 것 없이 사회 전 분야에서 과실을 분배받았다. 권력을 장악한 86세대는 소득 불평등에서 자산 불평등으로 불평등 구조를 악화시켰고 아랫세대를 약화시켰다. 노동 시장을 예로 들자면, 86세대는 늘 리더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에, 아랫세대는 '리더십'을 경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86세대의 아랫세대, X세대와 MZ 세대는 주도적으로 나선 경험이 없다.
MZ 세대는 더욱 위축되어 있다.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에 비해 적은 권력을 가지는 게 일반적이라지만, 특히 한국에서 MZ세대의 권력은 아주 적은 편이다. 현역 의원 20명 이상이 모인 원내 교섭단체 대표로 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30대가 대표 자리에 오른 게 2021년의 일이다. 그나마 X세대는 문화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나섰지만, MZ 세대가 두드 러진 곳은 많지 않다. 여전히 기성세대의 뒤를 쫓는 중이다.
- 리더십을 박탈당한 MZ세대는 기성세대를 탓하고 원망하지만 저 항하지 못한다. 이들은 소극적으로 블라인드 애플리케이션에 불만을 토로하는 글을 남기지만 단체 행동을 보이지는 않는다.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순응하는 듯 보인다. 그런 점에서 기성세대는 MZ 세대를 좀 더 면밀히 관찰할 필요 있 다. MZ 세대는 표현하는 세대가 아니다. 내심으로는 강력한 거리 두기 를 하더라도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시작하는 맥락 없는 소 통, 표면적인 이해 같은 것은 MZ세대가 기성세대에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 MZ세대는 기성세대에 깊은 거리감을 지니고 있다.
- 이해찬은 특기 하나만 있어도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선언하며 교육 현장부터 대학 입시 제도까지 교육 전반을 바꾸어 놓았다. 수학능력시험(수능)으로만 말하자면 이해찬 세대의 수 능 성적표에는 원점수 대신 영역별 표준 점수가 도입되고 등급이 표기 되었다. 의도는 수능을 자격시험화하자는 것이었는데, 자격시험이 될 수 없는 큰 규모의 수능 시험과 수시 제도가 뒤섞여 대입 현장은 혼란 에 휩싸였다.
혼란은 매년 가중됐다. 아예 수능 성적표에 점수 대신 등급만 표기 되었다가 다음 해에 폐지되기도 하고, 면접과 논술 전형이 강화되었다. 가 축소되었다가,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었다가 축소되고, 학생부종합전형이 등장했다가 비판받고, 선택형 수능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일관성 없는 대학 입시 정책은 단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들에게 혼란만을 가져온 게 아니었다. 혼란한 학창 시절은 MZ세대의 삶 전반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 MZ 세대가 자주 느낀 건 불안감과 무력감이었을 것이다. 이 감정들 은 불확실성에서 오는데, MZ세대는 해마다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며 살아왔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노력이 확실히 결실을 맺는 경험을 했다면 MZ 세대의 감정은 조금 더 긍정적인 것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MZ세대는 입시가 다가올수록 결과를 확실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노력이 아닌 주변의 '도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연구원의 보고서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2018)'를 보면 한 개인이 평생 노력할 때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 고 응답한 MZ 세대는 57%를 웃돌았다. 최소한 둘 중의 한 명은 성공 하기 위해서 개인의 노력이 크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 MZ 세대가 염세적이라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삶을 노력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맞추 지 않을 뿐이다. 노력해도 별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노력은 잠 시의 위안으로만 존재한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지속 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스타벅스 텀블러를 반복해서 사는 MZ세대의 소비 행동을 이 지점 에서 이해할 수 있다. 텀블러를 사용함으로써 친환경이라는 목표에 참 여하고는 싶지만, 단 하나의 텀블러를 가지고 소박하게 사는 게 과연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지 장담하기 어렵다면, 그럴 바에는 그때그때 친 환경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텀블러를 반복해 구입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까 MZ 세대는 종종 소비 활동같이 실제 노력을 대체할 수 있는 행동으로 가치를 실현하려고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후원하는 업체의 물품을 구입하거나 독립운동가 가족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펀딩에 참여하는 식이다. 그건 실제 삶에 영향을 줘 좌절감 같은 걸 느 끼게 할 위험이 없다.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에 줄곧 신경 써야 할 필요 도 없다. 염세주의자에게 꼭 맞는 실천 방법이다.
- 말하자면 MZ 세대는 비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 성하는 세대고, 그게 MZ세대의 인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MZ 세대 가 누구보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MZ 세대는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자기 지위에 민 감하다. 실제로 영국 스털링대학 한 연구팀의 연구 결과, 어떤 사람의 정신적 괴로움을 따지는 데는 절대적 기준에서 소득이 많은지 적은지 는 중요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주변 지인들이 얼마나 벌고, 그에 비해 내가 얼마만큼의 소득을 올리는지가 중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비교 대상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갑자기 오르면 자조가 이 떨어진다. 벼락 거지'는 이런 심리를 표현하는 단어다. 벼락 거지란 부동산과 주식 같은 자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 갑자기 상대적으로 빈곤해 진 사람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것이다. 벼락 거지가 되고 싶지 않은 MZ 세대는 자기가 갑자기 끌어내려지는 것도, 남이 부당하거나 손쉬운 이 득을 얻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이 문제는 공정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2020년 6월 인천국 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직원 2,100여 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당시 반대 목소리를 크게 내던 이들이 MZ 세대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사태도 그렇다. MZ 세대는 불공정한 사건 그 자체에 화가 나는 게 아니다. 그로 인한 결과, 누 군가의 기회나 자산이 박탈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러니 '박탈되기 전에 행동을 취하는 일은 중요하다. MZ 세대의 재테크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는 대처 방안 이다. 몇 차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만한 사건을 겪고 난 후,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근로소득을 상회하는 이익을 거둔 주변 사람의 이야기까 지 듣고 나면 재테크를 하지 않는 일은 마치 저항하지 않는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 MZ 세대의 공(公)과 사(私)'는 분명히 분리된다. 사적인 공간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열정적으로 쓰는 MZ세대는 반대로 공적인 영역에 서는 평범해지려 애쓴다. 굳이 자기 취향을 드러내거나 공과 사 모두 에 열정적으로 임하지 않는다.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걸 알기 때 문이다. 기성세대가 보기에 MZ 세대가 마냥 무난하고 평범하다면, 그 MZ 세대가 기성세대와 함께 있는 영역에 열정을 쏟고 있지 않다는 의 미다. 해당 영역이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열정을 쏟아야 할 이유를 찾 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MZ세대의 느슨한 패션'이 그저 평범하고 무 난한 것을 추구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을 비로소 알게 된다. MZ세대는 하나의 강조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느슨한 패션을 추구한다. 강조 점은 신발이 될 수도, 가방이 될 수도 있다.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외모 자체가 강조점이 되거나, 아예 취향이나 성격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무 엇인가이기도 하다. 느슨한 스타일의 MZ 세대와 좀 더 가까워져야 비로소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떤 부분에서 MZ 세대의 느슨한 패션은 MZ세대 개인을 더 잘 알아주길 바라는 어필이라고 봐도 된다. 느슨한 패션에 숨겨진 취향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그의 스타일을 좀 더 눈여겨봐야 하기 때문이다. 알 고 보면 뚜렷한 취향을 지닌 무심한 MZ 세대처럼, 느슨한 패션은 평범함 속에 가려진 열정을 상징한다.
- 미루어보자면 MZ세대에게 더 이상 일은 삶을 바칠 만한 것이 아 니다. 기성세대 중에는 그런 사람이 꽤 많았다. 일이 곧 삶이고 직업이 자신을 대표하는 모든 것이었다. 기성세대에게 일은 자아를 실현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일에서 얻는 만족감이 삶의 만족을 좌우하고 회사의 성취가 나의 성취가 되는 삶이었다.
MZ세대는 그렇지 않다. MZ세대는 기성세대를 보면서 일과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일하지 않는 나를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우선한다. MZ 세대의 부모가 퇴근 후 혹은 퇴직 후에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를 목격하면서 MZ 세대는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 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주변의 지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 MZ세대가 빈약한 소통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 다. 바로 보는 읽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문해력이란 단지 문자를 읽고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능력에만 그키는 것이 아니다. 문해력, 특히 디지 털 문해력이란 텍스트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다른 사람의 이 야기를 듣는 능력을 포함한다.
MZ세대는 디지털 텍스트의 특성을 파악할 시간을 충분히 얻지 못한 채로 디지털 텍스트에 노출된 첫 세대로, 자연히 디지털 문해력 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텍스트와 텍스트를 읽는 방식은 단순히 습관의 문제가 아 니라 몸의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텍스트를 어떻게 읽느냐는 뇌의 어 느 부분이 활성화되느냐와 관련이 있다.24) 문해력이란 짧은 기간 동안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으로만 길러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텍스 트를 주로 접하는 공간, 그 텍스트의 특성, 개인이 텍스트를 사용하는 방식 같은 게 모두 고려돼야 한다.
-  MZ세대의 디지털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를 교정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단지 대학 신입생을 상대로 한두 달의 쓰기 수업,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단기 연수하는 것 등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MZ 세대 스스로 그 필요성을 깨닫고 문해력 향상에 나서야 하는 시점일지도 모른다.
- 비교는 MZ 세대를 대표하는 행위 중 하나다. 자아를 중요하게 생각 할 것으로 여겨지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MZ 세대는 비교하는 일에 익숙하고, 비교를 체화하며 살아간다. 소셜미디어 탓이 크다. 소셜미디 어에서는 실시간으로 타인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비교하는 일이 중임없이 일어난다.
애초에 한국 사회는 비교 성향이 높은 사회다. 그 이유로 한국인이 통등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것을 꼽는 학자도 있다. 여기서 말하 는 평등에 대한 욕구는 두루 나누어 다 함께 살아가는 게 아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좇아가 같은 대열에 서려는 욕구다.
- MZ 세대가 겪어온 교육 현장은 이 같은 욕구를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다. 얼핏 동질한 교육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집안 환경과 사교육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물을 목격한 세대다. MZ 세대는 이 같은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따라잡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왔다. 자기 상황과 다른 사람의 것을 계속해서 비교하고 맞추려는 태도를 체화한 것이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태도를 MZ 세대 생활 전반에 걸쳐 확장하도록 도왔다. 단지 교육을 받고 스펙을 쌓는 데만 남과 비교할 게 아니라 노는 것, 먹는 것, 입는 것까지 비교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MZ 세대가 우열을 가리기 좋아하고 점수를 매기는 데 익숙한 까닭이다.
- MZ 세대에게 갑자기 서열 의식이 생기고, MZ세대가 갑자기 권위적으로 돌변한 것이 아니다. 젊은 꼰대가 생기는 원인을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MZ 세대의 점수화된 문화다. 점수는 비교와 우열 가리기에서 온다. 주관적인 기준만으로 일반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전 에 없던 권위를 부여해주기도 한다. 점수를 매기고 점수가 매겨지는 일에 익숙하다는 것은 곧 이런 경향성이 있다는 의미다.
MZ 세대는 어릴 때부터 점수화된 문화에 익숙했다. 특히 최근 들 어 누구나 별점을 매길 수 있게 되면서, 점수 매기기가 갖는 성향을 내 재하기 시작했다. 젊은 꼰대는 그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남과 비교하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것, 내 경험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 나의 말이 권위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 등은 모두 무엇인가 에 점수를 줄 때의 부정적인 모습이다.
점수화가 특정 분야에서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잊어 서는 안 된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 직군에서 점수화는 이미 보 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 점수가 직원의 고용 안정에 긴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누군가 멋대로 '10점 만점에 1점' 점수를 내린다면 인사고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MZ세대의 점수화는 간편하고 발랄한 문화적 현상으로만 볼 수 없다. 점수화된 사회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가 서서히 지적되는 만큼, MZ세대 스스로 점수화를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 MZ 세대의 갓생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 다. 다른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활용되는 때가 많은데, N잡러들 역시 마찬가지다. 잡코리아의 앞선 조사에서 보면 N잡을 가지는 이유로 대 다수 사람들이 꼽은 것은 추가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영어공부를 하거나 미라클 모닝을 달성하는 것 역시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갓생에는 한계가 있다. 갓생을 살고자 하는 MZ 세대는 목적 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독촉할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갓생은 반 성의 언어와 함께 많이 사용된다. 갓생을 살지 못해 자책하는 언어 역 시 종종 발견된다. 이는 MZ세대를 또 다른 초조함으로 밀어 넣을 가능성이 있다. 칼럼니스트 앤 헬렌 피터슨은 갓생과 같은 방식의 삶은 번 아웃의 다른 말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피터슨은 정신분석가 조시 코언의 말을 인 용하여 “전진해야 한다는 초조한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번 아웃 을 느낀다”고 말했다. 번 아웃을 경험하는 사람은 완전히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압박을 느끼면서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갓생은 MZ세대 번 아웃의 증상일 수 있다. 활기차게 의지를 다잡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볼 수만은 없다. 갓생이 유행하는 와중에도 MZ 세대의 우울이 깊어지는 현상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갓생을 외치는 MZ 세대는 기력을 소진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 MZ 세대는 설득되지 않는다. MZ 세대를 설득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인데, 자기 의견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생각을 드러낸 경우에는 확고한 의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MZ세대 여성과 남성이, 또는 기성세대 남성과 MZ세 대 남성이 의견을 나누고 합치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립적인 언어만 오갈 가능성이 높다.
설득되지 않는 세대로 MZ 세대를 이해하려면 이들이 어떻게 소통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T. 홀에 따르면 문화권을 고 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고맥락 문화에서 커 뮤니케이션은 숨겨진 의미를 지니고 진행된다. 저맥락 문화에서 직설 적으로 말하는 것과 다르다. 고맥락 문화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언제 한번 밥 먹자'는 말을 예로 들자면 저맥락 문화에서는 말 그대로 식사 약속을 잡자'는 것이지만 고맥락 문화에서는 헤어질 때 하는 예의 있는 표현이다. 저맥락 문화에서 말 의 의도는 명확하고 이유는 명쾌하게 설명된다.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고 상대의 말에 자주 끼어들고 입씨름을 벌인다. 
온라인 공간은 저맥락 환경이다. 이언 레슬리는 저맥락 커뮤니케이 션을 수행하는 온라인에서는 두 가지 행태가 나타난다고 짚었다. 싸우 거나 도망치는 것,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무의미할 정도로 논쟁에 매 달리거나 아예 침묵하는 것이다. 즉 어떤 갈등 양상은 온라인에서 조금 더 극화(劇化)되어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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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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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대량 멸종 초입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네가 이야기할 수 있는 거라곤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동화뿐이네요. (그레타 툰베리 Greta Tunberg, 2019년 9월)
- 너무나 많이,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순전히 물질적인 것들을 축적하는 데 개인적 탁월함과 공동체성을 양보해온 것처럼 보입니다. (로버트 F. 케네디 Robert Francis Kennedy, 1968년 3월)
- 존 스튜어트 밀은 산업혁명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에 급부상한 사회를 자신이 얼마나 싫어하는지 토로했다. 1848년에 출간한 《정치 경제학 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에서 밀은 이렇게 썼다. 오를 날과 같은 유형의 사회생활을 구성하는 짓밟기, 깨부수기, 팔꿈치로 찌르기, 다른 사람 발 밟기가 인류의 가장 바람직한 운명이라 생각하 고 목구멍에 풀칠하려고 안간힘 쓰는 것이 인류의 정상적 상태라 생 각하는 이들이 주창하는 삶의 이상에서, 나는 어떠한 매력도 느끼지 못한다.” 정지 상태에 관해 밀은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나는 선배 정치경제학자들이 이러한 경제에 대해 예외 없이 표출했던 노골적인 혐오감을 표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밀은 이렇게 말했다. “전반적으로는 정지 상태가 현 상황보다 앞으로 상당히 더 나아간 상태일 것이라 믿고 싶은 마음이다.” 
달리 말하면, 이 위대한 고전파 경제학자는 이렇게 주장한 셈이 다. 성장 이후의 세상은 우리 모두에게 더 빈곤한 곳이 아니라 오히 려 더 부유한 곳일 수 있다. 또한 밀이 어렴풋이 내다봤고, 케네디가 요구했고, 데일리가 발전시켰던 이 구상은 더 평등하며 더 충만한 세 상에 관한 비전으로서, 이 책에 나오는 주장들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다.

- “자본가로서 나는 우리 모두가 아는 진실을 소리 높여 외칠 때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알던 자본주의는 죽었다고."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 2019년)
- "수치를 당하고 체면도 잃고 피 속에서 허우적대며 오물을 뚝뚝 흘리는 채로 자본주의 사회는 버티고 서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 Rosa Luxmburg, 1915년)
- 노동 생산성이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경제에서 GDP 성장을 짜내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에 투입되는 시간을 늘리는 것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거나 아니면 일하는 사람 각자가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가운데 어 느 것도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약속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실은 일단 노동 생산성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상황에서는, 이 미 우리는 모두 어느 모로 보나 포스트 성장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 다. 이런 환경에서는 번영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 방법을 찾아내기도 더 이상 간단치 않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실에서 이러한 추세가 나타남을 부정하거나 아니면 어떻게든 항로를 돌려 좋았던 옛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가정한다. 다보스는 이런 분위기로 가득 찼다. “새로운 심각한 균열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구조를 갈가리 찢고 있습니다”라고 발전경제학자 폴 콜리어 Paul Collier는 경고했다. 그리고 그것은 “만인의 생활수준을 꾸준히 향상시킨다는 자본주의의 가장 믿음직한 면모가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다음날에는 세일즈포스Salesforce* 공동 CEO인 억만장자 마크 베니오프가 발언을 이어갔는데, 베니오프는 “우리가 알던 자본주의는 죽었다”고 탄식했다."
- '유동성’ 폭증은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명령한 것이었다. 이 전략은 그럭저럭 먹혔다. 성장이라 할 만한 것이 잠시 돌아왔다. 그러 나 그 수익은 압도적으로 부자들에게만 흘러갔다. 이렇게 말해도 좋 다면, 집행유예 기간은 길지 않았다. 2001년 9월의 9/11 테러는 경제 에 또 다른 기만술을 더했다. 정부는 과거에도 하던 일을 더 미친 듯 이 수행했다. 즉, 규제를 더 풀고, 유동성을 더 늘리고, 결국은 아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드러난 복잡한 금융상품 한 보따리를 새로 만들었다.”
결과는 재앙이었다. 쉽게 풀린 돈과 느슨한 규제는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노동자의 이익을 거스르며 자본의 이익을 보호했으니 빈자가 아니라 부자가 이익을 본 것은 당연했다. 거의 50년간 누적됐던 사회 진 보를 기절초풍할 정도로 뒤집었고, 그에 따라 20세기 마지막 10년간 선진국들 내부에서 불평등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경기 회복을 위한 처방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21세기 첫 몇 년은 투기적인 차입과 대출로 넘쳐나는 '도박판'이 되었다. 가계 부채가 쌓이고 또 쌓였다. 혼돈이 시작될 조건이 무르익었다. 미국 주택시장에서 서브프라임' 대출 연체율이 조금 변하는 것만으로도 혼돈이 시작되기에는 충분했다. 결국, 2008년엔 거품이 터지고 말았다. 성장을 좇아 반세기 동안 거듭된 지출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1930년대이래 최대 폭락이었다.
- “의문이 생긴다.” 2014년, 서머스는 이렇게 말했다. “금융의 지 속 가능성이 보장되던 상황에서 경제가 만족스럽게 성장하던 시기에 과연 지속적인 확장이 실제로 있었던가?” 서머스가 내놓은 답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다른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답은 없었다'였다. 기본 토대 에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돈을 풀어 성장을 추구하는 정책은 금융 거 품을 초래해 금융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마침내 위기를 폭발시켰다.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자 서구 각국 정부들은 위험 자산을 증권화하고, 위험에 빠진 저축을 인수하고, 파산한 은행 들에 자본을 확충해주고, 경제를 다시 부양하기 위해 수조 달러를 쏟 아 부었다. 아무도 이것이 단기 해법에 불과함을 부인하지 않았다. 많 은 이들은 이것이 납세자를 털어 위기의 주범들을 배 불리는 임시 땜 질로서 퇴행적 조치임을 인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안을 생각하기 힘들다는 단순한 이유로 이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 노동이 생산 과정에서 비용이고 자본가의 동기는 이윤이므로, 자본가는 노동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서라면, 즉 노동 비용을 줄이기 위해 누가 자본주의를 죽였을까?
- 이윤 동기는 노동 생산성 성장을 지향하도록 안에서부터 자극하는 요소가 된다. 이 충동의 실현이 얼마나 성공하느냐에 따라 노동 생산성 향상 을 통해 절감된 비용이 다양한 방향으로 분배될 수 있다. 이익 중 일 부는 임금 상승이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에게 돌아갈 수 있 다. 일부는 더 많은 배당금 형태로 주주에게 돌아갈 수 있다. 일부는 제품 단가 인하 형태로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일부는 새로 운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 자금으로 쓰여 미래에 노동 생산성을 더욱 더 향상시킬 수 있다. | 노동 생산성이 늘어날 때라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다. 노동 자는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고, 소비자는 더 싸게 재화를 구입할 수 있고, 주주는 더 많은 이윤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회사는 차세대 노동 절약형 기술에 투자할 여력이 생김으로써 지속 발전의 선순환을 만들어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이 선순환이 로자 룩셈부르크가 지적 한 딜레마의 해법이다. 임금 상승 덕분에 오히려 이윤을 늘릴 수 있게 된다. 노동 생산성 성장 덕분에 자본주의는 사회 진보를 실현한다며 자기 정당성을 한껏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필연적 으로 오직 성장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노동 생산성 성장이 정체할 때에는 이윤 동기가 덜 자비로운 방 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급여명세서 속 상대 임금은 오른다. 하지 만 이윤 폭은 압박을 받는다. 임금, 배당금, 소비자 가격, 투자가 모두 상호 경쟁에 돌입한다. 노동자와 투자자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찬가지로, 현재(소비)와 미래(투자) 사이에서도 긴장이 고조된다. 이 두 갈등은 또한 룩셈부르크가 우려한 침략적 확장을 초래하는 조건이 된다.

- 내가 살면서 겪은 어떤 경험도 유한한 세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가진 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입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엘렌 맥아더Ellen MacArthur, 2015년)
- 현실 세계에는 한계가 있다. 상상 속 세계에는 한계가 없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63년)
- 성장의 한계 대신에 경제학자들은 자기들이 '녹색 성장'이라 칭하는 것, 즉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지속적인 경제
- 확장, 달리 말해 지구를 폐기물 더미로 만들지 않는 성장을 목표로 삼길 선호한다. 물론 이는 완전히 정당한 열망이다. 지구를 폐기물 더미로 만드는 성장보다야 한참 낫다. 틀림없이 그렇다. 그러나 얼핏 봐도 녹색 성장은 다소 모순적인 듯하다. 성장은 더 많은 처리량을 뜻한다. 더 많은 처리량은 더 많은 환경 영향을 뜻한다. 더 많은 환경 영향은 지구의 상태가 더 나빠짐을 뜻한다. 녹색이든 아니든, 끝없는 성장은 더는 성장할 수 없는 상태로 귀결될 뿐이다. 죽은 행성에 성장은 있 을 수 없다. 영원한 성장은 만물의 파괴를 앞당긴다. 그레타 툰베리가 2019년 UN 기후정상회의에서 지적한 대로, 이것은 아주 비참한 결말로 끝이 날 한 편의 동화다.
- 자연환경은 상대적 효율성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 수록 달러당 산출량에서 탄소 함유량이 줄어드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 활동이 지구에 끼치는 영향의 총량이다. 기후를 안정시키려면 지구 전체에 걸쳐 탄소 배출 절대량을 줄여야만 한 다. 만일 GDP의 탄소 함유량이 감소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GDP가 증가한다면, 올해 대기 중에 배출되는 탄소 총량은 전년에 비해 증가할 것이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 경우에도 명백한 증거가 있다. 세계 경제의 막대한 부분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갑작스레 정지되기 전까지는, 측정을 시작한 이래 줄곧 가차 없이 증가하기만 한 탄소 배출량을 사실상 아무것도 중단시킬 수 없었다. 그전까지는, 이번 세기에 기후를 안정시키려면 꼭 필요한 탄소 배출 급감이 실현될 조짐은 전혀 없었다. 현재 인류가 탄소 배출과 생산물 산출을 디커플링하며 낼 수 있는 속도는 기후를 안정시키려면 필요한 수치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방향은 올바른데 충분히 빠르게 나아가지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방향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 (내 생각에는) 자기만의 행복이 아닌 다른 어떤 대상에 마음을 쏟는 이들만이 행복을 누린다. (존 스튜어트 밀, 1873년)
- 그리하여 날씨가 온화한 계절에는 비록 우리가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우리의 영혼을 이곳으로 데려온 그 불멸의 바다를 보게 된다네.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804년)
- 탁월한 건강이란 부족과 과잉 사이 에 이뤄진 근형이다. 그렇다고 꼭 무언가를 단순히 더하여 부족함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무언가를 다시 덜어내 과도함을 중단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건강 영역은 서로 긴밀히 얽혀 있다. 때 로 어떤 곳의 과잉은 다른 곳의 부족을 가리키는 지표다. 때로는 어떤 곳의 과잉을 억제하는 방식이 다른 곳에 풍요를 낳는다. 이런 가능성 들은, 더 많을수록 항상 더 낫다는 잘못된 생각 탓에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 일단 잘못된 생각을 걷어내기만 한다면, 이 가능성들을 통해 번영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 자연에 대한 사랑, 가슴 깊숙한 곳의 감정, 타인을 향한 공감, 인생무상에서 비롯되는 비애, 측량할 길 없는 지구와의 연결, 명상 등 력,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려는 타고난 욕망 이것들이 인간 조 건의 심리적 차원이고 어쩌면 영적인 차원이다.
이런 풍성함을 놓치지 않는 저력을 갖춘 서사에서 파생되는 경 제학이라면 어떤 모습일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풍 요가 그 특성이 되는 포스트 성장 세계에 관한 비전에서 과연 무엇이 출현할 수 있을지 숙고해본다는 것은 사뭇 흥미로운 작업이다.

- 우리는 꿈을 만드는 것과 똑같은 재료라네. 짧은 우리의 인생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다네. (윌리엄 셰익스피어 1611년)
- 1905년 10월 28일,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은 생애 마지막이 될 공개 강연을 한다. 강연은 빈 철학학회 건물에서 토요 일 저녁에 열렸는데, 강연 제목이 기이했다. 확률 원리를 응용한 사 랑과 엔트로피에 관한 설명’, 엔트로피란 하나의 물리적 계 system가 무 질서한 정도를 뜻하며, 자연의 한계가 궁극적으로 표현된 바다. 사랑은 인간 역량을 꽃 피우는 가장 고귀한 사례라 할 수 있으며, 인간 번영이 궁극적으로 표현된 바다. 이 둘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지가 이 장이 다루는 주제다.
- 우주에서 질서는 분명 가능하다. 생명이야말로 그 증거다. 그러나 엔트로피 법칙은 질서에 도달하는 것과 관련해 심오한 진리를 말해준다. 질서를 창조하는 데 사용되는 에너지는 그것이 사용되는 과정에서 점점 더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자체는 낮은 엔트로피에서 높은 엔트로피로 변동한다. 에너지를 상황에 적용해 질서 잡힌 작은 천국을 창조하더라도, 계 전체로 보면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찬장 정돈, 신체 건강, 경제 진보를 달성 하는 데는 항상 비용이 따른다.
엔트로피 역전을 실행할 때마다 매번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가 는 엔트로피의 전반적 증가다. 가용 에너지는 불가용 에너지가 되고, 낮은 엔트로피는 높은 엔트로피로 바뀐다. 우주는 전보다 조금 더 무 질서해진다.
아마도 방을 정돈하는 데는 그저 근력만 사용됐을 것이다. 물건 을 들어 올리고 치우기 위해, 즉 올리고 옮기고 움직이기 위해 근육을 통해 몸 안에 저장된 화학 에너지가 사용되었다. 근육 속 에너지가 운 동과 열로 변환되었고, 환경 속으로 흩어졌다. 이제 이 에너지는 일을 더 수행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 엔트로피 법칙의 잔인한 논리는 방을 정돈하며 창조한 질서가 항상 그 과정에서 창조된 엔트로피보다 적다는 것이다.
- 열역학 법칙들을 게임 규칙에 빗대 표현하는 잘 알려진 정리가 있다.
1. 절대 이길 수 없다.
2. 심지어는 비길 수도 없다.
3. 게임에서 나갈 수도 없다.
지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게다가 우리가 알기로는 우주 속 다른 어느 곳에서든 마찬가지인데) 제2법칙에 복종하는 것뿐이다. 심지어는 비길 수조차 없다.
- 며칠간 지구에 내리쪼인 태양광만으로도 에너지 양에서 천연자원의 총량을 상회한다. 그러나 태양광은 극도로 강도가 낮은 상태로, “가랑비처럼, 거의 현미경으로밖에는 볼 수 없는 안개처럼” 지구에 내려온다. 사용할 수 있으려면 이 에너지를 집중시켜 포획해야 한다. 포획하려면 우리는 물질을 사용해야만 한다. 물질 사용은 다시 가용 에너지 사용과 더 많은 엔트로피 발생에 의존한다. 태양 에너지 흐름은 공짜이되, 그것을 포획하자면 여전히 물질 측면 에서, 에너지 측면에서, 무질서 측면에서 비용이 발생한다. 관찰 지점이 어디이든, 질서를 창조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유지하기 위해서도 이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기업 수준에서나 국민경제 수준에서나 재무제 표상 감가상각비를 회계처리 기준으로 고수하는 이유가 있다. 자본 설비 마모를 기입하기 위해서다. 햇볕이 작열하는 세상에서 다른 개 입 없이 방치될 경우, 물질 자산은 망가져 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자 산을 사용하면, 이 과정은 더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다. 강철은 녹이 슬고 콘크리트는 먼지로 변하고 실리콘칩조차 시간이 지나면 성능이 떨어진다. 감가상각은 절대 피할 수 없는 엔트로피의 행진을 경제적 으로 표현한 것이다.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이 비용은 증가한다. 무한한 경제(영원한 성장의 궁극 목표)란 무한한 감가상각을 의미한다. 무한한 유지 비용 을 의미하고, 엔트로피 흐름을 역전시키기 위해 가용 에너지가 무한히 필요함을 의미한다. 열역학 관점에서 보면, 성장 신화는 결국 불가능한 꿈일 뿐이다.

- 많은 상황이 과학적 발견들을,특히 우리 문화의 신성한 규범들을 불편하게 하는 발견들을 말살하려고 공모한다.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1999년)
- 때로 새로운 아이디어는 정확하고, 유효하고, 훌륭한 것으로 드러난다. (칼 세이건 Carl Sagan, 1996년)
- 물질적 부족함이 있을 때는 성장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확인했다. 그렇다면 어느 지점까지는, 이 원칙은 부분적으로 효 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골칫거리는 그 지점이 어딘지를 알아내는 것 그리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어떻게 멈출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자본 주의는 이 두 가지 점에서 모두 실패했다. 자본주의는 자연에 대한 선 입관에서 빌려온 게임의 규칙들을 수립했고, 그것들을 시장에 폭압적으로 적용시켰다.
동시에, 자본주의는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 자본주의는 사회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금융 시스템에 빈틈을 남겼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지난 100년간 적어도 두 차례 휘청거리며 거대하고 파괴적인 경제 위기 상태로 빠져들었다. 아직 우리는 2차 위기에서 회복되지 못했고, 이미 3차 위기를 마주하고 있 다. 하지만 사실은, 1차 위기로부터의 가르침도 아직 우리는 얻지 못 했다. 이 가르침 역시 현재 우리가 다윈주의적 은유에 지나치게 의존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린 마굴리스의 획기적 논문 「분열하는 세포들의 기원에 대하여」 가 발표된 것은 1967년이었다. 이 논문은 초기 자본주의의 사회적 환 경에서 도출되었고 또 무분별하게 경제와 동일시되었던, 자연에 대한 지배적 은유가 근원적으로 오류였음을 밝혀냈다. 투쟁은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쟁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가차 없는 생존 경쟁이라는 꽉 막히고 고통스러운 감옥에 우리 가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진화 자체가 서사시적 규모의 역사적 협업 의 결과물이다.
발표 당시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과격한 것이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마굴리스의 논문은 15회나 거절당한 이후에야 비로소 이론 생물학 저널The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에 발표된다. 10년이 넘도록 이 연구는 주류 생물학계에서 일정하게 무시되었다. 그녀의 이론을 책으로 확장한 원고의 초안은 그걸 의뢰했던 출판사에 의해 거절 당한다. 그러나 세포 진화과정의 공생Symbiosis in Cell Evolution》은 오늘날 20세기 생물학의 고전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진화론 적 사고에서의 조용한 혁명'을 예고하고 있었다. 

- 작업과 그 산물인 인공물은, 죽음이 예정된 삶의 무의미함, 인간이 누리는 시간의 무상함에 영원성과 지속성이라는 대책을 부여한다. (한나 아렌트, 1958년)
- 노동에 대한 보상은 삶[생명] 이지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90년)
- 기계에 의한 인간 대체가 어떻게 작업의 사회적 역할을 갉아먹 는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인식하지 못했다. 특히 자본주의에 서 그 역할은 체계적 노동 생산성 추구를 통해 경제 구조 안에 함몰되 어 보이지 않는다. 2장에서 우리는 노동 생산성 추구가 어떻게 사회에 기여하고 또 사회를 약화시켜왔는지 살펴봤다. 노동 생산성이 매 년 4~5%씩 성장하고 소비재 시장이 빠르게 팽창할 때, 사회적 보상 은 한결 공평하게 배분되었다. 비록 그로 인해 지구에 가해지는 부담 은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어진 노동 생산성 성장의 침체는 불평등을 유발했고 자본주의의 쇠락을 돌연 재촉했다.
이러한 역사적 퇴보에서 가장 기이한 것은, 이 퇴보가 어마어마 한 자동화 증가와 동시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퇴보는 인터넷의 부상, 급속한 경제 세계화와 더불어 진행되었다. 심지어 그 퇴보의 속도는 스마트폰의 탄생, 사회적 연결성의 전례 없는 도약, 인공지능의 더 깊은 진화와 더불어 가속되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생산성을 엄청나게 증대시킬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그러나 그로 인한 이득은 일국 차원에서는, 특히 고소득 국가들에서는, 줄곧 달성하기 힘든 목 표였고 지금도 그렇다. 
이러한 역사적 퇴보를 특히 기이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우리로 하여금 '로봇이 온다'고, 로봇이 거대한 생산성 급증으로 이어질 것이 라고 믿게 한 반복 재생되는 문화적인 밈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믿게 된다. 로봇들은 우리보다 쌀 것이고, 물품 제작에서 우리보다 우수할 것이라고, 그들은 판매할 때 더 설득력 있을 것이고, 조언할 때 더 똑똑할 것이고,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칠 것이며, 노인을 돌볼 때 우리보다 더 동정 어릴 것이라고, 그리고 머지않아 그들은 책을 쓰고 곡을 짓는 활동에서도 인간을 능가할 것이라고, 그들은 우리의 직업을, 생 계 수단을 빼앗고 어쩌면 지구에서의 우리의 자리를 침탈할지도 모른다고. 

- 우리 미래의 뿌리는 자신을 땅에 묻을 것이다. 그러면 희망의 숲 지붕이 하늘에 닿을 것이다. (왕가리 마타이, 2006년)
- 뿌리가 깊어지고 줄기가 단단해져 오래 살고 멀리 보는 도라 한다. (노자)
- 포스트 성장 경제의 토대를 발전시키려면, 자본 축적의 위력 속 에서 지구와 사회에 가해진 막대한 피해를 그저 한탄하는 것 이상의 뭔가가 우리에게 요구된다. 자본주의의 지배하에서 인간의 작업의 질이 저하되고 왜곡되는 역학을 우리 손으로 풀어헤쳐야 하듯, 우리 는 자본 그 자체의 작동 체계를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그런 후에 야 비로소 가치의 대전환에 도달해 그 전환이라는 토대 위에서 다른 경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실천을 위한 나의 출발 지점은 '신중함 prudence' 이라는 개념이다. 이 단어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지혜롭게 행동하는 능력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신중함(그리스어로는 프로네시스phronesis)은 일종의 실용적 지혜여서, 잘 살아감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행동 하는 능력을 의미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신중함이란, 무엇을 위해 애쓰고 무엇을 피해야 할지를 아는 것이었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사유 체계에서, 신중함은 네 가지 기본적 미덕'의 하나로 여겨진 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 신중함은 모든 미덕의 어머니'로 여겨지는데, 그것이 미래에 대해 개인이 지니는 도덕적 의무에 관한 인식을 포함 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신중함은 매우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되 는데, 사람들의 저축·투자 행위를 의미한다. 이 | 물론 이 단어에 대한 우리의 속된 해석과 경제적 신중함은 서로 관련이 있다. 미래의 보상에 대한 기대 속에서 수익 일부를 지금 따로 적립하는 행동은 미래에 대한 관심을 함축하는 신중함의 일반적인 의미에 부분적으로는 부합한다. 그러나 우리가 곧 확인하겠지만, 자본 주의 시스템에서 신중함은 쉬지 않고 축적하려는 욕구로, 즉 경제 활동을 추동하는 강력한 동력원으로 진화해간다.
- 결국, 경제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역할은 산림 관리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역할과 같다. 또한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역할, 우리의 사회 세계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역할과 같다. 그 역할이란, 희망의 숲 지붕을 창조하는 것, 우리의 번영을 좌우하는 조건들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 우리의 아이들에게 더 강하고 더 회복 력 높은 세상을 전해주는 것이다. 티치아노의 〈신중함의 알레고리〉 가 시사하듯, 신중함의 실행은 시간의 앞뒤로 뻗어나간다. 그러나 그 것은 동시에 지속적인 현재에, 적어도 자신의 미덕 중 일부를 선사한 다. 오늘의 시점에서는, 미래에 대한 투자야말로 우리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최고의 (아마도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 당신이 좋아하는 싫어하든, 변화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왔습니다. 진정한 권력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 2018년)
- 당신에게 나아갈 길이 있다면, 당신에게는 권력[힘]이 있다. (틱낫한Thich Nhat Hanh, 2007년)
- 하나의 난제가 우리 앞에 있다. 변화를 원하는 이들은 권력을 쥐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지만, 권력을 쥔 이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경 향이 있다는 문제. 어떤 종류든 변화의 가능성은 사회의 규칙에 암호처럼 내재되어 있는 권력 배분이 좌우한다. 사회의 규칙은 국가가 결정한다. 국가의 결정은 필연적으로 국가가 부여받은 권한이 좌우한다. 서구 민주주의에 의해 고안된 이 권한은 매우 특별한 성격의 것이다. 정치 권력과 경제 성장 추진은 처음부터 불편하게 결합되어 있는 셈이다.
- 후에의 젊은 승려, 틱낫한은 무집착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는 전통적 불교의 가르침에 내재 된 보수주의가 어쩐지 불편했다. 붓다의 내적 평온함에 마음이 움직 였던 이 어린 소년은 그저 자신만을 위한 평화를 갈망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 평화가 자기 주위의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고 여겼다. 1950년 대, 사미승 생활을 마친 그는 불교 현대화 운동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 기 시작한다. 또한 불교가 일반인들의 고통과 삶 속으로 들어가도록 불교를 혁신하는 과업에 나서기 시작한다.
전제는 분명했다. 사찰의 안거에서 추구하는 평화가 여분의 즐 거움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 평화는 어떤 식으로든 속세에서 자기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 그것은 반드시 행동으로 번안되어야 하고, 타인들의 고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는 것. 개인적인 평정심에 만족하지 않은 채 이 젊은 활동가들은 비폭력 시위(틱낫한은 이것을 자비행이라 불렀다)가 전쟁의 불의에 대한 필수 대응이라고 믿게 된다. 틱낫한은 이렇게 말했다. “폭탄이 사람들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선방에 가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자비의 연꽃은 고통의 진흙에서 자라나는 법이다. 
- 자본주의가 걸어간 여정은 이상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역설적인 여정이다. 그 기본적인 대응은, 삶을 위한 투쟁을 불가피한 경쟁으로 변환하는 것 그리고 이 경쟁을 문화적 제도들, 즉 시장의 규칙, 기'업가 정신, 소비 사회의 규범 안에 박아 넣는 것이다. 놀랄 것도 없이, 동일한 은유가 국가의 내적 구조에 들어가 있다. 이것은 가장 분명한 형태로 홉스의 사상에 들어 있는데, 그의 리바이어던》은 경쟁적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에 대한 편리한 치료제인 것이다. 하지만 이 것은 로크식 사회 계약 안에서도 발견된다. 아마, 설계의 결과라기보다는 기본값으로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정하기에는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다.
- 로크가 합리적으로 개인의 권리에 포함했던 '생명, 건강, 자유 그리고 재산'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 계약이란 사유재산의 보호를 위한 집단적 보험 정책의 일종이라는 아이디어로 환원된다. 이제 정부는 재산권을 강제 집행하는 궁극의 권력체가 된다. 그로 인한 결과는, 국가는 일종의 집행관 모임으로, 그 주된 역할이란 재산 소유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편리한 생략은 당연히 빈곤층, 소외 계층, 빼앗긴 이들의 이익은 배제한다.
오늘날 부상 중인 포퓰리즘을 통해 표출되고 있는 불만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타난다. 모두의 이익에 관심을 두는 척하면서 실제로 는 엘리트들을 보호하는 정부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적극 표 명하고 야만주의를 정당화하는 정부보다도 더 나빠 보인다. 품격은 서서히 허물어지고, 사회적 진보는 뒷걸음질 치며, 외국인 혐오증, 인 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로 후퇴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그것들이 포 스트-트루스 미디어의 조작의 결과인 만큼이나 정부가 지닌 대의 권 력에 대한 불신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이 있다. 이러한 국가 체제는 다른 생물종의 권 리를 수용하지 않는다. 이 체제는 자연의 보호를 허용하지 않는다. 또 한 미래 세대의 이익을 결코 승인하지 못한다. 이 체제는 진정한 자비심이 아니라 인구 일부에만 적용되는, 느슨하게 고안된 극히 제한적인 호혜적 이타주의로써 사성제의 첫 번째 진리에 대응할 뿐이다. 놀랄 것도 없이, 빼앗긴 자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도덕적 자원은 시민 불복종뿐이다.  이 체제 안의 권력은 병들어 시장적 지배나 군사적 지배로 귀결 되고 만다. 이처럼 위축되고 위험한 (사회정치적) 상황을 정당화하는 은유는, 필요한 경우, 자연 세계를 특징짓는 것으로 생각되는 경쟁 논 리로부터 차용되고 있다. 이곳은 포식자와 피식자, 사냥꾼과 사냥감 이 살아가는 구역이라는 것. 국가가 (국경 내에서든 밖에서든) 질서를 강제하는 최상의 방법은 군사적 권력이나 경제적 권력을 통해서라는 것.
- 틱낫한은 《권력의 기술The Art of Power》에서 서구 사회에서 사람 들이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곧 불교도들이 집착[갈망]이라 부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 재산, 소유물, 지위, 편안함, 섹스에 대한 집착 [갈망] 그리고 이러한 것을 추구하는 다른 이들에 대한 지배욕 말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역기능적인 신화여서, 자본주의 국가는 어쩔 수 없 이 자신의 어두운 예후를 그렇지 않은 척 속이는 수밖에는 없다. 부의
소유권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제공할 보상의 방법이 뭔가 더 없다. 면, 이 사회 계약은 덜 혜택받은 이들의 권리에 대한 지속적 억압이라는 무리한 부담에 불가피하게 묶이고 말 것이다. 
- 말할 것도 없이, 성장 신화가 등장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신화의 임무는 언제나 더 많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는 것이다. 영원한 축적에 관한 이러한 약속 없이는 자본주의는 작동 불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이 사회 계약에서 재산을 중심에 둔다면, 또 생명권 과 건강권보다는 이윤 추구에 특권을 준다면, 그때 빼앗긴 자들의 유일한 자원은 시민 불복종뿐일 것이다. 그리고 자연 상태 그 자체와는 완전히 양립 불가능한 무리한 약속을 하는 것만이 그 정당성을 보장 하게 될 국가가 우리 곁에 남게 될 것이다.
- 어쩌면 우리의 갈망은 삶 그 자체의 갈구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결코 이 갈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니다. 문제는, 자본주의와 불교를 나란히 두고 보면 극명하고 흥미로운 대비가 나온다는 것이다. 고통이 삶 자체에 내재한다는 공통된 입장에서 출발하지만, 두 이데올로기는 정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며 근본적으로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가 이 결론 중 어느 것이 옳은지, 최상인지 또는 바람직한지를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 을 수도(그걸 원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가 자 신을 몰아넣은 난국에서 우리를 구할 고대의 철학적 지혜로부터 확실히 뭔가를 배울 수는 있다.

- 희망이란 깃털이 있는 것
영혼 속에 깃들어
말없이 노래하되 
절대 그 노래를 멈추지 않을
(에밀리 디킨슨, 1861년 1)
- 만족을 만족으로 알면, 언제나 넉넉함을 누린다. (노자, 기원전 5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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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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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소셜리즘

사회 2022. 9. 17. 21:04

- 향후 20~50년 동안 기후변화의 영향은 더 심각해져 역사상 가 장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마지막 해, 세계 GDP의 약 40%가 전쟁 활동에 지출되었다. 2050년 한 해에 만 세계 GDP의 60%가 기후변화에 지출될 것이다. 지금 기후변화 대응을 거부하면 언젠가는 막대한 지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역설 적으로 결국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을 그때가 되면, 초기 재난, 무너진 경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범람, 몰려드는 난민 속에 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21세기의 후반기에 우리가 전 지구적으로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 하여 인류와 문화의 적응과 지속을 위해 투자하면 2차 세계대전 이후보다 더 큰 경제(공학과 인프라) 호황을 누리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족히 10억 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할 것이다. 이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무대책으로 인한 곱찍한 대가다. 기후변화의 경제적 영향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으며 그 영향은 다음과 같다.
• 2050년까지 해수면 상승으로 약 600 개의 주요 도시가 소멸 
• 2050년까지 쌀, 밀, 감자, 옥수수 생산량의 12~25% 감소 
• 2050년까지 해수면 상승과 농업 실패로 인해 3억 6,000만 명에서 10억 명의 기후 생태 난민 발생 
• 연이은 기후재난으로 보험 보상금액을 감당할 수 없어 한해 6조 달러의 세계 보험시장이 완전히 붕괴 
• 2050년까지 온열 사망자가 250~300% 증가
- 세계 금융 위기와 그 여파,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은 사람들이 살고, 일하고, 경제를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 었다.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세계 금융 위기 이전, 세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힘들은 명확했 다. 현대 명목화폐의 논리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다양한 통화들이 반복적으로 공격받았다, 세계화는 활발히 진행 중이었고, 연결성 과 기술은 개선되었고, 도시는 연결점으로서 점점 더 중요해졌다. 규제개혁 투쟁이 벌어지고, 환경, 사회, 지배구조, 임팩트 투자mpact investing(재무적 성과와 함께 사회 문제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에 대한 투자)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부상하고 지 식, 혁신, 창의적 경제가 새로 등장했다. 코로나 19가 강타하기 전까 지 확실히 이런 힘들은 분명하고 강력했다.
- 과거에 통했던 것이 미래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확실하게 만든 것은 격렬해진 환경 문제와 아울러 몇 년의 시차를 두 고 발생한 세계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재난이었다. 이런 상황은 개 혁, 행동,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하고 아이디어의 실행을 더 빠르게 하고, 미래 경제의 모습에 대한 명확한 이정표를 보여주었다. 가변 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파괴적인 변화의 주기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와 2020년(그리고 그 이후)의 코로나 팬더믹은 아주 다른 문제다. 세계 금융위기는 금융 시스템 문제로서, 규모가 너무 커서 세계 경제에 문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금융자산이 없는 사람들은 잃을 것도 없지만 가장 부우한 사람들은 많은 자산을 잃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그통을 줄이는 대책을 만들기 위해 정책입안자들을 만날 힘과 인맥도 잃었다.
헤드라인 뉴스 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월스트리트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이해했다. 그들은 많은 기사와 엄청난 규모의 구제금융, 은행의 손실에 대해 듣고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적으로 느기지 못했다. 보스턴의 학교 교사는 여전히 같은 학생을 가르치고 똑같은 월급을 받고 똑같은 청구 금액을 지불했다. 아이다호의 간호사, 싱가포르의 정부 공무원, 토론토의 식료품 가게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 세계 금융 위기와 크고 작게 시차를 두고 발생하는 가격과 세금 인상, 임금 억제, 신용 축소, 전체 일자리 감소 사이의 원인과 결과 는 많은 사람에게는 개인적 차원에서 연결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여러 사실 간의 관계를 따져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훈련받지 않았거나, 뉴스 기사와 그들이 느끼 는 영향 사이에 격차가 있거나, 지금 가진 것으로 그저 최선을 다하 려고 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 금융 위기와는 매우 달랐다. 팬데믹은 세계 경제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 국가가 봉쇄, 여행 금지, 외식, 쇼핑, 다른 여가 활동에 대한 제한 조치를 내려 모든 사람에 게도 영향을 미쳤다. 아울러 돌보는 사람이 감염병이 걸리면 어떻 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확실에 직면했다. 두 가지 문제는 크고 세계적인 이슈이지만 그 외에는 매우 다른 경제적 문제다. 2008년 세계 경제는 총수요를 붕괴시켰지만, 2020년 팬데믹은 총공급에 부 정적인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세계 각국 정부와 정책입안자들의 해결책은 상당히 비슷 했다. 화폐를 발행하여 경기부양책을 쓰고, 추가로 화폐 발행을 통 해 인프라 시설에 대한 투자를 발표했다(모두 나쁜 것은 아니었다). 또 추가로 더 많은 돈을 발행했다. 미 연준이 세계 금융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찍어낸 화폐 발행량은 역대 최대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가능하게 했다. 이것은 팬데믹이 닥치기 이전의 상황이다. 2008년 연준은 화폐공급량을 추가로 약 4조 달러 늘렸고 이렇게 연준의 대차 대조표는 1조 달러 미만에서 세계 금융 위기 이전 수준보다 4배 이 상 증가했다.
단기적으로 통화공급 증가와 경기부양책이라는 해결책이 세계 금융 위기 시기에 비해 팬데믹 기간에 훨씬 더 효과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상기하자면 많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세계 금융 위기 때보다 팬데믹에 엄청나게 더 큰 규모의 대응책을 시행했다.
2020년 3월 23일 연준은 무제한적 양적 완화를 시행할 것임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후 7주 만에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7조 달러로 증가했다. 연준의 비정상적인 화폐 발행과 미국 대통령과 의회가 계획한 기업, 기구, 더 폭넓은 경제 분야를 지원하기 위한 5. 3조 달러 이상의 경기부양책이 결합하여 유동성에 기반한 경기 붐이 나타났다.
초기의 하락 이후 주식 시장은 최악의 팬데믹 기간에도 전반적으 로 매우 좋았고, 고용지수도 회복되었고, 주요 은행들은 이전의 채 무불이행 추정치를 줄였다. 그리고 팬데믹의 영향이 점차 사라지 면서 '광란의 20년대경기가 활기차고 전망이 밝던 1920년대)'와 맞먹 는 경제적 성공과 소비문화가 증가하는 시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2021년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더 빨리 개선된 것은 경기부양책이 과도했다는 관점을 뒷받침한다.
- 미국 달러화를 보유하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양날의 검이다. 중국은 미국 국채 매입을 통해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뒷받침하고 정기적으로 위안화를 평가절하함으로써 중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그 결과 중국 국내 경제를 강화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무역 전쟁의 심화, 첨단 기술 분쟁,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된 감정 악화 와 같은 상황 속에서 중국은 자국의 경제를 미국 경제와 분리하려 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미국 달러화 보유량 증가 는 중국과 미국의 상호의존성을 증가시켜 자국의 목표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로 인해 중국은 달러 외환보유고를 꾸준히 줄여왔다.
- 바비 아자리안 박사는 사이콜로지 투데이 psychology Today>에 기고한 글에서 최선의 이익에 반대되는 투표를 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14가지 핵심적인 심리 현상을 밝혔다. 여기에는 더닝 크루거 효과 Dunning-Kruger Effec(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이 얕을수록 스스로 많이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경향), 두려움이 보수적인 뇌에 작용하는 방식, 테러 관리 이 론, 상대적 박탈, 인종차별주의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세 가지 핵 심 주제는 그동안 보수 유권자들의 심리에 계속 나타났었다. 첫째, 후보자의 정강 정책(정부나 정당이 내세우는 정치상의 중요한 방침)을 도 덕적으로 이해하는 관점, 둘째, 지배적인 가부장적 가족, 마지막으 로 미래 번영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실성이다.
2008년 국립 의학도서관에서 발표한 연구는 우리의 정치적 경향성이 실제로 생물학적으로 뇌가 위협에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 "갑작스러운 소음이나 위협적인 시각 이미지에 대한 신체적 민감도 가 상당히 낮은 사람들은 외국 원조, 진보적인 이민 정책, 평화주의, 총기 규제를 지지할 가능성이 더 크다. 반면 동일한 자극에 훨씬 더 크게 심리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국방비 지출, 사형제도, 애국 주의, 이라크 전쟁에 찬성할 가능성이 더 크다. 따라서 개인이 심리 적으로 위협에 반응하는 정도는 그들이 기존 사회구조를 내부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정책을 옹호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네브래스카대학교 링컨캠퍼스 정치학과(2008.09.19))
- 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보수적인 사람의 뇌는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진보적인 유권자와 다르게 다룬다. 그들이 경험하는 '두려움은 훨씬 더 감정적이며, 더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처리된다. 위협이 직접 가족에게 닥치는 것처럼 반응한다. 반면 진보적인 사람 의 뇌는 위협을 집단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더 크며 개인적인 위협으로 덜 느낀다.
논리적으로 볼 때 두려움이 클수록 보수적인 정책을 찬성할 가 능성이 더 크며, 현상 유지를 안전한 형태 또는 정상 상태로 인식한 다. 이것이 정치인들이 흔히 이민, 범죄, 또는 경제 위협을 환기시 키는 이유 중 하나다. 이것은 엄청나게 오래된 방식이다. “저기 있 는 나쁜 사람들이 당신의 일자리, 돈, 땅 등을 빼앗아 가려고 오고 있다. 벽을 만들어 그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자" 라는 태도는 중국 인이 만리장성을 건설할 때(BC 700~AD 1644)에나 유효했다. 하지만 보리스 존슨의 브렉시트,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슬로건에도 통했을까?
- 요점은 우리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지출하는 돈이 기후변화에 필 요한 정책 비용이나, 보편적 의료, 노숙인 수용, 자동화로 인한 실직 완화를 위한 투자비용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국방비를 절반으로 줄이면 2년 안에 미국 대학생 부채를 없앨 수 있다. 선거 광고 지출을 없애면 매년 약 백만 명의 학생들에게 무상 교육을 제공 할 수 있다. 화석연료 로비 비용을 재생에너지 일자리 창출 비용으로 돌리면 수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매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약품을 시장에 출시하는 데 드는 13억~26억 달러 비용을 줄이면 현재 비용의 일부만으로 처방전 약을 살 수 있을 것이다.
- 구글은 한발 더 나아갔다. 2020년 7월 14일 구글은 코세라와 협력하여 자료 분석, 프로젝트 관리, 사용자경험설계 분야의 새로운 전문 자격증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코세라의 이용요금 은 보통 매월 49 달러밖에 안 되지만 구글은 이 비용마저 지원한다. 며 신청자에 따라 10만 명에게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IT 지원 전문가 자격증 과정은 3~6개월이 소요되며, 이 과정 졸업 자의 80%가 새로운 일자리를 얻거나 연봉 인상 혜택을 얻었다. 약 300달러의 비용을 투자하고 6개월 동안 매진한 졸업자들은 연봉 9 만 3,000달러를 받는 직장을 얻었다. 그렇다면 굳이 대학이 필요할까?
- 구글의 대외협력 담당 수석 부사장 켄트 워커는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발표했다. “우리는 인재를 채용할 때 이와 같은 새로운 전문 자격증을 4년제 대학 학위와 동등하게 취급할 것입니다.” 구글의 발표 2주 전 마이크로소프트는 2020년 6월 30일 블로그 게시판을 통 해 2,500만 명의 전문적 역량을 향상하는 글로벌 계획을 발표했다.
마윈 회장 역시 현재 교육시스템이 향후 20~50년 동안 성공에 필요한 역량을 준비하는 데 한심할 정도로 형편없다고 말했다. 마 윈은 이미 가치관이 굳어진 대학이 아니라 역량과 가치관을 형성하 는 더 어린 나이의 아이들에게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알리바바와 앤트 파이낸셜 Ant Financial에 정기적으로 대학 졸업자 들을 재훈련시키라고 요구한다. 
- "혁명은 많은 영역의 질서가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발생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사회적 균형을 불안전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요인이 있다. 국가 경제 또는 재정 압박, 지배계층의 분열과 반목, 불의에 대 한 폭넓은 대중적 분노, 설득력 있게 공유되는 저항 열기, 우호적인 국제관계가 그것이다. 혁명의 원인으로는 구조적 원인과 일시적 원 인이 있다. 구조적 원인은 기존 사회제도와 관계를 허물어뜨리는 장기적이고 대규모적 추세다. 일시적 원인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우발적인 사건이나 행동으로, 장기적 추세에 영향을 주고 혁 명적 반대 세력이 추가 행동에 나서도록 충격을 준다.” (잭 A, 골드스톤이 《혁명이 원인(what coalsood Rovolution》 (2013)
- 역사적으로 보면 혁명이 발생해 극적인 정치적 변화로 이어지기 전에 다음과 같은 포괄적인 내용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1. 극단적인 경제적 불평등 또는 경제적 압박 
2. 부유층에 대한 불만과 지배계층 간의 갈등 
3. 특히 불의에 대한 대중적인 분노 증가 
4. 현재 상태에 대한 저항 증가 
5. 국제적 연결과 협력
- 국제재생에너지기구 International Renewable Energy Agency 는 2050년 대대적인 비용편익과 에너지 인프라 개혁, 현대화 프로그램으로 인해 4,200 만 개 이상의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측 한다. 21세기 말에는 지구상에 석탄, 가스, 핵에너지를 이용하는 발 전 시설이 하나도 가동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화성과 달에 핵발전 소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곳에서도 태양에너지가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가 능성이 크다), 2050년대에는 100% 재생에너지로 전기가 생산될 가 능성이 상당히 크다. 이렇게 하려면 태양광, 풍력, 지열, 수소 발전 상황에 맞게 전체 송전망을 개조하고, 아울러 에너지를 저장하여 나중에 이용하기 위해 전 세계 에너지 저장시설을 구축해야 한다. 용융염 배터리와 같은 혁신적인 기술은 리튬 배터리보다 5~20배 이상 더 효율적인 대규모 에너지 저장 능력을 제공할 것이다.
- 테슬라는 리튬 이온을 이용해 호주 남부 아델라이드에 100MW 용량의 배터리 팜uttery finm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배터리 팜은 일 론 머스크가 트위터에서 당시 총리 말콤 턴불, 그리고 현직 총리 스 콧 모리슨과 공개적으로 약속한 내기의 결과였다. 두 총리는 남부 지역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정전사태를 재생에너지 발전 탓으로 돌렸다. 배터리 저장장치가 네트워크의 최대 전력 수요량을 맞추지 못하고, 태풍 같은 에너지 네트워크에 중대한 피해를 입힐 경우 화 석연료 발전소만이 신속하게 발전량을 증가시켜 호주 남부의 수요 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머스크는 총리들과 약속한 100일 만에 100MW(129MWh) 테슬 라 기가 배터리 팜을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배터리 저장 시설이 정전사태에도 천연가스 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입 증했다. 전용 배터리 팜은 최대 한 시간 동안 3만 가구에 전력을 공 급할 수 있어 전력 공급에 실패할 가능성이 큰 더운 여름 시기에도 전력망 부하를 낮출 수 있다. 이러한 부하 경감 시설로 인해 호주 남부지역은 2019년에만 네트워크 비용 감소로 약 1억 1,600만 달 러를 절감했다. 호주 남부 전력 운영사 네오엔eon의 개발부 책임자 가레스 헤론에 따르면, 배터리 시설 도입으로 호주 남부의 전력망 을 조절하는 비용이 91% 줄었다. 이런 점 때문에 호주 정부는 2019 년 말까지 배터리 팜을 50% 증설하기로 결정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분야는 몇 가지 더 있으며, 향후 완전히 새로운 성장 분야가 될 것이다
- 21세기에 태어나서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는 대체로 20세기를 인류가 실패한 시기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기존 세대와 다르다. 그들은 불균등한 부의 축적이 최악의 불평등을 초래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들은 세계 금융 위기 때 주택가격이 폭락하는 것을 보았고, 그 뒤 임대료를 내지 못하는 수백만 가정이 팬데믹 시기에 퇴거에 직면하는 반면, 부유한 베이비부머 세대'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보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기후변화가 사실인지를 놓고 논쟁하는 부모 세대를 보면서 한편으론 주변에서 대량 멸종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으니 집단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외침을 듣는다.
- 자유, 불평등, 민주주의에 관한 논쟁이 많은 국가는 사람들에게 평평한 운동장을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지역이거나, 일반 사람들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지역이다. 중국에서 이런 논쟁이 거의 없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역시 이런 논쟁이 별로 없다. 그것은 시민들이 자신 들의 요구가 기업이나 부유층의 요구보다 더 우선시된다는 것을 알 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지겹도록 오래된 논쟁이 있다. 이를테면 노숙인들이 정말 집을 원한다면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든지, 또는 의료비 때문에 파산한 사람을 위한 유일한 대책은 그들을 더 잘 교육하여 더 나은 일자리를 얻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은 애초 잘못된 전제에 기초한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핵심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개선을 우선시하는 경제가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이 부유하도록 설계된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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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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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문명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이후에 꽃을 피웠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지난 1만 2천 년 동안의 기후 조건과 깊이 연관 되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조건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 변 화를 따라잡는 것이야말로 인류 문명에 닥친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날의 기후 위기와 오랜 과거에 일어난 기 후 변화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오늘날의 기후 위기를 일으키는 장본인은 바로 우리라는 점이다. 미국 항공 우주국 NASA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온난화 추세의 상당부분 혹은 전부가 인간 탓에 일어난 것이며, 그중 대부분이 20세기 중반 이후에 인간 활동이 빚어낸 결과일 확률이 95퍼센 트 이상이다〉라고 한다.
- 파리 협정은 산업화 이전 수준)에 대해 정확히 정의하지 않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용어는 화석 연료를 태워 동력을 얻는 현대적인 산업이 출현하기 전까지의 지구 온도>를 의미한다. 4장에서 보겠지만, 실제로 지구 온도 상승이 시작된 것은 1770년 무렵이다. 그렇 다면 기후 변화를 측정하는 데 이상적인 기준점은 1770년 무렵의 지 구 온도일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850년 이전까지는 제대로 된 온도 측정 기록 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과학자들은 나무 나이테의 두께와 그린란 드와 남극 대륙의 빙상 깊은 곳에서 조심스레 파낸 얼음 핵 등 물리적인 증거들을 이용해서 아주 먼 과거의 온도를 추정할 수 있다. 또 지구가 태양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화산이 폭발할 때 대기로 분출된 화산재와 여러 가지 입자가 얼마나 되는지 등의 관측 결과를 이용하는 컴퓨터 모델 연구를 통해서도 과거 온도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후 모델이 1850~1900년 또는 1880~1900년을 기준 연도로 사용한다. 이 시기부터 믿을 만한 지구 온도 측정과 기록이 시작되어 꾸준히 이어졌기 때문이다.
- 이산화탄소는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과학자들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식량 작물 의 영양학적 품질이 나빠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과학자들은 공 기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기계 여러 대를 쌀과 밀을 심은 야외 경작지 주위에 놓고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쌀과 밀의 낟알에 함유된 단백질과 철분, 아연, 비타민 B의 양이 정상 수준 보다 적었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계속해서 늘어나면 우리가 식품으로 이용하는 농작물의 영양가가 전반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기아 와 질병 문제가 더 심해질 수 있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기후 변화가 계속 진행된다면 식량을 생산하는 농경지 가운데, 많은 면적이 폭염과 가뭄 때문에 불모지로 변할 수도 있다.
- 기업에 우호적인 어떤 출판물은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에 공 감하는 척하면서 기후 변화를 더 순조롭고 우호적으로 해결하 는 접근 방식을 전파했다. 이런 접근 방식은 청소년들을 직접 계 냥한 학습용 동영상이나 자료에 흔히 등장한다. 과학계와 산업 계가 협력하여 환경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해 가는 미래의 모습,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그게 사실이라면 좋겠지만, 대개 그런 미래의 모습은 표면적인 변화만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아무런 성과를 낼 수 없는 이런 해결 방식을 흔히 〈그린워싱>이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어떤 전력 회사는 수많은 가정에 에너지 절약 요령을 소개하는 안내물을 배포하는 일에 7백만 달러를 쓴다. 실제로는 생산하는 전기의 95퍼센트를 화석 연료를 태워서 얻으면서도 말이다. 그 회사가 홍보하는 에너지 절약 요령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기후 변화 라는 엄중한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회사는 분 명히 그린워싱을 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 보호 교육들은 종종 산업 과 경제가 기후 변화를 일으킨다는 내용은 쏙 빼놓고 재활용을 하고,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합시다) 등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만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런 행동은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자신이 해야 할 몫을 해야 한다. 하지만 더 큰 변화와 연결되지 않는 한, 이런 행동은 기업들의 행동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정보를 접할 때 반드시 그 정보가 어디 서 나온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이 정보를 제공한 곳은 과연 믿 을 만한가?) 이 정보를 제공한 곳은 과거에도 늘 진실만을 말해 왔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정보를 제공한 곳은 우리에게 말하는 이 정보를 통해서 무언가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다.
- 탄소 포획과 저장 방법의 하나인데, 값비싼 첨단 장비 없이도 쉽게 할 수 있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제거 말고도 여러 가지 유 익한 효과를 내는 방법이 있다. 무엇일까? - 정답은 아주 오래된 자연의 발명품인 나무다. | 2019년에 과학 간행물 『사이언스에 발표된 어느 연구 보고 서는 기후 변화를 억제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세계적인 규 모의 숲 복원>을 꼽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도시와 농지, 숲이 존재하는 곳 말고 9억 헥타르의 땅(미국 전체 면적보다 약 간 작은 수준)에 나무를 심으면 지구상의 숲 면적을 25퍼센트 더 늘릴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지상에 추가된 숲이 성장하면 대기 중 탄소의 4분의 1을 흡수해 저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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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지 말라

사회 2022. 9. 16. 15:43

- 공간을 말하면서 우리는 항상 고시원처럼 창이 없는 공간’, 영화 〈기생충>처럼 '반지하에서 바라보는 시선' 등 조망에 대한 언급을 빼놓지 않습니다. 뷰가 우리에게 소중했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한국사회에서 '전망 좋은 곳을 탐하는 마음이 올라가는 게 데이터로도 보입니다. 이것을 적나라하게 보 여주는 것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한강변 아파트 뷰'이고, 카페 사진에 으레 등장하는 '통창' 입니다.
도시에서 조망을 얻기란 너무 힘든 일입니다. 웬만해서는 한강뷰는 노릴 수 없죠. 그러나 차를 가져가면 가능합니다. 차박은 매우 저렴하게 차경을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말하자면 트렁크 뷰는 차경을 실현한 액자인 셈입니다. 액자 안에 피사체로 잡힌 아 이들의 뒷모습이나 반려견의 표정에서 느긋함과 행복이 느껴진 다면, 그것으로 게임은 끝난 것입니다. 이 프레임이 예쁘게 만들어지는 데 여러분의 업이 기여할 수 있다면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도 있겠죠. ‘#감성차박에는 조명과 피크닉 테이블이 필수이고, 이걸 잘 만드는 스타벅스가 굿즈로 대박이 나는 것처럼요.
- 자동차의 이동성이 많은 것을 바꿀 것입니다. 전망 좋은 집을 마련하기 어렵다면 차를 가지고 움직이면 됩니다. 이는 단편적인 예시이지 만, 실제로 차의 이동성은 정박되어 있던 삶을 상당 부분 유동화 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집에서는 쉬고, 직장에서는 일을 하고, 이동하는 과 정은 고단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기능을 나 눈 거죠. 지금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사람들 과 어울릴 수 있고, 집에서도 일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자동차에 서도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걸 넘어 다양한 형태의 일상을 살 수 있는 정도까지 우리의 삶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 데이터로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혼밥'이라는 말이 의미 있 는 규모로 나오기 시작한 게 2013년입니다. 그러다 2018년이 되 자 혼자 공연 보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 카페 가고 혼자 술 마시 는 각종 ‘혼O’이 39가지로 늘었고, 2020년에는 65개가 되었습니다. 이제 혼자 무언가 하는 게 더이상 낯설지 않은 사회로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죠.
매일매일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변화를 느끼기는 어렵지만, 5 년만 돌아보아도 정말 많이 바뀌었음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지난 10년간 한국사회는 혼자서 무언가를 잘 꾸려가는 사회로 분화되 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이해하고 나면 나 또한 혼자 잘 지낼 수 있도록 독립성과 유연성을 갖추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겠죠.
- 정수기 관리직원이 필요 없어진 것처럼, 생명보험회사 설계사도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드는 무인 카페도 이미 확산되는 중입니다. 으레 이런 매장에는 벤딩머신이 있어서 바나나나 샐러드 같은 것들을 파니 인근 편의점 매 출도 타격을 입겠죠. 이런 변화를 기존에 종사하던 분들과 소상 공인 모두가 유연하게 흡수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 또한 일어날 일이었고, 일어나고 있던 변화입니다. 사 람들이 대면을 부담스러워한다는 내용이 예전에도 있었어요. 특 히 전화 통화를 꺼리는 현상은 밀레니얼의 특성으로까지 부각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특정 세대만의 특징은 아니라는 것이죠.
- 지금까지 우리는 변화의 3가지 상수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분화하는 사회. 우리는 혼자 살고 좀 더 작아진 집단으로 가고 있습니다.
둘째, 장수하는 인간.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오래 살고 젊게 삽니다.
셋째, 비대면의 확산. 이는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대면을 꺼리기 때문에 강화됩니다.
지난 20년 가까운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이 3가지 변화를 목 도할 수 있었고, 검증할 수 있었고,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죠. 다만 코로나19로 변화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 졌기에 지금 막 닥친 변화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난 것뿐입니다. 말 하자면 코로나로 인해 '당겨진 미래라 할 수 있습니다.
- 기억해야 할 변화의 상수 3가지 : 당신은 혼자 삽니다. 당신은 오래 삽니다. 당신 없이도 사람들은 잘 삽니다.
- 혼자 가는 코인 노래방은 산업에서 코로나 이전부터 선택적 대면 욕구를 수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삼겹살집에 1인용 불판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몇 년 전부터 관측되던 변화입니다. 점심때 도 팀이 우르르 몰려가서 밥 먹는 게 아니라 원하는 메뉴를 따로 먹거나 개인 용무를 보며 각자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변화 하나하나가 산업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준비해 소비자 에게 줄 수 있는 배려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섬세하게 측 정할 수 있다면 신사업 준비나 홍보의 방법도 좀 더 날카롭게 벼릴 수 있으므로, 관찰은 우리 업의 중요한 출발점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삶은 다양한 변화를 언제나 겪고 있으므로 관찰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를 통해 우리의 업을 현재의 변화에 맞춰가야 합니다.
- 공통의 경험은 집단의 가치관과 의사결정의 중요한 인풋이 되고요. 예컨대 세대를 정의하는 중요한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을 겪은 이들이 했던 공감은 다른 세대와 차이가 날 수 있어요. 미국의 ‘침묵세대'는 1925~45년생으로 대공황, 매카시즘, 2차 세 계대전의 경험이 깊고, 1946~64년생인 베이비부머는 베트남 전 쟁, 인권운동, 케네디 암살, 우주 탐험이 성장기의 중요한 경험이 었다 합니다. 그 뒤를 잇는 X세대는 베를린 장벽 붕괴, MTV, 걸 프전 등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고, 밀레니얼은 9·11 테러, 소셜 미디어 등장, Y2K 등이 충격적인 경험이었다는 것이죠. Z세대는 경기 대침체, ISIS, 동성 결혼 합법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중요 한 인풋이 되었다네요.
이러한 성장기의 경험이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하나의 기반이 되고, 일단 가치관이 형성된 후에는 다른 세대 간의 합의가 아무래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에는 미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이 담겨 있어서, 해당 사건사고를 다 알아야 메타포나 스토리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영 화를 Z세대가 온전히 즐기기는 쉽지 않겠죠. 한국 영화 <국제시 장>도 마찬가지여서, 많은 장년층이 이 영화를 보며 ‘그땐 그랬지' 라며 회상에 젖지만, 젊은 세대에겐 그저 흥미로운 옛날이야기일겁니다.
- 변화는 중립적이어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습니다. 내가 준비했으면 기회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위기가 될 뿐입니다.
- 제가 아는 어느 교수님이 논문지도를 하면서 대학원생들에게 차례로 발표할 테니 아침 9시까지 메타버스 연구실에 들어와서 앉아 있으라고 했답니다. 그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흥미로웠습 니다. 평소에는 조금 늦기도 하고 발표 때도 대충 앉아 있어도 됐 는데, 메타버스 공간에 나의 아바타와 교수님이 보이니 제 시간 에 와서 의자에 정자세로 앉게 되더라고 합니다. 가상공간과 실제공간 사이에 인지적으로 혼동이 일어난 거죠. 그뿐 아니라 그 공간에서 각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다 들여다 볼 수 있으므로, 오히려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짬짬이 누렸던 딴 짓의 여유마저 사라질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회사 가 앞장서서 메타버스를 도입할지도 모르겠군요. 이 또한 투명성이 가져올 일의 변화인 것 같습니다.
- 우선 행복감을 미루거나 지연시키지 않는 모습이 보입니다. 과거 한국인들처럼 지금 고생해서 나중에 잘 사는 길을 선택하지 않아요. 나중을 위해 오늘의 고생이 필요하다는 다짐만 하는 것 이 아니라, 오늘 만있는 걸 먹는 것도 미루지 않습니다. 왜 내가 지금의 힘듦만 감내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예전 같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는 일상의 행복을 충족해야 합니다.
그래서인지 행복과 함께 '하루'를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롱텀의 행복보다는 ‘오늘 하루 잘 살면 행복 아닌가?' 하는 숏텀의 행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위해 ‘행복 버튼'도 만듭니다. 보기만 해도 저절로 행복해지는 아이돌 이 미지 같은 거죠.
반면 행복과의 관여도가 낮아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가 족'입니다. '가족'과 '행복'이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줄고 있습니 다. 행복의 주체나 대상으로서 가족이 여전히 중요하긴 하지만, 관 여도가 예전보다 낮아진다는 뜻입니다. 하물며 그 가족도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요. 인스타그램에서 #가족'을 검색하면 아이 사진들이 나오는데, 인간 아이가 아닌 동물 아이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 사람을 한순간에 기분 나쁘게 하는 질문 :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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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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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가 맞닥뜨리는 것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들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문제들이 복잡 시스템을 구성하는 역동적 상황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난장판이라 부른다...관리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난장판을 정리하는 사람이다. (러셀 아코프 Russel Ackoff, 운영이론가)
- 시스템의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이 주로 그 시스템이라는 말의 의미 를 잠시 살펴보자.
* 정치 지도자가 경기 호황과 불황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경기가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은 시장 경제 구조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 어떤 기업이 경쟁사들 때문에 시장 점유율을 잃는 경우는 드물다. 경쟁사들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지만, 어떤 기업이 시장 점유율을 잃는 이유 중 일부는 자신의 사업 정책 때문이다.
* 유가 상승 원인은 석유 수출국만의 책임이 아니다. 석유 공급이 중단되면 경제가 취약해지도록 소비 정책과 가격 정책, 투자 정책 등을 수립한 석유 수입국의 책임도 있다. 석유 수출국들의 행동만으로는 국제 유가 상승과 경제 혼란이 생기지 않는다.
* 독감 바이러스가 여러분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독감 바이러스가 몸 안에서 자랄 환경을 여러분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 약물 중독은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아무리 의지가 굳건하고 환자에 대한 사랑이 깊은 사람도 약물 중독자를 치료할 수 없다. 약물 중독자 자신은 말할 것도 없다. 약물 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 출발점은 중독을 더 큰 일련의 영향과 사회 문제의 일부로 이해하는 길뿐이다.
- 세상이 전보다 더 어지럽고 더 붐비고 더 긴밀하게 연결되고 상호의 존적이고 더 빠르게 변할 때는 시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 시스템 사고 렌즈를 이용하면 시스템 전체를 보는 직관을 회복할 수 있으며,
◆ 부분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고
◆ 상호연관성을 보고
◆ 미래에 발생할 행동을 가정한 질문을 제기하고
◆ 시스템을 재설계할 창의력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다음 그 통찰을 이용해 우리 자신과 우리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제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제대로 들여다보면 훨씬 더 복잡해지지 않는 경우가 이제껏 한 번도 없었다. (폴 앤더슨 Poul Anderson)
- 사람들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기 때문에 '하나'를 이해하면 반드시 '둘'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하기'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수피 우화)
- 여러분이 그저 부분들의 묶음이 아닌 시스템을 보는지 확인하는 방법 
1. 부분들이 구분되는가? 그렇다면 
2. 부분들이 서로 영향을 주는가? 그렇다면 
3. 부분이 모두 모여 각 부분이 발휘하는 효과 외에 다른 효과를 일으키는가? 그렇다면 혹시 
4. 그 효과 즉, 시간의 흐름에 따른 행동이 다른 환경들에서도 계속 지속되는가?
- 속도가 더딘 생물학적 진화부터 최신 우주 위성 발사까지 모든 생물과 인간 활동의 바탕은 정보피드백 제어 시스템이다....개인적이거나 산업적, 사회적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정보피드백 시스템의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제이 W. 포레스터)
- 피드백 메커니즘이 존재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피드백 메커니즘의 힘이 부족해 저량을 바람직 한 수준으로 이끌지 못할 수도 있다. 시스템의 정보 부분이자 상호연 관성인 피드백이 약해지는 원인은 다양하다. 정보가 너무 늦게 도착하 거나 엉뚱한 곳에 도착할 수도 있고, 정보가 불분명하거나 불완전하게 나 해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정보는 너무 약하거나 지연되거 나 자원의 제약을 받거나 전혀 효과가 없는 조치를 부를 것이다. 그러 면 실제 저량이 피드백 루프의 목표에 절대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커피처럼 간단한 사례에서는 커피 온도가 결국 실내 온도에 도달 할 것이다
- 머릿속을 다시 맑게 하려면 휴식이 필요하고, 쉬려면 여행을 가야 하고, 여행을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만 해...나는 악순환에 빠졌다...거기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노레 드 발자크 Honore de Balzac, 19세기 소설가이자 극작가)
- 여기서 아주 중요한 특징이 나온다. 순환논법처럼 보이겠지만, 투자가 감소하기 때문에 이익이 감소하고, 이익이 감소하기 때문에 투자가 감소한다. (얀 틴베르헨 Jan Tinbergen, 경제학자)
- 여러분은 이제 세상을 정태적이 아니라 동태적인 면에서 바라보고 사고할 것이다. 비난할 대상을 찾기보다 “시스템이 뭐지?”라고 질문할 것이다. 피드백 개념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이처럼 시스템이 스스로 행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균형 피드백 루프와 강화 피드백 루프를 따로따로 하나씩 설명했지만, 실제 시스템에서 피드백 루프가 하나만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연하다. 피드백 루프들은 환상적일 만큼 복잡한 패턴으 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단 하나의 저량에서도 강화 피드백 루프와 균 형 피드백 루프 여러 개가 서로 다른 힘으로 저량을 여러 방향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 단 하나의 유량이 세 개나 다섯 개, 스무 개 저량의 내용물에 의해 조절될 수도 있다. 유량 하나가 저량 하나를 채우는 동시에 다른 저량을 비우며 또 다른 저량을 변화시키는 결정에 영향을 줄수 있다. 한 시스템 안에서 수많은 피드백 루프가 저량들을 증가시키거나 소멸시키거나 상호 균형을 이루도록 하며 서로 힘을 겨룬다. 그 결과 복잡 시스템은 가만히 머물거나 지수적으로 폭발하거나 순조롭 게 목표에 접근하는 외에도 아주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이제 그 모습들을 살펴보자.
- 기후변화 예측, 특정 주식에 대한 증권 중개인의 전망 등 어떤 시나리오 를 접할 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면 그 시나리오의 기본 모델이 현실을 얼마나 잘 나타내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 구동 요인들이 이렇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나? (출산율과 사망률이 어떻게 될까?)
◆ 만일 그렇다면, 시스템이 이렇게 반응할까? (출산율과 사망률이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인구 저량의 움직임을 불러올까?)
◆ 구동 요인들을 구동하는 것은 무엇인가? (출산율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사망률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 자본 시스템도 인구 시스템과 같은 종류의 '동물원 동물'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공장과 수송, 경제적 흐름을 갖춘 생산 시스템은 아기가 태어나고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며 더 많은 아기를 낳고 죽는 인구 시스템과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스템 관점에서 보면, 여러모로 다른 이 두 시스템의 공통점을 알 수 있다. 바로 피드백 루프 구조다. 두 시스템의 저량 모두 성장강화 루프와 사망 균형 루프에 통제된다. 노화 과정이 있는 것도 두 시스템의 공통점이다. 제철소나 선반, 터빈도 사람처럼 나이가 들고 죽는다.
시스템 이론의 핵심 통찰 중 시스템이 대체로 스스로 행동을 유발한다는 깨달음만큼 중요한 통찰이 있다. 외적인 모습이 완전히 달라도 피 드백 구조가 비슷한 시스템들은 동태적 행태도 비슷하다는 통찰이다. 인구와 산업 경제는 완전히 다르지만, 둘 다 스스로 재생산하며 지수적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둘 다 나이를 먹고 죽는다. 따뜻한 커피가 식는 것은 따뜻해진 방이 식는 것과 비슷하고, 방사성 물질이 붕괴하 는 것과 비슷하고, 인구나 산업 경제가 늙고 죽는 것과 비슷하다. 이 모두가 균형 피드백 루프의 결과로 쇠퇴하는 것이다.
-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흔히 경험하는 지연 세 가지.
첫째, 인지 지연이다. 여기서는 인지 지연이 의도적이다. 자동차 판 매업자는 일시적인 판매 변화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지난 5일간 평균 판매량을 검토해 일시적인 등락인지 실질적인 흐름인지 구분한 뒤 주문량을 결정한다.
둘째, 반응 지연이다. 분명히 주문량을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판매업자는 단 한 번의 주문으로 부족량을 모두 채우지 않는다. 세 번에 나눠 부족량의 3분의 1씩 채운다. 다시 말해, 판매업자는 사흘에 걸쳐 주문량을 부분적으로 조정하면서 일시적이지 않고 실질적인 흐름인지를 다시 확인한다.
셋째, 입고 지연이다. 주문을 접수한 공장이 자동차를 생산해 판매점에 입고시킬 때까지 5일이 걸린다.
- 진동이 발생하는 이유는 자 동차 판매업자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자동차 판매업자가 시의적절 한 정보도 없고 그런 정보를 얻을 수도 없으며 조치를 취해도 물리적 지연으로 인해 재고에 곧바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시스템 안에서 애 쓰기 때문이다. 판매업자는 고객들이 다음에 어떻게 행동할지 알지 못 한다. 판매업자는 고객들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계속 그렇게 행동할 지 알지 못한다. 판매업자가 주문을 해도 즉각적인 반응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처럼 정보가 부족하고 물리적으로 지연되는 상황은 아주 흔하다. 우리는 상품 재고를 비롯해 많은 시스템에서 이런 진동을 자주 접한다. 뜨거운 물과 찬물을 혼합하는 장치부터 샤워기까지 파이프가 아주 길게 연결된 곳에서 샤워하면, 반응 지연이 길어서 발생하는 뜨겁고 차가운 진동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 시스템의 지연을 변화시키면 재고 관리가 훨씬 더 편해질 수도 있고 훨씬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시스템 사고자들이 지연 문제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이유가 있다. 시스템 사고자들은 시스템 어디에서 지연이 발생하는지, 지연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정보 흐름의 지연인지 혹 은 물리적 과정의 지연인지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본다. 어디에서 지연이 발생하고 지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면 동태적인 시스템 행동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스템 사고자들은 지연이 강력한 정책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연 시간을 늘리거나, 단축하면 시스템 행동의 중대한 변화를 이끌 수 있다.
- 크게 보면 한 매장의 재고는 사소하고 충분히 수정할 수 있는 문제 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판매되지 않고 남은 자동차 전체로 재고 범위를 넓혀보자. 자동차 주문 증가나 감소는 조립 공장이나 부품 공장뿐만 아니라 제철소나 고무 공장, 유리 공장, 섬유 공장, 에너 지 업체의 생산에도 영향을 준다. 이 시스템의 모든 곳에 인지 지연과 생산 지연, 입고 지연, 공사 지연이 있다. 이제 자동차 생산과 일자리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생산이 늘면 일자리가 늘며 자동차를 구매할 사람이 증가한다. 강화 루프 관계다. 그리고 이 강화 루프는 반대 방향으로도 작용한다. 생산이 줄면 일자리가 줄고 자동차 판매가 줄고 생산이 더 준다. 그리고 또 다른 강화 루프가 개입한다. 투기 세력이 최근 성 과를 기준으로 자동차 제조사와 자동차 공급사의 주식을 매매할 때 생 산 급증은 주가 급등을 낳고 생산 급감은 주가 급락을 불러온다.
이처럼 서로 연결된 여러 산업이 지연을 통해 상호 반응하고 진동 속에서 서로 동조하며 승수효과 와 투기 세력이 만나 증폭되는 아주 커다란 시스템, 바로 이것이 경기 순환의 주요 원인이다. 대통령이 호황 을 키우고 불황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경기 순환을 대통령이 좌우하지는 못한다. 경제는 대단히 복잡한 시스템이 다. 경제는 지연이 있는 균형 피드백 루프로 가득하고 본질적으로 진동한다.
- 고갈의 역학에 따르면, 최초 자원의 저량이 클수록 새로운 발견이 늘어나고, 성장 루프가 통제 루프의 힘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길어지며, 자본 저량과 추출률이 증가할수록 경제는 생산 정점을 지난 뒤 더 이른 시간에 더 가파르게 더 깊이 추락한다. 경제가 전적으로 회복 가능한 자원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 한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 ◆ 오버슈트 후 안정적인 평형으로 조정
◆ 오버슈트 후 평형을 오르내리는 진동
◆ 오버슈트 후 자원과 자원 기반 산업의 붕괴
이중 어떤 움직임이 나타나는가는 다음 두 가지에 달렸다. 
첫째, 임계치다. 임계치를 벗어나면 자원의 재생 능력이 훼손된다. 둘째, 자원이 부족해질 때 자본 성장을 늦추는 균형 피드백 루프의 속도와 효율성이다. 임계치에 도달하기 전에 균형 피드백 루프가 신속하게 작동해 자본의 성장이 멈추면 전체 시스템이 순조롭게 평형을 이룬다. 균형 피 드백 루프의 작동 속도와 효율성이 떨어지면 시스템이 진동한다. 균형 피드백 루프가 아주 약해서 자본은 계속 성장하고 자원은 스스로 재생 할 수 있는 임계치 이하로 줄어들면 자원과 산업이 모두 붕괴한다.
- 토지의 메커니즘이 전체적으로 훌륭하면 우리가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부분 부분이 모두 훌륭하다. 우리는 생물군이 수백억 년에 걸쳐 구축한 자연을 좋아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쓸모없어 보인다고 버리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현명하게 수리하기 위해 첫 번째로 취 할 조치는 톱니와 바퀴 하나하나를 모두 보관하는 것이다. (알도 레오폴드 Aldo Leopold, 삼림학자)
- 시스템이 불변하도록 구속하면 약점만 진화한다. (크로퍼드 스탠리 홀링 C. S. Holling, 생태학자)
- 회복탄력성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거나 정적인 것과는 다르다. 회복탄력성을 지닌 시스템은 대단히 역동적이다. 단기적인 진동이나 주기적인 돌발, 연속과 절정, 붕괴의 장기적 순환은 지극히 정상적 상 태이며, 회복탄력성을 통해 되돌리려는 것이 바로 이런 상태다.
정반대로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시스템은 회복탄력성을 지닐 수 없다. 정적인 안정성과 회복탄력성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적인 안정성은 눈에 보인다. 정적인 안정성은 매주 혹은 매년 시스템 상태의 차이를 통해 측정할 수 있다. 회복탄력성은 우리가 그 한계를 넘어설 만큼 균형 루프를 압도하고 훼손해 시스템 구조가 무너지기 전까지는 눈으로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 사람들은 흔히 안정성이나 생 산성 혹은 더 즉각적으로 인식되는 시스템의 특징들을 위해 회복탄력 성을 희생하는데, 그 까닭은 시스템 전체를 보는 눈이 없으면 회복탄 력성이 분명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소에게 유전자 조작된 성장 호르몬을 주사하면 사료 공급량을 늘리지 않아도 우유 생산량이 증가한다. 호르몬이 소의 다른 신체 기능에 쓰일 대사 에너지를 우유 생산으로 돌리는 것이다(지난 수 세기 동안 목축업도 이와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생산을 늘렸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생산 증가에 따른 대가는 회복탄력성 저하다. 소의 건강이 저하되고 수명이 짧아지고 인간의 손길에 더 의존하게 된다.
◆ 상품이나 부품을 소매점이나 제조업체에 적시에 공급함에 따라 재고부담이 줄고 많은 비용이 절감되었다. 하지만 적시 공급에 따라 생산시스템은 연료 공급 변동이나 교통량, 컴퓨터 고장, 인력 수급 등 여러 가지 잠재적인 문제에 더 취약해졌다.
◆ 유럽이 수백 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관리한 결과 숲의 자연생태계가 흔히 수령이 같은 외래종 나무 한 종을 심은 조림지로 서서히 변했다. 숲에서 목재와 펄프를 높은 비율로 무한히 생산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수종이 상호작용하며 다양한 영양분 조합을 땅에서 빨아올렸다가 땅으로 되돌려주지 못하는 숲은 회복탄력성을 잃었다. 이런 숲은 새로운 형태의 공격 즉, 대기 오염에 특히 취약할 것이다.
- 암이나 심장질환 같은 만성 질환은 DNA를 복구하거나 혈관의 신축성을 유지하거나 세포 분열을 조절하는 복구 메커니즘이 망가져 발 생하는 경우가 많다. 생태학적 재난도 생태계에서 여러 종이 사라지거나 토양의 화학적 성분과 생물학적 성분이 흐트러지거나 독성 물질이 쌓이는 등 회복탄력성을 상실해서 발생할 때가 많다. 기업에서 정부에 이르기까지 큰 조직이 회복탄력성을 잃는 원인은 모두 단순하다. 환경 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피드백 메커니즘이 거쳐야 할 지연과 왜곡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잠시 뒤 계층을 다룰 때 더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자).
- 문제는... 우리가 끔찍할 만큼 무지하다는 것이다. 우리 중 가장 많이 배운 사람도 무지하다... 지식 습득은 언제나 무지의 폭로를 수반한다. 지 식을 습득할수록 우리의 무지가 드러난다. 세상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세상이 우리 지식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웬델 베리 Wendell Berry, 켄터키 농부 겸 작가)
- 시스템은 자물쇠를 열 수 없는 커다란 블랙박스다.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들어가는 것과 나오는 것뿐이다. 매개 변수들과 연관된 투입과 산출의 쌍을 감지하면 가끔 투입과 산출, 저량을 연결할 수 있다. 이 관계가 적절하고 안정적이면 우리가 예측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하면, 맙소사! 뚜껑을 억지로 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케네스 볼딩, 경제학자)
- 선형적 관계는 생각하기가 쉽다. 이런 관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선형 방정식은 풀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방정식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다. 선형 시스템은 중요한 모듈식 장점을 지닌다. 해체하고 다시 조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분들만 합치면 된다. 비선형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풀 수도 없고 합칠 수도 없다... 비선형성 의 의미는 게임을 하는 행위에 의해 규칙이 바뀐다는 것이다... 서로 얽힌 그 가변성 때문에 비선형성은 계산하기가 어렵지만, 바로 그 가변성 때문에 선형 시스템에서 절대 발생하지 않는 다양한 움직임이 나온다. (제임스 글릭 James Gleick 《카오스: 새로운 과학의 출현 Chaos: Making a New Science》 저자)
- 시스템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우리가 흔히 쓰는 부작용'이라는 용어에는 근본적인 오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부작용은 대개 “미리 예측하지 못했거나 떠올리기 싫은 작용”을 의미한다... 부작용은 '부'라는 형용사를 떼고 주작용 못지않게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 시스템 관점에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시스템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없도 록 언어를 열심히 왜곡한다. (개릿 하딘, 생태학자)
- MIT대학에서 시스템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대표적인 모델 중 하나가 제이 포레스터 교수의 기업 성장 모델이다. 이 모델은 성공적으로 급성장하는 젊은 회사에서 출발한다. 이 회사의 문제는 변화 하는 한계 즉, 회사의 성장에 따라 바뀌는 한계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가 고용한 영업사원들의 능력이 뛰어나 공장 생산 속 도보다 더 빠르게 주문을 받아온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배송 지연이 점점 늘고 고객들이 떠난다. 생산 능력이 가장 제한요인이기 때문이 다. 그래서 경영자는 자본 저량인 생산 공장을 확장한다. 생산 인력을 서둘러 확충하느라 교육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제품 품질이 떨어지고 고객들이 떠난다. 근로자의 기술이 가장 큰 제한요인이기 때 문이다. 이제 경영자는 근로자 교육에 투자한다. 제품 품질이 올라가고 신규 주문이 밀려들자, 주문을 이행하고 기록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진다.
- 식물, 어린이, 전염병, 신상품, 기술 발전, 기업, 도시, 경제, 인구 등 성장하는 모든 것에는 겹겹이 쌓인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통찰력은제한요인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인식만이 아니라 성장 자체가 한계를 줄이거나 강화하고 그에 따라 제한요인이 변한다는 생각에서도 나온다. 자라나는 식물과 토양, 성장하는 기업과 시장, 성장하는 경제와 자원 기반 사이의 상호 작용은 동태적이다. 어떤 제한요인이 사라지면 성장이 시작되고, 성장 자체가 요인들의 상대적 희소성을 변화시켜 결국 또 다른 요인이 제한요인으로 나타난다. 여러 가지 많은 요인에서 눈을 돌려 다음에 나타날 잠재적 제한요인에 관심을 집중하면 성장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
- 성장에는 늘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스스로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이 한계를 설정할 것이다. 영원히 성장하는 물리적 실체는 없다. 회사 경영주나 시 정부, 인구가 환경이 지원하는 범위 내에서 계속 성장하도록 스스로 한계를 선택해 적용하지 않으면, 환경이 한계를 선택해 강요할 것이다.
- 지금 생각하니 아찔하지만, 민주주의를 재건하려는 제 초조함 속에 공산주의자와 흡사한 뭔가가 있었습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합리주의자에 가까운 뭔가가 있었습니다. 제가 역사를 진전시키려 했던 모습은 어 린아이가 식물이 더 빨리 자라도록 줄기를 잡아당기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 우리가 창조하는 법을 배우며 기다리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참을성 있게 씨를 뿌리고 씨 뿌린 땅에 부지런히 물을 주고 식 물에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식물을 속일 수 없는 것은 역사를 속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츨라프 하벨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대통령이자 체코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극작가)
- 허버트 사이먼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아는 '합리적 최적화자 optimizeers'가 아니라 다음 결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자신의 요구를 웬만큼 충족(만족)시키려 애쓰는 어설픈 '만족화자 satisficers'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자신과 가까이 있는 이익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얻기 위해 최 선을 다하지만, 자신이 아는 것만 헤아릴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행동으로 옮길 때까지는 그 사람이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 앞에 있는 온갖 가능성을 거의 보지 못한다. 우리 행동이 전체 시스템에 줄 영향을 예견하지 못한다(혹은 애써 무시한다). 그래서 우리는 장기적인 최적의 것을 찾는 대신 제한된 범위 안에서 당장 감수할 수 있는 선택을 찾아내고, 불가피할 때만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 선택을 고수한다.
- 행동과학자들은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는 불완전한 정보도 완벽하 게 해석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위험 요인을 잘못 인식해 어떤 것은 실제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것은 실제보다 훨씬 덜 위험하게 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장된 현재 속에 살고 있다. 최근 경 험에 과도한 관심을 쏟고 과거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장기 적인 행동보다 현재 사건에 집중한다. 경제적으로나 생태적으로 이치 에 맞지 않을 만큼 미래를 등한시한다. 우리는 들어오는 모든 신호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소식이나 자신의 정신 모델과 맞지 않는 정보는 한사코 거부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전체적인 시스템의 이익은 고사하고 자신의 개인적 이익도 극대화하지 못하는 결정을 한다.
- 개인이 이용 가능한 정보의 한도 내에서 얼마나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지 확인하는 것은 편협한 행동을 변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편협한 행동이 나오는 이유를 알고자 함이다. 시스템의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이 하는 행동은 그가 알고 보는 한도 내에서는 합리적인 행동이기 때 문이다. 제한된 합리성의 자리에 앉은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개인을 탓하는 것은 바람직한 결과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변화하려면 먼저 시스템의 한 곳이 아니라 전체를 조망함으로써 제한된 정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정보의 흐름과 목표, 장려책, 억제책이 재구성되고 결국 개별적이고 제한되고 합 리적인 행동들이 모두가 원하는 결과로 합쳐질 수 있다. 더 좋고 더 완전한 정보를 더 시기적절하게 제공함으로써 제한된 합리성을 조금만 넓혀도 행동은 쉽고 빠르게 바뀔 수 있다.
- 합리적인 엘리트는 독립적인 기술 세계나 과학 세계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시야가 넓지 않다. 합리적인 엘리트는 마르크스 주의 간부부터 여수회 수사까지, 하버드대 MBA 졸업생부터 군대 참모 장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이들은 한 가지 기본적인 관심사를 공유 한다. 특정 시스템을 움직이도록 하는 방법이다. 한편 문명은 점점 더 방향성이 없어지고 이해할 수 없어진다. (존 롤스톤 소울 John Ralston Saul, 정치학자)
- 덫: 정책 저항
다양한 행위자들이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시스템 저량을 끌어당기면 정책 저항이라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새로운 정책, 특히 효과가 높은 정책이 시 스템 저량을 다른 행위자들의 목표에서 더 멀리 끌어당기며 추가적인 저항을 유발하면, 아무도 원치 않는 결과를 유지하려고 모든 행위자가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만 발생한다.
- 탈출법
포기하라. 모든 행위자를 참여시키고 저항에 쓰이던 에너지를 이용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모든 목표를 이룰 방법을 찾거나 모두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더 크고 더 중요한 목표를 다시 설정하라.
- 공유지의 비극을 피하는 세 가지 방법.
◆ 교육과 훈계, 공유지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교육하라. 도덕성에 호소하라. 절제하도록 설득하라. 따르지 않으면
사회적 비난이나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경고하라.
◆ 공유지 사유화. 공유지를 나눠 각자 행동에 따른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게 하라. 누군가 절제력을 잃고 개인 자원을 함부로 쓴다면 당사자만 피해를 보고 다른 사람들은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 공유지 규제. 개릿 하딘이 "상호 강제, 상호 합의”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한 방법이다. 특정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할당제, 인가제, 과세, 장려책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할 수 있다. 규제가 효과를 거두려면 감시와 처벌이 따라야 한다.
- 카를 마르크스도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성공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덫을 경고했다.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두 회사는 한 생태적 지위에서 경쟁하는 두 종과 같은 행동을 보인다. 효율성을 더 높이거나 더 현명하게 투자하거나 기술을 개선하거나 뇌물을 더 많이 주거나 아무튼 어느 한 회사가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회사는 더 많은 수익을 올려 생산 설비나 신기술, 광고에 투자하거나 뇌물로 사용한다. 이 회사의 자본 축적 강화 피드백 루프가 다른 회사보다 빠르게 돌아가며 훨씬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 만일 그 시장이 한정된 시장이고 반독점법이 없 다면 계속 재투자하며 생산 설비를 확장하는 회사가 모든 것을 차지할 것이다. 공산주의 소련의 붕괴가 카를 마르크스 이론의 오류를 입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시장 경쟁이 체계적으로 시장 경쟁을 몰아 낸다는 카를 마르크스의 분석은 예나 지금이나 경쟁 시장이 있는 곳이 면 어디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의 그 많던 자동차 제조사가 (그 나마 반독점법 덕분에 1개 회사로 정리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3개 회 사로 줄어든 이유도 성공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강화 피드백 루프 때문 이다. 현재 미국의 대도시들을 보면 신문사 한 곳만 살아남은 도시가 대부분이다. 모든 시장 경제를 보면 장기적으로 농장의 크기는 증가하 고 농장의 수는 줄어드는 추세가 나타난다.
성공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덫은 여러모로 아주 심각한 피해를 주며,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고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 세금을 회피할 방법이 더 많다. 
- 성공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시스템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확실한 방 법은 주기적으로 운동장을 평평하게 고르는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나 게임 설계자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장치를 본능적으로 시스템 안에 설치한다. 그래야 공정하고 흥미로운 경쟁이 되기 때문이 다. 모노폴리 보드게임은 언제나 모두 평등한 상태에서 게임을 시작한다. 지난번에 패배한 사람도 승리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스포츠에서도 약한 선수에게 핸디캡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포틀래치’는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가장 적게 소유한 사람들에 게 여러 가지 재산을 나눠주는 의례인데, 이와 비슷한 의례를 지키는 전통 사회가 많다.
- 적극적으로 파괴하건 그저 무시하건 개입으로 본래 시스템의 자기 유지 능력이 약화되면 덫에 빠진다. 시스템의 자기 유지 능력이 위축되면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더 많은 개입이 필요하고, 그로 인해 시 스템의 자기 유지 능력이 훨씬 더 약화된다. 그러면 개입자가 다시 더 고삐를 죄고, 계속 이렇게 이어진다. 이 덫에 빠지는 이유가 뭘까? 첫째, 개입자는 조금 거들어주려던 최초의 충동이 점점 더 의존성이 커지는 일련의 사건을 촉발하고 결국 그 사건들이 개입자의 능력에 심각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예측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의료 서비스 시스템이 이처럼 일 련의 사건들이 주는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둘째, 도움을 받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유능하고 강력한 개입자에게 부담을 떠넘김으로써 장기적으로는 통제력을 상실하고 취약함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개입자가 약물이라면 여러분은 중독자가 된다. 중독이 습관화 될수록 다시 빠져들 가능성이 커진다.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A.A’이 라는 단체는 뭔가 다른 결과를 기대하며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 이 중독이라고 정의한다.
중독은 문제의 증상에 대해 임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결국 실제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 어렵고 장기적인 과제를 풀지 못할 뿐더러 방해 만 받는다. 중독성 정책이 위험한 이유는 속기 쉽고 홀리기 쉽기 때문이다.
- 덫: 개입자에게 부담 떠넘기기
부담 떠넘기기나 의존성, 중독은 시스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증상을 (변장시 키거나 완화할 뿐 근본적인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인식을 무디게 하는 물질이건 근본적인 문제를 숨기는 정책이건 충독은 실제 문제를 해결할 조치를 취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입이 본래 시스템의 자기 유지 능력을 위축시키거나 약 화시키면 파괴적인 강화 피드백 루프가 작동한다. 시스템은 악화하고, 점점 더 많은 해결책이 필요해진다. 시스템은 점점 더 개입에 의존하며 스스로 바 람직한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을 점점 더 잃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가장 좋은 탈출법은 덫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실제 문제를 해 결하지 못하고 증상만 완화하거나 신호를 무시하는 정책이나 관행을 경계하 라. 일시적인 증상 완화에 몰두하지 말고 장기적인 구조 재편에 집중하라.
- 시스템 움직임에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 는 것 중 하나가 시스템의 목적이나 목표다. 목표가 시스템의 방향을 결정하고, 조치가 필요한 차이를 규정하고, 균형 피드백 루프의 순응도나 성패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목표가 제대로 규정되지 않고, 목표가 마땅히 측정해야 할 것을 측정하지 않고, 목표가 시스템의 진정한 복지를 반영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바람직한 결과를 내지 못한다. 이솝우화의 〈세 가지 소원>처럼 시스템은 끔찍하게도 정확히 요구하는 것만 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시스템에 뭔가 요구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원하는 시스템 상태가 국가 안보이고 국가 안보를 군비 지출 규모로 규정한다면 시스템이 군비를 지출할 것이다. 이때 국가 안보는 확보될 수도, 확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다른 경제 분야의 투자금을 빼서 군비로 지출하거나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불필요하고 비현실적인 무기 를 구입하면 오히려 국가 안보가 훼손될 수 있다.
- 원하는 시스템 상태가 좋은 교육일 경우, 학생 1인당 교육비 지출규모로 목표를 측정하면 1인당 교육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 의 질을 규격화된 시험 성과로 측정하면 시스템이 규격화된 시험에 성 과를 낼 것이다. 이 두 가지 측정법 중 어느 것이 좋은 교육과 연관이 있을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인도는 초창기 가족 계획을 수립할 때 자궁내피임기구인 루프 시술숫자와 가족 계획 목표를 결부시켰다. 그러자 목표 달성에 발 벗고 나선 의사들은 환자의 동의도 받지 않고 루프를 시술했다.
이 모든 사례가 노력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며, 잘못된 목표 중심으 로 시스템을 설계할 때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다. 
- GNP는 실제 부와 즐거움의 원천인 주택과 자동차, 컴퓨터, 오디오 등 자본 저량보다는 처리량 즉, 1년간 만들고 구입한 것의 유량을 측 정하는 기준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사회는 가장 높은 처리량이 아니 라 가능한 가장 낮은 처리량으로 자본 저량을 유지하고 사용하는 사회 일 것이다.
경제 번영을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굳이 GNP 증가를 바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전 세계 많은 정부는 GNP가 흔들리는 신호 만 잡히면 GNP를 끌어올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대부분 방 법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대상물의 비효율적인 생산만 부추기는 낭비 와 다름없다. 단기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삼림을 과도하게 벌채하는 것처럼 경제, 사회, 환경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협하기도 한다.
- 만일 사회 목표를 GNP로 정하면, 그 사회는 GNP 산출에 온갖 힘을 기울일 것이다. 복지, 형평성, 정의, 효율의 상태를 목표로 규정하고 주기적으로 측정하고 보고하지 않는 한 그 사회는 복지나 형평성, 정 의, 효율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전 세계 국가들이 1인당 GNP 1위 국 가가 되려고 경쟁하는 대신 최저 처리량으로 1인당 부의 저량을 최고 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거나 가장 낮은 유아 사망률이나 가장 큰 정치 적 자유, 가장 깨끗한 환경, 가장 작은 빈부 격차를 달성하기 위해 경 쟁한다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 잘못된 목표를 추구하고 엉뚱한 지표를 충족시키는 것은 규칙 회피와 거의 정반대되는 시스템 특징이다. 규칙 회피의 경우 시스템이 바라지 않거나 잘못 설계된 규칙을 회피하려고 애쓰면서도 규칙을 따르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잘못된 목표를 추구하는 경우에는 시스템이 고분고분하게 규칙을 따르며 특정한 결과를 낳지만, 그것은 누군가 바 라던 결과는 아니다. 잘못된 목표는 규칙을 준수하기 때문에 어리석 은 일이 발생하는 문제를 일으키고, 규칙 회피는 규칙을 회피하기 때 문에 어리석은 일이 발생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이 두 가지 시스템 왜 곡은 동일한 규칙과 관련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 1969년 포레스터 교수가 도시 다이내믹스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며 제시한 지렛점은 보조금을 받는 저소득층 주택이었다. 저소득층 주택 공급을 줄일수록 도시가 더 나아지고, 그 도시에 사는 저소득층 주민들의 삶도 더 나아진다고 주장했다. 포레스터 교수가 이 모델을 발표한 시기는 대대적인 저소득층 주택 공급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할 때였고, 당연히 포레스터 교수는 세상의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이 후 여러 도시에 공급된 저소득층 주택 중 상당수가 철거되었다.
반직관 counterintutive. 포레스터 교수가 복잡 시스템을 설명한 말이 바 로 반직관이다. 지렛점은 직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직관적일 경 우에도 거꾸로 사용해서 오히려 우리는 문제를 체계적으로 악화시킬 때가 너무 많다.
- 포레스터 교수가 월드 모델에서 경제 성장 속도를 늦추는 지렛대가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거나 시장 가격을 더 자유롭게 푸는 지렛대보다 더 강력하다고 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거나 시장 가격을 더 자유롭게 푸는 지렛대는 조정 속도를 높이려는 시도다. 하지만 가격이 새로 바뀌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해도 공장 과 보일러, 기술이 작동하는 구체적 징후 등 세상의 물적 자본 저량이 변하는 속도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가격이나 아이디어도 전 세계 문화를 관통하며 즉각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지연을 없애려고 하는 것보다 기술과 가격이 따라올 수 있도록 시스템의 속도를 늦추는 것에 더 많은 지렛대가 있다.  하지만 만일 시스템에 있는 지연이 바뀔 수 있다면, 그 지연을 변화시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때 주의할 것이 있다. 반드시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금융 시장에서 정보와 돈이 전달되는 지연 시간을 줄이려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정보와 돈의 격렬한 순환만 초래한다).
-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진정한 문제는 세상이 불합리하다는 것도, 세상이 합리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가장 흔한 문제는 우리 세상이 거의 합리적이지만 완전히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삶은 비논리적이지 않다. 하지만 논리학자에게 삶은 함정과도 같다. 삶은 실제보다 아주 조금 더 수학적이고 규칙적으로 보인다. (G. K, 체스터튼 G. K. Chesterton, 20세기 작가)
- 시스템의 이 지점에 새로운 정보 피드백 루프를 추가하면 시스템의 움직임이 훨씬 더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의사 결정자들은 필요한 정보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신뢰하지 않고, 해석하는 법을 모른다.
-->
사람들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정보를 분류하고 차단하는 이유가 무 엇일까? 받아들일 정보와 거부할 정보, 고려할 정보와 무시하거나. 경시할 정보를 어떻게 결정할까? 똑같은 정보에 노출되어도 사람마 다 받이들이는 메시지가 다르고 결론이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 이 피드백 루프가 다른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한다면 시스템이 모 두가 원하는 결과를 생성할 것이다. 에너지 증가가 아니라 에너지 서비스 증가, GNP가 아니라 물질적 풍요와 안전, 성장이 아니라 진보라는 결과가 나 을 것이다. 누군가의 가치관을 바꿀 필요가 없다. 그저 시스템이 진 정한 가치에 따라 작동하도록 만들기만 하면 된다.
--> 가치란 무엇일까? 가치는 어디에서 나올까? 보편적일까 아니면 문 화에 따라 다를까? 개인이나 사회가 진정한 가치'를 포기하고 값싼 대체품에 만족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피드백 루프를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양 대신에 우리가 측정할 수 없는 질에 맞춰 조정할 방법은 무엇일까?
- 이 시스템은 모든 면에서 뒤를린 것 같다. 비효율, 추함, 환경 파괴, 인류 불행을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시스템 자체를 없애면 우리에게 는 어떤 시스템도 남지 않는다.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다.(내가 지 금 염두에 두는 시스템은 소련이라는 옛 공산주의 시스템이지만, 이런 시스템 사례는 많다.
--> 구조가 최소화되고 자유가 최대화되는 그 기간이 그토록 두려운 이 유가 무엇일까? 세상을 보는 한 가지 패러다임이 널리 공유되어 제 도와 기술, 생산 시스템, 건물, 도시가 그 시각에 맞춰 형성된 까닭이 무엇인가? 시스템은 어떻게 문화를 창조할까? 문화는 어떻게 시스 템을 창조할까? 부족하다고 밝혀진 문화와 시스템은 붕괴와 혼돈을 통해 바뀔 수밖에 없을까?
- 이 시스템에서 사람 이 유해한 행동을 참고 견디는 것은 변화 두 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스템이 나아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시스템 개선을 요구할 힘이 없다고 느낀다.
--> 사람들이 스스로 무력하다고 그토록 쉽게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스로 비전을 달성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까닭이 무엇일까? 사람들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보다.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 우리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깨어난다면 시스템 사고는 기다렸다는 듯 우리를 빛내고 확실한 또 다른 결론으로 이끈다. 시스템 사고는 우리에게 종류가 다른 할 일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상상하고 아름답게 구현할 수는 있다. 시스템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설계하고 재설계할 수 있다. 우리는 놀랄 것 없 는 세상 속으로 확신에 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는 없지만 놀라움을 느끼고 그 놀라움에서 교훈을 얻고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시스템에 우리 의지를 강요할 수 없지만, 시스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시스템의 특성과 우리의 가치관이 협력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방법을 찾을 수 있다.
- 어떤 방식으로든 시스템에 간섭하기 전에 먼저 그 시스템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라. 음악이나 급류타기, 상품 가격 변동이라면 그 박자를 연구하라. 사회 시스템이라면 작동하는 모습을 관찰하라. 그 역사를 탐구하라. 오래전부터 지켜본 사람들에게 물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라. 그리고 가능하면 시스템의 실제 데이터를 기록한 시계열 그래프를 찾거나 작성하라. 적절한 시기를 선택할 때 늘 인간의 기억에 의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뜻 단순한 지침처럼 보일 것이다. 직접 실천하기 전까지는 이 지 침으로 아주 많은 실수를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시스템 행동 관찰부터 출발하면 이론이 아닌 사실에 집중할 수밖에 없 고,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신념이나 오해 속으로 성급히 뛰어드는 잘못을 피할 수 있다.
- 수량화하기 어렵다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면 잘못 된 모델이 완성된다. 앞서 설명한 대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쉽게 측정 할 수 있는 것에 목표를 맞추면 시스템 덫이 출현한다. 그 덫에 빠지지 마라. 인간은 수를 세는 능력뿐 아니라 질을 평가하는 능력도 타고났 다. 질을 감지하라. 걸어 다니는 가이거 계수기 처럼 질의 유무를 분명 히 감지하라.
추한 것이 있으면 추하다고 밝혀라. 조잡하거나 부적절하거나 불균 형하거나 지속 불가능하거나 부도덕하거나 생태계를 훼손하거나 인 간을 비하하는 것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마라. “규정하고 측정할 수 없으면 주목할 필요가 없다” 라는 말에 속지 마라. 
- 복잡성을 찬양하라
솔직히 말해서, 우주는 어지럽다. 비선형적으로 격변하고 동태적이다.
우주는 수학적으로 정돈된 평형 상태에 있지 않고, 다른 어딘가로 향 하는 도중에 일시적인 행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자기 조직화하며 진화한다. 다양성과 통일성을 만들어낸다. 세상이 흥미로운 것도 세상이 아름다운 것도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곡선이 아닌 직선에, 분수가 아닌 정수에, 미스터리가 아닌 확실성에 끌리는 뭔가가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와 정반대되는 성향도 있다. 우리 인간은 복잡한 피드백 시스템에서 진화하고, 복잡한 피드백 시스템에 따라 형성되고, 복잡한 피드백 시스템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부, 최근에 출현한 우리의 일부만 비타협적인 직선과 평평한 표면을 지닌 상자 형태로 건물을 설계한다. 우리의 또 다른 일부는 자연이 미시적 차원부터 거시적 차원까지 모든 차원의 세부 양식을 흥미로운 프랙털로 설계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식한다. 이들이 고딕 대성당과 페르시아 양탄자, 교향곡, 소설, 마르디 그라 축제 의상, 인공지능 프로그램 등 우리가 주변 세상에서 발견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게 복잡한 장식을 지닌모든 것을 만들었다.
우리는 자기 조직화와 무질서, 변종, 다양성을 축하하고 격려할 수 있다. 우리 일부는 이미 이렇게 하고 있고, 도덕률까지 만들었다. 알도 레오폴드가 주장하는 대지 윤리 Land ethic가 그런 것이다. “어떤 것이 생명 공동체의 온전함과 안정,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경향이 있으면 옳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옳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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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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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인간

사회 2022. 8. 20. 22:30

- 일생동안 일만 하고 지내다가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였고 피할 수 없는 것이면 무엇이나 달게 받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손상되기를 거부했던 강인하고 씁쓸한 표정의 한 사내 (알베르 까뮈 Albert Camus, 최초의 인간 중에서)
- 개념의 발견 또한 위대한 것이었다. 정갈한 사고를 위해 복 잡한 예외들이 제거되고 추상화된 개념은 사상과 사유의 폭발적 발전을 도왔다. 개념은 동등하지 않은 사물을 등치시킴으로써 발생한다. 하나의 나무가 다른 나무와 완전히 똑같은 경우가 없는데 나무라는 개념이 나무의 개성적인 차이를 임의로 탈락 시키고 다양함을 망각하게 한다. 실체적인 그나무는 나무라는 말에 의해 구성되고 묘사되며 측량되고 꾸며지고 오그라들며 채색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 개념은 부모, 형제, 친구, 이 웃, 민족으로 편리하게 묶였다. 반면 보편과 개념을 위해 자르고 베어지고 탈락된 것들의 희생은 컸다. 평범이 번식하여 특별함 은 사라졌고 보편을 위해 특수들은 갈 곳을 잃었다. 개념을 위해 다채로움이 멸종된 자리에 존재적 단순함이 들어섰다. 가라타니 고진(谷行人)의 말처럼 지금까지 사람들은 개인을 같은 가족으로서, 같은 민족으로서, 같은 국민, 같은 인류로서만 승인해 왔다. 요컨대 고차적인 존재를 통해서만 개인을 인정해 왔던 것이지, 개인을 단지 개인으로서 인정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단순화는 단번에 질긴 생명력을 얻게 되는데 그 진화적 끝자리에 회사인간은 존재한다. 평범과 보편이라는 뿌 리에 회색과 시시함이 더해진 회사인간은 19세기 이후 풍요롭 게 지구에 퍼져 현대 인간에서 수적으론 절대적 자리를, 문화적으론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 그들의 꿈은 늘 박멸 당한다. 평범한 대중은 비범을 꿈꾸고 행복을 집요하게 요구하지만, 대중문화에 의해 간접적 마스터 베이션으로 늘 마무리되면서 꿈은 접힌다. 그리하여 대중은 불 만이 내면화된 집단이 된다. 회사인간은 사회와 대중 사이, 산업 과 시민 그 언저리에 서식한다.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개별 적인 회사인간의 한계는 그의 잘못도 아니고 불찰 또한 아니다. 19세기 이후 진행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 평등 사회로의 역 사적 이행은 개별적이던 인간의 삶을 대중과 보편의 세계로 완 전히 편입시킴으로써 광범위한 불행을 선사했던 것이다. 회사 인간은 죄가 없다.
-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 중 하나인 미국의 워런 버핏이 계급에 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계급 투쟁이 현재 세계와 들 어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단지 한 계급의 일방적 승리 상태가 만 들어내는 착시”라 했다. 그 자신은 상위 1%의 자본가 계급에 해 당함을 자인하며 확연한 계급 구조의 실체를 반증했는데 중요한 것은 그가 상위 1% 부자라는 사실이 아니라 1% 외의 인간들은 늘 자신의 육체와 능력을 놓고 쓸모를 고민해야 하는 계급적 자각이 없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실이다. 계급은 사회의 구조가 만든 형태이므로 그 사회적 형태의 변화를 근본적으로 사유하고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 좋은 사회의 출발이다. 다 수의 사람들이 쓸모라는 불안함에서 해방되는 길이다. 그렇지 만 이런 얘기조차 여전히 현실에서는 쓸모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쩌지 못하는 회사인간에겐 멀고 먼 이야기가 되고 만다. 다만, 거지같은 쓸모'를 누가 찬양했건 말건 싱거운 농담처럼 무시하고 나만의 일을 찾아 그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인간의 길을 가게 되기를 힘겹게 바랄 뿐이다. 세상의 월급쟁이 회사인간들이 쓸모를 걷어차고 함께 손잡는 날은 올 것인가.
- 역사적으로 우리는 과연 시간에 맞는 보수를 받고 있는 것일까.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내세운 주장에 따르면 중세시대 사람들은 일 년 중 반 정도만 일을 했다고 한다. 공휴일은 141일이나 되었다고 설명하며 영원히 노동으로 고통 받는, 일하는 현대 인류, 회사인간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앞으로 다가올 자동화의 위험은 자연적 삶을 훨씬 더 파탄시키는 기계화와 인공화가 아니라 삶의 인공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의 생산력이 매우 강렬한 삶의 과정 속에 흡수되어 수고와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자연적 순환을 따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중세시대 사람들은 일 년 중 반 정도만 일하였다. 공휴일은 141일이나 되었다. 평일의 기하급수적인 확대는 노동자들이 새로 도입된 기계와 경쟁해야만 했던 산업혁명 초기의 특징이다. 산업혁명 이전 15세기에는 근로시간이 영국에서는 총 11시간에서 12시간이었으며 17세기에는 10시간 정도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19세기 전반의 노동자들은 그 이전 세기의 가장 빈곤한 계층의 사람들보다 더욱 열악한 조건에서 살았다. 우리 시대가 달성한 진보의 정도는 일반적으로 과대평가 된 것이다.”
- 사실을 보충하면 13세기 영국의 농노는 일주일에 31시간 노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리오 휴버먼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에서 농노는 제 경작지에서 노동하는 3일 동안 관리나 통제를 받지 않았고 경작지에 대한 점유권과 상속권도 농노가 가졌다고 전한다. 말하자면 농노는 일일 5시간 노동에 무상 제공되 는 주택과 평생 고용이 보장된 정규직으로서 주택과 고용을 자 식에게 대물림했다. 또한, 농한기 몇 달은 일하지 않았고 종교적 인 행사와 마을 축제에도 자율적으로 참여하며 여유를 보냈다. 무엇보다 오늘 회사인간이 가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게 없었다. 
- 절대로 가격을 흥정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삶. 운명이 부여하는 찬스, 살거나 죽을 기회 그것을 놓치지 말라 (산도르 마라이, 하늘과 땅 중에서)
- 외로움, 불안은 자유의 조건이다. 집단에 속한 정규적이라는 소속감으로 외로움은 사라진다. 가처분소득의 증가와 그로 인한 소비와 소유는 불안을 줄여 준다. 대신 소속감과 소유로 인해 자유는 멀어진다. 자신의 생각을 지우면 편안하다. 집단의 생각을 자기 생각인 양 하면 된다. 힘들게 자기 생각을 쥐어짤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내 감정, 나의 사유, 나의 취향은 사라진다.
-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금욕이 수도원의 방에서 나와 직업생활에 옮겨지고 현세적 윤리가 지배하기 시작함에 따라 이 금욕은 (중략) 근대적 경제 질서의 강력한 우주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이 우주는 오늘날 이 러한 동력기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의 생활양식을 압도적인 강제력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또한 그 마지막 화석연료가 다 탈 때까지 아마 규정할 것이다.
- 프로이트는 금욕주의의 뿌리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종교의 다양한 금제와 의례가 강박신경증 환자의 일상적 의례와 깊은 유사성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강박신경증 환자는 자기 안에서 일어난 충동과 유혹을 누르기 위해 혹은 그것을 예견하고 방지하기 위해 강한 금제를 설정하고 어떤 행위들 을 의례적으로 엄격히 수행하는데 이것이 종교 의례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경건한 사람은 죄악으로 완전한 타락에 빠지는 일이 많은데 이것이 참회라고 하는 종교 활동의 형태를 만들어낸다'고도 했다. 속죄와 구원이라는 미명하에 금욕주의적 조치가 이루어진 곳에서 발작적으로 신경증이 나타난다. 오늘 강박적인 신경증이 출몰하는 곳도 다르지 않다. 월급 쟁이의 책상정리, 유난히 일찍 잠에 드는 일요일 저녁, 금제가 많고 규칙이 많은 곳, 수많은 충동들을 억제하기 위한 규정들, 더욱 경건해지는 의례, 창업자의 신적 추앙. 철학자 니체는 금욕 주의자들을 비난하며 기계적인 활동과 그것과 함께 행해지는 것, 절대적인 규칙성, 꼼꼼하면서도 생각이 없는 복종, 단호하게 고정된 생활양식, 완전히 짜여진 시간, 비인격성이나 자기망각, 자기무시를 위한 어떠한 허가, 그뿐 아니라 그것을 위한 훈련 같은 것'이라 말했는데 여지없는 회사인간의 생활 바로 그것이다.
- 삶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제일이다. 그 러나 월급쟁이 금욕주의자는 스스로 잘라버린 욕망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는 욕망의 욕망까지 스스로 억압한다. 금욕, 그것은 가두어진 생활이다. 절제라 부르기도 하고 이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절제는 넘쳐나는 욕망을 모질게 베어낸다. 회사인간들은 일상의 모든 시간을 회사에 맞추고 욕망을 생각할 시간조차 스스로 베어버린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이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서인 월급쟁이들은 삶의 의미 있는 시간들을 조금씩 깎아낸다. 그것은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도 아니요 일상의 신성한 리추얼로 보기도 힘들다. 그건, 그저 그런 시시함이요, 째째함이다.
- 가난은 인간의 발명품이다. 인간이 차곡차곡 쌓아온 근대적 욕망이 그 발명을 도왔다. 싸구려 옷의 해진 팔꿈치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가난이다. 구두 앞굽이 뭉텅해지고 마 모된 신발 뒷굽이 신경 쓰이면 그건 가난이다. 그것이 신경 쓰이게 만드는 사회에서 가난은 비로소 작동된다. 허름한 옷차림을 얕보는 사회에서 가난은 출발한다. 아무리 궁핍해도 궁핍함 이 신경 쓰이지 않으면 그것은 가난이 아니다. 확장해 보면 가진게 있고 없고, 신분이 높고 낮고, 남녀의 구분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사람 자체를 보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건 배후세계를 늘 의심하는 시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어린아이의 시선이라 말한 바있다. 모든 땅과 건물에 그 주인이 있다는 걸 믿지 않는 어린아이의 맑은 시선에 대고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엄연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로부터 빌려온 것 같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스피노자의 삶에의 의지다. 삶의 의지는 우리가 기쁠 때 생겨난다. 우리가 기쁠 때 코나투스는 증가한다. 우리가 슬플 때 코나투스는 감소한다. 그러므로 자신 을 기쁘게 하는 것들을 욕망하고 자신을 슬프게 하는 것들을 거 부하는 해야 한다. 기쁨은 우리를 의지로 충만하게 하고, 살고 싶게 하고, 높아지게 한다. 슬픔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낮아 지게 하고, 작아지게 만든다. 코사투스, 우리 삶의 의지 안에는 원래 소심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외적 작용에 일희일비하여 우리 안에 서식하 는 우주적 신의 씨앗을 말살하고야 말았으니 우리는 소심함으 로 뒤덮여 존재가 멈추게 되는 것이다.
- 19세기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 1867)는 그의 유일한 시집, 《악의 꽃(Les Fleuts du mal)》에서 시인 자신을 알바트로스에 비유한다. 새파란 창공을 자유롭게 날 수 있게 하는 큰 날개는 진흙탕 세상을 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깊은 사유와 넓은 형이상학적 시선을 지니고 무한과 자유에 닿기를 꿈꾸지만, 이겨야 하고, 밟아야 하고, 화내고 절망하고 얍삽해야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 인 삶 앞에서 자유는, 큰 날개는 맥을 추지 못한다. 시인은 세상 에 농락당하고 넘어지는 알바트로스에 자신을 투사한다. 핍진한 세상이 자유로운 인간을 조롱한다.
- 그대는 모르는 사이 사회가 들씌운 온갖 가면, 페르소나로 덮여 있다. 그것을 알게 되면 가면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시도로 사회와 싸우게 된다. 페르소나와 그대는 한데 엉겨있어 메스를 깊게 들이댈수록 고통스럽지만 견뎌라.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 는가. '그대는 그대를 견딜 수 없는 것인가? 회사인간, 그 너저분 한 모욕의 삶부터 정리하고 벗겨내라. 서서히, 신중하게, 부드럽 게, 하지만 가차 없이!
회사인간은 나 짜라투스트라가 증오하는 '현자(顯者)'다. 똑 똑한 채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자들, 바른 길은 애초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길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회사인간의 삶은 가엾다. 나는 종국에 그대 삶이 부정되고 부끄러워지는 사태만큼은 막고 싶은 것이다. 정신 차려라.
- 오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갈망하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 (핀다로스, 아폴로 기념 경기 우승자에게 바치는 축가 3)
- 그대는 조금 늦게 필 것이다. 조급해 하지 마라. 늦은 만큼 살 떨리는 환희가 기다리고 있을 테다. 움츠렸다 활짝 터져버리 는 황홀 말이다. 그 전에 그대 안에서 걸려든 것은 어떻게든 잡 아야 한다. 잡지 못하거나 물러서거나 피하면 꽃을 피울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굴욕의 시간에 그대가 해야 할 일은 이것저것 매달리며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품고 또 품고 응축하고 또 응축해서 어느 날, 어느 순간 그대 안에 걸려든, 내 마음을 흔드는 그것을 놓지 않으리라는 신념을 키우는 것이다. 그때는 반드시 온다. 일 잘하려 애쓰지 말고 그대 주변을 먼저 살피라.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대에게 맞닥뜨려진 것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대를 꼭 붙들고 지키 면서 말이다.
- 경박한 일상, 무엇이든 알고 있어야 하고 뭐든 잘해야 한다 는 강박에 질질 끌려 다니는 삶에서 빠져 나와 침묵으로 자신에 게 침잠하라. 고요하게 빠져들 때 회사인간의 몸은 오래 전 '진 짜 인간이었던 때를 불현듯 기억해 낼 것이다. 한 인간은 그가 말하는 것들에 의해서보다 침묵하는 것들에 의해서 한결 더 인 간이다. 우리는 회사인간이 아니라 진짜 인간이다. 광막한 사막 에 홀로 의젓하게 존재하는 오아시스 같은 인간이며 지구를 통 째로 사는 신화 같은 인간이다. 입가에 미소, 의연하게 출입문을 밀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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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한국

사회 2022. 8. 2. 21:52

- 모순을 수용하고 활용하는 능력은 단순히 교육으로 만들기 어렵다. 오히려 민족 고유의 특질,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DNA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한국인이 가진 이런 특성은 산업화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폄하되고 숨겨져 왔지만, 그 보물을 발견한 한국 기업 덕분에 지금까지 소중하게 이어져 내 려올 수 있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지닌 장단점의 근본을 거 슬러 올라가면 한국인의 특성 또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이 가진 모순적 특성을 가장 극적인 형태로 설명한 글이 있다. 바로 ‘푸른 눈의 영국 기자'라고 불리는 마이클 브린 Michael Breen 이 쓴 『한국, 한국인』이라는 책이다.
브린은 한국인이 '좋으면서 싫고, 기쁘면서 슬픈' 모순되는 감정뿐만 아니라 이런 주장도 쉽게 수용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나머지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마지못해 수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은 둘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서 다른쪽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결국 가격도 저렴하고 질도 좋은 제품을 요구한다든지, 안전에 필요한 비용을 줄이면서 더 안전해지기를 바란다든지, 일을 꼼꼼하게 하면서도 빨리 해내려고 하는 것이다.
- 필자는 이런 한국인의 '모순'을 경영에 적용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 집단 안에서 강한 주체성을 지닌 모순 
▶ 개방성과 폐쇄성이 공존하는 모순
▶ 빨리빨리 속 은근과 끈기의 모순
▶ 다양성을 받아들여 융합해내는 모순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모순을 품어내는 것이야말로 전 세계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한국식 경영'의 실체와 본질이다.- 오히려 천성적으로 모순적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욱 적 절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모순은 아래처럼 새로운 능력으로 다시 정의될 수 있다.
▶ 양극단을 모두 유연하게 오가는 능력
▶ 상황에 따라 특정한 능력을 발휘한 후 다시 회복하는 능력
▶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능력
▶ 서로 배타적인 것을 화해시키는 능력
물리적 세계에서의 모순은 서로 양립할 수 없지만,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모순은 세상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새로운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 일본식 경영'이라는 말이 탄생한 것은 1970년대다. 미국은 당시 일본 기업의 미국 진출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그들의 방식 을 '일본식 경영'이라 명명하며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경영학자들이 '일본식 경영'이라고 부른 방식은 철저하게 집단적 의사결정이 중심을 이룬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합 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당연히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단 의사결정이 이뤄지면 일의 진행 속도가 빨라 지고 그 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적다. 즉 모든 구성 원이 문제에 대해 이해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일 본식 경영의 특징이다.
- 이런 특징은 집단주의와 의사결정 방법으로 설명된다. 집단주의는 개인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개인보다는 그들이 속한 집단에서 정체성을 찾는다. 일본의 집단주의는 집단의사결정 체제로 연결된다. 집단 구성원의 동의를 먼저 이끌어내고, 그 동의를 바탕으로 행동을 독려한다. 이런 일본식 경영은 1980년대 말까지는 전 세계에서 기세를 떨쳤다. 경영학의 측면에서 본다면, 불량률 제로에 도전하는 고도의 인간 정신이 강조됐고, 완벽한 적기 생산을 위한 기법이 고안됐다. 일본식 경영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완벽을 추구하는 '카이젠Kaizen, 世人'의 문화다. 일본은 창의성을 높이는 것보다 만들어진 아이디어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이나 아이디어가 상품화되는 과정을 개선함으로써 혁신을 추구한다. 문제는 이런 일본식 경영이 1990년대에 접어들며 한 계에 부딪혔다는 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경영에서는 '원가절감'보다는 '고부가가치 창출'이라는 새로운 요구가 대두됐다. 불량률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고 적기에 납품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점차 세상은 '창의적인 제품'을 만드는 시대로 바뀌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일본 기업의 어려움이 시작됐다. 한국과 달리 개인의 주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집단주의는 창의성 발현에서 빈약한 모습을 드러냈고, 조금씩 개선하는 카이젠으로는 파괴적 혁신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 전쟁에서 일본 기업이 많이 쇠퇴한 것은 바로 이런 점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과 같은 집단주의에서 출발했으면서도 주체성을 드러내는 모순적 전개를 품고 있었다. 덕분에 창의성의 시대에 조금씩 적응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시대를 이끌어가게 됐다.
- 일본의 문회심리학자 이누미야 요시유키 大同行는 『주연들의 나라 한국 조연들이 나라 일본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행 등 차이를 규명한다. 그는 두 나라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자기 개념'을 꼽으며, 한국인은 주체성 자기 개념'을, 일본은 '대상성 자기 개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주체성 자기 개념은 자신을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주체로, '대상성 자기 개념은 스스로를 사회적 영향력을 수용하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에 따르면 일본의 버스 운전사는 지정된 정류장 외의 장소에서 정차하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정해진 규칙이고, 개인은 그 규칙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운전사는 이를 따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버스 운전사가 지정된 정류장 외의 장소 에서 버스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 버스를 뒤늦게 발견하고 뛰어오는 승객을 위해, 혹은 내리는 곳을 지나쳐 하차를 요구하는 승객을 위해 운전사는 경우에 따라 정해진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정차한다. 요시유키에 따르면 일본과 한국 운전사의 행동은 자기 개념의 차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집단주의는 '역동적으로 살아 있는 집단주의'를 만든다. 이는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에 적합했으며, 앞으로의 불확실한 미래에는 스스로 대안을 만들고 함께 전진해가는 미덕으로 발전할 것이다.
- 한국의 문화적 뿌리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바로 '변격變格이다. 그 안에는 '예술에서의 멋'에 관한 한국인의 관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말 자체에 일정한 모순이 내포돼 있다는 점이다. 일정한 ‘격格'이라는 것이 기존에 존재하고, 그것으로부터 '변變이 가미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변격이란 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변형이 아니고 격에 갇힌 변형도 아닌, '격과 함께하는 변형'이다. 바로 ‘격'과 변'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다.
변격에 대한 설명을 시인 조지훈의 「멋의 연구」를 통해 더욱 자세히 살펴보자. 그에 따르면 멋이란 형식상의 격식을 바탕으 로 한다. 즉 멋은 격에 맞아야 한다. 하지만 격식에만 맞는다고 멋이 갖춰지는 것도 아니다. 격식에는 완벽히 맞지만 멋이 없는 예술이나 행위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격식에 맞으면서도 격식을 뛰어넘을 때, 즉 격이 맞는 변격, 그리고 변격이면서 격에 제대로 맞을 때 우리는 멋을 느 낀다. 조지훈은 이를 '초격미格美’라고 부르는데 '변격이합격 變格而合格, 즉 '격에 들어가서 다시 격에서 나오는 격'을 말한다. 
변격의 매력은 자유로우면서도 새로움을 지향하는 데 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늘 새로움을 동경하고, 동경을 위한 창의적 도전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 자유와 파격성은 한국인이 '멋을 느끼는 순간'을 살펴보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한국인은 무엇인가 강렬하게 전개된 이후 맞이하는 정적 혹은 정지 상태에서의 멋을 느낀다. 예를 들어 가야금 연주에서는 선을 강하게 튕기면서 연주를 할 때보다 연주가 정지된 상태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서 멋을 느낀다. 또 한 가지, 조금 어긋난 데서 오는 멋도 발견할 줄 안다. 이를 두고 민속학자이자 국문학자 정병욱은 멋은 조화를 기저로 '원 상原狀에서 약간의 변화를 줬을 때 느껴지는 일종의 미의식'이라 고 말했다. 즉 한국적 미는 원형을 벗어나서 파격성을 띨 때 가장 확실하게 보인다는 의미다. 한국의 사물놀이가 매우 자유롭 고 파격적인 형태의 즉흥적 흐름이 많다는 점, 그리고 마당놀이 가 진기한 상황에서 파격적인 익살과 해학을 터뜨린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 쿡은 잡스가 전날 180도 다른 입장을 취했다는 것을 잊게 만들 정도로, 어떤 문제에 대해 입장을 아주 빨리 바꿨으며, 매일 그런 것을 봐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무엇을 바꾼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잡스는 자신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것이야말로 잡스가 가진 능력gift 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잡스의 이런 성향은 오늘날 경영 환경에서 '말 바꾸기를 잘하는 비일관적인 모습이 아니라 '용기'라고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물론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일관적 비일관성'이 관철되기 위해서는 비일관성이 있기 전에 일관성이 전제돼야 한다. 잡스는 제품에 관한 확고한 철학, 즉 완전하게 전제된 일관성을 갖고 있었다.
▶ 고객의 니즈를 창조할 수 있는 직관적인 제품
▶ 무결점의 완벽한 제품
▶ 하드웨어, 시스템, 콘텐츠를 통합한 제품
- 이처럼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이 있었기에 잡스는 시시각각 비일관적인 전략 수정을 통해 일관성을 추구할 수 있었다. 리더는 목적을 위해 언제든 방법론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반대되는 성격의 방법론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 어제 이 야기한 것과 오늘 이야기한 것이 반대된다는 이유로 일관적이 지 않다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변덕이 아니라 목적을 이 루기 위한 유연성'이다.
- 보통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이라고 하면 의사결정 역량, 혹은 의사소통 역량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변화가 빠른 시기에는 이 런 역량만으로 모순된 활동으로부터 대처하기 쉽지 않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인지 복잡도'다.
보통 사람은 복잡한 환경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그리고 대안 이 너무 많을 때 판단을 어려워한다. 이때는 객관적 자료보다는 본인의 경험과 가치관을 우선순위에 두면서 판단할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감안해 서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인지 복잡도가 높은 사람'이다. 이들은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는 넓은 시각을 통해 논리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모순적 상황에서도 두 요소를 함께 고려할 수 있다. 인지 복잡도가 높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일상 의 평범한 상황에서도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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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여행은 우리의 삶을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우리를 변하게 한다. 여행을 하며 이제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예감할 때가 있다.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직감할 때가 있다. 어쩌면 바뀌는 건 세상이 아니라 나일 것이다. 때론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할 필요도 있다.
- 돌아보면 길 위에서 행복을 가르쳐 준 사람은 평범하고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 라 얼마나 많이 나눌 줄 알고 자신과 주변 세상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만약 갈림길 앞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확실치 않다면 여행을 떠나라. 어쩌면 그 여정에서 당신이 찾고 있는 답을 찾을 수 있다.
- 우리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앞으로의 인생을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면 당신은 그럴 수 있다. 그러지 못하다면 그 또한 당신이 결정한 것이다. 오랫동안 길들인 습관과 소유한 것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바람이 당신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 한국 사회의 과열된 부동산 투자 열기는 집을 재산 증식의 유용한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나는 한국인들이 쉽게 행복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잃어버린 ‘집home(정서적 의미의 공간 때문 이라고 생각한다. 집값에 민감하지만, 반대로 이들은 마음의 집 을 짓고 살지 않는다. 자주 이사를 다니고 내 집이라고 할 만한 장소가 없다. 집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와 느낌이 구체적이 지 않다. 이런 문화는 특히 아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안정을 느끼고 심적으로 쉴 수 있는 공간이 부재하다는 건 무얼 뜻할까? (home'이 없다는 것은 뿌리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자라면서 정서적인 연대를 느낄 수 있는 공간과 장소를 마음속에 간직하지 못한다는 건 곧 나의 근원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년의 75퍼센트 가 이민을 가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이전의 조사라서 지금은 수치가 다를 수도 있지만, 충격적인 사 실이다. 이는 뿌리를 상실한 경험과 맞닿아 있다. 한국의 젊은이 들은 자신의 나라,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깊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들의 왜곡된 교육열을 보고 있으면 미국의 코미디언이자거침없는 사회 비평가인 조지 칼린George Carlin. 1937~2008의 독설이 떠오른다. 그가 어느 강연에서 한 말인데 내 귀에 박힌 문장들을 옮기자면 이렇다.
“나는 오늘 지난 30~40년 동안 이 나라를 지배해 온 특별한 종류의 헛소리를 언급하고 싶다. 무엇인고 하니, 지나친 헌신으로 아동 숭배'라고 할 수밖에 없는 헛소리다. 요즘 전문직 부모 라는 인간들 중에는 자녀의 일정을 관리하고 강박적으로 기저귀 냄새를 맡으며 자녀의 어린 시절을 훔치고 있는 자들이 있다.”  “심지어 유치원 입학시험이 있는 곳도 있다. 불쌍한 어린 것들! 자기 성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성공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건 정말 정교한 형태의 아동 학대 아닌가?
-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원하는 삶을 살지 않는 이들의 마 음엔 행복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나만의 행복 찾기! 결국 내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부모로서 나는 아이가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원하는 삶이 무엇인 지 스스로 결정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이걸 하면 넌 행복할 수 있을 거야, 네 삶에 도움이 될 거야" 라며 강요하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다. 그리고 훗날,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탐험한 후 내리는 결정과 선택은 존중해 줘야한다.
- 어린 시절일지라도 지나친 개입은 스스로 살아갈 자립심을 기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미 새는 새끼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지만 대신 날아줄 수는 없다.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하고 스스로 날 수 있을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한다. 아기 새는 제대로 날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의 충돌을 경험할 것이고, 그때마다 아프고 쓰라릴 것이다. 하지만 잘될 때까지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이 인생이다. 실패는 삶의 일부이고 가장 강력한 선생님이다.
-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 중 〈법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런 말을 썼다.
내가 그들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 다만 그들도 햇빛 아래 서 있지만 태양을 등지고 있는 사람들 이라는 것뿐 그들은 오직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그 그림자를 자신의 법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인 것을. 그렇다면 그들에게 태양이란 그림자를 던져주는 것 외에 무엇인가?
이 글에서 태양은 마주 보는 자에게 따뜻한 빛을 주지만 등진 자에게는 그늘만 드리우는 존재다. 앞서 천국과 지옥 이야기에서 나온 기다란 숟가락과 같은 상징이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 장소, 현상 등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선불교의 고전적인 문답을 인용하자면 “선과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의 입”이다. 이것은 굉장히 긍정적인 대답이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악을 선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이니까. 우리는 긴 숟가락을 들고 다른 사람의 입 에 음식을 넣어줄 수 있다.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 밝은 햇살을 느끼고 싶다면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
- 누구나 자기 연민에 빠질 때가 있다. 더욱이 힘든 상황, 역경에 처했을 때 나를 가엾게 여기며 공감해 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 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한의 민족임을 역설하는 한국 사람을 보면 그런 감정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자 신을 피해자라는 인식에 가둬놓고 어떤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성장하게 하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한을 품고 멈춘 자리가 상황을 개선하고 앞으로 나아가 기 위해 적당한 자리인지 가늠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상황이 일 어나기까지 자신의 잘못은 없는지, 정말 나는 피해자이기만 한 것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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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타임

사회 2022. 6. 1. 21:28

- 노동시간은 자본주의 작동에 워낙 중요해 서, 마르크스는 《자본론》의 한 장 전체를 19세기 잉글 랜드에서 노동시간을 감축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 에 할애했다. 그는 당대 산업 분쟁 보고서를 활용해 고 용관계의 본성을 고찰했고, 노동시간 길이는 다양한 요청들이 사회적 관계로 굳어짐으로써 결정되기 때문 에 가변성을 띤다는 점을 강조했다. 마르크스는 하루 노동시간이 오직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는 정도의 길이인 상황을 상상해보라며 우리를 부추긴 다. 실제로 인류 역사에서 수십만 년에 달하는 오랜 기 간 동안 먹을 것과 그 외 생계수단을 해결하는 데에는 주당 약 15~17시간 정도가 걸렸다. 나머지 시간은 다른 소일거리에 쓰였으리라.
자본이 지배하기 전이었던 불과 수백 년 전만 해도 많은 이들의 생존은 주로 해야 하는 노동의 양 에 의해 결정됐다. 농노들은 그들 자신과 가족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공유지를 경작했다. 시 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 노동생활의 관점에서 볼 때, 중세시대 일과 시간의 관계는 분간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공유지 안에서 필요한 만큼 고된 노동을 하 거나, 그들 각자에게 주어진 땅쾌기에 대한 답례로 주 인에게 잉여를 제공했다. 노동은 계약된 시간보다는 계절의 순환과 공물 및 소유권을 둘러싼 전통적인 위 계에 아주 많은 지배를 받았다.
- 물론 여기서 장밋빛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 전자본주의 시대 생활과 노동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회가 고용자의 시계에 좌우되지는 않았지 만 가부장적 친족 구조며 그 밖에 바꿀 수 없어 보이는 관습 같은 것들에 지배되었던 것이다. “길드 장인은 일꾼을, 귀족은 농노를, 남성은 여성을, 노인은 젊은이를 착취했다.
- 어째서 우리는 케인스가 예측한 노동시간 단축 근처에도 가지 못했는가? 영국에서는 아직도 주 당 평균 40시간 이상 일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 이는 케인스가 2030년에 도달하기를 바랐던 주당 15시간 노동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
경제성장과 이런 성장의 이익을 분배하는 문제에 대한 케인스의 낙관적 태도는 설명이 필요하 다. 일단 그가 경제성장에 걸었던 믿음은 크게 어긋나 지 않았다. 193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사이에 서유럽 과 북아메리카에서는 1인당 GDP가 네 배 이상 증가 했다. 하지만 북반구 경제가 (케인스의 예측대로) 전보 다 훨씬 부유해졌는데도 어째서 주당 노동시간은 이 런 증가세에 맞춰 감소하지 않았을까? 이는 분배의 중 요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케 인스의 낙관론에 내재한 결함이 드러난다. 기실 19세 기 말과 20세기 초 수십 년간 이루어진 생산성 증대와 노동시간 단축 간의 상관관계는 경제적 또는 자연적 '법칙'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노동조합과 공인들의 정치 캠페인이 힘을 얻게 된 결과였다. 
- 가장 유명한 예술가, 작가, 지식인들 은 집안이 부유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재력 덕분에 매 일 밥벌이를 해야 하는 고난을 멀리할 수 있었고, 더 창의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다. 러셀도 분명 알았으리라. 그 스스로가 (우리가 그 자체 로 목적'이라고 부를 만한) 인생의 이런 측면에 공간과 시 간을 들여 즐길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소수였기 때문이 다. 이 세상 다수에게 단지 무언가를 자유롭게 시도해 볼 만한 시간이나 물질적 안정이 없어 얼마나 많은 미 술품, 음악, 시, 영화가 빛을 보지 못했는지는 상상에 맡길 뿐이다. 
- 역성장과 탈성장 지지자들은 긴축과 희소성, 불경기라는 운명(일반적으로 평탄하거나 성장하지 않는 경제와 결부되는 사회경제적 결과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제 모델을 내세우는 대신 나눔과 흥겨움, 돌봄과 공동선이라는 원칙을 근간으로 한 대안적 생활양식을 진작하는 경제적 척도와 목표를 옹호하는 주장을 펼친다. 선도적인 생태경제학자 이오르고스 칼리스와 그의 동료들은 이렇게 요약한다.
지속가능한 역성장은 생산 및 소비 규모를 공정하게 줄임으로써 지역과 세계 규모에서 장단기적으로 생 태학적 조건을 향상하고 인간 행복을 증진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이라는 형용사는 역성장이 무한하게 지속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행/변환 과정과 최종 상태가 생태적·사회적으로 이 롭게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역성장 이 제안하는 패러다임은 경제성장 없이도 인간의 진 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 역성장 지지자들이 생각하기에 새로운 경제로의 이행은 자원 채취보다는 자원 순환에 기초한 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다양한 정책 수단에 의해 뒷받침될 것이다. 여기에는 기본소득(개인의 수입이나 고용 상태와는 관계없이 소득최저선을 지켜주는), 광범위한 보편 서비스(무료 대중교통, 주택, 의료 서비스, 교육), 개인 자산에 대한 높은 세율과 규제(소비주의를 위축시키고 에너지와 자원을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사용하도록 고무하는)가 포함되곤 한다.
역성장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노 동시간, 그리고 그 단축과 관련이 있다. 적게 일하기 는 노동과정의 일부로 사용되는 자원의 절대적인 양 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줄리엣 쇼어Juliet Schor가 말한 '노동지출 순환에 따라오는 탄소 집약적인 소비의 양 역시 감소시킨다. 27개 OECD 국가의 환경 영향 을 평가한 연구에서 쇼어와 동료들은 노동시간을 4분 의 1 단축할 경우 탄소 발자국을 30%나 줄일 수 있다. 고 추정했다. 평균적인 영국 노동자의 경우 이는 주 당 42 시간의 노동을 31 시간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또는 주 4일 노동으로 줄인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 적게 일하기 위한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하루 노동시간에 대한 정량적인 감정을 바꾸는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세계 많은 나라에서 토요일은 고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날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는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역사적 성취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다수 노동자들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이틀간의 주말을 누리지 못했다. 이틀간의 주말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노동자가 매주 이틀을 연이어 쉴 수 있는 권리를 정치적 의제로 만들고 캠페인을 벌인 노동조합과 사 회운동이 힘겨운 투쟁 끝에 얻어낸 승리 덕분이었다.
20세기 노동자운동이 이틀간의 주말을 위해 싸웠듯, 21세기에는 금요일을 일하지 않는 날로 지정 하기 위해 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투쟁은 더 이상 공장에 국한되지 않고 가정에서 여성이 부불 노동자로서 수행하는 노동에 도전하고 이를 되찾는 과정을 거치며 모든 사회 영역에서,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 세계에서도 벌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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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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