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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9.05 기후변화 그게 좀 심각합니다 4
  2. 2023.08.18 2050 미중 패권전쟁과 세계경제 시나리오 1
  3. 2023.08.18 권력과 진보 9
  4. 2023.08.14 초거대 위협
  5. 2023.08.14 기후 책
  6. 2023.08.08 표류하는 세계
  7. 2023.06.30 지금 우리가 바꾼다
  8. 2023.06.22 각자도사사회
  9. 2023.06.21 디컨슈머
  10. 2023.06.18 2050 패권의 미래 1

- 용어와 관련해 덧붙이자면, '지구온난화'는 현실과 거 리가 먼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급증하는 기상이변은 기 후가 단순히 변화한다기보다는 붕괴의 길로 접어들고 있 다는 신호입니다. 저는 이를 반영하는 대체 용어로 '지구 가열화 global heating'와 '기후 붕괴 climate breakdown'를 쓰 겠습니다. 이 두 용어는 우리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훨씬 더 정확하게 묘사하기에 점점 더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 1856년 미국 과학자 유니스 푸트Eunice Foote는 이산화탄 소의 놀라운 열 흡수 성질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공기와 이산화탄소를 각각 채운 병을 햇볕이 내리쬐는 곳 에 두는 간단하고도 효과적인 실험을 바탕으로 쓴 논문이 었습니다. 이산화탄소를 채운 병이 공기를 채운 병보다 훨 씬 더 뜨거워졌기에, 푸트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같은 원리로 태양열을 흡수하리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푸트는 심지어 "대기에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섞이면 기온이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150년 전에 한 지 구온난화에 대한 최초의 예측이었죠.
몇 년 뒤 1860년대, 아일랜드 과학자 존 틴달 JohnTyndall 이 푸트의 연구를 좀 더 발전시켰습니다. 다양한 가스로 수백 가지 실험을 한 틴달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증기, 메탄(모두 온실가스)의 농도 변화가 “기후를 변화시 킬 것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면 스웨덴 물리학자 스반 테 아레니우스 Svante Arrhenius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가 지구 온도와 직결된다는 현대 이론의 기초를 확립했습 니다. 아레니우스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들 면 빙하시대 수준으로 기온이 떨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이산화탄소 농도가 두 배로 증가하면 지구 평균기온 이 섭씨 4도 오르리라고 예측했습니다.

-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두 배로 증가할 때 지구가 더워지는 정도를 '기후 민감도'라고 합 니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1.5도~4도 사이로 추정 되며 가장 최근의 기후 모델들에서는 3.7도 안팎으로 계 산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레니우스의 예측과 거의 일치 합니다.
20세기에 들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 면 지구가 더워진다는 것이 사실화되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후반, 영국의 엔지니어이자 아마추어 기후학자인 가이 캘린더 Guy Callendar는 지난 50년 동안 지구의 기온과 이산화탄소 농도가 모두 상승했음을 증명하고 이 둘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캘린더의 주장은 팽배한 회의론에 부딪혔지만,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그가 옳다 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950년대에 캐나다 물리학자 길버트 플라스Gilbert Plass는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 증가와 지구 온도 사이의 연관성을 더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1953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현재의 증가세라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100년마다 지구의 평균기온을 섭씨 0.8도 씩 올릴 것이며 산업 성장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몇 세 기 동안 기후는 계속 더 더워질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습니다.

- 지켜지지 않는 협약들
IPCC 6차 보고서가 COP26 협상에 끼친 영향을 따지면, 협상자들이 그 무서운 메시지를 받아들이긴커녕 보고서 를 읽기는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따라서 COP26 이후에 도 온도 상승 폭을 1.5도로 제한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 니다. 오히려, 기후행동추적 Climate Action Tracker에 따르면 세계는 2100년까지 평균기온이 2.7도 상승하는 길을 걷 고 있습니다. 이는 '최선'의 추정치이므로 실제로는 그보 다 좀 더 높을 수 있습니다. COP26에서 약속한 단기 공약 들을 잘 지킨다고 해도 최선의 추정치는 2.4도로 여전히 너무 높고, 최악의 경우 3도에 이를 것입니다. 장기 공약들을 달성하더라도 2도를 넘을 것입니다. 이런 상승 폭이 얼핏 사소해 보여도 전 세계의 평균이라는 사실을 명심해 야 합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이 1.5도만 넘어도 여름 철 폭염, 극심한 가뭄, 파괴적인 홍수, 농작물 수확량 감소, 급격한 해빙, 해수면 상승으로 곳곳이 몸살을 앓게 되며 2도가 넘으면 지구촌 전체가 흔들릴 겁니다.
우울하게도 현재 (2022년 4월) 탄소 배출량의 80퍼 센트를 차지하는 경제 대국 가운데 어느 나라도 파리에 서 약속한 1.5도 제한 목표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 은 코스타리카, 네팔,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과 함께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아직 미흡한 실정입니다. 사실, 영국은 걱정스럽게도 후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 니다. 호주, 브라질, 캐나다, 중국, 독일, 미국 같은 곳에서 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시설을 계속 개발하고 있기에 기후 붕괴를 저지할 배출량 감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140여 개국이 탄소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 고 나무를 심거나 해서 초과 배출량을 상쇄한다는 이른바 '탄소 중립(온실가스 순 배출량 제로)'을 이루겠다고 약속 했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달성 시점을 거의 무의미할 만 큼 멀게 잡았지만, 130개 이상 기업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늦 습니다. 영국 기상청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은 10년 이내에 1.5도를 넘을 것이며 2023년 안에 넘을 확률도 10퍼센트나 됩니다.
- 세계가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목표한 가장 이른 시 점보다 훨씬 빠르게 1.5도 가드레일을 이탈하리라는 사실 은 이제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이에 따라 탄 소 중립을 이룰 때까지 배출되는 과잉 탄소를 기술적으로 흡수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런 기술적 해결책이 아직 필요한 규모로는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용이 많이 들고 환경에 해를 끼치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많은 국가가 금세기 중반까지 탄 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전 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기적으로(2030년까지) 배 출량을 줄이려는 진지한 대응이 부족하며 장기적인 탄소 중립 계획이 허풍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 마지막 빙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 도는 180ppm으로 매우 낮았으나 불과 8,000년 후(지질 연대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260ppm이 되었습니다. 2만 년 전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금보다 6도 이상 낮 았고 두께가 몇 킬로미터나 되는 빙상이 북미와 남미, 유 럽과 아시아의 대부분을 덮고 있었으며 해수면은 130미 터나 낮았습니다. 그런데 약 1만 2,000년 전에 기적에 가 까운 변화를 겪고서 지구는 우리 문명이 번성할 수 있는 온화한 세계로 변했습니다. 지구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었 던 이 시기에는 급격하게 기온이 올라 총 5,200 만 세제곱 킬로미터나 되는 빙상이 치즈처럼 녹아내려 막대한 융해 수가 바다에 쏟아졌습니다.
이때의 환경과 기후 대혼란은 나니아에서 에덴으로 전환되는 시점으로 플라이스토세 시대의 끝을 알렸습니다. 뒤이은 홀로세는 적어도 인간 활동이 개입하기 전까지 지구의 기온이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비교적 안정된 기후가 특징이었습니다.
그래도 많은 일이 벌어지기는 했습니다. 홀로세 초기 에는 거대한 빙상의 부스러기가 계속 녹아내려 해수면이 현재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동시에 고위도 지역의 얼음 층 아래 함몰돼 있던 지각 일부가 후빙기 지각 반동post- glacial rebound이라는 작용으로 빠르게 융기하고 있었습니 다. 이 작용은 스칸디나비아지방을 진도 8 이상의 지진으 로 뒤흔들고, 아이슬란드의 화산 분출률을 최대 100배까 지 끌어올리는 등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 현재도 후빙기 지각 반동은 한때 거대한 빙상으로 덮여 있던 지역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 추세와 는 반대로 스웨덴과 핀란드 연안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융기율이 여전히 높아서 마치 해수면이 하락하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지구 가열화가 계속되면 해수면 상승률이 융기율을 압도해 이런 현상도 곧 자취를 감출 겁니다.
홀로세에 인류가 급격히 팽창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 다. 온화해진 기후에 힘입어 수렵과 채집에서 농경으로 생산방식이 전환되면서 인간은 더 큰 공동체에 모여 살게됐고, 마침내 최초의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플라이스토세 시기에 비하면 확실히 안정적이었지만 홀로세에도 종종 기상이변이 일어났으며 그중 일부는 인류 문명 발전에 중 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8.2ka 이벤트('ka'는 '천만년 전'을 뜻함)로 알려진 한파입니다. 원인은 북아메리카 대 륙의 거대한 빙하호가 북대서양으로 흘러드는 사태가 벌 어졌기 때문입니다. 약 16만 세제곱킬로미터의 차가운 담 수가 흘러들면서 거의 하룻밤 사이에 해수면이 최대 4미 터까지 상승하고 멕시코만류가 정체되면서 냉각 상태가 몇 세기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 세계 곳곳의 기온이 5도까지 떨어지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가뭄이 수백 년간 이어졌습니 다. 이 극심한 가뭄은 뜻밖에도 인류 문명의 발전에서는 축복이었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물 부족으로 관개시설이 발달하고 사회 결속이 강해져 식량 부족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확실히 이 시기는 더 큰 공동체의 성장과 함께 인구가 증가했습니다.
8.2ka 이벤트는 주기적으로 발생해 홀로세의 온기를 전반적으로 떨어뜨리는 본드 이벤트 Bond Event로 알려진 한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다른 한파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북대서양 해류의 주기적인 변화나 태 양 활동의 일시적인 감소 때문일 수 있습니다. 가장 최근 현상인 소빙하기 (16~19세기 북반구의 완만한 냉각)는 태 양 활동이 줄어든 몬더 극소기 Maunder Minimum 와 대체로 일치합니다.
전반적으로 홀로세의 지구 평균기온은 상승세를 보 였고, 약 5,000년 전 기후 최적기 Holocene Climatic Optimum 에는 북반구의 여름 기온이 현재 수준이었을 수 있습니 다. 그때부터 기온이 계속 떨어지다가 20세기 초 인간이 불러온 지구 가열화가 본격화되면서 지난 반만년에 걸친 자연 냉각이 상쇄되었습니다.
- 1만~1만 5,000년 전, 빙하기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매머드와 마스토돈의 수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후빙기의 급격한 온난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 가 없지만, 창으로 무장한 인간 사냥꾼들도 큰 역할을 했 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매머드와 비슷한 종들이 진화의 쓰레기통에 버려지면서 그들의 먹이였던 초목들 이 번성하여 캐나다와 러시아 툰드라의 초원으로 빠르게 번진 것으로 보입니다. 어두운 풀은 밝은 풀보다 태양 복 사열을 더 많이 흡수하기에 이 지역의 기온은 0.2도, 일부 는 1도까지 올랐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정녕 이 장엄한 동물의 멸종에 일조했다면 이는 인류가 의도치는 않았으 나 환경에 개입한 최초의 사례이며, 인간 활동으로 인한 지구 가열화의 시초가 될 것입니다.
- 약 8,000년 전, 농경이 널리 보급되면서 우리의 먼 조상들은 농경지를 확보해야 했고, 그 결과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대규모 삼림 벌채가 이뤄졌습니다. 숲을 태우고 탄소를 흡수할 나무가 줄어들면서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260ppm에서 산업화 이전 수준인 280ppm으로 상승했습 니다.
다시 몇 천 년 뒤, 대기 중 메탄 농도도 상승하기 시작 했습니다. 특히 아시아 전역에서 점점 퍼지던 쌀 재배가 그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인공습지인 논이 강력한 온실 가스를 배출하며 오늘날 쌀 생산은 농업으로 생기는 메탄 배출량의 약 1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요컨대 인류의 생산방식이 수렵과 채집에서 농경으 로 전환되면서 지구 평균기온이 약 1도, 고위도 지역에서는 최대 2도까지 올라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 지구의 전체 인구가 500만 명 정도밖에 안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인구가 80억 명에 살짝 못 미치는 지 금 이 시점에 지구의 기후가 앞으로 어떤 혼란을 겪게 될 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다른 간빙기 때 패턴을 보면 지난 약 1만 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은 감소해 왔으며 지금쯤이면 250ppm 이하로 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 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2021년에 거의 420ppm으로 정점 을 찍었는데, 이는 산업화 이전보다 50퍼센트 증가한 수치 이며 약 1,500만 년 사이 가장 높은 농도입니다. 배출량을 대대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2070년대, 혹은 더 일찍 대 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화 이전의 두 배인 560ppm 에 이르러 지구는 심각한 온실 상태가 될 것입니다.
- 반면에 (우리의 터전이기에 관련성이 훨씬 큰) 육지 의 기온은 같은 기간에 평균 1.6도로 훨씬 빠르게 상승했 습니다. 육지 면적이 크고 해류가 열을 전달해 주는 북반 구는 대부분이 바다인 남반구보다 더 빠르게 가열됩니다. 지구 가열화의 영향이 북반구 육지에서 더 기세를 부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폭염과 가뭄이 더 자주, 더 오래, 더 강하게 발생합니다. 산악 빙하가 빠르게 후퇴하고 있으며 암벽을 지탱하던 영구 동토층이 녹아내리면서 낙석과 산사태 위험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가열 속도는 육지마다도 다릅니다. 스발바르 같은 고위도 지역은 열대지방보다 기온이 훨씬 빨리 상승하는데,  이를 극지방 가열화 증폭 현상이라고 합니다. 여러 원인 이 있겠지만 주된 원인은 흰 얼음이 어두운 바다나 육지 로 대체되어 태양열을 더 많이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고 위도 지역에서 가열화의 영향이 더 큰 것이 심각한 이유 는 이 지역에 지구상 대부분의 빙상과 동토가 있기 때문 입니다. 이 지역의 기온이 상승하면 빙상 붕괴, 해수면 상 승, 영구 동토층의 메탄 폭발이 지구 가열화에 박차를 가 할 것입니다.
남극반도(칠레를 향해 북쪽으로 길게 뻗은 땅)도 북 극의 스발바르와 마찬가지로 1950~2000년 사이에만 기온이 3도 가까이 오르며 지구 평균보다 5배 빠르게 가열 되고 있습니다. 지구의 꼭대기 알래스카는 지난 50년 동 안 기온이 2도 이상 올랐으며 가열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 습니다.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서 건물과 도로가 내려앉고 산사태의 위험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9년 알래스카의 32곳에서 고온 기록이 깨졌고, 앵커리지는 사상 처음으로 32도를 기록했습니다. 2012년 에는 여러 곳에서 27도를 넘었고 페어뱅크스에서는 31도 를 기록해 또 한 번 역대 최고 기록을 깼습니다. 믿기 어렵 지만 눈과 얼음의 땅으로 알려진 알래스카 전역에서 산불 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 북극의 제트기류(남반구에도 있습니다)는 찬 공기를 머금고 시속 400킬로미터로 이동합니다. 이름처럼 직선 으로 빠르게 흐르지만 때로는 강물처럼 굽이굽이 흐릅니 다. 제트기류의 속도는 고위도와 저위도 사이의 온도 차 이가 클수록 빨라집니다. 문제는 해빙이 녹아 드러난 어 두운 바다가 더 많은 열을 흡수하면서 두 위도의 온도 차 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제트기류가 더 느려지고 들쑥날쑥해져서 찬 공기는 남쪽으로 더 뻗어 내려가고 따뜻한 공기는 북쪽으로 더 치솟게 됩니다. 가열화가 빨라지면서 북극에서만 일어나던 일들이 북극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가끔 제트기류는 격렬히 굽이치다 못해 오메가(2) 모양을 만들기도 합니다. 저기압 영역이 중앙의 고기압 영역을 둘러싼 이러한 오메가 블록들은 서에서 동으로 이 동하는 기후 흐름을 막으며 한 번 만들어지면 쉽게 풀어 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 번에 몇 주, 심지어 몇 달 동안 이상기후가 이어지곤 합니다.
2013년 봄 미국과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맹추위가 기승을 부렸는데, 이런 현상은 극소용돌이, 다시 말해 오메가 블록을 휘돌아 북극의 찬 공기를 끌어 내리는 저기 압에 의해 일어납니다.
반면 블록 내부의 고기압권에서는 무더운 날씨가 이 어집니다. 7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2004년 유럽 폭 염과 2021년 북미 서부를 오래 괴롭힌 열돔이 그 예입니 다. 영국에서 기록상 가장 더웠던 2020년 봄도 3월부터 5월까지 오메가 블록이 상공 근처에서 고기압을 유지한 결과였습니다.
격렬히 굽이치는 제트기류의 블로킹(공기벽) 현상은 때때로 폭풍의 진로를 이탈시켜 재앙 같은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2012년 10월 허리케인 샌디는 북대서 양에서 고기압 블로킹의 영향으로 육지로 향해 뉴욕과 뉴 저지주를 강타했습니다. 2018년 허리케인 플로렌스도 비슷한 패턴으로 노스캐롤라이나주로 방향을 틀어 해안과 내륙에 대규모 홍수를 일으켰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허리케인은 속도도 느려졌습니다. 이 는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며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2017년 8월 텍사스주 남동부에 머물렀던 하비 가 대표적인 예로, 사상 최고의 강우량을 기록하고 홍수 를 일으켜 1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전 세계 바 람 패턴의 변화로 앞으로 허리케인의 속도는 10~20퍼센 트 느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북극의 가열화 속도가 급격하 게 빨라지면서 극지방과 온대지방 사이의 온도 차가 점점 줄어들고, 그로 인해 더 많은 블로킹 현상이 일어나 기상 이변이 더 심해질 거라는 점입니다. 기후 모델에 따르면 지구가 더워지면 블로킹 현상이 줄어들어야 합니다. 하지 만 현대의 관측 자료는 이런 예측을 뒷받침하지 못하기에 일부 과학자들은 기후 모델에 빠진 변수가 있다고 주장합 니다.
지구 가열화는 다른 기후 현상에도 변화를 일으킵니 다. 대표적인 것은 열대 태평양 중부와 동부에 난류가 흘 러드는 현상인 엘니뇨인데, 계절 다음으로 지구에서 가 장 영향력 있는 기후 현상입니다. 수천 년 전부터 2~7년마다 일어나며 보통 9~24개월간 이어지는 엘니뇨는 어떤 지역은 폭우가 쏟아지게 하고 다른 지역은 가뭄에 시달리 게 하는 등 전 세계 기상 패턴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습 니다.
지구 가열화가 앞으로 엘니뇨의 빈도나 강도를 키울 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극심한 '슈 퍼' 엘니뇨가 금세기 말까지 2배로 늘어날 수 있다고 합 니다. 엘니뇨는 적어도 일시적으로 지구 온도 상승을 부 채질합니다. 예를 들어 전 세계의 136년 관측 사상 여섯 번째로 더운 여름을 기록한 2015년 7월에는 강력한 엘니뇨 현상이 탄소 배출로 인한 기온 상승률을 10퍼센트나 끌어올렸습니다.
- 어쩌면 우리가 그린란드 빙상의 티핑 포인트를 이미 지났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정녕 지났다면 빙상이 얼마 나 빨리 붕괴할지도 미지수입니다. 현재까지의 추세로는 빙상이 전부 사라지려면 수천 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합 니다. 하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훨씬 더 빨리 붕괴할 수 있 다고 봅니다. 특히 이전 간빙기에서 한 세기 만에 해수면이 3미터나 오른 것이 그린란드 빙상이 갑작스럽게 엄청난 양이 녹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이 특히 걱정스럽 습니다.
그린란드 빙상이 본격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하면 해수면이 오르는 것은 물론 재앙적인 여파가 연쇄적으로 일 어날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여파는 북대서양에 차가운 물이 넘쳐 나면서 멕시코만류와 같은 해류들이 완전히 멈 추는 것입니다. 이는 북반구에 한파를 몰고 올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상 패턴에 큰 혼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 그동안 지구가 더워지면 토양이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할 것이라고 여겼으나,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이 가정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토양과 식물을 현재보 다 50퍼센트 높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에 노출한 결 과 숲의 성장은 5분의 1 이상 빨라졌지만 토양의 탄소 흡수량은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식물의 빠른 성장은 오히려 뿌리에 사는 미생물이 토양에서 더 많은 영양분을 앗아가 실제로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더 많이 방출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올라 토양 의 미생물 활동이 증가하면 금세기 중반까지 최소 550억 톤의 탄소가 배출될 수 있으며 이는 같은 기간에 미국의 예상 배출량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식물들도 지구 가열화로 탄소 흡수원에서 탄소 배출 원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마트라 열대우림, 요세미티 국립공원, 호주 블루마운틴 같은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된 산림지 열 군데가 지난 20년 동안 흡수한 양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했습니다. 두 가지 주 요원인은 불법벌목과 잦은 산불입니다.

- 전 세계 대도시가 대부분 해안 지역에 있는데, 판경 계와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활화산과 지진 단층이 상당수 분포해 있습니다. 해수면이 점점 더 높아져 지각에 하중 이 가해지면 이런 단층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해 수면 상승이 어떻게 화산 폭발로 이어지는지 이해하기 어 렵다면 알래스카의 파블로프 화산을 완벽한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해안 화산인 파블로프 화산은 가을과 겨울에 더 자주 폭발하는데, 이 시기에 이 지역 해수면이 올라가 기 때문입니다. 해수면 상승은 일시적이며 15센티미터 정 도밖에 안 되지만, 그만큼의 물이 화산에 흘러들면 그 아 래 지각이 구부러져 틈새에서 마그마가 치약처럼 흘러나오게 됩니다. 이와 비슷하게 해안선과 평행한 지진 단층 (캘리포니아의 산 안드레아스 단층이 대표적인 예) 한쪽 에 하중을 가하면 단층 전체의 장력이 증가해 더 쉽게 파 열될 수 있습니다.
기후 붕괴에 지권이 가장 위험하게 반응할 곳은 의심 할 여지 없이 그린란드입니다. 마지막 빙하기의 스칸디나 비아와 마찬가지로 그린란드도 빙상의 무게가 어마어마 해서 비록 최대 해발 고도가 3킬로미터가 넘지만 그 아래 지각은 해수면 아래로 내려앉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해빙 으로 지각이 이미 반동하고 있으며 GPS 측정 결과 북대서 양 지역의 많은 부분이 융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빙이 계속되면 하중이 줄어서 언젠가는 얼음 밑의 단층이 파열될 것입니다. 단층이 파열되면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억눌린 에너지가 한순간에 방출되어 규모 8을 넘는 거대 한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 8,000년 전 노르웨이 해안에 서처럼 어마어마한 해저 퇴적물이 붕괴해 북대서양 유역 전체에 파괴적인 쓰나미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그린란드 해저에서 수십 년 안에 지진 활동이 현저히 증가할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 인더스강, 갠지스강, 메콩강, 양쯔강, 황허강 같은 아 시아의 큰 강은 모두 힌두쿠시 히말라야 지역의 빙하에서 흘러나오는 물입니다. 이 강들은 이 지역의 20억 인구를 먹여 살리는 농작물에 물을 공급합니다. 빙하가 사라지면 서쪽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부터 동쪽의 미얀마, 베 트남, 중국에 이르기까지 농업 전체가 위기에 처하리라는 사실은 굳이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이후 힌두쿠시 히말라야 지역의 빙하가 15퍼센트 사라지면서 물의 흐름이 불규칙해지는 문제가 이미 드러나고 있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합니다. 최근 한 중요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속도라면 금세기 말까지 빙하의 3분의 2가 사라질 만큼 심각한 상 태라고 합니다. 배출량을 기적처럼 빠르게 줄인다고 해도 2100년까지 빙하의 3분의 1은 사라질 것입니다. 앞으로 약 30년 동안 융해수가 점점 더 많이 흘러내리면서 낮은 고도에서 격렬한 홍수가 더 자주 일어나고, 인구 밀집 지역도 고지대 빙하호의 붕괴나 범람으로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 빙하가 사라지면서 강의 흐름이 본격적으로 줄어드는 2060년대 이후부터 진짜 문제가 시작됩니다. 농 업용수만 줄어들 뿐만 아니라 수력발전 댐이 더는 작동하 지 않아 지역 전체의 전력이 끊기게 될 것입니다. 수십억 인구가 배를 곯는 동시에 생활에 꼭 필요한 전력을 공급 받지 못하는 이중고를 겪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경제적, 사회적 스트레스가 심각한 분쟁으로 이어지리라는 예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빙하가 사라져서 큰 타격을 받을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수자원 확보 경쟁이 분쟁의 불씨를 키우고 있습니다. 인도가 1975년 갠지스강에 세운 둑은 오랫동안 방글라데시 하류에 가뭄과 홍수 문제를 일으켰으며 염도 상승과 수질 악화의 원인이라는 비난이 점점 거세지고 있 습니다. 또한 인도는 브라마푸트라강, 갠지스강과 기타 물 줄기의 최대 3분의 1을 가뭄에 취약한 남부 지역으로 돌 리려는 대규모 수자원 관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방글라데시로서는 역시 달갑지 않은 상황입니다.
인도의 빗물 저장 기간은 30일밖에 안 되며(선진국 대부분은 900일) 지하수 매장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 에서 인도가 강물 공급을 극대화하려고 애쓰는 것은 당연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국이 브라마푸트라강 상류에 세 개의 댐을 건설하겠다고 나서자 인도 정부는 강물 양이 불규칙해질 거라며 격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도는 서쪽 국경에서 인더스강과 여러 강을 놓고 파키스탄과 심각한 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심각한 물 부족 국가로 손꼽히는 파키스탄에서는 인더스강이 주 요 수자원입니다. 그리고 인더스강 유역은 국가 식량의 90퍼센트를 공급하고 고용률의 65퍼센트를 차지하는 농 업의 기반입니다. 인도와 반세기 넘게 물 조약을 맺어 왔 으나 인도는 이제 더 많은 몫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댐 건설 계획이 있지만 서로 반대하면서 카슈미 르에서 총격전까지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인도는 인더스강과 여러 강에서 파키스탄의 물 수급을 차단하겠 다고 위협했습니다.
물 공급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면서 갈등이 분쟁으로 빠르게 번질 수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동아프리 카의 나일강과 중동의 요르단강도 미래의 발화점으로 지 목되었지만 남아시아와 동아시아가 여전히 가장 큰 우려 지역입니다. 기후 악화의 다양한 여파에 허덕이는 지금 세계 양대 핵 강국 사이에 물 전쟁만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 모기의 진군
더 덥고 습한 세상은 우리에겐 불행하지만 치명적인 질병을 옮기는 모기와 곤충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습니다. 기온 이 계속 오르면서 곤충이 옮기는 질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 수십 년간 이룬 성과가 물거품이 되고 온갖 불쾌한 질병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대비해 보건 전략을 세운 국가가 절반도 되지 않기에 많은 국가의 의료 시스템이 큰 혼란에 빠 질 것입니다.
- 14세기에 있었던 흑사병을 포함해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여러 전염병의 대유행에 기후가 이바지했다는 사 실은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봄철에 이 지역 기온이 1도 만 올라도 페스트균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의 유병률이 50퍼센트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아시아에서 전염병이 일어나 면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습니다.

- 지구 평균기온이 얼마나 빠르게 오를지는 우리의 행동에 달렸습니다. 지금대로라면 앞으로 6~9년 안에 1.5도, 20년 안에 2도를 돌파할 수 있습니다. 더 나쁜 소 식은 2021년에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 논문에 따 르면 우리가 어떤 조처를 하더라도 2도 초과를 막을 수 없으며 아마도 2.3도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과 같 은 추세라면 수십 년 안에 2도 오르는 것이 현실이 되겠 지만 지금 당장 대대적인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뛰어든 다면 이렇게 오르는 것은 다음 세기 또는 그 이후로 미뤄질 수 있습니다. 이상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더 더 운 세상에 적응하면서 대규모로 나무를 심거나 해서 숨통 을 틔워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기온 상승은 해 수면이 몇 미터 더 높았던 이전 엠 간빙기 때보다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들 것이므로 2도 상승을 미루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지구 평균기온이 느리게나마 계속 오른다면 기온이 다시 아무리 떨어지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티핑 포인트를 넘을 가능성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입 니다. 예를 들어 엠 간빙기의 해수면이 훨씬 더 높았다는 사실은 당시 서남극 빙상이 상당히 붕괴했으며 대서양 자 오면 순환이 어느 시점에서 멈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앞서 말했듯이 대서양 자오면 순환은 이미 불안정하 므로 중단되더라도 놀랍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또 다른 기후 대혼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티핑 포인트와 양의 되먹임 고리는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진짜 단서입니다. 빙상 붕괴와 대서양 자오면 순환 중단 부터 메탄 폭탄과 탄소 흡수원 파괴에 이르기까지, 이는 전 미국 국방부 장관 도널드 럼즈펠드가 말한 '알려진 무 지 known unknowns'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이 알쏭달쏭 한 개념은 사실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으나 증거가 없을 뿐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기후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현재 지식과 이해의 상 태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기도 합니다.

- 한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는 그 사회가 구성원과 생태계를 얼마나 잘 돌보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지 금 우리 사회는 어둠 속에서 헤매는 어린아이 수준입니 다. 지구 가열화를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불을 보듯 뻔 해지기 전에 새로운 방식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억 만장자를 몇 명이나 우주로 쏘아 올릴 수 있는지와는 아 무런 상관없는 방식 말입니다. 경제적 성공을 측정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얼마나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지 또는 얼마나 많이 흡수하는지 그 양에 따라 부의 축적이 달라져야 합니다.
- 현재 국가 경제의 성공 여부는 국내총생산GDP 으로 측정하며 이는 순전히 국가의 부를 바탕으로 합니다. 국 민의 건강과 복지, 빈부 격차, 환경문제, 탄소 배출 감축량 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한 가지 방법은 질적 조정 GDP 지표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 지표를 사용하면 탄소 배출 저감 조치와 같은 일에는 혜택을 주고 환경에 해를 끼치는 일에는 불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새로운 GDP 지표는 개개인의 부를 국가 및 세계가 환경 개선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와 연결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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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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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 지원법'과 '칩4 반도체 동맹'이 중국을 타깃으로 한다거나 대중국 수출 통제를 목적으로 한다는 표면적으로 명시된 문 구는 없다. 하지만 세계가 다 안다. 미국은 4개국 반도체 공급망 동맹을 굳건히 해서 중국 반도체 제조 능력 발전을 억제하고, 중 국 미래첨단 산업의 발전을 방해하여 패권전쟁에서 유리한 고지 를 장악하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는 러시아도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지원법'의 수혜를 받으려면 중국에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 최소 10년간 28nm(나노미터, 10억분 의 1m) 이하의 반도체를 중국에서 만들 수 없는 것 등의 부칙 준수 가 필수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중국과 미국에 모두 공장이 있다. 미국 보조금을 받게 되면 당장 중국 현지 공장 설비 보수와 공정 향상에 제동이 걸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각각 낸 드 생산 능력의 38%, D램 생산 능력의 44%가 있다" 중국 내 공 장들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 다른 곳에 중복투자를 해야 한다.
- 1950년대에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에서 서로 총구를 겨누고 전쟁을 했다. 하지만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이 부상하자 양국은 1979년 1월에 정식으로 수교하고 군사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1979년 12월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중국에 비살상무기를 수출할 정도로 급격히 가까워졌다. 1990년대에 미 국은 중국의 과감한 개혁개방정책 추진을 적극 지지하면서 미국의 시장을 열어주었다. 중국도 미국 국채의 최대 고객이 되면서 양국 의 밀월관계는 경제, 금융으로까지 범위가 확장되었다. 중국과 미 국을 마치 한 몸처럼 부르는 '차이메리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굳건하던 미국과 중국의 상호신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위상에 균열이 가는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2001년 9월 11일에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 는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단체가 미국의 경제·군사·정치의 심장인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국방부,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겨냥한 비행기 테러를 감행했다. 일본의 진주만 습격과 맞먹는 충 격적인 사건이었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고 경제도 휘청거렸다.
테러 공포에 빠진 미국은 북한. 이라크·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2003년 3월에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 WMD를 제조하 고, 알카에다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벌였다. 절대우세인 군사력을 앞세워 독재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몰아내고 26일 만 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UN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국 제사회 대부분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무모한 전쟁으로 판단했 다.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근거가 부족하고 확실한 증거도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미국의 국제적 신뢰는 금이 갔고 중동에서 불신과 반대 목소 리가 커졌다. 미국 내부에서도 문제가 일어났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고령사회라는 비수가 미국 경제의 폐부를 깊숙이 찌르고 있었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막대한 달러를 찍어냈고, 침몰하는 미국 내수시장을 부양하기 위해서도 돈을 풀었다.
그 결과, 2008년에 미국 부동산 시장이 한순간에 붕괴했고 신 용도가 하락했다. 고용시장은 충격에 빠졌고(실업률 10%), 미국 정 부의 부채는 상한선을 넘기기를 반복했다. 이런 미국을 예전처럼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미국 역시 자신들의 제국이 이렇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다.
이때 중국이 오랫동안 감춰온 야심을 드러내며 미국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2009년 1월에 있었던 다보스 포럼에서 당시 중국 총리였던 원자바오는 미국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글로벌 위기의 원인은 미국의 지속 불가능한 경제성장 모델에 있다. 미 국 정부는 부적절한 거시경제 정책을 고수했고, 미국 중앙은행은 기준 금리를 낮춰 돈을 뿌려댔고, 미국 가계는 낮은 저축률과 과소비에 빠졌 다. 이런 수준의 미국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더는 미국의 국채를 마음 놓고 사기 어렵다. IMF가 달러 발행국인 미국에 대한 감독을 더 강화해야 한다. 이 기회에 달러보다 좀 더 신뢰할 만한 제1기축통화를 만들어야 한다.
- 2009년 3월에 당시 중국인민은행 총재였던 저우샤오촨은 "특 별인출권 SDR: Special Drawing Rights (1969년에 IMF가 구축)이 초국가 적 기축통화가 될 수 있다"라고 거들었다. 2010년 당시 중국의 국 가주석이었던 후진타오는 '거침없이 상대를 압박한다'는 뜻의 '돌 돌핍인'을 외치며 미국에 전면적인 경제전쟁을 선포했다. 2010년에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도 "(달러를 대체할) 글 로벌 기축통화 메커니즘이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공공연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 2008년에 미국이 금융위기를 맞고 허우적거리자 푸틴은 미국 경제를 공격하는 중국을 거들었다. 푸틴은 미국 정부와 월가 투자 은행들이 영광을 잃고 경제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도 자기 이익을 차리는 데만 급급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각국이 외화보유액을 달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세계 경제의 위험요소라고 지적 하며 미국을 공격했다.
러시아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2014년 3월에 러시아는 소 치 동계올림픽이 진행되는 도중에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 으로 병합해서 미국을 또다시 당혹하게 만들었다. 오바마 행정 부는 러시아에 즉각적인 경제제재를 가했지만, 중국과 손을 잡 은 러시아는 국제무대에서 힘을 계속 키워갔다. 급기야 <포브스>는 2015년에 세계 권력자 순위 1위로 푸틴을 지목했고, 메르켈이 2위, 오바마가 3위로 밀려났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러시아를 주적으로 규정하 고 날을 세웠다. 2021년 12월 연말 기자회견에서 푸틴은 2007년 뮌헨 연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동유럽 5개국이 NATO에 가입한 것과 1991년에 미국과 유럽이 소련을 해체하고 소련 영토 를 12조각으로 분리한 것에 대해 성토했다. 그리고 2022년 3월에 NATO 가입을 추진하는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침공했다. 당연히 이 전쟁으로 미국과 러시아 양국 간의 불신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 미국이 셰일 생산을 늘리고 원유 수출 규제를 풀어 잉여 공급 랑을 아시아와 유럽에 팔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진 영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 회원국 은 2014~2015년경에 채산성이 배럴당 70달러에 달했던 미국 셰 일오일의 붕괴를 목적으로 원유 가격 하락을 용인했다.
2015년 12월에 국제 유가가 14년 만에 처음으로 2년 연속 하 락하면서 배럴당 30달러 선이 붕괴되었다. 하지만 기술이 빠르 게 발전하면서 채굴비용도 계속 내려갔다. 셰일에너지 기업들은 채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수평시추horizontal drilling 기술 과 모래와 화학첨가물을 섞은 물을 강한 압력으로 분사하여 천연 가스와 원유를 분리하는 수압파쇄hydraulic fracturing 기술로 혁신 을 거듭하며 채굴비용을 낮췄다. 전통 유전이 승인에서 시까지 3~5년이 걸리는 데 반해, 셰일 유전은 승인에 6개월, 시추에서 생 산까지는 1~2개월밖에 걸리지 않는다. 치밀한 분석을 통해 경제 성이 높은 유전인 스윗 스폿sweet spot을 찾아내는 확률도 높였다. 유가가 하락하면 시추를 잠시 멈췄다가 유가가 반등하면 곧바로 시추할 수 있는 설비도 갖추었다. 이런 특성을 활용하여 미국 셰일업계는 텍사스주, 뉴멕시코주의 셰일 유전을 중심으로 배럴당 30달러 선에서도 투자 수익이 나는 수준으로 비용 절감에 성 공했다.
국제 원유 가격이 내려가도 미국의 석유 공급량이 줄지 않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도 시장 점유율이 떨어질 수 있 다는 부담 때문에 공급량을 줄이지 못했다. 1980년대에 북해 유전 이 발견되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유가가 하락하자, 감산으로 가격 하락을 막으려다 재정 적자만 키 웠던 뼈아픈 실패 경험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적자를 회복 하는 데 16년이 걸렸고 시장 점유율도 크게 떨어졌다.
- 공급량은 계속 늘어나는데 국제 수요는 거꾸로 움직였다. 시간이 갈수록 연료 효율이 개선되고 유럽에서는 천연가스로 에너지 수요가 대체되면서 석유 자체 수요가 줄었다. 2016년에 정권을 잡은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협약 탈퇴나 석유산업 증진을 위한 각 종 규제 철폐와 지원, 에너지 인프라 투자 계획 발표 등으로 미국 과 OPEC 간의 에너지전쟁에 기름을 부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 부근까지 폭락하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의 타격은 더욱 극심했다. 물론 미국 셰일 에너지 회사도 200개 넘게 파산했다. 하지만 미국은 다른 영역에서 만회할 수 있었다.
에너지 가격 하락은 미국 내 제조업의 생산 원가를 낮추어 경 쟁력 회복 유지에 도움이 되었다.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자 수입 물가 부담도 낮아지면서 미국의 소비도 탄탄하게 유지되었다. 셰 일 회사들이 줄줄이 무너졌지만 미국의 세계 1위 석유 생산국 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반면 OPEC 회원국은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출혈을 감 수하면서 4천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기록하며 재정 상태가 악화 되었다. 2015년 현재 알제리, 바레인, 리비아, 예멘 등은 정부 예 산 균형 유지에 필요한 유가가 배럴당 100~160달러였다. 이들에 게 배럴당 30달러 유가는 재앙이었다.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오 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러시아 등에서는 60~100달러 가정부 예산 균형에 필요한 유가였다.

-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를 완료한 다음 날,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아프간 전쟁 종료의 의미를 "다른 나라들을 재건하려는 중대한 군사작전 시대의 종료"라고 규정했 다. 겉으로는 미국이 앞으로는 군사력으로 중동을 비롯한 타국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었다. 하지만 속내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하여 중동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졌다는 말이다. '국익 없는 지역, 국익 없는 전쟁'에서 발을 빼겠다는 속내다.
- 셰일 혁명 이후에 미국의 가스 생산은 8배, 원유 생산은 19배증가했다. 셰일가스의 경우는 미국 전체가 최소 100년은 쓸 수 있 는 양이 매장되어 있다. 과거에 미국은 중동 원유의 안정적 수급 을 위해 2개의 항모전단을 운영했다. 미국이 중동 안보를 위해 매년 지출한 비용만 3천억 달러에 육박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석유가치가 다한 중동은 아프리카와 다름없었다. 에너지 자급 및 안보가 확보되자 미국은 중동에 퍼붓는 비용을 줄이고 대중국 견제에 힘을 쏟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내린 최악의 판단착오였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에 불신을 싹트게 만든 한 가지 경 솔한 외교는 미국 행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빈 살만 왕 세자를 공개적으로 망신 준 사건이다.
- 트럼프의 재선을 막고 정권을 탈환한 바이든과 민주당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대놓고 홀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9년 11월 대선 토론회에서 카슈끄지 사건을 꺼내 "사우디아라비아에 대가 를 치르게 하겠다. 국제적으로 왕따pariah를 하겠다"는 강경 발언 도 서슴지 않았다. 2021년 초에 바이든 행정부는 카슈끄지 살해 사건을 다시 들추면서, 앞으로 미국이 무조건적인 친사우디아라 비아 정책을 구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이 인 플레이션으로 다급해지기 전까지) 바이든 대통령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과는 통화를 했지만 빈 살만 왕세자와는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격을 낮춰서 로이드 오스틴 국방 장관에게 왕세자의 상대 역할을 맡겼다. 왕세자 입장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굴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사우디아라비아 무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 다.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 패권을 겨루는 이란 과 핵합의를 복원하여 에너지 시장 안정과 중동 정세의 균형을 유 지시키려 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친이란 관계에 있는 예 멘 후티 반군을 테러조직 명단에서 해제했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 아라비아 본토에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1,300회 넘게 벌인 단체 다. 인도주의적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심기는 매 우 불편해졌고 미국을 향한 신뢰는 추락했다.
- 대러시아 제재 발효 이후에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의 최대 구매자로 부상했다. 중국이 수입하는 러시아산 원유는 하루 평균 198만 배럴로 늘어났다. 전쟁 발발 직전에는 하루 평균 60만 배럴이었다. 인도도 전쟁 직전 하루 2만 5천 배럴 수입에서 100만 배럴까지 증가했다. 전쟁이 발발하고 4~5개월이 지난 뒤에도 유 럽 국가들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액이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늘어났다.
어떻게 된 일일까? 지중해를 통한 유럽으로의 원유 유입이 상 당량 증가했기 때문이다. 전쟁 직전 하루 평균 125만 배럴이었던 수입 규모가 표면적으로는 45만 배럴로 감소했다. 하지만 실제로 는 하루 184만 배럴의 원유가 지중해를 통해 유럽 각지의 정유사 들로 들어왔다.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조치에 비협조적인 튀르키 예나 불가리아 등의 나라에서 러시아산 원유를 정제해서 유럽 각 지로 보내는 비율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불가리아의 경우에는 러 시아산 원유 수입량이 전쟁 직전보다 2.5배 증가했다.

- EU의 분열을 가속화할 외세 침입 세력은 어디일까? 침략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던 독일은 EU 회원국으로 '포 섭'됐다. 남은 나라는 러시아뿐이다. 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을 '전쟁의 시대'로 몰아넣은 시발점이라고 평가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러시아와 NATO의 군사적 충돌이 본격화될 것이다. 이것은 유럽에 외세 침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유럽이 직면한 전쟁은 3가지다. 바로 에너지, 경제, 핵 전쟁 이다. 에너지전쟁과 경제전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핵전쟁은 언제 든지 발발 가능한 상태다. 앞으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은 NATO와 러시아가 충돌하는 유럽, 중국과 러시아와 미국이 충돌하는 남중국해다. (의외로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 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 KGB 출신인 푸틴은 군사작전을 과감하게 수행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스탈린이나 소련의 지도자들과는 다른 점도 있다. 현재 세계를 이념이 아닌 지정학적 관점과 경제패권의 시각으로 본다." 따라서 러시아는 해체된 소련의 회원국을 흡수하기 위해 자원의 지원과 경제적 지원 등을 전면에 내세워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미래 경제를 좌우할 핵심 자원인 에너지와 산업용 광물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군사적 전 쟁이 푸틴의 유일한 전략이라고 오해되는 경향이 있다. 실상은 그 렇지 않다. 2011년 10월에 푸틴은 유라시아 연합EAU: Eurasian Union 을 주창하면서 유로존이 통합되기 전 단계처럼 러시아가 중심이 되는 단일경제공동체를 출범시켰고 소련에 속해 있던 지역 대부 분을 가입시켰다. 경제판 소련의 부활이었다. 
푸틴의 단일경제공동체 전략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 견제라는 목표를 공유하는 중국으로 하여금 에너지 수출을 매개로 유럽에서 러시아의 행보와 영향력 확대를 지지하게 만들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유럽은 2개의 경제블록으로 재 편된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1그룹과 러시아와 유로존에서 내쳐 진 2그룹이 러시아와 연대하는 경제블록이다. 1그룹 내에서의 역 학 관계도 달라진다. 1그룹의 핵심 국가가 될 독일과 프랑스는 전 통적으로 경쟁자 관계다. 유로존이 둘로 완전히 쪼개지고 2그룹이 러시아와 손을 잡고 새로운 경제공동체를 만들면, 프랑스가 상대 적으로 독일보다 더 큰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된다. 프랑스는 이탈 리아와 스페인 등 2그룹에 막대한 부채를 빌려주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유럽 경제의 주도권을 독일에 빼앗기면, 영국과의 관계 개선에 들어갈 것이다.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유럽은 경제 분야에서 이념적 냉전 상태에 빠질 것이다.
- 러시아와 중국, 넓게는 독일까지를 포함한 '사회민주의적 자본주의'를 한 축으로 하고 다른 한 축은 미국과 영국, 넓게는 프랑스까지를 포함한 금융위기를 거친 뒤 개량되어 나온 '개량 자본주의'가 맞서는 대립 체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노련한 국 제정세 분석가이자 미래예측 전문가인 조지 프리드먼은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서는 놀라운 동맹이 형성되고 예상치 못한 긴장이 전개되며 특정한 경제 조류가 융성하거나 쇠퇴할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 필자의 예측으로는 다가오는 자산시장 대학살은 주식, 채권, 부동산, 암호화폐 시장이 일시에 무너지는 사건일 가능성이 높아 서 자산 손실의 영향이 경제활동을 하는 전 세대에 미칠 것이다.
자산별 붕괴 수준을 세부적으로 예측해보면, 채권시장은 예 전과 대동소이할 것이고, 주식시장은 나스닥이 가장 큰 붕괴(닷컴 버블형)를 맞을 것이다. 암호화폐 시장은 자산들 중에서 낙폭이 가 장 클 것이다.
미국 주식시장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2022년 최고점 대비 다 우지수는 40~50%, 나스닥은 50~70%, 암호화폐 시장은 최소 90% 에서 최대 99%까지 폭락할 것이다. 자산별로 붕괴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실물경기 침체 영역과 대상도 각기 다를 것이다.
나스닥과 암호화폐의 붕괴 정도가 가장 큼에 따라 비교적 젊 은 세대의 자산 손실이 심할 것이다. 채권시장에서는 좀비기업과 스타트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기 때문에 정크본드가 말 그대로 휴 지 조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업률 상승은 과거 경제위기보다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다. 미국 부동산 시장의 충격은 2008년보다 는 약할 것으로 전망되는바 소비침체는 닷컴버블과 서브프라임 사태의 중간 정도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부동산 가격 하락률이 30~ 5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실물경기 대침체 기간은 최소 2~3년 은 갈 것이다. 이 정도 충격은 미국 투자시장을 기준으로 보면 50년 만에 한 번 정도 오는 역대급 자산시장 대학살과 경제 충격이 다. 참고로, '다가오는 자산시장 대학살에 대한 자세한 시나리오는 필자의 다른 저서 《한국, 위대한 반격의 시간》을 참고하라.
미국 시장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유럽, 한국 시장 등 전세 계시장 대부분이 이 위기를 피할 수 없다. 곳곳에서 기업과 국민 들의 통곡과 한탄의 소리가 날 것이다. 금융투자 시장과 실물경제 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면, 패권전쟁의 한복판으로 휩쓸려 들 어가는 미국, 중국, 유럽, 러시아 정부 모두를 급하게 만들 것이다. 급해질수록 당황하고, 당황할수록 잘못된 상황 판단과 중대한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중대 실수는 '전쟁'이다.

- 필자는 시진핑 종신집권 야망과 치밀한 계획이 주석 자리 에 오르기 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시진핑은 혁명 원로이며 부총리까지 역임한 시중쉰의 아들이다. 1975년 공산당 추천서 덕에 특례 제도로 명문 칭화대학에 입학했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어려서부터 큰 꿈을 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차근 차근 꿈을 향해 나아갔으며, 2007년 제17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 정권의 후계자로 지목된 뒤 중국 최고 지도자인 주석 자리까지 올 랐다.
치밀한 시진핑은 집권 1기에 정적 제거와 헌법 수정의 명분 마련, 집권 2기에 연임제 무력화를 통한 장기집권 발판 마련, 집권 3기에 종신집권을 위한 명분 획득이라는 계획을 수립했을 것이다. 시진핑 집권 2기 3기에 미국을 추월하여 G1에 올라서면 종 신집권의 명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계획 은 트럼프와의 무역전쟁,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실패로 끝났다. 3연임 기간에도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대만 통 일을 앞당겨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에 서구 세력이 보인 태도와 분열 조짐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 했을 것이다. 한번 해볼 만한 승부라고 여겼을 만하다. 만약 성공 하면 시진핑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뛰어넘는 중국 역대 최고 의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다.
시진핑이 집권 3기에 대만 통일을 감행하려는 둘째 이유는 중국 정치세력의 미국에 대한 좌절감 때문이다. 2022년 8월 2일에 미국의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대만을 전격적으로 방문했다. 대 만 차이잉원 총통은 그녀에게 대만 최고 훈장을 수여했다. 펠로시 의장도 동맹과 경제안보 차원에서 대만을 확고히 지지할 것이라 고 화답했다.
-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대만과 밀월관계를 깊게 만들어 가고, 전략적 모호성마저 포기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중국 입장에 서는 중대한 문제다. 중국은 좌절감을 넘어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미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유사시에 대만을 군사적으로 적극 방어하겠다는 전략적 명확성을 공식적으로 천명하면, 중국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중국 입장에서는 무력 통일 없이는 대만 통일과 대만 독립 사이에서 현상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 다. 미국이 암묵적 약속을 깨고 거래를 끊으며 1979년(미·중 수교, 대만 단교)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중국도 그 이전으로 되돌아 가는 것은 당연하다.
2022년 9월 15일에 G7도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영국·독일을 주축으로 한 G7 국가들은 앞으로 대중 무역 정책에 사회적 · 인도주의적 기준을 더 강경하고 조직적 으로 반영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에 대한 순진한 대응은 끝났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중국이 강력한 경제력을 사용 해서 다른 국가들을 깔아뭉개는 행위를 미국과 유럽이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미국과 유럽의 이런 태도 변화는 새로 구축하는 글로벌 공급 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대만을 편입하는 것과 연결된다. 결국 시 진핑 주석의 3연임 기간에 가장 큰 외교적 이슈는 대만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시진핑 주석의 3연임 기간인 5년 동안 (중국을 배제한)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완성하면, 대만도 완전히 미국에 넘 어간다.
- 필자가 분석하기에도 중국은 이미 '중진국의 함정에 빠졌다.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 이란 중진국에 접어든 국가가 어느 순 간에 성장이 장기간 정체하는 현상이다.
원인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압축성장을 주도하는 경제 관 료들의 사고가 어느 순간부터 경직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비 용·저효율' 단계에 진입할 때 경제 운영 체계를 개선하는 데 실패 한 것이다." 중진국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성장이 멈추 거나 저소득 국가로 퇴보할 수도 있다.
필자의 예측으로는 앞으로 5~10년이 중국 경제가 중진국함 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 이다.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면, 모든 책임이 시진핑에게 돌아간다. 필자가 보기에 시진핑이 3연임을 시작했지만 중국의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 하지만 모든 것은 최적의 타이밍이 있다. 필자의 분석과 예측으로는 시진핑 정부의 대만 통일작전이 성공할 수 있는 최적의 타 이밍은 2023년이 아니다. 그렇다고 10년 후도 아니다. 시진핑이 아무런 명분 없이 4연임을 하여 10년 넘게 중국을 통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년 후가 되면, 대만은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체제에 완전히 편입된다. 그때는 중국이 손쓸 수 없는 상황 이 된다. 결국 시진핑 입장에서 대만 통일의 최적기는 앞으로 5년 이내다. 시진핑도 3연임을 달성했기에 더욱 과감해질 수 있다. 중 국내 여론도 대만 통일 시점을 앞당기자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시진핑은 집권 3기 초에는 속도 조절을 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바이든과 민주당은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위기에 봉착해 있다. 2024년에 다수당이 바뀔 수도 있고,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수도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대만을 통일하려면 적어도 한 차례는 미국과 군사적 충돌이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더 대담하 게 중국과 부딪칠 수 있는 바이든과 민주당을 피하는 것이 유리하 다. 그들은 중국과 전면전도 불사할 수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그는 실리 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대만을 중국에 넘겨주고 다른 대가를 요 구하는 협상을 할 여지가 생긴다. 트럼프가 재선되면 양측이 극렬 한 무역보복 전쟁을 재개할 공산이 크다. 그러면 중국 내에서 반미 타도 여론이 고조되어 시진핑에게 유리해진다. 미국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면, 미국 의회에서도 강경론이 후퇴할 수 있다. 의회 분위기가 온건론으로 넘어가면, 대만해협에서 미·중 간에 무력 전쟁이 벌어져도 힘을 모으기 쉽지 않을 것이다.
반전 분위기도 빨리 퍼질 수 있다. 그래서 시진핑에게 대만 통일의 적기는 바이든 행정부 이후다. 2024년에 미국 정권이 바 뀐다면, 초기 1년은 다시 탐색전을 해야 한다. 결국 중국과 미국 이 대만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면, 시진핑 집권 3기 중 4~5년 차 (2026~2027년)가 최적기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2027년은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 100주년이 되는 해다.

- 포르투갈 다음으로 유럽의 패권을 차지한 나라는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북아메리카의 캐나다와 미국을 지배하고 잉카제국 을 무너뜨렸다. 유럽에서도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이탈리 아 대부분, 독일과 프랑스 일부를 지배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오세아니아도 스페인의 지배하에 놓였다.3"
지구상에 스페인을 대적할 나라는 없는 듯 보였다. 그 힘의 원천도 세계 최강의 해군 함대였다. 펠리페 2세는 스페인 함대의 이름을 옛 스페인어로 '위대하고 가장 행운이 있는 함대'라는 뜻 을 가진 '아르마다 무적함대 Armada Invencible'라고 칭했다. 스페인이 세계 최강에 오른 결정적 전투 중 하나는 레판토 해전이었다. 1571년 10월 7일에 스페인 함대는 단 5시간 만에 아시아 최강 대국인 오스만 제국의 함대를 괴멸했다. 이슬람 역사상 가장 강력했 던 제국인 오스만 제국은 레판토 해전에서 패하면서 유럽 진격에 제동이 걸렸고, 스페인은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르면서 아시아를 지배할 발판을 마련했다. 역사가들은 레판토 해전이 세계의 패턴 도 바꿔놓았다고 평가했다.
레판토 전투 이후 세계를 움직이는 추는 다른 쪽으로 기울기 시작해, 부유함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세 계에서 하나의 패턴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스페인 제국도 유럽 변방의 작은 섬나라 영국의 함대에 무너졌다. 영국 함대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어떻게 물리칠 수 있 었을까? 영국 해군이 짧은 시간에 스페인 함대를 이길 정도로 발 전한 결정적 이유는 노를 사용하는 전함을 버리고 바람을 사용하 는 범선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스페인 함대가 레판토 전투에서 아시아 최강 함대를 무너뜨리던 당시에 스페인 함대는 노를 젓는 방식의 전함이었다. 영국의 헨리 8세는 갈레온galeon 이라고 불린, 3~4층 갑판과 3~4개의 돛을 갖춘 400톤급 이상의 대형범선을 전 함으로 사용했다. 원래 갈레온은 무역선이었다. 영국의 헨리 8세 는 화물을 싣는 무역선 갑판에 장전식 대포를 장착하면 무서운 공 격력을 발휘하여 스페인 함대의 화력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1975년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디-키신저 밀약'을 맺고 미 국이 달러 붕괴 위기를 피하도록 도왔다. 이제 반대로 이 밀약을 파기하는 선언을 하면, 50여 년 가까이 지속된 페트로달러 시대가 무너진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 원유 결제를 중국의 위 안화나 러시아의 루블화 등으로 교체하면 미국의 달러 가치는 대 폭락한다. 이런 공격은 미국이 러시아를 SWIFT에서 퇴출한 것보 다 더 강력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SWIFT 전면 차단으로 러시 아가 입게 될 경제성장률 감소 수준을 2%p로 분석했다. 페트로달 러의 파기는 일시적으로 경제성장률이 감소하는 정도의 충격이 아니라 미국 패권의 몰락을 가속화하는 방아쇠다.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을 버 리고 중국과 러시아로 갈아타는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 고 분석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적 안보 시스템, 무기 체계 대부분이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사우디 경제의 핵심인 아람코도 미국에서 막대한 자본을 조달하는 중이다. 사우 디아라비아가 탈탄소 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확보 하려면 미국의 도움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한 것은 없고, 불가능한 미래도 없다. 사우디아라 비아는 50년 전 미국을 구해준 것처럼 중국을 세계 1위 국가로 올 려줄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을 버리면, 군사, 안보, 경제 등에서 막대한 손해를 본다.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 아가 손해를 본 부분을 메워준다는 제안을 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 세계 원유 거래량의 60%를 담당한 다. 중국은 미국보다 3~4배 큰 석유 소비시장이다. 러시아는 이미 NATO를 향해 에너지전쟁을 벌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와 중국과 손을 잡으면, 미국을 글로벌 에너지 시장 지배자 위치에서 쫒아낼 수도 있다.
중동의 패자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을 버리고 중국과 손 을 잡으면, 유럽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도 급격하게 줄어든다. 유 럽은 중국 견제에서 미국과 미묘하게 다른 입장을 계속 보이고 있다. 중국이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14억 명이 넘는 인구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시장과 중국의 막강한 자본력도 탐나기 때문이다.

- 중동의 입장 변화와 달러화의 추락으로 미국과 중국 양쪽의 눈치를 보고 있는 유럽이 중국을 선택하는 입장을 취할 수도 있 다.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통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절반, 중 남미 일부에서 미국보다 더 큰 영향력을 확보했다. 유럽과 중동이 중국의 손에 넘어가면 미국은 외교적으로 고립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페트로달러는 미국의 아킬레스건이다. 누 르면 숨이 턱 막히고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급소다. 사우디아라비 아가 미국의 숨통을 조이고 중국이 미국 국채를 시장에 전부 내다 팔면 미국은 달러 붕괴와 함께 달러 부채의 역습으로 일시에 무너 질 수 있다. 미국의 패권도 그 즉시 끝이 난다.
- 레이건 행정부는 '더 늦기 전에' 일본 반도체 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1985년 6월 14일에 미국 반도체산업 협회SIA는 무역대표부USTR에 일본 정부의 반도체 산업정책이 불 공정하다며 제소했다. 10일 뒤에 미국 D램업체 마이크론은 일본 NEC, 히타치, 미쓰비시, 도시바 등을 반덤핑 혐의로 제소했다. 반 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1985년 9월 22일에 벌어진 플라자합의는 반도체전쟁에 방점 을 찍었다. 일본 엔화와 서독 마르크화를 고평가하자. 일본 기업의 반도체 가격경쟁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1986년에 미국 정부는 '덤 핑 방지법 Anti Dumping Act'(1979)과 '미국통상법' 제301조를 근거로 일본 기업이 생산 원가를 공개하고 저가로 미국에 반도체 수출을 하지 못하도록 '서스펜션 협정'을 강제 체결했다. 정식 명칭은 '미 합중국 정부와 일본 정부 간의 반도체 무역에 관한 조약'(약칭 미. 일 반도체 조약)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 내에서 미국 반도체 업체의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높인다는 약속도 했다. 1987년에 미국은 일본 정부가 미·일 반도체 조약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빌미로 '슈퍼 301조'(미 국통상법 제301조)를 통해 무역보복도 가했다. 미국은 1996년까지 미·일 반도체 조약을 연장하며 일본의 목을 조였다. 미국의 공격 과 한국의 반도체산업 추격이라는 이중고를 뚫지 못한 일본 반도 체는 결국 무너졌고, 일본 경제도 '잃어버린 30년'의 늪에 빠졌다. 현재 미국이 중국을 향해 벌이는 반도체 전쟁(칩4 전략과 중국 의 반도체 굴기 저지를 위한 각종 입법과 행정명령 등)은 과거 일본을 무 너뜨린 전략과 매우 유사하다. 중국을 겨냥한 칩4 전략에서 미국 은 설계와 제조장치, 대만은 첨단 파운드리, 한국은 메모리, 일본 은 제조장치와 재료를 담당한다. 미국의 칩4 전략이 실현되면, 칩4동맹이 10nm 이하 최첨단 시스템 반도체를 100% 독점할 수 있다. 10~22nm 제품도 76%, 28~45nm 제품은 64%, 45nm 이상 제품 은 63%를 장악한다. 메모리 반도체도 80%를 점유한다. 칩4는 미 국에게는 압도적 힘을 주고, 중국에게는 거대한 위협이다
필자는 미국과 중국 간의 반도체 전쟁의 승부처는 대만을 누 가 손에 넣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미국 입장에서 대만이 중국 손에 넘어가면 칩4 전략이 무산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 이 위험에 빠진다. 만약 중국이 TSMC를 손에 넣고 외교적 무기로 사용한다면, 미국 산업과 경제에 대재앙이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 고 미국의 글로벌 위상도 흔들린다.
- 중국의 대만 통일 야심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한국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은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면 '가라앉지 않는 항 공모함'과 같은 대만을 손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 을 무너뜨리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은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고 친미 국가로 남게 해야 한다. 미국이 이렇게 중국 밖에 서는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고, 중국을 향해서는 공급망 전쟁, 무역 전쟁, 기술전쟁 등 다방면에서 압박 수위를 높일수록, 중국의 대만 무력침공 가능성은 커진다. 그렇다고 중국과 군사전쟁을 하기에 는 예상되는 미국의 피해가 막대하다.
2021년 4월에 미국 군사 전문 매체 <디펜스뉴스>가 미 공군의 대중국 전투 시뮬레이션(워게임) 결과 하나를 발표했다. 미국이 대만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전쟁을 벌인다면, 미국은 미해군 역사상 최강의 전투기 F/A-18 등 유인 전투기를 호위하는 AI 탑재 전 투 드론인 '로열 윙맨'을 비롯한 아직 전력화에 성공하지 못한 첨 단기술을 총동원해야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승리의 대가도 만만 치 않다. 막대한 인명과 장비 손실이 불가피하다. 1991년에 걸프 전 당시, 미국은 6개의 항공모함 전단을 투입했다. 현재 중국 인민 해방군은 당시의 이라크군보다 몇 배 더 강력하다.2
미·중 관계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비유해서 유명세를 탄 안보·국방 분야 석학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거 대한 군사력 경쟁: 중국 vs 미국The Great Military Rivalry: China vs the u.s.>이라는 보고서에서 중국이 제1열도선第一列島線(오키나와부터 대 만까지) 안으로 미국의 진입을 막을 수 있는 군사력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이런 전력을 보유한 중국과 대만해협에서 군 사적 충돌이나 전면 대치를 하면, 동아시아에 배치된 전력만으로 는 역부족이다. 유럽을 지키는 최소한의 전력만 남겨두고, 모든 전 력을 집중해야 한다. <디펜스뉴스>는 미국이 인민해방군을 대만 에서 격퇴하려면 최소 80%의 해·공군 전력을 투입해야 할 것으 로 예상했다"
필자는 미국이 중국과 전쟁을 벌일 경우 경제적 피해가 커진 다는 것은 이미 분석했다. 미국의 경제적 피해는 GDP의 5%(1조 2천억 달러) 정도를 잃는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GDP 하락 폭(2.6%)의 2배다. 이 수치가 최소치일 수도 있다. 패하 기라도 하면 그 충격과 피해는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악의 경우, 미·중 패권전쟁의 승부를 결정할 추가 중국으로 기울어버릴 수도 있다.

- 연준이 기준금리를 5%까지 올려도 인플레이션은 잡기 어려 울 것이다. 이미 실기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주요 선진국들의 높은 인플레이션은 경제가 추락해야 잡힌다. 그래서 경제를 추락시킬 것이다. 필자의 분석으로는 연준도 그 길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연준이 믿는 구석도 있다. 미국 경제가 경착륙하면 인 플레이션율을 최소한 2% 미만으로 곧바로 떨어뜨릴 수 있다. 사 실 이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2002년 경기 대침체 때,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은 6개월 만에 3.7%에서 1.1%까지 하락했다. 2008년 경기 대침체 때는 그 속도가 더 빠르고 가팔랐다. 5.6%였던 인플 레이션율이 6개월 만에 제로까지 하락했고, 그다음 6개월이 지나 자 -2.1%까지 추가 하락했다. 총 12개월 만에 7.8%p 하락한 셈이 다. 이번에도 이런 속도로 하락하면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은 최악 의 경우 제로 혹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연준이 믿는 구석은 더 있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구축하는 실업률과 민간소비력이다
- 연준이 기준금리를 5%까지 올려도 인플레이션은 잡기 어려 울 것이다. 이미 실기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주요 선진국들의 높은 인플레이션은 경제가 추락해야 잡힌다. 그래서 경제를 추락시킬 것이다. 필자의 분석으로는 연준도 그 길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연준이 믿는 구석도 있다. 미국 경제가 경착륙하면 인 플레이션율을 최소한 2% 미만으로 곧바로 떨어뜨릴 수 있다. 사 실 이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2002년 경기 대침체 때,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은 6개월 만에 3.7%에서 1.1%까지 하락했다. 2008년 경기 대침체 때는 그 속도가 더 빠르고 가팔랐다. 5.6%였던 인플 레이션율이 6개월 만에 제로까지 하락했고, 그다음 6개월이 지나 자 -2.1%까지 추가 하락했다. 총 12개월 만에 7.8%p 하락한 셈이 다. 이번에도 이런 속도로 하락하면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은 최악 의 경우 제로 혹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연준이 믿는 구석은 더 있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구축하는 실업률과 민간소비력이다
- 2008년 당시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도 미국은 중국을 향해 비슷한 공격을 가했다. 미국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중국은 서서히 위안화 절상(달러-위안 환율 하락)했다.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2011년 1월 10일에 6.6350에서 7월 21일에는 6.4506으로 절상되 었다. 광둥성을 비롯한 중국의 수출 전진기지에서 생산 원가 상승의 부담을 이기지 못해 도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위안화 절상 이 계속되자, 중국의 수출 기업들은 원자재 수입 상승 압력, 수출 가격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 하락이 겹치면서 순이익률이 2011년 2월에 1.44%까지 떨어졌다. 이 수치는 중국 공업 전체의 순이익률 평균치를 밑도는 수준이었다. 반면 미국 제조업 회사들은 회생의 시간과 매출 증가라는 반사이득을 얻었다. 중국에 세운 공장과 사무실을 본국으로 되돌리려는 미국 기업도 늘어났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8년에 중국 기업은 상위 1천 개기 업 중에 16%가 좀비기업이었다. 아주 높은 부채 레버리지로 버티 고 있는 기업도 많았고, 그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2018년 현재 중국 기업이 보유한 달러 외채는 3조 달러가 넘은 것으로 추 정되었다.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통계보다 3배가 많은 규모 였다. 홍콩 다이와증권사 이코노미스트 케빈 라이는 중국의 수출 기업이 2008년 이후에 조세 포탈 지역인 케이먼 제도, 홍콩, 싱가포르를 통해 막대한 달러 외채를 끌어다 쓴 것으로 분석했다.
- 미국은 '슈퍼 제301조'를 발동한 후, 이런저런 규제와 명분을 들어 중국산 제품의 미국 수출문을 완전히 닫아버리겠다고 나올 수도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도 중국산 제품 규제에 동참시킬 수 있다. 수출 기업이 무너지면, 중국 경제의 추락과 장기침체가 가중 될 수 있다. 제1차 환율공격이 가해지는 기간에 미국은 시진핑 정 부를 압박하기 위해 금융공격도 벌일 것이다. 결국 미국이 환율전 쟁 카드를 들면 중국은 자국 수출기업의 줄도산을 막기 위해 무역 에서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한다
- 미국의 대중국 환율공격과 금융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제2차 공격'이 있다. 제1차 환율 및 금융 공격으로 중국 경제가 혼란에 빠지면, 미국 정부의 용병인 거대 자본 가와 기업가들이 움직일 것이다. 이들은 선진화되고 기술이 뛰어 난 차익 거래꾼들이다. 이들은 중국 정부가 선진국 위상에 맞는 재 정, 환율, 금융 시스템의 개방과 시장친화적 개혁을 진행하는 동안 중국 금융투자 시스템 안에 침투했고, 중국의 부동산, 채권, 주식 시장에 대형 폭락장이 발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 금융 시스템의 기본은 적재적소에 적절하게 자금을 융통하 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생존 유지와 체제 유 지에 필요한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금융산업을 확장했다. 미국 을 따라잡기 위해 미래 신성장동력 산업을 지원하는 데 금융의 힘 을 사용하고 있지만 관리 부실과 관료의 부패가 발목을 잡고 있다. 그 결과 내수 부양 속도는 생각보다 느리고, 중국 기업의 장래 가 그리 밝지 않은 탓에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외국 자본이 적어 10년이 넘도록 3천포인트 선을 오르락내리락만 한다.
그 대신 중국인의 부동산 사랑과 막대한 유동성이 맞물려 부동산 시장에 기형적 버블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중국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는 순간 거대 금융 자본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강 력한 금융공격을 가하여 폭락에 불을 붙일 것이다. 그리고 또 다 른 미국 정부의 용병인 기업가들은 무너져 내린 중국의 경제와 산 업에서 버블이 꺼지고 피투성이가 된 중국의 회사와 자산들을 아 주 싼값에 사들여 되파는 일명 '양털 깎기' 잔치를 벌일 것이다.
앞에서 경제 및 금융 전쟁은 '소리 없는 전쟁' '보이지 않는 전 쟁이고 미국이 고용한 용병과 저격수들은 '투명망토를 입고 오는 강력한 군대'라고 비유했다. 중국 경제와 기업들이 포탄에 맞 아 쓰러지기 전까지는 공격조차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고, 경제 및 금융 시장에서 통용되는 규칙에 따라 진행된 전쟁이기 때문에 내 상을 크게 입고 쓰러진 후에도 공격을 받았을 리가 없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고도 언급했다. 이쯤에서 조지 소로스의 말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금융시장에서 통용되는 규칙에 따라 투기 행위를 했을 뿐이다. 나 는 금융시장의 합법적인 참여자다. 도덕적인 기준으로 내 행동을 평가 하지 말라. 이는 도덕과는 별개의 문제다.
- 미국의 입장에서 러시아는 중국보다 경제 및 금융 공격을하기 쉬운 나라다. 에너지 한 분야만 집중적으로 공략하 면 대응력이 급격히 하락한다. 심지어 러시아는 뻔히 알고도 또다 시당할 수밖에 없다.
현재 러시아는 2005년 이래로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배 럴당 50달러가 넘는 기간에 모아둔 자금을 우크라이나 전쟁을 준 비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당량을 소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 길어지면 남은 자금도 바닥이 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이 유가를 폭락시키고 금융전쟁을 수행하면, 러시아 군대를 차가 운 시베리아벌판에 확실하게 묶어둘 수 있다.
지금 유럽은 러시아의 에너지공격으로 겨울이 올 때마다 공 포에 빠진다. 만약 미국이 에너지전쟁을 벌여 러시아를 제압하면 유럽 경제의 구세주가 된다. 러시아를 묶고, 유럽의 구세주가 되 고,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의 힘과 위상을 회복하는 등 미국이 러시아를 상대로 경제 및 금융 전쟁을 벌이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매우 많다.
- 1982년 11월 29일에 미국의 레이건 정부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문서인 'NSDD-66'에 서명을 했다. 그 문서는 유럽, 사 우디아라비아, 캐나다 등 미국의 동맹국으로 하여금 소련과의 천 연가스 매입 계약과 첨단기술 및 장비 수출 등을 금지 및 제한한 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소련의 채권 금리를 대폭 올려서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장기 채권보다는 단기 채권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경제전쟁의 전략도 담고 있었다."
미국은 소련이 첨단기술을 발판으로 군수산업을 발전시키 고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것을 막고자 우방 국가들에 압력을 가 해 대소련 기술 수출도 금지했다. 미국의 대소련 첨단기술 제품의 수출이 1975년에 32.7%였는데 1983년에는 5.4%로 급감했다. 'NSDD-66'에 서명을 한 미국 정부는 당시 OPEC 생산량의 40% 를 차지하고 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국제 유가에 대한 전략적 제 휴를 맺었다.
만약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가격을 하락시키는 데 기여한다면 미국은 첨단무기 등의 군사적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장에서도 미국의 권유에 따라 석유 가격을 하락 시키면 유럽의 국가들이 소련에서 수입하던 천연가스 대신 자국의 석유 수입을 늘릴 것이기 때문에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었다.
- 이런 밀약을 한 뒤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전격적으로 석유 생산량 을 4배나 늘렸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국도 전략적 비축유 의 구매량을 하루 22만 배럴에서 14만 5천 배럴로 35%가량 줄였 다. 서유럽과 일본 등도 전략 비축유를 방출해서 유가 하락을 가속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원유 가격은 불과 4년 만에 1986년의 4분의 1 수준인 배럴당 20달러대로 폭락했다. 심지어 WTI 가격이 1980년에 배럴당 평균 37.96달러에서 1986년 7월에는 배럴당 11달러 아래로 폭락했다. 1983년에 미국은 국제에너지기구 IEA를 통해 유럽 국가들이 소련산 천연가스 구매를 줄이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국제 유가가 급락하자, 소련은 연간 200억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 미국이 금융 지원을 금지한 상태에서 연간 200억 달러의 손 실은 소련을 몰락시키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1991년에 고르바 초프가 사임한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국제 원유 가격이 17달러 선 까지 떨어졌다. 소련 경제의 숨통을 틀어쥔 미국은 결정타를 날리 기 위해 소련에 차관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OECD에 압력을 가했 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달러화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여 소련이 벌어들인 달러의 실질 구매력도 떨어뜨렸다.
반대로 소련은 미국과의 군비 경쟁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재 원마저 국방비에 쏟아부어야 했다. 빠르게 달려가던 소련의 경제 는 갑작스럽게 멈춰 섰다. 소련은 유가 하락으로 입은 손실분만큼 의 차관을 미국에 빌려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금을 팔아 겨우 목숨을 연명하던 소련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1992년 1월 1일에 해체되었다. 미국은 강대국 소련을 총 한 방 쏘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괴멸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미국과 미국의 글로벌 석유회사들도 막대한 손실을 봤지만 생존에는 문제가 전 혀 없었다. 소련과 극심한 냉전 상태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 용과 비교하면 큰 손해가 없는 장사였다.
-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위위구조 계책을 성공시키기 위한 뒷문 단속의 두 번째 대상은 사우디아라비아다. 이것은 대러시아 경제 및 금융 공격의 승리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미국은 공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무시하고 조롱했다. 이제 이러한 대중동 정책은 변화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2개의 기둥'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대중동 정책에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필자는 미국과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대충돌을 벌일 때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과 맺은 '페트로달러 협약'을 파기하면 미국의 패권이 붕괴하기 시작하고, 페트로달러 파기 선언에 맞춰서 중국이 미국의 국채를 대량으로 매도하는 공격을 하면 그대로 침몰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탈미국 행보를 보 이면, 러시아의 발을 시베리아에 묶는 전략도 성공할 수 없다. 미 국이 에너지 가격을 급락시키려면, 사우디아라비아의 협력이 필 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이 중동을 다시 미국의 핵심 국익으로 재인정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그러면 시점은 언제일까? 필자의 예측으로는 미국의 다음 정부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 개선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바이든 행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의 관계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골이 깊다.
둘째, 바이든 행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양쪽 모두 2024년 이전까지는 서로의 손을 잡아야 할 필요성이 적다. 여전히 유가가 높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딱히 아쉬울 것이 없 다. 러시아, 중국,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가 중동만 바라보 고 있다. 당분간 절대 갑의 위치를 유지할 것이다.
- 중동이 부자 나라가 된 것도, 미국이 중동 앞에서 긴장하게 되는 것도 모두 석유 에너지 때문이다. 석유의 가치를 잘 모를 때, 전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중동 국가들은 세븐시스터스Seven sisters에 석유 개발을 맡겼다. 세븐시스터스는 석유 개발과 수출을 명분으로 이익의 절반을 가져갔다. 하지만 제1차 석유전쟁 과정에서 가격이 폭락하자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1960년 9월에 이라크 바그다드에 모인 중동 국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OPEC이 탄생한 것이다. 얼마 뒤 남미 등 다른 산유국도 OPEC에 동참했다. 이제 석유시장은 OPEC과 세븐시스 터스의 2강 구도가 되었다.
참고로 세븐시스터스의 뒤에는 미국이 있었다.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은 석유 자원의 국유화를 단행 했다. 1973년 10월 16일에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국왕의 주도 로 OPEC의 6개국은 원유 고시 가격을 17% 인상하는 내용을 발 표하여 미국, 이스라엘, 소련 등에 강펀치를 날렸다. 제4차 중동 전쟁(욤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 편을 들었던 나라들에 보복 공격을 한 것이다. OPEC이 석유 가격의 인상과 원유 감산을 반복하면 서 에너지공격을 지속하자, 배럴당 2.9달러였던 두바이유 고시 가 격이 1974년 1월에는 11.6달러까지 올랐다. 2~3개월 만에 4배 폭 등한 것이다. 중동을 가볍게 여겼던 미국과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한순간 경제적 혼란에 빠졌다. 1974년에 주요 선진국들 의 물가상승률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고, 경제는 마이너스로 곤두 박질쳤다.
제1차 오일쇼크 사건으로, 강대국 미국도 정책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1974년에 닉슨 행정부는 중동 국가와 관계 개선 을 시도했다. 중동과 이스라엘 간 분쟁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덜 편파적인 태도로 전환하는 성의를 보였다. 미국이 고개를 숙이자, 중동 산유국들은 1974년 3월 18일에 석유 금수조치를 철회하 고 에너지전쟁을 끝냈다. 1970년대에 중동은 석유전쟁으로 자신 들의 힘을 전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 이후로 중동은 전 세계 에너 지 패권을 미국과 공동으로 쥐고 관리하게 되었다.
2014년 이후에 셰일 에너지 혁명이 일어났다. 최대 수혜국은 미국이었다. 그리고 전 세계 에너지 패권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 다. 중동과 미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던 석유 에너지 패권이 미국으 로 기울었다. 미국은 셰일에너지 혁명을 기반으로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중동을 에너지 패권 공동 관리자 자리에서 밀어내고), 육지와 해 상에서 중국을 포위하여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금융과 에너지를 완전히 장악한 미국의 존재는 미래의 패권국을 욕망하는 중국에 거대한 위협이었다.
중국이 다시 절대적 패권을 차지해야 한다는 야망을 품은 시 진핑 주석은 방어책이 필요했다. 시진핑은 '일대일로'를 선택했다.
- 중국의 속내는 일대일로 안에 연결된 65개 국가를 에 너지 수출입이라는 공통된 이해관계로 묶는 것이었다. 중국을 제 외하고도 일대일로로 연결된 나라들에 원유는 전 세계의 70%가, 천연가스는 전 세계의 72%가 매장되어 있다. 이미 중국은 이 나라 들을 통해 원유의 66%, 천연가스의 86%를 수입하고 있다. 일대일 로는 이 구조를 단단히 묶고 확장하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 발전 에서 에너지 확보는 생명줄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경제 가 무너지면 군비 전쟁, 인재 전쟁, 환율 전쟁에서도 패한다. 중국 은 5가지 표면적 명분을 가지고 65개 국가에 자금을 빌려주거나 중국 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 대신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확보했다.
- 그러면 중국의 준비된 역습 계획은 무엇일까? 필자가 분석하는 시진핑의 준비된 역습 계획은 CBDC다. 한마디로 '디지털 기축통화' 선점이다. 이 역습 계획이 성공하면 금융전 쟁, 환율전쟁 등에서 전세를 역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필자 는 2022년 초에 《암호화폐 넥스트 시나리오》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시진핑 주석이 비트코인을 불법으로 지정하여 시장에 서 완전히 퇴출하고 '디지털 위안화'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바로 미국과 패권전쟁에서 전세 역전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카드였기 때문이다.
- 중국 빅테크 기업이 가진 첨단기술을 장악한 시진핑 주석이 CBDC를 활용해서 중국인의 돈 흐름을 전부 관리하게 되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 차원의 감시 시스템이 완성된다. 중국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위안화인 CBDC는 블록체인 기술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CBEP central bank electronic payment 기술 을 사용한다. 앞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해서 처리 속도를 높인 신기술이라고 홍보하지만, 뒤에서는 국민을 감시하는 데 유용 하도록 기술적 변화를 꾀했을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자신의 장 기집권 혹은 종신집권을 위해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의 디지털 페이를 디지털 위안화로 반드시 대체할 것이다.
- 필자가 분석하기에 중국에서 이미 '루이스 전환점 Lewisian Turning point'이 시작되었다. 루이스 전환점이란 경제가 급성장함에 따라 농촌의 잉여 노동력을 도시에서 빠르게 흡수하여 저임금 노 동자가 고갈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 결과 몇 년 동안 도시 노동자 의 임금이 급상승하면서 일정한 시점에 이르면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정착되고, 그에 따라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국면에 이른다 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197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루이스가 주장한 이후, 경제성장 국면의 전환을 예측하는 중요한 척도로 사 용되고 있다.
루이스 전환점을 통과하면, 임금이 급상승해 소비재 시장이 발전하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조립형 제품 을 수출하는 부문의 성장은 둔화된다. 만약 소비시장이 이 간극을 빠르게 상쇄하지 못하거나 첨단기술과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하여 생산성과 효율성을 개선하는 단계로 빠르게 나아가지 못하면 국 가의 성장률이 크게 둔화될 위험이 있다.
이런 상황에 빠져서 성장을 멈춘 대표적인 나라가 1970년대 이후의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이었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1960년대만 해도 세계 6대 부국이었다. 이 나라들은 루이스 전환점 이후 경제성장률 하락과 수출 경쟁력 저하, 높은 인플레이션과 부의 불균형 분배라는 성장 부작용, 정부부채 증가 등의 문제 때문에 다시 후진국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 참고로 한국은 1987년에 루이스 전환점에 따른 위기를 경고하는 분석들이 나왔었다. 경제성장률의 변화뿐만 아니라 산업과 경제 측면에서도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맞물리면 2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는, 산업현장의 인력 노쇠화 현상이 발생한다. 다른 하나는, 부동산 시 장에서 일어난다. 부동산 시장에서 생산가능인구의 수는 매우 중 요하다. 생산가능인구에 속하는 사람은 그 기간에 최소 집을 한두 차례 산다. 그리고 대체로 집의 규모를 늘려간다. 반면 나이가 들 면 집의 규모를 줄인다.
일본의 경우, 1991년 부동산 버블 붕괴가 시작되었지만, 2000년 이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활기 가 사라졌다. 중국의 경우, 시진핑의 3연임이 끝나고 그 이후부터 비슷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중국의 2030년 생산가능인구가 2020년 대비 7,700만 명 정도가 추가로 줄어든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매년 770만 명이 감소한다.

- 전문가들 대부분이 제국 몰락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정신적 요소의 붕괴를 꼽았다. 《제국의 미래》라는 저서로 유명한 미국 예 일대학교 법학대 교수 에이미 추아도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에이미 추아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패권국가인 페르시아, 세계 제 국을 건설한 로마, 중국 최고의 황금기를 만든 당나라, 칭기즈칸의 힘으로 유럽을 정복했던 원나라, 자본주의 경제를 제패한 최초의 제국인 네덜란드, 세계 최대의 해상제국을 이루었던 영국, 최첨단 과학 기술의 제국인 미국 등 강한 나라들의 공통적인 성공 요인으로 '전략적) 관용'을 꼽았다. 이들의 몰락은 관용을 잃어버린 순간 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했다. 에이미 추아는 관용이라는 정신적 요소가 성장과 몰락의 핵심 요인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 사회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려면 인종, 종교, 배경 을 따지지 않고 세계에서 손꼽는 능력과 지혜를 갖춘 인재를 끌어들이 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이것은 아케메니스 왕조의 페르시 아제국으로부터 대몽골제국, 그리고 대영제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존 재했던 모든 초강대국이 해온 일들이다. 그들이 이런 일을 하는 과정에 서 의지해온 것이 바로 관용이었다. (...)
- 내가 말하는 관용은 인권과 관련된 현대적인 의미의 관용이 아니다. 내 가 이야기하는 관용은 정치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의 미한다. (...) 아주 이질적인 사람들이 특정한 사회에서 생활하고 일을 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 인종, 종교, 민족, 언어 등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개인이나 집단이 그 사회에 참여하고 공존하면서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유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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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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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진보

사회 2023. 8. 18. 12:10

- 만약 공장의 기계가 갖는 잠재력이 현재의 공장 시스템이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과 결합된다면, 우리는 누그러지지 않는 잔혹함으로 전개되는 종류의 산업혁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 시기를 해를 입지 않고 지나가고자 한다면, 유행하는 이데올로기를 볼 게 아니라 사실관계를 봐야 한다.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 1949년)
- 이 모든 낙관이 무색하게 지난 1000년의 역사는 발명과 혁신이 "공유된 번영”과는 딴판인 결과를 불러온 사례로 가득하다.
*개선된 쟁기, 더 체계화된 윤작, 말의 사용 확대, 훨씬 개량된 수차와 풍차 등 중세와 근대 초기 농업에서 나타난 일련의 기 술 발달은 인구의 90퍼센트 가까이를 차지하던 농민에게 거 의 아무런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중세 말부터 시작해 유럽에서 선박 설계가 개선되고 대양을 가로지르는 교역이 가능해지면서 유럽의 일부 사람들이 막대 한 부를 획득했다. 하지만 동일한 종류의 선박이 아프리카에 서 수백만 명을 노예로 납치해 신대륙으로 운송했고 수 세기 간 이어진,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 끔찍한 영향이 남아 있는 억압적인 시스템을 불러왔다.
*영국 산업혁명 초기의 직물 공장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막대한 부를 창출해 주었지만 노동자들의 소득은 100년 가까이 증가하지 않았다. 직물 노동자 본인들이 절절히 잘 알고 있었 듯이, 되레 노동 시간이 늘었고 공장의 노동 여건과 인구가 밀 집한 도시의 생활 여건 모두 가혹하게 악화되었다.
*혁명적인 혁신이라 할 만한 조면기로 면화 재배의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고 미국은 세계 최대의 면화 수출국이 되었다. 하지만 이 동일한 발명이 남부 전역에서 면화 대농장이 운영될 수 있게 함으로써 노예제의 가혹함을 한층 더 강화했다.
*19세기 말에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Fritz Haber가 발명한 합성비료는 농업 산출을 크게 증대시켰다. 그러나 하버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동일한 원리를 적용해 화학 무기를 고안했고, 화 학 무기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상세히 논의하겠지만, 지난 몇십 년 사이 컴퓨터의 놀라운 발달로 소수의 사업가와 기업계 거물이 지극히 부유해졌다. 그러는 동안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대부분 의 미국인은 뒤로 밀려났고 많은 이들의 실질소득이 심지어 감소했다.

- 중국 공산당과 페이스북의 의사결정을 추동한 요인은 무엇이었는가? 둘 다 과학과 테크놀로지 자체에 내재한 속성에 의해 내려진 결정은 아니었다. 자신의 경로를 거침없이 나아가는 진보의 행진이 반 드시 거치게 되는 다음 단계여서 나타난 일도 아니었다. 두 사례 모두 에서 우리는 [의사결정자의] 이해관계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음을 볼 수 있다. 반대자를 억압하려는 이해관계, 그리고 온라인 광고 수입 을 늘리려는 이해관계와 같이 말이다.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고 무엇이 우선순위여야 하는가에 대한 지배층의 비전도 핵심적인 역할 을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테크놀로지가 통제에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정치적 견해를 통제하기 위해, 페 이스북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데이터와 사회적 활동을 통제하기 위해 테크놀로지가 사용되었다.
- 이것이 프랜시스 베이컨이 놓친, 그리고 275년의 인간 역사가 더 지나고 나서 H. W. 웰스가 깨달은 지점이다. 테크놀로지는 통제의 문제이며 자연에 대한 통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통제 이기도 하다는 점 말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 변화에서 어떤 이들이 다 른 이들보다 더 이득을 본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이것 은 생산을 조직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 일부 사람들의 부와 권력을 강화하고 다른 사람들의 권력을 훼손한다는 의미다.
-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한 비전에 사회가 단단히 흘려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그 비전은 기업계와 테크 분야의 지배 충이 자신의 부와 정치 권력, 사회적 지위를 한층 더 높이려는 계획을 밀어붙이는 데 도움이 된다. 지배층은 자신에게 좋은 것이 곧 공공선 에도 최선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의 고결 한 경로가 모종의 고통을 유발한다 해도 진보를 위해 충분히 치를 가 치가 있는 비용이라고까지 믿게 될 수도 있다. 고통을 겪고 비용을 떠 맡게 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비전으로 추동된 지배층은 매우 상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상이한 경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누군가가 대안 적인 경로를 그들 앞에 제시하기라도 하면 그들은 격분할지도 모른다.
- 레셉스의 사례는 한 세기 반 전의 일이지만 우리 시대의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는 데도 시사점을 준다. 이 이야기는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비전이 어떻게 사회의 지배적인 비전의 자리에 등극하는 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테크놀로지의 최전선을 밀어붙여 확장하는지 보여준다. 좋은 쪽으로도, 때로는 나쁜 쪽으로도 말이다.
레셉스는 프랑스의 많은 기관에서 지지를 받았고 한때는 이집 트 당국의 지지도 받았다. 그가 굉장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는 수에즈에서 대대적으로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는 프랑스 투자자들과 이집트 당국이 수에즈 운하에 대한 그의 계획 을 받아들이도록 성공적으로 설득했고,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에서 봉 착하게 될 어떤 난제도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나타나 해결해 줄 수 있 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성공의 정점에 있었을 때도 레셉스가 상정한 진보가 모두를 위한 것이지는 않았다. 수에즈 운하 건설 현장에서 일해야 했던 이집트 노동자들은 이 기술적 위업의 수혜자가 될 법하지 않았고, 레 셉스의 비전은 그들의 고통에 전혀 영향을 받는 것 같지 않았다.
파나마 프로젝트는 강력한 비전이 어떻게 그들 자신의 기준으 로 보더라도 대대적으로 실패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레셉스는 확신 과 낙관에 사로잡혀서 파나마에서 나타난 어려움을 인정하려 하지 않 았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그 어려움이 너무나 명백하게 보이는 상 황에서도 말이다. 프랑스 건설 공학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대실패 를 겪었고 투자자들은 돈을 날렸으며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헛되이 목숨을 잃었다.
- 비전의 덫
레셉스는 카리스마도 있었고 사업가적 안목도 있었고 야망도 있었다. 프랑스 권력층에 연줄도 있었고 때로는 이집트 당국의 지지도 받았다. 또한 그가 전에 거두었던 성공은 동시대의 많은 사람을 매혹했다. 더 중요하게, 레셉스는 거대한 공공 인프라 투자와 기술 진보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이에게 득이 되리라는 19세기판 테크노-낙관 주의를 설파했다. 이 비전이 프랑스 대중, 그리고 프랑스와 이집트의 의사결정자들이 그에게 동참하게 만들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이러한 비전의 역할이 없었다면 레셉스는 약 190킬로미터에 걸쳐 이집트의 사막을 가로지르는 공사에 엄두를 내볼 만한 의지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고,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기 시작했을 때도 그러한 의지를 가질 수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비전이 없으면 테크놀로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비전은 가시 범위를 제한하는 왜곡된 렌즈이기도 하다. 레셉스가 수에즈에서 발휘한 멀리 보는 안목과 기술 진보에 대한 믿 음은 찬사받을 만했을지 몰라도, 해수면 높이의 운하를 짓겠다는 그의 접근 방식에서 그에 못지않게 핵심적이었던 요인은 수만 명의 이집트인 부역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진보에 이 노동자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 자신의 기준으로도 레셉스의 비전 은 대대적으로 실패했는데, 이는 가장 큰 강점이던 자신감과 명료한 목적의식이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비전에 갇 혀서, 실패를 인식하고 상황의 변화에 맞게 적응하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나 어려웠다.
두 운하 이야기는 이러한 동태적 과정의 가장 해로운 측면을 보여준다. 레셉스는 파나마에 전과 동일한 믿음과 동일한 프랑스 전문 가와 동일한 방식으로 조달한 프랑스 자본을 가지고 왔고, 본질적으로 유럽에서 동일한 제도적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엇이 필요 한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자신의 생각에 배치되는 사실들이 계 속해서 나오는 현장 상황에 직면해서도 한사코 계획을 수정하지 않으 려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 몇 가지 면에서 레셉스의 감수성은 놀랍도록 현대적이었다. 거대 프로젝트에 대한 선호, 테크노-낙관주의, 민간 투자의 힘에 대한 믿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처하게 될 운명에 대한 무시 등 을 보건대 레셉스는 오늘날의 기업 이사회에 들어가도 잘 어울렸을 것이다.
파나마 운하의 재앙이 주는 교훈은 오늘날에도 유의미하며, 오 히려 오늘날 시사점이 더 크다. 1879년 파리 국제회의에서 한 미국 참 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회의의 실패는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반드 시 스스로 생각해야 하며 어떤 다른 사람이 이끄는 데로도 그냥 따라 가면 안 된다는 유익한 교훈을 줄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이제는 우리 가이 교훈을 잘 알게 되었노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진보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부과된 재앙의 사례에서 얻은 시사점을 토대로 오늘날의 실패를 논의하기에 앞서 던져보아야 할 중요한 질문들이 있다. 레셉스의 비전은 어떻게 해서 그토록 지배적인 비전이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까? 다른 이들의 목소리, 특히 그의 비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왜 들리지 않았을까? 답은 사회적 권력과, 또한 정말로 우리가 “공화 국의 시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는지와 관련이 있다.

- 설득 권력은 가시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포착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정치 권력은 정치 제도(입법의 규칙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누 가 행정적 권한을 갖는가 등)에서, 그리고 서로 다른 개인과 집단이 효과 적으로 정치적 연합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경제 권력은 경제 자원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과 그 자원으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에 좌우된다. 강압 권력은 폭력 수단을 얼마나 장악하고 있느냐에서 나온다. 그런데, 설득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거대 은행 및 그곳의 경영진과 투자자들이 구제된 과정을 살펴 보면 설득 권력의 두 가지 원천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아이디어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의제 설정의 힘이다.
- 월가가 정책과 규제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는 데는 아이디어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 거대 금융 기업을 만든 경영자들은, 현대 경제 전체가 소수의 거대 금융기관이 정부 규제를 거의 받지 않 고 매끄럽게 돌아가는 데 달려 있다는 개념을 촉진했다. 금융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금융인들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 가면서, 또한 영화와 신문에 금융권 초고소득자들의 막대한 연봉과 고 급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이 화려하게 그려지면서, "거대 금융은 좋은 것이다"라는 아이디어는 더욱 옳고 설득력 있게 들렸다.
- 사회적 지위를 존중하고 성공한 사람을 모방하는 것에는 명백한 진화상의 논리가 있다. 성공한 사람이 성공한 이유는 올바른 선택 을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러한 모방에는 분명한 단점 도 있다. 높은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 울이는 것은 강력한 피드백 과정을 일으킨다. 사회적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또 다른 자원을 가진 사람은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되 고, 사람들은 그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되며, 그러면 그 사람에게 더 큰 설득 권력이 부여된다.
다른 말로, 우리는 너무나 모방을 잘 하는 존재여서 우리가 많 이 접하게 되는 아이디어와 비전에 내포된 정보를 흡수하지 않기가 어렵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 아이디어와 비전은 강력한 의제설정자들 에게서 나온 것이다. 실험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결과를 볼 수 있다. 믿을 만한 정보가 아니라는 표시까지 붙어 있는 정보마저 그것을 진 지하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드는 것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 경제적·정치적 제도는 누가 다른 이들을 설득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를 갖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 시스템의 규칙은 누가 온전 히 대표되고 정치 권력을 갖게 될지, 따라서 누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 당신이 왕이거나 대통령이라면 의제 설정에 아 주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고 명령을 내려 직접적으로 의제 를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제도는 지지를 동원하 고 필요하다면 정치인과 기자에게 돈도 줄 수 있는 자원과 경제적 네 트워크를 누가 가질지를 결정한다.
당신이 솔깃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 설득 권력은 강해지 는데, 앞에서 보았듯이 이것도 어느 정도 제도에 의존한다. 당신이 부 유하거나 정치적으로 강력하다면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될 것이고, 이는 당신의 말이 더 설득력을 갖게 해줄 것이다.

- 11세기 초에 잉글랜드 농촌에서는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농민들은 힘겹게 일했고 생계 수준 정도의 소비를 했다. 게다가, 현존하는 증거들에 따르면 이후 두 세기 동안 이들은 한층 더 쥐어짜인 것으로 보인다. 노르만 정복자는 농업을 재조직하고 봉건제 를 강화했으며, 명시적으로 또 암묵적으로 세금을 늘렸다. 농민들은 산출물 중 전보다 많은 양을 영주에게 바쳐야 했다. 중세의 영주들은 점차 더 가혹한 노동 여건도 강요했다. 잉글랜드 일부 지역에서는 농 민들이 1년 중 영주의 땅에서 일하는 시간이 노르만 정복 이전에 비해 두 배로 늘기도 했다.
식량 생산은 증가했고 농민들은 더 열심히 일했지만, 이들의 영양 상태는 악화되었고 소비 수준은 생존이 불가능해질 경계선으로까지 떨어졌다. 기대수명은 여전히 낮았고, 어쩌면 더 낮아져서 출생 시 기대수명이 25세밖에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어서 1300년대 초에는 일련의 기근이, 1300년대 중반에는 흑사병이 닥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흑사병으로 잉글랜드 인 구의 3분의 1에서 2분의 1이 줄었다. 균이 워낙 치명적이었기도 했지 만, 만성적인 영양실조와 결합된 것이 사망자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발 생하게 된 원인이었다.
수차, 풍차, 말굽, 물레, 외바퀴 손수레, 금속학의 발달로 증가한 산출이 농민에게 가지 않았다면, 다 어디로 갔을까? 일부는 더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는 데 들어갔다. 잉글랜드 인구는 1100년 220만명이던 데서 1300년에는 500만 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인구가 느는 동안 농 업 노동력과 농업 생산도 늘었다.
전반적으로 생산성이 높아졌는데 인구 대부분의 소비 수준은 낮아졌으므로 잉글랜드 경제에 막대한 "잉여"가 발생했다. 잉여는 생산된 것(대체로는 식량, 목재, 의류) 중에서 인구의 생존과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최초 수준을 넘는 양을 말한다. 증가한 농업 잉여는 소수의 지 배 계급이 누렸다. 지배 계급은 왕의 가신, 귀족, 고위 성직자 등을 다 포함해서 최대한 넓게 잡아도 인구의 5퍼센트가 채 되지 않았지만 중 세 잉글랜드의 농업 잉여 대부분을 가져갈 수 있었다.
잉여 식량 중 일부는 새로이 떠오르며 번성하던 도시 인구를 부양하는 데로도 들어갔다. 1100년에 20만 명이던 도시 인구는 1300 년경 100만 명으로 늘었다. 대부분의 농촌 지역과 크게 대조적으로,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된 것으로 보인다. 도시 거주자 들은 사치품도 포함해서 다양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런던의 팽 창은 이 시기 도시에서 볼 수 있었던 풍요의 확대를 잘 보여준다. 런던 인구는 세 배 이상 늘어서 약 8만 명이 되었다.
- 하지만 잉여의 대부분은 도시로 흡수된 것이 아니라 종교 교단으로 흡수되어 대성당, 수도원, 예배당을 짓는 데 들어갔다. 1300년경에 주교, 대주교, 그 밖의 사제들이 소유한 땅이 전체 농경지의 3분의 1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시기의 종교 건축 붐은 진정으로 놀라웠다. 1100년 이후 26 개 도시에 대성당이 세워졌고 8,000개의 새 예배당이 지어졌다. 어마 어마한 대형 프로젝트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 집 에 살던 시절에 대성당은 석조 건물로 지어졌고 대개 슈퍼스타급 건 축가가 설계했으며 어떤 것은 완공되는 데 몇백 년이 걸렸다. 날마다 숙련 장인들을 포함해 수백 명이 일했고 채석장에서 돌을 캐고 자재 를 나르는 등의 저숙련 육체노동도 많이 필요했다.
- 새로운 기계의 도입과 그로 인한 생산성 증가가 굳이 농민을 더 쥐어짜고 농민의 생활 수준을 낮추는 쪽으로 쓰인 이유는 무엇인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생산성을 높였지만 영주가 노동자를 더 고용할 의향이 없거나 고용할 수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그래도 영주는 여전히 더 생산적인 새 테크놀로지에 더 많은 노동 시간이 투 입되기를 원한다. 이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표준적인 설명에서는 종종 간과되지만, 한 가지 방법은 강압의 강도를 높여서 노동자의 노 동 시간을 강제로 늘리는 것이다. 그러면 생산성 증가의 이득은 토지 소유자가 가져가게 되고 노동자에게는 기술 혁신과 생산성 증가가 직 접적으로 해가 된다. 더 강도 높은 강압과 더 장시간의 노동에 (아마도 심지어는 더 낮은 임금에도)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세 잉글랜드에 수차와 풍차가 도입되었을 때 벌어진 일이 바 로 이와 같았다. 새로운 기계의 도입으로 생산성이 높아지자 봉건 영주들은 농민들을 더 강도 높게 착취했다. 노동 시간은 길어졌고 농민들이 자신의 작물을 경작할 시간은 줄었으며 실질소득과 가구 소비도 줄었다.
사회적 권력의 분배 방식과 당대의 지배적인 비전도 새로운 테 크놀로지가 어떻게 개발되고 도입되는지에 영향을 미쳤다. 어디에 방 앗간을 짓고 누가 그것을 통제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이었 다. 종교 교단의 사회이자 신분 질서의 사회이던 잉글랜드에서 영주와 수도원이 방앗간을 운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였다. 또한 이들은 경쟁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데 권위와 권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따라 서 영주의 방앗간은 해당 지역 전체의 곡물과 직물을 처리했고 사용 료도 영주가 결정했다. 어느 경우에는 농민들이 방앗간을 사용하지 않 고 집에서 손으로 곡식과 직물을 처리하는 것을 영주가 금지하기도 했다. 테크놀로지가 이러한 경로를 따라 도입되면서, 경제적 불평등과 권력의 불평등이 강화되었다.
- 인클로저 운동의 역사는 설득 권력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테크놀로지 변화에서 누가 이득을 얻고 누가 그렇지 못할지에 어떻게 영 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무엇이 진보이며 그것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해 영국 지배층이 가졌던 비전은 농업의 재조직화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늘 그렇듯이, 이 비전은 그들의 이해관계와 부 합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를테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거의 혹 은 전혀 하지 않고 토지를 확보하는 것은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들에 게 명백하게 이득이 되었다.
공공선에 부합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비전은 새로운 테크놀로 지가 승자만이 아니라 패자도 만들어 내는 경우에도, 아니 그런 경우에 더욱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테크놀로지 도입과 재조직화를 밀어 붙이려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전환의 과정에는 설득해야 할 관련 당사자가 아주 많다. 자신의 관습적인 권리를 빼앗기게 될 가난한 농민을 설득시 키기는 어려웠으므로 더 가능성이 높고 이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지 는 데 더 본질적이었던 것은 도시 사람들과 의원 등 정치 권력자를 설 득하는 것이었다. 인클로저를 빠르게 진행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영의 과학적인 분석은 이 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예상할 수 있듯이, 토지 소유자들은 그들이 듣고 싶은 결론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 었다. 그리고 영이 그것을 이야기했을 때는 그의 말을 환영했고 영이 생각을 바꾸자 그를 침묵시켰다.
- 신석기 혁명 이후 몇천년간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이보다 적지만, 정착 농경이 완전히 확립된 약 7000년 전 무렵 이면 최근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다. 곡물 생산을 기반으로 한 잘 알려진 고대 문명 모두에서 대다수의 인구는 수 렵 채집을 하던 조상보다 못 살았고, 반면 지배층은 훨씬 더 잘 살았다.
이 중 어느 것도 진보의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었다. 모든 곳에 서 중앙집권적 전제 국가가 생겨난 것도 아니었고 농업의 발달이 꼭 강압과 종교적 설득에 특화한 지배층의 잉여 수탈을 필요로 한 것도 아니었다. 수차와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꼭 지역의 지배층이 독점 적으로 통제해야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농업 근대화도 가뜩이나 가난 했던 농민들에게서 꼭 땅을 더 빼앗아야만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경우에 대안적인 경로가 있었고 어떤 사회들은 대안을 선택했다.
- 대안적인 경로가 있었긴 하지만 농업 테크놀로지의 오랜 역사는 명백하게 지배층에게 유리하게 편향된 경로를 보여준다. 이는 지배 층이 강압을 종교적 설득과 결합했을 때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이 러한 역사는 우리가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말하는 아이디 어에 접하면 늘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특히 강력한 사람들이 특정한 비전을 설파하려 할 때, 우리는 더 더욱 조심해야 한다.

- 영국이 다른 나라들과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은 개천용들의 나라가 될 수 있게 해준 오랜 사회적 변화였다.
19세기 중반이면 영국에서는 수만 명의 중간 계층 사람들이 사업적 성공과 테크놀로지 개발을 통해 현재의 처지보다 훨씬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서구 유럽의 다른 나라들 에서도 사회적 위계가 느슨해지고 부와 지위를 높이고자 하는 야망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중간 계층 사람들이 기존 의 계층을 벗어나 사회적 위계의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한 나라는 당 시에 영국 말고 없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혁신과 새 로운 테크놀로지 도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역이 바로 이러한 “중 간정도의 사람들”이었다.
1700년대 초 무렵이면 대니얼 디포가 말한 "프로젝트의 시대" 로 표현되는 정신이 영국의 시대정신이 되어 있었다. 중간 계층 사람 들은 진보의 기회를 보았고, 건전한 투자를 통해서든 빠르게 부자가 되기 위한 금융 투기를 통해서든 그 기회를 잡는 데 나섰다. 1720년에 터진 남해회사 버블은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새로운 모험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기대를 잘 드러내며 특히 수익을 추구하는 소규모 투자자들 의 열정을 잘 보여준다.
- 높은 사회 계층으로 올라가고 싶다면 부를 획득해야 했고, 역으로 부만 획득할 수 있다면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는지에는 한계가 없었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18세기 영국 경제에서 부는 더 이상 토지 소유하고만 관련 있지 않았다. 교역을 하거나 공장을 지어서도 큰돈을 벌 수 있었고 큰돈을 벌면 사회적 지위가 따라왔다. 이와 같이 상대적으로 유동적인 환경에서, 내세울 것 없는 집안 출신의 수많은 야심가들이 기존 사회 질서를 완전히 전복하기보다는 기존 질서가 다 소 수정된 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성공을 통해 계층 상승을 이루고자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토머스 터너 Thomas Turner의 일기는 18세기 중반 그와 같은 중간 계층 사람들이 가졌던 야망을 잘 보여준다. “아, 사업은 얼마나 즐거운 가! (정직한 직업이기만 하다면) 활발하고 바쁜 삶은 게으르고 무기력한 삶보다 얼마나,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상업이 독려되는 바로 그 지점 에 자신의 운이 놓여 있고 그것을 열정적으로 밀어붙일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때, 그는 얼마나, 얼마나, 행복한가?"
이것은 상업과 산업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 의 발명은 "대항해 시대에 중간계층의 야심가들이 꿈과 야망을 펼치 기에 자연스러운 장소였다. 옛 진리와 기성의 방식은 무너지고 있었 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예견했듯 사람들은 점점 더 자연에 대한 정복을 마음에 품게 되었다.
- 중간 계층 출신의 야심가들은 도시와 농촌의 빈민에 대해 [엘리트주의적 진보 개념을 가진] 휘그 사관식 귀족주의의 내려다보는 듯한 태 도를 받아들였다. 빈민은 "더 비천한 종류의 사람들이고 자신들, 즉 시스템 안에 통합될 수 있는 사람들인 야망 있는 중간 계층과는 완전 히 다르다고 여겨졌다. 그레고리 킹Gregory King은 이들 빈민이 국부에 기여하지 않고 오히려 "국부를 줄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당대의 인물인 윌리엄 해리슨William Harrison은 "[빈민은] 국가에서 목소리도 권 한도 가질 수 없으며 다른 이들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으니 야심 있는 새로운 중간 계층이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을 뿐 노동자와 사회 공동체 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6장에서 보겠지만, 그 결과 기술, 조직, 성장 전략, 임금 정책 등에 대해 산업가들이 내린 선택은 그들을 부유하게는 했지만 생산성 증가의 이득이 노동자들에게 공유되는 것은 가로막았다. 이러한 상황 은 노동자들 자신이 정치적·사회적 권력을 충분히 획득했을 때에서 야 달라지게 된다.

- 학자 얀 드 브리스Jan de Vries는 산업혁명 Industrial Revolution이 사실상 "근면 혁명 industrious revolution"이었다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그 리고 곧이어 다른 모든 곳에서도 노동자들이 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18세기 중반의 평균 노동시간은 연간 2,760시간으로, 50년 전 이나 1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1800년 경이면 평균 노 동시간이 이미 3,115시간으로 늘어 있었다. 이후 30년간 노동시간은 더 늘어서 3,366시간이 되었고, 이는 주당 65시간에 해당했다. 그러나 더 장시간의 노동이 더 높은 소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노동 강도와 노동 시간의 증가가 어느 정도까지 더 나은 경제 적 기회에 반응한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이었고 어느 정도까지 노 동자의 의지에 반해 강요된 것이었는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21세기에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우리가 던져보기에 좋은 질문이긴 하 지만, 1800년대 초에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50년이나 100년 전 사람들 보다 더 장시간 더 고되게 일하지 않으면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새로이 등장한 공장 경제에서는 이것이 생존의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 공장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factory"는 기름 짜는 도구나 방앗간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가 어원이다. 1500년대에는 규모가 비교적 작은 사무소나 교역의 전초 기지를 의미하는 말로도 쓰였다. "물건을 만드는 건물의 의미로 쓰인 용례는 1600년대 초부터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다가 1721년부터 이 단어는 꽤 새로운 무언가를 의미하기 시작했 다. 기계가 돌아가는 곳에서 여성과 아동도 포함해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초창기 직물 공장에는 많게는 1,000명이 고용되어 있었고 반복 동작에 방점을 두고 업무를 단순한 부분들로 쪼갠 뒤 강한 규율을 부과해 모두가 한 몸처럼 일하게 했다. 물론 노동자의 자율성은 크게 줄었다.
당대의 가장 성공한 혁신가이자 공장 소유주였던 리처드 아크 라이트는 첫 공장을 탄광 근처에 지었다. 당시에 그의 공장은 수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동력원에 쉽게 접하기 위해 정한 입지는 아니었다. 아크라이트의 목적은 탄광 노동자의 가족들을 고용하는 것이었다. 여성과 아동은 고도로 규율 잡힌 군대식 시스템에서 성인 남성보다 말 도 더 잘 듣고 손놀림도 더 민첩하다고 여겨졌다. 물은 밤낮으로 흐르 니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갈 수 있었다. 공장을 짓는 데는 돈이 많이 들었으므로 일단 투자를 하고 나면 사업가들은 공장의 장비를 가능한 한 밀도 있게 사용하고자 했다. 늦은 밤까지 공장을 돌리는 것은 당연 했고 밤낮없이 가동할 수 있으면 더욱 좋았다.

- 전후의 테크놀로지가 내재적인 속성상 새로운 업무를 창출해 자동화의 노동 대체 효과를 상쇄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고 생 각하면 안 된다. 테크놀로지의 방향을 두고 맹렬한 갈등이 있었고, 이 갈등이 이 시기 노동과 경영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본질이었다. 그리 고 테크놀로지가 노동자 친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노동자 쪽에서 길항 권력이 생겨나 기업들을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데 일조한 제도적 배열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전쟁 때 노조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과 와그너법의 도 입은 노동계의 힘을 강화했고, 전쟁이 끝나면 미국의 제도에서 노조가 주요 기둥 중 하나가 되리라는 예상이 사람들 사이에 일반적으로 형 성되었다. 루스벨트 행정부의 내무장관 해럴드 이크스Harold Ickes는 전 쟁이 끝나가던 시점에 한 노조 콘퍼런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함으로 써 이러한 예상을 공고히했다. "여러분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행진을 막으려는 사람, 아니 속도를 늦추려는 사람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 노동계는 그렇게 했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 말의 의미를 기업계에 확실히 인지시키는 일에 나섰다. 전미자동차노조United Auto Workers 는 전후의 첫 단체 협상에서 GM에 큰 폭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고 GM 이 거부하자 파업에 돌입했다. 자동차 분야에서만이 아니었다. 같은 해인 1946년에 대대적인 파업의 파도가 일었고 노동통계국은 이를 "미국 역사상 노사 갈등이 가장 집중적으로 일어난 시기"라고 표현했 다. 일례로 전기 노동자의 파업은 미국 제조업의 또 다른 거인인 제너 럴 일렉트릭을 마비시켰다.
- 노동계가 자동화에 반대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동화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이해했고 올바른 선택을 내린다면 자동화로 인한 비용 절감이 모든 당사자에게 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새로운 업무를 창출하는 데 기술 발달을 사용 하고 비용 절감과 생산성 증대의 이득을 노동자들과도 나누라는 것이 었다. 1955년에 전미자동차노조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 더 큰 기술적 진보가 더 큰 인간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게 할 ... 정책과 프로 그램을 찾는다는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면서 ... 협력할 것이다."
- 긴 역사적 시간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몇십 년은 독특했다. 알려진 바로는 이렇게 빠르고 널리 공유된 번영의 시기는 전에 없었다.
근대 이전에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수백 년간 성장을 경험 했지만 이 성장은 훨씬 느려서 기껏해야 연간 0.1~0.2퍼센트 정도였 다. 이것은 배제된 집단의 가혹한 착취에 기반한 성장이기도 했다. 가장 두드러지게는 노예 노동을 착취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 모두에서 시민 신분이 아닌 사람 상당수가 강요된 노동을 했다. 또한 시민 계층이 어느 정도 번영을 누리기는 했어도 성장의 주된 수혜자는 귀족 계급이었다.
중세의 성장은 4장에서 보았듯이 느리고 불평등했다. 1750년 경부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성장률이 도약하지만 1950년 대와 1960년대에 서구 세계 전반적으로 연평균 2.5퍼센트가 넘는 정 도의 성장률을 보인 것에 비하면 느린 성장이었다.
전후 경제 성장의 다른 면들도 마찬가지로 이례적이었다. 과거 에는 중등 교육, 고등 교육이 상류층과 중산층의 특권이었으나 전쟁 후에는 이것이 달라졌다. 1970년대가 되면 서구 세계 거의 전역에서 중등 교육은 물론이고 고등 교육까지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었다.
- 산업의 집중이 심화되고 지대의 공유가 줄면서 1950년대와 1960년대 에 존재했던 공유된 번영 모델이 첫 번째 타격을 맞았지만 이것 자체 만으로는 실제로 진행된 정도만큼의 대대적인 전환을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규모로 전환이 일어나려면 테크놀로지의 방향 또한 반노동적인 쪽으로 전환되어야 하는데, 이 지점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등장 한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프리드먼 독트린은 기업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수익을 높여 야 한다고 독려했고 1980년대 무렵이면 이 아이디어가 기업계에서 널 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스톡옵션의 형태로 경영자에게 주어진 보상이 이러한 전환을 강력하게 촉진했고 기업 최상층의 문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미국 기업계에서 많이 이야기된 주요 주제 하 나는 처음에는 소비자 가전에서, 그다음에는 자동차에서, 효율적인 일 본 제조업체들과의 경쟁에 직면했다는 것이었다. 미국 기업인들은 이 에 대응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느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새로운 업무의 창출과 자동화로 인 한 노동 대체 사이에 균형이 잡힐 수 있는 방식으로 투자가 이루어지 면서 노동자의 한계생산성이 증가했고 제조업의 소득 중 노동으로 들 어가는 몫도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70퍼센트 가까운 수준으 로 대략 일정했다. 하지만 1980년대가 되면 많은 미국 경영자들이 노 동을 자원이 아니라 비용으로 여기면서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 려면 이러한 비용이 절감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생산에 고용된 노동력을 자동화로 줄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자동화가 노동자를 밀어내면 노동자 1인당 산출은 늘지 만 노동자의 한계생산성은 그만큼 늘지 못하거나 때로는 줄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충분히 큰 규모로 일어나면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임금의 증가도 둔화된다.
노동 비용을 줄이기 위해 미국 기업들은 새로운 비전과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필요했는데, 경영대학원과 새로이 떠오른 테크놀로지 분야가 이 두 가지를 각각 제공했다. 비용 절감과 관련해 핵심적인 아 이디어는 1993년에 출간된 마이클 해머Michael Hammer와 제임스 챔피 James Champy의 『리엔지니어링 기업혁명Reengineering the Corporation: A Manifesto for Business Revolution』에서 잘 볼 수 있다. 해머와 챔피는 미국 기업이 매우 비효율적이 되었으며 중간 관리자와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너무 많이 두고 있는 것이 큰 이유라고 보았다. 따라서 더 강력하게 경쟁에 나서기 위해서는 미국 기업에 리엔지니어링이 필요하고 새로운 소프트웨어들이 이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해머와 챔피는 리엔지니어링이 자동화만 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긴 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저숙련 일자리가 상당 부분 없어질 것이라고 보 았다. "옛 방식의 반복 작업은 상당 부분 사라지거나 자동화될 것이다. 단순한 노동을 단순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옛 모델이었다면 새 모델 은 복잡한 일을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노동시장 의 진입 기준이 높아질 것이다. 리엔지니어링이 된 환경에서는 단순하 고 반복적이고 저숙련을 요하는 일자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이 다." 현실에서 이것이 펼쳐진 바를 보면, 복잡한 일을 하는 똑똑한 사 람들은 늘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온 사람들이었다. 리엔지니어링이 된 환경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괜찮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자리는 점점 더 드물어졌다.
- 새 비전을 설파할 사제들은 이 시기에 새로이 번성하던 경영 컨설팅 분야에서 나왔다. 1950년대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경영 컨설팅 분야의 성장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더 잘 사용함으로써 구조 조정을 하려는 기업계의 노력과 나란히 이루어졌다. 경영대학원들과 더불어 맥킨지, 아서앤더슨 같은 경영 컨설팅 회사들도 비용 절감 아 이디어를 촉진했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경영 전문가들에 의해 점점 더 정교하게 설파되면서 노동자들이 이에 맞서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프리드먼 독트린도 그랬듯이 기업 리엔지니어링 이론도 이미 존재하고 적용되고 있었던 아이디어와 전략을 정식화하고 고착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머와 챔피의 책이 출간된 무렵이면 이미 미국정책도 일조했다. 미국의 조세 시스템은 늘 자본을 노동보다 우대했다. 자본 이득이 노동 소득보다 실질적인 세율이 더 낮은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과세 비대칭이 더욱 심해졌고 장비와 소프트웨어 자본과 관련해서 특 히 더 그랬다. 여러 행정부를 거치며 기업의 법인세와 가장 부유한 개 인들에 대한 연방 소득세율이 연달아 낮아졌고, 이로 인해 자본에 대 한 실질적인 세율이 더 낮아졌다(기업의 자본 투자 수익이 가장 부유한 사람들에게 압도적으로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는 장비와 소프 트웨어 자본에 대해 감가상각충당금 적용을 점점 더 후하게 허용하면 서 자본에 대한 과세 우대가 더 강화되었다. 이 같은 제도는 처음에는 일시적으로만 도입된다고 했지만 종종 연장되었고 더욱 후해졌다.
전반적으로, 급여세와 연방 소득세 기준으로 노동 소득에 대한 평균 세율은 지난 30년간 25퍼센트 이상을 계속 유지했지만 장비와 소프트웨어 등 자본(자본 이득으로 환산될 수 있는 모든 항목을 다 포함해 계 산했다)의 실질적인 세율은 1990년대에 15퍼센트 정도이던 데서 2018 년에는 5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치우친 조세 인센티브는 기업이 자동화 장비와 도구를 더 많이 도입하도록 했고, 다시 이러한 수요 증가로 자동화 기술이 더 많이 발달하면서 자기 강화적인 순환 고리를 타게 되었다.
- 1980년 이후 미국의 평균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연간 0.7퍼센트가 채 되지 않았다. 1940년에서 1970년대 사이에는 평균 약 2.2퍼센트였 는데 이것은 매우 큰 차이다. 총요소생산성 성장이 1950년대와 1960 년대 수준이었다면 1980년 이래 미국 경제는 GDP 성장률이 매년 1.5 퍼센트포인트 더 높았을 것이다. 생산성 둔화는 2008년 금융위기 이 후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미국의 생산성 성장률은 호황기이던 2000년 부터 2007년 사이에도 연간 1퍼센트가 되지 않았다.
이러한 실증근거들이 있는데도 테크놀로지 분야의 리더들은 우리가 테크놀로지와 혁신의 시대를 살고 있어서 무척 운이 좋은 것 이라고 말한다. 저널리스트 닐 어윈Neil Irwin은 뉴욕타임스에서 이러 한 낙관적 견해를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표현했다. “우리는 혁신의 황금기, 즉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인간 존재의 기반을 변모시키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 지난 40년간 혁신이 노동자의 한계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자들이 할 새로운 업무를 창출하는 데서 등을 돌렸지만, "쉽게 딸 수 있는 낮게 매달린 과일"을 많이 버려두기도 했다. 버려진 생산성 기회를 볼 수 있는 영역 하나가 자동차 산업이다. 로봇과 특화된 소프트웨어가 노동자 1인당 산출을 증가시켰지만 사람에게 더 투자했더라면 생산성 이 이것보다 더 높아졌을 것임을 시사하는 연구들이 있다. 1980년대 에 토요타 같은 일본 회사들은 점점 더 많은 업무를 자동화하던 중에 생산성이 그리 많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정이 돌아 가는 곳에 노동자들이 있지 않으면 유연성이 상실되어 수요나 생산 조건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를 발견 하고 토요타는 자동화 추세에서 한발 물러섰고 중요한 생산 업무에서의 핵심적인 역할에 노동자를 다시 불러왔다.
토요타는 미국에서도 동일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캘리포니 아주에 있는 GM의 프리몬트 공장은 낮은 생산성, 불안정한 품질, 노 사 갈등으로 고전하다가 1982년에 문을 닫았다. 1983년에 토요타와 GM은 합작회사를 세우고 두 회사 모두의 자동차를 생산할 곳으로 프 리몬트 공장을 다시 열었다. 예전의 노동력과 노조 지도부도 유지되었 다. 하지만 토요타는 자신의 경영 원칙을 도입했고, 여기에는 발달된 기계를 노동자들의 재교육과 노동자들이 수행할 수 있는 유연성 및 주도력과 결합하는 접근 방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곧 프리몬트는 생산 성과 품질 수준이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보다 훨씬 높아졌고 토요타의 일본 공장들에 맞먹을 정도가 되었다.
- 더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전기차 회사 테슬라가 비슷한 교훈을 얻었다. 처음에는 머스크의 디지털 유토피아 비전에 이끌려 서 자동차 생산의 모든 부분을 자동화하려 했지만 비용이 급증했고 지연이 많이 발생해 수요를 맞추지 못했다. 머스크 본인도 이렇게 인 정했다. "그래요, 테슬라에서 과도한 자동화는 실수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실수였어요. 인간을 가치절하했습니다.”
이것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었어야 한다. "로봇"이라는 말을 만 든 카렐 차페크도 로봇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고, 인간이 하는 종류 의 정교한 작업을 로봇이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 렇게 언급했다. "수년간에 걸친 실행을 통해서만 아무렇게나 돌아다 니는 것 같은데도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는 진짜 정원사가 갖는 대 담한 확실성과 신비로움을 터득할 수 있다."
혁신의 영역에서 아직 활용되지 않은 채로 낮게 매달려 있는 과일은 공장의 재조직화보다도 더 큰 결실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하지 만 경영자들은 자동화를 더 밀어붙이면서 정보 공유와 협업을 위해 더 나은 플랫폼을 제공하고 새로운 업무를 창출함으로써 노동자의 생 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테크놀로지에 투자하는 것에서는 등을 돌렸다(9장에서 더 상세히 논의할 것이다). 디지털 유토피아가 추동하는 과도한 자동화가 아니라 균형 잡힌 혁신의 포트폴리오가 경제의 생산성을 더 빠르게 높일 수 있는 길일 것이다.

- 미래 세계는 편안히 누워서 노예 로봇을 기다리면 되는 안락의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지능의 한계에 맞서야 하는, 점점 더 힘겨워질 투쟁의 장일 것이다. (노버트 위너, 신과 골렘 주식회사God and Golem, Inc.』 1964년)
- 인간의 역량을 가치절하하는 것은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돌아올 수 있다. 자동화를 하기로 결정할수록 사회적 상호작용과 인간의 학습이 벌어질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고객 서비스를 예로 들어보자. 잘 훈련된 서비스 직원은 매우 효 과적으로 고객의 문제를 처리해 주는데,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고객과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직원은 지금 막 사고를 당해서 청구서를 써야 하는 고객에게 공감하면서 유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는 부분적으로 그러한 소통의 도움으로 문제의 속성을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의 필요에 부합하는 해법을 찾아낸다. 또한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업무 경력이 쌓이면서 점점 더 일을 잘하게 된다.
- 그런데 고객 서비스 업무를 더 잘게 쪼개서 프론트엔드 업무를 알고리즘에 할당했다고 생각해 보자. 알고리즘은 당면한 문제의 복잡 성을 완전히 파악하고서 다루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고객 이 아주 기다란 메뉴를 거친 후에 결국 인간 상담사가 문제 해결을 위 해 개입해야 하는데, 이 시점이면 고객은 화가 나 있다. 사회적 유대를 쌓을 수 있는 초기의 기회들이 사라졌고, 이제 고객 서비스 직원은 고 객과 소통을 해도 전만큼의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구체적인 상 황에서 정보를 얻고 그에 대응하는 역량이 줄어들고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경영자와 기술자들은 이를 인간이 잘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판단해 추가적으로 업무를 기계에 할당하려 할 것이다.
AI와 관련 테크 분야 사람들은 인간의 지능과 적응성에 대한 이러한 교훈을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인간 특유의 역량이 수행하는 역할이 무엇이든 간에 수많은 업무를 자동화하는 방향으로만 몰두한다
- 영상의학 분야에서 AI의 성취가 널리 찬양되었다. 2016년에 현대적인 딥러닝 기법을 공동으로 개척하고 튜링상도 받은 구글의 과학 자 제프리 힌턴 Geoffrey Hinton은 “5년 안에 딥러닝이 인간 영상의학자보 다 업무를 훨씬 더 잘 수행할 것이 명백하므로 영상의학 교육을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6년 이래로 영상의학 전문의에 대한 수요는 증가했다.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다. 영상 진단 은 심지어 고객 서비스보다도 상황적·사회적 지능이 더 많이 필요하 며 현재로서 이것은 기계의 역량을 넘어선다. 최근의 연구들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인간이 가진 전문성이 결합되었을 때 효과가 더 크 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일례로, 기계 학습 알고리즘은 당뇨성 망막증 (당뇨 환자들 사이에 망막으로 가는 혈관이 손상되어서 생기는 증상)의 진단 을 향상시켜 줄 수 있지만, 알고리즘으로 어려운 케이스들을 짚어내 고 나서 인간 안과 전문의가 추가로 검토했을 때 진단의 정확도가 더 높아졌다.
- 과적합은 기계 지능과 관련해서 특히 더 문제일 수 있는데, 기계 지능이 실제로는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도 잘 돌아가고 있다 는 가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가령 국가들의 평균 기온과 1인당 GDP라는 두 변수 사이에 통계적 관련이 있다고 해서 기후가 경제 발 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 상관관계는 단순히 유럽의 식민주의가 특정한 역사적 과정에서 상이한 기후대와 상이한 지역에 상이하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제대 로 된 이론이 없으면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헛갈리게 되고, 기계 학 습은 이 둘을 종종 헛갈린다.
- 과적합은 AI가 인간이 새로운 정보에 반응해 행동하는, 따라서 내재적으로 사회적인 속성을 갖는 상황을 다루어야 할 때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인간이 환경에 반응한다는 말은 맥락이 자주 달라 진다는 뜻이고, 특히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바로 그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하는 행동 때문에 맥락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경제학의 사 례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구직자가 채용 공고가 거의 나오지 않은 직 종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을 때 알고리즘이 이것을 포착했다면 구직자 에게 행동을 바꾸도록 정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적합을 막 기 위해 개발된 방법들(예를 들어 알고리즘을 훈련하는 데이터와 검증하는 데이터를 분리하는 것 등)은 여기에서 과적합 문제를 제거하지 못한다. 두 샘플 모두 예를 들어 유통 분야에 채워지지 않은 일자리 공고가 많다는 특정한 환경에 적응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환경이 시간이 가면서 달라질 수 있는데, 바로 인간이 새로 입수하는 정보에 반응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구직자에게 유통 분야에 지원 하도록 독려하면 유통 분야의 일자리에 지원자가 많아져서 더는 구직 자에게 매력적인 분야가 아니게 된다. 인간의 인지가 갖는 상황적이고 사회적인 측면과 인간의 행동이 동태적으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이 해하지 못하면 과적합은 앞으로도 계속 기계 지능을 괴롭히는 문제가 될 것이다.
- AI가 사회적 지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또 다른 우려스러운 함의를 가진다. AI가 방대한 사용자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해 데이터 에 담겨 있는 사회적 차원을 포함할 수 있긴 하지만, 현재의 접근은 인 간의 이해가 사람들 사이의 선태적 모방, 커뮤니케이션, 논쟁에 토대 를 두고 있다는 점을 활용하지 못한다. 그 결과, 잘 훈련된 노동자라면 종종 동료들로부터 배운 관점과 기술을 활용해 변화하는 상황에 빠르고 융통성 있게 반응함으로써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종류의 유연성을 자동화가 (높이는게 아니라) 줄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 어느 정도의 모니터링은 고용주의 합당한 권한일 수 있다. 가령 고용주는 노동자들이 주어진 업무를 잘 수행하게 하고 기계를 잘못 사용하거나 훼손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느 정도 노동 활동을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에는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기계를 잘 관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이 꼭 감시가 아니라 높은 임금 과 회사의 분위기를 통해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 발달하는 선의에서 나오기도 했다. 고용주나 감독관이 어느 노동자가 그날 몸 상태가 좋 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면 쉬엄쉬엄 일하도록 허용해 줄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면 그 노동자는 작업 물량이 많은 날 기꺼이 평소보다 강도 높 게 일하려 할 것이다. 이와 달리 감시는 고용주가 노동자의 임금을 깎 고 노동자들이 더 많은 일을 하도록 몰아붙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의 미에서 감시는 "지대를 이전하는" 행위다. 노동자의 실질적인 생산성 은 그리 혹은 전혀 증대시켜 주지 않으면서 전반적인 생산성 이득이 노동자에게로 공유되는 것을 막고, 지대를 노동자에게서 떼어내 다른데로 옮기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의미다.
AI 기술이 [노동자로부터] "지대를 이전하는 방향으로 쓰이는 또 다른 사례는 업무 일정 관리다. 노동자가 자율성을 가질 수 있으려 면 노동 시간과 여가 시간이 명확하게 분리되고 업무 일정이 예측 가 능해야 한다. 패스트푸드점 노동자를 생각해 보자. 반드시 오전 8시에 일하러 와야 하고 반드시 4시에는 퇴근한다는 것을 아는 경우라면 예 측 가능성이 높고 그 8시간을 제외한 시간에는 자율성도 높다. 하지만 갑자기 경영자가 4시 이후에 손님이 증가하리라는 것을 발견하면 어 떻게 될까? 노동자들의 시간 자율성을 없애고 4시가 넘어서까지도 일 하게 만들고 싶을 것이다. 이것을 달성할 수 있을까?
-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를 막론하고, 역사를 해석할 때 우리는 결정론적 오류를 저지르곤 한다. 벌어진 일은 벌어졌어야만 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이는 정확한 해석이 아 니다. 역사가 갈 수 있었을 경로는 아주 많다. 테크놀로지의 역사도 마 찬가지다. AI의 세 번째 파도를 규정하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접근 방 식은 대규모 데이터 수집과 끊임없는 자동화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필연이 아니라 "선택"에 의한 결과다. 사실 비용을 많이 수반 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자동화와 감시에 치우친 지배층의 편향을 따라 가면서 노동자들의 경제적 기반을 훼손하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연구 와 노력이 사회적으로 더 유익한 범용 디지털 기술 쪽으로 가지 못하 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그렇다면 왜 테크 기업들은 인간을 도우면서 동시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도구들을 개발하지 않는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모두가 우리가 직면한 더 광범위한 요인에 대해 시사점을 준다. 교육 을 생각해 보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새로운 업무의 창출이 중요한 이 유는 인간(이 경우에는 교사)에게 유의미하고 충분한 소득을 올릴 수 있 는 일자리를 창출해 줌으로써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 만 새로운 업무가 생긴다는 말은 이미 자금이 쪼들리는 학교에 더 큰 비용이 발생하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조직이 그렇듯이 대부분의 공립학교는 노동 비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해서 교사를 더 채용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학교로서는 자동화된 채점, 자동화된 교육과 같은 프로그램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의료에 4조 달러를 쓰는데도 병원 들은 여전히 예산 압박에 시달리며, 코로나19 기간 동안 간호사의 부족은 고통스럽도록 명백했다. 간호사의 역량과 업무를 확대하는 테크 놀로지가 도입된다는 말은 양질의 의료를 위해 더 많은 간호사를 채 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핵심 지점을 다시 말해준다. 조직이 비용 절감에 초점을 두고 있을 때는 인간을 보완하는 테크놀로지가 조직 입장에서 매력적이지 않다.
- 오늘날 우리는 모든 비적정 기술의 어머니를 AI라는 형태로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녹색 혁명에서와 비슷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노먼 볼로그가 했던 역할을 하고자 하는 AI 연구자도 많지 않다).
한국, 타이완, 중국 같은 곳에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빈곤 이 감소한 것은 단지 서구의 생산 방식을 수입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 니었다. 그보다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이들 나라의 인적 자원이 더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나라 모두에서 테크놀로지는 노동 인구 대부분에게 새로운 고용 기회를 창출했고, 국 가 자체도 테크놀로지가 요구하는 바와 국내 인구의 실제 숙련도 사 이의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교육 투자를 늘렸다.
- 그런데 현재 AI가 가는 경로는 이 길을 원천적으로 닫아버리고 있다. 디지털 기술, 로봇 기술, 그 밖의 자동화 장비는 이미 글로벌 생 산에서 요구되는 숙련 수준을 높였고 국제 분업 구도를 재편하기 시 작했다. 이를테면, 노동 인구가 주로 저학력 노동자로 구성된 개도국 에서 탈산업화가 벌어지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이 과정의 핵심도 역시 AI다. 현재의 AI 경로는 저소득국이나 중위소득국 인구 다수에게 일자리와 기회를 창출하기보다 자본, 고숙 련 생산직 노동자, 고숙련 서비스 노동자(경영 컨설팅이나 테크 기업에 서)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있는데, 이것은 정확히 개도국에 부족한 자 원이다. 수출 주도 성장과 녹색 혁명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개도국 경 제는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빈곤을 줄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의 미래가 AI 환상이 명령하 는 길로 간다면 그러한 자원은 계속해서 사용되지 않고 남아 있게 될 것이다.
- 2000년대 중반 무렵이면 디지털 기술과 거대 기업의 결합은 억만장자를 점점 더 많이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2010년대에 AI 도 구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부는 한층 더 증폭되었다. 하지만 이 것은 AI 도구들이 주창자들이 주장해 온 것만큼 놀랍거나 생산적이어 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AI 기반 자동화는 생산성을 크게 높이는 데 종종 실패하며, 더 안 좋게도 공유된 번영은 전혀 짓지 못한다. 그런데도 업계의 거물과 고위 경영자들을 매혹하고 부자로 만들어 주며, 그와 동시에 노동자들의 역량과 권력을 약화하고 사람들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돈으로 만드는 방법을 개척한다
- 자동화와 감시에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쪽으로 맹렬히 돌진하는 가운데 이 모든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 우리가 이 비전의 이 같은 국면을 "AI 환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환상은 향 후 몇 년간 강력한 알고리즘이 더 많이 개발되고 온라인을 통한 전 지 구적 연결이 더욱 심화되면서, 그리고 가전제품 등 기계들이 영속적으로 클라우드에 연결되어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면서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 오늘날 우리는 H. G. 웰스가 타임머신에서 묘사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는 이미 이중 구조 사회다. 꼭대기에는 거대 기업의 거물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부 를 자신이 가진 놀라운 천재성으로 획득했다고 믿는다. 바닥에는 평 범한 사람들이 있다. 테크 지도자들은 이들이 늘 오류를 저지르고 대 체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AI가 현대 경제의 많은 면에 점점 더 깊이 파고들면서 이 두 계층은 서로에게서 점점 더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 모두가 늘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의 결과는 당신이 그것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74년 인터뷰)
- 컴퓨터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초지능적인 AI의 목적이 인류의 목적과 제대로 합치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나타내기 위해 종이 클립 우화를 즐겨 이야기한다. 멈추는 것이 불가능한 강력한 지적 기계가 있는데, 더 많은 종이 클립을 생산하라는 명령이 이 기계 에 내려졌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기계는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상당한 역량으로 더 나은 생산 방법을 찾아내 지구상의 모든 자원을 종이 클립으로 바꾸어 버릴 것이다. 어쩌면 AI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도 이런 것인지 모른다. AI가 우리의 제도들을 클립으로 바꾸어 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AI의 뛰어난 역량 때문이 아니라 AI의 그저 그런 역량 때문에 말이다.
- 소셜미디어가 이렇게 시궁창이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가? 아 니면 테크 회사들이 내리는 의사결정이 우리를 이렇게 유감스러운 상 태에 도달하도록 만든 것인가? 진실은 후자에 더 가깝다. 이는 9장에 서 제기했던 다음 질문에 대해서도 답을 준다. 획기적으로 생산성을 증가시키지도 않고 획기적으로 인간을 능가하지도 않는데 AI는 왜이 렇게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답은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회사들이 개인별 디지털 광고 로 벌어들일 수 있는 금전적인 수입에 있다. 또한 이것은 디지털 테크 놀로지가 특정한 경로로 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디지털 광고는 사람들이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만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그 러므로 이 비즈니스 모델은 플랫폼들이 온라인 콘텐츠에 대해 사용자 의 관여도를 늘리기 위한 쪽으로 노력을 쏟을 유인을 제공한다. 그리 고 분노와 선동으로 강한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이를 달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 궁극적으로 여기에서 알고리즘이 어떻게 결과를 계산하는지는 부차적인 문제고, 정말 중요한 혁신은 페이지와 브린이 인간의 통찰과 지식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점이다. 이 경우에는 어떤 페이지가 관련성 높은 정보를 담고 있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주관적인 평가에 인간의 통찰과 지식이 담겨 있었고, 이것이 기계의 핵심 업무 (검색 결과를 관련성 높은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를 향상시키는 데 사용되 었다. 브린과 페이지는 1998년에 펴낸 "대규모 하이퍼텍스트 웹 검색 엔진의 해부The Anatomy of a Large-Scale Hypertextual Web Search Engine"라는 제목의 논문을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구글이라 는 것을 선보이려 하는데, 이것은 하이퍼텍스트 안에 있는 구조를 주되게 사용하는 대규모 검색 엔진의 원형이다. 구글은 효율적으로 웹크롤링과 인덱싱을 해서 기존 시스템보다 만족스러운 검색 결과를 제 공하도록 고안되었다.”
페이지와 브린은 이것이 커다란 혁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 만 상업화할 계획은 명확하게 가지고 있지 않았다. 래리 페이지는 이 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놀라실지 모르지만, 저는 검색 엔진을 만들 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아이디어는 내 레이더 안에 있지도 않았 어요."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 무렵이면 그들이 확실한 성 공작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이 명백했다. 이 검색 엔진을 만들 수 있다 면 월드와이드웹이 기능하는 방식이 막대하게 개선될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회사로서의 구글이 등장했다. 처음에 페이지와 브
린이 생각한 것은 그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사람들에게 팔거나라 이센스를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초기의 시도는 그리 호응을 얻지 못 했다. 다른 주요 테크 기업들이 이미 그들 자신의 접근 방식에 고착되 어 있거나 검색이 아닌 다른 영역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던 것이 한 이유였다. 그때는 검색이 크게 돈벌이가 될 영역으로 여겨지지 않았 다. 일례로, 당시에 선도적인 플랫폼이었던 야후!도 페이지와 브린의 알고리즘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8년에 테크 투자자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 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페이지와 브린을 만난 벡톨샤임은 돈 을 벌 수 있는 딱 맞는 방법만 있다면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막대한 전 망이 있으리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벡톨샤임은 그 방법 이 무엇일지를 알고 있었는데, 바로 광고였다.
광고를 판매한다는 것은 페이지와 브린이 계획은커녕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벡톨샤임이 아직 회사 설립 신고도 하지 않은 구글에 1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게임이 완전히 달라졌다. 곧 구글은 설립 신고를 했고,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광고 분야에서 갖는 잠재력이 분명하게 드러났으며, 더 많은 돈이 들어왔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했다.
2000년에 구글은 구글에서 검색을 하는 사용자에게 보여질 광 고를 판매하는 플랫폼 '애드워즈'를 선보였다. 이 플랫폼은 잘 알려진 경매 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검색 화면에서 가장 가치 있는(눈 에 잘 띄는) 자리들은 빠르게 팔려나갔다. 가격은 광고주가 얼마나 많은 입찰가를 쓰는지와 광고가 얼마나 많이 클릭되는지에 따라 정해졌다.
- 구글이 사용자의 이메일 활동과 위치에서 얻는 메타 데이터로 사용자 에 대해 알게 되는 정보는 자신의 활동, 의도, 열망, 견해를 친구나 지 인과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제공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미미하다. 소 셜미디어는 타깃 광고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한 차원 위로 올려놓
았다.
마크 저커버그는 처음부터도 페이스북이 성공하는 데는 사람 들이 페이스북 공간 안에서 다양한 사회적 친목 활동에 관여하게 하 는 "사회적 웹[망]"의 도구, 아니 사실은 그러한 사회적 웹의 제조자가 되는 능력이 핵심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그는 규 모를 키우는 것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하지만 그 정보를 돈으로 바꾸는 것은 늘 쉽지 않았다. 모방할만한 구글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이미 존재했는데도 그랬다. 페 이스북이 광고를 타기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시도한 처음 몇 차례의 데이터 수집 노력은 실패했다. 2007년에 페이스북은 페이 스북 사용자가 어느 웹사이트에서 구매를 하면 그 정보를 수집해 그 사용자의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올리거나 그의 페이스북 친구에게 공 유되게 해주는 "비콘"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그러나 비콘은 사 용자의 프라이버시를 막대하게 침해한다고 여겨졌고, 곧 중단되었다. 페이스북은 디지털 광고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 수집을 사용자가 자 신의 정보를 적어도 어느 정도는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방법과 결합해야 했다.
이것을 현실로 만든 사람이 셰릴 샌드버그shery! Sandberg다. 샌드버그는 구글의 애드워즈 담당 임원 출신으로, 구글을 광고 머신으로 변모시킨 일등 공신이었고 2008년에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로 자 리를 옮겼다. 샌드버그는 그 두 가지를 결합할 방법을 알고 있었고 페 이스북이 이 방면에 잠재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이 누구와 주로 어울리는지와 그들의 선호에 대한 정보를 활 용해 제품에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었고 따라서 그 제품의 광고 기회를 창출할 수 있었다. 이미 2008년 11월에 샌드버그는 페이스북 의 성장 기반으로서 이 조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리가 여기에 서 달성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정한 신뢰의 힘과 사용자들의 진정한 프라이버시 관리를 여기에 불러와서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진정한 자아가 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사용자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 가 된다면 자신에 대해 더 많이 드러낼 것이고 광고 수입을 위해 사용 할 수 있는 정보도 더 많아질 것이다.

- 컴퓨터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되기보다
사람들에게 적대적으로 사용되고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사용되기보다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할 때다
우리에게는...
민중의 컴퓨터 회사가 필요하다
-"민중의 컴퓨터 회사People's Computer Company" 첫 뉴스레터,1972년 10월
- 세상에서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부분의 일은 그것이 행해지기 전에는 늘 불가능한 일이라고 선언된다. (루이스 브랜다이스 변호사, 조정 절차 결과, 뉴욕 의류 업계,1913년 10월 13일)
- 디지털 기술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보완할 수 있다.
•현재의 일자리에서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인간의 역량을 강화해 주는 기계 지능의 도움으로 새로운 업 무를 창출할 수 있다.
•인간의 의사결정에 더 신뢰할 만하고 양질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 서로 다른 능력과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
- 혁신 전략의 다양성은 자동화가 그 자체로 해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사람이 수행하던 업무를 기계와 알고리즘으로 대체하는 기술은 산업 자체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미래 에도 지속될 것이다. 데이터 수집도 그 자체로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 것이 공유된 번영과 민주적 거버넌스 둘 다와 배치되는 경우는 책무 성을 지지 않는 기업과 정부의 손에 집중되어서 사람들의 역량과 권 한을 약화하는 데 사용되는 경우다. 혁신 포트폴리오에 균형이 깨어져 자동화와 감시에 과도하게 우선순위를 두면서 노동자들을 위한 기회 와 업무는 창출하지 못할 때가 문제인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방향을 다시 잡는 과정에 꼭 자동화를 막거나 데이터 수집을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다. 필요한 것은, 인간의 역량을 보조하고 지원할 수 있 는 테크놀로지의 발달을 독려하는 것이다.
- 1980년대 말의 HIV/AIDS 환자들에게 미래는 지극히 암울해 보 였다.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이 그들을 치명적인 질병의 피해자가 아 니라 스스로 삶을 망가뜨린, 자기 자신의 가해자라고 여겼다. HIV/ AIDS 환자들은 강력한 조직 기반도 없었고 어떤 전국 단위의 정치인 도 그들을 대변해 주지 않았다. AIDS가 전 세계에서 이미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는데도 치료제나 백신에 대한 연구개발은 매우 미미했다.
그런데 이후 10년 사이에 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먼저, 아무 잘 못이 없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역량을 크게 훼손하고 목숨까지 위협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고통받고 있음을 보여주면 서 새로운 내러티브가 생겨났다. 이 과정은 극작가이자 작가이자 제작자인 래리 크레이머 Larry Kramer, 작가인 에드먼드 화이트Edmund White 등 소수의 사람들이 먼저 시작했고, 곧 이들의 운동에 저널리스트와 여타 미디어 종사자들이 동참했다. 1993년 영화 「필라델피아Philadelphia」는 미국에서 HIV에 감염된 성소수자의 삶과 그들이 처한 문제를 영화관 의 대형 스크린에서 보여준 초창기 작품으로, 관객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크게 일조했다. 이어서 비슷한 주제를 다룬 TV 드라마들도 나왔다. 내러티브가 달라지면서 게이 권리 활동가들과 HIV 활동가들이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는 HIV 치료제와 백신 에 대한 연구를 늘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정치인들도 주요 과학자 들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운동의 조직화는 결실을 맺었고 곧 정치인과 의료 정책 전문가들의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수백만 달 러의 돈이 HIV 연구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돈이 들어오고 사회적 압력이 높아지자 의료 연구의 방향이 바 뀌었고, 1990년대 말이면 AIDS 감염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새로운 약 이 여러 개 나와 있었다. 또한 줄기세포 치료법의 초기 형태, 면역제 치료법, 유전자 편집 같은 새로운 치료법도 나오기 시작했다. 2010년초 무렵이면 여러 가지 효과적인 약이 시중에 나와서 HIV 바이러스의 확산을 통제하고 감염자들이 더 정상적인 삶의 여건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몇몇 백신도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HIV/AIDS와 싸우는 데서도, 재생에너지 영역에서도, 도저히 불 가능해 보였던 것이 꽤 빠르게 이루어졌다. 일단 내러티브가 바뀌고 사람들이 조직화되자 사회적 압력과 금전적 인센티브가 테크놀로지 의 경로를 선회시켰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미래 경로도 그렇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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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

초거대 위협

사회 2023. 8. 14. 16:31

- 다가오는 10년 동안 모든 부채 위기의 어머니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지난 세기 동안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과거는 미래를 엿 볼 수 있는 소름 끼치는 창문을 제공한다.
유럽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채무를 갚기 위해 애쓰는 동안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은 1억 명이 넘는 인구의 목숨을 앗아갔고 경 제 생산량도 크게 줄었다. 그런데도 놀라울 정도의 경제 호황과 금융 혁신이 시작되었고 최초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축음기, 유성영화, 진 공청소기, 대량생산 자동차 및 전기 교통신호기 등 기술 혁신의 시대 인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가 이어졌다. 끝없이 치솟는 증시 에 누구도 금융 거품과 과도한 신용 및 부채 축적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결과는 파국이었다. 1929년 주가 대폭락 이후 실행된 잘못된 정책은 1930년대의 대공황을 초래했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아도 종종 각운을 맞춘다. 요즘도 광 란의 20년대를 연상케 하는 여러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대규모 통화 와 재정 및 신용 부양책이 세계 시장에서 금융 자산 거품을 부풀리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실물 경제는 저금리로 증가한 부채, 풍부한 신용, 정부의 막대한 경기부양책 덕분에 한동안 호황을 누릴 기세다.
이 파티는 무분별한 투기가 지속 불가능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Hyman Minsky)의 이름을 딴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 즉 호황 정서의 불가피한 붕괴로 끝날 것이다. 이는 시장 관측자들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비이성적인 과잉 열 기를 걱정하기 시작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일단 분위기가 변하면 자산과 신용 거품과 붐 정서가 붕괴해 폭락이 불가피해진다.
열띤 호황과 거품은 항상 거품 붕괴와 폭락에 앞서 나타나지만 이 번에는 그 규모가 과거의 선례들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선진경 제와 신흥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선진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낮고, 코로나19로 초래된 경기침체에서 회복되 는 과정은 험난하며 점점 더 속도가 느려질 것이다. 정책입안자들은 그동안 비축해두었던 통화와 재정 자원을 전부 써버렸고 비상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지정학적 충격이 확장 또는 심화되어 원자재 가격과 인플레이션이 더 급등할 수도 있다. 아 니면 그 외 다른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거나 위에서 언급된 위험들 이 서로 결합해 또다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촉발될 수도 있다. 미국 과 중국이 지정학적 충돌로 치닫는 가운데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거 나 두 강대국 간의 탈동조화(decoupling. 한 나라 경제가 특정 국가 또는 세계 의 경제 흐름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옮긴이)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탈 리아가 끝내 파산하고 유로존의 붕괴가 시작될 수도 있다. 정권을 장 악한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국가주의 정책으로 경제를 망쳐 지속 불가 능한 부채가 더 많이 축적될 수도 있다. 어쩌면 기후 변화 때문에 마 침내 지구는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치명적인 전환점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듯이 선진경제국이라고 해서 불멸의 존 재인 건 아니다. 1899년에 신중한 투자자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 를 통치한 합스부르크 제국이 발행한 100년 만기 채권을 통해 추구 한 것은 안정성이었다. 1914년 6월, 무정부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 (Gavrilo Princip)가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해 제1차 세 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도 합스부르크 국채는 다른 유럽 채권에 비해 여전히 가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어떤 전문가도 종말이 다 가오고 있음을 예측하지 못했다. 4년도 안 되어 합스부르크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20년 후 독일을 짓누르던 전후 부채 와 배상 청구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현지 통화로 차입하는 경제 대국은 외화로 차입해야 하는 신흥시장 국가들에는 없는 선택권이 있다. 즉 자국 통화를 사용해 부채를 상 환함으로써 채무불이행을 피할 수 있다. 그들은 자국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를 사용할 수 있고, 따라서 계속 돈을 빌릴 수 있다. 이 경 우 처음에는 통화 발행량을 늘려 경제 안정을 뒷받침할 수 있지만 그 치료법은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서서히 인플레이션이 되돌 아오고 종국에는 채무불이행의 한 형태가 된다. 
- 고령화가 모든 국가의 잠재 성장률을 낮춰 미적립 채무를 악화시 킨다는 점도 잊으면 안 된다. 실제로 생산성 증가 추세(노동당 1인당 생 산량)를 고려할 때 노동인구가 적을수록 잠재 성장률도 함께 감소한 다. 더구나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생산성 증가율 역시 둔화될 수 있다. 생산성 증가의 상당 부분이 새로운 생산 자본에 대한 투자에 달려 있 지만 노동자가 적을수록 투자율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가 적기 때문에 생산성 증가율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락할 것이다. 선진 경제 중에서도 고령화가 가장 심한 일본이 금세기의 대부분 동안 성장이 정체되었던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 표준 경제 이론에 따르면 자유무역은 전 세계의 번영에 도움이 된 다. 국경을 개방하고 이민 정책을 통한 사람의 자유무역 역시 마찬가 지다. 두 국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쪽은 노동자가 많고 자본이 적 기 때문에 임금이 낮다. 상대적으로 선진경제인 다른 쪽은 자본은 많 고 노동자는 적기 때문에 임금이 높다. 노동력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 임금은 균등해지는 경향이 있다. 가령 미국이나 유럽의 노동 자는 방글라데시에 있는 동등한 지능과 잠재적 기술을 갖춘 노동자보 다 4~5배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문제는 원래 임금이 높았던 선진 경제의 평균 임금이 하락한다는 점이다. 이는 사람들이 이민을 반대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검소한 경제학자 세대와 많은 현대 보수 정치인에게 영감을 준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이주를 막은 장벽 때문에 사람들이 경제적 곤궁을 견뎌야 했고 이로써 유럽에서 전쟁이 발 발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선진경제의 유권자들이 이민자 편에 서도록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유는 명확하다. 블루칼라와 서비스 노동자를 비 롯한 저숙련 노동자의 임금이 정체되었고 이주 노동자의 유입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민자들은 교육과 주택, 의료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공공서비스의 부담을 가중해 사람들의 큰 반발을 부른다. 또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낯선 문화권에서 온 까닭 에 사회적 반발도 초래하는데, 특히 배타적인 성향의 정치인이 당파 적 목적으로 비방의 화살을 날릴 때는 반발이 더욱 거세진다.
- 시티코프(Citicorp)의 전 회장 찰스 프린스(Charles Prince)와 무디스 (Moody's Corporation) 주주 워런 버핏, 골드만 삭스 그룹의 CEO 로이 드 블랭크파인(Lloyd Blankfein)처럼 주택 거품과 그 뒤에 이어진 거품 붕괴가 대부분의 미국인이 이해할 수 없는 '예상치 못한' 충격 또는 '허리케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와 증거를 무시하는 일이다.
2008년 경기 대침체의 원인을 분석한 <금융 위기 조사 보고서>에서는 뭐라고 했는지 살펴보자.
실제로 경고를 알리는 신호들이 있었다. 시장이 붕괴하기 10년 전부터 주택 가격에 거품이 끼었다는 수많은 징후가 나타났다. 대출 관행 은 통제 불능으로 치달았고 너무 많은 주택 소유자들이 감당 불가능 한 수준의 주택담보대출과 부채를 떠안고 있었으며 금융시스템의 위험은 아무런 제재 없이 증가하고 있었다. 미국의 금융기관, 규제 당국, 소비자 서비스 기관, 법 집행기관, 기업은 물론 전국의 지역사회 에도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사고를 피한 정보에 밝은 경영인들도 많았다. 수많은 미국인이 나라 전체를 장악한 경제적 도취감에 빠져 있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워싱턴과 주 의회 정부관리들에게 이 위기가 단순한 경제적 실패가 아닌 인재(人災)가 될 것 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 우리는 적을 만났고 그 적은 바로 우리였다. 그 외에 다른 결론을 내린다면 또다시 잘못된 치료법으로 더 많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주택 거품이 순수한 야성적 충동 탓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무엇이든, 정말로 무엇이 든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하하고 돈을 찍어냈다. 재정 당국은 더 많이 지출하고 세금을 삭감하고 기업 과 노동자에 대한 이전을 늘렸다. 중앙은행과 재정 당국이 현금이 부 족한 가계와 은행, 기업을 구제하면서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 더구나 지난 역사를 보면 통화 정책이 너무 오랫동안 느슨하게 유 지될 때는 거시건전성 정책으로도 거품을 멈출 수 없었다. 당국은 초 기에 금리를 인상해 거품이 형성되는 것을 애초에 틀어막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주요 중앙은행은 통화 정책을 사용해 거품을 찔러 터트 리는 것을 거부한다. 대신에 그들은 효과적이지도 않고 입증된 적도 없는 거시건전성 정책에 의존하는데 이런 정책은 시도해봐야 잘 통하 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거대한 부채 주기를 겪 는 것이다. 느슨한 통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자산 거품을 발생시키 는 한편 중기적으로는 다음 장에서 보듯이 상품과 서비스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 케인스 학파와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제학자들은 호황과 불황의 드 라마에 대해 상반된 해결책을 제시한다. 케인스 학파는 당국의 개입 을 선호하고, 오스트리아 학파는 구제금융보다는 긴축과 부채 구조조 정 또는 삭감을 주장한다. 만일 정책입안자가 오스트리아 학파이고 시장이 거품이 터지기 시작해 총수요 붕괴가 나타나는 단계에 있다 면,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또 다른 대공황이 촉발될 수도 있다.
나는 그 중간을 선호한다. 유동성이 부족한 경제 주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모든 정책입안자가 케인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러나 쉬운 돈, 쉬운 신용, 완화된 재정은 결국 불황 주기를 촉 발하기 때문에 영원히 케인스 이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쉬운 돈에 중독되기 전에 반드시 거기서 빠져나와야 한다.
- 미국 달러는 1945년부터 금으로 뒷받침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적인 절차라기보다는 신뢰를 구축하는 수단에 가까웠다. 실제로 미국 은 시중에 유통 중인 달러를 전부 태환할 수 있는 양의 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가 미국의 허세에 맞서 온스당 35달 러 고정환율로 금과 달러 자산의 교환을 요구하자 미국은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의 최고자문단은 닉슨 대통령에게 고정 환율을 포기해야 한다 고 경고했다. 미국의 지속적인 무역 적자를 고려할 때 금본위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닉슨 대통령은 먼저 금태환을 중단했다. 그리고 1971년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했다. 가식적인 행동을 포 기하고 아예 금환본위제에서 탈퇴한 것이다. 이제 달러는 외환 시장 에 따라 통화 가치가 결정되는 변동 통화가 되었다.
- 통화 공급을 제한할 금본위제가 사라지자 미국은 정책적 대응에서 새로운 옵션을 갖게 되었다. 돈을 찍어내고, 금리를 인하해 대출을 장려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달러가 약화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고정환율제도에서 변동환율제도로 전환하자 외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가 하락했다. 안 그래도 급등 중이던 수입품의 가격이 더 비싸졌고 물가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이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일단의 주식들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투 자자들은 높은 P/E 비율과 회복력 있는 수익을 지닌 이른바 원 디시 전(one-decision) 우량주에 신뢰를 퍼부었다. 원 디시전 우량주란 한번 매수를 결정하고 나면 팔 필요가 없는 주식들을 뜻한다.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엑손(Exxon), 코카콜라, IBM, 제록스(Zerox), 화이자 (Pfizer), 폴라로이드(Polaroid)처럼 어떤 시대에도 변함없이 견고한 회 사들 말이다. <포브스>는 “이들 회사는 너무 훌륭했기 때문에 얼마를 지불하든 상관없으며 거침없는 성장으로 모두를 구제할 것이라는 환 상이 팽배했다"라고 말했다.
정확한 명단이 있다기보다는 흔히 '니프티50(Nifty Fifty)'라고 불리 는 이 종목들의 주가수익률은 역사적으로 보증된 수준보다도 훨씬 높 이 치솟았다." 나중에 <USA 투데이>는 "이런 주식은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단순한 '가치' 투자에서 '어떤 가격에서도 계속 성 장'할 것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을 촉발했고, 이는 사반세기 후 기술주 거품이라는 또 다른 형태로 부활했다"라고 회고했다.'
- "인플레이션은 알코올 중독과 비슷하다." 밀턴 프리드먼은 이렇게 경고했다. "술을 마실 때나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낼 때나 좋은 영향이 먼저 발생하고 나쁜 영향은 나중에 나타난다. 그래서 두 경우 모두 과 용하고 싶은 강력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치료법은 그 반대다. 술을 끊거나 화폐 발행을 중단하면 나쁜 영향이 먼저 나타나고 좋은 영향은 나중 에 온다. 그래서 치료를 지속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유동성 에 중독된 경제 및 금융 시스템의 숙취로 인한 나쁜 사례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다. 연준은 파티를 중단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파티에 술을 공급했다.
- 향후 10년 안에 발생할 스태 그플레이션은 1970년대보다 훨씬 심각한 경제적 혼란과 피해를 가져 올 수 있다. 1970년대에는 인플레이션 문제는 있었어도 부채 문제는 없었다. GDP에서 민간 및 공공부채가 차지하는 비율도 지금에 비하면 건전한 수준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운이 좋았다.
막대한 공공 및 민간 부채 때문에 금융 위기가 발생했지만 성장에 대한 충격이 신용경색에 이은 수요 붕괴에서 비롯되었기에 인플레이션 문제를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번의 위기를 모두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제가 결합되고 거품까지 꺼지면 우리는 10년 안에 전혀 새로운 영역에 들어설 것이다. 세계 금융 및 부채 위기와 스태그플레 이션이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상상해보라. 너무나 끔찍할 것이다. 이 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 낙관주의자들은 아직도 기술 혁신을 통해 긍정적인 총공급 충격을 촉발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플레이션 완화 압력을 행사할 수 있 다고 주장한다.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선진경제에 관한 데이터에서 기술 변화가 총 생산성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불분명하다. 데이 터에 따르면 생산성 성장이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공지 능과 자동화, 로봇공학은 본질적으로 순수한 상품이 아니다. 만약 이 들 분야가 인플레이션을 유의미하게 완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 한다면, 그전에 일자리 및 산업 전체에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 소득 및 부의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며 스태그플레이션 결과를 동반하는 정치적 반발을 초래할 것 이다.
지금 우리는 일련의 총공급 충격의 시발점에 와 있다. 시간이 지남 에 따라 이런 충격들은 대규모 부채 위기뿐만 아니라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부채질할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고 해서 내일 당장 또는 내년에 발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코로나 19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혼란이 이 완만한 추세의 첫 공격 이라고 해도, 모든 것은 천천히 진행될 것이다.
- 연준의 임무 변경은 그들이 직면한 심각한 문제이자 초거대 위협 이기도 하다. 미국 달러는 지금껏 수십 년 동안 세계 금융 시스템의 명목화폐로 기능해왔다. 달러는 전 세계 모든 통화 중에서도 가장 신 뢰할 수 있는 통화이며 대부분 국가가 외환보유고에 비축하고자 하는 통화다. 이 사실은 미국에 커다란 이점이다. 준비통화인 달러에 대한 수요는 미국이 팽창 일로에 있는 재정 및 무역 적자를 메울 자금을 더 욱 오랫동안 저렴하게 빌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의 재정 및 무역수지 적자가 점점 불어나고 있고 미국 달러가 점점 더 외교 정책과 국가 안보를 위한 무기로 사용되는 상황 에서 세계가 달러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와 같은 달러의 국제 준비통화 역할을 박탈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 인 다른 대안이 있다면 어떨까? 2022년 3월, 러시아 제재 직후 한 민 첩한 논평가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금융 제재 는 중앙은행이 축적해둔 외환보유고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중국이 이 사실을 주목하고 있으며 이는 지정학 적 역학과 경제 관리, 심지어 미국 달러의 국제적인 역할까지 재편할 수 있다.
- 미국은 현재 재정 및 경상수지 분야에서 매우 큰 적자를 내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 경제에 유입되는 달러보다 빠져나가는 달러가 더 많 다는 의미다. 우리는 수출보다 수입을 훨씬 더 많이 하고 있는데, 이 는 미국 국내보다 해외에 존재하는 달러가 더 많다는 얘기다." 이와 대조적으로 다른 주요 경제국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운영한다. 미국은 해외에서 차입할 때 더 저렴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특별한 지위 를 누리고 있지만 달러 자산에 대한 수요를 고려하면 공공부채와 대 외부채의 지속 불가능한 수준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미국은 계속 쌓 여가는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매년 대외 적자와 맞먹는 액수의 외채를 밀어 넣고 있다. 미국은 이미 13조 달러, 즉 국가 GDP의 50퍼센트 이상에 이르는 외채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다.
미국의 외국 채권자들은 언제쯤 미국이 아주 낮은 금리로 돈을 빌 릴 수 없다고 결정할까? 시간이 지날수록 달러는 점점 더 위태로워질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달러를 점점 더 외교와 국가 안보 정책의 도구 로 사용하고 있다. 무역과 금융 제재를 활용해 전략적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을 응징하고 미국의 목표에 협조하지 않는 국가에는 2차 제재를 가한다. 하지만 그런 조치는 경쟁국들이 달러 자금조달 체제에 덜 의존하거나 전혀 의존하지 않도록 동기를 부여할 뿐이다.
실제로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들은 달러 자금 조달 체제에 대한 의 존을 덜고자 외환보유고를 다각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미국이 우 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응징할 목적으로 부과한 금융 제재는 미 국의 4대 전략적 경쟁국이 달러 기반의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 고자 하는 욕구를 강화할 것이다. 심지어 중동 산유국 같은 미국의 우 방국들조차 그들의 외교 정책이 미국과 일치하지 않을 때 이런 제재 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UAE는 러시아의 우크 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기권했다. 사 우디아라비아는 에너지 비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원유 생산과 수출 을 늘려달라는 바이든 정부의 요청에 반발했다.
- 달러의 무기화가 강화될수록 적도, 우방도 달러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러시아의 몇몇 주요 금 융기관들은 현재 전 세계 1만 1,000개 이상의 금융기관을 연결하는 국제 금융 SWIFT 시스템에 접근할 수가 없다. SWIFT 시스템에서 러 시아를 완전히 축출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 런 조치의 예기치 못한 결과 러시아와 중국이 세계 준비통화인 미국 달러를 포기할 계획을 앞당길지도 모른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중이다. 그들은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고 루블과 위안으로 상품과 서비스 및 금융 자산을 거래하기 시작할 것이다. 
- 오늘날 중앙은행과 직접 거래할 수 있는 객체는 은행뿐이다. 개인 과 비금융 기업은 수표와 예금, 전신송금 등 기타 지불을 하려면 상업 은행을 거쳐야 한다. 모든 개인과 기업이 중앙은행과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사용한다고 상상해보라. 이는 결제 및 지불 시스템을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다.
핀테크 기업보다 훨씬 큰 규모의 위험에 직면한 상업은행은 비즈 니스 모델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은행은 개인과 기업을 위해 현금과 현금성 예금을 보유한다. 그리고 이런 예금 중 일부 소량 만을 유동자산으로 보유하고 예금자가 자산의 일정 부분 이상을 인출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나머지를 다른 이들에게 빌려준다. 부 분지급준비제도를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이런 관행이다. 요구불예금(demand deposit)은 장기 대출이 되고, 은행은 이를 자산으로 기록한다.
이런 시나리오에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재무 안정성에 두 가 지 위험을 초래한다. 하나는 예금자가 상업은행에서 중앙은행으로 자 금을 이전하면서 발생하는 탈중개화다. 여기서 생존할 방법이 있다 면 기존의 저비용 예금을 시장금리 장기 차입으로 대체해 장기 대출 과 주택담보대출을 조달하는 금융기관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그래봤 자 약간의 이익을 간신히 쥐어짜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 이다. 나머지 은행들은 오늘날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 다. 금융계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보자면 2021년 11월에 미국에서 가 장 큰 5대 은행의 시가총액만 1조 4,000만 달러에 이른다. 만일 중앙 은행이 은행의 역할에 변화를 주게 된다면 금융권 투자자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서비스 은행을 토대로 구축된 산업계에 미칠 후폭풍은 말할 것도 없다.
두 번째 위험은 평상시 예금을 유치하는 은행의 경우 금융 공황으 로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을 선호하는 예금자들이 은 행에 넣어둔 예금을 중앙은행으로 옮기기 위해 앞다퉈 달려온다면 뱅 크런이 발생할 것이다.
이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함정도 빼놓을 수 없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재정적으로 급격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심각한 경기침체 때문에 실질금리가 0 이하로 인하된다고 가정해보 자. 은행이 예금에 대해 이자를 지불하는 대신 이자를 부과한다면 소비자들은 아주 감사해 마지않을 것이다. 은행에 현금을 예치하고 이자를 내느니 차라리 매트리스에 보관하지 않을까? 이와 비슷한 논리가 상업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거액의 준비금에도 적용된다. 유연 성은 금융 억압에 한계를 부여한다.
그러나 지배적인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가 등장하고, 현금과 동전이 단계적으로 사라지고, 명목금리가 마이너스가 된다고 가정해보자. 중 앙은행은 어쩌면 수십억 달러의 초과 예금에 이자비용(사실상 금융억 압세)을 부과할지 모른다. 현재 상업은행은 준비금을 최소한 마이너스 수익을 피할 수 있는 현금으로 전환해 어디든 보관할 수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중앙은행을 벗어날 수 없기에 금융 억압에 대한 브레이크를 제거할 것이다. 언제가 될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 어도, 극심한 마이너스 금리는 경기침체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착시킬 수 있다. 은행은 대출 활동을 줄이고, 사업체는 굶주리고,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 2020년 5월 <파이낸셜 타임스>의 편집진은 "세계화 시대가 위험 에 처해 있다"라고 경고하며 세계화가 성공을 통해 스스로의 희생양 이 되었다고 말했다. "제조업 일자리를 부유한 국가에서 가난한 국가 로 이전시킨 국제적 노동 분업은 개발도상국의 빈곤을 줄이고 부유한 국가의 물가를 낮췄다. 그러나 정책입안자들은 이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에게 거의 아무 보상도 하지 않았고, 한때 번창했던 지역사회 사람들이 느끼던 자부심과 주인의식을 무시했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류에 편승하는 건 쉽다.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도 그런 경제 민족주의였다. 하 지만 지금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한쪽 길은 효율적인 세계 시장의 통합을 지속하는 한편 뒤처진 노동자에게 보상하거나 재교육하는 방 침을 선호한다. 전 세계 소비자들은 여전히 저렴한 가격을 누릴 수 있 고 신흥시장의 고용은 수백만 세계 시민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한편 반대쪽에 있는 '탈세계화'의 길은 잃어버린 일자리를 국내로 다시 복귀시키고(이른바 '자국 이전(reshoring)'] 일자리가 해외로 누출되 지 않게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선호한다. 보 호무역주의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과거에 이를 시도했을 때 는 거의 모든 사람의 경제 사다리가 무너졌다. 탈세계화가 초거대 위 협인 이유다.
20세기의 제조업 일자리를 보존하기 위한 탈세계화는 역효과를 초래해 더욱 거대한 서비스와 기술, 데이터, 정보, 자본, 투자 및 노동 시장의 필수 무역에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다. 탈세계화는 경제 성장 을 저해하고, 막대한 부채에 대처할 수단을 무력화하며, 심각한 인플 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향하는 길을 닦을 것이다.
- 탈세계화는 전 세계의 생활 수준을 양호한 수준으로 높일 기회의 문을 닫는다. 무역을 규제하 면 세계 생산량이 줄어 실직 노동자가 채울 수 있는 일자리의 수도 줄 어들고 그렇게 세계 경제의 파이가 작아질 것이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의 물리적 체계는 사 람들을 현혹시킬 수도 있다. 이런 공급망은 높은 효율성을 자랑하는 전 세계의 생산 시설과 수백만 명의 최종 사용자를 연결하는 강력하 고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탈세계화는 이런 네트워크를 혼란에 빠트려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일자리 수요를 충족하는 대신 비대해진 비용 구조로 세계 시장 경쟁에서 취약해질 것이다.
- 일의 미래에 관한 전문가이자 MIT 경제학 교수인 데이비드 오토는 "문제는 일자리의 수가 아니라 질과 접근성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TED 강연에서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은행 창구의 필요성을 줄 였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은행은 더 많은 지점을 개설하고 출납원이 되었어야 할 사람들을 더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한편 대니얼 서스킨드와 마틴 포드(Martin Ford)는 각각 그들의 저서 에서 디스토피아적 관점을 수용했다. 그들은 AI와 로봇이 대부분의 일자리를 채울 것이라고 예상한다. 서스킨드는 《노동의 시대는 끝났 다》에서 "21세기를 거치면서 인간의 노동에 대한 수요가 점진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찬가지로 포드도 《로봇의 부상에서 일자리 없는 미래라는 위협을 우려한다.
자, 그러면 여기서 잠시 멈춰 이번에 겪을 기술적 진보는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주장을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껏 경험했던 모 든 기술 혁명과 달리 이번에는 일자리가 거의 없거나 나쁜 일자리만 남을 것이라는 주장 말이다. 이번에는 대체 뭐가 다른 걸까?
산업혁명은 생산성을 높인다. 첫 번째 혁명은 증기 동력을 가져왔다. 두 번째 혁명은 대량생산을 탄생시켰다. 세 번째 혁명은 전기를 활용했다. 이 세 번의 산업혁명에서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약간의 혼란이 지나고 나자 예전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영원히 직장에서 쫓겨난 게 아니었다. 제조업 일자리 때문에 농장의 잉여 노동자가 도시로 몰려들었고 소득이 증가했다.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을 때는 서비스 부문에서 고용이 창출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인간 노동자가 옮겨갈 수 있는 곳이 적다. 고수 익 커리어의 마지막 보루인 하이테크 기업은 과거 세대의 거대 제조 업체보다 훨씬 적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한다. 
- 포드 자동차의 회장인 헨리 포드와 전미자동차노조(United Auto Workers) 위원장 월터 로이터(Walter Reuther)의 흥미진진한 대화 실 제 있었던 일이라는 증거는 없지만ᅳ를 들어보면 이 딜레마를 이해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은 자동화의 출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포드가 로이터에게 어떻게 로봇에게서 노동조합비를 받을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로이터는 포드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게 할 것인가?" AI는 바로 이렇게 자본주의를 자멸시킬 것이다. 신마르크스주의가 보는 과소소비는 기술 발달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촉발된다.
-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했다.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 모든 잉여 인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일 것이다. 의식은 없어 도 거의 모든 것을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고도로 지능적인 알고리 즘이 생긴다면 의식을 지닌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일부 디스토피아 시나리오에서는 불필요한 잉여 인간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보편적 기본소득을 받고 나면 종일 비디오게임만 하다가 끝 내 '절망으로 인한 죽음(deaths of despair)'을 재촉하는 약물을 사용할 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2021년에 약물 과다복용으로 10만 명 이상 이 사망했다. 아니면 젊은 남성들이 성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 아 재생산할 수 없는 '인'이 됨으로써 인류가 사라질 수도 있다. 우 리의 디스토피아 미래는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그리고 <헝거게임>을 합친 것일지도 모른다.
- 개방과 성장에 가려진 중국의 야심
중국이 글로벌 무역 및 시스템에 참여하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 장경제를 수용하고 덜 권위적인 국가가 되리라는 서방 세계의 가정 은 완전히 틀렸다. 중국은 그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케 빈 러드는 "베이징은 '시장 분할'의 효율성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시장 원칙이라고 부르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보다 중국 경제는 중재자가 절대적인 정치적 권한을 휘두르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다.
- 중국은 지난 10년 사이 더욱 권위주의적인 나라가 되었다. 노련한 중국 전문가인 존 J.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는 <포린 어페어 스(Foreign Affairs)> 2021년 11월 12월 호에서 미국의 원래 계획에 비 문(碑文)을 바쳤다. "포용정책은 최근의 역사에서 그 어떤 나라가 한 것보다 더 최악의 실수였을지 모른다."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의 저자이기도 한 미어샤이머는 이렇게 썼다. "강대국이 동료 경쟁국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조장한 사례는 이제껏 없었다. 그리고 이제 뭔가 조치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21
후버 연구소의 웹세미나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전 국가안보보좌관이자 육군 중장으로 전역한 H. R. 맥매스터(H. R. McMaster)가 비슷한 평가를 했다. 맥매스터는 "우리는 국제 질서에 합류한 중국이 규칙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가정에 매달렸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경제적 으로 번영하면서 경제 시스템을 자유화하고 정부의 형태를 자유화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서방이 헛된 희망을 키우는 동안 중국은 덩샤오핑 전 공산당 위원 장이 조언한 대로 점점 커지는 힘을 숨기며 때를 기다렸다. 서구인들 은 1836년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될 때까지 '굴욕의 세기' 동안 중국인들이 입은 상처와 뿌리 깊은 분노를 헤아리지 못했다. 19세기 중반 영국과 프랑스가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영토를 장악하고, 무역 양허를 강요한 두 차례의 아편 전쟁에서 시작된 상처는 의화단 운동 그리고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여러 유럽 국가를 포함한 8 개국 연합에 청나라 제국군이 패배할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제2차 세 계대전에서 일본을 물리치면서 끝났다. 서구 분석가들은 중국 문화에 남아 있는 그 시절의 각인을 과소평가했다. 이제 세계적으로 부상한 지금 중국은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전 세계에서 강대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 1990년 이전에는 아무도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경쟁을 하게 되리라 고는하물며 미국을 능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는 경 제학 교과서가 소비자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묘사한 종류의 경쟁과 상 호협력을 환영했다. 다른 정치 체제의 중국이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민간 부문을 육성하고 자체적으로 온건 한 권위주의를 유지하는 한, 논평가들은 중국이 세계 경제에 합류한다 는데 환호했다. 거대한 시장은 덤핑과 지적재산 절도, 불공정 거래 관 행에 관한 넘쳐나는 증거보다 더 중요했다. 중국은 혼자 힘으로 자신 을 끌어올리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지정학적 야망은 시급한 국내 수요 때문에 굳건한 무역 관계보다 훨씬 뒷전으로 밀려났다. 어쨌든 서방 세계는 그렇게 믿었다.
중국의 발전은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비판하는 이들은 불공정 거래 관행을 지적하는데, 이는 성공의 부분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중 국은 그들의 성공을 서구 국가들로부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운 덕분이라고 말한다. 중국의 정치 체제는 반대 진영의 이의 없이 목표 를 설정하고 성취할 수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를 표명하지만 이는 명 목상일 뿐 실은 기술관료적 권위주의, 국가자본주의가 더 적절한 묘 사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름을 붙이든 중국인들은 제대로 기능하 지 못하는 민주주의와 이기적인 글로벌 금융기관에 비하면 더 낫다고 느낄 것이다.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예일대학교의 전 동료인 윌리엄 노드 하우스(William Nordhaus) 만큼 이런 학문적 융합을 잘 보여주는 인물 도 없을 것이다. 그는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을 때 '기후 변 화: 경제학의 궁극적 과제(Climate Change: The Ultimate Challenge for Economics)'라는 제목의 수상 연설을 했다. 그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회의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최소한 신중하다. “기술 변화는 인간을 석기 시대의 생활 수준에서 벗어나게 했다.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 에서 기후 변화는 우리를 경제적 태고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노드하우스는 지구 온난화를 "모든 환경적 외부효과 중 가장 중요 한 것"이라고 지칭했는데, 환경적 외부효과란 지구 온난화를 불러온 이들이 그에 대해 부담하지 않는 비용을 가리킨다. "지구 온난화는 우리가 사는 행성을 위협하면서 거인처럼 우리의 미래를 굽어보고 있다. 이것이 특히 치명적인 이유는 많은 일상 활동과 관련되어 있고 지 구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이 넘도록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노력한다고 해도 변화 를 늦추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 시간이 부족하다는 메시지는 '환경, 사회, 거버넌스(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ESG)'라는 기치 아래 환경 및 사회적 목표를 준 수하는 투자를 촉구하며 비용에 특히 민감한 자산관리자에게도 도달 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한 전 최고투자책임자 타리크 팬시(Tariq Fancy)가 보기에 고결한 의도는 비 생산적이었다. 2021년 11월 <이코노미스트> 칼럼에서 그는 그린워싱 (greenwashing,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활동을 하면서도 친환경을 추구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 환경주의'-옮긴이)과 그린위싱(greenwishing)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ESG를 둘러싼 이상적인 스토리는 실제로는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사례에 해가 될 뿐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홍보 활동은 지속 가능한 투자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자발적인 준수가 해답이라는 생각을 조 장한다." 팬시의 말이다. ESG를 강조하는 기업의 주가와 마케팅 예산 은 증가하고 있고, 이는 탄소 배출량도 마찬가지다. 팬시는 "PR은 특히 유해하다. 마케팅으로는 시장 실패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재앙과도 같은 환경 불균형을 시장이 시정할 수 있다는 믿음 을 거부한다. "기업의 단기적 동기가 장기적인 공익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대량으로 쏟아지는 기업의 약속은 구속력도 없고 대개 운영팀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부서에서 내놓는 것이다. 시장이 해 야 할 역할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 혼자 작동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ESG 활동은 실질적인 자본 분배 결정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 않 는데, 이는 기업이 탄소 배출량 감소를 약속할 때 가장 먼저 전제되어 야 하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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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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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책

사회 2023. 8. 14. 16:30

- 지질학 자료에 따르면, 지구 시스템은 때로는 임계점을 넘어설 만 큼 심한 충격을 받기도 한다. 지구 시스템은 충격을 받으면 휘어질 수도 있지 만 붕괴할 수도 있다. 지구 역사에서 아주 드물게 발생했던 파국적인 사건들에 서 그랬듯이, 탄소 순환 역시 때로는 완전히 교란되고 붕괴되어 걷잡을 수 없 는 혼란으로 빠져든다. 이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결과가 바로 대멸종이다.
대륙 크기의 화산이 활동을 시작해 탄소 함유량이 높은 석회암을 불태우 고 지하에 묻힌 막대한 양의 석탄과 천연가스에 불을 붙여 분출하는 분화구 를 통해, 또는 증기와 빛을 방출하며 광대한 면적을 뒤덮는 이글거리는 현무 암 용암을 통해 수조 톤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억 5190만 년 전, 지구에 살던 불운한 생명체들에게 이런 일이 닥쳤고, 지구 생명 체 역사상 최악의 대멸종으로 이어졌다. 페름기 말, 이산화탄소 대량 방출에 따른 탄소 순환의 완전한 붕괴로 지구 생명체의 90퍼센트가 치명적인 대가를 치렀다.
- 페름기 말 대멸종기에 시베리아 화산들이 수천 년 동안 이산화탄소를 뿜 어내면서 복잡한 구조의 생명체를 거의 절멸시켰다. 지구의 모든 지질시대를 통틀어 최악의 충격을 빚어낸 이 사건으로 탄소 순환을 지탱하는 모든 정상적 인 안전장치가 무너졌다. 기온이 10도나 치솟았고, 치명적인 수준으로 뜨거워 지고 산성화된 지구 전역의 바다에 점액질의 분홍색 조류가 번성하면서 산소 를 고갈시켰다. 산소가 바닥난 바다에는 유독한 황화수소가 가득 찼고 비정상 적으로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이 바다를 휩쓸었다. 격동의 시대가 끝나고 기온 이 떨어진 직후, 지구에는 나무 한 그루 남지 않았고 지구 전역의 바다에는 산 호초 대신 끈적거리는 박테리아 점액이 가득 찼다. 이 시대의 지층에는 화석 기 록이 없다. 약 1000만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생물이 번성하면서 지구는 화 석 기록을 다시 남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가 쓰는 화석연료도 만들어졌다.
지구화학자들이 암석 분석을 통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지구 역사에서 발 생한 모든 대멸종은 전 지구적 탄소 순환의 대붕괴와 관련이 있다. 이산화탄소 는 생물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탄소 순환 시스템이 지나친 압 박을 받아 평형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면 지구 전체가 파국에 휩쓸릴 수 있다는 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영장류의 한 종인 인간이 수억 년 전 대규모 화산 활동이 했던 것 과 똑같은 일을 하려고 한다면 어쩔 것인가? 인간이 지구 역사 내내 광합성 생 명체가 지각 아래 묻어놓은 막대한 양의 탄소를 끌어낸다면? 탄소를 제멋대로 뿜어냈던 페름기의 거대한 화산과는 달리, 지각 깊은 곳에서 지표면으로 뽑아 낸 탄소를 지구 전역의 무수히 많은 내연기관과 용광로에 나눠 넣고 훨씬 더 기품 있게 태우는 방식으로, 페름기 대멸종 시기의 화산보다 열 배 빠른 속도 로 탄소를 뿜어낸다면 어쩔 것인가? 우리는 지구에게 이처럼 터무니없는 질문 을 들이대며 답을 내놓으라고 조르고 있다.
기후는 정치적 구호에 반응하지 않고 경제 시스템에도 무심하다. 기후는 물리적 법칙만 따른다. 대기 중으로 과다 방출된 이산화탄소가 1억 년에 한 번 일어나는 화산 활동의 결과이건, 생명체 탄생 이후 최초로 일어난 산업 문명 의 결과이건, 기후는 개의치 않는다. 어디서 나온 것이든 기후는 똑같이 반응한다. 우리는 암석에서 찾아낸 확실한 경고장, 과거에 일어난 대재앙의 흔적이아로새겨진 화석 기록을 손에 쥐고 있다. 다행히 우리는 그 옛날 대격변으로 치닫는 경로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어쩌면 지구는 참혹했던 과거의 그 시절보 다 훨씬 더 강한 회복탄력성으로 탄소 순환의 교란에 대처할지도 모른다. 우리 는 지구 역사상 최악의 사건의 희생자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길 이유가 없다. 우리가 화석에서 읽어내야 할 경고는, 우리가 지구 시스템의 가장 핵심 적인 요소에 충격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는 스스로를 위태롭 게 하는 일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 과학자, 언론인, 활동가들은 화석연료 산업이 기후변화 대응 행동을 방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후변화와 관련한 허위정보를 퍼뜨리고 있 음을 조사해 기록하고 있다. 이 작업의 상당 부분이 화석연료 산업의 골리앗 엑슨모빌에 집중되어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엑슨모빌 소속 과학자들은 자사 제품이 일으키는 기후변화의 위협에 대해 회사에 보고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로 엑슨모빌은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가 대단히 불확실하다는 여론을 조장하는 한편, 정책적 개입이 시의적절하지 않고 불필요하다는 주장 을 펼쳤다. 엑슨모빌은 석탄회사, 자동차 제조업체, 알루미늄 생산업체를 비롯 해 값싼 화석연료 에너지 덕분에 수익을 얻는 업체들로 구성된 '탄소복합체' 네트워크의 구심점이었다.
- 탄소연소복합체는 광고와 홍보 캠페인, 그리고 '고용된 전문가'에게 의뢰해 작성한 보고서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의구심을 조성했다. 여기에는 담배 산업에서 베껴온 전략과 전술이 동원되었다. 나열하면 이런 것 들이다. 불리한 자료는 숨기고 유리한 자료만 골라 제시하기, 과학적 증거 왜 곡하기, 다른 분야의 과학자를 부추겨 논쟁의 여지가 없는 분야에서 과학적 논 쟁을 일으키기,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에 관심이 쏠리지 않게 할 목적의 연구에 자금 대기, 기후과학자들의 신망에 흠집 내기,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화석 연료 산업의 면모는 감추고 '건전한 과학'을 지원하는 산업으로 위장하기 등등. 이들은 또한 국민 개개인이 '탄소발자국' 줄이기에 앞장서는 등 '개인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책임에 쏠리는 여론의 관심을 흩트려놓았다.
화석연료 산업은 기후과학에 대한 의혹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증폭시키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정치 성향의 싱크탱크들의 네트워크와 협업 했다. 이 대열의 한편에는 미국의 케이토 연구소CATO Institute, 영국의 경제문제 연구소 Institute for Economic Affairs 등 정부 주도 조치에 반발하며 자유방임적 경제 정책을 지지하는 독립적인 싱크탱크들이 있었다(이들은 담배 산업의 전략을 모방 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조치가 시행되면 자유가 흔들릴 것이라고 주장하는 작전을 자주 폈다). 대열의 다른 한편에는 모빌코퍼레이션이 앞장서서 이끄는 지구기후연 합Global Climate Coalition과 미국 석탄회사들이 만든 '환경에 관한 정보에 밝은 시 민들Informed Citizens for the Environment' 등의 간판 단체들이 있었다. 2006년에 세계 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과학학술단체인 영국왕립학회는 기후과학의 주장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서른아홉개 조직이 엑슨모빌로부터 자금을 지 원받고 있다고 밝혔다.
-  '티핑의 연쇄 발생 tipping cascade'은 지구 시스템을 새로운 열실 지구hothouse 경 로로 밀어낼 수 있다. 지구 기온이 1.1도 상승하면 북극 기온은 두세 배 더 빠 르게 오르고 그린란드 빙상(그리고 북극 해빙)의 융해가 점점 더 빨리 진행된다. 이는 다시 해양 열 순환과 대서양 자오면 순환의 속도를 늦추고, 이는 남아메 리카 대륙의 몬순 시스템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몬순 시스템의 변화는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갈수록 잦아지는 가뭄과 그로 인해 갈수록 심각해지는 화재, 그리고 이산화탄소 대량 방출을 일으키는 부분적인 원인이 되고, 이는 다시 온난 화를 강화한다. 또 대서양 열 순환이 느려짐에 따라 남극해에 따뜻한 표층수가 더 많이 갇히는데, 이것이 서남극 빙상 융해가 점점 빠르게 진행되는 이유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복잡한 역학은 여전히 과학계의 논란거리이며 아직 그 작동 방식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과학계 내에서 이와 관련해서 우려가 깊어지고,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예방 조치와 신속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목소 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 폭염이 점점 심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한 답은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극단적인 고온 현상이 점점 더 흔히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온 상승은 기상 패턴에도 영향을 미친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돔 형태의 고 기압이 한 지역에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머무르는 일이 흔하다. 열돔이라고도 불리는 이 고기압 현상은 하늘에 머무는 '따뜻한 공기 산'과도 같다. 열돔 아래 의 하늘은 대개 화창하고, 따라서 날마다 온종일 햇빛이 쨍쨍 내리쬔다. 또 열 돔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기단과 폭풍의 접근을 막고 구름과 비의 주된 형성 원인인 대류를 억제한다. 따라서 열돔이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지역 은 점점 더 건조해지고 더워진다. 기후변화는 이 현상에 어떤 영향을 줄까? 기 온이 평균보다 높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열돔 현상이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 바로 이것이 기온 상승으로 인한 글로벌 위어딩이다. 지구가 점점 더 따뜻해지 면 여러 가지 극한 기상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하고, 더 강력해지고, 더 오래 이 어지고, 더 위험하게 진행된다.
-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이미 에어로졸 배출 감축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산화황을 대량 배출해온 중국은 최근 들어 유럽과 미국이 수십 년 전에 걸 었던 경로를 따라 이산화황 배출량을 대대적으로 감축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환경을 지키고 더 나아가 기후를 지켜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반가운 소식이지만, 이렇게 대기질 개선이 이루어지면 특정 지역에서는 일시적으로 기후변화가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인간 활동으로 발생한 에어로 졸의 냉각 효과가 사라지면 지구 전역에서, 그리고 배출원 인근 지역에서 표면 온도가 가파르게 상승해 더 강력하고 더 빈번한 폭염이 발생할 수 있고, 극단 적인 집중호우가 더 자주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세계의 일부 지역에 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급속한 산업화를 진행하는 일부 국가에 서는 더 효율적인 오염 제거 기술을 도입하지 않는 한, 에어로졸 배출량과 대 기 오염 농도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 우리 인간은 여러 방면에서 복잡한 방식으로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이지만, 세계의 여러 지역 에서는 에어로졸이 온실가스에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다. 에어로졸은 지금까지 는 지구 온난화를 어느 정도 억제하는 효과를 내왔지만, 우리가 기후 중립 사 회로 전환해감에 따라 에어로졸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이런 변화가 기온과 강우, 극한 기상 등과 관련해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인간과 자연에 미치는 모든 영향을 빠짐없 이 대비하려 할 때 에어로졸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 구름이 기후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 려면 먼저 구름이 현재의 기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구 름은 두 가지 경로로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 구름은 햇빛을 반사해 우주로 돌려보낸다. 즉 태양 에너지가 지구 표면에 닿는 것을 막아주는 파라솔 역할을 한다. 다른 한편으로 구름은 마치 단열 담요처럼 지구 표면에서 나오는 복사열을 잡아두어 우주로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제한한다.
냉각 파라솔 효과와 단열 담요 효과, 이 둘 중 어느 효과가 더 우세한가는 구름의 유형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구름은 높은 곳에 있을수록 담요 효 과를 더 강하게 낸다. 그러나 전 세계 평균적으로 모든 구름 유형을 고려하면, 냉각 파라솔 효과가 단열 담요 효과보다 두 배가량 크다. 만약 구름이 모두 사 라지면 지구는 훨씬 더 뜨거워질 것이다.
- 북극이 빠른 속도로 따뜻해지면서 예전에는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세 유 형의 얼음, 즉 바다 얼음(북극해에 떠 있는 해빙. 바닷물이 얼어서 생긴다)과 육상 얼 음(빙하와 빙상), 그리고 영구동토(1년 내내 얼어 있는 땅)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 다. 고위도 지역의 봄철 적설량 역시 빠른 감소세를 보인다. 해빙과 눈 등의 밝고 흰 표면이 줄어들면 우주로 반사되는 태양 에너지량이 줄어든다. 우주로 빠져나가지 못한 태양 에너지는 기후 시스템에 흡수되어 얼음과 눈을 더 많이 녹인다. 흔히 얼음-알베도 되먹임이라고 불리는 이런 악순환은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북극의 기온 상승이 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속도보다 세 배 이상 빠르 게 진행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힌다(그림 1). 지구 시스템의 핵심 구성요소 인 북극에서 일어나는 이런 엄청난 변화는 인근 지역은 물론이고 먼 곳의 날 씨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인근 지역에 끼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직접적이다. 북극 지역의 온도가 오르면 여름에는 더 뜨겁고 건조해져서 툰드라 습지 지역에서까지 산불이 발 생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그런데 아주 멀리 떨어진 남쪽, 수십억 명이 살 고 있는 지역의 날씨 패턴과의 연관성은 훨씬 더 복잡하다. 많은 연구자들이 그 답을 찾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연구의 핵심은 북극의 급격한 온난화가 제 트기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이다. 제트기류란 북반구를 둘러싼 대 기 상층(제트기가 비행하는 고도)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강한 바람의 흐름 을 말한다(제트기류는 남반구에도 존재한다)
- 슈테판 람스토르프는 이런 글을 썼다. "지구상에는 해수면을 65미터(대략 20층 건물 높이) 상승시킬 수 있을 만큼 많은 얼음이 있다. 마지막 빙하기 말에 는 지구 기온이 약 5도 상승한 결과 해수면이 120미터 상승했다." 이 수치는 우 리가 직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해수면 상승이 언제까지나 밀리미터나 센티미터 단위로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 해양 온난화는 여러 가지 놀라운 문제를 낳는다. 첫째, 뜨거워진 해양이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하기 때문에 열대성 저기압이 발생하여 발달하는 속도 가 더 빨라지고 위력도 더 강해진다. 둘째, 뜨거워진 해양에서는 물의 증발이 빨라지기 때문에 전 세계 강우량이 증가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뭄 완화 대 신에 홍수 유발 가능성이 높은 극심한 폭우가 더 자주 발생한다. 셋째, 일반적 으로 온도가 상승하면 해양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감소한다. 지금 바다는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가운데 무려 4분의 1가량을 흡수하지만, 더 따뜻 한 물은 이산화탄소를 잘 흡수하지 못한다(궁금하면 석회수가 섞인 광천수를 끓여 보라). 넷째, 해양 온난화는 산호초 백화 현상을 일으키는 등 해양 생물에 큰 피 해를 준다. 다섯째, 물은 열을 받으면 팽창하는 성질이 있다. 이는 다음에 살펴 볼 해수면 상승 문제로 이어진다.
- 빙하기 말과 비교하면 최근의 해수면 상승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이며, 19세기 이후로 지구 평균 해수면은 약 20센티미터 상승했다(그림 2). 아직까지 상승 폭이 크지 않은 것은 열이 바다 깊이까지 퍼져가는 데에도, 그리고 거대 한 얼음이 녹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규모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지는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대규모 해수면 상승은 이미 확정된 것이며 더 이상 온난화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해도 앞으로 수백 년에서 수천 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다.
-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 있다. 세계적인 물문제를 해결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충격을 줄일 수 있는 '연성 물 경로soft path for
water'다. 연성 물 경로란 댐, 수로, 대규모 수처리 시설 등 중앙집중화된 물리적 기반시설에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통합적인 수처리와 재사용, 빗물 수 집 및 사용 방식의 개선, 소규모 분산형 물 관리 시스템, 그리고 (경제적, 환경적 으로 타당한 경우) 해수 담수화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또한 물 이용 방식을 재 구상하고 최소의 물과 에너지를 사용해서 물의 혜택을 최대로 끌어내는 것이다. 연성 물 경로는 건강한 생태계와 건강한 인간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형평성을 강화하는 경로다. 우리는 물 및 에너지 시스템과 관련한 심각한 불평 등을 해소하고 기후변화가 소외된 취약계층에게 안기는 극단적인 충격을 완 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안전한 물과 위생시설을 제공하고 손상된 생태계를 보호·복원하며, 피할 길이 없는 기후 충격으로부터의 회복탄 력성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불평등을 해소하고 물과 관련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일굴 수 있는 길이다
- 더 높아진 기온과 늘어난 강수량은 모 기 같은 일부 곤충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대부분의 곤충에게는 오히려 위험 하다. 내가 연구 중인 호박벌은 몸에 털이 빽빽하게 나 있어 더워진 기후를 견 디지 못해 예전 활동 지역의 남단부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과거에는 일반적으로 기후가 변하면 곤충도 서서히 변해갔고, 야생생물은 인간의 손길 이 닿지 않은 드넓은 서식지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개체군을 이루 고 살았다. 생물 개체군은 기온이 오르면 극지 방향으로 큰 어려움 없이 이동 했다가 기온이 내려가면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곤충 이 개체군 규모가 크게 줄어든 채로 잘게 조각난 좁은 서식지에서 간신히 버 티고 있다. 극지 방향으로 이동하려면 농지와 도시 지역을 지나는 위험을 무릅 써야 하는데 그곳을 무사히 넘어간다고 해서 서식지로 적합한 땅을 만나리라 는 보장도 없다. 기후변화 때문에 더 잦아진 폭풍과 가뭄, 홍수, 산불은 이미 위 기에 처한 개체군에게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일부 개체군에게는 이 타격이 최후의 결정타가 될 수 있다.
- 미국의 생물학자 폴 에얼릭은 생태 공동체에서 종들이 사라지는 것을 비 행기 동체에 박아둔 조립용 리벳을 무턱대고 뽑아내는 것에 비유했다. 리벳이 한두 개쯤 사라져도 비행기 운행에는 지장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열 개, 스무 개, 쉰 개... 이렇게 자꾸 뽑아내다 보면 비행기는 어느 시점엔가 치명적인 작 동 불능 상태가 되어 하늘을 날지 못하고 추락할 것이다. 곤충은 생태계의 지 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일종의 리벳이다.
- 북극권 육지와 해저에 걸쳐 있는 오래된 탄소와 메탄의 이 방대한 저장고 는 '잠자는 거인'이다. 최근 들어 이 거인이 깨어나고 있다는 조짐이 점점 뚜렷 해지고 있다. 20년 전부터 유라시아 대륙 북단과 북극권의 절반, 그리고 세계 각지 해양의 얕은 연안해에서 탐사 연구가 진행되어왔는데, 수만 년 동안 저장 되어 있던 탄소가 영구동토가 녹으면서 방출되고, 얕은 해저에서 메탄이 기체 가 되어 거품처럼 올라오는 모습을 수백 곳에서 관측하고 있다. 이 메탄은 녹 고 있는 해저 영구동토와 분해되는 메탄수화물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 북극 지역의 일부 영구동토는 매년 해빙되었다가 다시 얼기를 되풀이한다. 그러나 기온이 상승하면서 영구동토가 더 깊은 곳까 지 녹아내리고 영구동토 지역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 도 상승이 1.5도 이하로 억제되더라도 21세기 말까지 영구동토 지역의 3분의 1에서 2분의 1가량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한 기온이 더 오르고 강수 가 더 늘어남에 따라 영구동토 지표의 붕괴와 심층 유기탄소 퇴적물의 분해가 더욱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 우리는 당장 북극의 탄소 저장고에서 화석연료를 뽑아내는 것을 멈추고, 더 나아가 블랙카본 에어로졸 등의 단기 체류 오염물질을 배출해 대기를 더럽 히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블랙카본 에어로졸은 대기 온도를 상승시킬 뿐 아니 라 육지 표면의 눈과 얼음 위에 내려앉아 얼음-알베도 되먹임을 강화하는 등 의 문제를 낳는다. 블랙카본 배출 저감은 북극의 유전과 가스전에서의 가스 플 레어링을 최소화하고,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캐나다 등 북방림 지역의 난방 용 목재 연료 연소를 규제하면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이런 저감 조치들을 즉시 시행해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북극의 영구동토 와 메탄수화물이라는 잠자는 거인이 깨어나는 걸 알았으니, 이제 우리가 할 일 은 국제사회가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 내가 꾸린 연구팀은 세 개 대륙에 실험지를 정해 몇 가지 실험을 수행한 결과 쌀, 밀, 옥수수, 콩 등의 주식용 작물에서 인간의 건강 유지에 필요한 주요 영양소가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는 21세기 중반에 도달할 것으로 예 상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550ppm의 실험 환경을 만들어 그 환경에서 작물을 길렀다. 이 작물을 현재의 이산화탄소 농도 환경에서 기른 동일한 품종 의 작물과 영양 성분을 비교했더니 철, 아연, 단백질 함량이 상당히 낮게 나타 났다. 다시 말해 지구 대기에 이산화탄소를 계속 추가하는 우리 행동이 우리가 먹는 음식의 영양가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후속 연구에서는 높은 이 산화탄소 농도에서 자란 몇몇 품종의 쌀 역시 엽산과 티아민 등 중요한 비타민 B군의 함량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기후위기와 관련해서도 똑같은 상황이다. 지금 시행하고 있는 정책을 계 속 유지한다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지구 온도는 32도나 오를 것이다. 한마 디로 재앙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 로 속도를 높이고 있다. 힘 있는 사람들에겐 그쯤이야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 는 믿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같 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과학적 사실을 이야기하는 걸 두고도 '비관주의' 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건지도 모른다. '당황할 것도 없고 걱정 할 것도 없어. 독일이나 호주, 미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안전할 거야. 에어컨이나 스프링클러를 더 세게 틀면 괜찮다니까.'
세계 전역에서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과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시위운 동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도 스웨덴 같은 나라의 국민들이 듣는 이야기는 이런 식이다. '걱정하지 마. 네 친구와 동료들은 버텨낼 수 없을지 몰라도 너만은 안전할 거야.' 이게 에코파시즘이나 인종주의가 아니면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 리는 모두 같은 폭풍 속에 있지만 한배를 타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위기를 위기로 다루지 않고도 해결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 는 사이에 귀중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갈 것이다. 여러 가지 요인이 긴밀하 게 얽혀 빚어진 재앙에 충분히 적응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허풍을 떨며 시간 을 허비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귀중한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희망은 우리가 진실을 말할 때만 찾아온다. 과학이 우리에게 행동해야 할 근거로 알려준 모든 지식이 곧 희망이다.
- 연구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보다 기후변화 때문에 더 큰 피해를 입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가난한 공동체는 기후변화의 영 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고 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훨씬 제한되어 있다. 에어컨과 파도를 막기 위한 방파제와 관개시설을 갖추고 있다면 기온 상 승과 극한 기상 현상의 충격을 줄일 수 있지만, 이를 마련하려면 상당히 많은 돈과 자원을 투자해야만 한다.
두 번째 이유는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함의를 가질 수 있다. 바로 기온과 여러 가지 중요한 인간 활동이 '비선형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온난화의 영향은 해당 지역의 현재 기온에 따라 달라진다. 연구에 따르면, 추운 지역(예: 노르웨이)에서는 기온이 오르면 일반적으로 난방비와 겨울철 호흡기 질환 발생 건수가 줄고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난다. 온대 지역(예: 미국 아이오와)에서는 온난 화가 삶의 질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많은 연구들은 '이상적인' 평균 기 온이 13~20도 구간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미 기온이 높은 지역(예: 인도)에서는 기온이 오르면 작물 수확량이 감소하고 매개체 전파 감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등의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 기온이 1도 더 오를 때 받 는 영향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으며, 이것은 세계적 불평등 문제와 관련해서 중 요한 함의를 지닌다.
기온의 비선형적인 영향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 는 곳이 대체로 더운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림 2의 첫 번째 지도에는 현재 세 계각 지역의 1인당 GDP가 표시되어 있다. 흔히 알고 있듯이, 기후가 춥거나 온화한 지역의 나라들은 평균 소득이 상대적으로 더 높고, 적도에 가까운 열대 와 아열대 지역의 나라들은 대체로 소득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낮다. 기후변화 와 관련해서 가난한 사회는 더 불리한 출발점에 있다. 이들은 애초에 더운 곳 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온난화로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반면에 부유한 사회는 기 온이 비교적 낮은 지역에 있어서 온난화로 입는 피해가 덜하고 때로는 혜택을 보기도 한다.
- 학자들과 저술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후가 인간 사이의 행동방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서 벤볼리오는 친구 머큐시오에게 한낮의 열기 때문에 싸움이 날 수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결국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비극이 시작 된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알제 해변에서 지독한 더위 에 이성을 잃고 한 남자에게 총을 쏜다. 100여 년 전 주류 경제지 기사들은 그 리스도 탄생 전후 수백 년간의 기후 변동이 로마제국의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붕괴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 많은 연구자들이 세계 각지에 서 일어난 분쟁의 발생 시기 및 장소와 관련해 훨씬 개선된 자료를 근거로 기 후변화가 특정한 상황에서 분쟁 발생 확률을 높일 수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어째서 변화하는 기후가 분쟁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분쟁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일어나는 사건이다. 두 사람 간에 일어나는 격렬한 언쟁 도 그렇고, 정부에 맞선 게릴라 집단의 무력 공격도 마찬가지다. 기후 요인 하 나만으로 분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러 분야의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기후 요인은 개인 또는 집단이 상대와 싸우려는 의지나 능력, 또는 유인을 강화하는 '저울에 올린 손가락'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미국 국방 부는 오래전부터 기후변화를 사람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는 무수한 요인들 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 강화 요인으로 여겨왔다.
수십 년 전부터 심리학자들은 실험을 통해서 방의 온도를 높일수록 피실 험자들의 짜증이 심해지고 공격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같은 생리 학적 반응은 실험실 밖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시행된 연 구에 따르면 기온이 높을수록 운전자의 공격성이 증가하고, 프로 스포츠 경기 중 폭력이 늘어나며, 가정폭력 및 폭행, 살인 등이 증가한다.
- 우리는 기후변화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러야 할까? 우리가 현재 경로를 계속 유지해서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3도 더 높아지면 문 명 자체가 붕괴할 위험이 있다. 금융 붕괴와 대량 기아, 대량 이주가 발생하고 많은 나라가 사회적 소요에 휩싸일 것이다. 1990년대 초에 여러 나라 정부들 이 이런 위험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면,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고 잠재적인 재 앙을 예방하기 위한 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 한 사회경제적 피해 비용의 초기 예측값은 터무니없이 낮았고, 기후 대응 조치 를 미루려는 사람들은 이것을 이론적인 방패로 삼았다(나중에 노벨상을 받은 어 느 경제학자는 1993년에 한 유명한 논문에서 2100년 이전에 지구 온도가 3도 더 올라도 미국 경제가 입는 피해는 고작해야 GDP의 0.2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추정했다. 이제야 경제학자들은 현실에 눈을 뜨고, 미래의 번영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요인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기후변화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 기후 금융위기는 이렇게 진행된다. 홍수와 화재가 급증하고 폭풍이 더 강 해지고 더 잦아지고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주택 소유자와 사업자에게 자연재 해 피해를 보장해주는 보험료가 오른다. 보험사는 할 수만 있다면 재해 발생 확률이 아주 높은 지역에서는 손을 뗄 것이다. 보험에 들지 못하면 대부분의 주택 매수자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할 것이고, 화재와 홍수가 잦아 보험료 가 치솟는 지역에서는 많은 주택 소유자가 집을 팔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과 연 누가 그 집을 사려 할 것이며, 어느 은행이 그 주택의 구입 자금을 빌려주려 하겠는가? 이렇게 되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심각한 공포 투매와 주 택 시장 붕괴가 일어날 것이다. 기후 재해는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찾아 올 테니 말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보았듯이, 주택 및 상업용 부동산 가치의 대부분, 즉 위험의 대부분을 은행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택 위기는 순식간 에 금융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
- 욕조에 물이 넘쳐흐르기 직전인데 양동이를 찾으러 가거나 바닥에 수건을 까는 일부터 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라도 가장 먼저 달려들어 수도꼭지부터 잠글 것이다
- 구매나 투자, 건설만으로는 기후위기와 환경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돈은 여전히 이 문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투자는 아주 중요하다. 최대한 많은 재원을 찾아내 이용할 수 있는 최상의 해법과 적응, 복원에 투 입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 지도자들은 '재원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이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되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2020년에만 석탄과 석유, 화석가스의 생산과 연소에 무려 5조 9000억 달러의 보조금이 지급되었다. 지구 파괴용 자금으로 1분마다 1100만 달러의 거금이 지출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정부들은 유례없이 대대적인 재정을 투입해 경제 회복 정책을 펼쳤다. 코로나 위기에 대응한 재정정책은 인류를 지속가능한 경제를 지향하는 새로운 행보로 이끌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기회였 다. 그런가 하면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기 때문에 이 재원이 조금만 잘못된 용 도에 투입되어도 향후 기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뜻 에서 '기후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2021년 6월, 국제에너지기구는 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회복 정책 에 투입된 재정 지출 가운데 녹색 에너지에 투자된 것은 고작 2퍼센트라고 결 론지었다. 그런데 여기서 '녹색'이 어떻게 분류되느냐도 문제다. 유럽연합을 예로 들면, 이 2퍼센트가 푸틴 집권하의 러시아에서 수입해오는 화석가스나 숲에서 벌채해오는 연료용 바이오매스 구입비로 지출된 건지도 모른다. 유럽 연합의 새로운 분류법은 이런 활동을 비롯한 여러 가지 활동을 녹색으로 분류 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지도자들은 '조금만 잘못을 한 게 아니라 완전히 실패했다.
- 북반구에서 조림 면적을 확대하는 방법은 탄소 격리의 잠재력이 크지 않 다. 긴급한 기후위기 상황에서 이 방법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될 뿐 아 니라 토지 경합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최적의 전략은 나무 수확을 줄 여 탄소를 저장하는 숲을 보호하는 것이다. 숲은 현재 연간 온실가스 106억 톤 (이산화탄소 환산량 기준)을 격리하는데, 이는 전 세계 연간 배출량의 약 30퍼센 트에 해당한다. 현재로서는 삼림에 의한 탄소 격리가 대기 중 탄소를 대량으로 격리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다.
숲의 탄소 저장 능력은 몇 년 안에는 아니라도 대략 50~150년이 지나면 포화 상태에 도달한다. 자연적인 교란은 숲의 탄소 저장량에 영향을 미쳐 저장 량을 줄이는데, 산업적인 단일 수종 조림지가 특히 자연 교란에 취약하다. 따 라서 우리는 동시다발적인 전략을 시행해야 한다. 나무 수확은 이런 단일 수종 조림지에 국한해서 시행하고, 숲의 회복탄력성을 증진시켜 종의 다양성이 개 선되고 일부 나무들이 오랜 기간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물다양성이 높고 회복탄력성이 큰 숲은 훼손하지 않은 채 보전해야 하고, 그것을 생물다양 성의 혜택을 극대화하고 다른 부문이 화석연료에서 벗어날 때까지 탄소를 격 리해 시간을 벌어주는 '지름길'로 간주해야 한다.
- 오늘 온실가스가 대기로 들어가지 않게 하는 비용은 내일 대기에서 온 실가스를 제거하는 비용보다 당연히 적게 든다. 대기에는 다른 기체 분자 2500개당 약한 개꼴로 이산화탄소 분자가 분포해 있는데, 이 이산화탄소를 찾아 제거하는 것은 건초 더미를 뒤져 바늘을 골라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인 화석연료 발전소 굴뚝에서 배출되는 분자 열 개 중약한 개 가 이산화탄소인데, 발전소 굴뚝에서 고농도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것은 통 제하지 않으면서 공기 중에 희석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데 드는 비용을 우 리에게 부담시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굴뚝에서 곧바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대기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현재 전 세계에는 수천 개의 화석연료 발전소가 있지만, 탄소 포집 및 저 장(CCS) 시설을 갖춘 발전소는 30여 개에 불과하다. 만일 모든 화석연료 발전 소가 탄소 포집 및 저장 시설을 갖추지 않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운영된다면, '수명 주기 배출'로 인해 수천억 톤의 이산화탄소 오염이 발생해 지구 온도를 1.5도는 물론이고 2도 문턱 너머로 끌어올릴 것이다.
- 기후 활동가들은 '기후를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러나 질문 자체가 틀린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무슨 일 부터 그만두어야 하느냐'라고 물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기후위기를 해결할 모 든 해법이 이미 우리 손안에 있으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해법을 실행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실 효성 있는 해법이라고 보는 경우에만 이 말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생각을 수용할 때에만 이 위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열린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필요한 변화 때문에 우리의 행복이나 만족이 덜해 질 거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변화를 제대로 이뤄낸다면, 우리 삶은 이기적 이고 무의미한 과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채 워질 것이다. 우리는 과소비 대신에 공동체와 연대와 사랑을 위해서 시간과 장소를 내어줄 수 있다. 이런 변화를 발전과 멀어지는 후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 우리가 섭취할 열량을 어디서 얻느냐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식품 시스템은 단일 시스템으로는 가장 큰 환경 파괴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식품 시스템은 전 세계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의 30퍼센트를 배출하고 지구 토지의 40퍼센트, 지구 담수의 70퍼센트 이상을 사용하며 생물다양성 손실과 영양염류 오염을 야기하는 주요 요인이다. 또한 우리가 섭취하는 식품과 식품 생산 방식을 통해 우리의 건강과 영양에 해를 끼치는 중요한 원천이기도 하다.
- 그러나 이 프로젝트들이 실제로 결실을 본다고 해도, 국제에너지기구의 '2050년 넷제로' 시나리오는 2030년 CCS 시설의 포집 용량으로 연간 15억 7800만 톤을 책정했는데, 이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PDF와 멋진 사진 속 근사한 기후 계획의 세계에서 CCS는 후광을 뿜는 구세주다. 그러나 칙칙한 현실 세계에서 CCS는 실패작이다. 그럼에도 두 얼굴 은 여전히 유지된다. CCS가 기술적 목적이 아닌 감정적 목적에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CCS는 변함없이 유지되는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환상에 수사적 마 법의 보호막을 덧입힌다. CCS는 '곧 이루어질 일'이라는 명목을 끈질기게 내 세우면서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화석연료 사업의 확장을 정당화하는 명분 으로, 그리고 현실적인 기후 대응을 늦추는 구실로 쓰이고 있다.
우리는 CCS라는 해법을 기후 해법 목록에서 제거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엄중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속하고 근본 적인 변화, 특히 화석연료 경제를 겨냥한 변화다. 우리는 재료 사용 방법과 관 련한 효율화와 변화를 넘어서서 수요 감축을 이루어야 한다. 특히 물질적으로 가장 풍족하고 물질적 탐욕이 가장 심한 백인 사회에 만연한 과소비를 빚어내는 근본적인 사회적 원인과 정면으로 맞붙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기계를 쓸 것이냐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이냐에 생각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은 기술 중심 해법의 위험성을 똑똑히 입증한다. 이 기술은 신속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두려워하는 온실가스 대량 배출자들에 게 헛된 희망의 신호등이다. 중공업 등 탄소 감축이 몹시 어려운 부문에 있어 기술적 환상은 생산과 소비의 대폭 감축이 필요하다는 본질적인 논의를 피해 야 한다는 산업계의 긴급한 요구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다.
물론 설계와 기술은 탈탄소화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다. 국제에너지기구 가 강조하고 있듯이, '재료 효율 향상이 이루어지면 산업 제품의 수요와 제품 생산에 소요되는 에너지 수요를 억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멘트 수요는 기 존 구조물을 더 오래 쓸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개조하거나 콘크리트 소요량을 줄이는 최적화 설계를 통해서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수요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 없이는 신속한 탈탄소화 경로를 열어갈 수 없다.
- 위기 해결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전체 상황을 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행 동에 나서는 것도 아니다. 그건 나중 순서다. 위기 해결의 첫 단계는 위기에 처 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이 단계에도 이르지 못 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기후 비상사태에 처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그 사실을 알지 못 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열쇠는 이런 이중의 인식 결여 상황을 알아채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상황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몇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렇다. 그런데도 누구나 다른 사람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런 떠넘기 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 위기 해결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전체 상황을 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행 동에 나서는 것도 아니다. 그건 나중 순서다. 위기 해결의 첫 단계는 위기에 처 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이 단계에도 이르지 못 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기후 비상사태에 처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그 사실을 알지 못 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열쇠는 이런 이중의 인식 결여 상황을 알아채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상황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몇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렇다. 그런데도 누구나 다른 사람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런 떠넘기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 거금을 들여 최신형 테슬라 전기차를 사는 것보다는 이미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를 계 속 타는 게 정답이다. 윤리적 패션으로 불리는 의류 일습을 구색을 갖추어 새 로 장만하는 것보다는 지금 옷장에 있는 옷을 닳을 때까지 입는 게 정답이다. 이와 관련해 중요한 통계가 하나 있다. 덴마크 정부가 추정한 통계에 따르면, 유기농면으로 만든 캔버스가방은 5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사용해야만 제 조에 따른 환경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고 한다.
소비는 답이 아니다. 줄이려면 덜 써야 한다. 이것이 불편하지만 핵심적인 진실이다. 가방이든 비행기 여행이든 자동차 추가 구입이든, 비합리적이고 불 필요한 소비를 멈추어야 한다. 더 작고 더 친환경적인 집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량멸종과 파국적인 온난화를 초래한 경제 이데 올로기의 유효성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고 발전시켜야 하고, 진짜 재앙이 닥쳤 을 때처럼 이 위기에 대응하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 지금은 기후와 생태계의 비상사태다. 이에 대응하는 중요한 해법 중 하나가 전 세 계인이 자신의 소비 습관을 돌아보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땅에서 화석연료를 캐내 태우는 최종 목적은 소비자의 필요나 바람을 충족시키는 데 있다. 온실가 스는 자동차 배기가스처럼 직접적이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도 배 출되고, 어떤 제품 생산에 투입될 물건을 만드는 지구 반대편 공장 굴뚝에서도 배출된다. 이 물건을 이용해 생산된 제품을 누군가가 구입한다. 소비자는 알아 보지 못하지만, 그 물건은 우리의 공유재인 대기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생 산된 것이다. 예를 들어 새 노트북은 자동차로 수천 킬로미터를 주행할 때와 비슷한 탄소발자국을 남기고, 새 청바지는 몇 주 동안 먹을 친환경 식품이나 큼직한 고기 한 덩어리와 비슷한 발자국을 남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 서 자신이 하는 다양한 활동과 구입하는 여러 가지 물건에서 보이지 않는 온 실가스가 나온다는 점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지낸다.
- 그뿐이 아니다. 유엔환경계획 생산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2030년까지 예정된 화석연료 생산량이 1.5도 목표를 유지하는 데 부합하는 양 의 두 배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학적 표현을 쉽게 풀어 말하면, 현재 의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이 목표를 결코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규모의 계약과 법률적으로 유효한 거래 와 합의가 폐기되어야 하는데, 이런 일은 현재 시스템 안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이 사실은 당연히 우리가 매일 매시간 이용하는 뉴스에서, 모든 정치적 토론에서, 모든 업무 회의와 우리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중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사실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고, 익명의 보고서 내용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이용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과학 이 요약해놓은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확인했겠지만, 과학은 본질적으로 으름장을 놓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않는다. 과학은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언론매체와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과감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시행할 기 회가 열려 있는데도 의식적으로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에 그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어 쩌면 잘 몰라서, 어쩌면 문제 자체보다 해법이 더 두려워서, 어쩌면 사회 혼란 이 빚어질까 두려워서, 어쩌면 대중적 인기를 잃을까 두려워서 그러는지도 모 른다. 어쩌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체계, 자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지해온 체계를 뒤집는 것은 정치인 또는 언론인의 소명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이유가 한꺼번에 뒤엉켜 있기 때문에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 우리는 현재의 경제 체계 안에서는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귀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것은 그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지 속가능한 자동차를 사서 지속가능한 석유 연료를 넣고 지속가능한 고속도로 를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지속가능한 고기를 먹고 지속가능한 플라스틱 병에 지속가능한 청량음료를 넣어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지속가능한 패스트패션을 구매하고 지속가능한 연료를 사용하는 지속가능한 항공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지속가능한 기후 목표를 큰 노력을 기울이 지 않고도 달성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한다.
'어떻게' 가능하다는 걸까? 이 위기를 거뜬히 해결할 기술적 해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이제껏 해오던 일을 중단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경제 체계 안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걸까? 무얼 어떻 게 하라는 걸까? 자, 답은 언제나 한결같다. 꾀를 쓰면 된다. 1995년 베를린에 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제1차 당사국 총회 이후에 우리가 기후정책의 기본 준거에 집어넣은 온갖 허점과 기발한 집계 방식을 사용하면 된다. 공장을 다른 나라로 이전했으니 온실가스 배출량도 다른 나라로 떠넘기고 배출량 기준선 을 편한 대로 조정하고 배출량 감축분을 유리하게 집계하면 된다. 나무와 숲, 바이오매스는 공식 통계에서 제외되니까 그걸 태우면 된다. 수십 년 동안 온 실가스를 배출할 화석가스 관련 기반시설을 세워놓고 그걸 '친환경 천연가스' 라고 부르면 된다. 나머지 배출량은 형식적인 조림사업으로 상쇄하고(병충해 나 화재로 소실되는 건 알 바 아니고), 마지막 남은 노숙림은 더 빠른 속도로 베어 내 연료로 쓰면 된다. 이 배출량도 집계에서 제외되니 말이다. 이것이 기후 대응 계획이다. 물론 이건 어느 한 지도자나 어느 한 국가가 의도한 바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것은 이들의 집단적인 노력에서 나온 결과다.
- 말은 위력이 있다. 우리를 속이기 위해 여러 가지 말이 동원되고 있다. 지 속가능성이 없는 세상에서도 지속가능한 선택을 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도, 보상에 의지하면 이 위기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다는 말 도 역시 속임수다. 모두 거짓말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위험천만한 지연을 불러올 위험한 거짓말이다. 유엔의 예측에 따르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30년 무렵에 지금보다 16퍼센트 증가할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기후 재앙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21세기 말 이전에 3.2도 온난화에 도달하는 경로를 달리고 있다. 물론 이건 각국이 직접 세운 정책을 완벽히 이행한다는 가정에서 나온 예측이 다. 그런데 실제로는 각국이 오류가 있거나 과소평가된 수치에 근거해 정책을 입안하고 있으며, 많은 나라들이 이런 정책마저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다. 2021년 가을에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가 한 말을 인용하자면, 이런 식으로는 "기후행동 목표 달성에 몇 광년이 걸릴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구 속력이 없는 서약과 약속을 해놓고는 그걸 완전히 외면했던 전력까지 있다. 하 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확실치 않은 문제라고 해두자.
- 부유한 국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협약에서 기후정의를 제외하거나 희석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들은 2015년 파리 협정을 극찬한다. 협약 내용에 역사적 배출량이라는 개념 자체를 넣지 않았고, 기후정의를 부수적인 사항으로 넘겼다는 점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손실과 피해를 입는 국가들에 대한 보상을 의무화하는 내용도 넣지 않았다. 이 협약의 가장 큰 한계는 부실하 고 무의미한 기후행동의 준거 체계를 만든 것이다. 즉 역사적 배출량에 미친 영향의 정도나 마땅히 부담해야 할 몫에 근거해서 나라별로 감축 의무를 부과 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나라가 감축 목표를 자발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 했다. 이런 식으로 해놓았으니 모든 나라가 국가결정기여(NDC: 국가별 온실가 스 감축 목표를 뜻하는 유엔의 표현)를 빠짐없이 달성해도 세계는 최소 3도 이상 의 지구 온도 상승 경로로 가게 된다는 예측이 나오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 자원 사용과 관련해서도 똑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부자 나라들은 평균적으로 1인당 연간 28톤의 자원을 사용하는데, 이는 지속가능한 수준의 네 배가 넘고, 남반구 사람들의 평균 사용량의 몇 갑절이다. 게다가 부자 나라들 은 남반구로부터의 자원의 대규모 '순전에 의존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북반구 소비가 빚어내는 충격과 피해는 남반구로 효과적으로 떠넘겨져 피해 는 남반구에서 발생하고 남반구의 지역 사회는 자원을 빼앗긴 탓에 발전을 이 루기는커녕 인간으로서의 기본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체계는 빈곤의 만연을 영속시키고 세계적인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요컨대 생태위기는 식민화의 패턴을 따라가고 있다. 북반구의 지속적인 성장은 대기의 식민화와 남반구 생태계의 전유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생태 위기의 식민적 특성을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된다.
- 지난 50년 동안 북반구의 많은 경제학자와 정책결정자가 성장을 지속하되 '녹색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것은 GDP 증가와 환경이 받 는 충격의 증가를 '탈동조화'(디커플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표현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 이론이 경험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일축한다.
첫째, 성장과 세계적 규모의 에너지 및 자원 사용이 완전히 탈동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기존의 세계적 모델은 효율성 및 기술 변화를 아주 낙관적으로 가정한다 해도 이런 탈동조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추정한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확인한 결과다. 최근의 한 연구는 "탈동조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고 성장 지향적인 정책을 전개하는 것은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배출량은 어떨까?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 GDP와 온실가스 배출의 탈동조화를 이룰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 이 런 탈동조화가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속도다. '고소득 경제가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계속 성장할 경우에는 파리 협정의 목표 시한 내에 탈탄소화를 이루는 게 불가능하다. 성장률이 증가하면 에너지 사용량이 증가하고, 에너지 사용량 이 증가하면 목표 시한 내에 배출량을 0으로 줄일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
이런 증거에 비추어 생태경제학자들은 관점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고소득 국가는 더 이상의 성장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 실을 인정해야 한다. 부유한 국가는 현재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의' 에 너지와 자원으로도 자국민의 높은 생활수준을 부양할 수 있다. 핵심은 긴요하 지 않은 생산을 줄이고, 자본 축적이 아니라 인간 복지를 중심으로 경제를 조 직하는 것이다. 이것이 탈성장이다. 탈성장론의 요점은 고소득 국가가 과도한 자원과 에너지의 사용을 계획적으로 줄이고 경제를 정의롭고 공평한 방향으 로 전환시켜 지구 생태계가 균형을 회복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 결과적으로 대부분 수백 년간의 식민 지배로부터 혜택을 누린 경험이 있 는 북반구의 부유한 국가들과 식민 지배를 당했던 남반구 국가들 사이에는 기 후변화에 대해 커다란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선진국에서는 지구 온난화가 주 로 기술, 경제, 과학의 관점에서 다루어지는 데 반해, 개발도상국에서는 지구 온난화라는 동일한 현상이 식민주의 시대에 굳어진 지정학적 불평등 관계가 낳은 권력과 부의 격차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진다.
남반구에서는 폭력, 인종, 지정학적 권력 등의 문제가 트르나테섬의 정향 재배 농민들 같은 사람들 인식의 저변에 깔려 있다. 세계적인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를 차지한 덕에 대체로 안전을 보장받고 있는 북반구에서는 이런 문제 가 거의 논의되지 않으며, 기후변화는 일반적으로 유엔과 같은 다자회의 기구 내부의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모순이 있다. 다자회의 기구는 모든 국가와 만인이 평등하며 부와 복지가 만국에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가정 아래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반면에 지정학은 완전히 다른 가정을 근 거로 한다. 지정학의 관심은 평등과 정의의 실현에 있지 않고 그 반대를 이루 는 데 있다. 지정학은 지배 구조, 즉 불평등 구조를 유지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세계적인 다자간 의사결정 구조와 지정학적 힘 사이에는 거의 메울 수 없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세계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외관상으로는 '해결책' 과 조약을 끝없이 만들어내지만, 국제 협상의 반복적인 결렬은 전혀 다른 현 실, 대개는 숨겨진 현실을 반영한다. 잘 드러나지 않는 이런 역학관계를 싱가 포르 출신의 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리의 권력에 대한 의지는 미 래를 좌지우지할 중요한 동인인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 지도자들이 국제 협상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들이 실제로 하는 행동을 자세히 따져보면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권력에 대한 의지 인 듯 보인다. 부유한 국가들이 국방비 1조 달러는 척척 증액하면서 큰 위기에 몰린 나라들을 돕는 기금으로는 100억 달러만 내놓으려 하는 것도 이런 맥락 으로 읽힐 수 있다. 즉 공개적으로 하는 말과는 다르게, 많은 세계 지도자들이 갈등이 고조되는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기후위기와 생태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으려면, 이제는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행 동을 해야 한다. 그 일을 해내려면 모든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개인, 정부, 기 업뿐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조직과 기관이 움직여야 한다. 명심해야 할 또 한 가지는 티끌 모아 태산이 가능한 시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는 점 이다. 지금은 느긋하게 사람들을 모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약간의 진전'이나 '점진적인 개선'만으로는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없다. 기후위기와 관련해서는 미국 작가 알렉스 스테픈이 한 말이 옳다. "점진적인 진전은 곧 실패다."
- 흥미롭게도 홍보 및 선전 산업의 창시자 버네이스는 지크문트 프로이트 의 조카였다. 그는 심리치료의 기본 아이디어에 착안해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시장에 나온 최신 제품과 연결시킴으로써 욕구 충족용 소비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1920년대에 그는 여성들에게 담배가 '자유의 횃불'이라 고 설득했고(아메리칸 타바코를 위해), 베이컨과 달걀이 미국인의 '마음에 딱 맞 는' 아침식사라고 설득했다(비치너트패킹 정육사업부를 위해). 그는 광고의 힘을 확실하게 알았다. “우리 행동을 좌지우지하고, 우리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우 리 취향을 결정하고, 우리 생각을 형성하는 것은 대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들은 대중의 마음을 조종하는 줄을 손에 쥐고 있다."
광고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면서 소비주의를 사람들이 열망하는 생활양 식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사회비평가 존 버거가 《다른 방식으로 보기》 (1972)에 쓴 글을 인용해보자. "광고는 단순히 소비자의 관심을 끌 만한 그럴듯한 메시 지들을 모아놓은 집합이 아니다. 광고는 언어다. 늘 똑같은 보편적인 제안을 전달하는 데 쓰이는 언어다. (...) 광고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많은 물건을 사들여서 우리를, 그리고 우리 삶을 변화시키라고 채근한다."
더 많은 물건을 소비하는 행동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맹렬한 노력을 대표하는 산업이 바로 패션계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주요 패션 소매업 체는 연간 신상품 출시 횟수를 네 번에서 열두 번으로, 심지어는 쉰두 번의 '마 이크로 시즌'으로 더 촘촘하게 쪼개고 매주 '새로워진 당신'을 약속한다고 장 담한다. 저렴한 가격과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진 신상품 출시 주기는 대중의 소 비에 반영된다. 2014년에 평균적인 소비자가 구입한 의류의 수는 2000년보다 60퍼센트 증가했지만, 구입한 의류를 보유하는 기간은 2000년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 블루카본
탄소 흡수를 위해 나무를, 그것도 수십억 그루의 나무를심자는 이야기는 자주 나오지만, 전 세계 광합성의 약 50퍼센트가 바다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육지 중심의 근시안적 관점으로는 습지와 해 초, 산호초, 갈조류 서식지, 맹그로브림의 탄소 저감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한 다. 해양 생태계는 육상 삼림보다 헥타르(1만 제곱킬로미터)당 최대 다섯 배 많 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해조류의 잠재력은 대단히 크다. 자연적으로 심해 로 가라앉는 해조류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2억 톤의 탄소를 격리한다. 해조 류를 양식한 뒤 가라앉힌다면 이산화탄소를 효과적으로 격리할 수 있다. 그러 나 우리가 이런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한 탓에, 훼손되고 파괴된 해안 생태계에 서는 메탄을 제외하고도 매년 최대 10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있다.
- 핀란드 투르쿠대학교의 철학자 엘리사 알톨라는 수치심이 매우 효과적인 도덕적, 심리적 설득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죄책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죄책감은 안정적인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요소다. 우리는 법을 어겼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물건값을 정확히 치르고 법률을 준수한다. 어떤 면에서 우리 사회는 죄책감을 피하려는 욕구에 의해 지탱된 다.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에는 기분이 언짢지만, 일단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면 용서를 구하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으며, 때로는 깊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기후위기와 관련한 죄책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걱정 할 필요가 없다.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화석연료 기업과 에너지 기업, 주요 산 유국의 지도자다. 기후 불평등은 결코 평범한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대부분 의 사람들은 역사적 배출량이 뭔지, 과거의 잘못이 뭔지도 잘 모른다. 심지어 지구 온난화의 기초적인 지식에 대해서도 거의 모른다.... 어떻게 알 수 있겠는 가?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적어도 공식적인 통로로는 말이다. 정부, 국제 신문, 주요 방송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것은 일반 시민의 책임 이 아니다.
- 내가 보기에 영국 언론 역사상 환경에 가장 큰 해를 끼친 방송은 2006년에 방영된 2부작 다큐멘터리 <기후변화의 진실>이다(절대 반어법이 아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사람은 '영국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 로 꼽히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절대적인 진리로 취급받는 데이비 드 애튼버러 경이다. 여기서는 화석연료 산업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다가, 해법 이야기를 할 때만 나온다. '석유, 가스 등의 화석연료를 추출하는 사람들 은 이제 이산화탄소를 다시 지하에 돌려보내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라는 대 목이다. 그러나 탄소 포집 및 저장은 석유산업이 늘 약속만 하고 실행에 옮기 는 법이 없는, 그러니까 채굴 사업을 계속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써먹는 전형적인 방패막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화석연료 산업 대신에, 다른 집단에게, 즉 '13억 중국인'에게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는 책임을 전부 떠넘겼다. 그 것 말고는 다른 원인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자마자 전 염성이 높은 새로운 기후 부정론이 등장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갔고 지 금까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지구를 망쳐놓고 있는 것은 중국인들이니까, 지금 이 땅이든 다른 어디에서든 어떤 행동도 무의미하다.'
- 나는 2021년에 쓴 《새로운 기후전쟁The New Climate War》에서 관심 돌리기 전 술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기후변화 해법에서 개인의 역할을 강조 하는 태도는 산업계가 신중하게 계획해 조장한 것"이며 "개인의 탄소발자국이 라는 개념은 석유기업인 BP가 2000년대 중반에 퍼뜨린 것으로, BP는 초기에 등장한 개인 탄소발자국 계산기 중 하나를 실제로 만들었다." BP를 포함한 많 은 화석연료 기업들은 사람들이 개인 탄소발자국에 집중해 자신들이 내뿜은 더 큰 탄소발자국에는 주목하지 않기를 바랐다. 총 탄소 배출량의 70퍼센트가 단 100개의 오염 기업에서 나오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개개인이 환경에 미치 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정부 정책을 마련해 오염 기업들이 우리의 유일한 대기를 쓰레기통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 과학에 기반한 기후행동은 에너지와 농업, 운송 시스템을 최대한 빨리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정의에 기반한 기후행동은 그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 화석연료로부터의 대대적인 전환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더 평등하 고 더 민주적인 경제를 이뤄가야 한다.
가장 좋은 출발점은 에너지 소유권의 전환이다. 현재는 극소수 화석연료 기업이 세계 시장을 통제하고 거의 모든 지역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재생 에너지 전력의 장점 중 하나는 화석연료와 달리 해가 들고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더 분산 되고 다양한 소유 구조를 창출할 수 있다. 녹색 에너지 협동조합, 지자체가 소 유하는 에너지, 지역 사회가 소유하는 마이크로그리드 등등. 이런 소유 구조가 정착되면 새로 구축된 녹색 에너지 산업이 생산한 이익과 혜택이 기업의 주식 소유자에게 빠져나갈 일이 없이 지역 사회 안에 머물고, 이 때문에 지역 주민 의 복지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이 정의로운 전환 원칙은 에너지 민주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기후정의를 위해서는 에너지 민주주의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이 루어야 한다. 우리는 에너지 정의와 더 나아가 에너지 배상을 이뤄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로 에너지 생산 산업과 그 밖의 오염 배출 산업은 발전 과정에 서 가장 가난한 지역 사회들에 경제적 혜택은 아주 찔끔 주면서 막중한 환경 적 부담을 안겨왔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 기후위기는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에서 발을 빼야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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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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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세계

사회 2023. 8. 8. 17:14

- 위기와 격변의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겪은 후 미국에는 주주가치라 는 신흥 종교가 등장했다. 기업 운영은 주가라는 단일 지표로 측정되 었고, 나아가 전체 사회가 기업들의 시가총액 합산액으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되었다. 월스트리트는 교회가 되었고, 다우존스와 나스닥은 예배 의식이 되었다.
이것은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척도였다. CD가 LP를 대체한 것처 럼, 주주가치는 지역사회와 연방이라는 아날로그적 발상에서 비롯된 잡음을 주가 상승 또는 하락이라는 이분법으로 소거시켰다. 빨간색 또 는 파란색, 상승장 또는 하락장으로 말이다.
누구보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주장했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주가 상승이 아닌 다른 이유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경영진은 주 주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것이며, "순수하고 완전한 사회주의를 퍼뜨리 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그런 사람은 '유럽인'이라고 손가락 질받을 수도 있었다.
- 1966년 미국은 잠재 GDP의 2.5퍼센트를 도로, 교량, 학교, 정수시설, 하수도 등 사회 기반시설(인프라)에 투자했다. 이후 20년 동안, 그중에 서 주로 닉슨과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 인프라 투자는 극적으로 감소했 다. 1983년에는 GDP의 1.3퍼센트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그 이 후로도 비교적 비슷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건설 자 재 가격이 인플레이션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비율은 실제 투자 비율보다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미국 도로 5개 중 하나 는 상태가 좋지 않다.' 미국인의 45퍼센트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 다. 2분마다 한 번꼴로 수도관이 파열된다. 핵심 인프라에 수많은 결 함이 생긴 나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위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미시 간주 플린트에서는 1만 2,000명의 어린이가 납으로 오염된 물을 마셨 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학업 성취도와 지능지수에 영향을 미치고 알 츠하이머병과 레지오넬라증을 불러올 수 있는 치명적인 뇌 손상을 입었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는 12층짜리 해변 콘도가 무너져 98명이 사망했다.
반면 중국의 GDP 대비 인프라 투자 비용은 미국보다 10배 더 많 다. 상하이에서 베이징까지 (1,200킬로미터) 기차로 4.5시간이면 가지만' 보스턴에서 워싱턴 D.C.까지 (705킬로미터)는 7시간이나 걸리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 지난 25년간 401K 퇴직연금', 뮤추얼펀드, 인터넷 덕분에 주식시장에 참여한 미국 가구는 전체 가구의 거의 절반에 이르렀다. 이제 비즈니 스 뉴스와 투자 매체는 실물경제의 주요 상품이 되었고, 주식 시황은 주요 경제지표 중 하나로 인식된다. 1989년에는 직간접적으로 주식을 보유한 가구가 미국 전체 가구의 3분의 1도 안 되었지만, 2019년에는 거의 절반 이상으로 증가했다.
주식을 보유한 가구는 증가했지만, 부의 불평등으로 폭주하는 열 차를 늦추는 데 효과는 거의 없었다. 여전히 미국 가구의 절반 가까이는 전혀 주식을 갖고 있지 않다. 게다가 주식 소유자의 분포 또한 매우 불균등하다. 상위 1퍼센트의 미국인이 미국 가계 소유 주식의 거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으며, 하위 80퍼센트는 13퍼센트만 보유하고 있다.'
- 레이건 혁명'은 개인을 찬양했다. "평범한 사람 average Joe"은 효과적인 정치적 소품이었지만, 이 이야기에는 영웅적인 지도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경제 번영의 물결이 배를 거의 들어올릴 즈음, 사람들은 경제 성장의 공로를 노동자 대중이 아니라 그들을 지휘하는 뛰어나고 기회주의적이거나 그저 운이 따랐던 개인에게 돌렸다. 신앙인의 감소'와 초 자연적 존재에 대한 의존 탓에 생겨난 공허함을 현대 사회의 구세주인 혁신가가 채워주었다.
개인주의는 미국의 역사에 내재해 있다. 미국인은 서부를 길들인 카우보이를 기념하고, 미국의 상업적 힘을 구축한 것처럼 보이는 발명 가와 기업가를 존경한다. 혁신가에 대한 숭배는 기술 문화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기술에 대한 믿음에는 성공은 개인이 성취한 결과물 이자 근성과 천재성의 결실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은 어떻게 자신의 입지를 굳혔을까?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돌아갈 기회를 줄이면서 이미 부유한 사람들 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는 정책 때문에 가능했다.
세법을 한번 생각해보자. 어떤 회사의 주식을 팔아서 얻은 소득에는 그 사업체에서 실제 일하는 사람이 얻은 소득보다 낮은 세금이 부과된다. 가난한 사람에게서 부자에게 부가 이전되는 두 번째 방식은 다음과 같다. 주택 소유자는 두 채까지 집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이자 를 공제받을 수 있지만, 집이 없는 사람들은 공제가 전혀 되지 않는 임대료를 낸다. 우리는 돈이, 그리고 그 돈이 벌어들이는 돈이 땀보다 더 고귀하다고 기능적으로 결정했다.
이러한 부의 이전은 미국 대중들에게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 제시 되지만, 실제로는 부를 유지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 메시지는 미국 주식의 89퍼센트를 소유한 10퍼센트 사람들이 당신에게 전하는 주장이다.
- 미국의 메인스트리트와 월스트리트 또는 실물경제와 금융경제 사이가 이렇게까지 단절된 적은 없었다. 1980년 이전까지 미국의 총금융자산 은 국가 GDP의 2배를 초과한 적이 없었다. 이 비율은 그 후로 계속 상 승해 팬데믹이 시작될 때 5.9:1까지 올라가 최고점을 찍었다' 전례 없 이 돈을 찍어내고, 모기지 담보증권과 같은 새로운 금융상품을 계속 만들어내는 월스트리트의 능력과 대량 금융 살상 무기 같은 다양한 요 인으로 금융화가 확대되었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GDP 가 가장 높은 10개 나라가 보유한 금융자산의 가치는 2000년 290조 달러에서 2020년 1,020조 달러로 급증했다. 1,000조 달러가 넘는다니, 5분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숫자다. 같은 기간 동안 실물 자산의 가치는 160조 달러에서 520조 달러로 증가했다.
금융화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주로 자산가와 금융 업계 종사자가 혜택을 받는다. 더 중요한 점은 금융화가 현실 세계를 희생시키는 가운데 시장의 중요성을 계속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는 미국의 코로나19 대응 정책이 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을 구제하는 것이었는지를 설명해준다.
- 2007년 1월 9일 스티브 잡스는 맥월드 엑스포 행사 기조연설에서 애 플이 휴대전화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잡스는 이 휴대전화를 "모든 것 을 바꿀 혁명적인 제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옳았고, 아이폰은 모든 것을 바꿨다. 우리는 단지 어떻게 바뀔지 몰랐을 뿐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3년밖에 안 된 페이스북이라는 신생 기업이 야 후가 제안한 9억 달러 규모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결정을 의아해하고 있었다. 오데오odeo라는 팟캐스트 회사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South by Southwest 축제에서 자사 신제품인 트위터를 마케팅하고 있었다."
인터넷 붐은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지만, 진정한 패러다임 전 환이 도래하기까지는 10년이 더 걸렸다. 모바일과 소셜 네트워크라는 두 가지 힘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우리는 수익이 아닌 사용자를 기 준으로 기업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사용자 수와 국가의 인 구 중 어느 쪽이 더 급속히 성장하는지 비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실 제로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고 무료로 사용하면서 점점 더 많은 인터넷 브랜드를 알게 되었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고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품이 된 것이다.
- 2010년 우리는 깨어 있는 시간의 3퍼센트를 휴대전화에 사용했다. 2021년 휴대전화 사용시간은 33퍼센트로 증가했으며 '그 절반 이 상은 소셜 미디어를 한다. 우리의 관심에서 창출된 수익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다수의 기업이 거의 챙겨간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은 광 고수익이 전체 수익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메타의 경우 거의 98퍼센트다. 이 두 회사가 미국 전체 광고 수익의 3분의 1 이상을 벌 어들인다. 이 모든 것이 불과 10년 안에 일어난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는 알고리즘 때문에 가능했다. 알고리즘 분석 결과 우 리를 화나게 만드는 콘텐츠가 가장 관심을 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용자가 거북하다고 판단한 유튜브 동영상이 일반 동영상보다 70퍼 센트 더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트위터에서 거짓은 진실보다 6배 빠른 속도로 퍼진다." 페이스북은 전체의 15퍼센트가 넘는 시간 동안 이용자에게 신뢰할 수 없는 뉴스를 내보낸다." 인터넷은 더 연결된 세 상에 대한 약속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효과를 가 져왔다. 우리는 각자의 에코 체임버 echo chamber"에 갇혀 더 이상 화합하 지 않는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성공한 민주주의는 일 반적으로 강력한 제도, 공유하는 역사, 매우 신뢰할 수 있는 광범위한 소셜 네트워크에서 나오지만, 소셜 미디어는 이 세 가지 모두를 악화 시킨다고 말한다." 멍하게 글을 게시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리트윗하 는 가운데 우리는 길을 잃었다.
- 한때는 실행이 불가능해 보였고 크게 오해받기도 했던 비즈니스 모델 이 기기 사용 시간의 폭발적 증가를 촉진했다. 바로 광고다. 37조 기가 바이트의 데이터'를 수집해 0.2초 안에 개인 맞춤형 결과를 작은 가상 광고판에 순위별로 제공하는 알고리즘 검색 엔진, 여기에 비용을 지급 한다는 생각은 구글이 처음 이를 출시했을 때만 해도 성공 여부가 의 심스러웠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것은 규모의 힘이었다.
더 많은 시간을 기기에 소비하는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디지털광 고 시장은 현금을 긁어모으는 거대 산업으로 탈바꿈했다. 2011년에는 디지털 광고가 미국 전체 광고 수입에서 20퍼센트를 차지했다. 그 이 후비 디지털 광고 시장은 위축됐지만, 디지털 광고는 폭발적으로 늘어 났다. 디지털 광고는 이제 미국 전체 광고 수입의 6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광고 산업을 약 2,500억 달러 규모로 변모시켰다.
- 소셜 미디어 게시물은 알고리즘에 따라 순위를 매겨서 사용자에게 추천하는 방식(즉 사용자의 참여를 최적화함)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소셜 미디어 사이트가 실제로 검열하는 유일한 콘텐츠는 우리를 지루 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내용이 덜 온건하고 극단적일수록 콘텐츠를 널 리 퍼뜨리는 데 유리하다. 페이스북에서 극단주의 단체에 가입한 사람 들의 64퍼센트는 알고리즘이 그들을 그곳으로 유도한 덕분이었다. 미국의 극우 음모론 단체 큐어넌Qanon 이 온라인에 등장한 지 3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이미 미국인의 절반은 그들의 음모론을 접해보았 다. 사실 소셜 미디어는 우리를 분열시키기 좋아한다.
- 14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흑사병은 4년 만에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 정도인 2,5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이 흑사병조차도 긍정적 측면이 있었다. 인구 감소가 1인당 소득 증가와 도시 생활로의 전환으로 이어지면서 도시 생활에 필요한 비 필수품의 초과 수요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도시 규모가 커졌고, 오랜 기간 성장하지 못했던 유럽 경제의 엔진을 정비함으로써, 다음 세기에 활기를 가져왔다. 이 현상에 대해 연구자 들은 전염병, 전쟁, 도시화를 '부를 이끄는 세 기수 the three horseman of riches 라고 불렀다. 이 요인들이 장기적으로 도시 성장과 경제 활동을 촉진 했기 때문이다.
- 2021년에 540만 건의 신규 사업 신청이 있었다. 이는 2020년 440만 건보다 23퍼센트, 2019년 전체보다 35퍼센트 높은 수치다. 팬데믹 경 제는 짧은 지속 기간이나 K자형 회복세를 보이는 등 일반적인 경기 침체를 초래하지 않았으며, 몇 가지 요인으로 이 기간을 10년 만에 가 장 창업하기 좋은 시기로 만들었다.
엄청난 저축과 정부의 부양책, 기록적인 자산 가치 상승의 조합은 베이비붐 세대가 소비자 중심주의를 미덕으로 삼은 이래 우리가 그동 안 보아온 그 어떤 것과도 다른 소비자 지출의 물결을 형성했다. 소비 자와 기업 사이에서 현재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 스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현상이 증가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 인에게 바이러스 면역이 생긴 것처럼 혁신적인 분야의 등장은 전통 산 업을 혼란에 빠뜨렸다.
- 미국은 많은 부분에서 세계를 이끈다는 자부심이 있지만, 교도소 문 제는 별개다. 2021년 현재, 미국인 10만 명 가운데 639명이 감옥에 갇 혀 있으며,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수감률이 높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 았어도 사회적 위험성이 있는 사람들을 투옥하는 권위주의 정권 쿠 바조차 감옥에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미국보다 낮다. 미국의 수감률 이 일본보다 17배 높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으며 러시아보다도 2배 나 높다. 미국 교도소 수감자의 수를 도시에 비교해보면, 미국에서 다 섯 번째로 큰 도시가 된다. 애틀랜타, 마이애미, 신시내티, 멤피스 인구 를 다 합친 것보다 인구가 많을 것이다. 흑인과 히스패닉은 미국 인구의 약 3분의 1 정도이지만, 교도소 인구의 거의 6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모든 교도소를 유지하는 데 연간 80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
우리는 이 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비폭력 범죄에 대한 선고를 재평가해야 하며, 폭력 전과가 없는 수감자는 석방을 고려해야 한다. 마약 법정, 전환 프로그램과 교도소에 대한 다른 대안들이 확대되어야 한다. 석방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 적응 프로그램과 교육도 시행해야 한다. 젊은 시절에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한 청년을 가둬두었다가 몇 년 후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 청년을 길거 리에 내버리는 것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무너진 사법 정의를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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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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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바꾼다

사회 2023. 6. 30. 11:21

-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카타리나 템펠 Katharina Tempel은 걱정 없는 삶과 행복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행동으로 무언가가 바뀐다는 것을 내면화하는 순간 행복감을 느낄 수 있 어요. 그 아름답고 충만한 감정으로 인해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고 싶어지 거든요. 나아가기 위해 첫 번째 할 일은 자기를 괴롭히는 대상을 알아내는 탐색의 시간을 가져보는 거예요. 마음이 쓰이는 게 무엇인지, 뭘 하고 싶은 지. 한 번에 한 가지 프로젝트만 고르는 게 좋아요. 너무 열성적으로 여러가 지 일을 동시에 하려고 하면 잘 안되거든요. 한 단계가 끝나기 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말고요. 안 그러면 산더미처럼 쌓이는 과제에 짓눌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모르는 상태로 꼼짝 못한 채 좌절할 테니까요."
- 운동이나 명상보다 더 중요한 일은 몸과 화해하는 작업이다. 그저 자신을 고유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키가 크든 작든, 피부색이 밝든 어 둡든 원래 그렇게 타고난 게 아닌가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를 때, 몸은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자세히 알려준다. 타인의 존재나 온기가 필요할 때조차도 말이다. 두통과 복통, 소 화불량 증상은 몸이 보내는 신호다. 몸의 신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우리 는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타인도 잘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니 큰 고통 이 찾아올 때,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없을 때, 외로움이 우리를 집어삼킬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회복과 치유, 행복을 위해 내면의 지혜를 동원하자.
명상을 하든, 그저 조용히 앉아 있든 내면에 귀 기울이면서 의식과 몸을 하 나로 합치자. 몸을 알면 자기 자신을 알게 될 테니.
심리학자 켄 디치월드Ken Dychtwald는 '몸 지도'를 그려 건강 상태를 살펴 보라고 권한다. 이때 지도에는 몸에 영향을 준 모든 경험과 사건을 그려 넣 는다. 그동안 겪은 고통과 스트레스, 질병을 다양한 색깔로 나타낸다. 몸은 기쁨과 즐거움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신체의 어떤 부분이 다른 사람에 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 본다. 이 과정은 내면을 더욱 깊이 느끼 고 몸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숙고하는 매우 흥미로운 실습이다. 자신을 알 아가면서 자연스럽게 긍정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다.
-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
1950년 당시, 평균 수준의 월급을 받던 사람이 돼지고기 1킬로그램을 사 려면 234분을 일해야 했지만, 2009년에는 32분으로 줄었다. 최종 소비자가 에 환경오염을 고려한 비용이 빠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의 한 연구자는 환경비용이 제대로 반영된다면 햄버거 하나 가격이 200달러에 달 할 거라고 하니,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비용은 이상할 정도로 잘못 책정되 어 있다.
우리는 값싼 먹을거리를 누리는 것을 마땅한 권리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 른다. 세상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계속 외면할 수 있을 까? 불의와 고통, 파괴를 마주하면서도 마냥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음을 맞는 동물들에게서 나온 음식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줄까?
먹는다는 것은 주변 환경과 연결되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다. 우리 가 먹는 것은 몸의 일부가 되고, 감정과 마음에도 영향을 끼친다. 자기가 먹는 음식이 곧 자기 자신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먹을거리의 본질을 이보다 더 잘 요약할 수는 없을 것 같다.
- 생태계는 닫힌 순환계로,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변형을 거쳐 다시 사용된다. 그 무엇도 쓰레기가 되지 않는다. 자연이라는 완벽한 살림에서는 한 존 재의 쓰레기가 다른 존재의 식량이 된다. 오로지 인간만이 예외다.
우리는 지구에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생명체다. 금방 쓸모없어 질 물건을 계속 찍어낸다. 아주 잠깐 쓰이고 버려져 수백 년 동안 썩지 않을 물건 즉 쓰레기는 점점 규모도 늘어나 지구, 바로 우리를 심각하게 위협하 고 있다. 공기와 해양뿐 아니라 우리 몸과 먹을거리도 오염시키니 말이다.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끝없는 성장이 답인 것처럼 살아 가고 있다.
- 세계은행은 세계 곳곳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쓰레기양이 2025년엔 600만 톤을 넘을 거라고 예측했다. 현재 매년 바다로 버려지는 쓰레기는 640만톤 에 달한다. 해수면 1제곱미터당 1만 8천 개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떠다니다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열 명 중 아홉 명의 혈액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 이런 쓰레기를 개발도상국에 (합법 또는 불법으로) 수출해 현지인 들이 거대한 쓰레기 언덕에 사는 데 가담하고 있다. 이 모두가 우리의 무책임한 살림 때문이다.
- 독일인의 62퍼센트는 자신이 쓰는 전기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있다고 한다. 물은 어떤가? 매일 사용하는 세면용품이나 청소용품에 들어 있는 성 분을 알고 있는가? 부끄럽게도 우린 잘 몰랐기 때문에 문제를 인식한 뒤로 는 살림하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그러려면 제일 먼저 우리 자신과 주변 을 관찰하고, 의문을 가져야 했다.
독일인은 하루 평균 127리터가량의 물을 쓰고 있는데, 그 외에도 우리가 먹는 음식이나 옷, 자동차, 가전제품의 생산·운반· 보관과정에 들어가는 것 까지 따지면 막대한 양이다. 지질학자 존 앤서니 앨런 John Anthony Allan 이고 안한 '가상의 물 virtual water' 개념에 따르면 차 한 대를 가질 때는 40만 리터, 커피 한 잔을 마실 땐 140리터의 물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방식으로 계산하면 독일인이 하루 평균 3,900리터가량의 물을 쓰는 셈이라고 독일 연 방환경청은 발표했다. 직접적으로 쓸 때보다 30배나 많은 소비량이다. 즉 어떤 물건을 사지 않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을 아낄 수 있다는 뜻이다.
- 독일환경보호협회 환경정책관 인드라 엔터라인 indra Enterlein 은 유해물질이든 세척 용품이 몸 건강과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간단한 방법을 일러주었다.
“제가 절대 쓰지 않는 물건이 있는데요. 바로 변기에 놓는 방향제와 냄새제거 스프레이, 염소가 든 청소 세제·곰팡이 제거제 · 하수구 세척제입니다. 눈과 피부, 호흡기를 자극하고 알레르기를 유발할 우려도 있죠. 사실 집안 청소에 필요한 세제는 단 네 가지뿐입니다. 다용도 청소 용액, 그릇 씻는 세 제 청소용 연마 크림, 그리고 석회질을 없애는 식초나 구연산 여기에 세제 정도를 추가하는데요. 실제로 많은 가정의 선반을 살펴보면 훨씬 많은 제품 이 놓여 있더군요. 확 줄여보세요."
- 오늘날 독일인들은 평균적으로 1만 가지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 사회학자르네 프라이 René Frey는 경제 성장이 지금처럼 계속되고 소비 패턴이 바뀌 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지금보다 2배, 손주들은 4배, 손주의 자식들 은 8배에 달하는 물건을 갖게 된다고 예측한다. 이 추정치에다 3D 프린터 상용화까지 고려하면 물건은 얼마나 더 많아질까? 그런 미래에 사람들의 집 안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200년 전 사람들은 150가지 정도의 물건을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그렇 다고 옛날 사람들이 지금 우리보다 불행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쩌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수백년 전에 비해 의식주의 기본 조건이 아주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닌데, 현대인들은 그전보다 훨씬 많은 물건이 들어찬 집에서 살게 되었다. 심지어 명품을 꼭 소유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며 사는 이도 많다.
- 다소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다시 '물질주의자가 되자고 할 참이다. 이 말은 무조건 물건을 취하자는 뜻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고 우 리가 가진 물건의 진정한 가치를 들여다보자는 말이다. 쇼핑할 때 빨리 닳 거나 쉽게 고장 나는 물건을 골랐다고 생각해 보자. 굉장히 싸게 샀다고 해 도 결국 물건에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금방 같은 기능을 가진 다른 물건을 찾아 헤매야 하기 때문이다. 중고품이지만 편안한 소파에 앉아 고요하게 책 을 읽는 것과, 이케아 같은 대량 생산품 매장의 미로를 헤매며 또 하나의 싸 구려 소파를 사러 다니는 것. 둘 중 어느 쪽삶의 질이 높을까?
물건을 자기 손으로 직접 수리하는 것도 물건의 가치를 존중하는 또 하 나의 방법이다. 고쳐 쓰기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사람이 대충 쓰고 버리는 라이프스타일에 질릴 대로 질렸고, 직접 고친 물 건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몇 해 전, 한 네덜란드의 예술가는 부서진 접 시를 금으로 이어 붙이며 망가진 물건을 값진 작품으로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다.
-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1인 가구는 독일 전체 가구의 42퍼센트를 차지한다. 즉 1720만 명이 혼자 사는 셈인데 사실 1인 가구 형태는 공동주 거보다 친환경성이 떨어진다. 앞에서 다룬 에너지 과소비 문제를 떠올려 보 자. 살림살이는 나눠 쓸 때 절약 효과가 커진다. 그러니 1인 가구 주택 공급 을 늘리겠다고 대도시에 획일적인 건물 수천만 채를 지어대는 일은 친환경 적이지 않다.
그 외에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공동 주거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함께 요리하고 필요한 물건은 공유하고 아이를 같이 키우며 생활 전 반에 걸쳐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적절한 사회적 교류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삶의 안정성을 높인다. 물론 크고 작은 갈등은 있겠지만 공동체에 선 당연한 일이다.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운다면 오히려 멋진 일 아닌가. 혼자살면 문제도 홀로 짊어져야 하니 말이다.
- 생태공동체, 자동차 없는 가구, 예술인, 다세대, 한 부모 가정 등 모집 대 상에 따라 공동주거 프로젝트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자신이 원하는 조 건을 고민해 보고 결정하면 된다. 마음이 통하는 이들끼리 작은 울타리를 만들어 함께 사는 공동 주거 모델은 이미 도심이나 시골 한가운데에 다양하 게 존재한다. 이때 유대감을 바탕으로 서로 돕고 지지하는 공동체 유무가 공동 주거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한다.
공동 주거는 새로운 삶의 기반을 얻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수많은 자 원을 공유하며 더불어 사는 일이다. 우리는 곁에 누군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삶의 의미를 얻기도 한다. 그런데 개개인이 그저 익명으로 존재하는 대도시는 애초에 이런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따라서 집 이상의 의미로 정의할 만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건설은 문화적·사회적·정치적 실 험이기도 하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데서 나아가 구현하기 위한 실험인 셈이다. 자, 이제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갈 시간이다.
- 누구를 위한 도로인가
독일 가정의 77퍼센트는 한 대 이상의 차를 소유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달라지고 있다지만, 지금도 독일에서 차를 소유하는 것은 자유로운 시민으 로서 마땅히 누릴 권리이자 자격처럼 여겨져서 어떤 논리로도 반박하기 어 렵다. 하지만 모든 나라의 사정이 이렇다면 거시적으로 볼 때 지구가 그 부 담을 감당할 수 없을 거란 점은 분명하다. 자가용비율이 늘어날수록 생태 적·사회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미 많은 도 시들이 스모그나 교통 문제를 겪고 있지 않나. 무엇보다 화석연료 같은 천 연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이동수단의 변화는 도시의 풍경과 체계를 바꾼다는 점에서 사회에 큰 영 향을 끼친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골목길이 없어지면 골목에 늘어서 있던 작 은 가게들은 사라진다. 대도시에서는 사소한 불편에 불과할지 몰라도 시골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다. 또 미성년자와 노인, 장애인 혹은 여러 이유로 차를 운전할수 없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으로 작용한다.
현재 대다수 산업국가의 이동수단 체계는 도로와 자동차 중심주의를 그 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가용 이용자의 이동권에 특혜가 부여되는 거나 마찬가지다.
교통 강자가 된 자가용 운전자들은 도시의 공유 공간에서 가장 많은 자리 를 차지하고, 교통 약자들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보행자는 차에 치이지 않 으려고 내내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다녀야 하며, 차량 흐름을 방해하지 않 기 위해 구석으로 비켜서야 한다.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숨을 고르고 잠시 멈춤을 요구할 수도 없다. 오늘날 도시에서 보행자는 극심한 소음과 공해, 정신없는 움직임 속에 방치되어 있다. 목적지로 가능한 한 빨리 이동하기가 최대 목표인 사고방식을 이제 재고할 때가 되었다.
자동차 중심 도시가 시민과 환경에 치명적인 불이익을 준다는 사실을 알 면서도 도시 계획은 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까? 교통 설계 전문가 카탈린 사리 Katalin Saary는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주거 지역을 자동차 중심으 로 설계하는 데 반기를 든다. 카탈린은 자동차를 교통수단보다는 정적인 사 물로 규정하는데(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 때문이다), 평균 1~3톤 무게의 자동차가 70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사람 한 명씩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꼬집는다.
- 여러분은 '바보idiot'라는 단어가 그리스어 '이디오테스idiotes'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는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polis에서 정치적 문제에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사적인 일에만 신경 쓰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기회가 있어도 공적인 일에는 전혀 나서지 않는 이들 말이다. 이디오테스의 반대말은 '폴리테스polites'로 정치적인 논쟁 에 활발히 나서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늘날은 어원과 사뭇 다른 인식이 사회에 깔려 있는 듯하다. 정치적인 활동을 하거나 정계에 입문하는 사람을 오히려 정신 나간 바보라 여기기도 하니 말이다. 갈수록 사람들이 정치나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인식을 거들고 있다.
- 느림을 연습하기
여행에도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행의 목적이 어딘가에 되도록 빨리 도착하는 데 있을까? 아무 걱정 없이 홀가분한 여행을 원한다고 해서 꼭지 구 반대편으로 떠나야 할까?
느린 여행 운동에 앞장서 온 자유 여행가 댄 키란Dan Kieran은 많은 사람들 이 패스트푸드식 휴가에 익숙해져 있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는 “저가 항 공과 패키지상품이 생겨나면서 여행이 빨리 해치워야 하는 일처럼 변해가 고 있다"라면서 패스트푸드 여행에 열광한다면 열심히 돌아다녀도 실상 은 어디에도 가지 않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행을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닌 '길 위의 과정으로 삼아 현지 인 관점에서 여행지를 조금씩 알아간다. 그렇게 하면 미리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 이를테면 크고 작은 문제나 우연적 요소를 오히려 반기게 된다. 이것 저것 재지 않아 타인과 진솔하게 만나고 자기 내면도 들여다볼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여행의 속도를 낮춰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그는 덧 붙였다. 친구 두 명과 우유 배달 수레를 연결한 모터사이클로 여행을 떠날 때 특히 그랬다. "우리가 타고 다닌 모터사이클은 조용히 움직여서 주변 야 생을 방해하지 않았어요. 토끼나 새 같은 동물들과 시골길을 같이 다니는 데 익숙해졌죠. 언덕길을 오르면 호박벌이 따라왔고요."
이런 태도로 여행하면 포기하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 현지 문화나 자연을 마주하면서 영감을 얻고 자기를 재발견하는 내면 여행이 된다. 자신 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꺼리는지, 어떤 편견을 가졌는지 알아가는 여 행. 느린 여행은 세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연결점을 만들어준다. 더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연결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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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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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사사회

사회 2023. 6. 22. 16:45

- 상식으로는 믿기 어렵지만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 한국인들의 생애 말기 돌봄과 죽음은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 이었다. 예컨대 1992년 사망자 약 23만 명 중 병원에서 임종한 사람은 약 4만 명에 그쳤다.' 말기 돌봄과 죽음이 주로 집에서 이뤄지다 보니 사망 원인 분류에 '증상불명확'이란 항목이 있 을 정도였다. 해를 넘겨 사망신고를 하는 지연 신고 문제도 불 거졌다. 이처럼 대다수 사람들에게 돌봄과 죽음은 의료(진단과 치료)와 행정(규정과 절차)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집안일'에 가까 웠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 상황이 달라졌다. 통계청에 따 르면 2008년 한 해 사망자 중 63.7퍼센트가 '병원사'였던 반면 '재택사'는 22.4퍼센트에 머물렀다. 이 시기 말기 돌봄과 죽음은 의료보험을 타고 집 밖으로 나섰다. 2003년 공무원 의료보험공단·직장 및 지역 의료보험조합들과 그 기금들이 국민건 강보험으로 완전 통합됐다. 병원의 문턱이 낮아졌다. 과거 '노 환'이었던 것들이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진단명으로 세 분화되었고, 의료 서비스의 대상이 되었다. 1990년대 존재했던 증상불명확이란 항목 역시 통계청 사망 원인 분류에서 사라졌다.
- '산업역군'으로서 남자들이 바깥일을 무탈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여자들은 '현모양처'로서 집안일(여기에는 생애 말기 돌 봄은 물론 출산과 육아도 포함된다)을 하도록 고무됐다. 여성의 가사 노동을 비가시화하고, 남성 노동자에게만 임금을 주는 사회구 조는 산업화를 싸고 빠르게 이룩하는 데 효율적이었다. 자연스레 생애 말기 돌봄은 '집사람이 공짜로 하는 집안일'이라는 인식과 경험이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 잡았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공적 의료보험과 요양보험을 비롯한 사회제도의 확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 증가 등의 사회적 흐름은 생애 말기 돌봄을 시장에서 거 래되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돌봄 노동은, 앞서 언급했듯이, 전 문성이 필요 없는 집안일로 여겨졌고, 시장에서 그 가치가 낮 게 매겨졌다. 오늘날 생애 말기 돌봄은 대개 여성이 최저임금 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 됐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안에 들 어와 있어도 요양보호사들의 노동조건은 비참하고, 제도 밖에 있는 간병인은 저임금인 데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실정이다. 요양보호사의 돌봄은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어르 신'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한편, 건강보험에 간병급여가 빠져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의 간병은 보호자가 하거나 환자가 간병 인을 직접 고용해서 해결해야 한다. 불안정한 노동·의료·복지 구조 속에서 요양보호사, 간병인, 환자, 보호자 모두 위태로이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가령 간병인은 병원 내의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24시간 환자의 손과 발이 되고 있지만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 을 적용받지 못한다. 대개 간병인은 근골격계 질환 등에 시달 리고 있고,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요양보호사들 또한 고강도 육체노동과 다양한 폭력(예컨대 노인들의 침 뱉기, 욕하기, 꼬집기 등등)에 노출되어 있다.
- 특히 사람들이 이들을 '아줌마'로 호칭하는 것은 돌봄 노동을 여전히 집안일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생애 말기 돌봄의 형성 과정 (젠더화와 시장화)은 노동 자들뿐만 아니라 돌봄 수혜자의 삶 또한 취약하게 만든다. 언 론에서 고발하는 시설 내 노인 학대나 환자 소외의 본질을 노 동자의 도덕성이나 전문성 결여가 아니라 흔들리는 삶의 조건 에서 찾아야 한다. 존엄한 돌봄과 임종을 희망하는 사람은 돈 이 많거나 운(가족운, 간병인 등등)이 좋아야 한다. 
- 사회학자 조은주는 1960~70년대 "가족계획사업은 적은 수의 자녀를 낳아 임금노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아버지와 합리적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일상적 실천을 일반적인 삶의 과정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말한 다. 즉 이 사업은 단순히 산아제한을 통한 국가 발전이 아니라 개인들이 일과 가족(계급과 젠더)에 대한 새로운 규범을 실천하 는 장이었다. 정상적인 가족(4인 가족)과 특정한 생애 주기(일, 결 혼, 출산 시기)가 이념처럼 퍼졌다. 이처럼 인구는 과거, 현재, 미 래를 규정하고, 사회 성원이 믿고 따라야 할 삶의 형태를 창출 하는 일종의 '기획'이다.
그러면 인구와 짝을 이루는 위기(crisis)란 무엇인가? 통상 '위 험한 고비나 시기'를 뜻하는 이 말은 고대 그리스어 '크리시스 (Kolous)'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명사 크리시스는 분리, 구별, 선 택, 그리고 판단, 생각, 결정을 의미한다. 요컨대 위기를 이루 는 두 축은 '시간과 행위다. 위기는 찬성과 반대, 선과 악, 삶과 죽음, 퇴보와 진보처럼 길이 양쪽으로 갈리는 중대한 순간과 그때 해야 하는 최선의 선택을 가리키는 말이다.

- 노화와 죽음이 공포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인구라는 정치적 상상에 기반한 미래의 불확실성과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논의의 결과물로 등장한 '불평등한 노년'을 마주하고 있다. 노년이 불평등한 삶의 형태로 나타나 는 세계에서 노화와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다. 안티에이징 (anti- aging)은 의료 기술 차원을 넘어서 규범으로 작동한다. 사람들 은 세포의 노화까지 걱정하며 돈을 쓰고 몸을 관리한다. 그렇 게 각자도생하거나 각자도사한다.
이제라도 노인 돌봄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존엄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틀,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노인 돌봄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출산이든 상관없이, 한국의 노인 돌봄은 여러 각도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그 논의는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 의료전달체계상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은 환자 의 중장기적 안정보다는 새로 들어오는 위중증 환자 치료에 우선순위를 둔다. 하지만 환자들이 동네 의원에서 어렵지 않 게 진료 의뢰서를 받아 대학병원으로 몰리는 현실에서 의료전 달체계는 큰 의미가 없다. 따라서 대학병원은 각종 검사 및 수 술을 받는 환자를 위해 병상 회전율을 높게 유지하는 방법으 로 '교통 정리'를 한다. 건강보험 수가가 낮고 비급여 진료도 거의 없는 입원 환자가 주요 정리 대상이다. 이러한 의료전달 체계와 건강보험 수가의 난맥상으로 수술 이후 환자 돌봄은 사실상 가족 및 보호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일로 남는다.
한편 암 환자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돌봄을 받기도 어 렵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안에 있는 요양원은 치매를 비롯 한 노인성 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양병 원도 노인 환자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현재 요양원 입소에 필 요한 장기요양 1·2등급(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을 받지 못해 서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혼자 힘으로 거 동은 가능하지만 일상적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은 크게 아프지 않아도 요양병원에 입원한다. 그러다 보니 중증 환자는 의사가 없는 요양원('수발'을 전제한 복지시설)에 가고, 경증 환자는 의료진이 있는 요양병원(시술'을 전제한 의료시설)에 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더욱이 노인성 질환을 주로 보는 요양병원에 완화의료팀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호스피스에선 간호사 한 명이 환자 다섯 명 정도를 돌보는 반면, 요양병원에서는 간호사 한 명이 환자 40명을 감당하는 경우도 있을 만큼 두 기관의 환경 차이가 크 다. 요양병원이 완화의료 전문기관으로 거듭나야 하는지, 그 럼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해선 향후 면밀한 검토가 필요 한 실정이다(현재 일부 요양병원이 호스피스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 현재 한국의 호스피스는 말기암 환자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즉 암 환자가 호스피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주치의로 부터 '말기' 판정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암 환자의 치료 과정 에서 말기는 뚜렷한 경계가 있는, 분절 가능한 시기로 보기 어 렵다. 예컨대 대학병원 의료진이 암 환자에게 요양병원, 외래, 응급실 등을 언급한다는 것은 '치료 계획'이 아직 있다는 말이 기도 하다. 이 계획은 암이라는 적을 섬멸하기 위한 일종의 전 략전술이다. 의료진은 종양(합병증, 부작용, 재발, 전이 등을 포함)의 형태와 병기에 따라 수술 · 항암제 · 방사선 치료를 동원한다. 이 계획을 따라서 종양이 근절되어 환자의 몸이 좋아질 수도 있고, 반대로 종양이 억제되지 않은 채 환자 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더 이상 치료 계획이 유효하지 않은 시점, 즉 종양을 해결할 수 없는 말기라는 시간을 환자, 보호 자, 의료진이 상이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의료진 (특히 담당 교수)이 '환자에게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 라고 판단한 것과 별개로, 환자 및 보호자에게 말기를 고지하 고 호스피스 이야기를 꺼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의료 진, 환자, 보호자 간에 말기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공유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적극적 치료'가 아닌 '호스피스'에 대한 합의가 뒤따라야 한다. 가령 의료진은, 초등학생 자녀가 있고, 가족 의 생계를 책임지며, 치료 가능성을 굳건히 믿고 있는 중년 남성 암 환자와 대화를 하게 될 수 있다. 또 자녀 양육과 환자 간 병을 도맡아 하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고 있는 보호자도 고려할 수 있다. 의료진 중 누가(교수, 레지 던트, 간호사), 언제 말기 판정 직후, 임종기), 어떻게(직설적, 뜸들이기, 돌려 말하기, 희망적 사고), 누구와(환자, 보호자) 말기 및 호스피스에 대해서 대화할 것인가?
- 말기 고지 및 호스피스 전원은 그런 '지난한 과정'을 전제한 다. 대개 치료 계획에 관해서는 의료진 간에 견해차가 크지 않 지만, 말기에 관한 의료결정은 교수의 '철학'에 따라 요동친다. 어떤 의사는 환자와 보호자의 안타까운 사정을 고려해 끝까 지치료를 고민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의사는 그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말기 및 호스피스에 대해 모호하게 말할 수도 있다. 즉 말기는 당사자들(환자, 보호자, 의료진) 간의 입장, 신뢰, 의사소통 등에 따라 의학적 판단과 비슷한 시기가 될 수도 있고, 그로부 터 한참 뒤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정신없이 바쁜 대형 병원에 서 당사자들이 이 복잡한 협의를 할 정도의 '라포르(rapport: 상 호 친밀감, 신뢰관계)'를 형성하기란 무척 어렵다. 치료가 아닌 돌 봄과 관계가 있는 말기라는 시간은 지리멸렬에 빠지기 십상이 다. 환자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 그제야 '말기' 딱지를 붙인 채 호스피스 전원이 이뤄진다.
그 결과 호스피스 의료진은 임종이 임박하거나, 말기에 대 한 인지가 분명하지 않은 환자를 만나게 된다. 환자는 호스피 스에서 의미 있는 생의 끝자락을 보내고 싶어도 체력과 시간 이 없다. 완화의료 전문가들은 호스피스의 가치를 실현하기 보다는 '임종 처리' 역할을 맡으면서 소진된다. 이런 현실에서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싹튼다. 간 혹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 접하는 선진국 호스피스의 사례들, 예컨대 가든파티, 바닷가 여행,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 기 등을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이유다.
- 오늘날 호스피스는 생애 말기 돌봄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호스피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 치료사, 자원봉사 자는 종교와 관계없이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존엄한 죽음 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환자가 호스피스까지 가는 경 로가 멀고 험난하다는 것이다.
한국 의료라는 컨베이어벨트는 천천히, 수평으로, 매끄럽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 장치는 환자의 '몸'을 진단과 치료에 치우 친 방향으로 급격히 회전시킨다. 각 구간 사이는 찢어지고, 경사지고, 굴곡져 있다. 이 '역동적인 과정'이 진행되면 될수록 돌봄의 가치는 부서지고, 가족 보호자의 부담은 커지며, 의료 진은 분열한다. 질병의 치료 가능성과는 별개로, 환자 삶의 위 험이 증식하는 구조다. 그래서 호스피스에 주목해야 한다. 의 료라는 컨베이어벨트 말단에 위치한 호스피스에 대한 관심은 곧 이 체계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수리하는 일과 밀접히 연 결되기 때문이다.
호스피스를 '죽으러 가는 장소'가 아니라 모든 환자를 위한 '환대와 돌봄의 시공간'으로 더 과감하게 상상해야 한다. 시민 들이 호스피스를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라면 죽음 의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
- 내 눈길을 끈 건 노인들이 '식사'하는 모습이었다. 1층 어르신들은 입을 통해서 먹지 않았다. '줄'이라 불리는 비위관 삽 입 (Levin tube insertion)을 통해서 수분과 영양을 공급받았다.
비위관 삽입은 환자의 코를 통해 식도를 지나 위까지 삽입 하는 관(管)으로 음식물이나 약물을 투여하는 의학적 시술을 뜻한다. 2008년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과 더불어 늘어난 요 양원과 요양병원에서 일상적 의료행위로 자리 잡았다.
중요한 건 비위관 삽입이 어디까지나 '의학적 시술'이라는 점이다. 이 시술이 상당 기간 진행된 퇴행성 신경질환(예컨대 알 츠하이머병)과 연하곤란(삼킴 장애)을 겪고 있는 와상 환자 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의학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미비하다. 의료인은 환자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비위관 삽입을 결정해야 한다. 환자의 상태와 삶의 질을 '충분하게' 향상시키지 않고 수명만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 시술 은 무의미한 연명의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비위관 삽입에 대해 입소자들이 자발적으로 동의 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노숙 생활 을 하다가 아픈 몸으로 길에서 발견되고, 응급실을 거쳐 요양원으로 들어온 노인들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있었다. 어르신들이 그 의료행위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의사를 밝히면서 자기결정권을 주장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들에게는 대신해서 목소리를 내줄 가족이나 지인도 없는 상황 이다.
온갖 윤리적 수사로 뒤덮인 그 돌봄의 대상은 노인들의 생 명 그 자체다. 간호사와 요양보호사는 정해진 시간에 콧줄을 통해서 노인들에게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고, 기저귀를 관리하 며, 욕창을 예방한다. 숨 쉬고 먹는 콧구멍을 가진 존재로 전 락한 노인들은 10여 년간의 조용한 와상 생활 끝에 '자연사' 한다. 이렇게 간호사와 요양보호사는 무연고 노인들의 생명을 존중하고 있다. 이 '생명 존중'이 곧 요양원의 운영 원리이고 질서다.
- ᄀ노인요양원 간호부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도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요양원에 입소할 수 있는데, 그때 여 기 노인들처럼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해서 비위관 삽입을 하게 된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간호부장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 다. “아, 저는 절대 싫어요. 저는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나 이가 좀 더 들면 사전의료의향서를 꼼꼼하게 써놓을 생각이에요. 가족들에게도 내 생각을 명확하게 이야기해놓아야죠."

- 철학자 미셸 푸코의 분석처럼, 개인의 윤리는 특정 시대의 제도, 담론, 지식, 또 그와 관련된 실천을 통해서 '구축'된다' 윤리를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한 규범과 의무로만 보는 관점에 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생애 말기에 강조되는 윤리 역 시 마찬가지다. 효, 도리, 연명의료결정법과 같은 '선언적 윤 리'는 개개인이 경험하는 '일상적 윤리'와 끊임없이 상호작용 한다.
문제는 그러한 윤리가 당사자인 노인을 끊임없이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사회가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된 문제 를 윤리의 이름으로 가족, 특히 여성(요양보호사, 간호사, 딸, 며느리 등) 책임으로 전가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존엄 하지 못한 돌봄의 경험은 결국 존엄하지 못한 죽음으로 이어 진다. 생애 말기 돌봄을 담당하는 주체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서 의료적·생물학적 돌봄만을 최선으로 여긴다. 대부분 병원에서 죽기 때문에 그 '나머지' 죽음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노화와 죽음에 대한 터부와 혐오는 그 위에서 싹튼다.
- 인터뷰에서 만난 의사는 환자에게 말기를 고지(知)하 고 항암치료를 중단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그 결정 을 교과서처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말기'는 환자 가 항암치료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그 치료로 기대되는 이 득보다 부작용으로 인한 손실이 더 많아진다고 판단되는 시점 을 가리킨다. 의사는 의료 현장에서 말기라는 단어가 애매모호하게 통용된다고 말했다. 사람들(환자, 보호자, 의료진)은 초기가 아니면 말기라고 오해하기도 하고, 심지어 말기와 임종기라는 용어가 혼재하고 있다고 했다. 용어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말 기 의료결정은 환자의 몸 상태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과 환 경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이고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환자마다 처한 형편이 다르고, 그 상황을 어떻게 판단할지는 의사의 '철학'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그러고 보면 의료진이야 말로 말기 의료결정 앞에서 부화뇌동을 하는 사람인 셈이다.
- ㄷ환자의 보호자는 말기 의료결정을 '의료 다양성' 속에서 검토했다. 한국은 여러 의료가 공존하는 곳이다. 가령 정형외 과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뼈주사를 맞은 노인이, 며칠 뒤 한의 원에서 침 치료를 받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양·한방 협진 병 원도 곳곳에 있다. 민간요법도 있다. 또 병원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말이 안 통하는) 아픔을 치유하는 무당의 존재도 간과할 수 없다.' 그 '의료들'은 저마다 몸, 아픔, 질병, 고통, 치유, 건강에 대한 인식체계, 역사적 맥락, 실천 방법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그것들을 조합하고 활성화한다. 특히나 가슴을 졸이게 하는 대학병원이란 공간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의료 다양성은 혼란이 아니라 오히려 의지가 된 다. 물론 이런 상황을 환자와 보호자의 '선택'으로만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 선택을 '불가피한 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환자와 보호자는 말기 의료결정에 관한 의사의 의견을 그 의료들 속에서 따져보고 수용했다.
- 더욱이 의료진에게 병원은 환자를 '보는' 곳이었다. 의사는 질병, 치료, 건강을 해부학적, 병리학적 방법을 통해서 해석한 다. 예컨대 엑스레이, CT, PET-CT, MRI와 같은 영상의학 검 사, 그리고 혈액이나 소변을 통한 생화학 검사의 공통점은 환 자의 몸(몸 안)을 '보는' 것이다. 각종 검사는 몸을 의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형태로 전환한다. 의사는 환자의 몸을 표준 성인 의 몸, 즉 의학적으로 '정상'이라 간주되는 몸의 기능 및 수치 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 과정을 통해 의사는 환자의 질병(이 상)을 파악하고 환자의 몸을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행위, 즉치 료를 시도한다. 이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의료 다 양성을 언급했듯이, 서양의학 또한 몸, 질병, 건강에 대한 인식 체계, 역사적 맥락, 실천 방법을 갖고 있다.
- A대학병원의 의료진(의사)은 크게 교수, 펠로(전임의), 레지던 트(전공의), 인턴(수련의)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차, 직급 등에 따 라 다시 서열화·세분화된다. 시니어와 주니어로 나뉘고, 또 진 료 영역에 따라 구분된다. 상하로, 좌우로 분절된 구조다. 그들 은 주로 도제식 (徒弟式)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일한다. 그런 방 식은 임상에 유용한 암묵지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암묵지 는 '개인에게 체화(體化)되어 있지만 말이나 글 등의 형식을 갖 추어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을 뜻한다. 진료 및 교육의 일관성 을 유지하기 위한 체계로 볼 수 있다. 한편 대학병원이란 장소에서 그러한 학습 방식은 진료 영역 간의 장벽을 강화하거나, 의료진의 관계를 더욱 수직적으로 만들 수 있다. 대학병원에 서 '급'이 다른 구성원들은 열린 토론을 하기가 쉽지 않다. 예 컨대 교수의 권위에 눌려 환자의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 하는 전공의도 있었고, 교수가 명료한 오더를 내리지 않아 혼 란스러워하는 전공의도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의료진을 '언제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의료결정을 내리는 전문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의료진 내부의 일상적 규범이 오히려 환자를 위한 말기 의료결정을 방해하는 형국이다.

- 가족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서 늘 변해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산업화 시기에 국가의 가족계획 정책과 도시화로 인해 '4인 가족'이 대폭 늘어났다면, '고용 없는 성장 시대'나 '코로나19 시대'로 명명되는 오늘날에는 1인 가구, 동거 가구, 동성 가구, 비혼 가구와 같은 형태의 가족이 늘고 있다. 즉 당대 무연고자 의 죽음을 둘러싼 문제의 본질을 '정상 가족'의 소멸에서 찾을 게 아니라 이미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체계와 규범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 죽음은 개인의 노력으로만 대비되지 않는다
웰다잉으로 정말 잘 죽을 수 있을까? 웰다잉이 간과하는 것 은 없을까? 웰다잉의 주체는 건강하고, 독립적이고, 자율적이 고, 윤리적인 존재로 상상된다. 자기결정권을 무리 없이 행사 하고, 올바른 생활 습관을 유지하고, 원만한 대인관계도 유지 하는 이른바 '좋은 삶을 사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 구도에서 나쁜 죽음은 나쁜 삶의 결과로 보인다. 문제는 그런 위인이 현실에 있는지도 의문일뿐더러,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질병, 간병, 노화, 의존이 주변화된다는 것이다. 즉 좋은 죽음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개인을 질타하고, 질병과 돌봄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쉬워진다."
웰다잉이 강조하는 좋은 죽음(표방)과 능동적인 죽음 준비 (실천)라는 '가치의 틀'은 죽음을 각종 기술로 통제할 대상으로 만들고, 정작 죽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불평등한 삶의 조건 에는 주목하지 못하게 한다. 학력, 직업, 소득, 지역 등에 따른 죽음의 불평등성을 '잘 살고 잘 죽어야 한다'는 윤리적 언어 표 현으로 가리거나 정당화한다. 웰다잉이 상정하는 자기의 죽음 을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개인은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계획하고, 관리하고, 계발하고, 실현하는 '자기 안에 갇힌 주체'로 보인다. 그에게 정책, 제도, 법률, 또 가족, 친구, 동료 등의 이른바 사회적 관계는 잘 죽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일로 치부되거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을까?
웰다잉이 강조될수록 '잘 죽기'는 요원하다. 앞서 살펴봤듯 이 웰다잉이 전제하는 '죽음'은 연명의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 다. 연명의료를 둘러싼 환자·보호자·의료진 간의 갈등 및 쟁 점은 웰다잉이란 광의적 표현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문 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한국의 기이한 의료체계, 빈약한 사회 보장, 정의롭지 못한 돌봄의 배치에 대한 깊은 관심과 논의가 필요하다." 호스피스 확대, 왕진, 간병 급여화 같은 제도도 절실하다. 각 사안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검토해야 한다. 또 건 강한 몸을 정상으로 여기고 아프고 취약한 몸에 낙인을 찍는 인식을 갱신해야 한다. 돌봄을 집에서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활동이나 시혜성 사업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문제, 즉 정 치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즉 좋은 죽음은 좋은 사회에 대한 고 민과 분리될 수 없다.
오늘날 웰다잉의 유행은 그만큼 사람들이 잘 죽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자, 죽음이 개인의 노력으로 대비해야 하는 일이 됐다는 방증이다. 마치 죽음이라는 불행을 막는 주술이 등장 한 것 같다. 우리는 잘 죽는 것만 고민하면 될 정도로 좋은 삶 을 살고 있는가? 그렇게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잘 죽는 거라도 고민하는 것일까? 웰다잉은 우리에게 죽음에 관한 두툼 한 언어와 상상력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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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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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컨슈머

사회 2023. 6. 21. 07:10

- 소비사회는 이 세상을 돌보는 방법을 결코 알지 못한다.
소비하는 태도는 스치는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든다. (한나 아렌트)
- 사람들은 물건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그 물건을 왜 원하는지도 모른다. 
사실상 물건은 아무 쓸모가 없다. 
캐딜락과는 사랑을 나눌 수 없다. 
그러나 모두가 그러려고 하는 듯 보인다. (제임스 볼드윈)
- 소비사회에는 필연적으로 두 종류의 노예가 있다.
하나는 중독에 사로잡힌 노예이고, 다른 하나는 질투에 사로잡힌 노예다. (이반 일리치)

- 모든 주요 종교와 정치 세력을 대표하는 도 덕적 지도자들(이 책의 앞부분에 공자와 벤저민 프랭클린,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베티 프리단, 올더스 헉슬리, 마틴 루서 킹, 존 메이너드 케인스, 마거 릿 애트우드, 척 D를 비롯해 더 많은 사람의 말을 실을 수도 있었다)이우 리에게 물질을 밝히지 말라고, 소비문화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충고했 다. 종종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18세기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조차 물질주의가 선이 아닌 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난 감 애호가들이 풍요라는 방종 속에서 성인 남성의 진지한 취미보다는 어린애들이 갖고 노는 것에 더 가까운 조잡한 장신구와 잡동사니나 따 라다닌다"라고 맹비난했다. 더 적게 사는 것은 늘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하는 행동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드물었을지라도 말이다. 소비주의를 경고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주장을 한다. 첫째는 돈과 물건에 대한 사랑이 탐욕과 허영, 시기, 사치처럼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는 거리가 먼 것들을 용인한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돈과 물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에 봉사를 하거나 지식 및 영적 생활을 추구함으로써 인 간 공동체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소비문화에 대한 또다른 두 가지 비난이 약 50년 전부터 널리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하나는 "간소하게 살아라, 다른 이들이 그저 생존할 수 있도록"이라는 밈에서 드러나듯이) 제 몫을 넘어서는 소비는 결국 다른 사람을 빈곤하게 만듦으로써 스스로를 부유하게 만드는 행동이라는 것 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요구는, 우리가 고대 산 림을 베어내 화장실 휴지를 만들고, 캔을 여섯 개씩 묶음 포장하는 플라 스틱 고리로 갈매기의 목을 조르고, 텔레비전 재방송을 보는 데 사용할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장대한 강물에 댐을 쌓고, 무엇보다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태워서 기후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더욱 긴급해졌다.
- 9.11 테러 이후 소비주의에 대한 우리의 유구한 불안은 증발 한 듯했다. 이 공격으로 미국은 최소 600억 달러와 50만 개 이상의 일 자리를 잃었다. 대부분의 피해는 테러리스트 때문이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가 갑자기 쇼핑에 열정을 잃은 결과였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자 소비하지 않는 것 자체가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당시 부시가 한 말처럼, "우리 편이 아니라면 테러리스트의 편"이었다. 부시의 연설은 우리가 소비를 논하는 방식을 바꾸어놓았다. 소비를 향한 열정이 최대한도 아래로 떨어질 때마다 세계 지도자들이 나가서 소비하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마치 소비가 선택 이 아닌 필수인 것처럼 말이다(결국 부시는 2006년에 대침체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자 미국인에게 실제로 "소비하라"라고 말했다). 
- 소비의 속도를 늦추면 분명 경제에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동시에 정확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최소한 지금 필요한 짧은 기간 내로는 지구온난화를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기후변화는 여러 병폐 중 하나일 뿐이며, 그 모든 병폐가 소비문화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 다. 신중한 전문가들조차 그 결과로 정치적 격변이나 대규모 인명 피해 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쇼핑을 멈춰야 하지만 멈추지 못한다. 이 소비의 딜레마는 간단히 말해 지구에서 인류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 거대한 사륜구동 자동차인 허머의 유명한 광고가 말했듯, "필요는 매 우 주관적인 단어이다. 소비문화에서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은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지품은 우리가 더 큰 사회질서에 속한다는 의미와 동시에, 우리가 고 유한 개인으로서 사회질서에서 한발 떨어져 있다는 의미를 끊임없이 전달한다. 우리가 의식하든 못하든 간에, 이러한 신호는 소비사회를 살 아가는 사람들이 매우 유창하게 사용하는 하나의 언어다. 그 과정이 어 찌나 자연스러운지, 우리는 특대형 트럭을 모는 온순한 남자나 금박을 입힌 조각상이 늘어서 있는 졸부의 집처럼 메시지가 지나치게 빤할 때 에야 그 언어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 딜린저는 세상이 쇼핑을 멈추고 약 48시간이 지나면 의류 및 패션산업 전체가 소비 심리의 급작스러운 붕괴에 대해 고찰하느라 떠들썩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격의 여파가 새로운 방향으로 퍼져나가며 수천만 명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이때다.
의류 무역의 총가치는 1조 3000억 달러다. 만약 패션의 왕국이 실존 하는 국가라면 경제 규모가 전 세계에서 열다섯번째로 클 것이며, 거의 미국 인구에 맞먹는 규모의 국제 노동 인력을 고용할 것이다. 오로지 면 직업에서만 8개국의 2억 5000만 명에게 임금을 지급하며, 이 수치는 세계 인구의 약 3퍼센트에 해당한다. 리바이스는 매해 생산되는 면의 1퍼센트 미만을 사용하지만, 그렇다 해도 리바이스의 판매량이 절반으 로 줄어들 경우(쇼핑이 감소할 때 보통 의류 산업은 전체 소비보다 큰타 격을 입는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규모가 큰 면 생산국인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약 125만 명의 소득이 날아가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의 주장은 수치로 입증된다. 2016년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앤드컴퍼니는 의류 열벌 중 여섯 벌이 생산된 지 1년 이내에 쓰레기장이나 소각장에 버려진다고 보고했다. 판매되지 않아서 버려지는 옷은 그중 작은 일부일 뿐이며, 대부분은 우리가 구매한 뒤 버린 옷이다. 이 옷들은 선물 받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옷, 행사에서 홍보용으로 나눠준 티셔츠와 모자, 성 패트릭의 날에 걸칠 초록색 옷이 필요해서 일회성으 로 산 것들이다. 그러나 저렴하다는 이유로 계속 입을지 깊이 고민하지 않고 구매한 옷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쨌거나 오늘날 생산되는 옷 다수가 오래가게끔 만들어지지 않는다. 양말과 스타킹은 몇 시간 만에 해지고, 셔츠는 단추가 떨어지고, 바 지는 찢어지고, 스웨터는 보풀이 생기고, 많은 옷이 줄어들거나 얼룩 이 생기거나 세탁기 안에서 망가지고, 티셔츠에는 인터넷 게시물의 주 요 주제인 자그맣고 불가사의한 구멍들이 생긴다(좀이 슬었을까? 벌레일 까? 아니다.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때문이다. 구멍이 난 것은 오늘 날 생산 라인에서 얇디얇은 천을 작업대 같은 것에 문대기 때문이다). 의류 매출의 극치는 흰색 티셔츠인데, 이 티셔츠는 값싸게 생산되고 쉽게 얼 룩지며 중고품점에서 헐값에 팔린다. 누구도 얼룩진 싸구려 흰색 티셔 츠를 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해 동안 옷 열 벌을 구매했다고 상상해보자. 보통 1년 이내에 내버 리는 여섯 벌을 제하면 네 벌이 남는다. 이제 한 해에 절반인 다섯 벌을 구매한다고 상상해보자. 여전히 네 벌을 갖고 한 벌을 내버릴 수 있다. 한마디로 이건 소비의 딜레마다. 옷 구매를 절반으로 줄이면 세계경 제에 소행성 충돌과 같은 충격이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의 옷장은 줄어 들기 시작하지도 않는다.
-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보통의 미국인처럼 산다면 지구 다섯 개만큼의 자원이 있어야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 이다. 명백한 문제는 우리에게 지구 다섯 개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지구가 하나밖에 없다.
비영리단체인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 Global Footprint Network는 이러한 계산을 거의 20년간 섬세히 조정해왔다. 이들은 먼저 지구를 헥타르(일반 축구장보다 약간 더 넓은 단위)로 나눈다. 이 헥타르들은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생물학적으로 생산적인 땅으로, 1헥타르당 그 생산성의 평 균값이 부여된다. '글로벌헥타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구획들을 전 인류에게 골고루 나누면 각자 1.6 글로벌헥타르를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의 땅과 물자원을 공평하게 분배했을 때 모든 개인에게 주어질 대략적인 몫이다. 물론, 전 세계의 자원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 필요와 욕구 외에도 소비 중단의 의미를 구분할 또하나의 방법이 있다. 바로 지구가 유지될 수 있는 이상으로 쇼핑을 하는가, 그렇지 않은 가다.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에 따르면 현재 인류는 개인 평균 2.7글로벌헥타르를 소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생태발자국'의 크기이며, 이는 지구가 장기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양보다 170퍼센트 더 큰 규 모다(대부분의 국제적 자료와 마찬가지로 생태발자국 또한 투박한 기준이 다.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의 과학자들은 이 기준을 '인간이 자연에게 얼 마만큼을 요구하는지 측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값'이라 칭한다). 우리 모두가 일반적인 미국인처럼 생활한다면 지구가 얼마나 많이 필요할지 계산할 때 과학자들은 먼저 얼마만큼의 글로벌헥타르가 있어야 보통의 미국인이 자신의 소비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일반적인 미국인의 생태발자국은 8글로벌헥타르다. 8글로벌헥타르는 전 세계 개인에게 주어지는 1.6글로벌헥타르의 다섯 배이므로, 미국이라는 행 성을 지탱하려면 지구가 다섯 개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다른 국가에도 똑같은 계산을 적용할 수 있으며, 이렇게 하면 전 세계 에서 소비가 얼마나 불공평하게 발생하는지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우 리 모두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의 보통 시민처럼 산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지구를 절반으로 줄여도 모두 가 기존 생활수준을 유지할 만큼 충분한 자원이 남는다. 모두가 일반적 인 중국인처럼 산다면 지구가 두 개보다 조금 더 많이 필요하고, 모두 가 스페인인과 영국인, 뉴질랜드인처럼 산다면 지구는 약 두 개 반이 필 요하다. 우리가 이탈리아 행성과 독일 행성, 네덜란드 행성에서 산다면 지구 세 개가, 러시아인과 핀란드인, 노르웨이인처럼 산다면 지구 세 개 반이, 스웨덴과 대한민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의 생활방식을 누린 다면 지구 네 개 이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에콰도르 행성에서 산 다면 딱 지구 한 개가 필요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만큼이다.
에콰도르의 소비자 생활방식은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것으로 여 겨진다. 천연자원을 고갈시키지 않고 모두가 보통의 에콰도르인(예를 들면 페르난다 파에스)처럼 소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생활방식 은 "하나의 지구를 위한 생활one-planet living"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20세기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생활방식이 낯익을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하는 식사는 드문 호사였고, 옷은 물려받아 입었으며, 집 가까운 곳으로 휴가를 떠났고, 소비하는 삶의 속도는 무척이나 느렸다. 또한 그때는 일상에서 돈을 쓰는 것이 통칙이 아니라 예외라는 감각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널리 통용되는 규범이었던 시기를, 오늘날 많은 사람이 여전히 기억할 것이다.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에 따르면 아마 도 1970년이 인류 전체가 여전히 하나의 지구에 걸맞은 생활을 했던 마 지막 해였다. 물론 선진국들은 훨씬 일찍 그 수준을 넘어섰다. 생태발자 국네트워크의 분석가들은 미국의 평균 생활방식이 1940년에서 1960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고 추산 한다. 영국과 캐나다, 독일을 비롯한 대다수의 선진국도 마찬가지이며 스페인과 이탈리아, 일본 같은 일부 국가는 1960년대 중반에, 한국은 1979년에 그 선을 넘었다. 이런 식으로 한번 생각해보자. 현재 미국인 구는 1970년보다 60퍼센트 더 많지만, 총소비지출은 물가 상승률을 감 안해도 400퍼센트 증가했다. 1965년과 비교하면 그 수치는 거의 500퍼 센트에 달한다. X세대까지만 시계를 돌려도 지구 몇 개만큼의 과잉 소비를 없앨 수 있다.
- 가장 오래된 인류 문화에도 경제생활을 쉬는 날들이 있었지만, 영적 인 일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자 일주일에 하루를 콕 집어 현실적인 일 을 쉬는 날로 정한다는 생각은 유대교에서 안식일을 창시하면서 생겨 났다(이스라엘의 시인 차임 나크만 비알리크는 안식일을 "히브리 정신이 만들어낸 가장 눈부신 창작품"이라 말했다). 유대교 전통에서 안식일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을 중단하는 날이자 시누이Shinui, 즉 변화의 감각 으로 정의되는 날이었다. 안식일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분주함과 상 업, 거래로 가득차 있다는 생각에 맞서는, 즉 현재 우리가 익숙한 시간 에 맞서는 초기의 저항 행위였다.
- 유대교 안식일은 주로 토요일이지만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안식일은 주로 일요일이었다. 이러한 관행은 기독교인이었던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일요일마다 공무와 제조업을 금지한 1700년 전에 시 작되었다. 그 이후로 일요일 안식일은 많은 것을 의미해왔다. 음악을 즐 기며 마음껏 먹고 마시는 날, 격렬한 승마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체포되 거나 심지어 태형을 받을 수도 있는 도덕적 순결의 날, 텔레비전으로 스포츠 경기를 보는 날. 그러나 이날은 언제나 일하지 않는 날, 그리고 쇼핑하지 않는 날이었다.
- 미국 건국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물질주의적 생활방식에 저항한 시 도들을 추적한 『단순한 삶 The Simple Life』에서 역사가 데이비드 시David Shi 는 분주함이 소비문화의 가장 핵심 문제 중 하나라고 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돈이나 재산, 활동 그 자체는 단순함을 해치지 않습니다. 그러 나 돈을 향한 사랑, 물건에 대한 열망, 활동의 감옥은 단순함을 해치죠." 격리 기간이 며칠에서 몇 주로 늘어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 감 옥을 뒤에 남기고 떠나는 듯 보였다. 성취 중심적 사고와 끊임없이 계획 되는 업무가 점점 모습을 감췄고, 많은 사람이 안식일을 즐기던 과거의 시민들처럼 더 적은 것을 지니고 사는 기술뿐만 아니라 일을 더 적게 하 는 기술을 습득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시간은 두렵게 펼쳐지는 것, 채워 야 할 구멍이기를 멈추고, 넓어지고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때 작은 기적 이 일어났다. 삶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 봉쇄령이 내려지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친한 친구에서 거의 모르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나의 인맥 내에서 최대한 널리 설문 조사를 했다. 그 리고 생산성이 점점 피로해진다는 말, 시간 속에 침잠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차리고 있어요.” 한 사람은 이 같은 가장 단순한 말로 자신의 변화를 설명했다. “앞으론 다시없을 방식으로 봄을 알아차리고 즐길 기회를 얻었어요." 또다른 사람이 말했다. 많은 답변이 70년 전 매스 옵서베이션이 묘사한 잃어버린 세계를 되풀이하 는 것 같았다. "어떤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이 흥미로워요." 한 여성이 말했다. "국토횡단 열차 안에 있는 느낌, 상호작용의 본질을 떠올리게 해요." 전혀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몇몇은 격리를 일종의 안식일로 묘사했다.
팬데믹 이후로 텅 빈 고속도로나 버건 카운티처럼 주차된 차가 없는 쇼핑몰 주차장을 볼 때면 재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은 한편으로 초반의 봉쇄가 일종의 해방이기도 했음을 상 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버건 카운티에서 주말을 보낼 때 가장 먼저 알아 차리게 되는 것은 바로 일요일의 교통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발발했 을 때 우리가 목격했듯 이곳의 일요일에는 교통량 자체가 훨씬 적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저 양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퍼래머스 경찰은 일 요일의 차량 흐름이 평소와는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은 더 천천 히, 덜 공격적으로 운전하며, 뒷골목을 지름길로 이용하는 현상도 훨씬 적다
- 제이차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의 이산화탄소 오염은 1980년대 중반, 1990년대 초반, 2009년, 2020년, 이렇게 딱 네 번 줄어들었다. 이중에서 경제성장과 환경 파괴의 분리, 녹색 성장, 그 밖에 지구를 보호하려 는 다른 의도적 행위의 결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한 사례는 없으며, 네 경우 다 심각하고 광범위한 경기 침체가 관련되었다. 탄소 배 출량은 세상이 소비를 멈출 때 줄어든다. 배출량이 가장 급격하게 감소 한 것은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였는데, 그해 전 세계의 배출량이 7퍼 센트 줄었다. 그러나 팬데믹이 감소세가 가장 오래 지속된 사례는 아닐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탄소 배출량이 가장 크게 억제된 시기는 소련이 붕괴한 1990년대였습니다. 세계경제 대부분이 위축됐었죠." 사회구조가 소비와 환경오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오리건대학교의 사회학자리처드 요크Richard York가 말했다.
소련은 1991년에 무너졌다. 뒤이은 거의 10년간 옛 공산주의 왕국은 요크가 말한 '탈근대화'를 거쳤다. 구소련 국가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 은 거의 3분의 1이 줄었는데, 이는 팬데믹 동안 가장 단속이 엄격했던 4주간 중국에서 감소한 25퍼센트보다 더 큰 감소량이었다. 소련의 감 소 추세가 너무 극적이어서, 다수의 서구 국가에서 발생한 심각한 경기 침체까지 더해지자 지구 전체의 탄소 배출량이 2년간 줄었고 이어진 10년간은 아주 느린 속도로 증가했다. 당시 독일이나 네덜란드 같은 일 부 서유럽 국가가 이미 탄소 배출 감소에 힘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많이 잊히긴 했지만, 그 어떤 국가도 구소련 공화국만큼 탄소 배출이 급격히 감소하지 않았다. 요크는 이렇게 말했다. "경제 규모를 바꾸지 않으면 최소한 배출량을 크게 삭감하기는 힘들다고 볼 수 있습니다."
- IEA는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자진해서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즉 이들은 기후 오염과 끝없는 경제성장을 분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여기고, 경제를 '탈성장'하는 것(계획 하에 경제 규모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당신의 소비를 줄일 것입니다'라는 공약으 로 민주선거에서 승리한 국가를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바로가 말했 다. “우리는 인간 본성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따랐어요." 2008년 IEA는 세계경제가 더욱 공격적으로 경제성장과 환경 파괴를 분리하지 못한다면 2018년에는 에너지 수요가 15퍼센트 증가할 것이며, 그에 따른 탄소 배출량 증가가 미래 기후에 '충격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경고했다. 2018년에 그 보고서를 읽는 것은 마음이 복잡해지는 경험이었다. IEA의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IEA는 그해 기후 위기에 대 응하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이번에 IEA가 촉구한 가장 현실 성 있는 비전은 앞으로 20년간 에너지 수요를 4분의 1만 늘리면서 세계 경제의 성장과 인구 증가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꿈이 현실이 되려면 에너지 효율이 매우 극적으로 증가해야 하기 때문에, 전 세계의 그 어떤 선진국에서도 에너지 수요가 증가해선 안 된다. 
- 우리가 일상을 밝히면서 소비하는 충격적인 양의 에너지와 광공해를 동시에 줄일 수 있는 기술적 해결책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이용 가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해결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빛의 사 용이 소비자들의 태도에 달렸기 때문이다.
바다에 플라스틱을 버리거나 광물 찌꺼기로 토양을 오염시키거나 대 기에 이산화탄소를 쏟아부을 때, 그 결과는 수 세기는 아니더라도 수년 간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광공해는 그렇지 않다. “말 그대로 불을 끄면 됩니다.” 인공조명의 영향을 연구하는 영국의 생태학자 케빈 개스턴 Kevin Gaston이 말했다. "잃어 버린 것을 상당히 쉽게 되찾을 수 있죠."
에너지 절약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 분야에서 녹색 기술이 매우 천천히 발전하고 있는 것과 달리, 에너지 효율이 좋은 발광다이오드LED는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LED는 기존 모델보다 에너지를 최소 75퍼센트 적게 사용하며, 기구를 잘 설계하면 조명이 필요한 공간에만 빛을 씀으로써 광공해를 예방할 수 있다. 환경친화적 조명 시스템을 전 세계에 갖추는 것이 쉽게 달성 가능한 일이라, 빛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더 어려운 세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취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조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LED가 인기를 끌면서 우리 가 연료비에서 절약한 돈을 더 많은 조명을 사는 데 쓴다는 증거가 늘고 있는 것이다. '
- 철의 여인은 자본주의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 중 한 명이었으나 자본주 의를 바라보는 대처의 관점은 암울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자본 주의를 모든 것을 총체화하는 이념으로 그려냈다. 즉 일종의 감옥인데, 많은 수감자에게 편안하게 마련된 감옥인 것이다. 규제되지 않는 시장, 개인주의, 사기업, 긴축이라는 대처의 비전은 영원히 성장하는 경제를 핵심으로 하고 있었다. 이 비전은 자주 인용되는 대처의 말, “대안은 없 다 There is no alternative"의 앞 글자를 딴 TINA 정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정말이지 따분한 세계관이었습니다." 빅터가 말했다.
이 세계관은 지금도 지배적이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상의 종말 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라는 것이 최근의 선전 구호다. 성장의 문제 는 소비의 딜레마의 핵심인데, 소비 둔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듯 보이 는 바로 그 주장의 내용이 소비가 둔화되면 성장이 끝난다는 것이기 때 문이다. 소비경제를 끝없이 확대하는 것이 시의회에서 대통령 집무실 에 이르는 모든 정치인의 목표이며, 국립공원을 만들고 이민법을 제안 하고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얼마나 용인할지 결정하는 등의 모든 일이 성장을 억제할 것인가 촉진할 것인가의 시험대에 오른다.
빅터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거의 모든 인간 역사상 경제가 적게 성장하거나 아예 성장하지 않는 것이 규범이었기 때문이다.
- 재앙의 역설은 사람들이 종종 그때를 애틋하게 돌아본다는 것이다. 1920년대에 소수의 사회과학자가 '재난 연구'라는 분야를 만들면서 그 이유가 파악되기 시작했다. 초기의 중요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할리우 드 영화에서 보는 것과 달리 전쟁이나 지진, 허리케인 같은 대재앙을 겪 은 사람들은 서로를 이용하기보다는 돌보고, 원초적 두려움이 아닌 이 유와 목적을 지니고 행동할 확률이 높다.
재난 연구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사회학자 찰스 E. 프리츠Charles E. Fritz 는 제이차세계대전으로 5년째 공포와 궁핍에 시달리고 있던 영국에 도 착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가족 및 친구들의 죽음과 부상에 원통해하고 오랫동안 자신의 생활을 박탈당한 데 분노하는, 전 쟁에 지쳐 공황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상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발 견한 것은 최선을 다해 삶을 즐기고 놀라우리만큼 명랑함과 삶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찬란하게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쓰이는 표어 '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Keep Calm and Carry On'에서 잘 드 러나는 영국의 이 사례는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독일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회복력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알려지지 않았는데, 독일에서 공중폭격의 심리적 영향을 평가한 결과 폭격을 가장 심하게 당한 도시가 사기 또한 가장 높았다. 물론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 누구도 전 세계의 절박한 난민들이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주 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절대적 결핍의 사례를 제외하면 재난을 마주한 사람들은 더 적게 가진 삶에 빠르고 꾸준히 적응하며, 보통 그 과정에서 더 친절하고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되고 서로 더 똘똘 뭉치고 관대해진다.
- 이 암담한 상황에 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다. 경제적 재난은 종종 소비 와 관련된 지위의 압박을 완화해준다. 예를 들어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 소득 불평등이 더욱 악화될 수 있지만, 부의 과시는 천박한 것으로 여겨 진다. 사람들은 소박한 옷차림을 하고 호화스러운 집과 자동차 구매를 줄이는 경향을 보이며, 검약이 더욱 용인된다. 핀란드인은 집단으로서는 과거의 불황에 별 향수를 느끼지 않지만, 그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많은 핀란드인이 그때를 자유로웠던 시기로 기억한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했던 1990년대의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에 인기를 끈 화사한 색감의 의류와 대대적으로 선전한 브랜드는 검은색 옷, 가죽 재킷, 청바지에 밀려났고, 옷은 해진 것일수록 더 좋았다. 취업의 기회가 차단되자 야망이 좌절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 또한 사라졌다. “소비가 적은 생활방식을 따르면 많은 문제를 피할 수 있어요." 한 여성이 내게 말했다. “무슨 옷을 입을지, 자동차와 집이 최신식인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거든요." 이러한 안도감은 소비를 멈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심리적 변화 중 하나다.
- "북유럽 국가에서 자랐고 이전에는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던 제가 미국으로 이주한 뒤 순식간에 그런 기분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이 놀라 웠어요. 소비를 늘려야 할 것만 같았죠." 파르타넨이 말했다. "잘살고 있 다는 느낌,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게 해줄 물건을 더 많이 사고 싶어져 요."
파르타넨의 경험은 불평등 연구의 결과를 거의 그대로 보여준다. 사 람들은 물질적·심리적 필요를 채우는 데 자신이 없어질 때 더욱 물질 주의적으로 변하며, 불평등은 그러한 불안을 악화시킨다는 이론을 방 대한 양의 연구가 뒷받침한다. 부자와 빈자 사이의 크나큰 격차 또한 자신의 생활방식을 타인의 것과 비교할 적나라한 기회를 제공하고, 그 결 과 우리는 베블런이 말한 '자기 존중이라 부르는 만족스러운 상태'에 이 르기 위해 어떤 물건과 경험을 소유해야 하는지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마침내 파르타넨은 다시 핀란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즉시 뉴욕에서 입 었던 성공을 암시하는 옷들을 치워도 되겠다는 기분을 느꼈다. 지위에 집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라지자 자신이 진짜로 성취하고 싶은 것 이 무엇인지 더 자유롭게 고민할 수 있을 듯했다. 언젠가 영국의 한정 치인이 말했듯, "아메리칸드림을 꿈꾼다면 핀란드로 가는 게 좋다".

- 파타고니아가 광고에 접근하는 알쏭달쏭한 방식에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바로 '디마케팅 demarketing'으로, 웨스턴워싱턴대학교의 소비자 연구원인 캐서린 암스트롱 술레Catherine Armstrong Soule에 따르면 디마케팅은 역사적으로 광고 전반의 '작고도 작디작은' 일부를 차지했다. 1970년대에 처음 사용된 디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너무 많이 구매하지 말라고 설득할 방법을 연구했다. 그 시대의 디마케 팅 사례로는 버드와이저 맥주와 코닥의 오리지널 인스터매틱 카메라, 발리 여행이 있었다. 전부 통제가 불가능할 만큼 수요가 급증해서 디마 케팅을 해야 했던 사례다.
당시 사람들은 세계의 자원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 하고 있었다. 처음 디마케팅을 고려한 소비자 연구원인 필립 코틀러와 시드니 J. 레비sidney J. Levy는 디마케팅을 소비를 멈춘 세상에 적용하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이들은 산업 생산성과 풍부한 자원이 힘을 합쳐 상품의 '과잉 공급'을 만들어낸 역사의 긴 기간에 마케팅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1970년대에 대다수 사업가는 광고업을 '자원이 부족한 경제에서는 크게 줄어들', 상황이 좋을 때만 가능한 직업으로 여겼다. 그러나 마 케팅이 반드시 소비를 늘리는 방법일 필요는 없다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코틀러와 레비는 말했다. 마케팅의 진정한 목적은 그저 '수요를 기업이 다룰 수 있는, 또는 다루고자 하는 정도와 구성으로 조정하 는 것'이었다. 마케팅이 코틀러와 레비가 말한 '디컨슈밍deconsuming', 즉 수요와 소비의 감소를 격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 우리는 어떤 사람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소비를 줄인다는 사실을 알 때 그 행동에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한다. 그 행동은 과시적 비소비가 된다. “그게 우리가 하는 소비의 상당 부분을 이끕니 다. 우리가 어떤 상품을 고르는 이유는 그게 나와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세상이 알아주 길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죠." 암스트롱 술레가 말했다. “반소비를 실천 하는 소비자에게 그러한 의미를 일부 되돌려준다는 생각, 제가 볼 때 그 러려면 전통적 의미의 광고가 많이 필요해요."
- 소비문화의 근본적 특징은 부가 더이상 안녕을 증진하지 않고 훼손 하는 지점을 흐리고 몽롱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몇십 년 전부 터 중국인 수백만 명은 소득 증가의 혜택을 누리며 본인과 가족을 가난에서 구했다. 그러나 가차없는 지위 경쟁과 뚜렷한 불평등, 나이든 물질 주의자와 지나친 탐욕의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청년 간에 점점 벌어 지는 세대 차이로 말미암아 부가 국가의 행복에 기여하는 정도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중국 소비문화의 가장 눈에 띄는 측면은 '녹색 물질주의'의 강도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생태 문명'을 가장 앞장서서 지지하는 국가 중 하나이며, 갈수록 풍요로워지는 중국의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은 이 문명 속에서 계획과 기술을 통해 '녹색화'될 것이다. 거주자가 거의 15억 명에 달하는 국가로서는 예사롭지 않은 도전이다.
-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의 경험이 변했다. 빵을 굽는 것은 단순 하고 오래된 자립의 행위이며, 그 자체로 큰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자가 격리하는 삶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가족을 위해 아름다운 부엌에서 만든 아름다운 빵덩어리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가득 채우면서 제빵은 거의 즉시 지위와 야심, 성취의 경쟁적 표지가 되었다. 운동은 건강뿐만 아니라 세상에 과시할 완벽한 복근을 위한 것이 되었고, 직접 찾아가든 영상통화를 이용하든 갑자기 모두가 그동안 잊고 지낸 관계 를 돌보기 시작한 것 또한, 보통 멀리 떨어져 지내는 아빠와 어떻게 대 화를 나눠야 할지 모르는 어린아이부터 알고 보니 들끓는 분노를 품고있던 오랜 친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적 문제로 뒤범벅되었다. 많 은 사람이 코로나 위기에서 발견한 좋은 것들을 지켜나가겠다고 다짐 했다. 근무시간이 짧아지고 삶의 속도가 느려졌으며 작은 것들에 감사 하게 되었고 소중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과 자신을 위한 시간이 늘어 났다. 즉 외재적인 자신과 내재적인 자신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은 것이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소비문화가 다시 활발해지고 상업생활이 조심스레 되돌아오면서 대다수가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갔다.
- 건축가 존 브링커호프 잭슨은 "폐허가 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 적 이 있다. 신세계에 완전히 들어서려면 구세계의 퇴락을 지켜봐야 한다. 지금껏 살펴봤듯이, 경제적 재난 속에서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결코 드 물지 않게 발생한다. 대침체 때 파타고니아는 디컨슈머 시장의 진정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핀란드 불황 당시 사람들은 과시적 소비에서 벗어나 안도감을 느꼈으며, 팬데믹 동안 수백만 명이 혼란 속에서 새로운 가 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기업가들과 대침체 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들 중 다수가 대침체를 통해 피닉스가 더 좋은 도시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몇 명은 경 기침체 이전에 피닉스가 전 세계 체인 레스토랑의 수도'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침체로 미국 가정이 외식을 줄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올리 브가든과 칠리스그릴을 비롯한 체인 레스토랑이 문을 닫으면서 파산한 대형 매장들과 마찬가지로 빈껍데기가 되었다. 그렇게 생겨난 빈 공간 에 개인이 소유한 동네 식당이 번성했고, 지역 고유의 장소감이 뿌리내 리기 시작했다. "대침체에 진입할 때 우리는 이른바 거래경제에 속했습 니다." 애리조나주립대학교의 부동산학과 교수인 마크 스탭 Mark Stapp이 말했다. "그러나 대침체에서 빠져나오면서 변혁적 경제가 되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피닉스의 경제가 회복되자 상황이 안 좋았을 때 파산 했던 장소성도 특성도 없는 사업체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 리버모어 소방서에 달려 있는 것과 같은 질 좋고 오래가는 전구가 오 늘날 우리가 아는 금방 고장나는 전구로 바뀌기 시작한 때는 1924년이 다. 그해 필립스와 오스람, 제너럴일렉트릭GE을 비롯한 세계 최대 조명 기업의 대표들이 스위스에 모여 최초의 국제적 기업 카르텔인 피버스 Phoebus를 결성했다. 당시 개발자들은 전구의 수명을 점차 늘려가고 있 었고, 이는 피버스의 한 수석 회원이 매출의 '수'이라 묘사한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일단 모두가 오래가는 전구로 자기 집을 채우고 나 면 아무도 새 전구를 사지 않을 것이었다.
피버스의 회원사들은 조명의 수명을 1000시간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그로부터 30년이 더 지난 1960년, 탐사 전문기자인 밴스 패 커드가 '계획적 진화'라는 용어를 대중화했다. 이 단어는 상품이 빨리 낡고, 고장나고, 부서지고, 고칠 수 없고, 구식이 되도록 설계하는 생산 업체의 의도적 노력을 지칭한다. 전구의 수명을 단축하겠다는 피버스 카르텔의 결정은 계획적 진부화가 산업 규모로 이뤄진 최초의 사례 중 하나로 간주된다.
- 조명 산업에는 '소켓 포화 상태'라는 용어가 있다. 수명이 짧은 전 세계의 백열전구 대부분이 소켓에서 분리되어 내구성 좋은 LED로 교체되는 시점을 묘사하는 용어다.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이때가 되면 온 세상이 전구 쇼핑을 멈출 것이다. 모든 가정의 전구가 인간 생애의 절반 동안 고장나지 않는다면, 조명 산업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런 던에서 활동하는 조명 시장 분석가 파비안 홀첸바인 Fabian Hoelzenbein은 이를 '10억 달러짜리 질문'이라 칭했다.
2010년대 말 무렵에 '소켓 포화 상태'는 목전에 닥친 듯 보였다. 그러 나 결국엔 도달하지 못했다. LED가 소비문화에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미 그중 한 가지 방법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LED로 아낀 돈을 조명을 더 많이 사는 데 썼다. 그리고 1920년대에 오래가는 백열전구에 뒤이어 수명이 짧은 백열전구가 등장했듯, 오래가는 LED에 뒤이어 수 명이 짧은 LED가 등장했다. 대부분 아시아에 위치한 수많은 새 제조업 체가 순식간에 비용과 품질을 끌어내렸다. 내구성 높은 기술이 쓰고 버 리는 기술로 변하고 있었다.
- 내구성은 공유경제에 특히 중요한 요소다. 처음에 물건 공유는 그 특 성상 소비를 줄이는 행동으로 널리 홍보되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나 전 기밥솥을 함께 쓰면 각자 그것들을 하나씩 소유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공유경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차량 호출 시스템인데, 이 체제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도록 장려하기보다는 우버 같은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하고 도보 이동이나 자전거 및 대중교통 이용을 덜 하도록 유 도했다. 많은 지역에서 차량 호출 시스템은 교통 체증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악화했다. 그러나 내구성은 더욱 근본적인 방식으로 물건 공동 사용에 영향을 미친다. 차량을 공유함으로써 발생하는 끊임없는 마모 와 손상을 버틸 수 있도록 특별 제작된 것이 아니라면 공유 차량은 더욱 빨리 고장난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공유조차 계획적 진부화로 물건이 훼손된다고,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있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구 대여소를 수 년간 운영중인 줄리 스미스가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것 중에 물 려받은 오래된 물건보다 품질이 좋은 것은 단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스미스가 내게 말했다. "그냥 물건이 그만큼 좋지가 않아요. 금속도 옛 날과 같은 금속이 아니에요. 삽을 갈아서 날카롭게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애초에 갈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진 거여야 그렇게 하죠."

- 천 년도 더 전에 일본에서 와비사비라는 실천이 등장했다. 이 용어는 뜻을 온전히 번역하기 어렵지만, 사색에 잠긴 비애와 시간의 흐 름을 동시에 환기한다. 마치 폐허가 된 곳을 걸어갈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형태의 와비사비는 바랜 것, 녹슨 것, 단순하고 수수한 것을 찬미한다. 와비사비는 킨추기에서 가장 뚜 렷하게 드러나는데, 500년 역사를 가진 수리 기술인 킨추기는 떨어뜨 려 깨진 도자기를 복원할 때 균열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금이나 은을 섞 은 옻칠로 더욱 눈에 띄게 강조한다. 그렇게 생긴 반짝이는 무늬는 깨진 물건을 흠 하나 없던 때만큼, 또는 그때보다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다른 거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와비사비 개념 역시 소비문화에 잡아먹혔다. 와비사비 디자인에 관한 책들은 이 개념을 '고상함의 극치'라 칭송한다. 겨울 들판의 바람에 휘날리는 매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세 심하게 고른 골동품으로 장식한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돈된 집들 이 들어섰다. 아이가 살고 있을 거라 상상하기 어려운 종류의 집들이다. 그러나 와비사비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하는 개념일 수 있다. 와 비사비는 변색되고 오염된 것, 좀먹고 지저분해진 것, 심지어 추하고 구 리게 만들어졌거나 불완전한 것까지도 전부 껴안는다. 와비사비는 생김새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불완전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삶의 태도다.
소비를 줄인 세상에서 우리가 소유한 물건들은 점점 나이들어갈 것 이다. 더 많은 물건이 낡고 해져 보일 텐데, 전처럼 그것들을 새 물건으 로 대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쉽게 우울해질 수 있다. 실 제로 오늘날 우리가 새로움에 집착하는 이유가 노화와 죽음에 대해 생 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와비사비는 우리가 그러 한 우울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응용법이다.
- 너저분하고 칙칙하고 낡고 허접한 미래는 공상과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감 중 하나다. <블레이드 러너 2049 > 속의 우중충한 거리 위거 대한 홀로그램, <매트릭스>에서 네크라인에 잔뜩 구멍이 난 네오의 너 절한 추리닝, 고래수염으로 만든 크리놀린과 양자컴퓨터, 체펠린 비행선, 우주여행이 뒤섞인 스팀펑크***의 계속되는 인기는 전부 와비사비다. 1970년대의 고물차 같은 우주선, 지저분한 술집, 해지고 덧댄 기모노(천년도 더 된 스타일) 차림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스타워즈>의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애니메이션 <월-E>의 배경은 인간이 이주한 번쩍 거리는 우주 식민지보다 왜인지 더 고향처럼 느껴지는 황폐화된 지구다. 이 영화의 촬영감독인 제러미 래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바로 쇠락한 것의 아름다움입니다. 버려진 낡은 건물에 들어갈 때의 느낌 과 비슷하죠."
- 서구 자본가들 사이에서 성장에 대한 무관심은 이단이다. 그러나 성 장없는 사업은 이미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누구도 가족이 운영하 는 동네 식당이 끝없이 확장하길 바라지 않는다. 갭과 파타고니아와 함 께 일했던 제품 혁신 컨설턴트 오하라 테츠야는 최장수 사업체들 내에 서 이러한 모델이 흔하다고 말했다. 오하라는 캘리포니아에서 MBA를 마치고 그가 '구식' 사업 가치라 부른 것과 함께 졸업했다. "시장점유율 을 차지하는 방법, 가능한 한 빨리 성장하는 방법, 비용을 줄이는 방법, 소매가격을 올리는 방법이 그거예요." 그러나 그의 가족은 교토에서 거 의 1세기 동안 섬유 가공제를 만들고 있었고, 그는 자라면서 다른 오래 된 회사들을 여럿 알게 되었다. 일본은 그런 오래된 회사들의 온상으로, 100년이 넘은 회사가 거의 3만5000개에 달하며 500년 이상을 버틴 회사도 수십 곳이다.
- 르네상스 시기에 개인의 사치는 대체로 의혹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닫힌 문 뒤에서 조용히 즐겼고, 자비로 공공건물 을 짓거나 군사비를 대거나 축제를 후원하거나 특히 교회를 세움으로 써 신과 들썩이는 대중의 눈앞에서 부유함을 정당화해야 했다. 역사가 프랭크 트렌트먼은 "호화롭게 장식한 예배당은 오늘날의 페라리와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중국의 초기 소비문화에서 안목은 부 유함 자체보다는 골동품을 소유하거나 시를 쓰고 비파를 연주하는 능 력이 탁월한 데서 드러났다. 과거에는 부유층이 반물질주의와 반소비 주의, 심지어 반자본주의 가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뉴욕 세니카호 수에 있는 호바트앤드윌리엄스미스대학의 역사학자이자 미국의 부자 들을 연구하는 몇 안 되는 학자 중 한 명인 클리프턴 후드Clifton Hood가 말했다(그는 "어떤 주제를 연구한다는 것이 꼭 그 주제를 미화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예를 들어 18세기와 19세기의 거의 내내 미국의 부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부자와 연결하는 핵심 가치, 즉 대놓 고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행위를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보였다. "미국 의 상류층은 중산층과의 차별화에 늘 관심이 있었습니다." 후드가 내게 말했다. "그러한 차별화의 상당 부분이 자신들은 더 고상하고, 더 특별 하고, 더 교양 있고, 예술을 더 애호하고,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 더 많고, 더 세련되었다는 생각과 관련이 있었죠."
그 시대에 상류층이 되려면 돈이 많아야 할 뿐만 아니라 언어능력과 교육, 위생, 에티켓, 의복, 행동거지 면에서 높은 기준을 따라야 했다. 사 교계 구성원들은 지식이나 공공복지, 또는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거나 최소한 기여하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대다수가 그림과 글쓰기, 자수, 이와 유사한 다른 기술에 능했고, 영어 이외의 언어에 정통했다. 이들은 오로지 이러한 자질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했기에, 당시 인구조사에서 일부는 이들의 직업을 그저 '귀족'이라고만 적기도 했다.
- 후드는 "상류층이라는 것은 밥벌이를 하지 않는다는, 또는 밥벌이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중상류층이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할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뽐내기까지 하는 오늘날과는 180도 다르죠."
미국의 초기 명문가는 유럽 귀족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이미 가진 것 이 많았던 이들은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을 무시했고, 심지어 자수성 가한 상인과 무역상, 사업가들이 자신보다 부유해졌을 때도 태도를 바 꾸지 않았다. 물론 이들의 반물질주의적 태도가 환경에 대한 책임이나 간소한 삶을 향한 이상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들 의 지위와 특권을 유지하는 데 사용한 우월의식의 한 형태였다. 그러나 이들의 삶의 방식은 부유함이 취할 수 있는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19세기 후반의 부유층을 조롱했을 때 그가 분노한 대상은 여가를 즐기고 궂은일을 더 낮은 계급에게 떠넘길 수 있는 그 들의 특권이었다. 베블런이 과시적인 소모성 지출이 부유층이 지위를 드러내는 한 방법이라고 주장하긴 했지만, 이를 위해 반드시 계속해서 무언가를 소비할 필요는 없었다. 저렴한 물건보다 딱히 더 유용하지 않 은 값비싼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똑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 었다. 더 질 좋은 것을 더 적게 사는 경제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이 개 념을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갖는 것'이라 비웃을 때면 베블런의 조소가 떠오른다.
"부자는 수많은 것 중에서 가장 귀하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낸다. 이들의 소비량은 빈자의 소비량과 그리 다르지 않다"라고, 1세기 전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말했다. 이 발언은 확실히 과장된 면이 있지만 선진국에 거주하는 일반인의 눈에 어딘가 부족해 보이리라는 것은 분 명한 사실이다. 애덤 스미스 또한 물질주의에 의구심을 가졌다. 그는 부 유함 자체를 위한 부의 추구가 "신체의 피로"와 "근심"을 낳는다고 말 했으며, 그리스 철학자였던 견유학파 디오게네스를 존경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알렉산더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 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 더대왕의 그림자가 일광욕을 방해하지 않도록 대왕이 옆으로 비켜서는 것이 자신이 바라는 바라고 답했다.
미국 문화는 결국 천박한 돈벌이와 과시적 소비를 찬양하게 되었고, 사업가와 기업가를 영웅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럼에도 부자의 소비 는 거의 20세기 내내 억압되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경기 침체와 전쟁, 사회불안이 표면에 드러나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부유층은 더욱 수수하고 조용한 삶을 추구했고, 때로는 그러기 위해 별장지인 햄프턴이나 뉴포트에 있는 대저택을 매각하기까 지했다.
- 리바운드 효과는 다방면으로 이상하다. 에너지 체제에서의 기술 변 화에 대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하는 엘리자베트 뒤치케Elisabeth Diütschke에 따르면, 어떤 리바운드는 '도덕적 허가', 즉 좋은 행동으로 나 쁜 행동을 정당화하는 경향에서 비롯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비건 식단을 하기로 결정한 뒤 (육류 생산에서 발생되는 탄소 배출량이 많 기 때문에) 비행기를 더 많이 타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독일의 한 연 구는 연비가 좋은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이 운전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 을 발견했다. 뒤치케는 좋은 연비가 더 크거나 힘이 좋거나 호화로운 자 동차를 사도 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하게 전기차 를 구매한 노르웨이인들은 휘발유차를 탈 때보다 볼일이 있을 경우 자 동차를 더 많이 사용했다. 실제로 전기차 이용이 늘어나면서 겨울에 전 기차를 미리 덥혀놓거나 쇼핑하는 동안 반려견이 편안히 있게끔 차에 어컨을 틀어놓는 등의 다양한 낭비 행위가 더 많이 보도되었다. 뒤치케 는 이러한 리바운드 때문에 의도적으로 '녹색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조 차 본인의 생각보다 별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거나, 아예 차이가 없거 나. 심지어는 환경에 더욱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 그러나 질 좋은 물건을 적게 사는 것처럼 가장 단순해 보이는 소비주의의 해결책에도 리바운드가 따른다. 조잡한 신발 대신 잘 만든 신발을 큰돈을 주고 사면 리바운드 효과를 없앨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똑같은 소비재를 구매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쓰면 그만큼 다른 소비재를 살 돈이 덜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 좋은 새 신발을 사는 데 들어간 돈은 신발을 만든 노동자와 관리자, 원재료 공급자의 임금 등등으로 재분배된다. 그리고 그 돈은 다시 소비된다. 1년치 의류 예산으로 개인 강 사에게 새로운 언어를 배워서 생태발자국을 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그 개인 강사가 자신이 번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리바운드 없이 돈을 쓸 방법은 많지 않다. 먼저, 더욱 유해한 형태의 소비를 줄이는 상품을 구매하는 데서 시작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휴가 때 비행기 이용을 대체할 캠핑 장비를 구매하는 것이다. 빚을 없애서 재 정적인 안정감을 얻는 것도 한 방법인데, 심리학자들이 증명한 바에 따 르면 재정적 안정감이 물질주의의 강도를 낮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다. 또한 소비를 즉시 줄여주는 조직(예를 들면 도서관)이나 토지와 물 의 자원 개발을 막는 조직에 기부를 할 수도 있다. 공정 추구 행위로서 사람들이 기본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돕는 단체에 돈을 보내면, 본인 의 소비 감소를 통해 그들에게 꼭 필요한 소비의 증가를 곧바로 상쇄할 수 있다. 비슷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정부에 세율 인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 고래들은 오래전부터 구조되기를 기다려왔다. 먼저 고래는 1859년 이후에 구조되었어야 했다. 당시 펜실베이니아 타이터스빌에서 채굴 전 문가로 일하던 에드윈 드레이크가 흙과 암석을 21미터 깊이로 뚫고 들 어가 석유 채굴시대, 다른 이름으로 현대 산업시대의 문을 열었다. 2년 후, 잡지 『배니티페어』에 화려하게 차려입은 향유고래들이 '유정은 끝 이 좋다 Oils Well That Ends Well'"라고 적힌 현수막 아래에서 샴페인을 따며 춤을 추는 만화가 실렸다. 고래기름의 모든 사용처 (비누 만들기, 산업 장 비의 톱니바퀴에 윤활유 바르기, 등과 초로 전 세계에 불 밝히기)에서 석 유제품이 고래기름을 대체하리라는 것이 이 만화의 골자였다. 피비린 내나는 포경 산업은 이제 끝을 맞이할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석유를 이용해 고래를 더욱 많이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고래잡이배 건조에 화석연료가 사용되면서 배가 더 빠른 속도로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이 가능해졌고, 해안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고래기름을 가공하고 고래고기를 냉동할 수 있는 대형 가공선 이 등장했다. 심지어 석유와 가스는 죽은 고래가 가라앉지 않도록 고래 를 풍선처럼 부풀리는 펌프 가동에도 사용되었고, 이로써 더 많은 종류 의 고래를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고래기름을 석유로 대체한 제 품이 꾸준히 발명되었음에도, 수십 년간 고래잡이들은 고래를 하루 평 균 100마리씩 도살했다. 일단 무언가를 소비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좀 처럼 그 소비를 줄이려 하지 않는다.
그때 고래가 다시 구조되기 시작했다. 1986년 전 세계의 고래잡이 국 가 대부분이 대규모 산업 포경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이때쯤 대다수의 고래종이 '상업적 멸종' 상태였는데, 이는 개체수가 너무 적어서 고래를 시장에 팔아서 버는 돈보다 고래를 발견해서 죽이는 데 들어가는 비용 이 더 크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동물인 흰긴수염고래를 비롯해 일부 고래종은 거의 전멸 상태였다. 마침내 고래의 개체수는 줄지 않고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후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 거대한 생명체들 을 죽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스러운 징조가 나타났다. 한 고래 연구 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실제로 바다로 나가 쇠막대기로 고래를 찌르지 않는다. 그저 고래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을 뿐이다."

- 2010년, 문학 교수인 가토 노리히로가 일본 청년 사이에서 등장한 새 로운 유형인 비소비자에 대해 설명한 글이 발표되어 널리 읽혔다. 가토 는 "한계가 점점 더 명백해지는 세상에서, 나이보다 성숙한 일본의 청 년들은 성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며, 한계 없는 성장의 꿈을 '발전의 초기 단계'라고 칭 하기까지 했다. 가토가 말한 비소비자는 도쿄 어디에나 있다. 영원할 것 처럼 보이는 경제 침체를 마주한 많은 이들이 비자발적으로 간소한 삶 을 살며 중고 의류를 입고, 손바닥만 한 아파트에 살거나 부모님 집에 살고, 상점과 나이트클럽에서 돈을 날리기보다는 온라인에서 생활한 다. 바깥세상에서 이들의 서식지는, 미국에서 설립되었지만 현재는 일 본에 기반을 둔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이다. 이들이 편의점에서 먹는 것은 속을 채운 1달러짜리 주먹밥처럼 자신들이 탄생에 기여한 일본 특유의 요리, 바로 콘비니(컨비니언스) 식품이다. 베르사체나 루이비통 은 보이지 않는다. 문화 저널리스트 타일러 브륄레는 일본이 “세계 최초의 포스트 럭셔리 경제"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 특정 비소비자들은 히키코모리, 즉 집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이라 고 비난받아왔다. 그러나 이들은 집에 틀어박혔다기보다는 경제에서 차단된 것에 가깝다. 이들은 특정 삶의 방식(이 경우에는 소비자본주의) 이 무너지는데 그 무엇으로도 그 방식을 대체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공 허를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도쿄의 고동치는 심장부가 아닌 가장 먼 외곽에서 이와는 다른 도쿄의 미래상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 기를 들었다.
- 소비를 뜻하는 일본어는 쇼히다. 이 단어는 19세기에 서로 다른 두 단어가 합쳐져 생겨났는데, 히는 쓰다라는 뜻이고 쇼는 불태워서 재로 만들듯 소멸시킨다는 뜻이다. 영단어의 어원도 비슷하다. 본래 소비는 불길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듯 기존에 존재하던 것을 완전히 소진해 아 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우리가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소비한 다면, 모든 것이 소비의 대상이 될 것이다. 더 많은 기회와 소진, 더 많은 경험과 산만함, 더 많은 깊이와 얄팍함, 더 많은 온전함과 공허함. 우리는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을 소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소비하고 자기 자신을 소비할 것이다. 모든 것이 불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 소비 없는 세상은 부를 더욱 공평하게 분배하는 세상이 될까? 많은 이들이 역사 내내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간소하게 살아라, 다른 이들 이 그저 살아갈 수 있도록"이라는 오래된 문구에도 이러한 가정이 내재 되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국가는 좀처럼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 다. 간소하게 살면 내가 포기한 재산은 결국 애초부터 잘살던 사람의 손 으로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다.

- 소비주의는 당신에게 재정적 피해를 안기고, 당신이 필요로 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들로 당신의 삶을 어지르고, 더 좋은 곳에 쓸 수 있 는 시간과 집중력을 다 써버리고, 당신이 깊이 염려하는 지구의 생태 위 기를 악화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간소한 생활에서 계획되지 않은 시간, 자유, 차분함, 연결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할지도 모 른다. 당신은 소비에서 공허함을 느낄 수 있다. 그 어디로도 향하지 않 는,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들의 가두행진이라고 느낄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속도를 늦춰보자. 멈추자.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더 적게 가진 삶이 더 행복한 삶의 한 가지 비결임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순 하나를 더 들어주시길 바란다. 당신이나 내가 쇼핑을 멈춘다고 이 세상이 저소비사회에 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사회적 관성, 순응하라는 압력, 경제성장의 퍼센트에 따라 흥하거나 실패 하는 정부, 거대한 광고기구, 만족시켜야 할 투자자들이 있는 수조 달러 규모의 시장 등, 소비주의 편에 잔뜩 쌓인 힘들이 더 간소한 삶을 살라 고 촉구하는 대중운동보다 늘 더 강력한 영향을 미쳤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유럽의 도덕적 타락과 물질주의에 넌더리를 내며 도망친 종교 분파 인 청교도는 미국에서 소박하고 독실한 삶을 새롭게 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땅투기에 빠져 재산과 과시적 소비를 추 구했다.
훗날 미국 건국의 아버지가 된 초기 미국 애국파들은 더욱 고결한 미 국적 이상의 본보기로서 간소함을 실천했고, 영국을 타도한 뒤에는 당 연히 이러한 이상이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 혁명에 성공한 이들은 자신 들이 세운 새로운 국가가 허영과 이기심, 사치스러운 소비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절망했다.
- 비소비의 거의 모든 측면이 소비를 줄이겠다는 개인의 선택으로 이 뤄낼 수 있는 것 이상의 변화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나는 벌고 쓰는 행 위를 잠시 멈출 수 있지만, 비영리적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는 한 국가까 지는 아니더라도 공동체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디컨슈머가 될 수 있지만 그러면 사회에서 외부인이 되거나 심지어 따돌림을 받을 것 이고, 그렇게 되면 내가 그 변화를 고수할 확률은 낮아진다. 내가 개인 적 소비를 줄인다고 해서 수리 가능한 제품을 만들도록 강제하고, 과소 비를 부추기는 소득 불평등과 불안정을 해결하고, GDP 성장의 틀바 깥에서 사고하라고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민의식과 참 여, 또는 소비자 역할을 대체할 다른 사회적 역할을 위한 사회 기반 시 설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바우터르 판 마르컨 리흐턴벨트와 엘리자 베스 셔브의 연구에 흥미를 느끼고 집에서 광범위한 자연 온도에 맞게 사는 실험을 해보기도 했다. 과학이 예측한 대로 나는 하루나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더위와 추위의 패턴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온도 제어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점점 증가하는 사회·기술적 추세는 전혀 바꾸지 못했다.

- 이 책은 다음과 같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소비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답은 예스다. 끝없는 확장에 얽매인 경제의 속도를 늦추면, 대부분의 인류 역사에서 나타난 더욱 완만한 성장의 추 세에 다시 합류하게 될 뿐이다. 독창성을 발휘한다면 우리는 적응할 수 있다. 이보다 더욱 개인적인 질문, 즉 우리가 정말로 그 길을 따르고 싶 은가는 답하기가 더 어렵다. 여러 증거는 저소비사회에서의 생활이 더 좋고, 스트레스가 적고, 노동이 줄거나 유의미한 일이 늘어나고, 사람들 이나 가장 중요한 일에 쓸 시간이 더 많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 를 둘러싼 물건들은 제대로 만들어졌거나 아름답거나 둘 다일 수 있고, 우리의 기억과 이야기를 담을 그릇이 될 만큼 우리와 충분히 오래 함께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소진되었던 지구가 다시 생기를 되찾는 모 습을 지켜보는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더 깨끗한 물, 더 새파란 하늘, 더 많은 숲, 더 많은 나이팅게일, 더 많은 고래. 세상이 소비를 멈추는 날, 많은 이들이 정말로 살고 싶은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디스토피아를 만나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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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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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패권의 미래

사회 2023. 6. 18. 14:28

- 노스웨스턴대학교의 로버트 고든(Robert J. Gordon) 교수는 미국의 위대한 번영이 이제 막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생산성 속도는 이미 저하되고 있으며, 앞으로 불평등의 심화, 교육 침체, 인구 고령화 및 대학생과 연방 정부의 부채가 증가함에 따라 생산성이 더욱 낮아질 우려가 있다고 한다. 고든의 저서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에서는 다음 세대의 미국인은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생활수준이 낮은 세대가 되리라 전망한다.' 대조적으로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의 명예교수이자 현재 구글 의 수석 경제학자 할 배리언(Hal Varian)은 생산성이 문제가 아니라 측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 2016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진을 찍는 횟수가 스무 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필름을 사용해 사진을 인화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디지털 및 온라인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장당 50센트 정도의 비용이 무료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GDP 감소에 반영돼 있다. 사람들이 사진을 훨씬 더 많이 찍는다는 면에서 전 세계 생활수준이 높아졌지만, 1인당 GDP를 보면 마치 생활수준이 낮아진 것처럼 보인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데 비용이 전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전화처럼 분명하게 알려진 제품이나 서비스의 비용이 급격히 줄어든 경우에는 이를 고려해 적절하게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통신 혁 명이 수많은 신제품 및 서비스를 창출한 덕분에 이를 일일이 고려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일례로 소셜 미디어에 가격을 매긴다면 과연 얼마로 정해야 할까? 2021년을 기준으로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자신의 데이터를 공유하는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약 60퍼센트라고 한다. 대다수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소셜 미디어는 다른 미디어를 상대로 광고 를 활용해 자금을 끌어오는 방식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따라서 소셜 미디 어가 놀라운 혁명을 가져오긴 했지만, 생활수준의 향상 여부를 측정할 때 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 부정성 편향은 상당히 복잡하다. 하지만 로슬링은 이러한 편향이 나타 나는 이유 중 하나로 과거에 대한 왜곡된 기억을 언급한다. 사람들은 과 거에 대한 기분 나쁜 측면을 기억하지 않으려 하므로 그 후로 얼마나 많은 발전이 있었는지 잘 판단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 세상이 점점 나아지지 않 는다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증거가 있는데도 이 세상이 전반적으로 나아지 고 있다는 말로 모든 사람을 안심시키는 행위가 냉혹해 보이기 때문일 것 이다. 핑커는 현대 사회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경쟁자를 억누르는 교묘한 방식이며, 이는 한발 앞서가기 위한 일종의 지능적 수법이라고 설명한다. 혹은 단지 자신을 지적으로 포장하는 단순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상황이 점점 나빠진다고 말하면 남에게 좀 똑똑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상황이 갈수록 좋아진다고 말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나 최악의 경우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바보라는 평을 얻을지 모른다. 핑커는 인 간의 진보를 낙관적으로 보는 책이 계속 쏟아져 나오지만, 문학상 수상작 은 하나도 없었다고 지적한다. 대조적으로 집단 학살에 관한 책 네 권, 테 러리즘을 다룬 책 세권, 암에 관한 책 두 권, 인종차별을 다룬 책 두권, 멸종에 관한 책 한 권이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하지만 전체적으 로 보면 비관론자의 예상이 빗나가고, 낙관론자의 주장이 (적어도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물론 맹목적인 낙관주의도 맹목적인 비관주의 못지않게 비합리적이다. 미래에 대한 일반적인 낙관론에 경고를 가해야 한다는 생각, 즉 인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인 식을 좋게 표현할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위험이 어 디에 도사리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슬링은 우리에게 '세상 이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라는 사실 기반의 세계관이 필요 하며, 그러한 세계관이야말로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알지 못하면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 독일은 고급 제조업에서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독일의 성공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단 독일은 세계 최대 규모의 무역 흑자를 자랑하며, 자동차 최대 수출국으로서 어마어마한 수익을 벌어들인 다. 2019년 자동차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1,420억 달러였다. 당시 세계 2위였던 일본의 자동차 수출액은 980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은 의약품 수출에서도 세계 1위다. 다른 부문에서도 세계 최정상을 유지하거나 그러한 수준에 가깝다. 전 세계 많은 나라가 독일을 우러러보 며 부러워할 만하다.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후로 지금까지 통화 평가절상(currency revaluation)으로 자국 제품의 경쟁력이 큰 타격을 입을 위기에 처할 때마다 고급화시장(upmarket)을 확대해 위기를 모면하는 기지를 발 휘했다. 서독 화폐가 주기적으로 재평가될 때마다 일시적인 침체를 겪었 지만 그때마다 독일 산업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비용을 줄이고 품질을 개 선해 고가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독일은 자신들의 경쟁력에 전혀 도 움이 되지 않는 비율로 유로화에 가입했고, 2000년대 초반까지 이전과 같은 산업 정책을 이어갔다. 당시 경제 성장은 둔화됐고 실업률은 두 자릿수로 치솟았다. 게다가 구동독의 재건 자금까지 부담해야 할 처지였기에 '유럽의 병자(the sick man of Europe)'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다행히도 노동 개혁, 특히 산업 분야의 저력과 적응력을 발휘한 덕분에 기존의 경쟁력을 회복해 유럽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되찾았다. 독일보다 못한 회원국의 상황이 유로환율에 반영된다는 사실은 독일이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막대한 경쟁력을 갖췄음을 뜻한다. 특정 요인으로 인해 지금의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는 유럽의 나머지 국가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독보적 인 입지를 독일이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독일 경제에도 가려진 약점이 있다. 수출에서는 독보적이지 만 국내 서비스업은 질적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있다. 금융 업, 고등 교육 분야 및 사회 기반 시설 프로젝트에서는 취약점이 드러난 다. 실제로 독일에는 세계 45위에 드는 대학이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기 술의 우수성이 앞으로도 주요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인지 우려된다. 세계 총생산량에서 제조업의 비율이 줄고 서비스업의 비율이 커지고 있으므로 앞으로는 서비스 부문에서 우수성을 드러내며 더 큰 역할을 해야 할지 모른다. 현재 독일은 제조업 부문의 비율이 너무 높아 보인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다. 2019년 기준으로 독일 GDP에서 제조업이 19퍼센 트를 차지했다. 같은 해 미국의 제조업은 11퍼센트, 프랑스가 10퍼센트, 영국은 9퍼센트였다. "여기서 또 하나 유의할 점이 있다. 독일 제조업의 능력은 사람들이 구매할 마음이 별로 없는 물건을 만드는 데 집중돼 있다 는 것이다. 자동차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선진국의 젊은 사람들이 점점 차를 사용하지 않는 추세다. 기존 세대에 비해 젊은 인구의 운전면허 취득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전통적인 내연기관 자동차 보다 전기차를 만드는 것이 훨씬 쉽다. 하지만 배터리 기술은 유럽보다 미 국이나 아시아에서 주로 개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베네룩스 국가들의 경제적 번영은 독일에 달려 있다. 벨기에는 유럽의 행정수도 역할을 맡아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 그중 독일에서 받은 혜택이 가장 크다. 네덜란드는 수출량의 4분의 1을 독일과 거 래하고 있어 경제 면에서 독일의 파생 경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 덜란드가 메릴랜드주보다 작은 영토에 1,700만 명이 밀집된 국가라는 점 을 감안하면 농산물 수출국으로서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실 제로 네덜란드는 미국에 이어 농산물 수출량 2위이며, 토마토 수출에서 멕시코와 세계 2위 자리를 다투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인구가 60만 명이며 면적은 브리스틀이나 볼티모어 정도 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하지만 룩셈부르크의 독특한 자랑거리가 하나 있 다. 바로 매우 부유하다는 것이다. 원유 생산국인 카타르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인 리히텐슈타인을 제외하면 룩셈부르크가 1인당 GDP 에서 세계 1위다. 독일 은행이 운영하는 역외 금융 센터를 만들어 독일의 세금 및 각종 제약을 우회한 영향이 주효하다. 또한 아마존과 같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을 끌어들여 자국을 유럽의 허브로 사용하도록 설득했다. 다른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룩셈부르크는 천연자원이 거의 없지만 매우 영리하게 대처해 소득을 크게 향상시켰다. 그 점은 분명 칭찬할 만하다.
- 프랑스는 정말 매력적인 나라다.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 허하는 놀라운 성공을 이뤘다. 다들 프랑스를 생각하면 명품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세계 상위 10대 명품 브랜드 중에서 1~3위 브랜드인 루 이비통, 샤넬, 에르메스를 포함해 총 여섯 개가 프랑스의 브랜드다. 단 일 국가로서 전 세계 명품 사업을 장악한 것은 유일무이하다. 17세기부터 이러한 추세가 시작됐다는 것도 더욱 놀랍다. 루이 14세 재위 기간에 재 무장관을 지낸 장 바티스트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세금을 기술적으로 걷으려면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게 깃털을 뽑는 것처럼 해야 한다."
또한 콜베르는 1665년에 "프랑스에서 패션이란 스페인에서 페루의 금광을 생각하는 바와 같다”라고 했다. 그만큼 프랑스가 부를 축적하는데 패션이 크게 공헌했다는 뜻이다. 프랑스 혁명으로 명품 산업은 잠시 주춤했지만 19세기에 활기를 되찾았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Paris Exposition Universelle)에서 프랑스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명의 정점을 잘 보여줬다.
프랑스가 예외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부문은 또 있다. 팬데믹으로 해 외 여행을 금지하기 전 프랑스는 연간 9,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 갈 만큼 인기가 많은 관광지였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무기 수출에서 도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한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유럽 프로젝트 기업 에어버스(Airbus)는 전 세계 민간항공 시장에서 보잉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 수준도 매우 높은 편이다. 유럽에서 영유아사망률은 스웨덴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고 한다.
- 사실 아프리카 대륙을 함부로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아프리카는 금세 기에 들어 GDP가 가장 빨리 증가하는 지역이다. 경제 성장 속도만 보면 중국도 이미 앞지른 상태다. 흥미롭게도 중국의 투자는 아프리카 성장의 주요 원동력이다. 이 점은 아프리카의 미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미 젊은 인구가 많고 출생률도 높으므로 이 지역은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 다. 따라서 사회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가 가장 중요하다. 물론 인적 자본 에 대한 투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할 기반을 마련하려면 거버넌스, 교육, 훈련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급속한 경제성 장은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기회를 열어줄 것이므로 젊은 층을 이 러한 변화에 준비시켜야 한다.
이 거대한 지역에는 약 2억 5,0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남아프리카공화 국을 추가하면 인구는 3억 명이 넘는다. 천연자원이 무궁무진할 뿐만 아 니라 세련된 현대적 도시들도 많고 관광산업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아프 리카의 경제적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그런데 도 아프리카에 전 세계 최빈국이 적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소통의 문 제는 도로 사정과 직결된다. 아프리카 대륙은 남북을 연결하는 도로가 아 예 없으며 내륙 도로의 전반적인 상태는 매우 열악하다. 철도도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며 항공 운송도 매우 취약하다. 인접국 수도에 가는 항공편을 찾는 것보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유럽행 항공편을 찾는 것이 차라리 더 쉬운 형편이다. 다행히 차츰 개선되고 있는 분위기다. 중국 투자 덕분에 도로망이 꾸준히 건설 중이고 다차선 고속도로는 찾아보기 힘들어도 2차 선 도로망이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도로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중국은 아프리카 지역의 농업, 사회 기반 시설, 제조업에 투자를 확대 하고 있다. 중국의 투자는 지금과 같은 급속한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거 나 이를 더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서방 세 계의 아프리카 원조 프로그램이 실패했는데 과연 중국의 상업적 투자가 성공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 투자는 중국이 추진 중인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전략의 핵심 요소다. 둘의 협력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다. 아프리카는 상업적 투자가 필요하고 중국은 천연자원이 필요하기 때 문이다. 서방 국가나 서구 기업과 비교하면 중국은 식민 정치의 죄책감이 없어 아프리카에서 더 자유롭게 활동하는 듯하다. 다시 말해 아프리카의 미래는 중국과의 협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파트너십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든 간에 아프리카는 세계 경제에서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반면 중동 지역은 예전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 같다. 중동 지역 은 정치 문제를 논하지 않고서는 경제적 장단점을 논의하기 어렵다. 중동 은 전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불안한 지역이며 앞으로도 그 사실은 변 함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젊은 층 을 대상으로 일자리와 여러 가지 기회가 늘어날수록 각국이 정치적 문제 를 잘 해결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 유엔의 예측이 전반적으로 맞아떨어진다면 아프리카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아래 그림에 나와 있듯이 이러한 예측은 출산율 변화에 기반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엔의 예측이 달라졌다. 10~12년 전에 예상 한 것과 달리 출산율이 빠르게 감소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학자들 사이에도 이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앞으로 출산율이 얼마나 빠르게 감소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향후 30년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가임기 여성을 헤아려보면 아프리카 인구는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 는 예측이 적중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인구 증가세가 서서히 둔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2100년 아니 그 이후까지도 인 구가 계속 증가할지 모른다. 공식적으로 유엔은 2100년에 아프리카 인구 가 43억 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는 전 세계 인구 109억 명에서 40퍼센트를 차지하는 수치다. 2100년이면 아프리카만 인구가 늘어나고 다른 지역은 인구가 줄어들 것이다. 달리 말하면 다른 지역은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지겠지만 아프리카는 젊은 층이 주류를 차지할 것이다.
- 정부의 태도를 크게 바꿔놓은 계기는 영국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 (Nicholas Stern) 교수가 발표한 보고서였다. 그는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 출신으로 다수의 공공 기관에서 근무했으며 2003년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고든 브라운(Gordon Brown)의 추천으로 재무부 수석 경제 고문이 됐다. 스턴이 이끄는 팀은 2005년에 지구 온난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 해 <기후 변화의 경제학: 스턴 리뷰(The Economics of Climate Change: The Stern Review)>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도덕적 이유나 환경 보존과 같은 요인은 차치하고 기후 변화의 속 도를 늦춰야 할 재정적 이유를 명확히 제시했다. 그러자 각국 정부의 반응 이 크게 달라졌다. 기후 변화로 인한 손실에 뒤늦게 대처하는 것보다 지금 경제 구조를 개혁해 대처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을 마침내 깨달 은 것이다. 이타적으로 행동하라고 종용하는 것보다 각국의 경제적 이득 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물론 이 보고서에 제시된 향후 전망이나 수치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보고서의 결론은 널리 인정받았다.
- 이전 세대는 피크오일(peak oil)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특정 시점이 되면 유전이 새로 발전되는 속도보다 원유 공급량이 소진되는 속도가 더 빨라서 원유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미다. 다행히 새로운 유전이 계 속 발견되면서 위기의 순간은 어느 정도 뒤로 미뤄진 것 같다. 하지만 석 유 매장량은 제한돼 있으므로 얼마 못가서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피크오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원유 공급이 아니라 원유 수요가 최대치에 달하는 순간을 가리키는 말이 돼버렸다. 그 동안 태양열 발전과 풍력 발전이 빠르게 개발됐으며 배터리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불과 5년 전에 예측한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화석 연료에 서 벗어나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전환되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 수요는 계 속 늘어날 전망이다. 전 세계 인구가 점점 늘어날 뿐만 아니라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이다. 요즘은 신흥국가도 생활수준이 매우 높 은 편이다. 사실 선진국 경제는 에너지 수요를 전반적으로 대폭 증가하는 요소가 아니다. 일례로 영국에서는 2019년 총 에너지 사용량이 1970년보다 오히려 낮게 나타났다. 각 가정의 단열이 강화되고 더 경제적인 자가 용을 사용하는 등, 생활 전반에 걸쳐 효율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 구조의 획기적인 변화다. 영국의 경제는 서비스업 중심으로 크게 발전해왔다. 사실 영국은 수입품의 절반이 식품이며 전반적으로 상품 무역에서 큰 적자를 보고 있다. 토마토나 자동차의 수입은 실질적으로 토마토를 재배하거나 자동차를 생산할 에너지를 수입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은 서비스 수출에서 많은 수익을 거 둬들이는 나라이고 서비스업은 에너지 집약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다시 말해 영국은 에너지 사용을 대폭 줄이면서 경제 규모를 키운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전 세계 경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에너지의 전반적인 수요는 얼마나 빠르게 증가할 것인가? 화석 연료에 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될 것인가? 이러한 질문 에 대한 대답은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에너지 성장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하고 있고 재생에너지 기술이 점점 더 빠르 게 진보하고 있다.
- 구체적 사례는 유럽연합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목적으로 바이오 연료를 장려한 것이다. 당시에는 매우 바람직한 정책으로 여겨졌다. 원 유 대신 재생 가능한 농산물로 대체할 수 있고 환경 오염도 줄일 수 있다 고 생각한 것이다. 2009년 유럽연합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목표를 설정했 다. 2020년까지 유럽 내 운송 연료의 10퍼센트를 재생 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로써 바이오 연료가 목표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 다. 하지만 걸림돌이 남아 있었다. 바로 목표를 달성할 만큼 연료 생산 식 물을 재배할 역량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유럽연합은 팜유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의 나라에서 유럽연합으로 수 입하는 팜유 생산량을 늘리려면 야자수를 재배할 땅을 확보해야 했다. 결 국 열대 우림의 상당 부분을 벌채했다. 2018년까지 유럽에 수입된 팜유 의 절반은 운송 연료로 사용됐다. 그런데 우림이 파괴된 사실이 명백히 드 러나자 정치인들이 완전히 등을 돌렸고 결과적으로 정책은 180도 달라졌다. 2030년까지 팜유가 연료 에너지에서 완전히 축출될 것이다. 하지만 멸종 위기에 처한 오랑우탄의 서식지였던 보르네오섬의 원시 열대 우림은 상당 부분이 이미 잘려 나간 상태다. 팜유 수입을 중단해도 열대 우림은 원상 복구되지 않는다.
- 트럼프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공격한 시점보다 한참 이전인 2010년대 중반에 미국, 캐나다, 멕시코와 중국 간 무역 전쟁으로 세계 무 역의 성장은 이미 둔화하기 시작했다. 무역은 세계 GDP 성장률보다 빠르 기는커녕 매우 더디게 증가했다.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크게 보자면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신흥경제국가, 특히 중국과 선 진국의 임금 격차가 좁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임금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나 다수의 신흥국가에서는 임금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운송비를 계산해보면 이제는 생산 설비의 역외 이전이 별 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들은 생산 설비를 본국으로 되가져오 게 됐고 일자리 기회도 예전과 달라졌다. '쇼어링(onshoring, 제조업의 생 산 설비를 자국에서 운영하는 것옮긴이)'이나 '리쇼어링(reshoring-해외에 진출한 국내 제조 기업을 다시 국내로 돌아오게 하는 정책-옮긴이)'과 같이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표현도 등장했다. 둘째, 제조업이 달라지고 있다. 공장 근 로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디자인이나 자동화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 은 증가하고 있다. 제조 비용 내역을 보면 실제 제조 비용은 얼마 되지 고 디자인과 제작팀의 전문 인력에 대한 지출이 높다. 제조 장소는 가장 비용이 저렴한 곳이 아니라 편리한 곳, 그러니까 시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하기 마련이다. 디자인팀은 보통 해당 기술자를 구할 수 있는 지역에 구성하는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양측의 수많은 기술 허브가 대표적이다. 즉, 전문가는 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고 재화는 현지에서 만들어진다.
세 번째 이유는 소비자의 선택이다. 소비자 선택은 정확히 꼬집어 말하 기 어려운 분야인데 주로 다른 동인들과 뭉쳐져서 국제 무역의 성장을 제 한하는 것 같다. 한 가지 동인은 운송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다. 특 히 환경은 젊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푸드마 일(food miles, 농산물 등이 생산지에서 출발해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동 하는 거리-옮긴이)'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요리사들은 수입 식품보다 현지에서 재배한 제철 음식을 먹으라 고 강력히 권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물건을 쉽게 버리고 새로 사기보다는 기존의 물건을 고쳐 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패스트패션 (fast fashion, 패스트푸드처럼 최신 유행과 소비자 취향을 즉각 반영해 빠르게 상품 을 기획, 생산, 판매하는 것-옮긴이)'을 비판하는 분위기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가장 고가의 소비자 내구재인 자동차와 같은 특정 제품의 수요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휘발유나 디젤 자동차보다 훨씬 단순해서 더 오래 탈 수 있는 전기차로 전환되는 시점이어서 자동차 수요가 더 줄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자동차 구매 건수가 줄어들면 해외로 배송되는 자동차 물량도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구매 패턴이 상품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네 가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제품과 달리 서비스는 소비가 발생하는 장소에서 만들어진다. 자동차는 해외에서 생산한 다음 판매 대리점까지 옮겨 와야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식당에서는 바로 식사 를 마련해 손님에게 제공하거나 음식이 식기 전에 주문자의 집까지 배달 해줘야 한다. 이렇듯 다른 조건이 같다는 전제하에 상품에 대한 지출이 감 소하고 서비스에 대한 지출이 늘어나면 더 많은 소득을 현지에서 지출하 게 된다. 그러면 GDP 대비 상품 교역량은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다.
- 상품 교역 분야에서는 세계화의 정점에 도달했을지 몰라도 서비스 교 역 분야에서는 아직 정점까지 한참 남은 것 같다. 2050년이면 국제 교역 의 절반 이상은 상품이 아니라 서비스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는 향 후 30년간 세계화의 방향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지금까지 추구한 방향 과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경쟁 우위의 주요 동인도 달라질 것이 다. 지금까지는 전 세계인이 갖고 싶어 하는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가장 중시됐다. 덕분에 독일이 세계 1위의 공산품 수출국이 됐고 중국 경 제도 최근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제품 생산보다 제품 디 자인에서 더 높은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애플은 2020년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인정받지만 대부분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하도급 업체에서 제품을 생산한다. 미래에는 온 세상 사람이 사고 싶어 하는 서비스 를 만드는 방법이 가장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다.
- 다행히 미래의 주요 기술 중 몇 가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아마 교육과 의료 서비스는 반드시 상위권 기술에 포함될 것이다. 사실 교육과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무제한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생활이 윤택해질수록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할 것이고 인구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의료 서비스 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언어나 문화차이 때문에 국제 무역에 제약이 많지만 나날이 국제화되고 있다. 언어장벽은 차츰 낮아져도 문화 차이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다른 서비스업에 대한 수요는 이만큼 확실치 않다. 통신 혁명에 서 가장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서비스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사람들이 어 떤 서비스를 구매하고 싶어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등장하기 전에는 페이스북 같은 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 을 것이다.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모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수요가 창 출된 흐름이 비슷하다. 2050년까지 이어지는 기간 동안 어떤 정보 서비스 가 시장을 장악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그 서비스가 만들어지지도 않 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나라에서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될까?
- 미국과 중국 사이에 경쟁이 가장 치열할 것이라는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다른 영어권 국가가 미국 쪽으로 합세할 가능성도 있다. 앞으 로 중국이 정보 기술 산업 개발을 주도할 것이라는 점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중국이 주도권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서비스 분야에서 과연 수출 지향적 비즈니스를 제대로 창출할 수 있을지 는 불분명하다. 경쟁 현장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최종 결과는 아직 추측에 맡겨야 한다.
- 이동 패턴에서도 분명히 변화가 있을 것이다. 미래에도 자가용이 개인 의 주요 운송 수단이겠지만 사용 빈도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선진국에서 는 2019년에 이미 자동차 주행거리가 정점을 찍었으며 지금은 계속 내림 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곳곳의 신흥 국가도 조만간 자동차 주행거리의 정 점을 찍고 내려올 것이다. 2050년이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내림세를 보 일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 선진국 도시는 지금보다 훨씬 조용하고 오염 도가 낮으며 살기 좋은 모습을 갖출 것이다. 신흥국 도시는 이런 모습을 갖추기 전에 어느 정도 혼란의 시기를 거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2050년 이면 신흥국가 도시도 살기 좋은 도시라는 목표를 향해 선진국 도시와 거 의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성장할 것이다.
- 대다수 사람은 기존의 사회적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갈 준비가 돼 있다. 우리도 주변의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잘 지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의 태도나 가치관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 또한 인 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대부분은 기존의 규범에 맞춰서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과 거를 돌이켜보면 그러한 규범이 불과 한두 세대에 걸쳐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률은 현대와 분명 차이가 있을 것 이다. 빅토리아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이니 당연하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1960년대라면 지금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소 힘들었던 1950년대보다는 약간 자유로워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1967년 까지 영국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었다. 직장에서 남녀를 동등하게 처우해 야한다는 분위기도 그 무렵에 겨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상의 변화와 함께 정치적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1960년대 정 계 분위기를 대략 설명하자면 당시 좌파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했고 우파는 사회적 통제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돼 우 파가 자유주의를 표명하고 좌파가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언론의 자유나 일부 대학에서 우파 연설에 대한 학생의 반응을 기준으로 판단할 때 심지어 사상의 자유에서도 달라진 태도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좌파나 우파 중 누가 옳은지 그른지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회 조직에 대한 현재 우리의 판단이 2050년이 되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1980년대 사람들이 1950년대의 주요 사상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 확언하기 어렵지만 2040년대가 되면 미국의 인구 구성은 2020년에 비 해 크게 달라질 것이다. 히스패닉이나 아시아 소수민족의 가치가 더욱 높 아질 뿐만 아니라 유권자 수에 민감한 정치인으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존 재가 될 것이다. 정치는 한마디로 숫자 게임이다. 유권자의 구성이나 규 모의 변화를 수용하는 정치인이 더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된다. 미국의 인구 구성은 지금보다 더 다양해질 것이며 고령화 현상도 더욱 두드러질 것이 다. 히스패닉이 늘어나면서 한쪽으로 기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전체 인 구가 고령화되기 때문에 반대쪽으로 다시 균형이 잡힐 것이다. 전체적으 로 보면 2020년대 초반과 달리 2040년대쯤이면 미국 사회는 분열이 가라 앉고 더 안정될 것이다.
미국의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합리적으로 개선되면 위와 같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 장래 세대가 확신을 가질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그중에서 세 가지 두드러진 이유를 생각해보자.
첫째, 미국은 전 세계의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는 강력한 자석과 같은 나 라다. 미국은 과거와 힘겨운 씨름을 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다인종 국가로 성장할 것이다. 동시에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첨단 기술을 보유한 혁신 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끝부분에는 반전이 있다. 여러 합 리적인 근거를 고려할 때 2050년이면 중국이 미국의 경제 규모를 앞지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점도 고려해야 한다. 중국 인구는 분명 감소할 것 이나 미국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중국이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 서 선진국으로 완전히 탈바꿈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미국 보다 더 심각한 환경 문제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이를 잘 해결하지 못할 우 려가 있다. 이를 모두 고려하면 흥미로운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약 30년 뒤에 미국이 경제 규모에서 중국을 추월해 금세기 후반의 어느 시점에는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으로 다시 성장할지 모른다. 
- 유럽은 지금처럼 중요한 지역으로 대우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객관적 으로 많은 사람에게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장소 중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다. 합리적인 수준의 부와 안정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따 라서 고급 기술자든 일반 기술자든 많은 이민자에게 매력적인 곳이며 앞 으로도 그럴 것이다. 현행 유럽연합보다는 더 안정적인 국가 간 연합이나 동맹을 구축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인구 비율이나 상대적 의 미의 경제적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므로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전 세계 나머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예전만 못할 것이다. 유럽이 앞으로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하는 유럽 사람이라면 이러한 예 측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유럽 일부 국가는 지식 산업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구사할 것이다. 하지만 유럽 대륙 전체를 놓고 보 면 미래의 새로운 아이디어의 보고가 아니라 과거의 업적을 간직한 박물 관에 더 가까운 상태일 것이다.
암울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조용 하고 안정된 사회에는 문제가 없다. 전 세계에서 일본이 바로 그런 이미지 를 보여준다. 2050년이면 유럽 인구는 2020년 일본과 비슷한 상태가 돼 고령 인구를 돌보느라 비슷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유럽은 세 가지 측면에서 다를 것이다. 남유럽과 북유럽, 수많은 이민자를 수용한 나 라와 이민자 수용을 완강히 거부한 나라, 영어권 국가와 나머지 지역 사이 에는 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일본에서 전혀 관 찰할 수 없다. 일본은 단일민족국가이며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면 유럽은 파편화된 사회이며 앞으로 더 심화할 것이다.
- 영국과 아일랜드의 경제가 개선될수록 양국의 정치적 관계를 관리하기 는 쉬워진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마음껏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양국 경제가 재편되리라 예상되는 가운데 영국은 대대적으로 전환되는 반면, 아일랜드는 점진적으로 바뀔 듯하다. 영국은 유럽과의 교역을 줄여야 하 는 시기인 2020년대를 힘들게 보내겠지만 2020년대가 끝날 무렵에는 새 로운 무역 패턴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아마 그때쯤이면 유럽연합 회원국 에 대한 수출은 전체 수출액의 20퍼센트가 될 것이다. 2020년 유럽연합 회원국에 대한 수출이 전체 수출액의 40퍼센트였던 것과 대조된다. 홍콩 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로부터 이민자의 유입이 계속 늘어나고 유럽으로 빠져나가는 인구는 줄어들 것이므로 영국의 인구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특히 2030년 이후로는 새로 유입된 이민자들이 경제 성장에 크게 이바지 할 것이다. 영국이 현재 상태를 유지한다면 2050년에는 인구나 경제 규모 에서 독일과 어깨를 견줄지도 모른다. 노동력의 성장과 글로벌 수요에 따른 상품 및 서비스 생산 경제의 장점이 합쳐지면 영국은 유럽에서 최대 경제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
- 그에 앞서 몇 가지 선행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유럽연합을 탈퇴한 이후로 전 세계에서 영국의 입지가 어떤지 생각해보자. 일단 영국은 이민 자에게 나라를 개방해야 한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이민자를 끌어들여 경 제를 크게 부흥시키는 것은 흥미로운 도전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영 국은 외교나 안보 및 국방 분야에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앞 으로는 경제 협력 부문에서도 그와 같은 긴밀한 관계를 넓혀야 한다. 또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무역을 확대하되, 특히 인도와의 교역을 활성 화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중국과 경쟁 중인 미국에 유용한 친구가 돼야 한 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이 합법적으로 상업적 확장을 시도하는 것을 환 영해주고 적절한 발판을 제공해야 한다.
이 밖에도 유의할 점이 두 가지 더 있다. 영국은 글로벌 경쟁에서 비교 우위가 있는 분야를 어떻게 지원할지 고심해야 한다. 금융, 제약, 교육, 창 조산업 및 고급품 제조업 등이 대표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지역의 경제적 수준이나 생산성을 런던과 주변 지역과 비슷하게 끌어올림 으로써 고루 균형 잡힌 경제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2020년이 되면 튀르키예가 유 럽연합 정회원국으로 승인되고 한참 지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튀르 키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한 지 불과 1년 후인 1987년에 신청을 했다. 당시 헝가리, 폴란드와 같은 바르샤바조약 회원국 은 여전히 소련의 위성국으로 남아 있었다. 이제 유럽연합에 무슨 일이 일 어나든 튀르키예가 회원국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튀르키예가 정치적 다양성에 대한 유럽연합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도 있 지만 그보다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 다. 경제적으로 약간의 이점이 있더라도 정치적인 단점 때문에 상쇄되거나 완전히 가려버릴 것이다. 따라서 튀르키예는 유럽과 점점 멀어질 것이며 유럽과 가까워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튀르키예는 러시아와 더욱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유럽의 외부 링에 진입 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 유럽 내부를 들여다볼 때도 있지만 다른 지역적 이익을 위해 유럽 외부로 눈을 돌리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튀 르키예와 러시아는 중동 지역이 안정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원한다. 따 라서 튀르키예는 강경한 포퓰리스트 정부와 비교적 협조적인 자유주의 정 부 사이를 오가는 행보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둘 중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관계없이 강렬한 민족주의적인 색채는 계속 유지할 것이다.
- 2050년이 되면 유럽 대륙은 경제적 측면에서 지난 250년과 비교할 때 매 우 위축될 것이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근해 섬을 다 포함하더라도 유럽의 GDP는 전 세계 GDP의 15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는 1800년 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통틀어 최저치를 기록하는 수치다. 하지만 특정 지 역은 지금처럼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지역의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 활동의 본고장 역할을 할 것이고 일 부 기술 분야에서는 전 세계 리더의 역할을 해낼 것이다. 유럽에 거주하는 대다수 사람은 객관적으로 여유로운 생활 방식을 계속 누릴 것이다. 그러 긴 해도 유럽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게 약화할 것이다. 유럽연합의 존속 여부나 유럽연합의 뒤를 잇는 조직이 어떤 형태를 취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럽 전반의 인구 역학 및 경제가 더 큰 관련이 있다. 유럽은 인구 고령화가 심각하고 인구수가 적어도 더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유럽인이 이러한 전망에 부정적일 것이다. 브뤼셀의 관료나 유럽 연합을 옹호하는 정치인들은 이런 예측을 입에 올리지 않을 것이다. 전세 계적 성장에 관한 수치 자료를 내민다면 어디에서도 환영받기 어렵다. 고 등 교육을 받은 젊고 활기찬 유럽의 인재들이 해외에서 취업할 경우 유럽 의 앞날에는 더욱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현재 이탈리아 남부 지 역에서는 인재 유출 현상이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이 문제가 유럽 대륙 전체로 번진다면 유럽의 쇠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 하지만 유럽의 중요성이 감소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상황은 달라 질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유럽 대륙은 여러 가지 활동에서 다른 지역 보다 훨씬 유리한 편이다. 유럽은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는 곳 이며 평화와 안정이 보장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또한 전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어느 정도 힘을 보탤 수 있다. 유럽이 오랜 자존심 을 내려놓고 그들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즉 향후 30년 간 세계적으로 주요한 결정은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내릴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세 계적으로 주요한 결정은 앞으로 어디에서 정해질까? 아마도 아시아가 주 무대가 될 것 같다.
- 섬으로 된 국가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곤 한다. 해외로 눈을 돌려서 국제 사회를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해도 국제 사회에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애쓰거나 최대한 외부 세상의 영향을 차단하 거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일본은 전자의 행로를 선택했다. 그 결과 토요타, 미쓰비시와 같은 대기업이 전 세계적으 로 성공을 거뒀으며 이러한 성과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금세기에 와서 일본은 외부 영향을 차단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2050년 까지 차단 강도를 더욱 높일 것으로 보인다.
- 2050년이면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선진국으로서 우뚝 설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쯤이면 생활수준이나 의료 및 사회복지 수 준이 2020년의 한국과 비슷할 것이다. 베트남은 약간 뒤처질지 모른다. 이웃 국가인 라오스나 캄보디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교적 차분 한 나라인 미얀마가 인권에 관심을 더 보인다면 좋을 것이다. 그것은 세계 경제와 긴밀한 연합을 이루고 더 큰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이루는 전제 조 건이다. 그러나 이 점은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전반적으로 볼 때, 지 난 50년간 매우 빠른 성장 속도를 유지했으나, 이러한 속도를 계속 유지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캐치업 위주의 성장이 예상된다. 하지만 대다수 국가가 이제는 격차를 많이 따라잡은 것 같다. 싱가포르만 경제 발전의 정 점에 도달한 상태이며, 동아시아 시간대에는 싱가포르 이외에 이러한 성 장을 이룩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이 지역의 인구 고령화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사람들은 고속 성장보다 안정과 편안함을 더 바랄지 모른 다. 또한 남중국해를 장악하려는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라는 정치적 고민도 떠안고 있다. 전 세계 무역 판도가 미국과 중국의 경쟁 구도로 양분되고 있는데, 과연 어느 편에 서야 유리할 것인가? 중국으 로서는 남쪽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것이 유리한 것일까? 중국이 계속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면 후자의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무역 시장의 긴장이 고조되면 동남아시아 가 불리해질 수 있다. 실제로 무역 전쟁이 발발한다면 치명타를 입을 것이 다. 세계화를 기반으로 경제적 성공을 추구하면 세계 무역이나 경제가 휘 청거릴 때 그만큼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지금부터 2050년까지 위기의 순 간이 반드시 있을 텐데, 그럴 때마다 동남아시아는 매우 취약한 지역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전 세계에서 가장 회복성이 강한 지역이기도 하다. 향후 30년간 특히 남다른 회복력을 발휘해 빠르게 균형을 되찾아야 할 것 이다.
- 이스라엘 태생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은 2006년 예루살렘에서 개최 된 리스 강연(Reith lectures, 영국 라디오 BBC에서 주최하는 강연-옮긴이)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영구적으로 자리 잡을 터전을 원한다면 중동의 일부 가 되겠다고 마음먹어야 한다. 그리고 중동에 이미 형성된 문화를 이해해 야 한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중동이 사막이고 문화도 미개한 곳이라고 여 겼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들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그런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해서 아랍 문화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사실 유럽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중동의 유산과 유럽 유산을 동등하게 취급하면 유 럽 유산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개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하지 않 으면 이스라엘 국가는 이물질과 같은 존재라는 이미지를 영원히 탈피하지 못할 것이며 그런 존재로는 장기적인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사회이든 음 악이든 인체이든 이물질은 제한된 시간 동안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 바렌보임의 의도는 문화를 논한 것이지만 그의 주장은 정치와 경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정치적 경고는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을 자아내지만 경제 적 메시지는 상당히 희망적일 수 있다. 이스라엘이 이 지역 경제에서 훨씬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벌써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이스 라엘은 중동 전체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중동 지역이 선 진국 시장, 특히 미국에 대한 수출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 다. 그들이 가진 기술을 활용하면 에너지가 부족한 국가는 수입 연료에 덜 의존할 수 있고 에너지가 풍부한 국가는 석유 및 가스 수출에 대한 의존도 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내전으로 황폐해진 인접국이 재기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물론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얻을 기회도 열어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전 반적인 교육 및 경영 기준도 향상할 것이다.
- 중동은 여러 의미에서 불안정하고 취약한 곳이다. 하지만 엄청난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바렌보임이 언급했듯이 이스 라엘은 유럽의 유산을 윤택하게 만들고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문화도 갖추 고 있다. 하지만 시야를 좀 넓힐 필요가 있다. 자신들이 물려받은 유산만 이 그들의 나라를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중동 은 보편적 가치를 탐색하기에 그리 바람직한 곳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소 수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처우를 보면 매우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을 놓고 누구의 책임인지 따지는 것은 무의 미하다. 과거는 과거일 뿐, 누구도 이를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수 백 년의 전통에 따라 만들어진 이 지역의 관용이 향후 30년이라는 기간동 안 점차 그 진가를 발휘하리라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현재 요르단은 수백만 명이 넘는 난민, 수자원 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대처하면서 관용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중동에 더 큰 요르단이 생기면 된다는 식의 추론은 무의미하다. 그보다는 이 지역에 내재한 여러 가지 문화 적 전통을 존중, 확대하고 해묵은 갈등을 잘 억제해야 한다는 제안이 더 나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이 지역은 향후 30년간 사이에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 성도 있다. 전 세계가 그 점을 걱정하고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두려움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이곳도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이 있다. 중동은 오랫동안 역풍을 맞으며 힘겨운 시절을 보냈기에 이제 순풍에 올라탈 자격이 있다. 지금 당장은 희망을 품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다.
- 영국은 히틀러와 씨름을 하느라 너무나 많은 자원을 투여해 과거의 부와 권력을 잃게 됐다고 변명할 수 있지만 미국은 그런 변명거리도 없다. 나는 금세기 중반에 중국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 미국이 다시 한번 도약할 것이고 세기말쯤에는 미국이 다시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타이틀을 탈환하리라 생각한다. 미국은 그때까지 자신감을 잃지 않고 수십 년간 상대적인 쇠퇴의 시기를 잘 견뎌 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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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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