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컨슈머

사회 2023. 6. 21. 07:10

- 소비사회는 이 세상을 돌보는 방법을 결코 알지 못한다.
소비하는 태도는 스치는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든다. (한나 아렌트)
- 사람들은 물건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그 물건을 왜 원하는지도 모른다. 
사실상 물건은 아무 쓸모가 없다. 
캐딜락과는 사랑을 나눌 수 없다. 
그러나 모두가 그러려고 하는 듯 보인다. (제임스 볼드윈)
- 소비사회에는 필연적으로 두 종류의 노예가 있다.
하나는 중독에 사로잡힌 노예이고, 다른 하나는 질투에 사로잡힌 노예다. (이반 일리치)

- 모든 주요 종교와 정치 세력을 대표하는 도 덕적 지도자들(이 책의 앞부분에 공자와 벤저민 프랭클린,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베티 프리단, 올더스 헉슬리, 마틴 루서 킹, 존 메이너드 케인스, 마거 릿 애트우드, 척 D를 비롯해 더 많은 사람의 말을 실을 수도 있었다)이우 리에게 물질을 밝히지 말라고, 소비문화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충고했 다. 종종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18세기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조차 물질주의가 선이 아닌 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난 감 애호가들이 풍요라는 방종 속에서 성인 남성의 진지한 취미보다는 어린애들이 갖고 노는 것에 더 가까운 조잡한 장신구와 잡동사니나 따 라다닌다"라고 맹비난했다. 더 적게 사는 것은 늘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하는 행동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드물었을지라도 말이다. 소비주의를 경고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주장을 한다. 첫째는 돈과 물건에 대한 사랑이 탐욕과 허영, 시기, 사치처럼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는 거리가 먼 것들을 용인한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돈과 물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에 봉사를 하거나 지식 및 영적 생활을 추구함으로써 인 간 공동체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소비문화에 대한 또다른 두 가지 비난이 약 50년 전부터 널리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하나는 "간소하게 살아라, 다른 이들이 그저 생존할 수 있도록"이라는 밈에서 드러나듯이) 제 몫을 넘어서는 소비는 결국 다른 사람을 빈곤하게 만듦으로써 스스로를 부유하게 만드는 행동이라는 것 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요구는, 우리가 고대 산 림을 베어내 화장실 휴지를 만들고, 캔을 여섯 개씩 묶음 포장하는 플라 스틱 고리로 갈매기의 목을 조르고, 텔레비전 재방송을 보는 데 사용할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장대한 강물에 댐을 쌓고, 무엇보다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태워서 기후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더욱 긴급해졌다.
- 9.11 테러 이후 소비주의에 대한 우리의 유구한 불안은 증발 한 듯했다. 이 공격으로 미국은 최소 600억 달러와 50만 개 이상의 일 자리를 잃었다. 대부분의 피해는 테러리스트 때문이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가 갑자기 쇼핑에 열정을 잃은 결과였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자 소비하지 않는 것 자체가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당시 부시가 한 말처럼, "우리 편이 아니라면 테러리스트의 편"이었다. 부시의 연설은 우리가 소비를 논하는 방식을 바꾸어놓았다. 소비를 향한 열정이 최대한도 아래로 떨어질 때마다 세계 지도자들이 나가서 소비하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마치 소비가 선택 이 아닌 필수인 것처럼 말이다(결국 부시는 2006년에 대침체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자 미국인에게 실제로 "소비하라"라고 말했다). 
- 소비의 속도를 늦추면 분명 경제에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동시에 정확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최소한 지금 필요한 짧은 기간 내로는 지구온난화를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기후변화는 여러 병폐 중 하나일 뿐이며, 그 모든 병폐가 소비문화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 다. 신중한 전문가들조차 그 결과로 정치적 격변이나 대규모 인명 피해 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쇼핑을 멈춰야 하지만 멈추지 못한다. 이 소비의 딜레마는 간단히 말해 지구에서 인류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 거대한 사륜구동 자동차인 허머의 유명한 광고가 말했듯, "필요는 매 우 주관적인 단어이다. 소비문화에서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은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지품은 우리가 더 큰 사회질서에 속한다는 의미와 동시에, 우리가 고 유한 개인으로서 사회질서에서 한발 떨어져 있다는 의미를 끊임없이 전달한다. 우리가 의식하든 못하든 간에, 이러한 신호는 소비사회를 살 아가는 사람들이 매우 유창하게 사용하는 하나의 언어다. 그 과정이 어 찌나 자연스러운지, 우리는 특대형 트럭을 모는 온순한 남자나 금박을 입힌 조각상이 늘어서 있는 졸부의 집처럼 메시지가 지나치게 빤할 때 에야 그 언어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 딜린저는 세상이 쇼핑을 멈추고 약 48시간이 지나면 의류 및 패션산업 전체가 소비 심리의 급작스러운 붕괴에 대해 고찰하느라 떠들썩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격의 여파가 새로운 방향으로 퍼져나가며 수천만 명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이때다.
의류 무역의 총가치는 1조 3000억 달러다. 만약 패션의 왕국이 실존 하는 국가라면 경제 규모가 전 세계에서 열다섯번째로 클 것이며, 거의 미국 인구에 맞먹는 규모의 국제 노동 인력을 고용할 것이다. 오로지 면 직업에서만 8개국의 2억 5000만 명에게 임금을 지급하며, 이 수치는 세계 인구의 약 3퍼센트에 해당한다. 리바이스는 매해 생산되는 면의 1퍼센트 미만을 사용하지만, 그렇다 해도 리바이스의 판매량이 절반으 로 줄어들 경우(쇼핑이 감소할 때 보통 의류 산업은 전체 소비보다 큰타 격을 입는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규모가 큰 면 생산국인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약 125만 명의 소득이 날아가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의 주장은 수치로 입증된다. 2016년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앤드컴퍼니는 의류 열벌 중 여섯 벌이 생산된 지 1년 이내에 쓰레기장이나 소각장에 버려진다고 보고했다. 판매되지 않아서 버려지는 옷은 그중 작은 일부일 뿐이며, 대부분은 우리가 구매한 뒤 버린 옷이다. 이 옷들은 선물 받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옷, 행사에서 홍보용으로 나눠준 티셔츠와 모자, 성 패트릭의 날에 걸칠 초록색 옷이 필요해서 일회성으 로 산 것들이다. 그러나 저렴하다는 이유로 계속 입을지 깊이 고민하지 않고 구매한 옷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쨌거나 오늘날 생산되는 옷 다수가 오래가게끔 만들어지지 않는다. 양말과 스타킹은 몇 시간 만에 해지고, 셔츠는 단추가 떨어지고, 바 지는 찢어지고, 스웨터는 보풀이 생기고, 많은 옷이 줄어들거나 얼룩 이 생기거나 세탁기 안에서 망가지고, 티셔츠에는 인터넷 게시물의 주 요 주제인 자그맣고 불가사의한 구멍들이 생긴다(좀이 슬었을까? 벌레일 까? 아니다.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때문이다. 구멍이 난 것은 오늘 날 생산 라인에서 얇디얇은 천을 작업대 같은 것에 문대기 때문이다). 의류 매출의 극치는 흰색 티셔츠인데, 이 티셔츠는 값싸게 생산되고 쉽게 얼 룩지며 중고품점에서 헐값에 팔린다. 누구도 얼룩진 싸구려 흰색 티셔 츠를 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해 동안 옷 열 벌을 구매했다고 상상해보자. 보통 1년 이내에 내버 리는 여섯 벌을 제하면 네 벌이 남는다. 이제 한 해에 절반인 다섯 벌을 구매한다고 상상해보자. 여전히 네 벌을 갖고 한 벌을 내버릴 수 있다. 한마디로 이건 소비의 딜레마다. 옷 구매를 절반으로 줄이면 세계경 제에 소행성 충돌과 같은 충격이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의 옷장은 줄어 들기 시작하지도 않는다.
-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보통의 미국인처럼 산다면 지구 다섯 개만큼의 자원이 있어야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 이다. 명백한 문제는 우리에게 지구 다섯 개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지구가 하나밖에 없다.
비영리단체인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 Global Footprint Network는 이러한 계산을 거의 20년간 섬세히 조정해왔다. 이들은 먼저 지구를 헥타르(일반 축구장보다 약간 더 넓은 단위)로 나눈다. 이 헥타르들은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생물학적으로 생산적인 땅으로, 1헥타르당 그 생산성의 평 균값이 부여된다. '글로벌헥타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구획들을 전 인류에게 골고루 나누면 각자 1.6 글로벌헥타르를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의 땅과 물자원을 공평하게 분배했을 때 모든 개인에게 주어질 대략적인 몫이다. 물론, 전 세계의 자원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 필요와 욕구 외에도 소비 중단의 의미를 구분할 또하나의 방법이 있다. 바로 지구가 유지될 수 있는 이상으로 쇼핑을 하는가, 그렇지 않은 가다.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에 따르면 현재 인류는 개인 평균 2.7글로벌헥타르를 소비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생태발자국'의 크기이며, 이는 지구가 장기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양보다 170퍼센트 더 큰 규 모다(대부분의 국제적 자료와 마찬가지로 생태발자국 또한 투박한 기준이 다.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의 과학자들은 이 기준을 '인간이 자연에게 얼 마만큼을 요구하는지 측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값'이라 칭한다). 우리 모두가 일반적인 미국인처럼 생활한다면 지구가 얼마나 많이 필요할지 계산할 때 과학자들은 먼저 얼마만큼의 글로벌헥타르가 있어야 보통의 미국인이 자신의 소비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일반적인 미국인의 생태발자국은 8글로벌헥타르다. 8글로벌헥타르는 전 세계 개인에게 주어지는 1.6글로벌헥타르의 다섯 배이므로, 미국이라는 행 성을 지탱하려면 지구가 다섯 개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다른 국가에도 똑같은 계산을 적용할 수 있으며, 이렇게 하면 전 세계 에서 소비가 얼마나 불공평하게 발생하는지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우 리 모두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의 보통 시민처럼 산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지구를 절반으로 줄여도 모두 가 기존 생활수준을 유지할 만큼 충분한 자원이 남는다. 모두가 일반적 인 중국인처럼 산다면 지구가 두 개보다 조금 더 많이 필요하고, 모두 가 스페인인과 영국인, 뉴질랜드인처럼 산다면 지구는 약 두 개 반이 필 요하다. 우리가 이탈리아 행성과 독일 행성, 네덜란드 행성에서 산다면 지구 세 개가, 러시아인과 핀란드인, 노르웨이인처럼 산다면 지구 세 개 반이, 스웨덴과 대한민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의 생활방식을 누린 다면 지구 네 개 이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에콰도르 행성에서 산 다면 딱 지구 한 개가 필요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만큼이다.
에콰도르의 소비자 생활방식은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것으로 여 겨진다. 천연자원을 고갈시키지 않고 모두가 보통의 에콰도르인(예를 들면 페르난다 파에스)처럼 소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생활방식 은 "하나의 지구를 위한 생활one-planet living"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20세기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생활방식이 낯익을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하는 식사는 드문 호사였고, 옷은 물려받아 입었으며, 집 가까운 곳으로 휴가를 떠났고, 소비하는 삶의 속도는 무척이나 느렸다. 또한 그때는 일상에서 돈을 쓰는 것이 통칙이 아니라 예외라는 감각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널리 통용되는 규범이었던 시기를, 오늘날 많은 사람이 여전히 기억할 것이다.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에 따르면 아마 도 1970년이 인류 전체가 여전히 하나의 지구에 걸맞은 생활을 했던 마 지막 해였다. 물론 선진국들은 훨씬 일찍 그 수준을 넘어섰다. 생태발자 국네트워크의 분석가들은 미국의 평균 생활방식이 1940년에서 1960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고 추산 한다. 영국과 캐나다, 독일을 비롯한 대다수의 선진국도 마찬가지이며 스페인과 이탈리아, 일본 같은 일부 국가는 1960년대 중반에, 한국은 1979년에 그 선을 넘었다. 이런 식으로 한번 생각해보자. 현재 미국인 구는 1970년보다 60퍼센트 더 많지만, 총소비지출은 물가 상승률을 감 안해도 400퍼센트 증가했다. 1965년과 비교하면 그 수치는 거의 500퍼 센트에 달한다. X세대까지만 시계를 돌려도 지구 몇 개만큼의 과잉 소비를 없앨 수 있다.
- 가장 오래된 인류 문화에도 경제생활을 쉬는 날들이 있었지만, 영적 인 일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자 일주일에 하루를 콕 집어 현실적인 일 을 쉬는 날로 정한다는 생각은 유대교에서 안식일을 창시하면서 생겨 났다(이스라엘의 시인 차임 나크만 비알리크는 안식일을 "히브리 정신이 만들어낸 가장 눈부신 창작품"이라 말했다). 유대교 전통에서 안식일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을 중단하는 날이자 시누이Shinui, 즉 변화의 감각 으로 정의되는 날이었다. 안식일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분주함과 상 업, 거래로 가득차 있다는 생각에 맞서는, 즉 현재 우리가 익숙한 시간 에 맞서는 초기의 저항 행위였다.
- 유대교 안식일은 주로 토요일이지만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안식일은 주로 일요일이었다. 이러한 관행은 기독교인이었던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일요일마다 공무와 제조업을 금지한 1700년 전에 시 작되었다. 그 이후로 일요일 안식일은 많은 것을 의미해왔다. 음악을 즐 기며 마음껏 먹고 마시는 날, 격렬한 승마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체포되 거나 심지어 태형을 받을 수도 있는 도덕적 순결의 날, 텔레비전으로 스포츠 경기를 보는 날. 그러나 이날은 언제나 일하지 않는 날, 그리고 쇼핑하지 않는 날이었다.
- 미국 건국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물질주의적 생활방식에 저항한 시 도들을 추적한 『단순한 삶 The Simple Life』에서 역사가 데이비드 시David Shi 는 분주함이 소비문화의 가장 핵심 문제 중 하나라고 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돈이나 재산, 활동 그 자체는 단순함을 해치지 않습니다. 그러 나 돈을 향한 사랑, 물건에 대한 열망, 활동의 감옥은 단순함을 해치죠." 격리 기간이 며칠에서 몇 주로 늘어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 감 옥을 뒤에 남기고 떠나는 듯 보였다. 성취 중심적 사고와 끊임없이 계획 되는 업무가 점점 모습을 감췄고, 많은 사람이 안식일을 즐기던 과거의 시민들처럼 더 적은 것을 지니고 사는 기술뿐만 아니라 일을 더 적게 하 는 기술을 습득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시간은 두렵게 펼쳐지는 것, 채워 야 할 구멍이기를 멈추고, 넓어지고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때 작은 기적 이 일어났다. 삶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 봉쇄령이 내려지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친한 친구에서 거의 모르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나의 인맥 내에서 최대한 널리 설문 조사를 했다. 그 리고 생산성이 점점 피로해진다는 말, 시간 속에 침잠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차리고 있어요.” 한 사람은 이 같은 가장 단순한 말로 자신의 변화를 설명했다. “앞으론 다시없을 방식으로 봄을 알아차리고 즐길 기회를 얻었어요." 또다른 사람이 말했다. 많은 답변이 70년 전 매스 옵서베이션이 묘사한 잃어버린 세계를 되풀이하 는 것 같았다. "어떤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이 흥미로워요." 한 여성이 말했다. "국토횡단 열차 안에 있는 느낌, 상호작용의 본질을 떠올리게 해요." 전혀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몇몇은 격리를 일종의 안식일로 묘사했다.
팬데믹 이후로 텅 빈 고속도로나 버건 카운티처럼 주차된 차가 없는 쇼핑몰 주차장을 볼 때면 재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은 한편으로 초반의 봉쇄가 일종의 해방이기도 했음을 상 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버건 카운티에서 주말을 보낼 때 가장 먼저 알아 차리게 되는 것은 바로 일요일의 교통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발발했 을 때 우리가 목격했듯 이곳의 일요일에는 교통량 자체가 훨씬 적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저 양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퍼래머스 경찰은 일 요일의 차량 흐름이 평소와는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은 더 천천 히, 덜 공격적으로 운전하며, 뒷골목을 지름길로 이용하는 현상도 훨씬 적다
- 제이차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의 이산화탄소 오염은 1980년대 중반, 1990년대 초반, 2009년, 2020년, 이렇게 딱 네 번 줄어들었다. 이중에서 경제성장과 환경 파괴의 분리, 녹색 성장, 그 밖에 지구를 보호하려 는 다른 의도적 행위의 결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한 사례는 없으며, 네 경우 다 심각하고 광범위한 경기 침체가 관련되었다. 탄소 배 출량은 세상이 소비를 멈출 때 줄어든다. 배출량이 가장 급격하게 감소 한 것은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였는데, 그해 전 세계의 배출량이 7퍼 센트 줄었다. 그러나 팬데믹이 감소세가 가장 오래 지속된 사례는 아닐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탄소 배출량이 가장 크게 억제된 시기는 소련이 붕괴한 1990년대였습니다. 세계경제 대부분이 위축됐었죠." 사회구조가 소비와 환경오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오리건대학교의 사회학자리처드 요크Richard York가 말했다.
소련은 1991년에 무너졌다. 뒤이은 거의 10년간 옛 공산주의 왕국은 요크가 말한 '탈근대화'를 거쳤다. 구소련 국가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 은 거의 3분의 1이 줄었는데, 이는 팬데믹 동안 가장 단속이 엄격했던 4주간 중국에서 감소한 25퍼센트보다 더 큰 감소량이었다. 소련의 감 소 추세가 너무 극적이어서, 다수의 서구 국가에서 발생한 심각한 경기 침체까지 더해지자 지구 전체의 탄소 배출량이 2년간 줄었고 이어진 10년간은 아주 느린 속도로 증가했다. 당시 독일이나 네덜란드 같은 일 부 서유럽 국가가 이미 탄소 배출 감소에 힘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많이 잊히긴 했지만, 그 어떤 국가도 구소련 공화국만큼 탄소 배출이 급격히 감소하지 않았다. 요크는 이렇게 말했다. "경제 규모를 바꾸지 않으면 최소한 배출량을 크게 삭감하기는 힘들다고 볼 수 있습니다."
- IEA는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자진해서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즉 이들은 기후 오염과 끝없는 경제성장을 분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여기고, 경제를 '탈성장'하는 것(계획 하에 경제 규모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당신의 소비를 줄일 것입니다'라는 공약으 로 민주선거에서 승리한 국가를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바로가 말했 다. “우리는 인간 본성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따랐어요." 2008년 IEA는 세계경제가 더욱 공격적으로 경제성장과 환경 파괴를 분리하지 못한다면 2018년에는 에너지 수요가 15퍼센트 증가할 것이며, 그에 따른 탄소 배출량 증가가 미래 기후에 '충격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경고했다. 2018년에 그 보고서를 읽는 것은 마음이 복잡해지는 경험이었다. IEA의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IEA는 그해 기후 위기에 대 응하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이번에 IEA가 촉구한 가장 현실 성 있는 비전은 앞으로 20년간 에너지 수요를 4분의 1만 늘리면서 세계 경제의 성장과 인구 증가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꿈이 현실이 되려면 에너지 효율이 매우 극적으로 증가해야 하기 때문에, 전 세계의 그 어떤 선진국에서도 에너지 수요가 증가해선 안 된다. 
- 우리가 일상을 밝히면서 소비하는 충격적인 양의 에너지와 광공해를 동시에 줄일 수 있는 기술적 해결책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이용 가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해결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빛의 사 용이 소비자들의 태도에 달렸기 때문이다.
바다에 플라스틱을 버리거나 광물 찌꺼기로 토양을 오염시키거나 대 기에 이산화탄소를 쏟아부을 때, 그 결과는 수 세기는 아니더라도 수년 간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광공해는 그렇지 않다. “말 그대로 불을 끄면 됩니다.” 인공조명의 영향을 연구하는 영국의 생태학자 케빈 개스턴 Kevin Gaston이 말했다. "잃어 버린 것을 상당히 쉽게 되찾을 수 있죠."
에너지 절약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 분야에서 녹색 기술이 매우 천천히 발전하고 있는 것과 달리, 에너지 효율이 좋은 발광다이오드LED는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LED는 기존 모델보다 에너지를 최소 75퍼센트 적게 사용하며, 기구를 잘 설계하면 조명이 필요한 공간에만 빛을 씀으로써 광공해를 예방할 수 있다. 환경친화적 조명 시스템을 전 세계에 갖추는 것이 쉽게 달성 가능한 일이라, 빛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더 어려운 세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취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조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LED가 인기를 끌면서 우리 가 연료비에서 절약한 돈을 더 많은 조명을 사는 데 쓴다는 증거가 늘고 있는 것이다. '
- 철의 여인은 자본주의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 중 한 명이었으나 자본주 의를 바라보는 대처의 관점은 암울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자본 주의를 모든 것을 총체화하는 이념으로 그려냈다. 즉 일종의 감옥인데, 많은 수감자에게 편안하게 마련된 감옥인 것이다. 규제되지 않는 시장, 개인주의, 사기업, 긴축이라는 대처의 비전은 영원히 성장하는 경제를 핵심으로 하고 있었다. 이 비전은 자주 인용되는 대처의 말, “대안은 없 다 There is no alternative"의 앞 글자를 딴 TINA 정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정말이지 따분한 세계관이었습니다." 빅터가 말했다.
이 세계관은 지금도 지배적이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상의 종말 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라는 것이 최근의 선전 구호다. 성장의 문제 는 소비의 딜레마의 핵심인데, 소비 둔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듯 보이 는 바로 그 주장의 내용이 소비가 둔화되면 성장이 끝난다는 것이기 때 문이다. 소비경제를 끝없이 확대하는 것이 시의회에서 대통령 집무실 에 이르는 모든 정치인의 목표이며, 국립공원을 만들고 이민법을 제안 하고 코로나19 사망자 수를 얼마나 용인할지 결정하는 등의 모든 일이 성장을 억제할 것인가 촉진할 것인가의 시험대에 오른다.
빅터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거의 모든 인간 역사상 경제가 적게 성장하거나 아예 성장하지 않는 것이 규범이었기 때문이다.
- 재앙의 역설은 사람들이 종종 그때를 애틋하게 돌아본다는 것이다. 1920년대에 소수의 사회과학자가 '재난 연구'라는 분야를 만들면서 그 이유가 파악되기 시작했다. 초기의 중요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할리우 드 영화에서 보는 것과 달리 전쟁이나 지진, 허리케인 같은 대재앙을 겪 은 사람들은 서로를 이용하기보다는 돌보고, 원초적 두려움이 아닌 이 유와 목적을 지니고 행동할 확률이 높다.
재난 연구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사회학자 찰스 E. 프리츠Charles E. Fritz 는 제이차세계대전으로 5년째 공포와 궁핍에 시달리고 있던 영국에 도 착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가족 및 친구들의 죽음과 부상에 원통해하고 오랫동안 자신의 생활을 박탈당한 데 분노하는, 전 쟁에 지쳐 공황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상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발 견한 것은 최선을 다해 삶을 즐기고 놀라우리만큼 명랑함과 삶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찬란하게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쓰이는 표어 '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Keep Calm and Carry On'에서 잘 드 러나는 영국의 이 사례는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독일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회복력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알려지지 않았는데, 독일에서 공중폭격의 심리적 영향을 평가한 결과 폭격을 가장 심하게 당한 도시가 사기 또한 가장 높았다. 물론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 누구도 전 세계의 절박한 난민들이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주 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절대적 결핍의 사례를 제외하면 재난을 마주한 사람들은 더 적게 가진 삶에 빠르고 꾸준히 적응하며, 보통 그 과정에서 더 친절하고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되고 서로 더 똘똘 뭉치고 관대해진다.
- 이 암담한 상황에 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다. 경제적 재난은 종종 소비 와 관련된 지위의 압박을 완화해준다. 예를 들어 경기 침체가 발생하면 소득 불평등이 더욱 악화될 수 있지만, 부의 과시는 천박한 것으로 여겨 진다. 사람들은 소박한 옷차림을 하고 호화스러운 집과 자동차 구매를 줄이는 경향을 보이며, 검약이 더욱 용인된다. 핀란드인은 집단으로서는 과거의 불황에 별 향수를 느끼지 않지만, 그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많은 핀란드인이 그때를 자유로웠던 시기로 기억한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했던 1990년대의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에 인기를 끈 화사한 색감의 의류와 대대적으로 선전한 브랜드는 검은색 옷, 가죽 재킷, 청바지에 밀려났고, 옷은 해진 것일수록 더 좋았다. 취업의 기회가 차단되자 야망이 좌절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 또한 사라졌다. “소비가 적은 생활방식을 따르면 많은 문제를 피할 수 있어요." 한 여성이 내게 말했다. “무슨 옷을 입을지, 자동차와 집이 최신식인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거든요." 이러한 안도감은 소비를 멈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심리적 변화 중 하나다.
- "북유럽 국가에서 자랐고 이전에는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던 제가 미국으로 이주한 뒤 순식간에 그런 기분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이 놀라 웠어요. 소비를 늘려야 할 것만 같았죠." 파르타넨이 말했다. "잘살고 있 다는 느낌,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게 해줄 물건을 더 많이 사고 싶어져 요."
파르타넨의 경험은 불평등 연구의 결과를 거의 그대로 보여준다. 사 람들은 물질적·심리적 필요를 채우는 데 자신이 없어질 때 더욱 물질 주의적으로 변하며, 불평등은 그러한 불안을 악화시킨다는 이론을 방 대한 양의 연구가 뒷받침한다. 부자와 빈자 사이의 크나큰 격차 또한 자신의 생활방식을 타인의 것과 비교할 적나라한 기회를 제공하고, 그 결 과 우리는 베블런이 말한 '자기 존중이라 부르는 만족스러운 상태'에 이 르기 위해 어떤 물건과 경험을 소유해야 하는지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마침내 파르타넨은 다시 핀란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즉시 뉴욕에서 입 었던 성공을 암시하는 옷들을 치워도 되겠다는 기분을 느꼈다. 지위에 집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라지자 자신이 진짜로 성취하고 싶은 것 이 무엇인지 더 자유롭게 고민할 수 있을 듯했다. 언젠가 영국의 한정 치인이 말했듯, "아메리칸드림을 꿈꾼다면 핀란드로 가는 게 좋다".

- 파타고니아가 광고에 접근하는 알쏭달쏭한 방식에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바로 '디마케팅 demarketing'으로, 웨스턴워싱턴대학교의 소비자 연구원인 캐서린 암스트롱 술레Catherine Armstrong Soule에 따르면 디마케팅은 역사적으로 광고 전반의 '작고도 작디작은' 일부를 차지했다. 1970년대에 처음 사용된 디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너무 많이 구매하지 말라고 설득할 방법을 연구했다. 그 시대의 디마케 팅 사례로는 버드와이저 맥주와 코닥의 오리지널 인스터매틱 카메라, 발리 여행이 있었다. 전부 통제가 불가능할 만큼 수요가 급증해서 디마 케팅을 해야 했던 사례다.
당시 사람들은 세계의 자원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 하고 있었다. 처음 디마케팅을 고려한 소비자 연구원인 필립 코틀러와 시드니 J. 레비sidney J. Levy는 디마케팅을 소비를 멈춘 세상에 적용하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이들은 산업 생산성과 풍부한 자원이 힘을 합쳐 상품의 '과잉 공급'을 만들어낸 역사의 긴 기간에 마케팅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1970년대에 대다수 사업가는 광고업을 '자원이 부족한 경제에서는 크게 줄어들', 상황이 좋을 때만 가능한 직업으로 여겼다. 그러나 마 케팅이 반드시 소비를 늘리는 방법일 필요는 없다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코틀러와 레비는 말했다. 마케팅의 진정한 목적은 그저 '수요를 기업이 다룰 수 있는, 또는 다루고자 하는 정도와 구성으로 조정하 는 것'이었다. 마케팅이 코틀러와 레비가 말한 '디컨슈밍deconsuming', 즉 수요와 소비의 감소를 격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 우리는 어떤 사람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소비를 줄인다는 사실을 알 때 그 행동에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한다. 그 행동은 과시적 비소비가 된다. “그게 우리가 하는 소비의 상당 부분을 이끕니 다. 우리가 어떤 상품을 고르는 이유는 그게 나와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세상이 알아주 길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죠." 암스트롱 술레가 말했다. “반소비를 실천 하는 소비자에게 그러한 의미를 일부 되돌려준다는 생각, 제가 볼 때 그 러려면 전통적 의미의 광고가 많이 필요해요."
- 소비문화의 근본적 특징은 부가 더이상 안녕을 증진하지 않고 훼손 하는 지점을 흐리고 몽롱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몇십 년 전부 터 중국인 수백만 명은 소득 증가의 혜택을 누리며 본인과 가족을 가난에서 구했다. 그러나 가차없는 지위 경쟁과 뚜렷한 불평등, 나이든 물질 주의자와 지나친 탐욕의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청년 간에 점점 벌어 지는 세대 차이로 말미암아 부가 국가의 행복에 기여하는 정도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중국 소비문화의 가장 눈에 띄는 측면은 '녹색 물질주의'의 강도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생태 문명'을 가장 앞장서서 지지하는 국가 중 하나이며, 갈수록 풍요로워지는 중국의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은 이 문명 속에서 계획과 기술을 통해 '녹색화'될 것이다. 거주자가 거의 15억 명에 달하는 국가로서는 예사롭지 않은 도전이다.
-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의 경험이 변했다. 빵을 굽는 것은 단순 하고 오래된 자립의 행위이며, 그 자체로 큰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자가 격리하는 삶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가족을 위해 아름다운 부엌에서 만든 아름다운 빵덩어리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가득 채우면서 제빵은 거의 즉시 지위와 야심, 성취의 경쟁적 표지가 되었다. 운동은 건강뿐만 아니라 세상에 과시할 완벽한 복근을 위한 것이 되었고, 직접 찾아가든 영상통화를 이용하든 갑자기 모두가 그동안 잊고 지낸 관계 를 돌보기 시작한 것 또한, 보통 멀리 떨어져 지내는 아빠와 어떻게 대 화를 나눠야 할지 모르는 어린아이부터 알고 보니 들끓는 분노를 품고있던 오랜 친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적 문제로 뒤범벅되었다. 많 은 사람이 코로나 위기에서 발견한 좋은 것들을 지켜나가겠다고 다짐 했다. 근무시간이 짧아지고 삶의 속도가 느려졌으며 작은 것들에 감사 하게 되었고 소중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과 자신을 위한 시간이 늘어 났다. 즉 외재적인 자신과 내재적인 자신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은 것이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소비문화가 다시 활발해지고 상업생활이 조심스레 되돌아오면서 대다수가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갔다.
- 건축가 존 브링커호프 잭슨은 "폐허가 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 적 이 있다. 신세계에 완전히 들어서려면 구세계의 퇴락을 지켜봐야 한다. 지금껏 살펴봤듯이, 경제적 재난 속에서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결코 드 물지 않게 발생한다. 대침체 때 파타고니아는 디컨슈머 시장의 진정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핀란드 불황 당시 사람들은 과시적 소비에서 벗어나 안도감을 느꼈으며, 팬데믹 동안 수백만 명이 혼란 속에서 새로운 가 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기업가들과 대침체 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들 중 다수가 대침체를 통해 피닉스가 더 좋은 도시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몇 명은 경 기침체 이전에 피닉스가 전 세계 체인 레스토랑의 수도'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침체로 미국 가정이 외식을 줄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올리 브가든과 칠리스그릴을 비롯한 체인 레스토랑이 문을 닫으면서 파산한 대형 매장들과 마찬가지로 빈껍데기가 되었다. 그렇게 생겨난 빈 공간 에 개인이 소유한 동네 식당이 번성했고, 지역 고유의 장소감이 뿌리내 리기 시작했다. "대침체에 진입할 때 우리는 이른바 거래경제에 속했습 니다." 애리조나주립대학교의 부동산학과 교수인 마크 스탭 Mark Stapp이 말했다. "그러나 대침체에서 빠져나오면서 변혁적 경제가 되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피닉스의 경제가 회복되자 상황이 안 좋았을 때 파산 했던 장소성도 특성도 없는 사업체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 리버모어 소방서에 달려 있는 것과 같은 질 좋고 오래가는 전구가 오 늘날 우리가 아는 금방 고장나는 전구로 바뀌기 시작한 때는 1924년이 다. 그해 필립스와 오스람, 제너럴일렉트릭GE을 비롯한 세계 최대 조명 기업의 대표들이 스위스에 모여 최초의 국제적 기업 카르텔인 피버스 Phoebus를 결성했다. 당시 개발자들은 전구의 수명을 점차 늘려가고 있 었고, 이는 피버스의 한 수석 회원이 매출의 '수'이라 묘사한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일단 모두가 오래가는 전구로 자기 집을 채우고 나 면 아무도 새 전구를 사지 않을 것이었다.
피버스의 회원사들은 조명의 수명을 1000시간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그로부터 30년이 더 지난 1960년, 탐사 전문기자인 밴스 패 커드가 '계획적 진화'라는 용어를 대중화했다. 이 단어는 상품이 빨리 낡고, 고장나고, 부서지고, 고칠 수 없고, 구식이 되도록 설계하는 생산 업체의 의도적 노력을 지칭한다. 전구의 수명을 단축하겠다는 피버스 카르텔의 결정은 계획적 진부화가 산업 규모로 이뤄진 최초의 사례 중 하나로 간주된다.
- 조명 산업에는 '소켓 포화 상태'라는 용어가 있다. 수명이 짧은 전 세계의 백열전구 대부분이 소켓에서 분리되어 내구성 좋은 LED로 교체되는 시점을 묘사하는 용어다.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이때가 되면 온 세상이 전구 쇼핑을 멈출 것이다. 모든 가정의 전구가 인간 생애의 절반 동안 고장나지 않는다면, 조명 산업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런 던에서 활동하는 조명 시장 분석가 파비안 홀첸바인 Fabian Hoelzenbein은 이를 '10억 달러짜리 질문'이라 칭했다.
2010년대 말 무렵에 '소켓 포화 상태'는 목전에 닥친 듯 보였다. 그러 나 결국엔 도달하지 못했다. LED가 소비문화에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미 그중 한 가지 방법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LED로 아낀 돈을 조명을 더 많이 사는 데 썼다. 그리고 1920년대에 오래가는 백열전구에 뒤이어 수명이 짧은 백열전구가 등장했듯, 오래가는 LED에 뒤이어 수 명이 짧은 LED가 등장했다. 대부분 아시아에 위치한 수많은 새 제조업 체가 순식간에 비용과 품질을 끌어내렸다. 내구성 높은 기술이 쓰고 버 리는 기술로 변하고 있었다.
- 내구성은 공유경제에 특히 중요한 요소다. 처음에 물건 공유는 그 특 성상 소비를 줄이는 행동으로 널리 홍보되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나 전 기밥솥을 함께 쓰면 각자 그것들을 하나씩 소유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공유경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차량 호출 시스템인데, 이 체제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도록 장려하기보다는 우버 같은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하고 도보 이동이나 자전거 및 대중교통 이용을 덜 하도록 유 도했다. 많은 지역에서 차량 호출 시스템은 교통 체증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악화했다. 그러나 내구성은 더욱 근본적인 방식으로 물건 공동 사용에 영향을 미친다. 차량을 공유함으로써 발생하는 끊임없는 마모 와 손상을 버틸 수 있도록 특별 제작된 것이 아니라면 공유 차량은 더욱 빨리 고장난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공유조차 계획적 진부화로 물건이 훼손된다고,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있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구 대여소를 수 년간 운영중인 줄리 스미스가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것 중에 물 려받은 오래된 물건보다 품질이 좋은 것은 단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스미스가 내게 말했다. "그냥 물건이 그만큼 좋지가 않아요. 금속도 옛 날과 같은 금속이 아니에요. 삽을 갈아서 날카롭게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애초에 갈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진 거여야 그렇게 하죠."

- 천 년도 더 전에 일본에서 와비사비라는 실천이 등장했다. 이 용어는 뜻을 온전히 번역하기 어렵지만, 사색에 잠긴 비애와 시간의 흐 름을 동시에 환기한다. 마치 폐허가 된 곳을 걸어갈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형태의 와비사비는 바랜 것, 녹슨 것, 단순하고 수수한 것을 찬미한다. 와비사비는 킨추기에서 가장 뚜 렷하게 드러나는데, 500년 역사를 가진 수리 기술인 킨추기는 떨어뜨 려 깨진 도자기를 복원할 때 균열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금이나 은을 섞 은 옻칠로 더욱 눈에 띄게 강조한다. 그렇게 생긴 반짝이는 무늬는 깨진 물건을 흠 하나 없던 때만큼, 또는 그때보다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다른 거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와비사비 개념 역시 소비문화에 잡아먹혔다. 와비사비 디자인에 관한 책들은 이 개념을 '고상함의 극치'라 칭송한다. 겨울 들판의 바람에 휘날리는 매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세 심하게 고른 골동품으로 장식한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돈된 집들 이 들어섰다. 아이가 살고 있을 거라 상상하기 어려운 종류의 집들이다. 그러나 와비사비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하는 개념일 수 있다. 와 비사비는 변색되고 오염된 것, 좀먹고 지저분해진 것, 심지어 추하고 구 리게 만들어졌거나 불완전한 것까지도 전부 껴안는다. 와비사비는 생김새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불완전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삶의 태도다.
소비를 줄인 세상에서 우리가 소유한 물건들은 점점 나이들어갈 것 이다. 더 많은 물건이 낡고 해져 보일 텐데, 전처럼 그것들을 새 물건으 로 대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쉽게 우울해질 수 있다. 실 제로 오늘날 우리가 새로움에 집착하는 이유가 노화와 죽음에 대해 생 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와비사비는 우리가 그러 한 우울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응용법이다.
- 너저분하고 칙칙하고 낡고 허접한 미래는 공상과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감 중 하나다. <블레이드 러너 2049 > 속의 우중충한 거리 위거 대한 홀로그램, <매트릭스>에서 네크라인에 잔뜩 구멍이 난 네오의 너 절한 추리닝, 고래수염으로 만든 크리놀린과 양자컴퓨터, 체펠린 비행선, 우주여행이 뒤섞인 스팀펑크***의 계속되는 인기는 전부 와비사비다. 1970년대의 고물차 같은 우주선, 지저분한 술집, 해지고 덧댄 기모노(천년도 더 된 스타일) 차림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스타워즈>의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애니메이션 <월-E>의 배경은 인간이 이주한 번쩍 거리는 우주 식민지보다 왜인지 더 고향처럼 느껴지는 황폐화된 지구다. 이 영화의 촬영감독인 제러미 래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바로 쇠락한 것의 아름다움입니다. 버려진 낡은 건물에 들어갈 때의 느낌 과 비슷하죠."
- 서구 자본가들 사이에서 성장에 대한 무관심은 이단이다. 그러나 성 장없는 사업은 이미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누구도 가족이 운영하 는 동네 식당이 끝없이 확장하길 바라지 않는다. 갭과 파타고니아와 함 께 일했던 제품 혁신 컨설턴트 오하라 테츠야는 최장수 사업체들 내에 서 이러한 모델이 흔하다고 말했다. 오하라는 캘리포니아에서 MBA를 마치고 그가 '구식' 사업 가치라 부른 것과 함께 졸업했다. "시장점유율 을 차지하는 방법, 가능한 한 빨리 성장하는 방법, 비용을 줄이는 방법, 소매가격을 올리는 방법이 그거예요." 그러나 그의 가족은 교토에서 거 의 1세기 동안 섬유 가공제를 만들고 있었고, 그는 자라면서 다른 오래 된 회사들을 여럿 알게 되었다. 일본은 그런 오래된 회사들의 온상으로, 100년이 넘은 회사가 거의 3만5000개에 달하며 500년 이상을 버틴 회사도 수십 곳이다.
- 르네상스 시기에 개인의 사치는 대체로 의혹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닫힌 문 뒤에서 조용히 즐겼고, 자비로 공공건물 을 짓거나 군사비를 대거나 축제를 후원하거나 특히 교회를 세움으로 써 신과 들썩이는 대중의 눈앞에서 부유함을 정당화해야 했다. 역사가 프랭크 트렌트먼은 "호화롭게 장식한 예배당은 오늘날의 페라리와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중국의 초기 소비문화에서 안목은 부 유함 자체보다는 골동품을 소유하거나 시를 쓰고 비파를 연주하는 능 력이 탁월한 데서 드러났다. 과거에는 부유층이 반물질주의와 반소비 주의, 심지어 반자본주의 가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뉴욕 세니카호 수에 있는 호바트앤드윌리엄스미스대학의 역사학자이자 미국의 부자 들을 연구하는 몇 안 되는 학자 중 한 명인 클리프턴 후드Clifton Hood가 말했다(그는 "어떤 주제를 연구한다는 것이 꼭 그 주제를 미화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예를 들어 18세기와 19세기의 거의 내내 미국의 부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부자와 연결하는 핵심 가치, 즉 대놓 고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행위를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보였다. "미국 의 상류층은 중산층과의 차별화에 늘 관심이 있었습니다." 후드가 내게 말했다. "그러한 차별화의 상당 부분이 자신들은 더 고상하고, 더 특별 하고, 더 교양 있고, 예술을 더 애호하고,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 더 많고, 더 세련되었다는 생각과 관련이 있었죠."
그 시대에 상류층이 되려면 돈이 많아야 할 뿐만 아니라 언어능력과 교육, 위생, 에티켓, 의복, 행동거지 면에서 높은 기준을 따라야 했다. 사 교계 구성원들은 지식이나 공공복지, 또는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거나 최소한 기여하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대다수가 그림과 글쓰기, 자수, 이와 유사한 다른 기술에 능했고, 영어 이외의 언어에 정통했다. 이들은 오로지 이러한 자질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했기에, 당시 인구조사에서 일부는 이들의 직업을 그저 '귀족'이라고만 적기도 했다.
- 후드는 "상류층이라는 것은 밥벌이를 하지 않는다는, 또는 밥벌이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중상류층이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할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뽐내기까지 하는 오늘날과는 180도 다르죠."
미국의 초기 명문가는 유럽 귀족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이미 가진 것 이 많았던 이들은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을 무시했고, 심지어 자수성 가한 상인과 무역상, 사업가들이 자신보다 부유해졌을 때도 태도를 바 꾸지 않았다. 물론 이들의 반물질주의적 태도가 환경에 대한 책임이나 간소한 삶을 향한 이상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들 의 지위와 특권을 유지하는 데 사용한 우월의식의 한 형태였다. 그러나 이들의 삶의 방식은 부유함이 취할 수 있는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19세기 후반의 부유층을 조롱했을 때 그가 분노한 대상은 여가를 즐기고 궂은일을 더 낮은 계급에게 떠넘길 수 있는 그 들의 특권이었다. 베블런이 과시적인 소모성 지출이 부유층이 지위를 드러내는 한 방법이라고 주장하긴 했지만, 이를 위해 반드시 계속해서 무언가를 소비할 필요는 없었다. 저렴한 물건보다 딱히 더 유용하지 않 은 값비싼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똑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 었다. 더 질 좋은 것을 더 적게 사는 경제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이 개 념을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갖는 것'이라 비웃을 때면 베블런의 조소가 떠오른다.
"부자는 수많은 것 중에서 가장 귀하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낸다. 이들의 소비량은 빈자의 소비량과 그리 다르지 않다"라고, 1세기 전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말했다. 이 발언은 확실히 과장된 면이 있지만 선진국에 거주하는 일반인의 눈에 어딘가 부족해 보이리라는 것은 분 명한 사실이다. 애덤 스미스 또한 물질주의에 의구심을 가졌다. 그는 부 유함 자체를 위한 부의 추구가 "신체의 피로"와 "근심"을 낳는다고 말 했으며, 그리스 철학자였던 견유학파 디오게네스를 존경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알렉산더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 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 더대왕의 그림자가 일광욕을 방해하지 않도록 대왕이 옆으로 비켜서는 것이 자신이 바라는 바라고 답했다.
미국 문화는 결국 천박한 돈벌이와 과시적 소비를 찬양하게 되었고, 사업가와 기업가를 영웅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럼에도 부자의 소비 는 거의 20세기 내내 억압되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경기 침체와 전쟁, 사회불안이 표면에 드러나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부유층은 더욱 수수하고 조용한 삶을 추구했고, 때로는 그러기 위해 별장지인 햄프턴이나 뉴포트에 있는 대저택을 매각하기까 지했다.
- 리바운드 효과는 다방면으로 이상하다. 에너지 체제에서의 기술 변 화에 대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하는 엘리자베트 뒤치케Elisabeth Diütschke에 따르면, 어떤 리바운드는 '도덕적 허가', 즉 좋은 행동으로 나 쁜 행동을 정당화하는 경향에서 비롯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비건 식단을 하기로 결정한 뒤 (육류 생산에서 발생되는 탄소 배출량이 많 기 때문에) 비행기를 더 많이 타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독일의 한 연 구는 연비가 좋은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이 운전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 을 발견했다. 뒤치케는 좋은 연비가 더 크거나 힘이 좋거나 호화로운 자 동차를 사도 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하게 전기차 를 구매한 노르웨이인들은 휘발유차를 탈 때보다 볼일이 있을 경우 자 동차를 더 많이 사용했다. 실제로 전기차 이용이 늘어나면서 겨울에 전 기차를 미리 덥혀놓거나 쇼핑하는 동안 반려견이 편안히 있게끔 차에 어컨을 틀어놓는 등의 다양한 낭비 행위가 더 많이 보도되었다. 뒤치케 는 이러한 리바운드 때문에 의도적으로 '녹색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조 차 본인의 생각보다 별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거나, 아예 차이가 없거 나. 심지어는 환경에 더욱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 그러나 질 좋은 물건을 적게 사는 것처럼 가장 단순해 보이는 소비주의의 해결책에도 리바운드가 따른다. 조잡한 신발 대신 잘 만든 신발을 큰돈을 주고 사면 리바운드 효과를 없앨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똑같은 소비재를 구매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쓰면 그만큼 다른 소비재를 살 돈이 덜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 좋은 새 신발을 사는 데 들어간 돈은 신발을 만든 노동자와 관리자, 원재료 공급자의 임금 등등으로 재분배된다. 그리고 그 돈은 다시 소비된다. 1년치 의류 예산으로 개인 강 사에게 새로운 언어를 배워서 생태발자국을 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그 개인 강사가 자신이 번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리바운드 없이 돈을 쓸 방법은 많지 않다. 먼저, 더욱 유해한 형태의 소비를 줄이는 상품을 구매하는 데서 시작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휴가 때 비행기 이용을 대체할 캠핑 장비를 구매하는 것이다. 빚을 없애서 재 정적인 안정감을 얻는 것도 한 방법인데, 심리학자들이 증명한 바에 따 르면 재정적 안정감이 물질주의의 강도를 낮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다. 또한 소비를 즉시 줄여주는 조직(예를 들면 도서관)이나 토지와 물 의 자원 개발을 막는 조직에 기부를 할 수도 있다. 공정 추구 행위로서 사람들이 기본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돕는 단체에 돈을 보내면, 본인 의 소비 감소를 통해 그들에게 꼭 필요한 소비의 증가를 곧바로 상쇄할 수 있다. 비슷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정부에 세율 인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 고래들은 오래전부터 구조되기를 기다려왔다. 먼저 고래는 1859년 이후에 구조되었어야 했다. 당시 펜실베이니아 타이터스빌에서 채굴 전 문가로 일하던 에드윈 드레이크가 흙과 암석을 21미터 깊이로 뚫고 들 어가 석유 채굴시대, 다른 이름으로 현대 산업시대의 문을 열었다. 2년 후, 잡지 『배니티페어』에 화려하게 차려입은 향유고래들이 '유정은 끝 이 좋다 Oils Well That Ends Well'"라고 적힌 현수막 아래에서 샴페인을 따며 춤을 추는 만화가 실렸다. 고래기름의 모든 사용처 (비누 만들기, 산업 장 비의 톱니바퀴에 윤활유 바르기, 등과 초로 전 세계에 불 밝히기)에서 석 유제품이 고래기름을 대체하리라는 것이 이 만화의 골자였다. 피비린 내나는 포경 산업은 이제 끝을 맞이할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석유를 이용해 고래를 더욱 많이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고래잡이배 건조에 화석연료가 사용되면서 배가 더 빠른 속도로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이 가능해졌고, 해안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고래기름을 가공하고 고래고기를 냉동할 수 있는 대형 가공선 이 등장했다. 심지어 석유와 가스는 죽은 고래가 가라앉지 않도록 고래 를 풍선처럼 부풀리는 펌프 가동에도 사용되었고, 이로써 더 많은 종류 의 고래를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고래기름을 석유로 대체한 제 품이 꾸준히 발명되었음에도, 수십 년간 고래잡이들은 고래를 하루 평 균 100마리씩 도살했다. 일단 무언가를 소비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좀 처럼 그 소비를 줄이려 하지 않는다.
그때 고래가 다시 구조되기 시작했다. 1986년 전 세계의 고래잡이 국 가 대부분이 대규모 산업 포경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이때쯤 대다수의 고래종이 '상업적 멸종' 상태였는데, 이는 개체수가 너무 적어서 고래를 시장에 팔아서 버는 돈보다 고래를 발견해서 죽이는 데 들어가는 비용 이 더 크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동물인 흰긴수염고래를 비롯해 일부 고래종은 거의 전멸 상태였다. 마침내 고래의 개체수는 줄지 않고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후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 거대한 생명체들 을 죽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스러운 징조가 나타났다. 한 고래 연구 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실제로 바다로 나가 쇠막대기로 고래를 찌르지 않는다. 그저 고래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을 뿐이다."

- 2010년, 문학 교수인 가토 노리히로가 일본 청년 사이에서 등장한 새 로운 유형인 비소비자에 대해 설명한 글이 발표되어 널리 읽혔다. 가토 는 "한계가 점점 더 명백해지는 세상에서, 나이보다 성숙한 일본의 청 년들은 성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며, 한계 없는 성장의 꿈을 '발전의 초기 단계'라고 칭 하기까지 했다. 가토가 말한 비소비자는 도쿄 어디에나 있다. 영원할 것 처럼 보이는 경제 침체를 마주한 많은 이들이 비자발적으로 간소한 삶 을 살며 중고 의류를 입고, 손바닥만 한 아파트에 살거나 부모님 집에 살고, 상점과 나이트클럽에서 돈을 날리기보다는 온라인에서 생활한 다. 바깥세상에서 이들의 서식지는, 미국에서 설립되었지만 현재는 일 본에 기반을 둔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이다. 이들이 편의점에서 먹는 것은 속을 채운 1달러짜리 주먹밥처럼 자신들이 탄생에 기여한 일본 특유의 요리, 바로 콘비니(컨비니언스) 식품이다. 베르사체나 루이비통 은 보이지 않는다. 문화 저널리스트 타일러 브륄레는 일본이 “세계 최초의 포스트 럭셔리 경제"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 특정 비소비자들은 히키코모리, 즉 집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이라 고 비난받아왔다. 그러나 이들은 집에 틀어박혔다기보다는 경제에서 차단된 것에 가깝다. 이들은 특정 삶의 방식(이 경우에는 소비자본주의) 이 무너지는데 그 무엇으로도 그 방식을 대체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공 허를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도쿄의 고동치는 심장부가 아닌 가장 먼 외곽에서 이와는 다른 도쿄의 미래상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 기를 들었다.
- 소비를 뜻하는 일본어는 쇼히다. 이 단어는 19세기에 서로 다른 두 단어가 합쳐져 생겨났는데, 히는 쓰다라는 뜻이고 쇼는 불태워서 재로 만들듯 소멸시킨다는 뜻이다. 영단어의 어원도 비슷하다. 본래 소비는 불길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듯 기존에 존재하던 것을 완전히 소진해 아 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우리가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소비한 다면, 모든 것이 소비의 대상이 될 것이다. 더 많은 기회와 소진, 더 많은 경험과 산만함, 더 많은 깊이와 얄팍함, 더 많은 온전함과 공허함. 우리는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을 소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소비하고 자기 자신을 소비할 것이다. 모든 것이 불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 소비 없는 세상은 부를 더욱 공평하게 분배하는 세상이 될까? 많은 이들이 역사 내내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간소하게 살아라, 다른 이들 이 그저 살아갈 수 있도록"이라는 오래된 문구에도 이러한 가정이 내재 되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국가는 좀처럼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 다. 간소하게 살면 내가 포기한 재산은 결국 애초부터 잘살던 사람의 손 으로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다.

- 소비주의는 당신에게 재정적 피해를 안기고, 당신이 필요로 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들로 당신의 삶을 어지르고, 더 좋은 곳에 쓸 수 있 는 시간과 집중력을 다 써버리고, 당신이 깊이 염려하는 지구의 생태 위 기를 악화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간소한 생활에서 계획되지 않은 시간, 자유, 차분함, 연결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할지도 모 른다. 당신은 소비에서 공허함을 느낄 수 있다. 그 어디로도 향하지 않 는,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들의 가두행진이라고 느낄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속도를 늦춰보자. 멈추자.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더 적게 가진 삶이 더 행복한 삶의 한 가지 비결임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순 하나를 더 들어주시길 바란다. 당신이나 내가 쇼핑을 멈춘다고 이 세상이 저소비사회에 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사회적 관성, 순응하라는 압력, 경제성장의 퍼센트에 따라 흥하거나 실패 하는 정부, 거대한 광고기구, 만족시켜야 할 투자자들이 있는 수조 달러 규모의 시장 등, 소비주의 편에 잔뜩 쌓인 힘들이 더 간소한 삶을 살라 고 촉구하는 대중운동보다 늘 더 강력한 영향을 미쳤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유럽의 도덕적 타락과 물질주의에 넌더리를 내며 도망친 종교 분파 인 청교도는 미국에서 소박하고 독실한 삶을 새롭게 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땅투기에 빠져 재산과 과시적 소비를 추 구했다.
훗날 미국 건국의 아버지가 된 초기 미국 애국파들은 더욱 고결한 미 국적 이상의 본보기로서 간소함을 실천했고, 영국을 타도한 뒤에는 당 연히 이러한 이상이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 혁명에 성공한 이들은 자신 들이 세운 새로운 국가가 허영과 이기심, 사치스러운 소비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절망했다.
- 비소비의 거의 모든 측면이 소비를 줄이겠다는 개인의 선택으로 이 뤄낼 수 있는 것 이상의 변화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나는 벌고 쓰는 행 위를 잠시 멈출 수 있지만, 비영리적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는 한 국가까 지는 아니더라도 공동체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디컨슈머가 될 수 있지만 그러면 사회에서 외부인이 되거나 심지어 따돌림을 받을 것 이고, 그렇게 되면 내가 그 변화를 고수할 확률은 낮아진다. 내가 개인 적 소비를 줄인다고 해서 수리 가능한 제품을 만들도록 강제하고, 과소 비를 부추기는 소득 불평등과 불안정을 해결하고, GDP 성장의 틀바 깥에서 사고하라고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민의식과 참 여, 또는 소비자 역할을 대체할 다른 사회적 역할을 위한 사회 기반 시 설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바우터르 판 마르컨 리흐턴벨트와 엘리자 베스 셔브의 연구에 흥미를 느끼고 집에서 광범위한 자연 온도에 맞게 사는 실험을 해보기도 했다. 과학이 예측한 대로 나는 하루나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더위와 추위의 패턴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온도 제어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점점 증가하는 사회·기술적 추세는 전혀 바꾸지 못했다.

- 이 책은 다음과 같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소비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답은 예스다. 끝없는 확장에 얽매인 경제의 속도를 늦추면, 대부분의 인류 역사에서 나타난 더욱 완만한 성장의 추 세에 다시 합류하게 될 뿐이다. 독창성을 발휘한다면 우리는 적응할 수 있다. 이보다 더욱 개인적인 질문, 즉 우리가 정말로 그 길을 따르고 싶 은가는 답하기가 더 어렵다. 여러 증거는 저소비사회에서의 생활이 더 좋고, 스트레스가 적고, 노동이 줄거나 유의미한 일이 늘어나고, 사람들 이나 가장 중요한 일에 쓸 시간이 더 많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 를 둘러싼 물건들은 제대로 만들어졌거나 아름답거나 둘 다일 수 있고, 우리의 기억과 이야기를 담을 그릇이 될 만큼 우리와 충분히 오래 함께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소진되었던 지구가 다시 생기를 되찾는 모 습을 지켜보는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더 깨끗한 물, 더 새파란 하늘, 더 많은 숲, 더 많은 나이팅게일, 더 많은 고래. 세상이 소비를 멈추는 날, 많은 이들이 정말로 살고 싶은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디스토피아를 만나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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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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