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거대 위협

사회 2023. 8. 14. 16:31

- 다가오는 10년 동안 모든 부채 위기의 어머니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지난 세기 동안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과거는 미래를 엿 볼 수 있는 소름 끼치는 창문을 제공한다.
유럽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채무를 갚기 위해 애쓰는 동안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은 1억 명이 넘는 인구의 목숨을 앗아갔고 경 제 생산량도 크게 줄었다. 그런데도 놀라울 정도의 경제 호황과 금융 혁신이 시작되었고 최초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축음기, 유성영화, 진 공청소기, 대량생산 자동차 및 전기 교통신호기 등 기술 혁신의 시대 인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가 이어졌다. 끝없이 치솟는 증시 에 누구도 금융 거품과 과도한 신용 및 부채 축적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결과는 파국이었다. 1929년 주가 대폭락 이후 실행된 잘못된 정책은 1930년대의 대공황을 초래했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아도 종종 각운을 맞춘다. 요즘도 광 란의 20년대를 연상케 하는 여러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대규모 통화 와 재정 및 신용 부양책이 세계 시장에서 금융 자산 거품을 부풀리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실물 경제는 저금리로 증가한 부채, 풍부한 신용, 정부의 막대한 경기부양책 덕분에 한동안 호황을 누릴 기세다.
이 파티는 무분별한 투기가 지속 불가능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Hyman Minsky)의 이름을 딴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 즉 호황 정서의 불가피한 붕괴로 끝날 것이다. 이는 시장 관측자들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비이성적인 과잉 열 기를 걱정하기 시작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일단 분위기가 변하면 자산과 신용 거품과 붐 정서가 붕괴해 폭락이 불가피해진다.
열띤 호황과 거품은 항상 거품 붕괴와 폭락에 앞서 나타나지만 이 번에는 그 규모가 과거의 선례들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선진경 제와 신흥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선진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낮고, 코로나19로 초래된 경기침체에서 회복되 는 과정은 험난하며 점점 더 속도가 느려질 것이다. 정책입안자들은 그동안 비축해두었던 통화와 재정 자원을 전부 써버렸고 비상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지정학적 충격이 확장 또는 심화되어 원자재 가격과 인플레이션이 더 급등할 수도 있다. 아 니면 그 외 다른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거나 위에서 언급된 위험들 이 서로 결합해 또다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촉발될 수도 있다. 미국 과 중국이 지정학적 충돌로 치닫는 가운데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거 나 두 강대국 간의 탈동조화(decoupling. 한 나라 경제가 특정 국가 또는 세계 의 경제 흐름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옮긴이)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탈 리아가 끝내 파산하고 유로존의 붕괴가 시작될 수도 있다. 정권을 장 악한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국가주의 정책으로 경제를 망쳐 지속 불가 능한 부채가 더 많이 축적될 수도 있다. 어쩌면 기후 변화 때문에 마 침내 지구는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치명적인 전환점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듯이 선진경제국이라고 해서 불멸의 존 재인 건 아니다. 1899년에 신중한 투자자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 를 통치한 합스부르크 제국이 발행한 100년 만기 채권을 통해 추구 한 것은 안정성이었다. 1914년 6월, 무정부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 (Gavrilo Princip)가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해 제1차 세 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도 합스부르크 국채는 다른 유럽 채권에 비해 여전히 가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어떤 전문가도 종말이 다 가오고 있음을 예측하지 못했다. 4년도 안 되어 합스부르크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20년 후 독일을 짓누르던 전후 부채 와 배상 청구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현지 통화로 차입하는 경제 대국은 외화로 차입해야 하는 신흥시장 국가들에는 없는 선택권이 있다. 즉 자국 통화를 사용해 부채를 상 환함으로써 채무불이행을 피할 수 있다. 그들은 자국 중앙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를 사용할 수 있고, 따라서 계속 돈을 빌릴 수 있다. 이 경 우 처음에는 통화 발행량을 늘려 경제 안정을 뒷받침할 수 있지만 그 치료법은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서서히 인플레이션이 되돌 아오고 종국에는 채무불이행의 한 형태가 된다. 
- 고령화가 모든 국가의 잠재 성장률을 낮춰 미적립 채무를 악화시 킨다는 점도 잊으면 안 된다. 실제로 생산성 증가 추세(노동당 1인당 생 산량)를 고려할 때 노동인구가 적을수록 잠재 성장률도 함께 감소한 다. 더구나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생산성 증가율 역시 둔화될 수 있다. 생산성 증가의 상당 부분이 새로운 생산 자본에 대한 투자에 달려 있 지만 노동자가 적을수록 투자율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가 적기 때문에 생산성 증가율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락할 것이다. 선진 경제 중에서도 고령화가 가장 심한 일본이 금세기의 대부분 동안 성장이 정체되었던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 표준 경제 이론에 따르면 자유무역은 전 세계의 번영에 도움이 된 다. 국경을 개방하고 이민 정책을 통한 사람의 자유무역 역시 마찬가 지다. 두 국가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쪽은 노동자가 많고 자본이 적 기 때문에 임금이 낮다. 상대적으로 선진경제인 다른 쪽은 자본은 많 고 노동자는 적기 때문에 임금이 높다. 노동력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 임금은 균등해지는 경향이 있다. 가령 미국이나 유럽의 노동 자는 방글라데시에 있는 동등한 지능과 잠재적 기술을 갖춘 노동자보 다 4~5배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문제는 원래 임금이 높았던 선진 경제의 평균 임금이 하락한다는 점이다. 이는 사람들이 이민을 반대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검소한 경제학자 세대와 많은 현대 보수 정치인에게 영감을 준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이주를 막은 장벽 때문에 사람들이 경제적 곤궁을 견뎌야 했고 이로써 유럽에서 전쟁이 발 발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선진경제의 유권자들이 이민자 편에 서도록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유는 명확하다. 블루칼라와 서비스 노동자를 비 롯한 저숙련 노동자의 임금이 정체되었고 이주 노동자의 유입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민자들은 교육과 주택, 의료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공공서비스의 부담을 가중해 사람들의 큰 반발을 부른다. 또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낯선 문화권에서 온 까닭 에 사회적 반발도 초래하는데, 특히 배타적인 성향의 정치인이 당파 적 목적으로 비방의 화살을 날릴 때는 반발이 더욱 거세진다.
- 시티코프(Citicorp)의 전 회장 찰스 프린스(Charles Prince)와 무디스 (Moody's Corporation) 주주 워런 버핏, 골드만 삭스 그룹의 CEO 로이 드 블랭크파인(Lloyd Blankfein)처럼 주택 거품과 그 뒤에 이어진 거품 붕괴가 대부분의 미국인이 이해할 수 없는 '예상치 못한' 충격 또는 '허리케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와 증거를 무시하는 일이다.
2008년 경기 대침체의 원인을 분석한 <금융 위기 조사 보고서>에서는 뭐라고 했는지 살펴보자.
실제로 경고를 알리는 신호들이 있었다. 시장이 붕괴하기 10년 전부터 주택 가격에 거품이 끼었다는 수많은 징후가 나타났다. 대출 관행 은 통제 불능으로 치달았고 너무 많은 주택 소유자들이 감당 불가능 한 수준의 주택담보대출과 부채를 떠안고 있었으며 금융시스템의 위험은 아무런 제재 없이 증가하고 있었다. 미국의 금융기관, 규제 당국, 소비자 서비스 기관, 법 집행기관, 기업은 물론 전국의 지역사회 에도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사고를 피한 정보에 밝은 경영인들도 많았다. 수많은 미국인이 나라 전체를 장악한 경제적 도취감에 빠져 있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워싱턴과 주 의회 정부관리들에게 이 위기가 단순한 경제적 실패가 아닌 인재(人災)가 될 것 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 우리는 적을 만났고 그 적은 바로 우리였다. 그 외에 다른 결론을 내린다면 또다시 잘못된 치료법으로 더 많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주택 거품이 순수한 야성적 충동 탓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무엇이든, 정말로 무엇이 든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하하고 돈을 찍어냈다. 재정 당국은 더 많이 지출하고 세금을 삭감하고 기업 과 노동자에 대한 이전을 늘렸다. 중앙은행과 재정 당국이 현금이 부 족한 가계와 은행, 기업을 구제하면서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 더구나 지난 역사를 보면 통화 정책이 너무 오랫동안 느슨하게 유 지될 때는 거시건전성 정책으로도 거품을 멈출 수 없었다. 당국은 초 기에 금리를 인상해 거품이 형성되는 것을 애초에 틀어막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주요 중앙은행은 통화 정책을 사용해 거품을 찔러 터트 리는 것을 거부한다. 대신에 그들은 효과적이지도 않고 입증된 적도 없는 거시건전성 정책에 의존하는데 이런 정책은 시도해봐야 잘 통하 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거대한 부채 주기를 겪 는 것이다. 느슨한 통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자산 거품을 발생시키 는 한편 중기적으로는 다음 장에서 보듯이 상품과 서비스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 케인스 학파와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제학자들은 호황과 불황의 드 라마에 대해 상반된 해결책을 제시한다. 케인스 학파는 당국의 개입 을 선호하고, 오스트리아 학파는 구제금융보다는 긴축과 부채 구조조 정 또는 삭감을 주장한다. 만일 정책입안자가 오스트리아 학파이고 시장이 거품이 터지기 시작해 총수요 붕괴가 나타나는 단계에 있다 면,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또 다른 대공황이 촉발될 수도 있다.
나는 그 중간을 선호한다. 유동성이 부족한 경제 주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모든 정책입안자가 케인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러나 쉬운 돈, 쉬운 신용, 완화된 재정은 결국 불황 주기를 촉 발하기 때문에 영원히 케인스 이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쉬운 돈에 중독되기 전에 반드시 거기서 빠져나와야 한다.
- 미국 달러는 1945년부터 금으로 뒷받침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적인 절차라기보다는 신뢰를 구축하는 수단에 가까웠다. 실제로 미국 은 시중에 유통 중인 달러를 전부 태환할 수 있는 양의 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가 미국의 허세에 맞서 온스당 35달 러 고정환율로 금과 달러 자산의 교환을 요구하자 미국은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의 최고자문단은 닉슨 대통령에게 고정 환율을 포기해야 한다 고 경고했다. 미국의 지속적인 무역 적자를 고려할 때 금본위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닉슨 대통령은 먼저 금태환을 중단했다. 그리고 1971년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했다. 가식적인 행동을 포 기하고 아예 금환본위제에서 탈퇴한 것이다. 이제 달러는 외환 시장 에 따라 통화 가치가 결정되는 변동 통화가 되었다.
- 통화 공급을 제한할 금본위제가 사라지자 미국은 정책적 대응에서 새로운 옵션을 갖게 되었다. 돈을 찍어내고, 금리를 인하해 대출을 장려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달러가 약화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고정환율제도에서 변동환율제도로 전환하자 외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가 하락했다. 안 그래도 급등 중이던 수입품의 가격이 더 비싸졌고 물가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이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일단의 주식들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투 자자들은 높은 P/E 비율과 회복력 있는 수익을 지닌 이른바 원 디시 전(one-decision) 우량주에 신뢰를 퍼부었다. 원 디시전 우량주란 한번 매수를 결정하고 나면 팔 필요가 없는 주식들을 뜻한다.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엑손(Exxon), 코카콜라, IBM, 제록스(Zerox), 화이자 (Pfizer), 폴라로이드(Polaroid)처럼 어떤 시대에도 변함없이 견고한 회 사들 말이다. <포브스>는 “이들 회사는 너무 훌륭했기 때문에 얼마를 지불하든 상관없으며 거침없는 성장으로 모두를 구제할 것이라는 환 상이 팽배했다"라고 말했다.
정확한 명단이 있다기보다는 흔히 '니프티50(Nifty Fifty)'라고 불리 는 이 종목들의 주가수익률은 역사적으로 보증된 수준보다도 훨씬 높 이 치솟았다." 나중에 <USA 투데이>는 "이런 주식은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단순한 '가치' 투자에서 '어떤 가격에서도 계속 성 장'할 것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을 촉발했고, 이는 사반세기 후 기술주 거품이라는 또 다른 형태로 부활했다"라고 회고했다.'
- "인플레이션은 알코올 중독과 비슷하다." 밀턴 프리드먼은 이렇게 경고했다. "술을 마실 때나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낼 때나 좋은 영향이 먼저 발생하고 나쁜 영향은 나중에 나타난다. 그래서 두 경우 모두 과 용하고 싶은 강력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치료법은 그 반대다. 술을 끊거나 화폐 발행을 중단하면 나쁜 영향이 먼저 나타나고 좋은 영향은 나중 에 온다. 그래서 치료를 지속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유동성 에 중독된 경제 및 금융 시스템의 숙취로 인한 나쁜 사례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다. 연준은 파티를 중단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파티에 술을 공급했다.
- 향후 10년 안에 발생할 스태 그플레이션은 1970년대보다 훨씬 심각한 경제적 혼란과 피해를 가져 올 수 있다. 1970년대에는 인플레이션 문제는 있었어도 부채 문제는 없었다. GDP에서 민간 및 공공부채가 차지하는 비율도 지금에 비하면 건전한 수준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운이 좋았다.
막대한 공공 및 민간 부채 때문에 금융 위기가 발생했지만 성장에 대한 충격이 신용경색에 이은 수요 붕괴에서 비롯되었기에 인플레이션 문제를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번의 위기를 모두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제가 결합되고 거품까지 꺼지면 우리는 10년 안에 전혀 새로운 영역에 들어설 것이다. 세계 금융 및 부채 위기와 스태그플레 이션이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상상해보라. 너무나 끔찍할 것이다. 이 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 낙관주의자들은 아직도 기술 혁신을 통해 긍정적인 총공급 충격을 촉발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플레이션 완화 압력을 행사할 수 있 다고 주장한다.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선진경제에 관한 데이터에서 기술 변화가 총 생산성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불분명하다. 데이 터에 따르면 생산성 성장이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공지 능과 자동화, 로봇공학은 본질적으로 순수한 상품이 아니다. 만약 이 들 분야가 인플레이션을 유의미하게 완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 한다면, 그전에 일자리 및 산업 전체에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 소득 및 부의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며 스태그플레이션 결과를 동반하는 정치적 반발을 초래할 것 이다.
지금 우리는 일련의 총공급 충격의 시발점에 와 있다. 시간이 지남 에 따라 이런 충격들은 대규모 부채 위기뿐만 아니라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부채질할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고 해서 내일 당장 또는 내년에 발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코로나 19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혼란이 이 완만한 추세의 첫 공격 이라고 해도, 모든 것은 천천히 진행될 것이다.
- 연준의 임무 변경은 그들이 직면한 심각한 문제이자 초거대 위협 이기도 하다. 미국 달러는 지금껏 수십 년 동안 세계 금융 시스템의 명목화폐로 기능해왔다. 달러는 전 세계 모든 통화 중에서도 가장 신 뢰할 수 있는 통화이며 대부분 국가가 외환보유고에 비축하고자 하는 통화다. 이 사실은 미국에 커다란 이점이다. 준비통화인 달러에 대한 수요는 미국이 팽창 일로에 있는 재정 및 무역 적자를 메울 자금을 더 욱 오랫동안 저렴하게 빌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의 재정 및 무역수지 적자가 점점 불어나고 있고 미국 달러가 점점 더 외교 정책과 국가 안보를 위한 무기로 사용되는 상황 에서 세계가 달러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와 같은 달러의 국제 준비통화 역할을 박탈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 인 다른 대안이 있다면 어떨까? 2022년 3월, 러시아 제재 직후 한 민 첩한 논평가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금융 제재 는 중앙은행이 축적해둔 외환보유고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중국이 이 사실을 주목하고 있으며 이는 지정학 적 역학과 경제 관리, 심지어 미국 달러의 국제적인 역할까지 재편할 수 있다.
- 미국은 현재 재정 및 경상수지 분야에서 매우 큰 적자를 내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 경제에 유입되는 달러보다 빠져나가는 달러가 더 많 다는 의미다. 우리는 수출보다 수입을 훨씬 더 많이 하고 있는데, 이 는 미국 국내보다 해외에 존재하는 달러가 더 많다는 얘기다." 이와 대조적으로 다른 주요 경제국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운영한다. 미국은 해외에서 차입할 때 더 저렴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특별한 지위 를 누리고 있지만 달러 자산에 대한 수요를 고려하면 공공부채와 대 외부채의 지속 불가능한 수준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미국은 계속 쌓 여가는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매년 대외 적자와 맞먹는 액수의 외채를 밀어 넣고 있다. 미국은 이미 13조 달러, 즉 국가 GDP의 50퍼센트 이상에 이르는 외채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다.
미국의 외국 채권자들은 언제쯤 미국이 아주 낮은 금리로 돈을 빌 릴 수 없다고 결정할까? 시간이 지날수록 달러는 점점 더 위태로워질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달러를 점점 더 외교와 국가 안보 정책의 도구 로 사용하고 있다. 무역과 금융 제재를 활용해 전략적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을 응징하고 미국의 목표에 협조하지 않는 국가에는 2차 제재를 가한다. 하지만 그런 조치는 경쟁국들이 달러 자금조달 체제에 덜 의존하거나 전혀 의존하지 않도록 동기를 부여할 뿐이다.
실제로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들은 달러 자금 조달 체제에 대한 의 존을 덜고자 외환보유고를 다각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미국이 우 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응징할 목적으로 부과한 금융 제재는 미 국의 4대 전략적 경쟁국이 달러 기반의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 고자 하는 욕구를 강화할 것이다. 심지어 중동 산유국 같은 미국의 우 방국들조차 그들의 외교 정책이 미국과 일치하지 않을 때 이런 제재 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UAE는 러시아의 우크 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기권했다. 사 우디아라비아는 에너지 비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원유 생산과 수출 을 늘려달라는 바이든 정부의 요청에 반발했다.
- 달러의 무기화가 강화될수록 적도, 우방도 달러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러시아의 몇몇 주요 금 융기관들은 현재 전 세계 1만 1,000개 이상의 금융기관을 연결하는 국제 금융 SWIFT 시스템에 접근할 수가 없다. SWIFT 시스템에서 러 시아를 완전히 축출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 런 조치의 예기치 못한 결과 러시아와 중국이 세계 준비통화인 미국 달러를 포기할 계획을 앞당길지도 모른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중이다. 그들은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고 루블과 위안으로 상품과 서비스 및 금융 자산을 거래하기 시작할 것이다. 
- 오늘날 중앙은행과 직접 거래할 수 있는 객체는 은행뿐이다. 개인 과 비금융 기업은 수표와 예금, 전신송금 등 기타 지불을 하려면 상업 은행을 거쳐야 한다. 모든 개인과 기업이 중앙은행과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사용한다고 상상해보라. 이는 결제 및 지불 시스템을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다.
핀테크 기업보다 훨씬 큰 규모의 위험에 직면한 상업은행은 비즈 니스 모델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은행은 개인과 기업을 위해 현금과 현금성 예금을 보유한다. 그리고 이런 예금 중 일부 소량 만을 유동자산으로 보유하고 예금자가 자산의 일정 부분 이상을 인출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나머지를 다른 이들에게 빌려준다. 부 분지급준비제도를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이런 관행이다. 요구불예금(demand deposit)은 장기 대출이 되고, 은행은 이를 자산으로 기록한다.
이런 시나리오에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재무 안정성에 두 가 지 위험을 초래한다. 하나는 예금자가 상업은행에서 중앙은행으로 자 금을 이전하면서 발생하는 탈중개화다. 여기서 생존할 방법이 있다 면 기존의 저비용 예금을 시장금리 장기 차입으로 대체해 장기 대출 과 주택담보대출을 조달하는 금융기관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그래봤 자 약간의 이익을 간신히 쥐어짜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 이다. 나머지 은행들은 오늘날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 다. 금융계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보자면 2021년 11월에 미국에서 가 장 큰 5대 은행의 시가총액만 1조 4,000만 달러에 이른다. 만일 중앙 은행이 은행의 역할에 변화를 주게 된다면 금융권 투자자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서비스 은행을 토대로 구축된 산업계에 미칠 후폭풍은 말할 것도 없다.
두 번째 위험은 평상시 예금을 유치하는 은행의 경우 금융 공황으 로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을 선호하는 예금자들이 은 행에 넣어둔 예금을 중앙은행으로 옮기기 위해 앞다퉈 달려온다면 뱅 크런이 발생할 것이다.
이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함정도 빼놓을 수 없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재정적으로 급격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심각한 경기침체 때문에 실질금리가 0 이하로 인하된다고 가정해보 자. 은행이 예금에 대해 이자를 지불하는 대신 이자를 부과한다면 소비자들은 아주 감사해 마지않을 것이다. 은행에 현금을 예치하고 이자를 내느니 차라리 매트리스에 보관하지 않을까? 이와 비슷한 논리가 상업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거액의 준비금에도 적용된다. 유연 성은 금융 억압에 한계를 부여한다.
그러나 지배적인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가 등장하고, 현금과 동전이 단계적으로 사라지고, 명목금리가 마이너스가 된다고 가정해보자. 중 앙은행은 어쩌면 수십억 달러의 초과 예금에 이자비용(사실상 금융억 압세)을 부과할지 모른다. 현재 상업은행은 준비금을 최소한 마이너스 수익을 피할 수 있는 현금으로 전환해 어디든 보관할 수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중앙은행을 벗어날 수 없기에 금융 억압에 대한 브레이크를 제거할 것이다. 언제가 될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 어도, 극심한 마이너스 금리는 경기침체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착시킬 수 있다. 은행은 대출 활동을 줄이고, 사업체는 굶주리고,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 2020년 5월 <파이낸셜 타임스>의 편집진은 "세계화 시대가 위험 에 처해 있다"라고 경고하며 세계화가 성공을 통해 스스로의 희생양 이 되었다고 말했다. "제조업 일자리를 부유한 국가에서 가난한 국가 로 이전시킨 국제적 노동 분업은 개발도상국의 빈곤을 줄이고 부유한 국가의 물가를 낮췄다. 그러나 정책입안자들은 이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에게 거의 아무 보상도 하지 않았고, 한때 번창했던 지역사회 사람들이 느끼던 자부심과 주인의식을 무시했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류에 편승하는 건 쉽다.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도 그런 경제 민족주의였다. 하 지만 지금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한쪽 길은 효율적인 세계 시장의 통합을 지속하는 한편 뒤처진 노동자에게 보상하거나 재교육하는 방 침을 선호한다. 전 세계 소비자들은 여전히 저렴한 가격을 누릴 수 있 고 신흥시장의 고용은 수백만 세계 시민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한편 반대쪽에 있는 '탈세계화'의 길은 잃어버린 일자리를 국내로 다시 복귀시키고(이른바 '자국 이전(reshoring)'] 일자리가 해외로 누출되 지 않게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선호한다. 보 호무역주의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과거에 이를 시도했을 때 는 거의 모든 사람의 경제 사다리가 무너졌다. 탈세계화가 초거대 위 협인 이유다.
20세기의 제조업 일자리를 보존하기 위한 탈세계화는 역효과를 초래해 더욱 거대한 서비스와 기술, 데이터, 정보, 자본, 투자 및 노동 시장의 필수 무역에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다. 탈세계화는 경제 성장 을 저해하고, 막대한 부채에 대처할 수단을 무력화하며, 심각한 인플 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향하는 길을 닦을 것이다.
- 탈세계화는 전 세계의 생활 수준을 양호한 수준으로 높일 기회의 문을 닫는다. 무역을 규제하 면 세계 생산량이 줄어 실직 노동자가 채울 수 있는 일자리의 수도 줄 어들고 그렇게 세계 경제의 파이가 작아질 것이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의 물리적 체계는 사 람들을 현혹시킬 수도 있다. 이런 공급망은 높은 효율성을 자랑하는 전 세계의 생산 시설과 수백만 명의 최종 사용자를 연결하는 강력하 고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탈세계화는 이런 네트워크를 혼란에 빠트려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일자리 수요를 충족하는 대신 비대해진 비용 구조로 세계 시장 경쟁에서 취약해질 것이다.
- 일의 미래에 관한 전문가이자 MIT 경제학 교수인 데이비드 오토는 "문제는 일자리의 수가 아니라 질과 접근성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TED 강연에서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은행 창구의 필요성을 줄 였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은행은 더 많은 지점을 개설하고 출납원이 되었어야 할 사람들을 더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한편 대니얼 서스킨드와 마틴 포드(Martin Ford)는 각각 그들의 저서 에서 디스토피아적 관점을 수용했다. 그들은 AI와 로봇이 대부분의 일자리를 채울 것이라고 예상한다. 서스킨드는 《노동의 시대는 끝났 다》에서 "21세기를 거치면서 인간의 노동에 대한 수요가 점진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찬가지로 포드도 《로봇의 부상에서 일자리 없는 미래라는 위협을 우려한다.
자, 그러면 여기서 잠시 멈춰 이번에 겪을 기술적 진보는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주장을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껏 경험했던 모 든 기술 혁명과 달리 이번에는 일자리가 거의 없거나 나쁜 일자리만 남을 것이라는 주장 말이다. 이번에는 대체 뭐가 다른 걸까?
산업혁명은 생산성을 높인다. 첫 번째 혁명은 증기 동력을 가져왔다. 두 번째 혁명은 대량생산을 탄생시켰다. 세 번째 혁명은 전기를 활용했다. 이 세 번의 산업혁명에서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약간의 혼란이 지나고 나자 예전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영원히 직장에서 쫓겨난 게 아니었다. 제조업 일자리 때문에 농장의 잉여 노동자가 도시로 몰려들었고 소득이 증가했다.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을 때는 서비스 부문에서 고용이 창출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인간 노동자가 옮겨갈 수 있는 곳이 적다. 고수 익 커리어의 마지막 보루인 하이테크 기업은 과거 세대의 거대 제조 업체보다 훨씬 적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한다. 
- 포드 자동차의 회장인 헨리 포드와 전미자동차노조(United Auto Workers) 위원장 월터 로이터(Walter Reuther)의 흥미진진한 대화 실 제 있었던 일이라는 증거는 없지만ᅳ를 들어보면 이 딜레마를 이해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은 자동화의 출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포드가 로이터에게 어떻게 로봇에게서 노동조합비를 받을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로이터는 포드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게 할 것인가?" AI는 바로 이렇게 자본주의를 자멸시킬 것이다. 신마르크스주의가 보는 과소소비는 기술 발달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촉발된다.
-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했다.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 모든 잉여 인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일 것이다. 의식은 없어 도 거의 모든 것을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고도로 지능적인 알고리 즘이 생긴다면 의식을 지닌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일부 디스토피아 시나리오에서는 불필요한 잉여 인간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보편적 기본소득을 받고 나면 종일 비디오게임만 하다가 끝 내 '절망으로 인한 죽음(deaths of despair)'을 재촉하는 약물을 사용할 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2021년에 약물 과다복용으로 10만 명 이상 이 사망했다. 아니면 젊은 남성들이 성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 아 재생산할 수 없는 '인'이 됨으로써 인류가 사라질 수도 있다. 우 리의 디스토피아 미래는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그리고 <헝거게임>을 합친 것일지도 모른다.
- 개방과 성장에 가려진 중국의 야심
중국이 글로벌 무역 및 시스템에 참여하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 장경제를 수용하고 덜 권위적인 국가가 되리라는 서방 세계의 가정 은 완전히 틀렸다. 중국은 그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케 빈 러드는 "베이징은 '시장 분할'의 효율성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시장 원칙이라고 부르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보다 중국 경제는 중재자가 절대적인 정치적 권한을 휘두르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다.
- 중국은 지난 10년 사이 더욱 권위주의적인 나라가 되었다. 노련한 중국 전문가인 존 J.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는 <포린 어페어 스(Foreign Affairs)> 2021년 11월 12월 호에서 미국의 원래 계획에 비 문(碑文)을 바쳤다. "포용정책은 최근의 역사에서 그 어떤 나라가 한 것보다 더 최악의 실수였을지 모른다."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의 저자이기도 한 미어샤이머는 이렇게 썼다. "강대국이 동료 경쟁국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조장한 사례는 이제껏 없었다. 그리고 이제 뭔가 조치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21
후버 연구소의 웹세미나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전 국가안보보좌관이자 육군 중장으로 전역한 H. R. 맥매스터(H. R. McMaster)가 비슷한 평가를 했다. 맥매스터는 "우리는 국제 질서에 합류한 중국이 규칙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가정에 매달렸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경제적 으로 번영하면서 경제 시스템을 자유화하고 정부의 형태를 자유화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서방이 헛된 희망을 키우는 동안 중국은 덩샤오핑 전 공산당 위원 장이 조언한 대로 점점 커지는 힘을 숨기며 때를 기다렸다. 서구인들 은 1836년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될 때까지 '굴욕의 세기' 동안 중국인들이 입은 상처와 뿌리 깊은 분노를 헤아리지 못했다. 19세기 중반 영국과 프랑스가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영토를 장악하고, 무역 양허를 강요한 두 차례의 아편 전쟁에서 시작된 상처는 의화단 운동 그리고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여러 유럽 국가를 포함한 8 개국 연합에 청나라 제국군이 패배할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제2차 세 계대전에서 일본을 물리치면서 끝났다. 서구 분석가들은 중국 문화에 남아 있는 그 시절의 각인을 과소평가했다. 이제 세계적으로 부상한 지금 중국은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전 세계에서 강대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 1990년 이전에는 아무도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경쟁을 하게 되리라 고는하물며 미국을 능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는 경 제학 교과서가 소비자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묘사한 종류의 경쟁과 상 호협력을 환영했다. 다른 정치 체제의 중국이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민간 부문을 육성하고 자체적으로 온건 한 권위주의를 유지하는 한, 논평가들은 중국이 세계 경제에 합류한다 는데 환호했다. 거대한 시장은 덤핑과 지적재산 절도, 불공정 거래 관 행에 관한 넘쳐나는 증거보다 더 중요했다. 중국은 혼자 힘으로 자신 을 끌어올리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지정학적 야망은 시급한 국내 수요 때문에 굳건한 무역 관계보다 훨씬 뒷전으로 밀려났다. 어쨌든 서방 세계는 그렇게 믿었다.
중국의 발전은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비판하는 이들은 불공정 거래 관행을 지적하는데, 이는 성공의 부분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중 국은 그들의 성공을 서구 국가들로부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운 덕분이라고 말한다. 중국의 정치 체제는 반대 진영의 이의 없이 목표 를 설정하고 성취할 수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를 표명하지만 이는 명 목상일 뿐 실은 기술관료적 권위주의, 국가자본주의가 더 적절한 묘 사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름을 붙이든 중국인들은 제대로 기능하 지 못하는 민주주의와 이기적인 글로벌 금융기관에 비하면 더 낫다고 느낄 것이다.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예일대학교의 전 동료인 윌리엄 노드 하우스(William Nordhaus) 만큼 이런 학문적 융합을 잘 보여주는 인물 도 없을 것이다. 그는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을 때 '기후 변 화: 경제학의 궁극적 과제(Climate Change: The Ultimate Challenge for Economics)'라는 제목의 수상 연설을 했다. 그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회의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최소한 신중하다. “기술 변화는 인간을 석기 시대의 생활 수준에서 벗어나게 했다.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 에서 기후 변화는 우리를 경제적 태고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노드하우스는 지구 온난화를 "모든 환경적 외부효과 중 가장 중요 한 것"이라고 지칭했는데, 환경적 외부효과란 지구 온난화를 불러온 이들이 그에 대해 부담하지 않는 비용을 가리킨다. "지구 온난화는 우리가 사는 행성을 위협하면서 거인처럼 우리의 미래를 굽어보고 있다. 이것이 특히 치명적인 이유는 많은 일상 활동과 관련되어 있고 지 구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이 넘도록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노력한다고 해도 변화 를 늦추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 시간이 부족하다는 메시지는 '환경, 사회, 거버넌스(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ESG)'라는 기치 아래 환경 및 사회적 목표를 준 수하는 투자를 촉구하며 비용에 특히 민감한 자산관리자에게도 도달 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한 전 최고투자책임자 타리크 팬시(Tariq Fancy)가 보기에 고결한 의도는 비 생산적이었다. 2021년 11월 <이코노미스트> 칼럼에서 그는 그린워싱 (greenwashing,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활동을 하면서도 친환경을 추구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 환경주의'-옮긴이)과 그린위싱(greenwishing)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ESG를 둘러싼 이상적인 스토리는 실제로는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사례에 해가 될 뿐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홍보 활동은 지속 가능한 투자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자발적인 준수가 해답이라는 생각을 조 장한다." 팬시의 말이다. ESG를 강조하는 기업의 주가와 마케팅 예산 은 증가하고 있고, 이는 탄소 배출량도 마찬가지다. 팬시는 "PR은 특히 유해하다. 마케팅으로는 시장 실패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재앙과도 같은 환경 불균형을 시장이 시정할 수 있다는 믿음 을 거부한다. "기업의 단기적 동기가 장기적인 공익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대량으로 쏟아지는 기업의 약속은 구속력도 없고 대개 운영팀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부서에서 내놓는 것이다. 시장이 해 야 할 역할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 혼자 작동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ESG 활동은 실질적인 자본 분배 결정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 않 는데, 이는 기업이 탄소 배출량 감소를 약속할 때 가장 먼저 전제되어 야 하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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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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