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장차 인류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든 해롭다고 생각하든 이미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기계가 인간 노동자를 대체할지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기업 임원들 이 결정한다. 안면 인식 시스템과 디지털 타기팅 광고 같은 기술이 등장하면 어떤 제한을 둘지도 로봇이 아닌 정책 입안자들이 정한다. 새로운 형태의 인공지능을 만드는 엔지니어들은 이 도구들을 어떻 게 설계할지 정하고 사용자들은 이 도구들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지를 판단한다.
이것이 인공지능 혁명에 관한 진실이다. 무시무시한 기계가 장악할 일도, 악랄한 로봇 군대가 봉기를 꾀해 우리를 노예 삼을 일도 없다.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지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 역사를 되짚어보면 기술 변화의 시기에 엘리트 계층과 자본가들의 생활 조건은 향상되었지만, 노동자들은 즉각적 혜택을 누리지 못할 때도 많았다. 예를 들어 1760 년대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영국의 국내 총생산 GDP 과 기업 이익은 거의 즉시 치솟았지만 영국 노동자의 실질 임금이 오르기까지는 50년이 넘게 걸린 것으로 추산된다《영 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논한 이 격차는 경제학자들 사 이에서 엥겔스의 휴지기 Engels's Pause로 알려져 있다). 산업혁명의 주인공인 노동자 대다수가 생산성 향상의 결실을 맛볼 즈음에는 이미 은퇴 했거나 유명을 달리했다는 뜻이다.
- 일부 경제학자들은 오늘날 임금 수준은 정체된 반면 기업의 이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을 보면서 또 다른 엥겔스의 휴지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자동화가 일자리를 파괴하기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주장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연구들도 나오고 있다.
특히 MIT 대런 애쓰모글루와 보스턴 대학 파스쿠알 레스트레포 는 지난 수십 년간 자동화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속도보다 파괴하 는 속도가 더 빨랐음을 밝혀냈다. 이 두 경제학자는 1947년부터 1987년까지는 자동화에 대한 낙관론자들의 견해가 전반적으로 옳았다고 한다. 자동화를 택한 업계에서는 일자리 파괴와 창출(애쓰모글루와 레스트레포 이를 '변위'와 '복귀'라고 부른다)이 거의 같은 비율 로 일어났다. 하지만 1987년부터 2017년까지는 업계의 일자리 변위 속도가 복귀 속도보다 압도적으로 빨랐고, 그사이에 창출된 새 일자리들은 대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탓에 이를 차지할 노동 자가 많지 않았다. 달리 말해 과거 일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새 일자리를 기대하며 위안을 얻었지만, 오늘날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 라져가는 일자리 다수는 다시 돌아올 가망이 없다.
- 역사학자 데이비드 나이에 따르면 1930년대 처음으로 대거 등장 한 공장 곳곳에 전기가 설치되자 많은 노동자는 일상 업무가 전보다 개선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전등이 들어온 뒤로 그들의 일상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소통 창구가 사라진 것이었다. 한때 힘을 모 아 역동적으로 처리하던 일은 전기 기계의 등장과 함께 버튼만 누르 면 되는 틀에 박힌 일이 되고 말았다.
데이비드 나이는 이렇게 논했다. "더는 공장 안에서 소문과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 부대끼며 동료애를 다지기가 어려워졌다. 작업이 멈 출 때마다 수시로 쉽게 어울리곤 했는데, 관리자들이 끊임없이 기계 의 성능을 높이며 작업 속도에 박차를 가하자 그럴 수가 없어졌다."
- 이러한 변화는 화이트칼라 직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한때는 능률이 떨어지는 시간이 있어 노동자들이 한숨 돌리며 대화할 틈이 있 었지만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등장하면서 기업이 이 시간마저도 남 김없이 쥐어짜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지루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서구에서는 이런 업무가 눈에 띄지 않는다. 메리 그레이와 시다스 수리는 '유령 노동ghost work'의 증가에 관한 책을 썼다." 유령 노동이란 최종 사용자에게는 철저히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스템이 원활히 기능하게끔 하 는 인간 노동을 말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의 소셜미디 어는 온종일 유해 콘텐츠를 걸러내 남겨둘 게시물과 삭제할 게시물 을 결정하는 수많은 저임금 계약직 노동자에 의존한다. 알렉사와 같 은 인공지능 비서는 '데이터 주석자의 도움을 받는다. 데이터 주석자들은 사용자의 대화 녹음을 들은 뒤 데이터에 라벨을 붙이고 실수를 바로잡으며 다양한 억양과 이례적 요청을 이해하도록 인공지능을 훈련하여 나날이 시스템이 개선되게 돕는다. 중국에서는 인공지 능 작동을 위해 이를테면 이미지에 라벨을 붙이고 음성 파일에 태그 를 붙이는 등 종일 틀에 박힌 사무를 담당할 막대한 수의 노동자를 공급하는 '데이터 라벨링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노동자들은 시간당 10위안 정도를 버는데 이를 달러로 환산하면 겨우 1.47 달러 정도다.
-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물결 가운데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부 분은 위험 지대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자동화는 블루 칼라가 종사하는 제조업 중심의 반복적이고 수동적인 작업에 대부 분 집중되었다. 화이트칼라 지식 노동자들은 대체로 자신이 안전하 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공지능과 기계 학습은 회계, 법률, 재 무, 의학과 같이 기획, 예측, 프로세스 최적화 등의 작업이 필요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알고 보면 이러한 작업이야말로 인공지능의 전공 분야다.
사실 화이트칼라 노동자는 블루칼라 노동자보다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클 수도 있다. 2019년 브루킹스 연구 소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마이클 웹의 작업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25 웹 등은 인공지능과 관련된 특허 내용과 노동부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직무기술서 내용 중 겹치는 부분을 조사해 '품질 예측'과 '권고 사항 제시' 등과 같이 양쪽에 모두 등장 하는 문구를 찾아보았다. 그 결과 이 연구에 포함된 769개 직무 범 주 중 전부에 가까운 740개가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자동화될 위험 이 있었다. 학사나 대학원 학위를 취득한 노동자는 고졸 노동자보다 인공지능의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거의 4배나 높았다. 그리고 자동 화에 취약한 대다수 직무는 산호세, 시애틀, 솔트레이크시티 등 주 요 대도시의 고임금 직종에 속했다.
- 코닥을 무너뜨린 것은 해외 경쟁이나 디지털카메라가 아 니었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였다. 수백만 명이 고화질 카메라 가 장착된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기기를 휴대하게 되면서, 이제 사람 들은 사진을 특수 장비가 필요한 유료 서비스가 아니라 일종의 DIY 취미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술 기업들이 코닥을 죽이겠다고 나 선 것이 아니다. 사진을 인화하던 방식에서 웹사이트에 올리는 방 식으로 소비자 행동이 근본적으로 바뀌자 기업의 운이 사실상 막혀 버린 것이다. 결국 코닥은 2012년 파산 신고를 했고 현재 직원은 약 5,000명 정도다.
코닥에서 일하던 나머지 14만 명의 일자리가 자동화로 날아가버 렸다 말하면 어폐가 있다. 코닥에서는 자동화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말이 다. 자동화는 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사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에서 진행되었다. 이들 기업에서 사용자들이 필름 없이 온라인에서 사진을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하자 그 결과가 로체스터 주민의 실직으로 나타났다.
- 자동화가 우리의 삶과 일터를 변화시키는 미묘하고 간접적인 방식은 어느 한 가지 위협 요소로 짚어내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처음에는 순수하고 유용해 보이던 기술이 결국 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했음을 종종 깨닫는다.
1984년 등장한 터보택스도 처음에는 일자리를 앗아가는 로봇처 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컴퓨터들이 세금을 내는 데 활용하는 소 프트웨어로만 보였다. 하지만 결국 이 소프트웨어 때문에 수많은 세무사가 새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엑셀을 출시했을 때 이를 일자리를 위협하는 로봇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일종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등장한 결과 수동으로 자료를 입력하는 사무원으로 가득했던 부서 전체가 불필요해졌다.
2006년 페이스북이 추가한 '뉴스 피드 역시 일자리를 잡아먹는 로봇이 아니라 대학 때 반했던 사람이 다시 싱글이 되었다는 소식 정도를 알려주는 기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기능은 수십억 명에 게 정보를 배포하는 제품으로 변모해 온라인 광고 시장을 장악하고 신문과 잡지 수요를 떨어뜨렸다.
- 현재 우리 삶에 존재하는 기술 일부도 결국 인간의 일자리를 없 앨 것이다. 이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단순한 교훈은 기계는 예 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삶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로봇 군단 스카이넷은 걱정해도 스프레 드시트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막상 변화를 마주하면 깜짝 놀라곤 한다.
- "숨이 막힐 듯 너무 갑갑했다. 더는 내 뇌가 필요 없었다. 하는 일이라곤 바보처럼 앉아 그 빌어먹을 것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한때는 스스로 계획을 세우며 상황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모든 의사 결정을 내려주는 것 같다. 내 가치가 떨어진 느낌이다." (1970년 갓 자동화된 제너럴 일렉트릭 공장 노동자)
- 르 클레어는 RPA 회사들이 딱히 대단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님 을 알아냈다. RPA 회사들은 대부분 '누군가 뒤에서 하던 업무를 대 신 실행할 스크립트를 짜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기업 임원들은 이 봇들을 매우 좋아한다. 자사의 기술 인프라 전체를 재설계하려면 몇 년간 수십억 달러를 들여야 하는데, 이 봇들이 기존 소프트웨어 프 로그램에 접속해 손쉽게 업무를 자동화해주기 때문이다.
르 클레어는 이렇게 말했다. "콘퍼런스 현장 한쪽 구석으로 최고 재무 책임자를 불러다 RPA로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십 시오. 잘 들어보면 다들 인력을 줄이고 있습니다. 연간 1만 달러가 드는 봇을 구축하면 직원을 2명에서 4명까지 줄일 수 있으니까요."
르 클레어는 RPA 때문에 실업에 직면하는 백 오피스의 실제 직 원수는 기업 임원들이 인정하는 수보다 훨씬 많아 수백만 명도 더 될 것이라고 본다. 그는 이 봇들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없애는 것 이 아니라 개선해준다는 뻔한 주장을 믿지 않는다. 업무가 자동화되 면 노동자들을 다른 부서로 보내고 몇 주 혹은 몇 달 있다가 조용히 이들을 해고할 것이라고 공표하는 예도 목격했다고 한다. 르 클레어 와 동료들은 몇몇 수치를 계산해본 뒤, 2030년경에는 RPA를 비롯 한 각종 자동화로 미국에서 2,000만여 개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 고 추산했다.
-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가 이룬 자동화 대다수는 더 큰 능 률을 안겨주지 못했다. MIT 대런 애쓰모글루와 보스턴 대학 파스쿠 알 레스트레포는 2019년 논문에서 '그저 그런 기술so-so technologies' 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저 그런 기술'이란 인간 노동자를 대 체하기에는 충분하나 새 일자리를 창출하기에는 부족한 기술 유형을 가리킨다. 두 학자는 그저 그런 유형의 자동화를 크게 두려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자동화는 사업주가 인간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하게 할 뿐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만큼의 유의미한 생산성을 안겨주지 않는다. 애쓰모글루와 파스쿠알은 이렇 게 썼다. "고용과 임금을 위협하는 것은 '뛰어난' 자동화 기술이 아 니라 단지 소소한 생산성 향상만 가져오는 '그저 그런 기술이다." 그저 그런 자동화의 한 예는 마트의 셀프 계산대다. 모든 사용자 가 동의하겠지만 이 기계들은 그야말로 그저 그렇다. 고장도 빈번한 데다 상품의 정보와 무게를 잘못 인식할 때도 많아 수시로 점원을 호출해 수동 결제 상태에서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이 기계들은 마 트의 생산성을 대대적으로 높여주지도 않고 구매를 대폭 늘려주지 도 않는다. 그저 직원의 노동을 고객이 하게 해 업주가 고용하는 시 간제 근로자 수만 약간 줄 뿐이다.
- 고객 상담원을 자동 응답 프로그램 으로 교체한다고 해서 영업 이익이 급격히 치솟는 것도 아니고 제품의 품질이 향상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회사가 적은 인원수로 같은 양의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비용 발생 부서'를 축소해 문제 해 결의 짐을 고객에게 지게 할 뿐이다.
그저 그런 자동화의 급증은 최근 자동화와 로봇 공학 분야의 진전에도 미국 경제 생산성이 크게 오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비합리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로봇 때문에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 큰 걱정이라면, 능력이 부족한 로봇보다 우수한 능력을 지닌 로봇을 갖추는 편이 옳을 듯하다.
- "아무리 좋은 기계도 기획력까지 갖출 수는 없다. 최고의 스팀롤러라도 꽃을 심지는 않을 것이다." (월터 리프먼)
-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도로 자동화된 경제에서는 기계와 구별되는 노동자의 기술과 능력이 가장 값지다. 우리는 스스로를 버그를 제거 해 최적화해야 할 생물학적 하드웨어로 대하기보다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어느 정도 이치에 맞았고 내가 수행한 다른 조사와도 일맥상통했다. 이 분야를 취재하면서 역사적으로 기술 변화의 시기에 성공한 사람들이 늘 첨단 기술을 다루는 공학자는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때로 그들은 기계가 복제할 수 없는 '로테크Low-tech, 하이 터치 high-touch'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18세기와 19세기 산업혁명 기간에는 공장 노동이라는 거대한 붐 이 일자 교사, 성직자, 토목 기사 그리고 과밀해진 도시 인구를 지원 할 전문가들에 대한 수요도 크게 높아졌다. 제조업 자동화 붐이 일 었던 20세기 중반에는 더 저렴한 가격에 더 효율적으로 물품을 생 산하게 되자 경제 활동의 더 많은 부문이 교육과 건강 관리 쪽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분야에서 업무를 담당할 로봇이나 훌륭한 기계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 기술 기업들이 경 제를 장악하는 동안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일부 직종(마사지 치료사, 언어 치료사, 사육사)은 명백히 아날로그적인 성격을 띤다.
- 과거 추천 시스템은 시간 절약을 목적으로 설계되었으나 오늘날 많은 추천 시스템은 우리의 시간을 앗아갈 목적으로 설계된다. 페이스북을 비롯해 인스타그램, 유튜브,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심지어 <뉴욕 타임스>까지도 추천 엔진을 통 해 맞춤 피드를 제공함으로써 (기계가 보기에) 사용자를 최대한 오래 붙잡아둘 만한 콘텐츠를 보여준다.
알고리즘은 충격적일 만큼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전체 유튜 브 시청 시간의 70%가 추천 알고리즘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전 체 아마존 검색의 30%가 추천에 따른 결과로 추산되는데, 이는 연 간 100억 달러의 수익으로 이어질 만한 수치다." 스포티파이가 알고리즘을 사용해 생성한 '디스커버 위클리 Discover Weekly'라는 재생 목록은 자력으로 음악업계의 히트 제조기가 되었다. 현재 월별 스트리밍의 절반 이상을 이 맞춤형 재생 목록에 의존하고 있는 음악가가 8,000여 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전체 넷플릭스 영화 시청 수의 80%가 추천에 따른 결과로 밝혀졌으며, 추천 기능 덕분에 매년 10억 달러를 절약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기계로 인한 표류에 저항하기 위해 나는 일상에 마찰을 조금 더하 기 시작했다. 아마존에서 전동 드릴을 사는 대신 차를 끌고 동네 철물점에 찾아간다. 모닝커피를 마실 때는 찬 우유를 커피에 넣기보다 2분 정도 우유를 따뜻하게 데우는 데 시간을 들인다. 주말에는 트위 터에 올라온 머리기사를 훑어보지 않고 신문을 펼쳐 찬찬히 읽는다. 사무실로 출근할 때는 15분 정도 시간을 더 들여서 주변 경관을 좀 더 볼 수 있는 길로 돌아간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러한 불편함은 매우 사소한 축에 속하며 나는 아주 운 좋게도 시간과 여유가 있기에 기꺼이 그런 불편을 감수할 수 있다. 나보다 훨씬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훨씬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사람은 최대한 편의를 추구하는 것이 맞다. 기술 엔지니어와 설계자들에게 바라건대 이미 충분히 편의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불편을 없애주기보다는 소외된 취약 계층이 겪는 마찰을 줄 일 방법을 찾아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자신의 생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라면 약간의 마찰과 자율성을 더한 생활 방식이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결국 행복한 순간과 자부심 넘치는 성취는 알고리즘 에 결정을 내맡겨 얻기 힘들다. 산 정상에 오르고 마라톤을 완주하고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우는 것은 모두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겠다고 스스로 결정한 결과로 얻어진다. 보람찬 일은 힘들 때가 많으며 힘든 일은 기계의 적이다.
- 한 연구에 의하면 많은 사람은 가만히 생각하기를 너무 불편해하는 나머지 조용히 홀로 있기보다 오히려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편을 대체로 선호한다. 34 버지니아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빈방에 홀로 앉혀놓고 10분에서 20분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이때 그들 몸에 전극을 연결해놓고 원한다면 버튼을 눌러 스스로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을 가해도 좋다고 했다. 전기 충격은 의무 사항이 아니었 다. 의무 사항이었다 해도 실험이 더 빨리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 기 충격은 순전히 그들이 지루함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자유롭게 선 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연구 결과를 보니 남성 참가자의 71%와 여성 참가자의 26%가 1회 이상 스스로 충격을 가했다. 참가자 대다수는 가만히 앉아 있기 와 전기 충격을 가하기 사이에서 후자를 택했다.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아무런 지침을 받지 못한 정신은 가만히 홀로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앱에도 실질적인 유익이 있으나 이는 기 본적으로 우리의 인지적 약점을 노려 더 많은 게시물을 확인하게 하 고 더 많은 동영상을 훑어보게 하며 더 많은 타깃 광고를 시청하게 해서 우리의 에너지를 뽑아내는 도구다. 이러한 기기들을 돕는 것이 인공지능다. 인공지능은 더 정확히 선호도를 예측하고 주의를 조종 한다. 그리고 번쩍이고 자극적인 보상을 통해 뇌의 쾌락중추를 활 성화한다. 이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자극에 젖어 있는 까닭에 지루함 을 느끼고 정신을 딴 곳에 팔 여유가 없다. 갖가지 생각을 연결 지으 며 상상 속에서 길을 잃을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런 경험들이야말 로 인간다움의 핵심인데 말이다. 그런 경험들이 없다면 우리는 로봇 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 물론 열심히 일해서 차별화를 꾀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 몇 년간 이른바 '허슬 문화 hustle culture' (일을 중심으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생활 방식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옮긴이)라는 이름의 전략이 날로 큰 인기 를 더하고 있다. 인플루언서와 비즈니스 전문가들은 쉬지 않고 꾸준 히 기울이는 노력과 생산성의 가치를 소셜 미디어 곳곳에서 설파하 고 있다. 이들은 트위터, 링크트인, 인스타그램에 "일어나 일하라", "월요일이라 감사합니다" 같은 문구가 적힌 '허슬 포르노' 밈을 게 시한다. 라이프해킹 요령을 주고받고, 불필요한 인지적 부담을 피하 려고 매일 같은 옷을 입거나 끼니마다 같은 것을 먹는다
허슬 문화에는 꽤 오랜 역사가 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철강 노동자로 일했던 프레데릭 윈슬로 테일러는 '과학적 관리법'을 만들어내 미국 재계를 사로잡았다. 40 테일러는 대다수 직종을 측정 가능한 표준화된 업무로 쪼갤 수 있다고 보았다. 비능률적인 부분을 해결하고 낭비되는 자투리 시간을 모두 없애면 이런 업무가 완벽해 진다고 믿었다. 궁극적으로 테일러는 생산성 강화가 모두에게 이롭 다고 믿었다. 회사는 생산량이 늘어서 좋고 노동자들은 최고의 성과 를 내서 성취감을 얻게 될 터였다.
-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심리학 교수 쿠르트 그레이는 두 그룹의 참가자들에게 같은 사탕 봉지를 나눠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안에 든 사탕은 전부 임의로 선택되었지만, 한 그룹에만은 그들을 생각해 다 른 사람이 개인적으로 사탕을 골라 담았다고 말해주었다. 이 그룹에 속한 참가자들은 사탕을 임의로 골랐다고 말해준 그룹보다 자신의 사탕이 더 맛있다고 평가했다. 그레이는 또 다른 실험을 통해 전자 안마 의자에서 마사지를 받은 참가자들은 인간이 버튼을 눌러 의자 를 작동시켰다는 얘기를 들으면 더 큰 만족감을 느꼈다고 보고했다. 노력 휴리스틱은 전통 양조업, 직접 재배한 식재료를 쓰는 식당, 공예가의 작품을 판매하는 사이트인 엣시 Etsy와 비슷한 상점들이 부 상하는 이유에 관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 와 전자책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도 여전히 레코드판과 종이책이 인기 있고, 사무실과 가정에 더없이 좋은 커피를 내려주는 기계가 있 어도 여전히 최고급 카페에서 바리스타가 만들어준 카푸치노가 비 싸게 팔리는 것 역시 노력 휴리스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와 정반대 상황, 즉 무언가에 투여된 인간의 노력을 숨기거나 제거하면 그 가치를 낮게 보는 현상도 노력 휴리스틱이 설명해준다. 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가 페이스북의 생일 축하 메시지다. 페이 스북 초창기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는 일은 정말 특별한 이벤트였 다. 50 친구들이 내 생일을 생각하고 있다가 생일 알림이 뜨면 내 프로필에 들어와 페이스북 담벼락에 뭔가 따뜻한 말을 적어줄 만큼 신경을 써줬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 후 페이스북은 더 수월하게 생일 축하 인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사용자들의 참여를 높이려 했다. 친구들의 생일을 캘린더 앱으로 내보낼 수 있게 하고 이를 뉴스 피드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했다. 게다가 클릭 한 번 으로 자동 완성형 생일 축하 메시지를 게시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페이스북의 생일 축하 메시지는 특별하고 친밀한 느낌을 잃었을뿐더러 친밀함과 정반대되는 느낌을 주고 말았다. 내 페이스 북 프로필에 "생일 축하해!"라고 쓴 모든 사람은 그저 앱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며, 더 친밀한 메시지를 보낼 만큼 신경을 쓰지는 않았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누군가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는 데 드는 노력을 줄여 친밀한 표현을 가벼운 모욕으로 바꿔놓았다.
- 일론 머스크처럼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도 자 동화 시스템에 지나친 권한을 부여한 데 따른 위험을 경험했다. 2018년 테슬라는 세단 모델 3의 생산 목표를 맞추는 데 애를 먹었 다. 자동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에 의존하는 공장 기계 장치가 계속 오작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생산 중단 사태가 계속되면서 좌절감을 느낀 머스크는 자동 컨베 이어 벨트를 멈추고 인간 노동자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생산에 속 도가 붙었고 테슬라는 목표량을 맞출 수 있었다. 기억해야 할 점은 머스크가 인공지능의 초지능이 결국 인간 문명을 위협하리라 믿었 다는 것이다. 그는 너무 많은 권한을 기계의 손에 맡긴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시인했다. 머스크는 트위터에 "테슬라의 과도한 자동 화는 실수였다. 인간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라고 썼다.
- "수만 명에게 이 재앙이 일어났지만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기술적으로 진보하지도 않았고 사회적으로 개화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말하는 해법이란, (진보라는 허울 아래 누군가에게는 파괴를 가져온 생활 수준을 회복시켜줄 진정하고 실속 있는 대안을 가리킵니다." (마틴 루터 킹, 1961년 미국운송노동조합 앞에서 한 자동화 관련 연설 중에서)
- 역사적으로 볼 때 넓은 그물망은 사회가 기술 변화에 더 수월하게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한 예로 일본은 수많은 공장에 로봇이 도입되던 1980년대에 '출'이라는 고용 제도로 굵직굵직한 해고의 충격을 완화했다. 해고 명단에 오른 노동자들은 해고되는 대신 출향제도에 따라 최대 수년간 다른 회사에 '임대되어 근무하면서 원고 용주가 그들을 위한 새 일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스웨덴의 경우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는 '일자리 보장 협 의회'라는 단체들에서 지원을 받았다." 이 협의회는 민간단체로서 수만 개의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돕는다. 이들은 고용주들이 낸 비용을 활용해 해고 노동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한다. 협의회에 소속된 직업 상담사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채용 중인 일자리를 주선 하고 다른 일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직업적, 정서적 지지를 제공한다. 오늘날 미국의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가장 빈번히 제안하는 넓은 그물망은 보편적 기본 소득 universal basic income, UBI이다. UBI 계획에 따르면 모든 시민 중 성인은 고용 상태나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매월 무상으로 현금을 지원받는다. 이미 미국 내 몇몇 지역 사회가 소규모로 UBI 프로그램을 시도해 긍정적인 초기 결과를 얻었다.
- 소로는 1854년에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메인주에서 텍사스주를 잇는 전신을 가설하려고 무척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메인과 텍사스는 서로 통신할 만큼 중요한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 마치 전신의 주요한 목적이 빠른 속도로 이야기하자는 것이지 조리 있게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다."
소로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1845년 7월 4일(공교 롭게도 이날은 소로가 월든 호숫가로 거처를 옮긴 날이기도 하다) 사라 배글 리 Sarah Bagley라는 노동 운동가가 했던 연설이 소로가 쓴 어떤 글보 다도 훨씬 직접적으로 기술 진보의 경로를 바꿔놓았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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