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렵시대에서 사육시대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역사를 구분하자면 수렵시대, 사육시대, 그리고 후기 사육시대 등 세 시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수렵시대는 앞서 말했듯 인간이 동물을 사냥하던 시대입니다. 인 간과 동물이 숲에서 동등하게 경쟁하던 시대이지요. 수렵시대가 끝나 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혁명인 신석기 혁명이 일어나면서 사육시대 (domesticity)가 개막합니다. 인류는 개에 이어 차례로 양과 염소, 소와 돼지, 그리고 말과 당나귀, 낙타를 가축으로 만듭니다. 살아 있는 동 물이 이때 처음 인간의 소유물이 됩니다. 경제·사회 구조도 변하지요. 많은 가축을 소유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잉여 자원이 많아 지면서 사유재산이 생기고, 이를 둘러싼 싸움과 전쟁도 잦아지지요. 신석기시대가 열리고 청동기, 철기시대로 이어지면서 생산의 효율성 은 높아지고 부가 축적됩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동물을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었어요. 동물은 농가에서 밭을 갈거나 수레를 끌거나 계란을 낳았지요. 인간과 동 물의 관계는 긴밀하고 지속적이었습니다. 돌보는 가축 무리의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인간은 동물을 하나하나의 개체로서 대했습니 다. 한지붕 아래 살면서 동물을 때론 가족으로, 노동의 동료로 여겼고, 동물의 이름을 지어 부르기도 했지요. 언젠가 식탁 위에 올리거나 고 기로 팔지언정 말이에요. 이러한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20세기 소비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지속됩니다.
- 우리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다가 가끔씩 먼 산과 지평선을 바라보곤 합니다. 미국 예일대학교의 사회생태학자 스티븐 켈러트Stephen Kellert는 이런 행동이 과거에 사냥을 위해 먼 곳을 조망하던 습관의 유산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떨어져 산지는 불과 100~200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긴 1만 년을 신석기인으로 살았고(사육 시대), 그보다 훨씬 긴 250만 년을 구석기 수렵채집인으로 살았지요(수 렵시대), 동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우리 몸에 새겨진 유전자의 각인에 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동물 위령제를 여는 우리의 정성은 인간이 느껴 왔던 죄책감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역사학자 리처드 불리엣Richard W. Bulliet은 인간과 가축이 맺은 관계의 역사 를 통괄하면서 '사육시대'와 '후기 사육시대'로 나눕니다. 둘 사이에 가로 놓인 것은 최근 100년 사이 사회·경제 체제의 격변을 이끈 일들이에요. 바로 자본주의 상품 경제의 본격화와 도시화, 그리고 공장식 축산의 등장 이지요.
사육시대에서 후기 사육시대로 넘어가면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우선 사육시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때는 인간이 가축 과 날마다 접촉하면서 그들과 사회적·경제적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계 란을 낳는 닭, 밭을 가는 소, 양털을 내주는 양, 음식물 쓰레기를 청소하는 돼지 등 가축은 가구의 경제 엔진이자 협력자 역할을 했어요.
- 고기의 성격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사육시대에 고기는 대개 사육 과정에 서 부산물로 이용됐고, 사육 그 자체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동물 의 지속 가능한 자원(노동력이나 계란, 털 등)을 주요 산물로 이용하고, 최후 의 수단으로 고기를 써 왔을 뿐입니다. 지금처럼 육종 기술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고기와 알 등을 대량생산하는 산업의 혁신이 이뤄지기 이전이어 서 동물이 귀했거든요. 인간은 동물의 성장, 교미, 죽음까지 전 일생을 가 까이에서 지켜보며 심리적으로 동류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 조선 시대에는 소 도살을 금하는 '우금령'(牛禁令)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양반 사대부들이 소고기 맛에 빠져들어 도살이 자주 행해지자, 농사짓는 소가 부족해질 것을 우려해 조정이 직접 나선 것입니다. 소의 개체 수 감 소는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릴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를 우려한 일종의 경 제 정책이었던 셈이지요.
후기 사육시대가 개막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접촉은 차단됩니다. 도시 바 깥의 폐쇄적인 공장식축산 농장에서 가축이 사육되기 때문에 인간은 동 물의 일상을 볼 일도 없고, 그들과 감정적으로 얽힐 일도 없었지요. 슈퍼 마켓에서 랩으로 싸인 상품을 소비하는 게 동물과 만나는 가장 일상적인 접점입니다.
역설적으로 이 시대에는 소, 돼지 등 농장동물과 비슷한 위치에 있던 개와 고양이 등이 반려동물로 대우받음으로써 특권화됩니다. 고급 사료와 행 동 교정 센터, 도그TV와 같은 문화적 충족물 등 이들을 위한 산업이 성장 하지요. 인간은 반려동물에게 감정적 교감과 위로를 얻고 있고요. 한편으 로는 맛있는 고기를 즐겨 먹고 가죽 제품을 사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는 '가족'이 된 개, 고양이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상황이 모순적이지요? 이 모순이 후기 사육시대의 복잡한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 '가축이 된다'는 것과 '동물을 길들인다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가 축은 수십 수백 세대의 인위적인 선택과 교배를 통해 유전자 변화를 수반하는 것임에 반해, 길들임은 현재 상태에서 그저 교감하여 특정 행동을 끌어내는 것뿐이니까요. 수족관에서 돌고래쇼를 하는 돌고래 가 가축은 아니지요. 길들인 것입니다. 관광지에서 사람을 태우고 다 니는 코끼리 또한 가축이 아닙니다. 먹이와 채찍을 통해 길들인 것이 지요.
반면에 개는 가축입니다. 인간과 함께 사는 것이 편하도록 유전자 안에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지요. 돌고래와 코끼리는 설사 수족관과 서커스장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이런 공간과 맞지 않는 본성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가축은 어느 순간 갑자기 탄생한 게 아니에요. 인간이 자기 필요에 맞는 온순한 개체를 고르고, 다시 그 개체가 비슷한 특성을 보이는 온 순한 개체와 교미해 번식하는 수많은 과정을 통해 새로운 '종'으로 거 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인간에게 새로운 가축 종을 만 들겠다는 치밀한 계획과 지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단순히 생활 의 필요에 따라 비슷한 동물을 구해서 교배했을 뿐이지요. 인간이 미 처 의식하지 못하는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이 새로운 가축 종을 확립한 거예요.
- 가축은 양치기를 돕기도 하고 쟁기질하거나 수레를 끌기도 하고 침입자의 접근을 경계하는 등 인간 옆에서 일하며 젖과 털, 고기를 인 간에게 제공했어요. 지금과 다른 면이 있다면, 인간이 가축에게 가장 기대한 것은 고기가 아니라 노동력과 부산물이었다는 점이에요. 가축 은 귀한 존재였습니다. 우유나 털 같은 부산물 그리고 노동력은 가축 이 살아 있는 내내 계속 얻을 수 있었지만, 한번 도살하여 고기를 먹 어 버리면 끝이었으니까요. 따라서 과거 사람들은 양, 소, 말, 당나귀 등에게서 실리적 이득을 취한 뒤, 실용적 가치가 없어지는 적절한 시 점에 도살함으로써 고기를 얻었어요. 돼지의 경우도 고기가 되기 전 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청소해 주는 역할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지요. 가축은 인간과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축산'을 영어로 하면 '애니 멀 허즈번드리'(animal husbandry)인데, 이는 '집에 연결된'(bonded to house) '동물'(animal)이라는 뜻입니다. 즉 인간이 동물을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게 아니라, 한 식구로서 책임을 지고 보살핀다는 의미도 갖지요. 신석기 혁명 이후 자본주의 출현 전까지, 이른바 사육시대에 가축은 가족단위에 배속되어 사는 모습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인간은 동물에게 먹 을거리와 살 곳을 제공하고 가축을 맹수로부터 보호했어요. 그 대신 가축은 인간에게 부산물과 노동력을 제공했으니, 상호 이익 관계라고 도 할 수 있겠지요.
둘 사이의 관계도 점차 친밀해졌습니다. 과거 수렵시대에 인간은 사냥을 할 때나 숲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 등 찰나에 동물을 만났지만, 신석기시대가 되자 인간과 가축은 같은 공간에서 지속적인 유대를 쌓 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미운정 고운 정'을 쌓아 간 거지요.
-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 Henry George는 이렇게 꼬집었지요. "매와 인간은 똑같이 닭을 먹는다. 그러나 매가 늘어날수록 닭의 숫자는 줄어들지만, 인간이 많아지면 닭의 개체 수도 증가한다.  이것이 인류 세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입니다.
오늘날 사육용 닭의 원종(기원이 된 종)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일 대에 사는 야생 닭인 '적색계'(붉은야생닭)입니다. 적색야계의 학명은 '갈루스 갈루스'(Gallus gallus)이고, 사육용 닭의 학명은 '갈루스 갈루스 도메스티쿠스'(Gallus gallus domesticus)예요. 닭은 원래 열대우림에서 살던 날지 못하는 새였습니다. 지금의 야생 꿩과 비슷한 생태적 위치를 차지했겠죠.
아직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사육용 닭은 신석기시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열대우림에서 살던 야생 닭이 인도나 중국 으로 들어가 가축으로 길들여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뒤 중동과 유 럽, 동아시아 등으로 퍼지며 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기르는 '새' 가 됐습니다.
하지만 가축이 되었다고 해서 야생동물의 유전자가 쉽게 사라지 지는 않아요. 살짝 날아서 횃대에 오르고, 외진 곳을 찾아 알을 낳고, 모래 목욕을 즐기는 행동 등 야생 닭의 습성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옛날에 사람들은 여러 마리의 닭을 마당에서 길렀어요. 마당은 유전자에 새겨진 닭의 본능이 발현될 수 있는 공간이었지요. 닭은 하루 이틀에 하나씩 마당의 후미진 곳에 알을 낳습니다. 새벽에는 '꼬끼오' 하고 울며, 사람이 나오면 줄지어 쫓아왔습니다. 나이가 들어 알 낳는 능력이 떨어질 쯤에야 사람들은 닭을 고기로 잡아먹었죠. 이렇듯 달걀 과 닭고기는 대량으로 만들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고급 식재료 로 통했습니다. 불과 60~70년 전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그런데 닭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공장식 축산이 시작된 것입니다.
- 사육용 닭은 배터리 케이지 한 칸에 두세 마리 이상이 들어가 평생을 삽니다. 닭 한 마리당 A4 용지 한 장 정도 되는 넓이입니다. 생산 량 증대를 위해서 밤에는 인공조명을 비춥니다. 알 낳는 빈도가 떨어 진 닭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기도 해요. 인위적으로 스트레스를 줘서 털갈이시킨 다음, 다시 알을 낳게 하는 거지요. 털갈이 뒤에는 알도 커 지고, 산란율도 높아지거든요. 그런 방식을 '강제 환우(換, 털갈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을 거친 닭은 그 뒤 1년 가까이 더 알을 낳고 도계(닭 을 잡아서 죽임)됩니다. 이렇게 닭은 2년 남짓한 짧은 생을 케이지 안에서 살다 갑니다. 열대우림의 적색계로 태어났다면 10~15년을 살았을 텐데 말이에요.
- 팜유 농장으로 만들어 기름야자를 재배하는 데에도 적잖은 환경비용이 듭니다. 우선 많은 물이 필요해요. 자연 상태의 열대우림은 건 기와 우기에 맞춰 스스로 조절하며 물을 빨아들이지만, 팜유 농장의 기름야자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물이 부족한 건기에도 수로를 만들어 일정량의 물을 대야 하죠. 기름야자 한 그루가 하루에 소비하는 물은 91L에 이릅니다.
열대우림은 지구 최대의 탄소 저장고예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1차림(원시림), 과거에 천재와 인재 등을 겪고 자연 상태로 보존된 숲인 2차림, 그리고 수백만 년 동안 식물이 분해되어 다량의 탄소가 함유된 이탄 지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죠. 숲이 불타면 1차림과 2차림 이 사라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 허파가 사라지게 됩 니다. 또한 이탄 지대에 불이 붙으면, 그동안 땅속에 붙들려 있던 탄소 가 검은 연기와 함께 대기로 배출돼요. 즉 불을 놓아 열대우림을 없애 는 행위는 지구에 치명적이라는 거죠. 열대우림의 개간 과정에서 나 오는 탄소는 지구 온실가스 방출량의 10%에 이를 정도라고 합니다. '이산화탄소 폭탄이 터진다'고 볼 수밖에 없는 열대우림의 훼손에 의 해 기후변화는 가속화합니다.
- 도도새 이야기를 들려줄까 합니다. 모리셔스섬에 살던 이 새는 16세기 초 포르투갈 선원들에게 발견된 후 200년도 안 되어 멸종합니다. 먹을거리가 없던 선원들은 날지 못하는 도도새를 방망이 로 때려잡아 먹었고(과도한 이용), 함께 상륙한 쥐와 개, 돼지 등은 도도 새의 알을 먹어 치웠습니다(외래종 침입). 도도새는 가장 극적인 멸종 사 례로 자주 인용되지요.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도도새가 멸종한 뒤, 이상하게도 모리셔스 자생종인 칼바리아(Calvaria) 혹은 탐발라코크 (Tambalacoque)라고 하는 나무 역시 그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미국의 조 류생태학자 스탠리 템플Stanley Temple은 모리셔스섬에 이 나무가 단 13그 루 남았다며, 급격한 개체 수 감소의 원인이 도도새의 멸종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 연구를 하기 시작하죠. 칼바리아 나무 열 매는 도도새의 먹이였거든요.
- 스탠리 템플은 도도새 대신 칠면조를 데려와 실험을 시작했는데, 칠면조에게 칼바리아 열매를 먹이고 배설물을 관찰했습니다. 배설물 을 통해 나온 씨앗은 한층 부드러워졌고, 그전보다 훨씬 잘 싹을 틔웠 습니다. 그는 이를 근거로 칼바리아 나무가 도도새로 인해 더 싹을 잘 틔울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도도새가 사라져 버렸으니,
칼바리아 나무도 연쇄적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거죠. 그의 주장은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실렸고, 칼바리아 나무는 '도도나무'로 유명해집니다.
스탠리 템플의 주장에 대해 여러 반론이 제기됐습니다. 그중 하나는 땅거북의 감소와 연관성을 찾는 가설입니다. 땅거북이 도도나무 씨앗을 먹고 이동하여 배설함으로써 이 나무를 널리 퍼뜨렸는데, 땅 거북의 개체 수가 줄어들어 이 기능이 정지됐다는 겁니다. 그리고 알 려진 것과 달리 칼바리아 나무가 단 13그루 남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 많은 수백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지적됐어요. 단지 과학 자들이 어린 나무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라고요. 과학자들은 칼바리 아 나무의 멸종 위기를 도도새의 멸종에서만 찾는 것은 협소한 시각 이라고 봤어요.
도도새에서 시작해 칼바리아 나무, 그리고 땅거북까지 꼬리를 물 고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생태계의 구성원은 복잡하게 서로 연결되 어 있다는 것을 다시 떠올리게 해 줍니다. 또한 멸종은 하나의 원인으 로 소급되지 않고, 저마다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생태계 구성원의 행위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결과라는 것도 깨닫게 해주죠. 우리는 이 러한 복잡성에 항상 유의해야 해요. 생태계를 잘 알고 있다고 과신해 서도 안 됩니다.
- 고릴라를 보지 못한 이유
앞서 살펴본 무주의 맹시 실험에서 상당수 피실험자가 고릴라를 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의 두뇌가 시각 정보를 죄다 받아 들이지 않고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눈은 응시하고 있었 지만, 뇌는 보지 않은 것이죠.
우리 눈의 망막은 영상이 비쳐지는 일종의 '스크린'입니다. 빛이 눈의 동공을 통과해 눈 안쪽까지 들어오면 물체의 상이 망막에 맺히 지요. 망막에 있는 시각세포는 물체의 상을 전기적 신호로 변환시켜 시신경을 통해 먼 곳으로 보냅니다. 바로 눈의 반대편, 뒤통수 쪽에 위 치한 뇌의 시각피질이 최종 목적지이지요. 이 과정이 완료되어야 우리가 비로소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도착한 모든 신호를 뇌가 처리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렇다면 뇌는 어떤 신호를 선택할까요? 뇌는 익숙한 패턴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익숙한 패턴과 관련 있는 정보는 잡아 내는 반면, 나머지는 버리는 경향을 보이죠. 무주의 맹시 실험을 예로 들자면, 뇌가 집중하는 것은 선수들이 공을 주고받는 활동(패턴)입니 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흰색 유니폼 팀의 패스 횟수를 세야 하 니 흰색 팀의 패턴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따라서 '고릴라'라는 시각 정보가 망막에 비쳤다고 하더라도, 뇌는 그것을 배제해 버립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패턴화 사고 경향이 인간 두뇌 활동의 특징이라고 말해요.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받아 해석하지 않고, 미리 주어진 가설과 관련된 것들만 선별해 두뇌가 처리하는 거죠. '미 리 주어진 가설'이라는 것이 바로 '패턴'입니다.
- 캐럴 애덤스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신경학자인 조지 비어드 George M. Beard의 연구를 소개하며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유럽 문 화권의 식단에는 다른 문화권에 견줘 고기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영 국인과 미국인은 '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죠. 심지어 인간이 고등동물로 진화한 데에는 고기의 영향이 컸다며, 채식은 인 류의 진화 정도를 낮추므로 고기 섭취량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요. 육식주의와 인종주의, 우생학적인 시선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 었죠. 비어드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인도인과 중국인, 그리고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아일랜드 농민은 여전히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영국에 종속되어 있다"고까지 했답니다.
- 인간의 사고는 은유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의 개념을 다른 개념과의 유사성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인지 기제가 있거든요. 캐럴 애덤스가 지적했듯, 여성을 고기로 은유하는 행위는 그래서 위험합니다. 혐오의 방식은 서로 배워 나가며 확산하고 강화 되기 때문입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습니다. 잔인함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확대되고요.
우리 사회는 여성을 비롯해 성 소수자, 장애인, 이주 노동자 등에 대해 그동안 눈감았던 차별을 성찰하고 폭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수백 년간 끔찍한 차별을 감내한 흑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 습니다. '백인들이 말하는 정의는 그들만의 정의'라는 것이죠. 동물도 약자예요. 동물도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요? "인간들이 말하는 정의는 인간들을 위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온게 '종차별주의' 비판입니다. 종차별주의는 인간이 비인간동물보다 더 큰 권리를 가졌다는 생각입니다. 현대인 대다수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관점이죠. 그런데 상식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구처럼, 동시대의 너무나도 당연한 생 각을 '종차별주의'라고 호명함으로써 비로소 지배적인 세계관을 돌이 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975년에 『동물 해방』을 쓴 피터 싱어 Peter Singer는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종의 이익을 옹호하면서 다른 종의 이 익을 배척하는 편견 또는 왜곡된 태도" 83 로 종차별주의를 정의하면 서, 차별을 논하는 대상의 범위를 인간에서 비인간동물로 넓혔습니 다. 20세기 초반까지 백인이 흑인이나 아시아인을 대하는 자세, 남성 이 여성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사고와 윤리의 범위가 지금과는 확연 히 차이가 날 정도로 백인 남성 중심의 틀에 갇혀 있던 것을 볼 수 있 을 거예요. 역사는 기본권이 확장된 역사였습니다. 
- 미국의 사회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유럽 서부전선(프랑스-벨기에)에서 벌어진 '크리스마스 정전( 戰)'을 이야기하며 『공감의 시대』 서두를 엽니다.'' 독일군과 영국-프 랑스 연합군이 참호를 파고 평행 대치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되자, 양쪽의 병사들이 참호 밖으로 나와 음식과 선물 을 주고받고 축구공까지 차면서 놀았다는 이야기죠. 지휘부의 명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평화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공감 모터는 개인의 마음속에 내재한,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잎새일 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모터가 되기도 합니다.
- 미국은 소수의 정육 가공업체가 대규모 도축장을 운영합니 다. 각지에 분포된 소, 돼지, 닭 등이 미시간주 등지에 있는 소수의 도 축장으로 옮겨져 도살·가공된 뒤 다시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 식이에 요. 코로나19 사태로 도축장도 부분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도축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코로나19 바이러 스가 퍼졌어요. 결국 도축장이 대부분 폐쇄되며 소, 돼지, 닭이 농장에 서 출하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졌죠. 좀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고 요? 아닙니다. 별일 아닌 듯 보이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 돼지를 예로 들어 볼까요?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돼지는 종돈장 에서 태어난 뒤 3주째에 젖을 떼고 어미와 떨어져, 다른 곳에 있는 비 육농장으로 옮겨져요. 비육 농장에서 살을 찌워 6개월째에는 도축장 으로 보내지고요(우리가 먹는 돼지는 사실 새끼 돼지에 가깝습니다. 자연 상태라면 돼지 는 10~15년을 살아야 하거든요). 이때 돼지는 종돈장에서 비육 농장으로, 그 리고 도축장으로 컨베이어 벨트를 타듯 멈추지 않고 움직여 줘야 하 죠.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도축장에서 물량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 니, 돼지들이 비육 농장에서 적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농장주로선 돼지를 팔지도 못하는데, 사료값과 분뇨 처리 비용을 써야 하는 상황에 놓였죠. 게다가 돼지를 8개월, 10개월째 출하하면 6개월령으로 최적화된 '고기 맛'이라는 품질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농장주는 결국 돼지를 그냥 살처분하는 게 경제적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차라리 농장을 비우고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뒤 동물을 다 시 키우는 게 낫다는 것이죠. 미국에서는 그런 이유로 돼지와 닭이 대 량 살처분되고 말았어요. 이 동물들은 코로나19 에 걸린 적도 없는데 말이에요. 미국의 전국돈육생산협회(NPCC)는 2020년 봄, 그해 9월까 지 살처분해야 할 돼지가 약 1,000만 마리가 될 것이라는 추정치를 내 놓기도 했죠.
돼지와 닭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 동물들이 물건처럼 취급되는 공장식 축산의 생산 시스템이야말로,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에 취약했을 뿐이지요. 돼지와 닭은 그 때문에 억울한 죽임을 당했던 셈이고요. 바이러스는 동물(박쥐)에서 중 간숙주(천산갑)를 거쳐 사람을 타고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마비시켰고, 이 결과가 다시 동물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도축장 운영이 중단되자 시장에선 고기 가격이 오르는 등 품귀 현상이 발생했다고 해요. 정작 고기가 될 동물은 살처분되는 와 중에 사람들은 비싸서 고기를 사 먹지 못하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 게 보아야 할까요? 코로나19 사태는 공장식 축산 체제의 병리적 현상 을 폭로했습니다.
- 온실가스 배출량을 볼까요? 축산 부문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를 차지합니다. 이는 인류가 운송 수단을 사용하는 데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과 맞먹어요. 세상 모든 사람이 하루 동안 고기를 먹지 않 는다면, 세상 모든 탈것이 하루 동안 정지하는 경우와 비슷한 수준으 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겠죠.
그렇게 많은 온실가스가 축산 부문에서 배출되는 원인은 우리가 먹는 고기의 양이 근대 이후 갑자기 늘어서예요. 특히 소를 사육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발생합니다. 축산 부문에서 배출되는 온실 가스 가운데 3분의 2 정도가 소를 기르고 우유를 짜는 작업에서 생겨 나거든요. 소 같은 반추동물은 되새김질을 하잖아요? 한번 삼킨 먹이를 게워 내 다시 씹죠. 되새김질을 통해 위에서 생긴 메테인(메탄)은 소가 숨 쉬거나 트림할 때 몸 밖으로 나와요. 소에게서 나오는 메테인이 전 세계 메테인 배출량의 37%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메테인은 열을 잡아 두는 능력이 이산화탄소보다 21배나 높아요. 같은 양이라도 더 큰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셈이죠. 하지만 메 테인은 대기 중 수명이 이산화탄소보다 짧습니다. 따라서 메테인 배 출량을 줄이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볼 수 있 겠죠? 고기를 줄이는 식습관이, 우리 각자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최 선의 실천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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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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