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옴시티

사회 2023. 10. 27. 11:38

- 우선 사우디 정부, 특히 최고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위해 거대한 숫자와 미래지향적인 조감도를 내세워 속내를 숨기고 있다. 빈 살만은 세계 최대 PR 컨설팅 회사인 에델 만의 자문을 받아 집권 초기부터 스스로의 이미지를 구축해 가고 있으며, 네옴시티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네옴시티의 성공 가능 성에 대한 논쟁 자체도 빈 살만이 의도한 부분일 확률이 높다. '무 플보다는 악플이 차라리 낫다'라는 말처럼, 무관심보다는 비판 여 론이라도 들끓는 편이 네옴시티, 더 나아가 빈 살만이 구상하는 새 로운 사우디아라비아의 홍보와 인지도 제고에 도움되기 때문이다.
- 일견 경제적인 프로젝트로 이 해되는 네옴시티 프로젝트는 사실 지극히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프 로젝트다. 사우디 정부가 구상하는 네오(NEO)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와 맞닿아 있으며, 이는 사우디 정부가 2016년 발표한 향후 15년간의 국정 기조, 사우디 비전 2030'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 야 한다.
- 네옴시티를 포함해 중동 관련 프로젝트를 해석할 때 유의할 또 다른 점은 과도한 낭만주의와 편견이다. 사우디가 한국과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먼 국가라는 점은 객관적이고 냉정한 이해를 어렵 게 하고 있다. 특히 '제2의 중동붐'이라는 표현은 50대 이상 한국 인들에게 고도성장기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면서 대책 없는 낙관론 을 퍼뜨리고 있다.
그동안 '제2의 중동붐'으로 불리던 수많은 중동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1차 중동붐과 리비아 대수로 공사 정도 이외에 한국 기업에 큰 성과를 가져다 준 프로젝트가 몇 개나 있었는가? 1973년부터 1982년까지 지속된 1차 중동붐은 여러 가지 호재와 겹쳐 한국의 고속성장을 이끌었다. 1 고유가로 팽창한 사우디의 국부, 2 건설/ 토목 역량이 떨어지는 현지 건설사, 3 친미적인 양국의 외교 기조, 저렴하지만 질 좋은 한국의 건설 인력, 5 높은 한국의 실업률, 권위주의 정치체제(한국)와 관료제로 인한 빠른 의사결정 등이 그 성공 요인이다. 하지만 이 중 현재의 사우디-한국 관계와 오버 랩 되는 부분을 찾기가 어렵다. 1990년대 이후 제2차 중동붐을 외 치며 중동 건설시장에 뛰어들었던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적지 않 은 손실을 보고 사업 철수를 선언한 상황이다.
- 이런 굵직한 글로벌 이벤트들은 각국 왕가가 절대 놓칠 수 없는 꽃놀이패다. 카타르의 국왕인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는 2013년 왕위 계승 이후로 한동안 공적이 없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아버지인 전대 카타르 국왕 셰이크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가 급 속한 경제성장과 의회제 도입 등의 업적으로 역사상 최대 명군으 로 꼽히는 것에 비해, 아들인 현 국왕에게는 큰 업적이 없었던 탓 이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으로 카타르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성공하며 국왕에 대한 국내외 지지율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두바이 또한 엑스포의 유치부터 조직, 개최까지 왕족들이 리더십 을 보여주며 국민의 지지율을 이끌어 내고 있다. 엑스포 후보지 선 정 과정에서 최종 PT는 림 알 하쉬미 공주가 직접 리드하며 심사위원단의 주목을 받았다. 두바이의 왕세자인 셰이크 함단은 엑스포 후 보지 선정 직후인 2013년 두바이를 상징하는 마천루, 장장 828 미 터에 달하는 부르즈 할리파에 올라가 자기 손으로 국기를 꽂는 퍼 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직까지 별다른 글로벌 이벤트가 없는 와중에 네옴시티는 사우 디 왕가, 특히 빈 살만 왕세자의 리더십을 대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전망이다. IR을 비롯한 네옴시티 관련 주요 행사를 빈 살만 왕세자가 직접 주관하고 연사로 나서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단순히 경제적 투자수익률(ROI)만으로 네옴시티 의 성사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지극히 부족하다.
- 특히 빈 살만 정권에서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려가는 분야는 스 타트업과 주요 IT 사업, 이른바 하이테크 분야다. 기본적으로 현재 사우디의 투자 방식은 현재를 팔아 미래 가치를 사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꾸준한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는 현금창출원, 예 를 들면 아람코와 같은 기업의 지분을 매각해 미래의 핵심이 될 만 한 기업을 사들여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계 일본인인 손정의가 경영하는 테크 전문 투자 회사, 비전 펀드(Visioin Fund)와 빈 살만 왕세자의 끈끈한 관계는 글로벌 투자 동향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소식이 되었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16년과 2018년에 각각 450억 달러씩 두 차례, 비전펀드에 막대한 투자를 집행했다.
또한 테슬라의 유력한 대항마로 꼽히는 전기차 회사 루시드 (Lucid)에도 2018년부터 꾸준히 투자를 진행해 과반 주주가 됐으 며, 미국 상장 기업에만 41조 원가량을 투자하고 있는데 주로 페이 팔과 같은 IT 기업의 비중이 높다. 이 밖에도 닌텐도, EA, 액티비전 블리자드 등 유명 IP를 보유한 게임 회사의 지분을 꾸준히 사 모으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했던 빈 살만 왕세자의 취향이 상당히 반영되었다고도 한다.

- 두바이는 18세기까지 사실상 무인 지대에 가까운 소규모 어촌에 불과했다. 1920년대에 들어서 무역과 진주 채취로 인구가 서서히 증가했고, 이후 석유 시추가 이루어지며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하 긴 했지만 주변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하면 석유 산출량은 소규모에 그쳤다. 그러다 걸프전 및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두바이에게 큰 기회가 됐다. 전쟁이 터진 쿠웨이트와 여타 주변국에서 철수한 자본들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던 두바이로 몰려든 것이다.
두바이는 2000년대 이르러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하며 빠른 성 장을 이루어 낸다. 적극적으로 해외 자본을 유치해 그동안 없던 혁 신적인 시도(특히 부동산 분야에서)를 거듭한 덕이다. 그 대표적 사례 가 바로 팜 주메이라다. 2001년에 조성하기 시작해 2009년 완공 된 이 인공 섬은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마치 거대한 야자수처럼 보이는 전경이 특징이다.
- 한국 언론들의 국제 뉴스에서는 전제군주정을 택하고 있는 이슬 람 국가의 체제를 일괄해서 왕정으로, 그리고 수반을 왕으로 지칭 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국가 수반들이 국가 내에서 왕과 같은 절대적인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틀린 번역 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말로는 '왕국'으로 번역되는 말들의 아랍어 원문과 영어를 살펴보면 이들 국가들의 체제 사이에는 미묘하게 차이가 존재한다.
그중 사우디아라비아는 서방에서 의미하는 전형적인 왕국(King-dom)의 형태다. 국가 수반은 왕을 뜻하는 단어인 말리크(Qo)라고 불리며, 헌법에 해당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기본법에 따라 입법, 사 법 및 행정의 전 분야에 걸친 절대적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국왕은 이슬람법인 샤리아와 이슬람의 기본 경전인 쿠란을 준수할 의무를 가지는 만큼 일종의 종교지도자적 성격을 가지며, 이에 따 라 공식 명칭에 '두 개의 성지(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라는 칭호가 함께 붙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GCC 국가인 바레인도 왕국을 자 칭하고 있다.
사우디의 바로 옆에 붙은 오만도 절대왕정을 선언했지만, 특이 하게도 군주를 왕이 아닌 술탄(juble), 자신들의 정체를 술탄정 (Sultanate)이라 부르고 있다. 술탄이라는 칭호는 아랍어로 '힘'을 의미하며, 후에 서술할 '아미르'라는 단어보다 한 격조 높은 칭호로 분류된다. 이 칭호는 제정일치 사회였던 초기 이슬람 제국에서 종 교적 권위자와 세속적 지도자의 역할이 나뉘어지면서 후자를 부르 는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의 지도자도 한때는 자신을 술탄으로 자청하기도 했다.
덩치는 작지만 부유한 카타르와 같은 도시국가형 GCC 부국들 은 자신들의 국가원수를 아미르(i)라고 부른다. 이는 서양의 대공 (Prince) 정도에 대응되는 작위로, 우리말로는 토후라고 종종 번역 되기도 한다. 초기에는 지방 총독이나 장군을 부르는 명칭이었지 만, 이들이 점차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작은 왕으로 발전하 면서 사실상 소왕과 같은 의미를 띠게 됐다.
- 더 나아가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 United Arab Emirates)의 ‘에 미리트'는 아미르에서 유래한 말로, UAE라는 국명에는 아미르국의 연합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UAE는 독립적인 7개 국가(아부다비, 아지만, 두바이, 푸라이자, 라스 알 카이마, 샤르자, 움 알 쿠와인)의 연합국 으로, 독립주들의 연합으로 출발했던 초기 미국의 역사와 유사하 다. 군사와 외교 정도를 제외하고 UAE를 구성하는 각각의 아미르 국들은 높은 자유도를 지닌다. UAE의 국가원수로는 가장 영향력 이 강한 아부다비의 아미르가 대통령을, 그리고 두바이의 아미르가 부통령을 자동으로 역임하게 된다.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할리파(aingdb)라는 칭호도 있다. 무 함마드 이후의 초기 이슬람 제국에서 종교와 정치적 권위를 모두 보유한 제정일치 절대군주를 부르는 명칭으로, 실권을 보유한 할리 파는 8세기까지만 유지가 됐다. 이후 할리파는 오늘날 로마 가톨릭의 교황처럼 실권을 잃은 이슬람의 종교지도자로 남게 됐으며, 일 부 지역의 패권국들이 할리파를 자칭하기는 했지만 경쟁국들은 이 를 인정하지 않는다. 16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도자가 술탄과 할리파를 겸하기도 했으나, 오스만 제국의 멸망과 함께 할리파는 역사 속으로 사실상 사라져 버렸다.
전 세계적인 군벌 조직이었던 IS(이슬람국가)의 지도자 아부 바크 르 알바그다디는 뒤늦게 21세기에 이르러서 할리파를 자칭하기도 했었으나, 현재 그들의 세력이 몰락하면서 사실상 해당 칭호를 사 용하는 제대로 된 정치 세력은 없다.

- 실용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인 '독재자'?
빈 살만은 실용주의자이자 자유주의적 개혁을 이끌고 있는 인물 이지만 동시에 피의 독재자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자유주의와 독재라는 단어는 마치 불과 얼음 같아서 두 개념이 어떻게 병 존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이는 이슬람 문 화권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개혁 성향을 가진 독재자, 또는 절대 군주가 사회 전반에 만연한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분위기를 일신하 기 위해 정책을 밀어붙이는 사례는 튀르키예 건국의 아버지인 케 말 아타튀르크나 카타르의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등에서도 확 인할 수 있다. 언급된 국가들이나 사우디의 경우 워낙 오랜 기간 사회가 경직되고 종교적으로 경도된 탓에 일반적으로 개혁 개방의 핵심이 되는 성숙한 시민사회와 의식 있는 중산층이 형성되어 있 지 않다. 결국 국가 지도자의 주도에 의해서만 본질적 변혁이 가능 하다는 것이 빈 살만 옹호자들이 내놓는 목소리다.
- 이와 유사한 경우는 더 이전의 세계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17~19세기 동안 유럽에서는 계몽주의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 군주 들이 다수 등장했다. 서유럽의 계몽 군주들은 시민사회의 추대와 지지를 받아 다소 온건한 개혁을 추진한 반면 동유럽의 계몽 군주, 가령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 등은 반대파들에 대한 무자비함과 타협 없는 독선적 정책으로 악 명을 산 경우가 많다. 국민의 대다수가 중세 농노이거나 완고한 보 수파 귀족이었던 만큼 개혁에 찬성표를 던지고 옹호세력이 될 만 한 세력이 국내에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빈 살만의 경우 이 온도차가 유독 크다는 평이다. 그가 추 구하는 이상적인 국가상과 이를 위한 무자비함의 차이가 말이다.

- 선형 도시 자체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폴란드의 술로조바 (Suloszowa)시는 9킬로미터에 걸친 단일 도로의 좌우로 길쭉하게 도시가 자연적으로 형성돼 있으며, 스페인의 유명 건축가 아르투로 소리아 이 마타(Arturo Soria y mata)는 이미 1882년 마드리드 도시 개발 계획에 선형 도시 콘셉트를 제안한 바 있다. 다만 무려 170킬 로미터라는 거리의 선형 도시는 일찍이 구상해 본 적도 없는 수준 이다. 이런 선형 도시를 인공적으로 설계하고 구축해 나가기 위해 서는 이에 비례한 고민과 정교한 구상이 필요하다.
더 라인은 역사상 유례없는 위아래로 끝없이 깊고 좌우로는 길 쭉하지만 폭은 좁은 도시다. <저지 드레드> 등의 SF 영화에서 나오 는 벌집과 같은 인구 초고밀도 도시 형태, 하이브 시티(Hive City)와도 유사해 보인다. 이런 독특한 도시 설계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시 내의 수직적 이동 수단(가령 엘리베이터)과 수평적 이동 수단, 그리고 대안적 혁신 모빌리티의 결합이 도시계 획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유동인구의 이동 수요를 빠르게 충족시키면서도, 교통의 공백지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
더 라인의 끝과 끝을 연결해 해안가와 공항을 잇는 초고속 철도 더 스파인(The spine)이 역내 장거리 이동의 주된 수단이다.

- 앞서 설명했지만 건국 이래의 사우디 외교를 요약하자면 '친미, 수니파 이슬람의 수장'이라는 두 가지 테마에 맞추어 자신들의 막 대한 오일머니와 메카 및 메디나의 수호자라는 종교적 권위를 적 극 활용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융통성이 떨어지고 구시대 적이라는 평을 들어 왔다.
반면 빈 살만은 친미 노선을 벗어나 적극적인 다자외교를 추구 하고, 오랜 적국이던 이란, 이스라엘과도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 는 등 파격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 다양한 국제 분쟁과 복잡한 외 교 전선에 적극 개입, 조정자로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위상을 끌어올 리며 중동의 능동적인 패권국가로 포지션을 전환(Pivot)하고 있다 는 의미다. 바로 이런 역할이 돋보이려면 수백 개의 국가들과 정상 이 모이는 국제 행사와 스포츠 행사가 제격이다.
더 나아가 빈 살만의 주된 지지층인 사우디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도 크다.
다만 빈 살만 스타일의 스포츠 워싱이 언제까지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여담이지만, 네옴시티의 성공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함 께 언급되는 사례가 인접국 UAE 아부다비에서 추진한 마스다르시 티이다. 마스다르시티는 무려 지난 2008년부터 건설이 시작된 제 로 탄소 기반 스마트 신도시로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 다. 석유 부국이 국가 단위에서 추진하는 제로 탄소 스마트시티라 는 점이 네옴시티와 빼닮았지만, 그 규모는 네옴시티와 비교하면 많이 검소한(?) 수준이다.
마스다르시티는 200억 달러를 투자해 총 면적 6제곱킬로미터의 도시를 구축, 5만 명 정도의 인구, 1500개의 기업을 수용한다는 지 극히 현실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판교 신도시가 약 8제곱킬로미터 에 9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판교의 3분의 2정도 규모다. 마스다르시티 내에서는 다양한 R&D 센터와 국제재생에너지기구(IEA) 본부, 지멘스 본사 등이 유치될 계획이다.
첫 삽을 뜬 지 15년이 지났지만, 영미권 외신 중에는 마스다르시 티를 사실상 실패한 프로젝트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다. 2023년 현 재까지도 1단계 건설만 간신히 마친 데다가, 실제 수용 인구도 아 직 2000여 명에 불과하고, 일각에서는 공기가 2030년을 넘길 가 능성도 나오고 있다. 6제곱킬로미터의 신도시조차 이렇게 오랜 시 간이 걸려도 지지부진하기에, 이보다 수백 배 규모의 사업인 네옴 시티가 성공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 GCC 국가들 사이에서는 카팔라(Kafala) 시스템이 노동권 유린과 만성적인 산업재해의 원인으로 꾸준히 지목되어 왔다. 카팔라 시스템이란 중동 지역 고유의 계약 체계로 해외 고용주들과 이주 노동 자가 일종의 후원 계약을 체결, 이후 고용주가 노동자 통제 및 관 리권을 행사하게 되는 형태다. 비자 후원과 보증을 고용주가 전적 으로 담당하는 만큼 노동자는 노동삼권은 고사하고 임금체불이나 노동착취에도 제대로 항의하기가 어렵다. 여차하면 한 푼도 받지 못 하고 국외로 추방당할 수도 있는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다. 사우디는 지난 2020년 G20 의장국으로 선정되며 공식적으로 카팔라 시스템을 폐기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관습과 제도적 미비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며 열 악하고 위험한 노동 환경에 내몰려 있는 실정이다. 네옴시티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 네옴시티가 중국의 전철을 밟아 역대 최대, 최고 수준의 기술로 구현된 판옵티콘이 되리라는 걱정에는 나름의 합당한 근거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통되는 CCTV 중 40%가 중국산이며, 중국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 또한 중국-사우디 간의 밀월에 힘입어 사우 디로의 중동 본사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현재 인터넷 검열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술적인 제휴가 이루 어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로이터 통신은 2022년 한 기사에서 이와 같은 악몽이 어 떻게 구체화될 수 있는지를 조망한 바 있다. 더 라인의 경우 1000만 명에 달하는 거주자의 각종 데이터를 수집·활용해 맞춤형 생활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데이터가 구체적으로 어떤 익 명화 및 보호 절차를 거칠지는 아직 하나도 공개되지 않았다. 오히 려 개인을 감시하거나, 수집 목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악용될 가 능성도 있는 것이다.
사우디 정부는 건국 이래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정보의 감시와 통제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반왕실 · 반정부 성향의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사우디 국적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를 암살해 국제사회에 큰 논란을 일으켰으며, 2023년에는 위키피디아 중동 지역 관리자 2명에게 각각 32년, 8년의 실형을 선 고했다. 이 밖에도 종교 및 정치적 콘텐츠, 그리고 성인물 등에 대 한 인터넷 검열을 만성적으로 시행 중이다.
이와 같은 우려는 거주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네옴시티의 성공 가능성을 낮추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네옴시티는 글로벌 디지털 허브를 지향하고 있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국적의 해외 전문가들을 영입해야 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의 상당수는 자유 및 인권 지수가 높은 북미·유럽 선진국 출신이 많 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과연 도시 미관이 아름답고, 집값이 싸며 연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이 정보 통제가 심한 사막의 신도시로 이민을 결심할 수 있을까?

- 외교 정책 분야에서 현재 빈 살만이 취하고 있는 기조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에 가깝다. 천 년 가까이 아옹다옹 해온 이란에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미는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 건국 이래 외교 기조의 큰 틀을 이뤘던 절대적 친미 정책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이후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를 단순히 반미 친중 외교 로 이해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오히려 그동안 당연하다 여겨졌던 사우디의 외교 정책에 근본적 변화를 줌으로써, 사우디가 타국에 외교의 '상수'가 아닌 '변수'가 되도록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라고 이 해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사우디가 보이는 정책에는 언제든지 적과 우군을 바꿀 수 있는 능동 외교를 통해 주변국과 G2에 받을 건 최대한 받아내는 실리적이고 복잡한 셈법이 담겨 있다는 해석 이 현재로서는 가장 정답에 가깝다.
- 사우디가 그동안 불편한 관계를 맺었던 주변국들과 서둘러 국교 정상화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빈 살만 왕세자가 네옴시 티를 필두로 자신이 주도하는 뉴 사우디아라비아에 특별한 지정학 적 변수가 도출되는 걸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했듯 네 옴시티가 위치할 타북은 사우디의 변방으로, 이스라엘, 시리아 등 그동안 적대적 관계를 맺어온 주변국과 매우 가깝다. 네옴시티 건 설을 앞두고 외국의 막대한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리 아, 이란 등 주변국과 트러블을 겪는다면, 외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 을 수 있다. 큰 시험을 앞두고는 낙엽도 조심해서 밟는다는 말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실제로 사우디의 이런 우려는 예멘 내전과 관련해 어느 정도 현실화되고 있다.
2014년에 시작된 내전은 10년째 지루하게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다. 예멘 정부가 사실상 붕괴한 상황에서 구 예멘 정부군 및 수니 파 연합군은 사실상 사우디군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월남전이 표면상으로는 월남군과 월맹군의 전쟁이었지만 실제로는 미군과 월맹군의 전쟁이었던 것처럼, 예멘 내전도 후티와 사우디의 양파전 으로 점차 굳어져 가고 있다. 2016년부터 국방 보좌관 자격으로 예멘 전선을 주도해 온 빈 살만은 예멘 내전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후티 반군은 더 나아가 수니파 연합군 내부에서 반전의 목소리를 이끌어 내기 위해 게릴라성 드론 및 로켓 포격을 아라비아반도에 퍼붓고 있다. 실제로 2018년 7월과 2022년 1월에는 UAE에 후티 반군이 발사한 로켓이 떨어지면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만일 네옴시티 인근에 단 한발이라도 미사일이 떨어진다면 다수의 외국인 투자자들은 투자에 등을 돌릴 것이다.
- 그럼, 사우디의 지역 패권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누구일까? 바로 이란이다. 두 국가는 국경이 직접 인접하지 않아 육로로는 이 라크와 쿠웨이트를 사이에 끼고 있고, 해로로는 페르시아만을 가로 질러 마주보고 있다. 양국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단교 와 국교 재개를 거듭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접 국의 내전에도 개입해 가뜩이나 복잡한 중동의 현대사를 더욱 꼬 아 놓는 중이다.
양대 지역 패권국이 대립각을 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종교 때문 이다. 사우디는 이슬람, 특히 전 세계 수니파 이슬람의 종주국인 반면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의 고향 같은 곳이다. 그래도 1979년 이 란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는 사우디의 사우드 왕국과 이란의 팔라 비 왕조 모두 친미 성향이었던 만큼 별다른 갈등이 드러나지 않았 지만, 이란이 시아파 신정일치 국가임을 선언한 이슬람 혁명 이후 갈등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란-이라크의 8년간의 치열한 전쟁(1980~1988)에서도 사우디 는 이라크의 손을 들어주며 이란과의 갈등을 본격화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턱밑에 원리주의 시아파 신정국가가 탄생하는 것을 경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가 중동에서 드문 친미 국가이고 반대 로 이란은 대표적인 반미 국가였기에 미국은 노골적으로 사우디의 중동 패권을 편들어 이란을 견제해 왔다.
2008년 아랍의 봄 이후 중동 각국에서는 정권이 붕괴하고 종교 적 분파들이 득세하며 춘추전국시대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내전이 발생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이때를 기점으로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 의 종주국을 자처하며 중동 전역에서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대표 적으로 예멘의 정부군(수니파) 대 후티 반군시아파), 시리아 아사드 정권시아파) 대 수니파 반군, 이라크 내전 등이 그 일례다.
- 사우디와 이란의 대립은 현대에 와서는 종교적, 정치적인 양상을 띠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인종적이고 역사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사우디 국민의 주류는 아랍인, 이란 국민의 대다수 는 백인계 아리아인이다. 두 민족은 이슬람 발흥 이래로 1400년 동안 이슬람 국가의 종주권을 두고 다뤄왔다.
다만 이와 같은 긴 분쟁도 최근 봉합될 여지를 보이고 있다. 사 우디와 이란은 2023년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며 데탕트 분위기에 접어드는 중이다. 이 배경에는 사우디가 최근 친미 일변도의 외교 에서 벗어나 다자간 외교를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있다. 사우디가 미국의 중동 지역 대리인을 벗어나 다양한 외교 카드와 협상력을 가져야 하는 만큼, 시아파의 수장인 이란과도 대립각을 세울 이유 가 하나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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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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