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자기 self'에서 출발한다. 이 개념을 과학으로 정의하여 설명하기란 매우 어렵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사용하는 이 개념은 사 실 의문투성이다. 나는 어떻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나로 인식 할까? 나는 어떻게 나를 다른 대상이나 사람과 구분할까? 이런 간단 한 질문조차 아직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자기를 인식 한다는 것은 결국 나와 내가 아닌 다른 것을 구분한다는 의미여서, 자기의 형성은 타인과 나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첫 번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자기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 핵심이 되고, 타인이라는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며 변한다. '자기'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내가 속한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며 타 인과 견실한 관계를 맺고 삶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이 사회에 미친 여파와 메타버스의 출현 등으로 나 와 타인, 관계, 공동체를 인식하는 틀이 격변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 에 '자기'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려는 행위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 하고 삶의 좌표를 찾아가는 데 중대한 통찰력을 심어줄 것이다.
내가 생존하기 위해 환경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기감 sense of self '이라고 한다. 이 문장을 '환경' 대신 사회적 환경, 즉 '타인'으로 바꿔 읽으면 그게 바로 '자존감'의 개념이다. 내가 자기감을 높이기 위해 환경을 바꾸려 하거나 세상에 거는 기대를 조정하듯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타인을 바꾸려 하거나 타인에 거는 기대 를 조정한다. 조정이 적정하여 적절한 결과를 얻는다면 자존감은 안 정, 즉 균형 상태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조정이 미흡하거나 과도하 면 자존감은 불균형 상태에 빠질 것이다. 자존감에 불균형이 오면 내 가 타인을 무리하게 바꾸려는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내 가 타인의 기대를 너무 부정적으로 추정하여 스스로 우울증이나 불 안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자존감이 형성되고 발달하는 과정, 또 불균형에 빠지 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뇌의 알로스테시스allostasis 기능을 소개한다. 알로스테시스는 항상성 homeostasis 의 불균형을 더 효율적으로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 환경을 활용하는 생체 기 능이다. 신체 기관의 불균형이 감지되면 비로소 그 원인을 확인해 복 구하는 수동적 메커니즘의 항상성과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개념이 아 주 다르다. 지극히 미래 지향적인 알로스테시스는 유기체 전체의 궁 극적 목표인 생존을 존속하기 위해 항상성 유지에 필요한 생물학적 자원을 분배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끊임없이 효율성을 추구한다. 알로스테시스는 내적 항상성을 유지해야만 하는 거의 모든 생명 체가 보유한 기능이지만, 그 정교함이나 복잡함의 수준은 종마다 차 이가 크다. 특히 '인간'이라는 종에서 정점을 찍는대도 과언이 아니 다. 효율성을 우선하면 다양성을 희생하게 마련인데, 알로스테시스 역시 과도하게 작동하면 도리어 항상성을 방해하는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 대표적으로 우울증이나 분노 조절 장애 같은 자존감 불균형은 그 원리를 알로스테시스 과부하로 설명할 수 있다.
-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인간 고유의 능력 같지만 그렇지 않다. 유인원, 돌고래, 코끼리 같은 일부 포유류도 자기를 인식한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속속 입증되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동물의 자기 인식 능력은 어떻게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바로 거울자기인 식 mirror self-recognition 과제다.
'거울검사'라고도 하는 이 검사는 동물의 얼굴이나 신체 일부에 특 정 표시를 한 후 동물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의 변화를 알아채고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것이다(그림 1). 실제로 오랑우탄은 이마에 노 란색 가루로 점을 찍은 후 거울을 보이면 자기 얼굴에 없던 게 생긴 그 점을 만져본다. 코끼리도 같은 처치를 하면 코로 자기 얼굴에 새 로 생긴 점을 만진다. 이처럼 동물이 거울에 비친 점 찍힌 모습을 알아보고 반응하는 모습을 자기 인식의 증거로 본다.
지금까지 많은 동물에게 거울검사를 해봤는데 고등 영장류, 돌고 래, 코끼리, 까치 등 소수의 종만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교 적 지능이 높다고 알려진 원숭이나 개는 의외로 거울검사를 통과하 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원숭이나 개도 거울에 반응할 수는 있다. 거 울에 비친 물체나 사람의 형상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 수는 있지만 자신의 형상을 자기로 인식하는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흥미롭게도 청출청소놀래기 Labroides dimidiatus 라는 어류가 거울검사 에 성공했다' 수많은 포유류도 통과하지 못한 시험을 작은 물고기가 해냈다. 다른 어류를 대상으로 거울검사를 해본 결과, 대부분은 거울 에 비친 형상을 다른 개체로 인식하여 공격행동을 보였다. 청출청소 놀래기도 처음엔 그와 유사했지만 3일쯤 지나자 공격행동이 급감하 면서 오히려 거울 앞에 머무르는 특이한 행동을 보였다. 그때 청청 소놀래기의 턱 밑에 흡사 기생충처럼 보이도록 갈색 점을 찍었다. 평 소 같으면 거울 속에서 기생충 모양을 알아보고 잡아먹으려는 행동 을 보였을 청출청소놀래기가 돌 위에 자기 턱을 문질러 제거하려는 행동을 보였다. 바로 거울검사를 통과한 것이다.
- 청줄청소놀래기 말고는 어류에서 거울검사에 성공한 종이 없었 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놀라운 결과이다. 이 작은 물고기는 어떻게 그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을까? 과학자들은 특별한 생존 전 략에 주목했다. 청출청소놀래기는 주로 대형 어류 옆에 붙어서 죽은 피부 조직이나 기생충을 잡아먹으며 살아간다. 이런 습성 때문에 자 신을 먹여 살려주는 고객 같은 대형 어류를 만족시키기 위한 생존 전략을 고도화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종을 자기와 구분하여 인식하 며 그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능력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포유류에서도 흔치 않은 탁월한 자기 인식 능력을 획득했다 고 볼 수 있다.
- 이 해석을 뒷받침해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청출청소놀래기는 자 신의 고객을 만족시키고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더 먹음직스러운 고객의 피부 점막 대신 기생충을 먹는데, 가끔씩 참지 못하고 피부 점 막을 뜯어먹는 일종의 배신 행동으로 고객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 런데 다른 물고기가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고객의 피부 점막을 뜯어먹는 행동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이는 잠재 고객 앞에서 자신의 평판을 훼손하지 않고 좋은 이미지 를 주려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다른 개체 에게서 자신과 유사한 특성을 탐지할 능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종들은 이러한 능력 덕분에 자신과 유사한 다 른 개체와 무리를 지어 비교적 큰 사회적 집단을 이룰 수 있다.
- 고무손 착시의 심리학적 · 뇌과학적 기전을 규명하기 위해 현재까지 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연구들이 자기 인식에 필요한 가 장 기본적 조건인 신체소유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 해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 자료들을 토대로 발전한 자 기 인식에 관한 최신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자기'를 인식하 는 과정은 다양한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과정과 밀접히 관련된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기서 말하는 '감각'을 엄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감각이란 외부 감각exteroception, 내부 감각interoception, 고 유수용성 감각 proprioception 등 세 유형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외부 감 각이란 신체 외부의 환경에서 오는 감각 정보를 말하며, 내부 감각이란 심장이나 다른 장기처럼 신체 내부의 기관에서 오는 감각 정보 를 말한다. 내부 감각은 외부 감각과 달리 인식하기가 쉽지 않은데, 외부 감각보다 변화가 크지 않고 대체로 우리가 예측한 상태를 항상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예외의 경우가 있다. 돌진하는 차량에 치일 뻔한다든지, 남몰래 좋아하는 이성이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든 지하여 심장 박동이 거세게 요동칠 때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고유수용성 감각이란 주로 근육이나 관절의 수용기로부터 뇌로 전달되는 감각 정보를 말하는데, 몸의 움직임 또는 신체의 공간적 위치나 상태 등을 알려준다 고유수용성 감각 덕분에 우 리는 눈을 감고도 팔을 움직일 때 이 팔이 머리 위로 갔는지 옆구리 로 갔는지 바로바로 그 행방을 알아챌 수 있다. 고유수용성 감각은 우리가 손의 위치를 매번 포착하며 살아가지 않듯이 내부 감각과 마 찬가지로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내부 감각의 한 종류로 포함 하기도 한다. 어쨌든 내부 감각은 외부 감각보다 의식으로부터 상당 히 멀어져 있는데, 우리 의식 자체가 애초부터 내부 감각보다는 외부 감각에 민감하도록 발달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앞서 언급한 최신 심리학 이론 중 하나에 따르면, 우리가 외부 세 계와 구별되는 자신의 신체를 인지할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감각 정 보의 지각적 경험들 간의 상관관계를 인식하고 이 감각 정보들을 통 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과 관련된다' 고무 착시 실험에서 고무손 의 검지를 붓으로 문지르면 이 시각 정보가 뇌로 들어가 경험이 이루 어지는데, 이와 동시에 실제의 검지도 그에 상응하는 촉각 정보가 뇌 로 들어가 경험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시각 정보와 촉각 정보를 각각 동시에 받은 우리 뇌는 '동조synchronization 현상'이라는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두 지각적 경험을 통합하여 하나의 경험으로 해석한다.
동조현상은 고무손이라는 객체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 중 요한 조건이다. 고무손과 실제 손을 문지르는 타이밍, 즉 시각 경험 과 촉각 경험이 조금이라도 어긋나 일치하지 않으면 고무손 착시는 발생하지 않는다. 고무손 착시는 서로 다른 감각 정보의 지각적 경험사이의 상관관계를 인식하고 지각적 경험들을 하나로 통합할 때 비로소 신체소유감이 생겨난다는 사실, 그리고 이 상관관계를 일시적 으로 간단히 조작하기만 해도 신체소유감이 언제든 쉽게 바뀐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실험이다.
우리 뇌는 매 순간 다양한 감각 정보를 수집해서 이 정보들이 하 나의 통합된 경험을 만들어내는지 여부를 끊임없이 검사하는 것으 로 보인다. 예를 들어, 내가 눈앞에 놓인 커피잔으로 손을 뻗어 내손 가락이 커피잔 손잡이에 닿는 시각 경험을 하면, 손가락에서 커피잔 손잡이의 표면이 주는 촉각 정보가 감지되어 시각 정보와 동시에 뇌 로 전달되고 하나로 통합된 지각적 경험이 이루어진다. 이런 경험은 내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나의 신체와 환경 간의 관계를 잘 이해하며 통제한다고 느끼게 하며, 바로 자기감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 '나'의 경계선을 확장하는 뇌 부위가 있다
고무손 착시를 경험하는 순간 뇌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 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우리 뇌가 신체소유 감을 만들어내는 신비한 현상에 다가갈 수 있다.
그 해답을 찾아 나선 뇌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뇌 부위가 하나 있었다. 바로 측두-두정 접합부temporo-parietal junction, TP] 다. 뇌과학 자들은 왜 하필 이 부위에 주목했을까? 그 이유는 TPJ 혹은 그 주변 의 뇌 부위가 손상된 환자들의 경우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정상적으로 인식하는 못하는 장애가 발생한 사례가 의학계에 일찍이 여럿 보고 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어떤 환자는 뇌 손상 후 자신의 한쪽 팔이 제 몸이 아닌 자기 조카의 팔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정 뇌 부위의 물리적인 연결 구조는 그 기능을 이해하는 데 매 우 중요하다. 따라서 어떤 뇌 부위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부 학적 위치부터 정확히 파악하여 그 의미를 추론해보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두-두정 접합부"라는 특이한 명명에서 먼저 힌트를 찾아보자. TPJ는 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측두엽 temporal lobe, 촉각 정보를 처 리하는 두정엽 parietal lobe,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 occipital lobe 이 만나는 경계선에 자리한다(그림 5). 그 위치로 봐서 TPJ는 외부 환경 에서 오는 시각·청각·촉각 정보가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영역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또 이 정보들을 통합하는 영역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그럼 TPJ의 기능이 신체소유감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오래전 부터 학계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TPJ는 행위주체감 -sense of agency 을 만 들어내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행위주체감이란 '나'의 행동을 만 들어내는 주체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인식이나 느낌을 말한다. 예 를 들어, 내가 허공에 삼각형을 그리려고 하는데 생각으로는 삼각형 을 그린다면서 정작 손가락으로는 동그라미를 그리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실제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 기이할 텐데, 한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에게 컴퓨터 모니터로 조작된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이와 같은 상황을 연출해보았다. 이 경우 실제 손가락을 움직일 때 손가락 근육에 위치한 수용기로부터 전달된 근육의 수축이나 팽창을 알리는 신호인 고유수용성 감각 신호가 눈을 통해 전달되는 손가락의 움직 임을 보는 시각 정보와 일치하지 않게 된다. 고유수용성 감각 신호 와 시각 정보가 불일치하는 조건의 이 실험에서 뇌의 오른쪽, 즉 우 반구에 위치한 TPJ가 활성화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 이와 유사한 실험을 가상현실 장비로도 해보았다. 참가자가 실제 로 손을 움직이는 방향과 다르게 손이 움직이는 영상을 보여주었는 데, 실제의 동작과 영상의 동작 사이에 방향 차이가 커질수록, 즉 불 일치 정도가 증가할수록 TPJ의 활성화 수준도 함께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움직이는 방향은 같되 시간차가 발생하는 조건에서도 그 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다른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손을 오므 렸다 펴는 동작을 시키며, 그 동작을 눈으로 보는 시간을 조금씩 지 연했다. 그 결과 손을 움직이는 행위에 이어지는 시각적 피드백이 지 연될수록 TPJ의 활성화 수준도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결과는 TPJ가 행위주체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감각 정보들의 일치 정도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 고유수용성 감각 정보가 만드는 것
TPJ가 외부 감각 정보들을 통합하여 신체소유감을 수정하는 데 중 요한 역할을 한다는 가설이 맞다면, TPJ의 기능이 정지할 경우 고유 수용성 감각 정보가 만드는 신체소유감은 우세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고무손 착시 경험은 발생하지 않거나 매우 약하게 나타날 것이다.
-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뇌 손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이 있다. 신경외과 환자의 TPJ에 직접 전기 자극을 주면 체외경험 of body experience, 즉 자신의 몸을 외부로 이탈하여 바라보는 듯한 경험 이나 팔다리가 공간적으로 변형되는 착각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뇌 손상 환자 대상의 연구 결과를 정상인에게 그대로 적용 하여 일반적으로 해석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한 연구가 경두 개자기자극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TMS 이라는 뇌자극 기법을 활용 한 실험이다. TMS는 대뇌피질의 표면에 강력한 자기장을 유발하여 목표 지점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기법이며, 뇌와 행동 간 의 기능적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연구에서 자주 사용한다(그림 6).
- 최근 한 연구에서 TMS를 사용해 TPJ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정지 시킨 뒤 눈금자로 고무손 착시 경험의 정도를 검사해보았다!" 그 결 과 TPJ의 기능이 정지된 참가자는 그렇지 않은 참가자보다 착시를 더 약하게 경험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결과로, 신체소유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시각이나 촉각 같은 다양한 외부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TPJ의 기능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아울러 이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외부 환경에서 오는 감각 정보들 을 통합하는 기능에 방해 요인을 가했더니 오히려 왜곡 없이 정상적 으로 손의 위치를 지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고유 수 용성 감각 정보가 만드는 신체소유감이 외부 감각 정보가 새롭게 수 정한 신체소유감의 훼방을 받지 않는다면 손의 정확한 위치를 무리 없이 감지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외부 감각 정보는 정확한 신체소유감을 방해하기만 할까? 신체소유감을 만들어내는 데 외부 감각 정보가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은 뭘까? 이 질문에 답하 기 위해서는 신체소유감을 결정하는 데 내부 감각 정보와 외부 감각 정보가 담당하는 역할을 좀 더 엄밀히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내부 감각 정보의 사령탑, 뇌섬엽
앞서 외부 감각 정보가 불일치할 때 정보를 통합하는 기능을 담당하 는 TPJ가 작동하여 신체소유감을 수정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외부 감각 정보가 아닌 내부 감각 정보는 어떤 신경학적 회로를 통해 신체 소유감을 형성할까? 매 순간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뇌는 끊임없 이 신체 내부에서 전달되는 신호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심장으로, 우리 뇌는 매 순간 심장 박동을 모니터링한다. 심 장박동이 너무 빠르면 늦추고 너무 느리면 재촉하면서 적절한 범위 에서 박동수를 유지하도록 조절한다. 이를 위해서는 박동수의 정보 를 수집하여 예상 속도, 즉 기준점과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처럼 심장 박동을 모니터링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고 잘 알 려진 뇌 부위는 바로 뇌섬엽이다(그림 7).
앞서 통증에 반응하는 뇌 부위로 언급한 바 있는 뇌섬엽은 대뇌피질의 일부인데, 뇌 속 깊숙이 숨어 있어서 전두엽과 측두엽 사이의 주름을 위아래로 벌려야만 관찰할 수 있다. 뇌섬엽은 내부 감각 정보 를 통합한다고도 알려져서 내장감각피질 viscerosensory cortex 이라는 별명 으로도 불린다. 우리가 심장 박동수를 스스로 가늠해보려고 주의를 기울일 때 활동이 증가하는 부위가 바로 뇌섬엽이라고 밝혀졌다. 실 제로 자신의 심장 박동수를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 은 뇌섬엽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부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뇌섬엽은 신체소유감 형성 에도 관여할까? 사실 의학계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신체소유감 결정 에 뇌섬엽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데 주목해왔다. 뇌 손상 환자 들의 행동 변화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뇌섬엽 역할의 중요성을 입증 하는 대부분의 근거가 나왔다. 뇌섬엽이 손상된 환자들은 자기 신체를 인식하는 데 두 가지 특이한 양상을 보였다. 하나는 자기 신체의 장애를 지각하지 못했다. 한쪽 팔이 마비되었거나 절단되었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제 몸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환자들의 상당수가 뇌섬엽이 손상된 상태였다. 또 하나는 자기 신체를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신체로 오인했다. 한 75세 여성 환자는 수면 중 낯선 누군가 가 자기 몸을 만지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험에 시달리다가 내원했는데, 자신의 왼쪽 팔이 다른 사람의 팔인 줄 아는 증세를 보 여서 검사해본 결과 오른쪽 뇌섬엽이 손상된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고무손 착시의 객관적 증거를 살펴보면서, 고무손 착시를 강 하게 경험한 사람들의 경우 고무손을 바늘로 찌르는 시점에 뇌섬엽 의 활동이 급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결과는 고무손을 자신의 실 제 손으로 완전하게 지각함에 따라 뇌섬엽의 기능도 왜곡된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뇌섬엽이 만들어내는 신체소유감은 TPJ가 만들어내 는 신체소유감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 감각 정보 와 외부 감각 정보가 만들어내는 신체소유감이 일치하는 평상시에 서 벗어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차이를 경험하기 어려울 것 이다. 엄밀히 말해 뇌섬엽은 자신의 실제 몸에 속한 기관들이 보내는 정보로 정확한 신체소유감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 다. 한편으로 TPJ는 고무손 착시 실험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평상시 와 달리 외부 감각 정보가 신체 변화를 왜곡해서 알리는 조건일 때, 외부 감각 정보를 토대로 수정된 신체소유감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 하는 것으로 보인다.
- 내부 감각 정보와 외부 감각 정보는 각각 뇌섬엽과 TP]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신경 회로를 사용한다. 두 회로는 평상시에 긴밀하게 상호 작용하며 신체소유감 형성 과정에 협력하지만, 고무손 착시 실 험처럼 신체 내부 신호와 외부 환경 신호가 불일치하는 특수한 상황 이 발생하면 각자가 담당한 기능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경쟁하는 양상을 띤다.
이는 마치 신체소유감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얻기 위한 보수와 진보 간 세력 다툼처럼 보이기도 한다. 뇌섬엽은 나의 신체라는 경계를 제한하고 그 범위에서만 신체소유감을 규정하려는 보수적 세력이다. 반면에 TPJ는 신체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외부 환경으로 자신 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진보적 세력이다. 전자는 안정성을 추구하고 후자는 유연성을 추구한다. 나의 생존에 필요한 신체소유감을 안정 적으로 유지하되 환경 변화에 따라 수정하고 확장해가려면 두 신경 회로가 긴밀하면서도 조화롭게 협력해야 할 것이다. 이들 간의 상호 견제와 협력을 통해 '나'라는 범위의 한계는 축소와 확장을 반복하며 역동성을 띤다. 그리고 이 역동성은 생존을 위해 지켜야 할 '나'의 경 계선을 나의 신체, 가족, 집단, 국가, 인류 중 어느 범위까지 확장할지 결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 결국 데이비드는 검사 결과 진단을 받았는데, 바로 카그라스증후 군이었다. 이는 매우 희귀하다고 판명된 환각적 증후군으로, 1923년 프랑스 정신과의사인 카그라스가 처음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하였다. 공식 의학 명칭도, 진단 체계도 엄연히 있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 려운 정신 질환이다. 주변 사람들 눈에는 환자가 그저 멀쩡한데 헛소 리하는 모습으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어쩌다 카그라스증 후군을 앓게 되었을까?
데이비드가 보인 증세를 관찰하고 연구한 미국의 라마찬드란 박 사Vilayanur S. Ramachandran 는 하나의 가설을 제시했다. 다른 사람의 얼굴 을 인식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존재하며, 카그라스증후군은 이 부위로 감정 반응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학적 경로가 끊어져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상인은 일반적으로 오래도록 친숙한 어머니의 얼굴을 대하면 적절한 감정적 반응을 기대하고, 실제로 그 기대에 부 응하는 신호를 받으면 비로소 자신의 판단이 맞았음을 확인한다. 이 모든 과정에 관한 진술은 원리를 설명하는 내용이고, 실상은 그런 과 정이 의식할 새 없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나서 단지 '나의 어머니나' 하고 저절로 알아볼 뿐이다.
이와 같이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는 과정, 나아가 데이비드 같은 카 그라스증후군 환자가 보이는 증세를 생물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능동 적 추론 이론을 사용한다. 이 이론을 토대로 어머니의 얼굴을 알아보 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어머니의 얼굴'이라는 시각 정보가 뇌로 들어오면 그에 따라 발생할 만한 감정적 반응을 뇌가 예측한다. 그런데 감정적 반응을 전 달하는 신경학적 경로가 손상되어서 예상한 반응이 감지되지 않으면 예측 오류가 발생한다. 그러면 먼저 뇌는 혹시 잘못 인식했을까 싶어 다른 행동을 통해 시각 정보를 수정해보는 시도를 한다. 눈을 크게 떠서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주의 깊게 본다거나, 다양한 각도에서 어 머니를 관찰하는 등 여러 행동을 한다. 그러다가 이러한 모든 시도가 동일한 결과, 즉 나의 어머니임에 틀림없음을 알리는 결론에 도달하 면 이번엔 다른 조치로 나아간다. 즉, 어머니와 흡사한 이 여성이 적 절한 감정적 반응을 유발하지 않는 것을 보니 나의 예측 모형이 틀렸을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이 예측 모형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깨 닫는다. 그 결과로 수정한 예측 모형은 이 여성이 나의 어머니와 겉 모습은 완전히 동일하지만 실제로는 로봇이나 외계인처럼 어머니를 그대로 흉내 내는 다른 존재라고 믿게 한다. 데이비드는 실제로 부모 는 물론 자기 자신도 자기와 흡사하게 생긴 다른 존재라고 믿었는데, 이러한 카그라스증후군 증세의 원리 또한 능동적 추론 이론으로 동 일하게 이해할 수 있다.
- 혈압이 높아지면 뇌는 수용체를 통해 혈관 내 부피와 혈관벽 상태 를 감지하여 항상성 반사 회로를 활성화한다. 수용체에 자극이 유입 되어 발화가 증가하면 이 신호가 심혈관 통합 중심부로 전달되어 혈 관과 심장에 대한 교감 조절이 감소하고 부교감 조절이 증가한다. 이 러한 반응이 혈관을 확장하고 심장 박동을 늦추어 혈압을 낮춘다. 이 처럼 신체의 각 기관은 저마다 발생한 항상성 불균형을 알리는 신호 를 뇌로 끊임없이 보낸다. 그리고 뇌는 이 신호들을 수집해 각각의 요구에 알맞도록 조치하여, 각 기관이 항상성을 회복하도록 한다.
- 하지만 자동적·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신체 항상성 조절 과정은 한 계가 있다. 이미 불균형이 발생한 뒤에 항상성을 회복하기란 매우 어 렵고 심지어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대책은 예방이 라고 하듯이, 신체 항상성이 깨지기 전에 미리 짐작하고 방지하는 능 동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처럼 신체 항상성 불균형이 발생하기 전에 이를 예측하고 능동적으로 외부 환경을 활용하여 예방하려는, 유기 체 전체의 전략적인 신체 항상성 유지 방식을 알로스테시스라고 한 다(그림 8).' 알로스테시스는 생리적 또는 행동적 변화를 통해 안정성 이나 항상성을 달성하는 생물학적 과정으로, 유기체가 단지 미리 정 해진 설정값에 따라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항상성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 우선순위 분배부터 예측과 예방까지
알로스테시스는 다양한 항상성 조절 메커니즘을 조율하면서 유기체 전체의 생존 유지를 위한 '총체적 관점 holistic view'을 취한다는 점에서 좁은 의미의 항상성과는 차이가 있다.
앞서 소개한 자동적·수동적 신체 항상성 유지 방식과는 다른 알로 스테시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우선순위 분배다. 즉, 개 체의 생존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체의 특정 기관에 서 발생한 불균형을 일시적으로 무시하거나 유보한다. 아무리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으로 예상되더라도 현시점에서 비교적 덜 중요하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어떤 조건에서 음식물 공급 이 안 되어 개체 생존이 위급해지면 생존에 당장 필요한 영양을 긴급 히 조달하려고 근육 손실과 혈액 산성도 감소가 발생하는 현상이 바 로 그 예이다.
이와 같은 알로스테시스의 특징은 생리적 반응 말고도 외부 환경 과의 상호 작용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극심한 배고픔에 오래 시달린 사람은 불이익이나 사법적 처벌이 예측되더라도 배를 채울 일념으로 수치스럽거나 위법한 행위를 감행하기도 한다. 극단적 허 기로 불균형해진 신체 항상성을 회복하기 위한 목표가 공중도덕, 사 회 규범 등 외부 환경이 요구하는 모든 목표를 압도할 만큼 최우선으 로 긴급하기 때문이다.
- 알로스테시스의 두 번째 특징은 예측과 예방으로, 향후 닥칠 신체 항상성의 위기를 미리 가늠하고 방지하는 기능이다. 이를테면, 사막 한복판에 들어가야 하는데 갈증이 심각해져 체수분 부족으로 인한 인명 사고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미리 식수와 수분 보충원을 충 분히 준비하고 사막 현장 인근의 식수 공급처를 물색해 확보하는 일 련의 사전 대응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알로스테시스의 예측과 예방 기능은 생존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 이 러한 알로스테시스 기능을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뇌는 과거의 유 사한 경험들을 기억하여 예측과 예방의 근거로 활용한다. 아울러 외부 환경에서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렇듯 알로스테시스는 수많은 항상성 조절 반사 신경 회로를 통 합해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유기체 전반에 걸친 신체 항상성 조절 과 정이다. 매 순간 변화하는 신체 상태에 따라 이들 간의 우선순위를 알맞게 배정하고, 앞으로 다가올 항상성의 불균형을 예측· 예방하기 위해 외부 환경을 활용한다. 일생 뇌가 하는 일이란 이렇게 신체 항 상성의 불균형을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해 환경을 활용하여 최선의 방법을 끊임없이 고안해내는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알로스테시스는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최대한 일찍 예측하고 최소한 노력하여 예방하려는 방식인데, 항상성 불균형의 해소와 직 접적 관련이 없어 보이는 새로운 보상을 찾아 학습하게 만들기도 한 다. 즉, 배고픔이나 통증 등을 해소해주는 일차적 보상이 아닌 돈과 같은 이차적 보상을 학습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이차적 보상의 중요한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는 예측성이 다. 이차적 보상은 지금 당장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장차 발생할 신 체 항상성 불균형에 대비하는 기능을 한다. 미래에 겪을 배고픔에 대 응하기 위해 지금 돈이라는 보상을 미리 획득하는 것이 그런 예이다. 둘째는 효율성이다. 이차적 보상은 다양한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 신호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 없이 이들을 한꺼번에 해결해준다. 돈은 살 아가는 데 필수인 의식주를 모두 얻게 해주는 만능 보상이라는 점에 서 여러 보상을 개별적으로 얻는 수고를 줄여준다. 셋째는 영속성이 다. 신체의 요구 신호가 사라지더라도 이차적 보상을 얻고자 하는 노 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포만감이 들면 가치가 사라지는 음식에 비하 여, 돈과 같은 이차적 보상은 훨씬 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동기를 만들어낸다.
이차적 보상의 매력은 이러한 특성에서 기인한다. 뇌가 추구하는 알로스테시스 과정, 즉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이 발생하기 전에 예측하고 유기체의 생존 유지를 위해 우선순위를 분배하며 자원을 효율적 으로 관리해야 하는 과정의 목표에 아주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따라 서 이차적 보상은 처음에 학습하긴 어려워도 일단 학습하면 그 어떤 일차적 보상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각인되어 우리 행동을 지배한다.
- 행복 호르몬의 역설
도파민 Dopamine의 작동 원리야말로 끊임없이 새로운 이차적 보상을 발굴하고 학습해가는 뇌의 알로스테시스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생물학 적 증거이다. '행복 호르몬'으로 익히 알려진 도파민은 중뇌 Midbrain 에 서 생성되어 측핵 Nucleus accumbens 을 비롯한 여러 뇌 부위로 광범위하 게 전달된다.
사실 도파민의 기능을 단순히 쾌감과 연결해 설명하는 것은 온당 하지 않다. 원래 도파민은 보상 자체에 반응한다기보다, 엄밀히 말하 자면 기대한 보상과 실제로 주어진 보상 간의 차이, 즉 '보상 예측 오 류 reward prediction error'에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9는 이러한 도파민의 기능을 잘 보여준다. 전혀 예측하지 못 한 상황에서 갑자기 음식이라는 보상을 받으면 도파민 세포가 강하 게 반응한다(그림 9A). 그리고 보상이 주어지기 몇 초 전에 소리를 들 려준 후 곧이어 음식을 제공하기를 반복하면 소리가 들릴 때 도파민 세포가 반응한다(그림 9B). 여기서 나타난 흥미로운 결과는 막상 음식이 제시되는 시점에는 도파민 세포가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기대했던 보상이므로 놀라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소리를 제시하고 음식을 주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그러면 도파민 세포는 소리에 반응은 하지만 음식이 제시될 시점에 누락된 구간에 서 기준점보다 약하게 반응한다(그림 C). 이렇게 도파민 세포가 탐 지한 보상 예측 오류는 뇌에 저장된 보상 기대치를 변화시킨다.
세상 모든 담배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 맨 처음 피우는 첫 모금이다. 커피 역시 마찬가지다. 잠시 강렬하게 느낀 이 행복감은 그 후 빠른 속도로 사라져버린다. 이 행복감을 다시 경험하 기 위해서는 하루라는 시간을 다시 견뎌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린 알 고 있다. 이 하루 첫 커피의 첫 모금이 주는 행복감도 매일이라는 시간이 겹쳐 지나가는 동안 서서히 조금씩 줄고 있다는 것을. 행복감은 오랜 절제 끝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선물하는 찰나의 경험이다. 따라 서 행복은 그 찰나의 경험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라 절제의 시간을 오 래도록 쌓는 노력일 수밖에 없다. 행복은 그 경험을 향해 다가갈수록 도리어 더 멀어질 수밖에 없고, 단념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어깨를 잡 아채며 느닷없이 선물처럼 안긴다.
- 타고난 본성은 발달 과정을 거치며 끊임없이 외부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그 본질과 다르게 변화하고 왜곡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일까? 타인의 기대를 기대하거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얼굴이 예쁘길 바라는 욕망이 생 겨나는 것도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예쁜 얼굴을 선호한다는 것을 무 의식적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순전히 자기만족으로 예뻐지고 싶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바라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자신 이 일생 동안 학습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중독과 착시는 비슷하다?
옥시토신의 기능을 두고 신체와 뇌 간의 소통을 촉진한다는 흥미로 운 주장을 펼친 연구가 있다. 옥시토신이 신체에서 오는 신호가 뇌로 전달되는 문을 더 활짝 열어줌으로써 뇌가 신체 신호에 더욱 민감해지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신체 신호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갈증현상을 예로 들면, 모유 수유를 하는 산모는 유난히 갈증을 심하게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갈증이 나는 이유는 나트륨과 물이 혈관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압력, 즉 혈장 삼투압이 이미 주어진 설정 값보다 높아짐에 따라 예측 오류를 알리는 신호가 발생하고 이 신호 를 뇌의 시상하부가 감지하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은 이 설정값을 변 경함으로써 갈증을 느끼는 정도를 조절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즉, 설 정값이 낮아지면 예측 오류 신호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서 시상하부 가 이 신호를 좀 더 쉽게 감지하도록 도와준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체내 수분이 부족해져서 혈액의 삼투압이 올라갈 때 옥시토신은 신 체 상태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갈증을 느끼게 하며, 유즙 분비 촉진을 위해 옥시토신 분비가 증가한 산모들은 바로 그런 이유로 이전보다 갈증을 더 심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신체 신호에 대한 민감도의 저하는 다양한 신체적 혹은 심리적 장애 와 관련될 수 있다. 그리고 옥시토신을 처치하면 이들의 신체 신호 민 감도를 다시 높여줄 수 있고, 그 결과 장애 치료의 효과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알코올이나 약물에 중독된 사람은 정상인에 비해 자신 의 신체에서 오는 신호들에 대한 민감성이 저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 다. 사실 중독 현상은 고무손 착시와 유사한 점이 많다. 고무손 착 시는 자신의 실제 손이 아닌데도 간단한 외부 신호 조작에 따라 실제 근육에서 전달되는 내부 감각 신호를 무시하며 고무손을 진짜 손으 로 착각하는 현상이다. 약물 중독도 이와 마찬가지다. 외부에서 유입된 화학적 신호가 뇌 속의 보상 회로를 활성화하면 신체 항상성 유지라는 보상의 근본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그 화학적 신호를 보 상으로 착각하는 현상이다. 내수용 감각 민감도가 낮은 사람이 고무 손 착시를 경험할 확률이 높았듯, 알코올· 니코틴 · 약물 중독자들도 정상인보다 내수용 감각 민감도가 현저하게 낮다는 사실 또한 이 두 현상 간의 유사성을 지지하는 중요한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환자들에게 신체 신호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주는 옥시토신을 투여할 경우 어떤 효과가 나타날까? 흥미롭게도, 알코올 이나 약물에 과다 노출된 사람들에게 옥시토신을 처방하면 신체 신 호에 대한 민감성이 증가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아직은 옥시토 신의 치료 효과에 대해서 섣불리 크게 기대하거나 맹신하는 것은 위 험할 수 있다. 특히, 기본적으로 옥시토신 수준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은 달리 처치해야 하며 개인마다 적정 수준을 찾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는데, 옥시토신을 처치하면 나와 타인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해 인식한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옥시토신이 내수용 감각을 증폭하는 기능과도 관련될 수 있다. 앞서 고무손 착시 실험에서도 내수용 감각 민감도가 높은 사람이 오히려 고무손 착시 조작이 주는 이질감을 쉽게 배제하고 착시를 경험할 확률이 낮다는 것을 확인했다. 옥시토신 처치가 신체 신호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준 다면 자기감 또한 높여줄 테고, 그 결과로 자신과 타인 간의 경계가 오히려 명확해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옥시토신을 투여할 때 타인과의 유대감이 증진되는 것은 나와 타인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자 기감을 충족하고 확장하려는 욕구가 과도하게 증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타인을 자신의 사회적 욕구 충족을 위한 대상으 로 인식하고 나의 경계를 넓히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경향성 을 옥시토신이 높여준 것은 아닐까?
- 신체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내 주변의 물리적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내적 모형을 자기감이라고 한다면, 물리적 환경 대신 내 주변 사람들이라는 사회적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내적 모형은 자 존감 또는 자기효능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기감은 사회적 관 계에서 형성되는 자존감과 같은 개념을 아우르는 더 포괄적인 개념 으로 볼 수 있다.
자기감이라는 내적 모형이 예측한 물리적 환경이 기대와 다를 때 예측 오류가 발생하는 것처럼, 자존감이라는 내적 모형을 토대로 예 측한 사회적 환경이 기대와 다를 때 우리는 예측 오류를 경험한다. 그리고 이 예측 오류를 줄이기 위해 나의 자존감이라는 내적 모형이 수정될 수도 있고, 혹은 나의 자존감의 예측에 부합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환경을 바꾸고자 시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이성에게 호감을 느껴 고백했을 때 상대방이 단호히 거절한다면 나는 그 순간 강한 예측 오류를 경험할 것이다. 이 예측 오류가 부끄러움이나 수치감이라는 감정을 유발한다면 나 는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자존감이라는 내적 모형을 수정할 필요를 느낄 것이다. 한편으로 이 예측 오류가 분노감이라는 감정을 유발한 다면, 나는 내적 모형을 수정하는 대신 기존의 내적 모형이 예측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그 이성에게서 내가 원하는 반응을 강압 적으로 끌어내고자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 나의 내적 모형이 나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에 잘 맞춰져 있으면 자 기감을 느끼는 것처럼, 내적 모형이 물리적 환경 대신 사회적 환경에 잘 맞춰져 있으면 자존감을 느낀다. 사실 뇌의 입장에서는 내적 모형 이 통제하는 환경이 물리적이든 사회적이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두 환경 간의 뚜렷한 경계선을 찾는 일도 녹록하지 않다. 우리가 물리 적인 환경보다 사회적인 환경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특별하게 생각하 는 이유는 어쩌면 후자가 나의 생존에 더 중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른 다. 능동적 추론 이론을 적용해서 설명해보자면, 이미 뇌 속에 형성된 내적 모형이 예측 오류를 크게 내지 않거나 충분히 수정될 수 있을 만 큼 비교적 안정적이라면, 이는 곧 높은 자존감 혹은 자존심이 세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 예를 들면, 주변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시도한 나의 행동이 예 상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거나 성공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때 나는 안정된 신체 상태 유지라는 목적을 위해 내 주변의 사회적 환경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도록 형성한 내적 모형이 적절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결론짓고 더 이상 수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적 모형이 실제로 적절한지 부적절한 지 구분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객관적 기준도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평균 이상으로 적절한 내적 모형을 갖고 있으면서 항상 예측 오류를 경험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평균 이하로 부적절한 내적 모형을 갖고 있지만 예측 오류를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전자 는 늘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예민하고 불안해하는 유형이고, 후자는 소위 분위기 파악은 제대로 하지 못해도 항상 자신에 대한 긍정적 태 도를 견지하는 유형이다.
- 문내측 전전두피질이 자기와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데 관여한 다면, 이 부위의 활동은 나와 유사한 사람과 유사하지 않은 사람 간 에는 어떤 차이를 보일까? 자기 참조 영역으로 알려진 문내측 전전 두피질이 자신뿐 아니라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유사한 타인을 평가 하는 상황에서도 활성화가 증가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이처럼 자 신과 유사한 사람과 유사하지 않은 사람의 정보를 처리하는 데 각기 다른 신경학적 회로가 사용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어쩌면 우리 뇌는 이미 생물학적 수준에서 자신과 유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 람의 정보를 자연스럽게 구별해서 처리하도록 설계된 걸까? 자신과 의 유사성 정도에 따라 다른 뇌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집단 갈등의 원 인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과 유사한 내집단과 이와 대립하는 외집단을 구별하고, 외집단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형성하며 집단 간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에 관하여 신 경과학적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
- 아기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신체의 신호에 이미 익숙하다. 심장과 각종 내장 기관들에서 오는 내부 감각 신호에 어떻게 대응할지 이미 숙지한 상태로 세상에 나온다. 하지만 나오는 순간부터는 세상이라 는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오는 외부 감각 정보에 노출되고 신체 항상 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환경을 활용하는 방법들을 하나씩 배워 나가 야 한다. 이 때문에 내부 감각 신호에 주로 반응하는 복내측 전전두 피질은 외부 환경 신호에 주로 반응하는 배내측 전전두피질의 도움 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배내측 전전두피질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 서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신체 항상성 유지를 위해 환경을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기 때는 체온이 떨어지면 근육 긴장도를 높여 몸을 떠는 행동을 유발함으로써 체온을 높이는 수동 적 방법을 사용했다면, 자라서는 옷을 찾아 입는 행동을 취해 추위를 경험하기 전에 미리 방지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복내측 전전두피질과 배내측 전전두피질 간의 이러한 긴 밀한 상호 협력 과정이 바로 알로스테시스의 가장 핵심적 기능이다. 이러한 위계 구조를 고려할 때, 복내측 전전두피질과 배내측 전전 두피질의 중간에 있는 문내측 전전두피질의 기능은 좀 더 특별하다. 해부학적 위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이 부위는 내부 신호와 외부 신호를 모두 통합하여 이들 간 균형을 찾아가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 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부위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가치를 수정해 서 선택하는 순간 그 활동이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위가 자기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영역으로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유추 해 볼 때, 신체가 만들어내는 생명 유지의 욕구가 환경이라는 제약과 충돌할 때 이 두 힘 사이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기능을 담당하 고 이 과정에서 바로 '자기'라는 개념이 비로소 만들어진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강력한 내적 동기를 지니며, 이는 나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실패한 타인이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일 상황을 피하려는 동기에서 비롯한다는 주장이었다." 타 인의 기대를 깨는 행동은 내가 기대하지 않은 타인의 행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고, 그 결과로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사회적 환경 때문에 나는 신체 에너지를 추가로 소비해야 할 테고 이를 감지한 뇌는 불안감이라는 감정을 만 들어낼 것이다. 신체 에너지라는 유한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된 우리 뇌는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연스럽 게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는 것이다.
이 새로운 이론은 인간이 도덕적 직관 moral intuition 을 형성하고 사회적 압력에 따라 행동하는 현상을 생물학적 수준에서 설명하는 데 매 우 유용한 토대를 제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앞서 소개한 내측 전전두 피질의 위계 모형과도 일치한다. 예를 들어 나와 누군가의 의견이 일 치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주로 반응하는 뇌 부위는 복내측 전 전두피질로 알려져 있다." 반면 나와 상대방의 의견이 불일치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주로 반응하는 뇌 부위는 배내측 전전두피질 로 밝혀졌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주로 오랜 경험을 통해 안정적으로 유지되 는 가치들이 저장된 곳이다. 반대로 배내측 전전두피질은 복내측 전 전두피질에서 예측 오류를 전달받아 활성화되며, 외부 환경으로부터 추가 정보들을 수집하여 새로운 가치를 찾아 복내측 전전두피질 에 저장된 가치를 수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나와 타인의 기대가 일 치하면 추가 에너지 사용이 불필요한 상황이지만, 둘 간의 기대가 불 일치하면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미처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추가 에너지 사용이 불가피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게 우리 뇌는 불안감이 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을 회피하도록 설계된 우 리 뇌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의견을 따라가는 동조 행동을 보인다. 동 조 행동은 불필요한 신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생존 가능성을 극 대화하기 위한 뇌의 전략적인 대응 방법이다.
- 주변 사람의 기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행동을 나의 통제 아래 둘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다면 그 정보를 토대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을 행동하 도록 만들고 그들에 대한 내 영향력을 높일 수 있을 터이다. 이처럼 주변의 물리적 환경을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추정치가 '자기감'이라면, 주변 타인들이라는 사회적 환경을 내가 원 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주관적 추정치를 '자존감'이 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정의는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자존감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전통적으로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자존감이라는 용어는 개인이 외부 평가와는 상관없이 자기에 대해 갖는 가치 판단 을 가리킨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자신이 얼마나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 는지 등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을 의미한다. 그래서 자존감은 내가 나 를 어떻게 보는지를 의미하므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와 는 무관하다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나를 보는 시 각이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시각과 완전히 무관할 수 있을까?
- 자존감 낮은 사람이 특히 에너지를 쏟는 것
우리는 일상에서 자존감이 높거나 낮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리 고 사회적 상황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낮 은 사람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차이는 어 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회적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그 결과를 예상하 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 과정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이 루어진다. 예를 들어, 새로 이사 온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 난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행동이 그 사람의 반가운 인사와 호감을 이 끌어낸다면, 그 결과 나에게 긍정적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반대로 같은 행동에 무반응이나 싸늘한 눈초리만 돌아온다면, 나는 괜한 행 동을 했다는 생각에 부정적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아 무리 사소할지라도 어떤 사회적 행동의 결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그 선택의 결과가 우리에게 줄 이익과 비용을 모두 고려하게 된다. 주목할 점은, 이익과 비용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사람마다 각각의 가중치가 다를 수 있고 그 차이는 자신이 경험해온 과거 선택의 결과 들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사 회적 행동의 결과를 계산할 때 이익에 더 많은 가중치를 부여한다. 이는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가 지니는 가치를 더 강하게 느낀다는 의 미다. 그 결과 이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 시도할 때 이 행동의 결과가 초래할 비용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마도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계량기는 일시적인 사 회적 실패에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 충분한 완충제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 결과 사회적 실패에 덜 영향을 받거나 그로 인해 초래되는 비용도 간과할 가능성이 높다. 즉,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 신의 인사에 상대방이 보인 퉁명스러운 반응은 다음번에 다른 낯선 사람이 자신에게 보일 반응에 대한 예측치를 수정할 만큼 놀라운 사 건이 아닐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이전에 수많은 유사한 경험 속에서 상대방에게 받아온 긍정적 반응들 덕분일 수 있다. 이 경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예측치를 수정하기보다는 방금 전 엘리베이터에 서 만난 그 사람이 특이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 동일한 상황에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선택 과정은 매우 다를 수 있다. 이들은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리라는 믿음이 낮으며, 자신이 두 려워하는 상대방의 거절은 특히 고통스럽게 느낀다. 따라서 상대방 의 거절이 초래할 비용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여 사회적 행동의 결과를 평가하곤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상대방이 보낸 퉁명스러운 반응을 무시하기보다는 자신의 부정적 예측치를 더 공고히 하거나 오히려 더 낮추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앞으로도 동일한 상황에서 낯선 이에게 인사를 건네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 fMRI 실험이 종료된 후, 이번에는 참가자들이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상대방에게서 얼마나 많은 비율의 긍정적 ('예') 피드백을 받았 는지 물어보았다. 그 결과 자존감 높은 사람들이 보고한 긍정적 피드백의 추정치 비율이 낮은 사람들의 것보다 훨씬 컸다. 흥미로운 점 은, 자존감이 낮은 참가자들의 추정치가 실제 비율인 50%와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자존감 높은 사람들은 긍정적 피드백의 비율을 과대평가하거나 낙관적인 편향을 보인 반면, 자존감 낮은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사회적 피드백을 더 정확하게 추정해냈음을 시사한다. 이런 두 집단 간 행동의 차이는 앞서 소개한 뇌 반응의 차이와도 잘 부합한다. 이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정 보가 긍정적인지 혹은 부정적인지를 더 명확히 구분하면서 이 정보 들을 추적하고 모니터링하는 데 더 많은 주의나 기억 자원을 할당한 다는 증거일 수 있다. 즉, 사회적 보상을 탐색하고 그것을 얻을 기회 를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는 의미다.
- 자존감 불균형은 과도하거나 오랜 기간 지속된 부정적인 사회적 평가 때문에 발생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사회적 평가에 의해서도 얼 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갑자기 높은 인기를 얻은 연예인이 경험하는 공황장애가 지나치게 많은 긍정적 평가 때문에 발생하는 자존감 불 균형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들이 과연 자존감이 낮아서 이런 문제를 보이는 것일까? 자존감 을 절대적으로 낮거나 높다고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산이 높아졌건 골이 깊어졌건 경사가 발생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자존감 불균형이란 이처럼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과도한 사회적 평 가로 인하여 마음속에 경사가 생기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로 인한 자 존감의 불균형은 다시 균형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뇌의 적응적인 반 응을 촉발한다. 바로 '자기방어 행동self-defensive behavior'이다.
- 사회성이 '너무' 높은 사람의 비애
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잘 파악하고 이에 적절한 반응을 잘 선택하는 사람을 일컬어 사회성이 높다고 평한다. 뛰어난 사회성은 복잡한 현 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개성으로 손꼽히곤 한다.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은 분위기 파악을 잘하지 못하고 상황에 부적절한 행동을 저질 러 주변 사람의 부정적 평가를 초래하곤 한다. 지적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회성이 부족하면 공동체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자신의 욕구나 감정은 최대한 숨기고 타인의 욕 구와 감정을 섬세하게 헤아려 그들의 기대에 잘 부합해 행동해고자 노력하곤 한다.
이런 노력은 생존 가능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알로스테시스 과 정으로부터 비롯되었으나, 문제는 과도한 수준에 이르면 오히려 생 존에 필수적인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살피는 데 소홀할 수가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항상 자신의 긍정적인 모 습을 보여주고 좋은 인상만을 심어주기 위해 과도한 에너지와 자원 을 소모하는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 후속 연 구에 따르면 타인의 부정적 평가를 모니터링해서 부정적 평가가 누 적되면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누적 피드백 편향 효과가 우 울증 지표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일상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항상 자존감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곧 불균형을 다시 해소하 기 위해 지속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타 인이 나에게 보낸 부정적 피드백들을 기억하기 위해 더 많은 인지적 자원을 사용하고, 이들에게 더 긍정적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더 복잡 하고 전략적인 선택을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러한 상태를 일컬어 '자기의식 self-consciousness 적 과정'이라 하는데, 이러 한 과정은 죄책감, 수치심, 당혹감 등과 같은 다양한 자기의식적 감 정을 수반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자기의식적 감정은 생존을 위 해 필요한 적응적인 감정이지만 지나칠 경우 오히려 불균형을 악화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 알로스테시스 과정은 신체 내부 신호에 의존하던 선택을 점점 외부 신호에 더 의존하는 방식으로 바꿔 나간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체 내 영양분이 부족하면 뇌로 신호를 보내 영양 섭취를 할 수 있는 음 식을 먹었지만, 점차 냄새·색깔·맛에 끌려서도 먹고 하루의 일과로 때가 되면 먹고 지인들과의 친목이나 사회적 용무로도 먹는 등 음식 을 먹는 행동이 변화한 과정을 떠올려보자. 이와 같이 신체 내부 신 호를 기준으로 해결해오던 신체 항상성 문제를 점차 외부 환경의 신 호들에 기반하여 해결하도록 변화하는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런 이 유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신체 내부에서 오는 신호들에 대한 민감도 가 빠르게 감소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신체 항상성 유지를 위해 외부 환경의 활용도를 높이는 일 은 전반적으로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뇌의 에너지 소모도 줄일 수 있 는 효율적인 문제 해결법이 된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도파민의 예처럼 지나치게 외부 신호에만 의존하면 신체 항상성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와는 오히려 멀어지는 잘못된 선택을 반복할 수 있다. 신체 내부 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 환경의 신호를 활용하는 알로스테시 스 과정을 통해 뇌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궁극적 목적과는 다소 동떨 어져 보이는 복잡하고 추상적인 형태의 다양한 이차적 보상들을 새 롭게 찾아서 학습해 나간다. 하지만 이러한 이차적 보상이 더 이상 신체 항상성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사태를 제대로 인 식하지 못한 채 이차적 보상에만 계속해서 과몰입할 경우, 역설적이 게도 생존에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 알로스테시스는 개체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뇌가 최대한 일찍 이 최대한 많은 보상을 예측하는 신호를 찾아 보상을 얻어내게 하며, 이런 식으로 위협 요인도 사전에 회피하게 한다. 예를 들어, 고통을 느낀 뒤에야 피하기보다는 고통을 예측하여 미리 피하는 것, 배가 고 프기 전에 미리 먹을거리를 찾아나서는 것 등이 위협 요인들을 회피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러한 알로스테시스의 지칠 줄 모르는 예측 기능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초래하는 문제가 있다. 이미 충분히 배 가 부른데도 미래에 겪게 될 배고픔을 피하기 위해 신체 영양분 공급 이 필요한 수준으로 미리 정해진 설정값을 무리하게 조정하여 계속 음식을 먹는 상황, 혹은 이미 사라졌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포식자를 벌써 예상해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도망칠 방법을 모색하며 신체를 늘 비상 태세로 유지하는 상황 등이 이에 해당한다.
- 도파민의 작동 기제에 대한 정교한 이해는 행복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기대하지 않은 보상이 유발한 순간적인 행복감은 보상에 대한 기대 수준을 수정함으로써 새로운 균형점을 설정하게 하고, 이렇게 높아진 기대 수준은 오히려 불행의 범위를 확장하여 불행에 빠질 확률을 높인다. 다시 말해, 행복을 얻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불행의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행복을 경험하는 순간 이미 한번 떠난 지금보다 불행했던 이전의 상태로 다 시 돌아갈 수 없다.
바닥 타일에서 발을 떼는 순간 타일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나가는 방에 있다고 해보자. 안전한 지대로 옮아가려고 한발 한발 내 디딜 때마다 이미 디딘 타일들은 모조리 사라지고 새로 디딜 타일들 은 개수가 점점 줄기만 한다. 이런 비유로 보면, 불안전을 떠나 안전 을 얻었다는 것은 이제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선택지 중 안전한 것보 다 불안전한 것이 더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행복을 경험한다는 것은 이전의 상태보다 나은 상태를 찾았다는 뜻이며 그 만큼 나는 불행한 상태로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보상을 받는 상황도 불균형을 증가시키는 사건이고, 이 불균형을 되돌리지 못한다면 알로스테시스 과부하 상태로 빠지게 될 것이다.
불행에 빠질 확률이 증가하면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알로 스테시스 기능이 다시 작동한다. 우연히 시험 성적이 올라 행복을 경 험하면 나와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내 성적의 상승 가능 폭은 더 좁아지고, 이전 성적보다 상향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 안감이 점점 더 커져서 이 불안감을 피하기 위해 나는 더 노력할 수 밖에 없다. 항상성의 불균형을 최대한 일찍 예측하고 예방하려는 알 로스테시스 기능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벼랑 끝까지 쉬지 않고 계속 나아가도록 채찍질한다. 어쩌면 불행이 증가하는 주된 원인은 바로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 그 자체인 것은 아닐까?
-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방식은 앞서 든 트램펄린 예시에서 주변의 작은 공들 까지 끌어모아 웅덩이를 점점 더 키워가는 것이다. 이런 식의 대처 를 자기 의식 self-consciousness 이라 한다. 두 번째 방식은 트램펄린 예시 에서 무거운 쇠공을 어떻게든 빼내듯이 처음엔 힘겹더라도 다시 균 형점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대처를 자기 인식 self-awareness 이라 한다. 자기 인식은 많은 노력을 요구하지만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소해주는 근본적 해결책을 제공해줄 수 있다. 반면에 자기 의식은 불균형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 다른 대상으로 원인을 돌려 스트레스와 불균형을 오히려 점점 더 키워가는 대처 방식이다. 이 과정이 장기적으로 반복되면 더 이상 불균형 해소가 어려운 상태로 빠질 수 있다.
- 자기 의식이란 언젠가는 파도가 몰려와 힘없이 허물어버릴 모래 성을 간신히 버티면서 아슬아슬하게 쌓아가는, 마치 묘기를 시연하 는 것처럼 불안해하면서 하루하루 근근이 자존감 불균형을 해소해가 는 방식이다. 반면 자기 인식이란 자신이 처한 상황의 불안정성을 명 확히 알아차리고 좀 더 단단한 기반에서 더 내구성 좋은 재료들을 하 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튼튼한 성을 만들어가는 자존감 불균형 해소 방식이다. 지금까지 만든 모래성이 아까운 마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겠지만, 이 성을 차마 허물지 못하고 새롭게 출발하지 못한다 면 나중에 파도가 몰려올 때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충격을 경험 할 것이다. 자기 인식이 주는 순간의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과거의 나를 정리하고 새로운 나를 찾아간다면, 느리지만 훨씬 오래 먼 여정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 어쩌면 우리가 어떤 얼굴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유는 우월 유전 자가설이 제시하는 것처럼 그 얼굴 소유자의 유전적 우월성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보다는 외부 정보를 최대한 효율적이고 유창하게 처리하며 저장하기 위해 우리 뇌가 발달시킨 정보 처리 메커니즘이 낳은 부산물일지도 모른다. 이 메커니즘은 모든 개별 예시를 저장하 는 대신에 이 예시들을 가장 잘 대표하는 원형만 추출하여 저장함으 로써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양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발달해왔 을 것이다. 개별 예시들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원형을 더 유창하 게 처리함에 따라 유창하게 처리한 자극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이 주장을 잘 뒷받침한다.
우리는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원형에 매력을 느끼고 좋아하지만, 그것이 어떤 얼굴이 다른 얼굴보다 더 매력적인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연구 결과는 사람들이 원형을 좋아하는 이유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정보 처리의 유창성 fluene과 긍정적 감정을 연결하는 일반적인 메커니즘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 나보다 계급이 높은 타인을 향해 나의 모든 자원을 집중하 면, 자연스럽게 이와 반대되는 타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줄어들 수밖 에 없고 심지어 혐오감마저 느낄 수 있다. 특히 생존에 위협을 느끼 는 상황에서 우리 뇌는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권력의 구심점에 가까워지려는 경향성이 강해진다. 권력을 가진 강자 혹은 다수 집단 에 다가가려 하고 그 반대인 약자 혹은 소수 집단으로부터는 멀어지 려 하는 것이다. 이처럼 집단에 위기가 오면 너무나 쉽게 차별과 혐 오가 증가하는 현상에 뇌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그렇다면 권력을 향한 과도한 집착과 함께 나타나는 차별과 혐오는 뇌의 범주화 능력 으로 인한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으로 보아야 할까?
- 익숙함과 새로움 간의 딜레마는 어쩌면 우리 뇌의 작동 방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뇌에는 상반된 기능으로 경쟁하는 두 가 지 신경 회로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안정성이나 익숙함 을 추구하는 신경 회로, 또 하나는 가소성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신 경 회로다. 최고의 여행 경험은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의 신중한 균형 에서 비롯하듯이 일상의 만족도 역시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의 신중 한 균형이 필요하다. 둘 사이의 최적의 균형은 건강한 두뇌를 유지하 는 전략으로도 중요하다.
일생 동안 끊임없이 익숙함과 새로움 간의 균형을 추구하며 가치 를 학습해온 우리 뇌는 자연스럽게 신체와 환경의 변화에 크게 영향 받지 않는, 생존을 위한 핵심적 가치들을 점차 터득하게 된다. 바로 직관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 신체 항상성 유지라는 목표를 위해 뇌가 일생 동안 학습해온 타인 의 기대들, 즉 도덕적 가치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거의 모든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 행동을 제약하고 감정을 유발한다. 이 과정 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자기는 우리가 태어난 시점에 가지고 있던 '원초적 자기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존감 불균형 을 발생시키고, 이 불균형을 해결해나가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남은 생애 동안 끊임없이 고민하는 문제가 아닐까?
- 험담의 동기에는 다양하고 폭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사실 누군가가 정말 싫다면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도 효과적인 행동은 단 순히 그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 대신에 그 사람을 험담하 기로 선택했다면 이 행동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보상이 따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 즉, 험담하는 행동의 기저에 다른 동기가 추가되었다 는 말인데, 그 동기로 가장 흔하며 강력한 것이 바로 인정욕구다. 이 런 관점에서 보면, 타인 혹은 특정 집단에 대해 혐오감을 표출하는 행 동은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 불균형의 원인을 정 확히 파악하여 해소하는 데 많은 자원과 에너지가 들기에 더 간편하 고 빠른 방식을 채택한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 바로 차별과 혐오의 언어다. 노인을 비하하는 신조어 "틀딱충은 노인 때문에 자신의 이익이 줄어들거나 권리가 침해된다고 여기는 일부 사람들이 언어를 통해서 가장 쉽고 충동적으로 감정을 해소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된장녀" 같은 여성 혐오적 표현은 여성에 대한 성적 충 동이나 위축감 등을 해소하려는 동기에서 비롯한 일종의 감정 조절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행동은 자존감의 불균형 상태와 불균형의 근본적 원인을 해소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 상태 그대로 남는다. 자 신의 근거 없는 험담이나 공격에 죄책감이 들어 억누르고자 그 행동 을 정당화할 논리적 근거를 끊임없이 찾는다면, 오히려 자존감 불균 형은 점점 더 악화할 것이다.
- 자기불구화란 자존감 저하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노력하 지 않거나 목적과 반대로 선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시험 성적이 조할 것이라 예상하는 경우, 시험 전날 일부러 공부를 하지 않음으로 써 성적이 자신의 무능력 때문이 아닌 게으름 때문이라는 변명을 스 스로에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하려는 행동을 자기불구화로 볼 수 있다. 자신에게 점점 더 불리한 상황으로 일부러 자신을 내거나 상 황을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만들어가는 일은 왜 벌어질까? 상황이나 운이 나빠서 나의 진정한 능력을 보여줄 수 없었다는 변명 이 때로는 능력 없어도 운이 좋아 일이 잘 풀렸다는 말을 듣는 것보 다 더 나은 경우도 있다. 나의 자존감 불균형을 미리 방지할 수 있다 면 일부러 상황을 악화시키는 선택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 뇌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도록 설계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과거를 회상할 때 활성화하는 부위와 미래를 상상할 때 활성화하는 부위가 거의 동일한 것으로 밝혀진 연 구 결과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러한 증거는 기억이 주로 미래 를 예측하는 기능을 한다는 주장과 상당히 일치하며, 미래에 대한 예 측은 결국 과거의 기억이라는 재료를 재구성한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주장과도 상통한다. 궁극적으로 생존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유기체에 서 과거를 기억하는 능력과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은 한 뿌리에서 자 라난 두 줄기 심리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외부 환경을 관찰하고 분석하거나 타인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들을 통제함으로써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궁 극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최적화되었다. 따라서 뇌는 생겨나는 시점 부터 신체에서 외부 환경으로 관심을 돌려 끊임없이 외부 환경의 변 화를 예측하도록 설계되었다. 이처럼 뇌의 관심 범위는 신체로부터 외부로 확장하지만, 신체의 항상성 유지를 목표로 한다는 것에는 변 함이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대상은 나와 별 개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나의 뇌가 신체의 항상성 유지에 필 요한 정보만 선택한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듣고 기억하고 느 끼는 모든 경험이 심장 박동과 관련된다는 최근 연구 결과들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다'
- 이처럼 관심 범위를 신체에서 외부 환경으로 끊임없이 확장하도록 설계된 뇌의 작동 방식은 상대적으로 관심 범위를 외부에서 내부 로 옮겨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분석하여 원인을 찾기 위한 목적에 는 맞지 않는 편이다. 즉, 뇌의 관심을 외부 환경에서 내부로 옮겨 자 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뇌가 설계된 방식을 역행하는 작동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런 뇌의 설계 방식 때문에 우리는 항상 괴로움 이나 불안의 원인을 나 자신이 아닌 타인 혹은 주변 상황에서 찾을 운명인 것은 아닐까?
- 사실 뇌는 인간이라는 유기체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관인데, 이런 뇌가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기능은 바로 신호 전 달이다. 특히 신호 전달에 필수적인 휴지기 동안 신경세포막 안팎의 전위차를 되돌리고 유지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할애한다.' 다시 말 해서 어떤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로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 활동 전위를 만들어내면 세포막 전위의 균형 상태가 깨지게 되는데, 이를 다시 균형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에너지의 상당량을 소모한다는 뜻 이다. 이처럼 휴지기 동안 전위를 일정한 상태로 되돌리는 일은 다음 에 전달받을 신호를 정확히 감지하고 새로운 활동전위를 만들기 위 해 필수적이다. 이러한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잔잔한 수면에 먼 지만 떨어져도 파문이 일듯이 모든 감각을 극도의 민감 상태로 유지 하기 위해 우리 뇌가 취하는 중요 전략이다. 이렇게 균형점을 찾은 상태는 특정한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되 그 자극에 지나치게 몰입하지는 않도록 해준다.
- 뇌섬엽이 수집하는 항상성 불균형 알림 신호가 감정을 구성하는 중 요한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 했다.20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 뇌는 뇌섬엽과 신체의 긴밀한 소통 을 통해 내부 감각 신호를 매 순간 받아들임으로써 신체 상태가 예측 범위에서 벗어났는지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며, 이를 통해 신체 항상 성 유지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신체 항상성이 깨지면 이 로 인한 신체 변화를 알리는 신호가 뇌섬엽으로 전달되고, 신호를 받은 뇌섬엽은 이 상태를 감정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서 볼 때, 감정이란 신체의 항상성이 깨졌음을 감지한 뇌의 반응, 또 는 신체의 항상성 회복을 위해 특정 행동을 촉발하는 뇌의 신호나 다 름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비난에 괴로움의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이러한 비난이 장차 초래할 신체 항상성 불균형(사회 격리로 인한 생존 의 위협)을 사전에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한 행동(타인의 신뢰와 호감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행동)을 뇌가 촉구하기 때문이다.
- 신체 상태는 끊임없이 변하고, 신체의 기관이 각자의 항상성 조절을 위해 뇌로 보내는 신호가 만들어낼 수 있는 조합의 가짓수는 거의 무 한대다. 일단 위장·신장·심장 세 기관만 놓고 보면, 항상성 불균형 신호가 각자 온 과 오프로 두 가지만 있다 쳐도 이미 2의 세제곱 으로 총 8개의 신호 조합이 나온다. 신체 기관의 개수가 늘고 각각 의 기관이 보내는 신호의 크기도 다양해지면 신호 조합은 어마어마 하다. 더욱이 신체 내부 감각 신호뿐 아니라 외부 환경에서 오는 신 호도 고려해야 한다. 특정 상태의 신체 항상성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외부 환경 또한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이를 종 합해 추론해보면, 엄밀히 말해 우리는 정확하게 동일한 '감정'을 두 번 이상 겪는 일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뇌는 매 순간 신체 신호와 외부 환경이라는 제약 조건을 모두 고려하여 최적의 반응을 선택하는 복잡한 정보 처리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제한된 용량 때문에 수없이 많은 신체 신호에 모두 부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뇌는 새 로운 방식을 고안해냈다. 바로 신체 상태와 외부 환경의 조합들을 비 슷한 것끼리 하나로 묶어 일정한 개수의 범주로 분류해 처리하는 것 이다. 이러한 범주화를 통해 우리가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분노 혹은 행복감 같은 감정이 생겨난다. 감정의 범주화는 정보 처리의 효율성 을 획기적으로 높여주기는 하지만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신체 상 태의 미묘한 차이를 제한된 범주로 분류해내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 감정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불균형이 발생했음을 알려주 고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여 적절한 해소법을 찾도록 알려주는 신 호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불균형 해소는 좋은 방식과 나 쁜 방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불균형의 원인을 파악하기 전에 정확 하지 않지만 익숙한 대응으로 불균형을 일단 해소하는 방식이 있고, 시간이 걸려도 일단 원인부터 파악한 후 그에 따라 불균형을 해소하 는 방식이 있다. 앞에서 예로 든 자기계발서의 주장을 뇌과학적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다. 다만 나쁜 감정 해소 방식이 있을 뿐이다.
- 상처 입은 나는 피해자고 상처 입힌 타인은 가해자라는 단순한 이 분법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가리고 상황을 악화할 수 있다. 상대 방은 기본적으로 악하고 나는 지나치게 착하다는 생각은 대부분 착 각이거나 일종의 방어 기제로 볼 수 있다. 내가 괴로운 이유는 '착한 나' 때문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한 상대방 때문이라는 생각 은 즉각적으로 위안과 편안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메시지를 건네는 자기계발서나 공감형 힐링 에세이가 인 기를 끄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착하기 때문에 쉽게 상처 받으므로 나에게 상처 주는 자기중심적이며 무례한 사람을 잘 찾아내 미리 피하거나 제대로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가장 심각한 자기방어 행동일지도 모른다. 이런 대처는 나 자신은 전혀 바뀌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외부의 적만 만드는 일종의 자기 의식적 감정 해소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혀 다치거나 변하지 않고 수동적 으로 인간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깨알팁'만 손쉽게 얻으려는 것은 장 기적으로 무익하고 해롭기까지 할 소지가 다분하다. 나도 모르게 나의 정신과 신체를 지배하는 무의식적 방어 기제를 찾아내어 직시하는 것 은 대단히 힘겨운 전쟁이다. 이 전쟁을 외면하고 쉬운 길을 찾기에 급급한 태도는 결국 내 삶을 바꾸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일상에 '사이코패스'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으면서 자기중심 적인 사람을 혐오하며 가리키는 말로도 종종 쓴다. 하지만 모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사이코패스일 리는 없다.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인 다는 것은 대상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대상을 향한 나의 반응을 획일 화하고 정형화한다. 다시 말해, 누군가를 사이코패스로 분류하고 그 렇게 이름 붙이는 순간 그 사람과 나의 관계는 단절되어 회복할 가능 성이 희박해진다. 내가 "사이코패스"로 호명해버린 사람과는 어떠한 대화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바로 혐오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인정 욕구를 버리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조언하지만, 사실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나 한평생 키운 인 정 욕구는 결코 쉽게 무시할 수도, 억누를 수도 없다. 억누르려 들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튀어나오는 인정 욕구에 실망하고, 자신을 혐 오하거나 원인과 분노의 화살을 타인에게 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인정 욕구를 감추고 억누르기보다는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 다. 인정 욕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요인이 자극했는지 파악해보 려는 태도가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타인에게 인색한 누군가를 너무나 싫어하는 나의 모습 을 알아채면 내가 타인에게 이기적인 사람으로 인식될까 봐 몹시 불 안해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또 내가 잘난 척하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불편해하는 모습을 스스로 알아채면 과거에 그와 유사한 행동을 했던 자신에게 실망하고 혐오감을 느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런 경우 그 당시 내가 왜 잘난 척하고 싶었는지 찬찬히 떠올려 깊이 이해해보면 지금 잘난 척하는 상대방을 향한 부정적 감정이 누 그러지기도 한다. 내가 과거에 감정을 어떻게 해소했느냐에 따라 지 금 타인의 감정에 반응하는 방식 또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인을 향하는 나의 강한 감정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있다. 누군가를 유난히 싫어하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그 감정의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가장 두려 워하는 대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감정을 알아차리는 과정에 서 그동안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나의 불균형을 키웠던 감정의 원인을 찾아 해소하고 타인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나의 감정이 반응하는 상황과 대상을 유심히 살피다 보면 나의 가 치관과도 조우한다. 내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 을 추구하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나보다 부유한 사람을 볼 때와 나보다 이지적인 사람을 볼 때 누가 더 부러운지 비교해보자. 이지적 인 사람을 더 부러워한다면 나는 지성을 갖추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 이라고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재력을 중요한 가치로 여 기는 삶을 산다면 이지적인 사람을 볼 때마다 부러움이라는 감정의 버튼이 쉴 새 없이 눌리는 경험을 할 것이다. 행복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 버튼이 눌리는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
- 자기 감정 인식의 어려움에 관하여
감정은 신체가 보내는 일종의 도움 요청 신호이며 이 신호에 답을 가 장 잘하는 방법은 바로 그 감정을 유발한 정확한 원인을 찾아 제거하 는 것이다. 말이야 간단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뇌는 감 정을 경험할 때 원인을 내부에서 찾아 해소하는 것보다는 외부 환경 을 변화시켜 해소하는 방식에 훨씬 더 익숙하며 그렇게 진화하고 발 달해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감정 인식은 뇌가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발달하는 방향과는 다른, 어쩌면 그 반대 방향으로 맞춰진 심리 과정이기 때문이다.
- 나의 신체가 항상성 유지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과정에서 뇌가 발명해낸 인정 욕구는 나의 생존이라는 목 적을 위해 삶의 의지를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의 응집체이자, 내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 나은 상태를 향해 나아가도록 나를 재촉하는 온갖 부정적인 상상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인정 욕구는 나를 둘러싼 타인이 나를 더 좋아하도록 만듦으로 써 생존이라는 나의 목적을 달성할 방법을 고안하고 학습하는 데 내 가 가진 모든 자원을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기 감정 인식이란 이처럼 거침없이 직진 본능만을 따르는 인정 욕구가 다른 욕구와 충 돌할 때, 충돌 현장에서 한 단계 위로 올라가 더 넓은 시야로 조망하게 해준다.
이런 새로운 관점은 그 충돌의 정확한 원인을 찾아 해소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자기 감정 인식은 어쩌면 본능을 거스르는 뇌의 특별 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이 능력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능력일 수 있으 며 이들조차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을 통해서만 얻는, 얻은 뒤에도 잠 시만 소홀히 하면 이내 잃어버리는 매우 값진 능력일 것이다. 현대 과학은 이런 자기 감정 인식 능력을 향상할 보편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 기억은 영원불멸한 것이 아니라 매우 불안정하다. 많은 심리학 연구 를 통해 기억의 불안정성과 왜곡 가능성이 밝혀졌다. 흥미롭게도, 기 억이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은 바로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릴 때다. 우 리가 뭔가를 기억해내는 순간 그 기억은 가장 불안정해지고 왜곡이 나 삭제가 일어나기 쉬운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한 번 떠올린 기억 은 다시 저장해야 하고, 이처럼 활성화한 기억을 재저장하는 데 단백 질 합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실험쥐가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단백질 합성을 방해하는 억제제를 주입했더니 기억 재저장에 실패하여 기억 이 삭제된 것이다.
- 기억 재강화는 기억 문제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획기적인 치료 법을 마련해준다. 예를 들어, 마약이나 니코틴 등 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중독 행동을 유발하는 대상에 대한 기억만 선택적으로 제거해줄 수 있다. 또 대형 참사의 생존자나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가 호소하는 극도의 공포심 또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줄여주는 데도 크 게 기여할 수 있다.
이런 희망적인 기대에도 불구하고 기억 재강화 현상을 실제 임상 적 치료 방법으로 이어가려는 연구들은 아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실험쥐에게 투약한 약물이 인간에게는 치명적 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안전한 약물을 사용한 대안적 연구 들은 아직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 기억 재강화 관련 연구는 자존감 불균형을 방지하기 위한 뇌과학 적 방법을 고민하는 데도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자존감 불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반응은 대부분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이처럼 저절로 촉발하는 자기방어 행동은 자존감 불균형을 회복시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불균형을 회복시켜주지 않는 자기방어 행동을 수정하지 않고 계속 반복하면 나중에는 수정이 거의 불가 능한 상태로 굳어질 수 있고, 이런 상태를 곧 알로스테시스 과부하 로 볼 수 있다. 삭제하기는커녕 새로운 정보들까지 추가하여 이전보 다 더 자주, 더 강하게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고, 더 극단적인 기억으 로 왜곡하여 괴로운 감정을 배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 때 나의 농담에 '썩소'를 날린 직장 동료의 얼굴이 잠자리에서도 계 속 떠올라, 동료가 지금까지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기억에서 모조 리 끄집어내 결국 그를 나를 파멸시키고 싶어하는 악마로 둔갑시킬 수 있다.
기억 재강화 현상은 자존감 불균형이 발생한 바로 그 시점이야말로 잘못된 자기방어 행동을 수정할 절호의 기회임을 보여준다. 모든 상황이 종료한 후 지나간 상황을 다시 머릿속에서 상상해보는 것도 효과적일 테지만 그 효과는 아무래도 제한적이다. 아무리 생생하게 그 상황을 상상해내더라도, 실제 그 순간 외부 자극이 반응을 촉발하 는 과정에서 활성화된 전체 신경세포 네트워크 내의 연결을 전부 똑 같이 재활성화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존감 불균형 이 발생하면 그 즉시 감지하여 잘못된 연결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연 결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 자존감의 불균형을 견뎌내는 삶이란 지속하기가 녹록지 않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바로 자존감의 불균형이 자아가 위축해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아가 비대해 져서 발생한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 들을 보며 안도하거나 자부하는 것도,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보며 너무 기죽거나 질투하는 것도 모두 거대하게 팽창한 자아 때문이라 고 볼 수 있다. 개체가 갖는 '자기'는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고 생존에 필수적이다. 자기라는 개념은 너무나 강력하게 뇌 속에 각인되어서 자기가 사라지는 건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 LSD는 '나'와 '내가 아닌 것' 간의 경계를 희미하게 하는 특수한 효 과가 있다. 인간이 태어나 평생 동안 거치는 발달 과정은 나의 경계 를 이전보다 더 뚜렷하게 인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외모, 나의 능력, 나의 사회적 위치를 여러 범주 중 하나로 분류하고 끊임 없이 타인과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그 범주를 공고히 다진다. 나를 명확히 규정하는 일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등을 빨리 결정할 수 있게 해 준다. LSD는 이렇게 우리가 평생에 걸쳐 축조한 '나'라는 개념이 순 식간에 붕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일단 LSD는 뇌의 세로토닌 시스템을 조절함으로써 우울증 완화 효과를 가져오는 약리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울증은 세로토닌 저하와 관련이 깊은데, LSD 같은 약물이 세로토닌 재흡수를 억제 함으로써 세로토닌이 사라지는 현상을 막는 작용을 하여 신경전달 경로에 세로토닌 양을 증가시키고 결과적으로 우울증을 완화한다. 세로토닌은 소화, 체온, 호흡, 배뇨 등 다양한 신체 항상성 조절 과정 과 깊이 연관된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로토닌 활동을 증가시키는 약물인 시탈로프람Citalopram 을 투여하면 자신의 심박수를 감지하는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세로토닌의 기능을 단적으로 말하긴 어려운데, 아마도 신체 신호에 대한 민감도 를 증가시키고 신체 항상성 조절 기능을 향상시켜 타인을 비롯한 외 부 감각 정보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을 희석함으로써 우울증 같은 정 신 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할 수 있다.
- 자아의 과도한 팽창에 관하여 LSD가 시사해주는 점은 자기의 경 계를 방어하고 확장하기 위해 비대해진 자아가 기능을 잠시 멈추면 뜻하지 않게 타인과의 마찰이나 갈등이 줄어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자기감의 작동을 훼손하는 LSD는 역설적이게도 자기감의 상실이 일시적인 해방감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실 제로 LSD의 환각 효과를 체험한 사람이 인터뷰에서 자신이 온 우주 와 하나가 된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이는 자기감을 상실하여 자아 라는 프레임이 사라질 때 그 프레임이 주는 불안감에서 벗어났기 때 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문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해방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LSD의 효과는 개인차가 크고, 사용자가 약을 투 여하는 시점에 심리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증거가 있다."
- 최근 사회심리학에서는 '경외감awe'이라는 감정에 주목하고 있다. 경외감이란 우리가 가진 세상에 대한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방대 한 어떤 존재를 향해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그랜드 캐니언처럼 막 대한 규모의 자연환경을 포함해 종교적 체험, 카리스마 리더십의 소 유자 등을 마주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 경외감에 해당한다. 얼마 전 우주여행을 다녀온 억만장자들이 광막하고 무심한 우주를 목격하고 일관되게 밝힌 소감이야말로 경외감이다.
- 그럼 왜 사회심리학에서는 경외감에 관심을 기울일까? 최근 연구 에 따르면 경외감이 들 때 '자기'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지거나 축소 된다고 하며" 겸손해지거나 겸허해지고 나아가 타인에 대한 친사 회적 경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경외감의 놀라운 점은 자기에 대 한 개념의 변화가 타인을 포함한 외부 환경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이나 태도, 관계의 양상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경외감 관련 신경과학적 연구는 그리 많지 않은데, 그중 가장 눈 에 띄는 뇌 영상 연구에서는 다양한 감정을 유발하는 여러 동영상을 감상하는 동안 뇌 반응을 측정했다. 동영상 중 하나는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결과 경외감을 유발하는 동영상 을 감상할 때 자기 참조 영역,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 해당하는 문내측 전전두피질의 활성화 수준이 감소했다. 그 이유를 아직 명확 히 알 수는 없지만, 경외감이 자기를 축소시키고 희미하게 한다는 이 전의 연구 결과나 이론과 일맥상통하는 결과로 보인다.
- 그동안 실제라고 여긴 현실이 결국 내가 만들어놓고 스스로 갇혀 버린 프레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의 감정이 바로 경외감 일 것이다. 감정이란 곧 뇌와 신체 간의 소통 장애를 말하므로 경외 감이라는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 자기를 축소시키고 희미하게 함으 로써 기존의 프레임을 확장해주는 경외감, 이 감정을 통해 그동안의 뇌와 신체 간 소통 장애를 감지하여 신체 신호를 더 섬세하게 읽을 기회로 삼는다면 뇌와 신체 간 소통 방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 자아정체성의 뇌과학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타인의 기대에 아랑곳하지 않 으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 꿋꿋이 걸어가는 삶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삶을 가리켜 자아를 실현하는 삶, 곧 자아정체 성을 찾아가는 삶이라고 부른다. 매슬로의 욕구 위계 이론에서는 자 아실현을 인간의 욕구 중에서 최상위 단계에 위치한 가장 높은 수준 으로 간주한다. 자아정체성은 과연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인정 욕구는 너무나 강력하고 무의식 깊숙이 뿌리 박혀 있어서 자아정체성을 추구하는 욕구에도 스며들 수 있다. 즉, 타인의 시선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삶이 남들 눈에 근사해 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나의 무의식에 각인되어 내 행동을 이끌때, 이를 자아실현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아정체성을 추구 하려는 동기의 기저에도 인정 욕구가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자아실현은 오히려 현실 도피를 위한 일종의 방어적 행동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정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한 자아정체성을 찾아가 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정 욕구는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에서 행동 을 지배하는 강력한 동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욕구의 최상위 단계가 될 수는 없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위 단계의 욕구는 나 자신 을 온전한 형태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일 텐데 이는 자기감과 더 관련 될 것이다. 즉,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목표는 나와 세상과의 관 계를 온전하게 확립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나의 욕구가 세상의 흐름 과 어긋나지 않는 상태, 이 둘이 서로 거스르지 않고 물 흐르듯 어우 러져가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 도달하는 데 가장 현실 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야말로 다름 아닌 '자기 감정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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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마David Marr는 우리의 행동과 마음, 뇌를 이해할 때 과학자들이 3가지 수준에서 설명과 이론을 설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가리켜 마의 3가지 분석 수준Levels of Analysis 이라고 한다(Marr, 1982). 앞서 식기세척기 비유를 통해 언급했던 추상적인 분석 수준인 연산 적 수준(Computational Level), 과정의 실제 단계들을 찾아내는 알고리즘적 수준 (Algorithmic Level), 마지막으로 어떻게 그 단계들이 실행되는지 상세히 살피 고 통찰을 얻는 실행 수준(Implementation Level)이 그것이다.
마음과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환경과 상호작용해서 행동을 발생시키는지 알면, 더 나은 결정을 하고 살면서 맞닥뜨리는 수많 은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왜 어떤 일은 기억하기 쉽고 어 떤 일은 기억하기 어려운지,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행 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과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인지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의 기본 원리들이 도움을 줄 것이다.
- 이처럼 우리의 사고가 타고난 선천적 능력의 결과라고 보는 관점과 후천적 습득의 결과라고 보는 관점 사이의 긴장을 가리켜 종종 '본성 대양육nature-nature vs nurture'의 구분이라고 한다. 이 구분에 따르면, 우리의 심리는 천부적으로 얻은 결과(데카르트적 생득주의의 산물)이거나 아니면 마음이 양육을 받은 결과(경험주의의 산물) 둘 중 하나다.
- 생득주의 대 경험주의 또는 본성 대 양육이라는 구분이 존재하 지만, 어느 누구도 이것 아니면 저것의 문제라고 보진 않는다. 둘 다 우리 의 정신적 발달, 발상과 개념의 형성, 그리고 심리적 과정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인정하듯이, 유전자 및 생물학적 제약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심리적 과정과 능력이 있는 반면에, 경험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심리 적 과정과 능력도 있다. 이것이 마음에 관한 현대의 지배적인 견해다. 마 음은 일종의 신경생물학적인 빈 서판인데, 이는 생물학에서 나온 원리들 에 지배를 받으면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규칙과 제약, 편향, 원리를 지닌 빈 서판인 셈이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이 서판의 작동을 관장 하는 이러한 규칙과 제약, 편향, 원리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 마음에 대한 비유는 시대의 산물이자 과학 연구 방식 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데카르트는 신과 신성의 영향력을 알았다. 그가 보기에 마음은 몸에 전적으로 속한 것이 아니라 신 성의 일부이기도 했다. 따라서 마음이란 신이 설계한 것이라는 비유에서 생득주의가 출현했다. 마음은 계몽시대 동안에는 빈 서판으로, 다윈 시대 엔 정신 기능을 맡는 인체 구조로, 산업혁명 기간에는 자극-반응 엔진으 로 여겨졌다. 신의 설계, 빈 서판 그리고 기계... 이런 비유들이 과학 탐 구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그런데 이러한 비유의 한계로 인해 과학적 사고 의 변화가 촉진되었다. 컴퓨터 비유는 인지심리학을 견인한 비유다. 그리 고 신경 수준에 이르기까지 뇌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되자 이 비유가 더욱 들어맞는 듯하다. 어쩌면 이 비유는 훨씬 더 심오한 패러다임 전환일지 모 른다.
- 생물학의 영향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힘은 알고리즘이다. 즉, 정보를 처리하고 예측 을 하는 연산 엔진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 학습 알고리즘은 여러 정보를 받아들여, 연관 짓기를 배우고, 그런 연관 짓기를 통해 예측을 하고, 새로 운 상황에 변화하고 적응해나간다. 이를 가리켜 기계학습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기계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배운다는 점이다.
가령, 많은 인공신경망의 바탕이 되는 알고리즘(헤비안 학습 Hebbian Learning 알고리즘)은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맥길대학교의 도널드 헵Donald Hebb이 발견했다. 1949년에 출간된 협의 저서 『행동의 조직 Organization of Behaviour은 이 분야의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로서, 뉴런이 어떻게 연관 짓기를 배우는지 설명했다. 이 개념은 마빈 민스키 Marvin Minsky, 데이비드 럼멜하트David Rumelhart, 제임스 매클렐런드James McClelland, 제프리 힌턴 Geoffrey Hinton 등 여러 인지과학자에 의해 수학적으로 정교하게 가다듬어졌다. 현 재 기계학습과 심층학습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발전은 인지과학자의 노력 이 가져온 간접적인 결과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들이 신경생물학에서 이 미 나왔던 알고리즘에 들어맞도록 컴퓨터 알고리즘을 수정해가면서 작성 하는 방법을 알아낸 덕분이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점이다. 즉, 컴퓨터가 배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컴퓨터 시스템의 학습과 적응 능력이 신경과학의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는 학제간 접근법의 이점이기도 하다.
사례를 또 하나 들자면, AI 혁명의 이론적 토대는 앨런 뉴얼 Allen Newell (컴 퓨터과학자)과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경제학자)이 마련했다. 인간의 의사 결정과 문제 해결 및 그 과정을 수학적으로 모형화하는 법을 알아내기 위 해 둘은 1950~1970년대까지 연구를 수행했다. 덕분에 인간 행동을 이해 하는 데 바탕이 된 연산적 접근법이 나왔다. 이 역시 인지과학이 제공한 학제간 접근법의 이점이다.
- 알고리즘의 영향
인지과학의 영향력을 가장 두드러지게 직접적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우리가 온라인으로 사용하는 많은 제품을 작동시키는 알고리즘을 통하면 된다. 여러 기능이 있지만 구글의 핵심은 검색 알고리즘이다. 사용자한테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세상의 지식을 정리해주는 것이다. 구글이 지 식을 범주화하는 데 바탕이 되는 지식 표현의 기본 개념들은 1970~1980년 대에 엘리노어 로쉬Eleanor Rosch와 존 앤더슨John Anderson 같은 인지과학자들 에 의해 일찍이 탐구되었다. 이 연구는 8장에서 다시 다룬다.)
페이스북을 살펴보자. 이 회사는 사용자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배우는 정교한 알고리즘을 실행시켜서, 사용자가 관심을 많이 두는 내용 을 제시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 알고리즘이 예상하기로 사용자가 페이스 북 네트워크를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줄 내용을 제시한다. 결국, 어떻게 해야 사용자가 페이스북을 더 많이 쓸지 예측하는 셈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경우 모두 알고리즘은 사용자, 즉 여러분한테서 얻 은 정보를 시스템 내의 기존 지식과 연결해 해당 사용자에게 유용하고 적절한 예측을 한다. 그러면 사용자는 더 많은 정보를 시스템에 제공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은 알고리즘을 개선해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한다.
- 뇌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정보를 찾는 행동에 나서도록 함으로써, 예측하고 적응하는 자신의 능력 을 개선한다. 이러한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은 사회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뉴런 네트워크가 인체에 하는 것과 똑같은 역할을 사회에 하 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이러한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기술회사 CEO들과 정치인들이 AI의 위험을 걱정하곤 하는데, 내가 보 기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그들의 두려움의 중심에 놓여 있다. 즉, 뇌가 우리의 행동을 자신의 마음과 몸에 복종하게끔 변화시키듯이 우리가 점점 더 의사 결정을 맡기는 알고리즘이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켜 결국 우리가 알고리즘에 종속될 거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많은 이에게 불안감을 일 으키지만 멈출 순 없어 보인다. 뿌리가 깊고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긴 하 지만, 다른 모든 새로운 시대 내지 패러다임 전환과 마찬가지로 과학적이 고 휴머니즘적인 방향에서 이를 접근하고 이해해나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지과학이 남겨준 유산이며, 정말로 19세기 이후로 줄 곧 진행된 실험심리학의 발전이 남긴 유산이다. 20세기와 21세기에 이룬 성과들은 생물학에서 학습 알고리즘을 탐구해, 고성능의 컴퓨터에서 속적으로 구현하고, 아울러 그 둘의 관계를 인간의 행동에 적용한 결과다. 컴퓨터와 신경과학 분야의 기술 발전 덕분에 그런 개념들이 현대 세계를 주도하는 힘이 되었다. 인간이 아닌 알고리즘과 인공지능한테 지배를 당 할 거라는 두려움이 때때로 필연적으로 뒤따르긴 하지만, 인지과학을 이 해하는 일은 생존과 적응에 필수적이다.
- 항간에 떠도는 말을 여러분도 들었을지 모르지만, 보통 사람이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말은 틀렸다. 여러분은 항상 뇌의 전부를 사용한다. 이 런 신경신화neuromyth2 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슬쩍 봐도 터무니없는 소리다. 이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자. 인간의 대뇌피질은 포유 류의 생리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고도로 진화된 구조에 속한다. 이 토록 복잡한 뇌의 90%가 본래부터 작동 불능이라는 생각은 우습기 그지 없다. 우리는 '당신은 간의 약 10%만 사용한다'거나 '평균적인 사람은 특 정 시간에 피부의 약 15%만 사용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뇌 에 관한 그런 주장을 믿을까? 게다가 뇌 부위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처럼 정말로 뇌의 100% 미만을 사용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종종 그 효과는 분 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작정 뇌의 10%를 사용한다 고 여전히 주장한다.
- 우리가 뇌의 전체 활동의 작은 일부만 의식적으로 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인지적 한계일 뿐 생리적 한계는 아니다. 이 한계는 어쩌면 우리에게 적응상의 이로움을 주려고 진화되었다. 발생하는 모든 뇌 과정을 명시적으로 알아차리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아들이는 감각 정보는 시시때때로 바뀌지만, 그 자세한 내 용 대부분은 우리의 행동이나 생각과 무관하다. 또한 우리는 호흡하기, 서 있기, 지각하기, 일상생활 하기에 필요한 지속적인 뇌 활동을 대체로 알아 차리지 못한다. 당연히 우리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따라서 어 디에 주의를 많이 기울이고 적게 기울여야 할지, 그리고 무슨 일을 무의식 적이고 자동적으로 행할지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이 내용은 4장 에서 훨씬 더 자세히 다루겠다. 요점만 말하자면, 우리는 항상 뇌의 전부 를 사용하긴 하지만, 인지 체계가 진화해온 방식 때문에 그 활동의 작은 부분만 인식한다. 이 한계 내지 병목이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을 지배하는 가장 근본적인 측면 중 하나다.
- 해마의 역할 및 해마가 기억에 하는 역할을 발견한 이야기는 인지심리 학의 위대한 업적에 속한다. 하지만 내가 다루고 싶은 다른 피질 하부 구 조인 편도체(amygdala)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 해마와 더불어 편도체는 때 로는 변연계limbic system라고 알려진, 피질 하부 구조의 한 집합체의 일부다. 변연계에는 척추동물 뇌에 흔하고 많은 포유류에 걸쳐 꽤 비슷한 여러 구 조가 포함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변연계에는 해마와 편도체뿐만 아니라 시상thalamus, 시상하부hypothalamus, 유두체 mammillary body 등이 들어 있다. 이 계를 구성하는 구조들에 관한 일치된 합의는 없다.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이 용어를 사용하길 꺼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구조들은 전부 협력해 학 습, 기억의 목표를 달성하며 편도체의 경우에는 두려움과 감정 조절을 맡는다.
- 가장 특이한 신경심리학 사례 중 하나가 카그라스 망상capgras delusion이다. '사기꾼 망상'이라고도 하는 카그라스 망상 은 매우 드문 증후군으로서, 이 망상 환자는 배우자나 부모 등의 친한 사 람을 알아보긴 하지만 그들이 진짜라고 여기지 않는다. 즉, 환자는 자기가 아는 사람이 똑같은 모습임을 인정하고 어렵지 않게 알아본다. 시각적 장 애도 없고 뇌의 시각 영역에 전혀 손상이 없다. 다만 자기 눈을 믿지 못한 다. 그 결과 망상에 빠져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다른 누군가가 차 지해서 그 사람인 척한다고 확신한다.
- 대다수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볼 때와 낯선 사람의 사진을 볼 때 와의 상대적 차이가 GSR을 통해 드러난다. 라마찬드란 박사가 데이비드 한테서 알고 싶은 바는 그의 뇌와 몸이 (비록 그가 반대 주장을 하긴 하지만) 그 가 자기 부모를 부모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를 내놓는지 여부였다.
데이비드한테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낯선 사람과 낯익은 사람 간에 GSR이 별로 차이 나지 않았다. 즉, 뇌가 낯익은 얼굴에 대해 적절한 감정 반응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데이비드의 뇌는 어머니나 어머 니 사진을 사실적이고 지적인 수준에서는 진짜 모습이라고 인식할 수 있 지만, 적절한 감정 반응을 나타내지는 않는 듯했다. 시각피질에서 얼굴을 인식하는 데 특화된 영역(이른바 방추형얼굴영역 fusiform face area, FFA)에서 측두엽 까지 이어진 경로가 손상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데이비드는 부모를 알 아볼 수 있었고, 부모가 누구인지 대체로 알았다. 하지만 얼굴인식 영역을 편도체 내의 감정 중추와 연결해주는 경로(그림 3.2)가 손상되었기에, 감정 적 연결이 끊어졌고 낯선 얼굴과 낯익은 얼굴 사이의 감정 반응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달리 말해서, 그의 뇌는 어머니를 알아차리긴 했지만 그 인 식을 올바른 감정과 연결하지 못했다. 다음 말에 드러나듯이, 데이비드는 불편한 현실에 대처해야 했다. “어머니처럼 보이긴 하지만, 내 어머니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런 끊김 때문에 데이비드의 인지 시스템은 이 갈등 을 해소하려고 망상을 만들어냈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또한 단지 목소리 만으로도 검사를 했다. 이번에는 부모의 목소리를 듣자 데이비드의 뇌가 올바르게 반응했기에, 적절한 감정 반응이 나타났다. 여기서 갈등이 없었 던 까닭은 청각피질과 연결된 경로가 손상되지 않아서였다.
- 뇌의 혈액 흐름을 측정하기
연구 방법으로서 EEG/ERP의 단점을 하나 들자면, 위치 면에서 별로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ERP는 두피상의 영역들에서 측정을 할 수 있지 만, 뇌의 구조에 관한 정보나 뇌 속의 활동에 관한 정보를 많이 제공하지 는 못한다. EEG/ERP는 시간 해상도temporal resolution는 매우 좋지만 공간 해 상도spatial resolution는 보통이다. 하지만 뇌의 혈액 흐름을 측정하는 기법은 훨씬 더 정확할 수 있다. 가장 흔한 방법은 기능적functional 자기공명영상 촬영술MRI인 fMRI다.
뉴런은 에너지를 저장해두지 않으므로, 발화할 때 포도당과 산소를 재 충전해야 한다. 이를 일정하게 공급하는 일이 순환계의 임무다. 산소가 풍 부한 피가 들어오고 산소가 빠진 혈액이 나간다. 1990년대 초 오가와 이지라는 과학자는 산소가 들어간 피와 산소가 빠진 피는 자기적 성질이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Ogawa, Lee, Kay&Tank, 1990). 이 차이는 강력한 전자석으로 측정할 수 있다. 이 측정치를 가리켜 BOLD Blood Oxygen Level Dependent(혈액산소수준의존) 신호라고 한다. 어떤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비교적 더 활동적이어서 산소가 더 많이 필요한 뇌 영역은 비교적 덜 활동적인 다른 영역과는 BOLD 신호가 다르다. fMRI 연구의 피실험자는 큰 전자석 안에 누워 있으면서, 제시된 영상을 보거나 어떤 과제를 수행한 다. 이때 전자석이 여러 영역에서의 BOLD 신호를 측정하고, 나중에 이 신 호들을 분석해 뇌의 어느 영역이 해당 과제 수행 동안 가장 크게 활성화되 었는지 알아낸다.
앞서 말했듯이 뇌 전체는 언제나 활동하고 있는데, fMRI 연구 동안에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인지 과제를 수행 중일 때, 여러분은 그 과제를 생각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온갖 생각도 함께 하고 있다. 이 체험이 언제 끝나지? 이 자석 아주 크네! 이게 정말로 안전할까? 내 휴대전화 어디 뒀더라? 여기 누워 있으니 등이 아프네' 등등. 이렇게 온갖 활동이 일어나는 데, 어떻게 연구자는 해당 과제에 대한 BOLD 신호를 구분해낼까?
가장 흔한 방법은 '빼기 기법'이다. 이때 참가자는 기본적으로 두 번 뇌 영상을 촬영한다. 가령 첫 번째에는 뇌 촬영 도중에 특별히 무언가를 생각 하라는 지시를 받지 않지만, 두 번째에는 뇌 촬영 도중에 테니스 라켓을 흔드는 모습을 상상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두 경우 모두 한 가지 조건 외 에는 거의 동일하다. 즉, 한 번은 그런 상상을 하고 또 한 번은 상상을 하 지 않는다. 테니스 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유일한 차이다. 그다음 단 계는 고성능의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테니스 치는 모습을 상상한 결 과에서 테니스 치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은 결과를 뺀다. 이렇게 해서 나온 영상에는 피실험자가 테니스를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 영역이 비교적 더 활성화되었는지가 드러난다. 그런데 이 영역은 두정엽과 전두엽의 감각운동 영역 내의 부위로서, 피실험자가 실제로 테니스를 친다면 활성화될 영역과 동일하다.
fMRI를 이용한 연구는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얼굴이나 음악을 처리하 거나 운동 행동을 계획하고 복잡한 결정을 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에 관한 통찰을 제공한다. 뇌의 기능적 구조(가령, 어느 영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해 현재 알려진 많은 지식은 fMRI에 의해 발견되거나 입증되었다.
- 착각에 관한 연구
보이는 대로가 늘 사실은 아님을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감각적 및 지 각적 착각을 살펴보는 것이다. '착각illusion'이란 단어는 라틴어에서 비롯해 중세 영어로 이어졌는데, 그 어원은 '속이다'라는 뜻이다. 우리는 대체로 착각을 속임수나 기만이라고 여긴다. 마술사illusionist는 관중을 속여서 실제 로 관중 앞에 있는 것과 다른 무언가를 본다고 여기게끔 만드는 공연자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종종 감각적 착각이란 감각계가 우리를 속이려는 시도 라고 여긴다. 더 적절한 설명을 하자면, 착각이란 감각 입력을 활성화시키 는 부분과 뇌의 나머지 부분이 감각 입력을 해석하는 방식 사이의 의사소 통 단절 때문에 생기는 속임수 현상이다. 감각과 지식 사이의 충돌을 해소 하는 과정에서 지식의 편을 들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따라서 착각은 실제로는 기만이 아니라, 이전의 증거를 선호해서 종종 자기도 모르게 내리는 무의식적인 의사결정의 결과다. 착각을 통해 엿볼 수 있듯이, 우리 뇌와 마음은 우리가 보는 것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예측 을 하려고 애쓴다. 대체로 이 예측은 우리 앞에 있는 감각 정보와 일치하는데, 이때 우리는 그런 과정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일치하지 않을 때 착각을 경험한다.
착각은 여러 가지 상이한 양상으로 생긴다. 청각적 착각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무언가를 듣는다고 지각할 수 있다. 가령, 여러분의 뇌는 누락된 말소리를 채워서 완전한 문장을 구성한다. 이는 실 제로 없었던 것을 지각한다는 의미에서 착각이긴 하지만, 유용한 예측이 기도 해서 실제로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을 때 잘못 알아듣지 않도록 해 준다. 촉각적 착각도 있는데, 이때 여러분은 실제로는 없는 무언가와 닿는 다고 지각할 수 있다. 가령, 여러분의 휴대전화에서 '유령 진동이 발생할 지 모르는데, 이는 알림을 받는 상황을 상상할 때 휴대전화에서 진동을 느 끼는 현상이다. 이런 것들이 전부 착각의 예지만, 착각의 발생 과정은 저 마다 다르다. 어떤 착각은 무시하기 쉬운 반면에 어떤 착각은 무시하기 어 렵다. 우선 아주 단순한 시각적 착각(착시)부터 살펴보자. 착시는 분명 여 러분이 감각하는 것과 지각하는 것 사이의 충돌 사례로서, 무시하기가 매 우 어렵다.
- 아마도 우리는 사물을 2가지 방식으로 인식한다. 첫째로 사물을 이름과 정체성으로 인식한다. 무언가를 볼 때 그것의 이름을 댈 수 있다. 달리 말 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또한 우리는 사물에 반응함으로써 그리고 그 사물에 맞게 행동함으로써 사물을 인식하기도 한다. 밝혀지기로, 사물을 인식하는 이 2가지 방법에 대응하는 2가지 시각 경로가 존재한다. 이 두 시각 처리 흐름은 일차시각 영역에서 동일한 시각 입력을 수집한 다음에, 나란한 두 방향으로 나누어진다. 한쪽 흐름을 가리켜 등쪽dorsal 흐름 또는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 흐름이라고 하며, 이는 시각피질에서 운동피질까 지의 영역들을 활성화시키는 경로다. 이 등쪽 흐름 덕분에 여러분은 시각 적 환경에 반응해 적절한 운동 행위를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빠르게, 또한 무의식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무언가 를 던지면, 여러분은 그 사물의 이름을 대지 않고서도 손을 뻗어서 막을 수 있다. 여러분이 커피잔을 잡을 때, 등쪽 흐름이 여러분의 손을 안내해 적절한 방식으로 잡도록 해준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무거운 머그잔이나 부서지기 쉬운 페이스트리를 잡는 힘을 조절할 수 있다. 사물이 달라지면, 사물을 쥐는 힘도 달라진다.
다른 시각적 흐름을 가리켜 배쪽ventral 흐름, 또는 '무엇 시스템'이라 고 한다. 이 배쪽 흐름은 일차시각피질에서 활성화된 정보를 피질의 측두 엽 영역으로 보낸다. 이곳은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이다. 여러분이 어떤 단 어를 대하면 그것을 개념과 연결시킨다. 이 두 흐름은 대체로 함께 작동 한다. 사물 인식은 거의 언제나 시각적 입력을 운동 행위 및 개념적 지식 과 조화시키면서 일어난다. 이 두 흐름은 서로 의사소통도 한다. 여러분이 '테니스'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뇌의 언어 영역에서 일어난 활성화가 등쪽 흐름에까지 퍼져서 일부 운동 영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반대 방향으 로도 마찬가지다.
신경과학자들이 입증하기로, 이 두 흐름은 또한 독자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가령 어떤 이가 뇌졸중으로 인해 등쪽 경로에 손상을 입으면, 어떤 사물의 이름을 댈 수는 있더라도 그걸 적절하게 손에 쥐기는 어려울 것이 다. 이 경로는 배쪽 경로와는 분리될 수 있다. 만약 어떤 이가 배쪽 경로를 따라 손상을 입으면, 시각적으로 제시된 사물의 이름을 댈 수는 없어도 대 체로 그 사물을 올바르게 쥘 수 있다. 이 상태를 가리켜 시각인식불능visual object agnosia이라고 한다. 어떤 사물을 보고서도 이름을 댈 수 없지만 그 사 물에 대해 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일단 사물을 만지고 나면 이름을 댈 수 있게 된다. 시각인식불능에 걸린 사람은 커피잔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커피잔이라고 이름을 댈 수 없다. 하지만 그 속에 커피가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알고 있으며, 어떻게 손을 뻗을지도 안 다. 일단 그걸 잡고 나면, 사물의 감촉으로 인한 피드백의 결과로 커피잔 이라는 이름도 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시각계는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환경과 상호작 용을 할 수 있도록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되었다. 아주 복잡한 시스템인 까 닭에 뇌졸중과 같은 꽤 심각한 충격이 가해져도, 전체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고 시스템의 일부만 손상된다. 뇌졸중으로 인한 부분적 손상은 위에서 설명한 종류의 일반적인 시각 장애를 일으키지만, 기본 시스템에 대한 다 른 종류의 손상과 변화는 훨씬 더 흥미진진한 변화를 일으킨다. 일부 사례 들은 매우 구체적인데, 그 각각은 시각계의 전체적인 인지 구조를 이해해 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심지어 이 구조는 시각계로부터 유입된 주요 입력 없이도 종종 작동한다.
- 우리의 감각을 믿어야 하는 이유
지금껏 살펴본 여러 사례에서처럼, 감각 입력은 뇌에 불완전하거나 심지 어 부정확한 외부 세계의 요약 정보를 제공한다. 서두에서 논의했던 착시 의 경우, 우리는 무언가에 속은 느낌이 들지 모른다. 보이는 것이 거기에 실제로 있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맹시나 반향정위처럼 처리할 충분 한 시각적 정보가 없다면 뇌는 우회로를 개발한다. 우리 뇌가 실제로 경험 하는 일은 추상이고 재현이다. 객관적 경험과 주관적 경험의 혼합이다.
우리는 단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실제 모습과 뇌가 보아 야 할 모습의 혼합으로서 세계를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감각을 믿 어야 할까? 지각을 믿어야 할까? 물론이다. 분명 가끔 지각 및 인식 오류 가 생기기는 한다. 하지만 자주 생기지는 않으며, 대체로 치러야 할 대가 가 작다. 우리의 뇌가 그런 실수를 하는 까닭은 지각이 가정과 예측, 세계 에 대해 교육받은 추측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교육받은 추측이야말로 지각 시스템이 고안된 쓸모다. 이 추측 덕분에 우리는 빠르게 생각하고 행 동할 수 있으며, 세계를 우리의 필요대로 지각할 수 있다. 지각은 우리의 행동과 목표, 욕구에 이바지한다. 지각은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지각을 믿는다. 지각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다.
- 이미지와 반응이 동일한 주의 풀에서 나올 때 사람들은 상이한 주의 풀에서 나올 때보다 더 느렸고 실수를 더 많이 저질렀다. 시 각화와 개념화는 동일한 뉴런 반응을 놓고서 서로 경쟁하는 듯하다. 동일 한 풀일 경우 그 풀을 더 빠르게 소모시킬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여러분은 걸으면서 말하거나, 대화를 하면서 운전을 하거 나, 비디오를 보면서 저녁 식사를 요리할 수 있다. 각 경우에 2가지 행동의 지각적 및 주의적 요구 사항이 서로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그 런 까닭에 여러분은 2가지 대화에 주의를 잘 기울이기 어렵고, 글을 쓰려 고 하면서 가사가 있는 음악을 듣는 데 주의를 기울이기 어렵다.
어느 시점까지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지만, 주의 자원을 공유해야 할 수록 멀티태스킹을 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 멀티태스킹이란 개념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우리 모두는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다고 여 기는데, 그럴 수 있는 까닭은 우리의 인지 시스템이 진화해온 방식 덕분이 다. 하지만 브룩스의 연구에서 드러났듯이, 멀티태스킹에는 비용이 뒤따 르며 그 비용은 여러분이 멀티태스킹을 하려는 일들이 서로 비슷할수록 커진다.
- 여러분은 휴대전화를 각별히 생각한다기보다 그저 가끔씩 습관적으로 다른 것보다 더 자주 눈길을 주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습관만으로도 주의 대상을 바 꾸며, 주의 전환에는 늘 비용이 든다. 휴대전화를 슬쩍 쳐다보는 것만으로 도 마음이 과제에서 벗어난다. 기억해야 할 일련의 문자 중에서 하나를 잊 어버린다. 레이븐 지능 검사에서 중요한 정보 하나를 잊게 하거나 지속 주의 검사에서 몇 초를 허비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훨씬 더 심각하다. 운전 중에 애써 문자를 보내지 않고 이메일과 SNS 사용을 철저히 피하더라도, 여전히 휴대전화를 계기 반 위에 놓아둘 수 있다. 어쩌면 운전 중에 휴대전화를 이용해 스트리밍으로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들을 수도 있다.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슬쩍 쳐 다보기만 해도 잠시 동안 도로에서 눈길을 거두게 되는데, 이때 마찬가지 로 보행자가 휴대전화를 슬쩍 쳐다보느라 교차로에 들어온다면...
이처럼 내재적인 위험이 있는데도, 도대체 스마트폰이 스마트한 발상 인지 의문이 든다. 물론 나는 그렇다고 본다. 위 연구의 의미는 단지 휴대 전화도 다른 주의 방해물처럼 비용이 든다는 것뿐이다. 이 비용이 생기는 원인은 딱히 휴대전화라기보다, 그저 우리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의 결과 일 뿐이다. 우리가 논의했던 다른 많은 주제와 마찬가지로 마음은 적응에 능하며, 마음 덕분에 우리는 창조하고 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며 사고한 다. 이런 일을 잘하게 해주는 인지구조가 때로는 우리를 이기고 실수를 저 지르게 한다. 그 실수가 바로 인지 활동의 비용인 셈이다. 종종 우리는 특 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실수를 계속 저지르고 만다. 많은 사람이 휴대 전화로 그렇게 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그런 실수를 멈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장치의 많은 활용 사례에도 나는 여전히 스마트폰이 정말로 얼마나 유용한지 의문이 든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글을 쓰거나 일을 할 때 종종
- 휴대전화는 많은 사람과 애증의 관계다. 내가 오래전 모델인 아이폰 4S 를 아직 갖고 있는 이유를 한두 개 들자면, 느리고 이메일이나 SNS 앱이 깔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캠핑이나 하이킹을 갈 때 그걸 들고 가는데, 그 러면 날씨와 지도, 통화와 문자만 이용하고 다른 건 쓰지 않는다. 주의가 좀 덜 산만해진다. '진짜' 휴대전화 때문에 산만해지지 않도록 두 번째 휴 대전화가 필요하다니, 이상하긴 하다. 우리 중 다수는 한 달에 수백 시간 을 스마트폰을 통한 데이터 사용에 쓰면서 동시에 그 장치 사용을 피하기 위한 전략도 개발해야 한다. 돈을 들여가며 무언가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피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사실이야말로 현대 생활의 이상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 지각에서의 결함처럼 멀티태스킹도 그런 속성상 정보를 얼마간 잃게 된다. 달리 말해서, 우리의 지각 및 주의 시스템은 줄곧 꾸준히 쏟아져 들어오는 세상의 정보를 일부 놓침으로써, 오히려 그것을 효율적이고 유용하게 다루는 전략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이처럼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보 를 잃는다는 사실에는 장점도 있다. 재구성된 세계에서 삶으로써 우리는 유익한 교환trade-off을 제공받는다. 가령, 어떤 시각적 장면을 볼 때 기존의 지식을 이용해 그 장면의 세부 사항을 채울 수 있다. 기존 지식을 떠올려 서 사용할 때, 기본적으로 우리는 예측과 의사결정에 가장 쓸모 있을 정보 만을 지각하고 새로 처리한다. 우리가 지각하는 내용과 기존의 기억 사이 의 관련성을 강화해 둘 사이의 연결을 굳건하게 만든다. 그러면 정보의 일 부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어떤 것을 알아차리는 데 실패한다는 뜻일까? 물 론 그렇긴 하지만, 그런 일시적 실패는 우리가 진화시킨 효율성의 대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보게 되리라고 예상했던 세부 사항의 일부를 놓치기' 와 '새롭고 참신하고 가치 있을지 모르는 것들을 처리하고 주의를 기울이 기' 사이의 교환을 진화시켰고 이에 적응해왔다.
- 이 주장에 깃든 역설을 여러분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우리가 세부 사항을 채우기 위해 지식을 사용한다면, 그 지식과 정보는 어디에서 왔단 말인 가? 물론 그건 기억의 일부다. 우리는 기존의 지식과 기억을 이용해, 지각 을 통해 얻은(하지만 어떤 장면을 보거나 무슨 소리를 들을 때 완전히 처리하지는 못할 수 있는) 많은 세부 사항을 채운다. 이는 우리 뇌와 마음 그리고 인지 과정 전반에 효과적이고 이롭다. 익숙한 장면 속의 모든 것을 항상 지각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즉, 우리는 눈앞에 있는 것과 기억 속에 있는 것이 혼합된 무언가를 보는 셈이다. 여러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보거나 듣는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 문제가 생긴다. 세부 사항을 채우려고 기억을 이용할 때 여러분은 거기에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내용을 추론하는데, 그렇게 채워지 는 내용은 대체로 실제 있는 내용이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이는 확률적 과정이다. 여러분의 뇌는 여러분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추측 한다. 대체로 제대로 작동하지만,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때로는 잘못된 추 측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여러분은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좋은 추측 과 나쁜 추측(오류)이 똑같은 장소에서 나온다. 둘 다 기억이 당면 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부 사항을 채우려다가 벌어지는 일이다.
- 우리는 기억이란 과거의 기록이라고, 즉 대체로 과거를 향한 것이라고 여 긴다. 하지만 기억의 가장 놀라운 점을 말하자면, 기억은 실제로 과거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기억은 미래에 관한 것이다. 기억은 현재 우리가 무 엇을 하는지, 그리고 미래에 무엇을 할지 알기 위해 우리가 이용하는 과거 의 일이다. 기억은 과거의 겉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기능도 있다. 기능적으로 볼 때, 과거를 있는 그대로 재생시키기만 하는 기억 시스템은 별로 쓸모가 없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까닭은 현재 를 이해하고 미래의 결과와 사건을 예측하기 위해서다.
- 기억이란 서류 보관함 내지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와 비슷하다. 어떤 경 험이 있으면, 그 경험을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기억에 저장 해둔다. 하지만 그건 결코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 는 모든 것은 기억을 통해서 경험된다. 이는 심지어 직접적인 관찰에도 해 당된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지각하자마자 여러분 앞에 있는 그 무언가는 이미 달라졌기 때문이다. 빛 에너지가 여러분의 눈에서 일차시각피질을 거 쳐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측두엽까지 전달되는 데는 몇 밀리초가 걸린다. 어느 시점에서 시각적으로 지각하는 것은 여러분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물 이 아니라 몇 밀리초 전에 여러분 앞에 있었던 사물에 대한 재구성된 기억 이다. 듣기도 마찬가지다. 소리가 누군가의 입술을 떠나 여러분의 귀에 도 달할 때 그 소리는 이미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소리에 대한 여러분의 기억뿐이다. 그리고 앞서 논의했듯이 여러분이 지 각하는 내용은 실제로 세상에 있는 것과 (여러분의 기억과 지식을 바탕으로) 여 러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의 혼합이다. 지각과 기억의 신경학적 과정들은 겹친다. 기억은 재구성된 지각의 한 형태다. 그리고 지각은 기억에 의해 향상되기 때문에, 지각 또한 재구성된 지각이라고 볼 수 있다.
객관적 현실을 의심하기라는 암초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기 전에, 우 선 기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자. 기억이란 현재 발생하는 뉴런 활성화 패 턴이 이전에 발생했던 패턴과 비슷함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인식이 공연 하거나 명시적이지 않아도 되며,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사실, 그리고 여러분의 뇌가 현재 활성화 패턴과 이전의 활성 화 패턴 사이의 대응을 비슷한 현상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게 바로 기억이다.
- 기억과 사고
어느 정도까지는 사고 과정 자체도 기억을 이용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 다. 무언가를 배울 때 우리는 과거에 일어났던 상황이나 사건과 현재 일어 나고 있는 상황이나 사건 사이의 유사성을 더 잘 인식한다. 배움은 여러분 이 아는 것(기억)과 모르는 것 사이의 관련성을 강화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전의 증거를 이용해 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에 관해 판단 한다. 우리는 아는 것과 안다고 여기는 것에 따라 행동한다. 사고는 결정 하고 계획하고 판단하기 위해 우리의 기억을 이용하는 일이다.
사고를 위해 우리가 기억을 이용하는 중요한 방법 한 가지는 새로운 상 황의 위험성 판단이다. 그런 위험성 판단을 통해서 우리는 행동을 계획한 다. 우리는 늘 위험한 상황과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위험 성의 본질적 측면 중 하나는 불확실성이다. 만약 우리가 한 상황과 처지에 익숙하다면, 그건 우리가 이전의 비슷한 상황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 기억과 익숙한 느낌을 이용해 새로운 상황과 관련된 불 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이전에 겪었기 때문에 그 위 험성과 생길 수 있는 결과를 알아차릴 수 있다. 위험성이나 상황 또는 결 과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데도 관련된 기억이 전혀 없어서 위험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다면, 부적절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면 결 국 위험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불확실성을 줄이려고 하다가 그릇된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가끔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 처할 때 과 거에 겪었던 비슷한 상황을 기억하지만, 그 기억은 행동의 바탕으로 삼기 에 옳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럴 경우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과거를 이 용하려는 시도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가용성 휴리스틱처럼 대표성 휴리스틱도 양날의 검이다. 대표성 휴리스 틱은 빠르고 유용한 판단을 내리는 데, 그리고 결론에 도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평가와 판단은 우리의 기억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 기억은 우 리 자신의 경험의 한 기능이다. 우리가 모든 정보를 확신하지 못할 때, 기억 과 경험에 기대는 것보다 더 나은 판단이나 의사결정 방법이 있을까?
대체로 기억에서 비롯된 이 빠른 판단과 결정은 옳다. 적어도 우리가 살아가기엔 충분히 옳다. 하지만 양날의 검의 반대편 날을 규정할 문제가 최소한 2가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에서 밝혀 지기로, 우리는 올바른 확률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와 상충할 때조차 자신 의 기억에 기댄다. 우리는 사실 대신에 직감을 믿는 편이다. 두 번째 문제 는 훨씬 더 골칫거리다. 기억은 종종 틀리고 부정확하고 왜곡되어 있고 불 완전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외부의 객관적인 정보보다 자신의 기억을 믿 을 뿐만 아니라, 매우 신뢰하기 어려운 출처를 믿는다.
- 오귀인은 어떤 이가 사실을 옳게 기억하긴 하지만, 올바른 출처를 기억 할 수 없을 때 생기는 오류다. 가령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준다면, 설령 사실이 아니라도 여러분은 나중에 이야기 내용을 쉽게 떠 올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다. 정치와 언론 보도에서 늘 접하는 사례다. 한 정치 지도자가 인터뷰에서 허위(거짓말)를 말했다고 하자. 걸핏하면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면 언론 매체가 정치 지도자가 거짓말로 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 이야기는 다시 퍼지고 뉴스에서 수없이 공유된다. 그 결과 거 짓말이 반복된다. 반복된 거짓말은 오귀인의 비옥한 토양이다. 왜일까? 어 쩌면 반복적으로 노출된 사실은 더 잘 이용된다. 여러분이 거짓말에 관한 어떤 내용을 기억하고 원 출처(가령, 그 내용이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를 기억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거짓말의 내용을 자세히 기억하면서도 출처는 잘못 알게 된다. 그러면 결국 자신의 기억을 신뢰해 거짓말을 사실이라고 믿고 만다.
많은 정치인과 지도자는 거짓말을 내놓고 언론이 다루게 함으로써 이야 기를 조작해내고 거짓 정보를 퍼뜨릴 수 있다. 터무니없는 내용일수록 더 좋은데, 많은 언론에서 다룰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전직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분야의 고수다. 그는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틀린 주장을 많이 해서 널리 퍼뜨리게 하는 재주가 있다.
- 7가지 죄 중에서 그다음 번째인 피암시성은 오귀인과 기억 속의 정보 를 떠올리긴 하지만 틀리게 떠올리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기억이 피암시성을 갖는다는 말은 과거 사건에 대한 기억을 현재의 설명을 바탕 으로 종종 갱신한다는 뜻이다. 여러분이 한 사건을 기억한다고 치자. 가령 앞에서 나왔던 내 이야기, 즉 부모의 차 유리창을 깼던 사건을 기억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여러분이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도중에 누군가가 새로운 내용을 암시해준다. 이렇게 암시된 새로운 내용이 이제 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암시는 꼭 남이 해주지 않아도 된다.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새로 운 해석을 암시해줄 수 있고 그 내용이 또한 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다. 포 드 브롱코의 백미러를 부수는 내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나는 원래 기억에 부호화된 모든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너무 빠르게 끝나버린 사건이었 기 때문이다. 그 사건을 타당하게 만들려고 시도하면서 나는 몇 가지 있을 법한 해석을 내놓았고, 그 내용이 기억의 일부가 되었다. 기억은 변하기 쉽 고 조정되기 쉽고 이리저리 바뀌기 쉽다. 스스로를 속이기는 어렵지 않다.
- 기본적인 기억 기능들
기억의 기본적 기능은 여러 가지지만, 일차적인 기능은 여러분 바로 앞에 있는 것에 단지 반응하기를 넘어서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기억은 여러분이 무언가를 배우고 과거 경험으로부터 일반화하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정확히 그렇게 할까? 기억이 수행하는 3가지 기본 기능인 부호화encoding와 저장storage, 인출retrieval을 정의해보자. 부호화는 무 언가를 기억 속에 넣는 과정이다. 부호화는 뇌가 여러분이 지각하는 것의 형태를 변경해서 다른 부호 속에 집어넣는다는 뜻이다. 이 부호화 과정은 지각의 재구성이다. 이 과정의 속성상 기억은 지각과 강한 연관성이 있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부호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원래 의 지각 경험을 최대한 다시 활성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 는 그것이야말로 뇌가 하는 일이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지각하면, 그게 여 러분의 뇌를 특정한 방식으로 활성화시킨다. 부호화를 통해 여러분은 그 활성화를 나중에 사용하기 위해 저장하고 인출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유지 하려고 한다.
두 번째 기본적인 기능 또는 작용은 저장이다. 우리는 기억을 사용해, 위에서처럼 지각되고 부호화된 정보를 저장한다. 기억은 각각의 기억별 로 물리적인 장소가 존재하지 않기에, 기억의 저장 시스템은 옷장이나 컴 퓨터의 파일 시스템과는 다르다. 오히려 기억은 뉴런들 사이의 연결 형태로 저장되며 정보는 뇌의 상이한 여러 영역에 걸쳐서 분산된다. 우리는 상이한 시간별로 무언가를 저장해야 한다. 어떤 정보는 몇 초(또는 심지어 그 미만) 동안만 저장되지만, 또 어떤 경우 우리는 동일한 기억을 수년이나 수 십 년 동안 저장하고 재활성화시키기도 한다.
세 번째 기능은 인출이다. 인출은 기억을 이용한다. 기억은 명시적인 떠 올리기의 형태('나는 이 사실을 기억한다거나 이전의 경험이 장래의 행동 방 식에 영향을 미치는 묵시적 형태로 인출될 수 있다. 인출은 지각하는 장면 의 세부 사항을 채우는 형태로 일어날 수 있다(5장에서 논의한 내용). 또는 정 신적인 시간 여행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우리는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가령 첫 직장 구하기, 첫 데이트, 자녀의 출생 또는 심지어 지난번에 가게에 갔던 일과 같은 평범한 사건 등 이 그런 예다.
- 부호화, 저장, 인출이 기억이 하는 일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이 기능들에 영향을 미치는 상이한 상황이 많다. 그 결과 우리는 상이 한 기억 시스템을 갖게 되는 듯한데, 그중 일부는 부호화에 긴밀히 관련되 어 있고 또 다른 일부는 기억이 저장되고 인출되는 방식에 더 긴밀히 관련 되어 있다. 우리의 모든 기억이 한 장소(뇌) 안에 있긴 하지만, 기억에는 여 러 종류가 있고 기억 시스템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 해마는 측두엽 피질 하부 영역에 위치해 있다. 해마는 감각기관에서 오는 지각 입력들을 주의 및 기억과 연결하는 시스템의 일부 다. 해마는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고 기억을 이용해 세계와 상호작용하도 록 돕는다. 그러기 위해 뇌에서 무엇이 처리되고 어느 부위에서 처리되는 지에 관한 정보를 취합한다. 그러면 나중에 활성화시킬 수 있게끔 그 정보 를 기록할 수 있다.
해마가 정확히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는 분명 아직도 과학적 논쟁거리 지만, 조엘 보스Joel Voss와 닐 코언 Neal Cohen이 내놓은 이론에 따르면(Voss, Bridge, Cohen & Walker, 2017) 해마는 위치를 부호화하는 뇌 영역들 및 편도 체에 연결되고 아울러 거기서 나오는 뉴런 연결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이 조사해보니, 여러 연구에서 눈 운동과 해마의 활동 사이에는 매우 강한 관 련성이 드러났다. 해마는 운동 제어의 수준에서 눈의 움직임을 조정하는 데 직접 관여하진 않지만 대신에 우리가 무엇을, 그리고 어디를 보는지 알 기 위해 기억을 사용하는 방식에 관여하는 듯하다. 해마는 지식을 지각과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도 잇는 뇌 속의 뉴런 연결을 활성화 및 재활성화시킬 수 있는 듯 보인다. 특히 우리가 보는 대상에 맞게 조정된다. 이 연구에 따 르면, 우리는 세계를 지각할 때 해마를 통해 지속적으로 기억을 사용하는 듯하다.
- 작업기억은 그렇게 하려고 진화된 듯하다. 작업기억은 지각과 긴밀히 관련된 정보를 단기간 붙들어두는 영역으로서 의식적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지각과 지식 간의 중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업기억 덕분에 많은 인지 및 사고 과정이 이루어진다.
작업기억은 모든 종류의 능동적 기억을 다룬다. 몇 가지 예를 더 살펴 보자. 이 책의 이 구절을 읽는 데 필요한 정신 활동을 살펴보자. 각 단어와 문구를 읽을 때, 여러분이 읽고 있는 내용의 의미를 추출하고 내용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모형을 세우는 정신적 표상이 활성화된다. 이렇게 하는 데 작업기억이 사용된다. 작업기억은 여러분이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기도 전에 먼저 정보를 저장해놓는데, 그래야지 정신적 모형을 세우는 데 필요 한 개념들을 재빠르게 활성화시키고 그것들에 접근할 수 있다. 독서는 시 각적 과정이므로 듣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겪지 않는다. 듣자마자 사라 지는 입말(구어)과 달리 적힌 단어들은 페이지에 그대로 있다. 그런데 독서 는 우리 대다수에게 시각적 과정임에도, 여전히 입말에 대해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들을 활성화시킨다. 여러분이 글을 읽을 때도 여전히 단어들은 작업기억 시스템을 통과한다. 속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 개념들을 활성화 시키기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신호(시각적 입력 또는 소리)를 충분히 오래 붙들 어두는 데 도움이 된다.
작업기억은 단지 언어에만 사용되지 않는다. 동영상이나 사진 또는 여 러분 앞에 있는 장면을 볼 때 여러분이 지각하는 이미지들은 다른 개념들 과 연결되어 한 개념을 형성하기 전까지 작업기억에서 활발하게 유지될 수 있다. 수학이나 물리와 같은 문제를 풀 때, 여러분은 다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즉, 여러 개념을 한꺼번에 불러내고서 그것들을 한데 합쳐야 전 체 문제가 풀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러분은 속으로 말할 수도 있고, 삼 차원 물체를 상상할 수도 있고, 그게 어떻게 움직일지 또는 여러 상이한 각도에서 어떻게 보일지 상상할 수도 있다. 상상 속에서 루빅스 큐브 Rubik's cube를 풀 수 있는가? 그게 작업기억이 하는 일이다. 모두를 항상 목록에 적어 기록하지 않고서도 여러 축구선수가 축구장에서 서는 위치를 계속 추적할 수 있는가? 역시 작업기억이 하는 일이다.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시각적 대상들을 지각하고 식별할 수 있는가? 이 역시 작업기억이 하는 일이다.
분명히 작업기억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지각하고 이해하기 위해 경험을 재구성하는 데 큰 역 할을 한다.
- 전환 및 억제와 같은 집행 기능이 고차원 사고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 로 보여서인지, 많은 연구자가 집행 기능은 작업기억의 으뜸가는 지적 구 성 요소라고 제안했다(Kane et al., 2004). 집행 기능은 범용 작업기억 시스템 으로서 활약하며 심지어 지능 일반의 으뜸가는 결정 요소인 듯 보인다. 달 리 말해서, 음운루프와 시공간 잡기장과 같은 낮은 수준의 구성 요소들은 집행 기능만큼 고차원 사고에 기여하지는 못할 것이다. 집행 기능의 가용 성과 용량이 사고 및 추론 능력의 핵심 결정 요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개 인차의 관점에서 볼 때, 뛰어난 집행 기능 가용성을 지닌 사람은 학교 성 적과 사고력 검사처럼 지적 능력과 연관된 재능과 검사에서 더 나은 성적 을 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뛰어난 집행 기능 능력은 성과 달성과 연관 이 있다.
- 기억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적어도 다음 2가지다. 바로 지속시간(단기기억, 중기기억, 장기기억)과 내용물(사건, 사실, 운동 행위, 말, 영상)이다. 기억의 짧은 측면인 감각계와 작업기억 시스템은 우리 사고의 내용물을 반영하며 지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시스템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정보를 저장하며, 우리는 그 정보를 되뇌기 및 지각 재활성화를 통해 유지한다. 하지만 이런 표상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 연결되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작업기억 시스 템은 바깥에 있는 세계, 감각 및 지각의 세계, 우리 마음속 세계와 장기기 억, 개념 및 지식의 세계 사이의 매개자다.
- 일찍이 6장에서 새모이통의 새를 알아보는 데 관여하는 기억의 역할을 논하면서 나는 사실 기반으로 구성되는 기억과 사건 기반으로 구성되는 기억을 구분했다. 사실 기반 기억은 대체로 의미기억이라고 부르는데, 가 장 중요해 보이는 의미적 및 개념적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건 기반 기억은 대체로 일화기억이라고 부른다. 이는 구체적인 일화에 대한 기억으로, 여 러분에게 일어났거나 앞으로 일어날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내용이다. 두 시스템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알 고 기억하는 능력과 특정한 것을 떠올리고 회상하는 능력에는 기능적 차 이가 있어 보인다. 기능적 필요가 다르기에 이 두 시스템은 상이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바지한다. 하지만 둘이 별개는 아니다. 상호작용하고 겹치 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 점을 사례를 통해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이 경우 구체적인 사건이 결국 새로운 개념을 낳을 수 있다.
- 기억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 알기란 어렵지 않다. 이 왜곡은 더 일반적인 지식의 유용한 어렴풋함과 동일한 원천에서 비롯된 다. 기억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어렴풋하다. 배경 내용을 채우기처럼 이 어렴풋함이 도움이 될 때 우리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일어난 일의 정확한 반영이길 기대하고 믿는 일화기억에서 세부 내용을 보태거나 뺄 때처럼 어렴풋함이 해가 될 때에도,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의 기억이 정확 하지 않다고 알려주기 전까지는 어렴풋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떻게 여러분은 때로는 어렴풋함을 유리하게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또 어떨 때는 오류를 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한 해법으로, 핵심 내용 을 보존하고 싶다면 이야기를 다듬지 않도록 해보라. 하지만 이 해법은 그 다지 실용적이지 않다. 우리 대다수는 이야기를 할 때 다듬기를 좋아한다. 그래야 이야기가 재미있어지고 더 재미있어진다. 그것이야말로 많은 이야기의 목적이다. 즐겁게 해주기가 목표지, 정확하고 사실적인 기억을 만들 어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다듬지 않도록 해보라'는 말 이야 쉽지 실제로 하기는 어렵다. 쉽지 않은 까닭은 어렴풋함과 다듬기가 기억의 작동 방식의 본질적인 측면이기 때문이다. 피하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통해서 실수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여러분은 기억의 속성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여러분 이 기억하는 것은 이야기인가 사실인가? 해당 기억의 목적은 무엇인가? 새로운 내용을 보태고 있는가? 이전에 나왔듯이, 심리학자들은 이를 가리 켜 메타기억이라고 한다. 메타기억은 자신의 기억에 관한 지식이다. 만약 여러분의 메타기억을 향상시키고 싶다면, 기억이 근본적인 수준에서 어떻 게 작동하는지 더 많이 아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 툴빙이 제안하기로, 정신적 시간 여행을 하는 능력인 일화기억은 인간 에게 고유하다. 그것은 마음속으로 말하면서 사물을 기술하는 능력 그리 고 자신을 끊임없는 정보의 흐름 속에 두는 발달된 자아의식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또한 이 기억은 의미기억에 의존하면서도 그것과는 차이가 있 다. 그는 2002년에 이렇게 적었다(Tulving, 2002).
일화기억은 최근에 진화되어 늦게 개발되었고 일찍 악화되는 과거지향 기억 시스템으 로서, 다른 기억 시스템들보다 신경의 기능장애에 취약하며 아마도 인간에게 고유하다. 이것은 주관적인 시간을 통해 현재에서 과거로의 정신적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기에, 우리로 하여금 자기인식 의식(autonoetic awareness)을 통해 자신의 이전 경험을 재경험 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억의 작동에는 의미기억 시스템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과 별도 로 작용한다.
- 사고하기 즉, 문제 해결하기, 결론 내리기 및 결정하기는 잘 구성된 정신 적 표상을 이용해 진행된다. 이러한 정신적 표상, 즉 개념 덕분에 우리는 예측하고, 빠진 특징을 추정하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가 기존의 개념이나 범주에 들어맞는 무언가를 지각하면, 우리는 개념 덕분에 그 사물들에 대 해 아는 중요한 대부분의 정보에 접근한다. 일단 사물이 한 범주의 구성원 으로 분류되고 나면, 그 사물은 동일한 범주 내의 다른 많은 사물과 연관 되어 있는 속성들을 물려받거나 지닐 수 있게 된다. 개념은 잘 구성된 기 억의 결과이기에, 개념 덕분에 기억은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개념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지식과 기억이 적응적 사고에 최적화되는지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개념 덕분에 기억과 지식은 다 른 종류의 사고를 수행하는 데 효과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 인지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는 이 발상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는 개념을 낳았다. 자아 고갈의 개념은 로 이 바우마이스터 Roy Baumeister와 동료 연구자들한테서 나왔다(Baumeister, Bratslavsky, Muraven & Tice, 1998). 이 이론에 따르면 자기조절self-regulation 한정적 자원이다. 물리적 자원을 다 써버리듯이 다 써버릴 수 있다. 바우 마이스터의 주장에 따르면, 인지 자원과 자기조절은 신체적 체력에 비견 된다. 힘든 운동을 하거나 오래 걷고 난 후에 여러분의 근육은 지친다. 자 아 고갈 이론에 따르면, 여러분의 자기조절 자원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작 동한다. 즉, 이런 자원들은 고갈된다. 그리고 이 자원들이 고갈되면 여러분 의 자기조절 과정이 힘겨워진다.
- 자아 고갈에 관한 초기 연구에서 바우마이스터가 알아내기로, 피실험자에게 어려운 자기조절 과제를 하도록 시키면 후속 집행기능executive function 과제 수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 두 유형 의 과제가 자원을 공유한다. 가령, 피실험자한테 초콜릿 대신에 무를 먹으 라고 강요하면, 먹기에 대한 자기통제를 행하지 않았던 피실험자에 비해 서 후속 퍼즐 풀기 과제에 대한 지속력이 줄어들었다. 다른 과제들에서는 피실험자들에게 일반적으로 강한 감정 반응을 유발하는 영화를 보게 했 다. 자아 고갈 조작을 통해 이 피실험자들은 감정 반응이나 괴로움을 억압 당했다. 이들은 철자 바꾸기anagram 과제를 푸는 능력이 저하되었다.
더욱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인지 조절 자원을 고갈시키는(가령, 감정을 조 절하고 주의를 통제하거나 작업기억 검사를 수행하는 과제에 참여한 피실험자들은 작업기억 지속 기간과 억제 조절에 관한 후속 검사에서 성적이 나쁘게 나왔다. 이는 자아 고갈과 시스템 2 사고와의 대응성을 암시하는데, 이 두 집행기능 모두 시스템 2 주제에 속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아 고갈은 의사결 정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아가 고갈된 피실험자들은 의사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고, 결정 대안들을 고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잘 다루 지 못한다. 자아가 고갈된 사람들은 휴리스틱에 더 과하게 의존하는 편이 며, 종종 모든 대안을 주의 깊게 저울질하지 못한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으로, 자아 고갈 현상은 일반적인 피로와는 다르다. 달리 말해서, 자아 고갈은 자신의 자기조절 자원이 고갈 상태에 있는 상황 에 해당한다. 이것은 인지 통제에 국한된 피로다. 일반적인 지침 내지 피 로와 동일하지 않다. 이 구분은 자아 고갈과 비교 수단으로서 수면 박탈을 이용하는 어느 영리한 과제에서 드러났다. 만약 자아 고갈이 일반적인 피 로와 동일하다면, 자아 고갈 피실험자는 수면 박탈 피실험자와 동일한 과제 수행 성과를 보여야 마땅하다(Vohs, Glass, Maddox & Markman, 2011). 하 지만 연구 결과는 이 결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수면 박탈 피실험자들은 피 로 때문에 고생했지만 자아 고갈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위 실험의 연구자 들의 주장에 따르면, 일반적인 피로와 달리 자아 고갈은 원치 않는 반응 을 조절하는 내부 에너지의 소진' 현상이다.
- 우리는 어떤 결론이 우리가 이미 믿는 내용과 일치하면 타당하다고 가 정하고, 일치하지 않으면 타당하지 않다고 가정하는 경향 내지 편향을 가 지고 있다. 비록 우리는 꾸준히 추론하고 결론을 도출하고 무언가에 대해 예측을 하고 있지만, 연역 논리는 종종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바와 일치하 지 않으면 반직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실제로는 아닌데도 한 결론 에 종종 동의하고 그것이 타당하다고 여긴다. 대신에 타당한 결론을 거부 할 수 있다. 이는 편향인데, 타당성은 논리적 과제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 지 믿을 만한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수긍할 만은 한데, 우리 에게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개념과 기억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다. 즉, 우리는 10장에서 논의했던 빠른 시스템인 시스템 1을 바탕으로 결 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 빠른 시스템은 결정과 연역을 빠르게 수행하므로 유용하지만, 또한 이와 같은 편향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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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에 따르면 말은 무의식의 욕망이나 갈등을 반영한다. 말을 통해 숨겨진 욕망이나 불편한 감정이 표출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생각으로 반영되고, 그 생각이 말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누군가 자주 하는 말, 즐겨 쓰는 말을 잘 들어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는 만큼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선택의 폭을 넓힐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직장생활의 경험과 심리상담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 뒤에 숨은 의미를 찾고 주변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40가지 제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더 잘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친한 관계일수록 말에 대해 조심하지 않고 핀잔주듯이 말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계발 전문가 데일 카네기는 "간접적인 공격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직접적인 대화와 이해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솔직한 대화만큼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대부분의 사람은 어쩌지? 어떡하지?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는 걱정과 불안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불안감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불안감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보다, '불안감에 어떻게 대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걱정을 억누르려고 할수록 더 많이 걱정하게 된다. 불안감은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것이 불안감을 다스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누군가 어려운 상황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나한테 왜 말을 안했어? 알았으면 도와주었을텐데." 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한편 고맙기는 하지만, 정말 도와주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말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말로는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대신에 이렇게 말해주자.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그래도 잘 이겨낸 것 같아 다행이다."
우리는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기 싫은 일에 부딪치게 되면 변명이나 핑계를 대면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 본인은 그럴싸한 변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듯이 상대방도 나의 변명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낫다.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꺼내면 공감하기보다 이유부터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다. 단지 마음을 표현하고 위로와 공감을 받고 싶을 뿐이다. 이유를 설명한다고 해서 딱히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풀어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설명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 심리학에는 '사후 결정 부조화(post-decision dissonance)'라는 이론이 있다. 일단 결정을 내린 후에도 그 결정에 대한 불편함 과 불안감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한 선택이 맞는지 확신이 없 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감을 없애거나 줄이기 위해 '나의 선 택이 옳았다'라고 믿는 데 도움되는 정보만을 찾는 심리를 '사 후 결정 부조화'라고 한다.
내가 주식을 모두 판 이후에도 주가를 매일 확인하고, 내가 회사를 떠난 후에도 회사의 상황을 틈나는 대로 확인했던 이유도 '사후 결정 부조화'가 작용한 탓이다. 과거에 내가 했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한 불편함과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 잭 브렘(Jack Brehm) 교수가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후 결정 부조화 현상은 중요하고 번복할 수 없는 결정일 때 더 빈번히 나타난다고 한다. 그럴수록 자신 의 결정이 옳았다는 믿음을 뒷받침해줄 정보를 더 강렬히 찾는 것이다.
- 유명 강연가이자 작가인 멜 로빈스(Mel Robbin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안은 내가 살아 있고, 내가 사람이고,
우리가 뭔가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우리가 불안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잘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일을 앞두고 불안을 느끼는 사람에게 마지막으 로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막상 해보면 별것 아니다."
-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 견해, 가설 등에 대한 확신을 강화하려는 경 향을 말한다. 새로운 정보나 증거가 제시되어도 기존의 믿음을 바꾸지 않고 무시하려고 한다. 자신의 선입견과 기존의 지식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보를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확증 편향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두뇌가 지적 노력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정보를 단순화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를 계속 평가하고 조정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뇌는 기존의 믿음을 유지하려고 한다.
우리의 뇌도 이왕이면 일을 덜 하고 싶은 것이다.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로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과정 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이나 판단을 할 때 확증 편향에 빠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여서 실상과 다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2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논리적 증거를 제시한다. 상대의 믿음에 반대되는 사례를 제시하거나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자료를 보여준다. 아들의 좋지 않은 행동을 그 친구 탓이라고 생각하는 엄마에게 “그 친구랑 어울리기 전에도 종종 저렇게 짜증 내는 모습을 보 인 적이 있잖아. 내 생각에는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한다.
물론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한 번에 태도나 생각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한두 번씩 반복하다 보면 작 은 변화가 생긴다. 엄마는 아들이 짜증내는 이유를 지레짐작하 지 않고 직접 물어보게 된다.
두 번째, 상대에게 시간과 여유를 준다. 확증 편향은 자신도 모르게 발생하는 강한 무의식적 경향이다. 감정적으로 과열된 상태에서 대화하는 것보다 잠시 시간을 두고 다시 대화를 시도 하는 것이 좋다.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 대화를 이어나가면 각 자의 견해를 더욱 고집하다 충돌하고 결국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서로 의견이 대립될 때는 대화를 중단하고 잠시 시간을 두는 것이 좋다. 상대가 기분이 상하거나 격정적인 상태로 바뀔 것 같으면 먼저 커피 한잔을 권한다. 그러면 감정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 남탓하는 마음과 자존감의 관계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귀인 편향 (attribution bias)'이라고 한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보다 타인, 환 경, 변수와 같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서 찾으려는 것이 다. 한마디로 자신은 책임지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주로 발생 한다. 이러한 심리적 현상은 자존감을 보호하고, 긍정적인 자 아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심리학과의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 교수는 성인을 대상으로 '부정적 감정과 비난하는 경향의 상관관계'에 대해 공동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자존감이 낮거나, 부정적 인 감정을 느낄 때 타인을 더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 타났다. 또한 무력감이나 상황에 대한 통제력이 부족하다고 느 낄 때도 다른 사람들을 더 비난하는 경향이 있었다.
- 실제로는 말하지 않았으면서 말했다고 하는 사람, 실제로는 말했으면서 그런 적 없다고 하는 사람, 실제로는 받았으면서 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 실제와 다르 게 기억하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적 관점에서 몇 가지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자기보존(self-preservation) 욕구이다. 해로운 것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연적인 본능과 비슷하다. 우리는 부 정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할 때, 감정적 영향을 줄이거 나 우리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바꿀 수 있다.
두 번째, 긍정적 자아 이미지를 보존하려는 욕구이다. 우리 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과 정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긍정적 자아상과 일치하지 않는 기억 은 지워버릴 수 있다. 이것은 이기적 편향(self-serving bias)과도 연관이 있다. 이기적 편향이란 성공을 내적 요인(능력, 노력 등)으로 돌리고 실패를 외적 요인(행운, 상황 등)으로 돌리는 경향 을 말한다. 쉽게 말해 잘되면 내 탓이고, 못 되면 남 탓, 상황 탓을 하는 심리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과의 마라 매서(Mara Mather) 교수가 공동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긍정적 이미지를 유지하려 는 동기가 강할 때, 기억을 재구성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범죄로 기소된 사람은 자신의 이미지를 보호하고 범죄자로 낙인찍히지 않으려고 무의식적으로 사건에 대한 기 억을 조작할 수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 마음이 보내는 원인불명의 신체 증상
독일 쾰른대학교 심리학과의 요리스 람머스(Joris Lammers) 교 수가 공동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변 명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구별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누군 가 변명을 하면 그 사람의 거짓이나 속임수를 감지해낼 수 있 는 사회적 단서에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인은 그럴싸한 변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방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듯이, 상대방도 나의 변명을 쉽게 알아챌 수 있음을 명심하자. 하기 싫은 일을 앞두고 있다면, 참석하고 싶지 않은 자리가 있다면 차라리 솔직히 말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낫다.
"죄송한데 회의 발표는 저 대신 다른 분이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잘 모르는 분야라서요."
"죄송한데 오늘 회식은 좀 빠지면 안 될까요? 오늘은 집에 일찍 가서 쉬고 싶어서요."
- 혼잣말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 확실한 효과가 있다. 심리적 허전함을 달래고 일상생활에서 적응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심리학과의 개리 루피언(Gary Lupyan) 교수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심리학과의 대니얼 스윙리(Daniel Swingley) 교수는 '자신을 통제하는 말은 탐색 성과에 영향을 미 친다'는 주제로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인들 이 혼잣말을 통해 자기 회복력을 향상하고 정서 조절을 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정신적 어려움을 완화하고 일상생활에서 적응력을 높이는 효 과가 있다고 한다. 이처럼 어르신들이 혼잣말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 하지만 온종일 말동무 없이 혼자 있는 사람, 누군가 옆에 있지만 마음을 털어놓을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 이 세상에 혼자라고 느껴지는 사람도 혼잣말을 자주 한다. 외로움을 덜기 위해 자신에게라도 말을 거는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혼잣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사회적 외로움과 고립감 때문이다.
주위에 혼잣말을 자주 하시는 어르신이 계신다면 애정을 가지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은 어떨까?
- 누구나 무언가를 통제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통제하는 대상도 사람, 상황, 시스템, 일정 등 다양하다. 통제의 욕구 가 특히 높은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미국 산타클라라대학교 사회심리학과의 제임스 버거(James Burger) 교수는 <통제에 대한 욕구(Desire for Control)》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들은 주도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모습을 자주 보일 수 있 다. 또한 완벽주의 경향이 있어서 일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높 은 수준의 성과를 기대한다. 독립적이고 자기 주도적으로 행동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보다 혼자 해내려고 한다.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자신의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높은 책 임감을 요구할 수 있다.
한편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다른 사람에 비해 더 큰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다.
- 지나친 자신감과 두려움 사이 대화할 때 자기 할 말만 빠르게 하고 마는 사람들은 어떤 심리일까?
첫 번째, 자아도취가 심한 사람들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비즈니스스쿨 심리학과의 애덤 갈린스키(Adam Galinsky) 교수가 공동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사람 의 의견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의견은 빠르 게 표현하지만 상대의 의견은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들은 자아도취가 심하고 이기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두 번째, 공감 능력의 부족이다. 애덤 갈린스키 교수는 '공감 하는 수준과 대화에 임하는 자세'라는 주제로도 공동 연구를 진행한 결과, 공감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점 을 고려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방해하고 자신의 관점에 집 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대화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크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전형적인 예이다. 그는 토 론과 기자회견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자주 끊는 것으로 유명 하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종종 많은 비판을 받았다.
세 번째, 거절의 두려움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상 대에게 전달하고 설득시키고 싶은 욕구가 높은 사람들이다. 상대가 생각하거나 반격할 틈을 주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인정 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상대가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까 봐,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까 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따라 오지 않을까 봐 상대가 자신과 반대되는 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 잠재적인 비판이나 반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방어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대화를 지배한다고 느낌으로써 타인의 부정적인 피드백에 덜 상처받고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것이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심리학과의 오즐렘 에이덕(Özlem Ayduk) 교수는 '거절 민감성이 대화 태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공동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거부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대화를 지배하려 들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방해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발견했다.
-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 편향은 검증되지 않은 신념을 갖고 있는 경우, 그러한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나 현상을 무시 하는 경향을 말한다. 자신의 신념에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뒷 받침해주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말이 옳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피드백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새로운 정보를 들었을 때도 자신의 생 각을 바꿀 가능성이 적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신의 말이 무조건 맞다는 듯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첫 번째, 질문한다. 당신 말은 틀렸다고 말하기보다 다른 경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해서 상대방이 자신의 믿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두 번째, 상대가 말하는 것과 반대되는 사례를 꺼낸다. 이것 역시 자신의 믿음이 맞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 공한다.
세 번째, 상대에게 맞서 싸우지 않는다. 쉽지는 않겠지만 최 대한 부드럽게 말해본다. 상대방이 너무 깊숙이 자기 확신에 빠져 있다면 특히 공격적인 대응은 피해야 한다. "당신은 왜 매 번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해? 나중에 확인해보면 틀린 것도 많 아"와 같은 말은 파국으로 치닫을 수 있다. 대화의 주제가 '어 떤 사실이 맞고 틀리냐'에서 '너는 항상 틀린 말만 한다'로 바뀌 기 때문이다.
자기 확신과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들에게 곧바로 반박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대화하면서 조금씩 다시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것이 현명하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시 도해보면 상대방도 분명 생각과 태도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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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은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에 대해 소통할 수 없을 때 온다. (칼 구스타프 융)
- 세상은 거대한 골리앗이 아니라 상처받은 다윗에 의해 발전한다. (말콤 글래드웰)
-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하라. 단,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 뜨거운 열정과 냉정한 판단력은 삶을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된다. (알프레드 아들러)
- '앵커 효과'는 일종의 선입견을 심어주는 심리 법칙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하나 는 이전의 모든 정보를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닻을 내 리는 것'의 숨은 위험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실천하기 는 무척 어렵다.
또 다른 하나는 대량으로 수집한 정보를 전면적으로 분석하여 이성적인 판단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는 닻을 내리는 것'의 영 향을 최소화한다. 정보가 폭발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에게 유효한 정보를 취하는 자세를 갖 춰야 한다.
- 스트레스 심리 연구의 원조, 한스 샐리에Hans Selye 박사는 스트레 스를 해로운 스트레스와 유익한 스트레스로 구분했다. 유익한 스트 레스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생활에 활기를 주며 동기부여를 할 수 있지만, 해로운 스트레스는 무기력과 의기소침, 실망감 같은 감정 을 느끼게 해 신체와 심리 상태에 나쁜 반응을 일으키게 한다.
월렌다 효과는 바로 이러한 해로운 스트레스에 속한다. 이는 비 이성적인 스트레스로, 그 근원은 개인의 이해득실만 따지는 심리 상태에서 비롯된다. 즉, 자신이 실패할 것을 걱정해 이를 성공시키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실패만 생각해 끊임없이 걱정하는 것이다.
유익한 스트레스는 긍정적인 정서이지만, 해로운 스트레스는 부 정적인 감정으로 사고를 분산시켜 쓸데없고 터무니없는 생각에 시 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그러니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는가. 이해득 실을 따지고 실패의 쓴맛을 보는 것보다 처음부터 손 놓고 싸우는 편이 오히려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 '월렌다 효과'는 매우 간단한 심리 법칙이다. 고도의 긴장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장기간의 훈련을 무너뜨리며 형성하는 무의 식적 반응을 말한다. 이른바 '숙련은 연습에서 온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뜻밖의 상황이 생길 때 기술이 숙련된 사람은 의식 적으로 올바른 대처를 하는데, 이는 운에 따른 것이 아니라 반 복된 훈련에서 얻은 잠재의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패할까 걱 정하는 심리는 현재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기 본적인 대응조차 심사숙고하게 만든다. 또한, 이 때문에 발생하 는 결과에 반응하는 속도 역시 느려져 생각을 둔하게 만든다.
-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창조적인 사고가 필요할 때, 아무리 많은 힘을 쏟아도 정확한 생각의 갈피를 찾을 수 없을 때가 많다. 오히려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탐색하던 것을 멈출 때 결정적인 영감이 떠오를 수 있는데, 이를 '브루잉 효과'라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브루잉' 과정은 사고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기존 의 전반적인 사고 과정을 잠재의식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 한다.
또한, 잠재의식을 통해 기억 속에 저장해 둔 관련 정보를 조합하 고 '영감' 같은 사고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일컫는다. 이런 상태를 만드는 것은 중간 휴식이다.
- 어려운 문제는 잠시 놔두고 중간에 다른 일을 끼워 넣는 방법은 사람들이 고정된 사고 패턴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고 새로운 절차와 방법을 얻을 수 있게 해주며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생활 속에서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많은 관념이 도출되었다. 예를 들어 '일과 휴식의 결합' 같은 사업 이념이나 시간을 나누는 것을 기반으로 각종 시간을 관 리하는 방법 모두 브루잉 효과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해결할 수 없는 문 제에 끝까지 매달리거나 자기 능력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정체된 사고방식에서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문제를 한쪽에 놔두고 다른 일을 해 보자. 잠시 문제를 내려놓음으로써 정체된 사고방식을 없애고 몇 시간, 며칠, 심지어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난 후 그 문제를 다시 생각하면 우리의 뇌는 새 로운 사고방식을 활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최근 몇 년간,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끊임없이 높아짐에 따라 디자인 면에서는 ‘'미니멀리즘'을 따지고 조직관리에서는 '행정 기구의 간소화'를 추구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격언 중 “세상 만사 가능한 한 간결해야 하지만 너무 간단해서는 안 된다.”라 는 말이 있다. 간결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것이 '오컴의 면도날 법칙'의 정확한 사용방식이다.
- 일본의 마쓰시타 기업은 직원들의 감정 관리를 매우 중시한다. 직원들의 감정이 일의 생산성과 크게 관련 있다고 생각해 이 방면에 많은 궁리를 하고 공을 들였다. 대표적인 예로 '화풀이 방'을 들 수 있다. 마쓰시타의 각 생산 기지에는 은밀한 방 하나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방 안에는 사람 모양의 샌드백이 있다. 어떤 직원이든 화가 나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는 이 방에 들어가 사람 모양의 샌드 백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며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할 수 있었다.
'화풀이 방'이 생긴 후, 기업의 심리학 전문가들은 '화풀이 방'에 출입하는 직원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85% 이상의 직원들이 방으로 들어갈 때는 우울해 보이거나 화가 나 보였 지만 나올 때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 후 통계를 통해 이러한 '표출' 후의 사업 실적이 '표출' 전보다 훨씬 상승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쓰시타가 사용한 방법은 극단적일 수도 있겠지만 심리학적 측 면에서 사용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말해 주는 한 가지는 감정 표출이 개개인의 심리 건강에 무시할 수 없는 작용을 했다는 점이다.
- 심리학 측면에서 분석해 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면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해칠 수도 있다. '호손 효과'가 우리에게 말하 는 것은 직장이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많은 감정 중 일부 부정 적인 감정을 절대 억눌러서는 안 되며 여러 방법으로 표출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감정 표출은 어떤 물질적인 동기부여보다 훨씬 효 과가 크기 때문이다.
- 심리학자들은 감정에 관한 깊은 연구를 통해 감정 표출의 수단은 주로 난폭한 행동, 하소연 그리고 슬픔의 표출,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쓰시타의 '화풀이 방'은 난폭한 행동 표출에 속하고, 호손실 험 중 진행한 인터뷰는 하소연 표출에 속하며, 그 외에 목 놓아 우는 것은 슬픔의 표출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연구를 통 해 정서적인 눈물은 다른 눈물과 달리 유독물질이 있어 혈압 상승을 야기하고 심장을 더 빨리 뛰게 하며, 소화 불량 등의 안 좋은 증상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눈물을 통해 유독 물질을 몸에서 배출해야 몸과 마음이 모두 가볍고 맑은 기분을 되찾을 수 있다. 만약 실제로 어떻게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한바탕 크게 울어보는 것도 좋다.
- 『걱정을 멈추고 즐겁게 사는 법에서 카네기는 '카렐 공식'에 대해 정의했다. 가장 나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먼저 정신적으로 받아들이고 침착하게 집중하여 문제를 해결하면 걱정의 근원을 지울 수 있다고 말했다.
'카렐 공식'의 사용법은 사실 매우 간단한 세 가지 절차가 있다.
첫 번째, 먼저 두려움을 없애고 이성적으로 전체적인 상황을 분 석한다. 그 후 실패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제일 나쁜 상황이 무엇 인지 찾아낸다.
두 번째, 발생 가능성이 있는 제일 나쁜 상황을 찾아낸 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비록 상황을 돌이킬 수 없 더라도 우리는 빠르게 털어낼 수 있다.
세 번째,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생각보다 평화로운 마음을 갖게 되고 힘을 쏟을 수 있는 에너지도 생긴다. 그러면 최 악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다. 이렇게 적절히 대처한다면 우리는 빠르게 가장 나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계속 걱정만 한다면 아마도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는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 매슬로 A. H.Maslow가 제기한 심리학 현상이다. 매슬로는 '요나 콤플렉스'를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는 가장 완벽한 순간과 조건 아래에서도 변화를 두려워 하고, 크게 용기를 낸다고 해도 상상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가능성을 몹시 추앙한다."
즉, 요나 콤플렉스는 일종의 '성공했을 때의 두려움'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며 성장을 회피하는 심리현상이다.
요나 콤플렉스라고 이름 붙인 것은 성경에 나와 있는 기록 때문 이다. 성경 속 예언자 요나는 하나님의 명을 받는데, '니느웨(아시리 아의 대도시)로 가서 그 도시가 죄악으로 가득 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 을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다. 이는 본래 얻기 어려운 사명 인 동시에 매우 높은 명예이고, 요나가 평소에 동경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요나는 이 사명과 명예를 실제로 받아들이자 몹시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이런 기회를 오랫동안 간절히 바랐지만, 진짜 기회를 만났을 때는 도망가 버렸고, 도망간 후에는 점점 움츠러들어 매슬 로가 말한 요나 콤플렉스에 빠졌다. 이러한 심리는 우리에게 자신 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며 자신의 잠재력을 찾는 것 도 피하게 만든다.
- 옛말에 "끈을 자르지 말고 매듭을 풀어라.”라는 말이 있다. 이는 무언가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을 때 문제를 차단하고 회피할 것이 아니라 엉킨 실뭉치를 풀 듯 적극적으로 하나하나 풀어나 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하 고 발견할 때, 자기 생각을 대담하게 말해야 하고 자기 생각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변함없이 꾸준한 믿음을 보이면 비로소 성공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 "이성적인 당나귀 한 마리가 양과 질이 모두 같은 건초 두 더미 사이에 있으면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그 당나귀는 도대체 어느 건초 더미를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어떠한 이성적인 결 정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뷔리당이 이 역설을 처음 제기한 것은 당시의 이성주의 사조를 반박하고 자신의 믿음을 변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만약 누군가 지나치게 이성적이라면 밥을 굶은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끝없는 '결 정장애'에 빠져 위기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전하고자 했 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이해득실을 계속해서 저울질하며 망설이 고 결정하지 못하는 현상을 '뷔리당의 당나귀 효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소통의 대가 줄리아 길라드Julia Eileen Gillard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느낌과 당신의 느낌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할 때 비로소 조화로운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만약 상대 가 자신이 존중받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느끼면, 당신에게 협 력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자신의 느낌만 강요한 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당신과 교류하지 않을 것이다.
- 사람들의 사교적 행동 중에서 '타인의 자존감을 만족시키는 것' 은 중요한 원칙 중 하나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생 각과 의사를 존중해주기를 뼛속 깊이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욕구를 인정하면 더욱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고, 다른 사 람에게 보답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타인의 자존감을 만족시키 는' 과정에서 치르는 어떤 대가보다 클 것이다.
- 애런슨의 실험은 인간관계 속 하나의 원칙을 입증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신을 부정하다가 나중에 갈수록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장 좋아하고, 처음에는 자신을 인정하다가 나중에 갈수록 자신을 부정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 이는 서로 좋아하는 법칙'의 보충 조건으로 사람들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자신 을 점점 더 좋아하는 사람들을 더욱 좋아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관계에서 늘 좋은 말만 하는 것과 나쁜 말을 먼저 한 후 천천히 좋은 말을 하는 상황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후자가 더욱 사람들의 호감을 사게 된다. 또한, 우리가 이러한 사람을 좋아하는 정 도는 줄곧 좋은 말만 했던 사람보다 훨씬 크다.
- 사회질서가 바로잡힌 환경에서 '악한 본성'은 깊숙이 감춰지지 만, '스탠퍼드 교도소'처럼 법으로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을 만나면 권력을 쥔 '루시퍼'처럼 언제든지 밖으로 튀어나와 좋은 사람을 악 한 사람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루시퍼 효과Lucifer effect'라고 한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발견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도덕과 사회윤리 는 항상 선과 악을 구분 지으며, 악한 사람을 경계하고 선량하게 사 는 것만을 강조했다. 하지만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좋은 사람과 악한 사람이 원래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단지 '선량 하게 살아가는 사람'과 '나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누구나 옷장 속에 해골을 감춰두고 산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사람도 마음속엔 악한 본성이 감춰 져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향한 절대적 신뢰는 언제 깨어날지 모를 '루시퍼'에게 자신의 운명을 쥐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 '돼지 게임'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경쟁의 약자(작은 돼지)는 반드시 경쟁 전략을 선택 보류) 연구하고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며 힘을 비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경쟁에서도 똑같은 이치가 적용된 다. 대기업은 경쟁의 강자(큰 돼지)고, 작은 기업은 경쟁의 약자(작은 돼지)가 된다. 치열한 기업 경쟁에서 작은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 는 '돼지 게임'의 작은 돼지처럼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렇 게 '작은 돼지는 누워서 기다리고 큰 돼지가 버튼을 밟으러 뛰어가 는 현상'은 경제학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편승'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 이와 관련된 '편승 이론'은 미국의 경제학자 맨커 올슨Mancur Olson 이 처음 제기했는데, 기본적인 의미는 작은 돼지처럼 비용을 지불 하지 않고 그저 편히 앉아서 다른 사람의 이익을 누린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예로 '시장 추종자'를 들 수 있다. 어떤 대기업이 막대한 투자비용을 들여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면 곧바로 몇몇 작은 기업들 은 똑같이 흉내 내며 그 기업을 따라간다. 마치 작은 돼지가 편승한 것처럼 작은 기업들은 초기 연구 개발 투자금을 절약하는 동시에 대기업이 개척해 둔 안정적인 시장을 마음껏 누리게 된다.
비즈니스 역사상, 큰 돼지가 나무를 심고 작은 돼지는 그저 바람 을 쐬는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IBM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개발했지만, 오히려 애플의 그래픽 운영체제에 그 명성을 빼앗겼 다. 넷스케이프는 완벽한 브라우저를 만들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의 끼워팔기 전략에 묻히고 말았다. 또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지금은 큰 돼지가 되어 스마트폰과 애플리케이션 시스템 시장 을 개척해 냈지만, 마찬가지로 수많은 작은 돼지들이 그들의 우위를 호시탐탐 넘보고 있다.
- 그러나 선구자는 늘 나무를 심어야 하고 이야기 속의 큰 돼지처 럼 직접 버튼을 눌러 먹이를 먹어야 한다. 직접 버튼을 누르지 않으 면 결국 굶어 죽기 때문이다. 돼지 게임에서 큰 돼지는 작은 돼지가 자신에게 주어진 몫 이상을 차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결국, 최대 한 많이 일해서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위를 차지하 는 것이다. 즉, 작은 돼지가 먼저 반응하기 전에 빠르게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 펩시콜라와 코카콜라 두 회사 간의 게임은 '사격수 게임'의 아주 좋은 예시다. 음료 소비 시장에서 그들은 물과 불처럼 공존할 수 없 는 경쟁 상대다. 서로 간의 치열한 경쟁은 잠시도 멈춘 적이 없다. 일단 한쪽에 변고가 생기면 다른 한쪽은 불난 틈을 타서 상대의 시 장 점유율을 침범한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여러 해 동안 두 회사 모두 큰 이익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음료 시장에 제삼자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체 음료 시장에서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두 거대한 회사가 사격수 을과 병 사이의 동맹처럼 줄곧 일종의 협력 경쟁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만약 탄산음료 시장에 뛰어들고 싶은 기업이 있다면 그들은 이심전심으로 공세를 펼쳐 제삼자를 스스로 물러나 게 만들거나 철저하게 패배시킨다. 두 거대한 회사는 서로 수차례 충돌을 일으키면서도, 한 번도 서로에게 해가 되는 상황을 만든 적 은 없다. 또한, 두 회사가 진짜 대비하는 상대는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사격수 갑이다.
- '문간에 머리 들여놓기 효과'는 우리 생활 중 광범위하게 적용되지 만, 이 또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의사소통 과 교류를 가능하게 하고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좋은 일을 한다는 명목하에 높은 도덕적 잣대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설령 상대방이 '보상심리'로 불 합리한 요구에 동의했다하더라도 심리적 반감은 피할 수 없다.
- 구소련의 심리학자 플라토노프Andrei Platonovich Platonor는 그의 저 서 『취미 심리학의 서문에서 특별히 독자에게 '8장의 다섯 번째 줄 은 읽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 독자는 작가의 경고와는 반대로 가장 먼저 8장의 다섯 번째 줄부터 읽었다 는 것이다. 플라토노프가 이렇게 책에서 사소한 농담을 던진 것은 심리학상 흥미 있는 현상인 '금지된 과일 효과'를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보통 사람들은 '금지된 과일일수록 더 달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어떤 정보를 숨겨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할수록 사람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그것을 알고 싶어 한다는 심리와 같다. 즉, 금지된 일일수록 사람들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금지령을 깨뜨린다. 이러한 일방적인 금지와 은폐로 인해 일이 뜻 대로 되지 않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금지된 과일 효과Forbidden fruit effect'라고 부른다.
- '한계초과 효과'는 지나치게 자극한 시간이 오래되어 이로부터 심리적 면역, 심지어 심리적 반항심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말한 다. 손에 있는 굳은살처럼 문지를수록 더욱 두꺼워지고, 굳은살이 두꺼워질수록 그 밑에 있는 피부는 보호를 받는다. 사실 굳은살뿐 만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 수용 능력 역시 매우 두텁다. 이는 우리 의 신체처럼 마음도 우리가 여러 상처를 입지 않도록 노력하며 자 기 자신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연속해서 자극을 강하게 받을 때 우리의 마음은 적극적으로 이 자극을 무시하고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다.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수치심을 느끼면 우리의 마음은 서서히 반항을 하기 시 작하는 것이다.
- 우리는 한 사람의 언어적 매력은 그가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제대로 말했는가에 달려 있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끊임없이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사람은 듣는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말이 정말로 다른 사람 이 꼭 들어야 하는 말인지도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아 더욱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 1920년대 독일의 심리학자 자이가르닉 Zeigarnik은 기억력과 관계 있는 한 가지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녀는 피실험자들에게 22 개의 간단한 일을 요구했는데, 이 일들에 필요한 시간은 대체로 비 슷했고 일반적으로 몇 분 정도가 소요될 뿐이었다. 이 22개의 일은 두 그룹에게 나누어졌다. 그중 한 그룹은 일을 다 끝내도록 허락된 반면, 다른 그룹은 일을 다 끝내기 전에 저지당했다.
얼마 지난 후 자이가르닉은 즉시 피실험자들에게 그들이 했던 22가지 일이 각각 무엇인지 기억하도록 요구했다. 실험 전 피실험 자들은 이런 요구를 받을 줄 몰랐기 때문에 한순간 모든 것을 기억해내기 힘들어했다. 그 결과, 피실험자들은 평균적으로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68% 정도 기억했고, 이미 완성한 일에 대해서 는 43% 정도 기억했다.
이 실험에서 알 수 있듯, 피실험자들은 미완성한 임무를 더욱 잊 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쉽게 지우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을 '자이가 르닉 효과'라고 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마음속에 일종의 압력 시스템이 생기는 데 이 시스템은 우리를 긴장 상태로 만든다. 일을 완성하지 못하고 중단했을 때, 이러한 긴장 상태는 한동안 지속되고 미완성한 임무 역시 계속 마음을 짓누른다. 그러나 임무를 완성하면 이러한 긴장 상태는 즉시 사라지고 우리의 뇌는 그 임무를 쉽게 잊어버린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현실에서도 매우 광범위하게 응용된다. 예 를 들어 드라마 중간에 광고를 삽입하는 것은 시청자들을 매우 고 통스럽게 만들지만 억지로 끝까지 보도록 만든다. 보통 광고가 나 올 때 드라마는 중요한 내용으로 전개되고 시청자들은 정말 중요한 부분을 놓칠까 봐 매우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저 참고 한 번, 두 번, 그 이상의 몇 개의 광고를 단숨에 보고 나면 채널을 돌리기가 더욱 아까워진다. 어차피 광고를 몇 개씩이나 봤으니 아예 끝까지 다 보 는 것이 낫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즉시 시작하는 것이다. 일단 시작하면 '자이가르닉 효과가 발휘되어 그 일을 완성하기 전에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 을 계속 미루고 어떤 특정 시점을 기다렸다가 다시 시작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일을 영원히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 성공을 향한 첫걸음은 꿈이 아니라 '행동'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일을 할 계획이라면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일을 즉시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꿈을 꾸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는 그저 꿈일 뿐이고 어쩌면 1년 후 우리의 꿈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행동하기만 하면, 혼신의 힘을 다해 몰입하 게 된다. 또한, 몰입할수록 그 꿈을 지키겠다는 결심이 확고해지고 꿈을 이룰 기회는 더욱 커진다.
- '자이가르닉 효과'는 '이미 시작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일'을 우 리가 가장 마음에 두고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왕이면 가능 한 한 빨리 첫걸음을 내딛어 보자. 일단 첫걸음을 내디디면 우 리가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가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스승을 사랑하지만 진리를 더 사랑한다."
이는 우리가 '권위 효과'에 대해 지켜야 할 정확한 태도를 말해준다.
우리는 계속 의문을 품고 의심하는 정신을 유지해야 권위에 대 한 맹목적인 미신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자신감이 가득하면 공 개적으로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긴다.
-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관점을 표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대 부분의 경우 적당한 침묵은 목이 터지게 다투는 논쟁보다 더 쉽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고, 나아가 상대방을 믿고 복종하 게 만들 수 있다. 침묵을 아는 사람은 의사소통 중에 조용히 브레이 크를 걸 수 있다. 또한, 침묵으로 자신의 진짜 생각과 의도를 숨김으로써 시기가 무르익을 때 한 번에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다.
말로 상대를 억누르고자 하면 말할수록 그 의도가 탄로 날 가능 성이 크다. 그러나 적당히 침묵함으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자신의 신체 언어를 통제하고, 상대에게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없게 만든다.
침착하지 못한 사람은 늘 냉정한 사람 앞에서 실패하고 만다. 그 이유는 그들은 너무 급하게 표현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위치를 고려할 시간 없이 결국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상생활에서 이렇게 서로 아옹다옹하며 싸우는 상황은 많지 않다. 그러나 어디서든 누구와 소통하든 가장 효과적인 방법 은 침묵이다.
- 지구는 누군가가 없어도 평상시처럼 돌아간다. 일 중독자들이 짊어지고 있는 높은 기대의 압력은 사실 잘못된 자아 인지에서 온 것이다. 내가 없어도 될 일,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은 무궁 무진하다. 이런 여유로움을 가지고 업무를 대해야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세상에 즐길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우리 가 태어난 것은 우리의 삶을 즐기기 위해서다. 누군가를 위해 내 삶을 희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 프랑스의 철학가인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가 쓴 에세이 『나의 오래된 가운을 버림으로 인한 후회Regrets on Parting with My Old Dressing Gown』에 나오는 일화가 하나 있다.
어느 날, 친구가 그에게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가운 하나를 선물 했다. 디드로는 이 선물을 받고 매우 기뻤다. 그런데 그가 이 화려 한 가운을 입었을 때 갑자기 집 안에 있는 가구들이 몹시 낡아 보였 다. 색도 유행이 지났을 뿐만 아니라 스타일도 지금 입고 있는 가운 과 어울리지 않았다. 가운과 조화를 맞추기 위해 그는 새 가구를 구 입했고, 결국 주위의 모든 환경을 가운의 품격에 맞췄다. 그런데 이렇게 바꾸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 일시적 충동이 지나간 후 그는 '내가 가운에게 지배당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제학자인 줄리엣 쇼어Juliet Schor 는 그의 저서 『과소비하는 미국인들The Overspent American』에서 디드 로의 일화를 언급하면서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바로 '디드로 효 과'이다. 이는 새로운 물건을 가진 후 그에 어울리는 물건을 끊임없 이 배치하여 심리적 통일성을 추구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디드로 효과는 '인간이 벗어나기 힘든 10대 심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효과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더 많이 얻을 수록 만족하지 않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즉, 어떤 것을 얻지 못할 때는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고, 일단 얻으면 그 욕심은 끝이 없어진 다.
- 사람들은 종종 디드로 효과의 함정에 빠진다.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이 갈망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 쓸모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 디드로는 우연히 가운을 얻은 후 더 잘 어울리는 각종 가 구를 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사실 가운 자체는 뒷받침해 줄 가구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즉, 그 오래된 가구들 은 그의 새 가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미 커지기 시작한 그의 욕망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학생들을 아테네에서 가장 북적이는 시장 에 데리고 가 수업을 했다. 시장을 다 둘러본 후, 소크라테스는 학 생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이 시장에서 무엇을 찾았니?" 학생들 은 중구난방으로 대답했다. "시장에는 물건도 정말 많고, 맛있는 것 도 많고, 볼 것과 놀 것도 정말 많아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놀 거 리, 입을 거리와 먹을 거리 등 모든 것이 다 있어요. 선생님 수업만 아니라면 저희는 분명 물건을 잔뜩 사서 집에 돌아갔을 거예요." 소 크라테스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나는 너희들과 반대로 생각한단다. 이 시장에서 내가 발견한 건 이 세상에 우리가 실제로 필요한 물건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야."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우리가 사치스러운 삶에 바쁘고 지칠 때, 행복한 삶은 이미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단다. 행복한 삶은 아주 간단해. 예를 들어, 가장 좋은 방은 필요한 물건만 있고 쓸모없는 물건은 많지 않은 방이라는 거야."
- '악어 법칙'은 원래 투자 심리학 이론 중 하나로 '악어 효과'라고도 불린다. 악어 법칙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악어 한 마리가 우리의 다리를 물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우리 가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손으로 악어를 밀면, 악어는 우리의 발과 손을 동시에 문다. 우리가 발버둥칠수록 악어에게 물리는 신체 범 위는 점점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악어가 우리의 다리를 문다 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리 하나를 희생하는 것뿐이 다.
잔혹한 '악어 법칙'은 더 잔혹한 대자연 속에서 그저 가장 평범하고, 모든 생물이 알고 있는 대자연의 법칙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정글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고 이미 이런 법칙을 잊어버렸다. 따 라서 어떤 것도 버리지 못하고 결국에는 고통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나아간다.
인생에서 우리는 선택하고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결정적 순간 의 포기는 지혜로운 사람이 삶에 임하는 현명한 선택이며 시기적절 하게 버릴 줄 아는 인생만이 다시 빛을 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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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과학자들은 행복이 비롯되는 근원을 찾아 헤맸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행복을 좌우하는 요인은 유전(조 상에게 물려받은 요소)이 40퍼센트, 처한 상황이나 일어나는 일이 10퍼 센트, 습관과 마음가짐이 5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보는 의견이 통설 이다. 이는 행복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마음먹기 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대개 행복이 새로움, 즐거운 경험, 긍정적인 인간관계, 웃음, 감사, 기대, 상부상조, 비교 경계, 명상, 자연,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태도, 생산적인 일, 목적의식, 영적인 믿음, 더 많이 원하기보다는 가진 것에 만족하는 데 있다고 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의 대부분이 중요한 일곱 가지 측면을 완전 히 놓치고 있다.
- 1. 각 개인의 고유한 뇌 유형에 맞춰 행복 전략을 세워야 한다. 획일적인 접근방법으로는 절대 효과를 얻을 수 없다.
2. 뇌 건강(뇌라는 기관의 실제 물리적 기능)이 행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 요건이다.
3. 행복을 증진하려면 매일 뇌에 목표 영양소를 공급해야한다.
4. 당신이 선택한 음식이 행복 수준을 높일 수도, 낮출 수도 있다.
5. 행복을 지키려면 반드시 마음을 다스리고 머릿속 소음과 헤어지거나 심리적으로 거리를 둬야 한다.
6. 다른 사람에게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보다 마음에 드는 점을 찾아내는 것이 행복한 인간관계와 전반적인 행복을 찾는 비결이다.
7. 행복을 뒷받침하는 튼튼한 기반을 쌓으려면 명확한 가치관, 목적, 목표가 있어야 한다.
- 일반적으로 패스트푸드는 슬픔을 유발하는 음식이다. 오스트레 일리아와 뉴기니 사이에 있는 토레스해협에 위치한 작은 섬 두 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음식과 우울증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보자. 두 섬 중 하나에는 곳곳에 패스트푸드 매장이 있는 반면, 나머지 하나는 패스 트푸드 매장이 단 하나도 없는 외딴섬이다. 패스트푸드 매장이 넘치 는 섬 주민들은 생선 소비량이 낮은 반면, 외딴섬 주민들은 생선 소비 량이 많다고 답했다. 연구자들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우울증 검사를 실시한 결과, 외딴섬 주민 중에는 중등도에서 고도의 우울증 증상을 보고한 사람이 세 명에 그친 반면, 패스트푸드 매장이 넘치는 섬 주민 중에서는 열여섯 명에 달했다. 이는 음식 섭취에 따른 우울증 발생률 이 500퍼센트 증가했다는 뜻이다.
- 우리 마음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마음은 자주 문제를 일으킨다. 생각과 감정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원천에서 비롯된다.
*어떤 순간에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이는 식생활, 장건강, 면역, 염증, 독소 노출, 수면에 영향을 받는다).
*유전 암호에 기록돼 내려오는 조상의 경험
*유전적 성향. 예를 들어 내 첫째 딸은 어렸을 때 수줍음을 많이 타서 낯 선 사람이 다가오면 내 다리 뒤로 숨곤 했다. 반면에 둘째 딸은 만나는 사람마다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케이틀린이에요"라고 말했다. 막내딸 클로이는 언어 재능을 타고났고(두 살에 이미 열두 단어로 된 문장을 말했다) 걸음마를 뗄 때 이미 “내가 리더야, 내가 보스야”라고 주장했다.
*개인경험(의식 및 무의식)과 기억
*부모, 형제자매, 친구, 적, 지인이 하는 말과 몸짓을 해석하는 방식
*접하는 뉴스와 음악, 소셜 미디어, 그 외 다수
- 원함과 좋아함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즉 하나는 의식적으로 일어나고 다른 하나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노벨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정보 처리를 무의식적, 즉 저절로 일어나는 시스템 1과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시스템 2로 나눴다. 좋아함은 의식적으로 행해지므로 우리 는 이를 알아차린다. 원함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날 때가 많다. 즉 욕망 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저절로 발생하곤 한다. 우리 마 음이 하는 일 대부분이 시스템 1에서 일어난다. 무의식적 정보 처리 의 예로는 자동적 기술, 직감, 꿈을 들 수 있다. 인지 활동의 최대 95퍼 센트가 무의식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원함 시스템이 작동하기 전에 먼저 좋아해야 한다. 심리학 자들은 이를 가리켜 '각성 보기판arousal template'이라고 부른다. 각성 보기판이란 행복이나 쾌락을 처음으로 불러일으킨 생각과 영상, 행동, 일어나는 시스템 2로 나눴다. 좋아함은 의식적으로 행해지므로 우리 는 이를 알아차린다. 원함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날 때가 많다. 즉 욕망 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저절로 발생하곤 한다. 우리 마 음이 하는 일 대부분이 시스템 1에서 일어난다. 무의식적 정보 처리 의 예로는 자동적 기술, 직감, 꿈을 들 수 있다. 인지 활동의 최대 95퍼 센트가 무의식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원함 시스템이 작동하기 전에 먼저 좋아해야 한다. 심리학 자들은 이를 가리켜 '각성 보기판arousal template'이라고 부른다. 각성 보기판이란 행복이나 쾌락을 처음으로 불러일으킨 생각과 영상, 행동, 감각 정보를 전부 모아놓은 집합체를 말한다. 아이를 단 음식이나 전 자기기로 달래는 방법이 나쁜 전략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전략 은 나중에 음식이나 기기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좋아하는 강도가 클 수록 나중에 그 사람의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많은 사 람이 첫사랑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옥시토신과 도파 민 같은 새로운 사랑 화학물질이 폭발해 처음으로 기대핵을 덮치면 뇌의 쾌락중추에 오래도록 지속되는 흔적을 남긴다. 첫사랑을 떠올 리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같은 화학물질의 폭발을 다시 불러일 으킬 수 있다.
- *도파민dopamine: 부추김의 분자 - 이 독특한 신경전달물질은 뇌가 사물 을 기억하는 능력을 뒷받침하면서 집중과 업무 지속을 돕는다. 도파민 은 좋든 나쁘든 중요한 순간을 기억하도록 돕고, 기대, 쾌락, 사랑에 관 여한다. 도파민은 기분을 좋게 하는 주요 신경전달물질이라서 언제나 더 많이 원하게 되므로 나는 이를 가리켜 '부추김의 분자'라고 칭하곤 한다.
*세로토닌serotonin: 존중의 분자 - 세로토닌은 기분, 수면, 유연성에 관여한다. 또한 우리가 마음을 열고 변화에 적응하도록 돕는다. 세로토닌은 주변 사람들에게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 증가하고 감정이 상할 때 감소한다.
*옥시토신oxytocin: 신뢰의 분자 - 도파민이 '부추김의 화학물질이라면 유대감과 신뢰 관계를 강화하는 옥시토신은 '사랑의 화학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강력한 신경전달물질은 큐피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 다. 포옹하거나 성관계를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릴 때 옥시토신이 분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옥시토신이 질투심과 의심, 특히 외부인을 향한 질투심과 의심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엔도르핀endorphin: 통증 완화의 분자 - 엔도르핀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운동이나 격렬한 신체 활동을 할 때 몸에서 분비되는 이 뇌 화학물질은 심혈관계에 면역 세포를 대량으로 방출해서 질병 을 예방하고 기분을 좋게 한다.
*가바GABA: 진정의 분자 -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mma aminobutyric acid'의 약자인 가바는 뇌의 주요 억제 신경전달물질이다. 가바의 주요 역할은 뇌 세포 흥분성을 낮추고 뉴런 발화를 늦추는 것이다. 가바는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처럼 자극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맞추도록 돕 는다. 자극이 지나치면 불안과 불면, 발작을 유발할 수 있는 반면, 신경세 포발화가 너무 적으면 무기력과혼란, 진정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 균형 이 중요하다.
*엔도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 평화의 분자 - 엔도카나비노이드는 기분, 수면, 식욕을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엔도카나비노이드 활성 이 과도하면 과식과 비만을 유발하고 반대로 활성이 낮으면 우울증,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염증, 면역 체계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
- 대마는 자연 발생 카나비노이드 성분을 100가지 넘게 함유하고 있으며 인체가 이 성분을 흡수하면 엔도카나비노이드 체계의 수용체와 상호 작용하면서 반응한다. 가장 잘 알려진 성분은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 놀tetrahydrocannabinol과 칸나비디올cannabidiol이다. 이 두 성분은 화학적 구 성은 비슷하지만 카나비노이드 수용체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은 사람들이 대마초라고 할 때 연상하 는 성분이다. 이는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용체를 직접 자극해 중독 효과 를 일으킨다. 칸나비디올은 간접적으로 작동하므로 마약에 취한 기분 을 유발하지 않는다.
코르티솔cortisol: 위험의 분자 - 이 호르몬은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코르티솔은 생존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동시에 더 원하기보다는 덜 원하는 호르몬이기도 하다. 코르티솔이 통제 불능으로 생성되면 행복감을 빼앗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코르티솔은 '스트레스호르몬'으로 그 수치가 만성적으로 높으면 우울증, 불안, 비탄, 기억력 감 퇴, 체중 증가는 물론 2형 당뇨병과 고혈압 같은 질환과 상관관계를 나 타낸다. 또한 인체는 위험에 처했거나 투쟁-도피 반응을 일으킨다고 느 낄 때에도 코르티솔을 분비한다. 팬데믹 기간처럼 스트레스가 끝나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높은 상태를 유지하면 코르티솔 때문에 끔찍한 기 분을 느끼게 된다. 이는 아주 행복한 사람들의 코르티솔 수치가 낮은 편 이라는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 일단 도파민이 쾌락중추를 자극하면 대개 내성이 생겨서 같은 기 분을 느끼려면 점점 더 많은 도파민이 필요하므로 '부추김의 분자'라 고 부른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쾌락 적응'이라고 한다. 대니얼 리버 먼과 마이클 롱 공저 도파민형 인간The Molecule of More』에는 다음과 같 은 내용이 나온다.
다리 밑에 사는 사람에게 도파민은 '텐트'를 바라도록 부추긴다. 텐트에 살 면 '집'을 원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저택에 살면 '달'에 성을 짓고 싶 게 된다. 도파민의 기준에서 만족이란 없고 결승선도 없다. 뇌에 있는 도파 민 회로는 지금 손에 쥔 것이 얼마나 완벽한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 저 반짝이는 새것을 손에 넣을 가능성에만 자극을 받는다. 도파민의 좌우 명은 '더 내놔'다.
- 즉흥적인 뇌 유형과 관계를 맺을 때
즉흥적인 뇌 유형에 속한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으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고 예측 불 가능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들 덕분에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거나 갑작스럽게 주 말여행을 떠나거나 해변에서 낭만을 만끽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일터에서 그들 은 회의에서 가장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리며, 자연스럽 게 수다를 떨다가 신규 거래처를 튼다. 반면에 충동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경향 때문에 가정이나 직장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배우자나 친구, 직장 동료가 즉 흥형에 속한다면 종종 이들에게 마음이 상하는 발언을 듣고 그들이 고의적으로 못되 게 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이 습관적으로 지각하거나 대화할 때 산만해지거나 마무리에 무신경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자신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이기 쉽다. 좀 더 극단적인 사례로 즉흥형인 배우자가 외도를 했을 때 더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는 이들의 앞이마겉질 활성이 낮아서 뇌의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를 이해하고 앞이마겉질의 활성을 높이고 도파민 생성을 증진하는 방법을 따라 하도록 격려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이 정리정돈을 잘하도록 돕 고, 집안일과 프로젝트를 마쳐야 할 구체적인 기한을 정해주며, 걸으면서 대화를 한 다면(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집요한 뇌 유형과 관계를 맺을 때
집요한 뇌 유형에 속한 사람들은 의지가 강하고 의견을 굽히지 않으며 뭐든 할 수 있 다고 생각한다. 목표도 의욕도 없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자기가 어떤 사람이고, 무 엇을 믿으며, 목표를 완수하고자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 보면 빠져들기 쉽 다. 하지만 이런 유형과 의견이 다르거나 일의 속도를 바꾸고 싶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집요형이 배우자나 부모, 친구라면 "싫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고, 그러다 보면 분통이 터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집요형은 새로 한 머리 모양이 별로라고 했던 말이나 직장에서 서류 정리 체계를 바꿔서 중요한 회의에 쓸 고객 계좌 정보를 찾지 못했던 일, 소개팅을 시켜줬는데 잘되지 않았던 경우처럼 상대가 옛날 옛적에 저지 른 잘못을 자꾸 끄집어내곤 한다.
집요형에게 선택지를 주는 법을 배우면 자동 반사적으로 "싫어"라고 말하는 반응을 피할 수 있다. 함께 운동을 하고 복합 탄수화물 음식을 만들어주면 세로토닌 생성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고 긴장감이 풀리므로 함께 좀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 나는 피 말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기운을 지킬 것이다. 나는 건전하게 선 긋는 법을 배울 것이다. 나는 적절한 때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나는 어떤 관계가 나를 키울지 알려주는 내 직감에 귀 기울일 것이다. (주디스 올로프Judith Orloff)
- 사람들이 왜 자해를 하거나 몇 시간 동안 문신을 하거나 가학피학 성 성행위를 하는지 궁금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그들은 엔도르 핀 분비와 이에 따르는 행복감을 일으키고자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 다. 엔도르핀 체계와 반응을 알고 나면 그런 특이한 행동이 이해가 되 기 시작한다. 그들은 감정적 고통을 차단하고자 급격한 엔도르핀 분 비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행복감을 차단하는 약물인 아편제 차단제 날트렉손naltrexone을 투여하면 대개 그런 행동을 멈춘다. 날트 렉손은 취기를 떨어뜨려 알코올 섭취를 줄이게 하므로 알코올의존증 치료에도 사용한다.
- 예민한 뇌 유형과 관계를 맺을 때
예민한 뇌 유형들은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알아차릴 수 있고 당신에게 기대 어 울 어깨를 내어주고 문제를 들어줄 사람, 아파서 닭고기 수프가 필요할 때 당신 곁 에 있어줄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깊은 교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이들과 맺는 연애 관계, 우정, 업무 관계는 무척 진지할 수 있다. 때로는 예민한 뇌 유형의 둘레계 통이 너무 과도하게 작동해서 부정적 성향, 사회적 고립, 잘못된 해석을 유도할 수 있 다. 당신은 그들이 긍정적인 태도를 되찾거나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직장에서 사람들 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도록 도울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다.
- 행복은 암울한 투쟁과 불안에 시달린 세월끝에 오는 빛나는 절정이 아니다. 그저 그 순간에 행복하고자 내린 사소한 결정들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것이다. _도널드 월터스 Donald Walters, 미국 힌두교 지도자
-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한다. 코르티솔은 신장 윗부분에 있는 부신에서 만들어지며 그 분비는 우리가 위험을 느낄 때 뇌, 특히 시상하부와 뇌하수체 가 조절한다. 우리 몸에 있는 세포 대부분에 코르티솔 수용체가 있으 므로 코르티솔은 많은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코르티솔은 위협을 만 났을 때 일으키는 투쟁-도피 반응에 관여하고 혈당 수치 조절을 도우 며 신진대사를 조절하고 염증을 줄이는 한편 새로운 기억, 특히 가능 성이 있는 위협에 관한 기억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또한 혈압과 염분 과 수분 비율의 균형을 잡도록 돕는다. 코르티솔은 전반적인 건강과 웰빙을 보호하는 데 꼭 필요한 호르몬이다. 대체로 오전 중에 더 높게 나타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감소한다.
- 코르티솔은 스트레스를 받는 기간 동안 분비된다. 스트레스가 너 무 심하거나 너무 오래 지속되면 인체에 손상을 줄 수 있다. 코르티솔 수치가 높으면 불안, 우울, 짜증, 슬픔, 두통, 기억력 감퇴(해마 축소), 체 중 증가(특히 배와 얼굴 주변), 상처 회복이 더딘 얇고 연약한 피부, 2형 당뇨병, 쉽게 멍이 드는 현상, 감염 취약성 증가, 여드름, 여성의 경우 얼굴에 털이 나거나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지는 현상을 유발할 수 있 다. 그 무엇도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다. 코르티솔 수치가 만성적으로 낮으면 피로, 어지럼증, 체중 감소, 근육 약화, 피부 일부분의 색이 어 두워지는 현상, 저혈압, 스트레스 관리 불가능을 유발할 수 있다. 균 형이 중요하다.
- 신중한 뇌 유형과 관계를 맺을 때
주변에 신중한 뇌 유형에 속한 사람이 있으면 안전하지 않거나 비합리적이거나 증 명되지 않은 일을 하지 않도록 막아줄 수 있다. 업무 프레젠테이션 자료 준비든, 연례 골프여행 예약이든, 분위기 있는 저녁 식사 준비든, 이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뭐든 믿 고 맡겨도 된다. 신중한 뇌 유형은 오븐 예열을 절대 잊지 않으며, 당신이 아스파라거 스는 좋아하나 방울양배추는 싫어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때로는 그런 철저한 준비성이 뒤틀려 불안으로 바뀌는 바람에 긴장을 풀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신중한 뇌 유형은 집착하거나 애정에 굶주린 듯한 모습으로 상대방을 질리게 할 수 있다. 혹 은 그 어떤 갈등도 피하려 할 수도 있다. 문제가 곪아터져서 진짜 큰 문제가 될 때까 지방치하기도 한다.
신중한 뇌 유형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으려면 그들이 안전하고 가치 있으며 사랑받는 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또한 퇴근 후에 발을 마사지하거나 사무실에서 긴장이 풀리 는 에센셜 오일을 사용하거나 친구들과 온천을 하러 가는 등 긴장이 풀리도록 한다.
- 나는 행복하려면 뇌의 모든 부위를 골고루 사용해야 할 뿐 아니라 뇌와 몸을 연결해야 함을 서서히 깨달았다. _웬디 스즈키 Wendy Suzuki, 미국 뉴욕대학 신경심리학 교수
- 어떻게 하면 당장 뇌 혈류를 개선할 수 있을까?
*수분을 공급하자. 뇌의 80퍼센트는 물이다. 탈수는 무조건 뇌에 해롭다.
*카페인과 니코틴 섭취를 제한하자. 둘 다 뇌로 가는 혈류를 억제한다. 하루에 커피 한 잔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보다 많은 카페인을 섭취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고혈압 치료를 진지하게 고려하자. 혈압이 올라가면 뇌로 가는 혈류는 줄어든다.
*심장에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해결하도록 하자. 심장을 상하게 하는 요인은 뇌에도 손상을 입힌다.
*온종일 소파에서 뒹굴지 말자. 운동, 특히 협응 운동(라켓 스포츠를 하는 사 람들은 남들보다 오래 산다)을 하고 약속에 늦은 사람처럼 걸어라. 한 시간 에 5.6킬로미터를 걸을 수 있는 80세는 90세까지 살 수 있는 가능성이 85퍼센트이지만, 한 시간에 1.6킬로미터밖에 걷지 못하는 80세는 90세까지 살지 못할 가능성이 90퍼센트다.
*고추, 로즈메리, 비트를 먹으면 혈류량 증가에 도움이 된다. 또한 혈액순환을 개선하는 플라바놀flavanol이 풍부한 다크 초콜릿을 먹으면 뇌세포에 산소를 공급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인지 능력을 높일 수 있다.
*은행잎 추출물 보충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지금껏 봤던 가장 예쁜 뇌의 소유자들은 은행잎 추출물을 복용했다.
*행복을 연습하자. 뇌 SPECT 영상법을 활용한 흥미로운 연구에서 긍정심 리 개입을 실시하는 행복 훈련(자세한 사항은 4장에 소개된 긍정성 편향 훈련 참고)이 뇌의 앞부분으로 가는 혈류량을 증가시킨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행복한 기억을 생각하자. 살면서 경험한 행복한 사건을 떠올리는 것만 으로도 뇌의 여러 영역이 활성화된다.
*코미디를 보자.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웃으면 혈관기능이 좋아진다.
- '염증Inflammation'이라는 단어는 '불을 피우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비롯됐다. 몸에 염증이 많으면 마치 뭉근한 불기운이 장기를 망가뜨 리는 것과 같고, 이는 우울증과 치매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 염증 수 치를 측정하는 혈액 검사에서는 C-반응성단백질과 오메가-3 지수를 잰다. 주사rosacea (코와 뺨 등 얼굴 중앙 부위가 만성적으로 붉어지는 피부 질 환)와 관절 통증 역시 염증의 징후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심한 염증 은암, 관절염과 관련이 있으며 우울증, 자폐증, 치매 역시 염증과 관 련이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만성 염증을 유발하는 중대하고 놀라운 원인 여러 가지를 통제할 수 있다.
당과 가공식품 비율이 높은 식단. 스탠더드 아메리칸 다이어트(미 국인들이 주로 먹는 식단)는 비만과 염증을 유발해 우리를 죽이고 있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면 정신도 맑아진다.
잇몸 질환은 염증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며, 불량한 구강 건강 상 태는 우울증 및 불안과 연관이 있다. 반드시 치실을 사용하고 치아를 관리해야 한다.
- 낮은 오메가-3 지방산 수치 역시 인구 전체의 97퍼센트에 영향을 미치는 아주 흔한 염증 유발 원인이다. 뇌 건강 질환이 유행하는 것도 당연하다. 오메가-3를 섭취하면 기분, 집중력, 기억력, 체중 관리에 도움이 된다. 에이멘 클리닉에서 「알츠하이머병 저널Journal of Alzheimer' s Disease」에 발표한 새 연구에서 오메가-3 수치가 가장 높은 사람들의 해마(기억과 기분)가 가장 건강했다.
소화기관 문제 역시 만성 염증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며 우울증 과 관련이 있다. 소화기관과 뇌는 서로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전부 얽 혀 있다. 신경전달물질 중 4분의 3 이 장에서 만들어진다. 소화기관에 는 신경계 조직이 대거 분포하고 있어서 '제2의 뇌'라고 불린다. 불안 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 마음이 들썩이고 가슴이 벌렁거리거나 배변을 조절하기 힘들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화기 관 관리는 염증을 낮추는 데 매우 중요하며, 따라서 프로바이오틱스는 뇌에도 도움이 된다.
불행하다는 인식과 긍정성 결여도 염증을 유발한다. 스스로 썩 행 복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만으로 염증을 유발하는 사이토카인(단백 질) 수치를 높일 수 있다. 반대로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해로운 화합물 수치가 낮은 경향을 나타낸다. 긍정적인 일이 없다 고 일상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염증 수치가 높게 나타나며, 하루를 보내면서 긍정적인 순간들을 자주 꼽을 수 있는 능력은 염증 수치를 낮춘다.
-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타민과 미네랄 결핍은 심각할 정도로 널 리 퍼져 있다.
내 친구이자 클리블랜드 기능의학클리닉에서 전략혁신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의학박사 마크 하이먼은 "천연 미네랄과 영양분이 풍부 한 토양에서 야생으로 신선하게 자란 현지 유기농 비유전자변형 자 연식품을 장거리 운송과 장기간 보관을 거치지 않고 먹으면서 야외 에서 일하고 생활하며, 오염되지 않은 신선한 공기만 호흡하고 깨끗 하고 순수한 물만 마시며, 하룻밤에 아홉 시간 수면하고 매일 몸을 움직이는 데다 만성 스트레스 요인과 환경 독소에 노출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보충제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식사를 거르고 그때그때 식품을 고르고 달달한 음식과 화학 처리된 가공 식품을 많이 먹는 도시 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멀티비타민과 미네랄 보충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때로는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뇌나 마음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장을 가리켜 '제2의 뇌'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인 간의 소화기관은 입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길이 9미터의 관(위장을 포함)이다. 이 장관 내부는 관을 밀폐하고 소화가 덜 된 음식물이 복부 로 스며들지 않도록 방지하면서 음식물을 효율적으로 소화하도록 돕 는 치밀 결합으로 이뤄진 세포층 한 겹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 치밀 한 세포 결합이 느슨해져서 장관 투과성이 과도하게 증가하는 장누 leaky gut 현상이 발생하면 큰 문제가 일어난다. 장누수는 우울증, 조울증, 불안 장애, 심지어 알츠하이머병과도 관련이 있다. 또한 만성염증 및 자가면역질환과도 연관이 있다.
소화기관에 있는 뉴런이 거의 1억 개에 달하고 장이 뇌와 직접 의 사소통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 건강은 뇌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 다. 장 건강은 대부분 미생물에 달려 있다. 소화기관에는 약 100조개 에 달한다고 추정되는 미생물(세균, 효모 등)이 살고 있으며, 이 수치는 인체 나머지 부분을 구성하는 총 세포 수의 약 세 배에 이른다. 이 '미 생물' 집단 전체를 가리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부른다. 마 이크로바이옴은 정신 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 합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장내 미생물 중에는 건강과 웰빙에 이로운 미생물도 있고 해로운 미생물도 있다. 이들은 전형적인 '좋은 녀석 대 나쁜 녀석' 시나리오에 따라 다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통제권을 잡으려고 고군분투하고 있 다. 좋은 미생물 대 나쁜 미생물 비율이 대략 85퍼센트 대 15퍼센트일 때 건강한 장 상태를 이룬다. 나쁜 미생물이 좋은 미생물보다 더 많으 면 장 문제와 정신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다음처럼 일상의 흔한 수 많은 요소가 좋은 미생물을 죽이고 나쁜 미생물에 유리하도록 균형 을 깨뜨릴 수 있다.
*의약품(항생제, 경구 피임약, 양성자펌프억제제proton pump inhibitors, 스테로이드, 비스테로이드항염증제)
*오메가-3 지방산 부족
*스트레스
*설탕과 액상과당 인공감미료
*글루텐
*환경 알레르기 또는 음식 알레르기
*불면증(특히 군인과 교대 근무자)
*독소(비누 속 항균성 화학물질, 살충제, 중금속)
*장감염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H. Pylori, 기생충, 칸디다 Candida)
*비타민D 부족
*방사선 치료 · 화학요법
*과도한 고강도 운동
*과도한 음주
- 나쁜 미생물 성장을 촉진하는 요소를 피함으로써 장 건강을 증진하고 정신적 웰빙을 개선하며 기분이 좋아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좋은 미생물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있다.
*프리바이오틱스 섭취: 프리바이오틱스는 장 건강을 촉진하는 식이 섬 유로 사과, 콩, 양배추, 차전자, 아티초크artichoke(지중해 원산의 국화과 채소), 양파, 부추, 아스파라거스, 뿌리채소, 비트, 당근, 순무)에 많이 들어 있다.
*프로바이오틱스 추가: 케피르(무설탕 제품을 찾아보자), 콤부차(저당 제품 을 선택하자), 피클, 무가당 요구르트(염소 혹은 코코넛), 김치, 절인 과일과 채소,사워크라우트 등 살아 있는 미생물이 들어 있는 발효 식품을 더 많이 먹자.
*프로바이오틱스 보충제 복용: 플라세보 대조 임상시험 두 차례에서 특히 락토바실러스 헬베티쿠스Lactobacillus helveticus (R52 균주)와 비피도박테리움 롱굼Bifidobacterium longum (R175 균주)을 아주 구체적인 비율로 섭취했 을 때 4주에서 8주에 걸쳐 기분에 도움이 되고 불안을 낮추는 결과가 나 왔다. 한 연구에서 이 구체적인 프로바이오틱스 균주 조합으로 한 달 동 안 매일 프로바이오틱스를 섭취한 대학생 86명이 공황불안, 신경생리학 적 불안, 걱정, 기분조절에서 개선을 보였다. 다른 프로바이오틱스 연구 에서는 성인 111명이 락토바실러스 플란타룸 Lactobacillus plantarum을 12주 동안 매일 섭취한 결과, 짧게는 8주 안에 스트레스와 불안이 현저하게 감소했다.
- 행복의 화학물질 6가지를 뒷받침하는 영양소
1. 즉흥적인 뇌 유형에게 특히 중요한 도파민: 락토바실러스 플란타룸 PS128 같은 프로바이오틱스, 비타민 D와 오메가-3 지방산 같은 영양소, 홍경천과 인삼, 바코파 몬니에리 Bacopa monnieri, 녹차추출물, 은행잎 추 출물 같은 약용식물은 도파민 수치를 높여 집중력 향상과 에너지 증가 를 촉진하는 동시에 지구력과 체력을 향상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엘타 이로신, 마그네슘, 쿠르쿠민, 엘테아닌, 베르베린berberine도 도파민을 증 가시킨다.
2. 집요한 뇌 유형에게 특히 중요한 세로토닌: 락토바실러스 플란타룸 PS128, 엘트립토판, 5-하이드록시트립토판, 마그네슘, 비타민D, 비타민 B6와 B12, 메틸 엽산methylfolate, 사프란과 세인트존스워트, 쿠르쿠민같은 약용식물은 모두 세로토닌을 증가시킬 수 있다.
3. 예민한 뇌 유형에게 특히 중요한 옥시토신: 인체가 옥시토신을 생산 하려면 비타민 C가 필요하다. 옥시토신이 효과적으로 기능하려면 마그네슘이 필요하다. 보충제 형태로 판매하는 락토바실러스 루테리Lac- tobacillus reuteri는 옥시토신과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함께 높인다. 연구에 따르면 임산부가 세이지, 아니스 씨, 호로파fenugreek를 섭취했을 때 옥 시토신이 증가했다. 수면 호르몬 멜라토닌을 아주 소량만 섭취해도 한 시간내에 옥시토신 분비가 증가한다.
4. 예민한 뇌 유형에게 특히 중요한 엔도르핀: 아미노산인 엘페닐알라닌 L-phenylalanine은 엔도르핀을 분해하는 효소를 차단하므로 엔도르핀 을 늘린다. 세인트존스워트, 락토바실러스 아시도필루스Lactobacillus aci- dophilus, 멜라토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5. 신중한 뇌 유형에게 특히 중요한 감마아미노부티르산(가바): 경구 가 바, 마그네슘, 비타민 B6, 엘테아닌, 타우린, 프로바이오틱스(특히 락토바 실러스 람노서스, 락토바실러스 파라카세이, 락토바실러스 브레비스, 락토코커스 락티스)는 가바 수치가 건강한 수준을 유지하도록 뒷받침한다. 레몬밤, 엘테아닌, 타우린, 시계꽃, 길초근 역시 가바 수치를 높일 수 있다.
6. 신중한 뇌 유형에게 특히 중요한 코르티솔: 아슈와간다와 홍경천 같 은 약용식물, 엘테아닌, EPA와 DHA 오메가-3 지방산 같은 영양소는스 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줄인다.
- 사프란은 적어도 2,600년 동안 아랍 지역에서 행복을 가져다주는 향신료로 쓰였다. 기원전 668년에서 633년 사이에 작성된 한 아시리 아 문헌은 사프란을 약용으로 사용한 역사가 기원전 17세기까지 거 슬러 올라간다고 언급했다. 지중해 테라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벽화 에도 경건하게 그린 사프란꽃이 남아 있다. 사프란은 사프란 크로커 스 꽃에서 암술대를 손으로 따서 말려 만든다. 꽃 가운데 위치한 가늘 고 붉은 구조물 세 개가 암술대다.
현대 과학은 사프란의 전통적인 사용법 중 다수를 검증했다. 무작위 대조 시험에서 사프란이 뇌, 눈, 순환, 폐, 관절, 생식 계통, 인체 항 산화 방어 기능에 도움을 준다고 확인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입증된 적용 사례는 기분 증진이다.
사프란은 여러 이중 맹검, 플라세보 대조 임상시험으로 입증된 바 와 같이 뛰어난 기분 증진제이자 항우울제다. 몇몇 연구에서는 사프란을 항우울제인 플루옥세틴fluoxetine (프로작), 이미프라민imipramine 같은 여러 항우울제와 비교했다. 사프란의 효능 수준은 플루옥세틴과 맞 먹는 정도였으며 플루옥세틴으로 손상된 남성 및 여성 성기능 일부 를 복원했다. 사프란은 이미프라민과 비슷할 정도로 효과적이며 구 강건조와 진정 같은 이미프라민의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연구들에서 사프란이 기분에 미치는 효과가 항우울제의 효 과와 맞먹는다고 나타났다. 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사프란은 행복을 훔치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문제에도 효과를 나타낸다.
*모든 정신 문제 중에서 가장 흔히 보고되는 증상인 불안감소.
*노년층의 기억력 및 기타 인지 기능 척도 향상.
*부모와 교사가 모두 단 3주 만에 아동의 주의력 및 행동 문제가 개선됐다고 판단.
- 사프란이 어떻게 해서 이처럼 뇌에 놀라운 혜택을 불러일으키는 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프란에 들어 있는 프로신crocin, 크로세틴crocetin, 피크로크로신picrocrocin, 사프라날safranal과 플라보노이 드인 케르세틴quercetin, 캠퍼롤kaempferol은 항산화 능력이 뛰어난 물질 이다. 동물 연구에서 이런 구성 성분들은 사프란이 뇌를 독성 손상에 서 보호하는 능력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쿠르쿠민: 모든 뇌 유형에게 유익
강황 뿌리 (정확히는 뿌리줄기 또는 지하줄기)는 짧게는 2,600년, 길게 는 4,000년 동안 만병통치약으로 떠받들어졌다는 점에서 사프란과 비슷하다. 또한 예로부터 긍정적인 기분 및 행복과 관련이 있어서 인 도 일부 결혼식에서는 예식용 피부 장식에도 사용한다. 강황의 주된 활성 성분은 커큐미노이드 3종으로 그 상업용 명칭이 쿠르쿠민이다. 뛰어난 항산화제인 쿠르쿠민은 건강한 염증(치유) 반응을 촉진한다. 문제는 경구로 섭취했을 때 흡수가 잘 안 되고 흡수력을 높이는 가공 을 한 경우에만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롱비다 Longvida 쿠르쿠민 추출 물은 흡수력을 높인 원료다.
- 아연: 모든 뇌 유형에게 유익
인체가 에너지, DNA와 단백질, 항산화 효소, 새로운 세포를 만들 려면 아연이 필요하다. 면역력과 건강한 성장, 발달에도 아연이 필요 하다. 낮은 아연 수치로 기분 문제를 예측할 수 있다. 아연이 건강한 사람들과 과체중인 사람들의 기분을 증진할 수 있고 기분 문제를 겪 고 있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포괄적인 개인 프로그램의 일환으 로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시험 결과들도 나와 있다. 아연은 기본 적으로 세로토닌과 도파민 수용체 조절에 관여한다. 미국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미국인 중 11퍼센트에서 20퍼센트(민족 집단에 따라 다르 다)가 평소 식단으로 아연을 충분히 섭취하고 있지 않다고 보고한다. 노년 인구, 임산부나 수유부, 채식인과 비건, 겸상 적혈구 빈혈 환자, 알코올 의존자들은 모두 아연이 결핍되기 쉽다. 인체는 식물성 식품 에 들어 있는 아연을 동물성 식품에 들어 있는 아연만큼 잘 흡수하지 못하므로 채식인은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아연을 최대 50퍼센 트 더 섭취해야 한다.
- 마그네슘: 신중한 뇌 유형에게 특히 유익
중요한 영양소인 마그네슘은 수많은 방법으로 인체 건강을 유지하고 보호한다. 마그네슘 결핍은 짜증, 피로, 정신 혼란, 불안,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신중한 뇌 유형에서 자주 보이는 증상이다. 미국인 중 50퍼센트 이상이 식사에서 마그네슘을 충분히 섭취하 지 못하고 있다. 마그네슘 수치가 낮은 우울증 환자에게 치료제로도 효과가 있다.
- 기분이 좋아지는 신경전달물질 생산을 최적으로 유지하려면 몸과 뇌에 필수 아미노산 스무 가지를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견과류, 씨앗 류, 콩과 식물, 일부 곡물, 채소 같은 식물성 식품에도 단백질이 들어 있지만 이를 적절히 종합하지 않으면 우리 몸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 산 스무 가지를 모두 공급할 수 없다. 생선, 가금류, 육류 대부분과 같 은 동물성 식품만이 필수 아미노산 스무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질 좋은 단백질을 소량 섭취하는 것은 행복에 꼭 필요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단백질을 과하게 섭취하면 체내 스트레스와 염증 증가를 유발할 수 있으며 이 는 울적한 기분 및 불안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질 좋은 단백질이란 무엇일까? 식물성 단백질 중에는 살충제를 쓰지 않고 생산한 단백질, 동물성 단백질 중에는 풀을 먹이고 호르몬과 항생제를 쓰지 않으면 서 방목으로 생산한 단백질을 말한다.
- 오랜 연구에 따르면 '거리를 둔 자기 대화distanced self-talk'는 내면의 생각과 심리적인 거리를 두도록 도와서 감정과 자제력, 지혜를 조절 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 은 적이 있는 사람이더라도 부정적인 감정과격한 상황에 좀 더 잘 대 처할 수 있다.
인간인 우리에게는 자기 성찰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은 미래를 계 획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나쁜 경험이 일어 나고 있다고 인식할 때 자기 성찰은 부정적 성향이나 곱씹기, 집착이 라는 암흑세계로 바뀔 수 있다. 마음에 이름을 붙이거나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불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수다와 거리를 두면 현실과 빛을 끌어들여 우리 뇌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 영상법 연 구를 활용해 거리 두기 기법이 뇌에 미치는 효능을 평가한 연구자들 은 이런 기법이 뇌의 감정 중추를 진정시키고 자제력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현재에 충실한 마음가짐은 건강과 행복에 꼭 필요하다. 이런 마음 가짐을 가질 때 우리는 현실에 발을 딛고 주변 세상과 이어진 채로 살 아갈 수 있다. 머릿속에서 모든 생각을 비워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 금 하고 있는 일, 지금 함께 있는 사람, 지금 겪고 있는 경험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언젠가 소중한 사람을 잃고 슬퍼하던 중에 우연히 에크하르트 톨 레Eckhart Tolle가 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The Power of Now』를 읽게 됐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고통에 과거 기억들을 샅샅이 훑었고, 후회와 불 안으로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개념은 반복되는 생각이 활기를 빼앗아가도록 두면 내 생각 이 고통을 유발한다는 것이었다. 미래에 일어날 일에 정신적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과거에서 길을 헤매게 된다. 하지만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갈수록 과거에서 비롯되는 감정적 고통과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어려운 시기에도 현재 순간의 생각은 중요하다. 고통에서 벗어나 고 싶더라도 고통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뇌는 항상 듣고 있다Your Brain Is Always Listening』라는 책에서 나는 상실을 겪을 때는 슬픔이 거세게 밀려와 눈물이 흐르도록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썼다. 고통을 인정하 고 그 속으로 파고들 때 비로소 고통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현재에 충 실하고 지금 있는 곳에 유념함으로써 우리는 행복과 안전을 느끼고, 고통에 좀 더 잘 대처하며, 스트레스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힘겨운 감정에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 연구자들은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고비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다음 세 가지를 믿는다고 한다.
*그 상황이 '영원'하다.
*그 상황이 '광범위하다.
*그들이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긍정 심리 개입법이나 안식 기법 외에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할 때마다 미래에 대해 좀 더 희망찬 기분을 느끼도록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기법이 있다. 바로 TLC라는 기법이다.
*그 상황은 '일시적ternporary'이다.
*그 상황은 '지역에 국한local된다.
*당신은 그 상황을 다소 '통제 control'할 수 있다.
- 예의 바른 행동은 지혜롭다. 따라서 무례한 행동은 어리석다.
불필요하게 제멋대로 무례를 저질러 적을 만드는 행위는 자기 집에 불을 지르는 것만큼이나 미친 짓이다. _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독일 철학자
- 네덜란드어 '허젤리헤이트gezelligheid'는 '안락하고 편안한 기분과 단 란함을 아우르는 행복감'을 이르는 단어다. 맥락에 따라서 '사교적이 고 느긋한 상황'으로 번역할 수도 있으나 '아늑함과 흥겨움, 재미'를 가리킬 수도 있다. 이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를 즐겨 말하는 네덜란드 인들은 허젤리헤이트가 '번역할 수 없는 단어라고 말한다. 그들은 '허젤리헤이트(명사형)'와 '허젤리흐gezellig(형용사)'가 단어라기보다는 느낌에 가깝다고 얘기한다. 언뜻 보기에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대수 롭지 않은 활동에서 허젤리헤이트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소 소한 순간들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Stuff Dutch People Like을 쓴 저자 콜 린 헤스커 Colleen Geske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저마다의 허젤 리헤이트 척도에 맞춰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라고 설명했다. 헤스커는 "어떤 장소가 허젤리흐일 수 있고, 방이 허 젤리흐일 수도 있고, 사람이 허젤리흐일 수도 있고, 저녁 시간이 허젤 리흐일 수도 있다”라고 말하면서 허젤리흐는 아늑하거나 진기하거나 사랑스럽다는 의미이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와 만남, 일반적인 단란함을 함축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허젤리헤이트는 네덜란드인들이 행복을 느끼는 비 결로 꼽힌다.
- 덴마크,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은 '게뮈틀리히카이트gemütlichkeit'라는 개념을 포용한다. 게뮈틀리히카이트는 독일식 휘게 라고 볼 수 있지만 가정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이 길고 복잡한 단어의 중심에는 '관계가 건강할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생각이 있다.
유치원 kindergarten, 불안angst,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다른 사람의 불 행에서 쾌감을 느낌), 우버über(공항으로 갈 때 사용하는 차량 호출 서비스가 아니라 위나 너머를 뜻하는 단어)처럼 게뮈틀리히카이트도 영어권에서 쓰는 차용어이므로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단어는 '가슴', '마 음', '심성', '느낌'을 의미하는 명사 '게트gemüt'에서 유래했다. 게뮈틀 리히카이트는 따뜻한 느낌, 느긋한 웰빙 감각, 환영하는 열린 태도, 깊은 안락함에 대한 인식을 높인다. 이는 사람들이 서로 함께 있는 시 간을 즐기도록 장려하는 아늑함과 소속감이다.
게뮈틀리히카이트의 핵심은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매년 10월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 모임에서 함께한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노 래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긴장을 풀 때처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활동 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 스칸디나비아 국가 중 한 나라인 노르웨이에는 그들만의 휘게가 있다. 노르웨이인들이라면 누구나 '프리루프트슬리브 friluftsliv라는 표 현을 쓴다. 이는 아무리 일기예보가 암울하더라도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겠다는 결심을 의미한다. 폭풍우가 치는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 이 맑은 정신 건강을 되찾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는 노르웨이인들은 잠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타오르는 난롯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지 않 는다. 휘게가 실내에서 안락함을 찾는 개념이라면 프리루프트슬리브 는 야외에서 안락함을 찾는 개념이다.
「인형의 집 A Doll's House을 쓴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 Henrik Ibsen 이 1859년에 만든 단어인 프리루프트슬리브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삶'이라는 뜻이지만 '야외 생활'이라는 번역이 더 어울린다. 프리루프 트슬리브는 자연의 치유 효과를 완전히 이해하라고 권한다.
- 스웨덴은 노르웨이와 덴마크에 인접한 국가이므로 스웨덴인들은 휘게와 프리루프트슬리브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심지어 이 단어들을 자국어와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스웨덴인들은 겨울철에 아늑하게 지내고 계절에 관계없이 야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다른 스칸디나비아국가들에는 없지만 스웨덴에는 있는 개념이라 면 '라곰lagom'을 꼽을 수 있다. 라곰은 '딱 적당한',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딱 알맞은 만큼'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lagom är bäst'라 는 구절에서 유래된 말이다. 스웨덴에서는 친구에게 안부를 물으면 "라곰"이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 유럽 대륙 남동쪽에 있는 튀르키예에는 하루 중 잠시 휴식 시간을 즐기는 습관을 가리키는 표현이 있다. 바로 '케이프keyif'다. 영어로는 '즐거움'이나 '기쁨'으로 번역되는 튀르키예인 '케이프'는 '분주함에서 벗어나 한가하게 즐거운 순간을 만끽한다'는 뜻에 더 가깝다.
케이프는 그 순간을 음미하라고 일깨우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튀 르키예 사람들에게 케이프란 보스포루스해협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해협) 공원 벤치에 앉아 저녁노을을 보거나, 연락선 뱃고물에서 갈매 기들에게 빵조각을 던지거나, 길모퉁이에서 집시 뮤지션들이 펼치는 거리 공연을 감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곳의 한 관광 가이드가 들려준 말이다. “이스탄불에는 서양에는 없는 여가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비밀인 케이프죠. 케이프의 본질은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에요. 사람들은 대개 하던 일을 멈추면 다른 일을 합니다. 잡지를 읽거나 이메일을 확인하 거나 미래 혹은 과거에 대해 생각하죠. 하지만 케이프의 핵심은 멈춰 서 그냥 그 순간을 즐기는 것입니다. 저에게 케이프란 붐비지 않는 곳 에 있는 것이에요."
- 아프리카 대륙으로 옮겨가 보면 나이지리아인들은 '우분투 ubuntu'라는 고대 철학에 따른다. 우분투는 '한 개인은 다른 사람들을 통 해 비로소 한 인간이 된다'라고 번역되는 줄루족 관용구 'Umuntu ngumuntungabantu'에서 유래한 단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 말은 공 동체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라는 뜻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주교이자 노벨상 수상자이며 내 어머니와 동갑인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는 "우분투는 인간다움의 본질입니 다. 이는 나의 인간성이 여러분의 인간성에 얽혀 있고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속하기 때문에 인간입니 다. 우분투는 공동체에 관한 개념입니다"라고 말했다.
투투 대주교는 '우분투'라는 개념을 서구 사회에 소개한 사람이 다. 하지만 투투 대주교가 우분투를 뒷받침하는 철학을 창설한 사람은 아니다. 우분투는 20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개념이며 부족 이주 로 인해 사하라사막 이남의 모든 국가에서 우분투에 담긴 공동체 생 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우분투는 그 누구도 섬이 아니며, 좋든 나 쁘든 간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가족과 친구들, 주변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개념이다. 또한 우리가 하는 선택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두 번 생각하도록 상기 시키기도 한다. 우분투는 집단 책임과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공동체의 필요를 자신보다 우선시하는 철학이다.
- 서구 사회 독자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개념이겠지만, 인도네시아 공동체들은 '가이웁guyub' 원칙에 따라 살아왔다. 가이웁은 더 행복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인도네시아의 비밀이 라고 한다.
대체로 우분투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가이웁은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와 같은 유대관계로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가 이웁은 서로 상호 간의 관계를 맺고 강한 소속감, 연민, 서로에 대한 진심 어린 지지를 키워나가는 방법이다. 다른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 왔을 때 행복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 발음하다 보면 혀가 꼬이고 마는 필리핀어 복합 명사 '파키키파그 캅와타오 pakikipagkapwa-tao'는 집단 조화와 통합에 가치를 두는 공동체적 인 행복을 말한다. '파키키파그캅와타오'라는 마음가짐은 혼자 돋보 이기보다는 사이좋게 지내자는 생각이다. 발전을 이루면 집단 전체 가 혜택을 누리고 아무도 뒤처지지 않아 모두의 행복감이 증가한다. '다른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기'라는 뜻의 파키키파그캅와타오 정신은 필리핀인들의 정신과 가치 체계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필리 핀에서는 여러 세대가 한 집에 살거나 서로 가까운 곳에 모여 산다. 필리핀에서는 성당 역시 공동체 유대를 위한 공공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 서양인들이 하와이에 발을 들이기 한참 전부터 하와이에 살았던 원주민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전통을 이어나가는 하와이 사람들 역시 아름답다. '호오포노포노ho'oponopono'라고 하는 이 관습은 '호오hoo(만들 다)'와 '포노pono (옳고 그름)'라는 하와이 말에서 유래했다. 포노를 두 번 반복하는 이유는 '시시비비'처럼 강조하기 위함이고, 자기 자신과 타 인 모두에게 적용된다.
하와이어 사전에는 호오포노포노가 '정신적 정화, 기도, 토론, 고 백, 회개, 상호 보상과 용서로 관계를 바로잡는 가족회의'라는 뜻이라 고 나온다. 고대 하와이 사람들은 실수나 죄, 분노가 신체 질병을 일 으킨다고 믿었다. 이를 치료하는 방법은 '용서'라고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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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신과 의사이자 직장에서 근로자의 건강을 관리하는 의사인 이노우에 도모스케가 지은 책이다. 산업의로서 매달 30개가 넘느 회사를 방문해 직원들의 정신건강과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로서는 오사카의 병원에서 우울증과 발달장애를 중심으로 정신건강의학 전반에 걸쳐 외래환자를 보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스크레스를 받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타인이다. 나 자신은 노력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남을 통제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남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내가 도망쳐 버리는 게 쉽다. 하지만 같은 직장에서 오랫동안 얼굴을 보고 지내야 하는 사이에서는 그런 식으로 거리를 두거나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줄곧 참기만 한다면 마음의 부담이 커져서 결국 주저앉고 말게 될 것이다.
회사에서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고, 스스로를 사회부적응자 취급하며 자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개 성가신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상처받고 마으이 뚝 부러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회사에 가기 두렵고, 상대의 눈치만 살피며 보내게 된다.
이 책은 자신의 마음을 지키면서도 성가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평소에 저자가 진료를 보면서 환자들에게 제안하고 또 실제로 효과를 보았던 방법들이다.
구체적으로는 아래와 같이 직장에서 자주 벌어지는 6가지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다루고 있다.
* 온갖 빌런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대화의 무기
* 할 말 다 하면서도 윗사람에게 인정받는 방법
* 지적하지 않고도 직원들이 잘 따르게 하는 방법
* 분위기 깨지 않고하고 싶은 대로 하는 방법
* 만만하지 않으면서도 거래처와의 관계를 좋게 하는 방법
* 언제나 쾌적한 상태로 내 마음을 보호하는 방법
예의를 지켜야하겠지만 틈을 보이면 상대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비위까지 맞출 필요는 없다.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선 다음에 자신을 드러내고, 필요이상으로 자신을 낮추지 말자.
성가신 사람에게 처음부터 타겟이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를 기억하자
* 타인이 하는 말을 100퍼센트 믿지 않는다
* 사회적 위치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바라본다
* 상대의 말과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또한 다음과 같이 상대의 비위를 맞추지 말고 정신적으로 여유있어 보이는 방법도 있다.
*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 대답을 너무 빨리 하지 않는다
* 바른 자세를 취한다
* 상대의 눈을 보면서 말한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상처를 받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땐 자신의 마음을 먼저 잘 보살펴 주어야 한다. 힘든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자신을 먼저 칭찬해 주자. 스트레스 해소방법 리스트를 만들고, 스트레스 상황일 때 바로 실행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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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는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들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빈곤층보다 유복하고 혜택 받은 엘리트 계층 출신 에 많았으며, 그들은 대부분 고학력에 의사나 엔지니어 등 전문직 종사자였다. 물론 사회의 소수파에 속해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가혹한 박해를 받거나 굴욕적인 체 험을 해서 복수를 다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특징은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을 저지른 옴진리 교의 테러범들과도 일맥상통한다. 교조 아사하라 쇼코는 시각 장애인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일반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탓에 자신이 불우하다는 느낌과 열등감을 안고 있었지만, 교단 간부 대부분은 일류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로 굴욕적인 체험을 맛보고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또한 테러리스트들은 고독하거나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지도 않 았다. 알카에다의 테러리스트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 중 4 분의 3은 배우자가 있었고, 3분의 2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꼭두각시 인형처럼 세뇌된 상태가 아니었다. 테러에 실패해서 살아남은 사람을 면담한 조사에 의하면 그들 대부분은 이성적인 사람이었으며 테러 행위를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논리 정연하게 설명했고, 스스로 납득한 상태에서 테러를 결행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컬트 교단이나 정치적 종파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권유를 받아 가입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살 폭 탄 테러리스트는 테러 조직의 권유로 테러리스트가 된 것이 아니 며 대부분 스스로 조직에 접근했다. 테러리스트는 누구라도 원하 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명예였다. 엄격한 심사와 테스트 기간을 거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테러리스 트가 될 자격이 주어졌다. 이런 배타적인 동료 의식이 테러리스트 의 결속을 강화시키고 쉽게 적발되지 않게 했다.
- 미시건 대학의 스콧 애트런 Scott Atran은 9.11 테러 사건의 범인 중 살아남은 자나 알카에다의 멤버를 만나 조사했다. 그들이 자란 세 계에서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는 순교자로서 축구 스타처럼 동경 의 대상이며, 따라서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에게 권유를 받았다 해 도 그것은 하나의 계기에 불과하다. 그들은 신이 자신을 선택하고 기회를 준 것으로 여기고 그 순간이 찾아오기까지 준비하며 기다 리고 있던 것이다.
- 맨 처음 접근해서 손금을 보는 이유는 신체 접촉을 통해 애착이나 신뢰가 싹트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손금에 새겨져 있는 내면, 성격, 운명 등을 보는 위치에 서게 됨으로써 주도권을 쥐게 된다.
요컨대 이 판매 방법에 따르면, 손금을 보고 성명 판단을 한 단 계에서 거의 승부가 난다. 손금이나 이름을 살펴보면서 상대방이 어떤 고민이나 불만, 콤플렉스를 안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심리적 상황을 알 수 있다. 거기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손금을 봐달라는 것은 지푸라기 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즉 판매자는 손금이나 이름을 보게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상대가 넘어올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으니, 사실 이 기술은 효율적으로 '호구'를 찾아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손금을 보여주거나 이름을 알려주는 사람 은 그다지 경계심이 크지 않고, 상대의 요구에 응하기 쉬운 의존 성 인격장애 경향이 높은 사람임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은 속이기 쉬운 유형이며 손금이나 이름에 새겨진 '비밀'을 털어놓은 상대에 게 쉽게 의존하게 된다.
뒤에서 자세하게 살펴보겠지만, 의존성 인격장애를 지닌 사람 은 스스로 인생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도 개척해가지도 못한다. 누 군가가 뭔가 좋은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인생까지도 타인에게 맡겨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순순히 그 말에 따르게 된다.
경계심이 강하고 자아가 안정되어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확실 한 사람이라면 손금이나 이름과 같은 개인 정보를 상대에게 가르 쳐주지 않으며, 감정 받기를 원하지 않게 마련이다. 하물며 만난 지 얼마 안 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인생의 문제나 고민을 털어놓 지는 않는다.
판매를 권유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손금을 보자고 했을 때 거절 당하면 바로 물러나서 어수룩한 사람을 찾아 판매하면 되므로 시 간을 낭비할 일이 없다.
- 영감상법이 이와 같이 사람들을 홀딱 빠지게 하고 많은 돈을 선뜻 내놓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몇 가지 심리 조작의 원리를 찾 아낼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비밀이나 고민, 과거를 말하는 것이 심리 조작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고민을 털어놓으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상대방의 가장 큰 약점을 알게 된다. 남에게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밝힘으로써 이제 특별한 관계가 성립한다. 가슴속에 숨겨놓았던 사실을 털어놓는 행위에는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무의식의 심리가 반영되기 때 문이다. 도움을 요청하면 상대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
- 영감상법에서 찾은 심리 조작의 원리
*비밀이나 고민, 과거를 말하는 것은 심리 조작으로 연결된다.
*상대에 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해서 약점을 파고든다.
*무슨 말에는 '예스'라고 대답하도록 질문을 유도한다. (예스 세트)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선량하고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 의존성 인격장애를 만드는 주된 가정 환경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증인 경우
*어머니의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한 경우
*어머니가 우울증이나 불안정한 인격장애를 지니고 있는 경우
*부모가 과보호로 자식을 기르는 경우
- 한편, 가혹한 환경에 격리되어 고문을 받고 사상 개조나 세뇌를 받는 경우에도 신념을 관철시켜 심리 조작이 먹히지 않는 사람들 도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확실한 소속 의식을 지니고 있거나 흔 들리지 않는 신앙이나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고독 한 상황에 놓여 있었고 도와주는 손길조차 없었으며 고문이나 기 아의 고통에 시달렸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들을 소속된 가 족이나 공동체와 연결시켜주었던 것은 주로 기도라는 행위였다고 한다. 기도는 신이란 절대자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행위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의사 빅토르 프랑클은 자신이 절망하지 않고 살아남게 된 요인 중 하나로 끊임없이 마음 속으로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던 것을 들고 있다. 혹한 속에서 몇 시간동안 서있으면서도 그는 그런 혹독한 상황을 아내에게 농담섞어 말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진작에 죽고 없었다. 프랑클이 이 사실을 안 것은 그가 해방되고 집에 돌아오고 나서였다. 아내는 물론 부 모도 이미 죽고 이 세상에 없었다. 그가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 었던 아내는 이미 그의 마음 속에만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프랑클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 다. 사랑하는 존재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 그를 절망과 죽음으로부터 지켜주었던 것이다.
- 또 하나 오래전부터 사용된 심리 조작 기법 중 하나는 '~인척 하는' 것이다. 이 기법의 중요성을 맨 처음 지적한 이는 《군주론> 을 쓴 마키아벨리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신의 성실을 정말로 갖추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갖추고 있는 척을 해서 그렇게 여기 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 척 해서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어떤 시대에도 사용되는 상투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척하는 능력은 사회적 지능의 근간을 이 룬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지능이 마키아벨리적 지능이라고 불리 는 까닭이다. 사회적 지능이 뛰어난 사람은 교묘하게 태도를 꾸며 서 상대의 마음을 허물고, 마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살펴보겠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사랑을 받기보다 두려운 존재가 되는 것이 지배력이 강해진다고 강조했다. 그 사례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 발을 들고 있다. 한니발의 군사가 항상 일사불란하게 통제되어 있 던 까닭은 그가 규칙을 위반한 군사에게 냉혹하고 엄격하게 대했 고, 군사들이 그를 우러러보기보다는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고 말했다. 공포에 의한 지배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용되는 심리 조작 기술이다.
- 조사 결과 환자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던 인물에 대한 감정을 치료자에게로 돌림으로써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이 현상을 '전이라고 불렀다.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고 이상화하며 호의를 품는 경우를 양성전이, 반대로 화나 증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품게 되는 경우를 음성전이라고 한다.
더욱 골치 아픈 문제는 전이 감정을 갖게 되면 치료자에게도 그 에 호응하는 감정이 생긴다는 것인데, 바로 '역전이逆轉라고 불 리는 현상이다. 환자가 치료자를 이상화하거나 연애 감정을 갖게 되면 치료자도 거기에 휘말리기 쉽다. 반발이나 적의를 품게 되면 어느새 치료자도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고, 그 환자를 싫어하게 된 다. 환자가 투영한 존재, 가령 '환자가 싫어하던 아버지'라는 역할 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 프로이트는 이 전이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는가가 치료의 성 패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컨대 정신분석 치료 과 정에서는 증상(신경증)이 좋아지는 한편 전이에 동반되는 상태(전 이신경증)가 출현한다. 그러면 전이 감정을 다루면서 그것이 중요 한 인물에 대한 감정을 투영시킨 결과라는 사실을 자각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최종적으로 회복되는 치료 이론이 확립되었다.
- 전문가로서 정신분석이나 심리 요법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 람조차 전이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환자에게 연애 감정을 품게 되고 성적 관계를 맺거나 함께 생활하거나 때로는 결혼까지 한다. 치료자로서 상당히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경우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전형적인 사례가 카를 융이다. 그는 환자였던 여러 여성들과 도 를 넘어선 관계를 가졌고, 그중에 몇 사람과는 애인사이로 발전했다. 프로이트의 입장에서 보면 융은 전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로가 된 셈이다.
- 한층 냉정한 눈으로 보면 융은 치료자로서 유리한 입장을 이용 해서 젊고 아름다운 여성 환자의 심리를 조작해 상대를 손에 넣었 다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 융은 겉모습은 매력적인 인물이었지 만 내면은 매우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거나 따르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컬트 교단의 구루와 비슷한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프로이트의 치료는 환자 스스로 주체적인 인식을 통해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그 과정에서 전이에 사로잡힌다면 주체성을 잃고 단지 다른 존재에 의존하여 자신을 지탱하게 될 것이었다. 전이를 치료하기는커녕 오히려 전 이를 악용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런 위험이 따른다.
- 에릭슨이 사용한 기법 중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 중 하 나가 더블 바인드다. 상대가 무언가 해주기를 바랄 때, 그 일을 할 생각이냐 아니냐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선택지를 준비해 질문하는 방법이다. 복수의 선택지가 제시되지 만 어느 쪽을 선택해도 결국 같은 결과로 유도된다.
이 기법은 영업이나 판매 등에서 응용되고 있다. 자동차를 살까 말까 갈등하는 고객에게 "이 장치를 달아놓을까요?" 아니면 "자 동차 색깔은 흰색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검은색을 좋아하세요?" 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법이다.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다음 선택 사항으로 고 객의 관심이 향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살까 말까 고민하던 것을
멈추고 세세한 취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어느새 구매는 기정 사실이 되고 만다.
이 기법은 강력해서 이전에 몇 번이고 당했어도 매번 또 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더블 바인드 기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이 런 세일즈 토크에 쉽게 걸려들지 않는다. 상대의 수를 알게 되면 방어력을 지니게 되는 법이다.
더블 바인드는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다. 가령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고 싶을 때 노골적으로 공부하라고 독촉하면 그다지 효과가 크지 않다.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저 항하게 마련이다. 이럴 때 더블 바인드 기법을 사용해서, "국어와 산수 중 어느 쪽부터 할까?", "숙제를 엄마와 함께 할래? 아니면 혼자서 할래?"라고 물으면 아이는 대개 어느 쪽인가를 선택하고 순순히 책상 앞에 앉는다.
- 강하게 저항하리라고 예상되는 경우에는 "숙제를 간식 먹기 전 에 할래? 아니면 먹고 나서 할래?"와 같은 식으로 한 발 물러난 제안을 하여 하나를 선택하게 하거나, 반대로 "숙제를 할래? 목욕 탕 청소를 할래?"와 같은 식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함께 넣어 서 선택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여하튼 "~하겠다"고 대답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스스로 '하 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면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더블 바인드는 '함의 implication'라고 불리는 기법 중 하나다. 인간의 마음은 불가사의해서 직접적으로 뭔가를 하라는 말을 들으면, 명령받았다고 받아들여 마음속에서 저항이 생긴다. 하지만 간접 적으로 넌지시 말하거나, 하는 것을 전제로 놓고 말하면 저항감이 생기기 어렵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아들이 공부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다고 하자. 그럴 때 아무리 공부를 하라고 독촉해도 소용없다. 하지만 "내년 이맘때에는 이렇게 가족이 모두 모여 한 가롭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없겠네. 대학교는 1학년 때가 가장 바쁘다고 하니 말이야."와 같이 말해보자.
이 말은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비난도 명령도 아니기에 마음에 저항이 생기기 어렵고, 그대로 마 음에 와 닿기 쉽다. 이 말 한마디로 아들은 자신이 대학생이 되어 있는 상황을 순간적으로 떠올릴 터이다. 그와 동시에 마주 보기를 피하던, 대학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든지 모의시험이 코앞에 닥쳤 다든지 하는 불안감이나 미지의 대학 생활에 대한 걱정과 기대 등 이 뒤섞여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게 된다.
또한 "이런 식으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낸다", "대학교는 1학년 이 가장 바쁘다"와 같은 말이 뇌리에 박혀 자신이 한가하게 있는 모습에 초조함을 느끼고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될 터 이다.
잠재의식은 연상 작용의 소굴과 같은 것이다. 별다른 뜻이 없는 사소한 말이라도 은근히 그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그냥 놔둬도 저절로 파문이 퍼져간다. 이것이 행동에 변화를 낳게 된다.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
-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을 한층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에서 아무리 조언을 해도, 본인이 강요받는다고 생각해서 귓등으로 듣는다면 말짱 헛수고에 불과하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엇보다도 저항하는 상대와 정면으로 부딪쳐서는 안 된다. 설 득하려고 하면 할수록 완고하게 반발하여 결국에는 감정적으로 다투게 되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된다.
에릭슨의 기법은 가능한 한 이런 저항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더블 바인드도 저항을 누그러지게 하고 제거하는 기법 중 하나로 서 만들었다. 저항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단정 표현을 사용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에릭슨은 최면을 사용할 때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눈꺼 풀이 무거워집니다"와 같은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다. "당신 은 트랜스 상태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라든지, "점점 깊이 들어 가게 되겠지요"와 같은 식으로 다른 가능성도 허용하는 표현을 즐 겨 사용했다. "~할 수도 있다", "~할 것이다", "~할지도 모른 다", "~할 것 같다"와 같은 표현이 그 예다. 실제 사용해보면 알 겠지만, 단정적인 표현보다 받아들이기 쉽고 영향력도 크다.
- 의지가 약하고 의존적인 사람에게는 강하게 단정하는 말이 믿 음직스럽게 느껴지고 영향력을 갖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확실한 사람에게 단정적으로 말하면 강한 저항을 만나게 될 뿐이다. 돌려 말하는 방식이 감정적인 저항이 생기지 않는 방 법이며, 마음에 와 닿기 쉽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돼"와 같이 단정적으 로 말하면, 대개 강한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며 행동을 변화시 키지도 못한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후회 할지도 모르는데"와 같이 결론을 내리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는 편이 저항이 적고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힘을 갖게 된다.
가령 "공부하지 않으면 대학에 떨어진다"라고 위협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면 A대학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이 조심스럽 게 중얼거리는 편이 말 자체에 대한 저항이나 반발이 훨씬 적다. 소극적인 표현이지만 오히려 감정적인 반감이 일어나지 않기 때 문에 마음에 쉽게 파고들어가게 된다. 게다가 이 말은 지금의 상 태로는 A대학에 합격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런 간접적이고 애매모호한 표현이 무의식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딱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듯이 보여도 그 아이는 차츰차츰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된다. 서서히 행동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의식에 작용을 가하는 원리다.
- 중립적인 선의의 제3자로서 상담을 하는 중에 상대의 니즈를 완전하게 파악할 뿐 아니라 신뢰도 획득하는 방법은, 상대를 강인하게 조종하려고 하거나 무리하게 설득하려고 하는 방법보다 훨씬 성공률이 높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타자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고, 타자의 강요 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개인주의 시대에는 강하게 설득하려고 하는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
영업의 최종 목적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라면, 상품을 사달라 고 한마디도 권유하지 않고 고객에게서 꼭 팔아달라는 말이 나오 도록 하는 것이 성공적으로 고객의 행동을 이끌어온 것이 된다.
- 사람의 심리를 조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의도한 대로 행동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이것은 한층 고도의 심리 조작 기술을 구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을 충실하게 지키고 실천하면, 가장 안전하고 자연스 럽게 상대에게 접근하여 상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목적한 바대로 행동하게 할 뿐 아니라 니즈를 확실하게 충족시켜줌으로써 그 뒤에도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관계를 발전시킬 수가 있다.
- 조건형성도 심리 조작의 중요한 기술이지만 파블로프는 세뇌와 관련된 더욱 중요한 발견을 했다. 벨 소리와 개에 관한 실험을 한 파블로프는 그다음 단계의 실험도 했다.
개는 벨 소리를 들으면 먹이를 주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침을 흘 리는데, 파블로프는 이 단계를 '등가적 단계'라고 불렀다.
하지만 일단 조건형성이 성립된 뒤라도, 벨을 울리고 먹이를 주 지 않는 등 일관성 없이 대응하면 점차 침을 흘리는 반응도 제멋 대로 변하고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즉 벨 소리를 들었을 때 반응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게 된다. 게다가 작은 벨 소리에는 크게 반응하면서 큰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는 등 반응이 거꾸로 나타나는 경향도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파블로프는 이 단계를 '역설적 단계'라고 불렀다.
- 역설적 단계는 혼란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전의 규칙이나 틀을 믿을 수 없게 되며, 진행해야 할 방향이나 믿어야 할 기준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즉 기존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뒤흔드 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예측된 사건이 안정제로서 작용하는 것과 는 반대로 예상치 못한 사건은 불안감을 높인다. 실제 세뇌에서는 일단 안정제로 의존하게 만들어놓고, 그것을 갑자기 부여하지 않 음으로써 불안감에 휩싸이게 한다.
갑자기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되면 본인은 혼란스럽고,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자신을 돌이켜보며 자책하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보기 위해 두려움에 떨며 안색을 살피게 된다.
그런 심리 상태에 놓이게 해서 긴장이 높아졌을 때 무엇이 마음 에 들지 않는지를 넌지시 알려준다. 불안한 심리 상태에 놓여 있 었기에 불안한 상태를 해소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타협하고 상대 가 말하는 대로 따라하게 된다.
이것은 변덕스럽고 지배적인 인물이 의존적인 사람을 조종하는 전형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에는 지배하는 사람의 긍정 적인 반응이 안정제로 작용한다. 그리고 지배받는 사람은 어느 샌 가 이 안정제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 해서 안쓰러울 정도로 노력하고 상대에게 헌신하게 된다.
역설적 단계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을 이해하거나 타 인의 행동을 조작할 때 유용하다. 하지만 세뇌를 하기 위해서는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 파블로프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건으로 놀랄 만한 발견을 하 게 되었다. 이것은 다행스런 우연이라기보다 불행한 재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24년 레닌그라드에 대홍수가 덮쳐 파블로프의 실 험실도 피해를 입었다. 많은 물이 흘러들어와 기자재나 우리가 물 에 잠겼고, 실험용 개들은 도망치지도 못한 채 허우적거리며 물에 빠져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때 조수 한 사람이 간신히 실험실에 도착해서 개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
홍수 피해를 수습하고 실험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연구자 들은 기묘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벨 소 리를 들어도 개들이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몇 번을 해도 마찬 가지였다. 믿을 수 없게도 몸에 배어 있던 조건반사가 없어진 것 이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충격적인 사건이 조건반사를 없애버렸 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파블로프는 또 한 번 조건형성을 조작해서 조건반사가 일 어나게 했다. 그러고 나서 똑같이 우리에 물을 흘려보내 개들을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하자 역시 조건반사가 없어졌다.
학습시킨 조건반사가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개의 성격이 정반대로 바뀌곤 했다. 얌전하던 개가 난폭해져 사람을 물거나, 반대로 난폭하던 개가 얌전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이 심적 외상 체험으로 이전의 조건형성이 사라졌을 뿐 만 아니라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상태가 일어나는 현상을 파블로 프는 '초역설적 단계라고 불렀다.
파블로프의 연구가 소련의 세뇌 기술 발전에 기여한 역할을 연 구한 정신과 의사 윌리엄 사잔트William W. sargant에 의하면, 생존과 관 련된 외상 체험에 의해 그 전까지 믿어왔던 행동양식이나 가치관 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태에 직면하면 그것이 완전히 바뀌는 반응이 유발된다고 한다.
- 파블로프의 연구는 미국으로 건너가 행동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심리학 영역을 발전시켰다. 행동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존 왓 슨 John B. Watson이나 그 후계자 버러스 스키너Burrhus F. Skinner가 한 시대 를 풍미하였다. 그들은 파블로프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조작적 조건형성이라고 불리는 방법을 확립했다. 스키너는 자신의 방법을 사용하면 어떤 반응이라도 자유자재로 만들어낼 수 있으며, 행 동이나 인격조차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고 호언했다.
조작적 조건형성의 원리는 단순하다. 바람직한 행동을 하면 칭 찬(기분 좋은 자극)을 해서 긍정적으로 강화시키고, 잘못된 행동을 할 때는 벌(불쾌한 자극을 주어 부정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 런 간단한 방법을 수미일관되게 실행하면 바람직한 행동이 증가 하고 잘못된 행동이 감소한다.
조작적 조건형성은 조작적 학습이나 강화 학습이라고 불리듯이 학습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환경에 적합한 행동을 학습함으로 써 행동이 변화하는 것이다.
- 헤브 박사의 실험은 감각 차단 상태에서 자극을 주면, 평소와는 전혀 다를 정도로 인간의 정신이나 뇌에 엄청나게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그것은 동시에 이 기술을 악용하면 사람의 사상이나 생각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뜻했다. 헤브 박사는 3년 반 뒤에 이 실험을 중지했다. 그 뒤 그와 같은 감각 차단 실험을 더욱 진행시킨 사람은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 자잭 버넌 Jack Vernon이었다. 버넌은 헤브 박사와 마찬가지로 챔버 를 사용해서 똑같은 실험을 했는데, 그의 실험 목적은 세뇌에 있 었다. 피험자에게 기독교에 관한 지루한 내용이 담긴 30분 분량의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을 것인지, 이슬람교에 흥미를 갖게 하는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시리즈로 연달아 들을 것인지를 선택하게 했다. 대다수 피험자가 이슬람교의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선택했다. 그리고 챔버에서 나왔을 때는 이슬람교에 대해 아주 호의적인 견 해를 갖게 되었다.
이런 실험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우리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 기 위해서는 적당한 양의 자극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자극은 바꿔 말해 정보라고도 할 수 있다. 입력 정보가 지나치게 부족하면 뇌 는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입력 정보가 극도로 부족한 상태에 놓이면, 뇌는 어떤 정보라도 받아들이고 흡수하려고 한다. 그 전까지 믿고 있던 신념과 다른 내용의 정보라도 별 다른 저항 없이 흡수하려고 한다. 그 결과 그 정보가 강하게 침투하여 신념이 바뀌는 일이 일어난다. 이것이 그 야말로 세뇌의 원리다.
세뇌를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원리로는 정반대의 방법도 있다. 정보 차단이나 감각 차단과는 반대로 정보나 자극을 과잉으로 제 공받는 상태에 마냥 있게 두는 것이다.
정보 과부하 상태가 계속되어도 뇌는 차츰 주체적인 사고력이나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처음에는 강한 반발과 저항감을 불러 일으키는 생각이라도 계속해서 듣게 되면, 차츰 그것이 올바른지 잘못되었는지 판단하지 않게 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고독한 삶이 당연한 시대가 되고 밤낮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대 량의 정보를 받아들이며 생활하는 현대인은 감각 차단과 정보과부하라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 심리 조작의 역사를 살펴볼 때 서브리미널 subliminal 효과를 발견하고 실용화한 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
지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순간적인 자극이 인간의 판단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해서는 19세기부터 일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왔다.
하지만 이 연구가 널리 일반의 흥미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57년 부터이다. 그 해에 제임스 비커리James Vicary라는 마케팅 컨설턴트가 50명의 기자를 초대해서 대대적인 회견을 열어, '서브리미널' 영 상을 삽입한 영화를 보여주면서 그 효과에 대해 발표했다.
비커리는 <피크닉>이란 영화의 영상에 '팝콘을 먹어라'나 '콜라 를 마셔라'라는 문자을 순간적으로 비치게 하고 그 효과를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팝콘은 57.7%, 콜라는 18.1% 매출이 신장되었다고 한다. 비커리는 처음으로 '서브리미널'이라는 말을 사용해 기법을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잠재의식에 미치는 자극은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성으로도 판단할 수 없지만, 본능적인 욕구를 자극할 수는 있다고 보았다.
때마침 같은 해 미국에서는 사회학자인 밴스 패커드vance Packard 가 광고업자들이 상품을 사게 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 는 실태를 폭로한 《은폐된 설득자들》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10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며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비커리는 시기적절한 때에 발표를 했다. 영상 매체를 이용한 심리 조작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으며 서브리미널 효과가 일반인들 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MK 울트라 계획으로 대표되듯이 종래의 심리 조작 기술은 최 면, 전기 충격, 조건형성 조작, 약물 모두에 공통적인 한계점이 있 었다. 격리나 구속을 하고 노골적으로 인권을 침해하고 다양한 조 작을 강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나중에 물의를 일으 키게 되고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규탄을 받게 되었다.
이에 반해 서브리미널 효과를 이용한 방법은 두 가지 면에서 혁 신적이었다. 사람들이 눈치 채기 어렵고, 한 번에 수많은 사람에 게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바야흐로 새로운 심리 조작 기 법이 등장한 것이었다.
서브리미널 효과를 노골적으로 이용한 기법은 그 뒤 사회의 경계심이 강화되면서 규제 대상이 되었지만, 부드럽게 암시 효과와 조합되어 잠재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기법은 현재도 널리 이용되 고 있다.
상업광고에서는 판매하고 싶은 상품과 긍정적인 이미지를 연결 지어 반복해서 내보낸다. 경쟁 후보를 공격하는 네거티브 선거에 서는 사악하고 불쾌한 영상이나 음악을 이용하여 적대하는 후보 와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결시킨다.
직접적으로 경쟁 후보를 사악한 사람이라고 공격하지 않아도 그런 이미지와 연결시킴으로써 사람들의 뇌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력하게 심어놓을 수 있다. 이런 효과도 이성이라는 여과기를 빠 져나가 직접적으로 감정의 중추에 이르는 것이기에 서브리미널 효과라고 말할 수 있다.
- 교육 효과를 높이고 능력을 계발시킬 때도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려면, 정보나 자극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뇌를 지루한 상태에 놓이게 해야 한다. 일정한 기간 동안 단조로운 생활을 하게 해서 자극이나 정보에 굶주리게 하면 약간 의 지식만 가르쳐줘도 마른 모래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흡수하게 된다.
평소라면 지루하기 그지없는 단조로운 자극조차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예전부터 학문이나 기예를 배울 때 기숙사에 살게 하거나 합숙을 시켰던 까닭은 집단생활을 익히게 하고 경쟁을 시킨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것이 외부와의 접촉을 줄여 쓸데없는 정보를 차단하는 방법이라는 이유가 더 컸다. 일종의 터널을 만들어 한 점의 빛만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정보 입력이 지나치게 많으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의욕이 저하되기 쉽다. 정보 입력을 줄이면 스스로 정보를 요구하 고 신속히 흡수하게 된다.
감각 차단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은 신경계를 혼란시키기에 바 람직하지 않지만, 적당하게 자극을 낮추면 의욕이나 관심을 높이 는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특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유 지하는 데는 정보 입력을 줄이는 방법이 유용하다.
정보가 많이 들어오지 않으면 사람은 적은 양의 정보만으로 생각하게 된다. 공백 부분을 생각하거나 상상해서 채우려고 한다. 감각 차단과 같은 극도의 결핍 상태에 놓이면, 공백 부분을 메우 기 위해 생각이나 상상이 폭주해서 환각이나 망상에까지 이르게 되지만, 적당하게 정보 입력을 줄이면 오히려 차분히 생각하고 사 물을 돌이켜볼 수가 있다.
아이를 교육시킬 때나 재능을 키울 때도 정보 입력의 원리는 매 우 중요하다. 성과를 빨리 내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주면, 정보를 수용하는 사람은 흥미와 의욕을 잃어버린다. 그보다 더 나 쁜 일은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상대의 주체성을 빼앗아 꼭두각시나 로봇으로 만들고 싶으면 항상 정보 과잉 상태에 있게 하고, 뇌를 정보 처리로 허덕이게 해서 아무것도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놓으면 된다.
실제 세뇌에는 이런 방법이 곧잘 사용된다. 끊임없이 음악이 나 녹음테이프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방에 있게 하고, 이른 아침부 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통을 주고 불안감을 조성해 서 한시도 편안하게 있지 못하게 하여 뇌를 지치게 만들고 집중력 을 빼앗는다. 그리고 지칠 대로 지쳐 처리 능력이 저하된 시점에 사정없이 대량의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면 뇌는 용량 초과 상태에 놓여 주체적으로 정보를 선택할 수 없게 되고, 생각하는 힘과 저항하는 힘을 잃게 된다.
- 이런 상황은 방대한 정보에 노출된 상태에서 지친 몸으로 살아 가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겹친다. 성장하는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 다. TV, 인터넷, 게임, 만화, 휴대전화.... 아이들은 지금 홍수 처럼 넘쳐나는 정보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자라고 있다. 아이들의 주체성이나 창조성, 생각하는 힘이 약해지고 있는 데는 이런 환경 의 영향도 부정할 수 없다.
과잉된 정보에 노출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고 항 상 무언가를 해야 된다면 좀비와 같은 아이들이 되기 쉽다. 현대 사회에서는 싫든 좋든 이런 환경이 실현되고 있다.
스튜던트 애퍼시student apathy(오랜 수험 공부에서 해방된 학생에게 보이는 무기력증) 가 등장한 1970년대 이후로 젊은 사람들은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다. 이것이 강제수용소를 체험한 사람들의 증상과 비슷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집에서 생활하면서도 뇌가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다.
- 정보와 감각이 차단되고 정신적인 소모가 심해지면 뇌는 극한 상태에 놓이게 되고 유입되는 정보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게다 가 애착 불안이나 의존적인 경향이 강하고, 스트레스나 트라우마 를 안고 있고, 사회에서 고립되고 적응하지 못하던 사람은 더욱더 강한 확신을 지닌 존재에 매달리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지배받는 것에 오히려 안심하게 된다. 격리나 정보 차단은 그런 경향에 박 차를 가하고 강력한 의존과 지배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컬트 교단이나 사상개조소에서 흔히 시행되는 자아비판이나 상 호비판은 애착 불안을 자극해서 자기애를 철저하게 상처 입히고 자기 부정을 강화시킨다. 이런 과정이 심어주려는 근본적인 스키마 schema (인식 체계)는 자신에게는 아무 가치도 없지만 위대한 지도자나 이념에 따르면 멋진 의미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산도 육체도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완전한 심리 조작이 성 립하게 된다.
테러리스트나 스파이의 마음을 돌려서 협력자로 길들이는 경우 에도 종종 이와 같은 원리가 이용된다. 이대로는 절망과 고통과 죽음밖에 없는 엄격한 현실을 충분히 알게 한 뒤 마음만 먹으면 살아남아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구원을 약속하는 것이다. 상대를 몰아붙일 수 있을 만큼 몰아붙이고, 절망의 바닥에 내동댕 이친 다음에 갑자기 태도를 부드럽게 해서 따뜻한 손을 내밀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 신앙을 지닌 사람이 평온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어떤 때라도 희망이 약속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 것이다.
암시요법의 효과가 치료자에 대한 일종의 '신앙'에서 생겨나듯 이, 믿음은 강력한 암시 효과에 의해 '기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 다. 객관적인 소견보다 "넌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돼", "당신은 좋 아질 것 같은데", "벌써 병이 낫기 시작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와 같은 말이 때때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이것은 의사나 교사라면 종종 경험하는 일이다. 뛰어난 임상가나 교육자일수록 이 원리를 능숙하게 활용해서 희망을 약속하고 실제 그것을 현실로 만든다.
- 테러리스트나 전쟁 포로, 중대사건의 용 의자를 신문할 때도 이제는 힘으로 굴복시키는 방법이 통용되지 않게 되었고 새로운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상대가 적의와 불신에 가득 차있더라도 오히려 공감과 나름의 경의를 갖고 접근해 신뢰 관계를 쌓음으로써 마음을 열게 하는 수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오 랫동안 격리되고 고독과 불안에 시달렸던 사람은 부드럽고 친밀 한 감정에 굶주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다운 대우를 받게 되 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마음을 터놓게 되고, 라포가 성립되고, 속 마음까지 터놓는 사이가 되면 서서히 마음을 흔드는 작업을 시작 한다. 맨 처음 마음이 닫혀있을 때는 어떤 면에서 보면 마음의 준 비가 단단히 되어 있기 때문에 분노를 표출하고 공격을 가해도 움 쩍달싹하지 않지만, 마음을 허락한 상태에서 갑자기 치고 들어오 면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다. 질문하고 대답하라며 재촉해서 상대가 말을 얼버무리고 주저하면, 격앙된 목소리로 몰아세운다. 이는 모두 계산된 행동이지만 상대는 갑자기 허를 찔려 어안이 벙벙해 져 어쩔 줄 몰라 한다. 때로는 상대를 화나게 했다는 것에 동요하 고, 신문관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쥐꼬리만 한 정보를 넘기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노린 것이며 일단 신문관에게 양보를 하게 되면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 심리 조작이란 주제는 현대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 하려는 주체성이 있는가를 묻고 있다.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현실 감이 희박한 불균형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과연 스스 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외부에서 들 어오는 정보나 공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 리로 생각하고, 체험만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에 비춰보아서 판단하고, 냉철하게 행동할 수 있는가? 요즘 들어 이런 물음이 한층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개인이 주체적으로 책임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더욱더 어려워 지는 시대가 되었다. 범람하는 정보의 바다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서는 항상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고, 더불어 자신에 게 안전 기지가 되는 존재들을 소중히 할 필요가 있다. 방어를 단 단히 하고 경계태세를 강화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환상의 적과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불안에 쫓겨 과잉반응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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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학에서 태도는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평가를 말한다. 이러한 평가는 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당신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당신을 위 해 무언가를 해주도록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태도 바 꾸기란 단순한 '설득' 이상의 것이다.
태도는 네 가지 요인에 바탕을 둔다.
1. 유전적 소인
몇 가지 태도는 타고난다. 물론 아직 논란이 많은 주장이지만 많은 학자가 그렇다고 동의한다. 일란성 쌍둥이가 떨어져 자랐고 서로 전혀 본 적이 없는데도 많은 태도에서 공통점을 보인다는 사실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2. 애정
애정의 요인은 감정이다. 우리는 특정 사람이나 물건에 대 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품을 수 있다. 우리가 그 사 람이나 사물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도 그 감정에 따라 좌우된다.
3. 인지
여기서 말하는 인지는 의식적인 정보 처리, 즉 적극적 사고를 뜻한다. 우리는 논리와 정보를 점검하고 검토하여 판단을 내린다.
4. 행동
태도는 특정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예언'한 다. 거꾸로 우리는 행동으로부터 태도를 추측할 수 있다. 우리의 많은 태도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이 행동과 일치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태도를 행동 에 맞추기도 한다.
- 사람들은 올바른 정보와 논리를 주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1. '객관성'과 '올바른 해결책'이 존재한다는 믿음
2. '공정함'이 존재한다는 믿음
- 우리는 공정함을 기대하고 공정한 대접을 받지 못하면 깊이 분노하고 상처받는다. 이런 비극적 망상 역시 인식의 왜곡 이다. 심지어 과학적인 이론도 있다. 이름하여 '공정한 세상 가 설Just-world hypothesis'이다. 이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은 우리 의 통제 욕망이 낳은 결과다. 우리의 뇌에게는 우리가 자신은 물론 주변 세상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느낌이야말로 고민 중 에서도 최고의 고민이다. 따라서 공정한 세상을 믿어서 주변 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제하려 노력한다. 세상이 공정하면 우 리가 특정 방식으로 행동할 때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떻 게 행동할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다. 삶은 엄청나게 불공평하다는 것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삶은 불공평하다. 당신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신은 책을 쓰고 인쇄하여 읽을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 났다. 당장 오늘 저녁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나라의 사람도 있 는데, 당신은 배가 부를 만큼 먹을 것이 있고 지붕 있는 집에 서 잠을 자며 읽고 쓸 수 있다.
삶을 적어도 지금보다는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 명이 아니냐고? 물론 그렇다. 그리고 많은 지점에서 상대적 이나마 지금보다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공정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정당이 유사 이래로 정당의 깃발에 적어놓았던 그 글귀, 우리가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동네에서, 집 안에서, 심지어 휴가 계획을 짤 때도 굳게 믿는 그 공정함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 논리를 통해 탄생한, 다시 말해 인지 요인을 거쳐 탄생한 태도다. 인지 요인은 주로 어떤 주제가 구체적으로 상대에게 해당이 될 때, 그러니까 그 주제가 직접 개인적인 영향을 줄 때 활성화된다. 로비스트들은 그런 타깃이 되는 사람들을 '이해당사자stakeholder'라고 부른다. 영어로 'be at stake'는 '~가 걸려 있다'는 뜻이다.
- 그러니까 논리가 태도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경우에도 객관적인 논리로는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한다. 객관 적인 논리가 소용이 있는 경우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도 우리는 객관적으로 논리를 펼치려 노력한다. 그것 자체도 아무 도움이 안 되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객관적 논리를 펼친다고 믿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사실은 자신의 요구를 자신의 시점에서 정당화할 뿐인데도 말이다.
- 우리는 사람들의 자기중심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두가 세상을 자기 입장에서 보며 거의 100퍼센트의 시간을 자신의 소망, 자신의 문제, 자신의 근심에 쏟는다고 말이다. 인간의 심리는 그렇게 작동한다.
우리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은 인간 심리의 표준 작업 방식을 깨닫는 동시에, 자신을 위해 그 방식을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정반대로 돌아서야 한다는 말이다.
- 이미 잘 알려진 사실대로 사람의 뇌는 정말 게으르다. 대책이 없을 정도다. 최대한 생각을 안 하려고 온갖 핑계를 대고 기회를 노린다. 자기 앞에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뇌는 당연 히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쪽을 택한다. 그러자니 낯선 것은 무조건 피한다. 낯선 것은 스트레스고 노동이다. 인식하고 배 열하고 평가하고, 더 나아가 그에 대해 새로운 의견을 피력해 야 한다.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반대로 익숙한 것은 정보의 처리 유창성 Processing fluency'을 높인다. 처리 유창성이 높아지면 우리는 행복해진다.
- 직장생활은 쓸데없는 것 같은 회의와 만남의 연속이다. 내용만 뜯어보면 사실 쓸데가 없다. 다들 자기 이야기만 할 뿐, 정보를 얻는 것도 지혜를 얻는 것도 아니다. 다들 제자리를 향 해 흩어지면서 투덜거린다. “이 무슨 시간 낭비야!"
하지만 단순 노출 효과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든 만남이 유 익하다는 사실도 알 것이다. 날로 친밀도를 높여가다 보면, 언 젠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만남의 시간이 톡톡히 제값을 할 것이다.
당신을 위해 무언가 해줄 수 있는 사람일수록 개인적인 만 남을 자주 가지라. 상사가 "나하고 점심 같이 먹을 사람?" 하고 물어보면, 모니터 뒤로 몸을 숨기며 "선약이 있어서......” 하고 웅얼거릴 것이 아니라 번쩍 손을 들라.
- 중요한 인물, 중요한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인물에게는 무조건 자꾸 얼굴을 비춰야 한다. 단순 노출 효과는 당신이 그 사람을 계획적으로 만났는지 우연히 만났는지와 전혀 관 련이 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스스로를 노출시켰다는 사실 이다.
타깃으로 삼은 인물이 지금 당신을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 또 당신의 노출 노력을 그가 의식하지 못해도 괜찮다. 앞의 실 험 결과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듯이 당신은 누군가를 알기 전 부터 그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 승진이 걸렸을 때 당신 상 사의 상사는 반드시 당신에게 유리한 말을 할 것이다. 당신이 시도 때도 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복도에서 그와 마주치며 인 사를 했다면 말이다. 당신이 그 상사를 공식적으로 알기 전부 터 이미 그의 호감을 살 수 있다.
- 상호적 애착은 서로 별로 닮지 않은 사람, 강한 거부감을 느낄 만한 사람 사이에서도 통한다. 그러니까 상호적 애착이 유 사성의 원칙을 능가하는 셈이다. 그 정도로 사랑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강하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 다른 모든 원칙을 다 내팽개칠 정도로.
이렇게 잘 통하는 원칙에도 예외는 있다. 상호적 애착도 자 존감이 약한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자아상 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그런 자아상을 입증하는 사람을 더 좋 아한다. 즉, 자신을 칭찬하고 좋아하는 사람보다 비판하는 사 람을 더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가 자존감이 떨어지 는 사람이거든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
- 상대를 관찰하고 욕망을 읽어내라
그렇다면 당신이 타깃으로 삼은 상대의 동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솔직히 이를 항상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모두가 '나에게는 뭐가 중요 하지?' 고민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하물며 '내 상대에게는 뭐 가 중요하지?' 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상대의 동기를 파악하기 위한 첫걸음은 앞서 소개한 인간 욕망의 리스트를 자주 살피고, 사람마다 욕망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를 관찰해야 한다.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어떤 이유를 대는가?
*상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상대가 언제 기분이 좋은가?
- 도우미를 불러 청소와 다림질을 시키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그 비용은 사람 수에 따라 나누기로 하고 말이다. 동거인들은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 좋은 아이디어네. 우리는 주말에 쉴 수 있잖아.
2. 그러지. 도우미를 쓰면 돈 많은 옆집 사람들도 우리를 깔보지 못할 거야.
3. 싫어, 너무 비싸.
4. 그건 아니라고 봐. 주말에 시간도 많으면서 왜 사람을 써.
5. 싫어, 모르는 사람 집에 들이는 거 안 내켜.
6. 싫어, 청소는 내 손으로 할 거야.
이런 간단한 대답만 봐도 그 사람의 인생 동기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반응 각각에서 서로 다른 욕망을 읽어낼 수 있다.
1. 휴식
2. 인정, 경쟁
3. (물질적 성장
4. 공정
5. 안전
6. 독립성
- 모든 사람이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 이유, 혹은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럴 때는 관찰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실제로 상대의 걸음걸음에서 그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상대는 사람이 많은 파티장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사람이 많으면 말이 많아지는가? 아니면, 구석에 가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가? 모두가 잘 먹고 있는지 끊 임없이 챙기는가? 그런 행동들은 인정과 휴식, 공정과 조화를 바라는 욕망의 표현일 수 있다.
-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족과 함께? 요트를 타는가? 축구장에 가는가? 소파에 누워 있는가? 박물관에 가는가? 환경단체 행사에 참여하는가? 이 모두는 안전, 호기심, 경쟁, 휴식, 창의성, 공정을 향한 욕망을 암시한다.
상대의 사무실을 슬쩍 둘러보는 것도 그의 욕망을 알아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가족의 사진이 책상에 놓여 있는가?(안전과 소속감) 상장이나 졸업증명서가 걸려 있는가? (인정) 직접 찍은 사진을 벽에 붙여놓았는가? (창의성, 인정) 방이 깨끗한가?(질서) 초콜릿이 굴러다니는가?(식욕) 전화를 직접 받는가, 아니면 비서를 통해서만 받는가? (권력)
상대의 얼굴도 그의 동기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어떤 상황에서 환한 표정이 되는가? 어떤 상황에서 기뻐하고 어떤 상황에서 우울하거나 불행한 표정이 되는가?
- '입을 열고 상대에게 내 의견을 당당히 말하는 것'이 미덕으로 통하는 세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항상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문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은가? 아니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고 싶은가? 이것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 른 목표이며, 그 달성에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행동방식이 요구된다.
상대에게 내 의견을 말하지 않고 상대를 반박하거나 비판 하지 않으려면 한 가지가 필요하다. 즉,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 은 자신의 욕망을 뒷전으로 밀어놓아야 한다. 내가 옳고 싶은 욕망을 눌러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내 의견이 있는데 입을 다물고 있기란 죽기보다 힘들다. 상대방 못지않게 나의 욕망도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목표를 달성하는 길은 오직 자신의 에고ego를 무시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비판과 지적 대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 까? 상대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인정을 선사하는 것이다. 잘 난 척 떠들지 말고 상대에게 당신의 멋진 아이디어가 다 그의 덕분이며 그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어렵지 않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런저런 방향등 몇 가지 의도적인 질문만으로 이미 상대는 당신이 원 하는 쪽으로 오게 되어 있다. 그것이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믿 으면 상대는 그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예상치 못 했던 힘을 발휘할 것이다. 남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 아예 관심도 두지 않을 텐데 말이다.
아니면, 모자란 척하면서 처음부터 상대에게 도움을 청하 라. 이런 방법을 두고 '소크라테스 방식 Socrates Method'이라고 부 른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처럼 상대에게 계속적으로 교묘한 질문을 던져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마치 상대의 아이디어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상대를 비판하지 말고 칭찬하라.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열과 성을 다해 칭찬하라. 너무 지나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 아도 된다. 모든 인간은 칭찬에 목마른 사슴이다. 상대에 대한 칭찬은 내게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누군가 당신에 게 지나가는 투로 "오늘 왜 그렇게 예뻐요?"라든가 "정말 잘했 네요"라고 말한다면 그날 당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것이 다. 그의 소망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모든 인간이 다 그렇다.
- 상대를 중요한 사람으로 대접하면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 다. 상대가 스스로 생각하는 정도,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중요 한 사람으로 대접해주면 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실제보다 자신을 더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두고 '우월함 망상Illusion of superiority' 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자신을 평균 이상으로 능력이 있고 중요하며 매력적이라고 평가한다. 모두가 개리슨 케일러 Garrison Keillor의 소설에 나오는 허구의 도시 '워비곤 호수'에 산다고 착각한다.
- 인간은 타인의 제안이나 부탁을 들어주는 것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면 자신의 자유와 통제권을 잃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물리치는 데 95퍼센트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꾀가 하나 있다. 상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며칠 동안만 시험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결정은 그다음 에 하세요. 마음에 안 드시면 안 하시면 됩니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한정된 기간 동안 한번 시험해보라는 제안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저항을 하지 않는다.
- 뇌는 생각과 행동 역시 평화로운 합일점을 찾기를 원한다.
행동과 태도가 서로 맞지 않으면 참지 못한다. 어떻게 하든지 그 둘을 일치시켜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행동을 태도에 맞출 수 있다. 예를 들어, 환경을 생각하여 자가용을 타지 않아야 된다고 확신한다면 자가용을 팔아버리는 것이다. 그럼 태도와 행동이 일치될 수 있다. 뇌는 만족할 것이고 잠도 잘 올 것이다.
둘째, 반대로 태도를 행동에 맞출 수 있다. 자동차를 팔지 않 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 대신 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잖아. 비행기는 차보다 훨씬 공해가 심해. 자가용이 없으면 출근도 못 하니까 없앨 수는 없지.” 이런 자기변명으로 다시 뇌는 평온을 되찾는다.
이 두 가지 방법을 놓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문제가 미래의 행동일 때뿐이다. 과거의 어떤 행동이 나의 머릿속에 고통스러운 인지부조화를 유발했을 경우에는 그 행동을 물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 조화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 두 번째 방법뿐이다. 태도를 바꾸어 행동에 맞추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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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 shakespeare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각자 주인공으로서 인생이라는 무대에 올라 자기가 맡은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뽐내고 안달한다. 하지만 특등석에서 지켜보던 죽음의 신은 언제든 그 무대 에 오를 수 있고, 그날이 오면 먼저 떠난 수십억 명이 그랬듯 나도 관 객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맥베스의 대사처럼 나는 "영영 사라져버린다."
-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학파가 가장 먼저 말했 듯,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필연성을 중립적으로 수용해야 하며, 나만 은 다르길 원치 않아야 한다. 지금은 과학의 진보 덕분에 잘 알려졌듯 이, 인간은 오래된 돌덩이 위 희박한 대기 아래서 시간당 10만km 속 도로 우주를 질주하다 언젠가 생명의 별이 지면 죽음을 마주하는 어설픈 유인원일 따름이다.
- 세계 여러 지역은 이제 '버리기 사회 throwaway society'가 됐다. 선진국에서는 TV 하나를 10년 이상 쓰지 않는다. 방마 다 설치된 스크린을 철마다 시장에 나오는 더 번지르르하고 얇고 큰 모델로 교체한다. 삶의 많은 영역에서 오래 써야 할 상품도 소모품 취 급을 받고 있다. 한 흥미로운 실험 연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소비의 열기는 무의식적 죽음의 공포와 연결되어 있다. 28 미묘하고 숨겨진 방식으로 죽음을 떠올리게 하면, 물건을 사고 싶은 욕구가 극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놀랄 일은 아니다. 돈을 벌고 쓰는 것이 현대 문화에서 곧 성공의 상징이다. 결국 항문이 달린 신은 위대한 존 재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웃보다 앞서고 싶은 욕망, 왕이나 여왕으 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소비지상주의를 자극한다. 구매는 승리를 의미하니까.
- 인간은 죽음과 어둠을 두려워하는 한, 자기중심성을 버리지 못하는 한, 신을 창조하고 그들을 기쁘게 하는 의식을 발명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가 될지 알 수 없다.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1949~2011))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일신교인 유대교는 4,000년 전 중동에서 시작됐다. 오늘날 유대인은 약 1,500만 명으로 파악되는데, 유대인 3분의 1을 사망에 이르게 했던 홀로코스트가 아니었다면 이 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유대교의 신성한 경전 모음을 '타나크Tanakh' 라고 하며, 여기에는 (기독교인에게는 '구약'으로 알려진) 히브리어 성경의 첫 5권인 토라Toran가 포함된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삶의 유한성에 대 한 해답은 신이다. 성경은 야훼가 "죽음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혼의 불멸성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당시 죽음 후의 삶에 대한 지배적인 관점(고대 그리스와 로마부터 이어진)은 도 덕적으로 살았든 부패한 삶을 살았든, 모든 영혼이 같은 목적지로 향 한다는 것이었다. 내세 유대교의 '쉐she'ol)에서 살인자와 범죄자의 영 혼은 독실한 신자, 귀족, 여성과 나란히 어울릴 수 있었다. 박해받던 유대인들은 토라의 일부 구절에 반영된 이러한 신념에 의문을 품었 다.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수의 종교에 굴 복하여 믿음을 버린 사람도 있는데, 정의의 하느님이 어떻게 이들에 게 같은 내세를 허락한단 말인가?
제2성전 시대(예루살렘에 제2성전이 존재했던 기원전 516년에서 서기 70년 까지의 시기 -역주) 이후로 히브리어 경전에는 개념적 전환이 일어났다. 내세에 모든 영혼이 공존한다는 개념에서 초점이 바뀌어 정의로운 자/사악한 자의 분리와 부활이 강조됐다. 히브리어 경전에 다음과 같 은 내용이 있다. "지구의 먼지에 잠든 자들이 깨어나 어떤 이는 영원 한 삶을 누리고 어떤 이는 수치 속에 영원한 경멸을 받을 것이다. 또 한 현명한 자는 저 높은 하늘과 같이 빛날 것이며, 많은 사람을 올바 른 방향으로 이끈 자는 영원한 별처럼 반짝일 것이다."28
유대교 '부활'의 정확한 본질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영혼의 불 멸성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의견이 일치하지만, 일부 유대교 학자는 죽은 자가 눈에 보이는 물리적 형태로 부활한다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12세기에 활동했던 영향력 있는 유대교 철학자 마이 모니데스Maimonides는 부활에 대한 믿음은 유대교 신앙의 13계명 중 하 나일 정도로 유대교의 핵심이었다고 확신한다. 유명한 신학자였던 그는 유대교가 설명하는 내세관의 저의가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다수가 신념을 지키고 계율을 따르게 하려면 보상을 바라도 된다고 말해줘야 했다."
유대인들이 형벌과 학대의 역사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을 보 면 믿음의 대가로 주어지는 영생은 귀중한 동기부여였던 듯하다. 기 원전 1세기에 글을 썼던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로마인의 고문을 견디는 유대인이 "고통 속에서도 미소 짓고 고문하는 자를 옅게 조소했으며, 결국 돌려받을 것을 굳게 믿은 채 기쁘게 영혼을 내려놓았다"고 칭송했다.
수백 년이 지나도 유대교의 믿음과 관습에는 여전히 영생이 단단히 엮여 있다.
- 이론적으로 예측한 바와 같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 사회의 가장 합리적인 구성원조차 문화적 가치에 도전하는 사람을 최대한 벌하려 한다. 판사들에게도 일반 대중에게도, 범죄 행위는 잘못된 것이고 벌을 받아야 한다. 문화적 가치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행동 규범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이고 공정한 의사결정이 직무인 판사도 그렇게 쉽게 죽음 의 힘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을 까? 우리 누구든 죽음을 상기하면 문화에 위협이 되는 사람을 공격할 것이다.
- 불편한 결론이지만, 다른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떠올린 인간은 나의 문화적 신념에 도전 하는 사람을 해치려고 하며 내가 믿는 가치 체계와 문화를 완강히 밀어붙인다. 정치적 관점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 학생을 고의로 해칠 수 있다면, 낯선 사람에게는 훨씬 더한 짓도 할 수 있지 않을까?
- 이란 실험에서 얻은 결과와 비슷하게, 자신의 죽음을 떠올린 미국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극단적인 군사 행동에 찬성했다. 죽음 현저성에 노출된 집단은 평균적으로 타국에 대한 선제공격, 핵 무기 및 화학무기 사용, 애국자법을 지지하는 정도가 높았다. 흥미롭 게도 참가자들의 정치적 지향은 중요한 변수였다. 정치 성향이 진보 적이라면 죽음 현저성 노출 여부와 관계없이 군사 행동을 지지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군사적 개입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진보 적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 반면 죽음을 떠올린 보수 성향 참가자들은 더 공격적인 문화적 세계관을 옹호했는데, 실험실의 통제된 환경에서 그 방법은 국가를 위협하는 대상을 처단하고 국가를 보호하는 행위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는 것뿐이다. 이번에도 죽음을 상기한 사람이 문화적 세계관에 집착하게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자유주의자들은 관용을, 보수주의자들은 공격을 지지했다. 또한 연구진은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는데, 테러리즘에 대해 생각한 (9.11 테러를 떠올린) 집단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한 사람들과 동일하게 행동했다. 사건으로부터 5 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9.11 테러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강력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했다.
-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고 죽은 뒤에도 지속될 문화적 신념을 강하게 지지하여 상징적 불멸성을 얻는 것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 한 강력한 해독제다. 그러나 문화는 변하기 쉬우며, 오늘날 우리 문화 가 떠받드는 가치가 100년 후에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누가 문 화적 중요성과 상징적 불멸성을 얻는가의 기준은 계속 변화한다. 불 과 200년 전 미국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성공한 노예 상인이 명성을 떨쳤다. 문화적 세계관이 달라진 오늘날, 그런 사람들의 동상은 해체 되고 있다. 문화적 관습과 신념의 영구성을 확신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념 체계의 지속에 기대지 않고 불멸성을 얻는 더 직접 적인 방법이 있을까? 내가 한때 살아 숨 쉬었다는 영구적 증거로 이 세계에 실재하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불멸성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 출간되지 않은 히틀러의 두 번째 책에 는 죽음에 사로잡혀 있다는 직접적인 언급이 나온다. "평범한 자는 죽 음을 가장 두려워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비범한 자는 죽음에 대해 끈질기게 생각하지만, 그에 대한 두려움은 가장 적다."
히틀러는 천년의 제국을 세우고 이전에 존재한 어떤 문명과도 당 당히 비견할 만한 세계 수도를 건설하는 일에 몰두하며 죽음의 공포 를 누그러뜨렸다. 모든 이의 머리 위에 드리워질 지붕과 지구상의 어 떤 유사 건축물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개선문을 꿈꿨다. 그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유산을 남기길 원했다. 다행히도 게르마니아는 결국 꿈으로만 남았다.
히틀러처럼 거대한 건축물을 통해 불멸성을 얻고자 했던 사람들 은 대부분 평생을 바쳐 꿈꾼 바를 결국 이루지 못했다. 파라오 쿠푸처 럼 이를 성취한 일부의 경우를 보아도 여기에 쏟아부은 수많은 사람 의 노력을 생각하면 보상은 어쩐지 공허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영원 히 숭배되는 건물을 지으려 애쓰는 것보다 쉽게 실존의 문제를 해결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불멸의 건축물은 아무리 창조적인 사람이라 해도 실현하기 너무 힘든 목표다. 이보다 훨씬 간단한 형태의 치료는 창작물 자체에서 죽음과 인간의 필멸성을 다루는 것이다. 이를 전략으로 삼는다면 오래도록 전해질 문학 작품이 가장 확실하다.
- 유령처럼 한때 사람이었던 불멸의 존재에 대한 집착에는 분명 더 심오한 동기가 있다. 유령을 믿는 미국인은 절반이나 되지만, 늑대인간 등 다른 신화 속 존재를 믿는 사람은 훨씬 적은 데 는 이유가 있다. 순수하게 무서움을 즐기는 것이라면 늑대인간의 이 야기도 뱀파이어나 유령 등 한때 인간이었던 불멸의 존재 이야기만 큼 많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죽어서 묘지로 간 이후에도 살 수 있 다고 믿고 싶은 내적 욕구 때문에 유령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 인간 은 스스로 키운 내면의 감각적 의식과 연결된 '자아'를 놓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했던 사람을 놓아주지 못한다.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 하고, 그가 죽은 뒤에도 존재하길 바라는 압도적인 열망을 느낀다. 윌리엄 리스William Rees는 이 부분을 연구했다. 그는 의사 생활을 했던 웨일스 지방의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놀 랍게도 사별한 사람 중 60%는 죽은 배우자를 영혼이나 유령 등의 형 태로 '만났다'고 믿었다.36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심지어 접촉했 다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히도 이들은 이러한 만남을 긍정적으로 묘 사했다. 인간에게는 죽음을 부정하고 나 자신과 사랑했던 모든 것이 지속되길 바라는 간절한 욕구가 있어,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가까이에서 나를 자애롭게 내려다보며 관심을 쏟길 바란다
- 삶을 사랑과 죽음의 경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물론 언제나 죽음이 이긴다. 그러나 사랑은 그 승리를 공허하게 만든다. 그것이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다. (로버트 웹(Robert Webb, 1972~))
-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명백하지만, 당시에는 혁명이었다. 심리학자 들은 이전 수십 년간 부모의 사랑이 불필요할 뿐 아니라 해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저명한 행동 심리학자 존 왓슨John Watson은 1928년 엄청나게 팔린 육아 지침서에서 이렇게 조언했다. "아이를 토닥여 주 고 싶어질 때면 엄마의 사랑이 위험한 것임을 기억하라. 너무 많은 입 맞춤을 받은 아이의 인생에는 심각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할로우 의 원숭이들은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넘치는 사랑이 아니라 모자란 사랑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불편하기 그지없는 히말라야 원숭이 실험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애착일 수 있다는 것이다.
- 가완디는 오늘날 우리가 "삶이 기울어가는 날들을 정신을 흐리고 신체를 무너뜨리는 가망 없는 치료에 허비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병원에서 죽음과 전투를 치른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신과 싸 워 이기려고 무슨 짓이든 한다. 노인을 집과 가족에게서 분리해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낯선 장소로 보내야 한다 해도, 방문자 수가 제한된 격리 병원에 가둬야 한다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부자연스럽고 잘못됐다. 여러 국가, 문화, 시대에 걸쳐 인간은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집단에서 살고 죽었다. 아직 그 전통을 유지하는 문화권도 있지만 서양에서는 드문 일이 되었다. 죽어가는 환자는 병실에 틀어박혀 홀로 사신을 만난다.
- 자존감의 기준은 외부와 단절된 채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 하다. 문화가 그 기준을 만들어낸다. 우리 문화가 명품 옷과 고급 승 용차에 성공의 이미지를 포장하여 판다면 우리는 사회의 소중한 구 성원이라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물질을 좇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가 성공은 최고의 사냥꾼이 되는 것이라고,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는 것 이라고, 또는 최고의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선언하면 또 그것을 열렬히 추구할 것이다. 자존감과 문화적 세계관은 같은 동전의 양면 이다.
- 자존감이 높으면 내가 죽는다는 사실의 일반적 영향에 면역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니다. 공포 관리 이론이 말하듯 실제로 자존감이 존재론적 공포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했다면, 죽음을 떠올렸을 때 자존감에 대한 욕구가 강해져야 한다. 즉, 내가 썩어 없어지는 존재임을 상기한 후에는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만한 일에 관심이 커져야 한다. 연구에서 나타난 결과는 이러한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 정부에서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금연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죽음을 직접 논하는 시각 적인 건강 경고는 효과가 없고, 최악의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뿐 이다. 수십 년의 공포 관리 이론 연구는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을 상기한 인간은 자존감을 높이는 데 집착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죽는다 는 사실을 떠올리면 인간은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며 상징 적 불멸성에 매달린다. 흡연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직후에 담배를 집어 들기도 하고, 선탠의 위험성을 알면서 해변으로 향하기도 한다. 인간은 말 그대로 죽도록 자존감을 높이려 한다.
- 문화는 무엇보다도 시신을 어떻게 흙으로 돌려보낼지에 대한 결정이다. (모코코마 마코노아나(Mokokoma Mokhonoana, 1985~),
<비관주의의 기록: 우습지만 심오한 격언 모음(P for Pessimism: A collection of funny yet profound aphorisms)》)
- 다양한 장례 의식의 핵심은 비슷하다. 어떤 공동체는 죽은 자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시신을 먹고, 또 다 른 공동체는 정확히 같은 이유로 유골을 파헤친다. 어떤 문화권에서 는 내세에 도달하는 것을 돕기 위해 망자를 미라로 만들고, 다른 문화 권에서는 같은 목적으로 불에 태운다. 장례 관습의 세부 사항은 시대, 종교, 정치, 지리적 위치에 따라 매우 다르지만, 그 표면 아래에는 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많은 공통점이 있다. 가장 흥미로운 장례 관습들 을 돌아보면 하나의 선명한 그림이 완성된다. 죽음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전 세계 인류의 투쟁이다.
- 순전히 더 나은 내세를 얻기 위한 복잡한 장례 의식의 사례는 즉 신불 말고도 또 있다. 조장sky burial이라는 불교 의식의 목적도 비슷하 다. 티베트 전역에서 수행되는 조장은 산꼭대기에 시체를 두어 독수 리 등의 동물에 뜯어 먹히게 하는 것이다. 환생을 믿는 불교는 유대교 와 기독교 전통에 비해 시신을 훨씬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2장 참조). 조장은 너그럽게 자신의 썩어가는 몸뚱이를 음식으로 내놓음으로써 좋은 카르마를 쌓으려는 최후의 노력이다. 마침 그날 새들이 배가 고 프지 않다면 틀림없이 하찮은 존재로 환생할 불길한 징조로 여겨진다. 힌두교, 불교,자이나교는 화장이 물리적 형태에서 영혼을 해방하여 다음 생으로 보내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식이라고 본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 역시 매장도 했지만 화장으로 시신을 처리하는 사례가 가장 흔했다. 이들 고대 사회에서는 시체의 몸이나 입 안에 동전을 넣 었는데, 이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를 가르는 스틱스강을 건너도록 망자를 안내하는 신화 속 뱃사공 카론Charon에게 주는 편도 요금이었 다. 이 요금을 내지 못한 영혼은 사후세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유럽에서 기독교가 세력을 늘리면서 화장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신체는 부활과 영생의 필수적인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시체의 중요 성이 높아지며 매장 비율이 높아졌고, 매장은 유럽의 표준 장례 방식 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죽은 뒤의 시체 보존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이 처음은 아니다. 기독교보다 수천 년 앞서 이집트인들은 최고의 상태로 시체를 보존하여 내세를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미라화는 완전한 보존을 추구하며 발명된 기술이었다.
- 방부 처리의 실제적 이점이 없다면, 왜 이런 복잡한 단계를 거쳐 야만 할까?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일까? 간단히 말해서 내장에 구멍을 뚫고, 와이어로 살을 찔러 고정하고, 발암성 화학 물질을 주입하는 모 든 과정의 목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신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시신이 시신처럼 보이는 데 저항감이 심 한 나머지 이를 막으려고 1,000달러에 가까운 비용을 들인다. 18 박테 리아가 죽은 세포를 분해하고 심장이 혈액을 순환시키지 않아 얼굴 근육이 풀어지고 피부가 창백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는 시신에 독극물을 잔뜩 주입해서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어서 말끔하게 옷을 입히고 뺨과 입술을 화장품으로 붉게 칠한 다음 조문객 앞에 내보인다. 심지어 시신을 나무 관에 바로 눕히지 않고 고급 천과 부드러운 쿠션을 댄다. 화려한 장례 침 구는 부정의 마지막 시도다. 죽은 사람에게 벨벳으로 만든 시트와 쿠 션이 왜 필요하겠는가? 확실히 애도를 받는 사람보다는 애도하는 사 람을 위안하는 장치다.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트Jerry Seinfeld의 농담처럼 "우리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죽은 사람에게 베개를 준다는 것이 그 증거다. "
지난 세기 북미의 장례 절차를 지배했던 방부 처리는 죽음을 부정 하고 싶은 간절한 열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수용을 거부하고 아름다움을 택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망자의 자연스러운 외양을 받 아들이기보다는 시신에 구멍을 뚫고 물감을 칠하는 쪽을 선택한다. 이는 수천 년 전 배를 타고 내세로 간다고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의 관습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조금이라도 진보했다고 볼 수 있을까?
- 말라가시 사람들은 왜 파마디하나의 전통을 이어갈까? 복수심에 불타는 망자를 달래기 위해서라고 한다. 파마디하나는 조상의 영혼 을 달래고 무덤에서 저주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었다. 조상을 무시하 는 것은 자신이나 자식의 죽음을 부르는 위험한 일이었다. 기억할 만 한 조상의 죽음을 기리는 것에는 다른 목적도 있다. 살아 있는 사람에 게 불멸의 느낌을 주는 것이다. 파마디하나 의식을 연구하는 인류학 자들은 이를 "타인의 대리를 통해" 불멸을 추구하는 기회라고 설명한 다. 소중한 고모할머니의 시신을 파내어 끌어안으면서 언젠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해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확신하는 것이다. 몇 년에 한 번은 누군가 나와 함께 춤추고 나를 소중히 안아주며, 무덤의 으스스한 어둠 속에서 내 뼈와 먼지가 나타났을 때 후손들이 기쁨의 노래를 부르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보다 개인적 수준에서는 이 미 죽은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되어 그들이 여전히 함께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이들은 시신을 꼭 끌어안고 빙빙 돌며 최근 소식을 귀 에 속삭이고 속세에서 일어난 사건을 말해준다. 수의를 갈면서 죽은 사람이 좋아하던 선물을 주기도 한다. 삼촌에게 담배 한 갑, 엄마에게 는 새 립스틱, 아이에게는 포장한 사탕. 몇 년마다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그렇게까지 끔찍하지는 않 을 것이다. 죽은 사람에게 가까이 가려는 마음이 너무 강렬하기에 바 스러지는 뼈가 한낱 먼지가 될 때까지 땅에서 파내어 품에 끌어안는 것이다.
- 우리는 말라가시 부족이 아니지만 죽은 사람과 연결되고 싶은 충 동은 똑같이 경험한다. 전 세계 문화에는 죽은 자의 유해와 접촉하는 의식이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망자의 직계가족이 시신을 목욕 시키고 흰 면으로 만든 수의를 입힌다. 딸이 어머니를, 아들이 아버지 를 씻긴다. 일본의 코츠아게는 가족들이 화장한 잿더미에서 젓 가락으로 뼛조각을 줍는 의식이다. 재를 담기 전에 뼛조각을 하나하 나 조심스레 주워 작은 항아리에 담고, 이것을 따로 집에 간직한다. 애착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강력하고 보편적이다. 어떻게든 죽은 자 와 물리적으로 가까워지고 망자와의 유대를 유지하려는 사람은 많 다. 이러한 욕구는 언제 문제가 될까? 때로는 죽은 이모와 가끔 춤추 는 것보다 훨씬 이상한 일도 일어난다.
- 애도의 슬픔을 절대 겪고 싶지 않다면 애착을 전혀 갖지 않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러면 행복도 누릴 수 없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
-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집에 두는 데는 정서적 이유도 있지만 현실적 이유도 있다. 토라자의 장례식은 인생에서 가 장 중요한 날이다. 중산층의 평범한 장례식에도 5,000명 정도가 참석 한다. 여기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장례식을 준비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 장례식에 필요한 선물과 제물로 바칠 동물을 구하려면 가족 들은 연봉의 최대 5배를 저축해야 한다. 토라자에서는 소를 잡고 매우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지 않으면 영혼이 사후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장례식을 준비하는 동안 시신은 다른 가족과 마찬가지로 보살핌을 받으며 집에 머무른다.
심지어 매장이 끝난 후에도 토라자 사람들은 말라비틀어진 시신 과 곧 다시 만난다. 몇 년마다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어 수의를 벗기고 돌보는 마아네네ma'nene (시신 씻기기 의식)라는 의식이 있다. 토라자 사람 들은 시신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대하는데, 죽었다고도 하지 않고 마 쿨라macula(아픈)'라고 표현한다. 가족들은 죽은 자에게 행동 하나하나 를 설명하고(“이제 겉옷을 벗겨 드릴게요. 새 코트를 샀거든요.") 묻혀 있는 동 안 일어난 일을 말해준다("당신 딸이 다음 달에 농부와 결혼해요."). 시신은 산사람처럼 세워 둔다. 시신을 돌보는 행위는 여러 형태로 이뤄진다. 해골의 이에 담배를 물리기도 하고, 햇빛이 강하면 텅 빈 눈구멍에 선 글라스를 씌우기도 하며 벌레 기피제를 뿌려주기도 한다. 이때 방문 한다면 그리워했던 시신의 부서져가는 어깨에 한 손을 두르고 사진 을 찍는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 1996년, 데니스 클라스Dennis Klass, 필리스 실버먼Phyllis Silverman, 스 티븐 닉먼steven Nickman은 지속되는 유대: 애도의 새로운 이해 Continuing Bonds: A new understanding of grief>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애도의 세계 를 뒤집어 놓았다. 저자들은 애도에 깔끔한 '단계'나 '순서'는 없으며, 살아가는 내내 형태를 바꿀 수는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지 속적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 소설가 앤 라모트 Anne Larnott Larnott의 표현을 빌려 설명한다.
그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을 잃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나쁜 소식은 이 상실을 절대 완전히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좋은 소식이다. 그 사람은 영영 다시 붙지 않을 나의 상처와 함께 영원히 살아간다. 물론 나도 회복한다. 이는 부러진 다리가 절대 완벽히 회복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날이 추워지면 다리가 다시 아프겠지만, 그 다리로도 춤추는 법을 배운다.
클라스, 실버먼, 닉먼은 프로이트의 관점과 정반대로 죽은 사람과 의 유대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 해 유대를 끊을 필요가 없을뿐더러, 지속적인 유대가 상실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상실 을 견딘다. 망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유품을 간직하기도 하고, 망자의 무덤이나 사진에 말을 걸기도 한다.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의 유대를 유지하는 행동이다. 이 이론은 서구에서 많은 사람을 눈뜨게 했는데, 다른 문화권에서는 오히려 평범한 이야기였다. 사실 아시아와 남미 문화에서는 산 자들에게서 죽은 사람의 존재가 사라진다고 보지 않 는다. 죽은 사람은 여전히 산 사람과 함께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소통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이런 문화권에서 죽은 자와의 유대 를 유지하는 기술은 매우 훌륭하다.
-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에서는 죽은 사람과의 유대를 이어가는 문화적 전략이 없다시피 하다. 사진 액자나 개인적으로 중요한 물건을 놓고 죽은 가족을 추모하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문화에 깊이 배어들어 인구 절반이 행하는 의식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일본 에서는 죽은 남편의 존재를 느낀다고 답한 아내 비율이 90%였지만, 영국에서는 이 비율이 50%로 떨어졌다. 여성이 그런 증상을 호소했 을 때 어떻게 취급되는지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20세기 내내 이런 식의 애도는 병적이라고 치부됐다. 프로이트는 이들의 증세를 "희망 에 의한 환각적 정신병"이라고 말했다. 15 그러나 서구에서도 이후에 이뤄진 연구 결과, 죽은 사람과의 유대를 경험하는 사람이 슬픔을 더 잘 극복했다. 케이트 베넷Kate Bennett과 동료들은 2005년 수행한 연구 에서 남편을 잃은 영국 여성 92명을 인터뷰했다. 이 연구에서 참가 자둘 중 하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인사하거나 사진을 보며 말을 거는 식으로 죽은 배우자와 대화한다고 답했다.
- 20세기 초중반에는 (운이 좋다면) 사진 한 묶음 정 도가 죽은 사람을 추억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은 트 위터, 페이스북, 레스토랑 추천, 책 리뷰, 스포티파이 시청 목록 등 디 지털에 남은 흔적으로 우리 이미지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가 온라인에서 계속된다는 사후의 디지털 라이프는 조금 위 안이 된다. 그러나 이 기술이 불멸성의 환상을 가져다준다 해도 노후 화의 그늘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이들 웹사이트는 시간 이 지나면서 망각의 묘지에 묻히거나 심지어 순식간에 흔적 없이 사 라질 수도 있다. 페이스북이 소셜미디어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이 전에 성공적이었던 베보Bebo나 마이스페이스Myspace 같은 웹사이트는 완전히 밀려났다. 굿리드Goodreads에 자랑스럽게 올린 책 리뷰는 버튼을 한 번 클릭하면 사이버 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2020 년 10월, 트위터에서 한 학자의 묘비 사진이 유명해졌다. 묘비에는 QR 코드가 새겨져 있어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죽은 사람의 출간물 과 인용 목록으로 이어졌다. 즐거움과 궁금증을 유발하는 창의적인 묘비였고 자기도 시도하고 싶다며 관심을 보이는 네티즌도 있었다. 그러나 QR 코드가 지금은 대유행이지만, 다른 형태의 기술이 나오 면 얼마나 빨리 대체될까? 그러면 묘비의 QR 코드는 쓸모없어질 것이다. 제대로 사용하면 기술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유대를 유지하는 한 가지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인간의 유한성 문제에 진정한 해결책을 제 공하는 것은 아니다. 유대가 계속된다는 개념은 유족들이 죽음에 대 처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자기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는 위안이 되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두려움이 극 심한 공포로 변해서 일상의 삶을 점점 더 침해하면 온갖 다른 문제의 가능성이 열린다
- 서서히 스며드는 정신질환은 치명적이다.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와 늙은이, 부자와 가난뱅이를 가리지 않고 놀라운 속도로 사람들을 쓰러뜨린다.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불러오고 목숨까지 앗아간다. 지난 몇 년간 필자들과 다른 심리학자들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죽음불안은 수많은 정신질환의 핵심이다. 이제는 환자가 죽음을 떠올렸 을 때 강박장애, 공황장애, 건강염려증, 공포증, 심지어 사회불안장애 같은 장애가 모두 심해진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우울증과 외상 후스 트레스장애PTSD도 죽음 현저성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연 구도 있다. 또한 죽음의 공포가 다양한 다른 정신질환의 심각성을 강 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정신 질환 치료에서 죽음의 공포가 직접 고려되는 일은 거의 없다. 치료사 들은 환자가 경험하는 특정한 표면적 공포를 극복하도록 돕는 데 집 중한다. 공황장애일 경우 심장마비의 공포를, 거미 공포증의 경우 거 미에게 물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해결하려 한다. 치료사들은 환자 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노력을 돕기보다 죽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시키려 한다. 최소한 그들이 걱정하는 방식으로는 죽지 않는다고 설명 한다. 통계 수치를 계속 보여주며 비행기 추락으로 죽을 확률이 얼마 나 낮은지, 손잡이를 잡았다가 HIV에 감염될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설명한다. 결국 환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죽게 되어 있다는 사실은 망 각하고서 말이다. 환자들도, 필자들도,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가장 흔히 사용되는 표준 정신질환 치료법에서는 심지어 그 주제를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환자들이 평생 새로운 정신 질환을 앓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정신건강의 위기가 찾아온 것도 놀랄 일은 아니지 않은가?
- 이 모든 것이 암울하게 들린다고 해도 절망하지 말자. 내 존재와 일상적인 활동이 무의미하다는 인정은 진짜로 살아가는 삶을 향한 첫걸음이자 실존주의 여정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신이 죽었 으니 인간만의 의미를 만들 수 있다. 열정으로 삶에 뛰어들고, 나만의 목적을 가질 수 있다. 그럴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목적과 의 미에 관한 연구 데이터를 기억하는가? 연구에서 의미 수치에 높은 점 수를 준 참가자 중에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의미 있는 삶을 찾아 목적 있는 존재가 되었고, 이는 다른 어떤 요인(정신질환 여부, 독실한 정도, 성별, 나이 포함)보다도 자살 경향을 확실하게 막아주는 요소였다. 니체는 “이것이 가능하며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10 나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인간의 가장 큰 목표다. 신이 죽어야 개인 으로 살 수 있다. 신을 섬기면 자신을 잃는다. 나를 다른 모든 타인과 구별할 수 없어지고, 신의 군대에 징집된 군인 1이 되어 그들의 북소 리에 맞춰 행진할 뿐이다. 그러나 니체의 은유대로 신을 죽이면 나는 나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내 규칙에 따라 존재할 수 있다. 나보 다 중요한 것은 없다. 샌프란시스코 대학 철학자인 제라드 쿠페루스 Gerard Kuperus는 이렇게 깔끔히 요약했다. “무의미함은 고통을 초래하지 않는다. 신에게 바친 의미 있는 삶이 더 고통스럽다. 기쁨을 억압해서 만 얻어지는 (실재하지도 않는) 저 너머의 삶을 목표로 한 인생이기 때문 이다. 내세의 형태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환상을 넘어서야 고통에 서 해방되어 삶을 즐길 수 있다.”
-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는 좋은 죽음을 막는 장벽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심각한 오해를 극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른 문화적 편견인종주의, 성차별주의, 호모포비아- 역시 최근에야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죽음도 진실의 순간을 맞을 때가 되었다. (케이틀린 도티(Caitlin Doughty, 1984~),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Smoke Gets in Your Eyes: And other lessons from the crematory)>>)
- 삶을 연장하고자 너무 많이 고민하는 자에게 걱정 없는 인생은 없다. 생명을 유지하려는 불안을 모두 지움으로써 기쁨 가득한 삶을 살아라. (세네카(Seneca, 기원전 4~기원후 65), <도덕 서신(Epistles)>)
- 에픽테토스는 이러한 접근을 잘 요약했다. “원하는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지 말고, 일어날 일이 일어날 것을 바라도록 하라. 그러면 삶이 잘 흘러갈 것이다." 영리한 접근이다. 통제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인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반대로 이 사실을 찬양하라는 제안이다. 먼저, 통제력이 없다면 모든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일어날 일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결과가 일어나는 대로 기꺼이 받아들이면 슬픔을 이길 수 있다.
- 스토아학파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자주 되새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수의 스토아학자가 격동의 시기를 살았 고, 예측할 수 없는 황제들의 변덕을 마주하곤 했다. 세네카 역시 악명 높은 폭군 네로의 지도 교사이자 자문 학자였다. 네로는 10년간 그 를 섬긴 세네카가 반역을 꾀했다며(이 혐의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에게 자살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목격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긴 세월 스토아 철학을 연마한 세네카는 실제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듯하다. 결국 세네카는 동맥을 그어 피를 흘리며 용감하게 죽음 을 마주했다. 스토아학파가 죽음을 대비하라고 강조한 것은 단순히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언제든 삶을 빼앗길 수 있는 사람들의 필수적인 과업이었다.
- 여러분이 집에 불이라도 난 듯 행동하길 바랍니다. 실제로 그러니까요.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2003~))
- 요약하자면, 죽음을 떠올리면 반짝이고 새로운 것을 찾는 욕구가 증가한다. 우리가 유한성에 대한 증오를 소유물의 산 밑에 묻으려 하기 때문이다. 톨킨Tolkien은 《실마릴리온The Silmarillion》에서 아주 적절한 표현을 했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는 그들 사이에서 점점 어둡게 깔렸고, ・・・ 살아남은 자들 은 점점 더 많은 물건과 부를 원하며 즐거움과 쾌락을 간절히 추구하게 되었 다. (pp. 328~329)
- 당신이 모든 것을 잊을 때가 곧 올 것이요, 모두가 당신을 잊을 때가 곧 올 것이다. 늘 생각하라. 당신은 곧 아무도 아니게 되며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 <명상록(Meditations)>)
- 지금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몸과 다섯 가지 감각을 갖고 있다. 바다에 뛰어들 수도, 산을 오를 수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도 있다. 전 세계의 음식을 냄새 맡고 맛볼 수 있고, 타인을 사랑하고 끌어안을 수 있고, 베토벤과 비욘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삶이 끝난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삶을 낭비하지 말라. 인간 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당신이 가진 매 순간을 즐기고, 죽음의 운명 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라. 죽음의 신은 어둠의 존재가 아니라, 당신에게 휴식을 허락하고 다른 존재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러 오는 것이다. 모두가 태양 아래에서 자신의 시간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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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소설을 꼽자면 단연 삼국지가 1위로 꼽힐 것이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고, 열 번 이상 읽은 자와는 감히 경쟁하려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의 2세기 말에서 3세기 말을 시대배경으로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를 다룬 역사서 정사 삼국지는 진수가 지었고, 나관중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는 14세기에 지어졌다. 후리가 흔히 말하는 삼국지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일컫는다.
삼국지와 삼국지연의 이 둘은 이야기의 큰 줄기는 같지만 세세한 부분은 서로 다른 부분도 많다. 중국의 서기 184년 후한의 쇠퇴와 황건적의 난으로 인한 군웅할거 시대부터 사마염이 건국한 서진이 중국을 통일한 280년까지 있었던 역사를 다룬 책으로 이것의 소설판인 삼국지연의는 중국 4대 기서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사람이 많으며 21세기인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읽는 동아시아권을 대표하는 고전소설이다. 아마 영미문학권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미치는 영향과 동등하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지는 게임, 애니메이션, 책, 영화, 드라마, 만화, 연극 등 가능한 모든 매체로 수도 없이 쓰여질 정도로 유명하며, 삼국지에서 나온 지략과 전술 등은 이천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인용되고 회자되기도 한다.
이 책은 중국 닝보대학 특임교수이자 작가로 활동중인 심리학자 천위안이 지은 책이다. 저자는 현대 사회심리학 이론을 통해 역사속 인물이나 사건을 분석하는 '심리설사'의 창시자로 통한다.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 관우, 장비라고 알려져 있고, 그 중에서 촉한의 초대황제인 유비의 비중이 크다. 하지만 장비와 더불어 촉한 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운 관우를 빼놓고 삼국지를 이야기할 수 없다. 관우는 충성심과 의리, 당당한 성품으로 인해 동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수로 꼽히며, 중국의 각종 사서에서는 용맹한 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관우를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관우는 의리의 화신으로 중국 민담이나 민간전승, 전설에서 널리 이야기되고 있으며 나중에는 신격화되어 관제표가 세워지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중국인들이 숭배하는 사람 중 하나다.
저자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 관련된 에피소드만을 뽑아서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함께 그 속에 담긴 인물의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해 낸다. 이천년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나와 내 주변에서 현재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략 1000명 정도 되며, 워낙 분량 자체도 방대하여 책을 읽기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제갈량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뽑아내었고, 심리학적 관점으로 사건을 들여다보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삼국지를 읽지 않은 일반독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관우의 행동을 분석하고 관우의 의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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