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리학에서 태도는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평가를 말한다. 이러한 평가는 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당신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당신을 위 해 무언가를 해주도록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태도 바 꾸기란 단순한 '설득' 이상의 것이다. 태도는 네 가지 요인에 바탕을 둔다. 1. 유전적 소인 몇 가지 태도는 타고난다. 물론 아직 논란이 많은 주장이지만 많은 학자가 그렇다고 동의한다. 일란성 쌍둥이가 떨어져 자랐고 서로 전혀 본 적이 없는데도 많은 태도에서 공통점을 보인다는 사실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2. 애정 애정의 요인은 감정이다. 우리는 특정 사람이나 물건에 대 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품을 수 있다. 우리가 그 사 람이나 사물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도 그 감정에 따라 좌우된다. 3. 인지 여기서 말하는 인지는 의식적인 정보 처리, 즉 적극적 사고를 뜻한다. 우리는 논리와 정보를 점검하고 검토하여 판단을 내린다. 4. 행동 태도는 특정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예언'한 다. 거꾸로 우리는 행동으로부터 태도를 추측할 수 있다. 우리의 많은 태도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이 행동과 일치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태도를 행동 에 맞추기도 한다.
- 사람들은 올바른 정보와 논리를 주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1. '객관성'과 '올바른 해결책'이 존재한다는 믿음 2. '공정함'이 존재한다는 믿음 - 우리는 공정함을 기대하고 공정한 대접을 받지 못하면 깊이 분노하고 상처받는다. 이런 비극적 망상 역시 인식의 왜곡 이다. 심지어 과학적인 이론도 있다. 이름하여 '공정한 세상 가 설Just-world hypothesis'이다. 이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은 우리 의 통제 욕망이 낳은 결과다. 우리의 뇌에게는 우리가 자신은 물론 주변 세상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느낌이야말로 고민 중 에서도 최고의 고민이다. 따라서 공정한 세상을 믿어서 주변 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제하려 노력한다. 세상이 공정하면 우 리가 특정 방식으로 행동할 때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떻 게 행동할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다. 삶은 엄청나게 불공평하다는 것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삶은 불공평하다. 당신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신은 책을 쓰고 인쇄하여 읽을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 났다. 당장 오늘 저녁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나라의 사람도 있 는데, 당신은 배가 부를 만큼 먹을 것이 있고 지붕 있는 집에 서 잠을 자며 읽고 쓸 수 있다. 삶을 적어도 지금보다는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 명이 아니냐고? 물론 그렇다. 그리고 많은 지점에서 상대적 이나마 지금보다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공정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정당이 유사 이래로 정당의 깃발에 적어놓았던 그 글귀, 우리가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동네에서, 집 안에서, 심지어 휴가 계획을 짤 때도 굳게 믿는 그 공정함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 논리를 통해 탄생한, 다시 말해 인지 요인을 거쳐 탄생한 태도다. 인지 요인은 주로 어떤 주제가 구체적으로 상대에게 해당이 될 때, 그러니까 그 주제가 직접 개인적인 영향을 줄 때 활성화된다. 로비스트들은 그런 타깃이 되는 사람들을 '이해당사자stakeholder'라고 부른다. 영어로 'be at stake'는 '~가 걸려 있다'는 뜻이다. - 그러니까 논리가 태도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경우에도 객관적인 논리로는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한다. 객관 적인 논리가 소용이 있는 경우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도 우리는 객관적으로 논리를 펼치려 노력한다. 그것 자체도 아무 도움이 안 되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객관적 논리를 펼친다고 믿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사실은 자신의 요구를 자신의 시점에서 정당화할 뿐인데도 말이다. - 우리는 사람들의 자기중심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두가 세상을 자기 입장에서 보며 거의 100퍼센트의 시간을 자신의 소망, 자신의 문제, 자신의 근심에 쏟는다고 말이다. 인간의 심리는 그렇게 작동한다. 우리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은 인간 심리의 표준 작업 방식을 깨닫는 동시에, 자신을 위해 그 방식을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정반대로 돌아서야 한다는 말이다. - 이미 잘 알려진 사실대로 사람의 뇌는 정말 게으르다. 대책이 없을 정도다. 최대한 생각을 안 하려고 온갖 핑계를 대고 기회를 노린다. 자기 앞에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뇌는 당연 히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쪽을 택한다. 그러자니 낯선 것은 무조건 피한다. 낯선 것은 스트레스고 노동이다. 인식하고 배 열하고 평가하고, 더 나아가 그에 대해 새로운 의견을 피력해 야 한다.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반대로 익숙한 것은 정보의 처리 유창성 Processing fluency'을 높인다. 처리 유창성이 높아지면 우리는 행복해진다.
- 직장생활은 쓸데없는 것 같은 회의와 만남의 연속이다. 내용만 뜯어보면 사실 쓸데가 없다. 다들 자기 이야기만 할 뿐, 정보를 얻는 것도 지혜를 얻는 것도 아니다. 다들 제자리를 향 해 흩어지면서 투덜거린다. “이 무슨 시간 낭비야!" 하지만 단순 노출 효과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든 만남이 유 익하다는 사실도 알 것이다. 날로 친밀도를 높여가다 보면, 언 젠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만남의 시간이 톡톡히 제값을 할 것이다. 당신을 위해 무언가 해줄 수 있는 사람일수록 개인적인 만 남을 자주 가지라. 상사가 "나하고 점심 같이 먹을 사람?" 하고 물어보면, 모니터 뒤로 몸을 숨기며 "선약이 있어서......” 하고 웅얼거릴 것이 아니라 번쩍 손을 들라.
- 중요한 인물, 중요한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인물에게는 무조건 자꾸 얼굴을 비춰야 한다. 단순 노출 효과는 당신이 그 사람을 계획적으로 만났는지 우연히 만났는지와 전혀 관 련이 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스스로를 노출시켰다는 사실 이다. 타깃으로 삼은 인물이 지금 당신을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 또 당신의 노출 노력을 그가 의식하지 못해도 괜찮다. 앞의 실 험 결과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듯이 당신은 누군가를 알기 전 부터 그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 승진이 걸렸을 때 당신 상 사의 상사는 반드시 당신에게 유리한 말을 할 것이다. 당신이 시도 때도 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복도에서 그와 마주치며 인 사를 했다면 말이다. 당신이 그 상사를 공식적으로 알기 전부 터 이미 그의 호감을 살 수 있다. - 상호적 애착은 서로 별로 닮지 않은 사람, 강한 거부감을 느낄 만한 사람 사이에서도 통한다. 그러니까 상호적 애착이 유 사성의 원칙을 능가하는 셈이다. 그 정도로 사랑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강하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 다른 모든 원칙을 다 내팽개칠 정도로. 이렇게 잘 통하는 원칙에도 예외는 있다. 상호적 애착도 자 존감이 약한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자아상 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그런 자아상을 입증하는 사람을 더 좋 아한다. 즉, 자신을 칭찬하고 좋아하는 사람보다 비판하는 사 람을 더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가 자존감이 떨어지 는 사람이거든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
- 상대를 관찰하고 욕망을 읽어내라 그렇다면 당신이 타깃으로 삼은 상대의 동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솔직히 이를 항상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모두가 '나에게는 뭐가 중요 하지?' 고민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하물며 '내 상대에게는 뭐 가 중요하지?' 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상대의 동기를 파악하기 위한 첫걸음은 앞서 소개한 인간 욕망의 리스트를 자주 살피고, 사람마다 욕망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를 관찰해야 한다.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어떤 이유를 대는가? *상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상대가 언제 기분이 좋은가?
- 도우미를 불러 청소와 다림질을 시키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그 비용은 사람 수에 따라 나누기로 하고 말이다. 동거인들은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 좋은 아이디어네. 우리는 주말에 쉴 수 있잖아. 2. 그러지. 도우미를 쓰면 돈 많은 옆집 사람들도 우리를 깔보지 못할 거야. 3. 싫어, 너무 비싸. 4. 그건 아니라고 봐. 주말에 시간도 많으면서 왜 사람을 써. 5. 싫어, 모르는 사람 집에 들이는 거 안 내켜. 6. 싫어, 청소는 내 손으로 할 거야. 이런 간단한 대답만 봐도 그 사람의 인생 동기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반응 각각에서 서로 다른 욕망을 읽어낼 수 있다. 1. 휴식 2. 인정, 경쟁 3. (물질적 성장 4. 공정 5. 안전 6. 독립성 - 모든 사람이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 이유, 혹은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럴 때는 관찰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실제로 상대의 걸음걸음에서 그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상대는 사람이 많은 파티장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사람이 많으면 말이 많아지는가? 아니면, 구석에 가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가? 모두가 잘 먹고 있는지 끊 임없이 챙기는가? 그런 행동들은 인정과 휴식, 공정과 조화를 바라는 욕망의 표현일 수 있다. -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족과 함께? 요트를 타는가? 축구장에 가는가? 소파에 누워 있는가? 박물관에 가는가? 환경단체 행사에 참여하는가? 이 모두는 안전, 호기심, 경쟁, 휴식, 창의성, 공정을 향한 욕망을 암시한다. 상대의 사무실을 슬쩍 둘러보는 것도 그의 욕망을 알아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가족의 사진이 책상에 놓여 있는가?(안전과 소속감) 상장이나 졸업증명서가 걸려 있는가? (인정) 직접 찍은 사진을 벽에 붙여놓았는가? (창의성, 인정) 방이 깨끗한가?(질서) 초콜릿이 굴러다니는가?(식욕) 전화를 직접 받는가, 아니면 비서를 통해서만 받는가? (권력) 상대의 얼굴도 그의 동기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어떤 상황에서 환한 표정이 되는가? 어떤 상황에서 기뻐하고 어떤 상황에서 우울하거나 불행한 표정이 되는가?
- '입을 열고 상대에게 내 의견을 당당히 말하는 것'이 미덕으로 통하는 세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항상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문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은가? 아니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고 싶은가? 이것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 른 목표이며, 그 달성에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행동방식이 요구된다. 상대에게 내 의견을 말하지 않고 상대를 반박하거나 비판 하지 않으려면 한 가지가 필요하다. 즉,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 은 자신의 욕망을 뒷전으로 밀어놓아야 한다. 내가 옳고 싶은 욕망을 눌러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내 의견이 있는데 입을 다물고 있기란 죽기보다 힘들다. 상대방 못지않게 나의 욕망도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목표를 달성하는 길은 오직 자신의 에고ego를 무시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비판과 지적 대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 까? 상대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인정을 선사하는 것이다. 잘 난 척 떠들지 말고 상대에게 당신의 멋진 아이디어가 다 그의 덕분이며 그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어렵지 않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런저런 방향등 몇 가지 의도적인 질문만으로 이미 상대는 당신이 원 하는 쪽으로 오게 되어 있다. 그것이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믿 으면 상대는 그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예상치 못 했던 힘을 발휘할 것이다. 남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 아예 관심도 두지 않을 텐데 말이다. 아니면, 모자란 척하면서 처음부터 상대에게 도움을 청하 라. 이런 방법을 두고 '소크라테스 방식 Socrates Method'이라고 부 른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처럼 상대에게 계속적으로 교묘한 질문을 던져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마치 상대의 아이디어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상대를 비판하지 말고 칭찬하라.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열과 성을 다해 칭찬하라. 너무 지나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 아도 된다. 모든 인간은 칭찬에 목마른 사슴이다. 상대에 대한 칭찬은 내게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누군가 당신에 게 지나가는 투로 "오늘 왜 그렇게 예뻐요?"라든가 "정말 잘했 네요"라고 말한다면 그날 당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것이 다. 그의 소망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모든 인간이 다 그렇다.
- 상대를 중요한 사람으로 대접하면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 다. 상대가 스스로 생각하는 정도,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중요 한 사람으로 대접해주면 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실제보다 자신을 더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두고 '우월함 망상Illusion of superiority' 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자신을 평균 이상으로 능력이 있고 중요하며 매력적이라고 평가한다. 모두가 개리슨 케일러 Garrison Keillor의 소설에 나오는 허구의 도시 '워비곤 호수'에 산다고 착각한다.
- 인간은 타인의 제안이나 부탁을 들어주는 것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면 자신의 자유와 통제권을 잃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물리치는 데 95퍼센트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꾀가 하나 있다. 상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며칠 동안만 시험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결정은 그다음 에 하세요. 마음에 안 드시면 안 하시면 됩니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한정된 기간 동안 한번 시험해보라는 제안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저항을 하지 않는다.
- 뇌는 생각과 행동 역시 평화로운 합일점을 찾기를 원한다. 행동과 태도가 서로 맞지 않으면 참지 못한다. 어떻게 하든지 그 둘을 일치시켜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행동을 태도에 맞출 수 있다. 예를 들어, 환경을 생각하여 자가용을 타지 않아야 된다고 확신한다면 자가용을 팔아버리는 것이다. 그럼 태도와 행동이 일치될 수 있다. 뇌는 만족할 것이고 잠도 잘 올 것이다. 둘째, 반대로 태도를 행동에 맞출 수 있다. 자동차를 팔지 않 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 대신 나는 비행기를 타지 않잖아. 비행기는 차보다 훨씬 공해가 심해. 자가용이 없으면 출근도 못 하니까 없앨 수는 없지.” 이런 자기변명으로 다시 뇌는 평온을 되찾는다. 이 두 가지 방법을 놓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문제가 미래의 행동일 때뿐이다. 과거의 어떤 행동이 나의 머릿속에 고통스러운 인지부조화를 유발했을 경우에는 그 행동을 물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 조화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 두 번째 방법뿐이다. 태도를 바꾸어 행동에 맞추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 셰익스피어 shakespeare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각자 주인공으로서 인생이라는 무대에 올라 자기가 맡은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뽐내고 안달한다. 하지만 특등석에서 지켜보던 죽음의 신은 언제든 그 무대 에 오를 수 있고, 그날이 오면 먼저 떠난 수십억 명이 그랬듯 나도 관 객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맥베스의 대사처럼 나는 "영영 사라져버린다." -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학파가 가장 먼저 말했 듯,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필연성을 중립적으로 수용해야 하며, 나만 은 다르길 원치 않아야 한다. 지금은 과학의 진보 덕분에 잘 알려졌듯 이, 인간은 오래된 돌덩이 위 희박한 대기 아래서 시간당 10만km 속 도로 우주를 질주하다 언젠가 생명의 별이 지면 죽음을 마주하는 어설픈 유인원일 따름이다. - 세계 여러 지역은 이제 '버리기 사회 throwaway society'가 됐다. 선진국에서는 TV 하나를 10년 이상 쓰지 않는다. 방마 다 설치된 스크린을 철마다 시장에 나오는 더 번지르르하고 얇고 큰 모델로 교체한다. 삶의 많은 영역에서 오래 써야 할 상품도 소모품 취 급을 받고 있다. 한 흥미로운 실험 연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소비의 열기는 무의식적 죽음의 공포와 연결되어 있다. 28 미묘하고 숨겨진 방식으로 죽음을 떠올리게 하면, 물건을 사고 싶은 욕구가 극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놀랄 일은 아니다. 돈을 벌고 쓰는 것이 현대 문화에서 곧 성공의 상징이다. 결국 항문이 달린 신은 위대한 존 재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웃보다 앞서고 싶은 욕망, 왕이나 여왕으 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소비지상주의를 자극한다. 구매는 승리를 의미하니까. - 인간은 죽음과 어둠을 두려워하는 한, 자기중심성을 버리지 못하는 한, 신을 창조하고 그들을 기쁘게 하는 의식을 발명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가 될지 알 수 없다.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1949~2011))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일신교인 유대교는 4,000년 전 중동에서 시작됐다. 오늘날 유대인은 약 1,500만 명으로 파악되는데, 유대인 3분의 1을 사망에 이르게 했던 홀로코스트가 아니었다면 이 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유대교의 신성한 경전 모음을 '타나크Tanakh' 라고 하며, 여기에는 (기독교인에게는 '구약'으로 알려진) 히브리어 성경의 첫 5권인 토라Toran가 포함된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삶의 유한성에 대 한 해답은 신이다. 성경은 야훼가 "죽음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혼의 불멸성이라는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당시 죽음 후의 삶에 대한 지배적인 관점(고대 그리스와 로마부터 이어진)은 도 덕적으로 살았든 부패한 삶을 살았든, 모든 영혼이 같은 목적지로 향 한다는 것이었다. 내세 유대교의 '쉐she'ol)에서 살인자와 범죄자의 영 혼은 독실한 신자, 귀족, 여성과 나란히 어울릴 수 있었다. 박해받던 유대인들은 토라의 일부 구절에 반영된 이러한 신념에 의문을 품었 다.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수의 종교에 굴 복하여 믿음을 버린 사람도 있는데, 정의의 하느님이 어떻게 이들에 게 같은 내세를 허락한단 말인가? 제2성전 시대(예루살렘에 제2성전이 존재했던 기원전 516년에서 서기 70년 까지의 시기 -역주) 이후로 히브리어 경전에는 개념적 전환이 일어났다. 내세에 모든 영혼이 공존한다는 개념에서 초점이 바뀌어 정의로운 자/사악한 자의 분리와 부활이 강조됐다. 히브리어 경전에 다음과 같 은 내용이 있다. "지구의 먼지에 잠든 자들이 깨어나 어떤 이는 영원 한 삶을 누리고 어떤 이는 수치 속에 영원한 경멸을 받을 것이다. 또 한 현명한 자는 저 높은 하늘과 같이 빛날 것이며, 많은 사람을 올바 른 방향으로 이끈 자는 영원한 별처럼 반짝일 것이다."28 유대교 '부활'의 정확한 본질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영혼의 불 멸성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의견이 일치하지만, 일부 유대교 학자는 죽은 자가 눈에 보이는 물리적 형태로 부활한다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12세기에 활동했던 영향력 있는 유대교 철학자 마이 모니데스Maimonides는 부활에 대한 믿음은 유대교 신앙의 13계명 중 하 나일 정도로 유대교의 핵심이었다고 확신한다. 유명한 신학자였던 그는 유대교가 설명하는 내세관의 저의가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다수가 신념을 지키고 계율을 따르게 하려면 보상을 바라도 된다고 말해줘야 했다." 유대인들이 형벌과 학대의 역사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을 보 면 믿음의 대가로 주어지는 영생은 귀중한 동기부여였던 듯하다. 기 원전 1세기에 글을 썼던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로마인의 고문을 견디는 유대인이 "고통 속에서도 미소 짓고 고문하는 자를 옅게 조소했으며, 결국 돌려받을 것을 굳게 믿은 채 기쁘게 영혼을 내려놓았다"고 칭송했다. 수백 년이 지나도 유대교의 믿음과 관습에는 여전히 영생이 단단히 엮여 있다. - 이론적으로 예측한 바와 같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 사회의 가장 합리적인 구성원조차 문화적 가치에 도전하는 사람을 최대한 벌하려 한다. 판사들에게도 일반 대중에게도, 범죄 행위는 잘못된 것이고 벌을 받아야 한다. 문화적 가치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행동 규범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이고 공정한 의사결정이 직무인 판사도 그렇게 쉽게 죽음 의 힘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을 까? 우리 누구든 죽음을 상기하면 문화에 위협이 되는 사람을 공격할 것이다. - 불편한 결론이지만, 다른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떠올린 인간은 나의 문화적 신념에 도전 하는 사람을 해치려고 하며 내가 믿는 가치 체계와 문화를 완강히 밀어붙인다. 정치적 관점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 학생을 고의로 해칠 수 있다면, 낯선 사람에게는 훨씬 더한 짓도 할 수 있지 않을까? - 이란 실험에서 얻은 결과와 비슷하게, 자신의 죽음을 떠올린 미국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극단적인 군사 행동에 찬성했다. 죽음 현저성에 노출된 집단은 평균적으로 타국에 대한 선제공격, 핵 무기 및 화학무기 사용, 애국자법을 지지하는 정도가 높았다. 흥미롭 게도 참가자들의 정치적 지향은 중요한 변수였다. 정치 성향이 진보 적이라면 죽음 현저성 노출 여부와 관계없이 군사 행동을 지지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군사적 개입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진보 적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 반면 죽음을 떠올린 보수 성향 참가자들은 더 공격적인 문화적 세계관을 옹호했는데, 실험실의 통제된 환경에서 그 방법은 국가를 위협하는 대상을 처단하고 국가를 보호하는 행위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는 것뿐이다. 이번에도 죽음을 상기한 사람이 문화적 세계관에 집착하게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자유주의자들은 관용을, 보수주의자들은 공격을 지지했다. 또한 연구진은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는데, 테러리즘에 대해 생각한 (9.11 테러를 떠올린) 집단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한 사람들과 동일하게 행동했다. 사건으로부터 5 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9.11 테러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강력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했다. -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고 죽은 뒤에도 지속될 문화적 신념을 강하게 지지하여 상징적 불멸성을 얻는 것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 한 강력한 해독제다. 그러나 문화는 변하기 쉬우며, 오늘날 우리 문화 가 떠받드는 가치가 100년 후에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누가 문 화적 중요성과 상징적 불멸성을 얻는가의 기준은 계속 변화한다. 불 과 200년 전 미국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성공한 노예 상인이 명성을 떨쳤다. 문화적 세계관이 달라진 오늘날, 그런 사람들의 동상은 해체 되고 있다. 문화적 관습과 신념의 영구성을 확신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념 체계의 지속에 기대지 않고 불멸성을 얻는 더 직접 적인 방법이 있을까? 내가 한때 살아 숨 쉬었다는 영구적 증거로 이 세계에 실재하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불멸성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 출간되지 않은 히틀러의 두 번째 책에 는 죽음에 사로잡혀 있다는 직접적인 언급이 나온다. "평범한 자는 죽 음을 가장 두려워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비범한 자는 죽음에 대해 끈질기게 생각하지만, 그에 대한 두려움은 가장 적다." 히틀러는 천년의 제국을 세우고 이전에 존재한 어떤 문명과도 당 당히 비견할 만한 세계 수도를 건설하는 일에 몰두하며 죽음의 공포 를 누그러뜨렸다. 모든 이의 머리 위에 드리워질 지붕과 지구상의 어 떤 유사 건축물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개선문을 꿈꿨다. 그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유산을 남기길 원했다. 다행히도 게르마니아는 결국 꿈으로만 남았다. 히틀러처럼 거대한 건축물을 통해 불멸성을 얻고자 했던 사람들 은 대부분 평생을 바쳐 꿈꾼 바를 결국 이루지 못했다. 파라오 쿠푸처 럼 이를 성취한 일부의 경우를 보아도 여기에 쏟아부은 수많은 사람 의 노력을 생각하면 보상은 어쩐지 공허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영원 히 숭배되는 건물을 지으려 애쓰는 것보다 쉽게 실존의 문제를 해결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불멸의 건축물은 아무리 창조적인 사람이라 해도 실현하기 너무 힘든 목표다. 이보다 훨씬 간단한 형태의 치료는 창작물 자체에서 죽음과 인간의 필멸성을 다루는 것이다. 이를 전략으로 삼는다면 오래도록 전해질 문학 작품이 가장 확실하다. - 유령처럼 한때 사람이었던 불멸의 존재에 대한 집착에는 분명 더 심오한 동기가 있다. 유령을 믿는 미국인은 절반이나 되지만, 늑대인간 등 다른 신화 속 존재를 믿는 사람은 훨씬 적은 데 는 이유가 있다. 순수하게 무서움을 즐기는 것이라면 늑대인간의 이 야기도 뱀파이어나 유령 등 한때 인간이었던 불멸의 존재 이야기만 큼 많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죽어서 묘지로 간 이후에도 살 수 있 다고 믿고 싶은 내적 욕구 때문에 유령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 인간 은 스스로 키운 내면의 감각적 의식과 연결된 '자아'를 놓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했던 사람을 놓아주지 못한다.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 하고, 그가 죽은 뒤에도 존재하길 바라는 압도적인 열망을 느낀다. 윌리엄 리스William Rees는 이 부분을 연구했다. 그는 의사 생활을 했던 웨일스 지방의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놀 랍게도 사별한 사람 중 60%는 죽은 배우자를 영혼이나 유령 등의 형 태로 '만났다'고 믿었다.36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심지어 접촉했 다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히도 이들은 이러한 만남을 긍정적으로 묘 사했다. 인간에게는 죽음을 부정하고 나 자신과 사랑했던 모든 것이 지속되길 바라는 간절한 욕구가 있어,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가까이에서 나를 자애롭게 내려다보며 관심을 쏟길 바란다 - 삶을 사랑과 죽음의 경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물론 언제나 죽음이 이긴다. 그러나 사랑은 그 승리를 공허하게 만든다. 그것이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다. (로버트 웹(Robert Webb, 1972~)) -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명백하지만, 당시에는 혁명이었다. 심리학자 들은 이전 수십 년간 부모의 사랑이 불필요할 뿐 아니라 해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저명한 행동 심리학자 존 왓슨John Watson은 1928년 엄청나게 팔린 육아 지침서에서 이렇게 조언했다. "아이를 토닥여 주 고 싶어질 때면 엄마의 사랑이 위험한 것임을 기억하라. 너무 많은 입 맞춤을 받은 아이의 인생에는 심각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할로우 의 원숭이들은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넘치는 사랑이 아니라 모자란 사랑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불편하기 그지없는 히말라야 원숭이 실험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애착일 수 있다는 것이다. - 가완디는 오늘날 우리가 "삶이 기울어가는 날들을 정신을 흐리고 신체를 무너뜨리는 가망 없는 치료에 허비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병원에서 죽음과 전투를 치른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신과 싸 워 이기려고 무슨 짓이든 한다. 노인을 집과 가족에게서 분리해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낯선 장소로 보내야 한다 해도, 방문자 수가 제한된 격리 병원에 가둬야 한다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부자연스럽고 잘못됐다. 여러 국가, 문화, 시대에 걸쳐 인간은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집단에서 살고 죽었다. 아직 그 전통을 유지하는 문화권도 있지만 서양에서는 드문 일이 되었다. 죽어가는 환자는 병실에 틀어박혀 홀로 사신을 만난다. - 자존감의 기준은 외부와 단절된 채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 하다. 문화가 그 기준을 만들어낸다. 우리 문화가 명품 옷과 고급 승 용차에 성공의 이미지를 포장하여 판다면 우리는 사회의 소중한 구 성원이라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물질을 좇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가 성공은 최고의 사냥꾼이 되는 것이라고,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는 것 이라고, 또는 최고의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선언하면 또 그것을 열렬히 추구할 것이다. 자존감과 문화적 세계관은 같은 동전의 양면 이다. - 자존감이 높으면 내가 죽는다는 사실의 일반적 영향에 면역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니다. 공포 관리 이론이 말하듯 실제로 자존감이 존재론적 공포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했다면, 죽음을 떠올렸을 때 자존감에 대한 욕구가 강해져야 한다. 즉, 내가 썩어 없어지는 존재임을 상기한 후에는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만한 일에 관심이 커져야 한다. 연구에서 나타난 결과는 이러한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 정부에서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금연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죽음을 직접 논하는 시각 적인 건강 경고는 효과가 없고, 최악의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뿐 이다. 수십 년의 공포 관리 이론 연구는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을 상기한 인간은 자존감을 높이는 데 집착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죽는다 는 사실을 떠올리면 인간은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며 상징 적 불멸성에 매달린다. 흡연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직후에 담배를 집어 들기도 하고, 선탠의 위험성을 알면서 해변으로 향하기도 한다. 인간은 말 그대로 죽도록 자존감을 높이려 한다. - 문화는 무엇보다도 시신을 어떻게 흙으로 돌려보낼지에 대한 결정이다. (모코코마 마코노아나(Mokokoma Mokhonoana, 1985~), <비관주의의 기록: 우습지만 심오한 격언 모음(P for Pessimism: A collection of funny yet profound aphorisms)》) - 다양한 장례 의식의 핵심은 비슷하다. 어떤 공동체는 죽은 자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시신을 먹고, 또 다 른 공동체는 정확히 같은 이유로 유골을 파헤친다. 어떤 문화권에서 는 내세에 도달하는 것을 돕기 위해 망자를 미라로 만들고, 다른 문화 권에서는 같은 목적으로 불에 태운다. 장례 관습의 세부 사항은 시대, 종교, 정치, 지리적 위치에 따라 매우 다르지만, 그 표면 아래에는 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많은 공통점이 있다. 가장 흥미로운 장례 관습들 을 돌아보면 하나의 선명한 그림이 완성된다. 죽음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전 세계 인류의 투쟁이다. - 순전히 더 나은 내세를 얻기 위한 복잡한 장례 의식의 사례는 즉 신불 말고도 또 있다. 조장sky burial이라는 불교 의식의 목적도 비슷하 다. 티베트 전역에서 수행되는 조장은 산꼭대기에 시체를 두어 독수 리 등의 동물에 뜯어 먹히게 하는 것이다. 환생을 믿는 불교는 유대교 와 기독교 전통에 비해 시신을 훨씬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2장 참조). 조장은 너그럽게 자신의 썩어가는 몸뚱이를 음식으로 내놓음으로써 좋은 카르마를 쌓으려는 최후의 노력이다. 마침 그날 새들이 배가 고 프지 않다면 틀림없이 하찮은 존재로 환생할 불길한 징조로 여겨진다. 힌두교, 불교,자이나교는 화장이 물리적 형태에서 영혼을 해방하여 다음 생으로 보내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식이라고 본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 역시 매장도 했지만 화장으로 시신을 처리하는 사례가 가장 흔했다. 이들 고대 사회에서는 시체의 몸이나 입 안에 동전을 넣 었는데, 이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를 가르는 스틱스강을 건너도록 망자를 안내하는 신화 속 뱃사공 카론Charon에게 주는 편도 요금이었 다. 이 요금을 내지 못한 영혼은 사후세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유럽에서 기독교가 세력을 늘리면서 화장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신체는 부활과 영생의 필수적인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시체의 중요 성이 높아지며 매장 비율이 높아졌고, 매장은 유럽의 표준 장례 방식 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죽은 뒤의 시체 보존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이 처음은 아니다. 기독교보다 수천 년 앞서 이집트인들은 최고의 상태로 시체를 보존하여 내세를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미라화는 완전한 보존을 추구하며 발명된 기술이었다. - 방부 처리의 실제적 이점이 없다면, 왜 이런 복잡한 단계를 거쳐 야만 할까?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일까? 간단히 말해서 내장에 구멍을 뚫고, 와이어로 살을 찔러 고정하고, 발암성 화학 물질을 주입하는 모 든 과정의 목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신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시신이 시신처럼 보이는 데 저항감이 심 한 나머지 이를 막으려고 1,000달러에 가까운 비용을 들인다. 18 박테 리아가 죽은 세포를 분해하고 심장이 혈액을 순환시키지 않아 얼굴 근육이 풀어지고 피부가 창백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는 시신에 독극물을 잔뜩 주입해서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어서 말끔하게 옷을 입히고 뺨과 입술을 화장품으로 붉게 칠한 다음 조문객 앞에 내보인다. 심지어 시신을 나무 관에 바로 눕히지 않고 고급 천과 부드러운 쿠션을 댄다. 화려한 장례 침 구는 부정의 마지막 시도다. 죽은 사람에게 벨벳으로 만든 시트와 쿠 션이 왜 필요하겠는가? 확실히 애도를 받는 사람보다는 애도하는 사 람을 위안하는 장치다.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트Jerry Seinfeld의 농담처럼 "우리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죽은 사람에게 베개를 준다는 것이 그 증거다. " 지난 세기 북미의 장례 절차를 지배했던 방부 처리는 죽음을 부정 하고 싶은 간절한 열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수용을 거부하고 아름다움을 택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망자의 자연스러운 외양을 받 아들이기보다는 시신에 구멍을 뚫고 물감을 칠하는 쪽을 선택한다. 이는 수천 년 전 배를 타고 내세로 간다고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의 관습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조금이라도 진보했다고 볼 수 있을까? - 말라가시 사람들은 왜 파마디하나의 전통을 이어갈까? 복수심에 불타는 망자를 달래기 위해서라고 한다. 파마디하나는 조상의 영혼 을 달래고 무덤에서 저주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었다. 조상을 무시하 는 것은 자신이나 자식의 죽음을 부르는 위험한 일이었다. 기억할 만 한 조상의 죽음을 기리는 것에는 다른 목적도 있다. 살아 있는 사람에 게 불멸의 느낌을 주는 것이다. 파마디하나 의식을 연구하는 인류학 자들은 이를 "타인의 대리를 통해" 불멸을 추구하는 기회라고 설명한 다. 소중한 고모할머니의 시신을 파내어 끌어안으면서 언젠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해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확신하는 것이다. 몇 년에 한 번은 누군가 나와 함께 춤추고 나를 소중히 안아주며, 무덤의 으스스한 어둠 속에서 내 뼈와 먼지가 나타났을 때 후손들이 기쁨의 노래를 부르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보다 개인적 수준에서는 이 미 죽은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되어 그들이 여전히 함께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이들은 시신을 꼭 끌어안고 빙빙 돌며 최근 소식을 귀 에 속삭이고 속세에서 일어난 사건을 말해준다. 수의를 갈면서 죽은 사람이 좋아하던 선물을 주기도 한다. 삼촌에게 담배 한 갑, 엄마에게 는 새 립스틱, 아이에게는 포장한 사탕. 몇 년마다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그렇게까지 끔찍하지는 않 을 것이다. 죽은 사람에게 가까이 가려는 마음이 너무 강렬하기에 바 스러지는 뼈가 한낱 먼지가 될 때까지 땅에서 파내어 품에 끌어안는 것이다. - 우리는 말라가시 부족이 아니지만 죽은 사람과 연결되고 싶은 충 동은 똑같이 경험한다. 전 세계 문화에는 죽은 자의 유해와 접촉하는 의식이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망자의 직계가족이 시신을 목욕 시키고 흰 면으로 만든 수의를 입힌다. 딸이 어머니를, 아들이 아버지 를 씻긴다. 일본의 코츠아게는 가족들이 화장한 잿더미에서 젓 가락으로 뼛조각을 줍는 의식이다. 재를 담기 전에 뼛조각을 하나하 나 조심스레 주워 작은 항아리에 담고, 이것을 따로 집에 간직한다. 애착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강력하고 보편적이다. 어떻게든 죽은 자 와 물리적으로 가까워지고 망자와의 유대를 유지하려는 사람은 많 다. 이러한 욕구는 언제 문제가 될까? 때로는 죽은 이모와 가끔 춤추 는 것보다 훨씬 이상한 일도 일어난다. - 애도의 슬픔을 절대 겪고 싶지 않다면 애착을 전혀 갖지 않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러면 행복도 누릴 수 없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 -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집에 두는 데는 정서적 이유도 있지만 현실적 이유도 있다. 토라자의 장례식은 인생에서 가 장 중요한 날이다. 중산층의 평범한 장례식에도 5,000명 정도가 참석 한다. 여기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장례식을 준비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 장례식에 필요한 선물과 제물로 바칠 동물을 구하려면 가족 들은 연봉의 최대 5배를 저축해야 한다. 토라자에서는 소를 잡고 매우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지 않으면 영혼이 사후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장례식을 준비하는 동안 시신은 다른 가족과 마찬가지로 보살핌을 받으며 집에 머무른다. 심지어 매장이 끝난 후에도 토라자 사람들은 말라비틀어진 시신 과 곧 다시 만난다. 몇 년마다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어 수의를 벗기고 돌보는 마아네네ma'nene (시신 씻기기 의식)라는 의식이 있다. 토라자 사람 들은 시신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대하는데, 죽었다고도 하지 않고 마 쿨라macula(아픈)'라고 표현한다. 가족들은 죽은 자에게 행동 하나하나 를 설명하고(“이제 겉옷을 벗겨 드릴게요. 새 코트를 샀거든요.") 묻혀 있는 동 안 일어난 일을 말해준다("당신 딸이 다음 달에 농부와 결혼해요."). 시신은 산사람처럼 세워 둔다. 시신을 돌보는 행위는 여러 형태로 이뤄진다. 해골의 이에 담배를 물리기도 하고, 햇빛이 강하면 텅 빈 눈구멍에 선 글라스를 씌우기도 하며 벌레 기피제를 뿌려주기도 한다. 이때 방문 한다면 그리워했던 시신의 부서져가는 어깨에 한 손을 두르고 사진 을 찍는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 1996년, 데니스 클라스Dennis Klass, 필리스 실버먼Phyllis Silverman, 스 티븐 닉먼steven Nickman은 지속되는 유대: 애도의 새로운 이해 Continuing Bonds: A new understanding of grief>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애도의 세계 를 뒤집어 놓았다. 저자들은 애도에 깔끔한 '단계'나 '순서'는 없으며, 살아가는 내내 형태를 바꿀 수는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지 속적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 소설가 앤 라모트 Anne Larnott Larnott의 표현을 빌려 설명한다. 그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을 잃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나쁜 소식은 이 상실을 절대 완전히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좋은 소식이다. 그 사람은 영영 다시 붙지 않을 나의 상처와 함께 영원히 살아간다. 물론 나도 회복한다. 이는 부러진 다리가 절대 완벽히 회복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날이 추워지면 다리가 다시 아프겠지만, 그 다리로도 춤추는 법을 배운다. 클라스, 실버먼, 닉먼은 프로이트의 관점과 정반대로 죽은 사람과 의 유대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 해 유대를 끊을 필요가 없을뿐더러, 지속적인 유대가 상실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상실 을 견딘다. 망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유품을 간직하기도 하고, 망자의 무덤이나 사진에 말을 걸기도 한다.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의 유대를 유지하는 행동이다. 이 이론은 서구에서 많은 사람을 눈뜨게 했는데, 다른 문화권에서는 오히려 평범한 이야기였다. 사실 아시아와 남미 문화에서는 산 자들에게서 죽은 사람의 존재가 사라진다고 보지 않 는다. 죽은 사람은 여전히 산 사람과 함께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소통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이런 문화권에서 죽은 자와의 유대 를 유지하는 기술은 매우 훌륭하다. -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에서는 죽은 사람과의 유대를 이어가는 문화적 전략이 없다시피 하다. 사진 액자나 개인적으로 중요한 물건을 놓고 죽은 가족을 추모하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문화에 깊이 배어들어 인구 절반이 행하는 의식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일본 에서는 죽은 남편의 존재를 느낀다고 답한 아내 비율이 90%였지만, 영국에서는 이 비율이 50%로 떨어졌다. 여성이 그런 증상을 호소했 을 때 어떻게 취급되는지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20세기 내내 이런 식의 애도는 병적이라고 치부됐다. 프로이트는 이들의 증세를 "희망 에 의한 환각적 정신병"이라고 말했다. 15 그러나 서구에서도 이후에 이뤄진 연구 결과, 죽은 사람과의 유대를 경험하는 사람이 슬픔을 더 잘 극복했다. 케이트 베넷Kate Bennett과 동료들은 2005년 수행한 연구 에서 남편을 잃은 영국 여성 92명을 인터뷰했다. 이 연구에서 참가 자둘 중 하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인사하거나 사진을 보며 말을 거는 식으로 죽은 배우자와 대화한다고 답했다. - 20세기 초중반에는 (운이 좋다면) 사진 한 묶음 정 도가 죽은 사람을 추억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은 트 위터, 페이스북, 레스토랑 추천, 책 리뷰, 스포티파이 시청 목록 등 디 지털에 남은 흔적으로 우리 이미지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가 온라인에서 계속된다는 사후의 디지털 라이프는 조금 위 안이 된다. 그러나 이 기술이 불멸성의 환상을 가져다준다 해도 노후 화의 그늘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이들 웹사이트는 시간 이 지나면서 망각의 묘지에 묻히거나 심지어 순식간에 흔적 없이 사 라질 수도 있다. 페이스북이 소셜미디어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이 전에 성공적이었던 베보Bebo나 마이스페이스Myspace 같은 웹사이트는 완전히 밀려났다. 굿리드Goodreads에 자랑스럽게 올린 책 리뷰는 버튼을 한 번 클릭하면 사이버 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2020 년 10월, 트위터에서 한 학자의 묘비 사진이 유명해졌다. 묘비에는 QR 코드가 새겨져 있어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죽은 사람의 출간물 과 인용 목록으로 이어졌다. 즐거움과 궁금증을 유발하는 창의적인 묘비였고 자기도 시도하고 싶다며 관심을 보이는 네티즌도 있었다. 그러나 QR 코드가 지금은 대유행이지만, 다른 형태의 기술이 나오 면 얼마나 빨리 대체될까? 그러면 묘비의 QR 코드는 쓸모없어질 것이다. 제대로 사용하면 기술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유대를 유지하는 한 가지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인간의 유한성 문제에 진정한 해결책을 제 공하는 것은 아니다. 유대가 계속된다는 개념은 유족들이 죽음에 대 처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자기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는 위안이 되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두려움이 극 심한 공포로 변해서 일상의 삶을 점점 더 침해하면 온갖 다른 문제의 가능성이 열린다 - 서서히 스며드는 정신질환은 치명적이다.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와 늙은이, 부자와 가난뱅이를 가리지 않고 놀라운 속도로 사람들을 쓰러뜨린다.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불러오고 목숨까지 앗아간다. 지난 몇 년간 필자들과 다른 심리학자들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죽음불안은 수많은 정신질환의 핵심이다. 이제는 환자가 죽음을 떠올렸 을 때 강박장애, 공황장애, 건강염려증, 공포증, 심지어 사회불안장애 같은 장애가 모두 심해진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우울증과 외상 후스 트레스장애PTSD도 죽음 현저성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연 구도 있다. 또한 죽음의 공포가 다양한 다른 정신질환의 심각성을 강 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정신 질환 치료에서 죽음의 공포가 직접 고려되는 일은 거의 없다. 치료사 들은 환자가 경험하는 특정한 표면적 공포를 극복하도록 돕는 데 집 중한다. 공황장애일 경우 심장마비의 공포를, 거미 공포증의 경우 거 미에게 물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해결하려 한다. 치료사들은 환자 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노력을 돕기보다 죽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시키려 한다. 최소한 그들이 걱정하는 방식으로는 죽지 않는다고 설명 한다. 통계 수치를 계속 보여주며 비행기 추락으로 죽을 확률이 얼마 나 낮은지, 손잡이를 잡았다가 HIV에 감염될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설명한다. 결국 환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죽게 되어 있다는 사실은 망 각하고서 말이다. 환자들도, 필자들도,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가장 흔히 사용되는 표준 정신질환 치료법에서는 심지어 그 주제를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환자들이 평생 새로운 정신 질환을 앓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정신건강의 위기가 찾아온 것도 놀랄 일은 아니지 않은가? - 이 모든 것이 암울하게 들린다고 해도 절망하지 말자. 내 존재와 일상적인 활동이 무의미하다는 인정은 진짜로 살아가는 삶을 향한 첫걸음이자 실존주의 여정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신이 죽었 으니 인간만의 의미를 만들 수 있다. 열정으로 삶에 뛰어들고, 나만의 목적을 가질 수 있다. 그럴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목적과 의 미에 관한 연구 데이터를 기억하는가? 연구에서 의미 수치에 높은 점 수를 준 참가자 중에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의미 있는 삶을 찾아 목적 있는 존재가 되었고, 이는 다른 어떤 요인(정신질환 여부, 독실한 정도, 성별, 나이 포함)보다도 자살 경향을 확실하게 막아주는 요소였다. 니체는 “이것이 가능하며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10 나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인간의 가장 큰 목표다. 신이 죽어야 개인 으로 살 수 있다. 신을 섬기면 자신을 잃는다. 나를 다른 모든 타인과 구별할 수 없어지고, 신의 군대에 징집된 군인 1이 되어 그들의 북소 리에 맞춰 행진할 뿐이다. 그러나 니체의 은유대로 신을 죽이면 나는 나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내 규칙에 따라 존재할 수 있다. 나보 다 중요한 것은 없다. 샌프란시스코 대학 철학자인 제라드 쿠페루스 Gerard Kuperus는 이렇게 깔끔히 요약했다. “무의미함은 고통을 초래하지 않는다. 신에게 바친 의미 있는 삶이 더 고통스럽다. 기쁨을 억압해서 만 얻어지는 (실재하지도 않는) 저 너머의 삶을 목표로 한 인생이기 때문 이다. 내세의 형태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환상을 넘어서야 고통에 서 해방되어 삶을 즐길 수 있다.” -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는 좋은 죽음을 막는 장벽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심각한 오해를 극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른 문화적 편견인종주의, 성차별주의, 호모포비아- 역시 최근에야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죽음도 진실의 순간을 맞을 때가 되었다. (케이틀린 도티(Caitlin Doughty, 1984~),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Smoke Gets in Your Eyes: And other lessons from the crematory)>>) - 삶을 연장하고자 너무 많이 고민하는 자에게 걱정 없는 인생은 없다. 생명을 유지하려는 불안을 모두 지움으로써 기쁨 가득한 삶을 살아라. (세네카(Seneca, 기원전 4~기원후 65), <도덕 서신(Epistles)>) - 에픽테토스는 이러한 접근을 잘 요약했다. “원하는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지 말고, 일어날 일이 일어날 것을 바라도록 하라. 그러면 삶이 잘 흘러갈 것이다." 영리한 접근이다. 통제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인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반대로 이 사실을 찬양하라는 제안이다. 먼저, 통제력이 없다면 모든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일어날 일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결과가 일어나는 대로 기꺼이 받아들이면 슬픔을 이길 수 있다. - 스토아학파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자주 되새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수의 스토아학자가 격동의 시기를 살았 고, 예측할 수 없는 황제들의 변덕을 마주하곤 했다. 세네카 역시 악명 높은 폭군 네로의 지도 교사이자 자문 학자였다. 네로는 10년간 그 를 섬긴 세네카가 반역을 꾀했다며(이 혐의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에게 자살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목격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긴 세월 스토아 철학을 연마한 세네카는 실제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듯하다. 결국 세네카는 동맥을 그어 피를 흘리며 용감하게 죽음 을 마주했다. 스토아학파가 죽음을 대비하라고 강조한 것은 단순히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언제든 삶을 빼앗길 수 있는 사람들의 필수적인 과업이었다. - 여러분이 집에 불이라도 난 듯 행동하길 바랍니다. 실제로 그러니까요.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2003~)) - 요약하자면, 죽음을 떠올리면 반짝이고 새로운 것을 찾는 욕구가 증가한다. 우리가 유한성에 대한 증오를 소유물의 산 밑에 묻으려 하기 때문이다. 톨킨Tolkien은 《실마릴리온The Silmarillion》에서 아주 적절한 표현을 했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는 그들 사이에서 점점 어둡게 깔렸고, ・・・ 살아남은 자들 은 점점 더 많은 물건과 부를 원하며 즐거움과 쾌락을 간절히 추구하게 되었 다. (pp. 328~329) - 당신이 모든 것을 잊을 때가 곧 올 것이요, 모두가 당신을 잊을 때가 곧 올 것이다. 늘 생각하라. 당신은 곧 아무도 아니게 되며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 <명상록(Meditations)>) - 지금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몸과 다섯 가지 감각을 갖고 있다. 바다에 뛰어들 수도, 산을 오를 수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도 있다. 전 세계의 음식을 냄새 맡고 맛볼 수 있고, 타인을 사랑하고 끌어안을 수 있고, 베토벤과 비욘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삶이 끝난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삶을 낭비하지 말라. 인간 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당신이 가진 매 순간을 즐기고, 죽음의 운명 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라. 죽음의 신은 어둠의 존재가 아니라, 당신에게 휴식을 허락하고 다른 존재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러 오는 것이다. 모두가 태양 아래에서 자신의 시간을 누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소설을 꼽자면 단연 삼국지가 1위로 꼽힐 것이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고, 열 번 이상 읽은 자와는 감히 경쟁하려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의 2세기 말에서 3세기 말을 시대배경으로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를 다룬 역사서 정사 삼국지는 진수가 지었고, 나관중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는 14세기에 지어졌다. 후리가 흔히 말하는 삼국지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일컫는다.
삼국지와 삼국지연의 이 둘은 이야기의 큰 줄기는 같지만 세세한 부분은 서로 다른 부분도 많다. 중국의 서기 184년 후한의 쇠퇴와 황건적의 난으로 인한 군웅할거 시대부터 사마염이 건국한 서진이 중국을 통일한 280년까지 있었던 역사를 다룬 책으로 이것의 소설판인 삼국지연의는 중국 4대 기서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사람이 많으며 21세기인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읽는 동아시아권을 대표하는 고전소설이다. 아마 영미문학권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미치는 영향과 동등하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지는 게임, 애니메이션, 책, 영화, 드라마, 만화, 연극 등 가능한 모든 매체로 수도 없이 쓰여질 정도로 유명하며, 삼국지에서 나온 지략과 전술 등은 이천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인용되고 회자되기도 한다.
이 책은 중국 닝보대학 특임교수이자 작가로 활동중인 심리학자 천위안이 지은 책이다. 저자는 현대 사회심리학 이론을 통해 역사속 인물이나 사건을 분석하는 '심리설사'의 창시자로 통한다.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 관우, 장비라고 알려져 있고, 그 중에서 촉한의 초대황제인 유비의 비중이 크다. 하지만 장비와 더불어 촉한 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운 관우를 빼놓고 삼국지를 이야기할 수 없다. 관우는 충성심과 의리, 당당한 성품으로 인해 동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수로 꼽히며, 중국의 각종 사서에서는 용맹한 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관우를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관우는 의리의 화신으로 중국 민담이나 민간전승, 전설에서 널리 이야기되고 있으며 나중에는 신격화되어 관제표가 세워지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중국인들이 숭배하는 사람 중 하나다.
저자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 관련된 에피소드만을 뽑아서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함께 그 속에 담긴 인물의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해 낸다. 이천년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나와 내 주변에서 현재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략 1000명 정도 되며, 워낙 분량 자체도 방대하여 책을 읽기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제갈량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뽑아내었고, 심리학적 관점으로 사건을 들여다보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삼국지를 읽지 않은 일반독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관우의 행동을 분석하고 관우의 의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일본의 정신과 의사이자 38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트위터 인플루언서인 토미가 지은 책이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 방송매체에 다수 출연하기도 했으며, '정신과 의사 토미 시리즈'는 일본에서 3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 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잡지나 방송에서 일반인들의 고민을 날카로운 말을 하는 언니같은 캐릭터로 냉정히 쳐낼 사람은 쳐내고, 고민하는 어린 양은 구하기 위해 활동 중이다.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특성상 한정된 시간에 많은 환자들을 만나야 한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제한된 상황에서 환자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한마디 조언'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한마디 조언을 환자에게 던질 수 있다면, 그 순간 환자의 마음이 풀리고 부드러워질 수 있다.
저자 스스로도 젊은 시절부터 많은 정신적 괴로움을 겪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동성파트너의 죽음으로 괴로워할 때 메모해둔 한마디 말들이 저자를 지켜주었다고 한다. 또 그 경험 속에서 많은 말들이 떠올랐고, 트위터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가 상담하면서 명쾌하게 고민을 해결해 주었던 멋진 말들을 네개의 챕터로 나누어 구성하고 있다. 각각의 주제는 '최고의 복수는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민은 나중에 우스갯소리가 될 것이다.', '무례한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멋진 일이다.' 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주제마다 세부적인 주제를 1페이지에 간결하게 다루고 있다.
인생에 고민은 따르기 마련이다. 아무리 해결한다고 해도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것이 고민이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인생은 달라질 수 있다. 책속의 목차를 보고 지금 나에게 해당하는 고민이 있다면 한마디 조언을 읽어보고 조금이나마 마음을 달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책속에 눈길이 가는 조언들 몇가지를 뽑아보았다.
사는 것은 등산과는 다릅니다. 거기에 산이 있어도 오르지 않아도 됩니다. 삶은 등산과는 다른 거에요. 등산에서는 안 해도 될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삶에선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면 됩니다. 꽃을 따거나, 나비를 쫓거나, 누워서 쉬거나, 김밥을 먹거나 할 수도 있어요. 삶은 즐겁게 살아도 된다는 거죠.
포기는 타협이 아닙니다. 포기한다는 선택지를 용기있게 선택했을 뿐이에요. 선택했다는 것은 전진하는 겁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으니 충분히 열심히 했어요.
누구에게나 고독한 시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지금은 고독이 친구라고 결론짓고, 혼자 끝내는 연습을 하면 됩니다. 고독을 친구로 삼는다면 제대로 도움이 될 때가 오고, 훗날 친구와의 시간에 더욱 충실해 집니다. 많이 울어되 괜찮아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평소부터 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죽음이 가까워지면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게 되고, 그냥 '잘 살았구나'라는 생각만 있으면 충분할 거에요. 모든 것은 '잘 살기'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죠.
이 책은 중국의 심리 칼럼니스트이자 베테랑 심리상담사 양스위엔이 지은 책으로 특히나 요즘 MBTI에서 이야기하는 I형 인간이 마음가면을 벗고 나답게 사는 법을 통해 자기치유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이 책은 외향성 고독, 내적 치유, 경계의식, 관계의 실체, 단단한 자아만들기 등 다섯개의 파트로 나누어 외향성 미소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데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저자는 자신이 오랜 기간 상담을 통해 해결했던 수많은 실제 사례들을 소개하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타인의 실제 사례에서 자신의 모습과 아픔을 엿볼 수 있고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을 보며 자신 역시 가면을 벗어던지고 행복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외향적인 사람들은 내향적인 사람들보다 타인들과 손쉽게 교류해 사회 전반에서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학교나 가정에서도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도전하라고 가르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일에 달려드는 직원들을 상사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많은 기회를 잡는다고 생각하기에, 내향적인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내향적인 성격을 실패의 주원인으로 여기기도 한다.
자신의 진짜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외향성을 흉내내기 시작히며 가짜 외향성이 생길 수 있다. 이 단어에는 부정적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사회적 역할을 하기 위해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다양한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향적이고 매사에 뛰어난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미소우울증을 의심할 수 있다. 미소우울증은 비전형성 우울증의 한 형태로, 이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유쾌하고 심지어 유머감각까지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행복하고 낙천적인 가면 뒤에는 낮은 자존감과 심한 경우 절망감으로 가득 차 있다. 친구들 앞에서는 무척이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척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늘 불안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우리가 외향적인 모습을 보여주거나 심지어 스스로 외향적인 척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의 내향성을 부정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의 기대 속에서 살면서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무시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외향성에 환호다더라도 우리는 침착하게 "내향성인 나도 좋아"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런 뒤 담대하게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누구나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어 외부세계와 더 깊이 관계를 맺고 더욱 의미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은 두려움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가 진정한 자신이 아님을 깨달을 때 비로소 내면의 진실한 갈망을 좇을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다.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함으르로써 막연한 두려움을 줄이고, 오히려 이 두려움을 자신의 갈망으로 충족시켜 진정한 자아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
진실한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배우자. 허세를 부려서는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없다. 결점과 불완점함이 있는 진실한 모습으로만 우리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진실함은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며, 오로지 그것만이 우리가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이다. 진정한 친밀한 관계는 완벽하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각자의 결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난 앞에서 침착하게 대처하는 사람은 모두 '보통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안에는 '나는 괜찮다'는 믿음이 있다. '나는 괜찮다'는 믿음은 '나는 완벽하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불완전한 자신도 포용한다는, 즉 '나에게 결함이 있어도 나는 괜찮다'는 자기 정체성이다. 이런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힘겨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침착하게 사는 사람은 좀처럼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다. 미래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고 인생은 무수한 현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매 순간에 전념할 수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바꿀 수 없는 일은 그냥 그렇게 두면 된다. 벌어진 일은 그냥 받아들이고 현재에 집중하라.
언젠가 사랑을 찾지 않고 그저 사랑한다면, 성공을 갈망하지 않고 그저 한다면, 공허한 성장을 추구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성품을 가꾸기 시작한다면, 그때 당신의 인생이 진정으로 시작될 것이다. (칼릴 지브란)
인생문제에 특효약 중 하나는 '하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만두자'이다. 자신의 증상에 맞게 약을 처방하면 모든 병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 내성과 내향은 엄연히 다른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이 둘의 의미가 혼재된 채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에 따라 대응 방식도 부적절하게 이뤄질 때가 많고요. 우선 '내성 - 외성'의 개념은 타고나기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어렵고 쉬운 정도를 뜻합니다. 반면 '내향 -외향'은 본인의 관심사가 내면(내 안의 세계)과 외부(실제 세계) 중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개념에 가깝죠. - 셀프 모니터링 성향이 높은 'HSMHigh Self-Monitoring'의 경우, 상 대적으로 나를 상황에 맞추려는 성향이기 때문에 마치 카멜 레온처럼 태도와 행동이 가변성을 띠게 됩니다. 반면 LSMLow Self-Monitoring'의 경우, 상황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내 신념과 중 심 가치를 지키려는 일관성을 추구해요. 앞의 사례에서 나는 전형적인 LSM으로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 "왜 이렇게 사회생활을 못해?"라는 평가를 들을 때도 있지만, 그만큼 일관 적이고 우직하며 솔직하다는 장점도 있죠. 또한 LSM이 파트 너일 경우, 그 일관성으로 인해 행동 하나하나가 굉장히 예측 하기 쉬워서 인간관계가 비교적 명확하고 단순명료한 패턴을 띠게 됩니다. 반면 HSM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 굉장히 적응적이며 기능 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융통성 있다”, “사회생활을 잘하네", "센 스 있다”는 평가를 주로 듣지만, “그 사람 잘 모르겠다", "솔직 하지 못하다”, “가식적인 것 같다"와 같은 부정적인 평가와도 항상 맞닥뜨리게 됩니다. 파트너로서는 융통성 있다는 측면 에서 긍정적일 때도 많지만, 예측이 힘들고 가변적이기 때문 에 관계 패턴이 상대적으로 불규칙하고 복잡성을 띠게 돼요. 이를 수학적으로 풀이해보자면, LSM의 경우 그 사람의 행동 은 '성격'이라는 변수 한 가지의 일차방정식이고, HSM의 경우 '성격'과 '상황'이라는 변수 두 가지의 이차방정식인 셈이죠. - 내향적인 사람들이 HSM일 때, 그리고 세련된 사회적 기술 을 갖추고 있을 때,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외향적인 것처럼 보 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감정 노동에 가까운 행위(내원 래 성격을 누른 채 환경에 나를 맞추려는 노력)기 때문에 그 대가로 만만찮은 정신적, 육체적 소모가 뒤따르게 됩니다. 따라서 적 절한 휴식을 통해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시켜줘야 하죠. HSM 의 경우 본인의 진짜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나에게 맞는 휴식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비효율적인 여가를 보낼 가능 성이 큽니다. 특히 내향과 외향은 에너지의 충·방전 방식이 정반대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내향인들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에너지가 방전되며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반면 외향인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어울릴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에너지가 방전되는 시스템이죠. - 정리해봅시다. LSM들은 자신의 캐릭터에 본인의 성격이 강하게 반영된 사람들입니다. 반면 HSM들은 상황에 따라 색 채가 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사람들로 자신의 성격을 제대로 인지하기가 힘들어요. 앞서 언급했듯 사회성이 뛰어난 내향 형 HSM들은 상황별로 세련된 대처를 해나가는 모습이 언뜻 외향적으로 보일 수 있기에, 타인들도 그렇고 본인 또한 자 신의 성격을 외향인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반면 외향적인 HSM들이 상황적 압박으로 인해 굳이 내향적으로 보여야 할 경우는 딱히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 에 단독 활동이 바람직하다고 권장되는 사례들이 별로 없으 니까요. 따라서 외향형 HSM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내향인 으로 오해받을 일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내 가 내향인인지 외향인인지 이 애매한 경우에는 내향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 HSP의 특징 1. 세계 인구 6명 중에 1명 꼴로 HSP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2. 예민함이 내향인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HSP 중 '외향인 : 내향인'의 비율= 3:7) 3. 예민함은 성격장애(X)가 아니라 그냥 성격(o)입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가 올 수도 있습니다. 4. 예민함은 타고납니다. 뇌 구조, 신경계부터가 일반인들과 다르게 엮여있습니다. (예: 과민증Hypersensitivity) HSP는 일종의 성능 좋은 안테나라고 보면 됩니다. 감지 기능이 굉장히 뛰어나죠. 그런데 굳이 감지할 필요가 없는 것들, 나에게 안 좋은 것들까지 전부 다 감지된다면 어떨까요? 뛰어 난 감지 기능을 지니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좋은 것들만 추려 서 수신하는 필터 기능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HSP 예요. 만약 갑자기 타인의 속마음이 보인다면 분명 어느 순간 까지는 좋을 겁니다. 활용도도 높겠죠. 그런데 자꾸 봐서는 안 될 것들, 보기 싫은 것들까지 보게 됩니다. 계속되는 자극의 쓰나미에 마음은 상처를 입고 점점 더 피곤해질 거예요. - 예민함의 장단점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해볼게요. 앞서 언 급한 HSP의 성능 좋은 안테나를 심리학에서는 '사회심리적 기술social psychological skill'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사회적 환경의 흐름을 잘 읽어낼 줄 아는 심리적 기술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 데, 쉽게 말해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대한 통찰력이 있다는 거예요. 예민한 감각 덕분에 다양한 정보들이 넘쳐날 정도로 수신되므로, 이러한 통찰력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 정이라고 볼 수 있겠죠. 다만 앞서 언급했듯 필터 기능의 부재 로 부정적인 정보들까지 안테나에 걸린다는 것이 골칫거리인 데, 이 문제는 특히 인간관계에서 HSP에게 심각한 부담 요소 로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모르고 넘어갈 일도 굳이 캐치하면서 신경 써야 할 일들과 상처받을 일들이 부지 기수로 늘어나기 때문이죠. - 예민한 사람들의 양면성, 즉 '좋은 센스'와 '너무 센시티브 함'의 경계는 결국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돼요. 나 와 잘 맞는 사람과 함께라면 나의 센스가 그 사람에게 세심한 배려가 될 수 있고,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라면 나의 센스는 상대의 단점들과 부정적인 정보들을 수집하는 데만 주로 사용되겠죠. 내가 센스 좋은 사람과 만나고 있다? →나랑 예민한 그 사람이랑 아주 잘 맞는다. 내가 너무 센서티브한 사람과 만나고 있다? →나랑 예민한 그 사람은 너무 맞지 않는다. 예민한 사람이 센스 넘치는 사람이 되느냐, 너무 센시티브한 사람이 되느냐는 내가 만나는 사람과 나와의 합이 결정하게 되므로, 예민한 사람일수록 사람을 잘 만나야 하고 신중하게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지만 내가 누구와 인연을 맺게 될지 는 아무도 모르는 게 현실이죠. 인생 참 어렵습니다. 그렇죠? -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사람에겐 정해진 양의 정신력(자기 조절, 자기 통제)이 있다”라고 설 명합니다. 근력이나 체력처럼 쓰면 소모되고 휴식을 통해 충전해야 하는 시스템인 거죠. 내향인은 이 정신력을 주로 내면 활동에 투자하는 사람입니다. 뭐든지 많이 하고 자주 하는 것 들은 능숙해지듯이 내향인은 내면의 활동은 수월하게 하지 만, 외부 활동을 할 때는 그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훨씬 더 힘들고 기가 빨리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외향인은 그 반대 겠죠. 에너지를 주로 외부 활동에 쏟기 때문에, 내면의 세계에 귀 기울일 정신력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내향인들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외향인들은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해요. - 내향인은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아주길 원한다. 내향인은 말보다 텍스트를 선호하며 먼저 생각하고 나중에 행동하는 유형의 사람들입니다. 즉, '로우 리스크low risk'를 선 호한다는 거죠. 이건 연애에서 굉장히 안전한 방식일 수 있는 데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내향인들의 패턴은 주로 다 음과 같습니다. 1. 상대에게 좋아하고 있다는 힌트와 암시를 끊임없이 준다. 2. 상대방의 피드백을 기다린다. 3. 피드백이 긍정적이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하지 만 피드백이 없거나 부정적일 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한다. - 쉽게 말해서 미끼를 던지는 거예요. 그걸 상대방이 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죠. 만약 안 물면 어떻게 될까요? 힌트 만 계속 던지면서 전전긍긍하거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한 후에 조용히 마음을 접습니다. 내향인들은 웬만해선 직설적 으로 표현하지 않아요. 이 경우 리스크가 적다는 건 장점이지 만, "Low risk is low return”이란 명제에 따라 내향인들은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지 않는 한 누군가를 만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 내향인은 혼자 생각하고 홀로 결론 내린다.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의 장단점이나 이 연애의 좋은 점, 나쁜 점 등에 대해 생각합니다. 내향인도 마찬가지인데요. 문제는 이 내용을 상대방과 공유하지 않고 혼자서만 생각한 다는 거예요. 내향인들이 생각이 많은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 습니다. 생각한 걸 밖으로 꺼내지 않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불만이 있다면 이를 꺼내놓고 상대와 쌍방향으로 소통해야 하는데, 내향인의 경우 혼자 고민하고 혼자 정리해버립니다. 머릿속에서 일방적으로 모든 게 끝나버리는 거죠. - 화자가 감정적이면 감정적일수록 청자는 감 정 쓰레기통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바꿔 말하 면 누군가에게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을 때, 내 감정을 컨트 롤하며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감정의 팬데믹 상황은 절 대로 벌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감정적이라는 것은 편도체 의 기능이 굉장히 활성화된 상태를 뜻해요. 뇌 기능이란 것도 자주 쓸수록 강화되기 마련이어서, 편도체를 쓰면 쓸수록 편 도체의 뇌 장악력이 우월해집니다. 한편 편도체가 사고 능력 을 관장하는 전두엽보다 월등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특 정 집단이 있는데, 바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아직 전두엽 이 덜 발달해 감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감정 을 고스란히 받아주면서 감내해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셈이죠. - 요새 많이 회자되고 있는 표현이자 책 제목이기도 한 “기분 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말처럼 우리도 얼마든지 감정을 컨 트롤하며 서로 고민거리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속에 있 는 이야기를 안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소중한 관계라면 더욱 더 그렇죠. 팬데믹 상황에서 마스크가 안전판 역할을 하듯, 감 정이 격해지는 상황에서는 언어화가 우리 감정의 폭주를 막 아줄 수 있습니다. 내향인 여러분, 누군가가 자신의 감정을 구 겨서 여러분께 던지려고 한다면 언어화 스킬로 상황을 정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세요! - 브라이언 리틀을 비롯한 성격심리학자들은 내향인과 외향 인이 각각 그들에게 적합한 수준의 흥분 주파수'를 지니고 있 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외향인은 높은 흥분 주파수 상태 에서 최적의 컨디션이 됩니다. 파티, 클럽, 회의, 연설 등과 같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뭔가를 해야 하는 경우인데요. 자극적 이며 시끌벅적한 상황을 좋아하는 접근주의자와 합이 맞아 보이죠? 반면 내향인은 낮은 흥분 주파수 상태에서 최고의 컨 디션이 됩니다. 이를테면 나 혼자 있을 때, 내가 잘 아는 사람 들과 있을 때, 나에게 익숙한 장소에 있을 때 등 내적 평화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뭔가를 하는 경우입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차분한 상황을 추구하는 회피주의자와 비슷한 양상이죠. - 개인주의자의 자기관은 "나는 이래야 한다"가 아니라 "개인은 이래야 한다"이기 때문에 어떠한 행동 지침은 나에 대한 기준일 뿐만이 아니라 남에 대한 평가 기준이기도 한 거죠. 따라서 나뿐만 아니라 남들 역시 모든 일을 알아서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사람이라면 응당 어떤 경우라도 최소 1인분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주의는 간단합니다. 나쁜 성격이죠. 그에 반해 개인주 의는 성격이 아닌 자기관(세관)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일종 의 프레임이에요. 따라서 차가운 성격 등과 혼동하면 안 됩니 다. 개인주의는 '독립적인 개인들이 모여 이룩한 세상'의 개념 으로 이해하면 돼요. 그래서 개인주의자들에게는 '우리'라는 말보다 '팀'이라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팀이란 동등한 개인들 이 공동의 목표를 갖고 결성한 공동체니까요. - A가 평상시와 똑같은 패턴으로 생활하고 있다면(루틴 유지), A의 뇌는 지금이 평화로운 상황이라고 판단함(컨디션 유지). 반면 A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겨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대낮까지 침대에서 뭉그적대거나 끼니를 건너뛰는 등 원래의 패턴과 다른 일상을 보내게 된다면(루틴 깨짐), A의 뇌는 이걸 '패자의 행동'으로 인식하고 생존을 위해 소극적으로 행동하라는 지침을 내림(컨디션 저하).. - 자극도, 행동도 모두 다 내 감정에 영향을 끼칩니다. 실패자극은 나를 우울하게 해요(자극 감정). 우울감은 나를 웅크리게 만들죠(감정 행동). 뇌는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행동을 캐치하고 내가 패배했다고 판단해, 나를 한층 더 우울하고 소 극적으로 만듭니다(행동→ 감정 강화 행동 강화). 그래서 실패했을 때, 자신감이 없을 때, 우울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으로 승자의 행동과 태도를 취함으로써 내 감정을 스스로 결정하는 겁니다.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감정 을 이끄는 거죠. 힘들겠지만 죽을힘을 다해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폭풍 샤워를 하세요. 한껏 꾸민 뒤 집을 나서 내가 좋아하는 거리 를 구경하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인기 있는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드세요. 좋은 일이 있는 사람처럼 더 밝게 행동하세요. 그러면 우리 뇌가 이러한 패턴을 분석해 서 상황이 좋아졌다고 판단하고 승자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을 방출합니다. 내가 적극적일수록, 더 많이 웃을 수록, 더 당당할수록, 더 빨리 우울감이 사라지고 기분이 한결 더 나아지게 돼요. 나는 이 감정을 통제할 수 없고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내가 단순히 반응만 하는 존 재가 아니라 내 감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 라고 믿는다면, 많은 것들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If I treat myself as a queen, I will attract a king?" 이 말은 내가 나를 여왕처럼 대하면 결국에는 왕을 차지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적극적이고 자신감에 넘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점차 나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든 요. "이게 정말 될까요?"라고 묻는다면, 물론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투성이지만 '통제해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 게 '통제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어 요 우리 모두 가능합니다. 더 밝게 행동해보세요. 내가 내 감 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생긴다면, 우울감을 떨쳐내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한 멘탈을 가꾸고 단련 하는 데도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 반면 후천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낙관성이란 성격이 아니 라 그 사람이 지닌 관점에 가깝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을 있 는 그대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이겨낼 수 있다. 힘내서 열심히 해보자'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죠. 심리학계에 서는 낙천적인 사람보다 낙관적인 사람의 기대 수명과 안녕감 수준이 더 높다는 결과가 이미 여러 차례 발표된 바 있 습니다. 즉, 사람을 더 오래 살게 하고 더 행복하게 만드는 건 '성'이 아닌 '관점'이라는 것이죠. '물이 반밖에 없네'가 아니 라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 - 인간관계에 관심이 덜한 내향인에게 사회생활이란 일종의 정신노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인간 은 남들과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생활 이라는 게 과업 생산성(일을 얼마나 잘하는가)뿐만 아니라 관계 적 생산성(조직·집단에 얼마나 잘 융화되는가) 또한 중요하니까 요. 비록 관계 맺기를 좋아하진 않더라도 사회생활을 잘해내 기 위해서라면 내 성격이 어떻든지 간에 남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만 합니다. 물론 사회성이 뛰어난 하이브 리드는 귀신같이 치고 빠지기를 잘하기 때문에 (어울려야 할 때 는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고, 내가 굳이 없어도 되는 상황에서는 아예 실종됨) 사회생활을 꽤 잘해나가죠. 하지만 사회성이 평범 이 하인 보통 내향인이나 자발적 아싸의 경우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벽에 부딪히기 때문에 자신의 성격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현실적 으로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으로 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향 - 외향'은 유전의 비중이 매우 높은 성격 요인이기 때 문에 내향인이 아무리 변화하고 싶어도 나의 관심사가 사람 들과 어울리는 쪽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일이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요. 좋아하지 않는 일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만 큼 어려운 일은 또 없으니까요. 반면 내성적인 사람이 외성적 으로 변화하는 건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선천적인 사회성 에 후천적인 요소가 얼마든지 더해질 수 있기에,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사회적 기술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에 요. 그렇다면 해결책은 이미 나왔죠. 내향인의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위해서는 '내성을 외성으로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아보면 되는 겁니다. - 인간관계에 관심이 덜한 내향인에게 사회생활이란 일종의 정신노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인간 은 남들과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생활 이라는 게 과업 생산성(일을 얼마나 잘하는가)뿐만 아니라 관계 적 생산성(조직·집단에 얼마나 잘 융화되는가) 또한 중요하니까 요. 비록 관계 맺기를 좋아하진 않더라도 사회생활을 잘해내 기 위해서라면 내 성격이 어떻든지 간에 남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만 합니다. 물론 사회성이 뛰어난 하이브 리드는 귀신같이 치고 빠지기를 잘하기 때문에 (어울려야 할 때 는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고, 내가 굳이 없어도 되는 상황에서는 아예 실종됨) 사회생활을 꽤 잘해나가죠. 하지만 사회성이 평범 이 하인 보통 내향인이나 자발적 아싸의 경우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벽에 부딪히기 때문에 자신의 성격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현실적 으로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으로 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향 - 외향'은 유전의 비중이 매우 높은 성격 요인이기 때 문에 내향인이 아무리 변화하고 싶어도 나의 관심사가 사람 들과 어울리는 쪽으로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일이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요. 좋아하지 않는 일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만 큼 어려운 일은 또 없으니까요. 반면 내성적인 사람이 외성적 으로 변화하는 건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선천적인 사회성 에 후천적인 요소가 얼마든지 더해질 수 있기에,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사회적 기술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에 요. 그렇다면 해결책은 이미 나왔죠. 내향인의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위해서는 '내성을 외성으로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 법'을 알아보면 되는 겁니다. -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단점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를 뒤섞을 때 그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서도 사람에 대 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거예요. 심리학자 거드 보너Gerd Bohner는 자기를 어필할 때, 자신의 강점들만 나열하기보다는 약점을 먼저 알린 후 이를 상쇄할 만한 장점들을 곧바로 어필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은 이인자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노력할 것입니다"와 같은 식으로요.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엘리엇 애런슨Elliot Aronson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비판할 점과 칭찬할 점이 둘 다 있을 때 '선 비판 후 칭찬'의 조건에서 상대방의 감정이 가장 긍정적이었 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목소리 톤이 너무 평범해요. 그런데 목소리에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울림이 있 네요."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상대 역시 비판이라도 우호적으 로 수용하게 되죠. -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같은 내용이라 도 '선 단점 후 장점이 '장점, 장점, 장점보다 좋아 보일 수 있 고, 같은 2개라도 '1+1'이 '한꺼번에 2'보다 달콤할 수 있으 며, 똑같은 9천만 원이라도 '8천만 원에서 9천만 원'이 '1억 원 에서 9천만 원보다 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한 두 개씩 모이기 시작하면 같은 일상에서도 행복하다고 느끼 는 순간이 분명 더 많아질 수 있겠죠? - 토리 히긴스Tory Higgins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이상적 자아'와 '당위적 자아가 있는데(전자는 자아실현을 달성한 자아, 후 자는 책임과 의무를 훌륭히 수행해낸 자아), 이 두 자아와 '현실 자 아' 간의 차이가 클수록 부정적인 감정에 더 깊이 빠지게 된다 고 합니다. '난 자아실현이 중요한 사람인데 현실은 시궁창이 야'라고 생각하게 되면 화, 실망감, 좌절감, 우울감 같은 부정 적 감정들에 사로잡히게 돼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압도된다'는 표현을 주로 씁니다. 현실 자아와 이상적 자아 간의 괴리에서부터 발생하는 부정적 감정들로 인해 다른 감정들이 압도되는 겁니다. 아침에 갓 구운 빵을 찢어 먹으면서도 '내 현실은 시궁창인데 이딴 게 뭐가 대수일까? 싶고, 저녁에 친구들과 만나서 옛날이야기를 하며 왁자지껄 웃고 떠들다가도 '나는 왜 이렇게 공허하지? 난 인생을 잘못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닐까?"라며 거지 같은 기 분에 압도되고 말죠. 남들이 얘기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 복이란 것을 나도 행복이라 인정해도 되는지, 과연 인정하는 게 맞는지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겁니다. 나무로 비유해보자면 누군가에게는 자아실현이나 책임의 완수 등은 뿌리나 기둥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돌아가고 있거나 혹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면 어떨까요? 행여나 가지에 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었다 한들 그 사람에게 그게 대수일까요? 기둥과 뿌리가 썩어가고 있기에 잔가지들 의 소소한 사건에는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는 거예요. 세상에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무는 기 둥과 뿌리만이 중요하다", "기둥과 뿌리가 온전해야 나머지도 잘되는 것이다" 등 나의 이상, 의무, 책임, 신념 등에만 몰두한 채 그 미션의 성사 여부만이 나라는 인간의 존재 가치를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요. 잔가지들의 일상 따위에 는 좀처럼 존재의 의미를 두지 않기에 애초에 소확행과는 잘 맞을 수가 없는 거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니라 '거대하면서 불확실한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인 셈인데요. 글쎄요. 사람들은 하 나같이 다 다르고 생각하는 것과 원하는 바도 전부 제각각인 데, 이러한 '거불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소확행을 느껴보 라고 한들, 그들이 "그래, 그게 맞겠다"라고 맞장구치며 소확 행 모드로 쉽사리 전환될까요? 거불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추구하는 바가 워낙에 분명하고 굳건하기에, 자아가 확고하며 일관성 기제 역시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예전부터 그래왔 던 것처럼 앞으로도 쭉 같은 방향으로만 가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또한 이상적 자아나 당위적 자아의 기준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반드시 현실 자아와의 괴리가 크게 발생하며, 그로 인 해 삶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가 떨어지고 만성적인 스트레 스 상황에 노출될 가능성 역시 커집니다. - '행복하다'와 '행복할 만하다'는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원하고 또 행복이야말로 이상적인 궁극의 상태라고 떠들면서도, 정작 좇고 있는 건 행복이 아니라 행복할 만함이 에요. '행복이 뭐 별 건가?' 하고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옛날이 야기하며 깔깔거리고 웃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날씨 좋은 날 공원을 산책하는 것처럼 그냥 소소 한 것들인데 말이죠. 정작 매일매일을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 는 사소한 건 사소하니까 행복이라고 인정하지 않은 채, '이런 건 아무래도 행복할 만한 삶은 아닌 것 같다'고 스스로를 자책 하며 '행복이란 뭘까?'를 항상 고민합니다. "인간들이여, 제발 행복하다고 인정 좀 해. 그래야 행복할 수 있어?" 긍정심리학에서는 위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거불행자 여러분은 행복할 만함을 계속 좇으세요. 그것이 여러분의 심장이니까요. 단, 이제부터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도 행복일 수 있다는 것을 한번 받아들여보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소소하게 즐기고 있는 것들이 바로 행복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거예요.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행복은 목적이기보다는 수단에 더 가깝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행복한 마음(행복함)을 느끼고 그 힘으로 세상 을 또 한 번 살아나가는 거죠. 행복할 만함의 목표를 위해 지 금의 행복을 에너지로 삼는 삶. 소확행과 거불행 두 마리 토끼 를 노리는 인생. 우리 모두에게 다 가능합니다. - 인생에서 비통제 영역을 줄이는 것은 인간관계에서만 중요 한 일이 아닙니다. 전 범위를 아울러 내 통제권을 늘리는 것은 곧 불행의 요소를 최대한 줄이는 일이 돼요. 예를 들어 주식 의 경우를 살펴볼까요? 치열하게 산업 분석과 기업 분석을 하 는 사람들은 하락장에서도 어느 정도 통제력을 지닐 수 있습 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사전에 어떤 공부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이나 소문만 믿고 주식을 한다면 이건 완전한 비통 영역에 해당하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당최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내가 산 주식이 급락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생각 만으로도 끔찍할 거예요. 통제감을 아예 누군가에게 완벽하게 전이시키는 삶이 오히 려 불행을 컨트롤하기에는 훨씬 수월할 수도 있습니다. 대표 적인 게 세상만사를 주관하는 절대자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는 종교입니다. 신이 내 삶을 완벽하게 이끌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신자들에게 일종의 대리 통제감을 부여하는 거죠. 인생 이 고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쉽게 종교에 의지하는 현상은 바로 이 대리 통제감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모든 게 다 신의 주관이라는 명제 아래, 전지전능한 신을 믿고 따름으로써 '나는 그의 위대한 우산 아래 보호받고 있다', '신의 인도 대로 잘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대리 통제 감으로 지각되는 거겠죠. 즉, 고통도 고난도 다 신의 계획 아 래 있는 약속된 삶의 일부인 셈입니다. 내가 내 삶에 스스로 통제력을 갖는 일. 내가 강해지는 것 과는 별개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과 작별하는 것만으로 도 충분히 내가 느끼는 불행감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내 통 제권 안으로 삶의 영역을 줄이는 일, 이 또한 일종의 미니멀리 즘이 아닐까요? -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가 쓴 <The Evolution of Happiness>라는 논문을 보면 인간이 왜 행복을 느끼기 어 려운지에 대한 이유가 구구절절 자세하게 설명돼있습니다. 1. 미디어에 노출되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상대적 오징어로 만든다. 2. 지금은 글로벌 하이테크놀로지의 시대로서 뛰어난 역량으로 주변의 인정을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3. 핵가족과 맞벌이 부모, 흔한 이혼과 익명성의 시대. 예전과 달리 더 이상 완전한 내 편이 존재하지 않는다. 4. 현대사회는 고도로 문명화된 정글로서 완전 경쟁 사회의 약육강식이 인류의 피를 말린다. 5. 손해 민감도가 이득 민감도보다 2.5배 더 크다. 이득과 손 해둘 다 동일한 1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이득에 대해서는 1의 즐거움을 느끼는 반면, 손해에 대해서는 대략 2.5 정 도의 스트레스를 느낀다. 6. 인간은 만족에 금방 면역된다. 행복할 일을 계속 찾아도 계속 제자리에 돌아온다. -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가깝습니다. 이를테면 때맞 춰 챙겨 먹는 끼니 같은 거랄까요? 체육인들의 식사량이 엄청 난 이유는 그만큼 어마어마한 열량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인 데요. 밥이 에너지원이 되고 밥을 많이 먹을수록 에너지를 많 이 쓸 수 있는 구조인 거죠. 정신적 에너지인 정신력도 똑같습 니다. 에너지원이 있어야 해요. 정신의 경우에는 긍정적 감정, 즉 전반적인 행복감이 주로 이 역할을 맡는데요. 행복한 감정 을 느낄수록 정신력의 배터리가 충전되는 구조입니다(역으로 불행한 감정을 느낄수록 배터리는 빨리 방전되겠죠). - 누구나 약한 부분은 존재하고 그렇기에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껍질 속에서 지내는 한, 우리는 성장할 수 없어요. 마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우리도 껍데기를 깨고 나와야 비로소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예요. 너무 과도하게 상대방을 이기려 들거나, 강한 척하거나, 철벽을 치는 것은 방어기제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오히려 속은 매 우 여릴 가능성이 커요. 방어기제가 깨지면 걷잡을 수 없이 무 너져 버리는 거죠. 이런 사람들은 관계를 맺을 때, 마치 '고슴 도치의 가시처럼 상대방을 찌르고 상처를 내면서 갈등을 빚고 힘들어하다 결국에는 관계를 정리하게 돼요. 애당초 마음 이 여린 사람들이기에 이러한 결과를 견디지 못하고 엄청나 게 힘들어하고요. 그리고 나서 한층 더 단단한 갑옷으로 갈아 입고 다음 인간관계를 대비합니다. '더 단단히 철벽을 치겠어. 빈틈을 보여주지 않겠어'라고 하면서요. 방어기제가 나 자신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듯이, 인간관계에서는 쌍방의 건설적인 관계 증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성 있는 관계를 원한다면 나 먼저 껍데기를 깨고 나올 수 있어야 하겠죠. 방어기제는 미봉책입니다. 순간의 안정을 위해 현실 직시가 아닌 회피를 택하는 거죠. 그렇기에 방어기 제에 둘러싸여 있는 한 우리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갑옷부터 벗고 생채기도 입어가며 분투해야 얻을 수 있는 게 바로 성장이고 발전이니까요. 다행히도 약점이 많은 사람일 수록 강해질 수 있는 기회와 성장 동력은 더 많이 존재하기 마련인 법! 어때요? 여러분은 이제 갑옷을 벗어던질 준비가 됐 나요? - 재밌는 사실은 연구를 거듭해본 결과, 똑똑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일수록 오히려 고정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는 겁니다. 이건 왜 그럴까요? 똑똑한 학생들은 “대단하다”, “참 똑똑하구나”, “영리한 아이구나", "역 시 이번에도 잘했어”와 같은 칭찬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던 거 예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남들에 비해 똑똑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나는 원래 똑똑해', '쟤들은 나보다 못났어'라는 고정 마인드셋이 확고하게 자리 잡혀버린 거죠. 그래서 똑똑한 아이들이 되려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면 더 쉽게 멘붕 (멘탈 붕괴)에 빠지게 됩니다. 이제껏 그래왔듯이 나의 똑똑함 을 드러내고 이를 주변의 칭찬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나의 존재감을 지워버리는 위협으로 인식되는 것이죠. 그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뛰어나다고 칭찬받아 온 고 정 마인드셋의 우등생들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잘 견디지 못하며(본인의 높은 자존심, 에고에 대한 상처), 실패가 예상되는 영역에 대해서는 좀처럼 도전하지 않으려는 패턴을 보입니다(잘하는 것만 하며 긍정적인 피드백만 받으려고 함). - 현대인들에게 성공이란 곧 부자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 성공이란 것도, 성공을 직접 좇는 쪽보다 성장의 전리품으로 얻는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을 수 있습니다. 즉, 성장을 택한다 고 해서 남들이 다 바라는 성공을 버리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물론 조금 더 느릴 수는 있겠죠. 하지만 느리더라도 꾸준히 나 아가기만 한다면, 성공이라는 나무를 보고 행동하는 사람들 은 성장이라는 숲을 보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어떤 시점부터 는 절대로 앞서 나갈 수 없습니다. - 성공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성장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남들과 매일 치열하게 경기를 치르며 사는 인생 도 있지만, 어제의 나와 대결하며 사는 인생도 있습니다. 성공 은 내가 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이 나보다 더 잘해서도 안 되지만, 성장은 나만 잘하면 됩니다. 만약 눈에 띄게 잘하 는 남이 있다면 그를 보고 배워서 나도 더 잘하면 됩니다. 성 공 말고 성장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은 어떨까요? 내향인에 게는 이편이 더 잘 맞을 수 있으니까요. - "너 그거 알아?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부시 맨들에게는 두 종류의 굶주린 자가 있대. 굶주린 자. 영어로 헝거hunger. 리틀 헝거little hunger와 그레이트 헝거reat hunger가 있는데 리틀 헝거는 그냥 배가 고픈 사람이고,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에 굶주린 사람이래. 왜 사는지,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런 것을 늘 알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배가 고픈 사람이라 그레이트 헝거라고 부른대" (영화 <버닝>(2018) 중) -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는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나면 이제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다는 경이로운 느낌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중)
- 비극 중에서도 생명의 성장을 저지하는 것만큼 비참한 비극은 없다. 또한 불공평 중에서도 내부에 있다고 잘못 인식되어 외부에서 부과된 한계에 의해 노력할 기회나 희망을 가질 기회조차 부정되는 것만큼 심각한 불공평은 없다. (스티븐 제이 굴드, 인간에 대한 오해) - 남녀의 사회적 기능이 다를 수 있다는 데 관한 다윈의 시각은 여자의 번식 능력이 그들의 서열을 결정하는 주요인이라는 것이었다. 근본적이 지만 기초적인 생리적 과정인 번식은 진화가 수컷에게 수여한 더 고등 한 정신적 속성을 조금도 요구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걱정은 그런 종의 암컷을 아무 종류의 교육이나 독립이라는 부담에 노출하려는 모든 시도 가 그 과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윈은 상보성의 세세한 차이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상보성 을 따지는 시각은 (제1장에서 만나보았지만) 사회에서 남녀의 역할이 어떤 유전적 형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상을 기반으로 했다. 상냥하고, 잘 자라도록 보살피고, 유연하게 실익을 챙기는 여자의 본성은 힘이 넘치고, 대의를 지향하고, 지독히 합리적인 남자의 특징적인 페르소나에 완벽한 조연이었다. 다윈주의자의 관점보다는 다소 더 정중하지만, 이런 시각이 젠더 평등을 향해 모종의 진보가 시작될 징조였다는 환상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상보성의 사상ᅳ즉 한 집단의 특성, 강점, 약점이 다른 집단의 특성, 강 점, 약점으로 보완되거나 강화된다는 믿음은 집단 사이의 권력 불평등을 유지하는 특별히 강력한 방법이다. 그것은 모든 불평등의 인식이 착각이며 두 집단을 차별할 실제적 근거는 각 집단의 상대적 강점과 약점을 기반으로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 차이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살펴보지 못하게 숨기는 것을 흔히 '서류함' 문제 file drawer problem라고 한다." 나는 '빙산' 문제라 는 표현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잠재 과학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가 상 공간, 다시 말해 출판 가능성의 표면 아래에는 모든 범위의 척도에서 남녀 사이의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을 방대한 양의 '보이지 않는' 연 구 결과가 있는데, 일부 척도가 지도를 잘 읽는 화성인을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금성인과 구별하는 신뢰할 만한 방법으로 우리의 의식 속에 확 실하게 정립된다. 사실은 차이가 있다고 확인하는 듯한 것보다 차이가 없다고 보고할 수 있을 연구 결과가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 - 20세기 말에 출현한 뇌 영상 기술은 여자 뇌와 남자 뇌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실제로 파악하여 이 뇌 차이와 모든 관련 행동 차이의 연계성 을 탐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죽었거나 병들었거나 손상된 뇌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 연구계는 이제 성차에 관한 해묵은 질문에 답할 수 있을 터였다. 이 탐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법은 fMRI였다. 제1장에서 살펴 보았듯이 그것은 뇌 활동과 연관된 혈류 변화를 측정하고 그 결과를 아 름답게 색으로 암호화된 영상으로 표현한다. 마침내 뇌에 창이 난 것처 럼 보였다. 이 시점에서 fMRI가 우리에게 말해주지 못하는 것을 강조하고 이 뇌영상 기법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오해 때문에 생겨난 많은 잘못 된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 먼저 fMRI는 우리에게 뇌의 활 동을 직접 촬영하여 제공하지 않는다. 뇌의 활동이란 신경임펄스nerve impulse (뇌가 자극받은 결과로 신경섬유를 타고 전해지는 활동 전위-옮긴이)가 밀 리초 시간 단위로 뇌의 표면을 가로지르거나 주요 구조 안에서 지나가 는 것을 말하는데, fMRI는 그 활동을 위해 에너지를 제공하는 혈류의 변 화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느리다-우리는 밀리초 단위가 아니라 초 단위에 관해 이 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일단 연구 결과가 단어 찾기나 패턴 인식(둘 다 밀 리초 시간 단위에서 일어날 수 있다) 같은 기능의 차이 면에서 해석되고 있다 면 그런 연구 결과는 신중하게 관망해야 하며, 동시에 행동 변화를 측정 하여 상세하게 분석하는 맥락에서만 고려해야 마땅하다. - 초기의 신경과대광고는 인간 존재의 많은 측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듯했다. 의식과 자유의지를 이해하고, 심신 문제(심신 일원론과 이원론의 대 립-옮긴이)를 해결하고, 아마 자아도 더 잘 이해할 전망뿐 아니라 보다 실 용적인 일선에서 뇌에 근원이 있는 신체적·정신적 증세의 진단을 개선 하고, 심지어 치료할 가능성도 있었다. 거기에 기초 연구 일부 품질에 관 해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연구의 보고뿐 아니라 많은 흥분을 유 발하고 있던 뇌 영상 자체의 제작과 해석에 관해서도 말이다. 이 영상들은 매력적이고 주의를 사로잡았다. 색으로 암호화된 지도 는 시스템이 더 발전함에 따라 저속 촬영한 비디오와 더불어 인간 뇌에 서 진행 중인 활동을 들여다보는 직접적인 창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만 같은 뇌의 가시화는 명실공히 신경 과학을 확실히 공공장소로 가져오는 기술 촉발이었다. 그것은 TV와 영 화의 발전에서 출발하여 비디오카메라와 복사기를 거쳐 거의 모든 다른 것을 가시화하던 당시의 세태와 잘 어울리기도 했다. 문제는 그토록 많은 신문 기사와 대중과학 서적을 장식하고 있던 뇌 영상이 환상 같은 것이라는 데 있었다. 한 사람의 것이든 집단의 것이든 뇌 영상을 제작 또는 '구성'하려면 원자료를 어떻게 '정제'할지, 해부학 적 개인차를 어떻게 고르게 할지, 뇌의 특징을 어떻게 '왜곡하여 템플릿 뇌에 맞출지에 관한 다단계 결정이 필요하다.25 확인된 변화에 유형별로 색을 할당하는 작업은 사실상 통계적 절차다. 따라서 누군가가 코카콜라 광고를 시청하는 동안 깜박거리며 뇌의 회백색 툰드라를 가로지르는 빛깔은 저속 촬영한 일몰과 같은 것이 아니라 뇌 영상술사가 결정한 문턱 값을 반영한다. - fMRI를 사용하여 뇌의 구조와 기능을 측정하 게 되면서 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좋든 나쁘든) 바꾸어 놓았다. 뇌에서 산소가 공급된 혈류를 측정하여 연관된 신호(혈중산소 치의존 반응 또는 BOLD 반응)를 색으로 암호화된 영상으로 변환하는 작업 은 훌륭한 마케팅의 일부일 뿐 아니라 양날의 검과도 같은 것으로 드러 났다. fMRI 장치로 제작된 영상의 '유혹적 매력'은 신경쓰레기 조달업자 들에게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그들은 뇌 시류에 편승하여 거짓말탐지, 투표 의도 알아내기, 세계 금융위기 예측하기, 그리고-물론-멀티태스킹 선수와 지도 읽기 선수의 차이를 콕 집어내기라는 문제의 해법을 이제는 가장 가까운 뇌 스캔 센터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고 우리를 설득했다. 하지만 뇌 영상술사 중 가장 헌신적인 사람조차 깨달았다. 혈류에서 차이를 찾는 것은 사건이 뇌 안 '어디'에서 발생하느냐는 질문 일부에 답 하기에는 좋은 방법이지만 '언제' '어떻게' 발생하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에 그런 변화는 시간 단위가 너무 느렸다. - 우리는 우리를 사회적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종류의 정보를 태어난 순간부터 찾기 시작한다. 우리는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친숙한 말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금세 가린다. 우리 에게는 자동으로 '어머!' 소리를 유발하는 앱까지 깔려 있을 것이다. 이 앱은 우리의 애교 있는 미소와 명랑한 까르륵거림이 우리에게 중요한 상대로부터(아주 어릴 때는 낯선 사람으로부터도 어떤 행동을 유발하여 상호 유대를 강화하도록 보장할 것이다(하지만 낯선 사람에 대한 서비스는 우리가 내집단을 외집단과 분간하게 되자마자 금세 사라진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우리의 뇌는 그런 사회적 데이터에 굉장히 잘 스며들므로 흡수된 메시 지는 우리의 행동방식에 지대한 효과를 미칠 수 있다. 강력한 예측을 통해 주위의 일상적 광경과 소리를 처리하는 우리 뇌 는 사회적 참여에 필요한 규칙도 우리 세상에서 추출하도록 맞추어져 있다. 실제로 사회적 행동은 거의 다 예측이다. 우리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규칙을 짜서 그 상황이 예측되게 만든 결과로 우리가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하고 결례를 범하지 않게 해주는 일련의 대본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본 중 일부는 고정관념을 포함할 것이다. 누군가가 어떻 게 행동할지, 그가 우리에게 어떻게 반응할지, 그가 사교적이고 네트워 크를 형성하고 싶어하는지, 아니면 심술궂고 약간 외톨이 같은지에 관 한 포괄적 예상에 (반드시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 적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정관념은 당신 자신의 자아감으로도 편입될 수 있다. 당신 같은 누군가에게는 무엇이 기대되는가? 내가 남성 또는 여성이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무엇을 가지고 (누구와) 놀 것이며, 자라면 무엇이 될 것이고, 누구와 함께 일할 것이며, 누가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할 것인가?
- 태어났을 때 갓난아기의 뇌 무게는 약 350그램, 즉 성인 뇌 무게(1300~1400그램)의 약 3분의 1이다. 뇌 부피(뇌 크기의 더 나은 척도)는 약 34세제곱센티미터로 성인 뇌의 3분의 1에 가깝다. 남자 아기는 여자 아 기보다 뇌 부피가 더 큰 경향이 있지만 남자 아기들이 태어났을 때 더 무겁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차이는 사라진다. 표면적은 약 300제곱센티미터인데, 뇌가 두개골 안으로 접혀 들어가서 생기는 경계표인 골과 능선은 성인 뇌의 것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일단 아기가 태어나면 극적인 성장률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하루에 약 1퍼센트 수준이었다가 그다음에는 첫 90일이 지나면 하루에 약 0.5 퍼센트로 점차 '느려지는데', 이 무렵이면 크기가 두 배 이상 커져 있다. 성장률은 뇌 전체에 걸쳐 똑같지 않다. 더 기본적인 구조와 연관되는 영 역, 이를테면 시각과 운동을 통제하는 영역은 더 빠른 변화를 보인다. 가 장 큰 변화를 보이는 소뇌는 운동을 통제하는데, 첫 3개월 동안 크기가 두 배 이상 커진다. 반면에 기억 회로의 주요 부분인 해마는 부피 변화를 약 50퍼센트밖에 보여주지 않는다(아무도 걸음마를 배운 기억이 없는 이유가 이것으로 설명될지도 모른다).' - 여섯 살 무렵 아이의 뇌는 크기가 성인 뇌의 약 90퍼센트가 될 것이다(물론 뇌와 달리 신체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런 성장 가운데 회백질이 담 당하는 부분은 가지돌기(수상돌기)의 발달이 극적으로 증가하고 시냅스 (연접)가 증식하는 양상과 관련 있다. 가지돌기란 신경세포상에서 가지 를 뻗어 신호를 받는 자리고, 시냅스란 신경계에서 세포와 세포를 이어 주는 자리다. 따라서 연결선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둔다. 사실 아기 뇌에 는 시냅스를 통한 연결선이 성인의 뇌에 있는 것보다 실은 거의 두 배 로-더 많다. 이는 모든 것을 다른 모든 것과 연결하려는 뇌의 여정 초반 의 열정을 반영한다. 아동기와 청소년기에는 성인 수준에 도달할 때까 지 점진적으로 가지치기를 한다. 이 표면 성장 밑에서는 매우 단기적인 연결선이 훨씬 더 많이 매우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일단 안정화된 연결선은 말이집(수초myelin)으 로 절연된다. 말이집이란 신경세포 섬유를 둘러싸고 있는 백색 지방질 덮개인데, 신경 활동이 더 빠르게 흐르도록 돕는다. 이때는 가능한 종착지도 많고 가능한 선택 지점도 많다. 과거에는 이 놀라운 초기 성장을 오로지 신경세포 사이에 연결선이 형성된 결과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알기로 뇌세포는 우리 몸의 다른 모 든 세포와 달리 대체할 수 없었다. 할당량은 처음에 거의 다 받았고 세포 들 사이의 연결선은 태어났을 때부터 극적으로 성장했다가 가끔 정리되 거나 가지치기 되며 사고나 질병, 결국은 노화로 생기는 모든 세포 손실 은 영구적이어서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여겼다. 함축적으로 이는 뇌가 태생부터 대체로 고정되어 있음을 확증하는 듯했다. 만약 모든 구 성 요소가 태어났을 때 마련되어 있었다면 그런 구성 요소를 가지고 완 성한 것 일부는 바깥세상에서 기인했을지 몰라도 대부분은 자궁에서 나 오기 전에 이미 갖고 있던 것에 의해 미리 결정되었을 것이다. '생물학이 부과한 한계'는 뇌 차이를 거론할 때 흔히 인용되는 격언이다. - 하지만 '성인과 같은 수의 뉴런을 가진 신생아' 버전은 그리 완전 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영아 뇌의 겉질에 있는 뉴런의 총수 가 생후 첫 3개월 사이에 최대 30퍼센트가 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새로운 뇌세포를 얻을 수 있고 실제로 얻기도 한다. 비록 공급량은 생후 초반보다 훨씬 더 제한적이지만 말이다." 뇌 손상 이나 질병(단도직입적으로 노화)에서 회복될 수 있다는 함의를 고려하면 당신도 상상하겠지만 '신경발생neurogenesis' 과정은 집중적으로 연구되 고 있다." 하지만 극적인 성장의 많은 부분은 실제로 뉴런 연결선의 성 장, 즉 통신 네트워크 구축에서 기인하고 생후 첫 2년 동안에는 특히 더 그렇다. 작은 마을 안에서 가로망이 생기듯 영역 내에서 국지적 연결선 이 먼저 생긴 다음에 훨씬 더 먼 구조를 연결하는 분산된 네트워크가 생겨난다" 아기 머리는 일반적으로 생후 첫 2년 동안 둘레가 약 14센티미터 자라는데, 이는 뇌 백질의 폭발적인 증가를 나타낸다. 보다 기초 적인 감각 기능과 운동 기능이 먼저 성숙하고 더 고급스러운 인지 기술 과 관련한 네트워크는 나중에 훨씬 더 오랜 기간에 걸쳐 성인기 초기까 지 연결된다(사춘기를 위한 특별 단계가 따로 있다)." 하지만 앞으로 보게 되 겠지만 이처럼 원시적으로 보이는 체계조차 상당히 복잡한 유형의 정보 처리를 실행할 수 있고 놀랍도록 정교한 수준의 행동도 어느 정도 생산 할 수 있다. - 총 뇌 크기의 차이를 어떤 종류의 기능적 이점이나 불리한 점을 전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전체적 구조에 대한 척도는 뉴런 연결성이 나 수용체 밀도처럼 기능과 관련된 요인의 성별로 형태가 다른 차이를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 주의 깊게 선발한 이 건강한 아이들의 집단에서 개별적으로 추적한 종합적 부피와 형태가 주목할 정도의 가변성을 보인 다는 자체가 이 점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기능에 문제가 없는 건강한 아이들이 똑같은 나이에 뇌 부피가 50퍼센트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절대적 뇌 크기의 기능적 함의에 관해 조심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 인류의 다양한 높은 수준의 업적에 순위를 매기라고 하면 당신은 아마 수학과 물리학 법칙의 이해를 목록 거의 맨 위에 올릴 것이다. 한편으로 는 그런 위업을 오랜 세월 교육받은 후에만 성취할 수 있는 것, 더 나아 가 아무리 많은 기회를 주어도 범접할 수 없는 것으로 특징지을지도 모 른다. 따라서 매우 어린 아기들이 고급 과학의 기본 원리를 이미 파악했 다는 것을 알면 놀랄지도 모른다. 세상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아기들은 큰 수와 작은 수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웃는 얼굴을 몇 개만 보여주 는 사진에는 짧게 울리는 삐 소리를, 웃는 얼굴이 많이 있는 사진에는 길게 울리는 삐 소리를 짝짓는다. 2, 3개월 후 아기들은 관으로 굴러 들어가는 것을 본 공이 관 끝에서 굴러 나오지 않으면 놀라움을 표할 것이다." 5개월 후에는 유리잔의 액체처럼 보이는 것이 고체로 드러나면, 즉 가짜 물에 빠뜨린 줄무늬 빨대가 수면에서 멈추는 순간 동요한다.15 따 라서 세상에 태어난 지 5개월 안에 아기들은 자신이 이미 기초 수학(또 는 수리 감각)과 직관적 물리학, 즉 물체는 보통 어떻게 움직이는지, 물질 의 기본 특성은 무엇인지 파악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른바 '핵심 지식' 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 영아가 무력하거나 수동적인 주변 세계 수신기이기는커녕 경이롭도록 정교한 관찰력을 가지고 그 세계와 상호 작용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증거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해지길 원한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여러가지 물질적 조건의 충족을 생각한다. 물론 최소한의 기준은 충족해야겠지만, 행복은 남이 정한 외부의 조건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자기긍정감은 내가 아닌 외부의 조건, 평가, 상식, 비교 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여기에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라는 존재와 생각 그리고 감정에 몰입하여 자기존재감을 기르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이다.
자기긍정감을 기르는 일에 집착하며 괴로워하던 사람이 자기존재감을 깨닫는다면 타인의 시선과 평가 따위에는 신경쓰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자기존재감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내가 가진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말이다.
지금보다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만, 간혹 자기긍정감을 높이기 위해 나를 속이고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한다고 믿고 있다면 이로 인해 행복하기는커녕 더욱 괴로워지게 된다. 자기긍정감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부조리한 세상을 만들고 열등감을 낳는 것이다. 남보다 성공했는데도 행복하지 않다면 자기긍정감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이다.
성공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에서 자기긍정감을 강조하다보면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고, 자기긍정은커녕 자기부정이 더 커진다. 성공은 스스로 통제불가능한 것이며 남이 멋대로 만든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기본적으로 성공체험보다 나의 존재 자체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나를 소중히 여겨야 자기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우리는 농구계의 전설적인 코치 존 우든이 말한 성공의 정의를 기억해야 한다. "송공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인식하고, 그것에 만족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다."
남이 정해준 기준 대신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에 눈을 돌리고, 꾸밈없이 솔직하게 자기존재감의 에너지를 자양분으로 삼고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우리는 대부분 사회의 다수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라던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인지적 사고방식으로 무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인지적 뇌를 활용하여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면서 현재 상황을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 인간의 뇌가 구조적으로 그 상황을 부정하거나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내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 방법을 주도하는 것은 뇌의 비인지적 활동이다.
인지적 고정관념에서 탈출하고 자기존재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렛잇비와 렛잇고가 중요하다. 어떤 의미이던 간에 it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관건이다. 둘 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나라는 존재, 양보다는 질, 결과보다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비인지적 상태인 마음챙김이 있는 뇌를 활용하면, 스트레스나 불쾌감의 바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요가, 명상 등으로 나에게 집중하면서 내 안에서 무엇이 발생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 중에서 가장 먼저 관찰해야 하는 것은 내 마음의 상태다. 특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외부에서 다양한 일이 발생하는 것처럼 내 안에서도 다양한 감정이 매일 생겨난다. 이를 깨닫는 것마으로도 뇌의 균형이 잡히고 마음이 안정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소설을 꼽자면 단연 삼국지가 1위로 꼽힐 것이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고, 열 번 이상 읽은 자와는 감히 경쟁하려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의 2세기 말에서 3세기 말을 시대배경으로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를 다룬 역사서 정사 삼국지는 진수가 지었고, 나관중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는 14세기에 지어졌다. 후리가 흔히 말하는 삼국지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일컫는다.
삼국지와 삼국지연의 이 둘은 이야기의 큰 줄기는 같지만 세세한 부분은 서로 다른 부분도 많다. 중국의 서기 184년 후한의 쇠퇴와 황건적의 난으로 인한 군웅할거 시대부터 사마염이 건국한 서진이 중국을 통일한 280년까지 있었던 역사를 다룬 책으로 이것의 소설판인 삼국지연의는 중국 4대 기서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사람이 많으며 21세기인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읽는 동아시아권을 대표하는 고전소설이다. 아마 영미문학권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미치는 영향과 동등하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지는 게임, 애니메이션, 책, 영화, 드라마, 만화, 연극 등 가능한 모든 매체로 수도 없이 쓰여질 정도로 유명하며, 삼국지에서 나온 지략과 전술 등은 이천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인용되고 회자되기도 한다.
이 책은 중국 닝보대학 특임교수이자 작가로 활동중인 심리학자 천위안이 지은 책이다. 저자는 현대 사회심리학 이론을 통해 역사속 인물이나 사건을 분석하는 '심리설사'의 창시자로 통하며, 심리학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한 최초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삼국지의 주인공은 흔히들 유비, 관우, 장비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현명함과 훌륭한 재상의 전형으로 제갈량을 꼽으며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영웅이다. 그의 자를 따서 흔히 제갈공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갈량은 촉한시대 정치가 겸 전략가로서 일찌기 유비를 따라 유비가 나라를 세우는 데 많은 공을 세웠고,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대군을 대파한 에피소드가 가장 유명하다. 한나라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승상이 되었다. 워낙 명성이 높아서 와룡선생이라 불리기도 했다.
저자는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과 관련된 에피소드만을 뽑아서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함께 그 속에 담긴 인물의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해 낸다. 이천년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나와 내 주변에서 현재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략 1000명 정도 되며, 워낙 분량 자체도 방대하여 책을 읽기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제갈량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뽑아내었고, 심리학적 관점으로 사건을 들여다보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삼국지를 읽지 않은 일반독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제갈량의 행동을 분석하고, 제갈량의 명석함을 다시 한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옽앻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인생의 지혜와 처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진화가 고안한 해법들을 보면 지적 설계자intelligent designer가 설계했다면 절대 택하지 않았겠다 싶은 것이 많다. 새 비행기 개발 임무를 맡은 항공공학자는 추진력, 양력, 항력 같 은 부분에 대한 이론적 분석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모 형을 제작해서 실험을 해본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은 비행기를 제작할 때 안전하게 지상에서 그 부품들을 조립하고, 조정하고, 테 스트 해본다는 것이다. 진화는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한다. 종이 진화할 때는 항상 '비행 중'에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수정은 완전한 기능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린든David Linden은 사람의 뇌를 진화의 조잡한 땜질식 처방이 점진적으로 축적된 것이라 표현했다." 뇌가 진화하는 동안 새로운 구조물이 낡은 기능적 구조물 위에 얹히다 보니 불필요하게 중복되고, 복잡해지고, 자원이 낭비되고, 때로는 똑 같은 문제의 해결을 두고 여러 해법이 서로 경쟁하는 일도 생겼다. 더군다나 컴퓨터 측면에서 계산과 관련된 새로운 요구들이 등장했지만 그런 요구를 현재의 하드웨어에 그대로 적용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은 없었다. - 뉴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얼룩말'에 해당하는 노드는 대체 무엇일까? 뉴런 하나는 얼룩말이라는 개념에 해당하고, 또 다른 뉴런 은 당신의 할머니에 해당하는 식일까? 그렇지 않다. 뇌가 사실상 무한히 많은 대상과 머릿속 개념들을 정확히 어떻게 부호화하는 것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얼룩말 등 모든 개념이 뉴런 집단의 활성을 통해 부호화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얼룩말' 노드는 경계가 모호한 뉴런의 집단, 즉 서로 연결된 뉴런의 무리(꼭 가 까이 붙어 있을 필요는 없다)로 생각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동시에 사이클 선수, 텍사스 사람, 암 생존자 등 서로 다 른 별개의 사회집단에 소속될 수 있는 것처럼, 어느 한 뉴런도 여러가지 서로 다른 노드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로 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의 신경외과의사 이차크 프리트Itzhak Fried는 뉴런과 노드 사이의 관계를 얼핏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 다. 그와 동료들은 환자에게 유명한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 사람의 피질cortex에서 단일 뉴런을 기록해 보았다. 일부 뉴런은 특정 유명인사의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활성화됐다. 예를 들면 한 뉴런은 여배우 제니퍼 애니스톤Jennifer Aniston의 사진을 아무것이나 보여주면 그에 반응해서 흥분한 반면, 같은 영역에 있는 또 다른 뉴런은 빌 클린턴 Bill Clinton의 사진에 반응했다. 바꿔 말하면 그 환자가 어느 사진을 보고 있는지 알지 못해도 뉴런의 활성만 관찰하면 환 자가 어떤 유명인을 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 다면 첫 번째 뉴런은 '제니퍼 애니스톤' 노드의, 그리고 다른 뉴런 은 '빌 클린턴' 노드의 한 구성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니퍼 애니스톤 노드나 빌 클린턴 노드에 속한 뉴런이라도 그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진에 흥분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노드가 뉴런의 집단에 대응한다면, 시냅스는 링크에 대응한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우리의 '뇌' 노드와 '마음' 노드가 서로 강력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이 노드들을 표상하는 뉴런들 사이에도 강력한 시 냅스 연결이 존재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노드와 뉴런, 그리고 링크 와 시냅스 사이의 대응관계를 통해 심리적인 수준에서의 의미 네트 워크semantic network와 뇌의 생물학적 기본 구성요소 사이의 역학관 계mapping를 이해할 틀을 얻을 수 있지만, 이것은 엄청나게 단순화된 시나리오임을 명심해야 한다. - 1970년대 초반에 신경과학자 티모시 블리스Tim Bliss와 테리에 뢰고Terje Lomo는 시냅스전 뉴런과 시냅스후 뉴런이 강하게 활성 화되고 난 후에 해마hippocampus (새로운 기억의 형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 려진 뇌 영역)에 있는 시냅스의 강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져 있는 것을 관찰했다. 장기강화long-term potentiation라고 하는 이 현상은 '시냅스 기억 synaptic memory'의 한 사례다. 즉 이 시냅스들이 자기가 강하게 활 성화된 적이 있었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 발견과 더불어 수십 년 동안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시냅스 강도의 변화가 DVD 반사 면을 태워 구멍을 내는 것의 뇌 버전에 해당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 과학이 흔히 그렇듯이 이 중요한 발견은 훨씬 더 당혹스러운 의문으로 이어졌다. 시냅스가 가소성이 있다면 어떻게 그 두 뉴런은 자기들 사이에 있는 시냅스가 더 강해져야 할지, 더 약해져야 할지 '결정'하는 것인가? 20세기의 가장 핵심적인 과학적 발견 중 하나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발견을 통해 우리가 이 모든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데 사용하는 뇌라는 기관의 작동방식에 대한 강력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는 X 뉴런 과Y 뉴런이 대략 같은 시간에 활성화되면 그 둘 사이의 시냅스 강 도가 증가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이 단순한 개념은 이것을 1949 년에 처음 제안했던 캐나다의 심리학자 이름을 따서 헵의 법칙 Hebb's rule이라고 부른다.13 이 규칙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다듬어지게 됐 다. "함께 흥분하는 뉴런은 함께 연결된다." 공통의 시냅스후 뉴런 Post로 시냅스를 형성하고 있는 두 시냅스전 뉴런 Prel과 Pre2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헵의 법칙에 따르면 Prel과 Post가 동시에 흥 분한 반면, Pre2와 Post는 그렇지 않을 경우 Prel → Post 시냅스는 강해지고, Pre2→ Post 시냅스는 약해지게 된다. - 정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분류되고, 무리 지어지고, 저장된다. 18 당신이 인도에 살고 있다면 당신의 '소' 뉴런은 아마도 '신성함' 뉴런과 연결되었을 것이다. 반면 당신이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다면 '소' 뉴런은 '먹는 고기' 뉴런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자기조직적 속성 때문에 인간의 기억은 경험을 아무 생각 없이 정확하게 담아내는 것에 만 치중하는 비디오카메라보다 전략적으로 여러 면에서 훨씬 우월 하다. 뇌의 연관구조는 기억과 의미가 한데 얽히게 해준다. 링크는 기억이자 동시에 의미인 것이다. - 마술사와 심리학자들은 간섭이나 잘못된 정보를 통해 기억을 덮어쓸 수 있음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사법체계는 이런 부분을 인정하는 데 느렸다. 하지만 목격자 심문 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요즘에는 경찰이 심문할 때 "사고 현장에 SUV가 있었습니까?"라는 질문 대신 "사고 현장에 대해 설명해 주 십시오."라는 식으로 개방형 질문open-ended question을 할 것을 권장하 고 있다. SUV 같은 것을 언급하면 범죄현장에 대한 기억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목격자에게 용의자를 보여줄 때도 라인업으로 일렬로 세워서 보여주기보다는 한 명씩 차례대로 보여주는 것이 낫다. 라인업으로 보여주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 중에 서 누군가 한 명을 고르도록 목격자를 부추기는 효과가 있기 때문 이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력이 과속차량이 해치백이었는지 쿠페였 는지, 도둑의 눈 색깔이 갈색인지 초록색인지, 경찰이 현장에 1~2 분 안으로 도착했는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속, 정확하게 저장하 도록 진화적으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 초기 기억은 잉크가 덜 마른 손글씨처럼 취약하기 때문에 몇 가지 요인에 의해 교란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정보를 학습 하면 최근에 습득한 정보의 장기저장에 간섭을 일으킬 수 있다. 자기의 새로운 전화번호를 암기하고 10분 후에 친구의 전화번호를 외우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일부 약물과 전기충격요법도 새로운 기억의 형성을 방해할 수 있다. 동물연구에 따르면 쥐가 미로에서 길 찾는 법을 학습한 직후에 단백질 합성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더니 쥐가 길 찾는 법을 까먹고 말았다. 이런 약물이 새로운 기억의 형성에 간섭을 일으키는 이유는 시냅스 강도의 장기강화가 일어나려면 뉴런 내부에서 새로운 단백질이 합성되어야 하기 때문 이다. 헵의 가소성이 작용한 결과로 시냅스가 강화potentiated된 직후 에 단백질 합성 억제제를 투여하면 시냅스 강도의 증가, 즉 시냅스 기억 synaptic memory을 역전시킬 수도 있다. 실제 기억과 '시냅스 기억 (시냅스 강도의 변화)' 모두 유사하게 단백질 합성 억제제에 의해 지워 질 수 있음을 관찰한 것은 시냅스 기억이 실제 기억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첫 번째 증거 중 하나였다. 동물이 학습을 경험하고 몇 시간, 혹은 며칠 후에 단백질 합성 억 제제를 투여하면 기억의 손실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와 비슷하게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전기충격요법을 가하면 치료 직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기억만 소실된다. 기억이 취약해서 쉽게 지워 질 수 있는 초기 단계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후기 단계로 이행되 는 것을 응고화consolidation라고 한다. 잉크가 마르면서 시냅스 강도 에 생긴 변화가 일시적 매체에서 영구적인 매체로 변화하는 것으 로 보인다. 하지만 시냅스 수준에서 이런 과정에 대응하는 것은 무 엇일까? 시냅스의 생화학적 반응에 의존하는 시냅스 기억으로부터 초기 단계에 단백질 합성이 필요한 더 영구적인 '구조적 변화로의 이행도 부분적으로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동물 연구에 따르면 스피드데이트speed dating (솔로인 남녀들이 짝을 찾을 수 있도록 여러 명이 돌아가 며 잠깐씩 맞선을 보게 하는 행사 - 옮긴이)처럼 우리 뇌 속의 많은 시냅스 들은 애초에 탐험정신이 강하다. 그래서 시냅스전 뉴런과 시냅스후 뉴런들 사이에서 일시적으로 연결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 듯 방랑벽이 있었던 시냅스들이 영구 안정화되는 형태로 뇌의 배 선에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장기적인 학습이 일어나는 것으 로 보인다." 기억 응고화라는 개념은 심리학과 신경과학에서 아주 큰 영향력 을 미쳤다. 하지만 일부 경우에서 '응고화된 기억이 한때 생각했던 것처럼 불변은 아니라는 증거가 나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부 사례에서는 응고화된 기억이 약물, 정신적 외상, 혹은 다른 기억으로부터의 간섭에 의해 다시 취약해져 지워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 났다." 이것을 재응고화reconsolidation라고 한다. 5장에서 살펴보겠지 만 쥐를 소리와 함께 충격이 가해지는 상황에 노출시키면 특정 소 리에 반응해서 공포를 표현하는 법을 쉽게 학습시킬 수 있다. 이런 학습이 이루어지고 24시간 후에 단백질 합성 억제제를 투여하면 쥐 의 기억에서 거의, 혹은 아무런 영향도 관찰되지 않는다. 쥐는 계속 두려움의 행동을 나타낸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나중에 쥐에게 충격 은 가하지 않고 소리의 형태로만 그 공포를 떠올리게 하면서 약을 투여하면 일종의 기억상실을 유도할 수 있다. 즉 쥐가 그 소리에 대 한 두려움이 줄어든 것처럼 행동한다. 바꿔 말하면 오래된 기억을 재활성화했더니 다시 지우기 쉬운 상태로 변했다는 얘기다. 이 재 응고화의 정확한 메커니즘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런 연구결 과를 보면 저장과 인출이 서로 별개의 과정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 인할 수 있다. - 피질이 백지처럼 거의 비어 있던 어린 시절에는 용량이 넉넉하니 정보가 수백, 수천만 개의 시냅스에 크고 굵은 글씨로 여유 있게 기록된다. 그러다 말년이 되면 백지 상태의 시냅스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종이 여백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놓은 것처럼 정보를 성기게 기록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시냅스와 뉴런의 개조, 덮어쓰기, 상실 에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추측일 뿐이지만 이런 시나리 오를 이용하면 리보의 법칙 Ribot's law을 설명할 수 있다. 이 법칙에 따 르면 우리는 가장 최근의 기억을 먼저 잃고, 제일 오래된 기억을 제 일 나중에 잃는다. 이런 현상은 알츠하이머병에서도 관찰된다. 이 경우 그 사람의 인생은 역방향으로 천천히 지워진다. 처음에는 최 근에 사귄 친구와 손자를 못 알아보거나 이름을 잊어버리고, 그 다 음에는 자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자기 배우자와 형제에 대한 지식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다. - 우리의 경험 대부분을 장기기억에 저장하지 않는 한 가지 이유는 공간 절약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정보들이 정신적인 스팸 메일에 해당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억의 목적은 결국 정보 저장이 아니라 주변 세상의 사건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 으로 이 정보를 정리하기 위함이다. 다니엘 샥터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대한 정보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선에서만 유용하다.” 대량의 정보를 저장하는 것과 이 정보를 정 리하고 사용하는 것 사이에 절충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 환각지증후군도 직관에 어긋나지만, 신체지각과 관련된 더 기이 한 증후군도 존재한다. 특정 유형의 피질 외상(뇌졸중일 때가 많다) 을 겪고 난 후에 자기 몸의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지 못할 수 가 있다. 팔다리 자체는 제대로 기능한다. 근육, 그리고 팔다리를 척 수와 이어주는 신경은 온전하다. 이것은 보통 일시적인 형태로 나 타나는 희귀한 신체 무시 증상으로 신체망상분열증somatoparaphrenia 이라고 부른다. 의사가 이 증후군이 있는 사람의 해당 팔을 건드리 면 그 환자는 건드리는 것을 의식적으로 감지하지 못하겠다고 한 다. 하지만 아픈 자극을 가하면 그에 반응해서 반사적으로 팔을 움 직인다. 탁자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팔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팔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게 누구의 팔이냐고 물어보면 그냥 모르겠다거나, 다른 사람의 팔이라 얘기한다. 한사 례에서는 자기 왼손이 의사의 손이라고 믿은 환자가 이렇게 얘기 했다. "그건 제 반지예요. 제 반지를 의사 선생님이 끼고 계시네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에서 올 리버 색스Oliver Sacks는 뇌졸중을 앓고 난 후에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침대에서 떨어진 한 환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환자가 나 중에 설명하기를 눈을 떠보니 사람의 다리 하나가 자기와 함께 침 대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 다. 그래서 그 다리를 침대 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도 침대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리는 바로 그 환자의 다리였다." 환각지증후군과 신체망상분열증은 어찌 보면 서로가 서로의 거울상이라 할 수 있다. 한 증후군에서는 사람이 존재하지도 않는 팔 다리를 지각하고, 다른 증후군에서는 육체적으로 멀쩡한 팔다리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 두 증후군은 정신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자신 의 몸을 느낀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뇌의 뉴런만 활성화시켜도 건드리는 느낌, 혹은 팔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알고 나면 환각지감각이 생겨나는 이 유를 이해할 수 있다. 환각지감각의 원인에 대해 처음으로 제기된 과학적 가설 중 하나는 이것이 잘려나간 신경이 사지 절단 부위에 서 다시 자라서 생긴 결과라는 것이었다. 대단히 논리적인 가설이 었다. 절단된 신경섬유의 말단부distal end가 실제로 남아 있는 절단 부stump로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손을 지배하 던 신경이 절단 부위를 지배해서 중추신경계로 신호를 보낼 수 있 다. 그럼 중추신경계는 마치 잃어버린 사지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이 신호를 해석한다. 초기의 환각통 치료법 중에는 이런 가설을 바탕으로 절단부에 있는 신경, 혹은 척수로 들어가는 신경을 외과적으로 제거하는 방법도 있었다. 일부 사례에서는 이런 수술이 효과를 보았지만 일반적으로는 환각통에 대한 영구적 치료가 이루 어지지 않았다. 요즘 과학자들은 환각지감각이 잃어버린 팔다리를 지배하던 신경으로부터 오는 비정상적인 신호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뇌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 때문에 야기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직접적인 뇌 자극이 실제 자극을 대체하는 것으로 보았던 원숭이 실험에서처럼, 정상적으로는 팔에 의해 활성화되어야 할 뇌 속 뉴런들이 지속적으로 흥분을 이어가는 바 람에 환각지를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의문은 남아있다. 정 상적으로는 팔다리에 반응을 보여야 할 뇌 속 뉴런들이 어째서 그 팔다리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는데도 계속 활성을 이어가는 것일 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뇌의 가장 강력한 특성 중 하나인 적응 능력이 브레인 버그가 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 해준다. - 초창기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은 주어진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메모리의 양을 미리 할당해야 했다. 즉 얼마나 많은 메모리가 사용 될지 미리 추측해야 했다. 그래서 초창기 일부 소프트웨어는 다룰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미리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 고 더욱 정교한 프로그래밍 언어가 개발되면서 동적 메모리 할당 dynamic memory allocation이 가능해졌다. 워드프로세서에 더 많은 글을 타이핑하면 그에 따라 파일에 할당되는 메모리양이 극적으로 늘어 난다. 계산 능력의 할당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뇌는 이런 전략을 수 천만 년 동안 사용해 왔다. 다만 피질 영역의 동적 할당은 몇 주나 몇 달에 걸쳐 일어나는 점진적인 과정이다. - 귀는 환경의 위험 요소와 노화 과정 에 특히나 예민하다. 우리가 갖고 태어난 소중한 유모세포가 애초에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각각의 달팽이관에는 가장 중요한 유형의 유 모세포인 내유모세포inner hair cell가 3,500개 정도밖에 없다(반면 각각 의 망막에는 광수용기photoreceptor가 1억 개나 들어 있다). 높은 진동수의 음 에 반응하는 유모세포가 손상을 입으면 당연히 고음을 듣는 데 장 애가 생긴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윙윙 소리는 난청으로 들리지 않 는 소리와 같은 음높이에 해당한다. 즉 달팽이관에서 높은 진동수 의 소리에 반응하는 유모세포가 손실되면 높은 진동수의 윙윙 소리 가 지속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환각 증상과의 유 사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명과 환각지 모두 정상적인 감각 입 력의 손상 혹은 결여와 관련이 있다. 이명은 환각지의 청각적 등가 물, 즉 환각음phantom sound인 것이다. - 뇌졸중 후에 찾아올 수 있는 실어증, 운동통제력 상실, 신체 무시 등 여러 가지 신경학적 증후군 증상의 밑바탕에는 뇌의 모듈성이 자리잡고 있다. 외계인 손 증후군과 카그라스 증후군의 원인은 더 불가사의하지만 아마도 뇌의 특화된 하위시스템이 상실로 인 한 것일 듯하다. 외계인 손 증후군은 전두피질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판단을 담당하는 '집행executive' 영역과 실질적인 실천을 담당 하는(즉 목표를 실제 손의 행동으로 옮기는) 운동 영역 사이의 소통 단절이 낳은 결과일 수도 있다. 카그라스 증후군은 안면 인식과 감정적 중요성 emotional significance을 이어주는 영역에 손상을 입은 결과라는 주장이 나와 있다. 우연히 세상을 떠난 가족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마주쳤다고 상상해 보자. 어리둥절한 반응이 나올 수는 있 지만 그 사람을 끌어안으며 긍정적인 감정적 반응이 나올 가능성 은 낮다. 그 사람의 얼굴은 알아보지만 그 얼굴에 따라오는 감정 적인 영향이 업로드가 안 되기 때문이다. 카그라스 증후군 환자 의 경우 부모의 얼굴을 알아보지만 사랑이나 익숙함의 감정이 따 라오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뇌의 모듈은 지능, 영성, 용기, 창의성같이 명확하고 깔끔하게 정의된 속성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성격적 특성과 판단은 서로 다른 많은 영역의 통합적 노력이 필요한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현상이다. 여기서 각각의 영역들은 중요하지만 뭐라꼬 집어 규정하기는 힘든 역할을 담당한다. 뇌의 모듈들이 자동차 부 품처럼 변경 불가능한 고유의 전문적 역할로 특화되었다고 생각하 면 안 된다. 그보다는 축구팀과 비슷하다. 각기 선수의 수행능력은 다른 선수들의 수행능력에 크게 좌우되며, 한 구성원이 빠지더라도 다른 구성원이 대신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효 과적인지는 다양하게 나타나겠지만 말이다. - 학습하고, 적응하고, 재조직하는 뇌의 놀라운 능력에는 이면이 존재한다. 신경 가소성은 외상에 반응해서 환각지와 이명 등의 장 애를 만들어낼 수 있다. 외상에 반응해서 브레인 버그가 표면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우리의 신경운영체계는 이런 조건 아래서 한 번도 검증이나 디버깅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테 니까 말이다. 피질 가소성은 뇌가 주변 세상에 적응하고, 그 세상 을 바꿀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진화한 것이지 외상이 나 부상에 적응하는 메커니즘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치열한 경쟁의 세상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개체는 십중팔구 더 이상 유전자풀gene pool에 끼지 못한다. 따라서 뇌 가소 성과 신체나 뇌에 가해지는 심각한 외상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발 생할 수 있는 작은 문제들을 제거하는 선택압은 상대적으로 약했 을 것이다. 비행기 조종석에는 플랩 flap (비행기 날에게 경첩으로 연결되어 달린 판으 로 위아래로 움직여 비행기의 양력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 옮긴이)과 이착륙 장치의 위치, 엔진의 온도, 남은 연료, 구조의 온전함 등의 상태에 대해 측정해서 알려주는 계기판이 달려 있다. 이런 센서들 덕분에 조종석의 메인 컴퓨터는 이착륙 장치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컴퓨터가 이착륙 장치를 느끼지는 않는다. 인체도 전신에 감각 센서들이 분포되어 팔다리의 위치, 외부 온도, 남은 에너지, 구조적 온전함 같은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런데 계산 장치로서 뇌의 탁월한 점은 진화 덕분에 뇌가 말초 장치로부터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장치들을 의식적으로 자각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당신이 어둠 속에서 깨어 있을 때 뇌는 그냥 당신 왼팔의 위치를 말로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팔에 대한 느낌을 머리뼈 바깥 세상에 투사함으로써 그에 대한 소유의식을 애써 만들어낸다. 이 세련된 제스처 놀이charade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뇌 자체의 가소성 메커니즘이 망가진 상황에서는 뇌가 더 이상 팔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 속 지점으로 팔에 대한 감각을 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뇌가 부여해 준 가장 쓸모 있고 탁월한 착각 중 하나인 신체 자각body awareness의 대가인지도 모르겠다 - 우리 선조들에게 인생은 지금보다 더 짧고, 예측하기도 힘든 여정이었다. 몇 달 후, 혹은 몇 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먹을 것을 구해서 살아남는 것이 당면 과제였다. 만약 당신이 한 달 후에도 살아있을지 장담할 수 없거나, 위에 나온 제안을 한 사람을 신용할 수 없는 경우라면 당장 현금을 손에 넣는 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파산해서 아이들이 당장 쫄쫄 굶고 있는 경우에도 20달러를 더 받겠다고 한 달을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기다렸다가 더 큰 보상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려면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을 거라 믿을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그 제안을 한 사람이 미래에 내게 더 큰 보상을 해주리라 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이는 인류의 진화 역사 대부분에서 충족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 1초라는 짧은 시간 척도 안에서도 뇌는 시간을 제멋대로 뜯어고 친다. 그저 시간을 왜곡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각표에서 사건들 을 삭제하거나 삽입하는 것은 물론, 사건의 실제 발생 순서를 뒤바 꾸기도 한다. 천둥과 번개가 동시에 만들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알 고 있지만, 천둥소리보다 번개를 먼저 보게 된다. 빛의 속도는 소리 의 속도보다 백만 배나 빠르기 때문에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사건만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 속 사건에서도 현저한 시간 지연이 일어난다. 교향악 연주회에서 연주자가 심벌즈를 치면, 관객은 치는 것과 동시에 소리를 경험하게 될까? 그렇다. 무대와 100 미터나 떨어진 저렴한 좌석에 앉은 관객이라도 보는 것과 동시에 들리는 경험을 한다. 이 정도의 거리면 심벌즈로부터 오는 광자의 도착 시간과 공기 진동의 도착 시간 사이에 300밀리초 (0.3초) 정도의 시간 지연이 일어난다. 이 정도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출발신호를 듣고 뛰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시간이다. 하지만 뇌는 동시성에 대한 지각을 마음대로 조정해 버린다. 사실상 뇌가 자신이 지각하는 시각 자극의 도착을 지연시켜 소리 신호가 그 사이에 따라잡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 이 문장을 읽는 동안 당신은 각각의 개별 단어를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각각의 단어를 고생스럽게 하나씩 이어 붙여가며 문장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무의식적으로 단어와 구절들을 덩어리로 나누다가 어느 결정적인 시점에서 문장의 전체적인 의미를 의식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다음의 두 문장에 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The mouse that I found was broken. (내가 찾아낸 마우스가 고장이 나 있었다) The mouse that I found was dead. (내가 찾아낸 생쥐가 죽어 있었다) 양쪽 경우 모두 'mouse(컴퓨터 장치 마우스 혹은 생쥐)'의 적절한 의미 는 문장 맨 마지막 단어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 리는 마지막 단어에 도달하고 난 후에 처음에 해석했던 'mouse'의 의미를 바꾸는 식으로 문장을 이해하지 않는다. 위의 문장을 읽거 나 듣는 동안에 뇌가 문장 마지막 단어에 의해 확립된 의미에 맞게 'mouse'의 의미를 거꾸로 편집하는 것이다. 뇌는 마지막까지 기다 렸다가 문장의 의미를 의식으로 전달해야 한다. 각각의 단어에 대 한 인식이 실시간으로 순서에 따라 생성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 보다는 무의식적 과정을 통해 문장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이 나올 때까지 인식이 '잠시 멈춤'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관찰을 확 장하면 의식 그 자체도 착각에 기반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즉 의식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연속해서 설 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잘라내기, 붙여넣기, 시간의 덩어리 지연 하기 등을 통해 사후구성해서 바깥세상의 사건들에 대해 안이한 설명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 뇌에서 사용되는 서로 다른 시간 측정 장치 중 그 내부 작동 방 식이 가장 잘 이해된 것은 아마도 일주기리듬 시계일 것이다. 사람, 초파리, 심지어 단세포 생명체까지도 낮과 밤의 주기를 추적할 수 있다.30 어째서 단세포 생명체가 하루 중 시간을 신경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단세포 생명체에서 일주기리듬 시계의 진화를 촉발한 원동력 중 하나는 아마도 태양으로부터 오 는 자외선의 해로운 효과였을 것이다. 자외선은 세포분열에 필요한 DNA 복제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피부 같 은 보호기관이 없는 단세포 생명체인 경우 빛으로 인해 생기는 복 제 오류에 특히나 취약하다. 따라서 세포분열을 밤에 하면 번식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고, 밤의 시작 시간을 예측할 수 있으면 밤이 찾아오기 전에 필요한 세포 장치들을 준비시킬 수 있어서 복제를 최적화할 수 있었다. - 애초에 뉴런은 단순한 생명체들이 가능한 먹이공급원을 감지하면 그쪽으로 움직이고, 잠재적 위협을 감지하면 그로부터 멀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해 진화했다. 이런 행위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지만, 유기체가 시간을 알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원초적 형태의 뉴런은 시간을 알 수 있게 설계되지 않았다. 하지만 진화의 군비경쟁이 진행됨에 따라 적절한 시간에 반응하는 능력, 즉 다른 생명체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예측하고, 다가올 사건을 예상하고, 결국에 가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신호를 이용해 소통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 자연선택에서 대단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리하여 뉴런 네트워크가 몇 밀리초에서 몇 시간에 이르는 다양한 시간 척도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해줄 적응과 전략 이 조금씩 등장했다. 하지만 진화의 설계가 모두 그렇듯이 시간을 알아내는 능력은 무계획적으로 진화했다. 그래서 많은 특성이 그냥 빠져 있다가 나중에 땜질식으로 추가됐다. 일주기리듬을 생각해 보 자. 생명이 지구에 살기 시작하고 30억 년 동안 생명체가 몇 시간 만에 지구를 반 바퀴 가로질러 이동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20세 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신속하게 리셋할 수 있는 일주기리듬 시 계를 만들어야 할 진화적 압력은 한 번도 작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로 나타나는 것이 시차증jet lag이다. 대륙을 가로질러 여행해 본 사 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미국에서 일본으로 여행을 가고 나면 며칠 동안은 수면 패턴과 전반적인 정신건강 상태에 문제가 생긴다. 손 목시계와 달리 우리 내면의 일주기리듬 시계는 리셋 명령이 없다. - 진화는 원래 두서없이 설계가 이루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결과로 우리는 여러 가지 다른 생물학적 시간 측정 장치를 뒤섞어서 갖게 됐다. 이 각각의 장치들은 해당 시간 척도에 맞추어 특화되어 있다. 뇌가 시간을 알아내는 데 사용하는 다양한 개별 전략들 덕분에 사람은 말과 모스부호를 이해하는 능력, 빨간 신호등이 파란 신호등으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을 판단하는 능력, 지겨운 강의가 끝날 때가 됐다고 예상할 수 있는 능력 등 여러 가지 능력을 갖추게 됐다. 뇌가 시간을 알아내는 데 사용하는 전략은 몇 가지 브레인 버그로도 이어졌다. 예를 들면 시간이 주관적으로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고, 착각해서 감각 자극의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고, 원인과 결과 사이의 적절한 지연시간이 이 정도라고 선천적으로 가정하는 바람에 정신적 맹점이 생기고, 자신의 행위가 낳을 단기적 결과와 장기적 결과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가 어려워지는 등의 버그다. 이 마지막 버그는 우리의 삶에 가장 극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인생이 짧고, 예측 불가능한 질병, 먹거리, 날씨 등에 휘둘리던 세 상에서는 복잡하게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수고를 무릅쓰는 것이 별 장점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정반대다. 지금 은 장기적인 생각의 부족이 가장 큰 위협일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 는 진화적으로 현재 중시 편향present bias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근시안적인 판단을 내리는 성향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건강과 경제적 판단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 해결책보다는 근시안적 성향에 기댄 단기적 해결책을 약속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하게 만든다. 아동에서 성인으로 발달하는 데 필요한 요소는 바로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을 고민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즉 기다려서 마시멜로를 하나 더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진화가 동물에게 특정 자극(포식자의 냄새나 등장 등)을 두려워하도록 프로그램 해놓았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일부 생명체가 다른 동물의 공포 회로를 조작하는 능력을 진화시켰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일부 기생생물은 자신의 의도 에 맞추어 숙주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소름끼치는 능력을 갖 고 있다. 광견병이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광견병에 걸린 개는 침을 줄줄 흘린다. 그 침 안에는 다음 숙주를 감염시키고 싶어 안달이 난 바이러스가 가득 들어 있다. 만약 감염된 개가 하루 종일 어느 구석 에 처박혀 누워있기만 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무척 낮을 것이다. 하지만 개가 공격성이 강해져 다른 동물을 물면서 돌아다닌다면 바이러스가 잠재적 숙주의 혈류로 침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보잘 것 없는 광견병 바이러스는 신체강탈자처럼 자신의 필요에 맞추어 개의 행동을 조작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경기 생neuroparasitism의 또 다른 사례로 톡소플라스마원충Toxoplasma gondii] 라는 단세포 생명체가 있다. 이 원생동물의 생활사를 보면 고유숙 주인 고양이의 몸속에서만 번식할 수 있지만 그 전에 중간숙주의 몸에서 보내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 중간숙주 중 하나가 쥐다. 톡소플라스마는 일단 쥐의 몸속에 들어가면 포낭cyst을 형성한다. 이 포낭이 쥐의 몸속에서 고양이의 몸속으로 옮겨가야 한다. 물론 이런 일은 자연적으로도 일어난다. 하지만 이 기생충은 사악한 중매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쥐의 공포 회로를 망가뜨려서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을 지움으로써 낭포가 쥐에서 고양이 뱃속으로 옮겨갈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동물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을 유전적으로 부호화하는 것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진화적 적응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단 히 경직된 전략이기도 하다. 느린 진화적 시간척도에서만 재프로그 래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섬에 새로운 동물이 도착한 경우처럼 새로운 포식자가 등장했을 경우에도 공포회로를 업데이트하려면 수천 세대가 걸릴 수도 있다. 동물에게 수명 기간 동안 자기가 두려 워해야 할 대상을 학습하는 능력을 부여하면 포식자를 피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전략이 열린다. 포식자가 등장하기 전에 어떤 소리나 냄새가 나는지, 그리고 포식자가 돌아다닐 가능성이 높은 장소가 어디인지 학습할 수 있다. - 영장류의 진화 기간 대부분에서 화가 난 개체와 낯선 개체에 대 한 선천적인 공포, 혹은 그런 개체들에 대한 공포를 쉽게 학습하 는 성향은 수명을 늘려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침팬지는 낯선 개체 에게 극단적인 공격성을 보일 수 있다. 수컷들은 자기 영역에 들어 온 외부 개체를 때려죽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공격은 대단히 참혹해서 희생자의 고환을 물어뜯는 경우도 있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이렇게 말했다. "침팬지가 외부인 혐오증 xenophobia이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동물원 같은 인공적 인 환경에서도 이미 자리 잡은 사회집단에 새로운 수컷 성체를 도입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영장류와 기타 사회적 동물이 외부자에 대해 공격성을 보이는 데는 먹이와 암컷을 향한 경쟁 등 많은 이유 가 있다. 침팬지에서는 외부자에 대한 공포가 학습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다른 사회적 동물과 마찬가지로 침팬지도 외부자 에 대한 공포를 학습할 준비가 선천적으로 되어있을 공산이 크다. 인간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30 외부자를 불편하게 여기고 신뢰 하지 않는 선천적인 성향은 진화적으로도 말이 된다. 이것은 기본 적인 생존 전략의 일부다. 인간의 진화 역사 내내 이웃한 집단들 사 이에서 지속적으로 경쟁과 공격성이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이런 의문이 든다. 어째서 공포가 그렇게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일까?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공포 회로 중 상당 부분은 전액골피질prefrontal cortex 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동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전액골피질을 구 성하고 있는 수많은 영역들은 의사결정, 주의력 유지하기, 행위 및 의도 다스리기, 특정 감정이나 생각 억제하기 등 우리가 집행기능 executive function 이라 부르는 것에 관여한다.3 궁극적으로 보면 우리 의 행위는 집단 프로젝트로 보인다. 편도체처럼 오래된 뇌 영역과 전두엽에 새로 등장한 모듈들 간의 협상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이 다. 이런 뇌 영역들이 협상을 통해 감정과 이성을 적절히 절충해서 합의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런 균형은 맥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 에 때로는 감정으로 크게 편향될 수 있다. 편도체에서 피질 영역으 로 향하는 연결(축삭)의 수가 피질에서 편도체로 향하는 연결의 수 보다 훨씬 크다. 신경과학자 조르두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의 상 황으로 보면 피질이 편도체에 미치는 영향력보다는 편도체가 피질 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에 감정적 각성이 생각을 지배하 고 통제할 수 있다." - 공포 관련 브레인 버그가 생겨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선천적으로 무엇을 두려워할지 결정하는 유전적 서브루틴이 지금과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그 코드 중 상당 부분이 아예 다른 종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는 고물이 된 우리의 신경운영체계는 포식자와 이방인들이 예전처럼 위험하지 않고, 두려워해야 할 더 중요한 대상 이 생겼다는 메시지를 아예 받아보지 못했다. 지금은 포식자, 독이 있는 생명체,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덜어내고 빈곤 근절, 질병 치료, 이성적인 방위 정책 개발, 환경 보호 등의 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도 말이다. 공포 관련 브레인 버그가 생기는 두 번째 이유는 관찰을 통해 두 려움을 학습할 준비가 너무 잘 되어 있다는 점이다. 관찰 학습은 언 어, 문자, 텔레비전, 할리우드가 등장하기 이전에 진화했다. 또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알고, 실제 세계에서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을 볼 수 있기 전에 말이다. 간접 학습은 부분적 으로는 무의식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성에 부분적으로 저항성이 있고, 허구와 사실을 분간할 준비도 덜 되어 있는 듯 보인다. 더군다 나 현대 기술은 한 가지 무서운 사건을 거듭 반복해서 보여줄 수 있 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신경회로 안에서 그 사건에 대해 설명이 과장될 수 있다. - 우리의 유전적 인습이 낳은 한 가지 결과가 있다. 원숭이가 뱀의 위험성에 대해 당장이라도 결론을 내릴 준비가 선천적으로 되어 있 는 것처럼, 우리 역시 최소의 증거만으로도 다른 부족이나 국가의 사람들이 제기하는 위협에 대해 섣부른 결론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극적이게도 이런 성향은 자기충족적self-fulfilling이 다. 서로에 대한 공포가 서로에 대한 공격성을 자극하고, 이것이 다 시 서로에 대한 공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의 신경 메커니즘과 그 버그에 대해 더 긴밀히 이해하게 됨에 따라 우리는 낡은 선사시대 유전자의 속삭임과 실제로 우리의 안녕을 위험에 빠 뜨릴 수 있는 위협을 더 잘 구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때로는 직관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살면서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때 직관을 이용한다. (마크 해던Mark Haddon.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철로처럼 평행한 선이 망막에 투사되면 이 평행 한선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서로에게 수렴한다(두 철로 사이의 각도가 점차 줄어들기 때문이다). 종이 위에 그냥 두 선이 점점 더 서로 가까워 지게 그리기만 해도 이런 원근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뇌가 이 런 수렴을 이용해 거리를 추론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 착시 에 나온 사진은 건물의 아래쪽에서 바라본 모습을 찍은 것이다. 두 탑이 먼 쪽(이 경우는 높은 쪽)에서 수렴하지 않는 것을 보고 뇌는 이것 을 두 탑이 평행하지 않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탑이 벌어 지고 있다는 착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돈은 근래에 등장한 문화적 발명품이다. 돈은 가치를 쉽게 수량 화하고 선형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의 신경운영체계는 수치로 표현되는 결정을 내리거나, 모든 사람이 가치가 있는 것이 라 믿을 때만 가치가 발생하는 종이 쪼가리의 교환과 관련된 결정 을 내리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생태학적으로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음식 등 실물과 관련된 제안을 고려하는 것이다. 음식이 달려 있는 경우라면 손실회피 편향이 조금 더 이해되기 시작한다. 아프리카 사바나에 살았던 우리의 선조 우그족이 이틀치 정도의 식량을 숨겨두었는데 화성의 인류학 자가 짠하고 나타나서 식량을 걸고 2:1의 배당률로 도박을 제안했 다. 이 상황에서 우그족이 지금 당장 손에 든 음식에 유별나게 집착 하는 것은 대단히 이성적인 판단으로 보인다. 우선 우그족이 지금 당장 굶주려 있고 음식도 귀한 상황이라면 손실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돈과 달리 음식은 '선형적인' 자원이 아니 다. 음식을 2배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그 가치도 2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음식은 상할 수 있고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박 같은 제안은 거기에 참여 하는 당사자들 간에 대단히 높은 수준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로또 복권을 구입하거나 카지노에 갈 때는 그런 신뢰가 당연히 형성되어 있지만 인류의 진화 초기에도 그랬을 가능성은 낮다. 우리 뇌에 내장되어 있는 손실회피 편향은 아마도 우리 원시 선조들이 살던 시절이 남긴 흔적일 것이다. 당시에 우리 선조들은 돈처럼 다다익선의 깔끔한 선형적 관계를 따르지 않는 자원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했다. - 우리의 삶을 빚어내는 결정들은 부분적으로 보면 대단히 상호보완적인 두 가지 신경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산물이다. 자동 시스템은 무의식적으로 신속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대체로 뇌의 연관구조에 의존한다. 이 시스템은 더 감정적이다. 이것은 좋게 들리는 얘기 인지 나쁘게 들리는 얘기인지, 공정한지 불공정한지, 합리적인지 위험한지 등에 관심을 기울인다.38 두 번째 시스템인 추론 시스템은 의식적으로 노력을 투여해야 하는 것으로 오랜 기간 동안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가꾸어진다. 자동 시스템은 기존에 확립되어 있던 가정을 재평가하는 법을 배 울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추론 시스템의 지도가 필요하다. 어 린 시절에는 키가 크고 가는 유리잔이 키가 작고 넓은 유리잔보다 우유가 더 많이 들어 있다고 자동적으로 가정한다. 정상적인 인지 발달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자동 시스템의 수많은 오해가 수정되지만, 일부 버그는 그대로 남게 된다. - 우리가 일부 비이성적인 편향을 갖게 된 데는 뇌가 지금 살고 있 는 환경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작동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탓도 분명 있다. 하지만 프레이밍 편향이나 기준점 편향 같은 일부 인지편향에 대한 일차적인 설명은 자동 시스템의 주요 업무 중 하 나, 즉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필요한 맥락을 굳이 애쓰지 않고도 신 속하게 제공하는 임무에서 비롯된 피할 수 없는 결과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맥락은 소중한 정보의 원천이다. 인간의 뇌가 정교 하게 유연하고 적응 능력도 뛰어난 계산장치가 될 수 있는 데는 맥 락 민감성도 큰 역할을 한다. (현재의 컴퓨터 기술이 갖고 있는 가장 악명 높은 단점은 맥락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뇌의 탁월한 맥락 민감성은 하드 웨어에서 직접 비롯된 산물이다. 풍부한 상호연결성을 통해 정의 된 장치에서는 한 뉴런 집단의 활성이 반드시 다른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친다. 맥락 민감성은 신경 하드웨어의 핵심부 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끄기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해도 대단히 어렵다. 심지어 맥락적 단서를 무시하는 것이 유리한 상황에서도 끄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추론 시스템을 언제 사용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인 지편향을 착취당해 피해 입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대다수 민중은 이해력이 대단히 제한되어 있고, 지능은 보잘것없지만, 잊는 능력만큼은 엄청나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선전을 위해서는 주제를 몇 가지로 한정해서 슬로건을 통해 이해시키고 싶은 내용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두 이해할 때까지 슬로건으로 되풀이해야 한다. (아돌프 히틀러) - 미국 내 회사들은 매년 1조 달러가 넘는 돈을 광고에 투자해서 우리로 하여금 자기네 제품에 수조 달러의 돈을 쓰도록 설득하고 있다. 이런 광고 캠페인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측정하기는 힘들지 만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캠페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일부 사례에서는 이런 접근방식이 너무 성공적이어서 문화의 기본 구조 자체를 바꿔 놓기도 한다. 20세기 초의 담배 광고와 20세기 말의 병 에 담은 생수 마케팅은 마케팅이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다. 전자의 경우 우리는 실질적인 기능이나 이득 은 거의 없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건강과 목숨에 치명적인 것으 로 입증된 제품을 구입하도록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우리는 사실상 공짜로 구할 수 있는 제품을 돈을 주고 구입하도록 설득당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병에 담긴 생수와 수돗물을 구분하지 못한다. 하물며 브랜드 별 차이는 더더욱 구분하지 못한다. 병에 담은 생수 회사에서 블라인드 시음 테스트를 해보았다는 얘기를 듣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 연구자들은 원숭이가 상대방 개체를 바라보기를 좋아하는지 밝 혀내기 위해 이 강제적인 양자택일 과정을 변형시켜 보았다. 우선 이들은 원숭이에게 선택권을 주어 왼쪽을 보면 주스를 주고, 오른 쪽을 보면 그보다 적은 양의 주스를 주었다. 그 결과 당연히 원숭이 들은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쪽으로 강한 편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적은 양의 주스를 다른 원숭이의 사진과 연결시켰다. 그래서 원숭이가 왼쪽을 보면 더 많은 주스를 보상으로 받게 되고, 오른쪽을 보면 주스는 조금 덜 받는 대신 다른 원숭이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이 사진은 그냥 다른 원숭이의 얼굴일 수도 있고, 원숭이 포르노(암컷 원숭이의 엉덩이 사진)일 수도 있었다. 더 많은 주스를 받을 것이냐, 주스는 조금 덜 받더라도 다른 원숭이의 사진을 엿볼 것이 냐 선택권을 주었더니 원숭이들은 후자를 선호했다. 흥미로운 점은 얼굴 사진의 경우 그 사진이 우두머리 수컷의 사진일 때만 이런 선 호도가 작용했다는 점이다. 이 원숭이들은 사회적 위계에서 자기보 다 높은 개체를 엿볼 수 있다면 일부 주스를 기꺼이 희생했지만, 자 기보다 낮은 개체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다. 이것을 사람에 비유 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사람도 돈 많고 유명한 사람들 의 사진이나 뉴스가 나오는 잡지나 타블로이드 신문을 보려고 기꺼 이 자신의 주스를 희생하는 존재이니까 말이다.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개체를 보고 학습을 하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그들을 관찰해 야 한다는 것이다. 원숭이가 주스를 일부 포기해서라도 집단의 지 배적인 개체들을 쳐다보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사회적 학습과 우 선적 모방의 무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 뇌가 서로 다른 옵션을 표상하고 부호화하는 방식이 내재적으로 우리의 선택을 편향하는지도 모른다. 바꿔 말하면 미끼 효과 같은 이상하고 사소한 버그는 이성과 논리를 담당하는 정교한 피질 회로 의 결함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 비슷한 대상들(색, 강도, 숫자, 자동 차 등)끼리는 뉴런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부호화가 이루어진다는 사 실 때문에 생겨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결정은 서로 다른 뉴런 집단의 상대적인 활성 규모에 달려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옵 션이 몇 개나 있느냐가 국소적 수준에서 최고의 옵션에 대해 인식 되는 가치를 끌어올리게 된다.
- 인간의 고차원적인 정신적 능력은 제일 먼저 인간으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를 믿게 했고, 이어서 주물 숭배, 다신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일신교를 믿게 했다. 이성의 힘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는 한, 이 정신적 능력은 필연적으로 인간을 다양하고 이상한 미신과 관습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찰스 다윈) - 부산물 가설에서는 코가 선글라스를 올려놓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듯 종교적 믿음 역시 진화에 의해 직접적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과 반대로 말하는 가설도 있다. 초자연적 믿음 과 종교적 믿음에 대해 우리가 호감을 갖는 것은 진화적 압력의 직 접적인 산물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자 E. O. 윌슨Wilson은 이렇게 말 했다. "인간의 정신은 신을 믿도록 진화했다. ... 선사시대를 거치며 뇌가 진화하는 동안 초자연적인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큰 장점으 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해 인간이라는 종이 종교적 믿음 과 미신적 믿음을 받아들이도록 진화한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했기 때문이다. -0 일반적으로 진화는 개인의 수준에서 작동한다. 새로운 유전자, 혹은 낡은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가 그 소유자의 번식 성공률을 개선해 주는 경우는 전체 유전자 풀에서 그 유전자의 비율이 높아 진다. 표준의 진화 과정에서는 적응력이 뛰어난 개체에게 유리하게 진화가 일어나지만, 종교적 믿음이 진화에 의해 선택되었다고 믿는 사람 중에는 그 진화가 이런 표준의 과정을 따르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협동의 진화를 다루면서 5장에서 잠깐 다루었던 이 집 단선택 과정은 유전자(혹은 유전자군)가 사회적 단위 social unit를 이루어 활동하는 개체로 구성된 집단에게 이롭게 작용할 경우에는 설 사 그 유전자가 단일 개체의 성공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해도 진화에 의해 선택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 서는 처음에 이 새로운 유전자를 갖고 있는 구성원의 숫자가 어떤 임계치에 도달해야만 한다. 하지만 일단 이 임계치에 도달하고 나 면 이 유전자가 후대에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 이 유전자가 발현되 는 사회집단이 이 유전자가 결여된 사회집단과의 경쟁에서 유리하 기 때문이다. 특히 진화생물학자 데이비드 슬론 윌슨David Sloan Wilson은 한 집단 내의 개인들에게 종교적 성향을 부여해 주는 일군의 유전자는 집단 적 협력의 비약적 발전을 촉진해서 집단의 적응도fitness를 증진시켰 으리라 주장한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종교적 믿음은 집단의 구성원들이 일인은 만인을 위하고, 만인은 일인을 위하는 하나의 초유 기체 superorganism로 기능할 수 있게 해주었다. 호미닌 hominin (유인원 이 후에 등장한 우리의 선조)의 진화 기간 중 상당 부분에서 남성은 수렵에 나서고, 여성은 채집을 했다. 그리고 대부분 이렇게 구한 음식은 함 께 공유했다. 수렵채집사회가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구성 원들 간에 상당한 신뢰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비밀리에 음식을 뒤로 빼돌리는 일이 많이 일어나면 이런 방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종교가 신뢰를 촉진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 주었다고 주장한다. 종교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집단에서는 타인이 자기에게 해주기 바라는 대로 타인에게 행하라는 맥락에 따라 일종의 도덕률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도덕률은 자율 시행 제도honor system만으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신에 대한 믿음은 도덕률을 강화하는 궁극의 경 찰제도를 제공해 준다. 첫째, 신은 어디에나 눈과 귀가 있다. 들키 지 않고 이 눈과 귀를 속이기는 불가능하다. 둘째, 속인 자는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로부터만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존재의 분노도 사게 된다. 그에게 영원히 고통을 받으리라는 위협은 규칙 을 준수하면서 살아야 할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 주었을 것이다. 이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종교적 믿음은 다른 집단과 폭력적인 갈등이 일어났을 때 이점을 제공하여 집단의 적응도를 강화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전사들 간에 흔들리지 않는 일체감이 자리잡고, 그와 함께 신이 자신의 편이라 는 확신과 영생에 대한 믿음이 함께 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전투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초자연적 믿음과 종교적 믿음의 생물학적 기원을 다루는 이론이라면 이런 믿음이 현재 낳고 있는 적응에 불리한 결과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인간적 행동의 다른 많은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종교의 진화를 종교가 현재 아우르고 있는 것만을 설명해서 이해하려 드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성욕처럼 당연히 적응에 유리한 것들도 오늘날에는 어느 정도 적응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피임법의 등장으로 인류는 섹스를 번식이라는 섹스의 궁극적인 생물 학적 목표와 분리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마케팅 산업과 패션 산업은 물론이고 우리의 개인적 노력 중에서도 성욕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많다. - 초자연적 믿음과 종교적 믿음의 신경적 기반에 상관없이 우리는 그런 믿음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는 사실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 그저 다른 능력에 편승해서 생긴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그 지배력이 너무 크다. 나는 종교적 믿음이 선천적으로 새겨진 특 권적인 상태에서 혜택을 입지 않았나 싶다. 이것이 좀 더 이성적인 뇌 영역들과의 협상력이 강해지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복잡한 특성처럼 이 특별한 신경 상태도 한 번의 단계를 거쳐서 등 장한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걸쳐 진화했을 것이다. - 원래 수백만 년 전 호미닌의 피질이 확장되던 초기에는 질문을 현실적 인 질문과 비현실적인 질문으로 구분하는 성향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계산 자원을 사용할 때 우선순위를 부여할 수단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 초기 단계에서 생각을 자연적 범주와 초자연적 범주로 분간하는 능 력이 개인에게 적응상의 이점을 부여하는 것으로 입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답 가능한 질문과 대답 불가능한 질문을 구분할 수 있는 사 람들은 자신의 문제 해결 능력을 생식 성공률을 높이는 활동에 적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집단선택 이론에서 제안한 것처럼 일단 초자연적인 믿음에 우호 적으로 작용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 안에 생겨나면 거기서 더욱 다듬 어지며 자연선택되었을지도 모른다. 선조들의 종교가 협동과 이타주의 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셋째, 지난 10,000년 동안은 초기 단계에서 유전적으로 부호화된 특성 들을 활용해서 마침내 원시적인 믿음 체계가 현대적인 종교로 바뀔 수 있었다. 그리하여 현대 종교는 농업의 등장 이후로 점점 더 커지는 인 구집단을 조직하고 통제하기에 더욱 적당한 형태를 취하게 됐다. 현대 종교가 갖고 있는 다면적인 특성은 이 과정에서 활용된 인지능력의 복 잡성이 낳은 결과다. 이런 인지능력으로는 부산물 이론에서 제안하듯, 종교와 전혀 무관한 이유로 작동중인 인지능력뿐만 아니라 자연적 현 상과 초자연적 현상 사이의 원시적인 구분도 포함된다. -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과학과 종교가 한 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두 개의 "서로 중첩되 지 않는 교도권導權, magisterium(교회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위임받은 권한 으로 교리를 가르치는 권한- 옮긴이)"에 해당한다고 믿었다. 어쩌면 믿음의 초자연적 범주와 자연적 믿음은 처음에 굴드(그리고 나머지 우리) 에게 이것이 사실임을 설득하기 위해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두 개 의 중첩되지 않는 교도권을 선천적으로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선조 들은 우리 인지 능력 너머의 다양한 자연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 를 멀리하고, 신피질이 부여해 준 힘을 생존에 필요한 더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믿음과 신념이 이성과 기본적 본능 모두 에 대해 강력한 거부권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과거와 현대의 수 많은 데이터를 놓고 보면 초자연적인 믿음은 그저 다른 정신적 능 력이 낳은 부산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보다는 우리의 신 경운영체계에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초자연적인 믿 음이 그곳에서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브레인 버그임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 브레인 버그의 두 번째 원인은 뇌의 계산 단위, 그리고 뇌 구축의 밑바탕이 되는 구조다. 뉴런은 오로지 네트워크를 위해 설계됐다. 컴퓨터는 0과 1을 뒤집으며 메모리를 저장하고, 유전자는 A, G, T, C의 염기순서로 정보를 저장한다. 하지만 뇌는 뉴런들 사이의 연결 패턴에 정보를 저장한다. 이런 접근방식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뉴런 들 사이의 연결 패턴이 경험에 의해 빚어져야 한다. 함께 사용되는 뉴런은 함께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은 시냅스 가소성, 그리고 시냅 스가 시냅스전 뉴런과 시냅스후 뉴런이 잘 동기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똑똑한 NMDA 수용체 덕분에 가능하다. 신경 네트 워크 안에 저장된 정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있어서 핵심은 점화 현상이다. 한 개념을 표상하는 뉴런들이 활성화될 때마다 이들은 파트너들에게 알림 메시지를 보낸다. 마치 당신이 어떤 웹사 이트를 방문할 때마다 브라우저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 하기 위해 은밀하게 그 페이지와 연결된 모든 웹페이지를 메모리 에 미리 로딩만 해두고 보여주지는 않는 것과 비슷하다(알고 보니 일 부 웹브라우저에는 선반입 prefetching이라고 하는 이런 특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강력하고 우아하지만 뇌의 연관구조와 점화 효과가 함께 어울려 이름을 헷갈리거나 연관된 개념들을 뒤죽박죽 뒤섞는 경향에서부터 프레이밍 효과와 기준점 효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마케팅에 민감하고, 관련 없는 사건에 행동이 영향을 받는 성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브레인 버그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의 신경회 로는 관련된 개념들만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념과 관련 된 감정이나 몸 상태도 연결한다. 그 결과 단어에만 노출되어도 행동과 감정이 오염될 수 있다. 의미 점화 현상은 컴퓨터 스크린 위에 쌍으로 짝 지은 단어들을 연속적으로 빠르게 보여줄 경우 서로의 미적으로 관련이 있는 짝에서 더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비단뱀python'이라는 단어보다 '인내심 patience'라는 단 어를 먼저 보여주었을 때 '차분하다calm'라는 단어를 더 빨리 알아 볼 수 있다. 하지만 뇌는 계산을 담당하는 장치들이 칸칸이 구획으 로 나뉘어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인내심'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내 는 신경활성이 뇌의 다른 영역으로 새어나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인내심'이란 단어와 접촉하고 나면 이어지는 대화를 중간 에 끼어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어느 수준에서는 뇌 속 모든 것이 나머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인다. 모든 생각, 감정, 행위가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미묘하지만 서로 다른 많은 혼선의 사 례들이 연구를 통해 보고되었다. 그 중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외국 통화의 가치를 추정해 보라고 했을 때 가벼운 클립보드를 들 고 있을 때보다 무거운 클립보드를 들고 있을 때 통화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했다. 마치 클립보드의 무게가 통화의 무게로 옮겨간 것 처럼 말이다. 10 또 다른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요청했더니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살짝 앞으로 숙였 다." 그리고 배가 부른 상태에서 일주일치 먹을 것을 사려고 주말 에 슈퍼마켓으로 쇼핑을 가면 음식을 덜 사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경험해 봐서 알 것이다. '배(더 정확히는 시상하부)'가 포만을 느끼는 상태에서는 한 주 동안 필요한 음식의 양에 대한 추 정치가 줄어든다. 몸과 인지 사이의 상호작용을 체화된 인지 embodied cognition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것이 몸과 마음 사이의 특별한 유대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라 말하지만 그냥 함께 활성화되는 뉴런들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연결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필연적 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시간은 앞 을 향해 움직이는 것으로 머릿속에 표상된다. 그래서 미래가 앞에 펼쳐져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럼 다시 '앞으로forward'라는 개념은 앞쪽으로의 움직임을 촉발할 수 있는 운동회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앞으로 움직이라는 명령을 우리가 어떻게 자동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미래를 표상 하는 뉴런의 활성이 '앞으로'라는 개념을 표상하는 뉴런으로 퍼져나가고, 이것이 다시 앞쪽으로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운동회로를 자극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