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 좌반구의 세포들이 외상을 입고 기능을 정지했을 때, 나는 세포들과 그에 해당하는 기량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라는 사람의 일부를 잃었다. 똑똑하고 규칙과 시간을 잘 지키고 꼼꼼하고 질서정연하고 잘 조직되어 있으며 내 삶에 대해 상세히 아는, 아주 의욕적 인 부분을 잃은 것이다. 나의 이 부분은 뇌졸중과 함께 사라져 더는 손 이 닿지 않는 캐릭터였다. 적어도 세포가 회복하고 회로망이 다시 활동할 때까지는 그랬다. 또한 나는 모든 도전 의식과 감정, 과거의 고통을 알던 나라는 사람의 일부를 잃었다. 그 캐릭터를 이용하지 못하니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현 순간의 평화로운 희열뿐이었다. 내가 이 다친 회로를 모두 재건하고, 기능이 정지한 좌뇌의 두 캐릭터를 되살려내 회복시키기까지는 앞서 말했듯이 8년이 걸렸다. 힘든 과정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우리는 각자 서로 구별되는 네 가지 세포 집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집단은 뇌 양측 반구에 나누어져 있으며, 네 종류의 일관적이고 예측 가능한 성격을 빚어낸다. 신경해 부학적으로 이 네 가지 세포 집단은 고위 대뇌피질의 좌우 '사고' 중추 를 구성할 뿐 아니라 아래쪽 변연계의 좌우 '감정' 중추도 구성한다. 나는 이 성격들을 총괄하여 네 명의 캐릭터로 부르겠다. 뇌 속의 네 가지 캐릭터를 알면 자유를 향해 갈 수 있다.
-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려면 뇌 해부학에 대한 기존 지식의 이론적 전환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적어도 5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좌반구가 합리적 사고를 맡은 뇌이고, 우반구가 감정적 뇌라고 배워왔다. 사실 신경해부학적 관점에서 보면 좌뇌의 사고 조직이 의식적, 합리적 정신(나는 이를 '캐릭터 1'이라고 부른다)이 머무는 곳이기는 해도, 좌뇌와 우뇌 반구 모두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의 세포들을 캐릭터 2’와 ‘캐릭터 3) 똑같이 공유한다. 한편 '캐릭터 4'는 우뇌 고위 피질의 사고 조직에 있다.
- 어떤 순간이든 우리 뇌에서는 단 세 가지 과정이 일어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는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고, 생각과 감정에 대해 생리적으로 반응한다. 각각의 활동은 이 기능을 수행하는 세포의 건강과 안녕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우리는 변연계 세포를 통해 감정을 경험한다. 이 세포들은 뇌 양측 반구에 고르게 반으로 나뉘어 있다. 변연계의 주요 구조는 두 반구가 서로 거울 역할이라도 하는 양 두 개의 편도체와 두 개의 해마, 두 개의 전측 띠이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우리에겐 감정을 경험하고 처리하는 두 개의 분리된 모듈이 있다는 뜻이다(캐릭터 2와 캐릭터 3). 정 보가 감각기관을 통해 흘러오면 맨 먼저 편도체에서 멈추는데, 편도체는 “내가 안전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흘러든 충분한 양의 감각 자극이 친숙하게 느껴지면 안심한다.
편도체는 뭔가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그 낯섦에 위험하다는 꼬리표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투쟁, 도피, 혹은 경직'의 공포 반응을 촉발하여 대응한다. 만일 투쟁이 자연스러운 성향인 사람이라 면, 아마도 화를 내고 크게 움직이며 소리치고 공격을 하거나 상대를 쫓아내려 할 것이다. 만일 달아나거나 죽은 척하는 성향이라면, 그런 반응이 최고의 선택일 것이다.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공포를 느끼면, 우리는 해마의 배움과 기억 회로망을 작동시킬 수 없다. 정지 버튼을 눌러 잠시 진정하고 다시 안 심할 때까지 명확한 사고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험 공포증으로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은 얼마나 준비를 잘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시험을 못 보는 경향이 있다. 변연계의 불안 회로가 작동하면, 우뇌의 해부학을 이해하면 언제든 우리의 경험과 행동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뇌에 감정을 처리하는 세포 집단이 하나밖 에 없다고 생각하며 산다면, 복합적 감정을 경험할 때 아주 혼란스러 울 수 있다. 신경해부학적 관점에서 볼 때 서로 갈등하는 감정을 경험 하는 이유는, 어떤 세포체도 공유하지 않으며 완전히 별개인 두 감정 세포 집단이 있어서다.
두 가지 감정 세포 모듈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예측 가능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좌뇌는 연속적으로 차례차례 정보를 처리하는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좌뇌의 감정 담당 모듈은 현재 정보를 가져온 다음 이를 과거의 감정적 경험과 비교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그 결과, 좌뇌의 감정형 캐릭터 2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과거가 있는 대상이면 무엇이든 막는다. 따라서 캐릭터2는 “싫어”라고 말하고 이것저것 치워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우뇌의 감정형 캐릭터 3은 이와 정확히 반대로, 현재의 경험을 지금 이 순간 처리한다. 감정형 캐릭터 3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존재하 며 과거를 회상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치워버리는 대신 조금이라도 매력 있고 아드레날린이 막 분출할 것 같은 경험이면 해보려고 열정 적으로 움직인다.
포유류의 신경 체계에서 새로운 종은 기존의 잘 조직된 세포 기반에 새로운 뇌세포들을 추가하면서 탄생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새로운 세포 조직은 원래 있던 조직의 능력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도록 고안된다. 인간 뇌는 포유류로서 개나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깊숙한 곳 에 감정을 다루는 변연계 조직 세포가 있지만, 새롭게 추가된 고위 피 질 세포들이 양측 반구를 사고하는 뇌로 만들어준 덕분에 독특하다.
외부 세계에서 오는 정보는 감각 체계를 통해 흘러들어 먼저 변연계의 감정 세포에서 처리된 다음 고위 사고 중추에서 정제된다. 그래서 순수하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인간은 감정을 느끼는 사고형 생명체가 아니라, 생각하는 감정형 생명체다. 신경해부학적으로 당신과 나는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다.

- 캐릭터 1 유형의 팀장은 직선적으로 사고하고 적절한 때에 프로젝트를 개시한다. 직장 내 캐릭터 1 팀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직 된 캐릭터 1'과 부드러운 캐릭터 1'이 보이는 지도력의 차이를 구별해 야 한다. 경직된 캐릭터 1'은 소떼 주변을 도는 카우보이처럼 집단을 이끌며 뒤에서 팀원들을 찔러대며 몰아붙일 것이다. 이들은 팀의 우두머리이지 팀의 일부가 아니다. 부드러운 캐릭터 1'은 반대로 무리 사이를 돌아다니며 가축이 잘 이동하도록 돕는 양치기처럼 팀을 이끈다.
앞서 언급했듯이 경직된 캐릭터 1 유형의 팀장은 좌뇌의 감정형 캐릭터 2에서 우러나는 불안에 의해 행동한다. 경직된 캐릭터 1의 회로망은 반복되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캐릭터 2를 보호하기 위해 활성화되는 것이다. 경직된 캐릭터 1'이 멈추거나 작동에 실패하면 캐릭터 2를 바짝 뒤쫓고 있는 괴물에게서 달아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휴식이나 위험 부담은 이 유형의 팀장에게 힘든 일이다. 이들은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매일같이 새벽 4시 15분에 일어나는 사람이다.
- 불안은 과거에 이미 일어났거나(좌뇌),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일어날 것 같은 경험이나 외상 때문에 촉발된다. 불안은 절망감, 혹은 스스로에 대한 회의를 동반하면서, 몸 전체가 안절부절 긴장하는 상 태로 느껴진다. 뭔가 예상이 안 되는 불쾌하거나 위험한 일이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데,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취약한 것 같아 근심하거나 조바심을 내거나 걱정하면 불안이 촉발된다. 앞서 언급한 뱀 사건에서는 공포를 전달하는 화학 물질이 흘러와 혈류로 흩어지면 (90초 법칙) 불안 회로가 작동된다. 또 다른 뱀을 마주칠지도 모르고, 금방이라 도 위험이 닥칠 듯한 느낌을 털어낼 수가 없어 근심스러운 것이다.  좌뇌의 이성적 사고형 캐릭터 1에 자동 공포 반응을 무시하라고 학습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신경 회로망 차원에서 우리는 생각하는 감정형 생명체다. 감정을 부인하는 일은 건강 전반에 해로울 수 있고 억눌려진 감정은 곪아서 좌뇌의 스트레스 반응을 자극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안정을 찾고 평화를 느끼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자기조절을 중시하는 이성적이고 인지적인 좌뇌 캐릭터 1은 아름다운 존재이긴 하나, 감정들을 무시하거나 타당하지 않다고 묵살하라고 훈련한다면, 막힌 하수관에서도 물이 새어나오듯 그 감정들은 어떻게든 새어나올 것이다. 캐릭터 2의 감정적 고통을 귀 기울여 듣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고통은 신체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렇기에 종종 우리 신체적, 정신적 안녕의 열쇠를 쥔 존재가 바로 감정형 캐릭터 2다.
- 막 태어난 신생아의 뇌는 자기 몸이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신체 경계를 정의 내릴 기회를 아직 갖지 못한 상태다. 그 결 과 탄생 때는 우뇌의 의식이 우세하다. 전체 흐름에서 분리된 개인으 로서 자신을 성립시키기 위해 자신과 주변 세계에 대한 충분한 정보 를 얻을 때까지는 말이다. 아이들은 온 힘을 다해 놀이터에서 놀면서 우뇌 캐릭터 3을 발산하는 경향이 있다. 좌뇌가 현실에 근거한 의식을 키워, 학업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무렵까지는 그렇다. 학교는 좌뇌 개발을 북돋운다. 특히 읽기, 쓰기, 수학의 학습이 도움이 된다. 지리학과 역사 같은 과목도 마찬가지다. 이런 과목들은 좌뇌가 성숙해야 세세한 부분들을 방대하게 암기할 수 있다. 내 캐릭터3은 왜 이 모든 자료들과 세부 사항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는지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어디에서 그것들을 찾을 수 있는지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 측정할 수 없는 대상이 있거나 실험적 결과가 반복해서 나오지 않는다면, 좌뇌는 그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 가치를 같이 부인해버리기도 할 것이다. 좌뇌의 의식 영역에서 연구할 수 있는 것은, 우뇌의 의식 영역에 존재하며 측정도 실험도 안 되는 모든 것들과 다르다. 이런 차이 때문에 우뇌의 대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일단 믿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아주 창의적인 여러 연구가 과학적 방법의 경계를 넓히는 동시에 과학의 신념과 영성의 경험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가고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
캐릭터 4의 의식은 변함없는 우리 동반자로, 우리는 그 에너지 안 에서 존재한다. 이 의식은 우리 몸의 모든 세포와 우주 속 모든 분자에 얽혀 있다. 또한 이것은 우리를 그 안에서 살아 숨쉬며 존재하게 하는 에너지 공이다. 우리 삶의 원천이고, 다양한 수행을 통해 성취하고자 열망하는 경험이다. 캐릭터 4의 의식은 영웅의 여정에서 가장 머나먼 도착지다. 이 의식으로 돌아오는 것은 소중하고 가장 평화로운 자기로 귀환하는 일이다. 캐릭터 4는 우리 고유함으로, 우리가 일자一者와 공유하는 우리 자신의 일부다. 그렇지만 이 사실이 네 가지 캐릭터 각각의 고유성에 대한 앎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 사업 문제에 있어 캐릭터 1은 이윤을 내기를 바라고, 캐릭터 2는 발상이나 세부 사항을 가지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캐릭터 3은 재미있길 바란다. 그리고 캐릭터 4는 보다 큰 선善을 위해 기여하길 원한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도 생각이 필요해  (0) 2022.08.25
최선의 고통  (0) 2022.07.30
인지심리학은 처음이지  (0) 2022.07.07
아들러 성격상담소  (0) 2022.07.07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0) 2022.06.26
Posted by dalai
,

-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인 뇌의 작동 방식은 1960년대부터 인지심리학의 주요한 연구 주제가 되어 왔다. 1960년대에 인지심리학 연 구가 활발해지고, 이후 컴퓨터와 뇌 영상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 서 인간의 정신 작용을 컴퓨터의 작동과 유사한 정보 처리 관점에서 살펴보고, 뇌의 작용과 인간의 정보 처리 과정과의 관련성을 직접 살펴보는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뇌의 특정 부위가 특정한 정신 작용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뇌가 곧 마음' 이라고 생각 하는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인지심리학자로서 뇌와 마음이 밀접하게 관련이 있 고 마음이 자리 잡은 곳이 뇌라는 관점에 동의하지만, 마음과 뇌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에는 아직까지 우리가 마음에 대해서도, 또 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레몬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왜 저절 로 입에 침이 고이는 걸까? 전쟁이나 재해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 습을 보면 마음이 아픈데, 과연 마음이 아프다.' 라는 것은 정확히 어 떤 의미일까? 마음이 아프다는 것도 결국은 뇌 속 세포들의 작용이 라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뇌세포들이 어떻게 상호작 용을 하여 실제 먹지 않아도 신맛을 떠올리게 하고, 다른 사람의 상황을 아는 것만으로도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것이 매우 적다.
본격적으로 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 은, 인지심리학에서 뇌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뇌 그 자체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뇌의 작용이 어떻게 우리의 사고, 기억, 언어와 같은 고차원적 인지 과정을 일으키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지심리학에서는 '뇌'가 아니라 뇌의 작용에 의한 결과물 인 인지'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인지심리학에서는 뇌의 작용을 생물학이나 유전학과 같이 세포 수준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큰 틀에서 살펴본다.
- 주의 과정에서는 중요한 정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고 지각 과정에서는 올바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것이 중요한 정보이고 올바른 해석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 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요한 정보와 올바른 정 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쉽고 간편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 단한 연습을 통해 스스로 중요한 정보와 올바른 해석을 찾아야만 한다. 많은 인지심리학자들이 동의하는 학습의 가장 중요한 기본 원칙 은 바로 '빈익빈 부익부'이다. 즉, 이미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쉽게 배운다는 것이다. 학습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새로운 정보를 기 존의 지식 체계 속에 추가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지식 체 계가 잘 갖추어져 있을수록 새로운 정보 중 더 중요한 정보를 쉽게 찾고 올바로 해석하여 더 잘 집어넣게 된다. 슬프게도 중요한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고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머릿 속에 들어 있는 사전 지식인 것이다.
- 에빙하우스의 연구는 망각의 주요한 원인 중 소멸이 일어나 는 양상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하지만 실제로 망각에 훨씬 더 강 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소멸이 아니라 간섭이다. 간섭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순행성 간섭 proactive interference 이고 다른 하나 는 역행성 간섭retroactive interference 이다. 순행성 간섭은 첫사랑과의 추억 이 새로 만난 사람과의 기억을 방해하는 것이며 역행성 간섭은 새로 만난 사람과의 기억이 첫사랑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시험공부를 예로 들어 보자면, 이전에 공부했던 내용 때문에 지금 공부가 방해받는 것이 순행성 간섭이고 지금 공부하는 내용이 이전에 공부했던 내용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이 역행성 간섭이다.
- 간혹 시험공부를 충분히 다 했고 내용도 잘 이해했다고 생각했는 데 막상 시험지를 보니 공부가 덜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했 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내가 잘 알지 못하는데 잘 안 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내가 공부를 충분히 했는지, 내 가 지금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스스로 잘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메 타인지meta-cognition라고 한다. 예전에 한 방송사에서 최상위권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 바로 이 메타인지라는 것을 보여 주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판단하고 있어서 추가적인 학습이 필요한 부분에 시간과 노력을 효율적으로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우리의 경험이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과정을 응고화라고 한다. 경험이 처음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는 다른 사건들에 의해 간섭 받거나 잊히기 쉬운 상태에 있다. 즉, 영어 단어를 처음 외우고 난 직 후에는 다른 단어들이랑 헷갈리거나 기억에서 사라지기 쉽다. 응고 화는 이러한 기억을 보다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상태로 변형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응고화는 일반적으로 두 단계에 걸쳐서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우선 처음 그 정보를 익히고 난 직후에 첫 번째 응고화 가 일어난다. 첫 번째 응고화는 수술로 H. M.의 뇌에서 제거된, 기억과 관련된 핵심 영역인 해마에서 주로 일어난다. 이후 주로 수면 중에 서서히 대뇌피질에서 두 번째 응고화가 일어나며, 이 두 번째 응고화를 통해 기억이 머릿속에 완전히 자리 잡게 된다.
- 두 번째 응고화는 주로 잠자고 있을 때 일어난다고 하였다. 이와 관련한 연구가 있었는데, 한 집단에는 단어를 학습한 직후에 바로 잠을 자라고 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단어를 학습한 후 한참 뒤에 잠을 자도록 하였다. 이 두 집단은 모두 같은 시간 동안 단어를 학습 하였지만 학습한 뒤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시간만 달랐다. 이후 두 집 단은 동시에 단어 시험을 보았는데 학습 직후 잠을 잔 집단의 경우에 기억 수행이 더 좋았다.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아마도 잠이 듦으로써 학습 직후에 응고화 과정을 방해할 만한 자극들이 사라져 망각의 주요 원인인 간섭이 개입할 여지가 적었고, 잠자는 동안 응고 화가 촉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공부를 마치고 잠시 쉬면서 휴대폰을 보는 습관은 별로 좋은 습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잠이 부족한 우리나라 수험생들의 경우에는 더더 욱 공부가 끝나면 곧바로 잠드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 꽃은 눈으로 보기도 하지만 코로 향기를 맡기도 한다. 우리는 어 떻게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꽃에서 냄새를 유발하는 화학 물질을 공기 중에 배출하는데, 이 물질이 코로 들어오게 된다. 코로 들어온 화학 물질이 코에 있는 후각 수용기 세포를 자극하고, 이 신호가 뇌의 앞부분에 있는 냄새를 처리하는 후각겉질이라는 영역으로 전달된다.
인간의 감각 중 화학물질에 반응하는 것은 후각 이외에도 맛, 즉 미각이 있다. 그런데 냄새와 맛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우 리가 맛이라고 느끼는 감각의 대부분이 사실은 냄새라서, 냄새를 맡 지 못하면 맛을 느끼기가 아주 힘들어진다. 게다가 냄새와 맛에 대한 감각은 뇌에서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인 변연계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냄새를 맡거나 맛을 느낄 때 감각 그 자체를 넘어서서 다양한 감정이나 사건이 떠오르는 것이다.
- 신체의 여러 부분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걸 가능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리듬이다. 실 제로 인간의 거의 모든 움직임은 리듬으로 표현할 수 있다. 걷기와 같은 비교적 복잡하지 않은 움직임부터 테니스나 골프 같은 운동과 피아노나 드럼 같은 악기 연주에 이르기까지 모두 리듬에 기반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걷기를 살펴보면, 왼팔 - 오른다리와 오른팔 - 왼다리가 앞 뒤로 번갈아 가며 리듬에 맞추어 움직인다. (균형 유지를 위해 각기 반대쪽 팔과 다리가 짝지어져 있다.) 이를 숫자로 표현해 보면 1:1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팔과 다리가 리듬에 맞추어 정반대로 움직이면 되기 때문에 리듬을 맞추기가 비교적 쉬운 편이다.
- 테니스나 골프와 같은 운동은 어떨까? 이렇게 라켓을 들고 하는 운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체와 하체가 적절한 리듬에 맞추어 움직 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골프 스윙을 보면, 상체로 이루 어지는 3박자의 리듬(백스윙 - 다운스윙 - 팔로우스루)과 하체로 이루어지는 2박자의 리듬(무게 중심의 전-후 이동)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골프 스 윙은 상체와 하체의 리듬이 3:2여서, 걷기와 같은 단순한 리듬에 비 해 조화롭게 구현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상·하체의 리듬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스윙을 제대로 구사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골프뿐만 아니라 테니스나 야구 등 라켓을 이용하는 다른 운동에서도 마찬가 지이다. 각각의 운동에서 핵심적인 리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원하는 스윙을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드럼 연주는 말할 것도 없다. 연주자는 손과 발로 리듬에 맞추어 드럼을 연주해야 하는데, 각각의 리듬이 정말 복잡하다. 그러다 보니 손과 발의 리듬을 조화롭게 맞추기 어렵고, 조금만 어긋나도 연주는 바로 엉망이 된다. 그런데 악기 연주에서 흥미로운 점은 여러 명의 연주자가 리듬을 맞추기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오케스트라에서는 수십 명의 연주자가 리듬에 맞추어 연주를 진행한다. 더 놀라운 것은 연주 도중 자신의 리듬이 전체 연주와 맞지 않다고 생각되면 재빠르 게 움직임을 수정하여 전체의 리듬에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 리듬을 맞추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한 측면이기도 하다.
- 중요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어서 중요한 것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측면이니 심사숙고해서 판단하자!"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말할 때 실제로 그에 부합될 정도로 중요한 정보를 판단의 잣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인지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것 역시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우리는 중요한 것을 심사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심사숙고할 수 있는 대상이 중요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 내가 해 봐서 안다는 생각의 함정
"내가 해 봐서 안다.” 혹은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러이러하니 내 말을 따라라.”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꽤 많다. 대부분 자신의 예전 경험을 강조한 말들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에도 인간이 저지르 는 다양한 실수와 오류의 함정들이 숨겨져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이른바 '내 생각 속에서 생생한 것'이 실제 세상에서도 그러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인간이 생생함의 노예가 되는 순간이다.
- 내 머릿속의 생생함은 쉽고 빠르게 결론에 도달하게 해 주는 이 점이 있지만, 그 대가로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과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게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인간이 생생함의 노예라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우리 주위의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에 보다 지혜롭게 접근할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의견 충돌의 조율'이다. 의견 충돌이 일어 났을 때, 얼핏 보기에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의견들이 맞서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갈등 당사자들이 지니고 있는 '생 생한 경험과 기억의 충돌'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의 의견은 그 생 생한 경험과 기억의 산물인 것이다. 특히 강경한 의견일수록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개인적인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의견 자체를 맞대고 싸워 봤자 별 소용이 없다. 원인이 아 닌 결과를 놓고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의견을 만들어 낸 뿌리인 각자의 생생한 기억과 경험을 들어 보아야 한다. 상대방의 의견은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경험한 에피소드는 보다 너그럽게 이해해 줄 수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나의 에피소드도 상대방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이해해 줄 것이다. 왜나하면 이 에피소드들은 대개 세상에서 얼 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즉, 쉽게 납득하고 이해해 출 수 있는 의견은 세상에 많지 잃아도 '아,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생생한 경험들은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 |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과 그 자리에서 바로 의견을 조율하기가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각자 생각의 '결과'만을 놓고 무언 가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장소나 환경을 바꿔 보면서 상대방 의 개인적인 경험을 차근차근 들어 보고 왜 그가 그런 결론에 도달했 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더욱 중요한 점은 이를 위한 시간을 아까워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견이 조율되지 않으면 그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서로의 갈등을 치유하고 봉합하는 데 써야 하기 때문이다. 생생함이라는 함정. 이것을 역이용한다면 의견 충돌이 있을 때 대화의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 부분이 어디인지 생각하면서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원시 시대에는 어떤 대상으로 인해 실제로 위험해질 확률과 사람이 위험을 느끼는 정도가 상당 부분 일치했다. 호랑이, 늑대, 여우, 다람쥐로 인해 위험해질 확률이, 인간이 그 동물들을 보는 순간 느끼는 주관적 위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대상이든 극단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소형차라도 시속 100km로 우리에게 달려온다면 치명적인 살인 무기가 되며, 고작 작은 알약 하나라도 자칫 잘못 먹었다가는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 쩔 수 없이 주관적인 느낌만으로 실제 위험의 확률을 추정해야만 한 다. 확률과 실제의 상당한 불일치가 일상생활 곳곳에서 발견될 수밖 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불일치의 결과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실제 통계 자료가 알려 주는 것과는 정반대로 향하게끔 하곤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 사고와 같이 드물고 심각한 위험은 운전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일상적인 위험보다 더 크고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론에서 비행기 사고와 관련된 기사를 볼 때마다 비행기 탑승에 대 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고 이를 방지하거나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여행객 1인당 사망자 수는 비행기보다 자동차에 서 훨씬 더 높다.
- 범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끔찍한 성범죄나 살인은 대부분 친숙하거나 잘 알고 있는 주위의 인물에 의해 일어나지만, 우리는 항 상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데에만 신경 쓰고 있다. 또한 자기 의지로 시작하고, 따라서 자신이 상당 부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여기는 스카 이다이빙이나 흡연의 위험은 과소 추정되는 반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되는 테러나 자연재해의 공포는 오히려 과대 추정되어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브루스 슈나이어는 이러한 주관적 확률의 과대·과소 추정이 인터넷상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주로 즐겁고 행복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웹 사이트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걱정이 극단적으로 감소하여 평상시보다 자신의 중요한 정보를 더 쉽게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은 대단히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것이기보다는 대부분 우리의 일상생 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총에 맞아 죽는 사람들보다 계 단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총기에 관한 위험에는 어떻게든 대비하 려고 하지만 자신의 집 계단에 깔려 있는, 낡아서 미끄러워진 카펫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심코 지나친다.
- A라는 말의 반대어라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B라는 말이 정확하게 is not A'를 의미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is not A'라는 식의 표현은 대부분의 경우 B를 비롯하여 더 많은 경우 와 가능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를 사랑하는가?” 라는 질문에 “사랑하지 않는다.” 라는 답을 듣게 되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단순히 좋아하는 걸까?', '관심이 없다는 걸까?' 혹은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등등 별의 별 생각이 다 들게 된다. 따라서 분명하게 말해야 할 때 혹은 정확한 의사 표현을 해야 할 때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 같은 부정적인 표현은 최소화해야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정어를 포함한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어떨 때 부정어를 사용할까? 한마디로 자신이 없을 때나 책임을 조금 덜 지고 싶을 때이다. 국정감사에서 질문 공세를 받는 공직자들 이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도 아닌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 다.” 같은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과다하게 사용된다면 어떨까? 앞서도 말했듯 상대방의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그 부정어로 인해 해석 가 능한 의미가 넓어지고, 제각각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 다. 그 결과는 당연히 소통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표현은 명확해야 한다. 특히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는 더욱 그렇다. 나이를 먹을수록, 리더의 자리로 올라갈수록, 1대 다수의 의사소통 상황이 많아진다. 그러니 부정어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표현 방식이나 화법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고 있는지 우리 각자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선의 고통  (0) 2022.07.30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0) 2022.07.29
아들러 성격상담소  (0) 2022.07.07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0) 2022.06.26
권력의 심리학  (0) 2022.06.09
Posted by dalai
,

아들러 성격상담소

심리 2022. 7. 7. 21:07

- 아들러는 인정받으려 할 때 인간이 “힘과 우월성의 목표에 보 다 집착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보이기 위해 무 리하게 높은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정말 뛰어난 사람은 자기 능력을 과시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는 사람,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본인의 뛰어남을 과하게 강조한다.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현실과의 접점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자기 인생과의 연관성을 잃고 항상 '남에게 어떤 인상을 줄까, 다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질문에만 구애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행동의 자유도 현저하게 방해받는다. 이럴때 가장 빈번하게 드러나는 성격 특징이 바로 허영심이다.
- 아들러의 표현을 빌리면, 질투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나약함이다. 자신 있는 사람은 질투하지 않는다. 상대를 자기 곁에 못붙들어둘까 봐 불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형제들보다 뒤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할 때, 가만있으면 부모의 애정이 자기 아닌 다른 형제에게 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자녀는 다른 형제에게 격렬한 길투심을 느낀다. 이것은 어른들의 연애에서 볼 수 있는 질투와 완전히 똑같은 구조다.
- 아들러는 '불안'과 '두려움'을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했지만, 굳이 구별하자면 '두려움'에는 구체적인 대상이 있다. 커다란 개가 다가오면 공포를 느끼고 도망치게 될 것이다. 반면 불안에는 특정한 대상이 없다. 이렇다 할 대상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이에 불안할 때는 곧바로 행동을 취하지 않기도 한다.
몰두해야 할 과제를 바로 앞에 두고 불안해하는 사람은, 아들 러의 표현을 쓰자면, “머뭇거리는 태도를 취한다.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어도 괜찮을지 망설인다. 불안은 특정한 대상을 필요 로 하지 않는다. 불안만으로도 주저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과 제로부터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적극적으로 몰두하 지 않아도 된다. 불안한 사람은 그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다.
- “인생의 난제에서 도망치는 관점”이란 무엇일까? 만약 곤란 한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도망치려고만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 정해보자. 인생의 과제에서 도망치겠다는 이 사람의 결심은 '불 안'이라는 감정과 하나 되어 더욱더 강화된다. 다시 말해 '이렇 게 불안하니 과제에서 도망쳐도 된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이런 식으로 사용된다.
독립하거나 동반자와 헤어지거나 이직하거나 혹은 사랑에 빠지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당연히 기존 생활에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불안에 지배당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집 밖으로 전혀 나가려 하지 않는 사람을 떠올려보 자.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 발짝이라도 나서면 어떤 상황과 맞닥뜨릴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아들러는 계속해서 직업의 적성에 관해 썼다. 많은 사람이 개 인마다 잘하고 못하는 분야가 있다고 생각한다. 취직하지 말 자.'거나 지금 하는 일은 내 적성에 안 맞는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그 일의 그늘진 측면, 다시 말해 단점들만 찾아낸다. 그 단점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 일은 이런 문제가 있어서 나랑은 안 맞는다. 거나 적성 문제 로 슬쩍 바꿔치기 해서 '나는 이 직장에 취직할 수 없다.'고 말 해버린다. 실제로는 취업을 원하지 않는다.'는 결심이 먼저 서 있었기 때문에 이유는 모두 나중에 가져다 붙인 것일 따름이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이 일종의 면죄부가 되는 셈이 다. 실제로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몰입하기도 전에 나는 노력해도 안 된다.'며 온갖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사람은 겁쟁이'의 특징을 가진 셈이다.
'겁쟁이'인 사람도 “느릿느릿한 움직임”, 다시 말해 '머뭇거리는 태도를 취한다. 그런 태도 외에도 “안전을 요구하는 조치나 준비” 등이 겁쟁이의 표현 방식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문 맥 그대로 위험을 피한다.'는 뜻도 있지만, '더욱 안전하기 위한 최상의 준비로 아예 일에 몰입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겁'이라는 감정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자기와는 안 맞는다고 주장하고, 일을 시작해도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 말보다는 행동이나 표정으로 상대를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말과 표정이 서로 어긋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할까? 말이 아니라 행동, 태도, 몸짓으로 상대방을 파악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웃음'이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는 뜻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장편 소설 《미성년》에 이렇게 썼다. “만약 인간을 파악하고 싶거나, 인간의 영혼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침묵하는 모습이나 말하거나 우는 모습, 또는 더 나 아가 고결한 사상에 몹시 감동한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 는 오히려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웃는 모습이 좋으면, 좋은 사람이다.”
- 미리 원칙을 알고 있거나 규칙이 정해져 있다면 원리주의자도 일탈하지 않는 한 안심하고 전진한다. 문제는 일탈 없는 인생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측하기는커녕 상상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야.'라고 예상한 일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인생의 기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면 안심은 될지 모르지만, 살아가는 보람도 없지 않겠는가.
- 인생과 그 과제를 대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기분에 의존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심리학이 그것을 천성적인 현상으로 파악한다면 잘못이다. 그들은 모두 야심이 너무나 크고, 그로 인해 성질이 민감한 부류에 속해 있으며, 인생에 만족할 수 없을 때 도망칠 다양한 길을 모색한다. 이런 사람들은 태도를 정하기 전에 미리 앞으로 뻗은 더듬이 같은 자신의 민감성을 사용해 재빨리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탐색한다.
- 기분이 잘 바뀌는 사람은 비교적 많은 것 같다. 누군가의 기분이 나빠지면 주위 사람은 종기 다루듯 조심히 그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 그들의 기분이 나빠지는 까닭은 당연히 주변 사람들의 그런 태도를 의도한 것이다. 정말로 기분이 이랬다저랬다 변한다기보다 주위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목적으로 그런다고 보는 편이 좋다.
- 아들러에 따르면, 기분파로 보이는 사람들은 평소 끊임없이 어린아이 같은 밝은 태도를 드러낸다.
끊임없이 밝고 쾌활한 기분이고, 그것을 과시하거나 강조하며, 인생에서 밝은 면을 손에 넣으려 하고, 기쁨과 쾌활함 속에서 인생에 필요한 기초를 다지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에도 모든 가능한 수준의 차이가 드러난다.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어린아이 같은 밝고 쾌활한 태도를 드러내고, 어린아이 같은 방식속에서 정말로 무언가 마음 설레게 하는 것을 갖고, 과제를 회피하면서도 놀이처럼 그것과 마주하며 해결하려는 사람이 있다. 분명 아름다움과 공감적인 태도에서 이런 사람을 능가하는 유형은 거의 없다.
직면한 과제를 회피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진지해지지도 않는다. 밝고 쾌활하게 놀이처럼 마주한 채 해결하려 한다.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너무 가볍다.
- 받아들여야 할 상황도 밝고 쾌활하게 대하고, 여기에 덧붙여서서 어린아이 같은 성질마저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성질은 인생의 진지함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 언제나 불확실한 느낌을 준다. 곤란한 일을 너무 간단히 넘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흔히 볼 수 있듯이, 대체로 이런 인식으로 인해 곤란한 과제에서는 멀어지게 된다.
- 아들러는 불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항상 살짝 구부정한 자세로 걷는다고 이야기했다. 언제나 몸을 구부정하게 숙이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남들에게 보이고 싶어 한다. 그 이면에는 열등감이 깔려 있다. 반대로 등을 곧게 펴고 꼿꼿이 서 있는 사람에게는 실제보다 강해 보이고 싶어 하는 우월 콤플렉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아들러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필 요 이상으로 무거운 짐을 짊어진 척할 필요도 없고, 쓸데없이 강한 척할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힘을 빼면 된다. 무력함을 과시할 필요도 없고, 이 세상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퍼뜨리지 않아도 된다. 어떤 도움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무작정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이쪽에서 먼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솔직히 털 어놓으면 된다. 아들러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까지 다른 이에게 맡기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가끔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도 좋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인생이 조금은 편해질지도 모른다.
- 화내는 이유 역시 열등감 때문이다. 분노는 화난 사람의 모든 힘을 결집시키고, 평소보다 크게 행동하게끔 강요한다. 승리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적이 없으면 화도 없다. 이 감정의 목표는 오로지 적에 대항해 승리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격렬한 움직임으로 자기 의지를 밀어붙이는 모습이 우리 사회에서 좋게 비춰지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자기의지를 밀어붙일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화의 폭발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 슬퍼하는 사람의 고조된 감정은 주위 사람의 태도에 의해 부여된다. 슬퍼하는 사람이 누군가의 봉사나 동정이나 지지 또는 무언가 주거나 이야기를 걸어주는 행위 덕분에 편안해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울거나 한탄하는 폭발로 주위 사람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며 고발자, 재판관, 비판자가 되어 주위 사람들보다 자기가 높아졌다고 느낀다. 이때 요구, 애원이라는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 즉, '당신이 나를 이렇게 슬프게 만들었다.”고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다. 또는 '이렇게 슬프니까 더 이상 나를 비난하지 말라.' 는 의사 표명이기도 하다.
상대가 화를 퍼붓는다면 이쪽에서도 화를 쏟아내며 맞설 수 있다. 그렇지만 상대가 갑자기 쓰러지며 울기 시작하면, 더 이 상 공격할 수 없다. 우는 행위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자 '당신은 너무 지독한 사람이야.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슬퍼.’라는 호소라고 해석하면 슬픔의 본질을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 한 가지 포인트는 그런 비난이 부당하게 느껴져도 슬퍼하는 사람을 못 본 척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 상대에게 봉 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슬퍼하는 사람은 그 덕분에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주위 사람들은 슬퍼하는 사람을 종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으니 그런 대우를 강요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이렇게 슬픔이라는 감정을 이용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려고 한다.
- 불안해진 아이는 상황에서 도망쳐 다른 사람에게로 달려간다. 이러한 불안의 메커니즘은 주위 사람에게 우월성을 직접 표현하는 것이 아니므로 언뜻 보기에는 패배의 표현처럼 비친다. 여 기에서의 태도는 자기를 작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다른 사람과 이어지기 시작하지만, 불안은 동시에 자기 안에 우월성의 욕구를 감추고 있다. 불안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는 피난처로 도망치고, 그러한 방식으로 다시 위험에 맞서며, 승리를 거두기 위해 자기를 강화하려 한다.
- 젊은 사람이 공동체 의식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나중에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대학생 시절에 뭘 공부해두면 좋으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공감 능력을 익히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다. 아들러의 문장에서는 비극을 보는 사례를 들었는데, 비단 비극뿐만이 아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젊은 시절에 는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동정 (여기에서는 '공감'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는 감성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그것이 '인생에 대비하는 준비가 될 테니 말이다.
- 아들러는 《인생 의미의 심리학》의 내용 중 성경에서도 흥미로운 예를 인용했다.
《성경》에는 멋진 심리학적 통찰이 내포되어 있다. 둘째 아이의 전형적인 양상은 야곱의 이야기에 아름답게 묘사된다. 야곱은 최고가 되어 에서의 지위를 빼앗고, 에서를 완전히 누르고 더 뛰어나고 싶었다. 둘째 아이는 뒤에서 느릿느릿 걸어가는 감각에 초조함을 느껴 서 다른 사람을 따라잡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래서 자주 성 공을 거둔다. 이런 성장은 유전자와 관계된 것이 아니다. 보다 빨리 앞서갔다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한 결과다. 이에 둘째는 성장해서 가정을 벗어나도 페이스메이커를 자주 이용한다. 둘째 아이는 자기 자신을, 자기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어 앞지르고 싶은 누군가와 계속 비교한다.
- 에서와 야곱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쌍둥이 형제로, 동생인 야곱이 형인 에서인 척해서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상속권을 손에 넣는다. 첫째에게 우수한 둘째는 위협적이다. 우수한 여동생을 둔 오빠들은 아주 강렬하게 위기감을 느끼기도 한다. 대부분 오빠의 주관적이고 잘못된 믿음 때문이지만, 여동생이 자기보다 뛰어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오빠가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도 드물지 않은 듯하다.
- 아들러는 첫째와 둘째가 각자 고유한 꿈을 꾼다고 했다. 첫째는 주로 떨어지는 꿈을 꾼다. 발을 크게 헛딛거나 추락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런 꿈을 꾸는 이유는 우월성을 추구하지만,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뛰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없다. 그래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 반면 둘째 아 이는 경쟁하는 꿈을 자주 꾼다. 기차를 쫓아가는 꿈이나 자전거 로 경쟁하는 꿈 말이다. 어떤 꿈을 꾸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형제 중 어느 위치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각자 다르다.
- 아들러는 꿈이 현실의 리허설이라고 생각했다. 낮에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밤에 잠잘 때도 같은 라이프스타일과 성격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문제 해결의 방식은 깨어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완전히 똑같다. 바꿔 말하면, 꿈은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성격을 매우 또렷하게 드러낸다. 상담 과정에서도 꿈 이야기를 듣고, 라이프스타일이나 성격을 진단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꿈속에 나타난 것이 상징하는 바와 그 의미를 해석하지는 않는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꿈속에서 인생의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려 하는지에 더 주목하기 때문이다.
- 《사람은 왜 신경증에 걸릴까》에서 아들러는 둘째의 또 다른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후의 인생에서 둘째 아이가 다른 형제의 엄격한 리더십을 견뎌내거나 혹은 영원한 법'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쓰러뜨리지 못할 권력은 없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다. 아들러는 '혁명적인 수완'이라고 말하지만, 지배적인 사람이나 전통에 대항해 어떻게든 현상을 타파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둘째의 특징이다. 스스로를 부모 권위의 대표자이자 '권위와 법의 신봉자'라고 생각하는 첫째에게는 둘째가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상대로 여겨진다.
- 19세기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키에르케고르의 일기》에 서 다음같이 말했다. “어떤 형태로 그때까지의 삶의 방식을 뉘우쳐 고치고 새로운 신앙에 눈뜨는 것을 '회심心'이라고 하는데, “회심은 서서히 일어난다. 전진해온 길을 그만큼 역행해야만 한다. 회심은 완성 되는 일이 없고, 오히려 되돌아가는 일이 생겨버릴 수도 있으 니, 두려움을 갖고 떨리는 마음으로 임하자." 
성격도 마찬가지다. 유대교 신자로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바울은 말에서 떨어져서 회심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바울처럼 극적인 사건 덕에 돌연 바뀐다기보다는 조금씩 서서히 바뀐 다고 보는 것이 좋고, 바뀌었다고 해도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 갈 수도 있다. 우리의 세상사가 거의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순간이다.
- 아들러는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려는 사람에 관해 다 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 사람이 과제 주변에 만드는 우회로에는 나태, 무기력, 빈번한 이직, 비행 등이 그 삶의 방식의 특징으로 드러난다. 태도 결정을 행위로까지 드러내서 몸을 꼬면서 걷고, 항상 뱀처럼 방향을 트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얼마간 신중하긴 하지만,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피해서 지나가는 경향을 갖고 있다.
- 인생에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있다. 특히 대인관계는 까다로워서 다른 사람과 관계 맺으면 어떤 식으로든 마찰이 생기기 마 련이다. 그래서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의 고민이다.”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일이나 공부도 몰두해야 할 인생의 과제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이 과제를 앞에 두고 많든 적든 거리를 두려고 한다. 다른 사람과 관계 맺었다가 상처 입거나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럴 때 과제에 몰입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내거나 혹은 몰입한 후 달성이 불가능한 이유를 찾아낸다.
그때 자주 내세우는 '이유'가 '성격'이다. 소극적이라 다른 사 람과 관계 맺는 것이 서툴다고 말하고, 게으른 성격이라 좀처럼 일을 시작할 수 없다며 도망치려 한다. 어느 경우든 성격이라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을 테지만,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이해한 사람은 그 핑계로 과제에서 도망칠 수 없다.
- 대인관계에서 상처받고 싶지 않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삶의 기쁨과 행복도 대인관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이다. 제대로 시작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두렵겠지만, 결과가 나온 후에 어떻게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팔짱을 끼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과제에 돌입했 으나 실패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생에는 두려운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도망치지 말고 과제와 직면하는 용기를 조금이라도 가진다면, 인생은 반드시 바뀔 것이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0) 2022.07.29
인지심리학은 처음이지  (0) 2022.07.07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0) 2022.06.26
권력의 심리학  (0) 2022.06.09
알프레드 아들러  (0) 2022.06.05
Posted by dalai
,

세상에 걱정이나 불안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특히나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일 것이다. 이런 불안이 지속적으로 우리 곁에 맴돌게 되면 쓸데 없는 걱정으로 잠 못이루는 밤이 계속된다. 우리는 불안 없이 살 수는 없다. 다만 불안을 어떻게 슬기롭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 책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전문적인 서적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불안이란 무엇인지 알아보고, 불안을 뛰어넘기 위해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치유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사람들은 왜 불안해할까?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에 대해 부정적 예측을 하고, 끔찍한 상상을 하면서 불안을 키워간다. 그러다보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초초해지고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불안을 느끼면 여러 가지 유형의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 일단 위험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안전행동을 하기도 하고, 회피하기도 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목소리를 글로 적어보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불안감을 다스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글쓰기를 제시하고 있다. 

글쓰기라고 해서 대단하거나 거창한 작품을 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노트도 좋고, 컴퓨터나 휴대폰을 이용해도 좋다. 주제가 없어도 좋다.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격식에 구애받지 말고 적어보는 것이다. 글쓰는 시간이 길지 않아도 좋다. 5분에서 10분정도가 적당하다. 문법에 구애받을 필요도 없다. 글쓰기는 아무때나 실천할 수 있지만, 마음이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새벽이나 늦은 밤이 좋다. 글쓰는 주제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그날 하루 먹은 것, 느낀 것, 들은 것, 감정상태 어떤 것이든 좋다.

글쓰기를 실천할 때도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글쓰기의 목표는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연마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쓰기는 행동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글쓰기에 의존해 모든 일을 기록하며 되새기기만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직접 행동해서 상황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자기애를 글로 만족시키지 말아야 한다. 글쓰기에 지나치게 부정적 정서를 분출시키지 말아야 한다. 또한 글쓰기를 유일한 친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친구와 가족이 필요하다. 글쓰기를 지나친 반성문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지나친 반성은 극단으로 치닫게 되고, 끝없는 탐색의 늪에 빠지거나 자신이 열등하며 부족하다는 착각만을 가져오게 된다.

이 책을 읽고, 글쓰기를 실천하면서, 불안으로 힘든 마음을 다스리고, 평온을 되찾을 수 있길 기대한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지심리학은 처음이지  (0) 2022.07.07
아들러 성격상담소  (0) 2022.07.07
권력의 심리학  (0) 2022.06.09
알프레드 아들러  (0) 2022.06.05
바쁨 중독  (0) 2022.04.16
Posted by dalai
,

권력의 심리학

심리 2022. 6. 9. 19:17

- 비컨섬에는 구조가 있었다. 질서가 있었고, 계급이 있었다. 이는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 반면 아타섬은 암석이 들쭉날쭉 솟은 섬이었지만 이곳에서 소년들이 15개월에 걸쳐 만들어낸 사회는 완전히 수평적이었다. 서로 대조되는 이 무인도 이야기들은 우리 에게 어려운 질문 몇 가지를 던진다. 착취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악한 사람들 때문일까, 아니면 악한 위계질서 때문일까? 왜 세상에는 수많은 코르넬리스 스타일의 리더가 권좌에 앉아 있 는 것처럼 보일까? 아타섬의 소년들 같은 리더는 왜 이렇게 찾아 보기 힘든 것일까? 만일 당신이 회사 직원들과 함께 무인도에 표 류하게 된다면, 상사이기를 포기하고 통가 소년들처럼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해 함께 일하겠는가? 아니면 비컨 섬에서처럼 권력과 지배를 위해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일 것인가?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첫째, 더 악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어 있는가? 
둘째, 권력은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가? 
셋째, 왜 우리는 우리를 통제할 권리가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 이 우리를 통제하게 놔두는가?
넷째, 부패하지 않을 사람에게 권력을 주고 그 권력을 공정하 게 행사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 짐바르도의 연구에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 실험 참가자 모집 방법을 고려하지 않았다. 연구자 들은 죄수와 간수를 찾기 위해 지역 신문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실었다.
감옥 생활에 대한 심리학 연구에 참여할 남자 대학생 모집. 1~2주간 15달러/일, 8월 14일 시작. 더 자세한 정보 및 신청은 문의 바람.
2007년, 웨스턴 켄터키 대학교의 연구진은 이 광고에서 사소해 보이는 디테일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혹시 이 때문에 연구가 완전히 왜곡된 것은 아닐지 의심했다. 답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진은 15달러가 아니라 70달러(1970년대 이후의 물가 상승률을 적용하기 위해서였다)를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똑같은 광고를 만들었다. 다른 말은 토씨 하나 빠짐없이 똑같았다. 그리고 새로운 광고를 하나 더 만들었다. 모든 게 기존의 광고와 똑같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감옥 생활에 관한 심리학 연구' 대신 '심리학 연구'라고만 적은 것이다. 연구진은 몇몇 대학가에 ‘감옥 생활’ 광고를 붙이고, 다른 몇몇 대학가에는 '심리학 연구' 광고를 붙였다. 감옥 실험에 자원한 집단 하나와 일반적인 심리학 연구에 자원한 집단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두 집단 간에 차이가 있었을까?
모집 기간이 끝나자 연구진은 잠재적 참여자들을 모아 심리 검 사와 철저한 인성 평가를 진행했다. 그러자 엄청난 사실이 드러났 다. 감옥 실험 광고에 자원한 사람은 일반적인 연구에 자원한 사 람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은 '공격성, 권위주의, 권모술수주의, 자 기도취증, 사회지배성을 보였으며, 유의미하게 낮은 기질적 연민 과 이타주의'를 보였다. 
- 이 발견은 권력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결과를 뒤집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평범한 사람도 권력을 잡으면 가학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가학적인 사람이 권력을 추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일 수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거꾸로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권력은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악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일지도 모른다. 이 공식대로라면 권력은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를 끌어당긴다.
- 이 짜증 날 만큼 복잡한 수수께끼를 풀어줄 수도 있는 가설 몇 가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첫째, 권력은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권력은 부패한다. 물냉이가 요거트 제국이 되고, 자각하기도 전에 선거를 조작하고, 남의 돈으로 비행기를 사게 된다. 
둘째, 권력이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이 권력에 이끌린다. 즉, 권력은 부패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사이코패스 약제사는 침몰하는 배의 위계질서 꼭대기에 오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고, 사디스트는 간수복을 입고 곤봉으로 죄수들을 구타하고 싶다는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 셋째, 문제는 권력을 쥐거나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나쁜 이유로 악한 리더에게 이끌리 기 때문에 그들에게 권력을 안겨주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비합리적인 이유로 선장을 선택한다. 선장이 우리를 이끌고 암초에 부딪히더라도 비난할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넷째, 권력을 가진 개인에게 집중하는 것은 잘못됐다. 모든 것은 시스템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나쁜 시스템은 악한 리더를 배출한다. 올바른 맥 락을 만들면 권력은 부패하는 대신 정화할 수 있다.
이 가설들은 인간 사회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의문 두 가지에 대한 잠재적 설명이 될 수 있다. 누가 권력을 얻고, 권력은 어떻게 우리를 바꾸는가? 이 책을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하려 한다.
- 우리 인간종 중 상당수는 다른 이들을 지배 하기를 좋아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럴 만도 하다. 권 력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대체로 생존할 수 있었고 그 연장 선상에서 번식에도 성공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우두머리일 수 있는 사회구조에서는 권력을 탐하는 대부분 사람이 권력을 얻지 못하게 된다. 물론 운이 좋아 우두머리가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개인에게 위계 사회는 곧 다른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므로 다수의 초기 인류는 유인원 방식의 배열을 받아들이는 대신, 누구도 우두머리가 되지 않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안했다. 권력을 장악하려고 시도한 개인(보엠은 이를 가리켜 '급부상자upstart'라고 했다)은 집단 에 제압당해 다른 모든 이들과 같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급부상 자는 추방, 괴롭힘, 심지어는 죽음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고기를 모욕하고 화살촉을 교환하는 !쿵족의 의례는 이런 급부상자를 저 지하기 위해 개발된 두 가지 메커니즘이다. 이렇게 말한 인류학자도 있다. “모든 인간은 지배를 추구하지만, 지배할 수 없다면 차라리 동등한 편을 선호한다.” 지배를 향한 본능보다 다른 이들에게 지배받지 않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하다는 얘기다.
- 다른 이들을 지배하기를 가장 열망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스스로 대통 령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자리에 오르 게 두어서는 안 된다.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The Restaurant at the End of the Universe)
- 월드는 장군들이 간과한 점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바로 보이지 않는 비행기들이다. 날개, 꼬리, 동체에 포격을 당한 연합국의 비행기는 대부분 연기를 내뿜으면서도 고국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이들은 살아남은 비행기였다. 하지만 다른 부분, 특히 앞코에 가까운 엔진에 포격을 맞은 비행기는 이 군사 연구에 포함 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그 비행기들은 독일 땅에 격추되어 화염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월드는 독일 땅에 남은 비행기들, 이곳에 없기 때문에 군에서 연구할 수 없었던 비행기들이야말로 중요하다는 점을 간파했다. 월드가 아니었더라면 군은 비행기를 더 무겁고 느리게 만들면서 도적군의 포화에 가장 취약한 부분을 조금도 보강하지 못했을 것이다. 월드는 군에 총알구멍이 나 있지 않은 영역을 보강하라고 권했다. 군은 그의 조언을 따랐다. 엔진에 철갑을 보강한 것이다. 이 조치로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월드는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월드는 선택 편향이라는 통계적 개념의 일부인 '생존자 편향의 오류survivorship bias'를 이해했다. 골자는 간단하다. '생존'한 경우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경우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보다 훨씬 더 오래된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보자.
동굴인은 정말로 동굴에서 살았을까? 동굴인이 동굴에서 살았다는 증거는 많다. 전 세계에 수백 점의 동굴 벽화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꽤 결정적인 증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사실은 초원에서 살면서 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선사 시대의 피카소에 더 가까웠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이들이 그림을 그려놓은 나무껍질이 오래전에 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은가. 동굴인이 아주 가끔 모험 삼아 동굴에 들어가 그림을 그린 것만 지금까지 보존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생존자 편향의 오류를 종종 '동굴인 효과caveman effect 라고도 한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종종 존재하는 증거는 물론 존재하지 않는 증거에 의해서도 심각하게 왜곡된다.
- 이상적인 현실에서는 혼재 따위는 없을 것이다. 대신 오직 선한 사람들(단순화를 위해 이들을 '부패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칭하겠다)이 우리의 지도자, 상사, 경찰관이 될 것이다. 반면 책임을 맡기고 싶지 않은 사람들(부패하는 사람들'이라고 칭하겠다)에게는 아무 권력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이상적인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수준 모두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아마도 당신은 부패하지 않는 사람이 권력을 추구하고, 얻고,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을 것이다. 동시에 부패하는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 세 가지 수준 모두의 온갖 곳에 장애물을 놓고 싶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세상은 대부분 부패하는 사람을 끌어당기고 밀어주는 시스템이 장악하고 있다. 이어지는 장들에서 볼 수 있듯, 만들어진 시스템은 해체될 수 있다. 그러나 첫발을 내디디려면 우선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프론킹 능력은 스프링복의 민첩성과 속도를 정확히 전달하기 때문에 정직한 신호로 알려져 있다. 정직한 신호는 사방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화려한 색의 개구리를 떠올려보라. 만약 그 신호를 무시하고 개구리를 잡아먹었다가는 독 때문에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탓할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개구리는 이미 경고했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이처럼 올바르지는 않다. 어떤 뱀들은 사실 전혀 독이 없으면서 마치 독을 품은 듯한 색을 뽐낸다. 게다가 농게는 짝짓기할 때 경쟁 상대가 될 수도 있는 수컷들에게 경고 하기 위해 우스꽝스러울 만큼 거대한 집게발을 가지고 있다. 
- 이런 차원들, 즉 정직한 신호와 정직하지 못한 신호, 비용이 있 는 신호와 없는 신호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우리는 자신이 지배적이고 강력한지 또는 약하고 순종적인지에 관해 정직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신호를 끊임없이 드 러낸다. 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신호를 보내고, 어떤 때는 의도적으로 신호를 보낸다(집 한 채 값과 맞먹는 화려한 자동차를 타는 사람은 어느 쪽이겠는가). 그런데 신호 이론을 보면 흥미로운 가설 하나가 떠오른다. 강력한 사람들은 그저 강력해 보이는 데 더 능한 사람들일까?
- 지위 상징은 심지어 반대로 바뀔 수도 있다. 과거에는 검게 탄 피부가 낮은 지위를 나타내는 분명한 표시였다. 실내에서의 여가 를 누리는 삶을 살 수가 없어서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고된 밭일 을 한다는 의미였다.26 그러나 1930년대가 되자 이 신호는 완전히 정반대로 바뀌었다. 검게 탄 피부는 어두컴컴한 사무실이나 공장 바닥에서 쉬는 대신 해가 쨍쨍한 곳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을 만 큼 부유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두운 피부톤은 부유하고 강력한 이들의 전시물이 됐다. 그러다가 태닝베드가 개발되면서 동네 멕 시코 레스토랑 옆에 있는 허름한 숍에만 가도 멕시코에 다녀온 것 처럼 보일 수 있게 됐다. 태닝을 덜 비싸고 정직하지 않은 신호로 이용할 수 있게 되자마자, 태닝의 권세는 줄어들었다.
-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의 진화심리학 교수 마르크 반 부그트 는 지난 수십 년간 이처럼 왜곡된 선호도와 이를 만들어낸 불일 치를 연구해왔다. 그는 저서 『선택된 자: 왜 어떤 사람들은 이끄는 가, 왜 다른 사람들은 따라가는가 그리고 이는 왜 중요한가 Selected: Why Some People Lead, Why Others Follow, and Why It Matters)를 통해 이런 선호도가 특정 상황에서 다른 상황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기는 하지만 언 제나 존재하고 있음을 보였다. 그러나(여기가 중요한 포인트다) 이런 인지적 편향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것이 불가피하거나 받 아들일 만하다거나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어리석은 충동은 억누를 수 있고 억눌러야만 한다. 하지만 이처 럼 고장난 석기 시대적 사고방식이 대다수 현대인에게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사고방식을 고칠 수 없다. 앞서 살펴봤듯, 수렵채집민 사회는 현대 사회보다 더 평평했다.
- 그러나 그 사회에도 이를테면 사냥 원정을 조직하거나 집단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조금 더 위엄을 가지는 비공식적 지도자가 존재 했다. 이런 비공식적 지도자는 특정 유형의 인물에게 적합했다. 반 부그트는 이렇게 설명했다. “고대 인류에게 리더십이란 대개 사냥이나 전쟁에서의 신체적 활동을 의미했다. 리더는 다른 이들 에게 모범이 되고 선두에 섬으로써 리더 역할을 했으므로 건강과 체력 그리고 두드러지는 체격이 리더를 선택하는 단서가 됐을 것 이다.”
단순히 더 크고 힘센 개인에 대한 선호는 아니었다. 이들은 진 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선택된 이들이었다. 반 부그트의 주장에 따르면 신체적으로 약한 지도자를 선택한 인간 무리가 사냥이나 라이벌 무리에 의해 사망할 가능성이 더 컸고, 이에 따라 이런 실수를 한 자들이 인간의 유전자 풀에서 제외됐다. 신체적으로 강인 한 지도자를 선택한 무리는 생사를 가르는 순간에서 살아남을 확 률이 더 높았고, 이로 인해 이들의 선택이 강화됐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지난 20만 년 동안 인류는 약 8,000세대를 지나왔다. 물론 7,980세대쯤은 몸집과 힘이 생존을 위한 주요 이점이었던 사회에 살았다. 이는 우리 종이 지나온 역사의 99.8퍼센 트다. 이런 인식은 '진화적 리더십 이론evolutionary leadership theory' 의 부상으로 이어졌다.33 우리의 사회적 세계는 변화를 거듭했지만, 뇌는 그러지 않았다. 인간은 현대의 현실을 더는 반영하지 않는 특정 근거들로 지도자를 선택하는 방법을 배워왔다. 이제 그 오래된 본능을 버릴 시간이다.
- 반 부그트는 석기 시대였다면 훌륭한 전사나 사냥꾼이 됐을 남 자들과 같은 신체적 특징을 가진 사람을 현대의 지도자로 고르 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다는 이 개념을 가리켜 '사바나 가설 savanna hypothesis' 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진화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련의 틀을 우리의 뇌에 아로새겨 놓았고, 이 틀은 협동이 필요한 특정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예컨대 전쟁 상황에서) 활성 화된다.” 이는 독재자 스타일의 스트롱맨 strongmen(이 용어는 우연히 탄생한 게 아니다)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두려움을 부추기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다. 위험을 인지했을 때 힘세 보이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되는 우리의 수렵채집민적 본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내면에 이처럼 편향되고 성차별적인 틀이 없다는 듯 모른 체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이 틀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 다. 그 역시 투쟁의 한 부분일 뿐이다. 여전히 우리는 성차별 문화 에서 습득되고 강화된 우리 내면의 여성혐오를 극복해야 한다.
- 중국의 여섯 개 도시를 지도에 표시해보니 일종의 패턴이 드러났다. 혼자 커피를 마시고 의자를 치우는 사람이 더 많은 곳은 북부였다. 의자를 그대로 놔두고 친구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더 많은 곳은 남부였다. 사람들이 동네 스타벅스에서 보이는 이런 행동을 지리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연구들은 ‘쌀 이론rice theory' 을 검증하기 위해 설계됐다. 남중국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수천 년 동안 협동이 필요한 벼농사를 지 었다. 풍성한 수확에 꼭 필요한 관개 기반시설은 개별 가족 단위 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웃끼리 서로 의지해야만 한다. 한 가족이 이른 시기에 논에 물을 댔다가는 다른 가족의 수확까지 망칠 수 있다. 협동하지 않으면 모두가 굶을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 양쯔강 이북에서는 다수의 중국인 공동체가 오랫동안 밀에 의존해 살아왔다. 쌀과 달리, 밀 농사에는 협동이나 협력이 거 의 필요하지 않다. 밭에 밀을 심으면 알아서 잘 자란다. 각 가족은 다른 누구의 작물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작물의 선택이 수백 세대에 걸쳐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증을 가졌다. 그리하여 쌀 이론이 탄생했다. 이 이 론의 챔피언은 시카고대학교의 토머스 탈헬름이다. 이론의 핵심 전제는 간단하다. 수천 년 동안 쌀에 의존해 살아온 지역은 공동체 의식이 더 강하고, 밀을 길러온 지역은 더 개인주의 적이라는 것이다.
- 권력자가 된다는 것은 더 이기적이고, 동정심 없고, 위선적이고, 힘을 남용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 어느 연구에서는 지원자들에게 상사 역할과 부하 역할을 무작위로 배정하고 일정 과제를 수행 하게 했다. 그다음 지원자들에게 블랙잭 게임을 시켰다. 앞선 과제에서 상사 역할을 맡았던 지원자는 위험성이 클 때조차 ‘핫’을 외치고 한 장의 카드를 추가로 뒤집을 확률이 더 높았다. 이 결과 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권좌에 앉은 사람은 말 그대로 인생의 승리자다. 지난날 주사위를 굴려 승리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강력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 많이 잃더라도 이를 감당하고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보 잘것없는 지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실패를 감당할 수 없으므로 불필요한 위험을 피해야 한다(다만 사람이 바닥을 찍고 더는 잃을 것 이 없다고 느끼게 되면, 이때부터는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하는 경향이 더 강해질 수 있다).
- 권력자가 된다는 것은 더 이기적이고, 동정심 없고, 위선적이고, 힘을 남용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액턴 경이 옳았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전통적인 격언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전통적 격언이 그림의 아주 작은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빙산의 일각, 즉 우리가 볼 수 있는 권력자들에게만 집착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 정점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건 수면 아래에 도사린 훨씬 더 큰 위험을 놓치고 있다는 뜻이다. 왜 부 패한 사람들은 권력에 이끌리는가? 왜 이들은 권력을 더 잘 획득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들은 우리 석기 시대적 뇌의 인지적 편 향을 이용해 자신들이 권력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설득하는가?
지금까지의 초점은 대체로 마음에 있었다. 우리는 어떤 성격적 특성이 권력을 더 추구하게 하는지, 또 수중의 권력이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그러나 아직 퍼즐의 핵심 조각이 남아 있다. 권력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의 사고방식만 바꿔놓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은 우리의 몸을 물리적으로 변화시킨다.
- 2011년 프린스턴대학교의 로런스 게스키에르 Laurence Gesquiere 가 주도한 연구 또한 새폴스키의 이론을 보강한다. 게스키에르의 연구진은 스트레스와 관련된 호르몬인 글루코코르티코이드를 측 정했다. 이들은 특정 개체가 영장류 위계에서 더 높이 올라갈수록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예외가 있었다. 위계의 정점에 오른 알파메일은 이례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로 인해 연구진은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반대되는 결론에 도달했다. 가장 좋은 자리는 바로 권력의 모든 떡고 물을 누릴 수 있으면서 군주가 되는 데 따르는 모든 위험은 피할 수 있는 '베타'메일의 자리였다.
- 겉으로 드러난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아래에 깔린 맥락이나 의사 결정 과정 자체를 검토하지 않는다면, 결국 나쁜 행동을 저지하지 못하 고 오히려 강화하게 될 것이다.
- 요점은 이렇다. 권력의 자리에 앉을 만한 적절한 사람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지원하면 좋을지, 예컨대 경찰 학교 출신이 좋을지, 선거에 출마했던 사람이 좋을지를 주의 깊 게 생각해봐야 한다. 비단 이력서의 구절이나 특정한 기술에 관한 것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성향이나 팀워크와 관련된 개인의 과거 실적을 비롯해 여러 측정 기준 또한 고려해야 한다. 더 나은 정치적 후보를 찾으려는 정당과 시민 사회 단체는 울며 겨자 먹기 로 정치에 입문해 공공을 위하여 일할 사람, 도덕적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영입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부와 명성을 얻기 위해 또는 자아를 화려하게 전시하기 위해 안달 내는 사람이 그 자리를 덥석 차지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다수의 혁신적인 지도자들이 정치와 무관한 직업군, 예컨대 교육, 보건, 과학 등의 분야에서 최고의 지위에 있지만, 더 나은 선별 또한 필수적이다. 매력적인 나르시시스트는 일회 성 채용 면접에서 매우 다양한 인상을 줄 수 있지만, 더 철저한 검 증을 통해 이를 거를 수 있다. 더 엄밀한 진단은 마치 사치스러운 절차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당한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을 초기 단 계에서 한층 더 철저히 검증한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 훗날의 피해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어둠의 3요소와 관련된 심리 검사는 오늘날 특이하거나 모욕적인 일로 여겨지고 있지만, 국가 원수나 주요 기업의 CEO 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라면 이런 심리 검사를 하는 것이 아마 현명한 조치일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의 권력이라면 잠깐의 주제넘은 심문을 걱정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다.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되는 사 람들이 권력을 추구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핵심 문제를 인식하는 게 이 싸움의 주가 될 것이다. 우리는 권력에 굶주리고 부패할 후 보를 걸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모든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 2014년 어느 연구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사무실 중 거의 4분 의 3이 개방형으로, 업무 공간을 분리하는 벽이 낮거나 아예 없다. 업무 시간에 잠시 트위터를 하거나 가족 또는 친구와 전화 통화라도 하려고 하면 모든 사람이 알게 되고, 그 점을 당사자도 안다. 이런 사무실 설계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일반적이지만, 사실 직원들에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 다. 2011년 개방형 사무실 연구 수백 건에 관한 검토에서는 이런 설계가 직원을 소외시키고, 스트레스를 높이고, 직업 만족도를 낮 춘다는 점을 발견했다. 게다가 개방형 사무실의 가장 큰 목적이 협업 증진임에도 현실 데이터는 개방형 사무실에서 사회적 상호 작용이 70퍼센트 감소한다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파놉티콘 스타일의 업무 공간은 감시에 탁월하지만, 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악이라는 결과다.
게다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업들은 직원들의 '모든 것' 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을 얻게 됐다. 업무 공간 내 감시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다. 언제나 켜져 있는 라펠 마이크로폰, 마이크로칩 내장 사원증, 자리에 앉 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의자 센서, 컴퓨터 타자 모니터링, 책상에 앉아 있는 당신의 모습을 일정한 간격으로 사진 찍는 소프트웨어, 그리고 하염없이 증식하는 히드라 같은 이메일 수신함을 봐야 할 시간에 요리법 따위를 찾아보지 못하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컴 퓨터 화면의 스크린샷을 찍는 기술까지 등장했다. 벤담은 이 모든 방법을 보고 감탄의 휘파람을 불었을 것이다(새로 얻은 입이 밀랍만 아니었어도 가능했을 것이다).
- 문제는 이렇다. 현대의 감시 시스템은 모든 것이 거꾸로 되어 있다. 이를 반대로 뒤집어야 한다. 우리는 잘못된 사람을 감시하 고 있다. 21세기의 파놉티콘을 안팎으로 뒤집어, 권력을 가진 사 람들이 자신들이 계속해서 감시받고 있는 듯하다고 느끼게 해야한다. 엔론 사태(미국 휴스턴의 에너지·물류 기업인 엔론Enron은 한때 '미 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될 만큼 유망했으나 계획적인 회계부 정 사실이 드러나 2001년 파산했다. 옮긴이)나 버나드 메이도프의 폰 지 사기 사건은 중간급 직원이 클립 몇 개를 훔치거나 업무 시간 에 유튜브로 고양이 동영상을 20분쯤 봤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 니다. 이런 중간급 직원들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 을 걸고 직접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다양한 추정에 따르면, 화이트칼라 범죄는 미국에서만 연간 2,500억~4,000억 달러의 손실 또는 피해를 발생시킨다. 미국 길거리에서 발생한 모든 재산범죄(도둑, 강도, 절도, 방화)를 더해도 피해액은 170억 달러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므로, 화이트칼라 범죄 에 의한 피해액이 15~25배 큰 셈이다.24 마찬가지로, 보수적으로 추산했을 때 기업의 부정행위에 의해 사망하는 미국인은 연간 약 30만 명이며, 유독 화학물질, 제품 결함, 치명적인 폐기물 또는 해 로운 오염물질에 대한 노출 그리고 엄격한 검증 없이 제공된 중독성 물질 등이 주요 원인이다. 이는 매년 살인 사건으로 사망하는 미국인의 수보다 약 20배 많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러 성격상담소  (0) 2022.07.07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0) 2022.06.26
알프레드 아들러  (0) 2022.06.05
바쁨 중독  (0) 2022.04.16
관계중독  (0) 2022.04.16
Posted by dalai
,

알프레드 아들러

심리 2022. 6. 5. 08:37

-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눈에 보이는 어떠한 형태로 나타낸다. 자세나 태도나 표정에서, 아니면 다리나 무릎을 떠는 동작 등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와 똑같은 변화가 다른 기관에 있어서도 보인다. 예를 들어 얼굴이 빨개진다거나 창백해지게 되면 혈액순환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노여움, 불안, 슬픔과 그 밖의 어떤 감정 을 느낄 때에도 항상 몸은 말을 하고 있다. 개개인의 몸은 그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두려운 상태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은 떨고 어떤 사람은 몸의 털이 곤두서며 다른 누군가는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다. 식은땀을 흘리기도 하고 갈증이 나기도 하며, 목이 쉰다거나 긴장으로 위축되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한기로 몸이 오그라들고 식욕이 없어지거나 구토를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그런 감정에 의해 방광에 자극을 받기도 하고 성기에 영향을 받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시험을 치르는 동안에는 성기에 자극을 받는다고 느끼는 아이들도 많이 있다. 범죄자들이 범행을 저지른 후에 사창가에 간다거나 애인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 어떤 심리학자는 주장하기를 과학의 영역에서는 본래 성과 불안이 상호 결합되어 있던 것이며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의 견해는 대부분 그들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성과 불안의 관계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러한 모든 반응은 개개인의 유형에 따라 다르다. 반응들 가운 데 일부는 어느 정도까지는 유전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어떤 종류 의 신체적 표현은 자주 우리에게 그 집안의 약점이나 특징을 알도록 해 준다.
다른 가족도 매우 유사한 신체적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여기에 서 더욱 흥미 깊은 점은, 심리가 여러 가지 감정에 의해 신체적인 모든 조건을 어떻게 활성화시키는가를 보는 일이다. 여러 감정과 더불어 반응하는 신체적 표현은 심리의 상태가 좋거나 나쁘다고 해석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활동할지를 보여 준다.
예를 들면 화가 났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될 수 있는 한 빨리 극복하기를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편리한 방법은 상 대방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일이다. 노여움은 몸의 여러 기관에 영 향을 끼쳐 행동을 위해 동원되기도 하며 더욱 긴장하게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화가 났을 때 위장의 상태가 나빠지기도 하고 얼 굴이 빨개지기도 한다. 심지어 두통이 생길 정도로 혈액순환이 나 빠지는 경우도 있다. 보통 편두통이나 습관성 두통을 겪는 사람들 을 보면 심리적 배후에 격한 노여움이나 굴욕감이 억압되어 있음이 발견된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신경통이나 전환성 발작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음에 의해서 몸이 영향을 받는다는 근거는 지금까지 충분히 해명되지 않은 상태다. 아마 완전하고 충분하게 설명하기 힘든 문제일 것이다.
- 심리란 하나의 통일체이며, 외부로 표현되는 모든 행동에는 일관된 인생 방식이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한 개인의 여러 가지 정서나 생각은 반드시 그의 인생 방식과 일치하게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매우 곤란한 일을 일으켜서 자신의 행복에 역행되는 행위를 한다면 이런 정서를 변화시키려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은 무익하다. 그가 보여 주는 정서는 현재 갖고 있는 인생 방식이 표현된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동이 근절되려면 근본적으 로 그가 갖고 있는 인생의 방식을 바꿔야만 한다. 여기서 개인심리학은 우리의 교육관 및 치료에 있어서 특별한 시사점을 준다. 우리는 한 가지 증상이나 하나의 표현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우리의 마음은 경험을 해석하는 방법과 그 경험을 토대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있어서 익숙한 방식으로 계속 오류를 범하기 쉽다. 몸이나 환경으로부터 받았던 느낌에 대해 반응하는 행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올바른 삶의 방식을 갖지 못하게 만든 원인들을 발견해 내야만 한다. 이것이 심리학의 참된 과제이다.
- 대부분의 신경증 환자에게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느끼는지 물으면, 그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내가 주위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단지 그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자기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거듭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어떤 트릭을 사용하는지를 알기 위 해서는 그의 행동을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오만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그러한 태도를 통해 그의 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할 때 제스처가 심한 사람은 나의 말은 만약에 강조하 지 않는다면 아무런 중요성도 갖지 못할 것이다'라고 느낀다고 추측할 수 있다.
- 자기가 타인에 대해서 우월한 듯이 행동하는 모든 사람의 배후에 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서 숨겨야만 하는 열등감이 존재하고 있다.
그 노력은 마치 키가 너무 작아서 고민하는 사람이 자기를 커 보이 게 하기 위해서 발끝을 세우고 걷는 일과 같다.
- 열등감은 그들이 자신들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진하는 일을 금지해 버린다. 자위, 조루, 성적 불능, 성도착 등의 증세들은 모두 망설임'이라는 인생의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성에게 다가 가려 할 때 자기는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 이다.
만약 우리가 “왜 그렇게 불완전한 것을 두려워하는가?” 하고 묻 는다면 우월감이라는 목표가 곧 떠오른다. 가능한 유일한 대답은 그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높은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열등감이란 그 자체로서는 이상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설명했다.
열등감은 인류가 자기 자신을 개선하려 하는 모든 노력의 결과이다. 예컨대 과학도 사람들이 자기의 무지를 깨닫고 미래를 예견할 필요성을 느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열등감은 인류가 자기의 생활을 개선하여 우주에 대해 보다 많이 알고 우주를 보다 잘 통제하기 위한 여러 노력의 결과이다. 사실 나의 견해로는 우리 인간의 모든 문화는 열등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까지 생각된다.
- 꿈이 깨어 있을 때의 생활과 모순되지는 않다는 사실, 꿈은 실제 삶의 다른 행위나 표현과 항상 같은 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하루 종일 우월이라는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면 밤에도 똑같은 문제에 몰두할 것임에 틀림없다. 마치 꿈속에서 수행 해야 할 과제가 있고, 꿈속에서도 우월을 향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꿈을 꾸고 있음에 틀림없다.
꿈은 인생 방식의 산물로써 인생 방식을 만들고 강화하는 데 도 움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의 고찰은 꿈의 목적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꿈을 꾸지만 아침이 되면 밤에 꾼 꿈을 곧잘 잊어버린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전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까?
실제로는 무언가가 남겨진다. 꿈이 불러일으킨 어떤 감정이 뒤에 남는 것이다. 영상이 하나도 남지 않고 또 꿈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 한다 해도 감정만은 잠을 깬 뒤에까지 남는다.
꿈의 목적은 꿈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속에 내재해 있음에 틀림없 다. 꿈은 감정을 북돋워 일으키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에 지나지 않 는다. 꿈의 목적은 그 내용 뒤에 남는 감정에 있다. 한 개인이 창출 하는 감정은 언제나 그 사람의 인생 방식과 일치한다.
꿈속의 생각과 낮 동안의 생각 사이의 차이점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 둘 사이에 고정된 경계 따위는 없다. 그 차이를 한마디로 말 하면 꿈속에서는 현실과의 모든 관계가 낮보다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 우리가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항상 의미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서 우리는 심리학에 관한 우리의 정의를 이렇게 표현 할 수가 있다. 심리학이란 한 개인이 자기의 몸에 대해 취하는 태도 에 관한 이해이다. 우리는 또 인간의 마음속에 어째서 커다란 잘못이 생기는지를 이 해하기 시작한다.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환경의 요구를 잘 받 아들일 수 없는 몸은 대개 마음에 의해 무거운 짐이라고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불완전한 신체 기관을 가졌다는 이유 로 괴로움을 겪은 아이들은 정신적 발달에 있어서 다른 아이들보다 도 훨씬 커다란 곤궁에 빠진다. 그들은 자기 몸으로 우월한 지위를 향해 움직이거나 스스로를 통제하기가 보통의 경우보다 어렵다. 똑같은 목표를 달성하려고 할 때도 다른 사람보다 많은 정신적 노력이 필요하며 정신의 집중도도 높여야만 한다.
- 초기의 기억은 특별히 중요성을 띤다. 첫째, 그 기억은 특정한 인생 방식을 갖게 된 근원을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보여 준다.
우리는 그러한 기억에서 아이가 응석받이로 자랐는지, 무시당하 고 있었는지, 다른 사람과 어느 정도로 협동하도록 훈련받았는지, 어떤 문제를 겪었는지, 그런 문제들과 어떻게 싸워 왔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시력이 나빠서 괴로움을 당하고 물건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도록 훈련받은 아이들의 초기 기억을 보면 시각적 성격의 모든 인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기억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로부터 시작되곤 하며 주로 색깔이나 형체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운동 기능에 지장이 있어서 걷고 달린다거나 도약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아이의 기억 속에서도 그러한 관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어린 시절부터 기억되고 있는 사건은 그 개인의 주된 관심사와 매우 가깝다. 우리가 그의 주된 관심사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의 목표나 인생 방식도 알 수 있다. 초기의 기억을 매우 가치 있는 것으 로 평가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기억 속에서 그의 부 모와 가족에 대한 관심도 발견 가능하다.
기억이 정확한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런 기억이 그 개인의 판단을 보여 준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이 때부터 나는 이러한 인간이었다' 라든가 '아이 때부터 나는 인생을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을 알 아낼 수 있다. 모든 기억 중에서 가장 계시적은 것은 그가 기억해 낼 수 있는 최초의 사건이다. 최초의 기억은 그 개인의 근본적인 인생 방식과 그의 삶 가운데 최초로 만족스러웠던 결정을 보여 준다. 그 기억은 그 가 무엇을 자기 발달의 출발점으로 삼았는가를 한눈에 보도록 해 준다.  때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처음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겠다면 서 대답을 회피하기도 하고 혹은 고백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 자체도 하나의 계시가 된다. 우리는 그들이 자기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 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협력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 부모의 '이상적인 결혼 생활'은 이런 아이에게는 매우 곤란한 일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에 대해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습은 아이를 초조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이는 어머니의 주의를 독점하고 싶어 하며 어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애정을 보이는 일에 반발 하기도 한다.
만약 부모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며 불 행한 결혼 생활은 더욱 나쁘다고 한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일까? 우리는 아이들이 처음부터 협력할 수 있도록 교육 해야 하며, 아이가 한쪽 부모에게 기울어지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 아이는 교사의 엄한 태도나 체벌에 의해서는 결코 외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이가 학교에 와서 자기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교제 하는 친이 어렵다고 생각될 때, 해서는 안 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아이를 비판하거나 힐책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방식은 아이가 '학교를 싫어하는 게 정당한 일이구나' 하 고 분명히 인식하도록 만들어 줄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만일 학교에서 항상 야단을 받거나 비난받고 있는 아이의 입장이라면 나 또한 될 수 있는 한 선생님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멀리 떨어지려 할 전이다. 나는 학교 따위를 피하여 무언가 새로운 상황 속에 들어갈 방법을 모색할 첫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어린이들은 주로 위장 결석을 하거나 품행이 좋지 못한 학생이 되거나 바보처럼 보이거나 다루기 어려운 아이가 어간다.
하지만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종종 학교에 결석하기 위해 거짓을 꾸며 내거나 부모님의 편지를 위조하는 등 대단히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학교 바깥에서 돌아다니다가 이미 자신들보다 앞서 위장 결석을 한 다른 아이들을 발견한다. 그들은 이러한 친구들로부터 학교에서와 달리 인정을 받게 된다. 그 리하여 그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그룹, 그들이 스스로 가치 있는 존 재라고 느끼는 곳은 학교의 교실이 아닌 문제이들의 집단이 된다.
우리들은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전체의 일부로서 교실 속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어린이들이 어떻게 하여 범죄자로서의 경 력을 향해 자신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하는기를 이해하게 된다. 아이의 관심을 끌고 싶다면 교사는 현재 그 아이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로 하여금 자기가 이미 갖고 있는 관심사뿐만 아니라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 켜 주어야 한다. 만약 아이가 한 가지 문제에 확신을 갖게 되면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도록 자극을 주기가 아주 수월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처음부터 그 아이가 외부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어느 감각기관이 그의 주의를 가장 많이 끌고 있는가, 어떤 기관이 가장 활발히 훈련받아 왔는가를 발견해 내야 한다. 어떤 아 이는 보는 일에 가장 흥미를 느끼고, 어떤 아이는 듣는 것에, 또 다른 아이들은 움직이는 일에 가장 흥미를 갖는다.
- 한편 자신의 뜻대로 입장이 확고해지지 않으면 주목을 받으려고 하는 유형의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장난을 치거나 학급 전체를 방해하거나 다른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이 원하는 입장을 실현시키려고 한다.
비난이나 벌로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고 오히려 반항을 가속화 할 뿐이다. 그들은 무시당하는 것보다 오히려 표적이 되어 야단맞는 쪽을 좋아한다.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서 부과되는 고통은 쾌락을 위하여 지불해야 하는 대가에 지나지 않는다. 체벌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그들의 인생 방식을 계속하도록 만드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
- 아이들은 체벌을 누가 가장 오랫동안 견디어 낼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시합이나 게임 정도로 여긴다. 이 게임에서는 아이들이 항상 승리자이다. 부모나 교사들과 투쟁하고 있는 아이들은 벌을 받으면 서 우는 대신, 비웃도록 자신을 훈련시킨다.
게으른 아이는 거의 대부분 야심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경우가 많 다. 게으른 아이는 진정한 패배감 따위는 결코 느끼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 아이는 결코 테스트에 직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아 이는 자신의 눈앞에 닥친 문제를 쫓아 버림으로써 타인과의 경쟁을 지연시킨다.
다른 사람들은 대개 그 아이가 게으르지만 않다면 문제를 잘 해 결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 아이는 '나는 하려고만 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행복한 나라' 속으로 도피한다.
자신이 실패했을 때는 언제나 실패의 이유를 게으름으로 돌려 중대한 결함을 감소시키고 자존심을 유지한다. 그 아이는 스스로 에게 '게으름 때문이지 결코 능력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라고 말하 고 있다.
교사는 게으른 학생들에게 종종 “너는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하 면 학급에서 일등을 할 수도 있어”라고 말한다. 사실 그 아이는 아 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와 같은 관심을 얻고 있는 상태이다. 그 런데 왜 공부를 열심히 함으로써 그 관심을 잃게 되는 위험을 감수 하려 하겠는가. 만일 그 아이가 게으름을 벗어 던진다면 숨겨진 재능이라는 평판도 이제는 끝장나 버리는 것이다.
- 게으른 아이에게 있어서 또 한 가지 개인적인 이점은 그 아이가 최소한의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로 인해 대단한 칭찬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주위 사람 모두가 그 아이의 활동 속에서 개선의 여지를 파악하고 그에게 좀 더 자극을 주고자 노력한다. 부지런한 아이들은 비슷하게 노력해도 칭찬받지 못하는데 게으 른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기대를 이용하며 살아가는 것 이다. 이러한 아이도 역시 어린 시절부터 줄곧 모든 일이 타인의 노력에 의해 자신의 차지가 될 것을 기대하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켜 온 응석받이이다.
- 아이들의 모습 가운데 가장 흔히 보이는 것 중의 하나는 가족의 다른 구성원, 특히 아버지나 어머니보다도 월등하게 앞서려고 하는 시도이다. 이는 상당히 가치 있는 노력이 될 수 있다. 나이 어린 세대의 지위가 향상되어 가는 것을 보는 일은 기쁘다. 만약 아이가 아버지의 직업을 쫓아 업적을 따라잡으려고 욕심을 낸다면 일정한 정도까지는 아버지의 경험이 아이에게 멋진 출발을 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버지가 경찰관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종종 변호사나 재판관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진다. 아버지가 의사에게 고용되어 있는 직원이라면 아이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중등학교의 교사이면 아이는 대학교수가 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을 관찰하고 있으면 종종 그들이 성인이 된 후의 직업을 위해서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들의 놀이는 우리에 게 그들의 흥미에 관한 힌트를 준다. 예를 들어 교사가 되고 싶어 하 는 아이는 어린아이들을 모아 놓고 학교 놀이를 한다. 어머니가 되 고 싶어 하는 여자아이는 인형을 가지고 놀며 이는 자연스럽게 아기 에 대한 흥미를 기르는 훈련이 된다. 이러한 관심은 격려받아 마땅 하며 여자아이들이 인형 갖고 노는 일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 아들러 는 초창기부터 프로이트와 많은 점에서 견해를 달리하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성性 충동을 인간 행동의 근원으로 파악하였고, 아들 러는 이를 모든 인간에 대해 일률적으로 적용시킨 데 대해 반박하였 다. 아들러가 특히 반박한 대목은 성 충동의 학설을 정신적 생활의 기본 요소로서 노이로제 환자나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에도 적용시 킨 부분이었다. 아들러는 그러한 증상들은 절대적인 요인이 아니라, 개인적인 상황, 경험, 갈등 속에서 빚어진 부분에 불과하다는 견해 를 가졌다.
아들러는 인간이 성적 동기보다 사회적 동기에 의해 더 큰 영향 을 받는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행동과 발달을 결정짓는 것은 열등감 과 무력감이라고 보았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아들러에 의해 최초로 사용된 용어로서, 그는 이 두 감정이 인간존재에 보편적이라고 생각 했다.
- 인간에게는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이를 보상 또는 극복해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의 움직임이 우리를 행동하게 만 드는 추진력으로써, 아들러는 이를 '권력에의 의지'라고 하였다. 아 들러는 과거의 경험이 그의 미래를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그가 경험 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변화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리비도 개념을 부정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 스도 열등성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았다. 아들러가 열등 감과 우월감에 관심을 갖게 된 한 계기는 앞서 밝혔듯, 그가 어린 시 절 겪은 질환에 따른 육체적 불편함과 형과의 갈등에 기인한다. 아들러는 성 충동을 중시하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반대하여 점차 프로이트의 이론을 비판하는 입장으로 변하였고, 그로 인해서 수회 에 걸친 심각한 토론을 벌이기에 이른다. 프로이트의 정신적 생활 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한 일련의 강의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아들러는, 1911년 8명의 다른 멤버와 함께 이의서를 제출하고 프로 이트 학회에서 탈퇴한다.
두 사람의 학설에 관심을 가졌던 융은 그들의 결별이 두 심리학 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인생관 사이에 거리가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교에 대한 프로이트의 적대 적 태도와 아들러의 호의적인 태도 역시도 둘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을 보여 주는 사례라 하겠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0) 2022.06.26
권력의 심리학  (0) 2022.06.09
바쁨 중독  (0) 2022.04.16
관계중독  (0) 2022.04.16
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0) 2022.04.09
Posted by dalai
,

바쁨 중독

심리 2022. 4. 16. 19:18

- 잠깐의 여가야 즐겁겠지만 24시간 중 4시간만 일한다면, 사람들은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우리 현대 문명에 대한 비난이다. 과 거 어느 시대도 이런 적이 없었다. 예전에는 마음 편히 노는 것이 허용되었으나, 어느 순간 우리는 능률 숭배에 억제되어 왔다. 현대 인은 모든 일이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결코 그 자체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1932)
- 나는 여가에 대한 새로운 고찰과 빈둥거림idleness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키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빈둥거림은 무활동이 아니라 비생산적인 활동'을 뜻한다. 유타대 학교의 대니얼 더스틴은 이렇게 말한다. “여유leisureliness는 시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생활 속도를 말한다. 그것은 경제 효율, 규모의 경제, 대량 생산 등의 개념과 상반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 여유는 속도를 늦추고 삶의 모든 가치를 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모두가 그런 여유를 누릴 시간을 내기를 희망한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런 여유를 누려야 하며, 그럴 때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 그렇다고 여가를 갖기 위해 발전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나는 우리가 너무 빨리 나아가고 있다거나, 너무 빨리 변화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사실 내 주장은 그 반대다. 나는 끊임없는 채찍질이 지금 우리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다. 행동방식에 유연성을 허용할 때, 우리는 일을 가장 잘한다.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장시간 이를 악물고 억지로 몸과 마음을 바쳐 일에 '린 인 lean in 하는 대신, 일에서 물러서 라. 이런 주장이 직관에 반하는 해결책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을 기계처럼 작동하며 가동률과 성능을 올리는 일을 멈출 수 있고, 또 멈춰야만 한다. 인간 본성을 제한하거나 제약하지 않고도, 일을 하면서 '그리고 빈둥거리면서 인간성을 찬양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본성과 능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일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에 린 인 할 수 있다.
- 누가 처음으로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돈을 주 고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오 래전 그런 거래가 있었던 기록이 남아 있다. 최초의 급여 는 5,000년 전, 현재의 이라크 땅인 한 도시로 거슬러 올라 간다. 누군가 노동의 대가로 맥주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TV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호머 심슨 같은 인물이 메소포 타미아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 맥주, 음식, 또는 다 른 유형의 삯을 받는 대가로 몇 시간 일해주는 것은 전 세 계적으로 상당히 흔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상들에게 '일'이 무슨 의미였는지에 대 해 오랫동안 잘못 생각해왔을지도 모른다. 중세 소작농은 평균적으로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적은 시간을 일했고, 훨씬 더 긴 휴가를 즐겼다.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항상 일주일에 최소 40시간씩 일해야 했던 것 같지만, 사실 그런 관 행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현상이다. 중세 사람들의 형편이 나았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 것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이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있으며, 전염병으로 죽을 위험도 거의 없다. 우리는 아동기를 넘겨 생존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고, 더 편안한 집에 살고 있으며, 대부분 교육받을 기회도 더 높아졌다. 확실히 우리 대부분은 1600년대의 평균적인 유럽 농민들보다 잘살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더 긴 시간 동안 일한다. 그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 세계 각지의 '호모 사피엔스'는 (대략) 30만 년간 직립 보 행을 해왔다. 사실 인류는 이 시간의 대부분을 일주일에 40시간씩 일하며 보내지 않았고, 분명 1년에 300일 이상 일하지도 않았다. 인류의 일 습관은 200여 년 전에 극적으로 바뀌었다. 현대의 노동 시간이 특이한 것이며, 이를 증명해줄 역사적 기록도 충분히 있다. 4,000년 전의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테네인들은 1년에 60일까지 쉬었다. 기원전 4세기 중반까지는 공식적인 축제일이 거의 6개월에 달했고, 축제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인의 노동은 간헐적이 었다. 즉 파종기나 추수기에 집중해서 일한 뒤, 축하와 잔 치로 시간을 보내면서 긴 휴식기를 가졌다. 그런 기본 방식이 아시아, 유럽, 북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에서 수만 년 동안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1760년 영국에서 산업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사람들 대부분 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부터 조상 대대로 이어온 관행대로 살았다. 그들의 하루는 해가 뜨면서 시작되어 해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면 끝이 났다. 사람들의 생활은 새의 생활과 비슷했다.
19세기까지는 부자들만 꼬박꼬박 초를 켜둘 여유가 있 었으므로 해가 지면 대부분 일과를 끝마쳤다. 아테네의 일조 시간은 여름에는 14시간, 겨울에는 10시간 가까이 됐다. 확실히 14시간은 하루 노동 시간으로는 길다. 물론 호메 로스의 하인들은 14시간 일하지 않았다. 영국의 역사가이 자 경제학자인 제임스 에드윈 소롤드 로저스는 600년간의 영국 노동자 계급의 노동 관행 변천을 광범위하게 다룬 글을 썼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중세 소작농은 하루 8시간 이하, 때로는 그보다 짧게 일했으며, 적어도 1년의 3분의 1은 일을 쉬면서 성인聖人 축일을 기념하고 다른 특별한 행사들을 치렀다.
- 산업 시대가 진행되면서 장인들은 공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유리공예가는 유리 공장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 었다. 그래서 그들은 연장을 팔고 공장에 일자리를 구했다. 공장의 기구와 기계는 노동자가 아니라 고용주의 소유였 다. 노동자가 직장을 떠날 때 그에게는 더 이상 새로운 일 자리를 찾을 수단이 없었다. 그는 도구와 자원을 공급받기 위해 전적으로 새로운 고용주에게 의존했다. 이 또한 중대 한 권력의 이동이었다. 이런 변화로 인해 세계는 많은 전문 예술가와 목공, 조각가, 금속 세공사를 잃었다(1839~1842년에 지어진 영국 국회 의사당 사진들을 들여다보라. 그리고 오늘날 그 모든 작업을 한다면 비용이 얼마나 들지 상상해보라. 장인 계층이 사라지면서 무엇을 잃게 되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될 것이다), 공장에 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매일 수십 개의 제품을 생산해내므 로 대개 자기 일에 예전과 같은 자부심을 느끼지 못했다.
사회이동 또한 정체되었다. 19세기 이전에는 기술을 배 워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장에는 장인이 필요하지 않았다. 몸과 손이 필요할 뿐이고, 관리직은 몇 자리밖에 없었다. 19세기 동안 승진과 출세의 기회는 거의 없었고, 노동자 계층에서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 이 모든 변화가 의미심장했지만, 참으로 중대한 또 다른 변화가 이 시기에 있었다. 바로 시간이 돈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피고용인들은 기계와 함께 일했고, 기계가 매시간 만들어내는 제품 수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러므로 기계를 오래 가동할수록 공장은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공장주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더 많은 가동 시간은 더 많은 돈을 의미했다. 피고용인들은 과거 수 세기 동안 과업에 따라 보수를 받 아온 것과 달리 시간당 보수를 받았다. 농작물을 재배하거나 레이스를 뜨며 평생을 보내다 처음으로 주급을 받아든 당시 노동자의 기분이 어땠을까? 나로서는 투자한 시간과 급여가 무관한 시대를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런 대변화는 비교적 최근에 일어났을 뿐 아니라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 시작은 영국이었을지 몰라도 변화의 물결은 곧 주변 국가, 나아가 다른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변화는 영어 단어에도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1600년대에는 'punctuality'가 '정확성'을 의미했다. 그런데 1777년경부터는 '시간 엄수'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 다. 완수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efficere에서 파생 된 efficiency라는 단어는 수 세기 동안 '무엇을 끝마치는 힘'을 의미했다. 그러나 1780년대에는 '생산적인 일'의 동 의어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고, 1858년의 한 기사에서 처음 으로 efficiency가 '에너지 소비량 대비 유효한 일의 비율' 의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알뜰하게 활용한 시간 Time well Spent' 이라는 표현은 '돈을 번 시간'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 철학의 진화가 언어에 반영되어 변화한 사례를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bootstrapping'은 1800년대 초반에 처음으로 사용된 단어로 '신발 끈만 사용하여 울타리를 넘어가기'라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은 일을 한다는 뜻이었다. 1843년 매디슨 시티 익스프레스에 실린 기사는 한 관료를 이렇게 조롱했다. “그 분은 신발 끈으로 자신을 들어 올리려는 게 틀림없다. 어쩌 면 '외바퀴 수레로 자신을 끌고 가려 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이 단어의 풍자적인 함의는 사라지 | 고,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난뱅이에서 부자가 된다는 의미로 바뀌게 되었다. 칭찬이 된 것이다. 이런 변화는 게으른 부자들이 아니라 토머스 에디슨과 헨리 포드 같은 자수성가한 부자들을 존경하는, 미국과 여러 유럽 국가의 전반적인 사회적 의견이 반영된 것이었다.
- 시간이 부족하고 값진 것이라는 이 결정적 느낌은 우리 의 수입이 일한 시간에 좌우되면서부터 생겨났다. 2014년 12월 이코노미스트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8세기에 처음으로 시계에 맞춰 일하기 시작한 이후 시간은 돈과 결부되어 이해되어 왔다. 시간이 경제적으로 수량화되는 순간 사람들은 시간을 낭비하는지, 절약하는지, 또는 유익하게 사용하는지 더 걱정하게 된다.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높아지면 모든 사람의 시간은 가치가 올라간다. 그리고 가치가 커질수록 더 희소해 보이게 된다.” 바꿔 말하면 돈을 많이 벌수록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믿을 가능성이 커진다. 
- 기본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자랑하는 말 은, 내가 기차에서 만난 젊은 여성처럼 자신이 가치 있고 자 신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다. 매우 바쁜 사람은 값비싼 제품을 착용하고 고가의 옷으로 과시하는 대신, 자신의 본질적인 가치와 지성을 암묵적으로 자랑한 다. 그들은 스케줄을 빼곡히 채운 온갖 약속과 업무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대부분의 요청에 '일정을 확인해봐야겠네 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잘 지내요' 라고 대답하는 대신 바빠요!'라고 말할 것이다.
- 만성적인 분주함은 이탈리아가 아닌 미국 같은 나라 에서 흔하다. 그 이유는 미국인들이 오랫동안 획득 지위 earned status'를 중시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자수성가 신화가 낳은 부작용이다. 가문이나 순자산이 아닌 빡빡한 일정이 당신의 내재적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게다가 자유시간이 없다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암시하는 것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거의 즉각적으로 존경을 받는다. 그렇다고 더 이상 값비싼 상품을 찾지 않거나, 그것을 지위의 상징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899년 베블런은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를 기술한 글에서, 불필요하지만 값비싼 물건을 사려는 갈망이 만연해 있다면서 이렇게 기술했다. “처음에는 여가가 1위를 차지했고, 여가는 낭비적인 상품 소비보다 순위가 한참 높았다. 하지만 그 후 소비가 입지를 굳혀 현재는 확고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38 더 큰 집, 헬리콥터, 보트를 사려는 최상위 고소득자에게는 베블런의 지적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
- 요컨대 우리는 '단지'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취미를 즐기기보다, 목표 지향적이고 공적인 페르소나를 만들어내느라 바쁘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녀 교육도 성취와 경력 채우기 에 집중될 때가 많다. 사회심리학자 해리 트리안디스는 문 화가 공동체가 아닌 개인에게 초점을 맞출 때 사람들이 소 속보다는 성취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학 교수인 필립 코헨은 <이코노미스트>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부모들은 이웃보다 모자란 게 있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건 마치 군비 경쟁처럼 느껴질 수 있다.
- 사료를 훑어보면 19세기와 20세기의 가장 생산적인 일부 지성인들은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찰스 다윈,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 찰스 디킨스, 엄청난 연구 업적을 남긴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 모두 하루에 고작 몇 시간만 일했다.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는 한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한 달 동안 파티를 했다고 한다. 프랑스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을 집필하는 동안 매일 5시간 정도 글을 쓰고 나머지 시간은 가족들과 산책하고, 어머니와 이 야기를 나누고, 약간의 초콜릿을 즐기고, 파이프 담배를 피 우고, 뜨거운 목욕을 하면서 보냈다.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은 하루에 3시간 정도만 글을 썼다.
- 연구 결과를 보면, 온라인 조사를 한다고 해서 지식이 크게 늘지는 않지만 지식에 대한 자신감은 매우 커졌다. 예를 들어 인터넷으로 자신의 증상을 찾아본 이들은 잘못된 진 단을 내릴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런데도 인터넷으로 자가 진단을 한 사람들은 의사의 진단을 의심하고 대체 치료법을 찾는 경우가 많다. 금융 분야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인터넷으로 어떤 주제를 조사하면 자신의 전반적인 지식에 자신감이 높 아져서,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쪽에 투자하게 된다. 즉 실제 데이터보다 자기 확신에 기반한 투자를 하게 될 가능성이 증가했다.
- 앞서 언급했듯이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 은 성찰이나 추론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를 훑어보며 단편적 뉴스를 대충 읽을 때는 자동적이고 직감 적인 사고만 작동한다. 우리는 가정을 의심하지 않고 논리적 오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틀린 정보를 수용하고 퍼뜨리는 일이 잦아진다.  
- 진정한 친구는 가장 큰 축복이지만, 우리는 진정한 친구를 얻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
- 끊임없는 비교라는 이 해로운 습관은 없앨 수 있다. 먼저,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인터넷으로 확인하지 마라. 컵 케이크를 만들고 싶다면 요리책을 참고하라. 핀터레스트를 샅샅이 뒤져 '궁극의 컵케이크 레시피'를 찾고, 완벽한 컵 케이크를 만들겠다고 특별한 장식 도구를 잔뜩 장만하지 마라. 그러다가는 정작 컵케이크를 만들기도 전에 제풀에 지쳐, 서랍 어딘가에 그 도구들을 처박아두고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요즘은 직접 요리한 음식 사진을 찍어서 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따라서 특히 요리는 유해한 비교의 치명적 원천이 될 수 있다. 유명한 요리사 에드워드 리는 자신의 최신 요리책에 사진을 전혀 넣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독자들이 전문적으로 연출한 사진과 똑같은 요리를 해내려고 애쓰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인 터뷰에서 말했다. 그의 레시피를 시도했지만 완성된 음식 이 형편없어 보여 실망했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던 까닭 이었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맛은 좋았어요? 맛있었다면 그걸로 된 거죠.”
대부분의 일에서 '맛있는가?'와 같은 질문이 새로운 기 준이 되어야 한다. 사진에 어떻게 나왔는지 잊고 그것이 당신 마음에 드는지 자문해보라. 이를테면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묻는 것이다. 누구보다 오래 사무실에 남아 있었는지를 신경 쓰는 대신, 어떤 성과를 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잘 끝마쳤는지에 초점을 맞춰라. 친구들의 휴가 사진과 자신의 휴가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지 마라. 대신 그들에게 휴가를 마음껏 즐겼는지 물어보라.
-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기록하라는 둥, 위를 올려다보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라는 둥, 이런 조언이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획기적인 변화는 이런 간단 한 행동에서 시작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당신의 시간을 되찾자는 이야기다. 더 이상 말이 당신을 끌고 가 지 못하게 고삐를 잡자는 것이다. 어떻게 표현하든, 당신의 삶을 통제하는 것은 이런 기본적인 실천에서 시작된다. 삶 을 통제한다는 건 당신을 지치게 할 뿐, 어디로도 데려가지 않는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간단하 지만 강력한 조치다.
- 인간의 뇌는 일을 하기에 적절한 환경이 조성될 때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이상적인 일정은 단시간 집중적 으로 일한 다음 정기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는 사실 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50~57분 동안 중단하지 않고 일 한 다음 짧은 휴식을 취하면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이 런 방식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뇌의 집행 기능이 관여할 가 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 통찰력 있고 창의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조사 결과, 보통 사람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1시간에 약간 못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당신은 평 균이 아닌 개인임을 기억하라. 당신에게 이상적인 시간은 40분 가까이 또는 60분일 수도 있다. 당신의 적정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스스로 시험하고 찾아내야 한다. 더 짧게 일하는 시험을 한다는 게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경험해봐서 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많 은 사람이 이 방법을 시도했고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 뒀다. 직원들의 근무 시간을 줄였으나 생산성이 감소되지 않은 사례는 실제로 존재한다.
- 지표는 유용하고 좋은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용하거나, 혁신성처럼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기 위 해 사용한다면 해로울 수 있다. 숫자는 특별한 목표 의식을 심어주지 않으므로, 지표는 창의적 사고를 장려하지도 않 는다. 조사 결과들을 보면 지식노동자의 30퍼센트는 직장 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며, 거의 60퍼센트는 생각하는 시간이 30분 미만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정신적 자극이 거 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무 시간이라는 자의적인 지표를 기록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일은 어리석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더 심각하게는 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관행이다.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라.
- 요즘 같은 시대에는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에서 다른 사 람들이 말을 걸어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니 당신이 먼저 아침 인사를 건네라. 행동과학자 니컬러스 에플리가 말 했듯이 먼저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은 극소수이지만, 누군가 손을 흔들면 거의 모두가 마주 손을 흔들어준다. 인간은 사회적 만남으로 이득을 얻을 생물학적 준비가 되어 있어서, 길을 가던 낯선 사람이 눈을 마주치고 고개만 끄덕여주어도 기분과 정신 건강이 좋아진다. 미소나 고갯짓, 손 흔들기 같은 작은 몸짓만으로도 공동체와 더 연결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엘리베이터에 탄 누군가의 간단한 인사는 동류의식마저 들게 해줄 수 있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력의 심리학  (0) 2022.06.09
알프레드 아들러  (0) 2022.06.05
관계중독  (0) 2022.04.16
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0) 2022.04.09
하버드 심리학 강의  (0) 2022.03.15
Posted by dalai
,

관계중독

심리 2022. 4. 16. 19:14

관계중독은 상대 배우자나 연인, 나아가 지인과 타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의존하는, 혹은 반대로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 행동과 생활을 통제하려 드는 왜곡된 사고에서 발생한다. 
알콜중독이나 마약중독이라는 단어는 흔히 들어보았지만, 관계중독이라는 단어는 울에게 익숙하지는 않다. 원래 중독은 술이나 마약같은 물질중독만을 의미하다가 80년대 접어들어 도박, 게임같은 행위중독도 중독의 하나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관계중독이라는 것도 행위중독의 하나로 포함시킬 수 있다.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의존성, 내성, 금단증상을 갖게 되면 관계중독도 중독으로 간주할 수 있다. 예컨대 관계에 대해 갈망과 감정적 의존을 갖고, 관계단절시 금단증상이 찾아오며, 통제불능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관계중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관계중독을 피하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적당한 거리감을 둘 것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존과 의존을 오가면서, 즉 인간관계에서 인력과 척력을 동시에 사용하며 살아가는데, 관계중독자들은 자존의 추를 의존으로 옮겨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관계중독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인지행동치료를 권하고 있다. 인지행동치료는 내담자의 인지패턴을 분석하여 개인이 가진 특정 믿음과 행동에 변화를 모색하는 상담치료기법이다. 내담자 스스로 사고를 수정하여 인지변화가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감정과 행동이 변화할 것이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동기강화치료법도 있는데, 이는 중독자의 주관적이고 내적인 동기를 변호시켜 문제행동을 교정하거나 제거하는 접근법이다. 이간의 행동은 특정한 동기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는 동기심리학의 원리에 기반하여 고안된 치료법이다.

결국 관계중독을 치유하고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 내 감정에 솔직해져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내 감정을 인정하고, 이를 표현하고, 스스로 다스리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관계중독 #심리 #가스라이팅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프레드 아들러  (0) 2022.06.05
바쁨 중독  (0) 2022.04.16
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0) 2022.04.09
하버드 심리학 강의  (0) 2022.03.15
메모리 코드  (0) 2022.03.13
Posted by dalai
,

이 세상에 만사태평으로만 인생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런 걱정 없이 살 것 같은 사람들도 알고 보면 말 못할 고민을 하고 있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불안 속에 살고 있다. 불안은 인간의 기본감정 중 하나인데, 불안 자체는 좋다 혹은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불안이라는 감정이 없었다면, 인류는 벌써 오래전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옛날, 숲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호랑이나 곰이 아닌가 하고 불안해 하지 않고 태평했던 사람은 아마 맹수들에게 잡아먹혀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안과 성취도와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연구도 있는데, 적당한 스트레스 상황일 때 성취도가 높게 나오고, 불안감이 전혀 없거나, 너무 과도하면 성취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불안의 근원은 자기 의심 혹은 자기 부정이다. 결국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믿고, 나의 불완전함과 실패까지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불안의 종류를 감정의 불안, 선택의 불안, 성장의 불안, 직업의 불안, 관계의 불안, 5가지로 구분하고, 각각의 불안 종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60가지 방법으로 쉽고 편안하게 제시하고 있다.

불안도 하나의 감정이다. 그런데 감정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나에게 유리한 긍정적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긍정적 감정을 만들어내는 몇가지 방법이 있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건강유지다. 왜냐하면 생리적인 불편함 때문에 부정적 감정이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운 햇볕아래 서 있어야 한다던지, 전날 불면증으로 잠을 설쳤다던지 할 경우 주변사람과 마찰이 일어나기 쉽다. 또 다른 방법은 인생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감정이라는 것이 과거의 경험에 근거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의 풍부한경험은 맞닥뜨리는 일들에 대해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을 가늠하는 기준은 지금 서 있는 정상의 높이가 아니라 절망의 늪에 빠졌을 때 튀어오르는 힘이라고 한다. 이러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잠재력을 동원해 곤경에 맞선다. 자신만의 회복탄력성을 키우도록 노력한다면 인생에 내게 준 잔혹하고 씁쓸한 레몬이 어느새 새콤달콤한 레몬주스로 바꾸어 버릴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이론이라도 내 삶에 적용되지 못하면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가 없다. 이 책에 소개된 실용적이면서도 소소한 해결방법들을 활용하여 삶에 존재하는 불안을 해소해 하루빨리 불안과 작별하고 행복을 맞이하길 바란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 용기가 생명을 위험한 지경으로 몰고 갈 수도 있듯이, 공포심이 때로는 생명을 지켜줄 때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가장 쓸데없는 것이 탄식이다. 무엇을 얻을까 하여 눈을 두리번거리기 전에 우선은 탄식을 버려라. (세네카)
- 아직 아무도 지나치게 소박한 생활을 했다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 (톨스토이)
-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검토하라. 
양심과 성실이라는 점에서 기뻐할 만한 일이었는지를, 
불안과 회한처럼 무기력한 것은 아니었는지를,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라.
증오와 부정을 고요히 고백하라.
모든 악한 것의 중심에서 부끄러워하라. 
어떤 그림자도 침상까지 가져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모든 근심을 마음에서 제거해 버려라. 
영혼이 오래 편안하도록 하라. (헤르만 헤세)

- 감정을 표현할 때 '즐겁다' 만 쓰지 말고 미칠 듯이 기쁘다', '희열을 느낀다', '고무적이다' 등 조금 더 구체적인 어휘를 사용하자. 또 항상 슬프다' 라는 한 단어만 사용하지 말고 풀이 죽다', '실망하다' 의 차이도 배워 두자. 더 깊고 풍부한 의미의 감정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 '통쾌하다'는 '유쾌하다' 와 미묘한 차이가 있고, '시기하다'는 '의심을 품다' 보다 더 많은 상상의 여지를 준다. 감정 어휘는 삶의 도구다. 더 많은 도구를 소유할수록 대뇌는 더 유연하게 행동을 예견하고 판단할 수 있어 여러 가지 삶의 문제에 잘 대처할 수 있다.
-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국어 외에도 감정을 표현하는 외래어 어휘를 많이 배워 두는 것도 좋다.
런던 퀸메리대학교 '감정의 역사센터’ 연구원 티파니 와트 스미스Tifany Watt Smith는 세계 각지의 언어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말 160여 개를 수집하여 저서 《인간 감정에 관한 책The Book of Human Emotions》에 수록했다. 예를 들어 '아웅북Awumbuk'은 파푸아뉴기니 베이닝족의 언어로 '손님이 떠난 후의 공허한 적막감' 이란 뜻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 봤을 법한 느낌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집 안이 난장판 되는 것 같아 싫지만 손님이 막상 떠나면 집이 텅 텅 빈 것 같아 허전하다. 베이닝족은 그런 적막한 감정을 없애고자 나름의 방법을 고안했다. 손님이 떠난 후 그들은 용기에 물을 한가득 채우고 밤새 놓아둔다. 용기에 담긴 물이 나쁜 공기를 흡수하면 다음 날 아침 의식을 치르듯이 그 물을 숲에 뿌린 다음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라펠 두 비드Lappelduvide'는 '허무한 부름 이란 뜻의 프랑스어인 데 갑자기 대뇌가 통제당하는 것 같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 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육교 위에 서서 끊임없이 오고 가는 도로의 차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가 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충동에 휘청거릴 정도로 힘이 빠지고 그대로 정말 떨어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모두 이와 비슷한 느낌을 경험해 봤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허무한 부름 어휘를 봤을 때는 예전의 혼란스러웠던 감정이 갑자기 출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공감이 갔다.
- '일과 삶'은 서커스에서 광대가 저글링하는 공과 같다. 만일 뜻밖의 상황이 나타나면 원래의 균형은 깨지고 만다. 왜 일과 삶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을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 어려운 중요한 이유는 균형을 이룬다는 것 자체가 거짓 명제이기 때문이다. '균형' 이라는 말이 일과 삶의 관계를 가르고 양자를 대립시킨다.
사회학자 트레이시 브라우어 Tracy Brower는 균형이란 국한적인 개념 때문에 사람들은 일과 삶을 인위적으로 대립시킨다고 말한다 생각해 보자.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겠다고 하면서 그 둘을 저울의 양 끝에 놓고 이분법적 관계로 생각하지 않았는가?사실 일은 삶의 일부로 그 둘을 칼로 자르듯 가를 수 없다. 일을 통한 수확과 성공의 열매는 삶의 행복감을 높여 준다.
-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사고방식은 달라진다. '균형'을 '조화'로 바꿔 보자. 세계 최고 부자이자 미국 아마존 창업자 제프리 베이조스Jeffrey Bezos는 '일과 삶의 균형' 보다 '일과 삶 사이에 조화를 유지한다' 라는 표현이 더 좋다고 했다. 그는 균형이란 엄격한 가늠이 필요하지만 조화는 두 가지를 잘 융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쁨 중독  (0) 2022.04.16
관계중독  (0) 2022.04.16
하버드 심리학 강의  (0) 2022.03.15
메모리 코드  (0) 2022.03.13
회복탄력성  (0) 2022.01.15
Posted by dalai
,

하버드 심리학 강의

심리 2022. 3. 15. 22:38

- 행복하기 바란다면 자기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찾고, 깨닫고, 느껴야 한다. 삶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축복이다. 연인이 로맨틱하지 않아 서운하다면 외로워하는 솔로들을 생각하라. 아이의 지능이 평 범한 수준이라 아쉽다면 아이를 원해도 낳지 못하는 부모를 생각하라. 당신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가?
행복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일깨워야 한다. 삶의 곳곳에 행복이 있으니 그것을 느끼고, 깨닫고, 발견해야 한다고.
- 행복은 가끔 발생하는 행운이라기보다 매일 내면에서 얻는 작은 성과라고 말해야 맞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 Romain Rolland은 행복이 '영혼의 향기'라고 말했다. 그렇다. 행복은 영혼이 뿜어내는 향기이고, 내면이 즐거울 때만 그 아름다운 행복의 향기에 젖을 수 있다. 행복은 수천, 수만 년 전부 터 인류가 추구해온 삶의 상태다. 사실상 인생이란 끊임없이 평안을 찾고, 느끼고, 깨닫고, 비우고, 만족하면서 행복을 다져나가는 과정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복은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 머 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순간의 즐거움과 평안, 다시 말해 어떤 일이 일어난 바로 그때 느끼는 만족이다. 인생의 행복은 이러한 순간의 작은 행복들이 하나하나 엮여 만들어진다. 행복은 손에 쥔 물질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며 감각이다.
- 당신 곁에 이미 행복이 있는데 혹시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내면이 복잡하지 않아야 자기 주변에 숨어 있는 행복을 알아볼 수 있다. 따사로운 햇볕, 싱그러운 푸른 나뭇잎, 아름답게 핀 꽃 한 송이, 어쩌면 가장 알아차리기 어려운 일이 가장 행복한 일일지 도 모르겠다. 행복은 크기도 우열도 귀천도 없으며 그저 자기 내면의 즐거움일 뿐이다. 마음이 즐거우면 행복이 당신에게서 멀지 않다. 귀하고 화려한 물질 조건은 필요하지 않으며 평범한 즐거움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 행복은 삶의 유일한 기준이자 모든 목표의 최종 목표다.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가 만나는 곳에 있다. (하버드 행복학 교수 탈 벤 샤하르)
- 행복은 물에 비친 달처럼 가질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가까이에 있으나 당신이 무시한 감정이다. 행복하려면 복잡한 내면을 비워 단순하게 만들고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 미국의 목사이자 작가인 윌 보웬 will Bowen 은 “원망은 동정과 주목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을 피하려고 하는 행동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분노도 원망도 할 필요 없다. 그래봤자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 원망으로는 내면의 분노, 상처, 고뇌를 다스릴 수 없다. 만약 그 청 년이 출소한 날부터 마음을 잘 다스려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더 잘 살아나가는 데 썼다면, 삶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면 그의 삶 은 아름답고 행복했을 것이다.
행복은 저절로 당신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행복을 찾 아 쟁취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원망을 멈추는 것이다. 외부 환경을 원망하지 말고, 자신을 탓하지 말자. 반 성하는 법을 배우고 다른 각도로 문제를 바라보면 타인이나 자신을 향한 원망이 줄어들 것이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
-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니 그냥 받아들여라! 원망은 금물이다. (빌 게이츠)
- 행복해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너무 많은 행복을 기대하는 것이다. (베르나르 퐁트넬)
- 좌절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실패의 확률을 두 배로 키우는 것이다. (탈 벤 샤하르)
-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레몬에이드를 만들어라. (엘버트 허버드)
- 일본의 유명한 경영인 하라 야스사부로 原安三郞는 이렇게 말했다. “젊을 때, 100만 엔을 번 경험은 후에 10억 엔을 버는 경험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젊을 때, 100만 엔을 잃은 경험은 후에 10억 엔을 버는 경험으로 바뀔 수 있다. 역경이야말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다.”
- 실패를 배우지 않으면 배움에 실패한다. (탈 벤 샤하르)
-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Rabindranath Tagore 는 “당신이 태양을 놓쳐 눈물을 흘린다면, 별무리까지 놓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수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정신을 바짝 차리자. 실수에서 교훈을 얻되 머릿속에서 실수를 말끔히 지워내야 한다.
- 돌이켜보지 마라, 돌아가지 않을 거라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설령 아무도 당신을 믿지 않더라도 당신까지 자신에게 절망해서는 안 된다. (NBA 선수 제레미 린)
절망은 당신을 구속한다. 그것은 자신의 지능, 재능, 외모, 창의성, 건강 등에 관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성공을 방해하는 가장 강력한 적이다.
- 누구나 행복한 인생을 바라지만, 현실이 그렇게 순조롭지만은 않다. 실패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부정적 감정이 생기는 일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그러한 감정의 시작점이 어디에 있는 반드시 끝점' 을 찾아주어야 한다. 무슨 일을 겪었든 부정적 감정이 시작되었다면 스스로 끝을 내줘야 내면이 버틸 수 있다. 부정적 감정에 시작점만 있고 끝점이 없다면 당신의 내면은 어마어마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 고 붕괴할 것이다.  부정적 감정은 당신을 괴롭게 만들고, 영혼을 상처 입힌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정적 감정은 심리뿐 아니라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일의 효율과 효과까지 저하하니 반드시 자신의 내면을 깨끗이 정화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방법은 많다. 허물없이 친한 사람에게 당 신이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운지 이야기해도 되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크게 소리 질러도 좋다. 어떤 방식이든 자신에게 맞는 것으로 선택해 반드시 내면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만, 괴로움, 우울, 불안은 당신을 더 고뇌하게 할 뿐이며, 당신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에게까지 상처를 입힐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자신감은 보잘것없는 것을 위대하게, 평범한 것을 신비롭게 만든다. (하버드 경제학 교수, 로렌스 서머스)
- 감옥의 두 사람은 철창을 통해 서로 다른 세상을 본다. 한 사람은 냄새나는 진창을, 다른 한 사람은 하늘에 가득한 별을 바라본다.
- 행복은 향수와 같아서 자신에게 몇 방울 떨어뜨리지 않으면 다른 이들에게 그 향기를 퍼트릴 수 없다. (랄프 왈도 에머슨)
- 건강한 마음가짐이란 무엇일까? 어떠한 마음가짐이 성공에 유리할 까? 이와 관련해 하버드는 긍정적인 성격과 담담한 태도야말로 성공 의 길 위에서 더 멀리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가르친다.
긍정적인 성격이란 실패, 실망에 비관하지 않는 성격이다. 긍정적인 사람은 모든 일과 상황에서 희망을 찾으며 개방적인 태도로 삶의 부침沈을 마주한다. 채근담 根譚은 “마치 앞마당에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듯, 다만 하늘에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라고 했다. 오직 긍정적인 사람만이 이처럼 담담한 태도로 삶을 바라볼 수 있다. 담담한 태도란 작은 성취로 거만하거나 잘난 척하지 않는 동시에 일시적인 실패로 무너지지 않은 태도다. 
- 자신에게 실의와 낙담을 허락하지 마라. 대신 무엇을 해야 더 기분이 좋아질지 자문해야 한다. (탈 벤 샤하르)
- 명성은 매우 독특한 자산이다. 그것은 사람마다 상이하며 조금도 같지 않다. 사람들은 당신의 명성에 근거해 당신에게 점수를 준다. (헨리 키신저)
- 강한 상대와 힘을 겨룰 때, 절대 물러나지 마라. 도전에 응해야 승리의 기회도 있는 법이다. (존 F. 케네디)
- 인생의 최대 문제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모르는 것이다.  (토머스 칼라일)
- 강자는 자신의 약점을 마주하는 용기가 있다.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사람만이 진정한 강자다. (폴 새뮤얼슨)
- 조직 내 협력이 부족해 실패한 기업이 다른 원인으로 실패한 기업보다 훨씬 많다. (빌게이츠)
- 어떤 일 때문에 괴롭다면, 그 일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생각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당신은 이를 바꿀 권리가 있다! (네이선 M. 퓨지)
- 평생 안정만을 바라고 단 한 번도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단 한 번도 날개를 펴고 더 높이 날지 않는다면, 대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빌 게이츠)
- 강한 욕망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이란 원동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다소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하면서 그것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빌 게이츠)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계중독  (0) 2022.04.16
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0) 2022.04.09
메모리 코드  (0) 2022.03.13
회복탄력성  (0) 2022.01.15
생각한다는 착각  (0) 2022.01.02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