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은 사회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과감한 과제임. 인류 역사 가운데 많은 부부은 자신의 친족, 인종, 종교가 신이나 운명에 의해 최상의 가치를 부여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음.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출발해, 현대사회는 불확실성과 다양성을 좀더 폭넓게 수용하는 방향으로 아주 먼 길을 걸어왔음. 하지만 우리는 칸트가 꿈꾸었던 용기있고 지성적인 시민이라는 목표와는 아직도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음. 칸트는 이 목표를 라틴어 두마디로 표현. Sapere aude. 이 말은 과감히 알려고 하라는 의미
- 자연빈도는 인간과 동물이 진화해오면서 마주칠 수 있는 위험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인 자연적 표본추출 과정에서 생겨난 것임. 반대로 확률이나 백분율, 그리고 위험을 표기하기 위해 선택되는 다른 일반화 방법들은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것임. 동물들은 중요한 사건의 빈도를 상당히 정확히 셀 수 있음. 예를 들어 정해진 숫자만큼 레버를 누를 경우 먹이가 나오는 장치를 통한 실험을 해보면, 쥐는 대체로 16까지 셀 수 있다는 보고가 있음. 인간 역시 빈도를 상당히 정확히 셀 수 있음. 물론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지적했듯 인간은, 1만번 일어난 사건과 1만 1번 일어난 사건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즉 사건이 몇차례나 일어났는지에 대한 외적인 기록 없이 정확하게 포착할 수 없지만 말이다. 인간의 마음은 별다른 노력이나 의식 또는 다른 과정의 개입 없이도 마치 물체의 시공간적 위치를 기록하듯 사건의 빈도를 기록함. 영유아는 하나나 둘 또는 세개의 물체로 이뤄진 무리 가각각을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았어도 반복적으로 식별가능. 셈과 수에 대한 아이들의 직관은 인간이 분수보다는 분리된 사례들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줌.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수학자들 역시 처음에는 빈도 용어로 생각했으며 분수, 백분율, 확률은 나중에서야 쓰기 시작했음. 역사적으로 최근에서야 불확실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확률과 백분율이 등장. 확류에 대한 수학적 이론은 기껏해야 17세기 중반에 생겨났음. 백분율은 19세기를 거치며 프랑스 혁명 이후 파리에 미터법 체계가 도입되면서 일반적인 표기법이 됐지만, 주로 이자율과 세금을 나타내기 위해 쓰였으며 불확실성을 나타내기 위해 쓰이지는 않았음. 20세기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확률과 백분율은 일기예보나 야구통계처럼 불확실성에 대한 표현으로 정착. 결국 인간의 마음은 진화과정 내내 위험을 확률이나 백분율로 나타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음.
- 합리성에 대한 한가지 이상적인 생각에 따르면 수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동일한 진술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기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 표기법이 문제가 된다는 증거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나타내는 징표로 간주됐음. 하지만 이런 생각은 훌륭한 표기법을 찾아내는 것이 문제를 푸는 핵심이며 서로 다른 표기법을 사용해 보는 것 또한 창조적 사고를 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관점. 물리학작 리처드 파인만은 물리학 법칙에 대해 여러가지 서로 다른 표기법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음. 그는 심지어 그것들이 수학적으로 동치라도 서로 다른 심적 이미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새로운 발견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지적.
- 유방촬영술 검진은 50대 이상의 여성들이 유방암으로 사망할 확률을 낮추어 줌. 다시 말해, 이 연령 집단에 속한 여성은 조기발견 덕분에 외과적 치료를 덜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삶의 질도 높아짐. 하지만 40대 여성에 대해서는 상황이 불확실함. 검진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 이득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없음. 또한 의사에 의한 유방검진이나 자가진찰이 유방촬영술 검진과 함께 수행된다고 해서 추가적인 이득을 가져온다는 증거 역시 없음. 이 발견 덕분에 많은 의료기관들은 유방암 검진 방법에 대한 권고내용을 대폭 바꾸었음. 90년대 초만해도 의료기관들은 30대 후반에 접어든 여성들이 첫 유방촬영술을 받아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지금은 어떤 의료기관에서도 그렇게 권고하지는 않음. 마지막으로 유방암을 매년 검사하는 것이 2년에 한번 검사하는 것보다 위험을 더 크게 줄여주지는 않음. 무작위 시행에서는 유방촬영술을 매년 받든, 2년에 한번 받든 아무 차이도 없었음. 유방촬영술로 탐지해낼 정도로 종양이 자라나려면 대략 3.5년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2년에 한번 검사해도 암을 진단하는 데 충분함. 최근 합의문에서 미국 국립보건원은 환자에게 결정권을 넘겨주랴고 명시. 연구자료들은 모든 여성이 40대에 유방촬영술을 받아야 한다는 포괄적 권고가 아무런 효력도 없음을 보여줌. 여성들은 자신이 유방촬영술 검진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해야 함. 이 글은 확고한 지침을 원했던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음. 과거에는 소수의 여성만이 유방촬영술을 받을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했고, 대다수가 주치의의 권고대로 따랐음. 주치의가 유방촬영술을 권고하면 거의 90퍼센트의 여성이 이를 받아들였음. 하지만 의사가 권고하지 않으면 겨우 10퍼센트의 여성만이 유방촬영술을 받았음. 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떻게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할까? 여성들은 독립적으로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기 위해 유방촬영술의 이득과 그 잠재적 비용을 알아야 함
- 유방 촬영술 검진은 여성에게 비용과 이득 모두를 제공함. 비용에는 세가지가 있음. 우선 유방암에 걸리지 않은 모든 여성의 절반 정도는 열차례 정도 유방촬영술을 받을 경우 한 차례 이상의 위양성 결과가 나옴. 그리고 그 진단 때문에 조직검사를 위해 유방조직을 떼어내야 한다든가, 불안감이 가중된다든가 하는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을 것임. 이어 진행형이 아니거나 아주 느리게 진행하는 유방암에 걸린 여성의 다수는 자신의 유방에 이 비정상적 세포가 있다는 사실을 유방촬영술이 아니었다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것임. 이 경우 이 세포들이 침윤성 암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일으키는 종양절제술, 유방절제술, 약물치료, 방사선 치료는 결국 해당 여성이 감당해야 할 두번째 유형의 비용인 셈. 마지막으로 1만명당 2~4명의 여성은 유방암에 걸리지 않을 수 있지만 유방촬영술 때문에 방사선 노출 유방암에 걸릴 것이며 그중 1명은 유방암으로 죽을 것임. 이런 사항들은 환자의 관점에서 보면 유방촬영술 검진의 주된 해악이라 할 수 있음. 의사들은 환자와 변호사로부터 암을 발견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함. 이 때문에 의사들은 실제로 위양성보다는 실수, 즉 위음성을 맨 먼저 염두에 두게 되는데, 이는 변호사들이 실수에 주목하지 위양성에 주목하지는 않기 때문. 의사들은 위음성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환자가 여러가지 검사를 받게 하는 경향이 있음. 따라서 위양성의 수는 계속해서 증가. 50세 이전에는 유방촬영술이 이득은 없고 비용만 드는 것처럼 보임. 하지만 50세가 된 여성은 잠재적 이득이 비용보다 더 크지는 않은지 질문해봐야 함. 여성들은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지 판단해야 함. 의사는 유방촬영술의 이득과 비용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는 있지만 양자를 어떻게 평가하고 조율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음. 결국 여성은 자신의 목표가 마음의 평화인지, 몸을 흉터없이 지키는 것인지, 도는 검진으로 이득을 얻을 소수에 포함되는 것인지 물어보가,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해야 함
- 베스트 박사가 유방촬영술에서 양성결과가 나온 여성 대부분이 사실은 암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었던 제약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더 일반적으로 말해, 충분한 설명에 따른 동의라는 이상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제도적 제약조건이 무엇일까?
(1) 분업화 :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는 이유로 분업화를 꼽을 수 있음. 유방촬영술을 진행하는 영상의학과 의사는 환자의 암이 자랐는지 아닌지 대개 알 수 없음. 대부분의 의료제도에서는 검진 이후의 정보를 추적하지도 제공하지도 않으며, 의사들이 스스로 관련수치를 축적하려는 노력에 대해 성과급을 주지도 않음. 단, 이 설명은 베스트박사 같은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에게는 적용할 수 있으마 적합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는 부인과 의사에게는 적용되지 않음.
(2) 법적, 재정적 보상구조 :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전문가들의 공포와 자부심, 그리고 이와 연결된 법적, 재정적 보상이 있음. 실수를 저지른 의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암을 놓치는 것. 암을 발견할 능력이 없다고 알려지면 감정적 압박을 받을 뿐 아니라 앞으로 활동하는 데 상당히 불리할 것임. 또한 함을 놓치면 동료의사들이 그에 대해 소문을 퍼뜨려서 업계에서 쌓은 명성이 무너질 것이고, 고객으로부터 소송을 당할 가능성도 올라감. 따라서 암에 걸릴 가능성을 과대추정하는 오류의 이면에는 소송을 피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음. 이런 정책을 택하면 진단과 치료가 늘어나 병원과 개업의의 수입역시 늘어날 것임. 이런 정책의 비용은 의사들이 암에 걸릴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줌. 여성환자들은 대체로 위양성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편. 하지만 그런 여성들도, 검진에서 양성결과를 얻은 여성 10명 중 9명이 사실은 유방암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 되면 검사결과가 위양성이라는 점에 대해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것임
(3) 이해충돌 :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한다는 점도 정보의 흐름을 막는 이유. 어떤 유방암 전문의는 이제는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찾는 여성들에게 때가되면 모든 여성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권장하지 않는다고 했음. 그 대신 여성들 각각에게 유방촬영술 검진 비용와 이득에 대해 알려준다고 했음. 이는 검사를 받을지 말지, 그리고 언제 해야할지에 대해 여성들이 스스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임. 그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인 친구와 식사를 하면서 자신의 방침이 그렇게 바꿨다고 이야기했음. 그러자 그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너, 그 숫자 어디서 났어?", "미국, 스웨덴 등의 여러나라에서 수십만명을 대상으로 연구해서 얻은 결과야." 그러자 그 친구는 격앙된 어조로 소리쳤다. "미국에서? 그것들은 유방촬영술 결과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몰라!" 하지만 그가 정말로 화를 낸 이유는 미국 때문이 아니었음. 경제적 이해가 진짜 문제였음. 몇년 동안 그는 친구인 유방암 전문가가 자신에게 보내주는 여성들을 검진했던 것. 만일 친구에게 내원한 여성의 절반 정도가 검진을 받지 않겠다고 결정하거나 좀더 나이가 든 다음에 하겠다고 하면, 그 의사는 재정적으로 파산할 수도 있음.
(4) 계산맹 : 많은 의사들은 통계적 자료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아주 빈약한 교육만을 받았고, 이 낯선추론 형식에 발을 담글만한 동기가 몹시 희박함. 만일 환자들이 숫자를 살펴보기 시작한다면 의사들 역시 그렇게 해야만 할 것임.
- HIV검사는 대체로 다음 절차를 거침. 처음 이뤄지는 검사는 이른바 ELISA(효소결합면역흡착 검사)라고 불리는 것으로, HIV에 대한 항체가 혈액 표본속에서 감지되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졌음. 이는 원래는 헌혈된 혈액을 검사하는 데 사용하던 기법으로, 이 맥락에서는 검사의 민감도를 최대화하는 것이 필요. 다시 말해 위양성률의 증가를 그 비용으로 부담해야 할 절박함이 있는 것이 사실. 만일 결과가 음성이라면 의뢰인은 자신이 HIV-음성이라는 답을 받음. 만일 결과가 양성이라면 최소한 한 차례 이상의 추가적 ELISA검사가 해당표본에 시행됨. 결과가 여전히 양성이라면 ELISA검사에 비해 더 비싸고 오래 걸리는 웨스턴 블롯 검사가 시행됨. 웨스턴 블롯 검사 역시 양성이라면, 검사의뢰인은 자신이 HIV-양성이라는 답을 받음. 어떤 경우는 의뢰인에게 알리기 전에 앞서 혈액표본을 다시 얻어 분석을 수행하기도 함
- 매독과 에이즈의 중요한 차이점은 병원체의 돌연변이 속도. 매독은 원인이 되는 박테리아가 HIV만큼 빨리 돌연변이가 생기지는 않음. 하지만 HIV가 스스로 복제될 때는 아주 많은 오류가 발생하며, 어떤 사람에게서 에이즈가 진단될 시점에 이르면 그 사람은 수십억 또는 그 이상의 HIV변이체를 갖고 있을 정도로 그 정도가 심함. 이런 변이의 일부는 HIV를 약화시키고, 면역체계의 공격 앞에 이 바이러스를 노출시킴. 또 일부 변이는 HIV를 강화하며 그 바이러스가 면역체계를 회피할 확률을 올려줌. 바이러스는 다윈이 설명하는 방식으로 급격히 진화. 이 진화는 바이러스를 알아차리고 그에 대응하는 면역체계의 역향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바이러스가 의약품을 사용한 치료에 저항하는 것을 도움. 감염시점과 질병이 발생하는 시점 사이에는 평균적으로 증상이 없는 12년 정도의 기간이 있음. 하지만 이것이 실제 잠복기라고 하기는 곤란한데, 이는 HIV와 면역체계의 지속적인 투쟁이 일어나는 기간이고, 이 기간 동안 균형점은 점점 바이러스 측으로 움직이기 때문. 완치방법은 없으나 희망은 있다. 바이러스의 복제능력을 방해하는 약물이 발전하고 있음. 바이러스는 각각의 약물에 급속도로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조합된 약물이 사용됨. 이른바 에이즈 약물 칵테일 요법은 감염된 사람의 일생동안 투여될 수 있지만, 이것이 완치는 아님. 이 요법은 디다노신과 지도부딘 등을 포함한 혼합약물을 사용. 아무튼 이런 긍정적 발전의 이면에는 이 약물이 몹시 비싸서 부유층만 바로 사용할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접근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음. 게다가 이 약들은 격심한 부작용을 완화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음. (손발에 느껴지는 타는 듯한 통증, 탈모, 사망률이 높은 췌장염) HIV검사는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함. 이 병의 진행이 몹시도 혹독하기 때문에 치료의 가능성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검사를 해야만 할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 특히 조기검진은 HIV의 유병률을 감소시킬 수 있음. 유방촬영술은 유병률을 감소시킬 수 없고, 오직 사망률만 감소시킬 수 있음. 하지만 HIV는 사람 사이에서 전염될 수 있기 때문에 유방암과는 아주 다름. 조기발견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감소시킬 수 있고, 이에 따라 유병률 또한 감소시킬 수 있음.
- "진실만, 완전한 진실만 말할 것이며 진실이 아닌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법정의 맹세는 증인에게만 적절한 것이다. 변호사, 검사, 판사는 이런 선언을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실제로 미국의 사법체계는 이들이 완전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기초위에 세워졌다.
- 기소를 제한하는 법령이 있는 이유는 피고인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시간이 갈수록 증거는 사라지고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며, 따라서 피고인은 몇년 전의 특정한 날 또는 특정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증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 이런 역사적 이유는 오늘날 DNA지문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뒤틀리고 있음. DNA지문은 지금까지 사용할 수 있었던 어떤 기술보다도 결정적인 것이기 때문. 따라서 몇몇 주에서는 성폭행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를 최근 폐지. 과학은 강간사건의 수사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으며, 법률은 이런 새로운 상황을 따라잡고 있는 중임
- 프랭클린의 경구 "이 세계는 죽음과 세금말고 확실한 것이라고는 없다."를 떠올려 보자. 이 말은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이이 불확실하며,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배울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려줌. 이를 부정해서는 안됨. 확실성의 환상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복잡성을 누릴 수 있도록, 그리고 탐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줌
- 대중이 위험에 무지하다는 사실은 전적으로 그들만의 잘못만은 아님. 물론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외부의 문제도 적지 않음. 무지의 내적 원인으로 정보의 핵심을 놓치고 대충 해석한다든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 같은 것들이 있음. 하지만 위험에 대한 무지는 동료들의 압력이나 관련 사업자 단체의 로비때문에 자라나는 것이기도 함. 위험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에서 두번째 단계는 이 두가지 무지의 내적, 외적 원천을 극복하는 과정을 필요로 함. 그 목표는 다음과 같음. 첫째, 위험을 평가할 도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줌. 물론, 이들 도구를 사용한 추산이 품고 있는 불확실성 역시 함께 알려주어야 함. 둘째, 위험에 대한 평가를 하지 못하게 조장하는 힘이 대체 무엇인지 알게 해줌
- 정보는 표현되어야 함. 정보가 순수한 형태로 소통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허황된 것. 성공적 위험소통은 직관적으로 명쾌한 표기법을 필요로 함. 표기법을 갖고 노는 것은 우리가 숫자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숫자로부터 특정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함. 최적의 표기법은 하나가 아님. 소통을 하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고, 사람마다 그것은 다르기 때문. 만일 당신이 누군가에게 검진에서 위양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고 해보자. 이때 좋은 표기법을 결정하는 것은 상대할 사람이 통계학자인지, 의사인지, 검진을 받은 환자인지 여부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세계를 두 영역으로 나누었음. 하나는 천상의 세계로, 불변의 규칙성과 확실한 지식이 지배하는 세계였음. 또 하나는 난잡한 변화와 불확실성의 세계. 서구 문화에서 사람들은 확실한 지식의 세계 속에서 살고 싶어 했으며, 이해하고 예측하기가 어려운 우연과 오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살고 싶어 하지 않았음. 수백년 동안 수학자들은 절대적인 확실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었음. 마치 신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으로 확실성의 제국은 크게 침식됨. 종교재판이 성행하던 시기에는 고문이 절대적인 확실성을 발견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되었음. 목표의 고결함이 수단의 저열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시각이 팽배해 있던 셈. 확률이론이 생겨난 시기가 이런 종교적 혼란이 가라앉은 이후라는 것은 우연이 아님. 또는 확률이론이 확산되면서 증거에 대해 새롭고 좀더 온건한 표준이 생겨났기 때문에 고문의 사용이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17세기 중반에는 이성의 새로운 표준이 나타났음. 단지 확실성만을 열망하기 보다는 불확실성이라는 조건하에서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를 바라게 됐던 것.
- 오늘날 우리의 현대적이고 기술적인 사회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구분한 두 영역은 존재함. 우리 대부분은 그리 깊은 반성 없이 두 영역 사이를 방황하고 있음. 예를 들어 우리는 스포츠에서 불확실성의 세계를 즐김. 우리는 경기의 결과가 전략과 우연의 혼합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 주식시장이나 다른 경쟁상황처럼 우리는 스포츠에서 불확실성을 즐김. 그렇지 않다면, 스포츠에서 오는 모든 흥분과 기대와 놀라움은 사라져 버릴 것임. 우리는 우리 삶의 다른 측면에서는 확실성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으면서도, 경쟁과 유흥의 영역에서는 불확실성을 깊이 사랑하는 면이 있음. 예를 들어 음식과 보건의 영역에 대해 사람들은 당국의 또는 저널리스트들의 의견을 제대로 검토해보지도 않은채 결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임. 이 책의 목표 하나는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이 확실성에 대한 환상이 우리 삶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두번째 목표는 위험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도구를 알려주는 것. 이 도구들은 계산맹을 개안으로 이끌 것임. 비교 위험도는 절대 위험도로, 그리고 확률을 훨씬 익히기 쉬운 자연빈도로 대체하는 것이 바로 그 도구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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