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 성격상담소

심리 2022. 7. 7. 21:07

- 아들러는 인정받으려 할 때 인간이 “힘과 우월성의 목표에 보 다 집착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 보이기 위해 무 리하게 높은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정말 뛰어난 사람은 자기 능력을 과시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는 사람,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본인의 뛰어남을 과하게 강조한다.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현실과의 접점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자기 인생과의 연관성을 잃고 항상 '남에게 어떤 인상을 줄까, 다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질문에만 구애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행동의 자유도 현저하게 방해받는다. 이럴때 가장 빈번하게 드러나는 성격 특징이 바로 허영심이다.
- 아들러의 표현을 빌리면, 질투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나약함이다. 자신 있는 사람은 질투하지 않는다. 상대를 자기 곁에 못붙들어둘까 봐 불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형제들보다 뒤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할 때, 가만있으면 부모의 애정이 자기 아닌 다른 형제에게 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자녀는 다른 형제에게 격렬한 길투심을 느낀다. 이것은 어른들의 연애에서 볼 수 있는 질투와 완전히 똑같은 구조다.
- 아들러는 '불안'과 '두려움'을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했지만, 굳이 구별하자면 '두려움'에는 구체적인 대상이 있다. 커다란 개가 다가오면 공포를 느끼고 도망치게 될 것이다. 반면 불안에는 특정한 대상이 없다. 이렇다 할 대상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이에 불안할 때는 곧바로 행동을 취하지 않기도 한다.
몰두해야 할 과제를 바로 앞에 두고 불안해하는 사람은, 아들 러의 표현을 쓰자면, “머뭇거리는 태도를 취한다.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어도 괜찮을지 망설인다. 불안은 특정한 대상을 필요 로 하지 않는다. 불안만으로도 주저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과 제로부터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적극적으로 몰두하 지 않아도 된다. 불안한 사람은 그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다.
- “인생의 난제에서 도망치는 관점”이란 무엇일까? 만약 곤란 한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도망치려고만 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 정해보자. 인생의 과제에서 도망치겠다는 이 사람의 결심은 '불 안'이라는 감정과 하나 되어 더욱더 강화된다. 다시 말해 '이렇 게 불안하니 과제에서 도망쳐도 된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이런 식으로 사용된다.
독립하거나 동반자와 헤어지거나 이직하거나 혹은 사랑에 빠지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당연히 기존 생활에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불안에 지배당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집 밖으로 전혀 나가려 하지 않는 사람을 떠올려보 자.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 발짝이라도 나서면 어떤 상황과 맞닥뜨릴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아들러는 계속해서 직업의 적성에 관해 썼다. 많은 사람이 개 인마다 잘하고 못하는 분야가 있다고 생각한다. 취직하지 말 자.'거나 지금 하는 일은 내 적성에 안 맞는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그 일의 그늘진 측면, 다시 말해 단점들만 찾아낸다. 그 단점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 일은 이런 문제가 있어서 나랑은 안 맞는다. 거나 적성 문제 로 슬쩍 바꿔치기 해서 '나는 이 직장에 취직할 수 없다.'고 말 해버린다. 실제로는 취업을 원하지 않는다.'는 결심이 먼저 서 있었기 때문에 이유는 모두 나중에 가져다 붙인 것일 따름이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이 일종의 면죄부가 되는 셈이 다. 실제로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몰입하기도 전에 나는 노력해도 안 된다.'며 온갖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사람은 겁쟁이'의 특징을 가진 셈이다.
'겁쟁이'인 사람도 “느릿느릿한 움직임”, 다시 말해 '머뭇거리는 태도를 취한다. 그런 태도 외에도 “안전을 요구하는 조치나 준비” 등이 겁쟁이의 표현 방식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문 맥 그대로 위험을 피한다.'는 뜻도 있지만, '더욱 안전하기 위한 최상의 준비로 아예 일에 몰입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겁'이라는 감정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자기와는 안 맞는다고 주장하고, 일을 시작해도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 말보다는 행동이나 표정으로 상대를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말과 표정이 서로 어긋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할까? 말이 아니라 행동, 태도, 몸짓으로 상대방을 파악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웃음'이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는 뜻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장편 소설 《미성년》에 이렇게 썼다. “만약 인간을 파악하고 싶거나, 인간의 영혼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침묵하는 모습이나 말하거나 우는 모습, 또는 더 나 아가 고결한 사상에 몹시 감동한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 는 오히려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웃는 모습이 좋으면, 좋은 사람이다.”
- 미리 원칙을 알고 있거나 규칙이 정해져 있다면 원리주의자도 일탈하지 않는 한 안심하고 전진한다. 문제는 일탈 없는 인생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히 예측하기는커녕 상상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야.'라고 예상한 일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인생의 기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면 안심은 될지 모르지만, 살아가는 보람도 없지 않겠는가.
- 인생과 그 과제를 대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기분에 의존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심리학이 그것을 천성적인 현상으로 파악한다면 잘못이다. 그들은 모두 야심이 너무나 크고, 그로 인해 성질이 민감한 부류에 속해 있으며, 인생에 만족할 수 없을 때 도망칠 다양한 길을 모색한다. 이런 사람들은 태도를 정하기 전에 미리 앞으로 뻗은 더듬이 같은 자신의 민감성을 사용해 재빨리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탐색한다.
- 기분이 잘 바뀌는 사람은 비교적 많은 것 같다. 누군가의 기분이 나빠지면 주위 사람은 종기 다루듯 조심히 그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 그들의 기분이 나빠지는 까닭은 당연히 주변 사람들의 그런 태도를 의도한 것이다. 정말로 기분이 이랬다저랬다 변한다기보다 주위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목적으로 그런다고 보는 편이 좋다.
- 아들러에 따르면, 기분파로 보이는 사람들은 평소 끊임없이 어린아이 같은 밝은 태도를 드러낸다.
끊임없이 밝고 쾌활한 기분이고, 그것을 과시하거나 강조하며, 인생에서 밝은 면을 손에 넣으려 하고, 기쁨과 쾌활함 속에서 인생에 필요한 기초를 다지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에도 모든 가능한 수준의 차이가 드러난다.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어린아이 같은 밝고 쾌활한 태도를 드러내고, 어린아이 같은 방식속에서 정말로 무언가 마음 설레게 하는 것을 갖고, 과제를 회피하면서도 놀이처럼 그것과 마주하며 해결하려는 사람이 있다. 분명 아름다움과 공감적인 태도에서 이런 사람을 능가하는 유형은 거의 없다.
직면한 과제를 회피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진지해지지도 않는다. 밝고 쾌활하게 놀이처럼 마주한 채 해결하려 한다.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너무 가볍다.
- 받아들여야 할 상황도 밝고 쾌활하게 대하고, 여기에 덧붙여서서 어린아이 같은 성질마저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성질은 인생의 진지함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 언제나 불확실한 느낌을 준다. 곤란한 일을 너무 간단히 넘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흔히 볼 수 있듯이, 대체로 이런 인식으로 인해 곤란한 과제에서는 멀어지게 된다.
- 아들러는 불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항상 살짝 구부정한 자세로 걷는다고 이야기했다. 언제나 몸을 구부정하게 숙이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남들에게 보이고 싶어 한다. 그 이면에는 열등감이 깔려 있다. 반대로 등을 곧게 펴고 꼿꼿이 서 있는 사람에게는 실제보다 강해 보이고 싶어 하는 우월 콤플렉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아들러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필 요 이상으로 무거운 짐을 짊어진 척할 필요도 없고, 쓸데없이 강한 척할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힘을 빼면 된다. 무력함을 과시할 필요도 없고, 이 세상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퍼뜨리지 않아도 된다. 어떤 도움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무작정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이쪽에서 먼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솔직히 털 어놓으면 된다. 아들러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까지 다른 이에게 맡기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가끔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도 좋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인생이 조금은 편해질지도 모른다.
- 화내는 이유 역시 열등감 때문이다. 분노는 화난 사람의 모든 힘을 결집시키고, 평소보다 크게 행동하게끔 강요한다. 승리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적이 없으면 화도 없다. 이 감정의 목표는 오로지 적에 대항해 승리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격렬한 움직임으로 자기 의지를 밀어붙이는 모습이 우리 사회에서 좋게 비춰지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자기의지를 밀어붙일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화의 폭발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 슬퍼하는 사람의 고조된 감정은 주위 사람의 태도에 의해 부여된다. 슬퍼하는 사람이 누군가의 봉사나 동정이나 지지 또는 무언가 주거나 이야기를 걸어주는 행위 덕분에 편안해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울거나 한탄하는 폭발로 주위 사람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며 고발자, 재판관, 비판자가 되어 주위 사람들보다 자기가 높아졌다고 느낀다. 이때 요구, 애원이라는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 즉, '당신이 나를 이렇게 슬프게 만들었다.”고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다. 또는 '이렇게 슬프니까 더 이상 나를 비난하지 말라.' 는 의사 표명이기도 하다.
상대가 화를 퍼붓는다면 이쪽에서도 화를 쏟아내며 맞설 수 있다. 그렇지만 상대가 갑자기 쓰러지며 울기 시작하면, 더 이 상 공격할 수 없다. 우는 행위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자 '당신은 너무 지독한 사람이야.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슬퍼.’라는 호소라고 해석하면 슬픔의 본질을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 한 가지 포인트는 그런 비난이 부당하게 느껴져도 슬퍼하는 사람을 못 본 척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 상대에게 봉 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슬퍼하는 사람은 그 덕분에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주위 사람들은 슬퍼하는 사람을 종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으니 그런 대우를 강요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이렇게 슬픔이라는 감정을 이용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려고 한다.
- 불안해진 아이는 상황에서 도망쳐 다른 사람에게로 달려간다. 이러한 불안의 메커니즘은 주위 사람에게 우월성을 직접 표현하는 것이 아니므로 언뜻 보기에는 패배의 표현처럼 비친다. 여 기에서의 태도는 자기를 작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다른 사람과 이어지기 시작하지만, 불안은 동시에 자기 안에 우월성의 욕구를 감추고 있다. 불안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는 피난처로 도망치고, 그러한 방식으로 다시 위험에 맞서며, 승리를 거두기 위해 자기를 강화하려 한다.
- 젊은 사람이 공동체 의식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나중에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대학생 시절에 뭘 공부해두면 좋으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공감 능력을 익히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다. 아들러의 문장에서는 비극을 보는 사례를 들었는데, 비단 비극뿐만이 아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젊은 시절에 는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동정 (여기에서는 '공감'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는 감성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그것이 '인생에 대비하는 준비가 될 테니 말이다.
- 아들러는 《인생 의미의 심리학》의 내용 중 성경에서도 흥미로운 예를 인용했다.
《성경》에는 멋진 심리학적 통찰이 내포되어 있다. 둘째 아이의 전형적인 양상은 야곱의 이야기에 아름답게 묘사된다. 야곱은 최고가 되어 에서의 지위를 빼앗고, 에서를 완전히 누르고 더 뛰어나고 싶었다. 둘째 아이는 뒤에서 느릿느릿 걸어가는 감각에 초조함을 느껴 서 다른 사람을 따라잡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래서 자주 성 공을 거둔다. 이런 성장은 유전자와 관계된 것이 아니다. 보다 빨리 앞서갔다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한 결과다. 이에 둘째는 성장해서 가정을 벗어나도 페이스메이커를 자주 이용한다. 둘째 아이는 자기 자신을, 자기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어 앞지르고 싶은 누군가와 계속 비교한다.
- 에서와 야곱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쌍둥이 형제로, 동생인 야곱이 형인 에서인 척해서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상속권을 손에 넣는다. 첫째에게 우수한 둘째는 위협적이다. 우수한 여동생을 둔 오빠들은 아주 강렬하게 위기감을 느끼기도 한다. 대부분 오빠의 주관적이고 잘못된 믿음 때문이지만, 여동생이 자기보다 뛰어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오빠가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도 드물지 않은 듯하다.
- 아들러는 첫째와 둘째가 각자 고유한 꿈을 꾼다고 했다. 첫째는 주로 떨어지는 꿈을 꾼다. 발을 크게 헛딛거나 추락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런 꿈을 꾸는 이유는 우월성을 추구하지만,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뛰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없다. 그래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 반면 둘째 아 이는 경쟁하는 꿈을 자주 꾼다. 기차를 쫓아가는 꿈이나 자전거 로 경쟁하는 꿈 말이다. 어떤 꿈을 꾸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형제 중 어느 위치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각자 다르다.
- 아들러는 꿈이 현실의 리허설이라고 생각했다. 낮에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밤에 잠잘 때도 같은 라이프스타일과 성격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문제 해결의 방식은 깨어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완전히 똑같다. 바꿔 말하면, 꿈은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성격을 매우 또렷하게 드러낸다. 상담 과정에서도 꿈 이야기를 듣고, 라이프스타일이나 성격을 진단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꿈속에 나타난 것이 상징하는 바와 그 의미를 해석하지는 않는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꿈속에서 인생의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려 하는지에 더 주목하기 때문이다.
- 《사람은 왜 신경증에 걸릴까》에서 아들러는 둘째의 또 다른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후의 인생에서 둘째 아이가 다른 형제의 엄격한 리더십을 견뎌내거나 혹은 영원한 법'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쓰러뜨리지 못할 권력은 없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다. 아들러는 '혁명적인 수완'이라고 말하지만, 지배적인 사람이나 전통에 대항해 어떻게든 현상을 타파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둘째의 특징이다. 스스로를 부모 권위의 대표자이자 '권위와 법의 신봉자'라고 생각하는 첫째에게는 둘째가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상대로 여겨진다.
- 19세기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키에르케고르의 일기》에 서 다음같이 말했다. “어떤 형태로 그때까지의 삶의 방식을 뉘우쳐 고치고 새로운 신앙에 눈뜨는 것을 '회심心'이라고 하는데, “회심은 서서히 일어난다. 전진해온 길을 그만큼 역행해야만 한다. 회심은 완성 되는 일이 없고, 오히려 되돌아가는 일이 생겨버릴 수도 있으 니, 두려움을 갖고 떨리는 마음으로 임하자." 
성격도 마찬가지다. 유대교 신자로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바울은 말에서 떨어져서 회심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바울처럼 극적인 사건 덕에 돌연 바뀐다기보다는 조금씩 서서히 바뀐 다고 보는 것이 좋고, 바뀌었다고 해도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 갈 수도 있다. 우리의 세상사가 거의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순간이다.
- 아들러는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려는 사람에 관해 다 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 사람이 과제 주변에 만드는 우회로에는 나태, 무기력, 빈번한 이직, 비행 등이 그 삶의 방식의 특징으로 드러난다. 태도 결정을 행위로까지 드러내서 몸을 꼬면서 걷고, 항상 뱀처럼 방향을 트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얼마간 신중하긴 하지만,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피해서 지나가는 경향을 갖고 있다.
- 인생에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있다. 특히 대인관계는 까다로워서 다른 사람과 관계 맺으면 어떤 식으로든 마찰이 생기기 마 련이다. 그래서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의 고민이다.”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일이나 공부도 몰두해야 할 인생의 과제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이 과제를 앞에 두고 많든 적든 거리를 두려고 한다. 다른 사람과 관계 맺었다가 상처 입거나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럴 때 과제에 몰입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내거나 혹은 몰입한 후 달성이 불가능한 이유를 찾아낸다.
그때 자주 내세우는 '이유'가 '성격'이다. 소극적이라 다른 사 람과 관계 맺는 것이 서툴다고 말하고, 게으른 성격이라 좀처럼 일을 시작할 수 없다며 도망치려 한다. 어느 경우든 성격이라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을 테지만,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이해한 사람은 그 핑계로 과제에서 도망칠 수 없다.
- 대인관계에서 상처받고 싶지 않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삶의 기쁨과 행복도 대인관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이다. 제대로 시작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두렵겠지만, 결과가 나온 후에 어떻게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팔짱을 끼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과제에 돌입했 으나 실패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생에는 두려운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도망치지 말고 과제와 직면하는 용기를 조금이라도 가진다면, 인생은 반드시 바뀔 것이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0) 2022.07.29
인지심리학은 처음이지  (0) 2022.07.07
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0) 2022.06.26
권력의 심리학  (0) 2022.06.09
알프레드 아들러  (0) 2022.06.05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