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인 뇌의 작동 방식은 1960년대부터 인지심리학의 주요한 연구 주제가 되어 왔다. 1960년대에 인지심리학 연 구가 활발해지고, 이후 컴퓨터와 뇌 영상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 서 인간의 정신 작용을 컴퓨터의 작동과 유사한 정보 처리 관점에서 살펴보고, 뇌의 작용과 인간의 정보 처리 과정과의 관련성을 직접 살펴보는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뇌의 특정 부위가 특정한 정신 작용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뇌가 곧 마음' 이라고 생각 하는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인지심리학자로서 뇌와 마음이 밀접하게 관련이 있 고 마음이 자리 잡은 곳이 뇌라는 관점에 동의하지만, 마음과 뇌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에는 아직까지 우리가 마음에 대해서도, 또 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레몬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왜 저절 로 입에 침이 고이는 걸까? 전쟁이나 재해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 습을 보면 마음이 아픈데, 과연 마음이 아프다.' 라는 것은 정확히 어 떤 의미일까? 마음이 아프다는 것도 결국은 뇌 속 세포들의 작용이 라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뇌세포들이 어떻게 상호작 용을 하여 실제 먹지 않아도 신맛을 떠올리게 하고, 다른 사람의 상황을 아는 것만으로도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것이 매우 적다.
본격적으로 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 은, 인지심리학에서 뇌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뇌 그 자체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뇌의 작용이 어떻게 우리의 사고, 기억, 언어와 같은 고차원적 인지 과정을 일으키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지심리학에서는 '뇌'가 아니라 뇌의 작용에 의한 결과물 인 인지'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인지심리학에서는 뇌의 작용을 생물학이나 유전학과 같이 세포 수준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큰 틀에서 살펴본다.
- 주의 과정에서는 중요한 정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고 지각 과정에서는 올바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것이 중요한 정보이고 올바른 해석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 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요한 정보와 올바른 정 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쉽고 간편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 단한 연습을 통해 스스로 중요한 정보와 올바른 해석을 찾아야만 한다. 많은 인지심리학자들이 동의하는 학습의 가장 중요한 기본 원칙 은 바로 '빈익빈 부익부'이다. 즉, 이미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쉽게 배운다는 것이다. 학습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새로운 정보를 기 존의 지식 체계 속에 추가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지식 체 계가 잘 갖추어져 있을수록 새로운 정보 중 더 중요한 정보를 쉽게 찾고 올바로 해석하여 더 잘 집어넣게 된다. 슬프게도 중요한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고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머릿 속에 들어 있는 사전 지식인 것이다.
- 에빙하우스의 연구는 망각의 주요한 원인 중 소멸이 일어나 는 양상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하지만 실제로 망각에 훨씬 더 강 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소멸이 아니라 간섭이다. 간섭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순행성 간섭 proactive interference 이고 다른 하나 는 역행성 간섭retroactive interference 이다. 순행성 간섭은 첫사랑과의 추억 이 새로 만난 사람과의 기억을 방해하는 것이며 역행성 간섭은 새로 만난 사람과의 기억이 첫사랑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시험공부를 예로 들어 보자면, 이전에 공부했던 내용 때문에 지금 공부가 방해받는 것이 순행성 간섭이고 지금 공부하는 내용이 이전에 공부했던 내용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이 역행성 간섭이다.
- 간혹 시험공부를 충분히 다 했고 내용도 잘 이해했다고 생각했는 데 막상 시험지를 보니 공부가 덜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했 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내가 잘 알지 못하는데 잘 안 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내가 공부를 충분히 했는지, 내 가 지금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스스로 잘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메 타인지meta-cognition라고 한다. 예전에 한 방송사에서 최상위권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 바로 이 메타인지라는 것을 보여 주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판단하고 있어서 추가적인 학습이 필요한 부분에 시간과 노력을 효율적으로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우리의 경험이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과정을 응고화라고 한다. 경험이 처음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는 다른 사건들에 의해 간섭 받거나 잊히기 쉬운 상태에 있다. 즉, 영어 단어를 처음 외우고 난 직 후에는 다른 단어들이랑 헷갈리거나 기억에서 사라지기 쉽다. 응고 화는 이러한 기억을 보다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상태로 변형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응고화는 일반적으로 두 단계에 걸쳐서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우선 처음 그 정보를 익히고 난 직후에 첫 번째 응고화 가 일어난다. 첫 번째 응고화는 수술로 H. M.의 뇌에서 제거된, 기억과 관련된 핵심 영역인 해마에서 주로 일어난다. 이후 주로 수면 중에 서서히 대뇌피질에서 두 번째 응고화가 일어나며, 이 두 번째 응고화를 통해 기억이 머릿속에 완전히 자리 잡게 된다.
- 두 번째 응고화는 주로 잠자고 있을 때 일어난다고 하였다. 이와 관련한 연구가 있었는데, 한 집단에는 단어를 학습한 직후에 바로 잠을 자라고 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단어를 학습한 후 한참 뒤에 잠을 자도록 하였다. 이 두 집단은 모두 같은 시간 동안 단어를 학습 하였지만 학습한 뒤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시간만 달랐다. 이후 두 집 단은 동시에 단어 시험을 보았는데 학습 직후 잠을 잔 집단의 경우에 기억 수행이 더 좋았다.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아마도 잠이 듦으로써 학습 직후에 응고화 과정을 방해할 만한 자극들이 사라져 망각의 주요 원인인 간섭이 개입할 여지가 적었고, 잠자는 동안 응고 화가 촉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공부를 마치고 잠시 쉬면서 휴대폰을 보는 습관은 별로 좋은 습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잠이 부족한 우리나라 수험생들의 경우에는 더더 욱 공부가 끝나면 곧바로 잠드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 꽃은 눈으로 보기도 하지만 코로 향기를 맡기도 한다. 우리는 어 떻게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꽃에서 냄새를 유발하는 화학 물질을 공기 중에 배출하는데, 이 물질이 코로 들어오게 된다. 코로 들어온 화학 물질이 코에 있는 후각 수용기 세포를 자극하고, 이 신호가 뇌의 앞부분에 있는 냄새를 처리하는 후각겉질이라는 영역으로 전달된다.
인간의 감각 중 화학물질에 반응하는 것은 후각 이외에도 맛, 즉 미각이 있다. 그런데 냄새와 맛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우 리가 맛이라고 느끼는 감각의 대부분이 사실은 냄새라서, 냄새를 맡 지 못하면 맛을 느끼기가 아주 힘들어진다. 게다가 냄새와 맛에 대한 감각은 뇌에서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인 변연계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냄새를 맡거나 맛을 느낄 때 감각 그 자체를 넘어서서 다양한 감정이나 사건이 떠오르는 것이다.
- 신체의 여러 부분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걸 가능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리듬이다. 실 제로 인간의 거의 모든 움직임은 리듬으로 표현할 수 있다. 걷기와 같은 비교적 복잡하지 않은 움직임부터 테니스나 골프 같은 운동과 피아노나 드럼 같은 악기 연주에 이르기까지 모두 리듬에 기반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걷기를 살펴보면, 왼팔 - 오른다리와 오른팔 - 왼다리가 앞 뒤로 번갈아 가며 리듬에 맞추어 움직인다. (균형 유지를 위해 각기 반대쪽 팔과 다리가 짝지어져 있다.) 이를 숫자로 표현해 보면 1:1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팔과 다리가 리듬에 맞추어 정반대로 움직이면 되기 때문에 리듬을 맞추기가 비교적 쉬운 편이다.
- 테니스나 골프와 같은 운동은 어떨까? 이렇게 라켓을 들고 하는 운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체와 하체가 적절한 리듬에 맞추어 움직 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골프 스윙을 보면, 상체로 이루 어지는 3박자의 리듬(백스윙 - 다운스윙 - 팔로우스루)과 하체로 이루어지는 2박자의 리듬(무게 중심의 전-후 이동)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골프 스 윙은 상체와 하체의 리듬이 3:2여서, 걷기와 같은 단순한 리듬에 비 해 조화롭게 구현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상·하체의 리듬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스윙을 제대로 구사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골프뿐만 아니라 테니스나 야구 등 라켓을 이용하는 다른 운동에서도 마찬가 지이다. 각각의 운동에서 핵심적인 리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원하는 스윙을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드럼 연주는 말할 것도 없다. 연주자는 손과 발로 리듬에 맞추어 드럼을 연주해야 하는데, 각각의 리듬이 정말 복잡하다. 그러다 보니 손과 발의 리듬을 조화롭게 맞추기 어렵고, 조금만 어긋나도 연주는 바로 엉망이 된다. 그런데 악기 연주에서 흥미로운 점은 여러 명의 연주자가 리듬을 맞추기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오케스트라에서는 수십 명의 연주자가 리듬에 맞추어 연주를 진행한다. 더 놀라운 것은 연주 도중 자신의 리듬이 전체 연주와 맞지 않다고 생각되면 재빠르 게 움직임을 수정하여 전체의 리듬에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 리듬을 맞추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한 측면이기도 하다.
- 중요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어서 중요한 것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측면이니 심사숙고해서 판단하자!"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말할 때 실제로 그에 부합될 정도로 중요한 정보를 판단의 잣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인지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것 역시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우리는 중요한 것을 심사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심사숙고할 수 있는 대상이 중요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 내가 해 봐서 안다는 생각의 함정
"내가 해 봐서 안다.” 혹은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러이러하니 내 말을 따라라.”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꽤 많다. 대부분 자신의 예전 경험을 강조한 말들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에도 인간이 저지르 는 다양한 실수와 오류의 함정들이 숨겨져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이른바 '내 생각 속에서 생생한 것'이 실제 세상에서도 그러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인간이 생생함의 노예가 되는 순간이다.
- 내 머릿속의 생생함은 쉽고 빠르게 결론에 도달하게 해 주는 이 점이 있지만, 그 대가로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과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게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인간이 생생함의 노예라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우리 주위의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에 보다 지혜롭게 접근할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의견 충돌의 조율'이다. 의견 충돌이 일어 났을 때, 얼핏 보기에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의견들이 맞서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갈등 당사자들이 지니고 있는 '생 생한 경험과 기억의 충돌'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의 의견은 그 생 생한 경험과 기억의 산물인 것이다. 특히 강경한 의견일수록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개인적인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의견 자체를 맞대고 싸워 봤자 별 소용이 없다. 원인이 아 닌 결과를 놓고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의견을 만들어 낸 뿌리인 각자의 생생한 기억과 경험을 들어 보아야 한다. 상대방의 의견은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경험한 에피소드는 보다 너그럽게 이해해 줄 수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나의 에피소드도 상대방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이해해 줄 것이다. 왜나하면 이 에피소드들은 대개 세상에서 얼 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즉, 쉽게 납득하고 이해해 출 수 있는 의견은 세상에 많지 잃아도 '아,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생생한 경험들은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 |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과 그 자리에서 바로 의견을 조율하기가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각자 생각의 '결과'만을 놓고 무언 가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장소나 환경을 바꿔 보면서 상대방 의 개인적인 경험을 차근차근 들어 보고 왜 그가 그런 결론에 도달했 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더욱 중요한 점은 이를 위한 시간을 아까워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견이 조율되지 않으면 그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서로의 갈등을 치유하고 봉합하는 데 써야 하기 때문이다. 생생함이라는 함정. 이것을 역이용한다면 의견 충돌이 있을 때 대화의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 부분이 어디인지 생각하면서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원시 시대에는 어떤 대상으로 인해 실제로 위험해질 확률과 사람이 위험을 느끼는 정도가 상당 부분 일치했다. 호랑이, 늑대, 여우, 다람쥐로 인해 위험해질 확률이, 인간이 그 동물들을 보는 순간 느끼는 주관적 위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대상이든 극단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소형차라도 시속 100km로 우리에게 달려온다면 치명적인 살인 무기가 되며, 고작 작은 알약 하나라도 자칫 잘못 먹었다가는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 쩔 수 없이 주관적인 느낌만으로 실제 위험의 확률을 추정해야만 한 다. 확률과 실제의 상당한 불일치가 일상생활 곳곳에서 발견될 수밖 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불일치의 결과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실제 통계 자료가 알려 주는 것과는 정반대로 향하게끔 하곤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 사고와 같이 드물고 심각한 위험은 운전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일상적인 위험보다 더 크고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론에서 비행기 사고와 관련된 기사를 볼 때마다 비행기 탑승에 대 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고 이를 방지하거나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여행객 1인당 사망자 수는 비행기보다 자동차에 서 훨씬 더 높다.
- 범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끔찍한 성범죄나 살인은 대부분 친숙하거나 잘 알고 있는 주위의 인물에 의해 일어나지만, 우리는 항 상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데에만 신경 쓰고 있다. 또한 자기 의지로 시작하고, 따라서 자신이 상당 부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여기는 스카 이다이빙이나 흡연의 위험은 과소 추정되는 반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되는 테러나 자연재해의 공포는 오히려 과대 추정되어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브루스 슈나이어는 이러한 주관적 확률의 과대·과소 추정이 인터넷상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주로 즐겁고 행복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웹 사이트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걱정이 극단적으로 감소하여 평상시보다 자신의 중요한 정보를 더 쉽게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은 대단히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것이기보다는 대부분 우리의 일상생 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총에 맞아 죽는 사람들보다 계 단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총기에 관한 위험에는 어떻게든 대비하 려고 하지만 자신의 집 계단에 깔려 있는, 낡아서 미끄러워진 카펫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심코 지나친다.
- A라는 말의 반대어라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B라는 말이 정확하게 is not A'를 의미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is not A'라는 식의 표현은 대부분의 경우 B를 비롯하여 더 많은 경우 와 가능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를 사랑하는가?” 라는 질문에 “사랑하지 않는다.” 라는 답을 듣게 되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단순히 좋아하는 걸까?', '관심이 없다는 걸까?' 혹은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등등 별의 별 생각이 다 들게 된다. 따라서 분명하게 말해야 할 때 혹은 정확한 의사 표현을 해야 할 때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 같은 부정적인 표현은 최소화해야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정어를 포함한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어떨 때 부정어를 사용할까? 한마디로 자신이 없을 때나 책임을 조금 덜 지고 싶을 때이다. 국정감사에서 질문 공세를 받는 공직자들 이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도 아닌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 다.” 같은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과다하게 사용된다면 어떨까? 앞서도 말했듯 상대방의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그 부정어로 인해 해석 가 능한 의미가 넓어지고, 제각각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 다. 그 결과는 당연히 소통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표현은 명확해야 한다. 특히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는 더욱 그렇다. 나이를 먹을수록, 리더의 자리로 올라갈수록, 1대 다수의 의사소통 상황이 많아진다. 그러니 부정어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표현 방식이나 화법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고 있는지 우리 각자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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