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언가를 믿고자 소망하고, 그것이 진실임을 간절히 바라고, 그것에 기대고, 그것이 더 낫게 느껴지면, 우리는 그 믿음을 위해 스스로를 속인다.....이는 오히려 관용, 그리고 인간의 친절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 (그레이스 ALIAS GRACE) 중에서)
- 사실 현실을 명징하게 바라보는 일은 우리를 더 나아지게 하는 게 아니라 더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눈과 뇌는 '진실' 비즈 니스를 하지 않는다. 더 기능적인 비즈니스를 하는데, 현재 밝혀진 바에 따르면 자료 10억 개의 비트마다 999만 999천 60개의 비트를 제거한다. 거의 모든 정신 활동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우리는 보고, 듣고, 진실을 처리한다고 여기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눈처 럼, 모든 영역에서 현실에 기능적으로 우선순위를 매기는 훌륭한 이 유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그렇다, 이는 우리가 진실을 놓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편 우리에게 현실적인 목표를 갖게 해준다. 즉 뇌는 우리가 살아남도록 돕고 기회를 찾아내며 배우자·친구와 잘 지내고, 자식을 기르고, 실 존적인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말이다. 진화의 관점 에서 보면, 객관적인 진실은 목표가 아닐 뿐만 아니라 목표에 이르는 길도 되지 못한다.
- 우리의 정신은 진실을 바라보게끔 설계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현실의 조각들을 선별적으로 보여주고, 사전에 결정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더욱더 최악의 사실은 우리에게 현실보다 '환상'을 심어주면서 모든 일을 행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는 집단, 가족, 혹은 스스로에게 기능적인 것을 보게끔 구슬려지는 순간조차 자신이 명징하게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진실을 위해 싸운다고 믿는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반갑지 않았던 사람을 만나도 늘 만나서 반가워”라고 말한다. 살고 싶다면, 그런 식으로 말해야만 한다. (J. D. 샐린저J. D. Salinger,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 진실을 말하라, 하지만 비스듬하게 말하라
성공하려면 돌려서 말해야 한다.
우리의 허약한 기쁨에는 그 빛이 너무 밝아서
진실은 그저 놀라게 할 따름이니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여 눈을 뜨게 하듯이
진실 역시 그 광채를 차츰차츰 드러내야 한다.
그러지 아니하면 모두가 눈이 멀고 말리니.
(<진실을 말하라, 하지만 비스듬하게 말하라 Tell all the truth but telll
slant>-에밀리 디킨슨
- "많은 거짓말이 우리가 상대방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거나, 상대의 생각과 느낌에 맞춰주고 싶어 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이는 우리가 신경 쓰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행위이죠. 정직의 가치를 부인하는 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겁니다. 바로 다른 사람의 감정, 그 사람에게 충실하려는 태도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까운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규 칙적으로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드파울로의 말에 따 르면 “이런 보살핌의 거짓말, 친절한 마음씨에서 우러나온 거짓말은 애정 있는 사람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과도 같다.” | 이성이 “진실을 말하라, 결과는 신경 쓰지 마라" 라고 말한다면, 더 일찍이 고대에 형성된 뇌의 알고리즘은 이렇게 속삭인다. "사람들과 한데 어울리고, 관계를 맺도록 하라.”
이 두 가지 체계는 각기 다른 언어로 말을 한다. 하나는 명쾌하게 말하고, 다른 하나는 종종 암시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한 가지가 논 리에 호소한다면, 다른 한 가지는 편의성을 고려하라고 말한다. 전 자는 진실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후자는 그 결과에 신경 쓴다.
- 물론 팀과 조직을 망치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이나 괴롭힘 등으로 소송을 초래하는 부정직한 코치나 관리자도 있다. 거짓말이라고 하면, 우리 대부분은 단지 이런 유형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누군가의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누군가로부터 최선을 끌어내고 지쳐 쓰 러지기 전에 지탱해주려는 다른 종류의 거짓말도 있다. 우리 대부분은 이런 '코치'를 높이 생각한다. 적확하게 표현한다면, 우리가 혐오 하는 거짓말은 타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는 말이나 행동이며, 우리 가 찬사를 보내는 거짓말은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최고의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돕는 행위이다. 문제는 기만이 아니라, 기만 행위를 하 는 사람과 그 이유, 시기이다.
- 자애로운 기만과 긍정적인 자기기만을 악덕이나 약점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대한 적응 반응'으로 여긴다면 우리 대부분이 - 엄청난 고통에 직면해 - 절망적인 진실보다 희망적인 거짓을 선택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처럼 진실이 희망보다, 건강이나 행복한 삶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땅에는 이런 용맹한 영혼의 소유자들에게 불리한 것들이 산적해 있다. 자연선택은 진실 따위에 관심이 없다. 무엇이 작동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우리의 생존 가능성은 세상을 장밋빛 으로 볼 때 더 높아진다.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에 위치한 메이요 클 리닉Mayo Clinic의 연구자들은 폐암 - 우리 아버지를 사망에 이르게 한 병이다-을 앓는 성인 534명을 대상으로 성격 검사를 시행했다. 연구자들은 긍정적인 시각을 지닌 환자와 비관적인 시각을 지닌 환 자로 나누었고, 긍정적인 환자들이 비관적인 환자들에 비해 6개월 더 생존했음을 알아냈다.
- 자네가 믿으면, 그건 거짓이 아니게 된다네. (조지 코스탄자 George Costanza, <사인필드 Seinfeld>)
- 현대 의학이 창안되기 훨씬 전에도, 이 지구상에 인간이 발생하기 훨씬 전에도, 동물들은 상해를 입고 병증을 느꼈다. 황새치나 거북이에게는 CT 장비도, 엑스레이 장비도 없다. 따라서 동물의 뇌는 그것이 행하도록 고안된 대로 행한다. 즉 뇌가 하게끔 되어 있는 일 을 한다는 말이다. 수많은 종족, 특히 코끼리, 늑대, 침팬지 같은 사 회적 동물에게 뇌의 알고리즘은 수백만 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질 병이나 상해에 맞닥뜨렸을 때 다른 동물의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도 록 학습되었다. 이것은 치료 행위는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치료라고 규정하는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병든 엄마 코끼리에게 의지하는 새끼 코끼리는 엄마 코끼리에게 버림받 거나 친족들에게 무시당하는 새끼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흐르면서 뇌에서 동물들에게 다른 동물을 돕도록 하고, 필요할 때 다른 동물을 신뢰하는 그리고 부양자에게 사랑하는 상대를 보호 하고 안정을 주도록 촉진하는 측면이 보존되어 전해졌다. 이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자신이나 자녀가 아플 때, 그 질병 (상처)이 가족과 집단을 한데 묶는다는 점을 안다. 타인을 돕고, 타인으로 부터 도움을 끌어내는, 고대부터 형성된 뇌의 알고리즘은 단순히 현대의 최첨단 병원들과 강력한 약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전 세계 사람이 아픔에 시달릴 때 이해와 인내, 연민을 의사에게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로지 논리와 이성만으로 현대 의약 체계를 구축하려 들 때 그리고 이런 현대적인 의료 시설에 있을 때 우리는 과학과 의학적 발견들에서 이득을 얻을 수는 있 겠지만, 치유의 약물에서 멀어졌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 원래부터 좋은 것, 나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이 그것을 결정할 뿐.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Hamlet》)
- 1984년,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위치한 제너럴모터스GM 사의 공 장은 문을 닫았다가 도요타Toyota 와 제휴하면서 다시 가동을 시작했 다. 이 일본 기업은 미국에 제조 발판을 마련하고 미국 시장을 파악 하고자 했고, GM은 일본의 제조 기술을 배우려 했다. 이 공장에서 는 신차가 아니라 도요타의 기존 모델인 코롤라 중 하나를 재브랜드 화한 제품을 생산했는데, GM은 이것에 지오 프리즘이라는 브랜드 명을 붙여 팔았다. 도요타 코롤라와 지오 프리즘은 기본 디자인이 같고, 자재도 같고, 같은 공장에서 같은 노동자들이 조립했다. 의도와 목적상 두 차는 동일했다. 전문 비평가들의 눈에도 동일한 성능을 발휘했다. 당연히 이 두 차는 소비자들에게 똑같은 인기를 끌 것이었다. 하지만 몇 년 후 도요타 코롤라와 지오 프리즘 사이에 세 가지 차이가 드러났다.
첫째, 코롤라는 프리즘보다 광범위하게 많이 팔렸다. 둘째, 더 놀 라운 사실로, 코롤라 운전자들은 프리즘 운전자들보다 유지 보수 문 제가 적었다. 마지막으로 코롤라 운전자들은 프리즘 운전자들보다 자기 차를 더 만족스러워했다.
지오 프리즘과 도요타 코롤라 사이에는 한 가지 중대한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가격'이었다. 코롤라는 프리즘보다 2,000달러 이상 가격이 더 나갔다. (이상하게도 프리즘은 저렴하게 시작한 것만이 아니었 다. 프리즘은 코롤라보다 빠르게 가치가 떨어졌다. 듀크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는 데부 푸로히트Debu Purohit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5년이 지나자 프
리즘은 코롤라보다 평균가가 520달러 이상 더 떨어졌다.)
여러분은 '도요타' 라는 로고가 달린 차에 소비자들이 더 많은 가 격을 지불한다는 것, 즉 브랜드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다. 이게 반드시 합리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재 차 말하건대, 이는 제품이 소구하는 이야기'가 소비자가 기꺼이 지 불하는 가격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보여준다. 어째서 이 차들의 가치 하락률이 서로 달라진 걸까? 어째서 프리즘 소유자들이 유 지 보수 문제가 더 많았던 것일까? 차는 철제 차체, 전선, 나사, 도색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현실의 물리적 대상이지 심리적 술책이 아닌데 말이다. 1990년과 1997년 사이, 코롤라와 프리즘 소유자들에게 엔진 안정성, 변속 장치, 조향과 시동 장치, 차체 등에 대해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프리즘 소유자들은 5점 중 4점을, 코롤라 소유자들은 5점 중 5점을 주었다. 근본적으로 동일한 자동차 간에 20퍼센트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 연구자들이 참가자들에게 뇌스캔 검사를 시행하자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참가자들이 90달러짜리 와인 병에 든 10달러짜리 와인을 맛볼 때, 똑같은 10달러짜리 와인을 맛볼 때 보다 뇌의 한 부분에 딱 하고 불이 켜진 것이다. 내측 안와전두엽이 라는 이 부위는 우리가 쾌락을 경험할 때 활성화된다. 달리 말하면, 90 달러 병에 든 10달러 와인을 마실 때가 10달러 병에 든 10달러 와 인을 마실 때보다 더욱 즐거운 '경험'이 된다는 것이다.
비싼 와인이 더 낫다는 건 단순한 추론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실제로 맛이 더 좋았던 것이다. 병에 든 와인은 똑같지만 사람들은 더 비싼 병에 든 와인에서 더욱더 쾌락을 끌어냈다.
- 도요타 코롤라와 프리즘, 저가 와인과 고가 와인, 정가를 주고 산 에너지 음료수와 할인가에 산 에너지 음료수 등 이런 소비재 이야기 에는 모두 플라세보 효과가 개입되어 있다.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한 사람과 덜 지불한 사람 사이에 경험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샤 도네이 와인 한 잔을 얼마나 즐기느냐와 같은 상대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음료를 제값 다 주고 샀을 때 풀 수 있는 퍼즐의 개수나, 비싸 게 주고 산 도요타 코롤라가 더 저렴한 자동차와 비교해 기능이 좋다는 것과 같이 객관적인 차이들도 설명해준다. 어째서 코롤라 소유주는 프리즘 소유주에 비해 자기 차량에 유지 관리 문제가 적다고 여긴 걸까? 데부 푸로히트는 코롤라 소유주가 프리즘 소유주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했기 때문에 자기 차량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고 여겼다. 오일을 갈고, 타이어를 교체 하고, 자잘하게 수리를 할 때가 되면, 코롤라 소유주들은 즉시 성실 하게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는 그들이 차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해 서이다. 프리즘 소유주들은 비용을 덜 지불했기에 차에 가치를 적게 부여했으며, 이 차이가 결국 차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측정되는 격차 를 발생시켰다. 즉 심리적 차이가 결국 물리적 격차를 발생시킨 것이다. 프리즘의 가치는 값비싼 쌍둥이보다 더 빨리 상각되었다.
- 고대 그리스인들은 생각을 무척이나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했다. 바로 '로고스logos'와 '미토스mythos' 이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로고스는 논리적, 실증적, 과학적 세계이다. 미토스는 꿈과 스토리 텔링, 상징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많은 합리주의자처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몇몇은 로고스를 찬양하고 미토스를 경시했 다. 논리와 이성은 우리를 현대적으로 만들어주고, 스토리텔링과 신 화를 지어내는 능력은 원시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 이나 - 오늘날의 수많은 인류학자, 사회학자, 철학자를 포함해 - 많 은 학자가 그보다 더 복잡한 그림을 보았다. 미토스와 로고스는 뒤얽혀 있으며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자 사용하는 프레임과 메타포들은 우리 의 과학적 발견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것들은 우리가 보는 것을 형 성한다. 우리가 지닌 프레임과 메타포가 변화하면, 세상 자체가 변 화한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에는 단순히 과학적 계산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었다. 우주에서 지구의 위치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난 것이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은 우리 자신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어놓았다. 창조에서 인간의 역할을 다시 쓴 것이다.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의 시각을 이해한 사람은 물리학을 뉴턴Isaac Newton 체 계에 국한시켜 이해하던 사람과는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 똑같은 애정이 존재할 수 없다면, 더 사랑하는 쪽이 내가 되기를. (W. H. 오든 W. H. Auden, <더 사랑하는 쪽The More Loving One))
- 사랑을 이렇듯 냉정하게 바라보는 게 고통스럽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라. 우리가 자가 복제 로봇을 설계해 머나먼 행성으로 보내살게 하고, 다시는 그것들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예 측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그들이 살아남고 후손을 낳아 번창하게 할까? 로봇에 어떤 시스템과 욕구를 설계해 넣어야 할까? 먼저 로봇에게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을 것이다. 따라서 공포심을 심어준다. 공포심이 다양한 위협을 피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또 로봇들이 어린 자손을 보호하도록 만들고 싶을 것이기에 후손을 강하게 사랑하도록 프로그램한다. 서로를 파괴하지 않게 로봇에게 스스로의 욕구와 집단의 규범을 파악해 자기 욕구를 사회의 목적에 맞게 조정하는 감정들을 만들어줄 것이다. 자기보호 차원에서, 로봇들이 삶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보도록, 혹은 재앙에 직면했을 때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일이 아무 소용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는 설계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최악의 험난한 환경에서도 로봇들이 살아남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붓길 바랄 것이다.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처해도 말이다.
이런 일들을 행하게 하도록, 우리는 이성적 분석과 적절한 인지 를 유일한 지배 원칙으로 심지는 않을 것이다. 한 번씩 이성이 끊기 게 하는 버그를 만들 것이다. 착각과 자기기만의 메커니즘을 설계해 넣을 것이다.
- 이렇게 설계자의 역할을 해보면, 우리의 목표가 특정 로봇의 목숨 을 구명하거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뇌에 심긴 현실 왜곡 체계로 인해 죽는 극소수의 로봇이 로봇 '무리'의 생존을 이끈다면, 우리는 이 버그가 성공적이라고 말할 터이다. 우리의 목 표는 개별 대상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종족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뇌가 늘 진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도록 설계 된 편이 더 놀라울 것이다. 우리의 본능과 감정은 생존과 재생산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진화했다. 이런 목표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반면, 동시에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게도 한다. 사물을 이런 방식으로 교란시켜 보면, (우리가 설계한 가상의 로봇들처럼) 개별 자로서 우리는 유전자를 전파하도록 고안된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그다지 중요치 않은 톱니바퀴 하나일 뿐임을 알게 된다.
- 코미디언 조지 칼린 George Carlin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나보다 느린 속도로 운전하는 사람을 보고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나보다 빨리 가면 미친 것 아니냐고 생각해본 적 없는가?"
-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 일부가 현실에서 유리되어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본다는 것이 '반드시' 건강하다는 의미일까? 1979년에 심리학자 로렌 앨로이 Lauren Alloy 와 린 애브람슨lyn Abramson은 가장 흔한 정신질환인 우울증 환자들에게 이 질문을 대입해보기로 했다. 둘은 우울증 환자들이 건강한 사람보다 현실감각이 다소 떨어지는지를 살펴보았다. 실험이 준비되었다. 우울증 환자들과 우울증을 앓지 않는 사람들은 깜빡이는 초록 불빛 옆에 위치한 버튼을 누르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리고 불빛의 깜빡임이 버튼을 누르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쳤 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우울증 환자들은 세상에 대해 비 현실적이리만큼 부정적인 관점에 고착되어 있으며, 이런 부정적인 착각이 이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듯하다고 여겨진다.
앨로이와 애브람슨은 우울증 환자들이 깜빡이는 불빛이 버튼을 제대로 누르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크게 놀랐다. 반대로 우울증을 앓지 않 는 사람들은 깜빡이는 불빛을 통제하는 자신의 능력을 계속 과신' 했다. 다시 말해 건강한 집단은 현실을 명징하게 바라보고, 우울한 사람들은 염세주의적인 착각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두 집단 간의 차이가 유발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 오히려 건강한 집단은 '통제력에 대한 착각'을 지니고, 반대로 '건강하지 않은 대조군은 현실을 명징하게 바라보았다. 이 논문의 부제는 슬픔에 잠겨 있지만 더 현명한 이다. 이 연구보다 훨 씬 더 필연성이 짙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후속 연구 역시 우울증이나 기타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종종 현실을 훨씬 더 명징하게 바라본 다는 사실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이런 연구들은 나아가 우울증 환자 가 치료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 상태가 나아졌을 때 실제로 통 제력과 자신감에 있어 훨씬 더 착각을 일으키고 자기기만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1980년대에 들어 점점 더 많은 심리학자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과, 세상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일 사이의 기묘한 관계에 대해 보 다 섬세하고 차별적인 관점을 갖기 시작했다. 많은 학자가 어느 정 도의 자기기만은 반드시 해로운 것이 아니라, 이익이 되기도 한다고 본 것이다. 다시 말해 건강한 사람이란 긍정성이 두드러지는 방식 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 같은 사고의 주요 지 지자인 UCLA의 심리학자 셸리 테일러 Shelley Taylor는 이런 자애로운 자기기만을 긍정적 환상 positive illusions" 이라고 이름 붙였다.
긍정적 환상이 정신 건강에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은 즉시 회의주 의자들을 끌어모았다. 이들은 기분을 좋게 만드는 환상이 수많은 상 황에서 우리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도박판에서 과신은 무척이나 위험할 수 있다.
- 남성들은 착각으로 인한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서 실패를 유용한 신호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이들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계속 착수하고, 계속 큰 액수의 모금액을 설정한다. 킥스타터에서 첫 번째 실패가 그다음 실패의 훌륭한 예측 요인이 되기 때문에, 이런 남성 중 많은 수가 실 패한다. 하지만 무척이나 많은 남성이 출전을 선언하고, 더 큰 액수의 모금액을 설정하고, 이들 중 일부가 마침내 성공' 한다.
전체적으로 연구자들은 이것이 기업적 성공에서 성별 간 불균형을 초래하는 하나의 요소라고 결론 내렸다. 여러분이 킥스타터에서 어떤 한 사람의 남성 혹은 여성의 성공 가능성을 측정해야만 한다.면, 여성을 고르는 게 낫다. 하지만 하나의 집단'이 성공할 가능성 을 측정해야 한다면, 남성 집단을 고르라. 착각에서 기인한 과도한 자신감은 수많은 개인' 남성에게는 무척 나쁘지만, 남성 '집단'에는 성공을 돕는 요인이 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 조셉이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그 누가 판정할 수 있겠는가? 그 누가 '로 뒤 로비네'라는 상표가 붙은 물이 헛소리' 라고, 아이폰 이 삼성 스마트폰보다 수백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혹은 고양 이에게 수천 달러를 들여 신장 이식 수술을 시켜주는 게 돈 낭비라 고 결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조셉의 관계를 '가짜'라고 일컫는다. 면, 종교적인 사람들이 신과 맺은 관계가 '가짜'라고 무신론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수많은 종교적인 사람이 선의로 가득한 무신론자들에게 맞설 때 하는 말 같은 조셉의 대답은 이렇게 묘사하는 것이 공평할 듯하다. "내 입장에서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어째서 당신이 판단하려 드는가요?”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돈 로리의 '사랑의 교회' 피해자들은 기자 와 검사들이 온정적인 우려를 표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누군가 거짓말은 끝장이 나야 한다면서 우려해주었을 때, 몇몇 피해자들은 그 조직만큼 자기에게 돈보다 큰 가치를 제공했던 곳이 없다고 응답했다.
- 사랑은 나무와 같다.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우리 존재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폐허에서도 죽지 않고 무성히 커 나간다. 신비로운 사실 하나는, 그것이 맹목적일수록 더욱 집요해진다는 점이다. 완전히 비합리적인 순간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노트르담의 꼽추》)
- 결혼하기 전에는 눈을 크게 떠라. 그러고 결혼한 후에는 눈을 반쯤 감아라. (벤저민 프랭클린)
- 다른 연구들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현재의 상대를 과대평가하 는 것과 같이, 대안(다른 이성)이 지닌 미덕을 과소평가한다는 덜 매 력적이며 접근 가능성이 적다고 여겼다 사실이 드러났다. 애인과 의 관계가 가장 끈끈한 사람들이 잠재적 유혹을 가장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 연구자가 썼듯이,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러 보 인다 할지라도, 행복한 정원사는 그 사실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최근 신경과학자들은 이런 몇 가지 자기기만을 유발하는 뇌의 처 리 과정을 알아냈다. 사랑에 빠졌을 때 뇌의 변화들은 액면 그대로 비판적 사고 능력을 손상시킨다(열여섯 살짜리를 사랑의 열병에서 끄집 어내기 힘든 건 이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모성애 역시 이와 똑같은 변화들을 촉발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성격과 특징에 관한 긍정적인 환상은 액면 그대로 상대의 결점에 눈을 감게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일컬어 “사랑의 콩깍지" 라고 부른다.
- 정신과 의사 이안 맥길크리스트 lain McGilchrist는 뇌가 스스로를 속이는 성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뇌의 반구 영역과 관계 있다고 보았다. 맥길크리스트에 따르면, 우반구는 스스로의 한계를 보다 잘 인식하고, 반대로 좌반구는 쾌활한 자기기만적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좌반구에 뇌졸중이 온 환자는 우반구가 제대로 기능한다면 대개 자 신이 뇌졸중을 겪었음을 알지만, 우반구에 뇌졸중이 온 환자들은 자신이 괜찮다는 착각을 한다. 맥길크리스트는 자기기만이란 스스로 통제력이 있다고 여기고 싶어 하는 좌반구의 비현실적인 욕망에 의해 크게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 최근 몇 년간 과학자들은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종래의 모 형이 엄청나게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눈이 카메라처럼 움직이며 세상을 받아들이고, 머릿속에서 그림을 만들어낸다고 상 상한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세상을 바라볼 때 뇌는 우선 방향을 맞춘다. “지금 보는 저것을 내가 아는가? 전에 본 적이 있는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가 아는가?" 즉 우리 뇌는 과거의 경험에 기반해서 보고 있는 대상에 관한 익숙한 모형을 찾는다.
어째서 세상을 보이는 대로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이런 방식 으로 처리하는 걸까? 매 순간 전체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두뇌의 처리 과정 측면에서 어처구니없을 만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간에 뇌는 한 번에 많은 대상을 처리해야만 한다.
- 여러분이 운전을 하고 있지만, 주의력은 또한 조수석에 앉은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데도 쏠려 있다. 한정된 정신적 자원을 감각에서 뇌로 유입되는 기가비트 수준의 온갖 정보를 분석하는 데 바치기 보다, 받아들이는 대상과 관련한 기존 모형에 비추어 판단하는 편이 (적절하다면) 훨씬 효율적이다. 운전을 할 때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이런 모형들을 생성한다. 좌회전을 하려고 신호 대기를 받아 차를 세우면, 뇌는 좌회전을 하는 동안 교통신호가 어떻게 될지에 관한 방대한 경험 창고를 이용한다. 이쯤에서 여러분은 “그런데 잠깐만요” 하고 끼어들 수도 있다.
"나무를 볼 때 내가 오직 하나의 나무, 즉 나무에 대한 내 정신적 모형을 보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난 무수히 많은 다양한 나무를 볼 수 있어요. 죽은 나무, 살아 있는 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코코넛 나 무 등등요.” 여러분의 말이 옳다, 우리 뇌는 눈으로부터 유입되는 정 보를 가지고 뭔가를 한다. 다만 나무의 모습 전체를 취하려면, 그것 이 나무인지 판단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자료를 정신적으로 처리해 야만 하는데, 그러기보다 뇌는 어떤 나무에 대한 모형을 만들어내 고, 그 후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기반해 그것을 약간 수정한다. 이런 식으로 특정 나무가 지닌 세부적인 부분들을 그려 넣기 위해서 는 제한된 양의 자료만 있으면 된다. 나무라는 기본 모형'은 즉시, 무의식적으로 이전에 보았던 수만 그루의 나무들에 근거해 자동으 로 생성된다.
- 뇌의 속임수는 더 있다. 눈과 기타 감각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거 의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실제로 보는 대상을 기존 모델이나 지식으 로 대체하더라도, 뇌는 우리에게 주변의 모든 사물을 받아들이고 있 다는 '환상'을 안겨준다. 누군가에게 당신이 사실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대한 정신적 모형'을 보는 거라고 말해보라. 상대는 발끈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응 역시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완벽하 게 합당하다. 굳이 우리가 현실을 불충분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진실이 과연 진화적 적합성evolutionary fitness에 도움 이 될까? 불완전한 진실이 어떻게 우리가 효율적으로 활동하고 짝을 찾도록 이끄는 걸까?
- 모두들 미쳐 있다. 그중 자신의 환상을 해석할 수 있는 자는 철학자라고 불린다. (앰브로즈 비어스 Ambrose Bierce)
- 조물주도, 국가도, 돈도, 인권도, 법도, 정의도 인류가 공동으로 상상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유발 노아 하라리 Yuval Noah Harari, 《사피엔스Sapiens》)
- 불람비카 사람들의 경험과는 대조적으로, 고스트 댄스에 참가한 미국 원주민들과 중국 의화단은 실패한 듯 보일 것이다. 방탄 부적 의 효능에 대한 존경 어린 믿음은 연기처럼 흩어졌고, 두 집단은 치 욕적인 패배로 고통받았다.
하지만 실제 이런 일화들이 남긴 유산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의화단은 전쟁에서 졌지만, 중국에서는 서구의 제국주의 화 과정에 보다 극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경제적인 의미에서 유럽 열강들의 중국 유린은 계속 이어졌지만, 더 이상 노골적인 점령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오늘날 많은 중국인은 의화단 사건이 힘이 약 한 국가가 강대국들의 힘에 난도질당하기 직전,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고 여긴다. 고스트 댄스가 미국 원주민들에게 이점으로 작용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고스트 셔츠를 입을 무렵 원주민들은 수적으로나 화력으로 나 밀려서 미 연합군의 힘에 맞서 어떠한 저항도 계속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글랄라 수족의 족장 붉은구름이 언급했듯이, 이 운동은 부 족을 한데 불러모았고, 이들은 “희망을 낚아챘다.” 운디드니라는 명칭은 아직도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슬로건으로 여겨지며, 미 원주민 들의 집단 정체성을 유지하게 해주고 있다
- 콩고의 그리그리, 수족의 고스트 셔츠, 의화단의 의화권은 모두 심리적인 목적을 수행한다. 이것들은 실재하는 위협에 맞서 부족의 저항 세력을 모았다. 이런 저항의 결과는 다양해서 때로 패배하기도 하고, 때로 승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의례들은 적어도 집단이 화 합하고 집단행동을 촉진한다는 관점에서는 “성공적이다. 모두 부 족, 국가, 문화 수준에서 가시적인 이득을 창출했다. 방탄 의례는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의례 중 가장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어째서 수십억 명의 인류가 매일같이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들을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의례는 대학사교 클럽의 신입생 신고식, 빵과 와인을 나누어 먹는 기독교의 성 체 의식부터 악수로 인사를 나누는 행위, 축구 선수의 득점 세리머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아우른다. 불람비카에서의 극단적인 상 황들은 어째서 의례가 어디에서나 발생하며, 종종 대를 거듭해 보 존되는지를 설명해준다. 의례는 인류에게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 는 세상을 다루는 방법을 제공한다. 또한 공동체, 순응, 용기를 창출 한다. 의례가 말 그대로 작용하는지 묻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일이 다. 의례는 심리적 수준에서 작용하며, 이따금 심리적 현실은 실제 현실로 나타나기도 한다. 후투족에 맞서 싸운 콩고 마을의 사례처럼 말이다.
- 집단이 어떤 의례를 함께 수행하면 참가자들은 소속감과 안정감을 부여받는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은 이 를 집단 흥분collective effervescence' 이라고 지칭했는데, 오늘날에는 '사회 응집력social cohesion' 이라고도 불린다. 유대인이 지닌 특별한 회복탄력성을 생각해보라. 유대교의 복잡한 의례들과, 유대인들이 수세기 동안 종종 종교적·사회적으로 집단 박해를 받으면서 - 이런 의례들을 신실하게 수행해온 일은, 이들이 한데 뭉치고 살아남는 데 일조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최근 연구자들은 의례가 집단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수많은 증거를 밝혀냈다. 많은 의례가 다양한 개인들이 동시적 통합적 움직임을 수행하는 특징을 지닌다. 한 연구는 대학 조정 선수들이 동시에 다함께 노를 젓는 행위가 혼자 노를 젓는 것보다 엔도르핀을 더 많이 생성한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엔도르핀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완화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유대감과 관련이 있다.
- 종으로 볼 때 인간은 강력하지도, 행동이 민첩하지도 않다. 날카로운 발톱이나 치아를 지니지도 못했다. 근육 또한 다른 수많은 증에 비해 적고 연약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다. 초기에 인간은 수천 년간의 진화를 겪으면서 이런 교훈을 습득했다. 이것이 자기기만하는 뇌가 우리가 한데 뭉치고, 서로를 위해 싸우고, 서로 를 보호하도록 부추기는 이유이다.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우리는 유전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자 부족과 화합해야 하기에, 때때로 순수한 자기 보존의 논리를 뒤엎는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이 “의미 없는" 의례들을 통해 무시무시한
초개체superorganism (생물학자 윌리엄 모턴 힐러William M. Wheeler가 사회적 동물의 군집을 하나의 유기체로 취급하려는 시각에서 만든 개념이다. - 옮긴이) 로 결합할 수도 있다. 오늘날 미국인이나 중국인, 아프리카인 등으 로 우리를 묶어주는 것, 다시 말해 국가의 기초에도 이와 같은 심리 적 힘이 작용한다.
- 수백만 명의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로서 행동하도록 촉진한다. 이스라엘 역사가 유발 노아 하라리는 이렇게 썼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명의 세르비아인들은 세르비아라는 국가의 존재, 세르비아 라는 조국, 세르비아 국기를 믿는다는 이유로 서로를 구하는 데 목숨을 걸 수 있다. 사람들이 창조하고, 서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바깥에 존재하는 건 이런 믿음 말고는 없다." 물론 국가의 필요와 우선순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국가의 이야기가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 국가적 신화들은 반쪽짜리 진실이거나 새빨간 거짓말일 수 있다. 창조된 현실, 혹은 상상한 현실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번 만 들어지면 - 그리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것을 믿으면 - 현실이 되어간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i Tizek은 이런 종류의 거대하고 집단적인 거짓말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거짓이라면, 이 거짓은 우리가 그것이 거짓임을 아는 한, 우리가 처한 사회적 현실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거짓이 아니라 해도 마찬가 지이다.”
국가를 탄생시키는 데 필요한 왜곡, 환상, 자기기만은 이례적인 수준으로 유용하게 기능한다. 국가라는 집단적인 허상은 우리에게 정체성과 목적의식을 공유시키고, 위대한 일을 달성하기 위한 응집력과 죽음의 위협에 맞서 우리 자신들을 방어할 의지와 능력을 제공한다. 우리 자신들을 하나의 국가로서 느끼지 않고서는 절대로 무역 이나 통화, 법 제도가 생겨날 수 없다. 조세 정책을 통해 국가 예산 을 확보할 수도 없다. 의용군 조직도 불가능하다. 미국이라는 이야 기를 듣지 않고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에 맞서 미국인들 이 함께 뭉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후버 댐 같은 거대한 사회 기반 시 설을 건설할 수도, 최초로 인간을 달에 보내는 기술을 계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환상, 신화, 잘못된 믿음은 때때로 우리 삶에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 민족국가의 토대가 되는 신화들은 가장 드라 마틱한 사례들이다. 이런 자기기만은 더없이 영광스러운 문명들을 창출하는 역할을 했다.
- 신경과학자 V. S. 라마찬드란V. S. Ramachandran은 우리가 죽음을 상시 인지한다면 그것을 다룰 수가 없기에 초기부터 자기기만 능력이 발달한 것이라고까지 추측했다. 그에 따르면, 자기기만은 “심리적 방어 기제" 로서 발전했다. “죽음의 공포를 피하기 위한 대응 전략'으로서 말이다. 부정과 환상, 자기기만을 이용해 존재론적인 두려움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현실을 명징하게 볼 수 있는 인간에 비해 진화적 이점을 지닌다. 자기기만이 기능적이게 된 것이다.
- 이따금 죽음에 대한 상기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규범, 다시 말해 자기 문화에서 '좋다'고 간주하는 것을 더욱 강하게 지지하도록 부추긴다. 솔로몬은 이를 위협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집단 혹은 문화가 지닌 “확실성” 으로 들어가는 것이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필멸의 존재일 수 있지만, 우리가 속한 집단이나 문화는 내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는다. 일종의 불멸성을 제 공하는 것이다.
애리조나주의 판사들은, 먼저 자신의 필멸성을 깨달은 경우, 그 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성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판결을 내렸다. 이 차이는 유의미하다. 문화적 규범을 어긴 여성의 행동을 평가해 달라 고 요청했을 때,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판사들이 죽음을 의식하지 않은 판사들에 비해 9배나 더 큰 제재를 가했던 것이다. 죽음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또한 친사회적 혹은 문화적으로 승인된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관대하게 '보상' 했다. 이 두 사례를 보면, 자신의 죽음을 의식한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속한 문화적 규범을 옹호하는 행위들을 신봉하는 듯 보인다. 이들은 문화적으로 승인된 행위에는 더욱 기꺼이 보상을 주고, 문화적 규준 에서 일탈된 행동에는 더욱 가혹하게 처벌했던 것이다.
- 철학자들은 죽음과 임종이라는 맥락에서 자기기만에 관한 의문들을 고심했다. 스티븐 케이브Stephen Cave는 '죽음의 패러독스'에 관해 말했다. 우리는 언젠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실제 임종에 대해서는 실감하지 못한다. 임종을 생각할 때, 우리는 관찰 자의 역할과 관찰당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죽지 않은 누군가가 죽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들 대다수가 단순히 죽음에 대한 생각을 회피한다는 데 도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에 세상에서 가장 큰 패러독스란 우리가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절대로 다음번이 자신의 차례임을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표현 되어 있듯이 말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의 정신은 비존재非存在를 직관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스페인의 철학자 미구엘 드 우나무노Miguel de Unamuno는 이 문제를 간단명료하게 묘사했다. “무의식을 묘사하는 것으로 의식을 채우려고 해보라. 불가능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고자 하면 극도로 고통스러울 만큼 큰 현기증이 날 것이다.”
- 한때 분노한 신을 바탕으로 했던 많은 종교는 사랑과 용서의 신에 관해 말하는 신앙으로 변화했다.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의 차이를 생각해보라. 선량한 신은 분노한 신이 제공하는 수준의 사회 응집력과 윤리적 강제성을 제공하지는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회는 더 이상 응집력과 윤리적 지침을 제공하고자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제 효율적인 국가적 지역적 법규들이 완벽하게 시민의 자부심을 이끌어내고, 윤리적 규준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분 노한 신이 “똑바로 줄을 서라고 명하는 기능적 필요성은 약화되고, 종교 - 특히 산업화되고 부유한 국가에서는 점차 학교 바자회, 보육 서비스, 세속적이지 않은 형태의 정신 치유 요법 등 각기 다른 일련의 사회 기능들을 제공한다. 종교는 여전히 기능을 발휘한다. 과거와는 다른 기능들을 제공하는 것뿐이다.
이는 어째서 잘 굴러가는 국가들에서 조직적인 종교가 엄청나게 쇠락했는지, 가난과 불평등(때로 사회적 갈등)으로 분열된 국가에서 종교적 신앙이 계속 번영하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 스칸디나비아 인들은 정부, 훌륭한 사회 복지 시스템, 고도로 기능하는 자치구들을 깊이 신뢰한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가장 신앙 지수가 낮은 곳 중 하나이다.
- 인간에게는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초월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탈출해야만 한다. 의미를 이해를, 설명을 필요로 한다. 삶의 모든 패턴을 알아야만 한다. 희망을, 미래 감각을 필요로 한다. (올리버 삭스Oliver Sacks, <뉴요커〉에 실린 '변화된 상태Altered States')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이 관계를 조종하는가 (0) | 2021.09.30 |
---|---|
생물학적 마음 (0) | 2021.09.27 |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 (0) | 2021.08.31 |
중년의 심리학 (0) | 2021.07.17 |
우리 아이는 조금 다를 뿐입니다 (0) | 2021.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