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서는 용기

심리 2021. 6. 13. 09:04

- 의미는 상황에 의해 결정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 상황에 어떤 의미를 주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가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범죄를 억압 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가정, 다시 말해 재판관, 경관, 간수 등의 가정에서 상당한 숫자의 범죄자가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교사의 아이들 또한 몹시 반항적인 경우가 많다. 나 자신의 경험에 비 추어 보아도 이 통계는 어느 정도 맞는 듯하다. 나는 놀랄 만큼 많은 숫 자의 신경증적인 아이들이 의사의 자녀들 가운데 있으며 또 많은 수의 비행 청소년들이 목사의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찬가지로 배뇨 조절을 강조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그들 이 자신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지극히 명료한 방법으로 즉 야뇨증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야뇨증은 우리가 의도하는 행동에 적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꿈이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보여 준다.
- 야뇨증인 아이들은 흔히 자기들의 방을 나와 화장실에 가는 꿈을 꾼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자기변명을 한다. 이 말은 그들이 이불에서 소변을 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야뇨증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낮과 똑같이 밤에도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고 종속시켜 주의를 받으려는 것이다. 때로 그것은 타인을 적대시하 는 일이며 그 습관은 적개심을 선언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각도에서 보면 우리는 야뇨증이 하나의 창조적인 표현이라는 사 실을 알 수 있다. 그 아이는 입 대신에 방광을 사용하여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 기관의 불완전함은 그 아이에게 있어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을 제공할 뿐이다.
- 만일 우리가 아이를 침으로 자극하여 그 아이가 얼마나 높게 뛰어오르는지를 본다거나 간지럼을 태워서 그 아이가 얼마나 크게 웃는지를 보려 한다면 그런 일은 엄밀히 말해서 심리학이라고 부를 수 없다.
현대의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매우 일반적인 방법으로 인정되고 있는 이런 방법은 실제로 한 개인의 심리에 대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려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점은 특정한 인생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해당된다. 자극과 반응을 조사하는 사람들에게, 외상이나 충격적인 경험의 영향을 알아내려는 사람들에게, 또 유전되는 능력을 조사하여 그것들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보려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될 뿐이다.
- 개인심리학에서는 정신 자체, 다시 말해 통일된 심리를 고찰한다. 우리는 개개인이 세상이나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의미, 그들의 목표, 그들이 기울이는 노력의 방향과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처해 나가는 방법을 관찰한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심리적 차이점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열쇠는 협동하는 능력의 정도를 세밀하게 조사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 자기가 타인에 대해서 우월한 듯이 행동하는 모든 사람의 배후에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서 숨겨야만 하는 열등감이 존재하고 있다. 그 노력은 마치 키가 너무 작아서 고민하는 사람이 자기를 커 보이게 하기 위해서 발끝을 세우고 걷는 일과 같다.
우리는 가끔 2명의 어린아이가 키 재기를 할 때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가 작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는 아이는 몸이 꼿꼿하게 경직되어 있다. 자기 키를 실제보다 커 보이게 하려고 신경 쓰기 때문이다.
- 열등감이란 개인이 어떤 일에 대해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혹은 준비 되어 있지 않아서 그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자기의 확신을 언행으로 표 현하는 경우에 나타난다. 이 정의로부터 우리는 눈물이나 변명과 마찬 가지로 노여움 또한 열등감의 표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열등감은 늘 긴장을 자아내는 감정이기 때문에 우월감을 향해서 나아 가는 보조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월감을 얻는 것으 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우월만을 추구하 게 되면 인생의 무익한 측면으로 향하여 정말 중요한 문제는 배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자기의 활동 범위를 한정하려고 함으로써 성공을 향해 전진 하기보다는 패배를 피하는 일에 몰두한다. 난관에 부딪치게 되면 망설이면서 꼼짝도 하지 않거나 뒷걸음질 치는 모습마저도 보이게 된다.
- 광장공포증인 경우에 매우 간단하게 나타난다. 이 증후는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 아니야. 나는 눈에 익은 상황에만 관 련되어 있어야 해. 인생은 위험으로 꽉 차 있으니까. 그런 위험을 만날 기회를 피해야만 해'라는 확신의 표현이다. 이 태도가 끊임없이 유지된다면 그 사람은 방 안에 틀어박혀 있거나 침대에 웅크리고 앉은 채로 시간을 보내고 만다.
- 열등감은 그들이 자신들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진하는 일을 금지해 버린다. 자위, 조루, 성적 불능, 성도착 등의 증세들은 모두 망설 임'이라는 인생의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성에게 다가가려 할 때 자기 는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왜 그렇게 불완전한 것을 두려워하는가?” 하고 묻는다. 면 우월감이라는 목표가 곧 떠오른다. 가능한 유일한 대답은 그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높은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열등 감이란 그 자체로서는 이상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설명했다.
열등감은 인류가 자기 자신을 개선하려 하는 모든 노력의 결과다. 예 컨대 과학도 사람들이 자기의 무지를 깨닫고 미래를 예견할 필요성을 느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열등감은 인류가 자기의 생활을 개선 하여 우주에 대해 보다 많이 알고 우주를 보다 잘 통제하기 위한 여러 노력의 결과다. 사실 나의 견해로는 우리 인간의 모든 문화는 열등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까지 생각된다.
-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자주 그들의 우월 목표를 확실하게 나타낸다. 그들은 “나는 나폴레옹이다.” 라든가 “나는 중국의 황제다.” 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전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싶어 하고, 만인에게 우러러 보이고 싶어 하며, 전 세계와 무선으로 연락하여 모든 대화를 도청하고 싶어 한다. 또 그들은 미래를 예고하기도 하며, 초자연적인 힘의 소유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처럼 되고 싶다는 목표는 아마도 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써 모든 일을 알고 우주적인 지혜를 소유하고 싶은 소망 혹은 생명을 영원히 갖고 싶다는 소원 속에 나타난다.
- 지상의 생명을 영원한 것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 삶이 윤회한다는 상상, 내세에서의 불사를 예견하는 등의 기대들은 모두 신처럼 되고 싶다는 바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종교적인 가르침에 있어서 불멸의 존재 즉 모든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남는 존재는 신이다.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견은 인생의 몇 가지 해석과 의미 목표를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까지는 신과 같이 되고 싶다는 의미에 관련되 어 있다. 무신론자들조차도 신을 정복하려 하며 신보다 높은 존재이기 를 원한다. 우리는 이 욕망이 독특하게 강한 우월 목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월 목표가 한번 구체적이 되면, 인생 방식에 있어서 잘못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없어진다. 개인의 습관이나 모든 징후는 그의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극히 올바를 뿐이며, 그것들은 모든 비판을 초월한다.
모든 문제아와 신경증 환자, 알코올중독자, 범죄자, 성도착자는 자기 가 우월한 입장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거기에 적합한 행 동을 한다. 그의 모든 징후 자체를 공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징후는 마치 목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듯이 보인다.
- 어린 시절부터 기억되고 있는 사건은 그 개인의 주된 관심사와 매우 가깝다. 우리가 그의 주된 관심사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의 목표나 인 생 방식도 알 수 있다. 초기의 기억을 매우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기억 속에서 그의 부모와 가족에 대한 관심도 발견 가능하다. 기억이 정확한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런 기억이 그 개인의 판단을 보여 준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 이 때부터 나는 이러한 인간이었다'라든가 '아이 때부터 나는 인생을 이 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을 알아낼 수 있다. | 모든 기억 중에서 가장 계시적은 것은 그가 기억해 낼 수 있는 최초의 사건이다. 최초의 기억은 그 개인의 근본적인 인생 방식과 그의 삶 가운 데 최초로 만족스러웠던 결정을 보여 준다. 그 기억은 그가 무엇을 자기 발달의 출발점으로 삼았는가를 한눈에 보도록 해 준다.
때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처음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겠다면서 대 답을 회피하기도 하고 혹은 고백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 자체도 하 나의 계시가 된다. 우리는 그들이 자기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 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협력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 꿈은 인간 심리의 창조적 활동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꿈을 통 해 무엇을 기대해 왔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 목적을 이해하는 데 매우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꿈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곧 놀랄만한 사실과 만나게 된다. 그동안 꿈 은 미래에 관계된다는 논리가 당연한 사실로 여겨져 왔다. 사람들은 자 주 꿈속에서 어떤 지배적인 영이나 신, 조상과 같은 존재들이 그들의 심리 속에 붙어서 영향을 준다고 느껴 왔다. 그들은 곤란한 일에 직면했을 때 뭔가 해결책을 얻기 위해서 꿈을 이용했다.
꿈에 관한 고대의 서적들은 어떤 꿈이 미래에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그들의 꿈속에서 어떤 전조나 예언을 점쳤다. 그리스인과 이집트인들은 장래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신성한 꿈을 꾸게 해 달라고 기원하면서 신전에 제사를 지냈다. 그런 꿈은 치유력이 있으며 육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 문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꿈을 불러내기 위해 단식이나 목욕을 하는 등 대단한 노력을 했으며, 자신들의 꿈에 대한 해석을 염두에 두고 행동했다. 구약성서에도 꿈은 항상 뭔가 미래의 사건을 계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있다.
- 하지만 꿈의 해석은 항상 개인적이다. 상징이나 은유를 어떤 공식에 의해 해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꿈은 각 개인의 독특한 인생 방식에 의해서 그 자신의 해석으로 만들어진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전형적인 꿈의 형태를 몇 가지 간단하게 언급하려고 한다. 나는 여기서 개인적인 해석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꿈의 해석과 의미 탐구에 도움이 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많은 사람이 하늘을 나는 꿈을 꾼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런 꿈을 이해하는 열쇠는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꿈이 불러일으킨 감정이다. 이러한 꿈은 잠을 깬 뒤에까지 둥둥 떠다니는 듯한 기분과 용기를 남긴다. 꿈 속에서의 그 경험은 우리 마음을 고양시켜 준다. 역경을 극복하고 우월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일이 매우 쉽다고 묘사해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런 꿈은 용기 있는 사람, 진취적이고 야심 찬 사람, 잠자고 있을 때 조차 자기의 야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을 추측하게 한다. 이런 꿈은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동반하고 있 다. 꿈으로부터 암시되는 대답은 '전진해도 어떠한 장애도 없다'다.
또 많은 사람들이 흔히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 이는 실로 주목해야 할 꿈이다. 이는 인간의 심리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 하기보다는 자기 보존이나 패배의 공포에 더 많이 몰두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교육적 전통이 주로 아이들에게 경고를 주고 경계를 시켜 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아이들은 언제나 “의자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 “말참견을 해서는 안 된다.”, “불에 가까이 가면 안 된다.”하는 식의 주의를 들으며 성장한다. 아이들은 언제나 위험하다고 말하여지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물론 정말 위험한 것도 있다. 그렇지만 한 개인을 겁쟁이로 만드는 일은 살아가면서 위험에 대처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움직일 수 없다거나 전차에 늦게 올라타는 꿈을 자 주 꾼다면, 보통 그 의미는 '이 문제가 나에게 아무런 번거로움도 주지않고 그냥 지나가 준다면 기쁘겠다. 나는 그 문제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 길을 돌아서 가든지 늦든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전차를 떠나가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시험에 대한 꿈도 꾼다. 때로 사람들은 자기들이 꽤 나이를 먹고 나서 시험을 치르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훨씬 옛날에 통과했던 시험을 다시 치러야만 하는 상황을 꿈에서 맞이하고 놀란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 그 의미는 '당신은 눈앞의 문제에 직면할 준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그 의미는 '당신은 전에 이 시험에 통과했다. 그 러니 현재 눈앞에 있는 시험도 통과할 것이다'와 같을 수도 있다. 어떤 개인의 상징이 다른 사람의 상징과 일치하는 일은 결코 없다. 우리가 꿈 에 있어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점은 꿈이 남긴 잔상과 인생 방식 전체와의 일관된 관계다.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어머니의 모든 의식을 독점하고 다른 모든 사람을 배제하고자 하는 아이에게만 나타난다. 그와 같은 생각이 성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마음은 어머니를 자신에게 복종시켜 완전히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마치 어머니를 하녀와 같은 존재로 느끼는 것이다. 또한 그 관념은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고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결코 동료 의식을 갖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에 생긴다. 드문 예이긴 하지만 항상 어머니하고만 연결되어 온 소년은 사랑과 결혼이라는 문제에 직면해서도 자신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결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와 같은 태도는 그가 자신의 어머니 이외에 어느 누구와도 협력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다른 어떤 여성도 어머니와 같이 종속적일 수는 없다고 생 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항상 잘못된 훈련의 인위적인 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전적인 근친상간 본능 혹은 그와 같은 비정상의 근원이 어떤 성적인 것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 만일 집에서 아버지가 가족을 지배하고 화를 잘 낸다면 남자아이들은 남성에 대해 매우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 경우 여자아이들은 더욱 소심해진다. 소녀들은 장차 남자를 폭군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 한 여자아이에게 결혼은 일종의 복종이며 노예제와 같은 것이라 생각될 수도 있다. 때때로 그들은 남성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자신을 지키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집안에서 어머니가 지배적이고 가족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면 상황은 역전된다. 여자아이들은 어머니를 닮아 잔소리가 많고 비판적으로 되는 반면 남자아이들은 언제나 방어적이고 비판을 두려워 하며 자신들을 복종시키려 드는 계획을 경계하게 된다.
- 때로는 어머니만 폭군과 같은 것이 아니라 숙모까지도 남자아이들의 입장을 억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가정의 소년들은 집에 틀어박혀 사 람들 앞에 나서길 망설이며 사회생활에서도 낙오되는 인간으로 자라기 십상이다. 그는 여자들은 모두 잔소리가 많고 비판적이라고 생각하여 여성들을 무서워하게 되고, 이성이라면 모두 기피하고 싶어진다. 사람 은 누구나 비판당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가 비판을 피하는 것 자체를 인생의 주된 관심사로 삼는 다면 그는 사회와 맺는 모든 관계 속에서 방해를 받게 된다. 그는 모든 사건을 단지 나는 정복자인가 아니면 피정복자인가'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에 따라 판단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승리나 패배를 가늠하는 기회로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동료 관계가 불가능해진다. 
아버지의 임무는 간단히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 그리고 사회에 대하여 훌륭한 동료임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한다. 아버지는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세 가지 문제, 즉 직업, 우 정, 사랑이라는 문제에 현명한 방법으로 대처해야 하며 가족을 돌보고 지키는 일을 아내와 동등한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남자는 바람직한 가정생활을 창조해 가는 데 있어서 여성의 역할이 더할 수 없이 중대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역할은 어머니를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그녀와 힘을 합쳐 협력해 나가는 일이다.
- 만일 아버지가 성공한 사람으로서 매우 재능 있는 사람일 경우 그 자 식들은 아버지의 업적에 결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들 은 기세가 꺾여 자라고 인생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저해되어 버린다. 유명인의 자녀가 때로 부모나 사회에 대해 낙담하는 사람이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추월할 수 있을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자신의 직업에 있어서 매우 성공했다면, 그는 자신의 성공을 가정에서 결코 자랑삼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하게된다.
- 만일 한 아이가 특별 하게 잘 자랐다고 하면 대개 그 아이가 주목되어 소중하게 대접받는다. 그것은 그 아이에게 있어서는 쾌적한 상황일 테지만, 다른 아이들은 적대감을 갖고 반발하게 된다.
자신이 남보다 낮은 지위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지도 않고 초조한 느낌도 없이 견딜 수 있는 사람이란 없다. 눈에 띄는 아이는 다른 모든 아이를 업신여기기 쉽다. 그렇게 되면 다른 아이들이 정신적 굶주림에 괴로워하면서 자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가령 그 아이가 관심을 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을 경우, 아이는 절망적이 되어 애정을 받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버린 다. 그렇게 되면 신경질적으로 되어 말이 없고 남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 는 성격을 갖게 된다. 그 아이는 고립된 것처럼 행동한다. 그와 같은 아 이의 모든 행동이나 표현은 그가 주목의 대상이었던 과거로 향한다.
이러한 까닭에 맏이는 일반적으로 지나치게 과거의 일에 관심을 타나 낸다. 그들은 옛날 일을 되돌아보며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과거를 찬미하고 장래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자신의 권력과 자기가 지배하던 '작은 왕국을 잃은 아이는 보통 다른 아이들보다도 힘과 권위의 중 요성에 관해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어른이 되었을 때 권위적인 행사에 참가하기를 좋아하고 규칙 이나 법의 중요성을 과장한다. 만사는 규칙에 맞추어 이루어져야 하고 어떠한 규칙도 변할 것은 없다. 권력은 항상 그것을 가질 만한 자격이 있 는 사람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되어진다.
이로써 유년기의 이러한 영향이 강한 보수주의 경향을 초래하게 된다. 는 점이 이해되어진다. 이러한 사람이 좋은 위치를 확보한 뒤에는 항상 남이 자신의 지위를 빼앗고 끌어내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배후에서 쫓아 오지는 않을까 하고 끊임없이 걱정하게 된다.
맏이의 입장은 이와 같은 특별한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 문제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꿀 수도 있다. 맏이는 동생이 태 어나면 그를 사랑하라고 강요받지만 사실 자신이 해를 입을 것은 없다. 맏이 중에는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도우려 하는 자세를 몸에 익히게 되 는 아이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를 닮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들은 종 종 연하의 아이들에 대해서 부모의 역할을 연출하고 그들의 시중을 들 며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복리에 책임을 느낀다. 때때로 그들은 조직에 도움이 되는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상황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보살피려고 하는 정 도가 지나쳐 상대를 의존적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또는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지배하고 싶은 욕망으로 바뀌기도 한다.
- 성서에는 수많은 훌륭한 사례들이 나타나 있는데 야곱의 이야기에는 전형적인 둘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야곱은 맏이인 에서의 지위를 빼앗기 위해 싸우면서 형보다 우수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둘째는 자신이 둘째라는 느낌에 초조해 하고 다른 사람을 따라잡아 추월하려고 애를 쓴다. 그 노력은 성공하기도 한다. 둘째는 흔히 맏이보다 재능이 있고 더 큰 성공을 한다. 이러한 발달에 유전적인 요소가 관계한다고 볼 수는 없다. 만약 둘째가 맏이보다 더 빨 리 발달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노력의 결과다. 맏이들은 성장해서 독립 할 때까지 가끔 자신이 선도자라는 사실을 이용한다. 결국 둘째는 자신 보다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비교하여 그 상대를 앞서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겉으로 드러나는 생활 속 에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한 모습은 인격의 모든 표현에서 발견 할 수 있고 또한 둘째의 꿈속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예컨대 맏이는 떨어지는 꿈을 많이 꾼다. 분명 정상에 위치하고는 있 으나 이 우월성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 다. 그에 반하여 둘째는 흔히 경주에 참가하는 꿈을 꾼다. 그는 전차 뒤 를 쫓아가거나 자동차 경기를 하는 꿈을 꾼다.
- 한편 자신의 뜻대로 입장이 확고해지지 않으면 주목을 받으려고 하는 유형의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장난을 치거나 학급 전체를 방해하거나 다른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이 원하는 입장을 실현시키려고 한다. 비난이나 벌로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고 오히려 반항을 가속화할 뿐이다. 그들은 무시당하는 것보다 오히려 표적이 되어 야단맞는 쪽을 좋아한다.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서 부과되는 고통은 쾌락을 위하여 지 불해야 하는 대가에 지나지 않는다. 체벌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그들의 인생 방식을 계속하도록 만드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체벌을 누가 가장 오랫동안 견디어 낼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시합이나 게임 정도로 여긴다. 이 게임에서는 아이들이 항상 승리자다. 부모나 교사들과 투쟁하고 있는 아이들은 벌을 받으면서 우는 대신, 비웃도록 자신을 훈련시킨다.
- 게으른 아이는 거의 대부분 야심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경우가 많다. 게으른 아이는 진정한 패배감 따위는 결코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결코 테스트에 직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아이는 자신의 눈앞에 닥친 문제를 쫓아 버림으로써 타인과의 경쟁을 지연시킨다.
다른 사람들은 대개 그 아이가 게으르지만 않다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 아이는 '나는 하려고만 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행복한 나라' 속으로 도피한다.
자신이 실패했을 때는 언제나 실패의 이유를 게으름으로 돌려 중대한 결함을 감소시키고 자존심을 유지한다. 그 아이는 스스로에게 '게으름 때문이지 결코 능력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교사는 게으른 학생들에게 종종 “너는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하면 학 급에서 일등을 할 수도 있어.” 라고 말한다. 사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하 지 않음으로써 그와 같은 관심을 얻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왜 공부를 열 심히 함으로써 그 관심을 잃게 되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겠는가. 만일 그 아이가 게으름을 벗어 던진다면 숨겨진 재능이라는 평판도 이제는 끝장나 버리는 것이다.
게으른 아이에게 있어서 또 한 가지 개인적인 이점은 그 아이가 최소 한의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로 인해 대단한 칭찬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 다. 주위 사람 모두가 그 아이의 활동 속에서 개선의 여지를 파악하고 그 에게 좀 더 자극을 주고자 노력한다.
부지런한 아이들은 비슷하게 노력해도 칭찬받지 못하는데 게으른 아 이들은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기대를 이용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러한 아이도 역시 어린 시절부터 줄곧 모든 일이 타인의 노력에 의해 자 신의 차지가 될 것을 기대하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켜 온 응석받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유형으로 친구들의 선두에 서는 아이들이 있다. 늘 지도자를 원하고 있는 인류에 정말 필요한 사람은 다른 이들의 복리를 위해 선두에 서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지도자는 그리 흔치 않다. 선두에 서는 아이들은 대개 자신이 다른 아이들을 지배하고 복 종시킬 수 있는 상황에 흥미가 있을 뿐이며,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만 어떤 그룹에 가담하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의 장래가 유망하다고는 할 수 없다.
- 흔히 사춘기는 대단히 특별하고도 기묘한 시기이자 보편적인 성징(性 徵)이 나타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발달 과정상의 각 시기에는 특별히 강조된 개별적인 의미가 부여되어 있고, 모든 사람 은 그 발달을 마치 당연한 변화인 양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갱년기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이들 인생의 각 국면은 결국 변화가 아닌 똑같은 생명의 연속에 지나지 않으며, 그 시기의 현상은 아무런 결정적인 중요성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각 개인이 그러한 국면을 맞이하면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가, 그 상황에 직면하기 위해 어떠 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훈련했는가 하는 점이다.
- 만약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장래 어떤 일에 종사하고 싶은지를 알고 있다면 아이의 성장은 좀 더 수월해진다. 물론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대개의 아이들은 쉽게 답변한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신중한 게 아니다. 비행사나 기관사가 되고 싶다고 할 때에도 그들은 자기가 왜 그런 직업을 선택하는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들이 주는 대답은 자 신들 입장에서 우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대표하는 단지 한 종류의 직업일 뿐이다. 
단, 우리는 이 대답에서 그들이 자기의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려 하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 때문에 그들 마음의 밑바닥에 있는 동기를 인식하고 그들이 노력하는 방법을 보며 무엇이 그들을 이끌고 있는지, 그들의 우월 목표가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그 희망들을 구체화시킬 수 있을 지 찾아내는 일이 바로 개인심리학의 과제다.
- 현재 야심이 부족한 듯이 보이는 아이라 해도 실제로 전혀 흥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그 아이는 너무나 야심만만하여 자신의 야심을 말할 만큼 용기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그 아이의 주된 관심사나 흥미를 찾아내기 위해 힘써야 한다. 어떤 아이들은 16세가 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장래의 직업에 대해서 결정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매우 우수한데도 자신들의 생활이 어떤 식으로 지속되어 가는가에 대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은 매우 야심적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협동적이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사회의 분업 안에 자리가 없다고 느껴 자신들의 야심을 성취시킬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되도록 빠른 시기에 아이들에게 장래의 직업관에 대해 묻고 인식시키는 편이 좋다. 나는 학교에서 이 질문을 하도록 권유한다. 그것은 아이들로 하여금 장래 직업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어 그 문제를 잊거나 대답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 만약 우울증 환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다면 과연 누구를 증오할 필요가 있을까. 무엇 때문에 그가 자신에게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겠는가.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당신이 극장에 가고 싶거나 휴가를 얻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중간에 싫어지면 그만두시고요.”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이다. 그 일은 우월성을 추구하는 그의 노력에 만족을 준다. 그는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신과 같은 존재이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런 원망(願望)은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싶어하지만 다른 사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들을 지배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내가 환자들에게 말하는 법칙은 대단한 해방이다. 지금까지 내 환자 가운데 자살자가 나온 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실히 증명해 준다.
물론 누군가가 환자를 지켜 주면 가장 좋을 것이다.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한은 아무런 위험도 없다. 그렇지만 환자 중의 어떤 사람들은 내가 바라는 만큼 주의 깊게 지켜봐 주는 보호자가 없었다. 앞서와 같이 말하면 종종 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그런 말을 너무나 자주 들어왔으므로 언제나 준비된 대답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싫어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도록 하세요.”
때로 어떤 환자는 하루 종일 자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허락하는 순간 이미 환자가 그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를 방해한다면 그가 투쟁하기 시작할 것임도 잘 알 고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들의 말에 동의한다.
또 하나의 다른 법칙은 그들의 인생 방식을 더욱더 직접적으로 공격 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이 만일 이 규칙에 따른다면 2주 안에 완치될 것입니다. 매일 어떻게 하면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를 생 각해 보십시오.”라고 말한다. 이 말이 그들에게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들의 머리는 '어떻게 하면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 19세기가 끝나 갈 무렵 그의 삶에는 두 가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결혼이고, 다른 하나는 프로이트를 만난 일이었다. 1902년 아들 러는 프로이트의 권유로 수요일 토론 모임인 〈빈 정신분석학회>에 참가 하게 되었다. 프로이트의 학설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프로이트 심리학파의 잡지 편집진에 참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러는 처음부터 프로이트와는 많은 점에서 견해를 달리하 고 있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정신적 생활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한 일련의 강의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뒤에 1911년 8명의 다른 멤버와 함께 이의서를 제출하고 그 모임에서 탈퇴했다.
- 아들러가 특히 반박한 대목은 성충동의 학설을 정신적 생활의 기본 요소로서 노이로제 환자나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에도 적용시킨 부분이 었다. 아들러의 견해로는 그러한 증상들은 절대적인 요인이 아니라 개 인적인 갈등 속에서 빚어진 소재이며 수단에 불과했다. 이후 아들러는 8명의 회원과 함께 <자유정신분석학회>를 결성했다가 1912년 그 명칭을 개인심리학회로 변경했다. 두 사람의 학설에 관심을 가졌던 융은 그들의 결별이 두 심리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이 트와 아들러의 인생관 사이에 거리가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지적 했다. 예를 들면 종교에 대한 프로이트의 적대적 태도와 아들러의 호의 적인 태도가 그것이다. 1934년 뉴욕의 한 강연회에서 특별 연사로 참석한 아들러의 사랑에 관한 강연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마침내 사회자는 청중에게 기립 박수를 치도록 부탁했을 정도였다. 아들러는 성욕보다는 사랑을 더 중 시했다. 그는 사랑과 행복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성욕과 쾌감원칙을 인 정하지 않았다.
아들러가 프로이트의 도움을 많이 받았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만 프로이트 심리학파의 정신분석학 역시 아들러의 개념을 받아들여 그 이론 체계를 확충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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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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