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Dalai Lama는 1992년에 데이 비드슨을 초대하여 승려들의 감정과 정신을 연구하게 했다. 데이비 드슨은 승려들의 몸에 전극을 부착하여 명상할 때 신체에서 일어 나는 변화를 측정했다. 명상은 신체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수행 을 오래한 승려들의 뇌에서는 일반인들보다 세 배나 많은 감마파 가 생성되었고, 활성화되는 부위도 더 넓었다. 한마디로, 뇌과학적 관점에서 승려들은 일반인보다 더 행복했다.
- 전극을 부착했던 승려 가운데 유독 한 명이 높은 수치를 보였는 데, 미디어는 그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가 바로 마티유 리카르다. 불교에 심취해 1978년에 승려가 된 마티유 리카르는 온종일 명상을 하며 마음을 갈고닦았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꼈다. 행복을 단련할 수 있다는 생각은 힘을 얻는 듯했고 많은 뇌과학자들이 데이비드슨의 손을 들어주었다. 행복은 배울 수 있고 훈련해야 한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무엇이 행복인가? 정신의학은 뇌과 학과 상반된 시각으로 행복을 진단한다. 정신의학 면에서 보면, 행 복은 중추신경계의 이상 증상으로 진단할 수 있다. 행복한 순간에 우리는 합리성을 잃고, 논리적 사고력을 잃고, 감정의 균형을 잃는다. 그러나 다른 정신 질환들과 달리 그 순간에는 아무튼 행복하다.
- 철학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두 종류로 구분했다. 헤도니아Hedonia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헤도니아는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쾌락, 강렬하게 끓어오르는 긍정적 감정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복권에 당 첨되었을 때, 응원하는 팀이 득점했을 때, 데킬라가 흘러넘칠 때, 삼바를 출 때, 웨딩드레스가 새하얗게 빛날 때 생기는 감정이다. 이런 유형의 행복은 잠시 스치는 길동무로, 끓어오를 때와 똑같이 금방 식는다. 헤도니아는 인생이라는 길고 어두운 밤에 잠시 반짝이 는 불꽃이다. 
에우다이모니아는 다르다. 그것은 오랫동안 빛을 내는 삶의 만족감이며, 종종 성찰을 통해 비로소 느껴진다. 에우다이모니아는 감정과 이성 모두와 관련된 행복이다. 에우다이모니아는 우리가 조용한 시간에 삶을 관조하며 모든 일이 잘되고 있다고 느낄 때 생기는 만족감이다. 헤도니아는 경험으로 얻고, 에우다이모니아는 결과로 얻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 추구이며 그 중심에는 이런 주관적인 삶의 만족감, 즉 에우다이모니아가 있다고 했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명하는 행복은 현대 뇌과학자들이 입증하는 연구 결과와 놀랍도록 일치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에우 다이모니아, 그러니까 삶의 만족감을 얻으려면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별함, 바로 이성을 완성해야 한다. 행복하려면 마티유 리카르처럼 정신을 훈련해야 한다. 우리는 밤낮으로 정신을 훈련하고 난 다음에야 바르게 살 때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 Soren Kierkegaard는 질투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경고했다. 그는 또한 비교에 관해서도 매우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스스로 행복을 단념하는 행위다. 비교는 불만을 낳고 불만은 불행을 낳는다."
이웃의 자동차가 더 크고 좋은가? 이웃이 더 부유하고 더 행복해 보이는가? 불행해지는 데는 단 몇 초면 충분하다. 불행해지고 싶다면 유명인, 이웃,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면 된다. 이미 우리는 매일 그렇게 하고 있다. 
- 에피쿠로스학파가 상상하는 궁극의 행복은 모든 사람이 서로 친절하게 대하고 대화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을 듣는 '에피쿠로 스의 정원' 이다. 오늘날의 록콘서트나 클럽의 시끄러운 소음과는 거리가 멀다.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에피쿠로스도 두려움, 고통, 역경 같은 부정적인 일에 눈을 감지 않는다. 이런 불행이 닥쳤을 때 행복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훈련을 매일 함으로써 행복을 싹 틔운다. 그러므로 불행은 행복한 삶의 구성요소이지, 장애물이 아 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행복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해명된 다. 매일매일 삶의 역경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때, 그곳에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살았다.
그렇다면 이 험한 비탈길을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이 있을 까? 없다. 지름길은 없지만 행복을 방해하는 독은 있다. 바로 우리의 이웃이다.
- 크릭과 왓슨의 발견 이후 연구 방법이 크게 개선되어, 어떤 유전자가 행복을 결정하는지 연구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면봉으로 구강을 한 번 닦아내기만 하면 충분하다. 행복을 결정하는 유전자 중 하나가 모노아민산화효소 AMonoamin oxidase-Type A 다. 줄여서 MAOA라고 부르는데, 이 유전자는 여성의 행복을 결정한다. 이 유전자의 유형에 따라 여성은 더 행복하거나 MAOA-L 덜 행복하다.
이 유전자의 유형은 스트레스 요인에 반응하는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 MAOA-L 유형의 여성은 긍정적 사건에 더 강하게 반응하고 스트레스 상황에서 상처를 덜 받는다. 간단히 말하면 MAOA-L은 행복감을 강화하고, 상사의 호출이나 배우자와의 싸움을 좀 더 편 안하게 받아들이게 해준다. 당연히 상사의 호출이나 배우자와의 싸움이 더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MAOA-L은 남성을 행복하게 하진 않는다. 이 유전자와 남성의 행복감 사이의 관계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성과 남성의 행복이 서로 다를까? 여성과 남성은 세계를 다르게 경험할까? 어느 정도는 그런 것 같다. 
- 연구자들은 주관적 행복감의 차이를 만드는 유전자 유형 세가지를 찾아냈고, 더불어 우울증을 유발하는 유전자 두 가지와 신경증에 관여하는 유전자 열한개를 발견했다. 특히 세로토닌 전달유전자5-HTTLPR는 주관적 행복감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16 세로 토닌은 뇌의 생화학물질로서 특히 기분에 영향을 미쳐 편안함, 마음의 평온, 만족감을 주고 두려움, 공격성, 슬픔을 줄인다.
그러므로 세로토닌 전달유전자가 행복감에 중요한 건 당연하다. 흔히 행복호르몬에 대해 이야기하며 세로토닌이 많이 든 바나나와 초콜릿을 먹으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여기에 들어있는 세로토닌이 곧장 뇌로 가지는 않는다. 바나나와 초콜릿은 맛있지만, 행복을 직접 전달하지는 않는다.
- 노스웨스턴대학의 연구진은 세로토닌 전달유전자 SLC6A4와 관 련된 이론을 발달시켰다. 이 유전자는 짧은 인자와 긴 인자 두 가지 유형이 있고, 특히 두려움에 관여한다. 짧은 인자를 가진 사람은 겁이 많고 위험을 더 두려워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쉽게 받고 나쁜 뉴스에 더 민감하다. 그래서 우울증에 더 잘 걸린다. 긴 인자를 가 진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심리적 부담을 잘 견딘다. 
이 연구와 다양한 사회질서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 답은 아 주 단순하다.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짧은 인자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개인주의가 강한 지역에는 긴 인자를 가진 사람이 많았다. 이 사실로만 보면, 아시아 사람들이 덜 행복하고 정신 질환을 더 많이 앓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 사례 연구는 그 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아시아 사회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보다 심리적으로 더 안정되어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차이를 사회구성 원리 때문이라고 본다. 쉽게 말해 집단주의 사회는 공동체 문화를 핵심으로 제시해 유전적으로 타고난 높은 정신 질환 확률에 대비했다. 집단주의 사회는 우울증에 빠졌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을 개인주의 사회보다 더 잘 보호할 수 있다. 이 이론대로라면 다양한 사회 유형은 다양한 유전 자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며, 동시에 인간이 유전자의 힘에 조금이 나마 대항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과 앵거스 디턴 Angus Deaton은 행복 에 영향을 미치는 소득의 두 가지 효과를 발견했다. 미국의 경우, 소득이 오름에 따라 삶의 만족도(에우다이모니아 행복) 가 올라갔다. 더 많은 돈이 더 많은 만족을 준다. 반면 감정적 행복 ( 헤도니아 행복)은 약 6만 7000유로(약 8800만 원)까지만 높아졌다. 간단히 말해서 돈은 일반적으로 삶의 만족도를 높이 지만, 일상에서의 감정적 행복에는 특정 금액까지만 공헌한다. 
돈은 또한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 특히 소득보다 소비가 많으면 그렇다. 소비 욕구를 자제하고 저축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산다. 행복하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느냐다. 소비 기술은 어디에 돈을 쓰느냐 뿐만 아니라 얼 마를 쓰느냐의 문제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소득 전부를 소비하거나 빚을 지는 것은 좋은 소비 기술이 아니다.
저축과 행복은 쌍방향으로 영향을 준다. 네덜란드 연구가 보여 주듯이 행복한 사람들이 적게 소비하고 많이 저축한다0 이것은 마치 고양이가 제 꼬리를 무는 형세다. 행복한 사람이 저축하고 저축이 행복하게 한다. 이것을 학술용어로 '순환적 인과관계'라고 한다. 원인에 의해 결과가 나오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 인과 관계가 순환한다.
- 행복 관점에서 봐도 결혼은 감행할 만하다. 행복 연구가 그것을 명확히 입증한다. 기혼자는 이혼 혹은 사별로 혼자 사는 사람 이나 미혼자보다 더 행복하다. 삶의 만족도뿐 아니라 감정적 행복 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모든 문화권에 해당하는 얘기다. 한마디로 알 번디가 틀렸다. 결혼한 사람들은 평균 이상으로 행복 하다. 결혼식 때 '네'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열정이 식기 시작한다. 는 통념에 미리 겁낼 필요 없다. 부부가 다른 모든 이들보다 더 자주 섹스한다는 사실 역시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를 볼 때는 주의해야 할 부분도 있다. 사실, 결혼이 행복을 주는 게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결혼한다. 결혼한 사람은 결혼하기 전에도 이미 다른 사람들보다 행복지수가 높다. 간단히 말해 행복한 사람이 결혼하고, 결혼 후에 더 행복해진다. 불행한 사람은 결혼하지 않는다. 그러니 행복해지기 위해 서둘러 결혼할 생각은 일단 접어두는 게 좋다.
- 신경과학은 뇌에 단단히 정박한 우정을 보여준다. 인간과 동물의 뇌에 우정을 지지하는 특별한 신경망과 순환이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하나는 명확하다. 우정은 협력의 자매이고 둘은 진화의 필수 아이템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연의 호통으로 친구가 되었다.
우정이라고 다 같은 우정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인간의 특별함이 등장한다. 남자들끼리의 우정에서는 무엇보다 스포츠와 지위 상승이 중요하고, 성별이 섞인 우정은 대개 파트너 선택에 봉사한다. 성별이 섞인 우정에서 남자들은 예상한 대로 여자의 신체적 매력을 중시하고, 여자들은 남자의 경제력과 신체 능력에 가치를 둔다. 이것이 비록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지 모르지만, 진화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게 뭔지 모른다.
- 집안의 행복은 무엇에 달렸을까? 가정생활에서 중요한 것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배우자와 섹스, 자녀, 돈, 가사, 평범한 일상....... 그러나 가정생활에서 다툼을 유발하는 것 은 섹스도 아니고 가사도 아니다. 대개가 돈이고, 이때 '얼마를 버느냐'는 중요치 않다. 
돈은 정치에서처럼 가정생활에서도 우리를 고전적인 분배 문제 앞에 세운다. 누가 무엇을 얼마만큼 가져갈 것인가? 누가 소비를 결정하고, 누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살 것인가? 가정이 돈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연구할 때, 심리학은 '금전 권한'을 살핀다. 그리고 여기에 큰 차이가 있다. 
금전 권한과 행복이 무슨 상관일까? 관련이 아주 많다. 가장 최 근에 자식들과 돈 문제로 다툰 게 언제인가? 그때 당신은 행복했나? 당신은 얼마나 자주 돈 때문에 싸우는가? 잦을수록 당신은 더 불행하다. 당신과 다툰 상대방도 불행하다. 그렇지 않은가?
관점을 바꿔 물을 수도 있다. 행복한 부부와 불행한 부부는 소비 결정에서도 차이가 날까? 당연히 명확한 차이가 있다.  행복한 부부는 돈과 관련해서 덜 다툰다. 왜 그럴까? 아주 간단하다. 행복한 부부는 상대방의 욕구와 소망을 더 많이 배려하고, 누가 무엇을 얻는지 약삭빠르게 계산하지 않고, 때때로 상대방이 더 이익을 보도록 양보한다. 이익과 손해는 어차피 장기적으로 균형을 이룬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행한 부부는 소비 때마다 흥정한다. “당신이 새 옷을 산다면, 나는 새 게임기를 사겠어.”  돈에 관한 논쟁이 벌어 지더라도 행복한 부부는 불행한 부부보다 더 짧게 끝내고 갈등도 남기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행복한 부부는 불행한 부부보다 더 자주 같은 걸 원하고, 늘 의논해서 구매를 결정한다. 불행한 부부는 주로 한 사람이 구매하고, 이어서 정말로 그것을 샀어야 했는지, 같이 의논해서 결정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겠냐를 두고 다툰다. 그러면 다툼은 주도권 논쟁으로 번진다. 불행한 부부는 자주 다투고, 서로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구매 결정을 의논하지 않고, 그것이 불행을 강화하고, 그래서 더 자주 다투게 된다. 악순환이다.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막대한 선택의 폭 앞에서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런 효과를 알면 그에 맞춰 정신 무장을 할 수 있다. 뭔가를 결정했으면, 그것을 고수하라. 더는 고민하지 말고 탐구를 중단하라. 선택하지 않은 다른 선택지는 모두 잊어라. 그리고 키르케고르를 상기하라. 다른 사람의 결정과 자신의 결정을 비교하지 말라. 비교는 불행요소 1순위다. 파란 하늘을 보여주며 데오도란트 구매를 권하는 광고를 무시하라. 모든 것이 슈퍼, 메가, 울트라라면 이런 형용사들에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간파해야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교환 권리를 포기하라.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실험으로 증명된 조언이다. 한 실험에서, 피험자들에게 포스터 한 장을 선물을 고를 수 있었다. 이때 선물을 받은 행복한 피험자 중 절반에게는 포스터를 언제든지 다른 모티브로 교환할 수 있다고 약속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한 번 선택한 포스터를 절대 교환할 수 없다고 말 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포스터를 교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포스터에 더 높은 가 치를 두었고 자신의 선택에 더 만족했다. 포스터를 언제든지 교환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기쁨을 오래 간직하지 못했다. 추측건대, 포 스터를 교환할지 말지를 고민하느라 머릿속이 계속 바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교환 권리는 행복에 공헌하지 않는다. 한 번 산 물건을 바꿀 수 없을 때 오히려 오랫동안 더 행복할 수 있다.
- 인생에서 많은 부분은 운에 좌우된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첫 번째 운은 유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행복은 최대 50퍼센트 까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에 아무 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 유전자 복권에서 운 나쁘게 '꽝'을 뽑은 사람은, 행복에 있어서 시작부터 불리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듯 이제 두 번째 운이 온다. 어디서 어떻게 성장하는가? 이것 역시 생후 몇 년까지는 우리의 영향력 이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기는 우리의 교육, 인생, 행복에 막 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예상이 불가능한 사회적 운이다. 그 리고 우리가 살면서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는 세 번째 운이 있다. 사고, 질병, 상실 혹은 여타 운명의 채찍들이 예상하지 못할 때 인생 에 날아온다.
우리의 행복은 많은 부분이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 행복을 뜻하 는 독일어 'Gluck'은 행복에 담긴 우연의 성질을 아주 잘 보여준다. Gluck'은 '행복'과 '행운' 두 가지를 뜻한다. 행복하게 사는 것도 Gluck' 이고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도 'Gluck' 이다. 반면에 영어는 "happiness'와 'luck'으로 행복과 행운을 명확히 구분한다. 앞에서 살펴봤던, (행복을 행운으로 여기는) 행복에 대한 독일인의 태도가 언어에도 반영된 것이리라.
- 겁쟁이가 더 행복하다. 이를 이해하려면, 겁쟁이가 피하는 위험의 실체부터 알아야 한다. 쉴러가 말하는 예측 불가성을 위험, 불안전, 불명확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위험은 특정 확률로 표현할 수 있는 사건이다. 예를 들어 주사위 놀이에서 다음번에 6이 나올 것에 10유로를 걸면, 이것은 위험이다. 주사위를 던져 6이 나올 확률이 6분의 1이라는 것을 우리가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교통사고 확률, 특정 연령대가 아직 살아있을 확률을 안다. 그래서 위험에 맞춰 보험상품을 마련한다.
불안전에는 예측 불가성이 많이 포함된다. 불안전에서는 10퍼센트에서 20퍼센트 사이' 처럼 단지 큰 간격으로 확률을 제시할 수 있다. 특정 지역에 지진이 일어날 확률은 얼마이며, 그리고 언제 일 어날까? 대략적인 예측밖에 할 수가 없다.
불명확성에는 예측 불가성이 가장 많이 포함된다. 불명확한 사건들은 아주 드물게 발생하기 때문에 확률로 표현할 수 없다. 세계 금융체계가 향후 5년 안에 무너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확률 계산이 안 되기 때문에 이런 사건에 대한 보험은 기본적으로 매우 비싸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험을 좋아한다. 연구가 입증하듯이, 인간은 기본적으로 위험을 회피한다. 인간은 위험을 싫어하고, 여유가 된다면 위험에 대한 보험을 든다. 그리고 그것으로 더 행복해진다. 미국인 30만 명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들이 안전띠를 더 열심히 맨다. 행복한 사람들이 교통사고의 위험과 결과를 더 두려워하고 그래서 사고를 예방하고 위험을 줄이고 피한다는 뜻이다. 역으로도 통하는 것 같다. 위험이 많으면, 행복감이 떨어진다. 행복한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겁쟁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수많은 운명의 채찍을 피한다.
- 기억은 우리의 행복에 결정적 구실을 한다. 그리고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벌써 우리를 기만한다. 앞에서 이미 만났던 심리학 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기억에 영향을 미 치는 자아를 두 영역으로 나눈다. 하나는 지금 순간을 감지하는 영역이다. 치과의사가 묻는다 “여기가 아픈가요?” 환자가 대답한 다. “네, 아주 많이요.” 이것은 경험하는 자아 experiencing self’ 이다. 그 러나 이것은 나중에 계속해서 기억하는 영역이 아니다. “치과에서 어땠어?” “좋았어. 이제 안 아파.” 이것이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 이다. 후자가 우리의 기억에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행복이나 불행이 반드시 그것에 대한 기억과 일치하는 건 아니다. 카너먼의 말대로 우리에겐 기억이 남고 순간의 경험은 사라진다. ‘우리’는 ‘우리의 기억'이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그때 정말로 경험하고 느 끼고 생각했던 것과 언제나 일치하진 않는다. 그렇더라도 지금까지 우리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과거를 실제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 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좋았던 그때 그 시절'인 것이다. 왜 그럴까?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사회적 정 체성을 과거와 연결하기 때문에 과거를 아름답게 정의한다.  또한 청년들도 과거를 향수에 젖어 칭송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과거와의 재연결’은 더 행복하게 느끼기 위한 '자체 속임수'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제목이, 요한 슈트라우스의 소가극 「박쥐」에 나오는 대사로, '바꿀 수 없는 것을 잊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다. 의도적으로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부정적인 순간을 지워버림으로써 사람들은 젊은 시절에 더 행복했다고 느낀다. 뇌는 우리가 더 잘 살도록, 더 행복하게 살도록 우리를 속인다.
불행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처리한다는 연구 결과는 기억과 행복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었는지 보여준다. 행복한 사람은 과거의 행복 경험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갈등이 생기지 않는 수준에 만족한다. 그들은 오히려 과거의 추억을 방해할 수 있는 불편한 기억을 삭제한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말을 빌리면, 불편한 기억을 잊는 사람이 행복하다.
불행한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과거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들은 과거의 일을 고민하고 숙고하고, 좋은 일뿐 아니라 나쁜 일까지 모두 기억한다. 이런 기억들이 행복을 방해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불행한 사람들이 정말로 나쁜 일을 겪었기 때문에 불행한지는 확실치 않다. 과거에 트라우마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현재 더 불행한 건 결코 아니다. 
- 의도적인 기억으로 행복감을 높일 수 있을까? 대답은 확실한 '그렇다' 인 것 같다.  행복하게 하는 과거의 일을 의도적으로 떠올리거나 상상하고 그것과 연결된 감정을 불러냄으로써 행복감을 높일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10분씩만 이렇게 하면 행복감이 상승한다. 흥미롭게도 행복하게 만드는 과거의 기억을 생생한 장면으로 상상하는 것이 행복감 상승에 가장 효과 가 좋았다. 그러므로 행복했던 날의 사진을 매일 보며 그때의 행복을 기억하려 애써라. 행복의 효과는 장기적이다. 행복한 기억이 행복하게 한다.
추측하건대 이런 기억들 가운데 몇몇은 거짓일 것이다. 여러 실 험이 그것을 입증한다. 사진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그들이 경험하지 않은 일을 기억하게 한다. 실험으로 검증된 이런 발견이 어쩌면 빌코미르스키의 사례를 해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행복감이 가짜 기억을 불러낸다는 것도 입증되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행복한 사람은 가짜를 기억하고, 우울한 사람은 정확히 기억한다. 어쩐지 부당하게 들린다, 그렇지 않은가? 
이런 극단적인 결과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인간의 기억은 우리가 기억과 감정을 정확히 저장하고 아무 때나 꺼내 쓸 수 있는 자료실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가짜 기억이 정상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빈야민 빌코미르스키의 사례처럼 심하지 않다면 말 이다. 그럼에도 과거 행복했던 사건을 상기하는 것은 행복감을 높인다. 바꿀 수 없는 것을 잊고, 과거의 좋은 시절을 추억함으로써 더 행복해질 수 있다.
- 행복으로 가는 하나의 길 은 없다. 행복을 만드는 특허 조제법은 없다. 행복의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은 없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분명히 사람 수보다 많고, 적어도 사람 수만큼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극소수만이 행복을 쉽게 얻는다.
세계에서 가장 불운하면서 동시에 행복한 프라네 셀락, 그리고 과학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승려 마티유 리카르의 모범을 따라 우리를 끌어당기는 그곳으로 가려면 우리는 많이 보고, 배우고, 듣고, 이해하고, 노력해야만 한다. 행복의 길 위에서 행복을 알아보려면,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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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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