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의 심리학

심리 2021. 5. 2. 11:03

- 감정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거기에 대비하게 해준다. 만일 당신의 일부가 끊임없이 세상의 위험 징후를 감시하지 않았다면 교통사고를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위험이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했다면 당신은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위험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사이에 감 정은 이런 일을 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아슬아슬하게 교통사고를 피한 사례와 같이, 대체로 그것은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일단 위험이 지나갔다고 해도 속을 휘저었던 두려움을 여전히 느낄 것이다. 그런 감각이 진정될 때까지 10초에서 15초 정도 걸리는데, 그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감정은 우리 뇌의 일부에 변화를 일으켜서 감정을 유발한 일에 대처하게 한다. 동시에 자율신경계에 작동해 심박, 호흡, 발한, 그 밖의 많은 신체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갖가지 행동에 우리를 대비시킨다. 감정은 또 신호를 내보내고, 우리의 얼굴표정, 목소리, 자세를 변화시킨다. 이 변화들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일어날 뿐이다.
- 위험을 감지하는 우리 안의 자동평가기제
감정적 반응이 진행되는 과정이 더 느렸다면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 나는지 자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이 장에서 제기된 여러 의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통사고가 날 뻔한 사고에서 생 존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게 신속하게 행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첫 순간, 감정을 일으키는 결정이나 평가는 놀랍도록 빨라서 자각할 수 없 다. 우리는 주변 세계를 끊임없이 스캔하다가, 우리의 안녕이나 생존을 위협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그것을 탐지하는 자동적 평가 메커니즘automatic appraising mechanisms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 감정이 언제 일어나는가를 살펴보면 자동평가기제가 어떤 사건에 반응하는지 추론해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감정경험을 하는 것을 실제로 관찰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 정경험에 대한 기억에서 얻어진다. 결국 감정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기 억하고 그것이 어떤 느낌이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얻어진다. 철학자 피터 골디Peter Goldie는 그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에서 이렇게 해서 얻은 정보를 사후 합리화라고 부른다. 이런 정보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질문지에서 얻는 대답은 불완전하고 상투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마치 감정적 사건 이후에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자신에 게 해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그 대답이 자각이나 기억의 필터를 통 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질문지에 응답하는 경우, 자신이 타인에 게 알려주어도 좋은 것만을 말하는 문제도 있다. 그렇지만 질문지에서 얻어지는 대답도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 자연선택이 우리 생명의 다양한 측면을 형성해온 것은 분명하다. 손 을 한번 보자. 엄지는 네 손가락과 마주볼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징은 대부분의 다른 동물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류 는 어떻게 해서 그런 엄지를 가지게 되었을까? 아마도 아주 옛날 우리의 조상 중에 돌연변이로 우연히 그런 유용한 특징을 가지고 태어났던 자가 있었는데, 자손을 낳고 돌보는 일, 사냥감과 포식자를 다루는 일에 남들보다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리라. 그 결과 그런 특징을 가진 자손 이 증가하게 되고, 시간이 흘러서 거의 모두가 그러한 특징을 가지게 되 었을 것이다. 다른 손가락과 마주볼 수 있는 엄지를 가지는 것은 '선택' 되었고, 지금은 유전형질의 일부가 된 것이다.
유사한 논리로, 방해가 있었을 때 그것을 적극적으로 제거하려고 했 던 사람들이나 제거의 의도를 분명하게 표명했던 사람들은 먹이나 짝짓 기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기고, 시간이 흘러 모두가 그런 분노의 테마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보편적 테마에 대한 두 가지 설명, 즉 인류 보편적 학습과 진화 사이 의 차이는 구체적인 사항들이 획득된 '시점'에 대한 것이다. 진화론적 설명은 우리의 선조 대에서 그런 테마(그리고 다른 장에서 다룰 감정의 그 밖 의 특징)가 계발되었다고 지적한다. 인류 보편적 학습이 존재한다는 이 론은, 분노 테마의 어떤 부분(목표를 추구하려는 욕구)이 진화과정에서 편 입된 것은 인정하지만, 다른 부분(위협과 공격으로 그 목표까지의 장애물을 제 거하는 것)은 개인의 삶 속에서 학습된다고 보았다. 결국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을 학습하기 때문에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 뇌와 감정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리처드 데이빗슨Richard Davidson과 내가 웃음에 초점을 맞추어 공동으로 진행한 다른 연구에서는, 즐거움과 함께 일어나는 뇌의 변화 중 대부분이 웃는 것으로 인해서도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모든 종류의 웃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초기의 연 구에서 내가 발견했던 웃음, 즉 '진심에서 우러난 기쁨'이 만들어내는 웃음 (9장 참조)의 경우에만 그랬다.22
이 연구에서 우리가 사람들에게 부탁한 것은 특정한 얼굴 움직임을 짓는 것이지만, 개별 감정에 따라오는 특유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에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나는 믿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얼굴로 표정을 만드는 것보다 목소리로 감정을 의도적으로 표현하는 쪽이 훨씬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가능한 한 여성을 찾 았고, 그녀는 실제로 목소리와 얼굴로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 대본에는 배역(대본을 적용하는 당사자와 그 밖의 주요인물)에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플롯이 들어간다. 모든 사람이 현 상황에 실제로 어울리지도 않는 과거의 감정적 대본을 투영하는 것은 아니다. 성격에 대한 정신 분석 이론의 통설에 따르면, 사람들이 과거의 대본을 현 상황에 투영하는 이유는 과거 사건이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앙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즉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느낌이 있거나 표현했다 하더라도 원하는 결과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본은 현실을 왜곡하고, 부적절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며 불응기를 연장한다.
- 가장 저명한 뇌와 감정의 연구자이면서 심리학자인 조지프 르두는 최근 다음과 같이 썼다. 
“조건화된 두려움 학습은 복원력이 매우 강해서 실제로 소거 불가능한 학습 형태에 해당할 수도 있다. ...... 학습된 두려움의 소거불능성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우리의 뇌가 과거의 위험과 결부된 자극이나 상황의 기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대체로 충격적인 상황에서 형성되는 이런 강력한 기억은 일상생활 도중 특별히 도움도 안 되는 상황 안으로 불쑥 침입해올 때가 있다..”
- 감정과 기분moods의 차이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우리 모두에게 감정도 있고 기분도 있다. 둘 다 느낌과 관련이 있지만 서로 다르다. 가장 명백한 차이는 감정이 기분보다 훨씬 짧다는 점이다. 기분은 하루 종일 지속될 수도 있고 때로는 이틀도 가지만, 감정은 생겨나서 몇 분, 때로는 몇 초 있다가 사라진다. 기분은 미세하지만 지속적인 감정 상태와 흡사하다. 짜증난 기분이라면, 항상 약간 짜증이 나 있으며 쉽게 화가 날 수 있는 상태다. 우울한 기분이라면 약간 슬프며 언제든 아주 슬퍼질 수 있다. 업신여기는 기분에는 혐오와 경멸이 담겨 있으며, 고양된 기분에는 흥분과 쾌감이, 불안한 기분에는 두려움이 담겨 있다.
하나의 기분은 특정 감정을 일으킨다. 우리는 짜증난 기분일 때 화낼 기회를 찾는다. 우리는 세상이 화를 내어도 되는 곳, 화를 내야 하는 곳이라고 해석하게 된다. 짜증이 난 경우, 우리는 보통 때 같으면 화내지 않을 일에 화를 낸다. 그리고 화가 나면 그 분노는 짜증난 기분이 아닐 때보다 더 강렬하고 더 오래간다. 기분은 얼굴에도 목소리에도 고유의 신호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어떤 기분에 빠져 있는지 알 수 있는 이 유는 그 기분 안에 잔뜩 실린 감정의 신호 때문이다. 기분은 우리의 유 연성을 줄인다. 주변 환경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에 둔감하게 만들 어 해석 방식과 대응 방식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감정도 같은 작용을 하 지만 불응기가 길어지지 않는 한 그것은 한순간뿐이다. 하지만 기분은 여러 시간 지속된다.
- 기분과 감정의 또 하나의 차이는 일단 감정이 시작되고 이를 우리가 자각하면 대개 그 감정을 일으킨 사건을 지적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기분에 빠져 있을 때 왜 그런 기분이 되었는지는 거의 알지 못한다. 그저 그런 기분이 들 뿐이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더니 특정 기분이 들 때가 있고 혹은 한낮에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침울해 질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기분을 낳고 그것들을 유지하는 것은 자율적인 신경화학적 변화임에 틀림없지만, 지극히 농밀한 감정경험에 의해서도 이런 기분이 생기기도 한다고 나는 믿는다. 밀도가 높은 기쁨이 고양된 기분을 낳을 수 있듯이, 밀도가 높은 분노는 짜증난 기분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왜 우리가 특정 기분을 느끼는지를 안다. 나는 앞에서 감정은 우리의 인생에 필수적인 것이고, 우리가 감정을 완전히 제거하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기분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기분은 종의 생존에 뛰어난 적응성을 가지고 있어서 진화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 구조가 빚어낸, 의도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기분은 우 리의 선택 범위를 축소시키고 우리의 생각을 왜곡시키며 행동을 통제하기 어렵게 만드는데, 어째서 그러한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는 없다. 밀도 높은 감정경험에 의해서 기분이 야기될 때, 기분이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하게 해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기분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에 비해서 그것이 주는 이로움 은 작다. 가능하다면 나는 다시는 기분을 갖지 않고 감정만으로 살고 싶다. 나는 짜증난 기분이나 우울한 기분을 없앨 수만 있다면 행복의 기분도 기꺼이 포기하련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선택을 할 수는 없다.
- 감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우리의 선택이나 즉각적인 자각 없이, 일련의 변화들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우선 얼굴과 목소리에 감정신호가 나타나고, 미리 설정된 행동과 학습된 행동이 일어난다. 신체를 조절하는 자율신경계의 활동이 일어나고, 우리의 행동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조절 패턴이 나타난다. 이와 동시에 연관 있는 기억이 떠오르거나 기대를 하게 되고, 우리 내면이나 주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해석 하는 방식에 변화를 준다. 이런 변화는 무의식적인 것이지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Zajonc는 이를 '불가피한 것'이라고 부른다.
- 심리학자 조지아 니그로와 울리히 나이서는 기억에 관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기억에서는 자신이 구경꾼이나 관찰자의 위치에 서서, 외부 관점에서 상황을 그리고 '외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니그로와 나이서는 이런 유형의 기억을, 기억 속 그 사람의 관점에서 본 기억과 대조시킨다. 대부분의 감정 적 경험을 할 때 우리는 경험에 푹 빠져서 감정에 사로잡혀 버리기 때문 에, 우리 마음의 어떤 부분도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관찰하거나, 그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성찰하지 않는다. 우리는 의식하며 자각하 고 있지만 심리학자 엘렌 랭거Ellen Langer가 말하는, 텅 빈mindless 상태에서 그럴 뿐이다.
기억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별하는 니그로와 나이서의 구분은, 정신과의사이자 불교 사상가인 헨리 와이너Henry Wyner가 의식의 흐름과 그가 목격자라고 부른 것의 차이로서 기술하고 있는 것과 지극히 유사하다. 목격자란 “의식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의미를 관찰하며 반응하는 자 각”을 말한다. 우리가 감정적 행동을 완화하고 자신의 언동을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이 언제 감정적이 되었는가를, 더 좋은 것은 자신이 감정적이 되어가는 바로 그 순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자동평가가 일어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을 자각할 수 있 어서 그 평가를 마음대로 수정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것이다. 자동평가기제는 순식간에 작동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달라이 라마와 만 났을 때, 그는 일부 요가 수행자들은 시간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동평가가 일어나는 극미의 찰나를 연장해서 평가 프로세스를 의식적으로 수정하거나 취소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자신을 포함해서 대다수의 일반인에게 이런 평가 자각appraisal awareness' 이 가능할지 의문을 표했다.
달성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 다음으로 가능한 단계는 자동평가 직후와 감정적 행동 시작 이전에 머릿속에 일어나는 생각을 자각하는 일이다. 즉 특정 언동에 대한 충동이 일어나자마자 그 충동을 자각하는 일이다. 우리가 만일 그런 충동 자각 impulse awareness 24을 성취할 수 있다면, 그 충동을 실행으로 옮길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으리라. 
- 상을 당한 사람이 깊은 비통을 보이지 않는 것은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고, 후에 심각한 정신의학적 문제를 낳기 쉬울 것이라고 정신의료 전문가들이 믿었던 시기가 있었다. 최근의 연구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죽어가는 사람이 서서히 쇠약해질 경우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에 적응할 시간이 충분히 있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그런 경우 최종적으로 죽음이 왔을 때 상을 당한 사람은 슬픔은 수시로 느낄 수 있지만 고통은 거의 느끼지 않는다. 애착관계에 어려움이 있었고, 관계가 험악했던 시기나 상당한 불만이 있었다면,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안도감의 느낌과 함께 해방감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 심리학자 니코 프리다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했다. “죽음이나 이별을 통보받고 나서 당장은 비 통함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같은 통보는 단어에 불과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 에 돌아와 그때 비로소 비통이 몰려온다."
- 우리는 아주 기쁜 소식을 들을 때 눈물을 그렁거리며 고통의 표정을 보이는 일이 있는데, 그 이유는 아직 과학적으로 해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 있는 설명 한 가지는 강렬한 기쁨이 감정 시스템을 압도하게 나, 어떤 감정이라도 아주 강렬해지면 순간적으로 고통을 낳는다는 것이다.
분노는 비통에 대한 방어책, 대체물, 때로는 치유로 작용하기도 한다. 애인에게 거부당한 사람이 차여서 화를 낼 경우 절망감은 줄어든다. 절절한 고독의 순간, 슬픔이 되돌아오기도 하지만 또다시 분노에 의해 쫓 겨난다. 고통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 아주 작은 상실의 표시라도 나타나면 즉시 분노를 드러내려고 준비해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심리치료사들은 상실이 주는 슬픔이나 고통이 연장되는 것은 분 노를 자신의 내면으로 향한 결과라고 주장해왔다. 괴로워하는 사람이 분노를 외부로, 즉 죽은 사람이나 떠난 사람, 자신을 버린 연인, 배우자, 선생님 혹은 상사에게 돌릴 수 있다면, 슬픔과 고통은 치유될 수도 있 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죽어버린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분노만 느끼는 것도 아니고, 분노의 표출이 슬픔이나 고통의 필수적인 치유나 확실한 치유라고 할 수도 없다.
- 약을 충분히 복용하면 괴로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표정과 목소리에 나타나는 슬픔과 고통은 타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지지, 친구와 가족이 주는 보 살핌은 고통을 치유한다. 슬픔과 고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으로부터 그런 치유적인 관심을 덜 받을 수 있다. 타인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슬픔이나 고통을 표현하 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표현은 의도적인 것이 아 니며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지만, 진화의 과정에서 얻은 기능 중 하나가 그런 표현들을 본 타인으로 하여금 배려하도록, 위로하고 싶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슬픔과 고통의 표정이 지닌 또 다른 기능은 상실이라는 경험의 의미를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슬픔이나 고통을 충분히 경험하면, 울음이 어떤 느낌인지, 얼굴에서 느끼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자각하게 된다. 표정이 없다고 상실의 의미를 모른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약물로 절망감을 완화시킨다면, 그 감정을 알긴 하겠지만 완전히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슬픔이 가진 또 하나의 기능은 그 사람의 자원을 재건하고 에너지를 보존하는 것이다. 
- 감정 이론학자 리처드 라자루스는 분노를 조절하는 아주 어려운 기 술 한 가지를 설명한다. 이 기술이 어려운 이유는 분노를 단순히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배우자나 연인의 언 동으로 감정이 상했다면 우리 자신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앙갚음을 하는 대신, 그들이 당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책임을 추궁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어떨까. 요컨대 그들은 자제심을 잃어버린 것이지, 원래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 고 추정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의 의도를 재평가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게 되고, 갑작스럽게 폭발했 던 것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라자루스는 이것이 말하기는 쉬워도 행 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달라이 라마 승하께서도 동일한 접근법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우 리는 불쾌한 행동과 그 행동을 한 사람을 구분한다. 그 사람이 왜 공격 적으로 행동했는지 이해해보고, 공감하기 위해서 노력하며, 무엇이 그 사람을 분노하게 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사람의 행동에 의해서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그 사람에게 숨겨야 한다. 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분노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 자체로 향해야 한다. 이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그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도록 그를 도와주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도움을 원하지 않는 자들도 있다. 가령 약자를 괴롭히는 자라면 상대방을 지배하고 싶어하고, 잔인한 사람이라면 위해를 가하는 것을 즐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행동만이 아닌 그 사람 자신에게 분노를 향해야 할 것이다.
- 누구라도 짜증난 기분에 빠지면 화를 억제하기가 힘들다. 짜증이 나 있을 때는 보통 때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일에 화를 내게 된다. 화낼 거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짜증이 나 있으면 그저 좀 귀찮다고 여기고 말 일에도 화를 내며, 보통 화가 날 일에는 격노하게 된다. 짜증이 났을 때 느끼는 분노는 훨씬 오래가며 조절하기가 더 힘들다. 어떤 기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다. 때로는 정말로 좋아하는 활동에 몰두 하다 보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나의 조언은 짜증이 날 때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라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그런 상태임을 인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분노가 먼저 폭발하기 전까 지는 분명치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제야 짜증이 난 상태여서 화가 났음을 깨닫는다.
- 분노는 우리에게 무언가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변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일으키려면 분노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려 는 것을 방해받았기 때문이었을까? 우리에게 해를 가하겠다는 위협인 가? 아니면 자존감에 대한 모욕, 거부, 타인의 분노, 어떤 부당한 행위였 는가? 우리는 정확하게 인지했을까, 아니면 짜증난 기분 탓이었을까? 그런 불만을 완화하거나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분노를 표출하고 분노에 차서 행동하면 그 원인을 제거하게 될까? 
분노와 두려움은 흔히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위협에 반응하여 일어나지만, 분노는 두려움을 줄이는 일에 그리고 위협에 대처하는 행동을 일으키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분노는 우울증의 대안으로도 알려져 왔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비 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가 우울증과 함께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정 말로 분노가 우울증의 대안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분노는 무언가 문제가 생겼음을 타인에게 알린다. 모든 감정과 마찬 가지로, 분노는 얼굴과 목소리로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만일 타인이 분노의 원인이라면, 우리의 화난 표현은 그 사람의 행동에 우리가 반대한 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알린다. 타인이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경우도 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았으면 할 때 감정을 꺼버릴 수 있는 스위치를 자연은 우리에게 주지 않았다.
- 우리는 타인의 몸 안을 보면 속이 뒤집히도록 자연에 의해서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 같다. 특히 출혈이 있는 경우에는 그렇다. 출혈하는 자 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나 친족일 때는 그런 혐오의 반응이 정지된다. 그런 경우, 우리는 거기에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고 통을 감소시키도록 움직인다. 신체적 고통의 신호나 병의 신호에 혐오 를 느끼는 것이 병의 감염률을 떨어뜨리는 데 큰 기여를 담당해왔음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지극히 유효한 공감이나 연민 능력을 감소시키는 대가를 치르고 실현되는 것이다.
공감이나 연민은 감정이 아니다. 그것들은 타인의 감정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가리킨다.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에서 사람은 타인이 느끼고 있는 것을 인식한다. 감정적 공감emotional empathy에서는 타인이 느끼고 있는 것을 실제로 느낀다. 연민 어린’ 공감compassionate empathy 에서 우리는 타인이 처해 있는 상황이나 감정에 대처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 어진다. 감정적 공감이나 연민 어린 공감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인지적 공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연민 어린 공감을 가지기 위해서 감정적 공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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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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