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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06:52:29 오늘 당신의 삶에 대해 니체가 물었다
  3. 06:50:38 향신료 전쟁
  4. 06:49:31 20250114

무지의 즐거움

인문 2025. 1. 14. 06:53

- 칼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과학자란 어떤 존재인가'에 관해 알기쉬운 예를 들어 설명. 외딴 섬에 표류한 로빈스 크루소가 연구실을 짓고 거기서 정밀한 관찰과 분석을 하여 학술논문을 썼다 치자. 그 내용은 그 시점의 자연과학의 도달점과 딱 일치하는 것이었다. 로빈슨은 틀림없이 자기 나름의 배움의 길을 걸었다. 한데 그를 과연 과학자라 할 수 있을까?
포퍼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로빈슨의 과학에는 과학적방법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 "그의 성과는 음미할 이가 그 이외에 없고, 그 개인의 심성사의 불가피한 귀결인 이런저런 편견을 정정할 수 있느느 이가 그 외에는 없기" 때문. 포퍼는 과학자이기 위한 조건을 이렇게 규정. "진정한 커뮤니케이션 수련은 자기 일을 그 일을 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설명할 때 비로소 할 수 있고, 이 수련 또한 과학적 방법의 구성요소다."
포퍼가 로빈슨을 과학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로빈슨의 연구결과가 틀렸기 때문이 아님. 어떤 언명이 과학자의 것인지 아닌지는 그 언명이 참인지 거짓인지가 아니라 공공적인지 아닌지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 "내가 말하는 것은 진리다. 반재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내 언명의 진리성은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느 사람이 한 말은 과학적이지 않다. 반면 "내 가설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사후감정을 기다린다"라고 말하는 이의 언명은 설령 틀렸다 해도 과학적이다.
과학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것은 그것이 공공의 장에 나와서 자유로운 검토과정을 거치는 것임. 과학은 어떤 과학자가 제시한 가설이 반증 사례로 뒤엎어지고 그 반증사례까지 설명할 수 있는 보다 포괄적인 가설이 제시되는 과정을 거쳐 진보함. 모든 과학적 가설은 반증가능한 것이기 때문.

- 어렸을 때는 난독 즉 손에 잡히는 대로 이것저것 마구 읽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지도를 만들어 지도 속의 빈칸을 메우는 식으로 체계적 독서를 했다. 대학원에서 레비나스 선생님을 만나고부터는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독서를 하게 되었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읽기. 저자를 가상의 멘토로 삼고 읽어 나가기. 내가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것, 나의 생각과는 다른 것을 마크하면서 읽기. 그리고 '왜, 어떤 근거로, 어떤 추론을 거쳐 저자가 이런 식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물으면서 읽게 되었다. 이런 무방비 독서를 지금까지 40년 정도 즐겁게 이어오고 있다.

- 글쓰기 기술이라고 하면 아마 보통은 문장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혹은 수사적으로 아름답게 쓸 것인가에 주안점을 둘 것이라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쓰는 힘을 갖추었다는 것은 자신의 보이스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 자기 보이스로 지어낸 말에는 고유한 율동과 흐름과 힘이 있다. 그래서 읽었을 때 무엇이 쓰여 있는지 퍼뜩 가늠이 안되어도 계속 읽어나갈 수 있다.
따라서 어려운 것, 보통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것 같은 복잡기괴한 이야기를 쓸 때는 반드시 자신의 보이스로 말을 지어야 함. 보이스가 생생하고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면 독자에게는 흐름에 휘말려서 정신을 차려보니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와 같은 일이 일어남.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독서는 독자가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언지 잘 알겠습니다." 하고 나면 그걸로 끝나니까요. 독자는 거기서 책을 덮습니다. 그래서는 곤란합니다. 그러지 않고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언지 잘 모르겠지만, 어쩌다보니 책을 덮을 수가 없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다 읽고 말았다'라고 고백하는 독자를 얻는 것이 쓰는 사람에게는 가장 기쁜 일입니다.
그러니 의미는 일단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술술 읽을 수 있게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아가 음독, 즉 소리내어 읽기를 감당할 수 있게 써야 합니다. 쉬엄쉬엄 중간에 한숨 돌리며 읽어도 좀처럼 읽히지 않는 글이나 리듬이 나쁘거나 귀에 거슬리는 마찰음, 파열음이 많은 문장은 음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음독할 수 있는 문장은 독자의 머리(뇌)가 아니라 몸으로 들어갑니다. 몸으로 스며들어 독자의 신체 일부가 됩니다. 이후 오랜시간이 지나서 그 글이 이미 독자의 몸의 한 부분이 된 시점에 독자는 무심코 과거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을 입에 담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심코 입니다. 몸 깊숙한 곳에서 그 말이 떠오르는 겁니다.
작가로서 최고 영예는 자기가 쓴 문장이 누군가의 몸에 스며들어서 거기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에 어느 날 그 사람의 말로 재생되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그런 문장을 쓰고 싶습니다.

- 지적 흥분은 글이 다루는 내용에 관해 곧바로 독창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식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이전까지 비교적 조용하고 불활성화되어 있던 뇌의 어느 부위에 전기가 통해서 갑자기 뭔가가 하고 싶어지는 상태에 가까움. 즉 책을 읽다가 '아! 그렇지!'하며 벌떡 일어나서 냉동실에 얼려 둔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하고 싶어진다거나 방 청소를 시작하거나 옛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지거나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싶어지는 반응이 생긴다면 그것이 지적으로 흥분했다는 증거. 저는 독자들이 그렇게 반응했으면 합니다. 그 흥분이 이후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이전까지 비교적 조용하고 불활성화되어 있던 독자의 뇌 어느 부외에 전기가 통해서 심장이 세게 고동치기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진정한 자기를 발견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최대의 성과를 낸다. 따라서 이후로는 죽을 때까지 쭉 그 진정한 자기인 채로 살면 된다, 와 같은 말은 인간에 관한 하나의 가설임. 특정 지역의 이데올로기일뿐 세계 표준은 아니다. 특히 미국에서 이런 이데올로기가 지배적. 많은 사람들이 아이덴티티 폴리틱스라는 개념에 속박되어 있다. 아이덴티티 폴리틱스는 인종, 젠더, 민족, 성적지향성 등 특정한 정체성에 기초한 집단을 가장 중요한 정치단위로 간주하는 사상을 의미.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이 모든 사회적 행동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그 말만 들으면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공유된 정체성으로 한 번 그 집단에 속한 사람은 그 정체성을 바꿀 수 없게 된다는 의미. 그 사람에게는 그 집단이 정한 '우리 집단의 구성원이라면 이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다'는 정형을 따르는 것만 허용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계 미국인 집단에 속하는 아이가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를 듣고 의식의 흐름기법을 창시한 마르셀 프루스트를 읽고 아르누보 양식으로 유명한 영국 오브리 비어즐리의 그림을 사랑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임. 그런 취향을 고집하면 아마도 그 정체성 집단으로부터 추방될 것임.
사회 내에 다양한 정체성 집단이 병존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다양성에 관용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줌. 다만 정체성 집단 내의 구성원 한명 한명에게는 그만큼의 다양성이 허용되지 않음. 저는 그런 생각과 삶의 방식이 굉장히 부자유스럽다고 생각하지만, 대다수 미국인은 '이것으로 된 거야. 이게 다양성이고 포섭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 무심이란 '그래, 이것을 하자'와 같은 자발만이 있고 달성해야 할 목적이 없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그런 일을 하고 싶어졌는지도 자신도 잘 모른다. 가끔 훌륭한 기록을 세운 운동선수가 인터뷰에서 '이번 경기 결과는 그냥 과정일 뿐입니다.'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주변에서 '굉장하군요, 굉장합니다'라고 치켜세우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그냥 과정일 뿐입니다'라고 별것 아닌 듯 말하는 것은 이 선수가 성공경험에 얽매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 자신의 목표달성을 성공으로 간주하고 다른 경쟁상태에게 이겼다는 식으로 총괄하면 거기서 발전이 멈춰버릴 위험이 있음을 선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 종교적 지성이란 크기를 경외하는 마음. 인간의 도량형으로는 결코 측정할 수 없고 사유할 수 없는 것과 마주했을 때 자신의 무력감과 초라함을 직면하는 것을 의미. 자신이 무력하고 초라한 존재라고 해서 위축되거나 무력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과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내가 욕망하는 것은 그것에 마음을 빼앗길 만큼 큰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그 집착에서 벗어나면 어느 정도 쿨해질 수 있다.
구원은 본래 인간의 도량형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의미. 따라서 '믿는 사람은 구원받는다'라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일지 모르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님. 하나님과 부처를 믿지 않아도 세계의 무한함을 실감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 큰 것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을 테니까요.

- 배움은 무방비, 즉 모종의 순수함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 지나치게 방어적이거나 늘 주변사람과의 상대적 우열, 강약, 승패를 신경쓰는 사람은 좀처럼 무방비, 무구, 천진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누군가로부터 비판받거나 허점을 보일 수 있고 공격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방어적인 사람은 연속적인 자기쇄신을 할 수 없다. 자기 쇄신 없이 인간은 성숙할 수 없다. 지식과 기술이 아무리 더해져도 그건 성숙이 아님. 사람은 배우지 않고 성숙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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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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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는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고 이야기함. 혼돈을 지녀야한다는 말은 이 세상을 밝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하고, 고민과 고통의 과정을 겪어야 빛이 날 수 있다는 말. 하지만 이 고민과 고통의 과정은 꽤나 힘들어서 우리에게 포기와 실패를 안겨주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빛을 잃어간다.
우리 모두 1억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세상을 밝히기 위해 태어난 별과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태어났다고 해서 자신만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지는 못하는 게 현실. 빛을 찾지 못해서, 또는 빛을 잃어서, 그렇게 그냥 어둡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곤 함. 빛을 내기 위해서는 무언가 필요함. 그 무언가는 지식과 경험이 결합된 자신만의 삶이겠지요.
어떤 지식과 경험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빛을 내도록 도와줄까? 애매하지 않고, 돌려 말하지 않는, 단순하지만 따르면 좋은 지식과 경험이 가장 쉬운 해답이 될 것임.

- 누구든지 한 가지의 능력은 갖고 있다. 그 하나의 능력은 오직 그만의 것이다. 그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충분히 살려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한가지 능력, 즉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틀림없는 사실은, 어떠한 경우라도 주눅들지 않고 씩씩하게 과감하게 그리고 꾸준히 도전해 나가면 언젠가는 자신만이 가진 한가지 능력을 반드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 세계에서 행해지는 악의 4분의 3은 공포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보다도 하나의 생리적인 현상이다.
천재성이 우리 안에 살고 있는 한 우리는 용감하며, 아니 미친 것 같으며, 목숨과 건강화 평판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갑자기 천재성이 우리한테서 떠나 버리면, 깊은 공포가 우리를 덮친다.
이 연약한 마음 상태가 고통이다.

-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어스름해질 무렵 죽음이 찾아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때문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시작할 기회는 늘 지금 이순간밖에 없다. 그리고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하는 이상, 불필요한 것들을 벗어나 말끔히 털어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는 없다. 마치 노랗게 변한 잎이 나무에서 떨어져 사라지듯이, 당신이 열심히 행동하는 동안 불필요한 것은 저절로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몸은 더욱 가벼워지고 목표한 높은 곳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길 원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을 향해 던지고, 성실하고 확고하게 대답하라.
* 지금까지 자신이 진실로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 자신의 영혼이 더 높은 차원을 향하도록 이끌어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 무엇이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기쁨을 안겨주었는가?
* 지금까지 자신은 어떠한 것에 몰입하였는가?
이들 질문에 대해 답하였을 때 자신의 본질이 뚜렷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쇼펜하우어)

- 그대들은 모든 것에 책임을 지려 하지만 꿈에 대해서만은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그대들은 가련할 정도로 연약하며, 그대들에게는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용기가 결여되었다.
어떤 것도 그대들의 꿈보다 그대들을 잘 나타내주지 못한다.
그대들의 꿈이야말로 바로 그대들의 작품이다.

- 자기자시을 하찮은 사람으로 깎아내리지 말라. 그런 태도는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꽁꽁 옭아매게 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지금까지 살면서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자신을 항상 존귀한 인간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결코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누구로부터 지탄받을 일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런 태도가 미래를 꿈꾸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라.

- 높이 오를 생각이라면 그대들 자신의 발로 그리하도록 하라. 실려 오르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낯선 사람의 등과 머리에는 올라타지도 말 일이다.
그런데 그대 말을 타고 올라오지 않았는가? 이제 그대 그대의 목표를 향하여 서둘러 말을 몰고 있는가? 좋다, 나의 벗이여! 보아하니 그대의 마비된 발 또한 함께 말을 타고 있구나!
그대보다 지체 높은 인간이여, 그대가 목표에 이르러 말에서 뛰어내릴 때, 그대는 바로 그대의 높이에서 비틀거리게 될 것이다.

- 서로 싸우거나 사랑하거나 찬미하는 두 사람 중에서 더 격렬한 성격의 소유자가 항상 더 불리한 지위에 있게 된다.
많은 인간들의 기질에 포함된 올바른 판단력과 일관성의 결여 및 그들의 칠칠치 못함과 무절제함은 그의 선조들이 범해 온 수많은 논리적인 부정확, 불철저, 성급한 추론의 궁극적인 결과다.
이에 반해 좋은 기질을 가진 인간들은 이성을 존중해 온 신중학 철저한 종족들의 후손들이다.

-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매우 즐거운 감정을 수반한다. 평생동안 계획을 세우는 사람밖에 되지 못할 역량만을 가진 사람은 매우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가끔 계획 세우는 일을 쉬고 계획을 실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분노와 환멸이 밀려올 것이다.

- 예리하고 영리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어떤 면에서는 둔해 보이는 것도 필요하다. 영특한 것만이 멋있는 것은 아니다.
영특하지만 늘 '아직 어리다'는 말을 듣고 어딘지 가볍게 보이는 취약점도 필요하다.
예리하면서도 어느 정도 둔한 면이 있어야 애교스러운 이로 여겨져,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누군가가 도움을 주기도 하며, 편을 들어줄 여지도 생긴다.  이것은 영특하기만 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게 된다.

- 독창성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있는데도,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아 불릴 수 없는 것을 보는것.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은, 이름이 붙여져야 비로소 그 사물이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독창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명명자들이기도 했다.

- 비판이라는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 들어오지 않은 모든 제도, 예를 들어 학자단체와 원로원에는 버섯처럼 죄가 없는 부패가 성장한다.

- 작은 일에도 최대한 기뻐하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덩달아 기뻐할 정도로 즐겁게 살아라.
기뻐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의 면역력도 강화된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잡념을 잊을 수 있고, 타인에 대한 혐오감이나 증오심도 옅어진다
부끄러워하거나 참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싱글벙글 웃어라.

- 죽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기에 명랑하게 살아라. 언젠가는 끝날 것이기에 온 힘을 다해 맞서자.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기회는 늘 지금이다. 울부짖는 일 따윈 오페라 가수에게나 맡겨라

- 우리가 우리의 이웃에 관해 판단하는 방식과 그들의 가치평가를 옳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점에서,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어렸을 적에 익힌 판단들에 의해 일생동안 놀아나는 어릿광대들이다.

- 도대체 사랑이란 다름 사람이 우리와는 다른 방법으로 그리고 정반대의 방법으로 살고 행하고 느낀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기쁨을 통해 대립관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랑은 이 대립을 지양하거나 부정해서는 안된다. 자기애조차도 한 인격 속에 서로 혼합될 수 없는 이원성을 포함하고 있다.

- 그러다가는 끝내 기다리는 인생을 살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

- 하루하루를 잘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눈을 뜨면 그날 적어도 한 사람에게 한가지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는 일이다.

- 자신에 대하여 얼버무리거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살지 말라.
자신에 대해서는 늘 성실하며, 자신이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마음의 습성을 갖고 있는지, 어떤 사고방식과 반응을 보이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사랑을 사랑으로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먼저 스스로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 자신조차 알지 못하면서 상대를 알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 우리의 기쁨은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는가. 우리의 기쁨이 타인의 원망과 슬픔을 한층 배가시키거나 모욕을 안겨주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정말 기뻐해야 할 것을 기뻐하고 있는가. 타인의 불행과 재앙을 기뻐하고 있지는 않은가. 복수심과 경멸, 차별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기쁨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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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전쟁

역사 2025. 1. 14. 06:50

- 향신료를 찾기위한 바닷길 탐험은 16세기 초 이베리아반도의 두 나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시작. 그중 특히 포르투갈이 과감하고 악착스럽게 목숨까지 거는 위험을 감수하며 길을 열었음. 이슬람 상인에게서 풍문으로 들은 내용 혹은 부정확한 정보에 기인하여 신비로운 향산료의 섬들을 찾아나섬.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뱃길을 항해하여 수많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드디어 인도에서 후추를, 스리랑카에서 시나몬을, 믈라카에서 정향과 육두구를 찾았고, 이를 독점무역의 발판으로 삼는데 성공하면서 자기나라 군주에게 부를 안겨줌. 그러나 동서고금의 역사가 그렇듯이 처음 차지한 자는 언제나 두번째로 온 자에게 나리를 빼앗기기 일쑤다. 지금도 그렇다. 기업에서도 기껏 개발한 기술 또는 개척한 시장을 후발주자에게 빼앗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포르투갈의 대항애로부터 한 세기도 더 지난 후 두번째 강자가 나타남. 그리고 앞선 자들이 가진것을 모두 빼앗음.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이은 신흥강자는 바로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는 영국과의 경쟁에 이기면서 향산료가 풍부한 꿈의 바다인 말루쿠제도를 석권
1505년, 포르투갈이 시나몬 숲을 독점했던 스리랑카 요새는 1640년 네덜란드가 차지. 1498년 바스쿠 다가마가 인도 코지코드에 상륙해 후추교역을 시작한 이래 160년 동안 교역을 독점하며 지배하던 인도 남부 말라바르 해안기지들 역시 1663년에 네덜란드가 가져갔다.

- 유럽인들이 자행한 악행은 비단 반다제도만의 일이 아니었음. 아메리카 잉카 원주민 학살, 아프리카 전역에서 자행한 노예사냥도 외에도 많다. 그중 불빛을 향해 돌진하는 부나비처럼 싸우다 산화한 반다인들의 사연은 특히 처절. 참고로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700개 정도의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종족이 모여 산다. 
오늘날 반다제도에 사는 사람들은 이주자들이다. 네덜란드의 총공격으로 노동력이 사라지자 다른 곳에서 대체인원을 데려왔기 때문. 마카사르, 부기스, 말레이, 자바 등지에서 왔고 중국인, 말루쿠인, 심지어 포르투갈인도 있었다고 함. 육두구농사는 하도급을 주었는데 네덜란드 전직병사, 전직 동인도회사 직원등에게 특혜를 주면서 고용. 역사는 이 사건을 반다의 학살, 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집단학살사건으로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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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4

Quote of the day 2025. 1. 14.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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