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신료를 찾기위한 바닷길 탐험은 16세기 초 이베리아반도의 두 나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시작. 그중 특히 포르투갈이 과감하고 악착스럽게 목숨까지 거는 위험을 감수하며 길을 열었음. 이슬람 상인에게서 풍문으로 들은 내용 혹은 부정확한 정보에 기인하여 신비로운 향산료의 섬들을 찾아나섬.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뱃길을 항해하여 수많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드디어 인도에서 후추를, 스리랑카에서 시나몬을, 믈라카에서 정향과 육두구를 찾았고, 이를 독점무역의 발판으로 삼는데 성공하면서 자기나라 군주에게 부를 안겨줌. 그러나 동서고금의 역사가 그렇듯이 처음 차지한 자는 언제나 두번째로 온 자에게 나리를 빼앗기기 일쑤다. 지금도 그렇다. 기업에서도 기껏 개발한 기술 또는 개척한 시장을 후발주자에게 빼앗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포르투갈의 대항애로부터 한 세기도 더 지난 후 두번째 강자가 나타남. 그리고 앞선 자들이 가진것을 모두 빼앗음.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이은 신흥강자는 바로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는 영국과의 경쟁에 이기면서 향산료가 풍부한 꿈의 바다인 말루쿠제도를 석권
1505년, 포르투갈이 시나몬 숲을 독점했던 스리랑카 요새는 1640년 네덜란드가 차지. 1498년 바스쿠 다가마가 인도 코지코드에 상륙해 후추교역을 시작한 이래 160년 동안 교역을 독점하며 지배하던 인도 남부 말라바르 해안기지들 역시 1663년에 네덜란드가 가져갔다.
- 유럽인들이 자행한 악행은 비단 반다제도만의 일이 아니었음. 아메리카 잉카 원주민 학살, 아프리카 전역에서 자행한 노예사냥도 외에도 많다. 그중 불빛을 향해 돌진하는 부나비처럼 싸우다 산화한 반다인들의 사연은 특히 처절. 참고로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700개 정도의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종족이 모여 산다.
오늘날 반다제도에 사는 사람들은 이주자들이다. 네덜란드의 총공격으로 노동력이 사라지자 다른 곳에서 대체인원을 데려왔기 때문. 마카사르, 부기스, 말레이, 자바 등지에서 왔고 중국인, 말루쿠인, 심지어 포르투갈인도 있었다고 함. 육두구농사는 하도급을 주었는데 네덜란드 전직병사, 전직 동인도회사 직원등에게 특혜를 주면서 고용. 역사는 이 사건을 반다의 학살, 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집단학살사건으로 기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