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는 팍팍한 현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정부의 성장중심 경제정책의 한계, 미성숙한 법규와 제도부터 급격한 근대화까지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우리 민족의 주식인 쌀에 있다고 생각한ㄷ. 정확히 말하면 쌀의 생산력 탓이다. 1만년전부터 접해온 쌀 때문에 우리 역사가 요동쳤다는 이야기.
쌀의 단위 면적당 부양능력은 다른 어떤 곡식보다 월등함. 동양은 기원전 1000년 전 철기문명이 시작된 뒤 서기 1500년 전까지 서양의 생산력을 압도했다. 인종주의적 편견에 가득한 유럽의 지식인들조차 인정하는 대목임. 그 압도적 생산력의 첫걸음은 쌀에서 나왔다.
그러나 쌀의 생산력은 150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동양의 발전속도를 서양의 발밑으로 끌어내린 힘으로도 작용.
이 힘은 중국의 주변국가로 자신을 한정해온 조선에도 재앙이었음. 조선은 일본에 패망하고, 일제 식민지 역사는 남북분단으로 이어짐.
- 중국인이 용을 신으로 모신 것은 용이 비를 불러온다고 생각했기 때문. 비가 오지 않으면 쌀농사는 불가. 쌀농사를 가능하게 하는 계절풍은 대양과 대륙의 복사에너지 온도차이에서 오는 대류현상이 원인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이런 자연현상을 용의 조화로 이해. 비가 내리지 않아도 잘 자라는 밀과 보리가 주식인 유럽과 중동에 비해동양은 우기와 장마때 내리는 비로 한 해 농사가 좌우됨. 동양과 서양이 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사뭇 달랐다.
동양의 지배층은 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자신에게 투사되도록 많은 장치를 고안. 계급이 처음 등장한 청동기 시대에 통치자와 제사장이 일치한 것도 이런 이유임. 왕은 청동검과 청동거울, 황금장신구로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피지배층을 세뇌했다. 이들의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
- 쌀의 우월한 생산력 때문에 동양국가들은 안정적 번영을 누림.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로마가 지주들의 토지독점과 토지황폐화 때문에 멸망한 것과는 대조적임.
쌀은 밀이나 보리에 견주어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음. 쌀은 1헥타아르당 생산량이 밀(820키로)에 견주어 1.7배나 많은 1,440키로다. 옥수수 860키로보다 많다. 인류가 보리와 함께 가장 먼저 재배한 것으로 알려진 수수의 생산량(헥타아르당 400키로)에 견주면 무려 3.6배나 된다. 쌀을 키우는 민족은 빠르게 고대국가를 이룰 수 있었다.
- 역사는 우리가 죽음을 맞는 전쟁터는 기념하면서, 번영의 터전인 밀밭은 비웃는다. 역사는 왕의 서자 이름은 줄줄이 꿰고 있지만 밀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못한ㄷ. 인간이 저지르는 어리석음이다. (앙리 파브르)
- 역사를 움직이는 결정적 열쇠는 신이나 보이지 않는 손 같은 형이상학적 힘, 위대한 지도자의 영도력이 아니라 개인이 사유재산에 대한 욕망이었고 사회 시스템이 이런 욕망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였다. 서양은 동양보다 훨씬 빠른 중세 때 이미 이런 욕망의 필요성을 인정. 반면 동양의 지배층은 이 욕망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일부 이슬람 세력과 북한 등은 지금도 이를 인정하기를 꺼린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신념이나 영도력은 초기확산속도는 빠르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지속력이 떨어짐. 진나라는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뒤 불과 15년만에 망했다. 스페인 선교사들은 모든 인간을 하느님이 창조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잊고 노예무역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반면 자기 땅에 대한 농민의 집착과 경제활동에 대한 상공인의 자유의지는 꾸준한 방향성으로 역사를 움직였다. 농민들은 늘 배가 고팠던 까닭이다.
개인의 생각을 만드는 기초는 먹거리다. 우리가 황혼녘 밥짓는 냄새를 맡으면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하고 뭉클한 기운을 느끼는 것은 우리 민족이 1만년 가까이 한반도에서 쌀을 먹으면서 삶을 이어왔기 때문.
- 유라시아인들의 쇠칼을 만들어 서로의 땅을 빼앗으려 혈안일 때 농업생산력이 높은 아즈텍인과 잉카인은 인신공양에 빠져 있었다. 왜 그랬을까? 학자들은 옥수수의 기적적인 생산조건 때문이라고 분석.
옥수수는 밀이나 쌀처럼 노동집약적 곡식이 아님. 심지어 쟁기질도 타작도 도정도 필요없다. 심는 법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남자 농민이 큰 막대기로 땅에 구멍을 뚫으면 그 구멍에 부인이 씨앗을 심는다. 1년에 두번 씨앗을 심으면 50일 안에 열매가 열림. 옥수수는 빨리 익을 뿐 아니라 익기 전에도 낱알을 먹을 수 있음. 1알을 심으면 보통 150알 이상을 거둘 수 있고, 심지어 800알을 얻기도 함. 이것은 계절에 따라 7-8일 정도만 일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 집약적 노동의 자유로움이 결국 지나치게 전제적인 신정국가에 이르게 한 것.
- 아메리카의 옥수수는 유럽으로 건너가서는 전혀 다른 역사를 일구었다. 호기심 많은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건너간 옥수수는 감자와 함께 근대적 자본주의를 태동시키는데 공헌. 두 식물의 가장 큰 공은 빠른 식량화를 통한 인구팽창. 페스트 확산으로 급감했던 유럽인구는 17세기부터 급증. 기원전 이후 2억명 가량이던 인구는 1650년에 약 5억명으로 2배가량 늘었고,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해 1850년에는 10억명을 기록. 중국의 인구증가도 옥수수 전파되었던 17세기 청나라때부터였다.
유럽에서 최초로 옥수수에 주목한 나라는 전쟁광 스페인이 아니라 전통의 부호 이탈리아였다. 중남미의 인신공양 행위를 유럽 최초로 지켜보고 기록했던 스페인 사람들은 남미에서 가져온 옥수수를 불길한 음식으로 취급해 아예 먹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무역으로 일군 도시국가 베네치아는 달랐다. 베네치아를 비롯해 이태리 도시국가들은 노동력 대비 높은 옥수수의 생산성에 매료됨. 그들은 시칠리아에 옥수수를 키워 식량으로 삼고 대신 옥수수에 견주어 2배이상 비싼 밀을 시장에 팔았다. 17세기 베네치아는 생산된 곡물의 15-20%를 수출한 반면 프랑스는 2%를 제외한 대부분이 곡물을 소비.
밥이 되고 돈이 되는 옥수누는 자연스레 부국강병에 골몰하던 유럽 전역으로 퍼짐. 사유재산과 대의 민주주의라는 열망을 품고 미지의 땅인 미국으로 건너간 유럽인들의 주식 역시 옥수수였다. 미국 이민 초기 밀농사는 잘 되지 않았다.
- 아즈텍제국 멸망 후 멕시코로 건너온 스페인 사람들은 현지에서 앓던 설사와 고열 등의 병을 목테수마의 복수라 불렀다. 목테수마는 아즈텍 제국의 마지막 왕. 아직 GM농산물의 피해가 구체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세계보건기구가 15년 10월 가공육을 석면과 같은 1급 발암물질로, 붉은 살코기를 2급발암물질로 규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판 목테수마의 복수는 옥수수를 통해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은 여러 면에서 상징적임. 동양과 서양이 맞붙은 최초의 전쟁이었고, 전제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최초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밀과 보리의 전쟁이었다. 페르시아는 그리스를 한 줌 보리라고 불렀다. 밀이 나는 풍요의 나라 페르시아가 바위투성이 땅에서 보리를 먹는 가난한 그리스에 완패를 당한 것. 헤시오도스는 페르시아 땅은 그리스보다 600배 풍요롭다고 말한 바 있다.
600배나 풍요로운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패배한 이유는 간단함. 페르시아 군인은 노예거나 정복된 속주의 피지배층이었다. 반면 그리스이 중심세력인 아테네 군인은 공동체를 대표하는 시민이었다. 마지못해 전쟁에 나선 바위를 자유를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계란이 깨뜨려버린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인들은 노예상태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자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만일 조금이라도 자유의 맛을 보았다면 그들은 그리스인들에게 창뿐 아니라 도끼까지 들고 자유를 위해 싸우라고 조언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적절히 섞어놓은 영국은 20세기 초까지 세계 제일 부강한 나라로 성장. 후발 자본주의 국가는 물론 중국과 같은 반봉건 국가들에게도 영국은 벤치마킹 대상이었음. 그러나 민주주의가 낯선 여러 국가는 스파르타의 전통에 경도되었다. 나치와 일본 제국구의가 대표적. 사회주의 국가인 스탈린 시대 소련과 지금의 북한도 스파르타와 닮았다.
19세기말부터 일본식 자본주의에 직접적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도 스파르타의 전통이 강함.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획일화된 학교교육, 고루한 서열문화 등은 찬란한 아테네보다 칙칙한 스파르타를 떠올리게 함. 무엇보다 수능이나 토익 따위에 청춘을 소진하는 젊은이들은 전사가 되기 위해 집단생활에 내몰린 스파트라 젊은이들과 닮았다.
먹는 것도 비슷하다. 잡코리아 등이 취업준비새아 1147명을 대상으로 17년에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취업준비생은 17%에 불과했다. 이들이 가장 자주 사먹는 식사메뉴는 편의점 도시락고 삼각김밥이었다. 조모스와 딱딱한 보리빵을 먹던 스파르타 전사의 한끼를 떠올리게 한다.
- 나는 폴리비우스가 조영관(로마 지방의회 관리)르로 뽑혔으면 좋겠다. 그는 우리에게 맛있는 빵을 공급해준다. (폼페이 유적 낙서)
- 가룸의 가장 큰 매력은 영양보다 맛. 생선으로 만든 젓갈같은 풍부한 감칠맛을 내는 천연 글루탐산의 보고다. 로마인은 가룸을 그냥 빵에 찍어먹기도 했지만, 허브를 첨가해 산뜻하게 만들어먹기도했다. 우리나라 젓갈처럼 조미료로 쓰기도 했지만 소화제 등 약으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로마인들은 심지어 가룸을 술에 타서 먹기도 했다.
- 고대 박물학자 대 플리니우스는 자연사에서 "지중해에서 가장 흔한 멸치뿐 아니라 고등어, 참치 등 여러 종류의 물고기를 사용해 가룸을 만든다"고 적었다. 물고기의 종류에 따라, 또 고형물이 많고 적음에 따라 알렉, 무리, 리쿠아멘 등으로 불림. 가격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빈민이 먹던 거은 액젓의 국물을 건지고 남은 찌꺼기 알렉이었다. 반면 귀족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이스파니아의 고등어로 만든 가룸. 이 고급가룸은 로마시대 사치품 중 하나였던 포도주와 가격이 비슷했다.
- 수도사들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사라진 로마시대의 농업기술을 부활시킨 것. 게르만족의 경제적 자살로 휘청거리던 중세 경제가 회생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임. 로마가 멸망한 뒤 멈추었던 물레방아가 다시 돌기 시작. 물레방아는 로마의 전성기를 열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고안. 잡초로 뒤덮였던 황무지가 수사들의 쟁기질로 기름진 땅으로 변하기 시작. 수도원은 중세 혁신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두번째 업적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가난한자와 병자를 돌본 것. 수도사는 그리스로마 문명뿐 아니라 예수의 적자이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으로 교회의 영향력은 점점 커짐. 영주와 귀족들은 천국에 가려고 자신의 땅을 수도원에 바쳤다. 덕분에 수도원의 경제력도 확대됨. 수도원은 여러 곳에 형제수도원을 설립했고 도움을 요청하는 이웃 수도원도지원. 수도원은 종교적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경제적 구심점이 되어갔다.
수도원에는 중세에 보기드문 잉여생산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로마시대에는 콜로세움보다 큰 식량창고를 능수능란하게 만들었으나 그런 건축기술이 없었던 중세 수도원은 잉여생산물이 변질되거나 손실되기 전에 가공해 팔아야 했다. 그들의 선택은 맥주. 그러나 빵을 액체로 만든 맥주는 보름도 안되어 변질되기 일쑤. 중세 도로환경을 고려하면 그들은 맥주의 보존기간을 늘려야 했음.
수도사들은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다가 늪지대에서 자라는 뽕나뭇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홉을 찾아냄. 9세기 수도사들은 홉을 넣으면 맥주의 맛이 상큼해질 뿐 아니라 보존기간도 늘어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수도원은 홉을 넣은 맥주를 유럽 방방곡곡에 팔기 시작. 로마시대 이후 흔적만 남았던 유럽의 길이 수도원 맥주를 실은 수레를 따라 다시 모습을 드러냄
- 맥주와 포도주는 비슷하지만 여러모로 다르다. 당분이 많아 저절로 발효되는 포도주와 달리 맥주는 한번 끓여서 전분을 포도당으로 만드는 수고로움을 거쳐야 함.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은 포도주처럼 저절로 술이 되는 신화적 기적이 없는 맥주를 세속의 술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포도주는 예수의 피로 상징되면서 중세에도 그 신성을 유지.
하지만 지금 세계인은 포도주보다 맥주를 6배 이상 많이 마신다. 세계 주류시장 동향자료를 보면 14년기준 세계인이 마신 술의 76.1%가 맥주다. 와인의 비중은 10.3%에 불과. 게다가 우리가 마시는 맥주는 전통적인 핏빛 에일맥주가 아니라 황금빛 맥주임. 하이네켄, 버드와이저, 칭다오 등 현대인이 마시는 맥주의 70%는 라거다. 라거는 저장하다는 뜻의 독일어 동사 라거렌에서 왔다. 발효온도를 낮추어 장기숙성한 혁신적 맥주제조법은 15세기 독일에서 개발됨.
예수가 로마시대 포도주를 선택한 것은 유대사회에서 피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였기 때문. 예수는 금기를 깨 사람들에게 죄와 구원을 환기시키려 했다. 예수와 비슷하게 중세의 수도사들은 당시 금기인 혁신을 자기몸을 쓰는 노동으로 증명해 보임. 그들의 노력으로 핏빛맥주는 황금색으로 변했고, 그 과정에서 중세는 근대 자본주의로 발효할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의 몸인 교회가 카톨릭과 개신교라는 두쪽으로 쪼개지는 아픔을 지켜보아야 했지만, 가난한 목수의 아들 예수는 맥주의 황금빛 변신을 기뻐했을 것이다.
- 유럽인이 청어를 많이 먹은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단백질 공급원이 부족했기 때문. 서양인이 고기를 손쉽게 접하게 된 것은 19세기 냉동선 발명이후다. 그전까지 붉은 고기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사치품이었다. 게다가 유럽은 후추 등 향신료가 풍부하지 않았기에 고기요리는 지금과는 다른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염장육류가 대부분. 따라서 염장생선은 위도탓에 낮부터 컴컴해지는 북유럽의 겨울철을 지탱해주는 긴요한 음식이었음. 발효를 하면 원래보다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염장하면 맛이 없어지는 육류와 큰 차이.
지금도 스웨덴에서는 수르스트뢰밍이라는 염장 발효청어를 즐겨먹음. 이 음식은 세계에서 가장 냄새가 고약한 음식으로 선정되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발효가스의 폭발위험 때문에 수르스트뢰밍 통조림의 비행기 반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그래도 스웨덴 사람들은 빵에 수르스트뢰밍을 올려 별미로 즐겨 먹음.
청어의 수요증가에는 종교적 이유도 있었다. 부활절 등 각종 종교적 행사를 앞두고 소고기나 가축의 육식을 금지하던 중세 그리스도교의 전통탓에 염장 청어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
- 에너지, 금융, 그리고 과학보다 직접적으로 서양문명에 변곡점을 가져온 것은 후추와 설탕이다. 후추는 유럽인을 바다로 뛰어들게 해 넓은 신대륙을 식민지로 만드는 계기가 됨. 설탕은 확보된 식민지에 심었던 환금작물이었음. 목화 역시 면사를 만드는 환금작물이었음. 후추와 설탕이라는 불쏘시개가 없었다면 문명의 변방이자 유럽의 변방이었던 서유럽에서 산업혁명이 들불처럼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임.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은 고대문명의 발상지였던 중동이나 인도,아시아와도 멀었고 유럽문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그리스, 로마와도 거리가 멀었다. 한마디로 문명의 곁불을 쬐던 영국고 그 영국의 비주류였던 청교도가 세운 미국은 세계 역사를 바꾸는 사회, 경제시스템의 혁명을 만들어냄. 그리고 서양사상의 초석을 놓았던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마저 경계해 마지 않았던 민주주의를 전세계에 퍼뜨림
- 영국은 세계 최초로 자본주의 경제를 선보이고 19세기에는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산업이 발달했지만 경제구조는 스페인 노예무역에서 벗어나지 못함. 영국은 1807년 인권을 이유로 세계최초로 노예무역을 철폐. 흑인인권을 생각해야 한다는 인식도 있었지만, 서구열강이 너도나도 플랜테이션 농업에 나서면서 설탕가격이 떨어진 것도 주요이유. 영국은 광대한 식민지에서 나오는 설탕, 향신로, 차, 고무, 면화를 독점적으로 싼값에 확보해 증기기관으로 작동하는 기계로 가공해 공급하는 식민지 의존 경제시스템이었음. 말이 공업국가였지 영국경제의 기초는 식민지형 플랜테이션 농업생산물이었다. 바다를 지배한다는 자만감은 16세기 스페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눈을 가렸고 영국 자본가들은 혁신을 등한시하는 부자의 저주에 빠짐.
반면 미국, 독일같은 후발국가들은 식민지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영국처럼 식민지 플랜테이션에 의존한 경공업재신 중화학공업을 발전시킴. 결국 이 두나라는 석유기반 내연기관을 만들기 시작. 특히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쫓아낸 넒은 국토에 미친 듯이 철도를 깔았다. 영국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미국철도에 투자했고 미국은 철강과 기계산업을 발전시킴. 중공업을 중심으로 발전한 미국의 공업생산량은 19세기말 이미 영국을 초월
미국과 독일이 유럽 귀족들이 장난감 취급했던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들려고고민하고 있을 때, 영국은 마차보다 빨라서는 안 된다는 붉은 깃발법을 통과시킴. 이 말도 안되는 법은 무려 30년간 지속됨. 이 법안은 내연기관 분야에서 영국이 미국이나 독일에 비해 뒤처지게 했다.
후추와 설탕같은 아열대 식민지 농업에 의존한 초기 자본주의 경제는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자본주의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유럽국가들이 깨달은 것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문. 영국,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지배에 신음하던 제3세계 식민지 국가들은 2차대전 뒤 대부분 해방됨. 그러나 식민지를 경험한 많은 국가가 폭력으로 이식된 자본주의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저개발 국가로 남아 있다. 후추와 설탕이 밀고 끈 자본주의가 마냥 달콤하지 않은 이유다.
- 영국의 미국에 덜미를 잡힌 이유는 간단함. 국내총생산의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고 하지만, 영국은 고대 로마인들도 알던 국력=인구라는 상식을 망각. 양국인은 같은 앵글로색슨족인 미국인조차 야만인 취급하며 가혹한 세금정책을 앞세우다 미국의 독립을 촉발. 1770년대 영국 정부가 식민지 미국의 요구대로 세금을 인하했다면, 미국은 1900년 초반까지 오스트레일리아나 캐나다처럼 영국에 충성을 다하는 속지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름.
학자들은 식민지에서 목화, 고무 등 원료를 수입해 가공한 뒤 다시 식민지에 파는 플랜테이션 운영의 달콤함에 젖은 기득권층이 개혁을 거부하는 지대추구를 고집한 것이 영국의 쇠퇴원인이라고 지목해옴. 고대 로마시대부터 토지를 소유한 귀족과 지주들은 민심이 반영된 개혁안을 좌절시키는 핵심세력이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이들을 잠재적 반역자로 여긴 것은 역사를 고찰하며 배운 것이지만 선견지명이기도 했다.
특히 영국의 지대추구 세력은 상인과 결탁해 수입관세를 높게 부과하는 중상주의 정책을 지지. 지주와 상인들은 흉년이 들어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 가격이 폭등해도 관세보호 덕분에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서민들은 매년 날뛰는 생필품 물가에 생존을 위협받음. 1848년 곡물관세가 폐지될 때까지 영국에서 폭동이 지속해서 발생한 까닭. 자국의 노동계층은 물론 식민지 주민과의 불통이 영국을 망친 셈.
- 오늘의 미국을 만든 것은 8할이 맥도날드다
맥도날드가 미국 대표브랜드가 된 결정적 요인은 맛이나 영양이 아니라 미국식 표준화. 맥도날드는 햄버거를 만드는 과정은 물론이고 종업원의 서비스까지 표준화해 통제. 명분은 청결이었지만 속내는 이윤 극대화. 코카콜라가 광고와 환상으로 무의식을 지배하려 했다면, 맥도날드는 의식과 행동을 통제해 일상을 합리화하려 했다. 포드가 공장의 생산과정을 일관되게 효율화했다면, 맥도날드는 일상까지 효율화를 확대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 양적인 자본주의를 포드가 만들었다면 정교화된 자본주의는 맥도날드가 만든 것이다.
- 92년 부시정부가 발표한 신규식물 종자에서 파생한 식품에 관한규정을 제정한 사람들은 유전자 변형으로 만들어진 식품의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구성이 일반적 식품과 동일하다면, 전통적 식물교배과정에서 파생된 식품과 같은 범주에서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성분동일성의 원칙을 들고 나옴. 대장균과 인간의 유전자를 무작위로 섞은 유전자 변형 생명체에 동종 간에만 해옸던 고전적 품종개량과 동일한 지위를 부여한 것.
왜 레이건과 부시는 GMO업체에게 특혜에 가까운 혜택을 준 것일까? 80년대무역수지 적자와 군비확장에 따른 재정적자에 신음하던 미국은 생명공학을 미국의 경쟁력을 확보해줄 중요한 산업으로 보았다. 한편으로는 서방세계가 공산주의에 맞서 승리하려면 지구적인 식량증산이 필요하다고 판단. 수확량 많은 GMO의 녹색혁명으로 적색혁명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함. 91년 소련은 사라졌지만 GM곡식은 여전히 미정부의 중요 안보전략 중 하나임. 테러리스트가 양산되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 식량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 테러발생 억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
- 경제위기를 타개하겠다고 도입했던 파생상품이 세계경제를 구하지 못했듯이 GM곡식은 인류를 배고픔에서 구원하지 못함.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미국 금융규제완화가 1%의 부자에게 부를 집중시킨 대힌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있듯이, GM곡식은 배고픔을 해소하기는 커녕 농민마저 굶주림에 빠지게 하고 있음. GM곡식의 40% 정도는 가축사료로 쓰임. 나머지는 액상과당과 기름 같은 식품공업 재로로 쓰이거나 바이오에탄올 같은 연료로 사용됨. 농부는 거대농업기업이 구매해주는 사료용, 가공용 GMO 단일 품목만 생산해야하고, 정작 자신이 먹을 곡식이 없어 배고픔에 시달리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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